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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지국가'에서 '정상국가'로

[김근태 2주기 세미나] 남기정 교수 <'정상국가론'의 배경과 실상>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26 오전 9:23:37

 

김근태재단(이사장 인재근 민주당 의원)과 우석대학교 김근태민주주의연구소(소장 최상명 우석대 교수) 등은 지난 19일 김근태 2주기를 맞아 동아시아의 평화('한반도 정세와 일본의 우경화,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를 모색하는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3명의 발제자와 5명의 토론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날 세미나 내용 중 25일 소개한 이삼성 한림대 교수의 발제에 이어 남기정 서울대 교수 발제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이후에는 백준기 코리아컨센서스 소장과 이해영 한신대 교수의 토론문을 실을 예정이다.

남기정 교수는 <일본 '정상국가론'의 배경과 실상: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이 의미하는 것>이라는 제하의 발제에서 우리가 흔히 '평화국가'로 알고 있는 일본의 실상이 '기지국가'였다고 지적한다. 즉 1950년 6.25전쟁을 계기로 미군의 한국전쟁을 위한 출격기지, 수리조달기지, 훈련휴양기지, 생산기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일본은 베트남전쟁(1965년), 걸프전쟁(1991년)을 거치면서 기지국가로서의 역할이 변화하며 한계에 부딪혔고, 아프간전쟁(2001년)을 계기로 기지국가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이 부상하면서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도 정상국가화에 관심이 고조되면서 '전후 체제' '청산, 기지국가'로부터의 탈피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이어 정상국가화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여론 추이를 면밀히 추적하면서 2000년 이후 개헌 여론이 호헌 여론을 앞서고 있지만, 이것이 곧 일본의 자주국방 또는 군사대국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2000년대 이후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자위대와 방위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나, 일본이 '외국으로부터 침략을 당했을 때' 선택하는 방법으로는 '자주방위'보다는 '미일안보와 자위대'에 의지하는 것을 최선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국민의 수가 더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주방위'를 선택한 국민이 10% 내외에서 평행하고 있는 데 비해, '미일안보와 자위대'의 현상유지를 선택한 국민은 2000년대 들어 70%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즉, 방위정책에 관한 한 현행 헌법 하의 현상유지에 대한 선호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NHK 여론조사의 추이를 보면, 1992년부터 10년 만인 2002년에 실시된 조사에서 헌법개정 찬성론자가 반대론자를 앞선 결과를 보였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제9조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30%, '필요 없다'는 응답이 52%로, 방위문제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평화헌법의 유용성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변경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반대가 45%, 찬성이 20%로, 헌법개정이 곧바로 본격적 군대 보유에 대한 적극적 지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2013년 8월에 실시된 <아사히신문>여론조사에 따르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하는 국민이 27%인 반면, 59%의 국민이 반대하고 있었다. 아베 내각 지지층 가운데에서도 찬성은 37%, 반대가 49%여서, 일본이 현행헌법 해석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데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베 정부는 지난 연말 중의원 선거에서 개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을(자민당과 일본유신회, 다함께당을 합칠 경우) 확보했으나, 올여름 참의원 선거에서는 연립여당을 합쳐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을 뿐 3분의 2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따라서 아베 정부는 앞으로 헌법 개정이 필요없는 집단적 자위권의 보유 및 행사를 위해 움직일 것이며, 다음으로는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법 개정에 나설 것으로 남 교수는 전망했다. 현 의회의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2016년까지는 헌법 개정 및 정상국가화를 둘러싼 일본 국내의 논란이 뜨겁게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따라서 한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에서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때 이르게 기정사실화 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평화적인 정상국가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일본 내 평화세력들과의 연대를 도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남기정 교수의 발제 중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가 지난 1월 13일 메이지신궁을 참배하러 가면서 한 아이와 악수하고 있다. 메이지신궁은 일본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 일왕 부부를 기리는 신사로 현직 총리가 신궁을 참배한 것은 아베 본인이 지난 재임기인 2007년 1월 이후 6년만이다. ⓒAP=연합뉴스


평화국가의 성립

전후 헌법에서 특히 주목할 내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1장 1조에서 8조까지의 상징천황제 조항이었고, 다른 하나는 2장 9조의 전쟁포기조항이었다. 상징천황제 조항에서 메이지천황의 권위는 부정되었다. 천황은 실체적 권력을 갖지 못하고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국민통합의 상징'의 존재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 지위는 주권을 지니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고 하여 주권재민의 원칙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천황의 전쟁책임을 엄격히 물을 것을 요구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반발이 예상되었다. 천황의 존재가 군국주의의 부활을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를 설득하기 위해 삽입된 것이 전쟁포기조항이었던 것이다. 일본국헌법 제9조는 2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항에서는 일본은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고 하였으며, 제2항에서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 군사력'을 보유하거나 유지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 두 개 항이 이른바 '평화헌법'의 핵심 조항이 되고 있는 것이며, '평화국가' 일본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한국전쟁과 일본: '기지국가'의 탄생

그런데 한국전쟁의 현실을 목전에 두고, '평화국가' 일본의 존립이 위기를 맞이했다. 일본 내외에서 재군비 논의가 일었던 것이다. 이미 한국전쟁 이전인 1948년 3월 무렵부터 냉전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일본의 안보를 둘러싸고는 여러 논의가 있었다. 주일 미 극동군 사령부는 점령의 일상 업무에 더해 재해에 대처하고 민간비상사태와 전면적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행동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정부는 7월 4일, '한국에서의 미군의 군사행동에 대한 협력방침을 승인'했으며, 8월 19일에는 <조선의 동란과 우리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외무성 성명을 통해 유엔군에 대한 협력방침을 최종 확인했다. 8월 29일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당시 일본 수상은 맥아더에게 '일본 정부는 어떠한 시설이나 노무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힘으로써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에 대한 전면 협력을 약속했다.

이후 일본은 한국전쟁을 위한 출격기지, 수리조달기지, 훈련휴양기지, 생산기지가 되었다. 일본에서 한반도의 전선으로 수송되는 미군 병사와 군수물자들을 실어 나르는데 일본의 선박과 선원, 부두 노동자들이 동원되었다. 또한 한반도 연해에 설치된 기뢰를 제거하기 위해 일본의 소해정이 한국수역에 파견되었다. 이 '작전'에는 원산 상륙을 앞둔 1950년 10월 초부터 그해 말까지 연 1200명이 넘는 인원이 동원되었다. 소해대원들은 해상보안청 소속 직원들로 대부분 구 해군 간부 출신들이었다. 또 일본의 미군기지 주변에는 미군 병사들을 위한 위락시설들이 들어섰고, 이러한 시설에 흘러들어 온 기지촌의 여성들은 미국에 의해 '기지국가'화하는 일본의 모습을 상징하는 존재들로 인식되었다.

일본의 기지들을 이용해 전쟁을 치르는 미국은 일본에 대한 강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미 군부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기지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장기적인 점령의 지속은 일본 국민 사이에서 반미감정을 불러올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 부담이 되었다. 오히려 강화 이후의 일본이 미국의 우호국으로서 자발적 협조를 약속하게 하는 것이 유리해 보였다.

자유로운 기지의 사용과 조기 강화라는 미국의 두 가지 목표는 같은 날에 조인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안보조약에서 구현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 조약은 불가분의 짝을 이루고 있었다. 이렇듯 패전으로 고도국방국가를 해체하고 평화국가로서의 재생을 모색하던 일본은 한국전쟁 하에서 '기지국가'가 되어 '독립'하여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기지국가'란 '스스로의 국방군을 보유하지 않은 채, 동맹국의 안보상 요충에서 기지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안전을 확보하는 국가'라 개념화할 수 있다.

베트남전쟁과 일본: '기지국가'의 변용

1965년 2월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북베트남에 대해 전면적 폭격을 개시하자 사토(佐藤) 내각은 이를 '불가피한 조치'라 하여 이해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안보조약의 형식에 따라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본토의 미군기지를 베트남전쟁의 후방기지로서 미국에 제공했다. 4월 14일에는 시나(椎名) 외상이 안보조약 상의 '극동'의 범위에 대해 재해석함으로써 사토 내각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60년에 개정된 안보조약의 '극동조항'이 베트남전쟁에서 현실화한 것이다. '북폭' 이후 오키나와는 물론 요코스카(横須賀)와 이와쿠니(岩国) 등의 미군기지가 베트남전쟁으로 향하는 항모와 폭격기의 출격기지로 변모했으며, 사가미(相模) 보급창은 수리조달기지가 되었다. 오지(王子)와 네리마(練馬)의 미군병원은 야전병원이 되었으며, 베트남전쟁 특별수요가 창출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전쟁 시기의 일본을 방불케 했다.

그 사이에 오키나와는 일본에 '반환'되었고, 본토에서 미군기지가 축소되는 만큼 오키나와에서는 미군기지가 확충되었다. 이에 따라 '기지국가'의 속성이 '기지의 섬'에 집중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걸프전쟁과 일본: '기지국가'의 한계

냉전이 붕괴되고 미일안보조약이 재조정의 운명에 처해질 즈음인 1990년, 동아시아로부터 멀리 떨어진 중동 지역에서 발발한 걸프전쟁은 일본의 미군기지가 여전히 전쟁의 후방기지로서 유용함을 보여주었다. 걸프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는 중동을 향한 출격, 중계, 보급기지가 되었다. 오키나와의 가데나(嘉手納), 후텐마(普天間), 그리고 본토의 이와쿠니(岩国) 등에서는 항공부대가 출격했으며, 요코스카와 사세보(佐世保) 등의 해군기지로부터는 제7함대 소속 함정들이 추격해 나갔다. <오키나와 타임스>에 따르면 1990년 8월 7일 밤부터 8일에 걸쳐, 완전무장한 미군 병사가 C130 수송기로 출격했고, 8일에는 E3 공중조기경계관제기(AWACS)가 2기 중동을 향해 발진해 나갔다. 그리고 14일에는 오키나와주둔 미군 소식통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제1해병 항공단 소속 공격기 등 항공부대의 일부가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기지와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에서 필리핀을 경유해서 걸프지역으로 향했다.

미 태평양군 준 기관지인 성조지(Stars and Stripes)는 1990년 8월 22일 자 기사에서 후텐마 기지의 제36해병 항공군이 필리핀에서의 훈련을 끝내고 중동으로 출동했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요코스카 기지로부터는 제7함대 기함 블루리지가 출항했고, 사세보 기지에서는 19일, 전차 양륙함 샌버나디노(San Bernardino)호가, 20일에는 전차 양륙함 세넥타디, 해난구조함 브라운즈윅 등이 출항했다. 21일에도 해난구조함 뷰포트, 군용 트럭과 물자 등을 적재한 독크형 양륙함 데뷔크 등 2척이 출항했는데, 이들 함정들은 20일에서 23일 사이에 오키나와의 화이트비치, 레드비치 등에 기항, 전차와 트럭과 지프차, 대포, 탄약, 의약품 등의 군수물자와 해병대원 등을 적재하고 다시 출항했다. 걸프전쟁 시기 미국은 54만 명 이상의 미군이 투입되었다고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 약 1만 5000명이 주일 미군기지에서 직접 걸프 지역으로 파견되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미군의 출격은 지역적으로 주일미군의 동원을 극동의 안전보장에 한정한 '극동조항'에 위배되는 내용이었지만, 일본 국회에서는 외무성 조약국장이 '주일 함대가 출동하는 것은 전투작전행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이동에 불과하다'는 궤변으로 이를 용인했다. 걸프전쟁을 계기로 주일미군은 일본의 기지로부터 어디로든지 출격이 가능한 태세가 만들어졌다. 나아가 가이후(海部) 수상은 담화를 발표하여 다국적군의 투입에 대해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고, 다국적군에 대한 후방지원을 위해 자위대 파견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유엔평화협력법안'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반대에 부딪혀 폐기되었다. 그 대신 일본은 다국적군에 대해 130억 달러의 재정을 지원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매정한 평가가 내려졌다. '피를 흘리지 않는 이기적인 국가', '평화에 대한 무임승차 국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일본에 각인되었다. 한편 90년대 초는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 가능성이 회자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당국의 '불바다' 발언으로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한반도에서 '통일도 없고 전쟁도 없다'는 '기지국가' 외교의 전제가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보통국가론의 등장 배경이 되었다. 이후 일련의 법안정비를 거쳐 1999년에는 주변사태법이 성립되기에 이르렀다.

아프간전쟁과 일본: '기지국가'의 종언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동시다발 테러와 이에 이은 미국의 아프간전쟁은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자위대의 해외파견'이라는 형태로 일선을 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9월 11일 심야, 일본 정부는 국제 긴급 원조대를 편성하고 국내 미군시설에 대한 경비 강화를 지시했다. 아프간전쟁이 개시된 뒤에는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일본의 적극적 공헌을 요구하고 나섰고,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미군의 지원협력활동을 전개하기 위한 법제를 마련하고 자위대를 파견했다.
 

▲ 발언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남기정 교수 ⓒ김근태재단

10월 5일 테러대책 특별조치법이 국회에 제출되었고, 18일에 중의원, 29일에 참의원을 통과해서 가결되었다. 이어서 11월 9일에는 이지스함을 포함한 자위대 함정이 인도양을 향해 사세보를 출항했다. 이 모든 과정이 일본으로서는 이례적인 속도로 진행되었다. 11월 25일에는 추가로 자위대 함정 3척이 사세보를 출항했으며, 전체적으로 1200명 규모의 지원이 이루어졌다. 이는 '기지국가' 이후 미일안보조약 하에서 진행되어 온 현실이 기정사실화되는 과정이었다. 특히 걸프전쟁 이후 유사법제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했다.

때마침 북한의 핵개발과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 맞물리면서 일본에서는 안보불안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고이즈미 내각의 자위대 파견 결정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9.11 직후부터 11월 중순 사이에 일본 여론에 변화가 나타났다. TV 아사히의 <뉴스 스테이션>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주도의 아프간 보복 공격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일본의 자위대 파견에 대해서도 지지하지 않는 여론이 지지하는 여론을 웃돌기 시작했다. 9월 22~23일에 실시된 최초의 조사에서는, 미국의 보복공격에 대해 '지지'가 48%, '지지하지 않음'이 38%였으며, 고이즈미 내각의 자위대 파견에 대해서도 찬성이 52%, 반대가 37%였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대테러 공격에 가담함으로써 감수해야 할 위험, 즉 일본 국내에서 테러가 일어나거나 외국에서 일본인이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데 대해 불안을 호소하는 의견이 90%에 이르렀다. 또한 찬성 의견에도 다음과 같은 유보가 붙어 있었다. '미국이 보복공격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85%), '미국의 보복공격을 인정하는 유엔결의가 필요하다'(73%)는 것이었으며, '일본이 자위대를 파견할 경우, 미군의 작전에 대해 주문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65%였다. 이라크 등에 대한 확전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의견도 58%였다.

또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보복공격 직후인 10월 13~14일에 실시된 TV 아사히의 조사에서는 공격에 대한 '지지'가 51%, '지지하지 않음'이 37%, 자위대 파견에 대한 '지지'가 55%, '지지하지 않음'이 35%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1월 17/18일의 여론조사에서는 '영미의 군사공격'에 대해 '지지'가 40%, '지지하지 않음'이 47%로 역전되었으며,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의 인도양 파견'에 대해서도 '지지하지 않음'이 53%인데 반해 '지지'가 38%로 역전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 국민은 '기지국가'의 효용한계를 실감하는 한편, 자위대가 '기지'의 방위를 넘어선 활동에 참가해서 군사적 '정상국가'로 탈바꿈하려 하는 데 대해서는 여전히 저항감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지국가'에서 '정상국가'로: '헌법개정'의 향방

대테러전쟁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전쟁을 '세계내전'이라 명명한 국제정치학자들이 있었다. '세계내전'의 시대에 '기지국가'는 유효기간이 종료된 것으로 감지되었다. '세계내전'의 시대에는 '극동'의 지정학적 구분도, 전선과 후방의 군사 작전상의 구분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기지국가'로부터의 탈각이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이라는 구호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이 이즈음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표출된 일본 국민의 여론은 양가적이다. 우선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와 '자위대와 방위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2000년까지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나타내는 국민은 걸프전쟁 시기를 예외로 하면 50~60% 사이에서 점증하고 있었는데, 2000년 이후부터 오름세가 뚜렷해 졌으며 2003년 이후 60%를 너머 70%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한 관심의 고조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외국으로부터 침략을 당했을 때' 선택하는 방법으로는 '자주방위'보다는 '미일안보와 자위대'에 의지하는 것을 최선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국민의 수가 더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주방위'를 선택한 국민이 10% 내외에서 평행하고 있는 데 비해, '미일안보와 자위대'의 현상유지를 선택한 국민은 2000년대 들어 70%를 넘어서고 있다. 즉, 방위정책에 관한 한 현행 헌법 하의 현상유지에 대한 선호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 국민 사이에서 헌법개정론이 호헌 여론을 앞서기 시작했다는 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일례로 NHK조사를 들 수 있는데, 1992년부터 10년 만인 2002년에 실시된 조사에서 헌법개정 찬성론자가 반대론자를 앞선 결과를 보였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제9조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30%, '필요 없다'는 응답이 52%로, 방위문제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평화헌법의 유용성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3년의 조사는 보다 복잡하다. 개정 찬성론자(약40%)가 반대론자(약20%)보다 두 배 많은 결과를 보였으며, 제9조의 개정에 대해서도 개정 필요성을 주장하는 의견이 33%, 개정 반대 의견이 30%로 나타났다. 이렇게 보면 이제 일본 국민은 헌법개정을 통한 군대 보유에 긍정적인 의견이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보다 구체적으로 의견을 묻는 항목에서는 미묘하게 상반된 결과를 보였다.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변경하자는 의견'에 대한 찬반은 반대가 45%, 찬성이 20%로 나타나, 헌법개정이 곧바로 본격적 군대 보유에 대한 적극적 지지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찬반 여론은 보다 이러한 경향을 농후히 보여준다. 2013년 8월에 실시된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하는 국민이 27%인 반면, 59%의 국민이 반대하고 있었다. 아베 내각 지지층 가운데에서도 찬성은 37%, 반대가 49%여서, 일본이 현행헌법 해석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데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동아시아적 문제로서의 일본의 '정상국가화'

이와 같이 전후 동아시아에는 미소 간에 전개되는 지구적 냉전 체제 하에 한국전쟁 휴전체제라고 하는 지역 수준의 준전시체제가 형성되어 있었고, 일본은 '기지국가'가 되어 동아시아 휴전체제에 편입되었던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총력전 체제를 갖추고 '고도국방국가'가 되어 있던 일본은 전후 평화 헌법 하에서 '평화국가'로 재기를 다짐했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기지국가'가 되어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 계승되어야 할 자산이거나 부정되어야 할 유산으로 자리 잡은 평화국가의 실상은 기지국가였던 것이다. 일본에서 '정상국가'화 논의가 대두된 1990년대는 지구적 수준에서 냉전체제가 붕괴되는 이면에서 동아시아의 휴전체제가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일본의 개헌 논의는 이러한 '불편한 진실'과의 마주 대하기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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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함세웅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12/26 11:56
  • 수정일
    2013/12/26 11:5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불법선거 시효 없다, 2012 대선은 무효
명백한 관권선거 묵인하는 것도 범죄다"

 

13.12.26 08:45l최종 업데이트 13.12.26 09:15l
장윤선(sunnijang) 유성호(hoyah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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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은 3.15 부정선거보다 더 심각한 부정선거이고 대선 자체가 무효이다"며 "명백한 관권선거를 묵인하는 것도 민주시민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이다"고 강조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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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전쟁범죄 및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에 대해 시효가 없다고 결의했습니다. 관권 불법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주도한 불법선거에 시효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개선해야 합니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은 3·15 부정선거보다 더 심각한 부정선거입니다. 대선 자체가 무효입니다. 명백한 관권 선거를 묵인하는 것도 민주시민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함세웅 신부의 말이다. 함 신부는 아주 명쾌한 논리로 2012년 대통령선거의 불법성에 대해 말했다. 그는 우리 역사가 친일파와 독재세력에 의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것은 제대로 된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안 됐기 때문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유신의 핵' 박정희 전 대통령을 총으로 제거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무엇보다 함 신부는 지난 1년 내내 지속되는 이슈 대선불복과 불법선거 그리고 이것을 바라보는 민주시민의 자세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당부했다. 함 신부는 "정보부(국정원)가 앞에 나서고 군 사이버사령부, 보훈처, 정부기관 등이 모두 개입한 불법, 부정선거 아닙니까?"라며 "그럼 선거 자체가 무효다. 선거법상 관권 불법선거는 시효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함 신부는 "명백한 관권 불법선거를 묵인하는 것 자체도 민주시민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고 범죄"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외치는 국민의 소리, 그것은 국민이 깨어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거짓말을 되풀이하는 마귀 같아요"

함 신부는 또 우리 사회 역사인식이 왜곡되는 주요 원인으로 언론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현재 시점에서 언론이 제일 큰 범죄 집단"이라며 "구체적으로 저는 <조선일보>를 지적한다. <조선>의 왜곡된 시각으로는 예수님도 부처님도 모두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했다는 것을 행실로 보여라' (마태오 3,7.8)"라는 성경말씀을 인용하면서 "<조선>은 거짓말을 되풀이하는 마귀들 같다"고 묘사했다.

함 신부는 "70~80년대는 뜻있는 기자들이 정론을 위해 독재정권과 싸우고 진실보도를 위해 불의한 정권에 대항했는데 지금은 불의한 정권의 하수인, 아니 동업자가 된 조·중·동과 KBS, MBC, SBS 등 수구 언론은 진실과 사실 보도에 대한 책임과 의무라는 언론의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다"며 "언론인들,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고 싶다고 했다. 진심으로 언론의 회개를 당부한다고도 전했다.

최근 무리하게 진행된 경찰의 민주노총 강제 압수수색과 관련해서는 "노동자의 권리는 헌법에 보장돼 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청와대나 공권력이 침해한다는 것은 국기를 흔드는 일로 헌법을 스스로 거부하고 짓밟는 범법 행위다.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공권력이 남용되는 만큼 그 공권력은 쇠퇴하게 되고 그 정권은 망한다는 믿음이 있다"고 밝혔다.

이 인터뷰는 지난 23일 서울 중구 서대문구 서소문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3층 회의실에서 했다. 함 신부는 민주주의자 고 나병식 선생의 노제에 참석했다가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감기로 몸살을 앓던 중에도 함 신부는 박근혜 정부와 유신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 그의 심장에 총을 겨눈 김재규 부장에 대해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런 함 신부에게 도무지 '안녕하시냐'고 물을 수 없었다. 끝내, 묻지 못했다.

다음은 함세웅 신부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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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는 "불법선거 앞에서 침묵하고 있다면 그런 공동체에 희망이 있겠나, 오랜 동안 끊임없는 민주화 과정 그리고 지금도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외치는 국민의 소리, 그것은 국민이 깨어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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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2013년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정국은 차갑게 얼어붙고 있는데, 신부님께서는 현 시국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의 평화일꾼들, 밀양 송전탑 건설저지를 위한 주민들, 쌍용차 희생자들과 구성원들 그리고 철도노동자들이 곳곳에서 신음하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촛불을 들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 시민들은 지난 대선에 대해 정부가 주도한 불법 관권선거였다고 말했습니다. 개표부정 문제를 비롯해 국정원 댓글이 2200만 건이 됐고, 수사 인력의 한계로 수사를 제대로 못 했다는 사실까지 법정에서 제기됐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과연 이런 일이 민주공화국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 지금 이 순간에도 불법선거 의혹이 지속해서 드러나고 있지만, 정작 선거법 시효가 다 끝나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새누리당도 늘 그 문제를 제기합니다.
"유엔은 전쟁범죄 및 인도에 반하는 죄에 해당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시효가 없다고 결의했습니다. 관권 불법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주도한 불법선거에는 시효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개선해야 합니다. 40년 전 유신독재로 회귀하는 어둠과 그림자를 늘 체험하게 되는데 그걸 극복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유신독재 회귀를 극복하는 방안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유신의 핵인 박정희(전 대통령)를 제거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죽였는데 그 문제를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이 있고 또 김 부장 역시 권력자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비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일리 있는 문제제기입니다만, 김 장군의 행업을 공동체적 시각, 역사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까지 김재규 부장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특히 박근혜 정부하에서 김 부장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1979년 당시 왜 김재규는 박정희를 향해 총을 쏘았는지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계엄하에서 전두환 정권에 의해 왜곡된 목소리만 전해져 김재규 부장의 진실한 뜻이 왜곡됐고 지난 34년간 나쁜 사람으로만 전달됐습니다. 제가 1979년 10·26 당시 인권변호사들을 통해 들은 바에 따르면 김 부장은 부마항쟁을 계기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유신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제안도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김재규는 왜 '유신의 핵' 박정희 심장을 겨눴나

- 김재규 부장이 부마항쟁을 통해 변화했다는 구체적 증거가 있습니까.
"김 부장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요사이 우리 시대 화두가 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한 청년 학생의 고백과 선언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사실 김 부장은 부마항쟁 현장에서 크게 깨닫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중정부장으로서 최루탄이 터지는 현장 답사를 위해 택시 타고 가면서 기사를 통해 '유신의 한계가 왔구나, 독재자를 제거해야 할 때가 왔구나'하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는 학생들의 부마항쟁 가운데에서 회개하고 깨달은 겁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 앞에서 김 부장은 우리 시민들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사실과 박정희 1인 체제, 유신독재 그것이 핵심적 문제임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 핵을 제거시킬 때 공동체의 안녕을 되찾을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시대가 그를 깨우친 것입니다.

이에 그는 자신의 삶, 자신의 길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는 청렴결백한, 참으로 인간적인 훌륭한 군인이었습니다. 박정희 유신체제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중앙정보부장이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그는 제2의 권력자로 분명히 유신의 공범자입니다. 그럼에도 공범자로 남지 않고, 청년학생 시민들의 봉기 속에서 '내가 설 자리가 과연 어디인가? 이분들과 함께 손잡고 유신의 핵을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책무를 깨달은 겁니다.

바로 여기에 김 부장의 깨달음과 결단, 회개의 전적 전환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어내야 하는데 많은 분들이 이 핵심을 읽지 못한 채 껍데기 현상만 보고 이말 저말 하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인 셈이지요."

- 1979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신부님은 어떠셨습니까. 김 부장의 결단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될 거라고 감지하셨습니까.
"1979년 10·26 당시 저는 영등포 감옥에 있었습니다. 함께 구속되어있던 동아투위 기자들에게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27일 아침인데 교도소가 비상이었어요. 교도관이 모두 군복을 입고 재소자들은 일체 방에서 못 나오게 하고 작업도 취소되고, 교도소 분위가 무척 살벌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동아투위 기자들이 '신부님 아세요?'라고 묻길래 저는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어젯밤 김재규 중정부장"이 '그냥 손짓으로 총 쏘는 모양을 하면서' "박정희를 쐈어요. 그래서 박정희가 죽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깜짝 놀라며 온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방에 와서 점심밥을 받아 이불 속에 넣어놓고 낮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기적적으로 해방된 이스라엘, 모세를 통해 갈대바다를 가로질러 걸어간 이야기, 바빌론 70년 유배에서 해방된 유다인들의 기쁨과 환호소리. 저는 그 순간 모세의 기적, 유다의 해방 그 기쁨과 감격을 실제로 마음속 깊이 체험했습니다. 독재자 박정희가 죽으리라 그 누가 생각했으며 더구나 어떻게 감옥에서 제가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건 은총의 사건, 하늘의 사건, 이것이 바로 기적임을 깨닫고 20여분 눈을 감고 묵상하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막 눈물이 나는 거예요.

저는 김재규가 어떤 분인지도 모르지만 '하느님의 손길은 뜻밖에 우리를 찾아와 이렇게 민주주의와 자유를 열망하는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구나' 라고 종합하면서 묵상했습니다."

- 감옥에서 나온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을 텐데…, 그러나 또 다른 시련이 온 거지요?
"정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저희들이 나오고 며칠 뒤 12·12 전두환 군사반란 일어나 숨 쉴 사이도 없는데 이돈명 변호사님, 황인철 변호사님 등이 저와 동료사제들에게 김재규를 살려야 한다며 구명운동을 재촉했습니다. 그래야 이 땅에 유신체제가 청산되고 참 민주주의가 회복된다는 거예요.

80년 3월 명동성당 사순절 특별강론에서 저는 김재규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15,13)는 성경말씀과 연계하여 그분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김재규 부장의 행업에 대해 공감할 뿐 아니라 감동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나는 그러한 상황에서 과연 목숨을 걸고 유신의 핵을 제거하겠다고 나설 수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김 부장의 결단은 회개와 함께 한 전적인 전환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감행한 일로 그는 이것을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전두환 일당의 음모로 그의 혁명은 무산되었지만, 그분의 뜻은 영원히 남습니다."

- 지금은 그 유신의 핵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통치하고 있는데요. 이 역사적 현실을 신부님께서는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문영심 작가는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되겠나-김재규평전(시사인북, 2013)>에서 이를 시사하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김재규 부장에게는 역사의 심판, 제 4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심판 그 4심의 순간에 와 있다고 봅니다. 박정희에 대한 모든 잘못과 실정에 대해 제대로 평가할 수 있고 유신 잔당과 졸개 그리고 그 딸의 거짓과 기만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김재규 부장의 뜻을 되새겨야 합니다.

저는 신학도로서, 성서의 가르침, 하느님의 섭리를 늘 확신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주살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70년 뒤인 1979년 같은 날 독재자 박정희가 제거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우연의 일치입니다만 70이라는 숫자에서 성서적, 상징적 의미를 읽고 있습니다. 성서에서 70은 완결과 해방, 종말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행업이 늘 현실 역사 속에서 이뤄진다는 실천적 교훈이기도 합니다. 안중근 의사의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 제거와 김재규 부장의 독재자 박정희 제거는 70이라는 숫자 안에서 신학적으로 연계하여 생각할 수 있는 묘한 사건입니다."

공동선 실현을 위한 정당방위... 안중근 그리고 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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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는 최근 경찰의 민주노총 강제 압수수색에 대해 "노동자의 권리는 헌법에 보장돼 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청와대나 공권력이 침해한다는 것은 국기를 흔드는 일로 헌법을 스스로 거부하고 짓밟는 범법 행위다.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공권력이 남용되는 만큼 그 공권력은 쇠퇴하게 되고 그 정권은 망한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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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계명에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사제로서 신부님께선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사제로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십계명의 원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1909년 당시 뮈텔 주교도 천주교 신자는 살인할 수 없다며, 안 의사의 의거를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신학적으로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안 의사의 행업은 공동체 차원에서는 공동선 실현을 위한 정당방위입니다. 그것은 보편적 사랑을 실천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편적 사랑 실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신학자 요한네스 멧츠도 사랑의 원리에서 불의한 자를 제거하는 일은 바로 공동선을 위한 사랑의 실천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 검사 심문 과정에서 이 부분을 분명히 주장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살인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기계적 이해를 넘어 하느님의 손길, 정의와 공동체의 책무를 우선시했습니다.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침략자와 독재자를 제거하는 일은 바로 사랑과 정의의 실천입니다."

- 김재규 부장의 행업도 정당방위에 해당된다고 보는 것입니까.
"공동체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정당방위를 신학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김재규 부장이 철권통치, 영구집권을 꿈꾸는 독재자 박정희를 제거한 것은 바로 공동체를 위한 투신행위입니다. 법정진술에서 확인되었듯이 박정희의 사생활은 말할 수 없이 무질서했습니다. 박선호 과장은 그를 짐승과 같다고 비유할 정도였습니다. 이에 김재규 부장은 우리나라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남과 북 그리고 미국 등 우방국가들과의 우호증진을 위해서도 부도덕한 독재자는 사라져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독재권력의 1차 폭력에 대응하는 공동체의 정당방위 차원에서 우리는 김재규 장군의 행업을 읽어야 합니다."

- 박근혜 대통령은 선친의 산업화 행업에 대해 민주화세력이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만들어놔서 그야말로 긍정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새마을운동 등도 복원하기 위해 국회에 예산신청까지 해놓은 상태입니다. 이건 어떻게 보십니까.
"종합적으로 오늘의 불법 관권선거로 집권한 새누리당과 그 권력자는 양승조 의원 말대로 과거 잘못된 독재자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주장입니다. 김재규 부장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잘 이뤄져야 합니다.

김재규 평전을 우리 모두가 읽고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성을 지닌 아름다운 마음, 약자를 위한 배려, 불의한 자를 타파함이 김재규 장군의 의지였습니다. 이에 그는 "불의한 권력과 부패세력을 퇴치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정권과 야합한 불의한 재벌, 부패기업들, 부패한 정치세력들을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고 그는 법정에서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

- 청와대는 물론 여당인 새누리당은 박창신 신부의 발언 등을 문제 삼아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릴 수도 있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정부, 그리고 거짓과 사이비 언론이 말하는 종북몰이, 심지어 사제들에게도 그런 걸 갖다붙이니 그 자체가 모순이며 우스운 일입니다. 강론은 신앙의 영역으로, 하느님의 자리입니다. 성당영역을 정부 공권력이 침해해서 들어갈 수 없듯이, 기도하는 자리, 미사의 영역, 말씀선포의 자리, 그 초월적 영역을 공권력이 넘본다는 발상 자체가 종교에 대한 무지일 뿐 아니라 하나의 폭력이기도 합니다.

불의한 독재자들이 툭하면 정교분리를 말하곤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도 강론에 대한 공권력 개입은 그 자체로 모순입니다. 이때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대적 발언과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이 발표되어 이 모든 거짓 작태들이 쑥 들어가 버렸습니다. 특히 사제들에게 "고통받는 현장으로 가라, 흙이 묻어도 낮은 곳으로 가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대적 외침은 너무 신선합니다. 한국의 거짓언론과 불의한 권력자들이 회개하고 뉘우쳐야 합니다.

종북물이는 오물입니다. 오물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합니다. 하수구에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평화통일이라는 주제를 품어야 합니다."

"종북몰이는 오물... 오물은 쓰레기통이나 하수구에 버려야"

- 박근혜 대통령이 왜 종북몰이를 한다고 보십니까.
"이념갈등과 남북분단은 친일파와 이승만 독재 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악용한 불행한 역사의 산물입니다. 박정희 유신독재는 남북분단을 이용해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조작해 고문하고, 죽이며, 18년간 권력을 유지하고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민족보다 정권을 앞세우는 이념갈등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의 증거입니다.

민족애를 바탕으로 북과 잘 연계해서 화해와 일치,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고구려·백제·신라 3국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했지만, 1천년이 지난 오늘 삼국시대 역사는 모두 우리 선조들의 역사이며,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우리 조국의 뿌리입니다. 100년, 200년 뒤 남북 모두 우리 후손들이 기억해야 할 선조들의 삶이 됩니다. 체제와 이념은 달랐지만 북이 좀 어려웠던 시기에 남이 북의 동포들을 도와줬다면 아름다운 역사로 우리 후손들은 칭송하고 기억할 것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은 유신세력의 집권이라기보다는 친일파가 다시 정권을 잡은 것과 같다는 해석도 있는데 신부님께서는 이같은 정치권의 분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방 당시 친일파들이 그러했듯이 분단이 영업이 되는 겁이다. 전쟁을 부추기고 분단으로 긴장을 고조해서 우리 국민들의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겁니다. 1945년 친일파와 그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게 결국 친일, 독재, 분단세력에게 집권할 기회를 준 것이지요. 지금 정권은 또 다시 분단을 빌미로 불법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하는 공안통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 뿌리는 바로 친일파, 독재추종자와 똑같다는 것을 우리 젊은이들은 읽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분명한 민족사관을 갖고 정의를 기초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 민주화운동을 해오시면서 더울 더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역사관을 갖게 되신 거지요?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서 일하면서 깊이 깨달은 교훈이 있습니다. "일제침략에 맞서 나라 찾기 위해 애썼던 항일독립투쟁, 독립전쟁이 민주화운동의 바탕이 돼야 한다, 해방 공간에서 남북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셨던 여운형 선생님, 안재홍 선생님, 김구 선생님 등 많은 분들의 삶이 우리의 자산으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위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군부와 맞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애쓴 많은 분들의 노고가 이어져야 민족통일과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항일-반독재민주화-통일운동은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줄기이며 오늘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역사적 가치입니다.

일제 강점기 역사왜곡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침략에 맞서 싸워야 한다면 역사왜곡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맞서 싸워야 합니다. 식민사관을 내세워 일본이 우리를 위해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것은 민족정신을 팔아먹는 현대판 매국노입니다. 교과서 왜곡에 앞장서고 있는 서남수 교육부 장관,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과 이에 동조하는 이들은 매국노입니다.

일제에 항쟁하고, 독재와 맞서 싸우고, 인간중심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모든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을 왜곡하고 역사를 날조하는 이들은 모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독재정권과 야합했던 친일잔재, 독재잔재 후예들로 한나라당, 새누리당 졸개들입니다. 이런 권력지향적 역사관, 늘 분단을 앞세우면서 득을 보자는 역사의식 없는 사람들을 민족사적 관점에서 단죄해야 합니다."

- 한국사회에서 민족사관에 입각한 역사인식이 제대로 박히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오늘의 현실에서 보자면, 언론이 제일 큰 범죄 집단입니다. 구체적으로 저는 <조선일보>를 지적합니다. 저는 한평생 <조선일보>를 지켜봤습니다. <조선일보>의 왜곡된 시각으로는 예수님도 부처님도 모두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했다는 것을 행실로 보여라' (마태오 3,7.8) 거짓말을 되풀이하는 마귀들 같아요.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하듯이 바르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바른 정보를 들어야 합니다. 거짓 소식, 왜곡된 정보를 들으면 우리 판단력은 마비되고 세상에는 온갖 거짓과 갈등이 난무하게 됩니다. 70~80년대는 그래도 뜻있는 기자들이 정론을 위해 독재정권과 싸우고 진실보도를 위해 불의한 정권에 대항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불의한 정권의 하수인, 아니 동업자가 된 조중동과 KBS, MBC, SBS 등 수구 언론은 진실과 사실 보도에 대한 책임과 의무라는 언론의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습니다. 진심으로 "언론의 회개"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 소위 주류언론들이 권력자들과 야합한 채 진실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신 거죠?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한 청년의 진실된 자기 성찰과 변화, 회개의 과정도 <조선>과 같은 신문은 왜곡했습니다. "언론과 손잡는 젊은이 일베" 이 사람들이 전부 자본의 노예가 되면서 거짓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해방 당시 남북분단으로 북에서 내려온 젊은이들을 모아 한민당과 김성수 등 친일파들은 통일과 좌우합작을 주장하는 분들을 공격하는 테러조직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동아·조선>은 이러한 테러행위의 방패막이가 되었습니다.

참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아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우리가 이겨내야 합니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다"(요한복음 1,5) 악의 세력이 교활해도 우리 젊은이들은 언제나 진실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마음을 모아 나라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바른 길을 가기를 기도합니다."

"언론인들, 안녕들 하십니까?"

- 철도노조가 벌써 보름이 넘도록 파업하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경찰은 영장도 없이 형사소송법 절차를 어기면서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검거작전을 벌였습니다. 이건 어떻게 보셨습니까.
"안타깝고 가슴 아픕니다. 지금 권력을 가진 정부는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특히 언론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획일적 문화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로 모든 게 움직이는 독재 문화입니다. 언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론인들 안녕하십니까? 자기들이 함께 해야 하는데 조·중·동·종편 같은 거야 공범자들이니 같이 고민할 대상이 아닐 것입니다.

그 외 깨어있는 언론들이 이 부분을 지적하고 시민들이 강력하게 항의해야 합니다. 노동자의 권리는 헌법에 보장돼 있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청와대나 공권력이 침해한다는 것은 국기를 흔드는 일로 헌법을 스스로 거부하고 짓밟는 범법 행위입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공권력이 남용되는 만큼 그 공권력은 쇠퇴하게 되고 그 정권은 망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서 노동자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아픔을 겪게 되니까 저도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 모든 분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소리치는 국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인간존중의 상식이며 정치도 상식에 기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집권 1년도 안돼 벌써 40%대로 내려앉았습니다. 임기가 앞으로 4년 남았는데 신부님께서는 박 대통령이 어떻게 정국을 운영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신학교에서 배운 라틴어 격언에는 페스티나 렌떼(festina lente)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천히 서둘러라. 바쁠 때는 더욱 천천히 하라는 뜻입니다. 두 단어가 모순인데 모순적 행업이 합할 때 조화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음악에도 불협화음이라는 게 있는데 모든 게 불협화음이 아닙니다. 어떤 경지에 올라야 합니다. 정부의 주장과 노조의 주장에 차이가 있고 다를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 민주주의의 매개가 대화입니다.

'대화를 거치지 않는 공권력 투입은 헌법 위반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권력을 공유하고 있거나 그 주변에 계신 분들이 이 부분을 책임자에게 호소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하고 국민들 편에서는 불편하고 노동자들은 강경해지는 것입니다. 그 잘못을 정부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문제가 생깁니다. 그게 독립항쟁과 민주화 과정에서 선열들이 일깨워준 지혜입니다."

- 신부님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1년 내내 비판하면 전부 종북이라거나 대선불복프레임으로 엮어서 일종의 '반역자' 취급을 했습니다. 반대하면 대화로 푸는 게 아니라 잡아들이고 구속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대선불복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불복은 결과로 나온 거고 개표과정에서의 불법성, 선거과정에서 정부기관이 개입한 관권불법선거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저는 이번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은 3·15 부정선거보다 더 큰 부정선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보부가 앞에 나서고 군 사이버사령부, 보훈처, 정부기관 등이 모두 개입한 불법, 부정선거 아닙니까? 그럼 선거 자체가 무효입니다. 선거법상 관권 불법선거는 시효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고민하고 논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헌법을 어겼으니 죄송합니다 이렇게 접근해야지, 불복이냐 아니냐 하는 언어의 유희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해야 합니까?
"단어 자체가 틀렸습니다. 하야는 왕정시대 용어입니다. 4·19 민주혁명 당시 "이승만 하야"라고 했는데 이승만 사퇴로 용어를 정정했습니다. 사퇴라고 해야 합니다."

- 이같은 관권부정선거 앞에서 민주시민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명백한 관권불법선거를 묵인하는 것 자체도 민주시민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는 것이고 범죄입니다. 정치적 선택은 관권, 부정, 불법 선거로 당선된 자가 해야 할 몫이지만 시민으로서는 부정, 불법, 관권선거라는 것을 알았으니 당연히 사퇴하라고 주장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꼭 결과가 이뤄져야 행동하는 게 아닙니다. 옳으냐, 그르냐, 정의냐, 불의냐, 하는 가치 판단이 기준입니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그 내용을 주장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관권선거 앞에서 침묵하고 있다면 그런 공동체에 희망이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끊임없는 민주화 과정 그리고 지금도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외치는 국민의 소리, 그것은 국민이 깨어있다는 증거입니다. 한국의 미래는 여전히 밝고 민주화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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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자본 아닌 국민연금, 철도 민영화가 아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2/26 11:43
  • 수정일
    2013/12/26 11:4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검거가 계속되면서 일부 철도노조 지도부가 조계사로 피신했습니다. 조계사에 피신한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성탄절 오후 조계사 경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교계가 나설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추운 겨울 성탄절날, 철도노조 지도부가 종교계의 힘까지 빌어 철도 파업을 계속하고자 하는 이유는 '철도 민영화'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계속해서 철도 민영화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철도노조가 전혀 다르게 주장하고 있는 '철도 민영화' 논란, 정부의 주장을 믿지 못하는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 7% 이상의 수익률을 요구할 국민연금기금'

박근혜 정권이 철도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가장 큰 근거는 '수서발 KTX'에는 민간자본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부분입니다.
 

정부는 수서발 KTX 운영회사의 지분은 철도공사가 41%이고, 나머지 59% 지분에도 민간자본이 아닌 공적자본만 참여하게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공적자본 59%가 투입되기 때문에 결코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현재 수서발 KTX 운영회사의 59% 지분을 보유할 공적자금 투자처는 '국민연금관리공단'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연금공단만이 대규모 지분 투자를 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국민연금기금과 같은 공적자금이 투입되니 당연히 민영화가 아니라는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나 국민연금관리공단이 관리하는 '국민연금기금'은 공적자본은 맞지만, 단순히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시장펀드에 불과합니다.
 

 

<국민연금법>

제102조(기금의 관리 및 운용)
① 기금은 보건복지부장관이 관리·운용한다. <개정 2008.2.29, 2010.1.18> ② 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연금 재정의 장기적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킬 수 있도록 제103조에 따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한 바에 따라 다음의 방법으로 기금을 관리·운용하되, 가입자, 가입자였던 자 및 수급권자의 복지증진을 위한 사업에 대한 투자는 국민연금 재정의 안정을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하여야 한다.

③ 제2항제5호와 제6호에 따른 사업 외의 사업으로 기금을 관리·운용하는 경우에는 자산 종류별 시장수익률을 넘는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신의를 지켜 성실하게 하여야 한다. 다만, 제2항제2호에 따라 기금을 「공공자금관리기금법」에 따른 공공자금관리기금(이하 "관리기금"이라 한다)에 예탁할 경우 그 수익률은 같은 법 제7조제2항에 따라 공공자금관리기금운용위원회가 5년 만기 국채 수익률 이상 수준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103조에 따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와 협의하여 정한다.


국민연금법 102조를 보면 국민연금기금은 '그 수익을 최대로 증진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수익률은 '5년 만기 국채 수익률 이상의 수준 이상'으로 정해놓았습니다.

국민연금기금운영 성과 평가를 보면 국민연금이 SOC 투자자에서 실제 달성한 수익률은 7,70%였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수서발 KTX 운영회사에 최소한 7% 이상의 수익을 올리도록 요구할 것입니다. 결국, 공적자금이라고 주장하지만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는 행태는 민간자본과 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 수익이 안 나오면 지분 매각이 가능하게 되어 있는 법률'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수서발 KTX 운영회사에 수익률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투자된 자본에 대해서 수익률이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① 정관에 명시되어 있으니 당연히 팔 수 없다?

박근혜 정권은 수서발 KTX 주식회사 정관에 공적자금의 지분을 민간자본에 매각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관은 <상법상 주식회사에서에서의 주주 지분 매각 금지는 위법한 조항>이라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수서발 KTX 이사회의 정관은 말 그대로 회사의 정관입니다. 회사의 정관은 정부가 강제로 바꾸거나 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이사회에서 결정하면 그뿐입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은 무조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주식회사의 정관만 믿으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②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철도지분을 매각한다면?

만약 국민연금기금이 투자한 사업이 수익성을 내지 못할 경우는 어떯게 될까요 국민연금은 법에 따라 수급자에 대해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자산을 매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수서발 KTX에 투자한 지분을 매각한다면 막대한 규모의 지분을 다른 공공기금에서 매수할 여력은 거의 없습니다.국민연금관리공단이 철도지분을 매각한다면 민간자본만이 그 지분을 인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마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철도지분을 매각하겠느냐고 굳건하게 국민연금기금만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공적자금이라고 불리는 국민연금기금은 국제사회에서 불법화된 무기 중의 하나인 '확산탄'을 생산하는 한화는 7.39%, 풍산은 지분율 9.26%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연금기금은 풍산과 한화에 대해 투자를 철회했지만, 국민연금은 오히려 계속 지분율을 늘리고 있습니다.

자본논리로 본다면 당연히 국민연금이 풍산이나 한화에 투자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공적자금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철회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정부의 말처럼 국민연금기금의 투자 운영이 공적자금이기 때문에 매각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거짓에 불과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서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지 않을 것이며,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그 원칙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기본법을 무시한 시작부터 공적자금이라고 하지만 언제든지 수익률이 나오지 않으면 자산을 매각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무조건 '철도 민영화'는 아니라고 자기의 말을 믿어 달라고 합니다.

앞뒤가 다른 철도 민영화가 아니라는 주장,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말처럼 적당히 언론과 정부의 말만 믿고 결코 타협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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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앞 풍전등화, 인천공항이 공기업 경쟁 모범사례?

‘아웃소싱’에서 출발해 ‘민영화’로 달려가는 공기업 효율화

정웅재 기자 jmy94@vop.co.kr
입력 2013-12-25 05:53:06l수정 2013-12-25 08:43:17
기자 SNShttp://www.facebook.com/newsvop

 

 

정부는 수서발 KTX 분할 정책은 민영화가 아닌 경쟁체제 도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철도공사와 수서 고속철도 주식회사를 KTX 노선에서 경쟁시켜 독점체제하에서의 공기업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지 민영화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기업간 경쟁을 통해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사례로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예를 들고 있다.

정부와 여당 주요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22일 경찰이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겠다며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하고 있던 시각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에서 "철도산업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민영화가 아니라, 철도경영을 효율화하여 막대한 부채로 인한 국민 부담을 줄이는데 목적이 있다"면서 "이미 공공부문내에서 경쟁을 도입한 공항운영이나 도시철도에서는 비효율을 줄여 경영을 개선하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24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17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도 방만 경영을 일삼고 있는 코레일의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면서 "우리는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공항이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비결은 바로 공기업간의 경쟁이었다"고 말했다.

공기업간 경쟁이 효율을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과연 그러한지 한 번 살펴보자. 인천국제공항은 인천국제공항 운영을 담당하는 공기업이다. 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올해까지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8연패를 달성했고, 지난해 8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한국공항공사는 김포, 김해, 제주, 대구, 광주, 청주, 양양, 무안, 울산, 여수, 사천, 포항, 군산, 원주 등 14개 지방공항을 관리하는 공기업이다. 역시 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지난해 164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성과만 보면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경영 효율화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난다.

경영 효율화의 다른 이름, 과도한 아웃소싱 통한 중간착취

철도공사 KTX와 공사 자회사인 수서 고속철도 주식회사 KTX간 경쟁 도입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일 업종, 동일 노선에서 경쟁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도 이상하지만, 구조상 경쟁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철도 전문가들이 주로 지적하고 있다. KTX는 짧은 시간에 목적지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기 때문에 요금이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강남권 거주자가 서울역에서 KTX를 타거나, 강북권 거주자가 수서역에서 KTX를 타지 않을 거라는 설명이다. 결국, 철도공사 KTX는 강북권 고객을, 수서 고속철도주식회사 KTX는 강남권 고객을 독점하는 '지역독점체제'가 될 것이라는 게 유력한 분석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운영하는 인천국제공항과 한국공항공사에서 운영하는 14개 지방공항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전세계 88개 항공사가 취항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은 '국제허브공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 제1의 국제공항이다. 반면, 14개 지방공항은 국내선 위주이고,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남아권 몇 개국에 한해 제한적으로 국제선을 운영하고 있다. 신철 인천국제공항공사노조 정책국장은 "인천공항과 14개 지방공항은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서 둘 사이에 경쟁이 이뤄진다고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굳이 경쟁관계라고 한다면 국제선 일부에서만 '제한적으로 경쟁'이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 등 지방공항의 효율화는 어디로부터 왔을까? 바로 인력감축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그 배경이다. 공사 정규직을 축소하고, 대부분의 업무를 아웃소싱(외주화)한 것이다. 애초에 인천국제공항 운영은 한국공항공사에서 맡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이 독립법인화되고 국제선이 인천공항으로 이관됐다. 수서발 KTX를 철도공사에서 떼어내 듯, 인천공항을 한국공항공사에서 떼어낸 것이다. 인천공항을 넘겨준 한국공항공사는 때마침 97년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극심한 구조조정에 내몰린다. 98년 김포공항의 기계, 건축, 청소, 전력, 통신전자, 토목·조경분야가 외주화되면서 공사직원 430여 명이 비정규직으로 쫓겨났다. 외주 용역업체로 가지 않으면 고용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갈 수밖에 없었다. 2001년엔 외주화 분야도 확대됐고, 인원도 늘어났다. 2012년 기준, 공사 직원은 1699명이었고, 외주화 인력은 공사 직원보다 두 배나 많은 3104명이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001년 개항 당시부터 극단적인 외주화가 진행된 채 출발했다. 현재는 공기업 중에서 외주화 비율이 가장 높다. 2012년 기준 공사직원은 934명이었고, 외주업체에 소속 직원, 즉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6113명이었다. 외주화 비율이 무려 85%가 넘는다. 외주업체 소속 직원들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급여 등 처우도 공사 직원들에 비해 열악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2012년에 공사 정규직 1인당 평균 보수액이 8583만원(평균 근속년수 10.6년)이었는데,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평균 2500~3700만원 가량의 보수를 받았다. 결국, 정규직 고용을 최소화하고 대부분의 업무에 비정규직을 사용해 인건비를 절감하면서 이윤을 늘려온 것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이윤의 비결은 간접고용을 통한 중간착취라고 할 수 있는데, 정부의 공기업 경영평가제가 이런 방향으로 유도했다. 인건비를 절감하면 성과를 높게 평가하고 정부가 성과 상여금을 높여주는 방식의 공공부문 관리가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신철 정책국장은 "외주화 비율을 높이면 인건비 비중이 낮아진다. 또 외주화한 용역업체의 인건비는 인건비가 아닌 사업비로 계산된다. 이런 방식으로 인건비를 줄이면 정부의 공기업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에서 말하는 효율화는 공기업간 실질적인 경쟁을 통한 효율화라기 보다는 '외주화', '조직슬림화'를 통한 경영 효율화라고 할 수 있다. 수서 고속철도 주식회사의 경우는 어떨까? 국토부는 18일 보도자료에서 수서발 KTX 운영사는 "비핵심 업무의 아웃소싱, 조직 슬림화 등 저비용 구조의 회사로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서발 KTX 운영사는 철도노조와의 임단협에서 자유로우며, 조직 슬림화(약 400명), 아웃소싱 확대 등을 통해 상당한 경영 효율화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노조로부터 자유롭고
민간 매각 용이하도록 조직 슬림화 돼 있고
앉아서 돈 벌 수 있는 흑자 공기업이라면


인천국제공항공사-한국공항공사 사례와 국토부 계획을 통해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수서발 KTX 운영사의 아웃소싱과 인건비절감을 통한 소위 경영 효율화는 철도공사의 조직슬림화 압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수서발 KTX 운영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민영화 압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노조로부터도 자유롭고, 매각에 용이하도록 조직도 슬림화 돼 있고, 더구나 앉아서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알짜 흑자 기업이라면 민간 자본의 입장에서 욕심을 내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민간자본의 투자를 막는다면 모를까, 공공부문에 대해 분할, 자회사 설립 등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민영화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정부 정책의 방향이다.

효율성 이면에 중간착취라는 그늘이 있긴 하지만 흑자를 내고 있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도 정부 지분 100% 중 일부를 매각해 "시장의 감시와 외국사 제휴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매각 압력이 이명박 정권 내내 작용했다. 그러나 "국제 경쟁력을 갖춘 공기업이 투기 세력에게 넘어갈 위험이 높다"는 이유 등을 댄 반대 여론도 높아 지분 매각이 실현되진 못했다.

수서발 KTX 운영사는 어떠할까? KTX 경부선은 일반열차 경인선과 함께 철도공사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알짜 노선이다. 이 알짜배기 흑자 노선을 떼어내서 슬림화된 주식회사(공사의 자회사)에 운영을 맡긴다면, 민간자본이 탐을 낼 수밖에 없다. 정부는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면서 주식의 민간매각 방지 대책 등을 내놨으나, 이런 대책이 상법에 의해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법무법인들의 법률해석이 나와 있는 마당이다. 사실상 민간매각 방지대책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철도노조와 야당이 이를 우려해 법률에 민간매각 방지 조항을 넣자고 제안했는데, 새누리당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철도 민영화 우려는 정부를 못 믿는 불순세력의 과한 우려가 절대 아닌 셈이다.

이영수 공공운수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의 분할은 기능적 분할이었지만 엄청난 외주화를 통해 구조조정을 한 배경에는 결국에는 민영화하겠다는 속셈도 있었던 것"이라며 "수서발 KTX 자회사도 벌써부터 핵심 업무를 제외하곤 외주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게 효율화를 하고 나서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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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그늘진 땅에 내리는 복음, 예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전위”

한상봉 기자 | isu@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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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24 16:5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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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성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고 있지만, 그의 탄생은 ‘죽음이 그늘진 자리’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성탄을 크리스마스 캐럴만으로 기억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수에 대한 기억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항상 죽음과 더불어 오기에 빛날 수 있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구태여 ‘하늘에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천사들과 하늘의 군대가 노래한 연유가 거기에 있다. 예수의 태생 자체가 심상치 않은 까닭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예수는 기원전 4년 헤로데 대왕이 사망할 무렵에 태어났다. 폭압적이던 헤로데 대왕이 사망하자, 이스라엘 전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전쟁사>에서 유다라는 반역자가 “세포리스에서 왕실의 무기고를 부수어 열고 동료들을 무장시킨 뒤 권력욕을 품은 다른 자들을 공격했다”고 적었다. 그러자 시리아 총독 바루스는 4개 군단 가운데 3개 군단을 동원해 폭동을 진압했다.

폭동의 진원지인 갈릴래아에 진격한 바루스의 군단은 세포리스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노예로 삼았다. 예수는 이 세포리스에서 평평한 계곡을 가로지르고 언덕을 넘어 6.5킬로미터, 걸어서 1시간 30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 나자렛에서 성장했다. 과연 예수가 유년기를 지낸 나자렛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짐승의 거처에서 태어난 아기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다. ⓒ한상봉 기자

 

<유대전쟁사>에서 기원후 67~86년 시리아 군단이 유대인들을 어떻게 학살했는지 기록이 남아 있다. 세포리스에서 요르단강 건너에 있던 게라사에서 루키 안니우스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1,000명의 젊은이를 살육하고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포로로 잡았으며, 그들의 재산을 병사들이 약탈하도록 허락했다. 그러고 난 뒤에 집을 불사르고 주변 마을로 진격했다. 신체가 온전한 자들은 도주했고, 약한 자들은 죽었으며, 그들이 남겨둔 것들은 불태워졌다.”

존 도미니크 크로산이 쓴 <하느님과 제국>(포이에마, 2010)에서는 “예수가 태어날 무렵 나자렛에서 제대로 숨지 못한 남자와 여자, 어린이들은 모두 살해되거나 성폭행을 당하고 노예가 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전한다. 크로산은 어머니 마리아가 성장기에 있던 예수를 데리고 나자렛 산마루에 가서 세포리스를 가리키며 ‘로마인이 진격해 온 날’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예수가 기원전 4년에 떼죽음 당한 그 사람들처럼 ‘대역죄’로 십자가에서 처형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성탄이 그저 기쁜 날일 수만은 없다는 뜻이다.

복음서에서는 아기 예수가 할례를 받고 정결례를 거행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갔을 때, 시메온이 아기를 안고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시메온의 말은 아기에 대한 축복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했다. 생명은 그렇게 죽음과 더불어 다가온다.

 

   
▲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를 오늘도 출산한다. ⓒ한상봉 기자

 

꼭 1년 전,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대하듯이 박근혜 후보 또는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한국 천주교회의 대부분 장상들은 내심 ‘정권교체’를 염원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후보자 정책질의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분명히 문재인 후보의 정책이 ‘가톨릭 사회교리’에 잘 들어맞았고, 박근혜 후보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다음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며 의미 있는 짧은 멘트를 날렸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민들의 노고에 힘입어 불과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루었습니다. 밤낮으로 땀 흘려 일한 근로자들, 민주주의에 평생을 바친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여 주시고, 분열과 반목 속에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같은 날 예수살이공동체의 박기호 신부는 “아직 성탄도 아닌데 성금요일 아침을 맞은 텅 빈 마음”이라고 말했다. 22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이운남 씨가 목숨을 끊었고, 이날 제주 강정 해군기지 앞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예수회 김성환 신부는 “신앙인들만이라도 희망의 불씨를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 불을 지펴 갈수 있는 ‘사순절 같은 대림절’을 보내자”고 말했다.

특별히 대선 다음날인 12월 20일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가 기자간담회에 남긴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대주교는 박근혜 당선자에게 “앞으로 국정운영에 있어서 48%가 넘는 반대의 목소리를 기억해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원칙과 신뢰의 약속을 반드시 실현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울러 서민들의 삶을 우선적으로 챙기고, 지역 균형발전과 인재의 고른 기용을 위한 배려를 부탁했다. 또한 “군사력을 통해서는 통일이 불가능하며, 비록 북한 사회의 종교자유와 인권문제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아무런 전제 없이 북한과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드러난 것은 ‘민주주의의 파탄’이었다. 대선 과정에서 이미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불법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정부 · 여당은 이 사실을 축소 · 은폐하는 데, ‘종북몰이’를 통해 공안정국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었다. 대선 과정의 불법을 따지면 ‘대선 불복’이라고 엄포를 놓고, 민주화의 성과였던 전교조 등 민주노조는 대화 상대로 취급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사무실의 공권력 난입은 말할 것도 없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적 대화와 타협의 과정을 생략한 채 시민사회로 진격해 들어갔다. 강정과 밀양과 쌍용, 용산참사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죽음의 그늘이 진 대한민국 골짜기에 가엾은 이들의 애곡 소리가 낭자하다. 48%의 목소리가 억압받았던 1년이었다. 정부 각료와 요직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금 대한민국은 ‘민간으로 위장한 군사정권’의 지배하에 있는 듯하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문 <복음의 기쁨>
그러나 어둠속에서야 빛이 분별되듯이 희망이 자라나고 있다. 성탄절이 지리한 밤의 정점에서 낮이 점차 길어지는 동지(冬至)이듯이, 한국 교회와 시민사회가 새로운 빛을 얻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국정원 개혁을 부르짖다가 ‘정권 퇴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정선거로 인한 당선은 무효이니, 책임지고 대통령이 사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어둠의 깊은 자락에서 솟아올랐다.

 

교황을 만나고 돌아온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의 손에는 <복음의 기쁨>이 들려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두고 대한문에서 열린 시국미사에서 그는 “<복음의 기쁨> 182항에는 ‘우리 사목자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가 요구하는 모든 자리에서 발언할 권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83항에는 ‘그 누구도 우리 성직자들에게 사회생활과 국가생활은 접어놓고 마음의 평화만을 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전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수천 명의 사제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하고, 평신도들 역시 각성의 대오를 꾸렸다. 40년 전 “유신헌법 무효”를 선언하며 양심선언에 나섰던 지학순 주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전위(前衞)”라고 말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이든 평신도 단체인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이든, “세상이 잠들어 있을 때 홀로 깨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나설 수 있다면, 희망은 우리의 몫이 될 것이다.

2013년 성탄은 다급하게 아기 예수를 부르고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전갈을 현실로 뒤바꾸는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호출하고 있다. 아기 예수를 휘감은 포대기처럼, 예수가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전하신 복음을 옹호하고, 사악한 군대의 진격에 대비하라고 외치는 파수꾼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절망을 접어야 한다. 이제 희망을 출산할 품을 마련하기로 하자, 오늘 이 거룩한 밤에.


한상봉(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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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두루미 되돌리는 데 한국인이 나서달라"

"북에서 온 두루미 되돌리는 데 한국인이 나서달라"

 
김정수 2013. 12. 25
조회수 176추천수 0
 

북 안변서 겨울나던 두루미 식량난으로 철원으로 넘어와

아치볼드 박사, "북한 서식지 복원 확대 위해 한국인 후원과 참여 필요"

 

achi1.jpg » 국제두루미재단 공동 창립자인 조지 아치볼드 박사가 지난 12일 인천시 강화도의 두루미 도래지인 동주농장 주변 언덕 위에서 두루미를 관찰하던 중 카메라 앞에 섰다. 강화/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두루미는 해마다 이맘 때쯤부터 사람들이 주고 받는 연하장에 단골로 등장하는 새다. 순백색 몸과 검은색 날갯깃에 정수리의 붉은색이 절제롭게 조화된 고고한 자태, 장수ㆍ평화ㆍ정절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새해를 맞는 엄숙함과 희망을 나타내는 모델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 몽골, 한반도와 일본 등에 서식하는 두루미는 지구상에 2600~2800여마리 밖에 남지 않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1970년대부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벌여온 국제두루미재단(ICF)과 동아시아의 조류 연구자들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이 새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챘다. 러시아와 중국ㆍ몽골 등지에서 우리나라의 민통선 이북 철원과 연천 등지로 날아와 겨울을 보내는 두루미 개체수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생존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개체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일까? 그것은 아니었다.

 

achi5.jpg » 환경부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 결과, 자료: 국립생물자원관

 

북한의 안변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240마리 이상의 두루미가 겨울을 나던 주요 월동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뒤 북한의 식량 부족 때문에 주민들이 추수하면서 논에 떨어진 낙곡까지 모두 취하고, 그래도 남은 것들은 오리, 거위, 염소 등 여러 종류의 가축들을 풀어 모두 주워 먹도록 하는 바람에 두루미들의 먹이가 남아 있지 않게 됐습니다. 안변에서 겨울을 보내던 두루미들이 그래서 안변을 떠나 남한의 철원으로 온 것입니다.”


캐나다 사람으로 미국 코넬대 대학원에 다니던 1973년 동료와 함께 국제두루미재단을 창립해 이사장을 지낸 조지 아치볼드 박사의 설명이다. 1990년대 후반 식량난이 가중되면서 일부 북한 주민들이 탈북을 감행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북한 지역에서 겨울을 보내던 두루미들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함경남도 원산 남쪽에 있는 안변과 강원도 철원 두루미 도래지는 직선거리로 80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achi6.jpg

 

조류 전문가들은 이들 ‘탈북 두루미’가 철원과 같은 특정 지역에 몰리는 것은 멸종위기종 보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으로 보고 있다. 한 지역에 집중되면 전염성 질병이나, 개발 사업에 의한 서식지 훼손에 그만큼 더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치볼드 박사가 2008년부터 북한의 조류 전문가들과 협력해, 이른바 ‘안변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안변 농민들이 유기농업을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 주민의 생활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이들이 들판에 두루미를 위한 먹이를 남겨놓아 두루미들이 다시 안변에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지난 11일 한국의 조류 연구자들과 남북한 두루미 실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방한한 아치볼드 박사는 다음날 강화도에서 두루미를 찾아 나섰다. 백용해 녹색습지교육원 원장이 안내한 그의 두루미 탐조길에 동행하며 안변 프로젝트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achi4.jpg » 아치볼드 박사가 지난 12일 강화도 동주농장에 내려 앉은 두루미들을 탐조경으로 관찰하고 있다. 강화/김정수 선임기자


-안변 프로젝트의 목표는 무엇인가?
 

안변을 과거와 같은 두루미 월동지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두루미가 몰려드는 철원 지역이 개발되고 있어 걱정이다. 만약 남북한이 통일되면 철원 평야는 개발로 훼손돼 두루미들에게 더는 행복한 장소가 되기 어렵다.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도 북쪽에 두루미들이 갈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


-안변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

2005년부터 베이징에서 북한 조류학자들과 협의를 시작했고, 2008년에 처음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의 전문가들과 함께 안변 지역에 있는 비산협동농장 책임자를 만나, ‘우리는 두루미에 관심이 있는데, 여기 농사가 잘 되지 않으면 두루미도 여기서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신들이 유기농을 통해서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돕고 싶다’고 제안했다. 유기농은 화학비료를 이용한 농업보다 비용이 덜 들고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주는 대신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데, 북한 농장에는 노동력이 풍부하다. 그들이 우리 제안을 받아들여, 우리는 농기계, 종자, 중국의 유기농업 현장 견학을 포함한 농민 교육 등을 제공했다.”


-두루미가 되돌아오도록 하는데 직접 초점을 맞춰서는 어떤 구체적인 노력이 진행되고 있나?

평양의 조류 연구자들과 조류 모니터링을 하는 현지인들에게 차량과 조사 비용을 지원해 두루미 실태 파악을 위한 조사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북한 당국은 안변들 63㏊를 두루미 보호지역으로 이미 지정했고, 비산협동농장에서는 중국에서 지원받은 두루미 두 마리를 사육하면서 번식을 시도 중이다. 겨울철에는 이 사육 두루미들을 들판에 내놓아 상공을 지나가는 다른 두루미들이 내려 앉도록 유인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앞으로 안변 비산협동농장의 일부 구역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주변에 버드나무를 심어 낙곡을 주워 먹으려는 다른 가축들의 접근을 막아, 두루미들의 안전한 먹이터가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안변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지 2년 만에 북한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북한 조류학자들이 2009년 11월 20여마리의 두루미가 안변들로 날아와 이틀 간 머물다 떠났다는 소식과 함께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이 지역에서 농민들이 들판에 두루미가 내려 앉은 것을 보기는 10여년 만에 처음이라는 것이 북한 학자들의 설명이었다. 안변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현재 안변 지역의 두루미 실태는 어떤가?

북한의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올해 안변들 상공을 통과한 170여 마리의 두루미 가운데 35마리가 안변들에 착륙해 잠시 머물렀다. 이 가운데는 한 달 가까이 머무르다 떠난 새도 있다. 아직 먹을 것이 충분이 없어서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가 울타리를 쳐서 먹이터를 확보해주면 겨울 내내 머무는 새들이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까지 안변 프로젝트를 통해 북한에 지원한 규모는 얼마나 되나?

 

2008년부터 6년 동안 30만달러 가량 지원했다. 북한 정부에서도 안변 비산집단농장의 유기농 사업을 지원해, 이 농장은 이제 북한 전역에서 5만6000여명이 유기농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유기농의 모델이 됐다. 안변은 우리한테서 더 이상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성공해, 우리는 앞으로 두루미에게 중요한 북한의 다른 지역에서 현지 농민들과 협조해 비슷한 프로젝트를 확대하기를 원한다. 이에 따라 이미 황해남도 강령에서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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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볼드 박사는 지난 11일 방한하기에 앞서 11월29일부터 11일 동안 북한을 다녀왔다. 2008년 안변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매년 한 차례씩 방북해온 그는 올해는 안변 이외에 황해남도 강령, 평안남도 문덕, 함경남도 금야 등 과거 북한의 주요 두루미 도래지 3곳을 모두 방문했다.
 

-다른 지역에서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면 안변 프로젝트는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안변 농민과도 계속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교육이나 우리가 지원한 기계가 고장날 경우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구해주는 등의 지원은 이어갈 것이다. 다만 주요한 재정 지원은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를 희망한다.”
 

북한 두루미 서식지 복원을 위한 프로젝트를 안변 이외의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려면 해마다 5만 달러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으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 관계가 얼어붙어 한국의 중앙ㆍ지방 정부나 단체들로부터의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 데다, 미국 내에서도 왜 적국을 도와주느냐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국제두루미재단이 안변 프로젝트를 위해 북한에 지원한 30만달러 가운데 한국에서 모금된 것은 많아야 2만 달러 정도이고 나머지 모금은 모두 미국에서 이뤄졌다. 안변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기금은 5명의 미국인 후원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은 80살에 환경운동을 시작한 올해 95살 된 루이지애나에 사는 할머니다.
 

고교 시절 서캐나다 지역 여행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름다운 두루미의 모습은 한 청년의 삶을 결정했다. 두루미에 마음을 빼앗긴 청년은 결혼을 하고도 자녀도 두지 않고 40여년을 두루미를 알리고 보호하는 일에 온전히 바쳐왔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는 내 시간의 50%를 두루미를 돕기 위해 여행을 하면서 지낸다. 아이가 있으면 집에 머물러야 한다. 좋은 아빠가 되는 것과 두루미를 돕는 일을 둘 다 잘 할 수는 없다. 어린이를 사랑하지만 16명의 조카로 충분하다.”


아치볼드 박사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는 한국 전쟁 이후 한국의 조류 연구자들조차 한국에서 두루미가 사라졌다고 믿고 있던 1970년대 철원의 민통선 이북 지역에서 100마리 이상의 두루미떼를 발견해 철원이 두루미의 주요 월동지라는 사실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지금은 국내 야생에서 멸종된 따오기를 1970년대 비무장지대에서 확인하고 맨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것도 그다.
 

대학원에서 두루미를 연구하면서 전 세계 조류 전문가들에게 두루미 서식 실태를 묻는 편지를 보냈는데, 한국에서 한국전 이후 두루미가 사라졌다는 응답이 왔다.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 1974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그해 겨울 파주 문발리에 살면서 미군과 한국군의 도움을 받아 매일 아침 8시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새들을 관찰하다가 따오기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 뒤 한국 정부의 허락을 받아 따오기를 생포해 영국의 동물원으로 데려가 증식하려고 했는데, 붙잡지 못해 실패했다.”
 

아치볼드 박사의 꿈은 소박했다.

 

북한의 두루미 서식지 복원에 관심이 있는 한국분들은 국제두루미재단이나 한국두루미네트워크(대표 이기섭)를 통해 후원해주기 바란다. 북한의 두루미 서식지 복원 프로젝트는 한국말을 못하는 내가 하기보다 남한 사람들이 직접 북한과 접촉해서 일하는 것이 낫다. 남북한 관계가 회복돼 한국에서 북한의 두루미 복원 사업에 적극 나서, 나는 위스콘신의 집에 편히 머무를 수 있으면 좋겠다.”
 

강화/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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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로 피신한 철도노조 지도부

경찰 200명 병력 배치... 강제진입할까?

[현장-2신] 사찰 주변서 검문검색 강화... 철도노조, 오후 2시 기자회견

13.12.25 10:19l최종 업데이트 13.12.25 14:18l
강민수(cominsoo)

 

 

[2신 : 25일 낮 12시 20분]
경찰, 조계사까지 강제 진입할까...병력 증원 배치

수배 중인 철도노조 지도부가 피신한 것으로 확인된 조계사에는 25일 정오 현재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경찰이 병력을 2배로 늘리고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관할서인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3개 중대 200여 명의 병력을 배치해 주변의 검색을 강화했다"며 "종교 시설에 진입할 수 없어 조계사 주변을 둘러싸고 배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조계사에 철도노조원 4명이 머물고 있으며 이 가운데 3명은 일반 노조원이고 노조 간부는 박태만 수석부위원장 1명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찰'이라는 장소적 특수성이 있는 만큼 체포 작전에는 신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이 조계사에 투입된 전례는 있다. 1995년 한국통신 노조 파업과 1998년 현대중기산업, 2002년 발전노조 사태를 포함해 세 차례다. 또 지난 22일 <경향신문> 사옥을 강제 진입했기에 조계사 진입 여부도 미지수다. 조계사 측은 조계종의 공식 입장이 나오기 전까지 철도노조원들을 강제로 내보내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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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연지동 조계사 내 극락전에서 25일 오전,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이 종교인들과 면담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 철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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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 면담한 성공회 신부 "불안한 모습도 보여"

성탄절인 25일 조계사에는 오전부터 외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도부가 몸을 피한 것으로 알려진 극락전 앞에는 취재진 20여 명이 대기중이다. 이따금씩 철도노조 노조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화장실에 드나들었다. 기자들이 안부와 상황을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 10시께에는 대한성공회 신부 3명이 조계사를 찾았다. 10여분 동안 극락전 2층에서 지도부를 만나고 나온 한 신부는 기자들과 만나 "불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지지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사차 들렀다"며 "국민들이 지지하고 있고 언론도 지지하고 있으니 힘내라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인원은 말씀드릴 수 없다"며 "조용히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분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철도노조 측은 오후 2시 조계사 피신과 관련해 서울 용산구 철도노조 사무실에서 기자 회견을 연다.

백성곤 철도노조 홍보국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경찰이 1계급 특진까지 건 상황에서 또 다시 강제 진입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면서도 "경찰이 종교사찰에까지 무리하게 진입한다면 더 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백 국장은 "조계사 쪽의 협조를 받아 식사 등의 편의를 제공받고 있다"며 "피신한 사람들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1신 : 25일 오전 10시 10분]
철도노조 지도부 일부, 조계사에 피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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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조계사 내에 수배중인 철도노조 지도부 일부가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도부가 몸을 피한 것으로 알려진 조계사 내 극락전 앞에 기자들 20여 명이 대기하고 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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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 중인 철도노조 지도부 일부가 서울 종로구 연지동 조계사 내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해 4명의 지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9시 20분 현재, 조계사 내 극락전 입구에는 취재진 20여 명이 대기중인 상황이다. 극락전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는 철도노조를 돕고 있는 한 관계자가 기자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이곳에서 수배중인 간부를 비롯해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함께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종 사회부장 "노조원들, 보호해야 한다"

이날 BBS 불교방송 <박경수의 아침저널>출연한 조계종 사회부장인 보화스님은 "경내에 들어온 철도노조원들은 사회적 약자인 만큼 보호해야 한다"며 "정치권이 철도 민영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경찰이 철도 지도부를 강제로 검거해서는 안 되며 종단이 이들을 신변 보호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경찰은 전날 철도 노조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조계사에 있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하지만 종교시설인 조계사 경내로는 진입하지 못하고 입구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경찰은 조계사 쪽 허락 없이 박 수석부위원장 등의 체포에 나서는 건 무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25일 현재, 1개 중대 100여 명의 경찰 병력이 조계사 인근을 지키고 있다.

경찰은 파업 중인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지난 22일 <경향신문>사옥에 자리잡은 민주노총 사무실에 강제 진입했지만 단 한 명도 검거하지 못한 바 있다.

한편, 철도노조 측은 25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철도노조본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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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민영화, 미국 자본의 참여 막을 수 있나

[시론] KTX 민영화와 한미FTA

이해영 한신대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25 오전 9:30:16

 

 

경찰의 '뻘짓'에도 철도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그 때문인지 철도노조의 '민영화 저지 파업'에 대한 지지가 탄력을 받는 느낌이다. 정부측과 노조, 시민사회 사이의 '민영화' 공방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철도 민영화와 한미FTA와의 연관성 문제이다. 민영화, 아니 정확히 말해 사유화(privatization)의 주체는 자본일 수밖에 없고 이 때 자본의 국적에 구분이 있을 수 없다. 특히 우리가 체결한 수많은 FTA 가운데 유독 한미FTA에만 철도시장과 관련된 매우 구체적인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는 까닭에 철도민영화와 미국의 철도자본의 진입 가능성 여부는 불가피하게 관심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주제다. 한ㆍEU FTA에는 한미FTA와 비교할 만한 철도 관련 조항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시 도시철도 개방을 위한 WTO GPA(정부조달협정) 개정이 언급되었고, 국회 비준동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대통령이 비준해 버렸다. 요컨대 GPA 개정은 다분히 유럽의 철도자본을 의식한 조치라 할 만하다. 일단 여기서는 한미FTA 철도조항에만 논의를 한정키로 하겠다.

1. 한미FTA 협정문상 철도에 직접 관련된 조항은 부속서I (현행 유보)과 부속서 II (미래 유보)에 등장한다. 먼저 부속서II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분야 운송서비스 - 철도운송
관련의무 최혜국 대우 (제11.4조 및 제12.3조)
유보내용 국경간 서비스무역 및 투자

대한민국은 시행 중에 있거나 이 협정 발효일 후 서명되는 철도운송에 관한 양자간 또는 다자간 국제협정에 따라 국가들에 대하여 차등 대우를 부여하는 어떠한 조치도 채택하거나 유지할 권리를 유보한다
.

해석하자면 이런 말이다. 철도운송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한미FTA 협정문의 다수 의무 가운데 제11.4조와 제12.3조에 명시된 미국에 대한 최혜국대우만은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 외 협정문 11장 투자, 12장 서비스장에 명시된 수많은 협정 의무는 당연히 준수해야 하며 위반시 투자자-정부 소송제(ISD)의 대상이 된다. 미래의 최혜국대우 의무를 우리가 유보함으로써 철도운송에 관한 한 향후 미국보다 예컨대 EU나 기타 제3국에 더 나은 대우를 해 줄 수 있다.

2. 그런데 문제는 부속서I 철도에 대한 현행 유보에 있다. 우선 협정문을 살펴 보자.

분야 운송서비스 - 철도운송 및 부수 서비스
관련의무 시장접근(제12.4조)
조치 철도사업법 제5조, 제6조 및 제12조(법률 제7303호, 2004.12.31)
한국철도공사법 제9조(법률 제7052호, 2003.12.31)
철도건설법 제8조(법률 제8251호, 2007.1.19)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제3조, 제20조, 제26조 및 제38조(법률 제8135호,
2006.12.30)
한국철도시설공단법 제7조(법률 제8257호, 2007.1.19)

유보 내용 국경간 서비스무역


한국철도공사만이 2005년 6월 30일 이전에 건설된 철도 노선의 철도운송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경제적 수요 심사에 따라 건설교통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법인만이 2005년 7월 1일 이후에 건설된 철도 노선의 철도운송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중앙 또는 지방정부나 한국철도시설공단만이 철도건설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고 정부소유 철도시설(고속철도 포함)을 유지 및 보수할 수 있다. 다만,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의 기준을 충족하는 법인은 철도건설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한미FTA 협정문상 예컨대 문제가 되고 있는 수서발 KTX 경부선구간만을 놓고 본다면 2005년 7월 1일 이후에 건설된 노선 곧 수서-평택, 동대구-부산은 이미 개방된 상태다. 그리고 호남선구간은 평택-오송 사이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다 개방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이 구간에 대해 미국 철도자본이 철도운송서비스의 시장 접근을 희망할 경우 이를 막을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아주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미국 자본이 원하기만 한다면 KTX경부선 구간중 수서-평택, 동대구-부산 구간은 이미 '민영화'되어 있다. 그리고 수서발 KTX 노선에서 2005년 7월 1일 이후 건설된 구간 중 극히 일부라도 미국의 시장접근을 추가적으로 제한하는 구간이 발생한다면 이는 '역진방지 메카니즘'이 적용되는 한미FTA 현행 유보의 규정에 따라 협정의무 위반 논란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포괄적으로 철도 민영화를 금지하는 법안과 한미FTA는 상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개방된 구간에 대한 미국 민간자본의 시장 접근을 제한하는 것으로 이는 자유화의 후퇴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정부가 2005년 7월 1일로 '현행 유보'한 개방요건을 더 '자유화'하는 방향, 예컨대 2004년 7월 1일식으로, 곧 개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은 한국의 협정 의무와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협정의무의 변경은 사실상의 법개정에 해당되므로 별도로 국회 심의를 거쳐야만 할 것이다. 아무튼 만에 하나 부산-동대구 구간에 KTX 여객운송서비스를 미국 철도회사가 제공한다면 이를 두고 '민영화'라는 말이 아닌 그 어떤 다른 말로 부를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지금 민영화냐 아니냐식의 논란도 문제의 대외적 차원을 함께 놓고 본다면 사실상 거의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

3. 미국 자본의 입장에서 보건대 개방되지 않은 평택-동대구 구간을 제외하고, 개방된 위 구간만으로 사업성이 있는지 여부는 '그들만의' 경영적 판단이 필요한 문제이다. 이 때 미국 자본이 국내 자본과 컨소시엄 등을 구성해서 KTX 전 구간을 대상으로 하거나 또는 평택-동대구 구간만을 대상으로 운송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미FTA 협정문 상으로 한국은 경부선만 놓고 본다면 평택-동대구 구간에 대한 시장 접근과, 한국철도시장에 대한 최혜국대우 미래유보를 제외한, 내국민대우, 이행의무 부과, 최소기준 대우, 수용 및 보상, 송금, 최고경영진 및 이사회등과 관련된 협정 의무를 준수해야만 하며 위반시 당연히 ISD대상이 된다. 만일 경부 고속철 시장에 접근을 희망하는 미국 철도자본이 있음에도 '주식회사 수서발 KTX'에만 특혜를 준다면 이는 차별대우로서 내국민대우 위반의 소지가 발생한다.

4. WTO GATS(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제16조와 한미FTA 제12.4조 곧 두 종류의 '시장접근' 조항을 비교해 볼 때 결정적 차이는 GATS 제16조 2항 바호 즉 "외국인 지분소유의 최대 비율 한도 또는 개인별 투자 또는 외국인 투자 합계의 총액 한도에 의한 외국자본 참여에 대한 제한"이 한미FTA 제12.4조에서는 삭제되었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한미FTA에서 미국자본의 지분투자 등 자본참여는 시장접근에 대한 현행 유보에서 아예 삭제되어 있기 때문에 철도시장에 대한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등 방법으로 미국 자본의 투자를 막을 방법은 협정문 상으로는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5. 한미FTA 철도 부속서의 두 번째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다. "경제적 수요심사에 따라 건설교통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법인만이 2005년 7월 1일 이후에 건설된 철도 노선의 철도운송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이 조항을 설치한 취지는 이렇다. 미국인이 경제적 수요심사(ENT: Economic Need Test)를 거쳐 사업면허를 취득하기만 하면 예컨대 동대구-부산 구간에 KTX 법인을 설립 여객운송을 포함한 철도운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2001년 한국은 경제수요심사를 거쳐 면허를 취득하면 누구든지 한국에서 철도화물 운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양허안을 WTO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므로 한미FTA 철도부속서의 이 조항은 2001년 WTO 철도 양허안을 화물에서 여객운송까지 확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조항에 근거해 얼마 전까지도 국토부측은 경제수요 심사를 통해 미국 자본의 시장 진입을 막겠다, 그리고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 수요심사의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채 한 말에 불과하다.

먼저 이 개념이 등장하는 한미FTA 협정문 제12.4조를 보자.

제 12.4 조
시장접근

어떠한 당사국도 지역적 소구분에 기초하거나 자국의 전 영역에 기초하여 다음의 조치를 채택하거나 유지할 수 없다.

가. 다음에 대한 제한을 부과하는 것

1) 수량쿼터, 독점, 배타적 서비스 공급자 또는 경제적 수요심사 요건의 형태인지에 관계없이, 서비스 공급자의 수
2) 수량쿼터 또는 경제적 수요심사 요건의 형태로, 서비스 거래 또는 자산의 총액
3) 쿼터 또는 경제적 수요심사 요건의 형태로, 지정된 숫자단위로 표시된 서비스 영업의 총 수 또는 서비스의 총 산출량, 또는
4) 수량쿼터 또는 경제적 수요심사 요건의 형태로 특정 서비스 분야에 고용될 수 있거나 서비스 공급자가 고용할 수 있으며, 특정 서비스의 공급에 필요하고 직접 관련되는, 자연인의 총 수, 또는 서비스 공급자가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특정 유형의 법적 실체 또는 합작투자를 제한하거나 요구하는 것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한미FTA 제12.4조는 WTO GATS 제 16조 시장접근 조항에서 외국자본참여 제한을 삭제한 것이다. 일종의 WTO 플러스 조항인 셈이다. 아무튼 GATS 제16조에 처음 등장한 경제적 수요 심사는 WTO 회원국이 취할 수 있는 4가지 유형의 시장접근 제한 조치로서 (1) '서비스공급자의 수', (2) '서비스거래 또는 자산의 총액', (3)'서비스 영업의 총 수 또는 서비스의 총 산출량', (4) '자연인의 총 수'를 말한다. 회원국은 시장접근에 관련된 이 4가지 유형의 조치를 수량을 적시하거나 또는 '경제적 수요심사의 형태로' 양허안에 해당 분야(sector)를 명시하고 등재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경제적 수요 심사는 엄밀히 규정된 개념이 아니었다. 그래서 2001년 3월 22일 GATS 서비스무역위원회가 채택한 <특정 양허의 스케줄에 대한 가이드라인(Guidelines for the Scheduling of Specific Commitments under the GATS)>에 따르면 경제적 수요 심사는 위에 열거한 "4가지 유형의 양적 제한으로 구성되며", 이 양적 제한 조치는 "서비스 공급의 질 또는 서비스 공급자의 능력 (즉 기술 표준 또는 공급자의 자격)과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경제적 수요 심사 형태의 조치들은 GATS 제6조 4항에 명시된 서비스 공급자의 자격요건, 기술표준 그리고 면허요건과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FTA, 특히 한미FTA는 경제적 수요 심사등을 통한 4가지 유형의 양적 제한을 금지하자는 것이 입법 취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제12.4조 시장접근 조항에 대해 철도부문은 현행 유보를 했기 때문에, 경제적 수요 심사에 따른 국토부장관의 면허를 취득해야 2005년 7월 1일 이후 노선에 철도사업을 경영할 수 있다고 명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 수요 심사를 통한 4가지 양적 규제가운데 여기서 의미가 있는 것은 '서비스 공급자의 수'다. 쉽게 말해 미국인 사업자가 국토부장관에게 철도운송서비스업 운영을 위한 면허를 신청했을 때, 국토부장관이 경제적 수요 심사를 통해 '서비스 공급자의 수'를 '주식회사 수서발 KTX'로만 즉 단수로 제한할 수 있을까가 관건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수서발 KTX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우선 2005년 7월 1일 건설 노선에 대해서는 협정문상으로도 전혀 가능하지 않다. 더군다나 이는 수서발 KTX의 설립 취지가 코레일의 독점이 적자 방만경영을 불러 왔으므로 이를 '복수의' 사업자가 참여하는 '경쟁체제'를 구축해 바로 잡겠다는 정부의 주장과도 정면배치되는 것이다. 독점을 통해 독점의 폐해를 바로 잡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말이다. 요컨대 경제적 수요심사를 통해 서비스 공급자의 수를 단수로 제한하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심지어 경제부총리는 주식회사 수서발 KTX를 '준정부기관'으로 만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준정부기관은 공기업인 코레일보다 더 강력한 형태의 공공기관이다. 말하자면 코레일이라는 공기업을 놓고 '114년 독점의 폐해'을 운운하면서 그보다 더한 슈퍼 공기업을 또 만들겠다는 황당하기조차 한 주장이다.)

6. 한미FTA와 '주식회사 수서발 KTX'를 비롯한 한국의 철도시장과는 두가지 형태의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지분 투자이며 두 번째는 법인 설립이다.

(1) 수서발 KTX는 코레일이 41%,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이 59% 지분을 투자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국민연기금은 시장수익률 이상의 수익을 내도록 규정되어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 지분을 매각하게끔 있다. 이 때 정부측은 이 지분을 오직 공공부문만 인수할 수 있게 한다는 말인데, 과연 그런 공적 기금이 존재하는 것인지, 또 민간자본의 참여를 원천배제하는 '주식회사'나 그런 기업공개가 가능한 것인지는 전적으로 의문이다. 만일 현행법상 그것이 가능하지 않아서 어떤 형태로든 민간자본의 참여가 불가피하다고 할 때, 만에 하나 미국자본의 투자를 막는다면 이는 명백한 내국민대우 위반이 된다.

(2) 그런데 사실상 정부의 지배 하에 있게 될 '주식회사 수서발 KTX' 에 설사 그것이 단 1달러라 하더라도 미국자본의 지분투자가 포함된다면 국토부장관이 말하는 것처럼 '민간 매각 시 면허 취소' 등의 조치는 이행의무부과 (PR: performance requirements)에 해당되어 한미FTA 협정위반 논란의 소지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3) 미국자본에 의한 여객, 화물 운송서비스를 위한 법인 설립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경우에도 정부는 '민간 매각시 면허 취소'를 포함 그 어떤 종류의 이행의무도 부과할 수 없다. 철도사업법 제5조(면허 등)에 따르면 "① 철도사업을 경영하려는 자는 국토교통부장관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국토교통부장관은 철도사업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필요한 부담을 붙일 수 있다". 그러나 철도사업법 제5조 1항의 "필요한 부담" 조항을 국내자본이 아닌 미국자본에 적용할 수는 없다. 철도사업에 투자할 미국자본은 한국의 철도사업법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한미FTA협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이러한 '필요한 부담'은 '이행의무 부과'에 해당 협정 위반이 된다. 미국자본에 요구되는 면허요건은 협정문상 경제적 수요 심사 외에는 없다.

7.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정부가 그나마 내놓은 방안 그 최신 버전으로서 '민간매각시 면허 취소', '준정부기관화' 등은 사실 '국내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이미 훨씬 넘어서 있는 한미FTA는 정부의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부정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되어 버렸다. 사실 현 단계에서 가장 확실한 해법은 철도 민영화를 법률로 금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한미FTA의 역진방지 조항과 상충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지금까지 한미FTA 역진방지 메카니즘을 놓고 독소조항이라고 비판해 왔던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우리는 이 조항으로 인해 정부의 공공정책공간이 현저히 위협, 축소되는 바로 그 현장을 철도민영화에서 보고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그 실효성과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국내용' 헛대책을 남발하기보다, 수서발 KTX설립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뻘짓'이 끝나고 퇴각하는 경찰지휘관들이 이런 대화를 나눈 것이 포착되었다 한다. "어떻게 된 거야? 뭐?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어쨌거나 더 큰 '뻘 짓'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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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암흑기, 대자보보다 못한 방송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12/24 13:10
  • 수정일
    2013/12/24 13: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방송3사 파업지지 인터뷰 0건, 시체가 된 저널리즘
 
육근성 | 2013-12-24 12:20: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지상파와 종편. 펙트를 두 겹으로 에워싸 진실을 가리는 편파보도. 이게 방송언론의 현주소다. 방송 장악을 통해 국민의 눈과 입을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한 무서운 음모가 이명박 정권 때 시작됐고, 박근혜 정권은 그 음모의 수혜자가 됐다.

철도 파업 편파보도, 방송 저널리즘은 죽었다

방송언론의 암흑기다. 철도노조의 파업과 정부의 공권력 남용 사실이 제대로 보도될 리 있겠는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철도노조 파업 하루 전인 지난 8일부터 17일까지 방송3사의 보도행태를 분석했다.

파업을 다룬 보도는 총 70건. 쟁점인 민영화 논란을 다룬 건 전체의 10%에도 못 미쳤다. 대부분(43건)이 파업에 따른 코레일의 피해, 시민 불편, 사건 사고 등에 집중됐다. 대단한 편파보도다.

민영화를 반대하는 노조의 입장은 무시한 채 정부의 입장만 강조하는 보도를 내보낸 방송3사. 스스로 언론임을 포기한 거나 다름없다. 국민을 바보로 만들려고 안달이다. 민영화로 인한 피해보다 파업의 부당성만 잔뜩 부풀린 보도에 속아 넘어가길 바라는 저들. 언론이 아니다.

방송3사, 파업 지지 시민 인터뷰 0건

‘민언련’은 철도파업과 관련해 방송3사의 인터뷰 행태를 고발했다. 방송3사가 10일간 내보낸 인터뷰는 총 138건. 이 가운데 민영화를 반대하는 노조의 입장을 담은 인터뷰는 고작 30건(22%)인 반면, 정부와 코레일의 입장에 선 발언을 담은 인터뷰는 104건(75%)에 달했다.

철도 파업으로 인한 불편과 피해만을 부각시켜 파업의 당위성을 희석시키려는 수작이다.

수신료를 올리려고 안달인 KBS가 가장 편파적이었다.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국토해양부, 검찰, 경찰 관련 보도가 9건이나 됐다.

 

국민들의 반응도 제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보도했다. 민영화 반대와 파업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파업에 따른 불편을 호소하는 일부의 견해만 부각시켰다. ‘민언련’은 “열흘 동안 방송3사가 내보낸 21명의 시민 인터뷰 중 단 한명도 철도파업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보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국민 60%가 민영화 반대, 아고라 서명 17만 넘어

철도노조 파업을 지지하며 민영화에 반대하는 많은 시민들이 많다. 다음 아고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파업 지지 서명운동에 참여한 네티즌은 목표 10만명을 훌쩍 넘기며 174316명(23일 현재)을 기록고 있다. 방송3사가 이런 목소리를 짓밟은 것이다.

<다음 아고라/철도 파업 지지 서명 운동>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한 방송3사. ‘민언련’은 KBS의 경우 편파보도 수준을 넘어 “매도와 이간질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KBS는 철도 파업에 “외부세력이 개입해 (정부와 노조 사이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민 60%가 민영화에 반대하고 파업을 지지한다. 그런데도 KBS는 대다수의 국민을 불순한 ‘외부세력’으로 규정했다. 국민의 편에 서야할 공영방송이 본분은 내던지고 박근혜 정권 홍보방송으로 추락했다. 이러면서 시청료 더 받겠다니 그 뻔뻔함이 가관이다.

방송3사는 박근혜 정권의 나팔수

“민영화 아니다”라는 정부의 주장만 보도하면서 민영화를 우려하는 철도노조와 국민 대다수의 외침을 묵살하는 방송3사. 만성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KTX를 둘로 나눠야한다는 정부의 황당한 주장을 그대로 베껴 보도하고 있다.

코레일이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는 KTX를 쪼개는 게 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방편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궤변에 가깝다. 수서KTX를 출범시키면 코레일의 적자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KTX를 둘로 쪼갠 뒤 적자노선과 화물운송, 선로관리, 여객운송 분야를 하나씩 떼어내는 식의 민영화를 하려 들 것이다. 수서KTX 출범은 철도 민영화의 전주곡이다.

<저널리즘에 충실한 손석희의 '뉴스9', 외눈박이들의 테러 표적이 됐다.>

한쪽으로만 치우친 ‘외눈박이’ 언론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는 공백을 대자보가 대신하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단순한 아날로그 질문이 유신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정권에 맞서 대한민국 사회를 각성시키고 있다.

1219부정선거, 철도 민영화 꼼수, 쌍용자동차 사태, 밀양 송전탑 강행 등 정치·사회적 이슈의 양면을 조명하지 못하고 한쪽으로만 치우쳐 ‘외눈박이’가 돼버린 언론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대자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획일화된 언론과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힘의 논리에 매몰된 ‘불통정권’에 대한 항거이기도 하다.

권력의 시녀가 된 언론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대자보. 저널리즘이 붕괴된 현장에서 자라난 민중의 함성이다.

 

대자보는 ‘민중 저널리즘’

이명박 정부는 교활했다. 집권 5년 동안 진보세력 척결과 보수 일변도의 정권 재창출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 방편으로 신문, 방송, 통신사 등을 완벽하게 장악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공을 들인 건 종편 강행 등 방송장악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전 정권이 넘겨준 ‘방송장악’이라는 과실의 수혜자다.

저널리즘이 사라진 빈 공간에 등장한 대자보. 권력에 무릎 꿇은 언론을 대신한 저널리즘이다.

방송3사가 포기했지만 저널리즘은 살아있다. 그게 대자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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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자위대, 한국군에 실탄 주며 웃는 이유

 

 


남수단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 PKO 한빛부대가 일본 자위대로부터 K2소총 실탄 1만 발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내전이 격화되고 있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 자위대로부터 실탄을 빌리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군이 일본 자위대로부터 실탄 1만 발을 빌리는 것은 한국군 창군이래 처음입니다. 내전이 격화되고 있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실탄을 빌린다고 하지만 이 안에는 굉장히 복합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부분이 그 안에 숨겨져 있는지 조사해봤습니다.

' 이상하게 재빠른 일본의 실탄 제공'

한빛부대가 이번에 자위대로부터 실탄을 제공받는 과정에는 몇 가지 의문이 숨겨져 있습니다.

① 실탄, 꼭 일본 자위대에 빌렸어야 했는가?

이번에 한국군이 빌린 실탄은 5.56mm K2 소총탄입니다. 이 실탄은 미군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앞서 한국군은 미 아프리카 사령부 예하 부대로부터 5천 발을 지원받은 바 있습니다.

막강한 보급력을 자랑하는 미군에 실탄 1만 발이 없어 일본 자위대에 빌렸다는 말은 무엇인가 말이 맞지 않습니다.


 

 

 


② 빨라도 너무 빠른 일본의 실탄 제공 결정

한국군이 실탄을 요청한 시간은 22일 오전입니다. 일본은 23일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의 '4인 각료회의'(스가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아베총리)에서 실탄 제공을 결정했습니다.

그동안 한일관계가 그리 좋았던 시기가 아니었다는 점으로 비추어 이상하게 빠른 결정이었습니다.


③ PKO협력법을 뒤집는 실탄 제공

자위대의 실탄 제공은 그동안 일본이 보여줬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일본 'PKO협력법'에는 내각회의로 분쟁지역에 물자를 제공할 수 있다고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무기와 탄약은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결국, 이번의 한국군 실탄제공은 '무기와 탄약 제외'라는 기존 방침이 완전히 무너진 것입니다.


'실탄 빌려주며 웃는 일본'

일본 자위대는 한국군에 실탄을 빌려주며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진행해온 '신군국주의'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됐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이번 한국군 실탄제공으로 그동안 일본의 재무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무기수출 3원칙'을 파기할 기회도 얻었습니다.

일본은 실제로 이번 한국군 실탄제공은 '무기수출 3원칙 예외'로 간주했으며, 이에 따라 신속하게 내각회의에서 실탄제공을 결정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일본 자위대의 문제점이었던 탄약 보급률을 늘릴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전쟁하면 일본이 진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은 장기전을 할 수 있는 탄약이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기 수출을 하기 위해 탄약이 계속 일본 국내에 있다면, 전쟁이 나도 일본은 장기전을 펼칠 수 있는 전력을 갖게 됩니다.


 

 

 


일본은 1954년 만들어진 '자위대법'을 2006년에 개정했습니다. 과거에는 '자위대는 우리나라(일본)'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정된 자위대법에는 '일본 주변 지역'까지 확대됐습니다. 일본 주변 지역은 당연히 한반도가 포함되어 있고, 그 안에 북한이 존재합니다.

일본은 해외 PKO파병을(국제평화협력활동 제3조 제2항) 토대로 자위대의 위상을 높이고 있으며, 북핵 위협을 빌미로 한반도에 군사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자위대의 ‘본연의 임무(本.任務)’

○주된 임무: 직접침략 및 간접 침략에 대한 방위 출동
○종의 임무: 필요에 따라서 실시하는 국민보호 등 파견, 치안출동, 경호출동, 해상에 있어서의 경비행동, 탄도 미사일 등에 대한 파괴 조치, 재해 파견, 지진 방재 파견, 원자력 재해 파견, 영공침범에 대한 조치


일본은 이번 실탄 1만 발 제공을 통해서 그동안 계속 추진해온 극우정권의 '신군국주의'가 빛을 발하게 됐고, 앞으로 '평화를 위해서는 무장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더욱 힘을 얻을 것입니다.

' 보급과 대비태세에 실패한 한국군'

한국 정부는 이번 사태를 굉장히 안일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저 내전으로 한국군과 교민 24명이 위험해졌으니 그것을 막기 위해 실탄을 빌리는 것이며, 다음에 반환하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도 당장 급한데 실탄만 보급받으면 되지, 무슨 큰일이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몇 가지를 놓치고 있습니다.

▷ 공병,재건 부대이기 때문에 실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 일본 남수단 PKO 부대도 재건부대, 그런데도 실탄 1만 발을 빌려줄 정도로 실탄을 갖고 있다.

▷ 한빛부대는 병력이 적기 때문이다?
▶ 한빛 부대는 282명, 일본 남수단 PKO 부대는 증원되어 350~400명 수준이었다.

▷ 빌린 실탄은 다음에 반환하면 된다?
▶ 실탄 1만5천발: 경비병력 70명이 고작 200여발 보급받는 수준.그 정도 조차 없었던 준비태세 부족과 실탄 보급 문제 실패는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내년 1~3월에 북한군 도발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국방부는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군대에서 실탄이 없다고 일본 자위대에 실탄 1만 발을 빌렸습니다.

1950년 6월 26일 남한이 북한군의 남침으로 무너지고 있는데도 국군이 북한군을 요격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안전하다고 국민을 안심시켜 놓고 몰래 혼자서 대피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실탄 1만 발을 자위대에 빌린 것이 굳이 문제가 있느냐는 그런 안일한 자세는 진짜 안보와 외교, 국방력의 허술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한국전쟁이 '신의 축복'이었다는 일본은 다시 한 번 한국군의 무능력함에 좋다고 손뼉을 치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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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발 KTX 민영화 논란의 모든 것

"박근혜 '민영화 아니다'? 30년 전에나 통할 얘기!"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84>수서발 KTX 민영화 논란의 모든 것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23 오후 4:33:00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수서발 KTX 주식회사의 성격을 두고 찬반론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나는 민영화 비판론의 입장에 서 있다. 현재 논점이 되는 다섯 가지를 중심으로 비판 근거를 정리한다. 결론을 먼저 밝히면 아래와 같다.

다섯가지 논점에 대한 입장

첫째, 수서발 KTX 주식회사는 민영화인가? 그렇다. 정부는 민간자본이 참여하지 않는 자회사이니 민영화가 결코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이는 30년 전에나 통하는 이야기이다. 1980년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공기업 민영화에도 여러 '파생상품'을 개발해 왔다. 지금 박근혜정부의 자회사를 경유한 민영화는 정부 민영화론자들이 내놓은 철도민영화 상품이다. 김대중 정부부터 철도민영화를 자신의 미션으로 추진했던 이들에게는 '창의적인' 작품이지만, 그 상품의 성격을 모를만큼 우리도 우둔하지 않다.

둘째, 국민연금기금이 참여하면 철도공공성이 유지되는가? 훼손된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에 참여하라고 초대받은 국민연금기금은 시장에서 움직이는 민간펀드의 일종이다. 국민연금기금이 투자하므로 민영화가 아니라는 주장은 자산시장에서 운용되는 국민연금기금의 기본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국민연금기금은 국민연금법에 의해 시장수익률을 넘는 수익을 올려야 한다.

셋째, 박근혜정부는 철도관련법을 지키고 있는가?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다.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철도사업법이 제정된 취지는 철도운영을 한국철도공사가 독점적으로 운영하되, 공사가 폐지한 노선과 민간투자사업 노선에 한해 제 3자 운영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지금 박근혜정부는 철도관련법을 왜곡 해석하며 철도정책의 중대한 결정을 강행하고 있다.

넷째, 수서발 KTX 주식회사로 인한 경쟁 효과가 발생하는가? 거의 전무하다. 정부는 복수의 KTX 회사가 존재하면 경쟁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이는 열차 운행이 선로에 종속되는 철도산업의 기본 특성을 무시한 설명이다. 두 회사 사이에 경쟁 효과는 발생하지 않고 오히려 중복 비용만 초래될 뿐이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은 동일한 성격의 회사 설립으로 인한 중복 비용과 시장자본에게 제공해야 하는 수익을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조치이다.

다섯째, 한국철도공사의 개혁은 필요한가? 그렇다. 그 방향은 민영화를 통해 철도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철도서비스를 시민의 벗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할 과제는 민영화가 아니라 한국철도공사의 이사회를 이용자, 전문가, 생산자 등이 함께 논의하는 참여형 지배구조로 개편하는 일이다.
 

▲ 수서발KTX 출자회사 설립과 관련해 민영화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민영화, 시장자본의 수익성에 종속되는 기관으로의 전환

전통적으로 민영화는 공공기관을 민간자본에게 넘겨주는 매각(sale)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1980년 이후 지난 30년 동안 시장만능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주도하면서 고전적 형태인 매각을 뛰어 넘어 다양한 종류의 민간위탁(franchising, concession, public-private partnership), 민간투자사업(BTO, BTL) 등 교묘한 민영화방식이 개발되어 왔다.

한국철도에서도 여러 민영화 방식이 도입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수서발 KTX 민영화는 정부가 건설하고 운영권을 민간에게 넘기는 민간위탁 방식이었으며(영국 여객철도도 여기에 해당), 이미 일부 업무를 민간회사에게 넘기는 외주화도 진행 중이다. 또한 민간자본이 건설에 참여하고 독점 운영권을 얻어가는 민간투자사업도 근래 늘어나고 있다(인천공항철도, 서울 지하철9호선 등).

다양한 방식의 공공기관 민영화에서 관통되는 기본 원리는 '수익 추구(profit motive)'이다. 공공기관은 사기업과 달리 공공성을 목적으로 설립되고 운영된다. 그런데 그 공공기관이 시장자본의 수익성에 종속되는 기관으로 전환될 때, 이것이 바로 민영화이다.

따라서 민영화 여부의 판단 잣대를 공공기관의 소유구조 변화, 매각으로 한정하게 되면 철도산업의 민영화 추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대표적 예로, 이명박 정부는 수서발 KTX 민간위탁을 추진하면서 결코 '민영화가 아니라 경쟁체제 도입'이라고 강변했다. 현대건설, 동부건설, GS건설, SK건설, 현대산업개발, 두산 등 주요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제안서 공개 설명회까지 개최하고서도 민영화가 아니라고 거듭 우기는 촌극을 벌였다. 지분 매각 방식만이 오직 민영화라는 30년 전의 통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현재 25개 사기업이 운영하는 영국 여객철도도 소유권은 영국정부에 있으니 민영철도가 아니고, 지하철9호선도 외국계 금융자본인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 등 시장투자자가 운영해도 소유권은 서울시가 가지고 있으니 공공철도가 된다.

박근혜 정부의 KTX 민영화 방식: 자회사 주식회사를 활용한 시장자본 참여

철도산업의 민영화가 주로 이루어지는 영역은 철도운영 부문이다. 외국에서도 철도시설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인식되어 민영화되는 경우가 드물다. 철도 민영화의 선봉에 섰던 영국조차 처음에는 철도시설까지 민간에게 매각했지만 그 부작용이 너무 커 지금은 철도시설공단(Network Rail)으로 재국유화해야 했다. 반면에 철도운영부문은 시설투자 부담에서 벗어나므로 시장자본이 눈독을 들이는 대상이다. 철도 운영권만 불하받으면 막대한 투자비를 책임지지 않으면서 수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운영부문의 민영화 방식은 이명박 정부식(영국식) 민간위탁, 지하철9호선식 민간투자사업, 자회사 형식을 통한 시장자본 참여 등 다양하게 추진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방식이 바로 자회사를 활용한 민영화이다.

민간투자사업이 SOC 건설에 정부재정과 민간자본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라면, 박근혜정부의 수서발 KTX 자회사는 시설 건설은 정부(철도시설공단)가 맡았지만 운영에 정부 지분(한국철도공사)과 시장자본(국민연금기금)이 함께 들어오는 변형된 형태의 민간운영사업이다.

일반적으로 자회사는 모기업의 사업 역영에서 주변 업무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수서발 KTX 주식회사는 모기업을 능가할 수 있는 독특한 자회사이다. 수서발 KTX가 이후 한국철도의 중추 간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서역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개통됨에 따라 수도권 광역교통망의 허브로 자리잡을 예정이다. 수서발 KTX는 황금알을 낳은 거위처럼 성장해 가지만, 한국철도공사는 KTX 승객이 감소하고 이에 따른 경영수지 악화로 일반철도의 고사가 우려되는 실정이다. 박근혜정부의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이 다른 자회사 방식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를 지니는 까닭이다.

국민연금기금 성격: 국민연금기금은 시장수익률 이상을 추구하는 시장펀드

박근혜 정부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회사 지분구조가 코레일 41%, 공적자금 51%로 구성되니 민간 참여가 없고 정관에서 민간 매각을 금지하므로 민영화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국민연금기금의 기본 성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일부러 왜곡하는 변명일 뿐이다. 국민연금기금은 국민연금법에 의해 조성된 국민의 노후예탁금이므로 '사용 목적'에서 공적자금의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적립기금으로서 자산시장에서 기금을 투자하는데, '기금 운용'의 측면에서는 다른 민간펀드와 동일하게 시장자본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시장자본의 성격은 현행 국민연금법에서도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국민연금법 102조(기금의 관리와 운영)는 '국민연금기금은 국민연금 재정의 장기적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킬 수 있도록 관리운영하고.... 자산 종류별 시장수익률을 넘는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금운용의 책임을 지고 있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국민연금기금운용지침을 마련한다. 이 지침은 국민연금법이 정한 '시장수익률을 넘는 수익' 추구를 위하여 국민연금기금이 달성해야할 목표수익률을 '실질경제성장률+소비자물가상승률±조정치'로 명시해 놓았다. 매년 약 7% 수준에서 목표수익률이 정해져 왔다. 이에 근거하여 국민연금기금은 자산운용시장에서 활동하는 유사한 민간펀드를 벤치마크로 삼아 자산군별(국내주식, 해외주식, 국내채권, 해외채권, 대체투자) 목표수익률을 세부적으로 정해 기금운용 집행기관인 국민연금공단에 요구하고 국민연금공단은 이 목표수익률 달성을 위해 기금을 투자하게 된다.

국민연금기금이 수서발 KTX 주식회사에 투자할 경우 이는 인프라 부문에서 특정 지분 몫을 인수하는 SOC 대체투자에 속하게 될 것이다. 2010-12년 3년간 국민연금기금이 SOC 투자에서 비교로 삼은 벤치마크 수익률은 평균 6.91%였고, 실제 달성한 수익률은 이보다 0.79% 포인트 높은 7.70%였다(국민연금연구원, [2012년 국민연금 기금운용 성과평가] 245쪽. 2013년)

따라서 국민연금기금이 수서발 KTX 주식회사 지분 59%를 가질 경우, 국민연금기금은 당연히 7% 이상의 수익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법, 국민연금기금운용지침에 따른 의무적 조치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이 자산운용 측면에서 국민연금기금은 다른 민간펀드와 동일한 시장펀드의 하나일 뿐이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에겐 일반 투자신탁회사 펀드가 지닌 지분이나 국민연금기금이 투자한 지분이나 시장수익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투자자이다. 결국 국민연금기금이 투자한다는 것은 시장수익을 추구하는 시장자본이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면 발생하지 않을 수익 추구가 '민영화 비용'으로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관의 매각 금지 조항: 이사회가 언제든지 변경 가능

국민들의 민영화에 대한 비판이 거세어지자 수서발 KTX 주식회사 정관에 공적자금의 지분을 민간자본에 매각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넣어 민영화를 차단하겠다고 호언한다. 국토교통부는 국민연금기금의 시장자본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지난 12월 10일 한국철도공사 이사회가 의결한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안이 이미 민영화 방안임을 인식하지 못한 뒷북 설명이다.

게다가 정관이 도대체 얼마나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 지난 8월 한국철도공사는 상법상 주식회사에서 주주의 지분 매각을 금지하는 것이 위법적 조항이어서 무효화될 수 있다는 법률 자문까지 받아놓고도 정관 제정을 강행했다. 또한 이 정관은 이사회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기에 국민연금기금의 지분이 다른 투자자의 몫으로 전환되는 일도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기업이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하거나 설립되는 것은 민영화의 사전 조치로 해석되는 게 보통이다. 대표적 사례로, 1997년 공기업경영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담배인삼공사, 한국통신, 한국가스공사, 한국중공업, 인천국제공항, 한국공항공사가 민영화 대상 기업으로 정해졌었는데, 이 공기업 역시 주식회사로 전환되는 경과를 밟아 갔다(현재 담배인삼공사, 한국통신, 한국중공업은 민영화 완료).

박근혜 정부 위법 행정: 기본법 위반하고 의사결정에 국회 배제

수서발 KTX 민영화 논란에서 국민들이 주목할 점은 박근혜정부가 한국철도운영체제의 중대한 결정을 수서발 KTX 자회사라는 일개 공공기관의 정관 사안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 철도민영화로 사회적 논란을 벌일 때 쟁점은 철도민영화법 제정 여부였고, 노무현정부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논리에 따르면, 철도산업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결정이 철도자회사 이사회의 손에 맡겨진다. 형식은 이사회를 통하지만 사실상 이사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행정부가 한국철도운영체제의 변화 결정권을 행사하겠다는 이야기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권한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조치이다.

이는 현재 철도산업의 기본골격을 정한 모법인 한국철도산업발전기본법을 위반하는 일이다. 한국철도산업발전기본법은 한국철도공사에 국가 소유 철도노선에 대하여 독점적 운영권을 부여하고, 예외적으로 한국철도공사가 아닌 새로운 운영자가 맡는 경우는 한국철도공사가 적자를 이유로 철도서비스를 중지하거나 제한한 경우로 정하고 있다. {한국철도산업발전기본법 34조(특정노선의 폐지 등의 승인), 시행령 48조(철도서비스의 제한 또는 중지에 따른 신규운영자의 선정)}.

즉 현행법에 따르면, 한국철도공사가 적자를 이유로 운영을 포기한 노선이거나 민간투자사업에 의해 별도로 건설된 노선이 아니라면 한국철도공사가 아닌 제3자가 운영할 수 없다. 수서발 KTX는 한국철도공사가 포기한 노선도 아니고, 민간투자사업도 아니다. 적자 폐지노선, 민간투자사업 노선도 아닌데 박근혜정부가 시장자본이 참여하는 수서발 KTX 주식회사에 면허권을 부여하는 것은 한국철도산업발전기본법을 위반하는 일이다.

최근 국토교통부장관은 나중에라도 민간자본이 들어오면 면허권을 취소하겠다고 발언했는데, 이 역시 주주의 이익을 침해해 상법을 위반할 소지가 매우 큰 조치이다. 사실상 효력이 없는 대책임에도 논란을 피해보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수서발 KTX 주식회사 지분에 미국자본이라도 들어오는 날이면 현재 KTX 노선도 한미FTA 조항에 적용받을 위험이 크다. 2005년 6월 이전에 건설된 현행 KTX 노선은 현재유보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그 이후 건설된 노선은 한미FTA 유보조항 보호를 받지 못하기에 미국자본이 참여할 수 있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가 현행 평택~부산(목표) 노선까지 운행하기에 자신의 영업권을 내세우며 이 노선에 대한 권리까지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연혜 사장에게 묻고 싶다. 최 사장은 작년 새누리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이전까지 노무현정부에서 철도공사 부사장을 지내고 얼마전까지 철도대학 총장까지 지낸 철도전문가이다. 현행 철도관련법이 정말 아무에게나 철도면허권을 주도록 입법화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지난 8월, 한국철도공사가 수서발 KTX 자회사 정관이 이후 상법에 의해 무효화될 수 있다는 법률 자문까지 받아 놓지 않았는가? 한미FTA로 인해 평택-부산(목표)까지 미국자본에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할 것인가? 왜 이토록 이러한 위험한 일을 벌이는 것인가?

두개 KTX 회사의 경쟁효과: 없다
 

▲ 수서발 KTX 운행 노선 수서 펴택 구간을 빼고 겹친다. ⓒ철도노조

정부는 수서발 KTX가 따로 운영되면 서울역발 KTX와 비교 대상이 생기므로 경쟁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열차 운행이 선로에 종속되는 철도산업의 기본 특징을 애써 모른 체하는 궤변이다.

두 회사가 별도로 KTX를 운영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인원을 줄일 수 있을까? 현재 서울-부산 KTX노선의 편성은 20개의 차량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기관사 1명, 열차팀장 1인, 승무원 2인(1인당 10량 담당)이 일한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 역시 여기서 인원을 더 줄일 수 없다.

다른 업무는 어떨까? 두 회사 모두 철도시설공단이 소유한 시설을 사용하고 선로사용료를 동일하게 납부한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는 한국철도공사에게 열차 차량을 임대하고 정비까지 위탁한다. 노선의 대부분이 한국철도공사와 겹치기에 선로 유지보수 업무도 두 개로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일이다. 역사도 한국철도공사의 것을 함께 쓰고 정보시스템도 한국철도공사의 것이다. 서울역에서 평택 구간을 제외하곤 같은 선로를 달리기에 앞지를 수도 없어 소요시간도 동일하다. 어느 한 회사가 인하하면 따라 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같은 구간에서 사실상 요금도 달리하기 어렵다.

굳이 두 회사에서 다른 점을 찾는다면 객실 서비스 정도인데 비좁은 공간에서 소수 승무원들이 제공할 수 있는 역할의 차이가 클 수 없다. 동일한 차량을 사용하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변화로 색상이 있겠지만, 어린 아이가 아니라면 이것에 영향을 받을 어른은 없을 것이다. 결국 두 회사 사이에서 경쟁효과는 사실상 발생하지 않는다. 현행 고속버스처럼 여러 회사 버스들이 순서에 따라 배차될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쟁체제 도입 운운하며 또 하나의 공기업을 설립하고자 한다. 왜 굳이 임원직, 관리직 비용을 별도로 지불하고, 두 회사간 차량 임대, 수리 등 계약 업무까지 추가로 벌여야 하며, 수서발 KTX에 투자한 시장자본에 시장수익까지 지불해야 하는 일을 벌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의 낙하산 자리가 더 필요한 것인가? 혹시 한미FTA 협정에 따른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인가?

공기업이라도 경쟁을 벌여야 한다면 이미 KTX는 저가항공, 고속버스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도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잘 운영되고 있는데 동일 기술, 동일 차량의 회사를 복수로 설립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부가 초래하는 공기업 비효율이다.

정부의 주장대로 수서발 KTX 주식회사가 여전히 공공기관이라면 이는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과도 모순된다. 정부는 지난 12월 11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서 공공기관의 유사ㆍ중복기능 등을 축소·조정하겠다고 발표해놓고 지금 동일한 역할을 하는 조직을 하나 더 만들겠다고 강행하고 있다.

올해 봄까지 한국철도공사는 수서발 KTX를 분리 운영할 경우 경쟁효과는 없으면서 비효율만 발생한다며 정부정책을 비판해 왔다. 취임 2개월을 맞는 최연혜 사장도 이전에는 고속철도 경쟁체제 도입은 철도 특성을 잘못 이해한 정책이라며 KTX 경쟁 도입과 민영화를 강력히 비판해 왔다. 한국철도공사는 철도운영의 책임기관으로 국민들에게 정직하게 사실을 고해야 한다. 최연혜 사장은 새누리당 정치인 이전에 철도 학자였다는 점을 상기하고 진실을 말해야 한다.

대안: 한국철도공사가 수서발 KTX를 통합운영하고 참여형 이사회 도입하라

정부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진정 그러한가? 그렇다면 철도민영화를 금지하는 조항을 입법화하자는 야당, 시민사회, 철도노조의 제안을 수용하기 바란다. 상호 신뢰가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왜 신뢰를 줄 수 있는 조치를 거부하는가? 입법 항목은 간단하다. 한국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철도 노선에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시장자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철도사업법에 면허를 받을 수 있는 신규운영자를 적자폐지노선과 민간투자사업 노선으로 제한하면 된다.

이제 진정 한국철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개혁을 진행하자. 공기업 중복 설립, 시장자본의 수익 등의 비용을 치루지 않고도 개혁은 가능하다. 우선 수서발 KTX는 현재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따라, 철도산업의 통합적 특성을 살려 한국철도공사가 통합운영해야 한다. KTX의 경쟁은 이미 저가항공, 고속버스를 상대로 발생하고 있고 한국철도공사의 KTX 사업은 매년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만큼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만약 수서발 KTX 노선이 개통됨에 따라 KTX 노선끼리 비교 효과를 얻고 상호 자극을 주고자 한다면 한국철도공사에 노선별 사업부서를 꾸리면 된다.

한국철도공사를 비롯해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고질적인 문제는 지배구조에 있다. 따라서 이번 논란을 계기로 우리가 추진해야할 진정한 철도개혁은 민영화가 아니라 의사결정권을 지닌 지배구조 혁신에 있다. 한국철도공사 지배구조를 철도이용자, 전문가, 철도생산자들이 함께 논의하는 '참여형 이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의 낙하산체제에서 벗어나 이용자, 전문가, 생산자가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상호 경제하고 소통하는 혁신 공기업체제를 마련해 가자.

* 필자는 <영국 철도산업 민영화와 철도 노사관계 변화> 저자로 철도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내만복 칼럼은 필자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만복라디오>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번 칼럼을 들으세요. (☞바로 가기 http://mywelfare.or.kr/464)<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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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북이 울렸다... 난 세 번 울컥했다... 그날을 기록한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2/24 05:19
  • 수정일
    2013/12/24 05:1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013년 12월 22일 난 민주노총에 있었다

[체험기] 동네북이 울렸다... 난 세 번 울컥했다... 그날을 기록한다

13.12.23 20:34l최종 업데이트 13.12.23 20:34l
박성식(bullet1917)

 

 

보수집단의 황당한 종북타령이나 불법타령 따위는 나를 춤추게 한다. 그러나 진보를 지향하는 이들의 냉소와 비난에는 몸도 마음도 차갑게 굳는다. 물론 현대차의 비정규직 문제와 같이 대법 승소판결까지 받은 사안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은 민주노총이 먼저 겸허히 돌아볼 일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관료집단이나 낡은 꼰대로 지목할 때면 안타깝다. 솔직히 야속하다. 아무튼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민주노총은 동네북, 딱 그 꼴이었다.

그 동네북이 2013년 12월 22일 힘차게 울렸다. 동네방네 퍼진 북소리를 듣고 지인들은 통쾌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잠들었던 투쟁의 영혼이 깨었다는 소리까지 한다.

그날 그 울림에 나는 세 번이나 울컥했다. 민주노총에서 7년을 일하는 동안 있었던 수많은 울림 가운데 특별했던 그날을 기록한다.

[첫 울컥] 와장창!... 유리현관이 내려앉자 비명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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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진 유리문 앞에서 경찰 막아선 노조원 22일 경찰이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 1층 현관 유리문을 부수고 진입을 시도하자,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 한 명이 깨진 유리문 앞에 서서 경찰의 진입을 막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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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 없이 2013년 12월 22일은 민주노총에게 특별한 날이었고, 역사도 기억할 것이라 확신한다. 철도민영화를 막기 위해 22일 현재 13일째 파업을 이끌어가는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고, 이 기회에 민주노총까지 무력화시키려 한 경찰은 5000여 명에 가까운 병력을 투입해 민주노총 사무실에 난입했다.

민주노총 18년 역사 이래 처음이다. 다른 정권은 생각지도 못한 일을 박근혜 정권은 감행한 것이다. 철도파업 이후 2주 가량 쏟아지는 일과 매일 밤 늦게까지 거듭되는 회의에 지친 나머지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지 않길, 난 바랐다. 전날까지만 해도 나는 설마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이 주요 일간신문사의 건물임을 아랑곳 않고 현관 유리문을 부숴버리고 진입하는 순간, 긴 하루가 될 것을 예감했다. '와장창!' 유리현관이 내려앉자 비명이 시작됐다. 서로의 몸을 엮어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뜯어내는 경찰병력은, 마치 먹잇감의 살점을 서로 뜯어먹으려 달려드는 야수와 같았다.

공권력에 사지를 들려보면 안다. 나도 모를 분노와 절규가 터져 나오는 것을. 참담했다. 냉정히 상황을 파악해야 했지만, 18년 민주노총의 역사가 뜯겨나간다는 생각에 울컥하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래도 민주노총이다. 노동자들은 굴비 엮듯 끌려 나오는 치욕은 용납하지 않았다.

현관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건 당연한 풍경이다. 경찰의 공무집행이 정당하지도 않았지만, 설령 정당하다고 친들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을 하면서 껌까지 씹어대는 경찰을 보고 있자니, 일말의 불편함도 못 느끼는 그들의 길들여진 직업의식이 서글프기까지 했다.

몇 사람을 끌어냈을까? 현장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또 하나의 유리현관이 박살나고 비명은 더 많이 더 크게 들렸다. 이제는 경찰과 기자들 사이에도 고성이 오가고, 더 생생한 생중계를 내보내기 위해 몸조차 가누기 어려운 곳에서 카메라를 든 채 버티고 있는 카메라 기자들과 그 와중에 1보를 내보겠다고 노트북을 펴 든 펜 기자들까지. 그들은 그곳에서 또 하나의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두번째 울컥] 어머니의 전화
 
기사 관련 사진
▲ 18년만에 민주노총 투입된 공권력 22일 민주노총에 진입한 경찰병력이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수색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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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경향신문사의 1층 로비는 경찰에 의해 완전히 장악됐고, 잠시 소강상태가 흘렸다. 그제야 핸드폰 진동이 또렷이 느껴졌다. 집에 홀로 계신 팔순 넘은 나의 어머니가 자식이 일하는 민주노총이 짓밟힌다는 소식에 전화하셨다.

"성식이냐? 성식이냐?"
"네, 저예요."
"아이구. 아들 전화 받네. 몸 상한 데는 없냐?"
"아무 일 없어, 괜찮아."
"난리다 난리, 근로자들 끌려나오는데... 방송 보믄서 눈물 나드만... 니 목소리 들으니..."
"엄니, 울지 마아. 우린 괜찮다니깐..."

전화를 끊고도 어머니 생각에 한동안 먹먹해지고 말았다. 늙을수록 어머니란 사람들은 늘 자식들을 울리기 마련이지만, 서러운 날일수록 어머니란 이름은 자식들을 울컥하게 만든다. "엄마" 하며 서럽게 울던 어린 시절이 남긴 깊은 감정일까?

아무튼 어머니란 그런 존재다. 부르기만 해도 목구멍에 걸리는 말이 어머니다. 단지 철도민영화를 반대했다고 무려 8000여 명에 가까운 조합원을 직위해제한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감히 입에 올릴 말이 아니며, 박근혜 대통령이 들먹일 말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하루 전인 12월 18일 투표 전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국민 한분 한분의 삶을 돌보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기왕지사 큰일까지 벌인 마당에 솔직히 고백하길 바란다. "재벌을 위해 공공성을 헌신짝처럼 버릴 생각으로, 민주노총 한분 한분을 손보는 민영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이다.

[세번째 울컥] 12시간을 버티던 14층 민노총 깃발
 
기사 관련 사진
▲ 민주노총에 휘날리는 깃발 경찰이 22일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경향신문사 건물에 병력을 투입했으나, 한 명도 체포하지 못한 채 철수했다. 경찰들이 철수하자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노동자들이 깃발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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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역사에 기록될 민주노총 경찰 난입 사건 이후, 나는 이제 독재라는 명명을 더 이상 주저하지 않을 생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독재자의 딸이 아니다. 그녀가 바로 독재자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수배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만으로 병력 5000여 명을 몰고 와 전쟁을 치르듯 민주노총에 난입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의 건물이었기에 더욱 거리낌이 없었고, 법원도 수색영장 청구를 기각했지만 박근혜 정부에겐 그따윈 필요치 않았다.

그 폭력에 맞서 12시간을 버티며 14층 창밖 저 높은 곳에서 휘날리던 민주노총 깃발은 감동이고 눈물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진정 노동자 민중의 자부심이었다. 12시간의 격렬한 저항, 그 사건은 기막힌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경찰이 천장까지 뜯어가며 수색했지만 철도노조 지도부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은 채, 당연히 '있다'는 전제 하에 벌어진 대규모 작전은 '없다'는 반전으로 끝났다. 경찰은 국민적 조롱감이 됐다. 책임을 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오늘(23일)은 민주노총 옷을 입고 당당하게 거리를 걷고 싶다. 뭐, 민주노총 조끼 때문에 눈치를 보진 않았지만, 이따금 사람들의 편견이 신경 쓰이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단단해 질 것이고 더 당당해 질 것이다. 단 하루의 사건에 너무 몰입돼 흥분한 게 아니냐는 핀잔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그런 하루쯤은 허락해도 좋지 않을까? 그리곤 다시 겸손하게 시작하자.

힘내라! 민주노총.

덧붙이는 글 | 박성식 기자는 민주노총사회공공성본부 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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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강 수준으로 증강되는 인민군 잠수함대

사상 최강 수준으로 증강되는 인민군 잠수함대
 
한호석의 개벽예감 <9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12/24 [02:35] 최종편집: ⓒ 자주민보
 
 

[편집자 주: 북의 잠수함 능력에 대한 우려는 우리 국방부에서도 공개적으로 종종 표명하고 있다. 하여 대응 잠수함과 대잠함 개발에 막대한 재정을 투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확대를 해야 한다는 것이 국방부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최근 들어 실제 연례적, 주기적인 한미합동훈련 중 대잠훈련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미군을 압도하기 위한 잠수함 전력 구축을 위해 국가 재정의 30% 이상 투자하고 전민을 동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북을 남측에서 무기 경쟁만으로 대응하려고 하다보면 국가 재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으며 갈수록 복지 위축과 내수 위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남측의 평범한 돌핀급 잠수함이 시범 대결전에서 미국 항공모함을 연파시켰을 정도로 잠수함은 무서운 무기이며 가장 값비싼 무기 중에 하나이다.

그렇다고 북이 두려워 미군에만 마냥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은 북과의 대결이 두렵다는 판단이 들면 베트남과 대만을 서슴없이 버렸던 것처럼 언제 남한을 버리고 떠날지 모르는 실용주의(자국 이기주의)나라이다.

결국 군사적 준비도 해야겠지만 남북관계를 개선하여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이루어 완전한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것만이 답이 될 것이다.

통일을 이루면 북과 남의 군사력 모두가 우리민족 전체를 지키는 군사력이 되지 않겠는가. 민족적으로 봐도 경제적으로 봐도 통일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이 더욱 절실하다.

그런 통일은 오직 6.15와 10.4선언 이행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본다. 한호석 소장의 글이 정부와 국민들에게 이런 방향의 대북정책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되어 여기 소개한다.]
 
▲ <사진 1>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3년 12월 13일 인민군 설계연구소를 현지지도하면서, 그 연구소에 특별한 과업을 주었다. 2014년부터 지하요새를 증설하기 위한 특수설계과업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군과 한국군이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중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이동식 콘크리트 방호벽과 강철차폐문이 겹겹이 설치된 지하해군기지

장성택 사형집행에 관련하여 북을 비난하는 유언비어들이 남측 언론에 난무하던 2013년 12월 14일 북측 언론에 또 다시 놀라운 소식이 보도되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2월 13일 인민군 설계연구소를 현지지도한 소식이었다. <사진 1>은 그 놀라운 소식에 관련하여 북의 언론이 보도한 사진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인민군 설계연구소를 현지지도한 소식을 놀라운 소식이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래의 정보에서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인민군 설계연구소를 현지지도하였던 2013년 12월 13일, 평양체육관에서는 북측 전역에서 모여온 ‘건설부문일군대강습’ 참가자들이 8개 부문으로 나뉘어 실무강습을 진행하고 있었다. ‘건설부문일군대강습’은 12월 8일부터 12월 14일까지 계속되었는데, 군인과 민간인을 막론하고 건설부문의 모든 간부들과 기술자들이 그 대강습에 참가하였다. 그런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건설부문일군대강습’ 마지막 날 인민군 설계연구소를 현지지도한 것이다. 무슨 뜻인가?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4년에 건축설계부문에서 제기될 가장 중대한 임무를 인민군 설계연구소에 몸소 맡겼다는 뜻이다.

인민군 설계연구소는 인민군 공병부대가 건설하는 각종 군사시설을 설계하는 전문기관이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군사시설 설계를 민간설계회사에게 용역으로 위탁하지만, 북에서는 군사시설 설계를 전담하는 인민군 설계연구소가 따로 있다. 이것은 군사시설 설계를 전담하는 특수설계기관이 필요할 만큼 북의 군사시설이 엄청나게 많다는 뜻이고, 또한 군사시설 건설을 그만큼 중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인민군 군사시설은 인민군 야전부대들이 자기 영내에서 자체로 건설하는 중소형 일반군사시설이 아니라, 인민군 공병부대들이 건설하는 대형 주요군사시설을 뜻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인민군 설계연구소를 현지지도하면서 “당의 전국요새화 방침과 사회주의문명국 건설구상을 관철하는 데서 조선인민군 설계연구소가 맡고 있는 임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지적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인민군 설계연구소의 일차적 임무는 조선로동당의 ‘전국요새화 방침’을 건축설계부문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북에서 요새라고 불리는 전략군사시설은 지하요새화된 주요군사기지를 뜻한다. 그런데 북의 실정을 잘 알지 못하는 남에서 ‘땅굴’이라는 신조어가 유행되는 바람에 남측 국민들은 지하요새라는 말을 듣는 순간 습기가 차서 눅눅하고 조명도가 낮은 전등 몇 개가 켜진 어두컴컴한 지하대피소를 상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런 상상과 전혀 다르다. 예컨대, 인민군 공군부대에서 근무하다가 1996년 5월 월남한 탈북자의 경험담에 따르면, 북에 건설된 지하공군기지 내부는 물을 수시로 바닥에 뿌려주어야 할 만큼 건조하다고 한다. 또한 북의 전방부대에서 군사복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탈북자가 2010년 11월 28일 <중앙SUNDAY> 취재기자에게 들려준 목격담에 따르면, 전방지대의 인민군 중대가 사용하는 수많은 지하군사시설들에는 중대병력 100명이 1주일 동안 전면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탄약, 무기, 식량, 연료 등이 완비되었다고 한다.

물론 북측 각지에는 인민들이 전시에 대피할 지하대피시설들이 수없이 많지만, 인민군 설계연구소는 단순한 설계와 시공으로 건설하는 지하대피시설 같은 지하시설을 설계하는 곳이 아니다. <사진 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민군 설계연구소에서 설계하는 지하요새는 3차원 컴퓨터기술로 설계하고, 공병부대들이 현대식 건설장비와 자재와 설비를 투입하여 시공하는 첨단군사시설이다. 그러므로 북에 건설된 수많은 지하요새를 삽과 곡괭이로 파낸 땅굴이라고 상상해오던 오랜 착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로동신문> 2013년 8월 11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베트남전쟁 초기에 지하야전지휘소를 건설해 달라는 호치민 베트남 국가주석의 “긴급요청”을 받고 1965년 8월 인민군 공병부대를 북베트남에 급파하였는데, “착암기, 공기압축기, 세멘트와 까벨선(케이블선이라는 뜻-옮긴이), 자동차”는 물론이고 식량과 부식물까지 가지고 베트남전선에 도착한 인민군 공병부대는 미국군의 집요한 공중폭격 속에서 진척시켜야 하는 어려운 공사를 밀고 나가 3년 만에 지하야전지휘소를 완공하였다. 그들의 희생적인 노고와 탁월한 시공능력에 감동한 호치민 국가주석은 김완수 인민군 공병부대 지휘관에게 베트남 최고훈장인 전공훈장 제1급을 직접 달아주면서 치하하였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주목하는 것은, 베트남전쟁 시기에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병사들이 비정규전을 수행하기 위한 구찌갱도(Cu Chi Tunnel)를 삽과 곡괭이로 굴설하고 있을 때, 북베트남에 파견된 인민군 공병부대는 착암기와 공기압축기 같은 굴착장비로 지하야전지휘소를 건설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북은 이미 1965년에 다른 나라의 지하야전지휘소를 건설해주는 기술과 역량을 가졌으므로, 그 이후에 북측 각지에 얼마나 많은 지하요새를 건설하였는지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북이 지하요새를 곳곳에 그처럼 많이 건설한 까닭은 지하요새야말로 적의 공중정찰을 무력화하는 엄폐효과,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방호효과, 적에게 불시타격을 가하는 작전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으로 하여 가장 견고하고 위력적인 군사기지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만이 아니라, 몇몇 다른 나라들도 지하군사시설을 건설해놓았지만, 다른 나라 지하군사시설은 대체로 일부에 국한되었을 뿐이다. 모든 군종 및 병종의 전략군사시설을 100% 지하요새화한 요새강국은 전 세계에서 오직 북밖에 없다. 중국도 자국의 전략군사시설을 지하요새화한 요새강국이지만, 북처럼 100%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 <사진 2> 스웨덴군이 화강암층 해안암벽을 뚫고 건설한 무스코 지하해군기지의 위용이 대단해 보인다.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은 이 지하요새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하면서, 핵공격에도 끄덕 없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그런데 무스코 지하해군기지 출입구에는 강철차폐문도 없고 출입구 앞쪽에는 콘크리트 방호벽도 없다. 화강암층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지형을 가진 북은 위와 같은 지하해군기지를 동서해안 곳곳에 건설하였을 뿐아니라, 3중 강철차폐문을 출입구에 설치하고 두께 3m의 이동식 콘크리트 방호벽까지 출입구 바깥쪽에 설치하여 핵공격을 막아내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었으니, 그 분야에서 스웨덴은 북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북에 건설된 수많은 지하요새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상물을 손꼽는다면, 물론 지하야전지휘소가 첫 손가락에 꼽히고, 지하격납고와 지하활주로를 가진 지하공군기지, 지하저탄시설과 지하발사시설을 가진 지하미사일기지, 그리고 지하수리소와 지하정박소를 가진 지하해군기지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이번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현지지도한 인민군 설계연구소에서 그러한 지하야전지휘소, 지하공군기지, 지하미사일기지, 지하해군기지 등 첨단지하군사시설을 설계한다.

2013년 12월 13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인민군 설계연구소의 여러 설계실들을 돌아보면서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설계의 과학화 수준을 결정적으로 높이자면 설계방법을 과학화하고 설계수단을 현대화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였고, 설계연구소에 필요한 최첨단설계수단들을 자신이 직접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였으며, 설계연구소 앞에 나서는 구체적인 과업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 지시와 각별한 배려에 의해 인민군 설계연구소의 기술과 역량이 앞으로 불과 한 달 안에 최첨단 수준으로 대폭 강화된다는 뜻이며, 첨단시설을 갖춘 지하야전지휘소, 지하공군기지, 지하미사일기지, 지하해군기지 등 지하요새들이 2014년부터 곳곳에 증설될 것이라는 뜻이며, 그와 더불어 기존 지하요새들도 현대화된다는 뜻이다.

요즈음 북의 건설부문에 널리 도입되는 첨단기술은 전자통신기술, 자동화기술, 친환경기술 등이므로, 지하요새에 전자통신설비를 들여놓고, 지하요새운용체계를 자동화하고, 전력소비를 줄인 친환경적인 내부설비가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네 종류의 지하요새들 가운데 가장 건설하기 어려운 것이 지하해군기지다. <사진 3>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하해군기지는 기지 내부에 바닷물이 들어오도록 설계해야 하고, 수상함이나 잠수함이 곧장 바다로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지하군사시설에 비해 설계와 시공이 그만큼 더 어려운 것이다.
 
▲ <사진 3> 스웨덴군이 자랑하는 무스코 지하해군기지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전술잠수함 3척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전술잠수함 전용 지하기지라서 그런지 내부공간 높이가 좀 낮아 보이고 너비도 좀 좁아 보인다.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인민군 지하해군기지 내부공간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내부공간의 높이와 너비가 각각 30m나 된다고 하니 키가 큰 군함들이 두 줄로 줄지어 들어갈 수 있다. 무스코 지하해군기지 내부길이는 350m밖에 되지 않지만, 남포에 있는 인민군 지하해군기지 내부길이는 600m나 된다니 그 규모가 얼마나 장대한지 상상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북은 스웨덴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지하요새강국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2008년 11월 수라 쉐 만(Thura Shwe Mann) 미야마군 합참의장은 미얀마 군사대표단을 이끌고 북을 방문하여 각종 군사시설을 돌아보던 중 남포에 있는 인민군 서해함대사령부 예하 지하해군기지 한 곳을 참관하였는데, 그의 이름으로 작성된 보고서에 따르면, 미얀마 군사대표단이 참관한 인민군 지하해군기지는 높이 30m, 너비 30m, 길이 600m이고, 기지출입구에서 얼마 떨어진 바다 위에 적의 미사일공격을 막기 위한 높이 30m, 두께 3m, 길이 30m의 이동식 콘크리트 방호벽이 설치되었고, 기지출입구에는 전기장치로 여닫는 강철차폐문이 3중으로 설치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전략연구소(RISS) 국방정책실 부실장 블라디미르 노비코프(Vladimir T. Novikov)는 2013년 2월 13일 <연합뉴스> 취재기자와 대담하면서 북의 지하군사시설은 재래식 무기로 파괴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월 스트릿 저널(WSJ)> 2012년 1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가 3억3,000만 달러를 투입하여 개발한, ‘벙커버스터(Bunker-buster)’라고 부르는 무게 13.6t의 지하관통폭탄을 B-2 스텔스 폭격기에서 투하하는 폭격실험을 실시하였는데, 견고하게 건설된 지하군사시설은 그 폭탄으로 파괴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두께 3m의 이동식 콘크리트 방호벽과 3중 강철차폐문이 설치된 인민군 지하해군기지는 세상에 현존하는 그 어떤 무기도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완벽한 방호력을 지녔다. 그런 지하해군기지는 북에서만 건설할 수 있는 난공불락의 지하요새들 가운데 하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인민군 설계연구소 현지지도는 그처럼 완벽한 방호력을 지닌 현대식 지하해군기지를 2014년에 증설하게 된다는 뜻이며, 그렇게 건설된 지하해군기지에 들어갈 신형 전투함들과 신형 잠수함들이 지금 대량 건조되고 있다는 뜻이다.


북의 ‘은아축전지’ 대량생산과 잠수함 건조능력

중국 해관(남측에서는 세관) 자료를 인용한 <연합뉴스> 2013년 3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2013년 1월 한 달 동안 7억 2,600만 원(미화 65만3,000 달러)을 주고 중국으로부터 661.7kg의 은을 수입하였다. 한 달에 1만 달러 이상을 들여 보석류와 귀금속류를 수입한 적이 없는 북이 2013년 1월에는 매우 이례적으로 65만 달러나 주고 많은 양의 은을 수입한 것이다.

‘지하자원의 보고’라고 부를 만큼 각종 지하자원이 풍부한 북에는 은도 많이 묻혀있는데, 5,000t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북의 은매장량을 국제시세로 환산하면 1조9,124억 원(18억 달러)이고, 북측 각지의 은광산들에서는 내부수요를 충족하기에 넉넉한 은광석을 채굴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북이 2013년 1월에 갑자기 많은 양의 은을 수입한 것은, 은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어떤 제품을 올해 초부터 대폭 증산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은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제품들 가운데 첫 손에 꼽히는 것은 축전지다.

북이 올해 들어 축전지를 대폭 증산하기 시작한 사연은 무엇일까? 축전지는 산업부문에서 많이 쓰이기도 하지만, 축전지를 가장 많이 요구하는 곳은 역시 군사부문이다. 전투기, 헬기, 전차, 장갑차, 대전차미사일, 무선통신기, 야시경장비, 기뢰탐지기, 잠수함, 어뢰 등 주요군사장비들은 축전지를 반드시 내장해야 한다. 그 가운데서도 축전지를 가장 많이 내장하는 군사장비가 바로 잠수함이다. 핵동력 잠수함이나 디젤-전동식 잠수함에는 모두 축전지가 들어가는데, 특히 디젤-전동식 잠수함은 축전지에서 나오는 전기로 추진력을 얻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축전지가 들어간다. 예컨대, 2000년에 퇴역한 영국 해군의 오버론급(Oberon-class) 잠수함은 길이가 90m이고, 수중배수량이 2,370t이며, 승조원 70명이 승선하는 중형 디젤-전동식 잠수함이었는데, 그 잠수함 밑창에는 2볼트(V) 축전지 448개가 꽉 들어차 있었다. 중형 잠수함 한 척을 건조하려면 얼마나 많은 은이 필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은과 아연의 합성물이 들어가는 잠수함 축전지를 북에서 ‘은아축전지’라 부른다. ‘은아축전지’에 들어가는 아연은 북에서 내부수요를 충족하고도 남아 다른 나라에 수출도 한다. 이를테면, ‘금골’이라고 부르는 함경남도 단천에 있는, 동아시아 최대 아연광산인 검덕아연광산에는 아연 2억7,000만t이 묻혀있고, 검덕광업련합기업소의 연간 아연생산능력은 2005년을 기준으로 12만4,000t이었는데, 2006년에 생산시설의 종합적인 자동화를 실현하였으므로 지금은 연간 아연생산량이 20만t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북이 ‘은아축전지’를 대폭 증산하기 위해 아연을 수입할 필요는 없고, 은만 수입하면 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요즈음 북은 신형 잠수함을 대량으로 건조하고 있는 것일까?

2006년 3월 9일 버월 벨(Burwell B. Bell)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이 “세계 최대의 잠수함대(the world's largest submarine fleet)”를 운용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고, 같은 해 6월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표한 ‘2006년 세계 군사력 비교’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을 기준으로 인민군 잠수함은 88척이다. 그러면 2006년에 88척이었던 인민군 잠수함은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오늘 얼마나 더 증강되었을까?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2010년 이후 북에서는 ‘주체철’ 기술개발로 철강생산이 증가하였고, 기계공업부문에 CNC 공작기계가 널리 보급되어 기계가공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철강생산의 증가와 CNC 공작기계의 보급 확대는 잠수함 건조부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면서 잠수함 건조능력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데일리 NK> 2011년 2월 15일 보도와 2013년 4월 4일 보도에 따르면, 2010년 이전에는 전술잠수함을 연간 5척씩 건조해오던 북이 2010년부터 여러 조선소들에서 전술잠수함을 대량건조하기 시작하여, 2013년 현재 북의 전술잠수함 건조능력은 (조선소 당) 6개월에 한 척씩 건조하는 놀라운 수준에 이르렀으며, 전술잠수함을 연간 15척 이상 건조한다고 한다. 요즈음 북에서 이처럼 대량생산하는 전술잠수함은 길이 34m, 수중배수량 370t, 533mm 중어뢰발사관 4문을 장착한 소형 잠수함이다. 이처럼 사상 최고 수준으로 증강된 북의 잠수함 건조능력을 생각하면, 오래 운용한 잠수함을 폐기하고 신형 잠수함으로 대체하는 지난 7년 동안의 과정에서 인민군 잠수함은 현재 100척 이상으로 늘었을 것이다.

인민군 잠수함대에 신형 잠수함들이 그처럼 해마다 증강배치되고 있으므로, 신형 잠수함을 운용할 승조원들의 기동훈련이 급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아래의 정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2011년 9월 19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은 2008년 1∼8월 기간에 인민군 잠수함 훈련은 2회밖에 되지 않았고, 2009년 같은 기간에도 5회에 지나지 않았는데, 2010년 같은 기간에는 28회로 늘었고, 2011년 같은 기간에는 무려 50회로 급증하였다고 밝혔다. 남측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1년 4월 6일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 잠수함대는 각급 잠수함 5∼6척 씩 참가하는 기동훈련을 동해와 서해에서 계속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동아일보> 2012년 4월 5일 보도와 <중앙일보> 2012년 5월 1일 보도에 따르면, 동해안의 잠수함기지 두 곳에서 인민군 잠수함 3∼4척이 출항한 뒤 미국군 정찰위성 감시망에서 사라졌으며, 인민군 동해함대사령부 휘하 각급 잠수함 8∼9척이 기지에서 출항한 뒤 미국군 정찰위성의 감시망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국제사회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지만, 인민군의 최대 강점은 강력한 잠수함대를 보유한 것이다. 어느 나라나 자국의 군사적 강점을 우선적으로 강화, 발전시키기 마련이므로, 북도 당연히 자기의 군사적 강점인 인민군 잠수함대를 우선적으로 강화, 발전시키고 있다.


북의 경핵병진노선과 핵동력 잠수함

인민군 잠수함대가 40여 년 전 소련에서 수입한 낡은 잠수함밖에 보유하지 못했다는 식의 과소평가가 국제사회에 ‘정설’처럼 퍼져 있지만, 그것은 무지와 오판이 빚어낸 심한 착각이다. 미국 국방정보국(DIA) 1997년판 미국군 내부자료를 읽어보면, 국제사회에 퍼진 그런 착각은 금방 사라지게 된다. 그 자료에 따르면, 인민군이 운용하는 로미오급(Romeo-class) 잠수함은 “좋은 장비를 갖추었고(well-equipped), 성능이 향상된 수중음파탐지기(an improved sonar)를 가지고 있으며, 어뢰 14기와 기뢰 28기를 탑재하고 있다”고 하였다. 원래 로미오급 잠수함은 1957년부터 1961년 사이에 소련에서 건조된 것인데, 미국군 내부자료가 지적한 것처럼 1990년대 중반 북에서 운용하던 로미오급 잠수함은 최신 장비로 개량된 것이었다. 그런데 인민군의 로미오급 잠수함에 대한 미국 국방정보국의 그런 평가도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나온 것이므로, 오늘 인민군이 운용하는 각급 잠수함들의 성능은 17년 전에 비해 몰라보게 대폭 향상되었을 것이다.

이제껏 국제사회에는 북이 소형다함(小型多艦) 형태로 잠수함대를 건설하였다고 알려졌지만, 그것은 북이 자체 기술로 건조한 전략잠수함을 매우 중시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착오다. 북은 전략잠수함의 수중정규전과 전술잠수함의 수중유격전을 배합한 세계 유일의 독특한 잠수함전법을 개발하여 잠수함대 전투력을 극대화시킨 잠수함강국이다. 예컨대, 2012년 10월 8일 합참본부 국정감사를 위해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정승조 당시 합참의장은 북이 2012년도 하계훈련에서 “정규전 잠수함과 침투형 잠수정을 동원해 활발하게 훈련했다”고 답변하였는데, 그가 말한 북의 잠수함훈련을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면 전략잠수함의 수중정규전과 전술잠수함의 수중유격전을 배합한 잠수함훈련이었던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국제사회에서 핵강국으로 공인된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5개국은 핵동력 잠수함을 자체로 건조하고 운용하는 잠수함강국들이다. 핵무력기술과 핵동력 잠수함 건조기술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핵강국들은 핵무력기술과 핵동력 잠수함 건조기술을 동시병행적으로 발전시키는 법이고, 따라서 핵강국은 곧 잠수함강국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도 다른 핵강국들과 마찬가지로 핵무력기술과 핵동력 잠수함 건조기술을 동시병행적으로 발전시켰다.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JDW)> 2005년 4월 8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1993년에 러시아로부터 양키급(Yankee-class) 핵동력 잠수함 12척을 수입하였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양키급 잠수함을 개량한 양키 놋취(Yankee Notch) 공격형 잠수함 2척을 수입하였고, 그것을 역설계하는 공정을 거쳐 핵동력 잠수함 건조기술을 자체로 개발하였고, 마침내 조선형 핵동력 잠수함을 독자적으로 건조하였다. 나는 2012년 9월 17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북의 잠수함 건조능력을 분석한 글 ‘제4핵강국의 조용한 등장 알려주는 사진’에서 북이 조선형 핵동력 잠수함을 건조하였음을 자세히 논증한 바 있다. 조선형 핵동력 잠수함은 길이 140m, 수중배수량 10,000t, 잠항거리 이론상 무제한, 533mm 중어뢰발사관 8문, 비핵탄두 및 핵탄두를 장착한 순항미사일 32기를 탑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형 핵동력 잠수함을 운용하는 인민군 전략잠수함대의 존재에 대해 북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고,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은 미국 군부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디젤-전동식 잠수함을 운용하는 인민군 전술잠수함대 가운데 일부만 미국 정찰위성에 노출되어 국제사회에 알려졌을 뿐이며, 인민군 전략잠수함은 전혀 노출되지 않아 국제사회가 그 존재 여부조차 알지 못한다.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무장한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의 막강한 타격력은, 2012년 4월 15일 화성-13호가 등장한 인민군 군사행진을 계기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인민군 전략잠수함대도 전략로케트군 못지않은 막강한 타격력을 보유하였다.

2013년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인민경제와 핵무력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경핵병진노선에 나오는 핵무력이라는 개념에는 당연히 조선형 핵동력 잠수함도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조선형 핵동력 잠수함은 올해부터 경핵병진노선에 의해 그 작전능력이 더욱 강화, 발전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사진 4> 이란이슬람공화국이 최근에 건조한 파테급 스텔스 전술잠수함이다. 함체표면에 음파흡수타일을 붙여놓은 것이 돋보인다. 이 스텔스 전술잠수함은 페르시아만에 주둔하며 이란을 괴롭혀오는 미국 해군 함대에게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부상하였다. ©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대잠경계망 뚫고 은밀히 접근할 인민군 스텔스 잠수함

<사진 4>는 이란이슬람공화국이 최근에 건조한 파테급(Fateh-class) 잠수함을 촬영한 것이다. 파테급 잠수함은 수중배수량이 600t인 전술잠수함이다.

그런데 위의 사진을 눈여겨보면 함체표면에 검은 고무판을 붙여놓은 것이 보인다. 투박하게 생긴 그 검은 고무판이 바로 음파흡수타일(anechoic tile)이다. 음파흡수타일을 함체표면에 붙여놓으면, 적함의 능동적 수중음파탐지기(active sonar)가 발사한 음파를 흡수하여 반사음파를 줄일 뿐 아니라, 잠수함 엔진이 돌아가면서 내는 소음까지 줄임으로써 스텔스 효과를 나타낸다. 예컨대, 러시아가 개발한 음파흡수타일은 두께가 10cm인데, 잠수함 엔진이 돌아갈 때 내는 소음을 10분의 1로 줄인다고 한다. 위의 사진에 나온 파테급 잠수함은 이란이슬람공화국이 음파흡수타일을 붙인 스텔스 잠수함을 최근에 건조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북은 이미 2000년대 중반에 음파흡수타일을 개발하여 스텔스 잠수함을 건조하기 시작하였다. <뉴 데일리> 2010년 4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2010년으로부터 몇 해 전에 음파흡수타일을 만들어 기존 잠수함을 스텔스 잠수함으로 개조하였다.

음파흡수타일을 붙인 스텔스 잠수함은 적의 음파탐지망을 뚫고 은밀히 적진에 들어가 기습타격을 할 수 있다. 예컨대, 2006년 10월 26일 일본 오키나와 인근 해상에서 호위함 10척을 거느리고 항해하던 미국 7함대 항공모함 키티호크호(USS Kitty Hawk)의 전방 9km에서 갑자기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쑹급(song-class) 잠수함 한 척이 불쑥 떠올랐다. 중국 잠수함이 9km까지 접근하였는데도, 미국 7함대 항모전투단은 전혀 탐지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전시상황이었다면, 미국 항공모함은 중국 잠수함의 기습공격을 받고 격침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잠수함 전문가들은 큰 소음을 내는 핵동력 잠수함보다 적은 소음을 내는 디젤-전동식 잠수함을 더 위력적인 해저무기로 평가한다.

미국의 군사전문 웹사이트 <글로벌 시큐리티(Global Security)> 자료에 따르면, 각급 디젤-전동식 잠수함들 가운데 소음을 가장 적게 내는 잠수함은 러시아산 킬로급(Kilo-class) 잠수함이다. 그래서 킬로급 잠수함의 별명은 모든 것을 빨아들여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블랙 홀(Black Hole)’이다. 상대적으로 큰 소음을 내는 다른 종류의 잠수함들에도 음파흡수타일을 붙이면 적의 수중음파탐지기가 무용지물이 되는 판인데, 원래 소음을 가장 적게 내는 킬로급 잠수함에 음파흡수타일을 붙이면 거의 완벽하게 소음을 차단할 수 있다. 게다가 킬로급 잠수함은 사거리 300km의 러시아산 잠대함 또는 잠대지 순항미사일 3M54 클룹(Klub)을 발사하는 매우 위력적인 공격형 잠수함이다. 이처럼 소음을 거의 내지 않고 강한 타격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킬로급 잠수함은 핵동력 잠수함을 능가하는 우수한 잠수함으로 평가된다.

핵동력 잠수함을 보유한 러시아 해군이 2016년까지 킬로급 잠수함 6척을 더 보유하기로 한 것도 킬로급 잠수함이 그처럼 우월한 성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킬로급 잠수함의 우수성을 주목한 중국도 1990년대 말 러시아가 쓰던 킬로급 중고잠수함 4척을 수입하였고, 2005년부터 2007년 사이에는 러시아가 새로 건조한 킬로급 잠수함 8척을 더 수입했다. 중국보다 앞서 이란은 1992년부터 1996년 사이에 러시아산 킬로급 잠수함 3척을 수입했다.

그런데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력침공위험이 높아지는 가운데 자국의 킬로급 잠수함 성능을 현대화해야 하였다. 핵전문 웹사이트 <핵위협구상(NTI)>이 2013년 7월 10일에 게시한 자료에 따르면, 이란은 자국의 킬로급 잠수함에 장착된 미사일발사체계의 성능을 개량하고 부품을 교체해달라고 러시아에게 요청하였으나, 러시아는 그 요청을 거절하였다. 왜냐하면 이란은 자국의 반다르 압바스(Bandar Abbas) 해군기지에서 성능개량작업과 부품교체작업을 해야 한다고 하였고, 러시아는 이란의 킬로급 잠수함을 러시아 해군기지로 보내야 성능개량과 부품교체를 해주겠다고 맞섰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이란은 2003년에 킬로급 잠수함 성능개량을 위한 기술지원을 인도에게 요청했으나, 이란의 잠수함개량사업을 도와주지 말라는 미국의 강한 압력을 받은 인도 역시 이란의 요청을 들어주지 못하였다.

이처럼 러시아와 인도로부터 잠수함 성능개량을 위한 기술지원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이란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준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가 바로 조선이다. 일본 <산케이신붕> 2008년 1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이란이 북에게 잠수함 성능개량을 요청하였다고 했는데, 북은 이란의 기술지원요청에 선뜻 응해주었다. <이란이슬람공화국통신(IRBI News Agency)> 2012년 5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이란 해군(IRI) 기술진은 160만 인시(person-hour) 이상의 장기간 동안 킬로급 잠수함 부품 18,000개를 제작, 교체하여 킬로급 잠수함 성능을 결정적으로 향상시켰다고 발표하였다.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은 이란이 킬로급 잠수함 성능을 개량하는 기술과 그 잠수함의 부품을 제작하는 기술을 5년 만에 자체로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고 보았지만, 그것은 착오다. 이란이 자국의 킬로급 잠수함의 성능개량기술과 부품제작기술을 불과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북의 기술지원이 있었다. 이처럼 북이 이란에게 기술을 지원하여 킬로급 잠수함 성능을 현대식으로 개조하게 된 것을 보면, 북이 자력으로 개발한 원천기술로 조선형 킬로급 잠수함을 건조하여 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사진 5> 이란이슬람공화국이 최근에 건조한 카디르급 전술잠수함에 달린 초승달 모양의 특수굴곡형 추진기 날개가 일품이다. 별 거 아닌 것 같이 보이지만, 그렇게 생긴 추진기 날개를 깎으려면 고도의 CNC 기계공작기술이 필요하다. 이 잠수함 위쪽에는 원통형에 들어있는 소형 추진기가 하나 더 설치되었다. 이런 소형 추진기를 개발한 원천기술은 북이 갖고 있는데, 연안해류를 타고 소리 없이 잠항할 때 커다란 추진기를 끄고 소형 추진기만 돌려 소음을 거의 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 전술잠수함은 적의 대잠경계망을 뚫고 들어가 타격목표에 아주 은밀히 접근하게 된다. ©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잠수함에서 들리는 여러 가지 소음들 가운데 엔진구동음 다음으로 크게 들리는 것은 추진기 날개(screw)가 물속에서 돌아갈 때 들리는 소음이다. 잠수함 엔진구동음은 함체표면에 음파흡수타일을 붙여 소음을 아주 적게 줄일 수 있지만, 잠수함 추진기 날개에는 음파흡수타일을 붙일 수 없으므로, 추진기 날개를 추진소음이 적게 나는 모양으로 제작하는 수밖에 없다.

클로버풀잎 모양의 굴곡형으로 만든 기존 추진기 날개를 초승달 모양의 특수굴곡형으로 만든 새로운 추진기 날개로 교체하면 추진기 날개가 물을 부드럽게 밀어내게 되는데, 그런 방식으로 추진소음을 줄이는 것이 요즈음 잠수함건조국들의 기술개량추세다. <사진 5>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란이 최근에 건조한 카디르급(Qadir-class) 전술잠수함의 추진기 날개가 초승달 모양의 특수굴곡형으로 제작되었다. 카디르급 전술잠수함은 길이 29m, 수중배수량 120t이며, 533mm 중어뢰발사관 2문을 장착한 소형 잠수함이다. 초승달 모양의 특수굴곡형 추진기 날개를 깎는 기술은 별 것 아닌 것 같이 생각되지만, 고도의 CNC 기계공작기술이 없으면 그런 모양의 추진기 날개를 깎아내지 못한다.

북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초승달 모양의 특수굴곡형 추진기 날개를 장착한 잠수함을 건조해오고 있다. 1996년 9월 강릉 해안에 좌초한 북의 전술잠수함에 달린 추진기 날개가 그런 모양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이란이 이번에 공개한 신형 잠수함의 특수굴곡형 추진기 날개를 제작하는 기술도 북의 기술지원으로 개발한 것이다.

그런데 위의 사진을 보면, 원통형에 들어있는 작은 추진기가 함체 상부에 하나 더 설치된 것이 눈길을 끈다. 이 작은 추진기야말로 다른 잠수함강국들이 건조한 잠수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북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장치다. 작은 추진기는 소형 전술잠수함이 해류를 타고 조용히 잠항할 때 쓰이는 것인데, 해류를 타고 잠항하는 잠수함은 작은 추진기만 돌려 추진소음을 아주 적게 내게 되는 것이다. 대형 전략잠수함은 함체가 너무 무거워 해류를 타지 못하므로, 작은 추진기를 추가로 설치하고 싶어도 설치하지 못한다. 유달리 거센 해류가 흐르는 것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소문난 서해 얕은 바다에서 인민군 스텔스 잠수함들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연안해류를 타고 바닷물 속에서 소리 없이 남하하면, 한국군의 대잠경계망은 속수무책으로 뚫리게 된다. 한국군 대잠경계망이 뚫리면, 인민군 스텔스 잠수함들은 인천항, 평택항, 군산항, 목포항, 진해항, 마산항, 부산항까지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2013년 12월 19일 북측 국방위원회는 남측 국가안보실 앞으로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대북적대세력이 북의 최고 존엄을 모욕한 적대행위를 지적하면서 그에 보복하기 위해 예고 없이 타격하겠다고 경고하였다. 인민군 잠수함대가 사상 최강 수준으로 증강되는 오늘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 경고를 그저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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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민주화의 사회적 자산"..."불통·공포정치 중단하라"

<사회각계 기자회견> 28일, '100만 시민행동의 날'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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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23 14: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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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불법 폭력 침탈을 규탄하는 사회 각계의 기자회견'이 23일 오전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불통정치, 분신정치, 공포정치를 즉각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라!"

'민주노총에 대한 불법 폭력 침탈을 규탄하는 사회 각계의 기자회견'이 23일 오전 11시 30분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백도명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등 사회 각계 대표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2013년 12월 22일은 민주노조 역사상 처음으로 경찰력에 의해 노동자의 심장부인 민주노총이 침탈당해 무참히 짓밟힌 날"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정부발표를 신뢰하지 않을 경우 공권력에 의해 엄단된다는 공포정치의 극치"라고 일제히 비난했다.

사회 각계 대표들은 민주노총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압수 수색 영장도 없이 이뤄진 불법행위이며, 과잉진압이었다고 규탄하고 '안전행정부 장관과 국토부 장관의 처벌, 민주노총 불법 난입의 책임자인 경찰청장의 해임과 서울경찰청장의 구속, 철도노조에 대한 탄압 중단과 철도민영화 중단' 등을 요구했다.

또한 "(민주노총에 공권력이 투입된)22일은 박근혜 정부와 경찰에 의해 벼량끝으로 내몰린 민주주의를 국민의 힘과 지혜로 되살리는 대장정을 시작한 날"이라고 규정하고 민주노총이 계획하는 28일 총파업에 함께하는 '100만 시민행동의 날'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신승철 위원장은 "어제 민주노총에 가해진 상황을 보면 (박근혜 정부는) 민주노총의 존재를 부인했고 공격했다"고 전제하고 전날 이뤄진 비상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의를 최선을 다해 집행하겠다고 결의했다.

신 위원장은 "민주노총에 가해진 탄압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의 모든 조직적 힘을 모아내서 투쟁하고 대다수 국민들이 원하는대로 철도민영화 이후에 진행될 의료, 교육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겠다"고 발표했다.

권미옥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는 "이 기자회견에 앞서 건물 1층 앞에서는 시민사회와 여성단체, 법률가단체들의 기자회견이 30분 단위로 이어지고 있다"며 "(철도민영화 반대와 민주노총 침탈 규탄에 대해)민주노총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박 대통령은 대통합의 정치를 내걸고 당선됐으니 통합의 정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문제와 함께 노동조합 설립을 포함한 노동단결권이 사회적 합의로 인정됐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성과로 꼽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 정권에 들어와서 부정관권선거와 민주노총 침탈로 가장 핵심적인 민주화의 '사회적 자산'이 훼손돼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어제 이후 오늘 이 정도 상황까지 봤으면 강경대응, 강경진압으로는 상황을 정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수 있지 않겠느냐"며 "졸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수서발 KTX 법인의 영업권 발급을 중지하고 모든 관계자들이 모여 공공의 철도, 국민의 보편적 교통권을 주제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석운 대표는 "철도노조는 굉장한 인내심을 갖고 준법투쟁 중"이라며 "8천명의 필수노동자들은 계속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정부가 계속 밀어붙이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국가기관에 의한 부정 관권 선거 책임도 이미 전임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완전히 넘어와 있는 상황에서 이번 민주노총 침탈까지 저질러 지고 있다"며 상황을 정리하고 "정상적으로 판단하면 이쯤에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해 "정부가 나서서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만들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 민주노총 건물 1층에서는 여성.시민사회단체 긴급회견과 법률가단체 기자회견이 30분 간격으로 계속 이어졌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회 각계 기자회견에 앞서 민주노총은 기자회견을 갖고 전날 공권력 투입이 시작된 즉시 비상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해 박근혜 정권 퇴진투쟁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23일 간부파업을 비롯해 각 지역별 결의대회를 개최하는 등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행동전에 돌입해 28일 총파업을 시작하며, 시민학생과 함께하는 박근혜 정권 퇴진 대규모 시국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또 매일 촛불집회를 통해 박근혜 정권 퇴진에 동의하는 모든 시민들과 연대 투쟁하고 대규모 선전전을 전국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가 기각된 상태에서 체포영장만으로 민주노총 건물에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가 수색한 행위는 위법한 공무집행이고 이에 항의하고 저항한 행위는 정당방위이므로 경찰의 진입과 강제수색에 항의한 130여명의 관계자들을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한 것 역시 불법이라며 피해 규모등이 파악되는 데로 손해배상 등 법률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노총이 입주해 있는 경향신문사 사옥 13~15층은 전날 경찰 투입으로 인해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난 상태여서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경향신문사로 통하는 별도의 엘리베이터로 7층까지 올라간 후 계단을 이용해 13층 회견장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많이 정리가 된 상태라고는 하지만 13층 민주노총 각 사무실의 출입문 대부분이 파손돼 있고 계단 난간에는 안전을 위해 설치해 둔 그물 등이 을씨년스럽게 걸려있으며, 복도에는 각종 집기와 서류뭉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어 전날 경찰 투입에 따른 아수라장이 말끔하게 정리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전날 경찰력이 투입돼 진행된 강제 압수수색의 여파인 듯 각 출입문의 열쇠 등이 성한 곳이 없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경찰병력의 강제진입에 대비해 민주노총 측에서 안전을 위해 난간에 매 놓은 그물이 을씨년스럽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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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파괴 작전에 언론침탈도 불사

[주장] 도리에 순종하지 않으면 정권 존립 위태해진다

13.12.23 14:25l최종 업데이트 13.12.23 14:25l
강기석(ks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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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둘러싼 경찰병력 경찰병력이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지난 22일 오후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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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인 지난 22일 수천 명에 이르는 경찰 병력이 서울 정동길 초입에 있는 경향신문사 건물을 에워싸고 난입했다. 그 스펙터클한 광경은 영화 <반지의 제왕 3 - 왕의 귀환>의 한 장면을 번뜩 떠올리게 했다.

너무 오래 전에 봤기 때문에 스토리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악의 군주' 사우론이 동원한 어마어마한 '어둠의 군대'가 인간의 도시 '이나스타리스 성(城)'을 새카맣게 타고 오르는 그 유명한 전투신은 머리에 생생히 남아 있다. 코끼리 부대·투석기·공중을 날며 공격하는 용 등등…. 철갑을 입은 괴물 병사들은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꾸역꾸역 성벽을 타고 올랐다.

<경향신문> 출신의 언론인인 내 입장에서는 경찰이 민주노총을 유린했다는 사실보다, 사전 동의는커녕 통보도 없이 언론사 건물에 들이닥쳤다는 사실에 더 분노했다. 그것도 체포영장 하나 달랑 들고 군사작전을 벌이듯 겹겹으로 포위하고, 현관을 부수고, 한 층계 한 층계씩 점령하고, 저항하는 노조원들을 체포했다. 그 과정에서 그곳이 언론사 건물이라는 고려는 전혀 없었다.

노조파괴 작전에 언론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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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입주 건물 봉쇄한 경찰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입주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에 지난 22일 경찰이 투입된 가운데 집입작전 도중 파손한 유리문쪽에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배치되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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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회에는 '소도'(蘇塗)라는 게 있었다. 소도는 공권력으로부터 부당하게 쫓기는 범죄 피의자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다. 1980년대 민주화투쟁 과정에서는 명동성당이 일정 정도 소도 역할을 했었다. 물론 경향신문사에 그런 소도 역할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시대상황도 그렇고 무엇보다 일개 언론기관이 명동성당이라는 성소(聖所)가 갖는 권위를 누릴 수는 없다.

<경향신문>은 오늘(23일) 아침 지면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경찰이 영장을 발부받았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우려되므로 신문사 건물에 경찰이 진입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이 대규모 병력동원이 아닌 덜 위험한 방안을 마련해 계속해서 정중하게 협조를 요청했다면 경향신문사로서는 끝까지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성명서 마지막 부분에 "(<경향신문>은) 철도 노조원들에 대해서도 민주노총 사무실이 아닌 경향신문 내 다른 공간에서 점거 농성을 벌인 것에 유감을 표시했습니다"라고 사족처럼 밝힌 게 그 증거다.

<경향신문>이, 나아가 언론이 공권력에 바라는 것은 최소한의 존중이다. 언론의 자유를 존중한다면 그 가치를 구현하는 '장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공권력은 <경향신문>을 말 그대로 유린했다. 그것은 특정 신문의 언론 자유는 무시하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름없다.

공안정국이 한창이던 1989년 7월 어느 날에도 경찰과 안기부 요원 수백 명이 한겨레신문사에 쳐들어간 적이 있다. 서경원 국회의원이 밀입북 혐의로 체포됐는데, 방북 전 그를 취재한 <한겨레> 기자를 '불고지죄'로 걸고, 그의 취재수첩을 빼앗기 위해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편집국 압수수색을 감행한 것이다. 그때 검찰총장은 현재 대통령 비서실장인 김기춘이었다.

묘하지 않은가. 그때나 지금이나 나름 진보언론(이라기 보다는 정상언론)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신문사들만이 공권력의 공격대상이 된 셈이다. 이 지점에서 이명박 정권 초기를 발칵 뒤집어놨던 촛불시위 때 '<조선일보>-이명박 정권'이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정경이 겹쳐보인다.

<조선일보>가 지면을 통해 "(촛불시위대로부터) 청와대만 지키고 태평로는 불법상태로 방치할 것인가"는 식으로 말하자 문화부 장관 유인촌이 허겁지겁 조선일보사로 달려 가 사과하고 경찰력을 풀어 조선일보사를 철통경비했던 해프닝이 있었다. 민주노총이 조선일보사에 세 들어 살 일도 없겠지만, 만일 그랬다면 경찰이 이번처럼 함부로 쳐들어가지는 못 했을 게다.

올해의 사자성어 '도행역시'에 따라오는 건 '민무신불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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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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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은 지난 1년 노령기초연금, 4대 질병보장, 반값 등록금 등 공약이란 공약은 거의 뒤집었다.

대선 직전 박근혜 후보 측이 '근거 없는 흑색비방'이라며 "박근혜 후보는 국민의 뜻에 반하는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밝히는 바입니다"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지금 박 정권은 철도·의료 등에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타 다른 공공부문도 민영화할 것이란 이야기가 많다.

교수들이 올해의 4자성어로 뽑은 '도행역시'(倒行逆施·차례를 거꾸로 시행한다는 뜻, 즉 도리에 순종하지 않고 일을 행하며 상도를 벗어나서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을 가리킴)가 정확히 들어맞는 이유다. 철도노조는 '도행역시'를 맨 앞에서 막으려 몸을 던진 것이고, 민심은 점차 이를 지지하고 있다.

무자비한 공권력 행사는 정권의 강함이 아니라 냐악함을 자백하는 증좌다. 나는 박근혜 정권이 '도행역시'의 반작용에 발칵할 것이 아니라 이젠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을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충고하고 싶다. '민무신불립'은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정권이) 존립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 박근혜 정권이 민무신불립을 자초하고 있지 않은가.

숫적으로 턱없이 부족했던 영화 <반지의 제왕> 속 콘도르 왕국은 인간의 세계를 악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똘돌 뭉쳐 '악마의 군대'를 물리쳤다. 로한 군대·나무 부대·유령 부대 등의 연대투쟁이 그것을 가능케 했음은 물론이다. 일단 패색이 짙어지자마자 막강했던 '악마의 군대'는 순식간에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영화의 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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