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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근혜의 대북 메시지는 동문서답"

"북 핵무기 100개, 美 군산복합체 위한 과장"

[정세현의 정세토크]"박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는 동문서답"

이재호 기자(정리) 2015.03.03 11:49:51

 

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서신교환 등을 협의하자고 촉구했다. 또 통일준비위원회와 통일헌장 수립 등 박근혜 정부의 통일준비가 북한을 고립시키는 데 있지 않다며 남북대화를 외면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에 북한은 3일 대남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체제대결의 망상'을 드러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 대통령이 또다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제기하며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이 호응해 나오라고 한 것을 두고 "북한이 인도주의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북한 내부의 인권 문제라는 게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해 심각한 인권침해에도 저렇게 대응하는 북한이, 인도주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에 응하라는 우리 정부의 말을 듣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북한에게 있어 남북체제가 극명하게 비교되는 정치적 문제이자 부담스러운 사업"이라며 "이산가족 상봉이 본격화된 것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부터다. 남측에서 쌀과 비료가 고정적으로 북한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 내부의 정치적인 부담을 상쇄시킬 수 있을만큼의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상봉이 정기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통일준비가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며 "(북한이) 진정성 있는 대화와 변화의 길로 들어선다면 모든 협력의 길이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상대가 극도로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진정성'있게 하자고 하면 정말 관계 개선이 가능한가"라고 되물었다. 북한은 통준위를 '흡수통일의 전위부대'라며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그는 햇볕정책을 처음으로 발표했을 당시에는 북한이 이를 흡수통일로 의심하고 경계했지만, 민간 교류와 협력을 대폭 확대하고 이들을 통해 햇볕정책의 실상을 북한에 전달했다면서,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박근혜 정부의 통일 정책을 북한에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민간 교류의 빗장을 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특히 북한과 정말 대화를 하겠다는 진정성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을 당시 발표문을 북한에 미리 전달해서 내용을 알게끔 했던 것을 언급하며 "우리가 남북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가려고 한다는 의도를 행동으로 보여줘야"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최근 조엘 위트 미국 존스홉킨스대 초빙연구원이 북한이 현재의 추세로 핵개발을 지속할 경우 2020년까지 최대 100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밝힌 것과 관련, 정 전 장관은 "국제정치 문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연구자의 국적이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조엘 위트의 분석에도 미국의 이익이 일정 부분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3년 미국의 국가정보국장이(DNI)이 당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핵심 당국자들을 불러보아 2013년까지 북한이 핵무기 40개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브리핑을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정말 2013년에 북한이 핵무기 40개를 보유하게 됐나"라고 되물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남북 간 군사력 차이가 2대11이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서는 "턱도 없는 소리"라면서 "남한에 최신 전투기가 460대 있고 북한은 구형 전투기가 820대 있다고 한다. 양으로만 따지면 북한이 많지만, 달구지급 자동차 820대와 포르셰급 스포츠카 460대 중 어떤 것이 능력이 더 우수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인터뷰는 2일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북한에 남북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상봉 정례화, 서신 교환 등을 협의하자고 밝혔습니다. 기존에 했던 제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요. 
 
정세현 : 우선 3.1절 기념사를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대해 너무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저렇게 말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제기하면 북한이 '인도주의'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꼼짝 못 하고 나오리라고 생각해서인지, 북한에 회담을 제의할 때마다 단골 메뉴로 이산가족 상봉을 들고나오는데,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북한에게 이 문제는 대내적으로 굉장히 복잡한 정치문제입니다. 남북한 체제 비교가 극명하게 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굉장히 부담스러워합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꺼리는 것을 북측 인사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98년 4월 이른바 '비료회담'이라고 불리는 남북 차관급 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렸습니다. 제가 남측 수석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이 때 북측 회담 대표였던 전금철 단장은 "이산가족 상봉은 굉장히 복잡한 정치문제"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비료 지원 제의를 거부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비료 20만 톤을 줄 수 있으니, 대신 그해 가을에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진행하자고 제의했습니다. 북한이 김영삼 정부 말기에 적십자 접촉을 하는 과정에서 비료 이야기를 꺼냈고, 새 정권인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비료에 계속 관심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성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실랑이를 벌였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전 단장은 이산가족 상봉이 복잡한 정치문제라고 하면서 내부적으로 부담이 많다는 이야기는 안 하고, 남측 정권이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국민들에게 점수를 따려고 한다는 식으로 둘러댔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북한 내부의 문제 때문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본격화된 것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입니다. 설과 추석 등 명절 계기로, 그리고 중간에도 구실을 찾아서 일년에 서너 번 씩 상봉을 진행했습니다. 불과 2년 전에는 비료도 받지 않고 상봉을 거부했던 북한이 이렇게 돌변한 이유는 남측의 쌀과 비료가 고정적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박 대통령이 과거의 이산가족 상봉이 어떻게 성사됐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만약 박 대통령이 말하는 대로 북한이 인도주의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북한 내부의 인권 문제라는 게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북한은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국제사회에 대해 자기들은 배부른 소리 할 처지가 안 된다면서 인권 문제는 없다고 대응하고 있습니다.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해 심각한 인권침해에도 저렇게 대응하는 북한이, 인도주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에 응하라는 우리 정부의 말을 듣겠습니까?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의 기념사를 보면 통일 준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통일 준비는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서 남북대화에 나오라고 촉구했는데요.  
 
 ▲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96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96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현 : 박 대통령이 동문서답을 한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하는 통일 준비는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북한을 개방과 변화로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같은 날 기관지인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기만적인 대화 타령을 걷어 치우"라며 통일대박론이나 통일헌법 등이 오히려 체제 대결만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남한이 자신들을 흡수통일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며 통일준비위원회를 비롯해 통일헌장 제정 착수 등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통준위나 통일 헌장 등은 흡수 통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먼 훗날 통일을 대비해서 미리 연구를 해놓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지나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 전략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이러한 움직임들이 사실상 흡수통일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해버리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개방과 변화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을 끌어내려면 대놓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왕래하는 과정에서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자신도 모르게 변화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날 북한이 "어? 우리가 여기까지 왔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데이트 상대 만날 생각도 없는 상황에서, 만나기도 전에 "내가 너랑 결혼할 거야"라고 말하면 어느 누가 그 자리에 나가겠습니까?  
 
일반적으로 그동안 8.15는 기념사는 대북메시지, 3.1절 기념사에는 대일 메시지가 들어갔는데 이런 정도의 메시지를 북한에 보낼 것이었다면 차라리 말을 안 하고 지나가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프레시안 : 북한의 현재 실정, 북한이 정말 원하는 것을 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북한을 대등한 대화 상대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일의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발언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2000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이 연설이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 때문에 남한에 적대적이었던 북한의 마음을 돌려놓았기 때문 아닙니까?  
 
정세현 : 남북관계를 갑을 관계로 보는 사고방식이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는 접근인데요. 이런 식이면 북한과 대화 못합니다. 북한이 어떤 심리상태를 가지고 남한을 바라보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북한은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가 강했습니다. 당시 사회주의권은 붕괴되기 시작했고 소련마저도 고르바초프 때부터 시작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체제 전환이 일어나던 상황이었습니다. 또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북한은 자신들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심했습니다.  
 
게다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북한 사회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후 3년 동안 홍수와 가뭄 피해가 잇따랐습니다. 농업 기반은 황폐화됐고 탄광과 철광이 무너져 지하자원을 캐는 것도 어려웠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였습니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막 끝내가던 시기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북한이 무력 도발에는 반대하지만 △북한을 흡수통일하려는 것이 아니며 △우선 남북 화해협력을 진행하겠다는 대북정책을 천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북한은 햇볕정책을 두고 뒤집어놓은 흡수통일 정책이니, 자기들을 녹여먹으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식으로 반응했습니다.  
 
북한은 이처럼 굉장히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국력 격차가 심해지니까 남쪽에 대한 열등의식이 강해진 겁니다. 그러다 보니 행동에 있어서는 자존심을 세우는 식으로 나옵니다.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하는 거드름이나 체면의 뒷면에는 엄청난 대남 열등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대남방어적인 심리를 어떻게 달래가면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정부는 뒤로 빠지고 민간을 앞세우자고 결정했습니다. 햇볕정책이 북한을 흡수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민간 차원의 교류 협력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북한이 깨닫게 하는 식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습니다. 이것이 민간 접촉을 시작으로 당국 간 협상의 길을 연다는 이른바 '선민후관'(先民後官) 정책이었습니다.  
 
1998년부터 정부는 민간 차원의 북한 방문 승인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또 민간 기업의 대북 사업을 늘리면서 경제를 앞세워서 북한을 흡수시키려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북한에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공을 들인 끝에 정상회담이 성사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입 밖에도 내지 않았습니다. 행동으로 북한에 보여줬습니다.  
 
베를린 선언 당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정부는 이 내용을 연설 하루 전에 북측에 통보해줬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에 가서 남북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이니 미리 알고 있으라고 전해준 겁니다. 상대가 우리를 신뢰할 수 있도록 먼저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죠.
 
이런 것이 진정성입니다. 난데없이 뒤통수를 때리거나,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거나, 상대가 극도로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진정성'있게 하자고 하면 정말 관계 개선이 가능할까요? 우리가 남북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가려고 한다는 의도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북쪽에서 '진짜 저 사람들이 우리를 어찌 해보려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겁니다.  
 
프레시안 : 우리는 지난해부터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가 돼야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이렇게 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경색돼있는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어떤 수순을 밟아야 할까요?  
 
정세현 : 우선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김대중 정부에서 장·차관을 했기 때문에 햇볕정책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계신데, 저는 갑자기 김대중 정부 때 나타난 사람이 아닙니다. 박정희 정부 이후로 통일의 현장에서 뛰면서 북한이라는 대상을 꾸준히 연구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3년 8개월 동안 통일비서관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북한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제가 통일부에서 30년 이상 북한을 꾸준히 관측하고 분석하며 경험했던 시간들을 회고해보면 북한은 쉽게 붕괴할 집단이 아닐 뿐만 아니라 북한이 가지고 있는 열등의식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걸 자극하지 않고 북한을 우리 페이스대로 끌고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햇볕정책은 그나마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햇볕정책은 앞서 말씀드린 '선민후관'(先民後官)을 비롯해서 쉬운 일을 먼저 하고 어려운 일을 나중에 한다는 '선이후난(先易後難)', 경제 교류를 먼저 하고 정치 협상은 나중에 한다는 '선경후정(先經後政)',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다는 '선공후득'(先供後得)을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관(官)이 아니라 민(民)이 먼저 나섰기 때문에 북한과 거리를 좁힐 수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이런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북한과 접촉하게 하면서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에 진정성이 있다, 통준위와 통일헌장 등도 나중에 당신들과 함께 만들어갈 것들을 미리 준비하고 있는 차원일 뿐이다 등등 북한을 안심시킬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더불어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을 민간차원의 대북지원이나 교류협력으로 지원해주면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응하면 더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합니다. 맨입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상응한 대가를 북한의 손에 쥐어주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박근혜 정부의 대외정책에 북한이 얼마든지 협조해 나올 수 있습니다. 
 
특히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매우 간단한 사업입니다. 북한지역에 철도가 통과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미 경의선은 연결돼있지 않습니까? 그거 개통하자고 하면 풀리는 문제입니다. 이걸 진행시키려면 남북관계를 풀면 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마저도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동해선의 끊어진 철도를 복원하는 것을 먼저 하겠다고 합니다. 강릉에서 제진까지 117km 구간을 복원하는 것이 박 대통령이 말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구축하기 위해 사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인지 의문입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은 물류입니다. 부산이나 인천에서 배를 통해 유럽에 물자를 실어 나르는 것보다 기차를 이용하면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면 강릉-제진의 동해선이 아니라 경부선에서 경의선, 평원선(평양-원산),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이어지는 노선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이미 경의선 철도는 연결돼있기 때문에 남북이 이 노선을 개통하자고 하면 끝나는 문제입니다. 
 
반면 박 대통령이 말한 동해선 연결 작업은 언제 작업이 마무리될지도 모릅니다. 철도가 지나가야 할 곳이 이미 7번 국도로 편입된 곳도 있고, 심지어는 상권이 조성돼있는 곳도 있습니다. 땅을 사들이고 철도를 까는 작업을 박 대통령 임기 내에 완성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러시아에서도 동해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경부선을 통해 서울과 개성을 거쳐 올라와야 물류 수요가 있고, 그래야 수익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동해선은 연결해봐야 주 목적이 관광이기 때문에 경제적 파급 효과가 별로 없다는 분석입니다.  
 
그런데 굳이 박근혜 정부가 동해선부터 먼저 연결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끊어진 동해선을 연결하면 국제사회에 '남한이 통일을 위해서 노력하네'라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일까요? 아니면 한국 국민들과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울리기 위해서 일까요? 제 눈에는 실질적인 진전은 없으면서 그저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프레시안 : 결국 박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보면 북한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한편으로는 박 대통령이 북한을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는 할 만큼 했는데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서 남북관계 개선을 하지 못했다는 명분을 만들고 싶어서 이런 식의 제안을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세현 :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못하는 책임이 북측에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측면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관계 개선을 위해 할 만큼 했는데도 북한이 나오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광복 70년, 분단 70년이 되는 올해 정말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이런 식의 정치적 계산을 할 시간에 북한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 어떻고, 남한이 무엇을 던져야 북한이 호응해 나올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북한, 2020년에 핵무기 100개 보유한다?  
 
프레시안 : 북한과 대화 통로는 막혀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능력은 계속 향상되고 있습니다. 북한문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엘 위트 미국 존스홉킨스대 초빙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이 현재의 추세로 핵개발을 지속할 경우 2020년까지 최대 100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조엘 위트는 고위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국무부에 오래 있었고 실무 관료로서 성실하게 본인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후에도 말씀하셨다시피 38노스라는 북한 전문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위트에 대한 신망이 상당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국제정치 세계에서 나 아니면 전부 '남'이라는 사실입니다. 좋을 때 동맹이지 이해관계가 부딪히면 동맹도 남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과학적인 분석에서는 연구자의 국적성이 강하게 개입됩니다. 어느 나라 전문가든 그 나라의 국익을 전제로 분석하고 대책을 내놓는 경향이 높기 때문에 위트의 발언에 대해서도 이런 점을 잘 살펴야 합니다.  
 
제가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배울 때 너무 방어적인 입장에 있는 선생님들로부터 수학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이러한 관점이 옳다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한미 간에 무역 역조 현상이 심해지자 미국은 슈퍼 301조를 만들어 한국시장을 개방하라고 엄청난 압력을 넣었습니다. 6.25전쟁 직후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에 너그럽게 구호 물품을 지원해주던 미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때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절감했습니다.  
 
수집한 첩보(information)를 전략적 가치를 갖는 정보(intelligence)로 생산하는 과정에서 국적이 개입되곤 합니다. 즉 정보의 생산 과정에서 자신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연방 예산 자동 삭감 제도(sequester)에 따른 국방예산 감축을 저지하거나 한국의 무기 시장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연구 결과가 활용될 수 있습니다.  
 
조엘 위트는 북한의 핵 능력을 △저성장 △중간성장 △고성장 등 세 가지로 분류한 뒤에 2020년 예상되는 핵무기 개수와 폭발력을 계산했습니다. 그 결과 고성장이 가능할 경우 북한 핵무기 개수가 100개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저성장의 경우 20개, 중간성장의 경우 50개 정도가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발표를 보면서 2003년 미국의 국가정보국장(DNI)이 한국에 와서 북한의 핵 능력을 추산한 자료를 브리핑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당시 통일·외교·국방 장관을 비롯해 외교안보수석 등 핵심 관계자들이 청와대 지하 벙커에 모여서 설명을 들었습니다. 국가정보국은 10년 후인 2013년 북한의 핵무기가 40기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도 대북 압박정책에 동참하라고 압력을 넣었습니다. 
 
당시는 2002년 10월 미국 켈리 특사의 방북으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이 밝혀졌다는 것을 구실로, 미국이 북·미 간 제네바 기본 합의를 파기한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의 핵 활동 중지 등을 골자로 하는 제네바 합의가 휴지조각이 된 뒤 북한을 계속 압박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고 하니 이를 돌리기 위해 이같은 브리핑을 준비한 겁니다. 그런데, 2013년에 정말 북한의 핵무기가 40기가 됐습니까?  
 
조엘 위트도 이번에 유사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핵무기가 100개로 늘어날 수 있는데 무슨 통일을 할 것이냐고 말입니다. 이걸 보면서 국제정치 문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국적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위트의 이번 발표를 두고, 북한의 핵 능력이 커졌으므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세현 : 그 분석에 그런 의미가 있다면 좋겠죠. 하지만 미국에서는 매년 7월에 있는 예산 심의에 앞서서 2~4월까지는 국제정세나 국제상황과 관련한 보고서가 많이 나옵니다. 민간 연구소라고 하더라도 군산복합체와 연결돼있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쪽으로 보고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국방예산을 해마다 500억 달러씩 줄여나가야 합니다. 또 미국의 국가 이익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곳은 동북아시아입니다. 중국 때문이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 군사력을 증강하거나 최소한 예산을 감축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7월 예산 심의에서 의회가 군 예산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려면 지금부터 사전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런 보고서가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최근 발표한 남북 군사력 비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와 북한의 군사력이 2:11이라고 하면서 북한의 군사력이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고 경고합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수량만 가지고 비교하는 것은 적절한 비교 방식이 아닙니다. 남한에 최신 전투기가 460대 있고 북한은 구형 전투기가 820대 있다고 합니다. 양으로만 따지면 북한이 많지만, 달구지급 자동차 820대와 포르쉐급 스포츠카 460대 중 어떤 것이 능력이 더 우수하겠습니까? 더군다나 북한의 전투기 중에는 레이더가 없는 것도 많습니다.  
 
이러다 보니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조차도 이런 군사력 비교에 대해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가 있는 집에 옛날에 쓰던 석유곤로가 있다면, 음식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느냐와 같은 것"이라고 일갈하지 않았습니까. 쓰지도 않는 석유곤로를 조리도구에 포함시키면 숫자는 많을 수 있어도 사실상 의미 없는 도구인 것처럼, 쓰지도 않는 무기를 숫자에 포함시키면 양적으로는 북한이 군사력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질적으로는 의미 없는 수치라는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럼 미국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는 이런 보고서들은 결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력을 확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미국의 전문가들 중에 애국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이 동북아에서 중국에 밀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태평양함대사령부의 예산을 깎으면 안되고, 일본이나 한국이 자체적으로 국방 예산을 늘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헤리티지 재단은 실수한 것 같습니다. 한 꺼풀만 벗겨 보면 뻔히 알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이렇게 분석해버리면 앞으로 누가 헤리티지 재단의 보고서를 믿겠습니까? 설사 이런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적당히 해야 하는데 이번 보고서는 너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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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붕괴론’의 ‘망령’이 아직도 떠돌고 있다

‘북한 붕괴론’의 ‘망령’이 아직도 떠돌고 있다

2015. 03. 03
조회수 171 추천수 0
 

 전현준박사.jpg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3년 가까운 시간이 경과했지만 ‘김정은 정권붕괴론’이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그 배경은 김정은 어린 나이와 경험 일천, 잦은 권력엘리트 교체, 장성택 처형, 김정은 건강 문제 등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 상황에서 볼 때 ‘연목구어’인 것 같다. 북한 붕괴론은 당연히 해야 할 남북대화와 대북 지원을 회피하기 위한 논리로 활용된다. 더욱 나쁜 것은 북한 조기 붕괴를 핑계로 회담을 건성건성하거나 합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94년 10월에 북미간에 이루어진 ‘북미제네바 합의’였다. 합의과정이 건성건성이었고 합의도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 배경은 당시 미국측 회담대표였던 갈루치(Robert Gallucci)가 실토했듯이 ‘북한 붕괴론’이었다.    
 

북미 제네바 합의와 북한 붕괴론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사이비’ 북한전문가들이 언론에 나와 김정일 후계체제는 “3일 아니면 3년 내에” 붕괴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정세 분석이 1994년 10월 ‘북미제네바 합의’를 가능하게 하였다. 북한이 곧 붕괴될 터이니 북한이 원하는 북미관계 개선 및 경수로 건설을 합의해 줘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고 경수로 건설 중 북한이 붕괴되면 그것은 어차피 남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남한이 비용의 70%를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왔다. 더 큰 문제는 북미제네바 합의를 이행하면서 북한붕괴를 기다리는 바람에 공사가 지연됨으로써 북한의 대미 불신이 매우 커졌고 북한이 미국의 대화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발이 되었다. 즉, 미국은 북한체제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어떻게든 “북한이 붕괴되기를 바란다”는 인식이 북한 지도부에 박히게 된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북미관계개선이나 평화체제의 정착 없이는 어떤 합의나 성명도 그 뒤에는 북한붕괴 의도가 숨어있다는 극단적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북한붕괴론’이 팽배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시기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최고책임자들 모두가 ‘북한붕괴론’을 믿고 있었다. 이런 믿음은 대북 압박정책으로 나타났다. 대북 지원을 끊으면 “북한이 붕괴되든지 무릎을 꿇고 나올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명박 전대통령은 최근 그의 자서전을 통해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쳤다고 자랑했다. 실로 사오정같은 ‘엉뚱한’ 판단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북한이 중국과 더욱 밀착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북한은 부존 광물자원을 중국에 팔기 시작했고, 2008년부터는 붕괴는커녕 오히려 6%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이명박 정부는 중국변수를 고려하지 못했다. 북한이 남한의 대북 지원에 의해 지탱되는 것으로 오산한 것이다. 
 

 노동당 지배를 통한 '절차적 독재'

 

 그렇다면 지금의 ‘김정은 정권 붕괴론’은 어떠한가? 김정은 제1비서가 어리고 경험이 없어 권력엘리트들을 장악하지 못한데다 정책 혼선까지 빚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북한 붕괴론’의 망령이 아직도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내부 정치는 급속히 안정화되어 가고 있다. 그 배경은 김정은 리더십 스타일 변화 및 주민들의 생활 변화 등 2가지이다. 김정은 리더십 스타일은 부친인 김정일과는 다르게 개방적이고 주민들의 생활양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령독재는 지속되고 있지만 최소한 ‘절차적 독재’를 수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군을 약화시키고 노동당에 의한 통치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18일에도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통해 김정은은 부정부패행위 타파를 강조했다. 부정부패 문제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강조한 것은 그만큼 관료부패가 심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시인할 것은 시인하자는 입장이다. 김정은도 관료부패를 청산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을 것임을 안 것이다.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 주민들의 생활도 놀랍게 달라지고 있다.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고 부동산 중개업을 필두로 전당포, 계주 등 자본주의식 다양한 직업이 생기고 있다. 주민들의 의식은 이미 자본주의 초입에 들어서 있다. 주민들은 서서히 북한 내에서도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 시작하고 있다. 북한은 과거처럼 남한의 지원을 통해 생존해 보려는 ‘생존 전략’ 차원에서 남북대화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잘살아보려는” ‘발전 전략’ 차원에서 그것을 원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내부적 생존 문제를 걱정하는 차원은 벗어나 있다. 물론 아직은 외부로부터의 생존 문제는 남아 있다. 김정은 정권은 ‘불행히도(?)’ 장기집권기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도 장기적인 포석과 전략하에 김정은 정권을 상대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집권 3년차를 맞는 박근혜 정부는 일부 전문가가 주장하는 ‘북한붕괴론’같은 ‘허상’이 아닌 ‘실상’을 토대로 대북 정책을 펴야 과거 실패한 정부의 전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이 칼럼은 남묵물류포럼(http://www.kolofo.org/) 과 함께 공동으로 게재합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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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 돈에 할머니들 성매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3/03 11:57
  • 수정일
    2015/03/03 11: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복지축소 하자는 나라의 현실

[게릴라칼럼] '불의의 체계'가 된 한국사회에서 벗어나기②

15.03.02 18:19l최종 업데이트 15.03.02 21:5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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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리가 많아서 고민하는 국민들 한국 정부는 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호언해 왔다. 사진은 한국 정부의 과거 홍보물.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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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고용이 실현되어 실업자는 없어지고, 누구든지 일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된다. 취직하지 못해 애쓰는 사회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사회로 바뀌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부지런하면 누구나 내 집을 가지고 단란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된다."

웬 꿈같은 소리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앞으로 취직 걱정은커녕, 갈 곳이 너무 많아 고민하게 된다니 말이다. 게다가 내 집 마련도 더 이상 실현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니, 이게 믿어지는가?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한국의 청년(15~24세)고용률은 24%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조사해 '대학알리미'를 통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졸자(전문대·일반대·대학원) 평균취업률은 58.6%로, 고등교육을 받고도 절반 가까이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같은 해 고졸 취업자는 33.5%인 것으로 나타났다. 

살인적 경쟁률을 뚫고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서 안락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취업자 10명 가운데 3명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지난해 10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64% 수준에 지나지 않으며,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조금 일하다 정규직으로 옮기면 되지 않을까? 그게 쉽다면, 애초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비정규직이 1년 이내에 정규직이 될 확률은 10명 가운데 1~2명에 지나지 않는다.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개미지옥'과 같다. 그리고 이 나락의 구멍은 더 넓고, 깊어지고 있다.

대기업에 취직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지만, 그 '희귀종'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고 해서 '해피엔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합격증을 받고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껏 받았을 30대 대기업 취업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0년 미만이다. 여성 대기업 취업자의 근속기간은 더 짧아, 7년이 채 안 된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여자든 남자든, 대학졸업장 없든 있든, 한국에 사는 이들에게 고용불안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물론 특별한 유전자를 타고난 '선천성 합격자'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들이 얻은 진짜 특혜는 평생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평생 안정적으로 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일 것이다. 기업주를 빼닮은 이들은 남자든, 여자든 대학을 나오든 안 나오든,  안락한 삶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경쟁자보다 무서운 '비경쟁자'

우리들은 생각한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면 뭔가 괜찮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면 그들보다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이런 상상을 해 보자. 사막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걸어간다. 뙤약볕이 등과 목을 태우고, 모래 바람이 눈알을 후벼 파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걷는다. 말라서 터진 입술에 반쯤 눈을 감고 위태롭게 비척거리다가도, 뒷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면 눈을 번쩍 뜨고 다시 바삐 다리를 움직인다.

그러다 누군가 '저기 물이 있다'고 외치자, 난리가 난다. 대열이 갑자기 흩어지며, 사람들이 사방으로 뛰기 시작한다. 앞 사람 뒷덜미를 당기는 놈, 옆 사람을 밀어 자빠뜨리는 놈, 자빠진 이를 밟고 뛰는 놈. 정말 물이 있는지, 남들보다 먼저 가면 물을 마실 수 있는지 따위를 생각할 정신도, 여유도 없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저기 물이 있다'고 외친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만일 그 사람이 무리 속에서 함께 고생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말의 진실성을 의심해야 한다. 그는 낙타 (혹은 개인 제트기) 위에 편히 누워 자기가 가리킨 방향과 반대로 가는 사람일 수도 있다.

경쟁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은, 앞에서 뛰든 뒤에서 걷든, 어차피 많은 것을 얻을 수 없는 공동운명체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내 앞뒤로 보이는 경쟁자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고, 경쟁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경쟁주의는 분노를 엉뚱한 곳으로 겨냥하게 만들며, 무엇보다 연대해서 함께 싸워야 할 동료를 적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데 효과적인 이데올로기다.

"완전고용이 실현되어 실업자는 없어지고, 누구든지 일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된다..."

앞의 '무릉도원'은 1973년 유신정부의 공약이었다. 그렇다면 정부는 언제쯤 '일하고 싶으면 일할 수 있고, 부지런하면 집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실현된다고 약속한 것일까? 1970년대 말이다. 그렇다, '2070년대'가 아니라 '1970년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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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세기 전의 복지공약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말이면 취직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된다고 장담했었다.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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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이면 '복지사회' 찾아온다더니...

정부가 약속했던 건 일자리만이 아니었다. 당시 정부 홍보물에 따르면, "좋은 집을 갖고 잘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집 없는 슬픔을 달래야 하는 서민들의 걱정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며, "의료보험제도가 발달되어 돈 없는 사람이 병이 났을 때 무료로 치료"해 주는 "복지사회"가 찾아온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삶의 질'에 대한 부분이었다. 더 이상 '생존'을 고민하던 차원에서 벗어나 '삶의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불어나는 소득으로 여유 있는 국민생활"이 가능해지고, "풍족한 살림으로 즐기는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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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을 넘어 '삶의 질'까지 책임진다는 유신정부 '복지사회'를 공약으로 내건 것은 박근혜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도 높은 수준의 '복지사회'를 약속했었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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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속이 지켜졌는지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다.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박정희 대통령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탓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가 저격당한 것은 1979년 10월 말이므로, '70년대 말'을 꽉 채우고 돌아가신 셈이다. 게다가 당시 정부는 복지국가가 도래하는 시점을 정확히 제시했다. "국민소득 1000달러의 고지를 점령할 때"라는 것이다.

한국은 1977년에 이미 1000달러 목표를 달성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현재 한국의 국민소득은 2만 8000달러를 초과했고, 올해 3만 달러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 된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0월 대한민국이 올해 '30-50 클럽'에 가입한다고 보도했다. 국민 소득 3만 달러에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명실상부한 '강국'으로 부상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3만 달러와 인구 5000만 명을 동시에 갖춘 국가를 의미하는 '30-50 클럽'에 가입한다. 전 세계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30K)를 넘고, 인구도 5000만 명(50M)이 넘는 국가는 지금까지 6개국(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일본)뿐이다. '30-50 클럽'에 도달한다는 것은 높은 생활수준과 대외적으로 비중 있는 경제 규모를 함께 갖춰, 강국(强國) 대열에 올라선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대목에서 뛸 듯 기뻐야 할 텐데, 왜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는지 모르겠다. 속아서만 살아 온 모양이다. 나 혼자라면 다행이겠는데, 이런 소식에 냉소적 태도를 보내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리라는 데 문제가 있다.

최근 KBS 박종훈 기자는 "벼랑 끝에 몰린 청년, 왜 '붕괴'를 택했나?"(2월 12일자)라는 보도에서 흥미로운 통계수치를 인용했다. 2월 초에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주최로 '한국인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라는 토론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는데, '바라는 미래상'을 묻는 질문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고 말한 사람은 23%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두 배 가까운 42%가 '붕괴, 새로운 시작'이라고 답해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 큰 충격을 준 부분은 "큰 충격을 주었다"는 기자의 말이었다. 지난 반세기 넘게 지속해 온 성장모델이 수많은 국민을 빈곤, 좌절, 불행,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만일 '지속적 경제성장'이라는 답변이 '붕괴, 새로운 시작'보다 많았다면 나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합리적 판단력을 지닌 청년이 두 배나 더 많다는 점에서 나는 희망의 불씨를 본다.

장기침체의 일본보다 처참한 한국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붕괴"라는 말이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붕괴'하기를 바라는 것은 사회 자체가 아니라, 좌절의 원인일 것이다. 만일 사회가 구성원 절대다수의 삶을 고통스럽게 한다면, 그런 사회의 존속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바라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이미 붕괴된 사회다.

언제부턴가 일본은 한국의 '반면교사'가 된 듯하다. 일본처럼 장기침체의 늪에 빠지면 안 된다느니, 일본사회의 절망적 분위기가 가혹한 범죄를 낳고 있다느니, 취직을 포기하고 부모에 의존해 사는 '니트족'이 일본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앞의 기자 역시 일본 청년들로부터 '희망 잃은' 세대의 암울한 이야기를 끌어온다.

일본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의 이야기는 한국이 일본보다는 낫다는 전제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과연 그럴까? 일본은 청년 고용률뿐 아니라, 고용률 지표 전반에서 한국보다 양호하다. 자살률도 한국에 비해 낮으며, 범죄율 또한 살인, 강도, 강간, 폭력 등 강력범죄 모든 영역에서 한국보다 훨씬 낮다. 게다가 일본은 지난 10년간 범죄가 줄어든 반면, 한국은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국민들의 삶의 질을 측정하는 '행복지수'도 일본이 훨씬 높아, OECD 주요국가 가운데 (2013년 기준) 한국이 27위를 기록했을 때, 일본은 21위였다. 청소년들의 행복지수 역시 일본이 훨씬 앞선다. 이런 데도 왜 자꾸 일본을 들먹이는 것일까? 2014년 취업률만 봐도, 일본과 한국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지난해 한국 대졸자의 취업률은 58.6%에 머물렀지만, 일본은 94.4%였고, 고교생 취업률은 그보다 높은 96.6%였다.

한국 정부와 언론은 걸핏하면 '일본식 장기불황'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이 '장기침체'에 들어섰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져 있는 게 아니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불황이 시작되지도 않은 나라의 국민이 불황의 늪에 빠진 국민보다 더욱 끔찍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이런데, 본격적으로 불황이 시작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해답은 하나다. 혁명적인 복지투자만이 이 나라를 구해낼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이 복지정책을 대대적으로 늘린 때는 돈이 남아돌던 경제활황시절이 아니었다. 복지가 전쟁 직후나 경제공황 당시 국민들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점을 기억하면 놀랄 일이 아니다.

자살하는 20~30 세대, 성매매로 연명하는 '산업화세대'

국민들이 열심히 일해서 일인당 소득을 1000달러로 올려주면, 복지국가로 보답하겠다는 게 반세기 전 정부가 한 약속이었다. 이게 거짓이 아니었다면, 3만 달러 시대인 현재는 그 약속의 30배에 달하는 '슈퍼복지국가'가 되어 있어야 옳을 것이다. 이제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적 생계, 거주, 의료, 교육을 보장한다는 1970년대 약속만은 지켜라.

대한민국 국민이 어떤 사람들인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가장 부유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일궈낸 이들이다. 그들에게 '삶의 즐거움'까지는 주지 못하더라도, '생존'으로는 고민하지는 않게 해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고,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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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매매로 연명하는 할머니들 노인 성매매를 다룬 언론보도. 중요한 사안을 다루고 있지만, '일탈'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 원인인 노인빈곤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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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슬픈 뉴스를 보았다. 종로 지하철 역 안에서 노인들이 술을 팔고 성매매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보도는 '불법행위'와 '단속'을 강조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분들이 왜 그래야 하느냐는 것이다. 한국에서 고령자(55~64세) 취업률은 청년 취업률보다 높은 63.1%고, 노인 취업률도 34%나 된다. 일해야 할 나이에 일하지 못하고, 쉬어야 할 나이에 쉬지 못하는 것이다. 

노인 취업률은 OECD 평균의 3배지만, 노인 빈곤율은 50%에 달해, 역시 OECD 평균의 세 배에 달한다. 3배를 일하면서도 3배나 가난한 것이다. 정부는 만 열면 '산업화세대'를 찬양하면서도 이들의 처참한 삶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청년들은 일하지 못해 가난하고, 노인은 일하면서도 가난하다.

창의적이게도, 정부와 여당은 이 시점에서 '복지 축소' 이야기를 꺼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복지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고 말했다. 경제학회 회장인 한 '명문대' 교수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책으로 모든 근로자의 비정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비정규직 임금을 높여 해고위험을 만회할 수 있다고 말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국민이 '남의 돈을 갖고 공짜로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의식이 많아지고 있어 걱정스럽다." 

위 기사가 실렸던 날, 또 다른 '명문대'의 졸업식이 있었다. 교정에 이런 글귀가 쓰인 현수막이 내걸렸다. "졸업하면 모하냐... 백순데..." 그리고 같은 날, 정부가 법 개정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민들의 애국심을 향상을 위해 태극기 게양률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정책의 일환으로 무료태극기 나눠주기 행사까지 벌였는데, 시민들 반응이 시큰둥했다고 한다. '복지과잉'은 국민을 나태하게만 하는 게 아니라, 애국심까지도 빼앗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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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 단체들, 일제히 한미군사연습 규탄 행동

각계 단체들, 일제히 한미군사연습 규탄 행동국민행동 등 "군사훈련 중단하고 남북.북미.6자회담 나서라"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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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2  12: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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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 등 각계 단체들은 2일 미대사관 인근에서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 중단을 촉구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한.미 당국이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갈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을 중단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남북.북미.6자회담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한.미합동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이 시작된 2일,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을 비롯한 각계 단체들은 전국 각지에서 일제히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훈련의 중단을 촉구했다.

서울에서는 국민행동 등이 이날 오전 11시 서울 미국대사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6.15청학본부)는 통일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통일부에 촉구서한을 전달했다.

   
▲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국민행동 등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은 맞춤형 억제전략을 작전계획으로 구체화, 실행화하는 과정에서 시행된다”며 “‘맞춤형 억제전략’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사용할 징후만 보이더라도 선제공격하는 매우 공세적인 전략으로 전쟁위기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가능성을 한층 높이는 민족 공멸의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올해 북한이 ‘키 리졸브 한.미연합연습을 임시 중단하면 핵실험을 임시 중단하겠다’고 제안한 점을 들어 “한.미 당국이 진정으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원한다면 북한의 제안을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미 당국은 선제적으로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을 중단하거나 최소한 방어연습으로 규모를 축소하여 북한과의 신뢰를 구축하고 대화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면서 “남북.북미.6자회담 등 각급 대화를 재개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를 함께 실현시키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한반도 전쟁위기를 근원적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자회견장 뒤편 미국대사관에 성조기가 나부끼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최은아 국민행동 정책언론팀장은 “전국의 각계 시민사회단체들은 키리졸브-독수리 훈련과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긴장조성 행위에 반대하는 행동을 오늘부터 전국 동시다발로 현재 진행하고 있다”며 “지금 같은 시간에 서울을 비롯해서 경기도 성남의 훈련지휘소인 탱고에서도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고, 부산과 창원, 대구, 왜관, 광주에서도 동시에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적대적인 군사훈련이 진행될 때마다 군사훈련 현장에서 평화의 목소리를 담은 항의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키 리졸브 전쟁연습의 가장 적대적인 성격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상륙훈련 현장에 올해 대규모로 평화문화제와 평화기도회 등의 다양한 평화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 6.15청학본부는 통일부가 있는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북전단 살포와 한미합동 군사연습 중단을 촉구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6.15청학본부는 ‘통일부와 홍용표 통일부장관 후보자에게 보내는 촉구 서한’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이 땅에 참화를 불러오는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미국인권재단(HRF)는 10만장의 대북전단을 날렸으며,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진행되는 3월에는 영화 ‘인터뷰’ DVD와 USB를 담은 대북전단을 날리겠다 하고 있다. 심지어 대북전단 살포에 무인기 ‘드론’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는 것.

이들은 “정부와 국가기관의 존재하는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며 “박상학을 비롯한 반북보수단체들의 위험천만한 행동을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 기자회견 직후 전준호 6.15청학본부 상임대표(왼쪽)가 통일부 관계자에게 촉구 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준호 6.15청학본부 상임대표는 기자회견 직후 현장에서 통일부에서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이산과족과 관계자에게 촉구 서한을 전달했다.
 

한미 연합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 중단하고 남북·북미·6자회담 재개하라! (전문)

오늘부터 시작되는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은 대북선제공격전략인 맞춤형 억제전략을 작전계획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시행된다. 대북선제공격전략이 작전계획으로 구체화된다면 한반도에 핵전쟁 발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까지 거론되던 남북대화 분위기가 미국의 발목잡기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과 같은 공세적 연습이 강행된다면 어렵사리 마련된 남북대화의 기회는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한편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의 강도를 낮춘다면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므로 한미당국이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을 중단하거나 최소한 공세적 훈련만이라도 축소한다면 대화의 계기는 다시 마련될 수 있다. 이에 우리는 한미당국이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갈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을 중단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남북·북미·6자회담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연말 연초 정상회담까지 거론되며 남북대화 분위기가 높아지자 미국은 선 비핵화 협상 방침을 내세우며 남북대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까지 노골적으로 가로막았다. 

이 같은 미국의 남북대화 가로막기로 인해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 있다. 여기에 대규모 공세적 연습인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까지 강행된다면 어렵사리 마련된 남북대화의 기회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전쟁연습으로 대결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남북관계 개선은 바랄 수 없으며, 한반도는의 평화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은 맞춤형 억제전략을 작전계획으로 구체화, 실행화하는 과정에서 시행된다. 지난해 한미 당국은 46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2014)에서 맞춤형 억제전략을 올해까지 작전계획으로 발전시키기로 하고, 그 중간 단계로서 ‘포괄적 미사일 대응 작전개념 및 원칙’에 합의하였다. 이에 지난해 시행된 2차례의 한미연합연습에 맞춤형 억제전략을 전면 적용한 바 있으며, 지난 2월에는 한미 간에 확장억제수단 운용 연습도 시행했다. 

그러나 ‘맞춤형 억제전략’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사용할 징후만 보이더라도 선제공격하는 매우 공세적인 전략으로, 전쟁위기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가능성을 한층 높이는 민족 공멸의 전략이다. 따라서 이런 선제공격 전략이 작전계획으로까지 발전된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결정적으로 위협받게 될 것이다. 

이번 연습에 참가하는 대규모 병력과 공세적인 전력 그 자체만으로도 북한에 대한 무력위협이며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전쟁연습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연습에 항공모함은 동원되지 않지만, 포트워스 연안전투함이 처음으로 연습에 참가한다. 

연안전투함은 연안에 가깝게 접근해 수심이 낮은 지형에서 해병대와의 연합 작전 및 대잠수함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를 볼 때 이번 연습에서 특수전, 상륙훈련 등 공격적인 훈련이 더욱 실전에 가깝게 진행될 것이라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올 초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확산되면 결국 북한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과 대화를 하기보다는 대북 사이버전, 심리전과 같은 북한변화유도 정책을 통해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올해 연습에도 북한급변사태 대비를 위한 훈련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에 북한 대량살상무기 제거작전과 점령작전(민사작전)을 수행하는 한미연합사단을 창설해 이번 연습에 참가시키는 것도 그 일환이다. 

특히 한미당국은 키 리졸브 연습을 거쳐 작전계획 5027, 작전계획 5029, 국지도발계획등 기존의 대북선제공격계획을 통합한 작전계획 5015를 3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작전계획 5029는 북한 내부에서 벌어지는 급변사태를 빌미로 한 한미연합군의 군사적 개입을 세부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 급변사태 대비 훈련의 강화는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이 한미 당국이 주장하듯이 연례적인 방어 훈련이 아니라 제2의 한국전쟁 발발을 초래하는 위험천만한 전쟁연습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이번 연습에 적용되는 작전계획 5027은 ‘북한군 궤멸’, ‘북정권 제거’, ‘통일여건 조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국제법에서 허용하는 자위권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게 된다.

북한은 “키 리졸브 한미연합연습을 임시 중단하면 핵실험을 임시 중단하겠다”고 제안했으나 한미당국은 이러한 제안마저 일축하면서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을 강행할 방침이다. 한미당국이 진정으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원한다면 북한의 제안을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실제 1992년 키 리졸브 훈련의 전신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한 사례가 있고 이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 이어졌다. 북한도 지난 싱가포르 북미 접촉에서 한미연합연습의 강도를 낮추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미당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되풀이되는 전쟁위기의 악순환을 끊고 한반도 핵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한미당국은 선제적으로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을 중단하거나 최소한 방어연습으로 규모를 축소하여 북한과의 신뢰를 구축하고 대화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분단과 대결을 끝내고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를 이루려면 남북·북미·6자회담 등 각급 대화를 재개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를 함께 실현시키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한반도 전쟁위기를 근원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불안정한 정전체제 속에서 공세적인 전쟁연습과 군비 경쟁으로는 결코 평화를 지킬 수 없다. 우리는 남북대화를 가로막아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을 불러오는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의 중단을 강력히 촉구한다. 

2015년 3월 2일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노동자연대, 노동인권회관, 농민약국,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미군문제연구위원회, 민주수호공안탄압대책회의,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불교평화연대, 사월혁명회, 사회진보연대, 시민평화포럼,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우리마당,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예수살기,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사), 전국빈민연합,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전태일노동대학, 전태일재단,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통일광장, 통일맞이, 통일의길, 평택평화센터,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 평화네트워크, 평화재향군인회, 평화통일시민연대,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유족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국진보연대, 한국청년연대,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서울진보연대, 경기진보연대, 광주진보연대, 전남진보연대, 경남진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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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3/03 11:26
  • 수정일
    2015/03/03 11:2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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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 “타격수단들 발사전 상태 유지” (전문)
이계환 기자  |  k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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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2  10: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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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군 총참모부가 2일 대변인 성명을 발표, 한.미 연합군사연습에 대해 경고했다. [캡쳐-노동신문]

 

2일부터 시작된 한미연합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에 대해 북한이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조선중앙통신> 2일발에 따르면,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1일 대변인 성명에서 “우리 혁명무력은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의 위험천만한 북침실전연습이 일단 개시된 이상 벌어지고 있는 엄중한 사태를 절대로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성명은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은 우리 혁명무력의 지상, 해상, 수중, 공중, 사이버공간의 모든 타격수단들이 언제나 지정받은 목표들을 조준하고 발사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성명은 “우리 혁명무력은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에 대한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의 사소한 침해도 절대로 용서치 않는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는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은 평화의 간판을 들고 벌리는 횡포무도하고 악랄한 침략책동이 이 밝은 세상에서 그 언제 가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성명은 2일부터 4월 24일까지 계속될 이번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에 대해 “조선반도유사시 미제침략군의 신속한 투입과 전방전개, ‘연합군’ 무력에 의한 불의적인 선제공격과 우리 수뇌부의 ‘제거’, ‘평양점령’ 목표까지 달성하기 위한 위험천만한 북침핵전쟁연습”으로 규정했다.

특히, 성명은 “한마디로 ‘키 리졸브’, ‘독수리’ 합동군사연습은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이며 추호도 용납할 수 없는 불순적대세력들의 전쟁도발광기”라고 극도로 비난했다.

우리 혁명무력은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의 무모한 새 전쟁도발책동을 절대로 수수방관하지 않을것이다
-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성명

내외의 강력한 항의와 규탄에도 불구하고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은 3월 2일부터 모험적인 《키 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연습을 또다시 강행하는 길에 들어섰다.
이미 연습에 투입하기로 된 미제침략군의 륙,해,공군작전집단들이 남조선과 그 주변지역에 기동전개되였으며 미국상전의 전쟁머슴인 남조선괴뢰군의 방대한 무력이 완전한 출전태세에 진입하였다.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오스트랄리아와 카나다를 비롯한 추종국가군대들까지 전쟁광기에 들떠 합세하고있다.
4월 24일까지 계속될 이번 《키 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연습은 조선반도유사시 미제침략군의 신속한 투입과 전방전개,《련합군》무력에 의한 불의적인 선제공격과 우리 수뇌부의 《제거》,《평양점령》목표까지 달성하기 위한 위험천만한 북침핵전쟁연습이다.
사태의 엄중성은 이번 북침실전연습이 미제의 전쟁괴수 오바마가 얼마전 게거품을 물고 우리가 선택한 사상을 거세하고 우리가 세운 제도를 《붕괴》시키는것이 미합중국의 정책적목표라고 꺼리낌없이 공언한데 이어 감행되고있다는데 있다.
한마디로 《키 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연습은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에 대한 로골적인 침해이며 추호도 용납할수 없는 불순적대세력들의 전쟁도발광기이다.
결국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이 제창해대고있는 이번 전쟁연습의 그 무슨 《방어적성격》이라는것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무모한 핵선제공격기도를 가리우기 위한 간교한 외피이며 《년례적》이라는 요설은 북침의 불의성을 은페해보려는 연막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조선반도의 정세는 또다시 위기일발의 험악한 전쟁상황에로 치닫고있다.
조성된 사태와 관련하여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다음과 같은 원칙적립장을 내외에 천명한다.
1. 우리 혁명무력은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의 위험천만한 북침실전연습이 일단 개시된 이상 벌어지고있는 엄중한 사태를 절대로 수수방관하지 않을것이다.
우리는 이미 미제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이 더욱더 횡포해지고있는 조건에서 우리에 대한 오바마일당의 비방수위가 높아지는것만큼,우리에 대한 비렬한 제재와 압박의 도수가 악착해지는것만큼,우리를 겨냥한 침략전쟁연습규모와 범위가 확대되는것만큼 그에 대처한 초강경조치를 취해나갈것이라고 세계앞에 선언한바 있다.
강행되고있는 이번 《키 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연습은 극단의 지경에 이른 미제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이 또다시 위험한 실전행동으로 번져지고있다는것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연습의 침략성과 공격적인 성격이 백일하에 드러난 이상 수수방관할 우리 군대가 아니다.
우리의 혁명무력은 빈말을 모른다.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은 우리 혁명무력의 지상,해상,수중,공중,싸이버공간의 모든 타격수단들이 언제나 지정받은 목표들을 조준하고 발사전상태를 유지하고있다는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2. 우리 혁명무력은 우리의 령토,령공,령해에 대한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의 사소한 침해도 절대로 용서치 않는다는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이 상용무력에 의한 침략전쟁을 걸어온다면 우리 식의 상용전쟁으로,핵무력에 의한 침략전쟁을 도발한다면 우리 식의 강력한 핵타격전으로,싸이버전에 의한 《붕괴》를 시도한다면 우리 식의 령활무쌍한 싸이버전으로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의 최종멸망을 앞당겨오자는것이 우리가 선택한 단호한 결심이라고 내외에 선포하였다.
이 결심을 실현하기 위하여 세기와 년대를 넘으며 복수의 총검을 벼려온 우리의 백두산혁명강군이다.
《키 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연습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에 대한 가장 로골적인 침해이며 엄중한 군사적도발이다.
만약 우리의 자주권이 행사되는 그 모든 곳에 단 한발의 도발불찌라도 튕긴다면 그 즉시 맞받아 타격한다는것이 우리 혁명무력의 드팀없는 립장이다.
3.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은 평화의 간판을 들고 벌리는 횡포무도하고 악랄한 침략책동이 이 밝은 세상에서 그 언제 가도 통하지 않는다는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주권국가의 수도를 《석권》하고 수뇌부《제거》에 목적을 둔 《키 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연습이면서도 그것을 《방어적》이며 《년례적》이라고 강변하는 날강도가 바로 미국이다.
원래 미국의 흉악한 본심은 세계를 아메리카합중국이 좌지우지하고 미국식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판을 치는 일극세계로 만들려는데 있다.
《키 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연습을 비롯하여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날을 따라 우심하게 벌어지고있는 미제의 모든 군사적움직임도 우리만을 노린 침략책동이 아니다.
폭넓은 대륙포위망을 형성하고 미국의 전횡과 독단만이 허용되는 극동지역,아시아대륙을 만들어보려는것이 흉악한 미국의 확대된 대조선적대시정책의 본심이다.
이러한 책동이 조선반도를 포함한 이 밝은 세상에서 통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처사는 없을것이다.
미제의 침략적본성이 더욱더 포악해질수록,그에 추종하여 잔명을 부지해보려는 남조선괴뢰들의 동족대결책동이 극심해질수록,그에 추종하는 불순적대세력들의 맹종맹동이 우심해질수록 우리 혁명무력은 원쑤격멸의 총검을 더 높이,더 으스러지게 틀어잡을것이다.
침략과 전쟁을 일삼는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을 다스릴 유일무이한 수단은 대화도 평화도 아니며 오직 무자비한 불세례뿐이다.
우리 혁명무력은 무모하게 번져지고있는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의 위험한 전쟁소동을 고도의 전투적긴장성을 가지고 예리하게 주시할것이다.
미제침략자들과 남조선괴뢰들,그 추종세력들은 《키 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하는 대가가 얼마나 만회할수 없는 후과를 초래하는가를 두고두고 후회하며 통탄하게 될것이다.

주체104(2015)년 3월 1일
평 양 (끝)

(출처-조선중앙통신 2015.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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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대전결심 표명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연설

 
 
한호석의 개벽예감 <15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03/02 [10:40]  최종편집: ⓒ 자주일보
 
 

 

▲ <사진 1> 2015년 2월 23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의 지도 밑에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가 평양에서 진행된 소식을 일제히 보도하였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은 그 회의를 지도하고, 역사적인 연설을 하였다. 조선이 '통일대전의 해'로 정한 올해 2월 하순에 조선의 최고군사의결기관이 확대회의를 진행하고, 조선의 최고영도자가 그 회의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한 것은 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 자주일보

 

 

‘통일대전의 해’에 진행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언론보도를 통해 이미 알려진 것처럼, 지난해 조선은 올해 2015년을 ‘통일대전의 해’로 정한 바 있다. 이 사실에 관해서는 미국의 관영선전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014년 9월 22일에 처음 보도하였고, 2014년 10월 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된 한국 국방부의 국정감사 업무보고 자료에 서술되었으며, 최윤희 한국군 합참의장도 2014년 11월 12일에 언급한 바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올해를 ‘통일대전의 해’로 정한 조선에서 최근에 일어나는 일들을 결코 무심히 바라볼 수 없다. 특히 2015년 2월 23일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한 중대소식을 신중하고 진지한 태도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 날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의 지도 밑에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가 평양에서 진행된 소식을 보도하였다. <사진 1>


그 중대소식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려면, 조선의 군령도체계에 대한 약간의 사전이해가 요구된다. 조선의 군령도체계는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로 이어지는 체계다. 당중앙군사위원회는 군사부문의 전략과 방침을 의결하고, 국방위원회는 군사부문의 전략과 방침에 관한 당중앙군사위원회 결정사항을 집행하고, 최고사령부는 당중앙군사위원회 결정에 의거하여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작전명령을 전군에 내린다. 조선의 최고영도자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국방위원회 위원장, 최고사령관으로서 군사부문의 전략과 방침에 관한 정치적 결정과 실무집행을 지도하고,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전군과 전민에게 작전명령을 내린다.  


이런 사전이해를 갖고 위의 소식을 다시 읽어보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이번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군사전략 및 방침에 관한 중대문제가 결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이 ‘통일대전의 해’로 정한 올해 2월 하순 조선의 최고군사의결기관이 군사전략 및 방침에 관한 중대문제를 결정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이번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결정된 중대문제를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않았으나, 이전 시기에 진행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들에 관한 보도내용과 이번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내용을 서로 비교해보면 이번에 결정된 중대문제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김정은시대의 첫 번째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는 2013년 2월 3일에 진행되었다. 그 확대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군력강화에서 일대전환을 일으킬 데 대한 문제”였다. 그 회의에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은 “중요한 결론”을 하였다.


김정은시대의 두 번째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는 2013년 8월 25일에 진행되었다. 그 확대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혁명무력의 전투력을 더욱 높이고 나라의 방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하기 위한 실천적 문제들”이었다. 그 회의에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은 “중요한 결론”을 하였다.


김정은시대의 세 번째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는 2014년 4월 27일에 진행되었다. 그 확대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조선인민군을 “백두산혁명강군으로 더욱 강화발전시키는 데서 나서는 문제들”이었다. 그 회의에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은 “중요한 결론”을 하였다.


위에 열거한 회의날짜를 보면, 이번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는 김정은시대에 네 번째로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번 회의에서 결정된 문제는 “국가방위사업전반에서 일대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중요한 전략적 문제들”이었다.


여기서 ‘일대전환’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 용어는 2013년 2월 3일에 진행된 김정은시대의 첫 번째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에서 나왔고, 이번에 두 번째로 나왔다. 2013년 2월 3일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가 진행된 때로부터 8일 뒤인 2월 12일 조선이 3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한 것을 생각하면, 당시에 쓰인 ‘일대전환’이라는 말이 지하핵실험을 뜻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번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에 나온 ‘일대전환’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2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 용어는 지하핵실험과 같은 획기적이고 충격적인 군사행동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국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세계일보> 2015년 2월 26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미국은 조선이 ‘키리졸브-독수리연습’이 끝나는 4월 중순 이후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고 5월에 핵실험을 실시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하였는데, 조선의 그러한 움직임은 조선이 올해 2015년을 ‘통일대전의 해’로 선포한 일련의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이 보도기사에 나오는 ‘장거리미사일’ 발사라는 말은 인공위성 발사를 뜻하는 것이므로, 용어사용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위의 보도기사내용을 더 정확하게 서술하면, 조선은 4월 하순 인공위성을 발사할 것으로 예견되고, 미국은 조선의 위성발사에 반발하여 또 다시 대북제재를 추가할 것으로 예견되고, 조선은 미국의 그런 적대행동을 ‘징벌’하기 위해 5월에 지하핵실험을 실시할 것으로 예견된다는 것이다. ‘독수리연습’ 끝나는 날은 4월 24일로 예정되었다.


만일 상황이 한국정부 소식통이 위와 같이 예견한 대로 전개되면, 미국은 조선의 지하핵실험에 반발하여 연속적으로 대북제재를 추가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초긴장상태에 빠진 현 정세가 급속히 격화되면서 조미적대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전쟁위기에 휩싸일 것이 확실해 보인다. 동서고금의 전쟁사를 살펴보면, 극도의 전쟁위기가 조성되는 경우 전쟁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15년 1월 21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y V. Lavrov)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가 준비하고 있는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석하는 문제를 조선측에서 수락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의 전승 70주년 기념행사는 오는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세계 각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진행될 것인데,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 미국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그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 러시아 외무장관의 위와 같은 발언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미적대관계가 극도로 격화되는 시점에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자신의 첫 대외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진 2>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은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연설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통일대전전략, 군사기구체계를 전시상황에 맞춰 정간화하고 개편하기 위한 문제, 통일대전의 수행방식 및 작전전술, 군대의 모든 사업을 전시상황에 맞춰 진행하는 문제 등에 대해 언급하였다. ©자주일보

 

 

통일대전결심 표명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의 ‘력사적인 연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이 이번에 진행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연설하였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은 앞서 진행된 세 차례의 당중앙위원회 확대회의들에서는 각각 ‘중대한 결론’을 하였는데, 이번에 진행된 확대회의에서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였다. 조선의 최고영도자는 매우 특별하고 중대한 계기에 역사적인 연설을 하는데, 이번 역사적인 연설은 조선의 최고영도자가 최고군사의결기관인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한 연설이므로 그 의미가 더욱 중대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 2>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이 최고군사의결기관 확대회의에서 한 역사적인 연설에는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되는 군사기밀이 들어있을 것이므로,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그 연설내용 전부를 보도하는 일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이번에 보도한 것은 그 역사적인 연설에서 발췌한 일부내용인데, 그 가운데서 특히 정독해야 할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은 역사적인 연설에서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앞으로의 군건설방향을 명확히 규정”하였다고 한다. 조선에서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뜻하고, ‘군건설방향’은 군사전략을 뜻하므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은 그 연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군사전략을 밝힌 것이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이 역사적인 연설에서 언급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 가운데 지금까지 조선의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은 세 가지인데, 후계자에게 끝까지 충성하라는 유훈,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더욱 힘쓰라는 유훈, 조국통일대전에서 반드시 승리하라는 유훈이다. 이 유훈들 가운데서 군사문제에 직결되는 것은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하라는 유훈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이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하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군사전략, 즉 통일대전전략을 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올해를 ‘통일대전의 해’로 정한 조선에서 진행된 최고군사의결기관 확대회의에서 최고영도자가 역사적인 연설을 통해 통일대전전략을 밝힌 것은 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둘째,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은 역사적인 연설에서 “인민군대의 기구체계를 정간화하며 임의의 시각에 최고사령부의 전략적 기도를 실현할 수 있게 기구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시였다”고 한다. 이 인용문을 정독하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이 임의의 시각에 최고사령부의 전략적 기도를 실현할 수 있게 군사기구체계를 정간화하고 개편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밝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인민군이 임의의 시각에 최고사령부의 전략적 기도를 실현할 수 있게 한다는 말은, 조미적대관계가 극도의 전쟁위기에 휩싸일 때 조선인민군이 전술핵탄과 정밀타격수단을 결합시킨, 상상을 초월한 무징후불시기동-선제기습전법으로 미국군, 한국군, 일본자위대를 순식간에 동시 제압함으로써 매우 짧은 시간에 전쟁피해를 극소화하여 통일대전을 끝낼 수 있게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선의 그런 빨찌산식 핵전법에 대해서는 이전에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여러 차례 논한 바 있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동서고금의 전쟁사를 살펴보면, 군대를 평시체제에서 전시체제로 개편하는 것이야말로 전쟁준비가 완성되는 최종단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조선에서는 군사기구체계를 전시상황에 맞게 개편함으로써 통일대전준비를 최종적으로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은 역사적인 연설에서 “앞으로 미제와 반드시 치르게 될 전쟁수행방식과 그에 따르는 작전전술적 문제들을 밝혀주시고 인민군대의 정치, 군사, 후방, 보위사업을 비롯한 모든 사업을 전시환경에 접근시켜 진행할 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고 한다.


주목하는 것은, 조선의 최고영도자가 최고군사의결기관 확대회의에서 한 역사적인 연설에서 조선은 “미제와 반드시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인용구에 들어있는 ‘반드시’라는 말은,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의 통일대전결심이 얼마나 확고한지 말해준다. 통일대전에서 승리하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올해 반드시 관철하려는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의 의지가 통일대전결심을 굳히게 한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최고영도자의 확고한 통일대전결심에 대해 반복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를테면, 지난 2월 27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새로 꾸린 근위부대관을 돌아보면서 “인민군대의 모든 부대들이 근위부대운동을 힘있게 벌림으로써 미제와 반드시 치르게 될 앞으로의 싸움에서 미제의 성조기와 추종세력들의 기발을 걸레짝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고 한다. 최고영도자를 중심으로 군대와 인민이 일심단결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조선에서 최고영도자의 통일대전결심은 곧 군대와 인민의 통일대전결심으로 전화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장은 역사적인 연설에서 통일대전의 수행방식 및 작전전술을 제시하였고, 조선인민군의 모든 사업을 전시상황에 맞춰 진행하도록 지시하였다. 올해를 ‘통일대전의 해’로 정한 조선에서 진행된 최고군사의결기관 확대회의에서 최고영도자가 역사적인 연설을 통해 통일대전의 수행방식 및 작전전술을 제시하고, 군대의 모든 사업을 전시상황에 맞춰 진행하도록 지시한 것은 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난 2월 27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새로 꾸린 근위부대관을 돌아보면서 “조국통일대전을 눈앞에 둔 오늘의 정세는 모든 부대들이 전쟁에 대처할 수 있는 정치사상적, 군사기술적, 물질적 준비를 충분히 갖춘 근위부대가 될 것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했는데, 통일대전을 눈앞에 두었다는 말은 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사진 3> 2015년 1월 18일부터 이틀 동안 싱가포르에서 조미회동이 진행되었다. 이 사진은 싱가포르회동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리용호 외무성 부상이 취재진 앞에서 발언하는 장면이다. 싱가포르회동에서 조선은 그 회동에 참석한 미국의 전직관리들을 통해 미국에게 마지막 중대제안을 전했으나, 상황을 오판한 미국은 조선의 마지막 제안을 일축하였고, 조선을 '해킹범죄국', '인권탄압국'이라고 비방하면서 '조선붕괴설'까지 꺼내드는 극단적인 적대행동을 취하여 조선의 대미적개심을 폭발시켰다. 그로써 통일대전을 향한 조선의 발걸음 더욱 빨라졌다.     © 자주일보


 
미국의 전향적 태도여부에 따라 소형전술핵탄생산도 중단할 수 있다는 조선의 마지막 제안


2015년 1월 18일부터 이틀 동안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조미회동에 참석한 조셉 디트라니(Joseph R. DeTrani) 전 미국 국가정보국 산하 비확산센터 소장의 말에 따르면, 그 회동에 참석한 리용호 외무성 부상은 미국이 ‘키리졸브-독수리연습’을 중단하면 조선은 그에 상응하여 핵실험을 유예하고, 핵탄소형화 노력도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이 미국의 북침전쟁연습 중단에 상응하여 핵실험을 유예할 뿐 아니라 소형전술핵탄생산도 중단하겠다는 매우 놀랍고, 획기적인 제안을 미국측에 전했음을 말해준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조선이 미국에게 보낸 제안에서 핵실험 유예보다 소형전술핵탄생산 중단에 강조점이 찍혀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진 3> 


미국이 북침전쟁연습을 중단하면, 그에 상응하여 소형전술핵탄생산을 중단하겠다는 조선의 제안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이전에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들에서 거듭 논해온 것처럼, 조선에서 말하는 통일대전의 운명적 시각이 오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정밀타격수단과 결합된 핵폭발력 10kt 이하의 소형전술핵탄들을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널려있는 미국군기지들을 향해 동시 발사하는 무징후불시기동-선제기습전법을 펼칠 것으로 예견되는데, 만일 미국이 북침전쟁연습을 중단하는 경우 조선은 통일대전에서 결정적인 타격수단으로 사용될 소형전술핵탄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논할 필요가 있다.


첫째, 조선의 핵무력에 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자의적 추측발언만 남발하는 미국의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조선이 소형전술핵탄을 만들 수 있는가 또는 아직 만들지 못하는가 하는 기술개발수준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소형전술핵탄 제조기술은 미국이 이미 반세기 전에 개발한 기술인데, 자기들이 반세기 전에 개발한 기술을 조선은 아직도 개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제멋대로 추측하는 것은 조선의 핵탄기술을 미국보다 반세기나 뒤쳐진 것으로 폄하하는 오만한 발상이다. 그들의 오만한 발상을 깨뜨리는 몇 가지 정보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파키스탄 핵개발 총책임자였던 압둘 카디르 칸(Adul Qadeer Khan)은 <워싱턴포스트> 2009년 12월 28일부 기사에서 “조선의 핵무기는 파키스탄의 핵무기보다 기술적으로 더 진보한 완벽한 핵무기다. 조선은 우리의 가우리미사일에 핵탄을 탑재할 수 있도록 (기술적)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가우리미사일에 탑재된 것은 500kg급 극소형전술핵탄이다. <교도통신> 2009년 3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대니얼 핑스턴(Daniel Pinkston) 국제위기그룹(ICG) 연구원은 조선이 중거리탄도미사일에 탑재하는 소형핵탄을 제조하였다는 정보를 미국과 한국의 정보당국이 입수했다고 말한 바 있다. <연합뉴스>는 “북한군 간부 출신 탈북자”의 말을 인용한 2009년 4월 1일부 보도기사에서 조선은 이미 1990년대 초에 250~500kg급 극소형전술핵탄을 연구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조선은 화성계열의 핵탄미사일들을 등장시킨 여러 차례의 군사행진을 통해 소형전술핵탄만이 아니라 극소형전술핵탄, 그리고 각개조준다핵탄두까지 작전배치하였음을 공개하였고, <로동신문> 2013년 5월 21일부 기사에서 “오늘 우리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핵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이처럼 명백한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오래 전에 알려졌는데도,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조선이 아직 핵탄소형화기술을 개발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으니, 그들의 정신상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둘째, 미국의 전향적 태도여부에 따라 소형전술핵탄생산을 중단할 수 있다는 조선의 의사표명은, 조선이 통일대전에 필요한 소형전술핵탄을 충분히 확보하였음을 암시한 것이다. 통일대전이 임박하였다고 말하는 조선이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줄, 결정적으로 중요한 타격수단을 충분히 갖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 타격수단생산을 중단하는 문제를 적국에게 제안할 리는 만무하다.


셋째, 미국은 조선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했는지 아니면 유예했는지를 조선과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서도 여러 가지 과학측정수단들을 통해 금방 알 수 있지만, 조선이 소형전술핵탄생산을 중단했는지 아니면 지속하는지는 조선과 의사소통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대북전쟁연습 중단문제와 조선의 소형전술핵탄생산 중단문제는 조선과 미국이 현재의 전쟁위기 속에서 직접협상을 재개할 마지막 계기로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을 오판한 미국은 조선을 ‘해킹범죄국’과 ‘인권탄압국’이라고 근거 없이 비방하면서 ‘조선붕괴설’까지 다시 꺼내드는 매우 도발적인 정치공세에 집착하는 한편, 조선이 싱가포르회동에서 제안한 마지막 제안마저 일축해버렸다. 이것은 미국이 현재 조성된 심각한 전쟁위기를 오판하여 조선의 대미적개심을 폭발하게 만든 적대행동이다. 지난 2월 4일에 발표된 ‘대조선적대시정책에 환장이 된 날강도 미제는 기필코 종국적 멸망의 쓴맛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제목의 조선국방위원회 성명은 대미적개심이 폭발한 조선의 분위기를 가감 없이 전해주었다. 조선국방위원회는 그 성명에서 “이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패배만을 기록한 미국의 수치스러운 력사를 마감하게 될 종국적 멸망의 마지막 페지를 다른 곳이 아닌 미국땅에서 우리의 백두산총대로 보기 좋게 써주기로 결심하였다”고 밝히면서 “날강도 미제가 우리의 사상을 말살하고 우리의 제도를 <붕괴>시키려고 발악하는 한 미국것들과는 더는 마주앉을 필요도, 상종할 용의도 없다는 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이 내린 결단”이라고 못박았던 것이다. 그 성명이 <조선중앙통신> 웹싸이트에 게시된 시각, 대미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죽음을 미제침략자들에게’라는 제목의 진군가도 함께 게시되었다.  


조선의 대미적개심을 폭발시킨 미국의 적대행동은 올해를 ‘통일대전의 해’로 정한 조선을 통일대전의 길로 한걸음 더 떠밀었다. 이번에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통일대전에 관련된 중대문제들이 결정된 몇 가지 배경들 가운데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을 비방하는 정치공세에 계속 집착하면서 조선의 마지막 제안마저 일축해버린 미국의 도발적인 적대행동이 놓여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사진 4> 앤서니 블링큰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2월 10일 서울을 방문하였다. 이 사진은 그가 청와대를 찾아가 주철기 외교안보수석과 함께 찍은 것이다. 블링큰 부장관은 주한미국대사관 공보관에서 진행된 한국 대학생들과의 만남에서 조선이 국제사회에 합류하고 싶으면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 강변하였다. 미국이 강권과 전횡으로 지배하는 '국제사회'에 합류할 생각이 전혀 없는 조선에 미국 국무부 고위급 관리가 그렇게 말했다니, 미국 국무부의 현실인식수준은 너무 한심하다 아니할 수 없다.  ©자주일보

 

 

조선의 심각한 움직임에 대해 미국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조선이 ‘통일대전의 해’로 정한 올해 2월 하순에 진행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통일대전에 관련된 중대문제들이 결정된 지금, 미국은 조선의 그런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미국의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반응들에 눈길이 멎는다.


첫째, 미국 안보연구기관의 반응이다. <서울신문> 2015년 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11일 북조선문제전국위원회(National Committee on North Korea)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미국의 ‘조선전문가’ 80여 명은 조선이 싱가포르회동에서 미국에 전한 제안을 어떻게 보는가 하고 사회자가 물었을 때, 미국이 그 제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견해를 표명한 사람은 3분의 1이었고, 미국이 그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견해를 표명한 사람은 3분의 2였다고 한다.


조선의 마지막 제안이 북침전쟁연습 중단과 핵실험 유예를 맞바꾸자는 게 아니라 북침전쟁연습 중단과 핵실험 유예 및 소형전술핵탄생산 중단을 맞바꾸자는 것이었는데도 그 제안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폭발점으로 접근한 조미적대관계의 위험천만한 상태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조선에서 말하는 통일대전이 일어나면 미국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횡설수설로 시간과 정력을 허비한 미국의 ‘조선전문가’들의 모습은 너무 한심해 보인다.


둘째, 미국 국무부의 반응이다. 지난 2월 10일 서울에 나타난 앤서니 블링큰(Anthony Blinken)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주한미국대사관 공보관에서 진행된 한국 대학생들과의 만남에서 “북은 자기들이 어떠한 미래를 원하는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가난하고 고립된 나라로 남아있을 수도 있고, 국제사회에 다시 합류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북이 핵무기를 보유할 뿐 아니라 남측을 손쉽게 타격할 수 있고, 결국에는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의 개발과 배치를 계속 고집한다면 국제사회에 합류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4>


미국이 강권과 전횡으로 지배하는 ‘국제사회’에 휘말려들 생각이 조선에게 털끝만큼도 없는데, 서울에 나타난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조선이 ‘국제사회’에 합류하고 싶으면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발언을 늘어놓았으니, 그가 과연 제 정신으로 그런 소리를 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이 발언에서 드러난 것처럼, 조미적대관계에 대한 국무부의 인식수준도 ‘조선전문가’들의 인식수준처럼 안일하기 그지없다.  


셋째, 미국 연방의회의 반응이다. 지난 2월 27일 미국 연방하원 외교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북제재강화법안이 통과되어 연방하원 본회의에 상정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연방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조선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이 증대되고 있으므로 조선의 국제금융활동을 차단하기 위한 제재를 강화하여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강변하였다.


지금 조선은 미국을 ‘최후결전’으로 꺾어버리겠노라고 벼르고 있는데,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미국 연방의회에서는 실효도 없는 대북제재강화조치로 조선을 압박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이 넘실대고 있다.

 

▲ <사진 5> 지난 2월 1일부터 주한미공군은 오산공군기지에 주둔하는 미국군병사들에게 핵전쟁과 생화학전에서 사용될 방호복을 나누어주고 착용연습을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미국군이 조선의 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인정하고 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음을 말해준다. 이 사진은 지난날 이라크전쟁에서 방호복을 입은 미국군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 하지만 방호복을 걸쳐입고 조선의 선제핵타격에서 살아남겠다는 생각 자체가 전쟁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기막힌 발상이다.     © 자주민보


넷째, 미국군의 반응이다. <문화일보> 2015년 2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1일부터 주한미공군은 오산공군지에 주둔하는 미국군병사들에게 핵전쟁과 생화학전에서 사용되는 방호복을 나누어주고, 그것을 착용하는 연습을 실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주한미공군 병참전략부대장은 “북의 위협이 고조되고 있어 개인보호장비를 지급해야 한다. 훈련목적은 실전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북과의 접경지대에서는 핵전쟁 및 생화학전 대응태세를 24시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5>


방호복을 걸쳐 입고 조선의 선제핵타격에서 살아남겠다는 생각 자체가 전쟁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기막힌 발상이지만, 주한미공군이 조선의 선제핵타격에 대비한 비상훈련에 돌입한 것은 미국군이 조선의 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인정하고 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음을 말해준다.


미국군의 그런 심각한 상황인식은 지난 2월 27일 한반도 근해에서 벌어진 해상작전연습에도 반영되었다. 미국은 일정을 앞당겨 ‘독수리연습’의 일환으로 시작된 해상작전연습에 항모타격단을 파견하지 못하고, 9,200t급 미사일구축함 마이클머피호(USS Michael Murphy)만 보냈다. 미국군이 올해 북침전쟁연습에 항모타격단을 파견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현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한국해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5년 2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함정 10여 척으로 편성된 한국해군 남해함대와 한국해경 소속 함정 2척이 제주도 남단에서 남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해양관측기지 이어도에서 해상전술기동을 연습하는 동안 미사일구축함 마이클머피호는 “이어도 주변에서 기동한다”는 것이다. 이 흥미로운 발언은 그 구축함이 한국해군 남해함대와 함께 해상전술기동을 연습하는 게 아니라, 한국해군 남해함대 주변에서 경계를 서준다는 뜻으로 들린다.


마이클머피호는 2월 25일에 목포항에 입항하였다가 2월 27일 전술기동연습에 참가한 한국해군 남해함대 주변을 빙빙 돌면서 경계나 서주다가 해상차단작전연습에는 참가하지 않고 조용히 떠나갔다. 3월 2일부터 시작된 해상차단작전연습에는 3,450t급 연안전투함 포트워스호(USS Fort Worth) 한 척만 참가하였다.


조선의 핵무력을 제거할 ‘맞춤형 억제전략’을 적용한다고 큰 소리를 치면서 공중핵타격에 동원할 B-52 전략폭격기를 괌(Guam)에서 한반도 상공으로 불시에 출격시켰던 지난해의 북침전쟁연습 분위기는 올해 찾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대조적으로 바뀐 미국군의 모습은 올해를 ‘통일대전의 해’로 정하고 통일대전결심을 굳힌 조선의 단호한 태도 앞에서 미국이 미증유의 전쟁공포를 느끼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전쟁으로 격돌하기 전부터 자기들의 사상정신력이 미국을 압도하게 될 것이라는 조선의 자신감 넘치는 신심발언들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 까닭을 이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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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범죄수익 환수, 2조원 이상의 가치 있다”

[인터뷰] ‘이학수법’ 발의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범죄수익 국가환수 원칙 세워 부의 불평등 바로잡아야”
 
입력 : 2015-03-01  22:31:51   노출 : 2015.03.02  00:11:41
조윤호 기자 | ssain@mediatoday.co.kr
 

삼성의 심장부를 겨냥하는 법안 하나가 최근 발의됐다. 범죄자의 불법이익을 환수하는 ‘불법이익환수법’이다. 이 법은 삼성을 겨냥해 ‘이학수법’이라 불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3남매가 취한 부당이익을 환수하는 내용의 이 법은 삼성의 승계 문제를 건드리는 등 여러 뇌관을 담고 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에 서명한 국회의원 104명에는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 의원들도 포함돼 있다. ‘이학수법’은 삼성의 대국회로비를 넘을 수 있을까. 미디어오늘이 지난 2월 27일 박영선 의원을 만났다.

“이학수법, 쉽지 않지만 결국 만들어 진다”

박 의원은 이학수법의 국회통과 여부에 대해 “쉽지 않다”며 과거 이학수법과 유사한 법들을 예로 들었다. 박 의원은 “삼성생명법은 상정도 안 되고, 자사주 가지고 인적분할 장난하는 거 막는 공정거래법·상법 개정안도 계류 중이다. 금산분리법 통과시키는데도 2년이 걸렸다. 재벌의 특혜나 지배구조 관련된 법들은 국회통과가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 지난 2월 13일 이학수법 기자간담회를 진행 중인 박영선 의원. 사진=박영선 의원실 제공
 

박 의원은 “하지만 언젠가 만들어질 것이라 본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박 의원은 “17대 때 ‘다중대표소송제’ 관련법을 냈는데 처음 그 법이 말도 안 된다고 했으나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일감몰아주기 관련법도 10년 가까이 흐지부지되다가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며 “이학수법은 그 때에 비해 오히려 ‘필요하다’ ‘해봄직하다’는 반응이 많다”고 밝혔다.

이 법안에 국회의원 104명이 서명했다. 많아 보이지만 법안을 통과하긴 부족한 수다. 더욱이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를 비롯해 최고위원들이 법안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야당 지도부가 소극적이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박 의원은 “(서명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았다. 100명만 서명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넘겼다”며 “설 연휴 직전에 제출하는 바람에 귀성하느라 서명 못한 의원들도 있다. 연휴 이후였으면 새누리당 의원들 포함해 좀 더 많은 의원들이 서명했으리라 본다”고 설명했다. 야당 지도부가 소극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최고위원 중에서도 서명하고 싶었는데 연락이 안 닿아 하지 못한 의원들이 많다”며 “지도부가 법을 좌지우지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학수법’의 계기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김인주 전 삼성선물 사장이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이재용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 삼성 3남매에 헐값으로 몰아줬고 이 과정에서 이들은 시세차익을 얻었다. 이학수 전 부회장과 김인주 전 사장은 2009년 특검에서 이건희 회장과 함께 배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학수법이 통과될 경우 삼성 일가의 부당이익 2조 원 가량을 환수할 수 있다. ‘범죄자와 정황을 알면서 범죄수익을 취득한 자 및 범죄의 수혜자가 취득한 수익, 수익에서 유래한 재산’이 환수범위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이 넘어야할 가장 큰 산은 바로 ‘삼성’이다. 국회 안에 삼성의 막강한 로비팀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박 의원은 이 법이 삼성의 승계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기를 쓰고 막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자료=박영선 의원실 제공
 

(관련 기사 : <삼성이 떠들면 법이 된다… “수천명 임원 모두 로비스트”>)

당장 경제지들을 중심으로 이학수법에 반대하는 사설이 쏟아지고 있다. 박 의원은 “들은 이야기가 있다. 언론사에 ‘사설을 쓰지 말아달라’ ‘기사를 내려주면 어떻게 해주겠다’ 이런 전화들이 왔다는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듣고 있다”며 “재벌의 권력이다. 언론이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17대 처음에 국회의원 됐을 때 삼성의 대국회로비는 굉장히 심했다”며 “한동안 없어졌다가 요새 다시 심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직접 연락을 받았나’라는 질문에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받았다”고 답했다.

박영선 의원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들은 내용, 그리고 몇몇 언론이 사설을 통해 이 법에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소급입법’이며 ‘이중처벌’이라는 논리다. 박 의원은 소급입법에 대해 “이미 우리 법에 소급 입법에 대해 규정돼 있다.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 부칙 적용례를 보면, ‘이 법 시행 전 발생한 경우에도 적용한다’고 나와 있다.

박 의원은 이건희 회장 등이 유죄판결을 받았기에 이중처벌이라는 주장에 대해 “이학수법은 민사적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형벌상의 몰수가 아니라 민사적 절차에 의한 환수이기에 문제없다는 것. 삼성이 이미 증여세 등을 통해 사회에 환원했다는 주장도 있다. 박 의원은 “증여세는 세금이고, 범죄수익 환수와는 별개다. 그걸 막 섞어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여러 논리가 안 먹히자 이제 ‘큰 정치를 하려면 이 정도는 넘어가야하는 거 아니냐’ ‘야당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안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이는 완전히 협박이다. 경제정의와 사회정의를 위해 국회의원이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이런 이야기를 듣고 반드시 이 법을 통과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상속세·증여세 어떻게 하면 안 낼지 연구 그만 하고 기술연구 해야”

한국에는 이미 ‘범죄수익은닉법’이 있다. 그럼에도 ‘이학수법’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박 의원은 “재산으로 인한 범죄, 피해자가 발생한 범죄는 범죄수익이 생겨도 환수하지 못하게 한 범죄수익은닉법의 사각지대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삼성SDS 사건은 계열사가 갖고 있던 주식을 이학수 등 여섯 명이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해 나눠가진 것이다. 계열사가 대주주들을 고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했다”고 강조했다.

범죄수익이 국고로 환수된다는 점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박 의원은 “피해자 스스로 구제하게 한 것이 기존 법의 사각지대”라며 “국가가 환수해 피해자구제기금을 만든다. 이걸 세금 형태로 사회에 환원할지 말지는 법원에서 결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또한 “범죄로 인한 수익은 국가가 환수해야한다는 기본 원칙을 천명하는 것이 경제정의와 사회정의를 위해 좋다”며 “청소년들이 요즘 10억을 벌 수 있으면 감옥가도 좋다고 생각한다지 않나. 이런 범죄를 방치하면 이런 생각이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의원은 “부의 불평등, 세금의 불평등 문제로 국민들이 참을 만큼 참았다. 정치권에서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분노가 굉장히 위험한 방향으로 폭발할 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학수 등과 달리 이재용 3남매는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재산까지 환수하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 의원은 “이 사각지대를 방치하면 범죄를 저질러 혜택을 재벌 3-4세에게 가게 하는 일이 반복 된다”며 “당시 판결문을 보면 사채발행의 목적이 이재용 삼남매에게 주식을 증여하기 위한 것이라 나와 있다. 의도된 범죄“라고 강조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박 의원은 “이제 곧 재벌3세의 시대가 펼쳐진다. 재벌3세들이 리더십을 확보하지 못하면 회사가 제대로 갈 수 없다”며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세습된다고 했을 때 계속해서 ‘당신은 세금도 제대로 안 내고 불법행위로 인해 돈을 모았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이 리더십 구축에 도움이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박영선 의원은 1999년 경제부 기자로 삼성SDS 사건을 취재했다. 그는 “그 사건에 대해 리포트해서 9시 뉴스데스크에 나가기로 했는데 방송이 안 나갔다. 그 다음날 물어봤더니 리포트 테이프가 없어졌다고 하더라”며 “다시 만들어서 건네주고, 뉴스데스크에 방송이 나갈 때까지 지켜봤던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취재할 때도 이 부의 불평등 관한 원칙을 세우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세금이 안 걷히고 복지를 못한다고 하는 상황인데, 여전히 가진 사람들한테 특혜를 주고. 불법행위로 자본을 세습하는 것이 용인돼선 안 된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법은 직접적으로 삼성을 겨냥하고 있지만 사실 대상은 한국의 재벌 대기업 전체다. 박 의원은 “이 법이 통과되면 재벌이 범법행위를 해서 재산을 상속해야겠다는 생각은 고칠 수 있지 않을까”라며 “범법행위를 허용해주니 재벌들이 어떻게 하면 상속세를 안 낼지, 증여세를 안 낼지 연구하는데 쓰는 에너지가 너무 많다. 그 시간에 기술 개발하고 마케팅전략을 세워야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진상조사특위, 지난 9월에 시작됐더라면…”

박영선 의원은 ‘삼성 저격수’ 이전에 원내대표까지 지낸 정치인이다. 정치쟁점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박 의원을 만난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병기 국정원장을 비서실장에 내정하고 윤상현·김재원 등 ‘친박의원’들은 정무특보단에 임명했다. 박 의원은 “아쉬움이 많은 인사”라며 “얼마나 사람이 없었으면 비서실장에 8개월 밖에 안 된 국정원장을 시킬까. 현역의원들을 정무특보에 선임해 옥상옥의 구조를 만드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의 지난 2년에 대해 묻자 박 의원은 “이미 점수가 다 나와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잘했다’ 30%, ‘못 했다’ 60%가 평균이다. 2년 전보다 삶이 나아졌느냐는 잣대로 봤을 때 내 삶이 나아졌다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라고 반문했다.

   
▲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사진=박영선 의원실 제공
 

박영선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주도했다. 당시 유가족의 의견을 대변하지 못한 채 ‘야합’을 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박 의원은 이에 대해 “유가족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백퍼센트 다 가질 순 없다”며 “당시 진상조사특위가 꾸려져서 돌아갔으면 지금처럼 이렇게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특위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지난해 9월부터는 특위가 돌아갔어야 한다. 특검은 그 이후의 문제”라며 “그런데 그 때 누군가가 유가족들에게 특검이 마치 중요한 것처럼 잘못 입력을 시켰다고 본다. 세월호 문제 해결의 핵심은 진상조사특위”라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어 “지금은 언론이 아무도 세월호에 대해 감시하지 않는다. 9월에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고 진상조사특위도 지금처럼 무력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참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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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 - 천만의 합창' 날개짓 시작

'천만의합창 국민위원회' 출범.."우리는 꿈을 가졌습니다"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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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1  20: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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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우리의소원 ‐ 천만의 합창 준비위원회’는 1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뜨락광장에서 200여 명의 추진위원이 모인 가운데 ‘천만의합창 국민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 [사진제공 - 천만의합창준비위]
역사상 최대의 통일행사가 될 <천만의 합창 ‘나비 날다’>가 출범식을 갖고 날개짓을 시작했다.

 

‘2015 우리의소원 ‐ 천만의 합창 준비위원회’는 1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뜨락광장에서 200여 명의 추진위원이 모인 가운데 ‘천만의합창 국민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

‘천만의합창 국민위원회’ 사무국은 1일까지 1,945명의 추진단을 목표로 모집한 결과 성악가 조수미, 소설가 한수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부영 전 의원, 정관용 시사평론가 등 1,463명(추진단 가입 744명 포함)의 호응이 있었다고 밝혔다.

<천만의 합창 ‘나비 날다’>는 8월 15일 오후 8시 15분 한국과 전 세계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고, 이를 인터넷과 위성 등을 통해 생중계하는 프로젝트로 필요한 재원 100억원을 천만 명이 천 원씩을 내서 충당한다는 구상이다.

 

   
▲ '나비 날다'에는 청소년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이 행사의 제안자로서 집행위원장을 맡은 황의중 교사. [사진제공 - 천만의합창준비위]
참가자들은 출범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오늘, 천만 명이 힘을 모아 우리 땅과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음악제 ‘천만의 합창, <나비 날다>’를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 해방과 분단 70주년이 되는 오는 2015년 8월 15일을 단순한 기념과 기억의 장이 아닌 새로운 역사 창조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결의를 공표하려 이 자리에 모였다”며 “우리는 날기 시작했다”고 선포했다.

 

또한 “아무리 웅장하고 아름답고 선율과 노래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불려진다고 통일이 될 리도 없고, 천만이 마음과 힘을 모아 이 행사를 치렀다고 대동이 이뤄질 리도 없을 것”이라면서도 “우리는 그날의 장면과 대동의 경험을 함께 기억할 것이고, 이 공동의 기억은 불씨로 남아 세계평화와 대동통일의 역사에 작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무국은 “천만의 합창 음악제는 민간 주도의 최대의 통일 페스티벌로 추진이 될 예정”이라며 통일음악회와 통일미술전, 그리고 8월 15일의 세계적인 ‘천만의 합창’ 공연을 큰 줄기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5월부터 8월까지 100여 일에 걸친 기간 동안 통일영상과 통일음악 공모, 뮤직페인팅, 플레쉬몹, 토크콘서트 등 다채로운 행사들을 벌이며, 미국과 일본, 유럽, 러시아, 중국 등에서도 동포들을 중심으로 유관행사가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사무국은 “전국 각 지역에서, 지구촌 곳곳에서 유사한 행사가 기획이 되고 8월 15일 동시에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획위원장 겸 행사 총감독인 이철주 문화기획자는 “본 공연의 지휘를 제안받은 세계적인 지휘자인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는 비록 다른 일정으로 참석은 못해도 행사의 성공을 기원하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소개하고 “미국의 경우 AOK(Action for One Korea)의 정연진 대표가 미국 LA에서 관련 행사를, 재일동포 연출가인 문옥선씨가 일본에서의 행사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 참가자들은 천만의 합창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 - 천만의합창준비위]
8월 15일 열리는 본 행사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국내외의 대표적인 연합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1,945명의 추진위원과 1만여 명의 합창단, 그리고 5만여 명의 국민이 모여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게 된다.

 

‘천만의합창 국민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은 황의중 불암고 교사는 “모두가 동의하는 통일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멋진 행사를 우리 스스로 만들었다는 문화적 체험이 실제적으로 통일로 가는 과정에 큰 힘이 될 것”이라며 “그렇게 모아진 우리의 의지는 한반도의 평화와 더 나아가 세계평화에 기여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한 “행사 준비 중에 박근혜, 김정은 남북 정상과 세계의 지도자들도 행사에 초청을 할 계획”이며, “6자 회담국의 정상들이 국민과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는 모습이 진정한 통일 대박을 실현하는 출발이 아닐까 싶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사무국은 3월 말 홈페이지 오픈과 함께 크라우드 펀딩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며, 자세한 사항은 인터넷 카페(http://cafe.naver.com/wemadehistory)를 참조하면 된다.

 

출 범 선 언 문 (전문)

우리는 꿈을 가졌습니다.
우리의 꿈은 단 하나, 
역사적 장면이 될 것 같은 한 장면에 대한 꿈입니다.
그 장면은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됩니다.
동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전 세계에서 동시에 불려지는 감동의 장면과
그 일을 우리가 함께 만들어 냈다는 감격의 경험입니다.
나의 작은 날갯짓이 결국 천만의 날갯짓이 되어 빚어낸 천만의 대합창, 
<나비 날다> 입니다.

우리는 오늘, 천만 명이 힘을 모아 우리 땅과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음악제 ‘천만의 합창, <나비 날다>’를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 해방과 분단 70주년이 되는 오는 2015년 8월 15일을 단순한 기념과 기억의 장이 아닌 새로운 역사 창조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결의를 공표하려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남북의 국민과 재외동포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인과 함께 만드는 일이니, 모든 이들이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함과 동시에, 모두가 동참하게 될 일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 날의 감격은 모든 이의 상상에 맡깁니다.
크고 작음 없이 모두가 한 방울 물이 되어 물살 이뤄 춤추는 대동(大同)의 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외침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대합창으로 세계 방방곡곡으로 퍼지는 감동의 바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벅찬 자긍심을 느끼고 세계는 그날 우리를 다시 볼 겁니다.

그날의 감동은 무엇을 남길까요? 이 역시 상상에 맡깁니다.
아무리 웅장하고 아름답고 선율과 노래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불려진다고 통일이 될 리도 없고, 천만이 마음과 힘을 모아 이 행사를 치루었다고 대동이 이뤄질 리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의 장면과 대동의 경험을 함께 기억할 것이고, 이 공동의 기억은 불씨로 남아 세계평화와 대동통일의 역사에 작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이 통일과 평화임이 우리들 마음에 각인되고 세계는 다시 한 번 이를 기억할 겁니다.

이제 나비는 날갯짓을 시작했고 물방울은 모여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비록 몇 마리의 나비들로, 작은 구릉에서 모인 물들로 초라하게 출발하고, 여전히 바람은 차고, 걸리는 돌은 많으나 우리들의 쉼 없는 날갯짓과 흐름은 결국 서서히 여기저기 나비들과, 이 산 저 산의 골짜기 물들에 전해져 천만의 나비가 날고 천만의 물살이 넘실대는 감동과 환희의 바다로 모일 것입니다. 우리의 꿈은 바로 모든 이들의 꿈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반대하거나 외면하기 힘든 우리 모두의 소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에 우리는 날기 시작했습니다. 양심과 진리에 기반한 모든 이의 소원이 우리를 뒷받침하고 있으니 아무 것도 주저할 것이 없습니다. 
착수가 곧 성공이라, 다만 8월 15일 눈앞에 펼쳐질 환희와 감격의 빛을 향해 끊임없이 날갯짓을 할 따름인뎌.

2015년 3월 1일
천만의합창국민위원회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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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교포 박근혜 대통령 퇴진 시위 확산

재미 교포 박근혜 대통령 퇴진 시위 확산
 
LA이어 뉴욕, 워싱턴에서 집회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3/01 [12:22]  최종편집: ⓒ 자주일보
 
 
▲ 미주 뉴욕 교포들이 박근혜 퇴진 시위를 벌리고 있다.     © 미국교포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가 국내는 물론 미국 뉴욕에서 진행되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재미동포들은 지난 28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시위를 로스엔젤레스에 이어 뉴욕-워싱턴 디씨 등 국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 미국 교포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미국교포



뉴욕지역에서는 이날 오후2시 뉴욕주재 한국총영사관 앞에서 30여명의 동포들이 박근혜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들을 들고 나와 시위를 벌였고, 워싱턴 디씨 동포들도 같은 날 오후 링컨 메모리얼 홀 앞에서 박근혜퇴진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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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우리는 빚졌다"... '권은희 변호인단' 제안

 

28일 페이스북 통해..."윤석열, 권은희 지켜내자"

15.03.01 17:17l최종 업데이트 15.03.01 17:2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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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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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재판에서 허위진술을 했다(모해 위증)며 보수단체로부터 고발당한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위한 국민변호인단 구성을 제안했다. 권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조 교수의 제안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국 교수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권 의원의 결단이 없었다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라며 "권 의원을 위한 국민변호인단 구성을 제안한다"는 글을 올렸다. 

조국 "권은희 결단 없었다면 국정원 대선 개입 몰랐을 것"

그는 이 글에서 "재판과정에서 권 의원이 '허위'라는 사실을 인식하고도 증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반대로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증언을 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권 의원의 법과 양심에 기초한 결단이 없었다면 국정원의 선거개입이라는 중대범죄가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 점에서 우리 모두는 권은희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윤석열 전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팀장을 언급했다. 그는 "'유배'에 처해 있는 윤석열을 지켜야 하듯, 수사와 기소대상이 된 권은희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전 팀장은 수사 당시 법무부 및 검찰 지휘부와 마찰을 빚다 결국 팀장에서 배제된 후 징계를 받은 바 있다(관련기사: 윤석열 3시간 무혐의 주장에도... '정직 1개월' 중징계).

지난 2013년 4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담당 수사과장이던 권 의원은 당시 수사과정에서 김용판 전 청장이 수사를 축소·왜곡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후 검찰은 김 전 청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리하도록 수사과정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보고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했다. 하지만 지난 1월 29일, 대법원은 1·2심과 같이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관련기사: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은폐 혐의' 김용판 무죄 확정).

앞서 보수단체는 권 의원이 재판에서 위증을 했다며 고발한 바 있다. 이후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지난달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검찰이 수사를 철저하게 마무리하도록 지도·감독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황 장관은 "필요한 참고인 조사를 하고 있다"며  "(소환 여부에 대해서는) 수사 상황을 종합한 뒤 적절한 시기를 판단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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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헌은 왜 아직도 국회의원인가

등록 : 2015.03.01 19:49수정 : 2015.03.0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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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예결위회의실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김무성 대표와 정문헌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간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15.02.16. 【서울=뉴시스】

곽병찬 대기자의 현장칼럼 창

뜬금없는 질문일까?

 

그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유출한 지 2년4개월이 지났다. 재판부가 국가기밀 누설 혐의를 인정해 1천만원 벌금을 선고한 지 두달이 지났고, 그가 항소를 포기한 지 한달이 지났다. 그런데 이제야 묻는가? 반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공직에 있을 때 취득한 국가기밀을 누설했고, 그것도 왜곡시켜 유출했고, 대통령선거에 악용했다. 그로 말미암아 새 정부가 들어서고도 1년 동안이나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론을 분열시켰고, 대한민국 정부를 외국 정부가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사람이 아직도 국민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면,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무식한 물음일까?

 

선거법 위반이 아닌 이상, 벌금형으로 의원직을 박탈할 수 없다. 형사사건에서는 금고 이상의 실형이 확정돼야 자격이 상실된다. 그러나 정치적·도덕적으로 그렇게 따져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권력은 일쑤 그런 부려먹기 좋은 자를 하수인으로 활용하려 한다. 벌할 것을 벌하지 않고 오히려 중용한다. 그런 권력에 순응한다면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권을 범죄자 집단에 내주는 꼴이다. 그런 집단을 심판하기 위해서라도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 나라의 국민으로 선량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따지고 또 따져야 한다.

 

그는 2012년 국정감사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란 걸 들이대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고 폭로했다.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이 발언의 폭발력은 컸다. 문재인 후보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영토를 포기한 비서실장으로 매도됐다. 정문헌은 2012년 10월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생명을 걸’겠다며 “노 전 대통령의 서해 엔엘엘(NLL) 관련 ‘영토주권 포기’ 발언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후 대통령선거는 영토주권 포기 논란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선거가 끝난 뒤 확인됐지만, 국정원이 소장하고 있던 회의록 원본에는 그런 대목이 없었다. 그러자 사초(대화록 초본) 실종 의혹을 들고나왔다. 노 전 대통령이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초본의 폐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장이 정치 전면에 나서서 싸움을 부채질했고, 검찰은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 등을 대통령기록물 폐기 혐의로 기소했다.

 

그렇게 박근혜 정부 1년은 대화록을 둘러싼 싸움박질로 흘러갔다.

 

그러나 법원은 국정원에 원본이 있는 만큼 초본은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을 내렸다. 또 법원은 대화록 내용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정문헌에 대해서는 국가기밀 누설 혐의를 인정했다. 국가기밀을 왜곡시켜 누설해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왜곡시키고, 박근혜 정부 1년을 난장판으로 만든 정씨의 대화록 파동은 정씨의 국가기밀 누설 사건으로 귀결됐다. 그러나 그에게 떨어진 벌은 벌금 1천만원뿐이다.

 

지난해 말 ‘청와대 비선조직 국정농단 의혹’ 사건이 터졌다. 청와대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생산한 문건이 흘러나와 이른바 십상시의 전횡 의혹이 언론에 보도됐다. 청와대는 즉각 청와대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하는 한편 그 내용은 찌라시 수준의 허위라고 잡아뗐다. 검찰은 이 지침에 따라 문건 생산자들을 족쳤다.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은 구속 기소됐고, 그의 상사였던 조응천 전 비서관은 불구속 기소됐다. 유출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아 구속영장 청구 등 강압수사를 받던 한 경찰은 자살했다. 찌라시 유출에 대한 처벌은 가혹할 정도로 준엄했다.

 

두 사건 앞에서 국민은 혼란스러웠다. 국가안보와 외교관계를 뒤흔들 기밀을 누설한 자는 벌금형으로 봐주고, 청와대 찌라시를 유출한 사람들은 구속당하거나 자살했다. 그때 몇몇 입바른 언론이 지적하긴 했다. 그러나 지금도 정씨는 의정단상에서 국정을 농락하고 있다.

 

지난 16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투표가 있던 날, 한 통신사가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정씨와 김무성 대표가 반갑게 악수를 나누는 사진을 배포했다. 한 사람은 회의록 왜곡 유출의 장본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유출된 내용을 대선 유세장에서 낭독한 사람이었다. 그것만 보면 이 땅엔 정의란 존재하지 않았다.

 

정씨는 이어 국회 본회의에서 “세종대왕은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청렴하면서 무능한 관리보다는 다소 허물이 있어도 능력이 뛰어난 인물을 선택했다”며 이 총리 후보자를 칭송했다. 2년4개월여 전이나 그때나 다를 게 없었다. 청문 과정에서 이 총리 후보자는 공직생활 전 기간에 걸쳐 병역특혜, 아파트 단타매매, 땅 투기, 교수 특혜 채용, 황제 강연 등의 허물을 쌓아왔음이 드러났다. 국민을 밥 먹듯이 속이던 자가 탈·편법의 달인을 두둔하고 있으니, 초록은 동색이다.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그는 ‘왜 아직도 국회의원인가?’ 묻고 또 물어야 하는 이유다. 더는 그 입이 국민을 속이지 못하고, 그 손이 주권을 훔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법과 정치가 방기한다면 나서서 따져야 할 언론까지 침묵한다. 또 다른 이유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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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논쟁 2라운드…왜 이 책을 쓴 걸까

등록 : 2015.02.27 20:13수정 : 2015.03.0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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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19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시민들이 대사관 앞 소녀상에 꽃분홍치마와 색동저고리를 입혀주었다. <제국의 위안부>를 집필한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때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에 대한 논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내 심장을 내주고 상대 머리털도 건들지 못한…’

▶ 한국 사회는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찬반으로 둘로 갈라진 상태다.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낡은’ 민족주의에 대한 찬반에서 시작된 이번 논쟁은 17일 법원에서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놓은 뒤 ‘표현의 자유’ 이슈로까지 확장되고 말았다. 치열한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를 돌아보려는 시도는 줄어들고 있다. 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시도한 것일까. 그리고 이는 과연 성공했을까?

 

 

지난 설날 연휴,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한국 소셜미디어(SNS)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은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일문학)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2013년)를 둘러싼 이른바 ‘표현의 자유’ 논란이었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17일 서울동부지법 민사21부(재판장 고충정)가 ‘나눔의 집’ 위안부 피해 할머니 9명이 박 교수 등을 상대로 한 도서출판 금지 등 가처분 소송에 대해 할머니들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34곳의 표현을 삭제하지 않으면 책을 판매·배포할 수 없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삭제의 필요성을 인정한 부분은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동지적인 관계였다” 등 그동안 이 책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의 핵심이 되는 구절들이었다.

 

조선시대의 ‘예송 논쟁’과 같다

 

판결이 나오자 인터넷 공간은 이에 대한 찬반으로 금세 뜨겁게 달아올랐다. 평소 한국의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매서운 비판을 해 온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는 “그나마 위안부라는 미증유의 범죄를 우리가 피해자 위주로 의식해야 한다는 게 통념화되고 이 통념이 이번 판결에 반영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입장을 밝힌 데 견줘, 강남순 텍사스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는 “책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책을 읽는 시민들 스스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 법원이 강제적으로 ‘못 읽게’ 만드는 것은 독재정권하에서 ‘공공의 이익’의 이름으로 무수한 ‘금서’들을 지정하던 모습을 상기하게 한다”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법원에 우리 사회에서 허용되는 표현의 범위에 대한 판단을 맡기는 게 바람직하지 않지만,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느끼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참으라’고 요구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판단도 필요하다.

 

박유하 교수는 판결이 난 뒤 “삭제하면 출판해도 좋다고 하지만, 나는 한 곳도 삭제할 생각이 없다”며 이 문제를 본안소송에서 계속 다퉈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한 누리꾼이 이번 논쟁에 대해 조선 현종 때 이뤄진 ‘예송 논쟁’(인조의 계비인 조대비(趙大妃)의 상례(喪禮) 문제를 둘러싸고 남인과 서인이 두 차례에 걸쳐 대립한 사건)과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듯이 위안부를 다룬 다소 딱딱한 ‘교양서’에 한국 사회가 보이고 있는 지금과 같은 격렬한 반응은 분명히 매우 예외적인 것이다.

 

이 책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제2라운드라 부를 수 있다. 처음 논쟁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6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이 책에 대한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다음이었다. 사실 이 책은 2013년 8월 처음 공개되었을 땐 위안부 문제를 고민해온 학계나 시민사회로부터 외면을 당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소송이 시작돼 이 책에 담긴 위안부에 대한 여러 묘사와 표현들(특히, 동지적 관계)이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전해지고, 그것이 한국 사회가 공유해온 일반적인 상식이나 법 감정 등과 충돌을 빚으며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됐다. 논쟁의 층위는 실로 복잡하고 다양했다. 박 교수가 활용하고 있는 위안부에 대한 증언과 자료 인용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방법론 논란, 위안부에 투영된 한국 사회의 (과도한) 민족주의에 대한 호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기존 위안부 운동 단체의 운동 방식에 대한 찬반 등에 위안부 문제를 일본 정부에 의한 ‘범죄’라기보다는 식민지 조선반도를 지배했던 ‘가부장적 틀’에서 보자는 박 교수 주장에 대한 페미니즘 진영의 반응까지 다양한 주장들이 중첩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진행한 고노 담화(1993년) 검증 등 역사 수정주의적 움직임이 한국에 전해지며 논쟁은 더 치열하고 과격해져 갔다.

 

그러나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책의 “검토 대상이 애매한데다가 이용되는 개념이 이해 가능한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기”(정영환 일본 메이지학원대학 교수) 때문이다. 책이 결국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매우 모호한데다,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기술들이 책의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 때문에 이 책의 찬반 논쟁에 발을 들여놓은 많은 이들은 서로를 향해 “책을 읽어봤느냐”며 삿대질하고 있으며, 같은 구절을 읽으며 정반대의 해석을 이끌어 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34곳 표현 삭제 뒤 판매’ 결정난
위안부 할머니들 가처분 소송
복잡하고 다양한 논쟁 층위 속
치열하고 과격해지는 찬반 논란

 

박 교수는 이 책을 왜 집필한 것일까. 책의 한국어판 서문을 보자. 저자는 자신이 2005년 펴낸 <화해를 위하여>에 담긴 일부 구절을 인용해가며 “위안부 문제는 왜 1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일본이 주변국의 비판에도 변하지 않고 있다면 이제까지 비판의 형식과 내용에 문제가 있었던 데에도 원인이 없지 않다”고 적었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 그 이유를 일본한테서뿐 아니라 한국 내부에서도 찾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서문에 담긴 바로 이 ‘해결’이란 단어다. 그가 책을 쓴 이유는 위안부 문제가 10년을 넘어 이제 “20년이 넘도록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때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왜 우린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그런 불편함과 아픔을 거치지 않고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헌법재판소가 2011년 8월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뒤, 한·일 양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3년 동안 치열한 외교적 교섭을 이어왔다. 그런데도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 정부에 ‘성의 있는 선조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선조처는 한국 사회에서 일본이 위안부 문제가 당시 일본군에 의한 범죄였다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배상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지난해 6월16일 서울 광진구 동부지방검찰청 민원실 앞에서 ‘제국의 위안부’ 책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이 책을 쓴 박유하 세종대 교수와 출판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2014.6.16 / 서울=연합뉴스
이를 위해 지난 20여년 동안 한·일의 위안부 운동단체들과 학자들은 위안부의 동원 과정, 위안소의 설치·운영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밝히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그간 오랜 논쟁을 거쳐 최근 한·일 양국이 다시 돌아온 결론은 일본 정부가 길 가던 여성들의 머리채를 끌고 납치하는 식의 ‘강제연행’을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진 않았지만, 고노 담화에서 적시된 “위안부의 모집·이송·관리 등도 감언·강압을 통해 이뤄지는 등 전체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다”는 동원 과정의 강제성을 부정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내심으론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싶은 아베 정권이 결국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미국 등 국제 사회의 압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담화 자체를 부정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업자의 책임’에 꽂히다

 

이 지점에서 박 교수는 일본 우익이 아니면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 참으로 독특한 도전에 나선다. 즉,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포괄적’인 법적 책임을 추궁하려는 기존의 학자와 활동가들과 달리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이 없다는 점을 논증하려 애쓰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박 교수는 위안부 동원 과정에 적극 개입한 (특히 조선인) 업자의 책임을 강조하고, ‘가녀린 소녀’라는 이미지 속에 가려져 있는 “일본 군인과 연애도 하고, 위안을 애국하는 일로 생각하기도 했”던 ‘진짜 위안부’들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위안부 문제가 발생한 원인으로 가부장제의 책임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 역시 위안부들이 그 같은 고통을 받은 1차 원인은 당시의 불행했던 사회상 탓이지 일본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읽힌다. 그러나 그러면서 틈틈이 “타지에서 군대를 주둔시키고 전쟁을 벌임으로써 거대한 (성적) 수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일본은 이 문제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첫번째 주체다”라고 강조하는 등 이 문제의 일차적인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다는 지적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견해는 일본 정부에 위안부를 만든 구조적인 ‘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순 있지만, 그것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범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실마리인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진 인신매매에 대한 군의 묵인과 위안소 설치에 대한 군의 지시 등에 대한 언급은 소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어 박 교수는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정대협에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정대협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운동의 정의를 위해 ‘20만명의 가녀린 소녀’라는 “하나의 고정된 위안부의 이미지를 만들었”으며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실제론 일본을 ‘용서’하고 ‘화해’할 의사가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낮은 목소리들을 사장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합방(한일 병합조약)이 양국의 조약 체결을 거친 것이었으니 법적으로는 유효했”으며 “식민지배라는 불법행위에 대한 타국 국민 동원에 관한 배상”을 통해 위안부들에 대한 배상을 주장할 수 없고, 1965년 한일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돼 개인 보상을 요구할 근거도 없어졌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그는 왜 이런 주장을 하고 있을까. 박 교수는 지난해 11월 출간된 일본어판의 후기에서 다시 한번 “위안부 문제의 이해와 해결의 방법이 바뀌지 않으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한-일 관계는 지금 이상으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애타게 호소한다.

 

그렇다면 박 교수가 말하는 ‘해결’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명확히 설명하고 있진 않지만 추정해 볼 대목은 있다. 먼저 박 교수는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에 대한 후속 조처로 내놓은 아시아여성기금(1995~2007년)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일본은 이 기금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 한 사람에게 위로금 200만엔(일본 국민들의 성금)과 의료지원금 300만엔(일본 정부 예산)을 지급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과 대만의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만을 인정했다며 이 기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교수는 이 기금의 전무이사로 활동했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과 지난해 4월 서울에서 ‘제3의 목소리’라는 심포지엄을 연 적이 있다.

 

일본 정부에 1차 책임 있지만
명백한 ‘법적 책임’은 없다는
일본 우익 주장 수용한 박 교수
기묘한 논리의 선의는 있으나
해결과는 거리 먼 허무한 시도

 

박 교수는 책 속에서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식민지배로 발생한 문제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며 “보상의 형태를 정하는 과정에 지원단체와 위안부를 참여시켜야 한다” “사죄와 보상을 한다면 세계를 향해 일본의 생각을 밝히는 공식적인 형태를 띠어야 한다” “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은 한국인 위안부에 대한 지급상황에 대한 미공개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정부 국고금으로 보상에 나선다면 그런 정부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언급들을 종합해 볼 때 박 교수가 생각하는 해결책이란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지 못한 할머니들한테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사죄금을 지급하고, (일본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지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지 논쟁이 거세니) 일본이 도덕적인 책임을 언급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일본의 책임이라고 인정”하자는 와다 명예교수의 제안(<한겨레> 2014년 3월5일치 6면)이나 2012년 이명박-노다 정부 말기에 논의된 △노다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죄하고 △무토 마사토시 주한대사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방문해 사죄하며 △정부 예산을 들여 보상을 한다는 타협안과 흡사한 주장임을 추정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일본어판에서는 여기에 더해 일본 국회의 결의가 필요하다며 요구 사항을 조금 더 높인다.

 

우리는 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원했는가

 

결국, 이 책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면해주자는 얘길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일본 우익들의) 주장을 수용하는 방식을 통해 양국 간의 이견을 좁힌 뒤, 일본 리버럴들이 요구하고 있는 타협안+α를 일본 정부가 수용하도록 결단을 촉구하는 책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그토록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바라왔을까. 전시하 여성에게 강요된 씻을 수 없는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가 엄격히 책임을 지도록 추궁해 인류 사회에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그리고 한국 사회는 일본에 들이댄 그 엄격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대 ‘기지촌 정화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미군 위안부 문제와 베트남 전쟁 시기에 이뤄진 한국군의 전시 성폭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더 엄격히 추궁해 가야 한다. 결국, 박 교수가 제시한 기묘한 논리의 선의를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나 ‘내 어깨를 내주고 상대의 심장을 찌른’ 묘안이 아닌, ‘내 심장을 내주고 상대의 머리털도 건들지 못한’ 시도였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박 교수의 주장을 활용해 세계를 상대로 한 ‘역사 전쟁’에 나서겠다는 일본 우익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위안부 문제 해결의 전망은 <제국의 위안부>가 나오기 전과 비교해 조금 더 어두워진 것만 같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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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정적' 넴초프, 크렘린궁 인근서 총격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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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MTSOV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55) 전(前) 부총리가 27일 저녁(현지시간)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권의 대규모 거리시위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러시아 야권은 "정치적 살인"이라고 강력히 반발하는 등 정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내무부는 넴초프가 이날 저녁 11시 40분(현지시간)께 우크라이나 출신의 24세 여성과 함께 크렘린궁 인근의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다리 위를 걷던 중 지나가던 차량에서 가해진 총격을 받고 숨졌다고 발표했다.

내무부는 괴한들이 흰색 승용차를 타고 넴초프에게로 접근해 6발 이상의 총격을 가했으며 그 중 4발이 넴초프의 등에 맞았다고 전했다.

수사관들은 넴초프 피살 당시 그와 함께 있었던 여성을 조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모델로 알려진 이 여성은 피해를 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넴초프 가족의 변호사는 몇 달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넴초프에 대한 살해 협박이 있어 당국에 신고했었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초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제1부총리를 지낸 넴초프는 그동안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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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비서(공보비서)는 "푸틴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청부 살인이자 도발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면서 중대 범죄를 담당하는 연방수사위원회,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 경찰청 등의 수장들이 사건을 직접 챙기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도 "수사 당국이 이번 사건과 연관있는 모든 혐의자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야권은 즉각 이번 사건을 '정치적 보복'이라고 규정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야권 운동가 드미트리 구트코프는 사건 소식이 알려진 뒤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의심할 여지없는 정치 살인"이라면서 "현 정권이 직접 청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권이 선전해온 (야권에 대한) 증오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저명 여성 야권 운동가 이리나 하카마다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야만스런 도발이며 극악무도한 짓이자 유사 테러"라고 비난했다.

주요 야당인 '야블로코' 당수 그리고리 야블린스키도 "최악의 범죄이며 할 말이 없다"면서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은 현 정권에 있다"고 주장했다.

야권은 넴초프가 조직위원으로 참여했던 다음달 1일 모스크바 남쪽 지역에서의 반정부 가두행진을 취소하고 대신 시내 중심가에서 추모 행진을 벌일 예정이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성명에서 이번 사건을 "잔혹한 살인"이라고 비난하면서 러시아 정부가 신속하고 공정하며 투명한 수사를 벌일 것을 촉구했다. 오바마는 러시아의 부패에 맞선 넴초프의 용기있는 투쟁을 칭송하면서 그를 헌신적인 민권 수호자라고 높이 평가했다.

러시아 중부 니제고로드스크주(州) 출신으로 친서방 개혁 성향이 강했던 넴초프는 한때 러시아의 첫 번째 선출직 대통령인 옐친의 잠재적 후계자로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2000년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야권 지도자로 변신, 푸틴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반정부 운동을 이끌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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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복지 ‘심벌’ 사회보장위는 간판만 있는 유령회사?

 
 
‘박근혜표 복지’의 핵심 2년 동안 회의 몇 번 한 게 전부
 
육근성 | 2015-02-27 14:30:0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사회보장기본법을 전면에 내세웠다. 서민에게 민감한 ‘복지 아이템’으로 표심을 공략할 심산이었다. 2012년 12월 18대 대선후보자 2차 TV토론회에 나와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한국형 복지모델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추진하겠다는 생각으로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일관성 있는 복지정책을 위해 설계를 잘해야 합니다.”


2010년 12월 등장한 박근혜의 대선 무기

자신이 주장하는 복지정책과 공약이 모두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에 담겨있다는 얘기다. 이 개정안은 2011년 2월 박근혜 의원의 발의로 2012년 1월 국회를 통과했으며, 발의자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2013년 1월 전면 시행됐다. 당시엔 ‘박근혜법’으로 불리기도 했다.

박근혜 의원은 법안 발의 두 달 전 국회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여야 국회의원 등 8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박 의원은 평생사회안전망으로의 복지, 예산 낭비 없는 복지, 선제적이고 예방적인 복지, 맞춤형 복지, 사각지대 없는 복지 등을 강조하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줄 마법이 자신이 발의할 법안에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박희태 국회의장은 축사에서 “존경하는 유력한 미래권력인 박근혜 전 대표가 한국형 복지의 기수로 오늘 취임하는 날”이라고 거들었다.

공청회가 끝나자마자 법안 개정 취지를 설명하는 홍보동영상이 인터넷 공간에 대거 살포된다. 공청회 직후 배포하기 위해 미리 만들어놓은 것으로 보이는 이 동영상은 ‘박근혜의 미소 띤 얼굴’이 전체 배경화면으로 등장한다. 공청회가 사실상 대선 출정식이었고, 대권 고지에 오르기 위해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이 법안이었던 것이다.


사회보장위원회는 ‘박근혜표 복지’의 핵심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의 핵심은 ‘사회보장위원회’(사보위) 설치다. 사보위의 기능과 역할이 ‘박근혜 사회보장법’의 근간을 이룬다. 개정안이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계획하고 유관 부처 간 업무를 통할·조정하는 기능뿐 아니라, 현행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역할을 사보위가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원조달과 사회보장 전달체계 및 운영까지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 있다. 이쯤이면 사보위는 복지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콘트롤타워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그렇다.

관련법은 사보위가 ‘복지의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원 구성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복지부장관, 기획재정부장관, 행정자치부장관, 교육부장관 등 14개 정부부처의 장과 다수의 민간 전문인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이 정도면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어 복지정책과 제도를 효과적으로 조정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전문가들은 사보위에 주목했다. 일각에서는 사보위를 영국의 베버리지위원회에 견주기도 했다. 방식과 제도, 관리와 조직이 통일돼 있지 않아 크게 비효율적인 사회보장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통합·조정·운영을 진두지휘할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베버리지 교수의 보고서는 영국을 복지국가로 변신시켰다. 1948년 완성된 영국의 복지제도를 주도한 곳이 베버리지위원회다.


“대통령 되면 다 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 된 뒤 출범한 사보위는…

‘한국판 베버리지위원회’라고 불렸던 사보위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3개월 뒤인 2013년 5월 정식 출범한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야당후보의 복지관련 질문에 답변이 군색해지면 “대통령 되면 다 하겠다. 그러니까 대통령 하려는 것 아니냐”며 큰소리친 바 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앉은 뒤 만들어진 게 사보위다. 출범한지 2년이 다 돼 간다. 그동안 사보위는 무엇을 했을까.

한마디로 개점 휴업상태다. 관련 부처 간 정보교류도 안 되고 부처 간 복지사업을 공유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제 역할을 안 한다. 그러니 유사·중복 복지사업으로 비효율이 크게 문제가 돼도 통제와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가 여성장애인 지원사업을 동시에 벌이며 혼선을 빚어도,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가 직업훈련지원 사업을 각자 따로 벌이며 충돌해도, 나서야 할 사보위는 조용하다.

월세 낼 돈이 없는 부녀가 동반 자살을 하고, 거주할 곳이 없어 환자 흉내를 내며 요양병원에 갇혀 있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그런데도 정부가 지어놓은 수도권 임대주택 주차장엔 외제차가 가득하다. 이렇게 복지제도 설계와 기획, 전달 체계가 뒤틀린 톱니바퀴처럼 삐걱거려도 ‘한국판 베버리지위원회’는 구경만 한다.


전문가들 “복지 콘트롤타워 필요하다” 사보위는 뭐 하기에?

전문가들은 복지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부처간 칸막이를 없앨 수 있는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한다. 그런데 청와대와 정부의 대응이 황당하다. 새로운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나섰다. ‘청와대와 정부가 복지정책을 발표하기 전에 경제부총리, 사회부총리, 복지부장관 등이 참석하는 정책조정협의회를 통해 사전 조율하겠다’고 말한다. 사보위는 있으나마나한 조직이라는 걸 실토한 셈이다.

박근혜 복지의 야심작’이라던 그 사보위는 2년 동안 대체 무엇을 했을까. 9차례 전체회의를 한 게 눈에 들어온다. 그나마 현안을 논의하고 정책을 토론한 게 아니었다. 보건복지부가 회의 전 미리 결정된 내용을 안건으로 올리면 원안대로 통과시키는 거수기 역할을 수행해 왔다. 복지부가 올린 안건(28건) 모두가 원안대로 의결된 게 그 증거다.

형식적인 회의다 보니 위원들도 참석할 의욕이 별반 없는지 부위원장인 경제부총리는 9번 회의 중 5번이나 불참했다. 사회보장 급여와 비용 부담, 재정조달 방안, 사회보장 전달체계 개선 등 정작 중요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년 동안 회의 몇 번 한 게 전부, 간판만 있는 유령회사 같아

사보위 누리집에서 ‘위원회 운영일정’을 살펴보았다. 이번 달(2015년 2월)에 잡혀 있는 일정은 2월 5일과 6일, 13일에 잡혀 있는 3건의 회의가 고작이다. 출범 2년 동안 만들어 배포한 보도자료는 단 10건. 석 달에 한번 전체회의를 하고, 한 달에 서너 건 회의 위주의 일정을 소화하고, 두 달에 한번 꼴로 보도자료 만든 게 대한민국 복지 콘트롤타워가 한 일의 전부인 셈이다.

사보위의 실무기능을 담당하는 사무국은 어떨까. 국장을 포함한 이사관급 3명, 서기관 2명, 사무관 6명, 주무관 3명, 전문위원 4명 등 총17명으로 구성돼 있다. 동네 주민센터 직원 수도 이보다는 많다.

‘박근혜표 복지’의 ‘심벌 마크’였던 사회보장기본법 전면개정안과 사복위. 당선 2년이 지난 지금 ‘전면개정안’은 ‘전면포기안’으로 불러야 마땅한 상황이 됐고, 개정안의 노른자위였던 사보위는 간판만 있는 유령회사와 흡사한 꼴을 하고 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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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생계비로 사는 독립운동가 후손 김시진 할아버지

 
[3.1절 이야기] 공식기록 없다고 국가유공자 지정 안돼…단국대 학생 도움으로 역사 강연자로
 
입력 : 2015-02-27  17:30:50   노출 : 2015.03.01  07:50:45
장슬기 기자 | wit@mediatoday.co.kr  
 

“여러분, 일제강점기에 가장 먼저 독립운동을 하다가 만주로 망명간 마을이 어딘지 아시나요?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내앞마을이에요. 내앞마을은 의성 김씨 집안이 모여 사는 곳이죠.”

애국의 대가는 빈궁했다. 독립운동가 후손 김시진(79)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한 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다. 김시진씨의 증조할아버지 김대락 선생, 할아버지 김홍식씨, 아버지 김문로씨는 모두 일제강점 첫 해인 1910년 말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기여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하지만 중국에서 선친들의 독립운동 기록을 증명할 공식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시진씨는 최저생계비로 생계를 이어갈 뿐이다. 

   
▲ 지난해 10월 24일 금천고에서 독립운동가의 삶에 대해 강연하는 김시진 할아버지. (사진 = 단국대 이승원 학생 제공)
 


국권을 빼앗긴 1910년 김씨집안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망명했다. 당시 김시진씨의 아버지 김문로씨가 18살이었다. 탄압을 피해 만주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던 중 김시진씨는 1936년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고 살다가 2001년이 돼서야 한국에 들어왔다. 그간 김씨 집안은 뿔뿔이 흩어지고 몰락했다. 미국으로 망명해서 소식이 끊긴 할아버지, 독립운동으로 건강이 악화돼 59살에 세상을 뜬 아버지를 대신해 내앞마을을 찾았지만 백년전 땅은커녕 친척들 산소조차 찾기 힘들었다. 

안동대학교 사학과 김희진 교수가 쓴 <안동 내앞마을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와 김시진씨의 증언에 따르면 안동 의성김씨 집성촌에 살던 김대락(김시진씨 증조부) 선생은 만석꾼이었다. 일제의 침탈이 극심해지자 김대락 선생은 자신의 재산을 기부해 협동학교를 세웠다. 협동학교는 1907년 3월 설립돼 독립운동가를 양성하는 곳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안동 지역을 이끌었던 곳이다. 

<안동 내앞마을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에서 김희진 교수는 “내앞마을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두가지 큰 특징을 가진다”며 “하나는 전통성이 강한 안동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킨 발원지가 이 마을이고 또 하나는 1910년 나라가 무너지자 만주를 망명해 서간도에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는데 이 마을 출신이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만주로 옮겨 몸 바친 인물 약 150명에 대한 추적 작업을 지금 추진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결과를 학계에 보고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해 10월 24일 금천고에서 독립운동가의 삶에 대해 강연하는 김시진 할아버지. (사진 = 단국대 이승원 학생 제공)
 

김시진씨는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영등포구 대림동에 거주하며 폐지를 줍고 살다가 국가유공자 제도를 알게 돼 보훈처를 찾았다. 하지만 보훈처로부터 ‘(독립운동관련)공식 기록이 필요하니 차분히 기다려 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부가 김씨에게 제공하는 돈은 매월 45만원이다. 김씨는 “월세 25만원을 내고 나면 생활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사연을 듣고 4년 전 단국대 학생들이 김씨를 찾았다. 비영리단체 ‘인액터스’ 소속 단국대 학생들은 김씨가 강연가로 자립할 수 있게 ‘투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독립운동가들의 투혼을 본받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립하겠다는 취지로 단국대 학생들은 김씨가 학교에서 생생한 역사강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현재까지 김씨는 구현고, 동답초 등 13개 학교에서 의성김씨 집안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다음 강연은 서울 은평에 있는 세명컴퓨터고에서 전교생을 상대로 열릴 예정이다. 

   
▲ 독립운동가 후손 김시진 할아버지(사진 가운데)의 강연을 돕고 있는 단국대 황지은(사진 왼쪽) 학생과 이승원 학생. (사진 = 장슬기 기자)
 

단국대 학생 황지은씨(22)는 “할아버지(김시진씨)가 학생들에게 아픈 과거를 생생하게 얘기해줄 때 이를 통해 학생들이 성장하길 바란다”며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부당한 현실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것이 투혼 프로젝트의 취지”라고 말했다. 단국대 학생 이승원씨(23)도 “독립운동가가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며 “우리도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본받고자 지속적으로 할아버지를 돕고 싶다”고 말했다. 단국대 학생들은 강연 학교를 섭외하고 강연 자료를 만들어준다. 김시진씨의 강연료는 학교에서 받지 않고 학생들이 기업에서 받은 후원금을 통해 충당한다. 

김씨는 “학생들이 독립운동가 삶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강연을 도와주거나 가끔 집에도 방문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김씨는 “서울시청에서 2012년 광복절 타종행사에 참여해달라고 해서 갔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천해줘서 임대주택에 살게 됐다”며 “아내(권순례, 78)와 함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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