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자연의 비밀 밝히는 ‘종이와 연필’

자연의 비밀 밝히는 ‘종이와 연필’

 

조홍섭 2013. 10. 14
조회수 50추천수 0
 

자연 연구자는 관찰 결과를 어떻게 왜 기록할까, 12인의 저명 과학자 글 모음

기록은 새로운 생각의 원천, 나중 과학자를 위한 기초자료 구실도

 

표지 과학자 관찰노트.jpg

 

과학자의 관찰 노트-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12가지 방법
마이클 캔필드 엮음, 김병순 옮김/휴먼사이언스·2만4000원

 
지난달 덕유산 향적봉 식물탐사 때였다. 구절초, 산오이풀, 용담…. 가을 야생화를 보자 모두 디지털카메라로 사진 찍기에 바빴지만 한 대학생은 작은 스케치북을 꺼내 그리기 시작했다. 식물의 특징적 부분은 따로 그리고 여백엔 설명을 넣었다. 하산길에서 확인됐지만, 간편하고 빠르게 사진을 찍은 이들보다 좀 굼뜨더라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대학생이 식물을 훨씬 자세하고 깊이 있게 기억했다.
 

na2.jpg » 찰스 다윈이 1831년 비글호 항해 기간 갈라파고스에서 바다이구아나에 관해 남긴 관찰 노트.

 

자연사학자이든 자연애호가이든 자연 속에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요즘은 디지털 기기가 대세이지만 다윈 이전부터 자연사 연구자가 기록하는 오랜 전통은 ‘종이와 연필’을 쓰는 것이다. 동물이나 식물, 화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관찰 노트를 작성한다.
 

이 책은 세계적인 자연사 연구자 12명의 관찰 노트를 소개한다. 관찰 노트 또는 필드 노트는 현장에서 한 메모, 숙소나 연구실에 돌아와 메모를 보고 정리한 일기장이나 일지, 데이터 표 등을 포괄한다. 자연 연구자들이 관찰한 것을 어떻게 기록하고 연구에 활용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na3.jpg » 조지 셀러가 1982년 중국 스촨성에서 대왕판다를 따라다니며 죽순 먹은 곳과 배설한 곳을 기록한 관찰 노트.

 

기록은 자연 연구자에겐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조지 셀러는 1980년 당시 보전의 중요성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대왕판다를 중국 스촨성에서 며칠씩 따라다니며 똥덩어리의 수와 크기, 무게, 성분을 기록했다.

 

하루에 97개의 똥을 누고 대나무가 대부분인 그 무게가 20㎏이 넘는 것을 밝혔다. 판다 서식지 보호에 나설 기초자료가 이렇게 쌓여 갔다.
 

관찰 노트를 작성하는 건 무엇보다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데이터뿐 아니라 관찰 과정의 개인적 소감이나 느낌을 기록해 두면 나중에 대중적인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된다.

 

na4.jpg » 고생물학자 애나 케이 베렌스마이어가 현장에서 작성한 상세 지질도.
 

이런 기록은 자신뿐 아니라 후대의 자연 연구자에게 소중한 자료가 된다. 애나 케이 베렌스마이어 미국 스미소니언 연구소 고생물학자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암석 지층을 파헤치는 것처럼, 지금도 새로운 정보가 필요하면 관찰 노트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면밀히 살펴본다. 내가 은퇴하면 그 노트들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영구히 보관될 거라고 한다. 기분 좋은 일이다. … 컴퓨터 파일을 통해서는 그 위대했던 탐사와 발굴의 시대를 떠올릴 수 없다. 정말로 당시에 거기에서 있었던 일들, 함께 일했던 동료들, 가슴 설렌 흥분과 예리한 통찰력을 지금도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손으로 쓴 이 특별한 일지들을 한 장 한 장 넘겨 봐야 한다.” (163쪽)


실제로 꼼꼼한 관찰노트는 훌륭한 과학적 데이터가 된다.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호수 근처에서 2년간 살면서 약 500종의 식물이 언제 꽃을 피우는지 상세히 기록했다.

 

최근 생태학자들은 같은 지역을 조사해 160년 사이 소로가 기록한 종의 약 30%가 사라졌고, 또 다른 40%는 매우 희귀해 졌음을 알 수 있었다. 소로는 당시에는 짐작할 수도 없던 기후변화와 개발의 영향을 연구할 기초자료를 만들었던 것이다.(■ 관련 기사: 150년 만에 드러난 소로의 숨겨둔 선물)

na7.jpg » 보름달물해파리의 관찰 노트.
 
그러나 관찰 노트는 단지 기록된 것 이상이기도 하다. 대화나 토론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듯이 노트를 다시 옮겨 적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운 통찰이 나오기도 한다.
 

‘달리는 과학자’로 유명한 베른트 하인리히는 길바닥에 떨어진 나무 잎사귀에는 유독 벌레 먹은 게 많다는 메모를 해 두었는데, 나중에 벌레의 천적인 새들이 벌레 먹은 흔적으로 먹이를 찾기 때문에 이를 감추기 위해 벌레가 먹던 잎을 떨어뜨린다는 발견으로 이어졌다.
 

그저 겉핥기로 구경하거나 사진기에 기록을 맡기지 않고 직접 노트에 적어넣거나 그림을 그리려면 관찰이 훨씬 꼼꼼하고 치밀하게 된다. 끈덕진 관찰자에게만 자연은 속살을 보여준다.
 

na6.jpg » 동물학자이자 예술가인 조너선 킹던이 스케치한 붉은꼬리원숭이의 여러 자세.

 

연구자들은 또 그림 솜씨와 무관하게 관찰 노트에 그림을 넣으라고 강력하게 충고한다. 그림은 사진과 달리 눈과 함께 머리로 그리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표현한다. 유명한 식물도감과 조류도감이 그림으로 돼 있는 것도 특징을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데는 그림이 사진보다 윗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가이자 동물학자인 조너선 킹던은 “연필은 … 보이지 않는, 문제가 되는 조직을 찾으려고 애쓰는 외과 의사의 절개용 메스와 같다”고 말한다.
 

na8.jpg » 표본을 보고 색연필로 그린 바실리스크도마뱀. 생물의 색깔을 기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과학의 길과도 통한다. 과학전문 일러스트레이터인 제니 켈러는 그림의 미덕을 이렇게 말한다.
  

정확하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접근 방식, 끈질긴 관찰, 불가측성에 대한 열린 자세, 한 주제를 여러 관점에서 볼 줄 아는 능력, 흥미진진한 것과 평범한 것에 모두 주목하고, 선입관에 빠지지 않도록 철저히 주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물론 과학을 할 때도 필요한 접근 방식이다.”(266쪽)
 

노트북 컴퓨터,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 지피에스(GPS) 좌표 기기 등 편리한 전자기기가 기록을 편리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상당자 자연 연구자들은 종이와 연필을 고집한다.
 

na9.jpg » 미술가이자 자연사학자인 클레어 에머리가 기록한 덤불 나비의 관찰 노트.

 

잉크는 전자의 단순한 분극보다 더욱 항구적이다. 우선, 잉크는 자기장의 영향으로 변질되지 않으며, 인간의 시각 인지 체계(다시 말해, 읽기)는 세월이 흘러도 기본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수첩은 지금도 여전히 기록을 보관하는 필수 수단이다. 수첩은 또한 어떤 기상 상황에서도, 전기 공급이 끊어져도 기록할 수 있다.”(로저 키칭, 116쪽)
 
“관찰노트는 (비가 오나 햇볕이 내리쬐나) 어떤 순간에도 기록할 수 있으며, 전지가 닳아 없어질까 고심하지 않아도 되고, 떨어뜨려도 망가지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GPS 좌표를 노트에 기록하는데, 디지털 파일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파손되는 경우를 대비한 조치다.”(애나 케이 베렌스마이어, 146쪽)


na1.jpg » 에드워드 윌슨이 1955년 스리랑카에서 나무에 사는 흑개미를 기록한 관찰 노트.


이 책은 관찰 노트를 작성하는 방법과 그림 그리는 법 등을 안내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실용서는 아니다. 오히려 자연 속에서 현장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의 연구과정을 이해하고 그들의 ‘종이와 연필’ 사랑을 엿보게 해 주는 책이다.

 

오죽하면 사회생물학의 거장 에드워드 윌슨은 자신에게 천국은 탐사할 자연과 “끝없이 쓸 수 있는 노트”가 있는 곳이라고 했을까.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휴먼사이언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런던에 좀비가 나타났다...

사람 살리는 '착한 좀비' 어디 없소?

[런던 별곡⑧] 노숙자 문제 해결에 도움 주고자 시작된 '세계 좀비의 날' 행사

13.10.14 10:59l최종 업데이트 13.10.14 11:15l

 

기사 관련 사진

좀비로 분장한 이들이 카메라를 향해 좀비 흉내를 내고 있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좀비들이 거리에 나섰다. 한 둘이 아니다. 700명에 가까운 좀비 무리가 런던 시내 한복판을 활개치고 돌아다녔다. 좀비들이 떼거리로 거리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좀비(Zombie)는 원래 서아프리카의 전통 종교인 부두(Voodoo)교에서 왔다. 부두교에서 좀비는 죽음의 문턱에서 되살아온다. 그런 점에서 좀비는 저승과 이승 사이를 떠도는 한국의 '원귀(寃鬼)'와 같으면서 다르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이라는 경계에 있다는 점에서 좀비와 원귀는 같다. 하지만 원귀는 이미 '죽은 몸'이고, 좀비는 '되살아난 몸'이다. 원귀는 원통한 사연을 품고 스스로 구천을 방황한다. 반면 좀비는 주술사에 의해 불려나와 노예로 부려진다.

좀비는 1932년 <화이트좀비>에 등장한 이후 '좀비 영화'라는 독자 영역까지 구축했다. 영화에서 좀비는 '사람들을 마구 해치는 살아있는 시체'로 묘사되곤 한다. 주술사에게 불려나와 노예로 부려지는 좀비의 원형에 '극적 변용'이 이뤄진 셈이다. 이 때문에 좀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무섭고 잔인하고 괴기스럽다'는 것이다.
 

기사 관련 사진
고등학생인 루이스(맨 오른쪽)와 그의 친구들도 '좀비 데이'에 참가했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12일 오후 1시께(영국 런던 현지 시각), 영국 런던 마블아치(Marble Arch)에 좀비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약 700명의 좀비가 떼로 모였지만 공포에 떠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되레 곳곳에서 웃음과 장난이 그치질 않았다.

물론 이들은 진짜 좀비가 아니다. 좀비로 분장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좀비 분장을 하고 모인 까닭은 '세계 좀비의 날(World Zombie Day)' 런던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다.

세계 좀비의 날은 좀비 문화 팬들이 굶주림과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지난 2006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처음 시작했다. 피츠버그에서 이 행사를 처음 시작한 까닭은 '좀비 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로메로 감독이 피츠버그에 있는 먼로 몰에서 <새벽의 저주, 원제:Dawn of the Dead>를 촬영했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열린 '좀비의 날' 행사를 주관한 데이비드(David)는 "2013년 10월 현재 런던은 물론 뉴욕과 파리, 도쿄 등 세계 50 개 이상의 도시에서 좀비의 날 행사를 치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오늘 행사 현장엔 약 700명이 나와 있지만 페이스 북을 통해 참가 접수를 한 이는 2000명 이상"이라며 "참가 신청을 한 이들은 이후 저녁 8시까지 런던 곳곳에서 행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시간에 맞춰 올 것"이라고 말했다.

주최 측은 노숙자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을 돕는다는 행사 취지에 맞게 기부금과 음식물을 현장에서 기부 받았다. 참가자들은 다양했다. 가족과 함께 온 이도 많았고, 학교 친구들과 함께 온 이들도 있었다.
 

기사 관련 사진
'세계 좀비의 날' 런던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데이비드가 참가자들에게 주의사항을 얘기하고 있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세계 좀비의 날' 행사에서는 기부금과 함께 먹을거리도 기부받고 있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친구 11명과 함께 온 수잔(Susan)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참가했다. 그는 "좋은 취지로 행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친구들도 좋아하고 또 재밌어한다"며 좀비의 괴기스런 표정을 익살맞게 표현했다.

고등학생인 루이스(Louise)는 친구 5명과 함께 왔다. "친구의 추천으로 올해 처음 참가했다"는 루이스는 "큰돈은 아니지만 기부금을 내서 힘든 이들을 도와줄 수 있어 기쁘다"며 "무엇보다 친구들과 함께 해서 즐겁다"고 말했다.

여덟 살 샘(Sam)의 가족은 작년에 이어 온 가족이 모두 참가했다. 샘과 엄마 아빠, 누나 두 명 등 모두 다섯 명이 각각 기부를 했다. 기부에 맛들인 '수상한 가족'이었다. 샘의 가족들은 내년 좀비의 날 행사에도 참여할 계획이라고.

마블아치에서 행사를 시작한 참가자들은 런던 시내를 행진했다. 행진은 피카딜리 서커스 등 모두 5구역에서 진행됐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하는 행사지만 사람들이 무서움과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분장이기에 주최 측은 참가자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시민들에게 과한 몸짓은 하지 말고, 교통신호를 잘 지키고, 술은 삼가라는 것 등이다.
 

기사 관련 사진
좀비로 분장한 아빠 등에 업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좀비의 날 행사를 둘러보는 어린 아이.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기부 행사에 참가한 여덟살 샘의 가족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좀비 떼거리의 시내 행진을 바라보는 런던 시민들은 순간 놀라면서도 재미있다는 반응이었다. 친구와 함께 있던 롭(Rob)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며 "다음 행사에는 친구 6~7명과 함께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엔 인권위가 조사한 전 세계 노숙인 수는 약 1억 명에 달한다. 한국의 노숙인 수는 모두 1만3262명, 인구 1만 명 당 약 2.73명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는 노숙인 복지시설 협의체와 민간단체가 지난 2012년 10월 조사한 것이다.

한국의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은 "노숙이라는 한계상황으로 내몰린 원인은 무척 다양하지만 가장 주된 원인은 불평등한 사회구조"라며 "노숙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 문제로 돌리지 말 것"을 호소한다.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상태를 유지하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일거리가 급감하면서 노숙에 이르게 된 사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뎃잠조차 편히 잘 수 없는 노숙인들에게 다시 겨울이 오고 있다. 한뎃잠보다 더 서러운 것은 싸늘한 시선일 것이다. 괴기스럽지만 우스꽝스런 분장으로 행진하는 '좀비 행사'가 굶주림과 노숙인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진 못한다. 하지만 이런 행사는 노숙인 문제를 공동체가 풀어야할 숙제로 고민하게 한다. 사람 살리는 '착한 좀비'가 많이 늘어나야 하는 까닭이다.
 

기사 관련 사진
지하도로 내려가는 '좀비의 날' 참가자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좀비 분장을 한 이들이 런던 시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죄 있거나 지탄받아야 벼슬하는 나라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85>아이들이 이걸 배워야 하나

기사입력 2013-10-14 오전 9:32:32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이 어느 날 높은 벼슬자리를 꿰차고 앉았을 때, 우리 같은 민초(民草)들은 참으로 난감해 짐을 흔히 느낀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마땅히 설명해 줄 말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납득시킬만한 무슨 꼬투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서는 김기춘 씨가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되었을 때 그랬다.

그가 높은 벼슬에 오를만한 훌륭한 인생을 살았노라고 늘어놓을 전력이 떠오르지 않았다. 유신헌법 기초자(起草者)니, 공안몰이의 전문가니, 정치술수의 달인이니 하는, 교육적으로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고약한 그의 '상표'를 일일이 말해줄 수도 없었거니와, 그보다도 부산 초원복국 집에서의 '지역감정 조장' 이야기는 더더군다나 까발릴 수도 없었다. 이 나라 현대사에서 지역감정 조장이야말로 비록 육법전서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용서할 수 없는 범죄요, 죄악 중의 으뜸 죄악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그를 비서실장에 임명해 놓고는 앞으로 비서실은 국정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씨에게 한껏 힘을 실어준 것이었다. 그렇게 김 씨는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꼭대기 벼슬자리에 올라앉았다. 김 씨의 비서실장 임명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나는 대통령의 역사 거꾸로 돌리기요, 또 다른 하나는 이 나라에서는 지은 죄가 있거나, 적어도 많은 사람들의 지탄(指彈)을 받아야 벼슬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실제로 김기춘 씨를 필두로 그런 식의 '벼슬인사'가 이 정권 아래서 꼬리를 물고 있다. 서청원 씨도 그러했고 홍사덕 씨도 그러했고 김석기 씨도 그러했다. 심지어 새누리당 실버세대 위원회 부위원장처럼 별로 커 보이지 않는 벼슬자리에도, 지역감정 폭언을 일삼다 지탄의 대상이 되어 당에서 축출까지 되었던 사람을, 복당시켜 임명하였다. 안타까운 이야기다. 그런 인사는 공천하지 않겠다거나, 신뢰를 철석같이 강조하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이미 다 물 건너갔다.

지금 되돌아보아도 서청원 씨의 죄, 그거 가볍지 않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내 돈 아깝지 않은 사람 없다. 서 씨는 "개인적인 착복이나 횡령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기업의 채권과 만 원짜리 돈다발을 차곡차곡 트럭에 쌓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차를 통째로 넘겨받는 방식으로 '강탈'해다 대선 치른 질 나쁜 범죄였다. 뚜렷한 사회활동이나 정치경력도 없는 사람을 국회의원 비례대표 1번으로 앉히는 대가로 떼 돈 받았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서 씨의 아들은 채용공고와 시험도 거치지 않고 국무총리실에 4급으로 특채되었다. 총리실은 인사발령 공고도 내지 않았다. 그렇게 특채사실을 숨겼다. 그 아들을 총리실에 '추천'한 사람은 바로 아버지 서청원 씨였다고 했다. 특권 상류층의 진동하는 구린내가 하늘을 찌르는 모양새다. 이 나라에서는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어야 벼슬길에 오르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그 서청원 씨가 청와대의 찍어 누르기로 연고도 없는 지역 보궐선거 공천을 받았다.

서 씨는 새누리당의 공천장 수여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거물이다. 그러면서도 "야당의 입장에서 야당을 배려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데 그게 될지는 의문이다.
 

▲ 왼쪽부터 서청원, 김기춘, 김석기 씨. ⓒ연합



손 벌려 남의 돈 뜯어낸 홍사덕 박근혜 대통령 후보 공동선대위원장도 서 씨와 별반 다르지 않은 케이스였다. 홍 씨도 처음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펄쩍 뛰었고, 박근혜 후보도 "조속히 진실이 밝혀졌으면 한다"했다. 그러나 진실은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거머쥔 것으로 금방 드러나 그는 유죄선고를 받았다. 홍 씨는 공판에서 "깊이 반성 한다"며 앞으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홍 씨에게 '징역형 아닌' 벌금형을 구형했다.

저 유명한 용산 참사의 '표지인물'로 김석기 씨를 사람들은 잊지 못한다. 시민의 안전은 전혀 고려치 않고 특공대까지 투입하는 우격다짐 강경 진압으로 6명이나 되는 소중한 목숨을 빼앗고 20여 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게 용산 참사였다. 그 지휘자가 김석기 씨였다. 그런 그가, 공항업무와 전혀 연관성도 없는 그가, 공항공사 사장 내부 심사에서 꼴찌점수를 받기까지 했다는 그가, 상식과 예상을 깨고 사장에 임명된 게 이번 사태다.

김 씨는 "용산에서의 경찰 진압은 적법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진압은 누가 뭐래도 불법이다. 사람을 살리는 진압이어야 했다.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왜 이런 사람을 무리수를 두어가며 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했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하필이면 죄를 지었거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사람만을 '골라서' 벼슬자리에 앉히는 인사에 대해 절망감을 표시한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그레샴 법칙'의 세상을 대통령이 신봉하는 건 아닌가 하고 우려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동안 대통령이 신세졌거나 은혜 입은 것 갚아야 할 일 있다 보니 그리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기능적 측면을 고려했을 것이라 보는 사람도 있다. 대통령의 흉중(胸中)을 헤아릴 길은 없으나 그들 이야기에는 놓치고 있는 대목이 있다. 필자 보기에 대통령의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감대가 확보돼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적ㆍ국민적 평판이 그래서 중요하다. 물론 사람 됨됨이도 살펴야한다.

아울러 사람들이 인사를 접하면서, 느끼고 배워갈 수 있는 사회 교육적 측면이 고려돼야 한다고 본다. 올바른 생각으로 바르게 살면서, 땀 흘려 노력하는 사람이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이번 일련의 인사를 놓고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는 어림하기 어렵지 않다.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는 사회교육 문제가 바야흐로 대통령의 비교육적 인사 행태까지 겹치면서 큰 상처를 입는 느낌을 주고 있다.

설화(說話)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오랜 옛날, 사람이 70세가 되면 산중에 내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 어떤 노인이 칠순이 되자, 아들이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약간의 음식과 함께 아버지를 버리고 막 돌아서는 순간, 함께 따라갔던 노인의 손자가 버리고 가려던 지게 멜빵을 움켜잡았다. "왜 그러느냐"고 아버지가 물었다. 손자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늙으면 나도 이 지게에 지고 와 버리려 한다"고 했다. 아들은 깨닫는 바가 있어 도로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와 효도를 다 했다고 전해진다.

서슴없이 지게 멜빵 움켜쥐듯이, 아이들은 빨리 배운다. 요즘 아이들, 비뚤어진 생각을 하면서 바르지 않게 살아도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까짓 땀 흘리지 않고 다소 나쁜 짓 하며 살아도 높은 벼슬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과만 괜찮으면 과정쯤이야 중요치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최근의 대통령 인사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TV들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대통령보다 한술 더 뜨고 있다. 특히 종편은 서로 같은 대(帶)의 주파수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사회 풍토조성에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고 있는 느낌까지 준다.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기소까지 되었던 전직 국회의원이 불과 1년 사이에 각종 종편 프로그램의 MC자리를 차지하며 '스타'가 되었다. 본인은 이미지 세탁에 성공했다 할지 몰라도 아이들은 뭔가 다른 측면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저렇게 돈 벌고 '출세'나 하면 됐지 다른 건 따질 필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필경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스캔들로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 씨의 종편 MC 미수사건에서도 우리의 아이들은 무언가 배웠을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어떤 분이 생전에 방송의 핵심 기능으로 Edutainment를 강조한 적이 있다. Education과 Entertainment의 합성어다. 방송이 사회교육 기능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그러나 지금 종편을 포함한 방송들에게 교육기능은 중요치 않다. 그저 돈벌이가 될 수 있는 기능만 눈에 띄면 몇 푼주고 사다가 수익증대에 활용하면 그뿐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사회교육 기능은 물론 언론 본연의 임무를 팽개친 지 오래다. '이른바 언론'이 되어있을 뿐이다.

특히 종편들은 제작비가 싼 '시사분석 토크쇼' 프로그램으로 시간을 때우며 객관적으로 검증되지도 않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이른바 정치 평론가'들과 '이른바 해설가'에 '이른바 원로'까지 출현시켜 특정 정당 편들기 방송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비교육적인 사실상의 막장 편파방송이다. 윤창중 씨처럼 '간택' 받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이른바 해설가'들과 '이른바 정치평론가'들의 애처로운 모습도 보기에 안타깝다.

문제는 정글 속을 살아가는 우리의 아이들이다. 저 '꼭대기'에서부터 밑바닥은 물론 전후좌우 모두가 '배워서는 안 될 것들'을 주입시키려고 팔을 걷어붙인 채 덤비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아이들이 주인이 되는 내일, 이 나라의 건강상태는 어떤 모습일까. 가슴이 막막해진다.

 
 
 

 

/오홍근 칼럼니스트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MB 범죄의 재구성' 4대강-한일협정 문서 파기

'MB 범죄의 재구성' 4대강-한일협정 문서 파기

 

 

 


2011년 1월 27일 감사원은 무려 1년 동안 끌었던 '4대강 사업'의 감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이 '과거보다 홍수에 더 안전하게 하천이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히면서 일부 미진한 사례는 있지만, '4대강 사업은 문제없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4대강 사업의 문제를 계속 제기했던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즉각 반박했지만, 감사원은 계속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고, 정부와 한나라당도 감사원의 결과를 토대로 4대강 사업은 성공한 사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감사원을 동원하여 면죄부를 준 MB'

MB정권 말기에 나왔던 감사원의 감사 발표는 말도 안 되는 감사결과라고 했지만, 사실 이런 감사결과는 치밀하게 계획된 MB의 4대강 사업 면죄부의 일환이었습니다.
 

 

 

 


2008년 6월 MB는 대운하 포기 선언을 합니다. 이후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발표하기 2주 전인 11월 29일 정종환 당시 국토해양부 장관으로부터 '수자원 현안보고'를 받습니다.

MB는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한반도 대운하 TF의 성과물을 (4대강)마스터 플랜에 반영하고, 운하 운운하는 데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또한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감사에 대해서도 <감사원을 동원해서 일하다 실수한 것은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MB는 이번 사실을 통해 국민에게 대운하를 포기했다고 거짓말을 해놓고 뒤로는 대운하를 추진하라고 지시,감사원을 통한 면죄부까지 줬습니다. (MB정권에서 4대강 사업으로 징계받은 공무원은 단 한 명도 없다)

감사원은 헌법상 독립기관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헌법상 독립기관인 감사원을 동원하여 자신이 추진했던 사업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발표를 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민주주의 대원칙인 삼권 분립을 위배한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어떻게 국민을 속이고 국가 기관을 자신의 앞잡이로 이용했는지 보여주는 범죄 사례입니다.

'한일군사정보협정 밀실처리 질타, 공개하라는 MB'

2011년 MB 정부는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한일군사협력을 지속해서 추진했습니다. 한일군사협정에는 '군사정보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이라는 두 가지 협약이 있습니다.

국방부는 우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계획대로 체결하고, 상호군수지원협정은 당분간 보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런 방침에도 한일군사협정을 반대하는 여론은 계속 늘어만 갔습니다.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국방부는 당분간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2012년 6월 26일 국무회의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안이 통과됐습니다.

당시 중남미를 방문하던 MB는 국무회의 다음날인 27일 귀국했는데, 청와대는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국가 간의 협정, 그것도 군사 관련 협정을 대통령도 몰랐다는 말은 그 자체가 변명과 거짓에 불과했습니다.
 

 

 


MB는 한일 군사정보협정이 밀실처리라는 비판이 일어나자,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여론수렴 과정 없이 처리할 일이 아니었다고 질타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청와대는 대통령도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중남미 출장 중에 이미 처리계획을 보고받았다는 사실을 통해 '몰랐다'는 말은 거짓임이 밝혀졌습니다.

MB는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는 협정인 만큼 국회와 국민에게 소상히 공개하고 설명해 오해가 없도록 하라>며 관련 문서를 공개하겠다며 한일군사정보협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 한일군사정보협정 외교 문서 수만 건 파기'

대통령이 국민에게 협정 내용을 소상히 공개하고 설명하라고 지시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외교부는 그런 대통령의 말씀을 거역하고 한일군사정보협정 문서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2012년 7월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한일정보보호협정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요청했습니다. 국무회의(6/29) 및 외교안보조정회의(5/31) 회의록, 한일정보보호협정 초안 및 수정안, 협정안 가서명이 이뤄진 한·일 외교국방실무급회의(4/23) 회의록 등의 문서 공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용역보고서와 목록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료청구에 대해 외교통상부는 '국가안전보장 관련 사항'이라는 이유를 들어 자료를 비공개로 처리했으며 공개를 거절했습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외교부의 '보안문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외교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논란이 불거지던 2012년 8월 무려 1만3,202건의 문서를 파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정부의 문서는 함부로 파기할 수가 없습니다. 문서별로 보전기간과 비밀 보호기간을 명시하고 보관해야 하는데, 외교부는 무려 6만5,904건 (통일부의 경우 한 해 파기 문서 1천건 미만)을 파기했습니다.

외교부의 평균 문서 파기가 1천 건 이하가 대부분이었던 상황과 비교해보면 유독 그 시점에 문서 파기가 많았다는 사실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문서를 공개하지 않고 일부러 파기했다는 의혹을 받기 충분합니다.
 

 

 


MB는 현직대통령이 볼 수 있는 '비밀기록물'을 단 한 건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가 외교문서를 수만 건 파기하고 현직대통령도 볼 수 없도록 기록물을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은 지금 그가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문서가 파기됐다는 말은 아예 그 문서가 사라진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이관된 이지원 사본과 국정원본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MB의 문서는 아예 파기되고, 찾지도 볼 수도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물론이고 참여연대와 정보공개센터에서는 계속해서 MB 기록물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그런 일보다 NLL 대화록만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범죄 증거는 그 틈을 타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요새 심각한 딜레마를 갖고 글을 씁니다. 과연 MB정권의 문제가 과연 그들만의 문제인가라는 부분입니다.

4대강 사업이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하면서 일부 국민이 반대했지만, 언론은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대다수 국민은 정부 시책을 반대하는 사람을 '좌파,종북세력'으로 몰고 가는 상황에 동조, 정권을 따라갔습니다.

국민을 기망하는 사기와 거짓말에 현혹되어 동조했던 국민이 지금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지금 박근혜 정권이 벌이는 일에 다시금 동조하고 찬성하며 손가락을 들어 '종북,좌파'라고 소리치면서....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라는 피켓을 든 청년의 모습에서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우리 국민의 수준이 어떻길래 매번 당하고도 또 당하고 있는지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차고 올라옵니다.

시민의식이 진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아마 우리는 평생 저런 수준의 정부만을 가질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드는 아침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 군사전문가 “조지 워싱턴호 남해에 나타난 까닭”

북, 침략 짓뭉갤 만단의 격동상태
 
북군사전문가 “조지 워싱턴호 남해에 나타난 까닭”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10/14 [10:12]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이 “미제는 우리 군대와 인민이 이 세상 그 어떤 적대세력의 침략전쟁도발책동도 자체의 무진 막강한 군력으로 순식간에 짓뭉개버릴 만단의 격동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할 것”이라며 미국에 거듭 경고해 주목되고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는 ‘조지 워싱톤호는 왜 조선남해에 나타 났는가’라는 군사전문가와 기자와의 대담을 소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우리민족끼리는 군사문제전문가 김준호씨와 나눈 대담이라면서 조지워싱턴호가 한반도 수역에 나타난 이유와 핵학공모함의 편제, 규모 등을 소개하며 미국의 대조선 침략을 위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우리민족끼리 기자는 대담에서 “미국과 괴뢰 호전광들, 그리고 일본반동들이 막대한 병력을 동원하여 조선남해에서 대규모적인 합동군사훈련을 감행하였다.”며 “이와 관련하여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대변인담화를 통하여 핵동력 항공모함을 포함한 미제침략군의 핵타격 수단들이 조선반도 주변지역 상공과 수역들에 더 자주, 더 깊이 들어올수록 틀림없이 예상할 수 없는 참사를 빚어내게 될것이라는 것 과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어떤 경우에도 그것들을 때 없이 들이밀고 있는 미국이 전적으로 지게 될 것이라는데 대하여 밝혔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담화에서 언급한 핵동력 항공모함이 바로 《조지 워싱톤》호가 아닌가.”라고 성토성 질문을 던졌다.

이에 군사문제 전문가 김준호씨는 “그렇다. 그 소속은 미국의 태평양사령부산하 태평양함대소속 제7함대의 제5항공모함전단으로 되어있다.”며 “미국의 태평양사령부는 지구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태평양의 제해권을 틀어쥐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런 것만큼 그 실현을 위해 산하의 전투사령부도 무려 네 개씩이나 된다. 이 네 개의 전투사령부는 다 하와이에 둥지를 틀고 있는데 그 명칭을 보면 태평양육군사령부, 태평양해병대사령부, 태평양공군사령부, 태평양함대사령부 이렇게 되어있다. 태평양함대도 7함대와 3함대로 나누어져 있고 7함대는 또 제7원정강습단과 제5항공모함 타격단으로 구성되어있다. 《조지 워싱톤》호는 제5항공모함 타격단에 속해있다.”고 조지워싱턴함의 소속에 대해 답했다.

우리민족끼리 기자와 군사문제전문가는 더 구체적으로 조지워싱턴호와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규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2008년 9월에 고정배치 된 항공모함의 승선한 병력은 3 ,200명이고 이 항공모함에는 제5항공모함비행단의 함재기 70대가 실린다며 “조지 워싱톤호에서 출격하여 항공모함 공중작전에 참가하는 제5항공모함비행단은 4개의 타격전투기대대, 1개의 공중조기 경보기대대, 1개의 전술전자전대대, 1개의 반잠수함 직승기대대, 1개의 함대병참지원대대로 편성되었는데 총 병력수는 2,48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며 “또 이 항공모함비행단의 함재기들을 보면 《슈퍼 호네트》라고 부르는 다기능전투기 《FA-18EF》 28대, 《호네트》라고 부르는 다기능전투기 《FA-18AC》 22대, 《프라울러》라고 부르는 《EA-6B》전자전기 6대, 《호크 아이》로 불리우는 《E-2C》공중조기경보기 6대, 《그레이하운드》라고 불리우는 《C-2A》수송기 2대, 그리고 《씨호크》로 불리우는 《SH-60F》 및 《HH-60H》반잠수함초계 직승기 6대 등”이라고 재원과 전력을 소개했다.

또한 우리민족끼리 기자가 조지워싱턴호와 함께 해상 작전을 벌이는 제15구축함대의 전력에 대해 묻자 군사문제 전문가는 “대략 미사일순양함 1척, 미사일구축함 5척, 미사일프리케트함 2척으로 편성되었으며 총 병력수는 2,430여명”이라며 “사실 미국의 핵동력 항공모함 조지 워싱톤호의 작전반경은 무려 1,000km에 달한다. 조지 워싱톤호와 그에 배속된 타격집단들에 적재된 《토마호크》순항미사일도 1,000여기에 달한다. 《토마호크》는 《미국의 창》이라는 악명을 떨쳐온 대표적인 공격용미사일이다. 지금까지 생산된 《토마호크》순항미사일이 총 4,000여기에 달하고 1991년 만 전쟁으로부터 시작하여 아프가니스탄전쟁, 유고슬라비아전쟁, 이라크전쟁 등 17년간의 침략전쟁에서 사용 된 것만도 1,900기에 달한다고 할 때 조지 워싱톤호 타격 집단이 보유한 1,000여기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라고 조지워싱턴호의 무력을 설명했다.

대담에서 기자가 조지워싱턴호가 한반도 수역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묻자 군사전문가는 “조선반도(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이를 직접 지휘하는 것이 미태평양함대사령부이며 그중에서도 7함대사령관이 주역을 맡고 있다.”며 “미제는 앞으로 제2의 조선전쟁을 일으키는 경우 《선제타격》-《전략적거점 및 상대측지역 점령》- 《수뇌부 및 대량살상무기 제거》의 3단계로 진행하려 하고있다. 이러한 전쟁계획들이 《작전계획 5027》,《작전계획 5029》,《작전계획 5030》,《작전계획 8010-08》,《신작전계획 5015》 등에 반영되어있다. 타격단계에서는 조지 워싱톤호를 기함으로 하는 제5항공모함 타격단이, 점령단계에서는 미제7원정 강습단이, 제거단계에서는 제20지원사령부산하 지상군병력이 동원되게 된다. 제5항공모함타격단과 제7원정강습단은 미해군에 소속되어있고 제20지원사령부는 미육군에 속한다. 즉 미제7원정강습단은 제5항공모함타격단이 선제타격으로 북진의 길을 열어주면 뒤따라 상륙작전을 벌려 공화국북반부지역을 점령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답해 조지워싱턴호가 실제 북침전쟁을 위해 투입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대담에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미태평양함대사령부는 상육집단과 잠수함전단도 투입할 것이라고 단언하며 조지워싱턴호의 한반도 출현은 전쟁론에 기인한 소모전략과 착각 기만전술 전략 행위로 규정했다.

군사문제전문가는 아울러 “이미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이 작성해놓은 전쟁각본들이 다 공격대형으로 빈틈없이 짜여져 있는 조건에서 작전기동에 들어간 공격집단에 명령만 내리면 선제타격의 불의성과 효과성을 거둘 수 있다고 호전광들은 타산하고 있다.”며 “핵동력 항공모함을 포함한 미제침략군의 핵타격 수단들이 조선반도주변지역 상공과 수역들에 더 자주, 더 깊이 들어와 우리에 대한 노골적인 핵전쟁공갈을 하고 있는 엄중한 사태는 우리가 선택한 선군의 길이 얼마나 정당한 길인가를 다시 한번 깊이 새겨주고 있다.”고 역설하고 “미제는 우리 군대와 인민이 이 세상 그 어떤 적대세력의 침략전쟁도발책동도 자체의 무진 막강한 군력으로 순식간에 짓뭉개버릴 만단의 격동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성 발언으로 대담을 마쳤다.

한편 조선은 최근 한미일 해상합동군사훈련을 거론하며 한미일을 비난하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있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피하고 대화를 통한 평화정착으로 나가자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北 “불가침조약 아닌 핵이 조선반도 평화 지킬 것”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0/13 17:48
  • 수정일
    2013/10/13 17:4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국방위 대변인 성명 “美가 관계개선 원한다면 적대시정책부터 철회하라”

이계환 기자 | k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10.12 13:14:18
트위터 페이스북

 

“미국이 내놓은 불가침 제안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켜줄 수 없지만 핵을 가진 우리의 자위적 혁명무력은 모든 것을 지켜주고 담보해주게 되어있다.”

<조선중앙통신> 12일발에 따르면, 북한 국방위원회는 이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3일 도쿄에서 대북 불가침조약을 언급한 것과 관련 “이것은 우리가 맨몸으로 나앉으면 화친을 하겠다는 미국식 파렴치성과 교활성의 극치”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아울러 대변인은 “세계사의 갈피에는 불가침과 관련한 일화가 수없이 기록되어있지만 그 언제 그 어디에도 상대방의 무장을 먼저 내리게 하고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자고 달라붙은 나라는 있어본 적이 없다”며 미국측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대변인은 “최근 미국이 우리에 대한 형형색색의 압박공세를 늦추지 않은 채 핵문제를 꺼들며 조미관계문제에 대하여 떠들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우리의 원칙적인 입장을 내외에 천명한다”며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대변인은 “미국은 진실로 우리 공화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한다면 우리를 똑바로 알고 대국답게 바로 처신하여야 한다”며 “오늘 우리 공화국은 세기의 흐름과 더불어 미국의 핵공갈에는 그보다 더 위력한 핵타격수단으로, 미국의 전면공격에는 전군, 전민, 전국이 떨쳐나선 정의의 전면전쟁으로 맞받아 대응할 수 있는 정치강국, 군사강국, 핵보유국으로 위용떨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변인은 “미국은 전제조건을 내세운 대화나 관계개선에 대하여, 핵무기를 먼저 내려야 불가침이 있다는 날강도적인 주장에 대하여 다시는 입게 올리지 말아야 한다”고는 “오늘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처사는 신통히 고래를 낚겠다고 북어 미끼를 들고 헤덤비는 무식하고 가련한 낚시군의 신세를 방불케 하고 있다”고 조롱했다.

둘째, 대변인은 “미국은 낡은 사고와 구태에서 벗어나 때늦기 전에 해묵은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버려야 한다”면서 “미국은 골수에 배인 우리에 대한 적대감으로 하여 전쟁도, 평화도 아닌 불안정한 조선반도의 사태를 종식시키려고 내놓은 우리의 여러 가지 건설적인 제안도,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물론 미국이 바라는 세계의 비핵화까지 포함한 여러 가지 문제를 협의하자는 우리의 대범한 요구도 일일이 밀막아버리면서 오직 우리가 먼저 손을 들고 먼저 무릎을 꿇게 하기 위한 끈질긴 봉쇄조치와 군사적 압박공세를 강화하는데 몰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난했다.

대변인은 “미국의 악명 높은 대조선 적대시정책은 시대를 다 산 저들의 처지는 물론 상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고안된 것으로 하여, 강도적이고 일방적이며 독선적인 침략논리에 기초한 것으로 하여 파산의 운명을 면치 못하게 되어있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셋째, 대변인은 “미국은 조선반도의 비핵화 의미를 똑바로 알고 우리에 대한 모든 고립 압살조치를 전면 철회하여야 한다”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로서 “이 비핵화는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까지 완전히 청산하고 그것을 세계의 비핵화와 이어놓기 위한 평화애호적이며 힘 있는 물리적 수단”이기에 “세계의 비핵화를 원하는 미국이 우리의 비핵화에 대하여 반대할 하등의 이유도 없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특히 대변인은 “특별히 언급하지만 미국은 우리의 체제전복과 영토강점을 넘겨다보며 벌리는 각종 전쟁연습을 비롯한 모든 도발행위들을 즉시 전면중지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면서 “탐욕적인 아시아태평양 중시전략의 일환으로 우리에게 가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고립압살봉쇄조치를 철회하는 정책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선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

조선반도에서 전쟁의 포화가 멎은 때로부터 60년세월이 흘렀다.

이 기간 전쟁의 재발을 막고 나라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한 우리 공화국정부의 투쟁은 순간도 멈춤이 없이 줄기차게 진행되여왔다.

극한계선으로 치닫군 하던 조선반도의 긴장한 정세가 전쟁으로 번져지지 않은것은 전적으로 국토량단과 민족분렬의 쓰라린 고통을 안고있으면서도 모든 힘을 다하여 기울여온 우리 군대와 인민의 평화애호적인 노력과 정의로운 투쟁의 결과였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과 투쟁은 년대와 세기를 넘어 오늘도 계속되고있다.

그러나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투쟁은 언제나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악랄한 도전을 이겨내며 전개되고있다.

최근에만도 미국은 해상, 수중, 공중핵타격수단들을 조선반도수역과 령공에 때없이 진입시켜 한편으로는 우리를 반대하는 로골적인 핵공갈과 광란적인 전쟁연습에 열을 올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핵무기를 내리게 한 다음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무모한 군사작전과 교활한 여론전에 집요하게 매달리고있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지난 10월 3일 도꾜한복판에서 세계에 대고 청을 돋군 미국무장관 케리의 불가침타령이다.

이날 케리는 우리가 비핵화를 먼저 시작한다면 미국은 대화할 준비가 되여있으며 우리의 비핵화시작이 분명해지면 우리와 평화적인 관계도 맺고 불가침조약도 체결할것이라고 희떱게 횡설수설하였다.

말하자면 우리가 핵무기를 내놓으면 대화도 있고 관계개선도 있으며 불가침도 있다는 감언리설로 감히 그 누구를 흔들어보려고 꾀한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맨몸으로 나앉으면 화친을 하겠다는 미국식파렴치성과 교활성의 극치이다.

세계사의 갈피에는 불가침과 관련한 일화가 수없이 기록되여있지만 그 언제 그 어디에도 상대방의 무장을 먼저 내리게 하고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자고 달라붙은 나라는 있어본적이 없다.

원래 불가침조약은 속내는 어떠하든 고유한 의미에서 상대방을 서로 존중하면서 침략과 무력간섭을 포함한 일체 군사적공격을 하지 않기로 담보하는 확약으로 알려져있다.

오바마 미행정부의 정객들이 그처럼 현명하고 진정으로 우리와 불가침조약체결문제를 론의할 의향이 있다면 마땅히 지난 세기 3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수십년기간 여러 국제조약들과 유엔헌장에 규제하여놓은 불가침의 몇가지 원칙만이라도 다시 공부했어야 할것이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지난 세기 40년대 이전 쏘련에 대한 불의침공을 가리우기 위해 체결하였던 파쑈도이췰란드의 불가침조약이나 진주만에 대한 불의타격으로 미국을 허우적거리게 만들려고 벌린 군국주의일본의 불가침외교의 기만성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문제는 우리를 상대로 세상에 공개한 미국의 불가침타령이 지금까지 사람들이 알고있거나 력사에 기록된 그 모든 기만적인 불가침보다 더 파렴치하고 간교하다는데 있다.

우리는 이번에 느닷없이 불가침을 선창한 미국이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의 철수를 한사코 반대하고 우리의 《변화》와 《붕괴》를 유도하기 위해 술수를 가리지 않고있다는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한 미국이 우리를 향해 무기를 내놓고 맨손으로 나앉으라고 설교해댄것은 우리 군대와 인민에 대한 참을수 없는 우롱이고 모독이 아닐수 없다.

분명히 하건대 미국의 교활한 불가침타령에 놀아날 우리 군대와 인민이 아니다.

미국은 기만극의 기량높은 주역처럼 가면을 쓰고 역겹게 치근거리지 말아야 한다.

미국이 내놓은 불가침제안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켜줄수 없지만 핵을 가진 우리의 자위적혁명무력은 모든것을 지켜주고 담보해주게 되여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는 최근 미국이 우리에 대한 형형색색의 압박공세를 늦추지 않은채 핵문제를 꺼들며 조미관계문제에 대하여 떠들고있는것과 관련하여 우리의 원칙적인 립장을 내외에 천명한다.

1. 미국은 진실로 우리 공화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한다면 우리를 똑바로 알고 대국답게 바로 처신하여야 한다.

우리 공화국은 주권이 없고 총이 없어 대국들의 총칼에 란도질당하던 어제날의 약소국이 아니다.

지난날 세계를 놀래우며 상대를 굴복시키던 미국의 《포함》공세나 첨단을 으시대는 공중우세가 우리 군대와 인민을 놀래우고 악랄한 정치경제적인 고립압살책동이 우리 공화국을 흔들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을 없을것이다.

지금은 19세기도, 20세기도 아닌 21세기 10년대이다.

오늘 우리 공화국은 세기의 흐름과 더불어 미국의 핵공갈에는 그보다 더 위력한 핵타격수단으로, 미국의 전면공격에는 전군, 전민, 전국이 떨쳐나선 정의의 전면전쟁으로 맞받아 대응할수 있는 정치강국, 군사강국, 핵보유국으로 위용떨치고있다.

미국의 비극은 억센 기상을 떨치고있는 오늘의 우리 조선, 우리의 인민공화국에 대하여, 그것을 끝없이 사랑하고 목숨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우리 군대와 인민에 대하여 너무나도 모르고있다는데 있다.

지어 미국은 《혈맹》으로 춰주고있는 몇몇 괴뢰주구들의 아양에 취한 나머지 오랜 세월 반미라는 말 한마디도 입에 올리기 두려워하던 남조선인민들이 우리 공화국을 따라 미국을 평화대신 전쟁을 몰아오는 제일 못된 침략자로, 통일대신 분렬과 지배만을 노리는 날강도로, 보기 싫고 대하기 싫은 강점자, 략탈자로 락인하고 반미열풍을 세차게 몰아올 준비를 다그치고있는것도 느끼지 못하고있다.

미국이 진정으로 우리와의 관계개선을 바란다면 남조선의 수백, 수천만 인민들까지 따라나선 우리 공화국을 똑바로 알고 덩지큰 나라답게 제 처신만이라도 바로해야 할것이다.

미국은 전제조건을 내세운 대화나 관계개선에 대하여, 핵무기를 먼저 내려야 불가침이 있다는 날강도적인 주장에 대하여 다시는 입게 올리지 말아야 한다.

오늘 미국이 보여주고있는 처사는 신통히 고래를 낚겠다고 북어미끼를 들고 헤덤비는 무식하고 가련한 낚시군의 신세를 방불케 하고있다.

미국이 제안한 대화나 교활한 불가침에 숨겨진 민지를 가려보지 못할 우리 군대와 인민이 아니다.

2. 미국은 낡은 사고와 구태에서 벗어나 때늦기 전에 해묵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버려야 한다.

한동안 미국은 우리와 비공개로 만나서는 사실 저들에게는 대조선적대시정책이 없다고 철면피하게 너스레를 떨군 하였다.

요즘에는 공식마당에서 미국에는 대조선적대시정책도, 우리를 공격하여 정권을 교체할 의사도 없다는 식으로 여론공세를 펴고있다.

그러나 실지에 있어서는 예나 다름없이 우리를 《악의 축》, 《법치기준》과 《국제행동규범》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불량배나라》로 규정하고 온갖 제재와 고립봉쇄의 도수를 체계적으로 높이면서 체제전복시도를 실현해보려고 악착스럽게 놀아대고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미국은 우리 공화국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우리 제도를 조기에 《붕괴》시키려고 피눈이 되여 날뛴것으로 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가슴을 분노로 끓게 하였다.

그때 부쉬 미행정부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우리 공화국을 미국의 일극세계수립에 도전하는 《일류급테로국가》, 《불량배국가》, 《폭정의 전초기지》로 단정해놓고 전면봉쇄와 선제공격에 의한 우리의 체제전복을 최종목표로 내세운 강도적인 정책이였다.

그런데 요즘 오바마 미행정부 역시 공화국북반부 전 지역을 강점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선행미행정부의 《5027》, 《5029》, 《5030》과 같은 작전계획의 시행도 성차지 않아 괴뢰들과 함께 우리를 선제타격하기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맞춤형억제전략》까지 고안해낸것이다.

결국 미국은 골수에 배인 우리에 대한 적대감으로 하여 전쟁도, 평화도 아닌 불안정한 조선반도의 사태를 종식시키려고 내놓은 우리의 여러가지 건설적인 제안도,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물론 미국이 바라는 세계의 비핵화까지 포함한 여러가지 문제를 협의하자는 우리의 대범한 요구도 일일이 밀막아버리면서 오직 우리가 먼저 손을 들고 먼저 무릎을 꿇게 하기 위한 끈질긴 봉쇄조치와 군사적압박공세를 강화하는데 몰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실은 대조선적대시정책도, 우리를 공격할 의사도 없다는 미국의 떠벌임이 내외여론을 기만하고 우리 군대와 인민을 우롱하기 위한 서푼짜리 회유기만극임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원래 미국은 조선반도를 분렬시킨 장본인이며 우리 인민에게 잊을수 없는 전쟁의 참화를 들씌운 침략자이며 장구한 세월 우리 민족모두에게 고통과 불행만을 안겨주고있는 불구대천의 원쑤이다.

미국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피에 맺힌 원한과 보복을 면하려면 마땅히 낡은 사고와 구태에서 벗어나 때늦기전에 해묵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버리는 용단을 내야 한다.

미국의 악명높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은 시대를 다 산 저들의 처지는 물론 상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고안된것으로 하여, 강도적이고 일방적이며 독선적인 침략론리에 기초한것으로 하여 파산의 운명을 면치 못하게 되여있다는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3. 미국은 조선반도의 비핵화의미를 똑바로 알고 우리에 대한 모든 고립압살조치를 전면철회하여야 한다.

조선반도비핵화는 공화국정부가 실현하려는 불변의 정책적목표이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전역의 비핵화이다.

이 비핵화는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까지 완전히 청산하고 그것을 세계의 비핵화와 이어놓기 위한 평화애호적이며 힘있는 물리적수단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계의 비핵화를 원하는 미국이 우리의 비핵화에 대하여 반대할 하등의 리유도 없을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조선반도비핵화의 의미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그것을 코에 걸고 여러가지 핵타격수단들을 우리의 령공, 령해, 령토가까이에 때없이 들이밀며 우리를 쉬임없이 공갈하고있다.

우리 나라 속담에 남잡이 제잡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를 먹어보려는 미국의 위협과 공갈이 지속될수록 우리에게는 더 유리한 시간이, 미국에는 처참한 운명의 길을 재촉하는 시간만이 차례지게 될것이다.

다시말하여 소형화, 다종화, 정밀화된 핵타격수단을 가진 우리 공화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약동하는 젊음으로 더욱더 강성하게 되지만 미국은 력사의 기슭으로 밀려난 물거품으로 남게 될것이다.

침략과 략탈, 지배와 강권으로 살찌고 번창해온 미국은 벌써부터 제가 저지른 죄악으로 하여 력사의 락엽속에 묻히운 옛 로마나 파쑈도이췰란드의 운명을 뒤따르고있다.

미국은 다 기울어진 지금의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부당한 구실을 만들어 조작해낸 우리에 대한 모든 제재부터 철회하여야 한다.

우리의 합법적인 위성발사를 장거리미싸일발사라고 밀어붙이며 여론을 오도하고 자위적인 핵시험을 국제질서위반으로 매도하여온 미국이 늦게나마 저지른 죄행을 씻자면 우리에 대한 모든 제재를 령으로 만드는 길밖에 없다.

미국은 때없이 가하고있는 우리에 대한 핵공갈에 더이상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핵위협과 공갈의 도수가 높아지면 질수록 미국은 자가당착적인 모순에 빠져 헤여나올수 없는 수렁에 처박히게 될것이다.

특별히 언급하지만 미국은 우리의 체제전복과 령토강점을 넘겨다보며 벌리는 각종 전쟁연습을 비롯한 모든 도발행위들을 즉시 전면중지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분별없는 도발이 우리의 보복타격으로, 미국과 최종결단을 낼 정의의 전면전쟁으로 이어질 기회로 된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한번 힘주어 말하지만 탐욕적인 아시아태평양중시전략의 일환으로 우리에게 가하고있는 각양각색의 고립압살봉쇄조치를 철회하는 정책적결단을 내려야 한다.

바로 여기에 조미관계개선의 길이 있고 조선반도는 물론 미국본토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담보가 있다.

미국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우리의 엄숙한 경종에 심사숙고해야 한다.

(출처-조선중앙통신 2013. 10. 12)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당선 10개월만에 '군복무 단축' 공약 파기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병사 군 복무 18개월 단축 공약이 지난 2월 대통령직 인수위의 중장기 과제로 밀려난데 이어, 9월 국정 과제 이행 현황에서는 아예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대통령 당선 10여 개월 만에 '군 복무기간 18개월 단축' 공약은 국정 과제에서 사라지게 됐다. 기초연금 공약(65세 이상 노인 월 20만원 지급)에 이어 군복무 단축 공약 역시 사실상 폐기된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정과제 140개 별 주요 이행 현황(2013년 9월 현재)에서 병사 복무기간 단축과 관련된 내용은 삭제돼 있다. 지난 5월 28일 발표된 140개 국정 과제에는 121번 째 국방정책 분야 안에는 "(군 복무기간) 단축 여건을 조성하고 중장기적으로 추진하여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단축"이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는데 그마저도 사라지게 된 셈이다.

군복무 기간 단축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 18일 서울 광화문광장 마지막 대중 유세에서 직접 발언했을 정도로 중요한 공약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많은 남학생들의 고민인 병역 문제를 해결하겠다. 군 복무기간은 하사관 증원 등을 통해 임기 내에 18개월로 단축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었다.
 

▲ 박근혜 대통령 ⓒ프레시안(최형락)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 논의 과정에서 '현실성' 논란이 일자 김장수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는 1월 7일 인터뷰에서 "부사관을 1만명 증원해야 단축할 수 있는데 올해 2000명이 증원되고 매년 2000명 늘린다면 박 당선인 임기 내 단축이 가능하다"고 확언까지 했었다. 1월 11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국방부가 "군 복무 기간 단축은 중장기 차원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음에도 인수위는 "군 복무 기간 단축은 공약 사항으로 공약 사항을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취지로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결국 대통령직 인수위는 2월 21일 국정비전 및 국정목표 발표에서 군 복무 기간 단축을 중장기 과제로 분류했다. 국방부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때문에 사실상 공약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또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었다.

김광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방분야 공약이었던 '사병 군복무기간 18개월 단축' 약속이 최종 폐기된 것으로 드러났다"며 "노인들을 우롱했던 기초연금제도 폐기에 이어 청년 표심을 얻기 위해 대선 전 긴박하게 직접 발표했던 병사 18개월 복무기간 단축 공약의 완전한 폐기는 다시 한 번 청년과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인터뷰] 노종면 YTN 해직기자

"YTN 진행할 땐 댓글 한줄 없었는데...
크루즈에 책 3만권 싣고 제주항으로"

13.10.13 12:31l최종 업데이트 13.10.13 12:31l
장윤선(sunnijang) 유성호(hoyah35)

 

 

기사 관련 사진
국민TV에서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노종면의 뉴스바리케이드>를 진행하고 있는 노종면 전 YTN노조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국민TV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몸은 고단한데 켜켜이 쌓이는 청취자들의 반응을 볼 때마다 기운이 나며 재미있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인터뷰] 노종면 YTN 해직기자 국민TV에서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노종면의 뉴스바리케이드>를 진행하고 있는 노종면 전 YTN노조위원장이 <오마이뉴스>와 만나 뉴스바 진행과 강정책마을 프로젝트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영상보기


YTN 구본홍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이끌었던 노종면 기자. 그는 벌써 5년째 싸우고 있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불거진 공정방송투쟁은 MB시절을 지나 박근혜시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혹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권력을 쥐면 시혜 차원에서라도 YTN 해직기자에 대한 복직을 허하지 않겠냐 했으나, 그건 결국 헛된 꿈이 돼버렸다.

노 기자는 투쟁에 투쟁을 거듭해 뉴스타파를 지나 국민TV에서 <노종면의 뉴스바리케이트>(노종면의 뉴스바)를 진행하고 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꼬박 두 시간씩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앵커로 일한다.

몸은 고단한데 켜켜이 쌓이는 청취자들의 반응을 볼 때마다 기운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재밌다고 했다. YTN에서 뉴스 진행할 때는 어디 댓글 한 줄 달리지 않았는데 날마다 주렁주렁 걸리는 댓글열매에 싱글벙글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 국민TV 사무실에서 노 기자와 만났다. 그는 올 초부터 적극 참여한 '강정마을 책마을 사업'(참가신청 문의)에 대해서도 열심히 설명했다. 17일 크루즈 한 대를 전세 내 500명의 시민들과 함께 책 3만 권을 싣고 떠날 계획이라며 다소 들뜬 눈치였다. 이 배가 너무 커서 900명까지 탑승 가능한데 아직 타겠다는 사람이 그에 절반 수준이니 더 태워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정에 평화바람을 불어넣고 싶은 취지일까. 많은 사람들이 해군기지 문제와 싸우고 있는 강정마을에 총 대신 책, 전쟁 대신 평화를 선사하자고 했다.

다음은 노종면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방송 만드는 재미, 안 해본 사람은 모를걸!"

- 국민TV에서 <노종면의 뉴스바>를 맡은 지 1개월여 지났다. 좀 어떤가.
"재밌다. YTN에서 앵커를 본격적으로 한 게 2005년부터인데, 그때 처음 시작한 프로가 <뉴스세븐나인>이었다. 그때 생각도 난다. 하루 종일 뉴스를 챙겨봐야 하니까 생활 자체가 다시 보도쟁이로 돌아간 느낌이다. 방송 만드는 과정에도 일부 참여하고 있는데 그것도 아주 재밌다. 그런 재미, 안 해본 사람은 모를걸!"

- 해직되긴 했지만 그래도 YTN 멤버로서 국민TV 앵커를 처음 제안받았을 때 어땠나.
"안 하려고 했다. 뉴스타파는 제게 굉장히 의미 있는 존재다. 그런데, 국민TV 제안을 받았을 당시엔 뉴스타파 앵커복귀도 거절한 터라 그 상황에서 뭔가 다른 일을 한다는 게 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김용민 피디가 뉴스타파랑 공동제작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건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결국 공동제작은 무산됐지만, 방송하고픈 욕심도 생겼고, 필요성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를 적극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 YTN 내부 사정이 더 나빠졌기 때문에 해직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YTN이 얼마나 더 나빠졌다고 보나.
"저항의 강도가 낮아졌고 체념도가 높아졌다. 사측의 횡포는 여전하다. 최근 YTN 보도국 기자가 정직을 당했는데 이유는 보도물에 대해 데스크에게 항의했다는 것이다.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일방이 좀 강화되고 일방이 좀 약화되는 구조가 되니까 모순이 더 첨예화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건 당연히 정권이 한쪽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에 그렇다."

- YTN노조 조합원 후배들은 국민TV 앵커를 맡는 것에 어떤 입장이었나.
"YTN에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스스로 판단한 게 아닌가, 혹 다시 올 생각이 없는 건가, 그래서 반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제 생각과 전혀 맞지 않다. 지금은 그런 오해는 좀 풀린 것 같은데, 아직 이런 것은 있는 것 같다. 국민TV라는 데는 어떤 정파성을 띠고 있는 곳이 아닌가 하는 것. 그래서 이렇게 얘기했다. 국민TV 정파성에 대해 말하기 전에 YTN 보도의 정파성에 대해 먼저 고민해보고 그 다음에 다시 얘기하기로."

- 노동조합 안에서 그런 얘기들이 오갈 때 마음은 어땠나.
"후배들이 걱정하는 걸 아는 순간 마음이 편치 않았다. YTN투쟁 중에서 제게 가장 큰 압박요인이 됐던 건 '후배들이 절 어떻게 생각할까'였다. 지금은 그런 부분에서 상당 부분 자연스러워졌다. 그런데 생각보다 국민TV 일이 너무 힘들다. 현재의 조직구성으로는 이 정도의 편성을 감당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사람도 부족하다. 이렇게 어렵게 일하고 있으니 나는 국민TV 구성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에서 빠져 있을 수는 없다. 이것저것 맡아서 하다보니 몸이 힘들다."

"하루에 수십 건씩 피드백... 소중한 에너지 얻는다"

- 앵커로 방송을 하는 것 이외에 또 어떤 일을 하나.
"보통 시사프로를 진행하면 작가가 있고 질문도 써주곤 한다. 물론 지금 저를 도와주는 분이 계시지만 거의 반 이상은 저 혼자 쓴다. 일부 조력을 받는 게 미안한 정도여서 웬만하면 그냥 제가 쓴다. 시사 에너그램 공갈이라는 코너를 만들었는데 이것도 2~3분짜리지만 제작에는 3시간가량 걸린다. 시사프로를 매일 2시간 길이로 하면 중간에 뉴스가 짬짬이 들어가는데 여기선 그냥 제가 한다."

- 벌써 5주차가 됐다.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인가.
"여건이 좀 되면 미시적인 부분에서도 방송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다. 섭외와 시간 때문에 인터뷰 1건을 20~30분씩 하는데, 건당 15분 정도로 줄이고 싶다. 15분 안에 다 할 수 있는 얘기를 길게 해서 프로그램이 늘어질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섭외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 하루에 두 건씩 섭외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 피드백은 센 편인가.
"YTN 진행할 때는 댓글 한 줄 없었는데 뉴스바는 하루에도 십수 건씩 의견이 올라온다.(웃음) 방송내용에 대한 평가들도 적절히 안배돼 있어서, 그 피드백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것도 굉장히 소중하다. 간혹 목소리가 작다는 지적이 있는데 제가 워낙 말을 좀 작게 하는 스타일이어서 그런 것 같은데 방송에선 좀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뉴스바를 진행하면서 갖게 된 원칙이 있다면 뭔가.
"가급적 핵심을 물어보려고 한다. 핵심이 쉽게 드러나도록 조력하는 게 앵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건 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그가 아파할 질문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게 고민이다."

- 국민TV는 진영매체로 인식돼 진행에서 균형을 맞추는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쓸 것 같은데.
"이런 경우가 있다. '내가 그 프로 나갔는데 아주 불쾌했어' 그럼 그 다음부터 그 방송에 출연 안 하게 된다. 내가 토론하는 상대방은 아니니까 내 생각이 있어도 말을 아낀다. 출연자를 상대로 반박하고 공격하고 그 사람 앞에서 논평하는 것, 듣는 사람들은 통쾌할지 몰라도 그게 앵커의 역할인가 하는 고민이 있다. 그 반대편에서 출연자를 너무 치켜세워주는 것도 안 되지만."

"단순한 책 보내기 운동 아니다... 참여 이끌기 위한 것"
 
기사 관련 사진
국민TV에서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노종면의 뉴스바리케이드>를 진행하고 있는 노종면 전 YTN노조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국민TV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강정책마을 십만대권 프로젝트' 참가신청 웹사이트를 보여주며 프로젝트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노 위원장은 프로젝트에 대해 "단순히 책을 기증한다는 것보다는 공동의 참여를 공유하면서 좀더 깊이있게 강정마을에 대해 이해하며 사람의 참여를 이끌기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강정마을 책보내기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개인적으로 끌려서 뒤늦게 참여했다. 이 사업은 여러 단계를 거쳐 강정 책마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되도록 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여러 갈래로 별도의 프로젝트를 몇 달간 했다."

- 그동안 어떤 프로젝트가 진행됐나.
"작년 11월 작가들이 강정마을에 제안해 마을주민들과 두어 달 협의 끝에 책마을을 만들자는 합의가 이뤄졌다. 올 초 공식적으로 책마을이 출범한다는 소식과 함께 행사 사회를 봐달라고 해서 그때 처음 책마을 사업을 알게 됐다. 해군기지 때문에 고통받는 마을을 책이라는 평화로운 매개를 갖고 마을의 이미지도 바꾸자는 취지에 공감해 참여했다."

- 책마을 이벤트는 어떻게 마련되나.
"17일 배가 떠난다. 크루즈 전세를 냈고, 이 배에 강정마을에 기증할 책 3만 권을 싣고 떠난다. 인천항에서 출발해서 제주항에 닿게 된다. 이 배에는 책마을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14시간 밤새 함께 배를 타고 가면서 강정마을에 대한 인식과 공감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책을 기증한다는 것보다는 공동의 참여를 공유하면서 좀더 깊이있게 강정마을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책 보내기 운동 아니냐, 이렇게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본질은 그게 아니다. 사람의 참여를 이끌기 위한 것이다."

- 이벤트의 하이라이트는 뭔가.
"17일 열리는 선상문화제다. 여러 예술인들이 참여해 14시간동안 밤새 공연과 강연 등을 한다. 그것은 선상문화제를 통해 참여자들에게 강정에 대한 깊은 이해를 구하는 계기가 되고 감동을 드리는 계기가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 참여자들이 책마을의 씨앗이 될 거라 판단한다."

- 그 배에는 누가 타나?
"가수 이은미씨, 장애 산악인 김홍빈씨, 김두식 교수, 소설가 황정은씨, 동화작가 유은실씨, 영화감독 허철, 손문상 화백 등이 함께 한다. 유은실씨는 배 위에서 아이들을 위한 글쓰기 교실을 할 것이고, 허철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과 체험에 나선다. 손문상 화백은 캐리커쳐를 그려줄 것이다. 500명 정도가 이 배에 동승할 텐데 모두 일몰을 보면서 출항하게 된다. 일몰을 보며 출항한 배는 해가 뜬 뒤 제주항에 도착하게 된다. 배만 타도 멋있을 텐데, 공연이 감상포인트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행사 이후에 남는, 지금은 예상할 수 없는 에너지, 물적 자원들이 책마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거라고 기대한다."

"주류언론 보는 순간 당한다... 개인이 아무리 똑똑해도 미디어 못 이겨"
 
기사 관련 사진
국민TV에서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노종면의 뉴스바리케이드>를 진행하고 있는 노종면 전 YTN노조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국민TV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 장윤선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현재 강정은 어떤 상황인가.
"여전히 힘들다. 마을 분들은 늘 웃으시지만 마을 입구 초입에는 큰 덤프트럭들이 들락날락하고, 경찰이 진을 치고 있다. 신부님, 수녀님들이 신자들과 함께 평화의 미사를 올리고 있고, 성직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엊그제도 두 분이 구속됐다. 송강호 신학박사와 박도현 수사 두 분은 강정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해온 대표적 인물이다. 강정에 살던 주민이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이 됐다. 구속이 남발되고 징역형을 때리는 수준으로 와 있는데 언론은 보도 안 한다. 주민의 구속에 대한 옳고 그름을 떠나 70대 노인의 징역살이가 1심 판결로 나왔는데 그 의미를 주목하는 언론이 없다."

- 대중은 강정마을 소식을 어디서 접하는 게 좋겠나.
"주류언론을 직접 보시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강정뿐 아니라 밀양 송전탑도 그렇다. 그런 신문을 보는 순간에 당한다. 개인이 아무리 똑똑해도 미디어를 이길 수 없다. 지금은 '땡전뉴스'를 보고 다들 비웃고 있지만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았다. 아마 지금 이 보도를 10년 뒤 20년 뒤 후배들이 보면 비웃을 것이다. 땅굴 보도도 마찬가지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땅굴이야 하겠지만 안보는 예기치 않은 데 있다는 식으로 나오면 또 속게 돼 있다."

- 언론의 불균형이 점차 심화하고 있다. 어떤 돌파구가 있겠나.
"언론 자체의 돌파구는 없을 거라고 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 없다. 제가 진행하는 프로의 이름을 '바리케이드'라고 지은 이유이기도 한데, 청취자 그리고 예상가능 청취자들을 보호하는 게 이 시기를 견디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자꾸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 그건 위험하다. 안 되면 실망할 게 아닌가. 크게 보면 지난 대선 때 민주주의를 선택했던 사람들, 언론의 후퇴와 장악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분들만이라도 의도적으로 왜곡하지 않는 그나마 언론의 기본을 유지하는 언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강정 책마을 사업, 17일 떠날 이 배의 정원은 900명이다. 더 탈 수 있다. 많은 분들이 지금 상황이 안 좋다고 했다. 본인의 힐링을 위해서라도 함께 동참해줬으면 좋겠다. 16일까지만 신청하면 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15차 범국민 촛불대회 시민 3천여명 몰려...

촛불시민 “자질없는 후보의 부정당선이 모든 문제의 원인”

15차 범국민 촛불대회 시민 3천여명 몰려...‘국정원OUT 촛불 개사곡 콘서트’로 열려

 

예소영 기자 ysy@vop.co.kr입력 2013-10-12 22:41:06l수정 2013-10-13 10:36:09

 

현란한 춤 선보이는 국정원 촛불 콘서트

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연 15차 범국민촛불대회'국정원 OUT 촛불 개사곡 콘서트'에서 닭 탈과 한복을 입은 참가자가 춤을 추고 있다.ⓒ양지웅 기자

제15차 범국민 촛불대회 단상에 오른 한국청년연대 윤희숙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문제는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논제를 뛰어넘었다”며 “현 시국은 ‘국정원을 전면에 내세워 공작정치를 하는, 유신세력이 부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국민은 대결구도에 서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단상 아래에 앉은 시민 3천여 명은 윤 대표의 발언에 환호하며 “국민이 이긴다”고 화답했다.

“채동욱 전 총장 보라...바른말 하면 대통령 최측근도 국정원 사찰대상 될 것”

12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청계천 광장에서 제15차 범국민 촛불대회가 진행됐다. 이날 촛불대회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법외노조 위기 문제부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논란, NLL 포기발언과 관련한 비밀문서 공개 논란, 복지공약 개악 논란,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까지 박근혜 정부의 문제를 성토하는 장이 됐다. 시민들은 문제의 원인을 “자질이 없는 대통령 후보의 부정선거를 통한 당선”이라고 진단했다.

시국회의 기조발언에 나선 윤희숙 대표는 “지난주 저희 단체의 청년회원이 4월 후배에게 기증한 컴퓨터에서 이적표현물이 발견됐다고 구속됐다”며 “또 정부는 정당 강령에 ‘자주·민주·통일’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통합진보당에 정당 해산 작업을 진행하고,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한 활동가를 잡아가고, 참교육에 힘쓰다 해직된 교사들을 내쫓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교조에서 노조 권한을 뺏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이 가진 생각을 사찰하는 국정원 정치가 시작한 것”이라며 “국정원 부정선거를 정확하게 조사하다 물러난 채동욱 전 검찰청장을 보라. 현재의 통합진보당·밀양 활동가,·전교조에게 닥친 문제는 곧 민주당·노동계 전체·시민사회 전체의 문제로, 종국에는 새누리당과 대통령에게 바른말을 하는 대통령 측근도 국정원 사찰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주봉희 부위원장은 “진보진영에 ‘내란음모’를 했다고 없는 일을 꾸며내는 것이 박근혜 정부”라며 “몇 사람이 ‘전쟁이 나면 총과 칼이 있어야 한다’고 농담한 것이 무슨 내란음모냐, 자질이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댓글을 단 정치공작이 내란음모”라고 꼬집었다.

이어 주 부위원장은 “현 정부는 부정선거를 지탄받는 이 현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민중들을 교란시키는 전술을 펴고 있다”며 “80만 민주노총 조합원과 국민은 이 땅의 주인으로서 똘똘 뭉쳐, 민주주의를 파기한 국정원을 해산시키자”고 주장했다.
 
에이핑크 아니죠 촛불핑크!

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연 15차 범국민촛불대회'국정원 OUT 촛불 개사곡 콘서트'에서 참가자들이 걸그룹 에이핑크를 패러디 한 촛불핑크를 선보이고 있다.ⓒ양지웅 기자

 

국정원 OUT 촛불 개사곡 콘서트
“국정원은 댓글닭, 조중동은 거짓말 닭, 경찰은 한 통 속 닭~”


이날 촛불대회는 ‘국정원 OUT 촛불 개사곡 콘서트’의 이름을 걸고 개최됐다. 이덕인 명창, 국정원감시단, 류앤탁, 더 맑음 등이 특별공연을 했다. 또 안티2mb, 새오름, 네티즌, 님크, 새바람 등 일반시민들이 만든 5개 팀은 대중가요 가사를 국정원을 규탄하는 가사로 개사해 자유공연을 했다. 시민들은 무대 옆 전광판에 표시된 노래 가사를 보며, 평소 익숙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덕인 씨는 그가 이끄는 극단 ‘신명을 일구는 사람들’의 강나율(32) 단원과 무대에 올라 달타령을 개사한 ‘닭타령’, 진도아리랑을 개사한 ‘댓글아리리랑’을 공연해 시민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이씨는 “닭타령은 시민들 사이에서 ‘닭’으로 불리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비호하는 세력을 국민이 물리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국정원은 댓글닭, 조중동은 거짓말 닭, 경찰은 한 통 속 닭이라는 가사를 통해, 박 대통령을 비호하는 세력을 닭무리로 비유했다”고 말했다.

국정원감시단 김효준(32)·김수근(31)·박현탁(24) 씨는 다이나믹듀오의 ‘출첵’을 개사해 불렀다. 박현탁씨는 “출첵은 6개월간 계속되는 국정원 규탄 구호에 힘을 실으려고 오늘 처음 공개하는 노래”라며 “가사는 민주주의를 원하는 시민이라면 매주 촛불집회에 출석체크를 하자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저절로 춤추게 하는 국정원 규탄 콘서트

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연 15차 범국민촛불대회'국정원 OUT 촛불 개사곡 콘서트'에서 시민들이 콘서트를 보며 즐거워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민중이 주인된 세상 방해한 박근혜 정부, 단죄할 것”

흥겨운 노래 공연은 가을밤 쌀쌀한 공기도 데웠다. 시민들은 이어지는 자유발언을 경청하고, 공연팀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집회에 참가한 향린교회 류호명(75) 집사는 “어제 향린교회 홍근수 전 담임목사님을 하늘로 보내드렸고, 목사님을 추도하는 의미에서 오늘 촛불 집회에 참가했다”며 “자질도 능력도 없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 국정원·새누리당·검찰·선거관리위원회가 한 통솥이 됐다. 목사님은 가셨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이 목사님의 뜻을 계승해 우리 민족의 평화 통일, 민주주주의, 민중이 주인 된 세상을 방해한 세력들을 단죄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KT노동인권센터 조태욱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전교조·공무원노조 등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것은 국민을 정부에 굴종하는 노예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KT노조 역사를 보면, 왜 민주노조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민주노조 아래 KT노동자들은 감청·도청 지시를 거부했지만, 어용노조 아래 KT노동자들은 감청·도청 지시를 이행해 정부의 사설 정보기관이 된 역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 집행위원장은 “전교조 공무원 노조의 투쟁은 정당한 투쟁이며, KT 노조는 두 노조와 함께 박근혜의 노동탄압에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에서 온 김전원(70)·민교호(71)씨 부부는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에 오르기 위해 국정원만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65세 이상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공약하며 가난한 노인들까지 동원했다”며 “아무리 권력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돈 없고 힘없는 노인들의 등을 치느냐”고 반발했다.

이어 김전원 할아버지는 “박근혜 대통령은 부정선거에 대해서 국정원을 해체해 책임을 지고, 공약파기에 대해서는 다시 공약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것으로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다.

제16차 범국민 촛불대회는 오는 19일 오후 7시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다.
 
국정원 규탄하는 한국청년연대 윤희숙 대표

한국청년연대 윤희숙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연 15차 범국민촛불대회'국정원 OUT 촛불 개사곡 콘서트'에서 연설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국정원 규탄 촛불 든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연 15차 범국민촛불대회'국정원 OUT 촛불 개사곡 콘서트'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양지웅 기자

 

촛불의 요구는 국정원 OUT

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연 15차 범국민촛불대회'국정원 OUT 촛불 개사곡 콘서트'에서 촛불로 분장한 참가자들이 국정원을 규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국정원 규탄하는 범국민 촛불 콘서트

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연 15차 범국민촛불대회'국정원 OUT 촛불 개사곡 콘서트'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양지웅 기자

 

국정원 규탄 촛불 든 아이

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연 15차 범국민촛불대회'국정원 OUT 촛불 개사곡 콘서트'에서 한 아이가 밝게 웃으며 촛불을 들고 있다.ⓒ양지웅 기자

 

촛불 개사곡 부르는 더맑음

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연 15차 범국민촛불대회'국정원 OUT 촛불 개사곡 콘서트'에서 '더 맑음'이 개사곡을 부르고 있다.ⓒ양지웅 기자

 

화려한 춤 선보이는 국정원 규탄 콘서트 참가자

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연 15차 범국민촛불대회'국정원 OUT 촛불 개사곡 콘서트'에서 닭 탈과 한복을 입은 참가자가 춤을 추고 있다.ⓒ양지웅 기자

 
 
국정원 개사곡 콘서트에 모인 촛불 시민들

1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연 15차 범국민촛불대회'국정원 OUT 촛불 개사곡 콘서트'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혁명무력의 비상한 대응 조치 간과 말라”

북, 대화 계선 넘어 전쟁 평화 엄중한 기로
 
“혁명무력의 비상한 대응 조치 간과 말라”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10/13 [09:46]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이 한미일에 대해 강경 발언을 쏟아 내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는 대결이냐 대화냐의 한계선을 넘어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엄중한 기로에 서있다고 경고의 메시지를 내놓아 주목된다.

 

조선의 대외 언론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사는 논평을 통해 “미일침략군과 남조선괴뢰들의 핵전쟁소동으로 하여 완화에로 흐르던 조선반도정세는 다시금 전쟁전야에로 치닫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사 논평은 “우리의 강력한 경고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적대세력들은 끝끝내 조선반도주변해역에서 공화국을 겨냥한 대규모연합해상타격훈련을 벌려놓았다.”며 “ 국제여론이 제2의 조선전쟁이 일어날 경우 그 주역을 담당할 것이라고 예평한 미제7함대소속 초대형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톤》호의 대타격 집단이 또 다시 기어들어 조선반도에 화약내를 풍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 논평은 “이번 소동이 미국과 괴뢰들 사이에 대조선 핵선제 타격을 노린 《맞춤형억제전략》이 확정되고 미국이 일본반동들의 《집단적자위권》을 승인한 것과 때를 같이한 것으로 하여 그 엄중성과 위험성은 극도에 달하고 있다.”면서 “조선반도정세는 대결이냐 대화냐의 계선을 넘어 바야흐로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엄중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위험천만한 군사적 모험으로써 조선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우리의 평화적 노력과 내외여론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성토했다.

 

신문 논평은 “알려진 것처럼 우리는 조선반도긴장격화의 악순환을 끝장내고 경제 강국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유리한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해왔다.”며 “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갈망하는 겨레의 지향을 반영하여 적극적인 평화대화의지를 밝히고 실천적 조치들을 연이어 취하였다. 특히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고 전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할 일념으로부터 조건 없는 대화입장까지 표명하고 관련제안들도 주동적으로 내놓았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조선의 대화노력을 부각시켰다.

 

논평은 “국제사회가 공인한바와 같이 지난 8월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이 강행한 《을지 프리덤 가디언》합동군사연습기간에도 우리가 보인 최대한의 자제력은 사실 유례없는 것이었다.”며 “ 하지만 그와 배치되게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이 우리와 국제사회 앞에 보여준 것은 오직 계속되는 대결정책과 전쟁소동 뿐이었다.”며 “미국은 그 누구의 《신뢰성》있는 선행조치만을 운운하면서 조선반도와 주변에 3대핵타격수단들을 연이어 들이밀고 핵전쟁도발을 위한 물리적, 제도적준비들을 완성하였다. 남조선괴뢰들은 상전의 대아시아전략, 대조선 침략전쟁시간표에 맞추어 《대화 있는 대결》을 공공연히 떠들어대면서 반공화국모략과 전쟁도발책동을 계단식으로 확대하였다. 해외에 나가서까지 우리의 존엄과 체제를 중상모독하고 《제도전복》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대결분위기를 고취하였다.”고 한미의 대북 적대정책을 비난했다.

 

또한 “이번 소동은 바로 그의 연장이며 마지막 실행단계인 것이다. 현실은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이 떠드는 《신뢰》, 《존중》이니, 《긴장완화》이니 하는 것들이 한갖 위선에 불과하며 대조선 압살만이 그들의 본심이고 최종목표임을 보여주었다.”며 “오늘의 사태를 통해 조선반도평화와 안정의 파괴자, 교란자로서의 미국과 그 하수인들의 너절한 정체는 날바다 위에 떠있는 해적선의 동체마냥 세계 앞에 다시금 명백히 드러났다.”고 규탄 단죄했다.

 

이어 “타격목표가 크고 가까이에 있는 것만큼, 우리의 조준권 안에 자주 들었던 만큼 우리의 군사적 대응책 또한 용의주도하게 되어있다.”고 공세를 이어갔다.

 

논평은 끝으로 “적대세력들은 우리 혁명무력이 취하고 있는 비상한 대응조치들에 대해 결코 경솔히 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 경고했다.

 

한편 조선은 상반기 전쟁 일촉즉발의 한반도 상황을 넘기고 한국과 미국에 평화와 대화 공세로 일관해 오다 최근 한미일 해상연합훈련을 문제 삼으며 상반기 수준의 강격 발언으로 대한미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어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이 요구 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용훈 주교 “전기보다 인간 생명이 중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10/12 10:00
  • 수정일
    2013/10/12 10:0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용훈 주교 “전기보다 인간 생명이 중요”

주교회의 정평위 환경소위, 탈핵 세미나 열어

한수진 기자 | sj1110@catholicnews.co.kr

 

 
▲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가 8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핵발전에 관한 한국천주교회의 가르침’을 주제로 탈핵 세미나를 열었다. (왼쪽부터) 세미나 발표자로 나선 박동호 신부, 하미나 교수, 양이원영 처장 ⓒ한수진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 환경소위원회가 8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핵발전에 관한 한국천주교회의 가르침’을 주제로 탈핵 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더욱 주목을 받아온 핵에너지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사회교리에 근거해 핵발전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 마련됐다.

 

세미나 주제 발표에 앞서 이용훈 주교는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리 방안이 없다는 문제와 방사선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하며 “현 시대에 존재하는 수많은 위험 중에 방사선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현 세대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미래세대의 생명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기가 중요해도 인간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조금 어둡게 살게 된다 하더라도 위험한 핵발전소를 늘리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미나에서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하미나 교수가 ‘방사선 노출의 건강영향’을 원폭생존자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하 교수는 방사선 노출로 대부분의 암을 비롯해 다양한 질병이 발생하며, 엑스레이나 CT 촬영 등 진단과 치료용 방사선 노출도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처장은 ‘지속가능한 에너지시스템의 도전―위기는 기회’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한국의 에너지 현황을 진단하고, 원자력 산업 육성에 집중한 정부의 잘못된 에너지 정책으로 전기 소비가 불필요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양 처장은 경제성과 안정성, 친환경성을 기준으로 에너지 정책을 세운다면 “경제가 발전해도 에너지 수요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기 사용량이 많은 오전과 오후 시간에 잠시 전기 소비를 줄이거나 분산시키고, 이 시간대에만 가동할 수 있는 발전소를 세운다면 365일 내내 가동해야 하는 핵발전소는 늘리지 않아도 된다”고 제안했다.

 

 

   
ⓒ한수진 기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박동호 신부는 가톨릭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핵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발표했다. 박 신부는 “핵은 사회교리의 원리인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 재화의 보편적 목적, 사회적 약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 보조성, 책임 있는 참여, 상호 연대를 모두 부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와 소수의 전문가, 핵 관련 산업계와 학계, 그리고 국가주의에 의지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은밀히 일방적으로 유지 · 확대하려는 핵산업(핵무기와 핵발전)은 그 자체로 진리와 자유와 정의와 사랑이라는 사회생활의 근본가치를 제대로 수용할 수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주교회의는 오는 14일부터 5일간 열리는 추계 정기총회에서 <핵발전소에 관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가르침>(안) 심의를 주요 안건으로 논의한다. 11월에는 탈핵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10.11 10:39:0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흰뺨검둥오리에 흰뺨이 없다

흰뺨검둥오리에 흰뺨이 없다

 
윤순영 2013. 10. 11
조회수 791추천수 0
 

수수하고 친근한 '우리 오리', 이름만 가지곤 구분 어려워

우리나라서 번식, 가을엔 철새 대거 합류 큰 무리 형성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YS1_9413[1].jpg » 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흰뺨검둥오리.

 

흰뺨검둥오리는 전국에 걸쳐 서식하는 텃새이다. 하지만 요즘 북쪽에서 번식한 새로운 무리가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고 있다.

 

텃새에 철새가 합류하니 개체수가 늘어나 이 오리를 만날 기회가 더 많아졌다. 흔히 볼 수 있는 새라 무관심하지만 가족애 부부애가 너무나도 좋은 새이기도 하다.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nsDSC_3846[1][1].jpg

 

여름에는 암수 한 쌍이 짝을 지어 하천의 갈대, 줄, 창포 등 습지 식물이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전형적인 물가 습지 초원에서 살아간다. 겨울이 되면 짝을 이룬 개체가 모여들어 큰 무리를 형성한다.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nsSY3_9628[1].jpg » 저녁 무렵 하천에서 휴식을 취하는 흰뺨검둥오리 가족.

 

넓은 호수나 연못, 습지, 간척지, 논이나 하천 등지에서 먹이 활동을 위해 집단으로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오리류에 속하기 때문에 물가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초원이나 얕은 숲의 가장자리, 심지어 나무 위에서도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SC_0121[1].jpg » 나무 위에 올라가 휴식을 하는 흰뺨검둥오리 부부.

 

크기변환_dnsYS2_0125.jpg » 알을 품고 있는 흰뺨검둥오리. 경계의 눈초리가 매섭다.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nsYS1_0793[1].jpg » 새끼를 거느리고 평화롭게 연못을 오가는 흰뺨검둥오리 어미.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nsDSC_4504~2[1].jpg » 연잎에 올라가 날갯짓을 하는 흰뺨검둥오리 새끼.

 

몸을 숨기기에 적당한 풀숲에 둥지를 틀고, 4~7월에 걸쳐 한 번에 10~12개의 알을 낳는다. 주로 암컷이 알을 품으며 기간은 21~23일이고, 수컷은 둥지 주변에서 끊임없이 천적과 환경 변화에 경계의 눈초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nsDSC_6576[1][1].jpg » 무르익은 논 위를 날고 있는 흰뺨검둥오리 무리.

 

먹이로는 수초의 어린 싹이나 잎, 줄기 등을 선택하기도 하고, 초본류의 종자, 곡물류 등을 먹기도 한다. 그밖에 지상에 서식하는 곤충류나 수중 또는 육상의 습한 곳에서 찾아내는 무척추동물, 어류 등 동물성 먹이도 섭취한다. 언제 봐도 우리 곁에 화려하지 않은 모습으로 다정다감하게 다가오는 정겨운 새다.

 

그러나 이름은 이 새의 겉모습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시에서 처음 새를 접하는 사람이 "그런데 흰뺨이 어디 있어요?"라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흰뺨검둥오리에서 희다고 할 수 있는 부위는 뺨이 아니라 눈썹선이고, 그것도 엄밀하게 말한다면 흰 것이 아니라 옅은 갈색이다. 뺨은 눈썹선보다 더 어두운 갈색이다. 그래서 이 오리의 이름을 듣고 "흰뺨'을 찾으려 해도 허사이다.

 

다음은 '검둥오리' 부분인데, 아무리 봐도 이 오리는 검지 않고 갈색이다. 수컷의 고리덮깃 색이 검긴 하지만 몸의 일부일 뿐이다. 빛깔로만 보면 이 오리는 대표적인 '갈색오리'이다.

 

white.jpg » 흰뺨오리. 대체로 검은 몸빛깔을 한데다 뺨에 흰 무늬가 있다.

 

사실 흰뺨검둥오리란 이름에 꼭 맞는 오리가 있다. 수컷의 뺨에 선명한 흰색인데다 배 부위를 빼고 몸 대부분이 진한 검은 색이다. 그리고 이 새에게는, 당연하게도 '흰뺨오리'란 이름이 붙어있다.

 

흰뺨검둥오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검은 부리 끝의 노란색이다. 보통 탐조가들이 이 새를 식별할 때 포인트가 이것이다. 참고로, 이 새의 영어 명칭은 '동쪽에 사는 부리 끝이 노란 오리'란 뜻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이사장

http://윤순영자연의벗.kr/

{C}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정원이 날 고소하다니…분신이라도 해야하나"

[인혁당, 끝나지 않은 눈물 ②] 87세 강창덕 씨 이야기

박세열 기자,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0-11 오후 3:10:22

 

 

강창덕. 중·고등학교 교사, 신문기자, 진보당 당원, 혁신정당 운동가. 그는 1927년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다. 전라북도에서 민족종교인 보천교 관련 활동을 하던 아버지를 둔 덕에 '반골 기질'을 타고났다고 한다. 그는 군산에서 태어난 후 아버지의 고향, 경북 경산으로 돌아온다. 거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처음 감옥에 간 것은 1943년이었다. 열일곱 살 강창덕은 만주 등지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과 관련해 주변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다가 적발됐다. 일본 순사에게 '소자지매(소의 성기에 끈 같은 것을 채워넣어 만든 일종의 채찍)'로 무던히 맞았다고 했다.
 

인혁당, 끝나지 않은 눈물
박근혜, 인혁당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나?

 

▲ 강창덕 씨는 유신 반대 투쟁을 하다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1975년 4월 8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와 함께 연루된 8명은 사형 선고가 내려진지 18시간만에 형장의 이슬로 스러졌다. 진실은 약 28년 만에 규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재심에서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이 배상액의 이자 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국정원으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프레시안(최형락)


두 번째는 1944년이었다. '황군(일본군)' 해군에 자원입대하라는 '명령'이 나오자 "왜 일본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하나. 지금 해외에서는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데"라고 생각하며 도망쳤다는 이유였다. 해방 후 갓 스무살이 된 청년 강창덕은 1947년, 분단 반대 웅변대회에서 유엔과 미국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미군정에 의해 또 한번 구속됐다.

초대 제헌 국회의원이자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 출신인 이승만 반대파 서상일 선생의 비서로 있다가 '북진통일 지양하고 평화통일 지향하자'는 주장을 냈다는 이유로 또 옥고를 치렀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경산 질량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된다. 그러나 통일과 정치 혁신을 바라는 20대 젊은 교사의 피는 끓고 있었다. 진보당 대표를 지낸 죽산 조봉암 선생이 1956년 대선에 출마하자 경북 경산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내가 운동해서 이승만 표보다 곱절 많은 표가 경산에서 나온 것이 내 평생의 자랑"이라고 했다.

그는 선거 패배 후 서른살 나이로 영남일보 공채로 입사해 기자가 된다. 그러나 영남일보 사장이 자유당에 들어가자 3년만에 신문사를 그만두게 된다. 이후 대구매일신문 주필을 지냈던 몽양 최석채 선생의 추천으로 대구매일신문에 입사, 3년을 더 신문기자로 일을 했다. 신문 기자 시절은 그의 인생 최고의 황금기였다. 그는 "내가 정치부에서 반정부 기자(반이승만)로 명성이 높았다"며 웃었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5.16으로 그는 또 다시 옥고를 치르게 된다. 장면 정부가 추진한 반공임시특별법(현 국가보안법과 유사)과 데모규제법(현 집시법과 유사)에 반대하는 이른바 '2대악법반대투쟁(대구 데모 사건)'에 가담했다는 이유였다. 데모는 장면 정부 때 했는데, 처벌은 박정희 정권 때 받았다. 5.16쿠데타 이후 그는 혁명재판에서 경상북도사회당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징역 7년을 받았게 된다. 쿠데타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쿠데타 이후 만들어진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특수반국가행위 위반)을 적용하는 '만행'을 박정희 정권은 스스럼없이 저질렀다. 이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프레시안>이 상세히 다룬바 있다. (관련기사 : 아직도 살아 있는 '5.16 악법', 박근혜는 폐기할까?) 강창덕 씨는 이 사건과 관련해 2011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 강창덕 씨를 민주화운동원로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에는 통일기(한반도기)와 전봉준, 김구, 여운형, 조봉암, 전태일 등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내가 국정원한테 채무자가 돼"

박정희와 그의 인연은 끝이 아니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지독했던 일에 휘말린 것이다. 1974년, 이른바 '인혁당재건위사건'이었다. 그는 유신 반대 투쟁을 하다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1975년 4월 8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와 함께 연루된 8명은 사형 선고가 내려진지 18시간만에 형장의 이슬로 스러졌다. 진실은 약 28년 만에 규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재심에서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주심 신영철 대법관)은 그에 대한 배상을 다룬 소송에서 35년치 이자(연 5% 적용)를 적용한 원심을 깼다. 받은 이자를 도로 내놓으라는 판결이었다. 1심을 뒤집고 대법원이 직접 판결을 한 이례적인 일이었다. (관련 기사 : 홍사덕 '유신 미화' 발언 파문, 37년 전 그는…) 국정원은 곧바로 강창덕 씨에게 소송을 걸었다. 37년만에 돌아온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의 짧은 '편지'였다. 사과도 아니었고, 유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소장 형태로 강창덕 씨에게 날아들었다. <프레시안>은 강창덕 씨를 대구 중앙로에 있는 민주화운동원로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후배들이 선배들의 정신 계승 잘 해달라고 민주화운동원로회를 만들어서 사무실을 하내 냈어요. 배상금 받아서 내 생에 내가 하고싶은 일 한다고 하는데, 청천벽력같이(국정원이) 돈 갚으라고, 소장을 보내왔어요. 경천동지할 일 아닙니까. 이런 소식이 어디 있겠어요. 내 팔자가 와 이리 됐느냐. 한평생 반독재 민주화운동하고, 민주통일 운동을 하는데,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가해자인 국정원한테 내가 채무자가 돼 가지고 법정에서 심판을 받으라니, 이거는 몇 번째 나를 죽이는 것 아닌가. 나를 이런 굴욕적인 인간으로 만들어...한이 많지요. 보통 한이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떨 때는 국정원 마당에 가서 분신 자살을 해서 억울함을 우리 사회에 고하고 죽어야 안 낫겠나.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주심인 신영철 대법관 등의 판단은 '배상금을 너무 많이 줬으니 일부를 다시 국가에 돌려달라'는 취지였다. 여기에 국정원이 민사소송을 내고 법무부가 이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5일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국정원은 절반만 받고, 강창덕 씨는 절반만 갚으라'는 취지로, 그나마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법무부가 이의 제기를 하지 않으면 이 결정은 확정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기류가 이상하다는 말들이 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법무부는 어떤 판단을 내릴까.

"더욱 억울한 것은 차라리 가집행을 안하고, (1심 배상 판결 이후 가집행으로 강창덕 씨는 약 65%, 12억 원을 먼저 받을 수 있었다-편집자) 그 때 돈을 안 줬으면 (대법원 판결까지 끝나고 배상금을 줬으면) 내가 국정원에 이런 빚쟁이가 안 되지. 1심 끝나고 고법에서 가집행 했는데, 대법에서 법을 1, 2심 판결을 뒤엎어버리고…. 1974년 사건 아니요. 74년부터 시작해서 법에 의해서 이자 연 5% 손실금이라고 해서 사법부에서 법대로 한 것 아닙니까. 1, 2심 판결을 대법에서 자판해가지고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30여 년간 이자를 다시 내놓으라고 하고, 법무부가 국정원이 하라고 해서 소송을 하는데, 우리는 또 국정원이라고 하면 몸이 서려하는 인간이고, 한이 많은 인간이예요. 그런데 소송을 걸어가지고, 국정원은 원고가 되고 (나는 피고가 되고) 이런 굴절된 역사가 어디 있겠습니꺼. 숨통이 터져서요, 자꾸 병이 날라고 그러고, 이렇게 살 바에야…. 국정원에서 소장이 나오는데 깜짝 놀라잖아요."

87세 강창덕 씨의 입술은 국정원에서 날아온 소장 받았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바르르 떨렸다.
 

▲ 강창덕 씨는 이번 일을 겪은 후 '호소문'을 돌리기도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구타, 물고문으로 조작된 사건…감옥서 나오니 모두가 나를 피하더라"

강창덕 씨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박정희 정권 시절,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겪은 일을 설명해달라고 주문하자 그는 "내가 박정희한테 호되게 당했단 말이야. 처음에 오일육 군사혁명재판에 끌려가서 7년 받았지, 반유신운동하다가 무기징역 받고 8년을 살았지. 내 인생 개인은 박정희 때문에 이만저만 희생을 당한 게 아니"라고 했다. 강 씨는 당시 고문을 당했던 일까지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은 강 씨의 구술을 최대한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1974년에) 민청학련사건이 안 터졌나. 그 때 내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서울에 있는데, 74년 4월 25일인가 중앙정보부장이 민청학련 사건을 갖고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하는기라. 하는데, 배후 세력이 (인혁당 재건위가) 있다고 해.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불똥이 나에게 날라오겠더라. 내가 대구에서 반유신 운동한 실적이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이놈들한테 당하겠구나 했어. 서울에서 내가 여동생에게 여비 좀 돌라케가지고 부산에 도망가서, 부산서 저 전라도 보성, 광양, 백운산 밑에까지 돌아댕겼어. 그때 날 체포한다고 난리가 났었나봐. 고향을 뒤지고 난리가 났어. 한 열흘 쯤 피했는가. 5월 6일날 저 전라도 갔다가 여수, 순천 갔다가 부산에 시내에 내 동서가 양복점을 하고 있었는데, 동서한테 왔어. 도피 자금을 얻을라고. 그래 갔다가 (양복점에) 들어갔는데 남대구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꼼짝없이 붙잡혔지.
 

▲ "고문 조작이었지. 주변 사람들 전부 북의 지령을 받아가지고 했다고 발표한대로 그대로 아는 거죠. 고향에 나중에 나와보니까 날 안볼라 해. 간첩이라고. 간첩 사건인줄 알고. 전부 간첩 사건으로 홍보를 해놓았거든. 그렇게 국가 권력에 의해 피해를 봤는데, 출소는 했는데 아무데도 취직도 못하고, 일가족 행사에도 못 가요. 결혼식도 못가요. 오는 거 안 반갑게 해. " ⓒ프레시안(최형락)

남대구경찰서로 연행이 됐지. 경찰서에서 밤새도록 고문을 당했어. 때리고, 구타하고, 처음에는 손바닥 발바닥을 주로 경찰봉을 가지고 구타하더라고. 아따, 손바닥 발바닥, 그거 맞아도 못견디겄대. (종아리, 팔뚝을 매만지며) 이꺼지 시꺼멓드라고. 죽은 피가. 그래도 내가 자백을 안하니까 코구멍으로 물을 흘려서 물고문을 하더라고. 물고문을 했다가 (기절을 했는데) 가만히 깨나 보니, 내가 유신 반대한 사람이고, 유신반대 역할이 있다 아니가. 내가, (거짓 자백) 하면 몇 년 그냥 살고 안 나오겠나. 그래서 이정우 기자라고 같이 혁신운동하고, 반구데타 운동하고 지냈는데. (한숨) 이정우는 혁신계 학원 담당, 강창덕이는 정치 경제 언론 담당, 나경일은 노동운동가인데 노동운동 담당하고 공소장에 보면 그래 돼 있거든. 그래가지고 강창덕이는 신민당경북도당 부위원장 뭐를 포섭하고, 언론에 대구매일신문 기자를 포섭하고 그래가 돼 있어.

진실로쿠는(실제로 말하면) 나도 당시에 유신 반대하고, 지하신문을 발행을 할라꼬 준비를 다 했었지. 그래 가지고 내가 (고문을 당한 후에) 기왕 날 박해할라고 그러는데, 박해 당할 수밖에 없지. 이카면 까딱하면 내가 고문 받다가 죽겠다. 근데 난 안 죽어야 되겠다. 그래서 (북한과 연계됐다는 거짓 진술에) 도장 찍고 고문을 면했다. 그래서 서울 중앙정보부로 끌려가서….(한숨) 그리고 8년 8개월이다. 무기징역을 받았는데, 중간에 20년으로 감형됐죠. 형집행정지로 82년도에 출소했다. 그래서 잔형면제를 노태우 때 받았는데, 복권 사면을 안해줬단 말이야. 꼬빡 10년을 더 기다렸잖아. 그러면 자연 복권이 되니까. 8년 8개월, 거기다 10년, 이거저거 다하니까, 40대 50대 다 갔어.

고문 조작이었지. 주변 사람들 전부 북의 지령을 받아가지고 했다고 발표한대로 그대로 아는 거죠. 고향에 나중에 나와보니까 날 안볼라 해. 간첩이라고. 간첩 사건인줄 알고. 전부 간첩 사건으로 홍보를 해놓았거든. 그렇게 국가 권력에 의해 피해를 봤는데, 출소는 했는데 아무데도 취직도 못하고, 일가족 행사에도 못 가요. 결혼식도 못가요. 오는 거 안 반갑게 해. 근데 우에 가노. 눈치 보면 알거든. 옛날 신문사 친구들도 하나도 안 만날라 그래. 그렇게 희생을 당했는데, 민주화 역사 발전 때문에 그래도 우리가 재심 무죄까지 받고 배상을 받았죠. 정상적인 판례에 의해 판결이 났는데, 검찰에서 대법까지 상고를 하는 바람에, 1심 끝나고 3분의 2 정도 가집행을 해줘서 빛도 다 갚고, 아파트 겨우 하나 샀는데, 도루묵이 됐다. 반유신행동했다가 고문 받고 조작 당하고, 개인 인생을 망쳤는데, 정말 굴욕적인 이런…. 그러니까 지금 현재 심경은 뭐라고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아주 착잡합니다. 착잡해. 하루아침에 엉망진창이 됐으니. 정말 피를 토할 일 아니십니까.

세상에 운명이라도 이런 운명의 장난이 어데 있을 수 있겠어요. 고문 조작해서 겨우 살아나가지고, 또 '엄정 독거'를 시키라고 청와대에서 지시를 내려갖고, 8년 8개월 중에 독방 생활을 약 7년 8개월을 했어. 전주형무소에서 있었는데, 나중에 출소할 때는 대구 형무소에서 일년 남짓 있다가 나왔죠. 전주형무소에서 나랑 무기수 네 사람은 독방에서 갖혀서 한 사람씩 감시를 하는데, 북에서 온 사람보다도 더 엄중 감시를 받고 살았거든요.

나는 가집행 중에서 실제 수령한 게 12억 원 정도 되는데, 6억9000만 원을 반납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6억9000만 원 반납할 돈이 어디있나. 내가 평생을 항상 신세지고 살다가 이제 그것 갚고, 어려운 사람 돕느라고 기부하고, 거의 다 소비를 했는데, 갑자기 돈을 갚으라고 하니…. 37년간 인간 관계에서 사람 구실 못하다가 빚갚고 구실하는데. 기가찰 일 아닙니까."

 

 
 
 

 

/박세열 기자,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요즘트위터페이스북더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삼성이 4대강 사업의 국외자(局外者)였나?

삼성과 중앙일보의 무서운 원대한 계획…
 
임두만 | 등록:2013-10-11 08:38:25 | 최종:2013-10-11 14:09: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JTBC 9시뉴스 캡쳐

 

10월 10일, JTBC 9시 뉴스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집중 보도가 있었다. 4대강 보를 철거하자는 법안을 제출한 민주당 홍영표 의원을 스튜디오에 초대 손석희와 대담을 가질 정도…

하지만 홍영표가 제안한 법은 보 철거가 주 내용은 아니다. 실제 보 철거가 주 내용인 법안은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냈다. 그러함에도 심상정이 아니라 홍영표를 불렀다. 이거 또한 손석희와 JTBC의 노련한 한 수다. 심상정에게서 나타나는 분위기와 홍영표에게서 나타나는 분위기는 시청자에게 주는 임팩트가 다르다. 특히 종편에서 9시 뉴스를 보는 주 시청층은 JTBC라도 반북 반좌파 보수층이 주류다. 이런 시청층을 상대로 심상정이 어떤 말을 해도 임팩트는 떨어진다. 그래서 그나마 민주당 홍영표를 부른 것으로 보인다.

암튼…각설하고…

오늘 JTBC는 이 대담 말고도 3꼭지를 4대강 관련 뉴스로 채웠다. 그리고 압권은 무려 4.135억 원이 투입된 4대강 주변 나무심기 공사의 허실을 파헤친 리포트였다. 다른 공기업의 조경공사에 쓰였던 나무 값 평균보다 무려 1주당 평균 32만 원이 더 들어갔다는 폭로, 이어서 그렇게 비싸게 주고 산 나무들이 다 죽어 잘라버렸거나 죽어있는 모습을 비춘 영상은 보는 시청자들의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JTBC 9시뉴스 캡쳐

 

특정업체에 대한 특혜의혹도 폭로했다. 지난해 수주액 기준으로 조경 업계 55위인 군소 조경업체인 S사가 금강 4공구를 포함 5개 공구에서 사업자로 낙찰돼 278억 원의 매출액을 올리고 수주액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이 그거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영록 의원은 “희망의 숲이라고 해놓고 결과적으로 대국민 사기극으로 전락한 셈”이라고 질타했으며, 리포트를 한 기자는 “정부의 졸속 4대강 나무심기로 정부 예산 수백억이 낭비됐고 나무는 죽어가고 있습니다.”라는 크로징을 했다.

나는 이 보도를 보면서 조만간 4대강이 보수진영을 폭발시키는 폭탄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견했다. 아니라면 ‘조중동’카르텔에서 중앙이 빠지면서 중앙과 JTBC는 급격한 탈보수화 하지 않을까 예견하기도 했다.

이 예견에 대한 소스, 이 소스를 통해 접한 삼성과 중앙일보의 무서운 원대한 계획…정신이 번쩍 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소스에서 파악된 삼성의 무섭고 원대한 계획의 얼개는 이렇다.

1. 삼성은 2002년 대선이 끝나고 노무현이 당선된 뒤, 이회창의 3수로도, 이회창이 아니라면 포스트 이회창으로도 당분간 ‘보수진영’이 정권을 탈환하기 힘들 것으로 파악했다. 그래서 1997 대선과 2002대선까지 줄곧 같이 움직였던 ‘조중동’카르텔에서 중앙일보를 빼내기로 했다. 이런 의사를 노무현 정권 핵심에게 전달했고, 정권 핵심들도 용인, 정권 측에서 먼저 ‘조중동’에서 중앙은 빼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어 갔다.

이는 실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참여정부 국정홍보처라든지 청와대 홍보수석실 관계자들은 공공연히 그런 말들을 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친노 인터넷 사이트로 당시 맹위를 떨치던 <서프라이즈>에서 공론화가 이뤄지기도 했었다. 이런 여론이 공론화될 무렵 노무현 대통령은 외무부 장관보다 급이 높다는 말을 듣는 주미대사에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던 홍석현을 파격적으로 임명했다.

이처럼 되자 다시 여론은 홍석현이 유엔 사무총장을 노린다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즉 삼성을 통해 여론을 움직이는 핵심 층에서 주미대사로 외교가에 얼굴을 알린 홍석현을 노무현 정권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밀어 당선시킨 뒤 1차 임기를 마치면 포스트 노무현으로 차기 정권을 창출한다는 얼개를 짰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그들의 얼개대로 되지 않았다. 뜬금없이 삼성의 정치권 로비사실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에 의해 불거진 것이다. 특히 2005년 7월 이상호 당시 MBC 기자가 옛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도청 내용을 담은 테이프를 입수해 삼성그룹과 정치권, 검사들 간의 관계를 폭로해버렸다. 이른바 ‘삼성X파일’사건이다.

당시 폭로된 도청 내용에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이 한 호텔에서 만나 이회창 대통령 후보에 대한 자금 제공을 논의한 내용이 있었다. 또 삼성이 떡값을 주며 관리해 온 검사들을 언급한 하나같이 충격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여론은 들끓었으나 사정기관은 미적지근 했다. 이러자 당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 명단을 공개해버렸다. 그러자 이번엔 그 명단에 오른 검사들이 노회찬을 고소했다.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 5개월에 걸쳐 이 사건 전반에 대한 조사를 했다.

당시 수사 책임자가 현 법무부 장관인 황교안, 그가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로 사건을 지휘했다. 하지만 5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나온 수사결과는 허망한 것이었다.

홍석현과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구조본 김인주 사장 등 삼성 임원은 무혐의, 반대로 이 사건을 보도한 이상호 기자와 이른바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국민들은 반발했으나 결국 노회찬은 이 당시 기소가 족쇄가 되어 지난 19대 총선에 당선되고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의원직을 잃었다. 하지만 홍석현도 결국 애초의 그림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중도 낙마했다. 따라서 삼성의 이 원대한 그림은 휴지가 되었다.

2. 이후 삼성과 중앙일보의 행보…친노와는 거리를 두면서 다시 원래의 자리인 조중동 카르텔 안으로 들어갔다. 또 정세도 중앙이 그리 움직이도록 했다. 이명박 당선 후 종편채널이지만 삼성-중앙의 필생 꿈인 TV 방송국 소유가 눈 맢에 다가와 있었다. 이명박 측과 척을 질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여권엔 포스트 이명박으로 확실한 박근혜도 있었다. 이명박 이후 삼성이 직간접으로 권력 창출에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덧붙여서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그악한 반감은 중앙을 ‘조중동’ 카르텔에서 능동적으로 빠져나올 수 없게 했다.

그러나 지금의 정국은 다르다. 첫째 여권에 포스트 박근혜가 없고, 둘째 박근혜 정권의 속성상 강한 보수(반북 반재벌 파시스트)정책을 추진할 인맥의 대거 출세와 이들이 가진 기본적 흠결에 대한 반국민 감정은 고조될 것, 셋째 방송경험과 자본에서 허약한 조선과 동아는 결국 경영난 때문에라도 방송을 포기할 개연성이 있다는 것…따라서 거미줄 같은 삼성의 정보라인을 통한 미래예측으론 박근혜와 김대중의 중간급을 아우르는 세력이 필연적으로 출현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3. 손석희는 여기에 합당한 인물이다. 손석희 스스로 출세에 대한 욕망이 강하지만 그걸 노골적으로 표출하지 않는 노련함도 있다. 국민들 눈에 이런 손석희의 노련함은 보이지 않으나 손석희의 번뜩이는 천재성으로 포장된 ‘진보연’하는 자세는 보인다. 만약 이런 손석희에게 마당이 제공된다면 국민들은 상당부분 경도될 수 있다. 손석희가 JTBC에 승차한 것은 이 그림에 동의한 증표다.

박근혜 정권은 갈수록 국민 지지도가 떨어질 것이지만 여기에 대항할 야권은 없다. 반짝 했던 안철수도 결국은 독자적으로 추진할 힘을 잃고 동력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계속적으로 안철수가 대안으로 운위는 되겠지만 강력한 반박의 구심점은 어렵다. 결국 안철수 세력이나 민주당 주류 비주류 친노 모두다 각개약진으로 뛰다가 막판 연합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들 중 누구도 실질적 1인자로 조직을 장악할 수 있는 능력도 조직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금력 풍부한 삼성이 간접지원하고 JTBC라는 마당을 이용해 본인의 퀄리티를 한 껏 올린 손석희는 친박 반박 모두에게 강력한 대안으로 자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기회가 제공되었을 때 손석희는 모두를 아우르는 포스트 박근혜 자리를 충분히 차고 나갈 능력이 있다. 정치적 스텐스? 거미줄 같은 여론 파악 시스템이 있는 삼성의 정보로 마지막에 여든 야든 정하면 된다.

여기까지가 내가 확보한 소스에 의한 삼성과 중앙의 얼개다.

어떤가? 섬찟하지 않은가? 나는 손석희가 JTBC에 영입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이런 소스를 접한 뒤 손석희가 앵커로 뉴스를 진행한 이후 매우 유심히 JTBC 9시 뉴스를 본다. 과연 그 얼개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다. 그리고 지금은 이 글 첫 머리에 제시한 JTBC의 4대강 관련 집중보도를 보면서 그 얼개는 매우 신빙성이 있다는 판단을 한다. 왜? 4대강 사업에 삼성은 국외자(局外者)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평화와 통일의 참 스승' 홍근수 목사 영결식.노제 엄수

각계 600여명 참석, 자주.민주.평화.통일로 부활 기원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10.11 19:36:41
트위터 페이스북

 

   
▲ '평화와 통일의 사도 홍근수 목사 통일사회장' 영결식이 11일 향린교회에서 엄수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7일 지병으로 별세한 홍근수 목사의 '평화와 통일의 사도 홍근수 목사 통일사회장' 영결식과 노제가 11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서울시 중구 향린교회, 대한문앞에서 각각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고인과 함께 지난 2004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을 창립한 문규현 신부와 6.15남측위원회 명예대표인 김상근 목사, 그리고 조헌정 담임목사와 향린교회 교인 등 각계 6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영결식은 이병일 강남향린교회 담임목사의 인도로 '부활증언예배'의 형식으로 시종 엄숙하게 진행됐으며, 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의 설교 '하늘뜻펴기'에 이어 김상근 목사, 문규현 신부,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김인경 원불교 경기인천교구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 문규현 신부가 유족인 부인 김영 목사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조헌정 목사는 추도 설교에서 "사도바울의 유언과 같은 고백이 많은 기독교인의 장례예배에 인용되지만 홍목사님의 삶만큼 자신있게 증언할 수 있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라는 디모데후서 4장 7~8절을 인용해 고인을 기렸다.

김상근 목사는 추도사에서 고인을 '형', '근수형'이라고 부르며, "우리는 당신을 평화와 통일의 사도로 오래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그리워했다.

문규현 신부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인을 '오랜 벗이자 동지이며, 형님'인 '사랑하고 존경하는 홍근수 목사님'으로 호칭하고, 고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 '평화와 통일의 참 스승'으로 추모했다.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은 "지금도 100여회에 걸쳐 진행되는 반미 월례집회에서 또 TV토론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민족, 민주의 사자후를 토했던 고인의 강렬한 힘은 '선지자'의 그것이었다"고 회고했다.

2시간여 걸쳐 진행된 영결식을 마치고 운구는 명동성당으로 이동한 후 30개의 검은 만장을 뒤로 한채 거세게 부는 바람과 맞서며 을지로를 거쳐 노제장소인 시청앞 덕수궁 대한문으로 이동했다.

   
▲ 이날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노제가 엄수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래군 인권중심사랑 소장이 진행한 대한문앞 노제에서는 김경호 들꽃향린교회 담임목사와 양성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등의 추도사와 시민들의 헌화 등이 이어졌다.

김경호 목사는 이 자리에서 "홍근수 목사님이 한국에 처음 도착하신 1987년 첫 일성이 '나는 이땅에 반공을 부수러 왔다'"였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그 뒤로 홍목사님은 교회에서, 거리에서 한결같이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미국의 실세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분단을 꽃놀이패로 활용하고 있는 모든 실상을 낱낱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고 회고했다.

박래군 소장은 "사나운 바람이 마치 오늘 이 땅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며, "생전에 홍목사님을 본의 아니게 많이 괴롭혀 드렸는데, 이렇게 보내드리려니 면목이 없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박석운 공동대표는 목사님, 우리 목사님, 홍근수 목사님을 부르다 끝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박 공동대표는 홍 목사가 1991년 KBS심야토론 당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설파하다 옥살이를 한 일화를 회고하고 "홍목사님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 통일, 그리고 민중 생존권 옹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 헌신하면서 재야의 큰 어른으로 우뚝 섰다"고 말했다.

   
▲ 각계 시민들이 고 홍근수 목사의 영전에 헌화하고 고인을 기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시간여 노제를 끝낸 오후 1시경 참석자들은 운구와 함께 장지인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 운구행렬의 뒤를 '평화통일 세상에서 부활하소서' 등 30여개의 만장이 뒤따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명동성당을 출발해 을지로를 거쳐 노제장소인 대한문앞으로 이동하는 운구행렬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운구행렬에 각계 시민들이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대한문앞 노제가 엄수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고인에 대한 묵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의 '하늘뜻 펴기' 설교

세계교회협의회가 주관하는 평화열차 행사를 위해 5일 출국했다가 갑작스런 부음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한 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는 '하늘뜻펴기'라는 설교에서 "고인이 염원하던 평화열차에 영혼으로 탑승하기 위해 고인의 16년, 저의 10년 목회의 꿈이 담겨있는 향린교회에서 함께 출발하자고 저를 부르신 것"이라며 "현재 모스크바에 정차해 있는 평화열차에 다시 올라 탈때는 홍근수 목사님과 함께 동행하겠다"고 말했다.

조헌정 목사는 지난 1991년 2월 KBS 심야토론에 나가 "남한이 유럽처럼 공산당을 허락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 "남쪽 사람 대부분이 북쪽 사람들의 이마에 빨간 뿔이 하나씩 있다고 믿었을 때 그들 또한 사랑하고 눈물 흘리고 정을 나누는 휴머니스트"라고 했던 당시 홍목사의 발언이 남한 사회에 준 충격은 대단했다고 회고했다.

이후에도 고인은 주위의 자제 권유를 물리치고, 나라의 주권을 미국에 팔아넘기지 못해 안달하는 집권자를 비판하고 천하 제일의 강대국인 미국에 맞서 '핵보다 강한 무기인 인민의 단결된 힘'을 강조하며 독자성을 지키려는 북을 옹호했으며, 분단의 비극을 조장하는 미국을 향한 서슬퍼런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고 조 목사는 말했다.

조 목사는 고인의 마지막 저서 제목이 '양키 고 홈'이라는 걸 상기시키고 이렇듯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설교와 행동만으로도 고인은 500세 이상의 삶을 누린 분이라고 추모했다.

이와 함께 고인의 삶에서 20년전 문규현 신부와 함께 평통사를 만든 일을 빼놓을 수 없다고 조목사는 언급했다.

조목사는 "도대체 전시작전통제권을 계속 맡아 달라는 노예와 같은 지도자가 다스리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고 오늘의 현실을 되묻고 "만약 평통사라는 조직마저 없었다면 세계인들은 우리를 멸시와 조롱의 눈초리로 계속 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조목사는 이처럼 참을 수 없는 민족적 모멸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민족 자주, 민중의 깨어남 밖에 없다며 이같은 자질은 자유와 해방을 중시하는 신앙에서 나오는데 홍목사님은 성서의 출애급 사건과 갈릴리 예수에서 찾고 이를 끈질기게 구현해 오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조목사는 또 그 육신은 오늘 땅에 묻히지만 그 영혼은 자유와 해방의 평화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 북경에서 그리고 담을 헐고 신의주와 평양을 통과하여 서울로 부산으로 향할 것이라고 기원했다.

조목사는 고인의 첫번째 책 '예수와 정치'의 한 구절을 인용해 고인의 평소 신념과 신앙세계의 일단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치는 이 세상을 사는 인간을 위해 약속되고 주어지는 것이지 외세나 죽은 인간을 위해 약속되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복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정치의 이상의 빛에서 인간의 정치를 보고 비판하고 필요하면 항거하고 혁명하는 사명이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것은 국가나 정치권력을 잡은 자들에게 대하여 교회가 가지는 예언자적 사명이라 할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정치가 하나님의 정치에 가까이 실현되는 것이다. 여기에 기독교인의 정치적 사명이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주기도문의 구절이 의미하는 바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세계평화의 위협은 물론 한국사회의 모든 악과 모순, 즉 억압과 착취, 인권유린과 불평등, 군사주의와 군부독재등의 원인과 온상이 되고 있는 남북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의 사명이요, 한국교회의 사명일 것이다. 여러가지 한국적 상황, 남북을 망라하여 이 상황을 고려할 때 현 집권자들이 통일을 신념으로 원하지도 않지만, 통일을 성취할 능력 또한 없다. 오직 통일을 실현할 의사와 능력을 가진 통일의 주체는 민중이다. 교회는 이 민중들과 더불어 민족화해와 통일의 당위성과 방향을 제시하고 이의 성취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


한편, 고인은 오늘의 향린교회가 갖게 된 목회의 독자성이라는 기틀을 만들었다고 조목사는 회고했다.

조목사는 "목사.장로 임기제, 국악예배 도입, 목회운영위원회 신설 등은 고인이 아니고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교회개혁의 금자탑"이라고 평하고 큰 교회 건물외에 이렇다하게 내세울 게 없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이달 말 부산에서 열릴 세계교회협의회 행사에 한국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내용이 향린교회의 국악예배"라며, "전통가락에 맞춘 노래와 음성으로 함께 고백하는 것은 내용과 형식에서도 가히 세계에 자랑할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목사는 끝으로 사도바울의 유언과 같은 고백이 많은 기독교인의 장례예배에 인용되지만 홍목사님의 삶만큼 자신있게 증언할 수 있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라는 디모데후서 4장 7~8절을 인용해 고인을 기렸다.

 

김상근 목사 추도사

김상근 목사는 고인을 '형, 형, 근수형'이라고 애달프게 불렀다.

지난 7월 정전협정 60주년 어느 행사에서 평화협정체결을 반드시 체결해 부끄러운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 피토하며 외칠 당신인데, 그리 오래도 누워만 계시더니 우리곁은 이렇게 홀연히 떠나십니다.

당신은 마구 뛰는 사람이었습니다. 거기가 어디든 당장 달려갔습니다. 결코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에둘러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분명했습니다. 시대의 한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곡선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그냥 직선이었습니다. 당신의 말은 길지 않았습니다. 짧았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게 정곡이었습니다. 당신은 늘 넓었고 깊었습니다.

박정희기념관설립반대운동은 그저 반대운동이 아니라 민족의 얼을 바로 세우자는 거사였습니다.

당신의 걸음은 넓고 높았습니다. 매향리국제폭격장폐쇄 투쟁, 불평등한소파(SOFA)개정 투쟁, 효순.미선이 죽음 사회화 투쟁,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 그것들은 반미투쟁이 아니었습니다. 해꼬지의 역사를 거부하는 거사였습니다. 세계사를 바로 세우는 거사였습니다.

당신의 가슴은 슬펐습니다. 당신이 그리도 사랑했던 민중의 선택이 엇나갈 때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함성을 듣던 예수의 가슴처럼 당신의 가슴은 슬펐습니다.

그건 예수의 슬픔이었고 그래서 당신은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향린교회에 그리도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한국 그리스도 장로교에 그리도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한국 그리스도 교회협의회에 그리도 뜨거웠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뜨거움이었습니다.

지난해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홀랑 까먹고, 총칼로 권력을 찬탈하고 여덟을 죽여 권력을 이어간 박정희의 딸이 너희보다 낳다는 국민의 판정을 받고 말았을 때 병석에 누워있던 당신은 얼마나 답답해하고 터질 것 같고 고통스러웠을까?

형 미안하외다. 정말 미안하외다. 그러나 형, 쉼없는 눈, 비, 바람속에서 잡초들은 쓰러지고 눕혀지고 맙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패잔이라 해서는 안되지 않습니까. 다시 일어날 것이기에. 아니 지금 벌써 일어나고 있기에 말입니다.

당신이 시작한 '교회 쪼개어 나눠 세우기'는 벌써 손자들을 보고 있기에 말입니다. 당신의 동지들은 벌써 유럽대륙 끝자락에서 한반도 평화열차에 올랐기에 말입니다. 우리들은 어느덧 민족.민주.민중의 큰 길에 나서고 있기에 말입니다. 이 믿음이 있기에 당신의 얼굴엔 항상 미소가 있었던 것 아닙니까.

험하고 복장터지는 독재의 법정에서도 당신은 유머와 해학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우리는 당신을 평화와 통일의 사도라고 합니다. 오래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문규현 신부 추도사

문규현 신부는 고인을 오랜 벗이고 동지이며, 형님이라고 불렀다. 또 사랑하고 존경하는 홍근수 목사님이라고 불렀다. 추도사를 읽어 내려가는 음성은 침통했고 간간히 울먹였다.

비록 직접 활동하지 못했어도 살아계실 동안에는 늘 저와 동행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까지라도 저희와 함께 계실줄 알았는데 이렇듯 가시니 마음의 절반이 사라지는 듯, 영혼은 통채로 흔들리는 듯, 황망하고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민족, 민주, 통일, 평화 가치를 마다하지 않고 앞서가신 형님,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를 함께 설립해 대중적인 통일운동의 지평을 열고자 헌신하셨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창립때에도 기꺼이 저와 함께 후원회장을 맡아 진보의 길을 활짝 열고 가시고자 했던 당신이었습니다.

분단조국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도 분단이데올로기가 모든 것을 단죄하고 삼키는 어려운 현실에서도 목사님은 한번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막다르고 험난한 길에서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어 통일과 평화, 진보의 마음, 이름으로 새 역사를 열어주고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남들이 부담스러워 피해가려는 일들도 다 목사님 차지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감옥에 갇혀계실 때 조차도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무겁고 버거운 사연도 목사님앞에서는 새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괜찮아, 이건 어때". 제가 그리듯던 말이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함석헌 선생의 영전에 바쳤던 추모글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문익환 목사님 자신에 대한 것이 되었고 이제는 홍근수 목사님에게 드려도 좋을 추도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중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로마제국을 뒤엎은 갈릴리 민중의 부활이었듯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부활은 분단의 비극, 분단의 치욕을 거부하는 민족의 하나됨입니다. 당신이 그렇게도 사랑하시던 이 겨레가, 이 씨알들이 무덤을 불러내면서 걸어나가게 민주, 자주, 통일을 향해서. "

목사님, 사랑하는 형님, 목사님을 떠나보내는 이 시간, 이 나라는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흘러가는 듯 정말 암담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 그리스도의 정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온전히 봉헌하고 온전히 희생했던 목사님의 노고가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 처럼 낱낱히 흩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켜본 목사님께서 자리에 누워계시던 안타깝고 아쉬운 지난 얼마간은 빈 자리도 아니었고 빈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제 스스로 힘과 지혜를 튼튼히 채워가도록 내어주신 또 다른 사랑과 가르침의 시간음을, 영적으로 성장하는 법을 배워가는 시간이었음을 이제사 깨닫습니다.

함께 했던 그 모든 시간과 우정, 정말 고맙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예수의 제자들에게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임을 온 생애로 알려주신 당신에게 다시한번 뜨거운 동료애로, 동지애로 하직인사를 올립니다.

목사님의 육신은 비록 저희 곁을 떠나지만 그 고귀한 가르침과 영혼은 여기 남아서 민주와 자주, 민중 평화통일의 완성을 향한 위대한 출애급의 여정을 저희와 함께 계속 가시리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 '평화와 통일의 참 스승'이신 홍근수 목사님 편하게 가소서.

늘 자주, 민주, 평화, 통일의 그 길에 부활하시고 영원히 안식을 얻으소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