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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노릇 하는 서구문명

 

 

 

아편노릇 하는 서구문명
 
[제3세계 눈으로본 서구열강](30) 과학기술, 자본축적, 종교적 위선
 
유태영 박사
기사입력: 2013/06/16 [18:24] 최종편집: ⓒ 자주민보
 
 

서구열강이 제3세계에서 일으킨 많은 전쟁들 중에서 가장 추악한 전쟁은 영국이 중국에서 일으킨 <아편전쟁>이었다. 제1차 아편전쟁은 1839-1842년에 영국이 단독으로 일으켰으며 제2차 아편전쟁은 1856-1860년에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작전으로 연합군을 창설하여 중국 청나라를 침공하여 일으켰다.

영국은 1700년대에 인도, 아프가니스탄. 인도네시아 그리고 미얀마 등 중국에 인접해 있는 여러 나라들을 벌써 식민지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이 중국 청나라와 접촉을 시작한 시기는 영국이 중국 청나라와 무역을 시작한 때부터였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부유한 나라가 됐다.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을 통하여 중국산 다양한 차들, 비단, 도자기, 약재 등 그리고 청나라의 많은 진귀한 동양의 상품들을 대량으로 수입하는 무역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은 중국에서 홍수처럼 증가해 들어 오고 있는 무역품으로 인하여 영국의 돈이 중국으로 무한정 흘러 들어가는 무역적자에 대하여 불평을 하게 됐다.

영국은 영국의 돈이 중국으로 일방적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무역적자를 방지하기 위하여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아편무역>이었다.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수출함으로써 중국의 차, 비단, 도자기, 약재 등의 수입으로 인하여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영국의 돈을 되찾기 위한 방법으로 아편무역을 시작했던 것이다. 중국인들이 아편에 중독되기만 하면 영국으로부터 아편을 무진장 수입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영국은 최고의 무역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영국이 중국에 수출한 아편의 수량은 대략 다음과 같다.

1760년대에는 해마다 1년에 아편 200상자를 수출했다. 그러나 16년 후인 1786년의 기록에 의하면 그 때까지 해마다 1년에 2,000상자의 아편을 중국으로 수출했다. 영국의 아편무역은 계속하여 크게 증가하여 1800년대에 들어서는 해마다 1년에 4,570상자를 수출했으며 1830년대초에는 해마다 1년에는 21,800상자를 수출했다. 끝으로 1839년까지는 해바다 1년에 40,000상자 이상을 중국에 수출했다.

중국은 100년동안 영국의 속임수와 또는 강압적 압력에 의하여 아편을 수입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중국 청나라는 아편 중독자들의 천국으로 변했다. 급기야 아편 중독자들끼리 모여 사는 아편굴이 생기기 까지했다. 아편 수입으로 인하여 중국의 국가 경제는 급격히 망가졌으며 군기문란 등으로 심각한 곤란에 이르렀다. 중국에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주로 하층계급에 속하는 민중들 사이에서 영국산 아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으며 영국이 오로지 무역의 성공만을 위하여 해마다 아편무역을 기하급수적으로 그 양을 증가시킨 결과 중국의 민중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1839년에 드디어 중국 청나라 황제 도광제는 아편으로 인하여 당면한 국가적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의 고위 관리인 임직서에게 특권을 부여하여 영국으로부터 아편수입을 원천금지를 하도록 긴급조치를 취했다. 황제는 특사로 임직서를 임명했던 것이다. 황제의 임명을 받은 임직서는 아편 수입금지령을 전국에 내리고 특히 남쪽 광동성에 있는 아편수입의 창구의 역할을 하는 항구도시 광저우에서 아편 20,000상자를 몰수하여 아편수입 금지령을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1840년에 중국 청나라가 <아편수입 금지령>을 내린데 대하여 영국은 즉각적인 반발을 일으켰다. 영국은 유럽의 유명한 기독교국가로서 중국에 100년 동안이나 아편을 수출한 것만으로도 역사에 남을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청나라가 처음으로 <아편수입 금지령>을 내린데 대하여 영국은 즉각적인 보복으로 제1차 아편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1842년에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이 아편전쟁에서 승리했다.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이른바 <난징조약>을 체결하였는데 그 조약은 중국의 5개 항구도시를 추가로 영국에 개항하기를 요구하는 조약이었다. 그런데 그 5개 항구도시 중에는 홍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로 인하여 홍콩은 영국에게 할양되고 사법권이 영국에 양도됐으며 99년 동안 영국에 예속되는 비극적 계약이었다.

그럼 제2차 아편전쟁은 왜 또 다시 일어났을까? 제2차 아편전쟁을 일명 <에로호 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전쟁 발생의 이유는 영국인의 소유이고 중국인이 운영하고 있던 선박 <에로호>에서 영국의 국기가 끌어내려지고 <에로호>가 훼손당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이 사건을 핑계삼아 중국에 배상금과 사과문을 요구했다. 중국은 영국의 강제적 요구를 부당하다고 거절했다. 영국은 중국의 거절에 분노하여 광저우시에 불을 질렀다. 이것이 제2차 아편전쟁의 시작이 된 것이다.

제 1차 아편전쟁에서 약속한 중국의 개방정책이 영국을 만족시키지 못다는 이유가 바로 영국이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킨 숨겨진 원인이었다. 영국이 품고 있는 야욕은 중국의 5개항구에 대한 개방뿐만 아니라 중국의 광활한 대지에 대한 침략의 야욕이었다.

영국은 제2차 아편전쟁(1856-1860)에 프랑스를 끌어들이고 연합군을 구성했다. 1857년에 제2차 아편전쟁에서 중국은 영국과 프랑스가 합작한 연합군에게 패전할 수 밖에 없었다. 제2차 아편전쟁에 승리한 영국과 프랑스는 중국에 강요하여 <텐진조약>을 맺었다.

<텐진조약>에는 12개의 항목이 있다. 그런데 12개의 항목중에서 가장 치욕적인 항목 2개가 있는데 그 2개 항목의 내용을 살펴본다. 첫째,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 서구 열강국들이 베이징에 상주할 수 있는 국제적 권리를 허락한다. 둘째, 중국이 서구인들의 종교인 기독교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라는 항목이었다. 중국에 기독교가 전래된 역사는 이렇게 시작됬던 것이다.

굴욕적인 <텐진조약> 외에 또 다시 1860년에는 이른바 <베이징 조약>에 대하여 중국은 무조건 동의할 것을 강요 당했다. 중국은 아무 저항 없이 영국과 프랑스가 강요하는 대로 무조건 <베이징 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영국과 프랑스에게 중국이 완전히 항복함으로써 21년 동안이나 계속된 제1차, 제2차 아편전쟁(1839-1860)은 모두 허무하게 끝났다.

영국은 1760년대부터 중국에 <아편무역>을 시작했으며 또 제1, 2차 아편전쟁을 일으켜 1860년에 전쟁이 끝났다. 이와 같은 역사적 기록들을 종합하면 영국은 적어도 100년 이상 중국에 <아편무역>과 <아편전쟁>을 감행하면서 침략의 야욕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1880년대에 있어서 중국의 아편중독자의 수는 공식 통계상으로 4천만명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당시 2천만명이 아편중독증 말기현상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공식 통계보다 더 많은 아편중독자들이 분명히 있었다고 본다. 아편 때문에 자식과 아내를 팔아버린다는 이야기는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중국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었던 실화였다. 당시 상해에는 아편굴이 실제로 2천개나 있었다고 한다. 영국은 중국민에게 아편을 제공하여 막심한 민족적인 비극의 역사를 남겨 놓았다. 서구 열강인 영국의 제국주의적인 침략의 야욕이 아편을 통하여 중국에서 100년 동안이나 계속된 것은 참으로 잊을 수 없는 비참한 시간이었다.

영국이 일으킨 아편전쟁을 고찰하면서 마음속에 큰 질문이 생긴다. 어찌하여 중국에서 아편으로 인한 질곡의 역사가 100년이 넘게 계속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아편의 중독성은 벗어나기 힘든 최악의 질곡인데 어떻게 군자의 나라인 중국에서 100년 동안이나 아편의 질곡이 계속될 수 있었을까. 영국은 중세기 기독교국가로서 뿌리 깊은 성공회(Anglican Church)를 국교로 삼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영국의 기독교는 이에 대하여 책임이 없는가? 영국이 중국에 아편 무역을 시작했고 100년 동안 판매한 방법은 도대체 어떤 방법이었는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하여 세 가지 답변을 찾아 보았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국은 처음에는 중국의 고위층과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호화로운 모습으로 아편을 피우도록 시작했다. 부자들이 최고의 호화로운 모습으로 아편을 피우는 것이 중국의 상류사회에서 유행처럼 확장되고 있었다. 일반 민중들에게 있어서 아편을 피운다는 것은 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부유층에 대하여 민중들이 <부러워 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영국은 중국 사회의 유행을 부추기는 방법을 활용했다. 감수성이 강한 중국의 순진한 민중들은 고위층의 부유한 사람들이 아편을 피우는 멋있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과 <부러워 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이는 영국이 의도한 심리적인 작전이었다. 그리하여 일반 민중들이 너도 나도 스스로 아편을 피우도록 유도했다. 이와 같은 영국의 상업수단은 성공했다.

둘째, <고위층>과 <부유층> 사람들이 교만스러운 모습으로 아편을 피움으로써 그들이 서구의 문명인들과 접근하는 최선의 방법인 것처럼 인식하도록 유도했다. 중국인들이 아편을 피움으로써 서구의 문명인들과 동등한 삶의 질을 공유한다는 문화적 착각을 일으키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셋째로 영국은 중국인들에게 아편이 의료용으로도 매우 유익한 약재가 된다고 설득시키는데 주력했다. 영국은 아편의 중독성을 음폐하고 오직 치료하는 양약이라고 설득시켰다.

위의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영국은 100년 동안 중국이 서구문명권에 예속되도록 강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국은 위와 같은 초기의 보급방식을 1800년대에는 무력을 사용하여 강압적인 방법으로 전환해 중국에 아편을 보급했다.

중국의 아편전쟁을 고찰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옛날 서구 열강이 중국에 대하여 아편을 강매한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에 있어서 서구열강들은 제3세계에게 <자본주의 아편>을 교묘한 방법으로 강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70년 동안 서구열강은 제국주의로 포장된 <이념의 아편>과 자본주의로 포장된 <종속주의 아편>을 제3세계의 모든 나라들에게 교묘한 수단방법으로, 또 어떤 때는 강압적 방법으로 전매특허식으로 침략의 아편을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것이다. 아편 노릇 하는 서구 문명에 대하여 재인식을 했다.

1. 아편 노릇 하는 서구 과학기술문명

과학기술문명이 서구사회 뿐만 아니라 제3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과학의 기술발전이 사회생활 양식을 뒤바꾸어 놓았으며 19세기 후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회에서 삶에 대하여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서구의 문화 발전과 과학적인 기술발전은 인류의 위대한 성취와 승리라고 찬양할 수 있다.

하지만 서구의 과학발전은 엄밀한 검증이 요구되고 있으며 과학의 존립근거에 대하여 의심을 받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서구 과학 기술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은 결과적으로 서구 사회의 경쟁주의와 실용주의적 사회의 병페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오직 경쟁과 만사에 있어서 개인의 실용주의적인 이해관계만을 계산하는 냉혹한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서구의 과학적인 물질주의 문명이 오직 물질적인 효율성과 개인주의적인 경제적 이득과 가치만을 존중히 여기는 극히 물질주의적이며 반사회적인 냉혹한 개인주의 사회를 조성해 놓았다. 서구의 과학 문명에 종속된 후진국들이 무차별적인 과학 발전에 몰두하여 자국의 민족적인 귀중한 윤리와 삶의 지혜를 포기하고 망각하면서 외세의 과학적 기술에 마비되는 비극적인 경우가 참말로 많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 한국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 볼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남녀 학생들의 경향을 보면 무조건 <과학중시> 사고방식에 청소년 학생들이 집중하고 있다. 오늘 한국의 대학생들의 사고방식은 과학이 아닌 다른 인문학은 <춥고 배고픈> 학문이라고 인식하고 무조건 외면하고 있다. 그리하여 많은 대학에서 인문학 관련학과를 축소시키거나 아니면 아예 인문학 관련학과를 폐강하는 위기에 몰려있다고 한다. 오늘 한국의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 다양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오직 개인주의적 출세와 이익추구에만 몰두하는 <과학 직업학교>로 전락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과학 기술 문명은 사회적인 윤리와 나라와 민족적인 사명의식으로 무장된 이념을 추구하는 학문으로 민중의 생활속에 깊숙히 관여하는 과학이어야 한다. 어찌하여 서구 과학 기술발전이 민족을 위한 사회적 요구에 역행하고 있는가? 어찌하여 서구 과학 기술의 발전이 민족의 삶과 정당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가? 과학이 발달한 서구 문명국들이 제3세계에 대하여 어떤 방법으로 아편 노릇을 하고 있는가? 이와같은 질문에 대하여 살펴 보고 간략하게 요점을 기술한다.

ㄱ. 과학 기술 발전은 항상 나라와 민족과 사회적 요구에 연관되어 있어야 한다. 과학 기술 발전은 나라와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명의식과 직결된다. 우리의 시야를 세계적으로 넓힌다면 참된 과학자는 세계평화와 인류 사회의 평등을 위한 사명의식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과학기술은 자본주의적 사회구조 모순에 봉착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나라와 민족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구 문명국의 과학기술의 발전은 국제적인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파괴시키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ㄴ. 과학 문명기술의 발전을 무시하거나 과학기술의 공적을 부인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하지만 동시에 과학의 기술적인 발전을 통하여 획득되는 사회적인 성과와 이득에 대하여 서구 자본주의 체제가 독점하거나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착취를 감행하여 오히려 사회악을 조장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과 악행에 대하여 서구 과학문명은 역사적으로 반사회적이며 반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반민족주의라고 규탄을 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제3세계의 눈으로 파헤쳐야 한다. 그런데 서구 문명국들은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공장안에 집결시켜 가두어 놓고 사회를 둘로 조각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 발전에 전적으로 공헌하고 있는 과학 노동계급을 하나의 <기계의 부속품>으로 여기면서 과학기술 노동계급을 비인격적인 집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ㄷ.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과학기술을 그 자체로 독립시키지 않고 과학기술의 이용가치를 자본주의적 체제와 연관시킴으로써 자본의 축적과 이득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과학기술을 <역이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 체제가 과학기술을 <역이용>하는 방법은 서구 자본주의적 강대국들이 제3세계에 대한 국제적인 관계속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러한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서구 강대국의 자본주의적 체제가 내포하고 있는 과학기술에 대한 모순된 부패한 현상을 오늘날 제3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이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으며 명백한 잘못인 것을 밝혀 내야만 한다는 말이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사회적 구조안에는 과학기술이 성취해 놓은 공헌에 대하여 <자본주의>와 <과학기술 노동>사이에서 근본적인 모순과 충돌로 인하여 대립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속에 숨어 있는 태생적인 대립의 문제를 서구 열강들은 외교적인 포장속에 감추어 놓고 제3세계 국가들에게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눈을 돌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 열강은 자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자본>과 <노동>의 충돌로 인하여 발생하는 모순과 문제를 시인하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 기술노동이 자본주의의 독점물이 아니다. 오늘 현대 과학기술은 서구 열강 문명국에서 가치의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과학이 축복인가 재앙인가? 이에 대하여 세가지로 밝힌다.

ㄱ. 과학 기술이 특정자본이나 대기업에 예속되어 자본축적을 위하여 역이용을 당하는 경우가 서구의 자본주의 체제에 내포되어 있는 부패현상이다. 이것은 분명히 반국가적이며 반민족적이며 또 반세계평화적인 큰 죄악이다. 이것은 바로 자본독점을 위하여 과학기술을 악용하고 있는 서구 자본주의자들의 정체이며 과학의 큰 재앙이다.

ㄴ. 과학 기술의 발전은 사회봉사로 직결되야 한다. 과학 기술은 나라와 민족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고 보호하는 책임을 져야함과 동시에 경제적 발전에 공헌하여 나라와 민족의 평안과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들이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 중대한 사명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자의 사명을 사회를 위한 봉사의 문제와 연관시키는 것은 극히 당연한 과제이며 과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큰 축복이 된다.

ㄷ. 서구 열강들이 제3세계 민중에게 말할 수 없는 전쟁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발전이 전쟁을 방지해 줄뿐만 아니라 전쟁의 위기를 억제하여 제3세계민중들을 보호하는 방위력을 확보하는데 있어서 크게 공헌하고 있다.

제3세계는 엄청난 위기에 대비하여 과학 기술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켜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비하여 전쟁 억지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므로 제3세계는 국제적 연대를 더욱 견고히 강화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아편 노릇>을 하고 있는 서구 열강의 과학기술의 만행을 물리칠 수 있 유일한 길이 된다.

2. 아편 노릇 하는 서구 자본주의

오늘 서구 열강이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는 착취와 억압으로 인하여 소외된 세계가 되고 있다. 세계 인구 70억 중에서 35억 이상이 절대빈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고장 났다>라고 미국의 소셜리스트 워커 신문의 편집자인 앨런 마스는 주장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미국의 고장난 자본주의를 <고칠 수 있다>라고 큰 소리쳤다. 하지만 재선된 오바마 대통령은 <고칠 수 없다>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미국의 침략전쟁은 중동과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뿐만 아니라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은 어디에서나 끝을 모르고 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또한 미국의 건강보험 개혁안은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는 고장난 경제와 대외정책으로 한쪽에서 다행스럽게 고쳐 놓으면 곧 또 다른 곳에서 더 큰 문제가 미국의 내외에서 터지고 있는 상태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의 자본주의도 미국처럼 되는 것을 크게 염려하며 근심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무조건 팽창주의이다. 하지만 팽창에 성공한 후에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퇴보되고 사회는 혼돈에 빠진다. 서구의 자본주의 정책이 일시 성공하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 민중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부귀를 획득한 성공이기 때문에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도박의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도박은 그 성질상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아편>과 동질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자본주의에 있어서 항상 대두되는 문제는 <자본>의 문제이다. 자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안해낸 것이 바로 <금융기관>의 창설이다. 하지만 금융기관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는 오히려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수반하고 있다.

과잉선전, 과잉신용, 과잉거래 등 금융기관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부작용은 순진한 민중을 보다 더 착취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호화스러운 금융기관의 그 문턱이 너무 높아 빈곤한 민중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서구의 자본주의는 생동하는 모습으로 제3세계에 출현하고 있다. 하지만 성장과 퇴보를 반복하고 있는 서구 자본주의는 결국 노화된 모습으로 종말에 도달하는 과정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하루 속히 서구 문명권에서 사라져 없어지도록 자본주의 타도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오늘 이 지구상에서 자본주의가 가히 없어질 수 있겠는가? 특히 한국에서 1960년대에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망령이 태생하여 오늘 미국의 자본주의에 힘입어 한국을 또 다시 지배하고 있는 상황하에서 자본주의 종식을 말하는 것은 그 말 자체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회칠한 무덤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Made in USA로 만사가 기독교적인 민주주의로 화려하게 과시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칠한 무덤같은 자본주의는 그 속에 추악한 모습이 숨겨져 있을 뿐이다.

만물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와 <야만주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미국은 제3세계를 유혹한다. 이 유혹이 바로 자본주의로 포장된 아편이다. 아편으로 포장된 미국의 선거제도로 한국에서 대통령을 선출한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 급하게 찾아가는 곳이 바로 미국의 백악관이다. 미국의 자본주의에 충성할 것을 서약하고 의기 양양하게 돌아온다.

이 지긋지긋한 자본주의 (아편)때문에 상처받은 제3세계의 고달픔을 어찌해야 하겠는가? 이제는 자본주의 아편에 그만 속아야 한다. 이제는 고달픈 삶을 혁명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먼저 마음의 혁명부터 시작해야 한다. 반자본주의 혁명은 설득력있게 자본주의 불의와 부패에 대한 마음의 고발에 의하여 시작되어야 한다.

하지만 제3세계가 자본주의 야만의 구령텅이에서 빠져 나오려면 그 대안으로써 이제는 제3세계는 마음의 혁명 뿐만 아니라 실천하는 혁명으로 두 측면에서 통일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근 니카라과의 보도에 따르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니카라과 운하> 건설을 위하여 400억 달러 규모로 2014년 5월부터 착공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직은 여러가지 절차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중남미 대표적인 좌파정치 지도자인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이 미국을 따돌리고 <파나마 운하>보다 훨신 더 큰 방대한 <니카라과 운하> 건설에 중국을 끌어 들이면서 계획하고 추진한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가히 <제3세계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니카라과는 어떤 나라인가? 니카라과는 친미 독재자 소모사 정권이 1937년 1월 1일에 미국의 군부의 위력을 과시하면서 권력을 탈취했다. 소모사 정권은 악명 높은 미국 CIA가 이란에 무기를 비밀로 팔아서 마련한 <Iran Contras>자금을 비밀리에 오랫동안 받으면서 독재정권을 유지해 오다가 민중의 강력한 항쟁으로 인하여 1979년에 권좌에서 42년만에 쫓겨나 패망했다.

그후에 1985년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이 혁명을 일으켜 반미 자주정권을 수립하여 니카라과의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미국의 방해공작과 친미 쿠테타의 위기를 수없이 많이 당했다. 하지만 오르테가 대통령은 미국의 음모를 능히 물리치고 2007년 1월 10일에 재선에 승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중남미의 대표적인 반미 좌파지도자로 우뚝서서 활약하고 있다.

오늘 국제사회는 친미와 반미를 따질 것 없이 조선(북한)에 대하여 미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국제법을 어기는 것이다>라고 부당한 주장을 하는데 대하여 그것은 모순된 억지 주장이며 <미국의 궤변>이라고 세계언론은 비판하고 있다. <미국이 애당초 남쪽 한국에 핵무기를 전개하지 않았더라면 조선반도는 이미 비핵화지대로 되었을 것>이라고 세계의 외신들은 비판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이열치열>이라는 속담 그대로 핵전쟁은 핵으로서만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조선의 일관된 주장이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문명국들이야말로 지구를 핵으로 불사를 수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방화범죄국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열강은 제3세계에게 <비핵화 아편>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서구 열강의 이러한 거짓 주장에 절대로 속지 않는다.

3. 아편 노릇 하는 서구의 종교적 위선

서구 기독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외부에서가 아니라 기독교 내부에서부터 들려오는 기독교 자체에 대한 신학적인 평가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서구 기독교가 남겨 놓은 역사적 과오에 대한 신학적인 평가는 무엇인가?

서구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식민제국주의적 교회” ”가부장적 교회” “서구 문화중심적 교회” 라는 전통을 보유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시대에 있어서 제3세계에 속하는 나라들의 99.5%가 서구 열강의 피식민지국가들이었다.

이렇게 많은 피식민지 나라들에 대하여 서구 기독교가 오랜 세월동안 어떠했는가에 대하여는 지면상 제한으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하지만 한가지 중요한 요점을 지적하면, 서구 기독교는 제3세계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행위에 대하여 <신의 축복>이라고 설교를 했다는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에 제3세계 나라들이 우후죽순처럼 저마다 독립을 쟁취했다. 독립을 쟁취한 제3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서구 기독교가 식민지 시대에 있어서 제국주의자들과 함께 공동으로 저지른 과오에 대하여 기독교적인 도전과 양심의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서구 기독교는 제3세계 교회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 해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구 기독교는 냉전시대의 동서로 분열된 새로운 사상적 대립을 악용하여 이념의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핑계를 하면서 제3세계 교회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묵살했다. 그러면서 서구 기독교는 제3세계 교회가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 오히려 냉전시대의 유물론적인 색깔론을 제기하면서 종교적으로 위선적 태도를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는 21세기 서구 기독교의 한계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3세계의 기독교는 새롭게 역사의 지평 위에 떠오르고 있다.

기독교가 어떻게 운영되는가를 중요시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어떤 목적으로 존재하는가를 중요시 해야한다. 1990년대 초에 세계 기독교의 교파와 교단의 수가 1,800개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에는 약 30,000개가 넘는 기독교의 교파들이 난립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기독교의 정상적인 발전이 아니라 기독교의 부패성으로 인하여 중독된 현상이라고 종교심리학자들은 판단한다. 종교가 부패하면 아편 역할을 한다. 가난한 민중들과 대화의 장소로서의 교회는 없어지고 물량적으로 회칠한 무덤처럼 화려한 교회건물들만이 서구 사회에 가는 곳마다 가득차 있다.

그런데 오늘 한국의 기독교는 어떠한가? 한국의 기독교는 서구 기독교 이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 기독교의 목사들이 신의 위치로 높이 올라가 앉아 있으면서 교권과 사회적 권력을 모두 양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는 반공주의와 반통일주의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에 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반공주의와 반민족적정신으로 무장된 한국의 기독교에는 신은 이미 떠나가 없어진 상태에 있다. 그런 기독교에 참된 신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돈을 요구하는 신, 명예와 존경을 원하는 신, 화려한 건물을 요구하는 신, 이런 신은 절대로 기독교의 신이 아니며 가짜 신이다. 가짜 신은 우상이고 우상 숭배는 곧 아편이다. 서구의 기독교에 신의 실재는 없으며 오직 이념적 우상만 남아 있다. 유럽의 기독교처럼 한국의 기독교도 역시 물질주의 일변도와 특히 반민족, 반통일적이면서 외세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타락한 기독교가 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신이 없는 공허한 기독교가 되고 말았다.

철학자 니체(F.W. Nietzsche 1844-1900)는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다. 그가 외친 이유는 그때 유럽인들이 신을 만들어 내고 섬기고 있는 그런 신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외쳤던 것이다. 니체가 생존해 있던 그때처럼 오늘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제멋대로 신을 만들어 놓고 그 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종교가 타락하면 우상이되고 우상수배는 아편처럼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기독교가 순진한 민중들에게 하늘의 위로를 설교하고 있는 동안 세속적인 정치가들은 기독교가 정치를 위하여 매우 이용가치가 있는 종교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

냉전 시대가 끝난 이후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제3세계 사람들은 조금도 변함없이 서구 문명권 세계가 오래 전부터 살아온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여전히 그대로 살아 가고 있다. 과학이든 정치든 종교이든, 그 기본 구조에는 조금도 변함 없이 착취와 억압과 속임수에 의하여 지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체제란 무한한 영구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역사는 발전하고 마침내는 억압을 당하고 있는 민중들은 현실적으로 여러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최근 미국 뉴스에 의하면 미국 CIA 요원인 스노든은 연봉 20만 달러를 받는 미래가 보장된 직장을 스스로 포기하고 CIA 비밀공작을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스스로 그 좋은 직장을 포기했다. 스노든은 직장을 포기함으로써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법무부는 끝이 없는 그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말하기를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고 단호하게 언명했다.

오늘 한국에서는 어떠한가? <전두환을 추징금 1673억원을 안내면 수감하라>고 하는 신문기사를 어제 읽었다. 전두환은 누구인가? 박정희의 정치적 아들이다. 그러면 박근혜는 누구인가? 박근혜는 박정희의 혈육이자 정치적 딸이다. <전두환은 자폭하라>고 외치는 군중데모를 보면서 연상되는 생각은 <박근혜는 자폭하라>고 외치는 민중들의 모습이 머리속에 떠오른다.

6월 12일에 열릴 예정이던 남과 북의 당국자회담이 무산됐고,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어쨋든 이 회담들은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모이는 회담들이어야 한다.

판문점 남북회담이든, 미중 양국의 정상 회담이든,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두 곳에서 모이는 회담들의 성과에 대한 기대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 하나의 기대는 70년이 된 코리아반도의 임시적인 <휴전협정>이 영구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예비적 절차의 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외면한 회담들은 아편 노릇 하는 미국의 속임수와 말장난이 될 뿐이다.(2013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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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북미 당국간 고위급 회담 제안

국방위 중대담화 "'핵없는 세계' 바라면 기회 놓치지 말라" (전문)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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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16 1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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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북미 당국간 고위급 회담을 16일 전격 제안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북 국방위원회는 '위임에 따라' 대변인 중대담화를 발표, "조선반도의 긴장국면을 해소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조미당국사이에 고위급 회담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국방위 대변인은 "조선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미국본토를 포함한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담보하는데 진실로 관심이 있다면 전제조건을 내세운 대화와 접촉에 대하여 말하지 말아야 한다"며 회담장소와 시일은 미국 정부에 일임했다.

그리고 북.미간 회담 의제로 △군사적 긴장상태의 완화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 △미국이 내놓은 '핵없는 세계건설' 문제 등 양측이 원하는 모든 문제로 "폭넓고 진지하게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변인은 "조선반도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이룩하려는 우리의 입장은 시종일관하다"며 "미국은 진정으로 '핵없는 세계'를 바라고 긴장완화를 원한다면 차례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의 대범한 용단과 선의에 적극 호응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미측에 제의 응답을 촉구했다.

그리고 "모든 사태발전은 지금까지 조선반도정세를 악화시켜 온 미국의 책임적인 선택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대변인은 "세기와 년대를 이어 조선반도의 정세를 지속적으로 격화시켜 온 장본인은 다름아닌 미국임을 다시금 세상에 똑똑히 공표한다"며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는 것만큼 미국은 더이상 그 누구의 있지도 않는 도발과 위협에 대하여 떠들며 여론을 오도하고 세계를 기만하는 행위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변함없는 의지이고 결심임을 다시금 내외에 천명한다"며 "조선반도 비핵화는 결코 북핵폐기만을 위한 비핵화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의 비핵화는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전역의 비핵화이며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킬 것을 목표로 내세운 가장 철저한 비핵화"라고 해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정책을 언급했다.

대변인은 "우리의 핵보유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자위적이며 전략적인 선택"이라며 "미국은 대화국면을 열기 위해 우리더러 비핵화의지의 진정성을 먼저 보이라고 떠들기 전에 우리에 대한 핵위협과 공갈을 그만두고 제재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도발부터 중지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대변인 중대담화]

요즘 미국의 현 행정부는 조선반도에 조성된 긴장국면을 해소하려면 우리가 먼저 비핵화의지를 보이고 《도발》과 《위협》을 중단해야 한다며 마치 우리의 선택에 모든 사태발전이 달려있는것처럼 떠들어대고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조선반도에서 긴장을 격화시켜온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듯이 여론을 오도하고 세계를 기만하고있다.

여기에 사대와 굴종에 체질화된 남조선의 현 당국자들과 여러 추종세력들이 같이 춤추고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는 위임에 따라 다음과 같은 중대립장을 내외에 밝힌다.

1.세기와 년대를 이어 조선반도의 정세를 지속적으로 격화시켜온 장본인은 다름아닌 미국임을 다시금 세상에 똑똑히 공표한다.

지난 세기 50년대 조선반도에서 침략전쟁을 일으킨 도발자도 미국이고 전후 60년세월 조선정전협정을 체계적으로 파괴한 주범도 바로 미국이다.

새 세기 10년대에 들어서면서 또다시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지르려고 집요하게 책동하고있는 전쟁방화범역시 미국이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우리의 합법적이며 정정당당한 인공지구위성발사를 장거리미싸일발사로,미국의 로골적인 침략행위에 대비한 우리의 자위적인 군사적조치들을 그 무슨 《도발》이라고 걸고들면서 가장 파렴치한 도발자,가장 날강도적인 침략자로서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내놓고있다.

미국이 주도하여 조작해낸 날강도적인 《제재》결의도,그것을 발단으로 하여 더욱 로골화된 모든 대조선적대행위도 우리 군대와 인민에 대한 참을수 없는 엄중한 도발이였다.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는것만큼 미국은 더이상 그 누구의 있지도 않는 《도발》과 《위협》에 대하여 떠들며 여론을 오도하고 세계를 기만하는 행위에 매달리지 말아야한다.

도적이 매를 드는 식의 미국의 전횡이 밝은 이 세상에 통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것이다.

2.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변함없는 의지이고 결심임을 다시금 내외에 천명한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우리 수령님과 우리 장군님의 유훈이며 우리 당과 국가와 천만군민이 반드시 실현하여야 할 정책적과제이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결코 《북핵페기》만을 위한 비핵화가 아니다.

우리의 비핵화는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전역의 비핵화이며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킬것을 목표로 내세운 가장 철저한 비핵화이다.

우리의 핵보유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자위적이며 전략적인 선택이다.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의 당당한 지위는 그 누가 인정해주든말든 조선반도전역에 대한 비핵화가 실현되고 외부의 핵위협이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유지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대화국면을 열기 위해 우리더러 비핵화의지의 진정성을먼저 보이라고떠들기 전에 우리에 대한 핵위협과 공갈을 그만두고 《제재》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도발부터 중지하여야 한다.

3. 조선반도의 긴장국면을 해소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조미당국사이에 고위급회담을 가질것을 제안한다.

조선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미국본토를 포함한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담보하는데 진실로 관심이 있다면 전제조건을 내세운 대화와 접촉에 대하여 말하지 말아야 한다.

조미당국사이의 고위급회담에서는 군사적긴장상태의 완화문제,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미국이 내놓은 《핵없는 세계건설》문제를 포함하여 쌍방이 원하는 여러가지 문제를 폭넓고 진지하게 협의할수 있을것이다.

회담장소와 시일은 미국이 편리한대로 정하면 될것이다.

조선반도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이룩하려는 우리의 립장은 시종일관하다.

미국은 진정으로 《핵없는 세계》를 바라고 긴장완화를 원한다면 차례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의 대범한 용단과 선의에 적극 호응해나와야 할것이다.

모든 사태발전은 지금까지 조선반도정세를 악화시켜온 미국의 책임적인 선택에 달려있다.

주체102(2013)년 6월 16일. 평 양.

[자료출처-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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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국정원게이트, 사법정의 짓밟은 ‘쿠데타’”

 

 
 
표창원,국정조사 서명운동 ‘ 국정원게이트, 국정조사 실시해 주세요!’
 
耽讀 | 등록:2013-06-16 09:28:46 | 최종:2013-06-16 10:12:0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검찰이 국가정보원 관련 의혹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대통령 선거 운동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국정원 직원들은 기소유예한 것에 대해 비판이 거세다.

검찰이 원 전 원장이 공직선거법 제85조 1항(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및 국정원법 제9조(정치 관여 금지) 위반했다면서도 불구속하고, 이종명 전 3차장 등 직원들은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라 범행을 했다는 이유로 전원 기소유예했기 때문이다.


표창원 "새누리당, 국정조사 합의해놓고 이제 와서 뒤집어"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포털 <다음> 아고라에서 국회에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표 전 교수는 '국정원 게이트, 국정조사 실시해 주세요' 제목의 글에서 "지난 대선,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국정원 사건이 허위조작, 여직원 인권유린이라며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주도한 경찰 거짓 발표를 무기삼아 17, 18일 양일간 집중 유세, 대선에서 승리했다"면서 "그리곤 대선 후 논란이 불거지자 새누리당과 민주당,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국정조사 실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국정원 사건 '검찰수사 종결후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원내부대표간 합의"했다며 "하지만, 경찰-검찰 수사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불리해진 새누리당이 '수사, 재판중인 사건 국정조사 못한다'며 말을 뒤집었다"고 새누리당이 국정조사 약속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표 전 교수는 국회입법조사처가 "'국정조사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려주었다"며" 국정조사 실시!"를 거듭 촉구했다.

특히 표 전 교수는 "미국 워터게이트는 발생초기 5명의 민간인 체포로부터 시작, 그중 한 명이 공화당 선거운동본부 경비책임자였으며 전직 CIA요원이었음이 드러났고, 이 사람 수첩에 고위 백악관 관계자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진상이 드러나자 닉슨대통령이 수사를 무마하려고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국정원게이트, 정권 이익 위해 사법정의 짓밟은 '쿠데타'"

그러면서 "결국 이 사실이 드러나 의회에서 공화당 의원들까지 찬성해 탄핵안이 의결된다"며 "닉슨은 탄핵직전에 사임했다"고 말해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에 압력을 행사한 것이 하야 배경임을 상기시켰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도 워터게이트 사건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것이 표 전 교수 생각이다.

"한국 국정원게이트는 6개월간의 경찰-검찰 수사로 조직적인 정보기관의 불법적 선거개입 범죄가 확인됐지만 체포/구속 0명, 실제 불법행위를 자행한 국정원 직원들은 기소유예 됩니다. 정권의 이익을 위해 국정원과 경찰, 검찰이 고의적으로 사법정의를 짓밟은 '쿠데타'입니다."

국정원 선거개입을 '쿠데타'로 정의한 표 전 교수는 "채동욱 총장, 윤석열 팀장, 검찰 특수수사팀, 어려운 여건에서 최선 다한 것 알고 고맙다"고 해 그나마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은 높이 산 후, "하지만 결국 권력앞에 무너지는 모습, 가슴 아프고 야속합니다. 국민이 그렇게 큰 기대와 응원, 지지를 드렸지만 권력이 더 무섭군요"이라며 원 전 원장을 불구속하고, 직원들을 기소유예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새누리당 정권 천년만년 갈 것 같냐, 언젠가 비참하게 무너져"

그는 또 "새누리당 정권이 천년만년 갈 것 같습니까? 언제든 바뀐다"며 "불법과 부정 위에 쌓인 힘과 권력, 언젠간 무너지고 무너질때 비참하다"며 새누리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국민이 잊지말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정원과 경찰-검찰 담당자 이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면서 "황교안 법무장관과 곽상도 민정수석의 이름을 기억합시다. 새누리당 관계자들의 이름을 기억하자"며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사람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 전 교수는 또 "전두환의 12.12쿠데타, 5.18 내란 학살, 수천억 뇌물 비자금 문제 역시, 폭로로 시작해 정권 눈치를 본 정치 검찰이 사법면죄부(성공한 쿠데타 처벌못함)를 주었지만, 국회청문회에서 진실의 상당부분이 드러났고 정권이 교체된 후 전두환에게 사형 판결(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이 내려졌"음을 상기시켰다.


"12.12쿠데타와 국정원게이트 유사"

그러면서 "국정원게이트와 유사합니다. 1980년대 쿠데타는 총칼과 군대를 동원했지만, 21세기 쿠데타는 국정원과 경찰을 동원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라며 "검찰이 사후 승인을 해준 과정도 같구요.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진실의 상당부분을 밝혀낸 뒤 정권교체를 통해 확실하게 심판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12.12군사반란과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비슷한 사건으로 정의한 표 전 교수는 "불법과 부정을 자행한 자들은 국민의 냉소와 무관심을 먹고 살고,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면서 "냉소하지 맙시다, 패배주의에 빠지지 맙시다. 관심 가집시다. 지금은 국정조사 실시! 한목소리로 외칩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부탁드립니다. 호소드립니다. 다음 네이버 등 포털에, 언론사 게시판에,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정당 홈피에, 트위터에, 페이스북에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자고 거듭 호소하면서 서명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누리꾼 "문재인과 안철수도 국정조사 서명운동에 동참하라"

국정조사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제역할 하게 하는 것"이고, "대한민국이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민주공화국'임을, '국민이 주권자'임을,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민주국가를 물려주고 싶다"고 외쳤다.

서명에 동참한 누리꾼들도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정하6***'는 "나라의 주인으로 살 것인지, 권력의 노리개로 살 것인지가 국조 서명운동 참여의 기준점!! 문재인, 안철수도 적극 나서줘야 힘이 실릴 것임!!"이라며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도 국정조사 서명에 동참하라고 말했다.

'두꺼***'도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합니다. 국민이 정부를 감시하고 정부의 잘못을 꾸짖지 않으면 정부는 국민을 노예처럼 다룰 것"이라며 "왕권시대였던 조선시대에도 백성을 농락하고 지배하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시대라는 요즘 정부가 국민을 농락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며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치*'는 "이게 슬픈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을 그냥 넘어 갈 수가 있을가요 아 슬픕니다"며 탄식했다. 그리고 '치*'는 이렇게 적었다.

"대한민국에 미래를 앞으로 짊어질 학생들과 아이들을 위해 이제는 더 이상 어물쩡 넘어갈 수 없습니다 .공정하고 깨끗한 경쟁만이 참 된 인제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위인을 찾아낼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한다면 또 다시 일제식민지와 비슷한 유형의 결과만 가져오게 될 것임에 우리가 지나온 역사는 말합니다. 너희들의 거울과 등불이 돼어주겠다고 그리고 역사를 등불삼아 현재 우리의 앞날을 비춰보면 우리 아이들 학생들이 끔찍한 고통 속에 살고 있을 미래를 예상하게 됩니다."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원식 민주당 최고위원은 14일 <오마이뉴스> 와 인터뷰에서 "검찰조사 끝났으니 지난 3월 여야가 합의한 대로 '즉시' 국정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서명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15일 10시 35분 현재 1만8408명이다. 국정조사 서명운동 바로가기'국정원 게이트, 국정조사 실시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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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편집국 폐쇄... 노조 "사상 초유 사태"

장재구 회장, 15일 '충성 서약' 요구하며 기자들 쫓아내... 기사 시스템 접속도 차단

13.06.16 09:10l최종 업데이트 13.06.16 09:12l
김시연(staright)

 

 

기사 관련 사진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쪽 임직원과 용역들이 15일 밤 기자들에게 '근로제공 확약서' 서명을 요구하며 편집국 출입을 차단하고 있다.
ⓒ 한국일보 노조 비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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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언론사주가 편집국을 폐쇄하고 기자들을 몰아내는 바람에 월요일자 신문 발행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 쪽은 15일 오후 6시쯤 기자들을 쫓아내고 편집국을 폐쇄했다. 한국일보 노조는 "대한민국 언론 역사상 초유의 사태"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일보 편집국 기자들과 노조에 따르면, 장 회장은 이날 오후 6시 20분쯤 간부와 직원 10여 명과 함께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진빌딩 신관 15층 편집국을 점거한 뒤 당직기자 등 기자 2명을 내보냈다.

'근로제공 확약서' 서명 요구하며 편집국 출입 차단... 용역도 동원

이 과정에서 사쪽은 편집국에 들어가려는 기자들에게 사규를 준수하고 회사에서 임명한 편집국장과 부서장 지휘에 따르겠다는 내용의 '근로제공 확약서' 서명을 요구했다. 기자들이 서명을 거부하자 사쪽은 용역 10여 명을 동원, 편집국 출입문을 폐쇄하고 15층으로 통하는 승강기와 비상계단도 통제했다.

또한 사측은 노조원을 비롯한 편집국 기자들의 아이디를 삭제해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하는 데 필요한 기사집배신 시스템 접속을 차단했다. 아울러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근로제공 확약서 작성을 요구하는 한편, 5월 1일 인사조치를 거부하고 신문 제작을 해온 편집국 간부 4명에게 6월 16일자로 자택대기발령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당장 17일(월요일)자 신문 제작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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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쪽은 15일 오후 기자들의 아이디를 삭제해 기사 전송 시스템 접속을 막고 있다.
ⓒ 한국일보 노조 비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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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장재구 회장의 배임 혐의 고발과 보복성 인사 조치로 그동안 노사 갈등을 빚어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가 지난 4월 29일 장재구 회장이 '회사에 200억 원 상당의 손해를 입혔다'며 검찰에 고발하자 장 회장은 지난 5월 1일 이영성 편집국장 등 편집국 간부를 모두 교체한 데 이어 지난 6월 11일 이 국장을 해고했다.

한국일보 편집국 기자들과 노조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밤 10시 30분경 발표한 성명에서 "일하던 기자를 편집국 밖으로 몰아내면서 근거 없는 문서 작성을 강요한 회사 측의 이같은 조치는 대한민국 언론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유의 일"이라면서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자 기자들의 정당한 취재 권리를 방해한 불법 조치"라고 반발했다.

이들은 16일 오전 9시 남대문로 한진빌딩 임시사옥 앞에서 총회를 열고 회사의 편집국 폐쇄 조치 등에 항의할 예정이다. 아울러 기자 아이디 삭제 조치에 대해서도 '사원 지위 확인 가처분신청'으로 법적 대응할 계획이다.

다음은 한국일보 편집국 기자들과 한국일보 노조 비상대책위원회가 15일 밤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성명]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 편집국 폐쇄하고 기자들 강제로 몰아내
용역 동원해 편집국 출입 막고 엘리베이터 폐쇄… 한국언론 사상 초유
기자들 아이디까지 전면 삭제하며 정상적인 신문제작 방해해

저희는 한국일보 편집국 기자들입니다. 언론자유와 공정한 보도를 위해서 힘쓰시는 동료 기자 여러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한국일보 회사 측이 6월 15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2가 한진빌딩 신관 15층 편집국을 폐쇄하고 편집국 안에서 일하던 당직기자를 편집국 밖으로 강제로 몰아냈습니다.

이날 오후 6시 20분경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은 박진열 사장, 이진희 부사장, 회장의 지시를 따르는 일부 편집국 간부, 비편집국 사원 등 15명 정도를 대동하고 한국일보 편집국으로 몰려와 편집국을 점거했습니다. 당시 편집국에는 토요일 사진부 당직을 서던 기자 1명과 개인적 용무 때문에 편집국을 들른 경제부장이 있었는데, 회사 측은 이 두 명의 기자들을 강제로 편집국 밖으로 몰아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회사 측은 15명 정도의 외부 용역깡패를 동원했습니다.

사측은 편집국에 있던 기자들에게 '근로제공 확약서'라는 문서를 들이밀면서 "이 문서에 서명을 하지 않으면 편집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근로확약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인은 회사의 사규를 준수하고 회사에서 임명한 편집국장(직무대행 포함) 및 부서장의 지휘에 따라 근로를 제공할 것임을 확약합니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퇴거요구 등 회사의 지시에 즉시 따르겠습니다."

이후 이 기자들이 확약서 서명을 거부하자 회사 측은 용역을 동원해 15층 편집국 출입문을 봉쇄했고, 15층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를 수동 조작해 엘리베이터 4대 중 1대만 가동했습니다. 다른 회사들도 함께 쓰는 공용 공간인15층 비상계단, 신관과 구관 사이를 연결하는 연결통로도 폐쇄했습니다. 이와 함께 사측은 5월 1일 인사파동 이후 기자들과 논설위원 등이 편집국 내부에 게재한 성명서 등을 일방적으로 모두 뜯어냈습니다. 잠시 후 일부 기자들이 개인적인 용무를 보거나 개인물품을 가져가려고 편집국을 찾았으나, 사측 인사와 용역들은 "허가받은 출입자가 아니다"라며 이 기자들의 출입도 막았습니다.

이에 더해 회사측은 신문 지면 제작을 위해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하는 전산시스템인 한국일보 기사집배신 또한 전면 폐쇄해 기자들의 정당한 업무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기사집배신에 접속할 수 있는 기자들의 아이디가 전면 삭제됐습니다. 노조원 및 비노조원을 막론하고 전체 기자들의 아이디를 모두 삭제했습니다. 현재 기자들이 개별적으로 기사집배신에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면 "로그인 계정 OOOOOO은 퇴사한 사람입니다, 로그인 할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뜨고, 접속이 되지 않습니다.

회사 측은 기자들 개개인의 이메일로 인사관리부 명의의 서신을 보내 근로제공 확약서 작성을 종용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회사 측은 5월 1일 실시된 불법부당 인사를 거부하고 정상적으로 신문 제작을 해 온 편집국 간부 4명에게 6월 16일자로 자택대기발령 명령을 내렸습니다.

6월 15일 밤 10시 현재 한국일보 편집국은 사측 인사와 용역들에 의해 장악된 상태이며, 사측에서 이 같은 폐쇄를 계속한다면 6월 17일(월요일)자 신문의 정상적인 제작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일하던 기자를 편집국 밖으로 몰아내면서 근거 없는 문서 작성을 강요한 회사 측의 이같은 조치는 대한민국 언론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유의 일로서,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자 기자들의 정당한 취재 권리를 방해한 불법 조치에 해당합니다.

앞서 장재구 회장은 기자들의 정상적 신문 제작을 방해하기 위해 한국일보 편집국 밖에 '짝퉁 편집실'을 설치하고 비정상적인 경로로 신문을 제작하려 했고, 지난 주 한국일보 노조 비상대책위원회가 짝퉁 편집실 증거를 확보해 이에 항의하자 "회사 밖에서 신문을 만들 생각은 없다"며 한 발 물러선 바 있습니다. 장재구 회장의 6월 15일 조치는 이 같은 짝퉁 편집실 설치 시도가 무산돼 자신의 입맛에 따라 신문을 제작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자, 한국일보를 사유화하기 위해서 신문의 심장인 편집국을 불법 점거한 폭거입니다.

한국일보 편집국 기자 일동은 6월 16일 오전 9시 한국일보가 입주한 한진빌딩 사옥 1층에서 회사의 불법 조치에 대해 항의할 것이며 이와 더불어 한국일보가 정상적으로 제작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또한 한국일보 편집국 기자 및 한국일보 노조 비상대책위원회는 한국일보 사측의 편집국 폐쇄 및 기자 아이디 삭제 조치에 '사원 지위 확인 가처분 신청' 등 강력한 법적 대응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언론사주들의 노골적인 횡포 때문에 언론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한국일보의 현 상황에 대해 동료 기자 여러분들의 비상한 관심과 공정한 보도를 부탁드립니다.

한국일보 편집국 기자 일동 및 한국일보 노조 비상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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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평양견문록(1)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6/16 10:31
  • 수정일
    2013/06/16 10:3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013년 6월 평양견문록(1)
 
[한호석의 개벽예감](66) 잔디열풍과 현대적 건축물로 달라진 평양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06/15 [20:08] 최종편집: ⓒ 자주민보
 
 

평양에 잔디열풍 불고 있다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달라진 평양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나는 2005년 6월에 열렸던 6.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간 적이 있으니, 8년 만에 평양과 재회한 셈이다.

중국 베이징을 떠난 고려항공 여객기가 순안공항에 내려앉자, 이전의 낯익은 공항역사는 보이지 않고, 임시로 건설한 공항역사가 서 있었다. 임시역사 옆에서는 공항역사 신축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새 공항역사의 일부로 보이는 훌륭한 건물이 거의 완공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2011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순안공항을 현대적으로 개건하라고 지시하였고, 2012년 7월 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개건공사 중인 순안공항을 현지지도하였다. 북측 최고영도자들의 지시와 현지지도에 따라 국제공항역사를 새로 짓는 것은, 세계로 통하는 북의 길목이 더욱 넓어진다는 뜻이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북측 구호가 어디를 지향하는지 나는 공항에 들어서면서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임시역사를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나갔을 때, 어디선가 우렁찬 합창소리가 내 귓전에 울렸다. 짙은 청색 작업복을 입고 붉은 색 안전모를 쓴 건설현장 근로자 50여 명의 대오가 작업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붉은 기를 치켜든 근로자 한 사람이 대오의 앞장에 걸어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대형트럭과 건설장비들이 길바닥에 먼지를 일으키며 분주히 오가는 가운데, 그들 근로자 대오는 ‘발걸음’이라는 노래를 합창하며 행진하고 있었다. 평양은 8년 만에 다시 찾아온 해외동포 한 사람을 그렇게 맞아주었다. 나를 맞으려 공항에 나온 해외동포사업국 안내자는, 붉은 기를 앞세우고 ‘발걸음’을 합창하며 행진하는 근로자 대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내 모습을 좀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 평양에 부는 잔디열풍. 보통강 기슭에도 나무를 심고 잔디밭을 가꾸어놓았다. © 한호석


키 높은 나무들이 끝없이 늘어선, 순안공항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진녹색 나뭇잎들이 내게 반가운 손인사를 건넸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측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심었던 그 나무들이 어느덧 크게 자라 이제는 멋진 풍치림을 이루었다. 달리는 승용차 차창 밖으로 모내기를 막 끝낸 논배미들이 푸른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2013년 2월 9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화성-13은 왜 흰 옷으로 갈아입었을까?’(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1882)에서 나는 평양에 건립된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을 참관하고 그 글의 내용을 보완하고 싶다고 썼고, 그 때 내친 김에 북측 당국에 나의 방북의사를 전하였다. 한 달이 훨씬 지나도록 소식이 없던 어느 날, 마침내 나는 북측 당국으로부터 초청의사를 전달받았다. 나의 평양방문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이번 방북목적은 무장장비관 참관이었다.

그런데 참 아쉽게도 내게 주어진 평양체류기간은 도착하는 날과 떠나는 날을 빼면 단 사흘뿐이었다. 8년 만에 내게 주어진 소중한 사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내 생각은 잠시 깊어졌다.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나는 평양체류 중에 무장장비관 참관 이외에 내가 가보고 싶었던 다른 곳도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서 체류일정이 즉각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의향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해외동포사업국 안내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요구되었다.

순안공항에서 평양 중심부로 들어설 때, 가장 먼저 지나는 거리가 동평양 북쪽 서성구역에 있는 버드나무거리다. 버드나무거리에 척 들어서면, 왼쪽에 3대혁명전시관이 보이고, 오른쪽에 련못관이라는 식당이 나타나는데, 거기에 네거리가 있다. 그 네거리를 지나는 순간,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색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길고 푸른 주단을 길거리마다 펼쳐놓은 도로변 잔디밭이다. 나중에 평양 시내를 이곳저곳 돌아보니, 버드나무거리만 그런 게 아니라 평양 시내 곳곳에 수많은 잔디밭이 펼쳐졌다. 잔디가 푸르싱싱하게 잘 자란 거리도 있었고, 얼마 전에 뿌려놓은 잔디씨가 햇볕에 마르지 않게 잔디밭에 비닐막박을 덮어놓은 거리도 있었다.

안내자에게 물어보니, 각 직장별, 인민반별로 잔디밭 담당구역을 정하여 자발적으로 관리한다고 한다.(사진) 거리를 지날 때마다 잔디밭에 물을 주는 살수차도 보였고, 잔디밭에 물을 주는 커다란 비닐물통이 실린 손수레도 보였고, 양동이와 물조리개로 물을 주거나, 호스로 물을 뿌려주는 사람들도 보였다. 잔디밭 가꾸기를 군중운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 평양시민들이 군중운동으로 가꾸는 잔디밭과 화초. 회계과 근무자들이 가꾼다는 나무표지가 보인다. © 한호석


평양에 펼쳐진 잔디밭들에는 잔디만이 아니라 맥문동 같은 지피식물, 키 작은 관상목, 각종 화초들도 조형미 나게 심어놓았다. 평양에 펼쳐진 잔디밭은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 친환경 잔디밭이므로 도시생태환경에 아주 적합하다. 평양 전체를 원림록화하는 거창한 사업이 진행 중인 것이다. 한 마디로, 2013년 6월의 평양은 잔디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평양은 주민 1인당 공공 잔디밭 면적이 전 세계 도시들 가운데서 가장 넓은 원림록화도시로 빠르게 변모하는 중이다.

내가 사는 뉴욕 맨해튼에서는 도로변에 잔디밭을 조성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잔디밭을 조성할 공간이 없을 만큼 도시공간이 번잡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잔디밭 조성과 관리에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주정부나 시정부의 재정은 사실상 파산위기에 빠졌으니, 잔디밭 조성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뉴욕시 녹지대에 잡초가 무성해진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다른 한 편, 대도시 근교에 사는 미국 중산층은 자기의 단독주택 마당에 예외 없이 잔디를 심는다. 그런데 잔디밭을 일주일에 한 차례씩 계속 깎아주고, 잔디밭에 물을 주는 자동관수체계를 돌리고, 잔디밭에 때로 비료도 주고, 잡초를 제거하는 제초제도 주고, 잔디가 죽은 곳에는 새로 잔디씨를 뿌려주는 등 잔디밭 관리에 들어가는 노력과 경비는 상당하다. 휘발유를 쓰는 제초기 및 송풍청소기(blower) 사용, 전기를 쓰는 자동관수체계 가동, 그리고 비료 및 제초제 생산과 유통 등에서 많은 분량의 탄소가 발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미국의 잔디밭은 친환경적이 아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대도시의 모든 도로변에 잔디밭을 조성하는 것은 도시생태환경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업인데,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금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몸소 그 사업을 실천행동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평양의 도시생태환경을 바꾸어 가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치방식은 인민들 속에서 자신의 실천행동으로 잔디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인민들이 자발적인 군중운동으로 도시생태환경을 바꾸도록 이끄는 것이다.

북측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자신의 관저 앞마당에 잔디포전을 만들어놓고 새로운 잔디품종을 시험재배하고 있다. 또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 5월 4일 국가과학원 생물과학분원 잔디연구소를 현지지도하였는데, 그 연구소는 한반도에 자생하는 토종잔디품종인 금잔디에 우수한 유전자를 전이하여 사철 푸른 새로운 잔디품종인 ‘선들밀’을 시험재배하는 데 성공하였다. 지금 북측 도시들에서 맨땅이 드러난 곳마다 심고 가꾸는 왕꿰미풀, 김의털, 겨이삭 같은 토종잔디품종은 녹색기간이 연중 280일 이상이라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의 동부지역, 중부지역, 서부지역에 각각 잔디연구소를 세우고 각 지방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우수한 잔디품종을 육성하여 모든 지방도시들에 보급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렇게 하면, 평양에서 불러일으킨 잔디열풍이 북측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잔디열풍은 평양과 지방도시들을 ‘인민 중심의 생태환경도시’로 탈바꿈시킴으로써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나를 태운 승용차는 서성구역 버드나무거리를 벗어나 어느새 모란봉구역 개선거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60m 높이로 서 있는 웅장한 개선문이 멀리서 시야에 들어온다. 개선거리는 잊지 못할 추억 속으로 나를 끌어갔다. 8년 전 그 날, 평양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6.15 북측 위원회가 급히 마련한 비옷을 덧입고 개선거리 한 복판을 걸으며 조국통일을 염원하고 노래하고 외치는 빗물 젖은 행진대오 속에 나도 있었다. 이 민족에게 고통과 불행을 안겨준 분단시대가 60년에 접어든 2005년 6월 14일 저녁, 한반도 각지와 해외 각지에서 6.15 민족통일축전에 모여든 남북해외 동포들이 손에 손을 잡고 통일기 휘날리며 걸었던, 환성이 차 넘치던 개선거리에 8년 만에 내가 다시 왔다. 개선거리 도로변에 잘 가꾸어진 잔디밭과 화초들과 가로수들, 새로 교체된 가로등이 8년 전의 추억에 젖은 나를 어서 오라는 듯 반겨주고 있었다.

8년 전 그 날, 비 내리는 개선거리를 행진했던 민족통일축전 참가자들은 통일의 문을 함께 열자고 마음속에 다졌건만, 8년이 지난 오늘 이 민족은 남과 북을 이어주었던 하늘길과 뱃길과 땅길을 모두 끊어버린 내외 반통일세력의 집요한 방해를 6년 동안 물리치지 못한 채, 해마다 열어오던 민족통일축전도 더 이상 열지 못하는 분단의 어둠을 헤쳐 가는 중이다.

옥류교 가슴에 안은 평양의 중심가에서

창전거리에 줄지어 늘어선 현대식 고층아파트들(사진)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북측 언론의 보도사진을 통해 이미 보아왔지만, 실제 현장에 가서 보니 감흥이 한결 새롭다. 창전거리에 있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지은 낡은 아파트들을 모두 철거하고, 현대식 고층아파트 단지와 지하상가를 거기에 번듯하게 건설하였다. 해가 저물어 사위가 어둑어둑해지면, 그 고층아파트 외벽마다에는 불장식이 켜져 화려한 느낌을 한층 더 돋운다. 창전거리 고층아파트들도 다른 거리들과 마찬가지로 잔디와 화초를 잘 가꾼 푸른 주단 위에 들어앉아 있다.


▲ 창전거리에 늘어선 고층아파트와 도로변 잔디밭 ©한호석


도시건축적 시각에서 보면, 원래 평양의 도시중심은 만수대동상과 만수대의사당이 있는 만수대언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창전거리가 현대식 도시환경으로 개건되기 이전에는 도시중심은 있었지만 중심가(downtown)라고 부를 수 있는 거리는 없었다. 그런데 창전거리가 현대식 도시환경으로 훌륭히 개건되면서 평양에 중심가가 생겨났다. 푸른 물결 굽이도는 대동강을 가로지르며 서평양과 동평양을 이어주는 옥류교를 가슴에 안은 명당자리에 수도의 새로운 중심가가 자리 잡은 것이다.

창전거리가 마주 바라보이는, 만수대의사당 광장 바로 옆에는 현대식으로 지은 거대한 원통형 건축물이 빼어난 자태를 뽐내며 만수대언덕 한 쪽에 우뚝 서 있다. 지상 6층, 지하 2층으로 지어 2012년 4월 17일에 개관한 인민극장(사진)이다. 평양에 생겨난 새로운 중심가에 음악공연을 위한 공간이 없을 리 없다.


▲ 만수대언덕에 있는 인민극장. 사진에는 옆문이 찍혔고, 정문은 오른쪽에 보인다. © 한호석


인민극장을 개관할 당시 은하수관현악단이 개관공연을 하였다. 1,500석 규모의 원형극장이 있고, 지하층에는 500석 규모의 극장이 있으며, 음악공연과 무대예술에 필요한 각종 현대적 시설을 두루 갖추었다고 한다. 요즈음 북측 인민들 속에서 최상의 인기를 누리는 모란봉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의 수준 높은 음악공연이 바로 그 인민극장무대에서 화려하게 펼쳐지곤 한다. 내가 거기에 간 날에는 공연이 없어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음악공연을 볼 수 없었다.

날마다 해가 저물 무렵이면 인민극장도 주변의 다른 고층건물들과 함께 평양의 밤을 수놓는 멋진 불장식으로 몸단장을 하고 나선다. 개관 당시 북측 언론매체들은 인민극장을 ‘현대적 건축미의 절정’이라고 격찬하였는데, 현장에 가서 실물을 보니 과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사각형 건축물인 만수대의사당, 원통형 건축물인 인민극장, 높이가 서로 다른 직입면체 건축물인 창전거리 고층아파트들이 한 데 어울려 평양의 새로운 중심가를 형성한 것이다.

인민극장 정문에서 내려다보면 오른쪽 길 건너편에 금성제2중학교가 보인다. 마침 학과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인지, 그 학교 재학생들이 교정에 나와 웃고 떠드는 모습이 정겹게 안겨온다. 그 학교 옆으로 난 길 건너편에서도 대규모 건축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무슨 공사인가 살펴보았더니, ‘만수대 화초, 분수공원 및 지하편의상점 공사’라는 커다란 간판이 붙어 있다. 화원과 분수대가 어우러진 큰 공원을 만들고, 그 공원 밑에 지하편의상점들이 들어선다는 뜻이다. 이전부터 녹지대가 많은 평양을 이제는 공원 속의 도시로 개건하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나를 태운 승용차가 창전거리 지하도로에 들어서니, 북에서 봉사망이라 부르는 식당, 청량음료점(cafe), 편의점(convenient store)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창전해맞이식당으로 갔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해 여름에 시찰하였던 식당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에서 최고영도자가 시찰한 단위는 그 부문에서 본보기로 되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단위들이다.

▲ 창전해맞이식당의 커피점과 빵집 간판들. 우리말 밑에 국제공용어(영어)가 쓰여 있다. © 한호석
창전해맞이식당에는 현대적 미감이 나게 실내를 장식한 방들이 주런히 있는데, ‘김정은 원수님께서 2012년 8월 31일에 다녀가신 방’이라는 현판이 있는, 10명이 들어가는 식사실도 있다. 미국에서 핫덕(hotdog)이라 부르고 북에서는 쏘세지구이라 부르는 간식은 한 개에 북측 돈으로 250원이고, 미국에서 팝콘(pop corn)이라 부르고 북에서는 강냉이튀기라 부르는 간식은 한 봉지에 북측 돈으로 300원이다.

창전해맞이식당 바로 옆에는 커피, 맥주, 칵테일, 각종 청량음료,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해맞이커피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다. 미국에 있는 스타벅스, 레드맹고, 칵테일 바를 하나로 합쳐놓은 곳이다. 카페를 북에서 우리말로 어떻게 부르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아직 적당한 우리말을 찾아내지 못한 듯하다.

해맞이커피는 고급화된 실내장식으로 꾸며졌다. 둥근 벽시계를 머리에 인 커다란 선녀상이 한 쪽에 다소곳이 서서 손님을 맞아주고, 그 옆에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는데, 내가 거기에 앉아 있는 동안 ‘소녀의 기도’나 ‘뻐꾹왈츠’ 같은 귀에 익은 서양음악들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그 곳을 찾은 몇몇 손님들의 손전화에서 울리는 착신음이 간간이 들렸고, 옆자리에서는 여자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세 사람이 시원한 병맥주를 한 병씩 앞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자니, 뉴욕 맨해튼에 있는 어느 카페에 앉아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 거기서 나는 북측 돈으로 350원 하는 오렌지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안내자는 360원 하는 커피를 마셨다.

옥류교에서 바라본 대동강은 눈부신 6월의 햇살이 반짝이는 물결을 껴안고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수수천년 기나긴 세월을 그렇게 흘러온 잔잔한 강물 위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실려 추억의 세계로 떠나갔을까. 창전거리와 승리거리가 사귀는 길목에서 청기와를 합각지붕에 곱게 얹은 옥류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민족의 음식문화사에 명품국수로 첫 자리를 차지하는 평양냉면을 맛볼 수 있는 유명한 식당이다. 자극적인 조미료에 길들여진 미각으로 맛보면 옥류관의 평양냉면은 좀 싱겁다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냉면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미각을 되살리면 옥류관의 평양냉면에서는 깊고 은은한 맛이 난다.

평양의 기념비적 건축물 류경원, 평양의 고급식당 해당화관

서평양에서 옥류교를 건너면 동평양으로 들어서는데, 그 다리를 건너 대동강 기슭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 조금 내려가면 주체사상탑이 있고, 그 다리를 건너 대동강 기슭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밀려오는 바다파도를 연상케 하는 파상형 지붕을 머리에 얹은 커다란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섯 개 굵은 기둥이 그 거대한 파상형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북에서 ‘선군시대의 기념비적 건축물’이라 부르는 시설들 가운데 하나인 류경원(사진)이다. 하루에 7,200명이 목욕, 한증, 사우나, 미용, 미안, 이발, 안마, 치료체육을 할 수 있고, 오락장과 탁구장, 식당과 청량음료실도 갖춰놓은 지상 4층, 지하 1층의 현대식 종합문화후생시설이다. 2012년 11월 9일에 준공식을 하였으니, 개장한지 7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류경원에 간 날은 마침 휴장일이어서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 류경원의 파상형 지붕. 명품가방(샤넬)을 어깨에 메고 바지를 입고 걸어가는 북측 여성의 모습이 우연히 카메라에 잡혔다. ©한호석


류경원 뒤쪽에 붙어있는 시설이 인민야외빙상장이다. 보도사진에서는 야외빙상장이 아니라 실내빙상장으로 보이는데, 어째서 야외빙상장이라고 부를까? 빙상장 건물 안에 들어가서 눈여겨보니, 벽체에 지붕을 살짝 얹어놓은 형태로 설계되어 외부와 실내가 서로 통하게 지어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내가 그곳에 간 날은 기온이 섭씨 30도까지 올라간 무척 더운 날씨였으므로, 외부의 더운 공기가 건물 안으로 몰려들어올 텐데 아주 말끔한 빙질을 유지하고 있었다. 외부와 통하는 그처럼 넓은 빙상장을 무더운 여름철에 관리하려면 강력한 냉동설비를 가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그곳에 간 시각, 인민야외빙상장 은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가운데는 미국에서 온 백인 할머니도 있었다.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은반 위를 계속 돌아다니는 통에 그 백인 할머니에게 더 이상 말을 걸기 힘들었다.

▲ 평양의 고급식당 해당화관 ©한호석
류경원 옆쪽으로 나 있는 주체사상탑거리를 가로질러 건너면, 금릉운동원과 평양보링관이 줄지어 있는데, 바로 그 곁에서 지상 6층, 지하 1층으로 지어진 해당화관(사진)이 나를 맞았다. 밀짚모자처럼 생긴 거대한 철제구조물을 앞머리에 눌러쓴 그 건물은 외모부터 특색이 있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지열수로 여름철 냉방과 겨울철 난방을 보장하는 친환경 첨단설비가 갖춰진 것만 봐도, 해당화관이 평양의 현대적 건축물을 대표할 만한 시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해당화관에는 식당, 연회방(banquet room), 커피점, 상점, 실내물놀이장(indoor swimming pool), 운동실, 당구장, 요리견습실 등이 들어있는데, 모두 고급화된 설비와 내장재를 썼다.

승강기에서 나오니, ‘료리는 과학이며 예술입니다 김정일’이라고 쓰인 글발 아래, 어느 주방에서 하얀색 요리모자를 쓰고 튀김을 조리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소탈한 풍모가 담긴 천연색 사진이 걸려 있고, 그 밑에 누가 놓았는지 꽃다발들이 주런히 놓여 있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 4월 27일 개업을 앞둔 해당화관을 부인과 함께 시찰하였다.

1층에 들어서니, 상점도 있고 연회방도 있다. 상점에서는 외국산 고급상품을 팔고 있었고, 연회방은 각 주제별로 실내를 장식한 송학방, 해당화방, 봉선화방, 코스모스방으로 나뉘어졌다. 실내장식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주는 연회방에서는 손님들이 요리를 즐기면서 해당화관 전속 여성공연조가 출연하는 30분짜리 음악공연을 감상한다고 한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는 점심시간이 지난 뒤라서 여성공연조가 음악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공연연습을 하고 있었다.

▲ 해당화관 2층에 있는 철판구이집. 반원형으로 설계된 실내공간 곳곳에 10개의 철판식사대가 늘어서 있다. © 한호석


2층에는 철판구이를 봉사하는 철판구이집(사진)이 있다. 미국 식당의 철판구이는 일본사람들이 보급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말을 그대로 써서 테판야키(teppanyaki) 또는 히바치(hibachi)라 부른다. 원래 철판구이란, 요리사가 손님들이 둘러앉은 널따란 철판 위에 식용유를 두르고 맛있는 식재료를 구워내는 동안, 불을 지펴 올리는 묘기동작이나 요리도구를 가지고 부리는 묘기동작으로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해당화관 연회방에서 요리와 음악공연을 즐기려면 한 사람 당 50달러에서 70달러까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미국 뉴욕에 있는 고급식당 연회방에서는 음악공연을 위해 별도로 많은 비용을 내야하고 요리를 즐길 수 있는데, 해당화관 연회방 비용보다 훨씬 더 비싸다.

3층과 4층에는 실내물놀이장, 당구장, 운동실, 탁구장이 있고, 5층에는 전자도서실을 갖춘 요리견습실이 있다. 또한 6층에는 실내공간을 반원형으로 만들어놓은 멋진 커피점이 있는데, 거기서 봉사하는 에쓰쁘레쏘(espresso) 한 잔은 북측 돈으로 420원이다. 평양의 다른 식당들이 따라오지 못할 고급식당이므로 좀 비싸지만 그 정도 비용은 내야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현대적인 생태환경도시로 탈바꿈하는 건축열풍

지난해에 새로 세워진 류경원과 해당화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금 평양에는 건축열풍이 불고 있다. 곳곳에서 건축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시 전체가 뜨거운 건축열풍에 휩싸여 있는 듯이 보였다. 평양의 건축열풍은 흔히 외부에서 생각하는 도시재개발 같은 게 아니라, 현대적으로 개건된 생태환경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안에 평양의 오래된 아파트들을 철거하고, 현대식 아파트로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그처럼 방대한 도시환경 개조사업을 추진하자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갈 텐데, 어디서 그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까?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과제이지만, 해결해야 할 다른 과제도 있다. 이번 방문 중에 내 눈에 띈 것이 외장도료다. 건축물을 잘 지었어도, 볼품없는 외장재를 쓰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외장재 중에서도 특히 외장도료가 중요하다.

그런데 남측에서 ‘에나멜’이라 부르는 유성도료(oil-based paint)인 이내멀 페인트(enamel paint)가 북에서 대량생산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석유화학공업제품인 이내멀 페인트를 대량생산하려면, 막대한 양의 석유를 다른 산유국에서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북은 제한된 자원으로 수입한 석유를 공업원료나 차량연료로 우선 배정해야 하므로, 도시 전체를 칠할 외장도료를 대량생산할 만큼 많은 석유를 수입하지 못한다. 그래서 북에서는 자기 땅에 나는 천연광물에서 추출한 무기화합물로 만든 무기질 도료 ‘현무’를 개발하여 외장도료로 쓴다. 하지만 무기질 도료는 광택이 나지 않고 색상이 다채롭지 못하고 선명하지 않으며 햇빛에 오랜 기간 노출되면 변색되는 일련의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북에서는 세계적 수준으로 건설된 대동강타일공장이 대량생산하는 각종 타일(사진)이나 인조대리석으로 건축물 외장을 마감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도색으로 마감하는 것이 훨씬 더 밝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 도시환경을 질적으로 개선하는 데서 외장도료는 매우 중요한 요인인데, 북에서는 아직 그 문제를 자원부족 때문에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 평양에 부는 건축열풍. 대동강타일공장에서 생산하는 돋을무니 타일이 카메라에 잡혔다. © 한호석


북에서 외장도료와 더불어 해결해야 할 것이 또 있으니, 도로표지판과 간판이다. 뉴욕 맨해튼 같은 자본주의도시환경에는 형형색색 상품광고판이 뒤덮여 있는 데 비해, 평양 같은 사회주의도시환경에는 당연히 상품광고판이 없다. 자본주의도시환경에서 생활하는 외부인들이 평양에 가서 도시환경이 왠지 좀 썰렁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현란한 자본주의상품광고판에 익숙해진 고정시선을 평양에까지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평양에 상품광고판은 있을 필요가 없지만, 도로표지판과 간판은 긴요하다. 이번에 평양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나와 함께 다니는 안내자도 평양의 거리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해 행인들에게 이리저리 물어보았다. 그런데 도로표지판과 간판도 외장도료처럼 석유화학공업제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청춘남녀 타고 달리는 ‘모터찌클’

8년 만에 다시 찾아간 평양 거리를 돌아보던 중에 내 시선을 끌어당긴 유별난 광경은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 유별난 광경들 가운데 하나는 러시아말로 ‘모터찌클’이라 부르는 교통수단이 눈에 띈다는 것이었다. 러시아말로 ‘모터찌클’이라 부르는 교통수단은 영어로는 모터싸이클이라 부르고, 남측에서 쓰는 국적불명의 이상한 말로는 ‘오토바이’라 한다. 평양에는 차량교통량이 이전보다 늘었고, 그에 따라 ‘모터찌클’도 많아졌다. 얼마 전 ‘유투브’에서 우연히 찾아낸 북측 영화에서 주인공이 ‘모터찌클’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영화적 설정인가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평양에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젊은 남녀 한 쌍이 탄 ‘청춘남녀 모터찌클’이 평양 거리에서 눈에 뜨인다는 점이다. 헬멧을 쓴 남자가 앞에 타고 운전하는 ‘모터찌클’ 뒷자리에 헬멧을 쓴 여자가 타고 가는 정다운 모습(사진)은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러운 일상사로 된 듯하였다.

▲ 도로변 잔디밭을 가꾸는 평양시민들, 그리고 거리를 달리는 '청춘남녀 모터찌클' © 한호석


그러고 보니, 평양 거리를 오가는 북측 여성들이 거의 모두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도 시선을 끌었다. 지난 시기에는 여성들이 작업장에서나 바지를 입었고, 나들이할 때는 대체로 치마를 입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서 활동하기에 편리한 바지를 거의 모두 입고 다닌다. 여성들이 바지를 입었으니 ‘청춘남녀 모터찌클’도 탈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북측 여성들은 직장에서 작업화를 신고 일하다가 하루일과를 마치면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귀갓길에 나선다. 원래 남이나 북에 사는 우리 여성들이 전 세계에서 비만유전자 보유율이 가장 낮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데, 그처럼 바지를 입고 굽 높은 신발을 신고 나서니 다리가 길어 보이고 더 날씬하게 보이는 실효를 거두게 된다.(2013년 6월 15일)

*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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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위원장단 회담 갖자"

 

6.15남측위, 6.15선언 민족통일대회 임진각서 개최

임진각=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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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15 18:2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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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5공동선언 13돌 기념 민족통일대회가 15일 오후 파주 임진각에서 1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단의 회담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6.15공동행사가 남북당국회담 무산으로 열리지 못한 가운데,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이창복)는 6.15북측위와 해외측위에 공동위원장단 회담을 15일 제의했다.

이날 오후2시 경기도 파주 임진각 망배단 앞에서 6.15남측위와 민주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은 공동으로 '6.15공동선언발표 13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창복 대표상임의장은 대회사를 통해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단의 회담을 가질 것을 6.15남측위원회를 대표하여 정식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창복 의장은 "민간 통일운동은 당국관계와 함께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또 하나의 주체"라며 "국민이 주인으로 나설 때 6.15가 다시 서고, 통일과 평화의 길이 제대로 길을 잡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제3 당사자'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라며 "민간교류를 복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당국관계를 정상화시키는데 모든 노력을 다해 기여하겠다"며 공동위원장단 회담 제안 취지를 밝혔다.

 

   
▲ 6.15공동선언 13돌 기념 민족통일대회에서 이창복 대표상임의장은 대회사를 통해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단의 회담을 가질 것을 6.15남측위원회를 대표하여 정식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번 6.15 공동위원장단 회담 제안은 지난 6일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대변인 특별담화에서 6.15선언 및 7.4성명 발표일 공동기념행사를 제안한 데 따른 것으로, 6.15공동위원장단이 함께 만나 7.4성명 기념 공동행사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다.

6.15남측위 관계자는 "이번 제안은 남북당국회담 무산으로 6.15공동행사가 분산개최되었지만, 7.4성명 발표 기념일만큼은 당국이 참여한 가운데 공동행사를 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복 의장은 "개성 공동행사를 성사시키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올린다"며 "머지않은 시기에 6.15북측위 김령성 위원장과 만나 남북의 공동행사 추진은 물론, 중단된 남북관계 복원과 다양한 교류 추진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겠다"고 말했다.

 

   
▲ 6.15공동위가 채택한 '해내외 온 겨레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과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가 낭독됐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 자리에서 6.15공동위가 채택한 '해내외 온 겨레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과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가 낭독됐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는 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전민족적인 통일운동연대조직"이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추동해 온 자랑스러운 성과와 훌륭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통일운동의 선봉조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시 분열과 대립으로 치닫는 이 땅의 현실을 앞에 두고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는 남북관계 발전과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해 더욱 힘차게 노력해 나갈 것"이라며 "다시한번 6.15의 열풍을 일으켜 제2의 6.15시대를 열어나가자"고 호소했다.

이번 공동호소문은 6.15북측위가 지난 14일 기념행사를 개최함에 따라 하루 먼저 발표됐다.

 

   
▲ 우원식 민주당 최고위원(왼쪽부터),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조준호 진보정의당 대표 등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민족통일대회에는 야당 정치인들도 참석, 6.15공동선언 이행과 남북당국회담 재개를 촉구했다.

우원식 민주당 최고위원은 "제가 서 있는 이 자리가 개성이기를 바랐다. 남북이 그리고 해외동포들이 함께 손을 잡고 상상을 넘어, 통일 이후 하나된 한반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그래서 이번 남북당국회담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진정성이 아닌 수석대표의 격이라는 형식에 대한 이견으로 무산됐다. 실망이 컸다"고 말했다.

우원식 최고위원은 "북한 당국은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대단결을 원하다면 경직된 자세를 버리고 즉각 대화에 나서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는 과거 정부에서 남북간 대화로 이룬 한반도 평화의 성과를 인정하고 계승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남북 당국간에 전향적인 태도를 촉구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6.15공동정신에 기초해 성사되어야 했던 남북당국회담이 경쟁과 대결의 시각에서 비롯된 격 논란으로 좌초되었다"며 "6.15에 즈음한 대화는 무산되었지만, 7.4 에는 꼭 이뤄냅시다. 남북 모두, 상호 비방하지 않는다는 7.4 남북공동성명의 합의에 따라 행동하고, 7.4 남북공동성명에 명시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원칙에 기초하여 현안을 해결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6.15선언이 나오기까지 반세기 통일노력을 기울여온 민간의 역량이 6.15 남측위원회에 모여 있다. 민간의 지혜와 힘과 활기, 마음을 모아 당국간 대화를 돕겠다"며 "6.15 정신을 실천하려는 6.15 세력이 모두 단결해서 지금의 전쟁 위기를 평화의 기회로 바꿔내는데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준호 진보정의당 대표도 "13년 전 남북 정상이 총을 내려놓고 비난을 멈추고 손을 맞잡은 감동을 기억한다. 그런데 오늘 박근혜 정부는 새롭게 출범하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이야기하고 이를 단초로 대화를 하려고 만난 자리에서 대화의 성사보다는 급과 격을 나눈 자리가 되고 급기야 파탄됐다"며 "올해는 정전협정 60주년이다. 이제 이런 대결의 시대는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7.4성명 41돌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남북의 지도자는 그때 7.4성명을 추진했던 분들 자손들"이라며 "올해 그 정신을 이어받아 평화의 새로운 해를 열길 바라며 조속히 남북대화 재개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민족통일대회 참가자들이 '남북대화 즉각재개'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민족통일대회에는 국악나루의 북공연, 노래극단 희망새의 노래공연, 민족춤패 '출'의 춤공연과 6.15합창단의 노래가 있었으며, 참가자들은 '6.15선언 이행, 남북대화 즉각재개' 손피켓과 '단일기'를 흔들며 남북대화를 촉구했다.

행사 이후 1천여명의 참가자들은 임진각에서 통일대교까지 행진했으며, 통일대교 인근 철조망에 소원을 적은 리본을 매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한편, 일부 매체는 6.15공동행사 분산개최로 인해, 6.15남측위 관계자가 6.15북측위 행사 참가를 위해 밀입북했다고 보도했으나, 6.15남측위 관계자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 민족통일대회 참가자들이 본행사 직후, 임진각에서 통일대교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대회 참가자가 통일대교 인근 철조망에 소원지 리본을 매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노래극단 희망새가 노래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6.15합창단의 노래공연.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민족춤패 '출'의 춤공연.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민족통일대회 한켠에 단일기에 소원을 적은 메시지가 전시됐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소원지 리본이 통일대교 인근 철조망에 매달렸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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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자살, 협박… 대한민국 일류 기업의 그늘을 밝혀라!

[삼성이라는 '환상'의 세계] 르포 작가 김순천을 만나다

김용언 기자,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6-14 오후 6:37:18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환상>(박종태 구술, 김순천 정리, 오월의봄 펴냄)의 서문 첫 문단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23년 동안 한 회사에서 충성을 다했던, 그리고 그 회사 삼성전자로부터 매몰차게 해고당했던 40대 남자 박종태가 "목 디스크 때문에 앉는 자세도 바르게 하지 못"한 채 너무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있었다. 2009년 삼성전자 측은 한가족 협의위원(일종의 자체적 노사기구. 삼성에서 노조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노사'라는 단어 대신 '한가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으로 활동하며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던 박종태를 협의위원 직에서 강제 면직시켰고, 그해 여름 갑작스런 해외 출장 지시에 건강상 이유로 불응하자 징계를 내렸다. 2010년 박종태는 징계무효와 협의위원면직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재직 중인 사원이 삼성전자 사장을 상대로 노무관리 부당성에 대해 고소한 것은 삼성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2010년 그는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고 컴퓨터도 서류도 다 치워버린 완전히 텅 빈 책상 앞에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 하는 조치를 당했다. 그는 매일같이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 벽만을 바라보며 한 달 여를 보냈다. 아래 사진은 당시 '앉아 있는' 박종태를 동료가 촬영해준 것이다.
 

▲ 삼성전자에서 업무 정지 처분을 받았을 당시의 상황. ⓒ박종태


2010년 11월 26일 결국 삼성전자로부터 해고당한 박종태는 해고 부당성 철회 1인 시위를 시작하고 부당해고 무효 소송과 산재처리 소송을 진행하면서, 르포작가 김순천과 함께 <환상>을 썼다. 이 책의 첫 번째 부제는 '삼성전자 노동자 박종태 이야기'이며, 두 번째 부제는 '삼성 안에 숨겨진 내밀하고 기묘한 일들'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삼성 안에서 내가 겪었던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나하나 털어놓는다.

"삼성과의 싸움은 거대한 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옳지 않은 인간, 돼먹지 못한 인간으로 만드는 모든 일상적인 일과의 싸움이었어요.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들의 논리를 세밀히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의 연속이었기에 내 신경은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어요."

우리는 박종태의 증언을 통해 '또 하나의 가족' 삼성 내부에서 조용하게 벌어지는 경악스러운 사건사고를 목격할 수 있다. 업무상의 아주 작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즉각 해고당했고, 업무상 재해백혈병에 걸리거나 유산했다. 모든 업무는 영어로 처리하라는 부서장의 지시 한 마디에 영어와 아무 상관없는 제조과 사원들마저도 영어를 사용해야 했다. 둘째 아이를 낳은 여직원은 "하나를 얻었으면 하나를 잃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반문과 함께 암암리에 퇴사를 권고 받았다. 그리고 작업 환경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이 같은 부당한 상황에 대해 직원 대표로서 개선을 요구했던 박종태는 무자비한 업무 보복과 함께 해고당했다.
 

▲ <환상>(박종태 구술, 김순천 정리,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이것은 몇 십 년 전의 동네 구멍가게나 전체주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그땐 그랬지' 풍의 괴상한 추억담이 아니다. 현재의 대한민국 초일류 기업 한복판에서 진행 중인 일들이며, 우리는 그에 대해 전혀 몰랐거나 혹은 모르는 척 외면했다.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박종태는 김순천과 함께 다시 한 번 힘껏 고발한다. "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조차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아니 보장조차 못하게 하는 기업이 과연 초일류기업"이냐고. 우리는 다시 한번 '울고 있는' 남자, 멍하니 '앉아 있던' 남자 박종태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한다.



지난 5월 2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김순천을 만나 <환상>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인터뷰 자리에 원래 박종태도 동석하려 했으나 결국 건강상 문제로 자리에 나오지 못했다.) 인터뷰는 김용언 기자가, 정리는 김윤나영 기자가 맡았다. <편집자>

불행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프레시안 : IMF 금융 위기 이후에 르포를 쓰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였을지 궁금하다.

김순천 :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파탄 내는 사회적 분위기가 피부로 곧바로 다가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현장을 깊이 있게 기록하지 않았다. 가정이 무너진다는 기사는 여기저기 나왔지만, 현장으로 가서 그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는 문학이 거의 없었다.

2003년 격월간 진보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에서 르포문학 교실을 만들어 담임
강사로 활동했다. 그곳에서 시나 소설을 썼던 작가와 수강생들이 결합하여 처음으로 현장으로 가는 글쓰기,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이렇게 됐다.(웃음) 그때부터 10년 넘게 르포 작가로 일하고 있다.

프레시안 : 2003년부터 꾸준히 노동 현장을 지켜보아온 바에 따르면 어떤 변화가 느껴지는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게 체감되는지 궁금하다.

김순천 : 지금이 예전보다 더 심각하다. 1998년이나 2000년대 초반 갑자기 삶이 파괴된 이들의 문제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누적됐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다. 사람들이 특정한 상황에 오랫동안 갇히면 정신이 야수처럼 변하고 인간성 자체가 변형된다. 그래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고, 정신적인 병에 시달리기도 한다.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 사람들은 타인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화가 잔뜩 쌓여 있다. 잔인한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다.

예전에 중독에 대한 글을 쓰려고 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중독예방치유센터장을 지낸 조현섭 씨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인터넷, 도박, 알코올, 약물, 게임에 중독된 사람이 800만 명이나 된다더라. 전체 국민의 16퍼센트나 되었다. 스마트폰 중독, 공부 중독, 음식 중독 등 일상적인 중독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중독은 어렵고 힘든 삶을 개인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현실의 삶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므로 뭔가에 병적으로 깊게 빠진다.

우울증은 말할 것도 없이 기본이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김순천 지음, 오월의봄 펴냄)에서 회사원 중 우울증을 느끼는 비율이 62.9퍼센트라고 썼는데, 어떤 분들은 내가 너무 과하게 얘기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삶에 대해 무기력증에 빠졌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 정도가 심각하다.

글을 통해 다른 분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데, 나는 그런 말을 못해주니 괴롭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실을 냉철히 봐야 한다. 틱낫한 스님도 "내면의 고통을 솔직하게 들으려 할 때 치유가 시작된다"고 했다. 사회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확하게 바라보고 허위로 보지 않아야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보인다. 나처럼 이야기하는 누군가도 필요하다. 내 글은 적나라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이야기들이 많아 스스로도 아프고 불편하다. 하지만 견딘다. 그것이 내 몫이기도 한 것 같다.


프레시안 : <환상>을 어떻게 쓰게 됐는지 궁금하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에 수록된 직장인들의 체험담 중 삼성전자에서 노조를 만들자고 주장했다가 해고된 박종태 씨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던데, 작업 도중에 다음 책을 박종태 씨 이야기로 쓰겠다고 기획한 건지.

김순천 : 아니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때문에 박종태 씨 인터뷰를 하고 난 다음, 그분이 먼저 자기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자료를 들고 왔다. 삼성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매번 졌고 복직 투쟁도 졌다. 그러니 자기가 삼성에서 겪은 이야기를 섬세하고 자세히 적어서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글도 써 보지 않은 분이 3년에 걸친 그 수많은 자료를 스스로 정리해서 원고를 써왔겠나. 하지만 그 글을 책으로 내려면 누군가는 몇 개월간 붙어서 다시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글을 써 줄 수 있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작업을 진행하던 게 있어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내가 맡기로 했다.

 

▲ <환상>의 김순천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명예훼손죄로 고소할게요."

프레시안 : <환상>을 읽는다는 건 오싹한 체험이었다. 그 책에 묘사된 삼성은 문자 그대로 괴물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삼성만 이런 걸까 싶기도 했다. 삼성은 '나쁜 기업'의 대명사가 됐는데, 사실 다른 기업 얘기는 발설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기업 자체에 대해 미처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순천 : 그렇다.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 문화 자체가 폭력적이다.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이고, 특히 대기업은 더 심하다. 다른 대기업도 비슷하지만 삼성에 유독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만큼 삼성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유명하지만, 삼성의 실질적인 모습이나 실체는 지금까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나도 박종태 씨를 인터뷰하기 전에는 삼성이 이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우선 삼성전자에서 해고가 일상적으로 이뤄진다고 하더라. 나는 삼성과 싸우는 사람만 해고되는 줄 알았지, 일반 사원들까지도 일상적으로 해고되는 상황은 몰랐다. 그런 일이 기사화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박종태 씨는 하루 자고 나면 동료가 사라진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쌍용자동차의 정리 해고는 잘 알려져 있어도, 삼성은 그렇지 않았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을 다룬 책 <세계를 움직이는 삼성의 스타 CEO>(홍하상 지음, 비전비엔피 펴냄)에서 "IMF 이후, 삼성전자 100개 사업부가 있는데 30개가 잘렸고, 2만3000명이 해고됐다"고 말하더라. 엄청난 숫자였다. 2만 3000명이 잘렸다면 삼성전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겠나. 아수라장이었을 것이다. 이를 박종태 씨가 증언한 거다. 두 개의 이야기가 일치되면서 납득이 갔다.

예를 들어 (구조조정 대상 직원을) '하얀 방'(직원들은 취조실이라 부른다)으로 불러서 "너 언제까지 나가라"는 식이라고 했다. 안 나가면 전환 배치하거나 자른다든지 했다. 그 중 반항적인 직원은 면담 과정에서 칼을 들고 자살 소동을 벌인 적도 있었다. 삼성은 해고를 안 시킨다는 대외적 이미지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비공식적으로 벌어진다. 회사에 비판적인 직원에게는 '여행'을 가라고 종용한다. 당연히 그 직원은 여행을 안 가려고 애쓴다. 가는 순간 책상이 사라지니까. 그런 식으로 온갖 수법이 동원된다.

더 끔찍했던 건 그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잘려 나간 것을 몰랐다는 점이다. 나도 나름대로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해고를 당하고 있는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른 기업에서도 다양한 수법으로 사람들을 구조 조정했겠지만, 구조 조정이 이렇게 철저하게 알려지지 않는 회사도 드물다. 그게 삼성이다. 삼성의 다른 면을 봤다.

언젠가 인사과장이 내게 '우리는 착하고 순종적인 사원들부터 먼저 자른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가만히 있는 사원들은 쉽게 잘렸던 반면, 강하게 반항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부서장들도 밑의 직원들에 대한 퇴직 문제를 기를 쓰고 처리하려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퇴직 대상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부서장이 부하들을 퇴직시키고 나면 그다음은 회사에서 부서장을 해고시켜 버렸다. (<환상> 57쪽)


프레시안 : 책에는 작가 본인도 삼성에 대해 물리적인 공포를 느낀 적이 있다고 적혀 있다. 알 수 없는 번호로 메시지를 보내 '명예 훼손 소송'을 걸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그 번호를 추적했더니 중국의 포르노 사이트였다고 했다.
 

▲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김순천 지음,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김순천

: IT 전문가 얘기로는 그렇다. 나에게 협박한 연락처의 출처가 중국 포르노 사이트라고 IT 전문가가 얘기했다. <환상>이 출간되고 며칠 후에 협박을 한 당사자가 나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아마 자기가 국내에 있음을 알리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휴대전화로 그 사람에게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 시골에 내려가서 공중전화로 걸었더니 그제야 받았다. 내가 태연하게 그에게 인사하고 "나한테
문자메시지 보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발뺌하더라. 삼성 다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나는 삼성 안 다닌다"고 답했다. "나한테 협박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렇게 하셔도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 분이 "그럼 고소하세요"라고 하더라. 일반 사람이라면 "고소하세요"라는 말을 못 할 것이다. 일반 사람이라면 "난 아니다. 무슨 일이냐?" 묻고 끊든지 할 것이다. 내가 책에 고소한다고 적었더니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본인이 맞는데 모른 척 하는구나 싶었다. 불쌍하더라.

'명예훼손죄로 고소할게요.'
2012년 9월 9일 오후 12시 2분, 내게 문자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전화번호는 '010-2253-1477'번이었다. 영문을 몰라 전화를 걸어봤더니 수신이 제한된 번호였다. 약간 이상한 마음이 들어 문자를 보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할 말이 있으면 전화로 말씀해주세요.'
그러자 곧 답이 왔다.
'싫은데요? 몰래 녹음기 들고 다니는 거, 상대방 동의를 얻고 하는 거예요?'
몰래 녹음기? 나는 이제까지 인터뷰 상대의 허락 없이는 대화를 녹음한 적이 없었다. 아, 그때서야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환상> 25~26쪽)


프레시안 : 그 협박 문자메시지를 받은 이후로 도청도 의식하게 됐다고 썼다. 그 때문에 오는 정신적 압박감이 클 것 같다.

김순천 : 박종태 씨가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 중앙문에서 1인 시위할 때도 찾아가서 인터뷰하니까, 감시자가 와서 사진을 찍더라. 내가 여자니까 협박하면 떨어지리라고 생각한 것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삼성에서 협박 메시지를 보냈다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메시지에 비밀
녹취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비밀녹취 건은 내가 박종태 씨와 차 안에서 나눴던 이야기 중에 나왔던 얘기였다. 어떻게 박종태 씨와 나 둘만이 있던 장소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그 사람도 알고 있었을까, 도청 아니면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다. 책도 나오기 전에 작가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 회사가 있다는 게 끔찍했다.

작은 체험인데, 그런 협박을 받은 이후로 글을 쓰면서 명예훼손에 걸릴지 안 걸릴지 스스로 검열하게 되더라. 그래서 책에서 사원들의
이름은 거의 뺐다. 전무 이상은 이름을 밝혔지만, 나머지는 동료에게 피해가 될까봐 뺐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에서도 박종태 씨가 인터뷰 중 얘기한 사례를 더 넣으려고 했는데, 결국 못 넣었다. 문제가 될까봐.

그런 협박 자체가 자유롭게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사실 작가들은 표현에 가장 민감하다. 글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작가는 느낀 그대로 문제를 바라봐야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야 힘을 갖는다. 자신을 속이면서 거짓으로 글을 쓰는 것은 엄청난 죄악이다.

협박 메시지를 받은 날은 시아버님과 남편, 아들들이랑 밖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메시지를 보고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그 작은 메시지가 가정에 파급력을 미치더라. 그러면 삼성 안에서 그 많은 걸 겪은 박종태 씨는 어땠겠나. 그 순간 박종태 씨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현실로, 몸으로 생생히 느껴지는 체험을 했다. 삼성에서 수많은 협박을 받으면서 혼자 싸웠으니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었겠나. 그가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이해가 되었다.

프레시안 : '일등 기업'이 너무 치졸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김순천 : 나는 손배 가압류로 자살한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의 평전 <인간의 꿈>(후마니타스 펴냄)도 썼고, 두산이 중앙대학교에서 벌인 잔인한 일들도 글로 썼다. 배달호 씨 평전을 쓸 때 두산에서 그 사실을 알았지만 어떤 협박도 받은 적이 없었다. 다른 기업에서는 글 쓴 작가를 이렇게까지 협박하지 않았다. 삼성이니까 했던 것이다. 두산에서 겪지 않은 일을 삼성에서 겪었다. 어떤 면에서는 두산보다 더 비겁한 기업이다. 그래서 삼성을 다시 봤다.

프레시안 : <환상>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의 연장선상에 놓인 책이다. 개인적으로 <삼성을 생각한다>를 통해 자료화의 힘을 실감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자료를 그의 팩트로 삼았는데, 박종태 씨의 경우는 어땠을지 궁금하다. 회사의 압박이 일상으로 침투하는데, 그 경험을 증거화하기가 쉽지 않고 말로 전달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김순천 : 박종태 씨는 그런대로 백데이터가 많은 편이었다. 삼성과 싸우려면 정확한 자료를 모아두어야 한다는 선배의 충고에 충실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지만, 난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 중 중요한 방식이 '일상적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구술 자체가 역사를 기록하는 좋은 방법이다. 다른 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분들은 구술의 부정확성을 비판하지만, 나로서는 사람이 가장 충격적으로 경험했던 어떤 지점을 생생히 기억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경험에 대한 발화는 어쩌면 객관적인 사료보다 중요할 수 있다. 구술에서 종종 나타나는 일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착각은 내가 찾아서 교정·수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단점이 역사적 자료로서 구술의 중요성을 희석시키지는 않는다.

구술을 기록하려면 디테일하게 물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분이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떨 때는 인터뷰가 5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내용을 토대로 다시 상세 질문을 한다. 유명한 분이라면 자료가 많은데, 평범한 분들은 자료가 없으므로 이야기를 많이 듣고 그 이야기 속에서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상세 질문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다. 상황 설명 자체가
양파껍질 벗기는 것 같다. 오늘 한 이야기가 끝인 줄 알았는데, 다음에 다른 이야기가 또 있다. 박종태 씨의 경우 5월부터 10월까지 계속 인터뷰했다. 글 쓰는 과정에서 인터뷰를 또 했고, 초고 나왔을 때도 한 번 더 보충 인터뷰를 했다. 그렇게 작년 한 해를 다 보냈다. 원고 수정만 세 번 했다.
 

▲ <환상>의 김순천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탐욕과 모욕의 왕국

프레시안 :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에도 맨 앞의 삼성전자 노동자 인터뷰가 취재원이 노출될 위험 때문에 결국 누락된 채 빈 종이로 나갔다. 지금도 그 인터뷰를 공표할 수 없나.

김순천 : 공표하기 어렵다. 내가 그 취재원에 대해 말하면 그분에게 바로 피해가 간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삼성 내 화장실에 누군가 회사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을 끄적거렸는데, 필체를 추적해서 기어이 해고시켰다고 한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에서도 인터뷰한 그분에게 피해가 미칠까봐 가공해서 인터뷰를 정리했는데, 동료가 읽어 보고 "너인 줄 바로 알겠다"고 말했다더라. 그래서 내가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개인 정보가 새어나갈 것 같다.

사실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회사 안에서 자유롭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정상적인 기업이다. 어떻게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해고하거나 징계하나. 이런 분위기를 왜 만드나.

프레시안 : 자기 검열을 내재화하도록 하는 그 압박이 가장 무섭다.

김순천 : 삼성전자의 여직원 유산 문제가 충격적이다. 나한테 10명의 유산자 명단까지 다 있다. 하지만 책에는 집단 유산에 대해 거론했지 어느 한 개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얼마 전 박종태 씨한테 전화해서 명예훼손죄로 고소한다고 했다더라. 그 여성이 박종태 씨와 인터뷰할 때 회사에서 그 내용을 알아낸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책에는 명예훼손죄로 걸릴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개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에서 어떻게 나올지 주시하고 있다. 직접 이 책을 명예훼손죄로 거는 건 하수일 것이다. 노회찬 전 의원도 '삼성 X 파일'에 들어 있는 검사 이름을 공개했지만, 검사 중 한 명이 고소했지 삼성이 직접 고발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삼성에서 직접 명예훼손으로 고소는 못하겠지만, 박종태 씨의 동료들을 압박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쪼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 분이 공포에 질려서 스스로 그랬을 수도 있고. 그러니 얼마나 내부 공포가 심한지 짐작이 간다. 자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장에서 다들 겪은 일을 쓴 건데도 그랬다.

제조그룹을 비롯해 삼성전자 전체 현장에서 자살한 직원들도 여러 명 있었다. 삼성(삼성건강연구소)은 이런 죽음을 '빈번한 자살'이라고 불렀다. 기숙사에서 여직원이 자살을 하면 아침 출근 시간에 기숙사 옆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직원들의 통행을 제한했다. 회사는 직원들의 자살 원인을 대부분 남자친구, 술, 가정 등 개인적인 문제로 처리했고, 직원이 자살했던 그 방은 다음 날이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52쪽)

프레시안 : 그런 식의 충성심을 과시하고 보상받으려 하는 노력이 몇 십 년 전에나, 혹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일어날 법한데, 현재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진행형이라는 게 충격적이다.

김순천 : 삼성이 세련되고 최첨단을 걷는 회사처럼 보이지만 가장 낡고 뒤떨어지는 문제들이 그 내부에 공존한다.

나는 삼성이라는 회사 자체를 싫어하지 않는다. 삼성이 잘되기를 바란다. 외국에 좋은 기업들이 많은데, 삼성이 그처럼 인간적인 기업으로 바뀌고 내부가 민주적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말도 자유롭게 하고 비판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면 한다.
 

▲ <먼지 없는 방>(김성희 지음, 보리 펴냄). ⓒ보리

다만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이건희 일가만 삼성을 만들지 않았다. 다른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서 만들었고, 국민이 기여한 부분도 분명 있다. 자본금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정보통신 등 많은 핵심기술도 국민 세금으로 국가가 개발하여 삼성에 제공해왔고, 지금도 국가에서 만든 최첨단 과학기술을 삼성전자에 제공하고 있다. 삼성은 국가가 제공한 그 기술로 제품을 만들지만 그 이익은 대부분 사적으로 취한다. 심지어 제품을 팔 때조차 휴대폰 같은 경우는 국민들에게 해외가격보다 20~30퍼센트 더 비싸게 받는다. 재미있는 상황이다. 통신이나 교통 같은 간접 자본도 국가에서 다 제공해준다. 도로나 항공이 없으면 삼성이 어떻게 자기 물건을 해외와 지방으로 배달하나? 휴대전화 기지국 건설을 해주는 등 국가에서 기반을 만들어주니까 물건을 팔 수 있다.

삼성은 이미 국민의 기업이고, 사회적인 기업으로 봐야한다.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면 경영자들은 사회적 책임을 크게 느껴야 한다. 삼성이 내 것이 아니고 국민과 사회의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마인드가 전혀 없다.

지금은 이건희 개인이 기업을 소유하고, 모든 부가 그에게 집중된다. 그 부를 통해서 법을 매수하고 국민을 매수하고 언론을 매수해서 체제를 공고하려고 하니 문제다. 아주 비이성적인 상황이다. 이 점이 삼성의 문제는 왜 국민들의 권리와 민주주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지금 나에게 삼성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두 가지 있는데 쥐어짜기와 몰락이다. 삼성이 개인들을 쥐어짜서 이 정도의 성과를 내는데, 서로 나누고 협력한다면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주면 좋겠다.

삼성 직원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삼성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내가' 취직 못할 것 같으니까. 하지만 나는 삼성의 현 시스템은 변화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쥐어짜서 경쟁시켜 이윤만 얻으려는 시스템은 얼마 못 가지 않겠나. 나는 이 책을 쓰면서 겉은 화려한데 내부는 무너지는 삼성의 모습을 보았다.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삼성이 변해야 한다. 직원들은 자신들이 잘릴까봐 이 체계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오히려 오래 살아남으려면 체계가 국민과 직원을 위한 시스템으로 변화돼야 한다. 그래야 삼성에서 잘리지 않고 오래 일할 수 있다. 가장 화려한 곳에서 몰락을 예감하는 건 비극이다.

이건희 회장도 변했으면 좋겠다. 이건희 회장이 최근 스웨덴 실버타운 필트라드를 방문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런데 스웨덴에서 사회적으로 어떻게 노인들의 질 높은 삶이 이루어지는가를 보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실버타운을 국내에 들여와서 이익을 얻을지만을 궁리하는 것 같더라. 빌 게이츠 등 많은 기업가들이 개인 재산의 50퍼센트 이상을 사회에 기부한다는 서약(Giving Pledge)을 맺었다는데, 이건희 회장은 혼자 그 많은 재산을 가져서 뭐할 것인가. 개인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기업가들은 자신의 부가 자신만이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을 깊게 성찰하고 있다.

"부의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를 해야 한다."

인도 위프로 테크놀로지 회장인 아짐 프렌짐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했던 말이다.

프레시안 :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잊을 수 없는 대목은 무엇인가.

김순천 : 인터뷰하다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 2008년 박종태 씨가 근무한 영상 디스플레이(VD)사업부의 실적 가운데 3000억 원이 사라졌다. 3000억 원이면 기업 몇 개를 세울 만한 큰돈이었다. 당시 한가족 협의위원이었던 박종태 씨가 3000억 원의 행방에 문제 제기했다. 단순한 회계상 실수인지 아니면 누가 회사 돈을 빼내갔는지 규명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발표하지 않은 그 해 12월 실적까지 합하면 5000억 원이나 되는 돈이었다. 그런데 회사는 규명 대신 다른 이유를 들어 박종태 씨를 협의위원에서 강제 면직시켰다. 회사 편인 상무조차도 "이거는 감사감이다"라고 했던 사안이었다. 회사를 감시할 노조가 없기 때문에 실적이 사라져도 그 실체를 정확히 밝힐 수가 없다. 삼성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직원들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노조를 인정하지 않은 건 이런 불법적인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정상적인 기업경영 시스템은 아닐 것이다.

회사를 감시할 노조가 없기 때문에 실적이 사라져도 그 실체를 정확히 밝힐 수가 없다. 박종태 씨가 아는 변호사는 '3000억 원은 그 자체로 비자금일 수 있다'고 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삼성이 각 계열사에 '관리 담당'을 두어 비자금을 만든다고 썼다. 회사 돈을 밑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쉽게 빼 낼 수도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건희 일가가 가져가는 그 불법적인 비자금은 열심히 일하는 사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었고 세금으로 국민들에게 돌려져야 할 몫이었다.

삼성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직원들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노조를 인정하지 않은 건 이런 불법적인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정상적인 기업경영 시스템은 아닐 것이다. 지금 CJ가 불법적인 비자금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데 삼성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삼성 직원들도 이 사실을 다 아는데 문제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침묵했다. 오직 박종태 씨만 문제 제기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분이 귀한 분이다. 박종태 씨 덕분에 이 정도나마 알려졌지,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는 삼성의 그 적나라한 모습을 몰랐을 것이다.
 

▲ <사람 냄새>(김수박 지음, 보리 펴냄). ⓒ보리

프레시안

: 물론 삼성 에버랜드를 중심으로 삼성노조(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가 생기긴 했지만, 삼성 내부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박종태 씨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순천 : 나는 삼성을 좋아한다. 변화된 삼성을 원한다. 박종태 씨도 삼성을 사랑한다. 사랑하니까 변화하길 원해서 이 책을 쓴 거다. 사람들은 우리더러 왜 삼성을 싫어하느냐고, 왜 망하게 하려 안달이냐고 묻는데 우리는 삼성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을 썼다. 심지어 내가 삼성 관련 책을 쓴다니까, 어떤 모임에서 알게 된 삼성 임원의 아내가 사색이 되면서 나를 배척하더라. 국민들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삼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삼성을 너무 우상화시키면 안 될 것 같다.

대학생들은 삼성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존경하는 인물 1위가 이건희 회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삼성이 어떤 곳인지는 봐야 한다. 박종태 씨도 입사할 때 환희를 느꼈지만, 나올 때는 환멸을 느꼈다. 환희와 환멸의 이중성을 주는 곳이 삼성이다. 환희가 유지되도록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프레시안 : 이런 일을 일상적으로 당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안타깝고 속상한 한편, 그 위에 팀장, 부서장, 간부급 등 부서 내에서 약간 힘을 가진 관리자들도 이해가 안 된다. 부하 직원들을 24시간 감시하고 괴롭히며 산다는 건 대체 어떤 삶일까.

김순천 : 아까 삼성전자에서 알게 모르게 해고되는 사람이 많다고 했는데, 지금도 해고는 현재 진행형이다. 두어 달 전 명문대학을 나와서 10년 동안 연구직에서 일했던 사람이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는 말을 들었다. 회사가 자신을 '희망퇴직 기피 대상자'로 분류해 놓았다고 했다. 직원들을 쫓아내려면 고과나 연봉평가에서 최하등급을 줘서, 스스로 능력 없는 사람으로 자괴감을 조성시킨 다음 알아서 나가게 하는 구조다. 그 사람도 최하등급인 '마'를 받았다. 나가라는 의미였다.

이 분이 박종태 씨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몇 년 전에도 반도체 연구파트에서 일하던 동료가 이런 문제로 자살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박종태 씨가 "너무 억울하면 법원에 호소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더니, 이 분이 "나는 노동 그런 것과 관계 맺고 싶지 않다"면서 "나는 돈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렇게는 못 한다"고 말했다더라. 갖가지 어려움이 있는데 사람들이 버티는 건 삼성이 성과급을 많이 주기 때문이다. 임원일수록 성과급을 더 받는데, 그걸로 버티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생계만 되면 모욕을 받든 몸이 병들든 참고 버티면서 일한다.

성과급도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잔인한 면이 있다. 삼성전자는 대졸자여도 초봉은 그렇게 높지 않다. 삼성전자가 매출은 1위인데, 초봉은 201위였다. 조금 놀랐다. 그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건 성과급 때문이다.

사업부 간에 극심한 경쟁을 시켜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배분한다. 성과급을 50퍼센트 받는 사업부가 있는 반면 4퍼센트밖에 못 받거나 전혀 못 받는 사업부도 있다. 사업부 간 임금격차가 심하게 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성과급을 많이 받는 사업부는 어려움이 있어도 만족한다. 반면 성과급이 적거나 아예 없는 사업부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낀다. 최지성 전 삼성전자 사장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할 정도다.

대신 상무, 전무 이상의 관리자들에게는 특혜를 준다. 차가 나오고 성과급도 일반 시원들과 엄청나게 차이가 많이 난다.
이사 같은 경우는 100억까지 받는다더라. 물질적 보상으로 차이를 두고 서열화 시켜서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거다.

더 많은 르포문학을 기다리며

프레시안 : 최근 1, 2년 동안 잇따라 삼성 관련 책들이 나왔다. 삼성 반도체 공장의 직업병을 다룬 만화책 <먼지 없는 방>(김성희 지음, 보리 펴냄)과 <사람 냄새>(김수박 지음, 보리 펴냄)과 함께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희정 지음, 아카이브 펴냄), <삼성반도체와 백혈병>(박일환·반올림 지음, 삶창 펴냄), <노동자의 변호사들>(오준호·민주노총 법률원·최규석 지음, 미지북스 펴냄)이 나왔다.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의 투쟁 기록을 남긴 책들도 속속들이 출간됐다. 예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기사로 보는 게 익숙했는데, 요즘은 단행본으로 나온다. 직접 글쓰기 작업하는 입장에서 언론 매체 보도 이외에 물질적인 형태로 남는 기록문학의 의의를 말해줄 수 있나.
 

▲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희정 지음, 아카이브 펴냄). ⓒ아카이브

김순천 : 기록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없다. 우리 삶의 이야기는 기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내 마음, 내 삶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공명 작용을 일으켜 다른 이야기도 만들어진다. 그게 인간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하나의 기록이 영화, 다큐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기록 작업을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예전에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구술사 연구소에 간 적이 있다. 1년에 2500여 명 이상의 학자들이 구술자료 수집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 작업으로 1000권 이상의 책과 수백 편의 논문들이 생산된다. 주제는 폭넓다. '아이돌의 삶'에 대해 기록 작업을 하는 것도 봤다.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식과 비슷하게 아이돌도 자본 산업의 희생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9.11 테러로 고통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록됐다.

온갖 내용을 기록해두면 학자들이나 일반 사람들이 찾아와서 2차, 3차의 결과물로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출발하지 않는 것이다. 기록 작업은 우리 삶과 생각을 풍요롭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나는 삼성에 대해 아주 섬세하게 기록했다. 박종태 씨가 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환상>이 삼성전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기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삼성의 실상이 그렇지 않다는 '반대 기록 작업'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요즘은 기록 작업물을 출간하는 현상이 보편화된 건가.

김순천 : 2005년 <부서진 미래>(삶창 펴냄)를 책으로 내려니까 어떤 시인이 막았다. 전화로 두 시간 가까이 언쟁하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부서진 미래>가 비정규직 이야기를 다룬 첫 번째 책이었는데, 나는 내용이 풍부한가 여부를 떠나서 반드시 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밀어붙였다.

당시에는 기록문학에 대한 생각이 일천했다. 지금은 르포가 필요하다는 인식들이 저변에 확대됐다. 최근 홍세화 선생님도 격월간지 <말과 활>을 만들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듣는 르포 작업을 중심에 두겠다고 공언했다. 김영사 등 여러
출판사에서도 르포 책을 내자고 찾아왔다. 르포를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곳이 많이 생겼다.

프레시안 : 그게 지난 5년 이명박 정권의 성과일까? (웃음)

김순천 : 흔히들 사회 문제를 기록하는 르포문학이 많이 생산되는 시대는 불행하다고 한다. 내가 쓴 책 중에서는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동녘 펴냄)이 제법 나갔는데, 그게 가슴이 아프더라. 그만큼 10대의 삶이 힘들다는 것이니까. 책이 많이 팔려도 고통스럽고, 안 팔려도 난감하다.

하지만 일본에 갔을 때 르포 문학을 확장해서 바라보게 됐다. 일본에는 일상적 기록으로 르포 문학이 존재하더라. 이제 한국에서도 르포 문학에 대한 저변이 확장됐으므로, 르포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한 한국 사회를 증거하는 내용만 나올 것 같진 않다.


프레시안 : 최근 구상 중인 작품이 있나?

김순천 : 책을 낼 계획은 잠시 보류하고 있다. 10년 동안 르포작업을 하면서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들여다봤다면, 앞으로는 나를 통해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까 생각 중이다. 생계 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재생산 기반을 만들 수 있을지도 고민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2010년 8월 '삼성전자 박 대리는 왜 정신병원에 가야 했나'를 시작으로 1년 여 동안 꾸준히 삼성전자 해고노동자 박종태와 삼성노조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 시리즈로 2011년 1월 25일 제9회 언론인권상 본상을 수상한 바 있다.

(1)☞바로가기 "삼성전자 박 대리는 왜 정신병원에 가야 했나"
(2)☞바로가기 "정신병원 입원했던 삼성 박 대리, 복귀해도 여전히 '왕따'"
(3)☞바로가기 "왜 삼성에선 출장 사망도, 여사원 과로 유산도 본인 탓인가?"
(4)☞바로가기 "삼성전자에 노조를!"…朴대리 두 번째 글도 삭제, 징계 통보"
(5)☞바로가기 "누가 삼성전자 朴대리에게 유서를 쓰게 만들었나?"
(6)☞바로가기 "삼성에 노조 만들자는 글이 영업 기밀인가?"
(7)☞바로가기 "삼성전자, '노조 설립' 호소한 朴대리 전격 '해고'"
(8)☞바로가기 "'삼성전자에 노조를!'…해고된 朴대리, 재심 청구"
(9)☞바로가기 "'삼성전자에 노조를!'…박종태 대리, 해고 확정"
(10)☞바로가기 "'삼성에 노조를!'…해고된 朴대리 딸 "아빠 피아노 끊을게요""
(11)☞바로가기 "사람이 죽어나가면 모를까 삼성에서 여사원 유산쯤이야…"
(12)☞바로가기 "삼성전자 해고자 박종태 씨와 함께할 사람, 모여라!"
(13)☞바로가기 "박종태 대리 해고, 정말 '삼성 노조' 추진과 무관한가?"
(14)☞바로가기 ""저 사람이 朴 대리다"…두유 건네며 격려하는 삼성 직원"
(15)☞바로가기 "유서 썼던 삼성 朴대리 "나는 왜 살아서 싸우기로 했나""
(16)☞바로가기 "무조건 해고…이러고도 삼성이 초일류기업입니까?"
(17)☞바로가기 "삼성 '왕따 직원' 박종태가 수세미 들고 나타난 까닭?"
(18)☞바로가기 "삼성 해고자 박종태, 산재 불승인…"삼성노조와 함께 싸울 것""

 

/김용언 기자,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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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걸 먹었어야지", 어느 황조롱이의 실수

"먹을 걸 먹었어야지", 어느 황조롱이의 실수

 
김영준 2013. 06. 14
조회수 5720추천수 1
 

아파트 베란다 출생 어린 황조롱이 쥐 먹다 목에 걸려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다 구조…치료 뒤 어미와 해후

 

지난 5월 31일 충남 서산에서 황조롱이 한마리가 구조되었습니다. 상태는 입 안에 쥐 다리가 걸린 상태로 먹이도 먹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아파트 주민이 신고하셔서 조류보호협회 서산지회에서 도움을 주셔 구조하였지요.


hawk1.jpg » 왼쪽 부리에 걸린 것이 바로 쥐 뼈입니다. 들어가지도, 빠지지도 않고 있죠. 아마 한동안 먹이를 못 먹었을 겁니다.

 

센터로 후송하여 방사선 촬영 결과 쥐의 엉치뼈와 대퇴골이 아래턱주머니와 부리 바깥에 걸려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뼈는 부패하여 냄새가 나고 있었고 기운이 없더군요.


hawk2.jpg » 측면 방사선인데요, 부리 부근에 뼈가 걸린 게 보이시나요?


hawk3.jpg » 머리에 11시 방향으로 왼쪽 위에서 오른족 아래로 뼈가 걸려 있는 게 보이시나요?


hawk4.jpg » 너무 올래 걸려있어서 입을 다물 수 없어 혀의 점막도 살짝 벗겨졌더군요.

hawk5.jpg » 이게 바로 제거한 골격입니다. 크기로 보아 집쥐 작은 녀석인 듯 싶습니다.

 

걸린 물질을 제거하여 유동식을 급여한 후 부드러운 음식을 먹게 하니 회복이 많이 되어서 현장방생을 결정하였습니다.

 

hawk6.jpg » 방생을 하러 갔을 때 사진입니다. 3시방향의 개체가 바로 문제의 사고를 일으킨 녀석입니다. 먹을 걸 먹었어야지.

hawk7.jpg » 다른 녀석들은 나름 컸습니다.


hawk8.jpg » 모두 6마리가 태어났는데, 한마리는 이미 떨어져 죽었고 현장에는 5마리가 남아 있습니다.


동영상에는 수컷 황조롱이가 둥지에 와서 먹이를 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잘 살아가길 바라겠습니다.

 

 

 

 

 

글·사진 김영준/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전임수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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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잡았다 박수 치더니... 경찰의 새빨간 거짓말

[영상녹취]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분석관들의 태도 변화

13.06.14 20:43l최종 업데이트 13.06.14 20:43l
강민수(comi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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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대선기간 '국정원 정치개입' 확인 이광석 서울 수서경찰서장이 지난 4월 지난해 대선기간 발생한 국정원 직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 결과 국정원 직원과 공범인 일반인을 국가정보원법 위반(정치개입)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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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디스크 분석 결과, 문재인·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이광석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장(현 서울지하철경찰대장)은 기자 브리핑을 열었다. 전날 밤 11시 기습적으로 중간수사결과 보고서를 내자 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서장은 이번 사건의 초유의 관심사였던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분석한 결과 게시글은 물론 댓글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또 수사 발표 시점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지적에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가 오후 10시 30분에 나왔다"며 "국민적 관심이 커 바로 발표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게시글 없다' 짜맞추기... 검찰 수사로 드러나

하지만 이 서장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분석 작업을 맡은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팀은 국정원 직원 김씨가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유리한 글,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 불리한 글을 쓴 증거를 이미 확보했다. 하지만 이 서장과 배석했던 한 분석관은 "비난이나 지지 관련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모두 윗선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4일 검찰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발표하면서 이들의 말은 거짓말임이 증명됐다.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문에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실 녹화영상을 첨부했다. 이 자료에는 그들이 중간수사결과 발표 하루 전부터 김씨의 하드디스크를 어떻게 분석했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15일 오전 4시 2분의 녹화영상을 보자. 먼저 분석팀은 국정원 직원 김씨의 닉네임을 발견하고 박수치며 환호한다.

[12월 15일 오전 4시 2분부터 9분 사이]
분석관1
: "주임님 닉네임이 나왔네요."
(분석관 두 명 박수)
분석관1 : "피곤하죠? 한 시간이면 끝나겠죠? 이거 봐요."
분석관2 : "음… 우리가 찾았네. 일단은 이 사람이 쓴다는 부분이 나왔네."
분석관1 : "고기 사주세요."
분석관2 : "국정원이 책임… 지우지 말라고… 다 있어… 일단 이 자료부터."
분석관1 : "이거는 수사팀에다 구두로 넘겨주자. 있는 거가 중요하니까. 팩트만 넘기고 판단은 거기서 하게 합시다. 우리가 판단하지 맙시다."

통상적으로 분석 과정에서 증거 및 수사단서를 발견할 때에 이를 신속히 수사팀으로 넘기게 돼 있다. 분석관들도 이러한 절차에 따라 수사팀에 발견된 중요수사 단서인 ID·닉네임 등을 인계해주려 했다. 하지만 이날 새벽이 지나 밤이 되자 분석관들의 말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12월 15일 오후 9시 44분]
분석관 : "어제 피의자가 진술할 때 인터넷 기록을 지웠다고 한 거예요. 그래서 뭐가 맞냐 분석했던 사람들을 불렀던 거예요. 그래서 욕먹은 게 너희는 회의 안 하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을 먹을 거냐, 그리고 수서서에 가서 분석관 ○○○과 분석관 ○○○ 둘이서 발표한대요."

피의자신문조서를 검토했고 미리 수서서 발표가 정해져 분석관 2명이 발표에 참여하기로 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한 분석관은 "예상질문을 정리해달라고 해서 작업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특히 분석관들은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당시 후보의 복지정책을 비판하는 등 정치 관련 게시글을 확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월 15일 오후 11시 41분]
분석관2
: "주임님 투데이, 오늘의 유머에서 게시글이 나왔어요. 작성자 투데이 얘가 쓰는 거잖아요, 약간 비방하는 성향이…."
분석관3 : "투데이즈 저번에 찾은 거잖아요."
분석관2 : "저거 같은 경우 복지정책을 까고 있는 거 같아요. 일단 얘가 게시한 글이 맞고 컴퓨터에 있어요."

한 분석관은 통합진보당의 북한 로켓 지지 입장을 비난한 게시글을 확인했다고 말했지만 다른 분석관은 "이거는 언론 보도에는 안 나가야 할 거 아냐"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후 "나갔다가는 국정원 큰일 난다"며 "우리가 여기까지 찾을 줄은 어떻게 알겠어"라고 말했다.

"나갔다가는 국정원 큰일 난다"고 걱정하는 분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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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묵부답'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에서 왜곡, 축소, 은폐한 혐의로 민주당이 고발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5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취재기자들의 "수사결과 발표에 직권남용한 것 아니냐", "새누리당 입당을 고려하고 있나" 등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자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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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오전 1시 16분]
분석관1
: "안 되죠. 나갔다가는 국정원 큰일 나는 거죠. 우리가 여기까지 찾을 줄은 어떻게 알겠어?"
분석관2 : "우리가 판단하면 안 되고. 기록은 (보고가) 올라가겠지만. 안 하겠지."
분석관1 : "노다지다 노다지. 이 글들이 다 그런 거야."
분석관2 : "그거 혼자는 안 했을 거 아냐."
분석관1 : "그리고 직원 한 명이겠냐고, 너 같으면. 초기에 아이디 패스워드 파일을 받았잖아. 그게 몇 명한테 쓰라고 파일을 줬겠지. 그럼 여러 명이 서로 똑같은 아이디 번갈아 쓰면서…. 왜냐하면 IP 주소는 바꿔야 할 거 아냐."

중간수사발표가 6시간 앞으로 다가오자 분석관들의 입장은 더욱 명확해진다. 한 분석관은 "비난이나 지지 관련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며 "그렇게 써가려 그러거든요"라고 말한다. 분명 윗선의 지시가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12월 16일 오후 3시 34분]
분석관1
: "이게 우리가 했던 웹 있잖아요. 그걸 노트 데스크. 다 합해가지고 인제. 우리가 했던 대로 총 몇 개 히트해서. 쓰레기 정보라고 해서 이상한데."
분석관2 : "글 게시하고 관련 없는 URL은 제외를 하고… 우리가 검색했던 URL은 총 몇 개였는데 결과를 확인한 바… 비난이나 지지 관련 글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써가려 그러거든요."

검찰은 14일 수사발표에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수사 범죄 혐의를 왜곡하는 수사결과문을 배포·작성케 해 수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정상적인 수사 공보를 빙자해 수사결과 발표가 선거 직전에 이례적으로 이뤄졌다"며 "그 내용이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게 왜곡된 점을 고려해 김 전 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과 경찰공무원법 위반 및 직권 남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첨부파일은 14일 검찰의 국정원 선거 개입 수사발표문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팀의 영상녹취 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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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자본주의와 하늘과 땅 차이로 만들 것

 

고기. 우유폭포의 목가적 풍경 세계 관광객 구름처럼 몰릴 것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6/15 [08:36]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세포등판 건설자들이 첫 풀씨를 뿌리는 장면 이들은 서울시 면적과 비슷한 면적의 세포등판 축산기지는 물론 관고아시설을 2015년까지 끝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


조선이 서울시면적(약 1억 8천만평)에 해당하는 크기로 세계적 축산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세포등판(1억 5천만평=5만정보) 건설자들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차이를 하늘과 땅 차이로 만들겠다는 각오의 편지를 각계층 근로자들에게 보내 주목된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당 중앙의 전투적 호소에 결사의 실천으로 화답하자!’라는 제목의 편지를 세포등판 건설자들이 전국의 근로자들에게 보냈다며 공개했다.

세포등판 건설자들의 편지는 “마식령에 울린 장쾌한 뢰성이 온 세포등판을 진감시키고 있다.”며 “수령이 직접 붓을 들어 천만군민의 심장에 한자 한자 새겨준 그런 호소문이 과연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있었던가.”라며 김정은 원수의 호소문을 언급하고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호소문은 천하를 뒤흔드는 백두산의 우레 소리”라며 “이 불멸의 호소문에는 우리 조국을 하루빨리 천하제일강국, 인민의 낙원으로 세계위에 우뚝 올려 세우시려는 백두영장의 담대한 배짱과 기상이 높뛰고 있으며 당이 번개를 치면 우뢰로 화답하는 우리 군대와 인민에 대한 하늘같은 믿음이 흘러넘치고 있다.”고 썼다.

겨울부터 시작 된 세포등판 건설자들은 편지를통해 “우리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역사적인 호소문을 마식령과 한지맥으로 잇닿아있는 세포등판의 개척자들에게 보내주신 사랑과 믿음의 격문으로 뜨겁게 받아 안았다.”며 “호소문의 글발들에서 우리들은 세포등판개간전투원들이 마식령 군인건설자들과 어깨 겯고 새로운 시대속도창조의 앞장에서 힘차게 내달리라고 고무격려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친근하신 음성을 듣고 있다. 《마식령속도》, 그것은 영웅적조선인민군의 단숨에의 기상이 나래치는 일당백공격속도이며 전후 천리마의 정신과 1970년대 속도전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21세기의 새로운 대비약속도”라고 규정했다..

세포등판 건설자들은 편지에서 “경애하는 원수님의 호소문에 접한 때로부터 우리 세포등판에서는 시간개념이 달라지고 일뽄새도 달라졌다.”며 “지난 반년동안 매일과 같이 위성으로 촬영하고 쌍안경으로 노려보면서 우리의 공사속도에 경악하던 적들이 오늘은 아예 기절 초풍하고 있다. 흐르는 분과 초가 그대로 기적과 위훈으로 이어지고 어제의 새 기록이 오늘은 낡은 것으로 되고 있는 이 격동적인 현실을 보면서 우리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호소문의 위대한 감화력과 생활력을 폐부로 절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건설자들의 편지는 “우리들은 《마식령속도》에 《세포등판속도》로 화답하며 경애하는 원수님의 전투적 호소를 맨 앞장에서 받들어갈 불타는 맹세로 심장의 피를 펄펄 끓이면서 전국의 근로자들에게 이 편지를 보낸다.”조 전했다.

편지는 “《마식령스키장건설에서 발휘되고 있는 군인들의 불굴의 투쟁정신, 투쟁기풍을 따라 배워 온 나라에 대혁신, 대비약의 불 바람을 일으켜나가자는 것이 바로 우리 당의 의도이며 결심이다”라는 김정은 원수의 어록을 싣고 “우리들은 이 세포등판을 자연개조공사장으로만이 아니라 수령결사옹위의 격전장으로 여기고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열한 전쟁의 불길 속에서 원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어버이장군님께서 그토록 마음 쓰신 세포등판개간, 이것은 김일성동지의 후손들이며 김정일 동지의 전사, 제자들인 우리가 하늘이 무너져도 결사 관철해야 할 지상의 명령”이라고 적었다.

또한 “남들이 수십 수백년 동안 해낸 방대한 규모의 축산기지건설을 단 몇해 안에 해 제끼려는 우리 당의 담대한 결단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놀라고 있다.”면서 “한해에 1 000정보씩 개간해도 기적이라고 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말대로 한다면 50년이 걸려야 하는데 그런 계산법은 우리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밝혀 엄청난 속도로 세포등판이 개간 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경애하는 원수님의 참된 전우, 동지가 되자고 맹세한 우리가 어떻게 세포등판개간을 단 하루라도 늦출수 있단 말인가.”라며 “세포등판개간전투는 당 중앙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사생결단의 수령옹위전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뼈와 살에 새기고 있다. 수수천년을 내려오며 버림받던 황무지를 갈아엎는 강철의 보습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불타는 충정이다. 제2의 《마식령속도》, 《세포등판속도》를 창조하여 당 중앙의 권위를 결사옹위하자, 이것이 당과 인민 앞에 다지는 우리의 맹세”라고 적었다.

아울러 “우리들은 올해 안으로 5만여 정보의 풀판개간과 축산관리중심건설을 무조건 끝내고 2015년까지 축산기지와 살림집, 축산물가공기지, 저류지, 도로를 비롯한 대상건설을 완공하며 우량품종의 집짐승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을 힘 있게 밀고나가겠다.”고 밝혀 축산기지규모는 물론 대상 건축물과 기지들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편지는 “전국의 근로자들이여, 당의 경제건설과 핵무 력건설의 병진노선을 틀어쥐고 마식령 군인 건설자들의 투쟁정신을 따라 배워 뜻 깊은 올해의 총진군에서 결사관철의 투사, 위훈의 창조자가 되자!”며 “당이 번개를 치면 우뢰로 대답하는 조선의 일심단결의 위력을 만방에 떨치자! 지금 적들은 우리가 잘사는 길을 가로막아보려고 칼을 물고 달려들고 있다. 군사분계선을 코앞에 둔 여기 세포등판개간전투장은 하루에도 수 백장의 삐라와 반공화국모략선전물들이 뿌려지고 예배당의 종소리까지도 들려오는 최전선이다. 미국놈들이 지난 전쟁 시기에 떨군 폭발물들이 아직도 무수히 박혀있는 땅, 지금까지 해제한 불발탄만 해도 2만 1,000여개에 달하는 여기는 말 그대로 《세포전역》”이라며 세포등판 개간이 전선이라는 것을 주지했다..

세포등판 건설자들의 편지는 “원수들은 저들의 살기어린 총구에 질겁하여, 썩어빠진 선전물들에 현혹되어 우리가 순간이라도 주춤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어림도 없다.”며 “원수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은 우리의 눈빛을 더욱 비장하게 하고 우리의 발걸음에 박차를 가해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원수들의 가슴팍에 총창을 박는 심정으로 땅을 갈아엎고 풀판을 조성하고 있다.

머지않아 세포등판에는 세계굴지의 사회주의목장이 일떠설 것이며 세포상표를 단 세계제일의 고기제품, 젖 제품(유제품)들이 꽝꽝 쏟아져 나올 것이다. 군사분계선너머의 목장들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여기 세포등판에서 기어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하늘과 땅차이로 만들 것“이라고 기세에 찬 목소리를 높였다.

건설자들의 편지는 계속해 “경제건설은 곧 사회주의수호전으로 알곡 한알 한알을 원수를 잡는 총알로 여기고 한㎏의 낟알이라도 더 생산하자! 기초식품공장을 비롯한 인민생활 기지들을 사회주의수호의 병기창으로 생각하고 질 좋은 인민소비품들을 더 많이 만들자!”면서 “기계의 동음이 멎는 것은 화선에서 총포성이 멎는 것과 같다. 맡겨진 인민경제계획을 전투명령으로 받아 안고 멸적의 총탄을 날리는 심정으로 생산정상화의 동음을 높이 울리자!”고 호소했다.

편지는 “우리는 자력갱생의 기치높이 세포등판을 사회주의 푸른 언덕으로 만들겠다. 얼마든지 자신 있다. 우주도 정복한 우리가 땅이야 왜 다스리지 못하겠는가.”라며 “세포의 횡포한 바람을 자력갱생의 불바람으로 쳐 갈기며 3년이 걸려야 한다던 공사를 반년동안에 해제끼면서 우리가 깨달은 진리가 있다. 행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누가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남만 쳐다보면 자체로 살아가려는 사상이 없어지고 수입병에 걸리면 눈뜨고 사대매국노가 된다”며 자력갱생을 강조했다..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방대하며 없는 것, 부족한 것도 많다. 5만정보가 넘는 대규모의 풀판조성과 축산기지건설은 우리나라(조선) 역사에서 처음”이라며 “우리들 가운데는 이런 불모의 땅을 개간해본 경험자도, 기술자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맨손으로 첫 뜨락또르(트랙터)와 전기기관차를 만들던 전 세대들처럼 모든 것을 자기 머리로 착상하고 제힘으로 창조하면서 경험을 쌓고 기술을 터득하고 있다. 기계수단이 없으면 정대와 곡괭이로 언 땅을 한조각, 한조각 뜯어냈고 방풍림을 조성할 나무가 부족하면 떼장으로 뚝을 쌓아 세포의 사나운 바람을 막으며 풀판을 조성하고 있다. 오랜 세월 세포 땅에는 없다고 하던 니탄도 우리 손으로 찾아 내여 대지를 살찌우는 비료를 만들었다.”고 창조적 지혜를 모아가고 있음을 알렸다.

이어 “모든 것을 우리의 지혜, 우리의 자재, 우리의 기술로 만들라는 것이 당의 요구”라며 “제정신이 제일이고 제힘이 제일이라는 주체의 신념을 지니고 모든 것을 우리 식대로, 우리의 힘으로 창조해나가자!”며 “김정일 애국주의는 조국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조약돌 하나도 가슴에 품어 안고 심장의 피로 덥혀주는 숭고한 사상 감정이며 우리 세포등판개척자들의 양심이고 지향이다. 황량한 세포등판도 항일의 투사들과 전화의 영웅 전사들의 붉은 피가 스민 내 조국의 한부분이기에 우리는 그 한치 한치의 땅에 풀씨가 아니라 애국의 양심과 구슬땀을 묻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나의 공장, 나의 작업반의 미더운 동지들이여, 세포등판에 승리의 붉은기를 휘날리라고 부탁하던 그대들의 당부를 우리는 언제나 잊지 않고 있다. 우리를 믿으라, 세포등판의 내일을 믿으라!”면서 “사랑의 뜨락또르(트랙터)와 악기, 갖가지 식료품과 수산물까지 보내주시며 우리를 고무해주시던 친어버이의 뜨거운 은정을 되새기면서 우리는 맹세한다. 세포 땅에서 고기폭포, 우유폭포 쏟아질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머니들과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 앞에서 우리는 약속한다. 세포의 거치른 등판을 풍요하고 기름진 들판, 젖소와 염소, 양떼가 흐르고 우유가 철철 넘치는 행복의 대지로 변모시키겠다.”고 맹세를 다졌다.

특히 “세포등판을 세계적인 축산기지로 뿐 아니라 스키장과 썰매장, 경마장과 생태공원, 숙박시설을 비롯한 관광봉사시설들을 그쯘히(거뜬히) 갖추어 세상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관광지로 꾸리겠다. 이 하늘아래 불모의 땅, 헛되이 흐르는 강, 쓸모없는 산이 하나도 없게 하자! 이 땅의 모든 것을 살점처럼 귀중히 여기고 열과 정을 쏟아 부어 사회주의재부로 만들자!”고 밝혀 세포등판을 세계적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의지도 다졌다.

세포등판 건설자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역사적인 호소문을 받아 안은 오늘의 하루하루는 우리 모두가 자기의 애국충정을 남김없이 발휘하여야 할 참으로 책임적이고도 중대한 시기라면서 ”우리 세대가 위대한 당의 전투적 호소에 어떻게 화답해 나서는가를 혁명선열들과 후대들이 지켜보고 있다. 그대가 정녕 경애하는 원수님의 진정한 전우, 동지라면 당중앙의 호소를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간직하자! 당의 호소에 실천으로 화답하겠다는 것을 펜대가 아니라 심장의 붉은 피로 엄숙히 서약하자! 전화의 나날 김일성장군님께 당신의 전사들이 있는 한 1211고지는 영원히 조국의 고지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맹세문을 올리고 목숨 바쳐 실천한 영웅 전사들의 고귀한 넋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고 거듭 호소했다.

세포건설자들은 계속 된 편지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전투적 호소에 결사의 실천으로 화답하자!’라는 소제목에서 “제2, 제3의 《마식령속도》를 창조하기 위한 사회주의경쟁열풍을 일으키자!”며 “여기 세포와 평강, 이천에서는 《세포등판속도》를, 김철과 성강, 강선에서는 《김철속도》와 《성강속도》, 《강선속도》를 창조하자!”고 추동했다.

건설자들은 이어진 편지에서 “온 나라 청년들에게 호소한다. 위훈을 갈망하는 청춘, 참된 행복을 바라는 청춘이라면 세포등판으로 오시라.”며 “제대배낭을 여기에 풀어놓은 처녀병사도, 세포등판에 삶의 뿌리를 내린 돌격대원부부도 그대들에게 호소한다.

청년들은 세포등판으로! 세포등판의 《산매》가 되자! 적들은 우리의 핵무기도 무서워하지만 군민대단결의 위력을 더 두려워하며 행복에 넘친 사회주의웃음소리, 인민들의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로동당 만세소리를 더 무서워한다. 《마식령속도》에 전진의 보폭을 맞추어 선군조선의 군민대진군속도를 창조하며 김정은 시대의 대번영기를 열어나가자! 10년, 100년을 주름잡으며 강성번영의 령마루에 단숨에 솟구쳐 오르자! 단번에 비약하여 21세기 최첨단에 조선의 자리를 만들자!“라고 결의에 찬 목소리를 높였다.

편지는 “김정은 시대가 얼마나 영광 찬란한 시대이며 조선로동당의 힘, 사회주의의 힘, 군민대단결의 힘이 어떤 위대한 기적을 낳는가를 온 세상에 똑똑히 보여주자”며 “공화국창건 65돐과 전승 60돐을 맞는 뜻깊은 올해를 조국청사에 특기할 대혁신, 대 비약의 해로 빛내자!”고 격동에 넘쳐 호소했다.

또한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 기쁨의 보고, 승리의 보고를 올릴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당 중앙의 부름 따라 더 높이, 더 빨리 비약하자는 것을 다시 한번 열렬히 호소한다.”며 세포등판 개건장에 청춘을 바쳐 갈 것을 고무 추동했다.

한편 이번 건설자들의 편지로 세포등판의 규체적인 규모와 구상을 소상히 파악 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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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빠른 시일 내에 당국자회담 재개되길"

김대중평화센터 등, 6.15 13주년 기념식 ..류길재 통일 축사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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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14 22: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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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호 여사가 14일 6.15공동선언 13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6.15 기념일을 즈음하여 예정되었던 남과 북의 당국자회담이 뜻밖에 무산되어 매우 안타까운 심정을 이루 표현할 수 없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당국자 회담이 다시 재개되기를 바랍니다.”

 

‘6.15 남북정상회담 13주년 기념 행사위원회’가 14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센터 2층 그랜드볼룸에서 주최한 기념식에서 이희호(92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된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희호 이사장은 “6.15공동선은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로 나가자는 약속이었다”, “6.15공동선언은 남과 북이 함께 손잡고 세계로 나가자는 약속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남과 북이 합의하고 세계에 약속한 대로 한반도 비핵화는 이루어져야 한다”며 “2005년의 9.19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대로 북한은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북한의 핵문제가 대화로 풀어지를” 바란다면서,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 행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행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박원순 서울시장도 개회사에서 “모처럼 따뜻해질 것 같던 남북관계가 다시 냉냉한 분위기로 돌아섰다”며 “그 어떠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남북은 다시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서로 한걸음씩 양보하고 서로 이해하는 자세로 다시 대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며 “6.15정신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도 한민족의 평화 염원을 담아 ‘경평축구’와 ‘서울시향 평양공연’ 등과 같은 문화 체육행사와 교류를 통해 남북화해의 물꼬를 트는데 앞장서겠다”고 약속하고 “올 13주년 기념 학술대회의 주체처럼 ‘정전을 넘어 평화로’의 길, 우리 민족의 공동 번영을 위한 길에 함께 힘을 모아야겠다”고 당부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이 2008년 6.15 기념행사에 참석해 축사한 이후 5년 만에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축사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 류길재 통일부장관이 통일부장관으로서는 5년 만에 6.15 기념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류길재 장관은 “6.15공동선언 역시 7.4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등 그 이전에 남과 북이 함께 합의했던 문건들의 연속선상”이라며 “7.4부터 6.15까지 남과 북의 합의사항을 관통하는 기본정신은 상호존중과 평화, 그리고 호혜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또한 “오늘로 북한의 일방적이고도 비합리적인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된 지 벌써 두 달을 넘어섰다”면서도 “북측이 갑자기 약속을 파기하고 식료품과 의약품 반입마저 막아 결국 현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북측에 책임을 떠넘겼다.

류길재 장관은 “새 정부가 추구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북한이 진정성있게 대화의 장으로 나올 때 가능한 일”이라며 최근 남북당국회담 무산에 대해 “유감스럽지만 새로운 남북관계로 가기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념식에서 정갑영 연세대 총장이 축사를 했으며, 도널드 존스톤 전 OECD 사무총장이 특별발언을,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조준호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문재인 의원과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이 건배사를 했다.

 

   
▲ 지난 연말 대선후보로 경쟁했단 문재인, 안철수 의원이 나란히 자리잡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기념식장은 그랜드볼룸 1천석 테이블이 부족할 정도로 붐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한길 대표는 “6.15정신 되살려 한반도 평화체제가 수립될 수 있도록 여러분과 함께 민주당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건배를 제의했고, 조준호 공동대표는 “우리의 멈출 수 없는 꿈, 평화! 통일! 이런 꿈을 반드시 실현시키겠다”며 건배를 제의했다.

 

김대중평화센터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한반도평화포럼, 서울시가 공동 주관한 이날 기념식에는 임동원, 정세현,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과 백낙청, 김상근 6.15남측위 명예대표, 박지원, 안철수 의원을 비롯한 정치인 등 각계 인사 1천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앞서, 행사위원회는 오전 10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정전을 넘어 평화로’를 주제로 ‘6.15남북정상회담 13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했으며, △북핵문제 △평화협정 △서울시의 역할 등 3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토론회를 진행했다.

 

   
▲ 이희호 여사가 제3회 6.15통일문학상 수상자들에게 시상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한편, 6.15공동선언 13주년 기념식에서는 김대중평화센터와 6.15청년학생본부가 주최하고 6.15남측위아 한국작가회의, 전교조가 후원한 제3회 6.15통일문학상 시상식이 진행됐다.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전준호 6.15청년학생본부 상임대표와 함께 대상을 수상한 황윤희 씨를 비롯한 수상자들에게 직접 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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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 만드는 박성제 전 MBC 노조위원장을 만나다

 

스피커 만드는 박성제 전 MBC 노조위원장을 만나다

 

[해고1년-인터뷰①] "일은 해고생활을 버티는 힘…반드시 돌아갈 것"
김도연 기자 | riverskim@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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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6.14 10:15:34

박성제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최승호 전 MBC PD와 함께 지난해 6월 18일 해고됐다. 1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 그는 '스피커 제작 장인'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그가 만드는 스피커 이름은 '쿠르베(Courbe)'. <미디어스>는 해고 1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11일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쿠르베 청음실을 방문했다.

박성제, 그가 '스피커 장인'(?)으로 변신한 이유

청음실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음악은 조용필의 '바운스'였다. 웅장한 사운드가 가져다 주는 공기가 귓구멍에 가득찼다 이내 빠지는 것 같았다. 사운드의 진동은 가슴까지 이어졌다. 원목에서 나는 향기가 공방에 물씬 풍겼다. 고급스러운 스피커 쿠르베도 인상적이었다. 박 전 본부장은 웃으며, "보는 것과 달리 잘 먹고 잘 살지 않는다. 손수 만드는 스피커이기 때문에 큰 수익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다만 이 일은 해고자 생활을 버티는 힘"이라고 전했다.

 

   
▲ 박성제 전 본부장이 기증한 스피커 1호 (쿠르베 홈페이지)

 

올 초 박성제 전 본부장이 뉴스타파에 자신의 스피커를 기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내가 작년 말에 완성한 작품이다. 대선 때 멘붕을 겪으면서 만든 건데 애착이 많이 가는 녀석"이라며 "돈도 좀 들어갔고 연구를 많이 해서 만든 것이다. 최승호 선배에게 '같이 하지는 못하지만 이게 제 마음입니다'라는 말을 전하면서 기증했다"고 밝혔다. 언론인으로서 고생하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때문이었다.

쿠르베의 우수성을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순수함과 열정이 느껴졌다. 그러나, 한국 언론이 직면한 작금의 현실을 이야기하자 그의 눈은 날카로워졌다. 자리에 제대로 앉고서야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공정방송 사수를 주창한 언론인들에게는 '엄동설한'의 시기이다. 지난 10일에는 노종면 전 언론노조 YTN지부장을 비롯한 YTN 해직기자 5명이 '공정방송을 위한 국토 순례'를 떠났다. 같은 해직기자의 입장에서 박 전 본부장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YTN 친구들이 대장정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들의 무거워 보이는 뒷모습이 우리의 미래인 것만 같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 MBC 해직기자들도 같이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해고 1년 동안을 뭐라고 규정할 수는 없으나, 참 정신없는 일들이 많았다. 대선이 있었고, MBC 사장이 교체됐다. 반복적으로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시기였다. 정신도 없었다. 우왕좌왕하며 술 먹고 울분과 분노를 토하는 시기랄까?(웃음) 그러나 지금부터는 장기전을 대비해서 씩씩하게 좌절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취미생활이었고 그것을 일거리로 확장시킨 상황이다."

   
▲ 박성제 전 본부장이 직접 원목을 다듬고 있다. ⓒ미디어스

MBC 후배들에 대한 부탁과 당부

박 전 본부장은 어린 시절부터 오디오 스피커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막귀'를 가진 기자로서 그의 민감한 청력과 예술적 기질이 부러웠다. 언론판에서 명망 높은 박 전 본부장에 러브콜 하는 언론사나 기업체들도 많았을 텐데, 굳이 '스피커 장인' '스피커 사장님'이 된 이유가 궁금했다.

"오라는 곳이 있다고 덥석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나? YTN이나 MBC 해고자들이 가지는 상징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을 떠나 MBC로 돌아가는 게 급선무다. MBC로 돌아가고 싶다는 게 내 마음이다. 같은 해고자인 박성호 전 기자회장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성호에게 '개와 걸도 괜찮은데 네 인생이나 내 인생이 모 아니면 도가 됐다'고 말했다. 굴하지 않고 MBC로 돌아갈 것이다.

화를 목공으로 다스렸다.(웃음) 해고된 뒤, 지난해 9월부터 목공예를 시작했고 11월부터 스피커를 만들기 시작했다. 올 초 동호회 친구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스피커 제작을 시작했다. '세상에 없는 스피커, 내가 평생 쓸 진짜 멋있는 스피커'를 만들고 싶었다. 스피커의 디자인 기획과 공예 작업을 혼자서 1달 만에 완성했다. 동호회에서 완성된 스피커를 발표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50명 중 2명이나 계약을 했다. 그때 상품화해도 '되겠구나'하고 확신을 가졌다. 해직된 기간 동안 대박은 나지 않더라도 버틸 힘을 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과정에서 사업자 등록을 하게 됐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거칠 것 없이 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가 유난히 듣기 좋았다. 그러나 그는 MBC 기자다. 현재 MBC의 무거운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MBC 구성원들의 자조적인 목소리를 그에게 전하려고 하자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이 바뀐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다.

"후배들, MBC 구성원들의 자조적인 목소리를 자주 듣는다. 어떤 후배는 나에게 '선배가 하는 사업 망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내가 돌아오지 않아 두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 인마. 그렇다고 망하면 되겠냐'고 웃으며 말했다. 후배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박날 사업은 아니다.(웃음) 이건 그냥 내가 버티는 힘일 뿐이지.

얼마나 후배들이 회사 상황에 침체돼 있고 의욕이 없으면 그런 이야기를 할까, 참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더더욱 재판으로, 법원의 판결에 따라 당당하게 돌아가고 싶다. 노조에게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건 후배들이 해고자들을 잊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때 되면 제사라도 올려주고.(웃음) 우리도 회사를 늘 생각하고 있으니까 후배들도 우리를 잊지 않고 배려해주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MBC의 한 지인은 "일할 맛 나지 않는다"는 말을 기자에게 한다. 제작 자율성이 경영진들에게 침해 받는 상황 속에서 눈치를 보며 제작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난해 장기 파업의 후유증도 크다고 한다.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있던 MBC는 최근 시청률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보도와 제작에서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후배들이 현 MBC 상황을 이야기하며 자포자기식, 자조적인 멘트를 곧잘 던지곤 한다. 그런 느낌의 멘트를 볼 때 너무 마음이 안타까웠다.(긴 침묵) 섣부르게 희망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지만... 예전에도 김재철 사장 만큼은 아니더라도 만만찮은 간부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다들 참 열심히 했다.

바라는 건 '노조 뭐하고 있는 거냐?' 이렇게 말하기 전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제작하는 프로그램, 뉴스를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잘못된 지시나 부당한 어떤 것에는 목소리를 적극 내야 한다"

   
▲ '쿠르베' 앞에서 음악감상하고 있는 박성제 전 본부장의 모습. ⓒ미디어스

김재철 전 사장은 <신동아> 5월 호 인터뷰에서 "박성제 위원장이 굉장히 강력한 위원장이었다. 이근행 위원장 체제라고 하지만 사실상 박성제 전 위원장이 모든 걸 하고 있었고 (그래서) 처음에 날 반대했다" "이제 정치 노조는 끝나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며 언론노조 MBC본부와 박성제 전 본부장을 비판했다. 이에 박 전 본부장은 <신동아> 6월 호에 반박 인터뷰를 했다.

"그 인터뷰를 통해 내가 왜 해고됐는지 알게 됐다. 사실 내가 배후에서 노조를 조종했다고 말한 것 때문에 반박 인터뷰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노조의 투쟁과 존재 이유를 정치적으로 매도하는 것에 화가 많이 났다. 그래서 최승호, 정영하 등 몇 분을 만나고 반박 인터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공유했다. 거명된 내가 하는 게 제일 맞는 것 같았다.

인터뷰에서 강조했던 점은 MBC 사장이 진보냐, 보수냐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보수 정권에서 보수적인 사장이 올 수도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 제대로 된 진보 사장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언론사 수장으로서의 자기 역할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게 우리들의 생각이다. '신동아'에서 제목을 멋있게 뽑았더라. '보수 사장도 괜찮다 공정보도만 한다면'. 나와 MBC 노조가 명예를 회복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반론은 된 셈이다."

김종국 사장에 대한 고언

우여곡절 끝에 김재철 전 사장은 불명예스럽게 MBC를 떠났다. 새롭게 사장이 된 김종국 사장은 지난 한 달동안 인사를 통해 김재철 전 사장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그가 '김재철 시즌2'라는 비판을 줄기차게 받은 이유이기도 했다.

"김 사장이 선임됐을 때 실망했다. 주변에서는 김재철 사장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방문진의 6대 3 구도 하에서는 김종국 사장이 아닌 다른 누구에게도 큰 기대를 할 수 없을 뿐더러, 김 사장에게 노사 관계 회복과 인력 정상화를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기에. 경쟁력 회복은 인사를 잘해야 가능한 것인데, 김 사장이 상처를 받은 구성원들을 제대로 끌어안을 수 있을 거라 생각진 않는다."

   
▲ MBC의 과거와 현재. 김재철 전 MBC 사장(왼쪽)과 김종국 현 MBC 사장 (뉴스1)

박성제 전 본부장이 언론노조 MBC본부를 이끌 당시 김종국 사장은 '엄기영 사장 체제'에서 기획조정실장이었다. 그만큼 박 전 본부장과 김 사장은 노사 관계자로서 계속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는 박 전 본부장 만큼 김 사장을 잘 아는 이도 없다는 이야기일 터. 마지막으로, 김 사장에게 하고픈 말을 물었다.

"김 사장이 내년 봄에 임기 3년의 새 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하지 마셔야 한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다. 넓게 바라보면서 경영을 하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김재철 전 사장 반대로 하시라는 말이 아니다. 조금 더 멀리 보시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셔야 한다. 방문진 이사들만 바라보지 마시고, 본인에게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경영을 하셨으면 좋겠다.

그 정도의 뚝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는 건 알고 있다. 자꾸만 구도 핑계를 대고 뒤에 숨는데, 구도라는 게 그렇게 견고하지는 않다. 정치권 상황과 권력가진 사람들의 특성을 고려 했을 때, 어떤 상황이 올지는 모른다. 권력자들은 언제든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코 푼 휴지처럼 버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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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

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

 
휴심정 2013. 06. 13
조회수 284추천수 0
 

...

김기덕 감독 영화가 생각난다. 동자승 녀석이 물속 개구리며 뱀을 실에 묶어 잔돌을 매달아 놓는다. 그것들은 앞으로 나가보려고 발버둥 쳐보지만 얼마간 안간힘을 쓰다가 죽어버렸다. 그 녀석은 커서, 정을 통한 젊은 처자 쫓아 속세로 가서 살인까지 하고 저 스스로 묶어놓은 돌에 짓눌려 발버둥 쳤다. 그리고 되돌아와 중노릇하면서 엄마 잃은 아이를 동자승으로 키우는데, 그 녀석이 또 똑같이 개구리를 돌로 묶는다. 중은 스스로 맷돌을 허리에 매달고 절 뒤에 있는 겨울산을 죽을힘을 다해 오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렇게 삶의 수레바퀴가 끝없이 굴러가는 동안, 이 세상은 좀 좋아져 가고 있는 걸까.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봄.jpg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중에서

 

...

저 죽을 구덩이 제 손으로 파고, 조금 뒤 제가 그 구덩이에서 총살되어 묻힐 줄도 모르고 웃고 있는 시골 촌부 보도연맹원들. 그 자손들은 오늘도 재판에서 희생 사실을 인정받지 못할까 애타하며 법원을 드나들고 있다.

그리고 숱한 재개발지역 철거민들, 활활 불타오르며 쓰러져 가는 용산 남일당 망루......

이 모든 일이며 사람들이 영락없이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그것이다. 동자승의 개구리 같고, 맷돌 끌고 산을 오르는, 그 동자승이 자라난 중 같다.

세상은 좋아질 수 있을까.

 

온갖 지혜와, 원력과 자비, 신통과 위신력을 갖추신, 무한히 크고 반듯하고 너르신 부처님(大方廣佛)이 오셨어도, 하느님과 일체이신 성자 예수님이 오셨어도,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세상은 바뀐 게 없다.

돌, 나무, 돼지, 사람, 이 사람, 저 사람, 그 사람..... 세상 만물이 저마다 개체로 존재하는 한, 그래서 개체가 서로 다르고 개체가 자기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려 하는 한, 피할 수 없는 게 개체 사이의 충돌이다. 저마다 이해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밤이면 별빛 쏟아져 내리는 사막에 은둔하며 하느님을 묵상하는 수도승도, 히말라야 설산 토굴 속에 앉아 주관과 객관의 차별이 사라지는 '비상 비비상처 삼매'에 든 수행자도 하다못해 풀이나 낟알이라도 먹어야 사는 법. 하지만 풀이나 곡식이 수행자한테 먹히려고 생겨난 건 아니다. 그것도 생명인데 남의 생명 먹고 그 수도자 '개체'가 어디 높은 '경지'에 이른다는 건 좀 그렇다.

수행자와 낟알은 서로 이해가 부딪친다. '빨갱이'와 '보수반동'의 이해가 충돌하듯이. 이내창과 그를 쫓는 공안수사관이 서로 생각이 다르듯이.

 

그런데 따지고 보면 세상 만물이 변하지 않고 다른 것과 독립하여 저 혼자 개체로 존재하는 건 없다. ... 생각도 본래 내 것이란 없다. 유전자 특성에다 그간 남들이 이루어 놓은 지식과 내가 특정한 환경에서 겪은 경험이 합해져 잠시 '내 생각'이 된다. ... 하지만 만물은 이합집산하며 변해 가므로 어떤 '개체'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그저 만물의 끊임없는 이합집산인 흐름, 사건이 있을 뿐.

 

그래서 만물은 하나다.

이걸 성서에서는 모든 게 하느님의 피조물이라고, 화엄경에선 모든 존재가 비로자나 부처님의 나타나심 아닌 게 없다고 했다.

...

세상 만물이 모여 그저 잠시 나라는 개체로, 너라는 개체로 몸을 입고, 그 몸인 뇌 신경세포들의 창발적 활동으로 생각도 하고 아름다움도 느낀다.

어제 빨갱이의 아들이 오늘 보수반동이요, 오늘 사형수의 아들이 내일 성철 스님이다.

우리 스승들이 그러셨듯이, 그저 이 한세상 살면서 나와 이웃들이 이런 이치를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서로서로 도와줄 일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다.

 

지상에서가장짧은영원한만남.jpg

<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김형태 변호사 비망록>(한겨레출판) 중에서

 

 

 

 

김형태 변호사는...

 

김형태변호사한겨레자료사진.jpg

 

1956년 서울 출생이다.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86년부터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을 주도했고, 천주교 인권위원장을 지냈다.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특별검사보,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법무법인 덕수 대표 변호사이며 사단법인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 격월간 《공동선》 발행인 등을 맡고 있다. 사형폐지와 인권보호 활동에 앞장서 왔으며, 임수경ㆍ문규현 방북사건, 치과의사모녀 살인사건, 송두율 교수 사건, 문화방송 PD수첩 광우병 보도 관련 민ㆍ형사 사건, 인혁당ㆍ민청학련 재심 및 손해배상 사건, 용산참사 등 우리 사회 뜨거운 논쟁이 되었던 사건에 늘 함께했다. 천주교 신자이면서 불교 등 타종교에 대한 이해도 깊어 종교간 소통을 주제로 한 강연에 자주 초대받는다. 법대 시절 법학 강의보다 문학과 철학에 더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지인들에게 술과 풍류를 즐기는 자유인의 모습으로 더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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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비민주성과 대학 언론의 고난

"총장님 건드리면"…지금 군부 독재 시대?

[민교협의 정치시평]대학의 비민주성과 대학 언론의 고난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6-14 오전 7:16:11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우리는 공영방송을 비롯해 정부의 영향력이 작용할 수 있는 많은 방송들이 망가지는 것을 목도했다. 사장, 이사가 부당하게 해임되고 정권의 대리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언론인들이 쫓겨났다. 그 결과 방송 뉴스는 권력을 비판하기는커녕 홍보하기에 바빴고, 비판적인 시사프로그램은 폐지되거나 순화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피해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 받지 못한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말았다. 국제 언론인 단체에서 평가한 한국의 언론 자유도는 급전직하했고, 민주화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이룩한 방송의 공공성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역사가 역행하고 있다.

비민주화되고 있는 사회의 여파일까? 이런 비참한 현실이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재연되고 있다. 대학 언론들이 학교 당국의 부당한 간섭에 신음하고 있다. 발행이 중단되거나 학보 전량이 수거되고, 기자·편집국장이 해임되거나, 예산 감축의 위협을 받고 있다. 대학 언론은 학교의 홍보지인가 아니면 대학 구성원을 위해 진실을 전달하는 소통 매체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 제기해야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요구를 대변하던 학교당국·주간교수와 대학 언론인 사이의 갈등이 수십 년의 공간을 뛰어 넘어 21세기에 다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 언론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학내 갈등으로부터 비롯한다.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구성원과, 대학을 고등 교육을 위한 비영리재단이라기보다는 사유물로 생각하는 재단 사이의 갈등이 대학 언론의 비판적 내용을 둘러 싼 갈등으로 표면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언론 본연의 기능이 억압받고 있는 것이다.

중앙대는 교지가 강제 수거되는 갈등을 빚었다. 2009년 '학교는 학생들의 것이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형식의 총장 풍자 내용을 문제 삼아 교지를 수거한 후 중앙대는 교지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 비록 공식 언론은 아니지만 현대차 비정규직정규직화를 주장하는 대자보는 현대차에 대한 간접 광고(?) 소지가 있다고 금지시켰다. 온갖 기업 광고가 난무하는 대학 벽보판의 현실 속에서 나온 기막힌 변명이다. 교양과목 폐지·등록금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 재단과 관련 있는 두산을 거론한 것은 기업이미지 실추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금지시켰다. 소위 재단 이사장의 눈치를 본 것이리라.
 

▲ 지난 2010년 2월 중앙대 학생들이 교지 <중앙문화>, <녹지>에 대한 학교의 예산 전액 삭감 방침에 항의하며 '대학 언론 장례식'을 열고 있는 모습. ⓒ프레시안(선명수)


같은 사립대라 하더라도 종교재단이고 신부가 총장인 가톨릭대까지도 총장을 비판하는 기사를 문제 삼아 주간 교수가 지난 5월 31일 신문 제작 일정을 전면 중단시켰다. 이 기사에 총장의 지도력을 비판하는 교수들의 목소리를 담았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비판하는 것은 실적 위주의 학사 행정, 교수들의 연봉 인상분 발전기금으로 강제 회수, 신임 교수 '백지 계약서' 등의 내용이었다 한다. 내용 상 도저히 교육기관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지만, 백번 양보하더라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사항이니 비판을 전달하는 것은 언론으로서 당연히 수행해야할 기능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 아닌가? 물론 주간교수는 내용이 아니라 시의성이 떨어지는 의미 없는 기획이라 막았다고 했단다. 정말?

건대에서는 <건대신문>의 등록금 관련 학생총회 무산 기사를 주간교수가 기사 가치가 떨어지니 실지 말라고 하면서 갈등을 야기하고, 건대 성폭행 사건 오보를 이유로 편집국장 해임을 통보하는 보복 조치를 했다고 한다. 사실 갈등이 겉으로 불거지는 학교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역설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대학의 언론이 주간교수의 검열 속에 대학의 홍보지로 전락하고 있을까?

대학 당국이 대학 언론을 대학 전체 구성원들의 언론이 아니라 그들의 언론이라 착각하고 있거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잘못된 인식의 결과는 대학들이 예산을 지렛대로 대학언론을 탄압하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학이 주는 예산으로 감히(?) 총장이나 재단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대학의 예산이 총장이나 재단의 사유물일까? 또 학내 언론 구독료를 자율적 납부라는 방식으로 전환한 연세대,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가 자율납부안으로 전환한 중앙대 등은 또 다른 탄압 사례다. 일반인들에게 구독료는 당연히 자율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것이라는 착시도 있을 수 있지만 원래 예산으로 집행했던 것을 구독료로 전환한 이상 구독료는 물리적으로 학보를 접할 수 없는 학생을 제외한 모든 학생이 내는 시청료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예산 삭감을 경험했던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는 당시 인쇄 재원을 위해 1인 광고라는 방식을 동원했다고 한다. 1974년 동아일보에서 정권이 중정을 앞세워 광고 탄압한 것에 대응해서 국민들이 광고 투쟁을 벌였던 광경이 재연됐다.

예산을 빌미로 간섭하고 탄압하는 학교 당국에 대응해서 자치 언론들이 등장하고 있다. 학교의 예산을 쓰지 않고 기업광고비로 발행하는 연세대의 <연세통>, 해임된 기자들의 주도 아래 사비를 털어서 2000부 정도를 발행하고 있는 국민대의 <국민저널>를 비롯해 성균관대의 <고찌(고급찌라시)>, 중앙대 <잠망경>, 숙명여대 <퍼블리카>, 경북대 <복현> 등의 자치언론이 등장하고 있다. 요즘에는 각 대학의 전현직 기자들이 중지를 모아 대학언론협동조합준비위원회를 띄웠다고 한다. 협동조합법 통과 이후 새로운 활로를 찾은 셈이다.

이들 자치 언론의 존재와 시도는 값지지만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대학 언론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이런 활로는 대학언론은 누구를 위한 언론인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피해가기 때문이다. 대학 언론이 대학의 홍보매체가 아님은 물론이며, 언론에 관심 있는 학생들의 자치 활동이 아니라 대학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언론'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대학 언론은 대학 구성원이 마련한 재원에서 그 예산이 집행되어야 정당하며, 그 운영에서는 언론이 갖춰야 할 기본 요건인 독립성을 전제로 한다. 그 기사의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사전 검열이나 통제가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대학 언론은 대학 구성원 전체의 목소리를 담아야 하며 대학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자성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존재 이유다. 특정인에 대한 비판이 불허되는, 즉 성역을 인정하는 행위란 사실상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 행위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민주주의를 학습해야 하는 대학 현장에서 이런 일이 점점 더 빈번해지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나라 사학 문제와 궤를 같이 한다. 법적으로 비영리재단임에도 마치 설립자나 그 가족들 또는 특수관계인의 사유물인 양 운영되는 대학 현실과 이를 방조하는 교육 관계 당국 그리고 이런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반 사회의 오해 등이 사학의 비리나 독단을 양산하고 있다. 이런 대학의 갈등이 이를 비판하려는 언론과 갈등을 빚는 양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지금 나타나는 대학 언론의 갈등은 대학 언론인과 대학 또는 이를 대리하는 주간교수의 개인적인 갈등이 아니라 대학 모순의 발현이라는 뜻이다. 탄압받는 대학언론의 현실에서 사학 개혁의 필요성을 또 다시 발견한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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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만지고,(조)직(배)신(죽)음을 외치는 제주지사


 

 

 


제주에 살면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누군가를 비판하는 일입니다. 제주는 괸당문화라는 특이한 문화가 있어 혈연,학연,지연으로 대부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도 함부로 비판하는 것이 힘듭니다. 이웃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그 정치인과 연관된 경우가 흔하기 때문입니다.

제주 산골에 살면서 정치블로거로 매일매일 글을 쓰는 아이엠피터에게 평생 가야 만날 일 없는 제주지사 얘기는 그다지 쓰고 싶지 않은 글입니다. 써봐야 좋은 일은커녕 지역 출신 지사를 비판했다고 읍내 사람들에게 욕먹기 십상인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이엠피터는 오늘 우근민 제주지사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유는 글을 다 읽으시면 이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 조직을 배신하면 죽음을 외치는 제주지사'

우근민 도지사와 제주 고위 공무원들이 참석하는 회식 자리에서 외치는 건배 구호가 있습니다. 바로 '조배죽'입니다. 조직을 배신하면 죽음이라는 말의 약칭인 조배죽 구호가 제주지사가 참석한 회식 자리에서도 공공연하게 불린다고 합니다.

 

 

 



단순히 조배죽이라는 건배 구호만 외친 것이 아닙니다. 우근민 도지사가 잔을 들고 '(조)직을 (배)신하면 (죽)음이다'를 외치면,그 자리에 참석한 제주도 공무원들은 "네 ! 형님'으로 화답해야 한다고 합니다. 무슨 조폭이나 범죄 집단도 아니고 제주의 행정 수장이 회식자리에서 이런 구호를 외치고 술을 마신답니다.

단순히 술만 마시면서 하는 충성 강요가 아닙니다. 제이누리 양성철 발행 편집인에 따르면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당시 무소속 우근민 후보는 제주 공무원에게 원하는 보직이 있으면 쓰고 자신의 선거운동을 도우라고 했답니다. 그 명령을 거부한 공무원은 우 지사가 당선되자 변변한 보직을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근민 지사의 조배죽 건배 구호를 보면 마치 제주도를 나와바리로 공무원은 충성을 맹세하는 부하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는 대목입니다.

' 7대 자연경관 경제효과 1조2천억은 어디로?'

우근민 제주지사는 5번이나(27대28대,32대,33대,36대) 도지사를 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제주를 발전시킨 인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적인 지표를 보면 그리 대단한 성과는 아닙니다.

2010년 당시 우근민 후보의 공약은 대부분 경제 공약에 집중됐습니다. 3년째 도정을 살펴보면 일자리가 크게 향상되지는 못했습니다. 제주 근로자 17만명 중 일용직이 3만명이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21.2%로 (전체 평균 10.3%) 여전히 실업 문제에 취약한 편입니다.
 

 

 

 


수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고 외쳤지만, 수출 실적은 4억6001만달러, 그마저도 롯데,신라 면세점의 판매실적이 2억600만달러로 56.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면세점의 매출액이 아무리 늘어나도 실제로 제주 경제에는 이익이 별로 없습니다.

제주의 재정자립도는 현재 30%로 전국 17개 시도 중 11위입니다. 지난해보다는 상승했지만, 그 이유는 단순히 리스차량 등록지 때문입니다.

제주 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제주도민의 경제적 행복지수를 보면 40.2점으로 하위권입니다. 교통,문화,복지, 교육, 예산 정책이 낮은데도 인구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주 정책 때문이 아니라 육지에서 제주로 이주해오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제주도의 귀촌,귀농 정책은 전국에서 가장 미흡한 상황입니다.

 

 

 


우근민 지사는 제주도가 세계7대자연경관에 선정되면 1조2천억원의 경제효과가 나온다고 주장하며,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에 제주 공무원은 물론이고 제주도민을 총동원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말했던 1조2천억원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외국인 관광객 200만명 시대로 제주도민이 엄청 경제적이 혜택을 볼 것처럼 말하지만, 제주에 외국인 관광객, 특히 중국 관광객이 와서 득을 보는 사람은 제주도민이 아니라 대형 리조트를 보유하고 있는 재벌입니다. 제주도민이 운영하는 소규모 숙박업소나 관광 수입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근민 지사는 경제를 발전하기 위해 재벌과 중국인 기업에 온갖 혜택을 주지만, 실제로 제주도민에게는 아무런 효과도 나오지 않고, 오히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만 파괴되는 현상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주를 비판하는 기자는 간첩, 성희롱은 정치공작'

요새 우근민 지사의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제주도민의 아픔이 서린 제주 4.3과 관련한 '폭도' 발언은 물론이고,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싼 강정마을 문제 때문에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 유치가 실패했다는 발언까지, 아주 작정하고 막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제주도가 철거를 강행하여 문제가 됐던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에 관해서는 철거를 반대했던 문화단체와 도의회,언론,시민들을 폄훼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발언에 대한 사과를 하기는커녕 보도한 기자를 향해 말도 안 되는 비난을 했다는 점입니다.

 

 

 


 

우근민 지사는 '카사 델 아구아 철거 반대 운동 폄훼 발언 논란'을 보도한 '미디어 제주'의 보도가 제주도의회 도정질문에서 문제가 되자 부인했습니다. 그러다 '미디어 제주'가 녹취록을 공개하자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가리켜 '그게 간첩이지 기자냐'라는 터무니없는 간첩누명을 씌웁니다.

거짓말을 하다가 그것이 들통이 나자 기자를 간첩으로 몰아세운 우근민 지사의 뻔뻔함은 처음이 아닙니다.
 

 

▲2002년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성추행 사건 피해자가 직접 녹음한 녹취록 공개 모습. 출처:연합뉴스

 

 

우근민 제주지사는 2002년 1월 제주도청 집무실에서 여성직능단체장을 면담하며 가슴을 만지는 등의 성추행을 했습니다. 당시 우근민 지사는 성추행은 거짓이고, 자신을 향한 정치적 음해공작이라고 주장하며 행정소송과 항소 등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대법원 2006. 12. 21. 선고 2005두13414 판결 【남녀차별개선위원회결정내지재결취소】

참가인이(피해자) 2002. 1. 25. 15:10경 제주도지사 집무실을 방문하여 원고(우근민)와 면담을 하면서 직사각형 형태의 회의용 테이블에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원고의 왼쪽에 90° 각도로 앉아 서로 대화를 나누던 중 원고가 참가인의 오른쪽 옆으로 다가와 왼손으로는 참가인의 목 뒷부분을, 오른손으로는 어깨를 잡은 후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 참가인의 왼쪽 가슴을 만졌고 참가인은 원고의 오른손을 잡아 뿌리친 사실을 인정하였다.


대낮에 도청집무실에 온 여성단체장의 가슴을 만진 성추행범으로 성범죄 사례집에 나오는 인물이 제주특별자치도의 도지사입니다.

'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 벌써 선거운동'

요새 우근민 제주지사가 굉장히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읍면동 행사는 물론이고 동네 부녀회 행사까지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여기에 제주 시내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특강을 하기도 합니다.

우근민 지사가 이처럼 제주 전역을 돌아다니는 이유는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 때문입니다.
 

 

 


시사IN이 조사한 내년 지방선거 가상 여론조사를 보면 우근민 제주지사가 3위로 현직 광역단체장들 중에서 유일하게 꼴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래 현직 광역단체장이 유리한 지방선거에서 오히려 우근민 지사는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근민 지사는 지금부터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선거를 준비하느라 제주 전역을 다니는 우근민 지사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막말을 왜 계속 쏟아내고 있을까요? 그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민주당과 우근민 지사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2010년 민주당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우근민. 출처:오마이뉴스 장태욱

 


우근민 지사는 원래 민주당 소속이었습니다. 그러다 성희롱 사건으로 탈당했다가 사과문 제출과 대국민사과를 약속해 겨우 민주당에 복당됐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성희롱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마녀 사냥'을 운운하다 2010년 민주당 제주지사 후보 공천에 탈락합니다.

민주당 공천에 떨어지고 무소속으로 출마 제주지사에 당선됐던 우근민 지사는 도정 실패로 민주당 고희범 도당위원장의 지지율이 오르자 야권을 포기하고 보수성향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제주 4.3 폭도 관련 발언이나 강정마을 주민과의 갈등 발언은 지난 대선에서 크게 확장된 제주 지역 내 보수표를 의식한 고도의 정치적인 발언입니다. 아마 앞으로 보수 단체와 새누리당과의 조율을 통해 제주 지역 내 보수 후보로 내년 지방선거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제주 남주고에서 특강을 하는 우근민 지사. 출처:제주의 소리

 


제주 산골에 살면서 제주에 관한 얘기는 중앙 정치 관련 글보다 더 압박이 심합니다. 그것은 제주 괸당문화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좁은 시골에서 누가 누군지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이엠피터가 사는 읍 출신 지사를 비판하는 일은 껄끄러운 일 중의 하나입니다.

상대후보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로 지사직을 상실했던 선거법 위반자,
대낮에 도청집무실에서 여성의 가슴을 만졌던 성추행범,
세계7대자연경관이라는 대국민 사기극으로 도민의 피 같은 돈을 거둬들인 제주지사,
재벌과 중국인을 위해 제주의 자연을 훼손하는 환경파괴범


이런 인물이 5번이나 제주 지사를 하고 있으며, 고등학교에 가서 특강을 하고, 아이들은 이런 인물을 본받겠다고 합니다. 아이엠피터가 불편함(?)을 감수하고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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