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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에 대항 못하는 썩어빠진 진보 지식인들"

여전히 '현역'인 한국 현대사 연구의 상징 서중석 교수 '고별 강연'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6-10 오후 9:01:13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서중석 교수가 6.10항쟁 26주년인 10일,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6층 첨단강의실)에서 고별 강연을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현역이었다.

"나는 달라진 게 없는데 고별 강연을 하라고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축하한다'고 하니까, 내가 떠나야 할 것 같고 슬퍼져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 것 같은데."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는 지금도 현역이고, 고별 강연이 끝나도 현역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서 교수는 한국 현대사 연구의 상징적 존재다. 서 교수 본인이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 한가운데에 있었다. 서울대 국사학과 67학번인 서 교수는 1968년 6·8 부정 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박정희 정권에 맞서 유신 반대 투쟁을 벌이던 그는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휘말려 옥살이를 하는 등 모진 세월을 겪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 지리, 국어를 좋아했다. 유별나게 역사를 좋아해서 앞으로 역사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왜 현대사를 하게 됐느냐?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끝나고 대학 시험 면접을 보러갔을 때 읽은 책이 에드먼드 윌슨의 <근대 혁명 사상사>(원제는 To the Finland Station, <핀란드역으로>)였다. 거기에서 구체적인 힌트를 얻었다. 면접을 볼 때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고, 행동과 공부하는 것이 같이 가야 한다고 말할 때 (역사 연구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것 같다.

그러면서 학생운동에도 깊이 관여하게 되는데, 유홍준(전 문화재청장)을 대학교 3학년 올라오면서 끌어들였다고 생각을 하고, 유인태(현 민주당 국회의원)도 그때 친해지기 시작했다. (…) 그때도 나는 나중에 교수 해먹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웃음) 유홍준도 (시위) 주동자 중 한 명인데, 유홍준은 당하지 않고 내가 당했다.(웃음) (…) 군대 말년에 유격 훈련을 했는데, 거기에서 유신헌법 전문을 보게 됐다. 유격 훈련 안 받고, 병장이니까 도망갔는데, 숨어서 하루 종일 읽고 또 읽었다. '정변이 일어나도 크게 일어났구나' 했다. 제대하고 복학했다. (유신 반대 운동을) 유인태와 작당했다. 그게 민청학련 사건이라고 하더라."


그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고문을 받고 수감됐다. 학교 역시 수차례 제적됐다 복교하기를 반복했다. 30대 중반이던 1984년 겨우 대학을 졸업했다. 또한 1979년부터 9년간 <신동아> 기자로 수많은 르포르타주를 썼다. 학문을 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금기이던 시대, 서 교수의 지행합일 정신은 빛을 발하게 된다. 그는 현대사 연구를 개척한 인물로 학계에 우뚝 서 있다. 진보적 역사 전문 계간지인 <역사비평> 초대 주간을 맡았다(관련 기사 : "박근혜는 유신의 허깨비가 결코 아니었다"). 수많은 책을 써 냈다. 그는 "역사를 대중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는 것이 숙제"라고 젊은 역사학자들에게 당부했다.

지난 2010년, 서 교수는 뜨거웠던 1987년을 다룬 <6월항쟁>을 펴냈다. 환갑을 넘긴 그가 젊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 그것은 사회의 주류가 된 이른바 '486 세대'에게 아직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6월항쟁이었던 셈이다. 6월항쟁의 주역과 그 목격자들이 세상을 이끌어가는데, 왜 지금 역사 왜곡이 넘쳐나는가. 노(老)교수는 고별 강연을 통해 맹렬히 질문을 던졌다. 민주항쟁 26주년을 맞은 날, 67학번 서 교수는 말 그대로 여전히 "현역"이었다.
 

▲ 서중석 교수(자료 사진) ⓒ프레시안(최형락)


노교수의 질타 "진보 세력, 왜 역사 왜곡에 제대로 대응 못하나"

서 교수는 "요새 참 험난한 세상을 살고 있구나,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세상을 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며 최근 있었던 <동아일보> 자회사 <채널 A>, <조선일보> 자회사 <TV조선> 등이 보도한 5.18 역사 왜곡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서 교수는 "방송이라는 것은 책임 있는 곳 아닌가. 그런데 600명의 북에서 온 특공대가 광주 전남도청을 점령했다? 참 신기하다. 달나라를 점령했다는 것보다 더 신기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한국현대사학회 인사들이 참여한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 심의를 통과한 데 대해서도 "뉴라이트 관련자들의 (교과서 관련) 학술 대회지원신문사가 '남로당식 사관을 중학생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지금 중학생 역사 교과서가 남로당식 사관으로 쓰여 있다'고 하더라. 기존 교과서 집필자 90%가 좌파라니, 이것을 인간의 목소리로 할 수 있는 데 대해 놀랐다. 이런 시기까지 내가 사는구나 했다"고 성토했다.

서 교수는 이 같은 일이 2004년 뉴라이트의 탄생을 전후로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4년 전에 친일파 옹호론자들은 '일제 시기에 밥은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한 것'이라고 '애소(哀訴)조'로 얘기를 하거나 '당시 나뿐 아니라 다 협력하고 그랬잖나'라며 3000만을 친일파로 만들었다면, 2004년의 (뉴라이트) 논리는 다르다. 대놓고 '친일파가 우리 사회를 만든 주인공'이라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인간의 의식을 180도 뒤바꾸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서 교수는 "이명박 정부 시절 건국절 논란도 충격적이었다. 정말 역사 교사들 힘겹게 살더라. 그러더니 또 한 정부가 들어서니까 바로 이런 일(교과서 왜곡 등)이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정부를 이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역사 왜곡"이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이른바 "진보 진영의 무능"을 비판했다.

"내가 분노하고 비통한 것은 (냉전 세력의 역사 왜곡) 그것 때문만이 아니다. 진보 세력 때문에 그랬다. 진보 세력이라는 자들이 이런 (뉴라이트 등의) 논리에 대응 한 번 제대로 했느냐. 1995년, 세 개의 (보수) 신문이 일제히 이승만 재평가를 연재할 때 <역사비평>에서는 네 차례 굵직하게 그 문제를 다뤘으나…(별일 아닌 듯 넘어갔다.) 2003년, 2004년 소위 (뉴라이트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나왔을 때 수구 언론은 요란한데 거기에 대해 (진보 진영은) 과연 어떤 태도를 보였나?

2008년 건국절 논란 때에는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전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자유와 혁명의 역사, 이상과 희망의 역사를 뒤집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을 나쁘게 쓰고 친일파를 살리기 위해 광복을 건국절로 포장을 한 것인데, (진보 진영은) 대항 한 번 못했다. 이런 썩어빠진 지식인들이 진보적 지식인들인가. 노인네들이 훈장 반납하고 그렇게 싸우지 않았다면 정말 (8.15가) 건국절이 될 뻔했다. (…) 나는 (…) 진실과 사실이 교육되고 밝혀지면 한국 사회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이상한 낙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노(老)교수의 고민은 계속됐다. 그는 "6월항쟁, 광채 나는 투쟁을 겪으면서 우리가 자유를 쟁취하고, 민주주의의 큰 대로를 열어놓았다. 그런 대로에서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신군부 정권에 붙어먹던 사람도 많은 반성을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 수구 냉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거 안 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어 "진보 세력이 1980년대 수구 냉전 세력을 몰아붙였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논리는 도식적으로 적당히 배운 것이었을 뿐이고, (젊은 사람들이) 그 이상 공부를 안 하더라. 그러니 수구 냉전 세력이 그렇게 나와도 대응을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정말 현대사가 중요한 때가 됐다. 나도 쉬고 싶다. 고별 강연이라고, 강연 제목을 줬으니 사라져야 할 것"이라며 "후배분들, 좀 잘 싸우자. 좋은 논문 쓰자.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근현대사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크고 많다"고 당부했다.

이날 고별 강연에는 많은 청중이 모여들었다. 강의실에 빈자리가 없었고, 자리를 얻지 못한 50여 명은 선 채로 서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서 교수의 '동지'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유인태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의원, 학계 후배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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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항쟁 기념일에 펼쳐진 공권력의 야만성... 왜?

 

[주장] 6·10 기념일, '야만의 승냥이'를 봤다... 즉각 복구하라

13.06.10 21:28l최종 업데이트 13.06.10 21:28l
이창근(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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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들 대한문앞 '알박기' 쌍용차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 합동분향소 임시천막을 10일 오전 서울 중구청(구청장 최창식) 직원 50여명이 강제철거했으며, 이 과정에서 김정우 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등 6명이 경찰에 강제연행되었다. 합동분향소 철거 직후 경찰병력이 시위에 대비해 대한문앞을 광장을 차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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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할 수도 있다.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달력을 보니 그저 6월 10일이었을 뿐. '어떤 계획도 없었다'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경찰과 각 구청은 작정이라도 한 듯 6·10항쟁 기념일인 오늘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와 재능교육 환구단 농성장 그리고 양재동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농성장을 동시에 철거했다. 우연치곤 발에 밟힐 정도로 갓끈이 길다. 이들은 왜 6·10항쟁 기념일인 오늘 농성장을 철거했을까.

오늘 오전 9시 20께 중구청과 남대문 경찰서는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에 대한 강제철거를 시작했다. 압도적 병력과 중구청 직원을 앞세워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작전을 폈다. 대한문 분향소는 쌍용차 회계조작으로 발생한 정리해고로 숨진 24명의 노동자와 가족을 위로하고 쌍용차 국정조사와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해 4월 5일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숱한 철거와 탄압에도 끝끝내 비닐 천막 하나로 버텨왔던 공간이다. 쌍용차 정리해고 과정에서 경찰이 보여준 공권력의 야만성을 우리는 오늘 또다시 '살 떨리게' 경험했다.

중구청은 계고장 제시도 없이 막무가내로 모든 집기를 쓰레기차에 실어갔고, 경찰은 저항하는 노동자와 연대 시민들을 폭력과 겁박으로 짓눌렀다. 결국 오전 10시께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외 5명이 연행됐다. 경찰이 공무집행을 한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력적인 언행과 강압적으로 밀어부쳤다. 남녀노소는 물론 시민과 노동자 성직자와 신자의 구분은 경찰에게는 없었다.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주변은 지난 5월 남대문 경찰서장이 '옥외집회금지구역'으로 통보한 바 있다. 금지구역 통보가 비록 집시법에 근거한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같은 이유로 집회 금지를 이미 한 바가 있다. 당시 우리는 집회금지 자체가 경찰의 지나친 월권이며 집회 및 시위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위협한다는 취지로 집회금지 취소 가처분 신청으로 맞섰다.

서울 중구청·경찰, 법원 판단은 신경 안 쓰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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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앰프 반입 결사 저지하는 경찰들 쌍용차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 합동분향소 임시천막을 10일 오전 서울 중구청(구청장 최창식) 직원 50여명이 강제철거했으며, 이 과정에서 김정우 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등 6명이 경찰에 강제연행되었다. 합동분향소 철거 직후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앰프를 가져오자 경찰들이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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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서울행정법원은 우리들 손을 들어줬다. 경찰이 주장하는 통행권과 소음 등의 문제를 들어 집회 자체를 불허할 수 없다는 요지의 판결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올바르게 해석한 판결'이라고 받아들였다. 이미 한 차례 법원의 판결이 있는 사안에 대해 다시 경찰은 지난 오월 '옥외집회금지구역'으로 통보하며 우리들의 집회 및 시위 자체를 옭아매려 들었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집회금지구역 통보 취소 가처분 신청을 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중구청과 경찰은 현재 법원이 판결을 앞둔 사안에 대해 앞질러 공권력과 행정력을 발동한 것이다.

이는 법원의 판단이 어떻게 나든 상관 하지 않겠다는, 그야말로 안하무인격 공권력 집행이 아닐 수 없다. 중구청과 경찰이 서둘러 분향소 강제철거를 한 배경엔 법원 판결을 앞둔 것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강제 철거 후 경찰의 대응은 참으로 어처구니없었다. 대한문 일대에 바둑알 박 듯 경찰을 세워 '알 박기'를 했다. 이런 경찰의 행태는 그동안 우리를 향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던 시민의 통행권을 스스로 침해한 중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의 자의적 판단과 결정으로 대한문 일대는 경찰들로 가득 찬 상황이 전개됐다. 우리는 강제철거를 규탄하고 이후 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오전 11시에 열기로 기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기자들은 오전 11시에 맞춰 취재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엔 경찰이 기자회견 자체를 할 수 없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아니, 어느 법률에 기자회견이 경찰의 허가 사항이란 말인가. 특히 경찰은 자신들이 지정한 장소로 이동해 기자회견을 할 것을 주장했으나 이 또한 명백한 오지랖이며 위법이다. 기자회견 장소를 경찰 임의대로 특정할 수 없는 것은 경찰도 알고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막무가내로 기자회견을 가로막았다. 기자회견 참석차 자리에 함께한 팔순이 넘은 백기완 선생은 유월의 따가운 땡볕 아래서 1시간 넘게 있었다. 백 선생은 치욕 아닌 치욕을 경찰로부터 입은 셈이다.

기자회견과 같은 표현의 자유는 '명확성의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는 사안이다. 임의로 현장에서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늘 대한문에서의 경찰의 이 같은 불법 무법으로 기자회견은 1시간을 넘긴 이후에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대한문만 철거당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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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차 합동분향소 또 강제 철거 쌍용차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 합동분향소 임시천막을 10일 오전 서울 중구청(구청장 최창식) 직원 50여명이 강제철거했으며, 이 과정에서 김정우 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등 6명이 경찰에 강제연행되었다. 철거 직후 한 쌍용차 노동자가 대한문앞에 배치된 경찰들을 바라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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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무슨 근거와 조항으로 기자회견을 막았는가. 또한 법원에서 '옥외집회금지구역' 문제로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과 구청은 뭐가 그리 조급해서 강제철거라는 무리수를 뒀는가.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만 오늘 철거당한 게 아니다. 시청 맞은편에서 내일(11일)이면 2000일을 맞는 재능교육 환구단 농성장 또한 깨끗하게 쓸려나갔다. 또한 양재동에서 은박지 한 장 깔고 대법원 판결 이행 촉구를 외치는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농성장도 동시에 쓸려 나갔다. 우연치고는 이상하지 않은가. 굳이 한 날 한 시에 농성장에 대한 철거, 그것도 오늘이 6·10항쟁 기념일임에도 말이다. 혹시 정권 입장에서 6·10항쟁 기념일을 지우고 싶은 역사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심각히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우리는 이번 분향소와 농성장에 강제 철거 사태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묻겠다. 6·10항쟁 26주년인 오늘 대한민국에선 기자회견과 농성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천박한 민주주의의 발가벗은 모습을 경찰이 여실히 보여줬다. 오늘 경찰과 구청이 보여준 태도는 그야말로 벌거벗은 야만의 승냥이의 모습 그 자체였다.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재능교육 환구단 농성장, 현대차 양재동 농성장에 대해 즉각 복구할 것을 촉구한다. 농성장을 쓸어 버린다고 해 노동자 투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알지 않는가. 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이고 다시 분향소와 농성장의 깃발을 움켜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창근씨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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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을 아직 ‘혁명’으로 부를 수 없는 이유

 

6월항쟁을 아직 ‘혁명’으로 부를 수 없는 이유
 
耽讀 | 등록:2013-06-10 09:27:20 | 최종:2013-06-10 09:30:1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오늘은 6월항쟁이 일어난지 2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987년 6월 10일 대한민국 민주헌정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항쟁입니다.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간 박종철씨(서울대)가 고문으로 죽습니다. 당시 치안본부장은 박종철이 죽은 까닭을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 군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대 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표를 합니다. 시민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4월 13일 독재자 전두환은 호헌조치를 내립니다.


박종철 죽인, 전두환 '호헌'주장으로 6월 항쟁 타올라

독재자 전두환 정권은 박종철씨를 고문해 죽였다.

시민들을 불길처럼 일어났습니다. 각계와 각 지역을 대표한 2200여 명의 발기인이 참가하여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박종철살인고문'을 규탄하고, '호헌 철폐'를 요구하는 국민대회를 6월 10일 대규모로 벌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날로 잡은 이유는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제시한 행동강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후 6시 국기 하강식을 기하여 전 국민은 있는 자리에서 애국가를 제창한다. 애국가가 끝난 후 자동차는 경적을 울린다. 전국 사찰, 성당, 교회는 타종을 한다. 국민들은 형편에 따라 만세 삼창(민주헌법 쟁취 만세, 민주주의 만세, 대한민국 만세)을 하거나 제자리에서 1분간 묵념을 하며 민주주의 쟁취의 결의를 다진다▲경찰이 폭력으로 대회 진행을 막는 경우 전국민은 비폭력으로 이에 저항한다. 연행을 거부한다. 연행되면 일체의 묵비권을 행사한다.▲전국민은 오후 9시부터 10분간 소등을 하고 KBS, MBC 뉴스 시청을 거부함으로써 국민적 합의를 깬 민정당의 6.10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 항의한다.▲6.10 국민대회는 철저하게 평화적으로 참여해 주시기를 바라며 폭력을 사용하거나 기물 파손 등을 자행하는 사람은 국민대회를 오도하려는 외부세력으로 규정한다 따위였습니다.

6.10국민대회는 서울 부산 대구 공주 인천 대전 등 대도시를 비롯하여 전국 22개 지역에서 24만 여명이 참여했습니다. 경찰은 강경진압했고, 시위는 격화되었습니다. 시청 한 곳, 파출소 열 다섯 곳, 민정당 지구당사 두 곳 등이 파손되었습니다. 전국에서 3831명을 연행됐습니다. 저녁 명동성당에서는 8백여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농성 투쟁을 했습니다. 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격려 편지가 이어졌습니다.

"민주발전을 위해 써 주십시오. 고등학생이라 아무 것도 드릴게 없어요. 지갑을 털어 작은 정성을 보냅니다."

6월 10일 학생과 시민 800여명은 명동성당에서 농성투쟁에 들어갔습니다.

● 민주발전을 위해 써 주십시오. 고등학생이라 아무 것도 드릴게 없어요. 지갑을 털어 작은 정성을 보냅니다.
●시대의 아픔과 고뇌를 함께 하는 데서 항상 여러분에게 못 미쳤던 평범한 샐러리맨 69명과 식당 주인 아저씨로부터
●나의 형제 자매들에게. 몸은 함께 하지 못하나 마음만은 당신들과 함께 합니다. 당신과 같이 피를 흘리지 못하나 눈물만은 함께 흘립니다.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나는 자신있게 대답합니다. 당신들은 진정 우리의 '희망'이라고.
●장한 일 하십니다. 힘과 용기를 가지십시오. 시민 일동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학생들의 애국적인 투쟁에 따른 희생을 모르는 척 하고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몹시 부끄럽고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은 괴로움이 자꾸 치밀어 올라와 어느 모퉁이에서 간절히 동참하고 있는 마음 약한 40대 중반의 못난 선배를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부탁이 있소. 폭력은 금물이오. 국민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오. 또 법의 가면을 쓴 폭력이 정당화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오. 정부당국의 발표를 보면 80년 5.17때의 섬뜩한 생각이 들기도 하오. 이번만은 절대로 그러한 우를 범해서 반역자들에게 빌미를 주지 맙시다. 말없이 지켜보는 많은 국민은 애국적인 학생들을 지지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부디 건강을 비오.

6월 항쟁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은 이한열 열사 죽음입니다. 이한열 열사는 9일 다음날 열릴 예정인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연세대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후의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 숨졌습니다. 22살때입니다. 전경이 시위진압 도중 시위대를 겨냥해서 최루탄 SY44를 총처럼 수평으로 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이 머리에 맞은 사건입니다.

이한열 열사가 87년 6월 시위도중 최루탄을 맞아 쓰러지던 모습

그리고 또 다른 사진 한 장입니다.

부산 87.6.26평화대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 문현로타리에 집결한 시민, 학생들로 이루어진 시위대에게 경찰이 다탄두 최루탄을 발사하며 대회 참가를 저지하자 한 시민이 웃통을 벗어 젖힌채 “최루탄을 쏘지마라”며 경찰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1987.6.26

이들 때문 오늘 우리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6·10 민주항쟁을 '혁명'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구세력이 5.18민중항쟁을 '폭동', '북한군개입설'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6·10 항쟁 26주년을 맞아 7일 평화방송 라디오 <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 > 에 출연해 5·18 왜곡 문제에 대해 "저는 그 문제를 보면서 이것은 인간들이 하는 짓이 아니고, 매국적인 행동이 아닌가 이런 걸 느꼈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했습니다. 그는 또 6·10 항쟁의 의의 뿐 아니라 기억조차 희미해져가는 데 대해 "아쉽기도 하고, 26년쯤 되니까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며 "살다보면 남의 일 다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면 참 옛날인 것 같지만 전 엊그제 같다"며 6월항쟁이 잊혀져 가는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노무현 "수구세력, 개혁 끊임없이 반대"…민주시민 6월항쟁 되새겨야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이 6월항쟁 기념식때 한 말이 생각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6월 10일 '6·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사에서 "지난날의 기득권 세력들은 수구언론과 결탁하여 끊임없이 개혁을 반대하고,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면서 "심지어는 국민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은 민주정부를 친북 좌파정권으로 매도하고,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음으로써 지난날의 안보독재와 부패세력의 본색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며 수구세력을 비판했습니다. 6년전 그 예언이 정확했음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2007년 6월항쟁 20주년 기념사하는 노무현 대통령

87년의 패배, 90년 3당 합당은 우리 민주세력에게 참으로 뼈아픈 상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역주의와 기회주의 때문에 우리는 정권교체의 기회를 놓쳐버렸고, 수구세력이 다시 일어날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상실은 군사독재와 결탁했던 수구언론이 오늘 그들 세력을 대변하는 막강한 권력으로 다시 등장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한 것입니다. 분열과 기회주의가 6월항쟁의 승리를 절반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제 민주시민들은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더 멈출 없습니다. 저항해야 합니다. 6월항쟁을 기억하고, 되살려내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다시 싸워야 합니다. 6월항쟁이 아직 '혁명'이 아닌 이유는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종결이 없습니다. 우리가 끝없이 싸우고 투쟁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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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떨어져 가는데 쌀을 나눠달라고 하면...

쌀이 떨어져 가는데 쌀을 나눠달라고 하면...

 
서영남 2013. 06. 09
조회수 148추천수 0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받아 먹어라.
이것이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CNBLUE 월드투어 서울공연에서 받은 쌀화환을 "저스트 정용화님"이 900Kg이나 민들레국수집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이 쌀로 밥을 해서 먹고 힘을 내어 살아갈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축소민들레쌀.jpg
 
2003년 만우절에 민들레국수집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쌀 살 돈이 없어서 국수를 삶았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이 국수를 두세 그릇이나 드시고도 '밥 없어요?' 물어봅니다.
 
그래서 밥을 했습니다. 쌀이 떨어지는 것이 너무 아슬아슬해서 쌀독을 도자기로 바꿨습니다. 뚜껑을 열기 전에는 쌀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좋았습니다.
 
멀리서 쌀 한 포대 어깨에 메고 오시는 분이 제일 반가웠습니다.
 
2005년에 KBS TV "인간극장"에 민들레국수집 이야기가 방영되면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토록 간을 쫄게 했던 귀한 쌀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택배로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드시고도 남아서 어떻게 하면 좋은 분들이 보내주신 귀한 쌀을 잘 나눠먹을 수 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과 나눴습니다.
 
쌀이 있으면 바라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부르다는 분들과 참 많이도 나눴습니다. 얼마 전에 얼마나 나눴는지 대강 셈을 해 봤습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손님들이 충분히 밥을 드시고도 여유가 되는 쌀을 20킬로로 5,800 포 정도 나눴습니다. 고맙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나 먹고도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는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보통 3월에서 5월 사이에 민들레국수집은 쌀이 아슬아슬합니다. 할머니들께서 국수집에 쌀을 가지러 오시면 가슴을 졸이며 갈등을 하다가 할머니께 쌀을 드리곤 합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이층에서 쌀을 내려온 봉사자께서 쌀이 일곱 포 남았다고 알려줬습니다. 일곱 포면 하루 정도 버틸 수 있는 양입니다. 그런데 쌀이 떨어졌다면서 옥점할머니가 오셨습니다. 망설이다가 쌀을 한 포 나눠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CNBLUE 정용화님의 팬이라는 분입니다. 혹시 민들레국수집에서 쌀도 받아주는지 물어봅니다. 세상에! 얼마나 반가운 전화인지요! 20킬로 포장으로 45포가 국수집에 도착했습니다.
 
이런 일을 자주 겪으면서도 쌀이 아슬아슬 할 때 쌀을 나눠달라는 분이 오면 갈등을 하는 제가 한심스럽습니다. 그러면서 고맙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복 많이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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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만세운동,6.10항쟁을 막은 자들의 공통점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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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3/06/10 09:35
  • 수정일
    2013/06/10 09:3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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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이면 나오는 사진이 있습니다. 바로 연세대 이한열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모습입니다. 이한열은 1987년 6월 10일 열릴 '고문살인 은폐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연세대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후의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 사망했습니다.

이한열의 죽음은 6.10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고, 나아가 6.29 선언을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매년 6월이 되면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사진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6,10 항쟁은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1926년 6,10 만세운동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2013년 6월 10일에 1926년과 1987년의 6월 10일 그날의 사건을 재조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6.10 만세운동을 조선총독부처럼 규정했던 역대 정권들'

1926년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의 장례식을 기해 전국적인 항일운동이 전개됩니다. 순종의 상여가 통과하는 종로를 시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만세를 부르고, 격문을 살포해, 순종의 인산에 참여한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6.10 만세운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3.1 운동 이후에 침체했던 항일 투쟁의 불길이 다시 오르게 됐던 계기가 됐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을 의식해 이날 일본은 경찰은 물론이고 7천명의 육해군을 총동원해 6.10 만세운동을 막았고, 시위 참가자 5천명을 연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160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일본 경찰이 만세 시위를 벌이려는 군중을 진압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강력한 진압을 통해 6.10 만세운동이 일제강점기에 얼마나 중요한 대규모 항일투쟁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역사에서 6.10 만세운동은 그리 크게 주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6.10 만세운동에 조선 공산당이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1926년 조선공산당은 노동자의 날에 맞추어 대규모 투쟁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4월 25일 순종이 사망합니다. 조선공산당은 순종의 장례식인 6월 10일에 많은 군중이 모일 것을 예상, 이날 전국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려고 계획을 수정합니다. 조선공산당은 '6.10운동 투쟁지도특별위원회'(총책임자 권오설)를 조직하여 5만장의 격문을 인쇄하는 등 치밀한 계획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됩니다.

조선공산당 지도부의 대규모 검거에도 천도교와 학생들의 참여로 산발적이지만 인천,순창,병영,통영,원산,개성,홍성,전주,신천,평양,마산,공주,하동,당진,강경,구례 등에서 시위가 벌어졌으며, 전국적으로 일제에 대한 투쟁의 불길이 다시 오르게 된 사건이 6.10 만세운동입니다.

 

 

▲ 순종의 상여를 들고 가는 군중을 일본 경찰이 지키고 서 있는 모습.

 


이처럼 6.10 만세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대규모 항일 투쟁 중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였지만, 당시 지도부가 조선공산당이라는 이유만으로 반공을 주장하던 역대 정권에서 폄하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6.10 만세운동이 천도교와 같은 민족세력, 조선학생과학연구회와 같은 학생 조직이 어울려 비록 각자가 가진 사상은 달랐지만, 힘을 합쳐 반일민족운동을 전개하려 했다는 부분입니다.

 

<6.10 만세운동 격문에 나온 구호들>

대한독립운동자여 단결하라!
일체 납세를 거부하자!
일본물자를 배척하자!
조선인 관리는 일체 퇴직하라!
일본인 공장의 직공은 총파업하라!
일본인 지주에게 소작료를 바치지 말라!
일본인 교원에게 배우지 말자!
일본인 상인과의 관계를 단절하자!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군대와 헌병을 철거하라!
재옥 혁명수를 석방하라!
보통교육은 의무교육으로!
교육용어는 조선어로!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철폐하라!
일본 이민제를 철폐하라!



6.10 만세운동 당시 격문이나 구호를 보면 노동,교육,민족,자유 등 다양한 주장이 전개됐습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6.10 만세운동을 가리켜 '학생들이 잘못된 사상에 물들어 감정적으로 나온 불미스런 사건'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여기에 역대 정권은 그날 사전에 발각돼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조선공산당을 아예 배제하고, 학생운동만을 강조했습니다.

6.10 만세운동은 조선공산당뿐만 아니라, 임시정부, 병인의용대,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연결하여 목적의식을 갖고 추진했던 항일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사회주의,민족주의 세력이 결합하여 신간회가 조직돼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와 청소년,여성의 평등 등의 다양한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중요한 사건을 과거 군사,독재 정권은 공산당이 개입됐다는 이유만으로 단순히 학생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는 식으로 평가 절하했습니다. 3.1운동처럼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지 못했지만, 이는 일본의 조직적인 탄압과 회유정책에 있었다는 점을 쏙 뺐다는 사실은 조선총독부처럼 항일투쟁을 어떻게 하든 숨기려는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 6.10 항쟁보다 전두환의 영광을 내세우는 나라'

매년 6월 10일이면 언론들은 기념식이나 보여주고, 그날 참여했던 인물들이 정치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느냐만 조명합니다. 그러나 6.10 항쟁의 가장 큰 의의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많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연인원 500만 명 이상이 참여해 20일 동안 전개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었던 6.10항쟁은 군사정권에서 문민정권으로 독재에서 민주로 나아가는 한국 현대사와 정치사의 큰 분수령 중의 하나였습니다.

 

 

▲1987년 6월 10일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노태우

 


1987년 6월 10일 전국적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계획됐습니다. 이날은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선출된 날이기도 합니다. 6.10 항쟁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세력들은 전두환이 주장했던 말을 떠올리며 그를 옹호하기도 합니다.

"집권여당이 대통령 재임 중에 전당대회에서 다음 대통령 후보를 뽑았다는 사실 자체가 40년 헌정사에 처음 있는 일로서 새로운 민주전통을 세우는 굳건한 초석이 되는 것" (전두환)

집권여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다음 대통령 후보를 뽑았다는 사실 자체가 민주전통이라고 주장했던 전두환의 말이 과연 사실일까요?

전두환이 주장했던 40년 헌정사에 처음 있는 민정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투표지에는 '1 노태우'라고만 적혀 있었고, 투표용지에 붓두껍으로 찬반을 표시하는 '기표식 투표'방식이었습니다. 후보 한 명만이 나와 대통령 후보로 결정된 사실이 도대체 얼마나 민주적인 일인지 아이엠피터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 민주당과 민추협이 공동주최한 '영구집권음모규탄대회'가 열린 민추협사무실 주변에서 경찰과 시민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장면, 출처:동아일보.

 


4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예능 PD와 가수, 개그맨이 동원된 민정당 대통령 후보 전당대회는 전두환을 칭송하는 자리였지, 민주적인 정당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노태우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자신의 정책은 말도 하지 않고 오로지 "짧은 시간에 빛나는 열매를 맺게 해 우리나라와 민정당의 오늘이 있게 만드신 전두환 총재 각하에게 다 함께 영광의 박수를 보내자고"고 제의하기도 했습니다.

 

 

▲6월 항쟁 당시의 모습과 진압하는 경찰.

 


6.29 선언이 마치 국민의 민심을 받아들인 전두환의 결단처럼 방송과 언론에 나오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동참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투쟁한 결과에 불과합니다.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운운했던 전두환은 전날 젊은 청년의 머리에 최루탄을 발사했던 인물이었고, 체육관 선거를 마치 민주적인 국민의 절차와 권리라고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독재와 군사정권을 막아내려는 시민과 학생들의 열망은 폭력과 불법, 빨갱이의 선동으로 바꿔놓고서는 오로지 전두환의 영광만 잠실 체육관에 울려 퍼졌던 1987년 6월 10일이었습니다.

' 6월 10일을 막었던 자들'

광화문에서는 6월 10일 민주항쟁을 기념하며 제22회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범국민추모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날 시민단체의 행사장 건너편에는 보수대연합의 시위도 있었습니다.

 

 

▲광화문에서 열린 어버이연합 등 보수대연합의 시위.출처:민중의 소리.

 


어버이연합 등 보수 세력들은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범국민 추모제를 '남파간첩 빨치산 추모제'라고 주장하며 행사를 방해하고 참여했던 시민을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6,10 항쟁은 대한민국 정치 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저들의 주장대로라면 전두환은 남파간첩 빨치산들이 일으킨 간첩 활동에 떠밀려 6.29선언을 한 꼴이 됩니다. 앞뒤가 맞지 않은 억지 주장을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수 세력이 지지하는 대통령과 꼭 닮았습니다.

 

 

 


6.10민주항쟁 기념식은 정부 공식행사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부터 2012년 임기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직접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6월 항쟁은 반쪽의 성공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6월 항쟁의 중심이었던 시민이 사라지고 제대로된 정권교체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치,사회,문화,노동의 관점에서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가 뿌리내리는 결과를 만든 것이 6.10민주항쟁이었습니다.

6.10항쟁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외면하는 세력들에게는 역사를 통해 민주주의를 계승 발전하는 모습이 꼴보기 싫습니다. 그것은 독재 권력을 휘두르는 일에 거추장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늘 '반공'을 앞세워 민주주의를 여전히 탄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6.10민주항쟁을 정부공식 기념일로 지정하면서 "6.10의 승리는 축적된 역사의 결실입니다. 우리 국민은 오랜 동안 많은 항쟁의 역사를 축적하여 왔습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전제왕권의 학정에 맞섰던 민생.민권 투쟁,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던 수많은 민족독립 투쟁, 그리고 군사독재에 맞선 꾸준한 민주주의 투쟁들이 그것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6월 10일 만세운동과 6.10 민주항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부패한 정권, 일본 제국주의, 독재 정권을 국민의 손으로 몰아내려는 의지와 희생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버이연합 등 보수 극우 단체 회원이 범국민추모대회에 참가한 시민을 폭행하는 장면. 출처:민중의 소리.

 


6.10 만세시위의 주동인물로 검거됐던 박하균은 불온문서의 내용을 묻는 동기와 목적을 묻는 일제 재판관에게 '그것이 조선독립문서(朝鮮獨立文書)이지 어디 불온문서인가, 독립문서를 불온문서(不穩文書)라 하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1926년 6월에 일어난 6.10만세운동을 막았던 세력이 누굽니까?
바로 일본 제국주의 경찰과 군인들이었습니다.

1987년 6월에 일어난 6.10항쟁을 막았던 세력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었습니다.

수십 년전 6월 10일에 자유와 독립, 민주주의를 외쳤던 함성과 열망은 여전히 '불온 문서'와 '남파간첩 빨갱이'로 남아 있습니다. 국민이 목터져라 외쳤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짓밟는 세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습니다.

6월 10일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닙니다. 오늘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신념을 지키겠다고 외쳤던 날입니다. 이날을 꼭 지켜고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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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항쟁 토론회] 공정 국가인가, 복지 국가인가?

6·10+26,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6·10 항쟁 토론회] 공정 국가인가, 복지 국가인가?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6-10 오전 7:18:39

 

 

(사)'6월 민주 항쟁 계승 사업회'는 6·10 항쟁 26주년을 맞아 '민주화 운동의 성찰과 복지 국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민주화 운동의 반성과 과제(1부),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주의(2부)로 나뉘어 열리는 이날 토론회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프레시안>이 후원하는 행사입니다. 주최 측의 동의를 얻어 이날 토론회 발제문 두 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1. 이제 가치관과 세계관을 논하자

궁극적 가치는 무엇인가?

대통령 선거의 패배와 야당에 대한 전반적 실망, 그리고 제반 진보 정당 및 민주노총의 몰락으로 나타나듯이 한국의 진보 세력 내지 민주화 세력은 현재 총체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이 위기는 매우 근본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향했던 정신적 지향성과 가치관, 세계관, 즉 한마디로 신념 체계 그 자체가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들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가치란 가장 소중하고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고 동시에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세력이 지난 수십 년간 가장 소중하게 여겨온 가치는 독재에 대한 저항 즉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과연 민주주의가 그 자체 가장 소중한 가치이며 가장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을까?

지난 2007년 말의 대통령 선거에 즈음하여 가장 많이 이야기된 화두가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라는 말이었다. 이것처럼 두고두고 우리가 곰씹어야할 말이 없다. 이 말은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하고 높은 가치이자 더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들의 밥 즉 생계 문제를 해결하여 주는 것이며 민주주의는 그러한 가치·목표에 복무하는 수단 또는 도구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를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민주주의와 함께 금과옥조처럼 소중히 여겨져 온 또 다른 가치인 자주와 통일 역시 비슷하다. 민족 자주, 민족 통일은 식민지 경험과 남북 분단의 역사 속에서 고통받아온 우리 민족 전체에게 매우 소중한 과제였고 따라서 자주와 통일은 매우 소중한 가치, 목표이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는 의문은 곧바로 "자주가 밥 먹여주냐?", "통일이 밥 먹여주냐?"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실제 남북 대화, 남북 통일에 열심이었던 김대중 정부 치하에서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서민들의 생계는 악화되었으며 청년들의 '3포(취업, 결혼, 출산 포기)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민족 자주 차원에서 전시 작전권 환수가 결정된 노무현 정부 치하에서도 서민들의 밥 먹고 사는 문제는 더 힘들어졌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놓고 당시 진보적 식자들은 "밥 먹고 사니즘"이 민주주의와 자주, 통일, 인권 등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비아냥거렸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민주주의와 자주, 통일 등의 주체는 개인이 아닌 집단이다. 즉 민족 또는 민주 공화국으로 결집된 집단으로서의 국민이다. 이에 반해 "밥 먹고 살기 힘들어" 허우적거리는 이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생활인들, 즉 서민들 개인과 그 가족들이다. 그런데 집단으로서의 민족 또는 국민 전체에서 개인과 개성, 인격 그리고 밥 먹고 사는 생활 문제로 시선을 돌리자마자 확연하게 나타나는 사실이 있다. 즉 개인들 간의 생활 수준 격차가 매우 심하고 더구나 민주화 이후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다는 점이다.

더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과거의 386 또는 7080 세대에 비하여 요즘의 20대와 30대는 매우 개인주의적이다. 그들은 집단보다 개성을 중시하며, 정치보다는 문화에, 민주주의보다는 스펙(specification) 쌓기에 더욱 관심이 많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의 인생 가치관에는 민주주의와 자주, 통일 등은 별로 끼어들 여지가 없으며, 그들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각자 자신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 라는 개인적 관심사들로 가득 차있다.

민주주의와 자주, 평등, 통일 같은 집단주의적 가치를 소중히 여겨온 전통적인 민주화 세력 또는 진보 세력의 관점에서 보면 이와 같은 요즘 청년 세대의 개인 중시, 개성 중시는 이기주의로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과연 개인의 개성과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와 입장을 이기주의로, 개인주의로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민족과 민주 공화국은 그 자체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만약 민족과 민주 공화국의 이름으로 대다수 개인의 자유와 개성, 행복이 유린된다면, 그런 민족, 그런 민주 공화국은 거부되어야 한다. 만약 민족 자주와 통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대다수 개인들이 가난과 궁핍으로 떨어진다면 그런 민족 자주, 그런 민주주의는 거부되어 마땅하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자유야말로 민주주의와 자주, 통일보다 더 소중한 가치, 더 궁극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

개인과 개성 그리고 자유주의

그런데 자유야말로 가장 소중하고 궁극적인 가치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세계관이 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는 1987년 6·10 항쟁과 함께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199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보수, 진보 양 진영 모두의 사고방식 속에 맹렬하게 침투하였다. 더구나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의 세계관은 20~30대 청년들의 생활방식, 사고방식에도 잘 부합한 까닭에, 민주화 이후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의 담론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과 개성 그리고 자유주의 화두의 등장과 담론 지배에 대한 한국의 민주화 세력의 대응은 참으로 무기력하고 소극적이었다. 어느새 개혁적 자유주의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단어가 한국의 진보적 담론과 사상적 토론 지형을 지배하게 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그 정당들은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개혁적 자유주의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들은 민주주의와 자주, 통일 등의 가치를 개혁적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보다 상위의 가치 체계 내에 포함되는 일종의 하위 가치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듯 자유주의적 세계관과 그 담론이 민주 또는 진보 세력 내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그것에 대립해온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등 여타의 세계관들은 뒤로 밀려나게 된다. 게다가 1990년대 중후반 이래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자유주의의 현대판 버전인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 자유주의는 부동의 우월적 지위를 지난 20년간 누렸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자유주의의 세계관에는 개인과 개성은 있되 사회와 국가, 민족 등은 없다. 아니면 한참 뒷전으로 밀려난다. 극단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화신인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이 말했듯이, "사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발언까지 나온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개인의 이기성과 이기적인 행동마저 윤리적으로 권장한다. 왜냐하면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강력한 자동 기계 메커니즘이 자유 시장(free market)에는 탑재되어 있는 까닭에, 이기적 행동의 총화가 자동적으로 이타적 사회성으로 승화된다고 자유주의자들은 믿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이자 시장주의다. 자유주의의 힘이 셀수록 이기주의와 시장주의의 역할은 최대화되고, 국가와 사회, 민족 공동체와 민주 공화국의 역할은 최소화된다. 그것은 보수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이건, 아니면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이건 마찬가지이다.

사회와 민족, 국가란 없다-자본과 시장이 있을 뿐

그런데 과연 인간의 자유가, 즉 개개인의 개성과 인격의 발전이, 과연 사회 및 국가와 무관하게, 따라서 민주주의와 민족(자주, 통일의 가치를 포함한)의 발전과 무관하게 진행될 수 있을까? 더구나 자유주의가 말하듯 인간의 자유, 개성의 발전이 사회 공동체와 국가(민족)와 같은 집단성의 역할을 축소해야만 가능할까? 따라서, 민주주의와 자주, 통일 같은 기존의 진보적 가치(집단성의 가치)의 역할을 축소해야만 개성과 자유, 자아 실현과 같은 새로운 가치(개인성의 가치)의 발전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개인의 개성과 자유는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으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자유주의가 말하듯이-개인과 사회 간의 대립, 개성과 집단성의 대립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개인과 개성의 발전을 억누르는 그런 사회성, 그런 집단성이 실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개인과 타자 간의 사회적 관계는 기본적으로 '시장'의 관계, '자본'의 관계이다. 시장(market)이 사회(society)를 대체한다. 그리고 그 시장은 그냥 시장이 아닌 자본주의적 시장이고, 따라서 자본(capital)이 사회(society)를 대체한다. 마르크스는 개인은 총체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간파했는데, 그렇지만 동시에 그 총체적 사회적 관계의 정점에는 자본과 시장이, 즉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군림하고 있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골방에 처박힌 개인주의적 고립성을 떨치고 나와 '알바'를 뛰어야 하고, 어렵게 취직하더라도 야근과 특근을 밥 먹듯이 해야 겨우 먹고 사는 현실에 허덕이는 것이 오늘날 주변에서 보는 대다수 개인들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국가(민족), 개인과 집단 간의 대립을 중시하면서 사회-국가-민족-집단성보다는 개인성과 개성을, 이타성보다는 이기성을 소중하게 여긴다. 물론 보수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가 무자비한 이기성, 무자비한 시장조차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반하여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는 '합리적 이기성'과 '합리적 (자유) 시장'을 중시하는 차이는 있다. 그리고 그 합리적 시장의 내용과 실체는 '공정한 시장 질서'라는 개념으로 표현된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추상적인 일반론적 사회-국가-민족-집단성이란 픽션일 뿐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체적으로는 자본주의적 국가-민족-집단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자본주의에서, 국가(민주주의를 포함한)와 민족(민족 자주와 민족 통일을 포함한) 그리고 그 집단성 역시 그 내용과 실체에 있어 자본주의에 의해 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은 아예 민족-국가-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뉴라이트 지식인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식민지 지배를 찬양하면서 민족과 민족 경제, 민족 국가라는 관점 자체를 폐기해 버렸다. 그런데 진보적 자유주의 (그리고 그것과 잘 부합하는 사상인 포스트모던 아나키즘 역시 비슷한데) 역시 민족과 국가 따라서 민족 국가와 민족 경제라는 개념을 폐기한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자주/통일 등을 소중한 가치로 여겨온 기존의 진보적 전통과는 획을 긋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자유주의자들은 정작 자신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대다수 개개인의 개성 있고 자유로운 삶을 매일 매순간 억누르는 현실의 집단적(사회 시스템적) 실체인 자본과 시장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는다. 물론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는 재벌과 대자본을 비판한다. 그렇지만 마치 재벌이 해체 또는 축소되고 중소기업-영세 자영업이 융성하여 공정한 시장 질서가 확립되는 공정 시장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의 개성과 자유가 꽃피울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 공정 시장 자본주의가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자유와 개성을 억누르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경제적 실체이며, 그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우리는-자본주의가 아닌–자유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 경제 시스템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해온,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주의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달리 말해서 이것은, 5000만 국민들 중 대다수 개인들의 삶을 압도적 힘으로 짓누르면서 그들의 실질적 자유와 개성을 억누르는 현실적 실체로서의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대해,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적 표현으로서의 자유주의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와 자주/통일 등의 중요성을(따라서 그 가치를) 말하는 것은 대다수 개인의 힘든 생계의 관점에 볼 때 공허하게 들린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고액 등록금에 허덕이면서 최저 임금 알바 찾기와 스펙 쌓기, 취업 준비, 월세 자취방/하숙집 구하기에 끙끙 매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인하와 최저 임금 인상, 공립 기숙사 대량 신축과 같은 복지 국가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채, 5·18 정신과 6·10 항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그런 민주 항쟁 기념식은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민주화+진보 세력 전체가 처한 정신적 위기의 본질은 민주주의와 자주/통일, 평등 등의 기존 가치들을 껍데기로 만들어 형해화(形骸化)시키며 국민 개개인들의 생활과 생계를 힘들게 하는 압도적인 현실적 파워로서의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해온 다양한 형태의 자유주의 사상에 대해 침묵하거나 비판하지 않은 데 있다.

개성과 자유–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넘어서

앞서 말했듯이, 나는 민주주의와 자주/통일보다 더욱 소중하고 궁극적인 가치로 존중되어야 할 것이 인간의 자유, 개성과 자아 실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진보 세력의 가치관에서 그 동안 완전히 배제되어온 '자유'를 이제는 진보의 궁극적 가치로, 가장 핵심적인 가치로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생활인의 관점과 같다. 이제는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넘어, 대다수 국민들을 (단지 밥 먹고 사는 수준을 넘어) 잘먹고 잘사는 그런 세상, 자신의 개성과 잠재력을 마음껏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free society)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가치, 목적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주의가 내건 시장의 자유 즉 자유 시장(free market)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 즉 자유 사회(free society)가 우리의 슬로건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개인의 자유와 개성, 인격이 만발하는 잘먹고 잘사는 세상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하에서는 불가능하다.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정치적·법률적, 형식적·절차적일 뿐이다. 생활인들이 직면하는 생활의 관점에서 볼 때 자유주의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유란 사유 재산권 및 시장 영업 활동의 자유를 의미하며, 그 평등이란 오직 재산이 있는 자들의 사유 재산권 행사와 경쟁적 시장 참여 기회의 평등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활 현실에서 자유와 평등은 서로 대립되어 나타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낳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자유롭고 부유한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를 나누며, 그 결과 '평등 없는 자유'를 낳기 때문이다. 대다수 생활인들이 직면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현실에서 나타나는 평등 없는 자유, 대다수 개인에 있어 실질적 부자유와 실질적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 자유주의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형식적, 절차적 자유·평등을 넘어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여야 한다.

실질적 자유란 개개의 생활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인간적 잠재력을 그 어떤 경제 사회적 이유로 제한받지 않고 구현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또한 실질적 평등이란 형식적인 기회 균등을 넘어 삶을 향유함에 있어 실질적인 경제 사회적 평등을 뜻한다. 예컨대 모든 개개인이 적절한 주택과 함께 좋은 교육 기회를 가지며, 병에 걸렸을 때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고, 또한 노후에도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는 생활 유지가 불가능하다면, 그리고 안전한 노동 환경에서 적절한 시간 동안 노동할 수 있는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때의 자유란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러한 실질적 자유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개개인의 삶의 자유, 실질적 자유의 구현을 가로막는다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경제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 어떤 가치관, 어떤 세계관의 경제 민주화인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다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지난 5월 10일 한국사회학회에서 발표한 '경제 민주화에 대한 소고-그동안 논의되지 않는 것들을 중심으로'라는 글에서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정당 간 경쟁과 갈등은 민주-반민주 같은 대립 구도에서 나타나듯이 관념적이고 도덕주의적인 이념 내지 가치를 중심으로 한 진영 간 대립의 형태를 띠었다"면서 "그렇지만 서구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좌우 구분의 일반적 기준이 되는 것은 사회 경제 문제에 대한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 그것을 표현하는 이념이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경제 민주화가 총선·대선의 중심이슈로 떠올랐다는 것은 한국 정치에서 큰 의미를 갖는 전환적 사건이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3년 5월 9일자)

그는 또한 "민주주의의 본질적 관심사는 얼마나 많은 경제적·사회적 평등을 창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 민주화는 민주주의가 실제로 무엇을 성취했는가를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거울이자 정치 민주화의 핵심 요소다"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생산 체제의 기반으로서 경제 체제를 끊임없이 민주화하려는 노력을 병행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도 지적했다.

그의 이러한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제 문제는 민주냐 반민주냐가 아니라, 자본주의냐 경제 민주주의냐이다. 그런데 모두가 다 알 듯이, 경제 민주주의가 도대체 무엇이냐 라고 묻게 되면, 백인백색의 답변이 나오게 된다. 따라서 최장집 교수는 연이어 말하기를,

"지금 경제 민주화의 정의는 광범위하게 열려 있다. 여당과 야당, 보수파와 진보파 누구도 아직 분명히 정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선거가 거듭되고, 정당 간 경쟁이 거세지고, 사회로부터 경제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게 될 때 '무엇이 경제 민주화냐' 하는 것에 대해 정치인들이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장집 교수는 "경제 민주화 이슈가 판도라의 상자처럼 현대의 중요한 이념과 이론적, 철학적 이슈들을 불러내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제적, 사회적 평등의 창출과 관련하여 판도라의 상장에서 튀어나올 현대의 중요한 이념과 그리고 이론적, 철학적 이슈들은 과연 무엇일까? 먼저 떠오르는 강력한 이념은 공산주의·사회주의일 것이다. 그런데 최장집 교수는 같은 글에서 공산주의·사회주의보다는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 정당 정치인들이 고민하게 될 문제의 초점은 '경제 민주화가 사회민주주의를 포괄하느냐 아니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경제 민주화가 유럽으로 대표되는 사회민주주의적 복지 국가 체제에 접맥하고 그것을 지향하느냐, 아니면 자유주의적 시장 경제를 유지하면서 경제 민주화를 도모하느냐 하는 질문이다."

1980년대 말 소련 및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공산주의·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적 대안 체제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다. 그렇지만 영미 자본주의(Anglo-American capitalism)로 대표되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free market capitalism) 역시 2008년 말 발발한 세계 금융 위기와 극심한 빈부 격차로 그것의 윤리적 정당성과 경제적 효율성, 역사적 지속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 그렇다면 남는 유일한 대안적 경제 이념은 공산주의·사회주의와 자유 시장 자본주의(신자유주의)라는 양 극단의 중간에 위치한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이다.

그런데 다양한 중간적 이념 스펙트럼의 맨 왼쪽에 사회민주주의가 있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안에서도 다시, 맨 오른쪽에는 신자유주의를 적극 수용하는 제3의 길 사회민주주의(영국의 앤서니 기든스와 토니 블레어, 독일의 슈뢰더로 대표되는)가 있고, 그 중간에 스웨덴과 핀란드의 사회민주당과 그리고 독일 사회민주당의 당내 좌파 등이 있다. 그리고 맨 왼쪽에는 독일 좌파당(Die Linke), 스웨덴 좌파당 등으로 표현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영미의 사회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가 있고, 이것이 한국에서는 진보적 자유주의라 불린다. 또 '반성한 자유주의 또는 건전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ordo-liberalism) 또는 미국의 리버럴(liberal) 주류가 있고 이것은 한국에서 개혁적 자유주의로 불린다.

독일의 현재 집권당인 기독교민주당의 정치경제 사상이 질서 자유주의이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사회적 시장 경제론(social market economy)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사회적 시장(social market)이란, 자유로운 시장(free market) 즉 자유 시장에 반대되는 말이다. 즉 질서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와는 다르며, 말하자면 '인간의 얼굴을 한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질서 자유주의 역시 신자유주의(그리고 구자유주의)와 공통적으로 사유 재산제와 시장 원리 그리고 개인 책임 및 자조(self-help) 등의 가치/원칙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단, 질서 자유주의는–신자유주의와 달리–독과점을 규제하여 완전 경쟁·공정 경쟁 시장 질서를 창출하고자 하고, 동시에 일정 정도의 사회 복지와 함께 노동 시장을 규제하여 노자 관계의 대립과 긴장을 일정하게 완화시키고자 한다.

독일 기독교민주당의 이러한 입장은 (이것은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기독교민주당들 역시 비슷한데), 미국 민주당의 리버럴(liberal)과 매우 흡사하다. 따라서 미국의 리버럴 민주당을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동격으로 놓는 것은 큰 착각이다. 물론 유럽의 사회민주당 중에서도 제3의 길을 채택한 경우 미국 리버럴과 매우 흡사해졌는데, 동시에, 사회민주당과 기독교민주당간의 정책 지향성의 차이가 거의 사라져 버리면서 양측 모두에서 전반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지향성이 강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개혁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민주당 주류, 안철수 신당 주류의 중도주의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반해 민주당 내 진보파 그리고 안철수 신당 흐름 내의 진보파들(최장집 교수처럼 노동 중심 진보 정당을 말하는)은 대체로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 들어 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개혁적 의원들이 "독일 경제, 독일 기업에서 배우자"는 국회의원 공부를 하고 있다는데, 그 지향성은 대체로 독일의 사회적 시장 경제론(질서 자유주의론)으로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의 남경필, 원희룡, 이헌재 의원 등이 독일 경제 모델을 공부하고 있으며, 민주당의 전순옥 의원 등도 마찬가지이다.

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두관 전 경상남도지사처럼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당내 경선에 나섰던 이들이 현재 독일에 체류하면서 독일의 경제 모델과 사회적 시장 경제론, 복지 국가를 현장 학습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한편, 여권 내 경제 민주화론자로서 존경받는 보수 원로인 김종인 박사가 말하는 경제 민주화론 역시 그가 공부한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 또는 사회적 시장 경제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렇듯, 공산주의·사회주의와 자유 시장 자본주의(신자유주의)라는 양극단을 배제한다 하더라도, 경제 민주화론에는 사회민주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질서 자유주의(건전 자유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그리고 최장집 교수가 지적했듯이, 경제 민주화 담론이 작년 총선과 대선에서 전면에 떠오르면서 이제 판도라의 상자로부터 다양한 현대 이념들이 유령처럼 뛰쳐나오고 있다.

시장 주도형 경제 민주화냐 국가 주도형 경제 민주화냐

그런데 왜 민주 세력의 기존 가치관이 그렇게 (신)자유주의에 푹 물들어 있었을까? 1990년대 초반 이래 민주 세력 내에서는 정부 주도형 경제보다는 시장 주도형 경제가 바람직하며 특히 투명한 시장, 공정한 시장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담론이 지배해 왔다. '시장 경제에 대한 정부개입은 관치 경제고 박정희식 경제의 유산이다'는 생각에서 박정희식 개발 독재를 해체하자고 했고, 그러려면 '더 많은 시장 논리', '더 강한 시장 규율'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개혁 진보 경제학자들의 시각이었다.

이런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 관점에서, 한국 경제를 시장 주도 경제로, 특히 선진국 중 가장 시장 논리의 힘이 강한 미국식 자본주의로 바꾸어 놓겠다고 한 것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였고 민주당이었다. 그런데 2008년 말에 시작된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민주 정부가 추구했던 '글로벌 스탠더드' 즉 미국식 자본주의를 향한 이른바 '시장 개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더구나 똑같이 시장 논리, 시장 규율 강화의 시각을 가진 것이 보수적 자유주의, 즉 시장 만능주의였고 이명박 정부는 그 생각을 극한까지 추구했다. 민주 세력은 그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속에서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을 계속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민주 세력 내에서 처음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물론 이번에는 박정희 식이 아닌 다른 방식, 다른 형태의 국가 개입주의였다.

몇 년 전부터 민주 세력 내부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다른 국가 개입론이 등장했다. 하나는 복지 국가론이고, 또 하나는 공정 국가론이다. 복지 국가론이란 나처럼 스웨덴식 복지 국가를 만들자는 입장이며 특히 보편적 복지와 노동 민주주의(이것이 경제 민주화의 본질이라고)를 강조한다.

그에 반해 공정 국가론이란 반칙·특권 세력인 재벌을 (그리고 모피아를) 정부가 규제해서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한 시장 질서'를 만드는 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입장에 선 사람들은 복지 국가보다 공정한 시장 질서(이것이 경제 민주화의 본질이라고)를 앞에 내세운다.

작년 말의 선거 운동 기간 내내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 비하여 경제 민주화-재벌 개혁을 더 강하게 이야기했다. 순환 출자 규제와 지주 회사 규제, 금융-산업 분리 같은 재벌 규제를 놓고 박근혜 후보와 차별화하겠다는 문재인 후보와 진보 진영의 전략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물론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 모두 선거판에서 핵심 쟁점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문재인-안철수 후보만이 아니라 박근혜 후보까지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를 하겠다고 하는 통에, 미래 비전이나 정책을 가지고는 후보 간 차별화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자 문재인 후보는 정책 대결, 미래 대결이 아닌 인물 대결, 과거 논쟁(박정희-장준하 논쟁)으로 선거판을 끌고 갔는데, 결국 그것이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 원인이 되었다.

바로 이것이 문재인 캠프의 근원적 한계였다. 물론 유세의 마지막 단계, 특히 2차 및 3차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는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복지 정책에서 박근혜 후보를 압도했다. 그렇지만 선거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제시된 차별화된 복지 정책으로는 국민들에게 어필할 시간이 없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장기적 국가 비전의 결여이다. 당시 문재인 후보도 그렇고 현재의 민주당도 그렇고, 그들이 과연 어떤 유형, 어떤 지향성의 복지 국가를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에 만들어내고자 하는지 장기적인 국가 비전이 분명치 않다. 당시 문재인 후보 쪽은 박근혜 후보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즉 적어도 독일 기독교민주당이 만들어낸 독일 수준의 복지 국가를 20년 뒤 한국의 모습으로 제시하면서 차별화했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향후 5년 뒤만이 아니라 10년 뒤, 20년 뒤에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건지, 어떻게 대다수 서민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나라, 대다수의 개개인들의 생활 속에서 행복과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건지에 관한 장기적 국가 비전의 결여는 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여러 진보 정당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정당들 역시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재벌 개혁(재벌 해체)-경제 민주화를 복지 국가에 비해 더 시급하고 우선적인 과제라고 제시하였다.

그런데 과연 생활하는 서민들의 관점에서 볼 때, 순환 출자 규제, 지주 회사 규제, 금융-산업 분리와 같은 재벌 개혁(재벌 해체)-경제 민주화가 기초연금 20만 원, 반값 등록금, 4대 중증 무료 진료와 같은 복지 국가 이슈에 비해 그렇게 시급하고 우선적인 것으로 다가왔을까?

게다가 민주당과 진보 정당들이 제시했던 (지금도 제시하고 있는) 재벌 개혁의 방법과 지향성은 1999년대 말의 김대중 정부가 제시한 재벌 개혁과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과연 서민들이 체험한 과거 민주 정부 시절의 개인적 삶이 행복하고 자유로웠던가? 많은 이들에게 그 시기는 절망의 시절이었다.

많은 이들이 민주 정부가 처음 시행한 이른바 '시장 개혁(구조 개혁)'과 함께 새로 등장한 명예 퇴직, 희망 퇴직, 정리 해고의 희생자들이었다. 회사가 통째로 다른 회사에 매각되고 임금이 삭감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게 밀려난 이들의 상당수가 퇴직금으로 통닭집, 피자집, 음식점을 차렸고, 그 중 다수가 파산하여 빈곤층이 되었다. 지금 은행 대출신용카드 대출을 못 막아 전전긍긍하는 신용 불량자 중에도 그런 이들이 많다.

그런데도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가난한 신용 불량자들을 짓누르는 부채 탕감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하기를 두려워했다. 신용 불량자들의 도덕적 해이 즉 '모럴 해저드(개인의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이 개념은 시장주의-자유주의 이론의 맥락에서 나왔는데)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유에서였다.

민주당은 신용 불량자 개개인의 윤리적-도덕적 결함을 시급하고 우선적인 문제로 보았을 뿐, 왜 그들이 구조적으로 신용 불량자로 전락했는지, 그 구조(시장 주도형 경제)를 만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책임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 이에 반해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가난한 신용 불량자 부채 탕감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고 지금 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도 민주당과 여러 진보 정당들에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신용 불량자 부채 탕감 정책이 없다.

우리 사회가 1990년대 말부터 상시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대규모 명예 퇴직, 희망 퇴직, 정리 해고 등이 재벌 개혁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문재인과 안철수, 이정희와 심상정 후보 등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복지 공약 및 노동 공약에 비해서도) 가장 우선적이고 시급한 과제라고 국민들에게 제시한 경제 민주화-재벌 개혁, 또 재벌 해체의 슬로건이 그들을 감동시켰을까?

정의란 무엇인가?

앞에서 나는 민주주의와 자주/통일 등이 삶에 찌든 대다수 생활인들,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선뜻 다가오지 않는 가치라고 말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새로이 떠오른 화두가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정의는 매우 근본적인 가치이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오늘날 자유와 함께 (평등 대신에) 정의 그리고 연대를 궁극적 가치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정의란 무엇인가?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복지보다 더 우선적이며 소중한 가치는 특권과 특혜의 철폐이며, 따라서 정의와 공정·공평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 씨 역시 마찬가지다. 2010년 6월 지방 선거에서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시종일관 무상 급식 이슈의 정치적 중요성을 간과하였다.

그런데 2010년 6월의 지방 선거에서 서울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전국적으로 무상 급식 이슈(복지 이슈)가 휩쓸었고, 그 덕택에 야권 후보들이 약진하였다. 그에 반해 서울에서 별다른 선거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한 한명숙 후보는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그리고 한명숙은 2012년 4월의 총선을 진두지휘할 때 반복적으로 '복지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특권과 특혜의 철폐이며, 정의와 공정·공평의 회복'이라고 발언하였다.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안철수 진영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지난 선거 기간 내내 말로는 복지를 입에 올렸지만, 내심 복지 국가는 그 자체 정의와 공정 구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정의와 공정·공평의 내용과 실체는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공산주의 등 서로 다른 세계관과 정치경제 사상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실질적 평등(실질적 공평·공정)보다는 형식적, 절차적 평등(절차상의 공정·공평)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자유주의자들은 (여기에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 안철수도 포함되는데) 흔히 '복지보다 더 소중한 것은 공정·공평'이며, '복지 국가보다 더 소중하며 우선적인 것은 특권과 특혜의 철폐'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은 (안철수 신당도 마찬가지) 재벌로 상징되는 특권 세력 해체를 늘 가장 우선시되는 과제로 제시한다.

그렇지만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민주주의, 즉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를 가장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보편적 복지와 노동 민주주의야말로 정의와 공정·공평이라는 가치/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이며, 더구나 재벌의 특권과 특혜를 철폐(완전 경쟁 시장 창출을 위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특권과 특혜를 실질적으로 철폐하여 사회 평등을 이룩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바로 사회민주주의 복지 국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오직 민주당과 자유주의만이 정의(正義)와 공정(公定)을 대변한다고 하는 것은 억지다. 정말로 중요한 화두는 그 정의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아마도 내 주변에서 흔히 보는 보통의 서민들, 생활하는 개개인들의 직관적 느낌 역시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어떻게 복지 국가의 도움 없이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건가? 그들이 제시하는 최고의 정의·공정성 회복 방안은 '공정한 시장 질서' 원칙의 구현이다. 그리고 공정한 시장 질서 창출을 위해 최우선시 된 과제가 바로 각종 재벌 규제를 통해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일이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경제 민주화의 실체로 이해한다. 그런데 과연 '공정한 시장 질서'가 정의가 보장되는 경제 체제를 창출할 수 있을까?

'공정한 시장 질서'란 시장 경쟁 절차의 공정성(즉 기회의 평등)을 의미할 뿐이다. 즉 공정한 시장 질서 그 자체는 소득 분배의 공정성(즉 결과의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시장이 더 공정해질수록, 즉 더 완전 경쟁 시장 모델에 가까울수록, 성과주의의 확산에 따른 불평등한 소득 분배와 승자와 패자의 빈부 격차 심화는 불가피하다. 공정한 시장 질서는 필연적으로 불평등한 사회, 불공정한 사회를 낳는다.

아무리 공정한 '경쟁적 시장 질서'가 관철되더라도 그 경제는 자본주의적 착취도, 노자 대립 심화도 막을 수 없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1998년 이래 경제 민주화-재벌 개혁이 진행되면서 동시에 도입·확산된 것이 기업에서의 미국식 성과주의 및 개인주의 문화였다. 그것은 기업들에서 살벌한 비인간적 경쟁을 낳았다.

미국식 성과주의와 능력주의는 모두 사람들이 이기적이며 경쟁과 금전적 보수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주된 동인이 된다는 전제 아래 경제적 생산성을 최대한 높이는데 주안점을 주는 원칙이다. 성과주의와 능력주의에 가장 부합하는 경제 이론이 바로 미국에서 발전한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계 생산성 원리이다.

'공정한 시장 질서'의 이름으로 시행된 1998년 이래의 경제 민주화 또는 시장 주도형 경제로의 개혁(시장 개혁) 과정에서 한국 경제에서 임금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투입 노동 대비 낮은 한계 생산성을 보이는 중하층 노동자들에게는 과거보다 낮은 임금을, 높은 한계 생산성을 보이는 고급 관리자와 경영자들, 특히 금융권 직원들과 펀드 매니저들에게는 높은 봉급을 주는 것이 정당하고 정의로운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저소득 노동자(워킹 푸어)와 고소득 임직원 간의 소득 격차는 과거 박정희 체제에 비해 크게 벌어졌다.

공정한 시장 질서와 자본주의 시장 질서

반칙과 특권이 없으며 누구나가 평등·공평하게 공동체의 규칙을 지키는 공정한 경제, 정의로운 사회를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반칙과 특권의 내용과 실체가 뭐냐는 것이다. 그게 명확해야만 공정·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의 실체와 내용이 분명해진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부인하지 않는다. 존 로크나 애덤 스미스, 볼테르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축을 이루는 사유 재산권과 시장 경제를 자연스런 상태(자연법)로 보면서 긍정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 공병호와 복거일 같은 신자유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반해 장자크 루소나 카를 마르크스 같은 이들은 사유 재산권의 존재 그 자체가 반칙과 특권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장 경제가 공정하고 공평하게 작동하려면 완전 경쟁이 되어야 한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수요-공급이 완전 경쟁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완전 경쟁 상태가 되어야만 공정·공평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정의와 공정·공평은 주로 경쟁적 시장 질서에 관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 모든 인간관계가 경쟁은 아니고, 더구나 경쟁에 시장 경쟁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쟁보다 협력하여야 할 사안들이 많고, 더구나 경쟁이라 하더라도 수익을 위한 시장 경쟁이 아니라 시장 밖에서의 비영리 목적을 위한 선의의 경쟁도 많다.

달리 말해서,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공평한 정의로운 세상'이라는 테제는 매우 올바르고 정당하지만, 그 자체만으론 내용과 실체가 없는 공허한 말이다. 그런 말은 자유주의 개혁가도 할 수 있고, 공산주의 혁명가도 할 수 있다. 또 사회민주주의 복지 국가론자도 할 수 있다. 마치 복지 국가는 정의 및 공평·공정과 무관한 양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자유주의의 관점을 보여준다.

공정 시장, 공정 경쟁 원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들 수없이 많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삶을 찌들게 하는 핵심에는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유린하는 냉혹한 현실인 시장 자본주의가 있다. 자유주의는 결과의 평등(소득의 평등)보다는 기회의 평등(기회 균등)을 더 강조하고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데, 과연 모든 사람이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부모로부터 사유 재산권(부와 재산)을 물려받은 이들은 출발점부터 특권을 가지며 따라서 출발점부터 공평하지 않은 반칙 세력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그 자체 공정·공평한 체제가 아니다.

정의로운 경제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 사회처럼 빈부 격차가 심하고 자살률과 비정규직도 세계 최고, 행복도 세계 최하위의 나라를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라고 볼 수는 없다. 또 재벌이 빵집과 순대 사업에 진출하여 영세 자영업자를 몰락시키는 재벌 공화국을 정의로운 경제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회에는 여러 종류의 상벌 체계가 존재한다. 법과 관습은 대표적인 상벌 체계인데, 법이 철저하게 적용된다는 것은 곧 법으로 표현된 '정의'가 관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벌 범죄의 경우, 재벌 총수들 역시 '법 앞에서의 평등' 원칙에 따라 다른 범죄자들과 마찬가지로 엄격하게 처벌하여 구속시키는 것이 당연히 정의로운 나라이다.

그런데 자유 시장도 상벌 체계의 일종이다. 정상적인 자유 시장에서는 좋은 상품을 값싸게 생산하는 기업이 돈을 벌게 되는 반면, 저질 상품을 비싸게 생산하는 기업은 망한다. 시장에서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자유 시장이 상을 내린다는 뜻이고, 망한다는 것은 자유 시장이 처벌한다는 뜻이다.

자유 시장 즉 완전 경쟁 시장은 명백한 책임 추궁을 바탕으로 하는 '공정한 보상·처벌 시스템'이다.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자유 시장 그 자체가 훌륭한 상벌 체제라고 말하는 복거일과 공병호, 하이에크와 프리드먼과 같은 시장 자유주의자들은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매우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본다.

그런데 스스로를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자'라고 자임하는 공정 시장론자들은 공정한 (즉 완전한) 경쟁적 시장을 회복하는 것이 공정과 정의를 회복하는 핵심적인 방법이며, 따라서 공정한 시장 질서 구축이 복지 국가보다 논리적, 시간적으로 우선시 되는 과제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경쟁적 시장 질서의 회복을 위해서는 재벌 그룹처럼 기업 간 경쟁을 왜곡하는 특권·특혜 세력을 약화 또는 해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며 가장 중요하다.

물론 공정한 시장 질서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를 놓고도 그들 안에서 견해가 엇갈린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같은 인사들은 공정한 완전 경쟁 시장 창출을 위해서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필요하며 더구나 (정규직) 노동 운동의 약화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입장은 송영길, 안희정 같은 민주당 386 정치인들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다. 문재인 대선 캠프의 핵심을 이루던 386 참모들 역시 동일한 견해를 수없이 표명하였다. 게다가 이런 관점은 노무현 정부 시기의 정책 노선으로 일관되게 관찰되었다.

이 경우, 자유 시장론과 공정 시장론이 갈라지는 유일한 분기점은 독점과 경제력 집중 즉 재벌에 대한 태도에서 뿐이다. 즉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신자유주의자들)이 독점과 경제력 집중(즉 재벌 그룹의 계열사 확대)이 자유 시장 경쟁의 자연스런 결과이므로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공정 시장 우선론자들은 재벌 그룹을 자유로운 완전 경쟁 시장의 작동을 저해하는 '왜곡 요인'으로 보면서 그것을 제거 또는 축소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재벌 그룹 축소 또는 해체를 통해서만 '합리적인 완전 경쟁 시장' 즉 '공정한 시장'을 만들 수 있고, 그래야만 정의와 공정·공평이 넘치는 공정 사회 또는 공정 국가가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한 시장 질서 구현 즉 재벌 개혁과 (그리고 그것과 긴밀하게 결합된) 대·중소기업 동반 성장이 복지 국가보다 더 우선적이고 더 중요한 과제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주요 인물로는 정운찬(전 동반성장위원장)과 그리고 김광수(김광수경제연구소장), 그리고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등을 들 수 있다. 장하성 교수 역시 마찬가지로 공정한 시장 질서면 충분하다고 말하는데, 그는 안철수 대선 캠프의 정책총괄이었고 현재 안철수 의원 중심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소장이다. 그리고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이 바로 최장집 교수이다. 최장집 교수는 이미-안철수 의원 및 장하성 교수와 함께–자신의 이념인 (진보적) 자유주의를 축으로 하는 정당의 건설에 착수했다.

그에 반해 이병천 강원대학교 교수와 유종일, 김상조, 정태인 같은 이들은 복지 국가와 '동시에' (즉 병렬적으로) 공정한 시장 질서(이것을 경제 민주화라고 그들은 부르는데)가 이룩되어야 한다고 요즘 말한다. 하지만 이들 인사 대부분이 1년 전까지만 해도 복지 국가에 비해 논리적, 시간적으로 더욱 우선적이고 중요한 과제는 경제 민주화(공정한 시장 질서)라고 말했었다. 단지 작년 중반 이후 나 같은 복지 국가론자들과의 논쟁 속에서 입장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들은 여전히, 장기적으로는 복지 국가와 공정한 시장 질서가 동시에 구축되어야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공정한 시장 질서 구축이 더욱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을 그들은 "선제적 복지로서의 재벌 개혁-경제 민주화"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서, 2차적 소득 분배 즉 복지 국가적인 '국가 개입주의' 정책(세금 징수와 사회 복지 재정 지출을 통한 소득의 재분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1차적 소득 분배 즉 '합리적 시장' 경제 속에서의 원천적 소득 분배이며,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하청 단가 삭감과 대리점 수탈(남양유업 사태에서 드러난)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공정한 시장 질서 구축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실은 최장집 교수 역시 이와 인식을 함께 한다. 그는 앞서의 발표문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 운영과 재벌 중심의 성장이 한편으로 한국을 경제 선진국으로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던 동안, 다른 한편으로 사회 양극화와 사회 해체 효과들, 노동 배제, 최고율의 (하급) 자영업 비율, 노동 인구 절반의 비정규직과 그들에 대한 차별 같은 부정적 결과도 만들어냈다. (…) 한국 민주주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체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고, 그것이 경제 민주화의 내용이 된다"고 말하면서, "국가의 일방적인 재벌 지원에 대한 특혜를 실체적으로 제한하고, 재벌에 대한 법의 지배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공정 시장은 시장 소득 분배를 얼마나 개선하는가?

공정 시장 우선론자들은 2차 분배 즉 정부의 조세 수입 및 복지 예산 지출을 통해 달성되는 공정한 소득 재분배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1차 분배 즉 공정한 시장 질서 수립을 통해 달성되는 원천적 시장 소득 분배의 개선이라고 말한다. 정운찬과 김광수, 김대호 같은 이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으며, 정태인과 이병천, 유철규, 유종일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들도 동일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민주당과 여타 진보 정당들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1차 분배를 앞으로 얼마나 개선하여야 할까? 이는 총부가가치 즉 국내 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노동 소득의 몫 즉 노동 소득 분배율을 척도로 가늠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 소득 분배율은 1970년 41퍼센트였지만 1980년 51퍼센트, 1990년 59퍼센트로 급격히 개선되었다.

자본 측으로의 소득 분배가 상대적으로 줄고 그 대신 노동하는 서민들에게 더 많은 소득이 분배되었다. 경제 민주화는커녕 정치 민주화조차 달성되지 않은 개발 독재 시절이었는데도 노동 소득 분배율이 빠른 속도로 개선된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당시에 직업 생활을 한 오늘날의 많은 장년층, 노년층이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 주된 이유는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기업 투자 비율이 40퍼센트에 육박할 정도로 기업들이 왕성하게 신규 투자를 늘린 덕택에 노동 시장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지속되었고 그 결과 종업원 실질 임금이 30년간 계속 올라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1980년대 말부터는 노동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1990년대 초·중반에 노동 소득 분배율이 사상 최고인 63퍼센트까지 상승하였다. 노동 소득 분배율은 그렇지만 1990년대 말 민주 정부가 들어선 이래 오히려 악화된다. 그것은 1998년 직후 58퍼센트 수준으로 곤두박질 쳤으며, 그 이후 지금까지 60퍼센트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그에 반해 선진국의 노동 소득 분배율은 평균 70퍼센트 수준으로 알려져 있고 그만큼 1차 소득 분배(즉 시장 소득 분배)에서 우리보다 더 평등하다. 따라서 우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의 1차 분배를 달성하려면 노동 소득 분배율을 60퍼센트에서 70퍼센트로 10퍼센트 올려야 하는 과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GDP를 2013년 1300조 원으로 볼 때, 2013년 기준 130조 원의 몫이 종업원 등 일하는 직장인들에게 더 분배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장대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먼저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를 말하는 이들은 출자 총액 제한제 강화와 금융-산업 분리 강화 등 재벌 개혁을 통해 재벌의 소유 지배 구조를 개혁하고, 동시에 원청-하청 규제와 징벌적 손해 배상제 등을 통해 대·중소기업 간 공정 거래 질서를 만들어 내면 돈 많이 버는 수출 대기업들로부터 그 아래 관련 기업들로의 트리클 다운(Trickle Down)이 원활하게 작동하여 궁극적으로 종업원 등 서민들을 위한 1차 분배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한다. 일리가 있으며 일정한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효과도 예상된다. 왜냐하면 지난 민주 정부들이 주주 자본주의를 재벌 체제의 대안으로 제시하여 그것을 정착시킨 이래 주식 투자 재테크가 만연하고 있다. 그런 조건에서의 출자 총액 제한제 강화, 금융-산업 분리 강화 등은 주식 투자자들의 힘을 더 크게 하여 오히려 총자본(재벌 가족과 주식 투자자들을 핵심으로 하는)에는 유리하고 총노동에는 불리한 방향으로 1차 분배를 악화시킬 것이다. 그것은 실제 1990년대 말 이래 10년간 민주 정부 하에서 일어난 일이다. 빈부 격차가 그 시기에 과거 독재 정권 시절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심해졌다.

둘째, 대·중소기업 간 공정 거래 정책의 긍정적 효과가 예상되지만, 그 효과를 너무 과장하면 안 된다. 재벌 기업을 포함한 대기업 전체의 연간 순이익 총액이 50~100조 원인 상황에서 제아무리 재벌 개혁과 대·중소 기업 동반 성장 정책을 잘한다 해도 이를 통해 중소기업에 트리클 다운되는 액수는 연 10~20조 원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 더구나 중소기업, 영세 기업에 만연한 노동권 부재, 노동조합 부재의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액수가 다 종업원과 직장인의 몫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겨우 이 액수로 130조 원의 격차를 메우겠다고?

자유주의자들은 대·중소기업 간 원청-하청 거래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규제하면 중소·영세 기업에 유리한 방향의 시장 소득 분배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 이들 기업에서 저임금 착취가 원천적으로 사라질 것처럼 말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치명적 착각이다. 아무리 원청-하청 거래가 공정 거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저임금 착취와 장시간 노동을 민주 공화국이 금지하지 않는 한,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는 신생 하청 기업은 계속 나타날 것이며, 그런 기업이 공개 입찰 하청 계약 경쟁에서 더 유리한 위치에 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따라서 공정 시장 질서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중소·영세 기업에 만연한 저임금 노동 착취를 원천 금지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저 임금을 높이고 중소·영세 기업 노동자를 포함한 전국적 산업별 노동조합을 구축하며, 전국적 단일 단체 교섭이 법률적으로 유효하도록 민주 공화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총자본과 총노동 간의 원천적 시장 소득 분배(즉 1차 소득 분배)에서 총노동에 유리한 방향의 변화가 달성될 수 있다.

복지 국가 전략 : 생산적 투자와 노동 민주주의, 소득 재분배

2013년 기준 130조 원가량의 1차 소득 분배 개선을 달성하는 방법은 노동 운동이 활성화되고 동시에 생산적 투자가 매우 활발했던 1980년대 말 우리나라의 경험으로부터도 유추할 수 있다. 즉 노동조합과 노동권을 대폭 강화시켜 노동조합의 임금 교섭력을 높임과 동시에 기업들의 신규 투자를 왕성하게 만들어 노동 시장에서 실질 임금이 높아지도록 하는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비정규직 및 파견 노동의 엄격한 규제와 함께 노동 시간의 획기적 단축과 이를 통한 수백만 명의 신규 일자리 창출, 최저 임금 인상 등의 복지 국가적 국가 개입 조치가 필수적이다. 동시에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비정규직 및 중소기업 노동자를 모두 포함하는 산업별 노동조합을 의무화하는 입법 조치가 필요하며 산업별 단체 교섭의 효력이 모든 사업장과 모든 종업원에 적용되도록 의무화시켜야 한다. 동시에 금융 자본 및 주주 자본주의를 강하게 규제하여 대·중소기업 전체에 있어 왕성한 신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견인해내야 한다.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권의 대폭 향상(이것을 노동 민주주의라고 부르자)과 함께 기업의 왕성한 생산적 투자(이를 위한 주주 자본주의 억압)를 견인하는 전략은 1950년대 이래 스웨덴과 핀란드 등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추진한 전략이기도 하였다. 130조 원의 시장 소득(원천 소득)을 종업원 등 서민의 몫으로 새로이 분배하는 1차 분배 개선을 위해 오늘날 우리나라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이러한 전반적 기획이다.

또한 동시에 OECD 평균에 비해 10퍼센트 즉 130조 원이 부족한 2차 분배(즉 국가적 복지 재정)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제 역시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130조 원의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겨우 오늘날 이탈리아, 스페인 수준의 사회 복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듯 2013년 기준 총 1300조 원의 GDP에서 그 20퍼센트인 도합 260조 원의 막대한 소득을 자본으로부터 노동(서민)에게 이전시키는 소득 분배 혁명을 일거에-수년 내에-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국민들 다수의 정치적 동의로 뒷받침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프로젝트이며, 복지 국가 5개년 계획의 수립을 통해 향후 10년,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OECD 평균의 비교적 평등한 소득 분배에 도달할 수 있다.

게다가 OECD 평균을 넘는 스웨덴 수준 복지 국가로 가려면 다시 그것의 두 배, 즉 2013년 기준 500조 원 가량의 1차 및 2차 소득 분배 개선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30년에 걸친 단계적 이행이 필요하다.

어떤 가치관, 어떤 세계관의 경제 민주주의인가?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경제 민주화 화두의 부상은 현대의 다양한 이념적 유령들을 판도라의 상자로부터 뛰쳐나오게 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역시 일종의 경제 민주화론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근간인 사유 재산권이 존재하는 한 경제를 민주주의 즉 '피플'의 지배 하에 놓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 역시 일종의 경제 민주화론이다. 자본과 사유 재산권, 시장 경제를 인정하지만 그것들을 민주 공화국으로 결집된 피플이 적절하게 통제하는 복지 국가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 민주주의가 자본·시장 권력에 의해 유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경제 민주주의보다 산업 민주주의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산업 민주주의 핵심은 바로 노사 관계의 민주화 즉 노동 민주주의이다. 회사 안에서는 기업주 즉 자본에 대항하는 종업원과 노동조합의 권리를 드높이고, 동시에 회사 밖에서는 복지 국가를 만들어 없는 사람들도 부자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정지한다'는 말이 있다. 참된 경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회사 안에서도 관철되는 것이다. 종업원의 대표자가 회사 이사회에 이사로 참여할 권리를 법적으로 확보한 독일과 스웨덴의 경우 경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전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경제 민주주의를 이렇듯 산업 민주주의, 노동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이다.

종업원을 대표하는 이사들이 주주(사유 재산권)를 대표하는 이사들과 동등한 숫자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이사회에 참여하여 사장 등 경영진을 선출할 권리를 갖는 것을 '종업원 공동 결정제'라고 부른다. 공동 결정제를 경제 민주화의 본질로 보는 세계관이 사회민주주의이다.

그에 반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경제 민주화론에는 이런 이야기가 아예 없거나, 또는 간혹 있더라도 본론이 아닌 부록에 등장할 뿐이다. 그것은 공정한 시장 질서 구축에 집중하는 자유주의적 경제 민주화이다. 예컨대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에 시달리는 24시간 편의점 제과점 식당 주인의 처지와 입장에는 주목해도, 편의점 식당 제과점 등에서 근무하면서 저임금과 임금 체불, 성희롱 등에 고생하는 알바 대학생 등 종업원의 처지와 입장은 부차적으로 다룬다.

자유주의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노동권 신장(그리고 노동권과 긴밀하게 결합된 사회 복지권 강화)이 아니라 경쟁적 시장 질서의 구축이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 경제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훌륭하며 앞으로 더 발전시킬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도 경제 민주주의가 곧 재벌 개혁으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는 비아냥거림은 곧 "경제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는 비아냥거림으로 전환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가장 많이 듣던 말이 경제 민주화-재벌 개혁이었는데,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서 대다수 서민들, 가난한 이들의 삶이 더 피폐해졌다.

대다수 국민 개개인의 삶의 현실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일을 해결해주는 경제 민주화, 밥 먹여주는 경제 민주주의만이 국민들의 열렬한 동의와 지지를 받을 것이다. 순환 출자 규제와 금융-산업 분리처럼 직장인·서민들의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고용 안정과 봉급 인상, 비정규직 차별 해소로 직결되는 경제 민주화, 오후 6시에 칼퇴근하고 주말 이틀 쉴 수 있으며, 1년에 한 달의 유급 휴가를 쓸 수 있게끔 하는 경제 민주화, 비정규직으로 또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더라도 임금이나 여타 처우에서 별다른 차별을 못 느끼고 살 수 있는 경제 민주화, 이런 것을 성취하는 것이 바로 중요한 일상적 삶의 개선 과제들, 즉 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위한 과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 민주화는 단지 불공정한 시장 질서를 시정하는 차원을 넘어, 자본주의적 시장 질서 그 자체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 정신을 가질 때만이 가능하다.

3. 어떤 가치관, 어떤 세계관의 복지 국가인가?

복지 국가–프레임의 전쟁이 시작되다


경제 민주화 담론만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 아니다. 복지 국가 담론 역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이제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까지도 복지 국가를 외치는 시대가 되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반값 등록금과 노인 연금 확대, 의료 보험 확대 등을 말하고 있다.

2010년 6월의 지방 선거에서 떠오른 무상 급식 이슈 덕택에 우리나라 진보의 정신 세계 속에 새로운 담론 즉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가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그리고 2012년이 되자 다시 또 다른 차원의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가 등장했다. 즉 경제 민주화 담론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그리하여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모두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라는 화두를 내걸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당과 야당은 누가 진짜 경제 민주화, 진짜 복지 국가를 할 것이냐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물론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가 그 자체 가장 소중한 궁극적인 가치 또는 목적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여 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만약 경제 민주화 또는 복지 국가 말고도 다른 수단, 다른 방법으로 국민들의 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많은 국민들은 그 길을 택할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흔히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이며, 따라서 경제 성장이 최고의 복지"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에 진짜, 가짜는 없다. 지난 100년간의 세계 역사는 복지 국가에 여러 가지 유형, 여러 가지 이념적 지향성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학자들은 유럽의 복지 국가에 보수주의 유형(독일), 사회민주주의 유형(스웨덴) 그리고 자유주의 유형(영국)이 있다고 말한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같은 앵글로색슨 국가는 영국의 자유주의 유형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같이 사회민주당이 전후 오랜 기간 집권한 북유럽 나라들은 사회민주주의 유형이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건전 보수 정당(기독교민주당)이 오랜 기간 집권한 독일은 전형적인 보수주의(조합주의) 복지 국가로 분류된다.

최초로 사회 복지 정책을 도입한 100여 년 전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그렸던 세상을 보수주의 복지 국가라고 한다면, 그의 정신을 일정 정도 계승하여 1950년대 라인강의 기적 시기에 독일의 집권 기독교민주당이 그렸던 질서 자유주의(사회적 시장 경제론)의 세상은-요즘 우리말로 옮긴다면–건전 보수 지향성의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론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상당수 의원 그리고 민주당의 상당수 의원이 포함된 건전 보수주의 세력의 지향성을 '건전 보수' 가치관의 경제 민주화, 복지 국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기존의 시장 만능주의 입장을 버리고 건전 보수의 입장으로 차츰 선회한다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안철수 신당도 마찬가지) 사이의 이념적, 정책적 차이는 점차 희석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회 경제 정책에 국한해서일 뿐이며, 남북 문제와 외교 안보의 경우에는 사안이 다르다.)

경제 사상적으로 볼 때 한국의 보수 세력은 분명 스스로를 갱신하고 있다. 시장 만능주의(신자유주의)를 버리고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 정도의 건전 보수(또는 중도 우파) 정도로 전환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보수 언론인 조·중·동 중 <중앙일보>의 최근 방향 선회는 이런 맥락에서 주목된다. 손석희 전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를 JTBC의 보도 담당 사장으로 영입한 것에서 이 점이 보인다.

그런데 이 경우 문제되는 것은 한국의 민주 세력이다. 더 왼쪽으로 이동하지 않는다면 건전 보수주의와의 차이가 더욱 불분명해질 것이고, 따라서 생활인의 관점에서는 굳이 민주 세력을 선택할 이유가 더욱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2012년 10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복지 국가 5개년 계획을 시행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문재인 캠프에서 나온 복지 공약과 재원 조달 방안을 보면, 2011년 말 민주당이 발표한 것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 당시 민주당은 연평균 33조 원의 추가 복지 예산을 마련하여 사회 복지를 늘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더라도 집권 말기인 2017년에 우리의 복지 수준은 지금의 미국(선진국 최악의 복지를 하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그런 속도라면 미국 수준에 도달하는데 10년이 걸릴 것이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르랴'며, 10년 뒤 미국, 20년 뒤 OECD 평균의 복지에 도달하면 되지 않겠냐고 조급증을 달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당에는 언젠가 스웨덴 수준의 복지 국가를 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있는가? 나는 없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민주당에는 그럴 의지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없다.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의 복지 국가를 만든 것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었다. 사회민주주의의 세계관과 정치경제학으로 무장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수십 년간 집요하게 노력하여 만들어낸 성과가 북유럽 복지 국가이다. 그에 반해 민주당에 (그리고 안철수 신당에) 모인 정치인들과 관료들, 지식인들의 거의 모두가 자유주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자유주의의 프레임 안에서 복지 국가를 만든다? 가능하다. 그게 바로 미국 민주당 리버럴이 생각하는 복지 국가이고 그게 바로 클린턴-오바마 수준의 복지 국가이다. 선진국 최하위의 복지 국가 말이다.

그렇다면 안철수 신당은 나은가? 지난 2012년 11월의 안철수 캠프의 발표를 보면 복지 구상도 그렇고 그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구상도 마찬가지고, 문재인 캠프보다도 못했다. 특히 충격적인 점은 그 발표 내용들이 2012년 7월 말 발간된 책 <안철수의 생각>(김영사 펴냄)과 달랐다는 것이다. 그 책에서 안철수는 보편적 복지 구상을 제시했고 또한 부자 증세만 아니라 보편적 증세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후 결성된 안철수 캠프는 그 책과 전혀 다른 공약을 제시하였다. 장하성 교수를 필두로 하는 개혁 자유주의 학자들이 복지-노동 공약 마련에 참여하면서 문재인 캠프보다 더 보수적인 복지-노동 공약이 발표되었다. 복지-노동 공약만 보면 오히려 박근혜 캠프와 더 가까웠다. 당연히 스웨덴 복지 국가 같은 것은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 않았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연평균 27조 원의 추가 복지 예산으로 더 나은 복지를 하려 있다. (안철수 캠프 역시 이런 수준의 추가 복지 예산을 상정했다). 이런 속도라면 향후 13년 뒤에 오늘날 미국 수준 복지에 도달할 것이고, 25년 뒤에야 OECD 평균의 복지에 도달할 것이다. 따라서 복지 정책 하나만 볼 경우, 민주당이 집권하나 (그 경우 20년 소요), 새누리당이 집권하나(그 경우 25년), 큰 차이가 없다.

노인 연금 개혁–어떻게 할 것인가?

박근혜 정부-새누리당이 집권하나, 민주당(또는 안철수 신당)이 집권하나 큰 차이가 없는 대표적인 분야가 노인 연금 정책이다. 박근혜-새누리당은 모든 노인에게 1인당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문재인 캠프(민주당)와 안철수 캠프는 모두 모든 노인에게 1인당 18만 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했었다. 선거 공약만 보면 박근혜-새누리당이 더 진보적이었다.

왜 민주당과 안철수 캠프는 노인 기초연금의 확대를 꺼려했을까? 결정적인 걸림돌은 재원 조달이었고, 자칫 재원 조달을 위해 큰 규모의 증세를 해야 하지 않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현재 보편적 복지 원칙이 아닌 선별적 복지 원칙으로(소득 하위 70퍼센트 노인들에게만 지급) 당시 최고 9만2000원 지급했던 기초노령연금은 2012년 4조 원의 중앙정부 예산이 소요되었다. (현재 기초노령연금은 65세 이상으로 지급 기준 이내의 소득 즉 월 소득이 단독 노인인 경우 83만 원 이하, 부부 노인인 경우 월 132만8000원 이하인 경우에 한하여, 소득 인정액에 따라 1인당 최저 2만 원에서 최고 9만6800원을 매월 지급한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노인 연금 재원 조달 문제 때문에 공약을 수정하여, (1) 소득 하위 70퍼센트의 노인들 중 국민연금 미가입자에게는 원래대로 월 20만 원을 지급하지만 국민연금 가입자에게는 월 14~20만 원을(가입 기간에 따라) 차등하여 지급하고, (2) 소득 상위 30퍼센트의 노인들에게는 그 중 국민연금 미가입자에게는 월 4만 원만을 지급하고, 국민연금 가입자에게는 월 4~10만 원을(가입 기간에 따라) 지급하는 안을 새로 제시하였다.

나는 연금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노인연금 개혁안의 구체적인 전문적 내용에 대해 왈가불가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렇지만 분명한 점은, 조세(세금)에 의해 그 재원이 조달되는 기초(노령)연금에 관한 한, 보편주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유한 고소득자에게서는 세금만 걷고 그들에게 동등한 복지 혜택을 주지 않는 선별적 복지의 원칙으로는, 당장은 한정된 재원을 서민 계층에게 집중 투하하여 그들의 복지 혜택을 늘릴 수 있을지라도, 세금은 부담하면서 별다른 복지 혜택은 누리지 못하는 고소득 부유층의 조세 저항에 심해지는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복지 정책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자산 및 소득 조사를 통해 선별된 소수의 가난한 자들에게만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을 선별주의 복지라고 한다면, 그런 조사를 다 생략한 채 모든 대상자들에게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을 보편주의 복지라고 할 수 있다. 부자건 가난한 자건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무상 급식을 제공하는 것은 보편주의이며, 그렇지 않고 소득 순위 50퍼센트 또는 70퍼센트까지만 무상 급식을 제공하고 그보다 부유한 중·상위 50퍼센트 또는 상위 50퍼센트에게는 급식비를 받는 것(유상 급식)은 선별주의라고 한다. 초·중등 공교육 강화도 보편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모든 학령기 어린이와 청소년이 의무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공교육은 부자와 빈자를 차별하지 않고 동일한 교육의 권리와 의무를 주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복지 정책을 보편주의 원리에 따라 설계할 수는 없다. 원리상 모든 대상자에게 혜택을 제공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 예컨대 주택 분야의 경우가 그러한데, 고급 호화 주택에 거주하는 고소득자와 초라한 공공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저소득자에게 동일한 액수의 주거보조 수당을 지급할 수는 없다. 따라서 복지 선진국의 경우에도 주거 수당은 소득 및 자산 조사를 통해 일정 수준 이하인 주민들에게만 그 혜택을 제공한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은 마치 선별주의 복지는 보수의 전유물이고, 보편주의 복지는 진보 의 전유물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 많은 경우 오히려 진보가 선별주의 복지를 더 지지한다. 왜냐하면 한정된 복지 예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투여하여 복지혜택을 주는 것이 더 정의롭고 공정·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노동당과 노동조합은 1950~60년대에 그 세력이 매우 강했는데도 북유럽 같은 복지 국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자들에게도 혜택을 주는 보편주의 복지 국가보다는 가난한 자들에게 집중적으로 혜택을 주는 선별적 복지 국가를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경우 2000년대 초·중반 민주노동당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가끔)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선별적 복지 국가에 대한 지향성이었다.

그렇지만 선별주의 원리에 따라 운용되는 복지 국가는 궁극적으로 '최소주의' 또는 '잔여주의' 복지 국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 점은 복지 국가를 혜택(복지)의 차원만이 아니라 기여(복지 재정 즉 조세 및 보험료)의 차원에서도 살펴볼 때 분명해진다.

선별주의 복지의 경우 선별된 가난한 이들만이 복지 혜택을 받는다. 그렇지만 가난한 이들은 대부분 별다른 납세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이다. 따라서 그 복지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것은 중간 소득층과 상위 소득층이다. 이 경우 복지 혜택은 거의 받지 못하면서 그 비용 부담은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중간 및 상위 소득층의 반발(조세 저항)이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어느 사회건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나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중간 및 상위 소득층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강하다. 따라서 선별주의 복지를 하는 나라의 정치인들은 절로 복지 예산을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하게 된다.

이에 반해 보편주의 복지의 경우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가 모두 동등한 복지 혜택을 받을 사회적 권리를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보편주의 복지에서 모든 이들은 '평등'하다. 모든 시민 또는 주민은 '필요'에 따라 복지 혜택을 분배받을 권리를 지닌다.

보편주의 복지 국가에서는 저소득층은 적은대로, 중간 및 상위 소득층은 많은대로, 자신의 소득 대비 누진성의 원칙에 따라 더 많은 세금 즉 복지 비용을 분담한다. 즉 보편적 증세(보편 증세)의 원리를 지킨다. 보편주의 복지 국가에서는 모든 시민 또는 주민들이 각자의 세금 지불 능력(즉 소득 및 자산)에 따라 그 비용을 분담한다.

간단히 말해, 보편주의 복지 국가의 기본적인 운용 원리는 "각자는 필요에 따라 분배받고, 각자는 능력에 따라 기여하는" 것이다. 이 원리는 일찍이 루이 드 생시몽 등 초기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우애적 협동조합의 원리로서 정초한 것인데, 보편주의 복지 국가는 우애와 협동의 원리를 개별적 협동조합을 넘어 한 나라 전체(우리 5000만 국민 전체)가 하나의 국가 공동체, 사회 공동체로서 작동하는 것으로 확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 국가를 향한 '상상력의 정치'-잠정적 유토피아

보편적 복지 국가 운동은 이제 겨우 출발점에 있다. 무상 급식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서 시작되어 이제 앞으로는 보편적 아동 수당과 기초노령연금 그리고 보편주의 원칙의 주거 복지 및 도시 계획, 그리고 문화­예술-과학의 발전을 위한 공공 인프라의 구축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우리가 OECD 중간 수준의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해 OECD 중간 정도의 조세 부담이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서 2013년 기준 130조 원의 추가 세수 확보가 필요하다' 말하더라도, 그것은 학술적 논의에 불과하다. 대다수 국민들이 그 주장에 동의하며 폭넓은 복지 국가 지지자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정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반값 등록금은 하나의 상상력이다. 완전 무상 등록금은 더 큰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이건희 회장을 포함하여 모든 65세 이상 노인에게 동등하게 향후 4년 뒤 1인당 월 50만 원, 10년 뒤 월 100만 원의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여 노인들의 삶이 즐거워지는 것을 꿈꾸는 것이, 그 꿈을 국민들이 함께 꾸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복지 국가를 향한 상상력의 정치이다. (실제 스웨덴의 모든 노인들은 2013년 기준 1인당 우리 기준으로 120만 원가량의 기초(노령)연금을–국민 연금 같은 소득 비례 연금을 제외하고라도-동등하게 지급받고 있다.)

더 나아가, 오늘날 스웨덴처럼 모든 노인들에게 온갖 의료·레저 설비가 완비된 저렴한 공립 실버 타운을 제공하고 그리하여 노년 생활이 행복과 자유가 넘치는 모습으로 국민들이 상상하고 꿈꾸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복지 국가 정치의 역할이다.

설령 4년 뒤 월 50만 원, 10년 뒤 100만 원의 기초노령연금에 필요한 추가적 복지 예산이 30조 원(50만 원의 경우)이고, 70조 원(100만 원의 경우)의 추가 예산이 소요될 지라도, 만약 국민들 개개인이 이런 꿈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들은 그 비용을 십시일반으로 감수할 것이다. 그 복지에 필요한 막대한 복지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단지 부자들만이 아니라 중산층 그리고 저소득층도 자기 소득에 (누진적으로) 비례하여 십시일반으로, 보편적으로, 세금을 납부한다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누진적 조세 부담이란 예를 들어 연간 소득 10억 원이 넘는 이건희 회장 일가 등 최고 소득 가구는 소득의 75퍼센트를 세금(소득세, 자산세 등)으로 납부하는데 반하여 연간 소득 2000만 원이 안 되는 저소득 가구는 소득의 1퍼센트 미만만을 세금으로 내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연소득 1000억 원이 넘는 재벌 가문은 700~800억 원을 세금으로 납부하고, 반면에 연소득 2000만 원가량의 비정규직 청년은 20만 원가량을 세금으로 납부한다. 그렇지만 이건희 회장도, 그리고 비정규직 청년의 노인 부모도 동등하게 월 50만 원(연 600만 원), 월 100만 원(연 1200만 원)의 동등한 기초노령연금 혜택을 받게 하자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보편적 증세와 함께 가야 한다

이런 멋진 보편적 복지 국가를 만들기 위해 '부자 증세'부터 먼저 할 건지, 아니면 '보편적 증세'부터 먼저 할 것인지는 방법의 문제, 즉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의 문제이다. 물론 여전히 우리 국민들은 부유한 특권층의 탈세와 온갖 조세 감면 혜택에 신물이 난 상태이다. 따라서 향후 몇 년간은 부유층에 대한 과세와 중세에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저소득층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복지를 위한 재원 조달에 적극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그들이 먼저 상당한 복지 혜택을 체험적으로 누린 이후에라도, 즉 노인연금 20~50만 원과 반값 등록금, 무상 보육과 초·중고 무상 교육 등을 체험한 끝에, "이렇게 좋은 복지 혜택을 지금보다 훨씬 더 늘려서 그 좋은 혜택을 모두가 누리겠다는 건데, 나도 미약하나마 조금 세금을 더 납부하겠습니다" 하는 의견이 절로 그들의 입에서 나올 수 있을 때 시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꿈과 이상(理想)을 갖자

스웨덴식 복지 국가를 이야기하면 흔히 너무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1950년대 당시 미국 정부의 대외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의 내부 보고서에서 "밑 빠진 독"이라고 부를 정도로 경제 개발에 실패한 완전한 무능력자로 알려져 있었다. 1961년 경제 개발에 착수할 당시에는 1인당 소득이 연간 82달러로, 당시 아프리카 가나의 179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날은 우리의 2012년 1인당 국민소득은 연간 2만4000달러에 달한다.

우리가 제시하는 스웨덴 수준의 복지 국가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은 우리의 복지 수준이 OECD 최하위로 멕시코와 비슷하지만, 우리가 전 국민의 뜻을 모아 복지 개발-인간 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앞으로 10년, 20년, 30년 뒤를 바라보면서 줄기차게 나아간다면, 10년 후 이탈리아 수준, 30년 후 스웨덴 수준의 복지 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복지 국가의 모범으로 알려져 있는 스웨덴의 사회 경제 시스템 역시 평탄한 역사 속에서 구현된 것이 아니다.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홍기빈 지음, 책세상 펴냄)에 나오듯이 그것은 193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거의 반세기 가까운 기간에 온갖 정치경제적 논쟁과 대립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구축된 것이다.

스웨덴 역시 우리와 비슷하게 재벌 문제와 노동 문제, 복지 등 다양한 경제사회적 문제들에 직면했었으며, 그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공산주의는 모두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이런 여러 가치관·세계관들은 스웨덴 복지 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때론 대립하고 때론 협조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국가 스웨덴은 그 과정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꿈과 이상(理想), 미래 비전의 집약체가 이념이다. 이념의 과잉이 아니라 이념의 빈곤이 오늘날 민주 진보 세력의 위기를 낳는다. 민주당의 패배와 여러 진보 정당들의 혼란은 한 시대가 종말을 고했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 386 세대의 등장과 함께 출현했던 NL(민족 해방)과 PD(민중 민주) 그리고 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미국 자본주의의 융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융성한 각종 자유주우의 사조의 종말이요, 그것을 중심으로 하던 정치의 종말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정신과 세계관, 새로운 목표와 가치의 설정은 아직 뚜렷한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런 까닭에 혼란은 무기력은 계속된다. 이제는 새로운 꿈과 이상(理想)에 대해, 새로운 가치와 목표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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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당국회담, 12일 서울 개최

 

실무접촉 합의 실패..의제, 대표단 급은 협의 진행키로 (전문)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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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10 04: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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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당국간 실무접촉이 10일 새벽 3시 종료됐다. 양측은 결국 최종 합의문 도출에는 실패했다. 사진은 천해성 남측 수석대표(왼쪽)와 김성혜 북측 수석대표(오른쪽)가 종결회의 악수를 하는 장면. [사진제공-통일부]

 

남북 당국회담이 오는 12일 서울에서 개최된다. 하지만 당국회담 의제와 대표단 급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해 추후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남북 당국회담을 위한 남북 당국간 실무접촉에서 양측은 10일 새벽 3시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발표문을 발표했다.

양측은 발표문에서 "남북 당국사이의 회담을 2013년 6월 12일부터 13일까지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한 회담 명칭은 남북 당국회담으로 정했으며, 북측 대표단의 왕래 경로는 경의선 육로로 합의했다.

하지만 양측은 회담 의제와 당국회담 대표 급을 두고 의견을 좁히지 못해, 추후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협의하기로 했다.

결국, 양측은 의제와 대표단 급에 대해서는 각기 내용을 달리 발표했다.

남측은 의제에 대해 "회담에서는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 문제 등 당면하게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를 협의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반면, 북측은 "회담에서는 개성공업지구정상화문제, 금강산관광재개문제,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문제, 6.15 및 7.4발표일 공동기념문제, 민간래왕과 접촉, 협력사업추진문제 등 북남관계에서 당면하고도 긴급한 문제를 협의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했다.

즉, 북측은 지난 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특별담화에서 밝힌 의제를 다룰 것을 요구했지만, 남측은 6.15선언 및 7.4성명 발표 기념행사, 민간교류 등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통일부는 "통일부 장관이 남북 당국간 회담과 관련한 정부 입장을 밝히면서 제시한 바가 있다"며 "의제를 일일이 열거하여 제한하기 보다는 '당면하게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측은 지난 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특별담화에서 제시한 의제를 담을 것을 강조, 결국 의제를 합의하지 못했다.

 

   
▲ 남북 양측은 17시간 회의에도 불구하고 합의문을 도출하지 못해 결국 각기 다른 내용으로 발표문을 읽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부]

 

당국회담 급에 대해서도 남측은 "회담대표단은 각기 5명의 대표로 구성하기로 합의하였고, 남측 수석대표는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로 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북측은 "회담 대표단은 각기 5명의 대표로 구성하되, 북측 단장은 상급 당국자로 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해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는 남측이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당국회담 수석대표를 고집했으나 북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양측은 '권한있고 책임있는 당국자'를 수석대표로 하는 데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으나 김양건 부장을 명시하는 부분에는 합의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우리측은 남북관계 총괄 부처 장인 통일부 장관이 회담에 나갈 것이며, 북한도 이에 상응하는 통일전선부장이 나오도록 요구했다"며 "남북관계를 책임지고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화 상대방은 통일부 장관과 통일전선부장이라는 점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합의문에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라는 문안을 제시했지만 북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남측은 제시한 문안대로, 북측은 '상급 당국자'로 달리 표기했다.

이에 남측이 당초 제안한 남북 장관급 회담 명칭은 결국 남북당국회담으로 변경됐다.

회담 명칭 변경에 대해 통일부는 "우리측이 북측 의견을 감안한 것"이라며 "회담의 명칭 보다는 남북문제의 실질적 협의.해결이 중요하고 새 정부의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이라는 의미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남북이 당국회담 대표자 급을 합의하지 못해 명칭을 장관급에서 당국으로 변경했고, 남측은 지난 2007년 마지막으로 진행된 21차 남북 장관급 회담의 연장선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려 했다는 것이다.

 

   
▲ 남북 당국간 실무접촉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부]

 

지난 9일 오전 10시부터 열린 남북 당국간 실무접촉에서 천해성 남측 수석대표와 김성혜 북측 수석대표가 17시간 동안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지만 결국 의제와 대표단 급을 두고 최종합의를 못한 채, 회의를 종료했다.

양측은 지난 9일 오전 10시 15분 오전회의를 시작으로, 1차 수석대표회의(오후2시~오후3시), 2차 수석대표회의(오후5시~오후5시30분), 3차 수석대표회의(오후5시50분~오후6시20분), 4차 수석대표회의(오후7시35~오후8시35분), 5차 수석대표회의(오후 9시35분~오후9시50분), 6차 수석대표회의(오후10시35분~오후10시50분), 7차 수석대표회의(10일 01시55분~02시5분), 8차 수석대표회의(10일 02시15분~02시35분), 전체회의(10일 02시55분~03시5분)를 진행했다.

앞서 북측은 지난 6일 조평통 대변인 특별담화를 통해 6.15를 계기로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민간교류 등을 위한 남북 당국간 회담을 전격 제의했고, 이에 정부는 12일 서울 남북 장관급 회담을 제안했다.

그리고 지난 7일 조평통은 12일 장관급 회담에 앞서 9일 개성에서 남북 당국간 실무접촉을 제안했으며, 정부는 같은 날 오전 10시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개최할 것을 수정제의했고 북측이 받아들였다.

 

발표문

남과 북은 2013년 6월 9일부터 10일까지 판문점에서 남북당국간 실무접촉을 진행하였다.

1. 남북당국사이의 회담을 2013년 6월 12일부터 13일까지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2. 회담 명칭은 남북당국회담으로 합의하였다.

3. 회담에서는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 이산가족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 문제 등 당면하게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를 협의하기로 하였다.

4. 회담 대표단은 각기 5명의 대표로 구성하기로 합의하였고, 남측 수석대표는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로 하기로 하였다.

5. 북측 대표단의 왕래 경로는 경의선 육로로 하기로 합의하였다.

6. 추가적인 실무적 문제는 판문점 연락관을 통하여 협의하기로 합의하였다.

2013년 6월 10일
판 문 점

※ 제3항 및 제4항은 남과 북이 서로 다른 내용으로 각각 발표

<북측 발표문 중>

3. 회담에서는 개성공업지구정상화문제, 금강산관광재개문제,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문제, 6.15 및 7.4 발표일 공동기념문제, 민간래왕과 접촉, 협력사업추진문제 등 북남관계에서 당면하고도 긴급한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하였다.

4. 회담대표단은 각기 5명의 대표로 구성하되, 북측 단장은 상급 당국자로 하기로 하였다.

[자료제공-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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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없는 드라마 '한반도', 극적인 반전의 시작?

[정욱식 칼럼] 박근혜 정부, 신중하면서도 담대한 자세로 임해야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편집위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6-07 오전 11:28:19

 

6월 6일 북한이 당국자 회담을 전격 제안하고 남한이 장관급 회담 제의로 호응하면서 대결로 치닫던 한반도 정세의 극적인 전환이 기대되고 있다. 특히 남북 회담은 남북관계 정상화뿐만 아니라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주변 국가들의 합종연횡이 가시화되고 있는 시점에 열릴 예정이어서 그 배경과 결과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남북 대화의 시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자문역인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참여의 방북(5월 중순)→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최룡해 총정치국장 방중(5월 하순)→북한의 남북대화 제안 및 남한의 화답(6월 6일)→오바마-시진핑(習近平)의 미중정상회담(6월 7~8일)→남북 장관급 회담(6월 12일 유력)→박근혜-시진핑의 한중정상회담(6월 17일 예정) 등으로 이어지는 대화 프로세스에서 남북대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지난 6일 특별담화문을 발표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이산가족을 비롯한 남북간 현안을 논의할 당국 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 ⓒ연합뉴스


남북한이 당국자 회담 개최에 합의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작지 않은 시너지 효과를 낼 전망이다. 우선 7~8일에 열릴 미중정상회담의 분위기에 영향을 줄 것이다. 최룡해 특사 방중 시 6자회담 개최 필요성에 동의를 받아낸 시진핑 주석은 남북대화 합의에 힘입어 더욱 효과적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북미대화 및 6자회담에 응해달라고 설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오바마 행정부는 북미대화와 6자회담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대화 프로세스가 대세가 된다면 전향적으로 대북정책 재검토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남북대화가 일본에 미칠 영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베 총리는 한국 및 미국과 긴밀한 사전 협의 없이 북일대화를 시도했다가 역풍을 맞았었다. 한국과 미국은 대북 제재 및 압박 구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비판이, 일본 내부에서는 '선거용'이라는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합의된 남북대화는 아베 정권에게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국내외의 정치적 부담을 줄이면서 북일회담에 적극 나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베 정권의 입장에서는 양적 완화에 기초한 '아베노믹스'의 부작용이 가시화되고 있어 북일회담을 통한 일본인 납치 문제의 진전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아베 총리가 직접 방북을 추진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박근혜 정부가 국내외의 '환영' 속에 남북대화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대화 제의 직후 국제 사회는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남북대화를 꺼려했던 일본 정부까지 포함되어 있다. 국내에서도 모든 정당들이 환영하고 있다. 이처럼 국제적 지지와 초당적 협력이라는 축복 속에 남북대화가 열릴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이다. 이는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각국 이해관계의 차이와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더구나 북한이 6.15 공동선언뿐만 아니라 7.4 공동성명까지 함께 기념하자고 제안해온 것은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6.15와 10.4 선언만 주로 언급했던 북한이 7.4 성명까지 강조하고 나오면서 "남북한의 모든 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하는 것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핵심 기조로 내세워온 박근혜 정부와의 교집합도 그만큼 커지게 되었다. 또한 남북관계 전환의 역사적 시발점을 박정희 정권 때 이뤄진 7.4 공동성명으로 잡게 되면서 국민적 합의와 초당적 협력의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게 되었다.

물론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변화무쌍한 한반도 문제의 속성상 언제 돌출 악재가 터질지 모른다.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서 여러 가지 까다로운 실무 문제를 넘어서야 하는 과제도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북미대화와 6자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비핵화 문제에 대해 북한이 어떤 성의를 보일지 낙관하기 힘들다.

그러나 좌초 위기에 처했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중대한 기회를 맞이한 것만은 틀림없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신중한 자세와 "시작이 반"이라는 담대한 구상을 가지고 남북대화를 비롯한 한반도 대화 프로세스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당부하고 싶은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남북관계 수준이다. 당장 눈앞에 다가온 남북 장관급 회담과 이를 위한 실무회담에서 남북관계 복원을 넘어 발전의 기초를 닦은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 북한의 재발 방지 약속을 확실히 받아내면서도 개성공단의 확대에도 적극적인 입장을 보일 필요가 있다. 또한 북측이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더불어 박근혜 정부가 신뢰 프로세스 출발점의 한 축으로 구상해온 대북 인도지원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는 신뢰구축에 크게 기여해 국군 포로 문제와 같은 광범위한 인도주의 문제 해결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북측 대표단의 방한 시 면담에 나서 남북정상회담 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적극 고려하면 좋을 것이다. 이는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북일정상회담을 고려하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를 둘러싼 대화의 수준을 정상으로 끌어올리는데 남북정상회담이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의미이다.

둘째,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 수준이다. 남북관계와 국제관계 사이에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반도 핵문제와 정전체제라는 근본적이고도 거대한 문제 해결의 비전을 갖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북한은 비핵화는 마다하면서 '평화회담'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비핵화 없는 회담에는 관심이 없다는 태도이다. 그런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한국에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달성해야 할 사활적인 문제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에 주목해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포괄하는 협상 전략을 짜야 한다.

끝으로 남한 내부의 수준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박근혜 정부는 남남갈등을 딛고 국민적 합의와 초당적 협력을 추구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야당과 민간의 역할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6.15 공동행사를 비롯한 남북한의 민간 교류를 적극 협력하고, 야당과 시민사회와의 소통도 강화해야 한다. 실질적인 남북대화가 6년 만에 재개된다는 점에서 남북대화에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인사들의 조언은 꼭 필요하다. 또한 진보적ㆍ중도적 시민단체전문가들의 고언에도 귀를 기울여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이 선순환적으로 병행될 수 있는 해법 마련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편집위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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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어떻게 ‘남성’을 잃어버렸나

새들은 어떻게 ‘남성’을 잃어버렸나

 
조홍섭 2013. 06. 07
조회수 25778추천수 0
 

오리 등 물새와 타조 등 원시조류 뺀 97% 수컷 외부 생식기 축소 또는 사라져

배아 단계서 '세포 자살' 신호 작동해 생식기 '싹' 없어져, 암컷 통제 강화 위한 진화 설명

 

Andrei Stroe_640px-RO_BZ_Berca_Chicken_copulation.jpg » 교미하고 있는 닭. 체내수정을 하는 일반적인 동물과 달리 닭 등 대부분의 새 수컷의 생식기는 흔적만 남았거나 아주 사라졌다. 사진=안드레이 스트로에, 위키미디어 커먼스

 

동물진화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의 하나는 대부분의 새 수컷에게 생식기가 없거나 아주 작게 축소됐다는 사실이다. 돌출한 생식기는 정자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조류의 97%인 1만 종에 가까운 조류의 수컷에게서 외부 생식기가 사실상 없어진 것은 무엇 때문이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애나 헤레라 플로리다 대 생물학자 등 미국과 영국 연구자들이 이런 의문을 발달 단계에서 해명한 논문이 7일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렸다.
 

대부분의 새에서 수컷의 돌출 생식기는 완전히 퇴화했다. 그러나 닭, 메추라기, 꿩 등의 육상조류는 수컷의 생식기 축소돼 흔적만 남아있다.
 

반면 닭 등 육상조류와 분류학적으로 가까운 오리, 고니, 거위 등 물새류 수컷은 생식기가 완전하게 발달해 있다. 또 에뮤, 타조, 키위 등 일찍 분화된 집단도 잘 발달한 수컷 생식기를 지닌다.

 

PIIS0960982213005034_fx1_lrg.jpg » 조류의 생식기 발달 비교. 사진=애나 헤레라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phallus.jpg » 조류 수컷의 생식기 비교. 왼쪽부터 닭, 메추라기, 오리, 거위. 닭과 메추라기 사진에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돌기가 축소된 생식기이다. 사진=애나 헤레라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연구진은 수정란인 달걀과 오리알이 발달하는 과정을 자세히 조사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닭이나 오리나 나중에 생식기로 자라날 부위가 처음에는 똑같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식기의 ‘싹’이 오리는 정상적으로 발달하지만 닭은 며칠 안에 성장을 멈추고 곧 사라져 버린다.
 

연구진은 처음 생식기를 발달시키는 무언가가 오리에겐 있고 닭에게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어떤 단백질이 닭에게만 ‘죽음의 신호’를 내보냈던 것이다. 이 신호는 생식기를 이룰 부위의 세포가 자살하도록 이끄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그것이 뼈 형성 단백질 4(Bmp4)임을 밝혔다.
 

이 단백질은 세포의 죽음(아포토시스)을 일으키는 인자로 작용해, 나중에 생식기로 자랄 세포를 없애는 구실을 했다. 실험에서 이 인자 세례를 받은 오리의 알에선 생식기가 자라지 않는 것이 확인됐다.
 

penis_A.M. Herrera and M.J. Cohn, University of Florida.jpg » 닭 배아(유정란)에서 수컷의 생식기로 자라날 부분(붉은색). 처음엔 오리와 마찬가지로 발달하나 곧 세포 자살로 사라진다. 사진=애나 헤레나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이번 연구로 수탉의 생식기가 ‘어떻게’ 축소됐는지는 밝혀졌지만 ‘왜’ 그런지 드러난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논문은 여러 가설을 소개했다.
 

암탉이 생식기가 작은 수컷을 선택함으로써 수컷에 대한 통제력을 높였다는 것이 유력한 가설이다. 돌출한 생식기가 없는 새들은 ‘배설강 키스’라고 불리는 교미 행동을 한다. 암컷과 수컷이 배설강을 맞대고 정액을 전달하는 짧고 어설픈 동작이다. 효과적인 짝짓기를 위해선 암컷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반면 돌출된 생식기를 지닌 오리는 암컷의 협조가 필요 없다. 일부 오리는 자기 몸보다 긴 포도주 따개처럼 구불구불하게 감긴 생식기를 지녔는데, 원하지 않는 암컷에게 교미를 강제하기도 한다.
 

연구진은 이런 성 선택 가설 이외에 다른 설명도 제시했다. 생식기의 축소가 새들이 진화하면서 일어난 몸의 변화의 일종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특히, 깃털 형성, 이빨 상실, 부리 형성은 주요한 새들의 특징인데, 모두 Bmp4 단백질과 관련이 있다. 결국 3%를 제외한 대부분의 새들은 하늘을 나는 월등한 변화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수컷의 돌출 생식기를 잃었다는 설명이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Herrera et al., Developmental Basis of Phallus Reduction during Bird Evolution, Current Biology (2013), http://dx.doi.org/10.1016/j.cub.2013.04.06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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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남관계 전략 변화… 그 속내는?

 

[분석] 중국에 명분 주면서 비핵화 전제 무산시키려는 북한의 고도 전략
 
김원식 | 2013-06-09 09:28:3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북한은 그동안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도발 자제 요구와 한국의 대화 재개 촉구에도 불구하고 대남 강경 노선을 이어왔다.

그러나 지난 6일 전격적으로 남북 대화 재개 의사를 공식 발표하면서 개성공단 문제와 이산가족 문제 등 남북한 제반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러 분석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현재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이른바 "중국 압력설"이다. 즉 원조 등 경제 지원의 창구이자 동맹 관계인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막아보고자 북한이 '강경 일변도' 전략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동맹인 중국과 차츰 불편해지는 관계를 개선하고자 지난달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김정은 제1비서 특사로 중국에 파견한 바 있다. 하지만 여러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최 특사는 예전처럼 호의적인 대접을 받지 못했고 방문 막바지에 가서야 시진핑 국가 주석을 면담했다.

 

▲ 최룡해(왼쪽)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지난 5월24일 오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예방했다. ⓒAP=연합뉴스

 

이 면담 자리에서도 북한은 그동안 자신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핵보유의 당위성'을 언급했다는 보도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및 6자회담 복귀에 대해 완고한 시진핑 주석의 "한반도 비핵화는 대세이다"는 입장만 재확인했을 뿐이다.

또한, 이 자리에서 북한의 최룡해 특사는 "6자회담을 포함에 모든 대화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처음으로 대내외에 자신들의 대외관계 전략이 변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따라서 이번에 북한이 남북 간의 대화 재개를 선언한 것도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상황의 연장 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특히,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8일과 9일 이틀 동안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북한으로서는 이러한 입장 변화 발표의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였다.


미·중 정상회담 앞두고 대화 재개 발표… 중국, 미국 동조 막을 명분 필요

만일, 북한이 앞서 시진핑 주석에게 대화의 장에 나서겠다고 약속했지만, 미·중 정상회담에 앞서 이러한 태도 변화를 공식화하지 않는다면, 한반도 비핵화 노선과 북한의 핵 개발에 따른 유엔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중국이 미국의 강력한 대북 봉쇄 전략에 동조 내지 수수방관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번 미·중 간 정상회담이 비록 비공식 회담이기는 하나 이틀에 걸쳐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양국의 외교관계 핵심 정부 인사들이 모두 참여해 장시간 협상을 하는 자리이므로 북한 문제가 논의되었고 양국의 입장이 조율 되었을 것은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 27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갖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또한, 이번 달 27일로 예정되어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간의 한·중 정상회담도 북한의 이러한 전략적 노선 변화 발표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남북한 간에 아무런 상황 진전이 되지 않은 가운데서 한·중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한국과 중국 정상이 북한의 비핵화에 강력하게 동의하고 북한의 자세 변화를 촉구한다면 북한으로서는 더욱 고립을 자초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동맹 관계에 있는 중국과의 관계 모양새가 완전히 흐트러지는 이러한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성이 제기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핵무력 보유' 기본 전제 바뀌지 않을 듯…'핵보유 현실' 인정 추구

그렇다면 북한의 이러한 전략 변화는 장기적으로 핵 보유의 포기와 개발 중지 등 이른바 '핵무력 보유' 정책의 폐지까지도 나아갈 수 있을까?

전혀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이에 관해 <워싱턴포스트>는 8일 "북한의 대화 재개 의지는 북한 지도부를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게 하려는 중국의 압력이 작용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 신문은 "분석가들은 북한이 진정으로 북한 비무장(비핵화)에 초점이 맞추어진 (그동안) 정체된 다자회담(6자회담)에 관심이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하지만 남북 대화는 핵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쉬운 첫 단계이다"고 보도했다.

다시 말해 개성공단이나 남북 이산가족 문제 등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번 남북 대화의 재개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전제로 하지 않고도 북한의 대화 의지가 있음을 보여 줄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태도 변화는 중국의 압력에 대해 적절히 응대하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기존에 자신들이 주장하는 '핵무력 보유'라는 기본 입장은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 봉쇄 등을 무기로 중국 등 관련 당사국들의 이어지는 비핵화 촉구 압력에 모양새를 맞추어 시간을 벌고 더 나아가서는 '핵보유 현실'의 인정 하에 북·미 대화가 추진되게끔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하겠다.


<교도통신>, 남북관계 개선 연출은 북·미 대화 '비핵화 전제 무력화' 전략

이와 관련하여 일본의 <교도통신>은 같은 날 더욱 단호한 분석을 내놓았다. 이 통신은 "북한, 남북관계 개선(은) 연출(이며)…목적은 '미·북 대화 재개'"라는 제목으로 이번 북한의 남북 대화 재개 의지가 '연출'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북조선에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계기로 미·북 대화의 재개를 서두르겠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여 9일 이후에도 유연한 자세를 계속 유지하면서 남북 관계 개선을 연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북조선의 목적은 남북 절충이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줌으로써 미국이 대화의 장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비핵화를 미·북 대화 재개 조건으로 내세우는 미국도 남북통일 문제의 당사자 사이에서 화해 분위기가 추진되면 타협하지 않을 수 없다. 북조선은 이렇게 계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전망했다.


북한, 남북 관계 전략 변화에도 기본 입장 고수할 듯… 한국 정부 역할 중요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번 북한 특사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다시 북한 내 대화, 온건파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북한이 대외 관계 특히, 남북 관계에서 '대결 강화'에서'대화 재개'로 전략을 수정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분명한 대화 전제 조건으로 고수하고 있고 북한은 '핵무력 보유'를 분명한 기본 노선으로 하고 있어 이번에 일부 북한의 전략적인 노선 변화가 북·미 간의 대화와 타협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극히 적어 보이고 있다.

따라서 27일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은 상당히 전향적인 자세로 개성공단의 재개와 남북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 문제들을 합의하고 중국과 한국 측에 추후 공을 넘길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변화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 간의 기본 인식과 시각 차이는 워낙 크고 분명하다. 따라서 이번에 북한의 대화 재개 의사 표명으로 조성된 한반도의 상황 변화가 북·미 대화 등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단계로 진전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한국 정부의 역할이 있음을 기대해 보고자 한다. 한국은 미국과 북한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로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이자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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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출장 많을 것"이란 예언 적중하길

[取중眞담] 지난달 말 이미 대화국면 예상?

13.06.08 19:54l최종 업데이트 13.06.08 20:07l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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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남북장관급회담을 12일 서울에서 열자"라고 북한에 제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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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나온 정부 고위관계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앞으로 통일부 출입 기자들이 많이 바빠질 거다. 출장도 많이 다니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이에 대한 UN안보리의 대북제재가 취해진 이래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고, 개성공단사업이 잠정 중단되는 남북관계 악화일로의 상황에서도 통일부 담당 기자들은 바빴다. 그러나 이 관계자의 '바빠질 것'이라는 말은 남북관계가 크게 호전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출장을 많이 다니게 될 것'이란 얘긴 평양·개성·금강산 등 정부의 방북 행렬에 동행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남북 간 대화의 장이 많이 마련될 것이라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의아했다. 개성공단사업 잠정중단 사태가 50일을 넘어가고, 북한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요구한 당국 간 실무회담에 응하지 않으면서 남한의 민간단체들에게는 방북을 허용한다고 천명하는 등 북한은 정부의 바람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정부 비난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고 '핵 무력 보유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명박정부에서 악화된 남북관계가 박근혜정부에서 더 나빠지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고 있었다.

당시 자리에 있던 기자들은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았고, 남북관계가 호전되길 바라는 이 고위관계자의 희망 정도로 해석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9일 뒤인 지난 6일 북한은 정부가 그토록 요구한 당국 간 회담에 응하겠다고 발표했다. 단순히 회담뿐 아니라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포괄적인 의제들을 열거하면서 대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북한 중대발표 첩보 입수"... 대화 국면 예상했나?

'통일부 출입 기자들이 많이 바빠질 것'이란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이 그냥 농담이 아니라 곧 닥칠 대화국면을 시사한 게 아니었던가 하는 '뒤늦은 각성'이 드는 건, 이와 비슷한 시점에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변화 가능성이 언급된 내용도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9일자에서 북한의 '중대 발표설'을 보도했다. 북한이 금명간 중대발표를 할 것이란 첩보를 정부가 입수해 확인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가 인용한 정보당국자는 "북한이 그동안 거부했던 6자회담 복귀와 개성공단 정상화, 새로운 특구지정 등 중국과 주변국에서 요구하고 있는 개방 움직임과 관련한 조치를 내놓을 것이란 첩보가 있다"고 했다.

남북 당국 간 회담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올 거라는 내용이어서 현재의 상황과도 맞아떨어진다. 이 보도 내용과 정부 고위관계자의 '통일부 기자들 바빠질 것' 발언이 나온 걸 종합하면, 정부는 북한이 조만간 기존 태도에서 큰 변화를 보여줄 것이라 예측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그동안 정부가 북한과 물밑으로 접촉하면서 이런 상황을 유도한 것은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물밑 접촉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낮다. '물밑 접촉 같은 비공식 접촉보다는 투명하고 공개적인 대북 정책을 지향한다'는 게 현 정부 기조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북한 "대통령이 그동안 일관된 대북 메시지를 유지한 데에 따른 태도변화로 봐야지, 물밑접촉 같은 건 전혀 없었다. 확실하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남북 간 비공식 대화 등 물밑접촉 없이 박 대통령의 일관된 대화의지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냈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다.

난제 많지만, 부풀어오르는 '출장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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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을 통제한 지난 4월 3일 오전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려던 화물차량들이 모두 되돌아간 뒤 차량통행로가 텅 비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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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북 정부 간 대화의 장이 열린다 해도, 풀기 힘든 어려운 문제들이 놓여있다. 북한은 이명박정부 때 단행한 5·24 남북경협제한조치를 해제해주길 바라지만, 이 조치의 명분이었던 천안함사건에 대해 '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라는 북한의 기존 입장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의 입장도 그대로이기 때문에 남북 대화 진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난제가 예상되지만, 통일부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기대는 부풀어 오르고 있다. 쉽사리 가볼 수 없는 북한 지역에 출장을 갈 기회가 있다는 게 통일부 취재 기자의 '특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정부 땐 남북관계 악화로 자취를 감춰버린 '북한 출장' 기회가 되살아나지 않겠느냐는 희망이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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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해고자 역작 '아트카', 꽃다지 태우고 달린다

[현장] H-20000 모터쇼…꽃다지 "폐차될 때까지 노동자와 한뎃잠"

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6-07 오후 9:55:37

 

 

쌍용해고 노동자들이 시민의 후원으로 부품 2만 개를 모아 만든 자동차기증하는 행사가 열렸다.

'함께 살자 희망 지킴이'는 시민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H-20000 모터쇼' 행사를 열고,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직접 조립한 '아트카(Art Car)'를 노래패 '꽃다지'에 기증했다.

박재동 화백 등 9명으로 구성된 자동차 선정위원회는 "22년째 노동 현장을 찾아가면서 노래로 연대하고 있는 꽃다지는 재정 상황이 어려움에도 노동 현장에서 MR을 틀지 않고 직접 연주를 하고 싶다고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선정위원회는 특히 "비정규직 투쟁에 소극적인 노조가 꽃다지에 자동차를 기증하겠다고 했지만, 비정규직 싸움에 너무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꽃다지가 이를 거부한 점 등이 선정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덧붙였다.

모터쇼에서 자동차 키를 전달받은 꽃다지는 "앞으로 몇 년이나 노래할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이 차가 10년은 달린다고 한다"며 "폐차될 때까지는 길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와 한뎃잠 자며 노래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만든 자동차의 열쇠를 건네받는 노래패 꽃다지. ⓒ프레시안(최형락)


쌍용차의 대표적인 차종인 코란도를 재조립한 'H-20000 프로젝트'는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해고자들의 마음을 알리고 쌍용차 국정조사를 촉구하기 위해 기획됐다. (관련 기사 : <쌍용차 해고자들 "반갑다 코란도…솔벤트 냄새도 친근"> <해고자들이 만든 차 첫선, "2만 개로 조각난 삶 끝마친다">)

완성한 자동차 부품 하나하나에는 후원한 시민의 이름을 새기고, 시민 2만 명에게 부품 한 개당 1만 원씩 후원을 받아 장기 투쟁 사업장 30여 곳을 위한 기금을 모은다는 취지다.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자동차를 만들던 쌍용차 해고자들의 손은 4년 동안 전혀 녹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쌍용차 해고자들은 공장에 들어가 자동차를 만들어야지, 길거리에서 헤맬 사람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은 "이제 공장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며 "국정조사를 통해서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해고자들의 진실을 밝히는 사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쌍용차 평택 공장 인근 송전 철탑에서 고공 농성을 하다가 지난달 내려온 한상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지부장은 "25세에 컨베이어벨트를 타기 시작해 이제 나이 50이 넘었다"며 "누구나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해고의 공포가 이 나라에 너무 어두운 그림자로 남았다"고 운을 뗐다. (관련 기사 : 15만 볼트 위 171일 농성…"박근혜, 왜 약속 어기나")

한 전 지부장은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는 단일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영원한 숙제로 남을 갑들의 잔치"라며 "쌍용차 사태를 더는 미룰 수 없다. 2013년이 가기 전에 시민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편, '함께 살자 희망 지킴이'는 자동차 기증 대상에서 아쉽게 떨어진 사연도 공개했다. 이 단체는 지난달 자동차를 기증받을 단체나 개인의 사연을 받은 결과, 총 17편의 사연이 접수됐으며 최종 5개 후보군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5위는 밀양 송전탑 투쟁을 하는 주민들의 인터뷰를 르포와 단편소설로 소개하고 싶은 현직 교사 이 모 씨, 4위는 경산이주노동자센터, 3위는 의료 사고로 동생 부부를 잃고 가계가 파탄 난 시민 현 모 씨, 2위는 촛불 시위 당시 시민의 성금으로 산 승합차가 폐차 직전에 달한 칼라TV가 차지했다.

선정위원회는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을 하는 밀양 주민 대책 위원회도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기증할 차종이 코란도 밴이라는 점이 감안되어 순위에서 밀렸다"며 "사연에 응모해주신 분들이나 단체 모두 자동차가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우리가 준비한 자동차는 한 대뿐이었기에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날 오후 4시에는 북 바자회, 사진전, 밥 나누기 행사가 진행됐으며, 오후 7시부터는 모터쇼와 공연이 열렸다. 공연에서는 이한철, 자전거 탄 풍경, 허클베리핀 등이 열띤 무대를 선보였다.

 
 
 

 

/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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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은행 쟁탈전, 창조경제는 관치경제?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6/08 11:26
  • 수정일
    2013/06/08 11:2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노무현-문재인과 친분 야권성향...이게 물러나야 하는 이유?
 
육근성 | 2013-06-08 09:45:3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순수 민간 금융회사의 수장에게 금융당국이 사퇴를 요구해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회사의 임원과 대표의 퇴진 여부는 주주들이 결정할 문제지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 정부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남용해 민간금융회사의 인사권을 좌지우지 해온 관치시대의 본색이 여전하다.

 

금감원의 부산은행 회장 사퇴 종용 이유가 가관

 

물러나라고 요구한 이유가 가관이다. 조영제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BS금융지주(부산은행) 이장호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밝힌 이유가 황당하기만 하다. 청와대를 향한 아첨이 아니라면 청와대의 속내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BS금융이 새 정부의 창조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체제도 아니고, 이장호 회장이 금융중심지인 부산의 대표 금융기관의 수장으로 적합하지 않다.”

 

“창조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민간회사의 CEO에게 사퇴를 종용하다니 어처구니없다. ‘창조경제’가 대체 뭔지 그 개념조차도 아직 모호한 상태다. 그런데도 이런 망언이다. ‘박근혜 정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니 물러나라’는 것으로 들린다.

 

이장호 회장의 ‘능력’은 이미 인정받은 바 있다. 장기 집권이라는 비난도 있긴 하나 재임 7년 동안 부산은행 자산을 2배로 늘리는 등 탄탄한 성장을 이끌어 왔다. 지난 2007년에는 부산은행 비정규직 6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노동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 왔다.

 

트집잡힐 것 없는 이 회장을 흔드는 진짜 이유

 

이렇다 할 잘못도 없다. 지난해 9월 금융당국이 BS금융에 대해 종합검사를 벌였지만 특별한 문제를 적발해 내지 못했다.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할 만한 실책이나 비리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왜 금감원이 이 회장의 사퇴를 압박하고 나선 걸까.

 

이 회장의 ‘장기집권’으로 인해 BS금융지주의 경영진이 이 회장의 측근들로 구성됐다는 게 금감원이 밝힌 사퇴 종용 사유다. 이 회장의 모교인 부산상고와 동아대 출신들이 임원 54명 중 24명을 차지하는 등의 인사편중 현상을 문제 삼았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다. 지역은행의 특성상 지역 상고 출신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구은행은 대구상고, 경남은행은 마산상고 출신이 다수다. 부산은행에 부산상고 출신이 많은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진짜 이유가 뭘까. 두 가지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최근 BS금융지주가 금융지주(대구은행)과의 경남은행 인수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 먼저 주목해야 해볼 필요가 있다. 또 정권과 연루된 정치적 노림수가 작용했을 거라는 정황이 포착되기도 한다.

‘경남은행 쟁탈전’에 뛰어든 '창조경제'

 

2000년 IMF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우리금융그룹에 편입된 경남은행에 대한 분리 매각이 추진 중이다. 경남도 102곳 등 전국 160개 영업점을 가진 경남은행 인수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두 곳이 있다. 부산은행의 BS금융지주와 대구은행의 DBS금융지주가 그들이다.

 

영남 최고의 은행자리를 놓고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BS금융지주의 총자산규모(올해 1분기)는 45조원이고 DGB금융은 35조원 정도다. 경남은행의 총자산은 32조원에 달한다. 어느 쪽이든 경남은행을 인수한다면 영남권 최대 은행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BS금융이 인수할 경우 DGB금융과의 차이를 두 배 이상 벌일 수 있고, DGB금융이 인수에 성공할 경우 영남권 2위 자리에서 1위로 부상할 수 있다. 대구은행과 부산은행 모두 경남은행 인수를 목적으로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인수 준비를 마친 상태다.

경남은행 인수작업을 견인하고 있는 BS금융 이 회장에 대한 금감원의 퇴진 요구에 대해 부산은행 노조와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금감원이 경남은행 인수전에서 가장 유리한 카드를 쥐고 있는 BS금융을 흔들어 대구가 본거지인 DGB금융의 편을 들려는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부산금융도시시민연대, 부산시민단체협의회, 부산은행 노조 등은 오는 10일 금감원의 부산은행 탄압과 BS금융지주 회장 사퇴 강요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경남도와 경남 시민단체들은 경남은행의 경영권이 다른 시도로 넘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경남도민의 은행’이었던 만큼 부산은행이나 대구은행으로 편입되지 않고 독자 생존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인수자금 등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내기 쉽지 않아 경남도민의 바람대로 되기 어렵겠으나, 경남은행 인수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남도민의 반발 또한 거셀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문재인과 친분 야권성향...이게 물러나야 하는 이유?

 

이장호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가 지난 대선 당시 이 회장이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일 수 있는 정황도 다수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 이 회장과는 친분이 있던 사이였다. 노 전 대통령이 이 회장의 부산상고 1년 선배다. 이 회장은 문재인 의원과도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 성향인데다 야권의 유력 정치인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 그리고 박 대통령의 연고지인 대구은행을 편들 목적으로 정부가 금감원을 내세워 이 회장의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BS금융지주 회장까지 바꾸라는 압력을 가하는 등 민간기업에 금융당국이 개입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6월 국회에서 브레이크를 걸고 단단히 따져 물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금감원의 압력에 맞서던 이 회장이 끝내 사퇴로 가닥을 잡는 듯하다. 경남은행 인수를 완료한 뒤 내년 3월까지인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치겠다며 금감원의 사퇴 압박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던 이 회장이 오는 10일 거취문제와 관련해 입장을 발표하겠고 말했다. 이 회장이 사퇴하게 될 경우 BS금융은 막바지에 다다른 경남은행 인수전에서 크게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그가 인수전의 모든 것을 지휘해왔기 때문이다.

최대 수혜자는 DGB금융(대구은행), 대구 편들기?

 

반면 경쟁을 벌이고 있는 DGB금융이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인수 가능권 2위였던 대구은행이 경남은행의 주인 자리를 꿰찰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금감원의 이 회장 사퇴 압박으로 BS금융의 경남은행 인수가 어렵게 될 거라는 소문이 돌며 BS금융지주의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등 벌써부터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금감원의 부산은행(BS금융지주) 흔들기. 이에 따른 최대 수혜자가 누굴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대구은행(DGB금융지주)이다. 영남권 최대 은행 자리를 놓고 격돌하고 있는 팽팽한 구도에서 BS금융이 흔들릴 경우, 무게의 중심은 DGB금융으로 급격히 쏠리게 될 것이다. 32조원의 경남 최대 은행을 손에 거머쥘 가능성이 높다. 금감원이 박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를 편들고 있는 셈이다.

 

BS금융지주는 민간기업이지 관치의 대상이 아니다. BS금융을 흔들어 경남은행을 박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은행에 주려는 게 금감원의 의도인가? 맞다면 당장 멈춰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가 정치적 노림수로 금감원을 내세운 거라면 관치금융의 부활을 노골적으로 획책한 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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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비판 후 명예교수 추대서 배제된 정지창 전 교수

"영남대, '박정희 신앙공동체' 됐다"

[인터뷰] 박근혜 비판 후 명예교수 추대서 배제된 정지창 전 교수

13.06.07 15:58l최종 업데이트 13.06.07 15:58l

 

 

지난 29년간 영남대의 역사를 지켜봤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될 때 눈치 보지 않고 목소리를 낸 정지창(65·독어독문학) 전 교수. 하지만 이 '소신'의 대가는 냉혹했다. 정년퇴임 한 교수들 대부분이 문제없이 추대되는 명예교수직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관련기사 : 박정희 리더십 비판했다고 명예교수 안돼?). 지난 2월 퇴임 후에도 대학 측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그를 지난 5월 22일 대구에서 만났다.

이날 '영남대재단 정상화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정지창 명예교수 추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영남대가 학교의 명예를 스스로 훼손하는 자해행위를 하고 있다"며 "학교와 재단 측은 더 늦기 전에 명예교수 배제 결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박정희 비판하면 '배신자'되는 영남대

"영남대는 지금 정상적인 학문공동체가 아니라 일종의 신앙공동체가 됐습니다."

정 전 교수는 지난 3월 영남대교원인사위원회가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명예교수 추대 대상에서 제외한 것을 이렇게 꼬집었다. 그는 지난해 9월 영남대 범시민대책위 공동대표를 맡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영남학원 학교법인 완전 퇴진과 박정희 전 대통령 미화교육 중단 등을 요구했다. 학교법인 측은 정 전 교수의 주장을 두고 '근거 없다'며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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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재단 비판 후 명예교수 추대에서 배제된 정지창 전 교수는 "박정희를 비판하면 '배신자' '친북좌빨'이라고 몰아세운다"라며 "이렇게 되면 대학에서 학문과 양심의 자유가 존중받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 김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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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창 교수는 누구?
정지창 교수는 영남대서 독어독문학과장, 교무처장, 교학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실천문학> 편집위원, 문예미학회장, 대구경북민족문학회 공동대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예술마당 솔 대표, 민예총 대구지회장, 민예총 이사장 등을 거쳤다. 정 교수는 지난 2월 28일 정년퇴임하며 공로를 인정받아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대학은 토론하고 논의하는 학문공동체입니다. 하지만 지금 영남대는 '너 박정희와 새마을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하면 '넌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다'며 내쫓는 신앙공동체가 돼 버렸어요. 대학구성원들에게 일정한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거기에 맞지 않으면 쫓아버립니다. 박정희를 비판하면 '배신자' '친북좌빨'이라고 몰아세우는데, 이렇게 되면 대학에서 학문과 양심의 자유가 존중받지 못하게 됩니다."

영남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꼽히는 '새마을운동'을 영남대의 브랜드로 정착시킨다는 목표 아래 2010년 박정희리더십연구원과 2011년 새마을정책대학원을 설립했다. 영남대가 이렇게 '박정희 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이 학교를 권력으로 '강탈'했고, 1980년 이후 박근혜 전 이사장이 재단의 실권을 행사하면서 학교를 사유화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 전 교수의 주장이다. 정 전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겉으로는 '영남대에서 손을 뗐다'고 말하면서 사실상 인사권을 행사하는 등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남대의 역사는 복잡하다. 영남대는 1967년 대구대와 청구대를 통합해 만들어졌는데, 대구대 설립자인 최준 선생이 '한강 이남에서 제일가는 대학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삼성 이병철 회장에게 운영권을 맡겼다고 한다. 그런데 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곤경에 처한 이 회장이 대구대를 박정희 정권에 헌납했다는 게 정 전 교수와 시민대책위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소유주인 최준은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1979년 박 전 대통령이 저격당한 후) 박근혜씨가 오직 그의 딸이라는 이유로 영남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것도 부당합니다. 정당하게 설립한 대학도 아니고 남에게 빼앗아서 만든 대학을 상속하듯 넘겨주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요."

주인 잃은 영남대... "박근혜 대통령이 손 떼야 정상화"

1980년 박근혜 이사장이 부임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영남대의 주인은 박정희'라는 것을 정관에 못 박는 일이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설립과정에서 1원도 출연하지 않았지만 영남학원법인 정관 1장 1조에 '교주 박정희'라는 문구가 1981년도에 들어갔다. 하지만 1988년도에 학교법인은 ▲ 부정입학 ▲ 사용처 불명의 재정집행 ▲ 토지무단매각 등 비리로 위기를 맞았고, 박 이사장은 불명예퇴진한다.

"박근혜씨는 당시 학교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성명을 발표했어요. 그런 사람이 20년이 지난 2009년 재단 정이사 7명 중 4명을 추천했어요. 사실상 박근혜 체제가 돌아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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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위)과 박정희리더쉽연구원(아래) 누리집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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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를 설립한 최준 선생과 청구대를 설립한 최해청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에 자금을 대고 민족자본을 키우고' '독립국가의 기둥이 될 청년을 키우자'는 취지로 교육사업에 나선 애국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유족은 지금 영남대에 대해 아무런 소유권과 발언권이 없다. 대신 학교법인과 학교는 '손을 떼겠다'고 공언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은 '박정희 미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 정 전 교수의 주장이다.

"새마을운동에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면이 같이 존재합니다. 새마을운동으로 농촌 소득이 10배 정도 늘어났다고 하는데 다른 통계를 보면 농촌 빚은 18배로 늘어났어요. 이렇듯 새마을운동은 여러 측면을 보고 토론하고 평가할 단계지 그것을 좋다고 단정 짓고 대학원을 지어 전수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영남대 학교법인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청구대·대구대 설립자 유족들의 발언권을 보장하는 게 학교법인 정상화의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가능하다고 보는 것일까?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박근혜씨가 집권한 5년 동안에는 아마 꿈쩍도 안 하겠죠. 하지만 10년, 20년 뒤에도 박근혜 씨가 계속 정치권력을 갖고 있을까요? 장기적으로 보면 바뀌게 돼 있습니다."

상식과 합리가 지배하는 사회, 인간다운 삶이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다는 정 전 교수. 느리면서도 강단 있는 그의 목소리는 '99%의 불가능' 속에서도 '1%의 희망'을 붙잡고 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이 운영하는 비영리 공익 언론 <단비뉴스>의 연재기획물 '단비인터뷰'에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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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대담한 제의, 南의 담대한 호응

北의 대담한 제의, 南의 담대한 호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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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07 01: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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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사이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고래심줄처럼 자기 입장만을 고집하던 남북 사이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 변화는 북측이 먼저 일으켰고 남측도 부응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북측이 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특별담화문을 통해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모두가 남북 사이에 현안 중에 현안인 셈입니다.

나아가, 북측은 6.15공동선언 발표 13돌 및 7.4남북공동성명 발표 41돌을 기념하는 민족공동행사 개최를 제의하면서 여기에 남북 당국이 참가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이는 그간 남측 당국이 요구하던 당국간 회담을 조건 없이 수용한 것일 뿐만 아니라 1972년 ‘박정희-김일성’이 합의한 7.4공동성명을 더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이 받지 않을 수 없게끔 안전장치도 부착한 것입니다.

주는 김에 아낌없이 주자는 북한식의 파격적 제의이자 조평통이 특별담화문에서도 밝혔듯이 ‘대범한 제의’인 셈입니다.

이에 남측도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몇 시간도 안 돼 북측이 제안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남북 장관급 회담을 오는 12일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공식 제의했습니다. 이는 날짜와 장소, 회담의 격까지 구체적이고 깔끔하게 제안한 것으로 ‘담대한 호응’이라 부를 만합니다.

‘12일’은 6.15남측위원회와 6.15북측위원회의 ‘개성공동행사’ 추진 여부를 배려한 날짜이고, ‘서울’ 개최는 손님을 맞이해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특히 ‘장관급 회담’이란 지난 시기 6.15선언 이행의 기관차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단번에 남과 북이 6.15시대로 유턴하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제 남북 장관급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특히 이 같은 북측의 ‘대담한 제의’와 남측의 ‘담대한 호응’이 마침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짐으로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이 여기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는 분위기와 상황이 조성되었습니다.

물론 남과 북이 실질적으로 5년 만에 만나는 것이라 그간 켜켜이 쌓여있던 무지와 불신을 모두 털어낼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로 오랜만에 남북이 한반도 문제에 이니셔티브를 잡게 될 공간이 열린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 민족의 운명과 진로를 남과 북이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하루사이에도 이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남과 북이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을 만끽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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