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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한국에서 수난 당하는 언론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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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개월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 마음이 가장 추워"

 
[리멤버 0416- ③] '세월호 6개월' 하루 앞둔 10월 15일, 진도 팽목항·체육관
14.10.16 20:20l최종 업데이트 14.10.16 20:20l
대한민국은 6개월째 '4월16일'에 멈춰있습니다.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이제 거리에서 추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세월호 참사 발생 6개월을 맞아, 유가족과 실종자가족, 생존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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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풍선 너머, 텅 빈 체육관 16일이면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지 6개월째 되는 날이다. 진도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6개월째 아들·딸·남편·엄마·조카·동생의 수습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실종자 가족 10명의 이름이 적힌 풍선 너머로 텅 빈 진도체육관의 모습이 보인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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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꽃 피던 때 진도에 온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은 이제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고 있다. 뜨거운 여름을 지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실종자 수습 소식은 7월 이후 끊겼다.

그들의 시간은 '4월 16일'에서 1분, 1초도 더 나가지 못한 채 멈춰 섰다. 실종자 허다윤(단원고 학생)양의 어머니 박은미씨도 참사 후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4월 16일을 살고 있다. 박씨는 "실종자 10명을 찾아야 한다는, 그 하나의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며 "6개월이 지났다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4월 16일을 살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종자 가족들 중 유일하게 두 명의 실종자(동생 권재근, 조카 권혁규)를 기다리고 있는 권오복씨도 "(참사) 6개월째 되는 날이라 해도 큰 의미는 없다"며 씁쓸한 미소를 내보였다.

팽목항·체육관 '적막'... 자원봉사자도 상당수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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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그림 앞, 몸져누운 아내 15일 편두통약 두 알을 먹은 실종자 양승진(단원고 교사)씨 아내 유백형씨가 진도체육관에 누워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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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팽목항도, 진도체육관도 한산했다. 사고 당시와 비교하면 "아무도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적막이 흘렀다. 최근 '기다림의 문화제' 행사 때문에 1000여 명이 모였던 팽목항(관련기사 : 김제동, 팽목항 찾아 눈물... "대통령 사랑해달라")에는 파도 소리와 펄럭이는 노란 리본 소리만 남았다. 진도체육관의 대형 모니터에선 해양수산부 국정조사 소식이 공허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원봉사단체도 상당수 철수했다. 사고 직후 진도에 머물던 자원봉사단체 300여 팀은 이제 10팀 남짓으로 줄었다. 최근엔 일부 민간잠수사도 사고 현장을 떠났고, 사고 이후부터 진도에 머물던 배의철 변호사(실종자 가족 법률대리인)까지 소속된 대한변호사협회의 사정에 따라 복귀했다.

올 가을 들어 가장 기온이 낮았던 이날, 실종자 양승진(단원고 교사)씨의 아내 유백형씨는 몸져누웠다. 날이 급격히 추워진 며칠 전부터 유씨는 포도당 주사에 의지해 잠을 청하고 있다. 유씨는 편두통약 두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유씨 팔뚝의 여러 주사바늘 자국이 눈에 띄었다. 유씨는 "남편이 수습되더라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남편이 죽었더라도 바로 찾았으면 예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잖아. 지금은 그런데…. 나오더라도 형체도 못 알아볼 거 아니야. 점점 날짜가 지날수록 내 남편의 모습이 점점 사라진다는 게 참 마음을 힘들게 해. 유골이라도 찾으려고 지금 버티고 있는 거지."

몸도 춥지만 마음 역시 춥다. 다윤양 어머니 박은미씨는 "추위를 엄청 탄다. 발도 시리고, 손도 시리지만 마음이 가장 춥다"고 말했다. 박씨는 최근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다. 페이스북에 다윤양이 수학여행을 떠나기 나흘 전 찍은 가족사진을 가장 먼저 올렸다. 박씨는 사진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그 사진이 마지막 사진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사진을 볼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파요. 너무 예쁜 딸.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편안하게, 행복하게 있으라고 (다윤이에게 말하고 싶어요)…. 다윤아 사랑해."

"1분, 1초라도 빨리... 어서 물밖으로 나왔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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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막 속 체육관, 해수부 국감 현장 방송 15일 실종자 권재근씨, 권혁규군 그림 너머의 진도체육관 대형 모니터에서 해양수산부 국정감사가 방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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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리본, 그리고 태극기 15일 '어서 돌아와, 친구들아'라고 적힌 팽목항 방파제의 노란리본 너머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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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째, 매일 아침 팽목항을 찾아 딸 황지현(단원고 학생)양의 아침밥상을 차리는 어머니심명섭씨(관련기사 : "추석까지 이럴 줄이야" 딸 아침밥 챙겨 매일 팽목항으로)는 이날도 차로 30분을 달려 팽목항에 지현양의 밥상을 차렸다. 심씨에겐 지난 6개월만큼, 앞으로의 시간도 걱정이다.

"이 생활을 얼마나 더 해야 할지, 그게 제일 힘들어. 길이 안 보이니까. 어떻게 해야 옳은 건지도 모르겠고. 수색도 시원찮고, 이게 언제까지 갈지도 모르잖아.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답답하지."

지현양 아버지 황인열씨를 포함해, 단원고 학생 실종자의 아버지들은 수색이 중단되지 않는 한 쉬지 않고 사고 현장 바지선에 나간다. 팽목항에서 사고 현장까진 배로 약 1시간. 심씨는 "(남편이) 일주일에 서너 차례, 1박 2일 동안 사고현장에 다녀오는데 그리고 나면 기운이 쭉 빠져 하루 종일 누워있어야 한다"며 "1분, 1초라도 빨리 실종자 10명이 어서 물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월의 절반이 흘렀지만 이달 중 세월호 내부를 수색한 시간은 채 5시간이 못 된다. 이날, 10월 들어 처음 이틀 연속 세월호 수색 작업이 진행됐지만 수습 소식 대신, 세월호 선체 곳곳이 붕괴되고 있다는 소식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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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폰에 담긴 단란한 가족사진 15일 실종자 황지연(단원고 학생)양의 어머니 심명섭씨가 진도체육관에서 휴대폰의 가족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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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목항 방파제의 노란리본 15일 노란리본이 묶여 있는 팽목항 방파제 너머로 해경 함정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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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가족들과 한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팟캐스트 <장윤선의 팟짱> 16일 편에서도 들을 수 있다.

☞ 아이튠즈에서 <장윤선의 팟짱> 듣기
☞ 오마이TV에서 <장윤선의 팟짱> 듣기
☞ 팟빵에서 <장윤선의 팟짱>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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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협, 가슴 시린 1,000번째 '목요집회'

민가협, 가슴 시린 1,000번째 '목요집회'변함없는 구호 '국보법 폐지, 양심수 석방'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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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6  20: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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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가협 목요집회가 16일 1,000회를 맞아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50여 사회단체, 300여 명의 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상임의장 조순덕)가 지난 1993년 9월 23일부터 매주 목요일 진행해 온 '목요집회'가 16일 1,000회를 맞았다.

민가협은 16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국정원내란음모정치공안탄압규탄대책위 등 50여 단체, 300여 명의 인사들과 함께 1,000회 목요집회를 개최하고 이날도 변함없이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을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한 국가 인권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양심수가 없고 반민주적 악법들과 제도들이 폐지되며, 정의가 사회의 우선 가치가 되는 세상이 올때까지 목요집회는 그 역할과 사명을 다할 것"이라며, 양심수 전원 석방과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각종 악법의 철폐, 그리고 자주·민주·통일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목요집회는 지난 1993년 문민정부 출범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수 없는 사회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이 첫 양심수 사면에서 만기출소를 앞둔 일부 양심수만을 석방시키고 석탄일과 광복절에는 사면조치없이 건너뛰는 기만적 태도를 보이자 이에 맞서 민가협이 그해 9월23일부터 시작한 '목요일의 외침'이었다.

장소는 통행이 많고 역사적 상징성이 있는 탑골공원.

민가협은 당초 목요집회를 12월 23일까지만 계획했으나 김영삼 정부에서 5년동안 4,263명이나 발생한 양심수의 존재를 감추고 '문민정부에 양심수는 없으며 따라서 양심수 사면도 없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장기화되기 시작했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강산을 두 번씩이나 변하게 했을 시간이었고, 정권이 다섯 번이나 바뀌는 동안 목요집회는 사회적 약자의 신문고로, 정의·평화·인권을 지키는 파수대로, 반전평화와 자주통일을 외치는 종루가 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 1,000회를 맞는 목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은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의 바램을 담아 보라색 풍선을 날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지난 21년간 매주 진행된 목요집회 1,000회를 맞이한 참가자들은 어머니나 부인, 또는 본인이 민가협과 맺은 인연을 저마다 소개하면서 2시간 동안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 왼쪽부터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은 "남편과 자식을 감옥에 보내고 내 딸, 내 아들의 석방운동을 벌이던 것이 억울하게 구속된 모든 양심수들의 석방운동으로 발전됐고 사회의 법과 제도가 정의롭게 바뀌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져 '양심수를 만드는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고 그간의 민가협 활동을 압축해 설명했다.

조순덕 의장은 "단 한명이라도 양심수가 남아있다면 목요집회를 중단할 수 없다"며, 21년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지만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어머니들은 계속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말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여기까지 이 운동을 끌고 온 어머니들을 존경한다고 인사를 전하고 1,001회 목요집회부터는 감옥을 텅텅 비게하자고 목청을 돋웠다.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가슴 시린 오늘 축사를 해야 할 자리인가"라고 말문을 뗀 후, 긴 세월 꾸준히 집회를 계속해 온 위대한 모성에 경의를 표시했다.

권낙기 대표는 "회의시간에 김장 담그고 된장 담그는 수다가 대부분인 이 어머니들은 사랑하는 자식들이 출소했어도 여전히 민가협을 지키고 있다"며, 대단한 이론이 아니라 어머니들의 따뜻한 피흐름, 그런 마음이 민가협을 지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반북 대결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를 빗대 "사람이나 단체나 수명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요즘 상황을 보면 민가협 어머니들이 그만 두고 쉬기는 커녕 '회춘'할 판"이라고 탄식했다. 이어서 "함께 슬퍼하고 격려해 주는 어머니들이 있다는 영광을 함께 하자"며 참가자들이 더 분발할 것을 당부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이유진 녹색당 공동대표, 이정미 정의당 부대표 등은 축사에서 지난 21년간 목요집회를 지켜온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목요집회를 끝내도 좋을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 왼쪽부터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윤기진 민권연대 대표,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지금까지 5번에 걸쳐 감옥살이를 하면서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신세를 많이 진 사람 중 한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감옥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달려와 준 분들이 민가협 어머니들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87세의 노모는 민가협에서 활동한 것을 평생 가장 자랑스러운 일로 기억하고 아들과 자신이 같은 가치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3년 징역을 사는 동안 보일러를 틀지 않고 생활했던 노모의 마음이 곧 민가협 어머니들의 마음일 것"이라고 인사했다.

한충목 대표는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힘내세요."라고 참가자들과 힘껏 외치며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감히 그 존재조차 드러낼 수 없었던 비전향장기수들을 양심수로 호명해 1999년 2월 전원 석방시키고 북으로 송환될 수 있도록 한 것은 민가협 어머니들이 거둔 최고의 성과"였으며,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투쟁에서 비록 소기의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국가보안법 적용에서 폐해를 많이 줄여 나간 것도 일정한 성과라고 언급했다.

박래군 이사는 "10년 전부터 목요집회를 찾는 발걸음과 관심이 많이 줄었다"고 우려하고, 숫자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양심수가 생기고 있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윤기진 민권연대 대표는 "21년의 세월동안 1,000번의 집회에 녹아있는 한숨과 눈물, 오열을 기억해 달라"며, "'웬수'같은 자식이 아니라 동지같은 자식으로 만들어 준 민가협"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날 목요집회에는 '전직' 뿐만 아니라 '현직' 양심수들인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가족들이 누구도 들어오길 원치 않는 민가협 신입회원의 자격으로 무대에 올라 어머니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1,000번째 목요집회는 장기수 출신으로 백발이 성성한 통일광장 회원들이 고난과 희망을 상징하는 보랏빛 머리수건을 쓴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하고 참가자들과 함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합창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001번째 목요집회도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예고됐다.

   
▲ '현직' 양심수들인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가족들이 누구도 들어오길 원치 않는 민가협 신입회원의 자격으로 무대에 올라 어머니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고난을 상징하는 보랏빛 머리수건을 쓴 민가협 어머니들이 무대에 올라 참가자들에게 인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가슴 시린 1,000회 목요집회.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서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위로하고 격려했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노래패 '꽃다지'와 '우리나라'가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헌정공연을 펼쳤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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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되는 남북군사당국자 접촉

 
 
<분석과전망> 남의 ‘북방한계선’과 북의 ‘서해 경비계선’의 대립전선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10/16 [22:2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SBS에서 캡쳐

 

  

군사현안을 다 다룬 남북당국자 접촉

 

15일 판문점에서 가진 남북군사당국자 접촉은 남북 군부 간에 대두해있는 현안의 대부분이 다루어졌다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대북전단 살포상호비방 중지 등이 주요의제였다.

비록 비공개접촉이었지만 크게 주목을 받았다. 2차고위급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는데 있어서 그 길을 닦는 의미가 있는 만큼 더 그랬다물론 합의를 도출하지는 못했다첫술에 배부르지 않는다는 것으로 치부해도 될 터였다양상만으로만 보면 팽팽했다.

 

북측은 접촉에서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중단시킬 것을 요구했다. 2004년 남북 간에 합의한 심리전 중단 합의를 상기시키고 강조하는 등 강력했다항의성 요구라 할만했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특성상 전단 살포 행위를 통제할 수 없다는 논리로 반박했다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를 막을 법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한 것이다정치적 문제인 것을 한껏 좁혀서는 법적인 문제로 접근한 것이었다대표단의 권한을 뛰어넘는 즉정부의 정치적 소관사항임을 밝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언론을 포함한 비방중상 중지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측은 비슷한 논리를 동원했다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을 통제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북한의 요구에 동원되고 있는 우리측의 그 논리들에 대해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식상해했다익히 수도 없이 접했던 것들이어서였다그렇다고 사람들이 군사당국자들의 접촉 자체에 대해서까지 식상해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11년 2월 군사실무회담 이후 3년 8개월 만에 이루어진 접촉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더구나 지금의 접촉이 단순히 제기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2차남북고위급회담과 관련성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 주목성은 더욱더 높아져있었다.

 

‘NLL’ 대 '서해 경비계선의 대립전선

 

그에 걸맞게 이날 접촉은 크게 주목할 만한 내용 하나를 포함하고 있다북한이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소위 '서해 경비계선내에 우리 측 함정이 진입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서해 경비계선은 북한이 지난 1999년 9월 일방적으로 선포한 해상분계선이다북한이 칭하는 정식 이름은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이다.

북측의 '서해 경비계선준수 요구에 우리 측은 "북측이 서해 북방한계선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맞섰다.

 

우리정부는 북한의 서해 경비계선'을 인정하지 않는다북한 역시 우리정부의 NLL을 인정하지 않는다그런 점에서 이번 접촉은 남북군사문제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측의 입장이 정면으로 맞닥뜨린 셈이다대단히 중요하다. NLL 대 서해 경비계선'의 대립전선이 쳐지고 있는 것이다.

 

 

▲ 사진, 취키백과에서 펌


 

NLL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은 위기백과에 잘 설명되어있다이에 따르면 NLL은 남북 간에 합의된 해상경계선이 아니다마크 웨인 클라크 UN군 총사령관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인 것이다.

 

1953년 7월 27일 UN군과 북한 인민군이 정전협정을 발효했을 때 육상경계선은 합의되었지만 해상경계선은 합의되지 못했다해상 경계선에 대해 UN군과 북한군의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연안수역의 범위를 둘러싼 문제였다. UN군은 3해리를 인민군은 12해리를 주장했다.

이에 따라 UN군은 '연해의 섬 및 해면'에 관한 통제권은 1950년 6월 24일 이전을 기준으로 하되서해5(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는 UN군 사령관 관할 아래 둔다는 단서규정을 두었다북한과 합의된 단서규정은 물론 아니었다일방적이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한달 뒤인 8월 30클라크가 직접 나섰다그때 NLL은 설정되었다이 또한 설정일 뿐 합의가 아닌 일방적인 것이었다그 일방성은 북한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행태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휴전협정이 조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북한 황해도를 공격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이는 NLL이 이 대통령의 황해도 침공을 막기 위해 클라크가 취한 군사적 조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NLL이 설정된 뒤 그것이 우리 해군에게만 전달되었을 뿐 북한에 대해서는 통보조차도 되지 않았던 이유이다.

 

북한의 '서해 경비계선'문제 제기는 남북관계개선 전망 속에서 나온 것인가?

 

NLL의 남쪽까지도 포괄하고 있는 것이 '서해 경비계선'이다서해 5개 도서의 광범위한 남단 해상 모두가 이 분계선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우리정부가 '서해 경비계선'을 인정하지 않는 결정적 이유이다서해 5개 도서의 남단 수역을 고스란히 북한에 내어주는 꼴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서해경비계선문제는 이번 접촉에서야 처음으로 나온 것이지만 현장에서는 익숙한 문제로 되어있다. "남측 함정이 경비계선 안으로 진입하면 발포하겠다"라는 부당한 무선통신을 북한은 올해들어 계속 보냈다고 군 당국자가 언론을 통해 밝혔던 것이다.

 

알려진 것에 따르면 이번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인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서해 경비계선'에 남측 함정이 진입하는 것을 계속해서 두고 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고 했다.

이는 지난 7일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의 경고사격에 대해 즉각 응사를 해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데에 있다이후 북한군이 NLL 일대에서 더욱 공세적으로 나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SBS의 16일자 보도에 따르면 우리 군 당국에서는 NLL 일대에서의 북한 경비정 화기 사용이 잦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북한이 서해 경비계선문제를 부각시킨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른바, NLL 무력화 전술로 보고 있다이어 북한이 이번 접촉을 통해 '서해 경비계선'을 이슈화하려는 것으로 보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렇지만 단순한 이슈화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북한이 지난 2007년 11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평화수역 지정 문제를 제기했을 때 내놓았던 것이 바로 이 문제였다. NLL과 서해 경비계선을 아우르는 범위 내에서의 해상을 평화수역으로 지정하자고 요구했던 것이다.

 

이것들은 북한에서 남북군사당국자 접촉을 제안했던 것 그리고 북측의 김영철 수석대표가 서해 경비계선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했던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결국 북한의 서해 경비계선문제는 단순히 NLL침범 중지를 제기하는 우리정부의 주장에 맞서기 위한 것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2차고위급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그에 기초해서 진전되게 될 남북관계개선사업에 대한 전망 속에서 제출된 것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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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숙 수녀, 징역 5월, 집행유예 1년 선고

소희숙 수녀, 징역 5월, 집행유예 1년 선고한국교회 첫 수녀 형사재판, 제주 해군기지 반대활동 중 기소
강한 기자  |  fertix@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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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5  15: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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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활동으로 기소된 소희숙 수녀에게 법원이 징역 5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소희숙 수녀(스텔라, 66)는 2013년에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차량 진입을 막고, 여경의 손을 물어 상해를 입혔다는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소희숙 수녀의 재판은 한국 천주교 역사상 여성 수도자가 기소돼 재판을 받은 첫 사례여서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소 수녀는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 소속이다.

담당 변호인인 백신옥 변호사는 15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전화 통화에서 이날 오후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6단독 재판부가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백 변호사는 피해를 입었다는 여경이 전치 2주 진단을 받아 상해로, 제주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미사에 참여하며 차량 진입을 막은 것이 업무방해로 기소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백 변호사는 “소 수녀의 나이가 많고, 경찰이 입은 손등 상해가 가벼우며, 업무방해 정도도 경미하다는 점이 참작 사유가 됐다”고 덧붙였다.

소 수녀 측은 항소할 계획이다.

   
▲ 소희숙 수녀 ⓒ정현진 기자


백신옥 변호사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위법이었으며, 공사 과정에서도 불법공사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공사는 사회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당한 공사가 아니라는 것을 계속 주장할 것이다. 정당한 업무가 아니라면 업무방해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백 변호사는 “소 수녀는 (여경의 손을 물었을 때, 경찰들에 의해) 오른쪽 팔은 뒤로 꺾여 있었고 왼쪽 팔을 비틀린 상태였다. 따라서 아픔을 모면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이에 관한 증거를 보충해 재판부를 설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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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대변인 유경근씨 "국민들도 지치지 마십시오"

"저는 정치인이 아니라
유가족이고 예은아빠입니다"

[리멤버 0416-①] 세월호 대변인 유경근씨 "국민들도 지치지 마십시오"

14.10.15 22:03l최종 업데이트 14.10.15 22:03l

 

 

대한민국은 6개월째 '4월16일'에 멈춰있습니다.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이제 거리에서 추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세월호 참사 발생 6개월을 맞아, 유가족과 실종자가족, 생존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편집자말]
"예은이가 쓰던 책상, 배(세월호)에서 나온 물건들, 하나도 안 버리고 집에 그대로 뒀어요. 아이 방에는... 지금까지 딱 두 번 들어갔는데 5월쯤 장례식 끝나고, 혹시 침대에 머리카락 한 올 있을까 싶어 가봤어요. '(예은이를 화장하기) 전에 머리카락이라도 한 움큼 잘라놓을 걸, 그거라도 갖고 있다 쓰다듬으면 그것도 예은이 만지는 건데…' 그런 후회를 하면서 (예은이) 방에 갔는데, 아무리 이불을 들추고 해도 한 올도 없더라고요."

인터뷰 내내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던 유경근(45)씨의 목소리가 잠긴 것은 딱 두 번이었다. 지난 4월 23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로 돌아온 딸 유예은(18)양과, 지금도 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실종자들에 관해 언급할 때였다. 눈동자는 벌겋게 충혈됐고, 눈물도 잔뜩 고였다. 그러나 그 눈물은 100여 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끝내 흘러내리지 않았다.

지난 13일 오후,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경기 안산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 내 미술관에서 유씨를 만났다. 인터뷰는 어렵사리 성사됐다. "죽어서 딸 곁으로 갔을 때 떳떳하게 보고 싶다"는 이유로 참사 초기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대변인을 자임했던 유씨는, 9월 말부터 지금껏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왔다. 그는 "그간 정치인들이 유가족을 이용해도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왔는데, 언론이 마치 유족들을 정치인 대하듯 하는 게 화가 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족 연루 폭행 사건 언론보도 보면서 "언론 기피증 생기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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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고 유예은양 아버지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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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6개월이 됐다. 유씨는 유가족들의 상황에 대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관한 각오는 변함없지만, 날짜가 길어지면서 심리적·육체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 잠시 자체적으로 치유와 회복을 하며 숨을 고르는 단계이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한 유족 아버지는 최근 병원에서 말기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이지만 소중한 딸을 잃은 아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는 대변인이라는 역할 탓에 충분히 슬퍼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유씨는 최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한동안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진심으로 죄송하다, 유족이 연루된 폭행사건 후 자중하자는 뜻도 있었고 이후 언론 보도 및 방향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아 일종의 기피증이 생기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충고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저를 예은아빠가 아닌 프로정치인처럼 대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며 "저나 위원장 모두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다, 세월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공인' 취급 받을 일은 평생 없었을 평범한 서민들"이라 썼다. 또 "제가 아무런 계산 없이 하는 말 한마디와 표정 하나에 무슨 큰 의미나 복선이 있는 듯 해석하고, 심지어는 그걸 강요하는 듯 보이는 언론이 너무나 어색하고 두렵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15일 현재 국회 본청 앞(96일째)과 광화문 광장(94일째), 청와대 앞(55일째)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한편 매일 대학 학생회·지역 단체 등에 직접 찾아가 국민간담회를 열고 있다. 유씨는 "앞으로는 아이들이 있는 안산 분향소를 중심으로 국민들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고민 중"이라며 "저희도 지치지 않을 테니, 부디 국민들도 끝까지 지치지 말아주시라"고 부탁했다.

15일은 예은이의 18번째 생일날이다. 유씨는 딸의 봉안함이 안치된 평택 서호추모공원으로 가기 앞서 이날 오전 1시께 딸에게 쓴 편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아빠 딸로 태어나 17년 동안 자랑스러운 딸로 살아줘서, 영원히 예은이 아빠로 살게 해줘서 고마워…. 또 아직도 4월 16일이라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더니 매일 쓰러져서, 안산으로 이사 와서… 모든 게 미안하다"고 썼다(관련기사: "그간 내 딸로 살아줘서 고마워").

다음은 유경근씨의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이다.

"말기암 판정 등 한계 다다른 유족들... 안 지칠 테니, 국민들도 힘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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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고 유예은양 아버지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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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30일 여야의 3차 합의안이 나왔지만, 유족들이 주장해온 것과 거리가 있다. 
"언론들은 '거부'와 '찬성', '조건부 수용' 중 분명한 걸 원하는데 사실 애매하다. 한편으론 앞서 두 번 거부를 한 상태라 국민들과 유가족 내부로부터 받는 부담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끌려가듯 결정할 수는 없잖나. 현재 공식적이고 정확한 입장은 3차 합의안에 대한 '거부'가 맞다. 그러나 백지부터 하자는 게 아니라, 향후 재논의하기로 한 '특검후보 추천에 대한 유가족 참여'를 애초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약속했던 대로 합의문에 담으란 거다."

- 지난 6일 대검찰청이 발표한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수사결과와 10일 감사원이 내놓은 최종 감사결과에 대한 평가는?
"검찰 결과에는 해경 차장이 최고 처벌 대상으로 돼 있던데, 제가 봤을 땐 그 윗선인 청와대나 해경청장은 빼놓고 한 거다. 수사를 한 후 '혐의가 있다', '없다'도 아니고 아예 배제를 하고 시작한 것이다. 이건 누가 봐도 사전에 범위를 정해놓고 한 '꼬리 자르기 식'이 아닌가. (입건된) 사람 숫자만 몇 백 명이라고 했을 뿐 해경청장도 아닌 해경차장까지만 딱 해 놨으니 성역 없이 수사했다고 보기 어렵다(※실제로 감사원·검찰 발표에는 '청와대'에 관한 언급이 없음-기자 주). 저는 그래서 더욱 진상조사위와 특검의 필요성이 부각됐다고 본다."

-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 연루 사건으로 여론의 온도가 달라진 것 같다. 최근 유가족이 직접 '찾아가는 국민간담회' 등을 하고 있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지금까지 해온 간담회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다. 하루에도 10건 이상 신청이 들어와서 전부 소화하기가 벅찰 정도다. 주로 세월호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 신청하고 있는데, 지역이나 구성원에 따라 반대의 경우도 있다. 대학 간담회라고 해도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온 '수업시간'에 초청받아 가면 더 민감한 질문들이 나온다. 그래도 우리는 덜 우호적이거나 비판적인 사람들과 만나 유족에 대한 오해를 풀려고 노력 중이다."

- 지난달 말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이 안산 분향소에서 영정을 뺐다. 유 대변인의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등 사실상 두 유가족 대책위가 갈라진 상황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이 건에 대해 한 번도 제 입으로 얘기한 적이 없다. 사실관계가 어쨌건 내용이 자극적이라, 자칫 대리기사 건과 마찬가지로 저희가 말하려고 했던 본질과 어긋나서 보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제가 당시 착각해서 얘기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고, 여기에 일반인 희생자 유족에 대한 비하나 폄훼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의 반응은 피해자 가족끼리 힘을 합쳐야 하는데 아쉽다는 정도였다." 

- 참사 후 6개월이 흘렀다. 안산분향소 조문객이 하루 300명 정도로 감소한 상황이다.
"사실 (잊히는 건) 물리적으로 당연한 일 아니겠나. 우리에게 6개월은 길지 않았지만 다른 분들에겐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또 저희가 불가피한 상황 탓에 서울에 자주 가면서 여기(안산분향소)를 많이 비웠다. 그러나 앞으로는 분향소 중심으로, 안산시민·국민과 함께 하는 다양한 활동을 고민 중이고, 이번 주말 유가족들 간의 워크숍을 거친 후 곧 그런 내용을 알릴 계획이다.

유족들은 6개월이 다 돼가면서 심리적·육체적으로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다. 지금까진 '이 상황에 무슨 병원이냐'면서 정신력으로 버텼는데 요즘 병원 가는 횟수가 늘었다. 특히 '아빠'들은 집안에서 가장이라는 특수한 위치에서 버티다 보니 요즘 부쩍 우울해해서 (나쁜 생각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특별법 논란이 너무 길어지면서 유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것 같아 고민이다.

우리 아빠들 중에는 참사 이후에 없던 병이 생겨서 얼마 전 말기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분도 있다. 참사 전에 그런 징조가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전혀 없다가, 최근에 몸이 좀 이상해서 가봤더니 말기 암이었던 거다. 저희가 보기엔 뻔하다. 암이라는 게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았을 때에는 굉장히 빠르게 증식하니까. 한 달 남았다고는 하는데…."

"딸 사진이 너무 생생해서, 눈물이 나 보질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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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고 유예은양 아버지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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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족들끼리 함께 지내면서 친척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하던데.
"친척보다 가까워진 게 아니고, 그냥 유가족 밖에 없다. 내 동생들이나 조카, 이모들에게는 굉장히 미안한 얘기지만, 제게 '괜찮냐'고 신경써주고 물어봐주는 게 너무 힘이 든다. 특히 우리 집은 명절이나 아이들 생일 때 가족모임을 자주 하는 편인데, 그게 너무나 부담이 되더라. 그렇다 보니 잘 안 보게 되고 더 미안해지고…. 결국 이런 얘길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다른 유가족들과 제일 가까워졌다.   

(세월호 참사로 형제·자매를 잃은) 아이들도 쉽지 않다. 엄마아빠가 이 일 때문에 항상 매달려있고 고생하고 우는 걸 보니까, 언론을 통해 어떤 상황인지를 아니까, 아이들이 대부분 이 일에 대해서 아예 언급을 꺼린다. 문제는 그렇게 속으로 참고 곪다보니 병이 생긴다는 거다. 그리곤 엄마들이 어쩌다 집에 와 음식을 해주면, '맛있다'면서 두 세 그릇씩 먹으니 엄마들 속이 얼마나 뒤집어지겠나. 또 요리를 해도 먹어줄 자식이 없는 엄마들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십대 형제·자매들이 '우리가 동생들을 챙기겠다'면서 팔을 걷고 나섰다. 지금까진 개인적으로 연락되는 사람끼리만 아이들 공부 시켜주고, 대신 돌봐주고 그랬는데 앞으로는 체계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다. 그렇게라도 서로 위로한다니, 우리로서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 최근 페이스북 등에 '저는 정치인이 아니라 유가족이고 예은아빠'라는 글을 올렸다. 그간 언론 보도에 대한 억울함도 피력했는데. 
"그 글을 쓴 건,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재원 부대표가 분향소에 왔을 때였다. 그런데 당시 제게 기자들이 던지는 모든 질문이 같았다. '유가족과 여당 간에 분위기가 굉장히 화기애애했는데, 그 뒤에 또 다른 뭔가가 있는 게 아니냐'면서 전제를 깔고 있는 거다. 결국 제가 굉장히 폭발했다. 상갓집에서 오는 사람 막는 거 봤는가. 이유는 딱 하나다. 흘리는 눈물이 진짜건 아니건 우리 애를 위해 조문 왔다는 데 왜 막겠나. 

오신 손님을 배웅하는 건 당연한 예의 아닌가. 그걸 두고 '위원장이 바뀌더니 뒤에 뭔가 있다'면서 아니라고 해도 믿지를 않기에, 그 글을 쓰게 됐다. 어쨌건 우리에겐 특별법을 만들어줄 사람들이다. 거기에 충실하게 했을 뿐인데 정치인들과 똑같이 취급하고 바라보는 게 기분이 나빴다. 사실 우리도 국회의원 만나면 '특권' 얘기 나오겠다 싶어 위축이 되곤 한다. 그래도 진상규명을 해야 되니 어쩔 수 없이 상처를 겪어내는 거다."

- 15일은 예은이 생일인데, 예은이가 제일 그리울 때는 언제인가. 
"예은이가 쓰던 책상, 배(세월호)에서 나온 물건, 하나도 안 치우고 집에 그대로 다 두고 있다. 아이 방이 2층인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애 엄마는 늘 예은이 방에서 자는데, 저는 지금까지 딱 두 번 가봤다. 못 가겠더라. 한번은 장례식 끝나고, 혹시 아이 침대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있을까 싶어 갔다. '(예은이를 화장하기) 전에 머리카락이라도 한 움큼 잘라놓을 걸, 갖고 있다가 쓰다듬으면 그것도 예은이 만지는 건데…', 그런 후회를 하면서 (예은이) 방에 갔는데, 아무리 들춰봐도 한 올도 없더라. 

(유골함이 안치된) 추모공원도 삼우제 때 한 번 가보고 못 가봤다. 그땐 '최소한 특별법이라도 만든 뒤 갈게, 진상규명 준비 해 놓고 갈게' 했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그리고 보통 우리 엄마아빠들이 휴대폰 배경화면을 아이 사진으로 해 두는데, 저는 아이 사진으로 해놓으니 도저히 못 보겠더라.

애들 사진…보고 싶은데 보면 안 된다. 보면… 어… (눈물을 애써 참으며) 그냥 울게 된다. 초기에 제가 '예은이 없는 상황을 이겨낼 자신은 없고, 적응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된다. 아이가 너무 생생히 떠오르니까. 전에는 그냥 사진 한 장이었던 것이, 지금은 그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표정을 했는지가 다 기억 나니까 미치겠는 거다. 사진을 보면 그 속에서 애가 살아 움직여서… 도저히 못 보겠다."

- 아직도 진도 앞바다에는 10명의 실종자들이, 진도체육관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남아있다. 유가족들이 종종 진도체육관을 찾는다고 하던데.
"(한숨) 하…. 저도 가능한 한 한 주에 한 번씩은 내려가려고 하는데, 사실 유족들이 진도에 가는 게 쉽지 않다. 너무 힘들다. 그 분들 앞에만 서면 죄스럽거든.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정말 필요한 건 아이들을 찾아오는 건데 그걸 저희는 못 하니까.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분들이 그 분들이다. 그런데 특별법을 만들자면서 '인양'을 얘기한다? 이건 위선이다."

- 사실상 장기전으로 접어드는 상황인데. 
"유족들 각오는 변함없지만 주변 여건이나 심리·육체적인 한계를 부정할 수가 없다. 저희는 그간 경험에 비춰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 최소 2~3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자체적인 치유와 회복 등 지금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가장 힘든 건, 유가족들이 가는 이 길이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잘하는 건지 매번 불안하다는 거다.  

결국 '약속'이다. 참사 후 정치인, 대통령,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약속했지 않나. 지키기 위해 하는 게 약속인데 지금 그런 사람이 없다. 최선을 다하고서도 못 지킨다면 어쩔 수 없지만, 심지어 약속을 기억조차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애초부터 안 지킬 걸 예상한 '사기'가 목적이 아니었다면, 당시에 내가 어떤 약속을 했고 그걸 지키기 위해 뭘 했는지 이제 되돌아봐야 한다." 

-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유족들은 늘 내일 더 나아지길 바라며 잠들지만 매일이 어제와 같다. 11월 1일이 (참사 후) 200일이라던데 저희에겐 200번째 4월 16일 뿐이니까. 그 동안 계절이 두 번 바뀌고 세 번째 계절이 왔는데, 여기까지 온 건 절대적으로 국민들의 힘이었다. 스스로 돌아볼 때 유가족들이 부족한 점도 있고, 잘한 점도 있지만, 국민들께는 수백 번 절을 드려도 부족함이 없다. 

많은 분께서 저희에게 '지치지 말고 버텨 달라'고 말하시는데, 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다. '부디 국민들도 지치지 마십시오'. 세월호 같은 해상참사가 짧게는 10년, 20년 주기로 반복되고 있지 않나. 지금 그대로 가면 단순 계산해도 20년 후 참사가 또 재발된다. 그 땐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 손자들이 (희생의) 주인공이 되는데 그건 막아야지. 이번에 그걸 저희가 너무 뼈저리게 알았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다. 함께 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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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격 못하는 미사일, 잠항 불가 잠수함 ‘고장난 국방’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10/16 10:36
  • 수정일
    2014/10/16 10: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점심은 개성에서 저녁은 평양에서가 또다시 되풀이되는 나라
 
임병도 | 2014-10-16 08:31:0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4년 국정감사가 시작됐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의미의 국정감사, 다양한 지적 사항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국방 관련 문제점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기에 항상 완벽한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할 국방력, 도대체 어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 고장 난 대한민국 국방력'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의원 모두 현재 대한민국 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노후된 장비와 고장이 난 무기는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정부와 국방부는 북한의 특수부대나 전투기, 미사일 등이 한국의 도심지역을 공격할 경우의 위험성을 늘 강조합니다. 도심 지역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무기 중에는 20mm 대공 발칸포가 있습니다. 현재 서울, 수원,원주,강릉 등에서 운용 중인 20mm 대공 발칸포에는 야간조준경이 있는데, 이것은 지상 표적 탐지용으로 대공 표적 탐지 및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결국, 야간에는 방공망이 뚫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 

새정치연합 안규백 의원에 따르면 잠수하면 몇 주일 연속으로 심해 작전이 가능한 줄 알고 있는 손원일함, 정지함,안중근함 등 최신예 잠수함 3척이 사실 연속 잠수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수중에서 엔진을 가동할 수 있는 연료전지가 102차례나 고장이 났기 때문입니다. 해군은 이상이 없다고 하지만 연속 잠수가 불가능한 잠수함을 잠수함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2008년 공군은 많은 반대에도 독일에서 15년 이상 사용했던 중고패트리어트 미사일 50여기를 구매했습니다. 현재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부품 단종은 총 6종으로 그중 레이더 부품이 83.5% (5종)이나 됩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고장이 나서 사용 못하는 경우는 대부분이 레이더 결함 때문입니다. 1 레이더가 작동 못 하는 미사일이 과연 요격을 할 수 있을까요? 

세월호 참사 당시 수중 구조 등에 활용할 수 있었던 해군 무인탐사기 ROV는 도입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63개월 동안 48개월을 수리만 하고 있습니다. 의무후송헬기는 조종사들이 NFL(비행금지선)를 운항할 수 있는 자격이 없어 GP와 GOP지역은 가지도 못합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방력은 고장나서 전쟁이 일어나도 큰 문제입니다. 


'함장님, 어뢰가 발사되지 않습니다.'

NLL 부근에서 벌어졌던 연평해전 등 한국과 북한은 항상 해상에서 교전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만약 해상에서 국지전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요? 
 

 

 

새정치연합 김광진 의원에 따르면 이지스 구축함 율곡이이함에 배치된 어뢰 기만탄 24발 중 18발이 바닷물에 의한 부식으로 발사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해상전에서 중요한 어뢰의 탐지기를 속이는 기만탄은 이지스 구축함 중요 무기 중의 하나입니다. 율곡이이함은 2012년 이후 단 한 번도 기만탄이 작동하는지 확인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만탄 1발당 2만 8천 원짜리 후방마개를 설치하면 됩니다. 그러나 해군은 9천억짜리 이지스 구축함을 운용하면서 이런 보완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2만 8천 원이 없어 적의 어뢰 공격에 9천억짜리 최신 구축함이 날아갈 뻔했습니다. 
 

 

 

해군이 김광진 의원실에 제출한 '해군함정 전투체계 장비현황'을 보면 지휘함으로 이용되는구축함에서 486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DDH-1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은 펜티엄1에 메모리 16MB, 하드드라이브는 고작 4GB에 불과합니다. 이런 컴퓨터는 요새 내놔도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컴퓨터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컴퓨터 사양이 낮아서 예하 함정들이 레이더와 영상, 오디오 데이터 등의 정보를 보내와도 분석할 수가 없습니다. 지휘함이 작전 상황을 모르니 명령을 내릴 수가 없게 됩니다. 

2천억짜리 장비에 486컴퓨터를 사용하면서 해상전을 치르겠다는 나라가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 점심은 개성에서 저녁은 평양에서가 또다시 되풀이되는 나라' 

현재 대한민국 육해공군은 전쟁이 발생해도 탄약이 부족해서 전쟁을 치르기 힘들 수 있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60일 동안 사용할 탄약이 있어야만 하지만 일주일 밖에 사용할 분량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K-9 자주포에 사용하는 고폭탄은 8일분, KF-16 공대지 유도탄은 16일분, F-15K 공대공 유도탄은 7일분밖에 없습니다. 잠수함에 탑재해 사용하는 잠대함 유도탄도 불과 7일이고 적 잠수함을 공격하는 함포탄 홍상어도 불과 3~4일이면 떨어집니다. 

현대전은 경제력과 기술력의 전쟁입니다. 대한민국 국방력은 장비도 고장났고, 경제력도 없어 예비탄약을 보유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대한민국 국방을 책임진 장군들은 태연하기만 합니다. 

 

최신예 함정과 잠수함이 매번 고장을 일으키는데도 해군은 '당장 싸워도 이기도록 전투 중심 사고를 확립하겠다'고 합니다. 대공망이 뚫려 있는데도 공군은 '북한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해서 실질적 억제력을 확보하겠다'고 합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신성모 국방장관과 채병덕 육군 참모총장은 "각하께서 명령만 내리면 언제라도 각오가 돼 있다. 점심은 개성에서 먹고, 저녁은 평양에서 먹고, 단 7일이면 북진통일을 완수할 수 있다"는 허풍가 너무나 비슷합니다. 


이런 말뿐인 장군들의 자신감은 그저 자신들의 안위에만 급급한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무기와 장비는 고장이 났는데, 도대체 어떻게 전쟁을 치르겠다고 저렇게 자신 있어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안보만큼은 보수대통령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대한민국의 국방력은 점점 더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북한이 도발하면 어떻게 대응을 합니까? 장비도 고장이 났고 무기도 발사할 수도 없는데....

북한에 있어야 할 탄피가 한국까지 날라오는 이상한 나라입니다.
종편만 보면 대한민국은 지금 전쟁이 벌어져 남북이 교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한국전쟁 때도 그랬고, 전쟁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 나라는 진짜 전쟁이 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대한민국도 그때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점심을 개성이 아니라 대전에서 먹었던 이승만이 떠오르는 시대입니다.

1. 2010년 이후 135회의 결함 중 69회 레이더 결함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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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만에 다시 찾은 평양


<방북기①> 배안 재일동포 NGO활동가
배안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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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5  17: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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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안 / NGO활동가, 재일동포 2세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일동포 2세, 배안 NGO활동가가 9월 26일부터 10월 6일까지 북한에 다녀왔다. 배안 활동가로서는 33년 만에 다시 찾는 평양행이었다. 아울러 원산도 둘러보았다. 평양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그리고 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왔을까? 강산도 세 번 이상 바뀐 33년만의 방북기를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주

33년 만에 찾는 북쪽 땅은 어떤 모습으로 날 맞아줄까?

 

 

   
▲ 33년만에 찾은 평양의 모습. [사진 제공-배안]

 

대학 졸업한지 3년째 겨울 석 달 동안을 머문 그 땅은 이제 내겐 아득히 먼 낯 설은 땅이 되고 말았다.

만경봉92가 북과 일본을 맺어주고 많은 동포들이 그곳을 다닐 적에도 조일 간엔 숱한 문제와 과제들이 가로 놓여져 있긴 했지만 재일동포들은 조국의 북쪽 땅에 가족, 친척들, 친구들을 보러 다녀왔었다.

일본인 납치 사건이 북의 만행이란 사실이 전해진 그 순간부터 씨를 뿌리며 물을 주며 기른 친선과 우호는 옛이야기로 돌아가버렸고 지금도 양 국민 사이의 신뢰도 조일 간의 느슨한 교류도 더더욱 연약해지기만 한다. 일본이 실시한 북에 대한 제재에 의하여 만경봉92 뱃길이 막아졌고 자손들을 북으로 보낸 고령 동포들이 가족들간 서로의 정을 나눌 가냘픈 끈은 끊겨가기만 한다.

일본에서 날마다 알려지는 북에 대한 정보는 북 붕괴설뿐이며 연예인 스캔들처럼 북의 국내 뉴스를 날조하며 떠들썩하게 만든다. 그래서 여기선 남쪽에서와 마찬가지로 북의 진실이 전해지지 않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만 3번보다 더 변한 우리 조국 북쪽 땅은 어떤 모습으로 날 맞아줄까? 그곳 사람들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 진실을 알고 싶다. 가족, 친척들은 어떻게 살며 학창시절 함께 지내던 우리 친구들은 잘 지내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이런 마음을 안고 나의 북행은 시작되었다.

하네다공항-북경공항-순안공항

11일 동안의 휴가를 겨우 얻어낸 나의 여행은 하네다공항에서 시작된다.

재일 조국평화통일협회 대표단 단원으로서 떠나기로 했다만 조국통일 위업에 내가 얼마만큼 도움을 줬느냐 누가 물어 봤다면 있을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할 만큼 부끄러웠다. 하긴 꼭 평양을 다녀와야 한다는 결심은 올해 들어 더욱 굳세졌고 어느새 가슴속에 굳게 묻어져 버리고 있었다.

하네다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난 다음에도 일본에 두고 온 일덩어리들에 대한 걱정이 ‘후회’란 돌멩이가 되어 가슴속에 눌러 앉긴 했지만 이미 떠나버린 길이었고 비행기는 오직 북경을 향해 내 망설임과 어긋나게 힘차게 날개를 펴고 있었다.

북경공항 트랜짓 수속의 엄격함과 직원들의 불친절 때문에 겁을 먹으며 아슬아슬 탐지기 문을 빠져 세관검사를 마쳐나오면서 일본을 떠나온 후회는 절정에 다다랐다. 우리 대표단 어르신 속엔 처음으로 비행기로 해외여행 다니시는 분들도 몇 명 계셔 익숙지 못한 수속 절차 때문에 트러블이 일어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시라도 그곳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 맑지가 못하다는 정도가 아닌 중국의 공기를 더는 쉬고 싶지 않았고 기분이 어지러워질 정도의 요란을 떠는 그 공간에 한시라도 더 머무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빨리 떠나고 싶었다. 내 마음은 더더욱 평양을 향했고 기나긴 그 세월 보지도 못하고 지내온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게 했다.

비행장 맨 끝에 가야만 탈 수 있는 평양행였다만 시트에 앉자마자 온몸에서 땀이 쏟아져 나와 나도 몰래 크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첫 평양 풍경 ‘올핸 벼가 잘 된 것 같다’

 

   
▲ 비행기에서 창밖으로 내려다 본 평양의 야산과 논. [사진 제공-배안]

 

비행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지듯 출발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국경을 지나 목적지가 차츰 다가온다. 상공에서 내다 보이는 경치는 정리가 잘 된 밭이며 누렇게 물들여진 논들이다.

33년 전, 처음으로 이곳을 찾았을 때는 배를 타고 원산에 도착했고 원산에서 기차를 타고 하룻밤을 차 중에서 묵고 평양으로 들어갔다. 그땐 11월 달이라 추수를 끝낸 늦가을이라 하기보다 초겨울의 벌거벗은 경치가 펼쳐졌었다. 다행히도 이번엔 벼가을을 앞둔 무르익은 이 땅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올핸 벼가 잘 된 것 같다’고 누군가 속삭인다. 그 말에 왠지 마음이 놓인다.

이렇게 평양으로 들어갔다.

아직 여름향기가 남은 그곳 날씨가 워낙 상쾌하게 느껴진 것은 북경공항의 소란스러움만도 아니었을 것이다. 배려와 봉사를 모르는 그곳 공항 직원들을 떠올리면서 차분하게 그냥 업무에 충실하게 일을 보는 순안공항 직원들이 얼마나 다정스럽고 사랑스러웠던지 모른다.

입국을 위한 모든 수속을 끝내고 한 발자국 밖으로 나가자마자 어떤 남성 한 사람이 뛰어나와 “평통에서 오신 선생님 맞으시죠? 입국심사가 얼마나 까다로웠겠습니까? 거기 지나오기만 하면 이제 저희가 잘 모시겠습니다. .걱정마십시오”라 하였다.

우리말이 따끈하게 내 가슴에 다가온 순간이었다. 중국공항에서 일어난 이런 저런 일들은 한겨울의 차디찬 바람으로 우리 일행 모두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였지만 우리말이란 봄바람이 내 마음을 눈 녹듯이 누그러뜨려 준다.

‘조국과 고국’

 

   
▲ 평양순안공항. [사진 제공-배안]

 

‘조국에 왔구나’ 그런 감정이 우러나온다. 나는 과거 여러 번 남쪽 땅을 밟아보았다. 그러나 이남 땅 치고 조국이란 감정을 단 한 번 느껴보지 못했다.

나는 내가 우리 민족의 일원이라 자각하는 사람이다. 나뿐만 아니라 조선적이란 무국적자들이 남쪽으로의 입국허가를 얻어내기까지의 고생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사람마다 국적과 색깔을 따져가면서 고국 땅을 밟기조차도 쉽게 허락하지 않은 남쪽은 고국 이상의 곳이 아니다. 나 역시 이명박 정권 이후론 한 발자국도 남쪽 땅을 내디디지도 못하고 있다.

물론 정다운 친구들, 철쇄로 묶여진 군사독재를 이겨낸 우리 민족들은 영원히 나의 자랑이며 내가 그 불 같은 의사를 품은 민족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은 영광 이외 아무 것도 아니다. 민중들을 조국이라 부른다면 틀림없이 내 조국은 남북, 해외를 포함한 온 세계라 할 수 있겠다.

나와 마찬가지로 재일동포들의 90% 이상이 남쪽에 고향을 두긴 하지만 조국과 고국이란 말을 나누어 쓰는 사람들은 나뿐만이 아니다.

북은 그 어려운 국가건설의 나날에도 우리 재일동포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아니했던 나라이다. 6.25전후 평양이 잿더미로 변하고 물 한 모금 먹기에도 힘들었던 복구건설의 그날에도 공장 하나 못 짓더라도 우리말, 우리글을 배우는 우리 아이들을 도와줘야 한다며 일본에 막대한 돈을 보내준 나라였다. 그 돈을 가지고 우리의 선열들은 학교를 세우고 우리는 민족교육을 이어받으며 지켜왔다.

1997년 이후 연이어 일어난 홍수와 흉작, 사회주의국가들의 붕괴 때문에 고난의 행군으로 나서야 할 그 힘겨운 나날에도 재일동포 아이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던 따뜻한 품이었다. 우리말을 지키며 우리 문화를 익히며 우리 민족의 넋을 잃지 않고 내가 지금도 내가 나답게 조선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이런 도움이 있기도 해서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북을 조국이라고 부른다.

33년 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평양

 

   
▲ 평양 순안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차창으로 본 평양거리. [사진 제공-배안]

 

평양 순안비행장은 대공사 중이었다. 군복 웃옷을 벗어 던진 인민군 대원들인가, 청년봉사대들도 있을 것 같다. 전력과 연료, 차량, 기계가 충분하다 할 수 없는 사정은 인해전술로 공사를 다그치는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안내원을 따라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하는 찻간에서 보이는 평양은 33년 전의 그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정비된 길들이며 건물들. 그땐 외국에서의 손님들이 탄 자동차, 버스가 지나가기만 하면 인민학교(현재는 소학교) 학생들이 소년단 경례를 하더만 이제는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고 대열을 짓고 행진하면서 등하교를 하던 학생들의 그 모습도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각자 어여쁜 색깔의 옷을 입은 여자학생들이며 여성들의 멋진 옷차림이 내 마음을 흥겹게 해준다.

시내 이곳 저곳에 지어놓은 이전엔 보지도 못했던 건물들이며 새로 펼쳐진 거리가 눈앞에 안겨온다. 새로운 평양의 모습이었다. 그 때문인지, 내 기억이 희미한 탓인지, 과연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길도 없다. 버스가 우리 대표단 첫 방문지인 만수대언덕에 다다를까 말까 할 지경에야 나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평양을 한 가슴에 껴안은 듯 내다보이는 이 언덕이 나를 껴안아주었다.

어렴풋이 눈에 비친 그리웠던 평양. 11일간의 여행을 예고해주듯 이때 반갑게도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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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민주. 통일을 지켜 온 어머니들

자주. 민주. 통일을 지켜 온 어머니들
 
민가협 조순덕 상임의장 “조국통일 그날 까지 깃발 들겠다”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10/15 [22:1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적은 말수, 소탈한 웃음, 몇번을 봐도 마음씨 좋은 어머니이자 누님이다. 그러나 자주와민주, 통일을위한 길에서는 양보가 없는 투사인 민가협 조순덕 상임의장 (온쪽 첫번째)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수난과 고난의 의미로 상징 되는 보랏빛 수건을 머리에 쓰고 거리로 나선지 20년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다.


반민족, 반통일, 반자주, 반민주, 반민생, 반민중 악법인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없는 세상을 외치며 자주, 민주, 통일을 희망해 온 민주화 실천가족운동 협의회(이하 민가협) 목요집회가 1000번째를 맞이한다.


자식을 위한 모성애, 남편을 사랑하는 부부애, 핏줄을 사랑하는 가족애로 시작한 민가협 운동은 이제 조국사랑, 나라사랑, 민족사랑으로 승화되었다.


격동의 현대사와 함께하며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 마음으로 자주. 민주. 통일 세상을 꿈꾸며 실천하는 민가협 조순덕 상임의장을 지난 14일 민가협 사무실에서 만나 보았다.

 

▲ 말을 못한다며 대담을 극구 사양하던 조순덕 상임의장은 진짜 하말은 정확히 다해 기자를 놀라게 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목요집회 1000차를 맞는 소회를 말해달라

 

▲ 1000차까지 이어질 줄 몰랐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양심수는 자연히 없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목요집회도 끝날 줄 알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에도 물론 양심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급격히 양심수 들이 늘어났다. 아무튼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경색 되면서 국가보안법을 남용해 양심수가 늘어 나게 되었다. 몇 번만(목요집회)하면 끝날 줄 알았던 것이 1000회가 되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앞으로도 얼 만큼 시간이 지나야 국가보안법이 철폐되고 양심수가 없는 세상이 올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양심수가 없으려면 남북관계 개선되어야만 가능할 것으로 본다.

 

- 목요집회는 어떻게 시작 됐나

 

▲ 목요집회는 김영삼이 정권을 잡았던 문민정부 들어서면 부터였다. 우리는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과 쌍둥이 정권이라 말할 수 있는 노태우 정권이 끝나고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 당연히 양심수를 석방 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국가보안법은 계속 존속되었고 그에 따라 양심수도 계속 양산 되었다.

 

그래서 자주. 민주. 통일운동에 나섰다가 구속되고 수배 된 사람들의 가족들이 모여 1993년 9월 23일 처음 목요집회를 시작했다. 당시 시작할 때만해도 몇 달만 집회하면 양심수문제가 해결 될 줄 알았는데 오늘에 이르렀다.

 

▲ 민가협 어머니들은 자신들이 학교 축제 등에 나가 장털르 열어 손수 준비한 음식을 팔아 기금을 모아 활동한다. 아무리 힘드어도 좋은세상만 온다면야 이까짓 것 쯤은 어머니의 웃음이 들어간 순대가 참 맛있어 보인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 목요집회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 우리가 목요집회를 통한 목적이 있다면 명확하다. 반민주, 반통일, 반민생 반인권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양심수를 전원석방 사면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시퍼렇게 위세를 떨치며 존속되고 있고, 철폐가 아니라 단 한 줄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정되지 않고 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양심수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다. 현재 양심수 현황은

 

▲ 양심수로 파악 된 현황을 살펴보면 국가보안법 혐의자가 39명이고 양심적 병역 거부자까지 합하면 650여명이다. 

 

- 양심수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인가
▲ 양심수들로 구분된 분들은 국가보안법위반혐의자, 양심적병역 거부자. 노동자 등 민주 민생 민권 등 생존권을 위해 투쟁, 17대 대통령 부정 선거를 폭로 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된 분들이다.

 

▲ 자신을 희생하여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지켜 내는 일이야 말로 이 시대 최대의 애국이다. 어머니들의 피어린 노력을 조국은 잊지 않을 것이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 민가협에 지금까지 참여했던 분들이나 지금 참여 하고 계신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 

 

▲사실 민가협의 역사는 1970년대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윤보선, 문익환 목사 등이 유신독재에 대항하다 감옥에 가게 되었고   이희호, 공덕기, 박용길 장로 등이 구속자 가족협의회로 시작해  80년 6월 항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탄압 받은 가족들이 참여했고 최근에는 왕재산사건 가족분들 소위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된 가족들이 함께하고 있다.


- 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참담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가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합의하여 통일의 이정표이자 대강인 6.15와 10.4선언을 발표 하여 온 겨레의 지지와 성원 속에 통일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부 들어 용도 폐기함으로 남북관계는 파탄되고 결국 지난 10일에는 파주와 연천에서 교전이 벌어지는 위험한 상황까지 발생했다.

 

현재 박근혜 정권이 평화통일과 통일대박을 외치고 있는데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 관계나 개선과 통일을 진정 원한다면 지난 기간 동안 남북 정상들이 합의한 7.4 공동선언에서 밝힌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통일 3대원칙, 6.15 선언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의한 남북통일 방안. 그리고 10.4선언에서 밝힌 남북평화 공동번영의 합의들을 이행해야 한다.

 

그리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해 일하다 투옥되고 탄압받는 인사들을 전원 석방하는 결단을 내려야한다. 

 

- 북측의 최고위급 안사의 방문과 북측의 대화노력, 그리고 남측 정부의 화답으로 남북관계 개선이 예상되는데 양심수들에 대해 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보나

 

▲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거나 기소된 양심수들을 석방하고 사면 복권 조치가 따라야 한다. 그것은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이나 통일 의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역시 단한명의 양심수에 대해서도 사면 복권을 실시하지 않았다. 재벌이나, 파렴치범 들은 특사로 내보내면서도 통일운동 인사들이나 생존권 투쟁을 벌이다 구속 된 인사들에게는 단 한 시간도 줄여 주지 않았다.

 

양심수에 관한 문제와는 다르지만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와 민족의 자주와 평화통일, 6.15와 10.4 선언 정신을 바탕으로 활동해 온 자주민보 등록취소 심판 청구 등도 당연히 취소 되거나 철회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실천적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박근혜 정부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말들은 다 허구라고 본다.

 

▲ 조국통일 그날까지 어머니들의 보라빛 수건은 벗겨지지 않을 것이며 깃발은 내려지지 않을 것이다. 하루 빨리 어머니들의 보라색 수건과 깃발이 역사 박물관으로 가기를 기원한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 민가협의 앞으로 계획은

 

▲ 민가협에서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민가협은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민중들과 함께 연대 투쟁을 벌일 것이다.

 

우리 남과북 8천만 겨레의 모든 불행과 고통은 남북 분단 모순에서 기인하고 있다. 민가협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룰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북관계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남북이 대결이 아닌 대화와 협력을 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 우리민족의 창창한 앞날은 자주. 민주. 통일을 이룰 때 에만 담보 될 수있다. 이를 위한 사업에 발 벗고 나서겠다.

 

그리고 매주 목요집회에서 외치는 국가 보안법이 없어지고, 양심수가 단 한 명도 없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우리는 보라색 수건을 머리에서 벗지 않을 것이며 민가협 깃발은 내려지지 않을 것이다.

 

늘 마음씨 좋은 어머니 철럼, 누님처럼 보이는 조순덕 상임의장은 그리 간단치 않은 강단과 의지 신념의 소유자임을 대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한 없이 동지와 민족, 조국을 사랑하기에 이들을 헤치려 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추호의 양보나 용서도 보이지 않는 조순덕 상임의장. 조 상임의장의 바람처럼 하루 빨리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조국통일의 전환적 국면이 마련되기를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맑은 마음으로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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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수원화성문화제 참관 후기


(WWW.SURPRISE.OR.KR / 내가 꿈꾸는 그곳 / 2014-10-14)
 

제51회 수원화성문화제 참관 후기
-제2부, 정조대왕능행차의 그리운 풍경-

“별이 저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이 하나 있기 때문이야…!”

수원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을 통과하는 정조대왕능행차를 바라보며 ‘참 아름답고 그리운 풍경’이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셔터가 그 순간을 놓칠 리 만무하다. 참으로 그리운 풍경이 또그닥 따그닥 말발굽 소리를 뒤로하며 수원행궁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말 두 필과 능행차에 참여한 사람들이 입고 있는 황금빛(黃色) 두루마기가 눈에 띈다. 이 모습을 200여 년 전 백성들이 봤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어린왕자>의 저자 생떽쥐베리(Antoine(-Marie-Roger) de Saint-Exupéry)는 먼 우주에 떠 있는 별 하나를 통해 "별이 저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이 하나 있기 때문이야."라며 별의 정체성(?)을 우리 인간들의 마음과 동일시 했다. 셍떽쥐베리는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때문인 지,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보통 사람들의 판단과 달랐던 것. 그러나 별은 세상 사람들에게 다 아름답게 보이는 건 아니다.

제2부, 정조대왕능행차의 그리운 풍경

별이 절망의 반대편에서 구원의 손길을 보내거나, 별이 돈과 명예를 보장해 준다거나, 별이 내 삶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별이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운명의 신이면 몰라도, 세상 사람들은 어두운 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 전부를 빼앗긴 세상에 살고 있었다. 특히 도회지에선 별을 올려다 보는 수고 보다, 휘황찬란한 조명을 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살 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꽃 보다, 알록달록한 ‘앱’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었는 지 더더욱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불과 200여 년 전쯤 조선시대 사람들은 
디지털 시대에 사는 사람들과 달라도 한참 다른 우주관을 가지고 살았다.

정조대왕능행차에 새겨진 오방색

인터넷에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일찌감치 과학을 통해 우주의 겉모습을 다 알아버린 코스모스는 더 이상 유토피아로 자리매김 할 수 없는 시대. 사람들의 일상은 스마트한 휴대폰 속에서 더 이상의 진화를 멈춘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람들의 눈에 비친 우주는 대략 오방색 혹은 오방정색의 프레임에서 고정돼 있었다.

오방색은 ‘오방정색’ 이라고도 하며,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5가지 한국의 전통 색을 말한다. 음과 양의 기운이 생겨나 하늘과 땅이 되고 다시 음양의 두 기운이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오행을 생성하였다는 음양오행사상을 기초로 한다. 오행에는 오색이 따르고 방위가 따르는데, 중앙과 사방을 기본으로 삼아 황(黃)은 중앙, 청(靑)은 동, 백(白)은 서, 적(赤)은 남, 흑(黑)은 북을 뜻한다.

또한, 청과 황의 간색에는 녹(錄), 청과 백의 간색에는 벽(碧),적과 백의 간색에는 홍(紅),흑과 적의 간색에는 자(紫),흑과 황의 간색에는 유황(硫黃) 색이 있어 이들을 오간색(五間色) 또는 오방잡색(五方雜色)이라고 한다. 황(黃)은 오행 가운데 토(土)에 해당하며 우주의 중심이라 하여 가장 고귀한 색으로 취급되어 ‘임금의 옷’을 만들었다.

청(靑)은 오행 가운데 목(木)에 해당하며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색으로 쓰였다. 또한,백(白)은 오행 가운데 금(金)에 해당하며, 결백과 진실, 삶, 순결 등을 뜻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흰옷을 즐겨 입었다. 적(赤)은 오행 가운데 화(火)에 해당하며 생성과 창조.정열과 애정, 적극성을 뜻하여 가장 강한 벽사의 빛깔로 쓰였다. 또한, 흑(黑)은 오행 가운데 수(首)에 해당하며 인간의 지혜를 관장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음양오행 사상에 기초하여 오방색(五方色)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악귀를 몰아내기 위해 혼례 때 신부가 연지곤지를 바르는 것. 나쁜 기운을 막고 무병장수를 기원해 돌이나 명절에 어린아이에게 색동저고리를 입히는 것이며, 간장 항아리에 붉은 고추를 끼워 금줄을 두르는 것이다. 또 잔치상의 국수에 올리는 오색 고명, 붉은 빛이 나는 황토로 집을 짓거나 신년에 붉은 부적을 그려 대문에 붙이는 것. 궁궐, 사찰 등의 단청, 고구려의 고분벽화나 조각보 등의 공예품에서 이러한 오방색(五方色)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출처: http://www.culturecontent.com/dictionary/dictionaryView.do?cp_code=cp0445&dic_seq=77>

정조대왕(화산)능행차가 시작됐다

정조대왕능행차 행렬이 장안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방색 가운데 황색의 의미를 떠올려 본 것이다. 오방색은 몽골로이드가 생활 가운데 주로 사용해 온 색(色)이지만, 몽골로이드의 선조로 알려진 아프리카의 종족들이 널리 애용한 색이며 세계인들이 이 색깔로 벗어날 수 없는 '태양의 정체성(빛)'이기도 하다.

필자(‘나’라고 한다.)는 지난 12일 폐막된 수원화성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정조대왕능행차 연시 참관을 통해, 나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왜 황금빛 노란색을 그리워 하는 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독함이 어디서 비롯됐는 지 알 수만 있다면 치유가 가능할 텐데, 우리는 그 방법을 몰라 고아처럼 방황하고 있었던 것. 생떽쥐베리가 힌트를 준 것이다. 별을 아름답게 보지 못하거나 볼 수 없게 만든 커튼 하나가 ‘마음의 창’을 가리고 있었던 것. 그 지긋지긋한 어둠의 커튼을 걷어낸 건 수원화성 서장대에 걸린 황금빛 깃발이었다. 효심 지극한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에 납시었던 것이다.

나는 정조대왕능행차 연시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가 어디서 비롯됐는 지, 
넌지시 깨닫고 있었던 것.

사람들이 능행차 행렬이 지나는 연도에 쪼구려 앉아 학수고대 하고 있는 건, 해마다 때 맞추어 행하는 즐거운 이벤트가 아니었다. 설령 그분들이 ‘열심히 준비한 이벤트를 즐기러 나왔다’고 말한다고 해도,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기꺼이 짬을 내어 손뼉을 치며 열광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그들 마음 속에 언제부터인가 사라진 구심점을 되찾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정조대왕능행차 행렬의 ‘선두군사(보병)’가 
장안문을 나서 행궁으로 나설 때쯤,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나는 그 역사적인 장면 앞에서 숨죽이며 셔터를 눌러댓다.

대왕의 행차에 따라나선 정예군사들이 
화성행궁에 입장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행차에 합세한 병사들 때문에 열광한 건 아니었다.
(물론 능행차 연시에 참여한 분들의 수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취재진을 제외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장안문 안에서도 
출입이 허가된 카메라맨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선두 행렬이 지나가면 곧 정조대왕이 용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왕의 모습을 직접 알현하고 싶은 것이다.

왕은 금방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관련 포스트 (수원화성문화제,왕을 기다리는 사람들)에서 언급한 바 
왕은 선두에 위치해 있지만 장안문 앞에서 하마 한 후
수원유수(염태영 수원시장) 등의 영접으로 행차가 지체되고 있는 것.

선두행렬이 장안문을 나설 때쯤 
장안문 앞에서 조선조 22대 정조대왕을 알현할 수 있다.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내 앞을 지나가고 있는 능행차 행렬은 서기 2014년 10월 9일에 행해진 능행차 연시이며,출연자들은 대부분 시민들과 학생들로 구성됐지만,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 느린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는 다시금 생떽쥐베리가 말한 ‘아름다운 별’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조대왕 납시오…!

누구나 하나쯤 가슴 속에 품고 있을 별 하나는 
과학자들이 말하는 ‘단백질의 근원’이 아니라, 
자기를 지탱해 주는 구심점이었다.

작게는 형제이며, 가족이며, 
좀 더 나아가면 부모이며, 
연인이며, 
동지이며, 
조직이며, 
사회이며, 
특정 국가에 속한 내가…

이들로부터 소외 되거나 멀어지면, 본래의 자리를 되찾거나 돌아가고 싶은 것. 
마치 지구별에 사는 인간이 손에 잡힐 듯 허공에 둥실 매달린 달을 그리워 하는 것 같은 이치랄까.

내 앞에 납신 왕은 폭정을 일삼는 폭군이 아니었다.

조삼모사를 통해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 위선자가 아니었다.

(우리가 말하는 ‘닭대가리’처럼)
방금 전에 한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자기가 한 말 조차 기억해 내지 못하는 일은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자기를 태어나게 해 준 부모의 고향이 노략질의 땅 아메리카 대륙이나, 
시도 때도 없이 화산과 지진이 창궐하는 섬나라로 착각하는 등 
‘짝퉁 정체성’을 가진 정치 협잡꾼들은 비교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조선조를 통털어 가장 반듯한 정조(正朝)대왕이었다. 
당신께서 친히 수원화성에 납신 것이다.

대왕께옵서 친히 보잘 것 없는 한 백성 앞에서 포즈를 취해준 곳은 장안문 앞이었다.

장안문 앞에서 이 모습 지켜보고 있는 백성들... 한 카메라맨이 황급히 자리를 옮기는 모습이 포착된 이곳은, 정조대왕이 생전에 능행차를 통해13차례나 드나들던 유서깊은 곳이다.조선조 500여 년을 통해 단 13차례 왕과 백성들이 행복을 만끽했던 ‘소통의 문’이랄까.

권력 본래의 모습

화성행궁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은 동족상잔이 빚어진 6.25전쟁 당시 반파된 이후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해 왔다. 아울러 수원화성문화제가 51회를 맞이할 때까지 12번 째 정조대왕 역(役)을 배출해 오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오고 있었던 것. 나는 이 축제를 참관하면서부터 줄곧 권력의 본래 모습을 머리 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권력은 ‘칼의 속성’과 다를 바 없어서 잘 못 다루면 사람의 목숨을 앗아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죽음의 도구’로 변질되는 것. 그러나 잘 다루게 되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생명의 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정조대왕이 정약용으로 하여금 수원화성을 축조케 하고, 아버지 장헌세자의 능행차를 통해 지극한 효심을 드러내 보인 건, 세상을 바르게 다스려 보고 싶은 정치적 야심과 함께, 오랜 정쟁으로 상처입은 백성들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컷을 것.

임금은 자기를 나타내 보고자 하는 ‘빛나는 별’이 아니라 
백성들의 바람을 거두어 들이는 '블랙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수원화성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정조대왕의 능행차 행렬이 
저만치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한 수 위의 보다 큰 권위를 되새기게 됐다.

세상을 통찰하고 있는 ‘고수와 하수의 차잇점’이었다.

아이를 둔 하수의 부모는 자기의 안위만을 위해 아이를 통제하며 ‘하지말 것’을 강요한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
그렇지만 고수의 할아버지께선 아이와 가문 등의 비젼을 위해 ‘하라’고 내버려 둔다.
수원화성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를 통해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 한 게 무엇인지 단박에 오버랩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가슴 속에서 늘 빛나던 별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건 아닐까…?”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10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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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 위 '황당' 공주역, 철피아 작품?

허허벌판 위 '황당' 공주역, 철피아 작품?

[기고] 착착 진행중인 철도 민영화, 새누리당이 앞장서고 있다 

 

 

 
한국철도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영혼 없는 관료들, 그리고 빈곤한 철학으로 관료들의 청부를 수행하는 학자들, 부패한 토건 족들이 하나로 뭉쳐 철도를 파탄 내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파탄 내고 있는 철도를 다시 복구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자전거를 제외한다면, 철도는 인류가 만든 것 중 가장 위대한 '탈것'이다. 육상 교통수단 중 가장 적은 토지 파괴를 수반하고, 대량수송이 가능하다. 에너지 효율성, 친환경성, 교통혼잡비용 절감, 최고의 안전성 등을 장점으로 한다. 철도가 인간에게 주는 효용은 다른 어떤 교통수단보다 뛰어나다. 
 
한때 도로교통에 밀려 사양산업 취급을 받던 철도는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위기 시대를 맞아 새로운 대안 교통수단으로 부상한 지 오래다. 이미 유럽 국가들은 사회적 투자 순위에서 도로를 밀어내고 철도를 우선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원한다면 철도는 선택 가능한 여러 대안 중의 하나가 아니라, 최우선적으로 채택해야 할 사회적 자산이다. 
 
▲건설 중인 공주역. 다음 지도 위성 사진 캡처 ⓒ다음

▲건설 중인 공주역. 다음 지도 위성 사진 캡처 ⓒ다음

철도가 가진 장점을 갉아 먹는 철도역 설계
 
철도가 다른 교통수단이 따라올 수 없는 장점들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도 가지고 있다. 바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문제다. 이른바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가 안 된다는 점이다. 현관문을 열고 몇 발자국 나서면 탈 수 있는 자동차의 편리함을 따라잡을 수 없다. 철도가 아무리 좋은 교통수단이라도 이용의 편리함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철도 수송 분담률을 높일 수 없다. 따라서 철도 정책을 입안하는 담당자들은 이런 철도의 단점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역으로 가야 한다. 그 때문에 역은 도시의 중심지나 교통의 요지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을 통과하도록 설계돼야 한다. 유럽의 중앙역들이 도시 교통의 핵심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새로 신설되는 역이 철도이용자들의 손쉬운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한국에서 진행된 고속철도 사업이나 신설 건설 사업, 기존선 개량 사업들을 보면 철저하게 철도의 기능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온 게 사실이다.  
 
경부고속철도 신경주역과 울산역을 보자. 첩첩산중에 건설되었다. 역에서 나오면 주변은 산자락이다. 도심에서의 접근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기는커녕, 반대로 멀찍이 떨어뜨려 놓았다. 고속철도가 갖는 빠른 이동성이라는 장점을 갉아먹도록 철도역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고속철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도심에서 상당한 시간을 들여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경주 지역이야 문화재 보호를 위해 역의 도심 진입을 유보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지금의 신경주역이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자리한 것은 아니다. 신경주역과 울산역의 문제만이 아니다. 새로 생기는 거의 모든 역이 도심에서 추방되고 있다. 
 
경전선 개량 공사를 하면서 만들어진 수많은 역들이 도심에서 밀려났다. 도심에서 이전된 진주역은 산이 에워싸고 있다. 역을 중심으로 오일장이 서 사람들로 북적이게 했던 함안역이 이전한 곳은, 주변이 온통 논과 밭이다. 정부가 철도수송분담률을 높이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인구 밀집 지역에서 밀려난 철도역이 정부가 말하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신선 개량 공사가 진행된 장항선이라고 다르지 않다. 삽교, 홍성, 서천, 장항역 등 구 역사에서 이전한 수많은 장항선의 신 역사 주변에는 제대로 된 민가조차 보이지 않는다. 새로 신설되는 호남고속철도도 고속철도 이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장치인 역을 무력화시켰다. 공주역의 경우 허허벌판에 역사를 만들어 도심에서 승용차를 타더라도 30~40분이나 이동해야 한다. 택시를 탈 경우 2만 원이나 되는 요금이 나오는 거리다. 공주역의 문제점이 불거지자 국토부가 내놓은 해명은 더 기가 막히다. 
 
국토부 철도산업과는 "KTX 호남역 위치는 전문기관의 연구 용역, 공청회, 관계 기관의 협의와 전문가 위원회 자문 등을 통해 호남 KTX 건설 기본 계획으로 확정된 사항이며 인접 도시의 균형적인 접근성과 열차 운영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히고 있다. 
 
위와 같은 해명은 국토부를 비롯해 연구용역을 수행했다는 전문 기관, 자문을 했다는 전문가 위원회 같은 기관들이 갖고 있는 철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철학이 천박하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정부기관에서 마련한 적지 않은 공청회는, 규정된 공청회 횟수를 채우는 데 급급했을 뿐이다. 그런 공청회가 시민 의견을 수렴했다는 증거로 활용되기 위해 요식적으로 열려왔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그동안 철도에 대한 수요 예측이나 정책 연구를 수행한 한국교통연구원 등 소위 전문기관들이 자행한 일들은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힘겨울 지경이다. 
 
이미 건설된 고속철도를 비롯해 기존선 개량 노선이나 신설되는 철도 노선들을 보면, 철도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수용하기 편하고 땅값이 싼 곳의 지도 위에 자를 대고 줄을 그어 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 만약 철도 전문가라 자청한 사람들이 현재 들어서는 철도노선과 역을 지정하는데 참여했다면, 전문가 명찰을 내던져야 할 정도다.  
 
▲허허벌판에 서 있는 울산역 ⓒ박흥수

▲허허벌판에 서 있는 울산역 ⓒ박흥수

▲울산역 주변 풍경 ⓒ박흥수

▲울산역 주변 풍경 ⓒ박흥수

▲산 넘고, 물 건너 가야 하는 울산역. 다음 지도 위성 사진 캡처 ⓒ다음

▲산 넘고, 물 건너 가야 하는 울산역. 다음 지도 위성 사진 캡처 ⓒ다음

철도 민영화의 단추가 철피아를 만들어냈다
 
철도역이 이렇게 설계된 배경은 어디에 있는가? 국토부가 한국 철도를 개혁하겠다며 추진한 상하분리 정책에서 시작된다. 관료들은 시설과 운영이 통합된 체제에서, 시설 부분을 담당하는 철도시설공단과 운영을 담당하는 철도공사로 시스템을 이원화시켰다. 국토부는 정부가 시설을 책임지고 철도공사는 운영에만 매진할 수 있어, 적자를 줄이고 경영 효율화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철도시설공단은 정부가 위탁한 사업을 수행하는 대행기관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철도시설공단이 국토부 관피아의 전진기지가 된 꼴로 변했을 뿐이다. 
 
역대 시설공단 이사장 자리는 국토부 고위관료들의 낙하산 착지점으로 변질됐다.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재직 시절 고속철도 궤도공사 납품업체로부터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된 전직 이사장이, 투신자살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시설공단 이사장을 지낸 뒤 국회로 진출한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도 검찰의 '철피아(철도+마피아)' 비리 수사 대상이 되었다. 시설공단은 국토부 고위관료들의 퇴직 후 정거장이 되면서, 철도 마피아의 카르텔이 형성되는 중요한 고리가 되었다. 
 
철도 시설을 책임지는 시설공단과 운영을 맡은 철도공사는 유기적 협조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국토부 직할대가 되어 버린 시설공단은, 이명박 정권 당시부터 추진되던 KTX 민영화에 찬성하면서 철도공사 흔들기에 앞장섰다. 두 철도 기관이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파열음을 내고 있는 현실이 국토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상하분리 정책의 현주소다. 
 
철도역을 허허벌판으로 밀어내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철도정책을 총괄하는 국토부와 이를 실행하는 시설공단에, 한국철도의 현실과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당장 예산 절감을 위해서는 도심지보다는 토지 수용비가 싼 외곽 지역을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한 번 설치하면 영구적으로 사용하게 될 역사인데, 상대적 비용 절감을 이유로 외곽에 유치하게 된다면 철도 이용 활성화나 경영 개선은 기대할 수 없다. 
 
과거에는 철도역이 새로 들어서면 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확장되고 개발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교통수단이 변변치 않았던 근대 초기의 일이다. 지금은 신설된 역으로 도심이 이전하거나 상권이 형성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은 더이상 부동산 개발이 황금알을 낳는 사회가 아니다. 도심 외곽으로 이전된 철도역은 이용이 불편한 외딴 섬일 뿐이다. 철도역을 도시 바깥에서 힘겹게 찾아가야 하는 공항 꼴로 만들어놓고 있는 현실은 한국철도의 미래 전망을 암울하게만 할 뿐이다. 
 
국토부는 철도공사의 부실을 질타한다. 그러나 실상은 바로 그 국토부가 철도공사의 구조적 부실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이 한국철도의 비극이다. 
 
개인이 자영업을 벌인다고 해도, 사업 당사자는 직접 주변 입지와 유동 인구 등을 고려해 영업 장소를 선택한다. 그러나 정작 철도 운영기관인 철도 공사는 자신이 사업을 벌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역을 설치하는데 발언권이나 영향력이 없다. 국토부가 결정하고 시설공단이 건설해서 넘기면 그냥 받아서 운영하는 형국이다. 만약 개인사업자에게 제삼자가 사람이 하나도 없는 외딴 지역에 가게를 지어주고 영업을 하라고 한다면,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이가 어디 있겠는가?
 
▲허허벌판에 세워진 삽교역. 다음 지도 위성 사진 캡처 ⓒ다음

▲허허벌판에 세워진 삽교역. 다음 지도 위성 사진 캡처 ⓒ다음

철도 민영화, 새누리당이 앞장서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지난 9월 19일 새누리당이 공기업 혁신 방안이라고 내놓은 철도공사 개편방안의 첫 번째 안이, 철도 시설과 운영의 완전한 분리이다. 시설과 운영이 분리된 것은 오래전이지만, 지금까지는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 철도 노선의 유지 보수 및 관제 업무는 철도공사가 맡아왔다. 그런데 이를 시설공단에게 모두 이전한다는 방침이 새누리당의 안이다. 시설공단이 유지 보수 업체를 선정하면서 또 무슨 이권을 챙기게 될지 모르겠지만, 더 큰 문제는 철도 안전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 시스템은 이렇다. 열차가 달리는 중 기관사가 선로의 이상을 감지하면 무전기를 통해 역에 통보하고, 역에서는 바로 관제실과 유지 보수를 책임지는 팀에게 연락해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유지보수 기능이 분리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서로 연락하는 팀이 서로 다른 회사 소속이 돼 버리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공식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이를테면 상대 기관에 공문을 보내야 하고 이를 접수 받은 기관은 현장을 확인해 실제 보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 후 지정된 업체를 파견해 보수를 완료할 때까지, 열차는 위험을 안고 달려야 한다. 공문처리가 지연되거나 누락되기라도 한다면 그만큼 위험은 더 증가한다. 영국에서 철도 민영화 이후 분리된 기관들이 사고 책임을 놓고 법정 분쟁을 벌이면서 로펌들의 주머니만 채워주게 되었던 일이 한국에서 재현될 수 있다. 
 
프랑스 철도는 왜 분리됐던 시설과 운영 기관을 통합했을까. 왜 독일 철도는 운영 기관에 시설 부문을 포함시켰을까. 새누리당과 국토부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신설된 일본의 고속철도역 대부분은 왜 기존 역들과 나란히 존재하거나 일반 열차와의 연계 환승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을까. 이들이 바보여서일까? 
 
새누리당이 철도 개혁방안이라고 내놓은 안의 상당수는 국토부가 그동안 준비한 내용과 다를 바 없다. 집권 여당이 관료들이 추진하는 잘못된 정책을 국회의 이름으로 세탁해 주는 것은, 항상 국익을 생각한다는 당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먼저 할 일은 수십 년간 왜곡된 채 유지되었던 한국철도 정책 입안 체제의 개혁이다. 
 
철도정책을 총괄하는 국토부, 또 이와 연결된 철피아의 카르텔에 대한 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철도가 우리 사회의 중추적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는 일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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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친척 정부펀드 특혜? 수천억 편법증여 의혹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10/15 09:03
  • 수정일
    2014/10/15 09:0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국민속촌 거머쥔 4000억 재산가, 종이회사 설립 증여 의혹
 
육근성 | 2014-10-14 13:08:5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통령 이종사촌 일가에 대한 정부 펀드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올해 들어 정부가 추진하는 4개의 모태펀드에 투자조합운용회사로 선정된 컴퍼니케이파트너스(컴퍼니케이)의 최대주주인 금보개발의 대표이사가 박 대통령의 외사촌 형부인 정원삼의 장남 정원석(71년생)이다.

 


대통령 외사촌 형부의 아들 870억 원 정부펀드 따내

컴퍼니케이가 따낸 정부 모태펀드 운용권의 규모는 870억 원. 농림축산식품부의 애그로시드펀드 100억 원(지난 5월), 미래창조과학부의 디지털콘텐츠코리아 펀드 150억 원(6월), 중소기업진흥공단 청년창업펀드 200억 원, 금융위원회 스타트업윈윈펀드 420억 원 등이다. 모태펀드는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일정 금액을 출원해 민간투자를 끌어들여 조성하는 펀드를 말한다.

정원석이 컴퍼니케이의 이사로 취임한 건 박 대통령 취임 한 달 뒤인 지난해 3월 27일. 취임하자마자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금보개발이 지분 인수에 착수한다. 굵직한 펀드 운용권을 따내기 직전인 지난 4월까지 컴퍼니케이 지분 74.3%를 손에 넣었다. 컴퍼니케이는 정부 펀드 운용사로 선정된 덕분에 불과 수개월 만에 사업규모가 두 배로 급증했다.

특혜 냄새가 풀풀 난다. 정원석의 금보개발이 컴퍼니케이의 대주주가 된 시점과 정부가 모태펀드 투자조합운용사 선정 공고를 낸 시점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금보개발이 대주주로 들어선 뒤 응몰할 때마다 빠짐없이 선정된 것이다. 컴퍼니케이 측은 “정원석은 대주주일 뿐”이라며 특혜 의혹을 부인하지만 새누리당 의원조차 규정 위반이라며 특혜 의혹을 제기할 정도다.


대주주 되자마자 공모 성공 100%, 규정도 어겨

홍지만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0일 국감에서 ‘컴퍼니케이가 조합 결성 실패 시 1년 내 최소 1회 이상 출자를 제한하는 규정을 어진 채 선정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컴퍼니케이는 2013년 4월 글로벌콘텐츠투자조합 운용사로 선정됐으나 그해 8월 조합결성에 실패한 전력을 갖고 있다. 홍 의원은 이 점을 들어 컴퍼니케이가 지난 5월과 6월 각각 100억 원과 200억 원 두 개 펀드에 선정된 것은 규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특혜라는 얘기다.

컴퍼니케이 대주주인 정원석의 아버지 정원삼은 박 대통령의 모친 육영수의 언니인 육인순의 딸(홍지자)의 남편으로 외사촌 사이다. 이들 정씨 집안에 대한 특혜 의혹은 이번만이 아니다. 한국민속촌과 골프장(남부컨트리클럽) 등도 논란이 된 바 있다. 박정희 시절부터 시작된 특혜 의혹이다.

정영삼-정원석 부자가 한국민속촌을 거머쥐게 된 내막은 이렇다. 유신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1974년 박정희는 민속촌 건립을 추진한다. 정부가 6억 8000만 원을 내고 민간기업인 기흥관광개발(대표 김정웅 당시 한국고미술품협회장)이 운영권을 갖는 대신 7억 3200만 원을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정영삼-정원석 일가, 단돈 1억 원에 한국민속촌 손에 넣어

민속촌이 문을 연 뒤 1년 만에 김정웅은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구속된다. 김정웅의 구속이 사전에 예정된 유신정권의 음모라는 설도 있다. 사주가 구속되자 기흥관광개발은 자금난에 봉착했고 이때 세진레이온이라는 회사가 접근한다. 1976년 기흥관광개발을 인수한 세진레이온은 조원관광진흥으로 회사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한국민속촌을 운영하고 있다. 세진레이온 대표가 박 대통령의 외사촌 형부이자 박정희의 처 조카사위인 정영삼이었던 것이다.

설립자 김정웅이 억울함을 호소한 적이 있다. 그가 구속돼 있는 동안 정영삼이 접근해 “‘주식 전부를 양도하라’고 요구했으며 ‘응하지 않을 경우 재구속시키고 공매처분토록 하겠다’고 협박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결국 시가 55억 원 가치를 9억 원에 매매하기로 했지만 “1억 원만 받고 8억 원을 받지 못했다”는 게 김정웅 측의 주장이다.

당시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민속촌을 1억 원을 주고 손에 넣었다는 얘기다. 정씨 일가 수중에 들어간 한국민속촌(조원관광진흥)은 현재 자본금 519억 원에 연 매출이 250~300억 원에 달하는 중견기업이 됐다.

전통문화 영역과 무관한 섬유사업자 수중에 들어간 한국민속촌은 박정희 사망(1979년) 이후 사유화가 진행된다. 설립 당시 정부가 투자한 6억 8000만 원의 행방은 지금도 묘연하다. 그 당시 한해 정부세출예산은 1조 6000억 원. 이를 토대로 해 현재 가치로 환산해 보면 1200억 원에 해당한다. 엄청난 국민 혈세가 투입됐는데도 어찌 된 영문인지 슬그머니 개인재산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4500억 재산가 된 외사촌, ‘종이회사’ 설립 편법 증여 의혹

정씨 일가는 ‘특혜’로 손에 넣은 한국민속촌을 부를 축적하는 기반으로 삼았다. 민속촌 땅 30만 평을 골프장으로 조성해 남부컨트리클럽을 설립했다. 민속촌 부지 절반을 골프장으로 둔갑시켜 엄청난 이득을 챙긴 것이다. 민속촌을 사유화하고 골프장을 세워 축적한 재산은 재벌 수준이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실에 의하면 2011년 말 기준으로 정영삼-정원석 일가가 소유한 7개 기업의 총자산은 4,529억 원(토지 2982억 원/공시지가)에 달한다.

대통령 외사촌 일가의 황당한 행태는 계속된다. 정영삼이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아들에게 편법·탈법으로 증여를 했다는 의혹도 있다. 한국민속촌을 소유한 조원관광진흥의 최대주주회사인 ‘서우수력’의 주식(99.6%)이 아들들에게 넘겨진 것이다. 수천억 자산의 한국민속촌을 보유한 ‘서우수력’의 납입자본금은 고작 1억 원. 종업원도 단 3명뿐이다. 적은 자본금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부동산이나 타 회사 주식을 보유하도록 한 뒤 그 회사 주식을 자녀들에게 넘겨주는 방식의 증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증여 대부분이 2000년 이후에 이뤄졌다. 아직 증여세 부과 시효(15년)이 경과되지 않는 상태다. 정부 펀드 선정 특혜 의혹에 대한 조사뿐 아니라 거액 증여에 대한 세무조사도 당장 착수돼야 한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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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관련 '박근혜 비판' 교사들


'네이버밴드'도 털렸다..."정권의 폭력"

[발굴] 교육부 고발 뒤 압수수색...종로서 "수사 위한 것" 해명

14.10.14 20:45l최종 업데이트 14.10.14 22:0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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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현재 '네이버밴드'의 '선언2' 첫 화면
ⓒ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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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관련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한 교사들이 모인 '네이버밴드'를 수사기관이 압수수색한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박 대통령을 비판한 SNS 가입 교사들을 직접 겨냥해 수색을 벌인 것이어서 사찰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 비판 교사 겨냥 '밴드' 수색...처음 드러나

14일 서울 종로경찰서는 "박 대통령 퇴진을 위한 2차 교사선언에 누가 참여했는지 알기 위해 '네이버밴드'에 대해 지난 8월초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수색을 벌였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대통령 비판 교사들에 대한 인적 정보와 게시글 내용 일부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압수수색한 '네이버밴드'의 밴드명은 '선언2'였다. 이 밴드 운영자 강아무개 교사에 따르면 해당 밴드에는 세월호 관련 미온적인 대처 지적을 받은 정부와 박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현직 교사 100여 명이 가입해 활동했다. 밴드 개설 시기는 5월 중순쯤이다. 

압수수색이 벌어진 뒤인 14일 오후 현재에도 이 밴드에는 30명의 교사들이 가입해 있다. 

이 밴드 소속 교사 80명은 지난 5월 28일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우리 80명의 교사들은 대한민국이란 배가 침몰하고 있음을 보고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면서 "이 모든 사태에 대해 '대통령이 책임지고 퇴진하라'는 우리 교사들의 선언은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숨 쉬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해당 교사들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고발에 따라 검찰의 지휘를 받은 종로경찰서는 해당 교사들을 수사하면서 '네이버밴드'를 압수수색했다. 

'선언2'밴드 운영자인 강아무개 교사는 "'네이버밴드'는 안방과 같이 사생활이 보장되는 사적 공간인 줄 알았는데 압수수색을 했다니 정권의 폭력이 기분 나쁘고 겁도 난다"면서 "국가기관이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SNS까지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국가폭력"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정청래 새정치연합 의원은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지난해 12월 철도노조 파업 관련 경찰이 특정 피의자가 가입한 '네이버밴드' 대화 내역을 제공받았다"면서 "밴드 가입자 정보와 대화내용 요청은 사생활 침해를 넘어 엄청난 규모의 대국민 사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종로경찰서 "영장받아 벌인 압수수색, 사찰 아니다"

이에 대해 종로경찰서의 한 과장은 "이번 교사들이 가입한 '네이버밴드' 압수수색은 국가공무원법 위반 행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증거자료 확보를 위해 진행한 것"이라면서 "영장을 받아 벌인 압수수색이기 때문에 사찰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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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협 1000회 목요 집회 열린다.

(초대) 민가협 1000회 목요 집회 열린다.
 
16일 오후 2시 삼일문(탑골 공원)앞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10/15 [07:42]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목요집회 100회집회를 열어 국보법철폐 양심수 석방을 촉구할 예정이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 상임대표 조순덕)이 목요집회 1000회를 맞아 오는 16일(목) 오후 2시 삼일문 앞에서 특별한 집회를 갖는다.


분단시대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가 탄압받는투사들의 가족들이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을 외치며 거리에 나서 집회를 가진지 1000회가 되는 것이다.


민가협 조순덕 상임의장은 "문민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을 위해 거리로 나선지 2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감옥에는 양심수가 그대로 갇혀있고 국가보안법은 폐지가 아니라 단 한줄도 개정조차 되지 못했다며 통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보안법이 철폐 되어야 한다며 1000회 집회에 뜻을 같이하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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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북의 낙원으로’ 용공조작 삐라로 묻힌 ‘사학비리’

 
‘가자 북의 낙원으로’ 용공조작 삐라로 묻힌 ‘사학비리’
 
상지학원의 설립자는 ‘사학비리 1호’ 김문기가 아닌 원홍묵 선생
 
임병도 | 2014-10-14 08:27: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표적인 사학비리로 손꼽히는 김문기 상지대학교 총장이 결국 국감장에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문기 상지대 총장은 천진공업대학의 총장도 아닌 교류협력처장의 초청만으로 중국으로 떠났고, 이를 핑계로 국감장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김문기 총장의 아들 김길남 전 상지학원 이사장도 충치 발치와 임플란트 기초 치료 등을 내세우며 '건강'을 이유로 불출석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가 고의적으로 국감 증인에 출석하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린 것으로 보입니다. 

10월 8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참석한 여야는 김문기 상지대 총장과 아들 김길남 전 이사장의 증인 출석 거부 사유가 말이 되지 않는다며 교육부 종합국감 때 다시 증인 출석을 요구하고, 불응 시 형사고발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1993년 '사학비리 1호'로 퇴출당했던 김문기라는 인물이 다시 교육계에 등장해 국감 증인까지 나온 배경과 문제점을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1


' 상지학원의 설립자는 김문기가 아닌 원홍묵 선생이다' 

상지대 김문기 총장을 상지학원의 설립자로 보도하고 있는 언론이 많은데, 이는 명백한 오보입니다. 상지학원은 원홍목 선생이 설립한 청암학원이 명칭만 바뀐 것입니다. 즉 상지학원의 설립자는 김문기가 아닌 원홍목 선생입니다. 
 

 

 

 

교육부의 공문에서도 상지학원은 1974년 청암학원의 명칭만 변경됐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청암학원의 설립자는 원홍목 선생으로 1955년 원주지역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었던 관서대의숙을 세웠습니다. 1962년 재단법인 청암학원을 설립했고 1963년 1월 7일 원주대학을 설립했습니다. 

현재의 김문기가 상지학원을 인수하게 된 배경은 정치라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민관식의 선거사무장으로 활동했던 김문기는 1972년 청암학원의 관선이사로 선임됩니다. 

청암학원을 설립한 원홍목 선생은 모든 재산을 출연하여 학교를 설립하고 노력했지만 2 사채 100만 원의 빚이 생기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당시 문교부 장관 민관식과 김문기가 서로 짜고 청암학원을 김문기에게 양도하도록 종용했던 것입니다. 
 

 

 

청암학원을 인수한 김문기는 원주지역 군인들과 지역 학생을 위해 설립한 원주대학 대신 상지대학을 설립하겠다는 신청서를 제출합니다. 당시 상지대학 설립인가서에 부지라고 제출한 토지는 원홍목 선생이 운영하던 고아원 부지 3였습니다. 

김문기는 현금을 출연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통장의 잔액은 4만 9천 원짜리였고, 이런 엉터리 서류로 상지대학의 설립인가를 받았습니다. 

있지도 않은 재산을 학교 법인의 재산으로 등록하고 현금 출연 약속도 전혀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4김문기는 자신의 재산이나 재단 전입금도 없이 오로지 허위서류와 권력의 힘을 빌려 상지학원의 이사장이 됐습니다. 


'부정입학으로 돈벌이했던 김문기' 

처음부터 권력과 허위 서류로 학교를 인수한 김문기가 제대로 학교를 운영할 리가 없었습니다. 김문기는 상지대 개교 첫해인 1974년부터 무자격 학생을 입학시켰는데, 그 해만 무려 40명이었습니다. 
 

 

 

1974년부터 이루어진 부정입학은 수십 년 동안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초기에는 단순하게 무자격 입학생에게 등록금만 받는 방식이었지만, 가면 갈수록 거액의 돈을 받고 학생들을 부정하게 입학시켰습니다. 

1991년 부정합격생들은 최하 2천만 원에서 4천만 원까지 돈을 내고 입학했습니다. 당시 부정입학으로 번 돈은 김문기의 사위 황재복이 받았고, 이 돈은 별도의 계좌에 입금해 비자금처럼 관리됐습니다. 

황재복은 편입생 모집 업무와 무관한 직위에도 불구하고 면접을 보면서 '합격하면 학교 발전에 노력해라'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이 '찬조금을 내라는 것입니까?' 묻자 노골적으로 '그렇게 적극적으로 협조해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5
 

 

 

개교 첫해부터 부정입학으로 문제가 발생했던 상지대학과 김문기는 1989년 3월 10일 자 신문광고를 통해 부정입학을 보도한 언론을 가리켜 '중상모략'이라는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김문기와 상지대학은 부정입학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문교부 감사 결과와 검찰의 수사로 결국 김문기는 1993년 3월 구속 수감됩니다. 

김문기의 친인척이며 당시 상지대학교 교무부장이었던 김달기씨는 ' 부정입시 관계는 황재복 비서실장(김문기 사위)가 총괄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김문기씨가 교무과장에게 지시해서 명단을 다시 보고받는 방식으로 김문기씨가 직접 관여하면서 총괄했다'고 증언했습니다. 6

상지대학의 부정입학은 <김문기 지시 → 황재복 (사위) → 교수와 직원>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범죄를 꿈꾼 '사학범죄'였습니다.


'가자 북의 낙원으로, 용공조작으로 범죄를 숨기려고 했던 김문기' 

1986년 10월 13일 상지대 학생들은 본관을 점거하고 밤샘농성을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이 농성한 이유는 상지대학이 강사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천만 원의 금품을 받았다는 경향신문의 보도 내용에 대한 학교의 해명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있는 10월 15일, 갑자기 상지대 교정에 '가자 북의 낙원으로'라는 불온 유인물이 뿌려졌고, 경찰은 상지대총학생회장 한규길군 등 75명을 연행하여 조사했습니다. 

'가자 북의 낙원으로'라는 문구 자체만으로 구속될 이 불온유인물은 학생들이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지학원 교직원이 제목과 구호만 써서 학교 복사기로 3백~4백여 장을 복사해 뿌린 것이었습니다. 특히 김문기의 사위 황재복은 화염병 등을 준비해 폭력시위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김문기가 학생들이 만들지도 않은 불온유인물을 조작해 뿌리고 화염병을 만든 이유는 사학비리 등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을 동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7

학생들의 농성 해산을 위해 공권력 투입을 경찰에 요구했지만, 경찰은 공권력 투입의 명분이 없다며 출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상지학원 교직원들은 불온유인물을 만들어 뿌렸고, 이 유인물을 안기부에 직접 전달, 경찰이 투입되어 학생들을 연행했습니다. 
 

 

 

불온유인물 때문에 안기부와 경찰이 출동했지만, 혐의점을 찾을 수 없어 학생들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3~7일간의 구류처분에 그쳤습니다. 

당시 불온유인물을 제작했던 김황일 학생주임은 양심선언과 국회 교육위원회 국감에서 학생들이 아니라 학교에서 불온유인물을 제작해서 배포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김문기는 불온유인물 이전에도 영어교육과 전조영 교수를 학생 데모 배후 조종자로 용공조작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용공조작을 했던 이유는 아무리 큰 비리도 색깔론만 입히면 숨겨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사학재단의 검은 커넥션' 

김문기는 자신의 비리를 숨기기 위해 무고한 학생들을 용공분자로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용공조작 사실이 밝혀지자 김영삼은 대선 당시 민자당 대선 강원도지부장이었던 김문기보고 아예 유세장에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1993년 김문기는 사학재단을 운영하면서 막대한 재산을 형성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민자당 의원직을 사퇴했습니다. 당시 금융실명제 등으로 재산이 공개됐을 때의 김문기 재산은 185억 원으로 민자당 내에서도 3위였습니다. 

김문기와 같은 사학재단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세금으로 지원되는 교육 예산과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마치 사유재산처럼 뒤로 빼돌렸기 때문입니다. 

1990년 김문기가 재단에 전입금이라고 낸 돈이 달랑 3,000원이었습니다. 상지대 학생들은 화장실 물을 식수로 사용해서 마셨고, 조리학과 학생들은 화장실 물로 조리실습을 했습니다. 오죽하면 상지대 학생들은 민주화 투쟁 당시에도 학도호국단을 해체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학교다운 학교에서 공부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었습니다. 8

 

 

 

 

 

상지대 사태의 진실과 김문기의 비리를 폭로한 '가자 북의 낙원으로'라는 책에 대해 김문기 상지대 총장 측은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습니다. 

상지대를 나와 기자로 활동했던 저자 홍석진 씨는 '국가기록원, 국회 속기록, 교육부 감사결과, 법원 판결문' 등을 근거로 책을 집필했습니다. 공적인 자료를 가지고 진실을 밝히는 행위를 명예훼손 운운하는 행위 자체가 오히려 더 이상합니다. 

 

 

 

상지대 사태가 수십 년동안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사학법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학법을 제대로 개정하려고 했지만, 이명박, 박근혜 등 한나라당의 반대로 이상해졌습니다. 

한국은 범죄행위로 실형을 선고받았어도 5년만 경과하면 학교 법인 이사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만은 사학 이사들이 직무를 남용해 범죄를 저지르면 학교법인 임원 등으로 활동할 수 없도록 자격을 박탈하고 있습니다. 9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기는커녕 돈을 빼돌려 사유재산처럼 이용하는 사학재단의 족벌 경영체제가 가능한 이유는 정치인들이 그들과 함께 손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검은 손을 끊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학교는 학문의 전당이 아닌 '황금알 낳는 오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1. 이 글은 홍석진 저 '가자 북의 낙원으로'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했으며, 저자 홍석진은 상지학원 학보사 기자 출신으로 상지학원 역사복원 위원장, 용공조작사건 진상규명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 원홍목 선생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학교를 살린다고 모든 재산과 노력을 기울이는 덕분에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3. 보육원
4. 김문기는 1974년부터 매년 3천만 원에서 3천 5백만 원의 현금을 출연하겠다고 했지만, 그가 현금을 기부한 것은 1984년이 처음이었다
5. 홍석진 저 '가자 북의 낙원으로' 69P
6. 홍석진 저서 '가자 북의 낙원으로 ' P70
7. 상지대에 대한 감사는 대부분 학생들의 농성으로 시작됐다. 김문기는 학생 농성 때문에 다시 감사가 나올까 겁이 났던 것이다.
8. 1980년 5월 17일 학생회장 발언
9. 대학교육연구소 2014년 8월 20일 '상지대 사태, 박근혜정부 도덕성과 사학정책 시험대 될 것'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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