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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의 흉기, 성유보의 정기

[손석춘 칼럼] ‘성유보의 길’을 걸으려는 젊은 언론노동자들에게
 
입력 : 2014-10-14  08:56:24   노출 : 2014.10.14  09:28:07
손석춘 언론인 | 2020gil@hanmail.net 
 

조민기·이의직·안종필·홍종민·김인한·홍선주·심재택·안병섭·우승룡·배동순·김성균·김덕렴·강정문·안성열·김두식·김진홍·이병주·이인철.

2014년 3월17일, 성유보 전 동아투위 위원장이 “그리운 이름”으로 떠올린 “먼저 떠난” 동지들입니다. 동아투위가 해마다 동아일보사 앞에서 열어온 집회에 더는 참석할 수 없는 이름들을 쓰면서 당신은 “벌써 18명이나 고인이 되셨다니…”라고 문장을 맺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을씨년스러운 시월에 예기치 않게 고인이 되셨습니다. 억장이 무너질 일입니다. 

결국 당신이 마지막으로 참석한 동아일보 앞 집회에서 투위는 ‘동아일보사와 박근혜 정부에 보내는 공개장’을 발표했었지요. “오늘날의 동아일보는 그 ‘아우 매체’ 격인 채널A와 더불어 ‘사회적 공기’라기보다는 민족공동체의 평화와 공존을 파괴하는 ‘흉기’라는 지탄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꾸짖었습니다.

이형도 알다시피 동아투위는 비단 동아일보만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동아일보를 포함한 보수언론”의 오늘을 개탄했습니다. 냉철하게 톺아볼까요. 국가정보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반민주적 작태입니다.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선거의 유효성을 의심받을 상황입니다. 마땅히 언론이라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나서야 옳지요. 더구나 권력이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 ‘은폐’가 곰비임비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세칭 ‘조중동’은 권력 감시도, 진실 추구도, 최소한의 공정보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조중동 저널리즘은 추락할 대로 추락했습니다. 동아투위의 ‘백발 청년기자’들에게 그것은 ‘언론’이 아닙니다. ‘흉기’일 따름입니다. 

고인은 단테를 인용했습니다. 단테가 ‘신곡’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사람에게는 ‘지옥’이 준비되어 있고, 해야 할 일을 안 한 사람들에게는 ‘연옥’이 준비돼 있다”고 경고했다면서 “해야 할 일을 안 한 사람들의 대열 맨 앞줄에 동아일보를 비롯한 ‘긴조 9호 시대 언론’이 서 있었다”고 고발했습니다.

어찌 ‘긴급조치 9호시대 언론’만 그 대열 맨 앞줄에 서 있을까요. 2014년의 언론,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에 진실을 파헤칠 생각은 전혀 없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도 마치 모든 게 밝혀졌다는 듯 예단하고 되레 유족들을 내놓고 조롱하는 언론인들은 명토박아두거니와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더러는 단테의 경구를 시들방귀로 여길 수 있겠지요. 죽은 뒤의 세계가 있다고 저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지옥과 연옥의 그림자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안 한 언론인들에게 짙게 드리워질 터입니다. 가령 전두환을 ‘청렴결백한 장군’으로 ‘새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로 글을 써댄 언론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요? ‘성 고문’ 당한 여학생에게 ‘성을 혁명도구화 했다’고 쓴 언론인들은 어떨까요? 언론인으로 자신의 인생에 과연 자부심을 느낄까요? 1980년 오월항쟁을 ‘폭도’니 ‘총을 든 난동자’ 따위로 쓴 언론인들은 그가 인간인한 아무리 자신을 정당화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죄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비단 과거만이 아닙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은폐하는 권력의 작태에 언론인으로서 ‘적극 부역’한 언론인들, 생때같은 자녀를 잃고 진실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세월호 유족들의 ‘도덕성’을 요리조리 흠집 내온 언론인들, 자살률 1위인 나라에서 최소한의 복지 요구조차 살천스레 붉은 색깔을 덧칠해온 언론인들, 노동시간이 세계 최장이고 비정규직 비율이 세계 최고인 나라에서 노동운동을 언제나 적대시해온 언론인들은 어떨까요? 소속 언론사에서 정년퇴임할 때까지 호의호식은 하겠으나 정녕 마음까지 그럴까요? 진실을 언구럭부리며 마음이 뒤틀리고 성정이 혐오스럽게 변해간다면, 바로 그곳이 ‘연옥’이고 ‘지옥’ 아닐까요? 그들이 현업에서 물러난 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 어떨까요? 물론, 다음 세상이 있다면 그들이 갈 곳은 더 분명하겠지요.

이형. 저는 동아투위의 떠나간 기자들 이름에 ‘성유보’를 눈물로 올리면서, 언론노조와 기자협회의 다짐에 희망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 성유보가 되겠습니다.” 얼마나 가상한가요. 흉기인 언론을 성유보가 온 몸으로 살아온 순수한 기운, 정기로 치유할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지요. 언론노조 위원장과 기자협회장이 함께 했던 자리에서 이념과 정파 따위를 떠나 ‘저널리즘 살리기 운동’을 제안했었던 저로서는 더없이 반가운 일입니다. 

   
▲ 손석춘 언론인
 

지금 저의 소망은 소박합니다. 우리 모두 ‘성유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당시 언론계 최고의 일터였던 동아일보에서 올곧게 싸웠고, 한겨레서도 ‘기득권’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를 창립할 때 도와드렸지만 저 스스로 짚어보아도 ‘성유보’가 되기엔 지나치게 편히 살아왔습니다. 하릴없이 다시 눈 슴벅이는 까닭입니다. 

수만 명의 한국 언론인들 가운데 ‘성유보’가 십분의 일 정도만 된다면, 아니 ‘이순신의 문법’을 빌려 애오라지 ‘열두 명’만 있더라도 한국 저널리즘은 싸목싸목 바뀔 터입니다. 젊은 언론노동자 가운데 뚜벅뚜벅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분명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조용히 홀로 향을 피우고 성유보 선배의 미소를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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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지팡이 짚고 40일 만에 공개활동 재개

 

북 노동신문, 1면에 김정은 비서 사진 공개... 활동 부재, 다리 이상 때문인 듯

14.10.14 08:18l최종 업데이트 14.10.14 10:0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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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일 만에 등장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팡이를 사용하는 모습의 사진이 14일 공개됐다. 노동신문은 이날 1∼3면에 김 제1위원장의 위성과학자주택지구 현지시찰 사진을 공개했는데, 신문 1면에는 그가 지팡이를 짚고 앉아있거나 걷는 모습의 사진이 여러 장 실렸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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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14일 오전 9시 46분]

북한 김정은 제1비서가 40일 만에 다시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4일, "김정은 제1비서가 위성과학자 주택지구를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한동안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던 김 제1비서의 공개 활동은 지난달 3일 모란봉악단 신작음악회 관람 이후 40일 만이다.

또한,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같은 날 김 제1비서의 현지 시찰 소식을 전하며 1면에 이례적으로 김 제1비서가 지팡이를 짚고 현지 시찰을 하고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따라서 최근 다리나 발목 이상설이 제기되었던 김 제1비서의 건강 상태가 아직 완전히 호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보도에서 김 제1비서를 "국가과학원 원장 장철, 국가과학원 당 위원회 책임비서 김운기를 비롯한 해당 부문의 일군들과 건설에 참가한 군부대 지휘관들이 맞이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이번 현지 시찰에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태복, 최룡해 당 비서,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김정관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동행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이어 "지난 3월 착공의 첫 삽을 박은 때로부터 낮과 밤을 이어가며 결사전을 벌림으로써 불과 7개월 동안에 방대한 규모의 주택지구를 보란 듯이 세우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했다"며 김 제1비서가 이 주택단지 완공에 즈음해 현지를 방문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어 이 매체는 김 제1비서는 "위성과학자 주택지구 조감도 앞에서 해설을 듣고 여러 가지 색 타일로 보기 좋게 장식된 살림집들과 공공건물들의 외부를 바라보면서 정말 멋있다고, 희한한 풍경이라고 대만족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제1비서는 "이날 위성과학자 주택지구와 함께 새로 건설한 국가과학원 자연에네르기(에너지)연구소도 돌아봤다"며 "새로 건설된 살림집들에 입사하게 될 과학자들과 함께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조선중앙통신>은 김 제1비서의 현지 시찰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북한 매체의 보도 관행으로 미뤄 이번 공개 활동은 전날인 13일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동신문>이 김 제1비서가 지팡이를 짚고 현지 시찰하는 사진을 게재함으로써 그동안 공개 활동 부재가 발목이나 다리의 이상에서 비롯됐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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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보세이 프로세스’다”


 NCCK 화해통일위원장 조헌정 목사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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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3  18: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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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절을 전후해 평양을 다녀온 조헌정 목사와 9월 27일 향린교회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지난 8.15 광복절을 전후해 평양에 머문 기간 중 매일 아침 대동강변 산책을 다녔다는 조헌정 목사는 “북쪽이 자신감이 좀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향린교회 담임목사인 조헌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화해통일위원장은 8월 13~16일 평양을 방문, 봉수교회에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통일을 위한 8.15 남북공동 기도회’를 가졌다.

조헌정 목사는 지난 9월 27일 향린교회에서 가진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성찬 예식을 남과 북이 한팀으로 함으로써 상당히 많은 감동을 줬고, 우리도 눈물들을 많이 흘렸지만, 북측도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목격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북행 길이 거의 막혀 있는 상황에서 드물게 방북한 NCCK 대표단은 최근에 들어선 릉라인민유원지와 문수물놀이장 등을 관람했고, 변화된 평양의 분위기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번에 평양에 가서 보니까 세대가 바뀌고 있더라. 평양봉수교회도 아주 젊은 사람으로 담임목사가 바뀌고 세대교체를 하고 있었다”면서 “3년 전에도 봤지만 작은 구멍가게들이 지금은 더 많이 생겼더라”고 전했다.

또한 “달라진 것은 평양 시내가 잔디를 심어서 상당히 녹화가 잘 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고층건물도 상당히 많이 세워졌다”면서 “내가 보기에 예전에 비해서 구호들이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아파트 건물 짓는데 보니까 군인들이 와서 일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6월 17~19일 스위스 제네바 도잔소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초청으로 북측 조선그리스도연맹 대표단과 함께 ‘한반도의 정의, 평화와 화해에 관한 국제 컨설테이션’에 참석한 그는 “예전까지는 ‘도잔소 프로세스’라고 부르는데 이제는 ‘보세이 프로세스’다”고 선언했다.

30년 전 WCC의 초청으로 일본 도잔소에서 남북 교회 대표단이 처음으로 만난 이후 주로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이 주류를 이뤘다면 이번 국제회의에서는 인도적 지원 보다는 ‘통일’ 문제를 직접 논의하게 된 계기를 맞았다는 것.

그는 국제회의 도중 발생한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지금까지 인도적 지원만으로 제한돼 있었던 교회의 만남이 이제는 조금 더 그것을 벗어나서 정치적 역할이라고 할까, 남북통일에 밑거름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기조가 바뀌는 그런 만남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정전협정이 체결일인 지난 7월 27일에 즈음해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행진하고 시드니 사일러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한반도 담당 보좌관을 만나 한반도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인 일화 등은 우리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살펴보는데 시사점이 적지 않다.

그는 “오히려 북을 더 악마화시키고 그래서 남북분단을 더욱 고착화시키는데 미국 전략이 숨어있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며 “한.미의 군사동맹이 한반도 운명을 쥐고 흔드는, 이런 정치적 상황이 70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다음은 조헌정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스승들이 김재준, 함석헌, 문익환 목사”

 

   
▲ 조헌정 목사는 KNCC 화해통일위원장으로서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화해통일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평화와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게 된 계기는?

 

■ 조헌정 목사 : 내가 한국신학대학 다닐 때 스승들이 김재준, 함석헌, 문익환 목사였다. 자연히 민족문제, 통일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우리 남쪽 사회의 모든 부조리 현상들이 사실 분단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인식은 대학생 때부터 갖기 시작했다.

내가 군대에서 철책선 근무를 했다. 3년 동안 철책선에서 성찰하면서 이렇게 억울하고, 이렇게 분한 일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가를 생각했다. 약소국가, 약소민족의 아픔이기는 하지만 미.소 특히 미국의 국제전략 속에서 하나의 희생물로 된 민족의 아픔 문제를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미국으로 가서 20년 넘게 그곳에서 공부하고 목회하면서, 거기에서는 거기 나름대로 또 한인 이민자들의 아픔 문제, 흑백 차별의 문제를 고민했다. 그러면서도 꾸준하게 민주화와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60년대부터 지금까지 민주화와 통일문제의 가장 핵심그룹이 북미기독학자회인데, 당시 60대가 하던 부회장을 내가 40대 초반으로서 처음으로 맡게 됐다. 젊은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국내 기독교 인사들이 90년대 초부터 미국 교회의 초청을 받아서 미국에 오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내가 워싱턴에 있으면서 뒷바라지 해드렸다.

신학적으로 민중신학을 공부했고, 내 삶의 기본 방향이 통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 언제 한국으로 돌아왔나?

■ 2003년도에 홍근수 목사님 후임으로 향린교회에 왔다.

□ 지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화해통일위원장 이외에 맡고 있는 일은?

■ 몇 개 있다. 평화통일연구소 이사장도 있고, 전태일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고,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대표직과 예수살기회라는 기독교모임의 상임대표도 맡고 있다.

□ 세계교회협의회(WCC)가 6월 17~19일 스위스에서 남북이 함께 참석한 국제회의를 개최했는데, 그 국제회의가 열리게 된 배경을 설명해달라.

■ 남북교회가 만나기 힘든 30년 전에 세계 교회가 남북교회를 서로 만나도록 일본 도잔소에서 양쪽 교회 대표를 초청해 공식적으로 남북교회가 직접 첫 만남을 가졌다. 그전에도 약간의 만남이 있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독일, 홍콩, 일본 등에서 4차까지 모임이 이어졌다. 5,6년 전쯤 홍콩에서 4차 모임이 있었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만나기가 거의 어려워졌다.

그런 상황에서 남북교회가 공식적으로 만나야겠다는 요청이 있었고, 북쪽은 북쪽 나름대로 강영섭 전 위원장이 별세하고 그의 아들인 강명철 위원장이 새롭게 위원장으로 진용을 갖췄고 또 남쪽은 남쪽대로 교회 지도자들도 좀 바뀌었다.

그리고 작년에 부산에서 10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가 있었다. 원래 그 자리에 북쪽 교회 대표를 초청하려고 WCC가 노력했는데 성사되지 않았고,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함께 힘을 합쳐서 평화기차를 탔다.

WCC를 앞두고 한 달 전에 독일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서부터 예배를 드리고 평화기차를 타고 모스크바와 이르쿠츠크, 북경을 거쳐 원래는 평양을 통과하기로 했다.

그러나 계속 남북 양측 정부를 설득하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국은 단동에서 배로 인천으로 들어오고, 인천에서 부산으로 오는 여정이 됐다.

그 과정에서 남북교회의 만남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고, 회의체간 만남은 계속 있었지만 공식 대표모임은 못 가졌다.

그래서 남북교회의 만남이 절실하다고 여겨져 WCC에서 국제회의에 초청하는 형식으로 보세이에서 만나게 됐다. 북쪽도 외국에 나오려면 남쪽 보다는 WCC가 초청자가 되는 것이 편안할 것이다.

스위스에서의 ‘작은 사건’과 ‘보세이 프로세스’

 

   
▲ 남북 교회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스위스 제네바 보세이에서 WCC 국제회의가 열렸다. [자료사진 - 조헌정 목사]
□ 남북이 참석한 국제회의는 어떻게 진행됐고, 무슨 내용들을 논의했나?

 

■ WCC 15개국 약 30개 교단 대표들 60여명이 3박 4일 동안 회의를 진행했다. 남쪽에서는 15명 정도 대표단이 갔고, 북쪽에서는 강명철 위원장을 비롯한 4명의 대표단이 왔다.

회의 진행 과정에서 우리는 WCC 부산총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했던 ‘한반도 평화통일 성명서’를 재확인하고 어떻게 남북교회가 남북 화해와 통일에 앞장설 것인가 함께 논의했다.

성명서에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일, 한.미 군사훈련을 중지하는 일, 북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해제하는 일 등이 포함돼 있다.

□ 북측 대표단이 세대교체가 됐나? 남측은 큰 변화가 없어 세대차가 나지는 않았나?

■ 북도 바꿔가는 상황에 있고, 강명철 위원장도 54세다. 아주 젊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번에 평양에 가서 보니까 세대가 바뀌고 있더라. 평양봉수교회도 아주 젊은 사람으로 담임목사가 바뀌고 세대교체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남북 대표단이 한집에 함께 머물렀다. 그래서 공식적인 모임 외에 아침 식사도 같이하고 저녁에 자유롭게 대화도 나눴다. 그러면서 친밀한 관계를, 신뢰를 쌓아가는 그런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일은 세계교회가 남북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그동안은 주로 인도적 지원 관련해서 많은 힘을 쏟아온 것은 사실이다. 교회다 보니까 정치적 이슈보다는 인도적 지원에 힘을 많이 기울여서 그동안 외국 교회가 북쪽 교회를 도와온 것이다.

알다시피 북쪽에서 김정은 정권 시대에 오면서 남쪽 교회나 세계 교회가 깃털만큼 주면서 그걸 가지고 너무 부풀린다. 소위 자존심 상한 일이라면서 받지 않겠다는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하나의 사건이 생겼다.

예전부터 30년 동안 WCC를 대표해서 일해 온 일련의 실무진들이 있는데, 우리가 협의하는 과정에서 지금 인도적 지원에 관련한 사안은 상황이 바뀌고 있으니까 의제에 다루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실무진 가운데 그런 일들 주로 했던 사람들이 세미나에 인도적 지원 한 꼭지를 마련해서 주도적으로 진행한 거다.

그런데 너무 노골적으로, 앞에 사람을 두고 우리가 어떻게 도왔느니 도표를 그려가면서 설명해 도중에 북쪽 대표들이 나가 버려 회의가 중단됐다. 우리도 ‘이건 아니다. 북쪽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생각했다. 설득해서 다시 회의를 재개하기는 했다.

지금까지 인도적 지원만으로 제한돼 있었던 교회의 만남이 이제는 조금 더 그것을 벗어나서 정치적 역할이라고 할까, 남북통일에 밑거름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기조가 바뀌는 그런 만남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전까지는 ‘도잔소 프로세스’라고 부르는데 이제는 ‘보세이 프로세스’다. 이제부터는 교회가 통일에 좀더 밀착된 일들을 해야겠다는 그런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 오랜만에 북측 관계자들과 편하게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었겠다.

■ 나는 사실 외국에서 20년 있으면서부터 전혀 꺼릴게 없으니까 마음의 문턱이 덜 하는데 처음 가신 분들은 보이지 않게 마음의 문턱이 많다. 밥 먹을 때도 북쪽 사람 혼자 앉아 있는데도 가지 못하더라. 나는 가서 같이 먹었다.

 

   
▲ 보세이 회의에 참석한 남북 기독교 대표자들이 포즈를 취했다. 조헌정 목사 왼편이 강명철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중앙위원장. [자료사진 - 조헌정 목사]
□ 강영섭 위원장이 오랫동안 위원장을 했는데, 강명철 위원장은 할아버지 강양옥 목사로부터 3대째 이어온 셈이다.

 

■ 강양옥 목사가 김정일 위원장의 어머니 쪽으로 6촌 삼촌이다. 그리고 믿음의 뿌리가 굉장히 깊은 집안이다. 강양옥 목사는 같이 나라를 세운, 유공자 중에서도 핵심 유공자다.

강명철 위원장이 54세에도 불구하고 최고인민회의의 가장 핵심인 상임위원회 12명의 상임위원 중 가장 나이어린 위원이다. 우리는 3권 분립이 돼 있지만 북쪽은 당을 중심으로 하나로 돼 있기 때문에 최고인민회의라는 게 모든 권력의 핵심이 다 모여 있다. 거기 상임위원 12명 중 한 명이니까 상당한 파워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실은 다른 단체나 종교단체들도 북측에 다 초청장을 요청했지만 결국 첫 번째로 성사된 것도 강명철 위원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8.15 방북, 잊지 못할 ‘통일의 노래’

 

   
▲ 남북 목회자가 한팀으로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식이 진행됐다. [자료사진 - 조헌정 목사]
□ 8월 13~16일 방북했는데, ‘8.15 방북’이라고 하면 되나?

 

■ 공시적인 명칭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통일을 위한 8.15 남북공동 기도회’인데, 북측에서는 ‘남북공동 대회’로 하기로 서로 양해가 된 상황이다.

□ 당시 몇몇 단체들이 방북을 신청했지만 통일부가 승인하지 않았는데 방북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 초청장은 왔지만 통일부에서 허락이 잘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WCC 부산총회 과정에서 통일부가 두 번이나 방북 승인과 관련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그 빚이 남아 있어서 상당히 어려운 과정을 거쳐 승인을 받았다.

방북 인원도 사실은 애당초 9개 교단이 모이다 보니까 초청장이 30명이 왔는데 결국은 통일부의 요청에 의해서 19명으로 제한해서 다녀온 셈이다.

□ 평양에서의 일정을 소개해달라.

■ 13일 북경을 통해서 들어갔는데 강명철 위원장이 공항까지 나왔고, 보통강호텔에 숙박했다. 나로서는 3년전 인도적 지원을 위한 방북 후 처음이었고, 97년부터 다섯 번째 방북이었다. 지난번에도 보통강호텔에 묵었고 같은 장소에 또 가고 그래서 나로서는 상당히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둘째날은 만경대 고향집을 방문하고 국가선물관을 참관했다. 예전에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에 있던 선물 상당부분을 평양으로 옮겨왔다. 최근에 지어진 것 같다.

오후에는 옥류아동병원 그리고 ‘평양산원 유선종양연구소’를 방문했다. 유선종양연구소는 유방암 전문 연구소다. 모두 처음 가본 건데, 김정은 시대에 와서 새롭게 만들어진 현대식 병원들이고 MRI 같은 최신 의료기구들을 들여놨더라. 그리고 옥류아동병원에서는 다른 지방에 있는 병원과 화면으로 진료해 주는 장면도 보여주더라.

그리고 8.15 광복절에는 봉수교회에서 기도회를 가졌다. 내가 5번 갔을 때마다 예배실이 거의 다 찼었는데 이번에는 반 정도 모인 것 같다. 그들이 얘기하기를, 시간이 짧아서 연락하는데 힘들었다고 하더라.

예배 사회는 봉수교회 담임목사인 송철민 목사가 봤는데, 아마 40대 초반 정도인데 미남형이더라. 강명철 위원장이 환영사하고 김영주 총무가 답사하고, 봉수교회 전도사가 기도하고 설교와 성찬식을 진행했다.

성찬식을 진행할 때는 떡과 잔을 나누는 예식이 있는데, 남북이 서로 빵과 포도주를 들고 한팀이 돼 3팀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살과 피를 함께 먹는, 화해와 하나되는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성찬 예식을 남과 북이 한팀으로 함으로써 상당히 많은 감동을 줬고, 우리도 눈물들을 많이 흘렸지만, 북측도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목격했다.
 

   
▲ 조헌정 목사가 '통일의 노래'를 북측 성가대와 함께 부르고 있다. [자료사진 - 조헌정 목사]
특별히 나한테는 잊지 못할 감격스러운 일이 있었다. 내가 3년 전에 갔을 때 우리 교회 국악찬송가 중에 ‘통일의 노래’를 독창했는데, 봉수교회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고 성가대원 8명이 따로 나와서 노래를 몇 곡 했는데 그 중에 ‘통일의 노래’를 하는 거다.

 

깜짝 놀랐다. 내가 한 노래를 잊지 않고 노래해 준 것에 대해서. 너무 잘 부르더라. 사실 그 노래는 국악풍이니까 남쪽에서도 잘 안 불려지는 노래다. 그런데 북쪽 찬양단이 그것을 부르니까 나는 감동이 막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거다.

그리고 이번에 갈 때도 우리가 답송을 해야 되니까 노래 두 곡을 준비했는데 그 가운데 ‘통일의 노래’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나가서 노래 부르면서 두 번째 곡으로 그 노래를 부를 때는 그들을 다시 나오라 해서 사이사이에 끼어서 함께 ‘통일의 노래’를 불렀다. 나한테는 굉장히 감격적인 순간이었고 모든 사람들에게도 참 감격적인 시간이었다.

내가 나오는 길에 어떤 나이드신 할머니 한분이 옆에 오더니 나보고 “목사님, 세 번째 뵙습니다” 그러더라. 사실 우리가 ‘북측 그리스도인이 정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냐’하는 질문들을 많이 제기한다.

내가 우리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교인들한테도 그랬다. “참 그리스도인이냐고 묻는데, 당신들은 참 그리스도인 입니까?”, “자기는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근거가 뭡니까?” 이렇게 질문 던졌던 적이 있다.

북쪽은 사회주의 국가라서 전도하는 것, 이런 것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있다. 그러나 북쪽 어디를 다니나 김일성.김정일 부자 사진이 놓여있고 어디를 가나 뱃지룰 달고 다닌다. 그러나 북쪽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들어올 때는 다 떼고 들어오고 교회 건물 어디에도 사진이 없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북쪽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종교를 인정해 준 것 아니냐.

우리들이 3년 전에 갔을 때 가정교회를 갔었다. 열댓 명에서 스무 명씩 동네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다. 그런데 얄궂은 목사 한 명이 같이 갔었는데, ‘이게 거짓일 줄 모른다’고 생각해 찬송을 부르는데 자기가 임의로 고르는 거다. “이것 부릅시다”, “이것 부릅시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이 사람들이 다 부르는 거다.

그러니까 이 목사가 스스로 “내가 잘못 오해했다”고 이야기하더라. 누구를 향해서 “당신 정말 그리스도인이냐? 정말 교인이냐?” 묻는 것은 굉장히 오만한 질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은 굉장히 비신앙적인 질문이다. 

또 하나 감동적인 것은, 1993년인가 조선그리스도연맹 대표단이 처음 미국 장로교회 초청으로 워싱턴과 뉴욕에 온 적이 있다. 그때 통역관으로 온 김혜숙 선생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당시에 종교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특별히 미국이 기독교니까 굉장히 비판적이었다.

이 사람이 그동안에 문익환 목사라든가 한상렬 목사를 보고 나서 본인이 신학교를 다녀서 이번에 가니까 목사가 됐다. 김혜숙 목사가 남쪽에서 간 이은성 교수와 함께 성명서 낭독을 했는데 나로서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목회할 때 우리 교회에 북측 대표단을 초청했을 때부터 알고 있어서 감명 깊었다.

“매일 아침 대동강변 산책 갔다”

 

   
▲ 엄청난 규모로 설립된 문수물놀이장 모습. [자료사진 - 조헌정 목사]
□ 최근엔 북행길이 막혀 있어 드물게 방북한 케이스다. 3년 만에 가서 둘러본 소감은?

 

■ 다른 때는 묘향산 가느라고 평양 외부로도 가고 했는데, 이번에는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평양시 밖으로는 나가 보지 못했다.

달라진 것은 평양 시내가 잔디를 심어서 상당히 녹화가 잘 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고층건물도 상당히 많이 세워졌다.

내가 3년전 방문했을 때 짓고 있던 굉장히 독특한 건물도 봤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그렇게 고층빌딩으로 지으면서 독특한 양식으로 지은 건물은 보지 못했다. 너무 멀어서 사진을 못 찍었다.

그리고 평양시민들의 얼굴에 예전에 보지 못했던 약간의 자신감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예배드리고 나서 15일 오후에 릉라곱등어(돌고래)관과 릉라인민유원지, 문수물놀이장을 참관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싱크로나이즈를 북쪽이 잘 하듯이 돌고래 쇼 같은 것도 상당히 잘하더라. 돌고래와 함께 다니며 물속의 장면을 TV로 그대로 보여주니까. 나도 돌고래 쑈를 미국에서 여러 번 봤는데 그런 건 못 봤다.

이런 모든 것들이 최근에 만들어진 것인데, 그날이 8.15라서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물놀이장도 거대하게 만들어져 있더라.

 

   
▲ 릉라곱등어관에서 북측 젊은 여성과 함께 무대에 나선 조헌정 목사. [자료사진 - 조헌정 목사]
릉라곱등어관에서 하나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관람석이 꽉 차서 2,000명쯤 되는데 우리에게 맨 앞좌석을 줬다.

 

사회보는 젊은 남녀가 돌고래에게 더하기, 빼기 숫자 맞추기를 시키는데, 거기는 빼기를 덜기라고 하는데, “누가 하겠냐”고 장내의 신청을 받는다. 내가 앞줄에서 손을 들었는데 몇 칸 떨어진 초등학생 남자애와 동시에 손을 들었다. 그래서 사회자가 둘이서 가위주먹(가위바위보)을 하라는 거다. 내가 져서 억울해 했다.

그랬는데 그 다음에 돌고래가 주둥이에 조그만 훌라를 돌리는 걸 했다. 그런데 또 남자 한명, 여자 한명 지원을 받는 거다. 내가 맨 앞에서 계속 손을 들었다. 그랬더니 사회자가 ‘할아버지가 못하는데’하면서도 할 수 없이 내가 계속 손을 드니까 대표로 나가서 훌라후프 돌리기를 해보라는 거다.

북쪽은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스커트를 입고 왔고 나는 이런 차림으로 했는데, 나는 훌라후프를 좀 해봤다. 그래서 그 여자는 하나도 못하고 나는 막 흔들어서 훌라후프를 10번은 돌린 거다. 그랬더니 모두 껄껄대고 웃더니 앵콜쇼를 3번을 더했다. 갑자기 북쪽 인민 스타가 됐다고 박수치고... 내게 남아있는 추억거리다.

□ 방북 중에 예전과 다르게 느껴진 점들이 있다면?

■ 우리가 평양 보통강호텔에 묵으면서 사실 지금까지 밖에 산책을 못 다녔다. 나가려 하면 “어디가십니까?”, 양각도 호텔에서는 양각도가 어차피 섬이니까 그 이상 못 나가고, 고려호텔은 이미 다 보고 있으니까 더 이상 멀리는 못 간다.

외국 사람들은 조금 더 가기도 하는데 남쪽에서 간 사람들은 제한을 받는데 이번에는 제한이 없었고 앞에서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YMCA 남부원 사무총장과 같은 방에 있어서 같이 대동강변 산책을 나갔다. 그래서 주민들 고기잡는 것도 보고 한참을 걸어다니다 왔다. 우리도 조심스럽긴 했지만, 북쪽이 자신감이 좀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내가 보기에 예전에 비해서 구호들이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아파트 건물 짓는데 보니까 군인들이 와서 일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3년 전에도 봤지만 작은 구멍가게들이 지금은 더 많이 생겼더라. 아이스크림 가게, 군고구마 가게.

□ 방북의 하일라이트는 15일 남북공동 예배였을 텐데, 함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와 찬송을 한 소감은?

■ 감격적이고 기쁘기는 한데,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드문드문, 이런 식으로 제한을 받으면서까지 같이 예배를 드려야 되는 분단의 현실이 마음이 아팠다.

어느 사회고 모순이 없지는 않겠지만 북이 미국의 압박에 그렇게 홀로 싸워가면서 우리 민족의 자유와 독립의 어떤 정신을 세워나가는 어려운 과정을 보면서 마음으로 기도를 많이 했다.

이런 분단의 과정을 빨리 끝내고 하루속히 우리 민족이 하나 돼서 세계 평화와 인류 사회의 증진에 크게 이바지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

지금은 내가 외국 나가면,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꼭 묻는 게 “From south or north?”를 묻는다. 이 사람들이 남쪽에서 온 걸 모르는 게 아니다. 일종의 비아냥이 그 안에 들어가 있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을 갖는다.

우리가 우리 안에 살 때는 우리만이 잘난 것처럼 이야기하고, 상대를 미워하고 하지만 밖에 나가면 세계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를 하나로 보면서도 형제 간에 서로 싸우는 참 어리석은 나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민족이 세계 시민이 우리를 바라보는 것을 빨리 깨닫고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되겠다.

시드니 사일러 면담, ‘회개와 용서’ 논쟁

 

   
▲ 정전협정 61주년을 맞아 7월 26일(현지시간) 백악관 앞까지 행진했다. [자료사진 - 조헌정 목사]
□ 분단 문제에서 미국이 굉장히 중요한 관계국인데, 특히 7월에 방미해서 관계자도 만난 것으로 안다. 미국 방문 이야기를 들려달라.

 

■ 원래 그 모임은 미국 연합감리회가 주도가 돼서 작년 6월에 아틀란타에서 한반도평화통일 심포지엄을 가졌고, 그 심포지엄에 이어서 올해 6월에 백악관 앞에서 평화행진을 했다.

정전협정 61주년을 맞아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라고 하는 미국 정부를 향한 평화행진 이었다. 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 시작해서 백악관 앞까지 약 2㎞ 정도 NCCK 10명을 포함해 300명의 기독교 목사들이 행진했다. 그 평화행진이 주된 거였고, 백악관 앞 라파예트 공원에서 평화기도회도 가졌다.

그 전날에는 평화심포지엄 회의도 가졌고, 특별히 미국 백악관에서 한반도 안보담당 책임자로 있는 시드니 사일러와 한국 대표단과 미국교회 대표단 9명이 두 시간 동안 백악관 회의실에서 대담을 가졌다.

그리고 같은 시간대에 다른 한국과 미국 대표단은 로버트 킹 국무부 인권대사와 교회에서 회의를 가졌다. 나는 킹 대사와 작년에 NCCK 대표단으로 가서 두 시간 동안 국무부 회의실에서 회의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짐작하다시피 미국 관료들은 미국의 입장을 계속 내세우면서 핵무기라든가 북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 많았고, 미국의 정책 입장을 설명하는 방향으로 자꾸 갔다.

우리들은 세계교회가 협의한 대로, 또 우리 NCCK가 지난 88년부터 계속 주장해왔던 대로, 평화협정 체결과 한미군사훈련 중지, 중지가 아니라면 꼭 여기서만 군사훈련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북쪽이 반대하지 않는 좀 떨어진 제3의 지역에서 하라고 했다. 왜 하필 코앞에서 계속 하느냐는 거다. 또 경제제재 해제하라든가 이런 이야기를 우리가 꾸준하게 요청을 했다.

시드니 사일러가 당시에는 NSC 보좌관이었는데 지금은 6자회담 차석대사가 돼서 말하기 뭐한 점은 있는데, 이야기 중에 누군가가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서 우려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사일러가 결국 미국 측의 입장을 대변해서, 자기가 한국에 있을 때 한국인인 와이프랑 모 대형교회에 다녔는데 어느 날 목사님이 회개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일본이 회개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하더라는 거다. 그리고 몇 주 후에 용서에 관한 설교를 해서 자기가 속으로 그 설교를 들으면서 ‘그러면 일본을 용서하면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했다고 이야기하더라.

그래서 내가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No, repent first!”, “회개 먼저!” 그랬더니, 이 친구가 “No, forgiveness first!” 그러는 거다. 그래서 내가 되받아 가지고 “Why don't you forgive North Korea first?”, “용서가 먼저면, 너 왜 북한 용서하지 않느냐?” 그랬더니 사일러가 얼굴이 갑자기 벌개지고 화제를 돌리더라.

주로 목사들과 이야기 하니까 사일러가 자기 소원이 은퇴하면 북한 선교사로 가는 게 꿈이라고 얘기하더라. 북쪽 다 막아놓고 자기들 시나리오로 다 망한 다음에 가서 도와주겠다는 이야기 아니냐.

그래서 내가 뒷면에 하나는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 다른 하나는 노우스 코리아(North Korea)라고 쓴 철 십자가가 있는데, 에스겔서에 나오는 성경구절을 이야기 하면서 그 십자가를 줬다.

에스겔이 살던 때도 남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북쪽의 유다 왕국이 멸망했지만 서로 미워하고 만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로 하여금 두 나라가 하나가 되는 상징으로 한쪽에는 북쪽, 한쪽에는 남쪽이라고 쓰고 그걸 한 손으로 잡으라는 그런 성경구절이 있다.

내가 걸고 있던 그 십자가를 줬더니 이 친구가 그걸 받더니 자기 목에 걸더라. 자기도 일정부분 거기에 동의한다는 뜻인지.(웃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십자가를 거니까 나는 속으로 ‘그래 고맙다. 미국을 대표하지만 그래도 신앙적으로 네가 그걸 넘어서려고 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 사일러는 전형적인 미국 관료일 텐데, 오바마 행정부가 민주당 정권임에도 북한에 대해 관여정책보다는 압박정책을 쓰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것 같다. 실제로 그런 건가?

■ 그렇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는 어느 정도 북의 발전 상황에 대해서도 자기 나름대로 알고 있다.

특별히 비핵 문제를 자주 이야기 하는데, 노정선 교수가 “WCC 성명서에도 나와 있다. 한반도 비핵화뿐만 아니라 세계 비핵화다. 단순히 북쪽에게만 비핵화를 요구하지 말라. 비핵화 하려면 당신들도 핵을 줄이고 세계가 비핵화로 가야 한다” 그런 입장을 전달했다.

그리고 <통일뉴스>에서 봤는데 헨리 페론이라는 중국 칭화대 박사과정에 있는 학자가 중국의 경제상황에 대해서 쓴 <아시아 저널> 4월호에 실린 글을 사일러에게 줬다. 내가 영어와 한글로 WCC에 가서도 미국사람들 한테 준 적이 있다.

그리고 그날 밤에 발표할 평화통일에 관련한 원고도 줬다. 미국이 과거에 ‘카쓰라-태프트’부터 시작해서 한반도 분단을 제안한 것도 미국이고, 분단의 결정적 책임을 지고 있다. 그리고 70년 동안 분단정책을 만들어 결국 북을 고립시키면서 한국과 일본에 지금까지 무기 팔아먹은 것 아니냐. 미국의 군수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악마는 미국이지 다른 게 아니다. 미국의 군수산업 이게 악마 아니냐. 이게 내 원고의 요점이다.

미국, ‘북이 핵을 갖도록 만드는 전략’

 

   
▲ 조헌정 목사는 시드니 사일러 당시 NSC 보좌관과 면담하기도 했다. [자료사진 - 조헌정 목사]
□ 생각보다 오바마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소극적이거나 비관적인 것 같다. 뭔가 문제 해결을 시도해볼 생각이 없는 건가?

■ 커다란 의지가 없는 것 같고, 지금은 중동문제에 완전히 발목이 잡혀 있다.

 

한 때는 풀고 나가려고 하는 의지가 좀 있었던 걸로 보인다. 6,7년 전 대통령 선거 당시 뉴스를 보면 오바마 후보가 상당히 그런 의지가 있었다. “대화를 하려면, 북쪽의 지도자와 직접 만나겠다”, 그게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하다.

그런데 지금은 군수산업체제에 완전히 몰려서 북을 악마화 하면서 계속 무기 팔아먹는 게 미국의 기본적인 전략이다. 지금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지만, 뉴스에도 나오듯이 북이 핵무기 소형화를 달성했고, 적어도 인공위성을 띄우는 상황에서 미국 본토도 어디든지 타격할 수 있다. 북은 또 그렇게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서도 더 이상 협상의 전략이라는 게 없는 상황이다. 북쪽은 핵에 관련해서는 이미 헌법에 핵보유를 밝혀놓은 상태 속에서 그게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는 상황인데 핵포기가 가능하겠냐.

그렇다면 지금 미국의 정보전략이 북한의 핵무기 전략을 꿰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약속을 파기하고 해온 것은 결국은 북이 핵을 갖도록 만드는 전략이 오히려 그 뒤에 있었던 것 아니냐. 그래서 오히려 북을 더 악마화시키고 그래서 남북분단을 더욱 고착화시키는데 미국 전략이 숨어있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야기하다가 천안함 이야기도 나왔다. 시드니 사일러가 천안함 이야기를 해서 내가 “믿느냐?”고 그랬더니 “믿는다”고 해서 내가 말을 하려고 했더니 자기가 화제를 바꾸더라.

천안함 사건도 사실은 애당초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북한 소행 아니라고 처음부터 발표했었고, 또 이명박 대통령도 당시 원인을 밝히려면 1년은 걸린다고 했다. 다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하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다. 그러나 결국은 나중에 북한 소행으로 가고 미국은 발을 빼고 있었다.

내가 천안함 사건 직후 미국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우연하게 미국 상원의원 청문회하는 걸 봤다. 그때 국방장관과 상원 국방위원장이 국방예산을 가지고 다툼이 있었다.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데 상원 위원장이 “대폭 예산을 삭감해야 하는데, 첫 번째 할 일이 F-35 개발 중지다. 더 이상 돈 쓸 수 없다. 이건 중지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국방부 장관이 “국가 예산 들이지 않고 개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나는 그때 순간적으로 ‘아, 이거 남쪽에서 사기로 했구나. 모종의 협상이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내가 그때, 벌써 4년 전에 돌아와서 설교시간에도 이야기하고 공공연하게 어떤 자리가 있을 때마다 “남쪽은 F-35 전투기 구입합니다. 천안함 사건과 연계돼서 이미 다 사기로 협약 맺었습니다”라고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서 1년 있다가 전투기 구입 이야기가 나왔고, 그리고 1년 있다가 F-35하고 프랑스 기종하고 어떠어떠하냐 하면서 마지막 순간에 ‘예산 부족으로 프랑스 기종으로 간다’고 신문에 났었다. 그 신문이 토요일자였는데 내가 그 다음날 일요일날 설교하면서 또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바로 며칠 후에 F-35로 결정했다고 언론에 나오더라.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쉽게 말하면 한.미의 군사동맹이 한반도 운명을 쥐고 흔드는, 이런 정치적 상황이 70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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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대전 앞두고 진행된 필승결의대회와 최종검열

한호석의 개벽예감 <13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10/13 [00:53]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1> 지난 10월 7일 국회 국방위원회는 서울 용산에 있는 국방부 청사에서 2014년도 국정감사를 시행하였다. 이 사진은 한민구 국방장관이 국정감사에 앞서 증인선서를 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그 날 국방부가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북은 2015년을 조국통일대전 완수의 해로 선포하고, 전군이 실전연습을 실시하고 전투력을 증강하면서 전면전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한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국방부 국감자료에서 밝혀진 놀라운 진실

 

지난 10월 7일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북은 “2015년을 통일대전 완성의 해로 선포하고 전체 병종별 실전적 전술훈련과 전력증강을 통해 전면전 준비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 1> 보도기사에 실린 이 짤막한 인용문에는 북이 “2015년을 통일대전 완성의 해로 선포”하였다고 서술되었는데, 통일위업을 완성한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쓰지만, 통일대전을 완성한다는 어색한 표현은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문장은 “북이 2015년을 조국통일대전 완수의 해로 선포하였다”는 식으로 바꿔야 올바르게 쓰인 문장으로 된다. 여기서 완수라는 말은 완전히 수행한다는 뜻이다. 또한 국방부 국감자료에서 지금 조선인민군이 “전체 병종별 실전적 전술훈련과 전력증강을 통해 전면전 준비활동을 하고 있다”고 어색하게 서술된 대목도 “지금 조선인민군 전군이 군종별, 병종별로 실전연습을 실시하고 전투력을 증강하면서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식으로 바꿔 읽어야 뜻이 더 명확해진다.


위에 인용한 국방부 국감자료에 들어있는, 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에 관한 중대정보는 내가 정치군사정세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얻어낸 견해와 일맥상통한다. 2012년 8월 25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선군절’ 경축연회 연설에서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하였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언급된 이후 지난 2년 동안 정치군사정세를 분석해오면서 나는 북의 조국통일대전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하였다. 나의 그런 예감을 짧게 요약하면, 북이 지난 60여 년 동안 “미제 격멸”을 외치며 준비해온 조국통일대전의 결정적 시기가 2015년 중에 도래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북의 조국통일대전은 세계전쟁사가 일찍이 알지 못하는, 종전의 전쟁들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미증유의 초단기속결전으로 될 것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국감자료는 떠도는 소문이나 불확실한 첩보를 가지고 작성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입증될 만큼 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방부는 어떤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작성한 자기의 국감자료에서 북이 2015년을 조국통일대전 완수의 해로 선포하였다고 서술한 것이다.


국방부 국감자료의 그러한 서술과 직접 연관되는 또 다른 정보는 미국의 관영선전매체인 <자유아시아방송>의 최근 보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0월 7일 그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각급 부대들은 2015년까지 조국통일위업을 완수하는 것이 인민군대의 목표라는 내용으로 작성된 상부의 지시문을 하달 받았고, 내년에 무조건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 앞서 지난 3월 26일 <TV조선>이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올해 초에 소집된 조선인민군 지휘관 회의에서 “2015년에 공화국 남반부를 통일하기 위한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통일대전을 위해 전략물자를 최대한 마련하고 언제든지 전쟁을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라”고 명령하였고, 그 명령에 따라 조선인민군은 전면전 작전계획을 확정하였다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정보들을 살펴보면, 북이 지난 60여 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부단히 준비해온 조국통일대전이 바로 내년으로 다가왔다는 예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북의 군사동향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미국이 위와 같은 중대정보를 모를 리 만무하다. 지금 미국은 위와 같은 중대정보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지만, 조선인민군이 2015년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료하고 최고사령관의 총진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까닭에 지난 3월 13일 레이먼드 오디어노(Raymond T. Odierno) 미국 육군참모총장은 워싱턴에서 진행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강연에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긴급상황들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은 참석자의 질문을 받았을 때, 한반도에서 일어날 전쟁이라고 답변하면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의) 오판이다. 원치 않는 도발을 초래할 수 있는 오판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은 한국을 수호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디어노 육군참모총장은 북이 정세를 오판하여 조국통일대전에 나설 가능성을 가장 우려한다고 말했지만, 정세를 오판하는 쪽은 북이 아니라 미국이다. 미국은 2015년까지 반드시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려는 확고한 결심을 지닌 김정은 제1위원장에 대해 오판하였고,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료하고 최고사령관의 총진격명령을 기다리는 조선인민군의 전면전 능력에 대해 오판하였다.


한국 국방부는 조선인민군에게는 전면전 능력이 없다느니, 전면전이 일어나면 북은 멸망할 것이라느니 하는 주장을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퍼뜨렸는데, 사실과 다른 그런 주장만 들어온 사람들은 내년에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는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처럼 안이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승조 전 합참의장이 지난 5월 23일 워싱턴에서 진행된 한미문제연구소(ICAS) 토론회에서 꺼내놓은 발언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일부 전문가들이 경제력 격차와 장비 노후화를 거론하며 북한군의 전면전 도발 가능성이 없다고 평가하지만 북한군의 능력과 적화통일의지, 기습공격태세를 감안하면 전면전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하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는 북의 조국통일대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하였지만, 그로부터 약 넉 달이 지나면서 이전보다 더 긴박한 상황이 조성된 지금에 와서는 북의 조국통일대전이 2015년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지 모른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북은 2015년에 조국통일대전에 나설 것이고, 위에 인용한 오디어노 육군참모총장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은 2015년에 한국수호전에 나서게 될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해방과 분단이 이 민족의 역사에 마침내 70년의 연륜을 새기게 될 2015년에 북의 조국통일대전과 미국의 한국수호전이 마침내 격돌하게 되는 것이다.

 

▲ <사진 2> 이 사진은 2013년 7월 27일 북의 전승절 60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진행된 군사행진에 등장한 화성-13호 탄두부를 근접촬영한 것이다. 거대한 탄두의 생김새만 봐도 압도감이 느껴진다.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실려 이동하는 사거리 12,000km의 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지구 위에 있는 그 어떤 대상도 불시의 선제타격으로 파괴할 수 있는 엄청난 핵타격력으로 하여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하면서 미국을 죽음의 공포에 떨게 만든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태평양사령관의 이상한 언론대담과 북이 제정한 세계 유일의 특별법

 

지난 8월 19일 새뮤얼 락클리어(Samuel J. Locklear) 미국 태평양사령관은 군사고문협의회가 주최한 강연회에 출연하여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세 나라를 북, 러시아, 중국 순으로 열거하면서 “내가 보는 견지에서, 북은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태평양사령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미국 중앙정보국장과 국방장관을 지내고 2013년에 퇴임한 리언 패네타(Leon E. Panetta)도 그렇게 생각한다. 패네타는 최근에 펴낸 자신의 회고록 ‘훌륭한 싸움’에서 북을 가장 위험한 나라로 지목하면서 미국이 많은 시간과 정력을 북의 잠재적 위험을 예측하는 데 투입하고 있다고 서술하였다. 


락클리어와 패네타가 공히 인정한 것처럼, 북이 미국에게 가장 위험한 적국이라는 그들의 인식은, 미국 본토를 공격할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한 정보가 세상에 알려짐으로써 생겨난 현실인식이다.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하면서 미국을 공포에 떨게 하는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은 거대한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실려 이동하는 화성-13호다. <사진 2>


화성-13호를 두려워하는 락클리어 태평양사령관의 발언은 계속된다. 그는 지난 9월 25일 <블룸벅 뉴스(Bloomberg News)>와 진행한 언론대담에서 “북이 미국을 위협하는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하는 단계를 밟아가는 중”인데, “이전에 재래식 군사력과 대포동-2호 같은 고정식 장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두려움을 주었던 북은, 아직 실전배치되지는 않았지만, 도로에서 이동하도록 설계된 미사일로 미국과 북의 관계를 변화시키려고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발언내용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이미 2011년부터 화성-13호를 실전배치하여 운용해오고 있는 북은 그 전략무기를 2012년 4월 15일과 2013년 7월 27일에 각각 진행된 군사행진들에서 세상에 공개하였으며,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전략로케트관에도 영구전시해놓았다. <조선일보> 2014년 3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보당국은 화성-13호의 사거리가 미국 본토는 물론이고 지구 상 어느 곳이나 타격할 수 있는 12,000km에 이르는 것으로 판단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정보를 알고 있는 락클리어 태평양사령관은 북이 화성-13호를 아직 실전배치하는 단계를 밟아가는 중인 것처럼 말했으니, 이는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위의 언론대담 중에 락클리어 태평양사령관은 북의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언제쯤 실전배치될 것인가 하고 물은 대담자의 질문에 “우리가 그에 대해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고 하면서 답변을 피했다. 이미 실전배치된 화성-13호를 두고 아직 실전배치되지 않은 것처럼 거짓말을 늘어놓은 그에게 취재기자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지자 답변이 궁색해 얼버무린 것이다.

 

▲ <사진 3> 북과 미국이 전면전을 벌이는 경우, 자기 휘하의 30만 병력을 동원하여 전쟁을 지휘해야 할 사람은 이 사진에 모습을 드러낸 미국 태평양사령관 새뮤얼 락클리어다. 그는 해군 대장이다. 그런데 요즈음 그는 화성-13호와 목성-2호 같은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들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북이 아직 화성-13호를 실전배치하는 중이라는 식의 왜곡발언이나 늘어놓고 있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락클리어 태평양사령관은 지난 3월 25일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에 제출한 문서에서도 안보환경을 위협하는 여러 요인들을 열거할 때 미국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첫 번째 대상이 북이라고 지적하면서 “북은 KN-08 대륙간탄도미사일(화성-13호를 뜻함-옮긴이)을 시험발사한 적이 없지만, 그 미사일의 사거리와 기동력은 미국 본토 전역을 불시에 직접 위협하는 미사일기술의 이론적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서술하였다. 그는 북의 화성-13호가 미국 본토 전역을 불시에 직접 위협하는 미사일이라고 솔직하게 서술하지 못하고, 그 미사일이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이론적으로는 미국 본토 전역을 불시에 직접 위협한다는 식으로 교묘하게 왜곡한 것이다. 북과 미국이 전면전을 벌이는 경우 자기 휘하의 30만 병력을 동원하여 전쟁을 지휘해야 할 태평양사령관이 전쟁상대의 전략무기에 관한 정보를 왜곡하는 발언이나 늘어놓고 있다. <사진 3> 


둘째, 위의 언론대담에서 락클리어 태평양사령관은 북의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3호 이외에 고정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인 ‘대포동-2호’도 미국에게 공포를 준다고 말하였는데, 그가 말한 ‘대포동-2호’는 북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구축된 지하기지의 수직갱발사관에 들어있는 중량급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그런데 북이 화성-13호보다 먼저 실전배치한 수직갱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이름은 미국 군부가 자의적으로 붙여놓은 ‘대포동-2호’라는 별칭이 아니라, 북이 정해놓은 목성-2호라는 고유명칭으로 불러야 한다. 위의 언론대담에서 락클리어 태평양사령관은 목성-2호를 ‘대포동-2호’라는 자의적 별칭으로 부르기는 하였지만, 북이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만이 아니라 수직갱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도 보유하였다는 사실을 밝혀준 것은 인정할 만하다. 미국의 고위급 군지휘관들 가운데 목성-2호의 존재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셋째, 위의 언론대담에서 락클리어 태평양사령관은 화성-13호가 북미적대관계를 변화시키는 요인이라는 점을 인정하였다. 화성-13호는 불시에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강력한 전략무기인데,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미국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는 강력한 전략무기가 북미적대관계를 변화시킨다는 그의 지적은 타당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화성-13호와 목성-2호를 비롯한 각종 핵타격수단들로 이루어진 북의 강력한 핵무력에 의해 북미적대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북의 강력한 핵무력이 북미적대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2013년 4월 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가 제정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법에 따르면, 북의 핵무력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과 공격을 억제, 격퇴하고 침략의 본거지들에 대한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가하는 데 복무”하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침략의 본거지들’이란 미국의 심장부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북은 미국의 심장부를 섬멸적 타격으로 파괴할 강력한 핵무력의 존재를 법제화한 것이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이 제각기 각종 법을 제정, 시행하고 있지만, 아메리카 제국의 심장부를 섬멸적 핵타격으로 파괴하려는 공격의지를 특별법에 명시한 나라는 오직 북밖에 없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미국은 자기 심장부를 섬멸적 핵타격으로 파괴하려는 공격의지를 특별법에 명시한 북과 국운을 걸고 전면전을 벌이던가 아니면 북이 자기 영토의 절반으로 인정하는 ‘남조선’에서 미국군을 완전히 철수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이 북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미국에게 멸망의 길이고,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것은 미국에게 전략적 패퇴이므로, 북의 강력한 핵무력은 미국을 멸망과 패퇴의 양자택일로 끌어가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북과 핵을 가지고 대치한 군사전선에서 미국의 양자택일은 자국의 멸망이냐 아니면 전략적 패퇴냐를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하는 고통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런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미국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락클리어 태평양사령관은 지난 9월 25일 <블룸벅 뉴스>와 진행한 언론대담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미사일 발사와 그 밖의 다른 군사행동으로 도발하는 북의 반복적인 행동에 마비될 만큼 세계는 지쳐있고 기진맥진하다”고 말하였겠는가.

 

▲ <사진 4> 북의 전승절인 지난 7월 27일 조선인민군 고위급 지휘관들과 각 군종, 병종을 대표한 장병들이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 집결하여 대규모 결의대회를 진행하였는데, 이 사진은 결의대회 중에 진행된 분열행진 장면이다. 해마다 '전승절'이 오면 조선인민군 결의대회가 열리지만, 지난 7월 27일의 결의대회는 이전과 달리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국통일유훈을 실현하기 위한 2015년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할 것을 맹세한 필승결의대회였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전군 필승결의대회와 핵타격준비태세 최종 검열

 

지난 7월 27일 조선인민군 고위급 지휘관들과 각 군종, 병종을 대표한 장병들이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 집결하여 대규모 결의대회를 진행하였다. <사진 4> 7월 27일은 북에서 ‘전승절’로 지키는 날이므로, 해마다 그 날이 오면 조선인민군은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탑’ 앞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해왔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하였다. 조선인민군 각급 부대들은 북측 각지에 있는 혁명유적지들에서 결의대회를 자주 진행하는데, 북에서 ‘주체의 최고성지’로 신성하게 받드는 금수산태양궁전의 광장에서는 매우 특별한 계기에만 결의대회를 진행한다. 그러므로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진행되는 결의대회는 혁명유적지들에서 진행되는 결의대회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지난 7월 27일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진행된 조선인민군 결의대회가 이전에 그곳에서 진행된 조선인민군 결의대회들과 성격이 달랐다는 점이다. 2012년 1월 9일과 12월 17일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각각 진행된 두 차례의 결의대회는 조선인민군 륙해공군 장병들이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충성을 맹세한 결의대회였고, 지난 7월 27일 그곳에서 진행된 결의대회는 조선인민군 륙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전략군 장병들이 조국통일대전 승리를 맹세하는 결의대회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지난 7월 27일에 진행된 결의대회가 전례 없이 매우 특별한 결의대회였음을 알 수 있다.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은 지난 7월 27일에 진행된 매우 특별한 결의대회에서 연설하면서 “전체 인민군장병들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의 령도 따라 조국통일대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최후 승리자의 긍지 드높이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 떳떳이 들어설 것이라는 것을 위대한 대원수님들께 엄숙히 맹세하였다”고 말하였다.


이 발언은 매우 중요한 발언이다. 왜냐하면, 지난 7월 27일에 진행된 결의대회에서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전군을 대표하여 위와 같이 맹세한 것은 이제껏 해마다 진행해온 ‘전승절’ 결의대회에서 의례적으로 하는 발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그 발언에 따르면, 지난 7월 27일에 진행된 결의대회에서 조선인민군 전체 장병들은 2015년으로 다가온 조국통일대전에서 ‘미제침략군’을 격퇴하고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것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엄숙히 맹세한 것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더라도, 군의 고위지휘관들과 장병들이 전쟁승리를 맹세하는 결의대회는 아무 때나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출전을 앞두고 진행되는 법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지난 7월 27일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진행된 결의대회는 조선인민군 전체 지휘관들과 장병들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국통일유훈을 실현하기 위한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할 것을 맹세하는 필승결의대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15년으로 다가온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할 것을 맹세한 필승결의대회에 연설자로 나선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그 전쟁에 출전할 “우리 인민군대는 악의 총본산인 백악관과 페타곤을 향하여, 태평양 상에 널려있는 미제의 군사기지들과 미국의 대도시들을 향하여 핵탄두로케트들을 발사하게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언명하였다. 지난 9월 25일 언론대담에서 락클리어 태평양사령관은 “뉴욕과 워싱턴의 상공이 버섯구름으로 뒤덮이는 그림을 그리는 나라가 바로 북”이라고 말했는데, 지난 7월 27일 필승결의대회에서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조국통일대전에 출전하면 미국의 심장부에 핵탄미사일을 쏘아 미국을 아예 멸망시켜버리겠다고 결의한 것이다.

 

▲ <사진 5> 지난 7월 27일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진행된 필승결의대회에 토론자로 나선 김략겸 전략군사령관은 조국통일대전에서 "침략의 근원을 초토화해버림으로써 미제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결의한 바 있다. 이 사진은 "미제의 멸망"을 선언한 조선인민군의 강렬한 징벌의지를 형상한 북의 선전화를 촬영한 것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조국통일대전에서 미국의 심장부를 향해 핵탄미사일을 쏘는 핵타격임무는 조선인민군 전략군에게 맡겨질 것이다.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은 필승결의대회에서 “결전의 시각이 오면 세기를 두고 쌓이고 쌓인 분노를 총폭발시켜 침략의 근원을 초토화해버림으로써 미제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의 전략군사령관은 화성 계열과 목성 계열의 각종 핵탄미사일로 무장한 전략군부대들을 지휘하는데, 그런 그가 조국통일대전 승리를 맹세한 필승결의대회에서 아메리카 제국을 핵타격으로 멸망시키겠다고 결의한 것이다. <사진 5>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전략군사령관이 조국통일대전 승리를 맹세한 필승결의대회에서 아메리카 제국을 핵타격으로 멸망시키겠다고 결의한 때로부터 약 두 달이 지난 2014년 9월 말 백악관과 펜타곤을 경악과 충격으로 몰아넣을 놀라운 일이 북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그에 관한 정보는 지난 10월 6일 <아시아경제> 보도를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한국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북한 총참모부에서 지난달 말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원문표기)인 KN-08을 포함한 노동미사일부대, 대포동미사일부대에 대해 이례적으로 판정검열(전투태세검열-원문표기)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는 것이다.


이 울퉁불퉁한 문장을 정확한 개념과 용어로 매끈하게 다듬으면, “2014년 9월 말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3호를 비롯한 화성 계열의 미사일들과 목성 계열의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무장한 조선인민군 전략군 전체 부대들의 핵타격준비태세를 이례적으로, 대대적으로 검열하였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위의 짤막한 인용문만 읽어보아서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전략군 전체 부대들의 핵타격준비태세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검열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례적이고 대대적인 검열이라고 하였으니,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전략군이 보유한 모든 종류의 핵타격수단들이 불시의 공격명령에 따라 신속히 공격대형으로 이동, 배치되는 기동상황과 공격준비상황을 검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더 말해주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당시 전략군 전체 부대들에 대해 실시된 전투태세검열은 “대남도발 시나리오를 만들어 전략군 예하 미사일부대의 작전수행능력을 검열”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한국군이 말하는 ‘북의 대남도발’은 조선인민군이 말하는 조국통일대전과 같은 뜻이므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지난 9월 말 조국통일대전 시나리오에 따른 전략군의 핵타격준비태세를 검열한 것이다. 지난 7월 27일에 진행된 필승결의대회에서 조국통일대전 승리를 맹세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그로부터 약 두 달 뒤에 전략군의 핵타격준비태세를 검열한 것은 조국통일대전에 대한 그들의 결의가 얼마나 확고한지를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전략군 전체 부대들의 핵타격준비태세 검열은 2015년으로 다가온 조국통일대전을 앞두고 최종적으로 실시된 출전검열이었던 것이다.  


미국은 지난 9월 15일부터 23일까지 서태평양에 있는 괌(Guam)과 마리아나제도(Mariana Islands) 인근해역에서 ‘용감한 방패(Valiant Shield) 2014’라는 작전명을 내걸고 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여 방대한 규모의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하였다. 시계열 순서를 살펴보면, 미국이 ‘용감한 방패 2014’라는 이름의 북침전쟁연습을 먼저 감행하였고, 그 뒤에 북이 전략군 핵타격준비태세를 검열하였다. 그런 까닭에, 북이 미국의 북침전쟁연습에 대응하여 전략군 핵타격준비태세를 검열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만일 북이 미국의 북침전쟁연습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군 핵타격준비태세를 검열하였다면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렸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비공개로 진행한 것을 보면 대응적 군사활동이 아닌 것이다. 조국통일대전을 앞두고 필승결의대회를 진행한 북은 미국의 대북적대행동에 자기들이 일일이 대응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북은 60년 동안 쌓이고 쌓인 분노를 조국통일대전에서 총폭발시켜 아메리카 제국을 삽시간에 격퇴하고 최후 승리를 이룩할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에 열거한 여러 정황들을 종합, 분석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5년 조국통일대전과 관련된 최종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 9월 4일부터 한 달이 넘도록 공개활동을 하지 않는 오늘의 상황에서 긴박감이 느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 글을 집필하는 중에 서해5도 분쟁수역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남북의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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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실종자.. “끝까지 함께 해달라”

 
광화문 세월호 촛불문화제.. “결코 4월16일 잊을 수 없다”
문장원 기자  |  balnews21@gmail.com
 
 

 

 

세월호 참사의 성역 없는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가 11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촛불 문화제에서 이들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4월 16일을 잊고 세월호 정국을 끝내고 싶어 한다”고 비난하며 “우리는 결코 4월 16일을 잊을 수 없다”고 규탄했다.

이어 검찰의 세월호 수사 발표를 비판하고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날 촛불문화제는 ‘민주사회를 청소년 회의’ 학생들이 지난 8월부터 모은 편지 300여 통을 유가족에게 전달하며 시작됐다.

이들은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정부가 그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정부가 의무를 다 하고자 하는 국민들을 방해했고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자식의 시체를 파는 시체팔이로 매도했다”고 비판했다.

학생들은 유족들이 입은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 모은 편지들을 책으로 만들어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편지를 받은 故 오영석 군의 아버지 오병환 씨는 “광화문 농성이 70일을 넘어가고 있다. 유가족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광화문에 있다”며 “(편지를 받고) 감동을 받았다. 저희들이 끝까지 싸울 수 있게 (시민들이)뒤에서 밀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 ⓒ 문장원

‘기다림의 버스’를 기획해 매주 금요일 팽목항으로 향하고 있는 이원호 씨는 “정부가 진실을 가리는 특별법을 합의하자마자 여당 중진 의원이 세월호 인양을 이야기했다”며 “해양수산부가 구체적 인양계획을 세워놨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실종자 가족들은 ‘이제 몸도 마음도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 같다’며 괴로워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이는 실종자들을 그대로 바다에 가두겠다는 선언”이라며 “실종자 가족들이 불안해 떨고 있다. 기다림의 버스에 많이 탑승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팽목항에서 실종자 10명의 이름을 불러 달라”며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지난 봄의 약속을 지켜달라”고 거듭 호소했다

특히 이날 오후 시민들과 유가족들이 함께하는 진실을 요구하는 염원을 담아 걸개 그림을 그린 신주욱 작가는 “청운동에 계시는 가족 분들이 밤에 잠을 청하시고 일어나신다. 팽목항에서 아이들이 나올 때 팽목항 천막에 (시신을) 안치를 했는데, 그 천막이랑 지금 천막이랑 똑같은 사이즈고 물품”이라며 “(가족분들이) 일어나실 때 (아이들을 잃은) 고통을 덜어드리고자 걸개그림을 그리게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음이 무거웠다”며 “끝을 알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우리 모두 힘내서 세월호를 오래 기억해서 우리의 진실을 밝혀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유가족 발언도 이어졌다. 故 임세희 양의 어머니 배미선 씨는 “저희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데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2주전에 제 꿈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배 씨는 “너무 반가워서 우리 아이를 안고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우리 아이의 얼굴이 너무 짜증스럽고 밝지가 않았다”며 “우리 아이가 하는 말이 “나를 버렸어”, “나를 버렸어”라고 했다. 그 말에 울다가 잠에서 깼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저희 아이가 꿈에 나타난 건 아직도 특별법 제정도 안 돼 있고 우리 아이들의 원한이 아직도 깊어서 그런 슬픈 모습으로 제 꿈에 나타나 것 같다”며 “나중에 하늘에서 우리 아이를 봤을 때 창피한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선 아이들의 죽은 원인을 밝혀야 우리 아이 눈을 똑바로 발수가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 ⓒ 문장원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박래군 공동운영위원장은 “이제껏 가족들과 국민들이 함께 해온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행동은 계속 될 것”이라며 “지난 검찰 수사결과에는 몸통수사가 없었다. 컨트롤 타워, 정치권에 관련된 수사는 빼놓고, 여러가지 의혹에 대한 해명 또한 없었다. 성역없는 수사, 진상규명을 위해 가족들의 참여가 보장된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 속으로 들어가 힘을 만들겠다”며 “가족들이 찾아가는 ‘국민간담회’를 통해, 11월 1일까지 1만 명의 추진단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세월호 참사 200일이  되는 오는 11월 1일 사회 각계 각층이 참여하는 범국민대책회의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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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m' 세월호 걸개그림, 1박 2일 동안 같이 그려요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10/12 09:08
  • 수정일
    2014/10/12 09:0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시민 캠프, 18일 안산 합동분향소 앞마당에서

14.10.11 20:56l최종 업데이트 14.10.11 20:5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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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 세월호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 출구에 걸린 걸개그림 왼쪽에는 “엄마아빠! 제주 수학여행 잘 다녀왔습니다’라는 글귀가 있고, 오른쪽에는 ‘꿈으로 가는 제주여행’이라는 문구가 있다. 생전에 제주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단원고 아이들과 선생님의 꿈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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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자식이 어떻게 지겨울 수 있습니까?"

안산 도심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세월호 현수막 문구 중 하나다. 서울 자양동 주부의 이름으로 걸린 현수막은 참사 180일을 맞는 대한민국에 되묻는다. 자식의 죽음을 조롱하고, 매도하며, 쉬이 잊는 부모가 대명천지에 어디 있느냐고. 이렇게 안산의 가을은 전국 각지에서 무명씨들이 신청한 현수막으로 '노랗게' 깊어져 가고 있다. 

합동분향소 풍경도 달라졌다. 분향소 출구에는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엄마아빠! 제주 수학여행 잘 다녀왔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걸개그림은 단원고 아이들과 선생님의 제주여행을 형상화했다. 지천에 노랗게 만개한 유채꽃 위에서 아이들은 유랑의 섬 제주를 여행한다. 그리고 만면에 환한 웃음꽃을 피운 채, 아이들이 되묻는다. '사랑한다'고, '잊지 말아 달라'고. 

분향소를 나서면 세월호 유가족 카메라로 참사를 기록한 '슬픔을 딛고 진실을 찾다' 사진전이 기다린다. 전시는 유가족이 진도 팽목항에서 목격한 그날의 현장, 특별법 제정을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과 도보행진,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던 교황과의 만남, 광화문 광장의 단식에 이은 청와대 앞 노숙으로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전시의 마지막은 유가족의 마음을 담은 '국민 여러분! 감사하고, 사랑합니다'이다.  

그 곁에선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사진기록단 소속 작가들이 기록한 세월호 참사 사진전 '잊지 말아요 4·16'이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4·16 참사 희생 학생 사진전 '하늘로 간 수학여행'이 그 앞에 설치되어 있다. 학생 사진전은 수학여행을 하기 위해 단원고에서 출발해 구명조끼를 입기까지, 아이들이 휴대폰에 남긴 마지막 모습을 시간 순으로 전시했다.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1박2일 캠프, '안산시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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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동분향소 출구 맞은편에 설치된 4·16 참사 희생 학생 사진전 ‘하늘로 간 수학여행’ 사진.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단원고를 나서는 아이들이 세월호가 침몰되는 순간 친구들과 함께 구명조끼를 입고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모습을 시간대별로 전시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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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달라진 합동분향소 앞마당에서 10월 18일 정오부터 19일 정오까지 24시간 동안  '안산시민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1박 2일 캠프'가 열린다. 이번 캠프는 지난 7월 4일부터 '단원고 2학년 3반 17번 박예슬 전시회'를 진행해온 장영승 서촌갤러리 대표가 유가족과 함께 기획했다. 그에게서 이번 캠프를 준비하게 된 속내를 들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은 시민들의 희생과 도움으로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그런 안산시민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자리가 없었다. 이번 가족캠프를 통해 안산시민들에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캠프 제목을 정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전국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1박 2일 캠프는 이번이 처음이다. 장 대표는 "이번에 '안산시민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리면서, 유가족들이 '저희는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소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합동분향소가 유지되면서 시민들에게 부담스러운 공간이 됐을 것"이라면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을 원하는 사람들이 다시 모여서 1박 2일의 내용을 함께 채우기 위해서는 한두 시간의 집회나 공연으로는 채울 수 없어 1박 2일의 담론 형태로 채우게 됐다"고 말했다.  

가족캠프를 맞는 유가족의 입장은 어떨까. 단원고 김동혁군의 엄마 김성실씨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까지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 사람들이 계속 잊자며 눈물을 닦으라고 한다. 눈물을 닦으면 우리는 고립되고, 아이들 죽음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 비록 상중의 문화행사지만 국민들의 일상 속에서 함께 소통해야 작은 변화가 시작되어 세월호가 잊혀지지 않고, 다시 진상규명을 위한 힘이 모아진다고 생각한다."

페트병으로 세월호 만들고, 분향소 외벽에 240m 걸개그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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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동분향소 앞마당에서 10월 18일부터 19일까지 24시간 진행되는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1박2일 캠프’ 안내 웹자보.
ⓒ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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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캠프는 참가자들이 유가족과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합동분향소 외벽 걸개그림 그리기, 페트병으로 하늘을 나는 세월호 만들기, '꿈마을' 모델하우스, '우리 아이들의 꿈'과  '우리 이렇게 지냈어요' 전시회, 풍등 날리기, 아이디어 경연대회, 각종 공연과 영화 관람 등이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이들 프로그램 중 취향에 맞는 작업을 선택해 참여하면 된다. 단, 개인 텐트와 삼시 세 끼를 해결할 취사도구를 준비해와야 한다(문의 세월호 안산시민대책위 031-486-5105).

1박 2일 캠프 프로그램 중에는 분향소 외벽 걸개그림 그리기, 페트병으로 세월호 만들기와 같이 규모가 큰 프로젝트가 있다. 하루 이틀 사이에 완성하기에는 숨이 차 보인다. "캠프 기간 동안 완성하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는다"던 장 대표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구상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걸개그림 그리기는 분향소를 한 바퀴 도는 240m의 외벽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밑그림 등 사전 작업을 13일부터 시작한 후 18일에 시민들이 참여해 완성하는 퍼포먼스다. 페트병 세월호는 페트병에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넣어 세월호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페트병 1만 개로 높이 8m에 이르는 세월호 모양을 만드는 것으로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야만 가능하다. 

처음 시도하는 작업이라 제때에 완성이 될지 모르지만, 캠프 기간에 완성이 안 되면 왜 안 되었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런 말들과 세월호를 기억하는 마음을 모아 끈질기게 작업하면 언젠가는 꼭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1박 2일 캠프의 제목은 '안산시민 고맙습니다'이지만, 그 대상이 비단 안산시민만은 아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의 격랑 속에서 유가족들과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함께 슬픔과 고통과 속죄를 되새김질한 이 땅의 시민들을 향한 감사의 인사다. 그렇기에 이 인사에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의 진심 어린 마음도 녹아 있다. 장영승 대표가 대신한 감사의 인사말이다.

"시민들께서 많은 어려움과 희생을 감내해왔고, 특히 상인들은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열심히 생활을 꾸려오셨다. 그럼에도 이 어려움과 고통은 모두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박 2일의 캠프 기간에 이번 프로젝트가 완성되지 않더라도, 또 날이 추워진다 해도,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의 힘으로 다시금 성큼성큼 걸어갔으면 한다. 많은 시민들이 18일에 분향소를 찾아주시길 당부드린다."

합동분향소 하늘에 띄운 애드벌룬 '그냥 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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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동분향소 하늘 위에 띄운 애드벌룬. 애드벌룬에는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이 아래 펼침막에는 세월호를 형상화한 영문자 ‘KOREA’가 침몰하는 모습과 함께 아래위로 “그냥 덮을까요?”, “다음 순서는 당신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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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미에 그는 서울 전시회가 끝난 '박예슬 전시회'를 합동분향소 옆에 자리한 경기도미술관에서 18일부터 무기한 전시한다고 알렸다. 대신 '단원고 2학년 4반 18번 빈하용 전시회'(하용별 이야기)를 10월 11일부터 서촌갤러리에서 시민들에게 공개한다고 전했다. 이번에도 무기한 전시다.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박예슬 전시회'에는 빈하용군 작품 일부도 전시하며, 단원고 임세희양과 다른 학생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한다. 

청명한 가을 하늘, 그 한 귀퉁이 놓인 합동분향소 하늘에는 애드벌룬이 떠 있다. 지난 7일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등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애드벌룬을 하늘에 올렸다. 애드벌룬에 매단 펼침막에는 세월호를 형상화한 영문자 'KOREA(대한민국)호'가 침몰하는 모습과 함께 아래위로 "그냥 덮을까요?", "다음 순서는 당신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애드벌룬은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과 땅에서 그 별을 바라보는 엄마아빠를 이어주는 '작은 행성'이다. 작은 행성은 합동분향소에 안치된 아이들과 분향소 앞 천막에 옹기종기 모인 엄마아빠들을 지켜주는 수호천사이기도 하다. 그 수호천사가 하늘 위에서 이 땅을 향해 연신 되묻는다. 

"세월호의 진실을 그냥 덮으면, 다음 순서는 당신이 된답니다. 아직, 4월 16일 그날을 기억하고 있으세요? 기억하고 있다면, 합동분향소로 다시 발길을 돌려주세요. 단원고 아이들과 엄마아빠의 두 손을 꼭 잡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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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길장, 짜투리장? 사람 냄새 나는 이곳으로 오세요

 

[살림 이야기]장터‧① 시장의 팔색

 

 

 
도시 곳곳에서 '다른 시장'이 열리고 있다. 농부시장, 예술시장, 벼룩시장…. 이름도 다양하고 거래하는 물건도 가지각색이다. 뭐든 다 살 수 있는 도시에서 시장이 모자라서인 건 아닐 테고, 과연 어떤 매력이 기존 시장에서 만족할 수 없던 부분을 흡족하게 채워주는 걸까? 도시는 넓고 시장은 많다. 
 
■ 상설 시장과 따로 또 같이 - 서울 꼬부랑길동네장 
 
지난 9월 19일 오후 여섯 시, 서울 신길동에서 열린 '꼬부랑길동네장'(꼬길장). 상설 시장인 '사러가'의 통로길은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를 가지고 나온 사람, 꼬치를 굽고 즉석피자를 만드는 사람, 직접 만든 수공예 액세서리와 천연비누 등을 펼쳐놓은 사람, 그리고 한편에 마련된 간이무대에서 노래 공연할 준비를 하는 아이들로 분주하다. "여기 근처에 사는데, 저녁 먹으러 왔다가 우연히 이렇게 시장 열린 거 봤어요. 신기하고 재밌어요. 닭꼬치도 맛있고." 스무 살 친구인 손다희 씨와 김예영 씨는 얼굴에 즐거운 빛이 가득하다.
 
▲ 한 달에 한 번, '꼬부랑길동네장'이 열리는 날이면 동네 상설 시장의 통로길이 시끌벅적거린다. 시장 입구에서는 작은 공연이 펼쳐지고, 가게마다 눈요깃거리가 가득하다. ⓒ이선미

▲ 한 달에 한 번, '꼬부랑길동네장'이 열리는 날이면 동네 상설 시장의 통로길이 시끌벅적거린다. 시장 입구에서는 작은 공연이 펼쳐지고, 가게마다 눈요깃거리가 가득하다. ⓒ이선미

지금은 재래시장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재래시장으로 처음 문을 연 '사러가'에서 매월 셋째 주 금요일 '꼬길장'을 열 수 있게 장소를 제공한다. 예전처럼 시장에 오는 사람들이 정을 나누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다. 이야기가 있는 요리, 도시 농부가 키운 텃밭 채소, 지역 주민이 만든 공예품, 그리고 문화공연이 어우러진다. 신길동 주민이라는 안순예 씨는 "우리 동네에서는 잘되고 알아주는 시장이라 평소에도 장 보러 오는데, 오늘은 애들이 노래도 하고 볼거리가 있다"며 이웃과 간이무대 앞에 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공연도 구경한다.
 
'꼬길장'의 특징은 기존 시장 상인들도 함께한다는 것. 무언가 새롭게 해보고 싶지만 쉽게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이들이 '꼬길장'을 통해 신선한 기운을 받는다. '꼬길장'에서만큼은 국내산·친환경 재료로 물품을 만들고, 음식에도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덕분에 새로운 사람들이 많아지고, 상인들의 호응도 점점 늘어난다고.
 
기존 시장의 홍보성 이벤트인 건 아닐까 싶었는데, 단호하게 그런 건 아니란다. '꼬길장'을 기획하고 준비한 이성자 씨는 "그냥 한번 해볼까 하고 시작한 게 아니다. 서울 영등포 달시장이나 마르쉐 등 다른 시장도 많이 보고 배웠고, 앞으로 동절기는 빼고 계속 진행할 계획"이란다. 올해 7월 처음 개장하여 이제 세 번째로 열렸는데, 앞으로는 주차장까지 공간을 넓혀서 벼룩시장도 함께할 계획. "처음에는 거품이 없을 수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사람들이 오고 반응도 좋아요. 좀 더 활성화되면 연희동 '사러가'에서도 열려고 해요."
 
▲ 상설 시장 안에 있는 마트 앞에도 '꼬부랑길동네장'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서 있다. 서로 경쟁하기보다 함께 잘되고 자 하는 훈훈한 모습(왼쪽). 판매자가 직접 기른 채소를 들고 나왔다. 고추가 유난히 빨갛게 윤기나는 듯한 건 기분 탓일까?(오른쪽 상단). 어디 무슨 가게가 있는지, 몇 시에 어느 공연을 하는지 알려주는 '꼬부랑길동네장' 지도. 처음 온 사람에게는 사소하지만 유용한 배려였다.(오른쪽 하단) ⓒ이선미

▲ 상설 시장 안에 있는 마트 앞에도 '꼬부랑길동네장'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서 있다. 서로 경쟁하기보다 함께 잘되고 자 하는 훈훈한 모습(왼쪽). 판매자가 직접 기른 채소를 들고 나왔다. 고추가 유난히 빨갛게 윤기나는 듯한 건 기분 탓일까?(오른쪽 상단). 어디 무슨 가게가 있는지, 몇 시에 어느 공연을 하는지 알려주는 '꼬부랑길동네장' 지도. 처음 온 사람에게는 사소하지만 유용한 배려였다.(오른쪽 하단) ⓒ이선미

특히 '꼬길장'은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다. 임대료나 권리금 등이 부담되어 장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먼저 장터를 경험해 보고 성장할 수 있게, 젊은 상인들을 '인큐베이팅'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실제로 장터에 직접 만든 양갱을 가지고 나온 '보드라운'의 이인호 씨는 자신의 가게를 준비하는 중, 경험을 쌓기 위해 출점했단다. 청년 판매자들이 유난히 많아 보인 이유가 있었다.
 
이른바 도시의 '대안 시장'은 개장하는 날이 며칠 안 되고 물건의 가짓수도 적어 실생활에서 주요하게 이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꼬길장'은 언제든지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상설 시장이 가까이 있어 사람들에게 제공할 편리함을 얻는 한편, 상설시장은 새롭고 호기심 가득한 사람을 얻는다. 시장에 오는 사람만이 아니라 시장끼리도, 필요를 교환하는 모습이다.
 
■ "빨리 팔고 같이 놀아요!"- 대전 짜투리시장
 
"오늘 대전에 행사가 진짜 많아요. 그래서 우리 장에 이렇게 사람이 적네." 아닌 게 아니라 '토요일이라 사람 너무 많으면 어쩌지?' 걱정하고 갔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생각보다 한산하다. 덕분에 구경은 천천히 잘 할 수 있었지만.
 
▲ 위에서 본 '짜투리' 시장의 모습. 좁은 골목길에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다. 1000두루에 귀한 토종씨앗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오후 3시가 되기도 전에 완판됐다. ⓒ이순철

▲ 위에서 본 '짜투리' 시장의 모습. 좁은 골목길에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다. 1000두루에 귀한 토종씨앗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오후 3시가 되기도 전에 완판됐다. ⓒ이순철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해 매월 셋째 주 토요일 낮 열두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대전 대흥동 산호여인숙 골목에서 열리는 짜투리시장은, 도시 속 작고 특이한 시장하면 떠올릴 만한 전형적인 모습 그대로다. '자투리'라는 낱말을 '짜투리'로 틀리게 쓴 것만 봐도 예사롭지 않다. 텃밭에서 직접 거둔 토종씨앗, 방금 전 뽑아온 가래떡 등 장터에 나온 물품들도 '느낌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의 진짜 특이점은 따로 있는데, 바로 대안화폐인 '두루'를 쓴다는 것. 시장 입구에 마련된 환전소에서 돈을 두루로 바꿔야만 잔치국수도 사 먹고 판매자가 손수 깎아주는 배도 맛볼 수 있다.
 
"대안화폐를 쓰는 건 품앗이 개념으로, 돈은 보조적인 수단이 되도록 하는 거예요. 돈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시장이죠." 시장 활동가인 서은덕 씨 말을 듣고 처음에는 번거롭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한번 환전해 보니 너무 쉽다(게다가 환전소에 가면 먹을 것도 막 준다).
 
돈이 보조 수단이라는 말에 눈치들 채셨는지? 장사해서 돈 벌어 갈 생각이 없는 판매자 겸 손님들은, 옆집 물건 구경하고 사다 보면 오히려 집에 갈 때 '마이너스'란다. 수익을 내기보다는 같이 나누는 데 더 관심이 있다고. 토종 뿔시금치랑 옥수수 씨앗을 갖고 온 장도정, 박정희 부부도 마찬가지다. "토종작물이 많이 퍼졌으면 해서 직접 길러 받은 씨앗을 나누러 나왔어요. 돈은 상관 없어요. 우리도 처음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 주최한) 무슨 축제에서 받은 거니까."
 
오후 3시쯤 되자 물건들이 다 팔렸다. 아직 장이 끝나려면 한참 남았는데 물건이 없어 어떡하느냐고 물었더니 걱정 말라고, "사람들이 빨리 다 팔고 같이 놀려고 그런다"는 답이 돌아왔다. 오후 4시부터 펼쳐지는 전통혼례 재현극도 구경해야 하고, 혼례 끝나고 모두 같이 먹을 잔치국수도 준비해야 해 오히려 더 바쁜 모습이 영락없는 '동네 잔치'. 공연은 지역연극협동조합인 나무시어터에서 준비하는데, 시장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어 좋고 극단은 공연할 공간이 생겨 좋다.
 
▲ 지난 9월 열린 '짜투리' 시장에서는 전통혼례 재현극이 펼쳐졌다. 꽃가마에서 내리는 신부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 정도로,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이순철

▲ 지난 9월 열린 '짜투리' 시장에서는 전통혼례 재현극이 펼쳐졌다. 꽃가마에서 내리는 신부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 정도로,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이순철

다음 달에는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에서 장이 열린다. 서은덕 씨는 "한 사람이 열 가지 일을 다 하는 게 아니라 열 사람이 혼자 해도 되는 일을 나눠서 하는" 덕분에 부담 없이 '짜투리' 시장을 계속할 수 있단다. 그래서 규모가 커지는 것도 바라지 않고, 지금처럼 동네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즐기는 곳이면 좋겠다.
 
'짜투리' 시장은 '물건 사고파는 저자(市場)'가 아니라 '보는 재미가 있는 마당(視場)'으로서의 시장. 도시에서 돈 벌고 돈 쓰는데 한껏 지쳐 있다가, 이곳에 와서 한숨 돌리며 흥미진진한 시간을 보냈다.
 
▲ 대전 짜투리시장 대안화폐 '두루'. ⓒ이순철

▲ 대전 짜투리시장 대안화폐 '두루'. ⓒ이순철

* 대안화폐란? 
 
공동체 안에서 모든 물품이나 노동을 주고받을 때 현금 대신 사용되는 화폐의 명칭. 상호 신뢰와 지역공동체적 연대인식을 기반으로 액수는 거래 당사자들이 정하며, 현금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 짜투리시장에서 쓰는 '두루'는 대전지역 공동체인 한밭레츠에서 시작된 대안화폐로, 1000두루는 1000원이다. 현금과 두루를 같이 사용할 경우 전체 가격의 20~30퍼센트 이상을 두루로 거래해야 한다.
 
 
[서초 토요문화벼록시장 체험기] 
 
"내 물건에도 책임져야 해" 
 
나는 서울의 아파트촌에서 나고 자란 전형적인 도시 인간이다. 흔한 말로 "쌀이 나무에서 자라는 줄 아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생필품이나 인스턴트식품을 온·오프라인 브랜드 상점에서 고르고 신용카드로 값을 치르는 생활에 어릴 때부터 익숙하다. 그런 내게 벼룩시장 바람이 분 것은 3년 전, 어릴 적부터 살던 집에서 20여 년 만에 이사하게 되었을 때다. 짐 정리를 시작하니 그동안 사들인 수많은 옷가지와 물건들이 숨어 있던 화석들처럼 쏟아져 나왔고, 대부분은 버려야 하는 상태라기보다는 그저 방치되어 쓰이지 않는 신세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한 번 쯤 참가해 보고 싶었던 벼룩시장에 그것들을 내놓기로 마음먹었다.
 
▲ 물건들을 돗자리에 깔끔하게 펼쳐 놓았다. 대부분 여전히 깨끗하고 입을만한 옷가지들이지만 '싫증이 났다'는 이유로 옷장에서 밀려난 것들이다. ⓒ황현선

▲ 물건들을 돗자리에 깔끔하게 펼쳐 놓았다. 대부분 여전히 깨끗하고 입을만한 옷가지들이지만 '싫증이 났다'는 이유로 옷장에서 밀려난 것들이다. ⓒ황현선

내가 처음 출점한 벼룩시장은 토요일마다 열리는 '서초 토요문화벼룩시장'. 서울 서초구청에서 주최하는 이 시장은 참가 절차가 간단하고 규모도 적당해 보였으며, 서초구민은 물론 다른 지역 거주자도 참가할 수 있다. 지하철 사당역에서 이수역에 이르는 복개도로 약 1킬로미터(km)가량을 따라서 열리는데, 나같이 입던 옷가지를 주로 파는 젊은이들부터 오래된 트랜지스터라디오나 구식 다이얼 전화기 등을 가지고 나온 고물상인과 직접 만든 수공예 액세서리를 들고 나온 아티스트들까지 다양한 판매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1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질서 있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로 위에 번호가 새겨져 있어 자신이 배당받은 번호 자리를 찾아가 돗자리를 깔고, 장이 파하는 오후 3시까지 기본적인 질서를 지키며 자유롭게 판매하면 된다. 가격도 내 맘대로 흥정도 내 맘대로, 그래서 그날의 장사를 망치느냐 성공하느냐도 모두 내 할 탓이다.
 
지난 9월 13일에도 친구와 함께 벼룩시장에 참가했다. 멋쟁이 커플이나 노부인 손님과 잡담도 나누고, 나 역시 북적한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재미를 즐겼다. 수익이 시원치 않아 시무룩이 있다가, 옆자리 참가자 할머니의 "다 경험이지 뭐"라는 한마디에 씻은 듯이 위로받기도 했다. 뒷자리에서 고물을 팔던 아저씨를 졸라 내가 입던 티셔츠를 2000원에 팔아넘긴 것도 재밌는 추억이 됐다.
 
나는 첫 참가를 시작으로 해마다 한 번씩 나갈 만큼 벼룩시장에 푹 빠져버렸다. 아마도 그동안 내가 물건을 사고, 쓰고, 버리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활방식을 열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내게는 쓸모가 없어져 쓰레기가 될 위기에 처한 물건이, 벼룩시장에서 새로운 주인을 만나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꽤 뿌듯하다. 또 벼룩시장은 전통적인 시장의 꼴을 갖추고 있어, 1인 가구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 관계 맺는 체험을 더해 준다. 인형을 사가는 꼬마부터 고물을 뒤적여 보는 노인까지, 도시의 다양한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경험은 바쁜 일상 속에서 '원클릭'으로 신상품을 사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옆자리 사람과 본의 아니게 자리다툼을 하거나 지나치게 물건값을 깎는 손님 때문에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벼룩시장은 인간으로서 나의 세계를 좀 더 풍요롭게 하는 계기를 여러 번 던져줬다. 돈과 물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도 수확이었다. 특히 새 물건을 살 때 전보다 훨씬 더 숙고하게 되었고, 나와 함께 살아갈 것들에 대해 좀 더 책임감을 갖게 됐다. 물건을 내 곁에 두기로 결정할 때 멀리 봐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결국 잘 사용하지 못해 애물단지가 돼 버리면, 또 벼룩시장에 이고 나가 판매하는 수고를 해야 할 테니 말이다. 시장에서의 하루가 마치 인생의 축소판처럼 삶의 이모저모를 가르쳐 주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내 말이 사실인지 궁금하다면, 이번 주 토요일 벼룩시장에 직접 나가 보시길 '강추'한다.
 
*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 꼬부랑길동네장 http://cafe.naver.com/sarugastory
☞ 짜투리시장 http://cafe.naver.com/zzzzaturi
☞ 서초 토요문화벼룩시장 http://www.seocho.go.kr/site/sd/index.jsp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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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단군을 왜 중요시하는가

북, 단군을 왜 중요시하는가[친절한 통일씨] 단군릉 개건 20주년으로 본 북한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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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2  00: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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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릉 [사진출처-민족21]

10월 3일은 개천절이다. 개천절이 되면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는 노래를 부른다.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뜻을 지닌 개천절은 '개천절 노래'에서 보듯 우리의 뿌리를 되새기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개천절과 함께 기억되는 곳은 강화도 마니산이다. 단군이 마니산에서 제천의식을 봉행했다는 유래가 있어 해마다 개천절이 되면 당시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를 연다.

하지만 종교적 의미로 바라본 단군은 언제부터인가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역사학계에서 단군은 설화적 의미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단군이 새롭게 조명받은 것은 다름아닌 북녘에서부터이다. 그리고 이는 종교적 의미가 아닌 민족적 개념으로 단군을 중요시 여겼다.

북한은 1993년 단군 유골 발견과 함께 1994년 10월 11일 평양 강동군 강동읍 서북쪽 대박산 기슭에 단군릉을 개건했다. 2014년은 단군릉 개건 20주년으로 개천절 남북공동행사가 9년만에 열리기도 했다.

사회주의, 주체사상으로 대표되는 북한은 왜 단군을 중요시 여기는가. 단군릉의 개건과 함께 북한에서 단군은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자.

1993년 단군유해 발굴과 1994년 단군릉 개건

   
▲ 단군릉 전경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1993년 10월 개천절을 앞두고 북한은 단군 유해 발굴 소식을 알렸다. 평양 강동지역에 발견된 단군릉은 고구려 양식의 돌칸 흙무덤으로, 주검칸의 크기가 동서로 273cm, 바닥에서 천장고임 1단까지의 높이는 160cm였다.

단군릉 안에서 남녀 한 쌍의 유골 86개와 금동왕관 앞면의 세움장식, 돌림띠 조각, 금동띠 표쪽, 여러 개의 도기 조각, 관에 박았던 관못 등이 출토됐다. 남자의 유골은 골반뼈를 기초로 감정한 결과, 170cm의 키로 추정됐다.

북한은 해당 유골을 연대측정한 결과, 약 5천 11년 전 것으로 단군의 유골이 확실하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신화 속 인물이 실제 역사로 바뀐 순간이었다.

   
▲ 김일성 주석이 1993년 9월 단군릉 개건확장할 데 대하여를 발표했다.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이에 김일성 주석은 같은 해 10월 20일 단군릉 관계자들 앞에서 '단군릉 개건방향에 대하여'를 발표했다.

김 주석은 "고고학자들이 단군릉을 발굴하고 거기에서 단군의 유골과 그의 아내의 유골을 찾아냈으며 단군의 유골이 지금으로부터 5,011년 전의 것이라는 것을 확증함으로써 단군이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라 고조선의 실재한 건국시조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판명되었다"면서 1994년 개천절까지 단군릉 개건을 지시했다.

약 1년만인 1994년 10월 11일에 개건된 단군릉은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기슭에 자리잡았으며, 18층 건물에 해당하는 70m 높이에 아랫부분은 한 번이 50m, 높이는 22m인 9층의 계단식 무덤으로 1994년 준공된 것을 기념해 총 1994개의 화강암으로 구성된 피라미드 형이다.

   
▲ 단군릉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 단군릉 네 모퉁이에 세워진 돌호랑이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단군릉 뒤쪽에는 무덤 입구가 있는데, 계단을 내려가 석실을 몇 번 꺽어 돌면, 석실 중앙에 두 개의 나무 관이 놓여져 있다. 여기에는 당시 발굴된 단군과 그 아내의 유골이 아르곤 가스가 채워진 밀폐 유리관 속에 보존되어 있다. 빛과 습기로 인한 손상을 막기 위해 나무관을 덧씌웠다.

단군릉에 오르기 위해서는 총 289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고, 계단 양쪽에는 선돌을 연상시키는 돌기둥이 좌우 5개씩 세워져 있다. 8명의 신하와 단군의 네 아들을 상징하는 상이 좌우 능을 지키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상돌, 분향료가 있고, 릉 네모서리에는 네 마리의 석범(돌 호랑이), 4개의 청동, 검탑과 두 개의 망두석, 석등이 있다.

단군릉을 둘러싼 진위논쟁

   
▲ 1945년 해방직후의 단군릉(왼쪽)과 1993년 발굴 직전 단군릉 전경[사진출처-민족21]

당시 단군 유해 발굴과 단군릉 두고 남측 학계과 언론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고고학계는 단군조선은 만주 농안, 장춘 지역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평양에 존재할 수 없으며, 우리나라 땅 지질상 2천 3백여 년전의 유골이 남아있기 힘들다면서 단군조선이 아닌 기자조선 왕릉일 가능성이 높다고 제기했다.

하지만 북한은 단군의 유골이 발굴 당시로부터 5,011년 동안 보존될 수 있던 것은 석회암 지대에 묻혀있었기 때문에 뼈가 삭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그리고 평양 일대에서 발굴된 황대성 유적은 해당 유골이 단군일 가능성을 높였다.

단군릉을 둘러싼 당시 남북간 학계의 논쟁은 1530년 '신중동국여지승람' 기록과 1936년 '단군릉 기적비' 등으로 일단락됐다.

'신중동국여지승람'의 '강동현조' 고적란에는 "큰 무덤이 있다. 하나는 현의 서쪽 3리에 있는데 둘레가 410자나 된다.민간에서 단군묘라고 전한다"라고 적혀있다.

또한, 북한이 1991년 작성한 '고장이름조사보고서'에는 강동읍에 있는 부락 '단군동'이 고장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고, '단군릉 주변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단군동이라고 부른다'는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786년(정조 10년)부터 단군릉을 국가적으로 보존하면서 제사를 지냈으며, 1945년 해방 전까지 제사를 지내왔다고 알려져 있다. 1926년 12월 25일자 <동아일보> '향토예찬 내고을 명물'이란 코너에는 "우리 강동에는 단군릉의 고적이 있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터"라는 기사도 있다.

그리고 1931년 <동아일보> 사회부장이던 현진건은 '단군성적순례'라는 답사기를 연재, "동아일보 강동지국 총무 김중보씨의 인도로 강동에 도착.. 차옹을 울한 아달산이라 부르는 소봉을 돌고 단군전이라 동리와 제천골을 지점하며, 대박산릉에 이르니, 창창한 송림을 뒤로 두고, 경사 완만한 산록에 주위 410여 척의 일대릉이 뚜렷이 정방향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적었다.

1934년에는 일제가 파괴한 단군릉을 복원하기 위해 수축기성회를 조직, 먼저 능수축 수호각을 건립했다.

   
▲ 단군릉 기적비, 오른쪽이 발굴된 단군릉 기적비이고 왼쪽이 복원한 것이다.[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1936년 '단군릉 기적비'는 단군릉 실존을 더욱 명확하게 한다. 일제가 단군릉을 파괴하자 1932년 5월 강동지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단군릉 수축기성회'(회장 김상준)가 조직됐다. <동아일보>는 대대적으로 '단군릉 수축기성회' 모금광고를 냈으며, 1935년부터 수축에 착공, 1936년 단군릉 보수공사를 마치고 '단군릉 기적비'를 세웠다.

'단군릉 기적비' 전면에는 단군이 나라를 세운 경위와 단군의 업적을 찬양하는 시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단군릉 수축 경위가 적혀 있으며, 좌우면에는 '단군릉 수축기성회' 회원 66명과 액수, 기부자 59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북, 단군을 통한 단일민족 강조

   
▲ 단군릉 전경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북한은 단군릉을 발굴하고 개건하면서 단군을 중심으로 한 단일민족을 강조한다. 김일성 주석은 "우리나라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오랜 역사국이고 우리 민족이 생겨난 때로부터 하나의 핏줄을 이어온 단일민족"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처음부터 단군을 실존 인물로 보지 않았고, 단일민족의 뿌리로 인식하지 않았다. 1960년대 까지 백남운, 리지린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단군을 지배층이 만들어낸 신화적 인물로 봤으며, 특히 초기 계급사회 지배자로 치부했다.

그리고 계급사회의 단군사상보다 곰과 호랑이로 대표되는 토테미즘, 계급사회 이전 원시공동체사회의 민중에 의해 만들어진 관념형태로 바라봤다.

리지린은 단군신화를 3단계로 재해석, △씨족사회에서 곰.호랑이 씨족 토템이 생겼고, △군사민주주의 단계로 이행하는 시기에 군사적 수장으로서 '단군'이 등장했으며, △계급국가 형성 후 고조선 국왕으로서 단군이 등장한 것으로 분석했다.

즉, 단군신화는 국조(國祖)로서 의미가 아닌 고조선의 통치계급들이 계급적 지배에 맞게 미화해 만들어 냈으며, 단군은 지배계급 발생단계의 국가지배자로 인식했다.

   
▲ 단군릉에서 출토된 나무관 복제품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단군에 대한 인식은 1970년대 주체사관과 결합하면서 변화가 일었다. 북한 학계의 단군.고조선 관련 연구는 역사학 계열이 아닌 고고학 계열과 국문학 계열의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주체사관과 결합됐다.

그리고 70년대 고고학적 발굴 성과로 '승리산사람', '만달사람' 등 인골이 발견되면서 '원시조' 개념이 대두됐고, "조선사람이 인종적으로 한 갈래에서 유래하여 하나의 핏줄을 줄기차게 이어온 인류학적으로 단일한 주민집단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논증하였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즉,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함께 단군과 관련한 문헌비판적 연구는 과학적 접근방식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단군은 주체적 민족주의의 긍정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해석을 낳았다.

이러한 단군에 대한 인식은 1993년 단군유해와 단군릉 발굴로 단군이 신화가 아닌 실존인물로 확인되면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단군신화는 고조선 지배계급이 만들어 낸 통치수단의 하나였고, 주체사관과 결합하면서 민족 통합의 긍정적 문화를 가져온다는 비과학적 논리가 아닌 단군이라는 실존 인물을 통해 단일민족의 의미로 확대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발굴 이후 북한은 단군을 "우리 민족의 원시조이며 우리나라에서 첫 노예소유자 국가를 세운 건국시조이다. 단군릉이 발굴되고 단군의 유골년대측정결과가 나옴으로 하여 신화적 인물로 전해져 내려오던 단군이 실제한 역사적 인물"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단군은 지배계급 출신의 인물이고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표한 군주였지만 당시의 역사적 조건에서 우리 민족의 첫 건국시조로서 우리 선조들을 국가시대 문명시대로 이끌어나가고 하나의 단일민족으로 발전하게 하는 시초를 열어놓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민족의 원시조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단군이 실존인물로 확인되면서 단일민족의 개념을 강조하기 시작한 셈이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단군릉이 평양에 있다는 점을 부각, 박혁거세와 동명성왕과 비교하면서 "단일민족이라는 혈연적 동질성으로 더욱 친밀히 결합시키고 묶어 세울 수 있게 하며 이러한 민족적 감정은 오늘 해내외의 모든 조선동포를 민족대단결의 기치 아래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고무 추동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 민족끼리', '단군조선', 민족대단결' 등을 선점하는 계기가 됐다.

단군, 같은 민족의 뿌리 그리고 남북통일

   
▲ 지난 3일 평양 단군릉에서 개천절 남북공동행사가 9년만에 열렸다.[자료사진-통일뉴스]

단군이 실존인물인가에 대한 논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군신화를 신화로 인식하고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단군릉의 주인이 실제 단군인가에 대한 논란에 앞서 단군릉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단군이 평양이든 서울이든 어디에 도읍을 정했든 하나의 땅을 다스린 인물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분단의 역사는 오래전 하나의 땅을 다스렸던 단군을 바라보는 시각도 나눴다. 남북이 다른 민족이 아니고서야 뿌리가 다를까.

단군이 실존 인물인가 아닌가 논쟁에 파묻히기보다, 우리의 새암이 단군이라는 인식, 그리고 언젠가 다시 하나가 돼야 한다는 믿음. 그것이 오늘날 단군이 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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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한일 군사협정 중단하라

 
 
시민평화행동 "동북아 평화 흔드는 행동 반대"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10/12 [00:2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시민사회단체들이 미국의 한국내 사드배치와 한미일 군사정보 양해각서는 한반도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라며 반대 집회를 가졌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평화시민행동이 미국이 한반도에 배치하려는 사드(고고도 요격 미사일)와 한반도 미사일 요격 체제를 합동 지휘 할 수 있는 한미일 군사정보 양해각서가 한반도 긴장은 물론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라며 이를 중단 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시민평화행동은 11일 청계광장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집회를 열어 사드(고고도미사일요격 시스템)의 한반도 배치는 남한의 안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으로 이들 국가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며 사드를 남한에 배치 할 경우 안보와 경제, 국익이 흔들리는 위험을 야기 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진보연대 한충묵 대표는 "청명한 가을 날씨에 오늘 사정이 어려워져 이자리에 있지만 7~8년 전만 해도 주말이면 금강산이나 개성관광을 다녔으나 어느 날 모든 남북관계가 어려워져 모든 길들이 막혔다."며 "더욱이 어제(10일)는 남북교전이 일어났다. 그러나 일주일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인천 아시안 대회에 남북공동응원단으로 북측을 응원하러 다녔고 북의 최고위급 인사들이 남쪽을 방문해 화해의 모습을 보였다. 또한 2차 남북고위급 접촉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내 온 바에 의하면 바로 한순간에 전쟁으로 갈 수도 있는 군사적 대결이 첨예화 되어 있는 곳이 바로 한반도"라고 상시적 전쟁 위험을 안고 있는 곳이 한반도임을 주장했다.

 

한충목 대표는 "그래서 국제사회는 한반도와 중동에서 평화가 이루어지면 세계의 평화가 달성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있다"며 "그러나 지금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깨뜨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한미일군사정보의 양해각서가 체결되려고 하고 있으며, 한미가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결정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사드(고고도미사일 시스템)가 배치되려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 전쟁을 상정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대 중,러 봉쇄를 하려는 것"이라며 사드 배치가 남한의 안보를 위한 것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했다.

 

한 대표는 "평화가 전쟁을 이기고 화해와 협력이 대결을 극복할 수 있다."며 "사드 배치나 7조3천억을들여 미국산 F-35 전투기를 구입한다고 확정 발표했다. 이는 개성공단 100개를 만들 수 있는 경제규모다. 개성공단 규모의 공단 100개를 만들면 평화통일 되는 것 아니냐. 그런데도 우리 세금으로 왜 사드를 배치하려고 하느냐. 한반도에서 전쟁 나면 누가 죽고 누구는 사는 것이 아니라 8천만 중 수천만이 죽을 수 밖에 없다."며 사드 배치가 아니라 평화통일에 매진 할 때라고 강조했다.

 

▲ 집회가 끝난 후 거리행진을 하며 사드배치와 한미일군사정보 협정 양해각서 체결반대를 외치며 행진하는 시민사회단체 성원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의 오미정 사무처장은 사드의 개념에 대해 상세히 소개한 뒤 "사드와함께 도입되는 레이더 탐지거리가 반경 1000km 이상으로 이는 중국 러시아는 물론 북의 군사시설을 감시하려는 것"이라며 "그래서 중국의 전문가들은 미국이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면 중국과의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미국과 한국에 경고했고 또 다른 전문가는 중국의 인민군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일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고 사드 배치가 한중. 중.미 관계에 위협주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오미정 사무처장은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 되면 제1교역 상대국인 중국과 적대관계가 된다는 의미"라며 "국방부 관계자들은 이렇게 상식적인 일을 국민들에게 거짓말 치며 사드 체계를 한반도에 배치를 하려고 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미사일 요격체계에 편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고고도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해서는 뇌가 필요하다. 바로 그 뇌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양해 각서다. 한미일 양해각서 체결은 한국이 미국의 MD 체계에 편입하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평화시민행동 정책국의 최은아 실장은 "한일군사정보협정은 이명박 정부 시절 비밀리에 추진하려다 발각돼 서명 45분전에 체결을 철회하는 상황이 발생 했다"며 "당시 우리국민들이 제기했던 문제는 한일군사정보협약은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부추길 뿐 아니라 이것이 궁극적으로 한미일 삼국의 미사일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문제였기 때문이다. 현정부는 국회의 비준없이 추진하려고 양해각서라는 것을 통해 한미일 군사정보협정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고 정부의 꼼수를 고발했다.

 

▲ 집회참가자들은 미국의 패권주의적 군사 정책이 우리민족을 위협 할 수 있다며 거리행진을 하며 선전전을 펼쳤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양심수 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미국의 한국 사드배치는 동북아 패권을 노린 조치이고 대북적대 정책을 지속하려는 조치"라며 "군사정보 협정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의 완성품이다. 그런대 북의 적대정책이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작전계획 5027, 5029 등은 북에 대해 B-52나, 핵잠수함이나, 핵항공모함 등 핵공격 수단으로 북을 공격하고 점령하고 통치하겠다는 군사전략이었다. 여기에  한국군은 용병이 되어 총알 받이가 되는 것이다. 실제 점령 통치하게 되는 것은 누구이겠는가. 미국의 아시아 중시전략 정책 중에 하나가 북의 점령 통치 즉 압록강 두만강 쪽을 영행권안에 두겠다는 것이고 급부상하는중국을 포위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해 결국 미국이 자신들의 패권적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아시아 태평양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미국은 한미 동맹의 가장 우선적인 것은 한국이 미국의 MD(미사일 방어체계)에 편입되는 것이라고 했다"면서 "그러나 한국정부는 이를 부정하면서도 실제로는 편입 수순을 밟고 있다"고 고발했다.


권 명예회장은 "오바마와 박근혜는 세월호 사건으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미국의 MD강화 한미일군사정보협정을 강화하겠다고 했다."며 "이 처럼 미국은 어떤 것으로 든 군사적, 외교적, 정치적으로 북을 고립압살 시키고 중국을 포위하려고 아시아 중시 정책을 감행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군사외교적으로 끌려 다니며 주권을 팔아 먹는 사대매국 행위를 하고 있다."며 "군사주권 하나 없고 정치적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는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이는 미국의 또하나의 주가 될 뿐이라"고 박근혜 정부의 사대적 외교정책을 강력 비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사드배치 강력반대' '한미일 군사정보협정 반대' 등의 구호 등을 외치며 미국대사관 앞을 경유하여 정부종합청사까지 행진을 하며 거리 선전전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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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례의 남북총격전과 남북관계개선사업

 
<분석과전망>위기에 봉착한 2차남북고위급회담, 어떻게 될 것인가?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10/11 [16:20]  최종편집: ⓒ 자주민보
 
 

   

바다와 육지에서 연속적으로 벌어진 남북총격전

 

지난 7일 연평도 인근에서 남북 해군간의 총격전이 있었다남북 간에 오랫동안 영역선 분쟁의 원인을 제공해왔던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투였다.

그로부터 불과 3일 뒤인 10일에도 남북 간의 총격전이 벌어졌다이번에는 육지였다반북단체의 대북비방전단 살포를 둘러싼 전투였다.

 

바다와 육지에서 남북 간 전투가 짧은 시일 내에 두 번이나 연속으로 발생했던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탄식을 질렀다놀라워했다두 번에 걸친 바다와 육지에서의 남북 간 전투가 지난 4일 북한의 최고위급대표단의 방남으로 결정된 제 2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다.

이는 본질적으로는 남북 간의 전투가 올 초부터 불안정하게나마 움을 틔우기 시작했던 남북관계개선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남북관계전문가들이나 북미대결전을 다루는 정세분석가들의 고유한 영역이나 몫이 아니다남북관계문제가 국가차원 그리고 이를 중시여기는 정치인들에게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이다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누구할 것 없이 사태의 전반공정을 꿰차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분명한 견해와 입장을 가질 정도로 일반화되어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두 가지를 상정하고 있다두 번의 전투가 제2차남북고위급회담을 무산시켜서는 결국에는 남북관계개선 사업을 파탄시키고 말 것이라는 것이 그 하나이다다른 하나는 두 번의 전투를 2차고위급회담은 물론 남북관계개선이 왜 절실한지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남북고위급회담은 무산될 것인가?

 

사람들은 지난 2월 제1차남북고위급회담이 남북관계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 미국의 적극적인 방해 때문이었다고 여기고 있다한미관계의 정치지형을 기본으로 현실에 나타난 구체에 기반한 견해였다무엇보다도 1차고위급회담의 결실인 남북이산가족상봉이 미국의 한미연합훈련인 키 리졸브(Key Resolv)훈련의 포성과 포연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에 집중해서 도달한 결론이었다.

이 견해는 남북이산가족상봉이, 그 어느 때보다 규모를 키우고 강도를 높혀 진행된 미국의 한미연합군사훈련 앞에서 상호비방 중지 등 남북관계개선사안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일회성 행사로 끝나고 말았던 데에 이르러서는 거의 확정처럼 굳어졌다.

 

올 초의 남북관계개선사업은 그렇게 파탄나고 남북관계는 얼어붙고 말았다이후 박근혜대통령이 통일과 관련되는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 등 여러 제기를 했다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은 북한의 반발을 불러오는 오는 등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반북적인 것들로 귀결되었다.

얼어있는 남북관계를 풀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시켜 급기야 위기로 치닫게 했던 것은 박대통령의 9.24유엔연설이었다핵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북한 인권문제까지도 박대통령은 언급을 한 것이다세계 앞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낸 반북성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박근혜정부의 독자적인 판단 보다는 북한인권문제를 소재로 북한에 대해 반북공세를 가하는 미국과의 공조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한미동맹의 또 다른 구체라고 본 것이다남북 간의 문제에는 언제라도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을 확인케해 준 사안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문가들과 함께 나서서 남북관계는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 간헐적으로 있어오곤 했던 극적인 드라마 한편이 펼쳐졌다전격적이고 파격적인 북한최고위급 방남이 그것이었다.

사람들은 전율했다우리나라에서 북한의 제 2인자라고 평가를 받는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선그라스를 낀 호위총국 경호원을 뒤에다 끌고 군 정복 차림으로 인천을 활보했지만 그 누구도 반발하지 않았다.

우리정부가 끊임없이 요구했던 2차고위급회담을 수용하고 난 뒤 남북관계개선의 넓은 길을 열어내자는 그의 짤막한 말 한마디에서 사람들은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재개를 곧바로 떠올렸다정상회담을 위한 행보라는 말까지도 돌았다.

 

그렇게 북한의 최고위급대표단은 남북관계개선에 드리워져있던 먹구름을 순식간에 벗겨낸 셈이었다그러나 드라마는 그것으로 종영되지 않았다그로부터 3일 후 서해교전이 터졌다우려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드라마는 그 절망을 추스르는 시간조차도 주지 않았다그 절망으로 버거워 하고 있는 사이 또 다시 대북단체의 북한비방전단살포를 둘러싸고 육지에서 남북 간의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다그때 사람들이 머리를 들어 본 것은 예의 그 먹구름이었다.

 

2차고위급회담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갈수록 깊어져가고 있다그 우려에는 남북관계개선사업이 완전하게 파탄나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도 동반되어있다.

이러한 전망은 특히 미국이 보여주는 대북 행태에서 그 설득력을 보충받고 있다북한최고위급대표단의 방남에 대해 지지입장을 표명했던 미국이 그러나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은 대북대결공세였다미국무부는 북한에 강제수용소를 인정하고 폐쇄하라고 했으며 유엔에서는 북한의 인권문제로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법정에 세우겠다는 전례 없이 최고수위의 대북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

 

2차남북고위급회담이 더 실속 있게 열리게 될 것인가?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 사람들은 매우 현실적으로 접근하여 전혀 다른 전망을 내오고도 있다.

두 차례에 걸친 남북 간의 전투가 남북관계를 위기로 몰아가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남북관계개선의 필요성을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전망이 그것이다.

 

그에 따르면 2차례에 걸쳐 일어난 남북 간의 전투는 남북관계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하는 지를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된다구체적으로는 제2차남북고위급회담의 의제를 사전에 획정해준다는 것이다군사행동을 자제하고 상호비방을 중단하는 문제인 것이다이는 지난 1차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이기도 하다대단히 일리 있는 견해이다.

 

2차례에 걸친 총격전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의제로 삼지 않고서는 2차고위급회담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상호비방과 상호충돌을 막을 획기적인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이산가족상봉은 일회성 행사에 불과할 것이며 5.24해제조치나 금강산관광재개 역시도 불안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아울러 2차고위급회담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남북관계개선의 흐름은 물꼬조차도 못 트게 될 것이다.

그것을 가장 실감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다북한 역시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두 번의 총격전으로 한반도에 시선을 모아놓고 있는 세계인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서해분쟁과 상호비방으로 인한 갈등이 2차고위급회담의 현안으로 되어야하며 이를 해결하는 것이 남북관계개선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조준사격이 아니라 경고사격

 

이와 관련해 두 번의 남북전투에서 확인되는 특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7일 북한 경비정 한 척이 NLL을 넘었을 때 그 거리는 불과 900m였다그리고 우리해군의 발포가 90발이었고 북한 해군의 발포 역시 수십 발이었지만 교전시간은 10분간이었다교전거리는 무려 8.8km나 되었다근접거리가 아니었던 것이다돋보이는 것은 남북 간 모두 조준사격이 아니라 경고사격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양측에 피해가 없었던 이유였다.

 

조준사격이 아니라 경고사격이었던 것은 10일에 있었던 대북대결단체의 전단살포를 둘러싼 남북 간의 교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1일자 노컷뉴스가 확인했다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타격은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이에 대해 북한 GP 일대에 12.7㎜ K-6 기관총 40여발의 사격을 한 것이 우리군의 대응이었다북한도 이에 대해 곧바로 대응사격을 했다그렇지만 남북 공히 공중을 향한 발사였다상대방에 피해를 주기 위한 조준사격이 아닌 경고성 사격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상호총격전이 전쟁발발로 이어지는 사태를 막자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그렇지만 이것은 현 정세에서는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그 갈등 양상이 2차고위급회담을 파탄시키는 것으로까지는 도달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남북양측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으로 볼 수도 있다.

 

이번에 발생한 전례 없는 두 차례의 남북 간의 전투가 남북관계개선을 방해하는 것으로 될지 아니면 오히려 남북관계개선을 실속 있게 만들어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저절로 결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한반도 정세를 구성하는 세 축인 우리나라와 북한 그리고 미국의 의지에 의해 결정이 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의 총격전 이후 확인되게 될 우리나라 북한 그리고 특히 미국의 행보에 극히 주목해야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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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경질이 아니라 배려였다”…육사 ‘누나회’의 꼼수

등록 : 2014.10.10 18:55수정 : 2014.10.1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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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사망사건으로 시작된 군 인사는 기무사령부와 헌병대 등 미묘한 권력게임의 흐름을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수치수여식에서 박지만씨의 육사 동기생인 이재수 기무사령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수치는 군 장성의 직위와 이름 등이 수놓아진 끈 깃발로, 대통령이 관례적으로 장성들의 삼정도(장군에게 상징적으로 지급되는 칼)에 달아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토요판] 군사 군 진급인사의 안과 밖

▶ 지난 7일 단행된 군 인사에 대해 유난히 뒷말이 무성합니다. 특히 전임 장경욱 사령관에 이어 이재수 사령관까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국군기무사령관 자리가 적지 않은 잡음에 휩싸여 있습니다. 군의 독립적 인사가 무너지고 청와대 등 군 출신 유력인사들이 개입한 권력게임 양상도 비칩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들여다봤습니다.

 

 

매년 가을의 군 진급인사가 발표되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까지 시끄럽다는 말이 있다. 지하에서도 “누가 진급되었냐?”며 수군거린다는 이야기다. 누가 영전을 하고 진급을 하느냐 하는 건 당사자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 예비역, 군인 가족에게도 온통 관심의 초점이 된다.

 

어느 조직이건 진급이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으련만 군이 유별난 이유가 있다. 군인은 모자란다고 외부에서 충원할 수 없고, 남는다고 정리해고 할 수 없는 폐쇄형 인력구조다. 군대 이외에는 다른 직장을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직 조직 내에서 출세와 명예를 추구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현재 군의 진급체계는 패자부활전에 인색하다. 한두 번 진급에서 밀리면 영원히 그 계급의 인생을 살아야 하며, 자신이 목표로 한 계급에 진출하지 못하면 인생의 패배자가 된다. 우리 군은 진급이 되지 않아도 명예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다. 또한 우리 장교들은 전역 뒤 사회에 나오면 군복이 부끄럽다고 생각될 정도로 냉대와 무시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오직 진급이 가져다주는 특전과 명예만이 군에 장기 복무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유일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는 장교단은 여기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위관급 때 동기가 영관급에서는 경쟁자가 되고 장군이 되면 적이 된다.

 

 

인사부서와 수사기관에 내려진 어떤 재앙

 

위로 올라갈수록 더 좁아지는 진급의 관문은 인간관계를 무한경쟁으로 몰아넣고 유력자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거나 파벌을 형성한다. 여기에다 군인을 줄 세우고자 하는 정치권력의 허세와 정치권력에 줄 서고자 하는 군인의 출세욕이 맞아떨어지면 장교의 진급은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이 점에서 우리 군의 실질적 통치자는 마키아벨리라고 할 것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은 가끔 도덕적 미덕을 저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유력자는 자기 사람을 챙기고 하급자는 유력자에게 개인적 충성을 하면서 경쟁자나 경쟁 세력을 음해하거나 배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군사권력의 지도를 만들고자 한다. 그런 만큼 군사집단의 가장 큰 권력은 지휘권이 아닌 인사권에서 나온다.

 

지난 7일 발표된 군 정기 진급인사는 최근 우리 군에서 과도한 진급 경쟁과 파벌문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사건의 발단은 4월에 28사단에서 일어난 윤 일병 사망사건이 불거지면서부터였다. “음식을 먹다가 질식해 숨졌다”며 이 사건은 두 달 넘게 은폐되었다가 군인권센터가 그 실상을 폭로하자 군 병영문화 혁신의 주도권이 완전히 시민단체로 넘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이 서슬 퍼렇게 군을 질타하고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면서 군은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이 돌연한 위기는 이제껏 군의 인사를 주도하던 육군의 인사부서와 수사기관에 재앙이었다. 6월 말 임명된 한민구 국방장관은 자신의 재임 이전에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관련자를 엄중 문책하기로 하고 국방부 감사관실을 동원하여 관련 책임자를 조사하였다.

 

감사 과정에서 이 사건에 대해 보고받지 못하고 언론을 보고서야 진상을 알게 된 권오성 육군 참모총장(육사 34기)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권 총장이 보고받지 못한 것은 사건을 보고할 책임이 있는 선종출 육군 헌병실장(육사 40기)이 사건의 진상과 속보를 총장에게 직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병실장도 졸지에 징계 대상이 됐다. 그런데 헌병 라인으로 사건이 보고되지 않은 것은 각종 군대 내 사건에 대한 보고를 헌병이 아닌 류성식 인사참모부장(육사 39기)이 독점한 탓이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부터 김관진 전 국방장관의 사람으로 분류되던 류 소장이 군 인사를 주도하던 핵심 인물이라는 점에서, 헌병의 사건보고를 인사참모부가 장악한 것은 그 파워 때문이라는 관측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사고에 연연하지 말고 훈련에 전념하라”던 김관진 장관의 ‘전투형 군대 육성 방침’에 따라 군대 내 사고에 인사참모부가 안이하게 대응했던 것으로 여론이 조성되면서 인사참모부장 또한 징계 대상이 되었다. 류 소장은 대령, 준장, 소장 직위를 모두 육군 인사참모부에서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김관진 국방장관 시절 최측근인 군사보좌관을 역임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새로 임명된 김요환 육군 참모총장(육사 34기)은 8월15일 광복절에 류 소장을 논산훈련소장으로 내보내고 그 자리에 자신의 연대장 시절 대대장이었던 직속 후배로 논산훈련소장을 맡고 있던 김규하 소장(육사 39기)을 앉히려 했다. 징계위원회에 막 회부되어 아직 징계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 보직인사를 먼저 결정하는 것은 인사권을 가진 총장이라 하더라도 분명 월권이었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그 다음날에 육군의 이런 인사조치 계획을 보고받고 동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돌연 월요일인 18일에 육군의 조치를 중단시켰다. 인사참모부장 인사가 보류되는 석연치 않은 과정은 또다시 군 내에 파란을 일으켰다. 아마도 청와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류 소장을 보호하려는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터였다.

 

정기 군 인사를 앞두고 인사라인의 혼선은 진급을 앞둔 장교들 전체를 흔들 만한 사안이었다. 어제의 유력자가 오늘은 낙오자가 되는 반전이 일어나면서 국방장관과 육군 참모총장 사이에서도 석연치 않은 갈등의 조짐이 나타났다. 이런 심상치 않은 인사정보를 수집하는 장교단의 고성능 레이더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무사령관 그만둔 이재수는 
경질됐다기보단 배려받은 것 
바로 4성장군으로 가기엔 부담 
야전으로 한바퀴 돌려 내년에 
군사령관 보내려는 의도로 보여

 

윤일병 사건 책임 묻는 과정에서 
국방장관-육참총장 갈등 조짐 
헌병실장·인사참모부장에 대한 
경질 와중에 월권-인사보류 논란 
자기 줄 찾는 별들의 파워게임

 

전인범 특전사령관과 장경욱 기무사령관의 경우

 

더 황당한 사태는 헌병으로 이어졌다. 헌병실장이 징계를 받을 처지에 이르자 10월7일의 정기인사에서 육군은 아예 헌병실장으로 헌병 출신이 아닌 보병 김주훈 소장(육사 40기)을 임명했다. 이어 또다른 헌병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에 이종협 대령(육사 42기)을 정상진급이 아닌 임기제 준장 진급자(해당 직위에 근무하는 조건으로 한시적으로 진급시키는 제도)로 발령냈다. 이에 헌병 장교들은 “사건 보고를 육군 인사참모부장이 독점하여 생긴 문제인데 왜 헌병이 초토화되느냐. 이렇게 되면 내년에 헌병에서 장군 진급자가 나올지도 걱정”이라며 조직의 안위와 지신의 진급에 대한 불이익을 걱정하는 눈치다.

 

더 황당한 일은 기무사로 이어졌다. 현 정부에서 세번째 기무사령관이자 박지만씨와 육사 동기생으로 군 내 떠오르는 실세로 평가받던 이재수 기무사령관(육사 37기)이 전격적으로 경질되어 3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간 것이다. 이재수 사령관은 부임한 이래 육군 개혁 방향, 병영문화 혁신 방향 등 기무사 업무와 무관한 육군 정책발전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기무사가 육군의 정책까지 좌지우지하는 과시적 행태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눈총을 샀다. 그렇게 오지랖이 넓은 기무사령관이 윤 일병 사건과 같은 군대 내 주요 사건에 대해 “적시에 조언하지 못했다”며 자청해서 물러났다는 국방부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실상은 기무사령관 경질이 아니라 배려에 가깝다. 기무사령관을 바로 4성장군으로 진급시켜 군사령관으로 내보내기가 부담스러우니까 야전으로 한 바퀴 돌려 내년에 군사령관으로 보내려는 꼼수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역대 정권이 군을 관리하면서 권력 직위인 기무사령관을 4성장군으로 진급시킨 사례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이남신 대장(육사 23기)의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박지만 동기생들이 약진하는 현재의 군 추세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또다른 박지만 동기생인 현 전인범 특전사령관의 경우 최근 고문체험훈련 과정에서 2명의 특전사 요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나 별다른 징계 없이 여전히 건재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필자와의 통화에서 기무사령관에 대해 “그게 배려이지 왜 경질이냐”고 반문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내년 4월께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친구들이 군 최고 요직에 진출할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

 

정작 적시에 군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상부에 직언하다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고 물러난 기무사령관은 전임 장경욱 사령관이다. 그는 작년 8월에 일선 사단장들의 군 인사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여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육사 27기)과 남재준 국정원장(육사 25기), 박흥렬 경호실장(육사 28기)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육사 28기)에다가 육군 참모총장까지 지칭해 “군 인사를 관리하는 5개의 머리가 있다”는 야전 장교들의 여론이 가감 없이 기록돼 있었다. 김장수 안보실장은 과거 측근, 박흥렬 경호실장은 부산고 후배, 남재준 국정원장은 과거 육군본부 측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독일 육사 출신 후배를 각별히 챙긴다는 구체적 행태까지 적시되어 있었다. 김기춘 실장은 이 보고서를 김장수, 박흥렬에게 보여주었고, 곧바로 김관진 국방장관에게도 전달했다. 그 결과 10월에 군복을 벗은 사람은 장경욱 사령관이었다. 야전 장교들이 보기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기무사도 군 유력자의 인사행태를 섣불리 건드렸다가 외려 된서리를 맞았다. 지금껏 기무사는 권력에 직언을 하다가 그 역풍을 맞은 적은 있어도 권력에 영합하여 불이익을 본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윤 일병 사건으로 보고의 법적 책임자도 아닌 기무사령관이 경질되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김관진-박흥렬-한민구의 타협 산물?

 

만일 기무사가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조언을 못한 사례가 있다면 올해 3월 말에 불거진 무인기 출몰 소동이 대표적이다. 기무사는 3월 말에 북한 무인기에 대해 “대공용의점이 없다”고 판단을 내린 합동조사단의 간사 기관이었다. 그런데 기무사가 “별다른 위협이 아니”라고 판단한 이 무인기를 국정원이 수거해 가면서, 이 무인기는 4월에 ‘심각한 위협’으로 돌변했다. 4월 초에도 이런 정황을 전혀 알지 못한 김관진 국방장관을 비롯해 국방부 정보본부장 등은 무인기에 대한 국정원의 조사 결과를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 그러나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 등이 국정원을 압박하여 이 무인기의 의미를 ‘심각한 위협’으로 바꾸자, 무인기는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덮으려는 호재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뒤늦게 이재수 기무사령관이 “사건 조사를 부실하게 했다”며 기무사 요원을 질책하고 김관진 장관이 무인기를 “심각한 위협”이라며 사태를 주도하는 순간 세월호 참사가 벌어져 이 사건은 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만일 기무사령관이 잘못 조언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다면 그때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누나회’(박지만씨의 육사 37기생들을 부르는 별칭)는 건재하다.

 

이런 일련의 현상에 대해 군 장교들은 정보를 분석하기에 바쁘다. 우리 군에는 400여명의 장군과 3000명 정도의 대령이 있다. 이런 고위 장교단에 진출하기 위해 보직과 경력을 관리하는 중령, 소령들이 수만명이다. 계급과 직책이 높아질수록 군의 문화를 주도하는 장교단의 집단정신이 고양되어야 하지만 과도한 진급 경쟁에 내몰리는 한국군의 장교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과거 독일군 장교단의 ‘혁신을 추구하는 정신’, 이스라엘 장교단의 ‘생존에 대한 강한 의지’와 같은 집단정신이 한국군 장교들에게는 무엇일까? 이런 집단정신보다는 특정 장교에 대해 “아무개는 누구 사람”이라는 사적 파벌을 지칭하는 용어가 통용되는 것이 군의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내가 소속된 조직에서 1등을 하면 진급이 된다”는 믿음이 약화되고 정치권이건 청와대건 누구에게든 줄을 대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확산된다면 군의 정신은 이미 무너졌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청와대가 군 장교들의 신상을 직접 검증한다는 원칙이 정착되고 난 이후 군의 집단정신이 무너지는 속도는 매우 빨라졌다. 육군에서 진급 추천을 받았다고 해도 청와대 검증 과정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의 노골적인 개입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군 유력자들이 청와대에 즐비한 상황에서 그 간섭의 폭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10월 정기인사는 청와대 김관진·박흥렬과 한민구 국방장관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시각이 유력하다. 고위 장교들은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의식하며 초조주를 마시고 있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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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언론인들 “이제 우리가 성유보가 되겠습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10/11 17:47
  • 수정일
    2014/10/11 17:4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언론운동 산증인’ 성유보 11일 발인…눈물 속 ‘임의 행진곡’으로 작별
 
입력 : 2014-10-11  15:10:34   노출 : 2014.10.11  16:22:42
김도연·금준경·이치열 기자 | riverskim@mediatoday.co.kr   

언론인 고(故) 성유보의 마지막 길에는 그를 사랑하는 선후배, 동료와 지인들이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고인을 끝까지 배웅하고자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 모인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 등 언론계를 포함한 각계각층의 인사 100여 명은 고인이 화장을 위한 화로에 들어가기 직전 ‘임의 행진곡’을 합창했다. 담담한 모습으로 고인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부인 장연희 여사도 연신 눈물을 훔치며 노래를 불렀다. 
 
11일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 고인의 장례 절차는 오전 7시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에서 열린 발인식으로 시작됐다. 이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노제가 열렸고, 서울광장에서 ‘민주·통일 이룰태림(큰 숲을 이룬다는 뜻) 참 언론인 고 성유보 선생 민주사회장’이 치러졌다. 영결식이 끝난 후 유가족과 각계 인사들은 광화문 동아일

보 사옥 앞까지 추모 행진을 했다.  

   
성유보 전 한겨레신문 편집위원장의 발인이 끝난 후 운구차가 한겨레신문사로 이동해 노제를 진행했다.  금준경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열린 노제에서 박종찬 언론노조 한겨레신문지부장은 “성유보 선배는 우리 한겨레신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운명체다. 오늘날 한겨레신문은 성 선배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의 산물”이라고 밝혔다. 박 지부장은 “선배를 보내는 후배들의 마음은 착잡하고 무겁다. 선배가 그토록 염원했던 언론자유는 다시 암울한 독재 시대로 곤두박질했다”며 “선배 영정 앞에서 약속드린다. 언론자유가 살아 있는 그날까지 민주주의가 쟁취되는 그날까지 후배들은 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인은 1988년 한겨레 창간 작업에 참여했고, 초대 및 4대 편집위원장을 맡았다. 추모사가 끝난 뒤 유가족은 고인의 영정과 함께 한겨레신문 편집국 곳곳을 돌아봤다. 

   
성유보 전 한겨레신문 편집위원장의 한겨레신문사 노제가 끝난 후 영정사진과 유가족들은 편집국을 한바퀴 둘러봤다.  금준경 기자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동아투위 김종철 위원장과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정연주 전 KBS 사장 등 고인과 민주언론운동을 함께 했던 언론계 원로들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 시민단체 및 현업 언론인 단체 관계자 500여 명이 참여했다. 고인과 월간 <말>지부터 동고동락한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참여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영결식에 앞서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성유보는 내 평생의 동지이자 선배”라며 “동아일보에서 1975년에 23명이 '언론자유'를 외치며 단식농성을 했었는데 그때 나는 성유보 선배와 같이 단식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정 전 사장은 “1978년 동아투위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됐을 때 같이 투옥되기도 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도 같이 있었다. 같은 방은 아니라 자주보진 못했지만 세면하러 갈 때마다 서로 인사하고 그랬다”고 덧붙였다. 정 전 사장은 “2008년 이명박 정권에 의해 KBS에서 부당하게 해임되기 직전에 선배는 KBS 건물 앞에서 집회가 열릴 때 매번 오셨다”며 “혹자는 나는 KBS안에서 싸우고, 선배는 KBS밖에서 싸운다고 말하더라. 이렇게 우리 인연은 깊다”고 밝혔다. 

   
11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고 성유보 선생의 영결식에서 최민희 의원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함세웅 신부는 영결식중 추도사를 통해 “저는 성유보 선생과 동아투위, 조선투위 기자들과 지학순 주교, 민청학련 사건 당시의 청년들 등 투신하신 모든 분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성당에서 밖으로 나오게 됐다”며 “성유보 선생을 비롯한 고난의 현장에 계셨던 분들이 종교인들을 역사의 현장으로 끌어낸 길잡이이며 스승들”이라고 밝혔다. 함 신부는 “성 선생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4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며 “그때 사제들에게 ‘역사적으로 빚을 졌다’고 하셨는데, 저희야말로 성 선생에게 역사적으로 빚을 졌다. 고인의 뜻을 기리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함세웅 신부가 옛 동아일보 사옥인 일민미술관 앞에서 영결식 순서지 앞에 인쇄된 성유보 선생의 사진을 들고 눈을 감고 있다.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종철 위원장은 “동아투위 위원들은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이후 정보수사기관으로부터 겪은 고문과 옥살이가 성유보 동기의 목숨을 앗아간 결정적 요인이라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고인은 억압적인 구조 속에서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고 포로수용소 같은 언론 환경에 괴로워하는 후배들을 보고 가슴 아파했다”며 “우리는 1970년대 유신독재시절 동아투위 위원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되새기며 현역 언론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공감하며 과감한 싸움에 동참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생전에 남북통일 운동에서 앞장섰던 성유보 선생에서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가 보내온 조전을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연희 사무총장이 낭독했다. 민화협은 조전을 통해 '사회의 자주 민주와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통일을 위해 헌신한 선생이 갑자기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여 유가족과 우리겨레 하나되기 운동본부 구성원 모두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성유보 선생은 평생을 언론인의 깨끗한 양심과 지조를 지켜 불의에 맞서 왔습니다. 선생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고귀한 뜻과 넋은 겨레의 가슴 속에 남아있을 것이며 선생이 그토록 바라던 민족이 더불어 사는 조국 통일은 반드시 이룩되고 말 것입니다.'라고 위로의 뜻을 전해왔다. 

   
고 성유보 선생의 영결식에 참석한 언론, 시민사회 단체 인사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현직 언론인을 대표해 영결식 무대에 오른 권오훈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성유보 선생님은 40년을 한결 같이 언론자유와 민주언론 쟁취를 위해 싸웠다. 이제 우리 언론인 모두가 성유보가 되겠다. ”며 “이명박 정권 5년과 박근혜 정권 2년 동안 모두가 희망을 잃고 좌절하고 있을 때 성유보 선생은 투쟁의 현장에서 후배들과 함께 맨 앞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말했다. 권 본부장은 “오늘 대한민국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진실을 말하는 참언론 목소리는 잦아들고 사실마저 호도하는 사이비 언론이 주인행세를 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며 “아직도 현실은 성유보 선생님이 필요한데 너무 일찍 떠나셨다. 후배 언론인들이 진 빚을 이제라도 갚겠다. 선생님 뜻이 헛되지 않도록 다시 언론자유, 민주언론 깃발 들겠다”고 다짐했다. 

이부영 상임고문과 함께 고인의 장례 절차 호상을 맡은 신홍범 전 조선투위위원장은 “성유보 선생은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자기를 돌보지 않고 평생을 싸워왔다”며 “고난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확신을 가지고 오직 한길을 걸어오셨다”고 밝혔다. 신 전 위원장은 “선생은 참된 언론과 민주주의를 신앙의 자산으로 삼아 순교자와 같은 삶을 사셨다. 특히 언론민주화운동에서는 빛나는 순교자였다”며 “고인의 이런 고귀한 삶은 우리의 큰 유산이고 교훈”이라고 말했다.

   
고 성유보 선생의 장례 절차에 호상을 맡은 이부영 상임고문(왼쪽)과 신홍범 전 조선투위 위원장이 인사하고 있다. 치열 기자 truth710@
 

영결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39년전 성유보 선생이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해직되어 결국 복직하지 못한 한이 서린 동아일보 옛 사옥까지 추모행진을 이어갔다. ‘언론자유 사상자유’ ‘참언론인 이룰태림’ ‘통일, 저 눈부신 평등의 나라’ 등 고인을 상징하는 글귀가 적힌 만장대열은 성유보 선생의 영정사진을 앞장 세우고 동아일보 옛 사옥인 지금의 일민미술관 앞에 도열했다. 

   
성유보 선생의 장례행렬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동아일보 사옥앞을 지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옛 동아일보 사옥인 현 일민미술관 앞에 성유보 선생의 영정사진과 만장행렬이 늘어섰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동아일보 옛 사옥 앞에서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전 동아투위 위원장)은 “우리가 언론자유수호투쟁을 할 때 1등 신문이 바로 이 동아일보였다”며 “박정희 정권이 신문에서 광고를 빼는 탄압을 가하자 시민들이 스스로 광고를 채워 넣어주었다. 그때 100명이 넘는 언론인들이 거리로 내몰렸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그 이후 어떻게 됐는가. 동아일보는 3류 신문이 됐다. 지금 동아일보는 언론이 아닌 권력의 일부이자 흉기가 됐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강성남 언론노조위원장은 “이 땅의 자유언론이 꽃이 피어 정의가 살아 숨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선배님의 뜻을 따를 것”이라며 “한 많은 이 동아일보사를 지나며 우리 후배들은 언론자유가 탄압되던 그 날을 결코 잊지 않고, 권력의 일부가 되어버린 추한 언론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사옥 앞을 가득 메운 인파는 “동아일보는 언론인 대량학살을 사죄하라” “동아일보는 각성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동아일보의 사죄를 촉구했다. 이들은 오전 11시 40분경 서울추모공원으로 향했으며, 오후 3시 현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고인의 유해를 안장하기 위해 마석 모란공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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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와 남북대화는 양립할 수 없다"

 

[분석] 북, 대북전단에 총격... 여당 대표도 "북한 자극 자제"

14.10.11 16:20l최종 업데이트 14.10.11 17:18l

 

 

북한이 유례없이 대북전단(삐라)에 대공사격 한 것을 두고 '삐라가 계속되면 대화는 없다'는 뜻을 확고히 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남북관계 전문가는 물론이고 여당 대표도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합수리 일대에서 탈북자 이민복씨 등이 날려 보낸 대북전단 풍선에 북한군이 14.5mm 고사총 수 발을 발사한 것은, 현재까지 대북전단에 대한 북측의 대응 중 가장 강도가 높다. 

대북전단에 첫 총격... 북 매체 "2차 고위급접촉 물 건너간 것과 다름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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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단체, 대북전단 20만장 살포 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회원들이 노동당 창건기념일이자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4주기인 10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 부근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20만장을 날려보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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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하라며 '원점 초토화', '조준 격파 사격하겠다'고 경고해 왔지만 실제 대북전단에 대고 총격을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풍선에 총을 쏘면, 낙탄이긴 하지만 총알이 남측으로 날아가게 되고 이에 대한 남측의 대응 사격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북측은 이를 무릅쓰고 사격을 감행한 것이다. 

북측의 의도는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북한은 11일 대남선전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올린 개인 필명의 글을 통해 전날 남북간 총격의 원인이 "우리의 존엄과 체제를 중상모독하는 모략적인 전단살포를 감행한 일'에 있음을 지목했다. 또 "괴뢰 패당의 무책임하고 도전적인 처사로 북남관계가 파국의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북남 사이에 예정된 제2차 고위급 접촉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고 했다.

대북 전단살포를 막지 않으면 인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이뤄진 1차 고위급접촉에 이른 남북관계 개선은 기대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북전단 총격을 '남북대화 중단 선언'으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측의 총격을 "한국 측에 당장 인명 손실은 주지 않으면서도 향후 대북전단 살포가 가져올 수도 있는 피해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하려는 것이다, 즉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한국 사회 내부의 반대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한 '제한된 무력도발'의 성격이 강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난 4일 인천아시안 게임 폐막식 당일 인천을 찾아온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2차 고위급접촉' 시기를, '10월 말에서~11월 초'로 제시했다. 북한이 한 달 가까이 공백을 둔 것은, 5·24 조치 해제 문제, 대북전단 살포 문제, 이달 하순에 열리는 한·미안보협의회(SCM)와 양국간 외교·국방장관 회의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 문제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등 진행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지난 5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과 관련해 "이제 공은 서울의 청와대에 넘어갔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김무성 대표도 대북전단 자제 당부 "북한 자극 말아야"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북한이 유례없이 총격으로 대응한 데엔 '이번에야말로 남측에서 삐라를 뿌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북측의 의지가 반영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지난 2월 '1차 남북고위급 접촉' 때 남북은 상호 비방·중상 중단에 합의했으나 결국 대북전단 살포로 좌초됐고,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조화를 전달할 때도 북측은 상호비방 문제를 제기했었다"며 "현재 대북전단 문제는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는 상징적인 행위이고 남북관계의 핵심 사안"이라고 진단했다. 

여당도 대북전단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1일 "우리가 북을 자극하는 일은 가능한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대북전단 살포를 자제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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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수첩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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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결국 그렇게 (북한을 자극)해서 우리가 피해를 입는다면 우리 국민에게 손해"라면서 "가능한 한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서 남북 간에 교류, 협력, 대화가 확대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는 "자유 의사에 의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날리기에 대해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미약하다"던 기존의 새누리당 입장과는 다른 발언이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정부에 적극적인 상황 관리를 주문하고 있다. 정성장 연구위원은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철 교수도 대북전단 날리기를 심리전의 한 양태로 지목하면서 "심리전과 대화는 양립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김 교수는 "삐라를 뿌리는 건 전쟁을 하겠다는 의사의 표시다. 과거 정부의 예를 보면 삐라 살포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은 충분하다.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북관계 상황, 휴전선 인근 우리 측 지역주민들과의 마찰, 민간단체들의 신변안전 문제' 등을 근거로,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10월과 현 정부 집권 이후인 지난해 5월, 경찰이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진입로를 차단해 대북 전단 살포를 무산시킨 바 있다.

하지만, 대북전단 살포를 주도해온 탈북자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 등은 북한의 총격 이후에도 전단 살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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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긴급 평양 현지 대담 "북 활력 넘쳐"

미국인, 긴급 평양 현지 대담 "북 활력 넘쳐"
 
"평양 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경제 성장 감지"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10/11 [11:15]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북은 조선로동당 창건 69주년이었던 10월 10일 명절 분위기로 활력에 넘쳤다고 미국인 여행사 대표가 언론과의 대담을 통해 밝혔다. 서평방송 캡쳐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일부 언론에서 평양 시민의 이동설과 폐쇄 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평양을 방문한 미국의 대북 여행사 대표가 이는 사실이 아니라며 평양은 활력이 넘쳤다고 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소리방송은 10일 미국뉴저지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대북 전문여행사 '우리 투어스' 안드레아 리 대표가 지난 9일 평양에 도착했다며 그와 가진 대담을 통해 이 같이 보도했다

이 방송은 미국의 조선전문 여행사 ‘우리투어스’의 안드레아 리 대표가 북한에서 직접 최근 현지 동향을 전해 왔다며, 현재 평양의 양각도 호텔에 머물고 있는 리 대표는 10일 ‘VOA’(미국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평양의 분위기는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고, 어떤 이상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우리투어스 안드레아 리 대표는 최근 평양 현지 모습에 대한 질문에 "평양에 어제 (9일) 도착했는데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입니다. 특히 오늘 (10일)은 노동당 창건 69주년 기념일이어서 더 활기찬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평양의 한 공원을 들렀는데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더군요. 전형적인 휴일 모습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안드레아 리대표는 10일 남북의 총격전 소식을 혹시 평양에서 들을 수 있었느냐는 물음에 "아니오. 몰랐습니다. 물론 하루 종일 TV를 본 건 아니지만, 저녁 뉴스 시간에 그 사건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호텔 객실에서 볼 수 있는 BBC, 알자지라, CNN 등이 보도했는지 모르겠지만, 현지에선 들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답했다.

미국의소리방송 기자는 "지금 평양이 봉쇄됐고 주민 이동을 차단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이상 조짐 역시 못 느끼셨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런 소문을 최근 보도를 통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관광객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거의 매일 평양과 지방을 넘다 들고 있습니다. 또 주민들 역시 특별한 제약에 묶여있는 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국외를 오가는 조선인들도 여전히 항공기 내에서 볼 수 있습니다."라고 밝혀 김정은 제1위원장에 대한 건강 이상설로 제기 된 소문들이 억측임을 알 수 있게 했다.

기자는 안드레아 리씨에게 지금 양각도 호텔에 머물고 있는 걸로 아는데,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들어와 있나라고 묻자 "예, 제법 많은 관광객이 보입니다. 제가 지난 주에도 평양에 왔었는데요. 그 때는 중국 휴일과 겹쳐서 굉장히 많은 중국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주는 중국인들보다는 서방 관광객들이 더 많이 눈에 띕니다. 늘 그렇듯 대부분 유럽인들이지만, 현재 미국인 관광객들도 조선을 방문 중입니다."라고 답변을 이어갔다.

이 방송 기자의 조선을 자주 방문하며 실제로 눈에 띄는 변화를 목격했느냐는 질문에는 조선은 평양 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경제성장이 감지된다는 것과 평양이 교통 체증까지도 종종 볼 수 잇으며, 식당을 비롯한 술집 등이 정말 많이 생겨나고 있다 면서 평양은 1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도시가 됐다며 북의 변화상을 소개했다.

그는 지방 도시들에서도 공사가 많이 진행되고 관광지 개발 노력이 엿보이는데, 특히 동부 해안 도시들이 그렇다고 밝혀 원산-금강산 지구 광광 특구가 많은 진척을 보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사용이 자유롭게 이루어 지고 있으며 관광산업대한 인식 변화, 일반 가정집을 방문해 음식을 나누며 일상에 대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안드레아 리 대표는 미국인 들이 반공화국 적대 행위로 체포 구금된 것이 관광에 영향을 미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진 않지만, 저희는 관광객들에게 순수한 관광 목적이 아닌 종교활동이나 정치적 동기를 갖고 방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공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며 영행을 받지 않고 있음도 전했다.

리 대표는 북이 관광을 활성화 하기 위해서는 "조선과 국제사회와의 관계가 개선되면 관광산업이 더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또 관광객들이 현지 주민과 더 자주 접촉할 수 있는 일정이 개발됐으면 하고요. 관광객들에게 더 많은 곳들이 개방됐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죠. 앞으로 북한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길 바랄 뿐"이라는 건설적 지적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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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의 비애? 쿠데타정권의 굴욕!

 
 
박그네는 방탄막이를 사퇴하고 청와대에서 나오라
 
조시형 | 2014-10-10 13:57:0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약소국의 비애? 쿠데타정권의 굴욕!


1.과거-巨惡을 보다

나는 반공소년이었다. 그것도 자발적이고 열성적인. 단적으로 초중등 시절 내가 받은 교내외 상은 대부분 반공관련 글짓기, 웅변 심지어 형편없는 그림실력에도 반공포스터만은 입상을 했다. 심지어 5학년 때부터 활동했던 소년한국일보 명예기자로 썼던 글 중에 신문지상에 실린 글은 ‘간첩잡는 똘이장군’, ‘이승복 어린이를 기리며’ 등등 반북 반공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내 글을 선정해서 실어준 기자의 말에 의하면 유독 그런 글에서 혼과 기가 살아있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반공소년이 된 이렇다 할 연고는 없었다. 6.25의 전란에도 피란도 가지 않았다는 동막골 같은 속리산 기슭의 촌구석에서 태어나 서울 변두리에 정착한 이력도 그렇거니와 하급 공무원에 보험판매를 하시던 부모님은 정치엔 무관심하셨다. 다만 나는 어릴 적부터 감수성이

무척이나 여렸고 폭력을 극도로 싫어했다는 어머니 말씀에 비춰보면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부터 주입된 제도교육의 영향이 유달리 컸던 것 같다. 동족상쟁을 일으켜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고 현재도 호시탐탐 우리의 안녕과 평화를 해치는 잔혹한 살인마들! 그게 이북과 김 씨 왕조에 대한 적개심의 뿌리였다. 공산주의가 뭔지는 몰랐지만 그게 뭐든 사람을 죽인다면 그것은 惡이다. 그 악에 대해서는 최고의 분노로 싸워야한다. 그것이 10대의 내 신조였다.

1984년 봄 어느 따뜻한 주말. 그 동안의 내 삶의 밑바닥을 뒤집어엎는 일대 사건이 내게 닥쳤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도서관에 가려 탄 버스에서 깜빡 졸다가 내린 곳이 명동성당 앞이었다. 거기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치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았다. 호기심이 발동해 성당의 입구에 도달한 나는 그만 보지 말아야 할 사진들을 보았다. 80년 5월! 불과 몇 년 전에 남도 땅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들을 생생히 웅변하는 그 사진들!! 그것은 천인공노할 집단학살이었다. 국군이 아줌마와 아저씨들 그리고 언니와 형들을 잔혹하게 때리고 찌르고 총쏴서 죽인 거였다. 나는 주저앉았다. 땅이 꺼지고 하늘은 노랗게 빙글빙글 돌아 나는 토악질을 해댔다. 그리고 한 동안 벽에 기대 혼미한 정신을 놓았다.

그날이후 나는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과거를 뒤졌다. 독서실 서고에 비치되어있던 월간 신동아 79~81년분을 한 달에 독파하고 근현대사 책들을 가까운 대학가 서점에서 읽었다. 그리고 나는 점점 당시 담임선생님의 표현에 의하면 불온한 눈빛의 반항아로 변해갔다. 나를 아끼던(?) 선배들과 선생들은 나의 속을 궁금해 했다. 그러나 몇 번의 초식으로 그들의 인식상태를 알아채곤 나는 입을 닫았다. 그래서인가 그해 여름, 학교는 나를 당시 예비대학생 녹화사업 프로그램에 보냈다. 삼청교육대나 군대에서 운동권 출신에 자행하던 그것만큼 가혹하진 않았지만 나는 긴장했다. 그것이 전두환의 친동생 전경환이 본부장으로 있던 새마을운동중앙본부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학교와 부모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나는 그 5박6일의 연수과정에서 또 한 번의 경천동지할 충격체험을 한다.

긴장했던 것과 달리 새마을본부에서의 프로그램은 다채롭고 유연했다. 천편일률적인 반공교육을 예상했던 나에게 명상 프로그램과 민족사 특히 고대사 강의는 아주 유익했고 베트남 패망에 대한 기록영상은 나름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이틀간의 국토순례행진도 이 땅의 아름다움을 체험케 해 주었다. 같은 조의 남자동기들은 똑똑했고 몇 명의 여학생들은 예뻤다. 특히나 우리 조의 여자 조교는 연대 84학번으로 82년 1기 수료생이었다는 데 설레 일 정도로 예뻤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봐야하는 전경환의 대머리와 그의 유들유들한 목소리를 빼면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런데 운명의 마지막 날은 나를 피해가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 그 동안의 연수를 총화하는 강연이 시작되었다. 강사는 당시 조선일보의 유명한 논설위원, 주제는 격전의 국제정세와 한국의 생존전략이었다. 문제는 당시 1주년이 도래하던 KAL 007편의 격추에 대한 부분에서였다. 그는 KAL기가 냉전이 최고조에 이른 동북아에서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 사건이라고 회고하며 이는 우리가 힘이 없어 당한 비극이라며 온 국민이 부국강병을 위해 단결해야 한다고 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침된 참극이 고래싸움에 새우라니? 일방적으로 소련에 당한 것이지 무슨 약소국의 비애? 다른 수강생들은 어쩐지 모르지만 나는 커다란 의문에 빠졌다. 2부 강연이 끝난 후에 질의 응답시간이 있었지만 나는 1부 강연 후 그 강사를 쫓아갔다. 그리고 화장실을 나오던 그에게 나의 의문을 말했다. 그는 잠시 당황하더니 찬찬히 이렇게 말했다. “칼 기를 격추시킨 건 소련이지만 영공을 넘어가게 한 건 미국이다.”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반문에 그는 잠시 망설이다 무슨 자동항법에 유도전파를 쏘면 어쩌구 말을 하다 중단하고 내 어깨를 두드리며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2부 강연은 상호토론으로 대체되었다.

1983년 9월 1일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 앵커리지를 경유해서 김포국제공항으로 오던 대한항공 소속 007편 여객기가 비행 중 소련 상공에서 소련 공군 소속의 수호이 15(ru)의 공격을 받아 사할린 서쪽에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숨진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16개국 269명에 달하는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였다. 당시 KAL 007편을 격추한 수호이 15의 조종사는 겐나디 오시포비치이다. 그는 관제소로부터 KAL기를 국제관례에 따라 유도 착륙시키라는 명령을 받고서 여객기에 300m까지 근접, KAL 007편과 같은 고도로 날아가면서 전투기 날개 쪽에 달린 경고등을 깜박거리며 수차례 유도착륙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KAL 007편은 비행을 계속했으며, 통상탄(당시 조명탄은 장전하지 않았다)을 4차례 발사했는데도 여객기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고도를 높이자 관제소로부터 경고 사격 후 격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은 소련의 KAL기 격추를 인류에 대한 학살만행이라며 유엔 안보리에서 규탄성명을 냈고 소련은 KAL기가 소련 극동지역의 신형 ICBM 연구를 정탐할 목적으로 영공을 불법 침입한 거라며 맞섰다. 한국은 전국이 반소, 반공 규탄 데모로 들끓었다.

나도 자발적으로 그 집회에 참석해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 “소련 공산당을 타도하자!” 그런데 우방이자 혈맹인 미국이 칼기 격추의 배후였다니? 나는 지난 5월 명동성당의 체험에 버금가는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의 파장은 무겁고 길어서 그 후 30여년의 삶의 과정에 진한 생채기를 만들고 지금도 심장에 파문을 새기고 있다.

새마을 운동본부의 마지막 행사는 조별 팀웍을 보여주는 장기자랑이었다. 우리 조는 ‘평양에서의 하루’라는 상황극을 시연했다. 김일성의 폭압적 전제정치에 시름하는 이북 인민들의 고통스런 삶을 표현했다. 나는 평양의 거리를 취재하는 외신기자 역을 했다. 마지막 나의 일장 연설로 끝을 맺어야 하는 데 나는 이렇게 외쳤다. “약소국의 비애가 아니라 쿠데타 정권의 굴욕이다.” 무대에서 끌려나오면서 나는 전경환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왠지 꽉 막힌 무언가가 쓸려 내려가는 시원함을 느꼈다.


2. 현재-巨惡의 재림

지난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이후 전 방위적인 대대적 언론의 공세를 보고, 초지일관 유족의 곁을 지키던 김현 의원마저 코너로 몰리는 상황을 보고 그리고 주말 집회의 동력이 현저히 줄어드는 걸 목도하면서 우려스러웠다. 그리고 마침내 박영선의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3차합의가 나왔다. 말짱 도루묵이고 죽 쒀서 개 준 꼴이다. 새누리의 김무성은 선방했다며 이완구와 파안대소하고 새정연의 박영선은 죄송하다며 사퇴하는 이 배리! 뭘 선방하고 뭐가 죄송하다는 것인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빼서 진상규명이 물 건너가서 그러는 건가? 이것들이 도대체 국민을 유가족을 터럭만치라도 생각하는 작자들인가? 인간이 아니지 않는가? 악귀들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검찰은 외부충돌도 없었고 내부폭발도 없었다고 수사결과를 공표한다. 수많은 증언과 사진, 동영상의 의혹들을 뭉개는 발표다. 오로지 화물과적과 조타수의 미숙한 운전이 빚어낸 사고다. 이 정권이 표방하고 그렇게 공인되길 바라는 딱 그대로 결론을 내렸다. 동시에 유병언의 해외 자금책 김혜경을 인터폴 공조로 미국에서 체포했단다. 그는 이민법상의 항변절차도 포기하고 순순히 체포에 응했단다. 그것도 아주 친절히 체포 장면을 찍어서 온 신문과 방송에 알린다. 그런데 그의 혐의는 횡령과 배임이 전부다. 유대균과 그의 호위무녀도 동일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런데 도대체 지들 회사 재산을 빼돌린 게 세월호 침몰과 무슨 인과관계가 있길래 온 방송이 유병언 일가를 주범으로 보도하는 건지 내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구원파는 왜 이리 잠잠한 건가? 1대 교주는 죽었고 2대 교주는 오리무중인데 그 재산은 물론 교리의 추종자라면 마땅히 죽은 교주를 위해 나서야 하는 거 아닌가? 여전히 구원파인 대한 침례교회는 신도들로 북적대는 데 말이다.

다 좋다. 니들 말을 다 그대로 접수하겠다. 기획참극설은 음모론이라고 치자. 그래도 세월호 침몰과 304명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학살의 책임을 이 정권은 피할 수 없다. 왜 그러한가?

범죄는 해서는 안 될 것을 하는 행위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행위 두 가지 중 불법성이 중한 것을 형벌로 응징하는 것이다. 이중 검찰의 발표대로 고의든 과실이든 침몰에 작위(作爲)한 바 없더라도-많은 증거들이 고의 침몰을 추론케 하지만- 침몰이후 구조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작위(不作爲) 책임은 드러난 사실로 확실하며 그 또한 작위책임에 못지않게 중대한 불법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부작위 책임은 사인이 아닌 헌법상의 국민 생명구조의무 회피라는 국가책임이므로 거의 무과실에 가까운 입증불요의 형사책임을 지는 것이다.

다 차치하고 구조의 골든타임에 가능한 구조수단을 적극적으로 막고 나선 것은 명백하다. 그 최고 책임자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청와대에서 대통령이라고 행세하는 박그네 임이 명백하다. 특정해서 예를 들면 해군참모총장의 구조선 통영함의 출동명령을 두 차례나 저지한 명령권자는 4월16일 오전에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분명하다. NSC 상임위원인 국방부장관, 국정원장, 비상임위원인 합동참모총장이 그 명령계통의 윗선이며 그 최종권자는 헌법상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는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고로 정부의 너절한 변명-통영함이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에도 불과하고 통영함 저지 그 자체만으로도 구조가능성을 축소한 학살의 부작위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혹시 이런 책임을 모면코자 잃어버린 7시간을 스스로 뻥카 치는 건 아닌가? 처음 박그네의 행방불명을 언급한 게 김기춘이고 이를 최초 보도한 게 조선일보고 인터넷에 널리 전파한 게 지만원이라는 소스코드 추론의 법칙에 따라 이런 의심은 당연하다. 또한 4월16일 오후 5시경 초췌한 얼굴과 부스스한 머리무세를 공개하면서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들을 (바다에서) 찾기가 어렵냐는 황당발언을 전 국민에 중계한 이유도 역시 만에 하나 사건의 진상이 백일하에 들통나도 박그네는 몰랐다는 알리바이를 꾸민 건 아닐까?

그러나 본질은 변치 않는다. 세월호가 오전 7시경부터 선체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구조요청을 하고 7시 20분 경 조난 방송이 나가고 8시경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에 박그네가 참석했든 아니면 다른 곳에서 볼일을 즐겼든 이후 침몰이후 3시간 반여의 전원구조 가능한 상황을 방기하고 304명의 생명이 수장되어 죽게 한 책임은 박그네가 진다. 고의 작위이든 고의 부작위든 이게 진실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이라도 탄핵절차에 착수하여 모든 헌법상의 자격을 박탈하고 법정에 세워야한다. 법적으로는 그렇다. 문제는 현실에서 집행가능성이다. 이건 실로 전 국민의 항쟁까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미국과 수구기득권에게 박그네는 아직도 필요한 존재다. 실질적 지배세력이자 배후의 결정권자인 이들에게 박그네는 여전히 對 한국민 통제의 허수아비로 살아남아 줘야한다. 그러나 얼마나 그러할 지는 지금 장담키 어렵다. 개헌론이 박그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최대 이슈가 될 것이 명약관하해진 현재 정세의 흐름이다.


3. 미래-불투명한 작은 소망

최소한 김영삼 이래 김대중 노무현 까지 자국민을 학살한 사건은 없었다. 물론 삼풍백화점 붕괴나 대구지하철 화재 등의 사고는 있어왔지만 84년, 87년 연이은 칼기 폭파사건이나 광주학살 같은 참극은 확실히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이 청와대에 들어선 이후 다시 앙시앙레짐 처럼 학살의 원귀들이 돌아왔다. 용산 참극에 이어 천안함 침몰 그리고 이 참칭정권에서 백주해상에서 벌어진 세월호 참극까지.

그리고 현대사의 학살참극이 국제정세의 배경과 미국의 관련성이 화제가 되었던 것처럼 천안함도 세월호도 국제정세와 미국을 도외시하고는 그 진상에 접근키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난 주 전격적인 북측 실세 3인방의 방남 이후 훈풍이 불던 남북관계가 연이은 미국의 한반도 핵사용 시사발언과 NLL에서의 돌발적인 남북해상 충돌로 찬바람이 불더니 거듭된 북의 요청에도 아랑곳없이 오늘 기어코 반북삐라를 살포하겠다는 자유북한 연대라는 탈북자 단체의 망동으로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이 탈북자단체에 자금을 제공하는 단체가 미국의 준 관변단체인 헤리티지라 한다.

 

 

과연 박그네의 진심은 무얼까? 박그네는 언제까지 써준 수첩을 읽기만 하는 신세로 버틸까? 그녀를 위해서도 이 나라를 위해서도 그리고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는 아비의 명예를 위해서도 이제 그만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게 좋을 것이다. 더 이상 추락할 것도 없는 데 ‘부도 대한민국’의 오명까지 뒤집어써야 하겠는가? 그리되면 박정희 신화는 완전 파산나고 역사의 평가는 더욱 냉혹할 것이다.

나는 누구이든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 그다지 과도한 희망을 접었다. 그저 자국민의 생명이라도 지켜줄 정도의 도덕성과 능력만 겸비하면 감지덕지다. 더욱이 부정선거라는 덫에 걸려 전임과 외세에 발목이 잡혀 꼼짝 못하는 현직을 보면서 더욱 그렇다. 나는 박그네가 세월호 참극을 기획하거나 주도했다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소임을 다할 수 없었고 세월호 아이들을 살릴 수 없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서도 다시 한 번 권한다. 박그네는 방탄막이를 사퇴하고 청와대에서 나오라. 그게 본인의 유일한 生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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