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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죽이는 풀…전국 하천에 '덩굴 대란'

나무를 죽이는 풀…전국 하천에 '덩굴 대란'

 
조홍섭 2013. 10. 08
조회수 5346추천수 0
 

외래식물 가시박 비상…4대강 사업 이후 급격히 확산, 내년 대발생 우려

옥수수밭 등 농작물 피해도 속출, 강변에서 철도와 경작지로 확산

 

ga1.jpg » 지난달 26일 가시박 천지로 바뀐 금강 상류 범람원인 호탄 습지. 수많은 벌이 개화한 가시박 꽃에 모여 윙윙거리고 있었다. 올 봄 기사박을 제거하기 위해 갈풀로 덮여 있던 곳을 굴착기로 한 번 갈아엎은 뒤 후속 관리를 하지 않자 가시박이 습지를 완전히 점령했다.

 
가시박 병풍 친 내성천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크게 휘돌아 흐르는 경북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는 ‘모래 강’으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국내에서 생태계 교란식물인 가시박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바닥과 강변의 모래처럼 수많은 외래 덩굴식물이 강변 둑과 언덕의 사면을 채우고 있다.
 

ga2.jpg » 경북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의 한 농민이 “지긋지긋한 잡초”라며 가시박 덩굴을 따 보여주고 있다.

 

지난 2일 찾은 회룡포의 강변 둑에는 밝은 초록빛의 호박잎 크기의 잎 위로 잔털이 가득 난 꽃대를 세우고 있는 가시박이 수 ㎞에 걸쳐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다른 식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유명한 관광지여서 수시로 제거작업을 하지만 가시박은 전혀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들깨를 털고 있던 주민 최순녀(56)씨는 “가시박이 7~8년 전부터 보였는데 올해 유난히 심하다. 약을 쳐 봐도 워낙 씨가 많아 한 포기만 남아도 무섭게 번진다. 열매의 가시가 옷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아 옷을 버려야 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ga3.jpg » 달라지는 여름 강변의 풍경. 가시박이 나무를 타고 올라 덩굴을 늘어뜨린 낯선 모습을 어느 강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사진은 금강 상류 영동군의 강변 모습.

 

ga4.jpg » 가시박이 점령한 금강 상류 영동군의 강변 풍경. 지난달 26일의 모습이다.

 

‘낙동강 제1경’을 자랑하던 경북 상주의 경천대도 회룡포처럼 강물이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곳이지만, 4대강 공사로 모래밭 위로 물이 벙벙하게 차 있는데다 강변과 언덕을 가시박이 뒤덮어 낯선 모습이었다. 가시박은 강변의 덤불과 나무를 덮은 데 이어 정자가 있는 언덕의 절반 가까이 기어오르며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덩굴은 멀리서 초록색 거미줄처럼 보였다.
 

동행한 홍선희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연구소 박사는 회룡포와 경천대에 가시박이 많은 이유를 “안동과 예천 등 주변에 가시박 씨앗의 유입원인 축산단지가 많은데다 강물이 자주 넘쳐 씨앗이 쉽게 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대강 사업이 당긴 ‘방아쇠’


ga9.jpg » 낙동강 상주보 아래 강변의 가시박 덩굴이 주기적인 제거작업에도 남아있다. 가시박은 4대강 사업 현장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이 됐다.  

 

북아메리카 원산의 덩굴성 식물인 가시박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1990년대 말부터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환경부가 생태계 교란 야생식물로 지정했지만, 최근 폭발적으로 번창해 ‘덩굴의 재앙’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보통은 나무 아래 풀이 자라지 못하지만, 마치 황소개구리가 뱀을 잡아먹듯이 1년생 풀이 나무를 죽이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가시박은 6~8월 왕성하게 자라 하루에 30㎝ 이상도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잎겨드랑이마다 열매를 맺는 다산성이어서 가시박 한 포기에서 최대 2만 5000개의 씨앗을 생산한다. 수박 씨앗처럼 생겼고 크기는 그보다 큰 가시박 씨앗은 땅속에 묻히면 60년 이상 발아력을 간직한 채 휴면할 수 있다.
 

ga7.jpg » 15~24개의 씨앗을 담고 있는 가시박 열매. 가시는 미세한 미늘이 달려 잘 빠지지 않으며 쉽게 부러져 찔리면 덧나기도 한다.

 

ga8.jpg » 수박처럼 생긴 가시박의 씨앗. 다른 식물보다 커 땅속 깊이 묻혀도 싹이 튼다.

 

홍 박사팀이 가시박이 무리지어 자라는 경기도 양평의 강변에서 조사했더니 ㎡당 최고 2000개의 씨앗이 나왔다. 홍 박사는 “일반적으로 가시박이 있는 곳 토양 속에는 ㎡당 1000개의 씨앗이 묻혀있다고 보면 된다. 어마어마한 예비군이 땅속에 잠복해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가시박은 주로 강물을 따라 전파된다. 가시가 많고 가벼운 열매가 물에 떠 홍수기 때 하류로 이동하는 것이다. 하천 주변이 가장 먼저 가시박으로 뒤덮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이동한 씨앗은 땅속에 묻혀 싹트기 좋은 때를 기다린다.
 

강변의 토착 식물을 모조리 제거하고 햇빛이 잘 비치는 황무지로 만들어놓은 4대강 사업은 가시박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1980년대 말부터 가시박의 위험을 역설해 온 강병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명예교수는 2010년 발표한 논문에서 “4대강변의 ‘자전거 길’은 ‘가시박 길’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예견은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 교수는 “우리가 하천변을 너무 파헤쳤다. 전 국토에 외래종이 번창할 토양을 조성한 것이다. 가시박은 찬바람이 불면 곧 사라지지만 내년엔 더 무서운 기세로 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ga_3.jpg » 상주보 옆 잔디밭에서 9월에 싹이 터 벌써 꽃을 피운 어린 가시박. 4대강 사업 공사현장에 다량의 가시박 씨앗이 묻혀있음을 보여준다.

 

낙동강 상주보 아래 강변은 수시로 제거작업을 했는데도 가시박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보 인근 잔디밭 한가운데 어른 손가락만 한 가시박이 돋아나고 있었다. 9월에 싹튼 어린 개체임에도 벌써 꽃을 매달아 악착같은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홍 박사는 “흙 속에 가시박 씨앗이 많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낙동강의 상류부터 하류까지 강둑은 가시박으로 거의 이어져 있다. 특히 강정보 주변 달성습지에는 대규모 가시박 군락이 펼쳐져 있다.
 
잘못 손대면 더 번져


ga11.jpg » 섣부른 제거작업으로 오히려 가시박 천지가 된 금강 호탄 습지.

 

가시박은 생태교란 외래종으로 지자체마다 제거작업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이 덩굴식물을 이길 뾰족한 방제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하천변에선 수질오염 때문에 제초제를 사용하지 못한다. 자칫 제거작업이 오히려 가시박을 번창하게 하는 역효과를 빚을 우려도 있다.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의 금강 범람원인 호탄 습지가 그 예이다.
 

습지에 들어서면, 바닥에 끝없이 펼쳐져 있고 10m가 넘는 포플러 나무까지 집어삼킨 가시박에 압도된다. 200~300종의 식물이 살던 이 습지에는 현재 가시박 등 손가락에 꼽을 식물밖에 없다.
 

ga5.jpg » 호탄 습지에서 기존 식물 위로 가시박이 덮어 '가시박 무덤'이 형성됐다.

 

ga6.jpg » '가시박 무덤' 안에서 밖을 본 모습. 원 식물은 누렇게 죽었고 초록 가시박이 그 위를 덮고 있다.

 

지난봄까지 이곳엔 다년생 토종 식물인 갈풀이 덮고 있었다. 그대로 두었더라면 가시박이 나오더라도 일부를 차지하는데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6월 지자체는 가시박을 퇴치하기 위해 이 일대를 굴착기로 갈아엎었다. 공사 뒤 3주일이 지나자 습지는 다시 가시박으로 덮였다.
 

홍 박사는 “기왕 갈아엎으려면 늦여름에 한 번 더 했다면 토양 속 종자를 소진시키는 효과를 봤을 것이다. 가시박을 제거하려면 싹이 모두 나오는 9월 초 꽃 피기 직전 하는 것이 좋고, 이를 7년간 계속해야 모두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ga10.jpg » 상주보 상류 자전거 도로 옆 강변에서 가시박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두 주일쯤 지나면 고스란히 원 상태로 돌아간다.

 

일회성으로 봄에 가시박 제거 행사를 벌여 봐야 보름 뒤엔 원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시박 제거에 장기간 관심을 갖고 예산을 투입할 지자체는 많지 않아 보인다.

 

홍 박사팀은 현재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용역을 받아 가시박에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과 가시박을 죽이는 식물 추출물을 개발하는 등 종합 방제 대책을 3년째 연구하고 있다.
 
농경지도 위험하다
 

ga18.jpg » 경기 남양주시의 한 비닐하우스 단지에 침투해 들어가가는 가시박 군락의 모습.

 

가시박은 넓은 잎으로 햇빛을 가리고 영양분과 수분을 독차지해 강변 습지 등의 자생식물은 물론 나무까지 말라죽게 한다. 생물다양성을 위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덩굴식물이 강변에서 내륙의 철로변, 도로, 야산으로 번지면서 최근 농경지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불현리는 강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가시박이 농지를 포위한 가운데 농민들은 이 외래식물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료용 옥수수를 재배하는 밭에는 가시박 덩굴에 덮여 수확을 포기한 옥수숫대가 눈에 띈다. 가시박은 인삼밭 차양막 일부를 뒤덮고 있었고 덩굴 일부는 이미 안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ga12.jpg »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불현리의 옥수수밭은 이미 가시박의 피해를 입고 있다.

 

ga13.jpg » 가시박 등쌀에 수확을 포기한 옥수숫대가 서 있다.

 

옥수수밭 3만 3000㎡를 경작하고 있는 주민 정지선(73)씨는 지난해 가시박 덩굴에 덮인 밭 2000㎡를 갈아 엎은데 이어 올해엔 660㎡에서 수확을 포기했다. 올해 가시박이 줄어서가 아니라 “밭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덩굴을 잘라낸 덕분”이다.
 

그는 “3.3㎡에서 17개꼴로 가시박 싹이 나온다. 매주 뽑아내는데 몇 개만 빠뜨려도 엄청난 기세로 번진다. 게다가 옥수수가 큰 뒤에는 가시박을 뽑기도 쉽지 않고 제초제 비용 부담도 커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가시박과의 전쟁’을 4년째 해 오고 있다.
 

ga14.jpg » 경기 안성시 보개면 불현리의 한 폐가를 가시박이 '접수'했다. 집 주변의 가시박을 방치하고 몇 주일 집을 비우다간 이런 꼴을 당하기 십상이다.

 

보개면사무소는 가시박이 담장처럼 둘러싸고 있다. 불현리 마을에서 한때 양잠을 하던 버려진 건물은 가시박이 완전히 점령해 ‘녹색 집’이 됐다. 여름 한철 기승을 부리다 사라지던 낯선 덩굴식물의 침공이 본격화하고 있다.
 
상주·예천·안성/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가시박은 어떤 식물?

 

ga15.jpg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고려대 부속농장에 있는 향나무를 뒤덮은 가시박의 밑둥. 1년생 풀이면서 몇 달 새 지름 5㎝ 크기로 자랐다.

 

북아메리카 원산인 한해살이 박과 덩굴식물이다. 자생지인 미국에서도 옥수수와 콩 작물의 유해 잡초로 등록돼 있으며 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등에서 생태계 교란과 옥수수 등 농업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일본에서는 옥수수밭 10㎡당 가시박 15~20개체가 들어오면 수확량이 80% 감소하고 28~50개체 침입으로 수확량의 90~98%가 사라졌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나라는 사료용 옥수수의 대량 도입과 일상적인 하천개발로 세계적으로도 가시박이 높은 밀도로 번진 나라로 꼽힌다.
 

ga16.jpg »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역 역사 옆의 가시박 군락.

 

ga17.jpg » 경기도 남양주시 양정역 근처 철도 주변을 가시박이 덮고 있다.

 

1970년대 초반과 후반 각각 경북 안동의 논둑과 경기 포천의 군부대 주변에서 무성한 가시박을 보았다는 주민의 증언이 있어 그때부터 축산단지에 사료와 함께 유입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1989년 안동시 농촌지도소는 하천변에 자라던 이 식물을 박과 식물의 접붙이기 밑나무용으로 활용하는 길을 열었고 그 공으로 1992년 제1회 대산농촌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때 가시박은 ‘안동 오이’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가시박이 확산한 원인은 대목 활용이 아니라 축산단지에 사료용 옥수수와 섞여 들어온 씨앗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다른 식물보다 늦은 5월 초에 싹이 나는데, 이때는 음지에서 광합성 효율이 높은 특성을 보인다. 여름에 왕성한 생장을 보여 3~4개로 갈라진 덩굴손을 사방에 뻗어 10m 이상 되는 나무도 기어오른다.
 

물에 2~3일만 잠기면 쉽게 죽지만 올해 큰비가 오지 않아 예년보다 더 번창한 것으로 보인다. 서리를 받으면 곧 죽는데, 죽은 덩굴이 나무에 그물처럼 걸려 겨우내 강변에 을씨년스런 풍경을 연출한다.
 

ga19.jpg » 중앙선 폐 철도를 뒤덮은 가시박 군락. 주변의 농경지와 야산으로 확산되는 교두보 구실을 한다.

 

한강의 춘천, 원주, 서울, 양수리 등에 널리 분포하고 낙동강 전역, 금강과 영산강, 섬진강에도 군데군데 출현한다. 서울에서는 난지도 하늘공원,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 앞, 밤섬 등에 분포하고 경기도 남양주시의 양정역 일대, 금곡역 앞, 중앙선 폐 철도 등에도 대규모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가시박은 오래 전에 국내에 유입된 환삼덩굴, 칡과 더불어 ‘덩굴의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3대 덩굴 식물의 하나이지만, 이들 가운데 가장 급속한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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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로 통하는 시대’ 그 한복판에 영남대가 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0/09 11:46
  • 수정일
    2013/10/09 11:4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길은 박정희로? 영남대 인맥 날개 달다
 
 
 
육근성 | 2013-10-09 09:57:4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된 뒤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박정희 스타일’의 부활이다. 유신 시절의 사람들이 다시 화려하게 컴백하거나 그 당시 통치 수법이 재현되고 있다. 세간에서는 이를 두고 ‘모든 길은 박정희로 통하는 시대가 왔다’라고 말한다.

‘박정희로 통하는 시대’ 그 한복판에 영남대가 있다

‘박정희로 통하는 시대’ 그 한복판에 영남대학교가 있다. 영남대는 ‘박정희-박근혜 대학’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논란이 돼 지금은 삭제됐지만 오랫동안 ‘학교법인영남학원’의 정관 제1장 제1조 ‘설립목적’에 박정희를 교주(校主)라고 못박아 놓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영남대 이사장이었다. 박정희 사망 다음 해인 1980년 대구로 내려가 5.16군사정권이 강탈한 영남대 이사장에 취임한다. 그러나 7개월만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고 만다. ‘독재자의 딸’의 영남대 입성을 반대하는 교수와 학생들의 시위 때문이었다.

이사직은 그대로 유지했으니 이사장 같은 이사였다. ‘영남대 통치’ 기간 동안 학교는 부실에 빠졌다. 부정입학, 장학금 비리, 영남대 병원 횡령사건 등이 불거지자 사립대 최초로 국회국정감사가 실시된다. 그러자 박근혜 이사는 6~7 트럭분의 박정희 유품을 챙겨 아간 도주하듯 영남대를 떠난다. 당시 국회국정감사에서 ‘영남대 소유권’을 놓고 오간 질의 내용이다.

김동영(민주당 의원):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재단에 출연한 자금은 얼마입니까?

조일문(영남학원 이사장): 문서상 나타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김동영(민주당): 현재 재단이사로 박근혜씨가 되어 있는데, 박근혜씨가 재단에 출연한 액수는 얼마입니까?

조일분(영남학원 이사장): 그것도 나타나 있는 것이 없습니다.

(1988년 10월 18일 문화공보위 국정감사)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손에 넣은 대구대와 청구대

그렇다. ‘교주’였던 박정희나 이사장과 이사를 지낸 박근혜 두 사람 모두 영남학원에 단 1원도 출연하지 않았다. 사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단돈 1원도 들이지 않고 큰 대학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영남대의 전신은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다. 박정희 정권은 두 대학을 하나로 합쳐 1967년 영남대를 출범시켰다. 대구대와 청구대가 박정희 손에 들어간 사연이 기막히다.

대구대는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한 인물로 칭송받는 ‘경주 최부잣집’ 장손 최준이 중심이 돼 설립된 학교다. 5.16이후 발표된 ‘대학정비사업’으로 잘 나가던 대학이 휘청거린다. 이미 재산을 몽땅 털어 넣은 최준의 형편으로는 재정적 어려움을 감당하기 벅찼다.

이때 재단이사였던 신현확(후일 국무총리)의 주선으로 삼성 이병철 회장에게 재단 이사장 자리가 돌아간다. 대학이 삼성에 넘어간 뒤 황당한 일이 터진다. 삼성이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사카린 55톤을 건설자재로 속여 국내에 들어와 팔려다가 들통이 난 것이다. 당시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를 ‘밀수 왕초’라고 부르며 사카린 밀수가 박 정권과의 밀통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맞는 얘기다. 밀수 사건으로 아버지를 대신해 구속됐던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현 CJ그룹)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청와대는 정치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돈을 부풀리기 위해 밀수를 하자는 쪽으로 합의했다. 밀수현장은 내(이맹희)가 지휘했으며 박 정권은 은밀히 도와주기로 했다.”

삼성의 약점을 포착한 박 정권은 이후락을 보내 대구대학을 정부에 넘기라고 압박했다. 이병철은 독박을 쓴 채 한국비료와 대구대학을 박 정권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구속을 면할 수 있었다.

<청년을 걱정했던 '아름다운 독지가' 대구대 설립자 최준과 청구대 설립자 최해청 선생>

대구대는 ‘사카린 사건’을, 청구대는 ‘건설사고’ 빌미로 5.16정권에 넘어가

청구대학이 박 정권에 넘어간 사연도 기구하다. 근로자들을 위한 야간대학으로 출범한 청구대는 부친이 청도군수를 지냈던 최해청에 의해 설립된 학교다. 재정적 어려움이 있었던 최해청은 설비투자를 늘리라는 박 정권의 압박과 경리직원의 비리사건 때문에 학장직에서 물러난다.

1967년 6월 청구대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이 터진다. 본관 신축공사 현장에서 건물이 무너져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회계 비리에다 대형 참사까지 어어지자 잔뜩 겁을 먹은 새 임원진은 설립자 최해청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박 정권에 대학을 통째로 헌납하는 것으로 죄를 탕감 받으려 했다.

최해청은 대학을 돌려 달라고 애원하기 위해 교육분야 자문을 해주며 안면을 익혔던 박정희를 찾아간다. 하지만 대학을 손에 넣으려 마음을 굳힌 박정희가 그를 만나 줄 턱이 없었다.

대구대학은 사카린 사건을 빌미로, 청구대학은 회계비리와 건설 사고를 트집잡아 손에 넣은 것이다. 당시(1967년) 자산가치 20억원의 대구대와 15억원의 청구대가 고스란히 박정희 손에 들어간 것이다.

영남대 잘 나가는 대학이 되다

박 대통령의 영향력은 건재하다. 20년 동안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되던 영남대가 2009년 정상화되며 ‘교주의 딸’의 복귀 문제가 논란이 된다. 재단 이사 7명 중 4명에 대한 추천권을 ‘교주의 딸’에게 위임하는 것으로 결론을 낸다. 사실상 영남대의 ‘통치권’은 박 대통령에게 있는 셈이다.

‘박근혜 효과’ 덕분일까. ‘박정희로 통하는 시대’이기 때문일까. 최근 들어 영남대는 ‘잘 나가는 대학’이 됐다. 정계와 재계, 금융계에서 이미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SKY 대학 출신 못지않은 위용이다.

KB, 신한, 우리, 하나 등 4대 금융그룹 부사장 이상 고위임원들의 출신대학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영남대의 약진은 놀라울 정도다. 서울대(23명), 고려대(16명)에 이어 9명으로 3위를 차지했다. 연세대와 서강대를 앞섰다. 주목을 끄는 건 신한그룹. 영남대 출신이 6명이나 포진해 있다. 어떤 내막이 있는 걸까.

재계에서도 영남대의 약진이 눈부시다.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출신대학 분석표에서도 영남대는 상위권에 속한다. 14명을 배출해 지방 대학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재계-금융계, 영남대 출신 지방대학 중 1위

정부내 파워엘리트도 상당수다. 정부부처 1급 이상 241명의 출신대학을 분석한 서울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영남대 출신은 모두 7명으로 지방대학 가운데 으뜸이다. ‘지방 명문’이라는 부산대(4명)을 앞서며 육사에 이어 8위에 올랐다.

정계에도 막강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영남대 출신으로 영남대 교수를 지낸 최외출은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박정희학’의 선구자로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대선 캠프에서 기획조정특보로 활약한 바 있다. 현재 대구에 내려가 있지만 그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대선 때 박근혜 후보와 소설가 이외수씨의 면담을 주선한 것도, 안대희 전 대법관을 만나 영입 제안을 한 것도,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와 인요한 연세대 교수의 영입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모두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와 최외출 / 30년 동안 이어져 온 인연이다.>

정계에도 영남대 파워 막강

새누리당 소속 김광림, 주호영, 전재희, 김상훈, 이완영, 김장실 의원 등이 영남대 출신으로 친박세력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김관용 경북지사,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이양호 농촌진흥청장, 이채필 전 노동부장관, 이현동 전 국세청장, 이채욱 전 인천공항사장, 이관훈 CJ그룹 사장, 국정원 댓글사건 축소수사 의혹을 받고 있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등도 영남대 출신이다.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내정돼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도 영남대를 나왔다. 용산 참사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경찰 출신이 공항공사 사장으로 내정된 건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도 거세다. 용산 참사 유가족과 여론의 반대 목소리도 높다. '김석기 내정'은 박 대통령의 ‘불통-오기’ 인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김용준 총리후보, 김종훈 미래부장관 후보,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 윤창중 전 대변인, 김기춘 비서실장 등의 인선에서 보여준 ‘불통-오기’ 인사가 최근 들어 다시 재연되고 있다. ‘불통-오기’ 인사 ‘시즌2’가 시작된 셈이다.

‘불통-오기’ 인사의 전형 ‘김석기 내정’, 그도 영남대

비리 전력이 있으면 공천하지 않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이 깨졌다. 두 차례 비리혐의로 형사처벌 전력이 있는 서청원 전 대표를 보궐선거 후보로 공천했고, 불법 정치자금으로 유죄를 선고 받았던 홍사덕 전 의원은 민화협상임의장이 되며 부활했다. 모두 친박 원로에 대한 예우 차원이다.

영남대 출신 김석기를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밀어붙이고, 뉴라이트 역사 편향의 ‘원조’로 알려진 유영익과 이배용을 각각 국사편찬위원장과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앉혔다.

박 대통령의 ‘불통-오기’ 인사 스타일이 계속된다면 ‘박정희-박근혜 대학’으로 알려진 영남대 출신들의 중용과 인사 배려에 가속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 여론이 비등한 김석기를 공항공사 사장에 내정한 것만 봐도 향후가 어떨지 짐작이 가능하다.

독지가들의 피와 땀으로 설립된 대학을 억압적 분위기에서 상납 받아 아버지는 ‘교주’로 추앙 받고, 딸은 사실상 ‘이사장’이나 다름없는 위치에 있다. 현재에도 재단이사 과반 이상의 추천권을 ‘교주의 딸’이 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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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드러낸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제

실체 드러낸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제
 
한호석의 개벽예감 <82>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10/08 [10:54]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자위대의 한반도 접근에 반대하는 우리 국민들, 하지만 미국은 기어이 대북 군사력 강화를 이해 자위대를 끌어들여 한미일 삼각공조를 확립하려 하고 있다. 한호석 소장은 이 글에서 유엔사를 중심으로 한미일군사공조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진: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 글, 이창기 기자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가 언급한 유엔군사령부 존치문제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60년을 맞은 ‘국군의 날’ 행사에 군수뇌부를 참석시키고, 제38차 한미군사위원회(Military Committee)와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Security Consultative Meeting)와 미일안보협의위원회(Security Consultative Committee)를 잇달아 진행하더니,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USS George Washington)를 부산항으로 출동시켰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군수뇌부는 2013년 9월 30일 서울에서 한미군사위원회를 진행하였고, 10월 1일 서울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60년을 맞은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하였고, 10월 2일 서울에서 한미안보협의회를 진행하였고, 10월 3일 일본 도쿄로 건너가 미일안보협의위원회를 진행하였고, 10월 4일에는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부산항에 입항시켰다.

그런데 미국군수뇌부가 ‘국군의 날’ 행사만 참석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게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미국군수뇌부는 2013년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서울-도쿄-부산으로 이어진 일련의 심상치 않은 행동을 연속적으로 취하였다.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일련의 연속행동은 미국이 사전에 작성한 시나리오에 따라 남측과 일본을 각각 동원하여 연출한 것이다.

이제껏 미국군수뇌부는 서울과 도쿄를 뻔질나게 오가며 ‘안보협의’를 진행해왔지만, 이번처럼 서울-도쿄-부산으로 이어지는 신종 시나리오에 따라 ‘안보협의’를 부산하게 진행한 적은 없었다. 사상 처음으로 서울-도쿄-부산을 연결하는 신종 시나리오에 따라 ‘안보협의’를 진행한 미국의 의도는 무엇일까? 미국군수뇌부가 서울과 도쿄에서 비공개로 각각 진행한 ‘안보협의’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이 글에서는 ‘안보협의’ 직후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발표된 두 개의 중요한 문서를 분석한다.

2013년 10월 2일에 발표된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서 주목해야 할 내용을 추려내어 해설하면 아래와 같다. 한미안보협의회 10.2 공동성명은 “양 장관은 정전협정과 유엔사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재확인하였다”고 밝혔다.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이 인용문에는 미국의 대북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 메시지는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고,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는 것은,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고, 불안정하고 위험한 현 정전상태를 유지하면서 대북적대행위를 계속하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지 않는 것은,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하기로 예정된 2015년 12월 1일 이후에도 유엔군사령부를 계속 존치시키려는 것이다.

한미연합사령부는 해체해도 유엔군사령부는 계속 존치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는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전략에 직결된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전략이 드리운 ‘그림자’


미국군수뇌부가 발표한 몇몇 문서들에서 어른거리는 새로운 대북전쟁전략의 ‘그림자’를 목격할 수 있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전략이 드리운 ‘그림자’는 한미안보협의회 10.2 공동성명에서도 어른거린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전략이 드리운 ‘그림자’가 집중적으로 투영된 곳은, 지금 미국이 열을 올리고 있는 대북미사일방어체계 구축사업이다. 한미안보협의회 10.2 공동성명은 “양 장관은 미사일위협에 대한 탐지, 방어, 교란 및 파괴를 위한 포괄적인 동맹의 미사일 대응전략을 지속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미국군수뇌부가 말하는 미사일위협이란 인민군 미사일에서 오는 위협이다.

미국이 지난 60년 동안 북을 미사일로 위협해오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고, 북이 미국의 미사일위협에 대응하는 억제력으로 구축한 미사일타격력에 대해서만 위협이라고 말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왜곡이다. 북이 일본, 알래스카, 괌, 하와이를 타격할 뿐 아니라 미국 본토의 심장부까지 타격할 강력한 미사일능력을 보유한 것은 미국의 대북미사일위협에 대응한 조치다. 미국은 2002년 1월 8일 언론에 그 존재가 알려진 국가기밀문서 ‘핵태세검토보고(Nuclear Posture Review)’에서 북을 일차적인 핵타격대상으로 규정해놓았고, 몇 척이나 출동하는지 알기 힘든 핵추진 전략핵잠수함들을 동원한 대북핵타격준비태세를 상시적으로 유지해오고 있다. 이를테면, 주일미국부대사 제임스 줌월트(James P. Zumwalt)가 작성하여 2010년 2월 24일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이 ‘위킬릭스(Wikileaks)’에 폭로되었는데, 그 비밀전문에 따르면, 2010년 2월 2일 도쿄에서 진행된 미일안보소위원회(SSC)에서 수전 버살라(Suzanne Basalla) 당시 미국 국방부 일본국장은 “미국의 ‘핵태세검토보고’에 들어있는 핵심문제는 미국 해군 전략잠수함에서 발사되는, 핵탄두를 장착한 토마호크 지상공격미사일(TLAM-N)”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전략은, 미국이 북의 미사일타격력을 미사일방어체계로 약화시키고 자기의 대북미사일타격력만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이 실패를 무릅쓰고 요격미사일발사실험을 계속 강행하면서 대북미사일방어체계의 강화와 확장에 열을 올리는 까닭이 거기에 있으며, 2013년 10월 1일 미국군수뇌부가 참석한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미사일방어체계인 ‘킬 체인(Kill Chain)’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를 “조기에 확보”하겠다고 공언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미국의 새로운 전쟁전략이 북보다는 중국을 직접 겨냥한 대중전쟁전략이라고 생각하거나, 북과 중국을 동시에 겨냥한 2중전쟁전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래의 정보를 살펴보면, 그런 생각이 왜 오판인지 알 수 있다.

2013년 10월 3일 미일안보협의위원회가 발표한 공동성명 ‘더욱 든든한 동맹과 더욱 증대된 책임분담을 향하여(Toward a More Robust Alliance and a Greater Shared Responsibilities)’에서 미국과 일본은 자기들이 직면한 다섯 가지 위협요인을 열거하였는데, “북의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과 인도주의적 관심, 해양영토에서 강제적이고 불안정한 행동, 우주와 사이버공간에서 일어나는 파괴행동, 대량파괴무기 확산, 인위적으로 또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재난”이 그것이다. 미일안보협의위원회 10.3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북의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은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북의 강력한 핵타격수단을 뜻하는 것이고, ‘북에 대한 인도주의적 관심’이란 북에서 발생하는 재난을 상정한 인도주의적 관심을 뜻하는 것이므로 미국과 일본은 ‘북의 붕괴’라는 급변사태를 예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해양영토에서 강제적이고 불안정한 행동’이란 중국이 동중국해에 있는 댜오위다오(釣魚島)를 탈환하려는 군사활동을 뜻하는 것이다.

미일안보협의위원회 10.3 공동성명은 중국의 댜오위다오 무력탈환을 위협요인들 가운데 하나로 지적하였지만, 미국과 일본에게 있어서 중국의 댜오위다오 무력탈환은 북의 강력한 핵타격수단보다는 ‘안보위협’의 우선순위에서 뒤진다. 미국은 중국과의 전면전을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오직 북과의 전면전만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게 있어서, 북은 실제적인 적국이고, 중국은 잠재적인 적국이다. 미국이 자기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국을 중국이 아니라 북이라고 파악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문서가 2013년도에 두 개나 나왔다. 하나는 2013년 3월 22일 미국 연방상원 정보소위원회가 공개한 ‘2011년 1월 5일부터 2013년 1월 3일까지 기간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상원 정보소위원회 보고서(Report of the Select Committee on Intelligence United State Senate Covering the Period January 5, 2011 to January 3, 2013)’인데, 이 문서는 최근 미국의 정보역량이 대북정보활동에 집중되고 있음을 밝혀주었다. 다른 한 문서는 2013년 5월 2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미국 연방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연관된 군사 및 안보 발생사태(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인데, 이 문서는 “북의 지속적인 도발 앞에서 미국은 방심하지 않고 있으며, 역내 동맹국들에 대한 확고부동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미사일방어체계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제


한미안보협의회 10.2 공동성명은 ‘북의 미사일위협’에 대응하여 “포괄적인 동맹의 미사일대응전략”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명시하였다. 미국군수뇌부는 왜 한미동맹의 미사일대응전략이라 하지 않고 포괄적인 동맹의 미사일대응전략이라고 하였을까? 한미안보협의회 10.2 공동성명이 미사일방어체계 구축문제를 언급한 대목에서 ‘포괄적인 동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한미연합군과 미일동맹군을 모두 포괄하는 방대한 미사일방어체계를 수립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사일방어체계는 각종 군사정찰위성들 가운데서도 최첨단성능을 지닌 미사일탐지위성을 운용하는 미국이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지휘하는 특수작전체계다. 미사일탐지위성을 갖지 못한 한국군과 일본자위대는 독자적인 미사일방어체계를 세울 수 없으며,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하위종속단위로 편입당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미사일방어체계를 강화하는 사업에서 미국군은 한국군과 일본자위대를 각각 하위종속단위로 편입시키려는 것이며, ‘북의 미사일위협’에 대응하는 미사일방어체계는 미국이 지휘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서 한미일 3자연합 미사일방어체계로 강화되는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이 3자연합 미사일방어체계를 미사일방어부문을 넘어 전쟁체계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2013년 6월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일 3자회의가 진행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이 워싱턴 3자회의 당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미국, 일본, 한국이 6월 1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관련된 광범위한 문제들을 놓고 의견을 교환하는 성과적인 3자회의를 진행하였다”고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긴밀한 양자 및 3자 조율을 지속적인 기조 위에서 유지하도록 노력하였다”고 자평하였다.

한미안보협의회 10.2 공동성명이 워싱턴 3자회의의 기조에 맞춰 “양 장관은 3자 또는 다자협력을 통한 (줄임) 긴밀한 동맹의 협력을 계속 증진시켜 나가기로 약속하였다”고 밝힌 것은, 전방위로 확대되는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의 임박한 출현을 예고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제는 3자연합 대북미사일방어체계를 중심에 두고 수립되는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다.

한미안보협의회 10.2 공동성명은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일안보협의위원회 10.3 공동성명은 그 체제를 언급하였다. 미일안보협의위원회 10.3 공동성명은 “3자협력(trilateral cooperation)”이라는 소제목을 앉힌 다음, “양국 장관은 역내 동맹국들과 협력국들 사이에서 안보 및 방위의 협력이 가지는 중요성을 확인하였고, 특히 호주와 대한민국과 더불어 진행해온 정기적인 3자대화가 성공적이었음을 주목하였다. 이러한 3자대화는 안보이익을 함께 나누고, 공동의 가치를 증진시키며,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보환경을 향상시킨다”고 지적하고, “양국 장관은 3자협력을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지역동맹국들이 작전, 계획, 능력에 관한 정보를 비롯한 각종 정보의 상호교류가 확대되기를 촉구하였다”고 언급하였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일본자위대를 지휘하지 못하고, 주일미국군사령관은 한국군을 지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국이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수립하려면 미국군사령관이 한국군과 일본자위대를 동시에 지휘하는 새로운 작전지휘체계가 필요하다. 미국이 노리는 새로운 작전지휘체계의 실체가 바로 유엔군사령부다. 미국군사령관이 타고 앉은 유엔군사령부는 한국군과 일본자위대를 한꺼번에 지휘할 수 있는 권능을 미국군사령관에게 부여한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계와 유엔군사령부 존치문제가 직결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서 확대되는 일본자위대의 역할


미국이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세우려면, 미일동맹체제가 규정해놓은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미일안보협의위원회 10.3 공동성명에서 “일본은 미일동맹의 틀 안에서 자기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미국과의 긴밀한 조율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은,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서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는 일본이 미국과 긴밀히 조율하면서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한다고 서술되었으나,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일본의 개별작업이 아니라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세워가는 미국과 일본의 공동작업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언론매체들은 일본이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을 미국이 지지해준다는 식으로 보도하였지만, 미국과 일본이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여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공동작업을 함께 벌인다고 표현해야 옳다.

또한 미일안보협의위원회 10.3 공동성명은 “일본은 국가안보회의를 창설하고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하기 위해 준비하는 중이다. 그와 더불어,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문제, 방위비를 증대하는 문제, 국가방위프로그램지침을 검토하는 문제, 영토주권을 수호하는 능력을 강화하는 문제, 역내활동을 확대하는 문제, 그리고 남아시아나라들을 상대로 능력을 확대하는 문제를 포함한 안보의 법적 근거를 재검토하는 중이다. 미국은 그러한 노력을 환영하고, 일본과 긴밀히 협력할 것임을 강조하였다”고 밝혔다. 이 인용문이 말해주는 것처럼,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 맞게 확대하는 미국과 일본의 공동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 맞게 확대하는 미국과 일본의 공동작업이 언론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때는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2년이다. <아사히신붕> 2004년 12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군과 일본자위대는 한반도전쟁상황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대북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55’를 2002년에 채택하였다. ‘작전계획 5055’는 대북전쟁을 수행하는 미국군을 일본자위대가 일본에서 후방지원하고, 일본에 상륙한 인민군 특수전병력을 상대로 일본자위대가 단독작전을 벌인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국과 일본은 2005년 2월에 이르러 북의 핵개발, 중국-대만 분쟁, 국제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공통전략목표’를 합의하였다.

미국과 일본은 이처럼 공동의 전쟁계획을 세우고, 공동의 전쟁목표를 설정하면서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차츰 확대하더니, 2009년부터는 그 확대작업을 더욱 빠른 속도로 다그치기 시작하였다. <아사히신붕> 2009년 5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월러스 그렉슨(Wallace C. Gregson) 당시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차관보는 일본이 적국의 기지를 공격할 능력을 보유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미국은 모든 방면에서 그 결정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말한 ‘적국의 기지’는 북의 군사기지를 뜻하므로, 미국은 일본자위대의 대북공격력 확보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2002년에 미국과 일본이 공동채택한 대북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55’에서 일본자위대의 역할은 미국군의 후방지원과 일본 영토 안에서의 작전에 한정되었지만, 2009년부터는 일본자위대의 역할이 대북공격으로 확대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일미국부대사 제임스 줌월트가 작성하여 2010년 2월 24일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 따르면, 2010년 2월 2일 도쿄에서 진행된 미일안보소위원회(SSC)에서 월러스 그렉슨 당시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차관보는 “미국은 일본자위대가 괌(Guam)과 아시아에서 주둔과 작전을 확대하기를 고무한다”고 하면서 “미국정부는 미국군과 일본자위대가 괌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하는 기회를 더욱 확대”하고 “일본자위대가 미일합동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괌에 영구주둔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렉슨의 발언은 미국군과 일본자위대가 연합작전으로 대북전쟁연습을 강행하려는 정책적 의사를 반영한 것이다.

2011년 6월 21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안보협의위원회에서 미국과 일본은 2005년 2월에 만들었던 ‘공통전략목표’를 변화된 군사정세에 맞춰 ‘북의 도발’을 저지하는 내용으로 개정하기로 합의하였고, 2012년 8월 3일 리언 패네타(Leon E. Panetta) 당시 미국 국방장관과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당시 일본 방위상은 도쿄에서 회담을 갖고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번에 발표된 미일안보협의위원회 10.3 공동성명은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검토하고, 두 나라의 탄도미사일방어능력을 확장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한반도전쟁상황에 대처하는 내용으로 1997년에 한 차례 개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을 16년 만에 또 다시 개정하려는 목적은,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미국군 후방지원에서 대북무력공격으로 확대하여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완성하려는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대북무력공격으로 확대하려면, 일본은 전범국의 교전권 포기를 규정한 일본 평화헌법 제9조를 폐기하고 교전권의 헌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일본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일본자위대의 교전권을 이른바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말로 슬그머니 대체하였는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집단적 교전권이라고 해야 한다. 개정된 일본헌법에 일본자위대의 집단적 교전권이 명시되면, 일본자위대는 개별적 교전권을 행사하려는 게 아니라 미국군, 한국군과 함께 3자연합 대북전쟁에서 집단적으로 대북교전권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군 전작권 반환과 일본헌법 개정의 상관성

미국이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완성하려면, 일본자위대의 역할만 확대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한국군의 역할도 그 체제에 맞게 확대해야 한다. 미국의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이 바로 그런 확대작업의 핵심내용이다. 미국이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게 반환하려는 것은, 이전에 노무현정권이 주장한 ‘자주국방’을 미국이 용인해주는 게 아니라 미국이 지휘하는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 맞게 한국군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다.

미국이 지휘하는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는 한미연합군과 미일동맹군을 평면적으로 접합시키는 것이 아니다. 미일동맹군을 중심에 두고, 한미연합군을 그 주변에 두는 2중배치구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2중배치구도는 미국이 해군력과 공군력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전략을 수립하였고, 미일동맹군 전력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해군력과 공군력을 중심으로 강화, 확대되어온 사정에 직결된다. 다시 말해서, 인민군의 강력한 지상전력을 상대하여 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승리하지 못할 대북지상전은 미국군과 일본자위대가 극구 기피하는 것인데, 그런 ‘과다출혈 기피영역’을 한국군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면 ‘자주국방’이 실현되는 게 아니라,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 편입된 한국군이 미일동맹군의 하위종속단위로 전락하는 또 다른 굴욕을 겪게 되는 것이다.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되고 주한미국군이 철군하기 전에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아무런 의미가 없고, 한국군에게 되레 굴욕을 안겨줄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13년 6월 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2차 아시아안보회의에 참석한 김관진 국방장관이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에게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시점을 예정된 2015년 12월 1일 이후로 또 다시 연기해달라고 ‘간청’한 것은, 2006년 9월 16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하기로 합의한 이후 남측 정부가 두 차례나 연기하려는 것인데, 그렇게 된 까닭은 한국군이 자기 역할을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 맞게 확대할 준비를 아직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준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은, 무슨 군사장비를 아직 준비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군수뇌부가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서 미일동맹군의 하위종속단위로 편입되는 굴욕을 감수할 심리적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며, 일본의 독도강탈책동과 식민지죄악청산거부로 반일감정이 조성된 조건에서 한국군과 일본자위대의 군사협력이 남측 민중의 저항을 받게 될 우려를 해소할 정치적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2년 6월 26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몰래 통과시킨 것은 국민의 눈을 피해 한국군과 일본자위대의 군사협력이 은밀히 추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예정대로 반환하느냐 아니면 반환시점을 두 번째 연기하느냐 하는 결정은 어디까지나 미국이 내리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 맞게 확대하는 준비가 끝나는 대로, 다시 말해서 일본자위대의 집단적 교전권을 위한 일본헌법개정이 완료되는 대로, 한국군의 연기간청과 상관없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할 것이다. 예정된 반환인가 아니면 반환시점 연기인가 하는 문제를 결정할 미국의 판단기준은, 일본자위대의 역할을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 맞게 확대하는 미국과 일본의 공동작업이 언제 완료되는가 하는 데 설정되어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동중국해 북방해역에서 맴도는 미국 항공모함


미국이 지휘하는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서 미국군의 역할은 핵타격전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붕> 2013년 7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2012년 5월과 2013년 4월에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 소속 관리들을 미국으로 조용히 불러 대북핵타격전을 수행할 전략군사령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지령실, 핵추진 전략잠수함을 각각 보여주었다. 이러한 핵무력 공개활동은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에서 미국군의 역할이 핵타격전에 집중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대북핵타격전에서 미국 항모강습단은 ‘북침돌격대’로 나설 것이다. 도쿄에서 미일안보협의위원회가 진행된 이튿날인 2013년 10월 4일 미국 해군 제7함대 소속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부산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대북핵타격전 돌격대의 임무를 수행할 항공모함이 2013년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실시되는 대북전쟁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항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조지 워싱턴호가 동원된 대북전쟁연습과 관련하여 한국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3년 10월 2일 보도기사에서 두 가지 정보가 눈길을 끈다.

첫째, <연합뉴스> 2013년 10월 2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이번 대북전쟁연습이 남해에서 실시된다는 것이다. 지난 시기 미국 항공모함은 동해 또는 서해로 북상하여 대북전쟁연습을 감행하면서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북을 자극하였지만, 요즈음에는 동해나 서해까지 북상하지 못한다. 전략폭격기의 항모격침용 첨단미사일과 전략잠수함의 항모격침용 핵어뢰로 무장한 인민군의 강력한 타격수단과 공격의지를 두려워하는 미국 항공모함이 북상을 포기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위의 보도기사에는 이번에 조지 워싱턴호가 남해에서 훈련을 실시하게 된다고 쓰여 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주도 동남쪽 수역과 일본 규슈(九州) 서쪽 수역이 만나는 동중국해 북방해역에서 대북전쟁연습을 실시하는 것이다. 남측 국방부 발표내용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3년 5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항공모함 니미츠호(USS Nimitz)를 긴급동원한 대북전쟁연습이 2013년 5월 15일 “제주 동남쪽(일본 규슈 서쪽) 공해상에서 비공개”로 실시되었는데, “미국 항공모함은 훈련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주변해상에서 대기했다”고 한다.

둘째, <연합뉴스> 2013년 10월 2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이번에 조지 워싱턴호를 동원하여 10월 8일부터 사흘 동안 실시되는 대북전쟁연습은 “한미일 해상전력이 참여하는 연합훈련”이다. 이것은 미국 항모강습단을 주력으로 하는 3자연합 대북전쟁연습이 실시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연합뉴스> 2013년 5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동중국해 북방해역에서 항공모함 니미츠호가 대기한 가운데 5월 15일에 실시된 대북전쟁연습도 이번 대북전쟁연습처럼 3자연합 대북전쟁연습이었다. 3자연합 대북전쟁연습은 2012년에도 6월 21일부터 이틀 동안 동중국해 북방해역에서 실시되었고, 8월 7일부터 이틀 동안 하와이 근해에서 또 다시 실시되었다.

3자연합 대북전쟁연습이 처음 실시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8년이다. 미국 <해군보도국(NNS)> 2008년 8월 7일 보도에 따르면, 2008년 8월 5일 미국 미사일순양함을 주축으로 미국 해안경비대 경비함, 일본자위대 구축함, 한국군 구축함이 참가한 가운데 3자연합 해상기동훈련이 하와이 근해에서 실시되었다. 미국은 2008년에 실시한 3자연합 해상기동훈련을 3자연합 대북전쟁연습으로 확대, 강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3자연합 대북전쟁연습을 계속 강행하면서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를 수립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다. 두 가지 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북은 미국의 심장부와 군사전략거점들을 날려버릴 각종 핵타격수단들을 실전배치하였다. 미국이 대북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북이 한 발 먼저 ‘조국통일반미대전’에 돌입할 것이다. 북과 미국의 핵무력 대치상황은 결국 미국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미국은 새로운 대북전쟁체제를 미완성으로 남겨두고 핵전쟁공포에 휘말려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한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제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둘째, 중국이 자기 앞바다로 여기는 동중국해에서 미국이 지휘하는 3자연합 대북전쟁연습이 자꾸 벌어지는 것은 중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하는 심각한 도발행위로 중국의 눈에 비쳐진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제는 중국을 불가피하게 자극하여 북과 중국의 정치적 공조를 더욱 강화시켜줄 것이다. 핵강국들인 북과 중국의 대미공조는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쟁체제를 무력화시킬 억제요인으로 된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로 끝난 것처럼, 미국의 3자연합 대북전쟁체제도 실패로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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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 '동원된' 미성년자, 바로 접니다

[주장] 우리 모두 '내부세력'이 돼 송전탑을 막아내자

13.10.08 20:02l최종 업데이트 13.10.08 20:02l
채동주(coehdw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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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헬기장은 항상 경찰과 대치된 상황입니다.
ⓒ 채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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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이 지난 2일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이후 송전탑 공사가 7일째(8일 기준) 강행되고 있습니다. 공사 강행을 두고 반대 주민들과 공권력의 현장 대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밀양 할머니들은 경찰과 대치한 상황입니다. 공사현장에 있는 할머니들에게 식수와 잠자리를 제공하려는 최소한의 시도조차 모두 봉쇄되어 할머니들은 추위에 떨며 식사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과 공권력은 일방적인 통행금지로 고령의 할머니들은 길도 없는 산길을 몇 시간 헤맵니다.

정부는 현재 전력난 때문에 신고리 3호기를 가동해야 한다고, 그러려면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해 초고압 송전탑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송전탑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그러나 위조된 시험성적서로 장착된 부품을 가진 신고리 3호기가 가동된다면 그 안전성은 보장될 수 없고, 설사 신고리 3호기가 완공된다 하더라도 밀양 송전탑이 필요없다는 게 지난 전문가협의체 조사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신고리 3호기의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해 송전탑 공사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신고리 3호기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한전은 이런 근본적 문제를 갖고도 공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주민들은 8년째 밀양에서 송전탑 공사를 반대해왔고, "보상금은 필요없다. 이 땅에서 살게 해다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건 보상이 아닙니다. 단지 이 땅에서 사는 것입니다. 송전탑이 들어서면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궈온 땅이 무용지물이 됩니다.

초고압 전류가 땅에 흘러 땅은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고, 송전선로 인근 토지는 공시지가가 바로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한해 수확을 하기 전에는 농부는 현금수입이 없기에 농토를 두고 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송전선로 인근의 땅은 재산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담보대출을 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농토에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를 개탄하지 않을 농민이 어디 있을까요?

무너진 펜스로 밀려들어간 사람들...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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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로 공사자재를 운송하고 있다.
ⓒ 채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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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농업고등학교 학생입니다. 학교에서 주로 요즘에는 꽃을 재배해서, 국화를 키우는 방법을 배웁니다. 학교에선 땀 흘려 농사를 짓고, 지역사회와 농촌을 되살릴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며, 자발적으로 농업 정책과 농지문제를 공부해왔습니다. 저는 밀양 송전탑 공사도 학교에서 하는 공부와 연계해 지켜봐 왔습니다. 그러던 도중 10월 3일, 밀양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할머니들이 굉장히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밀양으로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밀양의 아픔은 저의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오전에 금곡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공사자재가 쌓여 있는 곳으로, 헬기가 공사 현장으로 실어 나르는 물건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굉음을 내는 헬기가 매번 오가고, 이 헬기는 공사 강행을 위한 공사 자재를 실어 나릅니다. 헬기로 공사 자재가 운송된다는 건 송전탑 공사가 강행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날 70여명의 밀양시청 직원들이 헬기장 앞에 배치되었고, 400여명의 경찰이 헬기장 입구와 주변 울타리를 봉쇄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약 80명의 주민과 밀양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항의를 이어갔습니다. "헬기 멈춰라!"는 주민의 요구에 한전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헬기가 운송작업을 하니 시위참가자들은 헬기운송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저도 이 대열에 동참해 함께 "헬기 멈춰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시 헬기가 공사 자재를 싣고 뜨는 것을 보며 한 고령의 여성 주민이 오열하며 도로에 드러누웠습니다. 이에 갑자기 경찰들은 달려들어 집회 참여자와 대치하였습니다. 그분은 어디가 편찮아서 도로에 누운 것이 아니라 공사 강행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누운 것인데, 경찰은 "이 사람 구급차로 가야 한다"며 여성 주민을 길에서 '치워버리려' 했습니다. 그래서 시위대가 항의했고, 경찰은 항의하는 집회 참여자를 채증하면서 또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했습니다.

그날 오전 집회에서 경찰과 한전 직원이 불법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채증했습니다. 시위참여자들은 경찰 측에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허술한 펜스 일부가 무너졌고, 그 바람에 뒤 행렬에 떠밀려 제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이 야적장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 연행되었습니다.

이날 체포된 사람은 모두 11명이고, 10월 4일, 경찰은 이들 중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저와 같은 혐의로 공무집행방해, 건조물 침입죄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입니다. 그리고 10월 7일, 법원은 4명 중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국장에게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송전탑 공사를 방해하고, 경찰을 폭행한 혐의입니다. 저도 그날 함께 연행되었지만, 이상홍 국장은 경찰을 폭행하지 않았습니다. 펜스를 넘어가 연행되었지만, 순전히 우발적인 상황에 의해서였지,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장 이상홍 국장을 석방해야 합니다. 이상홍 국장은 죄가 없습니다.

'핵 없는' 안전한 사회, 우리가 원하는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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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할머니들은 8년째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 채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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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언론은 이날 체포된 11명을 모두 '외부세력'이라 규정한 후, 밀양의 할머니들을 선동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가담한 불온세력이라 하였습니다. 그 중, "연행된 시위참가자 중에는 고등학생도 있는 것으로 밝혀져 미성년자마저 집회에 동원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는 내용이 이 사안에 대한 대다수 언론의 관점이었습니다.

이때 "동원된 미성년자"는 저를 지칭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해명하겠습니다. 저는 어느 단체의 지령이나 명령에 따라 밀양에 동원된 게 아닙니다. 어떠한 집단의 명령도 없었습니다. 저는 농사를 배우는 농업고등학교 학생의 입장으로, 농민이 농토를 빼앗긴 밀양 송전탑 상황에 한탄해서 왔을 뿐입니다.

또, 송전탑은 핵발전소의 그늘입니다. 그간 핵발전소 문제가 누누이 지적됐고, 그게 후쿠시마 사고로 드러났습니다. 저는 핵발전소는 폐기해야 하는 게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렇기에 밀양에 온 것입니다.

밀양에 온 많은 사람이 저와 같은 생각입니다. 밀양의 아픔에 공감하고, 밀양과 청도에 세워질 송전탑에 반대해서 온 것입니다. 그들은 저를 두고 동원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밀양경찰서 경찰이 아닌, 각기 다른 경찰서에서 나온 3000명의 경찰 역시 동원된 게 아닌가요.

경찰은 조사 중에 단체에 속해 있는지 계속 물었습니다. 저는 어떠한 단체에도 속해 있지 않고, 밀양의 눈물에 공감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밀양의 눈물에 가슴 아파서 온 우리가 외부세력인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바로 당사자입니다. 앞으로의 전기, 에너지 정책에서 송전탑과 핵발전소가 없어지길 원하고, '핵 없는' 안전한 사회에서 살길 원하는 우리가 바로 당사자입니다. 모두가 평등한 에너지를 안전하게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밀양 송전탑은 밀양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기를 쓰는 게 우리 모두인데,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있겠습니까. 전기는 대도시에서 마구 쓰면서, 전기를 나르는 밀양을, 청도를 두고 마냥 고립시킨다면, 이는 약자가 항상 희생하는 사회구조를 증폭시키는 결과이며, 그것은 결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내부세력입니다.

그럼 진짜 외부세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눈물을 타고 흐르는 이 전기를 두고, 전기를 보내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고, 그건 밀양과 같은 낙후한 지역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한전 아닐까요? 한전은 희생을 강요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더 이상 한전의 거짓 논리에 희생되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에너지 구조를 밀양 할머니들은 요구합니다. 그리고 '지역 분산형 발전'과 같은 다른 에너지구조는 가능합니다.

한전과 경찰, 보수언론이야말로 진짜 '외부세력'

밀양 송전탑 공사에서 진짜 외부세력은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공사를 강행하는 한전과 경찰입니다. 대대손손 물려줄 이 산천초목을 불능의 땅으로 만들고, 철탑을 세워 마을을 파탄내는 한전이야말로 가장 불온한 외부세력입니다. 그리고 한전을 비호하는 경찰이 외부세력입니다. 중립을 지키고, 국민에 봉사할 경찰이 밀양에서는 주민을 폭행하고, 한전의 공사강행을 반대할 경우 모두 체포하고 있습니다.

또 편파보도를 일삼는 언론 또한 외부세력입니다. 이들은 저를 '동원된 미성년자'로 몰아세우며 '외부세력에 밀양이 놀아나고 있다'고 왜곡 보도해 밀양 송전탑 문제의 본질을 흐려놓고 있습니다. 주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공사를 진행하는 한전, 한전을 비호하는 경찰, 사건을 왜곡하는 보수언론, 이들이야말로 진짜 외부세력입니다.

나날이 밀양의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밀양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선 이 문제를 공감하는 '내부세력'의 적극적 참여가 절실합니다. 인권이 짓밟히고, 생존권이 위태로운 현장이 밀양입니다. 어떠한 사회적 공론화의 과정도 없이 강행하는, 소통과 상생이 없는 송전탑 공사는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양심을 가지고 동참한 무고한 시민을 석방해야 합니다.

결국 밀양이 이렇게 된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우리는 지금 전기 없이 살 수 없지만, 그 전기가 누군가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것이라면, 그 삶이 결코 정당한 것일 수 없습니다. 밀양 할머니들의 눈물로 흐르는 전기를 이제 다시 쓰지 않으려면, 우리가 내부세력이 되어 밀양에 동참합시다. 우리 모두가 밀양 주민과 연대해 송전탑을 막아냅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풀무학교 고등부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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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0주년 맞은 평화3000, 박창일 신부

“약속한 말은 남쪽, 북쪽 다 철저히 지켰다”

 

창립 10주년 맞은 평화3000, 박창일 신부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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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08 18: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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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립 10주년을 맞은 평화3000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창일 신부와 4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제일 큰 것은 신뢰인 것 같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약속한 말은 남쪽, 북쪽 다 철저히 지켰다. 그런 신뢰가 있어서 10년간 해오지 않았나 싶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대북정책에서 가장 자주 거론하고 있는 '신뢰'라는 단어가 뜻밖에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인 ‘평화3000’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창일 신부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왔다.

인도적 지원단체인 ‘사단법인 평화3000’(이사장 신명자)은 창립 10주년을 맞아 오는 9일 오후 5시 서울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평화 가득 열돌 잔치’를 펼칠 예정이며, 박창일 신부는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을 되돌아 보며 북측 파트너와의 ‘신뢰’가 가장 중요했다고 회고했다.

조선가톨릭교협회 장재언 위원장과 지금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강지영 전 부위원장과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아온 박 신부는 “일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항상 서로가 신뢰하면서 약속한 것은 진짜 최선을 다해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에 조선카톨릭협회와 평화3000이 어려움 없이 서로 이해하고 일해왔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창립 초기부터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평화’를 모토로 출범한 평화3000은 평양 장충성당 안에 콩우유공장을 건립해 콩우유 원료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대북 인도적 지원에 앞장서 왔으며, 평양시체육단 운동장 인조잔디 리모델링 사업 등 다양한 협력사업을 전개해왔다. 또한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사업도 함께 펼치고 있다.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들의 연합체인 북민협(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신부는 “이명박 정부 때는 ‘안 된다, 안 된다’하면서 ‘어쩔 수 없이 승인’해줬는데, 박근혜 정부 와서는 ‘된다, 된다’하면서 ‘어쩔 수 없이 불허’한다”고 비유하고 “지금 국민들이 볼 때는 인도적 지원을 정부가 승인해주고 활발히 진행되는 줄 알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강조한 북한 영유아 지원사업마저도 “의약품 중심으로 몇 가지만 아주 극히 일부만 진행”되고 있고, 그나마 지원물품을 보낸 몇 단체의 모니터링을 위한 방북마저 막혀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박 신부는 “이산가족 상봉이 안됐기 때문에 방북 승인을 보류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산상봉과 인도적 지원, 특히 모니터링 방북이 무슨 큰 연관이 있는지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며 “지금 파악하기로도 10여개 지원단체에서 물자 반출을 신청한 것으로 알지만 승인조차 안 난 상태”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더 큰 문제는 밀가루를 비롯한 식량은 전혀 반출승인이 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정치상황과 상관없이 인도적 지원은 계속할 수 있어야하고, 통일부나 정부에서 승인, 불허를 가지고 지원을 조정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며 “북민협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은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1988년 9월 건립된 평양 장충성당의 25주년 기념 미사를 위해 방북을 추진 중인 박 신부는 “9월에 감사미사 봉헌을 위해 방북하려했는데 정부에서 연기해 달라고 해 11월 방북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며 “11월에 장충성당에 가게 되면 25주년 감사미사를 북쪽 신자들과 남쪽 신자들과 함께하고 돼지도 몇 마리 잡고 술도 나누면서 남북이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특히 종북이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나쁜 악의 단어”라며 “우리 사회가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정부와 언론이 말하는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다”며 “우리 남한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손바닥 들어다보듯 다 아는 듯이 하는 국민들도 스스로 되돌아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4일 오후 서울 중구 체부동 평화3000 사무실에서 박창일 신부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인조잔디구장,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걸로 만들어줬다”

 

   
▲ 가장 최근 방북한 지난해 11월 18일 평양 장충성당에서 북측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오른쪽 세 번째가 박창일 신부. [자료사진 - 평화3000]
 
   
▲ 2008년 직항편으로 3 차례 대규모 평양.백두산 방문단이 방북했다. [자료사진 - 평화3000]

□ 통일뉴스 : 평화3000 창립 10주년을 축하한다. 10년 전 어떤 계기로 출범하게 됐나?

 

■ 박창일 운영위원장 : 통일운동과 대북 인도적 지원운동을 해오다가 좀 더 안정적으로 인도적 지원을 하고 통일운동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몇 명이 모여 고민하다가 새로 법인을 만들자고 시작한 것이 10년 전이다.

□ 10년 전 창립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비교해 본다면 어떻게 평가하나?

■ 비교가 안 된다. 그때만 하더라도 정부에서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많이 할 때였고, 남북관계가 많이 개선돼 있어 사회적 분위기가 지금보다 훨씬 쉬웠다. 후원회원들도 많이 동의하고 가입했고, 인도적 대북지원을 한다고 얘기하면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대부분 고개를 돌리고 “그놈들 왜 도와줘”라면서 ‘종북’이라는 프레임까지 들어온다. 그런 차이가 있다. 수고한다는 인사를 받다가 10년 만에 빨갱이와 종북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간략히 요약한다면?

■ 첫 번째, 대북 인도적 지원에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평양 장충성당 내에 콩우유공장과 평양에 두부공장 2개를 남북이 함께 만들었다. 땅과 건물은 북에서 제공하고, 설비와 원료는 남에서 대는 합동사업이다.

인도적 지원으로 못자리용 비닐과 비료를 보내는 등 농업 지원사업도 많이 했고 북에 수해가 생기거나 하면 긴급 수해지원도 했다.

인도적 지원 외에도 교류협력사업도 했는데 큰 것이 체육교류였다. 2007년에 평양시체육단축구장 현대화사업을 했다. 남북합동사업으로 평양시체육단 소속 축구장을 인조잔디구장으로 리모델링해 현대화했다. 모든 공사는 북에서 책임지고 남쪽에서는 인조잔디와 우레탄, 페인트 등을 지원했다.

체육교류 중에서도 북에서는 ‘짧은 주로’라고 하는 ‘쇼트 트랙’ 용품지원이 기억에 남는다.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스케이트 날이 칼과 같아서 선수들이 베이는 것을 방지하는 특수 선수복 착용이 필수인데, 일본에서만 제작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에서 제작해 소트 트랙 스케이트복을 보내줘서 북한 선수들이 이태리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장충성당과의 교류사업도 꾸준히 진행했다. 남쪽에서 올라 간 신부와 수녀, 신자들이 북측 신자들과 함께 민족통일과 화해를 위해 미사를 봉헌해 왔다.

□ 다양한 지원사업을 해왔는데 보람도 많을 것 같다.

■ 특별히 2007년도 축구장을 만들어주고 난 다음에 북측 사람들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북은 천연잔디에서 연습을 할 수 없다. 눈이 오고 장마철이 닥치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인조잔디였다.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걸로 만들어줬다. 1년 12달 연습할 수 있게 돼, 북한이 2010년 월드컵에서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 진출이 확정됐을 때 북측 여러 명으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았다. 그 축구장에서 북 선수들이 계속 연습해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장웅 북측 IOC 위원장이 내년도 인천에서 열리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남측 관계자를 만났을 때 우리가 만들어준 축구장 이야기를 또 했다고 들었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잔디구장을 하나 더 만들어줄 의향이 있다. 비정치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서도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 승인해주기 바란다. 순수한 체육교류이고, 지원한 자재들도 한번 본드를 붙여 설치해놓으면 전용될 우려도 전혀 없다.

 

   
▲ 평양시체육단 축구장 인조잔디 리모델링 작업 모습. [자료사진 - 평화3000]
 
   
▲ 성공적으로 리모델링을 마친 축구장 전경. [자료사진 - 평화3000]

□ 10년간의 남북교류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도 많을 것 같다. 한 가지만 소개한다면?

 

■ 축구장 현대화사업을 할 때인데, 개성에서 여러 번 만나서 인조잔디 문제를 놓고 논의했다. 나름대로 좋은 질의 잔디 견본을 가지고 개성에 가서 보여줬다. 북측 김호 체육단 단장이 인조잔디 거의 전문가인데 오케이해서 물자를 보냈다.

인천항에서 남포항으로 보낸 컨테이너를 찾아서 운동장까지 실어다 놓았는데, 그 사이에 김호 단장이 더 좋다는 또 다른 잔디를 발견해냈다. 그래서 더 좋은 잔디를 보내달라는 거다.

다시 협상을 해서 보냈던 잔디를 남포항을 통해 되돌려 보내게 하고 호주에서 새 잔디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우리의 예산이 다시 지원해줄 정도는 안 되니까. 그래서 다시 돌려받고 새 잔디를 보내줬다.

강지영 조선카톨릭교협회 부위원장이 사업하면서 물자를 남쪽에 되돌려 보내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더라. 그만큼 잔디구장을 잘 만들고 싶었던 거다. 김호 단장이 축구장에 대해 대단히 열정적인 사람이라 하나하나 꼼꼼하게 해서 잘 만들어진 거다.

우리 기술자 3명이 한 달 동안 체류하면서 잔디구장을 만들었다. 그것도 원래 4명이 가야하는데 3명이 갔다. 한 명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부인이 갈려면 이혼하자고 해서 결국 못 갔다. 3명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해 좋은 잔디구장을 만들어줄 수 있었다. 그들을 다시 보고 싶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평양으로 가는 직항기를 타고 3번에 걸쳐 대규모 방북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다 다르더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평양에서 비행기 타고 백두산 가서 천지에 올라갔다. 날씨가 너무 깨끗하고 맑아 다들 환호하고 좋아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구름도 있다가 걷혔다가 하는 걸 봐야하는데 못 봤다고 푸념하더라.

또 어떤 분들은 북한 사람들을 보면서 동원한 사람들 아닌가 묻더라. 그래서 “선생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북쪽 사람들이 우리가 뭐 대단하다고 동원까지 했겠습니까”라고 설명해줬다.

정말 좀 더 열리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데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남북관계 발전도 어렵다.

북도 마찬가지다. 오래전에 농장에 갔을 때 농부들을 만났는데 6.15전이니까 그 사람들도 우리를 굉장히 경계했다. 남쪽 사람을 처음 만난데다가 살아온 삶이 있으니까 굉장히 경계했다. 그러나 6.15이후 다시 갔는데 많이 변했더라. 오픈된 거다.

남과 북이 당국이나 정치권은 어떻든 민간인들은 서로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교류에 어려움 겪으면서 해외사업을 많이 해왔다”

 

   
▲ 라오스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내과의 권선옥 이사. [자료사진 - 평화3000]
 
   
▲ 베트남 까마우성에 '기적의 다리'를 완공한 뒤 기념촬영. [자료사진 - 평화3000]

□ 남북간 민간교류가 전면 중단된 이후 평화3000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것 같다.

 

■ 2008년 이명박 정권 들어섰을 때도 대규모 방북을 했다. 직항기 편으로 서울에서 평양으로 갔고, 다시 백두산까지 가서 베개봉호텔에서 하루밤을 묵었다. 5.24조치 직전까지 콩우유공장에 원료를 보냈고, 보낸 물자를 확인하기 위해서 모니터링 방북도 다녀왔다.

이후에 2011년에는 수해지원 때문에 밀가루를 보내고 방북을 한 번 했고, 2012년에도 11월에 평양 장충성당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기념하는 위령성월을 맞아 남북 신자들이 함께 미사하고 기도했다.

그렇지만 대체로 5.24조치 이후 인도적 대북지원은 거의 할 수 없었고, 수해지원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 평화3000은 대북지원 외에도 동남아 등 해외에서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소개해달라.

■ 원래 평화3000을 만들 때 주대상은 북한 어린이 지원이었지만, 제3세계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사업도 처음 만들 때부터의 목표에 포함돼 있었다. 그래서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부터 남북교류에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해외사업을 많이 해왔다.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세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

베트남에는 집 없는 사람들이 많고 다 쓰러져가는 나뭇잎 집도 많다. 무주택자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233채의 집을 지어서 무상공급했고, 메콩강 하류지역에 다리도 2개 놓아줬다. 수천명의 학생들이 등교하는데 두 시간을 돌아가야 했는데 10분 만에 갈 수 있게 됐고, 병원에 가거나 노인들이 다니시기에도 굉장히 도움이 됐다고 감사해 한다.

베트남이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은 어려운 곳이 많아 초등학교를 3채 지어줬고, 백내장 환자 30명의 수술비를 전액 지원했다.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의 영양보충을 위해 분유 등을 계속 지원하고 있고, 의료봉사 3회, 치과봉사 3회를 통해 총 4,500명 정도에게 의료혜택을 줬다.

라오스는 유엔에서 정한 최빈국이고 루앙프라방 지역은 특히 힘든 곳으로 춘궁기에 긴급 식량지원도 했고, 뿡빠오 마을회관과 수도취수시설을 지원했다. 르앙프라방 지역 보건소 3곳을 리모델링 해줬고, 보건소에 조산용 의료장비 7식을 비롯해 기초약품 등을 지원했으며 의료봉사를 2회 가서 1,180명을 진료했다.

루앙프라방 북부국립농림대학에 버섯재배 시설을 리모델링해 주고 버섯종균 배양장비 1식도 기증했다.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대학에서 버섯종균을 배양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싸게 공급해 주민들이 고부가가치를 지닌 버섯을 키워서 시장에 비싸게 팔아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이다.

필리핀에도 리잘주에서 도시빈민 어린이 75명을 위해 공부방을 만들어 학습지도도 하고 무료급식도 지원하고 있다. 학습지도 교사들의 인건비를 우리가 지원하고, 치과봉사를 1회 가서 251명을 진료했으며, 빈민 어린이를 지원하고 있다.

□ 상당히 다양한 제3세계 어린이 지원사업을 펴고 있는데, 재정 조달은 어떻게 하나?

■ 회원들이 다 감당하고, 필요할 때는 1년에 세 번 정도 대규모 모금사업을 한다. 베트남과 라오스, 필리핀 등을 지원해오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지원사업 모금운동은 잘 안 된다. 특히 제3세계 어린이 지원사업, 학교와 사랑의집 지어주는 사업이 반응이 괜찮다.

□ 가톨릭 교회에서도 협조해주나?

■ 평화3000은 일반 단체와 같은 NGO(비정부조직)다. 회원에는 가톨릭 신자도 있지만 아닌 분들도 많다. 운영위원 중에는 목사님도 있고, 회원 중에는 스님도 있다. 내가 신부이다 보니까 혹시 종교조직이 아닌가 궁금해 하기도 하지만 운영이나 모든 면에서 가톨릭과 관계없이 NGO로 활동하고 있다.

□ 북한과 동남아 외에도 활동 영역이 있나?

■ 국내사업도 하고 있다. 강원도 정선과 전북 고창, 서울 두 곳 등 네 곳의 비인가 공부방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비인가 공부방은 지자체로부터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어 굉장히 어려워 매월 운영비를 지원한다.

그 외에 장학사업을 하고 있는데, 해외에는 베트남 초.중.고생 20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고, 라오스 수파누봉 대학교 대학생 10명에게 연간 학비와 기숙사비를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평화통일 분야에서 일하는 활동가나 학생 10명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대북 지원단체들 관계, 오히려 더 좋아진 것 같다”

 

   
▲ 평양 장충성당 안에 콩우유공장을 지어 준공식을 가졌다. [자료사진 - 평화3000]
 
   
▲ 평화3000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도라산 평화기행'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등 평화통일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자료사진 - 평화3000]

□ 인도적 대북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지원단체들이 활로를 공동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 5.24조치 이후 모든 인도적 지원이 급감했을 때 북민협(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중심으로 다시 회원단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전에 인도적 지원단체들 중에서 큰 단체들을 중심으로 10여개 단체 관계자들이 모여서 ‘대화와 소통’이라는 네트워크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서 북민협 내에서 쉽게 접근하거나 토론할 수 없는 내용들을 모여서 계속 논의하고 토의하면서 인도적 지원의 활성화,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지금 평화3000이 북민협 정책위원장 단체이자 부회장 단체다. 정책위를 활성화시켜서 작년과 올해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 단체들을 결집시키고 정보를 공유한다. 특별히 올해에는 몇 년간 대북지원을 못하다보니까 실무능력이 떨어진다. 물자 반출, 방북 모니터링을 어떻게 하는지 실무감각이 많이 떨어져 북민협 차원에서 실무자들과 함께 실무교육도 했다.

또한 각 개별단체들은 통일부와 접촉하면서 물자반출 문제 등을 가지고 일일이 대응하기 힘들다. 혹시 통일부에 세게 이야기했다가 불이익을 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 북민협 차원에서 통일부랑 대화와 의논도 하고, 전 회원 단체들에게 회의를 통해 알려주고 설명해주고 있다.

큰 변화 중 하나는 이명박 정부 전까지는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 서로가 경쟁하다시피 했다. 또 서로가 정보 공유를 전혀 안했다. 다른 단체들의 사업에 대해 대충은 알지만 자세히 몰랐다. 어려움이 닥치니까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얼굴만 알았는데 많은 회의, 특히 정책위 회의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하니까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하는 일과 정보도 교환하고 있다. 북의 움직임이라든지 이런 것도 서로 검토하고 공유할 수 있어 오히려 더 좋아진 것 같다.

□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인도적 대북지원 현황은 어떤가?

■ 이명박 정부 때는 “안 된다, 안 된다”하면서 “어쩔 수 없이 승인”해줬는데, 박근혜 정부 와서는 “된다, 된다”하면서 “어쩔 수 없이 불허”한다는 것이다. 지금 국민들이 볼 때는 인도적 지원을 정부가 승인해주고 활발히 진행되는 줄 알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영유아 지원은 박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이야기했지만 실질적으로 영유아 지원도 의약품 중심으로 몇 가지만 아주 극히 일부만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두 단체만 지원물자를 보내고 모니터링 방북을 다녀왔다. 4단체가 승인이 나서 지원물자를 보냈지만 모니터링 방북이 보류되고 있는 상태다.

물자를 보냈으면 모니터링을 강조하는 정부가 승인하는 것이 당연하고, 단체 입장에서도 정확하게 물자가 갔는지 확인하고 그 결과를 회원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이 안됐기 때문에 방북 승인을 보류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산상봉과 인도적 지원, 특히 모니터링 방북이 무슨 큰 연관이 있는지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 파악하기로도 10여개 지원단체에서 물자 반출을 신청한 것으로 알지만 승인조차 안 난 상태이다.

특히 더 큰 문제는 밀가루를 비롯한 식량은 전혀 반출승인이 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5.24조치 이후 이명박 정부 때도 수해지원 등으로 밀가루를 지원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밀가루 등 식량은 전혀 승인해주지 않고 있다.

모니터링이 힘들다는 이유를 대고 있는데, 사실 민간단체가 보내는 것은 100톤, 200톤, 많아야 1,000톤 수준으로 대규모가 아니다. 영유아를 위해 의약품은 되고 밀가루는 안 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아이들이 먼저 먹어야 하는데, 먹는 것은 승인 안 해주고 기초 의약품만 승인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통일부측도 사실은 이 내용을 잘 알고 있다. 밀가루 지원도 이명박 정부에서 했다는 것도 실무자들은 다 알고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청와대나 관계부처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 같다.

□ 이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나 돌파구가 있나?

■ 북민협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은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다. 정치상황과 상관없이 인도적 지원은 계속할 수 있어야하고, 통일부나 정부에서 승인, 불허를 가지고 지원을 조정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 돈이 한 푼이라도 들어갔으면 정부의 관여를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지만, 정부 돈과 전혀 관계없이 회원들이 마음을 모은 것이다. 왜 정부가 정치적 상황, 특히 이산상봉과 연계하는지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특별법을 만들어서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인도주의 지원은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 일반적으로 법 제정을 통한 문제 해결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결실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 일단은 인도적 지원단체들이 힘든 상태인 것은 사실이고,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잘한다는 여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일반 국민들은 대북 인도적 지원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개별단체들의 노력을 통해 인도적 지원에 관해 여론화시켜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약속한 말은 남쭉, 북쪽 다 철저히 지켰다”

 

   
▲ 2005년 10월 제7차 방북 당시 평양순안공항에 마중나온 강지영 사무국장(오른쪽)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자료사진 - 평화3000]
 
   
▲ 2008년 9월 제26차 방북 당시 신명자 평화3000 이사장(왼쪽 두 번째)과 장재언 조선카톨릭교협회 위원장(오른쪽 두번째) 등이 건배하고 있다. [자료사진 - 평화3000]

□ 북측과 교류 과정에서 북측 인사들과도 많이 만나왔을 텐데, 남북교류가 장기간 차단된 이후 최근 북측의 기류는 어떤가?

■ 지난 5년간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이 위축돼 민화협(민족화해협의회)을 포함한 북쪽 관계자들도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새롭게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이 활성화되면 북쪽에서도 가급적 남쪽 인도단체와 교류단체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많이 이해해주려고 하는 기류가 있는 것 같다.

 

□ 조선카톨릭교협회와 오랫동안 파트너쉽을 가져온 것으로 안다.

■ 1988년 6월에 조선천주교인협의회가 생기고, 평양 장충성당이 그해 9월에 건립됐다. 그래서 장재언 위원장이 위원장을 맡았고, 지금 조평통 서기국장인 강지영이 서기국장이었다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25년동안 천주교인들 모임이 평양에서 쭉 진행돼 왔고, 올해가 장충성당 설립 25주년이다. 9월에 감사미사 봉헌을 위해 방북하려했는데 정부에서 연기해 달라고 해 11월 방북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11월에 장충성당에 가게 되면 25주년 감사미사를 북쪽 신자들과 남쪽 신자들과 함께하고 돼지도 몇 마리 잡고 술도 나누면서 남북이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다.

□ 그간 만나온 장재언 위원장과 강지영 부위원장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면?

■ 강지영 서기국장은 굉장히 샤프하고 명확한 사람이다. 기억력도 뛰어나다. 또한 성실하고 신뢰를 중시한다. 우리들이 일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항상 서로가 신뢰하면서 약속한 것은 진짜 최선을 다해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에 조선카톨릭협회와 평화3000이 어려움 없이 서로 이해하고 일해왔던 것 같다.

장재언 위원장은 굉장히 폭이 큰 사람이다. 이해심이 많고 남쪽 사정도 잘 안다. 항상 가능하면 북측 입장보다는 남쯕 단체를 배려하려 하고 아래 실무자들에게도 남측을 배려하도록 하는 폭넓은 위원장 스타일이다. 제일 큰 것은 신뢰인 것 같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약속한 말은 남쭉, 북쪽 다 철저히 지켰다. 그런 신뢰가 있어서 10년간 해오지 않았나 싶다.

□ 보통 신부님들을 보면 성당을 옮겨다니는 걸로 아는데 10년간 같은 단체를 맡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보인다.

■ 나는 수도회 소속 신부다. 물론 본당 신부도 했었다. 2000년 6.15공동선언 있고 난 다음 본격적으로 사회사목 담당으로 발령받았다. 누군가는 대북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 사업을 전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사회사목으로 발령받아 그 일환으로 평화3000을 전담할 수 있었다.

북 같은 경우 대남쪽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한다.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인도적 지원 단체들은 10년 이상 넘은 사람들도 제법 있지만 천주교 내에서는 많지 않다. 교구신부님들이 민족화해위원회에 많이 있지만 발령이 나면 다른 신부님이 맡게 돼 연속성이 없다. 저는 교구신부가 아니고 수도회 소속이기 때문에 수도회에서 발령을 받아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이전에도 8년간 정의구현사제단에서 통일위원장을 하면서 북이랑 많이 접촉했다.

 

   
▲ 박창일 신부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평화'를 모토로 삼고 있다. 스스로도 신부임을 알리는 어떤 의상도 착용하지 않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평화3000이나 박 신부님를 보면 다른 단체들과는 조금 다른 운영방식이 엿보인다. 단체 운영에 관한 소신 같은 것이 있나?

 

■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평화’가 시작할 때 모토였다. 소위 ‘운동진영’에서 회원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일반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회원들 거의 모두가 운동권 이었던 사람이 아니고 진짜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것이 우리의 굉장한 장점인 것 같다.

많은 단체들이 운동권 내에서 활동하는데 폭이 좁다. 평범한 사람들과 접촉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평화를 추구한다. 그런 측면에서 유연성 있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게 우리 단체의 장점인 것 같다.

운영진이나 회원들 중에는 천주교 신자들도 있지만 스님이나 목사, 심지어 무신론자까지 있고, 종교에 치우침 없이,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천주교 단체라면 천주교 내에서 간섭이 있을 텐데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구조이다.

□ 우리 국민들과 네티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특별히 젊은 친구들, 20대가 걱정 된다. 그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교육과정을 통해 주입을 많이 받은 편이고, 스스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언론과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것을 통해 대북인식이 부정적인 경향이 강해진 것 같다. 개인적인 성향도 자유롭고 젊은 시절의 특성도 있겠지만 젊은 세대의 대북 인식이 나빠지고 관심도 점점 없어지고 있다.

지난 대선 때도 이야기가 좀 나왔지만 대한민국의 경제성장 동력이 거의 떨어졌다. 도약 할 수 있는 큰 카드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이다. 좀 더 남이든 북이든 윈윈(win-win)하고 상생할 수 있는 경제협력 문제에 대해서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는다면 대북인식도 나아질 것이고, 통일문제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소위 우리사회 보수라고 하는 집단들은 북 없이는 못사는 것 같다. 정치집단과 사회집단도 마찬가지다. 북 내부는 모르지만 남쪽 내부에서는 공생관계가 돼 버린 것이다. 무엇을 하더라도 북에만 반대하면 정의인 것처럼 돼 있는 것은 위험한 거다. 이성적, 합리적이 아니라 ‘종북’으로만 몰면 자기들은 합리화되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

특히 종북이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나쁜 악의 단어다. 종북 낙인을 찍어 ‘인간 말종’화를 시킨다. 예수는 형제와 이웃은 물론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했는데 인간 말종으로 만들어 우리 공동체에서 완전히 배제시킨다.

우리 사회가 이를 극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약자 장애인, 노인, 외국인 노동자도 모두 다 안고 가야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도 정치권에서 사용한다고 따라갈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동체를 위해 사라져야 할 용어가 종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언론 환경도 굉장히 좋지 않다. 소위 보수언론도 모든 것을 다 북으로 연관시켜 보도하고 근거 없는 보도도 너무 많다. 북쪽이 아니라 여기 사람을 가지고 그렇게 보도했다면 신문사가 문닫을 정도로 심하다. 민형사 소송에 치일 거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서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정정보도나 형사소송이나 손해배상 들어오는 것 없느니까 좀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근거없이 쏟아내고 있고, 국민들은 큰 언론사 보도니까 사시(斜視)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5천만이 다 대북 전문가들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도 북한에 대해 줄줄 이야기한다. 사실과 진실이 아닌 경우가 굉장히 많다. 열린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가지고 북한에 관한 상을 다 만들어 버린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봐야하고 정부와 언론이 말하는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다. 국민 스스로도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대한민국을 다 알 수 있나. 특히 권력중심이나 지방은 어떤지 잘 모른다. 우리 남한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손바닥 들어다보듯 다 아는 듯이 하는 국민들도 스스로 되돌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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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청의 관료주의 강력 비판"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청의 관료주의 강력 비판"

 

관료들의 아첨 속에 스스로를 방치한 ‘자기도취적인’ 교황들 너무 많았다"

한상봉 기자 | isu@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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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07 10:39:07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임명한 8명의 자문위원회 추기경들과 지난 1일부터 사흘 동안 비공개 회의를 열고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개혁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 안건에는 1989년에 발표된 교황령 <착한 목자>에 대한 재검토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착한 목자>는 교황청 행정조직의 개념과 체계, 업무지침 등을 정리한 법령이어서, 교황이 이 법령의 현대화를 통해 교황청의 관료주의를 개혁하고자 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8명의 자문위원회 추기경들과 지난 1일부터 사흘 동안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사진 출처 / 교황청 유튜브 동영상 youtube.com/vatican 갈무리)

 

 

교황청의 일차적 개혁과제는 ‘관료주의’ 청산
‘성직자 중심주의는 그리스도교와 관련 없다’

 

회의에 앞서, 교황은 지난 1일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La Repubblica)>의 칼럼니스트 유제니오 스칼파리와 인터뷰에서 꾸리아(Curia)라고 불리는 교황청 관료조직이 교황직 수행에 가장 큰 걸림돌임을 솔직하게 전했다. 교황은 인터뷰에서 “긴 교회 역사에서 보편교회가 지향해야 할 더 큰 사명들에 집중하기보다는 바티칸에서 일하는 관료들의 아첨 속에 스스로를 방치한 ‘자기도취적인’ 교황들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교황은 “교황청 관료조직이야말로 교황직 수행의 가장 나쁜 영향의 근원지”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현재도 “너무 바티칸 중심적”이라고 말하며, 교황청이 주로 교황청의 이해관계를 돌보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세속적인 문제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처럼 바티칸 중심적인 관점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서 소홀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나는 이런 관점에 동의하지 않으며, 이 문제점을 바꾸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이며, 반드시 그런 존재로 되돌아가야 한다”면서 “영혼을 돌보는 사명을 맡은 사제와 다른 사목자들, 주교들은 하느님의 백성들을 섬겨야 하며, 교황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교황청은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런 교회를 섬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성직주의와 관련해 “나는 ‘성직자 중심주의자’를 만나면, 어느새 반(反)성직주의자인 나를 발견하게 된다”면서 “성직자 중심주의는 그리스도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단언했다. 덧붙여 “비(非) 유다인, 이교도,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신 바오로 사도가 이 점을 우리에게 제일 먼저 가르쳤다”고 말했다.

 

“교황직 수락 전 거부할 마음도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 “제대로 실현하고 싶어”

 

인터뷰에서 교황은 자신의 신앙과 프란치스코 성인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교황은 “하느님은 비록 어둠을 해소하지는 않으시지만 어둠을 비추시는 빛이요, 우리 모두 안에 있는 신성한 빛의 불꽃”이라며 “인류라는 종은 끝이 있겠지만 하느님은 끝이 없으신 분이요, 그런 점에서 하느님은 모든 영혼 속에 스며들고, 모든 이들 가운데 계실 분”이라고 말했다.

 

또한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교황직 수락을 주저한 순간도 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교황직을 수락하기에 앞서 나는 스스로 물어보았습니다. 과연 내가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가 있는 방 옆에서 몇 분 정도를 보낼 수 있는지. 머리가 온통 하얘지더니 커다란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불안감을 떨치고 긴장을 풀기 위해 나는 눈을 감고서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을 지워버렸습니다. 심지어는 전례 절차에서 허용되는 대로 수락을 거부하겠다는 생각조차 지워버렸습니다. 눈을 감고서 더 이상 불안한 감정이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 순간 나는 커다란 빛으로 채워졌습니다. 그 빛은 잠깐일 뿐이었지만, 내게는 매우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 빛이 사라지자 나는 홀연히 일어나서 추기경들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가서 수락을 의미하는 테이블 앞으로 갔지요. 나는 서명을 했고 시종 담당 추기경이 연서를 하였는데, 그때 발코니에 ‘새 교황이 나셨다’는 문구가 내걸렸죠.”

 

이번 인터뷰에서 교황은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실제적으로 실현할 의지가 있음을 드러냈다. 교황은 교회의 목적이 남을 ‘개종’시키는 데 있지 않으며,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회복시켜주고, 노인들을 도우며, 미래를 향해 열려 있고, 사랑을 전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 더 가난해야 한다”며 “우리는 배제된 자들을 다시 품고, 평화를 설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바오로 6세 교황과 요한 23세 교황의 영감 속에서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의 정신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현대 문화에 개방적이 되기를 결의하였다”고 말했다. 교황은, 그럼에도 그동안 가톨릭교회가 교회일치운동과 비신자들과의 대화에서 별다르게 진전시킨 게 거의 없다면서 “나는 그 일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겸손한 야심이 있다”고 밝혔다.

 

“상명하복식 아닌 수평적 조직 갖춘 교회가 시작된다”

 

 

   
▲ 산 다미아노 성당 ⓒ김용길 기자

프란치스코 성인에 관해 교황은, 먼저 “나는 신비주의자들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의 삶 여러 측면에서 분명히 ‘신비주의적’이었다면서, “나 자신은 신비주의의 소명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말이 갖는 심오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황이 생각하는 신비주의자는 “모름지기 스스로 행위와 사실들, 목표와 심지어 사목적 사명까지 벗어던지고 성서의 팔복(八福)과 교감하는 데까지 향상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인을 “그분은 순례자이자 선교사이며, 시인이자 예언자였으며, 신비주의자였다”면서 “그분은 당신 안에서 악을 발견하셨고, 그것을 뿌리 뽑았다. 그분은 자연과 동물, 잔디밭 위의 풀잎과 하늘을 나는 새들을 사랑하셨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분은 사람들, 아이들, 노인들, 여성들을 사랑하셨다. 그분은 우리가 일찍이 말했던 아가페적 사랑의 가장 빛나는 모범”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자신이 프란치스코와 같은 거룩한 사람은 아니지만, 교회개혁을 위해 선임한 8명의 자문위원 추기경들과 함께 수평적인 조직을 갖춘 교회를 이루어 갈 것이라고 전했다.

 

“나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아닙니다. 그분 같은 힘이나 거룩함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로마의 주교요, 가톨릭 세계의 교황입니다. 제가 내린 첫 번째 결정은 8명의 추기경들을 저의 자문위원으로 임명한 일입니다. 신하가 아니라 현명한 분들이 저와 느낌을 공유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단지 상명하복식이 아닌 수평적인 조직을 갖춘 교회의 시작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개혁을 위한 8인 위원회를 마치고, 4일 프란치스코 성인이 활동했던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주의 아시시를 방문했다. 교황은 아시시에서 람페두사 섬 인근 해역에서 숨진 수백 명의 아프리카 난민들을 생각하며 “오늘은 통곡의 날”이라면서, “수많은 사람이 노예 상태와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쳐야 하는 사실에 무관심한 세상”을 개탄했다. 이어 교회와 인간이 허영과 자만으로 연결된 세속적인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며 “오늘 아시시를 방문한 것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사람들을 사랑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참고 기사 번역 제공 / 배우휘 편집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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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땅 54%가 콘크리트와 시멘트, 물 안 빠져

서울 땅 54%가 콘크리트와 시멘트, 물 안 빠져

 
김정수 2013. 10. 07
조회수 775추천수 0
 

전국 땅은 7.9%…청계천은 71.5%나, 지자체 가운데는 부천시가 61.7%로 최고

1970년대 비해 2.6배 늘어, 도시침수·열섬화·수질고갈 불러…선진국은 빗물요금제 등 대책

 

04794686_P_0_김태형.jpg » 서울의 고층빌딩 숲. 산과 한강을 빼면 빗물이 침투할 땅이 별로 없다. 사진=김태형 기자

 

우리 국토의 7.9%가 건물, 콘크리트, 아스팔트, 보도블록 등으로 덮여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는 ‘불투수 지면’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 국토의 70%가량을 차지하는 산지와 내륙 수면 등을 빼고 계산하면 이 비율은 22.4%에 이른다.
 

환경부는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용도지역·지구도, 수치지적도 등을 활용해 전 국토의 불투수 면적률을 조사한 결과, 1970년대에 비해 2.6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7.9%로 집계됐다고 7일 발표했다.

 

불투수 면적률은 유역 내 하천의 수질과 수생태계 건강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지표이지만, 지금까지 현황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환경부는 밝혔다.
 

01264561_P_0.jpg » 보도블럭 틈을 비집고 간신히 돋아난 식물. 사진=강철규 기자

 

조사 결과, 전국에서 불투수 면적 비율이 가장 높은 지자체는 경기도 부천시로 나타났다. 부천시는 전체 지표면의 61.7%가 건물, 도로, 광장 등으로 덮여 빗물이 스며들 수 없는 상태였다.

 

그 다음으로 서울시 54.4%, 경기 수원시 49.3%, 전남 목포시 46.3%, 경기 광명시 43.9% 등이 뒤따랐다. 불투수 면적률이 낮은 지역은 인제군 1.5%, 화천군 1.7%, 정선군 1.8%, 영양군 1.8% 등 주로 산지 비율이 높고 개발이 덜 이뤄진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지자체들로 나타났다.

 

rain.jpg
 

4대강 유역별로 보면, 117개 중권역 가운데서는 한강 서울 권역이 35.6%로 불투수 면적률이 가장 높았고, 부산 수영강 권역 31.8%, 한강 고양권역 26.7%, 울산·양산의 회야강 권역 24.2% 순으로 나타났다.

 

850개 소·권역 단위에서는 서울 청계천 유역이 71.5%로 가장 높았고, 인천 공촌천 67.3%, 서울 안양천 하류 66.5%, 서울 홍제천 합류 전 61.5%, 대구 진천천 61.0% 순으로 높았다.
 

01193954_P_0.jpg » 청계천 주변의 모습. 복원한 개울을 빼면 전국에서 비가 가장 스며들기 힘든 곳이다. 사진=이정아 기자

 

국내외 연구 결과를 보면, 불투수 면적의 확대는 자연의 물 순환구조를 왜곡해 도시 침수를 일으키고, 수질 악화, 하천 생물종 다양성 저하, 지하수 고갈, 도시의 열섬현상 심화 등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 관계자는 “선진국들에서는 불투수 지면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개발사업이나 건축물의 불투수 면적에 비례해 부담금을 물리는 빗물요금제, 유역 내 불투수 면적의 상한을 설정해 관리하는 불투수 면적 총량제 등을 시행하고 있다”며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와 같은 불투수 면적 관리 제도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빗물 침투를 늘리는 11가지 요소 기술(자료=환경부)

 

□ 식생체류지

 

rain1.jpg » 토양에 의한 여과, 생화학적 반응, 침투 및 저류 등의 방법으로 강우유출수를 조절하는 식생으로 덮인 소규모의 저류시설.

 

옥상녹화

 

rain2.jpg » 강우유출수를 옥상에서 차집하여, 여과, 증발, 저류함으로써 도시화된 지역의 유출을 저감하는 기술요소. 도심 내 열섬해소 효과, 휴게 공간 제공 등 부가적인 편익 창출.

 

나무 여과장치

 

rain3.jpg » 가로수 하부에 여과부가 포함된 구조물(콘크리트 박스)을 매립하여 강우시 유출되는 우수를 유입시킨 후 여과, 침투 유도.

 

식물 재배 화분

 

rain4.jpg » 도심 녹지공간이나 기존 수목이 식재된 화분 등의 공간을 활용하여 우수를 저류, 체류 할 수 있는 시설물로 지피식물, 관목류 등의 식재를 통해 녹지기능과 우수관리기능을 확보.

 

식생수로

 

rain5.jpg » 배수 구조물로서 토양에 의한 여과, 생화학적 반응, 침투 및 저류 등의 방법으로 강우유출수를 조절하는 식생으로 덮인 수로.

 

식생 여과대

 

rain6.jpg » 자갈 및 식생활착이 유리한 토양으로 구성되며 강우유출수를 감소시키고 사면안정과 함께 여과기능을 수행, 수질개선 및 도심내 녹지공간 기능.

 

침투 도랑

 

rain7.jpg » 자갈, 쇄석 등 공극이 많은 재료로 채워진 형태의 도랑으로 강우시 유출수를 담아두고 토양으로 침투시키는 기술요소.

 

침투통

 

rain8.jpg » 자갈 또는 돌 등으로 채워져 있고 건축물의 홈통과 연결되어 있거나 불투수면의 유출수가 유입될 수 있도록 설치되어 토양으로 침투시키는 기술요소

 

투수성 포장

 

rain9.jpg » 강우유출수와 오염물질 저감을 위해 다공성 아스팔트 ․ 콘크리트 ․ 투수블록 등과 쇄석의 공극을 통과하여 강우유출수를 토양에 침투시키고 오염물질을 저감하는 기술요소.

 

모래 여과장치

 

rain10.jpg » 불투수면의 강우유출수를 모래여과를 통해 유출수내 협잡물 및 부유물질을 제거하여 수질을 개선시키는 기술요소.

 

빗물통

 

rain11.jpg » 지붕 유출수를 이용하기 위해 설치되는 저류시설로 소규모의 강우에 대해서 유출량 저감과 대체용수 확보. 집수된 물은 조경용수, 화장실 세척수 등으로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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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길 포기한 종편, 또 기회 줘야 하나"

[종편 생존 전략 ⑥ ·끝] 종편 재승인 심사 전망은?

서어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0-07 오전 10:37:12

 

 

종합편성 채널(이하 종편)이 탄생한 지 어느덧 두 해가 지나가고 있다. 길지 않은 종편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영광스럽다기보단 그렇지 않은 장면이 더 많았다. 탄생 과정부터 불법 특혜 의혹으로 얼룩졌고, 개국 이후 한동안은 기술적 이유 등으로 '수준 미달 방송'이라며 조롱의 대상이 됐다. 기술적 한계 등이 보완이 되고 나선 선정성 논란에 시달렸다.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자극적인 보도와 발언을 내보냈지만 애석하게도 괄목할만한 시청률은 나오지 않았다. 혹자는 이런 종편을 '귀태(鬼胎)', 즉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방송이라고 했다.

어쨌거나 종편은 이미 탄생했다. 시청률이 낮다고 하지만 고정 시청층이 생겼고, 설령 부정적인 내용이라 할지라도 정치권에서도 지속적으로 언급이 나오고 있다. 이미 힘을 가진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다. 태어나기 전으로 되돌릴 순 없지만, 생명 연장을 멈출 방법은 있다. 단 하나, 재승인 심사다. 바로 내년 3월이다. 까딱 잘못했다간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이미 재승인 심사 기준안을 확정하고 본격적인 심사만 남겨놓은 방송통신위원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결국 정부 주도의 위원회 시스템 하에서 재승인 심사 결과는 지난번 첫 심사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워낙 종편들이 심사 기준에 못 미치는 부분이 많아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공공재 포기… 모회사 따라 여론몰이 나섰다"

방송통신위원회는 5일 전체회의에서 '2014년도 종합편성·보도전문 방송 채널사용사업자 재승인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심사 항목은 다음과 같다. 방송평가위원회의 방송평가(350점),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230점),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계획의 적절성(160), 재정 및 기술적 능력(80점) 등이다. 총점은 1000점으로, 방통위는 지상파와 마찬가지로 650점 미만 사업자에 대해 '조건부 재승인' 또는 '재승인 거부'를 의결할 수 있다.

다만, 공정성과 콘텐츠 편성 항목 배점에서 50%에 미달하면 '조건부 재승인' 또는 '재승인 거부'를 받게 된다. 이 항목은 비계량 평가로 향후 심사위원회가 얼마나 공정하게 꾸려지는지 운영이 투명하게 이뤄지는지 여부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또 최근 종편의 공정성 논란 및 획일적인 콘텐츠 편성의 문제점을 고려해 별도의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핵심항목인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과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계획의 적절성 항목에서 배점의 50%에 미치지 못 하면 총점과 상관없이 '조건부 재승인' 또는 '재승인 거부'를 의결할 수 있게 했다.
 

▲ 종합편성채널 로고들


심사 항목이 많고, 채점 방식도 복잡하다. 그러나 결국 핵심은 종편이 방송으로서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느냐에 맞춰져 있다.

방송은 국가의 허가를 받아 운영되는 사업으로 공공재 성격이 짙다. 때문에 신문과 달리 공공성·공익성이 강하게 요구된다. 재승인 심사 기준안에서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 부문이 핵심항목으로 선정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정부가 종편 출범의 취지로 앞세웠던 '여론의 다양성'과도 일맥상통하는 문제다.

전문가들은 일단 종편이 사회 공공재 역할을 수행했는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이희완 사무처장은 종편의 가장 큰 문제에 대해 공공재 성격을 포기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 사무처장은 "지난 5.18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보도라든지,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혐의와 관련한 보도, 최근 채동욱 전 검찰총장 관련 보도에서 보여준 행태를 봤을 때,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과 전혀 관련 없는 선정적 방송 행태를 보여서 결국 여론을 호도해 전면적으로 나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권에 유리한 이슈들을 계속적으로 제기하면서 사회를 보수화시키려고 하는 첨병 노릇을 했다"고 말했다.

심재웅 숙명여대 교수도 종편 출범 이후 큰 변화에 대해 "우리나라 50대 이상 보수층의 정치적 보수성이 더 두꺼워졌다"고 짚었다. 심 교수는 "종편의 뉴스나 토크쇼를 통해 보수적인 목소리들이 전달되면서 정치적 보수층은 자신들의 생각을 재확인하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데 탄력을 받고 있다. 그 결과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던 세대 간, 이념 간 갈등이 더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의 목소리는 방송매체를 통해 강화되는 데 반해, 진보의 목소리는 인터넷 방송 등 대안적 공간으로 이동한 것도 한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여론 다양성을 도모하기는커녕 오히려 쏠림 현상을 조장해 공공성을 해친 배경에는, 종편 대부분의 최대 주주로 보수 신문사가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사무처장은 "최근 언론 단체가 함께 3차례에 걸쳐 내보낸 자료를 보면, 신문사와 방송사 간 긴밀한 유착관계가 유지되고 있고, 보수 신문을 이끌었던 이들이 결국 방송에서도 결정권을 갖고 있다"며 "애초에 종편 방송이 나올 수 있었던 건, 그 보수 신문사들이 언론 악법을 통과시켜주는 길을 터줬기 때문에 방송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공개한 종편4사 비밀TF 회의록에 따르면, 종편 4사는 각 사의 팀장급이 참석해 지난 5월 2차례 회의를 가졌다. 회의록에는 각 종편의 경영진이 종편4사 공조를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 있으며, "최종 의사결정은 발행편집인총괄 모임에서 결정"한다는 대목이 등장했다.
 

▲ 시민단체의 종편 심사 자료 분석이 3차에 이르면서 종편 심사 과정의 문제점들이 무더기로 불거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8월 5일 종편 승인심사 검증 태스크포스 2차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종합편성 채널' 이름 값 못한 부실 방송"

또 하나의 핵심 항목인 '콘텐츠 편성' 부문에서도, 종편이 말 그대로 '종합편성 채널'이었는지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다. 비교적 제작비가 적게 드는 보도, 시사 프로그램 제작에 편중하면서 프로그램 다양성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민언련에서 종편 감시 역할을 맡은 유민지 활동가는 "TV조선과 채널A는 종합편성 채널이라고 볼 수 없는 형태의 구성으로 돼 있다. 예능과 보도, 드라마,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방통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종편사들은 방송 첫해 동안 방송시간의 절반 이상을 재방송으로 채웠고, 편성의 30~50%를 보도 프로그램으로 메운 것으로 밝혀졌다. 보도채널이었던 MBN은 방통위에 제출한 사업계획에선 보도 프로그램의 편성 비율을 22.7%로 적어냈으나 실제로는 편성의 절반이 넘는 51.5%를 보도에 할애했다. TV조선과 채널A도 보도 프로그램 편성비율을 각각 24.8%, 23.6%로 적어냈지만 실제 35.9%, 34.1%를 보도로 채웠다. 방통위는 이에 따라 각 종편사들에 대해 '승인신청 당시의 사업계획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콘텐츠 제작, 편성 부문에선 JTBC의 노력을 높게 샀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JTBC는 타 종편에 비해 오락 부문에 치중했었고, 편성 주 타겟을 나이 든 시청자 층으로 잡지 않았다. 오락 강화를 하면서도 젊은 층에 맞춰져 있었다"며 "그런데 콘텐츠에 투자하면서도 시청률은 나오지 않아 종편 4사 중에 손실액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JTBC는 최소한 편성 면에선 '종편'의 의미에 가까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다른 종편들도 JTBC처럼 편성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종편은 대자본을 투입한 콘텐츠를 내놨으나, 대부분의 시청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JTBC의 <소녀시대와 위험한 소년들>. ⓒJTBC 제공


재정 능력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종편의 출범으로 '방송시장 규모는 1조6000억 원, 생산유발효과는 2조9000억 원, 취업유발효과는 2만1000명 늘어난다'던 정부 호언과는 달리, 대다수 종편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적자를 안고 있는 상태서 손해액이 매일 눈덩이처럼 불어나 콘텐츠 투자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셈이다.

지난 7월 방통위가 공개한 종편 4사들의 재무 현황에 따르면. JTBC가 1326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채널A가 619억 원 손실, TV조선이 553억 원 손실, MBN이 256억 원 손실을 기록했다. 종편 4사의 손실 합계액은 2754억 원에 달한다. 종편에 대한 정부 투자가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종편의 적자 경영은 미디어 환경 전체에도 큰 영향을 준다. 특히 광고 시장을 황폐화시킨다는 지적이다. 원칙대로라면 종편이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니 그에 맞게 광고비도 적게 책정돼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종편 개국 당시 종편은 어떤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채 광고주들에게 지상파의 70% 수준의 광고단가를 요구했다. 채널에이는 아예 공개적으로 '보도프로그램 광고상품 패키지'라는 대기업 대상 광고 영업 프로그램을 홍보하기도 했다. "뉴스 등 보도상품을 묶은 패키지를 구매하면 30분짜리 광고주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작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종편은 출범 초반 KT 그룹으로부터 각각 20억씩을 받았고, JTBC와 채널A는 현대 그룹으로부터 현대상선 15억 원, 현대증권 11억2500만 원 등 어마어마한 금액을 얻어냈다.

종편들은 최근에도 부족한 자본금을 채우기 위해 모회사인 보수 신문사의 영향력을 앞세워 대기업을 압박하고, 대기업은 '울며 겨자 먹기'로 광고를 준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고가의 광고 단가를 요구하고, 대신 광고 횟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최대한 대기업의 자본력을 흡수한다는 뒷말도 나온다.

이 사무처장은 종편의 재무 상황이 좀 더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편들이 적자를 보고 있다는 건 지표상으로 나오고 있지만 어느 정도까지 어려움을 겪는지 정보가 거의 드러나고 있지 않다"며 "직접 영업을 하면서 얼마나 불법적인 일을 했는지 소문들만 있고 증거는 안 나오는 상황이다. 그만큼 광고주들이 괴로움이 많을 텐데 '조중동 방송'을 정권이 봐주는 상황이니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추측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종편들이 그렇게 곤경에 처해있지 않을 수 있다. 저마다 '힘들다'고 하는 건 그만큼의 특혜를 달라는 요구, 즉 생존을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상파 재허가 때와는 여론 달라… 심사 제대로 해야"

방통위가 제시한 안에만 비춰봐도 종편이 재승인을 받기에 부적격이란 의견이 많다. 한 언론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방송이기를 포기한 방송들이다. 이번 재승인에서 통과하면 그렇지 않아도 방종을 일삼던 그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문제들에도 내년 재승인 심사에서 실제로 탈락하는 곳은 나오지 않을 것이란 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정부 기관인 방통위가 재승인을 탈락시키는 위험부담이 높은 선택을 하기 쉽지 않으리라는 것. 방통위가 이번에 확정한 심사기준안이 연구반에서 기존에 제시했던 안보다 다소 후퇴한 것도 그 방증이라는 설명이다. 당초 연구반은 공정성과 편성 등 두 항목의 과락 기준을 60%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방통위 사무처가 이를 40%로 낮추자고 주장했고, 결국 50%로 절충한 안이 최종 확정됐다.

방통위 재허가 심사안 연구반에 참여한 한 교수는 "상당 부분이 결국 심사위원 구성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달려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확정된 안 자체에는 '재승인 거부'도 포함돼있다. 심사위원들이 당시 판단할 때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한다면 재승인 거부까지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종편 재승인 심사 관련해선 심사위원 구성에 눈과 귀가 쏠릴 예정이다. 방통위는 내년 1월중 심사위원회를 심사위원장 1인과 방송, 법률, 경영·회계 등 전문 분야별 심사위원 14인으로 구성하고 2월 중 재승인 여부를 의결할 예정이다.

추 사무총장은 "지상파도 종편인데, 지상파 재허가 땐 이렇게까지 심사를 잘 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다"며, "재승인 심사에 대한 요구가 강한 건, 첫 심사 당시 제대로 된 방송 사업에 어울리는 자본, 방송 능력 등에 대한 검증이 없었고, 종편이 나왔을 때 전체 방송 환경이 괜찮는가 하는 사전적인 연구나 검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첫 심사 때의 공백을 제대로 살펴보라는 것이고, 현재 나온 재승인심사 기준안을 두고서도 말이 많지만 최소한 그 기준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서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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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밀양송전탑 주민 안전이 최우선”

“국민 불통 초래하는 잘못된 정책… 공사 못하도록 함께 싸울 것”
 
황경의, 백운종 기자
기사입력: 2013/10/07 [15:18]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현장을 방문한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 © 진보정치 백운종 기자
 
▲ 경찰측에 주민안전을 최우선시할 것을 당부하는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 © 진보정치 백운종 기자

▲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밀양 주민들 © 진보정치 백운종 기자



이상규 의원이 지난 5일 오후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을 찾았다. 이 의원은 부북면과 상동면 경계지점에 있는 126번 송전탑 건설 현장과 단장면 미촌리 금곡 헬기장(신고리 북경남 송전선로 건설공사 4공구 건설현장), 단장면 동화전마을에 있는 96번 현장을 차례로 방문, 경찰의 인권 침해 상황 등을 살폈다.

이 의원은 주민들을 만나 “어머니들, 이렇게 고생하셔서 어떡하시냐”고 위로한 뒤 “공사를 저지시키도록 야당이 함께 노력하겠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도록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약속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인 이 의원은 김종양 경남지방경찰청장, 김수환 밀양경찰서장, 현장 경찰 책임자들을 만나 “주민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현장에서 인권 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힘써 달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이 처음 찾은 126번 현장은 경찰의 검문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을 동행한 인권활동가는 당뇨, 혈압 등의 지병이 있는 주민에게 경찰이 약 공급, 식사 공급 등을 차단해 인권 침해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이 의원은 현장을 관리하는 경찰 감독에게 “10월20일쯤 지방 국감이 경남도를 방문한다. 여기 내려오는 국감팀이 여기 현장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인권 침해가 있으면 찬반 논란을 넘어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킬 것”이라며 “주민 안전 보장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경찰과 대치중이던 주민은 이 의원에게 “농민이 가장 바쁠 시기를 노린 것”이라며 “철새도 보호하는데 우리는 짐승 취급도 안 한다. 정부에서 국민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성토했다. 또 다른 주민들도 “분하고 억울해서 죽을 지경이다”, “우리는 국민도 아니다”, “저들은 한전 경찰이다. 소화기를 뿌려 밥도 못 먹게 했다”고 울분을 쏟아내며 “공사를 중단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이 의원은 “어르신들 죽게 만들어놓고 공사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것을 저지시켜야 하는데 야당이 힘이 없어 못 박아 죄송하다”면서 “어떻게든지 막도록 노력하겠다”고 위로했다. 이어 이 의원은 “지금 이런 상태로 박근혜 정부가 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 통행하는 것은 자신이 얘기한 국민 소통, 국민 행복을 무시한 것”이라며 “야당은 국민의 힘을 결집시켜 원내외에서 투쟁을 만들어 박근혜 정부에 따끔한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의원이 두 번째로 찾은 곳은 단장면 금곡 헬기장으로 불리는 신고리 북경남 송전선로 건설공사 4공구 건설현장 사무소다. 지난 2일 통합진보당 경남도당이 이곳에서 헬기로 송전탑 건설 현장에 자재를 실어 나르는 것을 막으면서 투쟁이 불붙은 곳이다. 이날 오전부터 여러 차례 행정대집행 기운이 감돌아 주민과 탈핵희망버스 등 연대세력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이들 앞에 선 이 의원은 “도대체 왜 전기를 왜 만드는 거냐. 국민의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위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인데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이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잡아 가두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이 자리에 와서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경남 유권자들의 피맺힌 절규를 들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국민의 고통, 어르신의 절규를 외면하는 그런 정치, 그런 대통령은 우리에게 필요 없다. 이제 모든 양심세력이 하나로 똘똘 뭉치고 있다. 기초연금 공약 파기에 어르신들이 분노로 함께 하고 있다. 밀양의 투쟁이, 평택 쌍용차 투쟁이 차오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된 것이 분명해지는 이 마당에 양심 있는 모든 국민이 투쟁에 나서고 있다”며 “이곳 밀양에서부터 투쟁의 불길을 활활 지펴 올리자. 통합진보당 함께 싸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또 이 의원은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에게 “어르신들이 경찰과 충돌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축적돼 비관해서 극단적 선택을 할까 봐 걱정”이라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써 달라. 주민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나서 이 의원은 기자들에게 “기가 막힌 상황이다. 연로하신 어머니들이 아무 것도 없는 채로 공사 현장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상태다. 경찰병력이 최대한 인권 침해 소지가 없게 공사를 진행하도록 한다고 하는데 어머니들의 울부짖는 절규에 가슴이 아팠다”고 현장을 둘러본 심경을 밝혔다.

이 의원은 “지금까지 국회에서 적지 않은 노력을 해왔고 현장에서 시민단체, 인권단체가 힘을 모아 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왔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공사 강행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라며 “이것은 말로는 국민 소통, 국민 행복을 얘기면서 실제로는 국민 불통을 초래하는 잘못된 정책이다. 전체 야권이 공사를 막도록 힘을 모아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인권 침해와 관련해선 “현장에서 만난 어머니들의 팔, 다리가 성한 데가 없었다. 멍투성이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경찰은 최소한 인권 보장,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현장 곳곳에서 여러 갈등과 충돌이 벌어지고 있어 걱정이다. 주민의 안전이 보장된 상황에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마지막으로 단장면 동화전마을 주민과 경남도당 당원들이 지키고 있는 96번 현장을 찾았다. 이곳은 비탈진 산길을 30분가량 올라가야 하는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의원은 강병기 경남도당 위원장과 함께 “우리는 목숨 걸고 막겠다고 무덤을 팠다”는 주민의 얘기를 들으면서 함께 현장을 둘러봤다.
<진보정치 황경의기자>

 
국민 불통 초래하는 잘못된 정책과 함께 싸울 의사를 밝히는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 © 진보정치 백운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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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국정원 전 간부, '증인'에서 '피고인'으로

[원세훈 7차 공판] 검찰, 이종명 전 3차장-민병주 전 심리전단장 기소

13.10.07 17:08l최종 업데이트 13.10.07 21:36l
이병한(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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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이 지난 8월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증인석에서 대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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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7일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종명 전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을 기소했다. 검찰은 이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7차 공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에서 두 사람에 대해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에 대해 상상적 경합이 있다고 보고 같이 병합해 기소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으로 기소된 국정원 관계자는 이미 재판을 받고 있는 원 전 원장을 비롯해 모두 세 명으로 늘어났다.

검찰은 당초 상명하복이 명확한 국정원의 조직 특성을 고려해 원 전 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불기소 처분했지만, 지난달 23일 서울고법 형사29부(부장판사 박형남)는 민주당의 재정 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고위직인 이 전 3차장과 민 전 단장에 대한 공소 제기를 명령했다.

상상적 경합이란, 하나의 행위가 동시에 두가지 이상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번 사건에서는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등 사이버 행위가 선거법 위반과 동시에 국정원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이다. 원 전 원장 역시 상상적 경합으로 기소된 상태다.

검찰이 병합 기소함에 따라 두 사람에 대한 심리는 원 전 원장 공판을 진행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에서 같이 담당하게 됐다. 이날 재판에서 재판장이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에게 "혹시 새로 기소된 두 사람에 대해서도 변호하는가"라고 묻자 "다른 변호사가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미 한 차례씩 증인으로 소환됐던 이 전 3차장과 민 전 단장은 다음 공판부터는 신분이 피고인으로 바뀐 채 법정에 서게 됐다. 수십 년간 군 생활을 한 사단장 출신인 이 전 3차장은 지난달 9일 출석해 '적군-민간인론'을 피력하고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사태를 '정부 전복 시도'로 바라보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인 바 있다(관련기사 : 국정원 심리전단, '일베' 동향 수시 보고). 그는 지난해 사건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시기(12월 11일, 14일, 16일)마다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용판 전 서울청장과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공판 과정에서 밝혀지기도 했다(관련기사 : 사건 터진 날, 김용판-3차장 같이 있었다).

지난달 2일 출석했던 민 전 단장은 지난해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확정됐던 대선 다음날 오후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씨에게 "덕분에 선거 결과를 편히 지켜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는 문자를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관련기사 : 국정원 심리전단장, 대선 다음날 김하영에 문자).

심리전단 직원 "(종북 대응보다는) 국정홍보 측면 강하다 생각"

한편 이날 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윤아무개씨는 모든 사이버 활동은 상부로부터 지휘체계를 통해 내려온 '이슈 및 논지'에 따라 행해졌다고 증언했다. 김하영씨와 같이 심리전단 3팀 5파트에서 활동했던 그는 이슈 및 논지의 선정 과정은 알지 못하지만, 주요 내용은 언론을 통해 일부 공개됐던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과 흡사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솔직히 나도 그 지시를 보면서 어떤 부분은 (북한이나 종북 대응보다는) 대통령이나 국정홍보의 측면이 더 강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다"며 "그러나 어쨌든 상부에서 여러 사항을 고려해 그런 지시를 내렸을 것으로 생각하고, 지시가 내려온 이상 지시에 따라 글 게시 활동을 했던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는 법정에서는 이에 대한 확인 질문에 "그렇게 진술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슈 및 논지에) 북한이라는 단어가 없을 때 언뜻언뜻 들었던 것일 뿐이고 잠깐이었다, 이내 종북세력 대응이라고 생각하고 활동했다"고 다소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건이 불거지자 일부 게시글을 삭제했다는 그는 삭제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부정하면서 삭제 이유에 대해 "그냥 내가 싫었다"고만 반복해 대답했다.

윤씨와 함께 증인 출석이 예정됐던 심리전단 직원 황아무개씨는 임신으로 인한 입덧 및 구토 증세가 심해 출석이 어렵다는 의사의 진단서가 첨부된 불출석 증명서를 제출해 신문이 연기됐다.

'박원순 제압 문건' 무혐의 각하... "감정 결과, 국정원 문건 아니다"

한편 검찰은 이른바 '박원순 제압 문건'과 '반값등록금 대응 문건'에 대해서는 국정원의 문건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무혐의 각하 처분했다.

검찰은 "고발된 문건과 국정원이 생산한 다른 문건에 대해 문서 감정을 했는데 동일한 문건이 아니다, 혐의 없음이 명백해서 각하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양식 등에서 다르다, 구체적인 건 보안 때문에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국정원에서는 해당 문건이 국정원 문건이 아니라고 진술했고, 이 문건 의혹을 제기한 진선미 의원실도 제보자 등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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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세계 평화를 가로막는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10/08 06:11
  • 수정일
    2013/10/08 06:1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기고> 무엇이 세계 평화를 가로막는가?

홉스 세계관의 아류와 무기의 상품화가 세계 평화 가로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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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07 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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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승 (통일뉴스 전문위원)


‘국가들 사이의 “자연상태”는 패권국에 의해서만 극복된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 이래 서구의 지배적인 세계관

20세기가 전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앞서 내다본 것은 ‘제국주의론’(1916)을 쓴 이의 혜안이었다. 그 예견이 들어맞아 20세기 전반에 두 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후반에도 크고 작은 전쟁이 잇달았다. 가히 20세기는 ‘전쟁의 세기’(게이브리얼 콜크 등)란 이름을 얻을 만했다. 이 한 세기 동안에 1억5000만 명이 목숨을 빼앗긴 것으로 어림잡는데, 최소로 잡아 그러하단다. 불구가 된 사람, 삶의 터전을 떠나 난민이 된 사람, 가족을 잃고 통한의 여생을 살았거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수는 어림으로도 잡히지 않고 있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인간의 세계에서 왜 이런 살육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어느 동물도 먹이나 영역을 놓고 다툴 때 말고는 제 동종을 죽이기 위해 발톱을 세우지 않는다. 먹이사슬의 계열 안에서 다른 종을 잡아먹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행위일 뿐이다. 인간에게도 수렵이 중요한 생존수단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생긴 육식 습성이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어 생존본능에서만 보면 맹수 같은 짐승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과 동물의 이런 유사성에서 인간이 전쟁을 하는 근거를 찾고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자연상태’의 인간을 동물과 마찬가지로 야성(맹수성)을 본성으로 가진 존재로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자연상태에선 인간은 만인이 만인에게 적이고 만인이 만인과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만인의 만인과의 투쟁에선 어느 누구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만인이 모두 서로 죽이고 죽는 적이기 때문이다. 처음 맞선 사람과의 투쟁에서 요행히 이긴다 해도 한 순간만 죽음을 모면한 것일 뿐, 다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전을 받게 된다. 죽음이 두렵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자연상태의 인간은 서로 죽이고 죽는 사이여서 누구나 항상 죽음이라는 위험에 노출되어있다는 것, 이런 ‘상호적 공포’가 자연상태를 지양하여 국가를 세워야 하는 동기가 된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17세기 서양에 있었다. 영국인 토머스 홉스이다. 물론 그가 말한 자연상태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국가 성립의 동기로 도입한 이론적 가설이지만, 그런 가설에 대한 영감을 준 것은 원초적인 인간의 삶이기보다는 무한경쟁으로 치닫기 시작한 당시의 사회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류역사의 어느 시기에도 만인이 만인과 투쟁한 적은 없다. 인류사의 초기라면 더구나 맨손뿐인 혼자의 힘보다 씨족이든 부족이든 모두 힘을 보태는 것이 살아남는데 유리했을 것이다. 만인의 만인과의 투쟁은 원시적인 자연상태가 아니라 문명화한 자연상태, 전통적인 공동체가 해체되고 고립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생존을 위해선 스스로의 힘밖에 기댈 곳이 없게 된 사회에서 나타난 삶의 모습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달리 말해서 이윤을 얻기 위해서라면 세계의 누구와도 경쟁해야 하는 무한경쟁 시대의 삶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종종 법이나 권력이 미치지 않는 상황이 되면 인간이 서로 늑대가 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인 행동을 조사한 결과는 전혀 달랐다. 20세기에 발생한 몇몇 끔찍했던 자연재난들 뒤, 법과 권력의 기능이 완전히 멈춘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인 행동은 통념과는 달리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던 경이로운 이타성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 폐허의 무법지대에서 사람들은 살인이나 강도 절도와 같은 ‘야수성’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따뜻한 연대와 상호부조의 꽃을 피웠다.(레베카 솔니트: 지옥에 세운 낙원-재난 속에서 움튼 특별한 공동체) 인간은 무법상태(자연상태)에선 저마다 제 잇속만 챙기는 이기적 본성을 드러낸다는 통념이 실은 자연상태 이론이 심어준 편견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실례라 할 수 있다.

아무튼 만인이 만인과 투쟁하는 미개한(무법의) 자연상태가 개인들로부터 자연권을 위임받은 국가의 공적인 권력에 의해 지양된다는 생각은, 지난 몇 백 년 동안 약간의 차이를 가지면서도 서구 사회의 지배적인 세계관이 되었다. 그러나 국가라는 공적인 권력에 의해 지양된 자연상태는 결코 화해와 평화의 상태로 승화될 수 없었다. 더구나 홉스의 사상적 후예들에 의해 투쟁 상태로서의 자연상태의 주체가 개인에서 국가(국민)로 되면서 국가들 사이의 자연사태 (전쟁상태)를 극복하는 과제가 새로이 제기되고, 18~20세기에 걸쳐 이 과제를 놓고 진지한 ‘이론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떤 이는 국가들 사이의 전쟁을 막고 지속적인 평화상태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들의 연방인 ‘세계공화국’이란 모델을 인류의 역사가 도달해야 할 이념형으로 내놓았고, 어떤 이는 세계사는 여러 국가들이 서로 다투는 법정(세계법정)이라면서, 그 법정에서 세계사의 이념이 ‘이성의 간지’에 매개되는(조종받는) ‘세계사적 국가’(패권국가)에 의해서만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전자가 말하자면 국가들 사이의 자연상태를 ‘연방 계약’ 같은 것을 맺어 극복해야 한다는 이상론적인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면, 후자의 주장은 국가들 사이의 자연상태는 패권적인 힘을 가진 국가의 권력의지를 통해서만 극복된다는 것으로 19세기말 제국주의 시대 이래 지배적인 세계관이 되었다. 2003년에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의 대표 논객인 로버트 케이건이란 사람도 후자 같은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유엔의 승인 없이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행동을 비판한 유럽의 정치가나 지식인들을 ‘포스트 모던의 낙원’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비웃으면서, 세계의 안전과 평화는 미국처럼 군사력(하드 파워)이 강한 나라에 의해서만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군사력이 강한 패권국의 총구에서 세계의 안정과 평화가 나온다는 생각인 것이다. 누군가 말한 ‘패권 안정론’이다. 실행되지는 않았으나 미국의 시리아에 대한 군사행동 구상에서도 홉스 이래 서구 세계관의 일관성을 엿볼 수 있다.(홉스의 후예 가운데는 독일 나치의 전체주의 사상에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주고 나치정권의 승리를 도운 저명한 공법학자 카를 슈미트 같은 사람도 있다.)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복수의 관점에서 존재할 때만 세계가 될 수 있다고들 말한다. 민족이든 국가든 저마다 독자적이고 고유한 문화와 세계관을 갖고 살아가는 인간의 집단체인데, 그러한 다양성과 복수성을 적대 상태로만 보고 동일화하려 하거나, 또는 중심으로부터 이탈한 변방의 모난 귀퉁이로만 보고 도려내려고 하는 것은 결국 세계를 파괴하는 짓이 된다. 홉스의 자연상태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패권 안정론이 오늘날 국가들 사이의 전쟁을 막고 세계를 안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패권국의 군사개입을 정당화하고, 그래서 복수성으로서의 세계를 파괴하게 된다면 ‘세계는 역사적 정치적 의미에서 종언’(한나 아렌트)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수전노에게 화폐가 축장의 목적으로 되듯이
무기가 전쟁의 수단에서 목적으로 바뀌기도

또 하나, 오늘날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요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무기의 고성능화와 상품화, 그리고 무기의 위상 변화이다.

고래로 전쟁의 역사는 곧 무기의 역사였다. 전쟁의 발생과 무기의 발명은 연대가 시초부터 같다. 인간의 첫 무기인 활과 화살 칼과 창은 전쟁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조건의 발생에 따라 발명된 것이다.

그 무기가 전쟁의 세기란 이름에 걸맞게 20세기에 들어서 인명 살상과 파괴의 성능이 너무 커졌다. 이젠 전쟁이 일어나면 어느 나라도 가능한 한 이들 무기를 사용하려 할 것이고, 그 결과는 참혹할 것임에 틀림없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말할 것 없고, 드레스덴이나 도쿄 등에서도 세계는 현대 전쟁의 참상을 보았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발칸전쟁 이라크전쟁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전쟁은 네이팜탄 고엽제 열화우라늄탄 같은 무차별 살상 무기를 사용한 역사상 가장 ‘비문명적인 방법’으로 싸운 전쟁이란 비판을 받기에 족하다.

이전 시기의 전쟁이었다면 당연히 전투 현장에서 병사들의 살상이 많이 발생하고 후방에 있는 민간인들의 살상은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것이었는데, 새로운 무기들의 등장으로 현대 전쟁에선 후방에 있는 비전투 민간인의 희생이 훨씬 더 많아졌다. 그것도 전투 중의 실수나 우발사고가 아니라, 거의 모든 희생이 전쟁 지휘부가 의도적으로 기획한 작전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비전투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살상한 것은 이전의 전쟁에서 신화로나마 남아있던 인륜적 기준이 송두리째 무너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게다가 핵폭탄 같은 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은 미래의 전쟁이 한 도시의 참화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파멸 만물의 종말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전 세계를 향해 예고했다.

인류는 그동안 파괴하는 능력과 건설하는 능력의 균형을 이루면서 장기적으로는 전자보다 후자가 우세하여 숱한 전쟁을 치르면서도 세계가 재건되고 발전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핵융합과 같은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젠 인류가 하기에 따라선 건설 능력과 파괴 능력의 우열이 역전될 수도 있게 되었다. 만약이란 단서를 붙인 가정이긴 하지만 앞으로 전면적인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세계는 재건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그동안 인류가 이뤄온 문명이 모두 괴멸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예언적 가상이 아니라 처음으로 현실적 가능성을 갖게 된 것이다.(현재 지구상엔 인류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죽일 수 있을 만한 양의 핵무기가 저장되어 있다)

다만 이와 같은 핵무기의 위력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 사이의 전쟁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사실일 듯하다. 분쟁 지역의 나라들이 전쟁 억지력을 얻기 위해 핵무기를 갖고 싶어 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핵무기가 안전한 세계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핵무기만이 아니라 핵발전 같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까지도 후대의 인류에게 크나큰 재앙을 물려주는 나쁜 유산이 될 것이란 우려와 비판에 많은 사람들이 점차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는 그 재앙의 예고였다)

게다가 원자력산업에선 다량의 핵폐기물이 발생하는데, 이 핵폐기물로 만드는 무기가 열화우라늄탄이다. 한국전쟁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네이팜탄, 베트남의 삼림과 농촌을 초토로 만든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 걸프전쟁과 발칸전쟁에서 사용한 열화우라늄탄 같은 무기들은 핵무기가 아니라도 여러 의미에서 인간의 조건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들이다.

그동안 이들 무기가 사용된 것은 모두 비서구 나라들이거나 서구 세계의 변방국들이었다. 그런데 그 피해는 전쟁에 동원되어 참전한 서구 나라들의 젊은이들 또한 면할 수 없었다.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그들이 전장에서 사용한 무기는 자신들에게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그들은 베트남전쟁증후군, 걸프전쟁증후군, 발칸전쟁증후군이란 새로운 병명을 얻어 가지도 귀향하게 된 것이다.

현대 전쟁은 참전 군인들의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이에 관해선 일찍이 제1차 세계대전 뒤 레마르크가 소설(‘서부전선 이상 없다’)로 형상화하여 증언했고, 거의 같은 시기에 영국의 한 정신과의사도 현대 전쟁이 ‘신경의 전쟁’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의학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전한다. 아마도 20세기에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것은 미국일 것이다. 그런 만큼 전쟁으로 피해를 본 젊은이들이 그 나라에 많을 것임에 틀림없다. 한 예로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실태를 보자.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들 중 70만 명이 지발성 스트레스로 진단받았고 그들 가운데는 자살자도 많았다. 기혼자의 38%는 귀국 후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못하고 6개월 안에 이혼했다. 전투경험이 있는 사람의 4분의 1은 범죄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1980년대까지 뉴욕에서만 4만 명의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 아편중독자로 등록되었다.(크리스토퍼 코커: 전쟁과 20세기, 1994)

미국은 베트남전쟁 뒤에도 2000년까지 모두 63회나 지역분쟁 또는 내전에 개입했는데, 이후에도 개입 횟수는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처럼 이데올로기가 명분인 것도 아니고, 석유 등 자원의 확보 같은 다른 어떤 실익과도 관련이 명확하지 않은 군사개입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막대한 군비를 들여 지역분쟁이나 내전에 계속 개입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전이든 지역분쟁이든 어떤 전쟁도 맨손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부족이나 민족 종파 사이의 다툼으로만 보이지만 실은 각 종 무기의 대결이다. 소총 등의 총기류와 탄약은 통상적인 무기이고 전투가 확대되면 장갑차도 미사일도 동원되는데, 거의 대부분이 자체에서 생산할 수 없는 외래 무기들이다. 군수산업 선진국에서 생산된 이들 무기가 없었다면 참혹한 살육전으로 확대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다툼의 원인이 종족이나 민족 종파 사이의 증오와 대립의식이란 것만 세상에 알려지고,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무기의 상표가 무엇인지는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다투는 당사자들도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대립의식이 그들에게 제공된 무기에 의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쌍방에 똑같이 홍수처럼 흘러들어가는 각 종 무기를 가지고 서로 죽이고 죽는 것인데, 실은 더 많이 죽이고 죽을수록 선진국의 군수산업은 더욱 호황을 누리게 된다.

한데 선진국 군수산업의 호황엔 하나의 딜레마가 있다. 수요를 만들어내자면 타사 제품보다 성능이 좋아야 하고, 성능이 너무 좋으면 전쟁이 너무 일찍 끝난다. 그렇다고 성능이 뒤져도 안 된다. 전시가 아니라도 사정은 같다. 군사력은 안보의 핵심이기 때문에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가상의 적국 또는 언제 적대관계로 돌아설지 모르는 이웃 나라들보다 상대적 우세를 유지해야한다. 그래서 전시가 아니라도 각 국은 국방예산을 계속 늘려야하고,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무기를 일정한 주기로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선진국 군수산업들이 무기의 개발과 도태의 순환을 되풀이 하면서 세계 무기 시장을 지배하는 원리이다. 또한 이는 몇몇 군사 강국을 빼고는 어느 나라도 군사력의 절대 우세를 유지할 수 없게 하고 지역의 안정도 계속 불안하게 한다.

무기는 전쟁이 필요하게 된 사회적 조건의 발생에 따라 약 1만 년 전쯤 중석기시대에 인류의 역사 무대에 등장한 이래, 그동안 그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왔고 무기의 성능이 발전함에 따라 전쟁의 규모와 본질이 바뀌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무기는 전쟁의 수단이었다. 그렇던 것이 20세기에 들어서 무기의 상품화와 함께 전쟁과 무기의 위상이 바뀌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마치 상품교환의 수단이었던 화폐가 수전노(화폐 축장자)에겐 그 자체가 목적으로 된 것처럼, 현대 군수산업에겐 무기가 전쟁의 수단에서 목적으로 바뀌는 전도가 일어난 것이다.

피로 얼룩진 세기가 지나가고 새로운 세기에 들어선지 한참 되었는데도, 우주 차원에서 보면 먼지보다 작은 이 지구에선 인간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지구엔 핵무기를 비롯하여 무서운 위력을 자랑하는 무기가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도 새로운 무기는 계속 만들어지고 그 성능이 내전이나 분쟁 지역의 현장에서 과시되고 있다.

에른스트 융거란 독일의 작가이자 평론가는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전쟁 체험을 일기 형식으로 쓴 글에서 전쟁을 정치적 공기를 정화해주는 ‘강철의 광풍’으로 미화했다 한다. 그의 수사를 빌리면 제2차 세계대전은 그 많은 살육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에 오염된 지구의 공기를 씻어낸 전쟁이 된다. 그래서 드레스덴이나 베를린,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의 참상이 응보주의의 관점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갚음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리라. 하나 그러한 인정은 전쟁이 타자(민족 또는 국가)에 대한 부당한 폭력의 억지, 곧 평화라는 목표를 가질 때에만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고 지배나 다른 어떤 이득을 노린 것이라면 그러한 전쟁은 무뢰배의 폭력일 뿐이고 무기는 아무리 첨단과학의 최고 산물이라 해도 전혀 자랑거리가 아닌 흉기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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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길은 다르지만 서로 존중하며 함께했던 순례

수행길은 다르지만 서로 존중하며 함께했던 순례

 
청전 스님 2013.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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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전 스님의 라닥 순례기, 마지막 일곱번째편>

 

 

멀지 않은 건너편 계곡에 이름 있는 헤미스 곰빠가 있다. 대중스님들은 마을에 행사에 모두 나가고 몇몇 스님들만 보인다. 이 큰 절에 많은 건물에 스님들이 없으니 아쉽다. 특히 오리정도 위쪽 산에는 무문관 수행으로 이름나 있는 괴창(독수리 둥지) 암자가 자리한다. 그날은 어찌 햇볕이 따가운지 올라가다가는 일이 생길 것 같아 방문을 취소했다.


<<헤미스 절 오르는 길에 오랜 불탑이 때맞춰 핀 유채꽃과 넘 아름답지요.
헌데 한쪽 귀퉁이 한 사람, 누구꽁? 잠 덜 머저리 지 교수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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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방문지는 딱나 곰빠, 우리말로 하면 “호랑이 코 절”이란 뜻인데 지형이 꼭 호랑이 콧잔등에 자리해있는 모습에서 연유 한단다. 큰 절은 아니라도 깔끔한 절임을 당장 알아차린다. 노란 승복 입힌 네 살 아이인 아기스님을 극진하게 모시는데 이 절에서 돌아가신 딱나 린포체의 후신으로 밝혀진 아기 스님이다. 2008년에 92세로 입적 했고 2010년 히마찰 주 산간 고을 킬롱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며칠 후에 다시 이 절을 찾아갔는데 야크님이 준비한 팽이를 이 아기스님께 드리기 위한 방문이었다. 팽이를 돌려 바닥에 놓으니 빨간 불이 번쩍번쩍 하며 돌아가는데 어떤 아기라도 이런 장난감에 혹하지 않겠는가. 아기스님이 무척 좋아한다.

<<딱나 린포체 환생자로 밝혀진 아기 스님, 역쉬 똘똘하게 보입니다. 이제 3살 반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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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의 신도 분들이 아기 스님을 친견하러 들른다. 코가 땅에 닿게 극진하게 절을 올린다. 야크님이나 지 교수는 어린이에게 줄 갖가지 예쁜 선물꺼리를 많이도 챙겨왔다. 어디서라도 어린 아이들 만나면 한 개씩 빼어주니 그놈들은 그날 토정비결이 잘 빠진 날일게 틀림없다. 마토 곰빠와 공항 근처 스피톡 곰빠를 마지막으로 참배하며 바쁘고 지친 하루 일정을 마쳤다.

 


<<어느 절을 가든 마니 코르로(윤전대)를 돌리며 들어갑니다. 늘 바쁜 현대인에게 반박자 쉬는 좋은 전통이라고 봅니다.
그 회전통 안에는 경전 두루마리가 들어 있어 한바퀴 돌리면 경전 한번 읽는다는 소박한 티벳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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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을 쉬고 나니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이제 누브라 계곡을 넘는다. 우선 이 고개는 파키스탄 국경을 마주하기에 오가는 외국인에게 꼭 몇 차례 여권과 허가서를 확인 대조 해 보며 허가서 한 장을 떼어 간다. 대원들에겐 이 고개가 기네스북에 있는 차량 고개로써 세상 최고 높은 고개임을 알고 호기심 백배이다. 우리 백두산을 두 개나 얹어 놓은 해발 5606m이니 정말 높은 고개다. 이 한여름이라도 어쩌다가 악천후에 걸리면 눈으로 덮이기가 일쑤여서 몇 번은 눈 치울 때까지 기다려 넘었던 경험이 있다. 지루하게 오르다 보면 포장길에서 자갈길을 만나고 뽀얀 먼지 길을 얼마나 가다보면 정상이 나온다. 이미 먼저 온 관광 차량들이 빼곡하다. 대충 기념 촬영을 마치고는 바로 내려가는데 나에겐 이 길이 너무 지루하며 매년 왕복의 길이라서 더욱 그렇다.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풍광에 신이난다. 점심때가 되어 안면 있는 가게의 불을 빌려 우리 라면을 끓여먹는데 완전 포식이다.


<<시상에서 질 높은 고개라니 키념 촬영을. 우리 야크님이 팍 찍어뿟습니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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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끼 곰빠에 이른다.


<<꼭 포스트 카드: 엽서나 같습니다. 데끼 곰빠 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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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곳에 이런 절이 있다니, 허긴 이런 험하고 힘든 삶 단조로운 생활에서 이런 종교의 의지처라도 있어야겠지. 몇 해 전에 라닥 트럭 불자 연합에서 세운 큰 미륵불상이 먼저 눈에 띈다. 절은 완전 벼랑에 붙어있는 제비집과 흡사하다. 왜 꼭 까탈스럽기 짝이 없는 이런 벼랑을 이용하여 절터를 잡았을까 의심이다. 좀 더 아래쪽엔 얼마나 넓은 평지가 많은가. 한 노스님의 피부가 보기 민망할 정도로 몹시 심하게 번져가서 다람쌀라로 겨울에 나와 치료받도록 했다. 수술을 받아야 될 악성 종양이다. 세 스님이 나오시기로 했다.


<<곰빠에서 내려다 본 아랫 마을 풍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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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짜락사 곰빠만 참배하기로 했지만 뜻밖에 많은 주민들의 환영 행사로 꼼짝없이 점심을 대접 받고 예정에 없는 진료를 해야만 했다. 영양제가 부족 할 것 같아 비상수단으로 각 약병을 반으로 나눠 겨우 약이 바닥나지 않게 진료를 마쳤다. 가끔 대중없이 약을 쓰다가 약이 바닥나면 낭패를 본다.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다시 나오며 쌈땐링 곰빠를 들르다 보니 하루해가 다갔다. 이 절엔 젖소가 세 마리나 된다. 암소가 새끼를 낳아도 꼭 암 송아지를 낳아 이리 늘어난 것이다. 예정은 저쪽 파키스탄 국경 쪽을 구경삼아 가기로 했는데 수포로 돌아갔다. 이틀을 데끼 절에서 자게 되었다.



<<우리가 떠나옴을 배웅해 주시는 노시님(롭쌍 타르친 86세),
공부가 많으셔 근처 인도 군인들에게 정신훈화를 초청 받으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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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승 학교 선생스님이 잠자리며 먹는 문제를 어지간히 신경 써 보살펴주니 왠지 미안한 생각도 든다. 옛날 사 준 소가 올 봄에 죽어 나갔다하여 다시 젖소 한 마리를 사도록 보시금을 드렸다. 매년 라닥에 들어가면 젖소 몇 마리는 긴요하게 사드릴 수가 있는바, 알게 모르게 소문을 듣고 누군가가 눈먼 돈을 보내온다. 모르는 분들의 성금을 이런 의미 있는 보시 처에 쓸 수가 있음에 얼마나 보람이 되는가.
이튿날 지루한 그 길을 일찍 나서서 늦은 점심을 레에 나와 먹을 수가 있었다.

이제 계획된 빵공초 호수를 가는 일로 거의 일정이 마무리 된다.


<<샤추쿨 곰빠의 마을 주민들이 약을 받으러 모입니다. 한쪽에서는 안경도 맞춰드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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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받으러 오신 할배 한분, 백내장 환자네요. 그 누가 이런 극오지에서 인술을 베풀 의원은 없는지?
제가 수술쪽까지는 힘이 않닿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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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시원한 빵공초 호수. 해발 4500m의 높이에 자리한 호수라니.................
갈매기 한마리가 나르고 있어 운치가 있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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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가는 길목에 샤추쿨 곰빠가 있어 진료도 하며 하룻밤 묵기로 하니 일거양득이다. 어느 절을 가건 마을 주민들의 힘든 삶을 읽을 수가 있다. 이 절에서도 똑같다. 주민들의 모습에서 애잔한 감정이 인다. 어찌 이런 모습일까. 거기에 입고 있는 옷차림도 때 국물이 줄줄 흐르니 더욱 가상하다. 어쩔 건가?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으니, 그렇다고 뱁새 다리가 짧다고 황새 다리 만들어 줄 수 없지 않은가. 늘 잠자리에선 이 세상의 가난과 삶의 고(苦)를 떠올린다. 오후 늦게 호수로 나가니 의외의 관광객 차가 즐비하다. 물이 파랗기가 짝이 없다. 저쪽의 황토 빛 모래 산이 더욱 대비를 이루며 희한한 풍경을 자아낸다. 염호수다. 좀 작은 갈매기가 난다. 300Km나 길게 생긴 이 호수는 중국측과 인도측이 반반을 점유하며 가끔은 국경선 분쟁의 빌미를 만들기도 한다.


<<약 받으러 오신 주민들이 제 약 사용 설명을 귀담아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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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을 자고 나오다가 야크 떼를 치는 유목민을 만나 몇 가지 약품과 마지막 남은 손톱깍기를 두 가족에게 하나씩 드리니 이제 남은 약이며 선물꺼리는 바닥이 났다.


<<우리 야크님이 야크와 함께, 아마 전상에 야크였나봐. 누가?
사진의 갈색 야크는 희귀종이지요. 얔캄바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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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다 와서 참배할 절이 남아있는데 레 근처의 유일한 닝마파 절로 닥톡 곰빠다. 티벳 불교 종조로 모시는 빠드마 삼바바(구루 린포체)의 시커먼 바위동굴 법당이 신비와 함께 큰 힘을 내품는다. 마스크 댄스가 닷새간 진행된다고 외국인 관광객이며 장사치와 함께 시끌벅적 하며 부산을 떤다. 참배를 못 한 마지막 틱쎄 곰빠, 라닥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 많은 스님들이며 커다란 법당 등등 사진에 많이 나오는 절이다. 몇몇 노스님들을 호명하니 거동이 불편하다며 당신 거처나 가까운 친인척 집에서 기거한단다. 티벳 불교 승가제도에서는 남방불교 제도와 같이 우리식의 상좌 개념이 없다. 출가하여 수계하고 스님이 될 때 스승이 정해지지 않는다. 모두 똑같이 일불제자(一佛弟子), 즉 부처님 제자일 뿐이다. 늙어 몸 거누기 어려울 땐 측근 제자가 있다면 그래도 나을 건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곳 전통과 관습이다. 부처님 경전에 보면 비구로써 제일 큰 공덕행이 무언가를 말씀하신다. 병들어 늙어 죽어가는 마지막 비구의 임종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왔다 해도 못 나오시는 노스님들, 바로 이것이 인생무상인 것이다. 영양제와 보시금을 따로 전해 달라하고 나올 땐 맘이 무겁다. 나도 곧 그리 되어 갈 거라는 지금 눈앞의 현실에.

지금까지 방문하고 진료한 곰빠 숫자를 세어보니 꼭 스물여덟 개의 절을 다녔다. 라마유루 곰빠를 떠나오며 왜 띡모강 곰빠를 놓쳤는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예정된 모든 절과 들를 곳을 놓치지 않은 것 같다.

이제 라닥을 떠나는 일이다.
운행 중 가끔 이상한 소리며 앞바퀴에서 뭔가 타는 냄새 등등 먼 길에 아무래도 불안하다. 직접 운전수를 데리고 차량 정비소에 가서 점검해보니 두 군데의 주요부품을 갈아야 한다고 한다. 다행이다. 만약 가는 길에 주저앉는 꼴이 발생한다면 그 무인지경의 길에서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내 여관에 들어가면 늘 어느 누군가가 나를 기다린다. 지금은 놀랍게도 어제 틱쎄 곰빠에서 못 만난 노스님들이 여섯 분이나 오셨다. 다들 한 가지씩 선물이라고 뭘 싸오셨다. 뭔가 챙겨드리는 것도 일이기는 하지만 이 노스님들과의 관계로 그냥 뭘 드리는 것으로 끝낼 그런 스님이 아니다.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늘 먹는 이쪽 음식이나 인도 음식이 아닌 스님들이 잡술 기회가 거의 없는 서양음식을 제안 했는데 모다 동의하신다. 내가 좋아하던 그 삐잣집에 가서 세 가지 음식을 두 개씩 시켜 두 상에서 나눠먹으니 필자로선 행복이기도 하다. 주로 치즈와 야채가 듬뿍 든 프랑스 요리였는데 희한케도 이 스님들은 순수 채식가였기 때문이다. 달걀이 들어간 빵도 안 드시니 신중하게 주문했고, 다행히도 한 점 남김없이 모두 맛나게 잡수신다. 마지막 여기서 직접 갈아 만든 과일 요쿠르트에 구색이 맞다. 내일 여기를 떠나는데 스님들이 딱 맞게 잘 오신 격이다. 기쁨이다. 필자로선 이런 자리가 그리 신나며 고맙다. 노인들이 별난 음식 오물오물 드시는 것만 봐도 행복이지 않은가. 몇 스님은 겨울 전에 다람쌀라로 나오신단다.


<<무려 열둘이나 모여 서양식 점심을, 제 앞자리 두 노시님: 이 두분 신님언 50년대 티벳에 간 유학파, 신진파 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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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일 새벽 4시 기상에서부터 먼 길 갈 준비다.
늘 그렇지만 나갈 때는 우선 그 많던 짐이 없어져 홀가분하다. 일어나니 이 지방엔 여간해서 안 오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불안한 마음이다. 높은 고개를 세 개나 넘어야 목적지에 닿는다. 비 멈추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또 다른 지역을 들어가야 되는 약속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며, 빠리 스님과 두 신부님이 델리로 나가 각각 비행 스케쥴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큰 차들이 우리를 추월해 가는 것을 보고 높은 고개가 눈으로 막히지는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개 아래서 짜이도 없이 준비한 빵으로 아침을 때웠다. 타랑 라 고개로 5328m인데 사실 이 고개를 넘을 땐 고개 넘는 맛이 난다. 그만큼 장엄한 주위 풍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길은 운이 좋게도 얼마 전에 입힌 시컴한 새 포장도로라서 우리가 온다고 이리 했나보다며 흥을 돋구며 올랐다.


<<타랑라 정상에는 운무가 찐했지만 눈이 안쌓인게 행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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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내려오며 차 안에서 찍은 풍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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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비조차 안내려 아침 근심은 기우로 끝나니 더욱 가벼운 운전길이다. 내림 길에서부터는 “팡”이란 끝없는 평지를 달린다. 걸릴게 없는 그런 평원이 있다니. 참 시원한 풍광이다. 더러 멋진 경치에서는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어댔다.


<<그냥 갈 수 없는 곳에서는 잠깐 스토프 하고는 이런 사진을. 잠 모다 군기가 팍 들은 듯.............ㅋ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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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고개 라추룽 라(5035m)를 넘으니 점심때에 계곡 물가에 간이 찻집이 있다. 이젠 먹을 것도 바닥이 나서 그냥 맛없는 인도 메기라면을 부탁할 수밖에, 많은 라면을 한꺼번에 끓이다보니 물이 부족 했는지 너무 오래 끓였는지 일행 모두가 속이 편치 않았다. 싸르추에 이르면 검문소가 있다. 라닥과 히말찰주 경계지역이다. 우리는 여권 보여주고 기록하며 쉽게 끝났는데, 라닥 차량 두 대 운전수들은 뭔가 불평이다. 알고보니 통과증을 만들어주며 불법인 이 백 루삐씩 뜯긴 것이다. 우리차야 어딜 가건 노란 영업용이 아닌 하얀 자가용 번호라 쉽게 다니지만 영업용 차량 운전수들은 주를 벗어 날 때마다에 애환이 있다. 하긴 그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썬글라스 낀 교통경찰 아저씨들이 애꿎은 화물차나 소형차 세워놓고 돈 뜯어내려고 닦달하던 그런 때가 있었지. 바라라차 라(4950m)를 넘으니 공기가 달라진다. 그 건조한 코피 터지는 마른 공기가 아닌 습한 공기 내음을 맡을 수가 있다. 문명권인 킬롱에 들어서니 주위가 온통 파란 나무와 초지다. 여기서부터는 우기철 몬순을 감지한다.

오늘 밤 자고나면 빠리스님과 두 신부님은 길이 다르다. 세분은 마날리로 나가 델리로 가야 한다. 프랑스와 그리이스로 날라 가는 일정에 맞춰야 된다. 이튿날 뜨거운 포옹으로 한 달여 생사고락을 서로 인정한다. 어찌된 인연으로 그 험한 길 고개를 함께 걷고 넘었다. 어설픈 음식을 받아놓고도 어떤 불편한 기색 없이, 또 항상 힘든 모습 내색 않고 여기까지 정확히 온 것이다. 저녁이면 이 얘기 저 얘기로 많은 말을 나눴다. 종교, 수행, 교리, 바른 삶, 사랑과 자비, 이 시대 성직자의 타락상 등등, 또 지나온 자기 수행을 길고 길게 얘기했다. 사실 이런 허심탄회의 자리는 쉽지 않은 기회다. 수행자의 신분이 달랐기에 수행길은 다르지만, 이번 순례길에서 서로를 인정하며 각자의 인격을 존중 했다. 특히나 두 신부님은 매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성무일과의 기도와 의식을 새벽과 잠자기 전에 거르지 않고 실천하는 모습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두 신부님의 일정이 이집트에서 갈린단다. 레오 신부님은 10월 말 경에 한국으로, 심 신부님은 의외의 계획 즉 미얀마 선원에 들어가 석 달 불교 안거를 마치고 내년 1월이나 한국행이란다.

 

이 시대에 이런 분을 누가 알아들을까, 누가 이런 벽 없는 수도자를 이해할까. 반면에 필자는 내적으로 가벼운 내 수행에 부끄러울 뿐이다. 신부님의 한 말씀을 이 자리에서 옮겨야 되겠다. “정의란 남의 것을 전부 돌려주는 것이며, 사랑이란 내 것을 전부 이웃에게 주는 것이다.”라는 말씀에 가슴으로 동의한다. 어느 종교나 사랑과 자비를 외쳐왔건만 실천 없는 가식의 말장난에 위선의 극치였고, 지금도 성직자의 타락은 가지며 챙기는 자기 것이란 재물의 소유에 있지 않는가. 너무 많이 가지는 게 이 시대의 죄악이 아닌가. 자본주의의 모순이 어떻게 정리될지?


<<마지막 고개 로탕 패쓰를 넘으며 지천에 꽃이.................. 인제 우기 지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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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꽃밭이............... 일생 최고 최대의 꽃들판은 1996년 티벳 암도 유목민 마을에서. 3일을 달려도 꽃이 천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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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우리 차안은 너무도 한가하다. 비좁은 찌프차에 늘 일곱이 앉다가 셋이 빠져나가 넷이서 한적한 자리를 만들고 이동하니 이리도 편할 수가. 원래 계획은 뀐좀 라(4992m) 고개 넘어 스피티로 가기로 했지만 길가다가 들으니 대형 산사태로 길이 없어져 두 달 후에나 가능 하단다. 별 수 없이 되돌아 나와 마날리, 나가르 거쳐, 초뻬마 참배하고 다람쌀라에 돌아오니 꼭 31일짜리 순례길이 되었다. 360도 삥 돌아 온 꼴이다. 마날리에서 나오면서 가까운 아는 절에 공양청을 받았다. 물론 여기서도 많은 약을 드렸다. 한 노 비구니 스님은 귀가 않들린다하여 며칠 후에 인편으로 보낼 수가 있었다. <아래 사진 참조>


<<마날리 근처 팡간 곰빠의 노 비구니 시님(82세). 어렸을 때 동진출가를 하셨답니다.
특징은 이 시님 귀가 울마 큰지 완조니 부첸님 귀, 귀가 얼굴 보담 더 큰거 아닙니까!!! ㅋ ㅋ 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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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니 찐한 운무 속에 무서운 빗속이다.
그래도 어떤 불미스런 일 없이 무사히 올 수 있음에 그저 이번 길에 함께 한 우리 벗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릴뿐이다.
내년은 어떤 봉사의 길을 만들 것인가의 일 년 숙제로 남겨 놓고서. <<끝>>

 

 

 

<<후기>>

 

재미도 없었을 글 다 읽으시느라 애먹지는 않으셨남요?
저는 나름대로 지나온 시간을 되살려 글을 써봤습니다만, 원래 글쟁이가 아닌지라.....................
그리고 지금 이곳은 심한 우기라서 정전도 많고 인터넷이 많이 꺼지곤 합니다.
겨우겨우 정전 안되는 시간에 이렇게라도 글을 맺을수가 있어 다행입니다.
끝내 이 한달여 라닥 의료 봉사의 길에 이름없이 도움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지요.
또 젖소 공양이며, 약품, 안경, 옷가지, 양말, 털모자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자상한 도움 주신분들 그저 고맙습니다.
이제 또 내년을 서서히 준비 합니다. 하긴 일년 농사(?)가 그리 쉬운것은 아니니까요.
비구로써 불법승 삼보의 가피로 다 일이 이뤄지리라 믿고, 부족하지만 또 내년을 희망 합니다.
한가지, 9월 부터 라닥의 노시님덜이 꽤 많이 여기에 나오십니다.
혹독한 라닥의 겨울을 피하시는 인연에 겨울준비 잘 해둬야지요.
제기로 그분들이 실제로 불보살이니까요.
저는 10월 말 경에 한국 잠깐 들르구요, 맡아둔 숙제 해야 됩니다.
그 숙제란 근 3 년간 못간 우리 조선땅에서 절, 학교, 방송국 등등에서 법문과 강의을 해야 되는 숙제랍니다.

 

<< 이 글 읽으신 모든분들이 늘 조용한 행복의 나날이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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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에게 초심으로 돌아가라? 25년 전에도 빨갱이라더니”

[인터뷰]이수호 전 전교조 위원장

고희철 기자 khc@vop.co.kr
입력 2013-10-07 01:17:21l수정 2013-10-07 07:51:10

 

이수호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이수호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김철수 기자

최근 고용노동부는 한 달 안에 규약을 개정해 해직교사를 조합원에서 배제하라는 최후통첩을 전교조에 보냈다. 이로 인해 합법화 14년 만에 다시 ‘법외 노조’의 가시밭길을 걷게 될 위기가 전교조에 드리웠다. 후배들의 모습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보는 이가 바로 이수호 전 전교조 위원장이다.

1989년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1700여명의 교사가 해직당한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사건 당시 그는 전교조 사무처장이었다. 이후 전교조 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내고, 평교사 출신의 서울시 교육감 후보까지 오른 그는 전교조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다.

교육현실에 실망한 교사들, 전교조 결성에 뛰어들다

이수호 전 위원장은 1974년 경북 울진의 제동중학교에 첫 부임했던 시절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유신독재의 서슬퍼런 시절, 학교도 병영과 마찬가지였고 공장에 인력을 대기 위한 훈련소였다.

“경쟁과 획일적인 교육으로 인성교육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학교는 교장, 교감 등 경영자들 맘대로 운영하고 부패도 심했다. 한 반에 60~70명씩에 오전·오후반 2부제니 교사들이 애들 이름도 몰랐다. 학부모들은 교사에게 돈 주며 자기 애들 부탁하고, 체벌이 난무하고. 소풍 가서 찍은 단체사진, 수학여행 다 비리였다.”

당시 이 전 위원장 역시 학생들을 체벌하기도 했다고 한다. 학교 현실에 실망한 그는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교육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당시엔 둘만 모이면 불법이고 조직사건 나니까 YMCA나 흥사단 같은 단체의 우산 아래 들어가 교사들이 모였다”고 회고했다.

교육운동 1세대들은 1987년 민주화 물결을 타고 전국교사협의회를 만들었고, 1989년 5월 28일 전교조를 결성했다. 예상한 바지만 정부의 전교조 탈퇴 압박과 언론의 ‘의식화 교사’라는 공세는 혹독했다.

“오죽했겠나. 지방에서 부모님이 올라와 울고불고, 교장 찾아가 잘못했다고 빌고. 친척은 물론 교장과 교감이 나 좀 살려달라고 하고. 그런 일이 부지기수였다. 교사가 무슨 노동자냐, 막노동꾼으로 전락하려고 하냐.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도 있었고, 학생들 의식화하는 빨갱이가 아니냐고도 했다. 전교조 초기에는 좋았는데 요즘 왜 그러냐고? 전교조 인정받은 적 없다. 그땐 더 미워했지.”

부모가 식칼을 꺼내놓고 같이 죽자고 하거나 투병 중이면서 치료를 거부하며 탈퇴하라고 한 일이 곳곳에서 터지던 시절이었다. 이 전 위원장은 24년 기억하며 “보수진영에게 전교조는 25년 동안 종북이고 좌파였다”고 일갈했다. 평온하던 그의 목소리가 이 대목에서 유달리 높아졌다.

1989년 해직사태 5년 뒤 1차 복직이 이뤄지고, 1999년 합법화하면서 최종 복직이 이뤄졌다. 합법화 이후 전교조의 위상은 높아졌고, 교육현장은 더욱 빠르게 달라졌다. 촌지와 부정부패가 상당히 줄었고, 체벌도 사라졌다. 그가 위원장이던 시절 김대중 정부와 교섭해 학급당 학생 수를 35명으로 줄이기로 합의해 시행되기도 했다.

보수정치권과 언론, 정치적 이해관계로 교육의 중립성 흔들어


이수호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이수호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김철수 기자

 
이 전 위원장은 전교조의 과제도 짚었다. 우선 밖에서 기득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을 스스로 내려놓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자기희생적 요소’라고 표현했다. 좀 더 유연한 태도를 주문하기도 했다. 교원평가 문제의 대응이나 노무현 정부 시절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네이스(NEIS) 반대 투쟁 등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교육 문제의 제일 큰 책임은 정책을 편 정부에 있는데 이를 전교조에 떠넘기려 한다”면서도 “문제가 있을 때 전교조가 조금 더 유연하게 국민을 인식하면서 정부와 잘 교섭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전 위원장은 “교육의 중립성을 흔들고 위협하는 것은 보수 정치권과 언론”이라며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했다.

“보수진영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통령은 전교조가 아이들을 의식화한다고 선거 때마다 전교조를 이용했다. 저도 작년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선 토론에서 이름까지 거론하며 공격하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교육을 정치적 이해로 이용하면 안 된다. 전교조를 공격해서 보수 표 결집하고, 그런 게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해친다. 박근혜 대통령 사립학교법 개정했을 때 텐트치고 촛불 들고 난리였는데 다 같은 것이다.”

공안정국 의도 파악하고 당당하게 나아가야

이 전 위원장은 고용노동부가 갑작스럽게 전교조에 규약 개정을 요구한 것을 현재의 공안정국 속에서 파악했다. 단순히 노동 문제나 규약개정하면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면 저쪽은 정보를 독점하고 이쪽을 교묘하게 분리시킨다. 우리가 별것도 아닌데 당했다. 전교조도 서로 분리시키려 한다. 이제 조용히 애들이나 가르치지 이런 식으로. 학교 실정을 잘 몰라서 그렇지 물신주의, 경쟁, 효율화 이런 것이 학교가 제일 심각하다. 그걸 막으려는 게 참교육이고 그동안 그나마도 ‘이건 아니다’라고 말한 게 전교조 교사들이었다. 이제 그걸 완전히 뿌리를 뽑으면 학교가 어떻게 되겠냐. 정말 암담하다.”

고용노동부의 통보 이후 전교조 내부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해직 교사를 배제한다는 것은 전교조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지만, 법외화 역시 자칫 조직을 약화·고립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을 넘어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전 위원장은 여전히 희망과 전화위복을 말했다.

“어느 때라고 우리가 고통과 어려움이 없을 때가 없었다. (전교조 문제를)무슨 정치적 이슈 수준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보진영 전체가 약화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 미래를 올바로 만들어가는 것은 모든 운동의 근본이다. 오히려 좋은 기회다. 다시 한번 뭉치고 연대하고 싸우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를 찾는 전교조 후배들에게 이런 말도 전했다.

“후배들이, 또 지도부가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세도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지 저절로 주어지는 건 아니다. 1989년 당시에도 그랬다. 문익환 목사 방북으로 공안정국이 시퍼런데 어떻게 하냐. 그런데도 우리가 나선 것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옳은 것을 가르치고 또 가르침을 내가 실천하려는 것이었다.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 길 밖에는 없다.”

그는 “내가 위원장 할 때 정부와 중앙교섭도 하고 조합원도 가장 많아 10만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6만명 정도로 40%가 줄었다”면서 “전교조라고 돌아오는 이익이 있나, 신나는 일이 있나? 욕이나 먹지. 그래도 매달 상당액의 조합비를 내면서 조합원으로 6만명 이상이 버티고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 여기에 길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수호 전 위원장은 전교조 건설부터 지금까지 교육운동의 최전선을 지킨 활동가로서 몇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이수호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이수호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김철수 기자

 


우선 전교조 결성 당시 양김(兩金)과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입장이 달랐다고 한다.

“당시 야당에 김대중, 김영삼 두 분 계셨는데 전교조 이야기를 하면 정말 알만한 분들인데도 ‘우리나라에서 남북이 분단된 상황이어서 교사가 노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당신들 하는 일 옳지만 우리 현실은 안 된다는 거죠. 정확한 판단이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옳은데 왜 안 되냐고 했고, 그냥 싸움을 했어요.”

“전교조 결성 준비하던 88년인가 노무현 대통령을 국회의원 사무실로 찾아갔어요. 설명을 하니까 ‘교사가 노동자인 건 맞고 노조 결성도 옳다. 현행법이 그걸 못하게 하면 법이 잘못된 거다. 잘못된 법을 고치기 위해 과감하게 저항하고 싸워야 한다. 대량 희생을 각오해야 할 거다’ 그러면서 내 기억에 열 사람 정도 구속되고, 100명 정도 해직될 거라고 말했어요. 그게 대량해고였던 거죠. 노 전 대통령, 그 뒤로 많이 도와줬어요.”

이명박 정부 이후 보수진영은 촛불시위의 배후로 전교조를 지목하고 공격해왔다. 과연 그럴까?

“옛날 생각이에요. 선동하는 지도부가 있고 뒤에 배후가 있고 이런 잘못된 생각으로 촛불 배후가 누구지? 자기들 볼 때 전교조밖에 없는 거죠. 물론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르친 것은 잘하는 겁니다. 어느 나라나 다 그렇게 하죠. 그러나 전교조가 학생들을 선동을 했을 거라고 보는 것은 정말 잘못 짚은 것이다. 요새 애들이 누구야? 촛불 나가려고 하다가도 선생님이 나가라면 안 나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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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스스로 무덤 판 주민들에게 국가란?

[포토스케치] 송전탑 공사 재개, 고립된 밀양의 힘겨운 싸움

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0-07 오전 9:22:42

 

 

밀양 송전탑 공사가 2일부터 재개됐다. 막아서는 주민들의 얼굴은 여전히 강경했다. 목에 쇠사슬을 묶고 길을 막는가 하면, 찬 새벽에 산 속에서 노숙을 하기도 하고, 경운기와 트랙터로 공사장 입구를 막은 채 움막 안에 무덤을 파 놓고 버티기도 했다. 곳곳에 자살을 암시하는 밧줄이 내려와 있었다. 상동면의 경우 감 수확철이었지만 한 해 농사를 포기하고서라도 공사를 막아내겠다는 노인들이 산 깊은 공사장에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수시로 일어나는 마찰에 고령의 주민들이 실신하거나 부상당하는 일이 속출했다.

이토록 처절한 반대는 이들의 존재의 문제와 연결돼 있었다. "우리가 늙고 시골에서 농사나 짓는다고 무시하는 것 아니냐", "우리는 국민이 아니냐"는 말이 이들의 처절한 싸움을 설명했다. 다수를 위해 희생을 감당하라는 국가의 시대착오적 논리 앞에서, 그 논리와 절차가 부당함을 증명하지 않으면 보상금 몇 푼 더 받고 싶어 안달난 사람이 돼 버릴 상황에서 이들의 싸움은 더 절박했다. 그들이 보호받아야 할 국민인지 다수를 위해 희생되어도 좋을 국민인지를 확인하려는 몸부림이었다.
 

▲ 89번 송전탑 공사현장에서 주민들이 몸에 쇠사슬을 감고 길을 막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러나 밀양은 고립돼 있었다. 올 겨울 전력난을 우려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오랜 싸움에 여론도 식을대로 식은 상태. 한전과 밀양시청은 어느 때보다 집요하게 공사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나이 든 주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고 있었다. 후보시절 다 해결해 줄 것처럼 말하고 떠난 '거짓말 대통령'에 대한 체념 혹은 노골적인 배신감이 증명하듯 밀양 주민의 삶은 국가의 관심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현재 밀양은 국가와 국민 사이의 전쟁 상태에 있다. 국가의 지배 논리, 원전의 논리가 주민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국가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전쟁에 임한 밀양 주민들의 절박하고 결연한 얼굴들을 사진에 담았다.
 

▲ 126번 공사 현장. 주민들은 산꼭대기에서 노숙하며 공사 재개를 반대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89번 현장. 2일 오전 주민의 반대를 봉쇄하고 공사가 강행됐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 4공구 현장. 헬리콥터가 공사현장에 자재를 나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밧줄로 목을 맨 문정선 밀양시의원. ⓒ프레시안(최형락)


 

▲ 4공구 현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 '탈핵 희망버스' 참가자가 시위 도중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126번 공사 현장에서 한 노인이 힘겹게 경찰과 맞서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127번 공사 현장. 주민들이 움막을 치고 현장을 지킨다. ⓒ프레시안(최형락)


 

▲ 127번 현장의 움막. 공권력 투입에 대비해 파 놓은 이 구덩이를 주민들은 '무덤'이라고 불렀다. 이곳에서 끝까지 싸우다 죽겠다는 뜻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109번 현장. 상동면 고정리의 고답마을, 고정마을, 모정마을과 도곡리의 도곡마을 등 4개 마을 주민들이 공사 반대를 위해 올라와 있다. 이 곳에서 밤을 새우지만 천막이나 이불 등의 반입을 경찰이 막고 있다. 상동면은 상동반시로 유명한 감 산지다. 지금 한창 수확철이지만 공사 재개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 주민들은 한전이 이 점을 노렸다고 말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109번 현장은 걸어서 한시간 가량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언론 노출이 거의 되지 않은 곳이다. 한 주민이 두개의 지팡이를 짚고 공사장에서 내려오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127번 현장의 움막. 태극기가 걸려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언론 상황은 좋지 못하다. 올 겨울 전력난을 극복하기 위해 갈등이 조속히 봉합되고 송전탑 건설이 시급히 마무리돼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방송사의 입장이다. 이러한 고립 상태에서 밀양 주민의 싸움은 힘겹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미지프레시안>에서 사진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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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은 이미 대통령 기록관에 봉인됐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0/07 10:10
  • 수정일
    2013/10/07 10: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지원'은 이미 대통령 기록관에 봉인됐었다

 

 

 


검찰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았다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삭제 흔적도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의 NLL 대화록 실종 중간 수사 발표에 '삭제'와 '이관되지 않음'이라는 용어가 나오자, 새누리당은 '사초 폐기'라며 문재인 의원의 정계 은퇴까지 요구하며 공격에 나서고 있습니다.

TV와 언론 보도를 보는 국민들은 대부분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대화록을 삭제하라고 지시했으며,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았다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믿음 속에 굉장한 모순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NLL 대화록을 둘러싼 모순점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따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지원 기록물은 이미 대통령 기록관에 봉인됐었다'

NLL 대화록의 핵심을 알기 위해서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국가기록원과 뉴라이트 전국연합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기록물 사본을 봉하마을로 옮긴 것에 대해 '불법 무단 유출'이라며 고발하여 수사를 진행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기록물을 봉하 사저로 가져갔다는 소식에 대한민국 언론 대부분은 '유출'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노무현 대통령을 범법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유출이라는 말은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몰래 빼돌린 것으로 사람들은 인식합니다. 그런데 당시 봉하마을에 있던 시스템을 국가기록원이 조사했을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국가기록원의 이지원 운용 현장 확인)
- 11:40분경 협의가 끝난 직후 국가기록원의 실무관계자 2인이 김경수 비서관의 안내에 따라 사저내 이지원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 서버실을 방문하였다.
- 서버실은 사저내 통제구역으로 정해놓았고, 출입문에는 이중 잠금장치를 했으며, 윈도우를 구동하고 이지원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해야만 접속할 수 있음을 직접 확인시켜 주었다.
- 또한 사저에 설치된 이지원 시스템의 하드디스크가 청와대에서 사용하던 이지원 시스템의 하드디스크와 제조회사가 다르며 상호 호환이 되지 않는 기종임을 설명하였고, 기록원측은 관련 내용을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 또한 우리는 사저의 이지원 시스템이 외부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독립망으로 되어 있음을 육안으로 확인시켜 주었고, 서버실과 대통령님 거실에 있는 단 두 대의 단말기만 접속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 단말기는 외부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직접 확인시켜 주었고, 국가기록원측은 이를 확인하였다.

국가기록원 조사관들은 봉하사저 안에 이지원 시스템이 설치된 서버실을 방문했습니다. 여기서 국가기록원은 서버실이 통제구역이며,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해야만 접속할 수 있다는 점, 외부 네트워크와 연결되지 않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말은 청와대의 이지원 서버를 복사해서 가져왔고, 대통령 이외에 접속할 수 없도록 했으며, 외부와 연동되지 않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즉 청와대에 있던 자료를 그대로 복사해서 봉하마을에서도 똑같은 자료를 볼 수만 있도록 했다는 말입니다.
 

 

 


검찰은 봉하마을의 자료와 대통령 기록관 자료의 차이가 있는지 여부를 밝혀내기 위해 컴퓨터 관련 전문 범죄를 담당하고 있는 <첨단범죄수사부 (구본진 부장검사)>에 사건을 배당했습니다.(현재 수사 중인 곳은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 (김광수 부장검사)

약 3개월간 컴퓨터 전문 범죄 수사팀이 수사한 결과 반납한 사본과 보관 중인 대통령 기록물의 차이가 없음을 확인하고 봉하 이지원 시스템을 검찰 입회 하에 대통령기록관에 봉인까지 했습니다.

2008년에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 기록물 유출 사건을 조사하면서 대통령 기록관으로 이관되지 않은 자료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난리가 났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검찰은 봉하 이지원에 있던 자료와 국가 기록관에 있던 자료는 차이가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결론은 봉하 이지원의 자료와 국가기록원에 넘긴 자료는 같으며 이는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는 사실입니다.

' 국가기록원 시스템 팜스 변환은 참여정부가 아닌 MB정권 시절'

2013년 3월 26일 노무현재단 사료팀은 대통령기록관 특수 서고에 있던 봉하 이지원 시스템의 봉인 해제 및 시스템 접속 기록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살펴보려면 참여정부 시절의 대통령 기록물이 어떻게 변환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참여정부에서 생산된 대통령 기록물의 문서는 기록관 서고로 직접 옮겨지는 데 반해, 전자기록물은 <청와대 이지원>을 기초로 기록물관리시스템을 거쳐 이관용 외장 하드에 기록을 옮깁니다. 참여정부는 이관용 외장하드를 국가기록원에 이관했습니다.

참여정부로부터 받은 이관용 외장하드를 대통령기록물 관리시스템 팜스(PAMS)로 변환 기록하는 과정은 참여정부가 한 것이 아니라 정권교체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즉, MB정권 시절에 참여정부 외장하드가 대통령기록물 관리시스템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MB정권은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기록원장도 교체했다)

 

 

 


현재 검찰 발표에 따르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3가지입니다. 청와대 이지원, 봉하 이지원, 국정원본입니다. (검찰도 이 세가지가 그다지 차이가 없다고 발표했으며, 그에 따른 해석은 정치적으로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아, 새누리당은 이미 7월에 앞으로 NLL 논란을 다시 제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봉하 이지원의 자료는 당시 청와대 이지원의 복사본입니다. 원본이 없는데 복사가 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검찰은 청와대 이지원에서 삭제됐던 자료를 복구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참여정부가 청와대 이지원에 있던 대화록을 삭제했다면 분명 2008년에 청와대 이지원과 봉하 이지원 (2013년에도 존재한다고 발표했으니)의 차이를 검찰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참여정부가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이 밝혀내야 할 부분입니다.
 

 

 


<검찰 첨단수사팀은 대통령 기록관에서 거의 3개월을 비교 조사했다. 이것은 빠른 시일 내에 중간수사 결과만 발표한 현재 검찰보다 당시 검찰이 더 자세히 수사했다고 볼 수 있다.>

즉, 2008년 청와대 이지원과 봉하 이지원의 자료가 동일하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던 첨단수사팀을 다시 불러, 그때 수사했던 자료를 들춰내고 관계자를 소환해야 합니다. 그런데 검찰은 지금 참여정부 인사만 소환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모순이 여기서도 발견되는 것입니다.

' 국가기록물,공공기록물, 도대체 무엇이냐?'

대부분 언론에서는 '대화록 삭제','대화록 폐기','사초 폐기' 등의 용어를 사용합니다.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을 함부로 삭제한 것은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을 위반했다며 난리를 칩니다.
 

 

 


검찰은 참여정부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없다면서 참여정부 인사를 대통령기록물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공개한 대화록에 대해서 검찰은 대통령 기록물이 아니라 공공기록물로 규정하고, 무혐의 처분을 했습니다. 그러자 남재준 국정원장은 대화록을 아예 일반문서로 재분류해서 공개했습니다.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했던 내용을 녹음해서 그것을 정리하라고 지시했다면 생산주체는 당연히 대통령이 되는 대통령기록물인데, 대화록 공개의 면죄부를 부여하기 위해 막무가내로 대통령 기록물을 일반 문서로 만든 것입니다.

(참여정부가 녹음 파일을 국정원에 정리하라고 한 것은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 국정원 기술로 정확히 대화록을 만들라는 의도였다.)
 

 

 


MB는 자신이 대화록을 봤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경향신문에서 어떻게 봤느냐고 질문을 하자, 대통령기록물로 열람한 것이 아니라 "돌아다니는 것은 많지 않느냐"고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개나 소나 다 볼 수 있는 문서 쪼가리가 이제는 대통령기록물로 둔갑해버린 것입니다. 검찰은 먼저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의 잣대에 대해 반드시 그들 스스로 법리 해석을 제대로 다시 해야 합니다.

2008년 봉하마을이 반납한 이지원 사본에 대화록이 있으며, 대통령 기록물로 분류됐다면 참여정부에서 삭제됐다는 말은 모순입니다. 봉하 이지원 자료이지만 분명히 대통령 기록물로 대통령기록관에 반납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검찰은 불법 유출 운운하며 관계자를 소환 조사 수사했으나 이지원의 자료를 모두 반납했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을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2008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기록원에 반납하지 않고, 추가로 유출한 자료나 더 복제돼 나간 자료는 없다고 발표했다.또한 지금 참여정부 소환 대상자들은 이미 2008년에도 소환됐었다.>


대통령 기록물을 유출했다고 수사했다가 다시 돌려줘서 이미 수사가 끝난 상황인데, 대통령 기록물을 삭제했고 이관하지 않았다는 검찰 주장은 법적으로도 짜맞추기, 정치 공작에 불과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기록원 열람 시스템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고생하다 겨우 10억 6천만원을 마련해서 대통령기록관리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퇴임 후에 열람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은 예산 때문에 만들지 못해 '기록물 유출'로 검찰 조사를 받는 상황까지도 직면했었습니다.

이명박은 퇴임 후 사저에서 편안하게 온라인 열람을 하기 위해 무려 6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온라인 열람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2008년 7월 13일 오전 11시 45분 봉하 사저를 방문한 국가기록원 관계자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의심나는 기록이 있으면 확인하고 가고, 확인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협조하겠다. 확인하고 이 문제는 깨끗이 정리해주고 가라>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참 나쁜 사람 같습니다. 왜 이리 일찍 세상을 떠나, 무덤에서도 분노할 만큼의 오해와 멸시를 지금까지 받고 있으며, 조금이나마 진실을 아는 국민을 이토록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떠난 지 4년이 넘었지만, 그때 그를 괴롭혔던 새누리당과 언론들은 그를 무덤에서 끌어내다 못해, 그의 친구 문재인 의원을 향해 돌팔매질하고 있습니다.

이 땅을 떠나지 말고, 국민 곁에서 함께 진실을 향해 싸웠다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어쩌면 그는 힘들었을지라도 그의 진실을 믿는 국민에게는 위로와 빛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따라 세상을 떠나 그가 원망스러우면서, 보고 싶습니다. 아무리 글을 써도 이미 새누리당과 언론은 그의 무덤을 포크레인으로 파헤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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