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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 “전기보다 인간 생명이 중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10/12 10:00
  • 수정일
    2013/10/12 10:0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용훈 주교 “전기보다 인간 생명이 중요”

주교회의 정평위 환경소위, 탈핵 세미나 열어

한수진 기자 | sj1110@catholicnews.co.kr

 

 
▲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가 8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핵발전에 관한 한국천주교회의 가르침’을 주제로 탈핵 세미나를 열었다. (왼쪽부터) 세미나 발표자로 나선 박동호 신부, 하미나 교수, 양이원영 처장 ⓒ한수진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 환경소위원회가 8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핵발전에 관한 한국천주교회의 가르침’을 주제로 탈핵 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더욱 주목을 받아온 핵에너지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사회교리에 근거해 핵발전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 마련됐다.

 

세미나 주제 발표에 앞서 이용훈 주교는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리 방안이 없다는 문제와 방사선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하며 “현 시대에 존재하는 수많은 위험 중에 방사선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현 세대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미래세대의 생명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기가 중요해도 인간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조금 어둡게 살게 된다 하더라도 위험한 핵발전소를 늘리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미나에서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하미나 교수가 ‘방사선 노출의 건강영향’을 원폭생존자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하 교수는 방사선 노출로 대부분의 암을 비롯해 다양한 질병이 발생하며, 엑스레이나 CT 촬영 등 진단과 치료용 방사선 노출도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처장은 ‘지속가능한 에너지시스템의 도전―위기는 기회’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한국의 에너지 현황을 진단하고, 원자력 산업 육성에 집중한 정부의 잘못된 에너지 정책으로 전기 소비가 불필요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양 처장은 경제성과 안정성, 친환경성을 기준으로 에너지 정책을 세운다면 “경제가 발전해도 에너지 수요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기 사용량이 많은 오전과 오후 시간에 잠시 전기 소비를 줄이거나 분산시키고, 이 시간대에만 가동할 수 있는 발전소를 세운다면 365일 내내 가동해야 하는 핵발전소는 늘리지 않아도 된다”고 제안했다.

 

 

   
ⓒ한수진 기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박동호 신부는 가톨릭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핵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발표했다. 박 신부는 “핵은 사회교리의 원리인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 재화의 보편적 목적, 사회적 약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 보조성, 책임 있는 참여, 상호 연대를 모두 부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와 소수의 전문가, 핵 관련 산업계와 학계, 그리고 국가주의에 의지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은밀히 일방적으로 유지 · 확대하려는 핵산업(핵무기와 핵발전)은 그 자체로 진리와 자유와 정의와 사랑이라는 사회생활의 근본가치를 제대로 수용할 수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주교회의는 오는 14일부터 5일간 열리는 추계 정기총회에서 <핵발전소에 관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가르침>(안) 심의를 주요 안건으로 논의한다. 11월에는 탈핵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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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11 10: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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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뺨검둥오리에 흰뺨이 없다

흰뺨검둥오리에 흰뺨이 없다

 
윤순영 2013. 10. 11
조회수 791추천수 0
 

수수하고 친근한 '우리 오리', 이름만 가지곤 구분 어려워

우리나라서 번식, 가을엔 철새 대거 합류 큰 무리 형성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YS1_9413[1].jpg » 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흰뺨검둥오리.

 

흰뺨검둥오리는 전국에 걸쳐 서식하는 텃새이다. 하지만 요즘 북쪽에서 번식한 새로운 무리가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고 있다.

 

텃새에 철새가 합류하니 개체수가 늘어나 이 오리를 만날 기회가 더 많아졌다. 흔히 볼 수 있는 새라 무관심하지만 가족애 부부애가 너무나도 좋은 새이기도 하다.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nsDSC_3846[1][1].jpg

 

여름에는 암수 한 쌍이 짝을 지어 하천의 갈대, 줄, 창포 등 습지 식물이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전형적인 물가 습지 초원에서 살아간다. 겨울이 되면 짝을 이룬 개체가 모여들어 큰 무리를 형성한다.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nsSY3_9628[1].jpg » 저녁 무렵 하천에서 휴식을 취하는 흰뺨검둥오리 가족.

 

넓은 호수나 연못, 습지, 간척지, 논이나 하천 등지에서 먹이 활동을 위해 집단으로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오리류에 속하기 때문에 물가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초원이나 얕은 숲의 가장자리, 심지어 나무 위에서도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SC_0121[1].jpg » 나무 위에 올라가 휴식을 하는 흰뺨검둥오리 부부.

 

크기변환_dnsYS2_0125.jpg » 알을 품고 있는 흰뺨검둥오리. 경계의 눈초리가 매섭다.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nsYS1_0793[1].jpg » 새끼를 거느리고 평화롭게 연못을 오가는 흰뺨검둥오리 어미.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nsDSC_4504~2[1].jpg » 연잎에 올라가 날갯짓을 하는 흰뺨검둥오리 새끼.

 

몸을 숨기기에 적당한 풀숲에 둥지를 틀고, 4~7월에 걸쳐 한 번에 10~12개의 알을 낳는다. 주로 암컷이 알을 품으며 기간은 21~23일이고, 수컷은 둥지 주변에서 끊임없이 천적과 환경 변화에 경계의 눈초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크기변환_dns크기변환_dnsDSC_6576[1][1].jpg » 무르익은 논 위를 날고 있는 흰뺨검둥오리 무리.

 

먹이로는 수초의 어린 싹이나 잎, 줄기 등을 선택하기도 하고, 초본류의 종자, 곡물류 등을 먹기도 한다. 그밖에 지상에 서식하는 곤충류나 수중 또는 육상의 습한 곳에서 찾아내는 무척추동물, 어류 등 동물성 먹이도 섭취한다. 언제 봐도 우리 곁에 화려하지 않은 모습으로 다정다감하게 다가오는 정겨운 새다.

 

그러나 이름은 이 새의 겉모습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시에서 처음 새를 접하는 사람이 "그런데 흰뺨이 어디 있어요?"라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흰뺨검둥오리에서 희다고 할 수 있는 부위는 뺨이 아니라 눈썹선이고, 그것도 엄밀하게 말한다면 흰 것이 아니라 옅은 갈색이다. 뺨은 눈썹선보다 더 어두운 갈색이다. 그래서 이 오리의 이름을 듣고 "흰뺨'을 찾으려 해도 허사이다.

 

다음은 '검둥오리' 부분인데, 아무리 봐도 이 오리는 검지 않고 갈색이다. 수컷의 고리덮깃 색이 검긴 하지만 몸의 일부일 뿐이다. 빛깔로만 보면 이 오리는 대표적인 '갈색오리'이다.

 

white.jpg » 흰뺨오리. 대체로 검은 몸빛깔을 한데다 뺨에 흰 무늬가 있다.

 

사실 흰뺨검둥오리란 이름에 꼭 맞는 오리가 있다. 수컷의 뺨에 선명한 흰색인데다 배 부위를 빼고 몸 대부분이 진한 검은 색이다. 그리고 이 새에게는, 당연하게도 '흰뺨오리'란 이름이 붙어있다.

 

흰뺨검둥오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검은 부리 끝의 노란색이다. 보통 탐조가들이 이 새를 식별할 때 포인트가 이것이다. 참고로, 이 새의 영어 명칭은 '동쪽에 사는 부리 끝이 노란 오리'란 뜻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이사장

http://윤순영자연의벗.kr/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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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날 고소하다니…분신이라도 해야하나"

[인혁당, 끝나지 않은 눈물 ②] 87세 강창덕 씨 이야기

박세열 기자,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0-11 오후 3:10:22

 

 

강창덕. 중·고등학교 교사, 신문기자, 진보당 당원, 혁신정당 운동가. 그는 1927년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다. 전라북도에서 민족종교인 보천교 관련 활동을 하던 아버지를 둔 덕에 '반골 기질'을 타고났다고 한다. 그는 군산에서 태어난 후 아버지의 고향, 경북 경산으로 돌아온다. 거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처음 감옥에 간 것은 1943년이었다. 열일곱 살 강창덕은 만주 등지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과 관련해 주변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다가 적발됐다. 일본 순사에게 '소자지매(소의 성기에 끈 같은 것을 채워넣어 만든 일종의 채찍)'로 무던히 맞았다고 했다.
 

인혁당, 끝나지 않은 눈물
박근혜, 인혁당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나?

 

▲ 강창덕 씨는 유신 반대 투쟁을 하다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1975년 4월 8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와 함께 연루된 8명은 사형 선고가 내려진지 18시간만에 형장의 이슬로 스러졌다. 진실은 약 28년 만에 규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재심에서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이 배상액의 이자 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국정원으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프레시안(최형락)


두 번째는 1944년이었다. '황군(일본군)' 해군에 자원입대하라는 '명령'이 나오자 "왜 일본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하나. 지금 해외에서는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데"라고 생각하며 도망쳤다는 이유였다. 해방 후 갓 스무살이 된 청년 강창덕은 1947년, 분단 반대 웅변대회에서 유엔과 미국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미군정에 의해 또 한번 구속됐다.

초대 제헌 국회의원이자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 출신인 이승만 반대파 서상일 선생의 비서로 있다가 '북진통일 지양하고 평화통일 지향하자'는 주장을 냈다는 이유로 또 옥고를 치렀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경산 질량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된다. 그러나 통일과 정치 혁신을 바라는 20대 젊은 교사의 피는 끓고 있었다. 진보당 대표를 지낸 죽산 조봉암 선생이 1956년 대선에 출마하자 경북 경산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내가 운동해서 이승만 표보다 곱절 많은 표가 경산에서 나온 것이 내 평생의 자랑"이라고 했다.

그는 선거 패배 후 서른살 나이로 영남일보 공채로 입사해 기자가 된다. 그러나 영남일보 사장이 자유당에 들어가자 3년만에 신문사를 그만두게 된다. 이후 대구매일신문 주필을 지냈던 몽양 최석채 선생의 추천으로 대구매일신문에 입사, 3년을 더 신문기자로 일을 했다. 신문 기자 시절은 그의 인생 최고의 황금기였다. 그는 "내가 정치부에서 반정부 기자(반이승만)로 명성이 높았다"며 웃었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5.16으로 그는 또 다시 옥고를 치르게 된다. 장면 정부가 추진한 반공임시특별법(현 국가보안법과 유사)과 데모규제법(현 집시법과 유사)에 반대하는 이른바 '2대악법반대투쟁(대구 데모 사건)'에 가담했다는 이유였다. 데모는 장면 정부 때 했는데, 처벌은 박정희 정권 때 받았다. 5.16쿠데타 이후 그는 혁명재판에서 경상북도사회당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징역 7년을 받았게 된다. 쿠데타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쿠데타 이후 만들어진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특수반국가행위 위반)을 적용하는 '만행'을 박정희 정권은 스스럼없이 저질렀다. 이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프레시안>이 상세히 다룬바 있다. (관련기사 : 아직도 살아 있는 '5.16 악법', 박근혜는 폐기할까?) 강창덕 씨는 이 사건과 관련해 2011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 강창덕 씨를 민주화운동원로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에는 통일기(한반도기)와 전봉준, 김구, 여운형, 조봉암, 전태일 등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내가 국정원한테 채무자가 돼"

박정희와 그의 인연은 끝이 아니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지독했던 일에 휘말린 것이다. 1974년, 이른바 '인혁당재건위사건'이었다. 그는 유신 반대 투쟁을 하다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1975년 4월 8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와 함께 연루된 8명은 사형 선고가 내려진지 18시간만에 형장의 이슬로 스러졌다. 진실은 약 28년 만에 규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재심에서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주심 신영철 대법관)은 그에 대한 배상을 다룬 소송에서 35년치 이자(연 5% 적용)를 적용한 원심을 깼다. 받은 이자를 도로 내놓으라는 판결이었다. 1심을 뒤집고 대법원이 직접 판결을 한 이례적인 일이었다. (관련 기사 : 홍사덕 '유신 미화' 발언 파문, 37년 전 그는…) 국정원은 곧바로 강창덕 씨에게 소송을 걸었다. 37년만에 돌아온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의 짧은 '편지'였다. 사과도 아니었고, 유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소장 형태로 강창덕 씨에게 날아들었다. <프레시안>은 강창덕 씨를 대구 중앙로에 있는 민주화운동원로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후배들이 선배들의 정신 계승 잘 해달라고 민주화운동원로회를 만들어서 사무실을 하내 냈어요. 배상금 받아서 내 생에 내가 하고싶은 일 한다고 하는데, 청천벽력같이(국정원이) 돈 갚으라고, 소장을 보내왔어요. 경천동지할 일 아닙니까. 이런 소식이 어디 있겠어요. 내 팔자가 와 이리 됐느냐. 한평생 반독재 민주화운동하고, 민주통일 운동을 하는데,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가해자인 국정원한테 내가 채무자가 돼 가지고 법정에서 심판을 받으라니, 이거는 몇 번째 나를 죽이는 것 아닌가. 나를 이런 굴욕적인 인간으로 만들어...한이 많지요. 보통 한이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떨 때는 국정원 마당에 가서 분신 자살을 해서 억울함을 우리 사회에 고하고 죽어야 안 낫겠나.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주심인 신영철 대법관 등의 판단은 '배상금을 너무 많이 줬으니 일부를 다시 국가에 돌려달라'는 취지였다. 여기에 국정원이 민사소송을 내고 법무부가 이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5일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국정원은 절반만 받고, 강창덕 씨는 절반만 갚으라'는 취지로, 그나마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법무부가 이의 제기를 하지 않으면 이 결정은 확정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기류가 이상하다는 말들이 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법무부는 어떤 판단을 내릴까.

"더욱 억울한 것은 차라리 가집행을 안하고, (1심 배상 판결 이후 가집행으로 강창덕 씨는 약 65%, 12억 원을 먼저 받을 수 있었다-편집자) 그 때 돈을 안 줬으면 (대법원 판결까지 끝나고 배상금을 줬으면) 내가 국정원에 이런 빚쟁이가 안 되지. 1심 끝나고 고법에서 가집행 했는데, 대법에서 법을 1, 2심 판결을 뒤엎어버리고…. 1974년 사건 아니요. 74년부터 시작해서 법에 의해서 이자 연 5% 손실금이라고 해서 사법부에서 법대로 한 것 아닙니까. 1, 2심 판결을 대법에서 자판해가지고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30여 년간 이자를 다시 내놓으라고 하고, 법무부가 국정원이 하라고 해서 소송을 하는데, 우리는 또 국정원이라고 하면 몸이 서려하는 인간이고, 한이 많은 인간이예요. 그런데 소송을 걸어가지고, 국정원은 원고가 되고 (나는 피고가 되고) 이런 굴절된 역사가 어디 있겠습니꺼. 숨통이 터져서요, 자꾸 병이 날라고 그러고, 이렇게 살 바에야…. 국정원에서 소장이 나오는데 깜짝 놀라잖아요."

87세 강창덕 씨의 입술은 국정원에서 날아온 소장 받았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바르르 떨렸다.
 

▲ 강창덕 씨는 이번 일을 겪은 후 '호소문'을 돌리기도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구타, 물고문으로 조작된 사건…감옥서 나오니 모두가 나를 피하더라"

강창덕 씨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박정희 정권 시절,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겪은 일을 설명해달라고 주문하자 그는 "내가 박정희한테 호되게 당했단 말이야. 처음에 오일육 군사혁명재판에 끌려가서 7년 받았지, 반유신운동하다가 무기징역 받고 8년을 살았지. 내 인생 개인은 박정희 때문에 이만저만 희생을 당한 게 아니"라고 했다. 강 씨는 당시 고문을 당했던 일까지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은 강 씨의 구술을 최대한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1974년에) 민청학련사건이 안 터졌나. 그 때 내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서울에 있는데, 74년 4월 25일인가 중앙정보부장이 민청학련 사건을 갖고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하는기라. 하는데, 배후 세력이 (인혁당 재건위가) 있다고 해.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불똥이 나에게 날라오겠더라. 내가 대구에서 반유신 운동한 실적이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이놈들한테 당하겠구나 했어. 서울에서 내가 여동생에게 여비 좀 돌라케가지고 부산에 도망가서, 부산서 저 전라도 보성, 광양, 백운산 밑에까지 돌아댕겼어. 그때 날 체포한다고 난리가 났었나봐. 고향을 뒤지고 난리가 났어. 한 열흘 쯤 피했는가. 5월 6일날 저 전라도 갔다가 여수, 순천 갔다가 부산에 시내에 내 동서가 양복점을 하고 있었는데, 동서한테 왔어. 도피 자금을 얻을라고. 그래 갔다가 (양복점에) 들어갔는데 남대구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꼼짝없이 붙잡혔지.
 

▲ "고문 조작이었지. 주변 사람들 전부 북의 지령을 받아가지고 했다고 발표한대로 그대로 아는 거죠. 고향에 나중에 나와보니까 날 안볼라 해. 간첩이라고. 간첩 사건인줄 알고. 전부 간첩 사건으로 홍보를 해놓았거든. 그렇게 국가 권력에 의해 피해를 봤는데, 출소는 했는데 아무데도 취직도 못하고, 일가족 행사에도 못 가요. 결혼식도 못가요. 오는 거 안 반갑게 해. " ⓒ프레시안(최형락)

남대구경찰서로 연행이 됐지. 경찰서에서 밤새도록 고문을 당했어. 때리고, 구타하고, 처음에는 손바닥 발바닥을 주로 경찰봉을 가지고 구타하더라고. 아따, 손바닥 발바닥, 그거 맞아도 못견디겄대. (종아리, 팔뚝을 매만지며) 이꺼지 시꺼멓드라고. 죽은 피가. 그래도 내가 자백을 안하니까 코구멍으로 물을 흘려서 물고문을 하더라고. 물고문을 했다가 (기절을 했는데) 가만히 깨나 보니, 내가 유신 반대한 사람이고, 유신반대 역할이 있다 아니가. 내가, (거짓 자백) 하면 몇 년 그냥 살고 안 나오겠나. 그래서 이정우 기자라고 같이 혁신운동하고, 반구데타 운동하고 지냈는데. (한숨) 이정우는 혁신계 학원 담당, 강창덕이는 정치 경제 언론 담당, 나경일은 노동운동가인데 노동운동 담당하고 공소장에 보면 그래 돼 있거든. 그래가지고 강창덕이는 신민당경북도당 부위원장 뭐를 포섭하고, 언론에 대구매일신문 기자를 포섭하고 그래가 돼 있어.

진실로쿠는(실제로 말하면) 나도 당시에 유신 반대하고, 지하신문을 발행을 할라꼬 준비를 다 했었지. 그래 가지고 내가 (고문을 당한 후에) 기왕 날 박해할라고 그러는데, 박해 당할 수밖에 없지. 이카면 까딱하면 내가 고문 받다가 죽겠다. 근데 난 안 죽어야 되겠다. 그래서 (북한과 연계됐다는 거짓 진술에) 도장 찍고 고문을 면했다. 그래서 서울 중앙정보부로 끌려가서….(한숨) 그리고 8년 8개월이다. 무기징역을 받았는데, 중간에 20년으로 감형됐죠. 형집행정지로 82년도에 출소했다. 그래서 잔형면제를 노태우 때 받았는데, 복권 사면을 안해줬단 말이야. 꼬빡 10년을 더 기다렸잖아. 그러면 자연 복권이 되니까. 8년 8개월, 거기다 10년, 이거저거 다하니까, 40대 50대 다 갔어.

고문 조작이었지. 주변 사람들 전부 북의 지령을 받아가지고 했다고 발표한대로 그대로 아는 거죠. 고향에 나중에 나와보니까 날 안볼라 해. 간첩이라고. 간첩 사건인줄 알고. 전부 간첩 사건으로 홍보를 해놓았거든. 그렇게 국가 권력에 의해 피해를 봤는데, 출소는 했는데 아무데도 취직도 못하고, 일가족 행사에도 못 가요. 결혼식도 못가요. 오는 거 안 반갑게 해. 근데 우에 가노. 눈치 보면 알거든. 옛날 신문사 친구들도 하나도 안 만날라 그래. 그렇게 희생을 당했는데, 민주화 역사 발전 때문에 그래도 우리가 재심 무죄까지 받고 배상을 받았죠. 정상적인 판례에 의해 판결이 났는데, 검찰에서 대법까지 상고를 하는 바람에, 1심 끝나고 3분의 2 정도 가집행을 해줘서 빛도 다 갚고, 아파트 겨우 하나 샀는데, 도루묵이 됐다. 반유신행동했다가 고문 받고 조작 당하고, 개인 인생을 망쳤는데, 정말 굴욕적인 이런…. 그러니까 지금 현재 심경은 뭐라고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아주 착잡합니다. 착잡해. 하루아침에 엉망진창이 됐으니. 정말 피를 토할 일 아니십니까.

세상에 운명이라도 이런 운명의 장난이 어데 있을 수 있겠어요. 고문 조작해서 겨우 살아나가지고, 또 '엄정 독거'를 시키라고 청와대에서 지시를 내려갖고, 8년 8개월 중에 독방 생활을 약 7년 8개월을 했어. 전주형무소에서 있었는데, 나중에 출소할 때는 대구 형무소에서 일년 남짓 있다가 나왔죠. 전주형무소에서 나랑 무기수 네 사람은 독방에서 갖혀서 한 사람씩 감시를 하는데, 북에서 온 사람보다도 더 엄중 감시를 받고 살았거든요.

나는 가집행 중에서 실제 수령한 게 12억 원 정도 되는데, 6억9000만 원을 반납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6억9000만 원 반납할 돈이 어디있나. 내가 평생을 항상 신세지고 살다가 이제 그것 갚고, 어려운 사람 돕느라고 기부하고, 거의 다 소비를 했는데, 갑자기 돈을 갚으라고 하니…. 37년간 인간 관계에서 사람 구실 못하다가 빚갚고 구실하는데. 기가찰 일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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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4대강 사업의 국외자(局外者)였나?

삼성과 중앙일보의 무서운 원대한 계획…
 
임두만 | 등록:2013-10-11 08:38:25 | 최종:2013-10-11 14:09: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JTBC 9시뉴스 캡쳐

 

10월 10일, JTBC 9시 뉴스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집중 보도가 있었다. 4대강 보를 철거하자는 법안을 제출한 민주당 홍영표 의원을 스튜디오에 초대 손석희와 대담을 가질 정도…

하지만 홍영표가 제안한 법은 보 철거가 주 내용은 아니다. 실제 보 철거가 주 내용인 법안은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냈다. 그러함에도 심상정이 아니라 홍영표를 불렀다. 이거 또한 손석희와 JTBC의 노련한 한 수다. 심상정에게서 나타나는 분위기와 홍영표에게서 나타나는 분위기는 시청자에게 주는 임팩트가 다르다. 특히 종편에서 9시 뉴스를 보는 주 시청층은 JTBC라도 반북 반좌파 보수층이 주류다. 이런 시청층을 상대로 심상정이 어떤 말을 해도 임팩트는 떨어진다. 그래서 그나마 민주당 홍영표를 부른 것으로 보인다.

암튼…각설하고…

오늘 JTBC는 이 대담 말고도 3꼭지를 4대강 관련 뉴스로 채웠다. 그리고 압권은 무려 4.135억 원이 투입된 4대강 주변 나무심기 공사의 허실을 파헤친 리포트였다. 다른 공기업의 조경공사에 쓰였던 나무 값 평균보다 무려 1주당 평균 32만 원이 더 들어갔다는 폭로, 이어서 그렇게 비싸게 주고 산 나무들이 다 죽어 잘라버렸거나 죽어있는 모습을 비춘 영상은 보는 시청자들의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JTBC 9시뉴스 캡쳐

 

특정업체에 대한 특혜의혹도 폭로했다. 지난해 수주액 기준으로 조경 업계 55위인 군소 조경업체인 S사가 금강 4공구를 포함 5개 공구에서 사업자로 낙찰돼 278억 원의 매출액을 올리고 수주액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이 그거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영록 의원은 “희망의 숲이라고 해놓고 결과적으로 대국민 사기극으로 전락한 셈”이라고 질타했으며, 리포트를 한 기자는 “정부의 졸속 4대강 나무심기로 정부 예산 수백억이 낭비됐고 나무는 죽어가고 있습니다.”라는 크로징을 했다.

나는 이 보도를 보면서 조만간 4대강이 보수진영을 폭발시키는 폭탄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견했다. 아니라면 ‘조중동’카르텔에서 중앙이 빠지면서 중앙과 JTBC는 급격한 탈보수화 하지 않을까 예견하기도 했다.

이 예견에 대한 소스, 이 소스를 통해 접한 삼성과 중앙일보의 무서운 원대한 계획…정신이 번쩍 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소스에서 파악된 삼성의 무섭고 원대한 계획의 얼개는 이렇다.

1. 삼성은 2002년 대선이 끝나고 노무현이 당선된 뒤, 이회창의 3수로도, 이회창이 아니라면 포스트 이회창으로도 당분간 ‘보수진영’이 정권을 탈환하기 힘들 것으로 파악했다. 그래서 1997 대선과 2002대선까지 줄곧 같이 움직였던 ‘조중동’카르텔에서 중앙일보를 빼내기로 했다. 이런 의사를 노무현 정권 핵심에게 전달했고, 정권 핵심들도 용인, 정권 측에서 먼저 ‘조중동’에서 중앙은 빼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어 갔다.

이는 실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참여정부 국정홍보처라든지 청와대 홍보수석실 관계자들은 공공연히 그런 말들을 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친노 인터넷 사이트로 당시 맹위를 떨치던 <서프라이즈>에서 공론화가 이뤄지기도 했었다. 이런 여론이 공론화될 무렵 노무현 대통령은 외무부 장관보다 급이 높다는 말을 듣는 주미대사에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던 홍석현을 파격적으로 임명했다.

이처럼 되자 다시 여론은 홍석현이 유엔 사무총장을 노린다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즉 삼성을 통해 여론을 움직이는 핵심 층에서 주미대사로 외교가에 얼굴을 알린 홍석현을 노무현 정권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밀어 당선시킨 뒤 1차 임기를 마치면 포스트 노무현으로 차기 정권을 창출한다는 얼개를 짰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그들의 얼개대로 되지 않았다. 뜬금없이 삼성의 정치권 로비사실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에 의해 불거진 것이다. 특히 2005년 7월 이상호 당시 MBC 기자가 옛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도청 내용을 담은 테이프를 입수해 삼성그룹과 정치권, 검사들 간의 관계를 폭로해버렸다. 이른바 ‘삼성X파일’사건이다.

당시 폭로된 도청 내용에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이 한 호텔에서 만나 이회창 대통령 후보에 대한 자금 제공을 논의한 내용이 있었다. 또 삼성이 떡값을 주며 관리해 온 검사들을 언급한 하나같이 충격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여론은 들끓었으나 사정기관은 미적지근 했다. 이러자 당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 명단을 공개해버렸다. 그러자 이번엔 그 명단에 오른 검사들이 노회찬을 고소했다.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 5개월에 걸쳐 이 사건 전반에 대한 조사를 했다.

당시 수사 책임자가 현 법무부 장관인 황교안, 그가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로 사건을 지휘했다. 하지만 5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나온 수사결과는 허망한 것이었다.

홍석현과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구조본 김인주 사장 등 삼성 임원은 무혐의, 반대로 이 사건을 보도한 이상호 기자와 이른바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국민들은 반발했으나 결국 노회찬은 이 당시 기소가 족쇄가 되어 지난 19대 총선에 당선되고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의원직을 잃었다. 하지만 홍석현도 결국 애초의 그림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중도 낙마했다. 따라서 삼성의 이 원대한 그림은 휴지가 되었다.

2. 이후 삼성과 중앙일보의 행보…친노와는 거리를 두면서 다시 원래의 자리인 조중동 카르텔 안으로 들어갔다. 또 정세도 중앙이 그리 움직이도록 했다. 이명박 당선 후 종편채널이지만 삼성-중앙의 필생 꿈인 TV 방송국 소유가 눈 맢에 다가와 있었다. 이명박 측과 척을 질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여권엔 포스트 이명박으로 확실한 박근혜도 있었다. 이명박 이후 삼성이 직간접으로 권력 창출에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덧붙여서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그악한 반감은 중앙을 ‘조중동’ 카르텔에서 능동적으로 빠져나올 수 없게 했다.

그러나 지금의 정국은 다르다. 첫째 여권에 포스트 박근혜가 없고, 둘째 박근혜 정권의 속성상 강한 보수(반북 반재벌 파시스트)정책을 추진할 인맥의 대거 출세와 이들이 가진 기본적 흠결에 대한 반국민 감정은 고조될 것, 셋째 방송경험과 자본에서 허약한 조선과 동아는 결국 경영난 때문에라도 방송을 포기할 개연성이 있다는 것…따라서 거미줄 같은 삼성의 정보라인을 통한 미래예측으론 박근혜와 김대중의 중간급을 아우르는 세력이 필연적으로 출현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3. 손석희는 여기에 합당한 인물이다. 손석희 스스로 출세에 대한 욕망이 강하지만 그걸 노골적으로 표출하지 않는 노련함도 있다. 국민들 눈에 이런 손석희의 노련함은 보이지 않으나 손석희의 번뜩이는 천재성으로 포장된 ‘진보연’하는 자세는 보인다. 만약 이런 손석희에게 마당이 제공된다면 국민들은 상당부분 경도될 수 있다. 손석희가 JTBC에 승차한 것은 이 그림에 동의한 증표다.

박근혜 정권은 갈수록 국민 지지도가 떨어질 것이지만 여기에 대항할 야권은 없다. 반짝 했던 안철수도 결국은 독자적으로 추진할 힘을 잃고 동력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계속적으로 안철수가 대안으로 운위는 되겠지만 강력한 반박의 구심점은 어렵다. 결국 안철수 세력이나 민주당 주류 비주류 친노 모두다 각개약진으로 뛰다가 막판 연합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들 중 누구도 실질적 1인자로 조직을 장악할 수 있는 능력도 조직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금력 풍부한 삼성이 간접지원하고 JTBC라는 마당을 이용해 본인의 퀄리티를 한 껏 올린 손석희는 친박 반박 모두에게 강력한 대안으로 자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기회가 제공되었을 때 손석희는 모두를 아우르는 포스트 박근혜 자리를 충분히 차고 나갈 능력이 있다. 정치적 스텐스? 거미줄 같은 여론 파악 시스템이 있는 삼성의 정보로 마지막에 여든 야든 정하면 된다.

여기까지가 내가 확보한 소스에 의한 삼성과 중앙의 얼개다.

어떤가? 섬찟하지 않은가? 나는 손석희가 JTBC에 영입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이런 소스를 접한 뒤 손석희가 앵커로 뉴스를 진행한 이후 매우 유심히 JTBC 9시 뉴스를 본다. 과연 그 얼개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다. 그리고 지금은 이 글 첫 머리에 제시한 JTBC의 4대강 관련 집중보도를 보면서 그 얼개는 매우 신빙성이 있다는 판단을 한다. 왜? 4대강 사업에 삼성은 국외자(局外者)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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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통일의 참 스승' 홍근수 목사 영결식.노제 엄수

각계 600여명 참석, 자주.민주.평화.통일로 부활 기원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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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11 19: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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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와 통일의 사도 홍근수 목사 통일사회장' 영결식이 11일 향린교회에서 엄수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7일 지병으로 별세한 홍근수 목사의 '평화와 통일의 사도 홍근수 목사 통일사회장' 영결식과 노제가 11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서울시 중구 향린교회, 대한문앞에서 각각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고인과 함께 지난 2004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을 창립한 문규현 신부와 6.15남측위원회 명예대표인 김상근 목사, 그리고 조헌정 담임목사와 향린교회 교인 등 각계 6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영결식은 이병일 강남향린교회 담임목사의 인도로 '부활증언예배'의 형식으로 시종 엄숙하게 진행됐으며, 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의 설교 '하늘뜻펴기'에 이어 김상근 목사, 문규현 신부,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김인경 원불교 경기인천교구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 문규현 신부가 유족인 부인 김영 목사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조헌정 목사는 추도 설교에서 "사도바울의 유언과 같은 고백이 많은 기독교인의 장례예배에 인용되지만 홍목사님의 삶만큼 자신있게 증언할 수 있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라는 디모데후서 4장 7~8절을 인용해 고인을 기렸다.

김상근 목사는 추도사에서 고인을 '형', '근수형'이라고 부르며, "우리는 당신을 평화와 통일의 사도로 오래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그리워했다.

문규현 신부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인을 '오랜 벗이자 동지이며, 형님'인 '사랑하고 존경하는 홍근수 목사님'으로 호칭하고, 고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 '평화와 통일의 참 스승'으로 추모했다.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은 "지금도 100여회에 걸쳐 진행되는 반미 월례집회에서 또 TV토론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민족, 민주의 사자후를 토했던 고인의 강렬한 힘은 '선지자'의 그것이었다"고 회고했다.

2시간여 걸쳐 진행된 영결식을 마치고 운구는 명동성당으로 이동한 후 30개의 검은 만장을 뒤로 한채 거세게 부는 바람과 맞서며 을지로를 거쳐 노제장소인 시청앞 덕수궁 대한문으로 이동했다.

   
▲ 이날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노제가 엄수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래군 인권중심사랑 소장이 진행한 대한문앞 노제에서는 김경호 들꽃향린교회 담임목사와 양성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등의 추도사와 시민들의 헌화 등이 이어졌다.

김경호 목사는 이 자리에서 "홍근수 목사님이 한국에 처음 도착하신 1987년 첫 일성이 '나는 이땅에 반공을 부수러 왔다'"였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그 뒤로 홍목사님은 교회에서, 거리에서 한결같이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미국의 실세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분단을 꽃놀이패로 활용하고 있는 모든 실상을 낱낱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고 회고했다.

박래군 소장은 "사나운 바람이 마치 오늘 이 땅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며, "생전에 홍목사님을 본의 아니게 많이 괴롭혀 드렸는데, 이렇게 보내드리려니 면목이 없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박석운 공동대표는 목사님, 우리 목사님, 홍근수 목사님을 부르다 끝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박 공동대표는 홍 목사가 1991년 KBS심야토론 당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설파하다 옥살이를 한 일화를 회고하고 "홍목사님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 통일, 그리고 민중 생존권 옹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 헌신하면서 재야의 큰 어른으로 우뚝 섰다"고 말했다.

   
▲ 각계 시민들이 고 홍근수 목사의 영전에 헌화하고 고인을 기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시간여 노제를 끝낸 오후 1시경 참석자들은 운구와 함께 장지인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 운구행렬의 뒤를 '평화통일 세상에서 부활하소서' 등 30여개의 만장이 뒤따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명동성당을 출발해 을지로를 거쳐 노제장소인 대한문앞으로 이동하는 운구행렬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운구행렬에 각계 시민들이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대한문앞 노제가 엄수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고인에 대한 묵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의 '하늘뜻 펴기' 설교

세계교회협의회가 주관하는 평화열차 행사를 위해 5일 출국했다가 갑작스런 부음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한 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는 '하늘뜻펴기'라는 설교에서 "고인이 염원하던 평화열차에 영혼으로 탑승하기 위해 고인의 16년, 저의 10년 목회의 꿈이 담겨있는 향린교회에서 함께 출발하자고 저를 부르신 것"이라며 "현재 모스크바에 정차해 있는 평화열차에 다시 올라 탈때는 홍근수 목사님과 함께 동행하겠다"고 말했다.

조헌정 목사는 지난 1991년 2월 KBS 심야토론에 나가 "남한이 유럽처럼 공산당을 허락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 "남쪽 사람 대부분이 북쪽 사람들의 이마에 빨간 뿔이 하나씩 있다고 믿었을 때 그들 또한 사랑하고 눈물 흘리고 정을 나누는 휴머니스트"라고 했던 당시 홍목사의 발언이 남한 사회에 준 충격은 대단했다고 회고했다.

이후에도 고인은 주위의 자제 권유를 물리치고, 나라의 주권을 미국에 팔아넘기지 못해 안달하는 집권자를 비판하고 천하 제일의 강대국인 미국에 맞서 '핵보다 강한 무기인 인민의 단결된 힘'을 강조하며 독자성을 지키려는 북을 옹호했으며, 분단의 비극을 조장하는 미국을 향한 서슬퍼런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고 조 목사는 말했다.

조 목사는 고인의 마지막 저서 제목이 '양키 고 홈'이라는 걸 상기시키고 이렇듯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설교와 행동만으로도 고인은 500세 이상의 삶을 누린 분이라고 추모했다.

이와 함께 고인의 삶에서 20년전 문규현 신부와 함께 평통사를 만든 일을 빼놓을 수 없다고 조목사는 언급했다.

조목사는 "도대체 전시작전통제권을 계속 맡아 달라는 노예와 같은 지도자가 다스리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고 오늘의 현실을 되묻고 "만약 평통사라는 조직마저 없었다면 세계인들은 우리를 멸시와 조롱의 눈초리로 계속 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조목사는 이처럼 참을 수 없는 민족적 모멸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민족 자주, 민중의 깨어남 밖에 없다며 이같은 자질은 자유와 해방을 중시하는 신앙에서 나오는데 홍목사님은 성서의 출애급 사건과 갈릴리 예수에서 찾고 이를 끈질기게 구현해 오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조목사는 또 그 육신은 오늘 땅에 묻히지만 그 영혼은 자유와 해방의 평화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 북경에서 그리고 담을 헐고 신의주와 평양을 통과하여 서울로 부산으로 향할 것이라고 기원했다.

조목사는 고인의 첫번째 책 '예수와 정치'의 한 구절을 인용해 고인의 평소 신념과 신앙세계의 일단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치는 이 세상을 사는 인간을 위해 약속되고 주어지는 것이지 외세나 죽은 인간을 위해 약속되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복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정치의 이상의 빛에서 인간의 정치를 보고 비판하고 필요하면 항거하고 혁명하는 사명이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것은 국가나 정치권력을 잡은 자들에게 대하여 교회가 가지는 예언자적 사명이라 할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정치가 하나님의 정치에 가까이 실현되는 것이다. 여기에 기독교인의 정치적 사명이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주기도문의 구절이 의미하는 바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세계평화의 위협은 물론 한국사회의 모든 악과 모순, 즉 억압과 착취, 인권유린과 불평등, 군사주의와 군부독재등의 원인과 온상이 되고 있는 남북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의 사명이요, 한국교회의 사명일 것이다. 여러가지 한국적 상황, 남북을 망라하여 이 상황을 고려할 때 현 집권자들이 통일을 신념으로 원하지도 않지만, 통일을 성취할 능력 또한 없다. 오직 통일을 실현할 의사와 능력을 가진 통일의 주체는 민중이다. 교회는 이 민중들과 더불어 민족화해와 통일의 당위성과 방향을 제시하고 이의 성취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


한편, 고인은 오늘의 향린교회가 갖게 된 목회의 독자성이라는 기틀을 만들었다고 조목사는 회고했다.

조목사는 "목사.장로 임기제, 국악예배 도입, 목회운영위원회 신설 등은 고인이 아니고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교회개혁의 금자탑"이라고 평하고 큰 교회 건물외에 이렇다하게 내세울 게 없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이달 말 부산에서 열릴 세계교회협의회 행사에 한국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내용이 향린교회의 국악예배"라며, "전통가락에 맞춘 노래와 음성으로 함께 고백하는 것은 내용과 형식에서도 가히 세계에 자랑할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목사는 끝으로 사도바울의 유언과 같은 고백이 많은 기독교인의 장례예배에 인용되지만 홍목사님의 삶만큼 자신있게 증언할 수 있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라는 디모데후서 4장 7~8절을 인용해 고인을 기렸다.

 

김상근 목사 추도사

김상근 목사는 고인을 '형, 형, 근수형'이라고 애달프게 불렀다.

지난 7월 정전협정 60주년 어느 행사에서 평화협정체결을 반드시 체결해 부끄러운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 피토하며 외칠 당신인데, 그리 오래도 누워만 계시더니 우리곁은 이렇게 홀연히 떠나십니다.

당신은 마구 뛰는 사람이었습니다. 거기가 어디든 당장 달려갔습니다. 결코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에둘러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분명했습니다. 시대의 한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곡선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그냥 직선이었습니다. 당신의 말은 길지 않았습니다. 짧았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게 정곡이었습니다. 당신은 늘 넓었고 깊었습니다.

박정희기념관설립반대운동은 그저 반대운동이 아니라 민족의 얼을 바로 세우자는 거사였습니다.

당신의 걸음은 넓고 높았습니다. 매향리국제폭격장폐쇄 투쟁, 불평등한소파(SOFA)개정 투쟁, 효순.미선이 죽음 사회화 투쟁,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 그것들은 반미투쟁이 아니었습니다. 해꼬지의 역사를 거부하는 거사였습니다. 세계사를 바로 세우는 거사였습니다.

당신의 가슴은 슬펐습니다. 당신이 그리도 사랑했던 민중의 선택이 엇나갈 때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함성을 듣던 예수의 가슴처럼 당신의 가슴은 슬펐습니다.

그건 예수의 슬픔이었고 그래서 당신은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향린교회에 그리도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한국 그리스도 장로교에 그리도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한국 그리스도 교회협의회에 그리도 뜨거웠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뜨거움이었습니다.

지난해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홀랑 까먹고, 총칼로 권력을 찬탈하고 여덟을 죽여 권력을 이어간 박정희의 딸이 너희보다 낳다는 국민의 판정을 받고 말았을 때 병석에 누워있던 당신은 얼마나 답답해하고 터질 것 같고 고통스러웠을까?

형 미안하외다. 정말 미안하외다. 그러나 형, 쉼없는 눈, 비, 바람속에서 잡초들은 쓰러지고 눕혀지고 맙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패잔이라 해서는 안되지 않습니까. 다시 일어날 것이기에. 아니 지금 벌써 일어나고 있기에 말입니다.

당신이 시작한 '교회 쪼개어 나눠 세우기'는 벌써 손자들을 보고 있기에 말입니다. 당신의 동지들은 벌써 유럽대륙 끝자락에서 한반도 평화열차에 올랐기에 말입니다. 우리들은 어느덧 민족.민주.민중의 큰 길에 나서고 있기에 말입니다. 이 믿음이 있기에 당신의 얼굴엔 항상 미소가 있었던 것 아닙니까.

험하고 복장터지는 독재의 법정에서도 당신은 유머와 해학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우리는 당신을 평화와 통일의 사도라고 합니다. 오래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문규현 신부 추도사

문규현 신부는 고인을 오랜 벗이고 동지이며, 형님이라고 불렀다. 또 사랑하고 존경하는 홍근수 목사님이라고 불렀다. 추도사를 읽어 내려가는 음성은 침통했고 간간히 울먹였다.

비록 직접 활동하지 못했어도 살아계실 동안에는 늘 저와 동행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까지라도 저희와 함께 계실줄 알았는데 이렇듯 가시니 마음의 절반이 사라지는 듯, 영혼은 통채로 흔들리는 듯, 황망하고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민족, 민주, 통일, 평화 가치를 마다하지 않고 앞서가신 형님,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를 함께 설립해 대중적인 통일운동의 지평을 열고자 헌신하셨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창립때에도 기꺼이 저와 함께 후원회장을 맡아 진보의 길을 활짝 열고 가시고자 했던 당신이었습니다.

분단조국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도 분단이데올로기가 모든 것을 단죄하고 삼키는 어려운 현실에서도 목사님은 한번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막다르고 험난한 길에서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어 통일과 평화, 진보의 마음, 이름으로 새 역사를 열어주고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남들이 부담스러워 피해가려는 일들도 다 목사님 차지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감옥에 갇혀계실 때 조차도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무겁고 버거운 사연도 목사님앞에서는 새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괜찮아, 이건 어때". 제가 그리듯던 말이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함석헌 선생의 영전에 바쳤던 추모글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문익환 목사님 자신에 대한 것이 되었고 이제는 홍근수 목사님에게 드려도 좋을 추도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중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로마제국을 뒤엎은 갈릴리 민중의 부활이었듯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부활은 분단의 비극, 분단의 치욕을 거부하는 민족의 하나됨입니다. 당신이 그렇게도 사랑하시던 이 겨레가, 이 씨알들이 무덤을 불러내면서 걸어나가게 민주, 자주, 통일을 향해서. "

목사님, 사랑하는 형님, 목사님을 떠나보내는 이 시간, 이 나라는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흘러가는 듯 정말 암담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 그리스도의 정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온전히 봉헌하고 온전히 희생했던 목사님의 노고가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 처럼 낱낱히 흩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켜본 목사님께서 자리에 누워계시던 안타깝고 아쉬운 지난 얼마간은 빈 자리도 아니었고 빈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제 스스로 힘과 지혜를 튼튼히 채워가도록 내어주신 또 다른 사랑과 가르침의 시간음을, 영적으로 성장하는 법을 배워가는 시간이었음을 이제사 깨닫습니다.

함께 했던 그 모든 시간과 우정, 정말 고맙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예수의 제자들에게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임을 온 생애로 알려주신 당신에게 다시한번 뜨거운 동료애로, 동지애로 하직인사를 올립니다.

목사님의 육신은 비록 저희 곁을 떠나지만 그 고귀한 가르침과 영혼은 여기 남아서 민주와 자주, 민중 평화통일의 완성을 향한 위대한 출애급의 여정을 저희와 함께 계속 가시리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 '평화와 통일의 참 스승'이신 홍근수 목사님 편하게 가소서.

늘 자주, 민주, 평화, 통일의 그 길에 부활하시고 영원히 안식을 얻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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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검독수리, 사슴 사냥 첫 확인

러시아 검독수리, 사슴 사냥 첫 확인

 
조홍섭 2013. 10. 10
조회수 13187추천수 0
 

러시아 우수리서 호랑이 모니터 무인카메라에 찍혀

늑대, 불곰 새끼 등 대형동물 사냥해 유명한 '킬러 맹금류'

 

go2.jpg » 검독수리가 대륙사슴을 공격하는 모습. 사진=린다 컬리 외, <맹금류 연구 저널>

 

러시아 극동의 남부 우수리 지역은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한국호랑이)의 마지막 자연 서식지이다. 이곳에 위치한 라조프스키 자연보호구역에서 국제 연구진은 아무르호랑이에 대한 장기연구를 위해 54대의 무인카메라를 숲에 설치해 모니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한 카메라에 호랑이보다 더 희귀한 사진이 찍혔다. 바로 검독수리가 대륙사슴을 사냥하는 장면이 사진에 찍힌 것이다.
 

Martin Mecnarowski _Aquila_chrysaetos_3_(Martin_Mecnarowski).jpg » 맹금류 최고의 사냥꾼인 검독수리가 비행하는 모습. 사진=마틴 메크나로프스키, 위키미디어 코먼스

 

검독수리는 북반구 최고의 사냥꾼으로 꼽히는 맹금류로서 유라시아, 북아메리카, 북아프리카 등에 서식하며 길이는 66~102㎝, 날개를 편 길이는 1.8~2.3m에 이른다. 몸빛깔은 짙은 갈색이지만 목 뒤에 황금빛 깃털이 있어 영어명은 ‘황금 수리’이다.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로 다양한 포유류를 사냥하며 몽골 등에서는 늑대 사냥에 널리 쓰인다.
 

검독수리의 먹이로는 토끼, 마못 등 작은 포유류가 많지만 사냥 대상으로 대형동물도 꺼리지 않는다. 가축은 물론이고 붉은사슴, 노루, 사향노루, 산양, 여우, 코요테 그리고 불곰 새끼까지 먹잇감이었던 것으로 학계에 보고돼 있다.
 

Bohuš Číčel.jpg » 여우를 사냥한 검독수리의 모습. 사진=보후시 치첼,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러나 이번에는 처음으로 대륙사슴이 사냥 대상이 된 것이다. 대륙사슴은 동아시아에 고유한 발굽동물로 이제까지 검독수리의 먹이 목록에는 없던 동물이다.
 

린다 컬리 런던동물학회 아무르호랑이 및 표범 프로젝트 박사는 국제학술지 <맹금류 연구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검독수리가 대륙사슴을 사냥하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고 보고했다.
 

그는 아무르호랑이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야생동물 보전 협회(WCS)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 사진을 촬영한 경위를 소상히 밝혔다.

 

정기적으로 무인카메라의 메모리카드와 전지를 갈아끼우러 갔다가 먼저 사슴의 주검을 봤어요. 하지만 뭔가 이상했지요. 눈위에 커다란 포식자의 발자국이 없는 거예요. 사슴이 뛰어 달아나다 갑자기 멈춰 죽은 것처럼 보였지요. 조금 더 가서 무인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보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을 알았지요.”

 

무인카메라엔 검독수리의 사슴 습격 장면이 2초 동안 3장의 사진에 찍혀 있었다. 다 자란 검독수리가 거리낌없이 어린 대륙사슴을 덮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대륙사슴은 가죽과 뼈만 남아있었는데 무게가 40~50㎏으로 6~7개월 된 어린 개체였다.

 

go1-1.jpg

 

go2.jpg

 

go3.jpg » 무인카메라에 찍힌 검독수리의 대륙사슴 습격 장면 연속사진. 사진=사진=린다 컬리 외, <맹금류 연구 저널>

 

발자국과 무인카메라 사진으로 보아 사슴은 처음 공격받은 곳에서 즉사했고 검독수리가 뜯어먹은 뒤 독수리, 까마귀, 여우 등 다른 청소동물의 차지가 됐다.
 

연구진은 “사슴의 건강 상태는 좋은 편이었다. 지난 11년 동안 이 지역에서 (아무르호랑이의 주요 먹이인) 발굽동물을 조사해 왔고 수백구의 주검을 보았지만 검독수리에 의한 사냥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이번 사냥은 우연적인 것으로 대륙사슴의 개체수를 줄일 주 요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고 논문에 적었다.
 

go4.jpg » 검독수리에 이어 청소동물이 말끔히 뜯어먹은 대륙사슴의 주검. 사진=린다 컬리 외, <맹금류 연구 저널>

 

이 카메라가 설치된 곳은 강변에 자작나무와 오리나무 숲이 있던 곳으로 비교적 트인 곳이었다. 대개 검독수리는 공터에서 사냥하는데, 이번처럼 숲속에서 사냥이 이뤄진 것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검독수리는 우리나라에도 매우 드물게 찾아오며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된 세계적 보호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린 검독수리가 고라니를 사냥하는 모습을 사진작가가 촬영하기도 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Linda L. Kerley and Jonathan C. Slaght,First Documented Predation of Sika Deer (Cervus nippon) by Golden Eagle (Aquila chrysaetos) in Russian Far East, J. Raptor Res. 47(3):328-330. DOI: http://dx.doi.org/10.3356/JRR-12-00008.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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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인혁당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나?

[인혁당, 끝나지 않은 눈물 ①] "정부, 배상액으로 '이자 놀음' 하려나"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0-11 오전 9:19:47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두 개의 판결' 중 첫 번째 판결은 1975년 4월 8일 유신의 서슬이 시퍼런 때 있었다.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2차 인혁당 사건)이다. 그 '하나의 판결'로 8명이 사형 선고 후 18시간이 지난 4월 9일 새벽, 서대문구치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스러졌다. 인혁당 재심 사건을 맡았던 김형태 변호사는 자신의 책 <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에서 당시 한 사형수와 그의 부인 이야기를 전한다.

"이수병의 처는 당시 아직 서른이 채 안 된 젊은 나이였다. 그녀는 어린 딸 둘러업고 아들은 걸려 매일 서대문구치소에 출근했다. 그러곤 문틈 사이로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어쩌다 남편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대법원 선고를 일주일 남겨둔 어느 날, 젊은 새댁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마음 착한 교도관의 배려로 꿈에 그리던 남편을 한 1분쯤 볼 수 있었다. 이걸 만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두 손 부여잡고 울기는커녕 말 한마디, 눈길 한번 제대로 맞출 수 없었던 만남이었다…새댁은 말도 못 붙이고 그저 남편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눈이 나쁜 이수병은 바짝 다가와서야 처자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어린 딸을 보고는 딱 두마디. '많이 컸네. 많이 컸네.' 영문을 모르는 호송 교도관은 '어, 집에 있는 애 보고 싶어서 그래?' 하면서 빨리 가자고 독촉을 했고 남편은 웃으며 지나쳐 갔다. 1분!"
 

▲ 2012년 대선 전 박근혜 대통령(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인혁당 두개의 판결' 발언 이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혁당 피해자 유족이 남편의 영정 사진을 들고 통곡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주일 후 이수병은 판결문에 잉크도 마르기 전 박정희 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를 포함해 8명이었다. 다른 17명은 무기징역 또는 15년 형을 받고 철창에 갖혔다. 17명 중에 한 명은 형 복무 중 옥사했다. 세 명은 198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됐지만, 복역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2002년 9월 16일,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고, 2005년 12월 7일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의 감춰진 실체를 세상에 드러냈다. 그리고 2007년 1월 23일, 법원은 사형수 8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남은 17명도 2008년부터 2013년에 걸쳐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것이 '또 다른 하나의 판결'이었다.

"두개의 판결"이라는 말은 '넌센스'에 다름 아니다. 이 말을 한 배경은 박근혜 대통령 본인의 과거사에 대한 '무지' 내지는, '무관심'때문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살인당한 이들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고의성 짙은 '심리적 살인'이 되기 때문이다. '두 개의 살인'이 존재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역시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일단 믿는 수밖에 없다.

옥고를 치른 17명 중 16명의 가족들이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그들이 당한 정신적 피해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일단 재판은 진행됐고 2009년 6월 19일 관련자 16명, 가족 포함 총 77명의 원고 앞에서 법원은 "국가가 배상을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미 17명 4명이 옥사, 복역 후유증으로 사망한 후였다. 그리고 현재까지 6명이 억울함을 가슴에 품은 채 이미 세상을 등졌다. 국가가 "잘못했다"고 바로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34년. 지나치게 긴 시간이었다. 그 34년 동안 살인을 당했거나 폭력을 당한 25명 중,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은 7명 뿐이다. 전창일, 강창덕, 김한덕, 김종대, 황현승, 이창복, 이성재. 젊어서 감옥에 간 이들은 이제 80대~90대 노인이 됐다. 살아서 '무죄'를 받아 다행히라고 해야 할까.

박근혜 정부는 '인혁당 피해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수 있는가?

7명을 포함해 16명의 유가족 77명은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승소했다. 34년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배상받아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국가의 불법 행위 책임을 인정했고, 지연 손해금의 기산일을 1975년 4월 9일로 했다. 국가가 잘못을 저질러 고통이 시작된 시점이니 합리적인 계산법이었다. 1심 재판 직후 이들 77명은 배상금의 65%인 약 400억 원 가량을 수령했다. 최종 판결이 나면 나머지 35%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2011년 1월 27일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지연손해금 가산일을 변경하는 파기 자판을 했다. 민사소송 항소심 변론 종결일, 즉 재심 무죄 판정이 난 이후(2008년~2013년)부터 배상금 이자를 계산을 해야 맞다는 내용의,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을 내린 것이다. 파기 자판은 원심 판결의 일부를 깨고 대법원이 스스로 재판을 해 결론을 내리는 것인데,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법조계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와 유신헌법의 초안을 작성했던 '유신 시절'의 상징적 인물 김기춘 비서실장(오른쪽)ⓒ연합뉴스


4.9통일평화재단 문정현 이사장은 황교안 법무부장관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대법원은 자판을 함으로써 피해자들이 파기환송심을 통해 위자료액을 다툴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다른 사건과 형평성 원칙에 반하는 것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기라고 대법원 판결에 대해 반박했다. 인혁당 사건 재심 변론을 담당해온 법무법인 덕수의 양지훈 변호사는 "대법원이 '자판'을 해버리면, 그 자판에 대한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자판에 대한 재심 청구를 할수는 있지만 대법원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악의적 판결'을 내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법원의 자판이 있자마자 중앙정보부를 모태로 하는 국가정보원이 신속하게 나섰다. 국정원은 대법원의 77명에게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관련자 16명의 유가족들 모두에게 소송을 걸었다. 국가가 지급한 돈 중 180억 원을 다시 토해 내라는 것이 소송의 골자다. 이를 두고 "국가가 살인 피해자에게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이자 고문'을 하고 있다"는 비판들이 나왔지만, 국정원(남재준 원장)과 대한민국의 법률대리인 법무부(황교안 장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의 35년간 '고통'을 무시하고 "길게는 5년 정도만 '고통'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중정에 의해 최초 구속된 1974년부터 대법원이 '파기 자판'을 한 2011년까지, 무려 37년 만에 국정원으로부터 '소장'을 받아들게 된 유가족들의 기분은 어떨까. 한 유가족은 "너무 어이없고, 두렵고, 온 몸에 힘이 다 빠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고문으로 조작된 이 사건 때문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던 강창덕 씨는 "경천동지할 일"이라며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국정원 앞마당에서 분신이라도 해야 하나 할 정도로 참담하다"고 말했다.

16명의 유가족 77명 모두에게 건 소송 중, 첫 번째 재판 결과가 지난 5일 나왔다. 86세 강창덕 씨 소송 건이다. 서울중앙지법은 강 씨 소송과 관련해 법무부와 국정원, 그리고 유가족 측에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요컨대 대법원 자판에 따른 배상액보다는 많게, 유가족이 애초에 받았던 배상액보다는 적게 금액을 조정하도록 양측에 권고한 것이다. 그러자 신형철 주심 주도의 대법원 판결을 받고 즉시 돈을 돌려받으려 했던 '대한민국 정부' 입장은 다소 난처해졌다. 정부가 14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법원의 권고 결정은 그대로 확정된다. 벌써부터 일부 보수언론은 정부에 이의 제기를 하라며 부추기고 있다.

대한민국의 법률 대리인은 법무부다. 법무부의 결정을 재가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결정권을 갖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신형철 주심이 '배상액을 깎고 정부가 돌려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낸 자판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나왔다. 소송의 주체는 정권이 바뀜에 따라 정부 구성원이 바뀌면서 후임 국정원장과 법무부장관이 이어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두 개의 판결' 운운했다가 유가족에게 사과를 한 전력이 있다.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인 2012년 11월 26일 그는 '유신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그런 박근혜 대통령의 '대한민국 정부'는 이번 법원의 화해 권고 결정에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역사의 암흑기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어떻게 할지, 공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넘어가 있다.

이번 화해 권고 결정으로 미뤄보면 법원은 77명 모두에게 비슷한 취지의 결정을 내릴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법무부가 법원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나머지 유가족들에 대한 소송에서도 자신들에게 다소 불리한 결정이 내려질 경우 줄줄이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유족들은 살아남아 '두 개의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를 처지에 놓였다. '하나의 전쟁'은 37년 전에 있었다, '또 하나의 전쟁'은 2013년에 벌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국정원과 법무부,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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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나무의 죽음... 이젠 사람도 위험합니다

[두 바퀴 현장 리포트 OhmyRiver! - 넷째날] 달성보-강정보 거쳐 왜관까지

13.10.10 08:44l최종 업데이트 13.10.10 23:08l
소중한(extremes88)

 

 

<오마이뉴스>10만인클럽 환경운동연합은 '흐르는 강물, 생명을 품다'라는 제목의 공동기획을 통해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구간을 샅샅이 훑으면서 7일부터 6박7일 동안 심층 취재 보도를 내보냅니다. 전문가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어민-농민-골재채취업자들을 만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또 한강과 금강 구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기획기사를 통해 선보이겠습니다. 이 기획은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와 4대강조사위원회가 후원합니다. 10만인클럽 회원, 시민기자,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두 바퀴 현장리포트-오마이리버 특별취재팀 : 소중한, 문가영, 정민규, 정대희, 양영석, 박창재, 이철재, 정수근, 조정훈, 김종술, 김병기 기자

[최종신 : 10일 오후 10시 30분]

젖은 몸으로 수도원에 여장 풀어... 오늘은 '자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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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왜관 낙동강에서 쓰러져 있는 나무. 측방침식 탓에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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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는 너나 없이 '대포 방귀'를 날렸습니다. '오마이리버' 출발 첫째 날부터 우리는 방귀를 텄습니다. '오마이리버' 팀은 대자연의 한 부분입니다. 곳곳에 세워진 댐이 낙동강을 막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러움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녁은 다릅니다. 규율과 절도, 그리고 성스러움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수도원에 짐을 풀었습니다.

10일 일정이 끝나갈 즈음 김병기 <오마이뉴스> 기자는 "오늘 가장 많은 것을 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오마이리버' 팀은 오늘 낙동강이 시름하는 모습을 보고, 들었습니다. 10월인 지금도 여전한 녹조와 측방침식으로 나무가 쓰러진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4대강 사업을 처음부터 지켜 본 경북 고령에 사는 농민에게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한편 지난 8일 태풍 다나스의 영향으로 종일 비를 맞았는데, '오마이리버' 팀은 10일에도 비를 '쫄딱' 맞았습니다. 오후 2시 30분께 강정고령보를 떠난 뒤 조금씩 내리던 비는 어느새 세찬 빗줄기로 바뀌어 옷을 적셨습니다. 자전거에서 잠시 내려 허겁지겁 비옷을 챙겨 입었습니다.

안경에 빗물이 맺히고, 모자 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젖은 운동화와 바지는 페달질을 조금씩 늦추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할 일은 했습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심한 측방침식 현장에 내려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도 이틀 전 비를 맞으며 생긴 '아이패드 트라우마'(관련기사 - 또 목표 미달... 독자 '격려'에 눈물이 납니다)에도 빗줄기 속에서 아이패드를 꺼내 연신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난번 비를 맞아 종료 버튼이 먹통이 됐는데요. 이젠 사진 한 장을 찍으면 사진첩에 두 장이 저장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젖은 몸으로 도착한 오늘의 숙소는 경북 고령군 왜관읍에 있는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입니다. 1952년 7월 북한에 있던 베네딕도회 덕원 수도원과 중국에 있던 베네딕도회 연길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월남해 만든 수도원이랍니다. 8일부터 오마이리버에 합류해 분투하고 있는 정수근 대구환경연합 생태보존국장이 수도원의 신부님과 인연이 있어 오늘 숙소를 이곳으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수도원 안은 매우 고요합니다. 불 켜진 곳도 거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수도원에는 처음 와 봅니다. 새로 지은 건물도 몇 있지만 오래된 수도원의 느낌이 물씬 느껴집니다. 특히 굴뚝이 있는 빨간벽돌의 2층 건물이 인상적입니다. 빨래를 하기 위해 수도원 건물의 지하로 들어갔더니 회색벽의 너른 공간이 나타납니다. 신기하면서도 으스스한 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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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마이리버' 팀이 묵을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빨래방 가는 길입니다. 회색 빛 도는 계단과 벽면이 신기하면서도 으스스합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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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저녁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습니다. '오마이리버' 출발을 함께 했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염형철 환경연합 사무총장이 복귀했습니다. 11일 하루 또 자전거에 오릅니다. 반가운 소식 하나 더. 9일 '오마이리버'와 함께 자전거를 탄 배달래 작가가 팀을 위해 전어를 보내준답니다. '오마이리버'는 11일 저녁으로 전어를 먹을 듯합니다. 가을 전어의 위력, 말 안해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과 이항진 여주환경연합 집행위원장도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찾아 '오마이리버'에 합류했습니다. '4대강 사업과 문화재'를 주제로 이날 저녁과 11일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조정훈 기자와 이철재 활동가는 황 소장과 이 위원장을 상대로 '수도원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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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과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도 10일 '오마이리버'의 숙소인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찾았습니다. 두 분은 내일 '오마이리버'와 함께 자전거에 오릅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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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리버'는 11일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떠나 구미보를 거쳐 낙단보까지 갑니다. 내일도 독자 여러분의 격려를 양식 삼아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오늘 현장중계는 여기서 마칩니다.

[4신 : 10일 오후 5시 30분]

처참한 측방침식 현장... 사람은 안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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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강정고령보 상류에 있는 매곡취수장 아래 버드나무들이 집단 폐사한 것을 사람들이 자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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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보시죠. 배를 탄 사람들이 보입니다. 무얼 하는 걸까요? 이곳은 낙동강 강정고령보 상류에 있는 매곡취수장 인근입니다.

물 위로 솟은 나무는 집단 폐사한 버드나무입니다. 배를 탄 사람들은 폐사한 버드나무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 버드나무가 왜 죽은지 잘 아시죠? 낙동강을 가로막은 보 탓에 수위가 상승해 물에 갇힌 나무가 죽은 겁니다. 이렇게 강변 나무가 죽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자 이번엔 아래 사진을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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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수위 상승 탓에 물에 잠겨 폐사한 나무들입니다. 측방침식 탓에 죽은 나무가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과연 자전거도로는 안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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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 성주대교 밑 자전거도로를 지나 경북 칠곡군 왜관읍을 진입하기 직전입니다. 역시 4대강 사업 후 수위가 상승한 탓에 나무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측방침식(물 흐름에 제방의 옆이 깎이는 현상)으로 나무가 쓰러졌습니다. 나무가 죽으면 뿌리가 흙을 잡는 힘이 약해져 다시 측방침식은 심해집니다. '보 공사-수위상승-식물 죽음-측방침식 심화'의 악순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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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측방침식이 진행되면 자전거도로도 무너질지 모릅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이미 한 차례 보수공사 한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 공사-수위상승-식물 죽음-측방침식 심화'의 악순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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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결국 자전거도로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을 자세히 보시지요. 이미 한 번 무너져 보수공사를 한 흔적이 보일 겁니다. 4대강 사업은 많은 생명을 죽이고, 끝없는 보수공사를 부르며, 혈세 낭비를 계속 부추깁니다. 사람은 과연 안전할까요? 강에 피는 녹조와 무너지는 자전거도로, 다리 등은 결국 인명사고를 부릅니다. 재앙이란 바로 이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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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부터 다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자전거도로도 사람도 젖었습니다. 둔치 중앙에 만든 자전거도로를 보며 잠시 생각합니다. 사람 다니기 좋게만 이렇게 길을 뚫으면 야생동물은 어떻게 살까요?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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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부터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제법 굵은 빗줄기여서 '오마이리버' 팀은 성주대교 밑으로 잠시 피신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몸이 젖으니 춥고, 자전거 타는 게 힘듭니다. 그래도 또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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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져 잠시 성주대교 밑에서 쉬었습니다. 즉석 '우비 패션쇼'가 벌어졌습니다. 왼쪽부터 양영석, 정대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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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 : 10일 오후 3시 10분]

대구시민 먹는 물인데... 10월에도 녹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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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찾은 낙동강 강정보. 4대강 문화관 '디아크' 앞에는 이렇게 4대강 사업 관련자 이름이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4대강 사업 인명사전'이라 불러도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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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입니다.

훗날 '4대강 사업 인명사전'을 따로 만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이미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 만들어놨습니다. 낙동강 강정고령보에는 4대강 문화관 '디아크(The Arc)'가 있습니다. 디아크 앞에는 4대강 사업 관련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친히 이런 글도 새겨 넣었습니다.

"낙동강을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생명의 새 터전, 지역과 국가 발전의 미래 공간으로 되살린 '4대강 살리기' 사업 주역들의 이름을 이곳에 새겨 그 공을 기립니다."

4대강 사업이 '강 살리기'가 아닌 '강 죽이기' 사업이란 증거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복원 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강 죽이기'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게 뻔합니다. 여기에 이름 오르신 분들, 계속 영광스럽게 생각할까요? 어쨌든 이 전 대통령이 확실한 증거와 자료를 남겼으니, 후손들이 따로 '인명사전'을 만들지 않아도 괜찮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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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달성보와 강정보의 중간 지점. 10월인데도 녹조가 심합니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낙동강 '녹조라떼' 한 병을 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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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지만 낙동강 녹조는 여전합니다. 태풍 영향 탓에 비도 내렸지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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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고령보 인근에도 녹조가 가득합니다. 낙동강 강정고령보 상류 자전거도로 다리 밑에도 시퍼렇게 녹조가 끼었습니다. 대구 달성을 비롯해 이쪽 지역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입니다. 박 대통령은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안방과 다름없는 곳에 가을 녹조가 핀 사실을 박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요?

강정고령보 바로 위에는 죽곡취수장과 매곡취수장이 있는데요. 대구시민 70%가 여기서 취수한 물을 식수로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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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강정고령보 상류 자전거도로 다리 밑에 시퍼렇게 녹조가 끼었습니다. 강정고령보 바로 위에 죽곡취수장과 매곡취수장이 있는데요. 대구시민 70%가 여기서 취수한 물을 식수로 사용합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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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당국은 그동안 녹조의 주요 원인으로 더운 날씨를 거론했는데요. 낙동강 10월 녹조에 대해서 어떻게 해명할지 궁금합니다. 10월 녹조, 무엇이 문제인지 정수근 대구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래 동영상을 봐주십시오.
 

▲ 박근혜 대통령 앞마당에 핀 가을녹조 10월입니다. 비켜가긴 하지만 태풍이 지났고요, 비도 내렸습니다. 그런데 녹조는 여전합니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은 "지금도 녹조가 있다"라며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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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 10일 오전 11시 30분]

낙동강의 상처... "기대가 컸는데, 속았다"
 

4대강 사업을 향한 경북 고령 농민의 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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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의 개진면에 사는 농민 김종범(59)씨(왼쪽). 김씨는 "고생한다"며 '오마이리버' 팀에게 홍삼액기스를 주셨습니다. 양영석 기자(오른쪽)가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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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기대가 컸는데, 피해만 입었다. 속았다!"

경북 고령군 개진면 낙동강 인근에 사는 농민 김종범(59)씨의 말입니다. 김씨는 "고생이 많다"며 '오마이리버' 팀에게 홍삼액기스를 주셨습니다.

김씨는 낙동강 달성보 하류 쪽 약 2km 떨어진 곳에 삽니다. 당연히 4대강 사업 공사를 내내 지켜봤습니다. 김씨는 "낙동강 제방 위로 덤프트럭과 레미콘 차량이 밤낮 없이 달려 먼지가 너무 심했다"며 "공사 기간 동안 밖에 빨래를 널 수도, 창문을 열 수도 없어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소수이긴 하지만 몇몇 감자 농사를 짓는 농민은 높아진 낙동강 수위 탓에 피해를 입었다"며 "(피해 보상과 관련해)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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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인터뷰는 이런 식으로 진행됩니다. 경북 고령에서 농민 김종범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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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는 마을 주변에 생긴 생태공원을 두고 "흉물스럽기 짝이 없다"며 "지역 경제 살리고, 일자리 늘린다더니 건설 장비 업체와 건설사 배만 불렸지, 지역 주민에겐 아무 도움이 안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김씨의 말대로 4대강 사업으로 탄생한 생태공원은 참 흉물스럽습니다. 자전거 타면서 살펴본 결과, 거의 모든 생태공원은 잡풀이 무성한 황무지처럼 보였습니다. 이용하는 사람도 찾기 어렵습니다. 마을과 동떨어진 곳에 '전시행정'처럼 공원을 만들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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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군 낙동강 자전거도로에 있는 화장실입니다. 김병기 <오마이뉴스> 기자가 이용하려 했지만, 문이 닫혀 있습니다. 관리를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답답한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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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도로에서 '볼 일' 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10일 오전, 김병기 <오마이뉴스> 기자는 "급하다"며 연신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저 멀리 노란색 화장실이 보였습니다. 김 기자 얼굴은 밝아졌습니다. 돌진하다시피 화장실로 자전거를 몰았습니다. 화장실에 도착해 급히 문을 여는 순간, 김 기자의 얼굴은 다시 사색이 됐습니다. 문 잠겨 있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김 기자는 몇 차례 흔들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김 기자가 '후일'을 어떻게 도모했는지는, 훗날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낙동강에서 보를 만나면 답답한 마음부터 듭니다. 누구는 "웅장하다" "장관이다"라고 말하지만, 현장에서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낙동강 달성보에서 만난 이무영씨(환경운동연합 회원)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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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달성보에서 만난 이무용씨(환경연합 회원). 이씨는 낙동강을 가르키며 "하수구 냄새랑 물 비린내가 섞여서 머리가 아프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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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있었는데, 하수구 냄새랑 물비린내가 섞여서 머리가 아프다. 최근 태풍이 온다고 해서 수문을 연 것 같은데, 녹조는 그대로 남아있다. 강물이 아니라 하수구 물 같다."

낙동강이 하수구 같다니요. 현장의 냄새, 강물 색깔을 보면 과장이 아닙니다. 4대강 사업으로 탄생한 보는 강에게 재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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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복구공사를 벌이는 4대강 사업 현장입니다. 달성보 인근인데요. 적은 비에도 둔치가 무너져 돌망태로 복구공사를 하는중입니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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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 : 10일 오전 8시 30분]

김밥 한 줄 먹고 출발... 다람재를 넘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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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마이리버 팀은 라이딩 시작과 함께 낙동강 자전거길 촤고의 난코스 중 하나인 다람재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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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6시에 눈을 떠 텐트 문을 열자 밤새 맺힌 이슬이 후두득 쏟아졌습니다. 흰색 끈으로 도동서원 자전거 거치대에 대충 묶어둔 자전거 안장 위에도 비를 맞은 것처럼 흔건합니다. 온종일 자전거 타고 새벽까지 기사 쓰는 일명 '작업 텐트'에서 나온 사람들의 눈은 벌겋습니다. 고된 작업입니다.

'오마이리버' 팀은 9일 밤을 텐트에서 보냈습니다. 7일 야영한 딴섬 생태누리 캠핑장은 텐트를 칠 수 있게 정사각형의 나무판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밤 텐트를 친 도동서원은 아무래도 풀밭이라 땅에 굴곡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허리가 좀 아려오네요.
 

오마이리버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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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리버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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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리버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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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리버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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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리버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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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오마이리버 팀은 총 35km를 달렸습니다. 순수하게 자전거 페달을 굴린 시간은 4시간 49분입니다. 1km를 가는 데 8분 16초 정도 걸린 셈입니다. 평균 속도는 7.3km/h를 기록했고 최대 34.7km/h의 속도를 냈습니다. 전문 라이더들이 볼 때 애들 장난 수준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자전거만을 타는 게 아닙니다. 콘크리트 댐과 준설 탓에 앓고 있는 낙동강을 자세히 살피면서 취재해야 합니다. 또 짬짬이 시간을 내 낙동강 사람들의 목소리를 노트북에 담아야 합니다. 자전거 타는 시간보다 취재 시간이 더 많이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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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마이리버 팀은 총 35km를 달렸습니다. 순수하게 자전거 페달을 굴린 시간은 4시간 49분입니다. 1km를 가는 데 8분 16초 정도 걸린 셈입니다. 평균 속도는 7.3km/h를 기록했고 최대 34.7km/h의 속도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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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인 10일에도 '오마이리버'는 팀은 낙동강을 따라 달립니다. 전날, 목표였던 달성보까지 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날은 평소보다 빠른 오전 7시에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바로 눈 앞에 다람재로 향하는 급경사가 보입니다. 처음부터 난코스입니다.

전날 자동차로 미리 다람재를 답사 한 김종술 기자는 "겁나게 힘들겠네"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험하길래'라는 생각에 인터넷으로 '다람재'를 검색해봤습니다. 여러 블로그 글에 "낙동강 자전거길 최고의 업힐(up hill, 오르막) 중 하나인 다람재" "오늘 라이딩 중 가장 힘들었던 다람재"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오늘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이면서 동시에 농민이기도 한 이영희씨와 김종원 계명대 교수가 오마이리버 팀에 합류합니다. 첫날 함께 자전거를 탔던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도 다시 합류했습니다. 4대강 사업과 생태환경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시작부터 오르막을 만나니 눈 앞이 캄캄합니다. 김밥 한 줄 반과 찐계란이 오늘 아침 메뉴였습니다. 지쳐버린 허벅지 근육에 단백질을 제대로 공급할 수 있을지, 여기저기 허벅지 근육이 아프다고 아우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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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마이리버 팀의 소소한 아침. 자르지 않은 김밥과 찐계란, 커피로 빈 속을 달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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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김칠준 변호사, 내란음모 무죄 확신

노래불렀다고 이적?… 실체없는 사건으로 국정원, 검찰 선동적 여론재판
 
권종술, 백운종 기자
기사입력: 2013/10/10 [16:1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김칠준 변호사 © 이창기 기자, 진보정치 백운종 기자 제공


“노래불렀다고 이적?… 실체없는 사건으로 국정원, 검찰 선동적 여론재판”
“사건 맡은 변호사에게 종북 낙인…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이러진 않았다”

지난 2일 법무법인 다산 서울 사무실에서 ‘국가정보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 규탄 대책위’ 공동변호인단 단장을 맡고 있는 김칠준 변호사를 만났다. 김 변호사는 검찰 공소장에 대해 “내란음모를 벌였다는 조직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며 “무죄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이번 내란음모조작 사건으로 빚어진 매카시즘 광풍에 대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내란 음모의 지지자, 방조자, 숙주, 종북 세력 등 모호한 용어로 광범위한 낙인을 찍고 있다”며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글= 권종술 기자 news@goupp.org
사진= 백운종 기자 bju@goupp.org
<진보정치 628호>



-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나?

= 오는 14일이 공판 준비기일이다. 법원에서도 이번 건이 중대한 사안인 만큼 집중심리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때문에 통상적인 재판보다는 빈번하게 재판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증거조사 대상 등을 정리하고 재판에서 가려낼 쟁점을 정리하게 된다. 각 쟁점과 검찰 제출 증거에 대한 변호인의 의견, 증거능력 여부, 적법한 증거인지 아닌지 공방도 예상된다.


- 지난달 30일 추가로 3명이 구속됐다.

= 사실 추가 구속자가 나온다 하더라도 새로운 증거는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추가 구속자에 대한 기소도 신속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이고, 변론 진행 도중이어도 재판은 병합해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소환이나 구속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5월12일 녹취록에 등장하는 발언자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참석자들의 경우 이미 기소된 사람들의 공소유지 자체도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기소가 될 수 있을 진 아직 의문이다.


- 검찰 기소에 대한 입장은.

= 검찰은 내란음모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동조와 고무찬양, 이적표현물 소지로 기소했다. 내란 음모는 소위 RO라는 지하혁명 조직이 있다는 게 첫 번째 전제다. 그 전제 위에 5월12일 회합에서의 발언이 구체적 내란 음모 행위라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그리고 RO 실체와 관련해 민혁당 사건 기록을 장황하게 인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RO와 민혁당이 어떤 관계인지 적시하지 않고 있다. 관계가 있으려면 구성원들이 조직을 재건한 것인 지 등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없다. 또 12일 모임이 내란목적의 음모 행위라고 하고 주장하지만 과연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을 가지고 폭동을 결의하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 행위는 어디에도 없다. 한마디로 실체 없다. 무죄를 확신한다.


- 이번 기소 내용에 반국가단체 구성이 빠졌다.

= 검찰이 주장하듯 RO가 지하혁명 조직이라면, 그런 실체를 가졌다면 법적으로 반국가단체 또는 이적단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기소하지 않은 것은 적어도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이나, 수집된 증거에 의하더라도 반국가단체 또는 이적단체로 유죄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두고도 논란이 많다.

= 변호인단에선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정원이 ‘감청영장’ 즉 ‘통신제한조치 허가서’를 받아 녹음을 했을 경우와, 제보자를 도구로 이용했을 경우다. 변호인단은 이 두 상황 모두 증거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전자는 ‘통신제한조치’를 2개월을 시한으로 법원에서 영장을 받고 그 이후 연장을 거듭하게 규정한 통신비밀보호법이 위헌 판단을 받았기 때문에 법이 아직 개정되지는 않았지만 위헌 판단이 나온 이후 연장을 반복한 것은 적법한 철자가 아니라고 본다. 사람을 도구로 이용한 것도 불법 수집인 건 마찬가지다. 현재 검찰은 통신제한 허가를 받았고, 제보자를 통해 감청을 진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위헌 판결과 충돌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 경우에도 제보자를 통한 감청의 적법성을 두고선 논란이 계속 될 것이다.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제기했다.

= 국정원은 내란음모가 안되면 국보법 위반이라도 성립될 것이란 판단으로 끼워 넣은 것으로 보인다. 기소 내용을 보면 혁명동지가와 적기가를 부른 걸 이적동조와 고무찬양의 근거로 제시했다. 노래를 부른 것만으로 이적동조와 고무찬양인지 논란이다. 특히 혁명동지가의 경우 국내 작곡가인 백자 씨가 만든 노래로 이미 많은 이들이 부르고 있는데, 특정인이 불렀다고 고무찬양이라고 몰아가는 건 억지스럽다. 노래를 근거로 고무찬양이 유죄가 된다면 그것이 국보법을 반드시 폐기해야만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최근 단순한 김일성 주석 묘지 참배는 고무찬양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도 나왔다. 이번 사안을 두고서도 법원의 고민이 클 것이다. 아울러 국보법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다. 이번 재판에서도 이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알려나갈 것이다.


- 검찰이 기소하면서 압수수색 자료라며 제시한 증거를 보면 이번 사건과 관련 없는 것들이 많다.

= 압수한 물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이적표현물로 볼 수 있는 지 의문스러운 것이 많다. 사상과 양심, 학문의 자유가 허용되는 사회라면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특히 현역 국회의원이 어떤 문건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처벌하는 건 전후 맥락을 떠나 우리 사회를 문명사회라 부를 수 없는 수준이다.


- 이번 사건은 여론재판의 성격이 강하다.

= 검찰 기소는 국정원의 구속 영장을 그대로 공소장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검찰이 자기 책무를 져버린 것이다. 그동안 검찰은 수사를 통해 혐의 사실을 입증하겠다고 밝혀왔지만 국정원에 의한 녹취록과 압수수색 이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추가로 수집된 증거는 없다. 여전히 실체조차 없는 RO와 녹취록만 되풀이 하고 있다. 공소장의 상당 부분에선 언론을 매개로 여론몰이를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북한식 용어 도표, 북한 영화 제목과 화면, 애창곡 3선이라며 가사를 보여주는 것 등은 철저히 사건과 관련 없는 여론몰이용이다. 심지어 이석기 의원이 정당한 권리로 제출받은 국방 자료를, 이걸 북에 넘긴 것인지 내란 음모에 활용한 것인지 아무런 언급 없이 문제가 있단 식으로 몰아갔다. 받을 수 있는 자료를 받은 것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그럼에도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공소장에 그대로 받아썼다. 언론내용을 받아썼다는 자체가 이 사건이 여론몰이용임을 드러내 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 매카시즘 광풍이 거세다.

=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이 60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에서 재현되고 있다. 실체가 없는 사건을 가지고 국정원과 검찰이 선동적인 여론재판에 나섰다. 1차적 피해는 구속자들이 재판도 받기 전에 내란음모를 했다는 예단으로 범죄자로 낙인이 찍히면서 발생했다. 2차적 피해는 RO의 조직원이라고 언론에서 지목하는 순간 발생하고 있다. 무슨 행위를 했는지 상관없이 공범자로 사회적인 매장을 당하고 있다. 3차 피해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비판적 의견을 낸 진보성향의 인사 등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내란 음모의 지지자, 방조자, 숙주, 종북 세력 등 모호한 용어로 광범위한 낙인을 찍고 있다. 대학생이 자본론을 강의하는 교수를 신고하고, 지역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해 온 사람들이 통합진보당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있다.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 변호인단도 종북 변호사로 몰리는 상황이다.

= 이번 사건의 심각성 가운데 하나는 그 광풍을 변호사들도 빗겨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변호사는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살인범이건, 강도범이건 누구를 막론하고 변론을 할 수 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때에도 변호사들이 간첩 사건 등 많은 공안 사건을 맡았다. 그 당시엔 그런 변호사들을 인권 변호사, 진보 변호사로 불렀다. 오히려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건을 맡은 변호사를 종북 낙인을 찍는다. 제게도 팩스와 전화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고 있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상황이다. 국정원이 진행한 매카시 광풍이 이런 상황을 불러왔다. 이런 상황이 바로 이번 사건의 본질을 말해준다. 재판 과정을 통해 이 사건의 본질이 뭔지 국민에게 알릴 것이다. 다행히 검찰 발표 이후 많은 국민과 지식인들이 이 사건의 본질을 깨닫게 됐다. 재판이 진행되면 더 많은 국민이 알게 될 것이다.


- 위헌정당 해산까지 주장하고 있다.

- 정당해산에 맞서는 것은 단순히 진보당 지키기 차원을 뛰어넘는 문제다. 정당해산 주장은 민주주의의 철학과 제도적 이름을 철저히 유린하는 것이다. 때문에 민주주의 지키기 차원에서 정치적 입장을 불문하고 공동변호인단을 넓게 꾸려서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 당원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 진보당 당원들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분들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시야를 넓게 보고 공안탄압에 주눅이 든 친구와 이웃을 설득하기 위해 나서달라. 이번 사건에 맞서는 건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당 당원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의연하게 맞섰으면 한다.



공동변호인단이 무죄 확신하는 3가지 이유
“북 연계?, RO 실체?, 내란 계획?…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공동변호인단 단장인 김칠준 변호사는 거듭 “무죄를 확신한다”고 밝혔다. 공동변호인단이 무죄를 확신하는 이유는 무얼까? 김 변호사는 “내란음모를 벌였다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와 공동변호인단이 무죄를 확신하는 이유를 이곳에 정리했다.

△ 북 연계 수사발표에도 언급 없어= 검찰의 수사발표엔 북과의 연계와 관련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언론을 통해 북과의 연계, 북으로부터의 자금 지원 의혹을 흘렸지만 아무런 증거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 RO 실체 증명할 증거 없어= 이번 사건은 RO가 실체를 가진 지하혁명 조직이어야 내란음모를 모의했다는 검찰의 기소내용이 증명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5월12일 회의에서 내란음모를 모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RO의 체계 및 지휘통솔체계에 대한 제대로 된 조직도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12일 토론 분반을 그대로 조직이라며 옮겨왔다.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등에선 RO기 총책-중앙위-지역·부문 등의 조직을 갖췄다고 했지만 이번 기소에선 중앙위란 표현이 빠졌다. 조직원 숫자도 12일 모임에 130여명이 모였으니 그보다는 많을 것이란 추정으로 130여명 이상이라고 표현했다. RO가 있어서 12일 모임이 내란음모라고 규정해놓고, 그 근거를 물으니 12일 모임이 RO가 있다는 근거라는 식으로 전형적인 순환논증오류다.

△ 언제, 어디서 등 구체적 계획 없어= 내란음모는 머리로 생각만 한다고 처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등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 내란을 일으켜 어떤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겠다는 당사자간의 일치된 합의와 세부적 계획이 있어야 내란음모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국정원이 제시한 녹취록 어디에도 이런 내용은 없다. 강연과 분반토론 등 정세토론일 뿐 내란음모라고 규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정리= 권종술 기자 news@goup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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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민족민주운동가들의 어머니였습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0/11 08:43
  • 수정일
    2013/10/11 08:43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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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락호 선생 민주통일장 ‘영결 추도식’ 열려

이창훈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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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11 02: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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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한양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이락호 선생 민주통일장 '영결 추도식'에서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10일 한양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이락호 선생 민주통일장 '영결 추도식'이 열렸다.

이날 추도식에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비롯하여 고인이 몸담았던 사월혁명회, 민가협, 진보연대, 전국여성연대, 추모연대 회원 등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다.

전국여성연대 최진미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추도식은 사월혁명회 한찬욱 사무처장의 '이락호 선생의 약력보고'에 이어, 한국진보연대 오종렬 총회의장, 사월혁명회 정동익 상임의장, 민가협 조순덕 상임의장의 추도사가 진행되었다.

오종렬 총회의장은 “고인은 민족민주운동가들의 어머니였습니다. 모든 것을 걸고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살아오신 일도 높이 평가될 일이거니와 항상 메고 다시는 무거운 가방에는 먹을거리와 손수 만드신 건강식품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면서 “선생은 그 준비한 음식들을 활동가들에게 나눠주면 '잘 먹고 건강해야 민족민주운동을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하셨던 것입니다”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정동익 상임의장은 “선생님은 운동하는 동지들이 기대어 쉴 수 있는 거목 같은 존재이셨습니다”라고 말한 뒤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약 한 첩과 따뜻한 미소는 어떤 웅변이나 설교보다 통일운동하는 일꾼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돼 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순덕 상임의장은 민가협 장터에 ‘양심수 석방!’이라고 새긴 앞치마를 30벌을 준비해온 일화를 소개하면서, 요양병원에 머무실 때 찾아갔더니 “남의 건강 걱정만 했지 내 건강은 지키지 못해 부끄럽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며, “선생님! '삶' 그 정도면 훌륭했습니다. 참 '귀'하게 사셨습니다”라고 추모했다.

추도사를 마치고 이수진 씨가 나와 조가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불렀다.

호상을 맡은 추모연대 박중기 명예의장은 “어제 홍근수 목사님의 추모제에 이어 오늘 이락호 선생의 추모제를 하고 있으려니 착잡한 심경이다”라고 말한 뒤 “이들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은 큰 손실이며, 이들의 희생만큼 우리 사회가 진전이 있는지는 곱씹어 볼일이다”며 “선생은 자기는 굶어도 남이 굶는 것은 못 보는 착한 심경의 소유자였고, 마음은 지하수처럼 맑고 투명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선생의 빈자리를 채우는데 더 열심히 나서야 할 것이다”라고 고인을 보내는 심경을 토로했다.

마지막 유족 인사에 나선 장남 김영규 씨는 어머니의 유품 중에 수없이 많은 메모지들과 신문 스크랩을 살펴본 이야기를 꺼내며 “어머니는 참으로 고뇌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자신이 운동이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를 항상 준비하고 노력하셨던 분이셨다”라고 말한 뒤 “만약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여러분들에게 남기셨을 말을 어머니 대신 전하겠다”며 “지난 77년 동안 여러분과 함께 한 일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들께 서운하게 해드린 것이 있다면 용서하십시오. 제가 다시 태어난다면 또 다시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이락호 선생이 남기셨을 말을 대신 낭독했다.

추도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헌화와 분향의 시간을 가졌다. 고인의 장지는 충남 홍성군 홍성추모공원이다.

 

이락호(李樂護) 선생 주요 약력

1937년 대구 중구 남산동 출생
1957년 대구 원화여고 졸업. 한국사회사업대학(대구대 전신) 공업경제학과 중퇴
1958년 대구 내외방직, 대한방직에서 일하고, 경남 진주로 활동공간을 옮겨 동양염직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였다.
1960년 4.19혁명 후, 7.29 민의원선거 당시 상주, 영주, 안동 등지에서 혁신계 출마자를 도와 선거운동을 하였다. 또한 민족민주청년동맹 경북맹부에서는 홍일점으로 활동하였다.
1961년 대구에서 2대 악법 반대시위를 주도하였다. 5.16쿠데타 후, 혁명재판에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1964년 1차 인혁당사건으로 연행되어 심한 고초를 받았다.
1974년 2차 인혁당사건으로 연행되어 심한 고초를 받았다.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연행되어 심한 고초를 받았다.
1990년 아들 김영규도 어머니의 뜻을 이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국세청 점거사건>으로 투옥되었다. 이때 선생은 민가협 회원이 되어 헌신적으로 활동하였다.
1998년 사월혁명회 공동의장을 맡음
이후 지금까지 민가협 운영위원, 전국여성연대 지도위원, 한국진보연대 고문,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이사 등을 역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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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포기하면, 송전탑이 경기도를 덮친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10/10 11:27
  • 수정일
    2013/10/10 11:2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초록發光] '밀양 탄압법' 송주법, 왜 문제인가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0-10 오전 8:18:18

 

 

월요일(10월 7일) 오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송·변전 설비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명 '송주법'이 통과되었다. 그 이후 언론들은 '밀양 송전탑 주민 지원법'이 통과됐다고 일제히 보도하기 시작했다.

참 어이없는 일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은 이 법에 반대하고 있는데, 이 법을 '밀양 송전탑 주민 지원법'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밀양에서 송전탑에 반대하며 산속에서 노숙을 하고 식사도 거르고 추위에 떨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 법에 반대한다. 그러니 이 법은 '밀양 송전탑 주민 지원법'이 아니다. 어떻게든 공사를 밀어붙이려는 정부가 만든 '밀양 주민 탄압법'이다. 이 법 통과를 빌미로, 공사를 더욱 거세게 밀어붙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치고, 삶터를 잃게 될 것이다. 이미 10월 1일 공사 재개 이후에 30여 명의 어르신들이 병원에 실려 갔다.

밀양 주민들은 왜 이 법에 반대하고 있을까?

밀양 주민들은 보상이 아니라 송전선 건설의 타당성 자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법에서 정하고 있는 보상 규정이 시행된다고 한들, 주민들이 입는 피해가 제대로 보상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평온하게 살아온 삶터가 파괴되고, 후손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되는데, 그것이 어떻게 약간의 보상으로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냐는 것이다. 이것이 주민들의 진심이다.

그렇다면, 과연 보상이 답인가? 라는 의문에 대해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고민을 회피하고 '이미 결정된 사업이니 강행하는 수밖에 없다'는 군색한 얘기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통과한 송주법은 내용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아주 졸속으로 마련된 법안이다. 보상에 관한 법률을 만들려면 피해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다. 그나마 있는 조사 결과와도 배치된다.

초고압 송전탑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그나마 조사한 자료는 2011년에 한국토지공법학회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송·변전 설비 건설 시 피해 범위와 적정 편입 범위 산출 및 보상 방법 연구>) 정도이다. 이 연구 결과에서는 765킬로볼트의 경우에는 최외선(가장 바깥선)으로부터 80미터, 345킬로볼트의 경우에는 최외선으로부터 20미터까지의 토지에 대해서는 지가 하락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물론 주민들은 이마저도 충분치 않고, 지가 하락 등의 피해 범위는 송전선으로부터 1킬로미터가 넘는 범위까지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 통과된 송주법에서는 제대로 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33미터(765킬로볼트), 13미터(345킬로볼트)라는 자의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토지공법학회가 제안한 것보다 보상 범위를 대폭 축소한 것이다.
 

ⓒ하승수


둘째, 송주법은 위헌 소지가 많은 법률이다. 송주법은 이미 건설된 송전선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헌법 제11조가 밝히고 있는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기존에 건설된 초고압 송전선들의 경우에도 선하지(최외선에서 3미터 이내)나 철탑 부지를 제외하고는 보상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기존의 송전선 주변 지역 주민들도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전자파로 인한 피해, 경관 피해, 재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 암 발생자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호소하는 마을도 있다.

그런데 송주법에서는 '재산적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를 공사 완료일 이후 2년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공사 완료후 2년이 지난 초고압 송전선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또 송주법에서는 765킬로볼트와 345킬로볼트 송전선은 보상 대상에 포함시킨 반면, 154킬로볼트 송전선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러나 154킬로볼트 송전선의 경우에도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는 있지만 피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154킬로볼트 송전선을 아예 보상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졸속적이고 위헌 소지가 많은 법률을 무리하게 통과시켰을까? 그것은 밀양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 밀양에서 송전선 건설 사업 자체의 필요성,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지금까지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온 송전선 건설 사업이 큰 저항에 부딪히자, 일단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졸속·위헌적인 법률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러나 밀양 주민들의 얘기처럼, 지금은 보상이 아니라 송전선 건설 사업 자체에 대해 따져봐야 할 때이다.

송전선 건설과 관련된 핵심적인 문제점은 절차적 민주주의와 투명성, 그리고 객관적 검증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송전선 건설 계획은 한국전력과 정부 관료들에 의해 입안된다. 전기위원회 같은 위원회를 거친다고 하나, 독립성이 없는 기구이다. 전기위원회 위원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 또는 위촉한다. 위상도 산업통상자원부에 소속된 심의 기구에 불과한 위상이다.

반면 미국만 하더라도,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및 주 정부별 공공사업규제위원회(PUC 또는 PSC)가 신규 송전선로 건설 신청을 받으면 건설이 아닌 다른 대안들(대안 선로 및 비송전선 대안)을 동시에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이런 대안들에 대해 검토를 한다. "비송전선로 대안"에는 지역 분산형 발전, 수요 관리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주 정부 규제 기관 버지니아 주 기업규제위원회(Virginia State Corporation Commission)는 버지니아 주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준 사법 기관으로서 분쟁 조정 신청을 하는 모든 버지니아 주 당사자 및 시민에게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른 분쟁 조정을 보장하며, 분쟁 해결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위원회의 검증 과정을 거쳐, 미국에서는 장거리 765킬로볼트 송전선 건설 사업인 PATH(Potomac-Appalachian Transmission Highline) 사업이 2012년에 취소된 사례도 있다.

계획 단계를 지나 사업 추진 단계로 오면 더 문제이다.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국토의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 도로법, 하천법, 자연공원법, 농지법, 산지관리법 등 20개 법률에 따른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의제된다. 주민들이 말을 안 들으면 토지를 수용할 수도 있다.

이런 법조항을 악용하여 한국전력은 그동안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정보를 알리고 설득하기 보다는 형식적이고 졸속적인 주민 설명회를 거쳐 사업을 강행하기에 바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밀양, 청도 등의 지역에서도 형식적인 주민 공청회를 거쳐 일방적으로 절차가 진행되었고,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철저하게 묵살되었다. 주민 설명회는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되었고, 처음에 주민들은 초고압 송전선로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전원개발촉진법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8년 한국전력 등 전원 개발 사업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던 법으로, 악용의 소지가 많은 법이다. 이런 법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력 분야는 민주주의나 투명성 같은 기본적인 원칙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분야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전원개발촉진법 같은 법률을 폐지하거나 대폭 개정하고, 독립적인 기구를 통해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게 하며, 투명한 과정을 통해 정보가 공개되고 민주적인 의견 수렴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보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고리-북경남' 765킬로볼트 송전선로만 하더라도 그 필요성이 의심스러운 사업이다. 이 765킬로볼트 송전선로는 애초에는 수도권으로 연결한다는 계획이었다. 제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고리-북경남-신충북-신안성을 연결하여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송전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3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수도권으로 송전한다는 계획이 폐기되었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사업을 재검토했어야 한다.

그러나 한전은 765킬로볼트 송전선로의 사업 목적을 '영남 지역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으로 변경하고, 건설을 강행했다. 그러나 765킬로볼트 송전선로는 캐나다 퀘벡 주의 수력 발전소들과 미국의 북동부 지역 간을 잇는 1000킬로미터 대의 선로처럼 장거리 송전에 주로 사용되는 선로이다. 신고리에서 북경남 변전소까지 90킬로미터를 송전하면서 765킬로볼트 송전선을 건설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이를 밀어붙여서 막대한 재원을 낭비하고 시골 주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하지 않고 '얼치기 보상'을 한다는 것이 무슨 해법이 되겠는가?

송주법은 앞으로 예상되는 수많은 송전선 관련 분쟁에 대한 해법이 되지 못하고 국가적으로도 올바른 대안이 되지 못한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된다면, 정부와 한국전력은 6차 장기 송·배전 설비 계획에 포함된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들을 밀어붙일 것이다. 그럴 경우에 새로운 갈등이 일어날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6차 장기 송·배전 설비 계획에 따르면 동해안의 신울진(신한울) 원전에서 출발하는 765킬로볼트 송전선이 강원도와 경기도의 많은 지역들을 지나가게 된다. 여주, 이천 등이 포함된다. 이 때 일어날 사회적 갈등을 생각해 봐야 한다.
 

▲ 6차 장기 송·배전 설비 계획 중 일부. ⓒ한국전력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송·변전 설비 건설을 강행할 것이 아니라, 발전과 송·변전 전반에 걸친 시스템을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바닷가에 대규모 핵발전소와 석탄 화력 발전소를 건설해서 초고압 송전선과 변전소를 지어 전기를 송전하는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수많은 갈등과 피해를 낳을 뿐이다.

국가적으로도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보상하려면 막대한 보상 비용이 들어서 경제성이 없다. 제대로 보상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국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갉아먹는 일이다. 시골 주민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부정의한 일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졸속적인 보상 법안의 제정이 아니라, 사회적 공론화이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보상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고, 송전선 공사를 빨리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도 거짓이다. 밀양을 지나는 765킬로볼트 송전선, 그리고 그로부터 나가는 345킬로볼트 송전선은 전혀 급하지 않다. 서해안의 당진 화력 발전 단지에서 출발하려고 하는 신규 345킬로볼트 송전선을 비롯한 다른 송전선도 마찬가지이다.

이 송전선들은 수요의 측면에서 고려된 것이 아니라, 발전소 건설을 밀어붙이겠다는 공급 확대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요는 대기업들에게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 요금을 현실화하고, 대공장의 자가 발전 확대를 의무화하는 방법 등을 통해 억제할 수 있다. 수요를 억제한 상태에서 송전선 건설은 급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신고리 3, 4호기 때문에 밀양 송전선 건설이 급하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신고리 3, 4호기는 시험 성적서가 위조된 핵심 부품(제어용 케이블) 문제 때문에 언제 가동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서해안의 석탄 화력 발전 단지도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지금처럼 수도권과 대기업들이 사용하는 전기를 위해 서해안 일대와 농촌 지역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피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온실 기체 배출 규제 등에 대비한다면, 석탄 화력 발전소를 신규로 계속 건설할 수 없다. 지금의 정책은 정말 근시안적인 정책이다. 따라서 지금은 '공사가 급하다'고 할 것이 아니다. 정부는 전력 정책 전반에 대해 시민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제대로 된 토론을 해야 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송주법은 그냥 국회를 통과해서는 안 된다. 위헌 소지가 있는 법률이기 때문에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재검토를 해야 한다. 제대로 의견 수렴이나 검토를 하지 않은 법률이기 때문에 다시 논의를 해야 한다.

이제라도 국회는 송전선 주변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 '껍데기뿐인 보상 법안은 문제의 해법이 아니다'라는 주민들의 외침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을 짚고 있는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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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NLL 준수’로 입장 정리한 국방부, 출구전략인가?

NLL 푹 고아먹은 저들, 보신 좀 했나?
 
‘노무현 NLL 준수’로 입장 정리한 국방부, 출구전략인가?
 
육근성 | 2013-10-10 09:49: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새누리당이 고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건 지난 대선 때였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지자 NLL을 야당의 기세를 꺾는 도구로 활용하더니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이후에는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 국면 전환용으로 우려먹었다.

대선 때 고아먹은 NLL, ‘부정선거’ 논란일자 재탕

정문헌 의원이 NLL 포기 주장을 한 것을 시작으로 대선 막바지에는 김무성 의원이 대화록 전문 중 일부를 아예 그대로 낭독을 한 바 있다. 국정원과 경찰의 불법 대선개입과 축소수사가 이슈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 실시 요구에 더 이상 버티기로 시간을 끌기 어렵게 되자 NLL 대화록을 다시 들고 나온다. 일단 대화록 발췌본을 공개한 국정원은 전문을 공개해도 좋다는 듯한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다음 날 대화록 전체를 불법 공개한다.

한번 고아먹었던 NLL 대화록을 재탕한 셈이다. 국정원 국정조사와 원세훈-김용판이 선거법위반으로 기소돼 여론의 시선이 ‘12.19부정선거’로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였다.

‘NLL 포기’에서 ‘사초 실종’으로, 검찰 개입 효과

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또 고아먹는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진영 전 복지부장관의 ‘정치적 항명’, 기초노령연금 등 복지공약 대폭 후퇴로 인한 ‘먹튀 선거’ 논란이 불거지고 국정원의 수사파트를 없애야 한다는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다시 NLL을 들고 나왔다.

세 번째는 좀 달랐다. 대화록 공개 이후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기대했던 수준으로 여론이 움직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전략을 달리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저들의 억측이 여론의 설득력을 얻는데 실패로 끝나자 이제는 검찰을 내세워 공작을 폈다.

검찰이 대화록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지 않았으며 봉하 이지원에서 수정본만 발견됐을 뿐 초본이 삭제된 상태라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국정원와 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화록 초본이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 의해 파기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국정원이 '노무현 NLL 포기' 소설 쓰기 위해 조작한 사진 (위)

▲2007년 남북국방장관 회담 당시 노무현 정부가 제안한 등면적안 (아래)

진영 ‘항명’, 기초연금 ‘먹튀’ 논란 일자 ‘대화록 삼탕’

고 노무현 대통령이 무엇인가를 은폐하기 위해 대화록 초본(원본) 삭제를 지시하고 내용이 수정된 대화록을 이지원에 보관해 둔 것이 확실한 만큼 ‘사초 실종’ 책임이 야당과 문재인 의원에게 있다며 대대적인 공세를 취했다.

논쟁의 핵심을 ‘NLL 포기’에서 ‘사초 실종’으로 옮겨 야당을 공격하는 동시에 여론을 호도함으로써 국면을 전환시켜 보겠겠다는 게 세 번째 공작의 목표였다.

NLL 대화록을 무려 세 차례나 고아먹은 저들이다. 불법 댓글 의혹,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 ‘먹튀 공약’ 논란 등 자신들을 허약하게 만드는 국면이 도래할 때마다 대화록을 마치 사골이나 쇠꼬리 고듯 그렇게 우려먹었다. 재탕, 삼탕을 하면서 말이다.

재탕, 삼탕 효과? 아주 잠시뿐

푹 고아 드셨으니 몸보신이 좀 됐을까. 그렇지 못했다. 보수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대화록 논란을 최대한 부풀려 불리한 이슈들을 덮으려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터뜨릴 때마다 잠시 여론분산 효과가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국부적 마취효과에 불과했다. ‘노무현 NLL 포기’라는 타이틀 기사가 보수신문과 종편, KBS, MBC 등의 메인을 연일 화려하게 장식하며 여론을 두드릴 때도 잠시 주춤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금세 이성을 회복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NLL 포기 아니다’라고 보는 의견이 더 많게 나왔다.

NLL 포기에서 ‘사초 실종’으로 전략을 바꿔 공세를 폈지만 이 또한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욕구를 채워줄 만한 ‘약발’은 없었다. ‘초본 삭제’ ‘노무현 삭제 지시’ ‘초본과 수정본 내용 다르다’ 이런 투의 기사가 신문과 방송의 메인을 장식하던 초반 며칠간 잠시 흔들렸던 여론은 다시 중심을 잡으며 사안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국민에게 피로감만 안겨줘

삭제라고 보기도 어렵고, 실종은 더더욱 아니라는 여론의 판단이 확산되는 추세다. 이대로라면 검찰의 수사도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 ‘대화록 세 번째 고아먹기’ 역시 기력을 회복할 만한 영양가를 새누리당과 청와대에게 제공해 주지 못할 게 분명해 보인다.

‘대화록 고아먹기’로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한 걸까. 노 대통령의 'NLL 포기' 주장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이 바뀌었다.

그동안 국방부는 남북 국방장관 회담 당시 ‘NLL 준수’와 ‘NLL을 기준으로 등면적 공동어로수역 설정’이라는 두 가지 협상원칙을 노 대통령이 승인했는지 여부를 묻는 민주당의 질문에 “어떤 지시나 대화가 있었는지 아는 바 없으며 전임 대통령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국방부가 평가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답변을 회피해 왔다.

‘노무현 NLL 준수’로 입장 정리한 국방부, 출구전략인가?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지난 7월 국정원이 ‘NLL 포기’의 증거로 왜곡된 지도를 들고 나오자 “NLL 밑으로 우리가 관리하는 수역에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자는 내용이라면, 그 결과는 NLL 포기로 해석될 수 있다”며 국정원 편을 들기도 했다.

이러던 국방부가 지난 8일 ‘2007년 남북 국방장관 회담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이 NLL 준수와 등거리 공동어로수역 설정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승인한 바 있다고 공식 확인했다.

지난 4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국방부장관으로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국회 운영위에 나와 NLL 문제에 대해 노 전 대통령과 이견이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김 실장은 또 남북 국방장관 회담 당시 노 대통령이 자신에게 “국방부 장관이 소신껏 하고 와라” 고 말했고 “그래서 소신껏 NLL을 지킬 수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국방부가 공식 입장을 밝힘에 따라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야당에 대한 공격무기로 활용해온 ‘노무현 NLL 포기’ 주장이 설 땅을 잃은 셈이다.

대화록 너무 고아먹은 여권, 부작용으로 건강 해칠 것

국방부의 이 같은 태도변화는 하나의 신호탄일 수 있다. ‘NLL 포기 주장’으로는 국민에게 피로감만 더 할 뿐 얻어 낼 게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저들이다. 국방부의 입장 변화는 여권이 출구전략을 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노무현 NLL 포기’라는 소설을 써가며 대화록을 세 차례나 푹 고아먹은 새누리당과 국정원. 이렇게 하면 수세에 몰린 국면을 타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었나 보다. 어림도 없는 수작이었다.

너무 고아먹었으니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몸보신은커녕 과다 복용으로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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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불평등에 맞서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교회 밖' 메시지

"정치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천주교 시국선언도 바티칸과 사전 상의

13.10.10 08:36l최종 업데이트 13.10.10 10:43l
정현진(hjregina)

 

 

[기사수정: 10일 오전 10시 40분]

"악에 맞서는 전쟁은 동족상잔과 거짓말, 모든 형태의 폭력, 무기의 확산과 암시장에서의 무기 판매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 세계 모든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정말로 갈등으로 인한 전쟁인지, 아니면 암시장에 무기를 팔기 위한 상업 전쟁인지 항상 의심이 남는다."

지난 9월 8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성 베드로 광장의 정오 기도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시리아를 위한 단식 기도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던 교황은, 시리아 내전에 대한 미국 개입의 본질을 '상업 전쟁'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주, 가난, 굶주림, 전쟁에 대해 교황은 짧지 않은 시간동안 그 본질을 정확히 드러내며, 구체적이고도 평화적 해결을 촉구해왔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였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76) 추기경은 2013년 3월 13일(현지 시각)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철도 노동자의 아들이기도 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전 추기경 시절의 소박하고 검소한 행보부터 주목을 받았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의 대주교 자리에 오른 후에도 대주교 관저에 머물지 않고 작은 아파트를 얻어 생활했다. 또 직접 식사 준비를 하고 운전사가 딸린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교황에 선출된 직후에도 로마의 숙소 짐을 스스로 정리하고, 전용 방탄차를 물리는 그의 검박한 행동에 세상은 놀라고 환호했다.

"내가 만일 교황으로 선출되더라도 교황을 축하하기 위해 로마로 여행하지 말고 대신에 그 돈을 가난한 이에게 기부하라."

교황의 이름 '프란치스코'에 담긴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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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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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전 세계 가톨릭 지도자인 교황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두고 있는 화두가 무엇인지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다. 교황에 취임하게 되면 가톨릭 성인이나 전임 교황의 이름 중 하나를 선택한다. 바오로 6세라면, 바오로 성인과 함께 그 전임 교황 바오로 5세의 뜻을 따르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교황 프란치스코는 사상 처음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선택했다. 그의 이름 뒤에 몇 번째라는 '~세'가 붙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프란치스코 성인은 누구인가. 이탈리아 중부 아시시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가난과 청빈의 삶을 살며, 평생을 병든 자와 가난한 자를 위해 헌신한 성인이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방탕하게 살았으나, 20세에 회심한 뒤, 모든 재산을 버리고 평생 수도의 길을 걸었다.

1209년 '작은 형제회'라는 가톨릭 최초의 수도회를 설립했으며, 자연, 뭇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소통하며 살았던 삶을 이유로, 1979년 국제생태학협회 제청에 따라 '생태계의 수호성인'으로 지명되어 섬김을 받고 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 성인의 이름을 선택한 이유를 취임 후 이렇게 밝혔다. 콘클라베 두 번째 투표에서 선출된 직후, 그의 동료 추기경이었던 클라우디오 우메스 브라질 대주교는 그를 안고 축하하며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세요"라고 청했다고 한다. 그후 교황은 "가난한 사람, 가난한 사람, 이들을 생각하니 곧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떠올랐다…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난, 빈곤, 양극화가 점점 심각해지는 가운데, 가난한 이들에 대한 헌신, 생태적 감수성을 상징하는 성인을 선택한 것은 교황으로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며,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역할을 드러낸 일종의 '사건'이었다.

이주민의 비극 "심장이 가시로 찔리는 듯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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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
ⓒ 위키피디아 공동자료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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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는 '가난'에 대한 지향을 그의 이름과 발언에서 그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의 첫 방문지는 유럽으로 가려는 북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의 밀항지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 섬이었다. 지난 7월 8일 이곳 '불법이민자 수용소'에서 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이민자들에 대한 국제적 무관심을 비판하고, 양심의 각성과 형제애를 촉구했다.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무관심의 세계화', '익명의 야만성'에 대해 경고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이주자들이 바다에서 죽어가고 있다. 희망의 배가 죽음의 배가 되고 있다"며 이주민들이 빈번히 겪는 비극을 알고 나서 "줄곧 심장이 가시로 찔리는 듯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하면서, "이곳에서 기도하며, 내가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다는 징표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양심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안락을 추구하는 문화는 오직 우리 자신만 생각하도록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웃의 고통에 무감각하게 만들고, 사랑스럽지만 허상 가득한 비누거품 속에 살도록 합니다. 그것들은 이웃에게 무관심하게 만드는 덧없고 공허한 망상에 빠져들게 합니다. 참으로 '무관심의 세계화'로 이끄는 것입니다.

여기 형제·자매들의 죽음에 누가 애통해하고 있습니까? 이 (죽음의) 배를 탄 사람들을 위해 누가 울고 있습니까? 어린 것들을 안고 있는 이 젊은 엄마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나선 이 남자들을 위해서 누가? 우리는 어떻게 울어야 할지를, 어떻게 연민을 경험해야 할지를 잊었습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고통' 말입니다. 무관심의 세계화가 우리에게서 슬퍼하는 능력을 제거해버렸습니다!"

첫 노동절 강론에서 노동자들의 권리 옹호

교황은 지난 5월 1일 노동절 오전 미사 강론에서 특별히 4월 24일에 일어난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 참사에 대해 언급하고, 노예노동 철폐를 촉구하는 한편, 이윤의 탐욕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날 교황은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착취당하는 노예노동 현실에 대해) 이런 노예제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것들에 반한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창조하고 일하고 존엄을 지킬 능력을 주셨다. 수지타산을 맞추거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일자리를 주지 않거나,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은 하느님에게 반하는 일"이라고 일침했다.

그는 이어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알현에서도 노동자의 권리를 역설했다. 교황은 "인간 존엄은 노동에 의해 이뤄지며, 개인 존엄의 근본은 '노동'"임을 강조하면서, 각 나라 지도자들에게 "실업을 없애고 노예노동을 폐지하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요청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어 5월 16일 바티칸을 방문한 세계 각국 대사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비인간적 경제체제를 개혁하라"고 촉구했다.

"전 세계적 금융 및 경제 위기는 금융과 경제의 왜곡이 최고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소비만 하는 존재쯤으로 격하시키고 있습니다. 더 나쁜 것은 인간 그 자체를 소비재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보물과 같은 '연대성'은 비생산적인 것으로, 금융과 경제 논리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이 논리에 따라 공동선을 위해야 할 국가가 자신의 통제성을 부정하고 있으며, 결국 공공연한 새로운 독재, 황금 송아지와 같은 우상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

이어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강론 중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는 것은 그들을 강탈하는 것이며 그들에게서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우리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모든 이들에게 유익한 윤리적 금융 개혁을 위해 정치 지도자들의 용기있는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 외에도 교황은 지난 6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로마회의 참가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빈곤과 굶주림에 대해 설파하면서, "식량 생산 수준이 충분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도, 여전히 수백만 명이 굶주림으로 고통을 받거나 죽어가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라면서, 금융투기와 부패가 수백만 명을 굶주리게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못하게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근시안적인 경제적 이익이나 세상 사람 다수를 배제하는 소수 권력자의 사고방식에도 반대할 필요가 있다"면서, 모든 사람이 지구의 생산물로부터 혜택을 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겐 의무입니다"

예수는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의 편이었고, 교회의 소명은 그 복음을 살고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세상이 새삼 '가난을 지향하는' 교황에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교황 프란치스코가 그 누구보다 '가난'을 구체적이고 본질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교회는 '교회 밖'에 역량을 쏟아야 한다.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교회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 자기 지시에 빠지게 되고, 병들게 된다."

이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전에 열린 추기경단 회의에서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 연설 내용이다. 그가 '교회 밖'이라고 칭한 곳은 비단 지리적인 개념을 넘어 죄, 고통, 불의 등을 포함한 것이다. 교회가 교회 내부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교회 밖' 세상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무엇이 사람들의 삶을 어렵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교황 프란치스코는 세상 밖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이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 찾고 연대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가난'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 '가난'과 '소외'가 특정 계층, 특정 지역의 일관된 모습이 아니라 어느 계층, 어느 지역에서든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이같은 변화는 강론이나 연설에 머물지 않고, 그가 찾아가 만나는 이들이 누구인지,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리고 그 자신이 생활하는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물론 교황의 임기가 이제 갓 6개월을 넘었고, 여전히 교리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해방 신학자들과의 만남, 여성과 타 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는 최소한 교회와 세상이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문제에 있어 '불통'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겐 의무(obligation)입니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고로, 자애(charity)가 가장 고도로 표현되는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평신도들은 반드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합니다.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왜 정치가 타락하는가? 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적 정신으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가? '그들 탓'으로 돌리기는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은 무얼 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의무입니다. 공동선을 위해 일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그렇게 일하는 것이 바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길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가르치는 것도 그 중 하나죠. 그럼에도 정치적 생활은 공동선을 위한 다양한 길들 중의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 예수회 학교를 방문했을 때, 정치 참여에 대한 질문에 답한 내용)

한국 가톨릭 시국선언, 바티칸과 사전 상의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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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국미사 나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23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국정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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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가톨릭교회는 다시 대대적인 '저항'에 나서고 있다. 물론 교회에는 성서와 '사회 교리'의 가르침에 의해 굳이 교황의 발언이나 입장이 아니어도, '불의'라고 판명된 상황에 목소리를 내야 하는 근거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 '정치 참여'에 대한 교황의 발언이 다시 한 번 그 '정당성'을 확인시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선 한국가톨릭교회는 교회의 정치 참여에 대해 상당히 상반된 견해를 가진 이들이 존재하고, 정치권이나 국가 정책에 대한 공시적 (특히 사제들) 발언이 있을 때마다 교회 분열을 들며 '신앙인들의 정치 참여는 옳지 않다'라는 주장이 불거져왔다. 이는 같은 성경과 교리를 접하면서도 해석하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대대적인 '시국선언'이 일부 사제들의 자의적 판단과 행동이 아니라 바티칸과 사전 상의한 결과라는 보도 내용이 알려지면서 ('바티칸 라디오' Statio Radiophonica Vaticana, Vatican Radio, 9월 26일 보도) 불필요한 논쟁의 여지가 줄어들 것 같다.

교황 프란치스코를 보면서 특히 교황 요한 23세(1958∼1963년 재위)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요한 23세가 소집한 2차 바티칸 공의회(1963~1965)는 '교회가 세상에 대한 창문을 열어 젖힌' 사건으로 일컬어진다. 성직자 중심에서 평신도의 지위와 사명이 부각됐으며, 세상과의 소통, 화해, 쇄신, 일치 등으로 교회가 인류의 복지, 평화, 구원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세상을 향한 교회'로서 교황 프란치스코 이전에 이미 변화의 맹아를 품고 있었다. 각 교구마다 정의평화위원회가 생겨났고, 이른바 신앙 실천의 지침이 되는 '사회교리' 교육과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각 위원회를 통해 빈민, 노동, 환경, 생태, 생명운동에 교회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시국 선언'과 '시국 미사' 등은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그 폭발력이 증폭된 셈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바티칸 개혁에 착수하면서 교회 내부의 변화와 성찰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부분에 메스를 가하는 교황에 대해 세상은 조금 더 많은 신뢰를 보낼 것이며 이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신뢰로 이어질 것이다. 세계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자 국제사회에서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는 교황의 이러한 행보가 국내·외 교회로부터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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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미국인, 아빠는 한국 공무원인 나라


 

 

 


대한민국 3대 중증질병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흔히 아는 암이 아닙니다. 허리디스크. 안구질환,간염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걸리는 중증질환인지 청와대에만 디스크와 안구질환,간염 환자가 무려 6명이나 있습니다.

청와대 홍남기 청와대 기획비서관은 만성간염, 전광삼 청와대 홍보수석실 선임행정관은 허리디스크에 걸려 군대도 면제받은 인물입니다. 이외 나머지 4명도 각각 디스크.안구질환,간염으로 병역 면제를 받았습니다.

이들의 질병이 중증질환이라고 아이엠피터가 주장하는 이유는 처음에는 멀쩡해서 <현역판정>을 받았는데, 불과 1~2년 사이 디스크와 안구질환,간염에 걸려 재신검을 받았고, 이후 병역면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 박근혜 정부 고위공무원 253명 현역 판정 후 재신검 병역면제'

불과 1~2년 사이 군대에 가지 못할 정도로 중증질환을 앓은 사람은 청와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고위공무원 181명은 현역 입영 대상자 판정을 받았다가 재신검을 통해 병역을 면제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검사,판사 등 51명도 재신검을 통해 병역면제를 받았고, 입법부 (국회)에서 활동하는 국회의원과 보좌관,국회 전문위원,사무처 공무원 등 21명도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자신들이 직접 병무청에 재신검 신청서를 내고 병역을 면제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입법,사법,행정부 소속 고위 공무원 253명이 이렇게 단기간에 질병이 악화(?)되어, 현역에서 병역 면제로 바뀐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고위공무원의 재신검 병역면제는 법원,검찰청,외교부,국회,교육부,기획재정부,미래창조과학부,산업통상자원부,청와대 등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앞서 말했던 디스크.안구질환,간염,폐질환 등으로 병역을 면제 받았는데, 일명 허리디스크라고 불리는 수핵탈출증으로 면제받은 사람은 253명 중 48명이나 됐습니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3대 중증질병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고위공무원들의 병역 면제 사유 질환이 진짜 질병이었는지 아닌지는 판가름하기 어렵지만, 실제 저런 질환으로 병역 면제를 받은 사람보다 현역입대를 한 사람들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석연치 않은 재신검 병역 면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 아들은 미국인, 아빠는 한국 공무원'

박근혜 정부에서 일하는 고위공무원 중에는 자신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도 병역 면제를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질환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국적이 외국이라는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습니다.

 

 

 


박근혜 정부 고위공무원의 아들 16명은 외국 국적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는데, 해당 공직자들은 외국 유학 등으로 현지에서 아들을 출산하여 어쩔 수 없이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가 장학금이나 자녀 건강 때문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이모과장의 아들은 중학교 1학년때 혼자 미국 유학을 갔다가 지인의 양자로 살다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인이 된 케이스입니다.

신원섭 산림청장은 캐나다 이민을 갔다가 신원섭 산림청장만 한국으로 귀국 아들과 부인은 캐나다에서 국적을 취득해 병역을 면제받았습니다.

이들은 유독 현행법이 정해놓은 만18세3개월을 전후로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병적 제적을 통해 병역 면제를 받아, 의도적으로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의심되고 있습니다.

 

 

 


특히 외교관 자녀 130명은 미국,캐나다,일본 등의 복수 국적을 취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외교관 자녀들의 복수국적이 외교관들이 해외에서 근무하다가 자녀를 출생해서 어쩔 수 없이 외국 국적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외교관 자녀 중 복수국적을 가진 130명 중 118명은 미국 국적을 갖고 있습니다. 복수국적 자녀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어 미국에서 출생한 아이는 자동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는데, 미 국무부 외교관 명단에 등재한 외교관의 자녀는 미국에서 출생해도 미국 이민법에 따라 미국 국적을 자동으로 취득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미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을까요? 외교관 명단에 등재되지 않는 영사관 근무나 연수 등으로 출산할 경우, 즉 <원정출산>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복수국적을 가진 외교관 자녀 118명이 미국에 편중됐다는 사실은 외교관들이 일부러 출산 전에 공관 근무나 연수를 신청해 미국으로 가서 아이를 출산,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짜사나이를 통해 총알받이를 양산하는 한국'

요새 인기있는 TV프로그램중에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군부대에 일주일가량 입소해 현역 부대원들과 함께 훈련과 내무반 생활을 함께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처음에는 현역 군인들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주더니, 요새는 멋있는 장면만 연출해 마치 국군 홍보TV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이 보여준 군대에서는 고참의 자상한 사랑(?)만 보여주지 진짜 군대의 아픔인 구타와 욕설,왕따 등은 전혀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TV방송을 보고 아이들이 군대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이엠피터의 아들도 '진짜 사나이'를 보면서 군대에 관심을 가졌고, 이제는 아이들은 군대에 갈 수 없느냐고 묻기까지 합니다.

 

 

 


MB정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보수 정당이 집권하는 시기 고위공무원들의 병역면제율과 2세 병역 면제는 항상 높았습니다. 여기에 군대에 가도 이들은 일명 '꽃보직' 근무지에서 병역을 마치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자식들은 권력을 통해 군역을 면제 받았고, 부자들은 돈을 통해서 아들을 군역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통해 그들을 비판하고 반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대 재벌 그룹인 삼성그룹의 자녀들의 병역면제율은 73%이고, 언론사주 (조선,중앙,동아)와 그 아들은 42.1%입니다. 대한민국 평균 병역 면제율 4.6%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은 병역 면제율입니다.

결론은 돈 없고, 빽 없는 아버지를 둔 대한민국 대부분의 아들들은 군대는 반드시 가야 하고, 꽃보직은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아마 아이엠피터의 아들도 군대에 가서 '왜 우리 아버지는 능력이 없어 나를 군대에 보내게 했느냐'는 원망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진짜 사나이'를 외치며 군대를 미화해도 돈 있고 권력 는 자들은 군대에 가지 않으면서 '안보'를 얘기하는 세상이 대한민국입니다.

수십 명의 외국인 아빠들이 오늘도 대한민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아 그 월급으로 외국인 아이들을 해외에서 공부시키고 있는 사회에서 한국인 아들과 아빠는 그저 '진짜 사나이'를 보면서 고생했던 추억과 멋진 군입대를 꿈꾸는 이상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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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한미 군사적 위협은 달걀로 바위치기

한미연례안보협의회 거론, “어리석은 망상”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10/10 [09:56]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이 한미연례안보협의회를 거론하며 “우리 공화국에는 그 어떤 술책도, 군사적위협책동도 통하지 않는다.”며 “그것은 오히려 닭 알로 바위를 쳐보겠다는 것과 다를바 없는 어리석은 망상에 불과하다.”고 강조해 나서 이목을 끌고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2일 서울에서 벌어진 미국과 괴뢰들의 《연례안보협의회》에서 《성명》이라는 것이 발표되었다.”면서 “《성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상전과 주구의 군사적 결탁을 더욱 강화하고 우리의 정의롭고 평화애호적인 노력을 모해하는데 집중되었으며 반공화국압살공세를 더욱 강화하려는 내용들로 일관되었다.

회의가 끝난 후 괴뢰국방부 관계자는 상전과 함께 《다양한 상황의 군사적 계획을 발전》시키고 《북 도발에 대비하기 위한 연합훈련을 지속적으로 증진》시켜나가며 앞으로 《미국의 핵, 미일일 방어능력을 비롯한 모든 군사능력을 제공》받게 되었다고 떠들었다.“고 성토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이것은 북남대결을 더욱 격화시켜 군사적 긴장상태를 조성하며 나아가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려는 미국과 괴뢰 호전광들의 북침전쟁계획이 더욱 구체화되고 현실화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로 된다.”며 “이번 모의의 결과로 미국은 그 무슨 《원칙론》을 내들고 대결과 불신을 심화시키는 남조선괴뢰들을 저들의 손아귀에 더욱 단단히 얽매여놓았으며 괴뢰들은 반공화국대결전쟁정책수행에서 미국상전의 바짓가랑이에 더욱 든든히 매달릴 수 있는 《담보》를 얻게 되였다고 할 수 있다.”고 비난했다.

이 신문은 “그중의 하나가 괴뢰들이 이번에 미국의 군사 장비들을 더 많이 넘겨줄것을 상전에게 구걸해 나선 것”이라고 비판하고 “미국은 이때라고 생각하고 저들의 고물무기를 팔아먹을 조건을 제시하여 눌러놓았다. 결국 미국의 전쟁장비구입으로 하여 남조선인민들의 허리띠는 더욱 조여지게 되였으며 미국독점재벌들의 주머니는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돈으로 채워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미 무기거래를 비판했다.

신문은 “이번 모의 판은 조선반도(한반도)정세를 더욱 고조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하게 되었다.”며 “더욱이 미국의 초대형 핵항공 모함의 참가 밑에 감행될 남조선미국일본 《연합해상훈련》을 눈앞에 두고 이런 쑥덕공론이 벌어짐으로써 긴장한 조선반도정세를 더욱 부채질하였다.”고 지적했다.

또한 “남조선언론들은 이번 회담으로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 도래하고있다.》, 《남북관계에 힘들게 마련되었던 긍정적인 모든 것이 군부 때문에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고전하고 “현실은 오늘의 엄중한 정세를 조성한 장본인, 평화의 파괴자, 유린자는 반공화국압살공조에 매달리며 북침전쟁책동에 광분하는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어 “그 무슨 《공조》로 우리를 군사적 힘으로 압살해보려는 미국과 괴뢰패당의 속심은 어제도 오늘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망상인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며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조국수호정신을 제일신념으로 한 혁명 강군이 있고 수령, 당, 군대와 인민이 혼연일체를 이룬 우리 공화국에는 그 어떤 술책도, 군사적위협책동도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닭알(달걀)로 바위를 쳐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은 망상에 불과하다.”고 규탄했다.

신문은 끝으로 “괴뢰들은 우리의 무자비한 섬멸적 타격을 받지 않으려거든 그 무슨 《공조》를 운운하며 우리를 넘보고 함부로 설쳐대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성 메시지를 남겼다.

한편 조선의 최근 강력한 발언은 실질적 군사적 대결보다는 한미는 물론 주변국들에게 한반도 문제 해결을 대화와 평화로 풀자는 의도로 해석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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