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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 손가락’은 어떤 내용 담고 있나

디지털스토리텔링 ‘그 놈 손가락’은 어떤 내용 담고 있나
미디어기획팀
 
  •  

경향신문이 디지털에서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를 동원해 디지털스토리텔링(Digital storytelling) ‘그 놈 손가락-2012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의 전말’을 선보였다. 
 

☞ [디지털스토리텔링] ‘그놈 손가락’


경향신문이 제작한 디지털스토리텔링 ‘그 놈 손가락 - 2012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의 전말’은 디지털의 장점들을 살린 새로운 방식의 온라인 전용 콘텐츠로 22일부터 홈페이지(www.khan.co.kr)에 게재하고 있다. ‘그 놈 손가락’은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의 실체를 지면의 한계를 넘어, 동영상·인터랙티브 그래픽을 사진 및 기사와 유기적으로 구성했다. 퍼즐조각처럼 어지러운 발표와 주장 속에 묻힌 사건의 실체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경향신문 디지털스토리텔링 ‘그 놈 손가락’ 화면 캡처

 


대통령선거 1년이 지났으나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불법적인 대통령선거 개입 및 정치 관여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뜨거운 쟁점으로 남아있다. 2012년 총선 및 대선 전후 두 국가기관 소속 심리전단 요원들은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려, 선거와 정치에 개입했다. 이 사건 수사를 맡은 경찰은 사안을 축소하고 은폐하는데 급급했고, 거짓 발표로 여론을 호도했다. 검찰 수사팀에 대한 외압은 진행형이다.

‘그 놈 손가락’은 이번 사건이 시작된 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전개와 관련자들의 행동들을 정리했다. 국가기관이 인터넷에서 정치개입을 하게 된 배경을 비롯해 선거개입 정황, 수사 은폐 정황, 여러 국가기관들의 얽히고 섥힌 관계를 인포그래픽 등으로 설명했다.

1년여 동안 이 사건을 접하는 일부 시선은 “지겹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위촉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지난 8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정원 선거개입이라든지 정치개입 문제는 수십년 전부터 때때로 일어났던 일”이라면서 “제발 먹고 사는 문제로 여야가 다투고 국민들도 거기에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훼손한 사건”인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념을 떠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이다. 이 사건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묻힌다면, 대한민국의 선거는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제 입맛대로 정권이 주무르는 ‘껍데기’만 남게 되고, 대선 결과 불복의 사회적 혼란은 국가의 기반을 흔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그 놈 손가락’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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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다빈치”라 불리는 ‘괴물 디자이너’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1/22 18:56
  • 수정일
    2014/01/22 18:5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 2014.01.22 15:35수정 : 2014.01.2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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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성 넘어 문화재가 된 유럽의 공공 물건들
반면, 강남대로에 들어선 저 기둥들은 대체…

"그는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누가 이런 찬사를 들을까요? 게다가 세계 디자인을 이끌어가는 나라로 손꼽히는 영국 디자인계의 거물인 테렌스 콘란이 이렇게 추켜세울 정도라면 말입니다.

 

 

이렇게 칭찬받는 그 사람이 디자인한 의자입니다. 어째 좀 이상합니다. 의자 맞나? 우주선 의자?

 

이 의자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오히려 더 의문이 생깁니다. 진짜 의자일까 싶어집니다. 그러나 의자 맞습니다. 이름은 `Spun,.

 

이 의자는 의자만 보면 의자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의자라고 하면 어떻게 앉는 것인지, 왜 기울어져 있는지 더 궁금해집니다.

 

 

실은 이 의자에는 `놀이 기능'이 있습니다. 이렇게.

 

 

의자에 앉아서 뱅뱅 돌릴 수 있습니다. 실제 앉으면 처음엔 좀 불안하지만 곧 익숙해집니다.

 

근데 저렇게 돌아가는게 무슨 쓸모가 있냐고요? 재밌잖습니까. 360도 돌아가는 의자, 새로운 의자의 탄생입니다.

 

이건 재밌자고 만든 의자입니다. 그리고 이 의자를 만든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 디자이너, 영국이 자랑하는 현재 최고 스타 디자이너가 바로 저 의자에 앉아서 즐거워하는 아저씨, 토마스 헤더윅입니다.

 

 

이런 쓸데 없어 보이는 걸 만드는 이가 감히 레오나드로 다 빈치라고? 이런 생각도 드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온갖 공상만 했지, 실제 그의 아이디어가 물건으로 만들어진 것은 없었죠.

 

 

반면 헤더윅은 공상을 실제로 다 연결시킵니다. 이 사람의 최고 히트작은 이것입니다.팔각형 조형물 같이 생긴 저 구조물은, 바로 `다리'입니다.

 

 

이 다리는 런던 패딩턴에 있습니다. 그런데, 다리는 다리인데, 도대체 어떻게 건너다니는 것일까요?

 

 

 

요상하기 짝이 없는 이 다리는 움직이는 다리, 곧 `도개교'입니다.

 

작은 도개교지만 다리가 들리는 방식은 기존 도개교와 전혀 다릅니다. 다리가 돌돌 말립니다. 그래서 이름도 `롤링 브리지'입니다.

 

 

"모두들 다리가 들리는 걸 좋아합니다. 그러나 기존 방식은 재미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방식을 추구했습니다. 다리 양쪽 끝이 키스를 하는 방식으로 접히는 다리를 생각했습니다."

 

 

헤더윅은 늘 쓸데없어 보이는, 그러나 재미있고, 그 이전에 발상을 뒤집는 디자인을 선보여 왔습니다. 그가 단숨에 세계 최고 디자인 스타로 떠오른 것은 바로 이런 발상의 전환 덕분이었습니다.

 

 

# 영화 <주라기 공원>이 낳은 새로운 건축, 새로운 디자인 세계를 사로잡다

 

이 헤더윅이 자신의 천재성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것은 지난 상하이엑스포였습니다.

 

엑스포는 세계 건축 디자인의 올림픽 같은 곳입니다. 각 나라들은 가장 기발하고 새로운 자국 전시관으로 승부합니다.

 

엑스포에 지어지는 국가 전시관은 무려 250개. 평상시 볼 수 없는 특별하고 놀라운 발상이 아니면 눈길조차 끌기 어려운, 그래서 각국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축가나 디자이너들이 자존심을 걸고 경쟁하는 전쟁터입니다.

 

 

상하이 엑스포를 앞두고 영국도 영국관을 가장 돋보이는 전시관으로 선보이기 위해 설계 공모를 합니다. 헤더윅은 여기에서 세계 최강 영국 건축가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합니다. 아이디어의 힘 덕분이었습니다.

 

 

그가 영국관의 주제로 내세운 것은 `식물'이었습니다.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식물을 종합적으로 연구한 나라고, 온실부터 식물원까지 다양한 식물학 공간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나라입니다.

 

"나는 지금껏 세상에서 나무를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헤더윅은 그래서 식물을 주제로 골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나무의 모태, 곧 `씨앗'이었습니다. 영국이 예상을 깨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식물 종자를 보유한 나라, 그리고 그만큼 식물, 친환경, 유기농, 그린에 강한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관을 주제로 공모에 나섰고, 이 아이디어로 1등을 따낸 것입니다.

 

 

그러면 씨앗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이게 핵심이죠.

 

헤더윅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영화 <주라기 공원>에서 힌트를 얻습니다.

 

 

<주라기 공원>은 공룡을 복원해내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멸종된 공룡의 유전자를 찾아냈을까요?

 

공룡이 살던 시기의 모기에서 추출합니다. 공룡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의 내장에 남아있는 공룡 핏속 유전자를 뽑아낸다는 발상입니다. 그 모기가 썩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저렇게 송진에 묻혀 그대로 호박으로 응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디자인 관점에서 볼 때 저 호박 속의 모기는 호박이란 물질 속에 들어있어 특별해보입니다.

 

`바로 이거야'. 헤더윅은 이 모습을 디자인 모티브로 채택합니다. 그 덕분에 그는 1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헤더윅이 당선되어 지은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은 200여개 전시관 중에서 단연 최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씨앗의 성전'이란 이름의 영국관입니다. 헤더윅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대표작입니다.

 

 

이게 영국관이었습니다. 상하이 엑스포 내내 최고 인기여서 입장하려면 하루 종일 줄을 서야할 정도였습니다.

 

영국관의 인기 비결은 여러가지였습니다. 우선 사진에서 보시듯 다른 국가 전시관과 달리 건물 자체는 작게 짓고, 주변 공간을 텅 비운 공공 공간으로 배치했습니다. 사람들은 영국관 앞의 이 너른 마당에서 푹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는 역시 저 성게 모양의 묘한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이 건물 최고의 매력은 그 내부에 있었습니다.

 

 

투명하게 실처럼 뽑아낸 저 선들은 건물 외부와 내부로 모두 관통합니다.

 

저 선들 때문에 영국관은 성게 또는 밤송이 모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낭창낭창해서, 바람이 불면 바깥의 선들이 촉수나 갈대처럼 흔들거립니다.

 

그리고 이 선들은 그 자체로 외부의 빛을 내부로 끌어들입니다. 그래서 내부에선 조명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바깥 하늘에 구름이라도 흘러가면 그 그림자와 모습이 저 촉수 끝에 비치며 내부의 밝기가 달라집니다.그리고, 밤이 되면 내부에 붉을 밝혀 그 빛이 저 촉수를 타고 바깥으로 빛을 뿜어냅니다.

 

 

이 탁월한 디자인은 건축에 대한 통념을 깨는 것이었습니다. 디자이너였기에 오히려 더 자유로운 발상이 가능했을겁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씨앗의 나라' 영국을 보여주는 주제인거죠.

 

그 주제는 바로 이렇게 표현되었습니다.

 

 

6만개의 플라스틱 촉수 끝에는 하나하나 서로 다른 씨앗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주라기 공원 영화 속 호박에 파묻힌 모기처럼, 그는 씨앗을 플라스틱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빛이 들어와 촉수가 밝게 빛날수록 그 속의 씨앗은 선명해지고, 바람따라 촉수가 움직이면 건물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보이며 스스로 빛을 뿜어냅니다. 이 아이디어에 사람들은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상하이 엑스포를 앞두고 영국관 디자이너로 당선된 헤더윅에게 영국 정부는 `전체 5위 안에 들 것'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고, 헤더윅은 이를 멋지게 수행해냈습니다.

 

 

# `영국의 이미지를 만들어 주세요'

 

헤더윅은 영국 최고의 디자인 학교로 꼽히는 로열 컬리지 오브 아트, 줄여서 RCA로 불리는 이 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자기 사무실을 차립니다. 그의 나이 겨우 24살 때였습니다.

 

그리고 단숨에 영국 최고의 디자이너가 됩니다. 모두 아이디어 덕분입니다. 재료에 대한 끝없는 탐구, 다양한 협업, 탁월한 형태 디자인 감각, 그러면서도 우아한 그의 작품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최고 스타로 떠오른 그에게 영국은 자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들을 맡깁니다. 국가대표 디자이너가 된 것입니다.

 

그 작업 중 하나가 바로 이 것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루트마스터'. 런던을 대표하는 명물, 영국 디자인의 아이콘, 영국인이 사랑하는 런던의 친구, 2층 버스입니다.

 

이 버스를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꾸는 작업을 젊은 디자이너 헤더윅에게 맡긴 것입니다.

 

 

헤더윅은 이 오래된 명물을 이렇게 바꿨습니다.

 

 

 

왼쪽의 기존 루트마스터와 비슷하면서도 유선형 디자인으로 새로워진 새 루트마스터입니다.

 

이 버스는 앞보다도 뒤쪽이 더 멋있습니다.

 

 

얼핏 보면 기존 디자인을 따르면서 좀 현대풍으로 매만진 정도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새 버스를 디자인하는 것은 온갖 수많은 과제를 해결하면서도 아름답게 모양을 뽑아내야 하는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런던시쪽은 새 버스는 기존 버스보다 에너지를 40% 이상 절감하는 친환경 차로 만들 것 등 많은 조건을 걸었습니다. 헤더윅은 다양한 기술을 엮어 새로운 버스를 탄생시켰습니다. 문의 위치가 편리하게 바뀌는 등 수많은 변화가 숨어있습니다.

 

 

# 저 딱정벌레 같은 물건은 뭐지?

 

2012년 새로 등장한 루트마스터와 함께 런던 거리의 풍경을 바꾸는 헤더윅의 또다른 작품이 있습니다.

 

 

거리의 가판점, 곧 키오스크입니다. 이름은 `페이퍼하우스'.

 

거리에서 키오스크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멋지거나 아름답기는 어렵습니다. 자칫 도시 풍경을 난삽하고 정신없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디자인의 힘이 필요합니다.

 

 

키오스크가 열려 있을 때는 상품들이 진열되어 그럭저럭 볼만하지만, 밤이 되어 키오스크가 닫히면 그 모습이 아름답기는 어렵습니다. 헤더윅은 닫혀 있을 때도 볼만한 키오스크를 디자인했습니다. 이렇게 닫힙니다.

 

 

닫히면 그 자체로 디자인 오브제가 되는 키오스크. 저 형태에 대해선 "곤충같다"는 의견도 있습니다마만, 중요한 것은 이 작업을 헤더윅에게 맡겼다는 것 자체입니다.

 

 

거리에는 수많은 시설들이 있습니다. 집에서 가구처럼 쓰는 용도인 우체통, 가로등, 키오스크 등 다양한 이런 시설들은 우리 모두가 함께 쓰는 가구와도 같다는 점에서 `거리 가구'라고 불립니다.

 

 

거리가구를 비롯한 이런 공공 시설물들은 비싸지 않고 늘 소모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쓰는 `공공'의 것이기에 중요합니다. 이런 것들이 아름답고 기능적일 때 도시는 살만한 곳이 됩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작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거리 가구를 영국은 자국 최고 스타인 헤더윅에게 맡기는 점, 그런 것이 바로 영국 디자인의 힘일 겁니다.

 

 

# 문화재가 된 거리 가구들

 

 

그러나 이처럼 공공 물건을 최고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것은 최근 들어 생겨난 현상이 아닙니다. 영국 등 이른바 선진국들에선 도시 시민들을 위해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인식해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좋은 디자인의 거리 가구들은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문화 아이콘, 그리고 나아가 문화재로 인정받을 정도입니다.

 

 

 

영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빨간색입니다. 앞서 보셨듯 빨간 이층버스는 그 자체로 명물이죠. 이와 함께 영국인들과 가장 친숙한, 가장 오래된, 가장 사랑받는 거리의 가구로는 우체통이 있습니다.

 

 

영국 우체통은 이 원형 우체통이 디자인 전통입니다. 우체통이 처음 등장한 것은 영국이 아니었지만 영국에서 우체통은 가장 사랑받는 시민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주역은 앤서니 트롤로프란 사람입니다.

 

 

트롤로프는 프랑스와 벨기에에 갔다가 우체통을 보고 영국에 들여왔습니다. 나라에 우체통을 만들자 제안해 1852년 처음 도입됐고, 이후 원형 우체통 디자인이 완성되어 영국 우체통의 이미지가 갖춰졌습니다. 1874년부터 색깔이 빨간색으로 통일되었고, 영국 거리 곳곳에 설치됩니다.

 

 

이 우체통은 영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이자 관광 기념품 모델로도 사랑받습니다.

 

그러나 하도 오래되다보니 디자인을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새 우체통에 시큰둥했고, 오래된 이 디자인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이 디자인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현재 영국 정부는 초기 우체통들을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합니다. 2002년에는 우체통 도입 150주년을 맞아 우체통 보존 관리 운동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거리 가구가 문화 유산이 된 사례입니다.

 

영국에서 우체통 못잖게 문화유산으로 사랑받는 거리 가구는 `공중전화 부스'입니다.

 

 

 

이 빨간 공중전화 부스 역시 영국을 대표하는 이미지입니다.

 

영국의 공중전화 부스는 `K~'라는 일련 번호가 붙는 시리즈로 진화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K2 디자인이 가장 사랑받습니다. 처음으로 빨간색으로 칠한 부스가 바로 K2입니다.

 

 

영국에 처음 선보인 공중전화 부스는 K1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에게 별 사랑을 못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 3명에게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하게 하고 그 중에서 하나를 뽑았습니다. 그게 저 K2이고, 이 부스를 디자인한 이는 바로 길버트 스콧이었습니다.

 

 

길버트 스콧은 건축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야말로 20세기 영국 최고의 건축가입니다. 그가 설계한 것 중에는 발전소가 유명한데, 지금 영국의 랜드마크가 된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바로 그가 설계한 작품입니다. 또다른 발전소인 배터시 발전소는 록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자켓의 소재로도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친숙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이 공중전화 부스일겁니다.

 

영화 `해리 포터'에서 공간 이동하는 입구로 출연하기도 했고, 영국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많이 사는 기념품으로 만들어진 스타 디자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공중전화 부스 역시 한때 새 디자인으로 교체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우체통에서 그랬듯 시민들이 반대했고, 이 공중전화 부스 보존 운동이 시작됍니다. 영국 정부도 공중전화 부스에 광고를 붙이지 못하게 법으로 지정하는 한편 초기 모델들을 문화유산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디자이너가 시민들을 위한 공공 시설물을 디자인하는 것, 그리고 이렇게 잘 만든 일상용품도 문화가 되고 문화재가 되는 것을 보여주는 점에서 이 공중전화 부스는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이런 전통이 지금의 헤더윅에게까지 이어지는 겁니다.

 

 

 

# 프랑스의 풍경 속 빼놓을 수 없는 조연배우

 

 

유럽, 특히 프랑스, 그 중에서도 파리에서 눈에 띄는 물건 중의 하나로는 이걸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고풍스런 도시 파리의 건물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저 것, 마치 작품처럼 꾸민 광고탑입니다. 비엔나 등 유럽 다른 도시에도 비슷한 모양의 광고탑 또는 광고판이 있지만, 아무래도 프랑스에서 가장 돋보입니다.

 

이 오래된 디자인처럼 프랑스를 잘 상징하고, 또 도시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요?

 

 

파리라는 도시는 아주 오래된 역사가 있지만 실제 그 풍경은 19세기, 오스망이란 시장 시절 만들어진 것입니다.

 

무지막지한 도시계획으로 유명한 오스망은 파리의 모습 전체를 뜯어고쳤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파리가 만들어집니다.

 

 

이른바 `근대 도시'로 새롭게 탄생한 파리는 보행자들이 넘쳐나고 거리에 온갖 구경거리가 넘치는 새로운 도시가 되었지만, 그만큼 새로운 문제도 많이 등장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광고 벽보 문제였습니다. 온갖 광고 전단이 이곳저곳 덕지덕지 붙으면서 도시 미관이 심하게 망가지는 것이었습니다. 벽지 위에 또 다른 벽지를 붙이고 또 붙이고...그래서 오히려 광고 내용을 제대로 보기도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참다 못한 파리시는 1863년 광고 벽보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공모합니다.

 

일등으로 당선된 아이디어는 가브리엘 모리스란 사람이 낸 것이었습니다.

 

광고 포스터를 만드는 업자였던 모리스는 높이 3미터 짜리 둥근 광고판을 만들고, 여기에 광고를 붙이게 하고, 둥근 기둥은 천천히 돌아가는 새로운 물건을 제안했습니다. 드디어 1868년, `모리스 광고판'이 나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 채택 이후 실제 제품이 선보이기까지 5년이 걸린 점일 겁니다. 그만큼 고민의 시기가 길었고, 덕분에 모리스광고판은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명물이 된 것이겠죠.

 

 

 

등장이후 광고판은 파리를 연상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광고판을 보며 새로운 정보를 얻었고, 새로우면서도 전통을 계승한 디자인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런 사진도 있습니다. 사진이 무척 멋지죠? 찍은 사람이 브라사이니까요.

 

헝가리 출신인 브라사이는 프랑스 파리의 밤풍경을 찍은 사진으로 유명한 거장 중의 거장입니다.

 

 

 

 

영국의 공중전화부스나 우체통처럼 프랑스의 모리스 광고판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화유산급 거리가구 반열에 오릅니다.

 

그 모양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기본 꼴만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관광 상품으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모리스 광고판은 어느새 150년 역사가 쌓였습니다. 아직도 파리에는 200여개가 남아있고, 사람들은 19세기 파리 사람들이 그랬듯 이 광고판을 통해 공연 정보 등을 얻습니다.

 

 

이제 광고판들은 전광판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그럼에도 모리스가 제안한 원기둥 형태는 여전히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리스광고판처럼 우아하면서 역사성을 지닌 디자인은 아직도 없습니다.

 

이 광고판이 단순한 광고판이 아니라 디자인사에 남은 거리가구가 된 데에는 이런 오래된 디자인을 사랑하며 보존하는 시민 의식도 한 몫을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거리 가구 중에서 광고판은 어떠할까요?

 

 

# 저 것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2009년, 서울에서 가장 거대한 상권이자 가장 붐비는 거리인 강남대로에 이런 것이 들어섰습니다.

 

 

 

강남역에서 교보타워 네거리 사이 760미터 구간에 35미터 간격으로 22개가 들어선 이 것,

 

폭이 1미터나 되고 높이는 무려 11미터, 4층 빌딩 높이 수준입니다. 이 거대한 기둥들이 한꺼번에 거리에 세워졌습니다.

 

이 새로운 물건의 이름은 `미디어폴'. 강남대로 등장을 계기로 한국에서 만든 신조어로 알고 있습니다.

 

 

기능은 뭘까요?

 

광고판이자, 미디어아트를 보여주는 전광판이자, 맨꼭대기엔 등이 달린 가로등이자, 대중교통 안내판이자, 폐쇄회로 티비까지 모두 디지털로 합친 새로운 거리 가구입니다.

 

 

말만 들으면 참 좋은 물건 같습니다. 거리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로 묶어, 게다가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디지털 기술로 만든 것이니까요.

 

 

하지만, 거리 가구들은 나름의 필요가 있고, 그 필요에 따라 나뉜 것입니다. 이걸 합쳤다고 하지만 이 미디어폴은 그 기능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 기능이 보행을 불편하게까지 합니다.

 

 

일단 너무 거대합니다. 거리는 비울수록 걷기 편해집니다. 그런데 이 미디어폴은 너무 커서 보행 공간을 잡아먹습니다.

 

게다가 정신없이 간판이 번쩍이는 강남대로에서 이 전광판이 보여주는 정보는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미디어 아트를 틀어준다지만 너무 높아 건너편에서 봐야 보일 정도고, 운전자들의 시선을 빼앗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미디어월은 정신없는 강남대로를 더 정신없게 만들고, 걷기 더 피곤하게 만드는 역기능만 드러납니다.

 

 

이 기둥들을 세우는데 들어간 비용은 무려 80억원. 유지비도 상당합니다. 초기 연간 유지비는 무려 17억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프로젝트를 강남구가 추진한 것은 `디자인 서울 거리 조성'이란 목표 때문이었습니다.

 

 

디자인은 편리하게 해주는 것이 먼저, 그리고 아름다운 것이 다음입니다. 하지만 디자인 서울 사업은 이런 시민 편의나 미감과는 상관없이 `디자인'이란 구호를 전시성으로 앞세우기 일쑤였습니다.

 

 

여기에 이런 시설이 들어서게 된 것은 이걸 설치한 뒤 광고를 틀어주면서 수입을 얻으려는 대기업 광고 회사의 전략이 더 근본적이었습니다. 공공공간에 첨단 IT기술 미디어를 만들겠다니 `디자인 서울'로 포장하기 좋다는 생각에 덥썩 추진한 것입니다. 공공 공간에서 광고를 없애도 부족한데 광고를 더 늘리는 것,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미디어 아트를 틀기에도 저 디스플레이는 쉽지 않습니다. 가늘고 긴 세로 화면에 맞는 영상을 따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강남구가 미디어폴로 대표되는 이른바 `강남대로 U 스트리트' 조성 사업에 들인 돈은 85억여원이며, 시예산 29억여원이 투입됐습니다. 22개 미디어폴 하나 당 2억원 꼴입니다.

 

 

거리 가구는 제대로 기능을 분석하고, 오래가며 아름답게 거리 풍경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최고의 디자이너를 선정해야합니다. 하지만 저 미디어폴이 보여주듯 한국의 거리가구는 유명 디자이너는커녕 누가 디자인했는지도 알 수 없는 업자들 제품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오래된 디자인 아이콘이 된 문화유산급 거리 가구가 없으니 이제부터라도 오래오래 사랑받는 것들을 만들어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저런 불필요하고 세금을 잡아먹는, 게다가 아름답지도 않는 것들이 지자체와 정치인의 욕심 때문에 거리에 들어옵니다.

 

 

이런 전시행정은 이제 좀 그만합니다. 디자인 팔아먹기도 제발 그만합시다.

 

그리고 거리가구를 신경쓰려면 최고의 디자이너나 아니면 뛰어난 젊은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기회를 줍시다.

 

그래야 우리나라에도 헤더윅 같은 디자이너가 나올 수 있고, 문화유산이 되는 명물 거리가구가 나오지 않을까요.

 

 

by 구본준 http://blog.hani.co.kr/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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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에 우는 게 어디 사람뿐이랴

김정수 2014. 01. 22
조회수 518 추천수 0
 

강원 횡성 홀로세생태연구소, 반경 1.6㎞에 곤충 4천여종 서식

환경평가 무시한 송전탑 공사, 물장군·애기뿔쇠똥구리 등 위태

 

ho1.jpg» 강원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 둔내변전소 옆에 불법으로 세워진 송전탑들. 왼쪽의 원통형 송전탑이 둔내~횡성 구간 154㎸ 송전선로의 출발점이다. 여기서 이어진 다섯개 송전탑은 모두 산업통상자원부의 실시계획 승인도 없이 설치된 불법 시설물이다. 송전탑들 주변의 수목과 생태계는 환경 영향에 대한 사전 검토도 없이 파헤쳐졌다. 사진=횡성/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하대리 산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의 이강운 소장(농학박사ㆍ안동대 식물의학과 겸임교수)은 연구소 주변 산등성이에 세워진 송전 철탑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연구소에서 바라다보이는 송전 철탑들은 한국전력의 횡성~둔내 구간 154㎸ 송전선로 18.5㎞의 일부다.
 

이 송전선로는 연구소 주변의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을 포함해 생태적으로 보전 가치가 높은 지역 3.3㎞를 지나간다. 통과지 주변에는 깊은산부전나비,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붉은점모시나비, 왕은점표범나비 등 곤충류 멸종위기종만 다섯 종이 서식한다. 삵, 하늘다람쥐, 황조롱이, 수달, 담비, 독미나리 등 다른 멸종위기종 동식물을 포함하면 송전선로 통과 지역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은 11종에 이른다.

 

ho2.jpg» 송전탑 설치 지역 주변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인 붉은점모시나비. 사진=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멸종위기종들은 특히 환경 변화에 민감합니다. 멸종위기종 곤충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멸종위기종을 지정한 것은 이들이 매우 사소한 이유로도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송전탑 건설에 따른 서식지 파괴가 미소 서식지를 요구하는 멸종위기 곤충들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줄지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지난 15일 연구소를 찾은 방문객에게 이 소장이 한숨을 쉬듯 말했다. 송전선로 통과 구간을 포함한 연구소 주변은 ‘살아있는 곤충 표본실’이라고 할 만한 곤충들의 천국이다.

 

19년 전 좋아하는 곤충 연구에 전념하려고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둔 이 소장이 가족과 함께 이 산골짜기로 내려온 것도 이 지역의 이런 가능성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이 소장이 1997년부터 최근까지 연구소 주변에서 채집해 표본으로 만든 곤충만 4000여종이 넘는다.

 

우리나라 전체 곤충 종 1만7000여종의 20%가 넘는 곤충들이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반경 1.6㎞의 좁은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셈이다. 인근 치악산 국립공원의 곤충 종수가 2300여종에 불과한 점과 비교하면 이 지역이 얼마나 큰 곤충의 보고인지 짐작할 수 있다. 
 

 

ho3.jpg» 산란중인 이 지역 멸종위기종 물장군. 사진=사진=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 소장은 “곤충들은 70% 이상이 여러 가지 먹이를 먹지 않고 특정한 먹이만 먹는 스페셜리스트이기 때문에 다양한 곤충이 서식하려면 식생이 다양해야 하는데, 이곳에 초본류에서부터 최상층의 서어나무까지 온갖 종류의 식물들이 혼재하고, 섬강 상류여서 1년 내내 물이 좋은 점 등이 곤충들에 최상의 서식 조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실상 마무리된 한국전력의 횡성~둔내 구간 154㎸ 송전선로 공사는 이 지역의 이런 생태적 가치에 눈을 감아버린 채 진행됐다. 공사는 시작부터 불법이었다.

 

ho7.jpg

 

한국전력은 2012년 8월 당시 지식경제부로부터 이 구간에 49개의 송전탑을 세우는 내용의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 승인을 받고는 실제로 54개의 송전탑을 세웠다. 둔내변전소에서 출발하는 1번 송전탑에서 5번 송전탑까지 5개 송전탑은 공사에 반드시 선행해야 하는 실시계획 승인도 없이 세워진 불법 시설물인 셈이다. 
 

 

지난 15일 횡성 둔내변전소에서 만난 김진환 한국전력 송변전건설처장은 “송전선로가 시작되는 변전소 위치를 실시계획 승인받은 위치에서 옮기는 바람에 선로 거리가 2㎞가량 늘어나게 되면서 송전탑 5개가 더 들어가게 됐는데, 현장 사업부서에서 공사 일정을 맞추기 위해 일단 공사를 진행하면서 실시계획 변경 절차를 밟으려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불법 공사 사실을 인정했다.

 

ho4.jpg» 이 지역의 멸종위기종인 깊은산부전나비. 사진=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이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공사중지 명령을 내리고 환경영향평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송전탑과 송전선로 공사는 이미 마무리돼 송전 시험까지 마친 상태다. 불법 송전탑 주변 지역의 환경과 생태계는 송전탑 공사와 공사를 위한 진입로 개설 과정에 이미 돌이키기 어렵게 훼손돼 버린 것이다.
 

 

애초 실시계획 승인을 받았던 49개의 송전탑 공사도 환경영향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소장의 설명을 들으면, 이 송전선로는 멸종위기종인 깊은산부전나비와 왕은점표범나비 서식지를 관통한다.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붉은점모시나비 서식지와의 거리는 100~300m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전력이 작성한 사전환경성 검토서에는 송전선로 주변의 이런 멸종위기종 서식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돼 있지 않다.
 

 

ho5.jpg» 이 지역의 멸종위기종인 북방계 초원 나비인 왕은점표범나비. 사진=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 소장은 “멸종위기종 곤충들은 각기 특별한 생존 조건을 요구하는 데다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송전탑 공사 과정에서 이뤄진 환경 훼손에 의한 서식지 교란, 송전탑에서 발생하는 소음, 전자파 등이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며 송전탑 통과지역 주변의 멸종위기종 가운데 우선적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큰 종으로 물장군과 애기뿔소똥구리를 꼽았다.

 

이들 두 종은 붉은점모시나비와 함께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가 멸종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여러 해 전부터 집중적인 노력을 쏟아온 종이기도 하다.
 

 

이 소장은 2012년 8월 물장군 암수 40쌍을 연구소에서 동남쪽으로 2㎞가량 떨어진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 강원도축산기술연구센터 방목지 옆 습지에 풀어놓았다. 2007년 8월 횡성과 철원 지역에서 물장군 암수 6마리를 잡아와 5년 동안 실패를 거듭하며 이뤄낸 성과였다. 현천리 습지의 물장군 방사는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모니터링에서 현천리 습지의 물장군 개체수는 약 1000여마리까지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ho6.jpg» 멸종위기종 애기뿔쇠똥구리. 사진=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현천리 습지 물장군 서식지는 멸종위기종인 독미나리 자생지와 붙어 있고, 또 다른 멸종위기종 애기뿔소똥구리 서식지인 축산기술연구센터 방목지와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연구소가 물장군 서식지로 현천리 습지를 선택하는 데는 이처럼 다른 멸종위기종 서식지와 인접해 이들과 함께 더 철저한 보호가 가능할 뿐 아니라 습지 주변이 밤에 물장군들을 유혹할 수 있는 인공 불빛이 전혀 없는 안전지대라는 점이 중요하게 고려됐다.
 

 

하지만 지난해 현천리 습지에서 직선거리로 10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송전탑이 들어서면서 이곳은 물장군들에 더 이상 안전지대일 수 없게 됐다. 이 소장은 “물장군은 몸체에 비해 뒷날개가 굉장히 작아 멀리 날지 못하는데, 인공 광원이 전혀 없는 서식지 주변에서 유일한 인공조명인 송전탑 경고등에 이끌려 날아갔다가 서식지로 되돌아오지 못하고 죽는 일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려대 부설 한국곤충연구소 윤태중 교수팀이 2010년 곤충학 저널 <아쿠아틱 인섹트>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가로등과 테니스장 불빛 등과 같은 인공조명은 물장군을 멸종위기로 몰아가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송전탑에서 반짝이는 항공기 경고용 불빛이 그리 밝지는 않지만 다른 불빛이 전혀 없어 곤충들에게 유혹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장의 설명이다.
 

이 소장은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불법 공사로 환경을 파괴되는 것이 더 일어나지 않도록 한전이 불법 공사 부분을 원상복구한 뒤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영향을 제대로 검토해 사업을 수정하도록 끝까지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횡성/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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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애 손피켓’ 등장시킨 건 화형식한 당신들

손피켓 등장은 이남종 열사 ‘은폐-침묵‘에 대한 시민의 분노
 
육근성 | 2014-01-22 10:14: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명박 정권 때 출범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여야 6대3의 비율로 구성돼 있다. 그 아래 3개의 소위원회와 특별위원회가 있으며, 특별위원회는 또 다시 3개 부문으로 나눠진다. 보도교양특별위원회는 그 중 하나다. 

도심 한복판에서 산 사람 화형식이라니

21일 오후 서울 목동. 도심 한복판에서 임순혜 보도교양특위 위원에 대한 화형식이 열렸다. 임 위원이 “경축! 비행기 추락 바뀐애 즉사”라는 내용의 손피켓이 담긴 사진을 리트윗한 것에 분개한 우익단체가 규탄집회를 열어 허수아비에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을 붙여 놓고 불을 지른 것이다. 

임 위원은 문제가 된 손피켓 사진을 리트윗하면서 “서울역, 이남종 열사 추모집회에 걸려 있는 손피켓입니다. 이것이 지금 국민의 민심이네요”라는 글도 함께 올렸다.

리트윗 사진에 대해 도를 넘은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자 임 위원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평소 좋은 얘기 쓰는 분의 트위터라 리트윗한 것”이라며 즉각 자신의 실수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사진 출처: 변희재 트위터>

'청와대 분점' 새누리당도 발끈

새누리당도 가만있지 않았다. 진보성향의 인사가 자신들의 수장을 건드렸으니 이때야 말로 충성심을 표출할 기회라고 판단했나 보다. 새누리당이 청와대 분점이라는 사실이 재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김태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입에 차마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저급한 수준의 글은 공인의 언행이 아니다”라며 “스스로 자격미달임을 인정하고 사퇴하라”고 말했다.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원내대책회의를 열어 “열심히 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저주를 퍼부은 것”이라며 “국민 앞에 사죄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 정도면 막말 정도가 아니라 저주의 주문”이라고 비난했다. 

여당 ‘임순혜 사퇴’ 요구에 방통심의위원장은 팔 겉어붙여

여당의 입에서 사퇴 촉구 얘기가 나오자마자 ‘보수우익 정치심의기구’로 전락한 방통심의위 박만 위원장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냥 있다가는 불똥이 자신에게 튈 거라는 우려 때문일까. 관련 법규에도 없는 ‘위원 해촉 동의’를 발의했다. 

선례도 없고 규정에도 없는 ‘위원 해촉’. 법규에는 없지만 여당 성향 위원이 과반 이상인 만큼 다수결로 밀어붙일 모양이다. 리트윗 한번으로 불법 해촉 하겠다고 나서는 게 민망했던지 한 가지 사유를 덧붙였다. 확정된 게 아무 것도 없는 논문 표절 의혹까지 해촉 사유에 포함시킨 것이다. 

방통심의위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움직인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전원 합의제 정신을 내팽개친 지 오래다. 여당 성향 위원이 2/3에 이른다는 점을 십분 활용해 심의건의 절반을 다수결로 밀어붙이고 있다.  

여권 편향 정치심의기구로 전락한 방통심의위

2007년의 경우 전체 방송심의 의결수 458건 중 단 3건만 다수결로 의결된 반면, 2013년에는 전체 의결수 1083건 중 479건(44.2%)이 다수결로 처리됐다. 여권을 편드는 정치심의기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PD수첩’ 표적심의, ‘추적60분’ 천안함편 중징계, 손석희의 ‘뉴스9’ 중징계 등 편향적 심의 사례는 수두룩하다. 반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종편의 막말·편향 보도에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6대3 구조가 만든 부작용이다.

화형에 처해져야 할 만큼 임 의원이 잘못한 것일까. 논란이 된 ‘바뀐애 사진’이 어떤 상황에서 나온 건지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진은 서울역 이남종 열사 추모집회에 걸려있던 것이었다.

 <고 이남종 열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 이남종. 지난달 31일 서울역 앞 고가차도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분신한 열사다. 

‘바뀐애 손피켓’은 이남종 죽음 '은폐-침묵'에 대한 시민의 분노

해외 언론까지 큰 관심을 보인 사건이었지만 공권력과 보수언론은 철저하게 무시하려 들었다. 경찰은 유서를 은폐하려 했다. 열사의 죽음이 채무와 어머니 건강 등 지극히 개인적 이유에 기인한 것으로 위장한 보도자료를 뿌렸다.

지상파 3사는 서로 입을 맞춘듯 침묵했다. 이 열사가 분신한 직후부터 영결식이 치러질 때까지 ‘뉴스9’ ‘뉴스테스크’ ‘8시뉴스’ 등에 이 사실이 단 한 차례도 보도되지 않았다. 분신의 이유가 ‘1219부정선거’라는 사실이 뉴스에 언급되는 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그랬을 것이다.

은폐와 침묵. 이러니 과격한 표현의 손피켓이 등장할 수밖에. 민주시민이 부정선거에 항의해 분신을 해도 공권력은 사실을 은폐하기 바쁘고 방송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현실 앞에서 손피켓이라도 들어 울분을 달래려 했던 것이다

손피켓 등장하도록 만든 건 바로 당신들

‘바뀐애 손피켓’에 지나친 표현이 등장한다는 건 인정하겠다. 하지만 묻겠다. 이 손피켓을 만든 시민이 테러 분자인가, 흉기를 든 치한인가? 아니다. 거짓말을 하는 정권에 분노한 시민일 뿐이다. 

말해 보라. 이토록 과격한 문구와 구호가 등장하도록 조장한 이들이 누군지를.

부정선거 의혹, 하나도 해소된 게 없지 않은가. 진실이 감춰지고 호도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언론까지 정권의 장단에 춤을 추는 세상이 됐다. 시민들의 가슴이 얼마나 먹먹한지 아는가.

이러니 시민의 분노가 과격한 구호로 표출되는 거다. 새누리당과 과격 우익단체들, 흥분할 이유 없다. 마치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이다. ‘바뀐애 손피켓’이 등장하도록 상황을 만든 건 바로 당신들 아닌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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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뒤집은 박근혜, 등록금 '0' 독일 비결은…

[정치경영연구소 유럽르포] 독일 교육복지, 큰 복지와 어우러진 작은 복지들

장보문 독일 보훔대학교 의과대학 본과과정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1.22 07:16:29

 

 

'정치경영연구소의 유럽르포'는 우리 시민들로 하여금 유럽의 정치사회와 경제사회에 친밀감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연재물입니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해방 후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미국 편향적인 모델을 지향해왔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시점에 즈음하여 우리 시민들도 이제 새로운 모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것이 그 증거입니다.

 

경쟁과 성장 그리고 효율성의 가치만을 강요해온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연대와 분배 그리고 형평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는 우리 시민들이 이제 미국이 아닌 유럽사회를 유심히 관찰해보길 원합니다. 특히 유럽의 합의제 민주주의와 조정시장경제가 어떻게 그곳 시민들의 삶을 그토록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길 바랍니다.

 

'유럽르포'의 작성자들은 현재 유럽의 여러 대학원에 유학 중인 정치경영연구소의 객원 연구원들입니다.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유럽을 배우러 간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고하는 생생한 현지의 일상 생활을 <프레시안>의 글을 통해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유러피언 드림'을 같이 꾸길 염원합니다. 필자 주

 

 

‘독일 대학등록금 완전폐지, 등록금 0원 시대 개막’

 

지난해 12월 12일 독일 인터넷 포털에 등장한 기사다. 마지막으로 등록금을 받았던 니더작센(Niedersachsen)주의 폐지결정으로, 독일은 2014년부터 ‘무료 등록금 시대’를 열게 됐다는 내용이다. 복지공약을 줄줄이 후퇴시키던 박근혜 정부가 반값등록금마저 연기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라, 이 소식은 더욱 대조적이었다.

 

독일은 그나마 대학생들이 지고 있던 짐마저 덜어주는데, 한국은 ‘조금’ 덜어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복지가계부, 대학생 한 명이 받는 복지는 얼마일까

 

독일의 교육복지, 그중에서 대학교육 부분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독일 복지의 실상을 느끼고, 한국이 독일 수준의 복지정책을 펼칠 때 우리의 생활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개인이 받는 복지혜택을 월 단위 가계부 형식으로 만든 '복지가계부'를 만들었다. 정부에서 지원받은 부분은 수입으로, 학업에 써야 하는 부분은 지출로 구성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주에 있는 보훔대학(Ruhr University Bochum, 이하 RUB)에 재학 중인 스무 살 학생의 복지가계부는 다음과 같다.

 

 

 


 

* 바푀크(BAfög) : 모든 학생에게 ‘교육기회의 평등’을 목적으로 1971년 처음 도입됐다. 학생들이 별도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서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이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약 67만 명의 대학생이 지원을 받았으며, 지원액은 학생 1인당 월평균 약 450유로(약 68만 원)였다. 전문학교 학생의 경우에는 같은 기간 31만 명의 학생이 월평균 약 400유로(약 60만 원)를 지원받았다. 원칙적으로 학업기간 내내 지원받을 수 있으나, 학업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해놓은 ‘학업기간(Regelstudienzeit)’이 따로 있으며 이 기간에 한해서 지원한다.

 

** 자녀수당(Kindergeld) :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 시기인 1935년 ‘아동보조금(Kinderbeihilfe)’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됐다. 도입 당시에는 일정 수입 이하의 가족에게만 지원됐다. 그러나 셋째 아이를 시작으로, 1961년에는 둘째 아이, 1975년에는 첫째 아이까지 사실상 가정의 모든 아이를 지원했다. 이 제도는 자녀가 스물다섯 살이 될 때까지 지원하며, 2013년 현재 첫째·둘째 아이는 184유로(약 27만 원)씩, 셋째 아이는 190유로(약 28만 원), 넷째 아이는 215유로(약 32만 원)를 매월 지원한다. 예를 들어, 아들(윤후)이 있는 만 24세의 윤민수 학생은 두 사람 이름으로 자녀수당을 받는다. 윤민수의 자녀수당은 윤민수의 부모에게, 윤후의 자녀수당은 윤민수에게 지급된다.

 

일단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면 등록금은 없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학생은 다만, 학기등록을 위해 매학기 의무적으로 사회적분담금(Sozialbeitrag)을 내야 한다. 사회적분담금은 대학에서 수행하는 교육 이외의 사업들, 예를 들면 기숙사, 대학 내 유치원, 학생식당 및 카페, 학생회, 문화프로그램 등 학생 복지를 위해 사용된다. (한국에서 Sozialbeitrag을 ‘학생복지회비’라고도 번역하는데, 학교가 학생들에게 복지를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연대를 통해 서로의 복지를 지원한다는 취지를 살려 ‘사회적분담금’으로 번역했다. 필자 주)

 

RUB의 사회적분담금은 학기당 260유로(39만 원, 2013년 가을학기 기준)이다. 이 가운데 95유로(14만 원)는 학생식당, 교내 유치원, 장애학우 지원, 기숙사 지원 등으로 사용되며, 15유로(2만 원)는 학생회에, 150유로(23만 원)는 교통비(NRW-Semester-Ticket)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생활비는 어떨까. 우선 학생 부모는 자녀수당(Kindergeld)으로 매월 약 200유로(약30만 원)를 받는다. 이는 자녀가 25세 될 때까지 지원된다.

 

자녀수당 이외에 생활비를 감당할 다른 방법도 있다. 바로 ‘바푀크(BAfög)’이다. 여기에 학자금대출을 신청하면 된다. 바푀크는 '연방교육촉진법(Bundes ausbildungs förderungsgeset)'의 줄임말인데, 독일에서는 그냥 ‘바푀크’라고 부른다. 부모의 경제력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공부할 기회를 주기 위해 1971년 처음 도입됐다. 최대 월 670유로(약1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정해진 학업기간 내내 지급되며, 부모 수입에 따라 결정된다.

 

바푀크는 100% 지원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취업 이후에 갚아야 할 대출금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해 주기 때문에 50%만 상환하면 된다. 갚아야 할 50%는 취업 이후 이자 없이 원금만 상환하면 된다.

 

등록금과 교통비는 외국인 유학생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나, 학자금대출은 독일 국적 학생에게만 해당된다. 자녀수당은 유학생 가족에게는 제한적으로 지원된다.

 

복지의 진정한 힘은 디테일, 큰 복지와 어우러진 작은 복지들

 

독일 대학복지의 큰 축이 무상등록금과 학자금 대출이라고 한다면, 이외에도 작지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세부적인 것도 있다. 이를테면 교통비나 교재비·외국어 학습 같은 부분인데 학생에게 혜택이 갈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이는 바푀크처럼 독일 전역이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자의 학교 RUB의 사례를 소개한다.

 

먼저 교통비다. 독일의 학생증은 교통카드(NRW-Semester-Ticket)이기도 한데, 학기당 지불하는 260유로(39만 원)의 사회적분담금 안에 150유로(약 23만 원)의 교통비가 포함돼 있다. 대략 월 4만 원이면, 교통비가 해결되는 셈이다. 이 학생증만 가지고 있으면, 고속열차(ICE)와 기차 1등석을 제외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있는 모든 지하철과 기차·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수원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경기도 전역의 버스·지하철·기차를 제한 없이 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학생증을 가지고 주말과 공휴일은 종일, 평일은 오후 7시 이후부터 일행 한 명을 동행할 수도 있다. 학생 혜택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최소 두 배 이상의 교통비가 든다. 보훔 시의 경우 경전철 또는 버스승차권은 2.5유로(3750원)로, 월 60유로(약 9만 원)의 정기할인권을 구입해도 다닐 수 있는 지역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월 4만 원으로 주 전역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은 큰 혜택이다. 그럼에도 자전거나 자동차로 통학하는 학생처럼 교통카드가 필요하지 않으면, 사회적분담금에서 교통비를 제외하고 납부할 수 있다.

 

 

▲ RUB 학생증 뒷면 하단에는 2018년 9월 30일까지 유효하다는 것과 본 학생증을 소지하면 특정구간(D)까지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고 표기되어 있다. 2013년 상반기까지는 매 학기 교통카드 유효기간을 연장했으나, 하반기부터는 매번 갱신할 필요 없이 5년 단위로 바뀌었다. ⓒ장보문

▲ RUB 학생증 뒷면 하단에는 2018년 9월 30일까지 유효하다는 것과 본 학생증을 소지하면 특정구간(D)까지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고 표기되어 있다. 2013년 상반기까지는 매 학기 교통카드 유효기간을 연장했으나, 하반기부터는 매번 갱신할 필요 없이 5년 단위로 바뀌었다. ⓒ장보문

 

 

RUB의 경우에는 교통카드와는 별개로, 2013년 봄부터 메트로폴라트(Metropol-Rad)라고 하는 이른바 ‘자전거공유시스템(Bikesharingsystem)’을 지원한다. 메트로폴라트는 버스정류장처럼 도시 구석구석에 자전거정류장을 설치해 자전거를 비치해 놓고, 전용카드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빌린 다음, 다른 정류장에 반납하는 시스템이다. 도심 내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편인데, 일반인이 이용할 경우 30분에 대여비가 1유로(약 1500원)이다.  RUB 학생의 경우에는 한 시간 이내에 반납하면 하루에 몇 번이라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자전거 통학 지원서비스인 셈이다.

 

이 시스템은 자전거정류장과 자전거가 얼마나 많이 설치되어 있는지가 관건이다. 2013년 현재 보훔(Bochum) 시내에는 37개 자전거정류장에 300대의 자전거, 캠퍼스 내에는 180대의 자전거를 비치되어 있으며, 향후 72개 정류장과 760대의 자전거를 구비할 예정이다. 학교는 이 자전거공유시스템을 위해 학생 1인당 매 학기 1.5유로, 총 약 6만 유로(약 9000만 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 캠퍼스 내에 설치된 자전거정류장(위쪽)과 캠퍼스 자전거길 지도(아래쪽). 캠퍼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자전거 정류장(동그란 오렌지색 M자 마크)을 확인할 수 있다. ⓒ장보문

▲ 캠퍼스 내에 설치된 자전거정류장(위쪽)과 캠퍼스 자전거길 지도(아래쪽). 캠퍼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자전거 정류장(동그란 오렌지색 M자 마크)을 확인할 수 있다. ⓒ장보문

 

 

둘째는 교재비다. 공부를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책은 물론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필요한 책 모두를 구입할 수는 없다. 특히 요즘처럼 거의 모든 강의가 PPT로 이루어지며, 교재 한 권으로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 시대는 더욱 그렇다. 더욱이 독일은 한국보다 책값도 비싸다. 그렇지만 실제 교재비 지출은 한국보다 훨씬 적다. 이유는 학교도서관 시스템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학교 도서관은 전공학과 책을 충분히 준비한다. 학생들은 관련 책을 권수 제한 없이 빌릴 수 있다. 게다가 대출한 책은 다른 학생의 대출예약이 없는 한, 연장해서 빌려 볼 수 있다. 필자는 이 시스템으로 약 100여 권의 전공도서를 도서관에서 대출해 공부하고 있다.

 

 

▲ 도서관에서 대여한 전공서적 ⓒ장보문

▲ 도서관에서 대여한 전공서적 ⓒ장보문

 

 

도서관시스템은 학생들이 최대한 책을 빌려서 공부하도록 지원한다. 하지만 문제점도 있는데, 학생들이 막상 열람실에서 공부하려 할 때 책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열람만 가능한 책을 따로 지정, 서가에서만 볼 수 있게 했다.

 

마지막으로, 외국어 교육에 대한 지원이다. RUB의 경우 외국어교육원(Zentrums für Fremdsprachenausbildung)에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이탈리아어, 아랍어, 중국어, 일본어 등 총 14개의 언어교육을 지원한다. 학생들은 레벨테스트 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독일의 대학복지를 체험하면서 한국의 대학교육은 거의 모든 비용을 학생 개인이 부담하는 구조라는 것을 느꼈다. 반면, 독일은 등록금·학자금대출뿐 아니라, 교통비·교재비와 외국어 교육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학교의 지원책이 촘촘히 배치되어 있다. 어쩌면, 독일 복지의 진정한 면은 큰 복지와 함께 어우러진 이런 디테일일지도 모르겠다.

 

교육복지가 게으른 대학생을 양산할 거라고?

 

교육복지를 늘리자고 하면, 당연히 반론도 따라온다. 등록금을 낮추고, 학자금대출도 충분히 제공하는 등 혜택을 주다 보면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혜택만 누리기 위해 학교를 오래 다니려고 할 것이라는 점이다. 충분히 가능한 반론이다.

 

독일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만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학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와 전공에 따라 횟수의 차이는 있으나, 과목당 보통 세 번에서 네 번 정도의 전공시험 기회를 준다. 제한된 기회 안에 통과하지 못하면, 전공을 계속 공부할 수 없다.

 

의대도 마찬가지인데, 전공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예 그만두거나 전공을 옮겨야 된다. 제도적으로 학생들이 공부를 등한시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 제도는 학생 본인이 대학교 1·2학년 때 학과 전공을 수행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의대의 경우, 예과 2년 동안 화학·물리·생물·생화학·생리학·해부학·의학심리학 및 사회학 등을 배우는데, 이 모든 과목마다 네 번의 시험기회만 준다. 첫 학기부터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본과 기간에는 시험기회가 세 번으로 줄어든다. 시험은 물론 절대평가다.

 

유럽을 참고로 복지정책의 상상력을 넓혀보자

 

복지사회를 향해 가는 길이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방법은 상상력이 있어야 얻을 수 있다. 정책적 상상력은 현장에서도,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서도 구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반값등록금 논의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독일 사례는 교육복지에 대한 정책적 상상력을 넓히는데 여러 도움을 준다.

     

장보문 독일 보훔대학교 의과대학 본과과정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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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해고 무효 판결' 받은 정영하 전 MBC노조위원장

"MBC가 JTBC보다 못하다니
곪은 거 터지면 박근혜 독박 쓸 것"

 

14.01.22 07:58l최종 업데이트 14.01.22 10:5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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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고 무효 판결을 받은 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MBC 사옥 노조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번에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온 것은 김재철 전 사장, 결국 MB정권 탓이었다, 하지만 MBC 해직언론인 문제는 박근혜 정권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면서 "MBC 문제가 부각되지 않고 있어 박근혜 정부는 이 상태를 즐기고 있지만, 언젠가는 곪은 문제가 터져 나올 것이다, 독박 쓸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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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신 분인데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1층 안내데스크에서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이하 노조위원장)의 이름을 댔을 때, 돌아온 말이다.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인터뷰 약속이 잡혀있다"고 하자, 그 직원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옆에 있던 선배 직원이 그에게 "전 노조위원장"이라고 귀띔해주면서, 기자는 노조 사무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정영하 전 위원장은 지난 17일 해고된 지 1년 9개월 만에 복직 판결을 받았지만, 여전히 해직언론인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박인식 부장판사)는 회사가 정 전 위원장 등 노조원 44명에게 내린 해고·정직 등 징계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특히 재판부는 "공정보도는 근로조건에 포함된다"면서 노조가 2012년 1월부터 170일간 진행한 파업은 공정방송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파업이라고 판단했다. 

이날 노조원들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지만, 회사는 판결 2시간 후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판결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 전이다. 이날 밤 MBC <뉴스데스크>는 "이렇게 되면 앞으로 언론사 노조는 공정성을 걸고 언제든지 파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공정성을 판단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면서 법원의 판결을 맹공격했다.

"MBC가 JTBC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올 줄 몰랐다"

노조를 향한 회사 측의 일방적인 비난만 담긴 MBC의 보도는 노사 입장을 균형 있게 보도한 손석희 사장의 JTBC <뉴스9>과 비교됐다. 손 사장은 MBC 뉴스 앵커 출신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MBC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MBC 구성원들은 '망가진 MBC'에 대한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정 전 위원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MBC가 JTBC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올 줄은 몰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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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고·정직 등 파업 참여로 받은 징계는 무효’라는 판결을 보도한 17일 오후 MBC <뉴스데스크(사진 위)>와 같은 내용을 다룬 JTBC <뉴스9(사진 아래)>.
ⓒ 방송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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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비전문가인 국민이 보더라도 (MBC <뉴스데스크> 보도는) 이상한 보도였다, 극한의 대치상태에 있는 북한에 대해 보도할 때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면서 "무조건 '공산당을 때려잡자'는 얘기가 통하는 시절에나 먹히는 보도다, 현재의 국민을 1970년대 시절의 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전 위원장은 "'손석희 선배'가 JTBC에서 하고자 하는 일을 한다면, 언젠가는 MBC를 앞지를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지금 JTBC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손석희 사장의 이미지 탓도 있겠지만 'JTBC가 MBC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MBC는 지난 20일 <조선일보>, <매일경제>, <문화일보> 등에 법원 판결을 공격하고 노조를 비판하는 내용의 1면 광고를 실었다. 같은 날 "재판부의 판단은 매우 유감이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김종국 MBC 사장의 발언을 보도자료로 만들어 배포했다. 이를 두고 정 전 위원장은 "수치스럽다"고 했다. 그는 "MBC가 판결문도 읽지 않고 대응을 하는 것 같다, 판결문을 반박하는 근거나 논리가 없이 막무가내로 주장한다"며 "어떤 정치세력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해당 재판부나 관련 내용을 알고 있는 판사들이 봤다면, '대한민국의 메이저 언론사이자 공영방송이 저렇게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나', 'MBC는 없어져야 할 회사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MBC의 경영진이나 간부는 편향적이고 무능력하다"면서 "질적으로 떨어지긴 하지만 명확히 '김재철 시즌2'"라고 꼬집었다.

정 전 위원장은 "이번에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온 것은 김재철 전 사장, 결국 MB정권 탓이었다, 하지만 MBC 해직언론인 문제는 박근혜 정권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면서 "MBC 문제가 부각되지 않고 있어 박근혜 정부는 이 상태를 즐기고 있지만, 언젠가는 곪은 문제가 터져 나올 것이다, 독박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영하 전 위원장과 한 인터뷰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지난 17일 해고 무효 확인 소송 판결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는 '방송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방송의 결과가 아니라 그 방송의 제작과 편성 과정에서 구성원의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뤄졌는지를 통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판결 후 만난 YTN 해직언론인들도 반가워했다. '공정방송은 근로조건이다',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은 정당했다' 등의 판례는 공정방송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큰 힘이 될 것이다. 감명 깊은 판결문이었다."

-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재철 전 사장의 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재판부는 당시 김재철 사장이 정례 공정방송협의회를 개최하지 않는 등 구체적인 사례를 80여 쪽에 달하는 판결문에 담았다. 재판부가 많은 준비를 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김재철 전 MBC 사장과 이명박 정부의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 김 전 사장이 뿌려놨던 것들이 빌미가 돼 파업이 이뤄졌고, 그로 인해 징계까지 나왔다. 이런 것들이 공정성과 연결이 돼 판결문에 담겼다."

- 회사는 판결 직후 판결문을 공격하면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20일에는 <조선> 1면 등에 비슷한 내용의 광고를 게재했다.
"판결문이 상세했다는 것에는 '판결문에 이의를 제기하려면, 일단 읽어 보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본다. 하지만 회사는 1심 판결 선고 후 2시간 만에 항소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판결문이 나오기도 전이다. 판결문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판결요지만 보고 항소한 것 같다. 판결문을 한 번이라도 읽어봤으면 저렇게 주장하지 못한다. 마치 어떤 정치세력처럼 막무가내로 항소했다. 정치적인 행동이다. MBC 일원으로서 낯 뜨거웠고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 판결이 나온 17일 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판결문을 공격하고 노조를 비판했다.
"정 그러한 보도를 내보내고 싶었으면, 직업윤리 생각해서라도 노조 인터뷰를 땄어야 했다. 기계적 균형이라도 맞춰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일방적인 주장만 하니 비전문가인 국민들이 봐도 이상한 것이다. 극한의 대치상태에 있는 북한을 보도할 때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 무조건 '공산당을 때려잡자'는 얘기가 통하는 시절에나 먹히는 보도다, 현재의 국민을 1970년대 시절의 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보도가 나올 수 없다."

- 자사 메인뉴스, 신문 광고 등을 동원해 판결 내용을 공격하는 것을 두고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재판부나 판결 내용을 알고 있는 판사들이 '메이저 언론사이자 공영방송이 저렇게 일방적으로 방송할 수 있나', '그러한 MBC는 없어져야 하는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건 현행 법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며 성명이라도 낼 것 같다. 항소는 법적인 절차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논리나 근거 없이 저렇게 일방적인 주장만 펴서는 안 된다. 반박을 하려면 판결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다고 지적해야 한다."

- 온라인 공간에서는 JTBC <뉴스9>가 노사 입장을 균형 있게 보도해 화제가 됐다. 
"JTBC보다 못하다는 얘기를 들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손석희 선배가 '제대로 한다면 JTBC 보도가 MBC 보도를 언젠가를 앞지를 수 있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JTBC에서 제대로 할 수 있을까, 1년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꽤 자리를 잡았다. 취재원들은 JTBC가 부르면, 간다. 하지만 MBC에 출연하는 것은 꺼림칙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태면 JTBC에 어떻게 욕하겠나. '손석희'라는 인물 때문이 클 텐데, 이제는 'JTBC가 MBC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회사가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선고 공판이 23일 열린다. 어떻게 예상하나?
"17일 판결을 감안하면, 판결 내용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회사는 손해배상금에 노조 파업 기간 중에 사원을 뽑을 때 든 예산도 넣었다. 그러한 회사의 주장이 상식적이려면, 당시 노조원들이 받지 못한 임금도 포함돼야 한다. 법원이 손해배상금을 어떻게 계산할지 모르지만, 파업의 정당성을 참작해주는 판결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임기 만료 앞둔 김종국 사장, 청와대와 방문진 향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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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고 무효 판결을 받은 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MBC 사옥 노조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해직 언론인 복직에 대해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법원 판결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는데, 이제는 무효 판결이 났으니 이 문제에 대해 답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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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월 김종국 사장이 취임했을 때 노조는 '김재철 시즌2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명확히 '김재철 시즌2'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즌2'로 평가받으려면 업그레이드된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시즌2'라고 평가받기도 어렵다. 질적으로 떨어진다."

- 지난 2012년 MBC 노조 파업 이후 2년이 지났다. 내부 구성원이 보는 MBC는 어떤 모습인가. 
"김재철 전 사장은 워낙 전례가 없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저질렀다. 당시 그런 문제가 크게 부각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김종국 사장 체제에서는 경영진이나 간부들이 편향적인데다가 능력도 없다. 능력이 있으면 똑같은 뉴스를 하면서도 포장이라도 한다. 그렇다면 논리도 없이 '해고 무효' 판결문을 공격한 보도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가지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에, 국민들 눈에도 MBC가 말도 안 되는 보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 김종국 사장에 대한 평가를 내려달라.
"공정방송을 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 '해고 무효' 판결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김종국 사장은 언론인으로서 기본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이번 판결을 두고 자신의 연임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것 같다. 김 사장은 20년 전 노조위원장을 했다. 1992년 50일간의 노조 파업 후, 이를 수습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종국 사장이 최근에 한 일을 보면, 당시 진정성이 있었던 거 같지는 않다." 

- 최근 김종국 사장이 단행한 인사를 두고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달 초 심원택 시사제작부국장을 국장으로 승진시킨 것만 봐도 그렇다(심원택 국장은 지난해 <시사매거진 2580> '국정원에서 무슨 일이'편을 불방 조치해 논란을 일으켰다-기자주). 심원택 국장은 누가 보더라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또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논란을 다룬 내용이 MBC 뉴스 홈페이지에 2시간여 걸려 있었던 것 때문에 한정우 인터넷뉴스 부장이 좌천됐다. 다가오는 2월 정기인사 때가 아니라 지금 이렇게 도드라지게 인사를 단행한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 김종국 사장은 20일 임원회의에서 다시 한 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비정상적인 노사 관계를 정상적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MBC는 이를 보도자료로 배포까지 했다.
"보도자료를 보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들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보인다. 2월 임기 만료를 앞둔 김종국 사장이 청와대, 국회, 방송통신위원회, 방문진 등 어르신들에게 자신의 경영 철학을 알리기 위해 언론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요청하지도 않은 자료를 언론사에 뿌릴 이유가 없다. 그 내용을 내부 구성원이나 국민이 봐야할 이유도 없지 않나."

- 박근혜 정부의 언론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박근혜 정권이 내놓은 언론정책이 없다. 이 상태를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때만큼 박근혜 정부의 언론 정책을 비판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 때 쫓겨난 언론인들을 방치하는 것을 보고 박근혜 정부의 언론정책을 비판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여당은 해직언론인 복직 요구에 법원 판결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이제 판결이 나왔다."

- 이번 판결을 두고 박근혜 정부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걸림돌이 될 것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버티기로 연명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에게 50%가 넘는 표를 줬던 사람들이 이 문제를 자세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판부의 논지를 수긍하고 가장 박수칠 만한 집단은 중도 보수다. 중도 보수들이 보기에도 MBC 보도와 박근혜 정부의 대응에 답답해할 것이다. 언젠가는 곪은 문제가 터져 나올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독박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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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수 의장 '법정울린 최후 진술' 전문

"미국은 조선 용인하고 통일 방해말라"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01/22 [10:01]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김을수 의장 권한대행이 지난 20일 의정부지방법원 1호법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장문의 최후진술을 통해 조선은 반국가단체가 아니나 적이 아니라 평화롭게 살아야 할 동족이며 통일의 대상이이라고 주장했다.

김을수 의장 권한 대행은 범민련 또한 이적 단체가 아니라 남북이 합의한 자주 평화 통일 정책을 이행 함으로써 온 겨레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기 위한 3자 연대의 통일운동 단체라고 강조했다. 

또  미국은 조선을 인정하고 우리민족의 통일을 방해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반통일 악법인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면서 자신의 무죄를 당당히 외쳤다. 김을수 의장 권한 대행의 최후진술 전문을 단독 보도한다.   
 최후진술(1)



범민련남측본부가 해온 주장과 그것을 국민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펼쳐온 활동들은 모두 딱 한 가지 자주·민주·평화적으로 통일하자는 것으로 귀일됩니다. 그리고 방대한 신예무기를 들여다 놓고 합동훈련을 하면서 한·미가 북과 매우 위태롭게 압박, 대결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평화를 지켜내는 일이 통일의 무엇보다 더 긴박하고 중요한 일이 됩니다. 


그래서 공소장엔 그동안의 범민련의 주장과 활동을 길게 나열했는데, 검사의 주장을 요약하면 그 모든 주장과 활동이 반국가단체인 북한공산집단의 적화통일정책에 동조해 왔다는 것입니다. 검사의 그 같은 주장은 아주 잘못된 것인데, 잘 몰라서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입니다.

피고로서 진술에 앞서 검사님께 몇 가지 묻겠습니다.

첫째 : 자유민주국가를 자임하는 대한민국인데 국가의 정체성을 감안할 때 국가보안법은 국민의 요구가 없더라도 폐기해야 할 반민주적인 악법이 아닌가요?

 둘째 : 전쟁반대 평화실현 시민활동은 국가시책에 배치되는 활동인가요? 그래서 처벌대상인가요?

셋째 : 이 땅에 방대한 무력을 들여다 놓고 이 나라 60만 대군의 작전지휘권까지 거머쥐고 있는 미국 정부를 향해서 장장 60년간 계속해 온 조선 적대정책을 이제는 거두고 대화를 통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국교도 수립해서 이 땅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라, 그리고 주둔 군대를 철수하라. 그리고 우리 민족의 통일문제엔 더 이상 끼어들지 말라는 주장도 처벌 대상인가요?

넷째 : 남측의 4개 정부가 북측의 2개 정부와 분간 이래 지속되어 온 매우 위태로운 적대관계를 이제는 거두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의 체제와 이념도 존중하는 속에 유무상통 교류협력하면서 상생 발전해 나가자. 그리고 나아가서 자주, 민주, 평화적으로 느슨한 연합연방제로 통일하자고 합의했는데 그 정책을 지지하고 동조해 온 활동이 처벌 대상인가요?

 다섯째 : 남쪽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쪽의 사회주의 체제를 그대로 두고 양쪽 정부는 폭넓은 자치권을 가진 지역 정부로 두고 중앙엔 남북이 대동하게 참여하는 연방기구를 두는 느슨한 연방제 국가로 민주적이고, 체제 통일문제는 장차 우리의 미래 세대가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출어 가야 할 책무와 권리로 맡겨 두자는 합의를 내용으로 남과 북 정부가 합의한 통일정책을 지지한 행위도 처벌 대상인가요? 하물며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공약에서 남과 북의 기존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했는데 바로 그 남북 합의에 대한 범민련의 지지활동은 그래도 처벌대상인가요?

여섯째 :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당시 범민련남측본부는 각종 부문 단체, 종교, 시민단체, 사회단체들과 함께 평양과 서울을 오가면서 각각 북측의 해당 단체들과 회합하고 협의해서 남북이 함께 각종 민간공동행사들을 활발하게 했으며 이것은 이명박 정부에서 지나간 그 일들을 새삼 문제 삼고 처벌까지 했습니다. 일종의 소급처벌이라고 해야겠지요. 평화통일을 이루려면 긴 세월을 분단으로 인한 오해와 불신 적대감을 해소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활발한 교류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상의 질문에 억지논리가 아닌 옳다거나 그르다는 검사님의 가치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최후진술 2
사 건 : 2013고단2458 국가보안법위반
피고인 : 김 을 수

준비가 안 되었다면 검사님의 답변을 나중에 듣는 것으로 알고 나의 진술을 하겠습니다.

1.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설립 목적, 형태 및 활동입니다.

목적 - 외세에 의해 분단도니 민족을 온 겨레의 뜻과 힘을 모으기 위해 남과 북 그리고 해외에 지역본부를 꾸리고 상호 연락사무를 돕기 위해 해외(도쿄)에 공동사무국을 두고, 각 지역본부는 대등한 자격과 권리, 의무를 가지며 각자 지역 사정에 맞추어 독자활동을 하되 사안에 따라선 공동 활동을 한다는 것으로 조직했으며 그동안의 활동내용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에서 남과 북 정부가 합의한 자주, 민주, 평화적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남과 북의 현존 체제는 서로가 인정하고 존중하는 속에서 느슨한 연방(연합)제로 통일한다는 정책을 지지하고 동조하는 방향에서 대중운동을 해 왔습니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지금도 반국가단체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분단 아래 오랫동안의 대결과 갈등을 거두고 서로를 통일의 상대, 통일의 주체로 인정한 바탕 위에서 외세가 갈라놓은 민족을 외세의 간섭을 배제하고 민족의 단결된 힘으로 자주, 민주, 평화적으로, 그래서 서로의 다른 두 체제를 인정하고 남북의 양 정부는 폭넓은 자치권을 갖는 지역정부로 두고 중앙에는 남과 북이 대등하게 참여하는 통일기구를 두는 느슨한 연방제로 통일하자고 합의발표 하였으므로 남과 북은 서로 더 이상 반국가단체나 적이 아닙니다. 


남과 북이 계속 서로를 부정하고 적대한다면 평화적 통일은 불가능 할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은 남에 사나, 북에 사나 결코 평화롭게 살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에 이은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대북·대미 정책들이 이와 같은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범민련은 그 설립 목적에 이적성이 없으며 활동 또한 법을 준수하면서 합법적 공간에서 공개적인 대중 활동을 해왔고, 그 방향은 남북정부가 합의 발표한 평화통일정책에 맞추어져 있으므로 결코 이적활동이 아닙니다. 또한, 통일운동과 함께 반전평화 활동을 해 왔습니다. 이 땅에서 전쟁을 막아내고 평화를 지키는 일은 현재 통일보다도 더 중요하고 긴박한 문제입니다.

3.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과 관련해서

박정희 정부, 노태우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서로를 더불어 통일을 이루어야 할 상대이자 주체로 인정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은 더 이상 박국가단체가 아닌데 반통일적인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서 국가정책의 연속성을 무시하고 전임 정부들이 북과 합의 발표한 평화통일 원칙들을 모조리 짓밟고, 칼집에 들어있던 녹슬은 칼 국가보안법을 다시 빼어들고 범민련을 비롯한 통일운동 단체들을 향해서 칼춤을 추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민주국가임을 자임하려면 민주주의에 반하는 여러 법률들 그 중에서도 우선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4. 범민련은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보 질서를 위태롭게 하겠다는 의사를 가져본 적이 없으며 반국가단체 북한공산집단의 주장에 찬양, 동조한 일이 단연코 없습니다.

범민련은 그 설립 목적인 자주, 민주,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 활동을 해왔고 남과 북 양 정부가 합의한 평화적 민족통일을 앞당겨 오기 위해서 활동해 왔으며 언제나 조국통일 강령에 따라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로 자기주장을 해왔습니다. 통일운동을 위해서도 자유와 민주주의는 꼭 있어야하고, 통일된 조국도 그러해야 합니다. 

 5. 미군철수 주장에 대해서

주한미군은 이 땅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명분과는 반대로 계속 반대한 신예무기를 들여놓고 공격적 합동군사훈련을 하면서 북을 압박해서 긴장과 전쟁위기를 조성하면서 평화를 위태롭게 해 왔습니다. 그 동안 미국이 군사적 압박만 고집해 온 결과가 북의 핵무장입니다. 


핵무기의 특성은 5개 가진 국가와 500개를 가진 국가 간에도 힘의 균형을 이루어 전쟁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합니다. 나는 그리고 범민련은 핵무기를 인류의 적이다라고 단정하며 북핵만이 아니라 미국의 핵우산도 동시에 걷어내서 이 땅 한반도를 비핵화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언론매체들을 보면 미국의 온갖 봉쇄와 압박의 어려움 속에서도 북은 충분치는 않지만 경제발전을 착실하게 진척시켜 가고 있으며, 미국의 군사적 압박과 경재 봉쇄 등 적대관계를 거두면 북은 핵개발을 멈추고 대외개방도 하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범민련남측본부는 미국 정부를 향해서 이쯤에서 조선적대정책을 거두고 빨리 조미회담을 열어서 평화협정체결과 국교정상화를 해서 이 땅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 주둔 군대를 철수해 가라, 그리고 우리 민족의 통일문제엔 더 이상 끼어들지 말라고 주장합니다. 

6. 미군태평양사령부의 작계5027, 5029와 같은 군사 전략의 내용을 보면 북의 여러 상황을 가상한 바탕에서 적용할 전략들인데 그 가상 상황이란 것이 주어진 상황만이 아니라 온갖 공작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들 모두 포합된 것들입니다.

작금의 한미합동 군사훈련이란 것들이 바로 그러한 내용들입니다.

따라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 더욱이 이 나라 60만 대군의 전시작전통제권 조차 그런 미군의 수중에 쥐어져 있는 한 이 땅에 평화는 있을 수 없으며 극단적 경우에는 열전으로 발전해서 남과 북이 공멸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범민련은 모든 평화운동 단체들과 함께 평화실현 활동을 열심히 해 왔습니다. 그런데 검사는 이런 평화운동 조차도 범죄 사실로 공소장에 기재해 놓았습니다. 전쟁반대, 평화실현 활동도 처벌 대상이라는 것, 이런 기막힌 고소내용으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서글픕니다. 


저는 12살 때인 1950년 고향인 강원도 철원에서 전쟁의 참화를 보고 겪었습니다. 전쟁이 나고 두 달 만에 학교는 폭격으로 불타고 가을엔 마을과 함께 불타서 ㅇㅇㅇㅇㅇ사촌 집으로 피난을 했습니다. 온갖 전쟁의 참화를 보고 듣고 겪고 했는데, 51년엔 이른 봄부터 갑자기 웬 전염병이 창궐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죽지는 않았지만 온통 머리카락이 다 빠진 기이한 몰골로 기운이 없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몸을 이끌고 피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참혹한 경험을 했기에 어떠한 경우나 명분으로도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전쟁반대, 평화운동 그리고 평화통일 운동을 펼쳐 왔습니다. 


남북이 통일되어야만 이 땅의 평화는 확실하게 정착됩니다. 그와 함께 민족번영도 가져옵니다. 우리들 기성세대와 남북의 현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평화적 통일 즉 일국야제의 느슨한 연방제 통일국가를 이루어 내는 것까지만 하면 됩니다. 


체제 통일문제는 장차 우리의 후대가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풀어야 할 책무이고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검사가 말하는 적화통일은 억지 논리이고 이명박의 흡수 통일의 꿈은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남측의 4개 정부와 북측의 2개 정부가 서로를 더불어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할 상대로, 주체로 인정하였으니 서로에게 둘은 더 이상 적대적 관계가 아니고 반국가단체 또한 아닙니다. 


공소장엔 범죄 사실들이 길게 나열되어 있지만, 간단하게 줄이면 범민련은 반전평화 활동과 자주, 민주, 평화통일 운동을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무죄임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은연중에 국민 누구나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반자유, 반민주 악법인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주장합니다.

6. 불온서적 소지에 대해 :

이천 여 년 전 진나라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 해놓고 통일한 천하를 통치하는데 지식인과 그들의 지식이 방해가 된다고 판단해서 분서갱유를 했습니다. 지금 자유민주국가를 자임하는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21세기판 분서갱유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북한 원전이네 불온한 문서네 하면서 압수해 갔으니 이것은 분서라 할 것이며, 그것을 소지하였다고 이처럼 잡아 가두니 갱유라 하겠습니다. 


자유민주국가를 자임하면서 학문, 양심,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은 논리적 자가당착입니다. 나는 통일운동가이고 범민련은 통일운동 단체입니다. 정부는 평화통일하자고 북측과 합의 발표해 놓고 정작 통일운동가에게는 북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말라는 것은 경우에 어긋나는 조치입니다. 


오히려 북과 관련된 서적과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자료들까지도 두해 주면서 통일의 상대인 북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연구하라고 권장하는 것이 경우에 맞는 정책이 아닐까요. 판사님. 사법부에선 경우에도 맞고 이치에도 합당한 새로운 판단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13 고단 2458

피고 김 을 수

전쟁반대 평화옹호 활동 :

나는 그리고 범민련은 평화를 사랑하고 귀하고 귀하게 여깁니다. 그래도 조국통일도 반드시 평화적으로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 이 땅에서 전쟁이 또 일어난다면 그것은 한·미·일 3각 동맹과 북조선의 전쟁이 될 것인데, 그 전쟁의 결과는 우리민족에겐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입니다. 


우리민족 남과 북에겐 공멸이 있을 뿐일 테니까요. 그런 속에서도 웃음 짓는 존재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미국입니다. 그 가운데도 군산복합체와 금융자본입니다. 전쟁의 불길이 미치지 않는다면 일본도 그럴 것입니다. 


전에 수상 기시 노부스케가 “조선 전쟁은 일본에겐 신이 내린 축복이었다.”라고 했답니다. 그러함에도 이 땅에 숭미주의자들의 언행에선 전쟁의 위험성이 짙게 느껴져서 범민련은 모든 평화세력들과 함께 반전평화 운동을 열심히 해오고 있습니다. 전쟁은 계획된 전투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우발적인 전투에서도 일어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그랬습니다. 군사훈련을 반대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통일은 천천히 할 수도 있지만 평화를 지키는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10여 년 전 부시가 대북 전쟁의사를 수시로 밝힐 때 반전운동을 하면서 어느 글을 보니 그 당시 이 땅 남과 북에 배치된 무장력이 1950년 전쟁 때의 무려 100배나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그 때보다 또 몇 배는 더 강해졌을 터이고 자칫하면 핵무기까지 사용될 수도 있는 상황이므로 어떠한 경우나 명분으로도 전쟁만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 나나 범민련의 판단이고 신조입니다. 지금 한반도에서 가장 긴박한 일은 전쟁을 막아내는 일립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종심이 얕은 우리 조국강토에선 그 불길이 삽시간에 전체로 퍼져서 피난 갈 곳도 없고 겨를도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북에도 핵시설이 있고 남에는 핵발전소가 23기나 있습니다. 불길이 이곳에 미치면 대형 핵폭탄이 된다고 합니다. 어찌 전쟁반대를 안할 수 있겠습니까? 평화통일의 길 정치적 통일을 이루기에 앞서 우리의 남과 북은 모든 분야에서 접촉 왕래하고 교류 협력하면서 전쟁과 대결로 그동안 서로에게 쌓아온 길은 오해와 불신 증오를 풀어내려는 노력부터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유무상통 교류협력하면서 상생발전을 도모한다면 가까운 장제에 눈에 띄는 성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그동안의 오해와 불신 적의를 쉽게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지금 이 땅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에게 활로를 열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북에선 개성공단에 2,000만평의 용지를 내 놓았는데 현재 그중 100만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대결정책 때문이지요. 10.4 선언에도 나와 있듯이 북에서는 남쪽 기업들을 위한 공단을 곳곳에 많이 만들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기업들이 북쪽으로 가면 땅값이 (50년 임대료가 평당 149,000원) 별로 안 드니 적은 돈으로 공장을 세울 수 있고 또 저렴한 양질의 노동력을 구할 수 있으니 경쟁력을 높여 활력을 찾을 수 있겠고 남쪽의 노동자들에게도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박대통령에게는 중소기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란 선거공약 이행의 길이 열리게 되니 일거양득이라 할 것입니다. 


또 북쪽에는 사회기반시설이 미흡하다고 하니 남쪽의 자본과 장비, 기술로 필요한 그곳에도 사회기반시설 건설해주고, 그 대금은 현금이 어려우면 북쪽에 풍부한 지하자원을 개발해서 가져오면 남쪽의 다른 많은 기업들에게도 생산비를 낮추어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니 이 또한 상생발전, 일거양득이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철강기업 포스코가 지금가지 수만리 먼 나라에서 매년 수천만 톤의 철광석과 석탄을 채굴해서 실어 오려니 그 비용이 엄청났을 터인데 그것들을 가까운 북에서 채굴한다고 본다면 포스코의 경쟁력이 놀라울 만큼 향상될 것입니다. 한 가지 참고 할 것은 북에서도 얼마 전까지는 제철용 유연탄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썼는데 지금은 자체에서 풍부하게 나오는 석탄으로 제철을 하는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주체철 제조법입니다.) 


현재 우리경제는 기행적이라고 할 만큼 대외의존무역 의존도가 높아서 탄력성이 없습니다. 수출 1조 달러를 성취했다고 좋아하는데 2012년 GDP 대비 무역의존도가 110% 였습니다. 참고로 일본은 24%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기형입니다. 빨리 보정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수출타령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합니다. 지금남쪽엔 축적된 자본과 기술은 풍부하지만 자원이 빈약하고 내수시장 또한 협소합니다. 북쪽은 그와 반대이니 남과 북이 지금 같은 대결을 접고 유무상통 교류협력하면서 상생발전을 도모한다면 자원 확보와 세수시장이 자연스럽게 북쪽에까지 넓어져서 국가경쟁력이 탄력성을 얻고 그만큼 향상될 것입니다. 


이른바 남북경제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대결을 없어지고 협력관계가 형성되지요. 이 합을 요약정리해보면, 남북 간에 지금까지의 소모적인 대결을 접고 유무상통 교류협력하면서 상생발전을 도모한다면 중소기업엔 활로를, 수출산업을 비롯한 다른 모든 기업엔 경쟁력을, 노동자에겐 일자리를 국가차원에선 내수시장 확대와 원자재 확보로 대외경쟁력 향상을, 그리고 지극히 소모적인 분단유지비용, 그중에서도 막대한 국방비를 크게 감축할 수 있게 될 것이니 재정안정을 가져올 수 있고, 국민에겐 평화와 안정 그리고 퓽요롤 함께 가져다 줄 것이며 대통령에겐 선거공약 이행이란 지적을 안겨 줄 것이니 그야말로 유무상통 상생발전이라 할 것입니다. 


그에 따라 국가위상과 민족적 긍지가 높아지고 상호 오해와 불신, 적대감이 풀리면서 남북갈등이 해소되어 자연스럽게 통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바로 지금까지 범민련이 지향해온 통일 방향입니다. 그래서 범민련은 다방면의 교류를 통해서 북쪽의 집단주의 사회가 갖고있는 생활과 문화, 남쪽의 개인주의 자유경쟁사회가 갖고 있는 생활과 문화를 서로가 앎으로써 상대에 대한 이해를 넓히면서 오해를 씻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반통일 논객들에 의해 통일비용문제가 자주 논란되는데 그 바탕에는 퍼주기 논란이 깔려있고, 특히 이대통령이 통일세 화두를 던지면서 일반대중에게 널리 퍼지면서 심지어 "값비싼 통일을 왜 하려느냐"는 기막힌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를 반통일 논객들이 독일통일에서 사례를 끌어오면서 일응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독일의 경우는 갑작스러운 흡수통일이 가져온 문제임을 옳게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민족이 지향하는 느슨한 점진적 연방제 통일과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여기서 참고한 대상은 독일보다는 1국양제를 택한 중국과 대만의 정부가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동독의 사회주의체제가 갑작스럽게 서독의 자본주의체제로 흡수되는 방식으로 통일 되면서 대혼란이 야기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독정부 즉 통일정부는 동독인민을 끌어안으면서 안정시키기 위해서, 또 동독의 사회주의 기업을 사적 소유형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방생하는 엄청난 부작용과 그에 따라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을 메우기 위해서 통일세를 신설하는 등 그 아닌 말로 밑 빠진 독에 물붓기로 20여 년간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부어야 했는데 아직도 끝난 것은 아닙니다. 


실로 고통스럽고 값비싼 통일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독일의 정치지도자나 지식인 중에서도 이런 사실을 "의도하지 않는 하나의 과오"로 인정합니다. 즉 순탄한 점진적인 연방제통일에 대한 아쉬움이지요. 우리민족은 분단과 통일문제로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남북 간엔 독일 민족과 달리 오해와 불신, 적대감이 아주 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남북 지도자들은 일찍부터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자면 서로의 다른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연방제 통일로 가야한다는 것을 깨닫고, 또 독일 통일의 문제성을 보면서(자주, 민주, 평화적으로 그리고)느슨한 점진적인 연방제로 통일하자는 합의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자면 통일에 앞서 먼저 화해하고 교류 협력하면서 유무상통 상생발전을 도모하면서 물질적 경제적 성과를 만들어 내어 통일 비용이란 부담을 국민에게 지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의 중국과 대만처럼 그렇게 해서 소로의 오해와 불신, 적대감을 씻어내고 민족으로서의 일체감을 만들어 내야합니다. 


그리되면 기업가는 영리 목적으로 투자를 하면되고, 정부차원에선 내수시장 확대와 개발투자가 되어 독일같은 혼란도 없고 통일 비용 부담도 없으며, 오히려 그동안의 엄청난 분단유지 비용이 점차 감소하면서 국가도 국민도 오히려 부담이 줄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상생발전하면서 갈등 없는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지난번에 증인이 이창호와 통화를 많이 했다고 했는데 맞는 말입니다. 이창호의 책무가 대외협력국장입니다. 그래서 의장이 참석해야할 회의나 행사가 있으면 그것을 알리는 전화였습니다. 사무실엘 자주 갔다고 했는데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가끔 가는 것은 민자통주례회의에 참석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의장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참석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건강 때문에 5번 폐렴으로 이대부속병원에 3주간 입원치료 했었고 퇴원하고도 6개월간 통원치료를 했는데 진단명이 "만성폐쇠성 폐질환"이었습니다."생활하면서 감기 걸리지 않게 아주 조심해야한다"는 의사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는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만 지내는 형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고 아내에게는 우울증 진단이 내려지고 " 되도록 혼자 있게 하지 말라"는 의사의 당부가 있어서 되도록 아내와 같이 있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의자대행을 맡고서 실무일꾼들을 모아놓고 내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 하면서 사무실에 자주 올 수 없음을 양해를 구하고 "일은 동지들끼리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서 처리토록 하라"고 당부해 두었습니다. 홈페이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컴맹입니다. 홈페이지의 용도를 알지 못합니다. 딸이 쓰던 컴퓨터가 집에 있는데 앞으로는 배워서 잘 써야겠습니다.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지 말고…(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는 30여 년 전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가훈을 써오란다고 해서 써 보낸 "가훈"입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선배가 아끼는 후배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늘 하는 훈육의 말입니다. 몇 년 후 딸아이 때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창조적으로 노력하자"를 써 보냈습니다.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는 이름 그대로 자주, 민주,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단체입니다. 남과 북 정부 어느 쪽에도 편들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공소장에는 "7.4남북공동성명" 발표 40돌 기념 행사한 것도 범죄 사실로 기재되어 있는데, 이명박 정권의 반통일 대결정책이 아니었으면 우리를 통일운동 연행대신 그것을 "대규모 남북공동행사"로 했을 것입니다. 구미에 있는 박정희 동상의 받침대에는 검사가 문제 삼는 그 "7.4남북공동성명 전문" 을 동판에 새겨서 박아 넣었는데, 검사는 그 기념행사를 한 것도 문제 삼는군요. 범민련은 "7.4남북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통일원칙을 민족통일 3대원칙으로 높이 받들면서 그 방향에서 통일운동을 펼쳐왔습니다. 


그럼에도 검사는 북의 통일정책을 적화통일 정책이라고 왜곡하면서 범민련이 그 정책에 동조했다 합니다. 그야말로 억지 논리이고 견강부회입니다. 범민련은 그래서 다시 한 번 무죄임을 주장합니다. 범민련은 조미간의 평화와 남북 간의 화해를 뜨겁게 주장합니다. 그것만이 이 땅 우리민족의 평화의 길이고 통일의 길입니다. 해법은 간단합니다. 초강대국 미국이 극동의 작은 나라 조선을 용인하고 우리민족의 통일을 방해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것이 70년간의 이 땅 이 민족의 분단에서 오는 모순과 갈등을 푸는 유일한 해법입니다. 이일에는 현재까지도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이 나라 대한민국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이 요망됩니다.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판사님 긴 이야기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판사님께 관용을 빌지 않겠습니다. 당당하게 무죄임을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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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되지 않는 박정희 씨의 명예

[오홍근의 ‘그레샴법칙의 나라’] <94> 박근혜 대통령의 오산(誤算)

오홍근 칼럼니스트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1.21 07:29:17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 한 사람이 2012년 대선 전, “박근혜 후보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사실 여부를 놓고 말들도 있었으나, 그간의 대통령 행적을 살펴보면 ‘그건 맞는 말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 개인 생각으로는 ‘좋은 5·16 쿠데타’나 ‘좋은 유신’이나 ‘좋은 긴급조치’는 아닐지라도, 아버지는 ‘온 몸을 바쳐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사신 분’이라고 온 국민들에게 외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불명예를 씻어내고 싶을 것이다. 물론 사적(私的)인 권력욕에 사로잡힌 독재자였다고는 절대 동의하지 않을 듯싶다. 그 때문에도 그녀는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런 조짐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부터 엿보였다. 그렇게 판을 짜 갔다. ‘박정희 신봉자’인 윤창중 씨를 기용하더니, 유신헌법을 기초하고, 아버지와 공안통치에 손발을 맞추던 김기춘 씨를 비서실장에 앉혔다.

 

아버지의 부하였던 4성장군의 아들을 장관에 임명했고,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승만 씨와 박정희 씨에 대한 ‘보는 시각’을 확실히 ‘손질’할 수 있는 인사를 국사편찬위원장에 등용했다. 난데없는 새마을 예산이 등장하더니, 경제개발 3개년 계획까지 나왔다. 박정희 씨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연상시키는 조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지 세력들이 10년 동안의 민주정부 기간을 ‘종북좌빨 통치기간’이라 나팔을 불어댔다. 박정희 씨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보탬이 된다고들 생각한 것 같다. 대통령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사정없이 거꾸로 돌렸다. “1970년대 유신시대로 가는 거 아니냐”는 투덜거림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으스스하다”는 소리에 이어 “안녕하십니까”라는 절실한 문안 인사가 사회에 만연되기 시작했다.

 

‘박정희 식 통치방식’이 고개를 들었다. ‘문제’가 생기면 억눌러 해결하고자 했다. 술수까지 동원했다. 심각한 양상으로 떠오른 대선 부정사건도 NLL 논란을 일으켜 덮어보려 하다가, 검찰총장 목 자르고 수사검사 찍어내기로 호도해 갔다. 소통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 불통 일변도 속에 장관들은 지시를 수첩에 받아 적기에 정신이 없다고 했다. 그런 비정상 속에서, “정상화 하자”는 공허한 목소리가 나온 데 대해서도 정상과 비정상을 분간 못하는 정권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대통령은 길을 잘못 접어든 것 같다. 우리가 보기에 지금 가는 길은 아버지의 명예회복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길임이 분명하다. 오히려 박정희 씨의 불명예를 구체적으로 부각시키며 명예를 훼손하는 길로 보인다. 첫 단추부터 그랬다. 사람들은 일찍 알아 차렸다. 윤창중 씨와 김기춘 씨의 임명을 보면서 사람들은 쿠데타와 유신과 긴급조치와 인혁당 사건을 떠올렸다. 다 박정희 씨의 불명예였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전인 2010년 9월 5·16 쿠데타와 유신과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까지 했던 터였다. 국사편찬위원장과 국정교과서 문제도 그렇게 고집스럽게 밀어 붙일 일이 아니었다. 박정희 씨의 친일 행적, 특히 혈서를 쓰면서까지 일왕에게 충성 맹세를 했던 사실과, 그렇게 일본군대에 입대했던 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 이야기를 찾아내 네티즌들은 SNS를 통해 부지런히 퍼 날랐다. 그의 과오를 덮기 위해 역사 교과서 물 타기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부각시켰다.

 

교학사 국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전국에 단 한군데도 없다는 사실도, 박정희 씨의 친일 행적을 덮어 보려는 이 정권의 역사적 사실 ‘왜곡시도’에 대한 반발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여당은 시민단체 등의 ‘외압’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그게 움직일 수 없는 도도한 민심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른바 종북좌빨 논란도 박정희 씨에게는 엄청난 ‘명예 실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공약으로 4대국 보장론을 역설한다. 미국·일본·중국·소련 등 4대국으로 하여금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케 하자는 탁월한 논리였다. 김 후보의 인기는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를 간발의 차이로 추격하고 있었다. 이때에 박정희 후보가 하나의 카드를 꺼내든다. 김대중 후보를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빨갱이”로 몰아대기 시작했다.

 

중국과 소련의 도움을 받는 발상은 빨갱이가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논리였다. 그때부터 DJ는 죽는 날까지 빨갱이가 되었다. 유명을 달리한 지금도 DJ는 일부 계층 인사들에게는 빨갱이로 남아있다. 그러나 1971년 DJ의 4대국 보장론은 40년이 지난 오늘날 남북한까지 합석하는 6자회담이 되어 우리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진짜 ‘빨갱이’는 박정희 씨였다. 박정희 씨는 해방 직후 남로당의 군부 책임자였다. 육군 소령으로 체포돼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분명한 적색분자’가 그의 전력이었다. 체포된 뒤 남로당에 가입한 동료들의 명단을 밀고하며 전향한 대가로 형 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복직도 되었다.

 

그런 그가 사상문제로 체포된 적도 없고, 유죄판결 받은 적도, 따라서 전향한 적도 없는 DJ를 빨갱이로 밀어 붙이는 파렴치한 종북몰이를 했다. 그는 집권기간 중 그 누구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 입도 뻥끗하지 못하게 했다. 1970년대 초 〈크리스쳔 사이언스 모니터〉지의 엘리자베스 폰드(Elizabeth Pond) 특파원은 박정희 씨의 과거를 언급한 ‘죄’로 남한 입국을 금지 당하기도 했다.

 

그가 원조가 된 종북좌빨 타령에 신물이 난 사람들 중 누군가 어느 날 박정희 씨가 빨갱이였음을 증명하는 귀중한 기록을 찾아내 세상에 까발렸다. 1963년 대통령 선거 이틀 전인 10월13일 민정당 윤보선 후보 측이 폭로한 내용을 보도한 동아일보 호외 사진이었다. 문제의 호외는 발행되자마자 당시 군부에 의해 압수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당시 동아일보 호외ⓒ프레시안

▲ 당시 동아일보 호외ⓒ프레시안

 

 

호외에는 1949년 2월18일 군법회의에서 박정희 씨가 무기징역을 언도받은 내용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과도한 종북몰이가 부메랑이 되어 대문짝만한 사진과 함께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이야 그 호외 사진 보도 못하게 할 수도 없다. 구체적인 사실이 부각된 참혹한 명예훼손이었다. 요컨대 박정희 씨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았다. 진실이 감춰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며칠 전 이번에는 바다 건너 미국에서 박정희 씨 부녀의 명예가 미국인들에게도 훼손돼 강조되는 사실보도가 나왔다. 유력일간지 <뉴욕타임스(NYT)>가 ‘정치인과 교과서’라는 사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뒤틀린 역사관’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NYT>는 우선 아베 총리에 대해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서 지우길 원하고 난징 대학살도 축소해 기술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친일파 인사들의 친일 행각이 물 타기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했다. 곁들여 오늘날 한국사회의 주류인사들은 다수가 일제 때 친일하던 사람들의 후예라고 강조한 <NYT>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씨가 식민통치 기간 중 일본군의 장교였으며, 1962년부터 1979년까지 한국의 독재자였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적 사실 축소 기술’ 희망이 아버지 때문임을 짙게 암시했다.

 

사설은 “교과서를 개정하기위한 두 나라 정상의 위태로운 시도는 역사의 교훈을 훼손하려는 위협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과 대통령 아버지에 대한 비판인 만큼 정부는 발끈했다. 이례적으로 외교부와 교육부 등 복수의 정부부처가 나서 “사실과 다르다”고 목청을 높였다. 여당의 실세 의원까지 해당 언론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 땅의 기자들은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는데도, 남의 나라 언론이 예리하게 분석해 냈다고 말들을 한다.

 

 

▲ 지난 13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정치인과 교과서' 사설 ⓒ뉴욕타임스 갈무리

▲ 지난 13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정치인과 교과서' 사설 ⓒ뉴욕타임스 갈무리

 

 

대통령은 아버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그토록 노심초사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훼손돼 가고 있는 까닭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진실은 덮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명예회복’이라는 ‘의도’에 맞게 역사 교과서 내용까지 어찌어찌 해보려하는 지 모르지만, 이념에 맞도록 진실을 조작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무리한 명예회복 시도는 과욕일 뿐이다. 부작용이 나오게 되어있다.

 

대통령에게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제 와서 박정희 씨가 일본군 장교 출신이었고, 적색분자였으며, 독재자였다는 역사적 진실이 바뀔 수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박근혜 대통령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힘들겠지만 정치인 박정희 씨와는 작별을 하는 게 좋다. 지금 주변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박정희 씨의 냄새도 과감히 제거하는 게 옳다. 뒤돌아보는 정치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멀리 미래를 보는 당당한 정치에 매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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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제20차 공판 ③] 호주와 스웨덴은 왜 발표하지 않았나?

명패만 있고 역할은 없는 해외조사단, 그들은 한국에 왜 왔던 것일까요?
 
신상철 | 2014-01-21 07:50:1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제가 평택2함대에 조사를 위해 갔던 2010년 4월 30일 합조단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저를 헤드테이블로 안내하더니 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브리핑을 시작하였는데 해외조사단 가운데 미국, 영국팀은 브리핑을 하였는데 호주와 스웨덴 팀은 브리핑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궁금하여 호주팀을 개인적으로 만나보기로 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제가 2012년 12월 출간한 졸저 <천안함은 좌초입니다>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천안함 첫 조사 그리고 자격논란
안내장교는 나를 테이블의 상석으로 안내를 하였다

문 준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중간검사와 최종검사 두 번만 참석키로 하였던 나는 2010년 4월 30일 아침 9시 평택 2함대에 도착하여 안내장교가 나를 합조단 회의실로 안내를 하였다. 그런데 ‘ㄷ’자 형태로 셋팅된 테이블의 상석으로 나를 안내하는 것이 아닌가.

브리핑이 막 시작하기 직전이라 얼떨결에 앉고 보니 그 자리가 여간 불편한 자리가 아니었다. 상석에 의자가 넷 있는데 나를 제일 왼쪽에 앉혔다. 그러니 내 오른쪽으로 박정이 중장(군합조단장), 윤덕용(민간합조단장), 토마스에클스(미국대표)가 앉는 모양새가 되었다. 내가 뭐라고.

앞으로는 테이블이 두 줄로 놓여져 있고 그 테이블에는 군 장성을 포함 군측 합조단 조사위원들과 민간조사위원들이 모두 나란히 앉아 있었고, 한나라당 추천 민간위원들 역시 그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군대의 특성이 계급과 서열이고, 그것은 자리배치로 구체화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런데 계급으로는 기껏 예비역 중위인 내가 나이로 보나, 학위로 보나, 덩치로 보나 그들보다 나을 것이 하나 없는데 앞 테이블 상석에 앉혔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나를 어떻게 요리하고 싶어 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이라 하겠다. 그들 입장에서는 중간조사에 처음 참석한 조사위원에 대한 예우로 호의를 베푼 것인데 이렇게 말한다고 섭섭하다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엄연히 권위를 이용한 매수행위와 다르지 않았다고 나는 판단했다. 

회의가 아닌 일방적 브리핑

나는 그날 중간조사 결과를 두고 토론을 하는 회이인 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선체검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앉아 있으니 일방적인 브리핑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팀이 브리핑을하고, 미국팀이 브리핑을 하고 마지막으로 영국팀이 브리핑을 하였는데, 그 내용은 모두 ‘이러저러하기 때문에 결론을 어뢰폭발이다’라는 것이었다. 듣다 못해 나는 손을 번쩍들고 일어서서 질문을 던졌다.

Q : 왜 좌초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가. 
A : 좌초는 없다. 이미 끝난 얘기다. 
Q : 무슨 얘기냐. 선체인양시 외판하부에 보였던 깊은 스크랫치는 명백히 좌초의 증거가 아닌가?

그러자 해군 준장이 벌떡 일어나 언성을 높이며 나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좌초이야기 하지 마시오. 좌초는 검토대상이 아니란 말이오”

그가 외치가 내가 따지는 가운데 상황이 아수라장 비슷하게 흐르자, 다른 장성 한 분이 나서서 장내를 안정시키고 자분자분 말을 꺼냈다.

“그러지 말고 회의가 끝난 다음에 몇몇 전문위원 분들이 신 위원에게 폭발에 대해 설명을 해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폭발에 대해 설명이라뇨. 저는 조사하러 왔지 강의 받으러 온 것 아닙니다. 차라리 선체로 갑시다. 가서 선체를 보면서 함께 조사를 합시다”

그래서 점심 식사 후 국방부 조사위원, 미국 및 영국 조사위원 등 십오명이 함께 천안함으로 가서 선체를 조사하기로 하고 오전 회의를 마쳤다.

점심을 앞 두고 잠시 쉬는 시간, 나는 미국과 영국의 브리핑만 했는데 호주와 스웨덴의 대표단은 브리핑을 하지 않았던 이유와 오전 회의 끝무렵에 “오늘 호주와 스웨덴의 발표까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좀 아쉽다”고 말한 부분이 궁금해 졌다. 그래서 호주 대표단을 몰래 만나 볼 요량으로 둘러 보았더니 보이질 않았다.

안내장교에게 슬쩍 물어보니 호주대표단은 아래층에 사무실이 있단다. 그래서 눈치를 보다가 내려가려고 하니 옆에 섰던 중령이 나를 잡는다. “아, 같이 계시다가 점심 드시러 가셔야 합니다.”

말이 조사위원이지 이건 감시와 다를 바 없다. 오전에 회의를 시작하면서 좌석만 상석을 주었지 내 테이블에만 유독 브리핑자료(파워포인트 인쇄물)가 놓여져 있지 않았고, 내 옆에 서있던 중령에게 자료를 달라고 요청을 하였으나 “곤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회의 끝나고 해군 준장에게 자료를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나에게는 어떤 자료도 주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회의 끝나고 내가 밖으로 나가는 것 조차 못하도록 내 손을 잡아 끌만큼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자유롭지 못한 꼴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나는 태연하게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아무리 회의가 끝난 휴식시간이라고는 하지만 회의실에서 담배를 꺼내물고 불을 붙이려고 하니 이번에는 중령이 “여기서는 담배 피시면 안됩니다”라고 한다. 그래서 “어디서 피면 되오?” 하니 “아래층에 내려가셔야 합니다”하길래 내려갔더니 그때는 잡지 않았다. 역시 한국사람들은 담배에 관대하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유의미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던 호주와 스웨덴

1층으로 내려오자마자 담배를 집어넣고 방들을 둘러보니 좌우로 방문들이 도열해 있었다. 하나씩 디다보니 방마다 전문 요원들이 앉아서 일에 열중이었다. 세 번째 방인가 호주 해군대표단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짜고짜 들어가서 인사부터 하고 보니 호주 뿐만아니라 스웨덴 대표단도 함께 쓰는 방이었다. (濠: 호주대표단)

신 :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의 민간조사위원인데 잠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濠 : 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신 :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濠 : 네, 얼마든지..
신 : 한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濠 : 네, 그러세요.
신 : 왜 오늘 호주팀과 스웨덴팀은 중간 브리핑을 하지 않았나요?
濠 : 에... 저희는 아직까지 유의미한 결론(Meaningful Conclusion)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신 : 폭발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말씀이신가요?
濠 : 네, 그렇습니다. 
신 : 스웨덴팀도 같은 입장인가요?
濠 : 네,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신 : 놀랍군요. 그런데 왜 미국과 영국은 ‘폭발’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요?
濠 : (잘 모르겠다는 제스쳐)
신 : 그러면 한 가지 여쭙겠는데, 혹시 이 배가 사고 당시 어디에 있었는지 아십니까?
濠 : 모릅니다.
신 : 스피드가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濠 : 모릅니다. 
신 : 항로와 엔진상황에 대해 아십니까? 
濠 : 모릅니다.   
신 : 선박사고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말하지 않고 사고 원인을 밝히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 아닌가요?
濠 : 그렇군요. Mr. Shin은 아시나요?
신 : 아뇨. 말하지 않으니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천안함이 최초에 좌초했을 가능성에 대해 아십니까?
濠 : 그렇습니까? 
신 : 네, 저는 천안함이 좌초를 하였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濠 : 그에대한 정보를 주실 수 있습니까? 
신 : 네, 제가 가진 정보들을 메일로 드릴테니 님께서도 저에게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서로 정보를 교환하도록 하시지요.
濠 : 좋습니다.

그렇게 서로 명함과 이메일을 주고받고 인사하고 나왔는데 미국과 영국이 우리 국방부와 함께 ‘어뢰에 의한 폭발’로 몰아가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호주와 스웨덴은 어뢰폭발 결론을 유보하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하게 확인한 셈이었다.

이후 모두 함께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천안함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함수에서부터 함미 끝까지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나눈 대화 몇 토막. (國 : 국방부위원, 美 : 미국위원, 英 : 영국위원)

신 : 선체하부의 스크랫치는 전형적인 좌초의 증거다.
國 : 아니다. 좌초는 없다. 배가 가라앉아 생긴거다.
신 :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날 정도의 폭발이 있었다면 인근 수km 이내의 물고기듥은 모두 떼죽음을 당했어야 할텐데 그런 증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폭발이 없었다는 증거다. 
英 : 죽은 물고기들이 모두 조류에 떠내려 갔을거다.  
신 : 그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英 : 당시 조류가 셌었다. 
신 : 프로펠러가 휜 것은 이 배가 좌초를 했다가 빠져나온 증거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나? 
美 ; 아니다. 천안함이 가라앉았을 때 바닥에 부딪쳐서 생긴 손상이다.
신 : 무슨 소리. 함미가 가라앉을 때 앞 부분이 먼저 가라앉는데?
美 : (손짓을 하며) 앞에서 쿵, 뒤에서 쿵, 그렇게 해저에 닿았다.
신 : 그러면 닿은 부분만 손상이 되지 왜 다섯 블레이드가 모두 휘었겠나?
美 : 프로펠러가 돌아가면서 해저에 닿았기 때문이다.
신 : 허허, 엔진이 부서져서 동력을 상실했는데?
美 : ... Anyway..
신 : (웃으며) 이 봐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넷티즌들이 당신들이 말하는 어뢰를 Environment Friendly Green Torpedo(친환경녹색어뢰)라고 부르며 놀리고 있다구.. 허 참..
美 : (자기도 씁쓸한지 웃는다)

천안함 선체조사를 하는 동안 나는 좌초의 증거와 함께 충돌의 증거 그리고 폭발이 존재하진 않는다는 증거들을 확인하고 사실상의 천안함 육안 검사를 마무리 하였다. (중략)

천안함 사고 원인의 조작과 은폐를 국민이 알게 해야 한다

천안함 선체조사를 하는 동안, 나는 이 중대한 조작과 은폐의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려야 하는지의 문제를 잠시 고민하였지만 결론을 얻는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만약 이 사실을 덮어 둔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하였고, 나는 그 다음 날 바로 컬럼으로 그리고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방부의 조작과 은폐사실을 온 세상에 알렸다. 그러자 바로 국방부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그날 이후 평택으로부터 전화콜에 시달려야 했는데 그 불편한 내용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딱딱함과 부드러움 모두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합조단은 공식적으로 나에 대한 자격(資格)과 자질(資質)을 문제삼으며 국회에 민간조사요원을 교체해 줄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고, 민주당에서는 그 문제가 최고위원 회의 테이블에 까지 올랐다.

후에 들은 얘기로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국방부에서 공식적으로 요구하니 조사위원을 교체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나의 경력에 대해 잘 알고 계셨던 윤덕홍 전 부총리께서 “신상철이를 내가 아는데, 그만한 전문가가 드물다”고 변론을 하셨고, 작고하신 김근태 전 의장께서 “무엇보다도 우리가 추천한 위원을 저들의 요구에 의해 교체하는 것은 전략적으로도 옳지 않다”는 강력한 반대로 국방부의 교체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결정되었다고 들었다.

다소 섭섭함은 있지만 나의 경력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분들의 의견에 대해 딱히 원망할 생각은 없으나 적극 변론해 주셨던 윤덕홍 최고위원님과 고 김근태 의장님께는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역시 사람의 깊이를 들여다 보시는 분들의 혜안은 남다른 법인가 보다. 큭큭.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민간조사위원의 지위는 잃지 않았지만 이후 국방부에서 여러 매체를 통해 ‘민주당이 자격도 없는 사람을 조사위원으로 보냈다’는 식의 비난을 그치지 않았으니 조사위원으로서 나의 공적인 역할은 사실상 그것으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처지가 되어 버렸다.

새삼 말하는 것조차 우습지만, 언론의 영향력은 대단히 컸다.

‘자격도 없는 사람’이미지는 지금까지도 씻기우지 않고 망령처럼 나를 감싸고 있었으니 그것은 역시 언론이 나서서 씻어주기 전에는 만회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자격지심에 빠지거나 열등감에 젖어 하던 일 포기하는 일을 없겠지만 어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번쯤은 ‘내가 걸었던 길’가운데 한 단락을 진지하게 펼쳐 놓을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다. (하략)


호주팀은 해군, 스웨덴팀은 민간인

당시 제가 만났던 호주팀 두 위원 모두 해군소속이었습니다. 그들이 준 명함에는 대영제국에 속해있다는 뜻을 담아 Australia Royal Navy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두 위원 가운데 한 명은 해군본부 소속이고 다른 한명은 Port Captain(해군항만관리책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사무실에는 호주와 함께 스웨덴팀도 쓰고 있었는데 제가 그 방에 들어서서 제 소개를 하자 호주팀은 반기며 테이블로 저를 안내하였지만 스웨덴팀은 자신들의 책상에 앉아 미소만 머금은채 목인사만 간단히 하였습니다. 하여 스웨덴팀과는 대화를 나누지 못하였었지요.

지나놓고 보니 당시 스웨덴팀과 대화를 나누지 못하였던 것이 후회가 되었는데, 만약 당시 제가 스웨덴팀에게 대화를 제안하였다고 해도 그들은 예를 갖추어 사절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의 재판과정에서 그들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스웨덴팀은 선체의 손상원인에 대한 분석과는 거리가 먼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스웨덴팀은 프로펠러 제조회사인 가메와 소속일 가능성

이번 재판에서 프로펠러 손상원인과 관련, 박정수 준장에 대한 심문 과정에서 박 준장은 <프로펠러가 관성력에 의해 손상되었다>는 합조단의 고전적 주장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그 논리를 펼친 노인식 교수조차도 언론노조 노종면 전 위원장이 밝히 <관성으로 휘어졌다는 프로펠러의 휘어진 방향이 관성력과 반대방향이다>는 검증에 의해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한 마당인데 말이지요.

그리고 변호인과의 질의응답과정에서 박 준장은 매우 중요한 증언을 합니다. 

“스웨덴팀이 보다 상세한 (프로펠러 손상원인에 대한) 조사를 위해 비용이 든다고 했고, 대략 5,000달러 정도인 것으로 안다. 하지만 국방부가 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이 다시 질문을 통해 “스웨덴팀이 가메와사 소속이냐?”라고 묻자 박 준장은 “그건 잘 모르겠다”고 하였으며, 다시 변호인이 “스웨덴팀은 군인이냐, 민간인이냐?”라고 묻자 “민간인이다”라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스웨덴팀은 프로펠러 제조회사인 가메와사 혹은 그와 관련된 군수업체 소속의 민간인으로 판단되며, 그것은 소위 천안함 사고를 조사하기 위한 다국적 조사단이라는 '합동조사단(해외조사단)'의 취지와는 다소 동떨어져 보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해외조사단은 한국에 왜 왔던 것일까?

평택2함대에서 천안함 조사 당시 박정수 준장과 2함대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 영국팀이 식당에 들어오자 박 준장은 그쪽을 슬쩍 쳐다보더니 나즈막히 혼잣말처럼 그러더군요. “저 놈들은 장비 팔아먹으려고 혈안이다..”

영국팀 역시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날 오전 브리핑에서 영국팀이 천안함 사고의 원인분석 보다는 '폭발에 대한 측정'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어 브리핑하였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본다면, 박 준장 역시 '(폭발측정과 관련된)장비를 팔아먹기 위해 혈안인 영국팀'에 대해 못마땅한 느낌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유추해 봅니다.

이번 재판에서 변호인이 박 준장에게 당시 점심을 먹으며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그런 사실 없다'고 부인하였지만, 당시 박 준장과 함께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던 저 말고 또 다른 두 명의 민간조사위원도 함께 그의 말을 들었다는 것은 저도 알고 그도 아는 사실입니다.

잠수함 전문가인 토머스에클스가 이끌고 온 미국팀은 폭발물과 잠수 전문가들입니다. 그 분들이 과연 천안함 조사에 관심이 있었는지, 아니면 제3의 부표 아래에 가라앉은 물체의 처리문제가 더 시급했는지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폭발측정장치 군수업체 대표인 영국팀, 프로펠러제조회사와 관련된 스웨덴팀, 그 분들이 만약 천안함 조사의 한 부분을 맡았다면 그것은 그들이 생산한 보고서로 기록이 남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박 준장은 여러차례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레포트가 없다”고 증언합니다.

명패만 있고 역할은 없는 해외조사단, 그들은 한국에 왜 왔던 것일까요? 

신상철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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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최악 개인정보 유출... 금융수장 책임론 부상

사장들만 물러나면 다냐
가라앉지 않는 '국민분노'

[진단] 사상최악 개인정보 유출... 금융수장 책임론 부상14.01.21 08:42l최종 업데이트 14.01.21 10:1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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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 3사 "국민들께 죄송, 피해 전액 보상" KB국민카드, NH농협카드, 롯데카드사의 역대 최대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벌어진 가운데 20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카드 삼사의 기자회견에서 각사 대표들이 나와 사과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경익 NH농협카드 분사장,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 심재오 KB국민카드 사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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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금융권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국민들의 분노가 거세다. 금융사들의 정보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가 주먹구구식 관리와 감독 부재라는 지적이 여전하다. 한마디로 예고된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도 금융사들의 안이한 인식과 초기 대응 부실은 그대로였다. 개인 정보보안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뿐 아니라 책임자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우선 이번 사건 역시 전형적인 인재라는 것이 지적이 높다. 개인신용평가회사 직원이 거대 카드사 고객정보를 마음대로 넘나들며 빼돌리는 와중에도 해당 회사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카드사들은 은행보다 고객정보를 더 많이 취급하고, 마케팅 등 활용도 역시 높아 정보유출에 취약하다는 지적은 계속돼 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한 금융회사 보안관계자는 "이번에 유출된 사례는 매우 초보적인 관리부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해당 회사 직원도 아닌 외부인력이 개인정보를 거의 맘대로 접근해서 취급하도록 한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형적인 내부통제와 안전불감증이 만들어낸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전형적인 안전불감증이 만들어낸 사상 최악의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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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로 붐비는 은행창구 신용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인해 고객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여의도본점에서 수십 명의 고객들이 카드 재발급과 개인 업무를 보기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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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번에 유출혐의로 구속된 박아무개씨가 속해 있는 코리아크레딧뷰로(KCB)는 신한카드와 삼성카드 등과도 컨설팅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 두 카드사의 경우는 내부의 강력한 보안정책으로 이번 정보유출 피해에서 일단 모면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철한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장은 "신용정보업체와 금융기관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어떻게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고, 이용하고 있는지 공개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윤 센터장은 "현재와 같은 구조라면 언제라도 다시 정보유출 사고가 터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이유는 해당 금융사들의 안일한 대응도 한몫했다. 1억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빠졌나갔는데도 카드사들이 내놓은 보상방안은 '월 300원 문자통보 서비스'였다. 정보유출 회원에 대한 실태파악은커녕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카드사들의 초기 대응은 말그대로 소비자를 두 번씩이나 우롱하는 말도 안 되는 행태였다"고 지적했다. 강 국장은 이어 "피해를 입은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피해보상과 함께 철저한 재발 방지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엔 강력히 처벌해야"... KB금융 임원 일괄사퇴·감독 당국 책임론도 거론

이 때문에 금융회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뿐 아니라 관리감독 부실에 따른 금융당국 책임론도 거론되고 있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이번 카드사태로 국민의 3분의 1이 정보유출의 피해를 입었다"면서 "집단대표소송 등으로 모든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금융회사들도 개인정보보호 관리 부실에 따라 회사가 망할 수 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돼야 회사들도 정보보호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투자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과거에 비슷한 사고들이 일어났을 때 문책 등 내부징계가 미미했다"면서 "내부뿐 아니라 당국에서도 보다 엄격하게 징계와 제재를 취해야 한다"고 전했다.

윤철한 센터장은 "개인정보유출은 한두 번 일어난 게 아니다"면서 "그때마다 정부에서도 내놓은 대책도 똑같다, 그리고 정보유출은 반복되고 소비자들은 막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 당국의 관리 소홀도 매번 나왔지만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강형구 국장도 "이번 사태에 대해 감독당국의 안이한 정보의식과 감독 부실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권에서도 지난해 동양사태에 이어 대규모 개인정보유출사태에 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금융권 한 고위인사는 "동양사태로 지난해 감독 당국의 책임론이 거셌는데, 대형 금융 정보유출 사고까지 터져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꼴"이라며 "금융회사 책임으로만 돌리기에는 사태가 너무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고위인사는 다소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미 내부적으로 (보안관련) 기준 등이 다 마련돼 있다"면서 "이를 지키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인데, 이것을 자꾸 감독 당국과 연결시켜 책임을 지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라고 항변했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 이날 오후 KB금융 부사장 등 집행임원 전부와 이건호 국민은행장을 비롯해 부행장급 이상 임원, 심재오 국민카드 사장 등이 사표를 제출했다. 손경익 농협카드 사장 역시 자진 사퇴의사를 밝혔고, 롯데카드 역시 박상훈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 9명이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태그:개인정보유출,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태그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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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제욱 청와대 비서관, 사이버사 ‘대선 개입’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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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4/01/21 10:15
  • 수정일
    2014/01/21 10:1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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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21 08:04수정 : 2014.01.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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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이버사 심리전단장 공소장 단독 입수

2012년 사이버사령관 재직 때 매일 보고받고 작전 지시
사령관 지시로 작성된 글, 공소장에서만 3천여건 확인
군 조사본부는 무혐의 처리…‘꼬리 자르기 수사’ 의혹 

연제욱(사진) 청와대 국방비서관이 군 사이버사령관 재직 시절인 2012년 사이버사 심리전단장한테서 매일 대선 개입 활동을 보고받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군 사이버사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한 군 조사본부는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도 연 비서관을 사실상 무혐의 처분해 ‘윗선’ 보호를 위해 축소 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한겨레>가 20일 전해철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이아무개 전 사이버사 심리전단장의 공소장을 보면, 연 비서관은 사령관으로 재직하던 2012년 이 전 단장한테서 전날 인터넷 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주요 이슈에 대해 매일 아침 보고를 받고 심리전단의 대응 여부와 방향 등을 ‘결심’(지시)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연 당시 사령관의 결심과 이 전 단장의 지시로 작성된 글은 이 공소장에서만 트위트 2867건, 인터넷 블로그 글 183회 등이다.

 

이런 공소장 내용은 연 전 사령관이 2012년 대선과 총선 당시 사이버사 심리전단의 정치 개입 작전을 사실상 지휘했다는 점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러나 군 조사본부와 군 검찰은 연 전 사령관을 단 한 차례 참고인으로 조사한 뒤 현재까지 형사처벌 여부조차 결정하지 않고 있다. 후임자인 옥도경 현 사령관에 대해서도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연 전 사령관은 대선과 총선 기간이 대부분 포함된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사령관으로 재직했고, 옥도경 현 사령관은 2012년 10월 이후 사령관직을 맡고 있다.

 

두 사령관의 혐의와 관련해 조사본부는 지난해 12월19일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때 “북방한계선(NLL) 등 특정 사안에 대해 심리전 대응 작전 결과 보고시 정치 관련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었으나, 이를 간과했다”고 짤막하게 언급한 것이 전부다. 조사본부는 결국 두 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작전을 벌인 이 전 단장과 10명의 사이버사 대원들만 정치관여와 증거인멸 교사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 전 단장의 공소장에는 심리전단의 구체적인 대선 개입 활동 방식도 드러나 있다. 이 전 단장이 사령관의 결심(지시)을 받아 현안별로 3~4개씩 대응 지침을 작전팀 요원들에게 지시하면, 요원들이 작전 문구를 만들어 전용 인터넷 카페에 올려놓고 활용했다. 작전 문구는 주로 민주당, 통합진보당 등 야권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문구뿐 아니라, 웹툰이나 동영상, 포스터, 홍보글 등을 직접 만들어 올리기도 했다.

 

조직적인 증거인멸 또한 공소장에서 확인됐다. 이 전 단장은 <한겨레> 보도로 군 사이버사 대선 개입 의혹이 불거진 지난해 10월20일, 530단의 데이터베이스·전자결재 서버 4대를 초기화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530단 자체 운용 중인 총 6대의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자료가 삭제됐다. 이 전 단장은 같은 달 18일 북한·해외팀의 사이버심리전 대응작전용 노트북 9대도 초기화하도록 지시했고, 며칠 뒤인 25일에는 아예 심리전단 요원들의 작전용 노트북 전체인 60대를 모두 초기화할 것을 지시해 자료를 삭제하기도 했다.

 

또 케이티(KT)에 연락해 530단이 사용중인 인터넷 아이피(IP) 대역을 변경할 것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기존에 기록돼 있던 530단의 아이피 주소에 대한 수사를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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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핵무력동원태세는 반복되지 않는다

북의 핵무력동원태세는 반복되지 않는다
 
한호석의 개벽예감 <97>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1/20 [14:01]  최종편집: ⓒ 자주민보
 
 

화성-13호 여러 기를 출동시킨 북의 핵무력동원태세

2013년 1월과 2월 북, 미국, 중국이 각기 핵무력동원태세에 돌입하였던 긴박한 군사상황에 관한 몇 가지 정보들이 파편적으로나마 드러난 당시 언론보도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였던 2013년 1월 초 미국 군부를 공포에 떨게 한 놀라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 놀라운 상황에 관한 군사정보는 매우 민감한 정보였으므로 그에 관한 언론보도가 철저히 통제되었으며, 상황이 발생한 때로부터 근 2개월이나 지난 2013년 3월 14일에 가서야 미국 온라인 언론매체 <워싱턴자유횃불(Washington Free Beacon)>이 미국 국방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하여 짤막하게 보도하였을 뿐이다. 그 짤막한 보도는 “미국의 정보감지장치들(intelligence sensors)이 1월 중에 북측 각지에서 몇몇 KN-08이 기동하는 것을 관측하였다”는 한 줄 문장으로 기록된 것이었다. 그 문장에 나오는 ‘정보감지장치’란 미국군 정찰위성을 뜻하고, ‘KN-08’이란 미국 군부가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에 자의적으로 붙여놓은 별칭이다. 


 
▲ 북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     ©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는 미국군 정찰위성의 감시망을 뚫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위킬릭스(Wikileaks)>에 폭로된 ‘미국-러시아 공동위협평가회담-2009년 12월’이라는 제목의 비밀전문에 따르면, 2009년 당시 미국은 무게 500kg의 탄두를 장착한 북의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사거리를 15,000km라고 인정하였다. 그런데도 미국 군부는 국가항공우주정보센터(NASIC)가 2013년 4월에 발표한 ‘탄도미사일 및 순항미사일 위협’이라는 제목의 공개자료에서 화성-13호의 사거리가 5,500km밖에 되지 않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였다. 
2009년 12월에 진행한 비밀회담에서는 화성-13호의 사거리를 15,000km라고 인정하였으면서도, 2013년 4월에 발표한 공개자료에서는 그 사거리를 5,500km를 대폭 축소한 것이야말로 북의 미사일능력에 대한 미국 군부의 상투적인 사실왜곡이다. 미국 군부가 왜곡한 자료를 곧이곧대로 믿은 미국 군사전문가들에 의해 화성-13호의 사거리가 5,500km라는 허위사실이 오늘 국제사회에서 ‘정설’처럼 인정을 받고 있으니, 개탄할 노릇이다. 

위의 보도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은 2013년 1월에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를 탑재한 8축16륜 자행발사대 여러 대를 각 지역 갱도기지들에서 출동시켜 여러 방향으로 분산기동시키면서 발사준비태세를 갖추었던 것이다. 그 보도기사에 언급된 미국 국방부 관리들은 화성-13호를 탑재한 자행발사대 몇 대가 작전기동에 나섰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들은 몇 대인지 몰라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위성영상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파악하였는데도 그냥 “몇몇(several)대”라고만 언급하고 넘어간 것이다. 

보도기사에 나온 ‘몇몇(several)’이라는 낱말은 ‘소수(few)’보다는 많고, ‘다수(many)’보다는 적은 수량을 표기할 때 쓰인다. 미국 국방부 관리들이 취재기자에게 화성-13호의 수량에 대해 그처럼 모호하게 언급하고 넘어간 까닭은,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의 막강한 핵무력이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미국 군부가 극도로 꺼려하기 때문이다.  
  
<워싱턴자유횃불>은 화성-13호를 탑재한 8축16륜 자행발사대들이 각지에서 동시다발로 기동한 작전시기가 2013년 1월 중이라고만 서술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작전시기는 2013년 초였던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탑재한 8축16륜 자행발사대들이 각지에서 동시다발로 기동하는 것은 통상적인 기동훈련이 아니라,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을 공포로 몰아넣는 핵무력동원태세를 갖춘 것이다. 

2013년 1월 초 북은 왜 그처럼 미국을 상대로 핵무력동원태세를 취하였던 것일까? 미국은 북이 2012년 12월 12일 첫 자국산 실용위성 광명성-3호 2호기를 성공적으로 쏘아올린 것을 ‘위법행위’라고 규정해놓고 유엔안보리를 배후에서 조종하면서 2013년 1월 중에 대북제재를 추가하려고 집요하게 획책하는 중이었다. 유엔안보리는 2012년도 활동을 12월 19일에 끝냈고, 2013년 1월 초에 재개하였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평화적인 우주개발사업을 단지 북이 실행하였다고 해서 ‘위법행위’로 규정하고 제재를 추가하려는 미국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북은 2013년 1월 초 미국 본토를 조준한 핵무력동원태세를 갖추었던 것이다.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핵무력동원태세에 돌입한 것은 북의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국 본토를 조준하여 발사준비태세를 갖춘 여러 기의 화성-13호가 동시다발 작전기동에 돌입한 것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광명성-3호 2호기 발사 이후 40일 동안이나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가 2013년 1월 23일에 가서야 유엔안보리를 앞세운 대북제재결의안을 채택하였는데, 그 결의안을 채택하기 사흘 전인 1월 20일에 갑자기 ‘해중전연습(USWEX)’이라는 명목으로 방대한 해군무력을 동중국해에 황급히 집결시켜놓고 대북제재결의안을 채택하는 겁먹은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미국의 그런 내부사정을 알 길이 없었던 언론매체들은 유엔안보리에서 신속한 합의에 제동을 걸며 시간을 끌었던 중국의 지연전술이 대북재재결의를 40일 동안 지연시킨 원인이라고 추측하였지만,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다.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었던 제임스 서먼(James D. Thurman)은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의 화성-13호 작전기동에 관한 보고를 받고 겁을 먹었고, 그래서 그는 대북제재결의안이 채택되기 약 12시간 전인 2013년 1월 23일 용산기지에서 열린 기지내부회합에서 “미국군은 공격 받기 쉬운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다. 나는 누구에게 겁을 주려는 건 아니고, 그렇다는 말이다”고 하면서 주눅이 든 자신의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핵탄두를 장착하고 미국 본토를 조준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가 작전기동에 돌입한 판인데 어찌 주한미국군사령관 한 사람만 겁을 먹었겠는가. 

화성-13호의 작전기동을 보고 발칵 뒤집힌 미국군 지휘부의 내부사정에 관해 알려준 것은 <워싱턴자유횃불> 2013년 2월 12일부 보도기사다. 그 보도기사는 “펜타곤의 합참본부가 북의 신형 도로이동식 미사일과 그 미사일이 미국에 주는 위험에 대한 긴급위협평가를 실시하는 중(The Pentagon's Joint Staff is conducting an urgent threat assessment of North Korea's new road-mobile missile and the danger it poses to the United States)”이라고 지적하면서, 속성으로 실시된 그 위협평가는 군사기밀로 처리되어 미국군 합참의장 마틴 뎀프시(Martin E. Dempsey)에게 즉각 제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위의 보도기사에 따르면, 당시 미국군 합참본부 대변인은 이러한 속성평가작업이 진행 중인 것에 대한 논평을 요구 받고 언급을 회피하였는데, “속성평가는 미국 정보기관들과 군부가 이 새로운 무기(화성-13호를 뜻함-옮긴이)에 대해 느끼는 우려의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하였다.  

위의 보도기사는 2013년 2월 12일 북이 열핵증폭분열탄을 폭발시킨 제3차 지하핵실험 직후에 나온 것이다.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의 작전기동을 보고 질겁하여 황급히 위협평가서를 작성하며 허겁지겁하던 미국군 지휘부는, 북이 전격적으로 실시한 열핵증폭분열탄 폭발시험으로 강타를 한 대 더 얻어맞았다. 
 
2013년 1월 초에서 2월 12일에 걸친 약 한 달 사이에 미국은 북의 화성-13호 작전기동과 열핵증폭분열탄 폭발시험이라는 연속강타를 얻어맞고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세계 유일의 제국주의초대국이 동방의 사회주의국가에게 연속강타를 얻어맞은 것이 너무 충격적이고 수치스러운 사건이었으므로 겉으로 짐짓 태연한 척하면서 B-52 장거리폭격기와 B-2 스텔스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으로 연속 출동시키는 군사행동으로 간신히 체면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내막을 알게 되면, 미국의 그런 군사행동이 체면유지에 지나지 않았고, 북미대결에서 승패는 이미 갈리고 있었음이 눈에 보인다. 각기 자국의 핵타격수단들을 전선에 출동시키면서 격렬하게 벌어진 북미대결에서 동방의 사회주의국가는 연속강타를 날리며 제국주의초대국에게 패배를 안겼고, 세계를 지배한다는 제국주의초대국은 체면을 유지하려는 군사대응행동에 매달리며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였다. 


북미격돌에 대비하여 핵무력동원태세에 돌입한 중국인민해방군

2013년 초부터 급속히 고조되기 시작한 북미격돌위험은 한반도만이 아니라 인접국인 중국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북미격돌위험을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방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부 및 남부 해안지대 전체가 미국군, 일본자위대, 한국군의 해공군력에 가로막힌 중국은 자국의 안보를 지키지 위해서 싫건 좋건 북과 전략적으로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있다. 중국인민해방군이 미일동맹군과 충돌하는 경우 중국과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맞서 싸울 나라는 북밖에 없다. 북미격돌위험이 급속히 고조되기 시작하였던 2013년 초에 중국은 위기감을 느끼며 아래와 같이 군사적 비상조치를 연속 취하고 있었다.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는 2013년 1월 14일 군기관지 <해방군보> 보도기사를 통해 “올해 군은 위기의식을 갖고 군사투쟁을 준비해야 하며 당중앙과 당중앙군사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언제든지 전쟁을 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해방군보> 2013년 1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쉬치량(許其亮) 부주석이 산둥반도 남부의 칭다오(靑島)항에 정박 중인 핵동력 추진 전략잠수함에 탑승하여 동행한 군부인사들에게 “구체적인 적을 가상한 실전훈련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오늘도 여전하지만, 2013년 1월부터 2월까지 기간에도 중국은 동중국해에 있는 댜오위다오의 영유권을 놓고 일본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으므로,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에서 중국 군부가 적으로 지목한 대상이 일본자위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북미격돌위험이 고조된 당시 상황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의 주적은 미국군이었다. 이를테면, 중국 군부의 공식 ‘웨이보(微博)’를 인용한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 2013년 2월 3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중국 공군이 “영어를 하는 제3적”과 맞서 싸우는 실전훈련을 실시하였는데, 그런 이례적인 실전훈련은 중국인민해방군이 미국군을 주적으로 여기었음을 말해준다. 요컨대 2013년 1월 중국인민해방군이 미국군을 주적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은, 당시 극도로 격화된 북미격돌위험과 직결된 것이었다. 

 
▲ 중국인민해방군의 미사일 둥펑16호     ©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북이 제3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고, 미국이 그에 반발하여 더욱 압박 강도를 높이기 시작한 2013년 2월 12일 중국은 마침내 핵무력동원태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방군보> 기사를 인용한 <명보(明報)> 2013년 2월 13일 보도와 <워싱턴자유횃불> 2013년 2월 27일 보도를 종합하면, 2013년 2월 12일부터 중국인민해방군은 저장(浙江)성과 푸젠(福建)성에서 유사시 핵탄두를 장착하는 둥펑(東風)-16 준중거리탄도미사일을 동원한 대규모 실전연습에 돌입하였는데, 특히 장병들이 군복을 입은 채 취침하면서 24시간 경계태세를 유지한 미사일부대는 강남군산(江南群山) 산악지대에서 동중국해를 향해 둥펑-16 준중거리탄도미사일 신속발사훈련을 실시하였다.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중국이 5축10륜 자행발사대에 탑재한 둥펑-16 준중거리탄도미사일을 저장성과 푸젠성에 전진배치하였을 뿐 아니라, 동중국해를 향해 실탄발사훈련까지 실시한 것은 오키나와 미국군기지를 조준한 핵무력동원태세를 갖춘 것이다.  

<중국신문망> 2013년 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중국인민해방군 소속 여단급 전략미사일부대는 심야에 중국의 군사거점이 핵공격을 받게 되는 긴급상황을 상정하여 미사일자행발사대를 비롯한 100여 대의 차량을 동원한 복구훈련과 반격훈련을 실시하였다. 

돌이켜보면, 2013년 1월 초부터 북, 미국, 중국은 각기 핵무력동원태세에 돌입하여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대처하고 있었다. 적대관계에 있는 핵강국들이 그처럼 숨이 막힐 듯한 핵무력대치상황 속에 있었건만, 군사상황에 관한 보도통제 때문에 국민들은 그런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지 못하였다. 국민들이 전쟁이 임박했다는 언론보도를 통해 위급한 상황을 파악한 뒤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징후를 미처 알지 못한 불의의 시각에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방사선형 갱도기지에 배치된 목성-3호의 순환식 기동발사능력

<워싱턴자유횃불> 2013년 2월 12일 보도기사에는 미국이 두려워하는 북의 핵무력에 관한 언급이 들어있다. 보도기사에 나온 명칭기술을 그대로 옮기면, 그 공포의 대상들은 “KN-08 ICBM”, “고정발사식 대포동-2호 ICBM”, 그리고 “무수단이라고 불리는 중거리 핵미사일”이다. 미국 군부를 공포에 몰아넣는 이 세 가지 핵타격수단을 북의 공식명칭으로 다시 적으면,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 수직갱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 목성-2호, 그리고 도로이동식 중거리미사일 화성-10호다. 

미국과 때로 협조하고 때로 갈등을 빚기도 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막강한 핵무력을 가졌지만, 미국은 그 두 나라의 핵무력에 대해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두 나라는 미국을 전쟁으로 패망시키려는 적대의식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오직 북만이 미국을 전쟁으로 패망시키려는 결심을 지녔기 때문에, 북의 핵무력은 미국을 공포에 몰아넣고 ‘제국의 망동’을 억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북의 핵무력에 대한 미국의 정보파악이 뜻밖에도 한심한 수준에 있다는 점이다. 이에 관해서 아래의 몇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북이 화성-13호를 탑재한 8축16륜 자행발사대를 군사행진에 등장시켜 세상에 처음 공개한 때가 2012년 4월 15일이었는데, 미국은 2013년 1월 초 화성-13호가 작전기동에 돌입한 것을 위성영상자료를 통해 보고 나서야 황급히 그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한 정보파악을 서두르며 야단법석이었다. 화성-13호를 탑재한 8축16륜 자행발사대가 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한 뒤에도 미국은 북이 화성-13호를 아직 실전배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오판하였기 때문에 화성-13호에 대한 정보파악에 게을렀던 것이다. 이러한 게으름과 오판은 미국의 대북군사정보가 얼마나 문제투성이인지 단적으로 말해준다. 

당시 미국군 합참의장이었던 마이크 멀린(Mike Mullen)은 2011년 1월 27일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와 대담하면서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하려면 앞으로 5∼10년이 걸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그가 그런 발언을 꺼내놓기 10여 년 전부터 북은 화성-13호를 비롯한 각종 핵무력을 실전배치하였다.

미국의 대북군사정보파악이 유독 화성-13호에 대해서만 그처럼 한심한 게 아니라, 미국 군부가 ‘KN-06’이라는 자의적 별칭으로 부르는 북의 지상대공중로케트 번개-5호에 대한 미국의 정보파악도 마찬가지다. <워싱턴자유횃불> 2013년 5월 2일 보도기사는 “미국 국방부가 북의 신형 4세대 지대공미사일(번개-5호를 뜻함-옮긴이)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데 거의 2년이나 걸렸다”고 말한 국제평가전략센터(IASC)의 군사전문가 리처드 피셔(Richard D. Fisher)의 지적을 인용하였다. 북은 2010년 10월 10일 군사행진을 통해 번개-5호를 세상에 처음 공개하였는데, 리처드 피셔의 지적에 따르면 미국은 세상에 공개된 번개-5호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데 2년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군사정보가 얼마나 한심한 수준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둘째, 북이 군사행진을 통해 각각 세상에 공개한 화성-13호나 번개-5호에 대한 미국의 정보파악이 그처럼 한심한 지경이므로, 북이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목성 계열의 수직갱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해서는 미국의 정보파악이 거의 무지한 수준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북은 미국이 ‘대포동-2호’라는 자의적 별칭으로 부르는 목성-2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이미 1990년대 중반에 실전배치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미국-러시아 공동위협평가회담-2009년 12월’이라는 제목의 비밀전문에 따르면, 당시 미국은 무게 500kg의 탄두를 장착한 ‘대포동-2호’(목성-2호)가 2단형 로켓으로 제작된 경우 사거리를 10,000km라고 평가하였으며, 3단형 로켓으로 제작된 경우에는 사거리를 15,000km로 평가하였다. 목성-2호나 화성-13호는 모두 3단형 로켓으로 제작된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이므로 그 두 미사일은 무게 500kg의 탄두를 장착하고 15,000km를 날아가는 강력한 미사일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북은 목성-2호보다 성능이 훨씬 더 향상된, 사거리가 15,000km이고 다탄두를 장착한 목성-3호를 실전배치하였는데, 미국은 북이 이제껏 단탄두를 장착한 목성-2호밖에 실전배치하지 못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목성-3호에 대해서는 2013년 10월 1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4대에 걸쳐 진보한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서 자세히 논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참조: 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3929

셋째, 위에 인용한 <워싱턴자유횃불> 2013년 2월 12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미국 관리들은 발사준비에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요구하는 대포동-2호(목성-2호이라는 뜻-옮긴이)가 선제공격에 취약하다고 여긴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런 지적은 북의 미사일기지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생긴 착오다. 이에 관해서 아래의 정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인민군 미사일부대 경비병으로 근무한 경력을 가진 탈북자가 2013년 3월 16일 서울의 대북방송에서 꺼내놓은 이야기에 따르면, 발사명령을 받은 인민군 미사일부대가 산화제를 주입하고 탄두를 조립하고 타격좌표를 맞추고 발사단추를 누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40분이라고 한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민군 미사일부대는 항상 자행발사대에 미사일을 탑재한 상태로 24시간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산화제 주입차량이 자행발사대 곁으로 가서 미사일 주입구에 호스를 연결하여 산화제를 주입하기만 하면 발사준비가 끝난다는 것이다. 

그는 발사 직전에 산화제를 주입하는 미사일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장기보관용 산화제(storable oxidant)를 항상 주입해두고 대기 중인 미사일도 있고, 고체연료를 내장하였기 때문에 산화제를 주입할 필요가 없는 미사일도 있다. 이런 신형 미사일의 경우 발사준비시간은 5∼8분으로 단축된다. 그러므로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화성-13호를 비롯한 각종 핵타격수단을 발사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5∼8분 정도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미사일발사를 준비하는 5∼8분 간의 작업마저도 갱도기지 안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미국군 정찰위성이 인민군의 미사일발사태세를 전혀 탐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전략미사일을 탑재한 자행발사대가 드나드는 갱도기지는 미국군 정찰위성이 탐지하기 힘든 험준한 산악지대에 건설되었고, 위장도로를 가짜 갱도입구까지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설령 미국군 정찰위성이 갱도기지로 통하는 도로를 발견했다고 해도 어느 것이 진짜 도로인지 알 수 없게 되어있다.  

정부 고위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중앙일보> 2013년 10월 10일 보도기사가 북의 수직갱발사기지에 관해 말해주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북은 량강도 삼지연군 북서쪽에 있는 해발고 2,171m의 소백산 산악지대에 수직갱발사기지를 건설하였는데, 2000년대 중반에 착공하여 2013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공사기간이 7∼8년이나 걸린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난공사일지라도 대체로 3∼4년이면 끝내는 인민군 공병부대의 건설속도로 봐서, 소백산 수직갱발사기지 건설공사가 7∼8년이나 걸린 것은 그 규모가 얼마나 방대하고, 그 시설능력이 얼마나 견고한지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위의 보도기사는 소백산에 완공된 수직갱발사대가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이라고 지적하였는데, 그것은 수직갱을 여러 군데 건설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수직갱발사기지 출입구를 여러 곳에 낸 거대한 갱도기지를 건설하였다는 뜻이다. 
 
<상해역보(上海譯報)> 선임편집자의 말을 인용한 중국 온라인 언론매체 <환구망(環球網)> 2013년 6월 6일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은 순환식 기동발사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공격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순환식 기동발사란 사방으로 통하는 출입구를 가진 방사선형 갱도망을 따라 자행발사대들이 여러 방향으로 재빨리 이동하면서 미사일을 연속 발사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정보를 읽어보면, 소백산에 완공된 수직갱발사기지에는 순환식 기동발사능력을 갖춘 목성-3호 대륙간탄도미사일 여러 기가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한 당시 미국군 합참부의장  제임스 카트라이트(James E. Cartwright)는 2009년 10월 1일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북에는 고정식 발사대가 고작 몇 대밖에 없기 때문에 대륙간탄도미사일 여러 기를 연속 발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은 북의 고정식 발사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발사되기 전에 선제타격으로 그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는 무지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위에 인용한 탈북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북에 건설된 미사일발사기지는 큰 산을 관통하는 갱도를 나뭇가지처럼 방사선형으로 뚫어놓았는데, 길이가 약 11km가 되는 장거리관통갱도 안에 미사일을 탑재한 자행발사대 17대, 보장차량 5대, 연료차량 등을 주차하듯이 들여놓았다고 한다. 여기서 5대의 보장차량이란 기중기탑재차량, 압축기탑재차량, 컴퓨터차량, 발전기탑재차량, 통신차량이다. 그러므로 북의 미사일갱도기지는 크게 구분하여 자행발사대 보관갱도, 보장차량 보관갱도, 연료차량 보관갱도 등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 북 대륙간탄도미사일 예상 궤도     © 자주민보, 한호석소장 제공


위에 인용한 <환구망>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직접 명령을 받는 9개 여단이 인민군 전략로케트군 산하에 편성되었는데, 인민군 전략로케트군 1개 여단은 5개 대대로 편성되었고, 1개 여단 중에 미사일 자행발사대를 배치한 대대는 3개 대대라고 한다. 나머지 2개 대대 가운데 1개 대대는 산화제 처리를 담당한 대대이고, 다른 1개 대대는 기지경비를 담당한 대대라고 한다. 위에 인용한 탈북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민군 전략로케트군 1개 대대마다 미사일 자행발사대가 3대씩 배치되었으므로,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실전배치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와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0호는 80기 이상으로 추산된다. 거기에 더하여 수직갱발사대에 배치된 목성 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알 길이 없다. 유사시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화성 계열과 목성 계열의 각종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일제히 발사하면,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1,500km 상공의 우주공간에까지 올라가는 그 미사일들은 지구를 감싸고 도는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초고속 돌진비행으로 낙하하여 여러 지상목표물들을 한꺼번에 타격함으로써 미국 본토를 불바다에 잠기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이런 심각한 사정을 거의 알지 못한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북이 보유한 핵탄두 수량을 최대 10기 정도라고 추정하였는데, 위에서 논한 내용을 살펴보면 북은 아무리 적게 추산해도 100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북의 핵무력동원태세는 반복되지 않는다

2014년 1월 16일 북측 국방위원회는 북측 정부, 정당, 단체들의 위임에 따라 남측 당국에 대결중지와 안전보장을 위한 중대제안을 전하였다. 그 중대제안은 아래와 같다.

첫째, 2014년 1월 30일부터 “서로를 자극하고 비방중상하는 모든 행위부터 전면중지하는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자”는 제안이다. 

둘째, “상대방에 대한 모든 군사적 적대행위를 전면중지하는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자”고 하면서, “2월 말부터 강행하려는 <키 리졸브>, <독수리>합동군사훈련부터 중단하는 정책적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였고, “특히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서해 5개섬 열점지역을 포함하여 지상, 해상, 공중에서 상대방을 자극하는 모든 행위를 전면중지할 때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여 제안”하였다. 

셋째, “이 땅에 초래할 핵재난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조치도 호상 취해나갈 것을 제안한다”고 하면서, “남조선당국이 더 이상 미국의 위험천만한 핵타격수단들을 남조선과 그 주변지역에 끌어들이는 무모한 행위에 매달리지 말 데 대하여 정중히 제안”하였다. 

북측 국방위원회가 언급한 세 가지 중대제안 가운데서 상호비방중상을 전면중지하자는 제1제안은 청와대가 생각만 바꾸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키 리졸브-독수리’ 한미합동전쟁연습을 중단하는 정책적 결단을 내려 군사적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자는 제2제안은 청와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미합동전쟁연습은 백악관의 단독결정으로 기획, 실시되는 것이고, 청와대는 그 결정과 요구에 따른 의무만 이행하는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핵타격수단들이 남측 지역과 그 주변에 출동하는 것도 역시 백악관의 단독결정에 따른 것이지, 청와대는 백악관에서 그런 결정이 언제 어떻게 내려지는지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 현실을 잘 알면서도 북은 백악관의 결정과 요구에 따른 의무만 이행해야 할 뿐 아니라, 백악관의 결정이 언제 어떻게 내려지는지 알지도 못하는 청와대에게 백악관의 결정을 거부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2제안과 제3제안은 그것을 실행할 권한이 없는 청와대에 전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실권을 행사하는 백악관에 전했어야 한다. 그런데 북은 그런 제안을 백악관에 전하지 않고 청와대에 전하였다. 북은 왜 그처럼 매우 이례적인 행동을 취하였을까?

백악관에 제안해야 할 것을 청와대에 제안한 것은, 북이 미국에게 어떤 제안도 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관계단절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서, 북은 미국을 더 이상 말로는 상대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북의 시각에서 보면, 정전협정 체결 이후 60년 동안 북은 대결중지와 안전보장을 위한 제안을 미국에게 수없이 전하였지만, 미국은 단 한 차례도 귀담아듣지 않았으며 되레 북을 핵무력으로 위협하며 격돌위험만 끊임없이 격화시켜온 것이다. 미국의 전쟁광신증을 60년 동안 겪어온 북이 이제 말로 미국을 상대하는 협상에 더 이상 무슨 미련을 두겠는가! 
북측 국방위원회의 중대조치 제안에서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이 제안의 실현을 위하여 우리는 실천적인 행동을 먼저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명시한 대목이다. 북이 대결중지와 안전보장을 위해 먼저 실천행동을 취하겠다는 뜻이다. 북이 말한 실천행동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한국군 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문화일보> 2014년 1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2014년 1월 현재 인민군은 수백명이 참가한 중대급, 대대급 규모의 동계군사훈련을 진행하는 중인데, 2월에는 수천명이 참가한 연대급, 사단급 규모로 확대하고, 3월에는 수만명이 참가한 군단급, 국가급 규모로 확대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을 살펴보면, 북이 대결중지와 안전보장을 위해 먼저 실천행동을 취하겠다는 말은 다음달인 2014년 2월에 실시하기로 예정된 연대급, 사단급 규모의 동계군사훈련을 중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북이 2014년 2월에 실시하기로 예정된 동계군사훈련을 중지하는 경우, 미국은 2월 말에 실시하기로 예정된 ‘키 리졸브-독수리’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는 상응한 신뢰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미국은 대결중지와 안전보장을 위해 동계군사훈련을 중지한 북의 성의를 이번에도 무시할 것이며, ‘키 리졸브-독수리’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예정된 일정에 따라 강행할 것이다. 북측 국방위원회가 중대제안을 발표한 때로부터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은 2014년 1월 16일 오전 백악관 대변인은 취재기자들에게 미국은 ‘키 리졸브-독수리’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발언하였다.

북이 중대제안에 따라 자기의 동계군사훈련 전면중지를 먼저 실행하겠다는 성의를 보였는데도 지금 미국과 남측은 그 성의를 ‘무력도발을 노리는 위장된 평화공세’라고 비난하며 대북전쟁연습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그럴 경우 북은 마지막 선택이 무력 충돌밖에 없다고 판단할 심각한 우려가 있다. 2013년 1월과 2월에 조성된 북미격돌위험을 상기하면, 북의 무력사용은 핵무력사용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해석의 맥락을 파악하면, 2014년 1월 하순 현재 북미격돌위험은 2013년 1월보다 훨씬 더 위태로운 지경으로 고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격돌위험이 고조된 가운데 적대세력과 맞서는 군사행동에서 반복은 곧 패배에 직결될 것이므로, 북은 2013년 1월과 2월에 있었던 핵무력동원태세 압박전술을 올해에 그대로 반복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북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핵무력동원태세 압박전술을 또 다시 반복하려는 게 아니라, 불의의 핵무력사용으로 ‘최후 결전’을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사실 한반도는 북미 사이에 휴전 즉 전쟁을 잠시 쉬고 있는 정전협정 상태에 처해 있다. 그리고 실제 서해 5도지역에서는 분계선마저 획정되지 않아 수시로 무력 충돌이 벌어져왔으며 기어이 서로의 영토에 포탄을 수백, 수천 발씩 주고  받아 섬들이 초토화되는 국지전 상황까지 벌어졌다.
한반도는 지금 전쟁 중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올 들어 북과 미국, 남과 북 사이에 새해벽두부터 전에 없던 엄중한 경고들이 오가고 있다. 

부디 이 사태의 심각성을 온 민족이 깨닫아 전쟁을 막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민족의 숙원인 평화적 통일을 조금이라도 빨리 앞당기기 위해 모두 다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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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은 '농민 전쟁' 아닌 '유학 혁명'이다!

[동아시아를 묻다] 2014 : 갑오년 역사 논쟁

이병한 동아시아 연구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1.20 08:22:41

 

 

 

 

 

 

좌(Left)와 우(Right)

새해 벽두부터 역사 논쟁이 뜨겁다. 교학사 교과서가 불을 지폈고, <뉴욕타임스>의 사설은 기름을 얹었다. 퇴행적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미진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 새 교과서가 엉터리라 해서 기존의 교과서가 안고 있는 허물을 덮지는 못한다. 양쪽이 다투는 역사 인식의 기저, 좌·우라는 잣대부터 미덥지 못하다.

우파를 개발파라고 한다면, 좌파는 개혁파라 할 수 있다. 전자는 경제적 근대화(자본주의)를 추앙하고, 후자는 정치적 근대화(민주주의)를 옹호한다. 개발파가 시장 만능주의에 빠졌다면, 개혁파 또한 민주 만능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닮은 구석이 없지 않다. 전자는 경제 발전에 우월감을 누리고, 후자는 민주주의 성취에 자부심을 갖는다. 양쪽 모두 개화파의 적자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120년 전, 갑오경장은 개화의 출발이었다. 개화파가 공유하는 불문율이 있다. TINA(There is No Alternative)이다. '대안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구를, 일본을, 미국을 따랐다. 특히 대안은 이 땅에 없다고 했다. 이 땅의 역사와 문명에는 대안이 없었다. 그래서 줄기차게 '쇼크 독트린'을 도입했다.

그 이면으로 자기 폄하와 자기 부정도 드셌다. 개화파를 우로 심화시킨 개발파나, 좌로 계승한 개혁파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파가 일본과 미국을 섬기는 만큼이나, 좌파 또한 동구와 서구를 흠모했다. 최근에는 북구로 바뀌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동방 문명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 오리엔탈리즘 못지않다.

갑오년에 값하는, 그에 걸맞은 역사 논쟁을 해야겠다. 작금 한국의 위기와 혼란은 국지적인 것이 아니다. 세계적이고, 지구적이다. 갑오경장 이래 개화 100년의 결과이며, 개화를 강요했던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결국(結局)이다. 마침내 1894년 개시되었던 '장기 20세기'의 결말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야말로 지난 세기 금과옥조처럼 배우고 외웠던 언어와 개념과 발상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100년의 개화에 대한 총체적 재평가도 수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고(古)'를 '구(舊)'로 타박하고, '금(今)'을 '신(新)'으로 대신했던 100년의 습속부터 바로 잡아야 하겠다. 다시금 관건은 정명(正名)이다. 좌·우는 부차적이다.

신(新)과 구(舊)

갑오경장은 획기적이었다. 말이 크게 바뀌었다. 사람의 도리(道理)보다는 개인의 권리(權利)가 중요했다. 예치는 법치로 바뀌었다. 언어적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점차 국문이 한문을 밀어냈다. 국문은 모름지기 개화파의 언어였다. 허나 조선의 언문을 계승하기보다는 번역과 중계에 급급했다. 그만큼 일본풍이 여실했다. 나랏말의 비애이다. 조선의 망국과도 무관치 않다.

1890년대의 신조어 중에 '사대주의'가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와 그 문하생들이 갑신정변에 관여한 일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고안한 말이다. 일본을 추수했던 개화파들을 '독립당'이라 치켜세우고, 그 맞은편은 '사대당'이라 업신여겼다. 본래의 맥락을 거세하여 '사대'를 곡해하고, '독립'이 최고의 덕목인양 일방으로 편들었다.

그러나 당시를 기록한 <매천야록>을 살펴봐도 '독립'이 지상 과제는 아니었다. '독립'이 절실했던 것은 1910년 국권을 잃은 이후라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그래서 3월 1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것이다. 비로소 '독립'이라는 개념에 뼈와 살이 붙었다.

'사대주의'에 버금가는 신조어로 '중화주의'도 있다. 사대주의가 청일 전쟁을 전후해서 등장했다면, 중화주의는 중일 전쟁을 전후로 보급되었다. 전자가 조선에 책임을 전가했다면, 후자는 중국의 저항을 겨냥했다. 만사, 조선의 사대주의가 악습이고 중국의 중화주의가 병통이라 했다. 그렇게 일본의 동양학은 천하대란을 촉발하는 새 언어와 신개념들을 널리 유통하고 전파시켰다. '지(知)의 제국'이었던 것이다. 그럴수록 동아시아는 안녕하지도, 태평하지도 못했다.

고·금을 신·구로 전도시킨 책임을 일본에만 떠넘기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겠다. 고종도 떳떳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을 일으킨 그는 '구본신참(舊本新參)'을 내세웠다. 옛 것을 기본으로 하여, 새 것도 보태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러하지 못했다. 황제권 강화를 위하여 편의적으로 신과 구를 활용했을 뿐이다.

국가보다는 자신이 우선이었다. '짐이 곧 국가'였다. 군주를 이념으로 규율했던 유교 국가의 이상은 무너지고, 유럽식 절대왕정이 들어섰다. 옛 것은 옛 것대로 굴절되었고, 새 것은 새 것대로 뒤틀리고 말았다. 그래서 대한제국은 옛 기준으로 봐서도 미흡하고, 새 기준으로 평가해도 부족한 국가였다. 내발적 요구에 즉응한 개혁이기보다는 흉내 내기, 따라잡기(Catch Up)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개화가 500년 조선의 전통과 결합하지 못함으로써 국정의 혼란을 야기하고 국가의 위기를 가중시켰다. 결국 대한제국은 단명했다. 조선에 견주자면 턱없이 모자란 국가였다. 그럼에도 근대화를 추진했다며 고종을 높이려는 일각의 움직임이 나로서는 참으로 황당하다.

고(古)와 금(今)

고·금은 신·구처럼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금은 고의 누적이며, 금은 또 고가 되어간다. 옛 것은 한 때의 새 것이며, 오늘의 새 것은 훗날 옛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고에 비추어 금을 반추할 수 있었고, 당장에 고착되지 않는 정신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소중한 시간 감각이며, 귀중한 역사의식이다. 물론 이 고·금의 잣대를 동방인들의 고유한 마음이라 편애할 뜻은 없다. 아니 역설적으로 유럽이야말로 고전적인 듯 보이기도 한다.

나는 유럽에서 살아보지는 못했다. 학창 시절 배낭여행이 고작이고, 런던 생활 두 달이 최장기 체류이다. 하지만 유럽이 보유한 경쟁력의 원천을 '좌우 합작'에서만 구하는 것은 피상적 관찰이라고 여긴다. 유럽이 유럽인 것은 그 '클래식'함에 있다. 기품과 격조가 있다.

역시나 '고'의 자취 탓이다. 전통이 살아있고, 옛 것을 간직하고 있다. 식민화를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실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즉 유럽풍 매력의 바탕에는 고금의 합작이 자리한다. 좌·우가 공생할 수 있는 기저에 고·금의 조화가 떠받치고 있다.

유럽이 미국보다 나은 점도 이와 무관치 않아 뵌다. 미국은 온통 새 것 뿐이다. 새 것의 질주를 조율할 역사의 중력이 없다. 말 그대로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이다. 그러나 신세계의 용맹스런 독주는 치명적이다. 어질기보다는 거칠다. 혈기와 패기가 지나치다. 성숙보다는 성장 지향적이다. 지난 100년 미국이 부렸던 패도 또한 고전 문명의 결여와 깊이 결부되어 있을 것이다. 오래된 것을 배려하지 못하고, 옛 것을 존중하지 못한다. 독선적이며 독단적이다. 고약한 마음씨다.

돌아보면 갑오경장 이후 옛 것은 몽땅 사라지고, 새 것만 득세했던 것은 아니다. 동방 문명 1000년과 조선 왕조 500년의 척추에 기초한 '진화'의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적지 않았다. 과거제의 폐지는 과거제의 문호를 대폭 확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출신의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오로지 학교에 몸담은 것을 기준으로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일신하고자 했다. 전통적 경학의 기반 위에서 새로이 요구되는 시무(時務) 능력도 갖추고자 했다. 온고지신의 명맥이 이어졌던 것이다. 동과 서, 고와 금은 상부상조, 윈윈(Win-Win)할 수 있었다. 자기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자기 혁신을 수행하는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이 가능했다.

이 창조적 가능성이 꺾이고 만 결정적 계기는 역시 식민지화이다. 이로써 신이 구를 압도해 버렸다. 더군다나 일본은 동방 문명의 정수를 실천해본 경험이 미천한 나라였다. 인문학의 훈련을 통해 자기 구원에 이르는 지식 기반 국가의 이상을 알지 못한다. 그럼으로써 유교 문명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왜곡되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한 채, 불시에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노니는 '식민지 근대'로 내던져진 것이다. 불행히도 그 식민지적 기질은 대한민국과 북조선으로 이어졌다. 북과 남은 '반(反)봉건'으로 하나 되어, 식민사관을 답습했다. 좌·우가 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소)분단 체제든, 동아시아의 (대)분단 체제든, 20세기가 조탁한 분단 체제의 최종 심급에는 고·금 간의 아찔한 절벽이 자리한다. '자기 소외'야말로 한반도·동아시아 분단 체제의 핵심 요체이다. 따라서 분단 체제를 극복하는 집합적 운동의 최대 강령 또한 고·금 합작에 두어야 할 것이다. 전환 시대가 좌·우의 날개로 날았다면, 반전 시대는 고·금의 날개로 비상한다. 본디 '根本'으로 돌아가는 것이 동방형 혁명의 본령이다.
 

동(東)과 서(西)

고금합작의 단서는 다시 갑오년에 있다. '동학(東學)'이 일어났다. 나는 개화기의 새 말들 가운데 '동학'을 으뜸으로 친다. 가장 창조적인 신조어이다. 다만 농민 전쟁과 동학 운동은 분별할 필요가 있다. 동학 운동은 계급투쟁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학습 운동'이다. 그 학습의 범위가 농민들까지 확산되었던 것이다.

즉, '학이시습지…'로 출발하여 배우고 익힘을 최상의 기쁨으로 여겼던 동방 문명의 하방으로 동학이 개창한 것이다. 그래서 동학 조직은 학습 네트워크이기도 했다. 조선의 전복을 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조선을 동방의 이상에 한층 부합하는 국가로 혁신하는 운동이었지, 조선을 부정하는 운동은 아니었던 것이다.

즉, 신유학으로 출발한 조선의 끝에서 유학 국가는 민주화, 민중화되고 있었다. 유학이 사대부의 전유물이었다면, 그 계급적 교양을 전민 교육으로 보편화시킨 것이 동학이다. 사람이 하늘이고, 인성에 천성이 담겨 있다 하셨다. 그래서 농과 공과 상도 사와 대등할 수 있었다. 신분제의 철폐 또한 도둑처럼 온 것이 아니다. 서학의 수용 탓만도 아니다. 신유학의 장기 지속적인 '문명화 과정'의 결실이라 해야 온당하다. 동학은 모두가 선비가 될 수 있는 나라,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는 국가를 염원했다. 유학의 혁명이자, 혁명적 유학이었다.

그래서 동학은 평지돌출이 아니다. 구(舊)와 척을 지는 신(新)이 아니었다. 고(古)의 누적이자 집대성으로 금(今)이 발현한 것이다. 멀게는 요순 시대로 거슬러 오르고, 가까이로는 18세기 영·정조의 '개명(開明)' 정책의 유산이다. 개명 아래 일정하게 성장하고 있었던 민중 세력은 발랄한 시민 문학을 선보였다.

향촌 사회를 이끌었던 농촌 지식인이 동학의 주축을 이루었다. 18세기의 개명이 19세기의 서세동점으로 개화파의 서학과 개벽파의 동학으로 분화했던 것이다. 개화파가 유학의 타파와 조선의 전복을 꾀했다면, 고종은 절대왕정의 이데올로기로 유학을 왜곡시켰고, 개벽파는 유학의 민중화를 통한 조선의 갱신을 도모했다. 유학을 고집하는 척사파와 서학을 맹종하는 개화파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내재적 민주화'의 맹아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가지 못한 길'이다.

2014년, 새 경장이 필요하다. 소학(小學)은 무너졌다.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대학(大學)은 시시해졌다. 치국과 평천하를 배우지 않는다. 민도는 민도대로 떨어지고, 자질과 자격을 갖춘 지도자도 키우지 못한다. 군자가 사라지자, 소인천하가 도래했다. 대중 사회라고도 한다.

소인들이 1인 1표제와 접속하자 정치는 저열해졌다. 권력만 남고, 권위는 사라졌다. 삿된 권리 추구(私)가 공공성(公)을 잠식해버렸다. 그래서 한 원로 정치학자의 일갈처럼,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질적으로 나빠졌다." 그리고 스노비즘이 창궐한다. 허나 이 속물 근성이 비단 '97년 체제'만의 산물은 아니지 싶다. 줏대 없는 개화 100년의 누적이고 축적이다. 이광수는 이미 <무정>에서 그 원형을 탁월하게 조형했던 바 있다. 영어교사 이형식은 고(古)와 단절된 신청년의 표상이자 속물의 원조였다. 그 후예들이 소학과 대학을 접수하고 만 것이다. 동학은 100년간 고독했다.

20세기가 좌우 합작이라면, 21세기는 고금 합작이다. 새 말로는 하이브리드(Hybrid)이고, 옛 말로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서학을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유학의 민주화를 꾀했던 동학을 모시는 마음으로 되새기는 까닭이다. 2014년, 부디 원기(元氣)를 배양하고 근기(根氣)를 회복하는 갑오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병한 동아시아 연구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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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유신정권과 2014년 대한민국

노조 고사 시키기, 진보정당 탄압 그때와 닮아있어
 
육근성 | 2014-01-20 12:11: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한민국의 70년대. 유신의 광풍으로 시작된다. 김대중 후보를 가까스로 누르고 3선에 성공한 박정희는 1972년 10월 국회 해산과 정당의 정치활동을 중지시키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

전태일과 유신, 70년대를 연 두 사건

계엄령으로 꼭꼭 묶어 놓은 뒤 일본 메이지 유신과 소와 유신에서 그 이름을 따온 유신 헌법을 공포했다. 국회의원 1/3과 모든 법관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도록 했고, 대통령은 임기 6년에 횟수 제한 없이 연임이 가능하게 됐다.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어용기구에서 대통령을 뽑았다. 국민으로부터 대통령 투표권까지 박탈한 것이다. 국가의 모든 권력이 박정희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종신총통제’가 시작됐다. 이 유신독재헌법에 의해 박정희는 1972년 12월 대통령에 선출된다. 물론 경쟁이 없는 단독 입후보였다. 

70년대를 연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노동 운동에 불을 집힌 ‘전태일 열사 사건’이 그것이다. 청계천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수탈을 고발하며 1970년 10월 분신을 택한 전태일. 그로 인해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됐고, 이 땅의 노동운동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노동자들의 민주화 투쟁

유신독재정권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는 노동운동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독재권력자를 향한 터럭만한 불충과 불경도 용납하지 않았던 ‘유신정권’은 노동운동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짓밟았다. 

그래도 ‘공돌이’와 ‘공순이’로 불리는 이 땅의 노동자들은 유신독재에 분연히 맞섰다. 민주화 투쟁을 이어가는 큰 축이었다. 고된 산업화 과정을 맨몸으로 끌어안으며 독재정권에 항거한 노동자들. 그들이 민주화의 주역이었다. 

1979년 포악이 극에 달했던 유신정원은 김영삼 야당 총재의 권한을 정지시키고 국회에서 제명시켰다. 노동자들도 광포한 독재권력자에 두려움 없이 맞섰다. 1979년 8월 YH 여성노동자들의 외침은 김경숙씨 사망으로 절정에 이른다. 

야당과 노동자 탄압하던 유신정권의 말로

종신총통제을 꿈꾸던 박정희에게도 끝이 찾아왔다. 이 포악한 탄압이 있은 직후 그토록 강고해 보이던 유신정이 마침내 고꾸라진다. 1979년 10월 중정부장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가 사살된다. 김재규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말했다. 

유신정권의 생물학적, 정신적 계승자인 박근혜 대통령. 70년대 그 때 상황을 재연하려나 보다. 아버지 박정희가 고문과 매질로 노동자를 탄압했지만 그의 딸은 손해배상 청구라는 방법으로 노조를 고사시키려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법원은 쌍용차 노조에 대해 46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철탑 농성 중인 유성기업 노조에 대해서는 12억4000만원을 물어내라고 판결했다. 부산지법도 지난 17일 “한진중공업 파업은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회사에 59억59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손해배상 청구, 새로운 노조 탄압 수단

코레일은 장기간 파업으로 152억원에 이르는 영업손실을 봤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청구액은 더 커질 전망이다. 코레일 스스로 감수해야 할 몫까지 노조에게 책임을 물리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금이 없는 비규직 노조의 경우 소송비용조차 감당할 방법이 없어 변호사 선임에도 애를 먹고 있다. 노조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금전적인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방법으로 노조를 고사시키겠다는 게 박근혜 정부의 전략이다. 

 

항소를 하려고 해도 수천만원에 달하는 인지대와 송달료가 없어 십시일반 모으거나 심지어는 좌판을 열어 물건을 팔아 충당하기도 한다. ‘9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울산 현대차 노조는 양말과 보온물통을 팔아 이 수입금으로 소송비용을 마련하고 있다. 

유신 때와 탄압 방법은 다르지만 그 목적은 같다. 손배 청구를 통한 ‘노조 고사시키기’로 바뀌었을 뿐, 노조의 손발을 묶으려는 의도는 동일하다.

1979년 유정회와 2014년 새누리당 ‘닮은꼴’

지금 새누리당은 1979년 박정희의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던 ‘유신정우회’와 닮아있다. 역할이 고작 청와대의 거수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신 말기 상황과도 비슷한 구석이 많다. 원내 의석을 가진 정당에 대해 해산 청구를 하고, 대통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야당의원들의 제명을 추진하기도 했다.

야당과 노조를 탄압했던 유신독재 정권.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되더니 야당과 노조를 향해 으름장을 놓는다. 70년대 유신정권과 2014년 박근혜 정권, 둘은 참 많이 닮아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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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양보 요구에 '시민' 내세운 박원순

지방선거 앞두고 박원순-안철수 신경전 시작?

14.01.20 09:50l최종 업데이트 14.01.20 11:4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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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서울시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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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20일 오전 11시 40분]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20일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에게 야권단일후보를 양보 받겠다고 밝힌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백번이라도 양보해야 한다"며 전제 조건을 내세워 반박했다. 이를 두고 신당 창당설이 나오는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 소속인 박원순 시장과의 신경전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안 의원은 이날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포함해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후보를)전부 낸다는 입장"이라며 "이번에는 (서울시장 후보직을)양보 받을 차례 아니냐"며 "정치도의적으로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안 의원은 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역할을 했다"며 "여전히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해 출마 여지를 남겼다. '본인이 직접 선거에 출마하느냐'는 질문에는 "가능성 없다"고 부인했다. 

안 의원은 지난 2011년 10월에 진행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후보직을 양보한 바 있다. 또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야권단일 후보를 양보했다. 

"시정에 몰두하겠다"며 확답 피한 박원순 시장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이날 오전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시민들에게 도움 되는 일이라면 백번이라도 양보해야 된다"며 "기존 정치적인 시각과는 다른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단일화 가능성에 '시민'이라는 전제 조건을 내세우며 안 의원의 요구에 반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시장은 "언론이 (안철수 의원과) 이간을 시키려고 여러 노력을 많이 한다"며 "기본적으로 안 의원이나 저는 정치권에서 보는 시각하고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 안 의원이 (시장후보직을) 양보할 때도 기존 정치 문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며 "사람들이 그걸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저에게 새로운 정치를 해달라고 기대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구체적인 양보 조건에 대해 "그런 것은 자세히 따질 줄 모른다"며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있다'고 한 것처럼 저도 남은 5개월간 시정을 보살피는 일에 몰두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또 안 의원과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지 않나"라며 "정치라는 게 여러 가지 변화가 있고 마음대로 하기 힘든 일이 많다"고 답했다. 

그는 안 의원과의 만남에 대해 "아직 날이 잡히지 않았다"며 "만날려고 하면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안 의원과의 관계가 멀어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안 의원과는 좋은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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