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올라가던' 한국은 끝났다…월세방-대출 지옥에서 '청춘'은?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윤형·박해천의 '아파트 키드의 생애'

안은별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12 오후 7:00:33

 

지난 7월 2일 저녁 정독도서관 시청각실, 한 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처음으로 나온 질문은 "'막내'라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담스럽지는 않은가"였다. 여기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이 강연은 지난 4월 출간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한윤형 지음, 어크로스 펴냄)의 내용을 토대로 기획된 세 번의 대담 형식의 강연 중 마지막 시간이었고, 저자 한윤형(<미디어스> 기자)과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콘크리트 유토피아>(자음과모음 펴냄) 저자)이 대담자로 나섰다.
 

▲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한윤형 지음, 어크로스 펴냄). ⓒ어크로스

'83년생, 01학번'인 한윤형은 안티조선 운동의 전사로 활약한 10대 시절부터 다양한 매체에서 '20대 논객' 중 한 명으로 호명된 2008년 전후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자신이 속한 세계의 '막내'였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후배의 실종'이라는 글에서 그는 "대학에 들어왔을 때 대학의 운동권 조직, 소위 학정조(학생정치조직)는 완만하지만 뚜렷이 붕괴하고 있었"으며 그가 선택한 인터넷 기반 단체나 진보정당에서도 오랜 기간 후배를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가 현재 글을 쓰는 정치평론의 장(場)에서도 대체로 그러하며, 이번 3번의 강연회에서도 함께 한 사람들은 모두 90년대 학번 선배 세대였다. (1회 <88만원 세대>(레디앙 펴냄)·<소수의견>(자음과모음 펴냄) 저자 박권일, 2회 경제평론가 이원재)

청년층의 정치적 관심이 소멸해 간 2000년대가 고스란히 읽히는 '후배의 실종'에서는 그가 속한 세대의 '앞으로'에 대한 고민도 드러난다. "어디로 가야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청년 좌파의 우울증을 목격하며 그는 "드디어 '영원한 막내'를 벗어나 '선배' 역할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청년 담론이 유행하던 시기, 청년 세대 입장에 입각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그이지만 그 결과물을 엮은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사회 어디쯤의 나'를 고민하기 시작한 후배들에 대한 사려 깊은 편지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해석하면 이 책의 주요 수신자가 될 이들-200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냈거나 입학해서 현재 보내고 있는 저자의 또래 혹은 후배-에게, 앞으로 펼쳐질 세상은 녹록치 않다. 고도 성장기나 고도 성장기의 '관성'이 유지되었던 시점까지 찾아왔던 기회, 가질 수 있었던 꿈, 걸 수 있었던 기대, 실현 가능했던 삶의 모습이 거의 다 사라질 거라 보아도 무방하다는 게 강연 파트너를 맡은 박해천의 조언이다. 이른바 '청년 문제'라 불렸던 실업, 등록금, 주거 문제는 그들이 일으켰기 때문에 '청년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켜켜이 쌓인 모순이 그들 앞에 무성의하게 '던져져' 있기 때문에 진정한 '청년 문제'가 된다. '세대론'의 쓰임새가 재발견된다면 아마 그 복잡한 매듭 앞에서일 것이다.

"청년 세대의 문제는 그들이 가장 힘든 세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한국의 사회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表層)이기에 문제가 된다. 등록금 문제와 청년 실업 문제는 그들만이 아니라 그들 부모 세대의 고난이다. 또한 청년 세대는 자신의 미래가 위에 언급한 노년 세대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7쪽)

그렇다면 그들은 왜 실제로도 힘들며, 한국 사회 문제를 드러내는 표층이 되고 만 걸까? 그들을 둘러싼 시대, 그들을 만든 역사는 무엇인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다른 세대의 손길은 도움이 될 만할까, 아니면 뭔가 어긋나 있을까? '아파트 키드의 생애'라 이름 붙은 한윤형과 박해천의 강연은 이 물음들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준다. '프레시안 books'는 저자 한윤형이 속한 세대의 현실을 날실로,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이 천착해 온 한국 중산계급의 주거문화 역사를 씨실로 엮어 전개된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내려가는 사회'
 

▲ 한윤형(<미디어스> 기자). ⓒ프레시안(최형락)

한윤형 : 이번 책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저나 제 밑 세대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데요. 3회로 기획된 강연에서는 모두 386 세대보다는 어리고 저보다는 선배인 90년대 (초중반) 학번이신 분들과 함께 했습니다. 이런 상황도 한국 사회의 담론 지형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요. 사실 90년대 학번 선배들은 공부를 참 많이 했어요.

지금은 대학원 진학이 마치 취직에 실패한 다음의 선택지로 여겨지는 감이 있지만, 10년 전인 90년대 학번 세대만 해도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를 계속해도 되는 상황, 공부해도 나중에 먹고 살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거든요. 어쨌든 저는 한국사회를 해석하기 위한 이론들을 다방면으로 공부한 세대가 90년대 학번들이라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론 이들이 정치평론 등에 분야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감도 있습니다.

오늘 주제는 청년 세대와 부동산 문제입니다. 박해천 선생은 아파트를 둘러싼 가상의 인물과 사물의 시선을 통해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명저를 쓰셨고, 한겨레에서 출간하는 월간지 <나-들>에 '아파트 키드의 생애'라는 꼭지를 기획했습니다. 이 꼭지에서는 제 또래들이 아파트 흥망사를 수기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어요. 그래서 박해천 선생을 만나면 저희 아버지 부동산 투기 성패 이야기를 해드려야 할 것만 같아요.
(웃음) 어쨌든 청년 세대와 부동산 문제를 엮어서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박해천 :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재미있게 읽었어요. 한윤형 씨야 워낙 글을 술술 읽히게끔 잘 쓰는 분이니까요.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1부였습니다. 1부의 글들엔 동세대들이 갖고 있는 감수성의 정곡을 살짝살짝 만져주는 부분들이 있어요. 특히 대구 사람인 자신의 아버지를 <대부>의 시실리 마피아 패밀리에 비유한 꼭지('그 남자와 그 가족')의 경우엔, 이것만 가지고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겠다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 글이 이 책의 지렛대 역할을 해 준 게 아닌가 싶고, 개인적으로도 잘 이해할 수 없었던 대구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한편 이제 갓 서른을 넘겼는데 자기 개인사를 너무 드러낸 것 아닌가, 득도 있겠지만 길게 보면 위험한 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치 록스타처럼 30대 이른 나이에 베스트앨범 내고 자신의 생을 반추하며 회고록을 낸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웃음)

한윤형 : 블로그에 썼던 글을 대폭 손봐서 쓴 게 1부입니다. 30대 초반에 인생을 반추해도 되느냐는 지적에, 반박은 아니지만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응답하라 1997> 같은 드라마의 성공을 보면, (이 추억을 향유하는 세대가) 불과 30대의 나이에 자신들의 10대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저는 이들이 굉장히 이른 시기에 자신의 전성기 지나버렸음을 직관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거든요.

"부모 세대는 폐허와 공허를 물려받고 죽음에 직면할 정도의 고생은 했어도 '이 시대도 내 삶도 올라가는 느낌' 속에서 살아왔다. 반면 우리는 상승한 부모와 삼촌 세대의 축적된 부를 통해 소비 취향과 자의식을 물려받고 집중적으로 교육 투자를 받았지만 '이 시대도 내 삶도 내려가는 느낌' 속에서 살아왔으며, 살아가야 한다." (8쪽)

제가 책에서 쓴 '내려가는 사회'라는 표현이 이런 자의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박해천 선생이 천착하시는 아파트, 부동산 문제와도 포개지는 부분이 있을 것 같고요. 사회학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이 '내려가는 사회'라는 수사가,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설명할 때 가지는 함의도 있지 않을까요?

박해천 : '내려가는 사회'라는 표현에 동의합니다. 부동산뿐만이 아니라 경제 전반이 그래요. 돌이켜 보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1971년생인 제가 20대였던 90년대~2000년대 초반이 마지막 불꽃같은 시기였던 것 같아요.

한국은 1967년부터 고도성장을 해 왔는데 그 '올라가던' 그래프가 내리막에 이르는 첫 번째 지점이 1997년의 IMF 외환위기 사태였어요. 그런데 거기까지 약 30년간 오르막을 올라왔기 때문에 1997년 이후부터 2007년까지 대략 10년간은 고도성장의 관성력이 작용해서 그 힘으로 버텼었던 것 같아요. 이후로 지금까지는 끈 떨어진 채 빠른 속도로 내리막길을 굴러 떨어지려고 있는데 뭔가 어거지로,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2007년 대선 이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시기부터 고도성장기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시절이 펼쳐진 것 같고, 2012년 대선 이후, 그러니까 이제 막 펼쳐진 박근혜 정권 하에서는 그것을 본격적으로 체험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내려감'을 특히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것이 바로 아파트인 거고요. 그래서 하우스 푸어라든가 20대 주거 같은 문제들이 지면 위로 하나둘 드러났었죠.


"부모님 세대는 사회 내에서 자신의 계층이 상승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 자체가 상승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었다. 사회는 올라가는 중이었다. 아이를 낳아야 한단 사실에 의문을 품은 바도 없지만,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의 삶이 나보다 더 나을 거란 것도 그들에겐 명약관화한 진실이었다. (…) 하지만 이 세대가 세계에 대해 가지는 '느낌'은 그와는 정반대다. (…) 친구 하나는 그랬다. "내가 불행한 것도 문제지만, 아이를 이런 세상에 낳기는 싫다"고. 옳든 그르든 지금 세대가 세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이렇다." (133~134쪽)

'아파트 키드' 제2세대

한윤형 : 20~30대 필자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주거사를 이야기하는 '아파트 키드의 생애'라는 제목의 연재물이 월간지 <나-들>에 연재되고 있죠. 이 기획의 원안자로 알고 있어요. '아파트 키드'가 정확하게 어떤 세대를 지칭하는지,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함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해천 :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열쇠소년'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고 아파트에 살아서, 목에다 열쇠를 걸고 등교해서 하교하면 제 손으로 열쇠를 따고 들어가는 애들을 가리켰죠. '아파트 키드'란 개념은 이런 소년들의 이미지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어요.
 

▲ 박해천(디자인 연구자, 홍익대학교 강사). ⓒ프레시안(최형락)

40년대생 부모들(상당수가 지방의 명문 고교를 나와 서울에서 대학 교육을 받고 경제 성장과 더불어 회사에서 승진을 계속하다가 강남에서 집을 마련하게 되는)이 70년대 중반~80년대 초·중반에 강남에 입성해 신 중산층이라 불리는 계층으로 성장하면서, 그 자녀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성격의 문화적 경험을 시작하게 됩니다. 몇 가지를 들자면 일단 18~32평형의 아파트, 4인 핵가족이라는 새로운 형태 속에서 자라나고, 조부모의 영향을 이전에 비해 확연히 적게 받습니다. 또한 부모가 한국에서 미국식 교육을 받은 첫 세대이고 신 중산층이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투자를 굉장히 많이 해요. 따라서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같은 소년 잡지, RC카 같은 완구 등 '어린이 시장'이 굉장한 속도로 팽창합니다.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었던 건 인구학적으로도 1968년~74년이 제2차 베이비붐 시대이기도 했거든요. 그 중에 1970년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출생 인구수를 보인 해이기도 했구요.

이 과정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과외 금지령입니다. 이때 자라난 세대는 그 혜택도 많이 받았어요. 사교육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이들의 부모, 즉 40년대생 세대는 중산층 이상의 경우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조건이 그 이후의 50년대생들보다 더 나았다고 할 수 있지요. 말하자면 자녀를 90년대에 대학 보내신 분들과 2000년대에 보내신 분들의 사교육의 비중이나 부담 규모가 다른 거죠.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 키드'라 할 수 있는 첫 세대, 즉 그들의 자녀 세대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대중문화를 흡수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지리적 기반은 강남이었다고 볼 수 있지요. 서울의, 아니 전국의 다른 지역들보다도 빨리 일본이나 미국의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플랫폼 역할을 강남이 맡은 거죠. 이를테면 해외여행 자율화 이전이었기 때문에 외국에서 뭐가 들어와 확산되는 통로가, 거의 대기업에 다니는 그들 아버지의 해외출장에 집중되었어요. 그들의 가방 속 물건에서 하나의 트렌드가 형성되고 강남 내로 확산되고, 그것이 누적되다가 시차를 두고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문화라는 건 한 번 원형이 자리 잡으면 그것이 특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성격을 갖는데요. 그래서 어떤 지역에서 어떤 문화가 형성되는지가 중요하고, 그 문화가 이후에 다른 사람들이 따라할 수 있는가 없는가, 즉 '워너비'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역시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7,80년대 고도성장이 만든 강남이란 공간과 문화 이후, 그것과 유사한 형태가 80~90년대에 걸쳐 형성되어 나갑니다. 강남 아파트 키드 1세대의 문화가 이후에 목동, 과천, 상계·하계, 수도권 신도시에까지 모방과 복제를 통해 확산된 거죠.

<나-들>에 '아파트 키드의 생애' 연재를 기획할 때 제가 궁금했던 건 제가 속한 제 2차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아니라 바로 그들 이후의 세대, 70년대 후반 이후 출생자들로서 가족과 함께 90년대에 아파트에 진입하거나 거기에서 태어난 청년들이었어요. 수도권 신도시의 경우는 기존 강남이나 목동의 주거·생활 문화와는 성격이 또 굉장히 다르거든요. 저는 아파트로만 만들어진 도시에서 성장한 친구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성장했을까, 어떤 문화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을까, 나아가 그들 자신이나 부모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지금' 그들이 어디에 거주하고 있을까를 보고 싶었어요. 또한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의도도 있었구요.

여러분들 중에 지방에서 올라온 분이 있다면, 명절에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마치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서울 내에서도 마찬가지지요. 어떤 곳은 2013년 현재를 살고 있는 듯하지만, 어떤 곳은 80년대 후반을 보는 것 같잖아요. 제가 대학에 다니던 90년대 초반에도 그런 격차가 잔존했었고요. 젊은이들이 따라하는 것, 주류가 되는 성향이나 트렌드가 번지기까지 서울과 지방 광역도시 사이에 약 5년 정도의 시간차가 있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는데, 요즘은 인터넷 덕분에 그 시차가 상대적으로 줄고 있기는 하지요.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1부에서도 그런 시차가 느껴져서 재미있었어요. 그 글 자체가 시차를 자기 나름대로 어떻게 소화해 낼 것인지에 대한 글이었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어쨌든 <나-들>의 기획은 저런 관점에서 출발은 했는데 지금 정확히 그렇게 굴러가고 있지는 않습니다. 80년대생들이 아파트에 살았건 안 살았건, 지금 서울이란 공간에서 어떤 주거 형태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풀려나가고 있지요.

90년대 : 싼 아파트-수많은 대학생-IMF
 

▲ <콘크리트 유토피아>(박해천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자음과모음

한윤형 :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가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를 실현해 나가면서 이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이 되어버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여기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원래 사람들은 자신들의 질서를 먼저 만들어 내고 그걸 신의 속성에 투영합니다. 가령 종교학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도시와 관료 사회를 만들기 전까지는, 즉 왕을 가져보기 전까지는 만신을 주관하는 '최고신'이란 개념이 없었다고 하죠. 그런데 한국 사회는 (발전 단계에서) 후발주자이다 보니,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내고 물신에 그 속성을 투여한 게 아니라) 서구에서 이미 실현된 아파트라는 모델을 이미지로 가져오는 형태가 되어버렸어요. 거기서 예측하지 못한 부수적 효과들이 나타났고 그게 지금의 여러 상황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앞서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시기의 과외 금지 정책에 대해 언급하셨는데요. 사교육, 대학 등록금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어 자산 축적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처럼 한국 사회의 계층 재생산에 있어 교육 문제는 부동산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학 진학률도 세대를 보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언젠가 시기별 대학 진학률 통계 자료를 살펴보았는데, 70년대에는 20퍼센트쯤 됐고, 1980년이 되면 한 27퍼센트쯤 됩니다. 1990년이 되어도 33퍼센트 정도였어요. 보통 80년대부터 대학생이 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는 뜻이죠. 그러다 90년대에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2000년에 오면 66퍼센트로 치솟습니다.


박해천 : 김영삼 정권 시기부터 대학생 수가 급증하고, 노무현 정권 시기에는 등록금이 가파르게 인상되죠.

한윤형 : 그런데 이 대학생이 늘어난 90년대 초반에, 집값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박해천 : 그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예요. 노태우 대통령이 90년대 전반에 걸쳐 시행한 주택 200만 호 건설이 만든 효과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기의 중요 관료인 김종인 씨가 이후에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 스탠스를 취해도 크게 반발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그 분이 청와대 수석이었을 때 재벌의 부동산 투기를 막고 집값 상승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주택 200만 호 건설, 수도권 5개 신도시에 주택 30만 호 건설 등이었습니다.

사실 1987~88년까지만 해도 주택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고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낮은 군부 출신 정권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도권 신도시를 건설하게 됩니다. 이 효과가 90년대 내내 지속되고, 한윤형 씨가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집값이 내려가면 사람값이 올라가고 집값이 오르면 사람값이 떨어지는' 현상으로 나타나죠.

87년 민주화와 88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쳐, 임금이 상승하고 이 경향이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집니다. 그 상승의 근본 원동력 중 하나가 88년과 95년, 7년 사이에 급격하게 성장한 한국의 경제 규모입니다. 89년에 1인당 개인소득이 5000달러를 넘어섰는데, 95년이 되면 약 1만 달러에 다가서니까요. 흥미로운 건 경제 규모가 그만큼 커지면 아파트 가격도 그만큼 올라야 하는데, 수도권 신도시 건설이 완충 장치가 되어 그 인플레이션이 부동산 거품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거죠. 물론 이미 87, 88년에 많이 올랐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아무튼 노태우 정권 당시 평당 분양가상한제 조정을 받아 분당, 평촌에 아파트가 비교적 싼 가격, 그러니까 평당 180~200만원에 분양되었지요. 그 결과 베이비붐 세대 일부, 386 세대 일부가 그 수혜를 보았고요. 나름대로 중산층의 자의식은 있지만 그때까지 '내 집 마련'을 못 했던 사람의 상당수가 88년에서 94년에 걸쳐 분당, 평촌, 일산, 중동, 산본에서 매 분기별로 이뤄졌던 아파트 분양에 참여하게 된 거죠. 수도권 신도시의 아파트 수용 인구만 놓고 보면 100만 명이 넘었어요.

국가 경제 규모가 팽창하는 과정에서 몇 번의 부동산 열풍이 있었죠. 77년의 열풍 당시엔 굉장히 빠른 속도의 경제 성장과 함께 그 인플레이션 상당 부분을 부동산, 그리고 아파트가 다 흡수했습니다. 87~88년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에 의해 누린 호황)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90년대 초반은 정부의 아파트 중심 주택 보급 정책과 맞물리면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가장 안정적이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당시만 해도 당시 명문대를 졸업해 잘나가는 대기업에 취직하면 초봉 수준이 1800~2000만 원 초반대였어요. 졸업과 동시에 취직하면 3~4년 안에 25평 이상 아파트를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가 있었어요.


한윤형 : 90년대를 정리하자면 이렇게 아파트와 대학생이 급격히 늘어나다가 IMF 사태를 맞게 되었다는 거죠. (웃음) 아까 87년 이후 임금 상승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는데, 실제로 97년 이전까지는 대공장 노조가 파업을 해도 받아들이는 양상이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 시기엔 파업을 하건 안 하건 어쨌든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기업이 임금을 올리면, 거기에 준하는 비율로 다른 업체들이 임금을 올리곤 했습니다. 지금은 만약 현대차가 파업을 해서 임금을 올리면 납품 단가에 그 부담을 전가하기 때문에 하청업체나 거기 속해서 일하는 비정규직들이 손해를 본다고 해요.

어쨌든 임금이 그래도 상승하고 집값도 안정적이었던 90년대가 진행되다가 IMF 사태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는데, 혹시 우리가 IMF 사태를 겪지 않거나 다른 방식으로 그 충격을 흡수했더라면 한국 사회의 여러 변동들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박해천 : 그건 불가능하죠. 돌이켜 놓고 보니 90년대는 아주 예외적인 시기였지 그 자체가 정상적이진 않았던 것 같아요. 심하게 말하면 한국 사회가 제게 안겨준 제일 큰 행운은 90년대에 20대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고 할 정도로요. 또 다른 행운도 세대적인 건데, 과외 금지 시기에 10대를 보냈다는 거죠. 학교 마치면 놀 수 있었고 놀다보면 심심해서 소위 '뻘 생각'이라는 것도 할 수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그 자유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껏 누릴 수 있었고, 부모님은 사교육에 거의 지출을 하지 않으실 수 있었지요.

72년생인 소설가 정이현 씨는 "노력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으리라 믿었으므로 당연히,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던 세대였다고 쓴 적이 있어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서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느낌으로 살았던 거죠.
(웃음) 4년제 대학을 다닌다면 취업 걱정을 안 해도 되었고, 덕분에 세상이 만만했던 거예요. 그런데 이런 '예외적인' 상황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건 한국이 정말로 유럽 선진국 어딘가에 가 있다는 건데요….

배는 오지 않는다


한윤형 : 마지막 불꽃 같은 시기였던 90년대에 제 또래는 10대 시절을 보냈고, 스무 살이 넘으니까 저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는 종류의 체험을 하게 된 거죠.

박해천 : 조금 더 구분하자면 같은 70년대생 사이에서도 체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방금 말씀드린 예외적인 상황을 겪은 건 1968년~74년생까지고, 76년생 이후 출생자만 봐도 또 많이 다르거든요.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제 대학 가면 놀아야지' 했던 순간 IMF 사태를 겪었으니까요. IMF 사태라는 사건이 주는 사회적 변화가 한두 살 차이에도 미세하게 구별되어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윤형 : 한두 살 차이도 그랬지만 순간의 선택에 따라서도 엄청난 '복불복'이 펼쳐지곤 했어요. 제가 아는 한 90학번 선배는, 대학 졸업하고 할일이 없어 벚꽃 구경하려고 여의도 근처를 서성이다가 KBS가 보여서 그길로 원서를 쓰고 PD로 취업을 했어요. 들어가자마자 IMF 사태가 터졌으니 정말 운이 좋다고 할 밖에요. 그분과 같은 학번이었던 다른 선배는 그분 취업 시기에 공부를 하겠다고 대학원에 갔는데, 나중에 KBS에 들어가긴 했지만 10년 후였던 거예요.

박해천 : 이명박 전 대통령은 30대 중반에 현대건설 사장이 됐고, 마포아파트 건설을 지휘한 장동운 중령이 대한주택공사 초기 총재로 부임한 게 30대 초반 정도였다고 해요. 사회의 여러 영역은 시차를 두고 새로운 세대가 유입되면서 발전을 겪게 되는데, 해당 영역이나 조직이 그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가의 여부와 맞물려서 어느 순간 진입 장벽이 급격히 높아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상황이 사회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 게 IMF 외환위기 이후의 세계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부동산 시장에서는 2002년부터 아파트 분양가가 빠른 속도로 오르기 시작하지요. 내 집 마련의 장벽이 급격히 높아지는 거죠.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 강남으로 떠나는 '노아의 방주'가 있었어요. 누군가는 타고 갔겠죠. 그분들은 이상한 모험을 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안정적인 중산층의 생활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아파트 가격이 빠른 속도로 올라갔고, 때문에 근로소득보다 더 많은 소득을 부동산을 통해 얻게 되죠. 그리고 근로소득의 상당 부분은 고스란히 사교육, 여가 등 중산층의 소비활동으로 연결되었고 내수 시장의 규모를 키웠지요.

80년대 중반 이후, 또 하나의 방주가 떴어요. 이번에는 목동, 상계, 과천으로 가는 배였습니다. 40년대생 가운데 강남 진입을 못 했던 사람, 50년대생 중 일부가 그걸 타고 떠나죠. 87,88년 부동산 폭등기에 집값이 또 올랐고 '나도 드디어 중산층이 되었구나'라는 자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다음 방주가 수도권 다섯 개 신도시로 떠나는 배였던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문제'라 하는 것들은 이 방주를 타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일어나고 있어요. 동시에 예전에는 20대 후반~30대 초반 청년 세대들에게도 방주 탑승권이 주어졌지만, 2002년 이후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아무도 올라타지 못합니다. 대출을 받지 않고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부모님으로부터 증여받는 것뿐이지요.

 

ⓒ프레시안(최형락)


세대가 이름을 갖는 방식

한윤형 : 요약해드리면 "이제 더 이상 배가 안 온다"는 얘기였고요. (웃음) 지금 우리의 90년대를 죽 이야기해 주신 셈인데, 돌이켜보면 90년대는 그 시대 청년들에게 처음으로 (외부에서) 이름을 붙여준 시기이기도 해요. 그들을 말하는 '엑스세대'는 386 세대보다도 먼저 자기 이름을 가졌었어요. 그러니까 80년대에 '운동'을 열심히 했던 세대와 구별되는 문화·소비 세대로서 엑스세대가 먼저 탄생했었던 거죠.

80년대 학번 운동권들은 청년 시절이 아니라 이들이 여러 영역에서 대세를 이루면서 사후에 '386 세대'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죠. 그래서 386이라는 이름도 한 세대를 아우르기에는 폭력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른바 명문대에 다니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인데, 그 시기에 그런 사람들이 몇 퍼센트나 있었냐는 거죠. 운동권을 바라보는 시선의 격차는 있겠지만 그 숫자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적다고 들었거든요.

박해천 : 제가 기억하기로는 1998년인가 <조선일보>에서 처음으로 '386 세대'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아요. '광주 세대'에서 '386 세대'로 바꿔 부르게 된 변환의 지점이 '세대론의 쓰임새'라는 측면에서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그 호명이 변환된 시점은 386이라 지칭되는 이들이 스스로 중산층이 되었다는 자의식을 가지게 된 시기와 거의 일치해요. 집값은 많이 오르지 않았지만 IMF 이후 '바이 코리아' 열풍에 힘입어 주식이 많이 올랐거든요. 딱 그 시점인 98~99년, <조선일보>의 영리한 면모가 발휘된 거죠.

이런 사례를 보면 그런 생각도 들어요. 세대론이라는 게 해당 세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거나 조직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끌고 오는 게 아니라, 10년 주기의 경제 호황, 정치적 격변, 아파트 건설을 통한 주택 보급 등의 사건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통과한 이후, 그래도 '내가 그래도 청춘이라는 시절을 보냈구나'라는 사실을 집단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판타지로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런 의미에서 한윤형 씨한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어요. 한윤형 씨가 속해 있는 세대는 '삼포세대' '88만원 세대'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호명되잖아요. 그 호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윤형 : 전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제 생각보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말씀해드리곤 하는데요. 사실 부르기 나름이란 거죠. 386 세대도 과대 대표된 호명이지만 그런 방식으로 호명된 이유와 맥락이 있는 것처럼요. 제가 속한 세대가 정말 많은 이름으로 불렸는데, 10대 시절 붙은 'N세대'가 그 최초였어요. (웃음) 학교 컴퓨터실에서 음란물을 검색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인터넷 보급과 확산이 빠르게 이루어졌던 시기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그나마 '88만원 세대'가 와 닿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이 이름도 약 10년 단위의 문화적 분절을 포괄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가령 9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낸 제 또래는 입시에 억눌려 있다가도 대학에 가면 원 없이 자유를 누릴 줄 알았고 부모들도 그 환상을 제공했지만, 200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낸 저보다 어린 세대는 대학에 가도 힘든 상황의 연속이란 걸 이미 알고 있거든요. 감상만 이야기하고 말았는데 어쨌든 이름을 정하는 건 제 몫은 아닌 것 같아요.

박해천 : 제가 보기에 세대론을 통해 뭔가를 이루고자 했을 때 그 유형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내가 놓인 세대가 이전 세대와는 다른 문화적 경험, 상징자본을 가지고 있다든지 차별화되는 지점이 존재하는데, 사회의 기존 가치관으론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담론의 장에서 자신이 대변인으로 직접 나서면서 자신이 속한 세대를 호명하는 방식이에요. 기성세대들과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방식으로서의 세대론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 '4.19 세대'가 그랬어요. 그 전의 '일본어 세대'와는 다른 교육을 받았다는 거죠. '광주 세대'도 이후에 '386 세대'란 다른 이름으로 '호명 당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불리든 그 무리 자체는 조직화된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그 힘은 지금까지도 여의도 현실 정치 속에서 인맥이나 정책 등 여러 갈래로 실제 작동하고 있지요.

반면, 호명 당하는 세대가 있어요. 이를테면 엑스세대가 전형적이지요. 90년대 초반부터 학생 운동권은 힘을 잃어가고 있었어요. 거기에 이제 막 신입생으로 입학한 중산층 출신의 제2 베이비부머들은 10대 시절부터 대중문화의 단맛을 본 상태였지요. 90년대 대학가는 80년대식 민중문화와 90년대식의 대중문화가 기이하게 동거하면서 때에 따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딱 이 시점에서 모 광고기획사가 엑스세대란 말을 끄집어냅니다. '이들은 기존의 젊은 세대하고는 확실히 다르며, 이런저런 사회적 조건들이 맞물려 새로운 소비의 주체로 부상할 것이다'라는 예측과 함께요. 그 호명과 함께 92~93년에 걸쳐 압구정동과 홍대 앞이 젊은이들의 메카로 부상하고, 여기서 젊은이들이 즐기는 문화가 언론에 노출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죠.

결국 그들 스스로는 자기들을 조직화하거나 세대로 묶어 집단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는데, 외부에서 마케팅 등 경제적인 목적을 가지고 그 세대를 주목의 대상으로 불러낸 거죠. 그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 젊은이들은 모조리 개인주인자인데 '너는 엑스세대의 일원'이라 불리는 걸 좋아하겠어요? 사실 그 호명 안에 이미 모순이 들어있는 셈이죠. 물론 엑스세대라 불리는 집단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했을 겁니다. 윗세대 중 일부는 그걸 부러워하기도 했어요. 나이로는 386 세대에 속하지만 386의 주류였던 '운동권 청춘 모델'에는 동의할 수 없었던, 오히려 미국 대중문화에 친숙했던 사람들이죠. 일례로 어떤 60년대생 소설가들은 자기 세대가 아닌 신세대를 주인공, 독자로 한 소설을 쓰곤 했어요. 소설가는 60년대 초반생인데 소설 주인공은 70년대 초반생인 식이지요. (웃음)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제가 '88만원 세대'에 갖는 혐의도 비슷합니다. 엑스세대가 소비 차원에서 동원되었던 것과 유사하게, '88만원 세대'도 정치적으로 동원되기 위해 쓰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물론 이 개념 자체를 만들어낸 우석훈 선생이나 박권일 선생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지요. 2000년대 이후의 세계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 작동의 방식을 '세대론'이라는 형식으로 포착해내려고 했던 걸 텐데요. 그런데 이후 이 세대론의 '쓰임새'가 이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어요. 특히 선거 국면에서 더욱 더 그랬지요. 이런 흐름을 보면 이 세대가 자기 스스로를 호명하지 못했다는 것, 호명할 수 있는 힘이나 집단적 의지가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20대 혹은 청년 세대 담론이 흥미로운 것은, 청년들을 규정해보려는 윗세대들의 필사적인 노력에 대한 20대들의 철저한 무관심 혹은 소외 현상에 있다. 20대는 본인들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며 관심도 없다. 한편 윗세대들 역시 청년 세대를 규정하는 데 20대의 견해를 참고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누구의 견해를 참고해야 하는지를 정하지 못한다." (169쪽)

"(촛불 시위가 무력해진 이후) 나를 포함한 몇 명의 20대를 (…) 한 세트로 묶어서 담론 시장에 소개하는 문법이 나타났다. (…) 그것은 나로서도 황당한 경험이었다. 십 년 동안 인터넷에 비슷한 글을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연한 계기로 전혀 다른 글을 쓰던 사람들과 한 묶음이 되어 담론 시장에 진열된 것이다. 어째서 20대를 배척하는 10대들의 세대론과 20대 논객을 갈구하는 세대론이 공존하게 되었는가? 그보다는, 어째서 그런 식의 세대론의 삐걱거림이 있었는데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이 세대론의 본질이 어떤 논리적인 범주가 아니라 '386 이후'를 기약한다는 심정적 갈망에 있기 때문이다." (197~198쪽)
 

ⓒ프레시안(최형락)


청춘 멸종의 시대

한윤형 : 지금 하신 지적에 대체로 동의하고,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약간 돌려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 제 책 제목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하나는 당연히 문자 그대로의 의미, 청년 세대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좀 더 들어가 보면 이제 더 이상 기성세대들이 바라는 '청춘'의 모델-진취적이고 겁이 없으며 세상에 맞서 싸울 자세가 되어 있는-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도 됩니다. 말하자면 '청춘 예찬' 할 수 있는 종류의 청춘이 없다는 겁니다.

가령 명문대 학생들이 공무원을 꿈꾼다고 하면 보수 언론에서는 개탄의 어조로 '꿈 없음'을 비판하죠. 그들의 시선으로 보면 명문대생들은 진취적으로 행동하고 누군가를 먹어 살릴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어야 해요. 그런데 경쟁에 지친 이들이 경쟁이 덜 한 직종을 선호하게 되면서 룰 자체가 바뀌어가는 상황인 거죠. 이런 과정을 보면 '청춘 담론'에 나오는 청춘은 더 이상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호명할 힘이 없다'라는 차원과는 좀 다르죠.

박해천 : 저는 평소에 글감을 찾기 위해 소설을 즐겨 읽는데요. 한국 현대소설을 보면 젊은 세대를 주 독자층으로 삼는 일군의 저자들이 청춘이나 성장이라는 테마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 4.19 세대라고 볼 수 있어요. 김승옥으로 대변되는 40년대생들의 성장 소설과 청춘 담론이 있었지요. 50, 60년대생들도 각각의 청춘 소설이 있었고요. 그런데 70년대생 소설가들에겐 그게 없어요. 왜냐하면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으면 됐으니까요. 달리 말하면, 그 때 이미 한국의 젊은 독자들은 한국에서 청춘이 성장하는 과정에 대한 글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거기서 살아남은 게 김영하(68년생) 씨와 정이현 씨 정도입니다. 이들이 최근에서야 성장 소설을 쓰고 있는데, 이것 자체와 이전과는 다르죠. 이전 세대가 자기의 청춘을 실시간으로 썼다면, 이들은 아랫세대인 80년대생들의 이야기를 대신 써주고 있거든요. 이건 하루키가 취한 전략이기도 해요. 그는 자기보다 열 살 혹은 그 이상 어린 젊은이들의 성장 소설을 썼으니까요.

이렇게 놓고 보면, 청춘이란 개념 자체가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낭만주의적 색채, 자유연애에 대한 판타지, 가족으로부터의 탈출이란 해방감, 자아의 발견 같은 그 속성들도 마찬가지지요. 그리고 이런 속성들은 지금은 청춘이 아니라 '중2병'이라 불리죠. '얘가 뭔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구나'가 아니라 '얘 중2병 걸렸구나'가 되는 거죠. (웃음)

다시 말해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청춘'이란 호명 자체의 설 자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전 같으면 직장인이 되어서야 경험하기 시작했던 삶의 하중이 계속 밑으로, 밑으로 내려오면서 이제는 중학교나 초등학교 고학년을 다니면서부터 그 하중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이런 상황 속에서 청춘이라는 표현은 시대착오적인 언어유희, 실재하지는 않으나 마음속에만 남은 로망, '언젠가 가닿을 수 있을 거야'라는 환상 속의 신기루가 되어버린 겁니다. 실제로 청춘을 누리지 못함으로써 이미 청춘을 누린 이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져 가고요.

사람이 사회에 진출하고 가정을 꾸리고 나서 한 숨 돌릴 때쯤 되면, 젊은 날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때가 좋았지"라면서 사후적으로 자신의 '청춘'이라는 걸 재구성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요. '난 지금도 청춘이야'라고 말할 때의 청춘도 있겠지만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청춘은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반복강박처럼 불러들이는 어떤 기억의 핵심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럴 만한 기억의 핵심이 사회적으로 공유되기 어려워진 상황 같습니다.

한윤형 : '지금 굶지 않고 있어야 굶었던 시절도 낭만이 될 수 있다'는 얘기군요.

박해천 : 그렇죠. '그때 내가 그렇게 방황했기 때문에/방황했지만 지금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시기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게 바로 청춘인 거죠. (웃음)

'세대 간 불평등'은 실재하는가

한윤형 :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은 2010년 엄기호 선생이 낸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와 대구를 이루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윗세대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양식의 청춘이 있다는 의미에서 그런 제목을 쓰신 것 같은데요. 엄기호 선생도 91학번이라 박해천 선생과 비슷한 세대입니다. 이 책에도 지금 대담 내용과 관련지을 수 있는 재미있는 대목이 많은데요. 저자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대부분이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간절히 염원했는데, 20년쯤 뒤 본인이 직접 지방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다 보니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와요. 독립할 생각이 없고, 오히려 집에서 자기를 쫓아내지 않는 게 고마운 겁니다. 이런 식의 감각 전환들이 일어나는 상황인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어떤 세대에 속한 사람들)가 우리 세대를 어떤 식으로 정의해야 하는가, 이와 관련된 여러 난점들 중에는 '세대 간 불평등보다 세대 내 불평등, 혹은 불평등 자체가 더 중요하다'라는 사회학자들의 비판도 있습니다. 맞는 말이죠. 그래서 더더욱 세대론을 통해 누군가를 호출해내기가 어렵습니다. 같은 세대라 하더라도 서로 굉장히 분절화, 파편화 되어있거든요.

가령 제가 이 책을 낸 뒤 여러 곳에서 강연을 했는데, 한 번은 어느 지방 대학교에서 훨씬 어린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청년 세대 문제를 이야기하면 분절화나 파편화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면 학벌 사회 이야기가 나오죠. 그런데 학벌 피라미드 맨 위에 있는 학교에 다닌 제가 그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기가 굉장히 조심스럽더라고요. 게다가 그 학생들은 제 책을 읽지도 않았고, 절 궁금해 한 강사나 교수가 강연을 들으면 출석을 인정해주겠다고 해서 억지로 듣는 상황이거든요. 말하자면 세대 간 분절 외에도 세대 내부의 분절 역시 존재하기에, 이야기를 풀어나감에 있어 어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박해천 : 저는 굉장히 다양한 분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데, 방금 말씀하신 그런 어려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누군가'하는 문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예요. 그리고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거론하는 세대의 호명 대상은 기본적으로 대졸자, 어느 정도의 중산층 혹은 중산층 워너비라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또 저는 사회학자가 아닌 디자인 연구자이기 때문에 계급적 접근보다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빚어지는 세대 간 차이에 주목했던 거고요.

그래도 조금 흥미로운 건 박원순 씨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후 약간의 결집이 보인다는 거예요. 20대 후반~30대 초반 가운데 예전에는 정치에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사람들이 SNS 등을 통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리버럴한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요. 물론 그것도 소수이고,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 무관심이) 더 심해질 것 같지만요.

한윤형 : 정치적인 결집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청년 세대의 정치적 의식은 과거와는 다르게 발생하는 측면이 있어요. 가령 '20대 개새끼론'처럼 대학생들에게 정치의식이 없다고 핀잔했던 경우를 보면, 80~90년대 학번은 자신의 인생 가운데 대학 시절이 가장 진보적인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 대학생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본화된 대학에서 정치의식을 가질 만한 탈출 공간이 없다보니 대학생일 때 오히려 더 자본 논리에 입각해서 살다가, 대학을 벗어나 취업 준비나 입사를 하면서 자신이 '을'을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제 책 리뷰 중에서도 '대학교 다닐 땐 정치에 아무 생각 없거나 운동권들을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회사 7, 8년 다녀보니까 그게 아니더라'라는 또래 분들이 있었어요. 대학생으로서 노동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제 세대는 오히려 자신이 직접 노동 현장에 나가서 그 문제들을 대변하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숫자는 많지 않죠. 어쨌든 공통의 지반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식의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제겐 고민입니다.

박해천 : 집 없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어때요? (웃음) 아쉬운 부분들이 그런 거예요. 아파트 단지를 들여다보면, 주거자들이 여러 가지 생활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이 굉장히 잘 체계화 되어있어요. 부녀회나 관리실 등, 최소의 형태이긴 하지만 꽤나 효과적으로 작동하거든요. 차등적인 대우를 받는다든지, 뭔가 불평등을 인지했을 때 아줌마들이 모여서 행동하는 방식이 상당한 정치적 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세대가 올라탈) 방주 자체가 떠나버린 상황도 있지만, 공통의 문제를 스스로 공론화하거나 해결하려는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세대 간 불평등'이란 표현도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것 같고요. 이 세대가 '우리는 이러이러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불평해도 윗세대 상당수는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반응을 보이고 끝이에요. 즉 '내가 어려우니 나를 도와달라'는 호소 방식으로는 사실상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거죠.
 

ⓒ프레시안(최형락)


20대-50대, 꼬리를 무는 부자(父子)

박해천 : 여러 지표를 봤을 때, 여러분들 가운데 지금 독립해서 원룸이나 자취방에 살고 있는 분들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그 '방'에서 탈출해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이 사실상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지금 서울이나 수도권 주요 도시의 아파트 가격이라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은 그렇습니다. 물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2005년 전후, 그 이후에 떠나신 분들 상당수는 지금 하우스 푸어일 겁니다.

더 큰 문제도 있어요. 여러분들 부모님의 상당수가 50대 이상인데, 50대 자가 소유 비율이 60퍼센트 약간 넘습니다. 이 베이비붐 세대가 노후 생활을 영위해가는 데 필요한 최소 자산의 규모는 가구당 3억 6000만 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그 세대 전체의 24퍼센트밖에 안 돼요. 그리고 지금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이라고 이야기되는데, 그 가운데 50대 이상이 진 빚이 그 절반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50대 이상 분들의 대부분이 제도가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사이에 경제 활동이 끝납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 부모님 세대의 상황입니다.

월세방에 거주하는 여러분들 중 일부는 여전히 '조금 더 기다리면 부동산 폭락이 올 거고, 그때 집을 구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폭락한 집의 집주인이 확률적으로 바로 여러분의 부모님, 친구의 부모님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베이비붐 세대의 자가 소유 비율(60퍼센트)과 가계부채 규모(400조 이상)가 이렇게 맞물려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경제 위기가 닥치면 가계대출이 몰려 있는 자가 소유자들에게 첫 번째로 피해가 가고, 그러면 갖고 있던 집들이 헐값으로 나오는 겁니다.

이 불행의 핵심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서로 꼬리를 물고 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 여러분들에게 좋은 게 여러분 부모들한테 좋지 않고, 그 역도 마찬가지란 겁니다. 가령 최근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처럼 정년을 연장하면 부모님 세대는 수혜를 입고, 여러분들의 취업은 불리해집니다. 사회적 비용 면에서도 사람을 새로이 뽑아 훈련시키는 것보다 이미 훈련되어 있는 사람을 몇 년 더 노동시키는 게 나을 수 있으니까요. 이명박 정권 때 일자리 나누기를 한다면서 대졸 초임 임금을 삭감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많은 기성세대가 반색을 표한 게, 자기들 연봉이 깎일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어요.

평균 수명이 높아지고 경제가 어려우니까 윗세대가 좀처럼 퇴장을 하지 않고, 따라서 젊은 세대가 사회로 진출하거나 자산을 증여 받아 소비를 하는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이는 또한 저출산 문제와도 맞물려 있어요. 지금 수도권에서는 순번표 받고 대기했다가 들어가는 어린이집도 있고 산부인과 간판들도 거리에서 눈에 많이 띄지만,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는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특히 한국의 저출산 1세대(98~2002년 출생)가 대학에 진학하는 시점(2018~2012년)이 되면 수많은 지방 대학이 구조조정에 직면해야 할 겁니다. 90년대 내내 6,70만명이던 출생인구가 98년을 기점으로 꺾어졌다가 2002년을 기점으로 40만명대로 내려앉았지요.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쯤이면, 대학 정원이 학령인구보다 훨씬 많은 상황이 벌어지지요. 지금 어느 대학은 회화과를 없앤다, 어느 대학은 철학과를 없앤다 하는 뉴스가 나오는데, 저출산 시대에 대비하는 대학의 구조조정이라는 맥락에서 보실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 입장에서 보자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본격적인 경제 활동을 하게 될 무렵이면, 그만큼 20대 소비자들의 내수 시장은 축소될 것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구요.

어떻게 이 세대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해요. 그런데 지난해 대선 국면을 돌아보면, 문제의 세대가 직접 나선 게 아니라 15살쯤 많은 윗세대가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신해서 대변해 준 상황이 펼쳐졌어요. 만일 계속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 세대는 영원히 무간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부동산 문제만 놓고 봤을 때 제가 속한 90학번-70년대생들은 '세대'로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직접 이야기할 필요를 못 느껴요. 이들 중에는 (IMF 사태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격동의 시기를 짜임새 있게 보낸 '중간층'이라 한다면) 어떻게든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케이스가 있습니다만, 상당수, 특히 70년대 중후반생은 하우스 푸어이거나 세입자로 계층이 갈리고 그래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세대 상황은 이보다 더 좋지 않지요. 아예 다른 상황일 수도 있구요.

지난해 대선과 맞물려 반값 등록금이 이슈가 되었을 때 제 친구가 '이제 386 세대 자녀들이 대학 갈 때 되니까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구나'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어요. 여러분의 부모인 50년대생들은 자녀의 대학 등록금이 마구 오를 때 별 불만 없이 그걸 지불했어요. 99년부터 2007년쯤까지 아파트 값이 올랐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아파트 값이 오르지 않고 경제 성장률도 2~3퍼센트 대에 정체되었기 때문에 이전의 체제, 이전의 기회, 이전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고요. 그리고 이 모든 모순들이 가장 강렬하게 맞물려 있는 시점이 바로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닌 여러분들이 3,40대의 나이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지요.

이런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거기다 우리가 원했던 정치적 승리의 기억은 기껏해야 한 줌일 때, 어느 위치에 서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돌파할 것인지는 여러분 세대들 스스로 판단해야 해요. 저는 저의 이해관계가 있고, 여러분의 이해관계와는 달라요. 대안은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거죠.

어떻게 요구할 것인가

한윤형 : 말씀을 듣다보니 장내 분위기가 안 좋아졌어요. (웃음) 사실 정치적 전망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었는데 살짝 언질은 주신 것 같고요. 세대론의 정치적 쓰임새에 대해 걱정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한편으로는 청춘 담론이 가진 특성 때문에 '어떤' 세대론은 여전히 남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서 한 작업은 거기에 개입하면서 사회적 문제들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저에게도 대안이나 행동지침을 묻는 경우가 있는데, 정치평론가의 책은 애초에 좀 허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많은 책에서 서둘러 대안이라고 나오는 게 대체로 '약 파는' 것일 수밖에 없는데, 저는 성격상 약을 팔지 못해요. (웃음) 구체적인 정책을 나열하면 그걸 누가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 즉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의 딜레마가 펼쳐지고요. 그래서 정치적 행동지침에 대해서는 일부러 피한 감도 있습니다.

박해천 선생이 '스스로 삶의 문제를 지각하고 요구를 던져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셨는데, 그러한 요구 투입을 위해서는 일단 자기 삶의 문제가 사회적 변화의 문맥에서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조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누구와 힘을 합쳐서 요구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고요. 제가 이 책의 1부에 사적인 얘기를 많이 쓴 것도, 개인의 경험을 풀어놓는 것이 그 시대 속에서 자기 삶의 문제를 조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행동지침은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합의해야 할 문제이지, 몇몇 사람이 던져줄 수 있는 종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단 조망할 시선의 획득과 동년배에게 말 걸기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해천 : 여러분들은 지금 삶이 힘들고 우울하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더 우울하고 더 힘들 가능성이 높아요. 한윤형 씨가 '내려가는 사회'라고 표현한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맥락을 이해하면서, 그 안에서 개인으로서 누릴 행복을 고민하고 그걸 누리기 위한 정치적, 조직적인 의사 표현의 방법들을 직접 고민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정권 교체 같이 커다란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제 고령화-보수화가 맞물린 인구 분포상, 앞으로 여러분들 상당수가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요. 그래서 오히려 미시적인 부분들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박근혜 정부가 싫다고 해도 지금 정부나 집권 여당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뭔가가 있어요. 그걸 선택적으로, 최대한으로 취할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행복주택 같은 거죠. 노무현 정권 때 추진했으면 아마 난리가 났겠지만, 새누리당이 하니까 저항이 덜해요. 행복주택 건설에 대한 요구는 여러분들이 거기 들어가서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들어갈 확률은 복권에 당첨되는 확률과 비슷해요. 다만 행복주택이 해당 지역 전월세의 표준 시가와 같은 역할을 해주면서 가격을 하향 안정화해줄 가능성이 있어요. 그게 지어짐으로써 그 지역 아파트를 싸게 임대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각 구마다 부동산의 요충지라 불리는 곳에 행복주택을 더 지어달라고 요구해야 해요. 오늘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최저임금 인상도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야 하는 일이고요.

경제 자체가 '내려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거기에 걸맞게 여러분 자신의 욕망을 구조조정하고 새로운 일상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전환에 이미 '노아의 방주'를 타고 떠난 분들은 관심이 없죠. 여기서 무슨 선택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해보셔야 할 거예요.
 

ⓒ프레시안(최형락)
 
 
 

 

/안은별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요즘트위터페이스북더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근혜 '정통성 시비'가 아킬레스건?

 

[장윤선의 톡톡! 정치카페] 홍익표의 귀태발언, 왜 청와대를 자극했나

13.07.12 19:38l최종 업데이트 13.07.12 21:05l
장윤선(sunnijang)

 

기사 관련 사진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12일 오후 '귀태'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것에 책임을 지고 원내대변인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힌 뒤 국회를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북한에서 막말을 하는 것도 부족해 이제 국회의원이 대통령에게 그런 식의 막말을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망치고 국민을 모독하는 일이다.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 국민이 한 대선을 불복하고 부정하는 발언이 민주당 공식 행사에서 연이어 나왔다. 우리는 이를 단순한 정치권의 막말 수준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을 공존과 타협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타도와 소멸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의 '귀태'(鬼胎) 발언에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12일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습니다. 새누리당은 이날 예정된 모든 국회일정을 전면 중단했고, 당초 예정돼 있었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을 위한 예비열람 일정도 취소했습니다. 새누리당은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국가원수를 모독한 죄 엄히 다스리겠다는 태도로 임했습니다. 문제의 발언을 쏟아낸 홍 대변인에 대해서는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했습니다.

강은희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대선 불복성 발언에 대한 민주당의 책임 있는 조치가 없다면 국회의 모든 상임위와 관련한 활동을 전면 중단할 수도 있다"며 "이후 최고위 논의를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정현 수석은 화가 많이 난 것 같습니다. 현직 대통령을 향해 '귀신에게서 태어난 아이' 또는 '불구의 태아'를 뜻하는 말을 했으니, 대통령을 보좌하는 수석으로서 마땅히 대응해야 할 일입니다. 아무리 책에 나온 구절을 인용했다 해도 이건 홍 대변인의 잘못된 말실수같습니다. 물론 홍 원대대변인은 문제가 확산되자 지난 11일 오후 7시쯤 구두브리핑을 통해 "귀태 표현과 관련해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인데, 확대 해석되어 대통령에 대한 인식공격으로 비춰졌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박근혜 정부, 대선 불복성 발언 그냥 안 넘어간다?
 

기사 관련 사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21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질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그런데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공세의 고삐를 쥐고 달려듭니다. 왜 그럴까요? 홍 원내대변인의 '귀태'라는 말 자체도 불쾌하겠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뜻이 어쩌면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을 더욱 자극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정치권 일각에서는 홍 원내대변인의 발언이 청와대의 감정선을 자극한 이유로 제일 먼저 '정통성 시비'를 걸었다고 분석합니다. 이 수석이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 불복과 부정, 국민의 선택 부정 등등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 이후 민주당은 줄곧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사전유출 의혹을 쟁점화했습니다. 이같은 민주당의 공격이 박근혜정부의 정통성에 상처를 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고, 이것을 방치할 경우 자칫 더 큰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날 이 수석의 회견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관측도 나돕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과 NLL의혹을 넘어 이른바 '귀태'까지 민주당의 발언 수위가 점차 높아지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을 참모들에게 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 대응이 이날 오전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된 것이라는 분석인 것이지요.

무엇보다 이번 귀태발언파문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의중은 야권의 '대선불복' 주장이 확산되는 것을 더는 참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바 '박근혜정치'의 선명성이 드러나는 장면으로 봐야 할까요?

검찰은 지난 10일 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개인비리로 구속했습니다. 국정원장의 지시로 국가정보기관 정보원들이 무더기로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동원돼 댓글을 다는 등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불구속 수사했던 검찰입니다. 그런데 검찰의 불구속 수사에도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시국선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원 전 원장을 개인비리로 구속한 것이지요.

논란의 중심이 된 원 전 원장을 구속함으로써 약간의 소강국면이나 진정국면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아니었을까요?

동시에 감사원은 11일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인 최대 국책사업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사실상 한반도 대운하의 재추진을 염두에 두고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것이라고 밝혔지요. 감사원은 이명박정부 내내 관련된 사실을 감추고 있다가 이제 와서 감사결과를 밝히다니 역시 비겁하다는 비판도 받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박근혜정부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베일을 벗겨낸 셈입니다. 무엇보다 이 같은 감사원 감사결과에 대해 청와대는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왜 그럴까요?

차별화지요.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에서 벌어진 잘못된 일들과 확실히 거리두기를 하고 '전략적 차별화'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결국 이명박정부는 뇌물을 받고 뒤를 봐주며 건설업자와 결탁해 납품비리 저지르는 아주 부도덕한 집단으로 전락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는 연일 이명박 정부의 추잡한 부도덕성을 꺼내고 들춰내고 있지만, 반대로 박근혜 정부의 탄생의 비밀과 연관된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과 정상회담 대화록 사전유출과 관련해서는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는 상황입니다. 정치 개입이 금지된 국정원이 한국 정치의 전면에 나섰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자중하라'는 메시지도 없습니다.

국정원이 아주 이례적으로 대변인 성명까지 발표해 NLL논쟁에 가담해, 여야 정치권은 물론 심지어 보수언론까지도 "국정원 제정신이냐" "기밀보안업무를 다루는 국정원이 연일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음지에서 일하는 정부부처가 맞느냐"고 질타하고 있습니다.<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헐거워진 국정원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라"는 주문을 내놓기도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말이 없습니다.

국방부도 NLL 논쟁에 가세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발언을 갖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포기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가 하룻만에 말을 바꿔 "2007년 정상회담 후속으로 열린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우리의 주요 전략은 NLL을 기준으로 같은 면적, 즉 등면적을 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하자는 것이었다"며 "이는 NLL을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서 논의하자는 취지였는데 북측이 이를 거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방부 안의 자중지란에 대해서도 언급조차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국정원 '제정신이냐' 비판 이어져도 박근혜 대통령은 '침묵'
 

기사 관련 사진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를 돈과 결탁한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 결국 박근혜 대통령과 그 집단을 돗보이게 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걸까. 사진은 지난 2007년 8월 17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서울합동연설회 당시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박근혜정부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과 정상회담 대화록 사전유출 문제가 결국은 정권의 정통성 시비를 불러올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지난 9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최경환 원내대표·김기현 정책위의장, 정홍원 국무총리·현오석 경제부총리·김동연 국무조정실장, 청와대 허태열 비서실장·이정현 홍보수석·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이 참여한 이른바 '국정 콘트롤타워 9인방'이 모였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는 ▲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 정치 현안부터 ▲ 실물 경기 악화와 경제팀의 대응 ▲ 6월 임시국회 평가 등 국정 전반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 자리에서는 "민주당이 최근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을 이유로 공개적으로 '선거무효투쟁' 등을 거론하고 문재인 의원이 '작년 대선이 불공정하게 치러졌다'며 대통령의 해명을 요구한 일도 거론됐다고 합니다. 한 참석자는 "야당의 공세 수위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도 전했다고 합니다.

일명 '국정 콘트롤타워 9인방'의 9일 회동 직후, 10일 국정원 대변인의 이례적 성명, 11일 국방부 대변인의 브리핑이 이어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국정원 국정조사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꾸 NLL논쟁을 촉발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돌았습니다.

전선의 다각화죠.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비본질적인 문제를 키워서 본질의 문제를 가리려는 전략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NLL논쟁도, 4대강에 대한 감사원 감사도, 그리고 국정원과 국방부의 국내정치 개입도, 사실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그 진실의 문턱을 높이는 장치로 활용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요즘트위터페이스북더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서울대생들 새누리당사 앞 시국선언

서울대생들 새누리당사 앞 시국선언
 
국정원 선거개입, 헌정파괴..박근혜 책임질 것 요구
 
이호두 기자
기사입력: 2013/07/13 [02:13] 최종편집: ⓒ 자주민보
 
 

청년학생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서울대 총학생회가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앞에서 성명을 통해 '국정원 선거개입 및 국기문란. 박근혜 대통령 사과'를 요구했다.

 
▲ 서울대생, 국정원 국기문란 규탄 시국선언 ©이호두 기자


























서울대 총학생회 학생들은 지난 12일 비가 오는 가운데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국정원 선거개입과 민주주의 말살에 대해 "이 책임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커넥션에 있다"며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있는 대응을 촉구하였다.


 
▲ 국정원의 정국돌리기와 새누리당의 개입을 비난하는 서울대생들 © 이호두 기자



























이 날 모인 서울대생들은 재학생 1080명, 대학원생 127명, 졸업생 123명 등 총 1330여명의 목소리를 담은 시국선언서를 낭독하며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규탄하였다.

특히 자유발언을 통해 한 서울대생은 "댓글알바라고 하였는데 알고보니 국정원 정규직원이 댓글을 양산하며 선거개입을 하여 국기를 문란케 하였다"며 "이는 국정원이 민주주의의 심각한 훼손한 행위"라고 강력 성토하였다.

서울대생들을 비롯한 사회각계 각층의 국정원 국기문란 규탄 및 시국선언은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으로 최근 여야는 이 국정원 선거개입 사태에 대해 국정조사에 합의한바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홍익표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7/13 10:18
  • 수정일
    2013/07/13 10:1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전문)청와대 "대통령 정통성 부인"..새누리당 원내일정 잠정 중단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07.12 14:50:56
트위터 페이스북

 

새누리당이 전날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의 발언을 문제삼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열람 등 12일 원내 일정을 잠정 중단하고 대야공세에 나서 여야 간 대치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정말 전.현직 국가원수에 대해 모욕을 넘어 저주하는 그런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며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모욕적인, 그런 느낌을 갖는 충격적인 논평이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우리 당으로서 이것은 절대 그냥 묵고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오늘 최고위원회의에서 결정해주면 따르겠지만, 1차적으로 오늘 예정된 원내일정은 일단 잠정 중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홍 대변인의 발언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일이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해 대선과정에서부터 NLL 공방의 전면에 나섰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24일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의 주장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홍익표 원내대변인은 11일 오전 현안브리핑에서 “작년에 나온 책 중에 하나가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라는 책이 하나 있는데, 그 책의 표현 중에 하나가 귀태(鬼胎)라는 표현이 있다”며 “그 뜻은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 당시 만주국의 일본제국주의가 만주국에 세운 괴뢰국에,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다. 아베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잘 아시다시피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이다”고 적시했다.

홍 대변인은 한.일 양국의 두 지도자가 먼저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있다”며 “아베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범죄를 부정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5.16이 쿠데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박정희 시절의 인권탄압과 중앙정보부의 정보기관이 자행했던 정치개입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또한 “두 분이 미래로 나가지 않고 구시대로 가려하는 것 같다”며 “이제 노골적으로 아베총리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고 있고, 최근 행태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공화국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홍 대변인은 또한 “요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보통 국정원은 양지를 지향하고 비공개활동을 하는데, 대통령께서 음지를 지향하고, 국정원장이 양지를 지향하는 것 같다”며 “자칫 남재준 대통령, 박근혜 국정원장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최근의 국정원장의 활약이 아주 눈부시다”고 꼬집었다.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데 이어 대변인 성명을 통해 NLL 포기발언을 기정사실화하려는 행태를 겨냥한 것.

홍 대변인은 “어제 국정원이 공개한 자료는 터무니없는 자료였고, 말도 안되는 내용을 발표했다. 사실상 국정원이 우리 대통령의 말씀보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말만 따르는 친북, 종북기관인 것 같다”고 비판하고 “저는 분명히 다른 지도를 가지고 있다”면서 “국정원이 당시 국방부장관, 지금 안보실장에게 확인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사실 관계가 아니라면 빨리 그 내용을 철회하길 바란다”고 압박했다.

특히 “사실상 남재준 씨는 제2의 김재규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시해는 권총만 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시해도 있다”며 “사실상 지금은 대통령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국정원장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남재준 국정원장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홍 대변인은 이 같은 발언을 새누리당이 문제삼고 나서자 “귀태 표현과 관련해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인데, 확대 해석되어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비춰졌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했다.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12일 오전 현안 브리핑에서 “어제 홍 의원은 자신의 문제된 발언에 대해서, 지도부와 협의 후에 유감 표명을 하였다”며 “이 같은 신속한 유감 표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국회의 파행을 핑계 삼기 위한 꼬투리잡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새누리당이 홍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아서 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겠다는 것은 여당으로서 무책임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오늘 중으로 예정됐던 정상회담 회의록 열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가기록원이 법정기한인 15일까지 국회가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기가 어려워지게 된다”며 “새누리당은 보다 성숙하고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익표 원내대변인, 오전 현안 브리핑> (전문)

□ 일시: 2013년 7월 11일 오전 10시 20분
□ 장소: 국회 정론관

■ 남재준 국정원장의 터무니없는 허위사실 유포, 끝까지 책임 묻겠다

오늘 41차 고위정책회의의 비공개 내용을 말씀드리겠다.

요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보통 국정원은 양지를 지향하고 비공개활동을 하는데, 대통령께서 음지를 지향하고, 국정원장이 양지를 지향하는 것 같다.

자칫 남재준 대통령, 박근혜 국정원장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최근의 국정원장의 활약이 아주 눈부시다.

먼저 역사 얘기를 하나 드리겠다.

작년에 나온 책 중에 하나가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라는 책이 하나 있는데, 그 책의 표현 중에 하나가 귀태(鬼胎)라는 표현이 있다. 귀신 귀(鬼)자에다, 태아 태(胎)자를 써서, 그 뜻은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 당시 만주국의 일본제국주의가 만주국에 세운 괴뢰국에,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다. 아베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잘 아시다시피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이다.

최근의 이 두 분의 행보가 남달리 유사한 면이 있다. 첫째,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범죄를 부정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5.16이 쿠데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시고, 박정희 시절의 인권탄압과 중앙정보부의 정보기관이 자행했던 정치개입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 이 두 분이 미래로 나가지 않고 구시대로 가려하는 것 같다. 이제 노골적으로 아베총리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고 있고, 최근 행태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공화국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아니라, 청와대와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아니라, 완벽하게 정보기관이 국회의 중심이 된 것 같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국기문란을 어떻게 했는지 반성하고 법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 사실상 남재준 씨는 제2의 김재규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시해는 권총만 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시해도 있다.

사실상 지금은 대통령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국정원장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한다.

어제 국정원이 공개한 자료는 터무니없는 자료였고, 말도 안되는 내용을 발표했다. 사실상 국정원이 우리 대통령의 말씀보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말만 따르는 친북, 종북기관인 것 같다.

어제 지도는 말도 안되는 지도를 공개했다. 다시 한 번 경고한다. 오늘 중으로 자신들이 공개한 어제 내용과 지도를 허위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빨리 취소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허위사실을 물어서 법적 대응을 하겠다.

저는 분명히 다른 지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 공동어로구역을 어떻게 제시했는지, 당시 장관급회담과 장성급 국방장관 회담과 장성급 회담에서 우리가 북측에게 제시했던, 북측이 우리에게 제시했던 정확한 내용을 제가 가지고 했기 때문에 국정원이 당시 국방부장관, 지금 안보실장에게 확인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사실 관계가 아니라면 빨리 그 내용을 철회하길 바란다.

 

 

 
요즘트위터페이스북더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꼬리 긴 환도상어, 하이킥으로 정어리 사냥 밝혀져

 

꼬리 긴 환도상어, 하이킥으로 정어리 사냥 밝혀져

 
조홍섭 2013. 07. 11
조회수 5044추천수 0
 

고기떼 돌진, 꼬리 180도 휘둘러 7마리까지 기절시켜, 오랜 추정 확인

필리핀 세부서 수중 촬영 성공, 환도상어는 남획으로 취약종

 

thresh.jpg » 환도상어가 꼬리를 후려쳐 정어리를 사냥하는 모습. 사진=사이먼 올리브 외, <플로스 원> 동영상 캡쳐

 

자기 몸길이의 절반에 이르는 서양 낫처럼 생긴 꼬리를 지닌 환도상어는 그 긴 꼬리를 이용해 물고기를 사냥할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추정돼 왔다. 하지만 야행성이고 수줍기로 유명한 이 상어의 꼬리 비밀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필리핀 세부의 페스카도르 섬에서 환도상어 보전을 위한 연구를 하던 사이먼 올리브 환도상어 연구 및 보존 프로젝트 수석 연구자에게 2010년께 다이버들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 환도상어가 정어리떼를 꼬리로 사냥한다는 것이었다.
 

올리브 등 연구자들은 이후 61차례에 걸친 수중 비디오카메라 촬영 결과 환도상어가 꼬리로 사냥하는 전략과 행동을 상세히 밝혀 그 결과가 온라인 공개학술지 <플로스 원> 11일치에 실렸다.
 

1_13368_1400px_Figure-3_PLOSs.jpg » 환도상어가 꼬리를 휘둘러 물고기를 잡는 동작. 그림=사이먼 올리브 외, <플로스 원>

 

이 논문을 보면, 환도상어는 여러 단계의 행동으로 공처럼 뭉쳐있는 정어리떼를 사냥한다. 먼저, 준비 단계로 물고기떼 속에 돌진해 꼬리를 90도 휜다. 이어 몸의 근육과 지느러미를 총동원해 3분의 1초 사이에 긴 꼬리를 180도 후려친다.
 

이어 꼬리에 직접 맞은 물고기는 물론이고 꼬리를 휘두를 때 형성되는 충격파로 기절한 물고기를 서서히 헤엄치며 주워 먹는다. 연구자들은 한 번 꼬리를 휘둘러 최고 7마리까지 정어리를 사냥하는 것으로 보아 이런 사냥 전략이 상당히 효율적이라고 평가했다. 꼬리치기는 워낙 강력해 녹아있던 공기가 확산해 나와 물기둥에 공기방울이 형성되기도 했다.
 

journal.pone.0067380.g004-s.jpg » 환도상어의 꼬리를 이용한 사냥 단계별 모습. 사진= 사이먼 올리브 외, <플로스 원>

 

바다에서 꼬리를 이용해 사냥하거나 소통하는 행동은 주로 지능이 높은 고래에서 발견돼 왔지만 물고기에서 관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상어의 지능이 알려진 것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범고래는 물고기떼를 만나면 꼬리로 커다란 소리와 충격파를 일으키는데, 한번에 33마리까지 생선을 사냥할 만큼 강력하다. 또 돌고래도 물고기떼를 모으기 위해 꼬리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혹등고래와 향고래는 장거리 통신을 위해 꼬리로 바다표면 치기 행동을 한다.
 

환도상어_국립수산과학원.jpg » 환도상어. 꼬리가 몸길이의 절반을 차지한다. 사진=국립수산과학원

 

환도고래는 365㎝까지 자라며 인도~태평양의 열대와 온대 바다에 서식하는데, 우리나라 남해안에서도 볼 수 있다. 주로 바다 표면에서 물고기나 오징어 등을 잡아먹기 때문에 다랑어 조업이나 연승어업에 부수어획으로 잡히기도 한다. 고기와 지느러미를 상업용으로 이용한다.
 

성장이 느리고 번식력이 약한 환도상어는 남획에 취약해 현재 세계자연보존연맹이 지정한 적색목록에 취약종으로 등록돼 있다.

 

환도상어의 꼬리를 이용한 사냥 모습 유튜브 동영상(출처=사이먼 올리브 외, <플로스 원>)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Oliver SP, Turner JR, Gann K, Silvosa M, D‘Urban Jackson T (2013) Thresher Sharks Use Tail-Slaps as a Hunting Strategy. PLoS ONE 8(7): e67380. doi:10.1371/journal.pone.0067380
 

조홍섭 환경전문 기자 ecothink@hani.co.kr

 

 
요즘트위터페이스북더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장성 출신 남재준, 군과 국정원 차이 몰라"

 

[이철희의 이쑤시개]<26> '국가정보학' 대가 연세대 문정인 교수

이명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11 오후 5:21:21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오고, 보물을 넣으면 보물이 나온다."

'국가정보학'이라는 학문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국가정보원을 두고 한 말이다. 문정인 교수는 지난 9일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에 출연해 "국정원은 '중립적인 컴퓨터' 같아서 쓰기 나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국정원은 그동안 정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독재 군사 정권의 안위를 위해 조직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참여정부 당시 국정원은 본연의 임무인 각종 정보 수집에 역점을 뒀다.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과 독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서 상황은 뒤집어졌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 수사 중 개인 비리 혐의로 구속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보면, 차이를 확연히 실감할 수 있다. 정권이 국정원을 정치화·사유화한 결과, 국정원은 국내 동향 감시와 심리적 공작에 매달렸다. 국정원 고유 기능이 변질된 것이다. 이에 대해 문정인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태생적 문제를 지적했다.

"2008년 촛불 당시 '배후'로 하나는 종북 세력, 다른 하나는 친노 세력으로 규정됐다. 이들 세력을 단순히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대, 즉 정권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라고 하는 헌정 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인식한 것 같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도 '국정원의 정치화'에서 비롯됐다. 문정인 교수는 "국정원은 대통령의 보좌 기관"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국정원은 자체의 독자적 성격과 판단을 가질 수 없다. 이는 남재준 국정원장의 대화록 공개 결정이 '위법'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정원 개혁'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까.

문정인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목했다. 대통령 직속 기관에 대한 개혁이 초당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특히 국정원이 "법에 정해놓은 국내 보안 직무보다 오히려 정해지지 않은 직무, 즉 '국정 모니터링'"에 치중하고 있다며 대대적인 개혁을 주문했다.

"국정원 개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국정원의 궁극적 소비자가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국정원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감시하느냐가 중요하다."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 바로 듣기
 

▲ 문정인 교수는 참여 정부에서 국정원개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과거 국정원장으로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는 문 교수는 "저는 기본적으로 학자"라며 "행정가나 큰 부서를 맡을만한 능력은 없다고 생각해 고사했다"고 말했다. 그가 국정원장을 했었다면, 오늘날 국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프레시안(이명선)



MB 국정원, 촛불 시위 때문에 종북·친노 세력 감시로 고유 기능 잃어…

이철희 :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간섭, 역대 정부에서 줄곧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된 이후, 이른바 김대중-노무현 민주화 정부 10년 동안 (과거 관행을) 근절하려고 노력했다. 약간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는 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정원의) 독대 보고도 안 받는 등 상당히 많이 노력했고,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통령 한 명 바뀌었다고 정보기관이 과거로 회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정인 : 이명박 정부의 특수 사항 때문이라고 본다. 국정원 자체는 또 정치적으로 개입했을 때 거기에서 오는 불이익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국정원 요원들도 기본적으로는 자기 조직이 비정치화되기를 원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중에 일부 정치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국정원이 워낙 인사정체가 심하다 보니까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그런 식으로 정치적 줄 대기를 하고 그것을 통해서 기회를 잡으려 하는 사람도 없다고는 얘기 못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특수한 경우다. 2008년 2월에 취임해서 5월에 촛불 시위가 나왔다. 그때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경찰청과 국정원에게 '배후가 누구냐, 그것도 못 찾아내느냐'라며 질책을 많이 했다. 그래서 당시 김성호 국정원장이 경질되고, 원세훈 국정원장이 임명됐다.

국정원은 (촛불의) 배후를 찾는데 모든 정치적 노력을 쏟았다. 그 당시 '배후'로 하나는 종북 세력, 다른 하나는 친노 세력으로 규정됐다. 이들 세력을 단순히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대, 즉 정권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라고 하는 헌정 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인식한 것 같다.

대정부 전복을 막는 것이 국정원법에 보장된 국정원의 임무인데, (국정원이) 결국에 '체제 전복 세력을 추적한다'라는 식의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다. 이것은 정보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을 이렇게 운영하다 보니, 대북 정보에서도 결국에 미진한 점이 많이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 정보에도 역점을 못 두게 됐다. 국내 보안정보 중에서도 체제 전복 세력에 대한 동향 감시와 이들에 대한 심리적 공작을 주로 하다 보니, 국정원의 고유 기능에서 많이 벗어나면서 (국정원이) 변질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 국정원의 구조적 문제도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태생적 문제와 관련되면서 국정원이 상당히 정치화됐다.

"원세훈, 특정 정권 옹호했다"

이철희 : 촛불 배후에 있는 세력이 체제 전복 세력이라고 보는 견해는 과거 정권의 경우,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 그렇게 보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렇게 본 것 아닌가.

문정인 : 그렇다. 보통 국가정보기관이 하는 것은 첫째는 국가 안보를 지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 안보를 지키는 것이다. 둘째, 체제 안보라는 게 있다. 이것은 상당히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체제'는 헌정 질서를 의미한다. 헌정 질서는 결국 '어떻게 나라를 통치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통치를 위한 일련의 규범·원칙·규칙·절차를 전부 집대성한 것이 헌법이다. 우리 국민이 선택한 헌법을 지키는 게 체제 수호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체제'를 정권과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다. '전두환 정권, 박정희 정권' 하듯이 정권을 체제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국가 안보를 수호하고 헌정 질서라고 하는 체제를 수호하는 게 국정원의 역할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국정원은 통합형 국가정보기관으로서 대북 정보, 해외 정보, 국내 보안을 총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체제 안보와 정권 안보를 좀 혼동한 것 아닌가 싶다. 특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문제점은 자기가 한 일(국내 정치 개입)이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 체제 수호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원 전 국정원장의 행동은) 정권을 수호하고 특정 정권을 옹호하는 게 됐다.

국정원 자체는 법에 의해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로 되어 있는데, 특정 정권을 옹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 특정 정치적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체제 안보라고 하는 큰 틀에서 진짜 헌정 질서를 수호하는 것과 특정 정권을 수호하는 그 사이에 차이점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국정원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국정원이 정권을 도와주는 것이 나쁠 게 뭐가 있느냐. 국정의 흐름을 잘 모니터링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통령이 정책을 잘 운영해서 국민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말이다. 흔히 이것을 '국정 모니터링'이라고 한다.
 

▲ 국정원 정치 개입에 항의하는 촛불 집회가 매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6일에는 1만 여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뉴시스


국정원의 '국정 모니터링' = '악화가 양화 구축'

이철희 : 지금 국정원법에 의하면 '국정 모니터링'이 가능한가.

문정인 : 국정원법에 '국정 모니터링'이란 말이 없다. 국정원법 3조 1항을 보면, 국정원 직무가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 정보이다. 국내 보안 정보에는 대공, 대정부 전복(반체제), 방첩, 대테러 및 국제 범죄 조직이라고 되어 있다. 이 외에는 (모니터링을) 못하게 되어 있는데, 국내 보안의 상당 부분은 국정을 모니터링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되어 있다.

'국정 모니터링'은 국정원 요원들이 특정 기관에 출입하고 동향 감시를 하는 부분이다. 법에 정해놓은 국내 보안 직무보다 오히려 정해지지 않은 직무, 즉 '국정 모니터링'이라고 하는 데 더 많은 강조점이 가 있다. 이것이 이번 국정원 개혁의 핵심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이철희 :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에 있으면서 국정원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참 잘 쓴다. 현안이 있으면 문제점과 대책까지 깔끔하게 보고서를 썼다. 이런 것이 모니터링에 대한 결과로 나온 것인가.

문정인 : 그렇다. 이것이 바로 애매모호한 영역인데, 지도자 입장에서 보면 국정원 보고가 그렇게 잘 나오면 의존하게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중앙정보부 5국에 판단기획국이 있었다. 판단기획국은 서울지부를 포함해서 전국에 있는 지부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노동 등 모든 분야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를 보고서로 작성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때 판단기획국 국장이 김영광 씨(1960년~78년까지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활동했다. 1979년 10대 총선에서 유정회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해 11대(한국국민당)·14대(민자당) 의원을 지냈다. 2010년 3월 별세)였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영광 보고서를 상당히 신뢰했다고 한다. 그만큼 중정 판단기획국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의 국내 정보 보고에 상당히 의존했다. 그런데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는 국정원 고유 업무에 (국내 정보 보고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타성이 됐다. 비공식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었고, 거기에서 국정원 직원은 국가와 대통령을 위해 공헌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은 '국정 모니터링'이 제일 문제라고 보고 있다. 여기저기 출입해서 시민을 감시하는 것 같고…. 그런 것들 때문에 국정원 고유의 기능, 즉 대북 첩보 수집·해외 첩보 수집·대공 수사·외사방첩·산업 보안·대 테러·국제 조직범죄·마약 밀매 등에 대한 고유 기능까지도 완전히 매도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그레셤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국내 모니터링'이라는 악화(惡貨)가 국정원 고유의 양화(良貨), 좋은 화폐까지도 구축(驅逐)하는 형국이 됐다.

이철희 :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에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고 했는데, 이 말은 틀린 것 아닌가. 정보기관으로 이른바 양지를 지향한다는 것은 틀린 말 아닌가.

문정인 : 그것은 해석의 차이이다. 국정원은 비밀 정보기관이기 때문에 겉으로 노출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음지'이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더 잘 살고 안전한 나라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음지에서 열심히 희생하면서 양지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잘 되길 원한다고 해석하면 된다.

이철희 : 그렇게 해석하면 좋은 말인데, 그렇게 해석되기보다는 국정원이 자꾸 양지에 나오려고 양지에 개입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된다.

문정인 : 국정원은 정의상, 비밀 정보 조직이다. 비밀 정보 조직은 (양지로) 나올 수가 없다. 지금도 국정원은 국정원법 자체에 의해서 자기 신분을 노출할 수 없다. 국정원 직원은 자녀 결혼식 때도 '○○문화사'라는 다른 직명을 쓴다. 국정원 직원이라고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전 국정원 직원·전 국정원장'과 같은 표현을 쓰지만, 전통적으로는 다른 대외 직명을 썼다.

"국정원 = 중립적인 컴퓨터"

이철희 : 박근혜 정부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본인의 권한으로 문서 등급을 낮춰 공개했다. 국정원장이 대통령의 허락 없이 (국가 비밀문서를) 공개할 수 있나?

문정인 : 대통령의 허락이 있어도 국정원장은 자기 스스로가 (국가 비밀문서를 공개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국정원장이 청와대에 보고를 하면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하든지, 안보실장이 발표하는 게 수순이다. 정무직 자리라고 하지만, 국정원장은 나설 수가 없다.

국정원의 임무는 대외 정보·대북 정보·국내 보안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이것을 정보 보고서로 생산해 배포하는 작업으로 끝이다. 정치적 판단, 또는 정책의 결정·집행·홍보는 대통령에게만 있다. 국정원은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보좌 기관이다. 국정원 자체의 독자적 성격을 가질 수가 없다. 엄격한 의미에서 국정원은 '중립적인 컴퓨터'와 같다.

대통령이 똑똑하지 못해서 국정원을 잘못 활용하면 쓰레기가 된다. 대통령이 현명하게 정보 소요제기를 잘하면서 국정원 감시도 잘하면, 국정원은 좋은 정보를 생산해 국가 안보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선진국의 정보기관은 대표적인 '중립적인 컴퓨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철희 : 국가 정보기관을 중립화해야 한다는 말인가.

문정인 : 개념상, 국가정보기관은 독자적인 정치적 색채를 가질 수가 없다. 국가 정보기관은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을 하는 곳도 아니고,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곳도 아니다. 국가 정보기관이 하는 것은 대·내외적인 정보를 수집·분석해 믿을 수 있는 정보로 만들어 대통령 앞에 보고하고, 그러면 대통령이 그것을 참조해서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국정원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과거 중앙정보부의 나쁜 유산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국가 정보기관이라고 하면 권력기관으로 인식한다. 원래 권력기관 아니다. 권력기관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권력기관 화(化) 되어 버렸고, 사람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또 그것을 갖고 국정원 자신이 자꾸 아젠다를 만들려고 하는데 아주 잘못된 것이다.

이철희 : '국가 정보기관을 민주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타당한 말인가.

문정인 : 국가 정보기관은 기본적으로 정치화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민주화'라는 표현을 쓸 필요도 없다. 정치 체제 자체가 민주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면, 대통령과 국회·언론·NGO가 국정원에 대한 감시·감독을 잘해서 국정원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해야 한다. 국정원은 고유의 목적인 국가 안보와 헌정 질서 지키는 역할만 잘하면 된다.

앞서 '국정원 보고서 참 잘 썼더라'라며 '대안까지 냈다'라는 말을 했는데, 대안을 내는 것은 국정원이 하는 일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기 때문에 대안으로 1·2·3·4를 고려할 수 있다'는 옵션을 제공할 수는 있다. 하나만 제시하는 것은 국정원 보고가 아니다.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도록 여러 선택 사항을 제시하는 것이 국정원의 역할이다.
 

ⓒ프레시안(이명선)


국정원 개혁 ① '국정 모니터링' 없애야…

이철희 : 검찰 개혁을 한다고 하면, 검찰 인사위원회를 꾸려 시민이나 민간인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국정원 개혁에 이런 시민 참여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문정인 : 가능하다. 먼저 법과 제도가 제일 중요하니까 '국정원이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국정원에 대한 감시·통제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국정원장에 진짜 정보 전문가를 임명해 정치적 판단의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네 번째로, 국정원 자체도 내부적 개혁이 있어야 한다. 국정원은 군 조직보다도 더 위계질서가 강한 곳이다. 대통령 빼놓고는 국정원장이 하늘 같은 존재이다. 국정원장에게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국정원장이 한마디 하면, 다 따른다. '원장님, 그것 잘못됐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 문화를 고쳐야 한다.

더 나가서는 내부 고발자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위계질서가 강해도 국정원장의 불법적 행동을 고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국정원장이 정보 판단을 할 때 '정치적 개입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대해 조심스러워할 것이다.

그런 것이 국정원 개혁 방향이 되어야 한다. 핵심은 국정원이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법으로 만들어서 더 이상 애매모호한 부분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철희 : 지금 법으로는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어 어렵다는 말인가.

문정인 : 그렇다. 국정을 모니터링 하는 것은 지금 국정원법에 없는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특정기관을 상대로 국정원 직원이 알게 모르게 계속 동향을 감시하는 것은 국회나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이것을 합법화하던지, 아니면 국정원 내 '국정 모니터링'을 없애고 다른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 때문에 모든 문제가 생긴 것이다.

대공 수사에 대한 것도 국가보안법을 없애기 전에 사실상 대공 수사 기능을 없애기 쉽지 않다. 국가보안법과 대공 수사 기능을 없애는 것은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국정원이 대공 수사 권한을 가질 수 있다.

대정부 전복에 대한 수사도 국정원이 할 수 있다. 외부의 사주를 받아서 우리 헌정 질서, 자유민주주의 질서, 시장경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세력이 있다면 (국정원이) 감시, 수사할 수 있다.

헨리 키신저가 '우호적인 국가의 정보기관은 있을지언정 우호적인 정보기관은 없다'는 재밌는 말을 했다. 모든 나라는 자기의 국가 이익이 있고, 정보기관은 국가 이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감청할 수 있고 도청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스노든 현상'은 그런 점이 드러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이 대북 정보 수집을 망쳤다고?

이철희 : 국정원 개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참여 정부 초기, 국정원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었는데, 국내 파트와 해외 파트를 분리하자는 노 전 대통령을 어떻게 설득했나.

문정인 : 첫 번째는 국내와 해외 파트 사이를 칼로 자르듯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둘째, 양자 사이 연계가 상당히 긴밀해졌기 때문에 그 둘을 한꺼번에 넣는 것이 조직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었다. 세 번째는 국내와 해외로 나누면, 지금 국정원만큼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정보기관으로 비밀을 다루다 보면 정당화 과정을 거쳐 조직이 커지게 되면, 두 개의 공룡 조직이 생긴다. 그래서 '그보다는 하나만 잘 관리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북한을 지적했다. '북한'이라는 문제가 국내와 해외의 구분을 더 어렵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철희 : 최근 한 칼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옳았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여전히 그 폐해는 예상되지만 또 다른 큰 잘못을 막기 위해서는 분리형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인가.

문정인 :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라는 것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 그런 것들 때문에 국정원의 정통성과 국민적 지지를 약화시키고 그러면서 국정원의 존재 이유를 없게 만드니까 그럴 바에는 분리해서 우리가 원하는 대북 정보와 해외 정보, 외사 방첩, 과학 기술 정보 수집을 잘하게 하는 게 오히려 국정원도 살리고 우리 국민도 더 많은 덕을 보는 것 아닌가 하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

이철희 : 그때 국정원에서 국내 정보 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됐나.

문정인 : 50대 50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국정원은 국내 부서가 강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시 안기부 1차장이 국내 보안 담당이었다. 그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안기부를 '국가정보원'으로 바꾸면서 해외·대북 담당을 1차장으로 하고, 국내 보안을 2차장으로 했다. DJ는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1차장은 대외 정보, 2차장은 국내 보안, 3차장은 대북을 담당하도록 했다. 상당히 좋은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오면서 '대북 관련으로 재미 많이 봤다, 해외도 재미 많이 봤다, 국내가 그동안 너무 어렵게 지냈다'라며 국내 부서를 엄청 키웠다. 심지어 대외 업무까지도 과거 국내부서에 있던 사람들이 맡았다고 한다. MB 정부에서 국내 부서가 커지고, 대북과 해외 부서가 약화됐다는 평가다.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보수가 진보 10년 동안 대북 정보 수집 기능을 완전히 망쳤다고 하는데 그것은 동의할 수 없다. 완전히 허위이고 왜곡이다.

이철희 : 남재준 국정원장도 'MB 정부 5년 동안 대북 정보가 다 죽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 원장은 대북 정보를 키워야겠다는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국내 정보를 줄이겠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나.

문정인 : 남재준 원장이 분명히 해외 정보·대북 정보 강화하겠다고 얘기했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해외 정보·대북 정보·과학 기술 정보·사이버 정보 강화시키면, 국내 부서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남재준, '명예 회복' 위해 대화록 공개?

이철희 : 남재준 국정원장이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국정원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고 했다. 검찰 수사에 의해서 정치와 선거에 개입한 것이 드러나 명예가 실추됐다는 것인데, 난데없이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명예 회복' 운운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연결이 안 된다.

문정인 :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국정원은 성공한 비밀공작이라고 해도 절대 노출되면 안 된다. 수집 공작을 하든, 와해 공작을 하든 그 성공사례를 드러내면 국정원은 명예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 결과 상대방이 그것을 파악하게 되면 더 이상 그런 공작을 하지 못 한다. 그래서 성공하더라도 공개를 못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정원의 운명은 영원히 음지 속에 있으면서 명예를 찾지 않는 것이다. 국정원이 명예를 찾으려 할 때 국정원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잘못된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고 본다. 국정원이 다른 기관, 소위 군 조직처럼 명예가 있고 밖에 나와서 떳떳하게 할 얘긴 하고 살아야 한다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입이 열 개여도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게 국정원이다.
 

ⓒ프레시안(이명선)


국정원, '2008년 1월' 대화록… MB 인수위 위해 작성?

이철희 : 국정원 대화록 문건을 보면 2008년 1월에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정상회담은 2007년 10월에 있었다. 참여정부에서 당시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지금 국정원 설명이 많이 다르다.

참여정부에 있었던 사람들은 원본은 국가기록원에 보내고 사본 하나를 국정원에 보냈다고 하는데, 국정원은 사본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정보를 취합해서 만든 문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2008년 1월이면 김만복 전 국장원장이 재임했던 시절이다. 이게 잘 설명이 안 된다.

문정인 : 2008년 1월에 생산된 것은 비밀 등급 분류도 안 된 문서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수수께끼이다. 정상회담이 끝나면 바로 작성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 기록물인데, 2008년 1월은 대통령 인수위 쪽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정상회담과 관련된 얘기를 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료를 잘 추슬러서 다음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잘 사용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는 하지만, 대화록을 두 개를 만들어서 하나는 대통령기록관에 하나는 국정원에 보관하라는 지시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자료를 취합해서 그렇게 하나 (만들라고 한 것인데), 2008년 1월 생산한 것을 보면 대화록 녹취 그 자체이다. 그것은 이해가 좀 안 된다. 국정원이 만약 (자기네 보고서 형식으로) 한다면 2007년 10월 정상회담에 대한 것을 탐문도 하고, 정보도 수집해서 자기네들이 소화를 시켜서 정보 보고 형태로 갖고 있다면 문제가 안 된다. 그것은 정보 보고가 되니까. 그런데 녹취록을 그냥 갖다 놓고 국정원이 생산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대화록을 바탕으로 분석해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지금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좋습니다'라고 만들었다면 국정원의 정보 분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녹취록 그 자체를 국정원 것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철희 : 그런데 국정원장 모르게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문정인 :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당시 대화록을 1급 비밀로 분류해 영구 보존토록 했다는 것인데, 이를 바탕으로 2008년 1월 판이 생산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비밀 분류를 해놨는지, 그리고 언제 어떻게 2급 비밀로 재분류했다가 남재준 현 국정원장이 그것을 공공기록물로 비밀 해제했는지 국정조사에서 다뤄야 한다.

국정원 개혁 ② 박근혜, 국정원 개혁위 만들어야…

이철희 : 지금 문제는 국정원 개혁 방안이다. 지금 이대로 놔둘 수는 없지 않나. 개혁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묵묵부답인 것 같다. 이것 때문에 실랑이를 하다 보면 결국 중요한 국정원 개혁이 후퇴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또 '국정원 스스로 개혁안을 만들어 봐라'라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도 의문이다.

문정인 : 대통령이 '국정원이 알아서 개혁하라'라고 말했지만, 그런 국정원 개혁안은 국회도, 국민도, 여론도 납득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비판적이 돼 시간 끌기가 되면서 국정원 입지만 더 좁아진다. 대통령이 중심이 된 국정원 개혁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이 '6개월이나 1년이 걸리더라도 국정원 개혁에 대해서 안을 내 봐라'라며 국회 의견까지 수렴하는 대승적 접근이 필요하다.

과거 미국의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리차드 닉슨의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과 1973년 CIA가 피노체트 군사정권을 탄생시킨 칠레의 쿠데타 음모와 여론조작과 암살 등에 깊숙이 개입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CIA에 엄청난 문제가 지적됐다. 그래서 1975년 미 의회에서는 CIA의 불법 활동 여부에 대한 상원특별조사위원회, 프랭크 처치를 위원장으로 하는 '처치 커미티(committee)'를 만들고 이 위원회는 4권에 달하는 보고서를 생산했다.

청문회를 2년 가까이했다. 미 정보기관을 완전히 투명하게 만들고,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미 중앙정보부가 전반적인 제도 개편을 했다. 그때부터 CIA는 비밀공작 중 암살이나 인명을 살상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CIA가 비밀조직이고 불법적 활동을 하는 조직이지만 그것에 대해 의회의 통제를 제도화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처치 위원회'였다.

차제에 박근혜 대통령이 진짜 공헌을 하고 싶다면, 대통령 직속의 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초당적으로 대승적으로 안을 만들고 그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여기에서는 정파적 이익 따지지 말고 '진짜 국정원의 현실 문제가 무엇인가'라고 해서 현실 진단하고, 이것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것을 선택하고 안 하고는 대통령 몫이지만, 그렇게 했을 때 여와 야에 대한 설득도 강해질 수 있다.

이철희 : 초당적으로 양쪽이 다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나 그런 관점에서 개혁안이 만들어지면 거부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안 할 것 같다.

문정인 : 지금 (내가)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다면 대통령에게 권하겠다.

국회가 개혁의 주체가 되긴 힘들다. 너무나 싸움을 많이 하고 너무 정파적인 계산을 많이 한다. 여야 다 문제가 있다. 단임제 대통령인데, 그것 하나라도 잘해서 국가정보원의 미래에 대한 기틀을 잘 잡아 놓으면 국민들도 거기에 설득이 되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엄청난 성공 사례가 될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 국정원 개혁을 통해 '이명박근혜는 다르다'는 점을 피력할 수 있을까. ⓒ연합뉴스


국정원 궁극적 소비자는 '대통령'

이철희 : 그 외 국정원 개혁의 방안을 잡는다면?

문정인 : PNIO, 국가정보수집의 우선순위라는 게 있다.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서 국가 정보 수집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지 못하는가를 정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것을 정해야 어떤 부서들은 계속 유지·강화시키고 어떤 부서는 아예 폐지한다는 게 나온다.

이철희 : 그것은 법령으로 하는 거죠?

문정인 : 그렇다. 국정원 법에 대한 개정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은 '국정원장을 임기제로 한다' 등을 정하면 된다.

이철희 : 임기제로 한다는 것이 중요한가.

문정인 : 임기가 보장되면 대통령에 대한 해바라기 원장이 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철희 : '국정원장 추천 위원회'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은 안 되나?

문정인 :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대통령이 정해야 한다.

이철희 : 검찰총장은 그렇게 하지 않나.

문정인 : 검찰총장과 (국정원은) 다르다. 국정원은 비밀정보기관이다. 결국 정보기관의 장은 간단하다. 대외·대북 정보 잘 수집해서 대통령이 정책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통령의 심증 잘 헤아리면서 결국 정치 개입의 선을 넘지 않고 아주 유연성 있으면서 일사불란하게 대통령을 보좌하는 게 필요하다. 국정원이 권력기관이라는 인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철희 : 더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국정원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지 않나?

문정인 : 국정원은 '중립적인 컴퓨터' 같은 것이어서 쓰기 나름이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오고, 보물을 넣으면 보물이 나온다. 대통령이 정보 소요 제기를 잘하고 국정원이 가져온 정보보고에 대해서 문제점 지적을 잘하면, 국정원 스스로 잘 작동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국정원의) 궁극적 소비자가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국정원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감시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철희 : 만약에 악용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제도를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을 나쁘게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의지는 있어 보이나?

문정인 : 청와대 관계자가 지난달 23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의 독대 보고 같은)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정원장과 독대하지 않는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둘이 된 셈이다. 국정원장의 힘은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나온다.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대통령과 국정원장이 독대하지 않았다고 하면, 남재준 국정원장은 독자적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결정은 독대해서 대통령의 허가를 직접 받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국정원장이 안보실장의 허가를 받아 할 일도 아니고, 그렇다면 대통령의 사전 승인 없이 독단적 행동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이철희 : 정보원장 정도면, 대통령과 핫라인 있지 않나? 수시로 전화할 수 있는….

문정인 : 원래는 그렇다. 대외정보를 담당하는 CIA 수장도 매일 아침 정보보고를 한다. 그런데 결국은 CIA 수장과 대통령이 얼마나 가까운가에 달려 있다. 가깝긴 가까운데 그 가까움이 전문성에 기초를 둔 가까움이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가까워서 대통령의 정치적 이득을 보좌하고 지키는 가까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철희 : 독대를 안 하니까 남재준 원장이 독자적 판단으로 공개했을 수 있다는 말에, 핫라인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

문정인 : 물론 대통령 산하에 있는 모든 조직은 다 그럴 수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전화로 중요한 정책 결정을 그렇게 쉽게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중요한 것을 전화로 해서 할 가능성이 있을까.

국정원 사태, 야당은 어떻게…

이철희 : 야당이 이 문제를 어떻게 잘 풀어야 국정원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문정인 : 상식과 순리대로 하면 된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현해서는 검찰의 조사 과정 지켜보고,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 문제는 국정조사에서 철저히 다뤄야 한다. 단, 너무 쟁점화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국정원 개혁안을 아주 신중히 만들어야 한다. 그 대안이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야당이 국민에게 할 수 있는 일 아니겠나.

이철희 : 무언가를 바꾸는 것은, 개선하고 낮게 만드는 것은 목소리만 커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전문가의 힘이라는 게 느껴졌다. 전문가의 권위가 많이 느껴져서 국정원 개혁을 계도해주셨으면 한다.

문정인 : 세상사는 상식과 순리대로 가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대단하다. 국민들이 상식과 순리의 원천이다. 그것을 따라가면 된다.
 

▲ 문정인 교수와 이철희 소장. ⓒ프레시안(이명선)


* 더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 "장성 출신 남재준, 군과 국정원 차이 몰라"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이철희의 이쑤시개> 바로가기 클릭! http://pressian.iblug.com/index.jsp

 
 
 

 

/이명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요즘트위터페이스북더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쳐가는 정권의 횡포

 
NLL에 4대강까지 ‘국정원 물타기’ 쌍포 가동?
 
4대강도 NLL과 함께 ‘물타기‘ 주연으로 캐스팅
 
육근성 | 2013-07-12 08:48:4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를 물타기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공개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국정원은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인하면서 스스로 자가당착적인 행동을 보인다.

국정원은 NLL 논란 재점화, 청와대는 갑자기 4대강 거론

6월 말 대화록 공개가 크게 논란이 되자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명예와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해명이 있은 뒤 보름 후인 지난 10일 국정원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대화록 공개는 국가 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자 국가 안보 수호의 의지였다”고 말을 바꿨다.

대화록 공개 이유가 ‘국정원 명예와 직원 사기 진작’에서 ‘국가안보 수호의 의지’로 진화한 바로 그날, 청와대는 4대강 사업에 대해 그간의 새누리당의 주장과 입장을 완전히 뒤집는 평가를 내놓았다. 의외의 행동이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감사원의 4대강 감사결과를 근거 삼았다며 “(감사원 감사결과가)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고, 국가에 엄청난 손해을 입힌 큰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전모를 확실히 밝히고 진상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다”며 “국민에게 잘못된 부분은 잘못된 대로 사실대로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4대강은 사기극? 새누리당은 사기 공범

4대강 관련 부분을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 못지않은 대형 이슈로 부각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한통속이 돼 4대강 사업 전반을 비판하던 국민을 핍박해온 이들이 갑자기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다. MB의 편에서서 4대강에 찬동하다가 갑자기 국민의 편으로 돌변한 이유가 궁금하다.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하던 때는 언제고, 왜 하필 이때 ‘4대강은 사기극’이라고 바꿔 말하는 걸까.

4대강 예산과 관련해 날치기에 두 번이나 앞장섰던 저들이다. 2011년에는 4대강 주변의 난개발을 허용하는 ‘친수구역특별법’을 저들 단독으로 통과시킨 바 있다.

 

○ 2009년도 예산안(대운하, 형님예산 등), 예산부수법안 날치기 찬성의원

한나라당 164명, 자유선진당 12명, 친박연대 5명, 무소속 3명. 총 184명

 

○ 2010년도 예산안(4대강 예산 포함) 찬성의원

한나라당 165명, 친박연대 7명, 무소속 2명. 총 174명

 

○ 2011년도 예산안 및 4대강 관련법안 날치기 찬성의원

한나라당 161명, 미래희망연대 4명. 총 165명

 

 

청와대 4대강 거론, 국정원 NLL과 국회 국정조사와 맞물린 노림수?

물 불 안 가리고 4대강 날치기에 앞장섰던 저들이 ‘4대강 사업’을 ‘대국민 사기극’으로 규정한 이유에 대해 다수의 언론들은 ‘MB정부와의 선긋기가 시작된 것’으로 해석한다. 이유가 그 뿐 만일까. 아니라는 정황이 여럿이다. 순수한 동기에서 4대강 사업을 문제 삼은 게 아니라, 난감한 국면을 타개하려는 정치적 노림수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청와대의 ‘4대강 발언’은 국정원의 NLL 성명과 국회의 국정조사와 맞물린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청와대가 ‘4대강은 사기극’이라고 말하던 바로 그 때 국정원은 성명을 내고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대화록 내용이 영해를 포기하는 사태를 초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발 더 나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는 판단’이 국정원의 입장이라고 못박아 말했다.

우연치고는 너무 정교한 타이밍

국정원이 자신의 불법행위를 정당화하며 ‘노무현 NLL 포기’를 다시 이슈화시키던 그 순간, 국회에서는 국정원 국정감사 실기계획서 채택을 놓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10일은 국정조사 일정상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국정조사 일정과 증인채택 등 가장 중요한 부분이 최종 조율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NLL 포기 논란을 재차 이슈화 했고, 4대강 날치기 예산에 찬성표를 던졌던 청와대는 태도를 완전히 바꿔 사기극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국정원 국정조사의 시동이 걸리는 바로 그 날 있었던 일들이다.

<4대강 예산안 날치기에 항의하는 민주당 의원들/2009.12.31>

우연치고는 너무 정교하다. 하나를 위해 짜맞춘 듯하다. 어차피 대화록 공개 목적이 국정조사 물타기였던 만큼 국정조사 본격 실시 시점에 맞춰 다시 한 번 논란의 전면에 등장시키면서, 동시에 NLL 못지않은 파괴력을 가진 4대강을 이슈로 띄워 쌍포를 가동한다면 국정조사 물타기가 훨씬 수월해질 거라는 계산에서 입을 맞춘 행동이 아닐까 싶다.

NLL 이상으로 흡인력과 폭발력 지닌 ‘4대강 의혹’

4대강은 NLL 이상으로 여론의 흡인력과 폭발력을 지닌 이슈다. 4대강을 ‘사기극’으로 규정할 경우 청와대가 얻을 수확물은 클 수 있다. 4대강을 반대해온 국민 70%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어 국면전환에 유리할 뿐더러, 입찰 담합 등 각종 비리가 수두룩해 국민에게 볼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다는 강점도 있다.

또 4대강 진상규명과 비리 수사 등을 통해 MB 정권의 핵심을 강타하게 되면, MB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이들과 박근혜 정권이 한배를 타고 있다는 분위기 형성도 가능하게 된다. MB정권에 비판적인 이들의 태반은 박근혜 정권에게도 비판적이다. MB정권을 공동의 적으로 만들어 박 정권에 비판적인 여론을 중화시키겠다는 노림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MB정권을 비난함으로써 국정원 국정조사 과정에서 불거질 ‘박 정권 책임론’의 화살을 MB정권 쪽으로 돌리려는 게 목적일 것이다.

대화록 공개로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이 어느 정도 주춤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물타기’에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노무현 발언이 NLL 포기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한 경우가 60%에 달한다.

NLL-4대강 ‘쌍포’ 가동, 술책에 휘말리면 안 된다

NLL 공개로 큰 재미를 못 본데다가 그마저 약발이 처음과 같지 않으니 특단의 뭔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끄집어낸 카드가 ‘4대강 사기극’ 아닐까.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의 본격적인 실시를 앞두고 여권이 ‘쌍포’를 가동한 셈이다.

NLL과 4대강이라는 ‘쌍포’가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국민의 판단과 시선에 혼잡함과 혼란을 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여론을 약화시키려는 저들의 술책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국민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때다. 저들의 술책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냉정하고 이성적인 시각으로 사태를 직시해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근혜의 '할리우드 액션'에 경고를 보내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7/12 10:29
  • 수정일
    2013/07/12 10:2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박근혜 대통령의 입이라 불리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4대강 사업과 대운하'에 관한 감사원 보고서를 놓고 '국민을 속인 것'이라 발언하자, 대한민국 언론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선 긋기를 하려고 한다고 논평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엠피터는 이것은 국정원 사건과 18대 대선의 문제점을 회피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전략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MB정권과 박근혜 정부의 과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아직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이가 정치적 대립 관계로 전혀 다른 정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두 사람의 밀월에 의해 어떻게 박근혜 정부가 탄생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 자리를 놓고 싸웠던 MB와 박근혜'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놓고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는 진짜 피 터지게 싸웠습니다. 이명박 후보의 BBK 사건을 공격했던 장본인도 박근혜 후보였고, 친이,친박의 전면적인 갈등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박근혜와 만났지만, 협력 관계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2008년 총선에서 친이계가 공천되고 친박이 대거 탈락하자, 박근혜는 특유의 발끈함을 보였습니다.

"한나라당 공천이 잘못돼 가고 있고, 기준도 없는데다 엉망이다.오로지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공정하게 해 달라고 했는데 BBK 이야기를 한 사람은 공천에 안 된다는 둥 살생부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데 이것은 정말 아니다" (박근혜)


 

 

 


친박계 탈당 등으로 친이,친박의 갈등이 극에 달하자, 2008년 5월 10엘 박근혜와 이명박 대통령이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촛불집회를 들먹이며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공격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가 요구했던 친박 복당을 '당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반박했습니다.

2009년 1월 두 사람은 극비로 만났지만, 이후 청와대가 극비회동을 흘렸다고 박근혜는 반발했고, 2009년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는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 차기 정권은 무조건 박근혜가 맡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의 갈등은 화해될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는 듯했지만, 이런 대립을 한 방에 해결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형님이자 '상왕'이었던 이상득 의원이었습니다.

 

 

 


대통령의 형님이었던 이상득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난 뒤부터 차기 정권은 무조건 '박근혜'라는 신념을 한번도 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한나라당에 가장 중요한 건 정권 재창출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전)대표는 한나라당의 자산이다." (경북지역 언론인 모임에서 이상득 의원)

이상득 의원은 왜 이토록 차기 정권은 무조건 박근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친박 인사와 이상득의 정치적 양아들 원희룡 의원과의 대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친박인사) “지금 대선후보 중 MB 퇴임 후 MB와 SD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박근혜 (전) 대표뿐입니다.”
(원희룡)“무슨 말씀이신지….”
(친박인사) “그럼 이렇게 말씀드릴까요. MB가 박 대표의 대선 행보를 방해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박 대표가 대선에서 진다고 해도 야당 대표는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당 대표’ 박근혜가 MB와 SD를 청문회에 세우지 말란 법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노련한 정치꾼 이상득 의원은 이미 자신의 동생이 퇴임 후 겪을 일을 예상했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박근혜를 선택했습니다.

혹자는 박근혜 이외에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없었다고 말하지만, 친이계가 나서 2012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제대로 싸웠다면 박근혜 후보가 과연 대선까지 갈 수 있을 여력이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런 의문은 아래에서 더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 정권연장을 위해 서로 손을 잡은 MB와 박근혜'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실세였던 이상득 의원의 힘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의 화해와 협력은 앞서 말한 갈등이 있기는 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급물살을 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의 화해는 가장 먼저 정진석 정무수석을 선택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충청도 출신에 세종시 수정안에도 반대표를 던져 친박계와 친했던 정진석 정무수석 임명은 MB가 아닌 박근혜의 허락하에 이루어졌습니다.

(임태희는 정진석 임명 전에 박근혜를 찾아갔고, 박근혜는 임태희의 정진석 정무수석 추천에 '그러면 저야 좋죠'라는 답변을 했다.또한 정진석은 박근혜의 '여성대통령'의 기반이었던 각국 여왕과의 만남도 지시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정권 연장의 분수령은 2010년 8월 21일에 열린 청와대 회동부터입니다. '8.21 회동'이후 이명박은 박근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고, 박근혜 또한 이명박의 비리와 문제를 눈감아줬습니다.

어떤 이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비판한 박근혜를 보면서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박근혜가 대구에 가서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비판하자,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 발언을 했다는 점을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MB정권의 '민간인 사찰','4대강 사업','MB 사저 특검 연장 거부'을 비판하지 않고 수용했던 박근혜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NLL도 DMZ처럼 지켜야 한다'고 발언함으로 박근혜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디스해주는 친절함도 보여줬습니다.

 

 

 


박근혜와 이명박이 정권 연장에 협력했다는 증거는 바로 '김무성'입니다. 김무성 의원이 왜 중요하냐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가장 1등 공신이자, 이명박 정권과의 커넥션이 바로 '김무성'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박근혜 후보는 김무성 의원을 가장 싫어했던 인물입니다. 친박계였지만, 나중에 친이계 신주류로 등장한 김무성은 다혈질에 보스 기질 때문에 '무대'(김무성 대장)로 불렸습니다. '배신'을 싫어하고 충성과 무거운 입을 중시하는 참모만 좋아했던 박근혜와는 상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김무성이 박근혜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이 됐을까요?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둔 박근혜 캠프는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의 한광옥 영입 반발과 캠프 내부의 극심한 진통으로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김무성 의원이 들어오면서 박근혜 캠프 상황은 360도로 바뀌었습니다. 김무성의 MB정권 조직력 동원에 힘입은 캠프 진영 정리, 권영세의 국정원 회의록 입수,정문헌의 NLL 발언은 밀리던 선거판을 일순간에 뒤집었고, 이는 침몰하는 박근혜호가 항구로 직진할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조직과 현직 대통령은 선거에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탄핵당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 한나라당이 했던 행태로 본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은 선거법 위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 - 박근혜,이명박 회동 '정권 재창출 위한 밀약?'

결국,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대통령은 2010년 8월 이후, 정권연장에 협력했던 사이였고, 이 두 사람이 결과와 책임을 모두 공동으로 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명박,박근혜,이상득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합성 이미지. 편집:아이엠피터

 


MB와 박근혜는 정권 재창출이 아니라 '정권연장'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들의 협력 관계를 깨뜨릴 방법은 오로지 MB를 국정조사 증인으로 청문회 대상으로 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정권 연장을 위해 일한 이상득이지만 동생의 구속을 무작정 바라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대강 대운하 보고서가 나왔지만, 국정조사를 하려면 9월이나 지나야 합니다. 이 말은 그 시기가 될 때까지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정조사는 불가능하고 NLL 대화록 정국으로 '18대 대선 문제'는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새누리당은 정권 연장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국민은 그들의 불법적인 합작을 깨뜨리고 정의를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와대보다는 MB를 공략하되, 할리우드 액션과 같은 박근혜 정부의 모습에 단호히 옐로우카드를 제시해야 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방부의 거짓말, 치밀하지 못했다

 

되풀이되는 이중플레이... 증인들이 아직도 현직에 남아 있다

13.07.12 09:37l최종 업데이트 13.07.12 09:55l
김종대(news)

 

이걸 아는가? 20억 년 전에 지구 최대의 대기 오염 사건이 발생하여 지구 생물의 98%가 멸종했다. 이 오염사건을 피해 살아남은 박테리아들은 포유류 내장 속으로 들어가 아직도 생명을 유지하는데, 이를 '혐기성 박테리아'라고 한다.

지구 탄생 이래 가장 참혹한 참사라고 할 수 있는 이 사건은 다름 아닌 '산소의 출현'이다. 바다 속 남조류가 최초로 광합성 활동을 하면서 배출한 오염물질인 산소의 출현은 재앙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생물들이 죽었기에 지구는 고등생명이 번성하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서 평화와 공존의 새 질서가 정착되면...

지금 우리에게 그런 문제가 다가와 있다.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서 평화와 공존의 새 질서가 정착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우선 한미동맹의 효용이 감소된다. 외부의 안보위협이 없는데 우리가 굳이 미국에 의존해서 살 이유가 없다. 그 다음으로 군대가 할 일이 없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 가서 뭘 하란 말인가? 그러니 지금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기제가 잠식된다. 이건 분명히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다. 문제는 새로운 평화공존의 질서로 가는데 있어 이 변화를 거부하는 구시대의 엘리트와 기득권층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것이 안 되면 우리 냉전세력들이 혐기성 박테리아가 되든가, 아니면 평화공존의 새 질서가 좌절되든가, 둘 중 하나다. 이 점에서 우리 군은 지금껏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길에 뛰어들기를 주저하고 반대해 왔다. 그 주된 사례를 보자.

1996년경부터 우리 정치권, 특히 야당은 남북관계에서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제기하며 포로 송환을 국가정책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당시까지 보수정권은 국군 포로라는 말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버텼다. 당시 국방부 군비통제관을 비롯한 국방부 관계자들의 입장은 "한국전쟁 당시에 반공포로를 일방적으로 석방한 우리 쪽 사정으로 북한에 포로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며, "이제 와서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하면 명분이 약한 우리가 북한에 말려들게 될 것"이라며 국군 포로라는 말 자체를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국군포로라는 말 대신에 '한국전쟁 실종자'라는 말을 고수했다. 국군 포로를 말하기만 해도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는 이유로 거론하지 못하도록 국회에 압력을 행사했다. 1998년에 집권한 김대중 정부가 국군포로라는 용어를 채택하고 총리실에 국군포로 송환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런데 이전 정권에서 우려했던 일은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보수 세력은 적반하장으로 김대중 정부에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하라"며 군복 입고 시위를 벌였다.

2002년에 북한과 개성공단 개발이 논의되자 보수세력은 난리가 났다. 북한의 주요 남침 통로에 도로를 깔고 사람이 왕래하면 "유사시 북한에 남침 통로를 제공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방부의 갖은 방해와 노골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런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박근혜정부도 개성공단을 살리겠다는 입장이고, 한 발 더 나아가 공단을 국제화하자고 한다. 개성공단이 만들어지면 서울까지 더 신속하게 북한이 쳐들어올 수 있다고, 나라 망한다고 소리치던 보수 세력은 이제 입을 다물고 있다.

이 무렵에 또 금강산 관광을 위해 동해에 남북 철도, 도로 연결이 추진되자 국방부는 또 난리를 쳤다. 육로 연결은 정전협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유엔사 승인 없이 절대 추진될 수 없다며 갖은 방해로 육로 연결을 지연시켰다. 이 때문에 금강산 육로 관광이 원래 김대중 정부에서 성사될 계획이었으나 자꾸 지연되어 노무현 대통령에 와서야 가능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유엔사에 "왜 육로 연결이 문제냐"고 문의하자 "우리는 반대한 적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중간에서 국방부가 이중 플레이를 한 것이다. 이후 금강산 육로 연결이 이루어지자 이제 와서 그것이 우리의 동부전선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연결된 도로와 철도를 다시 걷어내자고 말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공동어로구역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만들어지면 서울과 인천의 안보가 치명적 피해를 입는다는 국방부, 국정원의 주장은 우리가 오래 전부터 듣던 상투적인 거짓말이다. 그 증인들이 아직도 현직에 남아있다.

국방부·국정원 주장은 오래 전부터 듣던거짓말 상투적인
 

기사 관련 사진
▲ 김위원장 김장수 국방장관 악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2일 평양시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김장수 국방장관과 악수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2007년에 김장수 국방장관, 김관진 합참의장이 그들이다. 등거리·등면적 공동어로구역 협상방안을 직접 만들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승인을 받고, 북한과 협상한 장본인들이다. 만약에 등거리가 문제가 있다면 NLL을 사이로 등면적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어 북한과 협상하면 된다고 했던 사람들이다.

그것도 한 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말했고, 청와대 노무현 대통령 주재의 대책회의, 전략회의에 참여해서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던 사람들이다. 다 떠나서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기간 중에 "NLL만 인정한다면 (북한과) 공동어로구역을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적어도 공동어로구역에 관한 한 현 정부 인사들도 절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국방부로 하여금 등면적으로 공동어로구역을 하면 서북5도가 고립되어 인질화되고 북한의 잠수함 침투를 차단할 수 없다고 발표시킨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같은 방식으로 NLL을 방위하면 북한 잠수함은 절대 쳐들어오는 일이 없고 서북5도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사라지는 것일까?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보라. 그들이 NLL을 확고히 수호한다고 말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천안함 사건을 발표할 당시에 합참의 박정이 민군합동조사단장이 뭐라고 했나? "현대 어떤 과학기술력으로도 물속으로 오는 잠수함을 잡을 수 없다"고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정작 서북도서 안전이 위협받은 때는 그들이 NLL을 더 강력하게 방위한다고 말한 다음이었다.

만일 등면적으로 하는데 우리의 안보에 무슨 문제가 있다면 그건 얼마든지 조정하면 되는 일이다. 그래서 북한과 협의하자고 했다. 김장수, 김관진이 누구인가?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해주 직항로도 열어주기로 했던 사람들이다. 북한의 평화협정 주장을 사실상 동조하는 종전선언 여건 보장을 위한 군사적 협력에도 합의한 사람들이다.

정승조 합참의장은 누구인가? 김장수 국방장관을 수행해서 평양 송전각에 가서 김영철과 실무협의를 한 사람 아닌가? 그들이 회담 이틀째 되던 날 김일철 인민무력부장과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밤늦도록 폭탄주를 마신 이유는 또 뭔가? 잘 해보자고 한 것이다.

평소 술을 못하는 김일철은 심장박동기를 차고 다녔다. 그런 그가 김장수, 정승조 등이 권하는 폭탄주를 네 잔이나 받아 마셨다. 그러면 NLL을 확고히 고수하며 걸핏하면 "나 사퇴하면 그만이다"라는 우리 국방장관이 뭐가 좋아서 김일철은 못 먹는 술까지 마셨을까? 남쪽 입장을 다 이해했기 때문이 아닌가? 김일철이 만찬장에서 김장수에게 직접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장수 장관, 내려가면 사퇴하지 마시오. 경애하는 김정일 동지께서 내일 중으로 남측과 다 합의하도록 지침을 주셨습니다." 그러고 또 한잔, 두잔. 그러자 김장수 장관도 한잔, 두잔. 지금 새누리당 관점으로는 이거야 말로 정상회담 뺨치는 좌파 군인들의 이적행위 아닌가?

결렬된 것 하나도 없는 잘 된 회담... 이의 제기하거나 불만도 없었다
 

기사 관련 사진
김종대 <디팬스21플러스> 편집장
ⓒ 조재현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NLL 지키느라고 공동어로구역합의도 결렬되었다고? 결렬은 무슨 결렬. 합의문에는 공동어로수역 설정 문제를 장성급회담에서 협의하기로 했다. 결렬된 것 하나도 없이 잘 된 회담이다. 똑똑히 기억하라. 대동강변의 송전각 초대소 1호각에서 벌어진 일들을.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바라는 대로 되었다. 청와대 누구도 국방장관 회담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서북해역의 안보는 군사적 수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국가 이익이다. 비록 군사적으로는 다소 혼란이 초래된다 하여도 다른 국가적 차원의 이익이 있다면 군사적인 측면에서의 더 효율적인 방위개념도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도 "공동어로구역을 협의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고, 누구나 그 취지에는 동감한다.

그러나 오직 국정원과 국방부만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 이들의 말대로 한다면 국군 포로문제도 제기해서는 안 되었던 일이고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안 되는 일에 가담했던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이제 와서 엉뚱한 말을 하면? 이건 좀 해석이 곤란하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김종대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은 제 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방전문위원, 참여정부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무총리 산하 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을 지냈습니다.

 

 
요즘트위터페이스북더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제천의 유마가 나누는 뜻은??

 

제천의 유마가 나누는 뜻은

 
조현 2013. 07. 10
조회수 3212추천수 0
 

 

김연호-.jpg

제천의 유마거사인 `우리는 선우' 제천지회 김연호 회장.

 

 

 

 준 것은 남고, 가진 것은 없어진다

 

 채울수록 허기진듯 아성을 쌓아가는 부자들보다 ‘우리는 선우 제천지부’ 김연호 회장이 더 부자인 이유는? 그는 수십년간 모은 골동품을 왜 남김없이 기부했을까.

 

 

 

누가 부자일까. 99섬을 가지고도 남이 가진 1섬을 빼앗아 100섬을 채우려는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일까. 1섬을 가지고도 절반을 나눌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일까.

 

 물속에서도 갈증을 느끼는 물고기처럼,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커지는 허기를 채우려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 아우성치는 싸움판에서 벗어나 연민으로 중생을 돕는 이가 ‘보살’이다.

 

 충북 제천시 의림대로 15길 24. 제천시내 한가운데 연꽃처럼 앉아 있는 중앙공원 뒤꼍에 진주동물병원이 있다. 무애문(無碍門)이란 편액에 대문 기둥의 주련까지. 동물병원이라기보다는 절간 같은 곳에서 김연호(61) 원장이 맞는다. 1년 내내 4대 보살(문수·관세음·지장·보현보살)을 호념을 하며 오체투지로 새벽을 열기 때문일까. 요즘 소 사육농가들을 찾아 구제역 예방주사를 놓느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동분서주한다는데도 소년처럼 해맑다.

 

 그는 ‘우리는 선우 제천지회’ 회장이다. ‘우리는 선우’는 1992년 박광서(서강대)·성태용(건국대) 교수 등이 주축이 돼 창립한 ‘재가(승려가 아닌 불자)불교 운동 단체’다. 인적·물적 토대를 제공하면서도 기독교에서 평신도운동이 기를 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승려가 아닌 재가자들의 운동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선우 제천지부’는 지난 5월 부처님 오신 날 20㎏ 쌀 80포를 주민센터와 복지시설, 학교 등을 통해 홀몸 노인 및 불우청소년 가정에 전했다. 이들이 중앙공원에 ‘자비의 등’ 달기 운동을 해 매년 수십가마씩 자비의 쌀을 나눈 지도 10년이 넘는다. 또 인근 군부대에 부식비를 지원하고, 복지단체와 불교운동단체에 매달 1만원씩 지원하는 보시운동도 펼쳤다. 박노자 교수와 청전·현각·혜민 스님 등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시민강좌도 열었다.

 

김연호 부부-.jpg

김연호 회장과 부인 권선씨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란 보살도를 펼친 붓다 당시 재가거사 ‘유마’를 따라 그들도 배고픔과 슬픔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120여명의 회원이 함께하는 이들은 ‘우리는 선우’ 서울본부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벌여 본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들은 얼마든지 자체 건물이나 사무실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은 가난한 이웃을 돕거나 소신을 펼치는 승려들을 찾아 돕는 데 모든 돈을 쓰고 돈을 쌓아두지 않았다.

 

 이는 땅이나 건물과 같은 재산이 초심으로 공덕을 베푸는 데 해가 될 뿐이어서 쌓아놓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는 김 회장의 비움과 나눔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그도 한때는 골동품이 쌓여가는 재미로 살아가던 때도 있었다. 제천에서 공무원을 하다가 동물병원을 개원한 뒤 집 살 생각도 하지 않고 보험이나 저축도 하지 않은 채 돈을 버는 족족 골동품을 사모았다. 값비싼 분청사기와 고서적을 비롯한 골동품이 집 안 가득 쌓였다. 그러니 집을 비울 수도 없었다. 소유는 그를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더욱 부자유스럽게 했다. 그는 어느 날 “욕망이야말로 모든 불행의 근원”임을 자각했다. 그래서 15년간 모아 전재산이나 다름없던 수십억원대의 문화재 670점을 1990년부터 최근까지 4차에 걸쳐 청주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어떻게 온 정성을 다해 수십년간 모은 골동품을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느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준 것은 남고, 가진 것은 없어진다.”

 그는 첫 기부 이후 1992년 창립된 ‘우리는 선우’ 설립자 박광서 교수가 “세상을 위해 돈을 가진 사람은 돈을, 지식을 가진 사람은 지식을, 시간을 가진 사람은 시간을 내놓아야 한다”는 보시 철학에 전적으로 공감해 제천에서 재가불교운동을 펼쳤다. 그는 “작은 도시의 신행단체가 불우이웃을 도우며 신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보살 수행으로 새벽을 열면서 모든 일에 모범을 보여준 7분의 원로를 비롯한 좋은 도반들 때문”이라고 공덕을 돌렸다.

 

법회장의 김연호-.jpg

시민강좌를 열고 있는 김연호 회장 사진 우리는선우 제천지회 제공

 

 

 

 김 회장에게 또 잊을 수 없는 분이 있다. 2001년 인도 히말라야의 다람살라에서 만난 티베트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였다. 어머니를 여의고 매일 2000배씩 10만배 기도를 한 뒤인 그때 그는 “가장 좋은 수행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달라이 라마는 “최선을 다해 남을 도우세요. 아니면 적어도 남에게 주는 피해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종교가 없더라도 남에게 친절하고 온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이 곧 훌륭한 수행법입니다”라고 답했다.

 

 그의 부인인 권선(59)씨와 경희대병원 정신과 의사인 장남 영종씨, 출가한 차남 여철 스님도 모두 이 가르침을 모토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진해 해군사관학교 법사인 여철 스님이 지난해 말 졸업생들의 100일간 태평양 항해 여행에 동참한 뒤 130여명의 생도 가운데 무려 70명이 불교에 귀의한 것도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과 친절의 귀결로 보고 있다. ‘내 복, 내 것만 챙기는 데서 모든 다툼과 화가 생겨난다’는 그가 울타리를 걷고 손짓한다. 함께 행복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열어가기 위한 벗이 되자고.

 

 제천/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요즘트위터페이스북더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금 선제적 신뢰구축 조처가 필요한 이유

 

홈 > 오피니언> 칼럼
지금 선제적 신뢰구축 조처가 필요한 이유

 

<칼럼>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07.10 09:01:48
트위터 페이스북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북한의 전략적 선회

일본 <TV아사히> 계열의 민영 방송사인 <ANN>은 북한군 관계자에게서 취재했다면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지난달 10일자로 북한군 전체 병력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0만 명의 병력을 줄이라는 명령을 인민무력부 총참모부에 내렸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8월말까지 장교 5만 명, 병사 25만 명 등 총 30만 명의 병력을 빼내 경제부문으로 이동시키라는 명령이라고 한다.

이 기사는 북한 김정은체제의 이른바 경제.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이 구체적 실행단계에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생각하는 경제.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구체적 내용은 <조선신보> 6월4일자 기사를 통해 그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신보>는 이 병진전략이 ‘핵 대국인 미국과 계속 대결하면서 조선이 경제건설을 하기 위한 전략’이라면서 ‘과거처럼 재래식 무기로 맞섬으로써 경제를 희생하는 것을 피하고, 대신 최종 병기인 핵 무력으로 평화를 보장해 경제건설에 큰 힘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우선 재래식 군비경쟁 시대의 비효율을 척결하여 인력과 자원의 배분을 효율화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원산 및 칠보산관광지구 개발, 그리고 각 도의 경제개발구 추진 등 대외경제 활성화 조치의 시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군 병력 30만을 감축하여 경제부문으로 이동시키는 조치는 재래식 전력 위주의 비효율성에서 벗어나 인력과 자원을 경제발전에 더욱 효율적 배치하는 상징적 조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북한의 전략은 내부자원 배분의 변화만이 아니라 남북대화와 북-중, 북-러, 북-일 등의 외교관계에도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남북 당국대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이 같은 경제.핵무력건설 병진노선 추진과정에서 남한과의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것이 중요한 이유의 하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비핵.개방.3000’의 ‘버전2’인가

그런데 만약 북한의 핵개발이 전제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자원의 재분배는 매우 고무적인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만약 북한이 핵 무력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북한은 경제.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이 아니라 군축과 경제발전 병진노선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 김정은체제의 경제.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은 핵무기에 의존하는 본질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매우 근본적인 북한사회 변화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남북관계 측면에서는 중요한 기회의 요소가 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위협을 감소하여 핵무기 의존 필요성을 약화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선제적 신뢰구축 조처를 통해 본격적인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해나간다면 한반도 분단체제는 본격적인 해체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방중 기간 중에 “북한이 내건 핵무기 개발과 경제건설의 병행 노선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고, 스스로 고립만 자초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비판한 것은 그 ‘비핵화’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적절치 않았다고 판단된다. 그것은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과 북한의 경제발전 노선까지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조평통은 박근혜 대통령이 방중 기간 동안 언급했던 경제.핵무력건설 병행노선 비판발언에 대해 "우리의 존엄과 체제를 심히 모독하는 도발적 망발"이라고 비난하면서 "마지막 인내심을 갖고 박근혜 정부를 지켜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이런 비난은 박근혜정부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가 사실상 ‘비핵.개방.3000’의 ‘버전2’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신뢰프로세스’와 리명박의 ‘비핵.개방.3000’을 비교하면 핵 포기와 개방을 요구하고 궁극에는 ‘흡수통일’을 노리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전자는 (…) 선임자의 것보다 더 적대적이고 대결적이라 할 수 있다”(<조선신보>, 6.24)는 것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신뢰를 보이면’ 그때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하겠다는 것은 실제 비핵.개방.3000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박근혜정부가 보여준 지금까지의 정책적 태도와 언술은 신뢰구축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6.15공동선언 등 남북간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민간의 6.15남북공동행사에 대해 부정적 태도로 일관했고, 6.15공동선언 등 과거의 성과가 ‘전부 북에 굴종한 결과물’이라는 식의 위험한 인식을 수시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NLL(북방한계선)의 군사대결적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이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와 죽음으로 지킨 곳’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안보와 힘’을 숭상하는 대결주의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고, 회담의 ‘격’ 문제에서 드러난 ‘새로운 남북관계’ 등등의 언술은 사실상 ‘철저한 상호주의’ 관철 요구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과 대화를 위한 대화는 북한이 핵무기를 더 고도화하는데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는 발언에서 보이는 박 대통령의 인식은 대화를 ‘상대에 대한 굴복 혹은 시혜조치’로 생각하는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뢰프로세스 가동은 대북지원과 민간교류에서부터

앞서 보듯이 북한은 큰 방향에서 전략적 변화를 추구하면서 남북관계와 국제관계에 대처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이명박정부의 정책적 태도와 인식에서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오랜 단절과 불신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핵을 포기하는 신뢰를 보이라’고 요구하기 전에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려는 쪽에서 먼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상식이다. 즉 신뢰를 강조하는 남쪽이 먼저 선제적으로 신뢰를 쌓아나가는 조치를 추구해야 신뢰프로세스는 비로소 선순환할 수 있다.

남쪽이 선제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신뢰구축 조치의 핵심은 대북지원과 민간교류일 것이다. 이런 분야에서 먼저 신뢰를 구축하는 조치를 취해나가면서 점차 비핵화와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에서 제시된 ‘비전코리아 프로젝트’)을 연동시켜나가는 것이 한반도신뢰프로세스 추진의 적절한 경로이다.

민간교류가 남남갈등을 일으키거나 혹은 북한의 ‘통민봉관’ 전술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피해의식이나, 민간교류를 체육이나 문화 등 소위 ‘순수교류’에 묶어두면서 이것으로 민간교류 배제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이 경제발전을 위해 전략적 선회를 하고 있는 지금이 한반도신뢰프로세스 추진의 중대한 기회이다. 과거에는 남쪽이 적극적인 대북지원과 경제협력 공세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체제적 차원에서 자원의 재분배를 결단하는 노선을 채택하기 어려웠다면, 지금은 북한이 먼저 자원 재분배를 통한 경제발전노선으로 선회한 상태이기 때문에 남쪽이 적절한 선제적 신뢰형성 조처를 추진하게 되면 보다 본격적인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의 길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편법이 아니라 대범한 선제조치를 통해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하고 이를 ‘한반도 비핵화’와 연동시킬 선순환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만약 대북지원과 민간교류 등에서 선제적 신뢰구축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북한이 전략적으로 선회하고 있는 이 기회를 다시 대결주의로 흘려버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신뢰프로세스’ 역시 ‘비핵.개방.3000’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이승환은 1958년 경북 포항에 태어나, 고려대 경제학과, 경남대 북한대학원(정치학 석사)을 거쳐 경남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승환은 통일맞이 정책위원장, 열린정책연구원 정치아카데미 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이며, 또한 민화협 집행위원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5년여에 걸쳐 남북 민간교류 활동을 전개해왔으며,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6.15남북공동행사 등을 진행해왔다.

그가 쓴 글로는 “문익환, 김일성 주석을 설득하다”(창작과비평, 통권 143호, 2009), “6월항쟁 20년, 남북 및 북미 관계의 변화와 통일담론”(창작과비평, 통권 137호, 2008), “2000년 이후 대북정책담론 연구”(북한대학원, 2008) 등이 있다.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lsh2kms

 

 

 
요즘트위터페이스북더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서해 5도 제외시킨 건 박정희…NLL 논란의 불씨"

 

[정전 60주년 기획 인터뷰] <2>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평화네트워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10 오전 10:16:13

 

 

<프레시안>과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가 정전 60주년을 맞이해 준비한 기획 인터뷰 두 번째 순서로 <디펜스21플러스> 김종대 편집장을 만났다. 김 편집장은 NLL의 본질과 이를 둘러싼 논란의 실체, 그리고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의 진실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김종대 편집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민간인 출신의 최고의 군사안보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국회 국방위원회 비서관으로 들어가 국방문제에 투신했다. 10년 간의 국회 생활을 거쳐 노무현 정부 때 국방보좌관실에서 유일한 민간인 행정관으로 일했고, 그 뒤에는 국무총리 산하 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 국방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냈다.

김 편집장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NLL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는 NLL은 '북방한계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이는 일정 선 이상으로 올라가면 남북한이 서로 충돌할 우려가 크니 이 선을 넘어 북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즉, 남북 간 분쟁과 교전을 막기 위해 설정된 선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런데 이것이 지금은 분쟁을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보나 영토, NLL과 같은 문제들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는 구성된 산물, 인식의 문제"라고 규정한 뒤 "다음 세대에 더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면, 그리고 그런 비전을 갖고 있다면 현상을 타파할 수 있는 새로운 협력의 방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시도조차 해보지 말자는 것은 너무 비관적인 사고방식"이라며 전쟁 상태를 끝내는 평화협정에 비전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평화네트워크 김병우, 이진현, 조은지 인턴이 지난 6월 26일 평화네트워크 인근에서 김종대 편집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했다. 이후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보충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편집자>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평화네트워크


평화네트워크 : NLL 논란이 뜨겁다. 우선 이 논란의 기원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김종대 : 우선 NLL 혹은 어떤 해상 경계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서북 5도라 불리는 우리의 5개 섬에 관한 안전의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발명된 '안보신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우리나라의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정치인이나 언론인조차 NLL이란 용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군인들도 해군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NLL이란 용어를 몰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96년 이전까지는 말이다.

우리나라 서북 5도는 북쪽으로 백령도부터 남쪽으로 연평도에 이르는 5개를 말한다. 한반도가 한국전쟁 참화를 겪고 있을 때 전 국토가 전쟁터였지만 이 5개 섬에서만큼은 총 한 방 쏴본 일이 없다. 심지어 제주도까지 전쟁터였는데 유독 서북 5개 도서에서는 어떠한 전쟁의 흔적도 느낄 수 없는 '전쟁의 청정지역'이었다. 그런데 90년대 후반 이후로는 다른 한반도 전역이 조용해진 반면 이곳에서만 교전이 발생하는 '안보의 화약고'가 됐다. 이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는 하나의 큰 변곡점이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199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판문점에 북한군이 난입해서 박격포 진지를 설치하는 무력시위를 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가 총선에서 여론조사대비 30% 이상의 의석을 잃는 대패를 하게 됐다. 선거가 끝나고 선거 패인이 총선 직전에 있었던 판문점 사태가 정치적으로 악용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야당은 96년 7월 이 문제를 국회에서 들고 나왔다. 당시 야당은 "서해의 서북 5도에 가면 NLL이라는 것이 있는데 연간 수백 대의 북한 어선들이 NLL을 넘어 월선을 한다. 그건 위기라고 하지 않으면서 판문점 사태는 왜 위기라고 부풀려서 선거 때 써먹었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작 NLL 문제를 점화한 당사자는 당시의 새정치국민회의, 즉 지금의 민주당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이양호 장관은 "NLL을 넘어와도 정전협정이 위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NLL을 넘어와도 안보위기가 아니라고 답변을 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김영삼 정부의 국방장관이 말이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그 다음 날 이양호 장관의 말이 맞다고 기사를 썼다. NLL은 정전협정에도 없고 정식 경계선도 아닌데 야당이 공연한 트집을 잡는다고 얘기했다. 이것이 바로 NLL 문제가 처음 논란이 되어 수면위로 드러난 96년도 일이다. 그런데 17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 문제 제기를 한 측과 해명자의 입장이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갑자기 96년부터 NLL이 정치적으로 쟁점화되면서 남북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99년 6월 제1차 연평해전이 발생하면서 NLL은 남북한 정권의 자존심과 의지가 실린 본격적인 안보선으로 작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96년에서 99년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이 '생명의 바다'가 '죽음의 바다'로 바뀌고, '평화의 바다'가 '전쟁의 바다'로 변하게 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NLL 문제의 본질이다.

평화네트워크 : NLL이 서해 5도와 서해바다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점은 무엇인가?

김종대 : NLL에 대해 정전협정 때는 우리가 협정체결의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 이후에 박정희 정부가 영해법을 제정한 것이 1977년 말이다. 이때 박정희 정부는 영해법을 긴급하게 제정했는데, 그 이유는 북한이 200해리 경제수역을 선포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선포에 따르면 인천 앞바다까지 다 북한의 경제수역이 될 판이었다. 이에 따라 국제법적 절차를 밟아서 우리도 영해법을 제정하게 되었는데 인천 앞바다부터 서북 5도까지 모두 영해에서 제외해버렸다. 영해법을 제정한 취지가 이곳이 우리의 영해임을 대외적으로 선포하기 위한 것인데 막상 제정할 때 서해 5도를 다 제외해버렸다. 결국 이렇게 서북 5도 지역을 영해에서 다 제외해버림으로써 법적인 지위를 불안정하게 만든 장본인은 엉뚱하게도 보수정권, 다시 말해 박정희 정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처럼 이 지역을 영해라고 주장하겠다면 그 전에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무덤을 찾아가 서북 5도 지역을 영해에서 제외한 이유를 물어보길 권하고 싶다. 이것은 여당이 야당에 물어볼 문제가 아니다.

왜 서해 5도를 영해에서 빼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이로 인해 서해 5도 해상의 법적인 지위가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과거에는 관심밖에 있던 서해가 지금처럼 관심 영역 안으로 들어오니 이 불안정한 지위가 불씨가 됐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법적으로 불안정한 부분을 어떻게 평화적으로 관리할 것인가를 고심한 사람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대통령은 분쟁예방에 초점을 맞췄다.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것의 핵심은 바로 분쟁예방이다. 어떻게 이곳을 평화적으로 관리해 분쟁을 예방할 것인가를 정상회담에서 풀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NLL 포기냐 아니냐'라는 논란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하는데 NLL이 경계선이 아니라고 말한 당사자는 다름 아닌 보수정권이다. 현재 상황은 문제의 불씨를 던져놓은 보수정권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선 노무현 정권을 비난하고 있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적반하장이다.

평화네트워크 : 그렇다면 서북 5도의 인근 수역은 지금도 법적으로 우리의 영해가 아닌 것인가?

김종대 : 우리가 서북해역을 우리나라의 영해로 표기하려면 세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영해법(현재 영해 및 접수역법으로 명칭 변경)에 명시해야 되고, 두 번째는 국제사회에 이를 공표해야 하며, 세 번째는 유엔사무총장에게 그 사실을 기탁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지난 2008년, 유엔사무총장에게 기탁한 우리나라 영해직선기선도 역시 기존 영해법과 동일하게 서북 5도가 빠져있다. 지금도 우리나라 영해 직선기선도를 보면 경기도에는 영해가 없다. 태안반도 앞 소령도에서 직선기선이 끝난다. 새누리당이 자꾸 영해라는 개념을 노무현 대통령이 포기했다고 얘기하는데 그렇게 영해 주장을 하려거든 지금이라도 세 가지 절차를 밟으면 될 것 아닌가? 하지도 않을 거면서 왜 국제사회가 아닌 야당을 향해서만 영해 논란을 부추기나? 자신 있으면 지금이라도 해보라.

그렇다면 여기에서 '영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개념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서해의 영해에 중국 어선들은 이곳을 공해라며 들어오고 있고 우리 정부도 이를 알고 있다. 오로지 북한에 대해서만 영해라고 얘기한다. 국제법적으로 영해라는 뜻은 배타적 주권을 행사하는 바다라는 의미인데, 그 배타성이란 우리나라 이외에 누구에 대해서든지 배타성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 대해서는 공해이고 북한에 대해서는 영해라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개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묻고 싶다.

한중어업협정에 서해 5도 바깥 수역이 공해로 설정되어있기 때문에 중국 어선들이 와서 고기를 다 잡아가고 있다. 반면 남북한의 어선은 그놈의 영해 논쟁 때문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이런 부분에서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논란은 사실 실체가 없는 논란이다. 정쟁이고 하나의 싸움에 불과하다. 영해 논란은 원래 국제법 논란이고 국제법에 기초한 분쟁해결 절차를 준용하거나 유엔 해양협약에 따르면 된다. 그렇게 영해 논란을 부추기려면 소모적인 정쟁을 하지 말고 국제사법재판소로 이 문제를 제소라도 하라. 그런데 그런 절차와 전혀 무관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마디로 '유령 논쟁'이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있다. 국제법적으로는 분명 실체없는 논란을 하고 있지만 국제정치적인 접근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정치에서는 '영해' 대신에 '우리가 관할해온 수역'이라는 정의가 있다. 이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나와 있다. '서로가 각자 관할해온' 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이것은 남북 간의 합의에 최대치이다. 그리고 그 개념이 훌륭하다. 이런 기존의 정의로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데, 왜 여기에 국제법 용어인 영해라는 용어를 써서 실체 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평화네트워크 : 그렇다면 북방한계선(NLL)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김종대 : NLL이 무엇이냐. 정전협정 직후에 유엔사령관이 분쟁을 막기 위해 일방적으로 선포한 선이다. 사실 선포한 것이라고도 볼 수 없다. 북한에는 비밀로 하고 우리 내부적으로 극소수만 이 선의 존재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이 선 이상으로 올라가면 남북한이 서로 충돌할 우려가 크니 이 선을 넘어 북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분쟁과 교전을 막자는 취지로 만든 선이 바로 NLL이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은 분쟁을 유발하고 있다.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NLL은 우리가 정전 이후에 관리해온 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비교할 대상도 마땅치 않다. 서해의 5개 섬과 섬을 직선기선으로 연결하고 그 기선과 북한 영토의 중간선으로 설정한 것이 NLL이다. 그런데 이를 영해선이라고 하면서 그 안쪽을 영해로 선포하는 사례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식으로 영해 선포를 한다면 세계는 난리가 날 것이다. 가령 미국이 하와이와 괌을 직선기선으로 연결한 다음 그 기선 안쪽에 있는 태평양은 모두 미국의 영해가 된다. 태평양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바다가 미국의 영해가 된다. 이게 말이 되는가?

다시 말해 NLL 남쪽의 바다는 우리가 점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보수적인 학자들은 점령해서 오랫동안 실효적 지배를 하면 영해 개념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이른바 '응고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이스라엘이 중동전쟁을 통해서 점령한 유대인 정착촌은 1967년부터 구성되어 사실상 이스라엘의 땅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결국 '중동평화로드맵'에서는 90년대 말부터 2000년까지 점령지를 모두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이집트에 반환하겠다고 규정했다. '응고의 법칙'에 따른다면 이스라엘은 점령 지역을 근 40년 동안 실효지배 했으니 국제법적으로 이스라엘의 영토라고 해야한다. 그러나 이렇게 주장하면 유엔은 웃는다. '그것은 불법점령이지 어떻게 영토가 될 수 있는가'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유엔의 권고가 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중동평화로드맵'이다.

새누리당도 대선 막바지에 NLL을 '영해에 준하는 선'이라고 슬쩍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무식한 의원들은 계속 영해선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외교안보 쪽에 몸담은 사람들은 말을 슬쩍 바꾸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박 대통령이 후보시절에는 TV토론에서 '해상경계분계선'이라고 했다. 영토선, 영해에 준하는 선, 해상분계선 등등... 새누리당도 계속 헤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북한으로부터 NLL을 지켰다

평화네트워크 :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는 대화록 내용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은 바꿔야 한다"는 발언을 'NLL 포기 발언'이라고 주장한다. 이게 아니라면 이 발언의 의미는 무엇인가?

김종대 :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대해서는 텍스트가 아니라 맥락(context)가 중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 대화에서 서로 긍정하고 부정하는 게 어떤 대화고 어떤 맥락이냐 이렇게 논리구조를 그려봐야 한다.

"NLL을 바꿔야 한다"는 그 말은 지금처럼 군대가 서로 대치하는 하나의 선이 아니라 공동 어로구역을 하는 기준선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군대가 아닌 경찰이 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군대와 경찰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가? 경찰은 평시의 법을 적용받고 군대는 전시법을 적용받는다. 그런데 거기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경찰은 적을 상정하지 않고 군대는 적을 상정한다는 것이다. 같은 총을 가지고 같은 배를 타더라도 경찰과 군대는 굉장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경찰이 이곳을 관리한다는 것은 평화시에 분쟁을 통제하는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서해 평화협력지대 구상으로 가려면 개념의 전환이 필요한데 이런 모든 것을 바꾸자는 뜻으로 한 말인 것이다. NLL이라는 선 자체를 밑으로 내리거나 올리거나 하는 식으로 바꾸자는 뜻이 아니라는 말이다.
 

▲ 지난 2007년 10월 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회담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우리의 정치적인 현실이 NLL에서 교전이 벌어지면서 남북한 간에 갈등이 조성되고 그것이 국내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국제법적인 접근보다는 국내 여론을 인식하여 국제정치적인 접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이상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통일되면 없어질 선이므로 그 이전까지는 국제정치적으로 실효적 지배를 해온 사실을 정치적으로 서로 인정하자. 그런 의미에서 NLL의 변경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오히려 북한으로부터 NLL을 지켰다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또 "남측에서는 NLL을 영토선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국제법적인 근거는 없지만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발언도 했다. 이 말은 국제법적인 접근이 아니라 국제정치적인 접근을 하자는 취지이다. 다시 말해 정치적 현실에서 출발하자는 발상이다. 북한은 NLL에 대해서 법적인 접근을 하자고 했지만 우리는 정치적인 접근을 하자고 한 것이다. 법적으로 해결하려면 협상을 해서 경계선을 확정해야 하는데 당시에 이건 불가능하다고 봤던 것이다.

평화네트워크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제안한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안은 무엇인가? 이게 NLL의 해법이 될 수 있는가?

김종대 : 새누리당은 서해평화협럭지대 구상안을 NLL을 포기하는 것, 바꾸는 것이라고 계속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도 나와 있듯이 근거가 전혀 없다.

나는 참여정부에서 처음부터 명확히 NLL에 대한 개념 정리를 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실수라고 본다. 정부 내에서도 NLL이 안보선인가 영토선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건 참여정부에서 관리를 잘못한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중동평화로드맵의 기본정신은 '땅과 평화를 맞바꾼다'이다. 점령한 땅을 돌려주고 절박한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반면 서해평화협력지대구상은 '경제와 평화를 맞바꾼다'이다. 다시 말해 경계선은 그대로 둔 채 군대가 있던 자리를 경제활동으로 대체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공동어로를 하고 경찰이 조업을 보호해준다거나 아니면 해주 일대에 제2의 개성공단을 만들어서 특구화한다든지 이렇게 군대는 뒤로 물러나고 경제활동으로 대체하면 평화로운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는 구상이다. 그러면서 주권과 이익은 그대로 지키자는 것이다. 땅과 평화를 맞바꾸는 식으로 'NLL과 평화를 맞바꾸자'는 논의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평화구상은 기능주의적 접근이다. '중동평화로드맵'이 땅과 평화를 맞바꾸는 정치적 접근이었다면, 서해평화협력 구상은 유럽통합의 경험에서 나온 경제 사회분야의 교류를 앞세워서 평화를 달성하는 기능주의적 접근이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바다와 주권을 북한에 내주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NLL 인근 교전, 햇볕 정책 때문에 벌어진 참사?

평화네트워크 : 우리 해군이 NLL을 지킨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와 닿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NLL을 해군이 지킨다는 것은 군사전략적으로 어떤 것인가?

김종대 : 많은 사람들이 NLL을 지킨다고 하면 바다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고 그 선을 따라 함정들이 쭉 늘어서서 계속 지키는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 그러나 그런 식의 방어는 철조망을 치고 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 육지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바다에서의 방어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해군의 전력운영방식은 육지와 달라서 어디를 지키든 함선이 출동하는 항구는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해군 전력의 특성은 공격성, 융통성, 기동성이라고 요약된다. 함대는 평소엔 항구에 있는 것이고 문제가 생기면 바다로 출동하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출동할 수 있도록 해군은 후방에서 대기한다. 이것이 육군과 해군의 차이점이다.

함정이 바다에 쭉 늘어서 있는 식의 방어는 군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매우 비효율적인 방어이다. 해군은 또 이런 방어를 수용하지도 못한다. 보이지도 않는 경계선에 어떻게 함정이 늘어서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북한 해안포 밀집지역 가까이에 늘어서서 선(線) 방어를 하게 되면 우리는 북한 해안포의 집중 타격 표적이 된다. 이처럼 우매하기 짝이 없는 전략이 어디 있겠는가.

작은 고속정이 인근의 항구에 대기하고 있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때 나가서 해결을 하도록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북한의 배는 성능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NLL에 접근하는 것을 우리가 보고 나가도 우리가 NLL 부근에 먼저 도착한다. 그 정도로 함정에 있어서는 우리가 북한보다 성능이 뛰어나다. 그래서 해군 전력운용의 특징은 공격성과 융통성이다. 선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면을 통제하는 개념이다. 설령 NLL에 북한 경비정이 넘어왔다 치더라도 기관 성능도 떨어지고 엔진도 구형이기 때문에 가만히 두더라도 얼마 오래 견디지 못하고 NLL 북쪽으로 다시 올라간다. 속도도 매우 느리다. 우리가 충분히 면을 통제하고 방어할 수 있는 압도적인 해군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개념대로 가도 상관이 없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때 제1차 연평해전 때부터 기존의 면 방어를 선방어로 변경해버리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려간 지시사항을 보면 큰 함정들을 모두 일렬로 세우게 했다. 그런데 NLL인근 해상에서는 작은 함정으로 방어를 해야 한다. 작은 함정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참수리 고속정이 돌격기동을 하면 선수 부분은 수면 위로 들리고 선미 부분만 수면 아래로 잠긴다. 이 잠긴 부분을 수면 아래 2미터 깊이로 전진하는 직주어뢰가 정확히 맞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참수리 고속정은 매우 빠르기 때문에 해안포로 맞추지도 못한다. 그런데 속도도 느리고 이렇다 할 전투능력도 없는 수송함, 구조함같은 큰 함정들을 가지고 NLL에 놓아두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데 제1연평해전 당시에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런 식으로 대형함정에 의한 NLL 도열, 마치 관함식에서나 보는 이상한 전술로 NLL을 방어한다고 하니까 북한도 어뢰정을 3척이나 출동시켰다. 그 어뢰정이 우리 대형함을 쏘지 못하도록 우리 고속정이 전속력으로 들이받고, 이에 북한이 응사하다가 제1연평해전이 터졌다. 보라. 제1연평해전은 남북 해군 모두가 발포하지 말라는 지시를 똑같이 받은 상태에서 일어난 교전이다. 양측 모두 발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는데도 교전이 일어났다. 이게 미스터리이다. 남북 모두 발포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교전이 일어났을까? 바로 해양에서의 작전환경의 복잡성, 특수성 때문이다. 당시 정부가 제대로 이를 통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이렇게 잘못된 지시를 한 당사자는 합동참모본부다.
 

▲ 1차 연평해전 당시 남측 고속정(오른쪽)과 북측 함정이 충돌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제2연평해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함대사령부가 우리 함정과 적과의 3km 거리를 유지하도록 했는데, 합참이 중간에 개입해서 "근접 차단기동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이 바로 이명박 정부 초대 국방장관인 이상희 중장이다. 2함대사령관이 지상 2층의 사령관실로 잠깐 올라간 사이에 합참이 지하 1층의 2함대 상황실로 전화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아무런 전투대형도 유지하고 않고 최저 속도로 북한 함정과 150미터 거리까지 접근한 우리 참수리 고속정이 이미 조준하고 있던 북한 함정의 지상포에 당했다. 비극적인 교전이 종료되고 청와대가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그러자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은 "2함대사령관을 징계해야 한다"며 명백한 해군의 잘못이라고 했고, 연합사부사령관인 남재준 대장도 당시 국정상황실 요원을 만나 "해군이 잘못 기동했다가 다친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인물이 바로 현재 국정원장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의문에 봉착한다. 첫째, 북한은 성능이 낮은 수상함에 의한 도발이 자신들에게 절대 불리한 줄 알면서도 왜 자꾸 경비정으로 NLL을 침범하는 무모한 도발을 한 것인가? 정말 NLL을 무력화하려면 지상의 해안포나 지대함 미사일을 동원했으면 훨씬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면서 우리 함정을 위협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둘째, 남한은 왜 NLL 선상에 대형 함정을 죽 늘어서게 만드는 이상한 전술을 고집했을까? 우리 함정의 전투원들의 생명이 위험해지는데 말이다. 이 두 가지 의문을 놓고 보면 NLL에서 남북 대치는 군사적 원칙에 충실한 합리적 행동들이 아니었다. 이러한 비합리성은 실제로 교전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무력시위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점을 웅변해 준다. 더군다나 우리의 경우 합참이 해양의 특성에 대해 모르는 육군 출신들이라는 점에서 비극의 강도는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작전의 책임자들이 지금 햇볕정책을 비난하고 있다. 자신들의 작전 지휘 내지 해군과의 갈등을 겪은 일은 다 은폐하고 오로지 정권 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발포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바람에 그런 비극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는데 북한 군대도 제1연평해전 때는 똑같은 명령을 받고 있었다. 발포하지 말라는 명령이 때문만이 아니라 함정의 잘못된 기동이 화근이었다. 말하려거든 이걸 말해야 한다.

평화체제와 전시작전권, 정상적인 국가로 가기 위한 첫 걸음

평화네트워크 : 평화체제 문제로 넘어가보자. 남한 군부는 평화체제 구축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김종대 :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현실주의가 있고 자유주의가 있다. 이 두 가지 사고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자유주의 관점에서는 국가 간에 자신의 주권과 이익을 양보해서 상대방과 협조할 수 있다고 본다. 그에 반해 현실주의는 국가의 이익이나 안보는 국가가 존재하는 본성이라고 본다. 국제사회는 협조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무정부 상태라는 것이다.

군의 사고방식은 전통적인 현실주의에 입각해있다. 과거의 많은 전쟁들이 평화협정을 맺은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결국 믿을 것은 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군은 이런 맥락에서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북한의 기만전술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연합사 해체를 통해서 한미동맹을 와해시키는 것이 북한의 목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남과 북이 적대 관계이기 때문에 평화협정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는 하나의 제도나 협상이 국제정치에서 의미가 있다. 국제기구의 역할과 국제협력, 상호의존이 점차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협력을 통해 남북한이 상생하는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전쟁 상태를 끝내는 평화협정에 비전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는 이렇게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안보나 영토, NLL과 같은 문제들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는 구성된 산물, 인식의 문제라고 본다. 그렇다면 무엇이 옳은 것인가. 그것은 하기 나름이다. 우리가 북한에 어떻게 다가가느냐의 문제이지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내가 보기에는 다음 세대에 더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면, 그리고 그런 비전을 갖고 있다면 현상을 타파할 수 있는 새로운 협력의 방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시도조차 해보지 말자는 것은 너무 비관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본다.
 

 

평화네트워크 :

이명박 정부 때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시작전권) 전환이 연기되었다. 그런데 또다시 전시작전권 전환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종대 : 전시작전권은 다시 말하면 우리의 군사주권이다. 우리 군대를 우리가 군사적으로 통제하는 권한, 다시 말해 작전을 통제하는 권한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가 존립하는 이상 국가주권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미국에 의존하면서 수동적으로 주도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국군을 주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군사주권이 확립되는 것이다. 우리가 한반도 안보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우리는 정전협정 당사자도 되지 못했다. 거기에다가 전시작전권까지 없다면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겠는가. 이정도의 중견국가 중에 이렇게 자국의 정당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미국에만 의존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외국에서는 이런 논쟁조차 없다. 다 자기 나라 군대에 대한 군사주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작전권이 주권이 아니라면 무엇이 주권이라는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전시작전권 전환은 지극히 주권을 정상화하는 차원의 전환이다. 오히려 너무 늦었다.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의 당사자가 되고 북한과 안보의 당사자가 되어 협상을 하기 위한 정상적인 지위를 확보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국가로서 정상적인 주권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이건 보수/진보를 떠나서 모두가 인정해야 하는 전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전시작전권 연기를 미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래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전환을 하기는 하되 한미연합사는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이런 대안이 최근에 나왔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미국과 협의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앞으로 한미연합사의 유지와 전시작전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한미간의 활발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아직 무언가 의미 있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방부의 입장은 전시작전권을 예정대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한미연합사 체제 유지라는 새로운 형태로 대안을 내서 진행하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나오고 있는 얘기가 대단히 혼란스럽다. 한미연합사가 없어지는 것인지 유지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사태를 조금 더 살펴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연합사의 존치 문제뿐만 아니라 전시작전권 전환 시기가 문제인데 지금은 2015년 12월로 되어 있다. 시기 자체는 한국과 미국 간에 공히 준수하겠다고 공식화되어있다. 단지 국내의 일부 보수 인사들, 특히 군 출신 인사들이 이걸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정책화된 것은 전혀 아니다.


평화네트워크 :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맞아 논의되고 있는 평화협정 체제로의 전환과 전시작전권 전환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김종대 : 전시작전권 전환과 함께 또 하나의 쌍을 이루는 것이 바로 비정상적인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것이다. 정전협정이 실효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전 세계 23개의 정전협정 중에서 성공한 정전협정, 다시 말해 대규모 전쟁을 예방한 정전협정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밖에 없다. 물론 그것은 남북한만이 당사자라기보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국제적인 세력이 다 같이 참여하는 어떤 세력 균형선으로서 휴전선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드물게 성공한 것이 우리나라의 정전협정이다.

그런데 6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도 국력이 발전해서 이제는 우리가 정전체제 관리의 당사자로서 조금 더 평화로운 상태로 전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되 그 전제는 우리가 군사주권을 갖고 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발언권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시작전권을 전환하고 평화체제를 설립시키는 것은 현상타파 논리이다. 반면에 계속 전시작전권을 연기하고 정전협정 속에서 살겠다는 건 현상유지 논리이다. 현상유지가 좋다면 전시작전권을 다시 연기하고 지금처럼 지내면 된다. 가끔 서해에서 교전이 발생하고 남북한 간에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싸우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면 현상유지 정책을 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바꾸고 싶다면 현상타파 정책을 써야 한다. 평화상태 구현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전시작전권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전시작전권 전환 반대 논리가 있다. 바로 안보가 위태로워진다는 논리이다. 북한의 남침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인데, 그러나 어차피 지금 북한은 전면전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 이젠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군이나 미국이나 공히 인정하는 것이다. 북한은 도발할 능력은 있을지 모르나 전쟁을 지속할 능력은 없다.

그렇다면 국지전의 경우에는 어떤가. 지금까지 미국은 국지전에 개입하지 않았다. 서해교전 때도 그랬고 연평해전 때도 그랬다. 정전협정이든 한미연합방어체계이든 한국군이 전부 알아서 했다. 물론 우리는 매번 미국에 도와달라고 말은 했다. 그러나 미국은 교전이 터지고 한참 뒤에야 항공모함 하나 보내주는 식의 행동만 취해왔다. 한미연합방위체제에서도 평시에 국지전 같은 경우는 전부 우리군 위주로 전투를 수행해왔다.

그렇다면 전시작전권을 전환하더라도 안보 상황이 더 위험하고 나빠질 이유가 없다. 미국이 배후에 있어도 국지전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연합방위체제가 국지전을 예방한 효과는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시작전권을 가져오더라도 똑같은 것이다. 단지 우리의 국제정치적 지위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나중에 현상을 타파할 때 하나의 기반이 된다. 이런 점이지 전시작전권을 전환한다고 해서 안보가 더 나빠질 이유도 없고 더 좋아질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전시작전권 전환 반대진영의 논리는 근거가 없는 것이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군국주의의 중간 쯤 되는 나라


평화네트워크 :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이던 개성공단이 중대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경제적 차원이나 정치적 차원에서의 손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개성공단이 폐쇄될 경우 안보적 차원의 문제도 있을 것으로 본다.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가?

김종대 : 개성공단에서 철수한 것일 뿐 아직 개성공단은 남아있다. 아직 개성공단이 남아있기 때문에 지금은 안보적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개성공단을 완전히 폐쇄하고 공단을 다 철거한다면, 다시 말해 개성공단 조성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개성지역은 한국전쟁 때도 남침의 주요 통로이자 축선이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지뢰가 그 지역에 새로 설치되고 군부대가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말 그대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핵심지역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안보부담이 가중된다. 아마 그 지역을 수비하고 있는 우리 군의 9사단의 임무가 몇 배로 늘어날 것이다.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군사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평화네트워크 :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은 정전 60주년인 올해에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는 군비 경쟁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현재 남북 간의 객관적인 군사전력을 비교해보면?

김종대 : 지금까지 군사력 균형이라고 하면, 남북 간의 군사적 대등함을 의미하는 '균형'을 통해 서로 간의 도발을 억제하는 군사력 균형을 얘기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북한에 비해 수적인 열세를 따라잡기 위해 국방비를 투입하는 이런 양상에서 남북한 군사력 비교에 대한 논의가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패러다임이 적용되지 않는다. 첫째, 국지전에서는 군사적 우열에 큰 의미가 없다.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전쟁(small war)에서는 전투가 현장에서 발생하고 현장에서 종결된다. 따라서 남북한 군대의 군사적 총량을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한 이제는 과거와 달리 비대칭 전력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군사력 비교의 의미가 많이 줄어들었다. 사제폭탄밖에 없는 아프가니스탄 주민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미군을 골탕 먹이고 있다. 이것을 군사력 비교로 설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얘기다. 이것은 전쟁의 문화가 다른 것이다. 그래서 비대칭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도 군사적 비교는 무의미해진다.

세 번째로, 옛날에는 군사기술이 민간으로 파급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인터넷이 미국 국방부 인트라넷에서 발명되었고, 알파넷이라는 것이 민간으로 파급되었다. 이처럼 옛날에는 군대만이 갖고 있는 탁월한 기술적 우위가 있었고 민간이 그 기술을 따라가기 바빴다. 그러나 지금은 민간이 군사기술을 주도한다. 상용기술이 군사기술을 주도하다 보니 군사기술의 압도적 우위라는 것들이 사라져서 전 세계의 전쟁기술이 평등해졌다. 2006년에 헤즈볼라가 중동 최대의 군대인 이스라엘 공군을 괴멸시켰다. 해킹을 통한 사이버전 하나만으로 말이다. 헤즈볼라는 심지어 국가도 아니다. 비(非)국가 조직으로 정식 군대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컴퓨터를 통해 사이버 전사들이 이스라엘 공군을 괴멸시켜버린 것이다. 그러자 이듬해에 이스라엘의 지상군이 레바논에 투입됐는데 그 역시 사이버전으로 괴멸시켰다. 이를 지켜본 미국의 전쟁 학자 피터 싱어는 "전쟁기술이 평등화되었다"고 선언했다. 현대 전쟁의 양상은 군사력 비교가 별 의미가 없는 방식으로 변화해버린 것이다.


평화네트워크 : 그럼 군사력 비교 자체의 의미가 없어졌다는 뜻인가?

김종대 : 꼭 그런 뜻은 아니다. 언제 군사력 비교가 의미 있는가? 국제정치에서 패권국과 도전국 같이 국제질서를 움직이는 한 요소로서 핵무기의 보유개수라든지 항공모함의 보유대수와 같은 것들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그런 개념이 적용되는 곳이 아니다. 이제는 작은 전쟁(Small War)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군사력 균형이라는 것은 전면전을 대상으로 한 개념이기 때문에 이런 개념은 지금의 한반도의 안보현실과 맞지 않는다.

북한은 90년대 이후로 신형 전투기 도입 실적이 전무하다. 그러다보니 우리에 비해 열세일 수밖에 없는 재래식 전력 대신 비대칭 전력을 증가시키고 있다. 그것이 바로 야포전력과 사이버전력, 그리고 핵이다. 우리는 이 무기들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면 군사력 비교가 의미가 없다. 각자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도 똑같이 핵을 갖자는 주장이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다. 남북한은 비대칭전력을 갖고있기 때문에 군사력을 어떤 기준으로 비교해 우열을 평가할 것이냐는 문제가 생긴다. 그런 면에서 이제 남북 간 안보상황은 탈근대(post-modern)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자꾸 사람들이 남북 간 군사력 비교에 관심을 갖느냐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과거의 유산이다. 특히 진보 진영도 80년대 후반에 남북군사력 비교 연구를 했던 리영희 교수의 논문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런 것이 우리 정신세계에 끼친 영향은 굉장히 크다. 그러다 보니 자꾸 우리도 그런 패러다임 속에서 군사력 균형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군 안에는 기존의 조직 하에서 유지되고 있는 어떤 정체성이나 문화가 있다. 그것을 전략문화(strategic culture)라고 한다. 그런 사고방식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꾸 양적으로 서로 보여주기 위한 무기도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실제 국지전에서 의미 있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F-15 전투기를 갖고 있어봤자 연평도 포격사건 때 쓰지 못했다. 가지고 있어봤자 쓰지 못하면 소용이 없지 않은가.

한반도 안보의 독특한 속성과 날로 현대화 되어가는 전쟁의 양상 하에서 우리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현대화되어 간다는 것은 첨단 무기가 동원된다는 뜻이 아니다. 더 원시적인 수단이나 비군사적인 수단도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제폭탄은 휴대폰으로 작동한다. 아프가니스탄에 휴대폰이 보급될 때 이것이 전쟁의 수단으로 사용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평화네트워크 :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군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대거 진출하면서 논란이 됐다.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한 필수조건 가운데 하나인데, 우리나라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김종대 : 문민통제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민주주의와 군국주의의 중간 정도를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민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가의 여부는 군대가 어떤 핵심적인 정책과 그 운영에 있어 정부의 통제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냐 군국주의냐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군대가 정부 위에 있으면 군국주의이다. 예를 들어서 일본 제국주의 같은 경우는 왕(천황)이 있고 그 밑에 군대가 있고 그 밑에 내각이 있었다. 히틀러 파시스트 체제에서는 히틀러 총통 밑에 독일총참모부가 있고 그 밑에 정부가 있었다. 이런 국가를 군국주의 국가라고 부른다. 반면 민주주의는 그 순서가 뒤바뀌는 것이다. 왕이나 총리, 또는 총통 밑에 군대가 아니라 정부가 있고, 그 밑에 군대가 있는 것이다. 이런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한다.

 

▲ 남재준 국정원장. 그는 2003년 4월부터 2005년까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바 있다. ⓒ연합뉴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대가 정부의 통제를 받는 주요한 수단이 '국방문민화'이다. 다시 말해 국방부는 군을 대표해서 군의 이익을 확장하는 조직이 아니라 국민과 정부를 대리해서 군을 통제하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복을 입은 민간인이 국방장관을 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잠시 양복으로 갈아입은 군인들이 국방장관을 맡고 있다. 국방부가 국민과 정부를 대리해서 군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군의 이익을 외부로 확산시키고 표출시키고 있다. 그 핵심에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선후배들 관계로 촘촘히 계단식으로 이어져 있는 직급체제 문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이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인가? 상당부분 받지 않고 있다. 우선 장교의 정원은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아무 양식도 없이 A4용지 한 장에 사인만 받으면 끝난다. 그럼 바로 장교의 정원을 몇만 명, 몇천 명까지 늘릴 수 있다. 중기 국방계획인 주요 군사계획 같은 경우에도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왜 MB정부 때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과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서북 해역에서 그렇게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당시 우리의 주요한 군사정책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라든가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논의하지 않고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정책을 결정해버렸다. 외교부나 통일부가 모르게 실행해버리니 외교부와 통일부는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럼 통일부가 뭘 해보려고 해도 남북관계를 어느새 군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북한은 남한의 통일부를 보려고 하지 않고 우리 군의 메시지만 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엄연히 문민통제의 원칙에 위배된다. 정부의 통제라는 원칙에 위배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군이 어디까지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것이냐. 군은 아무런 권한도 없다는 얘기인가. 그런 것이 아니라 군이 정부의 통제를 받는 절차와 방법과 규범을 다 법으로 정해놔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어떻게 하지 못하게 엄격히 법으로 정해 놓고 국방부는 철저히 문민화를 하는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1986년에 제정된 '골드워터-니콜슨 법(Goldwater-Nichols defense reorganization act)'이 바로 이런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든 국방기본법을 만들어서 이를 통해 군을 통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국방의 어떤 기본적 규범을 천명하는 포괄적인 국방기본법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에 대통령이 국군을 통수하고, 국군에 관한 통수는 문서로서 행한다는 두세 가지 조항이 전부이다. 그 다음에 국군조직법이라든지 각종 군수품에 관한 법과 같은 하위 법령들만 너절너절하게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되니 어떤 방법으로 문민통제가 된다는 것인가. 제도화 수준이 이 정도 수준이면 이름도 모르는 아프리카 어느 국가보다 적어도 법체계는 나을 것이 없다.

이런 부분의 발전이 잘 되어있지 않다 보니 민주정치와 국방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각기 따로 지내다 보니 불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서로 소통하고 참여하고 개입할 수 있게 하는 법제도적 규범을 만들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자 자기가 더 스마트하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적 가치와 안보적 가치가 충돌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정부의 군에 대한 통제는 대단히 무능하고 취약하다. 이는 문민통제에 위배된다고 할 수 있다.

평화네트워크 : 대체로 보수는 안보를, 진보는 평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둘은 다른 것인가?

김종대 : 안보라는 말과 평화라는 말은 원래 같은 뜻이다. 이것이 하나의 구호가 되고 이념이 되었기 때문에 평화를 얘기하면 평화주의자가 되고 안보를 얘기하면 안보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인식되는데, 이것은 강요된 인식체계이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안보가 중요하다. 바로 외부의 위협이 있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이런 위협을 관리하는 안보의 결과가 바로 평화이다. 안보가 잘 지켜지는 상태는 소극적 평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항구적으로 위협을 제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평화, 즉 갈등을 창조적으로 해결해서 얻어지는 평화는 적극적 평화다. 이 두 가지가 다 중요하다.

안보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위협에 대한 우리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주로 군사력 증강의 형태로 나타난다. 또 하나는 위협 그 자체를 제거해버리는 방법이다. 그런데 취약성을 완벽히 보완하고자 하면 전 국민에 경호원을 한 명씩 다 딸려줘야 할지도 모른다. 위협이란 불특정한 형태로 어떻게 등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완벽히 다 보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위협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 방식에 첫째는 외교가 있는 것이고 둘째는 선제적인 행동으로 위협 자체를 파괴해버리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한 쪽에만 편향될 경우 대단히 위험한 사고방식이 나온다고 본다. 안보라는 것은 현존하는 위협이든 잠재적으로 있을 위협이든 간에 국가가 어떤 부분에서 취약성을 보인다면 지금부터 대비하는 것이 맞다. 예를 들어 앞으로 사회안전망이 어느 순간 붕괴되기 시작하면 아마 사회가 한순간에 주저앉을 것이다. 이런 취약점이 예상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견고하게 만들어 충격이 있어도 유지하게 만들 것이냐는 안보를 고민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평화시대가 도래해서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군사안보 기술 중에서 인공위성과 같이 정찰 무기 같은 경우는 오히려 증강해야 할 것이다. 평화시기일수록 상대방과의 투명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군사적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봐야' 하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켰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과 귀가 밝아야 한다. 이런 무기는 전시에도 중요하지만 평화 시에 더 증강해야 한다. 그것이 평화상태를 지속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개념상으로는 사태를 악화시키기 전에 외교로서 객관적인 위험을 제거해버릴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관계의 문제이다. 그럼으로써 위협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안보와 평화는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조금 더 균형적으로, 유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문제는 한쪽으로 쏠려있다는 것이다. 지금 안보에 관한 사회적 비판론들은 모두 위협을 제거할 필요 없이 취약성만 보완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취약성을 보완하려면 끝이 없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안보의 지도 위에 평화와 번영의 지도를 덮자고 말하지 않았나? 바로 항구적인 안보를 위해서.

 
 
 

 

/평화네트워크 필자의 다른 기사
 
요즘트위터페이스북더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4대강 MB 믿으라 했던 '박근혜' 왜 이제 와서


 

 

 


4대강과 대운하가 다르다고 주장했던 MB정권의 말이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습니다. 감사원은 국토교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4대강' 담합 의혹과 입찰 부조리를 감사한 보고서를 냈습니다.

여기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사회적 여건 변화에 따라 운하가 재추진될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MB의 지시에 따라 대운하 재추진과 연계된 4대강 사업 계획을 수립했고, 2.5m만 준설해도 되는 수심을 6m가 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감사원의 이런 지적은 밝혀져야 할 진실이 이제야 드러난 것에 불과합니다. 이미 PD수첩은 <4대강,수심 6m의 비밀>이라는 방송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폭로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사] - 'PD수첩 4대강편'불방된 방송내용 머길래?

2010년 8월 국토부는 MBC PD수첩의 <4대강,수심 6m의 비밀>편을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했다가 기각됐고, 김재철 전 MBC 사장은 '사전시사'를 요구해 전면 방송보류 결정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아이엠피터는 숱하게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진실을 MB정권이 숨기고 거짓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정치] - '4대강 사업' 찬성했던 사람, 다 어디 갔지?
[정치] - '녹조 수돗물'이 폭염 탓이라는 MB,지난겨울엔?
[정치] - 죽어가는 경제 살린다는 정책이 고작 '부자 감세'
[정치] - MB 거짓말 '4대강 사업으로 가뭄극복' 어느 나라?
[정치] - 4대강 환경파괴 주범이 환경학 명예박사라니
[외교] - MB정부,4대강 반대 독일교민도 정치 사찰?
[정치] - 벽돌 한장도 4대강 공사에 팔지 않는 사장님.
[정치] - 한나라당 의원들,4대강 찬성은 단 2명뿐.
[정치] - 4대강 사업 예산 264% 증액,서민주택 0% 예산.
[정치] - 청와대의 협박,4대강 반대 정치생명 걸어라.
[정치] - 물 속에서 헤엄도 못 치는 4대강 로봇 물고기
[시사] - PD수첩불방,김재철사장 사전시사요구.
[시사] - 재난본부 홍수피해에도 '4대강홍보'주력


많은 사람들이 4대강 사업이 대운하에서 말만 바꾼 것이고, 나라 예산을 마구 사용하고 후손에게 빚을 안기는 사업이라 얼마나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까? 그러나 이제 진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생각해볼 여지도 없는 일입니다.

'감사원 보고서보다 더 중요한 4대강 사업 조사 평가위원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최소한 이명박 정권의 가장 큰 문제였던 '4대강 사업'만큼은 제대로 조사될 줄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4월 16일 민주당 국회 상임위 간사들과 청와대 오찬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적 관심이 있는 사항인 만큼 객관적이고 투명하고 철저하게 의혹이 남지 않도록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제대로 '4대강 사업을 파헤칠 수 있다고, 그러나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 보고서는 극히 일부 건설사 담합이나 계약 문제에 불과합니다. 가장 중요한 안전성과 환경, 농업 등에 관한 철저한 조사는 원래 '4대강 사업 조사단'을 통해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 보 등 주요 시설물 안전성, 유지관리 적절성(수자원)
▲ 수질관리, 수생태복원 적절성(수환경)
▲ 농경지 침수 방지(농업)
▲ 문화, 레저공간 창출효과(문화, 관광)


'4대강 사업 조사 평가위원회'를 통해 철저히 조사해야 할 4대강 사업은 박근혜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인사를 조사위원회에 끼워 넣으면서 7월인 지금에도 위원회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의 보고서도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실제로 4대강 사업이 어떻게 총체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지, 과연 수질관리와 생태복원, 농경지 침수방지 등의 효과가 있는지 제대로 파헤쳐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조사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갑자기 등장한 4대강과 MB정권 비판'

현재 대한민국 정국은 '국정원 국정조사와 국정원 대선 개입 시민 규탄' 이 전국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감사원의 '4대강 사업 설계,시공일괄칩찰 등 주요계약 집행실태'감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어제 감사원 보고서가 나오자, 청와대는 4대강 사업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과거와 비교해보면 360도 다른 모습이라 어리둥절합니다.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은 감사원의 대운하 재추진 염두에 둔 4대강 사업 설계 보고서가 나오자,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고, 국가에 엄청난 손해를 입힌 큰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정현 홍보수석의 이런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발언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MB정권을 비판하고 나선 모습은 누가 봐도 현재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그녀의 '위기탈출용'에 불과합니다.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국정원 정치 공작과 대선 개입 규탄 촛불집회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증폭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에 민생과 경제가 더 침체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국민의 참여는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타개할 방법은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방법이 가장 쉽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정치 공작과 18대 부정선거에 대한 이슈를 4대강 비리와 대운하 등 MB정권 비리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이러면 분노한 국민의 칼날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향할 수밖에 없고, 이는 자연스럽게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위기를 탈출하는 루트가 됩니다.

이런 아이엠피터의 생각을 친절하게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확인시켜 줬습니다. 항상 '청와대 관계자'로 나오던 발언이 어제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라고 밝히라는 지시가 나왔습니다. 이는 '4대강 사업'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칼날을 휘두르겠다는 의지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4대강과 MB정권을 비판하니 그와 선긋기를 한다고 하는데, 이는 큰 범죄를 작은 범죄로 뒤덮으려는 고도의 전략이다. 건설사와 공무원 담합 비리 처벌과 원세훈 개인 구속으로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이 연관된 최악의 범죄인 대선 부정을 빠져나가려는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 박근혜 대통령이 믿으라고 해서 믿었는데, 왜 이제 와서'

박근혜의 입으로 불리던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자신의 이름까지 실명으로 밝히며 4대강 사업을 비판하고 나섰지만, 아이엠피터는 그의 뒤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의 위기 탈출용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에 4대강에 대해 어떻게 발언하고, 행동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8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에게 "정부가 대운하 사업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으니 믿어야 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이런 발언은 정부의 말에 신뢰를 줬고, 대다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믿었습니다.

2010년 8월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4대강 사업 자체가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있어 협조할 것"이라고 했으며, 이는 적극적인 4대강 찬성과 협조에 해당합니다.

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에 전 국토해양부 4대강 살리기 기획단장이었던 김희국을 전략공천해서 금배지를 달아줬고, 대선 후보 당시에도 선거대책위 수석부대변인을 통해 안철수 후보의 친수법 폐지를 비판하며 4대강 사업을 지켜보는 것이 옳다고 요구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를 포기하고 4대강 정비사업을 하는 일을 믿어야 한다며 강조했습니다.별로 말이 없는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을 보자면 이 정도 발언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그녀는 이미 대운하를 가장한 4대강 사업에 찬성하고 협조했던 공범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국민을 속이는 것인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속았으니 그녀에게 면죄부를 줘야 할까요? 그렇다면 국민은 이제 그녀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또다시 "나도 속았다'고 하며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한민국 대통령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기꾼이 벌인 사기 행각을 믿게 한 공범도 처벌받는데, 하물며 수십조 원의 대한민국 세금을 사용한 사기범과 함께 있었다면 마땅히 그에 대한 처벌을 받거나, 최소한 자신이 속았다는 '대국민 사과'정도는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문제를 함께 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언론과 청와대가 나서 박근혜 대통령을 숨겨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믿으라 해서 믿었는데, 왜 이제 와서'라는 말이 국민의 입에서 나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에 했던 모든 말을 물론이고, 앞으로 그녀가 할 말도 믿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유신維新’이 셀프 개혁이고, 박근혜가 ‘셀프’이다.

‘유신維新’이 셀프 개혁이고, 박근혜가 ‘셀프’이다.
 
김상일(전한신대 교수)
 
김상일(전한신대학교 교수)
기사입력: 2013/07/11 [07:39] 최종편집: ⓒ 자주민보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외래어를 많이 구사하는 분이 박근혜가 아닌가 한다. 대형 국정 지침을 내 놓을 때 마다 영어와 우리말을 썩은 말이 박근혜의 입에서 튀어 나오니 국민들은 민망하고 쪽팔리는 듯한 기분이다. 그녀는 8개국어를 구사한다고 세평에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되려고 어학 경연을 했다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어학이든 무엇이든 대통령에게 그것은 국익을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한다.

적어도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모국어를 사랑하고 모국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국민들에게 모범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분이 입만 벌렸다하면 외래어가 튀어 나오니 민망스럽다 아니 할 수 없다. 8개국어를 잘 구사한다는 것을 확인이나 시켜 주려고 작심이나 한 듯이 걸핏하면 영어 반 우리말 반이니 참으로 국민들은 참담한 심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신뢰 프로세스’에 이어 나온 제 2탄 외래어가 ‘셀프 개혁’이다. 그러나 이 말은 ‘유신’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 그 자체이다. 사서삼경 가운데 ‘맹자’에 나오는 말로서 “주나라가 비록 오래 되었어도 자체적으로 개혁하여 날로 새로워진다. 其方誰舊 維新”에서 유래 한다.

하늘 아래 새 것은 없고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오래 되면 변하고 낡아지기 마련이다. 낡은 것을 고치지 않을 때에 가정은 패가망신하고 국가는 전복된다. 옛것을 버리고 새로워 지지 못하는 것을 두고 ‘구태의연舊態依然’ 이라고 한다. 이때에 다시 새롭게 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새롭게 되는 방법에는 두 가지 선택 밖에 없다.

하나는 외부에서 힘을 가해 바꾸고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혁명이다. 다른 하나는 내부에서 자체 개혁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다. 바로 내부 안의 자체 개혁으로 새롭게 되는 것을 두고 ‘유신’이라고 한다. 주나라는 은나라를 구데타로 무너뜨리고 세웠지만 그 주나라는 유신으로 새롭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는 주나라가 날로 새롭게 되는 것은 끊임없는 자체 개혁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주나라는 그렇게 할 만한 저력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주공을 꿈에라도 만나 보려 했고 그를 선망하고 숭배의 념을 지니고 살았던 것이다. 유교는 혁명 보다는 유신을 정치이념으로 삼는다. 명치유신 그리고 박정희의 10월 유신도 이를 흉내 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는 구 민주당 정권이 유신할 여지도 주지 않고 쿠데타로 나라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만 13년 만에 1973년 10월 18일 10월 유신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그의 유신은 자체 개혁없는 다시 말해서 셀프 개혁 없는 유신이었다. 그의 유신은 폭압과 학정으로 이어지다 1979년 10월 26일 자기 내부의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그야 말로 내부의 진정한 개혁 아닌 유신을 선포한 박정희 자신이 내부 개혁의 기치를 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손에 의하여 유신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폭압과 학정으로 이어진 유신이 유신된 것이다.

1972년 10월 17일 유신 때 박근혜의 나이는 20세였다. 10월 유신이 진행되는 과정을 소상히 알만한 나이이다. 그리고 유신이란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파악해 알 나이이다.

‘유신’이란 사전적 의미가 바로 ‘셀프 개혁’이다. 셀프 개혁이란 다른 말은 ‘환골탈태換骨奪胎’이다. 셀프 개혁을 하자면 환골 하고 탈퇴를 해야 가능해 진다는 말이다. 그러면 과연 박근혜가 국정 개혁을 두고 주문한 셀프 개혁이 환골탈태 할 생각이 있는 것이었는가.

문제의 장본인인 남재준 원장을 그냥 두고 아니 더 어깨에 힘을 실어 주고 국내 파트를 더 강화 확대하자는 것이 집권 여당의 주장이고 보면 어안이 벙벙해 진다. 하기야 이 번 대선에서 국내 파트에 의해 집권을 했는 데 그 재미와 향수를 과연 버릴 수 있을까. 국내 파트의 공헌 없이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다시 잡을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셀프 개혁을 주문한 사흘 만에 남재준은 대화록을 또 왜곡하는 발언을 하고 나왔다. 노무현이 NLL을 포기했다는 종래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6월 9일 대변인 발표를 하였다. 박근혜가 남재준의 어깨에 힘들 실어 주었다는 증거이다. 박정희가 유신 선포이후 반복하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보자. 자체 개혁을 하면 국내 파트는 줄이고 “가장 중요한 대북정보 기능강화, 사이버 테러에 대한 대응하고 경제 안보를 지키는 데 전념하겠다.”고 한다. 이 말을 뒤집으면 결국 국내 파트 강화 그 자체이다. 바로 지금 까지 국정원이 한 짓이란 국가 안보와 대북 정보 기능강화란 이름으로 생사람들을 잡아 족치는 일을 해 왔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그리고 박근혜 보호벽이 국가 보안법이고 이를 더 강화한다는 것은 국내 파트에 손대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 시키겠다는 말과 전혀 다르지 않다.

앞으로 두고 보라. 국내파트 개혁이란 명목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을 것이다. 이명박이 집권 5년 동안 한 짓이란 정권 재창출 밖에 없었다. 박근혜가 한 치도 다를 것이 있을 줄을 아는다. 통일 국가 안보 내걸고 정권 재창출에 전력투구할 것이다.

남한 정부는 지금 저 북한이 왜 안 무너지고 있는지 의아해 한다. 그 이유는 철저한 자기반성을 하는 인민재판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남에서는 그것의 가혹함에 대하여 최대의 비판 걸이가 되고 있지만 인민재판이란 내부의 비리를 철저하게 비판하는 환골탈퇴의 경지까지 몰고 가 자기 개혁을 하자는 의미인 것이다.

남재준을 인민재판에 회부할 정도의 환골탈태 하지 않고 말하는 ‘셀프 개혁’이란 달 쳐다보고 짓는 개소리만도 못 한 헛소리로 끝나고 말 것이다. 인민재판의 종교적 의미는 회개라는 것이다. 과연 남재준이, 그리고 박근혜가 회개 했는가. 아니다. 6월 9일 국정원 대변인 성명서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면 그 후과는 무엇인가. 박정희가 유신 아닌 유신을 선포한 지 6년 만에 흉탄에 맞아 갔듯이 자기 자신이 포함 안 된 셀프 개혁의 말로는 지금 훤히 내다보인다. 맹자가 말하는 유신이란 유교식으로 ‘극기복례’이다. 진정한 유신이 되자면 철저하게 자기를 극복해 자기를 이기고 법과 례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말은 셀프 속에 항상 자기 자신을 그 속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박정희는 유신이란 자기 개혁 속에, 즉 셀프 속에 자기 자신도 포함을 시켰는가. 시키지 않았을 때 결과는 무엇인가?

‘셀프’가 그 말을 하는 자기 자신이 아닐 때에 박정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중앙정보부 부장의 손에 죽듯이 정보부를 만든 자 정보부로 쓰러지고 말 것이다. 문재인의 말대로 박근혜는 국정원의 최대 수혜자이다. 국정원 선거 개입이 없었더라면 선거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것이 지금 대부분 국민들의 생각이다. 이 얼마나 중차대한 사건이고 사안인가. 박근혜는 국민들에 의하여 당선된 것이 아니고 국정원에 의해 당첨된 것이다.

이럴 진데 박근혜는 안이하게도 국정원의 ‘셀프 개혁’이란 카드를 들고 나왔다. 박근혜 자신이야 말로 셀프 개혁의 대상 자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자기 아버지가 바로 이 사실 하나를 몰랐기 때문에 비운에 갔다는 것을 그녀는 벌써 잊었단 말인가. 그 때 20대라면 유신의 자초지종을 소상이 알고 있었을 터인데 말 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가 한 유신이란 행습을 그대고 답습하겠다는 말인가. 10월 18일 유신은 10월 26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교훈을 잊지 않기 바란다. 국민들이 박근혜에게 바랐던 것은 진정한 의미의 유신이었을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기회를 놓지 않는 비결은 정권 재창출이란 망상을 버리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스노든 '세기의 폭로'는 안 보이고 '잿밥'만 보이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7/10 15:31
  • 수정일
    2013/07/10 15:3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取중眞담] 한국 언론이 스노든을 '소비'하는 법

13.07.10 11:03l최종 업데이트 13.07.10 11:16l
홍현진(hong698)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금 여러분들은 기레기들이 낚시로 역관광당한 현장을 보고 계십니다."

9일 오후 쓴 기사 <스노든이 UFO 극비문서 공개? '패러디 뉴스'에 낚였네>에 달린 한 포털사이트 댓글이다. 여기에서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이고, '역관광'은 '상대방에게 공격하려 하거나 공격을 했는데 오히려 자기가 크게 당하는 경우'라고 포털사이트 '오픈국어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기자들이 기사를 썼다가 '관광'을 당하고 있다는 것.

이날 포털사이트 검색어에는 '스노든'과 지구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지구공동설'이 계속해서 상위권에 올라 있었다. 미국·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의 광범위하고 무차별한 정보수집을 폭로하고 있는 스노든이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EjosephSnowden)를 통해 'UFO 극비문서'를 공개했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트위터에 링크된 '인터넷 크로니클(www.chronicle.su)' 사이트는 "지구의 맨틀 속에 인간보다 더 지능이 높은 종족이 있으며, 미국 대통령은 그들의 활동에 대해 일일 브리핑을 받고 있다"는 스노든과의 인터뷰를 전하고 있다. 국내 매체들은 '충격', '멘붕'이라는 반응과 함께 관련 내용을 전했다.
 

기사 관련 사진
에드워드 스노든이 'UFO 극비문서'를 공개했다고 보도한 언론들.
ⓒ 화면캡처

관련사진보기


패러디 뉴스 사이트, 한국 기자들 단체로 '낚시'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결과, '인터넷 크로니클'은 진짜 뉴스 사이트가 아닌 패러디 사이트였다. 이 사이트가 가장 많이 쓰는 뉴스는 주로 '죽음' 관련 기사다.

저스틴 비버가 19살에 죽었다, 릴 웨인이 29살에 죽었다, 셀레나 고메즈가 19살에 죽었다, 에이콘이 38살에 죽었다.

이들은 현재 모두 살아 있다.
 

기사 관련 사진
스노든 '지구공동설' 기사를 실은 패러디 뉴스 사이트 '인터넷 크로니클'. 이 사이트는 에드워드 스노든, 저스틴 비버, 릴 웨인, 셀레나 고메즈 등이 죽었다는 '가짜' 뉴스를 실은 바 있다.
ⓒ 인터넷 크로니클

관련사진보기


이들은 지난 6월 23일 스노든이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드론(무인공격기) 공격을 받아서 사망했다는 기사도 썼다. 스노든의 '특종 파트너'인 <가디언>의 글렌 그린월드의 '가짜' 트위터 계정은 '에드워드 스노든이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과 함께 해당 기사를 링크했고, 많은 이들이 이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자세히 보면, 가짜 트위터 계정 아이디는 '@ggreenwald'가 아닌 '@ggreenwild'로, 'a'가 'i'로 바뀌었다.

전직 <로이터> 통신 소셜미디어 에디터 앤소니 데 로사도 '낚인'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스노든이 죽었다'는 트윗을 리트윗했고 이는 소셜네트워크 사이트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더 뉴욕 옵서버>는 인터넷 크로니클이 풍자 뉴스사이트며, 가짜 트위터 계정은 주류 언론인들을 낚시질해서 인터넷 크로니클의 트래픽을 높이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데 로사는 잘못된 정보를 전한 것을 사과했다.

전 <로이터> 통신 소셜미디어 에디터이자, <써카(Circa)>의 편집국장을 감쪽같이 속인 '인터넷 크로니클'이 이번에는 한국 기자들을 단체로 낚았다. 한나절 넘게 온라인 공간이 '지구공동설'에 휩싸였으니 이 정도면 '월척'이다. 인터넷 크로니클은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진실을 진지하게 다룬다. 크로니클에서, 진실이 아닌 것은 신체절단, 죽음으로 처벌받는다.

슬프게도, '크로니클'은 이 지구의 것이 아니다. 1976년 12월 30일 소행성에 불시착한 이후, 크로니클의 편집자인 에일리언들은 지구의 기후와 세균 식물에 빠르게 적응했다. 그들은 야생에서 자연스럽게 살아남을 수 있고 자유롭게 번식할 수 있다.

여기 크로니클에서, 우리는 약물 남용, 지적 재산 절도에 리버럴(기자주 : 자유로운, 개방적인, 관대한)한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리버럴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리버럴(기자주 : 자유주의자)들은 호모들이고 우리는 동성애자가 아니니까!(후략)
 

기사 관련 사진
'인터넷 크로니클'은 에드워드 스노든을 '최고의 현장 리포터'라며 '스태프'로 소개하고 있다. 화면 우측에는 '집에 있는 테러리스트가 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아이패드'를 패러디한 '아이지하드'를 광고하고 있다.
ⓒ 인터넷 크로니클

관련사진보기


이들은 에드워드 스노든을 인터넷 크로니클의 '스태프'로 소개하고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은 크로니클 최고의 현장 리포터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첫 번째 시위, 그리고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 전쟁 최초의 시위에서 스노든은 '엘프 왁스 타임스'에 실시간으로 사진을 보내 실시간으로 뉴스를 중계했다.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이라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이트에 걸려있는 광고배너는 더욱 이상하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무슬림의 모습과 함께 '집에 있는 테러리스트가 되세요. 아이지하드(iJihad) $1.99'라는 광고문구가 보인다. 아이패드를 패러디한 것이다. '지하드'는 '이슬람 성전(聖戰)'을 뜻한다. 또 다른 광고를 보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오바마가 돼지플루에 걸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다. 이곳은 패러디 사이트다. 그리고 다수의 한국 언론이 이곳의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였다.

'스노든의 불가능한 트위터 여행'
 

기사 관련 사진
사칭 트위터 계정이 논란이 되자, 미국 소셜미디어 사이트 <버즈피드>에서는 지난 6월 12일 '글렌 그린월드와 에드워드 스노든 가짜 트위터 계정에 대한 매우 도움이 되는 안내서'라는 글을 싣기도 했다.
ⓒ BuzzFeed

관련사진보기


언론이 스노든의 트위터라고 보도한 트위터 계정 역시 '인터넷 크로니클'이 만들었다. 이들은 지난달 15일 '에드워드 스노든 되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자신들이 '@ejosephsnowden' 계정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작성자는 '인터넷 크로니클' 최고의 리포터 에드워드 스노든이다.

이 글의 부제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불가능한 트위터 여행'. 인터넷 크로니클 '스태프' 에드워드 스노드은 이렇게 적고 있다.

스노든의 주장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트위터 계정의 존재는 불가능해 보일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컬하다.

'가짜' 스노든 트위터는 지난 6월 29일 "브래드는 동성애자이고, 줄리안은 움직이는 모든 것을 강간하고, 엘즈버그는 미쳤고, 글렌 그린월드는 포르노를 판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여기에서 브래드는 미국 군사기밀 문서를 '위키리크스'에 폭로한 브래들리 매닝 일병, 줄리안은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 엘즈버그는 '펜타곤 페이퍼' 내부고발자 대니얼 엘즈버그, 그린월드는 <가디언> 칼럼니스트 글렌 그린월드다.

6월 11일에는 헐리우드 스타 린제이 로한에게 구애를 하기도 했다. 국내 언론이 '스노든이 러시아 미녀 스파이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면서 인용한 트위터 역시 이 계정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더 뉴요커>는 이 계정을 '가짜 계정(Fake Account)'이라고 소개했다.

물론 스노든이 정말로 '인터넷 크로니클'에서 활동하면서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보기관 출신으로, 혹시 모를 도청에 대비해 호텔 방 문을 베개로 막고 컴퓨터에 접속할 때 빨간 천을 뒤집어 쓸 정도로 치밀함을 보였던 스노든이 이러한 트윗을 올렸을 가능성은 아무래도 낮아 보인다.

사칭 트위터 계정이 논란이 되자, 미국 소셜미디어 사이트 <버즈피드>에서는 지난 6월 12일 '글렌 그린월드와 에드워드 스노든 가짜 트위터 계정에 대한 매우 도움이 되는 안내서'라는 글을 싣기도 했다. "자신이 에드워드 스노든이라고 주장하는 어떠한 트위터, 페이스북 계정도 모두 가짜"라는 글을 올린 바 있는 그린월드는 6월 11일 '이번이 마지막'이라면서 '@ejosephsnowden'은 가짜라고 거듭 밝혔다. 그러자 앞서 스노든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던 '그린윌드' 계정은 '@ejosephsnowden'이 단 하나의 진짜 계정이라고 트윗했다.

'미녀스파이' 'UFO'... 선정적 이슈에만 관심
 

기사 관련 사진
러시아 미녀스파이 안나 채프먼이 에드워드 스노든에게 청혼했다는 내용을 전하는 언론들.
ⓒ 화면캡처

관련사진보기


전직 CIA(중앙정보국) 요원이자, NSA(국가안보국) 외주업체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기록되는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면서 '감시받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며 NSA 기밀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미 정보기구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전 세계를 무차별적으로 도청하고 해킹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정보기구와의 공조도 이루어졌다. 조지 오웰의 소설 속 '빅브라더'는 현실이었다.

최근에는 미 정보기구가 38개 국가 주미 대사관·대표부의 전화를 도청하고 전산망을 해킹했다는 증거도 나왔다. 여기에는 '우방국'인 한국도 포함돼 있었다. 워싱턴 소재 EU 사무실, 뉴욕 UN본부 EU 대표부 사무실, 브뤼셀 EU본부 감시는 외교 분쟁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스노든은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책상에 앉아서 누구나 도청할 수 있다. 당신, 당신의 회계사, 연방판사, 심지어 대통령도."

스노든의 '폭로' 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어찌됐건 그는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내부고발'을 했다. 현재 그는 고국을 떠나 망명을 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하지만 국내 언론의 관심은 그의 폭로 내용보다는 '미녀스파이', 'UFO', '외계인'과 같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슈에 더 쏠려 있는 듯하다. 스노든은 또 말했다.

"내가 정말로 두려운 것은 폭로 후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부디, 그의 폭로가 한국사회에서도 '변화'를 이끌어내길 바란다.
{C}

 
요즘트위터페이스북더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