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뉴라이트·이승만, '용서받지 못할 자' 비호"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4> 친일파, 첫 번째 마당

김덕련 기자,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9-22 오전 12:51:19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두 번째 이야기 주제는 친일파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한국전쟁, 첫 번째 마당] "공산군 물리친 이승만의 공? 잘한 게 없다"
[한국전쟁, 두 번째 마당] "북한, 전면전은 못할 것…한국전쟁 공포 때문"
[한국전쟁, 세 번째 마당] 박정희 살린 6.25? "전쟁 덕 톡톡히 봤다"


프레시안 :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 오래됐는데도 친일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 교학사 교과서. ⓒ교학사

서중석 : 해방 후 68년이 지났다. 그 이전의 행위를 지금도 문제 삼으며 단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대표적인 경우는 나치 협력자나 친일파다.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다. 친일파가 계속 문제가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현재의 문제로 부각되기 때문 아니겠나. 뉴라이트나 수구 언론에서 친일파를 계속 옹호하는 걸 보더라도, 그만큼 그 사람들에겐 중요한 문제, 현재의 문제란 생각이 든다. 이번 (교학사) 교과서 파동에서도 그런 면이 다분히 보인다. 이렇게 계속 살아 있는 문제가 되는 건 친일파 문제가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란 생각이 많이 든다.

반민족 행위를 해방 후 속죄하고 반성하면서 자기 분야에서 양심껏 살아가려는 노력을 했다면 (지금 같은) 친일파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친일파(와 그 후예)가 수십 년간 권력을 장악하지 않았나. 그 후 한국이 개방적인 사회로 가면서, (저들이) 권력에서 소외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면서 (저들이) '이 권력을 어떻게든 놓아서는 안 된다' 하게 됐고, 그런 것이 친일파 문제가 계속 생기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이승만 정권, 유신 체제 때도 잘 드러난 건데, 친일파의 중요한 특징은 권력을 맹신한다는 것이다. 권력을 계속 움켜쥐려면 상대방을 '종북' 같은 걸로 공격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들의 뿌리와 연관된 것을 미화할 수밖에 없다. 그게 결국 친일파 옹호로 나타나고, 이번 교과서 문제로도 드러난 것 아닌가 한다.


프레시안 : 친일파라는 용어가 적절한가 하는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다. 엄밀한 개념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인 표현 아니냐는 의문이다.

서중석 : 사실 그 문제는 학계에서 수십 년간 얘기됐다. (친일파란 말이) 감정적이고 비학문적인 용어 아니냐, 다른 용어를 쓰는 게 적절하지 않냐는 얘기였다. 그런데 친일파 대신 다른 말을 쓸 경우 부적절하다란 생각이 더 든다. 다른 말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이 한말부터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친일파의 행위를 포괄할 수 있는 용어인가 할 때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친일파란 단어 속엔 근현대사가 녹아 있다고 할까, 한국인의 역사의식 같은 것들을 잘 보여주는 면이 있다. 한마디로 친일파(란 말)처럼 그들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용어는 없지 않나 (하는 거다). (정리하면) 친일파라는 단어에 문제를 느낄 수는 있지만 친일파를 일반적으로 분석하고 얘기할 때는 적절한 것 같다.

'용서받지 못할 자' 비호하는 뉴라이트와 수구 언론


프레시안 : 해방 직후엔 어땠나.

서중석 : 해방 직후에도 친일파란 말을 썼다. 일제 때도 많이 썼고. 다만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친일파 처단법을 만들 때 '부일(附日) 협력자'란 말을 썼다. 부일 협력자란 표현도 어느 정도 사용됐다.

왜 이 친일파란 단어가 그렇게 한국인한테 주는 의미가 분명하냐. 예컨대 유럽의 경우 프랑스에 친독파, 독일에 친영파가 있을 수 있다. 그 말엔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이나 죄의식 같은 게 들어 있지 않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식민 지배를 겪은 인도에서 친영파, 필리핀에서 친미파란 딱지를 붙여 영국 혹은 미국과 관계가 있었던 자국인을 매도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다른 동남아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에서 친일파라고 할 때는 인도차이나의 친불파, 인도의 친영파, 필리핀의 친미파와 그 뜻이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친일파 하면 우선 대한제국 말기 매국노가 연상된다. 을사오적이 제일 많이 알려져 있지 않나. 나라 팔아먹는 데 앞장섰던 이완용, 송병준 같은 악질 친일파를 많이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3.1운동 이후 독립 운동이 활발해지자 그걸 탄압하는 데 앞장서고 민중을 감시한 자들을 친일파로 많이 본다.

1930년대 이후 특히 전시 체제로 갈수록, 한국인들은 친일파에 대한 반발심을 더 강하게 갖게 된다. 억압의 강도도 월등히 심해질 뿐만 아니라 공출이나 강제 동원 같은 것들에 앞장선 자들이 한국인 가운데 많았기 때문이다. 군국주의 침략 전쟁에 나가라며 학병과 징병에 응하도록 권하거나 전쟁을 찬양하는 글을 쓰는 등의 방식으로 전쟁 협력 행위를 한 자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일제 말에 민족의식을 완전히 말살하고 일본인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황국 신민화 운동도 벌어지지 않았나.

친일파 하면 (사람들에게) 이런 것들이 연상된다. 그러니까 한국인에게 친일파는 용서받지 못할 자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친일파는 유럽의 나치 협력자와 거의 같은 뜻을 지녔다고 볼 수도 있다.


프레시안 : 일제 치하에서 일본에 협력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서중석 : 그런 주장은 친일파가 해방된 그날부터 참 줄기차게 펼친 거다. (예컨대) 한국인 중 (일제에) 세금 안 낸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식의 주장이다). 세금 중엔 농사짓는 데 꼭 필요한 수리세 같은 게 있다. 또 담배를 피우면 연초세를 물어야 한다. (일제 치하라고) 담배 안 피울 수 있나. 수리세 내고 연초세 냈다고 해서 일제에 협력한 건가? 그리고 강제 동원돼서 끌려가고 강제 공출된 것, 이런 것도 일제에 협력한 건가? 그 당시 한국인 중 어느 누구도 이런 걸 일제에 협력한 거라고는 안 봤다. 당시엔 왜정 치하라고 했는데, 왜정 치하에서 악독하게 당한 거라고 봤다. 해방된 그날부터 문제 삼은 건 처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악질 친일파다.

독일의 경우를 봐도,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 지시로 전쟁에 나간 군인이나 공무원들을 다 협력자라고 몰아세우지도, 재판에 붙이지도 않았다. 모두 반성해야 하는 행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중 문제가 많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전부 단죄 대상으로까지 얘기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견해가 많았다.


프레시안 : '그땐 다 협력했다'는 식의 공범론은 부적절하다는 뜻인가.

서중석 : 그렇다. 그런 식으로 (친일파가)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수렁에 같이 빠져 같이 죽자는 참 파렴치한 논리다.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해방 후 반성은 없고 원성만 키운 악질 친일파

프레시안 : 해방 직후 사람들은 친일파 문제를 어떻게 봤나.

서중석 : 대다수의 한국인은 해방을 정말 감격스럽게, 꿈같이 맞이했다. 그와 달리 공포 속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으로 맞이한 사람들도 있었다. 악질 친일파다. 해방 직후 친일파 중 악질들은 다 도망쳤다. 당시 기록을 보면, 경찰의 경우 80% 넘게 뺑소니쳤다. 미군이 들어와서 '현직에 복무하라'고 지시할 때까지 무서워하며 도망 다니는 데 바빴다. 해방 직후 대중이 악질 친일파에 대해 얼마만큼 분노에 떨고 있었는가 하는 걸 단적으로 얘기해준다.

대부분의 정치 세력도 이구동성으로 친일파를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국민주당(한민당)이 '친일파 문제는 차차 (처리)해도 된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그래서 한민당은 친일파 옹호파란 얘기도 많이 들었다. 또 이승만이 한국으로 돌아와 독립촉성중앙협의회(독촉중협)를 조직하는데, 여기서도 '친일파 처단을 지금 꼭 해야 하느냐'는 식의 얘기가 나왔다. 한민당도 그렇지만 독촉중협에도 친일파가 많이 들어가 있었다.

안재홍 같은 중도 우파는 해방 직후 친일파 처단에 적극적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해방 직후 우익이 좌익보다 약했던 분위기 등을 반영해 친일파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미소공위)가 휴회한 1946년 5월 이후 좌우합작 운동에 참여하면서 안재홍 등 중도 우파가 친일파 처단 주장을 상당히 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렇게 된 건 해방 후 친일파가 한 짓이 (이들에게) '이거 큰일 났다. (친일파가) 우리 사회를 망치는 존재 아니냐'는 위기의식을 갖게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해방 후 부정부패가 무지하게 심했는데, 이걸 척결하려면 친일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거다.

사실 일제 때 친일파가 부정부패를 정말 잘했느냐고 하면 그렇진 않다. 조선총독부가 그런 것에 상당히 엄격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친일파가) 부분적으로 불법을 저지르긴 했지만 노골적인 부정부패 행위를 하긴 어려웠다. 그런데 해방 직후엔 친일파가 어디서나 부정부패와 관련돼 나타난다.

또 한국이 민주주의 사회로 가야 한다는 게 해방 후 대세였다. 그런데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데 있어 친일파가 암적 존재라는 생각을 많이 갖게 했다. 안재홍 같은 사람도 그걸 우려했다. '미소공위가 휴회하면서 분단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는데, 친일파가 그야말로 분단 세력 아닌가. 분단만이 살길이라며 단정 운동에 앞장서지 않았나. 새 나라를 세우는 데 있어 친일파처럼 심각한 문제가 없다.' 이런 생각을 많이 갖게 했다.

프레시안 : 그렇잖아도 어려웠던 해방 직후 상황에서 부정부패는 경제에 치명타였을 것 같다.

서중석 : 해방 직후 '친일파를 빨리 처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온 건 민중을 억압하고 고문한 악질 친일 경찰 때문이다. 친일 경찰은 (1946년) 10월항쟁, (1948년) 4.3사건과 여순사건이 일어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사실 해방 직후 서민들이 친일파에 대해 악감정을 많이 품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친일파가 모리배 짓을 많이 해서다. 이게 신문 자료에 참 많이 나온다. 일제 말에도 생활이 굉장히 어려웠지만, 해방되고 또 얼마나 어려웠나. 모두 허리띠 졸라매고 같이 고통을 참으면서 어떻게 하면 이 경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친일파는 오히려 때를 만났다고 생각하고 미군정 등 권력과 결탁해 쌀 같은 걸 매점매석했다.

해방된 해 남쪽은 풍년이고 북쪽은 흉년이었는데, 나중에 남쪽에서 품귀해서 쌀 소동이 일어난다. 10월항쟁이 일어난 것도 쌀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일제 말에 고무신을 비롯한 생필품을 배급했고, 해방 후에도 그중 일부는 배급했다. 그런 생필품을 마구잡이로 사재기했다가 값이 뛰면 팔고 그러니까 모리배에 대한 원성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친일파가) 우리 생활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원흉 아니냐. 따지고 보면 모리배가 다 일제 때 악질 친일 행위를 한 자들이다. 경제가 잘 풀리기 위해서라도 친일파를 빨리 처단해야 한다'는 논리가 많이 나타난다.
 

역사학자 서중석의 진단
▲ "박근혜는 유신의 허깨비가 결코 아니었다"

▲ "박정희 신드롬, 박근혜가 지울 수도 있다"
▲ "<조선> 말대로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빨갱이"


친일파 되살린 미군정과 이승만

프레시안 : 그런 친일파가 살아나는 과정에서 미군정과 이승만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서중석 : 잘못 유포된 주장 가운데 하나가 해방을 무조건 혼란기로 보려는 견해다. 해방 직후엔 그렇게까지 심한 혼란은 없었다. 살상 행위라든가 치안을 크게 어지럽히는 행위 같은 건 없었다. 역설적인 현상이지만 미군정이 설치되면서 오히려 혼란이 많이 일어났다. 미군이 친일파를 적극 등용하면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친일파 처단의 필요성을 강조한 데는 한국인들의 정의감, 해방 직후에 특히 느낄 수 있던 강한 정의감이 많이 작용했다. 그런데 당시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이던 이승만 같은 사람은 친일파를 옹호했다. 친일파 문제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 수준이 아니다. '친일파를 옹호하는 가장 주된 세력이 아니냐', '친일파가 발호하는 온상이다', 이렇게까지 비난을 받았다. 이승만은 주요 지도자 가운데 '친일파를 지금 처단해선 안 된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한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그분은 상당히 교묘하다고 할까, 그런 면이 있었다. 뭐냐 하면 '독립 국가를 수립한 다음에, 우리 정부를 가진 다음에 우리 손으로 처단해야지, 어떻게 남의 손에 처단되길 바라느냐. 외세에 의존해서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이런 아주 재미난 논리랄까 특이한 논리를 폈다. 이승만은 권력에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친일) 경찰 간부들을 감싸거나 치하하는 일들을 많이 했다. 그런 식으로 경찰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적극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 이미 여러 경찰서나 지서에선 '이승만이 우리 최고 지도자'라며 그 사진을 걸어둔 데도 있었다고 얘기한다.

프레시안 : 이승만 등이 친일파를 비호하는 속에서도 친일파 청산 노력은 계속됐다. 대표적인 것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다.

서중석 : 1947년, 미군정 산하 기관이라고 볼 수 있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친일파를 단죄하기 위한 법을 만들었다. 한민당, 독립촉성국민회(독촉중협의 후신) 등 이승만을 지지하는 세력의 반대를 딛고 통과됐다. 그런데 미군정은 친일파 청산에 워낙 소극적이어서 이 법을 공포하지 않았다. 김규식은 '그렇다면 입법의원 의장을 사임하겠다'고 강경하게 배수진을 쳤다. (미군정은) 처음엔 김규식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지만 끝내 이 법을 공포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계기를 만나면서, 친일파 처단 문제는 급물살을 탄다. 헌법을 (1948년) 7월 17일 공포하는데, 제101조에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집어넣었다. 정부 수립 전인 8월 5일엔 제헌 국회에서 '친일파 처단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 위원회를 설치하자'는 긴급동의안을 냈다. 그래서 그 날짜로 특별법기초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정부 수립 공포 다음 날(8월 16일),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이 바로 국회에 상정된다.

이건 뭘 얘기하느냐면, 제헌 국회가 헌법 다음으로 중요시한 게 친일파 처단이었다는 거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좋은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거다. 그렇게 활동하게 된 건 무엇보다 친일파 처단이 긴급하고 절대적인 과제이자 우리 정부가 들어서는 마당에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라는 총체적인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헌 국회 의원들이 그걸 따라가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친일파는 미군정 시기에 이미 클 대로 컸고 이승만 주위에 집결해 있었다. 이들은 제헌 국회에 아주 강하게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 시내에서는 물론이고 국회 안에서까지 삐라를 뿌리면서 그런 활동을 했다. "대통령은 민족의 신성이다. 절대 순응하라", "민족 처단을 주장하는 놈은 공산당의 주구이다" 등이 적힌 삐라였다. 지금 여기저기 '종북' 딱지를 막 붙이듯이, 그때도 친일파가 자기들을 욕하는 사람들을 공산당 내지 그 주구로 몰아붙였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반민법을 공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민법을 공포하지 않으면 양곡 관리 법안 같은 걸 국회가 통과시키지 않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양곡 관리 법안은 도시에 식량을 공급하는 것에 관한 법이었는데, 당시 긴급한 문제였다. 그래서 9월 22일, 할 수 없이 공포한 거다. 공포 다음 날(9월 23일), 친일파는 서울 시내 중심가에서 반공구국궐기대회를 대대적으로 열었다. 이승만 정부는 이걸 눈에 띄게 지원했다.
 

▲ 2012년 제헌절에 남산에 있는 자유총연맹 광장(서울시 중구 장충동)에서 이승만 동상 너머로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승만 동상은 본래 1956년 남산에 세워졌으나, 1960년 4월혁명 때 시민들의 손에 철거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자유총연맹은 2011년 남산에 다시 이승만 동상을 세웠다. ⓒ연합뉴스


힘으로 반민특위 짓밟은 이승만과 친일 경찰

프레시안 :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반민특위는 당시 큰 기대를 모았다.

서중석 : 반민특위는 1948년 10월 23일 구성돼 이듬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1949년 1월 8일 친일파 거두로 원성이 높던 박흥식, 김연수, 최린, 최남선, 이종형, 이광수 등을 구속했다. 이번 (교학사) 교과서에서 옹호하려는 사람들이 여기 많이 포함돼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대통령이 아주 강하게 반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반민특위가) 그해 1월 24일, 이 사람들 못지않게 악명이 높던 친일 경찰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자 (이 대통령은) "치안 혼란을 조장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친일 경찰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국회는 그것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반민특위를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하면서 (반민특위를 약화시키는 내용의) 반민법 개정안을 냈다. 그런데 국회는 그 개정안이 국회로 오자마자 표결에 붙여 부결시키고 정부로 그대로 이송한다. 그야말로 속사포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어째서 국회가 이렇게까지 나오느냐. 제헌 국회 의원들은 (1948년) 5.10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들이고 그중 상당수는 이승만 지지 세력, 한민당 계열, 단정 세력으로 볼 수 있다. 그 세력들이 동조하지 않았으면 이런 국회가 성립될 수 없었던 것 아니냐고 얘기할 수 있다. 이건 당시 (친일파 처단에 대한) 국민의 뜻이 얼마나 강렬했느냐를 단적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이승만 정부는 결국 힘으로 친일 청산 노력을 짓밟지 않나.

서중석 : 이 대통령은 반민법을 무력화하려 한다. 그러면서 유명한 6.6 반민특위 습격 사건(1949년 6월 6일)이 일어난다. 이걸 단순히 반민특위 습격 하나로만 보면 안 된다. 그 시기에 일어난 다른 사건들, 그러니까 국회 프락치 사건, 6.26 김구 암살 사건과 함께 봐야 한다. 이게 학계 일부에서 얘기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6월 공세다. (이승만의 행위를 학계에서) 역사를 과거로 퇴행시키려는 노력으로 보는 거다.

제헌 국회에서 반민법을 시행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걸려드는 노일환 의원을 비롯한 소장파다. 또 국회 밖에서 김구, 김규식 같은 독립 운동 세력이 강하게 버텨주니까 국회가 그런 활동을 했던 건데, 버팀목이던 김구가 암살되면서 친일파 처단은 결국 유야무야되고 만다.

친일파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 하는 건 1987년 6월항쟁이 일어날 때까지 친일파 문제가 거의 거론되지 못한 데서 잘 드러난다. 1949년부터 1987년까지 38년 동안 그랬다. 극단적인 극우 반공 체제를 유지하던 시기엔 얘기조차 꺼내기 어려운 문제였다. 친일파 문제는 6월항쟁 이후 한국 사회에 민주화가 자리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다시 등장한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다섯 번째 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김덕련 기자,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연쇄인터뷰-이석기 사태와 진보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MB정부 5년간 진보정당 주변화˙자폐화
진보정당 재건 안되면 새누리 장기집권 가능성"

[연쇄인터뷰-이석기 사태와 진보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13.09.22 10:22l최종 업데이트 13.09.22 13:08l
구영식(ysku) 이주영(imjuice)

 

 

민주노동당 일심회 사건과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폭력사태를 거쳐 최근 '이석기 사태'(내란음모 의혹)까지 터지면서 진보운동은 이제 임계점에 이르렀다. 이석기 사태를 진보운동의 위기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진보운동에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면 진보운동은 이석기 사태에서 무엇을 성찰하고 얻어야 하나? <오마이뉴스>는 보수와 진보진영 등에서 활동해온 인사들과 연쇄인터뷰를 해 그 해답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기사 관련 사진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이주영

관련사진보기


지난 16일 오후 늦게 인터뷰를 위해 성공회대 연구실을 찾았을 때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취재진과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종북 프레임을 만든 조승수 전 의원은 운동사적 범죄자다"라고 쓴소리부터 쏟아냈다.

"종북 프레임은 공안의 논리가 진보공동체 내부의 프레임으로 이입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범죄라고 생각한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분당을 강하게 반대했던 조 교수에게 "친북세력과 결별해야 한다"며 선도탈당했던 조 전 의원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특히 민주노동당이 분당한 이후 진보정당이 더욱 고립되었다는 판단때문에 조 전 의원을 향한 비판에는 시퍼런 날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한국사회운동을 연구해온 학자답게 이석기 사태를 거시적이면서 냉철하게 짚어나갔다.

"진보당 세력, 제도화의 이중성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아"

먼저 조 교수는 "전 세계에 자본주의를 확산시키고 그것을 제국주의 형태로 관철시키고자 했던 제1차 세계화에 대항하는 두 가지 대안적 운동은 사회주의운동과 반외세나 반제 민족해방운동, 반외세 급진민족주의로 나타났다"며 "이러한 제1차 세계화의 모순에 대항하는 두 가지 대안적 흐름이 한국에서는 NL(민족해방파, 자주파)과 PD(민중민주파, 평등파)로 표현됐다"고 진단했다.

"한국에서 문제되는 NL과 PD 이념은 제1차 세계화에 대항하는 두 가지 급진적 흐름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것이 지금 위기에 처하게 됐다. 역설적이게도 대안적인 세계화 흐름이 운동에서 체제와 국가 논리로 전환하면서 위기가 발생했다. 가장 극적으로 얘기하자면, 사회주의운동의 실패는 89년 동독 붕괴와 91년 소련 붕괴로 나타났고, 반외세 급진민족주의운동의 실패는 2011년 초 리비아 붕괴로 나타났다. 즉 19세기 중후반 세계사의 급진주의 기획을 대표하던 두 가지 흐름이 붕괴한 것이다."

조 교수는 "이런 세계사의 변화를 성찰하면서 NL과 PD에 접근해야 한다"며 "왜 사회주의운동과 급진 민족주의운동이 체제로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붕괴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아래로부터의 혁명적 투쟁에 의해 성립된 국가사회주의체제와 반외세 민족주의체제가 어떻게 아래로부터의 급진적 투쟁에 의해 타도되었는가를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진보정당의 위기도 이러한 세계적 대안운동의 위기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어 조 교수는 "통합진보당이 성찰해야 할 지점은 급진세력이 제도화되면서 나타나는 '제도화의 이중성'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라며 "제도정당이 되는 순간 보수정당이나 공안기관은 제도정치의 일반적 행위윤리와 행위규칙에 비추어 운동정당을 비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이) 민주화의 진전으로 제도정치 공간이 확장되면서 2004년 제도정치에 진입했다. 비합법·반합법 진보정당이 합법정당으로 진출하고, 더 나아가 원내 제3당이 된 것은 엄청난 진전이었다. 하지만 제도화는 또다른 도전을 요구한다. 제도정당으로써 행위규범과 행위윤리를 요구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석기 의원이 5․12 모임에서 얘기했다고 하는 것은 그동안 비합법·반합법그룹에서 많이 하던 얘기다. 그러나 그런 얘기가 원내 제도정당에서 나왔을 때 그것은 제도정당의 일반적 규칙에 의해 매도되거나 비판받거나 공격받을 수 있다."

조 교수는 "통합진보당 세력은 이 부분을 충분하게 성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들의 실제적 행위는 비합법 운동을 하던 흐름이었는데, 그것이 제도정당의 공식모임에서 이루어졌다"라며 "이것이 원내에 진입하기 이전의 비합법 시절처럼 '이거 운동인데 왜 비판하냐? 공안기관의 탄압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대중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MB정부 5년간 진보정당의 주변화·게토화 이루어져"
 

기사 관련 사진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이주영

관련사진보기


또한 조 교수는 "과거 비합법 운동을 할 때는 누가 공안기관과 자본세력을 상대로 헌신적으로 싸울 것인가 하는 투쟁 자체가 도덕성의 근거이고 존재 의미였다"며 "하지만 합법화된 원내정당이나 제도정당 안에서는 일반민주주의의 규칙이 요구되는데 거기에서 패권주의라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통합진보당 다수세력이 그것을 비합법 운동으로 열심히 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것은 가장 헌신적인 자기희생이 된다. 그러나 자신의 운동 목표를 위한 노력이 헌신적인 희생이 되지 않고 당권파의 패권주의가 됐다. 그런 점에서 패권주의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반미 자주파 세력이 제도화의 이중성을 고려하면서 스스로를 개방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조 교수는 "패권주의가 문제가 된 것은, 비합법적인 주도그룹이 있고 합법 제도정당내의 공개그룹이 있는데 제도정당내 공개적 의사결정 과정 뒤에 '비하인드 주도세력'이 있기 때문이다"라며 "공개화된 제도정당의 공적 과정을 통해 결정된 것이 비하인드 주도세력의 의견과 상충되면 바로 뒤집힌다"고 지적했다.

"반미 자주화세력, 경기동부연합이 제도적 합법정당으로 행위할 때 요구되는 행위윤리와 행위규칙을 전략적 규범으로 받아들였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활용론적 견지에 많이 서 있었던 것 같다. 비합법 역량을 기반으로 합법역량까지 활용하는 세력으로서 활동했다. 그런 전술적 판단 위에서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이는 "이석기 그룹이 정당운동을 전술적 차원에서 하고 있다"는 조승수 전 의원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조 전 의원은 지난 11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중요한 결정을 당내가 아니라 당밖에서 결정한 뒤 그것을 당내에서 관철하는 방식으로 활동해왔다"며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합법)정당을 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어 조 교수는 "통합진보당, 반미 자주파, 경기동부연합은 MB정부 5년 동안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의 전략적 방침의 오류가 누적되면서 철저하게 고립되고 대중으로부터 유리됐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보수세력이나 공안기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가장 '종북'적이라고 볼 수 있는 세력이다. 그만큼 급진적이고 도전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세력이다. 그런 세력일수록 대중과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데 MB정부 5년 동안 그들은 진보공동체로부터 분리됐다. 기존의 반독재운동이나 87년 이후의 민주주의운동 속에서 가장 급진적인 세력이었던 그들은 진보공동체의 다른 분파들과 동맹하면서 존재해왔는데 그것이 철저히 해체되고 지금은 고립된 상태에서 이석기 사태를 맞고 있다."

조 교수는 "제1차 대안세계화와 제도정당이 가져오는 이중적 효과를 성찰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진보공동체 혹은 진보정당내 다른 구성원과 분리되지 않도록 성찰적 자기개방화가 있어야 했다"며 "그렇지 못해서 결국 자폐적 상황까지 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MB정부 5년 동안 반미 자주파, 경기동부연합, 통합진보당 주류집단이 자기성찰을 못함으로써 자폐성이 강화됐다"는 것이다.

"민주정부 10년에서 보수정부 시대로 이행한 것은 87년 이후 20여 년 지속된 민주화시대의 종언이다. 포스트 민주화시대로 이행한 것이다. 민주화시대의 종언으로 인해 반독재 중도개혁정당의 헤게모니와 리더십이 현저하게 약화됐다. 진보정당에서 보면 이는 주요 경쟁집단의 주도권 약화이고, 자신에게는 대대적인 약진의 시기다. 그런데 주체적 오류의 누적으로 MB정부 5년 동안 대약진의 시기가 아니라 대고립의 시기였고, 심지어 진보정당의 주변화, 게토화로까지 나아갔다. 통합진보당 세력이 자기성찰과 자기개방화를 통해 MB정부 5년 동안 고립화와 분리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양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조 교수는 "(이석기 그룹 등의) 올드(old, 낡은)한 급진 민족주의적 인식은 평등파와 교류하면서 혁신될 수 있다"며 "그렇기 위해서는 한 당 안에서 삼투해야지 분리돼 있으면 삼투할 기회가 없고 (앞서 언급한) 자폐성이 강화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진보진영 일부에서) '빨리 분리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통합진보당과 거리를 두는 전략으로 가는데 물 버리려다 애까지 버리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진보공동체마저 공안기관 발표를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러"

조 교수는 "그런 점에서 반미 자주파는 자주파대로 평등파는 평등파대로 주체적 반성을 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을 공안기관의 탄압이고, 대단히 어렵더라도 철저히 투쟁하면 좋은 날이 온다는 논리를 펴는데 이는 일심회 사건 때와 똑같은 논리다"라고 비판했다.

"공안기관의 탄압이고, 공안기관의 논리에 삼투된 다른 진보공동체 구성원의 적대적 공격이라고 인식하는 패턴이 동일하다. 그렇게 외재적 탄압 논리로만 보면 전체 상황을 못 본다. 그것은 일종의 자폐적 인식이다. 이러한 자페적 인식은 내부집단과 외부자의 인식의 괴리가 대단히 큰 상태까지 왔음을 의미한다. 현재 통합진보당내 경기동부연합, 반민 자주파와 외부의 인식 차이가 매우 커졌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진보정치 공동체 내부에서도 통합진보당과 비통합진보당의 인식 차이가 엄청나게 넓어졌다는 것을 성찰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렇게 인식한다면 지금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진단과 관련해 조 교수는 흥미로운 사례를 들었다. 2002년 "이회창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는 권영길 후보와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는 이정희 후보의 효과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내부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이정희 후보의 효과가 상당했다고 평가했지만, 그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권영길 후보의 효과가 90% 플러스, 10% 마이너스였다면, 이정희 후보의 효과는 50% 플러스, 50% 마이너스일 것이다. 왜 이렇게 두 후보의 말이 주는 효과가 달라졌을까? 왜 두 후보의 말을 바라보는 도덕적 인식이 달라졌을까? 이것을 성찰적으로 보면서 대안적인 경로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조 교수는 "예전에는 공안기관의 발표 자체를 믿지 않는 대중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대중들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특히 진보공동체에서 이것을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통합진보당에 애정을 가진 진보적 대중조차도 '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해서 공안탄압을 불러오느냐?'고 얘기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조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촛불시위를 무력화하기 위한 고강도 안보정치로서 이석기 사태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공안탄압이라는 논리가 가능하다"며 "하지만 공안탄압 논리가 갖는 대중적 효과가 달라졌다는 데 우리의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 교수는 "5․12 모임 녹취록에서 '무기를 들어라', '전시태세를 갖추어라' 등을 언급했는데 이것까지 사상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것을 제외한 부분에서는 사상의 자유가 옹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녹취록에 드러난 '반미 자주 노선'에 대해서는 "지금도 급진 민족주의적 운동의 흐름으로 논의되는 것들이다"라면서도 "그것을 현대화하지 못하고 성찰적으로 재구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반미 자주파세력도 이제는 북한을 국가라는 실체로 바라봐야 한다. 북한은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실체다. 북한의 외교적 언술, 남한과 미국에 하는 외교적 언술, 대남전략 언술 등이 다 다르다. 이석기 의원의 강연은 북한이 정전체제를 무력화하겠다고 천명한 시점에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대미협상용 언술이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북한을 그렇게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북한의 어떤 방침을 남한 반미 자주파세력이 한 고려요인으로 생각하는 것과 만고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남한의 반미 자주파 세력이 (북한의 방침을) 전략전술적으로 판단하는 하나의 요인이 아니라 그것을 따라야 할 전략적 방침으로 인식한 것이 문제였다."

"진보정당 재건 안 되면 새누리당 장기집권체제로 갈 수 있어"
 

기사 관련 사진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이주영

관련사진보기


조 교수는 "87년부터 지금까지 진보적 대중운동의 성장, 그것을 배경으로 한 진보정치세력의 성장, 이 진보정치세력이 성장의 위협받으며 중도개혁정당의 혁신적 발전, 집권 위협에 자극받으면서 만들어지는 보수정당의 건강한 변화라는 선순환구조가 있었는데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붕괴됐다"고 진단했다.

"그로 인해 진보대중운동이 어려움에 처했다. 진보정당도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시 세력화해야 할 정도로 자기 기반이 붕괴된 상태다. 그래서 이 선순환 구조를 회복해야 한다.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세력, 새로운 시민사회세력이 연합해서 중도개혁정당을 재건하고, 그것과 경쟁하는 진보정당도 재건되어야 한다. 진보정당이 재건되지 않으면 일본처럼 새누리당의 장기패권체제도 가능할 수 있다."

조 교수는 "진보정당이 뿌리내리지 못하면 보수정당의 패권체제인 일본형이나 보수당과 중도개혁정당이 수평적으로 경쟁하는 미국형으로 갈 수도 있다"며 "하지만 여전히 일본형이나 미국형을 넘는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갖고 있는 대중이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조 교수는 "운동정당이 제도권으로 진입하면서 운동정당의 성격을 견지하고, 제도정치화의 이중성에 빠지지 않을 것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한국의 운동과 정치의 선순환 구조가 해체됐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폐적 시각이 아니라 개방적 시각으로 현실을 직시하면서 탈출의 경로를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 교수는 "이석기 사태는 1기 진보정치세력화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그라운드 제로에서 2기 진보정치세력화운동을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통합진보당을 포함한 연합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중단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비통합진보당 연합진보정당이라도 만들자"고 호소했다.

조희연 교수는 학술단체협의회와 한국산업사회학회, 한국비판사회학회, 참여연대 등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와 NGO대학원장,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계급과 빈곤>, <한국사회운동과 조직>,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현대 한국 사회운동과 조직>, <한국의 국가․민주주의․정치변동>,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동원된 근대화> 등 다수의 저서들이 있고, 80년대 사회운동의 논쟁을 다룬 <한국사회구성체 논쟁> 시리즈를 엮었다.
 

[인터뷰 어록] "종북 프레임은 운동사적 범죄, 일심사건은 운동적 일탈"

"저는 일심회 사건을 성찰하면서 분당을 막았어야 했다고 본다. 조승수 전 의원 등 선도탈당파는 노회찬·심상정 등과 달리 탈당하고 싶어했다. 노회찬·심상정 등은 경기동부연합이 성찰적 반성을 통해 일심회 사건 관련자를 제명하면 한당에서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그것을 공안탄압의 논리라며 거부했다. 여기에서 1차 고립이 생겼다. 2차 고립은 2008년 9월 진보신당과 대통합을 논의할 때 생겼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주도한 것은 이정희 의원을 비롯한 현재의 통합진보당 당권파였다. 그것이 2차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3차 고립은 2012년 4월 부정경선 파동 때 생겼다. 이때도 이것을 공안기관의 원격사주에 의한 것으로 생각한 지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경기동부연합이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전원 사퇴를 거부함으로써 피박을 썼다. 여기에 전략적 오류가 있었다. 4차 고립은 강기갑 대표가 최종적으로 이석기 의원 사퇴를 요구했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생겼다. 그렇게 되니까 (통합진보당 내부에서) 나중에는 이석기 하방론이 나왔다. 중앙 의회활동은 자중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라는 것이다."

"국정원이 한국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것 자체가 엄청난 후퇴다. 이것을 중간층 대중들이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의 문제점이 우연한 계기를 통해 표출될 때 이것이 거대한 대중적 분노가 될 수 있다. 과거 보수세력은 반복지세력이었는데 이제는 현실주의적 복지세력으로 변화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인혁당 사건, 장준하 사건, 긴급조치, 유신헌법 등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치적 변모를 꾀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함으로써 반북보다는 남북대화세력으로 이미지를 변신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 세 가지 측면에서 변화를 견지해 나가길 바란다. 그런데 대화록 누출시키고, 내란음모사건을 발표하는 고강도 안보정치 전략을 쓰고 있다. 이것은 한국정치의 후퇴다. 보수가 진화하면 진보도 더 진화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후퇴는 지난 대선 시기 박근혜 대통령의 변신이 쇼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이석기 사건은 정치적 의견을 양극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양극화가 중단기적으로는 박근혜 정부에 플러스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마이너스다. 왜냐하면 중간지대 대중의 이반을 낳고, 진보적 대중은 적대적 분노를 마음에 품기 때문이다."

"친북세력은 박정희 시대부터 혹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보수가 진보에게 가하는 프레임이었다. 그런데 (종북 논란으로 인해) 이것이 진보 내부의 프레임이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진보도 보수 프레임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일종의 의사국민적 프레임이 된다. 노태우 대통령이 6.29 선언을 통해 민주화와 직선제를 수용함으로써 보수도 반독재민주화운동 논리를 수용했고, 그로 인해 그것이 국민적 논리가 됐다. 그런 것처럼 보수가 진보의 논리를 수용하면 국민적 프레임이 되고, 보수의 프레임이지만 진보가 수용하면 의사국민적 프레임이 되는 효과가 있다. 종북 프레임은 반미 자주파 세력 일반을 지칭하는 프레임이 될 수 있다. (종북 논란으로 인해) 보수나 공안기관에 의한 외재적 프레임이 내재적 프레임이 되는 변화가 있었다. 패권주의는 당연히 비판해야 하고 일부의 종북적 경향도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보진영의 일반 프레임이 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운동사적 범죄다.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주체적 오류와 선도탈당파의 종북 프레임이 결합되면서 우리도 헤어나지 못하는 종북 프레임이 나온 것 아닌가? 2008년 2월 3일 종북프레임이 등장하고 선도탈당파가 나타났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통합진보당이 고립되는 출발점이었다. 반대파가 종북 프레임을 국민적 프레임으로 만들면서 (진보공동체에서) 분리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너무 안타깝다. 2월 3일, 날짜도 기억한다. 진보정치 1기 세력화 파탄의 시기이고 통합진보당 세력이 게토화되고 고립된 집단으로 매도되는 상황까지 오는 출발점이었다. 종북 프레임이 운동사적 범죄라면 일심회 사건은 운동적 일탈이다. 기본적으로 남한 현실에 뿌리박지 못한 운동사적 일탈이다. 당권파는 그 일탈행위를 자폐적 인식으로 옹호하면서 분당이 촉진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런 점에서 당권파에 오류가 있었다. 그 반대쪽에서는 종북 프레임에 동조하고, 그것을 국민 프레임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오류가 있었다."

"통합진보당 세력이 국가보안법 질서, 친미질서, 분단질서에 선도적으로 투쟁해오고 많은 희생을 치른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집단이 국보법 질서와 친미질서, 분단질서에 더 투쟁하면 할수록 그 국보법 질서와 친미질서, 분단질서가 공고화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통합진보당 등이 '약자론'이나 '피해자론', '희생자론'으로 반박하는 것과 관련) 제 스스로 이런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한다. '나는 이미 가진 자다.' 사실 저도 70년대 박정희 시대로부터 빼앗겼다는 의식만 있었다. 긴급조치나 민청학련 사건으로 보상금을 받았다. 이렇게 민주화세력도 돈과 권력과 명예를 가진 집단이 됐다. 이것을 보수에서 비판하지만 30% 정도는 진실이다. 그런 식으로 접근해야 우리가 더 강한 헤게모니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지금은 탄압받고 있으니 단결해서 돌파하자는 인식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사회운동정당이 진보정당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운동정당은 제도정치와 운동의 경계를 부단히 허물면서 활동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다. 제도정치의 행위규칙 때문에 언제든지 잘못하면 비판받는 이중적 조건에서 활동해야 하는 정당이다. 그런데 그것이 진보정당의 운명이다.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경계를 확연히 하려는 순간 진보정치는 멈춘다. 정의당에서 '헌법 안의 진보여야 한다'고 했다. 제도정치의 행동윤리나 규칙들을 준수하면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겠지만 표현 자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보정당은 헌법을 재구성하고 바꿔가는 정당이어야 한다. 기존 헌법에 포획되는 것은 주류 정당이다. 헌법 안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헌법을 재구성하고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진보정당의 운명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 남북 대화 대결 악용 용납 없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9/22 13:51
  • 수정일
    2013/09/22 13:5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북, 남북 대화 대결 악용 용납 없다
 
책임은 전적으로 괴뢰패당에게 있다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9/22 [08:15]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이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번영의 원칙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나 남북대화를 대결에 악용하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이산가족상봉 연기의 책임이 남측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는 21일 논평을 통해 조선이 현사태를 엄중하게 규정하고 3가지 입장 즉 “북남사이의 당면한 일정에 올라있는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행사를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정상적인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연기하며 괴뢰들이 우리를 모략중상하고 대결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금강산관광재개를 위한 회담도 미룬다는 것, 남조선괴뢰들의 날로 가증되는 반공화국전쟁도발책동에 단호하고 결정적인 대응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는 것, 우리를 걸고 감행하는 반공화국모략책동과 통일애국인사들에 대한 온갖 탄압소동을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을 실어 문제의 본질을 상기시켰다.

조평통 의 우리민족끼리는 “우리가 이런 단호하면서도 원칙적인 입장을 천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보수패당이 대화마당을 대결장으로 악용한데 그 책임이 있다.”면서 “알려진 것처럼 최근 극단으로 치닫던 조선반도의 정세가 완화되고 북남관계에서 대화국면이 열리게 되였다. 남조선에서 우리의 체제와 제도를 전면 부정하는 극단적인 대결소동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속에서도 북남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진행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북남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우리의 일관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에 대해서는 온 겨레가 인정하고 있다.”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북측의 노력을 부각시켰다

우리민족끼리 논평은 “그런데 괴뢰들은 《한반도신뢰프로세스》니, 《견인》이니 하면서 북남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성과들이 저들의 그 무슨 《원칙론》의 결실인 것처럼 떠들어 대고있다. 뿐만 아니라 민족공동의 사업인 금강산관광에 대해 또다시 그 누구의 《돈줄》이니 뭐니 하고 중상해 나섰다.”며 “그야말로 우리의 선의와 아량, 성의있는 노력에 대한 용납 못할 우롱이고 모독이며 적반하장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뒤돌아보면 그 무슨 《원칙론》을 내들고 북남관계개선의 앞길에 엄중한 장애만을 조성해온 것이 다름 아닌 괴뢰패당이다. 대화의 막 뒤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에 의한 통일》을 떠벌이며 미국상전과 야합하여 동족을 반대하고 침략하기 위한 전쟁연습소동과 무력증강책동에 광분해온 것도 바로 괴뢰패당이었다.”고 남측의 대결적 자세에 대해 지적햇다.

이신문 논평은 “괴뢰국방부장관 김관진 역도가 북과 남의 화합과 협력, 평화번영을 바라는 온 겨레의 절절한 염원을 반영하여 우리가 취한 주동적이며 적극적인 조치들에 대해서도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술적 대화 공세’라고 악의에 차서 중상모독하면서 동족대결을 고취해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며 “뿐만 아니라 괴뢰패당은 남조선에서의 그 무슨 《내란음모사건》이라는 것을 우리와 억지로 연결시켜 북남사이의 화해와 단합과 통일을 주장하는 모든 진보민주인사들을 《용공》, 《종북》으로 몰아 탄압하는 일대 《마녀 사냥극》을 미친 듯이 벌리고 있다. 남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랄한 반공화국모략책동과 통일애국인사들에 대한 야만적인 탄압소동은 동족에 대한 극단적인 적대의식과 우리와 끝까지 대결하겠다는 속심의 집중적인 발로로서 괴뢰보수패당의 대결적 본색을 만천하에 그대로 드러 내보인 것 외 다름 아니다.”라고 최근 남측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안탄압을 고발했다.

신문 논평은 “괴뢰패당이 북남사이에 모처럼 마련된 대화마저 동족대결에 악용하면서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전쟁과 폭압소동을 광란적으로 벌리는 이런 살벌한 분위기속에서 정상적인 대화가 진행될 수 없고 북남관계가 제대로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하다.”며 남측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논평은 “우리의 원칙적립장천명은 바로 이로부터 출발한 것으로서 진정으로 민족적 단합과 조국통일을 바라는 겨레의 지향과 염원으로 보나 북남관계의 올바른 개선의 견지에서 보나 너무나 정당하다. 따라서 조성된 사태도, 그로 하여 초래되는 모든 후과의 책임도 전적으로 대화마당을 대결장으로 악용하는 남조선보수패당이 지게 될 것”이라며 이번 이산가족 상봉 연기와 남북대화 등의 연기 등이 전작으로 남측의 대결적 자세와 비방 중상, 공안탄압에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해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나가려는 우리의 원칙적 입장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지만 우리와 끝까지 대결하려는 자들에게까지 선의와 아량을 베풀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담고, 다만 악영향을 미칠 대결적 자세를 버려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점도 밝혔다.

우리민족끼리는 “우리는 북남대화를 대결에 악용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화 분위기를 해칠 수 있는 어떤 행위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북측은 오는 25일부터 30일까지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준비했으나 지난 2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측의 대북대결 정책과 김관진 장관을 비롯한 언론들의 비방 중상, 통일 민주 인사들에 대한 공안탄압을 문제 삼아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물론 금강산관광재개를 위한 회담 등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혀 어렵게 마련된 남북관계 개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참가기> 7.27 남북해외 국제평화대회 III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09.21 12:34:13
트위터 페이스북

 

정기열 (중국청화대학초빙교수/The 4th Media 책임주필)

 

 

다음은 7.27정전협정 60주년에 즈음해 열린 7.27 60주년 평화협정 체결 촉구 남북해외 국제평화대회에 참가한 정기열 중국 칭화대학교 초빙교수가 작성한 참가기다. 이 참가기는 다음과 같이 3부로 나누어 소개될 것이다.

I부.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II부. “코리아에서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보는 것 같다!”

III부. 후기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남북해외 국제평화심포지움을 마치고

 

   
▲ 지난 8월 1일 도쿄에서 개최된 '국제평화심포지엄' 전경. 이 행사를 끝으로 '7.27 60주년 남북해외 국제평화대회'가 모두 끝났다. [사진 제공-정기열]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란 표현은 지난 8월 1일 동경에서 개최한 <국제평화심포지엄>을 끝으로 <7.27 60주년 남북해외 국제평화대회>(이하, 7.27대회)를 모두 마친 뒤 입에서 절로 튀어 나온 말이다. 무엇보다 먼저 7.27대회가 언어, 문화, 피부, 인종, 민족, 국가 등의 차이, 경계를 넘어 대회에 참가한 모두가 온전히 하나된, 하여 자주평화통일의 미래가 바로 우리 곁에 와 있음을 우리민족은 물론 대회에 참가한 세상의 귀한 벗들 또한 함께 절절히 경험한 대회였기 때문이다.

대회를 마치며 떠오른 또 다른 표현도 있다. 일취월장(日就月將)이다. 7.27대회를 거치며 재삼 확인된 것은 우리 운동이 때로 그 어떤 시련, 도전, 난관에 처해도 하여 과정에 때로 심한 굴곡이 따르더라도 끝없이 앞으로 나가고 또 나아가고 있는 우리민족 모두의 자주민주평화통일운동사를 서술하는데 그 표현이 옳다 믿어서였다.

그렇다. 이번 7.27대회는 남북해외자주통일운동이 숱한 시련, 도전, 난관에 처하면서도 끝없이 성장하고 있음을 절절히 경험케 해준 대회였다. <정전협정>이 “60 환갑”을 맞은 2013년 올해 반세기를 넘긴 남북해외 우리민족 모두의 운동역량이 지구촌 곳곳에서 우리를 찾은 세상의 귀중한 반전평화세력과 힘과 지혜를 모아 함께 치룬 이번 7.27대회는 과거에 비해 이미 더 깊고 높고 넓게 성숙해있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어느새 그렇게 일취월장해있었다!

하여 기정사실로서의 자주평화통일의 미래는 대회에 모인 그들 모두에게 하나의 감동적 현실이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당장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재진행 중인 오늘의 구체적인 현실이었다. 자주평화통일의 감동적 현실을 먼저 체험한 이가 아직 그렇치 못한/않은 이들과 겸허히 진심을 다해 체험을 나누는 일,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할 자주평화통일운동의 정의라 믿기 때문이다. 꿈같은 통일조국의 미래는 그렇게 아주 가까이 우리 모두의 곁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이번 7.27대회는 지난 60년 안팎의 모든 반통일반민족친미친일사대보수세력이 강제해온 온갖 형태의 분단장벽을 이미 훌쩍 뛰어 넘은 대회였다. 온갖 시련, 도전, 난관에도 불구하고 자주통일미래에 대한 초심, 낙관, 신념을 잃지 않은 채 너털웃음 웃으며 자주통일의 발걸음을 또 다시 한발 앞으로 성큼성큼 내딛고 있음을 온 몸으로 체험한 대회였다. 그 체험은 오늘 “제국 미국”의 급격한 쇠락과 함께 태동하는 지구촌의 새로운 국제정세와 더불어 좀 더 구체적으로 체험된 경험이다.

“클라크 평전”

 

   
▲ 북측 7.27행사에 참가한 클라크 전 장관(왼쪽)이 북측 인민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어 답례를 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정기열]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란 표현은 80대 중반 고령의 클라크 장관(이하, 클)을 이번 대회 전 기간 곁에서 가까이 지켜보며 입에 계속 맴돌던 말이기도 하다. 열흘 내내 매일 거의 24시간을 같이 지내며 경험한 그 모든 것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사람의 지극한 아름다움”이었다. 남북해외동포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그의 사랑이야기와 더불어 주위 모두를 감동케해서다. 사랑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랄까. 7.27대회는 온통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였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라는 제목이 채택케 된 계기이자 배경이다.

클은 1927년생이다. 내 부친과 동갑이다. 오래 그를 친부모처럼 마음에 모신 이유다. 지난 4월 7.27대회 준비 차 뉴욕을 방문했을 때 오랜만에 만난 그는 다리를 절었다. 지난해부터 걸을 때마다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견딜 만하다기에 “부디 만수무강하시라!” 인사드렸다. 부모에게 인사드리듯 진심을 다해 무병장수를 축원했다. “난 이미 오래 건강히 많이 살았다.” 지난 몇년 “건강히 오래 사시라!” 인사드릴 때마다 늘 하는 그의 답이 대신 돌아왔다.

그는 농을 쉬지 않는다. 때로 농인지 진담인지 모를 정도다. 농(해학)을 멈추지 않는 그의 모습은 평생을 비판적 지식인으로, 반전평화운동가로 반세기 넘도록 언어, 피부, 민족, 국경을 넘어 지구촌 곳곳을 찾은 그의 삶과 더불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부친이 먼저 법무장관을 역임했다. 이어 종신직인 대법관도 역임했다. 자신 또한 부친을 이었다. 미국역사상 부자가 함께 법무장관을 역임한 최초 경우다. 그런데 그는 감동스러울 정도로 겸손하다. 거의 모든 면에서 그렇다.

그를 만날 때마다 감동을 경험하는 이유다. 평생을 온갖 형태의 구조 악, 불의와 싸우며 지구촌 끝까지 쫒아가 짓밟히고 눌린 자들을 변호, 옹호, 대변하며 어려움과 억울함에 처한 자들 편에 늘 서는 그의 모습과 그의 진실된 겸허함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감동이다. 그는 흔히 “잘 먹고 그것도 대단히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욱 그의 소탈, 겸손, 검소가 때로 신기로워 보인다. 그는 자신을 늘 가장 낮은 자리에 놓는다. 무슨 종교적 신념처럼 그런다.

이번도 예외가 아니었다. <코리아국제전범재판> 준비 차 2001년 5월 남북을 교차방문했을 때도 그는 “이코노미”를 탔다. 다리가 유달리 길고 키가 구부정한 그에겐 실은 “비지니스”도 부족할 판이다. 그래도 늘 이코노미를 탄다. 70대도 아니고 오늘 그는 80대 중반이다. 건강도 이전 같지 않다. 그러나 그의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진한 감동을 경험한다. 여행경비 보조금 마련 과정에서 재정상황이 여의치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부부 인연이 닿아 60년 넘게 생사고락을 함께한 아내를 2년 전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뒤 그는 건강이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최근 의사가 장거리여행을 삼가는 이유다. 그러나 가야할 곳이라 판단하면 의사 권고는 모두 “쇠귀에 경 읽기”처럼 된 것 같다. 평양-동경 길에 오르기 직전 그는 차베스 대통령 장례식 참가 차 베네수엘라도 다녀왔다. 며칠 다녀온 것뿐이다. 반면 7.27 대회 길은 무려 열흘이 요구됐다. 의사가 적극 막아 나섰다. 마지막 순간 서울여행을 부득이 취소한 이유다.

클라크는 7월 23일 뉴욕을 떠나 평양, 동경 여행길에 올랐다. 브라이언 벡커 앤서콜리션 상임대표, 마라 훼어헤이든 힐리아드 국제인권변호사가 동행했다. UA이코노미 좌석에서 13시간 구부린 채 여행한 그들은 북경 도착 직후 곧 바로 <고려항공> 특별기편으로 갈아타 또 다시 2시간 가까이 여행했다. 북경공항에서 만난 그는 걱정했던 것보다 좋아보였다. 북경3공항에서 2공항으로 가는 시간 절약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나온 것 빼고는 지난 4월 뉴욕방문 때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1989년 12월 미국의 파나마 침공 직후 당시 <말>지 해외편집위원 자격으로 대담을 신청하며 그와 인연이 처음 닿았다. 2001년 역사적인 <코리아국제전범재판>을 계기로 다시 만나 더 깊이 사귀었다. 전직 법무장관 출신이 “조국 미국”을 “전범국가”로 규정한 재판의 수석검사(Lead Prosecutor)역을 선뜻 수락하면서다. 2001년 5월 그가 두 번째로 평양을 다시 방문케 된 배경이다. 1950-53년 전쟁 전 기간 “미국군에 의한 수백 만 민간인 학살 만행” 진상조사 차 남북을 교차방문했을 때다.

절룩거리면서도 그는 평양-동경 여행 전 기간 단 한 번도 발목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강행군 일정에 대해 불평, 불만을 일체 표하지 않았다. “힘들지 않은가?” 물을 때마다 그가 한 답은 늘 “나를 초청한 이 나라에 대한 최소의 예의는 내가 그들이 조직한 모든 행사들에 성실히 진심을 다해 임하는 것이다”였다. 감동 그 자체였다. 열흘 내내 경험한 감동이다. 잠자는 시간 빼고 거의 하루 종일 그와 있으면서 받은 감동들을 이루 다 표현키 어렵다.

평양대회 참가 기간 벡커가 클에 대해 한 말이다: “5-60 평생 같은 길을 걷는 클에게서 늘 감동을 받는다.” 필자 또한 벡커와 같은 감동을 경험했다. 이번 7.27대회 참가기를 쓰게 된 주요 동기 가운데 하나다. 대회 내내 그의 이미 쭈굴쭈굴해진 손, 이마에 볼을 대고 입 맞출 정도의 감동이 계속됐다. 사람의 지극한 아름다움에 대한 존경, 감사, 사랑의 표시였다. “사람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음”에 대한 깨달음을 끝없이 경험하면서다. 희망, 기쁨, 보람이 샘솟듯 우러난 여행이었다.

부모에게 천사였고 스승이었던 61살 된 딸 이야기

클에게 자식이 둘 있다. 61살 된 딸과 두 살 아래 아들이 있다. 아들에게만 딸이 셋 있다. 그런데 딸은 평생 부모와 산다. 딸이 생후 18개월 때 전신마비가 되면서부터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 24시간 누군가 돕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2001년 전범재판 준비 때 클 뉴욕사무실에서 부인이 데리고 온 휠체어에 탄 그를 만났다. 부부가 당시 딸에게 보인 깊은 애정, 사랑에서 받았던 감동은 지금도 새롭다. 그때 클은 딸을 “천사”라 소개했다. 이번엔 딸을 “스승”이라 불렀다.

클은 이번 여행 기간 아내, 딸 이야기를 자주 했다. 딸이 부모에게 평생 “스승, 천사”가 된 배경을 좀 더 깊이 이해케 된 배경이다. 그의 대단히 예외적인 삶 배경에 딸이 있음을 알게 됐다. 무엇이 사람을 그토록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깨달음이랄까. 모든 생명 앞에 지극히 겸손한 그를 좀 더 깊이 이해케 됐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는 그를 더 깊이 존경하게 됐다. 한없이 낮아져 끝없이 불의한 세상과 싸우는 그를 좀 더 깊이 이해케 됐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2011년 그에겐 그래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자신도 변호사가 된 아들이 있었다. 부친처럼 법무부에서 일하던 장래가 촉망되던 인재다. 자신마저 세상을 떠나면 아들이라도 세상에 남아 누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기에 위로가 됐다. 그러나 그 아들은 오늘 자신과 딸보다 먼저 죽어가고 있다. 2년 전 시작한 후두암은 오늘 온 몸으로 퍼졌다. 충격적인 사실을 평양시내를 달리던 차안에서 들었다. 그가 너무도 평온히 들려준 이야기다.

할 말을 잊었다.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차창 밖을 바라보는 그를 조심스레 살폈다. 그 어떤 흔들림도 지어는 슬픔도 찾기 어려웠다. 본 것은 표현키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었다. “사람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를 입속에서 중얼거렸다. 평양-동경 7.27대회 전 기간 깊은 감동이 여러 번 온 몸을 감쌌다. 통역하다가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를 반복했다. 가슴이 북받쳐서다. 그와 대화하면서, 그를 바라보면서 때로 울었다.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 때문이었다. 그리고 감사의 눈물이었다. 사람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음에 대한 감사였다. 여행 이삼일 지나면서부터 틈틈이 그를 꼭 껴안았다. 그가 외로워보여서였다. 아들딸 이야기를 하며 창밖을 내다보던 그의 굽은 등에서 본 것은 무엇보다 외로움이었다. 자주 그를 포옹하고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곤 했던 이유다. 달리 무엇을 표현키 어려워서였다. 평양-동경 대회 내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표현, 내용마다 감당키 어려운 진한 감동이 계속됐다.

이번이 3번 째 평양방문인 클 입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온 심금을 울리는 말 때문에 때로 눈물을 주체키 어려웠다. 통역을 자주 멈추어야 했다. 생명, 역사, 자연, 특히 북녘동포들의 “위대한 반제자주투쟁역사”에 대한,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에 대한 그의 진심으로 된 깊은 존경, 감사를 다 풀어 설명키 어려웠기 때문이다. 평양, 동경 여행 내내 그가 행한 모든 연설, 대담들을 다 글에 담기 어려웠다.

클이 동경대회 직후 <조선신보>와 나눈 대담기사 일부를 대신 소개하는 이유다. 지극히 짧은 “클라크 평전”(評傳)에 대한 독자들의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다. <통일뉴스> 독자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란다. 대담을 진행한 조선신보 최관익 편집국장이 정리한 기사다. 남녘독자들을 위해 대담기사의 표현 여기저기를 바꾸었다. 내용도 조금 줄였다. 아래는 조선신보 기사를 전제한 북경 소재 <1코리안뉴스> 기사에서 옮겨 실은 내용을 줄인 기사다:

[지구촌] 램지 클라크 미국 전 법무장관: “하루빨리 코리아통일이 이루어지도록 나의 여생을 바치려고 한다”

“이번 조선방문은 나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영광이며 행복이었다. 조선인민은 코리아전쟁이 끝난 지난 60년 형언할수 없는 희생을 강요당했다. 그 이전엔 일본 식민지 통치 밑에서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겪었다. 해방 뒤엔 미국에 의해 남녘땅이 군사적으로 강점당하고 국토의 분단을 강요당했다. 이것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패권을 추구하며 조선에서 대륙침략의 교두보, 전략적 거점을 확보키 위해 당시 조선민족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멋대로 결정한 것이다.

이후 3년간에 걸치는 가혹한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참으로 참혹하고 비극적인 전쟁이었다. 미국은 460만명이나 되는 코리안들을 파괴했다. 그 태반이 민간인이었다. 이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야만적인 제노사이드(Genocide: 대량학살) 그 자체였다. 특히 북녘 피해는 막심했다. 평양은 완전한 페허로 변했으며 다른 도시, 농촌, 공장, 기업소, 공공건물, 문화시설, 학교, 사찰, 다리, 발전소, 유치원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모조리 폭격하고 파괴했다.

미국의 의도는 조선이란 나라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시키거나 적어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는데 있었다. 전쟁을 계기로 민족분단은 고착되고 가족, 친척, 친지, 친우들이 흩어져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고통이 조선인민에게 들씌워졌다. 조선전쟁이 끝난 후도 조선인민은 오늘까지 60년 동안 미국에 의해 끊임없는 위협, 공갈 속에 살아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북녘사람들은 세계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가혹한 고립압살정책, 포위망 속에서 동시에 지난 60년 잿더미가 된 나라복구건설과 부강발전을 위해 홀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페허 속에서 불사조처럼 일어섰고 긍지 높고 번영하는 나라를 건설했다. 평양은 아름다운 세계적 도시로 변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고 마음씨 착하다. 학생들은 그 어느 나라 학생들보다 향학심이 높고 좋은 환경 속에서 밝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배우고 있다. 여성들은 그들의 민족의상처럼 아름답다. 사람들은 순진하고 성실하다.

이런 나라는 세상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조선과 미국 관계는 정의와 부정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코리아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주와 평화다. 지난 60년 조선인민의 투쟁은 인류가 따라 배워야 할 본보기다. 나는 그들에게 머리 숙여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이번 평양에서 진행된 <전승절 60돌행사>에 참가하면서 조선인민의 흔들림 없는 굳을 의지를 재삼 확인했다. 미래에 대한 신념, 희망 그로부터 오는 낙관에 탄복했다. 감동했다.

세상에는 한편으로 조선처럼 꿈과 희망을 가지고 더불어 살려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파괴와 전쟁을 일삼는 악마와 같은 세력이 존재한다. 이 두 세력 사이의 싸움에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손잡고 나아가는 세력은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조선을 다시 방문하여 더욱 굳게 확신케 되었다. 일시적으로 거짓과 부정의가 이길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진리와 정의가 이기는 법이다.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선 사람들은 지혜와 힘을 모아 싸운다.

조선은 모든 곤란을 이겨내고 승리할 것이다. 조선이 외부세력에 의해 강요당한 불행과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은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다. 조선민족처럼 오랜 역사와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유지해온 민족은 드물며 이는 통일의 정합성과 필연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남과 북, 해외에 사는 코리안은 하나다. 나는 사랑하는 조선, 사랑하는 조선인민이 하루빨리 통일위업을 이룩할 수 있도록 여생을 바치려고 한다.”

“코리아에서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본다”에 대한 하나의 해석

 

   
▲ 북측 7.27대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클라크 전 장관(왼쪽)과 그 바로 옆에서 통역을 하는 정기열 교수. [사진 제공-정기열]

 

7.27대회 참가기 III부 글은 참가기의 가장 핵심되는 화두라 생각하는 클, 쵸의 “코리아에서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본다”는 말뜻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다. I, II 부에 소개한 서울-평양-동경대회에 참가한 지구촌 양심들과 석학들을 대표하는 두 사람의 화두가 우리가 반세기 넘게 씨름하고 있는 민족사적 과제 즉 통일코리아의 미래와 그것에 담긴 인류사적 의의가 어떤 함수관계를 갖는지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다. 이 글의 핵심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란III부 부제에 함축되어 있다.

이번 “7.27 전승절 60돌” 평양대회에는 지구촌 곳곳의 100여개 넘는 나라들에서 약 2,000명이 넘는 외국의 벗들이 자비로 평양을 찾았다. 세상 곳곳에서 북녘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는 매년 비슷한 것 같다. 무슨 이유일까? 카터, 로드맨 등 이웃과 세상의 숱한 벗들은 왜 계속 북을 찾을까? 지구촌에서 “가장 악마화된 나라”를 끝없이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분석학적으로) 대단히 병적인 극단적 반북정서가 세상에 가득함에도 세상 사람들이 북녘을 계속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의 고립압살붕괴흡수를 목적으로 한 한미일 주도의 악마화선전전(곧 온갖 형태의 거짓정보, 허위정보, 왜곡정보들로 예를 들면 “아사설, 폭동설, 인권침해설, 정치범수용소설, 권력투쟁설, 붕괴설”등)에 의해 오늘도 끝없이 악마화되고 있는 북을 사람들은 왜 그리도 끝없이 찾아갈까? 지난 60년 밤낮으로 들어온 세상이 다 아는 그러나 세상에 실재하지 않는 “제조된/만들어진 허상으로서의 북한”(North Korea)”말고 “실재하는 조선(DPRK)”이란 나라가 그들이 들어 알고 있던 곧 “세뇌된” 나라와 전혀 다른 곳이었기 때문일까?

<오마이뉴스>가 소개한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씨의 방북기”와 그의 최근 “민족수다”(자주민보)가 요즘 화제인 것처럼 그들 또한 자신들이 평생 알던 “실재하지 않는 북한”과 직접 가서본 “실재하는 조선”이 전혀 다른 곳이었음을 신은미 씨처럼 경험했기 때문일까? 코리아에서 인류의 미래를 본다고 고백한 세상의 대표적 양심들인 클, 쵸의 고백적 표현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

평양 가면 손전화도, 인터넷도, 여행도 맘대로 못하며 동선(動線)에서 이런저런 제약과 불편이 계속 따르는데도 끝없이 북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개중엔 일종의 “간첩죄”를 짓고 “노동교화소에 수감 중인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처럼 “선교사란 미명하에 정부전복을 목적으로” 끝없이 찾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반대 경우일 것이다. 클, 쵸, 신 교수 같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클, 쵸, 신은 물론 북녘을 찾는 세상의 숱한 인사들도 북의 모든 것을 좋아하고 동의하고 지지해서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경우는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틀리다고 배척하고 혹은 서로 같다고 해서 무조건 옳다 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세상이 훨씬 더 살기 좋고 평화로운 곳이 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클, 쵸의 “코리아에서 인류의 미래를 본다”는 화두를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세상 그 어디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어쩌면 코리아에서 비로소 그 빛 곧 희망의 단초를 찾은 것 같다.” 이 해석은 “신들린 듯” 7.27대회 참가 경험을 소개하던 클, 쵸 등과 나눈 대화들에 근거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무엇보다 지난 봄 “극단의 비대칭전쟁사로 역사에 전무한 조미대결전”이 “이미 끝난 전쟁”이란 평가에 기초해서다.

북미대결전은 “이미 끝난 전쟁” 그리고 미국의 “출구전략”(Exit Strategy)

I, II부에서 언급한 “북미대결전은 이미 끝난 전쟁”이 오늘 동북아의 구체적인 새로운 국제정치현실임을 혹 세상 대부분은 모르더라도 당사자들인 북, 미국은 너무도 잘 안다 믿는다. 중.러가 알고 있음은 당연지사다. 3세계라 불리는 평생 약자로 짓밟혀 사는 세상 절대다수나라들이 특히 잘 알 것임은 물론일 것이다. 시리아, 이란, 레바논, 팔레스타인 같은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민족, 국가들일수록 특히 더 그럴 것임은 불보듯하다.

오늘 동북아정세는 “이미 끝난 북미대결전”에서 미국이 출구를 찾고 있는 모습이다 소위 “출구전략”(Exit Strategy)이라 부르는 출구는 물론 “제국”이 빠져나갈 출구다. 지난 20년 소위 “북핵문제”를 내세워 북을 고립압살 하려다 도리어 오늘 미국이 거꾸로 급속히 망해가고 있는 하여 오늘 “세계제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과 대화한다, 한다”면서 대화 시동이 늦어지는 이유다. 체면치레用 출구찾기가 오래 걸려서다. 마치 학교 가야 하는 아이가 가기 싫다 떼쓰는 아이 모습이다. 오늘 미국 모습은.

클, 쵸처럼 세상 많은 양심들이 특히 3세계나라들이 최근 들어 북을 더욱 새롭게 다시 바라보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존경, 감탄은 물론 일종의 경외심 같은 것이 묻어나는 모습을 대부분의 친근한 외국 벗들에게서 7.27 평양대회 참가 내내 경험했다. 한 예로 무슨 이유에선지 “조선인민군” 장교복 비슷한 옷을 입은 쿠바 중년남성은 훈장까지 달고 다녔다. 그는 행사들에서 극진한 예를 갖추어 북에 존경을 표했다. 그가 클에게 자신을 소개했을 때 그는 마치 무슨 “조선인민군” 대변인 같아 보였다.

쿠바청년을 보며 클이 한 말이 생각난다. 쿠바 다녀온 이야기다. 그는 최근 쿠바를 방문하며 점점 더 걱정이 늘었다: “혁명이 젊은 세대에게 제대로 이어지는 것 같지 않다. 수십 년 쿠바를 찾았을 때 가진 감흥을 최근 얻기 어렵다. 걱정스럽다. 반면 70년대 중반 처음, 2001년 전범재판 준비 차, 2013년 7.27대회 참가 차 모두 3차례 조선을 방문하며 쿠바에서와 다른 경험을 한다. 이곳은 혁명이 젊은 세대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곳에서 미래에 대한 꿈, 희망을 갖는 이유다.”

9.9절 65돌을 맞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축전을 보냈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 외에 리커창 국무원 총리, 장더장 상임위원장도 북의 박봉주 총리, 김영남 상임위원장에게 따로따로 축전을 보냈다. 3세계를 중심으로 지구촌의 많은 나라들이 북의 건국일 곧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65돌”을 맞아 진심을 다한 축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클, 쵸를 비롯 세상 많은 양심들이 북에서 인류의 미래를 새롭게 전망하게 된다고 고백하는 것이 그리 크게 지나친 일 같지 만은 않다 싶다.

세상 주류매체들이 뭐라건 오늘 실제 진행되는 세상현실 특히 동북아의 새로운 국제정치현실은 “이미 끝난 전쟁인 북미대결전”을 공식화하는 모습이다. 그 과정에 필수로 거쳐야 할 <평화협정> 체결을 비롯 “북미관계정상화” 과정을 밟는 수순이 남았을 뿐이다. 한반도는 물론 인류 미래에 대지각 변동이 예고되는 이유다. 남북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분단권력의 절대후견인이 사라지게 되는 조건에서 남녘에 통일지향정부가 들어서게 될 것임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통일코리아: 인류사에 위대한 하나의 전형이자 모범사례

 

   
▲ 북에서 7.27대회를 마치고 참가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왼쪽부터 정기열 교수, 한 사람 건너 클라크 전 장관, "과정철학자"로 지구촌에 명성이 높은 미국 캘리포니아 클레어몬크신학원의 존 캅 교수(88세), 마라 훼어헤이든 힐리아드 국제인권변호사, 브라이언 벡커 앤서콜리션 상임대표. [사진 제공-정기열]

 

통일코리아는 6-70년에 걸친 미국 주도의 제국주의세력에 의한 분단대결구도가 결국 파탄난 것을 뜻한다. 통일코리아는 따라서 제국주의가 강제한 자신에게 들씌워진 최악의 현실을 “세계반제자주화”라는 기준, 원칙, 지향에 근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바꾸어낸 하나의 위대한 전형(Prototype)이자 인류사적 의의를 갖는 모범사례가 된다. 통일코리아가 세계사의 대표적 모범사례로 향후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데서 일종의 향도적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임은 자연스런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인류사에 “하나의 위대한 전형으로서의 통일코리아”는 끝없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 마치 초봄 언땅을 뚫고 솟아난 인동초(忍冬草)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의 불굴의 사랑이야기다. 우리민족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불굴의 강인한 의지, 깊은 지혜, 인내, 겸손의 미덕과 반제자주원칙에 기초, 남북해외 우리민족 모두가 일심단결하여 꽃피워낸 위대한 하나의 정치경제군사문화역사이야기다. 곧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람사랑, 나라사랑, 이웃사랑, 인류사랑 이야기다.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에 기초한 1만 년 유구한 우리민족의 아름다운 공동체철학, 문화, 유산, 가치, 전통에 기초한 하나의 위대한 사랑이야기다. 반세기를 넘긴 사대분단구도가 끝없이 강제한 최악의 극한 상황들을 끝없이 슬기롭게 극복해낸 우리민족의 자주통일역사는 (클의 표현을 빌리면) 따라서 “아름다운 코리안들의 사랑이야기”가 된다.

그 사랑이야기는 북에만 혹은 남에만 국한된 제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70년 서로 다른 처지, 환경, 여건, 배경에서 친미친일사대분단구도와 끝없이 싸우며 반제자주민주평화통일의 위대한 역사를 함께 써온 우리민족 모두와 또한 우리와 연대협력하는 세상 모든 아름다운 사람들의 집단사랑이야기다. 그들 모두가 세상과 함께 쓰는 집단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시리아 대리대사가 부러워한 북의 “일심단결”과 “경제부문에서 일고 있는 대격변”

오늘 지구촌 최대열점지역 가운데 하나로 미국주도의 서구제국주의 침략전쟁 위협에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처럼 된 시리아 동경 주재 대리대사가 최근 한 말이 생각난다. 시리아는 정치전략적 측면에선 반제자주국가지만 군사력은 그 원칙, 지향을 지켜내기에 아직 턱없이 부족한 나라다. 2011년 3월부터 “내전”으로 10만 명 이상이 파괴되고 수백 만 난민이 발생한 배경이다. 말이 내전이지 실제는 미국이스라엘이 이슬람테러용병들을 내세워 치르는 “대리침략전쟁”이다

“조선이 참 부럽다. 당신들에겐 당신들이 말하는 ‘핵무기보다 더 강위력하다’는 ‘일심단결’이란 무기가 있다. 우리에겐 바로 그 무기, 어쩌면 제일 중요한 바로 그 무기가 없다.” 동경 주재 시리아 대리대사 말은 이전에 <통일뉴스>에 소개한 북의 특명전권대사를 맞은 어느 동남아국가 대통령 말과 유사하다: “조선은 오늘 세상에서 강대국에 당당히 맞서 당당하게 할 소리 못할 소리 거침없이 하는 유일한 나라다.”

클, 쵸, 벡커, 마라 그리고 지구촌 곳곳에서 찾아온 수천의 외국 벗들이 서울, 평양에서 듣고 보고 함께 하며 그들 마음속에 하나의 공통된 느낌, 배움, 체험, 깨달음 같은 것이 혹 있었다면 그것은 시리아 대사, 동남아국가 대통령이 했던 말과 어쩌면 대동소이할지 모른다. 그들의 고백 속에 오늘 지구촌 그 어디서도 찾기 어려운 남북해외 우리민족 모두의 가열찬 반제자주역사와 6-70년 북미대결전에서 오늘 북이 이룩한 인류사적 업적에 대한 존경이 담긴 것은 아닐까 싶다.

그들 대부분은 60년 전 코리아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잘 안다. 클이 평양체류 내내 한 말이다. “인구 1/3인 460만 명(그는 발언 때마다 브리태니커 제공의 이 수치를 강조했다) 가량이 파괴됐다.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도 잃었다. 전국이 초토화됐다. 철저히 파괴되어 ‘100년 가도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호언장담한 제국주의침략자들에게 보란 듯 오늘 코리안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나라를 새롭게 건설해냈다. 놀랍다. 존경한다. 고맙다. 조선사람들이 아름답다.”

그의 진심에는 사랑, 존경과 함께 감사의 뜻도 담겨있었다. 코리안들에 대한 감사다. 자신의 조국 미국이 철저히 파괴한 이 나라를 그리도 아름답게 다시 “일떠세운 조선사람”들에 대한 감사다. 앞글에서 “사죄”의 뜻도 담겨 있다 해석한 이유다. 북녘 “최고인민회의 양형섭 상임부위원장”과 1시간 대담 때도 같은 뜻을 표현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서로 존경, 사랑, 감사를 표현했다. 밑바닥 깊은 곳 어딘가부터 싹트기 시작한 깊은 존경과 감사에 기초한 사랑이었다.

따라서 인류사를 잘 아는 그들이 “코리아에서 인류의 미래를 본다”는 말은 코리아가 통일되면 그 힘은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원천, 바탕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앞에서 “통일코리아”가 “인류의 미래운명과 맞닿아 있다” 주장한 근거다. 장장 70년에 가까운 장구한 세월에 걸친 극단의 비대칭대결에서 극한의 사면초가, 고립무원, 굶주림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 면전에서 결국 미국을 무릎 꿇린 북의 위용은 오늘 세상이 아무리 왜곡하고 악마화하고 덮으려 해도 소용없는 것 같다.

지난 몇 년 북미대결사의 인류사적 의의를 누누이 강조한 이유다. “가난, 굶주림, 고립” 등은 북녘동포들이 자신들은 물론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창출키 위해 구조적으로 감내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곧 국제반제자주전선에서 치러야 했던 값진 희생이었다. 지난 6-70년 미국 주도의 제국주의국제연합세력과의 대결전에서 “구조적 문제”로서 북녘동포들이 겪은 가난은 그런데 머지 않아 과거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오늘 급변하는 북녘의 경제사회적 발전의 내용, 폭, 규모, 속도, 깊이를 보니 그렇다.

북녘동포들의 구조적인 경제문제 해결은 따라서 이제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것은 이미 기정사실로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지 모른다. 격변하고 있는 새로운 북녘현실의 전면적 가시화는 그들 주장처럼 “나라의 자주국방문제가 이미 해결된” 조건에서 이젠 “마지막 남은 문제”라는 “경제문제”를 얼마큼 빨리 전국적 단위에서 성공적으로 풀어내는가, 아닌가에 달린 것 같다. 경제문제를 포함 정치사회군사문화체육오락 모든 분야에서 명실상부하게 “강성대국”이 되겠다는 북녘동포들 주장처럼 오늘 북녘에는 경제발전차원에서의 일대 격변이 일고 있음에 틀림없다.

지구촌 곳곳에서 북녘을 찾은 국제평화대표단은 대격변이 일고 있는 북의 모습을 7.27대회 내내 직접 보고 느끼고 듣고 구체적으로 경험했던 것 같다. 폭풍 같은 대격변이 전국 방방곳곳에 몰아치고 있는 모습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경제분야에서 일고 있는 대격변은 주로 농업, 경공업 부문을 중심으로 첨단과학, 의학, 체육, 문화, 예술, 여가생활, 도시미화 분야에서도 거의 같은 수준과 속도의 대격변이 일고 있었다. 대격변이 일고 있는 모습을 폐부 깊숙이 경험한 클대표단 모두가 7.27대회 내내 표현한 영어표현들은 주로 다음과 같은 감탄사들이었다. 그들 표현을 그대로 소개한다: “Great! Beautiful! Wonderful!”

7.27대회까지 올해 모두 3번 북녘을 방문했다. 7.27대회 준비 차 2월, 6월에 이미 두 번 방문했다. 2월, 6월 경험한 그 대격변은 7월 방문 때도 마찬가지였다. 2월 시작된 수도 평양의 잔디조성은 7월 방문 때 이미 끝나 있었다. 북에서 오늘 일고 있는 변화는 주지하듯 “마식령 속도”로 대표된다. 이미 잘 알려진 “세계적 규모, 수준의 마식령스키장 연내 건설” 계획과 역시 “세계적 규모, 수준의 대낙농기지”라는 “세포등판개간사업”이 좋은 예들이다.

북녘의 올 작황은 풍년 같아 보인다. 신천에서 열린 국제평화대회에 참가키 위해 사리원을 지나 한두 시간 남쪽으로 달리면서 차창으로 내다본 황해도 곡창지대는 문자 그대로 온통 황금벌판이었다. 클대표단이 환호했다. 대규모 집단농장으로 전변한 북녘 모든 논들에 끝없이 펼쳐지고 있던 황금벌 때문이었다. 외국의 벗들은 북녘동포들이 올해는 이전 해들 보다 더 많고 더 질 좋고 더 풍성한 식량으로 배불리 먹는 흥겨운 가을추수가 되길 학수고대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승 스님 재출마 두고 시비 오른 도법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선거 자승-보선스님 2파전

 
조현 2013. 09. 17
조회수 789추천수 0
 

 

현 총무원장 자승 스님-전 종회의장 보선 스님 2파전

 

자승 스님의 행정능력 대 보선 스님의 도덕성 칼과 방패의 대결

 

 

자승 보선 스님-.jpg

자승 스님과 보선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59) 스님이 차기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했다. 조계종 종책모임인 ‘불교광장’이 16일 총무원 청사에서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그를 후보로 추대했다.

 

 지난해 백양사 도박 사건 이후 수좌(선승)들이 그의 퇴진을 요구했을 때 그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재임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위기를 넘겼다. 그 약속을 파기한 것이다.

 

 자승 스님은 1994년 조계종단 개혁 이후 연임을 시도한 최초의 총무원장이다. 그는 재임 4년 내내 범계(계를 어김) 관련 비리 폭로전의 중심에 있었다. 지난 7월엔 포항 오어사 전 주지 장주 스님이 자승 스님과 불국사의 맹주 종상 스님 등 16명의 실명을 담아 자신이 그들과 상습도박을 했다며 검찰에 자수서를 제출하며 관련자들의 수사를 요구했다. 4년 전 총무원장 선거에서 자승 스님을 도와주는 대가로 부원장 자리를 약속받은 장주 스님이 부원장이 되기는커녕 불국사 말사인 오어사 주지직에서도 밀려나자 현 종단 지도부를 향해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는 게 교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달엔 총무원장의 호위신장 격인 호법부 승려들이 총무원 옆에서 ‘고위층 도박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하려던 적광 스님을 강제로 끌고 가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선원수좌회 소속 선승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승 스님이 재임에 도전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자 조계사 앞마당에 천막을 치고 ‘자승 원장 재임 포기 약속 엄수’를 요구하며 이날까지 10일간 단식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소속 재가자들도 매일 108배를 하며 이에 동참했다.

 

선승들의 존경을 받는 조계종 특별선원 봉암사의 ‘어른’인 적명 스님의 제안으로 ‘15인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총무원장을 선임하자는 방안이 한때 불교계에서 추진되기도 했다. ‘덕 있고 참신한 분’을 차기 총무원장으로 모시자는 것이 불심이자 민심이다. 그것은 ‘이상’이다.

 

 그러나 조계종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것은 민심이 아니다. 불심도 아니다. 조계종 입법부인 종회 의원 81명과 전국 24개 교구본사별로 10명 등 321명이다.

 

 선거가 있는 곳은 어디에나 ‘정치’와 ‘파워’가 핵심이다. 야당으로 밀리면 주지직을 뺏기고 등 붙일 곳이 없어질 수도 있는 조계종은 더욱 그렇다.

 

 자승 스님의 연임 시도에 대해 그의 측근들조차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막상 그의 출마가 확정된 추대식엔 실력자들이 앞다투어 몰려들었다. 24개 교구본사 주지 24명 가운데 16명이 참석했다. 그가 꾸린 선거캠프 참여자들의 주요 면면도 지홍(불광사 회주)·성관(수원포교당 주지)·지현(청량사 주지)·정념(흥천사 주지)·일감 스님(불교신문 주필) 등 이미지가 좋은 인물들로 진용을 꾸렸다.

 

자승 스님의 연임 포기 주장도 그가 출마하면 될 가능성이 높은 강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 현장이었다. 한 추대식 참가자는 “선거에선 ‘될 후보’에게 줄을 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이 ‘현실’이다.

 

 선거전엔 이미 보선(67) 스님이 뛰어들었다. 조계종 입법부 수장인 종회의장을 지낸 중진이다. 4년 전 선거에서 자승 스님을 도와 ‘결실’을 맺은 뒤 총무부장으로서 총무원의 2인자 구실을 했던 영담 스님이 이번엔 보선 스님 킹메이커를 자임하고 나섰다. <불교방송> 이사장이던 그는 지난 4월 배임 의혹으로 노조에 의해 검찰에 고발당하고, 이사장직에서 해임됐다. 또 사찰에 180억원대의 빚을 떠넘긴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전 해인사 주지 선각 스님도 보선 스님 캠프에 가담했다.

 

이번 선거는 자승-보선 스님의 2파전이다. 불국사, 금산사, 법주사 등의 금오문도회가 도영(69) 스님을 후보로 추대했지만 이는 불국사 맹주 종상 스님이 띄운 애드벌룬 카드라는 설이 많다. 불교계에서 최고의 노른자위인 불국사와 석굴암을 직영화(총무원 직접 경영 사찰로 전환)시키지 않으려는 종상 스님이 차기 총무원장으로부터 확실한 보장을 얻어내려 띄워놓고 유력 후보와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자승 스님 쪽은 범계 의혹 제기에 대해 지금까지는 불교적으로 묵빈(침묵)대처로 일관했지만 이제 음해엔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장주 스님의 상습도박 자수건에 대해서도 고발해 조사를 받았고, 기사를 쓴 <신동아>도 즉각 고발했다는 것이다.

 

 또 이번 선거는 지난 4년의 업적과 비전으로 심판받겠다고 한다. 자승 스님 쪽은 △300년 만의 개혁이라는 승가교육제도의 혁신 △총무원 조계사 일대 성역화 사업 △사찰 재정 및 운영 투명화 쇄신정책 도입 △승려복지제도 도입 등을 내세우고 있다. 자승 스님의 한 측근은 “총무원장이 직접 용산참사 현장,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노조 등 소외된 약자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그들의 벗이 되어준 것이야말로 불교의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자승 스님이 지관 스님의 뒤를 이어받아 조계종의 행정 시스템을 주먹구구식에서 탈피해 현대화·체계화시키는 데 능력을 발휘했다는 데는 반대파 상당수도 인정하고 있다.

 

보선 스님 쪽은 자승 스님의 도덕성 문제를 집중 이슈화할 것으로 보인다. 자승 스님이 출마를 선언하자마자 종회에서 보선 스님 쪽 의원들이 장주 스님이 제기한 건을 밝히자면서 종회 소집을 요구하며 공격에 나섰다. 보선 스님은 안거(겨울·여름 3개월 집중 참선 수행)에 32차례나 참여한 수행 경력을 내세우고 있다. ‘승려다운 승려’라는 것이다. 그는 총무원장이 되면 총무원에서 기거하며 새벽예불에도 참여해 불자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총무원장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차별화다.

 

자승 스님은 능력을, 보선 스님은 도덕성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 불교계 최대 종단 선거는 10월10일이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자승 스님 재출마 두고 시비 오른 도법 스님

 

"나는 자승 스님 편이 아니라, `자성과 쇄신편'이다" 주장

 

도법 스님--.jpg

 

자승 총무원장이 재출마를 하는 과정에서 시비 선상에 오른 인물이 도법(64) 스님이다.

 

 도법 스님은 최근 선거로 종단이 사분오열된다며 봉암사 적명 스님, 수경 스님 등과 함께 ‘15인 추천위’를 띄워 새 총무원장을 모시자는 안을 추진했지만 각 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무산됐다.

 

 도법 스님은 세상과 소통할 통로를 거의 갇지 못한 불교계에서 시민사회 세력과 소통할 ‘보기 드문’ 승려로 꼽힌다. 불교계 엔지오와 종무원들의 대표적 멘토이기도 하다.

 

 도덕성 시비에 시달리던 자승 스님이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추진본부’ 본부장으로 옹립한 인물이 그다. 그는 ‘왜 자승 스님을 도와 이미지를 구기느냐’는 충고에 ‘남 일 보듯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종단에 참여해 종단 개혁을 이뤄내야 할 것이 아니냐’며 ‘자승 스님이 나를 이용한다면, 나도 자승 스님을 종단 개혁에 이용하고 있다’는 논리로 응했다.

 

 이번에도 ‘낙향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물리치고 총무원 ‘자성과 쇄신 결사추진본부’를 지킴으로써 자승 스님의 연임 시도에 결과적으로 원군이 되고 있다는 게 교계 안팎의 시각이다.

 

지금까지 그가 있었기에 자승 스님은 불교 엔지오들의 공세를 덜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자승’ 반대파들은 그를 자승 체제 유지를 도운 ‘눈엣가시’로 여긴다. 그렇다고 총무원에서 그가 환영받는 존재도 아니다. 늘 승려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개혁안 도입 등 이상론을 현실화하려는 그를 총무원의 간부들은 ‘등에’처럼 귀찮아했다. 그래서 그는 종단 기득권 세력 사이에선 사면초가였다. 그나마 입만 열변 도법 스님을 비난하는 종단 간부들로부터 도법 스님을 보호하며 개혁에 힘을 실어준 것은 현 총무원장이었다. 도법 스님이 이번에도 총무원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것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볼 수도 있다. 그는 “나는 자승 스님 편도 아니고 ‘자성과 쇄신’ 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서화숙 칼럼] 문재인은 ‘논개’ 라도 되어야

 
 
지금 상황에서 선택은 논개의 길 뿐, 야당 대선후보답게 나서 달라
 
편집부 | 등록:2013-09-21 08:28:31 | 최종:2013-09-21 09:53: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국정원 댓글논란의 핵심과 본질은 MB정권의 '대선부정'과 '정권재창출 기획'이며 결과적으로 그들은 성공했습니다. 그것은 박근혜가 MB의 대선부정 프로젝트에 동참했는지 않았는지 여부와 전혀 상관없이 현재 그 장물을 보유하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횡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덮고 희석시키기 위해 또다른 사건들을 기획하여 국민들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분쇄하기 위해 싸워야 할 민주당의 대응은 참으로 안이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관련하여 <진실의길>은 이시대 깨어있는 참 언론인 <서화숙 한국일보 선임기자>의 국민의TV - 3분칼럼을 소개함으로써 무엇이 문제였고 어디에서부터 실타래가 꼬였는지 다시 짚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서화숙 3분칼럼] 문재인은 '논개'라도 되어야

 

서화숙 선임기자

 

어제(24일)로 국정원 정치개입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온갖 헛소리들이 난무하지만 그래도 여야공방으로 국정원 정치개입의 실체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게 됐다는 사실, 결국 믿을 것은 국민밖에 없는 나라에서 다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국정원이 정치개입을 한 것은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공무원인 직원들을 인터넷 댓글작업에 동원해 국민선동에 나섰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국정원의 비밀기록을 특정선거캠프에 제공해서 선거에 활용하게 했다는 의혹입니다. 뒷부분은 이른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 (NLL) 포기 사건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국정원 공무원의 댓글작업이라는 정치개입으로 수세에 몰린 새누리당이 관심을 돌리기 위해 다시 들고 나온 것도 바로 이 NLL사건이었습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 주도로 여야합의도 없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무단 열람하고 다시 노무현이 NLL포기선언했다고 공표한 것입니다. 6월 20일입니다. 이어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정원에 보관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공개해버렸습니다. 6월 24일 일이고 역시 불법입니다.

그런데 막상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보니 노무현 대통령은 NLL을 포기하기는커녕 북한을 설득해 국제무대로 나오게 하고 북한의 해주까지 남북협력지대를 만들려고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새누리당은 원문을 보고도 한글 독해를 못해서 엉뚱한 주장을 편 집단이자 악의적으로 전직 대통령을 음해한 집단으로 밝혀졌습니다. 게다가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이 새누리당 캠프로 진작에 들어가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이 대선 직전인 12월 14일 유세에서 줄줄이 읽은 것까지 6월27일에는 밝혀졌습니다.

국정원의 국정개입은 인터넷 댓글 정도가 아니라 비밀기록을 특정정당에 넘겨 대선을 지원했다는 말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현 대통령은 어떻게 개입했는가를 밝혀야 한다로 공방이 거세어지는 판에 느닷없이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국가기록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문을 까자고 6월 30일 제안했습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양상이 더 분명해지고 더 치밀하고 조직적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국면에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 안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했으면 정계은퇴하겠다는 비장한 선언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공당의 대선후보까지 지낸 사람이면 뭔가가 있겠거니 하는 마음이 한편에는 있었습니다.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진전을 보면 문재인의원은 별달리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야당 대통령 후보의 발언으로 정계 국면은 NLL공방으로 이어졌고 국회의 국정조사는 공전을 했습니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못 찾으면서 이 논란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화록을 없앴다는 공방으로 이어졌습니다. ‘NLL포기 발언 없었다’로 수세에 몰렸던 새누리당이 기세등등하게 ‘NLL 포기한 게 맞다’를 다시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문재인 의원이 한 일은? 어버버하면서 따라가기나 한 게 전부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명의 여야쪽 인사와 진보 보수매체들이 밝힌 내용을 종합해서 일치하는 내용을 추려보면 이렇습니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는 없는 게 확실합니다. 이걸 폐기했느냐 여부는 불확실합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남재준 국정원장이 공개한 국정원본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국정원본은 있는데 대통령기록관에는 없느냐. 30년간 공개하지 못하게 되어있는 대통령기록으로 남길 경우 후임 대통령이 참고하지 못하니 후임 대통령을 위해 국정원으로 기록을 넘겼다는 이야기를 당시 기록을 작성한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이 말한 것으로 어느 신문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확인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조명균씨가 언론도 국회도 피하고 은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기록관에 정상회담 대화록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잠수하던 문재인 의원은 어제NLL 논란은 덮자고 공식발언했습니다. 거대한 소동의 장본인치고는 좀 맥락없는 발표였습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고, 국회의 국정조사가 본격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NLL 논란은 끝나는 것이 옳습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원본을 보자고 당론으로 받아들인 것은 당대표인 자기 책임이라며 당내 분란이 일어날 소지를 없앴습니다. 문재인 의원에게 쏟아질 비난을 막아서고 민주당이 국회 국정조사에 합심하겠다는 태도는 옳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양상이 끝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제 벌써 황우여 대표가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국가기록관에서 없어진 것을 두고 “예전에 사초에 관한 범죄는 참수로 벌했다”고까지 발언을 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노무현 정부가 없앴다는 도발인 것이지요.

과연 사초가 없어졌습니까? 사초는 역사기록을 쓰기 위한 기본자료를 말합니다. 사초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남재준 국정원본이 있는데 어떻게 사초가 없어졌습니까? 또 대통령기록관에는 없지만 국가기록원에는 있다는 증언도 나옵니다. 원래 노무현 대통령은 모든 기록을 이지원 시스템에 집어 넣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했고 그 중 일부를 대통령기록으로 별개 자료화하여 넘겼습니다. 지금 여야가 찾아본 것은 대통령기록관일 뿐 이지원 전체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지원을 뒤져보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새누리당이 극구 반대합니다. 원본을 찾아보기로 한 여야 합의 시한이 22일로 끝났다는 것입니다. 여야 합의야 다시 하면 됩니다.

문재인 의원은 이번 일로 정치력의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노무현 정부 내부 사람들에게 들어서 알만한 기초 사실도 확인하지 않은 채 뒷북을 쳐서 국정원 정치개입을 밝혀내려는 거센 흐름의 맥을 끊어버렸습니다.

정치개입으로 정권을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생각하는 국정원은 벌써부터 막나가는 조짐을 보입니다. 국정원장이 법을 어겼습니다. 직원들은 농협을 통해 농민을 사찰하고 대학 총장실에 전화를 걸어 대학생 동향을 사찰합니다. 뉴스타파 보도로는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까지 했다고 합니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어제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직원이 댓글 다는 것이 어떠냐는 말까지 했습니다. 국정홍보처와 국정원의 기능 차이도 모르는 막말이 여당 국회의원 입에서 막 나오는 상황입니다. 이제 국정원이 박정희 정권 때의 중앙정보부로 갈지 안갈지는 이번 정치개입의 진상을 말끔히 털어내서 관련자를 엄중 처벌하는 데에 달려있습니다.

여당과 정부가 기세등등하게 되는데 단초를 제공한 문재인 의원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하나는 그냥 숨죽이고 사는 법도 있겠지요. 의원직 월급은 받습니다.
하나는 야당 대선후보답게 나서주는 일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선택은 논개의 길 뿐입니다.

문재인 의원은 지난번에 국가기록원 원본에 NLL포기 내용이 있으면 정계 은퇴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포기내용이 없다는 것이 다 알려진 상태에서 그건 하나마나한 소리입니다. 그리고 왜 당신 혼자만 은퇴를 합니까? 자기만 희생하는 사람은 정치인으로는 바보일 따름입니다. 적을 죽이고 함께 죽어야 정치력이 있는 겁니다.

지금 새누리당에 이지원을 까라고 하십시오. 이지원에도 원본이 없다면 은퇴한다고 하십시오. 대신 원본이 있으면 지난 대선 유세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줄줄이 읽은 김무성의원, 작년 10월 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포기했다는 허위사실을 처음 공표한 정문헌 의원, 올 6월 여야 합의 없이 발췌본 무단 열람하고 역시 NLL포기했다는 설을 유포한 서상기 의원이 사퇴하라고 요구하십시오. 이 합의를 받아낸 후 이지원을 까라고 압박하십시오.

국정원과 야합하여 헌정질서를 유린하고도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과 함께 진주 남강행을 결단하십시오. 혼자 물러나거나 숨어있는 일은 야당 대표주자답지 못합니다.

☞ 2013-7-25 서화숙의 3분칼럼 팟캐스트로 듣기


출처 : 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317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자 사라지고 있다…7500만 사용하는 한글, 괜찮을까?

[인터뷰] 한국외국어대 그리스학과 유재원 교수

남빛나라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9-21 오전 9:24:09

 

 

한국만큼 '자국의 문자'에 대해 자국민들이 뿌듯함을 느낄 거리가 많은 나라도 없다. 한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음운학적 문자 창제 원리가 정리된 문자다. 그 과학적인 음운학적 원리 덕에 유네스코는 지난 1997년, 한글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유네스코가 문맹 퇴치 기여자에게 주는 상의 이름이 '세종대왕 상'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덕분에 한국인들은 "한글은 세계 어떤 나라의 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표기 체계"(하버드 대학 라이샤워 교수)라는 극찬에도 어느새 익숙해진 듯하다.

그러나 동시에 한글은, 세계 인구 70억 명 중 고작 한반도 인구 약 7500만 명만의 문자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거친 언어 생태계에서 존재 가치를 잃고 결국 사라지는 문자도 제법 있다. 7500만 명이 사용하는 한글은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한글을 배우도록 할 수 있을까. 유재원 교수(한국외국어대 그리스학과)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저명한 그리스 발칸 전문가인 유 교수는 한글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도 유명하다.

유 교수는 "한글의 100년 후가 걱정된다"며 아일랜드어를 예로 들었다. 아일랜드에서 영어와 함께 쓰이는 아일랜드어는 현재 아일랜드 인구의 2% 정도만 사용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문화의 핵심을 언어라고 한다. 그 언어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문자"라며 "한글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그는 내년부터 한글날(10월 9일)에 맞춰 '문자향연'을 개최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한글이 언제까지나 우리 문자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계획이다.

6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유 교수를 만나 '한글 백년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박인규 이사장이 진행했다. <편집자주>

 

▲ 유재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중국 지역마다 말 달라도 '한자'로 통합…"문자가 언어를 규정"

프레시안 : '문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직은 생소하다.

유재원 : 사람들은 흔히 언어가 기본이고 문자는 언어를 적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만든 발명품, 제도는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우리 가치관을 규정하고 바꾼다. 이처럼 맨 처음에는 언어를 적기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문자를 갖고 났더니 이 문자가 언어생활을 지배하게 됐다. 우리는 문화의 가장 핵심을 언어라고 한다. 이 언어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문자다.

문자는 언어가 가진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벗어난다. 문자를 가졌느냐의 여부는 문명사회냐 아니냐를 결정짓는다. 문자 사회와 부딪혀서 살아남은 무문자 사회가 없다. 문자는 권력을 모으고 지식을 모으고 역사를 창출한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니콜라스 에번스 지음, 글항아리 펴냄)라는 책을 보면 뉴기니아 같은 조그만 섬에 몇천 개의 언어가 있다. 그곳에서 실력 있는 젊은이들은 보통 5, 6개의 언어를 한다. 인사하고 교역할 정도의 말이니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일단 문자가 생기면 언어는 고정된다. 문자를 중심으로 표준어 등이 생기고 그것이 우리의 언어생활을 결정한다.

프레시안 : 문자가 언어를 규정하는 예를 들어줄 수 있겠나.

유재원 :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문자가 다르면 결국 갈라선다. 파키스탄, 인도는 지금도 방언적 차이만 있지 말은 똑같다. 그런데 파키스탄의 우르두어는 아랍 문자를 쓰고 인도는 옛날부터 내려온 인도 문자를 사용한다. 남북한을 비유로 들자면, 우리가 북한에 가서 이야기는 통하는데 간판은 못 읽는 격이다. 그러니까 결국 둘이 갈라서지 않았나. 정 반대의 예도 있다. 중국인과 홍콩인은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같은 문자, 한자를 쓰기 때문에 중국 민족이라고 한다.

프레시안 : 문자향연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문자향연을 추진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인가?

유재원 : 우리는 한글이라는 정말 우수한 문자를 가지고 있어서 지금 이만큼 발전했다. 문자가 왜 생겼고 문자가 우리 생활에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특히 그럴 자격이 있는 민족이다. 문자에 대해서, 전 세계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따지자면 한글이 가장 훌륭한 자격을 갖고 있으니까.

문자향연에서 '100년 후에 세계 언어 생태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볼 예정이다. 예산 관련자들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하니 일단 출발이 좋다.

"특정 문자로 된 텍스트의 질이 민족의 운명을 결정"

프레시안 : 또 문자가 가진 힘이 있다면 무엇인가.

유재원 : 사실 상당히 많은 정보를 말만 갖고 알 수 있다. 전설이니 뭐니 다 말로 전해지지 않나. 그런데 글자가 없어서는 안 되는 인간의 중요한 활동 분야가 있다. 바로 학문이다. 구비 학문이란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학문은 지식의 체계인데, 그 지식은 아무 지식이 아니라 진리, 옳은 지식의 체계다. 이것을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하다.

문자가 만들어지고 나서 인류 역사를 가장 크게 바꿔 놓은 것이 바로 이 체계적인 지식이다. 이 분야에서 인류가 우열을 비교하면서, 학문을 발전시킨 나라가 그렇지 못한 나라보다 강해졌다.

그렇다면 문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 그 문자로 쓰인 텍스트가 어느 만큼 가치를 갖느냐에서 나온다. 어떤 문자를 읽었을 때 얻을 게 별로 없으면 그 문자를 배우지 않는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까닭은, 영어로 된 텍스트를 볼 때 가장 풍부한 식견을 얻을 수 있어서 아닌가.

그리스 인구는 약 1000만 명이지만 서양에서 학식 있는 사람은 거의 그리스어를 배운다. 플라톤, 호메로스, 헤로도토스의 책을 읽어야 하니까. 특정 문자로 된 텍스트가 얼마나 훌륭하고 생산적인 가치를 갖느냐에 따라 언어의 생명이 결정된다. 또 그에 따라 민족의 경쟁력과 운명까지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유재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한글의 생명력 필요…힘은 '좋은 글'에서 나온다

프레시안 : 그런데 요즘 좋은 텍스트는 한글보다는 영어로 나오는 것 같다.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하고 논문 내는 일이 굉장히 의무화되어 있다. 학문에서 영어의 기세가 매우 거세다.

유재원 :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영어를 쫓아갈 수는 없다. 다만 한글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한글로 된 좋은 글들이 안 나온다는 것이 문제 아니냐. 어차피 우리만 위협당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같은 나라는 영어의 유입을 막지 않았지만 옛날부터 일본어로 모든 것을 번역해서 일본만 해도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자국어로 된 훌륭한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하는데도 일본이 세계 제일이다. 2008년 노벨물리학상 공동수상자인 일본인,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영어를 전혀 못 한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이 그의 논문을 영어로 번역해서 세계 학지에 싣게 해서 노벨상을 받게 됐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이런 혼란 속에서 한글이란 문자의 생명력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재원 : 한글로 된 좋은 글을 써야 한다. 굉장히 똑똑한 사람들이 남의 언어를 사용하며 남의 언어를 위해서 봉헌한 비극적인 이야기가 있다. 20세기 최고의 문학가로 꼽히는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 사람이지만 모든 소설을 영어로 썼다. 영국의 극작가로 유명한 버나드 쇼와 오스카와일드, 시인 예츠도 사실은 아일랜드 사람이다. 여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영어를 잘해서 세계적 학자가 나오는 것은 좋지만 우리 것 다 잃고 세운 업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한글이 생명력 잃을 때 가장 피해 보는 사람은 일반인"

프레시안 : 영문 텍스트를 생산하되 한글 텍스트를 그에 못지않게 중시하자는 뜻으로 들린다.

유재원 : 그렇다. 학문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가 분리돼서 고급 정보와 고급문화 생활을 한글로 얻을 수 없을 때 가장 피해 보는 것은 일반 사람이다. 영어를 쓰면 무식해지는 국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어떤 나라 국민이 지식을 얻지 못할 때, 그 나라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현재 인도네시아는 상류층부터 영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인도네시아어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언어 장벽, 문자 장벽은 가진 자에게 가장 유리하다. 일단 한번 만들어지면 가장 견고한 장벽이다. 자기 자식에게 영어를 교육함으로써 자손들이 계속 지배 계층으로 남게 하겠다는 의도가, 인도네시아 민족을 사라지게 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유재원 : 어떤 숲에 한 종류의 나무만 쫙 있으면, 병충해 하나에 모든 나무가 다 죽는다. 잡다한 나무가 있어야 한 쪽이 죽을 때 한 쪽은 견디면서 건강한 생태계가 갖춰진다. 언어도 똑같다. 지금 언어가 7000종인데 50년 안에 3000종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견뎌야 할지 생각해야 할 때다.

 
 
 

 

/남빛나라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포위 견디는 망원시장, 전통시장의 반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9/21 10:57
  • 수정일
    2013/09/21 10: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대형마트가 밀려날지도 몰라"
포위 견디는 망원시장, 전통시장의 반란?

홈플러스 입점 6개월, 망원시장이 '선방'하는 이유는?

13.09.20 20:39l최종 업데이트 13.09.20 21:52l

 

 

기사 관련 사진
5일간의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동 망원시장은 장보러 나온 인파로 시끌벅적했다.
ⓒ 강민수

관련사진보기


대형마트인 홈플러스 합정점이 들어선 지 6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지역의 전통시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마트가 들어선 후 상권이 죽어가던 공덕시장처럼 되지는 않았을까.

5일간의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동 망원시장을 찾았다. 시장은 예상과 달리 장보러 온 인파로 붐볐다. 추석 대목을 앞둔 여느 전통시장의 풍경이었다.

"그전까지 하루 손님이 가장 많을 때가 POS(Point Of Sale, 판매관리시점)기기에 2600여 명이 찍혔어요. 근데 홈플러스가 의무휴업하고 '망원시장 난리났네' 이벤트 하던 그날, 3700명을 찍은 거예요."

가게 뒤편에서 재고 정리를 하던 임병근(48) '엄마손 마트' 사장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24평 남짓한 가게에 터를 잡은 지 5년. 가장 큰 위기였던 홈플러스 입점에도 임 사장은 "홈플러스 들어오니까 위기 의식을 느껴 스스로 더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며 "더 싸게 팔기 위해,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나름 선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8년째 속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조태섭(58)씨도 "아직은 여유 있다"고 말했다. 올해 3월까지 시장 상인회 회장을 맡았던 조씨. 홈플러스 입점 직후에는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매출에 큰 변화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경제가 불경기라 매출이 감소할 때가 있지만 홈플러스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조씨는 "입점 이후 서비스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며 "인사도 잘하고 손님들에게 뭘 더 잘해줘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반경 1.5km 내에 대형마트·SSM이 3개... 버텨낼까 걱정했지만
 

기사 관련 사진
지난 3월 개점한 홈플러스 합정점. 이곳은 망원시장, 망원동·월드컵시장 상인과 지역 주민들이 지난해 입점 저지를 위해 천막 농성을 벌이는 등 오랜 갈등을 빚어왔다.
ⓒ 강민수

관련사진보기


'포위'라는 말이 적절했다. 지난 3월 14일 대형마트인 홈플러스 합정점(670m 거리)이 개점하면서 망원시장과 망원동·월드컵시장은 인근의 홈플러스 월드컵점(1.5km 거리),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망원점(300m 거리)까지 대형 유통 업체로 둘러싸였다.

홈플러스 합정점이 들어오기 전, 두 시장은 지역 사회와 함께 비상대책위를 꾸려 저지 투쟁에 나섰다. 상인들은 입점 예정지인 합정동 메세나 폴리스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였다. 다섯 번의 철시(시장, 가게 따위가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음)를 하는 등 상인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서울시의 중재로 합의가 이뤄졌다. 지난 2월, 홈플러스와 두 시장은 상생협약식을 맺었다. 일종의 사회적 타결이었다. 협약문에는 '홈플러스 합정점은 채소·과일·생선·정육 등 1차 식품 중 오징어, 국거리용 쇠고기, 순대, 떡볶이, 알타리무 등 16개 품목의 판매를 제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시장 인근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망원점을 올해 안으로 폐점하기로 했다.

상생협약을 맺었지만 상인들은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생존 대책으로 마케팅 전략을 구상했다. 중소기업청 산하의 시장경영진흥원과 서울시, 마포구청이 컨설팅에 나섰다. 망원시장에는 88개, 망원동·월드컵시장에는 50개의 점포가 입점해 있다.

상인들은 시장 고객들에게 전단지를 대신해 홍보용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월드컵 시장은 매주 수요일, 망원시장은 매주 화요일 20~30% 특가 세일 행사를 벌인다. 또 대형마트 휴무일인 매월 둘째, 넷째 주 일요일에는 '전통시장 가는 날'이라는 이름의 이벤트를 열고 있다. 망원시장은 '망원시장 난리났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상점마다 세일 기획안을 받은 뒤 30개를 정해 전단지에 소개했다. 한 달에 2번이지만 상인들과 손님들의 반응이 좋았다. 임씨 가게가 최고 고객수를 기록한 날이 바로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이다.

서정래 망원시장 상인회 회장은 "전에는 가게 일이 바쁘니까 함께 활동하려는 생각이 없었지만 입점 저지 투쟁을 하면서 상인들이 결집하면, 대자본과 맞설 수 있다는 경험을 갖게 됐다"며 "합의 이후 시장이 정상화되면서 상인들의 결집력이 시장 마케팅 활성화로 이어져 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포 공동체'도 큰 버팀목
 

기사 관련 사진
망원시장은 화개장터를 열어 지역 사회에 시장을 개방하고 있다. 화개장터는 매월 셋째 주 화요일에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에게 시장을 여는 벼룩시장이다. 팔찌, 목걸이 등 수제품을 팔고 노래 공연도 열린다.
ⓒ 망원시장상인회

관련사진보기


지역 사회와의 연대도 시장의 큰 버팀목이다. 마포구에는 성미산마을 공동체를 비롯해 민중의 집, 두레생활협동조합 등 주민 단체와 주민 모임이 활성화 돼 있다. 지난해 40여 개의 지역 시민 단체들은 두 시장 상인들과 함께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마포지역 주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결성하기도 했다. 대책위는 지난해 2월부터 8월까지 입점 저지 서명 운동에 나서 1만 7000여 명의 지지를 받았다. 이는 시장 인근의 망원·성산·서교·합정·연남동 주민 16만여 명의 10%를 넘는 숫자다.

홈플러스 입점 이후에도 연대는 계속되고 있다. 망원시장은 화개장터(벼룩시장)를 통해 지역 사회에 시장을 개방하고 있다. 매월 셋째 주 화요일,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의 벼룩시장이 열린다. 팔찌, 목걸이 등 수제품을 팔고 노래 공연도 연다. 지역의 사회적 기업인 '오늘공작소'는 컨설팅을 통해 상인들의 매출 증대를 돕고 있다.

지역 시민 단체인 '민중의 집'의 정경섭 대표는 "홈플러스가 해도 너무한다는 주민들의 의식이 있었고 입점 이후에도 상인들의 눈물 나는 생존 노력이 있어 '마포 공동체'가 결집하고 있다"며 "착한 소비를 원하는 시민들이 이용을 자제하면서 전국 최초로 대형마트가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정 대표는 "대책위는 앞으로 지역경제 살리기 본부로 전환해 지역 상권 지키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도 "두 시장은 대형마트가 들어서도 예전처럼 전통시장이 무력하게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마포 시민들과 상인들의 승리"라고 말했다.

불투명한 미래, 지속가능한 상생 방안은?
 

기사 관련 사진
▲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상인, "그동안 고생했습니다" 지난 2월 서울 마포구청 회의실에서 마포 전통시장과 홈플러스와의 '상생 협약식'을 체결한 뒤 홍지광 전 망원동·월드컵시장조합 이사장이 동료 상인들과 악수를 나누며 격려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물론 대형마트의 영향이 없진 않다. 대형마트의 가격 경쟁력이 높은 고추장, 두부 등 가공식품류가 영향을 받고 있다. 또 홈플러스가 들어선 주상복합 빌딩인 '메세나폴리스'에 상가가 들어서면 업종이 겹치는 화장품, 의류 등도 타격을 받고 있다. 월드컵시장에서 식자재 도소매점을 운영하는 이성진(46)씨는 "소비자들이 주로 사가는 김, 고추장 등 가공 식품류가 전에 비해 반으로 줄었다"면서도 "식당 납품 등 도매를 주로 하기 때문에 큰 타격은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두 시장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상인들의 결집력이 줄어들고 대기업인 홈플러스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응수해오면 시장에 타격이 올 수 있다.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상인들의 안전 장치는 상생협의체다.

상생협의체 회의는 지난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 마포구청의 주관하에 열리고 있다. 두 시장과 구청, 홈플러스 관계자 3명씩 12명이 모이는 자리다. 한 달간의 상생협의 내용을 점검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지만 협약 내용은 권고 수준일 뿐 법적 강제력이 없다. 상생협의체의 구속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정책기획실장은 15개의 품목제한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수천 개의 품목을 파는 대형마트에서 15개를 양보한 것은 생색내기"라며 "그나마도 상인들이 너무 바빠 홈플러스를 일상적으로 감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실장은 "협의체가 단순 권고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홈플러스가 지키지 않으면 상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국회 법안 발의, 자치구 조례 재정으로 지치단체가 감독 권한과 제제 수단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홈플러스 PR팀 관계자는 "상생협약을 맺은 것은 어느 정도는 서로 양보하고 같이 가자는 것으로, 양쪽이 100% 만족할 수 없다"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개성공단은 옥동자고 우리는 서자냐?”

“개성공단은 옥동자고 우리는 서자냐?”

쓸쓸한 추석 맞는 남북경협업자 황창환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09.20 16:46:45
트위터 페이스북

 

 

   
▲ 쓸쓸한 추석을 맞게 된 황창화 목민ASSOCIATION 대표와 서울 여의도에서 16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사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아이들과 안식구 보기도 부끄럽다. 잠시 떨어져 살았으면 하는 마음까지 든다.”

 

모두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부푼 마음에 들떠있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만난 황창환(53) 목민ASSOCIATION 대표는 올해는 부모님 묘역에 벌초도 못했다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찍이 남북경협에 뛰어들어 북한산 조개를 반입하는 사업으로 연매출 40억원에 이르던 그의 사업은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취해진 5.24조치로 인해 완전히 중단되고 말았다.

“‘좀 길어야 1년 가지 않겠냐, 곧 풀리겠지’ 했는데 4년째로 접어들었다. 다른 일, 투 잡(two job)을 하다가 그랬으면 여파가 적었을 텐데 올인(all in)을 했다.”

더구나 최근 개성공단 중단과 재가동 과정을 지켜본 황 대표의 심경은 더욱 복잡하다.

“이번 개성공단 사태는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서 해결한 것이고, 나머지 금강산이나 경협 관련자는 MB 정부에서 발생해 분리해서 조치를 취하는 것 아닌가 싶다”며 “정부가 개성공단만 너무 옥동자마냥 하고, 우리는 서자마냥 대우해 서운한 점도 없지 않다”고 심경의 일단을 내비쳤다.

최근 금강산지역 기업인들과 북한 내륙지역 기업인들, 임가공과 무역 종사자 등이 결성한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에서 홍보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 대표는 “우리 의지에 상관없이 이런 사태가 발생해 본의 아니게 경협에 올인한 사람들이 모두 피해자가 돼 있다”며 “천재지변에 준하는 ‘재난 지역’ 선포 정도로 정부에서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부에 대해 “생활 안정에 필요한 대출”을 요구하고 “경협이 재개되는 게 지금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단지 경협의 재개를 넘어 “아버지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으면, 박근혜 대통령은 ‘대동강의 기적’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고 “중국 길림성과 요녕성, 흑룡강성에 약 3억 명이 산다. 러시아 극동에도 5천만, 일본이 1억 2천만, 우리가 7천 5백만, 남북만 합치면 5,6억명의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조선시대 500년 이후 분단 70년은 긴 세월이 아니고 결국 통일될 것”이라며 “민족의 먼 장래를 보고 병행해서 사업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좀 동정어린 시선으로 봐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은 지난 16일 오후 5시 30분 서울 여의도 소재 한 사무실에서 황창환 대표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잡혀갈 각오하고 성사시켜 성공했다”

 

   
▲ 황창환 대표는 이윤구 전 적십자 총재와 함께 북한에 국수공장을 지어주는 일에 동참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결핵제로운동본부 이사로 활동했다. [사진 제공 - 황창환]
□ 통일뉴스 : 언제부터 경협 사업에 뛰어들었나?

 

■ 황창환 대표 : (북으로부터) 물건이 진짜 오기 시작한 건 95년이다.

□ 빠른 편인데,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 최근 양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윤구 전 적십자 총재이다. 미국에서 지난달 30일 갑자기 돌아가셔서 12일 YMCA에서 범시민단체 추모식을 했다.

1994년도에 월드비전 총재를 하셨는데, 그때 북한 식량난이 너무 심해 다 굶어죽으니까 국수공장을 만들어 주자고 하셨다. 내가 무역을 시작하려고 하던 참에 제안을 받아 그 일을 하게 됐다. 이 총재 말씀으로는 지금까지 600만명을 살렸다고 하더라. 그런 계기로 북한과 무역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거다.

□ 대북 지원사업에서 경협사업으로 전환은 언제 했나?

■ 원래 사업을 했고, 사업하려고 북한과 접촉했다. ‘물수건’을 하다가 이윤구 총재를 만난 것이다.

당시 이 총재는 유엔아동기금(UNISEF)에 근무하다가 오신지 얼마 안 됐다. 이 총재는 “북한에 우리민족이 다 굶어 죽는다. 아프리카에만 식량을 보낼 것이 아니라 북한에도 보내야 한다”고 했는데 성공했다.

김영삼 정부 때인데, 반대가 굉장했다. 잡혀갈 각오하고 성사시켜서 성공했다. 오늘날까지 월드비전이 북한에 인도적 지원사업을 잘하고 있다. SBS와는 1년에 한 번씩 ‘기아체험 모금운동’을 해 북한은 물론 아프리카, 제3세계 지원으로까지 확대됐다.

□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과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 김우중 회장이 남포공단을 만들 때, 같이 대화도 많이 했고,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나 꿈에 부풀었다. 김우중 회장의 북측 파트너가 내 파트너였다.

그러나 현실은 지금까지도 진전이 거의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정주영 회장까지 큰 뜻을 품고 일을 했는데도 결과물에 있어서는 굉장히 미약하지 않느냐.

남북 간에 상징적으로 개성공단이라는 것은 하나 만들었지만, 오늘 다시 6개월 만에야 재가동 됐다. 근 20년 몸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남북 경협은 크게 진전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변 경협업자 “숨만 쉬고 있다”

 

   
▲ 북한산 조개 반입 사업은 연매출 40억원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2010년 5.24조치라는 '날벼락'을 맞아 전면 중단됐다. 북한산 산품은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진은 북한산 조개 선별과정. [사진 제공 - 황창환]
□ 북한산 조개를 들여오는 사업을 한 것으로 안다.

■ 2003년부터 2010년 5.24조치 전까지 조개 반입 사업을 했다. 조개구이집에 들어가는 조개들이다. 보통 식탁에 올라가는 바지락은 물론, 조개구이집에 들어가는 조개 종류가 20가지가 넘는다. 5.24 전까지 마지막에는 연매출 40억원 정도로 안정권에 들어갈 시점이었는데 날벼락을 맞았다.

 

□ 5.24조치 이후에는 어떻게 지냈나?

■ ‘좀 길어야 1년 가지 않겠냐, 곧 풀리겠지’ 했는데 4년째로 접어들었다. 다른 일, 투 잡(two job)을 하다가 그랬으면 여파가 적었을 텐데 올인(all-in)을 했다. 나이도 있고 경험도 그렇고, 쉽게 안 되더라. 그렇다고 막노동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경험이 있어야지.

어렵게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천 개 경협기업 중 하나고 다들 어렵다고 봐야할 것이다. 개성공단에 대한 정부의 해결방법을 보니까 우리도 정부에서 좀 따뜻하게 감싸야 될 것 아닌가 생각된다.

□ 주변 경협업자들도 비슷한 상황일 것 같다.

■ 송이버섯을 들여왔던 모 사장의 경우도 5.24조치 이후 선불금을 준 물건만 들어온 뒤 2011년부터는 반입을 전혀 못해 파산 직전인 상황이다. 송이버섯은 지금 남북 경협이 풀리더라도 올해는 이미 늦었고 내년 9월에나 들여와야 하는 상황이다.

그 회사는 지금은 직원 2명이 관리만 하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아는데, 이 사장은 “숨만 쉬고 있다”고 말한다.

□ 추석 명절을 앞둔 심경은?

■ 일단 ‘장(長)’자가 붙으면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데 가장이 돼서 4년 동안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니까. 5.24조치로 집도 경매가 됐고, 돈이 없어서 자식들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서 집도 두 번이나 옮기게 됐다.

사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아이들과 와이프 보기도 부끄럽다. 잠시 떨어져 살았으면 하는 마음까지 든다. 비단 나뿐 아니라 경협에 올인했던 사람들은 거의 나와 같다고 보면 된다.

□ 자녀들은 다 컸을 것 같다.

■ 그나마 직장 다니고 자기 사업들 하니까 은행에서 5백만원, 천만원 정도 신용대출이 가능해 이번에 집을 옮겼다. 옮긴 지 2주도 안 됐다. 아무도 오지 말라고 한다. 다리뻗고 자는 정도다.

재개 전 개성공단 쪽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천재지변에 준하는 ‘재난 지역’ 선포 정도로 정부에서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의지에 상관없이 이런 사태가 발생해 본의 아니게 경협에 올인한 사람들이 모두 피해자가 돼 있다.

“경협 재개,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 개성공단은 정부의 집중적 관심 속에 재가동에 들어가지만 금강산과 내륙기업은 아직 전면 중단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 홍보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창환 대표가 개성공단 기업주들에게 축하의 장미꽃을 전달한 뒤 도라산 출입경사무소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제공 - 황창환]
□ 정부에게 어떤 대책을 바라나?

 

■ 이번 개성공단 사태는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서 해결한 것이고, 나머지 금강산이나 경협 관련자는 MB 정부에서 발생해 분리해서 조치를 취하는 것 아닌가 싶다.

박근혜 정부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MB 정부 때나 박근혜 정부 때나 경협을 한 국민은 똑같다는 것이다. 분리해서 대할 게 아니라 MB 정부 때 본의 아니게 피해를 당한 기업들에게도 생활 안정에 필요한 대출 정도는 해줘야 되지 않겠나.

□ 경협을 다시 재개할 수 있는 조건을 바라지 않나?

■ 과거를 자꾸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다. 천안함, 연평도, KAL기 사건, 아웅산 사건, 6.25까지 과거를 물고가면 한도 끝도 없다.

이 정부에 내가 희망을 가졌던 게 국정 제일 지표를 평화통일로 놓았다는 것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조찬에 가서 듣고 깜짝 놀랐는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서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기반 구축이 들어 있어 희망적으로 봤다.

과거에 너무 얽매여 미래가 발목잡히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경협이 재개되는 게 지금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삼국지에 보면 삼분정립(三分鼎立)이라는 말이 있다. 솥이 서있으려면 남북 다리로는 불안정하다. 경협이라는 다리가 하나 있으면 솥의 안정적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선경후정(先經後政)’으로 가야 한다.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 우리 한민족이 살아날 길은 북한에 있는 자원과 우수한 인력이고 우리의 우수한 과학기술력이다.

내가 처음에 북한하고 꿈을 가졌던 것도, 그런 것이었다. 정주영 회장이 소 1,001 마리 가지고 올라 간 이유도 그렇게 보는데, 지금도 늦지 않았다.

미래는 리더의 의사결정에 달려있다고 본다. 상황에 따라가지 말고 앞으로 우리민족을 이렇게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을 믿는다. 아버지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으면, 박근혜 대통령은 ‘대동강의 기적’을 만들어 달라.

중국 길림성과 요녕성, 흑룡강성에 약 3억 명이 산다. 러시아 극동에도 5천만, 일본이 1억 2천만, 우리가 7천 5백만, 남북만 합치면 5,6억명의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 이게 굉장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이나 아프리카나 앞으로 새로 뜨는 인도나 세계지도를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우리가 5만불 시대를 만들 수 있다.

나는 된다고 본다. 과거 가지고 자꾸 이야기하면 나갈 길이 안 보인다.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서 살아날 길은 남북이 화합해서, 정치적으로는 어려우니까 선경후정해서 남북이 하나가 되서 박근혜 대통령이 ‘신뢰 프로세스’에 걸맞게 나가야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 선경후정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20년 경협 경험이 말해주듯 정치적 이유로 경협이 많은 영향을 받지 않았나? 정치적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협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 그렇다. 이번에 대통령 선거 결과를 봐도 51:49다. 정치는 51%에게 5년을 맡기는 것이지만 51%가 지지했다고 해서 49%를 생각 안한다면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49%는 경협을 하라는 쪽으로 봐도 될 것이다. 51%를 잘 설득해서 끌고나가야 한다. 그게 정치다. 선경후정을 흔드는 것을 이런 지혜로 풀어가야 한다.

우리가 자중지란에 빠지면 나면 과연 누가 뒤에서 웃을까 생각해 봐야 한다. 중국과 대만도 장개석과 모택동이 싸울 때 엄청난 사람이 죽었지만 그래도 이 사람들은 화합했다. 여기서 뭘 느끼냐면, 우리 선조들이 대륙을 경영해봤다면 지금 이렇게 갈등의 골이 깊게 안 갈 것 같다. 만약 일본이 분단됐다면 우리 같지는 않을 것 같다. 일본은 대륙 경영을 시도해봤다. 우리가 가슴 사이즈를 키워야 한다.

“북한이 1만불만 되면 평화는 자동으로 온다”

□ 북한에 마지막 다녀온 게 언제인가?

■ 2010년 5.24조치 1주일 전쯤 개성에 가서 상담하고 왔다. 통일부는 그때 가지 말라고 했다. 5.4조치가 임박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5.24조치로 배가 못 다니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나처럼 20년간 북과 관계를 유지한 경우도 드물 것이다. 외상도 할 수 있고 항의하면 반품도 받아줬다.

□ 북측 지역에 공장이나 시설 같은 것도 있나?

■ 없다. 한창 원산에 수족관을 만들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바다에서 바로 잡은 것은 산품(産品)이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상품(商品)이다. 수족관을 만들어서 상품을 만들 계획이었다. 중요한 것은 북한도 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 원산에 폐선을 올려 보내서 조금만 수리하면 쓸 수 있다. 우리는 폐선을 돈 주고 사서 버리는데 북한에서는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폐선을 물고기와 조개로 물물 교환하는 것이다.

좋지 않은 에피소드도 많지만 나 같은 경우는 열심히 하려 했고 적극적이었다. 북한에 어떤 동력을 가해주면, 북한이 1만불만 되면 평화는 자동으로 온다. 북한 국민소득이 1만불 되면 평화가 오지 긴장이 지속되지 않으리라 본다. 북한 소득을 1만불까지 올려놔야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래서 대동강 기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 경협과정에서 어려운 점도 많았을 텐데.

■ 경협사업하는 1,000 여개 기업가들에게 인생이랑 똑 같다. 인생이 어느 때는 막히지만 한없이 막히지는 않는다. 태풍이 강하지만 계속 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좋은 미래를 생각하고 이 고통을 서로가 슬기롭게 잘 넘어가자는 말씀 드리고 싶다.

□ 소개할만한 경험담이 있다면?

■ 북한이 95년도에 나진-선봉을 남쪽 식으로 표현하면 개혁.개방했다. 그리고 나서 신의주 개방한다고 했는데 양빈 때문에 좌절됐고, 이번에 김정은 체제 들어서서 새롭게 제3의 개혁.개방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내가 볼 때 북한이 성공할 것 같다.

조선시대 500년 이후 분단 70년은 긴 세월이 아니고 결국 통일될 것이다. 이번에는 한국의 우수한 인력들이 북한과 손잡고 통일만 되면 세계를 호령하지 않을까 싶다. 중국도 호랑이고 일본도 호랑이라고 보는데, 우리 한국은 부채를 든 신선이 돼서 호랑이 두 마리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신선 옆에 호랑이 두 마리가 납작 엎드릴 것이다. 한국이 충분히 헤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러시아나 미국이나 우리를 둘러싼 4대 강국들도 우리가 얼마든지 신선이 돼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 경험담이라기 보다는 거시적 비전을 이야기 한 것 같다.

■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이야기 하고 싶다. 북한의 핵이 전 세계적인 이슈다. 그러나 그것은 거시적인 핵이고, 미시적인 핵을 봐야 된다. 북한의 어린이들이 핵보다 무서운 결핵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같은 민족이면 우리가 살려야 한다.

이 총재 돌아가시기 전까지 세계결핵제로운동본부(사)에서 나도 이사로 참여해 이 사업을 했다. 이 사업엔 우리나라 대표적 보수신문인 조선일보도 함께 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100억원 상당의 결핵약을 보내줬고, 5.24조치 이후 못 올라간 결핵약이 이번 인도적지원사업에 해당돼 올라가게 됐다. 아주 잘된 일이라 생각한다. 유효기간이 걱정이었는데 2억3천만원 정도 올라가게 된 것이 기쁘다.

“정부가 개성공단만 너무 옥동자마냥 하고...”

 

   
▲ 경협사업가이면서도 민족적 미래 비전을 고심하고 있는 황 대표는 어려운 가운데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오늘 아침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방북에 남북경협 비대위 소속 경협업자들이 시위를 한 것으로 안다.

 

■ 경협이 재개 됐으니까 같은 경협하는 사람으로서 축하하고, 또 하나 금강산이나 내륙기업들 길이 막혀있고 무역도 4년째 중단돼 하루라도 빨리 경협재개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간 것이다.

□ 개성공단 기업주들이 부러웠겠다.

■ 당연하다. 같은 경협인 입장에서 볼멘소리도 나올 수 있고 서운한 면도 있다. 정부가 개성공단만 너무 옥동자마냥 하고, 우리는 서자마냥 대우해 서운한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MB 정부와 달리 다시 한 번 협상해서 개성공단을 재가동한 것은 잘 한 일이다. 금강산도 재개되고, 그러다 보면 내륙기업이나 무역도 열리지 않겠냐는 희망이 있다. 앞당겨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이번 추석은 어려운 상황에서 지내게 됐는데 다음 설이나 추석에는 상황이 풀렸으면 좋겠다.

■ 두말하면 잔소리다. 가족들에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밥먹는 것도 미안해 죽겠다. 상황이 풀리면 바닷가 가서 조개구이도 같이 먹자.

그러나 마이너스만 있는 게 아니다. 옛말에 포의지교(布衣之交)라고 베옷 입고 어려운 시절에 만난 친구들이 우정이 오래가는 것이다. 이번에 그런 것을 우리가 얻은 것 같다.

□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나?

■ 홍성에 부모님 묘가 있어서 가긴 간다. 자식된 도리로 벌초는 내가 내려가서 해야 하지만 시간적으로 어려운데 사람이라도 사서 깎아야 되는데 그것도 못해서 조상묘를 어떻게 봐야될 지 모르겠다. 올해는 사실 벌초도 못했다.

□ 국민들과 네티즌에게 하고 싶은 말은?

■ 국민들이 경협하는 사람들 고충을 열에 한 명도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언론에서 좀더 많이 다뤄줘서 경협하는 사람들 내돈 벌려고 하는 사람들만 아니다. 민족의 먼 장래를 보고 병행해서 사업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좀 동정어린 시선으로 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영상] 개성공단 활기찬 출근길...생산가동률 60% 넘어

김도균 기자 vnews@vop.co.kr

입력 2013-09-20 10:26:58l수정 2013-09-20 10:58:32


19일 추석을 맞아 개성공단 입주기업 주재원들이 개성공단에서 합동차례를 지냈다고 개성공단 관리위원회가 전했다.

관리위원회는 이날 오전 10시30분 개성공단 종합관리센터 15층에서 우리 측 입주기업 주재원들을 위한 합동차례 행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기업 주재원과 시설관리 인원 등 현지에 체류중인 80~90명이 참여했다.

추석 당일에 남아 있는 남측 인원은 168명으로, 이들은 이날 하루만 쉰 뒤 20일부터 공장을 정상 가동하며, 북측 노동자들의 출근도 20일부터 정상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개성공단의 생산가동률은 첫 이틀간 55∼60% 수준이었으나 추석 연휴가 지난 뒤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 17일 버스를 타고 개성시 봉동리 개성공단으로 출근하는 북측 노동자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영상제공=개성공단관리위원회, 통일부)
 
언제 중단되었냐는 듯 재가동된 개성공단

개성공단이 지난 4월 3일 북한의 일방적인 통행 제한 조치로 가동 중단된지 160여 일 만에 재가동된 가운데 17일 오전 북한 개성시 봉동리 개성공단 J&J에서 노동자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영상] 개성공단 활기찬 출근길...생산가동률 60% 넘어

 

김도균 기자 vnews@vop.co.kr

입력 2013-09-20 10:26:58l수정 2013-09-20 10:58:32

기자 SNShttp://www.facebook.com/newsvop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집권 7개월, 국민저항(國民低抗)

[이기명 칼럼] 장기판에서 ‘졸장’당하면 도망칠 곳도 없다
 
이기명 | 2013-09-19 12:02:2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장군 받아라. ’국민저항‘이다’
내 장군도 받아라. 이것도 ‘국민저항’이다.

초딩 때 장기를 꽤 잘 뒀다. 방학 때 시골에 내려가 어른신들 장기 구경하면 얼씬도 못하게 했다. 훈수 둔다는 이유다. 따귀 맞아가며 훈수 둔다지 않던가. 멀리서 보면서도 ‘저건 아닌데’ 속을 태웠다.

요즘 ‘국민의 저항’이 화두다. 대통령도 야당대표도 모두 ‘국민 저항’을 입에 올린다. 대통령은 야당이 장외투쟁을 계속하면 국민이 저항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야당 대표는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외면하면 국민의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잘난 맛에 사는 정치평론가 교수들은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라고 비유한다. 지겨운 논평이다.

어느 누구의 말이 정당한지는 국민들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 솔직히 자기검열에 걸려서 공개적으로 말도 못하는 형편이다. 왜 이 지경이 됐는지는 분명하다.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압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판 결과도 안 본 조급한 결론이라고 시비를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다.

신뢰성에서는 바닥이지만 일부에서 하늘처럼 믿는 여론조사라는 것이 있다. 박대통령의 불통에도 불구하고 70%가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신뢰도 1위라는 <한겨레신문과 리서치플러스>가 실시한 9월17일 여론조사를 보자.

‘국민의 절반은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 보도 등에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이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새누리 지지자의 31.4%도 그렇게 생각한다. 10명 중 7명은 채 총장에 대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 3자회담에서 대통령이 ‘채동욱 기획낙마 설에 대해 그런 일 없다면서 법무장관의 채동욱 감찰지시가 잘 한 일’이라는 인식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채 총장이 혼외아들 여부를 가리기 위한 유전자 검사를 수용하고 <조선일보>를 상대로 소송까지 낸 상황에서 나온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에 대해서도 ‘유전자 검사 결과 등을 지켜본 뒤 감찰 여부를 결정했어야 한다’(37.5%), ‘확인되지 않은 의혹보도에 대한 감찰지시는 옳지 않다’(33.3%) 등 부정적 의견이 70.8%였다. 이번 조사는 지난 16일 전국 19살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집전화와 휴대전화를 절반씩 섞어 임의걸기 방식으로 진행했다. 95% 신뢰수준에 표본 오차는 ±3.4%다.

다른 여론조사는 어떤가. 내일신문의 여론조사를 보자.

내일신문은 전체 여론조사 대상 800명 중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평가자 552명에게 지지 이유를 물었더니 190명만 ‘실제로 일을 잘하고 있어서’라고 응답했다. 800명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23.8%다. 대신 박 대통령 지지율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일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어서(25.6%)’라는 응답이었다.

<내일신문>은 “현재의 국정수행에 대한 평가보다 기대감이 박 대통령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라며 “ ‘지지율’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있던 ‘실체적 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국민 10명중 7명은 채동욱 검찰총장이 지난 6개월 동안 검찰총장 직무를 잘해왔다고 긍정평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자.

18일 인터넷신문 <뷰앤폴>은 지난 16일 3자회담이 끝난 직후 여론조사를 했다. 전국 성인 휴대전화가입자 1천500명을 대상으로 지난 6개월간 채동욱의 직무평가를 한 결과 ‘잘 했다’가 68.5%로 조사됐다. ‘잘 못했다’는 17.8%에 그쳤다. 무응답은 13.8%였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도 잘했다가 64.7%, 잘못했다 22.1%다. 대구경북도 잘했다가 70.1%, 잘못했다는 21.4%로 긍정평가가 압도적이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55.3%로 지난 9일 조사 때보다 2.1%포인트 하락했다. 부정평가는 34.5%였으며, 무응답은 10.1%였다.

국민들은 3자 회담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민낯을 확인했다. 그의 '지지율 거품'은 이번 추석이 지난 후 들어날 것이다.

왜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까. 공정한 여론조사라면 국민들의 상식이 반영된다. 그래서 상식이 무섭고 국민이 두렵다는 것이다.

정치는 대통령 혼자 하는가.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과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의 정치는 대통령 혼자서 다 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했고 심기 살피느라 말도 제대로 못했다. 이런 독재밑에서 정치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반드시 썩듯이 소통이 멈춘 정치는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세종대왕같은 성군도 신하와 백성과 소통이 있었기에 현군이 될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불통이라고 한다. 매우 불행한 일이다. 성장과장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세상 돌아가는 거 다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사람을 쓰는 용인술에 문제가 있다. 도대체 초원복집 사건의 주인공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하는 용인술에 박수를 보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대화는 힘 있는 사람이 가슴을 열어야 이루어 질 수 있다. 힘이 있으니 너희들은 따라와 하면 설사 따라 간다 해도 진정한 대화는 없다. 더구나 지금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는 결코 정치가 성공할 수 없는 시대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힘이다. 강권이다. 강권이 언제까지 갈 수 있는가. 길어 봤자 4년 반이다. 연속 드라마도 재미없으면 시청자의 외면으로 조기 종영이 된다. 정치도 다를 것 없다.

남의 얘기 들어야 내 모습이 보인다.

한인섭 교수는 법학을 가르치는 서울대 법대 교수다. 그의 제자 검사들도 수두룩할 것이다. 한인섭 교수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의 말을 경철하자.

“야당이 장외투쟁 고집하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박대통령이 말하는데. 야당이 국민저항에 직면한다는 발언은 머리 털 나고 처음 들어봤다. 국민의 저항권은 야당이 아니라 언제나 집권자와 독재자를 겨냥하게 되는 것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의 선거개입 공판이 지금 국민의 주시속에 진행되고 있다. 공판팀의 A검사는 15일 검찰 내부 게시판에 ‘검찰수사 외압 및 검찰총장 음해 의혹’을 정리했다.

“민정비서관은 일부 검사에게 조선일보 보도 예정 사실을 알렸고, 그 무렵 일부 검사에게는 총장이 곧 그만 둘 것이니 동요치 말라는 입장을 전달하였다”

지금껏 민정비서관이 “검찰총장이 곧 그만 둘 것이다”라는 발언한 사실은 알려졌지만, “조선일보의 ‘혼외아들’ 보도를 검사들에게 예고했다”는 주장은 처음 밝혀진 것이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8월 한달간 채 총장에 대한 ‘사찰’이 (청와대에 의해) 비밀리에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A검사는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과정에 있었던 외압사실도 조목조목 기록했다.

민정에서는 국정원 사건 결론 전에 공선법 위반이 어렵다고 검토의견을 정했고, 민정수석은 수사지휘 라인에 있는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공직 선거법 위반’기소가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또 특별수사팀이 기소 뒤 수사과정에서 추가 압수수색 등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민정과 법무부는 부적절 입장을 피력하였다”고 주장했다.

A검사는 자신이 거론한 의혹들에 대해 “법에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수사 외압이 직권남용 등으로 처벌받은 전례가 있고 위법한 방법을 통한 음해 정보 취득 및 사용등 역시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안달하지 말라. 잘하면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추석민심에 신경을 세운다. 그러나 잘하면 된다. 잘못하면서 민심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건 도둑놈 심보다. 잘하면 국민들은 지지하지 말라고 고사를 지내도 지지한다.

앞 뒤 문 꽁꽁 닫아 걸고 대화를 거부하는 대통령을 국민이 어떻게 평가할까. 대선에 관여해서 국민의 공정한 선택을 망친 국정원과 경찰을 국민이 지지하면 그게 이상하다. 이들 민주정치를 방해한 반민주 세력들과 온 몸으로 싸우는 것은 야당의 의무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것을 방기한다면 국민은 야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그들은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여.야당 의원들이 서울역에 나가 홍보전단을 귀성객들에게 돌린다. 항상 보는 현상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천박함은 어디에서도 입질에 오른다.

“누가 대한민국의 적을 국회에 들였습니까”란 제목의 홍보 책자 27만부에는 새누리당 의정활동 성과 보다 야당에 대한 비판과 야당 대표를 희화화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천막 당사에서 노숙 중인 김한길 대표의 사진과 함께 한 개그 프로그램 유행어를 패러디해 ‘한길 오빠, 노숙하고 가실게요~’라는 제목을 달았다.

제목 밑에 “호화로운 이불, 침대, 노트북, 전깃불까지 다 있네”, “이게 노숙이냐, 캠핑이지”
라는 글이 네티즌의 이름을 빌려 실렸다.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짓이 아니다. 욕 먹지 못해서 환장을 했는가.

장기판도 사기를 치면 구경꾼이 판을 엎는다.

청와대와 국정원과 새누리와 경찰과 조선일보가 한통속이 되어 대선에 관여했다는 증거는 속속 등장한다. 미운 오리새끼 채동욱을 조선일보의 추잡한 ‘혼외자녀’기사로 묶어 내 쫓았다는 것도 국민들은 믿고 있다. 새누리는 몸살이 날 것이다. 추석이 원수같은 집단이 있을 것이다.

잘못하면 매를 맞는 것이 당연하다. 머슴이 잘못하면 새경도 못 받고 쫓겨난다. 장기판에서 사기를 치면 관전하던 훈수꾼들이 판을 엎어 버린다. 훈수꾼이 누군가. 바로 국민이다.


이 기 명(팩트TV논설위원장)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0년만에 동생 만난다. 좋다"

"60년만에 동생 만난다. 좋다"

 

북녘 여동생들 만나는 허경옥 할머니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09.19 14:44:57
트위터 페이스북

 

 

   
▲ 오는 25일 금강산 이산가족상봉 행사에서 북측의 두 동생을 만나는 허경옥 할머니. 할머니는 60여년 만에 동생들을 만나는 기쁨을 연신 '좋다'고 표현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1951년 추운 날씨만큼 매서운 전쟁의 포성이 끊이지 않았다. 1.4후퇴의 피난행렬 속에는 남편이 있었다.

개성시 고려동 427번지. 부지런하던 시어머니 밑에서 신혼살림을 살던 25살의 허경옥. 말로만 듣던 망부석 인생이 될 뻔 했던 그에게 이듬해인 1952년 남편에게 소식이 왔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나루터로 오라.'

그렇게 한살박이 아들을 업고 깊은 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나루터에 왔건만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배 한 척이 내려오자 어머니들은 그녀의 등을 떠밀며 배에 태웠다.

그날 밤 나루터에 서있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1년이면 개성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60년이 흘렀다.

오는 25일 금강산에서 추석계기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열린다. 이번 행사에 남측에서는 96명, 북측에서는 100명이 서로의 가족을 만난다.

그 중에 허경옥 할머니가 포함됐다. 어두운 밤, 개성 어느 나루터를 떠나던 25살의 새색시는 85세의 할머니가 됐다.

이산가족 대상자가 확정, 통보되던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개성상회'를 운영하는 허경옥 할머니를 <통일뉴스>가 만났다.

 

   
▲ 허경옥 할머니.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개성상회'는 할머니와 남편의 고향에서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개성에서 태어나 피난내려오던 1살의 아들은 어느덧 할아버지가 되어 대를 이어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허경옥 할머니는 1남 4녀의 장녀로 이번에 셋째, 넷째 여동생 허유강, 허옥진을 만난다. 둘째 동생은 확인 불가, 막내 남동생은 사망했다는 소식을 대한적십자사가 알려왔다.

60년 전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동생들을 만날 생각에 허경옥 할머니는 "어떻게 살았느냐. 좋다라는 말 외에 더 뭘 말해야 하겠느냐"고 소감을 밝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동생 생각나죠. 안 날 수 없죠. 핏줄인데"라고 말을 흐리는 할머니는 동생을 찾던 지난 세월도 떠올렸다.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할 때부터 동생을 찾았어요. 소식이 없더라고. 적십자에도 이야기했어. 작년에는 여기 와서 사진도 찍어가더라고. 아무런 말이 없데. 그런데 시방 내가 살아서 이번에 만나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무슨 말을 어찌 더 해요."

60여년 전 밤. 피난을 내려온 허경옥 할머니는 김포 나루터에서 남편을 찾았다. 남편과 김포에 살다가 서울로 왔다. 그리고 통인시장 터줏대감으로 '개성상회'를 운영했다. 남편은 당장 고향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집도 사지 않았다. 고향가는데 집을 사서 뭐하냐고.

고향을 그리던 남편은 30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고향의 가족들을 그리던 남편을 대신해 허경옥 할머니는 시누이들도 찾으려고 했다.

 

   
▲ 허경옥 할머니의 이야기를 7살 증손녀가 듣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시댁식구도 상봉 희망대상자 명단에 적었는데 말이 없데. 시누가 둘이거든. 남편이 없으니까 시집식구들은 안쳐주나 보다 했어요. 적을 적에는 시누들도 적었는데. 남편이 얼마나 고대했다구."

자신의 혈육만 만난다는 생각에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허경옥 할머니는 혹시라도 몸이 안 좋다고 하면 못 만나게 할까봐 아프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사실 혼자서 못 가죠. 난 딸이랑 같이 가려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혹시라도 아프다고 하면 못 만나게 할까봐 걸어갈 수 있다고 했어요. 혼자 걸어서 동생들 만나겠다."

연신 '좋다'는 허경옥 할머니의 표현은 이산가족의 애환을 느끼지 못하는 젊은 기자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 '좋다'는 말로 부족한 듯 같은 질문을 거듭 했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답변은 '좋다'.

'좋다'라는 의미를 제대로 읽을 수 없지만, 25일 금강산에서 동생들과 얼싸 안을 허경옥 할머니의 모습. 상상하면 '좋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日 기상청 "지금도 멜트다운 진행, 막대한 방사성 물질 배출"

[후쿠시마 아마겟돈]<9>국회 입법조사처 "수산물 일부 수입 금지 효과 없다"

이승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9-20 오전 10:29:49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9일 후쿠시마 원전을 방문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두 번째 방문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7일 2020년 올림픽 개최치 선정을 위한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가 항만 내에 완벽하게 차단되고 있다"고 큰소리친 이후 올림픽 유치를 위한 '완벽한 거짓말'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때문에 이번 방문은 일본 내에서조차 총리의 발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이벤트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역시 아베 총리는 이번 방문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영향이 원전 전용 항만의 0.3㎢ 안의 범위에서 완전 차단되고 있다"는 발언을 되풀했다.

▲ 명찰이 아니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방호복을 입은 채 19일 후쿠시마 원전을 방문한 아베 총리. ⓒAP=연합


아베 총리의 거짓말 증명한 일본 기상청 연구 발표

하지만 바로 전날 일본 기상청의 한 연구원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과학포럼에서 총리의 발언을 정면 부정하는 발표를 했다.

아오야마 미치오(靑山道夫) 일본 기상청 기상연구소 주임연구원은 이 발표를 통해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성 물질인 세슘 137과 스트론튬 90이 하루에 약 600억 베크렐씩 태평양으로 방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아오아먀 연구원은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의 원자로 건물 쪽에서 원전 내 항만으로 배출된 세슘 137과 스트론튬 90이 5·6호기 쪽 취수구로 들어갔다가 항만 외부로 연결된 배수구를 따라 태평양으로 흘러나간다"고 구체적인 경로까지 밝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인 2011년 3월 26부터 같은 해 4월 7일에는 배출구에서 세슘 137이 하루에 약 100조베크렐씩 배출됐고 차츰 감소해 지금은 300억베크렐 정도 나오는 것으로 파악됐다. 스트론튬 90도 300억베크렐 가량 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아오야마 연구원의 발표에 대해 "기준치 이하로 희석돼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방사능의 해양오염에 대해 경고하는 전문가들은 농도를 기준으로 삼아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안이한 대응이라고 지적한다. 방사성 물질의 배출 총량에 대한 법적인 규제가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용융 연료, 물과 직접 접촉하고 있는 것 틀림없다"

아오야마 연구원도 "후쿠시마 앞바다에 어류가 서식하면 방사성 물질이 농축돼 일본이 정한 규제치를 초과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아오야마 연구원은 "배출되는 세슘 137과 스트론튬 90의 비율 등으로 미뤄볼 때 원자로 건물 지하에서 용융 연료와 직접 접촉한 물이 흘러나오는 게 틀림없다"고 분석했다.

한편,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를 포함한 8개 현에 대해 수산물 전면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철회를 공식 요구한 것에 대해 반박하듯, 19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 "전면적인 수입금지 조치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제안했다.

입법조사처는 이날 현안 보고서에서 "정부가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의 모든 수산물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취했지만, 이후로도 국민적 불안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면서 "일본산 수산물의 방사성 물질 검출수준이 적다고 하더라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입법조사처는 "단기적으로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거나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준이 정상화될 때까지 전면적인 수입금지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는 식품 안전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한다는 측면에서 비용 대비 가장 효율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일본 죄악의 대가 받아 내려는 의지 변함없다

북, 과거죄악의 대가 결산하고 말 것
 
일본 죄악의 대가 받아 내려는 의지 변함없다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9/20 [10:20]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민족에게 저지른 갖은 죄악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결산하려는 의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경고해 나섰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정세론 해설을 20일 통해 1875년 9월 20일에 있은 운양호 사건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뒤 “지난날 우리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무참히 유린하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일본의 죄악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려는 우리 인민의 의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며 일본이 과거청산에 나설 것을 강조했다.

로동신문 정세론해설은 “침략과 약탈은 제국주의의 속성이며 제국주의나라치고 침략과 약탈을 일삼지 않은 나라는 없다. 그러나 세상에 생겨 나자부터 탐욕스러운 침략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호전성과 포악성을 드러내놓으면서 해적질과 싸움질, 약탈을 업으로 삼은 일본군국주의자들과 같은 날강도 무리는 제국주의의 침략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신문 정세론 해설은 “일제가 조작한 《운양》호 사건은 그 대표적 실례”라면서 “1875년 9월 20일은 일본침략자들이 《운양》호침입 사건을 조작한 날로 138년전 이날 일본침략자들은 무력을 통한 위협과 공갈의 방법으로 조선봉건정부를 굴복시키고 예속적이며 불평등한 침략조약을 강압적으로 조작할 목적 밑에 《운양》호 사건을 일으켰다.”고 전했다.

신문 정세론 해설은 “19세기 후반기 후진자본주의국가로 등장한 일본은 조선침략교리인 《정한론》을 부르짖으면서 그 실현에 달라붙었다.”며 “1875년 5월 침략선 《운양》호를 부산항에 불법 침입시켰다. 파렴치한 일본침략자들은 뻔뻔스럽게도 그것을 《정기적인 연습항해》라고 정당화해 나섰다. 일본침략자들은 그 무슨 《발포연습》을 한다고 하면서 위세를 돋구었다. 날강도들은 조선이 저들의 힘앞에 위압 되어 스스로 굴복할 것이라고 타산하였다. 하지만 일이 저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그해 9월 일본침략자들은 항로를 측량한다는 구실 밑에 《운양》호를 강화도앞바다에 또다시 침입시켰다.”고 강도적 침략사를 지적했다.

정세론 해설은 “일본침략자들은 치밀한 계획 밑에 물이 떨어졌다는 구실을 내대면서 중요한 요새인 초지진포대근처에까지 들어왔다.”며 “강화해협과 초지진을 지키고 있던 수비병들은 일본침략무리들을 단호히 격퇴해버렸다. 그러나 《운양》호의 침략무리들은 저들의 기도를 버리지 않고 방어가 약한 섬들에 기여들어 포대를 파괴하고 민가에 불을 지르며 평화적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수비병들은 일본침략무리들에게 된 타격을 가하여 날강도들을 쫓아냈다. 이것이 바로 일본침략자들이 조작한 《운양》호사건의 진상"이라고 운양호 사건의 긴실을 고발했다.

또한 “남의영해에 들어가자면 해당 나라의 사전승인을 받는 것이 국제법상요구이며 국제관례이다. 그러나 침략의 무리들은 국제법도 국제관례도 안중에 없었다.”며 “교활하고 파렴치한 일제는 ‘조선측이 일본에 대해 적대행위를 하였다.’고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생트집을 걸면서 강도적 요구를 들고 나왔다.”고 단죄했다.

이어 “일제는 대포와 군함에 의한 노골적인 협박, 공갈로 1876년 2월 27일 12개 조항으로 된 불법 무효한 《강화도조약》을 강압적으로 조작하였다.”며 “일제는 이 《조약》을 통해 우리나라의 항구들을 개방하고 조선연해에 대한 측량과 해도 작성권을 일본에 허용하게 하는 등 우리나라에 침략의 검은손을 깊숙이 뻗쳤다. ‘강화도조약’은 철두철미 우리나라를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일본통치층의 모략의 산물로서 조선민족의 자주권과 존엄, 이익을 난폭하게 침해한 불평등한 《조약》이었다.”고 고발했다.

아울러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날강도적인 ‘강화도조약’을 조작하고 무력에 의한 조선침략의 서막을 열어놓은 일본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 깊숙이 침투하였으며 1900년대에 들어와서는 무력으로 우리나라를 완전히 비법강점하고 40여년 동안에 걸쳐 전대미문의 식민지파쇼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 수 없는 불행과 고통, 재난을 들씌웠다.”고 덧붙였다.

특히 “식민지통치기간 일제는 모자라는 인적자원을 보충하기 위해 조선청장년들을 강제연행, 납치하여 중세기적인 노예노동을 강요하였고 전쟁 대포밥으로 써먹었다.”고 고발하고 “일제는 또한 조선여성들을 강제연행, 납치, 유괴하여 성노예로 만들었으며 그들의 대부분을 학살하는 야수적 만행을 감행하였다. 이처럼 일본은 우리 인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가해자”라고 폭로 규탄했다.

로동신문 정세론 해설은 “남에게 피해를 준 가해자가 그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하는 것은 법적, 도덕적 의무이며 국제법적요구이고 국제 관례”라면서 “지난날 우리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무참히 유린하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일본의 죄악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려는 우리 인민의 의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일본은 우리 인민의 대일감정을 똑바로 보고 죄 많은 과거를 청산하여야 한다.”고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채동욱 사태는 유신재건 막장극이다

채동욱 사태는 유신재건 막장극이다

불철주야2013/09/18 22:19Posted by 동북아의 붉은_달

일상적 공안정국을 펼치기 위해서는 검찰의 협조가 필수다. 검찰총장이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하면서 정치검찰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채 총장은 원래부터 박근혜 정부가 마음에 들어 하던 검찰총장도 아닐뿐더러 실제로도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채동욱 사태는 유신재건 막장극이다

 

동북아의 문
http://namoon.tistory.com

 

13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전격 사퇴했다. 6일 조선일보가 이른바 <혼외 자식> 의혹을 제기한 지 일주일만이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과반은 채 총장 사퇴가 청와대의 외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채 총장 사퇴는 대체 누구의 작품일까?

 

청와대와 국정원의 합작품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그전부터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이 채 총장을 사찰하고 있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알려지고 퍼져 있었다≫며 ≪곽 전 수석이 (8월5일) 해임되면서 (휘하의) 이중희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채 총장의 사찰자료 파일을 넘겨줬고, 본격적으로 8월 한달 동안 채 총장을 사찰했다≫, ≪사찰 내용은 이 비서관과 김광수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단둘만 연락하며 유지가 됐다. 심지어 이 비서관은 김 부장에게 ‘채 총장이 곧 날아간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 주장에 따르면 청와대-국정원-검찰 일부가 기획하고 조선일보-법무부장관이 실행한 게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사건인 셈이다. 국정원의 경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로 곤욕을 치르고 있으므로 검찰을 견제할 이유가 더욱 뚜렷하다.

 

노컷뉴스는 9월 13일자 보도 <채동욱 사퇴, 김기춘-홍경식-황교안 합작품?…검찰 독립 ‘요원’>을 통해 이번 사건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홍경식 민정수석,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합작품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채 총장이 청와대의 의중을 따르지 않자 이를 통제하지 못한 곽상도 민정수석이 경질되고 후임으로 채 총장보다 연수원 6기나 앞서는 대선배인 홍경식 민정수석이 등장했고 같은 공안통인 김기춘도 비서실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채 총장을 밀어냈을까?

 

정부의 눈 밖에 난 채동욱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채 총장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청와대의 의중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떠올릴 수 있다. 채 총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사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선거법 적용으로 볼 수 없다며 압력을 가했다. 채 총장은 결국 선거법을 적용하면서 불구속으로 처리해 절충점을 찾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개인 비리혐의로 원 전 원장을 기어이 구속시켰다.

 

이처럼 청와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채 총장이 이들에게 눈엣가시였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갖는 사안의 엄중함에 비춰볼 때 더욱 그렇다. 전 국정원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는 건 정부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뜻이며 이는 현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와대와 국정원이 야심차게 준비한 내란음모 조작사건에 대해서도 검찰은 공중전화 감청이나, 이른바 <혁명조직(RO)>에 공무원이 참석했다거나, 김미희 의원이 총책이라는 언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사실 채 총장은 처음부터 청와대의 마음에 드는 검찰총장이 아니었다.

 

채 총장은 지난 4월 4일 39대 검찰총장으로 취임했다. 처음으로 외부인사로 구성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가 추천한 후보자들 가운데서 임명된 총장이기에 검찰 안팎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다. 그러나 청와대의 시각은 달랐다. 추천위 구성에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이는 법무부장관인데 당시 장관은 이명박 정부 마지막 법무부장관이었던 권재진이었다. 친박계를 견제하던 친이계가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채동욱이 검찰총장으로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자 청와대는 추천위를 다시 열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만큼 채 총장이 싫었던 것이다.

 

채 총장은 정치권에 빚진 게 없다보니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검찰을 지휘할 수 있었다. 청와대는 당연히 불편해했다. 박근혜 정부는 청와대 의중을 따르는 검찰이 필요했지 독자적인 행보를 걷는 검찰은 필요 없었던 것이다.

 

채 총장 사퇴는 유신재건 막장극

 

박근혜 정부가 검찰에게 바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의 핵심 인물들을 보면 답이 나온다.

 

8월 6일자 한겨레 인터넷판 보도 <5공때 ‘육법당’ 떠올리게하는 박대통령 안보·사정 비서진>은 박근혜 정부의 주요 참모진을 <육법당>과 비교했다. 육법당이란 과거 군부독재 시절 육군사관학교(육사) 출신 정치인들과 서울대 법대 출신 법률가들이 정권을 지탱해주던 체제를 말한다. 법조인 출신 가운데 특히 박근혜 정부에는 공안검사 출신이 많다. 대표적인 육사 출신 인물로 남재준 국정원장,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 김관진 국방부장관 등이 있고, 공안검사 출신 인물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홍경식 민정수석, 황교안 법무부장관,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있다.

 

이것만 봐도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정부의 뒤를 이어 유신독재체제를 재건하고 긴급조치시대, 즉 일상적 공안정국을 펼치려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일상적 공안정국을 펼치기 위해서는 검찰의 협조가 필수다. 검찰총장이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하면서 정치검찰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채 총장은 원래부터 박근혜 정부가 마음에 들어 하던 검찰총장도 아닐뿐더러 실제로도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낸 것이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채 총장 사퇴와 관련해 13일 트위터를 통해 ≪어쩐지 공안정국으로 향하는 열차를 탄 기분입니다≫라고 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박근혜 정부의 유신재건 막장극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김기춘 비서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은 막후에서, 때론 전면에서 이 막장극을 주도하고 있다. 해외 패션쇼에만 관심을 쏟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이들의 꼭두각시가 된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이제 남은 건 유신독재를 무너뜨린 것처럼 국민들이 나서는 것뿐이다. (2013.9.18.)

 

 


<동북아의 문> 은 매일 아침 8시~9시에 <아침브리핑>을 통해 전날 주요 뉴스를 소개합니다.
더 많은 <동북아의 문>의 글을 보시려면 이곳을 클릭!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