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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길재 통일부장관님, 장관 할 만합니까?

류길재 통일부장관님, 장관 할 만합니까?

 

<서신> 김광수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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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20 02:15:18

 

김광수 / 정치학(북한정치)박사,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

1. 들어가며

교수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제가 교수님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5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사 연구’라는 과목을 통해서였지요. 당시에도 흰머리가 많았는데, 장관이 된 지금은 더 많은 흰머리를 가지셨더군요. 그때 교수님은 항상 저에게 ‘김 선생’이라 불렀지요. 아마도 갓 40대에 진입하여 새롭게 공부를 시작한 만학도에 대한 나름의 예의셨다고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또한 항상 교수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김 선생은 총론에는 매우 강한데, 팩트(fact)에 약해. 학술연구는 구체적 사실에 근거해야지, 운동권적 논리로 접근하면 안 돼.”

세월은 흘러 장관으로 옷을 갈아입은 교수님의 모습을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뻤고, 한편으로는 불안했습니다. 이 마음의 연장선상에서 저는 지금 교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교수님, 통일부 장관직 할 만합니까?” 이 질문에는 교수님마저도 여타의 교수들이 그러하였듯이 그렇고 그런 ‘폴리페서(polifessor)’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고, 이 우려는 실제 교수님께서 박 대통령의 치마폭에 쌓여 남북관계의 상호주의가 탄력적으로 기능할 때만 작동될 수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광폭적인’ 상상력으로 돌파하지 못하는 한 지금 현 단계에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인식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역사의 기록에 ‘또 다른 한명으로 기록될 폴리페서로 말입니다.’

저의 이런 과문한 걱정이 교수님께서 듣지 않아도 되는 쓴 소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은 듯합니다. 교수님을 둘러싼 환경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뜻이자 대타로 투입된 교수님의 정치력이 발휘될 수 없다는 우려가 있는데다 벌써부터 왕따보다 더 자존심 상하는 ‘은따’(무리에 섞여 있고 대화도 되는 듯하지만 알고 보니 따돌림을 받는 현상, 속칭 '은근히 따돌린다'해서 나온 은어)되고 있는 교수님을 보고 있으면 그럴 바에야 왜 통일부장관이 되었냐 싶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폴리페서들이 걸었던 “학자적 양심보다 입신양명이 더 좋아서?” 이 물음이 저를 떠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더 가슴 아프게 하였던 것은 교수님께서 벌써부터 꼼수정치를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꼼수가 정치가 아니라 하면, 그 예는 지난해 12월 12일 북한의 제3차 핵실험으로부터 조성된 한반도의 전쟁국면이 현재까지 타개되지 않은 상황 하에서 개성공단 정상화와 관련하여 통일부장관 자격으로 북한은 ‘정부의 대화제의에 응답을 해야 한다(5.15)’고 밝혔지요. 과연 북한이 답변이 올 것을 알면서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까? 정말 그런 기대를 갖고 했다면 교수님 야말로 왜 강단에서 그렇게 ‘새빠지게’ 연구를 했는지 매우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그 이유는 ‘2. 본질과 현상, 철학으로 정세를 읽다’에서 밝혀질 것입니다). 또한 팩트에 강한 연구자의 한계를 보고 있는듯하여 저는 매우 씁쓸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장관님보다 팩트에 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북한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면 풀 수 있다는 것 정도는 교수님보다 한 수 위입니다. 왜냐고요? 북한문제는 팩트나 정치공학적으로 풀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총론과 팩트의 통합, 더 나아가 철학(사상)과 역사의 결합으로 인식될 때만이 북한 문제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즉 주체사상․선군사상 ⇒ 당․군 유일체제 ⇒ 선군사회주의국가 ⇒ 수령제사회주의 ⇔ 강성국가 건설이라는 프레임으로 보아야만 북한문제의 해법이 보인다는 것이지요.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그 예에서 증명되지요. 개성공단 (잠정)폐쇄의 근본요인이 ‘최고 국가존엄에 대한 훼손’, ‘정전체제의 첨병지대로의 전락’이라는 구도 하에 개성공단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북한에게 그러한 조건과 요인들에 대한 성의 있는 제거방안 없이 그냥 대화하자고 한다면 북한이 과연 대화에 나올까요?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북한문제는 총론과 팩트의 통합인식으로 가능한 것이지, 팩트에 근거한 정치적 해법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제가 뜬금없는 개성공단 정상화 대화제의는 꼼수라는 것이며 이것은 학문을 연구한 ‘교수’ 장관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선택 중의 하나였던 것이지요. ‘진정성’ 없는 정치, 벌서부터 교수님은 그 더러운 구정물에 발을 담그셨습니다.

교수님, 그래서 제가 감히 충고 하나 하겠습니다. 옛날에는 ‘파당’을 통해 네편 내편을 갈랐지만 그래도 출사의 도라는 것이 있었지요. 새 임금이 들어서면(자기와 정치적 색깔이 맞지 않다든지, 임금으로 섬기고 싶지 않던 등등) 임금의 부름에도 온갖 핑계를 대어 근정전으로 들어가지 않았지요. 그리고 이유야 어떻던 출사하였으면 직언(直言)하는 도리가 있었지요. “‘교수’ 장관님은, 지금 박 대통령에게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2. 본질과 현상, 철학으로 정세를 읽다

지금 조성된 정세는 장관님에게 다음과 질문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물이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발전하는 것이라면, 그 과정-변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그 변화 발전을 추동하는 핵이 있기 마련이고, 이 추동 핵에 의해 모든 사물의 성격이 규정된다 했을 때 지금 정세를 추동하는 핵심 추동력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데서부터 장관님의 첫 업무가 시작되어 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 놓고 본다면 이 문제는 바로 본질과 현상의 문제이며, 철학의 눈으로 정세를 읽을 때만이 현재 조성된 정세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장관님, 사전적 의미에 있어 본질(本質)은 ‘그것이 그것으로서 있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현상(現象, Phenomenon)은 ‘실제로 드러나 있는 것,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을 말할 텐데, 이를 철학적 의미로 해석할 때 저는 <본질>이 사물의 존재와 발전의 기초로 되는 상대적으로 공고화한 내적 측면, 요소 과정의 총체를 말하며 <현상>이란 본질의 발현으로서 상대적으로 가변적인 외적측면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관계의 규정적인 것은 본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현상이 본질을 드러낼 때 왜곡하게 드러내는 가상(假相)이라는 성질이 있어 본질을 읽어냄에 있어 매우 신중해야한다’는 인식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이를 현재 조성된(혹은, 당분간 전개될) 한반도 정세에 적용하여 보면 저는 현 정세의 기본 축이 북-미관계이며 이 북-미관계가 풀어져야 종국적으로 남-북관계도 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현재 조성된 한반도 전쟁국면의 본질이 북-미간의 마지막 남은 최후결전(‘판가리’) 대결국면에서 형성된 유탄으로 인식하는 것이 보다 현재 조성된 한반도 정세를 정확히 읽어 내는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이 인과관계를 간과하는 순간, 한반도 전쟁국면의 본질이 남-북 전쟁대결로 인식되는 이론학적 오류를 범하게 되는, 즉 ‘드러나는’ 현상이 ‘숨어있는’ 본질을 왜곡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감히 장관님께 다음과 같이 정세를 인식해주길 간청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북한이 그 어떤 정치․군사적 의도를 갖고 미국을 상대하고 있는가가 현재 조성된 한반도 전쟁국면의 정세 본질이라 했을 때, 그 ‘어떤’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잘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북한이 지난 60년간 지속되어온 북-미간의 판가리(‘최후결전’) 싸움을 끝내고자 하는 것이고, 그 중심 고리를 정전체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북한은 한반도에서 정전체제를 대신하여 평화체제가 수립되지 않는다면 ‘전쟁을 머금고’ 있는 정전체제로 인해 한반도위기가 구조화․일상화․상시화될 수밖에 없다는 결정적 메시지를 미국에게 보내고, 또 다른 한편으로 미국에게 종속되어 있다고 보는 박근혜 정권에게는 미국에게 그러한 길-평화제제에 나서게 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해 달라는 강한 주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말입니다.

이를 아래와 같은 <도표>로서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개념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바마 정부) 이전

(오바마 정부) 이후

세계체제

미 유일강국체제

G2체제 성립

동북아체제

(미국의 관점)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이전(견제와 균형)

아시아로의 중심축((Pivot to Asia)이동

(견제로 무게중심 이동)

북-미체제

(북한의 주장)

비핵화, 북-미수교,

경제정상화(개혁․개방)

비확산, 한반도통일,

동북아의 전략국가(북한)

남-미체제

가치동맹

(지정학적)중국 포위 전략의 하위토대로서의 한-미동맹

 

또한 위 도표에서 확인받는 정세는 현재 조성된 남북관계의 위기의 본질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의 결과물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현재 조성된 한반도의 전쟁국면이 남-북간에 조성된 위기국면이라기보다는 북한이 미국에 보내는 메시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다시 북한이 왜 그토록 집착해서 정전협정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는지가 잘 읽혀져야 하는데, 다름 아닌 (남·북간의 전쟁고조는 역설적으로) 미국에게 빨리 우리(북)와 하루 빨리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평화체제로 전환하자는 북한의 대미압박 전략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입니다.

다음으로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정책에서 → ‘북핵 활용론’으로 대변되어지는 ‘한반도 관여’전략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한반도 관여를 통한 대중국 포위전략과 MD체제 구축의 명분으로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얻어지는 전리품, 우리 대한민국으로부터 수억 달러에 달하는 군수품 판매(안보 상업주의)의 이득도 얻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국면이 장기화 된다면 미국도 잃을 수 있는 상품이 있기 때문에 미국에게도 마냥 좋은 정세국면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미국의 딜레마(dilemma)로서 존재하는 NPT체제 상품이 그것이고, 마냥 좋은 정세 국면이 아니라 함은 장기화 되면 그 상품체제가 흔들린다는 것이지요. 즉 ‘비핵화’와 ‘비확산’의 선택 기로에 서게 되고, 이후 이 현실은 북한과의 관계설정에 있어 <인도·파키스탄 모델 →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 비핵화·주한미군철수>라는 로드맵을 북한에게 제시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미국에게는 있는 것이지요.

장관님, 제가 너무 과도한 분석을 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장관님도 아시다시피 북한이 최후결전이라는 용어를 등장시키기 이전까지는 자신들이 보유하고자 했던 핵이 ‘협상용’이었지요. 그러나 (최후결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후에는 핵이 전쟁 억제력으로서의 ‘보유’의 성격을 명확히 갖게 되었지요. 다시 말해 현 정전체제가 지속되는 한 북한은 자신들이 정전체제의 가장 큰 피해자일 수밖에 없고, 그 피해 양태가 한국과는 달리 교차수교를 이루지 못했고, 미국으로부터 적대국가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며 이로 인해 파생되는 경제적 고난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최종 진단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따라서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북한으로 하여금 체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현실로 나타나게 하고, 그 결과 하루빨리 고착되어진 정전체제를 허물어야 할 절박한 이유가 발생하게 되지요. 그래서 이번 북한의 도발, ‘최후결전’은 빈말일 수 없으며 미국의 ‘전략적 인내’정책을 파탄내기 위해 작심하고 덤벼드는 고난도 전략이 되는 것으로 말입니다.

부연하자면 정전체제가 끝장나지 않는 한 북한은 한국과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붕괴론과 정권교체(regime change),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흡수통일 시도 등이 끝나지 않는다고 보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력으로 핵을 보유하여 ‘비대칭적’ 전쟁 억제력을 구축, 이 바탕 위에서 ‘핵보유․경제건설 병진노선’을 통해 경제 정상화를 이룩하는, 그리하여 자신들의 최종목적지인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속내를 매우 분명하게 드러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여 앞으로 전개될 북-미, 남-북관계의 전망은 기본적으로 대화와 협상, 즉 평화적인 방식으로 평화체제 구축 노력이 가시화되지 않는다면 정전상태의 불안정성은 더더욱 가중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는데, 그 이유 두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항시적인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2013년 3월 31일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여기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켜나가는 노선을 채택하고, 곧바로 4월 1일 헌법에다 ‘핵보유 법령’을 법제화함으로서 핵무기 폐기를 굉장히 까다롭게 하면서 만들어진 핵 능력 증가인 것입니다.

3. 장관님의 선택; ‘잘한 선택’과 ‘잘못한 선택’ 사이

1) 한-미동맹

장관님, 이번 한미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하여 크게 보면 다음과 같은 카테고리가 가능해진다고 봅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 ⧍미국의 확고한 방위공약 재확인 ⧍한반도 평화와 안정 ⧍북핵 문제 공동대처 방안 ⧍동북아를 넘어서는 글로벌협력과 양국 국민 간 실질적인 교류 협력 확대 방안 ⧍한미FTA 이행 경과와 양국 경제, 통상 협력 방안 ⧍작전지휘권 반환 문제 ⧍한미원자력 협정 개정 등으로 말입니다. 여기서 저는 모든 의제에 대한 입장보다는, (제 나름대로) 장관님의 업무분장 범위 안에 있다고 판단되는 몇 가지 의제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제 입장을 대신하지요.

장관님,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자유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 통일”을 공동선언에 명시했습니다. ‘자유 시장경제 원칙’은 무얼 말하는 것입니까? 제가 아무리 선의적으로 해석하고 싶더라도 ‘자본주의 체제에 입각한 흡수통일’을 뜻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서도 제가 문외한이라서 맥락을 잘 못 이해하여 잘못된 해석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해석에 대해 제가 틀리면 그냥 7천만 겨레중 제 혼자 슬퍼하면 되지만, 만약 제 해석이 맞다면 7천만 겨레의 운명이 정말 불행하고 위태롭기 때문에 그 민족의 눈물을 다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흡수통일 합의’는 7.4남북공동성명의 민족대단결 원칙, 모든 남북 합의서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6.15남북공동선언 2항이 갖는 정신, ‘차이의 인정’ 위에서 합의되어졌던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가 부정되어 져야하고, 10.4선언의 내정불간섭 등 기왕의 남북 합의에 대한 파기, 장관님이 반복적으로 언급하였던 “기존 남북합의를 이행한다”는 공언의 파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출범한 지 2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박근혜 정권이 그토록 중시하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제대로 한번 꽃 피워보기도 전에 사문화될 운명이라면, 이를 어떻게 설명하여야 합니까?

다음으로 한-미동맹 60주년 맞이하여 나온 공동선언 그 자체에 대한 평가도 실사구시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핵심축(린치핀·linchpin)’이라는 용어에 함몰되어 마치 한-미동맹이 미-일동맹보다 격상되어진 최상의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만 난무할 뿐인데, 이 또한 과연 그렇습니까? 장관님. 저나 4천만 국민 누구나 다 기간 60년 동안 지속되어 온 한-미동맹이 한국에 기여한 공헌이나 필요성을 폄훼해서도 폄훼할 생각을 가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시점에서 한미동맹이 추구했던 목표가 무엇인지를 상기한다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나타난 공동선언은 매우 우려스럽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져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한-미동맹은 정전체제라는 독버섯 위에서 피어난 쌍생아인데, 이는 빨리 해체되면 될수록 좋다는 의미도 동시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동전의 양면이 있는 한-미동맹에 대해 무조건 한-미동맹 그 자체가 더욱더 공고화 되면 될수록 좋다는 식의 인식은 통합․통일을 이룩해야 하는 우리 민족에게는 매우 불행한 역사를 지속시켜야 한다는 의미와 동의어가 될 수도 있는데, 이를 무조건 환영할 일만은 아니지요.

따라서 정전체제는 그 운명 상 언젠가는 반드시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될 숙명을 맞이하고 있지요. 그래서 한-미동맹의 최종 목표는 한반도에서 정전체제를 허물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는데 기여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미동맹 그 자체를 강화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데 기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할 때 가장 빛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 한-미동맹이 우리 남-북 사이에 오랫동안 아무렇지 않게(사실은 ‘불편한’ 정전체제였지만) 지속되다 보니 주객이 전도되어 목표가 수단으로 전락된 기형적인 상황이 도래했음에도 우리 모두가 불감증에 걸린 환자와 같이 되어 버렸지요.

하여 장관님께 묻습니다. 통일부 장관은 한미동맹 강화 그 자체에 기여하는 자리이기보다는 ‘뼈 속까지’ 친미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는 외교부, 국방부 등 다른 부처와 싸워야 하는 부처인가요, 아닌가요? 그래서 저는 적어도 장관님의 머릿속에는 한-미동맹 60주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60주년을 맞이한 한-미동맹이 최대한 빨리 원래의 목표, 한반도 평화체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 첫출발은 한-미동맹이 정전체제에 의존하면 할수록 그 정전체제는 더욱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한반도는 남북기본합의서, 6.15와 10.4선언, 개성공단 등 교류협력의 상징과 통합․통일로 존재했던 그 모든 것을 무효화시키는 어리석은 민족으로 전락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각인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연장선상에서 역대 정권들 중에서도 ‘깨어있는’ 정권은 왜 한미정상회담에서 항상 한반도의 평화, 평화체제 등을 언급(2006년 11월 하노이 한미정상회담, 2007년 9월 시드니 한미정상회담 등)했는지가 읽혀진다면, 박근혜 정권도 하루 빨리 정전체제에 기생된 한미동맹의 시각에서 헤어나는 혜안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반대는 한반도가 항시적인 위기의 구조화, 일상화, 상시화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2)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장관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언급하기 이전에 먼저 ‘신뢰’란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적어도 신뢰란 상호적인 것일 겁니다. 즉 대상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남-북 관계에 있어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북한이겠지요. 따라서 제 아무리 혼자서(대한민국) 신뢰를 하자고 소리치고 신뢰를 쌓았다고 자평해도 상대방(북한)이 호응해 오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일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신호가 북한으로서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아니 경악하는 ‘흡수통합’을 전제로 신뢰를 쌓자고 박근혜 정권이 외치고 있으니 이것은 북한으로서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패일 수밖에 없고, 더 나아간다면 북한에게 ‘한판 붙자’라는 선전포고와 다름없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믿었습니다. 아니 믿고 싶었습니다. ‘신뢰’가 갖는 의미와, 특히 흡수통합이라는 ‘잘못된’ 신호는 일시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결과 이러한 전제를 정확히 읽은 위에 수립된 것이 대북정책과 관련한 박근혜 정권의 대표 브랜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고 말입니다. 따라서 이런 신뢰 프로세스라면 이 신뢰 프로세스가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다름 아닌, 박근혜식 한반도 평화 해법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동시에 보수정권이면서도 대북정책의 최종 종착지가 한반도 평화라는 종자를 잡은데 대해서도 매우 고무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이 실현을 위해 전쟁방지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정․경 분리 원칙에 입각해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고, 그 과정을 통해 신뢰를 쌓아 남-북의 교류 협력을 확대해 나가면 그것이 곧 한반도 평화라는 설정 또한 반(反)MB정책으로 환영받을 만하였습니다. 특히 남과 북이 기존 합의한 모든 합의서들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진정성을 한껏 높이는 화룡점정이었습니다.

이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불과 취임 두 달 만에 용도폐기에 직면해 있다면, 특히 지난 5월 6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로는 더더욱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하여야 합니까?

장관님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요. 그럼 사실 확인에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박근혜 정권 하의 각료들의 발언일지를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2월 13일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입장이 나왔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변화는 없다.” 장관님이 후보자 시절이었던 3월 4일 인사청문회 사전답변서에서는 “(남북)대화를 재개하는 데 전제조건은 없다”로 발언한 반면, 3월 27일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힌 발언은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대북 압박 정책을 펼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한 정권(박근혜 정권)아래 두 개의 대북정책이 존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장관님은 장관님이 평소에 가졌던 소신, 대화하는데 전제조건이 정말로 없는 것이었다면 지난 4월 25일 개성실무회담을 제안하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답변 시간을 하루밖에 주지 않은 것은 대화를 하자는 것인지, 아닌지가 매우 불투명한 제스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박 대통령께서 과연 진정으로 북한과 대화할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각료들의 발언과는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고, 근본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전제하에서 볼 때 다음의 대통령 발언,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차근차근 발전시켜야 한다”(3월 27일 외교부, 통일부 업무부고)고만 언급한 것은 그 신뢰를 ‘어떻게’ 쌓아야 할 것인지가 빠진 최고 행위자의 직무유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그냥 앵무새처럼 정세평론가나 관찰자와 같은 평론을 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꼬일 대로 꼬이고 꼬인 전쟁국면까지 치닫고 있는 한반도 문제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바탕으로 이 문제에 대해 그 어느 누구보다도 큰 책임의식을 갖고 풀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당사자인데, 그런 핵심 주체가 관찰자 노릇을 하고 있다니...

장관님은 이런 박 대통령의 인식이 정상적으로 보입니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청취를 뒤로하고 다음의 상황, 지난 5월 6일 한-미 정상회담 때 박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일원으로 변화한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전제조건’ 없던 남-북간의 대화(‘전제조건’ 없다는 장관님은 완전히 똥 되셨죠?)가 확실하게 ‘전제조건’을 붙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음을 알 수 있었는데, 이것도 모자라 여기에다 확인사살을 해 준 인물이 바로 오바마 대통령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위와 같은 언급에 다음과 같이 화답했기 때문입니다. “평양이 약속과 의무를 지키고 특히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조치를 취한다면 대화를 할 것”이라고 밝혀, 미국도 ‘전제조건’ 있는 대화방침을 재확인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두 정상의 발언에서 확실히 확인받고, 보다 명확한 명징으로서의 표상은 북한이 ‘전제조건’의 변화 없이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오바마 정권 1기에서 계속 유지시켜 왔던 ‘전략적 인내’를 오바마 정권 2기에서도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이며(그러나 이를 매우 좁게 해석하여 오바마 정권 2기의 대북정책이 1기와 비교하여 완전히 ‘일치’한다는 의미로 이해하여서는 안 된다. 즉 오바마 정권 2기는 대북정책에 있어 1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전제는 매우 다르다. 다름 아닌 동북아 전략의 변화 속에서 미국은 ‘한반도 관여전략’으로 전환하였는데, 이 측면에서 대북정책도 한반도 관여전략을 상수로 하고, 대북정책은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전제조건’의 변화에 따라 ‘전략적 관여’전략으로 언제든지 전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 측면에서 오바마 정권 1기와 2기의 ‘전략적 인내’정책이 서 있는 토대가 매우 다름을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박근혜 정권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미국의 ‘전략적 인내’정책처럼 북한의 변화 없이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겠다는, 작동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확인하였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를 좀 더 확대해서 접근해 보면 우려는 더 큽니다. 이유는 그 변화의 주체가 북한 스스로가 아닌, 즉 변화의 그 권한을 북한에게 맡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강제하겠다는 매우 위험스러운 발상으로까지 사고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박 대통령의 발언 속에서도 이는 명확합니다. “북한이 변하기보다 국제사회가 일관된 노력을, 한 목소리로 함으로써 북한이 변할 수밖에 없도록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중요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장관님, 그래서 묻습니다. 장관님께서는 진정으로 미국이 ‘전략적 인내’정책이라는 미명하에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미국이 이제까지 행한 그 수많은 압력이 부족해서 아직까지 북한이 변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결과적으로 미국도 중국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는데, 그것을 박 대통령이 이렇게 압박을 하면 북한이 변화할 것이라고 진짜로 생각하시는지요? 정말로 이것을 믿는다면 장관님이 다음과 같은 질문에는 어떻게 답변할까 정말 궁금하네요. “오바마의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가 결과적으로 한반도를 몇 년 가열시켜 결국 2013년 3, 4월의 핵전쟁 전야로 이어진 것 아닌가?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 흉내를 내면서 오히려 북한에 대해 압박을 강화하겠다니, 박 대통령 당신이야 말로 정말로 전쟁위기를 확대 재생산해내는 주범이고 싶단 말인가?”

위와 같은 각료들의 발언과 대통령 자신의 발언 속에서 이제 그 어떤 변명도 필요 없어졌습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백번 양보하여 제 아무리 북한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우선 만나서 대화하고 협상하면서 그렇게 진도가 나가야 한다고. 만나지 않고 대화하지 않고 어떻게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선(先)대화냐, 혹은 선(先)압박이냐를 선택하는 문제인데, 정답은 선(先)대화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3) 개성공단

장관님, 개성공단 문제를 직시하기에 앞서 알아야 할 대전제는 현재 조성된 한반도 전쟁국면의 본질이 위 ‘2. 본질과 현상, 철학으로 정세를 읽다’에서 확인받듯이 북-미간의 마지막 남은 최후결전(‘판가리’) 대결국면에서 형성된 유탄이라는 점일 것입니다. 이 전제를 간과하는 순간, 한반도 전쟁국면의 본질이 남-북 전쟁대결로 인식되는 이론학적 오류를 범하게 되는, 즉 ‘드러나는’ 현상이 ‘숨어있는’ 본질을 왜곡시키게 됩니다.

따라서 현재 조성된(혹은, 당분간 전개될) 한반도 정세의 기본 축은 북-미이고, 여기서 북한이 어떤 정치․군사적 의도를 갖고 미국을 상대하고 있는가가 현재 정세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어떤’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잘 읽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박근혜 정권에게서 꼬여져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다름 아닌 박근혜 정권이 북한의 이러한 메시지를 잘못 읽어냄으로써(남-북간의 전쟁국면으로 이해하고, 개성공단도 북한의 달러박스로, ‘잘못된 행동’에 따른 보상은 없다는 등으로 오역) 오히려 한반도 전쟁국면의 당사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자처한 결과는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다름 아닌 김정은 정권은 ‘불량정권’이자 한반도 위기의 주범으로 전락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되어 미국에게는 대(對)중국 포위 전략의 명분으로 작용하면서 MD체제, 신(新)미-일군사동맹의 정당화에 이용되는 이득을, 중국에게는 ‘불편한’ 북한을, 대한민국 국민들한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으로 표기)은 대한민국의 헌법상 ‘적대국’으로서의 지위를 가짐과 동시에, 1991년 체결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약칭: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남북한의 관계를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는, 즉 ‘통일과정에서 형성된 잠정적인 특수관계’로 규정되는 이중적인 대상국가이고, 이는 하루빨리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해야 함을 일컫는데, 박근혜 정권이 최근 십여 년간 이룩해 온 동반자로서의 북한을 적대국으로 원위치시켜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장관님, 당신이 몸담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역사적) 과오는 출범한지 이제 겨우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렇게 크고 무겁습니다. 달리 말해 출범 2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정세를 읽을 줄도 자신의 대표 브랜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어떻게 작동되어야 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미숙아정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조롱에서 박근혜 정권은 헤어나야 합니다. 이 과정에 장관님은 큰 역할을 하셔야 합니다. 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현재 조선된 전쟁국면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보유국 지위 획득을 통해 이후 6자회담이든, 북-미 양자회담이던 의제의 전환과 이니셔티브를 쥐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있고, 나아가 정전협정 무력화를 통해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수립되지 않는다면 항시적인 긴장고조의 열도라는 각인과 함께, 이 해결을 위해 미국으로 하여금 대화냐 전쟁이냐를 선택하게 하는 명분 획득용으로 지금의 정세를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대통령께 진언하고 그래서 현재 전쟁국면이 미국으로 하여금 ‘비확산’정책으로 전환할 것인가의 여부를 묻는 북-미해결의 출구전략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으며, 이 과정에서 북한은 박근혜 정권에게 개성공단 문제를 지렛대로 하여 남-북관계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개성공단. 비록 불완전하게 형성되었으나, 분명한 것은 6.15남북공동선언의 옥동자로 탄생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특히 제4조,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에서 보여 지듯이 이후 한반도경제의 기본전략을 ‘균형적 민족경제론’에서 찾고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도 개성공단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남북관계의 어려운 시기에 북에 투자한 남측 기업인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켜줘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어 북한으로 하여금 더더욱 쉽게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즉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으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북한의 입장으로 볼 때 개성공단은 오히려 남측 기업들이 자기들보다 몇 십 배 더 많은 이득을 가져가는 곳(사실은, 남과 북이 모두 윈-윈 하는 곳)으로 인식되어질 수 있는 것인데, 실제 개성공단은 남측 기업들이 북측에 주는 임금 액수보다 수십 배는 더 많이 순익을 창출하고 있는 곳이고, 반면 북측은 공단부지 100만 평을 남측에 무상으로 제공했는데, 그런 곳을 두고 남측의 언론과 전문가들이 ‘퍼주기’, ‘돈 줄’, ‘달러박스’라고 호도하고 심지어 자기 지도자의 존엄을 치명적으로 건드리고 안보적 위협까지 가하게 되니 북한으로서는 적반하장의 배신감을 느끼게 된 것이겠지요.

그 결과로 한때 전쟁방지의 안전핀, 남-북 교류협력의 허브지대로 불리던 개성공단이 이제는 그 생사를 고민해야 하는 운명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현재적’ 시점만으로 분석할 때는 적어도 사망선고입니다. 근거는 5월 4일 북측의 웹사이트 <우리 민족끼리>가 밝힌 “개성공단이 완전 폐쇄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남한 측에 달렸다”는 언급과, 또 박근혜 정권이 아직까지는 개성공단 잠정폐쇄 이후에도 단전단수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정상화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컸으나, 5월 6일(2013년)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로는 그 기대마저도 없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장기화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의미입니다. 다음과 같은 사실 이를 너무나 분명히 각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이 위기를 만들어내고 양보를 얻는 때는 이제 끝났다”고 말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 ‘양보를 얻어내려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에 이어, 콕 집어 ‘개성공단’을 지목하였기 때문입니다.

장관님. 그렇다 하여 해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던 북한이 이처럼 전략적 요충지였던 개성을 양보한 것이라면 개성공단 사태 해결의 출구는 역설적이게도 박근혜 정권이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남-북관계가 일방적 관계가 아닌 상호작용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면 남-북관계 해법 역시 일방적일 수만은 없습니다(늘 상대방에 있다). 그렇게 해서 볼 때 북한이 개성공단을 잠정폐쇄한 근본이유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긴장국면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이유가 자신들이 60년 간 주장해 왔던 그 이유, 즉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근본문제를 풀고자 한 것인데, 미국은 이를 의도적로 무시하였고, 이 와중에 박근혜 정권이 부화뇌동하여 터져 나온 것이 개성공단 문제인 것이라면 박근혜 정권이 부화뇌동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즉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대응방식이 안보위기를 점증시키는 태도가 아닌, 개성공단을 정상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반드시 그 출구가 열리게 된다는 등식이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박근혜 정권이 개성공단을 북측의 안보위해 요인으로 보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면 되는 것입니다(=이는 다른 말로, 개성공단 정상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표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북측의 선(先)변화 없이는 대화 없다”가 아니라 ‘북측의 변화를 위해서라도 대화해야 한다’여야 하며 “섣부른 대화는 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섣부르지 않게 차분하고 진지하게 대화’하면 되는 것입니다.

4. 나오며

장관님, 복습하는 의미에서 위 도표에서 읽을 수 있는 정세 함의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핵심 그 첫째가 현재 조성된(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정세는 한일합방의 이전의 정세와의 유사하고, 따라서 대응력을 높이지 않으면 한반도는 미-중의 먹잇감으로 전락되는 ‘제2의 을사늑약’의 정세이며, 둘째는 미국의 남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가 대(對)중국포위 전략의 지정학적 의미로 환원되고 있다는 입장변화가 읽혀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낡은’ 정전체제의 희생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 전제하에서 위 세 가지 현안 문제에 대해 장관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물음과 동시에 저의 생각을 밝히는 것으로 장관님께 띄우는 이 서신을 끝맺을까 합니다. 제 생각은 다름 아니라 지금 당장 풀 수 없다 하더라도 ‘원인’ 진단을 정확히 해 놓아야 나중에 풀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말입니다.

해서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은 비핵화와 북한 문제(5.24조치,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개성공단, 인도적 지원, 인권문제, 납북자 문제, 교류·협력문제, 이산가족 상봉문제 ...)를 분리하여 접근하여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작동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G2체제가 형성되기 전에 수립된 기간 남북관계 합의서들(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와 10.4공동선언)을 하루 빨리 존중하고 계승하되, ‘담대한 대북전략’을 수립하여 G2체제가 출범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내공을 가져내어야 합니다. 그 첫 출발은 ‘햇볕정책’과 ‘퍼주기론’의 대립과 갈등에서 교훈을 찾아 새로운 동북아환경과 북-미, 남-북관계의 변화 속에서도 소모적인 국론분열이 발생하지 않게끔 남북관계 합의서의 제도화(법제화)장치 마련, 전쟁국면에서도 전면적 인도적 지원이 가능한 정책으로 전환(투 트랙), 특사 및 각급 고위급 회담의 복원과 제3차 정상회담을 통한 제2의 6.15와 10.4공동선언을 하루 빨리 내 오는 정책도 드라이브가 가능한 정권 초기에 작동시켜 내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이 서신에서의) 저의 마지막 충고는 이렇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누가 뭐라 해도 박근혜 정권은 역대 그 어떤 정권보다도 위와 같은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습니다. 이유는 역대 그 어떤 보수정권보다 보수층의 강력한 지지기반 위에 놓여 있고, 그러하기 때문에 이 기반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신화해정책’, 혹은 ‘신교류·협력정책’을 펼치더라도 딴지를 걸 집단이 없습니다. 즉 보수층과 진보층(좌와 우) 모두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으며, 남북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의 장을 개척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영광의 자리에 장관님도 기록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주시길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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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0년 내 기온 2도 오르면…전쟁보다 큰 재앙"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5-19 오후 4:50:56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하승수 변호사를 만났다. 그동안 참여연대 소액주주운동, 사법개혁 운동, 풀뿌리 연대운동, 투명한 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운동 등 다양한 시민운동의 속에 그가 있었다. 지금 그는 지난해 10월 정식 정당으로 등록된 녹색당의 '녹색'가치를 이곳저곳 뿌리고 다니고 있다. 올해 7월에는 충남 홍성으로 귀촌을 준비 중이다.

"사실 조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절박하긴 하다. 마냥 천천히 갈 상황은 아니다. (중략) 기후변화 문제만 하더라도 앞으로 10년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큰 계기를 만들지 못하면 굉장히 암울한 상황이 될 것이다."

"전쟁이라는 것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안 믿지만,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것이 얼마나 무섭고 비참한 일인지 알게 된다. (중략) 인류에게 생태적 지혜가 있다면 그때 가서 뒤늦게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문제다. 어느 정도의 마지노선을 지나버리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절박함과 위기감을 가지고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하승수 변호사는 환경의 문제가 단순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공동체를 위협하는 일이며, 다음 세대들에게까지 심각한 부담을 지우는 일이기 때문에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녹색당을 창당하는 일에 앞장섰다.

"처음에 일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일을 제안하고 틀을 잡고 시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그 역할을 하는 거다. 거기까지만 내 몫이고 나머지는 실제로 참여하는 분들이 조직의 정체성과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사실 그 분들의 열정에 묻어가는 스타일이다."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 사람이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지 깨달았다. (중략) '행복이란 날씨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정자에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구나. 작은 동네 텃밭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것이구나'라는 걸 알았다. 만약 운동을 안 하고 변호사로 날마다 사무실에 앉아서 의뢰인을 만나는 생활을 했다면 참 불행했을 것이다. (중략) 사람들과 공동으로 살아가는 경험들을 통해서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구나. 진정한 행복이란 같이 어울려서 사는 거구나'를 경험했다."

지난날 학생들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나만 혼자 행복할 수 없어 교수직을 벗고 다시 운동으로 뛰어들었던 것처럼, 오늘도 하승수 변호사는 남이 행복하지 않으면 나도 행복하지 않은, 남이 불편하면 나까지도 불편해지는 '불편한 진실' 속에 살고 있다. 여전히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통한 에너지 생산이 전력 수급의 3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 현실에서 '조급하지 않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문명의 전환'을 외치는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핵발전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송전탑 건설을 두고 밀양주민들이 8년 동안 반대운동을 하고 있고, 작년 1월에는 농민 한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런 문제를 보며 마음이 어떤가?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재작년 10월 말 우연히 부산에서 밀양 주민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날 그분들을 통해 송전탑
건설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미 6년 동안 송전탑 반대 운동을 지속하고 있었고 그분들 스스로 송전탑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돼 있었다. 대화 중에 그분들이 '송전탑의 끝에는 원전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원전 반대운동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뒤 '내가 뭐 도울만한 일이 없을까'하는 생각만 하다가 작년 1월에 밀양 주민 한 분이 분신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인터넷뉴스를 통해 속보로 그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살던 분이 분신까지 했다는 것이 엄청난 일이지 않나. '그동안 얼마나 상처와 고통이 깊었으면 분신까지 했을까, 그동안 내가 너무 무관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전탑을 반대하는 내용은 그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내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분들이 느꼈을 소외감을 생각하니 자책감이 몰려왔다. 마침 밀양에 있는 이계삼 선생과 연락이 되어 사정을 물으니, 밀양 시내에 있는 시민단체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분들 역시 나와 비슷한 자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연대활동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사정을 자세히 알고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던 상황은 아니었던 거다. 그러는 사이에 밀양에서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고립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은 비단 밀양에서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이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점점 소수가 되면서 고립돼 가고 있다. 지역 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다 찬성 쪽에 서버린다. 결국 반대쪽에는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만 남는다. 좀 더 일찍 관심을 가지고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많이 아쉽다.

자책감에 송전탑 건설 반대 현장에 나간 것인가.

일본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사회를 보는 눈이 많이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우리 사회가 그나마 이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모든 것을 생각했는데,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이제는 더 이상 이 사회가 유지가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밀양 송전탑 문제도 조금 늦기는 했지만 문제의 실체를 알고, 밀양 주민들을 만나 생생한 얘기를 듣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고 실제로 몸이 움직이게 되었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도 후쿠시마 사고가 굉장한 충격이었고 사회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동안 사회참여를 많이 해왔지만, 후쿠시마 사태 이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후쿠시마 전에 우리 사회에서 내가 가장 많이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은 환경문제보다는 사회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이런 의문도 문제가 심각해지고 나서야 갖게 되었는데, 1997년 IMF 위기가 발생한 뒤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것이 가지고 온 진짜 영향에 대해서 깨달았다. IMF위기 직후에는 우리나라 경제위기가 재벌중심의 경제체제가 낳은 문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재벌문제만 해결되면 한국사회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많은 시민단체에서 재벌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IMF 이후 재벌에 대한 경제력 집중은 훨씬 더 심해졌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뒤늦게 '그동안 우리가 사회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이슈와 현안만을 따라간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경제위기 이후 10년 사이에 경제
성장, 돈, 부동산, 경쟁 같은 주제가 이 사회 전체를 지배해 버렸고, 사람들의 대화 주제조차도 바꿔버렸다.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문화와 의식까지 바꿔 버린 것이다. 시민운동은 이런 사회의 변화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그냥 터지는 이슈에 따라가기만 바빴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받은 충격은 IMF 때 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과 경쟁이 심해지는 것을 막고, 더 나은 사회로 갈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었는데, 후쿠시마 사고가 터진 후에는 '지금과 같이 생태·환경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으로는 문명이 유지가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사회의 흐름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슈만 따라가면 사회를 바꿀 수 없다. 우리가 사회의 흐름을 읽고 흐름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법이나 제도 하나를 바꾸는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경제시스템, 가치관, 문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동안 시민운동이 전투(이슈)에서는 이기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전쟁(흐름)에서는 지고 있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이제는 우리가 큰 흐름을 바꿔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 사회가 딛고 있는 문명의 전환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된 거다.


후쿠시마 사고 1년이 되는 작년 3월 11일까지, 2011년 12월 2일부터 매일 정오에 1시간씩 총 311시간 동안 광화문에서 신규원전 부지 선정 반대 1인 시위를 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의미 있는 결과들이 있었나?

자기 스스로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그냥 생각으로 끝나버리는 게 있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상황을 파악하는데 매우 느린 편인데(
웃음),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 난 뒤 서너 달을 멍하니 있었다. 그 뒤 정신을 차려 '녹색당 같은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원전 반대 운동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데 조직도 없고 사람들도 모으기가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후쿠시마 사고로 나처럼 충격을 받았지만 이것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완비되지 못한 상태다 보니 우선 1인 시위부터 하자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녹색당도 창당됐고 사람들도 많이 모였다.(웃음)

작년 3월 14일에 녹색당이 창당했지만 4월 총선에서 지지율 0.48퍼센트로 정당 등록이 취소되었다가 10월에 재창당 대회로 정식 정당으로 등록되었다. 이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정당으로서 자리매김하기까지 초기 녹색당 내에서 어떤 노력들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녹색당 창당을 위해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자기의 역량과 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녹색당의 틀을 짤 때 굉장히 개방적으로 짰고 최대한 그렇게 운영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말
보석 같은 분들이 녹색당에 참여해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녹색의 가치를 실천해왔던 분들이 많이 있었는데 앞으로 이분들이 녹색당을 통해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최형락)

녹색당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녹색당이 지향하는 것은 '문명의 전환'이다. 화석연료와 원전에 의존한 문명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우리 사회를 점점 더 불평등하게 만든다. 화석연료와 원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에너지의 다수가 거대 기업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이 시스템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소수의 기득권층일 뿐이고, 나머지는 다 피해자인 것이다.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시골 농민들, 원전에서 실제로 위험한 작업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면 이런 것을 더 실감한다. 원전의 위험, 최소 20만 년 이상을 보관해야 하는 사용 후 핵연료 문제, 기후변화 문제 등은 청소년과 청년들 같은 미래세대에 심각한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 이 자체가 정의롭지 않고 비윤리적이다. 이처럼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정의롭지 않은 문명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두르지 않고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작년 총선 이후부터는 '지역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가자'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당의 역할 중에는 일정한 권력의지를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지지 세력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앞으로 정당으로서의 녹색당이 하게 될 역할은 무엇인가?

물론 녹색당도 정당이기 때문에 선거 때 후보를 내고 국회의원도 당선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녹색당의 목적은 아니다. 보통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정당의 목적이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녹색당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면 상당히 많은 당원들이 탈당할 것이다.(웃음) 녹색당이 바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원전에 의존하지 않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으며, 청(소)년들과 미래 세대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는 특정 정치인이 4년, 5년이라는 짧은 임기 내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녹색당이 생각하는 정치는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 과정에서 우리와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동의할 수 있는 정책을 가지고 끊임없이 설득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는 자신들의 지지 세력으로 하여금 정치적 효능감을 맛보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녹색당이 한 석이라도 국회에 들어가 실제로 정책을 바꾸는 힘을 증명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나.

당연하다. 2016년 총선에는 꼭 녹색당 국회의원을 만들어야 한다.(웃음) 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방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 돼서 우리가 생각하는 정책의 방향을 지역에서부터 실현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독일의 경우 녹색당의 지지율이 국가 차원에서는 15퍼센트 정도인데, 어떤 도시에서는 이미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 있다. 거기에서는 녹색당이 추구하는 정책들이 현실로 되고 있고,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서 '아, 이 방향으로도 갈 수 있구나'라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녹색당이 국회의원을 배출해야 하고, 지역에서는 어떤 한 지역이라도 녹색당의 정책을 관철시킬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서 에너지 문제, 먹을거리 문제, 농업 문제, 노동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들에 관해 녹색당의 대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역이 참 중요하다.

녹색당원들이 정당 활동이 아니라 시민운동을 한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로 녹색당 안에는 기존 정당이나 정치권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운동과 정치가 다르듯 환경단체와 녹색당은 엄연히 다른데, 운동이 아닌 정치를 하는 정당으로서의 녹색당은 이러한 비판 앞에서 어떤가?

운동과 정치는 다르다. 하지만 녹색당의 정치가 기존의 정치와 똑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통 정치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사회의 거대 담론이나 정치 현안만을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녹색당은 우리 주변과 일상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많다. 이것이 바로 녹색당의 정치가 기존 정치와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가치와 비전을 거창하게만 이야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도 이야기하고 실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이 선거로 대표자를 뽑아 맡기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다른 민주주의를 시도해 봐야 한다. 이번에 녹색당은 100퍼센트 추첨제로 뽑힌 대의원들로 구성된 대의원대회를 치렀다. 이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녹색당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인정했다. 처음에 우리가 추첨으로 대의원을 뽑는다고 했을 때, 지금까지 정치를 해온 사람들은 대부분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대의원을 추첨하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고 함께했던 당원들이 매우 즐거워했다.(웃음) 정당의 대의원 선출이 엄숙하지 않고 제비뽑기, 종이비행기 날리기, 뺑뺑이 돌리기를 통해 진행되는데 뽑는 사람이나 엉겁결에 뽑힌 사람이나 다들 좋아했다.

책임감 문제가 발행하지는 않나?

그렇지는 않다. 물론 갑자기 전화를 받았는데, 대의원으로 추첨됐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황당해하는 당원도 있었다. 그러나 기왕 이렇게 된 김에 한번 해보자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대의원으로서 스스로 책임감도 가지게 된다.

실제로 이번 대의원대회는 매우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지방에서 온 대의원들은 교통비도 지급하면서, 대의원대회가 녹색당의 최고대의기구이므로 중요한 역할임을 강조했다. 안건도 발의할 수 있도록 미리 안내했다. 그래서 추첨으로 뽑힌 대의원들이 발의한 안건들이 4개나 되었다. 안건 한 개는 현장에서 대의원 3분의1 이상의 동의를 얻어 발의되었다.

추첨제 대의원이라고 해서 책임감이 없으리라는 것은 선입견이다. 사실 권한이 주어지면 책임감도 가지게 된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는 참여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정당이나 노동조합, 시민단체에서도 선거를 통해서만 대의원 같은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하면, 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책임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추첨제를 활용해서 누구에게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그렇게 구성된 대의원들이 결정하는 것이 전체 당원들의 의사를 잘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고, 그렇게 결정하는 것이 조직 전체의 책임성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뉴질랜드에서 녹색당은 소선거구 일위대표제 하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1996년 비례대표제로 선거개혁을 단행한 이후, 2011년 총선에서 지역구에서는 한 석도 못 얻었지만 정당득표율이 총 11퍼센트가 넘어 무려 14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뉴질랜드의 사례가 한국의 녹색당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나?

녹색당은 이해관계나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이 아니고, 가치를 중심으로 모인 정당이다. 생태환경, 평화, 인권, 민주주의, 사회정의 등과 같은 기본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것을 보고 모인 사람들인 것이다. 비례대표제가 확대되면, 사람들이 정당의 가치나 비전을 보고 투표할 수 있게 될 것이므로 정치가 많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비롯해서 지역구 소선거구제 중심의 선거제도를 가진 국가들을 보면 유권자들이 사표를 방지하기 위해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투표하는 경향이 많다.

독일이나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 같이 녹색당이 강세를 보이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비례대표제 중심의 선거제도를 가진 국가들이다. 반면에 영국, 캐나다, 미국 등은 소선거구제로만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다 보니 녹색당이 고전을 하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에서는 최근에야 지역구에서 1등을 해서 최초의 녹색당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이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웃음) 당선 가능성과 지역개발 욕구를 반영하는 선거제도에서는 거대 기득권 정당들이 힘이 세기 때문에 소수정당이 지역구에서 의석을 차지하기란 매우 어렵고 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영국의 경우도 브라이튼(Brighton) 지역에서 최초의 녹색당 국회의원이 배출되었는데, 이 도시는 녹색당이 시의회에서도 1당을 차지하고 있는 도시이다.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영국의 다른 지역도 이렇게 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선거제도가 크게 바뀌지 않고서는 기득권 정치구조가 깨지기 어렵다. 다양한 정당들이 가치와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가 되기 어렵다. 그래서 독일식이든 스웨덴식이든 비례대표제의 전면 확대가 필요하다.

녹색당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내다보고 행동 기준을 미래에 맞춰 움직이는 조직이다. 그만큼 앞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 같다. 무기력, 자포자기하고 싶을 때 어떻게 극복해 내는 편인가?

조급하면 지치는 것 같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조급하거나 불안할 때가 있는데(웃음) 굳이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조급해지면 판단을 잘못 하거나 행동이나 말에서 실수할 때도 있는데, 그러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편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서 자기 주문을 거는 것이 '절대 조급하지 말자'이다.(웃음)

지난 1월 녹색당원들과 함께 풀뿌리정치 워크숍을 했는데, 어떤 한 모둠토론에서 나온 결론이 '조급하면 지는 거다'였다. 그게 맞다고 본다. 당원들도 우리가 아직 작은 정당이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운동이나 정치가 조급해지는 순간, 처음에 하려고 했던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고, 결국 그 운동이나 정치는 변질되고 조직은 무너지면서 정작 하려던 변화가 늦춰진다. 그렇기 때문에 조급하지 않으면서 중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급함이 들 때는 없나? 어떤 부분에서 가장 위기감을 느끼는가?

사실 조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절박하긴 하다. 마냥 천천히 갈 상황은 아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기후변화 문제다. 기후변화 문제만 하더라도 앞으로 10년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큰 계기를 만들지 못하면 굉장히 암울한 상황이 될 것이다.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300ppm 이하이던 것이 산업혁명 이후에 올라가기 시작해서 390ppm을 넘어섰다. 많은 전문가들이 마지노선이라고 이야기하는 450ppm이 되기까지는 10년에서 2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서 나온 보고서에서는 2050년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기후변화 상태가 2020년에 올 가능성이 높아졌고, 2100년에 도달할 것이라 했던 상태가 2050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생각보다 기후변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은 기후변화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을 나라 중 하나이다. 그래서 녹색당 자체는 조급하지 않게 일을 해야 하지만, 녹색당이 해야 하는 일로 보면 상당히 절박한 상황이다. 얼마 전에 기상청에서 낸 보도자료를 보면, '2100년에 한반도 평균기온이 5.5도가 오른다'고 나왔더라. 그러면 사람들은 '이것은 2100년에 걱정하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100년이 2050년으로 앞당겨질 수 있고, 10년∼20년 내에 2도가 오를 수도 있는 상황이다. 기온이 2도가 오른다는 것은 재앙이다. 한반도에서도 벼농사를 비롯한 농업이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식량위기가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외부에서 식량을 조달하고 있는 시스템은 이런 상황이 오면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런 것에 대해서 아무도 준비하지 않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상황인 것을 모르고 있다.

이것은 마치 전쟁과 비슷하다. 전쟁이라는 것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안 믿지만,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것이 얼마나 무섭고 비참한 일인지 알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기후변화를 '기후붕괴·기후재난'이라고도 부른다. 인류에게 생태적 지혜가 있다면 그때 가서 뒤늦게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문제다. 어느 정도의 마지노선을 지나버리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절박함과 위기감을 가지고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변호사 시절 참여연대에서 권력감시운동을 하다가 '세상이 바뀌려면 사람들의 생활과 밀착하는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여 풀뿌리 운동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고 시작할 수 있었나?

솔직히 나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아니다.(웃음) 활동을 하다가 문제에 부딪치면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식으로 살았다. 1996년에 처음으로 참여연대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그 때는 참여연대의 회원이 1000명이 안 되었는데 2000년이 됐을 때는 1만 명 정도로 성장했다. 당시 참여연대의 소액 주주운동은 정말 대단했다. 하루에 몇백 명 씩 회원이 가입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IMF 위기 직후에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불만을 터트리고 싶은데 해소할 데는 없고, 그 속에서 참여연대가 재벌을 상대로 '너희들 잘못이다'라고 해주니 거기에서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 같다.(웃음)

그런데 참여연대 운동을 하면서 '과연 이렇게 한다고 우리 사회가 바뀔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당시 참여연대의 운동방식은 주로 미디어에 의한 것이었다. 우리가 하는 주장을 기자회견이나 퍼포먼스 등의 방식으로 언론을 통해 보도되게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론이 주목하는 운동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만,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별로 의미가 없는 것처럼 되었다. 이렇게 미디어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만 운동을 계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또한 2000년까지만 해도 신문사와 방송사마다 NGO 출입기자가 있었고, 이들과 시민운동은 굉장히 우호적인 관계였다. 예를 들어 <동아일보>의 경우에는 신문에 NGO면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2001년 김대중 정부 때 언론사 세무조사를 하고, 여기에 시민단체가 찬성을 한 뒤부터 보수언론과 시민단체의 관계가 확 틀어졌다. 더 이상 언론을 통해 시민단체가 성장하기 힘든 환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았다. 다른 운동의 흐름을 만났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조직하면서 해왔던 운동의 흐름이 있었다. 바로 풀뿌리 운동이다. 1970년대 빈민운동으로부터 이어진 흐름도 있었고, 각 지역별로도 시민들의 참여 속에 만들어지는 흐름이 있었다. 이런 활동을 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한국사회의 시민운동이 풀뿌리 운동과 같이 가지 않으면 굉장히 공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풀뿌리 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과거 '시민자치정책센터'라고 불렸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는 풀뿌리운동을 네트워킹하는 일을 시작했다. 나도 내가 사는 지역에서 활동을 했고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도 연계해서 조례제정운동, 주민참여예산, 마을 만들기, 협동조합, 풀뿌리시민교육, 어린이·청소년 인권 등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사회에서 풀뿌리운동은 많이 발전하고 있다. 지역마다 다양한 풀뿌리 단체들이 생겼고 생활과 지역에 밀착한 다양한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다. 그동안 풀뿌리운동의 기반이 많이 확대된 것 같아서, 풀뿌리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온 한 사람으로서 무척 기쁘다.(웃음)

변호사로서 의뢰인을 만나는 것과, 운동가로서 사람들을 만나는 삶이 있는데 어떻게 이 두 가지 삶을 병행할 수 있었나?

내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할 때는 판사, 검사, 변호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검찰과 법원에서 나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연수원에 있을 때 검찰을 비판하는 글을 쓴 게 문제가 되어서다.(웃음) 이것저것 신경 쓰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그냥 변호사를 하면서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변호사와 시민운동을 병행하려고 해서 민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선배들이 있는 사무실에 가 변호사 일을 시작했는데, 하다보니까 둘을 병행하기가 참 힘들었다. 변호사 일에 집중하게 되면 시민운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시민운동을 제대로 하려니 변호사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웃음) 그래서 변호사 일을 2년 하다가 접고, 시민운동에 전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간에 다시 또 변호사 일을 반(反) 상근 정도로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제주대학교 교수로 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 정체성이 활동가인가, 변호사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다.(웃음)

그동안 해온 시민운동을 뒤로하고 교수직으로 갈 때의 마음은 어땠나?

풀뿌리 운동 관련된 일을 하면서 변호사 일도 반 상근 정도하면서 생계를 해결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그 당시 로스쿨을 준비하는 대학들이 늘어나면서 교수 자리가 생겼다. 두 가지 생각이 있었는데, 하나는 활동가와 변호사 일을 병행하기 힘들어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웃음), 다른 한 가지는 비(非) 수도권에 살면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제주대학교 교수 자리가 이 두 가지에 다 맞았던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서 4년을 근무했다. 월급도 안정적으로 나오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즐겁고 굉장히 좋았다.(웃음)

교수직을 그만두기 쉽지 않았을 텐데, 왜 나온 것인가?

그만두기 쉽지 않았다.(웃음) 제주대학교에서의 교수 생활은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 중에서 가장 오래 했던 직업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웃음) 그만둘 때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그렇게 한 것인데, 처음에는 왜 그만두고 싶었는지 나도 설명이 안 됐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까 정리가 되더라. 처음에는 대학에 간 것도 좋았고, 제주도에 있는 것도 참 좋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4년을 생활하는 동안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면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가 일어났다. 그때 나만 편하게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다. 제주도의 경우에도 강정 해군기지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대학교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고, 마음의 부담만 커지고 있었다.

또 하나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들이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 이렇게 가면 대학은 교수만 행복한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학부 수업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대학생활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취업과 앞날에 대한 막막함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모면서 마음이 아팠다. 실제로 졸업할 때가 되어 사은회를 한다고 해서 가면 진로가 결정된 졸업생들이 별로 없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한번은 친하게 지내던 남학생이 졸업을 하고 두어 달 후 밤에 나한테 전화를 했더라. 그런데 그 친구가 엉엉 울었다. 키도 크고 성격도 밝고 좋은 친구였는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우는데, '정말 대학이라는 것이 나한테만 좋지. 학생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있던 법학부가 로스쿨이 되었다. 그런데 로스쿨도 애초 취지와 달리 변호사시험을 위한 학원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학교에 있는 것이 행복하지 않게 되었다. 대학도 결국 우리 사회 안에 있기 때문에, 사회의 흐름이 나쁜 방향으로 가면 대학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시민운동으로 돌아가자고 마음을 먹고,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전에 서울에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라는 단체를 다른 분들과 함께 만들었는데, 다행히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이 있었다.(웃음) 막상 서울에 올라왔더니 세상이 많이 거칠어지긴 했더라.(웃음)

'나는 편한데 학생들은 행복하지 않은 것, 사회는 나빠지는데 대학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이 불편해서 박차고 나왔다'고 했다. 보통사람들은 좋은 집이나 좋은 직장이 없을 때, 혹은 돈이 넉넉하지 않을 때 불편함을 느낀다. 이에 반해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는 기준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이것은 '같이 행복해야 진짜 행복하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대학에 있으면 그 대학에 있는 학생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한 것이다. 함께 느끼는 만족감과 행복감이 중요한 것 같다. 진짜 행복은 개인이 혼자 안정된 직장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면서 그 안에서 서로가 행복한 관계를 맺는 것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본래 무디고 느린 사람으로 사람과 사회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았다.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 사람이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지 깨달았다. 풀뿌리 운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들도 나나고, 함께 행사도 준비하고 텃밭도 가꾸고 하면서 '행복이란 날씨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정자에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구나. 작은 동네 텃밭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것이구나'라는 걸 알았다. 만약 운동을 안 하고 변호사로 날마다 사무실에 앉아서 의뢰인을 만나는 생활을 했다면 참 불행했을 것이다. 딸아이를 낳으면서 여러 사람들과 '공동육아 협동조합'을 했었는데, 그런 경험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구나, 진정한 행복이란 같이 어울려서 사는 거구나'를 경험했다.

2008년에 설립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으로 있었다. 1998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참여연대를 통해서 꾸준히 노력해 오다가 독립된 단체를 만든 것으로 안다. 남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시작하고 성과를 내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공부를 잘 안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편도 아니다.(웃음) 체계적이거나 계획적으로 하는 게 잘 안 된다.(웃음) 보통 일을 시작할 때 처음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을 보고 '이 사람들하고 하면 일이 되겠다' 싶으면 결정하고 하는 편이다. 정보공개센터도 그랬다. 처음 준비모임을 하는데 모인 분들을 보니까 일이 되겠더라.(웃음) 실제로 정보공개센터가 2008년 10월에 창립해서 지금껏 4년이 넘게 지나오면서 자리가 많이 잡혔다. 이것은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활동가들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회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표나 이사 같은 분들도 실질적인 역할을 하면서 함께 조직을 성장시켰다.

역시 일이라는 것은 좋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겁게 하면 잘되게 되어 있다. 여기서 나는 별로 하는 게 없다.(웃음) 처음에 일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일을 제안하고 틀을 잡고 시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그 역할을 하는 거다. 거기까지만 내 몫이고 나머지는 실제로 참여하는 분들이 조직의 정체성과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사실 그 분들의 열정에 묻어가는 스타일이다.(웃음)

변호사로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넉넉한 삶이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활동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동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 같다. 이런 삶의 방식에 대해 부인과 딸이 지지해주는 부분이 있나?

가족들 모두 내가 살고자 하는 기본 방향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동의해준다. 작은 공동체로서 가족이 함께 살면서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는 것도 있다. 그래도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 속에서 문제가 풀리는 것 같더라.(웃음) 삶으로 보면 좀 어려운 점도 있고 불편한 것도 있을 텐데 행복이란 게 물질에 있는 것만은 아니지 않나.(웃음)

올해 7월에 충남 홍성으로 귀촌하려고 하는데, 딸은 시골에 내려갈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도 아빠·엄마가 내려가는 것은 인정한다.(웃음)

청년 하승수는 어떤 사람이었나?

늘 좌충우돌하는 삶을 살아왔다. 선배들과도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웃음) 고집이 세고, 해야 할 말은 하는 성격이라 가끔 부딪치는 일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심이나 악의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분들이 나를 미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20∼30대는 그런 좌충우돌하는 경험을 통해서 계속 배웠던 것 같다.

원래 판사가 될 생각도 있었다. 처음 사법연수원에 들어갈 때는 이후에 법원에 들어가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웃음) 그런데 연수원을 수료할 때에는 법원 쪽으로는 가지 못했다. 사법연수원 내에 사법연수생들이 만들던 잡지가 있었는데, 잡지 편집부가 있었고 나도 참여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검찰의 역사를 다루는 기사를 맡았는데, 기사를 쓰려고 한국 검찰 역사를 보니 그동안 검찰이 잘한 게 없더라.(웃음) 그래서 솔직하게 한국 검찰은 별로 잘한 게 없고 옛날에 이러이러한 잘못을 많이 했다고 썼는데, 그것이 사법 연수원 내에서 문제가 되었다.

당시 사법연수원의 부원장이 검찰에서 파견된 분이었는데, 그분이 연수원에 있는 검찰 교수들을 전부 소집해서 이 기사는 못 내보낸다고 하면서 삭제하라고 했다더라. 나는 절대 못한다고 했고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일부 삭제·수정된 상태에서 기사가 나갔다. 이 일이 있은 후 '이런 식으로 꽉 막힌 집단에서는 일을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참여연대에서 활동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변호사들의 탈세 문제가 많이 이슈가 되었다. 그래서 '변호사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과세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나왔다. 지금도 변호사들이 어느 정도 탈세를 하겠지만(웃음) 그때는 정말 많이 했었다.(웃음) 참여연대 안에 있는 여러 팀 중에서 내가 있는 조세 개혁팀에서 이 이슈를 제기하면서 '변호사에게도 부가가치세를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어떤 변호사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주장이었다. 그래서 미묘한 압력 같은 것도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도 반대했지만, 우리 팀이 세게 밀어붙여 결국 변호사 부가가치세 과세 법안이 1998년에 국회를 통과해 변호사들도 부가가치세를 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충돌과 갈등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좌충우돌의 과정이었다. 이제는 문제를 푸는 방법도 알게 되고 많이 유해졌다.(웃음) 부딪치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 지금은 어떤 사람은 나를 유하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고집이 세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날 재벌감시운동이나 사법개혁운동할 때는 누군가 나를 '불독, 독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웃음) 아마 요즘에도 영양댐 문제로 독하게 물고 넘어지니까 그런 별명이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웃음)

좌충우돌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 만큼은 후회되거나 내 잘못이었다고 느낀 적은 없었나?

사람들과 의견이 다른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중에는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과 관련된 것도 있고,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의 의견도 받아들여 조율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런 부분을 구분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너무 불필요하게 세게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되더라.

요즘에도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때에는, 어떤 부분이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인지 많이 생각하게 된다.

청년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지금 사회라는 것이 워낙 청년들이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데, 내가 어떻게 살라고 조언한다는 것이 오히려 미안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겠다'라는 이야기 정도만 할 수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이계삼 선생이 보내준 <청춘의 커리큘럼>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더라. "결국 청년들 스스로 깨닫고 친구들의 손을 잡고 일어설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이다."

나는 이게 맞는 것 같다. 내가 청년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청년들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나는 그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녹색당 내에서도 청년녹색당원들이 뭘 하겠다고 하면, 나는 '하시고 싶은 일을 하시라'고 말하는 편이다.

많은 청년들이 녹색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대다수 청년들은 산업사회가 주는 혜택과 도시생활에 길들어 흙과 자연, 느림과 나눔 등이 있는 녹색의 가치를 쉽게 동의하기 힘든 세대다. 그럼에도 이 청년들에게 녹색의 가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는 뭔가?

작년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라는 텃밭활동을 하는 청년들을 만났는데 대부분이 도시에서 자란 청년들이라는 것에 깜짝 놀랐다. 이들이 스스로 텃밭 가꾸기 모임을 하는 것을 보면서 '누구나 다 작은 경험을 통해 녹색의 가치를 깨닫고 긍정적이고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청년들이 초등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자원봉사자로 가서 아이들에게 텃밭농사 교육을 한 보고서를 읽어봤는데, 초등학생들이 너무 즐거워하더라는 것이다. 처음에 지렁이를 보고 도망가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흙을 만지고 채소를 가꾸는 것을 참 좋아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아이들에게는 물론 본인들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보고서에 쓴 것을 보았다. 본인들이 너무 즐거워하면서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청년들이 이런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녹색의 가치라는 것은 우리가 상당 부분 잃어버리고 있었던 면이지만, 누구에게나 필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막상 경험해보면 좋은 변화가 있다. 나도 상당히 도시화가 된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녹색의 가치를 몰랐지만, 텃밭이라도 가꿔보고 내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실천해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청년들도 비록 도시 생활에 익숙해 있지만 녹색과 관련된 활동에 참여해 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면 베란다에 작은 화분을 만들어 최소한 상추부터 가꿔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청년들 중에 이런 것을 물어보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청년들 안에 녹색의 가치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녹색당에는 일회용품을 쓰지 않거나,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채식을 하는 등 환경·생명 등의 이슈에 관심을 가지다가 당원이 된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개인의 삶에서 녹색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과 달리, 원전 폐지는 우리 사회구조적인 것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매우 지난하고 힘든 일이다. 녹색 당원들이 일상의 작은 문제들에서 출발해서 원전반대운동과 같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는 과정이 궁금하다.

녹색당원 중에는 여성 당원이 절반 이상인데, 이 중에는 주부도 있고 비혼(非婚) 여성도 있고 연령과 처지가 다양하다. 이분들이 녹색당에 가입하게 된 동기도 굉장히 다양하다.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 농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채식을 하는 사람,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 등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녹색당 내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 하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관심사들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것도 중요하구나'라는 걸 느끼면서 자신의 관심사가 넓어지게 된다. 신기한 것이 녹색당원들끼리 만나면 이야기가 잘 통한다.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이 알고 보니 길에 버려진 동물도 돌보고 있고, 텃밭도 가꾸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이런 관심들이 모두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색'의 가치와 연결되는 문제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녹색당 안에서는 이런 삶의 문제들 어느 하나도 가볍게 취급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하승수에게 자유란?

늘 가슴 뛰게 하는 말이다. 그리고 자유가 결핍되면 너무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자유는 공기와 비슷하다. 사람에게 '자유'가 없다면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사회시스템은 사람들을 자꾸 꽉 짜인 틀 속에 넣으려고 한다. 그래서 개인이 '자유'나 '행복'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잃어버릴 수도 있다. '자유'라고 할 때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그것이 쉽지 않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자유'를 유보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잊어버리지 않은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만 언젠가는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 및 정리: 정치경영연구소 김경미, 손어진)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들을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 분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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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오마주' 등장에 '멘붕' 벗은 시청 광장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5/20 08:03
  • 수정일
    2013/05/20 08:0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3년 상' 이후 축제로 거듭난 노무현 전 대통령 4주기 추모제

13.05.19 21:37l최종 업데이트 13.05.20 01:0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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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 4주기 추모제 1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시민들이 가득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 서울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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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광장에 새겨진 노무현 대통령 '픽셀아트' 19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 4주기 추모제가 열리는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 모양이 '픽셀아트'로 만들어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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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도 덩실, 문재인도 덩실덩실. 이미 '3년 상'을 치른 탓일까? 4년 전 그날처럼 서울시청 앞 광장은 다시 추모객들로 가득 찼지만 '슬픔'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린 19일 서울시청 앞 광장은 말 그대로 '축제'였다. 곳곳에선 봉하마을에서 온 막걸리와 먹거리들로 잔칫상이 차려졌고 노 대통령을 기리는 책들과 기념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이처럼 들뜬 분위기는 이날 저녁 추모 공연으로 이어졌다. 가수 신해철의 록음악과 '팔세토 창법' 가수 조관우의 '연안부두'로 한번 달아오른 분위기는 3시간 내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날 행사의 백미는 단연 대한민국 '양대 구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봉주 전 의원의 '힐링 토크'였다.

"내일 신문에 유시민 정계 복귀 시사?"... '양대 구라' 입심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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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해철, 조관우, 이승환 '노무현 추모제' 열창 1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 서울문화제'에서 공연하는 신해철, 조관우, 이승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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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정봉주 토크 1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 서울문화제'에서 유시민 전 장관과 정봉주 전 의원이 무대에 올라 최근 사는 이야기와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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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을 날린 건 유시민이었다. 정봉주가 최근 종편에 출연해 자신을 '지는 해'라고 표현한 걸 겨냥해 "지는 해라고 하는데 해는 지고 나면 다음날 다시 뜬다"는 말로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 이에 정봉주가 "유 장관이 여의도 정치만 벗어났을 뿐 정치 안 할 사람인가, 정치 안 한다는 거 다 거짓말"이라고 한술 더 뜨자 유시민은 "해 지면 내일 아침 새로 뜬다고 했다고 내일 신문에 '유시민 정계 복귀 강력 시사' 이렇게 쓰지 말아 달라"고 언론에 당부(?)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담에 이르러서는 자못 진지해지기도 했다. 유시민은 "노 대통령이 정치의 목적이 뭐요, 라고 묻더니 '정치 목적은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과 소박한 행복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자문자답했다"고 회고했다.

전현직 '가카(각하)'에 대한 조롱도 잊지 않았다. 정봉주는 "노 대통령이 강조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조직과 교육 2가지"라며 "(이명박 대통령) 가카께서 지난해 12월 협동조합법을 통과시켰는데 협동조합의 목표가 시민을 날줄과 씨줄로 엮고 교육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봉주는 "가카께서 노 대통령을 받든 건데 가카가 아무것도 모르고 통과시켰거나 지난해가 세계 협동조합의 해여서 다른 나라 눈치보고 성과 만들려고 한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에 뒤질세라 유시민은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지금 가카도 야당 시절에 잘한 일이 있는데 장관 인사 청문회법을 만든 거"라고 맞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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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추모제 울려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 1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 서울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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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추모제 울려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 1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 서울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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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추모제, 마르지 않는 '눈물' 1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 서울문화제'에서 일부 참석자들이 고인의 생전 영상물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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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박근혜 인사 청문회법' 제 발등 찍기 예언?

유시민은 자신이 '인사청문회법 1기 수료생'이라면서 "열린우리당이 당시 대통령 인사권 제약이라 반대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추진했다"면서 "당시 노 대통령이 '마 해줘라, 우리도 좀 불편하겠지만 혹시라도 저거들 정권 잡으면 난리 날기다, 사람 빌려돌라고(달라고) 할지도 모른데이' 하더라"며 노 대통령 특유의 사투리로 표현해 더 큰 박수를 받았다.

마무리는 '힐링'이었다. 정봉주는 "좌절, 멘붕 같은 사치스런 얘기하지 말고 잘 살자"면서 "정봉주는 감옥까지 갔다왔는데 속 좋게 왜 이리 잘 사냐고 해야 저들도 간담 서늘해지고 하늘에 있는 노 대통령도 좋아할 것"이라며 추모객들의 기운을 북돋았다.

유시민도 이날 앞자리에 있던 문재인 의원을 소개하며 "지난해 12월에 졌지만 괜찮죠? 다음에 이기면 되지 뭐"라고 해 큰 박수를 이끌고는 "선거는 이기기도 지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은 앞으로 가니까 노 대통령 없어도 사람 사는 세상 만들자"는 말로 마무리했다.

서울광장 채운 초대형 노무현 오마주... 빈자리 채운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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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추는 박원순 시장과 문재인 의원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 서울문화제'가 1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의원이 사회자의 요청으로 소개를 받으며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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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 4주기 추모제 1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 서울문화제'에서 문재인 의원, 유시민 전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등 참석자들이 노 대통령이 즐겨불렀던 '사랑으로'를 합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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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만 명쯤 왔는데 경찰 추산은 3000명"이라는 정봉주 전 의원 조롱처럼 이날 서울시청 광장은 수만 명의 추모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이날 시민기획위원회와 함께 행사를 진행한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조차 "노 대통령이 요즘 말로 '돌직구'의 원조인데 오늘 이 자리에 있었다면 '아직도 이렇게 노빠들이 많습니까'할 거 같다"고 반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세월이 흐를수록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가 꿈꾸던 세상이 안 왔기 때문"이라면서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 그분이 꿈꾸던 세상을 깨어있는 시민들의 단결된 힘으로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문화제에 앞서 서울시청 광장에는 거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 얼굴이 떠올랐다.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회원들이 이날 오후 3시부터 '노무현 오마주-픽셀 아트'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이다.

초록빛 잔디를 배경을 검은색 종이 수천 장으로 노 전 대통령 얼굴을 모자이크로 형상화하고 흰색 종이로 '강물처럼'이란 문자를 새겼다. 플라자호텔 옥상에서 촬영한 제작 광경은 행사장 대형화면으로 생중계했다. 현장에 있던 시민 1000여 명의 자발적 참여로 모자이크는 약 30분 만에 완성됐다. 1시간 뒤 '노무현 오마주'는 다시 사라졌지만 그 잔상은 사람들 마음 속에서 쉽게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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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선물 받은 박원순 서울시장 1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 서울문화제'에서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노무현 대통령 관련 책을 선물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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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영받는 문재인 의원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19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 4주기 추모제가 열리는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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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물이 더 잘 생겼다" 활짝 웃는 문재인 1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 서울문화제'에서 가수 조관우가 "문재인 의원 실물을 보니 훨씬 더 잘 생겼다"고 하자 문 의원이 손을 들며 웃음짓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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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노 대통령의 빈자리를 채운 주인공은 문재인 의원이었다. 문 의원은 이날 오후 행사장에 도착할 때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악수나 기념촬영을 원하는 군중들에게 계속 둘러싸였고 환호도 끊이지 않았다. 이날 오후 4시경 행사장에 들렀다 일부 추모객들의 야유 속에 서둘러 떠나야했던 김한길 민주통합당 대표 일행과는 대조적이었다.

정작 문 의원은 이런 열렬한 환대에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문 의원은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노 대통령의) 유지도 지키고 정치도 바꾸려고 정치에 뛰어들었는데 송구스럽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죄송스러운 심정"이라며 대선 패배의 아픔을 곱씹으면서도 "5년 더 기다려야 되지만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서 의지를 모아 5년 뒤엔 반드시 해내자"는 말로 다시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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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노무현'은 그저 축제 마스코트에 불과한가?

 


5월 1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모 문화제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추모제는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라는 주제로 시민 2만5천명 (경찰 추산 8천명)이 모여 축제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먹거리와 공연, 토크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지독한 노빠라는 비난 아닌 비난을 받고 있는 '아이엠피터'는 사실 올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문화제를 보면서 속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를 좋아하고 추모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그의 정치적 자산을 그리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정치적 자산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5월이면 으레 나오는 이름이 됐고, 정치인들이 앞다퉈 눈도장만 찍는 모습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 보내야 함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정치적 자산이 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면, 이대로 그의 모습을 놔둬도 돼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이 무엇인지, 그가 왜 축제 속 마스코트로만 남아 있으면 안 되는지 정리해봤습니다.

' 깨어있는 시민? 도대체 뭘 가지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마다 외치는 문구가 있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시민 민주주의'와 같은 말입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에서 시작된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시민이 깨어 있어도 국가권력을 바꾸지 않으면, 직접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시민의 정치 참여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국가 권력과 국민 사이는 평등해져야 합니다. 만약 국가 권력이 국민보다 위에 있다면 국민에 의한 정치 참여는 언제나 국가 권력에 의해 차단될 수밖에 없으며, 억압받기도 합니다.

국민과 권력 사이가 평등해지려면 먼저 국가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국민이 공유해야만 국민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국민의 참여가 가능한 참여 민주주의, 직접 행동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 권력이 국민보다 우위를 점하지 않도록 늘 국가권력을 낮추고 국민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비록 미완이었지만, 그는 여러 차례 국가 권력이 잘못한 일에 대한 사과와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국가 권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국가권력에 의한 일탈은 지금도 자행되고 있으며, 권력기관이 저지른 범죄가 그저 담당자 선에서 끝나면서 진실은 언제나 국민 앞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는 한 절대로 국가권력과 국민은 평등한 사이가 될 수 없습니다.

[정치] - 국정원 '박원순 시장 제압' 사실이라면 'MB청문회 개최'
[현대사] - '정치 개입했지만.부정선거 아니다?' 정치깡패와 국정원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국정권 대선 개입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국정원 개혁의 첫 번째는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정권을 위해서는 그만하십시오, 정권이 국정원에 대해 지금 묻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아서 여러분들이 불안해 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권을 위한 국정원 시대는 이제 끝내달라는 것이 나의 뜻입니다."(2003년 6월 20일 국가정보원 업무보고 및 직원 오찬 간담회)



지금 수많은 국가권력이 누굴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국민이 아닌 국가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이 아닌 권력을 쥔 자들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독재를 종식하고 민주주의라는 대의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국가권력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묘히 숨어서 국민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이 아무리 그것을 지적해도 국가권력과 국민이 동등해지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으면 참다운 민주주의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검찰개혁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국가권력이 일탈이라고 부르는 정치 개입과 불법 활동을 한다면 그것을 누가 심판할 수 있을까요? 국민이? 현실은 오로지 법으로만 그들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는 대한민국 검찰은 절대로 국가권력의 잘못을 올바르게 심판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권력과 줄타기를 통해 막강한 검찰 권력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탁월한 실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검찰은 법이 아닌 권력화된 집단으로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법에 따라 판단하고 수사,기소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철저히 그들의 이권에 따라 법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요리합니다. 자신들의 잘못과 일탈에 대해서도 결코 책임지는 법이 없습니다.



 



참여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제대로 검찰개혁을 하지 못했던 점입니다. 스스로 권력화된 검찰의 힘을 안일하게 봤고, 정치적 중립만 보장해주면 검찰이 개혁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만 했습니다.

검찰 내부에 있는 기득권 유지에 대한 무서운 집착과 욕망이 토론이나 간담회와 같은 민주주의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남용되거나 부패하거나 한다는 것은 기본상식으로 깔아놓고 계시던 것이지요. 그런데 현대적인 권력기관 중에서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하여튼 딱 검찰밖에 없어요." (이병완 전 비서실장)

“검찰출신이 아니고 여성이고 서열파괴하고 하는 저의 취임이 참여정부의 철학을 보여주는 상징성은 매우 컸지만, 그 장관이 법무부에 가서 검찰을 개혁과정에서는 힘을 갖지 않고 간 거예요. … ."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실제로 검찰 파워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커요. … 비하인드 정치를 하기 때문에 훨씬 파워풀해지는 거지요. … 국회까지도 더군다나 한나라당 다수당과도 접촉이 되는 기관인데 정부가 힘이 떨어지는 순간에는 검찰개혁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검사하고 대화를 통해 대화에서 이겨서 검찰을 납작하게 만든다거나 청와대가 원래 했던 대로 끌고 나간다든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 평검사들과 대통령 사이에 서로 합의하는 모습 … 을 통해서 말하자면 검찰개혁의 확실한 모멘텀을 거기서 얻자는 거였죠." (문재인 전 비서실장)

“근데 법무부 장관 혼자 일합니까? 내가 보니까 강금실 장관은 … 제대로 뽑았습니다. 근데 비유컨대 검찰이라는 무지막지한 집단에 마치 적진에 수송기로 실어다가 강금실이라는 한 사람만 낙하산 타고 뚝 떨어뜨려 놓은 거란 말이에요..…"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검찰이 왜 반발했을까요?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하는 것이 도저히 정의감에서 견딜 수가 없어서? 그랬겠어요? 검찰의 인식은 뭐냐? … 우리 조직이 갖고 있는 권한을 정치인 출신에 검사도 아닌 사람이 와서 그것을 관여를 해? 나는 이것에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반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의 기득권 지키기예요..”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검찰의 문제점이 뭐냐 하면 그것은 유능한 사람일수록 기득권 유지자가 되는 것이에요. 유능하면서 개혁적이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근데 그 개혁적인 사람은 출세를 못합니다.”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뒤에는 분명 정치 검찰의 보복과 이명박 정권과의 합의가 있었습니다. 정치적 논리를 떠나 검찰은 확실하게 법의 잣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죽고 없습니다. 제2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정치인이 다시 나와도 우리는 또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억울한 죽음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것은 검찰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검찰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권이 바뀌어도 망나니와 같은 무법의 칼날이 우리 목 위로 내려오는 것이 뻔히 보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만 슬퍼하고, 검찰이 가진 권력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습니다.

' 노무현의 죽음은 축제가 아닌 분노의 시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통해 애통해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저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팬으로 좋아합니까? 아니면 그들 통해 대한민국의 변화를 원하십니까? 만약 그를 팬으로 좋아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문화제는 당연히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를 통해 대한민국의 개혁을 원한다면 축제보다는 분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새누리당,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정치 구조를 갈아 먹고 있는 권력들에 대해 분노하라는 뜻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억울한 이유는 대한민국에 기생하는 암적인 정치 권력, 검찰 권력, 언론 권력이 하나같이 국민이 아닌 그들만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일탈을 서슴지 않고 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건, 특혜를 받아서는 안 된다.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의혹이 있다면 수사기관이든 언론이든 일반 국민과 똑같이 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검찰이 브리핑하는 내용을 별도로 확인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실규명도 하지 않고, 기정사실화해서, 심지어는 한발 더 나아가서 해석과 단정을 다해버린 것이다. 검찰은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와 확증을 가지고 수사해야 하는 것이 정도다.

언론은 그것이 누구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독자적인 확인과 진실규명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언론인의 양식에 기초해서 판단을 내리거나 여론형성을 위한 논평, 편집의 방향을 잡는 것이 정도다. 이번 경우에 과연 그렇게 했겠나. 그것이 국민의 알권리와 무슨 관계가 있나. 자기들이 쓰고 싶은 권리만 있었지 국민의 알권리와 무관했다. 검찰 브리핑으로 노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파탄 난 사람이며, 일가족이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낙인찍은 것이다. 논두렁에 시계 버렸나? 사건 초기에 근거도 없는 금액들도 확인됐나? 아니지 않느냐. 그것이 국민의 알권리와 무슨 관계가 있나."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특혜도 보복이 아닌 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방식으로 수사했다면, 그저 언론 본연의 자세대로 기사를 썼으면 그가 과연 죽음을 택했을까요? 이제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슬슬 명확해지십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축제처럼 즐기는 모습을 좋아할까요? 아니면 그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바뀌어야 할 악습과 권력의 썩은 내를 도려내려는 노력을 더 높이 평가할까요?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그저 숨죽이고 사는 5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권은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 권력, 검찰 권력, 언론 권력이 개혁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정권을 잡아도 대한민국은 똑같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사진들.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거나 그를 조롱하는 사진을 보면 화가 납니까? 그들을 정죄하고 싶습니까?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화를 내고 그들을 처벌하라고 검찰에 지시를 내렸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국민이 나를 가지고 한다는데 내가 뭘~~'이라며 그저 웃기만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은 저런 조잡한 사진을 올려놓고 희희덕거리는 자들이 아닙니다. 국가권력에 맞서 정의를 말하지 못하는 우리의 비겁함에 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생겼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합니까? 국가권력과 언론,검찰 권력이 불의를 저질러도 그냥 5년만 참자는 말로, 5년 뒤에 승리하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빠'를 자처하며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국가권력이 국민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 아래에 있다고 외쳤던 그의 모습이 상식이자 올바른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요한 사실이 그저 한 정치인이 꿈꾸었던 미완의 꿈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문화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남긴 이런 중요한 사실을 알리는 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축제의 마스코트가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 권력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보다 더 슬퍼해야 할 일은 불의한 국가권력을 보고도 분노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정의를 위해 분노하고 일어서는 그 순간, 나하고 가까운 우리에게만 따뜻한 노무현 대통령이 아닌 우리 대한민국 전체를 따뜻하게 품고 싶었던 그런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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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6월 18일부터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변경

신영순, '민족 장애인.원아 지원 협력사무소' 소장 임명돼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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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20 00: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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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순 푸른나무 대북사업본부장(오른쪽 두 번째)이 '민족 장애자.원아 지원 협력사무소' 소장으로 정식 임명됐다. 사진은 북측 조선장애자보호연맹 관계자들과 협의 중인 모습. [사진 제공 - 푸른나무]
북한이 오는 6월 18일 ‘장애자의 날’을 기해 ‘장애자’라는 용어 대신 ‘장애인’으로 표기하고, ‘민족 장애자.원아 지원 협력사무소’(이하 협력사무소) 소장을 임명하는 등 장애인 정책을 체계화 하고 있다.

 

지난 2~14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미국 국적의 신영순 푸른나무 대북사업본부장은 16일 <통일뉴스>와 만나 “북한도 6월 18일 장애자의 날을 기해서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바꾸어 부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그간 ‘장애자의 날’, ‘조선장애자보호연맹’ 등 공식 명칭으로 ‘장애자’를 써왔지만 남측과 같은 ‘장애인으로 공식 명칭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또한 북측은 신영순 본부장을 협력사무소 소장으로 공식 임명했다. 협력사무소는 평양 대동강 구역 문흥2동에 있는 조선장애자보호연맹 중앙위원회 사무소 내에 있으며, 2011년 4월 25일 현판식을 가진 바 있다.

 

   
▲ 16일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만난 신영순 본부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신영순 본부장은 “협력사무소에서는 모든 남과 북, 해외의 장애인.원아들과 협력하는 단체나 사람들, 외국인들까지 초청할 수 있고, 모든 사업들을 북측 조선장애자보호연맹과 협력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준다”고 말했다. 협력사무소 이름으로 북한 초청장을 내줄 수 있고, 협력증서를 발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협력사무소는 그간 장애학교와 보육원 등에 지원사업을 매개해왔고, 조선장애자체육협의의 해외 전지훈련이나 국제대회 참가는 물론 북한이 처음으로 출전한 런던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출전도 도왔다.

이번에 협력사무소 소장으로 정식 임명된 신영순 본부장은 전용 자동차 번호와 장기체류 비자, 주택구입 권한은 물론 이메일과 인터넷 사용 권한까지 승인받았다.

신영순 본부장은 또한 “북측의 조선장애인예술단도 협회가 생겼다”며 “맹아들 악기 연주단에 이어 농아들 무용단도 연습 중”이라고 전했다.

 

   
▲ 농아 무용단이 무용가 정경심 조선장애인예술협회 부원의 지도로 연습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푸른나무]
   
▲ 농아학교에서 수화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 [사진 제공 - 푸른나무]
새로 결성된 조선장애인예술협회에는 무용가 출신의 정경심 부원이 농아들의 무용지도를 하고 있다.

 

신영순 본부장은 “남북이 민족적으로 어려울 때 협력사무소가 민족화해의 길에 앞장서려 한다”며 “정치나 사상.이념을 넘어서 가슴 아픈 사람들을 모두가 끌어안고 사랑하며 남북 평화통일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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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주년 5.18 ‘찢겨진’ 기념식…정부·시민사회 ‘따로’

시민사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대회’ 민족민주열사묘역서열어

김주형 기자 kjh@vop.co.kr
입력 2013-05-18 15:31:18l수정 2013-05-18 17:15:43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는 제창대회 참가자들

18일 오전 광주 망월동 5.18 민주묘역에서 열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대회'에서 통합진보당 오병윤 원내대표와 김재연 의원 등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양지웅 기자

 

결국 3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정부와 광주지역 시민사회가 따로 진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올해 기념식에 참석했지만 광주지역 시민들의 정서를 달래지 못하는 ‘반쪽짜리’ 정치력을 보여줘 ‘국민대통합’이라는 슬로건을 무색하게 했다.

광주진보연대,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전남진보연대는 18일 오전 10시 33주년 5.18기념식과 같은 시각 옛 5.18묘역(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5.18 역사 왜곡 규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대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는 정부 기념식에 불참한 5.18 관련 단체가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또다른 5.18기념식이었다. 이날 집회에는 오병윤 원내대표 등 통합진보당 지도부와 지방의원단,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 의장, 박봉주 광주진보연대 공동대표, 정영일 광주시민협 상임대표, 주경미 광주전남여연 공동대표, 오재일 5.18기념재단 이사장 등이 함께 했다.

 

오종렬 상임대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자'

한국진보연대 오종렬 상임대표가 18일 오전 광주 망월동 5.18 민주묘역에서 열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오종렬 의장은 “5.18민중항쟁은 그냥 항쟁이 아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냥 노래가 아니다”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은 감안안에 있는 동지를 바라보며 옥창 아래서 불렀던 노래, 농민들이 논두렁 밭두렁에서 불렀던 바로 그 노래, 자식 잃은 어머니들이 눈물 흘리며 자식 생각으로 불렀던 노래”라고 강조했다.

또한 오 의장은 “5.18을 폄훼하려면 뭐하러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오월영령들을 5.18묘지로 보냈는가”라고 따지면서 “우리 민중의 애국가, 영원한 우리들의 애국가라고 한다. 최소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마땅히 존중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제창대회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노래로, 반주로 여러 차례 참석자들이 제창했고, 이외에도 여러 5.18 광주민중항쟁 관련 노래가 불려졌다.

서승 리츠메이칸대 교수는 “표현의 자유도 있고 사연이 있는 노랜데 못 부르게 하는 건 말이 안된다”면서 “이건 (정부의) 억압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정부 주도 5.18기념식에는 취임 첫 기념식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했다. 하지만 기념식장 안팎은 이날 온종일 뒤숭숭했다. 옛 5.18묘역에서 5.18묘지로 가는 두 군데 길을 차벽과 경찰로 완전히 봉쇄했다.
 

밤샘 농성대오를 포위하고 민주의문 출입을 차단하고 있는 경찰

이날 밤샘 노숙농성을 진행했던 2백여명의 농성대오가 정리집회를 하는 동안 경찰이 민주의문을 완전히 막고 대오를 포위하는 등 지난해와 달리 지나치게 많은 경찰을 배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민중의소리



박아무개(40)씨는 “여기가 5.18 민주 성지가 맞느냐. 경찰이 묘지 안까지 들어오고 민주의문을 온통 완전히 막고 있는 건 문제 있다. 참배를 위해 들어오는 차량을 막고 트렁크까지 열게 하는 게 과연 제대로 된 경찰인가”라고 비판했다.

경찰 관계자도 이같은 불만에 대해 “지난해 보다 훨씬 많이 배치된 건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이날 경찰은 5.18묘지와 옛 5.18묘지 등에 5천여명 가량 배치돼 기념식장과 참배객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이에 앞서 지난 16일 오전부터 이틀에 걸쳐 밤샘 노숙농성을 진행한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는 18일 오전 7시20분께 옛 5.18묘역에서 열릴 집회를 위해 철수했다.

광주지역 시민사회가 철수한 5.18묘지 입구 민주의 문에는 5.18 희생자 유족과 부상자들이 모였다. 5.18 유족들은 “북한군 수백명이 내려왔으면 도대체 우리 군인들은 그때 뭐했나” “지들도 생떼 같은 자식들을 잃어봐” “다 당해봐야 알아. 산 사람들은 몰라”라며 기념식 경호관계자들을 향한 울분을 토했다.
 

태극기를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5.18유가족과 부상자들

33주년 5.18기념식이 열릴 국립5.18민주묘지 민주의문 앞에서 5.18 희생자 유가족과 부상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끝없이 되풀이해 제창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이후 본격적인 연좌농성에 들어간 유족과 부상자, 그리고 일부 광주시의원들은 2시간 동안 태극기를 들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끊임없이 부르며 정부의 퇴출 시도에 강하게 항의했다.

이들은 또한 기념식이 마무리될 즈음 채 참석자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식장으로 들어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 5.18 관련 단체 회원 몇몇은 정부 기념식 도중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다 강제로 퇴장당하기도 하는 등 33주년 기념식은 역대 최악의 5.18기념식으로 남게 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대회에 참석한 통합진보당 지도부와 의원단

오병윤 원내대표, 김재연 의원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이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대회에 참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일본 노동자들

이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대회에는 일본에서 온 서일본노동조합(Japan Rail) 조합원이 20여명 참석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아시아인권포럼에 참석한 외국인유학생, 국제전략센터 회원 등 외국인들이 유난히 많이 참석해 눈길을 끌고 있다.ⓒ민중의소리


 

취재진에 둘러싸인 안철수 의원

5.18기념식에 참석하려 민주의문으로 들어선 안철수 의원이 취재진에 둘러싸여 질문에 답하고 있다.ⓒ민중의소리


 

노회찬·김현철·안철수가 방명록에 남긴 글

5.18 3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안철수 의원 등이 방명록에 남긴 글.ⓒ민중의소리


 

묵념을 올리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33주년 5.18기념식에 묵념을 올리고 있다.ⓒ민중의소리


 

33주년 5.18기념식 기념사를 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10시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3주년 5.18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5.18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5.18단체

5.18 희생자 유가족들이 마무리된 5.18기념식장에 들어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하고 있다.ⓒ민중의소리


 

'5.18 열사들과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

18일 오전 광주 망월동 5.18 민주묘역에서 열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양지웅 기자


 

5.18 기념식 참가 거부한 광주시 의원들

5.18 광주 민주항쟁 33주년을 맞은 18일 오전 광주 망월동 5.18 민주묘역에서 기념식 참가를 거부한 광주시의회 의원들이 구호를 외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곡 지정을 촉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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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힐링은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직설이었다

붓다의 힐링은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직설이었다

 
법인 스님 2013. 05. 17
조회수 888추천수 0
 

 

지금은 직설이 필요한 시대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힐링 바람이다. 서점의 가장 눈에 띄는 매대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역시 힐링을 주제로 한 책이다. 뿐만 아니라 온갖 법회와 강좌, 수련회도 힐링을 달아야 관심을 받는다. 얼마 전 한 때를 휩쓸었던 웰빙 바람을 이어 힐링은 이제 돈이 되는 마음산업의 영역까지 개척하고 있다. 이제 머지않아 불교 사찰의 전각에는 ‘힐링 붓다’가 모셔질지도 모르겠다. 약사여래불이 출현했듯이 말이다.

 

그럼 웰빙과 힐링의 출현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가는 현실이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 끊임없이 아프고 힘들고 괴롭다는 것, 그래서 치유 받고 진짜 사는 것같이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긴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힐링과 웰빙을 희망하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힐링과 웰빙의 염원에 부응한 것이 석가모니 붓다의 사성제의 교리가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있다. 입시에 시달리는 학생들, 입학과 동시에 4년 동안 취업준비생이 된 대학생, 취업과 연애와 출산을 포기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힘들다고 말한다. 고비용의 육아와 교육에 등이 휘는 중년, 은퇴와 고령의 세대도 힘들다고 외친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에서 속도와 성장과 배타와 경쟁으로 자신의 삶을 내몰아가다가, 신자유주의의 링 위에 갇히고 미아가 된 모든 세대가 ‘힘들다’고 울부짖고 있다.

 

그래서 힘들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무엇을 찾는다. 어떤 말을 듣고 싶고 누군가의 손길과 눈길을 받고 싶어 한다. 쉬고 싶고 위로 받고 힘을 얻고자 한다. 그래서 산사를 찾고 멘토의 강의에 열광하고 수행프로그램에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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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의 주요 처방으로 명상과 상담이 호응을 받고 있다. 이때 붓다와 불교의 교리, 수행법은 힐링을 위한 최적의 길이 된다. 왜냐하면 팔만대장경 전체가 바로 ‘고통의 치유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했던가? 병이 나면 정확한 진단과 그에 따른 처방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붓다는 철저한 맞춤형 힐링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붓다는 개인적으로 허약하고 사회적으로 소외 받는 사람을 품어 주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다. 오늘날 많은 멘토들이 그러하듯이 힘들고 아픈 소리에 정성껏 귀기울여주고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불가촉천민 중에서도 제일 낮은 취급을 받는 똥 치는 신분의 니디에게는 몸에 묻은 똥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의 탐욕이 더러운 것이라며 주눅 들지 말고 살아가도록 격려해주셨다. 풋티갓사팃사라는 이름의 제자는 젊고 싱싱하던 피부에 병이 들어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몸에는 악취가 났다. 그러자 대중의 관심과 손길이 멀어졌다. 붓다께서는 아무 말 없이 찾아오셔서 깨끗한 물로 그를 목욕시켜 주고 약도 발라주고 그가 입던 옷을 빨아 주셨다. 그리고 그에게 몸과 마음의 무상함을 일러 주고 집착과 불안을 해소할 수 있게 해주셨다. 또 눈이 멀어 바늘을 잡을 수 없는 아니룻다의 가사를 꿰매 주며 마음의 동반자가 되어 주셨다.

 

이렇게 따뜻하고 자상한 붓다는 동시에 엄정하고 준엄한 멘토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온다. 물질과 자본에 중독되어 향락에 빠진 젊은이들에게는 직설의 멘토였다. 인도 바라나시 부호의 아들 야사는 먹고 마시고 춤추며 노는 쾌락에 빠진 젊은이였다. 그는 어느 날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아내와 미인과 친구들의 추한 몰골에 환멸을 느껴 괴로워한다. 붓다는 야사에게 인생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고 그가 새로운 길을 가게 한다. 또 바라나시 교외에서 쌍쌍파티 중에 귀금속을 훔쳐 달아난 여인을 찾는 젊은이들에게도 붓다는 준엄한 멘토로서 그들을 힐링한다. “그대들이여, 달아난 여인을 찾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진실한 자신을 찾는 것이 중요한가?”라고.

 

 

또한 당대 최고의 부호이며 붓다의 든든한 후원자인 수닷타 장자의 며느리 옥야를 향한 붓다의 대중법문은 직설화법의 절정이다. 옥야는 왕족이며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 요즘 시대에 견주면 외모와 친정의 권세를 믿고 교만하고 불성실하였던 모양이다. 그런 옥야를 향해 붓다는 가감 없이 말한다. “외모와 화려한 옷과 장신구로 치장하여도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마음과 행실이 정직해야 한다. 너는 성질이 사납고 시부모에게 공손하지 못하다. 내 너에게 참다운 아내의 도리를 말해 주리라” 그리고 붓다는 좋고 나쁜 일곱 종류의 아내를 말해준다. 지금으로 말하면 10대 대기업 총수의 며느리에게 날린 사자후가 아닌가? 붓다는 이렇게 사람의 생각과 행실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주는 힐링의 고수였다.

 

그리고 붓다는 비유와 직설로서 계급 차별에 고통 받는 사람들과 고통을 주는 사람들에게 직설하였다. “상류계급도 살인과 도둑질을 하면 형벌을 받게 되오. 천한 행위를 하면 그는 천한 사람이 되고 고결한 행위를 하면 그는 고귀한 사람이 되오. 나는 출생을 묻지 않는다오. 다만 행위를 물을 뿐이오.” 이야말로 계급과 양성의 불평등으로 고통 받는 인류를 향한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는 힐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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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BS '깨달음을 얻은 자, 붓다'

 

분쟁의 현장에서도 붓다는 사회적인 멘토였다. 가뭄이 들어 물싸움이 심해져 마침내는 폭력의 상황에 이른 현장에 가서 붓다는 물이 중요한 것인가

사람의 생명이 중요한가를 대중들에게 묻는다. 싸움은 모든 사람에게 공멸을 가져온다고 지적하였다.

 

자. 이제 인생의 멘토로서 붓다의 힐링을 한 번 분석하면서 이 시대 진정한 힐링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힐링이 무엇인가? 삶의 치유가 아닌가? 치유는 일시적인 응급처방이 아닌 회복과 건강이 목적이다. 아프고 힘들어 하는 소리를 들어주고, 괜찮다고 위로하고 손잡아 주고, 지금까지도 너는 충분히 잘했으니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 주는 것이 힐링이다. ‘나는 지금 위로가 필요해요’라는 사람에게는.

 

그러나 붓다의 사성제는 힐링에 대해 정직한 ‘진단’과 정확한 ‘처방’을 요구한다. 즉 정확하고 정밀하게 삶을 힘들고 괴롭게 하는 원인을 찾아내어 이를 해결하라고 한다. 괴롭고 즐거운 삶의 현실은 바로 행위와 그 결과이기 때문에. 상처는 일시적으로 은폐하거나 봉합하는 것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될 뿐이다.

 

붓다의 힐링은 적절한 비유와 자상한 설명을 곁들이지만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직설’이었다. 외아들을 잃고 구원을 바라는 키사 코타미에게는 사람이 한 번도 죽지 않은 집에서 곡식을 얻어 오면 아들을 살려 주겠노라는 방편으로, 목숨은 무상하여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이치를 깨닫게 했다. 직설적 처방이다. 마을 사람에게 따돌림을 받아 괴로워하는 촌장에게는 그대가 포악하고 심술궂기 때문이라며 그런 행위를 그만 두라고 했다. 위에서 열거한 멘토 붓다의 화법을 보라. 정확하게 인생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말하고 그에 대한 원인을 소멸하라고 한다. 지혜와 자비는 바로 직설의 화법으로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원인은 대략 세 가지다. 그것은 무지와 게으름, 그리고 비겁이다. 또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회구조가 있다. 그 사회는 속도와 성장을 목표로 개인을 도구화하고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국가권력과 기업과 학교 등이다. 지금 진정한 힐링을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에 돌직구를 날리는 직설이 곧 유일한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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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위로는 개인을 나약하게 만들고 탐욕과 독점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는 사회구조에 면죄부를 준다. 그러므로 아프다고, 괴롭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여, 위로 받기 전에 냉엄하게 자가 진단하라. 내 삶은 방향을 제대로 잡았는가, 나는 지금 남의 삶을 눈치 보며 흉내 내고 있지는 않는가. 진정한 힐링은 나를 내 삶의 주체로 세우고 독창적으로 살아갈 때 가능하며, 이를 통해 자유와 행복은 성취되는 것이다. 생전에 스티브 잡스가 암 진단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직관이 내는 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이미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당신은 자기존재를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엄으로 빛나게 하고 싶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 받기보다 자신과 세상을 잘 분별하고, 단호하게 거부하고, 꿋꿋하게 저항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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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폄하가 '표현의 자유'?

'홍어잡이전땅크', '폭도는포도맛'
독일 나치도 울고갈 게임 아이디

[5.18 특별기획③] 5.18 폄하가 '표현의 자유'?

13.05.18 20:30l최종 업데이트 13.05.18 20:59l
김도균(capa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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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이용자가 신고한 게임 닉네임 지난 1월 '월드오브탱크' 홈페이지에 한 이용자가 올린 문제 닉네임들.
ⓒ 월드오브탱크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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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역사관을 가진 일부 누리꾼들이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인터넷을 오염시키고 있다. 특히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역사적 사실까지 호도하고 있어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월드 오브 탱크'는 러시아의 게임회사 워게이밍넷이 제작한 PvP(플레이어 대 플레이어) 중심의 팀 기반 멀티플레이어 온라인 탱크 전투 게임이다. 지난 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이 게임 홈페이지에서는 이용자의 닉네임 때문에 한바탕 분란이 벌어졌다.

일부 이용자들이 '광주로 가는 방향', '광주말살', '꼬마전땅크', '폭동진압용땅크', '홍어잡이전땅크' 등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특정지역을 비하하는 닉네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게이머들은 게임 중에도 수시로 채팅창에 '광주 폭도를 진압했다'거나 '내가 계엄군이다'라는 등의 글을 올려 다른 이용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이용자들이 워게이밍넷에 대책을 세워 줄 것을 요구하자, 회사는 문제를 일으킨 게이머들의 이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닉네임 때문에 이용제한 제재를 받은 일부 게이머들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회사 측을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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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폭동'도 표현의 자유 온라인게임 '월드오브탱크'의 한 이용자는 게임회사측의 아이디 사용 제한조치가 '표현의 자유'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 월드오브탱크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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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용자는 게시판에 "광주, 전두환, 홍어가 왜 제재 받아야 하느냐"며 "'5·18 광주폭동'이라는 문장도 대법원에서 표현의 자유라고 인정했는데 무조건 자기 보기 싫으면 신고 차단이냐?"는 항의글을 올리기도 했다.

지만원씨 무죄판결 이후 극우세력 '표현의 자유' 앞세워 5·18 폄하 극성

이 이용자가 언급한 대법원 판결은 지난 1월 15일,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사자 명예훼손)으로 기소되었던 극우논객 지만원씨가 무죄판결을 받은 일을 말한다. 지씨는 2008년 1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5·18은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한다",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돼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됐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 대법원은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고 5·18에 대한 법적 평가는 지씨의 주장으로 전복되지 않는다고 무죄 선고의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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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 이른바 일베 홈페이지
ⓒ 일간베스트 저장소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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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5.18은 민주화운동이 맞지만 지씨의 비방 행위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아 명예훼손죄가 성립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 판결 이후 주로 극우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하하고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글들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가뜩이나 정규교육 과정에서 근현대사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인식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미 역사적 사실로 정립된 나치의 만행을 두둔하거나 홀로코스트(나치의 유태인 대량학살)를 부인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제시하며 좌우익 극단을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홀로코스트' 부정·축소 주장 처벌하는 유럽

실제 독일과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위스 등 유럽 16개 국가들은 홀로코스트에 찬성하거나 정당화하는 언행은 물론 이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주장도 범죄행위로 보고 처벌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의 게소법(Gayssot Law)이다. 이 법은 2차대전 이후 나치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해 열렸던 뉘른베르크 국제 전범재판이 정의했던 '반인도범죄를 부인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과 그 동맹국이 자행한 잔혹행위와 잔혹행위 혐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공개적 발언, 출판, 방송, 인터넷 유포, 판매자까지 처벌 대상이다.

5차례나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극우 정치인 장 마리 르펜은 1987년 "(나치 강제수용소의) 가스실은 2차대전 역사에서 극히 사소한 부분"이라고 말했다가 120만프랑(약 20만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르펜은 10년 후 독일에서 열린 한 출판기념회에서 '사소한'부분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고 "1000여 페이지의 2차대전에 관한 책에서 가스실은 15줄 정도 된다는 뜻"이라고 망언을 되풀이했다가 투옥과 함께 법원 판결문의 12개 신문 게재비용 20만프랑(약 5만달러)을 부담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다.

2006년 2월 오스트리아 법원도 홀로코스트를 부인한 혐의로 기소된 영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에 대해 3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어빙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유태인 수는 과장됐고 사망자 대부분은 독가스가 아닌 질병으로 죽었다고 주장해왔다.

이처럼 유럽 국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나치 주장 동조자들을 처벌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역사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권리의 남용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5·18 왜곡 핵심은 민주화 운동 부정하는 것으로 모아져"

지난 15일 전남대학교에서는 5·18기념재단이 주최한 '역사 왜곡 시도와 대응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왜곡된 기원과 쟁점, 비슷한 사례인 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 부인에 대한 외국 대응방식을 비교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오승용 전남대 5·18 연구교수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 왜곡이 복잡하고 위험하고 난해한 상황이라고 정리했다. 오 교수는 "왜곡된 정보가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극우세력의 헛소리로만 무시해버릴 수 없어 복잡하고 위험한 문제"라며 "이를 해결하는 것도 단기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보수세력이 문민정부 수립 이후 이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보수 역사를 재평가하는 '뉴라이트'운동을 전개해왔으며, 5·18도 이를 통해 재평가되기 시작했다"며 "핵심은 5·18의 민주화 운동 성격을 부정하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홀로코스트 부인-자유로운 표현에서 인도에 반한 범죄, 전쟁범죄까지"라는 주제로 유럽 사례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지만원씨의 언동과 관련, "지씨가 프랑스, 오스트리아에서 '다른 제노사이드(학살)'를 부정하는 경우에는 증오의 고취를 규제하는 선동죄로 규제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매체 발달로 증오적 언동 규제 필요성 커져

이 교수는 "국제적으로 홀로코스트 부인과 증오·차별을 사주하는 '증오적 표현'을 동일한 맥락에서 취급하는 국가가 많다"면서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증오적 언동의 규제 필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 경우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아니라 선동죄 유형으로 취급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밝혔다.

또 이 교수는 정치적 극단주의를 중립적으로 규제하지 못하는 우리 법체제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그는 "독일은 좌·우 극단을 동시에 규제하는 법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방어적 민주주의'라고 한다"며 "우리나라는 좌파 세력을 규제하는 광범위한 법제를 가지고 있으나 우익, 극우를 규제하는 것은 법체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역사 부인자들이 보수정권의 든든한 벗임을 감안한다면 앞으로도 이를 규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 부인에 대한 처벌이 만들어진다면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현실을 감안할 때 특정한 역사관을 처벌하기보다 공통의 인식지평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일정한 유형의 차별적 언동, 증오적 언동에 대해서는 경중을 가려서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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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에서도 ‘불통’, 공단 ‘자연사‘하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5/19 06:44
  • 수정일
    2013/05/19 06: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개성공단에서도 ‘불통’, 공단 ‘자연사‘하나
 
의혹 증폭... 왜 사실 은폐한 걸까?
 
육근성 | 2013-05-18 10:31:3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의 고민은 ‘윤창중 사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찾는 일이었다. 청와대 전체와 박 대통령에게까지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국면전환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남북 실무회담 제안, 국면전환용이었나

 

 

‘윤창중 사건’에 국정의 발목을 잡히지 않겠다는 의지는 개성공단 회담 제안으로 나타났다. 국무회의에서 북측에 개성공단 관련 회담을 제안하라고 지시했고, 통일부는 지난 14일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냈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개성공단 현지에 보관 중인 원부자재와 완제품 반출 등 입주기업의 고통해소를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 개최를 북측에 제의한다”고 밝히며 “조속한 시일 내에 북측이 편리한 방법으로 답변해 주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이 때 남북이 마주 앉는 장면이 연출된다면 국내는 물론 해외의 시선도 판문점과 개성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윤창중 사건’을 덮고도 남을 만한 파급효과가 예상 되기 때문에 정부가 개성공단 회담 제안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기대감도 드러냈다. 개성공단 정상화 같은 ‘큰 틀의 논의가 아닌 실무적 문제를 제안한 것으로 북한도 논의 가능성을 비쳤던 만큼 대화 제의에 응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 입장에서는 제품 반출에 대해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게 아니라 개성공단 정상화를 염두해 둔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측, “기업인-유지관리 요원 방북과 물자 반출 이미 허용했다”

 

 

정부의 기대는 불발로 끝났다. 제안이 있은 다음날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대답을 내놓았다. 총국 대변인은 “정상화 의향이 있다면 그 무슨 통신 타발이나 물자 반출 문제 같은 겉발림의 대화타령이나 할 것이 아니라 근본문제를 푸는 데로 나서야 한다”며 회담 거부의 뜻을 명확히 했다.

 

 

그러면서 통일부를 비난했다. “(통일부가) ‘북측의 부당한 조치로 공업지구운영이 파행을 빚고있다'느니, '기업가들의 공업지구방문요청에 대해서도 북측의 협조가 없어 성사되기 어렵다’는 파렴치한 소리를 했다”고 목청을 높인 뒤 잔류 인원 철수 당시 남북 간에 이뤄진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북측 대변인은“남측 잔류인원이 개성공업지구에서 전부 철수하던 지난 3일 개성공단 공업지구관리위원회 남측 관계자들에게 공단의 정상적 유지관리를 위해 관계자의 출입과 입주기업가들의 방문 및 물자반출을 허용해 줄 의사를 표명하면서, 그와 관련된 날짜까지 제시해 줬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함구해 온 것을 북측이 폭로한 것이다.

 

 

 

▲북측이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게 보낸 팩스

 

 

정부, “그런 사실 있지만 구체적인 건 아니었다.”

 

 

여기서 의문점 한 가지가 해소된다. 통일부가 “북한과의 사전 협의는 없었다”고 강조하면서도 이번만큼은 회담 성사에 대해 강한 기대감을 내친 바 있다. 그 이유에 대한 답이 북측 대변인의 주장에서 발견 된다.. ‘방북과 물자 반출 허용’을 내비친 북측과의 사전 교감에 기초한 기대감이었다는 얘기다.

 

 

북측 대변인은 또 자신들은 요원 방북과 물자 반출을 허용했지만, 우리 정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외면해 왔다고 성토했다. “우리(북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횡설수설하며 흑백을 전도하는 파폄치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며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북한은 지난 16일 원부자재 반출이 이미 허용한 바 있다는 내용의 팩스를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북측의 주장이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정부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을 외면한 게 돼 향후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불통 정부’가 입을 닫고 입주 기업들을 속인 게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통일부는 “북한이 물자 반출 문제에 대해 기타부타 말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해 왔다.

 

 

의혹 증폭... 왜 사실 은폐한 걸까?

 

 

북측의 폭로성 주장이 나오자 통일부가 말을 바꿨다. “원부자재 및 완제품 반출을 위한 방북과 관련해 우리 측과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한 것을 사실”이라며 “그와 관련해 북측이 구체적인 날짜를 제시하거나 입장을 개진해 오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북측이 방북과 물자 반출 허용을 언급한 사실은 인정한 셈이다. 북측은 “날짜까지 제시해 줬다”고 주장하는 반면 통일부는 이를 부정하고 있어 의혹만 증폭되는 양상이다.

 

 

 

 

개성공단정상화촉구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정부가 (방북과 물자반출 허용과 관련된) 북측의 입장을 당사자인 기업인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크게 반발했다. “정부와 북측이 논의하는 모든 사항을 입주기업에게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는 요구 사항도 내놓았다.

 

 

입주기업을 한없이 걱정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딴전을 부려왔다는 정황도 있다. 지난달 30일 비대위가 공장 설비점검과 원부자재 방출을 목적으로 통일부에 방북을 신청했지만 통일부가 그 명단을 북측에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북측이 관계자 방북과 물품 반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게 사실이라면, 정부가 기업들의 요구를 북측에 전달해 실무적으로 문제를 풀어갔어야 옳았다. 남북 회담이라는 형식과 허울만 고집할 게 아니었다는 얘기다.

 

 

개성에서도 ‘불통정부’, 공단 ‘자연사’ 기다리나?

 

 

비대위가 오는 23일 개성공단 시설 점검과 원부자재 및 완제품 반출을 위해 방북하겠으니 북측과 적극적으로 협의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 요구가 어떻게 반영될지 두고 볼 일이다. ‘방북과 반출 허용’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측도 적극 응해야 하고, 정부 또한 입주기업들의 고통과 함께 하려는 진정성이 있다면 전향적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을 정상화시킬 생각이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폐쇄 수순을 밟는 게 아니라면 입주기업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기업들과 협의하는 게 맞다. 폐쇄로 가는 게 아니라면 은폐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개성공단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두 달 정도라는 게 입주업체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상태로 6~7월을 넘기면 공장 설비가 고장 나거나 녹이 슬게 되고, 거래처 이탈로 상당수의 업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문을 닫게 될 형편이란다. 개성공단이 ‘자연사’할 때까지 시간만 끌 작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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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폄훼, 일본 극우 정치인 추태 연상"

5.18운동 33주년 서울 기념식, '임을위한행진곡' 제창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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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18 14: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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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민주화운동 33주년을 맞아 이날 오전 서울광장에서 서울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서울 기념식에서는 정부 주관 행사와 달리 '님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됐으나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왼쪽)은 부르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정부의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불허, 일부 종편사의 북한 특수부대 개입설 유포 등 5.18민주화운동 폄훼가 난무하는 가운데, 5.18민주화운동 33주년 서울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광장에서 '5.18민주화운동 제33주년기념 서울행사위원회(위원장 박석무) 주관으로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추모사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꽃잎처럼 쓰러져간 영령들이시어, 치욕과 울분과 부끄러움으로 이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임헌영 소장은 "서른 세해를 맞고서도 편히 쉬시라는 안식의 말씀조차 망설여진다. 영령들께서도 우리와 같이 분노와 경악으로 오셨을 것"이라며 △정부 기념식에서의 국가보훈처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일부 종편사들의 '5.18 북한특수부대 개입 폭동설' 유포, △5.18구속부상자회가 초청한 일본 시민단체 입국불허 등을 지적했다.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추모사에서 최근 5.18운동 폄훼 움직임에 대해 "일본 극우파 정치인의 추태를 연상시킨다"고 비판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임 소장은 "이런 행태는 전세계를 분노하게 하는 일본 극우파 정치인의 추태를 연상시킨다"며 "일본을 규탄하기 전에 우리의 모습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일본 극우파에는 분노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은 군국주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역사의 불장난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면서 "평화와 번영, 공존의 원대한 이상을 향한 우리의 민족사는 도대체 어디로 향하느냐"고 개탄했다.

임 소장은 "역사적 혼란 속에서 영령들의 후손들은 애들프게 살아가는 것과 대조적으로 5.18만행 주역들은 호사를 누리다 못해 이제는 정당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며 "독재자에 대해 정당한 심판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가 감피 명복과 평안을 기원드릴 자격이 있는지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념사에서 "5.18 민주화운동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광주시민들이 사람도 명예도 이름도 없이 뜨겁게 바쳤던 애국심의 표출이었다"며 "이제우리는 5.18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평화를 지키는 역사로 승화시켜야한다. 고결한 정신이 세계인의 보편적 가치로 전파되고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지도록 더욱 노력해야한다"고 말했다.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은 "5.18은 자유, 민주, 정의를 세우기 위해 일반국민들이 역사의 중심에 선 계기를 마련했다. 두려움을 무릅스고 진실을 말하는 용기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국가로 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그 토대 위해서 찬란한 풍요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기념식에서는 정부 기념식과 달리 '님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됐다. 하지만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은 부르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 서울기념대회 참석자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 자리에서는 5.18기념 제9회 서울청소년대회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글 부문 이수아 학생(월계고3), 그림부문 윤인영 학생(신서고2), 사진부문 노수민 학생(서현고2) 등이 수상했다.

한편, 이번 청소년대회 수상작품을 두고 서울지방보훈청 측에서 수상작품 교체를 요구해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이에 서울기념사업회 측은 서울지방보훈청장상을 없애고 '5.18기념재단이사장'상으로 교체, 수여했다.

이와 관련,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은 기념사 말미에 "청소년 문예공모 수상작 결정과정에서 혼란을 초래한 데 대해 참가하신 청소년들에게 미안하다"며 "장차 청소년들이 이끌어 나갈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큰인물이 되어주기 바란다"고 사과했다.

서울 기념식에는 백낙청 서울대명예교수,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 유인태, 설훈, 이목희, 오영식, 우원식, 민병두, 서영교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등 3백여명이 참석했고,'노래하는 꿈틀이들'이 '29만원 할아버지' 노래를 불렀고,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등이 참가자들에게 주먹밥과 '님을 위한 행진곡' 가사가 적힌 손수건을 나눴다.

 

   
▲ '노래하는 꿈틀이들'이 '29만원 할아버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에 앞서 이날 오전 광주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참석자 제창이 아닌 인천시립오페라단의 합창형식으로 불렸다.

하지만 일부 참석자들은 일어나 제창을 하는 등 정부의 제창불허에 항의표시를 했다.

그리고 정부의 이번 결정에 5.18 주요 단체장들과 회원, 통합진보당, 광주시의회 의원 등 대부분이 불참했으며, 시민사회단체들은 망월동 구묘역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대회'를 여는 등 별도 기념식을 치렀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 기념식에 참석, "가족을 잃고 벗을 떠나보낸 그 아픈 심정은 어떤 말로도 온전하게 치유받을 수 없을 것이다. 저 역시 매번 5.18국립묘지를 방문할 때마다 가족들과 광주의 아픔을 느낀다"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영령들께서 남긴 뜻을 받들어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 희생과 아픔에 보답하는 길"이라며 "앞으로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우리나라는 더욱 자랑스러운 국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 서울광장 한켠에 마련된 5.18 당시 사진전에 5.18 유공자가 추모글을 남겼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시민들에게 주먹밥과 손수건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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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국 민주주의 초석 5·18 주제곡”

이정희 “역사와 상식 뒤엎는 박근혜정부 맞서 ‘오월정신’으로 미래 열겠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국 민주주의 초석 5·18 주제곡”

최명규 기자 acrow@vop.co.kr
입력 2013-05-17 17:23:48l수정 2013-05-17 17:48:16

 

이정희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하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17일 오후 광주 망월동 민주묘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지정하고 기념식에서 제창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5·18을 하루 앞두고 광주를 방문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17일 "역사와 상식을 뒤엎는 정권에 맞서 '오월 정신'으로 미래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날 광주 망월동 신묘역 '민주의 문' 앞에서 '5·18 광주민중항쟁 33주년'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부가 역사를 뒤엎고 상식을 무너뜨리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식에서 제창할 수 없다고 한다"며 "통합진보당과 노동조합에서 행사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국가 공식행사에서는 부르지 못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국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광주민중항쟁의 주제곡"이라며 "그런데도 정부가 한사코 제창을 거부하는 것은, 진보당, 평화통일세력, 민중세력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 싫다는 병적 혐오증의 결과"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또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인 종편이 '광주민중항쟁은 북한군이 침투해 일으킨 것'이라는 역사왜곡을 서슴지 않고 있다"며 "우리 민중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쿠데타로 시작된 군부독재의 연장을 피로 거부했던 진실을 뒤엎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수구집권세력은 민족의 해방과 통일, 민주주의를 향한 한국 민중의 발걸음을 북에게 조종당하고 북을 추종한 행위로 낙인찍고, 민중의 열망을 색깔론에 가둬 사멸시키려 하고 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18년 정권 유지 논리가 용공분자 색출이었듯,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방법과 유지 논리도 종북 공세와 색깔론"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 대표는 "굽어져도 강물은 결국 바다로 향하고, 굴곡이 있을지라도 역사는 정방향으로 흐른다"며 "옳은 것이 이기는 내일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이겨낸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으로, 진보당은 도도한 역사의 전진에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광주민중항쟁을 통해 드러난 미국의 본질을 기억한다"며 "자국의 이익을 위해 광주시민들에 대한 군부의 무력진압을 승인한 미국의 본질은 오늘 이른바 '전략적 인내'로 미국 군수자본의 판매고를 올리는 것으로 모습만 바뀌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분단체제가 계속되는 한 민주주의의 완전한 성취는 결코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우리는 광주민중항쟁을 통해 얻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언제나 노동자·농어민·중소상인·서민의 곁에서 민주주의와 평화통일, 평등한 대외관계를 갈망하는 국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 33년 광주가 그랬듯 역사의 정방향으로 미래로 가는 길"이라며 "진보당이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13년, 한결같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온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광주정신의 계승자가 되는 것이 진보당에게 최대의 영광"이라며 "'오월에서 통일로', 광주 영령들의 이 바람을 실현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아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통합진보당은 이 대표와 당원 300여명이 민주의 문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지정하고, 기념식에서 제창할 것을 촉구하는 연좌 농성을 벌였다. 오후 5시부터는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문화제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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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최초 가두방송 했던 차명숙씨, 안동서 광주의 진실 알리는 데 앞장

"지금도 3·4월부터는 뜬 눈, 5월에는 못 자
33년 지났어도 광주의 상처, 치유 못해"

5·18 당시 최초 가두방송 했던 차명숙씨, 안동서 광주의 진실 알리는 데 앞장

13.05.18 02:18l최종 업데이트 13.05.18 02:2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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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숙씨가 17일 오후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5.18전야제에 참석해 공연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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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5월이 다가오면 잠을 잘 못자요. 3, 4월부터는 뜬눈으로 날을 새우는 경우가 많지요. 불안하고 두렵기도 하고 초조해지고. 아직까지도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지요. 그러다가 5월이 지나면 잠이 잘 와요."

경북 안동시 옥동에서 '행복한 집'이라는 이름의 홍어전문 식당을 운영하는 차명숙(53)씨는 매년 5월이 되면 광주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계엄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가두방송을 통해 처음으로 시민들에게 전했다가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고향까지 버려야 했던 아픔 때문이다.

1980년 5·18 때 처음으로 마이크 잡아

전남 담양 창평 출신인 그녀는 1980년 양재학원을 다니다 5·18을 맞았다. 5월 17일 계엄령이 선포된 후 당시 광주 근교에는 헬기가 자주 내렸다 떴다 하면서 군인들이 몰려들고 광주 시민들을 말살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계엄이 선포되면서 잡혀갈 사람은 다 잡혀가고 빠져나갈 사람은 다 빠져나갔다는 소리를 듣고 앰프와 확성기를 통해 광주의 소식을 알리자며 젊은이들이 모여들자 차명숙씨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차명숙씨를 비롯한 젊은이들은 전남도청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계림동의 계림전파사를 찾아 앰프와 마이크를 빌려 가두방송에 나섰다. 광주항쟁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가두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차씨는 처음에는 누군가가 써주는 쪽지를 읽었다. 17일 계엄령을 선포하기 위해 미스코리아 전야제를 계획적으로 편성해 방송으로 내보냈다는 내용과 미국이 광주의 피를 말리라고 지시했다는 소문, 전두환이 박정희의 양아들이라는 소문 등의 내용이었다. 학생들이 광주로 들어오려는데 차단돼 못 들어온다는 소식과 광주에서 외부로 나가 공부하는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소식, 군인들이 광주의 외각지를 둘러싸고 있다는 소문도 전했다.

19일부터는 음향시설을 버스나 트럭, 택시 같은 차량에 싣고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직접 본 모습과 젊은 학생들이 찾아와 증언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가두방송을 했다. 당시 시위현장에서 물이 부족하면 물을 가져다 달라고 호소하고 음식이 부족하면 시민들에게 음식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시민들에게는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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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숙씨가 광주에 내려온다는 소식에 사랑의 연탄나눔 광주지부 회원들과 광주비엔날레 로타리클럽 회원들이 광주시 북구 래인플라워에서 음식을 준비해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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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씨는 "21일까지 방송을 했는데 병원에서 피가 부족하면 시민들에게 피가 부족하다고 방송을 했고 많은 삶들이 헌혈을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며 "당시 광주는 평화로운 도시였다"고 기억했다.

차씨는 이후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26일 저녁 무렵 헌병대에 의해 끌려가 송정경찰서로 넘겨졌고 경차서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조사를 받으면서 고문과 구타로 인해 어깨가 탈골되고 살이 터지는 고통을 겪었다.

차씨는 "구치소에서 똑바로 앉아있을 수 없어 비스듬히 누워 밥을 먹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며 '당시 같은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조아라 YWCA 회장이 내 팬티를 보더니 '앞에는 흰색인데 엉덩이 부분은 시퍼렇게 물이 들어 있더라'고 말해 엉덩이 살이 떨어져 나간 것을 그대야 알았다"고 말했다.

차씨는 곧이어 합수부로 넘겨졌다. 합수부에서는 질문은 하지 않으면서 나무탁자 위에 올려놓고 "덥지?"라며 바가지로 물을 퍼 붓고 등과 무릅를 때리고 군화발로 짓이겼다. 나중에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잠만 잘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고문은 6월부터 3개월간이나 계속되었다.

차씨는 결국 검찰로부터 공갈, 협박, 선동, 포고령 위반, 유언비어 날조 등 10가지가 넘는 죄목으로 단기 10년에서 장기 15년 형을 구형받고 10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1981년 11월 24일 특사로 석방되었다.

3개월간 고문 끝에 구속... 군인들은 "차명숙이 간첩" 소문 내

차씨가 구속되자 군인들이 차씨의 고향 마을을 찾아 "차명숙이 간첩"이라는 소문을 내고 다녔다. 아버지는 차씨를 찾으러 나섰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감옥에 있으면 춥다며 이불을 사가지고 면회를 오다가 뺑소니차에 치여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결국 오빠는 차씨가 교도소에서 출소하자 호적을 서울로 옮겨버렸다. 차씨의 호적을 서울 노량진구로 옮기자 노량진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광주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차씨는 서울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1989년 남편의 고향인 안동에 잠시 머물러 내려왔다가 정착했다. 하지만 광주를 찾지 않았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고 광주청문회가 열렸지만 텔레비젼을 꺼버렸다. 당시의 친구들과 지인들은 물론 교도소에서 만난 운동가들마저도 차씨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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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숙씨가 17일 광주 김대중센터에서 열린 '2013세계인권도시포럼'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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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씨는 "당시는 원망스럽고 다시는 그들을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고초를 겪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거명하는 것조차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나중에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후 16년이 지난 1996년부터 5월이면 광주를 찾았다.

"처음 광주를 찾은 것은 차명숙이 죽었다는 소문과 간첩이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왔다. 당시에는 마음을 추스리는데도 힘이 벅차서 조용히 왔다 갔다."

차씨가 본격적으로 5·18민중항쟁을 알리고 광주를 찾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2008년부터 안동에도 5월 광주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전교조와 안동시민연대와 함께 여러 행사를 진행했다. 경상도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덜고 5·18을 알리기 위해 주먹밥행사, 사진전 등을 열고 상주에서는 분향소를 차렸다. 전교조와 함께 초중고 글짓기대회도 열었다. 이런 노력은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다.

5·18민중항쟁 33주년을 맞아 17일 광주를 찾은 명숙씨는 하루종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날 낮 12시부터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3 세계인권도시포럼'에 참석하고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 광주지부'가 환영하는 행사에도 참석했다. 저녁에는 금남로에서 열리는 5·18전야제에 참석해 대구와 경북에서 내려온 학생들을 만났다.

금남로 거리를 한참이나 서성이던 차명숙씨는 "광주에 오더라도 마음의 위로를 삼을 뿐이지 치유는 안 된다"며 "창자가 쓰릴 정도의 쓰라린 고통은 말을 못할 정도로 아프지만 세월이 치유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5월이 왜곡되는 것이 두렵고 심리적으로 초조하기도 하지만 5월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 민주주의가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대구나 안동이나 경북의 젊은 청년들에게 조그만 힘이라도 되고 싶고 힘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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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 '북한군 개입,남침설'의 새빨간 거짓말


 

 

 


오늘은 제33주년 5.18 광주민주화 기념일입니다. 무고한 시민이 독재자의 총칼에 희생된 날이지만, 아직도 5.18과 북한을 연관시켜 거짓을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특히 조선과 동아를 비롯한 보수 신문에서는 탈북자의 증언이라며 5.18 광주 북한군 개입설을 버젓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탈북자와 보수 논객, 그리고 조선,동아, 보수 신문이 주장하는 '5.18 북한군 개입설'이라는 주장은 전두환의 신군부와 비슷합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배경은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이고, 이 비상계엄은 '북한 남침설'때문에 할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5.18 '북한 남침설'이 무엇이고, 그 근거와 거짓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정확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전두환의 치밀한 집권 시나리오'

전두환은 박정희가 가장 총애하던 인물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전두환은 속칭 보스라고 섬겼던 박정희가 죽자마자, 그의 죽음보다 어떻게 하면 박정희처럼 정권을 장악할 수 있는지에 골몰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하자, 당시 국무총리 최규하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합니다. 10월 27일 계엄사령관에 육군참모총장 정승화가 10.26사건 합동수사본부장에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취임합니다.

전두환은 하라는 수사는 하지 않고, 대통령에 당선된 최규하가 긴급조치 제9호를 해제하자 12,12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그 후 전두환은 신군부를 중심으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집권 시나리오를 작성하는데, 이때 가장 필요한 비상계엄령을 위해 '북한 남침설'을 작성하여 5월 12일 심야에 임시 국무회의에 보고합니다.

전두환이 심야에 육군본부에서도 첩보 가치가 없다고 했던 '북한 남침설'을 올린 이유는 신민당과 공화당이 개헌안을 접수했고, 5월 22일 계엄령이 해제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5월 13일 전두환은 '북한 남침설'을 근거로 언론사와 관공서에 장갑차와 군인을 배치하고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합니다. 전두환이 비상계엄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북한 남침설'과 같은 전쟁 위협론 이외에는 명목이 없었기 때문이고, 결국 '북한 남침설'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 북한 남침설, 그 새빨간 거짓말'

북한 남침설은 1980년 5월 15일~20일 사이에 북한이 남침한다는 주장입니다. 박정희 사망 이후에 가장 우려했던 북한의 움직임과 전쟁 징후는 실제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5월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북한 남침설'은 많은 국민에게 공포를 주기 충분했습니다.

 

 

 


중앙정보부가 작성하고 국무회의까지 보고된 '북한 남침설'의 근거는 중국을 방문한 일본 고위 관리에게 중국이 북한의 남침 계획을 제보했고 그 관리는 일본 방위청과 일본 내각조사실에 이 사실을 알린 것으로 나옵니다.

이후 일본 내각조사실(한국 중앙정보부에 해당)에서 북한 남침 징후를 포착하고 이를 중앙정보부에 제공했고, 이것이 '북한 남침설'의 근거로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의 명분이 됐습니다.

자, 그럼 중앙정보부가 작성했던 '북한 남침설'의 근거를 하나씩 검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을 방문해 북한 남침 사실을 들었다는 일본 고위 관리는 나카소네 전 일본 수상입니다. 그러나 나카소네 전 수상은 중국 방문 중에 중국이 북한의 전쟁 동향이나 징후는 말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일본 내각조사실의 한반도 담당관은 중앙정보부에 북한 남침설을 말한 적도 어떤 정보도 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유는 북한 남침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내각조사실 한국담당 과장은 중앙정보부의 발표가 있자 일본 내 외국,국내 언론 및, 미군,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북한 남침설' 정보를 제공한 사실이 있느냐는 문의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중앙정보부의 문서에 나온 일본 내각조사실 담당자가 그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중앙정보부의 '북한남침설' 발표 이전에 주일 대사관으로부터 북한 전쟁 징후에 대한 전화 문의가 왔었고, 자신은 그런 징후는 없었다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 은 중앙정보부의 '북한 남침설'이 나온 뒤 5월 13일에 '북한 남침'에 대한 징후는 없었다고 본국에 보고했으며, 당시 주미 대사도 미국 정보부와 국무성 등 어떤 기관에서도 '북한 남침 징후'는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아무도 하지 않은 말과 정보를 가지고 중앙정보부는 '북한 남침설'을 주장했고, 거짓말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5.18 광주 학살을 자행한 것입니다.

' 5.18 북한 특수부대 개입설의 허구'

북한 탈북자들이 방송에 나와서 5.18 시민군의 대부분이 북한군 특수부대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80년 광주에는 북한군 특수부대가 탈북자들과 보수 단체가 주장하는 만큼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모두 반박하기는 지면이 길어져 힘들어, 주요 사안에 대해 진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북한군 특수부대 잠입 전제조건의 허구성

탈북자들과 보수 단체는 북한 특수군이 땅굴과 해상을 통해 침투해서 광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땅굴에 근무했던 군인들 수백 명이 전사했어야 합니다. 청와대를 습격하려던 북한군 31명이 침투했을 당시에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수백 명의 북한군이 땅굴로 침투, 광주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 어렵습니다.

북한 김일성은 1980년 5월 13일 유고와 루마니아를 방문하고 평양으로 돌아옵니다. 12,12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미국은 북한의 남침을 50%로 봤지만, 그 이후는 북한 남침에 대한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이미 미국이 혹시나 모를 북한 남침에 경계를 강화했고, 북한도 이미 남침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5월 21일 광주외곽봉쇄작전이 시작됩니다. 광주로 통하는 주요 도로를 대한민국 3공수,7공수,11공수,20사단,31시단,전교사가 모두 차단했습니다.

5월 17일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된 상황에서 수백 명의 북한군이 전국 곳곳에 배치된 군인과 경찰을 뚫고, 또다시 공수부대가 막고 있는 광주 외곽을 뚫고 시민군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어이가 없을 전제입니다.

북한 특수군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수백 명이 5월 18일 광주에 시위가 일어나자마자 침투하거나, 광주외곽봉쇄작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곧바로 투입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특수부대 작전은 최소한 침투 루트가 확보되지 않으면 작전 자체가 실현되기 어렵거니와 불과 며칠 만에 종료된 5.18진압 작전 기간으로 볼 때 북한군 개입설은 소설에 가깝다.오히려 북한이 광주에 북한군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포기했다는 증언이 오히려 신빙성이 있다. 그러나 결론은 북한군이 광주에 오지 않았다는 진실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신군부가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켜 미군이 북한 동향을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백 명의 북한군이 광주까지 오는 동안 미군이 모를 수가 없습니다.

해상,공중,육상에 모두 미군과 한국군이 경계를 서고 있는 상황에서 수백 명의 북한군이 내려왔다는 사실이 진실이라면 기밀문서가 해제된 지금 시점에서 분명 밝혀지고도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북한군 수백 명이 넘어왔다는 공식기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 M1소총 총상 환자가 많은 이유

탈북자와 보수 세력은 유독 M1이나 카빈 소총 총상 환자가 M16 총상 환자보다 많기 때문에 이것이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의 증거가 된다고 주장 합니다.

 

 

 


그들의 주장처럼 광주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사인을 보면 M1이나 카빈 소총의 총상 환자가 M16 총상자보다 더 많습니다. 그런데 이 사망자 사인 보고서의 작성은 전두환이 장악한 보안사가 작성했습니다.

처음 광주 지역 의사,.검찰, 보안사 요원이 작성한 검시 자료 원본에는 오히려 M16사망자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M1 총상 환자가 늘어났을까요? 이유는 피해자 보상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5.18이 종료된 뒤 보안사 주도로 사체검안위회원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보안사는 M16 총상 환자를 폭도로 분류했고, 검안에 참가했던 의사 2명과 목사는 폭도로 분류될 경우 위로금이 지급되지 않았으므로 최대한 양민(비폭도)으로 분류하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처음 폭도로 분류된 사람은 20여명이 조금 넘었지만 (의사와 목사의 주장으로) 보안사는 이정도 비율이면 폭도수가 너무 적다고 해서 상호 합의하에 최종적으로 38명이 폭도로 분류됐습니다. 결국, 사체에 난 총상이 M16인지, M1인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이것이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의 증거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광주에서 죽은 한국군이 총 23명이었는데, 그 13명은 진압군끼리의 충돌로 사망했고, 대략 7~10명 정도의 군인이 무장 시민에 의해 죽었습니다. 수백 명의 북한 특수부대가 들어와서 겨우 10명 미만의 한국군을 사살했다고 가정한다면 북한 특수군 개입설 주장은 헛된 증언에 불과합니다.

○ 탈북자 VS 기자의 시각

요새 종편 채널에 자주 등장해서 5.18 광주 당시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 임천용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입니다.

임천용은 언론에 나와 광주에 북한 특수군 수백 명이 침투해 민간인을 사살했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증언은 그리 신빙성이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임천용은 2006년 한국논단에서는 북한군 450명이 그해 12월 기자회견에서는 1개 대대가, 2007년 뉴스한국에서는 2개 대대 600명이 2013년 TV조선에서는 1개 대대 등 침투인원수가 매번 달라집니다. 여기에 침투 방법도 배를 이용해 침투했다가 해놓고는 잠수함, 나중에는 땅굴까지 다양해집니다.

침투 인원,침투방법,생환자수 등이 매번 바뀌는 그의 증언을 믿기는 신빙성이 떨어지는데, 오로지 그의 주장이 진실인양 TV조선과 보수 단체는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1980년 광주에는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해외 언론인들이 다수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들이 수백 명의 북한군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정부에서 폭도와 간첩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해외 언론 기자들은 이런 정부의 발표를 검증했습니다. 그러나 간첩이나 북한 특수군의 개입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대표적인 극우 논객 중의 한 명이었던 조갑제닷컴의 조갑제씨는 광주의 북한 특수군 개입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조갑제씨는 광주를 취재했던 기자 중의 한 명입니다. 만약 광주에 북한군이 있었다면 조갑제를 비롯한 기자와 신군부가 모를 리 없었고, 33년이 지난 시점에서조차 그들이 말을 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광주를 취재했던 기자 중에서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증언이 바뀌는 탈북자들의 말만 믿고 1980년 광주에 수백 명의 북한 특수군이 침투, 민간인을 사살했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단순한 생각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최소한 인간답게 생각하려는 행동에 있습니다. 1980년 광주에 있었던 아픔을 왜곡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은 없고 오로지 권력과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 사는 듯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광주를 경험했습니다. 그 아픔을 아직도 잊지 못해 가슴 한켠에 분노와 좌절, 그리고 한이 어린 슬픔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그들에게는 위로를, 남아 있는 자에게 역사의 교훈을 주기 위해서라도 말도 안 되는 왜곡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1980년 5월,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던 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33년 전 광주에서 희생당한 모든 이들의 넋에 고개 숙여 고마움와 미안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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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오줌 뭉개며 방미성과 자화자찬하는 저들은 누구?

 

 

 

똥오줌 뭉개며 방미성과 자화자찬하는 저들은 누구?
 
김상일(전한신대학교교수)
 
김상일(전한신대학교교수)
기사입력: 2013/05/18 [07:36] 최종편집: ⓒ 자주민보
 
 

박근혜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두고 대 성공적이었다고 하는 이유는 미국 의회 연설에서 39회의 박수를 받았기 때문이라 한다. 기가 막히고 찰 노릇이다. 이런 걸 두고 방미 성과 대성공이라고 하니 말이다.

미국은 통상 상대국이고 무기를 팔아주어야 할 나라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협상을 해야 할 대상이고, 우리의 주권을 좌지우지하는 종주국과 같은 나라이다. 이런 나라의 국회의사당에서 박수를 많이 받았다 것은 미국의 구미에 맞는 말, 그리고 그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짓만 골라서 박근혜가 했기 때문이란 것과 완전 동일한 의미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현주소를 보자. 경제대국이라 허장성세를 부리지만 중국과의 장사에서는 300억불 흑자이지만 일본과의 장사에서 300억불 날아가고, 미국과의 장사에서 100억불 남기지만 250억불어치 무기 팔아 주어야 한다. 그러니 박근혜가 개성공단 문 닫고 신뢰프로세스 운운하면서 한미동맹 60주년 운운했으니 미국은 얼마나 박근혜가 귀엽고 기특했을 것인가.

박수가 39번 이상 안 나온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박근혜가 말하는 ‘신뢰프로세스’는 미국과의 신뢰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북은 ‘프로세스’란 말 자체도 안 사용한다는 것을 알라. 외래어 구사해 가며 영어 실력 과시하면 지지율 올라 갈 줄로 안 박근혜는 종래의 남자 대통령과 무엇 하나 다른가.

일언이폐지하고 박근혜 방미는 역대 대통령들과 똑같이 똥오줌 못 가리는 짓을 하고 돌아 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미 결과를 놓고 전대미문의 대 방미성과라고 한다. 박근혜 일행들이 이렇게 얼토당토 않는 방미 성과를 놓고 대성공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들 일행과 국민들의 정신 상태를 보면 이해가 금방 간다. 윤창중 색난을 놓고 대통령으로부터 아래위로 대처하는 행각을 보면 이들의 의식 수준에 한 눈에 들어오고 방미성과 운운하는 수준도 금방 파악해 알 수 있다.

윤창중이 여성 인턴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고 한 발언은 모두 거짓말로 들어 났다. 그의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다른 미국 문화 때문이라고 한 발언은 ‘진품1호’이다. 그럼 일국의 대통령의 얼굴이요 입이라고 할 수 있는 대변인이 기초적인 국제 감각도 없었다는 말인가.

‘진품2호’는 이남기 홍보수석의 발언이다. ‘대통령께 사과한다’는 발언 말이다. 사실 이 발언은 윤창중 진품1호을 딴 전으로 돌릴 만큼 진품 가운데 진품이다. 도대체 주객을 분간 못하는 발언이다. 형제간에 생긴 잘 못 된 일을 두고 형이 동신 대신에 부모님에게 사과한다는 말이 될 성부터 될 말인가?

이남기는 가정에서 동생 대신에 부모에게 사과하면서 자랐는가 보다. 그 동생을 낳은 주체가 부모가 아니던가? 그러면 동생의 잘 못은 곧 부모의 잘 못이다. 그래서 부모에게 사과한다는 것은 부모를 꾸짖는다는 말과 같다. 주객분별도 못하고 이렇게 오중똥 뭉개고 앉아 있는 것이 대한민국 홍보수석이다.

그런데 이남기의 발언은 대통령이 윤창중 건의 주체가 아니고 객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대통령 자신이 이 번 일에 주체가 아니고 객체라고 입장 정리를 한 것 같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박근혜가 이 번 사건에서 자유롭게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출구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번 윤창중 건으로 대통령이 곁에 비껴 설 자리를 만든 것이 바로 홍보수석의 발언이다.

이러한 지적을 적중이나 하듯이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입을 열어 ‘윤창중이 그런 사람인줄 몰랐다’라고 했다. 대다수 국민들과 심지어는 여당 까지도 임명을 반대했는데도 오직 홀로 독단적으로 임명을 해 놓고 지금 와서 ‘그런 사람인줄 몰랐다’고 하는 것은 홍보수석이 만들어 준 볼을 상대방의 넷 너머로 쳐 넘기는 묘기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모처럼 넘긴 공이 선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유체이탈자가 아니고는 이런 발언을 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부 언론(진실의 길)에서는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두고 ‘유체이탈’이라고 했다. 몸은 그냥 두고 정신만 빠져 나가 몸과 정신이 이중화 되었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게 반대를 한 데도 자기가 임명을 해 놓고는 지금 와서 임명한 자기와는 딴 사람이 되어 소 닭 보듯이 하는 박근혜의 말은 유체이탈자가 아니고는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남기가 이미 대통령을 이 건에서 객체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박근혜는 수동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유체이탈자’라, 좀 심각하지 않는가? 이 말이 사실이라면 국가가 위험하지 않는가?

아직 많은 우리 국민들은 박근혜 주변의 족속들이 오줌똥 못 가리고 있는 것의 심각한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박근혜를 찍은 국민들 자신들이 오줌똥 못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초반이니 더 두고 보자고 한다. 대통령 임기는 5년 단임이다. 그러기에 뽑기 전에 철저하게 검증하고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여 투표장에 나갔어야 한다. 드디어 역대 대통령 가운데 지지율 1위가 노무현(37%)이 되었다. 2위가 박정희(33%), 다음이 김대중이라고 한다. 앞으로 박근혜라는 딸이 하기에 따라서 아버지의 박정희의 지지율을 곤두박질 칠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의 신화가 무너지는 날은 곧 한국 보수가 조종을 울리는 날이 될 것이다.

지금 한국 보수 정객들과 언론들은 윤창중 출구 찾기에 전력투구 하고 있지만 사방이 다 막혀 빠져 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배후에 좌파 종북주의들이 있었다. 호남향우회의 작품이다. 야당 박아무게 의원의 내연의 처다 등 상상을 초월하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만약에 사건이 국내에서 터졌다면 벌써 해결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배후에 종북 좌파들이 있었다고 한 고투라기 잡아 언론에서 대서특필을 했더라면 윤창중 성폭행 건은 흔적도 없이 살아 졌을 것이다. 장자연 사건 등을 보라. 당사자 한 여성이 자살을 했는데도 지금 이 사건은 실종되고 말았지 않는가.

앞으로 미국은 이 사건을 실종시키는 대신에 쥐락펴락 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코를 메 끌고 다닐 것이다. 엄청난 국익의 손실을 가져 올 것이다. 우리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벌어 드린 돈으로 미국 무기를 얼마나 많이 사 주느냐 마느냐의 도구와 카드로 사용될 것이다.

이럴 진데 박근혜의 이 번 방미는 하나 얻은 것 없는 퍼주기 외교 옛것만 이런 사실 자체가 언론에 가려지고 말았다. 다름 아닌 윤창중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망신 외교를 돋보이게 한 것은 다름 윤창중이다. 윤창중 때문에 대성공 방미 효과가 실종되고 만 것이 아니라, 대실패가 둔갑해 큰 효과나 낸 것처럼 둔갑해 버렸다는 말이다. 윤창중이 살신성인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박근혜 주변에는 일단 저질러 진 이 엄청난 사건을 마무리하고 수습할 인재가 없다. 왜냐하면 대통령 자신이 오줌똥 분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홍보수석을 갈듯이 대통령도 갈지 않고는 온 나라가 오물 투성이가 되어 냄새가 온 사방에 진동할 것이다.

이명박 찍어 손 하나 자르고, 박근혜 찍어 남은 손마저 잘라 버리면 무슨 손으로 살아 나갈 런지 걱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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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실현 토론회 ‘평화협정 촉구’

[5․18행사] 한반도 평화실현 토론회 ‘평화협정 촉구’

진보․시민’진영 공동연대.. 7․27국제평화대회 준비부터

광주=장유강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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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18 01: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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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평화실현 토론회’ 인사말을 하고 있는 김정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광주전남본부’ 상임대표(사진 왼쪽 첫 번째).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성명현 ‘한반도 전쟁위기 해소와 평화정착을 위한 경남평화시국회의’ 상황실장, 한충목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 공동대표, 주관철 ‘우리겨레하나되기 광주전남운동본부’ 사무국장, 최재봉 ‘기독사회선교연대회의’ 목사, 최진미 ‘전국여성연대’ 집행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장유강 통신원]

 

17일 오후 3시 광주광역시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별관 3층 회의실에서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가 주관한 ‘한반도 평화실현 토론회’(이하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5․18민중항쟁 제33주년 기념행사 중 16일~19일 일정의 ‘2013 세계인권도시포럼’ 특별세션 형식으로 진행됐다.

토론회 기조발제는 한반도 평화운동을 이끌고 있는 진보 및 시민진영에서 각각 발표했다.

첫 기조발제는 진보진영의 한충목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 공동대표가 <‘정전 60년, 평화협정 체결’ 평화와 통일로 가는 유일한 길>을 주제로 진행했다.

두 번째 기조발제자인 이승환 ‘한반도평화연석회의’ 공동대표는 <한반도 위기의 진단과 ‘시민 대안’> 자료집으로 대신했다.

한충목 공동대표는 “한반도 전쟁위기 해소의 첫걸음은 현재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체결하는 것”이라며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나면 주한미군은 자연스럽게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무기에 의한 평화’는 끊임없는 군비경쟁의 악순환만 불러오고, 그 끝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공멸뿐”이라며 “한국의 국방비 25%만 줄여도 매년 9조원의 예산을 다른 분야에 사용할 수 있는데, (이 예산은) 반값등록금 실현과 학교비정규직 호봉제 전환에 사용하고도 남는 규모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진보진영과 시민진영이 공동 연대하여 오는 7월 27일 열릴 예정인 ‘7․27국제평화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올해) 정전 60년을 평화협정 체결의 원년으로 삼자”고 덧붙였다.

‘7․27국제평화대회’는 30개 이상의 국외 도시와 50개 이상의 국내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계획이며, 주요 내용은 국제평화대행진, 평화음악회, 평화박람회, 그리고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국제평화선언 등이다.

서울대회는 서울과 임진각 일대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특히 북한에서도 평양대회 개최를 통해 국제평화대회에 동참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 두 번째 기조발제자인 이승환 ‘한반도평화연석회의’ 공동대표의 자료집에 따르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다섯 가지 제안으로 ⧍모든 군사조치의 일단 중지 ⧍대화의 재개 ⧍핵개발과 핵우산의 포기 ⧍호혜적 경제협력 조치 ⧍군비통제와 평화공존의 제도화 등을 꼽았다.

 

   
▲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주관 ‘한반도 평화실현 토론회’가 17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별관 3층에서 열렸다. 토론회장 입구 안내데스크 옆에는 참석자들이 각자의 통일의지를 적어서 만든 ‘원 코리아 평화나무’가 걸려있다. [사진-통일뉴스 장유강 통신원]

 

이어서, 토론회 패널들의 한반도 평화운동에 대한 성찰과 의견이 발표됐다.

먼저 종교계를 대표하여 최재봉 ‘기독사회선교연대회의’ 목사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는 상대방의 상황과 여건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평화를 실천하는 데 있어, 왜 ‘진보진영과 시민진영’으로 나눠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하나로 뭉쳐서 대중성을 갖춘 평화통일 정책과 사업들이 나와야 할 것”을 주문했다.

두 번째 패널은 여성계를 대표하여 최진미 ‘전국여성연대’ 집행위원장이 발표했다.

최 집행위원장은 “전쟁과 군사문화는 여성사회에 상당한 악영향을 안겨줬다”며 “(그래서) 여성계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데, 올해에 전국적으로 1천여 명의 여성평화지킴이단 조직과 7․27국제평화대회에서 ‘여성평화선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 번째 패널은 지역시민사회를 대표하여 성명현 ‘한반도 전쟁위기 해소와 평화정착을 위한 경남평화시국회의’ 상황실장이 발표했다.

그는 “평화운동에 있어서 중앙단위 분열이 지역단위로까지 확대되지 않도록 공동적 실천사업들이 나와야 할 것”이라며 “실천의 집중성과 함께하는 평화운동이 전개돼야 할 것”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토론회 사회를 맡은 주관철 ‘우리겨레하나되기 광주전남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우리 모두가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큰 흐름을 만들어 정전협정 60주년을 뜻 깊게 맞이하자”면서 토론회를 마무리했다.

 

   
▲ ‘한반도 평화실현 토론회’ 장소인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별관 입구 두 개의 기둥에 행사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번 토론회가 한반도 평화운동을 이끌고 있는 두 개의 기둥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과 ‘한반도평화연석회의’를 연결시켜 주고 있는 듯하다. [사진-통일뉴스 장유강 통신원]

 

한편, 토론회를 듣기 위해 찾아온 박지혜(여․22) 전남대학교 사회학과 3학년 학생은 “5․18에 대한 (광주지역) 대학생들의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며 “한반도에서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이은지(여․19)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1학년 학생은 “정치학 과제물 해결을 위해 토론회에 참석했다”며 “한반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 5․18민중항쟁 제33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실현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장유강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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