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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찬성했던 사람, 다 어디 갔지?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17일 발표됐습니다. 발표 내용을 보면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이었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설치된 총 16개 보 중 11개 보의 내구성이 부족했고 불합리한 수질관리로 수질이 나빠졌습니다. 비효율적인 준설계획으로 앞으로도 엄청난 비용의 유지관리비용이 소요될 예상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설계 미비, 입찰 비리, 준공검사 부적정 등 각종 비리와 불법이 난무했다고 감사원은 발표했습니다. 사실 감사원의 이런 발표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4대강 사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환경단체와 시민, 전문가들은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무려 22조 원이나 드는 국책사업을 단기간에 강행하는 자체가 부실 공사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었습니다.

그토록 이명박 정권 내내 시민과 환경단체,전문가들이 '4대강 사업' 반대와 문제점을 지적할 때는 가만히 있거나 부실 감사를 발표했던 감사원이 왜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한 달여 남자, 조금은 제대로 된 감사결과를 발표했을까요? (아래 파일은 감사원의 4대강사업 감사결과 발표 자료)

 

 

 

 



' 감사원의 부실감사,늑장 꼼수 발표'

이번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결과가 나오게 된 배경은 지난 14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감사결과는 다 나와 있었지만, 인수인원회 보고를 먼저 하고, 버티다가 언론에 관련 기사가 나오자 부랴부랴 결과를 발표한 것입니다.

 

 

 

 


조선일보가 1월9일 4대강 살리기 사업 감사결과 수질이 정부 목표보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자, 감사원은 바로 해명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해 9월까지 '4대강 살리기사업 주요 시설물 품질 및 수질관리실태 감사 현장확인을 하고 현재 감사결과를 처리중"이라며 "4대강 공사 구간 수질이 공업용수 수준으로 나타났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감사 결과에 대해 사실과 다른 내용의 보도를 해 감사원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보도에 대해서는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청와대는 감사원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4대강사업 감사원 결과를 보도한 사실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청와대와 감사원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지만, 한국일보는 14일 감사원이 인수위원회에 업무보고를 했다고 보도했으며, 인수위 업무보고가 끝나자 감사원은 17일 4대강 감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그런데 감사원의 발표시간을 보면 저녁 6시 30분입니다. 공무원이 다 퇴근한 시간입니다. 이런 발표 시간을 보면 마치 지난 국정원 여직원 사건에서 경찰이 밤 11시에 심야 기자회견을 한 것과 비슷합니다.

감사원은 감사결과를 손에 쥐고 이쪽저쪽을 뛰어다니면서 과연 누구의 편에 줄을 설지 고민하다가 결국 새로운 정권에 협력(?)하기로 하고 발표하지만, 구정권에 대한 약간의 배려(?)도 해준 것으로 보입니다.

' 4대강사업 찬성했던 조선일보, 왜 갑자기?'

조선일보는 9일,14일자 보도에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맹렬히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마치 조선일보가 MB정권을 중립적인 시각에서 비판했던 언론사로 착각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브라질 리우 정상회의에서 4대강 사업으로 가뭄과 홍수를 막았다고 연설한 이명박 대통령과 그날 조선일보 기사. 출처:오마이뉴스

 

 


2012년 6월 20일 이명박 대통령은 브라질 리우 정상회에서 4대강사업으로 가뭄과 홍수를 극복했으며 이는 4대강사업이 성과라는 자화자찬을 했습니다. 이날 조선일보는 '4대강 보 물 4억톤, 여의도 13배 가뭄 농지에 공급 시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합니다.

이 기사를 보면 마치 여의도 13배의 광활한 가뭄 농지에 4대강사업으로 물이 공급돼 4대강사업이 성공적이라는 느낌을 독자에게 주기 충분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브라질 리우 정상회의 연설과 별 차이가 없는 4대강사업 찬양 기사였습니다.

 

 

▲조선일보에서 보도한 4대강관련 기사.출처:인터넷조선일보 캡쳐 화면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기사는 물론이고, 정부 홍보성 여론조사 기사를 그대로 진실인양 올렸던 조선일보가 왜 이제야 4대강사업을 반대하고 비난하고 나설까요? 맞습니다. 이제 정권이 바뀝니다. 아니 정권이 아니라 대통령이 바뀌기 때문에 말을 갈아타야 합니다.

조선일보에 언론의 정도는 필요 없습니다. 그저 누가 자신들의 이권과 부를 지켜줄지에 관심이 있을 뿐이고, 그 대상이 이명박 대통령에서 박근혜 당선인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그토록 찬양했던 4대강사업을 비난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 4대강 찬성했던 사람들 다 어디 갔지?'

우리는 4대강 사업이 시작될 시기에 방송과 언론에 나와 4대강 사업을 극찬했던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이들은 4대강 사업 반대자들을 향해 맹목적인 무지한 반대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100분 토론 '4대강 살리기 왜 논란인가'등 각종 4대강 토론회에 참석했던 박재광 교수

 

 


전문가라고 토론회에 나왔던 사람 중에 박재광 위스콘신대 교수가 있습니다. 환경공학 전문가라는 그는 각종 토론회에 4대강사업 찬성 측 패널로 등장해 4대강 사업을 찬양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보를 세운다고 수질 나빠지지 않아요. 반대하는 교수님과 목숨 걸고 내기해도 좋습니다"라는 발언까지 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목숨 걸고 내기까지 주장했던 4대강 수질이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요?

『(수질관리기준 미흡) 4대강 보 안의 수질이 체류시간 증가 등으로 물환경이 변화되어 조류가 증식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므로 부영양화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해 COD,조류농도 등 적절한 수질관리지표로 관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나 일반 하천의 BOD를 기준으로 관리, 조류 농도 등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수질상태가 왜곡 평가,관리됨에 따라 수질악화 우려』

 

 

▲감사원 4대강사업 수질분야 감사 결과 보고서,

 

 

보를 세운다고 수질이 나쁘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4대강 보 안의 수질이 체류시간 증가 등으로 나빠졌다는 결과를 놓고 보면 그의 말은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입니다.

4대강사업에 찬성하며 거짓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한두 명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변하고 있습니다.

 

▲ 조원철 연세대 교수의 인터뷰 모음 사진.

 

 


조원철 연세대 방재공학과 교수는 2007년 대선 당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위한 이명박 후보의 '운하정책 환경자문교수단'에 포함됐던 인물입니다. 조 교수는 4대강 사업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구상한 일이라며 “DJ가 하면 로맨스고 MB가 하면 스캔들이냐”라고 반문하기도 했으며, 각종 방송에 출연하여 4대강 사업이 수해에 대비하는 방재시스템이며, 물이 보 속에 갇혀 썩는 일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랬던 그가 지난 14일 연합뉴스 TV '뉴스 Y'의 '신율의 정정당당'에 출연해서는 보 건설하고 준설시 수질악화가 된다는 연구 결과을 정부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느냐고 묻자 "사업 시작 주체죠"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아니고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전문성이 없는데 척을 하신 거라는 발언 등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을 힐난했습니다.

 

 

▲공감코리아에 기재됐던 4대강사업 관련 기사.

 

 

정부와 방송은 환경단체와 시민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자 늘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하며,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홍보해왔습니다. 박재광 교수는 TV 토론 중에 '전문가가 아닌 사람과 토론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전문가랍시고 나와서 4대강사업을 찬양하고, 엄청난 성과를 가져오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라고 주장했던 이들이, 이제는 하나 둘 그 책임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4대강 사업을 찬성했던 사람들을. 그들은 이명박 대통령 퇴임 후에 언제 자신이 그랬듯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나설지 모릅니다. 이들은 전문가랍시고 시민을 무시하고, 정치인으로 시민을 정치적 선동에 휘말린 무지한 사람들로 치부했었습니다.

"4대강 살리기의 실체에 대해 과학성, 합리성이 배제되고, 전문성, 객관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오해와 편견, 정치적 선동이 난무하고 있다.광우병처럼 비과학적, 비전문적 괴담 차원으로 흐르면 안된다" (2010년 한나라당 대변인 성명)

4대강사업찬성인사 명단


이명박 정권이 끝나면서 4대강사업을 찬양했던 사람들이 그 책임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 제일 큽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요?

 

▲4대강사업을 홍보하고 찬양했던 정부와 연예인,전문가 교수들.

 

 

정부는 4대강사업을 강행하기 위해 환경부와 감사원의 결과를 조작하기도 늑장 발표하는 등의 다양한 꼼수를 부렸습니다. 전문가는 정부로부터 용역과 연구비를 받으며 학자의 양심을 팔고 국민을 속였습니다. 연예인들은 앞다퉈 '4대강사업' 찬양 방송에 나와 4대강사업을 홍보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일제강점기 '학병과 징용,정신대는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해놓고서는 이제 모든 책임은 일본에 있다고 떠넘기는 친일파와 같은 모습과 같습니다.

지식인과 사회 유명인사의 발언과 언론은 신뢰성과 공공성이 다분히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일반 시민과 다르게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고, 그에 대한 합당한 심판도 받아야 합니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하면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반문하고 싶습니다. 먼저 양심고백과 반성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참회하는 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거짓을 숨기고 살아남는 박쥐와 같은 사람들은 언젠가는 그 죄의 대가를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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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동물이 다르다는 당신에게

사람과 동물이 다르다는 당신에게

 
조홍섭 2013. 01. 18
조회수 73추천수 0
 

동물 무시가 외국 이주민 등 소수 집단 차별로 이어져

"개·고양이 잔인하게 죽인 사람의 다음 표적은 어린이"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_강재훈.jpg »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창문에 부딪쳐 부상당한 까치를 치료하고 있다.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동물이라도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인도주의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깃이나 모자 끝을 라쿤(북미산 너구리) 털로 장식한 외투가 유행이다. 지난 11일 온라인 매체 <오마이뉴스>에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동물에게 고통만 주는 이런 옷을 입지 말자는 내용의 글(‘당신 옷에 달린 털, 그건 ‘생명’입니다’)이 실려 관심을 모았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반발하고 비아냥거리는 댓글이 적지 않았다. 이들의 목소리엔 ‘인간보다 먹이사슬에서 열등한 동물이 사람 손에 죽는 게 뭐가 문제냐’ ‘왜 동물을 사람 취급하냐’는 불만이 깔려 있다.
 

심지어 동물보호운동이 나치의 잔재라는 비난도 나왔다.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에다 동물 애호와 환경 보전을 주창하고 생체실험에 반대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동물보호에 나치의 낙인을 찍을 일은 아니다. 오히려 유대인 학살은 잔인한 가축 도살과 동물 학대에 더 가까워 보인다.
 

BUNDES~1.JPG » 나치 이인자 헤르만 괴링이 자연보호 관련 시찰을 하고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독일 사회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누군가 도살장을 바라보며 ‘그들은 동물일 뿐이야’라고 생각할 때마다 아우슈비츠는 시작된다”고 적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같은 비인간화는 동물을 무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다.
 

동물보호단체 누리집의 자유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동물 학대를 고발하는 제보가 끊이지 않는다. 종종 엽기적이고 일상화된 이런 행위는 대체 왜 생기는 걸까?
 

개나 고양이를 학대하는 사람도 가족이나 이웃 또는 직장 동료에게는 살가운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외국인 노동자나 동성애자 같은 소수 집단이라도 그럴까. 이것이 요즘 사회심리학자들이 던지는 ‘비인간화의 뿌리가 뭐냐’는 질문에 닿아 있다.
 

Hannah-Miles-Figure-4.jpg » <라이프> 1941년 12월22일치에 실린 '중국인과 일본인 구별법' 제하의 사진기사. 일본인은 키가 작고 열등한 종족으로 그려져 있다.역사적으로 내가 속한 집단 밖에 있는 외집단을 ‘동물 같다’고 바라본 예는 많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진주만 기습공격을 받은 미국에서 일본인은 ‘노란 원숭이’나 쥐로 묘사됐다.

 

<뉴욕 타임스>는 일본의 토속신앙을 “야만 문화”라고 표현했다. 한 역사가는 “눈이 째진 일본 조종사는 총탄을 똑바로 발사하지 못하고 해군 장교는 어두울 때 앞을 잘 보지 못한다”고 적기도 했다.

 

 

 

 

 

 

 

 

 

 

 

 

 

 

 

 

 

 

 

 

 

 

 

외집단에 속한 사람을 인간보다는 동물에 가깝고, 그래서 감정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간주함으로써 동정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는 것이다. 이로부터 외집단을 배제하고 학살하고 노예화하는 차별 행동이 나온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동물을 구분하는 생각은 부지불식간에 인간 집단 사이에서도 동물에 가깝다고 느끼는 외집단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흑인을 원숭이에 가깝다고 느끼는 백인일수록 흑인 범죄 용의자에 대한 폭력을 더 인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캐나다의 심리학자들은 최근 실험을 통해 사람과 동물이 다르다고 굳게 믿을수록 이민자에 대한 편견도 깊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사람과 동물의 유사성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고 난 뒤 이민자도 캐나다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인간과 다른 동물이 결코 분리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범죄를 막는 이들만큼 이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는 사람은 없다. 개와 고양이를 잔인하게 죽인 사람의 다음 표적은 어린아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범죄심리분석관이 장차 나타날 폭력행동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네가지 지표 가운데 하나가 동물 학대이다. 한 연쇄살인범 프로파일러는 “대부분의 살인범들은 어릴 때 동물을 죽이거나 고문한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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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핵무장' 판도라의 상자 여는가?

美에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요구…논란 확산

강양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17 오후 4:40:22

 

박근혜 당선인이 기어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가? 박 당선인이 핵무장의 사전 단계인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가능케 하는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미국에 요구해 논란이 예상된다.

박근혜, 동북아시아 핵 확산 물꼬 트나

박근혜 당선인은 지난 16일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차관보 등 미국 정부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에 대한 강의 의지를 드러내며, "핵폐기물 처리 문제가 대선 공약으로 얘기할 정도로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인 만큼 국제 사회가 신뢰할 좋은 대안을 마련하고 논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박 당선인의 발언은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허용을 위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공식 요청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간 핵산업계는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96퍼센트 재활용이 가능해, 최종 처분할 폐기물의 양이 줄어 처리 비용, 시설 규모 등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박 당선인도 이런 핵산업계의 주장을 다시 한 번 읊은 것.

하지만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플루토늄이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정의행동이 즉각 "박근혜 당선인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언급에서 과거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이 연상된다"고 반발한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한국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추진할 경우, 동북아시아 핵 확산의 물꼬가 터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일본은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확보해 놓은 상태이고, 핵발전소를 가동 중인 타이완 등도 언제든지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사실상 불허해온 것도 이런 국제 관계를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한다. 핵에너지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온 이명박 정부가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추진하면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미국 정부가 난색을 표한 것도 이런 배경 탓이다.

핵연료 재처리, 돈만 배로 드는 정책

핵산업계 주장대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가 실제로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에 도움이 되는지를 놓고도 반론이 많다.

핵산업계의 논리대로라면, 그 동안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등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프로그램을 가동 중인 나라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에 대한 뾰족한 해법을 제시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들 나라를 포함한 핵발전소를 가동 중인 전 세계 서른 개 나라 모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등을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영국, 일본, 프랑스 등은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에서 방사성 물질 유출, 노동자 피폭 등 각종 사고가 발생해 여론의 따가운 질타를 받는 상황이다. 재처리를 통해서 사용할 수 있는 핵물질의 비율도 1퍼센트 안팎이어서, 고농축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99퍼센트는 그대로 남는다.

이렇게 재처리 후에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남기 때문에 재처리가 직접 처리보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운동연합은 17일 낸 논평에서 2011년 11월 일본원자력안전위원회 자료를 인용해 "재처리 후에도 최종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은 필요하기 때문에 직접 처리보다 재처리가 두 배나 더 많은 비용이 든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환경 단체 "재처리는 한반도를 핵의 위협에 빠뜨릴 것"

환경운동연합은 "'북한의 핵 개발은 용납할 수 없으며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박근혜 당선인이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하겠다는 입장은 이율배반"이라며 "박 당선인은 핵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원칙에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에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허용 요구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핵연료의 포화 상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재처리가 아니라 핵 발전을 줄이는 것"이라며 "사용 후 핵연료가 걱정된다면 박근혜 당선인은 이명박 정부의 핵발전소 확대 정책부터 수정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정책은 한반도를 핵의 위협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양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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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싸움·고성으로 난장판 된 18대 대선 개표 시연회

선관위 "대선, 무사고 완벽 선거"... 참관인 "사기"

 

13.01.17 21:45l최종 업데이트 13.01.17 21:45l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17일 오후 국회 본청 지하강당에서 공직선거 개표과정 공개시연회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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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관위가 18대 대선 개표 부정의혹 해소를 위해 17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개표과정 공개시연회를 열자, 일부 참관인들이 문제제기하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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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대선은 사건 사고 없이 완벽하게 치러진 선거였다"고 홍보했고, 일부 참관인들은 "쇼하지 말라, 사기다"라고 소리쳤다.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의 요청으로 17일 오후 선관위가 국회 본청 지하에서 연 '공직선거 개표 시연회'의 모습이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18대 대선 개표 부정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열린 시연회였지만, 참석자들의 고성과 욕설·몸싸움으로 시연회장은 난장판이 됐다.

"실체없는 의혹, 오해 풀릴 것"... "거짓말 하지 말라"

한영수 선관위 전 노조위원장과 이경목 세명대 교수 등은 "(개표에) 사용할 수 없는 (분류) 기계다, 적법한 기계라는 증거를 가져오라", "이건 다 사기다, 쿠데타가 일어났다"라고 외쳤다. 한 전 노조위원장은 "제어용 컴퓨터를 (전산조직이 아니라) 기계장치라고 속여왔다"며 "전산조직을 개표에 활용할 경우 지켜야 할 절차를 안 지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시연에 앞서 김대년 중앙선관위 관리국장이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지난 대선은 사건 사고 없이 완벽하게 치러졌다"며 "안타깝게도 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데 개표 과정과 결과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분들이 계신다, 이번 선거가 얼마나 완벽하게 치러졌는지 속을 꺼내 보이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하자 분위기는 더욱 격해졌다. 일부 참관인들은 "거짓말 하지 말라", "약 올리려고 나왔냐"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김 관리국장은 선관위의 투개표시스템을 '선거 한류'라고 홍보하며 "개표 과정을 보면 부정이 있을 수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며 "이번 시연으로 실체가 없는 의혹에 종지부를 찍고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의혹의) 실체가 여기 있다"며 고성이 터져나왔다. 욕설도 섞였다.

'실체가 없다'는 말에 흥분한 이 교수는 "선거 부정의 증거가 담긴 영상"이라며 자신의 노트북에서 영상을 재생해 국회 방호원들에게 끌려 나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넘어진 이 교수는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이같은 난리통 속에 진행된 이날 시연에는 2000장의 투표함 3개, 6000표에 대한 개표가 이뤄졌다. 개표는 개함부, 분류기 운영부, 심사·집계부, 개표위원 등을 거쳐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김 관리국장은 "분류기의 기능은 수작업 개표의 보조 기구에 불과하다"며 "후보자별 유효표와 미분류표를 분류하는 역할이고 그 다음에 위원들이 일일이 검사하고 구·시군 선관위원장이 또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에서 주장하는 투표지 분리기는 해킹할 수 없다, 전산망에 연결돼 있는 게 아니"라며 "암호 코드를 생성해 놨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열어볼 수 없다"고 말했다.

참관인들 "박근혜 당선인은 '분류 대통령'이지 수검표 대통령 아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17일 오후 국회 본청 지하강당에서 공직선거 개표과정 공개시연회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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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표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온 참관인들의 의혹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참관인 하아무개씨는 "오늘 6000표 개표에 2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선거 당일에는 9시에 '후보자 당선 확정'이 떴다"며 "오늘처럼 하나하나 자상하게 개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9시에 당선 확정이 뜬 것은 분류 확정이지 수검표 개표 확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므로 박근혜 당선인은 분류 대통령이지 수검표 개표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선 개표에 소요된 시간을 봤을 때 수검표가 제대로 됐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백아무개씨는 "수개표를 확실히 안 한 선거구가 있다, 증거가 있다"며 "모 개표소에서 표를 돈 세는 개수기에 넣고 숫자만 맞춰서 집계로 넘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관위가 수개표 하지 않은 것을 바로 잡아달라는 거지 대선 당락을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며 "수개표 하면 박근혜 당선인이 200만 표 차이로 이길 수도 있다, 그러나 수개표를 안 하고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김 관리국장은 "투표지 분류기가 정확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오늘 시연에서) 더 꼼꼼하게 본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재검표를 요구하는 소송을 돕고 있는 이준길 변호사도 참관인으로 참석해 "수개표를 했냐, 안 했냐가 쟁점"이라며 "오늘 시연한 것처럼 앞으로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지를 열어보면 모든 게 밝혀진다"며 "우리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선관위는 각종 의혹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지만 이 날 시연에서도 투표수 계산에서 실수를 범해 선관위의 신뢰성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개표함을 열었을 당시 투표수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덧셈을 제대로 하지 않아 개표상황표에 '유효투표수' 합계가 잘못 기재되는 해프닝이 발생한 것. 잘못 표기된 개표 상황표에는 2명의 위원과 위원장의 도장까지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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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찬동자 259명, 그들은 누구?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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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3/01/18 07:50
  • 수정일
    2013/01/18 07:50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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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찬동자 259명, 그들은 누구?
 
[명단 공개] 관계공무원-정치권-전문가-건설업계-언론계-보수단체 등 망라
 
정운현 기자 | 등록:2013-01-18 00:16:57 | 최종:2013-01-18 01:03:1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영산강살리기 희망선포식'을 갖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2009.11.22)

이명박 정권의 최대 국책사업이자 정권 내내 국민적 논란이 됐던 ‘4대강 사업’이 임기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본격 도마 위에 올라 주목된다. 초기에는 4대강 사업을 지지했던 <조선일보>조차 비난하고 나설 정도로 여론이 악화돼 있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감사원이 17일 국토해양부와 환경부 등을 대상으로 지난해 5월부터 실시한 ‘4대강 사업 주요 시설물 품질과 수질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국민적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지난 4년간 무려 22조2000여억원의 혈세를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 결과 국토해양부와 환경부 등 관계 당국은 4대강 사업을 통해 수자원 확보, 보의 안전성, 수질 개선 등을 강조했지만 이는 대부분 거짓으로 확인됐다. 결국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 4대강 사업은 ‘총체적 부실’이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감사원은 정부에 “보 운영에 관한 시급한 사항은 즉각 시정하고 종합적 수질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또 부당계약, 준설토 매각 등 비리행위자 12명에 대한 엄정 징계를 요구했다. 이밖에도 감사원은 작년 11월부터 진행 중인 4대강 사업 입찰담합 감사에서 조달청 전산위탁업체 직원이 3개 건설업체와 공모해 14건의 부정 계약을 시도한 사실을 확인했다.

4대강 사업이 ‘총체적 부실’로 드러나면서 이 사업을 강행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관련 당국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밖에도 현 정권을 도와 4대강 사업을 찬동하고 홍보한 인사들에게도 정치적, 사법적 책임을 묻는 동시에 박근혜 인수위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해 평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빗발치고 있다.
 

4대강조사위원회와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 등은 14일 인수위원회 앞에서 '4대강 사업' 평가 요청 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막대한 예산낭비와 환경파괴를 불러온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책임져야할 사람들은 대체 누구일까? 우선 이 사업 추진 공로(?)로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은 사람들이 1차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MB 정부는 그간 3차례에 걸쳐 4대강 사업에 관여한 심명필 4대강 추진본부장 등 공무원, 유관기관·건설업체 관련자, 지역주민 등 총 1천152명에 대해 포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포상자 명단에는 이 사업에 직접 관여한 관계 공무원과 건설업계 관련자들이 주로 포함됐는데 이들은 ‘수족’인 셈이다. 진짜 핵심인물들이 모두 빠졌다. 2007년 대선 과정에서부터 MB 정권 내내 4대강 사업을 지지해온 정치권 인사들과 토목-건축분야 전문가들, 그리고 이를 앞장서서 홍보해댄 언론인들과 보수단체 관계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편, 그간 MB정부의 4대강 사업 추진을 적극 반대해온 시민사회단체모임인 ‘MB씨 4대강 비리수첩 제작단’은 2011년 9월 19일 ‘4대강 찬동인사 인명사전’에 게재할 82명의 명단을 1차로 발표한 바 있다. 이어 한달 뒤인 10월 19일에는 2차로 177명을 추가로 발표했다. 결국 총 259명이 ‘4대강 사업 찬동인사’로 선정된 셈이다.

1차 명단 발표 때 명단에 포함됐던 인사 가운데 강운태 광주시장은 본인의 적극적인 해명으로 명단에서 제외됐으나 다른 인사들의 명단은 그대로 실려 있다. 이들 명단은 향후 4대강 사업 책임 추궁때 주요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어서의 대상자들의 대응이 주목된다. 다음은 17일 <뷰스앤뉴스>가 보도한 관련자 전체 명단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11월 22일 오후 전남 광주시 승촌동 영산강 둔치에서 열린 영산강살리기 희망선포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 대통령 오른쪽은 박준영 전남지사.

 

[4대강 사업 찬동인사 1차 명단]

1. 4대강 사업 찬동 A급 정치인 (60명)

1) 이명박 (대통령),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 현 산은금융그룹 회장),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김황식 (국무총리),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심명필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 본부장), 유인촌 (전 문광부 장관 / 현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 윤증현 (전 기획재부 장관), 윤진식 (전 대통령실 정책실장 /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이병욱 (전 환경부 차관 / 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임태희 (청와대 대통령 실장), 정병국 (전 문광부 장관 /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운찬 (전 국무총리 / 현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 한나라당 국회의원),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한승수 (전 국무총리)

2) 공원식 (경북도 정무부지사), 김관용(경북도지사), 김문수 (경기도지사), 김범일 (대구시장), 김태호 (전 경남지사 / 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박맹우 (울산시장), 박준영 (전남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정우택 (전 충북지사 / 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 허남식 (부산시장)

3) 공성진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강승규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광림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무성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성조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정권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정훈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형오 (전 국회의장 / 한나라당 의원), 나성린 (한나라당 국회의원), 박승환 (전 국회의원 / 현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박희태 (국회의장 / 한나라당 국회의원), 백성운 (한나라당 국회의원), 송광호 (한나라당 국회의원), 심재철 (한나라당 국회의원),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 / 한나라당 국회의원), 원희룡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상득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재오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주영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한성 (한나라당 국회의원), 장광근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두언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옥임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진섭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희수 (한나라당 국회의원), 조원진 (한나라당 국회의원), 조해진 (한나라당 국회의원), 주호영 (한나라당 국회의원),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 최인기 (민주당 국회의원), 홍준표(한나라당 대표 / 한나라당 국회의원),

2. 4대강 사업 찬동 B급 정치인 (22명)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권경석 (한나라당 의원), 권택기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대기 (전 문광부 차관 /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 김석준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 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원장), 김영우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재경 (한나라당 국회의원),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 / 통일부 장관 내정자),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 미래에셋 자산운영 사외이사), 박성효 (전 대전시장), 박재순 (한나라당 국회의원), 손범규 (한나라당 국회의원), 신영수 (한나라당 국회의원), 신현국 (문경시장), 유영숙 (환경부 장관), 이달곤 (전 행안부 장관 / 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이사장), 이병석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용걸 (전 기재부 2차관 / 국방부 차관), 장제원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미경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정길 (전 대통령 실장 / 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최경환 (전 지식경제부 장관 / 한나라당 국회의원)

[4대강 사업 찬동인사 2차 명단]

1. 4대강 사업 찬동 A급 사회인사 (108명)

1) 전문가 (44명)

강준모 (홍익대 도시공학과 교수,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 공동수 (경기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 한강물환경연구소장),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권기창 (경북도립대 행정학과 교수), 권오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권홍사 (대한건설협회 회장), 김계현 (인하대 지리정보공학 교수,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 김성배 (숭실대 행정학 교수, 한국지역학회장), 김용웅 (전 충남발전연구원장), 김창완 (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 김형국 (서울대학교환경대학원 교수·환경계획학과, 전 녹색성장위원장), 문영일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 한국환경교육학회 회장), 박양호 (국토연구원장), 박재광 (미국 위스콘신대 환경공학 교수), 박철휘 (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 교수), 박태주 (부산대 환경공학과 교수, 전 한국환경정책평가원 원장), 송재우 (한국수자원공사 이사단 의장, 홍익대 건설도시공학부 교수), 신방웅 (한양대 석좌교수, 전 충북대 총장), 신현석 (부산대 토목공학과 교수),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우효섭 (건설기술연구원 원장, 한국수자원학회 회장), 유병로 (한밭대 토목환경도시공학 교수, 유성포럼 회장), 윤병만 (명지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 윤세의 (경기대 토목공학 교수), 이건무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 전 문화재청 청장), 이상호 (세종대 경제통상학과 교수), 이정록 (전남대 지리학과 교수, 전 대한지리학회장), 이창석 (서울여대 환경생명공학부 교수, 환경부 국립생태원건립추진기획단 단장), 전경수 (성균관대 토목공학과 교수), 정동양 (한국교원대 기술교육 교수), 정동일 (한국물환경학 회장, 국립환경과학원 부장), 정상만 (국립방재연구소 소장, 공주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최상철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 전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 허재완 (중앙대 도시계획학 교수,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 윤영선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전택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한국중앙연구원 교수), 조용주 (전 한국건설기술연구원장), 주명건 (세종연구원 원장, 전 세종대 이사장),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 한건연 (경북대 토목공학 교수, 경북대 방재연구소장), 형태근 (동양대 석좌교수,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홍철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 전 대구경북연구원장)

2) 공직자 (31명)

권태균 (아랍에미레이트 대사, 전 조달청장), 김정훈 (부산지방국토관리청 하천국장), 김지태 (전 환경부 물환경정책국장), 김철문 (4대강추진본부 사업지원국장), 김형섭 (한강유역환경청장, 전 낙동강유역환경청장), 김희국 (국토해양부 제2차관, 전 4대강추진본부 부본부장), 박재목 (행안부 지방분권지원단 기획총괄과장, 전 데일리안 칼럼니스트), 박재순 (4대강추진본부 개방행사지원단 부단장), 박연수 (전 소방방재청장), 송기섭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차장), 송재용 (환경부 환경정책실장, 전 4대강추진본부 수질환경협력국장), 안시권 (4대강추진본부 기획국장), 오경태 (농림수산부 농업정책국장, 전 농림수산식품부 녹색성장정책관), 오종극 (환경부 상하수도정책관), 우기종 (통계청장, 전 녹색성장위원회 기획단장), 유인상 (전 대전국토관리청장), 이상팔 (낙동강유역환경청장), 이성해 (4대강추진본부 정책총괄팀장), 이재붕 (국토해양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상임위원, 전 4대강추진본부 사업부본부장), 이찬세 (서울지방국토관리청 하천계획과장), 이충재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 정내삼 (국토부 건설수자원정책실장, 전 국토부 대운하사업 준비단장), 장석효 (한국도로공사 사장, 전 한반도대운하연구회 대표), 정연만 (환경부 기획조정실장), 정채교 (나이지리아 대사관 주재원, 전 4대강추진본부 사업지원3팀장), 차윤정 (4대강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 최병습 (한국수자원공사 건설단장), 최용철 (한국상하수도협회 상근 부회장, 전 한강유역환경청장), 한상준 (전주지방환경청장), 허경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전 기획재정부 차관), 홍형표 (국토부 수자원정책관, 전 4대강추진본부 사업부본부장)

3) 공기업 및 기업인 (15명)

권진봉 (한국감정원 원장, 전 국토해양부 건설수자원실장),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신정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세운철강 회장), 염경택 (한국수자원공사 수자원사업본부장), 이수찬 (이포보 감리단장(한국종합기술)),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전 현대건설 사장), 박병돈 (한국수자원공사 구미권관리단장), 반홍섭 (한국수자원공사 경북지역본부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 CJ대표이사 회장), 이길재 (㈜워터웨이플러스 사장, 전 한국수자원공사 부사장), 이인중 (대구 상공회의소 회장, 화성산업 회장),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장용식 (한국수자원공사 경남본부장), 허증수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경북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홍문표 (현 한나라당 최고위원, 전 농어촌공사 사장)

4) 사회인사 및 언론사 (12명)

권태신 (유엔평화대학 아시아태평양센터 이사장, 국가경쟁령강화위원회 부위원장, 전 국무총리 실장), 김 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동길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 연세대 명예교수),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김창원 (영산강뱃길연구소 소장), 박영균 (동아일보 마케팅 본부장,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배인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동아일보 주필), 서경석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유명재 (전국자연보호중앙회 사무총장), 이광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주천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원광대 사학과 교수),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실장)

5) 정치인 (6명)

박광태 (전 광주시장), 박형준 (청와대 사회특별보좌관), 정우택 (전 충북지사), 정용화 (호남미래연대 이사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관), 진선수 (전 환경부장관 정책보좌관, 한국폴리텍 전임교수),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전 문화재청장)

2. 4대강 사업 찬동 B급 사회인사 (69명)

1) 전문가 (20명)

노재경 (충남대 지역환경토목공학과 교수), 배재호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 서종대 (카이스트 건설 및 환경공학과 초빙교수, 전 세종시기획단 부단장),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이성우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이순탁 (대구경북물포럼 회장, 유네스코 국제수문수자원 프로그램 의장, 영남대 석좌교수), 이용희 (가야대 도시개발대학원장), 임승빈 (서울대 조경시스템공학부 교수), 장연수 (한국지반공학회 회장, 동국대 토목공학과 교수), 장준호 (계명대 교수, 4대강 생명 살리기 민·관 협의회 기획실장), 전제상 (사단법인 미래 물 문화연구소 이사장, 충남대 겸임교수), 정규석 (대구대 석좌교수, 전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 원장), 조승국 (한세대 경영학과 교수), 조영무 (팔당물환경센터 박사), 조현제 (계명대 환경대학 교수, 전 산림청 녹색사업단장), 지홍기 (영남대 산업대학원장, 전 수자원학회 회장), 최성헌 (금강물환경연구소장), 함세영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 허준행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

2) 공직자 (15명)

김수찬 (4대강추진본부 수질관리팀장), 김일평 (익산지방국토청장), 이성한 (원주지방환경청장), 장기창 (㈜서울북부고속도로 대표이사, 전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 장만석 (울산시 경제부시장, 전 국토부 수자원정책실장, 전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 정광수 (전 산림청장), 정낙형 (충북개발연구원장, 전 부산시 정무부시장), 정남준 (전 행안부 2차관, 서울기술과학대 초빙교수), 정병윤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 전 국토부 수자원정책관), 정용권 (4대강추진본부 홍보기획팀 사무관), 정용기 (대전광역시 대덕구청장), 제해치 (국가과학기술위원회 홍보협력담당관, 전 4대강 사업 추진본부 홍보기획팀장), 최태근 (전라남도 영산강사업지원단장), 추정호 (서울지방국토관리청 계장), 한경남 (여주군청 한강살리기 지원단장)

3) 공기업 및 건설사 (10명)

김재현 (영산강 6공구 감리단장), 김병호 (한국수자원공사 강문화 전문위원, 전 매일애드 대표이사), 박태균 (세종지구1공구 현장소장), 배부 (한국농어촌공사 유지관리본부 이사), 서윤석 (전 한국수자원공사 구미권관리단장), 이승헌 (한국농어촌공사 책임연구원-농학박사), 한창희 (한국농어촌공사 감사), 함경렬 (한국농어촌공사 칠곡지사장), 홍성범 (한국농어촌공사 4대강사업단장), 황승현 (한국농어촌공사 충북지역본부장)

4) 언론사 및 사회인사 (21명)

강병태 (한국일보 논설위원실장), 강신호 (동아 쏘시오그룹 회장, 전 전경련 회장), 김진 (울산대 철학교수), 김창준 (미래한미재단 이사장, 워싱턴 한미포럼 이사장, 전 미 연방하원의원 · 한국경제신문 고문), 김인규 (수필가), 김종한 (수필가·前상주문화회관장), 봉태홍 (라이트코리아대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양영태 (인터넷타임즈 대표), 이승한 (홈플러스그룹 회장, 녹색성장위원회 분과위원장), 이원호 (한국문화네트워크 공동회장, 서울 녹색미래실천연합, 미퍼스트국민운동본부 상임이사), 이재윤 (낙동강 생명의 숲 실천본부 상임대표), 이화언 (전 대구은행 행장), 유명준 (전국자연보호중앙회 총재),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위원), 정인학 (언론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정재학 (데일리안 편집위원), 추창근 (한국경제 논설실장), 최갑종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백석대 부총장), 허남진 (중앙일보 논설주간), 황영식 (한국일보 논설위원)

5) 정치인 (3명)
이상구 (경북포항시의회 의장), 이준원 (공주시장), 임성훈 (나주시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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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흑인들의 역사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흑인들의 역사
 
[제3세계 눈으로본 서구열강](21) 미국역사에서 흑인들의 역할
 
유태영 박사
기사입력: 2013/01/17 [11:32] 최종편집: ⓒ 자주민보
 
 

백인 노예상인들과 흑인노예들의 운명

우리는 미국 흑인들의 비극적인 역사에 대하여 아는 것이 극히 부족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 하나만을 가지고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오늘 서구화된 세계에서 백인우월주의가 득세하여 미국의 주류사회에서 백인 문화가 일방적으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 흑인들의 비극적인 역사에 대하여는 침묵한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흑인의 역사에 대한 기록들을 우리 재미 한인사회와 한국에 소개하여 미국에서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어떻게 긍정적으로 전개되었는가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미국의 흑인역사 인식에 대하여 도움이 되기 바라면서 “미국흑인사”를 연재 [제3세계 눈으로본 서구열강]의 21번째~23번째 글을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15세기에 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 세 대륙 간에 대규모로 교역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었다. 4백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1400만명에서 1500만명에 이르는 많은 흑인들이 마치 화물처럼 배 밑창에 실려 대서양을 건너 미국땅으로 운송됐다.

유럽의 물건들과 헐값에 교환되어 미국으로 팔려간 아프리카 흑인들은 백인 노예상인들의 막대한 이권이 되어 주요 상품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백인들의 노동력의 값에 비하면 흑인노예들의 노동력을 사들이는 비용은 공짜나 다름이 없었다.

미국인의 역사에 있어서 흑인노예상들의 성공은 로맨스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흑인들에게는 비극적 운명으로 영원히 상기되고 있다. 흑인들의 비극에 대한 기록이 없는 미국은 미국일 수 없다. 미국의 건국역사에 있어서 흑인들은 미국 역사의 외피와 본질을 이루고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흑인노예 역사 400년과 미국이 독립한 지 200여 년이 지난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흑인노예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미국 대학은 교육과정에 “미국흑인사”를 개설하게 됐다. 미국흑인사 연구는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점점 더 확대되어 오늘 지구촌에서 인권을 위한 투쟁에도 교훈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제3세계 인권문제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의 흑인에 대한 인권침해의 역사는 단지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오늘에 있어서 서구열강이 제3세계에 대한 인권침해를 여전히 계속하고 있는데 대하여 보다 철저한 정치적 대책을 확대시키는 과제가 되어야 하겠다.

1. 대규모 흑인노예 무역시대의 시작

1400년대에 처음으로 붙잡혀 온 흑인노예들은 스페인의 식민지인 서인도 제도, 브라질, 멕시코 ,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지로 판매되어 분산됐다. 그 후에 오늘의 미국 동부해안으로 많은 노예들이 대서양을 건너 수송되어 13개의 식민지로 판매된 뒤 도착했다. 노예상인들은 건장한 노예들과 병약한 노예들을 골고루 섞어 하나의 묶음을 만들어서 구매 단위로 판매했다. 노예상인들은 남미와 미국의 식민지에서 금과 은 보석과 커피, 설탕 등 식민지의 귀중한 작물을 배에 가득 싣고 유럽으로 돌아가 이중의 이득을 획득하고 있었다.

16-18세기의 유럽의 노예상인들은 그 때 당시 선량한 중상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영국, 코펜하겐, 리스본 등지의 출신들로서 그 중에는 귀족들도 노예무역에 착수하여 막대한 부를 쌓기도 했다. 그들은 점잖은 신사였고, 성실한 남편과 훌륭한 아버지들 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다 진실한 기독교인들이었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 그들에게 질문하기를 <흑인노예를 사고 파는 노예무역이 그 얼마나 끔찍한 죄악인가>라고 따지면서 비난을 한다면 아마도 그들은 조금도 치욕을 느끼지 못하며 오히려 그들은 대답하기를 <그것은 오직 무역일 뿐이며 우리는 소매상이 아니라 도매상이다>라고 뻔뻔스러운 대답을 하면서 변명과 부귀를 과시하고 신의 축복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유럽의 열강들은 아프리카를 “케이크”를 나누어 먹는 식으로 노예무역에 뛰어들어 아프리카 대륙을 분할하여 각각 한 지역, 또는 한 구역을 독점하는 방법으로 노예무역을 추진했다.

프랑스는 모리타니에서 시에라리온에 이르는 지역에서 노예무역을 독점했다. 아프라카 노예무역의 중심지인 황금해안의 광활한 지역에서 네덜란드가 13개 지역, 영국이 9개 지역, 덴마크가 1개 지역을 차지해서 노예무역을 경쟁적으로 진행했다. 노예무역의 두 번째 중심지인 가나, 토고, 카메룬, 나이지리아에서 프랑스와 영국은 노예무역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18세기에 들어서서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중심지인 제 1, 2, 3, 4지역이 고갈되자 유럽인들은 방향을 아프리카 남쪽으로 더 내려가 동부해안인 모잠비크까지 진출하여 노예무역을 확대하여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의 백인들 가운데 아프리카 흑인들을 붙잡아 노예무역을 감행하면서도 양심의 가책 따위를 느끼는 백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유럽의 백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이 유럽의 문명에 접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변명을 했다.

유럽인들의 노예무역은 나라의 왕과 정부, 그리고 반드시 성직자들의 뒷받침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누가 감히 나서서 노예무역에 대하여 비난이나 반대를 할 수 있었겠는가?

유럽인들의 노예무역선이 출항을 하기 전에 선장은 반드시 대서양 횡단항해에 관한 세부사항과 운항일지를 점검한다. 그런데 그 운항일지의 맨 첫 페이지에는 <주님과 성모님의 이름으로 이 항해일지가 비롯될 지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을 출항 몇 시간을 앞두고 선언했다.

유럽인들의 노예무역선의 대서양을 향한 출항이 정치적으로 제왕적이며 종교적으로 신의 축복 속에서 출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아프리카 노예들은 잔악한 인간사냥에 의하여 붙잡혔고 노예상인들에게 판매되어 초만원이 된 노예선에 화물처럼 가득 실렸고 이런 흑인노예들이 가득차면 출항을 했다.

노예선에 가득찬 흑인들은 거의 발가벗은 몸으로 누울 수조차 없는 좁은 공간에서 발목에는 족쇠고랑이 채워져 있었다. 배안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쇠사슬이 부딪치는 소리와 채찍질 소리뿐이었다. 물론 흑인들의 비명과 신음소리들이 배안에 가득 차 있었다. 노예선은 포로들이 들끓는 강제수용소로 변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동안 보통 10% 정도의 흑인들이 죽는 것이 예사였다. 정원이 450명인 선박에 600명이 넘게 노예들을 가득히 태우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열악한 환경으로 흑인들의 몸에 이가 들끓기 때문에 사슬에 묶인 채 갑판에 몰아 놓고 물줄기를 퍼부었다. 위생환경과 질병으로 인하여 1500만 명에 이르는 흑인노예들 중에서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에 여러가지 질병과 학대로 인하여 150-200만 명의 노예들이 목숨을 잃었다.

2. 식민지 농장으로 팔려 나가는 흑인노예들

아메리카에 도착한 흑인노예들은 검역절차를 위하여 40일간 배안에서 기다려야 했다. 검역의 목적은 가능한 한 비싼 값으로 노예를 판매하기 위함이었다. 노예상인들은 노예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하여 주면서 외과의사의 치료를 받게 했다. 40일이 지난 후 노예상인들은 축포와 함께 노예선의 갑판에서 노예판매를 시작했다.

노예 구매자들은 흑인의 건강상태를 알아보기 위하여 팔다리로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도록 요구했는데 그 후에야 노예가격이 결정됐다. 35-40세 이상의 노예들은 늙은 것으로 취급되어 가격이 낮게 매겨졌다.

매매 거래가 끝난 흑인들은 그 즉시 가슴 또는 어깨에 불에 달군 은제 낙관이 찍혀 새로운 주인의 소유물로 확정됐다. 그로부터 약 1주일 후 농장에서 노동을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흑인노예들은 설탕, 커피, 목화, 쌀, 담배를 재배하는 일꾼이 됐다. 농장에서 흑인노예들은 작업감독의 채찍질 소리에 동이 트기도 전에 잠에서 깨야했으며 게으름을 피우거나 피곤한 기색을 보이면 가차없이 처벌을 받았다.

흑인노예들은 자신들이 먹을 양식과 야채를 위하여 별도로 텃밭에서 농사를 지어야 했는데 주로 일요일이나 밤중에라도 텃밭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백인 농장주들은 거대한 농장을 경영하는데 있어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해결책은 흑인노예를 사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수세기동안 공인하고 있었다.

보통 농장에서는 약 50명의 흑인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또 어떤 남부의 대농장에서는 150여명의 흑인노예를 소유하여 500헥타르 이상의 농장을 운영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1790년대에 미국의 목화 생산량은 1년에 1,000톤에 불과했지만 1800년대에 들어서서 미국의 목화 생산량은 1년에 100만톤으로 급증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흑인노예 수가 급증하는데 따라서 미국의 목화 생산량이 급증했던 것이다.

흑인노예들은 절대로 소속된 농장을 떠날 수 없으며 외부와의 접촉이 엄금되어 있었다. 흑인노예들은 싸움, 욕설, 음주 등이 금지되어 있었으며 백인 주인이 가까이 있을 때는 낮에나 밤이나 반드시 일어서 있어야 하며 이를 어기면 채찍질을 당했다. 채찍질은 “채찍꾼”이 맡았는데 채찍 때문에 상처가 나면 소금물을 뿌리기도 했다.

흑인노예들은 백인 주인의 허락으로 흑인들끼리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서약에 통상적으로 들어가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서약문구는 삭제됐다. 그 이유는 흑인들의 결혼은 언제라도 백인 주인에 의하여 따로 되팔릴 경우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헤어질 수 있어 평생적인 결혼이 성립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부가 생이별을 해야 하고 부모와 자식이 또 생이별을 해야만 했던 흑인들의 슬픔과 눈물을 위로해주는 이는 흑인들의 “예수”뿐이었다. 하지만 흑인들이 믿는 이 “예수”도 사실은 백인들이 가르쳐 준 “예수”였다.

흑인노예들 중에서 몸이 허약해서 농장에서 일을 할 수 없으면 백인 가정에서 하인으로 봉사해야 했다. 흑인 아이들은 12살이 되면 농장에서 노동을 해야 했는데 흑인노예들은 언제 어디로 또 다시 팔려갈지 몰라 근심으로 살아갔다.

3.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 흑인노예들과 그들의 반란

독립전쟁은 1775년에 미국 식민지와 영국 본국정부 사이에 시작되어 1783년까지 8년 동안 계속됐다. 미국 식민지 13개주가 영국 본국정부의 조세정책에 반발하여 전쟁을 일으켰으며 결국 미국의 승리로 독립을 획득했는데 이를 “미국독립전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미국독립전쟁에 흑인노예들이 영국군이나 혹은 미국군에 참전함으로써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되는 한 방법이 되고 있었다. 흑인노예들 중에서 특히 용감한 사람을 대환영하여 군인으로 입대를 시켰다. 하지만 흑인은 신분이 노예이기 때문에 자유인으로서 군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여 “흑인징병중지”를 결정했다. 그런데 독립전쟁이 끝나지 아니하고 8년 동안 계속되고 지원병이 부족하여 전쟁수행이 위기에 처하게 되자 미국은 또 다시 흑인노예들을 무조건 군에 입대를 시켰다.

흑인노예들을 군에 입대시키는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군도 미국의 흑인노예들을 영국군에 입대시킴으로 전투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영국은 미국인의 농장에서 도망친 흑인노예들을 대환영하여 영국군에 입대시켜 자유인의 신분으로 전환시킴으로 많은 흑인들이 영국군이 되고 있었다. 약 1000명의 흑인노예들이 총을 들고 미국군을 향하여 싸우게 했다. 하지만 영국은 더 많은 흑인들을 전투가 아닌 정보원과 후방에서 근무하도록 하고 있었다.

1783년에 미국 독립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영국은 영국으로 후퇴를 하면서 미국의 흑인노예 14000명을 영국으로 후퇴시킴으로써 미국에 노예손실을 안겨주었다. 영국도 흑인노예가 매우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독립전쟁을 승리로 끝낸 후에 1783부터 미국의 또 다른 문제는 흑인노예들이 백인 농장에서 일으키는 반란이었다. 미국의 백인들이 흑인노예들의 반란에 대하여 되도록이면 침묵을 지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흑인노예들의 반란의 횟수를 축소해서 발표했다. 하지만 사실상 흑인노예들의 반란은 그 횟수가 막대했다.

그러므로 백인 농장주들은 항상 흑인노예들의 반란에 대비하여 잔혹한 대책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노예들이 할 수 있는 길은 반란을 일으켜 도주하는 길 뿐이었다. 최초의 흑인노예들의 반란은 1526년에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일어났으나 실패했다. 그 후에 크고 작은 반란들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1822년에 수천명의 흑인노예들이 결합하여 큰 반란을 일으켰으나 전원이 몰살당한 채 끝나고 말았다.

1831년에 버지니아에서 냇 테너라는 흑인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라고 주장하면서 백인 농장주인의 가족 60여명을 살해하는 큰 반란을 일으켰지만 냇 테너는 곧 체포되어 사형당했다. 그는 재판정에서 이렇게 외쳤다. <나의 행동은 백인 농장주들이 도처에서 공포와 슬픔을 당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1807-1837년에 북미와 남미 여러 곳에서 피로 물든 흑인 폭동과 반란들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폭동과 반란 외에 노예신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개인적으로 도망하는 방법이었다. <뛰어라, 검둥아, 뛰어>가 당시 유행어와 노래가사가 되고 있었다.

도망한 노예들은 원시림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군대를 결성하여 50여년이 넘도록 저항운동을 전개했다. 도망한 흑인노예들은 밀림에 숨어 약탈로 연명했으며 백인들은 이들을 총으로 쏴 죽여도 살인죄가 되지 않았다.

1850년에 이르러서 도망친 많은 노예들을 캐나다나 미국북부로 이동하도록 백인들과 도망한 노예들이 합의를 했다. 도망한 흑인노예 중 한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해리엇 터브맨이었다. 그녀는 19번이나 탈주했으며 그녀의 도움으로 300명이 탈주에 성공했다고 한다.

흑인노예들의 도망을 방지하기 위하여 1850년에 미국의 모든 주정부들이 공동으로 연방법안을 제출하여 일단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 의하여 1857년에 남쪽에서 도망하여 북쪽에 와서 살고 있던 흑인노예를 남쪽으로 되돌리도록 하는 판결이 났다. 하지만 이 판결에 대하여 남북간에 서로 반발과 대립이 발생하는 등 복잡한 법적 문제가 전개됐다.

이런 갈등은, 1861년에 이르러서 흑인노예제도의 엄격한 고수를 주장하는 미국의 남쪽의 주정부들과 이에 반대하여 흑인노예제도의 폐지를 주장한 북쪽 주정부들 사이에 “남북전쟁”이 발생하는 역사적인 계기가 된다. 남북전쟁은 1861-1865년에 걸쳐 4년 동안 계속됐다.

자유를 갈망하는 흑인노예들이 이제는 도망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남북전쟁이 시작되면서 미국의 북부군에 입대만 하면 곧 자유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전쟁터에서 북부의 “양키군대”가 근접할 때마다 흑인들은 북부군 양키부대로 몰려들었다.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과 남북전쟁 이면에는 이러한 계획이 숨어 있었다.

1865년 1월 31일에 제13차 개헌에 따라서 미국의 역사적인 노예제도의 폐지가 드디어 공시적인 선언으로 확정됐다. 하지만 1865년 4월 9일과 4월 14일에 미국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사건이 발생했다.

첫째는 남부의 로버트 리(Lee) 장군이 북부의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에게 남북전쟁의 종식과 항복을 드디어 4월 9일에 선언했다. 둘째는 그 후 5일 만인 4월 14일에 존 부스(John Booth)가 링컨 대통령의 머리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함으로서 사망했다. 링컨 대통령의 죽음은 흑인들의 해방의 기쁨만큼이나 큰 충격이 되고 있었다.

사실에 있어서 흑인노예 무역에 대한 반대는 1794년부터 프랑스에서 처음 논의가 시작됐으며 아메리카 개신교의 한 종파인 퀘이커 교도들이 흑인노예 제도를 종교적인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영국은 뒤늦게 1807년에야 비로서 흑인노예무역에 대하여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나 실효는 없었다.

어쨌든 1865년에 흑인노예 제도가 폐지됨으로써 흑인들은 기쁨에 휩싸였다. 하지만 남쪽의 백인 농장주들은 불안에 잠겼다. 흑인노예들은 예전 작업시간의 4분의 3정도만 일을 하면서 7년 후에 완전한 자유인이 되게 된 것이다. 6세 미만의 아이들은 즉시 자유인이 되었다.

미국의 농장주들은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하여 흑인노예를 대체하여 아시아의 중국과 인도 등지에서 약 100만명의 노동자들을 데리고 와 새로운 노예제도를 시작했다. 1900년대 초에 300여명의 한국인 하와이 노동이민도 같은 맥락이었다.

미국의 남북전쟁 4년 동안을 통하여 미국의 흑인들은 이제는 외국인으로서의 서글픈 노예의 신분이 아니라 미국을 자기들의 조국으로 삼고 정체성을 소유하게 됐다.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에 화물처럼 운반되어 미국으로 이송됐던 흑인들이지만 오늘에 있어서 미국에 대한 신념이 강화된 것은 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글을 맺으며

1968년 4월 4일, 미국의 백인 주류사회의 인종주의에 항거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백인 우월주의자 제임스 레이의 총에 맞아 암살당했다. 킹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통하여 목숨을 걸고 그의 고매한 사상으로 백인우월주의를 공격했다.

<인간의 영혼을 갉아 먹는 흑인 빈민가, 인간의 영혼을 억압하는 제국주의적인 경제구조, 인간의 영혼을 짓누르는 백인의 사회구조 그리고 이러한 불의한 조건에 대하여 무관심한 채 인간의 영적인 구원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종교>

킹 목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최후 순간까지 미국 백인들의 죄악에 대한 회개를 외쳤다.
킹 목사가 살아 있을 때 대다수의 백인 미국인들은 그를 증오 했다. 급진적인 흑인 형제들 조차도 그의 비폭력주의에 대하여 불신의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죽은 지 44년이 되는 오늘날 해마다 1월 21일이 되면 <마틴 루터 킹 목사 생일>을 기념하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은 킹 목사에 대하여 <빨갱이 패거리의 두목>이라고 경멸했다. 그런데 민주당 국회의원 존 코니어스의 법안이 통과됨으로 인하여 레이건 대통령은 그 법안에 할 수 없이 서명을 했던 것이다.

킹 목사를 좌경이며 빨갱이 패거리로 규탄하던 미국의 주류사회에서 킹 목사의 생일을 축하하여 국가적 공휴일로 지키는 것은 도대체 그 무엇을 뜻하는가? 미국의 백인들이 킹 목사를 정말 <정의의 선구자>로 여기고 있는 것인가? 사실 오늘 미국은 킹 목사가 꿈을 꾸었던 백인과 흑인이 한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우애넘치는 미국으로 변했는가?

오늘 미국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을 축하하여 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미국의 두 얼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위선에 불과하다. 흑인인 오바마가 백인우월주의적인 나라의 대통령이 된 것도 역시 미국의 두 얼굴을 나타내는 정치적 위선이다. 오바마 대통령 자기 자신이 흑인의 피부를 가지고 있으나 속은 백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제3세계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하여 <두 얼굴의 사나이>, 즉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판정하고 있다. 흑인으로서 미국의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백인우월주의 정권을 위하여 편의상 고용된 대통령인 것이다.

오늘 미국은 백인우월주의적 얼굴과 제3세계에 대한 기만적인 우호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 흑인과 평화 없이는 미국일 수 없는 것처럼 미국이 제3세계와 평화 없이는 절대로 미국일 수 없다.

지난 1월 10일 미국의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주 주지사와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 등 9명이 평양을 방문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제2기 행정부의 출범을 앞둔 시기에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미국의 두 얼굴을 나타내 보이는 뚜렷한 모습이다. 북은 오래전부터 북미평화협정을 하루 빨리 체결하는 것과 함께 우리민족끼리 조국통일을 성취해야 한다는 통일방안을 주장해왔다. 올해로 환갑을 맞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북미간의 움직임을 기대해 본다.(2013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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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선 이후, 우리는 뭘 할까?

우석훈 경제학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17 오전 9:24:14

 

1. 지더라도 질서 있게 지자

2012년 12월 1일은 토요일이었다. 별 특징 없는 토요일일 수 있지만, 대선을 불과 18일 앞두고 있던 그 토요일은 좀 특별한 날이었다. 그 때 우리가 본 여론조사의 데이터는 7~8%포인트 박근혜가 앞서고 있었고, 수치상으로는 점점 박근혜와 문재인의 차이가 벌어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미 오차범위 바깥이었다. 그날 조국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서 시내에서 모인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인식은, 선거를 이긴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고, 이렇게 대책 없이 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기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격차를 줄이지 않으면, 도저히 이후에 방어선을 칠 수가 없다, 그게 그날 나와 조국 교수, 그리고 한 때 안철수 캠프에 몸을 담았던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모여서 가졌던 문제 인식이었다. 이긴다? 그런 건 이미 오차범위 바깥으로 벌어져 버린, 단 18일 남은 선거판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었다.

내가 그 순간에 가장 두려워했던 건, 어차피 질 거니까, 선거 포기가 속출하면서 실제 투표율은 떨어지고, 지지율 격차는 더 높아지는 그런 상황이었다. 지난 대선이 그렇지 않았던가?

2차 세계대전, 독일이 졌다. 좋은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전세계 전선에서 어떻게 퇴각할 것인가, 그게 중요했었을 것이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들은 질서 있게 퇴각을 했고, 결국 국가를 다시 일으켜세웠다. 2012년 12월 1일, 우리가 생각한 것은, 대선 승리가 아니라 질서 있는 퇴각, 그래서 결국 지더라도 최대한 접점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미 오차 범위 바깥으로 후보 지지율이 벌어져 있는 상황, 뭘 더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국민연대라는, 아주 기기묘묘한 조직을 띄우고, 내가 그 조직의 대표를 맡으라고 조국 교수가 강권하던 상황, 그게 2012년 12월 1일의 상황이었다.

2. 부산에서의 마지막 유세

2012년 12월 18일, 개인적으로는 이 날이 기억이 많이 날 것 같다. 국민연대가 결성된 이후, 어쨌든 안철수도 움직였고, 분위기는 많이 좋아졌다. 이제 마지막 한 방, 이기자고 하면 이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유세 마지막 날, 우여곡절 끝에 당시 선거 유세를 종합적으로 기획하던 탁현민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그렇게 경부선을 따라가는 마지막 유세를 준비하였다. 좀 잔인한 일정이다. 후보는 서울역에서 시작해서, 대전, 대구 등 주요 도시를 거쳐서 마지막에 부산역에서 유세하는 일정이다. 나는 바람잡이로, 후보와 엇갈리면서, 천안, 대구, 부산에서 유세를 하게 되었다. 후보가 오기 전에 먼저 유세를 하고, 후보가 도착하면 다음 도시로 떠나는 그런 일정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유세가 또 있을까? 좀 잔인한 일정이지만, 우리는 그 일정을 소화했다. 도종환 시인 등, 지그재그 방식으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였고, 어쨌든 대선 전날을 그렇게 보냈다.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천안 유세는 신세계 앞에서 했고, 길이 막혀서 천안역에서 정말 죽도록 뛰어서 기차 출발 5초 전에 도착했다. 원래 그런 기획이 아구가 잘 안 맞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천안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 아뿔싸, 후보와 같은 기차로 도착했고, 당연히 후보가 먼저 연설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만큼 열정을 쏟아 부은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갈려고 했는데, 기획자인 탁현민이 기획한 프로그램이 하나 더 있었다. 부산의 대학생들이 문재인 후보에게 꽃다발을 건네주고 공식 선거운동을 마감하는 순서였는데, 그 마이크를 나에게 돌렸다. 결국, 후보 뒤에서 이번 대선 캠페인의 마지막 마이크를 잡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고, 공식적으로 마이크를 쓰는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 애국가까지 부르면서 내가 서 있게 되었다. 그 기억은 나에게, 오래 남을 것이다.

▲18대 대선 하루 전날인 지난해 12월 18일.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부산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3. 정동영 그리고 손학규

대선 결과는 끔찍했다. 어쨌든 졌다. 그리고 두 명의 정치인을 만났는데, 순서대로, 정동영과 손학규였다. 정동영과는 바로 만났다. 아픔을 나누었다. 손학규는, 독일 가지 말고 여기서 시민들과 아픔을 같이 하자, 그 얘기를 하려고 만났다. 그러나 만나서 들어보니, 그의 사정도 이해가 안 가는 바가 아니다. 그가 대선 중에 만들었던 최고의 구호 '저녁이 있는 삶', 그런 걸 정책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랬다. 어쨌든 졌다.

손학규에게 내가 했던 얘기의 기본 골조는, 지금 여기에서 시민과 슬픔과 괴로움을 같이 지내는, 내 식으로 얘기하면 '꼬질꼬질한'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이 지도자다, 그러니 가지 마라, 그런 거였다. 우리가 꼬질꼬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손학규는 독일로 간다고 했고, 그날 정동영은 희망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갔다. 나는 두 사람이 순망치한이라고 말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다, 두 사람은 그런 관계로 보였다. 서로 아웅다웅하는 라이벌이지만, 같이 있을 때 힘을 받는 사람들이다. 두 사람 다, 앞 길이 잘 안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갈등 속에서도 협력할 수 있듯이, 손을 잡으라고, 두 사람 모두에게 그 얘기를 했다.

당신들이 손을 잡지 않으면? 우리가 모두 죽는다. 원로 노릇이라도 똑바로 하시라!

4. 자, 우린 뭘 하지?

어쨌든 짧은 몇 주 동안 국민연대의 상임대표로 대선을 치루었다. 최선을 다한다고는 한 것 같다. 그러나 졌다. 그 이후에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나도 생각을 정리해봤다. 아직도 정리가 다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름대로 생각한 것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보고 싶어졌다. 어쨌든 우리는 수다라도 좀 떨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1) 최악의 공포 버전, 보수 18년

이번 대선에 내가 제일 좋았던 공약은 '시민의 정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5년을 기다리는 최선의 버전은, 그 시민의 정부가 단지 5년 유예된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건 정말로, 가장 마음 편하게 이 상황을 즐기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기는 어렵다.

박근혜가 바보가 아니라면, 집권 3년차쯤, 중임제 개헌, 이전 용어로 하면 '원 포인트 개헌'을 할 것이다. 레임덕을 줄이기 가장 쉬운 방법인데, 그렇게 개헌을 하고 나면 보통은 개헌 추진 주체 쪽이 정권을 잡는다. 그리고 중임제에서의 패턴대로 하면 8년을 집권하게 된다. 이명박 정권까지 합치면, 통합 18년을 하게 되는 셈이다. 박정희 18년 집권과 이렇게 된 18년을 더하면 36년이다. 이 정도면, 막판까지 버티다가 결국 친일을 하게 되는 그 시기가 보이지 않는가? 이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버전이다.

2) 최선의 버전, 2014년부터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상이지만, 지금부터 분위기를 바꾼다면 2014년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상상해볼 수는 있다. 2014년에 승리하고, 그 분위기로 2016년 총선을 승리하고, 그 힘으로 2017년 대선까지 승리하는 것, 만약에 우리가 다음에 이긴다면 거의 유일한 길은 이 길이다. 부시에게 연패한 이후, 미국의 민주당이 오바마를 내세우기 전까지 왔던 길이 이 길이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이제부터 우리가 기적 같은 것을 만들어야, 앞으로의 18년 보수 집권이냐, 아니면 다른 대안인가, 그런 분기점이 갈린다.

3) 3%, 생각보다 크다

이번 대선에 3%의 차이로 졌다. 이 차이를 줄이면 다음에는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는 좌파, 소위 '진보정당' 운동했던 사람들이 민주당에 힘을 몰아주었다. 그들은 혹독한 댓가를 감수하고 힘을 몰아주었다. 당장 내가 그렇다. 지난 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내가 바로 노회찬 후원회장을 해주었던 사람이고, '닥치고 단일화', 그런 '개소리' 하지 말라고 끝까지 버텼던 사람이다. 그들이 다음 번 대선에서도 이번처럼 '어쨌든 단일화', 그렇게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걸 염두에 두면, 3%의 차이, 생각보다 큰 것이다.

4) 방송

방송 여건은 이번에 최악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조금씩은 개선될 것 같다. 정부나 방송국이 뭘 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이 시민방송이든 국민방송이든, 하여간 어떻게든 뭔가 만들어내고 그 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쉽지는 않다. 그러나 개선은 될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5) 민주당 당직 개혁

이번 대선에서 졌다면, 우린 박근혜한테 진 거다. 정확히는, 박근혜의 새누리당 개혁에 진 거다. 천막당사 시절,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바꿨다. 민주당은 못 바꿨다. 내용은 간단하다. 월급쟁이 혹은 관료로서의 당직자를 새누리당은 만들었는데, 민주당은 대표 바뀔 때마다 줄 서야 하는 구조를 못 바꿨다. 간단히 말하면, 새누리당 당직자는 정규직인데, 민주당은 대표급한테 줄 안서면 비정규직이다. 관료처럼 일하고, 당내 선거에 개입하면 짜른다, 그 간단한 박근혜의 원칙에 이번 대선, 민주당이 진 거다. 이거 못 바꾸면, 영원히 아마와 프로의 싸움, 대선 그렇게 간다.

6) 복지 도시, 지금 당장

지역 감정 얘기를 한다.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좀 이상하다. 대구는 지역소득, 꼴찌인 도시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광주와 대구의 정책 경쟁, 그것은 지금도 할 수 있다. 꼭 중앙 정부를 바꿔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자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 그걸 지금 하지 않고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는가? 예산이 작으면 작은대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광주같은 곳에서 '복지 도시 광주', 그런 걸 하자. 그런 시도도 못하면서, 우리가 집권하면 잘 할 수 있다, 그 말이 먹힐 리가 있겠는가?

7) 시민 아카데미

안철수 캠프에 있던 김수진 교수가 나에게 해준 말, 미안하지만 대부분 헛방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가 한 말 중에 정말 맞는 말은, JP가 공화당 시절에 당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양쪽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말 딱딱한 말이지만, 당원 연수원 같은 것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나는 그 말에 동의를 하였다.

당원에 가입하면 1주든 2주든,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 이런 작은 것에서부터 기초의원에서 국회의원까지, 당에서 운영하는 정식 프로그램 이수자들이 나올 수 있게 하는 것, 이런 게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조금 더 상상해보면, 대선 후보들도, 예를 들면 3개월짜리 기본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들 중에서 나오는 것, 그런 게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닌가 싶다.

8) 진보 센터

부시 재선 이후, 미국의 시민사회가 했던 대부분의 일은 우리도 할 수 있고, 우리도 그 정도의 역량은 있을 법 싶다. 그러나 딱 하나, 힘들다고 생각한 것은 2003년도에 그들이 만든 진보센타이다. 뭐, 별 건 없다. 연간 예산 200억 원, 100명 수준의 연구원, 이 정도는 우리도 해볼 수는 있다. 다만 차이점은, 미국에는 있던 조지 소로스가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 우리에게는 그 정도의 부자는 안철수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는 진보 센터에는 관심이 없었다.

진보센터가 별 거는 아니다. 싱크탱크니 뭐니, 엄청나게 부르지만, 여러 정파들이 얼기설기 모여서 얘기를 나눈 것이 전부다. 다만 학자들이 그렇게 늘 모여있다 보니, 선거와 상관없이, 서로 무슨 얘기하는 건지, 일상적으로 내용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 네트워크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

우리도 할 수는 있다.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미국처럼 민주당 밖에 차리는 일이다. 우리도 할 수는 있는데, 추진 주체가 강력해야 하고, 펀딩을 잘 처리하면 된다. 간단한 계산으로는 연간 100억 원, 5년간 500억원, 만들 수 없는 돈은 아니다. 그러나 그 돈을 믿고 맡길만한 주체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 쉬운 방법은, 지금의 민주당 내부의 민주정책연구원을 정말로 진보의 싱크탱크처럼 만드는 방법이다. 새누리당도 여의도연구소에 어느 정도의 명성을 가진 기관으로 만들었는데, 민주당은 왜 못하는가? 일당 당에서 분리시키면 된다. 그리고 그 역량을 어렵고 힘든 부문 운동들을 위한 지원체로 바꾸면 된다. 이건 당대표 등 지도부가 결심하면 지금도 바로 할 수 있다.

싱크탱크를 제대로 만드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걸 하지 않고 다른 세상에 기획을 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말이 안된다. 정책역량 없이 선거 치룬다는 건, 언제나 바람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5. 그리고 시민의 정부

안철수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가 말한 새정치가 무슨 말인지, 사실 난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물론 새로운 정치 흐름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는 100% 동의하지만, 그가 방법으로 말한 국회의원 숫자나 비례대표 문제에 대해서, 나는 크게 동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가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뭔가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다. 만약 그가 5년 후에, '국민'이 아니라 '시민'의 지도자로 돌아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그가 시민을 걸고 뭔가 한다면 나는 그를 도울 것 같다. 정권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 세상에 대한 미래 모습이 문제라서 그렇다.

민주당이냐 아니냐, 친노냐 아니냐, 안철수냐 아니냐, 사실 나는 이런 데에는 관심이 없다. 정권교체? 그 말에는 동의하지만, 무엇을 위한 혹은 누구를 위한 정권교체인가, 그 내용을 채우지 않고, 그냥 '새정치'라고 말하면, 나 같은 경제학자들은 아마 할 말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니냐! 그게 바로 민생이라는, 이 지독한 실존적 용어 아닌가?

우리는 바람의 선거를 DJ 이후, 아니 87년 이후 끊임없이 치루었다. 그리고 그 선거를 위한 밑바탕, 기본적으로는 시민 사회라는 걸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그러니 맨날 바람이 부느냐 마느냐, 그런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는 스스로를 '시민'이라고 부르고, 그렇게 정체성을 느끼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의 정부가 온다. 그리고 그게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런 일이다.

문재인을 열성적으로 지지한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에게도 참 뼈 아픈 사실이었는데, 그 얘기를 이 글을 닫기 전에 해야 할 것 같다. 지난 대선, 가난한 사람들은 박근혜에게 더 많이 투표했고, 여성들 역시 그랬다. 이건 진보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는, 진 거다.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지 못하고, 여성들에게 대안으로 보이지 않는 정치 프로그램,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완패다. 그러나 2014년, 우리는 완패하면 안 된다. 그러면 18년 보수 정권, 그렇게 간다. 그 결과, 멕시코보다 더 어려운 나라로 전락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찍어주지 않는 진보 후보, 이건 정말 암 것도 아니다. 다음 대선, 이렇게 치르면 큰 일 난다.

 
 
 

 

/우석훈 경제학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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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본 국운

주역으로 본 국운

 
조현 2013. 01. 16
조회수 619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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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 ‘고목생화’(枯木生花)라는 말이 있다. ‘마른 나무에서 꽃이 핀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나이 90이면 고목 중 고목이다. 우리 나이로 올해 90이 된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을 만났다. 15일 서울 경복궁 인근 음식점에서다.

 

 그와 함께 활동했던 불교계의 효봉·청담·지관 스님, 천주교의 노기남 대주교·김수환 추기경, 개신교의 한경직 목사 등은 다 고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불교나 개신교, 천주교처럼 대종단의 지도자가 아닌데도 그를 뺀 종교지도자모임을 상상키 어려울 정도로 한 회장은 종교계에서 존재감이 있다.

 

최고령에 삿갓과 도포의 포스도 한몫을 하지만, 재치 넘치는 유머와 호호탕탕한 웃음으로 긴장을 녹이는 중화제이자 윤활유 구실을 하는 풍모 덕이다.

 

 그는 민족종교의 일파인 갱정유도회 대표다. 1945년 도조 강대성이 전북 순창 회문산에서 유교를 갱신해 예(禮)를 되찾기 위해 세운 갱정유도회 도인들은 지금도 지리산 청학동 등에서 삿갓 쓰고 도포를 입고 사서삼경을 낭독하며 살아가고 있다.

 

보통(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신학문을 접고 한학의 길에 접어들어 사서삼경과 음양오행 주역을 배우고 도를 닦은 그는 지난해 9월 별세한 통일교 교주 문선명 총재에게 1950년대 6개월 간 두 선배 도인들과 함께 주역을 개인지도하기도 했다.

 

그래서 대선 때면 어김없이 유력 후보 쪽으로부터 ‘점괘를 뽑아달라’는 요청을 받는 주역의 대가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를 각별히 예우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초청한 종교지도자들 가운데 그를 끌어안고 번쩍 들어올려 남다른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번에도 박근혜 후보 쪽의 요청을 받고 괘를 뽑아 대선 이틀 전엔 ‘오만하면 안 된다’, 대선 당일 새벽 6시엔 ‘당선될 것’이란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서양문화에 밀려 옛것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대 서울에서 60여년을 삿갓 쓰고 도포를 입은 채 활보하며 여전히 일세를 풍미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아침마다 40~50분간 도인체조를 빠지지 않고 한다는 그는 여전히 40~50대를 연상케 할 만큼 웃음이 호탕하고 목소리가 짱짱하다. 질문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확한 기억력으로 간단 명료하게 답했다.

 

-김지하시인이 지난 대선을 앞두고 후천개벽론을 들어 여성대통령의 필요성을 주창했는데.

 “국가 전체의 운수를 봐야지, 지도자 한 명에 의해 후천개벽이 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군사정권 때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고백을 한 뒤라면 모르지만, 아무런 전제 없이 상대에 대한 평가가 극에서 극으로 편의에 따라 바뀌는 것도 지식인의 모습으로 볼 수 없다. 대놓고 돈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돈을 원하면 일찌기 돈벌이를 했어야 하지 않는가”

 

 -후천개벽이 오지 않는다는 것인가.

 “격암 남사고(1509~1571) 선생은 500년 전에 ‘만국인이 우리 마당에 와서 벌거숭이로 춤을 추면 천하대운이 우리나라로 온다’고 했다. 올림픽이 열린 1988년 무진년을 원년으로 볼 수 있다. 그 4320년 전 무진년은 단군께서 이 나라를 연 개국의 해였다. 동의보감에도 나오지만,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이듯이 천지도수는 4320년마다 변화가 온다.”

 

 -서양이 쇠하고 동양이 흥하면, 동양엔 중국이나 인도가 있지 않은가.

 “남사고 선생이 남긴 <격암유록>에선 중국은 50개국으로 나뉘고, 일본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고 돼 있다. 한국은 1천 번의 외침을 받고도 남을 침략하지 않은 나라다. 하늘이 그런 나라에 대임을 맡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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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예언을 어찌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격암유록은 주역 음양오행의 원리를 그대로 설해 놓은 것일 뿐이다. 지금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격암유록은 원본과는 거리가 멀다. 천부교의 박태선 장로 수하들이 1950년대 순창 회문산에서 진본 목판본을 가져가서 원본에 없는 감람나무 등을 넣어 왜곡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가만히 있어도 세계 주역 국가가 된다는 것인가.

 “이를 위해 통일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주변국의 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북이 주도적으로 이뤄내야 한다. 우리가 원치 않는 가운데 분단됐는데, 통일도 주변국에 맡긴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들이 나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통일 뒤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함이다. 주변국의 간섭대로 맡기면 또 다른 식민지가 될 뿐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매진하다가 하나는 얻었지만 하나는 잃었다’고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한탄하곤 했다. 얻은 것은 경제고, 잃은 것은 우리의 뿌리인 정신문화다. 경제와 정신문화가 함께 가야 한류가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다. 당선인은 박 대통령이 못한 것을 해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인연이 없는가.

 “있다. 1965년 6월6일 현충일에 갱정유도회원들 500명이 서울에 모여 ‘遠美蘇慂, 和南北民’(원미소용, 화남북민)이란 전단을 뿌렸다. 국립묘지에서 현충일 행사를 하고 청와대로 돌아가던 박대통령이 삿갓 쓴 사람들이 전단을 뿌리는걸 보고 잡아오라고 해 내가 대통령 앞에 끌려갔다. 전단을 보고 이게 뭔소리냐고 묻자, ‘미국과 소련이 권하는 이데올로기를 멀리하고, 우리의 홍익인간 정신으로 남북민이 화합하자’는 소리라고 하자, 그게 ‘용공 아니냐’고 ‘쳐넣으라’고 해 92일간 옥살이를 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한문 잘 아는 영감을 데려 오래서 불려간 김팔봉·박종홍·유달영 선생이 권면해줘 풀려났다. 석방 뒤 박 대통령이 저녁을 먹자해서 갔더니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에 다닐 때 쑥죽을 싼 도시락을 메고 30리길을 가서 도시락을 열어보면 물기는 쏙 빠져버리고 쑥건더기와 밥알 몇알 밖에 없어 도지히 창피해 같이 밥을 먹을 수 없어 점심 시간이면 숨어서 먹었다’며 ‘보릿고개를 어떻게든 넘어서야 하지 않겠느냐’며 눈물을 훔쳤다.”

 

 -가장 인상 깊은 인물들은.

 “1954년 서울에 올라와 유교 수장이던 심산 김창숙 선생의 비서를 하면서부터 수많은 인물들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조병옥·장택상 같은 분들에게 술도 많이 얻어 마셨다. 역시 기상이 살아 있는 분들이 오래 기억이 남는다. 임시정부 요인으로 백범이 암살당한 뒤 한독당 당수를 했던 백강 조경한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이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을 사양했다. ‘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독당을 죽이려는 것’이라면서. 조 선생은 5·16 직후 함께 4인 자문위원으로 뽑혀 청와대에 갔다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지만 친일 논란이 있던 이갑성이 손을 내밀자 ‘대통령이 불러서 오긴 왔다만 친일파와 상종하려 온게 아니다’고 뿌리쳤다.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손자가 화신백화점 앞에서 군밤장사를 하고 독립지사들 후손들 3대가 무식꾼이 되어버렸는데, 독립운동을 했다는 당신의 자식 세 명이 모두 일본 명문대를 다닌 것은 밀정을 해주지 않고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변영태·전진한 선생처럼 정치와 행정을 하면서도 사심이 없고 검소하고 꼿꼿했던 그런 인물들을 지금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게 안타깝기 그지 없다.”

 

 -종교인중에선 그런 인물이 없었나.

 “여수에서 나환자를 돌보던 손양원 목사와 새문안교회 강신명 목사,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 같은 이들이 존경할 만한 분들이다. 요즘은 종교인들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들만 눈에 뜨인다. 종교심과 애국심을 함께 갖고 욕심이 없고 거짓이 없던 그런 분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통일교 문선명 교주는 어떻게 보았는가.

 “젊었을 때부터 사업가로 보였지 종교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별세해 경기도 가평으로 조문을 갔을 때 그곳에 통일교 왕국을 짓는 데 1조원이 넘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돈을 빈민을 구제하는 데 쓰고 자신은 검소한 데 처했으면 얼마나 칭송을 받았겠느냐’는 말을 해주었다.”

 

 전북 남원에서 보통학교만 나온 뒤 전남 구례 호양학교에서 5년을 공부한 그의 삶을 이끄는 것은 호양학교의 정신이라고 한다. 호양학교는 대유학자였던 왕석보 선생과 그의 제자인 매천 황현과 홍암 나철, 이기, 김태경 등이 이끌던 학교다.

 

 세상의 복식과 정신이 골백번도 더 변한 지금까지 옛 복식과 정신을 잇겠다고 겨레얼살리기에 혼신을 불태우는 그는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밤이 가면 새벽이 오는 게 세상 이치”라며 격암유록의 한 구절로 새 봄을 맞으라고 주문했다.

 

 “개선춘풍(開善春風)이니, 사해(四海)가 해원만세(解怨萬世)라.”(봄바람 따라 선한 세상 열리니, 세상이 원한을 풀고 만세토록 이어지리)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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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나노기술 이용 무공해 과일농장?

 

북, 나노기술 이용 무공해 과일농장?
 
평양천연향료 연구소 과학자들 성과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1/17 [08:11] 최종편집: ⓒ 자주민보
 
 

북이 무공해 천연 식물성 농약을 개발 발전시키고 있는 가운데 천연향과 나노 기술을 이용해 살충 효과를 높이는 연구에서 성과를 거 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로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은 17일 문화면에서 “평양천연향료연구소 과학자들이 식물성농약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해 살충제를 적개 쓰면서도 구제 효과를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동신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과일생산을 늘이는 비결의 하나는 병해충 구제사업을 잘하는데 있습니다.”라고 밝혀 김위원장이 병해충 구제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전했다.

이 신문은 “평양천연향료연구소의 과학자들이 우리나라에 흔한 천연향을 원료로 하여 천연향살충제를 연구완성하기 위한 사업을 꾸준히 내밀고 있다.”며 “이곳 일꾼들인 최등광, 김 병철동무들은 신제희동무를 비롯한 연구소의 과학자들이 대동강과수종합농장의 과학자, 종업원들과 힘을 합쳐 우리의 기술과 원료에 의한 살충제를 완성하는데 큰 힘을 넣도록 조직 정치사업을 짜고 들고 있다.”고 전했다.

▲ 대동강 과수농원은 둘레가 100km에 이르는 대규모 과일생산 기지로 과일 가공 공장도 가동되고 있다. ©이정섭 기자
신문은 “나노기술에 의거하여 살충성분의 함량을 훨씬 높이기 위한 사업, 우리나라에 흔한 물질로 살충성분의 특성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 대동강과수종합농장에서 이미 이용하던 살충제를 대폭 절약하면서도 살충효과를 기상조건에 구애됨이 없이 최대한 높이기 위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과학자들은 자기들이 연구한 천연향살충제와 새로운 방법으로 제조한 혼합 살충제가 각이한 기상조건에서 얼마만 한 효과를 나타내는가를 이미 여러가지 방법으로 시험해보았다.”고 전해 현장에서 연구 사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이른 봄철부터 늦은 가을철까지 그것도 넓은 면적에 뿌리내린 한그루, 한그루의 사과나무들의 잎과 가지, 열매들을 빠짐없이 관찰하면서 계절별로 발생하는 각종 해로운 곤충들에 대한 살충효과를 정확히 검증하는 일은 사실상 품이 대단히 많이 든다.”고 연구 과정의 어려움을 알렸다.

로동신문은 “이곳 과학자들은 우리 식의 식물성농약연구에서 귀중한 자료로 되는 야외 시험준비를 지금부터 착실히 하고 있다.”며 “지난해에 수차례에 걸쳐 1,000여정보의 과일나무 밭에 우리의 기술과 원료로 만든 식물성농약을 뿌린 결과는 대단히 좋았다.”며 연구사업의 정황을 설명했다.

신문은 무공해과일생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라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신년사에서 밝히신대로 인민들에게 생활상혜택이 더 많이 차례지게 하자면 우리가 대동강과수종합농장의 무공해과일생산에 필요한 식물성농약연구에만 관심을 돌려서는 안된다. 전국각지에 우리 식의 식물성농약이 모두 도입해 무공해과일생산에서 더 큰 은(성과)을 내게 하자.”고 호소했다.

특히 “이렇게 대동강과수종합농장만이 아니라 전국의 과수농장들에도 연구성과를 확대도입할 통이 큰 목표를 내걸고 평양천연향료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지금도 탐구의 길을 변함없이 달리고 있다.”고 천명했다.

한편 조선의 과학자 기술자, 농민들은 집단적 방법에 의거하여 보다 비용이 적게들면서 효능이 높은 무공해 농약 개발에 힘을 쏟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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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편에 뒤통수 맞은 MB... 나도 놀랐다

4대강 사업 입장 바꾼 <조선>·감사원, 청문회에서 만나자

13.01.16 19:03l최종 업데이트 13.01.16 19:35l

 

 

낙동강 '녹조라떼'입니다. 감사원과 <조선일보>가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녹색성장의 위력을 뒤늦게 깨달았나 봅니다. 드디어 4대강 사업의 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 이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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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한 달여 남은 이명박 대통령의 '끈'이 다 떨어진 모양입니다. 지난 9일 <조선일보>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4대강 공사 구간의 수질은 정부가 애초 목표한 수질보다 상당히 떨어지는 공업용수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감사원도 비판했습니다. <조선일보> 기사의 한 대목을 직접 보겠습니다.

감사원의 태도 변화 왜 이럴까요

"이번 감사는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두 번째 감사다. 2010~2011년에 걸쳐 진행된 1차 감사에서는 '공사비 5119억원 정도가 낭비될 우려가 있다'는 결론만 냈다. 사업 타당성이나 환경·문화재 파괴 우려 등에 대해서는 '별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1년여 만에 실시한 이번 2차 감사에서는 수질, 홍수·가뭄 관리에서 복합적 문제가 확인됐고, 보(洑) 본체의 균열과 보 하단의 세굴(洗掘) 현상도 16개 보 대부분에서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현재 감사 결과를 확정하기 위한 마지막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인 가운데 정부 관계자들은 "많은 문제가 확인됐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4대강 사업의 진실을 이야기하다니, 뒤늦게 정신을 차린 걸까요? 아니면 권력 갈아타기를 하는 걸가요? 참 요지경입니다. 감사원은 이 대통령에게 4대강 감사 결과를 보고하지 않았다고 <조선일보> 기사를 반박했지만,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은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 조선일보.20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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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한 입으로 두 말 한다"는 <조선일보>의 지적을 들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22조 원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은 대한민국 역사 이래 최대 국책사업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임기 안에 4대강 사업을 완공하려 여러 불법과 편법을 일삼았습니다.

일단, 환경영향평가를 단 넉 달 만에 졸속으로 해치운 환경영향평가법 위반, 국회 예산 심의 없이 사업을 조기 착공한 헌법54조 위반, 500억 원 이상 대규모 사업에 반드시 해야 할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지 않은 국가재정법 제38조 위반, 하천법 상위 계획에 위배된 하천법 위반 등 4대강 사업은 불법과 편법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감사원은 지난 2010년 6월, 4대강 사업 감사를 다 끝내고도 '검토중'이라며 발표를 미적거리다 2011년 1월 27일에야 감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감사 결과 22조 원의 사업비 중 겨우 "5119억 원 정도 낭비 우려가 있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잘못도 밝혀내지 않았습니다. 결국 감사원이 4대강 사업에 면죄부를 준 것입니다.
 

감사원이 곧 4대강 사업 감사 결과를 발표한다고 합니다. 1차 감사결과에서 별문제 없다던 감사원이 이명박 정부가 다 끝나가니 4대강 사업에 문제가 많다고 한다네요. 참 웃기는 감사원입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감사원 역시 4대강 죽이기 공범 중 하나일 뿐입니다.
ⓒ 미디어다음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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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담합으로 '삽질 재벌'들의 주머니로 들어간 혈세가 1조 원이 넘습니다. 최근엔 4대강 사업의 하나인 영주댐 공사에서도 담합으로 혈세가 낭비되는 불법 사례가 밝혀졌습니다. 4대강 사업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불법 천지였습니다.

그러나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이 완공되고, 이명박 정부가 다 끝나가는 지금에 와서야 4대강 사업에 문제가 많다는 '뒷북 감사' 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2010년 감사 때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수질과 보 등을 세밀하게 보기 어려웠다"는 감사원 관계자의 '변명'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으로 인한 국토 파괴와 국고 탕진의 책임에서 감사원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삽질 재벌 뒷주머니 채워준 4대강 사업은 온갖 불법과 비리 투성이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원은 불법천지 4대강 사업이 아무 문제없다며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정권이 바뀌니 이제와서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는 감사원은 문제가 많습니다.
ⓒ kbs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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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감사원의 비난할 자격이 있나

<조선일보>는 9일에 이어 14일에도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은 환경부의 인수위원회 보고 자료를 인용한 '수질개선비 4조 쓴 4대강, 다른 하천보다 개선 안 돼'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4대강 사업으로 물이 썩는 4대강의 위기를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지난 1월 9일 4대강 사업의 잘못을 지적하는 보도했습니다. 4대강 사업 초기에 이렇게 열심히 보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강이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조선일보>는 몰랐을까요?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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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조선일보>는 '단독'이라며 연일 4대강 사업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의 한 입으로 두 말 하기를 비난한 <조선일보>, 과연 4대강 사업의 재앙을 보도할 자격이 있을까요?

<조선일보>는 다른 보수 언론들처럼 일방적으로 4대강 사업을 두둔하기 보다는, 찬반 양쪽의 견해를 10회에 걸쳐 특집으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신문은 당시 박재완 청와대 수석과(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목사인 필자와의 4대강 '맞장 토론'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4대강 사업 찬성의 허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지난 2011년 9월 15일 '4대강 난리 난다던 사람들의 침묵'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비난했습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한 <조선일보> 사회부장 출신인 박정훈 기사기획에디터의 칼럼입니다. 이러고도 <조선일보>가 4대강 사업의 잘못을 지적할 자격이 있을까요?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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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반대 진영이 돌연 조용해졌다. 시위와 점거농성, 삭발에 단식까지 하며 '단군 이래 최대 재앙'을 외치던 사람들이었다.(중략) 그들은 제대로 된 팩트를 제시하지 않은 채 침묵 모드로 전환했다.(중략) 일부 반대론자들은 4대강 투쟁에서 철수해 한진중공업과 제주 강정마을로 화력(火力)을 옮겨갔다. 그래서 '좌파의 치고 빠지기'란 소리가 나온다. 국가 백년대계를 좌우할 4대강 논쟁도 결국 이념 싸움으로 흐르고 마는지, 안타깝다."

<조선일보>는 4대강 사업의 잘못을 보도하기 전에, 자신들의 잘못부터 사죄하는 게 마땅합니다. 국토 파괴라는 대 재앙 앞에서 언론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고 참회해야 합니다. 4대강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했으니, 이에 사과하는 게 언론의 도리입니다.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TV조선>이 14일 4대강국민검증위원회가 발표한 낙동강 합천보의 물이 보 아래로 새는 파이핑 현상에 대해 상세히 보도하였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보 아래로 물이 새서 위로 솟구치는 장면입니다. 보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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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4대강 난리 난다던 사람들의 침묵'을 통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던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오류를 시인하라"고 했는데, 이는 <조선일보>부터 실천해야 할 말입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과학은 없다

<조선일보>는 "감사원 감사 결과, 수질을 비롯하여 홍수·가뭄 관리에서 복합적 문제가 확인됐고, 보 본체의 균열과 보 하단의 세굴 현상으로 보 안전에도 많은 문제가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사원 감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기대하지 않습니다. <조선일보> 보도를 비롯해 감사원 감사 결과 내용이 전혀 놀라운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미 지난 3년여 동안 <오마이뉴스>를 통해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발생할 문제를 수없이 지적했습니다. 또 <강은 살아있다>와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라는 두 권의 책을 통해 MB표 4대강에서 벌어질 재앙을 낱낱이 밝혔습니다.

낙동강 칠곡왜관철교 붕괴, 수질 악화 등 4대강에서 벌어진 여러 재앙들은 모두 제가 기사와 책으로 지적한 것들입니다. 제 능력이 출중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4대강 사업은 과학이 아니라 상식 이하의 광란의 삽질이어서 제가 지적한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11월 27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국내 건설사의 기술을 거론하며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수질 악화 우려를 일축했습니다. 그러나 4대강 사업 결과 4대강의 물은 '녹조라떼'로 변하여 공업용수로도 쓰기 곤란한 물로 전락하였습니다.

<조선일보>는 14일자 신문에서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등 '4대강(江) 살리기 사업'을 실시한 하천의 수질이,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은 하천보다 4대강 사업 이전에 비해 수질이 더 나빠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신문은 "16개 보를 통해 총 7억t 이상의 강물이 더 확보됐지만, 수량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수질 개선 효과보다 강물이 정체되면서 발생하는 수질 악화 효과가 더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지적했습니다.

과연 이게 22조 원의 엄청난 혈세를 탕진한 후에 전혀 몰랐던 의외의 결과인양 쓸 수 있는 기사일까요? 수질을 정화시키는 여울, 습지, 모래가 사라지고, 16개 대형 댐 규모의 보를 건설하여 물이 흐르지 않으면 당연히 물은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습지와 모래가 사라진 흐르지 않는 강이 썩는다는 건, 초등학생도 다 알 수 있는 상식입니다.
 

4대강 수질의 진실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지난 9월 태풍이 지나 간 후 10월 초의 낙동강 강정고령보입니다. 4대강 문화관인 디아크(동그라미)가 있지만, 4대강 사업 이전엔 탁하던 금호강(우측)이 태풍 홍수 후에도 녹조가 번성하고 있는 낙동강보다 더 맑아보입니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올봄에 어떤 녹조대란이 벌어질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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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대강 파괴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만약 언론들이 상식 이하의 불법천지 4대강 사업에 대해 처음부터 제대로 보도했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은 이룰 수 없는 허망한 꿈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4대강 사업 보도를 철저히 통제한 방송국들과 4대강 사업을 찬양한 언론에 힘입어 4대강 사업은 완공되었습니다. 4대강 죽이기에 대한 책임은 국토파괴 주범인 이명박 대통령만이 아닌,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의 사명을 망각한 대한민국의 언론에게도 있습니다.
 

낙동강 제1비경 경천대가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되었습니다. 국토파괴 범죄에 불과한 4대강 사업에 대해 언론들이 제대로 보도했다면, 4대강 사업은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을 겁니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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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정부 관계자가 "4대강 사업에 문제가 많다"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정부 관계자의 말은 정확한 표현입니다.

필자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4대강 사업의 잘못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지난 3년간 전국의 대학과 시민단체와 교회, 사찰, 성당 등에서 총 300회가 넘는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이 끝나면 4대강 사업의 좋은 점은 없는지 묻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저는 "4대강 사업의 좋은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4대강 사업은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했습니다"라고 확실하게 대답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을 개선하고 홍수와 가뭄을 대비한다며 4대강 사업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많다"는 4대강 사업의 첫 번째 문제는 바로 국토파괴입니다. 이 대통령은 하늘이 수만 년 동안 빚어 선물로 준 아름다운 강을 단 2년 만에 처참하게 파괴했습니다. 이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소중한 국토를 파괴한 범죄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지난해 6월 가뭄에서 보듯, 4대강 사업은 가뭄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4대강에 가득 채운 물을 정작 가뭄으로 물이 필요한 지역에 공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2조원 들여 4대강에 모아 둔 물은 아무 쓸모없이 썩은 '녹조라떼'로 변했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4대강 사업은 홍수 예방이 아니라 언젠가 터질 거대한 물폭탄이라는 겁니다. 모래 위에 성을 쌓는 자는 어리석은 바보라던 예수님 말씀처럼, 4대강 사업은 준공 일 년도 되지 않아 붕괴 논란을 겪고 있습니다. 4대강 16개 보는 언젠가 터질 대형 물폭탄에 불과합니다.
 

준공한 지 일년도 되지 않아 4대강 보의 물받이공과 바닥보호공에서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4대강에 세워진 16개 괴물 댐(보)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거대한 물폭탄에 불과합니다. 제2의 연천댐 붕괴의 재앙이 낙동강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 시민환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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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4대강 준설로 인한 역행침식으로 지천의 붕괴가 심각하게 진행중입니다. 역행침식 탓에 지천의 크고 작은 다리들이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4대강 준설로 낙동강 칠곡왜관철교가 붕괴된 것처럼, 4대강 사업은 지천뿐아니라 4대강을 지나는 교량들에도 위험 요소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철새들의 낙원을 만든다던 4대강은 더는 철새들이 살 수 없는 철새들의 사형장이 되었습니다. 또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는 물고기들의 처참한 사형장으로 전락했습니다. 4대강 사업의 문제를 하나 하나 열거한다면 끝이 없습니다. 4대강 사업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MB표 대국민 사기극'입니다.
 

다리는 무너지고, 물은 썩고, 물고기들은 떼죽음 당하고.... 4대강 사업은 재앙의 연속입니다. 이게 바로 MB표 4대강 사업의 진실입니다. <조선일보>의 기사와 감사원 감사 결과가 놀랍지 않은 이유입니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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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에 대한 청문회를 열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16일 대선 후보 3차 TV 토론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제기를 알고 있지만, 홍수기를 더 지나보고 결과에 따라 위원회 등을 구성해 잘못된 점을 보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4대강 재앙은 삽질 재벌들의 뒷주머니 채워주려는 이명박 대통령의 눈물겨운 배려와 침묵으로 이에 동조한 박근혜 당선인, 새누리당의 합작품입니다. 박 당선인도 신음하는 4대강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올 봄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4대강엔 심각한 녹조 대란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해 9월 큰 태풍으로 큰 홍수가 지나갔음에도, 10월 초 낙동강에서는 물이 썩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홍수가 지난 지 겨우 며칠 만에 곳곳에 녹조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4대강을 살리는 길은 딱 한 가지입니다. 4대강 보 수문을 열어 녹조대란을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국토를 파괴하고 국고를 탕진한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 공무원, 자칭 전문가라던 지식 장사꾼들에 대한 청문회를 실시해 두 번 다시 이런 어리석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4대강 준설로 인한 역행 침식으로 지천에 하상유지공까지 설치했지만 무너져 사라지고(가운데 위의 화살표), 모래는 다시 퇴적됐습니다. 강물은 태풍 홍수가 지나갔음에도 녹조가 피기 시작했습니다(동그라미 속 강물). 올봄에 녹조대란이 일기 전에 수문을 열어야 합니다. 박근혜 당선인의 올바른 판단을 촉구합니다.
ⓒ 낙동강지키기 시민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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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감사원과 <조선일보>가 뒤늦게 4대강 재앙에 호들갑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4대강 재앙을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오월의 봄 출판사)에 이미 상세하게 밝힌 바 있습니다.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원들에게 감사원 감사 보고보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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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김현희’ 논란의 주범은 김현희 본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1/17 08:47
  • 수정일
    2013/01/17 08:4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가짜 김현희’ 논란의 주범은 김현희 본인
 
[특별기고] ‘북한인 입증’ 객관적 증거 제시해야... 말바꾸기도 문제
 
신성국 | 2013-01-16 18:39:0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MBC가 15일 밤 11시 15분부터 70분 동안 기존의 ‘100분 토론’ 대신 <특별대담-마유미의 삶, 김현희의 고백>을 전격 방송했다. 이에 대해 이용마 MBC노조 홍보국장은 “이 대담이 방송 7시간 전에야 녹화를 하고 부랴부랴 내보내야 할 속보성 사안인지 의문이다. 이런 식의 편성은 전례가 없다”며 방송 배경에 의혹을 제기했다.

공중파에 다시 등장한 김현희를 지켜보면서 두 사람이 떠올랐다. 한 명은 전두환이고 다른 한 명은 박근혜였다. KAL858기 사건의 핵심 인물은 전두환이다. 12.12사태를 일으켜 대한민국 헌법을 유린하고, 광주 학살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KAL기 사건의 덕분으로 자신이 지목한 후계자 노태우에게 정권 이양을 성공리 마칠 수 있었다.
 

▲ 87년 대선 하루 전날 김현희(마유미)가 서울로 압송됐다. 투표 당일 김현희 압송 기사를 실은 <조선일보> 1987년 12월 16일자 1면.

전두환은 국민을 상대로 '평화의 댐 사기사건', '수지김 조작사건' 등 집권기간 동안 북한과 관련된 공안조작사건들이 유독 많았다. 훗날 전두환 정권 시기에 발생한 공안사건들은 모두 조작으로 드러났지만, 'KAL858기폭파사건'은 숱한 의혹만 남긴 채 아직도 진상규명이 진행형이다.

전두환은 이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 만에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북한에 의한 폭파 테러’로 규정했고, 국내 언론들은 모두 안기부의 나팔수 노릇을 했다. 그리고 13 대선 전날 김현희가 혜성처럼 나타나면서 노태우는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 사건의 조사와 수사는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었다. MBC는 전두환 정권 하에서의 KAL858기 사건 수사발표와 '정체불명'의 김현희를 믿으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

 

어제 MBC에 출연한 김현희는 18대 대통령 당선자인 박근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기를 필자는 기대했다. “박근혜 당선자는 2002년 5월 11일부터 14일까지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과 회담을 가졌는데, 왜 KAL858기 사건에 대한 시인과 사과를 받아냈지 못했습니까?” 그러나 김현희는 박근혜에 대해 철저히 침묵했다.

안기부는 KAL858기 사건 수사 발표문에서 이 사건은 김정일의 친필 지령에 의해 저질러진 테러로서 천인공로한 범죄라고 했다. 박근혜는 KAL858기 사건의 지시를 내린 '주범' 김정일을 만나고도 왜 이를 한 마디 언급하지 못하고, 또 사죄도 받아내지 못했는가? 반공사상과 투철한 안보관을 자부하는 그가 우리 역사상 가장 큰 항공기 테러폭파 사건을 자행한 김정일을 만나 사과 한 마디도 받아내지 못했다니 말이 되는가?
 

방북 이틀째인 2002년 5월 12일 김정일 위원장과 단독회담 중인 박근혜 대표

박근혜가 11년 전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이 사건을 깨끗이 마무리짓고 올바로 해결하고 왔다면 피해자 가족들도 의혹을 접고 진상규명 활동도 종결했을 것이다. 나아가 이 사건으로 인한 국론 분열도 종식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김현희는 그런 역할을 못한 박근혜를 질타하고 책임을 물어야함에도 애꿎은 국민들 탓만 하고 있으니 둘 다 정상은 아니다. 결국 '가짜 김현희' 논란에서 박근혜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가짜 김현희' 논란의 원인 제공자는 다름아닌 바로 김현희 본인이다. 김현희를 의심하는 사람들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김현희가 '북한인'임을 입증하는 물증을 왜 제시하지 못하는가 점이다. 북한인 17세 이상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공민증 번호’조차도 모르는 김현희이다.

국정원이 탈북자들의 신원을 조사하면서 '북한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바로 '공민증 번호'라고 한다. 그런데 그동안 나온 모든 KAL기사건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 그 어디에도 김현희의 공민증 번호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했다는 김현희가 노동당증 번호도 모르고 있다고 한다. 그런 김현희를 북한사람(북한공작원)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 노동당 당원 출신들은 50~60년이 지난 지금도 당증번호를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김현희는 본인이 북한 출신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공민증 번호와 노동당증 번호만 정확하게 밝히면 손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을 끝내 밝히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가짜 김현희' 논란의 주범은 바로 김현희 본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김현희는 자신이 자신이 가짜가 아니라고 공중파 방송에 출연해여 전파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객관적 물증을 내놓으면 된다.

“한국으로서는 마유미(김현희)의 자백과 상황증거만으로도 공판은 유지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큰 사건에서 물적 증거가 제로라는 것은 민주주의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다. 일본만 해도 그 정도의 물증으로는 도저히 공판 유지가 될 수 없다.” (이타쿠라 히로이, 일본 형법학자, 1988. 1. 20)

국민들이 김현희를 불신하는 이유는 그가 거짓말을 밥먹듯 하고 또 자주 말을 바꾸기 때문이다. 작년 종편 <TV조선>과 어제 MBC에서도 뻔한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가령 김현희는 자기 자녀들의 나이도 모르거나 거짓말로 속이고 있다.

2003년도 MBC PD기자들이 자신의 집을 취재하러 왔을 때, 세 살짜리 아들과 한 살짜리 젖먹이를 둘러엎고 서둘러 도망갔다고 언급했다. 김현희는 아이들 나이을 속였다. 2003년도 김현희의 큰 아이는 다섯 살이고 작은 아이는 세 살이었다. 이 사실은 <조갑제 닷컴>에 실린 김현희 가족 사진에서 증명되었다. 아래 사진은 2008년도에 찍은 것이다.

 

 


김현희는 1997년 안기부 직원과 결혼하였다. 위 사진을 보면 둘다 초등학생임을 알 수 있다. 2008년 11월 김현희가 이동복 상임대표에게 편지와 사진을 보냈다. <조갑제 닷컴>은 이 사진을 설명과 함께 올려놓으면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 사진 설명에 아들은 10살, 딸은 8살이라고 기록되었더군요. 2008년도에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더군요”

당시 김현희의 나이도 46세로 나왔음을 밝혔다. 2008년도에 아들이 10살이면 5년 전 2003년도에는 5살이고, 딸은 세 살이 맞다. 그런데 김현희는 공영방송에 나와서 2003년도에 아들이 세 살이고, 딸이 한 살이라고 버젓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엄마로서 자식들 나이도 속였다. 김현희의 영원한 멘토 조갑제는 김현희의 주장을 뒤엎고는 김현희가 주장한 것보다 2살 많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2009년 6월 21일 <여성조선>도 김현희의 거짓을 증명하고 있다.

“김현희는 어느새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과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을 둔 두 아이의 학부형이 되었다” (<여성조선> 백은영 기자의 김현희 취재)

2003년 KBS, SBS, MBC 방송 3사가 KAL858기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당연히 김현희 인터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방송사의 보도에 문제가 있었다면 김현희는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고 방송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노력과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MBC에 출연하여 억울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또 작년 9월 새누리당이 총대를 메고 <김현희 가짜 만들기 진상규명대책위>까지 구성하여 김현희 지원에 나섰다. 새누리당은 김현희를 10월 9일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여 참여정부가 김현희에게 저지른 탄압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국감판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김현희는 국감에 출석하지 않았다. (그는 어제 MBC와의 대담에서 “국회에서 연락이 오지않아 출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를 맞아 기다렸다는 듯이 공중파 MBC에 출연하여 국민들 앞에 나타난 김현희는 대체 누구인가? 왜 김현희의 뒤에는 전두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일까? 왜 새누리당은 김현희를 여신처럼 받들며 다시 유신독재로 회귀하고 싶어하는가?

KAL858기 사건으로 희생된 115명의 피해자 가족들의 피눈물은 도대체 누가 닦아 주어야 하는가? 김현희가 TV와 언론에 나올 때마다 피해자 가족들의 숨죽이며 울고 있는 고달픈 심정은 언제나 멈춰지려나? 그러나 진실을 위한 국민들의 행보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목숨처럼 아끼는 것은 바로 진실이야!”라고 일갈하신 리영희 선생의 말씀이 귓전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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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유가족들, 참사 4주기 앞두고 개발지 돌며 '동병상련'

"사람도 안 사는 저 아파트 때문에…사람이 죽었나"

[현장] 용산참사 유가족들, 참사 4주기 앞두고 개발지 돌며 '동병상련'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16 오후 5:30:25

 

2009년 용산참사로 남편을 잃은 유영숙(53) 씨. 참사 4주기가 가까워진 요즘, 그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낮에는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바쁘게 움직이지만, 밤이 되면 어두운 방에 홀로 남아 답답한 가슴을 친다. 그는 "아직도 남편이 많이 보고 싶다"고 했다.

지난 15일 아침, 유 씨는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이날은 용산참사 4주기 추모위원회가 준비한 '강제 퇴거 현장 순회'의 날. 남편을 떠나보낸 용산 4구역 남일당 현장처럼, 재개발 광풍에 휩싸여 폐허가 된 지역들을 방문한다. 오전 10시 자욱한 아침 안갯속에서 유 씨는 중구 대한문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의 손을 부여잡았다.

이날 유 씨를 비롯한 현장 순회단 70여 명은 중구 순화동 재개발 지역, 경기도 일산 덕이 재개발 지역, 경기도 김포 신곡 재개발 지역을 순서대로 방문했다. 모두 한때 재개발 광풍이 불어 소지주와 세입자들이 터전을 잃은 곳이다. 또 지금은 각각의 이유로 재개발이 중단된 곳이기도 하다. 유 씨와 함께 순회단에 참가한 전재숙(69) 유가족 대표는 "이렇게 다 중단될 것을, 왜 그리 사람을 죽기 살기로 내쫓았나"라며 내내 가슴을 쳤다.

[중구 순화동] "남편과 오손도손 꾸려가던 식당 자리엔 무성한 잡초만…"
 

▲ 중구 순화동 재개발 지역. ⓒ프레시안(최하얀)


중구 순화동 재개발 지역은 유영숙 씨가 남편 고(故) 윤용헌 씨와 함께 식당을 했던 곳이다. 경찰본청 바로 맞은편 이곳에서 부부는 10여 년 전 한정식 가게 '미락정'을 열었다. 주변에 있던 40여 개 상가 주민과 함께 유 씨 부부는 매일 바쁘게 보냈다. 점심시간이면 인근의 공무원과 경찰들이 식당 앞에 긴 줄을 만들었다. 유 씨는 "열심히 살았고, 잘살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재개발 통보는 모든 것을 바꿔 놨다. 2005년 5월, 세입자들과 소지주들은 일방적인 재개발 통보를 받았다. 재개발 조합 측이 내놓은 보상은 약 1000만 원 수준의 영업보상금이 전부였다. 좋은 상권으로 들어오기 위해 대출까지 받아 만든 권리금은 되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원주민들은 힘의 논리에 밀려갔다. 유 씨는 "조합의 회유·압박으로 소지주들은 땅을 헐값에 매매하고 하나씩 떠났다"라며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곧이어 2006년 명도집행이 들어왔다. 유 씨는 "100명은 훌쩍 넘어 보이는 새까만 철거 용역들이 집을 부수고, 주민들을 길바닥에 내동댕이쳤다"고 말했다.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상스러운 욕에 기겁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처럼 개발 사업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어김없이 철거 용역이 등장한다. 덩치가 크고 몸 이곳저곳에 문신을 새겨 넣은 이들은 폭행, 협박, 성희롱 등을 거침없이 하며 거주민을 위협한다.

유 씨는 "그래도 남편은 싸워보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유 씨는 "처음에는 온 가족이 나서 남편의 투쟁 의지를 꺾어보려고 했지만, 남편은 굳건했다"며 "용산에 간 것도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지나칠 수 없어서"라고 말했다.

윤용헌 씨는 2009년 참사 당시 망루에서 목숨을 잃었다. 유 씨는 "남편이 용산으로 떠나기 직전, 나를 데리고 이곳(순화동)을 한 바퀴 둘러보며 천막 치기 좋은 장소를 알려줬다"며 "'내가 없을 때 순화동을 잘 지켜라'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유 씨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꼴로 순화동을 방문한다. 2011년 이후 중단된 공사가 혹시라도 재개될까 걱정돼서다. 순화동 재개발 사업은 조합 비리가 터지고, 급기야 조합과 재개발 대책위원회 간의 소송에서 조합이 패소하며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가 중단됐다고 해서 유 씨가 과거의 삶을 돌려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부부의 삶이 뿌리내렸던 '미락정' 자리는 이미 무성한 잡초가 차지했다. 이제는 모두 떠나고 다섯 가구만이 남은 이곳. 스산한 공터에 폐허처럼 서 있는 건물에서 나풀거리는 빨래 옷가지들이 "여기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일산 서구 덕이동] "사람도 살지 않는 저 아파트가 '집'이긴 한가"
 

▲ 일산 덕이동에 있는 김명자 씨의 천막. 순회단원들이 천막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유영숙 씨는 순화동을 떠나 일산 덕이동으로 향했다. 전국에서 유명한 대규모 가구 상가 단지였던 이곳에선 2006년 5월, '주거지 인가'가 떨어지며 재개발이 시작됐다.

당시 세입자들은 재개발이 논의 중임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 개발 사업은 보통 막바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대부분 거주민 모르게 구메구메 진행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처음 개발 사업 구역을 지정할 때, 이를 아는 거주민은 전체의 10%(보통 개발 찬성 주민)도 채 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다 어느 날 "경축, 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이란 현수막이 동네 어귀에 내걸려야 비로소 세입자들은 "쫓겨날 처지"임을 깨닫게 된다.

덕이동에서 200평 규모의 가구점운영하던 김명자(52) 씨도 그랬다. 2001년 가구점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동네에서 잘나가던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불렸"던 김 씨. 그러다 2008년 4월, 건물 주인이 재개발 업체에 땅을 팔면서 그는 한순간에 '철거민'이 됐다.

김 씨는 세 딸과 함께 천막을 치고 '이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김 씨는 "물도 전기도 없는 천막에서 우리 네 모녀만 1960년대에 살고 있다"며 "툭하면 철거 용역이나 술 취한 행인이 한밤중에 천막에 들어와서 행패를 부린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하도 많아, 욕만 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씨는 재개발 반대 투쟁을 하며 남편과 이혼했다. 하지만 세 딸은 김 씨를 떠나지 않았다. 천막을 처음 치던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막내딸은 올해 대학에 갔다. 원래 수의사가 꿈이었는데, 얼마 전에는 건축공학을 공부하겠단 포부를 밝혔다고 했다. "엄마한테 예쁜 집을 지어주고 싶어서라고 하더라"라며 김 씨는 정겹게 웃었다.

현재 김 씨의 가구점을 밀어낸 자리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유령처럼 서 있다. 재작년에 분양이 시작됐지만, 이제 겨우 입주가 30%가량 진행됐다고 김 씨는 전했다. 그러면서 "사람도 살지 않는 저게 집이야? 내 천막이 집이지"라고 김 씨는 말했다.

김 씨의 설명을 듣고 있던 유영숙 씨는 결국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어떡해. 정말 어떡해"라는 말이 입에서 연달아 터져 나왔다. 멀찌감치 떨어져 순회단을 지켜보고 있던 전재숙 씨도 가슴을 쳤다. 전 씨는 "엄마(김 씨)를 지켜주는 (김 씨의) 딸들이 정말 기특하다"면서도 "이런 일을 후세대에게 물려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자신을 살린 건 2009년 용산에서 목숨을 잃은 다섯 철거민(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윤용헌, 이성수)이라고 말한다. 그는 "죽으려고 몇 번 했는데, 돌아가신 분들 보니 안 되겠더라고"라며 "억울해도 죽으면 말 못해. 살아야 해. 저 사람들 몫까지 내가 살아야 해"라고 말했다.

[스산한 유령도시 김포 신곡] "여기 사람이 있다"
 

▲ 김포 신곡동 재개발 지역에 마지막 하나 남은 주거 건물.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이 "여기 사람이 있다"고 알린다. ⓒ프레시안(최하얀)


순회단을 실은 버스는 이번엔 김포 톨게이트 바로 옆에 있는 신곡동에 멈췄다. 참가자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충격'이란 표정을 지으며, 허공에 탄성을 쐈다.

115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넓디넓은 땅은 흡사 '전쟁터'와도 같았다. 쓱 보기만 해도, 반파된 공장 건물과 주택이 10여 개는 족히 돼 보였다. 길가에 자란 앙상한 나무들은 사람이 심은 것이 아니라 씨앗이 날아와 자란 것이라고 했다. 이곳 주민들은 "사람들이 목매러(자살하러) 여기에 오고 쓰레기를 무단 투척하러 온다"며 "밤이 되면 온 동네가 캄캄해 무섭다"고 말했다.

신곡동에선 2006년 재개발이 시작됐다. 그러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시행사부도를 냈고, 재개발 조합도 해체됐다. 이미 철거 용역들이 거주민을 내쫓고, 여러 공장에 불을 지른 후였다.

이처럼 개발 사업으로 퇴거와 철거가 이루어지는 동네에 가보면, 한쪽 벽면이 무너져 있는 사이로 위협적인 낙서가 있거나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건물을 철거하기 전 철거 용역들이 거주 환경을 '일부러' 훼손한 것으로, '철거 예비 행위'라고 부른다.

이렇게 철거 예비 행위를 하면, 남아 있는 주민은 계속 거주하기 어렵다. 한밤중에 철거 용역들이 옆 건물에 불을 지르는데, 이를 버텨낼 수 있는 주민은 많지 않은 게 당연하다.
 

▲ 김포 신곡동 재개발 지역. ⓒ프레시안(최하얀)


신곡동 주민 조규승(58) 씨는 자신의 공장으로 순회단을 이끌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유영숙 씨는 조 씨의 공장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밖을 서성였다. 유 씨는 "여기 있기 싫어"라고 말했다.

유 씨 부부는 2009년 이전에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신곡동 주민들의 재개발 저지 싸움에 힘을 보태러 왔었던 게다. 신곡동을 방문했던 그날, 부부는 조 씨 공장에서 음식해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유 씨는 "이 공장에 오니 남편이 사무치게 그립다"며 "가슴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유가족 전재숙 씨는 "2009년 참사 전에는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며 "내가 이렇게 재개발 지역들을 알게 돼서 악에 받치게 된 건 나 때문이 아니라 저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개발로 이득을 취하는 건설사들과 투기 자본, 그리고 이를 위해 국민의 주거권은 아랑곳하지 않는 정부 때문이란 얘기다.

전 씨는 "철거민이 되기 전에는 개발이 되면 좋은 건 줄 알았고, 세금 내고 열심히 살면 잘살게 되는 건 줄 알았다"며 "이 넓은 땅을 허허벌판으로 만들어놓을 것을, 대체 왜 내쫓은 건지 모르겠다"고 읊조렸다.
 

▲ 재개발 지역을 순회한 소감을 적는 용산참사 유가족 유영숙 씨. 오른쪽이 유가족 대표 전재숙 씨다. ⓒ프레시안(최하얀)


순회단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각자 작은 종이에 자신의 소감을 남겼다. 작은 흰색 종이에 유영숙 씨는 이렇게 썼다.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든 날인 것 같네요. 순회 지역을 가보니깐 남편이 어디선가 날 부르면서 올 것 같았는데. 덕이, 신곡에 와보니 더욱더 남편의 발자취가 생각나네요. '현구 엄마' 하면서 불러줄 것만 같은 마음에 심정이 답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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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산 겨울능선을 닮은 DMZ 짝귀 산양과의 만남

윤순영 2013. 01. 15
조회수 4125추천수 1
 

200만년 전 태고 모습 고스란히 간직한 세계적 희귀동물, DMZ 등서 500여 마리 생존

경계심 많지만 놀라지 않는 의연한 모습…체계적 보전대책 시급

 

크기변환_SY3_8369.jpg » 느긋하게 마른풀을 씹고 있는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 산양의 의연한 모습.

 

지난 1월8일 설레는 마음으로 산양을 보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으로 향했다. 고성은 금강산을 품은 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을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 김포에서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정이었다.


군부대에서 운영하는 율곡회관에 여장을 풀고 내일 건봉산 산양을 만날 기대감 속에 밤을 보냈다. 날이 밝았다. 춥기는 하지만 아주 쾌청한 날씨다.

 

크기변환_SY1_8363.jpg »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에서 바라본 건봉산과 주변 산줄기.

오전 9시 건봉산 들머리 주차장에서 안내를 맡은 정훈장교를 기다렸다. 30분 정도 늦는다더니 아예 10시쯤 도착한단다.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옷깃을 여미고 건봉사에 들렀다. 푸르른 소나무가 방문객을 맞는다.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건봉사가 불타고 500년 된 팽나무와 불이문만 남았다고 한다. 지금도 새롭게 건축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옛 흔적이 사라졌지만 설악산의 신흥사, 낙산사, 화암사, 백담사와 갈은 절들이 모두 건봉사의 말사였다니 절에 규모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크기변환_SY1_8319.jpg » 건봉사 들머리의 늘름한 소나무 숲.

 

크기변환_SY1_8316.jpg » 건봉사 전경. 설악산 신흥사, 낙산사 등을 말사로 거느린 큰 절이었다.

안내를 맡은 정훈장교가 도착했다. 검문소에서 간단한 출입신고를 마치고 정훈장교의 안내를 받아 건봉산으로 향했다. 해발 910m가 조금 넘는 건봉산은 민간인통제구역이 곳곳에 있었다.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최전방 능선을 따라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철책이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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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SY1_8431.jpg » 철책선에 가로막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봉산.

 

급한 경사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구불구불 좁은 길은 차가 교차하면 한쪽에서 서야 한다. 지프로 이런 길을 운전하는 경험도 처음이다.

 

아득히 내려다 보이는 낭떠러지는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었다. 산 전체가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천연림으로 덮혀 있는데 그 위에 하얗게 눈이 쌓여 산 전체가 온통 은빛이다. 발아래 보이는 능선이 청량제처럼 시원스럽게 다가온다.

 

크기변환_SY1_8441.jpg » 건봉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고성의 모습.

 

크기변환_SY1_8369.jpg » 백두대간 중 금강산의 정맥을 잇고 있는 건봉산 연봉.

 

차량이 힘겹게 30분 정도 움직여 건봉산 꼭대기에 이르자 바다와 맞닿은 고성 땅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제부터 산양을 보려면 타래난초 꽃처럼 타래를 튼 고진동 계곡의 물굽이로 난 작전도로를 따라 30분 더 가 건봉산 북쪽 끝자락에 가야 한다.


고진동 계곡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신비로운 하얀 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태고의 화석동물 산양을 품고 있어 그런가.

 

크기변환_SY1_8371.jpg » 잎 떨군 활엽수들이 실핏줄처럼 이어져 있는 건봉산 능선.

 

크기변환_SY1_8383.jpg » 고진동 계곡. 추위와 눈으로 하얗게 얼어붙었다.

 

북쪽으로 흐르던 고진동계곡의 물줄기는 동장군의 기세로 지금은 멈추었다.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다시 비무장지대의 계곡을 거치면서 금강산 남쪽 자락을 휘감아 돌면서 남강과 만나 동해로 빠진다.

 

산양이 자주 목격되는 계곡에 도착했다. 현재 이곳에 서식하는 산양의 수는 알 수가 없다. 사전 지식이 없어 경계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초병에게 물어봤다. 봄, 여름, 가을엔 자주 목격되지만 겨울엔 가끔씩 나타난다는 답이 돌아온다. 이제부터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크기변환_SY1_8381.jpg » 동물에게 피난처와 서식지를 제공하는 가파른 고갯마루.

 

크기변환_SY1_8390.jpg » 산양이 자주 목격되는 철책선.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났다. 계곡물이 얼어 너무 조용해 적막감마저 드는 계곡에서의 춥고 지루한 기다림. 철책선 안과 비무장지대의 계곡을 좌우로 바둑판처럼 나누어 쌍안경으로 샅샅이 훑어 나갔다. 나뭇잎이 떨어진 회색빛 가지는 산양 색과 비슷해 산양이 나타나도 잘 보이지 않는다. 나중엔 검은 물체가 산양으로 착각될 정도로 어른거린다.

 

해가 기울고 산 그림자가 계곡에서부터 정상을 향해 올라가며 그늘을 드리운다. 결국 기다리던 산양은 관찰할 수 없었다.

 

7시간의 기다림과 허탈한 마음, 그래서인지 추위가 더 엄습해 온다. 2박 3일의 기회, 내일 이곳을 다시 찾아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산양을 만날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을 고진동 계곡에 남겨 두고 철수했다.

 

크기변환_SY2_8335.jpg » 건봉산에서 바라본 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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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9일, 어제보다 기온이 내려갔지만 날씨는 더 좋다. 오전 9시 검문소 주차장에서 정훈장교와 다시 만나 고진동 계곡을 향해 출발했다. 산양과 만날 수 있다는 간절한 희망을 마음속에 되새겼다. 건봉산 능선과 발 아래 펼쳐진 동해 아침 햇살을 받아 유리알처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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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눈SY2_8355.jpg » 사람을 보고 경계하는 산양.

 

오소동 계곡을 지날 때쯤 검은 물체가 움직인다. 처음엔 멧돼지인줄 알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마른풀을 뜯고 있는 산양이었다. 절벽과 나무가 없는 볕이 잘 드는 개방된 장소다. 생전 처음 보는 산양이다. 숨을 죽이고 차에서 내려 카메라를 조심스럽게 꺼내들고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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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눈SY3_8348.jpg » 얼어붙은 땅을 헤짚어 먹이를 찾는 산양.

 

바람에 꼬리의 흰 털이 휘날리고 비단 같은 질감의 몸털이 잔잔하게 물결을 이룬다. 소처럼 큰 눈과 얼굴, 귀는 당나귀와 비슷하고 짧은 듯 간결하게 살짝 활처럼 휜 뿔은 나이테 무늬 가 있고 끝부분으로 올라 갈수록 검은색이다. 완벽한 방어 무기로 손색이 없다.

 

크기변환_눈SY3_8412.jpg »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산양의 위엄.

 

크기변환_sns.jpg » 예상치 못한 불청객의 출현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산양.

 

다리는 말과 같이 튼튼하고 등과 엉덩이로 이어지는 곡선은 군더더기가 없이 매끈하다. 소와 말 그리고 여러 동물의 형상을 조합해 놓은 듯 보인다.

머리 뒤쪽으로부터 등을 따라 꼬리까지 검은색 줄이 나 있으며 뿔에서 코 로 이어지는 이마는 검은색 털로 덮여있다.

 

몸통의 바탕 털은 전체적으로 솜 느낌의 두텁고 노란색이 감도는 회색 그 위에 검은 털이 거칠게 솟아올라 조금 길게 분포 돼 있다. 목에는 큰 흰무늬 반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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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SY3_8369.jpg » 어렵게 구한 먹이를 먹으면서도 불청객의 동태에 눈길을 멈추지 못하는 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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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 일인지 오른쪽 귀 상단부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산양 귀에 상처가 난 것이 종종 발견되기도 한다.

 

큰 귀를 지닌 산양이 어릴 때 험준한 기암절벽과 무성한 나무 숲 사이를 오가며 부상을 입었을 수 있고, 비무장지대에 산재해 있는 철조망이나 영역다툼, 발정기 때 싸움으로 인한 상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뿔에 새겨진 나이테나 윤기가 있는 진한 회갈색 털, 균형 잡힌 체격, 단독 생활을 하는 것으로 봐 8~10년 생 수컷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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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눈SY3_8461.jpg » 배를 채우기엔 부족한 먹이활동 후 서서히 이동하고 있는 산양.

 

암컷은 수컷보다 색이 흐리고 콧등에 회색이 돈다. 아주 잘 생긴 산양이다. 오소동 계곡의 왕자답다.

 

비무장지대에서 살아서인지 경계심은 강해도 화들짝 놀라는 기색 없이 의연하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유롭다.

 

30분이 지났을까? 여러 행동을 보이지 않고 마른풀을 뜯던 산양이 즐기던 식사를 멈추고 능선을 따라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진다. 산양은 200m 밖 낙엽 밟는 소리를 듣고 도망갈 정도로 청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실제 관찰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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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SY3_8473.jpg » 먹이 활동 후 나무를 위장막 삼아 능선을 따라 안식처로 향한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강원도 양구, 고성, 화천과 삼척, 충북 제천, 경북 울진 봉화 등지에서 산양을 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1967년 설악산의 자연생태를 조사한 학술 보고서에는 산양이 해마다 수백 마리씩 잡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무분별한 사냥과 폭설 피해 등으로 인해 현재 설악산에는 100여 마리의 산양이 남아 있을 뿐이다.

 

크기변환_1SY3_8473.jpg » 나무색과 흡사해 식별이 어려운 산양.

 

야생 동물이 자연 상태에서 번식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개체수가 통상 100여 마리이기 때문에 설악산 지역의 산양은 생존의 마지막 기로에서 있다.

 

산양은 200만 년 전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일반인들에게 산양은 그림책이나 만화 속에 등장하는 낯선 동물로 여겨지지만 2013년 현재 한반도에도 산양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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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산양과 같은 종인 아무르산양은 러시아 하바로프스키 내륙 오지와 연해주의 바위가 많은 지역에 폭넓게 분포 하였지만 이제는 개발에 밀려 숫자가 크게 줄었다. 이제 러시아 전 지역에 산양은 시호테알린과 라조브스키 두 개 연해주 자연 보호구에 집중 분포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생존해 있는 산양은 약 600여 마리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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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의 형태와 생태

 

산양은 몸의 길이가 115~130㎝, 몸무게 22~42㎏, 귀는 12~13㎝, 겉면은 엷은 쥐색이며, 밑 부분은 어두운 초록색을 띤 갈색이고, 안쪽은 흰색이다. 긴 털이 난 꼬리 길이는 11~15㎝이고, 꼬리의 윗면은 갈색이고 아랫면은 백색이다. 어깨높이는 65~75㎝ 정도이다.

 

산양은 암수 모두 뿔이 있다. 뿔 길이는 나이에 따라 다르나 어른이 되면 12∼17㎝ 정도로 자란다. 뿔은 가지를 치지 않고 일생 동안 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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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SY2_8415.jpg » 얼어붙은 산 속에도 청초록의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

 

겨울에 몸 전체의 바탕은 회색을 띤 노란색이고 솜과 같은 털 위에 검은색의 거친 털이 몸 전체에 솟아 있다. 등 면의 정중선은 검은 색이며, 주둥이에서 머리 뒤에 이르는 부분은 검은색을 띠고, 머리 옆과 입술은 회색을 띤 갈색에 검은색이 섞여 있다. 입술의 다른 부분은 희고, 뺨은 검은색이며, 목에는 흰색의 큰 반점이 있다. 몸 뒤에는 짧은 갈기가 있으며 흑색을 띤다.

 

크기변환_SY2_8327.jpg » 산양이 다니는 길목에는 어김없이 거친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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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SY3_8531.jpg » 어미 멧돼지 뒤로는 얼굴을 빼꼼히 내민 아기 돼지의 모습도 보인다.

 

크기변환_SY3_8497.jpg » 산양의 모습을 담던 중 슬며시 나타난 멧돼지 가족.

 

절벽과 바위 위를 잘 걸어 다니기 위하여 다리가 굵고 발통은 둥글며 발끝이 뾰쪽하다. 발굽의 가장자리는 날카롭고 밑바닥에서는 끈적끈적한 물질이 나오기 때문에 산양은 벼랑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어깨로부터 무릎에 이르는 곳에 검은색의 띠가 이어져 있다. 아래 배의 양측과 허벅 다리 사이는 흰색이다. 가슴과 윗배는 검은색이다.

 

크기변환_SY3_8464.jpg » 정수리 뒤로 이어진 산양의 갈기가 건봉산의 능선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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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종이 다른 산양과는 얼굴에 분비선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발굽 사이의 분비샘에서 냄새 나는 분비액이 나오며 산양은 뿔을 나뭇가지에 문질러 분비액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하며 영역을 침범하는 산양이 있으면 짧고 날카로운 뿔로 싸워서 쫓아낸다.

 

높이 600m 이상 되는 높은 절벽으로 둘러싸인 산림지대의 꼭대기에서 활동하고 다른 동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험준한 바위와 바위 사이 또는 동굴에 2∼5마리가 모여 군집생활을 하는데, 겨울에는 폭설을 피해 다소 낮은 산림지대로 내려오기도 하지만 활동지역에서 멀리 떠나지 않는다.

 

크기변환_SY3_8331.jpg » 바람에 나부끼는 산양의 흰털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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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선택한 지역에서 영구히 살며 이동하는 성질이 없다. 이른 아침과 저녁에 가까운 숲속으로 이동해 초본류 식물을 먹기도 하지만 주로 연한 신갈나무, 피나무 등을 주식으로 하며 계절에 따라 열매와 도토리 바위이끼, 진달래와 철쭉의 잎도 잘 먹는다.

 

넓은잎외쑥, 산새풀 등을 간식으로 먹는다. 한낮에는 보통 햇볕이 잘 드는 남향을 택한다. 안전한 바위 벼랑에서 쉬면서 되새김질을 한다. 거의 같은 곳을 쉼터로 쓰고 똥도 같은 곳에 싸는 버릇이 있다. 밤에는 안전한 보금자리로 돌아가 잠을 잔다.

 

보통 10~12월에 짝짓기를 하며 임신 기간은 180~240일로 이듬해 5~6월에 1~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산양의 목소리는 염소와 비슷하며 다쳤을 때에는 까치의 울음과 같이 찢어지는 듯 애처로운 소리로 강하게 운다.


크기변환_SY3_8341.jpg » 자세히 보니 녀석의 귀가 찢어져 있다. 다음에 만나면 다른 산양과 구별이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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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1월 20일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되었고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이다.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보호대상 목록인 적색보호목록에 올라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단 5종만이 분포하고 있어 국제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희귀 동물이다.

 

아직도 밀렵과 올무에 의해 산양이 죽는 사례가 많이 있고 폭설 때 굶주림에 주검으로 발견된다고 한국산양보호협회 관계자는 말한다. 비무장지대인 만큼 정부와 시·군에서 군부대와 협조하여 체계적으로 겨울철 먹이 터를 마련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강구했으면 한다.

 

복원보다 관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산양 연구도 전무하다시피 하고 겨울 동안 비무장지대 안 산양 먹이 주기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체계적인 보전 대책이 서둘러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관련글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김포의 재두루미 지킴이. 한강 하구 일대의 자연보전을 위해 발로 뛰는 현장 활동가이자 뛰어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메일 : crane517@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c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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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표 청원’, 마침내 국회에 제출됐다

 

‘수개표 청원’, 마침내 국회에 제출됐다
 
‘아고라’ 서명 23만명 명의... 선관위, 17일 국회서 ‘개표 공개시연회’
 
정운현 기자 | 등록:2013-01-15 18:03:36 | 최종:2013-01-15 19:38:4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8대 대선 이후 개표부정 등을 주장하며 재검표를 요구해온 시민들의 ‘청원서’가 15일 국회에 제출됐다. 이로써 어떤 형태로든 국회가 ‘재검표’와 관련해 입장을 밝혀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에 즈음하여 선관위는 17일 국회에서 6천매 개표 공개시연회를 갖기로 해 부정선거 의혹을 잠재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반시민 유권자들로 구성된 ‘18대 대선 부정선거 진상규명 시민모임’ 소속 회원 9명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의 ‘수개표 청원’에 참여한 23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18대 대선 수개표를 청원한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서울 대한문 앞에 모인 시민들 재검표 요구 손팻말을 들고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이어 “대선 이후 SNS와 인터넷 게시판은 부정선거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여러 정황들을 들이대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게시물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하고는 “그러나 정치권도 언론도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고 부정선거 의혹을 철저하게 파헤치고 진실을 규명해야 할 선관위는 변명하기에 급급하다”고 정치권과 기성언론을 두루 비판했다.

또 이들은 “해킹과 조작이 가능하다는 전자개표기를 사용하고, 수개표 과정이 충실하게 지켜지지 않았다고 보여지는 18대 대선은 철저한 수개표를 통해 부정선거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며 “이는 선관위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받는 지름길이며 새정부가 부정선거로 탄생했다는 오명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수개표를 주장하는 배경을 두고 이들은 “우리는 당선자를 바꾸기 위해 수개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정의, 개표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는 “여야를 막론하고, 수십만 국민의 이름으로 요구하는 수개표 청원을 민주주의의 퇴보와 역행을 막겠다는 엄중한 책임감으로 국회가 받아들이기를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문재인 전 대선후보의 서울시민캠프 공동대표들도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 수개표와 당선무효소송 제기를 민주당에 요구했다. 이들은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는 소송 제기로 인한 역풍만 염려하지 말고, 제기된 의혹을 규명하지 않고 소극적인 민주당을 버리는 역풍을 더 염려하라”며 “문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당선축하 인사를 건넨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른 축하인사이지 부정한 개표에 의한 선거 승복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수개표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 의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관심을 보여온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저는 이분들의 주장에 찬반을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 23만여명이 이렇게 절규하고 있다”며 “이런 목소리를 국회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국회로서, 국회의원으로서 일을 다했다 말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수개표 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역풍을 우려한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이날 광주 금남로 YMCA회관에서 열린 ‘회초리 민심간담회’에서 수개표 청원과 관련해 “현재 20만이 가담한 소위 투개표 논란에 관한 부정선거 시비 개표에 관한 말씀도 잘 수렴해서 잘 듣고 있다”고만 밝혔을 뿐이다.
 

재검표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 앞에서 민주당의 재검표 요구 동참을 주장하며 집회를 갖고 있다

한편, 중앙선관위는 오는 17일 국회에서 대선 개표의 전 과정을 재연하는 공개시연회를 갖기로 했다. 대선 후 개표 의혹이 줄기차게 제기되자 지난 1일 선관위는 해명자료를 내 부정선거의혹을 일축한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에도 의혹 제기가 수그러들지 않자 마침내 공개시연회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1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오는 목요일 17일 오후 2시에 국회본청 지하에서 18대 대선 개표의 전 과정을 재연하고 설명하는 공개시연회를 갖는다”고 밝혔다. 이번 시연회에는 3개 투표구 기준으로 약 6천매를 개표 시연할 예정인데, 그중 2천표는 현장에 참여하는 분들이 직접 기표한 표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공개시연회는 여야 의원들은 물론 언론사 기자들과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인터넷으로 생중계될 예정이다. 진 의원은 “보다 적극적으로 의혹들을 제기했던 시민들과 관련 전문가들을 모시고 직접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해소할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며 의혹 제기자들의 적극 참여를 호소했다.

한편,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은 지난 4일 대법원에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심리를 통해 진위를 가려질 전망인데 그 결과에 따라서는 재검표가 실시될 수도 있다. 이 사건은 1·2심 없이 대법원에서 단심으로 진행된다. 재미동포 등 ‘재외 유권자 모임’은 15일 3차 성명 발표를 통해 재검표를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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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아빠가 보육원 아이의 1,500원 식사를 짓밟는 나라


 

 

 


1월 15일 천안시 홈페이지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저소득층 초,중,고교생이 방학에는 학교 급식을 먹지 못해 도시락이 배달되는데, 그 아이들이 먹는 도시락 사진이었습니다. 도시락을 보면 이것을 과연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감자튀김 몇 개, 단무지 3조각, 김치 몇 조각, 썩은 부위를 도려낸 듯한 귤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추운 겨울 아이들이 이런 부실한 도시락을 먹고 하루를 버틸 수 있는지 한숨이 나옵니다.

이런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부실도시락 문제는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난번에도 '건빵도시락'이라 불리는 허술한 도시락이 아이들에게 배달된 적도 있습니다.

 

 

▲2005년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배달됐던 군산 건빵도시락과 서귀포 부실 도시락, 출처:연합뉴스,미디어제주.

 


2005년에 서귀포 저소득층 아이에게 배달됐던 도시락이 메추리알과 단무지, 빵 등으로 부실하게 구성돼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군산에서도 결식아동에게 지급되는 도시락에 건빵이 들어가 있어 많은 시민의 분노를 자아낸 적도 있습니다.

당시 군산시 송웅재 시장 권한대행은 건빵도시락이 문제없다는 발언을 해 항의를 받기도 했는데, 송 부시장은 "제도적인 문제(현재의 가격 2,500원)가 있기는 하지만 운영비 500원을 제외하고 2,000원으로 만든 도시락이 이 정도면 양호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2005년 2,500원짜리 도시락이 저 정도였는데, 2013년 한 끼 1,500원짜리 식사는 과연 어떨까요?

' 김밥 한 줄도 1,500원인데, 한 끼 식대가 1,500원이라니'

최근 확정된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보육원 아동 1만 6천명에게 한 달간 지원되는 금액이 15만 9천 원입니다. 그런데 그 중 의복비 등으로 2만 원을 제외하면 한 끼 밥값은 1,500원 정도가 됩니다.

 

 

▲부실한 식사와 김밥천국 1,500원짜리 김밥,출처:인터넷커뮤니티

 


요새 김밥천국의 저렴한 김밥도 1,500원은 하는데, 1,500원으로 한 끼 먹을 음식을 만든다면 완전 맨밥만 먹으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한국아동복지협회'에 따르면 피복비에는 신발,양말,가방까지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식대로 도저히 더 많은 돈을 쓸 수가 없다고 합니다. 철마다 크는 아이들에게 작은 신발이나 구멍 난 양말을 계속 신길 수가 없으니 피복비는 그대로 써야 하고, 시설비도 난방비가 있으니 손을 못 대고, 결국 무조건 1,500원 한도 내에서 식사를 제공해야 하니 어려움과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합니다.

시설이 크거나 후원이 많이 들어오는 보육원, 자원봉사자가 활발한 보육원은 그나마 낫지만, 소규모에 지방이나 시골에 있는 보육원은 원장들이나 시설 종사자들이 텃밭을 직접 가꾸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실정입니다.

' 제주 국제학교 4,500원 한 끼 식대와 비교하니'

한국아동복지협회는 지난해에 복지부에 보낸 공문에서 "보육원 아동에 대한 급식 단가를 최소 지역아동센터와 동일하게 3,000원으로 지급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보육원 아이들의 한 끼 1,500원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만, 복지부는 기초생활수급자와 같은 금액이 지원된다는 이유로 이것을 거절했습니다.

 

 

 


보육원 1,540원의 한 끼 급식비는 지역아동센터 3,500원보다 적습니다. 여기에 제주 국제학교의 한 끼 급식비 4,500원과 비교하면 과연 2013년 보육원이 1960년대 고아원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고 반문할 정도로 국가의 지원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지원입니다.

기획재정부는 복지부가 제시했던 2013년 보육원 아동 한 끼 급식비 200원 인상안을 거절하고 100원 인상으로 확정지었는데, 이유는 재정이 문제였습니다. 보육원 아동에게 3,000원짜리 한 끼 식대를 맞추기 위해서는 295억 원이 소요되는 데 이 예산이 없어서 복지예산에 포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돈이 없어서일까요?

' 제주 국제학교 1인당 지원금 1억 9천만 원'

2011년 개교한 제주 국제학교는 건립부터 국가의 세금이 투입된 교육시설입니다. 그런데 국가의 세금이 투입된 공공 교육시설이 일부 부유층 자녀들의 귀족학교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제주 영어교육도시에 개교한 NLCS(노스 런던 컬리지잇 스쿨)의 입학인원 436명 중 절반에 가까운 48.6%인 212명은 서울출신이며 그 중 76%인 161명이 강남3구 출신인 것으로 나타나 ‘강남부자들을 위한 학교’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합니다.

말이 국제학교이지 외국인 학생은 겨우 4.4% 19명에 불과한 국제학교를 세우기 위해 공공투자와 국비 지원은 총 4,824억 원이 소요됐는데, 계산하면 1인당 건립비용으로 5,630만 원이 지원된 것입니다.

국제학교지만 교육부 특별교부금 등의 지원을 받는데 이 지원금액만 무려 1억 9천만 원에 달합니다.(건립비 5.360만원+특별교부금 1억3,600만 원)

문제는 앞으로 일부 국제학교에서는 본교에 로얄티를 지급하는데 그 금액이 612억 원에 달하고 그 금액을 국가에서 보전해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현재 NLCS는 2016년까지 179억 원의 누적 적자가 예상되는데, 학교 측은 2025년에서야 흑자로 전환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적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메꾸어줘야 하고 그 금액이 한 해 전체 보육원 아동 한 끼 식대를 올려줄 수 있는 295억 원이 넘습니다.


 

 

▲2011년 9월 개교한 제주 국제학교 식사 배식 장면, 출처:연합뉴스

 


부자들이 자신들의 돈으로 '귀족학교'를 세우고 보내는 일에 대해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왜 부자들만의 자녀를 위한 학교를 세워주고, 지원까지 해줘야 하나요? 그것도 말이 교육이지, 외국에 로얄티를 지급하면서까지...

지금 우리는 보육원 아이들의 한 끼 1,400원 식사를 200원조차 올려주지 않고 100원만 인상해준 정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부가 부자 부모를 둔 아이에게는 연간 1억 9천만 원을 지원해준 사실을 보면서 무엇을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까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제주 국제학교 아이들은 밥이 부실해도 빵을 사 먹을 수 있지만, 보육원 아이들은 한 끼 밥을 먹지 못하면 그대로 굶는 것입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대한민국이 도와주는 것,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의무입니다. 그 의무를 저버리지 않도록 여러분이 감시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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