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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8분간(16:47~16:55)의 의혹!

결정적 8분간(16:47~16:55)의 의혹!!
(다음아고라 / 천민 / 2013-01-12)


18대 대선에는 유령도 투표했나?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부정선거의 의혹이 너무나 많습니다.

1. 전자개표기를 사용하면서 수개표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
2. 혼표와 무효표가 나왔다는 것은 전자개표기 제어시스템의 조작이 있어야 가능하다는점.
3. 방송3사를 제외한 모든 언론의 출구조사에서 문재인이 앞섰다는 점.
4. 실시간 개표방송의 투표자수와 선관위의 투표자수가 다르다는 점.


앞서 제가 올린 글에서 보셨듯이 방송 3사는 실시간 개표방송 시에 선관위와
숫자를 정확히 못 맞췄습니다. 방송국이 선관위에서 알려주는 수치대로 발표를 안 하고 마음대로 방송을 했을까요? 절대 그럴 리가 없겠지요.

있는 사실대로 안 하고 뭔가 거짓으로, 더군다나 실시간 방송으로 하려니 삑사리가 날 수 밖에 없었겠지요.

누가 누구를 지지했건 김무성이가 계속 부르짖던 51:49에 맞춰서 전자개표기가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분류만 척척 잘해주면 그냥 이기는 거지요?

그런데 욕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백만표 이상을 확실히 이겨 상대방을 확 눌러버릴 심산으로 유령까지 동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던 차에 어제 주권 방송에서 한영수, 김필원, 신상철 3분이 생방송 대담을 하시는 것을 듣고 감을 잡았습니다.

선관위에서 투표지를 투표인수에 맞게 주는 것이 아니고, 3~5% 더 인쇄를 해서 여유분을 갖고 있으며, 투표지는 지역선관위에서 인쇄를 해서 쓴다고 하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습니다. 권력을 가진 쪽이 언제든 나쁜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후보의 표를 늘릴 수가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수능 문제지도 기밀에 부쳐 보안과 관리를 철저히 하는데, 대선이 수능보다도 못하다는 말입니까?

우째 이런 일이 있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군요. 보안과 관리가 철저해야 하는 투표함마저 동네 쓰레기통 옆에 버려져 있질 않나.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투표수(투표율) 조작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서, 18대 대통령 MBC 개표방송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동영상은 유튜브에 가서 보시면 됩니다.

아래 표를 자세히 보십시오. 이상한 점이 보이시나요?

MBC는 개표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부터 방송을 합니다.
4시 8분경에 현재 투표율을 공개합니다.


 

4시 8분에 전국의 투표율이 65.2%라고 말하며 각 지역의 투표율을 아나운서가 말하고 있습니다. 선관위의 자료와 정확히 일치 합니다.

그리고 5시 8분 전국투표율이 70.1%라고 하며 또 각 지역의 투표율을 소개합니다. 이 역시 선관위의 자료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문제는 선관위에서 공개하지 않는 4시 8분과 5시 8분 사이에 존재합니다.
그 사이의 방송을 자세히 보면, 4시 8분의 투표율이 4시 47분에 가서야 전국 투표율 65.4%로 바뀝니다. 41분 동안 겨우 0.2p 변합니다.

화면 아래 자막으로 실시간 투표율을 4시 47분부터 4시 55분까지 딱 8분간만 내보내 줍니다. 그리고 그 8분 사이에, 0.2p ~ 0.5p 씩 변화하며 계속 올라갑니다.

위의 표와 캡쳐사진을 함께 보겠습니다.


 


 

방송으로 자막이 나오는 8분 동안만 투표율이 엄청나게 높습니다.
전후의 몇십 분간의 투표율 변화는 0.2p나 0.9p 인데 반해, 방송에 표기되는 8분간은 무려 3.8p나 뛰어 오르지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모두가 그렇습니다.

4시 8분과 5시 8분 사이에 고루 분배되어 있으면 하등의 이상함을 못느끼지요. 하지만 왜 하필 저 8분간이고, 왜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게 저런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며, 선관위는 왜 저 부분만을 공개하게 했을까요? 저 8분내에 왕창 몰려 와서 투표한 자들은 누구일까요? 진짜 사람일까요? 유령 일까요?
유령이 표만 투표함에 넣고 갔나 봅니다.ㅋㅋ

나머지 다른 지역도 참고로 올립니다.


 


 

울산시와 세종시는 계속 변화가 없거나 미미하다가
5시 8분에 각각 3.9p4.8p가 한꺼번에 뛰어오릅니다.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지역 모두 방송에서 공개되는 8분안에서만 투표율이 껑충 뛰어오르고 있습니다.


 


 

경남, 제주 지역도 역시 방송에서 공개되는 8분 안에서만 투표율이 급격히 높습니다.
유령들이 출몰 투표했었나? (방송 3사 다 같을 것)


 

거 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256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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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 부정 의혹 여론 확산되나

 

개표 부정 의혹 여론 확산되나
 
주요 신문, ‘이정희 재검표 청원 가세’ 일제히 보도...현직 기자도 의문 제기
 
인병문
 
 
18대 대선 개표 부정 의혹이 해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외면으로 일관하던 국내 언론이 점차 변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살짝만 건드리면 톡 터질 분위기다. 특히, 정치권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가 재검표 청원에 동조하고 나서자 국내 주요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정희 전 후보는 11일 트위터를 통해 “재검표 주장이 새 정부 정당성 훼손 음모라... 2002년 재검표 요구해 실시한 분들이 이렇게 말하면 안 돼죠. 우리도 해봤다, 깔끔하게 재검표하자고 하셔야 맞죠”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연합뉴스>와 <경향신문> 등 국내 주요 언론은 12일 <이정희 “재검표해야”...민주, 재검표 여론에 ‘부담’> <이정희도 ‘대선 재검표’ 주장에 가세> <이정희 “재검표 주장이…훼손 음모라”> 등의 제목으로 상세히 보도했다. 언론은 또 국회청원 소개의원으로 나선 정청래 의원과 민주당의 미온적 분위기도 함께 전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시민청원단의 국회청원이 이뤄질 14일을 거쳐, 당선무효소송과 투표지 재검증 요구 유효시점인 18일 전까지가 당사자인 민주당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는 여론 확산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주요 일간지 현직 기자도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허재현 <한겨레> 기자는 최근 한 인터넷신문에 <부정 개표 논란, 어떻게 봐야 할까>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인터넷에 올라온 누리꾼 의혹 제기 대부분은 과장된 것들”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논란이 계속 사라지지 않는 데에는 하나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전자개표기에 대한 불신”이라고 밝혔다.

허 기자는 “선관위가 아무리 안전하다고 설명해도 기본적으로 전자개표기는 마음만 먹으면 (설사 조작하다 현장에서 걸리더라도)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한 기계이기 때문”이라며 “이경목 세명대학교 전자상거래학과 교수가 2008년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전자개표기의 조작가능성을 시연하며 경고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허 기자는 이어 “전자개표기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는 것은 문제”라며 “괜한 음모론 확산이라고만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빠른 개표와 개표 과정에 대한 무논의’보다는 ‘정확한 개표와 개표 과정에 대한 활발한 논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 기자는 끝으로 “어차피 100만표 차이니까 부실 선거를 했더라도 괜찮은 걸까” “승패를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선거과정에 대해서 어떤 문제제기도 해서는 안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활발한 논의와 검증 필요성을 시사했다.

팟캐스트와 유투브 등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인터넷 <주권방송>도 특집 생방송을 통해 선거 부정 논란을 다뤘다. <주권방송>은 10일 저녁 ‘대담 - 선거부정논란, 해법은 무엇인가?’에 한영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노조위원장과 신상철 <진실의 길> 대표, 김필원 전 안기부 정치과장 등 전문가들을 출연시켜 부정선거 의혹을 심도 깊게 파헤쳤다.

이들은 ▲투표기간 동안 벌어진 명백한 부정선거 사례 ▲투표함 제작, 관리 절차의 문제점 등을 제시하며 선거 부정과, ▲전자개표기 사용에 대한 법적 논란 ▲전자개표기 해킹과 조작 가능성 등 정확한 근거와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개표 부정을 주장했다.

국내 언론 침묵 속 <주권방송> <서프라이즈> <사람일보> 등 분투

<서프라이즈>와 <사람일보>도 ‘개표 부정 의혹’을 연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서프라이즈>에는 누리꾼들의 선거 부정 의혹 제보가 이어지고 있으며, <사람일보>는 해외 유권자들의 여론을 전파, 국내외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문제는 여론 확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미온적 태도다. 이석현 의원과 김정길 전 의원 정도가 진상규명에 동조할 뿐, 지도부가 나서 공론화시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석현 의원의 10일 고위정책회의 모두발언 내용을 민주당 공식 브리핑에서 “이석현 의원의 수개표 관련 발언은 당의 공식입장이 아닌 개인의견이고, 이 건과 관련해 현재 행안위 차원에서 검증과 청문이 진행 중이다”라는 입장을 밝힐 정도다.

23만명 누리꾼들의 서명 참여와 해외 유권자들의 집단 성명, 시민들의 대규모 촛불집회와 농성, 사회단체의 ‘국정원 선거 개입’ 국정조사 요구와 정보공개 청구, 각계 인사들의 압박 등이 이어지는 상황을 민주당이 언제까지 외면할지 주목된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요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실시했던 재검표를 두려워하는 민주당의 속내가 궁금하다. 진실규명과 공정보도를 책임진 언론의 태도 또한 지켜볼 일이다.


<인병문 기자>

 
 
 
 
 
기사입력: 2013/01/13 [09:53] 최종편집: ⓒ 사람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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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언론 대신한 <나꼼수>에 대한 탄압을 보며

그간 고마웠다, <나꼼수>..."김어준 쫄지마"

[게릴라칼럼] 무너진 언론 대신한 <나꼼수>에 대한 탄압을 보며

13.01.12 20:49l최종 업데이트 13.01.12 20:49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가 조용하다. 시쳇말로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처음에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래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구질구질하게 변명을 하느니 차라리 말을 않는 게 낫지. 게다가 그들은 공식적으로 마지막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MB 시대가 끝나면 사라진다고도 했고, 대선 바로 직전 마지막이라는 타이틀도 올렸었다. 비극적이지만 그들의 말은 대부분 이뤄졌다. 가슴 시린 결말만 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역시 아이폰 팟캐스터를 뒤적인다. 혹여나 그들이 스스로를 배신하고 방송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기대 때문이다. 그래도 '깔대기' 정봉주가 이제 막 출소해서 입이 근질근질한데 설마 아무 말 없을까? 아무리 시대가 하 수상하다고는 하지만 '멘붕(멘탈붕괴)'에 빠진 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한 마디쯤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미련을 버린다. 그들은 그들의 말대로 절대 그럴 리 없기 때문이다. 까짓거 선거에서 졌으니, 여당으로부터 어처구니없는 압수수색이 들어오니 다시 마이크를 잡겠다고? 아니다. 그들은 끝까지 '쿨해야' 한다. 바로 <나꼼수>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에 끝까지 귀기울지 않았던가. 김어준은 김어준대로, 주진우는 주진우대로, 김용민은 김용민대로, 정봉주는 정봉주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또다른 최선을 다 할 것이며 이후 기회가 있을 때 또다른 모습으로 다시 뭉칠 것이다.
 

지난 12월 25일 자정, 홍성교도소에서 출소한 정봉주 전 의원과 김용민씨.
ⓒ 오마이뉴스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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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인 것은 그런 <나꼼수>를 적극적으로 호명하는 이들이 그들의 지지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혹자들은 이번 대선의 야권 패배 이유 중의 하나가 <나꼼수>임을 지적하고 나섰고, 보수언론들은 출소한 정봉주와의 인터뷰 중 일부를 인용해 <나꼼수> 내부에 갈등이 있었던 듯이 앞다투어 보도했다. 아직도 SNS나 언론사 게시판에서는 그들이 명명한 소위 '십알단'류의 이들이 <나꼼수>를 조롱하고 힐난하기에 바쁘다.

<나꼼수> 스스로 그 끝을 이야기했건만, 정작 그에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이 아직도 <나꼼수>를 붙잡고 있는 작금의 형국.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나꼼수>를 그만큼 두려워하고 불편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힘이 가장 센 지금, 제2의 <나꼼수>가 다시는 나타날 수 없게 손을 보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여권의 공세에 대해, 그리고 그 외곽조직의 비난과 조롱에 맞서서 야권의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혹자는 오히려 패배주의에 휩싸여 그런 여권의 주장에 동조하며 <나꼼수>에게 책임전가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4월 총선의 패배의 책임이 김용민에게 있었다고 손쉽게 주장했듯이, 대선의 패배 역시 마녀사냥 하듯 <나꼼수> 탓을 하는 것이다.

당장 정봉주 전 의원의 출소를 떠올려보자. 과연 얼마나 많은 의원이 그를 찾아 왔던가. 그는 분명 민주당을 대표해서 BBK 의혹을 제시했기 때문에 1년 동안 수감되어 있었다. 10년 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그런데 현재의 민주통합당은 그의 사면에 대해 일언반구 하나 없다. 도대체 그런 당을 위해 누가 열심히 일할 수 있단 말인가.

<나꼼수>, 다시 정치를 외치다

<나꼼수>는 지난 2년여 동안 작게는 야권의 승리를 위해서, 크게는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했었다. 삼엄한 경계와 감시 속에서,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들의 신념을 지켜내었다. 그들은 항상 웃어 보였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선에서 야권이 패배한다면 그들이 겪을 고초는 모두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목숨까지 걸었다고 했을까.

덕분에 <나꼼수>는 정치와 담을 쌓고 있던 이들을 다시 정치의 장으로 불러들였다. 그들은 기득권 세력들이 우리의 무관심과 외면을 어떻게 기만하고 이용하는지 낱낱이 까발림으로써 사람들을 분노케 했으며,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냈던 뉴스의 그 소식들이 우리의 뒷통수를 얼마나 강하게 가격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기득권 세력들이 얼마나 후지고 추악한지 고발함으로써 우리에게 정치 참여가 왜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이번 대선에서 20~30대의 괄목할 만한 투표율 신장은 결코 <나꼼수>와 별개로 이야기 할 수 없다.

혹자들은 <나꼼수>에 찬성하는 사람만큼이나 반대하는 사람들이 강하게 뭉치고, 그들의 막말에 반대하는 이가 더 많아졌다며 역효과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과연 <나꼼수> 때문에 문재인 찍으려다가 박근혜를 찍은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혹 누군가가 <조선일보>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나꼼수>의 기사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치자. 그것은 <나꼼수>의 책임이 아니라, <조선일보> 1면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있는 그 사람의 비극이요, 그와 같은 비극을 아직까지도 바꾸지 못한 우리의 책임일 뿐이다. <나꼼수>는 어디까지나 해적방송일 뿐, 어젠다를 만들고 정책을 계획하는 건 사실 그들의 몫이 아니다.

또한 <나꼼수>는 우리들을 대신하여 MB정권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워줬다. 사실 촛불집회 이후 우리는 모두 주눅들어 있었다. '아침이슬'을 들으며 반성했다던 MB가 유모차 끌고 나온 주부들에게 얼척없는 벌금 때리는 것을 보며, 어떻게든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겠다던 용산 철거민들과 쌍용차 해고자들이 강제 진압되는 것을 보며, 그리고 멀쩡한 사람이 대통령 욕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찰당하는 것을 보며 우리 모두는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먼저 나섰다가는 왠지 크게 당할 것 같다는 불안감.

이때 <나꼼수>가 등장했다. 그들은 방송을 통해 공포를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웃음임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조선시대 광대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가카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모토만으로 기득권 세력을 조롱하고 농락했으며, 우리는 그들의 신명나는 모습에 기꺼이 웃었고, 이를 통해 내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용기를 얻었다. <나꼼수>를 통해 새로운 연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냐며 '쫄지마 씨바'를 외쳐대던 그들. 이는 결코 단순한 욕지거리가 아니다. <나꼼수>는 저 천박한 언어를 통해 스스로를 '해적방송'으로 규정했고, 그 정의를 통해 한낱 해적방송의 지껄임도 참아내지 못하는 MB정권의 몰상식과 비민주성을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시정잡배 넷이 골방에 모여 앉아 시시껄렁 잡담하며 낄낄 웃어대는데, 정부가 거대 사정기관에 정보기관까지 동원시켜 그들을 압살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정부가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었을까? 방송할 때마다 욕을 입에 담고, 고상함은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자칭 대한민국 1등 신문이라는 <조선일보>가 감히 언급한다면 그것 역시 그들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꼼수>는 그렇게 우리를 대신해서 기득권과 싸웠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조금이나마 숨통을 틜 수 있었다.

혹자들은 <나꼼수>가 정권초가 아니라 정권말이니까 가능했다며 폄훼하지만 이것 역시 헛소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정봉주 전 의원은 구속되었으며, MB정부 5년 내내 박근혜 당선인은 공공연한 차기 대통령으로 대세론을 유지해 오지 않았던가. 악독한 MB정부를 상대로 2년간 줄기차게 떠들었던 <나꼼수>.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무너진 언론을 대신했던 <나꼼수>
 

▲ 김용민 성대모사에 웃음 터진 <나꼼수> '국내 최초 가카의, 가카에 의한, 가카를 위한 가카헌정공연 <나는 꼼수다>(나꼼수)' 서울콘서트가 2011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렸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조현오 경찰청장,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의 성대모사를 하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17대 국회의원, 주진우 시사인 기자 등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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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나꼼수>를 언급하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들이 MB정부 언론의 역할을 대신해 왔다는 것이다. MB의 등장과 함께 권력의 감시 기능은 고사하고 권력의 시녀가 되어버린 공중파 방송들. <나꼼수>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 여권을 감시하고, 그들의 꼼수를 막아냈던 거의 유일한 매체였다.

12월 18일 정오를 복기해보자. 당시 난 업무상 강남 모처에서 점심을 먹은 뒤 까페에서 거래처 직원들과 커피를 한 잔 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대선 하루 전인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이쯤되면 한 건 터뜨릴 때도 됐는데. 진짜 김정남이 망명 안 하는 건가?"
"<나꼼수>가 이미 말했잖아. 노출된 카드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들어보니 MBC가 어제 새벽까지 인터뷰 내용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내려놨다던데. 결국 또 <나꼼수>한테 말린거지 뭐."

뒤를 돌아보니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30대 중반 내 또래의 직장인들이었다. 아마 그들도 나와 같이 김정남 망명에 대해 '절대 그럴 리 없다'며 운운했던 <나꼼수>를 들었거나 관련 기사를 보았을 것이며, 그 전날 밤 MBC의 수상한 동태를 이야기했던 이상호 기자의 트윗을 보거나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2012년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였다. 공영방송은 신뢰하지 못한 채 팟캐스트에 떠도는 <나꼼수>와 같은 해적방송을 들으며 세상 돌아가는 일을 추측해야만 하는 시대. <나꼼수>는 그와 같은 현실에서 언론들이 하지 못하던 그들의 기능을 대신했으며, 팟캐스트라는 분야를 개척함으로써 다른 목소리를 원했던 국민들에게 대안언론으로서 새로운 매체와의 접촉을 가능케 만들었다. 현재 야권 지지세력들은 대선 패배 이후 기존 공중파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칭 국민TV 창설을 추진 중인데 이 역시 <나꼼수>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나꼼수>는 끝났다. 개인적으로 '멘붕'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우리보다 더 위급한 처지에 놓여있는 <나꼼수> 멤버들을 생각하노라면 이렇게 마냥 손 놓고 있는 것도 하나의 사치이지 싶다. 어쨌든 우리는 그동안 <나꼼수>에게 엄청난 빚을 졌고, 현재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압력을 받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잘 헤쳐 나가리라 믿지만.

<나꼼수>, 그 동안 고마웠다, 수고했다. 당신들이 뿌려놓은 희망의 씨앗을 꽃피우는 건 우리의 몫임을 잊지 않겠다. 그리고 이젠 우리가 당신들에게 말할 차례다.

"쫄지마 씨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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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서 눈물의 ‘야전식사’ 함께 한 소년

 

 

 

최전방서 눈물의 ‘야전식사’ 함께 한 소년
 
[한호석의 개벽예감](45) 김정은 제1위원장, “고난의 행군 못 잊어”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01/12 [13:12] 최종편집: ⓒ 자주민보
 
 

<로동신문>에 실린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서술

북에서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발행되는 <로동신문>은 일반적인 일간지가 아니라 당보다. 당보는 단순한 사실보도를 싣는 게 아니라 북측 인민들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말한 “사상정신적 량식”을 주기 위한 글을 싣는다. <로동신문>에 실린 글들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의도에 따라 북측 인민들에게 ‘사상정신적 양식’을 주기 위해 기사화된 것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2013년 1월 7일 <로동신문>에 실린, ‘우리가 사는 시대’라는 제목의 ‘정론’도 북측 인민들에게 ‘사상정신적 양식’을 주기 위한 글이다.

그런데 그 ‘정론’에 들어있는 특별한 내용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회상한 글이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북이 1990년대에 겪은 ‘고난의 행군’은 북의 건국 이래 가장 힘든 시련이었는데,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처럼 혹심했던 시련기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회상한 내용이 인용문 형식으로 그 ‘정론’에 담긴 것이다. 인용문은 아래와 같다.

“나는 고난의 시기 전선시찰의 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장군님을 수행하면서 장군님의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무한한 헌신성, 송고한 인민적 풍모를 가슴 뜨겁게 새겨 안게 되었으며 장군님의 그 강행군길에 나의 발걸음을 맞추어 나갔다. 나는 고난의 행군 시기 풋강냉이 한 이삭으로 끼니를 에울 때도 있었으며 거의 매일과 같이 줴기밥과 죽으로 끼니를 에웠다. 나는 고난의 행군 전 기간 장군님을 모시고 인민들과 함께 있었고 인민들이 겪는 고생을 함께 겪었다. 만일 후날에 력사가들이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은은 어떻게 지냈는가고 물으면 나는 그들에게 떳떳이 말해줄 수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 나는 호의호식하지 않았다. 나는 인민들과 같이 어렵게 살았다. 이에 대한 증견자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고난의 행군 시기를 영원히 잊을 것 같지 못하다.”

북에서 발간되는 모든 종류의 글에 최고영도자의 발언이 실리는 경우 예외 없이 “김정은 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는 인용의사를 명시한 뒤에 이중꺾쇠 인용부호를 붙이는데, 서술이 아니라 담화의 경우에는 존댓말로 표기된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내용은 예외적으로 인용의사도 명시되지 않았고, 이중꺾쇠 인용부호도 없으며, 존댓말로 표기되지도 않았다. 존댓말로 표기되지 않은 것을 보면, 위의 인용문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담화가 아니라 회고서술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로동신문>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서술을 왜 그처럼 예외적인 형식으로 기사화하였는지 북측 외부에서 정확히 알기 힘들지만, 후계자로 추대되기 이전에 서술한 글을 기사화하는 경우 그런 형식으로 표기하는 게 아닌가 짐작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위에 인용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서술은 후계자로 추대되기 이전에 쓴 글로 생각된다.

회고서술에서 주목하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난의 행군’ 시기 전 기간에 걸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을 수행하면서 당시 북측 인민들이 겪고 있었던 고생을 함께 겪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북에 대해서는 악담과 거짓말밖에 할 줄 모르는 <조선일보>가 2013년 1월 7일 보도기사를 통해 위에 인용한 회고서술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였다. 대북악담 중독증에 걸린 <조선일보>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스위스에서 “호화 유학생활을 했다”고 주장하였다. <조선일보>만이 아니라 다른 반북수구언론들도 일제히 그렇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제까지 거듭된 보도사례를 돌아보면, 반북수구언론이 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주장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으며, 사실을 고의적으로 왜곡하거나 심지어 없는 일까지 날조하면서 북을 헐뜯으려는 악선전에 지나지 않았다. 위에 인용한 회고서술에 대한 반북수구언론의 주장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서의 유학생활

가끔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지도자의 사생활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법이다. 특히 북에서는 최고영도자의 ‘혁명활동’만 보도하는 것이 철칙으로 지켜지기 때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의 스위스 유학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데 김정은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공식 추대되었을 때, 남측, 미국, 일본의 수구언론매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자본주의나라들의 수구언론매체들까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스위스 유학에 관해 일제히 보도한 바 있어서, 북측 외부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스위스에 유학하였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문제는, 대북악담 중독증에 걸린 반북수구언론들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해외유학에 관해 너무 심하게 사실을 왜곡하였다는 데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스위스 연방수도인 베른(Bern)의 쾨니츠(Köniz) 지역의 리베펠트(Liebefeld)에 있는 슈타인휠츨리(Steinhölzli) 공립학교에서 3년 동안 유학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학교에 입학한 때는 1998년 8월이다. 스위스 학제에 따르면, 새 학기는 8월에 시작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1998년 8월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 7학년(남측 학제로는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하였고, 3년 동안 그 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친 뒤 2000년 가을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02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입학하여 5년 학과과정을 마치고 2007년에 졸업하였고, 야전부대에서 군사복무를 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 입학한 때가 1998년 8월이라는 사실은, 미카엘로(Micaelo)의 회고발언에서 확인된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Telegraph)> 2010년 9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미카엘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같은 반에서 옆자리에 앉아 함께 공부한 급우였다.

‘고난의 행군’ 시기는 1995년 1월 1일부터 1997년 12월 31일까지 3년이다. 북은 1997년 말까지 ‘고난의 행군’을 결속하였고, 1998년 1월 1일부터 2년 동안은 일종의 조정기인 ‘사회주의강행군’ 시기를 거쳤으며, 2000년 1월 1일에 발표한 공동신년사설에서 ‘사회주의강행군’이 끝났다고 선언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측 인민들에게 ‘강성대국 건설구상’을 처음 밝힌 것은, 북이 ‘고난의 행군’을 결속하고 ‘사회주의강행군’을 시작하였던 1998년 8월에 있었던 일이다.

위와 같은 시기구분을 살펴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스위스에 유학하였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 엉터리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이 ‘고난의 행군’을 결속한 뒤 약 7개월이 지난 1998년 여름에 스위스로 해외유학을 떠났던 것이다.

대북악담에 중독된 <조선일보>의 사실왜곡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스위스에서 “호화스러운 유학생활”을 하였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 역시 왜곡이다. 아래와 같은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스위스 연방수도 베른에는 그 도시에 장기체류하는 다른 나라 외교관 자녀들이나 주재원 자녀들이 다니는 ‘베른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Bern)’가 있다. 베른의 무리 베이(Muri bei) 지역에 있는 스위스 주재 북측 대사관저에서 ‘베른 국제학교’까지 직선거리는 동쪽으로 1.3km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처럼 가까운 곳에 있는 ‘베른 국제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북측 대사관저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가 4.1km나 떨어진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 입학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측 대사관저에서 생활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베른 국제학교’까지 통학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먼 곳에 있는 학교에 입학한 것일까?

2013년도 ‘베른 국제학교’ 학비사정을 알아보면, 6-8학년생의 연간 학비는 1인당 27,900 달러이고, 9-12학년생의 연간 학비는 1인당 31,350 달러다. 학비 이외에 생활비까지 계산하면, 1인당 연간 50,000 달러 이상 지출할 수 있는 부유층 자녀들이나 그 ‘귀족학교’에 다닐 수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스위스 베른에서 3년 동안 국제학교가 아니라 공립학교를 다니면서 유학하였다. 미국이나 서유럽에서 공립학교는 근로대중 자녀들이 학비를 내지 않고 다니는 서민학교이며,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다녔던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는 다른 나라들에서 스위스에 갓 건너온 외국인 근로자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전형적인 서민학교다. <동아일보> 2009년 6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그 공립학교 전교생 가운데 무려 45%가 외국인 자녀들이다.

또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리베펠트 키르흐슈트라쎄(Kirchstrasse) 10번지에 있는 연립주택에 방을 얻어 살면서 약 200m를 걸어서 통학하였다. GPS 위성지도로 찾아보면, 그 연립주택은 근로자들이 사는 검소한 거주공간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다닌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서 공부하였던 급우들 가운데 한 사람인 임호프(Imhof)의 회상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밤에 절대로 외출하지 않고, 파티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규율 있는 유학생활을 하였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스위스 베른에서 3년 동안 유학하는 기간 대사관저가 아니라 검소한 연립주택에 살면서 서민학교에서 공부하며 규율 있는 유학생활을 한 것은, 인민적 풍모를 지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슈타인휠츨리 공립학교에서는 독일어로 교육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급우였던 미카엘로는 포르투갈 이민자의 아들이어서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인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거주하는 연립주택에 갔을 때, 그곳에 사는 ‘가족’들이 유창한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이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미 중학생 시절에 영어와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어 실력을 갖추었음을 말해준다. 미국 <CNN> 방송 2010년 9월 28일 보도에 나온 미카엘로의 회상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중학교 유학시절에 특별히 농구와 컴퓨터를 아주 잘 했고,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텔레그라프> 2010년 9월 26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미카엘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유학생활을 할 때 북측 노래를 즐겨 불렀는데, 특히 북측 애국가를 자주 불렀다고 회상하면서, “지금도 그 노래(북측 애국가를 뜻함 - 옮긴이)를 기억하고 있다”고 취재기자에게 말했다. 얼마나 애국가를 자주 불렀으면, 외국인 급우의 기억 속에 아직까지 남아있을까. 이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먼 나라에 가서 유학하면서도 조국을 생각하는 애국심을 지니고 생활하였음을 말해준다.

영세중립국인 스위스는 지난 냉전시기부터 북이 서방세계와 접촉하는 통로였다.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은 바로 그 통로에서 3년 동안 중학교 과정을 마치면서, 서구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였고 외국어 실력을 쌓았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활지침은 이미 소년시절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유학생활지침이기도 하였다.

최전방에서 눈물의 ‘야전식사’를 함께 나눈 소년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에 인용한 회고서술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간고한 전선시찰에 자신의 발걸음을 맞추었다고 술회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1995년 초부터 1997년 말까지 이어진 3년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을 수행하면서 ‘고난의 행군’에 동참하였던 것이다. 북측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외부사람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그런 회고서술을 무심히 대할 수 있지만, 북에서는 그 회고서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 까닭을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북측 자료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민경제 생산현장들에 대한 시찰을 뒤로 미루고 인민군 야전부대들에 대한 시찰에 집중하였다. 산짐승도 오르기 힘든 고지 위에, 바람 세찬 작은 섬 언덕에, 적진 가까운 긴장된 해안지대에 자리 잡은 야전지휘소, 경계근무초소, 전투훈련장, 병사들의 숙소와 세목장, 식당과 부식창고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찾아간 시찰대상이었다.

북측 시각에서 바라보면,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강도 전선시찰은 ‘북한 정권 붕괴’를 노리며 대북침공을 물리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미국의 선제공격위험으로부터 북을 지키고 사회주의의 미래를 수호하기 위한 실로 간고한 혁명투쟁이었다. <조선중앙통신> 2012년 12월 16일 기사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그 길은 제국주의자들과의 총포성 없는 싸움이였다.” 당시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처럼 간고한 반제혁명투쟁을 진두에서 지휘하고 있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3년 동안 수행하였던 것이다.

둘째,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은 최전방 야전부대들을 시찰한 것이다. 그 시절로부터 퍽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북측 인민들은 철령, 초도, 오성산, 대덕산, 351고지 등 수많은 인민군 야전부대를 시찰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의 회고서술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 자신이 “인민들과 같이 어렵게 살았다”고 회상하면서 “이에 대한 증견자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술회하였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전방 야전부대들을 찾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을 수행하였으므로 당시 최전방 야전지휘관들은 자기 부대를 찾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10대 소년시절 모습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회고서술에서 말한 증견자들이 바로 그 야전지휘관들이다.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과 인민군 야전지휘관들은 ‘고난의 행군길’에서 그렇게 상봉하였던 것이다.

그 특별한 상봉으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을 후계자로 추대하는 움직임이 인민군대 안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까닭은, ‘고난의 행군’ 시기 최전방 야전지휘관들이 줴기밥(남측에서는 주먹밥)으로 ‘야전식사’를 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선시찰을 수행하던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을 직접 만났기 때문이다.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행하였던 초강도 전선시찰은 적들과 첨예하게 대치한 최전방을 돌아보는 것이므로, 그런 전선시찰길에서 식사시간에 맞춰 대중식당에 가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최전방에 대중식당이 있을 리 없으며, 더욱이 식량부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각지의 대중식당들도 때로 문을 열지 못했거나 단축봉사를 해야 하였을 것이다.

그런 시련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택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과 함께 당시 북측 인민들이 먹었던 죽 한 공기를 아침식사로 들고 문을 나섰을 것이며, 부인이 싼 밥곽(남측에서는 도시락)을 야전차에 싣고 전선시찰을 떠났을 것이다. 위에 인용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회고서술에 따르면, 밥곽 안에는 줴기밥이 들어있었고, 줴기밥도 먹을 수 없는 때는 삶은 풋강냉이 한 개로 식사를 대신하며 고생을 겪었다고 한다.

남측 독자들은 전선시찰 도중 줴기밥을 나누는 ‘야전식사’ 분위기가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야전식사’를 말해주는 북측 자료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북측 자료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 시기 어느 날 동해안 쪽으로 전선시찰을 떠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점심시간에 야전차를 세우고 길가에 있는 너럭바위에 수행원들과 둘러앉았는데, 한 사람마다 줴기밥이 두 덩이씩 주어졌다. 줴기밥 두 덩이와 함께 “무오가리와 절인 오이에 까나리”가 밥반찬으로 나왔다. 무오가리는 말린 무를 잘게 썰어 무친 것으로 보이고, 절인 오이는 오이장아찌인 것으로 보이고, 까나리는 바다에서 잡은 작은 물고기다.

북측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날 너럭바위에 둘러앉아 나눈 ‘야전식사’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줴기밥을 싸가지고 다니다가 배가 고플 때 먹곤 합니다. 밥은 줴기밥이 제일 맛있습니다. 나하구 함께 다니느라면 이제 줴기밥맛을 알게 될 것입니다. 줴기밥은 감도 특별한 것이 필요 없고, 만드는 데 품도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급히 길을 떠나야 할 때 준비하기 쉬워서 좋고, 가다가 아무데서나 펼쳐놓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도 얼마 떼우지 않고, 현지 일군들이나 주민들에게 폐도 끼치지 않아서 좋습니다. 줴기밥은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도중식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북측 자료도 있다. 1998년 4월 15일 군사분계선에 가까운 최전방 군부대를 시찰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마침 점심시간이 되자 “변변치 못하지만 내가 싸온 점심밥도 함께 들자고 하시며 마련해가지고 오신 점심곽을 풀어놓으시였”는데, “밥곽들에는 크지 않은 줴기밥 몇 덩이와 몇 가지 나물채가 들어있었”다. 자기들의 최고사령관이 설마 “이런 밥곽을 싸가지고 다니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군부대 지휘관들은 “왈칵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며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울음을 삼키는 군인들 앞에 밥곽을 밀어놓으시며 어서들 들라고, 그래야 나도 먹을 게 아닌가고 하시면서 오늘은 뜻깊은 명절날이니 한 잔씩 들자고 하시며 축배도 부어주시였다”고 한다.

이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야전부대 지휘관들이 눈물 속에서 나누던 ‘야전식사’ 현장에서 함께 줴기밥을 들었던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런 눈물 어린 체험을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기억으로 가슴에 새겼을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에 인용한 회고서술에서 “나는 앞으로도 고난의 행군 시기를 영원히 잊을 것 같지 못하다”고 술회하였던 것이다.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부터 받아 안은 사상정신적 양식

북의 최고영도자가 ‘고난의 행군’ 시기를 어떻게 지냈는가 하는 문제는, 북에서 매우 중대한 정치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북측 시각에서 바라볼 때, 최고영도자는 자기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혁명활동을 통해서, 그런 간고한 투쟁 속에서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 상호결합되고, 그런 운명공동체 안에서 최고영도자로 추대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북에서 말하는 ‘혁명적 수령관’의 핵심내용이다.

북에서 간행된 역사자료를 읽어보면, 김일성 주석은 1930년대 항일혁명기에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혁명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인민들과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 결합되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25 전쟁시기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잿더미로 변한 평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1950년대 후반 전후복구기에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혁명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인민들과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 결합되었다. 당시 소년기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들과 함께 전후복구의 구슬땀을 흘린 노동현장들이 숱하게 많지만, 그 가운데서 소년기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가한 대규모 건설공사만 손꼽으면 1958년에 있었던 평양시 2만 세대 살림집 건설을 위한 경상골 부재생산 전투와 해주-하성 광궤철도 부설공사, 그리고 1958년과 1959년에 있었던 대동강 호안 공사 등이다.

북측 시각에서 바라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의 건국 이래 가장 혹심한 시련이었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에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미 소년기에 혁명활동에 동참하면서 ‘일심단결 운명공동체’ 속에 들어선 것으로 된다. 만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지 않고 호의호식하였다면, 김정은 제1위원장을 최고영도자로 추대한 것과 ‘혁명적 수령관’은 서로 합치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난의 행군’ 3년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간고한 전선시찰을 수행하면서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기 때문에, ‘혁명적 수령관’에 의거하여 후계자로 추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통하여 북에서 후계자가 단지 혈연관계에 의하여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으며, 북의 혁명적 후계추대를 봉건국가의 혈연적 세습책봉으로 단정해버린 북측 외부의 주장이 왜 이치에 맞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간고한 전선시찰을 3년 동안 수행한 경험은 당시 10대 소년이었던 김정은 제1위원장의 세계관 및 인생관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북측 시각에서 바라보면, 최고사령관과 야전지휘관들이 최전방에서 함께 나누던 그 눈물의 줴기밥은 소년기의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일심단결 운명공동체’로부터 받아 안은 사상정신적 양식이었다.(2013년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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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급> 아고라 난리 났습니다

드디어 천군만마가 수개표에 나섰습니다
(다음아고라 / 50대 선인 / 2013-01-11)


먼저 알리는 글을 붙입니다
매국노들이 국알바단들과 심알단 뿐만 아니라 해커까지 동원하여
하루, 이틀 전부터 아고라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요한 글이나 정보를 올리시는 분들이 글을 올리기가 쉽지 않거나 전혀 못 올리는 경우가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집에 컴으로는 이런 해킹과 저지를 뚫고 글을 올리기가 쉽지 않으나 pc방에서는 방어벽이 잘되있고 바이러스 퇴치가 되어 쉽게 올려집니다.

중요한 글과 정보는 pc방을 이용하여 올리시면 됩니다. 참고하세요.

안티이명박( 관리자들이 민족운동가)에서 공지가 떴었습니다
10만 명이 넘는 회원을 가진 천군만마가 수개표 요구에 앞장섰습니다.
이명박근혜에게는 가장 무서운 존재가 현재는 안티이명박이라고 합니다

내일(토요일) 수개표 요구집회는 오후 4시부터 입니다 오후 5시부터가 아님을 널리 알려야합니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5시 부터로 알고 있는데 4시에 시작해서 모인 분들이 적으면 조중동과 종편 방송에 악용될 소지가 많습니다

시작 시간을 오후 5시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극히 4시 경에 극히 적은 수가 모이면조중동과 종편들은 극히 적은 수가 모여잇는 집회사진을 올려 놓고 극소수의 사람들이 수개표를 요구하고 있다고 기사 내고 조롱할 겁니다.

이렇게 물타기한 화면을 본 대부분의 국민들이 생각하기를 수개표는 극히 일부의 몇몇 사람들만이 요구하는 쓸데 없는 짓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부터 내일 집회는 오후 4시에 시작 함을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안티이명박 카페가 안티박근헤 카페와 함께 한다고 합니다.
많이 가입하셔서 힘도 실어주시고 많은 성원(후원)을 바랍니다
재정적으로 많이 어려운 것같습니다

<긴급 추신>

아래 이명박 심판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사이트 주소를 클릭하면 저의 컴에는 새롭게 등록하라는 창이 뜨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정상적으로 사이트 진입이 되도록 해킹 해놓았을 수도 있음)

이런 경우는 포털에서 검색을 해서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고라가 파괴, 해체되면 우리가 모여야 하는 제1의 집결지 사이트입니다.
카페 관리자들이 애국(민)적 충정과 열정만으로 뭉친 민족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믿을 수 있는 10만 명 이상이 가입되어 있는 사이트 입니다. 미리미리 많이 가입해서 활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명박 심판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바로가기:
http://cafe.daum.net/antimb/HXck/21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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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표 촛불시위-1월 12일(토) 오후 4시 대한문 앞
(지하철 1호선 서울 시청역앞 근처)

(민주당 점령의 날) 1월 13일(일) 오후 3시 영등포 민주당사 앞
(지하철 5호선 영등포시장역 근처)

1. 동영상 촬영
모든 시위 과정은 동영상으로 촬영하라.
동영상 촬영해서 유튜브 올리면, 곧바로 전세계 주목받을 수 있다.
그리고...혹시 경찰이 이상한 짓(?)하거나 물타기 작전 들어가도,
진실을 알리는 것은 바로 동영상 촬영!!!

혹시 과잉 진압 한다면 곧바로 전세계 언론에 대서 특필!!!
경찰견제 전세계 홍보 국내 홍보까지...
이게 바로 일석 삼조다!!!

2. 플랭카드는 영문으로 작성
플랭카드에 간략하게 우리 주장 넣어서,
짧게라도 영문으로 압축표현!!!
한글만 주루륵 쓰면,
대한민국 선거에 관심 많은 외국 우호세력(?)이 실망한다.

미국에도 바이든 전 부통령 등...
한국 민주화에 관심있는 인사 무지 많다.
이 기회에 영어실력도 자랑하고,
이 기회에 한국민주주의의 실상도 알려주자.

3. 여성보호, 어린아이 보호
이번 촛불 시위는 평화적으로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누군가 공작할 수 있다.
만약 충돌이 발생하여,
저들이 무력진압을 꽤한다면,
반드시 동영상으로 똑똑하게 찍어서,
전세계 만방에 독재정권의 실상을 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구호는 무조건 수개표로 통일하라.
재검표니, 수검표니 이런말 절대하지 말고,
무조건 수개표로 구호를 통일하라.
재검표니, 수검표니 이런말 쓰면,
이미 수개표 했다는 저들의 논리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저들은 이미 2002년도에 수개표한 경력이 있고,
박근혜 또한 수개표의 당위성을 역설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쪽에서 수개표를 내세우면,
저들은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꼴!!!
명분에서 이기고 들어가야 시위도 성공할 수 있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법에 보장된 수개표만 주장해서,
대중의 호응을 얻도록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그러나...희생을 최소화하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키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후원군(국제여론)을 등에 엎고,
이 일을 추진하면,
굳이 피 흘리지 않고도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
필사적으로 싸우더라도...
지혜롭고 현명하게..
저들의 약점을 찔러가기 바란다.

모두 모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주세요!

다음 영자가 매국노들 지시로 매국질 하느라고 베스트에 올리지 않는 중요한 내용의 글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articleId=2255485&bbsId=D115&pageIndex=2

아고라 폭파와 해체에 대비한 피난 사이트를 알립니다 (비상시에는 이곳으로 모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articleId=2254996&bbsId=D115&searchKey=daumname&sortKey=depth&searchValue=50대 선인&y=15&x=29&pageIndex=1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articleId=2255451&bbsId=D115&searchKey=daumname&sortKey=depth&searchValue=50대 선인&y=7&x=33&page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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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도올 김용옥

나의 딸 미루의 예술세계

 

도올 김용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11 오전 8:08:45

 

김미루의 세계 거대 사막들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주제의 사진작품전시회대만까오시옹시(高雄市) 피어투 예술특구에서 1월 19일부터 3월 3일까지 열린다. 그 전시를 주관하는 문화협회사람들이 아버지로서 딸의 예술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담은 글을 하나 써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래서 쑥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하기의 글을 썼다. 이 글은 전시회를 기념하여 출간하는 도록에 중문번역과 함께 실린다. 한국 독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글이라 생각되어 <프레시안> 지면에 소개한다. <필자>

자기 딸이라고 해서, 반드시 아버지가 그 딸의 정신세계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미루는 우리 다섯 식구 중에 막내둥이다. 미루는 내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유학하던 중에 보스턴 지역 스톤햄(Stoneham)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는데 담당의사가 인종편견이 조금도 없는 무던하고 친절한 휴머니스트였다. 닥터 린(Dr. Lynn)이라는 이름으로 내 뇌리에 남아 있는데, 그냥 쳐다보기만 해도 하염없이 선량한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 좀 거친 의사에게 걸려 곧바로 제왕절개를 했어야 했는데도, 닥터 린은 제왕절개 후에도 자연분만이 가능하다며 작위(作爲)가 없는 순산(順産)을 유도해주었다. 그리고 분만과정을 남편이 지켜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미루가 이 지구 상의 대기를 들이마시는 첫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곧 내 품에 안겼는데 아주 신비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사건이었다. 미루가 내 품에 안기는 순간, 아주 가느다란 실눈을 뜨면서 나를 보고 빙그레 웃는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이 세상 누구든지 내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해석한 표정이지, 웃음이라 규정지을 수 없는 생리적 표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생후 몇 분도 안 되는 갓난아기가 웃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진실로 신비로운 사건이었다. 미루는 나를 보고 웃었다. 분명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표현된 얼굴이었다. 나는 미루가 매우 감성이 풍부한 아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확신한 것은 미루가 정말 미모의 개체가 될 것이라는 직감이었다. 생후 몇 분 안 된 아이를 보고 미(美)·추(醜)를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미루가 정말 매력 있는 예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신비로운 교감의 체험이었다.
 

▲ 인간의 몸과 돼지의 몸이 이렇게 별로 다르지 않다. 모든 생명체는 기나긴 시간의 추이를 통하여 가장 정교한 최적의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다. 생명체의 우열은 있을 수 없다. ⓒ김미루

노자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곧 추함'이라고 말했다(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이러한 노자의 지혜는 우리 동방인들의 생활습속에 깊게 배어 있다. 그래서 예쁜 아이일수록 그 아명(兒名)은 비천(卑賤)하거나 미운 이름을 붙인다. 그래야 귀신이 탐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인박명(美人薄命, 용모가 썩 아름다운 여자는 대개 불행한 사람이 많다는 뜻)"의 액을 땜질하려는 것이다.

아내는 내가 너무 과도하게 철학적인 이름을 붙일까 봐 걱정했다. 그리고 광산 김씨(光山 金氏)의 돌림자를 쓰지 말자고 했다. 아내는 중국 고대의 발음체계를 연구하는 성운학자였기 때문에 우선 발음이 간편하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구려 왕족의 이름 중에 "미루(miru)"가 있는데 그런 고어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미루"는 발음을 먼저 정하고 글자를 나중에 결정한 것이다. 나는 "미륵(彌勒)"의 "미(彌)"가 먼저 생각이 났다. "미(彌, 활 궁(弓) 자가 기본 부수이다)"는 활과 관련된 의미가 있지만 "더욱더욱"이라는 부사적 의미가 있다. 그래서 "루"를 "陋(더러울 루)"로 하게 되면, "미루"는 살면서 점점 더 누추(陋醜)해진다는 의미가 생겨난다. "정언약반(正言若反, 바른 말은 마치 반대되는 것 같다)"이라고 했으니 아름다운 삶에 대한 반어적(反語的) 내함(內涵)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미루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천재적 소질이 있었다. 두세 살 때에 내가 서재에 펼쳐놓은 책 위에 우연히 그려놓은 미루의 낙서를 보고 하도 감동을 받아 야단치는 것을 잊곤 했던 기억이 있다. 국민학교 때도 미루의 그림은 인기가 좋았다. 미루의 그림은 이화여자대학교부속초등학교 복도에 자주 걸려 있곤 했다. 미루는 동물의 그림들을 잘 그렸는데 그 움직이는 모양들을 너무도 자유자재롭게 표현했다. 하늘에 수십 마리의 백조가 떠있는 그림을 그린 것이 있었는데 그 표현이 어찌나 자유분방하고 다이내믹했던지 그 펼친 날개와 치솟는 머리와 뻗친 다리의 선율들은 엘랑비탈의 화엄 세계였다. 그런데 불행하게 이 그림들은 하나도 보관된 것이 없다. 나의 모친이 미루 그림을 너무도 사랑하여 보관하고 계셨는데 돌아가시는 통에 모두 분실되고 말았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 쥐 스케치 ⓒ김미루


나는 철학교수 노릇을 한 후에 뒤늦게 의과대학을 다녔다. 나는 늦깎이로 의학을 공부하면서 의학이라는 학문에 엄청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미루 보고 의학을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의사 노릇을 안 해도 좋으니까 그냥 교양으로 의과대학을 나오라고 했다. 그래서 미루는 프리메드 코스를 밟았는데 의대 공부가 너무 숨 막히는 것 같았던 모양이다. 미루는 끝내 미술대학원으로 적을 옮겼다. 미루는 동물 그림을 계속 즐겨 그렸다. 그러다가 미루는 흰쥐 몇 마리를 그림 모델로 키웠는데 쥐를 키우면서 쥐의 생태에 관하여 많은 공부를 했다. 미루는 나를 닮아서 그런지 독서를 즐기고, 어떤 주제를 깊게 탐구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주제에 관한 지식을 실천적으로 실험해보기를 좋아한다. 미루는 쥐가 많이 사는 곳이 맨해튼의 하수도라는 것을 알아내고 맨홀 구멍으로 기어들어가 쥐들의 엄청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 하수도의 환경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미루는 거대도시의 지하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지상의 도시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하의 세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지하의 세계에는 우리가 망각한 도시의 역사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무의식은 대타자(大他者)의 담론이다(The Unconscious is the Discourse of the Other)"라는 유명한 명제를 발했는데 미루는 지하세계야말로 지상의 도시에서 미끄러진(glisser) 시니피에(signifié)들이 숨어 있는 무의식의 세계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미루는 그 지하세계의 담론(discours)을 그려내고 싶어 사진을 찍어댔다. 그런데 그 어두컴컴한 터널 속에서 아무리 멋있는 사진을 찍어도 무엇인가 공허했다. 살아 있는 무의식의 담론이 포착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루는 자기 알몸을 오브제로 사용했다.
 

▲ 한국 모래내 철거지역, 문명파괴 현장. 개발을 핑계로 서울의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 무자비하게 파괴되고 있다. 불도저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집들 중에는 가족사진을 비롯하여 개인사에 기록될 만한 소중한 물건들이 팽개쳐져 있었다. 도무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저 뒤에 서있는 아파트 건물이야말로 흉측한 야만이 아닐 수 없다. 왜 문명을 버리고 야만으로 가는가? 자연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아름다운 삶의 공간이 인간의 행복과 무관하게, 자본과 탐욕과 그릇된 인식으로 파괴되어 가고만 있다. 이것은 너무도 슬픈 현실이다. 나는 문명을 수호하는 최후의 고양이처럼 철거되는 담벼락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제발 저 아파트가 지옥이고 판자촌이야말로 천당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한국인에게 생겨나기를 빌면서… ⓒ김미루


많은 사람이 나 보고, 당신네와 같이 유서 깊은 사대부가의 적통을 가지고 있는 집안의 딸이 나체로 예술 활동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 않느냐고 묻곤 한다. 그러나 미루는 자기 몸을 나체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원시적 생명체, 그러니까 태고의 무의식세계를 활성화시키는 '생명의 움틀'임의 상징으로서 던진 것이다. 한 인간이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예술의 오브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인위(人爲)적 반역(反逆)이 아니다. 미루의 활동은 도시의 지하세계를 탐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의 "전설(legend)"로 알려졌고, 그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뉴욕타임스>의 전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전설은 결국 "나도(裸都)의 우수(憂愁) - Naked City Spleen"라는 대규모 전시가 되었다.

미루의 두 번째 작품세계는 돼지우리 속에 던져진 미루의 몸이다. 미루는 돼지를 찍기 전에 돼지의 생리와 생태에 관해 깊은 연구를 했다. 그리고 돼지우리 속에서 나체로 돼지와 더불어 사는 체험을 했다. 중국인들은 돼지우리에 사는 여인을 생각하면 한고조 유방의 부인 여태후(呂太后)의 간악함에 희생된 가련한 척부인(戚夫人)의 비극을 연상할지도 모르겠다. 미루의 관심은 궁극적으로 횡거(橫渠)가 <서명(西銘)>에서 웅변한 바, "건칭부(乾稱父), 곤칭모(坤稱母), 민오동포(民吾同胞)"라 말한 "동포(同胞)"의 외연(外延)을 확대하고자 한 것이다. 돼지와 내가 결코 소외된 타자가 아니라는 것, 그러한 생명일체감 속에서 21세기 인간문명의 모습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사유(cogitans)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존재한다고 말했지만, 미루는 그러한 존재의 근거로서의 순수사유를 거부한다. 그러한 연장(延長)을 배제한 실체적 사유의 대전제가 문명을 건설했지만 인간을 파멸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미루는 항변 한다 : "돼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나 또한 존재한다(The Pig That Therefore I Am)." 이슬람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안 먹는 것은 그 나름대로 생태론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 미국의 대규모 돼지사육장은 마피아 재벌들이 장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접근할 수가 없다. 나는 이런 사육장에 몰래 들어가 사진을 찍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경비원들이 장총을 들고 나타나기도 한다. 돼지는 매우 영리하고 깨끗한 동물이다. 그들을 잘 이해하면 그들은 나를 친구로서 취급한다. ⓒ김미루

 

▲ 몽골 고비사막 콩고린 엘즈Khongoryn Els. "콩고린 엘즈"는 "노래하는 모래언덕"이라고도 불린다. 모래언덕을 지나가는 바람에 모래알들이 기묘한 소리를 낸다. ⓒ김미루


요번에 미루는 사막으로 갔다. 낙타는 착한 동물이다. 거대 몸체를 가지고 있지만 남을 해칠 줄을 모른다. 그래서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가 말하는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악순환이 싫어서, 그는 평화를 갈망하며 쫓기고 또 쫓기어 갔다. 그리고 사막이라는 황량한, 최악의 생명의 조건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생리적 지혜를 진화시켰다. 모래바람만 이는 고독 속에서 생명의 환희를 발견한 것이다. 이 낙타라는 생명체에 의존하여 인간은 사막에서 평화롭게 생존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生活)의 장(場)을 발견했다. 사막의 낙타-인간 공동체 속에서 미루는 반문명(反文明)의 지혜를 발견했다. 발전과 착취와 억압과 소외가 부재(不在)하는 황막한 삶의 장! 그곳에서 미루는 싯달타가 추구했던 해탈, 죽음으로서의 열반이 아닌 삶으로서의 열반을 발견했을 것이다.

미루의 테마들은 매우 우발적으로 전개된 것이지만, 그 나름대로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주제를 "무위(無爲)"라고 표현하고 싶다. 진실로 인간이 유위적 문명에 대하여 자부감을 갖는 것만큼 무위적 반문명에 대하여 깊은 통찰과 애정을 갖지 않는다면 인간은 이제 정의롭게 생존할 길이 없다. 미루는 내가 지어준 이름대로 나날이 추해져 갔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세계의 반면으로 점점 깊숙이 천착해 들어간 것이다. 노자는 말한다 : "학을 행하면 매일매일 더함이 있지만(爲學日益), 내가 말하는 도를 행하면 매일매일 손해만 본다(爲道日損)." 미루의 예술이 추구하는 세계는 익(益)에 있지 않고, 손(損)에 있다. 그 어느 땐가 우리 모두가 무위(無爲)의 밑바닥에서, 저(低)엔트로피의 공동체(the community of low entropy) 속에서 손잡고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나는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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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공사 구분도 못해"... 자질 시비 확산

'보수·친일 판결' 이어 저작권법 위반까지

 

13.01.11 20:46l최종 업데이트 13.01.11 20:46l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본인이 직접 쓴 글은 일부에 불과하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상당 분량 엮은 책 표지에 '편저(編著)' 또는 '공저(共著)'로 표시하지 않고 '이동흡 著(저)'라고 표시한 것이다.

대구·경북(TK) 출신에 '강경 보수'로 평가받고 있는 이동흡 후보자는 헌재 재판관 재임시절 보수·친일 성향의 판결과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부적절한 처신으로 자질 시비에 휩싸였다. 특히 이 후보자는 헌재 재판관 재임시절 헌재 구내식당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해 논란이 됐는데, 당시 책이 저작권법 위반 의혹을 받게 된 것이다.

이동흡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오는 21, 22일 이틀간 진행된다.

함께 쓴 책에 본인 이름만 표시... 헌재 구내식당서 출판기념회 개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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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특위 민주통합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은 11일 이 후보자가 2011년 1월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의 헌법재판>(박영사)을 출간하면서 저작권법상 성명표시권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의 헌법재판>은 이동흡 후보자가 헌법재판관 시절 참석한 국제회의 참석기와 국제회의 발표논문 등을 엮은 책이다. 총 7장의 방문기 및 참관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제1장과 제7장만을 이동흡 후보자가 작성했고, 나머지 제2장~제6장은 방문 당시 수행했던 헌법연구관들이 쓴 참관기 및 방문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이동흡 후보자 본인이 직접 쓴 내용은 일부에 불과하고 다른 헌법연구관들의 글을 상당 분량 엮은 것임에도 이동흡 후보자는 책 표지에 '편저(編著)' 또는 '공저(共著)'로 표시하지 않고 '이동흡 著(저)'라고만 표시했다. 이는 저작권법 제12조(성명표시권)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최 의원의 주장이다. 다만, 이 후보자는 자신이 쓰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각주로 당시 자신을 수행했던 헌법재판소 연구관이 정리하여 쓴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저작권법 전문 변호사는 "일단 성명표시권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성명표시권이 저자를 표시하는 방법인데, 성명표시권 전체를 100으로 본다면, 각주에만 원저자를 표시하는 것은 50에 불과한 것 아닌가"라면서 "'○○○ 저'라고 쓸 것이 아니라 '대표 편저자 ○○○'라고 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최 의원은 전했다.

특히 이동흡 후보자는 재판관 시절인 2011년 1월 헌재 청사 내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저작권법 위반 의혹을 받고 있는 문제의 책 출판기념회를 열어 논란이 된 바 있다.

헌재 측에 따르면, 당시 이 후보자가 책 출판기념회를 구내식당에서 하려고 하자, 상관인 이강국 헌재소장이 '개인적인 일이니 밖에서 하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헌재 연구관에게 사회를 보게 했던 것만 취소한 채 행사를 강행했다. 특히 이 후보자는 헌재 직원들에게 출판기념회에 직접 와서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책을 받아 가라고 말해, 사실상 '출석체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천 의원은 "헌법재판소는 최고법인 헌법에 관하여 재판기관과 해석기관의 지위를 동시에 가지는 국가기관"이라며 "이러한 헌재의 최고 수장 자리에 법을 위반한 이동흡 후보자가 오른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최강 검증팀' 꾸린 민주당, "법조인, 헌법학자, 심지어 보수단체도 반대"

국회 인사청문특위는 오는 21, 22일 이틀간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특위 위원장은 3선의 강기정 민주통합당 의원이 맡았다. 새누리당은 권성동 의원이 간사를 맡았으며 김재경·안효대·김성태·김도읍·김진태·강은희 의원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민주당은 최재천 의원이 간사를 맡았으며 박범계·서영교·박홍근 의원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진보정의당은 서기호 의원이 위원으로 참여해 특위는 총 13명으로 꾸려졌다.

2011년 1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다른 헌재 연구관들과 함께 쓴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의 헌법재판>(박영사) 표지.
ⓒ 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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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이 후보자를 반드시 낙마시키겠다는 방침인 반면 새누리당은 철저한 검증은 필요하나 낙마를 위한 정치공세 청문회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동흡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를 요구했던 민주당은 이 후보자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예고했다. 판사출신인 박범계 의원은 이 후보자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 보호 정신에 철저하지 않았고 상식적인 법 감정에도 반하는 등 결격사유가 상당히 많은 분"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보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극단적인 판결이 많았고, 보수라면 민족주의적이라고 해야 하는데, 친일 문제에 대해서 고전적인 법 이론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국민의 상식적인 법 감정에 반하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도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BBK 특검법의 경우 아홉 명의 재판관 중에 여덟 명이 찬성했는데 그중 유일하게 위헌을 주장했고, 일제위안부들의 국가 배상청구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에게 요구할 권한이 없다며 합헌을 강변하는 등 문제가 많은 분"며 "이렇게 처신한 분이 헌법재판소장으로 적합하겠느냐"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많은 헌법학자들, 실무가들, 법조인들, 심지어 헌재 내부에서조차 이 후보자의 지명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며 "오죽했으면 보수적인 단체에서도 이 후보자에 대해 안 된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지난 8일 극단적 보수 성향을 보인 이동흡 후보자 지명을 두고 보수단체들까지도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애국국민운동대연합·사법정의사회구현연대 등 11개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국민 정서에 위배된 친일 판결을 내린 이동흡 후보자의 명예로운 용퇴를 원한다"고 밝혔다.

'친일 판결'은 이 후보자가 2011년 2건의 헌법소원 사건에서 제시한 소수의견을 두고 한 말이다. 당시 헌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청구 사건에서 '정부가 한일협정상의 분쟁해결 절차조차 밟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반대의견을 통해 "국가에 그런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각하 의견을 냈다. 같은 해 헌재는 친일재산 국가귀속 특별법에 대해 "민족정기 복원과 3·1운동 정신을 담은 헌법 이념에 비춰 헌법에 부합한다"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 때도 이 후보자는 "친일 행위와 관계없이 얻은 재산도 있을 수 있지 않으냐"며 일부 위헌 의견을 냈다.

박범계 의원은 또 "이 후보자는 헌재 재판관 재임 시절 공사가 구분되지 않는 처신을 지속적으로 해왔다"며 "출판기념회를 청사 구내식당에서 한 것은 직원들에게 책 구매에 대한 부담을 지운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국비로 프랑스 방문할 당시 가족을 동반해서 여행을 했고, 외부 강연 시 사실상 헌법재판소의 연구직원들, 연구관들을 개인적으로 활용했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기도 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 후보자는 지나치게 보수성향으로 편중돼 있고 재판관으로서 자질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헌법 가치에 몰이해하다"면서 "헌재 내부에서조차 소장으로서의 자질 문제를 거론하며 '제발 이 분만은 막아달라'는 청원이 이어져 최강의 검증팀을 꾸려 이 후보자를 낙마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그의 지명 소식이 알려진 뒤 헌재 내부에서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판결 내용 뿐 아니라 그의 일방적인 리더십도 문제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이동흡 후보자는 법조계에서 '벙커 판사(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선임판사)'로 잘 알려져 있다. 정성호 대변인은 "'벙커' 판사 이동흡 전 재판관을 헌재소장에 임명한 것이, 혹여 박근혜 '벙커' 정부의 신호탄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국민들은 이명박 '벙커' 대통령을 제왕도 아닌, 그저 폭군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이 후보자가 ▲ 대구·경북(TK) 인사로 국민대통합에 위배되며 ▲ 재판관 당시 친일적 판단 성향 ▲ 유신정권에 대한 비호 의혹 ▲ 재판관 재임 시 권력남용 등을 문제로 삼고 있다.

이 후보자는 대구가 고향이다. 경북 출신인 박근혜 당선인과 이명박 대통령과 동향인 셈이다. 1987년 개헌 이후 6번의 대법원장과 4번의 헌재소장 인사가 있었지만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동향 출신의 사법기관 수장을 임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구·경북(TK) 출신인 노태우 전 대통령도 경남의 이일규 대법원장, 충남의 김덕주 대법원장, 충남의 조규광 헌재소장을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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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평화적 안보관 세워라"

 

"인수위, 평화적 안보관 세워라"
11일 국방부 필두로 통일외교안보 업무보고 진행
 
 
2013년 01월 11일 (금) 11:18:47 조정훈 기자 whoony@tongilnews.com
 

 

   
▲ 평통사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대한 통일.외교.안보부처 업무보고 시작에 즈음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국방부를 시작으로 통일.외교.안보부처 업무보고를 11일부터 받는다.

이에 즈음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하 평통사, 상임대표 강정구 등)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사무실(금융연수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민생을 살리려면 대결적 안보관을 평화적 안보관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남북관계를 전쟁 일보 직전상태로까지 몰아 간 5.24조치의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폐기를 촉구한다"며 "5.24조치의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도 남북관계 회복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국민 다수도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새 정부가 남북공동조사 또는 주변국과의 공동조사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개성관광 재개, 개성공단 활성화, 이산가족 상봉 등 경제, 인도주의적 협력은 물론 6.15, 10.4선언에 명시된 정치 군사적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임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남북의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를 개선하려면 이에 역행하는 대북 공격적인 작전계획과 한미연합 전쟁연습, 미사일 사거리 연장 등의 전력증강, 대북 전단 살포와 북한 인권법 등의 대북 압박책도 중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들은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을 즉각 중단할 것"과 "6자 회담과 한반도 평화포럼 동시 개최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 조순덕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의장이 '5.24조치 해제'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평통사는 "보수층의 지지로 당선된 박근혜 당선자의 앞 길에는 노태우 정부의 전향적 북방정책의 길과 김영삼,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의 길이 놓여 있다"며 "박근혜 당선자가 보수진영의 입장에 속박될 수도 있고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 전향적 대북정책을 힘있게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당선자가 자신의 결심에 따라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문제가 좌우될 수 있음을 명심하고 민족적 양심과 대의에 입각한 결단을 통해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와 통일의 이정표를 세운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이날 국방부를 시작으로 통일.외교.안보 부처의 업무보고를 받는다.

11일에는 국방부, 13일에는 방위사업청, 14일에는 외교통상부, 16일에는 통일부에 대한 업무보고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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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회장 방북, 미국은 대화를 선택했나

불철주야2013/01/11 08:54Posted by 동북아의 붉은_달

한쪽에서 대화와 협상을 재개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다른 한쪽에서 암살과 테러, 혹은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한 사회 혼란을 유도하며 급변사태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대화와 전쟁 중에 선택하라는 북한의 요구에 둘 다를 선택한 꼴이다.

 

구글 회장 방북, 미국은 대화를 선택했나

 

동북아의 문
http://namoon.tistory.com

 

리처드슨 일행은 미국의 <특사>인가

 

지난 10일 미국의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가 이끄는 9명의 방북단이 평양 방문을 마치고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방북단에는 에릭 슈미트 구글(google) 회장, 토니 남궁 박사(리처드슨 전 주지사 고문), 재러드 코헨 구글 아이디어 소장 등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지난 7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평양에 도착한 리처드슨 일행

 

이들의 방북은 지난 3일 알려졌다. 연초 유명 거물급 미국 인사의 방북으로 2기 출범을 앞둔 오바마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물론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3일 이들의 방북에 대해 ≪이 시점에서 방문하는 것이 유익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밝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는 북한 인공위성 발사 문제로 유엔 안보리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는 모습을 공식화하기 싫어서 보이는 외교 수사일 뿐이다.

 

오바마 행정부 1기 당시에도 지미 카터 전 대통령, 클린턴 전 대통령, 리처드슨 전 주지사 등 여러 거물급 인사들이 방북했지만 그 때마다 미국 정부는 개인적 방문이라고 발표해왔다. 눌런드 대변인 역시 7일 ≪이번 방문이 경솔한 것이라는 미국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이들이 돌아오면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평양으로 떠나기 위해 중국 베이징 공항에 도착해서 기자단에게 ≪북한이 현재 구속 중인 미국인 남성의 석방을 적극 요청≫하겠다고 하였다. 북한에 체포된 미국인 케네스 배 석방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북한에 체포된 미국인을 구하기 위해 사실상의 특사를 보내는 독특한 외교채널은 오바마 1기에서 종종 있어왔는데 이번에 다시 가동된 셈이다. 그는 아울러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도 회담하겠다≫고 하였는데 방북의 진짜 목적은 역시 북미 핵협상임을 드러냈다.


1994년 이후 수차례 북한을 방문해온 리처드슨 전 주지사의 방북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인 구글의 회장이 방북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에릭 슈미트 회장

 

에릭 슈미트 회장은 어떤 인물인가

 

리처드슨 전 지사는 슈미트 회장의 방북에 대해 ≪구글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에릭 슈미트 회장이 소셜미디어(social media) 관점에서 일부 경제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하였다.

 

슈미트 회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유력한 지원자이며 지난 2011년 10년 가까이 이어온 구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 최근에는 전 세계의 정치인들이나 사업 파트너,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는 등 주로 구글의 외부 관계업무를 맡아온 인물이다. 그는 인터넷, 모바일로 연결된 세계가 인류의 가난과 정치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구글과 북한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3월 북한 경제대표단 12명이 16일 동안 미국을 방문했는데 4월 1일 구글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때 이미 북한이 슈미트 회장을 초청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슈미트 회장은 방북 기간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해 학생들이 구글과 위키피디아로 자료를 검색하는 모습을 지켜봤으며, 인민대학습당과 조선컴퓨터센터를 둘러봤고, 북한이 자체 개발한 운영체제(OS)인 <붉은별>과 이를 탑재한 태블릿 피시(Tablet PC)를 살펴보기도 했다.

 

 

▲북한 군인들의 인터넷 사용을 관람하는 장면

 

슈미트 회장은 방북 후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방북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터넷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개인적 방문≫이었다고 설명하면서 ≪(북한)정부와 군대, 대학에서는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나 일반 대중은 여전히 이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주민의 복지를 위해 중요한 인터넷과 휴대전화 사용을 늘려달라고 강하게 촉구했다≫고 밝혔다.

 

북미 인터넷 기술 교류가 가능한가

 

미국 기업이 북한 주민의 복지 향상을 바란다는 건 어찌 보면 황당한 일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자본은 언제나 이윤만을 추구할 뿐이다. 구글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이 인터넷을 개방하면 자신들의 시장이 확대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인터넷 확산을 통해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고 자본주의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아마 인터넷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구글은 북한에 상당한 기술 협력과 투자를 제안했을 수 있다. 실제로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방북 후 기자회견에서 ≪기술 교류에 대해서 북한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을 경제봉쇄하고 있는 지금 구글이 북한과 기술 교류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미첼 리스 워싱턴대 총장은 미국의 소리(VOA)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기술 이전이 유엔과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된다고 지적하며 ≪슈미트 회장이 왜 귀중한 시간을 구글 주주들의 이익과 관계없는 방북에 할애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기적인 관광≫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역으로 북미 관계가 조만간 급진전하면서 경제봉쇄가 풀릴 징후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Bloomberg Businessweek)>는 1월 7일 <왜 구글의 에릭 슈미트는 북한에 가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상품 투자의 귀재이자 월가의 전설로 불리는 짐 로저스(Jim Rogers)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지난 5월 인터뷰를 통해 ≪남북이 곧 통일을 이룰 것이며 한반도는 매우 흥미로운 곳이 될 것≫이란 예언을 했다고 하였다. 물론 짐 로저스는 전부터 남북 통일이 멀지 않았다고 주장한 낙관론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렇다면 리처드슨 전 주지사와 슈미트 회장의 방북을 북미 관계 급진전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을까?

 

방북은 정말 성공적이었나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방북 후 기자회견에서 방북기간 이용호 외무성 부상 등 북한 외무성 관리들과 세 차례 정도 만나 대화를 나눴으며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중단 ▲미국인 억류자에 대한 인도적 대우 ▲휴대전화와 인터넷 사용 확대 등 세 가지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북한 방문은 매우 생산적이었고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기자들이 대거 몰린 회견 장면

 

그러나 실제로 얼마나 성과가 있었는지는 미지수다. 당장 방북 전 케네스 배 석방을 적극 요청할 것이라고 했지만 석방에는 실패했고 인도적 대우를 요구한 것에 그친 것으로 봐서 부정적인 기류도 감지된다. 북한은 미국이 들고 간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미국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중단을 요구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 즉 대북적대정책 철회를 지불해야 하는 데 과연 미국이 이를 약속했을지 의문이다. 당장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 연례적으로 진행되는 키리졸브 한미연합훈련을 폐기하지 않으면 북한이 미국의 정책 변화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한미 군당국은 2월 초부터 약 4주간 미 해병 제3원정기동군(3MEF)이 참여하는 동계 연합훈련을 한국에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있는 훈련을 폐기하기는커녕 없던 훈련까지 신설하는 마당에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확대는 어떨까? 인터넷의 경우 북한이 체제 유지 차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쉬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휴대전화의 경우 북한은 이미 이집트의 오라스콤을 통해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이 휴대전화 확대를 요구하려면 경제제재부터 풀어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이 경제제재 해제 카드를 북한에 제시했을까? 북한 인공위성 발사를 빌미로 추가 제재를 하겠다며 한 달 가까이 유엔 안보리를 붙들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닌 듯하다.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작년 재선 성공으로 2기를 맞는 오바마 대통령이 대북 대화론자들인 존 케리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을 지명한 것을 두고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환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중앙정보국장에 <암살의 황제> 존 브레넌이 지명된 것을 보면 쉽게 단정 지을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존 브레넌 지명자는 백악관 대테러 및 국토안보 보좌관 출신으로 비밀 드론전쟁을 통해 중동지역에서 암살과 테러, 고문으로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작년에 한반도를 위기에 몰아넣었던 이른바 <동까모 사건>과 유사한 작전들이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암살의 황제 존 브레넌

 

군국주의 부활을 전면에 내걸고 압도적 지지로 집권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튼튼한 안보와 강력한 안보가 가장 기초적인 복지≫라는 희한한 철학을 가진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 이들의 등장으로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의 완성을 코앞에 둔 미국이 쉽게 대북적대정책을 폐기하고 이제 와서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할까?

 

물론 북한이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공개하며 군사력을 시위하고, 인공위성 발사로 과학기술수준을 드러낸 마당에 미국이 쉽게 전면전을 선택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쪽에서 대화와 협상을 재개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다른 한쪽에서 암살과 테러, 혹은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한 사회 혼란을 유도하며 급변사태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대화와 전쟁 중에 선택하라는 북한의 요구에 둘 다를 선택한 꼴이다.

 

한국의 새누리당 정권과 미국은 절대 스스로 대북적대정책을 폐기하지 않는다. 대북적대정책은 외부에서 분쇄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긴장 고조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국 정부의 특사인 장즈쥔 외교부 부부장에게 ≪추가적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대드는 용감한 박근혜 당선자가 대북적대정책을 펼칠 경우 제동을 걸어야 한다. ≪국제사회 공조를 통한 제재 등 (대북)고립정책을 펴야 한다≫며 구시대적 발상에 젖어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김장수 간사 역시 요주의 인물이다. 당장 2월 초 한반도에 군사적 위기를 조성할 한미 해병대 동계 연합훈련에 대해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오키나와에 주둔중인 제3원정기동군

 

올해로 환갑을 맞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막바지 싸움이 시작되었다. (2012.1.11.)

 

 

 

더 많은 <동북아 평화번영 프로젝트 문>의 글을 보시려면 이곳을 클릭!

 

 

* 팟캐스트 <주간 정세동향>을 들으시려면 아이튠즈에서 검색하시거나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http://itunes.apple.com/kr/podcast/jugan-jeongsedonghyang/id519727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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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내려놓고 쉬는 것

명상은 내려놓고 쉬는 것

 

조현 2013. 01. 10
조회수 658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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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 때 내려놓지 않으면 정작 필요할 때 들기 어렵습니다.”

 

 세계적인 위파사나 수행자인 아잔 브람(62) 스님이 방한해 10일 서울 견지동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부터 동국대에서 1주일간 ‘세계 명상힐링 캠프’를 여는 그는 “명상은 무엇을 위해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뜸 앞에 있던 물컵을 들어 보였다.

 

 “컵을 오래 들고 있을수록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죠. 팔이 아파 컵을 편안하게 들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죠? 내려놔야 합니다. 30초만 쉬었다가 다시 물컵을 들면 훨씬 가볍고 쉽죠. 이렇게 내려놓는 게 바로 명상입니다. 피곤할 때 단 5분만 명상에 투자하면 1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을 15분 만에 끝낼 수 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물리학도로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타이의 고승인 아잔 차(1918~92) 스님에게 귀의해 9년 동안 수행한 뒤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보디니야나 수도원을 세워 명상을 지도하고 <성난 물소 놓아주기>,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같은 베스트셀러 책을 냈다. 순백의 피부를 지닌 그는 “실은 잠자리를 같이하던 여자친구가 ‘섹스보다 명상이 더 재미있다’고 말해 불교명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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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많은 위파사나 수행자들 중에서도 선정 체험에 이르게 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이번 힐링캠프의 주제도 ‘선정 체험과 실제 깨침’이다. 그는 ‘선정 체험으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올챙이는 개구리가 돼서 뭍으로 나온 뒤에야 늘 있던 무언가, 곧 물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처음으로 물이 뭔지 이해하게 된다. 깊은 명상 경험인 선정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머리에 묶인 막대기 끝에 매달린 당근을 쫓아 끝없이 달리는 당나귀에 현대인을 비유했다.

 

 “당나귀는 계속 당근을 따라가지만 아무리 빨리 가도 당근은 머리 앞에 있죠. 인생의 성공과 쾌락을 좇는 게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그러나 당나귀가 멈추면 반동 때문에 오히려 당근이 입으로 쏙 들어오지요.”

 

 그는 “자비심으로 가슴을 열고 기다리고 있으면 행복과 기쁨이 저절로 우리에 온다”며 멈춤과 쉼이 주는 축복을 일깨워주었다. “현대인은 가만히 고요하게 있는 법을 몰라요. ‘빨리빨리’만 있고 ‘천천히’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서둘러 일을 하려다 보면 실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한국 사람은 일하는 것은 잘 아는데 쉴 때는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자신을 학대하는 한국인들에게 특별히 당부했다. “스스로를 평화롭고 관대하게 대하세요.”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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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VS 박근혜' 첫 번째 대결 '특별사면'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 특별사면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각계각층에서 공식,비공식적으로 사면을 탄원하거나 요구하고 있어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사실 어느 계층에서 임기 말 특별사면을 그렇게 요구하고 있는지는 밝혀진 바 없습니다.

MB 정권의 마지막 특별사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강행할 듯 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말 특별사면의 문제점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친인척과 측근을 위한 MB 셀프 특별사면'

이번 이명박 대통령이 하려는 특별사면의 가장 큰 핵심 쟁점은 사면 대상자가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이라는 점입니다.
 

 

 


특별사면 대상자로 검토 중인 인물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김윤옥 여사 사촌 김재홍씨가 있고, MB정권을 탄생시킨 주역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선신일 세중나모 회장, 신재민,최영 등의 최측근이 있습니다. 결국, 친인척과 최측근이 범죄를 저지르고 복역 중인 상황에서 그들을 특별사면을 통해 청와대에서 물러나기 전에 풀려나게 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이번 특별사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역대 정권에서도 특별사면이 이루어졌지만, 자신과 관련한 친인척과 측근에 대한 특별사면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구속된 김영삼 대통령 아들 김현철을 특별사면 해줬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구속됐던 김대중 대통령 아들 김홍업를 2005년 8월 사면해줬습니다. 이처럼 당대 정권에서 전직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을 특별사면으로 풀어준 적은 있었습니다.

또한, 역대 대통령도 한두 명의 측근을 재임 기간에 풀어준 적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대 정권 어디에서도 지금처럼 대규모로 자신의 친형과 아내의 사촌 등 친척과 최측근을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하지는 않았습니다. [각주:1]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셀프 특별사면을 통해 자신의 친인척을 마지막에 구해주고 가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 독일은 60년 동안 단 4차례만 사면 실시'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말 특별사면의 문제점이 자신의 최측근이라는 사실을 알아봤으니, 우리는 조금 더 나아가 특별사면이 남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문제점도 함께 짚어봐야 할 듯싶습니다.

한국의 대통령 특별사면은 왕조시대 임금이 내리는 '성은'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죽음에 문턱에서 풀려난 자들은 (옛날에는 옥중 수감이 길수록 죽는 확률이 높았으니) 자신을 풀려준 임금을 향해 '만세'를 부르고 ' 은인'이라고 지칭했지만, 사실 현대의 특별사면은 어떤 은혜보다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더 많습니다.

 

 

 


60년간 단 4차례만 사면을 시행했던 독일은 사면을 '수사과정에서 나타난 오류에 대한 시정을 위해서만'이라는 단서가 있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면이 범죄자를 풀어주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잘못된 수사과정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겠다는 제도로 씌인다는 점입니다.

덴마크는 행정부 장관 출신 인사의 사면을 금지하고 있으며, 프랑스도 부정부패 공직자와 선거법 위반 사범의 사면을 아예 금지해 놓고 있습니다.

이런 외국의 사례와 반대로 대한민국은 정치인은 물론이고, 그 수형기간에서부터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 특별사면자 수감기간 (조사기간:노태우 정권~참여정부) 출처:세계일보

 


미국은 실형 선고를 받고 5년이 지나야 가능한 사면이 대한민국에서는 아예 30일도 수감 되지 않은 정치인들에게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 역대 정권에서 이루어졌던 특별 사면에서 1개월 미만 특별사면자는 21명이나 되었고, 36개월이 넘은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특별사면은 이처럼 법적인 오류를 시정하려는 조치도 없이 수감기간에 대한 불평등마저 자행하는 대통령의 초법적인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하고, 앞으로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초법적인 특별사면이 더는 이루어지지 않도록 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각주:2]
 

'이명박 VS 박근혜의 대결, 그 첫 번째 라운드'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우리가 생각할 문제는 특별사면 그 자체는 아닙니다. 역대 정권에서도 이루어졌던 특별사면이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이라도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희망은 별로 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라디오 연설에서 “제 임기 중에 일어난 사회지도층의 권력형 부정과 불법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대로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등 재임기간 특별사면은 없다고 당당하게 밝혔던 인물입니다. 이렇게 말했다고 그가 지키지 않는 것을 비난해봤자 어쩌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그의 '특별사면'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박근혜 당선인의 행동입니다. 박근혜 당선인은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노무현 대통령이 시행했던 특별사면을 공개적으로 반대했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당선인은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 대통령이 실세들의 부정부패나 비리를 사면하는 것은 사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발하면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입법을 해야 한다."
" 사면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지만 대통령 마음대로 하라고 주어진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녀의 이런 발언은 정당하면서 타당한 주장입니다. 문제는 과연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렇게 요구하고 반발했던 그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주장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만약 하지 않는다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던 전례가 될 것이고, 만약 한다면 앞으로 이명박 대통령 퇴임 이후 MB 정권수사를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기간 '정권교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과거 정권처럼 이명박 정권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어느 정도는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속해있는 새누리당이 결국 이명박근혜 정당이기에 그녀의 말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면 반대로 철저하게 수사함으로 그녀가 MB정권과의 차별성이나 원칙주의자라는 그동안의 말을 제대로 보여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명박 대통령이 순순히 그녀의 공격을 가만히 앉아서 당하겠느냐는 점입니다. 본인 스스로는 아니겠지만 분명 측근이나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 박근혜 당선인을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여 '박근혜와 이명박은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해서 오히려 수사 물타기를 하거나 박근혜 정권과의 막후 협상 내지는 조율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각주:3]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긴급 간담회가 열린 음식점에서 소주잔으로 건배를 하고 있는 이명박,박근혜 후보, 출처:국회사진기자단 문화일보

 


보수와 진보의 정권이 달랐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공격만 하면 되지만, 같은 편일 경우에는 어떤 방식의 공격을 해야 적합한 공격일지 고민이 되는 동시에 내부에서 치고 올라오는 은밀한 뒤통수 치기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놓고 박근혜 당선인의 고민과 행동은 앞으로의 모습을 암시하거나 예상할 수 있는 첫 번째 시험무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새로운(?) 정권이 탄생합니다. 박근혜 당선인의 말대로 진짜 '정권교체'인지, 아니면 그저 국민 앞에서만 정권교체이고 뒤로는 함께 소주잔을 나누는 긴밀한 사이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국민이 그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 이제 박근혜 당선인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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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부정선거' 의혹 3탄, 국정원과 선관위

박근혜 '부정선거' 의혹 3탄, 국정원과 선관위
(서프라이즈 / 두루객 / 2013-01-10)


거의 매일 종편방송을 통해 박근혜 후보를 추앙하고 '박근혜 세력' 아니면 국가전복 좌빨로 치부해 버렸던 '수꼴 윤창중'에 대한 대변인 인명이 박근혜의 첫 인선이었다. 식민사관 및 5.16 쿠데타 미화 '교과서 포럼'으로 유명한 박효종 교수와 유민봉 등 뉴라이트 인사까지 인선했다.

장순흥,하지원,윤상규 등 경제민주화에 걸맞지 않는 불공정 거래로 얼룩진 인사들이 포진되었는가하면, 비리전력 및 지역주의 막말로 얼룩진 김경제 - 한광옥 등 호남인사 등용으로 국민대통합 모양새를 갖추려는 잔꾀도 선보였다.

민주당 지도부가 무난하다고 평가했던 김용준 인수위원장도 헌재소장 당시에 '5.18특별법 위헌 의견'의 전력도 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변명이 있은 이후였다.

밀봉인사로 비판받는 박근혜 인수위에 대한 이런 저런 검증이야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부정선거 의혹에 모르쇠하고 '박근혜 당선'을 기정사실화하는 위에서 검증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문재인 지지이유로 '김여진 방송' 금지를 취했던 MBC나 박근혜 지지자 일베의 여론조작 의혹을 보고 있자면 MB당선 때보다 싹수가 노랗다는 느낌도 있지만 이들 모두는 또한 '부정개표' 대선 의혹에도 연루되어 있다. 박근혜에 대한 검증은 '대선 부정개표' 의혹과 연관지어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박근혜 '부정개표' 의혹 3탄

'부정개표' 대선 의혹이 정권 차원의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보여지는 정황들이 나타나는 등, 날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는 사례들이 증가되고 있다.

1. 첫번째로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던 일베에서 '박근혜 지지자들'의 게시물이 국정원 사건 시점과 동시에 모두 '자진삭제' 되었다는 사실이다.

프레스바이블의 보도에 따르면 '자진 삭제' 이전 일베의 몇몇 회원들이 국정원에 입사되었다고 자랑했는가하면, 선거 이전 '51.6' 득표율의 의미를 암시한 게시물이 캡쳐되어 전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로 볼 수도 있겠지만 국정원과 연계된 일베 회원들이 박근혜 캠프와 공감하는 박근혜 지지 단체라는 점에서 그들이 암시하는 '51.6' 숫자가 박근혜 득표율 조작과 연관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그냥 지나치게 되지 않는다.

 

더구나 국정원과 연계된 일베 회원들이라면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사건과 '일베 및 십알단' 그리고 '부정개표' 의혹들이 따로 떼어 생각되지 않는 유기적인 것으로 봐야한다. 국정원 또한 '부정선거'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주변 친구들이 박근혜 후보를 찍지 않게된 결심에는 새누리당 '임명장 남발'의 더러운 추태들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후로 한달이 지나서야 박근혜의 임명장 논란이 새누리당 '십알단' 불법 파문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가벼이 넘어볼 '임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2.부정 개표 의혹 사례의 두번째로 지상파 방송사들의 출구조사 방식이다. 각 방송사들이 자체 조사했던 과거와 달리 왜 이번 선거에서는 '3사 합동'으로 조사했냐는 것이다. 정권의 방송장악 문제로 얼룩져 있는 방송사들이고 SBS 또한 물에 물탄 듯 새누리당에 편향된 면도 없지 않았다.

실상 방송3사들의 출구조사만 박근혜 우위였을 뿐, YTN을 비롯해 여러 언론에서는 문재인 우위로 예상했다.

1. 삼성- 문재인 50.8%, 박근혜 48.6%
2. 한국리서치- 문재인 47%, 박근혜 42%
3. 리서치 플러스 - 문재인 50.4%, 박근혜 48.1%
4. 리서치뷰, 오마이뉴스 - 문재인 50.4%, 박근혜 48.1%
5. YTN - 문재인 49.7-53.5%, 박근혜 46.1-49.9%
6. 미국 CIA, 문재인의 당선 유력을 예상하고 백악관에 보고

선거 당일 오후3시 문재인 후보가 출구조사에 앞선다는 소식 이후 뒤집어졌다는 결과는 지금 생각해봐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50대를 비롯해 40,30,20대 모두 골고루 투표장에 갔고, 통상 20대들의 투표 시간의 빈도가 오후임을 감안할때 마감시간에 이르러 50대가 결집해 뒤집어졌다는 설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마감시에 중장년층들이 집결하였다면 오전 시간의 높은 투표율은 누가 주도했다는 말인가. 청년층들의 투표 습관이 오전 시간으로 갑자기 변모라도 했다는 말인가.

막노동하는 50대, 휴일에도 불구 일찍 출근해야하는 50대, 투표 날짜도 몰랐을 50대 노숙자, 선거에 관심도 없는 50대, 문재인 지지했던 30프로의 50대임을 감안할때 40 -60대에 비해 높은, 50대의 90% 투표참여로 박근혜가 당선되었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는 조작적인 주장이다.

선거 조작이 있다면 이 부분에서 가장 의심된다. 호남을 제외한 50대층의 문재인 지지율이 20프로도 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설득이 안된다.

3. 선거부정 의혹의 세번 째로 중앙선관위의 거짓된 해명의 태도이다. 전자개표기였음에도 '투표지 분류기'라고 호도했고, 보궐선거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전자개표기를 동원한 것이다.

전자개표기는 제어용 컴퓨터로 통한 외부조작(해킹)이 가능하고, 전자개표기를 통과하면서 혼표, 무효표가 발생할 수 있음에도 이번 선거에서도 사용하게된 것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4. 이번 선거에서 중앙선관위 전산시스템 및 보안관제를 선관위 자체적으로 급거 교체했다는 것도 수상한 점이다. 외부 전문업체에 용역을 맡기다간 뭔가의 음모가 노출되지 않겠느냐는 의구심이다.

선관위는 또한 야당 측 참관인들의 문제제기에도 여러차례 무시했다고 한다. 야당 측 참관인이 없는 속에서도 투표를 강행했는가면, 제대로 분류되지 않는 투표 용지 사례 및 집계가 있었다는 제보가 여러군데서 나오고 있다.

5. 개표원의 이상한 행동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개인 가방에서 흰 네모난 뭉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거나. 개인 가방을 들고 문 밖으로 오고가는 행동도 목격되었다고 한다.

6. 개표 초반부터 박근혜 표가 일찍부터 앞서간 것도 이상한 점이다. 부재자 및 해외동포 투표가 먼저 개표되어 야당 후보가 먼저 앞서간 것이 그 동안의 장면이었지만 이번에는 부재자 개표결과마저 방송사들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7. 방송사가 개표 20%에 박근혜 당선 유력, 개표 40%도 못미쳐 박근혜 당선 확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 투표수보다 개표수가 더 많은 것도 의문이다.

8. 뒤늦게 시작된 서울 - 수도권 및 부재자 개표를 감안할때, 로지스틱 함수가 불규칙하게 변화되어야 정상이다. 누군가의 신묘한 조합적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그래프 움직임이다.

9. 박근혜 득표율 수치 또한 인위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이상한 점이었다. 박정희의 5.16을 연상시키는 51.6%의 득표율, 호남에서 기대한 10% 득표율, 40프로 턱걸이에 선 문재인 후보의 PK지역 39% 득표율, 대구 경북에서 20프로 턱걸이에 선 19프로의 득표율 수치 모두가 정치적 의미를 넣으려는 누군가의 조작으로 보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10. 새누리당이 내란죄 처벌을 운운하며 오바하고 있는 점도 매우 수상하다. 도둑이 제발 저려 사전에 의혹제기를 차단하려는, 누리꾼에 대한 협박이다. 군사 쿠데타로 내란죄를 저지른 박정희 후예들의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부정선거가 맞다면 '전산조작' 가능성 높아
(서프라이즈 / 두루객 / 2012-12-25)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때 부정선거 억지 주장으로 재검표를 요구했던 한나라당처럼 민주당도 똑같이 이번 선거 결과에 그런 요구를 한다면 그들과 무엇이 다르냐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에 재검표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할 것이다. 그때에도 부정선거를 상상했던 당시의 한나라당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집권해서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것이 과학적 태도다.

더욱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디도스 공격' 부정을 저질렀던 새누리당 정권이었기에 하물며 이번 대선에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넘어가는 것은 어딘가 찜찜하기 그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할때 20대 30대 40대 모두에서 앞섰고 50대에서도 30프로 이상의 표를 얻은 문재인 후보가 5 -60대 이상의 높은 투표율의 결집으로 패배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통상 60대보다 낮은 투표율의 50대였는데 50대가 60대보다 많은 90프로라니... 필자 주변에서도 투표하지 않는 50대, 문재인 지지의 50대도 많았던 상황과 비춰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50대의 90프로 투표율이 가능이라도 한 일인지, 조작이 있다면 이 부분에서 가장 의심이 된다,

더욱이 선관위 조사에서는 80프로 투표율을 예상했다. 통상, 투표율이 높을수록 예상투표율보다 10프로 낮아지는 것이 통계였는데 이번에는 4프로 낮아진 76% 투표율로 결과되었다. 오후3시까지 출구조사에서 문재인 후보가 앞선다는 소식이 있자 투표 마감시에 6프로가 갑자기 상승하는 것도 이상한 점이다.

제 아무리 중장년층들이 그 시간에 집결했다해도 그 만큼의 수치까지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마감시에 중장년층들이 집결하였다면 오전 시간의 높은 투표율은 누가 주도했다는 말인가. 청년층들의 투표 습관이 오전 시간으로 갑자기 변모라도 했다는 말인가

문재인 후보가 출구조사에서 앞선다는 소식이 있자 당시의 새누리당이 한사코 부정하는 모습도 이상한 점이었다. 지지자들의 투표결집을 위해 이기고 있더라도 표정관리하거나 지고 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정당간의 전략이었는데 새누리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민주당이야 충성도 높지 않는 지지자들의 투표 참여를 위해 접전이거나 약간 앞선다는 선전을 할 수 있지만 새누리당은 총선때만 해도 "우리가 지고 있다"며 쇼까지 했다. 그런 새누리당이 대선에서 반대로 간 것은 결론을 미리 정해놓으려는 선거조작에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지울 수 없다.

이 번 대선에서는 처음부터 여론조사 기관의 매수설 및 조작설, 또는 부실 조사라는 말이 빗발쳤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안철수 캠프 할 것 없이 이러한 조작설 제기가 난무했다. 그만큼 뭔가가 있다는 말이다.

미리부터 여론조사로 결론짓고 선거 결과를 맞추어 나간 것이 아닌지, 박근혜 당선 결과까지 어딘가 찜찜함을 금할 수 없다. 뭔가의 각본으로 척척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라할까? 5-60대 결집으로 박근혜 당선이라는 이 과정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뭔가의 기획으로 맞아떨어지는 이후의 준비된 보수진영의 어색한 환호도 느껴졌다.

차라리 20만표나 30만표 차이로 박근혜가 당선되었다면 부정선거 의구심이 들지 않겠지만 100만표 차이의 결과를 볼때 오히려 의심된다. '재검표 요구'의 가능성마저 차단하려는 조작이 아닌가 의심케 했다.

개표 50프로도 넘지 않는 시점에서, 서울시 지역 개표가 10프로도 되지 않는 그 시각에 '박근혜 유력'으로 결론을 낸 것도 미심쩍은 부분이었다. 뒤늦게 출발한 서울 지역의 개표가 진행될수록 '박근혜 - 문재인'의 표 차이가 줄여져야 정상인데 51.6 대 48의 수치가 변하지 않았던 상황도 개표 조작을 의심케 했다.

박근혜 득표율 수치 또한 인위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이상한 점이었다. 박정희의 5.16을 연상시키는 51.6%의 득표율, 호남에서 기대한 10% 득표율, 40프로 턱걸이에 선 문재인 후보의 PK지역 39% 득표율, 대구 경북에서 20프로 턱걸이에 선 19프로의 득표율 수치 모두가 정치적 의미를 넣으려는 누군가의 조작으로 보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MB정권의 조작선거가 맞다면 무슨 방법으로 할 수 있었을까? 개표 과정에 야당 쪽 참관인이 있다하여 그 분들이 딱짤라 민주당을 위해 뛰는 것이라 말할 수 없는 바, 개표 과정의 의혹도 부정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박근혜 당선에 부정선거 의혹이 있다면 전산 시스템의 조작이 아닌가 생각된다, 디도스 공격도 서슴치 않던 MB정권이, 정권의 운명이 걸리게될 대선 선거에서 그 같은 치밀한 조작을 아니할 것이라 믿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두루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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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대, '정수장학회 저격수' 한홍구를 만나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1/11 08:32
  • 수정일
    2013/01/11 08: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신년 인터뷰]한홍구 정수장학회 공대위 집행위원장

김도연 기자 | riverskim@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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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1.10 07:40:17

 

역사학이 발 빠른 학문은 아니지만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1년 동안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공동대책위원회의 집행위원장으로서 한 교수는 박 당선인의 정수장학회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왔고 MBC와 부산일보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숱한 대중 강연을 다녔다.

'2012년에 가장 뜨거웠던 인물'로 한홍구 교수를 꼽은 <미디어스>는 8일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자신의 서재를 둘러보고 있다 ⓒ미디어스

멘붕의 시대 속에서 힐링이 난무하고 있다. 48%가 겪고 있는 고통과 신음소리는 SNS를 통해서 쉽게 느낄 수 있다. '정수장학회 저격수' 한홍구 교수는 48%가 그랬던 것처럼 '멘붕'을 겪지 않았을까? 그는 "(선거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지만 9월부터 이대로 가면 질 것이라는 예감을 했기 때문에 큰 멘붕을 겪지 않았다"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교수가 집행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수장학회 공대위는 지난해 10월 박근혜 당선인의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에 맞불 기자회견으로 대응하며 '정수장학회 끝장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역사왜곡'에 침묵하고 있는 타 지식인과 다르게 한 교수의 꾸준한 사회참여는 권력의 사냥개가 된 언론에 자각을 촉구한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한 공로로 지난해 12월 '올해의 송건호 언론상'을 받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은 "사회 전방위에 걸쳐 여러 현안의 역사적 연원을 파헤치고 사회문제와 병리현상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의 노력에도 민주‧진보 진영은 참패했다. 한 교수는 이번 대선의 패인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그는 '친노'의 반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일갈했다. 인터뷰 내내 차분했던 그는 친노와 노동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격앙된 목소리로 크게 꾸짖었다.

"'친노'가 노동문제의 해결 없이 한국의 민주화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지난 몇년 동안 늘 떠든 거지만 김주익의 변호사는 노무현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 김주익은 목을 매달았고 노무현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친노가 이 지점을 뼈아프게 반성을 해야 한다…(중략)…자칭 진보라는 민주당과 지식인, 언론이 손을 놓고 있었으니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는 최근에서야 사태의 심각성이 불거진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 문제를 방치한 언론과 지식인의 태만을 비판했다. 한 교수는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이라며 진보 언론과 지식인, 그리고 민주당에 대한 쓴소리를 이어갔다.

저격수의 명성답게 한 교수는 "이번 박근혜 인수위 인선은 불통과 오만" "윤창중은 함량 미달" "통제에 대해 (침묵하는) 기자들은 권력의 YES맨이 될 것" "김재철과 짝짜꿍했던 이들의 만행을 기록한 흑서가 필요하다" 등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기자가 '역사의 진보'에 대해서 묻자, 그는 뜸을 들이며 "대한민국이 겪었던 20세기 백 년 중 단 3년만이 민주정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일 수도 있다"며 미래에 대한 비관보다 현재에 대한 우려를 더 내비쳤다. 그의 지적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가져올 미래는 역사의 정체일까? 한 교수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양극화가 더 고착되고 80년 광주 도청에서 총 들고 지킨 이들의 죽음은 개죽음이 될 것"이라며 "스스로 역사의 주인으로 참여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전문.

"민주당과 친노의 반성, 찾아볼 수 없어…노동문제 성찰 없다면 민주화 불가능"

미디어스(아래 미): 대선 이후 혹시 '멘붕'을 겪었나?

한홍구 (아래 한) : 기대를 많이 했지만 이대로 가면 진다는 예감이 있었기 때문에, 대선이 끝난 후 '멘붕'까지는 아니었다. 물론 당일에는 투표율이 높게 나왔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하면 진다'는 인식을 9월부터 계속 갖고 있었다.

미 : 한 교수가 보기에 이번 대선의 패인은 무엇이었나?

한 : 민주당이 하나로 움직였다고 생각지 않는다. 또, 지식인들도 생각 외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SNS에서 소시민들이 죽어라 하고 열심히 싸웠다.

미 : 과거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지지했던 50대가 변했다는 평가가 있다.

한 : 일단 민주정권 10년 동안에 상처 받았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민주정권이 그들에게 상처를 준 것일 수도 있고 수구 언론이 덮어씌운 것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애써 눈감아왔다. 그 50대의 상당수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탄생할 때 지지표를 던졌던 분들이었다는 데서 민주당이 뼈아프게 반성을 해야 한다. 하지만 총선과 대선 이후 반성도 없었고 대책도 없었다. 참 절망스럽다.

 

 

   
▲ (부산=뉴스1) 전혜원 기자=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대선후보가 계사년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이번 참배행사에서는 노건호씨와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 참여정부 인사, 전국에서 모인 지지자들을 비롯해 많은 인파가 모였다. 2013.1.1/뉴스1

 

미 : 민주·진보 진영의 패배 후유증이 크다.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한 : 솔직하게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망정이지 사실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국회의원 출마도 못할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노무현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와 친노들이 가지고 있는 자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반성을 할 기간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충분했다. 4·11총선이 그렇게 됐는데 그걸 이겼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래서 선거 결과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멘붕이 심하지 않았다.(웃음)

미 :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한 : '친노'가 노동문제의 해결 없이는 한국의 민주화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지난 몇년 동안 늘 떠든 거지만 김주익의 변호사는 노무현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 김주익은 목을 매달았고 노무현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친노가 이 지점을 뼈아프게 반성을 해야 한다. 하지만 반성을 하지 않는다. 민주정권 10년을 겪은 이들, 살림살이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민주주의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아무런 준비 없이 나왔다. 경제 민주화라는 건 결국 삼성개혁과 노동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 빼놓고 경제민주화하자는 데 먹히겠나? '차라리 박근혜가 시혜적으로 해주는 게 나아' 그런 생각으로 50대가 투표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박근혜가 더 잘할 것 같다.(웃음) 민주·진보 진영이 허물어진 건 민주와 노동이 따로 갔기 때문이다. 밑바닥부터 노동문제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성찰이 없다면 5년 후에 또 진다.

박근혜 당선인의 인선…"대변인에 윤창중, 언론인들 치욕스럽지 않나?"

미 :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원회 인선을 보면 주요 요직에 극우적 인사들이 포진됐다.

한 : 박정희가 18년을 집권했다. 사람들은 박정희를 보고 '용인술의 천재'라는 말을 한다. 한 번 믿은 사람은 확실하게 밀어주고 상황을 봐서 그 자리를 바꿔서 충성 경쟁을 시키기도 하고. 하지만 용인술 천재의 말로는 어땠는가? 10·26이 왼팔과 오른팔이 싸워 가지고 발생한 사건이다. 말년의 박정희는 정말 눈이 어두웠고 불통과 독선만 가득했다. 박근혜가 보고 배운 박정희는 그 마지막 시기, 즉 가장 나쁜 시기의 박정희다. 이번 인사도 그의 불통과 오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 (서울=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일 오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참배한 후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2013.1.1/뉴스1

 

미 : 대표적인 인물이 윤창중과 이동흡이다.

한 : 역시 박정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는 중정부에서 사람을 두들겨 패던 사람을 정면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옛날 중정부에서는 사람을 잡아다 두들겨 팼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조지는데 흔하게 쓰이는 수단이 바로 '말과 글'이다. 윤창중은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는 논리로, 가장 천박하게 사람을 조진다. 말을 세게 하더라도 내용과 품격이 있어야지. 그런 면에서 윤창중은 함량 미달이다. 이동흡 역시 법조 내부 평가가 매우 나쁜 인물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안에 대해 합헌 의견을 내는 등 재판관으로서의 자질도 부족한 사람이다. 이런 인사가 주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짧은 5년 동안 권력 누수 없이 권세를 누리기 위해 처음부터 강경하게 밀어붙이겠다는 박근혜의 의지가 담겨 있다.

미 : 박 당선인은 기자들과의 스킨십을 멀리하고 있다. 인수위 기자실도 제한적으로 배분하고 있다.

한 : 박근혜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는 태생이 공주고 여왕이다. 그러다보니 대화와 토론은 찾아볼 수 없고 명령과 복종하는 관계만 있다. 애초에 대화와 토론이 불가능한 사람이다. 굉장히 위험한 사람이다. 이렇게 통제를 할 경우, 기자들은 권력에 대해 예스맨의 역할만 할 것이다. 정권을 잡기 이전부터 환관이니 내시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언론인이라고 갖다 쓴 게 윤창중이다. 난 외려 언론인들에게 묻고 싶다. 윤창중 같은 사람을 대변인으로 뽑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가? 내가 언론인이었다면 치욕스러웠을 것이다.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투쟁, 우리 공대위는 끝까지 갈 것"

미 : 그간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투쟁을 했다. 성과가 있었다고 보나?

한 : 성과라고 할 게 있는지 모르겠다. 총체적으로 볼 때, 정수장학회가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이슈화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사실을 모르거나 과거의 일로만 치부하고 있다. 정수장학회의 문제의 본질은 MBC와 경향신문이다. 최필립과 이진숙의 대화록이 공개된 것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의미를 모르는데, 이는 MBC를 민영화하겠다는 말 아닌가? MBC가 민영화가 될 경우 현직 대통령이 MBC지분의 30%를 갖는 게 된다.

미 : 정수장학회 공대위 활동은 현재 어떠한가?

한 : 대선 끝나고 정식으로 모이진 못했다. 하지만 계속 갈 것이다. 정수장학회 공대위는 문재인 후보가 선거에서 이겼더라도, '시민들을 위한 장학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는 그 싸움이 조금 더 어려워진 것일 뿐이다. 대통령이 누가되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장물은 장물이고 뇌물은 뇌물이니까. 우리는 끝까지 갈 것이라는 걸 명시하고 싶다.

미 : 박근혜 임기 내에 MBC민영화가 시도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는데?

한 : 박근혜가 자기 임기동안 MBC 민영화를 밀어붙이진 못할 것이다. MBC와 관련해서 본인과의 상관성이 명백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럼에도 김재철 사장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이유는 '떡고물'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개떼처럼 이익을 위해 모여 있는 판국이다. 언론운동을 하는 쪽에서 고민을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방송을 망가트린 자들의 만행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흑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훗날 민주정권이 들어섰을 때 김재철과 함께 짝짜꿍하며 MBC를 말아먹은 자들을 방송계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 <미디어스>가 정말 언론을 다룬다면 팩트에 근거해서 흑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정리가 되려면 MBC 구성원들이 내부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미 : 약속을 깨고 정수장학회 이사들이 연임됐다.

한 : 당연한 결과다. 형식적으로만 공익법인이다. 우리나라의 재벌이 만든 재단들의 운영을 보면 뻔하지 않나? 박근혜가 정수장학회의 실소유주이기 때문에 10년 동안 이사장을 할 수 있었다. 아직도 영향력이 미치고 있는데 정수장학회와 박근혜가 무관하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볼 수 있겠는가.

미 : 부산일보의 편집장이 해고됐고 다시 편집장을 뽑았는 등 부침이 심하다. 언론노조와 정수장학회 공대위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운동을 하겠다고 했는데.

한 : 잘 안 됐다. 내가 부산에 몇 번 내려가서 강연을 했는데, 부산 자체도 싸움이 길어지면서 동력이 쇄진됐다. 또, 민주당의 전략 부재로 부산일보·정수장학회 등 과거사 문제를 쟁점화를 시키지 못했다. 민주당은 과거사도 민생도 손을 놨었다. 내가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만 민주당 강연에서는 늘 '정수장학회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결정타가 아니다. 승패는 민생에서 갈린다'고 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도저도 아니었다. 적어도 박근혜가 나서서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을 했을 때, 정치권이 치고 나가면서 이슈화시켰어야 했다.

미 : MBC는 '한홍구-서해성의 직설'의 문구를 리트윗한 정동영 후보에 대해 악의적인 보도를 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 정동영 의원에게 미안하다. 우리 이야기를 좋은 뜻을 가지고 퍼 날랐는데 MBC와 우익 언론에 의해서 공격당했다. 기자라면 적어도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들여다보고 뉴스가치가 없다면 기사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뻔뻔하게 우리 이름까지 싹 지우고 공중파에 띄웠다. 그러고 나서 우리를 보호하려고 그랬다나? 정동영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물론, 정동영이 전주에서 너무 빨리 국회의원 출마를 하는 등 행보에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지난 2-3년 동안 현장을 그보다 더 많이 찾은 의원이 어딨는가? 그 정도 급의 정치인이 사고방식과 입장을 180도 바꿨다. 더 놀랐던 건 민주당 내에 정동영을 공격하던 이들이 너무 많았다. 현장을 가보지 않은 자들이.

 

 

   
▲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웃음을 짓고 있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미디어스

 

"진보 언론, 무기력만 남아"…"손배‧가압류, 지식인과 진보 언론의 지적태만"

미 : 대선 토론회에서 이정희 후보가 '다카키 마사오'를 언급했다. 공중파 TV에서 다카키 마사오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발언이 있고 나서 언론이 본연의 책무를 방기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 : 2007년도와 비교해보라. 이명박과 박근혜 경선 당시, 이미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최태민과 전두환의 6억원 등의 비리가 흘러나왔고 메인 뉴스에도 나왔다. 허나 이번 대선에서는 한겨레, 경향, 미디어스,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등 진보 언론들이 참으로 무기력했다. 그런 걸 가지고 파헤치지 않았다. 그런 팩트들을 진지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현재 나는 일주일에 한 편씩 꾸준히 역사 관련 글을 생산하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와 담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 : 언론뿐 아니라 참여형 지식인들의 움직임도 둔화됐다는 일각의 비판이 있다.

한 : 우리사회에서 지식인의 지적태만을 확인할 수 있는 문제를 꼽자면 바로 손해배상·가압류이다. 지식인들이 밥값을 못한 것이다. 손해배상·가압류에 대해서 지식인들이 아예 손을 놓고 있었다. 이건 한국에만 있는 현상이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 3권을 하위 법률이 받쳐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어떤가? 모든 파업에 손배·가압류를 하는데 노동 3권이 뭔 의미가 있나? 자본가에게 손해를 끼치니까 파업에 힘이 실리는 거지. 사람을 죽인다든지, 방화를 한다든지, 회사의 재산을 고의로 불태웠다든지 명백한 폭력성과 불법성이 있으면 손배·가압류를 물려야겠지만, 회사의 정상적인 조업 손실에 대해 감히 어떻게 손배·가압류를 물리는가? 거기에 대해서 지식인과 언론이 외국에서 사례도 찾고 법령도 개발하고 공론의 장을 만들었어야 했다. 전경련도 총 자본의 입장에서 손배·가압류는 하면 안 된다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지난주 <한겨레>에서 동일방직에 대해서 썼다. 가만 생각해보니 동일방직에서는 자살한 이들이 없었다. 여성 노동자들이 그렇게 똥물을 뒤집어쓰며 폭력을 당했음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서로를 믿고 단결했던 것도 있겠지만 나는 '손배·가압류'를 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칭 진보라는 민주당과 지식인, 언론이 손을 놓고 있었으니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민생을 도외시한 채, 그들만 '민주화'가 된 것이다. 이런 식이면 지식인들은 계속적으로 사라지고 진보는 되풀이되는 패배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미 : 지난 <미디어스> 인터뷰 도중 '역사학자라서 행동이 느리긴 하지만 낙관적이다, 넓게 보면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고 말씀하셨다. 51%가 아닌 시민들에게 힘을 주는 말씀 부탁드린다.

한 : 우리 역사를 보라. 20세기 중에서 앞의 10년은 대한제국이었고, 나머지 90년 동안은 제국주의 일본과 군사독재를 겪었다. 한 세기 중 단 3년만 민주 정권이었다.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여기까지가 한계일 수도 있다. 7-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력이 동력을 잃어버렸다. 진보정당도 매우 암울한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박근혜 집권 이후 더욱 양극화가 고착돼 아이들이 장래희망에 '정규직'을 쓰게 되는...이게 현실이라면 80년 광주 도청에서 총 들고 지킨 이들의 죽음은 개죽음이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 수밖에 없다는 걸 끊임없이 상기하며 스스로 역사의 주인으로 참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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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60년, 평화체제 구축하자"

 

"정전협정 60년, 평화체제 구축하자"
시민사회, 신년하례회 열어..'시민' 설립키로
 
 
2013년 01월 10일 (목) 17:34:39 조정훈 기자 whoony@tongilnews.com
 

 

   
▲시민사회단체들이 1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신년하례회를 열고, '신년사'를 발표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시민사회단체들이 2013년 새해를 맞아 10일 신년하례회를 가졌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참여연대,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여성단체연합, 녹색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2013년 시민사회단체 신년하례회'를 열었다.

이들은 신년사에서 "2013년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되는 해"라며 "이것은 한반도 평화문제에 있어 의미있는 전진을 이루어 내야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다가온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그 한가운데에 남북관계가 있다"며 △대북 인도적 지원,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경협 활성화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이런 토대 위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 나가도록 촉구하는 것이 시민사회가 할 일"이라며 "이 모두는 평화운동이고 평화운동의 기초"라고 강조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한국의 시민사회는 가야할 길이 멀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며 "무엇보다도 지속가능한 시민운동,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할 때"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어떤 정치적 격랑에도 민주주의의 가치와 규범이 훼손되지 않도록, 시장의 야만 속에서 공공성을 지켜낼 수 있도록 강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새해덕담과 함께 대선에서의 정권교체 실패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신년하례회에서 시민사회 원로들은 덕담을 나누며 새해를 다짐했지만, 지난 대선에서의 정권교체 실패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작년을 지나면서 아무래도 우리가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우리 스스로도 희망을 갖고 국민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그런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남이 잘못하는 데서 배울 것은 배우더라도 우리 스스로 잘할 일들을 연구하고 창의적으로 만들어가야 제대로 된 공부가 되고 걸맞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며 "제가 애초에 꿈 꾼 2013년체제가 힘차게 출발하는 해는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가 성과를 거두는 해가 되리라 믿는다"고 격려했다.

함세웅 신부는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양순하라'는 성서구절을 인용, "뱀은 기어가는데 자기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간다. 뱀에게서 배울 수 있는 지혜가 있다는 가르침"이라며 "또 하나의 덕성이 비둘기처럼 단순함, 정직성, 정의 가치를 우리가 늘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정직성, 열성, 투신성을 모아서 창조적 한 해를 이룩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이날 신년하례회에는 시민단체, 정치, 정부 인사 3백여명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참석한 정치권은 한껏 자세를 낮췄다.

김상희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은 "아무리 민주당이 사죄를 해도 부족한 것 같아. 이 모든 책임에 많은 부분이 민주당의 책임"이라며 "시민사회는 정말 5년 동안 끊임없이 국민들이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민주당이 정말 잘못해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고 자세를 낮췄다.

김상희 의원은 "2013년의 희망을 바란 사람들이 죽음으로 시작하고 있다. 다시 희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임이고 나아갈 길"이라며 "시민사회에서 많은 역할을 해달라. 아낌없는 주저없는 회초리를 들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오병윤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은 "작년 특히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심려와 고통을 드렸다. 거듭 죄송하다"고 말했다.

오병윤 의원은 "작년 농사를 그르쳤다"며 "그렇다고 농부가 연장탓, 논밭탓을 할 수 없다. 고통을 감내하고 다음 수확을 위해 결기를 갖고 논도 메고 밭도 메고 거름도 준비해서 새해 농사를 준비하자"고 말했다.

조준호 진보정의당 대표는 "정말 저희 정치하는 사람들이 덧붙여드릴 말씀이 없다. 특히나 저희 진보정당을 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책임감이 무겁고, 죄송스런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정말로 어려운 시절마다 우리의 길을 정당이 열었던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며 "새해에는 저희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서 이제까지 드렸던 실망을 극복하는 첫해로 삼고자 한다. 열심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신년하례회에는 남부원 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권미혁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영하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이시재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김정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등 3백여명의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그리고 남윤인순, 김상희, 김기식, 홍종학, 이학영, 박홍근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오병윤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김제남, 박원석 진보정의당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고, 정부를 대표해 김혜경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전영태 특임장관실장 등이 자리했다.

한편,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올해 시민사회단체 활성화를 위해 '사단법인 시민'(가칭)을 설립하기로 했다.

현재 설립 준비 단계인 '사단법인 시민'(가칭)은 △시민사회 활성화 정책 연구, △시민사회 네트워크 활성화 포럼 개최, △시민교육 프로그램 개발, △시민운동가 역량 지원 프로그램 개발, △시민사회와 각계의 다양한 파트너십 모델 개발, △소통과 협력을 위한 대화마당 개최 등의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 신년하례회 참석자들이 떡케잌을 자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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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태백산 도솔암

위기의 태백산 도솔암

조현 2013.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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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

남아있는 마지막 은둔 참선 도량
산림청 도로개설 계획에 존립 위기
천연기념물 많아 환경파괴 우려도

경북 봉화군 소천면 소선리 홍제사 도솔암과 백련암이 산림청의 임도 개설로 훼손될 위기에 처하자 불교계와 환경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태백산 줄기 비룡산 홍제골 해발 900m에 있는 외딴 암자 도솔암은 선승들로부터 금강산 마하연, 오대산 적멸보궁과 함께 참선과 기도를 함께할 수 있는 3대 도량으로 꼽히는 곳이다. 원효 대사와 사명 대사가 수행했던 도량이기도 하다.

 

산림청이 산불 예방과 숲 가꾸기 등의 명목으로 임도를 개설하면서 불교의 은둔 수행처 대부분이 수행환경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가운데 도솔암과 백련암은 여전히 인적이 찾아들기 어려운 최후의 수행처로 꼽히고 있는 곳이다.

 

홍제골엔 산림청이 2017년까지 도로를 개설한다는 계획에 따라 지난해 3km 산길이 난 데 이어 올해도 공사가 재개될 예정이다.

 

3년째 도솔암에서 홀로 수행중인 자원 스님은 “임도가 예정대로 개설되면 2014년쯤엔 백련암에서 200m, 도솔암에서 500m까지 길이 나 수행 환경 훼손이 불가피하다”며 “이곳은 인적이 없어 천연기념물 산양과 수달이 살고, 최근 사향노루 목격자까지 있는 곳이어서 수행 환경과 천연기념물을 함께 보호하기 위해서 임도를 개설해서는 안 될 곳”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역은 환경단체에서도 주목하는 곳이다. 서기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은 “지난해 6월 도솔암 지역에 산림청 관계자들과 함께 현장 답사를 해 보호 차원에서 도솔암 위쪽 임도 개설은 중단하기로 합의한 지역이다. 경북 문경 봉암사 일대를 국가산림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것처럼 이 일대도 적극적인 보호책이 필요한 곳”이라고 말했다.

 

조계종 총무원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최후의 은둔 수도처 도솔암과 백련암의 수행환경 유지를 위해 산림청에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김영환 남부산림청 영주국유림관리사무소 소장은 “개설중인 임도는 도솔암과는 멀리 떨어져 있고 임도는 지역사회의 발전과도 맞물린 문제기 때문에 지역민들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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