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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고려대 교수 ‘성명서’ 외면한 까닭

 

언론이 고려대 교수 ‘성명서’ 외면한 까닭
 
[보도비평] 언론계의 ‘동업자 봐주기’인가, ‘광고’ 의식한 탓인가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0-29 10:00:36 | 최종:2012-10-29 10:01:2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16일 고려대 평교수 140명이 서명한 '성명서'

지난 16일, 고려대 평교수 140명이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의 김재호 이사장과 김병철 고려대 총장을 비판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는 이날 저녁 고려대 내부 포털사이트에 전격 공개됐는데, 1000여 명의 고려대 교수 가운데 140명이 실명으로 서명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고려대 교수들이 실명으로 재단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이 대학 개교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유력 대학에서, 그것도 재단 이사장과 총장을 겨냥한 ‘거사’이니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언론들이 어떤 논조로, 얼마나 비중 있게 보도했는지가 궁금해 네이버에 해당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조중동, MBC-KBS 등 유력 매체들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신생 통신사인 <뉴스1>과 <한겨레> <한국경제>가 17일자에서 다룬 것이 전부였다. 대신 <교수신문>(22일자)과 <한국대학신문>(24일자), 그리고 <데일리메디>(25일자) 등 전문지 세 곳에서 이를 다뤘다. 보건의료 전문지인 <데일리메디>가 이 내용을 다룬 것은 ‘성명서’에서 제기된 의혹 중에 고대의료원과 직영 도매업체인 ‘수창양행’에 관한 문제도 포함돼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종합지인 <뉴스1>과 <한겨레>의 보도는 대단히 피상적이었다. 둘 다 변변한 해설이나 분석기사 없이 스트레이트로 간단히 처리했을 뿐이다. <한국경제>는 네 문단짜리 기사였다. 반면 전문지들은 달랐다. ‘전문지’여서 달랐을 수도 있고, 또 해당 업계로선 큰 뉴스여서 비중 있게 다뤘을 순 있다. 그러나 평소 내로라는 이른바 유력 신문, 방송사들이 이를 다루지 않은 데는 모르긴 해도 다른 사정이 있지 싶다. 그 가운데 한 이유는 대학은 ‘큰 광고주’다. 또 하나는 ‘동업자 봐주기’가 아닌가 싶다. 고려중앙학원의 김재호 이사장은 <동아일보> 사장이기도 하다.

그러면 고려대 평교수들이 이번에 ‘실명 성명서’를 낸 까닭은 무엇일까? ‘성명서’ 말미에서 서명교수들은 “지금 고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 사학에서 삼류 족벌 사학으로 전락할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사장과 총장의 냉철한 현실 인식과 통렬한 자기반성을 요구한다”고 밝힌 대목이 사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고려대 교수의회(의장 김인묵)는 지난 8일 법인의 비민주적인 운영, 재정손실, 비정상적인 회계처리 등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면서 “비합리적이고 투명성 없는 지금의 법인은 오히려 학교 발전의 장애물로 전락해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번 ‘성명’은 그 후속타인 셈이다.

이번에 고려대 평교수 140인이 실명으로 낸 ‘성명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들은 대략 네 가지의 학내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해결책 제시를 촉구하고 있다. 첫 번째는 김재호 이사장의 선임이 적절했는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물었다. 이들은 “김재호 이사장은 취임 이래 지금까지 우리 대학의 발전 방향과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는 “단지 그가 인촌 선생 가문의 장손이라는 이유로 이사장이 되었다면, 법인 이사들은 우리 대학을 그 가문의 상속 재산으로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김재호 이사장
김재호 이사장(동아일보 사장)은 인촌의 증손자로 인촌 김성수-일민 김상만-김병관에 이어 4대째 이사장직을 세습하고 있다. 금년 5월 김 이사장이 재단 이사장에 선출될 당시 대학 내에서조차 “김재호 이사가 아직 나이도 적은데다(48세) 뚜렷한 공로도 없지 않느냐”며 부적정인 의견이 개진된 바 있다. 게다가 김 이사장과 김병철 현 고대 총장과는 5촌간이다. 따라서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 이사장이 사장으로 있는 <동아일보> 일가가 재단과 대학 전면에 나서면서 ‘고대-동아일보 사유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명 교수들은 “고대는 결코 어느 한 가문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민족의 대학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 되었기에, 인촌 선생의 후손이라고 해서 능력과 자질에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이사장직을 계승하는 관행은 용인되기 어렵다.”며 “김 이사장이 고대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청사진과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제시함으로써 명문 사학의 법인 이사장이 되기에 부족함 없는 경륜과 식견을 갖추고 있음을 스스로 입증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재벌과 대형교회의 세습에 이어 사학도 이미 세습 체제가 된지 오래다.

두 번째는 법인의 불투명한 운영을 지적한 것. 서명 교수들은 “고대의료원에 의약품을 독점 납품했던 (주)수창양행과 관련된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며 “수창양행이 2011년 3월 이후로 김 이사장 가족 구성원들이 소유하는 족벌체제로 변경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인지, 그리고 이 업체의 수익금전액이 과거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비록 수익금 일부가 대학발전기금 명목으로 법인에 전입되었더라도 의료원의 독점적인 납품권을 가진 업체의 지분 전부를 김 이사장 가족이 소유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라는 것.

이른바 ‘의료원 수익사업 건’은 김 이사장의 부친 고 김병관 이사장이 당시 김 씨 일가친척과 나눠 가졌던 (주)수창양행의 소유 지분 이전과 관련된 것으로, 지난해 3월 김 이사장 가족의 소유로 변경된 이후 수익금을 의료원에 재투자하지 않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명 교수들은 이와 함께 최근 설립된 의료원 납품업체 (주)수창양행과 스마트엠매니지먼트(주)의 지배구조와 수익금 처리 내역, 안암 및 안산 장례식장의 식당·구로병원 주차장 업체·법인 관리 수탁업체 등의 운영현황 등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그간 의료원 수익사업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투명하게 밝혀진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명 교수들은 의료원 및 관련시설과 업체에서 나오는 수익은 전적으로 법인에 귀속돼 학교나 의료원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의대 학장 선거에 나섰던 후보들은 “의료원 부대사업을 재단에서 의료원으로 가져오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으나 실현된 적은 없다. 고대의료원 측은 소위 ‘빅5’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재정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다. <데일리매드>는 고대의료원의 한 교수가 “부대사업을 제쳐두고서라도 의료 수익만이라도 재투자된다면 의료원이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고려대병원(안암동) 입구

 

셋째는 총장 선출을 둘러싼 불공정 시비. 서명 교수들은 “우리는 법인이 그동안 총장 선출 과정에서 공명정대하게 처신해 왔는지 묻고 싶다.”고 말문을 열고는 “법인이 최종 선임한 총장이 재임기간 동안 고대를 세계의 명문 사학으로 발전시키기는커녕 지금까지 쌓아 온 명성마저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때 그를 총장으로 선임한 법인은 이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인이 총장 후보자들의 자질과 능력, 리더십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끝으로, 김병철 총장의 ‘발전기금 내역 공개’ 건. 서명 교수들은 김 총장이 공약했던 학교발전계획의 실현상태와 지금까지의 순수 모금액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또 김 총장이 남은 임기 동안 실천할 연차별 학교발전계획과 연도별 순수모금 목표액을 제시하고 퇴임 직전에는 공약사항의 실천 결과를 담은 ‘백서’ 발간도 요청했다. 특히 이들은 최근 김 총장이 교수들의 연구실적 평가기준을 대폭 강화한 것을 두고 총장으로서 교수들의 연구환경 개선을 위해 그간 뭘 했고 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도 밝히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지난해 고려대는 순수 기부금 458억원을 모아 전국 1위를 했으며, 올해는 5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한편, 서명 교수들의 주장대로라면 고려대는 현재 적잖은 문젯점을 안고 있다고 하겠다. 사학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주의 후손이 법인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그 일가친척은 대학 부속 의료원에 의약품을 독점 납품하는 회사의 지분을 전부 소유한 채 수익금도 챙기고 있다면 말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에다 요즘 사회적으로 말썽이 된 재벌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다름 아니다. 서명교수 들이 김 총장을 향해 “단과대학-학과의 자율권을 무시한 일방적인 교무행정을 시정하고 대학의 공공성과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유능한 인물을 기용하라”고 요구한 걸로 보면 김 총장의 독단성도 읽히는 대목이다.

물론 국내 대학(특히 사학) 가운데 이런 문젯점을 가진 대학이 고려대만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사학 재단이 세습되고 있는 현실에서 후세 경영자들의 능력 검증은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그러다보니 친인척이 대거 재단에 몸담으면서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들은 사학비리가 꼭 ‘사건화’ 됐을 때 검찰발 기사로 다뤄온 것이 그간의 방식이었다. 유력 신문인 ‘조중동’ 3사 모두 서울시내 주요 대학의 재단과 이런저런 인연을 맺고 있으며, 특히 광고 건 등과도 맞물려 사태가 터져도 대개 ‘눈감고 아웅’ 하는 식이다. 건전한 사학 육성을 위해 언론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건 현재로선 과연 ‘기대난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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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간 그곳, 문재인은 왜 못 가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2/10/29 08:25
  • 수정일
    2012/10/29 08:2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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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현대차 비정규직에 응답할 대선 후보는?

최하얀 기자,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0-28 오후 12:48:17

 

높이 20미터, 위로는 15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송전탑.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 천의봉 씨가 이곳에서 고공 농성을 시작한 지 열흘이 넘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철탑을 움켜쥘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이들. 천 씨는 물기를 타고 흐른 전기가 흠뻑 젖은 자신의 몸을 통과해버릴 거란 위태로운 상상에 눈을 감곤 한다고 했다.

지난 26일, '현대차 1박 2일 포위의 날'에 참가한 이들은 그래서 연신 비 걱정을 했다. "오늘 진짜 비 온대요?"란 질문은 누구를 만나든 쏟아졌다. 해가 지면 저녁 바람이 불고 비가 올 거란 일기예보를 믿고 싶지 않은 마음. 이는 곧 "거 절연 옷 좀 입으라 하소"란 잔소리로 이어졌다.

최 씨와 천 씨는 지상에서 사람들이 올려보내 준 절연 옷을 입지 않는다고 했다. 감전 위험이 사라진 새를 틈타 경찰과 사측 용역이 자신들을 끌어내릴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이는 물론 기우가 아니다. 이들이 고공 농성을 시작한 지난 17일, 사측은 용역 4명을 동원해 농성장 침탈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사측 관리자 한 명이 "최병승을 떨어뜨려 죽여라"라는 말을 했다고 현대차 지부 김대식 조합원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적어도 '1박 2일 포위의 날'이 열린 이날 밤만큼은 침탈 위험이 없었다. 최 씨와 천 씨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1000여 명이 울산 현대차 공장으로 모여들었기 때문. "오랜만에 저 두 사람 문화생활 좀 하게 합시다"란 사회자의 말과 함께 송전탑 주변은 춤과 음악으로 채워졌다.
 

▲ 송전탑 위에서 집회 참가자들을 반기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 천희봉 씨 ⓒ프레시안(최형락)

박현제 지부장 구속영장 기각, "대법 판결 안 따르는 현대차에 경고 사인 준 것"

오후 4시 40분께, 박현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이 풀려났다는 소식이 집회장소로 전해졌다. 법원이 이날 있었던 영장실질심사에서 박 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 "지회장이 풀려났습니다"라고 소리치자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앞서 지난 24일 박 지회장은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잠복 중이던 사복 경찰에 의해 긴급 체포됐다. (☞ 관련 기사 보기)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 후보와의 면담을 10분 남겨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비정규직 노조는 물론 정규직 노조도 이번 체포에 강하게 항의했다. 다른 곳도 아닌, 공장 안에서 노조 간부를 경찰이 체포한 것을 노조는 '도발'로 받아들였다.

게다가 이번 체포가 경찰의 자체 판단이 아닌, 사측의 독촉에 따른 일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다.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에 따르면 문용문 지부장이 울산경찰청장에게 "경찰 자체 판단이냐"고 따져 묻자, 경찰청장은 "사측이 오전, 오후 두 번에 걸쳐 빨리 체포해가라고 독촉했다"고 실토했다.

이에 지부 울산공장 운영위원회는 25일 저녁 긴급회의를 소집, 울산공장 주간 조 잔업 거부를 결정했다. 비정규직 3지회(울산·전주·아산)는 26일 오전부터 일일 파업을 전개했다. 이들은 "김억조 현대차 부회장이 불과 약 열흘 전 국정감사에서 이른 시일 안에 교섭을 재개해 사내하청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 말이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며 "현대차는 국회마저도 조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박 지회장은 풀려나자마자 최 씨와 천 씨가 있는 송전탑 주변으로 돌아왔다. 멀찍이서 걸어오는 그를 알아본 동료는 한걸음에 달려가 박 지회장을 더럭 끌어안았다. "행님!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동료의 말에 박 지회장은 머쓱하게 웃었다.

이번 영장기각에 대해 박 지회장은 "많은 사람이 노력해준 결과"라며 "나 때문에 마음고생 하고 힘써 준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법원 판결은 대법원의 '사내하청은 불법'이란 판결을 따르지 않고 있는 현대차를 향한 따끔한 경고"라고 풀이했다.

"사측의 3000명 신규채용 안은 '꼼수'"

대법원은 재작년 7월과 올해 2월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이며, 이에 따라 2년 이상 재직한 사람은 '정규직'이라고 판결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현대차 소유의 시설 및 부품을 사용하며, 현대차의 작업 지시서에 따라 일을 한다는 점, 또 공장 작업이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자동 흐름 방식이라는 점이 근거가 됐다.

하지만 사측은 지난 8월, 2016년까지 사내하청 노동자 3000명을 '신규'로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현대차에는 약 800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있다. 결국 이들 중 일부만 회사가 '감별'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머지는 공장 재배치를 통해 합법적인 사내하청으로 남기겠다는 계획이다. 노조는 당연히 반발했다.

더욱이 사측이 제시한 3000이란 숫자가 현대차에서 2016년까지 정년퇴직할 사람의 수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점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공분을 샀다. 노조에 따르면 현대차에서 2016년까지 정년퇴직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2845명이다. 결국, 현대차는 노사협의에 따라 당연히 신규 채용해야 할 자리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사내 하청을 채워 넣으려 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관련 기사 보기)

ⓒ프레시안(최형락)

'찻잔 속 태풍' … 정규직 노조와 정치권 노력 더 뒷받침돼야

이처럼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국회를 조롱하며 재벌은 법 위에 있다는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더더욱 정규직 노조와 정치권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다.

일단 정규직 노조는 25일 밤 잔업 거부로 한 발을 뗐다. 26일 '현대차 1박 2일 포위의 날'엔 이례적으로 문용문 정규직 노조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원하청 공동투쟁'을 주제로 연설하기도 했다. 송성훈 현대차 아산 비정규직 지회장이 이날 "오랜만에 정세가 좋다"라고 평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송전탑 위에 있는 최 씨는 금속노조의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했다. 최 씨는 이날 "2012년에는 수년에 걸친 현대차 사내하청 싸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며 "비정규직들이 물론 앞장서겠지만,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뒤따라줘야 한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반면 이날 집회 참석자 대다수는 정치권에는 별 기대를 드러내지 않았다. 무소속 안철수, 진보정의당 심상정,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 후보가 송전탑을 방문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공언했지만, 여전히 영 믿음이 안 간다는 눈치다.

김상학 현대로템 창원 지회장은 이날 "(대선후보들은) 선거철이라 온 거다. 별 뜻있겠나"라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재벌중심 경제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도 "대선 후보들에겐 큰 기대 없다. 그 사람들이 실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국가 위에 있는 사회 구조 때문"이라고 전했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25일 울산을 방문하고도 송전탑 농성장에는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지원이 절실한데도, 이런 노동자들의 마음을 민주당이 너무 못 따라가는 상황인 것.

오 씨는 현대차 사내하청 투쟁을 두고 그래서 '찻잔 속 태풍'이라고 표현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두 명이 송전탑에 올라 위태롭게 시위하고, 현대차와 경찰은 자신들만의 셈법으로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는 긴박한 상황. 그러나 태풍은 울산에서만 휘몰아칠 뿐, 이를 넘어 바깥으로 전파되지는 못하고 있단 얘기다.

이에 노조는 25일 각 대선 후보들에게 '현대차 불법 파견에 대한 입장 요구 공개 질의서'를 전달했다. 그리고 오는 31일 후보들의 답변을 수합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달 17일에는 다시 한 번 '1박 2일 현대차 포위의 날'을 울산 공장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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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 "국보법 우려, 폐지" 사형선고

 

 

 

국제사회 "국보법 우려, 폐지" 사형선고
 
유엔 정례인권검토 심의 결과 발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2/10/29 [08:28] 최종편집: ⓒ 자주민보
 
 

▲ 국가보안법은 반민족, 반통일, 반민주, 반민중, 반인륜적법으로 국제사회로 부터 몰매를 맞고 있다. 본지 이창기 대표역시 국가보안법으로 2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 이정섭 기자
유엔 인권위가 수차례 폐지권고를 내렸던 국가보안법이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내며 폐지 권고 결정을 받았다.

법무부는 지난 25일 스위스 유엔 제네바 본부회의장에서 열린 한국에대한 제2차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RP) 심의에서 이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총 67개국의 관심과 참여 속에 이루어진 이번 UPR 심의에서, 정부대표단(수석대표, 법무부차관 길태기) 인권에 관한 우려사항에 대하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가국들은 양성평등, 난민, 공적개발부조에 관해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참가국들은 한국정부가 고수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사형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 일반적 차별금지법 부재 등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폐지 권고했다.

한국 정부는 12월 중 국가인권정책협의회(의장, 법무부장관)를 개최하여 이번 심의 결과를 논의하고 권고사항에 대한 수용 여부를 결정하여 UN 인권이사회에 통보할 계획이자만 이명박 정부하에서 폐지 권고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해 양심수 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국가보안법 폐지권고는 UN은 물론 미국정부와 의회에서 조차 매해 폐지권고가 거론되는 문제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는 악법중의 악법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정부가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분단과 적화통일을 할 수 있다는 모호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통일을 가로막고, 권위주의적인 정권을 유지하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즉각 폐지 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에 관해서는 “노무현 정부 당시 정부와 국회 모두 폐지하고 대체복무제로 법제화 되는 단계에 이르렀으나 이명박 정부들어 폐기 되고 형사처벌을 하고 있는 상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하루빨리 대체복무제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사형제폐지를 위한 노력은 오래된 일로, 당연히 폐지되어야 한다. 재판을 거쳤다하더라도 판결은 사람이 하는 것으로 잘 못 된 판단 내릴 수 있다. 또한 인혁당 사건처럼 정치적으로 악용 될 수도 있다. 잘 못된 판결에 의해 사형이 집행 된다면 되 돌 릴 수 없다. 보복형 판결로는 이 아닌 사회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범죄 가 줄어 들 수 있다”며 사형제 폐지를 강력히 촉구했다.

한편 이번 국제사회의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는 최근 국방부가 국가보안법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국군의적으로 규정한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마녀사냥인지를 다시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고 있으며 국가보안법폐지가 당연함을 반증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국가별 정례인권검토는 유엔에 가입한 193개국의 인권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책을 권고하기 위해 유엔 인권이사회 설립 이후인 2008년 도입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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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선언'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진보정당들 '노동'으로 하나 돼야"

"민주노총 출범 이후 '지지후보' 없는 대선은 처음"

[인터뷰] '사퇴선언'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진보정당들 '노동'으로 하나 돼야"

12.10.28 21:16l최종 업데이트 12.10.28 21:16l
최지용(endofwinter)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주노총이 생기고 처음으로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없는 대선을 맞이하게 됐다"며 "대선 선거방침을 정해야 하는데 현 시점에서는 무리"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4·11총선에서 '진보정당 지지와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집중투표'를 선거방침으로 결정한 바 있다. 이후 통합진보당 사태로 이 방침은 철회됐고 현재까지 같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6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무리하게 선거방침을 정하기보다는 아주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려 한다"며 "노동자들이 투표권을 쟁취한 지 100년이 됐지만 현재 비정규직은 그때와 다를 게 없다, 그들의 투표권을 보장하게 하는 것이 민주노총의 대선방침"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최근 투표시간 연장을 통한 노동자들의 투표권 보호 캠페인을 집중적으로 펼치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은 차기 지도부 선출에 직선제 시행을 놓고 몸살을 겪고 있다. 자난 2010년 규약 개정을 통해 직선제 시행을 결정한 만큼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측과 준비부족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유예해야 한다는 측이 맞서고 있다. 김 위원장은 규약을 준수하고 실제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직선제를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최근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 유예안을 제출했으며, 규약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지고 위원장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규약에 명시된 직선제 시행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유예안을 대회에 제출했다"며 "그 이유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규약을 준수해야 할 책임자로서 이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져야 했다"며 사퇴 이유를 밝혔다. 그는 지난 2010년 1월 당선돼 2년 9개월 동안 민주노총을 이끌어왔다. 김 위원장의 사퇴는 오는 30일 예정된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공식화할 전망이다.

"대선 캠프 간 민주노총 인사들, 변화 만들어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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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지난 임기 동안의 소회를 털어 놓았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 직후 위원장에 당선된 김 위원장은 오랫동안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진보정당'을 강조해왔다. 이를 위해 지난 총선을 앞두고 진보정당 통합논의 과정에서 국민통합당을 제외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선통합을 주장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다.

또 총선 이후 불거진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부실부정선거 논란에서도 사태 수습을 위해 당혁신위원회의 혁신안 수용을 촉구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만 민주노총은 불타는 절을 보고 있는 심정이었다, 우리의 진정성이 당에 전혀 접수되지 않았고 결국 백약이 무효였다는 절망만 남았다"며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두 번의 큰 정치적 역할에 실패했지만 김 위원장은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와 복수노조, 노동법 개정 등 이명박 정권 들어 악화된 조건 속에서 조직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권과 차원이 다른 점은 우리를 전혀 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차기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내수를 살려야 하고 노동자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최근 민주노총 출신으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캠프로 들어간 인사들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진보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며 "진보정치를 재구성하고 통합시키지 못한 책임이 있는 나로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판단을 존중하지만 갔으면 선거용이 아니라 각 후보 진영의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단순히 정치인으로 이미지 변화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보기에 그냥 '이탈'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문 후보 캠프에는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 이영주 전 전교조 경남지부장, 이경훈 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이성립 전 권영길 의원 보좌관, 이상현 전 민주노동당 대변인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안 후보 캠프에도 이용식·김태일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 남궁현 전 민주노총 건설연맹 위원장, 곽태원 전 사무금융연맹 위원장, 김영길 전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 이수봉 전 민주노총 부총장, 김형근 전 서비스연맹 위원장 등이 들어갔다.

다음은 김영훈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최근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유가 무엇인가?
"민주노총이 직선제 관련해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지난달 임시 대의원대회 무산 이후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 결국 규약에 명시된 직선제 시행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상황에서 직선제 유예안을 대회에 제출했고, 그 이유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규약을 준수해야 할 책임자로서 이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 생각했다. 오히려 무책임한 태도라는 지적도 있지만, 책임논란이 일면 건강한 토론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 민주노총 위원장 직선제가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직선제를 통해 민주노총의 혁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모순은 중앙에서 선거를 철저히 준비할수록 산하 조직들은 어려워졌다. 구체적으로 말해 선거의 기본이 되는 선거인명부 문제다. 누가 선거권자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조합비 납부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부정선거 시비가 없어지는데, 일부 조직들은 조합비 내역을 올리기 어렵다. 대공장처럼 체계적인 곳은 모르지만 화물노동자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나 비정규직 조직들은 체계적으로 하기 쉽지 않다.

반대로 기준을 완화해서 선거를 치르면 기준이 없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발생한다. 직선제를 각 산별이나 산하조직에 맡겨버리면 부정이나 부실 논란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조직이나 조합원을 믿지 못한다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의 16개 가입연맹 중에 절반 정도 직선제를 실시하는데, 그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연맹직선제에서 용인되는 게 있는데 이것을 민주노총의 일방기준으로 맞추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다. 현장투표, 모바일, ARS 등 그 방식을 각 조직별 특성에 맞춰야 한다.

어떻게 보면 직선제는 극단적인 다수결의 원칙이다. 잘못하면 승자독식에 따른 중앙패권강화로 나타날 수 있다. 직선제는 조합원의 참여라는 장점이 있지만, 다양성을 해치는 부작용도 있는 제도다."

"직선제, 중요하지만 과도한 의미부여 안 된다"

- 그렇다면 현재의 대의원 대회를 통한 간선제를 유지하자는 이야기인가? 현재까지 설명을 들어보면 직선제 유예안이 아니라 폐기안을 말하는 것 같다.
"현재의 민주노총 위원장 선출제도가 잘못된 형태로 고착돼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한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필요하다. 그래서 직선제 폐지안이 아니라 유예안을 냈다. 직선제는 이론적으로 더 따져봐야 할 게 있다. 직선제가 과연 직접민주주의의 확장인가? 직선제든 간선제든 직접민주주의와는 관계가 없다. 대의민주주의의 수단이고 절차일 뿐이다. 국가와 민주노총은 다르다. 민주노총은 어떻게 보면 연방국가처럼 다양한 조직의 결사체다. 다른 방식의 민주주의도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 대안이 될 수 있는 건 각 연맹별로 광범위한 선거인단을 구성해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연맹별 특성을 고려할 수 있고 80만 전체 조합원의 참여도 보장된다. 다수결 방식으로 했을 때 발생하는 승자독식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차점자가 수석부위원장, 그 아래 차점자가 사무총장을 맡는 식의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민주노총 위원장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정치방침을 제외하고 큰 차이가 없다. '국가와 자본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공통의 책무가 있기 때문에 후보 사이에서 정책의제가 크게 갈리지 않는다. 그럴 경우 다수결 투표로 뽑는다면, 인물이나 정파, 진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승자독식 구조를 깨고, 소수자와 여성 등 다양한 구성의 지도부를 꾸리기 위해 고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 위원장의 그런 고민이 있다고 해도 2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미리 충분한 토론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직선제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게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것 아닌가?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투표 논란에 영향을 받았을 것도 같다.
"절대적으로 반성하는 부분이다. 중앙집행위원회 차원에서 토론은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직선제에 대한 기대는 분명히 있다. 직선제는 단순히 선거제도를 바꾸는 게 아니라 아주 복잡한 사안이 얽혀 있다. 이걸 전 조합원들과 전 조직적으로 소통하고 토론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물론 조금이라도 빨리 했으면 좋았겠지만, 올해 중반까지도 어쨌든 간에 직선제를 시행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해 와서 선회하기가 쉽지 않았다. 통합진보당 사태에 영향을 받은 것도 맞다."

- 통합진보당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민주노총의 직선제도 정파 간의 이해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일부 있다. 위원장에 당선될 때 건강한 정파조직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특정 정파의 소속은 아니지만 정파조직의 지지를 받았던 사람으로 '저를 지지하지 않은 분들과 더 많이 이야기 하겠다'고 했다. '대중의 이해'와 '정파의 이해'가 부딪칠 때는 당연히 대중의 이해에 부합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정파의 이해가 극심하게 드러난 게 통합진보당 사태라고 할 수 있다. 부정부실 선거 논란보다 그 후속조치에서 정파의 이해만 앞세우는 모습은 공당으로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지금 민주노총의 직선제 논의에서도 직선제를 시행해본 지역본부에서는 정파를 뛰어넘어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반대로 일부의 사람들은 직선제가 어렵다고 했다가 갑자기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마치 민주노총이 직선제를 못하면 보수언론에서 떠드는 '직선제도 못하는 조직'인 것처럼 말하며 지도부의 총사퇴를 요구하는 분들도 있다. 마치 직선제가 민주노총 혁신의 모든 것처럼 말하는 식이다. 중요한 사안이지만 직선제의 의미가 과도하게 이야기되는 경향이 있다."

- 유예안이 대의원대회에 제출됐지만 직선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한다. 30일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통과가 가능한가?
"일단 대의원대회가 무산되면 안 된다. 직선제 유예안이 통과되든 부결되든 결정이 나야 한다. 특정 정파에서 대회를 무산시키기 위한 전술을 쓰지 않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보수 언론의 비아냥거림을 우리가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꼴이 된다. 민주노총의 저력을 믿고 마지막으로 대의원들에게 호소한다. 대의원대회를 성사하고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자."

이정희·심상정 후보에게 한마디... "모르겠다, 노코멘트다"

- 통합진보당이 결국 분당의 길을 갔다. 당의 기반이었던 민주노총이 상당히 압박을 가했음에도 막을 수 없었다.
"지난 번 인터뷰때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마지막 희망불씨를 살려 통합진보당을 재건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만 민주노총은 불타는 절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 참담했던 건 우리의 진정성이 당내에 전혀 접수가 안됐다는 점이다.(김 위원장은 이 말을 하고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백약이 무효했다는 절망만 남았다."(관련기사 : <"진보당에 '노동' 사라지고 '정파'만 남았다">)

-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현재 진보를 지향한다는 정당이 4개(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진보신당, 노동중심당)나 된다. 노동중심의 단일한 진보정당을 주장했던 민주노총 위치에서 보면 참담한 상황 아닌가.
"나의 민주노총 위원장 출마 배경에는 지난 2008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을 막지 못한 상황이 있다. 그래서 진보정당을 하나로 만드는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 역사적 책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이렇게 돼 참담하다.

그럼에도 진보정당이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은 오직 '노동'뿐이다. '노동중심성'은 어느 진보정당이든 똑같이 이야기한다. 민주, 진보, 개혁 같은 단어는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노동' 없이 그것만으로 진보를 이야기할 수 없다. 통합진보당 창당 당시 일부 사람들이 '노동이란 단어로 통합당에 재 뿌리지 말라'고 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 진보정당의 분열된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대선 정치방침은 어떻게 되는 건가?
"민주노총이 생기고 처음으로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없는 대선을 맞이하게 됐다. 정치방침은 변함없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다. 다만 대선을 맞아 선거방침을 정해야 하는데, 현 시점에서 무리해 정하기보다 아주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려고 한다.

근대 민주주의의 시작이 노동자들의 투표권 쟁취과정이라 볼 때, 100년이 지났지만 투표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태는 다르지 않다. 1000만 명에 육박하는 노동자들의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들의 투표권을 보장하게 하는 것이 민주노총의 대선방침에 최대 투쟁과제다.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인가 만큼 유권자, 특히 노동자에게 투표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비정규직에게 투표권이 보장될 때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시작된다."

-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특정후보를 지원하는 방침은 없다는 말인가.
"지금 당장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선거방침은 중앙집행위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상황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 심상정 진보정의당 대선후보가 출마했다. 두 후보에게 한 마디 한다면.
"모르겠다. 노코멘트 하겠다."

"대선후보들 노동행보, 진정성 있으려면 현안부터 해결해야"

제122주년 세계 노동절인 5월 1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세계노동절 기념대회 및 세상을 바꾸는 노동법개정 총파업 투쟁 출정식에서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정리해고 해결과 비정규직 철폐, 노동법 전면 재개정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결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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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캠프에 민주노총 출신 인사들이 대거 영입됐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이탈'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비판한 바 있다. 위원장도 정치권으로 갈 것이라는 예측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진보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정권교체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보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현실적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본다. 존중하지만 갔으면 일회용, 선거용이 되는 게 아니라 각 후보 진영의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단순히 정치인으로 이미지 변화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보기에 그냥 '이탈'했을 뿐이다. 나머지 의견은 논평과 일치한다."

- 문제를 일으켜 내부징계를 받은 인사까지 민주노총의 이름을 달고 캠프에 들어갔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런 지적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진보정치를 재구성하고 통합시키지 못한 책임이 있는 나로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

- 현재 유력 대선후보들의 노동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후보를 포함해 모두가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결국은 진정성 문제다. 다 표를 인식해서 말을 하지만 바로 실천에서 나타나야 한다. '내가 집권하면 어떻게 하겠다' 보다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쌍용차사태,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집권여당이나 제1야당의 후보는 바로 실천해야 한다. 이 자리를 빌어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에게 쌍용차 사태 국정조사 실시와 현대차 불법파견에 행정조치를 내릴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 '이명박 대통령보다 하루라도 더 일하는 위원장이 되겠다'고 했는데, 그건 못 지키게 된 것 같다. 소회를 밝혀달라.
"약속을 못 지키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나보다 MB가 먼저 임기를 마치게 할 각오로 하겠다는 의미였다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사실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있게 된 것도 능력에 비해 과분했다. 조직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었다. 민주노총이라는 자신감, 자긍심을 강조하려고 했다. 민주노총 조끼를 입고 다니는 게 부끄럽지 않게 하고 싶었다. 인상에 남는 것은 산별연맹들과 뜻을 모으는 시간, 토론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점이다. 이런 기풍은 앞으로도 유지돼야 한다."

- 다른 정권과 그랬지만 이명박 정권의 노동탄압은 뭔가 특별했던 것 같다.
"어느 정부든 반노동 내지는 친기업적 성향이 있었지만 이명박 정권이 다른 정권과 차원을 달리하는 것은 우리를 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있다. 노동을 탄압할 뿐 아니라 완전히 무시했다.

그런 과정에서 총연맹의 기능 중에 하나인 정부를 상대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이채필 현 고용노동부 장관도 한 번 본 적이 없다. 임태희 전 장관이 대통령실장으로 가면서 타임오프철회 단식농성장에 온 게 유일한 공식 접촉이다. 그러면서 민간인사찰, 노조파괴 공작 등 온갖 더러운 짓은 다 노동관료들이 앞장섰다. 그것만으로도 이 정권의 수준이 명확히 드러난다."

- 사퇴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정치로 진출하는가?
"당장 기존세력에 들어가 활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까 정치영역을 넓혀가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 우선은 '꿈꾸는 기관사'(김 위원장의 온라인 닉네임)로 돌아갈 거다. 철도노조 현장으로 다시 복귀한다.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만 진보정치를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 일에 복무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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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 극복방안은 남북공동 위성발사

 

나로호 극복방안은 남북공동 위성발사
<연재> 곽동기의 통일경제 (9)
 
 
2012년 10월 29일 (월) 07:57:32 곽동기 dkkwak76@naver.com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목차

1. 경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2. 세계자원전쟁, 남북협력으로 극복하자
3. 에너지 위기 돌파할 서해유전협력
4. 식량주권 시대, 이제는 통일농업이다
5. 민족 공동 번영의 토대를 마련할 SOC 경협
6. 통일의 열차 경의선
7. 대륙경제시대를 여는 남북물류 혁명

8. 한국경제 돌파구를 여는 개성공단
9. 나로호 극복방안은 남북공동 위성발사

10. 정체된 조선업, 남북협력으로 돌파
11. 재벌에 맞설 중소기업의 필살기

12. 눈앞에 펼쳐질 통일 관광대국
13. 새롭게 주목할 북한경제특구

14. 경제회생의 보검 6.15/10.4 선언

 

나로호 극복방안은 남북공동 위성발사

나로우주센터가 세 번째 인공위성 발사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2009년 8월과 2010년 6월의 실패에 이은 세 번째 도전이다.

그러나 도전은 쉽지 않다. 10월 26일, 인공위성을 발사할 예정이었지만 발사를 5시간 앞두고 기체결함이 발견되어 발사대에서 다시 내려진 뒤 수리에 들어갔다. 러시아에서 들여온 1단 로켓의 고무링이 파손되었다고 한다. 나로호는 발사체 대부분을 차지하는 1단 로켓을 러시아에서 들여왔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공수해 온 1단 로켓과 국내제작한 2단 킥모터를 결합하는 공정을 거쳐야 한다.

러시아 기술진은 발사대와 연결된 1단 로켓에서 헬륨가스를 아무리 주입해도 적정압력(220기압)에 이르지 않자 문제 점검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결과 고무 '실'(Seal) 부분에서 헬륨가스가 새고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육안으로 검정색 고무링이 터져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나로호는 오전 11시부터 발사대에서 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해 오후 늦게 나로호를 1.8㎞ 떨어진 발사체 종합조립동(AC)으로 옮겨져 수리에 들어갔다. 아무리 빨라도 10월 31일에나 발사가 가능한 상황으로 되어버렸다. 나로호 3차 발사 성공 가능성이 확연히 줄어들고 말았다.

발사연기의 원인은 o-ring 파손

나로호 발사를 연기시킨 주범은 흔히 o-ring이라고 부르는 검은색 고무링이다. 일반적으로 가압 또는 진공장비는 장비의 이음매에서 가스가 누출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장비의 모든 이음매마다 고무링을 삽입해 틈새를 밀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 사용하는 동그란 고무링을 o-ring이라고 부른다.
 

   
▲ <그림 1>o-ring 나로호 발사준비 시 터져나간 고무링은 이와 같은 o-ring 이다.

물론 헬륨가스는 반응성이 없으므로 o-ring을 사용할 수 있지만 o-ring은 한마디로 말해 합성고무로 만든 링이다. 고무로 만든 링은 점화시 온도가 급상승하는 등 급격한 온도변화 시 내구성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장비의 밀봉시에는 o-ring이 아니라 구리 가스켓을 비롯한 금속 가스켓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금속을 부식시킬만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테프론 o-ring이나 화학처리된 o-ring을 사용하기도 한다.

o-ring을 사용하는 진공 또는 가압 장비에서 가스가 새어나오거나 유입되는 현상을 leakage, leak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통상적인 leak은 매우 미세하게 가스가 누출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나로호 발사처럼 220기압 정도의 압력까지 가압하는 장비에서 통용되는 leak은 대체로 가스 주입 후 수 시간은 지나야 확인될만큼의 작은 규모이다. 물론 불과 몇 분만 정상작동하면 되는 로켓의 특성상 반응성 없는 헬륨가스의 미세한 누출은 덮어두고 발사했을 개연성도 없지 않다.

이번 나로호의 사고는 일반적으로 통용하는 leak의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난다는 데 있다. 아무리 헬륨가스를 주입해도 압력이 오르지 않는다는 러시아 기술진들의 말이나 육안으로 보아도 고무링이 터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내용을 볼 때 이 정도면 진공, 가압장비에서 흔히 말하는 단순한 leak이 아니라 한마디로 “피익”하는 소리를 내며 줄줄 새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야말로 대형사고이다.

헬륨가스를 주입하는 220기압이 대단히 높은 기압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일반적으로 시중에 통용되는 가스봄베도 대체로 400기압까지 가압할 수 있다. 조광래 항우연 나로호사업추진단장은 "사소한 문제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지는 뜯어 봐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나로호의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자

나로호 발사는 원래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2단으로 구성된 나로호의 추진체에 해당하는 1단 로켓은 길이 25.8m, 지름 2.9m, 무게만 130톤에 달한다. 발사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단계 부분이 러시아에서 조립된 러시아산이라 사실상 수입로켓이다.

   
▲ <그림 2> 나로호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자. 총길이 33m, 총중량 140톤인 나로호 가운데 국산부분은 위 사진에 나오는 고체연료방식의 킥모터와 인공위성 부분에 불과하다.

러시아가 관련기술 이전에 매우 소극적이라 한국정부가 애초에 내세웠던 우주발사체 관련기술 확보에도 상당한 애로사항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박태학 발사체 사업단장은 2011년 10월 21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로호에서 보듯 이제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우주 발사체(로켓) 기술을 넘겨줄 나라는 없다"며 "우리 힘으로 만드는 길뿐"이라고 말했다. 단장이 직접 나로호 발사를 통한 러시아로부터의 기술이전이 실패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한국형 우주발사체 개발계획에도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기술이전이 여의치 않았는데 애초의 개발계획을 달성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정부는 차후 2021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맨 꼭대기에 1.5톤급 위성을 싣고 우주로 올라가는 ‘한국형발사체(KSLV-II)’를 제작해 발사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이 한국형발사체의 무게는 총 200톤이며, 엔진은 항우연이 독자 개발하는 1단 로켓용 75톤급 액체엔진이 쓰인다고 한다. KSLV-II는 1단에 75톤급 액체엔진 4기를 병렬로 묶어 총추력 300톤을 내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그런데 발사체 최상단에 적용될 7톤급 액체 추진체 로켓도 2015년에야 개발종료될 계획이며 75톤급 엔진을 개발하고 발사시험을 하는 것은 2019년까지로 계획되어 있다고 밝혔다. 정상적으로 진행되더라도 앞으로 3년은 지나야 겨우 7톤급 액체추진 로켓기술을 습득한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6년 내인 2021년까지 75톤 엔진 4개를 장착해 도합 300톤 추력의 추진체를 개발해야 하는데 일정이 빠듯한 것이다. KAIST 권세진 교수는 10월 24일 문화일보 기고문에서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은 총 3단계 11년의 계획으로 추진되며 약 1조5000억 원의 개발비가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세진 교수는 “이러한 야심적인 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될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한국이 자력으로 우주로켓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도 현저히 낮다. 권세진 교수는 현재 한국에는 로켓 엔진의 연소시험을 할 수 있는 시설도 없다고 꼬집고 있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선 이러한 시설 확충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러시아로부터 기술이전에 실패한 상황에서 독자적인 로켓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박태학 발사단장은 사실상 외국과의 기술협력과 재벌기업에 의존하는 방안밖에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박 단장은 인터뷰에서 "세상에 100% 독자개발은 세상 어디에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작은 부품 하나 때문에 국내에 공장 만들면 망한다. 엔진이나 연소시험시설처럼 돈 줘도 주지 않는 것만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고 하며 “한국형 발사체 프로젝트”도 사실상 외국의존방식임을 시인하였다. 러시아가 기술이전에 인색했으니 이제는 우크라이나 유즈노에(무궁화위성 발사체인 제니트와 아리랑5호 발사체인 드네프르 개발사)와 기술 도입을 위해 집중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발사체 개발단장의 발언이었다.

남북협력으로 우주발사체 개발의 획기적 전환

국내 로켓 기술이 이렇게 막혀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모색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남북의 기술을 한데 모아 우주발사체 개발을 앞당기는 방안이다.

북한은 평안북도 동창리에 로켓발사기지를 건설하였으며 은하 2호와 3호를 발사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북한의 은하 2호, 3호는 북한이 자력으로 개발한 로켓이다. 그들은 로켓연소실험을 비롯한 다양한 실험을 자체적인 설비를 갖추고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남북이 서로 두 개의 우주발사기지를 세워놓고 중복투자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2012년에 발사한 북한의 은하 3호도 궤도진입에는 실패해 추가적인 기술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액체추진 로켓을 발사는커녕 설계도 못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한 이상의 뛰어난 공동사업 대상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

나로호 개발 사업비는 나로우주센터를 제외하면 모두 5025억원. 정부는 이 중 절반인 2억 달러(약 2500억 원)를 1단 로켓을 들여오기 위해 러시아 흐루니체프사에 지불했다. 지난 두 차례의 발사 시 불타 없어진 과학기술위성2호 개발비로 쓴 돈만 136억5000만 원이다.

무려 2500억원을 러시아에 송금하며 나로호를 수입했지만, 기술이전 효과는 미미하였다.

차라리 남북이 협력으로 로켓발사체를 공동 개발한다면 어떨까? 북한의 발사체 기술이라면 한국형 발사체는 2021년이 아니라 당장 2013년이면 가능할 수 있다. 한국의 앞선 인공위성 제작기술과 북한의 로켓기술이 만나면 한국은 바야흐로 순식간에 우주강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

눈앞의 탄탄대로를 두고 구태여 러시아로, 우크라이나로 빙빙 돌며 수천억원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은 현 정부가 한사코 대북대결정책을 내려놓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정권에서 남북간 우주개발협력이 실현된다면, 최소한 우리 인공위성을 북한이 발사해 준다면, 남북의 국력은 비상히 높아질 것이며 그야말로 세계 속의 강한 한반도 시대를 펼쳐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본다.

 

(최근 나로호 발사 예정과 연기를 계기로 ‘11. 우주강국 통일코리아’를 ‘9. 나로호 극복방안은 남북공동 위성발사’와 순서를 바꿨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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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동물의 비약, 69살 스웨덴인 사망률은 15살 수렵채취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2/10/28 07:21
  • 수정일
    2012/10/28 07:2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조홍섭 2012. 10. 26
조회수 5320추천수 0
 

인류역사 8000세대 중 마지막 4세대 동안 사망률 100분의 1로

수렵채취인 사망률 현대인보다 침팬지 가까워…유전자 변화보다 환경변화 때문

 

Ian Beatty.jpg »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수렵채취인 산 족. 인류 역사 8000세대의 삶은 생물학적으로 이들과 비슷했지만 마지막 4세대 동안 극적으로 바뀌었다. 사진=이언 비티,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간은 동물이다. 백과사전에서 ‘인간’을 찾아보면, 인간의 위치는 분류 단계별로 동물계 척색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에 포함되는 사람종이라고 나온다. 린네가 1758년 이 종에 ‘호모 사피엔스’란 학명을 붙였다.
 

인간은 매우 특이한 동물이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가 <인간 동물 문화>(이담, 2012)에서 정리한 내용을 보면, 두뇌가 크고 말과 불을 사용하는 것 말고도 여러 측면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큰 차이를 보인다.
 

고래나 개미의 예에서 드러나듯이 일반적으로 몸이 큰 동물은 수가 적고 작은 동물은 많다. 사람은 몸이 큰데도 수가 아주 많다. 어릴 때부터 코끼리, 기린 등 큰 동물을 주로 익혀서 그런지 우리가 얼마나 큰 동물인지는 실감하지 못한다. 사실 지구에 있는 생물의 95%는 달걀보다 작다.
 

Human_castle.jpg » 지구상에 사는 성인 인간의 무게를 모두 합치면 3억t에 육박해 단일한 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진=스페인 카탈로니아에서 해마다 벌어지는 인간 탑 쌓기 축제.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지구의 인간 성인 무게를 모두 합치면 2억8700만t에 이른다. 전체 무게로 쳐 지구에 사는 어떤 단일 종보다 무겁다. 중생대 공룡도 1000종 이상으로 이뤄져 단일 종으로는 인간에 필적하지 못한다.
 

인간은 유력한 무기인 입을 소통수단으로 바꾸면서 턱 근육이 약해져 무는 힘이 침팬지의 3분의 1, 고릴라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또 완전한 직립을 하면서 골반이 좁아져 여성은 극심한 산고를 겪고, 항문이 늘 심장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만성적으로 치질에 시달린다.
 

오래 달리기를 위한 적응 과정에서 다른 동물이 보기엔 우스꽝스럽게 털이 없어지고 땀샘이 발달했다. 또 성장기간이 길어 부모가 오래 돌봐야 하는 것도 약점이다.
 

김 교수는 인간이 이런 취약점을 극복하게 된 요인으로 큰 두뇌와 언어·소통능력, 사냥에 필수적인 오래 달리기, 불의 사용을 꼽았다. 여기에 더해 인간에겐 다른 어떤 동물도 따라오지 못할 생물학적 능력이 있다. 잘 죽지 않고 오래 산다는 것이다.
 

fig1.jpg » 수렵채취인과 비교한 최장수국 일본인의 사망확률을 10년 간격으로 비교한 그래프. 모든 연령대에서 사망률이 현저히 작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오스카 버거, PNAS

 

오스카어 부르거 독일 막스플랑크인구연구소 박사팀은 최근 선진국과 아프리카 부시먼 등 수렵채취인 그리고 침팬지의 사망률을 전 연령대에 걸쳐 비교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수렵채취인의 사망률 곡선은 현대인보다 오히려 침팬지에 가까웠던 것이다.
 

fig2-1.jpg » 영장류와 여러 부류 인간의 사망률 비교. 현대인이 수렵채취인보다 사망률이 높았던 것은 노예뿐이었다. 그림=오스카 버거, PNAS

 

수렵채취가 인간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한 삶의 형태임을 고려할 때, 인간의 최근 변모는 주목할 만하다. 사망 확률 면에서 일본의 72살 노인은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30살 수렵채취인과 같다. 수렵채취인은 이미 다른 영장류보다 수명이 긴 상태이다. 15살짜리 야생 침팬지와 63살짜리 수렵채취인의 연간 사망확률은 4.7%로 같다. 15살 수렵채취인의 사망확률 1.3%는 69살 스웨덴인의 것과 같다. 15살의 선진국 사람은 같은 나이 수렵채취인보다 사망률이 100분의 1에 그친다.
 

fig3.jpg » 일생 중 가장 사망률이 낮을 때의 사망률 변천. 침팬지나 수렵채취인이 일정한데 비해 선진국 사람들은 1900년께를 기점으로 급속하게 줄었다. 그림=오스카 버거, PNAS

 

기대여명으로 따져 본다면, 수렵채취인으로 태어나면 31년을 살 수 있고 스웨덴인은 1800년 32살에서 1900년 52살, 요즘엔 82살까지 산다. 인류 역사 전체인 8000세대 가운데 마지막 4세대 동안 종 차원의 비약을 한 것이다.

Woodlouse_탄자니아 이아지 호수_하드자 인_800px-Hadzabe_Hunters.jpg » 탄자니아 이아지 호수 부근에 사는 수렵채취인 아드자 인. 사진=우드라우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부르거 박사는 이런 변화가 여러 나라에서 비슷하게 나타나고 동물실험 결과보다 커 유전적 변화보다는 공공보건, 위생, 영양, 교육, 주택 등 환경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동물은 이런 지속적인 환경 개선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만의 현상이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Human mortality improvement in evolutionary context
Oskar Burger, Annette Baudisch, and James W. Vaupel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NAS)

www.pnas.org/cgi/doi/10.1073/pnas.1215627109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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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은 얽힌 원한 풀어 함께 살자는 것

굿은 얽힌 원한 풀어 함께 살자는 것

 
조성제 2012. 10. 26
조회수 2749추천수 0
 

 

해원굿-.jpg

해원굿 사진 <한겨레> 자료

 

 

 

 

굿의 기원

 

무교는 우리 할머니들의 생활의 지혜요, 삶 그 자체였으며 오랜 세월 우리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 민족 심성의 원형이자 민족의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굿은 무교의 사제인 무당들이 하늘에 제를 지내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굿은 인간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그 시대의 정서를 우리 가슴에 심어주고, 굿이라는 형태를 빌려서 좁게는 개인, 나아가서는 마을단위, 더 나아가서는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우리 민중들과 함께 하여왔다.

 

이렇게 민중들에게 굿을 통하여 무교가 담고 있는 근본을 자연스럽게 가르치며 실천해 왔다. 그것이 바로 생생지생生生之生과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우주의 모든 만물에는 모두가 생명이 있으며 각자 서로의 생명을 중요시하여 그 존재 가치를 인정하여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화합하여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정신을 말한다. 굿이란 말은 얼마나 좋은 말인지 영어에 좋다는 뜻인 굿(Good)이 있고 신을 말하는 갓(God)도 굿에서 나왔다.

 

각 지방마다 굿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굿이 추구하는 뜻과 목적은 한가지다. 굿은 우리 민족의 정치, 경제, 역사, 종교, 철학, 사상, 문화를 총체적으로 표현한 우리의 정체성의 결정체다.

 

또한 굿은 현실에서 억압된 인간들의 마음을 해소해주고 화해동심和解同心과 해원상생解寃相生 즉, 살아오면서 생기게 되는 이웃 간의 반목을 풀어버리고 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면서 상생할 수 있는 계기를 굿이라는 것을 통하여 제공하는 축제적인 기능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심성이 담긴 굿을 우리 정신을 잃어버린 시대에 남의 시각으로 남의 정신으로 왜곡되게 바라본 학자들의 기록과 외래 종교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굿은 미신이라 폄하하며 싫어한다.

 

한웅천왕은 소도를 만들어 삼신께 제를 올리고 삼신을 조상으로 삼았다. 그 당시 제를 올릴 때 지금 굿의 원형인 춤을 추면서 삼신께 제를 올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상고시대의 소도는 바로 굿을 하든 장소라고 생각한다. 소도에서 굿을 하면서 하늘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래서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천문天門을 연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산문山門을 연다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천문은 하늘의 문이고 산문은 소도의 문으로, 산의 문도 될 수가 있다. 또 지방에 따라서 골매기문이라고도 한다.

 

굿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 굿의 기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문헌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제의로는 <삼국지/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부여의 영고와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같은 제천의식을 들 수 있으며 이러한 제천의식들이 굿의 원형들이라고 생각한다.

 

삼각산 도당굿-.jpg

삼각산 도당굿

 

 

무당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 제2대 남해왕 조를 보면 남해왕은 차차웅으로 불렸는데, 이 말은 무당을 나타내는 말이라 한다. 남해왕은 시조의 묘를 세워 친누이동생 아로阿老로 하여금 제사를 주관케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들은 굿의 기원을 밝히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굿의 기원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제천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남해왕보다 더 훨씬 위로 올라가서 살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무가에 나오는 많은 어원들이 한인시대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한인천제, 한웅천왕, 단군왕검 세 분의 시대에 종교행사는 하늘을 살피고 교신을 하는 제천의식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많은 주문(사설)을 낭독하고 큰 동작으로 몸짓을 하여 원하는 바를 전달하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쇠꼬리 쥔 놈이 임자」란 말이 있다. 이 말은 그 당시 쇠꼬리를 쥔 사람이 임금이라는 말일 것이다. 즉 무당이 흰 쇠꼬리를 쥐고서 흔들면서 춤을 추었다고 볼 수가 있다. 또 이 말은 천제를 드릴 때 모우旄牛라는 흰 소를 잡았다는 말이다. 기독교에서 양을 잡아 제를 올리는 번제의식이 우리의 천제를 모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도 무당들이 굿을 할 때 부채 끝에 긴 천을 달아 그것을 쥐고서 춤을 춘다. 이러한 행위도 흰 쇠꼬리를 쥐고서 춤추던 그 때의 풍속이 아닌가 한다.

 

또 풍물패들이 상모 춤에서 전립의 꼭대기에 흰 깃털을 달고 상모를 돌리는 것도, 그 당시 무당이 손에 쥐고서 춤을 추던 것을 지금은 모자 위에 올려서 돌리는 것이다.

 

이런 의식은 철 따라 춘분마지, 하지마지, 추분마지, 동지마지로 이어졌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지금도 봄에는 꽃맞이, 여름에는 유두맞이, 가을에는 햇곡맞이 겨울에는 동지맞이 굿이라 한다.

 

그 당시 굿은 반드시 큰 산 바로 아래 봉우리에서 굿을 하였다 한다. 또 굿을 할 때에는 반드시 모旄를 꽂고 반드시 춤을 추었다. 이 모를 꽂는 풍속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바로 떡시루에 서리화를 꽂는 것이다.

 

단군조선이나 <예>의 무천舞天은 바로 하늘을 향해 춤을 추었다는 뜻이다. 또 영고迎鼓는 북을 치며 마지 한다는 의미로, 동맹東盟은 동쪽하늘에 뜨는 해와 달에게 피로써 맹세한다는 행위이므로, 이것들은 바로 동쪽에 제물을 차리고 북을 두드려 춤을 추면서 해와 달이 뜨는 것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지금도 행하고 있는 일월마지 굿이다. 그러다 부루단군 시대에 와서 하늘만 위하는 굿이 아닌 조상을 추모하는 의식과 팔가八加에서 단군왕검을 숭배하는 의식을 종족의 특징을 살려 만들어지면서 여러 형태의 굿거리가 생겨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 진 <무당내력>이라는 책을 보면 굿을 할 때는 칠성제석거리를 비롯한 모든 거리에서 반드시 단군을 먼저 청배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부루단군 시절에 와서부터 우리가 하는 형태의 굿거리가 생긴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 굿을 할 때에는 반드시 공수를 준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굿을 할 때 주는 공수는 영험하다고 하여 서로 받으려고 한다. 그러면 언제부터 공수가 시작되었고 공수의 의미는 무엇일까? 공수는 한자로 공수貢壽와 공수供授 두 가지로 나타내고 있다. <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에 보면, 신시의 음악을 공수라 한다고 하였다. 공수를 다른 말로는 두열頭列이라고도 하기도 하였다.

 

무리는 둘러서서 줄지어 합창으로써 삼신으로 하여금 크게 기쁘시게 하고, 나라가 번영하여 민심이 윤택해질 것을 빌었다고 하였다.

<백호통소의>란 책에서는 공수를 조리朝離라 했다. 조리란 선善과 악惡을 구분하고, 시是와 비非를 가리고, 틀어진 것을 바르게 잡는 다는 뜻이다.

 

또 <통전악지>란 책에서는 주리侏離라 하였고, <삼국사기>는 도솔이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자로 공수貢壽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나 짐승을 제물로 올릴 때 사용하였던 음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누군가 제사를 지내면서 목숨을 바친다는 무서운 말이다.

 

두 번째 공수供授는 제사를 지내는 자가 신에게서 무엇인가를 받기를 원할 때 사용하였던 음악이 아닌가 한다. 두열頭列은 제사를 지낼 때 하늘에서 전하는 천부의 소리를 듣기 위하여 우두머리들이 줄지어 서있다는 것이다.

 

즉, 오가五加의 우두머리가 열을 지어 서서 천부의 소리를 듣고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공수라고 할 수 있다. 또 공수는 즐겁고 건강하기를 신에게 기원하고 순리에 따라 족함을 안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하였으니 “즐겁고 건강하기를 신에게 기원하는”부분에서는 지금 행해지는 공수와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된다.

 

공수가 한자의 뜻대로 하늘에 무당의 목숨을 바쳐 그 집안이 즐겁고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라면 무당이 굿을 맡을 때는 신중하게 처신하여야 하고 또 목숨을 걸고 정성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라 하겠다.

 

지금 굿을 맡아 정성을 드리고 있는 많은 무당들이 허공수를 남발하고 있으니 그 무당들은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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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제
53년 대구생. 공무원을 하던 중 굿판을 본뒤 모든 것을 던지고 무속 세계에 뛰어들었다. 2000년 <무속신문> 창간해 편집국장을 지냈다. 무천(舞天)문화연구소장으로서 무속의 근원을 우리 민족의 상고사 속에서 찾고 있다. 저서로 <무속에 살아있는 우리 상고사>, <상고사 속의 무속이야기><민족의 시각으로 바라본 동물의 상징성>, <신을 조롱하는 무당>, <무교이론ⅠⅡ>가 있다.
이메일 : muam777@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muam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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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1억의 그녀, 변기 닦이로 전락한 이유는?

꿈깨라 중산층]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희망의 배신>

안은별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0-26 오후 6:20:33

 

얼마 전 현대자동차그룹의 신입사원 공개 채용 과정에서, 같은 사진을 약간씩 변형하여 다른 주민등록번호와 출신 학교로 지원한 '가짜 자기 소개서'가 수십 장 발견됐다. 조사해 봤더니 모 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연구 목적으로 120여 개 회사에 1900장이나 허위 자기 소개서를 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트위터에서 누군가 이 기사를 링크하며, "자소서는 원래 다 가짜야 이 양반들아"라고 덧붙였다. 뉴스는 그저 '황당 해프닝'을 전하고 있을 뿐이지만, 이 촌평은 회사에 자신을 팔기 위해 내놓는 문서가 거짓일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한 유명 저널리스트가 자신의 경력이 호환되지 않는 세계에서 허위 이력서로 취업에 도전한다. 그녀도 이 과정에서 "평범한 이력서를 눈에 띄는 것으로 만드는 법, 실제로는 갖지 않았거나 가질 자격이 없는 자신감을 가장하는 법" 그리고 "이런 식의 속임수가 게임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위장 취업 도전기를 담은 <희망의 배신>(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은, 한국에 뒤늦게 소개된 저널리스트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3부작' 마지막 책이다.

<긍정의 배신>(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과 <노동의 배신>(최희봉 옮김, 부키 펴냄) 그리고 이 책의 원제는 모두 '배신'과 거리가 멀지만, 사회적 고통을 긍정 마인드로 견뎌도, 뼈 빠지게 노동해도, 하라는 대로만 하면 잘 살 거라는 희망을 가져도 소용없는 세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꽤 잘 지은 제목이다. <긍정의 배신>의 예상치 못한 성공을 이어가보려는 출판사의 희망도 배신당했을지 모르겠지만….
 

▲ <희망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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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배신>의 원제는 싼 광고 상품으로 손님을 끌어 비싼 물건을 파는 상술을 뜻하는 "Bait and Switch"라고 한다. 책을 읽다 보니 이건 기업 중심의 사회에서 처참하게 잘려 버린 화이트칼라 실직자들이, 다시 안정적인 중산층으로 진입하고자 사기에 가까운 게임에 말려드는 불행한 처지를 은유하는 것 같다. 겨우 "실직은 당신 내면의 문제야"란 말을 듣기 위해 코칭 프로그램에 수백 달러를 지불하고, 인맥을 만들어 준다는 네트워크 모임에서는 같은 실직자의 명함 몇 개만 쥐고 돌아오기 일쑤다. 기업에 맞는 인간이 되기 위해 나를 개조하고 또 개조하지만, 돌아오는 건 무반응, 연장되는 건 '공백' 상태뿐이다.

바버라는 자신이 알려진 대학, 출판(잡지 신문 책), 비영리 진보 단체 등 일부 영역은 배제하고, 그동안 비판해 온 기업에 대한 비판 의식과 의구심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신분을 만들고 거기에 맞는 개인사를 갖다 붙인다. 그녀는 활동가 경험, 출판사의 홍보부 사람들과 함께 일해 본 경험 등을 떠올려 가며 "나는 회의를 계획하고 주재했다.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리더 역할을 했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데 익숙하다"는 식으로 '홍보 전문가'로서 자신을 위장한다. 그리고 결혼 전 성을 활용해 바버라 알렉산더로 명함을 팠다.

반쯤은 바버라이면서 반쯤은 바버라가 아닌 자신을 만들어 놓고 기업의 세계로 나간 그녀, 결과는 어땠을까? 이 책이 블루칼라 노동을 다룬 <노동의 배신>과 마찬가지로 위장 취업 '체험'기라 생각한 나는 책의 3분의 1을 읽어갈 때쯤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쯤이면 어떤 기업이든 들어가서 과도한 야근과 상사의 압박에 괴로워하는 내용이 나와 줘야 되는 거 아냐? 라는 기대를 갖고 읽어나갔지만, 책의 마지막에 이르도록 실험자=피실험자가 결국 원하는 홍보직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간에 보험 없는 보험 판매원, 화장품 방문 판매원 같은 영업직으로는 간신히 취업되기는 한다.)

비단 그녀가 원래 글 쓰던 돌아갈 장소가 있어서, 그러니까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약 10개월간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그녀가 코칭 프로그램이나 취업 알선 행사에서 만난 전 화이트칼라 구직자들에게 연락을 해 본 결과, 열한 명 중 '진짜' 일자리를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그들은 일단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시간당 8달러를 받고 월마트에서 육체 노동을 하거나, 공황 발작 등의 고통을 겪으며 청소나 변기 닦기 등에 매진했다.

그들은 이것을 "생존용 일자리"라 부른다. 그러나 저자는 '진짜 일자리'를 상정하는 "생존용"이란 명명이 낙관적이라면서, 이 상태가 각자의 전문 분야를 살린 재취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실업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물론 생존용 일자리에 내몰린 전 화이트칼라가 기대하는 건, 대기업 옆 일류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나르다 보면 언젠가 그 회사 임원과 연줄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긍정적인 생각'이다.

바버라에 따르면 그들은 "열심히 일하면 물질적 풍요와 안정을 누리게 된다는 구식 청교도 윤리 속에서" "만사를 올바르게 해"왔다. "철학이나 음악에 대한 젊은 열정을 접고 꾹 참고 경영과 금융 같은 지루하고 실용적인 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재미나 모험 대신 일찍이 안정성(다시 말해 지루함)을 선택했기에, 적어도 자기 분의 치즈조각은 계속 같은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해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책 속의 화이트칼라 실직자들이 처한 상황은, 치즈의 실종 정도가 아니라 극단적으로 말하면 '죽음(존재의 없음)'이다. 캐서린 뉴먼이 <추락(Falling from Grace)>에서 쓴 대로 "이전의 자아를 떨쳐 내는 지침도, 새로운 자아를 위한 지시 또는 훈련도 없으므로 사회적·문화적 진공 상태에 놓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만사를 올바르게 해온 만큼 회사 속에서의 자기가 전부였는데 그것을 부정당했기 때문이다. 바버라가 보기에 코칭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구직자들은, 실업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부러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직장에서의 생활을 필사적으로 모방하고 있었다. (좀비!) 여기서 바버라의 코끝에는 시간증(屍姦症)의 냄새마저 스친다.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건 이 구절뿐만이 아니다. 바버라는 외모와 의상을 개조하는 코칭을 받는 동안 전문가의 손길로 화장을 마친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인간에서 물건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중간 단계로 일종의 죽음을 거쳐야 하는 것일까?"라고 자문한다. 인성을 규정하고 그에 맞는 직업을 찾아준다는 와그너 에니어그램 성격 유형 지표(WEPSS) 검사지 앞에서는 자신이 "의존과 독립, 용기와 비겁함 어느 쪽으로든 이끌릴 수 있는" 생명체라며 진저리친다.

이 죽음을 잘 극복하라며 들이밀어지는 것이, 자신의 처지를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차단시키는 '종교적인' 제안들이다. 바버라는 코칭 프로그램이나 네트워크 모임에서 '내면의 문제와 마주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일자리를 끌어들이라'는 유사 종교적 선언들을 발견한다. 한국에도 불안한 시기일수록 장사가 잘 되는 건 보험사와 교회뿐이라는 우스개가 있는데, 바버라 역시 당시 미국에 횡행한 복음주의 열풍의 기능 중 하나가 "점점 더 신뢰할 수 없는 직업 세계와 인간을 화해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비꼰다.

이제 바버라가 결론부에서 역설하는 주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기업 세계는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없애야 전진할 수 있는 포식자의 세상으로 변해 버렸고, 따라서 남아 있는 자들에게도 명백하게 서바이벌 게임이며, 조금 일찍 발생한 대숙청은 결코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 다른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어려운 고민을 시작해야 하며, 바로 지금이 공통의 문제에 함께 맞설 기회가 어느 때보다 풍부하다는 것. 이 과정에서 "만성적인 억압에 시달리는 블루칼라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더욱 이상적"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뒷부분이 조금 허탈할 수도 있지만, 책은 상황의 끔찍함을 상술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다 했다고 보인다. 그 역할은 이 책 자체보다 책이 '놓인' 자리와 함께 생각해 봄직 한데, 가령 화이트칼라 세계로 ('재진입'이 아니라) '진입'하려는 구직자들이 처하는 구조적 모순을 다룬 <청춘 착취자들>(로스 펄린 지음, 안진환 옮김, 사월의책 펴냄)이나 탄탄했던 미국 중산층의 몰락과 그 유발자들을 비판한 <중산층은 응답하라>(톰 하트만 지음, 한상연 옮김, 부키 펴냄) 등 비슷한 문제의식의 책들 옆자리 말이다. 미국에서는 각각 2006년(<희망의 배신>), 2007년(<중산층은 응답하라>), 2011년(<청춘 착취자들>)에 나왔지만 한국엔 모두 2012년에 번역되어 도달했다.

각각 결도 다르고 내놓는 방안도 다른 책들이지만, 가장 안정적이라 여겨졌던 세계에서 오는 신음소리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런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자유이지만, 이미 긍정주의와 이별한 사람들은 경제 성장과 안정적 고용 등이 보장됐던 중산층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는 또렷한 경고음에 고개를 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희망의 배신>은 그 한국어 제목이 말해주듯, '중산층의 복권', '중산층 진입 통로를 위한 재정비' 등 마지막 희망에마저도 기대지 않는 자세를 보여준다.

ⓒ프레시안

마지막으로 한 가지. 기업에서 일해본 적 없지만 글 쓰는 '화이트칼라'인 저자는, 기업 문화(기업 문턱에 이르는 문화?)의 해괴함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이 속했던 언론계와 학계의 유연함을 자주 강조한다. 가령 "언론계나 학계에는 유별나거나 까다로운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원고가 제때 도착하기만 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만 하면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런데 기업 세계로 향하는 길에는 성격을 개선하라는 경고 표지판이 줄지어 늘어 있다."(282쪽) 같은 부분.

맞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끊임없이 역겨움을 표하는 '나 자신을 포장해서 먹기 좋게 내놓기'라는 기업식 요구가, 언론계나 학계에서는 과연 없거나 덜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미국의 환경쯤 되면, 아니면 바버라 에런라이크쯤 되면 좀 다른 걸까? 이곳의 소위 '지식 시장'에서는 '지식 노동자'의 열정과 인성, 적절한 가장(假裝) 능력이 오히려 거래의 주요 품목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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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정여사’와 부산 ‘정여사’가 다른 점

 

개콘 ‘정여사’와 부산 ‘정여사’가 다른 점
 
[인터뷰] ‘투표시간 연장운동’ 전개하는 ‘부산 정여사’ 주근깨 님
 
김욱 | 2012-10-27 10:04:2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부산 서면역 환승장에서 정여사 퍼포먼스를 펼치는 주근깨님

 

부산에 '정여사'가 나타났다. 검은색 드레스에 넓은 챙의 우아한 모자 그리고 브라우니 인형, 딱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정여사' 코스프레다. 그런데 부산의 '정여사'는 개콘의 '정여사' 같은 블랙컨슈머가 아니다. 유권자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이번 대선 투표시간 연장을 요구하는 당당하고 열정적인 시민이다.

'정여사' 퍼포먼스는 부산 유권자 네트워크의 투표시간 연장을 위한 행사장에서 벌어진 퍼포먼스다. 부산 유권자 네트워크는 각 지역과 단체별로 투표시간 연장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이날은 부산지하철 서면역 환승로에 모여 행사를 벌였다.

그런데 이런 퍼포먼스를 볼 때마다 궁금한 게 있었다. 과연 '정여사'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혹시 정당이나 시민단체의 관계자는 아닐까?

'정여사'는 정당이나 시민단체 관계자는 아니다.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봐서 알기 때문이다. 오프에서도 몇차례 만난적이 있는데 부산의 '정여사'는 활발한 활동성으로 트위터에서도 꽤 알려진 주근깨님이다.

몇차례 본적은 있지만 그런 질문을 해본적은 없다. 그동안 풀지 못한 궁금증을 풀기위해 주근깨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주근깨님의 카톡 메시지가 응답했다. "오케이"

- 정여사 퍼포먼스는 어떻게 시작하신 겁니까.

"'정여사' 퍼포먼스는 서울에서 먼저 시작 했구요. 저 정도는 아니고 그냥 모자에 선글라스만 착용하는 정도였는데 부산이 좀 더 확실히 살렸죠. 조금 전 수원 미권스에서도 부산처럼 하고 싶다고 해서 자료 보냈어요."

- 퍼포먼스 본 시민들 반응 어땠습니까.

"대박이었죠. 역시 아이들이 제일 반응이 좋았어요. 브라우니 만져보고 같이 사진 찍기도 하고. '브라우니 물어!' 하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위키트리에 기사화 되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도 제 사진이 막 돌아다니더라구요."

- 의상과 소품은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브라우니는 제돈 52,000원 들여서 마트에서 구입했어요. 옷은 제 의상중에서 느낌이 비슷한 걸로 골랐죠."

- 정여사 말고 다른 퍼포먼스 계획은 있습니까. 요즘 갸루상이 인기 많던데.

"용감한 녀석들을 한번 해 볼까 해요. 갸루상은 좀 더 있다가 투표독려운동 할 때 해볼려구요. '투표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므니다' 이렇게 하면 재밌을 거 같아요."

 

투표시간 연장운동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부산의 트위플들

 

- 투표시간 연장운동의 주체가 부산 유권자 네트워크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단체입니까? 앞으로 투표시간 연장운동 계획은?

"부산 유권자 네트워크는 부산참여연대, 부산민예총, 청년연대, 탈핵, 부산지하철노조, 북구시민네트워크 등 60 여 개의 시민사회단체로 이루어져 있어요. 운동은 각 지역별, 단체별 능력껏 하구요. 일주에 한번 금요일엔 서면 태화쇼핑 앞에서 촛불집회를 가질 거예요. 서명은 이달 말까지 받고 정치권 압박하는 촉구 운동은 계속될겁니다."

- 주근깨님은 거기서 어떤 일을 하십니까?

"기획팀장을 맡고 있어요. 선전을 위한 자료들을 만드는데 문구도 짜고 디자인도 하고 퍼포먼스도 기획해요. 요즘은 거의 매일 나오는데 밥도 제 때 못먹을 정도로 바빠요."

- 언제부터 사회•정치적 활동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참여도 하게 되었습니까? 2008년 촛불 때부터인가요?

"그때도 애들 데리고 집회도 참여하고 돈도 기부하고 했지만 나서지는 않았어요. 2010년 말에 트위터를 시작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죠. 홍대 청소노동자와 날라리 외부세력, 한진증공업 김진숙 지도위원, 강정의 문신부님 이런 분들을 통해 '내가 세상에 너무 눈을 돌리고 살았구나. 내 책임이 크구나.'라고 느끼기 시작했죠. 작년 희망버스 때부터 적극 연대하기 시작했어요. 번개에도 참석하고 제가 나서서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을 모으기도 하고요."

주근깨님은 시민단체나 운동권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아왔다. 이전까지 평범한 주부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열정적 인 활동가가 되었을까? 내부의 어떤 것이 주근깨님을 이끌었을까? 이런 답에 알맞는 질문을 고민하고 있는데 주근깨님이 자신이 겪은 87년 6.10 항쟁 이야기를 나지막히 풀어내고 있었다. 듣고보니 그건 원하던 바로 그 답이었다.

"부산이 시민에게 완전히 점령되었던 날 저두 거기 있었습니다. 그날 서면에서 부산진까지 가두 행진을 했습니다. 해방의 날 같았죠. 평생 그날을 못 잊을 겁니다. 발이 아파 구두를 벗어 가방에 넣고 맨발로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동무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어요. 저도 모르게 제일 선두 쪽에 섰어요. 진시장 앞 고가도로를 넘어서는데 부산진역 부근에서 기다리던 전경부대가 어둠속에서 덥치기 시작했죠. 지랄탄이 비오듯 쏟아지는데 다들 정신이 혼미 해져 쓰러져 토하고. 그러다 어찌어찌 집에 왔는데 나중에 뉴스를 보니 그 자리 제 몇 줄 앞에서 사람이 죽은 거예요. 그때는 아비규환이라서 누가 죽어도 몰랐죠. 아직도 '임을 의한 행진곡' 노래를 들으면 울컥해요."

그날은 6월18일이고 숨진 사람은 이태춘 열사다. 민주공원 이태춘의 비석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이태춘 열사는 일반 시민으로 1987년 6월항쟁에 참여해 서면으로 행진하던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좌천동 고가도로 아래로 추락, 6월 24일 운명하셨습니다.' 당시 이태춘은 동아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태광고무 무역부에 입사한지 3개월 되던 신입사원이었다.

주근깨님의 6.10항쟁 이야기를 음미하는 동안 묻지는 않았지만 내가 듣고 싶었던 마지막 답을 주근깨님이 쓰고 있었다. 강렬한 울림이 있는 마무리 멘트였다.

"제가 이렇게 활동하는게 책임감이라기보다는 제가 제 생활에만 충실하던 시간 동안 힘들게 현장을 지키고 알리려고 노력하고 연대해 온 사람들에 대한 채무감이 더 크다고 봅니다. 그들이 도와 달라고 같이 하자고 소리치는데 그 소리를 외면 할 수 없는 거죠. 그들이 손 내밀때 내가 무얼 도와 줄 수 있을까? 결국 그들이 지키려는 것이 우리 모두를 지키려는 것이고 그 안에 나와 내가족이 포함되니까요. 그 안에 내 몫을 조금이라도 하려는 것 뿐입니다."

개콘의 '정여사'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블랙 컨슈머지만 부산의 '정여사' 주근깨님은 그 반대로 타인의 고통과 책임을 나누려 애쓰는 사람이다. 개콘의 '정여사'는 '바꿔줘'라고 억지를 부리지만 부산의 '정여사'는 '함께해'라며 손을 잡는 연대주의자다.

개콘 '정여사'같은 사람이 정말 있을까 싶지만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 있을 것 같지 않을 정도로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부산의 '정여사' 주근깨님도 실제로 있다.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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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사장 선임 논란... 이게 다 MB 때문이다"

[인터뷰] 특별다수제 도입 요구하는 KBS 김주언 이사

12.10.27 21:24l최종 업데이트 12.10.27 22:14l
이주영(imjuice)

 

 

KBS 새노조(2노조)가 52일째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 개념광장에서 열린 전국 조합원 총회에 참석한 새노조 조합원들이 부산지부 조합원들의 파업갈매기 응원을 따라하며 "마"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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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또다시 시끄럽다. 이번에는 사장 선임 절차 때문이다. KBS 양대 노조와 기자협회·PD협회는 지난 25일 공동 성명을 내 "사장 공모절차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부터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KBS 새노조)는 농성에 돌입했다. 국회도 힘을 실어줬다. 10월 22일 열린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KBS 국정감사에서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KBS 사장 선임 공모를 뒤로 미룰 것을 제안했다.

뿐만아니라 KBS 야당 추천 이사들까지 가세했다. 야당 추천 이사들은 22일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사장 선임 절차 논의와 관련해 보이콧을 선언하며 퇴장했다. 24일에는 "특별다수제 없는 사장 선임 논의는 무의미하다"는 성명을 냈다.

야당 추천 이사진들이 내놓는 주장의 핵심은 '특별다수제 도입'이다. 사장 선임에서만큼은 '재적 2/3(8명) 출석'을 전제하는 제도를 두자는 이야기다. 여당에 편중된 이사진 구성 때문이다. 여당 추천 이사 7명, 야당 추천 이사 4명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된 KBS 이사회는 지금까지 '재적 과반수(6명) 찬성'으로 안건을 처리해왔다. 사장 또한 여당 추천 이사들만의 찬성으로도 선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런 상황을 막겠다는 게 야당 추천 이사들의 입장이다.

KBS 이사회의 사장 선임 절차를 두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 언론광장 사무실에서 김주언 KBS 야당 추천 이사를 만났다. 그는 특별다수제 도입을 요구하는 이사 중 하나다. <한국일보> 기자시절 월간 <말>에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방송의 독립성'을 강조한 그는 "'낙하산 사장'을 막기 위해서라도 특별다수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래는 김 이사와의 일문일답.

"낙하산 사장 막기 위해 필요한 건 특별다수제"

김주언 KBS 이사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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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다수제' 채택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행 방송법 제46조 7항은 '재적 이사 과반의 찬성으로 의결 한다'고 규정한다. 이럴 경우 이사 11명 중 7명인 여당 추천 이사 위주로 이사회 표결이 진행될 수 있다. '낙하산 사장'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당 위주의 합의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 최근 여당 추천 이사진 위주로 회의가 진행된 적이 있나.
"지난 9월 KBS 신임 이사장 선출 당시가 그랬다. 당시 후보였던 이길영 이사장은 '학력 위조 의혹' '전두환 정부 시절 정부 편향적 보도 추진' 등의 비판을 받았다. 이 같은 이유로 야당 추천 이사들은 이길영 이사장 선출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여당 추천 이사들은 표결을 밀어붙였다. 결국 찬성 7표로 의결정족수가 채워져 이 이사장이 선출됐다.

정연주 전 사장의 해임취소 대법원 판결 관련 안건 상정도 가로막혔다. 대법원에서 정연주 사장의 해임을 취소한다는 최종 판결이 나왔는데도 그의 해임을 취소했던 KBS 이사회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야당 추천 이사들은 신임 사장 선임 절차에 돌입한 현 시점에서 '정연주 사장을 임명 제청하는 게 합당하다'는 판단 하에, 지난 17일 KBS 임시이사회에 이와 관련한 의견을 주문했다. 그러나 7명의 여당 추천 이사에 의해 임시이사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사장 선임 절차에 소수 이사진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다."

현행 방송법, 여당 이사만 참석해도 사장선임 가능

- 왜 여당 추천 이사들은 특별다수제를 반대하는가.
"법률에 위배된다는 게 그들의 반대 이유다. 현행 방송법 제46조 7항에는 '재적 이사 과반수 찬성 의결'이라는 규정이 있다. 6명만 찬성하면 안건이 무조건 통과될 수 있다. 그러나 '재적 이사 2/3 출석'의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면 사장을 임명제청할 때 8명이 출석해야만 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여당 추천 이사들은 '의사정족수와 관련해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재적 2/3 출석은 현행 규정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이건 설득력이 약하다. 법률상 명확한 규정 없기 때문에 특별다수제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 국회 야당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도 특별다수제 추진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법안도 발의됐다."

- 예전에는 '재적 2/3 의결'의 특별다수제를 제안한 바 있다. 이를 철회한 이유는 무엇인가.
"방송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방송법상 의결은 제적 이사 과반 이상이 찬성할 때 안건이 통과되도록 규정한다. 노조 주장대로 의결 정족수를 바꾸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만약 법 개정 없이 이를 추진할 경우 KBS 사장에 공모했던 후보들이 항의할 가능성이 있다. 여당 추천 이사들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재적 2/3 출석'으로 안을 수정·제안했다. 그런데도 여당 추천 이사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 특별다수제 요구는 올해부터 본격 제안됐다. 이전 이사회에서는 제안한 적 없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장 선임 과정에서 특별다수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적은 없었다. 박권상 전 사장에 대해서는 노조에서 큰 반발이 없었다. 노무현 정부 때 서동구 사장은 '낙하산 인사'라는 주장이 제기돼 바로 물러났다. 정연주 사장은 '낙하산' 논란이 있었지만 대선캠프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선 캠프에 있던 인물이 들어와 버렸다. 동시에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특별다수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 이미 후보 검증을 위한 사장추천위원회가 있으므로 특별다수제가 필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사장추천위원회에서 5배수로 후보를 추리는 구조가 후보 검증 장치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노조에서 주장하는 '외부 인사를 영입한 사장추천위원회 구성' '후보 청문회' 역시 검증 장치가 될 수는 있다. 야당 추천 이사들도 노조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정부가 한다. 여당 이사들이 담합해 정부가 지목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면 검증은 무의미하다. 후보 검증을 위한 다른 어떤 방법을 논의하더라도 특별다수제가 무산된다면 사실상 소용없다."

야당 숨통 막힌 KBS이사회... "이사회 구조 개선법안 발의된 상태"

김주언 KBS 이사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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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당 측에 편중된 이사진 구조를 바꾸는 것이 근본 해결 방안 아닌가.
"KBS 이사회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11명의 이사를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이지만, 그 전에 국회에서 여야가 각각 7명·4명씩 추천한다. 소수인 야당 추천 이사들이 의사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다. 따라서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와 관련해 KBS 이사회 구조를 개선하자는 법안들이 국회에 발의된 것으로 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도 마찬가지다. 정부·여당과 야당 추천이 6:3인 이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

- 여당 추천 이사진이 단독으로 후보 선임 절차를 강행할 수도 있다.
"그때는 우리도 논의를 통해 표결 방지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계획상 11월 9일이 최종 사장 후보를 결정하는 날이다.
"잠정 합의한 내용이다. 확정된 날짜가 아니다. 더 늦춰질 수도 있다. 김인규 이사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11월 12일까지는 시간이 있다. 임기 만료 기한이 지나도 큰 문제는 없다. 법률상 차기 사장이 임명될 때까지 전임 사장의 임기를 연장할 수 있고, 부사장이 사장직을 대행할 수도 있다."

- 앞으로 계획을 밝혀달라.
"여당 추천 이사들이 특별다수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면 다시 회의에 참석할 것이다. 단순히 사장 추천과 관련해 우리 입장만 내세우면서 보이콧할 계획은 아니다. 이른 시일 안에 사장 선임 절차를 주제로 시민사회·학계와 토론회를 열어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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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에 관한 한 대선주자 3인의 차이 없다”

“재벌개혁에 관한 한 대선주자 3인의 차이 없다”

등록 : 2012.10.26 20:18수정 : 2012.10.27 09:53

 

 

 

5년 전 ‘삼성그룹의 비자금 비리’를 폭로해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현 광주시교육청 감사담당관)는 지난 22일 광주시교육청에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경제 민주화를 말하는 3명의 후보 가운데 누구도 재벌의 해체·분리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대선 국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 민주화 논의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보였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김용철의 5년

▶ 김용철 변호사는 패자다. 5년 전 그가 공격했던 삼성은 당시의 비자금 폭로와 검찰 수사 및 특검 ‘덕분에’ 경영권 승계를 말끔히 처리했다. 반면, 김 변호사는 2007년 7월 다니던 법무법인에서 나온 뒤 다시는 변호사 업무를 할 수 없게 됐다. 한동안 직업도 없이 지내던 그는 지난해부터 광주시교육청에서 계약직 감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계약기간은 오는 12월이면 끝난다. 그는 “삼성에 다닐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많은 보수를 받던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말했다.

 

 

2007년 삼성그룹의 비자금 비리를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는 2011년 1월1일부터 광주시교육청 감사담당관으로 지내고 있다. 검사와 삼성 회장 비서실 핵심 참모, 변호사를 거쳐 네번째 직업을 얻은 것이다. 광주교육청 감사관은 4급 서기관에 해당하는 개방형 직위로 계약기간은 2년이고 길게는 5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지 5년째 되는 날(10월29일)을 앞두고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 당시 폭로 배경에 대해 “나는 부패 세력과 반부패 세력의 전쟁을 원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그 싸움을 ‘반부패 시민혁명’으로 불렀다. 5년이라는 시간은 삼성과 김 변호사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반실업자에서 광주교육청 감사관으로

 

-광주시교육청 감사담당관으로 내려온 지도 2년이 다 됐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사실은 내가 체제와 조직에 순응하는 사람이다. 5년 전 ‘그 일’이 있고 난 뒤 거의 반실업자처럼 지내다가 2년 전 여기 감사관으로 내려왔는데, 그 뒤에는 인터뷰도 안 했다. 예전에 해보지 않은 일을 처음 시작한 건데, 내가 기본적으로 성실한 사람이라는 거지. 하하.”

 

-얼굴도 좋아졌다.

 

“여기 와서 삼십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담배를 끊으면 보통 체중이 5~7㎏ 붇는다고 하는데 나는 거의 10㎏이 쪘다. 실업자 비슷하게 지낼 때는 하루 한끼나 먹고 줄담배 피우고, 그러다가 여기 와보니 일단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교육청 구내식당 밥이, 이게 또 괜찮다. 사람이라는 게 날마다 일할 곳이 있고, 같이 만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고, 밥이 해결되면 행복한 거 아닌가.”

 

-감사담당관의 일이 검사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검사 시절에는 직접 수사를 맡는 수사검사였고, 지금은 사무관 4명을 포함해 25명의 감사담당관실 직원과 함께 일을 한다. 직접 조사하기보다 감사의 방향을 잡고 독려하는 역할을 주로 맡고 있다. 아무래도 지역사회이다 보니 지연과 혈연 등이 얽혀 자체 감사라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서 좀 봐줬나?

 

“봐주고 말고 할 게 없다. 비위를 저지르지 않으면 되고, 이미 저질렀다면 발각되지 않으면 된다. 드러난 비위사실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하려고 했다. 작년만 해도 교장 한명을 파면 처분했는데, 비리 교원에 대한 파면은 광주교육청 개청 26년 만에 처음이라고 들었다. 공교롭게 내가 온 뒤 경찰 수사와 광주시의회 행정사무조사 등까지 겹쳐서 이래저래 징계 대상자가 좀 늘었다.”

 

광주시교육청은 지난해 5월30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방과후 교사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들로부터 모두 6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광주 북구 한 초등학교 교장에 대해 파면 처분을 내렸다. 교사, 장학사 등 교원에 대한 파면 징계는 1986년 광주시교육청이 문을 연 뒤 처음이었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취임 뒤 교육비리 척결을 위해 개방형 감사관제와 원스트라이크아웃제 등을 도입했다. 광주가 선택한 첫번째 개방형 감사관이 김용철 변호사였다. 김 변호사는 “광주가 고향이기는 하지만 수십년간 떨어져 있었으니 이곳에서 나는 외지인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재벌 탐욕이 정부 각 부처와
정치권, 검찰, 언론까지
오염시킨다는 데 동의한다면
재벌의 해체·분리가 정답이다

 

경제민주화라는 표현 의아
사회가 재벌에 기대하는 건
법 지키고 세금 내라는 것 정도
민주화라는 말이 왜 나오나

 

 

 

 

-2007년 10월29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 비자금’의 실체를 처음 세상에 알렸다. 당시 사제단 고문인 함세웅 신부가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을 썼는데, 경제민주화는 대선을 앞둔 지금까지도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그런 말을 쓰긴 했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치적 민주주의라면 시민의 정치 참여 방식을 말하는 것일 텐데, 경제민주화는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르겠다. 예컨대 노동자가 경영자를 직접 뽑는다든지 하는 정도의 이야기는 아닐 것 아닌가.”

 

-최근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재벌개혁과 양극화 해소 등 크게 두 개의 맥락에서 이뤄진다. 이 가운데 재벌개혁에 관한 논의를 어떻게 보나?

 

“그게 결국 불법·탈법·위법·편법적 기업 경영 행태를 조금이나마 개선해보자 하는 정도의 수준 아닌가. 기업은 원래 영리추구가 목적인데 그들에 기업가 정신, 뭐 이런 걸 기대하는 건 애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사회가 그들에 요구할 수 있는 건 법을 잘 지키고 세금을 제대로 내라는 것 정도인데, 민주화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정권이 바뀐다고 재벌이 바뀌겠는가

 

-법을 잘 안 지키고, 세금을 잘 안 내는 경우가 빚어지니까.

 

“조금 비관적으로 들릴 수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영악하고 교활한 포식자가 인간 아닌가. 인간에게 도덕과 정의, 양심 등 동물과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덕목을 모두 합쳐도 인간의 탐욕보다 힘이 작다. 문제는 한국 재벌은 그 탐욕을 위해 정치권력까지 틀어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검사 시절 소주 첨가물인 스테비오사이드 관련 로비 사건을 내사하다가 그만둔 적이 있었다. 원래 소주에는 단맛을 내는 사카린이 함유돼 있었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가 사카린을 발암물질로 지정하자 주류업계가 찾아낸 게 설탕보다 수십배 싼 스테비오사이드였다. 내가 조사해본 결과, 전세계 어디에도 술에 스테비오사이드를 넣는 나라는 없었다.”

 

-그게 불법이었나?

 

“아니다. 주세법 시행령에 스테비오사이드가 허용돼 있었다. 시행령 개정 과정에 주류업계의 로비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 로비까지 수사 대상에 넣으려고 했는데, 내 능력으로 안 됐다.”

 

-이유는?

 

“누구라고 밝히지는 않겠지만 당시에는 검찰 간부 가운데 술도가 집 사위가 꽤 많았다. 술 제조업자는 딸만 낳으면 검사에게 시집보내는 게 유행이었는지 참 묘했다. 당시 검찰 간부 가운데 한명이 나를 불러서 ‘야, 문제가 있으면 빼면 될 거 아니냐’ 그랬다. 그 뒤 실제로 스테비오사이드가 소주에서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왼쪽)가 지난 22일 광주시교육청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나 삼성의 비자금 비리 폭로 이후의 삶 등을 주제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터뷰는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삼성 특검은 그 기간과 인력으로
애초에 불가능한 수사였다
조준웅은 내 방식대로 끝낸다며
“비자금은 없다”고 끝내더라

 

나는 이곳 광주에서 가능하면
지역특산물 중심으로 소비
그들에게도 내게도 도움 된다
이념적 소비가 필요하다
그래야 삼성도 변한다

 

 

 

 

김용철 변호사가 이 부분은 틀렸다. 1996년 12월17일 당시 재정경제원은 스테비오사이드의 무해성이 입증될 때까지 소주 첨가물로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스테비오사이드 사용 금지 방침을 최종 확정했다. 재경원은 곧바로 주세법 시행령을 고쳐 이르면 이듬해 1월 초부터 이를 시행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진로, 두산경월 등 소주업계의 반발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스테비오사이드 첨가 소주는 최근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재벌개혁에 관한 해법이 있다면?

 

“재벌의 행태가 거의 정부 각 부처와 정치권, 검찰, 언론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오염시키는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데 동의한다면, 재벌 문제는 경제민주화의 틀 속에서 논할 게 아니라 적절하게 해체·분리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물론 혁명정부가 아닌 다음에야 그들의 위법·탈법 행태가 아무리 심하다 해도 그런 처방을 내놓을 수는 없다. 삼성 비자금 문제만 해도 검찰 수사와 특검, 대법원까지 거쳤지만 뭐가 달라졌나.”

 

­-주요 대선 후보가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건 아닌가?

 

“대선이라는 분위기를 타고 인기를 얻어보려고 내용도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정치 지도자를, 정권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 한 사람과 집권세력은 바뀔 수 있어도 한국 사회의 주류가 교체되는 건 아니다. 물론 대선 때는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해줄 수 있는 최선 혹은 차악의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은 맞지만, 정권이 바뀐다고 재벌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여야 후보 간 차이는 없나?

 

“똑같다. 경제민주화를 말하는 세 명의 후보 가운데 누구도 재벌의 해체·분리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냥 선거운동 기간이려니 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담론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다.

 

“대기업 분리명령, 계열 해체 이런 게 어디 말처럼 쉽겠나. 나는 그래서 정부가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를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 등 사회안전망을 좀더 확대해서 적어도 생계 문제로 생명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기업은 스스로 탐욕을 줄이고 세금 제대로 내야 하는데, 그들 스스로 그렇게 못 할 테니 결국 중요한 건 엄정한 법집행이다.”

 

 

법은 강자의 칼, 중수부는 정권의 칼

 

­-2007년 양심고백 당시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검사, 곧 ‘떡값 검사’의 실명도 공개했는데, 그사이 엄정한 법집행 관행이 정착됐다고 보나?

 

“현실적 여건이 어떤지는 이 정부가 검찰권을 어떻게 행사하는지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우리가 기억하는 피디수첩, 미네르바 사건 등만 봐도 법이라는 건 강자의 칼이라는 것 아닌가. 대검 중수부는 정권의 칼이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건 그냥 하는 말인 것 같다. 검찰의 주요 기능이 체제 유지인데 그 칼이 왜 자신을 겨누겠나. 대통령이 쥐고 있는 검찰총장, 서울지검장의 임명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지 않는다면 ‘국민의 검찰’이란 말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은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팀과 미네르바 박대성씨에 대해 각각 명예훼손과 전기통신기본법 등을 적용해 기소했다. 피디수첩 팀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왜곡·과장했다는 혐의로 2009년 기소된 뒤 2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2011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2008년 인터넷 게시판에서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정부의 외환정책을 비판했던 박씨는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두 사건에 대해 김용철 변호사는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언론인과 시민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하는 희안한 일이 이 정부에서는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5년 전과 비교해봤을 때, 삼성도 검찰도 결과적으로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은 한다. 사업을 크게 하는 사람들이 비자금 만들어서 여기저기 뇌물로 매수하고 불법으로 경영권 승계하는 문제에 대해 그 전까지 어렴풋하게 짐작만 했다면, 5년 전 몇 차례 이어진 삼성 비자금 기자회견을 통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아닌가.”

 

-­삼성 비자금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결국 검찰 수사와 특검까지 이어졌는데, 특검 활동에 대한 평가는?

 

“휴. 열심히 한다고 한 게 ‘삼성 비자금과 로비는 없었다’ 이거 아닌가. 불법 경영권 승계와 탈세는 일부 기소했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내곡동 사저 특검은 단일한 사안인 반면, 삼성 특검은 수십개 계열사와 매출액 100조원 규모의 회사를 상대로 한 거였다. 애초에 그 기간과 인력으로 불가능한 수사였다는 이야기다. 당시 조준웅 특검을 찾아가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다가 검찰에 넘기라고 했더니 ‘삼성특검은 조준웅 특검이다, 내 방식대로 책임지고 끝을 내겠다’ 그러더라. 그러더니 끝낼 수 없는 사건을 끝내버렸다. 주류사회가 그 정도로 덮자고 동의한 것이다.”

 

-­조 특검의 아들은 그 뒤 삼성전자 중국법인에 입사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구체적 내막은 모르겠다. 보은인 건지 뭔지 몰라도 모양은 참 보기 안 좋았다. 다른 기업에 가도 되는데 왜 굳이 오해를 받으며 그렇게 불편하게 사는지 모르겠다.”

 

-­삼성은 역설적으로 5년 전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 덕분에 해묵은 과제였던 경영권 승계를 잘 마무리했다는 지적도 있다.

 

“나도 (안티 삼성의) ‘엑스맨’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결과적으로 삼성이 숙원이던 경영권 승계를 완료하는 데 내가 큰 기여를 했다 이건데, 심지어 특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차명 재산은 상속 재산으로 둔갑해버렸다. 대신 한국 사회에서 ‘이건희’를 존경받는 기업인의 대명사로, 삼성을 가장 양심적인 기업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또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재벌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데 대해 주류 세력마저도 동의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

 

 

삼성에 복수심 있다면 복통으로 죽었지

 

­-이건희 회장도 특검 수사 이후 잠시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곧 다시 복귀했다.

 

“원래 삼성은 이건희씨 1인 지배체제였다. 물러난 적도 없었고, 따라서 다시 복귀한 적도 없다. 그리고 왜 <한겨레>까지 이건희씨에게 ‘회장’의 호칭을 붙이는지 모르겠다. 삼성의 주주총회나 이사회에서 그를 회장에 앉힌 것도 아니고, 삼성 관계사 및 계열사 그 어디에 이사로 등재된 것도 아닌데. 법률적으로, 형식적으로 권한을 가진 어떤 자리에도 있지 않은데 실질적으로는 뭐든지 그가 챙기는 것이 문제다.”

 

­-이래저래 패한 쪽은 김 변호사 아닌가?

 

“그것이 개혁이든 뭐든,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는 성공한 적이 없다. 나는 한국 사회의 주류가 아니었는데, 나 같은 사람이 개혁에 앞장서겠다며 뭔가를 외쳤다면 그건 주류세력이나 집권세력에게 한 이야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념적 주권자인 국민을 상대로 한 소리였다. 국민들이 남의 집 불구경하듯 구경하지 말고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삼성 문제의 공론화를 시도했다. 부패한 세력과 반부패 세력의 전쟁을 원한 것이다. 말하자면 반부패 시민혁명이다. 그건 고소·고발 등 사법 절차에 기대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국민의 총의로서만 이룰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세상이 바뀌는 데 무시와 격렬한 저항, 동참의 세 단계가 있다고 한다. 그동안 내 책 <삼성을 생각한다>도 좀 팔렸고,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했으니 무시와 저항의 단계는 넘어섰다고 본다. 남은 건 동참인데 여기에는 이율배반적 태도가 분명히 있다. 여전히 자식은 대기업에 보내고 싶고 자신도 삼성은 욕하면서도 서비스와 상품이 좋다는 이유로 삼성을 찾는다.”

 

­-당연한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시민의식의 고양을 바라는 것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소비도 이념적으로 하느냐’고 했지만 이념적 소비를 해야 한다. 가능하면 범죄를 저지른 집단의 물건은 사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곳 광주에서 가능하면 중소기업, 향토기업, 지역특산물을 중심으로 소비하려고 한다. 그게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또 소비자가 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삼성도 변한다.”

 

­-삼성이나 이건희 회장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 아닌가?

 

“하하. 진짜로 그런 것 없다. 그런 게 있었으면 벌써 복통으로 죽었다. 그런 개인적 감정은 없다. 다만 외국인 지분 75%에, 본사만 경기도 수원에 뒀을 뿐 생산공장의 80%를 해외에 두고 있는 삼성전자를 ‘국민기업’ 등의 용어로 호도하는 건 반대한다.”

 

김용철 변호사와의 인터뷰는 경제민주화 담론에 대한 평가로 시작해 ‘다시 삼성을 생각한다’는 주제로 끝났다. 인터뷰를 마친 뒤 그에게 다시 미래의 계획을 물었다. 광주시교육청 감사관 계약기간은 12월 말일로 끝난다. 최초 계약기간은 2년이었고, 최장 5년까지 재계약 하거나 다시 응모할 수 있다.

 

­-곧 교육청 감사관 계약 만료인데, 미래가 불안하지는 않나?

 

“불안이 왜 없겠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래는 불안할 텐데, 내가 원래 미래에 대한 대비에 크게 신경쓰는 사람은 아니다. 산짐승은 먹을 게 없으면 1주일도 굶는다는데, 나도 ‘어떻게든 되겠지’ 뭐 이런 생각이다.”

 

­-반부패 시민혁명을 이야기했는데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질까?

 

“주어진다면 하겠다. 정당에서 몇번 영입 제안이 왔는데 그건 모두 거절했다. 정당 가입 경력이 있으면 특검을 못하니까. 특검이 나를 필요로 하는 세상이 온다면, 언제든 맡을 준비는 하고 있다. 시켜줄지는 모르지만.”

 

광주/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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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10.26’ 거사로 ‘한국판 킬링필드’ 막았다

 

김재규, ‘10.26’ 거사로 ‘한국판 킬링필드’ 막았다
 
[답사기] 3.15의거 발원지이자 부마항쟁 발원지인 옛 마산 창동네거리
 
장유근 | 2012-10-26 09:53: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선을 앞 둔 대한민국 국민들은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의 증언 중 아래 증언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몇이나 될까...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증언이 김재규로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말은 밖에 안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각하(박근혜의 애비 박정희) 말씀은 "이제부터 사태가 더 악화되면 내가 직접 쏘라고 명령하겠다."하니까. 차지철 경호실장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명이라고 하는 것도 희생을 시켰는 데 우리 대한민국은 100~200만명 희생한다고 문제될 거 있느냐"고 이러한 얘기가 나옵니다. 들으면 소름이 끼칠 그런 이야깁니다. -10.26거사 후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증언-"
 

 

지난 9월 23일, 글쓴이는 '경남도민일보 해딴에'가 주최하는 1박 2일의 팸투어에 참가하고 있었다. 1박 2일 동안 우리 일행이 둘러본 곳은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창동예술촌과 오동동 등 창원시 원도심(옛 마산) 일원이었다. 1박 2일의 일정은 참 바쁜일정이자 옛 마산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던 뿌듯한 일정이었다. 생기를 잃어가던 창동 네거리의 빈 점포에는 예술인들이 입촌하여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고, 향토사학자 박영주 씨의 안내로 이어진 3.15의거 발원지나 부마항쟁의 발원지인 창동네거리 등을 둘러보는 동안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노래 속에 그려진 잔잔한 바다 '가고파'의 고장 마산이 격동기의 현대사를 다시 쓰고 있었던 것이다.

 

간밤에 우리는 꽤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어느덧 새벽이 다가오고 곧 날이 밝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잠자리에 든 시간이 새벽 4시였으므로 이야기의 주제가 만만치 않았거나 한 배 두 배 나눈 술잔 때문에 객기가 발동했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향토사학자 박영주 씨와 부마항쟁 등 민주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박 씨는 부마항쟁사를 엮은 장본인이기도 했으므로 당시 부산대학교에 재학중이었던 죽마지우 S 씨가 앞장서게된 부마항쟁 당시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술자리에 끼어든 것이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 속에 부마항쟁으로 이어진 10.26의거는 직접적으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언필칭 '부마항쟁'이라는 키워드를 등장시킬 때 마다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게, 유신의 심장으로 불리우던 박정희와 그 심장을 겨눈 김재규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것이다. 마치 샴쌍둥이 같은 존재가 이들 두 사람의 운명이었던 지.

팸투어를 끝마치고 귀가한 후 3.15의거 발원지나 부마항쟁의 발원지인 창동네거리에 얽힌 이야기를 10.26의거날 즈음 되새겨 보고자 마음 먹었던 것이다. 겨우 눈을 붙이다 만 것 같은 데 창밖으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마산관광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본 합포만(合浦灣)은 면경같이 고요했다. 이렇게 고요한 바다 때문에 이은상님은 '가고파'에 마음을 실어보냈던 것일까. 가고파의 노랫말은 이러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어울려 옛날 같이 살고 지고
내 마음 색동옷잎혀 웃고 웃고 지내고자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우리가 즐겨 불렀던 '고향의 봄'과 '가고파'를 부를 때 마다 잘 알지도 못할 아득한 그리움에 빠져드는 건 왜일까. 사람들은 가고파의 배경이 된 합포만에 대해서는 잘 알아도 적지않은 분들은 가고파가 쓰여진 1932년 당시의 사정에 대해서는 잘 알려고도 하지않는다. 이은상님의 시 가고파는 일제강점기 당시(1932년 이화여전 교수로 재직할 때)에 쓰여졌다. 당신이 노랫말 속에 그린 합포만은 비유적으로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시인의 외침을 토로한 저항시(抵抗詩)였던 것이다.

 

나라 잃은 슬픔이 얼마나 컷으면, 그 잔잔한 바다와 함께 우리 민족의 고유의상이었던 오방색 색동옷을 입히고 눈물없이 평화롭게 살던 때를 그리워 하고 있었을까. 부시시한 채 깨어나 마산관광호텔 테라스에서 내려단 본 합포만은 너무도 잔잔했다. 누구인가 돌맹이 하나를 주워 던지면 퐁당 하는 소리가 글쓴이가 묵고있는 방까지 들릴 정도였고, 햇살은 눈부셨다. 합포만이 잔잔했던 것 처럼 우리 민족의 명운을 가른 근현대사의 민주항쟁 발원지는 모두 잔잔한 바다 처럼 평온했고 맑은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있는 지역이었던 것 같다. 그곳은 부마항쟁의 발원지 옛 마산이었으며 빛고을 광주였다. 모두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이었다.

 

아침을 합포만 가까운 해장국집에서 새콤한 복국으로 가볍게 먹은 우리 일행들이 찾은 곳은 3.15의거 및 부마항쟁의 발원지였다. 오늘날 진해시.마산시.창원시가 합해 창원시(옛 마산)로 이름이 바뀐 창동네거리에서 부마항쟁의 흔적을 찾게되었는 데, 우리 일행이 이곳을 찾을 때만 해도 부마항쟁을 알 수 있는 표지석 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가고파의 노랫말 속 뜻이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 처럼 부마항쟁이 가져다 준 역사적 의미는 부마항쟁의 현장에서 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지 부마항쟁이 일어났던 창동네거리 한편에 기념물을 세운다는 게 우리를 안내한 향토사학자 박영주 씨로부터 알게된 사실이었다.

 

이곳이 한국의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부마항쟁의 발원지였다. 마산이 3.15의거 및 부마항쟁을 통해 민주성지로 거듭나게 된 장소가 창동네거리를 중심으로 이어진 거리였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마산'이라고 하면 맨 먼저 떠올리는 키워드 몇개를 손꼽아 보면 가고파의 고장, 마산 아구찜의 고장, 3.15의거, 부마항쟁 등이다. 그런 마산이 창원시로 통폐합 되면서부터 옛마산은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지워져가고 있었던 것인데 그 중에 창동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창원시가 부랴부랴(?) 도시재생 프로잭트를 통해 창동예술촌을 만들고 창동의 옛 영화를 되살리는 건 좋았지만, 우리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민주화의 성지' 만큼은 여전히 정치적 바람을 타고있는 게 현실이었다. 3.15의거 및 부마항쟁의 당사자와 다름없는 오늘날 새누리당(박근혜 후보)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 지. 창동네거리에 설치하고자 계획했던 부마항쟁기념조형물 사업이 취소되기에 이른 것이다.

▲부마항쟁의 발원지 창동네거리 모습, 당초 창원시는 이곳에 부마항쟁 조형물을 조성하기로 했으나 10.26의거를 얼마 앞두고 돌연 취소했다.

경남도민일보의 한 칼럼<유신 그림자, 민주성지 더럽혀선 안돼>에 따르면, 글쓴이 등이 다녀온 부마항쟁 발원지의 기념물 조성 사업이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이전허가가 취소되었다는 암울한 소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의 전말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기 위해 향토사학자 박영주 씨께 전화를 걸어 부마항쟁 발원지 조형물 설치가 취소된 사건의 경위를 알아봤다.

"...박 선생님, 지난달 방문한 창동네거리의 기념물 조성 사업이 취소되었다는 데 어떻게 된 일이죠?...
"
...제가 알기로는 창동의 상인회와 입주단체 등이 반대 민원을 시청에 넣어서 허가가 취소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항은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정인옥 씨)이 잘 알고 계실 겁니다...참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김륭 시인님'의 글에 그 경위가 나와 있을 겁니다. 참고하시고요..."
"창원시장은 어느쪽이지요?..."
"네...그렇지요. 창원(시장)은 한나라당(새누리당) 쪽이지요."
"그렇다면 (이번 결정이)금번 대선과 무관하지 않겠군요."
"하하...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 향토사학자 박영주 선생이 창동네거리에서 노동운동에 헌신한 '소담 노현섭 선생'의 생애 등에 대해 일행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모습

오랜만에 전화를 통해 목소리를 듣게된 박 선생은 전화기 너머에서 반가운 표정이었지만, 글쓴이의 문의 내용의 결과가 썩 반가운 눈치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시 마산을 방문하게 되면 뵙기로 하고, 박 선생도 넌지시 알고 있었던 '김륭 시인'의 칼럼을 통해 부마항쟁기념사업회가 추진 중이었던 조형물 이전 사업이 어떻게 되었는 지 다시 살펴보니 이랬다.

"...이 조형물은 부마항쟁 20주년을 맞아 옛 마산시 예산과 시민성금으로 지난 1999년 10월 제작, 신마산 청소년공원에 설치했다. 이를 항쟁의 역사적 현장인 창동으로 이전하는 것이 부마항쟁 정신을 살리는 한편, 창동 도시재생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와 창동상인회, 창원시가 지난 4월에 합의, 이후 유관 부서에서 심의해 최종 이전허가를 내려 시의 지원으로 이전을 위한 기초공사(9. 10)까지 마쳤다.

그런데 느닷없이 3·15의거기념사회와 관련단체의 민원을 접수한 시당국이 이전허가 취소를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통보하고(9. 24), 단 하루 만에 허가취소(9. 25)를 통보했다.이쯤 되면 마산시민 그 누구라도 눈치 챌 것이다. 이게 갈등인가? 이건 차라리 '억압'이다. 굳이 갈등이란 용어를 빌려야 한다면 행정기관의 어처구니없는 조치를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 해당 단체들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조정해야 할 당국이 시민들의 의견이나 행정의 기본을 도외시한 채 특정단체의 민원에 일방적으로 이전허가 취소까지 강행하는 졸속행정에 대하여 시민들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

경남도민일보에 칼럼을 기고한 김륭 시인은 몹시 분노하고 있었다. 여태껏 잘 진행되고 있던 부마항쟁기념사업이 10.26의거 33주년을 코 앞에 두고 돌연 취소된 것이다. 겉으로는 일부의 민원이 문제라고 하지만 부마항쟁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관련 단체 등의 입장이나 부마항쟁기념사업이 뜻하는 바를 참조하면 그건 핑게거리 외 더도덜도 아닌 셈이었다. 따라서 칼럼의 저자는 이 사업을 중도에 취소하도록게 민원을 제기한 3.15의거 관련단체와 부마항쟁의 대상이었던 유신독재자와 그의 딸 박근혜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고 있었다.

"...부산서 시작해 마산서 끝장을 본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유신정권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현대 민주화운동의 금자탑이다. 이를 상징하는 조형물 이전을 같은 민주화 단체의 맏형이 반대한다? 뭔가 있다는 느낌 아닌가. 행여 그 이유가 이른바 유신공주의 치마폭에 있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부마항쟁의 역사적 가치를 외면한 정치권에 마산 시민항쟁의 맏형인 3·15는 이렇게 말하는 게 상식이고 원칙이다.

"과거사위원회 조사결과 이미 드러난 대로 위수령 이전에 불법적 군대 동원으로 진압하고 사망자까지 발생한 데 대하여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당시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창동으로 이전한 부마민주항쟁 상징조형물 앞에 고개 숙여 사죄하라' 고 말이다."

 

부마항쟁의 발원지가 위치한 창동은 부마항쟁 뿐만 아니라, 3.15의거와 4.19의거 민주혁명 당시 마산 시민이 분연히 일어나 항쟁하던 민주 항쟁의 성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마산에는 민주항쟁과 거리가 먼 친정부 어용 단체가 난립하면서 주민들 간에 갈등을 유발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10월 18일자 <한겨레>에 따르면 부마항쟁 관련단체들은 부마민주항쟁의 진상 규명 등을 위해 새누리당이 설립하려는 '부마민주주의재단(새누리당 100%)'과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에 대해 부마민주항쟁 관련 단체들이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나섰다. 이유는 간단했다.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그에 따른 조처를 이뤄내기에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기 때문이다. 평가를 받아야 할 대상이 스스로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부마민주항쟁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애비 박정희 등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 지 등에 대해 짧게 언급하며 글을 맺도록 한다. 부마민주항쟁(오늘날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불렀던 것 처럼 당시엔 '부마사태(釜馬事態)'라 불렀다.)을 <브리테니커> 사전에 기록된 내용으로 개관하면 이렇다.

"부마사태는 1979년 10월 16~20일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빚어오던 (박정희)유신체제는 1979년 들어서 '백두진 파동'과 '박정희 대통령 취임 반대운동' 등을 겪으며, 각종 시국사건에 대해 강경대응하여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체포·연행·연금 등이 잇달았다. 더욱이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안을 변칙으로 통과시켜 정국을 파국상태로 치닫게 했다.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학생 5,000여 명은 "유신정권 물러가라", "정치탄압 중단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내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저녁에는 부산시청 앞에 집결하여 부산시내 중심가까지 진출, 애국가 등을 부르고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10월 17일 저녁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시위가 지속적으로 확산되어 충무파출소·한국방송공사(KBS)·서구청·부산세무소 등이 파괴되고 경찰차량도 전소 내지 파손되었다.

경찰력만으로 진압이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는 10월 18일 0시를 기해 부산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투입하여 1,058명을 연행하고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계엄군에 의해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부산의 시민·학생들은 진압되었으나 시위는 더욱 확산되어 마산지역에서 마산대학교와 경남대학교 학생들을 선두로 민주공화당사·파출소·방송국을 타격하는 등 격렬한 시위가 전개되었다.

10월 19일에는 마산수출자유지역의 근로자와 고등학생들까지 합세하여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고, 마산시내는 한때 치안부재의 상태가 되기도 했다. 10월 20일 정부는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하여 505명을 연행하고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는 등의 강경책을 전개했다. 이 사건은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로 확산시켰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가 무너지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지난달 23일 글쓴이 포함 1박 2일의 팸투어에 참가하고 있었던 전국에서 초청된 블로거들은, 도시재생 프로잭트가 진행중인 창동예술촌과 오동동 등 창원시 원도심(옛 마산)을 둘러보며 3.15의거 발원지 및 부마항쟁 발원지였던 창동네거리 등을 둘러보고 있었다. 휴일(일요일) 아침 창동네거리는 합포만의 바다처럼 정적이 흐르는 듯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그러나 33년 전 창동네거리는 민주화를 부르짖는 함성으로 가득했다.

 

유신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이 부산에서 시작하여 마산 창동을 중심으로 활활 타오르며 전국적으로 확산일로에 있었던 것이다. 다급해진 쪽은 박근혜의 애비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중정부장 김재규 등 유신정권의 핵심을 이루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궁정동의 안가에 모여 부마항쟁에 대한 대책 등을 논의하며 '시바스리갈'을 마시는 마시는 한편, 가수 심수봉과 신재순이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구고 있었다.

심수봉은 '그때 그사람'을 신재순은 '사랑해'를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노래 제목과 전혀 딴판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박정희의 총애를 받던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사랑하기는 커녕 두 눈에 독이올라 금방이라도 불이붙을 듯한 상황이었다. 그때 그사람들의 주요 대화는 부마항쟁의 성격 등에 대한 판단이 주요 관심사였다. 당시 부마항쟁의 모습은 MBC가 다룬 다큐 <다큐멘터리 - 궁정동 사람들(10.26 사태)> 속에서 "전체 학생들이 민중과 더불어 소위 민란을 일으킨 상황입디다. 그게 끔찍한 이야기거든...-故이재전, 전 경호실 차장- "라고 말하고 있었다. 유신독재의 폐해가 민란을 불러왔던 것이며 그 시작은 부산에서부터 마산으로 불이 옮겨붙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해 차지철은 김재규와 다른 판단을 하고 있었다. 당시 차지철은 부마항쟁의 원인이 김영삼과 신민당의 야당의 사주를 받은 소수 사회 불만세력(깡패.부랑아. 구두닦이. 심지어 목욕탕 때밀이 등)이 일으킨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당시 부산 마산 지역에서 보고된 보고서 내용은 주로 폭동이었다고 전하고 있었다. 사태 파악이 잘 못 된 것이었다. 그게 10.26의거를 불러오게 될 운명일 지 박정희나 차지철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유신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27살 처녀(?)시절이었다.

하지만 김재규의 생각은 달랐다. 김재규와 박흥주는 부마항쟁 직후 현장을 직접 돌아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민심이반이 심각하며 부마항쟁이 5대 도시로 확산될 것"이라고 청와대 안보소회의에 보고했던 것이다. 그가 본 부마항쟁의 발원지에는 "시민들이 물을 떠나주고 시민들도 같이 호흡을 하는 데 이것이 굉장히 심각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는 "이것이 마치 잘못되면 다 죽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궁정동 안가에서 맨 처음 끄집어 낸 화제도 부마항쟁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이날 박정희와 차지철은 강경진압을, 김재규는 온건한 진압을 주장했던 것이다. 당시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김계원(전 대통령 비서실장) 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부산사람들을 김영삼이가 선동해서 그렇게 된 거다. 대통령은 그냥, 철두철미하게 머리에 그렇게 생각이 박혀있었어요. 그걸 이제 차지철이 그렇다 하고, 그게 그날의 근본적인 문제죠." 하고 당사 상황을 증언했다. 이를테면 차지철은 김재규 앞에서 깐죽깐죽 약을 올리는 상황이었다.

또 김재규의 머리 속에서는 박정희의 눈을 어둡게 만드는 차지철은 물론, 차지철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으며 김재규 자기를 무시하며, 사태파악을 하지 못하는 박정희를 당장이라도 권총으로 쏴 죽여버리고 싶었던 심정이었던 것인 지. 10.26 거사는 차지철의 깐죽거림과 박정희의 판단력이 오락가락하는 등 어우러지며 죽음의 시간을 서서히 앞당기고 있었다. 이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절로 돋게 만드는 발언이 박근혜의 애비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로부터 나왔다. 김재규의 증언이었다.

"이 말은 밖에 안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각하(박근혜의 애비 박정희) 말씀은 "이제부터 사태가 더 악화되면 내가 직접 쏘라고 명령하겠다."하니까. 차지철 경호실장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명이라고 하는 것도 희생을 시켰는 데 우리 대한민국은 100,200만명 희생한다고 문제될 거 있느냐"고 이러한 얘기가 나옵니다. 들으면 소름이 끼칠 그런 이야깁니다."

 

김재규는 마침내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가 당긴 권총의 방아쇠에 대해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말했다. 일제에 피로 맹세하고 우리 독립군을 못살 게 군 박정희의 유신독재 18년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만 것이다. 박정희 나이 62세되던 해였다. 10.26의거에 대해 반대론을 펴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그게 돌발적인 '사태'이지 어떻게 계획된 '의거'라는 말이냐는 등이었다. 그러나 유신독재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마항쟁과 김재규의 증언 등을 참조하면 박정희나 차지철은 죽음을 자초한 게 맞는 말이다.

역사란 만약을 허용치 않지만, 만약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을 사살하지 않았다면 한국 사회는 자칫 정치적인 이유로 300만명이 희생된 도무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킬링필드'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김재규가 '한국판 킬링필드'를 막은 사건이 10.26의거였던 것이다. 김재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평소 결심한 것으로 전해진 거사를 실행에 옮겼다. 박정희는 '시민을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을 하겠다는 불순한 생각만으로 총살을 당했으며, 차지철은 '킬링필드를 부마항쟁에 적용해도 별 문제를 못 느낀다'고 말하는 순간 총살을 자처한 것이다. 유신의 심장부는 이렇듯 사악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고 김재규는 그 심장부를 향해 권총을 발사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큰 문제는 10.26의거가 진행될 당시 박정희와 차지철의 대국민관이었다. 이를테면 충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간신배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화를 자초한 것이다. 박정희와 차지철 등이 총살 당한 33년 이후 비록 시대상황은 다르지만, 오늘날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등 여권의 사람들도 10.26의거 직전 상황과 역사인식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박근혜 후보는 사람들의 진언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며 어찌 그렇게도 애비의 운명을 닮아가는 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친정부 언론을 통해 국민들을 향해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사실을 왜곡 호도하는 가 하면, 정치검찰을 통해 민주.애국시민들을 탄압하고, 유신독재의 숙제를 고스란히 간직한 5.16군사쿠데타,인혁당사건,정수장학회 망언을 통해 과거사를 합리화 하는 모습 등은 김재규가 들어도 소름돋을 만큼 발칙한 일들이라 사료되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가슴 속은 가고파의 고장 합포만 처럼 고요하고 빛의 고을 광주처럼 평화롭기를 원한다. 하지만 한 순간 국민들의 마음을 잘 못 파악하여 국민의 뜻을 저버린다면, 그땐 부마항쟁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처절한 응징의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판단된다. 역사를 40년 전으로 거꾸로 돌리고 있는 한국판 킬링필드 음모의 후손들이 잘 새겨 듣기 바란다. 역사는 거짓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10.26의거를 잘 그린 '다큐멘터리 - 궁정동 사람들(10.26 사태)'을 참조하시기 바란다.(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U4M2Ouogq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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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MB)은 이제 아들까지 파는가?

이명박(MB)은 이제 아들까지 파는가?
(서프라이즈 / 뉴요코리안 / 2012-10-26)


독재자도, 조폭 두목도 아들은 팔지 않았다.

글쓴이가 지난번 올린 글에서 이명박(이하 MB)은 정권 교체 여부와 관계없이 내년 봄쯤이 지나면 서울구치소에서 첫 밤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필자는 MB와는 아무런 개인적 앙금이 없으며 이러한 예언은 사실은 예언이 아니라 MB가 행한 업보의 결과이며 오히려 아직도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정치 검찰을 개혁하지 못한 MB의 자업자득이라서 시차의 문제이지, 곧 행하여질 역사적 사실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MB가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아는지, MB는 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아무 죄가 없는(?) 아들을 볼모로 삼아 일단 구속은 피하고 아들을 먼저 구치소에 보내려고 하고 있는 꼴을 보니 참 어이가 없기도 하고 어찌 저런 인물을 5년 동안 한국의 대통령 자리에 있게 했을까 하는 자괴감이 밀려오고 있다.

아직 하나도 드러나지 않은 BBK 사건에 비하면, 이 사건은 지금 특검에서 하나씩 드러나듯이, 큰아버지한테서 6억 원을 빌려 오라는 말만 듣고 착실히(?) 빌려 와서 그것도 현금다발을 그대로 청와대 장롱 안에 놓아두었으며, MB 사저를 자신(이시형)의 명의로 하고(명의신탁, 금융실명제 위반 등) 땅값도 싸게 지불한(배임 혐의) 아주 간단한 사건이다.

이 간단한 사건을 세계적인(?) 수사 실력을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 검찰은 무혐의 판정을 내리고 말았다. 힘없는 사람을 조지는 데는 최고의 수사 실력을 자랑하는 검찰이 권력만 관련되면 알아서 기는 못된 풍토가 아직도 한국에는 존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정치 검찰을 놔두고 정치 개혁 이야기는 공염불이다.

그래서 고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초기부터 이러한 검찰 개혁을 단행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커다란 장벽을 깨부수지 못했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이 점은 대한민국에 동시대를 사는 깨어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뼈아픈 역사적 교훈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문재인, 특히 안철수 후보는 정치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다. 글쎄다... 정치학을 전공한 필자도 한국의 정치 개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되고 말로만 떠드는 정치인들에게 하도 속아서 무디어진 감각이라, 대선을 앞두고 쏟아 내는 바른말(?)의 실천성에 또 다른 의혹이 일고 있음을 분명히 말해두고자 한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문재인 후보이든 특히, 안철수 후보이든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 노무현도 완성하지 못했던 이러한 정치검찰의 개혁을 이루지 않고서는 모두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국민을 일시 속이려는 술책에 불과했다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임을 잊지 말기 바랄 뿐이다.


특검의 한계를 이제는 국민이 해결해야 한다.

이번 특검은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결과론적으로 MB 아들인 이시형을 조사해 기소할 것이지만, 조사하는 특검도 이시형은 심부름꾼에 불과하고 결국은 아버지(MB)가 모든 것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밝혀낼 것이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은 민, 형사상 소추되지 않는 기막힌 법이 있다. 따라서 특검은 이러한 사실을 공표하고 MB의 기소 문제는 MB 퇴임 이후인 다음 정부의 몫으로 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특검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러한 수사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박근혜는 기다렸다는 듯이 득표를 위하여 MB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검찰 개혁론을 내놓으면서 국민을 또 속이려고 들 것이다. 이것은 조금만 깨어 있다면 누구나 다 아는 자명한 스토리이다.

따라서 필자가 이미 예언했듯이, 누가 정권을 잡던 MB는 감옥에 가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검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이러한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새누리당의 대국민 사기 술책에 또 당한다면, 역사는 다시 후퇴할 것이고 MB는 감옥에 갔다 오는 흉내로 이 모든 죄과들이 흐지부지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점이 필자가 다시 거론하기도 싫은 죽어가는 MB를 이 글의 화두로 삼은 원인이다.

MB는 퇴임 후 이래나 저래나 BBK, 4대강 특별 조사 등으로 감옥행은 불을 보듯 뻔하나, 새누리당과 기득권 세력은 이를 차별화시키는 척하고 검찰 개혁안이라는 것을 다시 대선 정책의 표면으로 내면서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을 속이려 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출세라면, 제일 먼저 꼬리 내린 이맹박(?)…

부족한 필자가 과거 MB의 자료를 조사하면서, 고려대 과학생회장(?)으로 6.3 항쟁에 선두에 섰다는 MB의 과거가, 사실은 이름도 두개라는 의혹을 남긴 체 도망 다녔으며, 잡혀서 재판을 받자마자 바로 꼬리를 내리고 이 이후에는 박정희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하여 현대건설에 입사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혹시, 이맹박을 아십니까? 참조)

이렇게 출세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달려온 MB이니, 막판에 몰려 자기 아들을 먼저 파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으나, 대체 아비로서 자신이 시킨 심부름을 수행한 아들을 특검에 불려다니게 하고 곧이어 기소되고 수감될 것이 뻔한데,,, 쯔쯔,,, 어찌 조폭 두목보다도 못하단 말인가?

필자가 예언한 홍사덕의 말로가 바로 현실화되듯이… 이 MB의 비참한 말로는 벌써 시작부터 아들로 시작하여 막판에는 집안 형제 모두가 줄줄이 엮이어 감옥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내년 가을쯤 한국 TV에서 생중계될 것을 예상하니, 이를 지켜보는 외국인들이 한국은 정권만 바뀌면 줄줄이 잡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무어라 말할지 참 걱정이 앞선다.


역사를 되풀이되게 할 수는 없다.

이 글을 쓰는 시간이 아마 한국시간으로는 10월 26일, 김재규 중정부장의 손에 박정희가 암살된 날이다. 김 부장은 박정희는 죽였지만, 그가 행한 많은 과오들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고 오욕의 역사는 전두환의 쿠데타로 되풀이되고 말았다.

방금 올라오는 한국의 속보 기사들을 보니, 박근혜는 박정희 암살 33주기 모임에서 “아버지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이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사과한다고 했다”고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참 어이가 없다.

친일주의자들을 비롯한 극보수 기득권론자들의 늘 국민을 속이는 이른바 18번 논리가 있다. 즉, 일제 강점기를 미화하면서 일제가 무슨 철도를 놓았으니, 한국 근대화에 일제가 이바지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와서 그 중노동의 건설 공사를 했단 말인가?

하지만 이제야 역사의 현실을 똑바로 인식한 대다수 한국의 국민들은 이런 일제의 논리나 친일주의자들의 논리가 얼마나 거짓에 가득 차 있었음을 간파하고 있다.

바로 똑같은 논리이다.

박정희가 배고픔을 해결했다는 논리가 바로 같은 논리란 것이다. 마을 앞에 큰 다리가 하나 놓여도 박정희, 정수장학회 사건이 대변하듯 개발 이익은 다 쿠데타 세력이 가져가도 다 박정희가 발전을 시켰다는 논리가 아직은 한국에 조금 먹히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시기처럼, 이런 논리마저도 조금 더 세월이 지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는가?

그것을 잘 아는 박근혜는 대선이 다가오면서 갈수록 자중지란에 몰리자 또 사과한다는 말로 대충 국민을 속여보려고 마지막으로 발버둥치고 있는 모습이 멀리 있는 미국에서까지 눈에 선하고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민은 깨어있고 살아있다고 믿는다.

이번에 개인사로 한국에 한 달간을 머물면서 잠시 시간을 내어 몇 분을 만났다.

진실이 사라져 버린 천안함 사건에 몰두하면서 “누구를 탓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조리를 밝혀냄으로써 한국 아니 조국을 올바른 곳으로 가게 하려고 하는 일이다.”라고 늘 강조하시던 어느 노교수님의 단초로운 교수실을 보고는 필자는 충격에 빠졌다.

거기에 얇은 스티로폼 하나만 깔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실을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어느 노교수님을 보면서 필자는 그냥 마음에 새기지 못한 글만 써왔던 나 자신을 한없이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모 한국은 미국의 52번째 주 아닌가요?”라며 필자를 한 방 먹이던 어느 중학교 선생님을 만나면서, 이런 분들이 진실이 가려진 천안함뿐만 아니라 한국의 나아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고 나름의 노력을 하고 계신 것을 보고 오면서 그래도 우리는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런데, 이 대한민국에서 어찌 잘못 뽑은 일국의 대통령은 자신이 감옥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지 아니하고 조폭 두목도 하지 않는 자신의 아들을 파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재자는 물론 설사 조폭들마저도 자신의 비리에 자기 아들을 팔았다는 소리를 이 필자는 들어보지를 못했다.

이런 국가의 부끄러운 현실이 지금 MB 말기에 한국에서 펼쳐지고 있음을 우리 국민은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12월 19일, 거꾸로 되돌아간 역사를 다시금 바로잡는 날이다.

12월 19일은 국민이 가만히 두어도 극보수 기득권들마저도 용도 폐기할 MB를 감옥에 가게 하기 위한 날도 아니며, 정치 검찰로 대표되는 수구 기득권 세력의 무기를 그냥 놓아둔 채, 말로만 정치개혁이 어쩌니 국민이 어쩌니 하는 또 하나의 대통령을 뽑는 날이 아니다.

누가 야권의 아니 필자도 한발 양보하여 국민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국민의 후보가 되든…

“정말 당신, 노무현도 못한 정치 검찰을 개혁할 수 있소?” 이 질문에 확약을 받고 확약을 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임을 잊지 말자.

보다 구체적으로 조금은 유식한 척하자면, 한국은 지금 눈으로 드러난 경제적 외형의 가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를 잘못 고르면서 내부적인 국가 부채는 쌓여 가고 있으며, 해방 이후 부의 불공정 분배로 인한 반민주적이 요소들이 기존 극보수 기득권층에 의해 더욱 더 심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누가 정말 용기있는 식견을 가지고 이것을 타개할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감히 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도 최선은 아니라도 정말 한국이 놓인 이런 문제를 솔직하게 국민과 대화하고 자신의 임기 5년에 많은 것은 아니더라도 그것을 개선하겠다는 솔직한 후보를 우리는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고 본다.

아마 지금 논의되는 후보 단일화의 해법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부족한 필자는 우선 먼저 제언하고자 한다.

 

뉴요코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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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문재인·박근혜의 뇌 사진을 찍어 보면…

안철수·문재인·박근혜의 뇌 사진을 찍어 보면…

[프레시안 books] 크리스 무니의 <똑똑한 바보들>

강양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0-26 오후 6:20:05

 

한참 전에 우디 앨런의 다소 낯간지러운 영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Everyone Says I Love You)>를 본 적이 있다. (분명히 혼자 보지는 않았을 텐데, 누구랑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로!) 갈등 같지도 않은 모든 갈등이 마법처럼 해결되는 앨런스럽지 않은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포복절도했던 기억이 난다.

골수 민주당 지지자인 주인공 집에는 가풍을 거스르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꼴통' 오빠가 있다. 그런데 영화의 말미에 이 오빠의 비밀이 내레이션으로 밝혀진다. 뇌를 열어 봤더니 이상한 종양이 있었다는 것! 그 종양을 제거하고 나서, '정상'이 된 오빠는 민주당 지지자로 대변신했다. 믿거나 말거나!

이 에피소드는 미국 동부와 서부에 모여 사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주일마다 복음주의 교회에서 '할렐루야'를 외치고, 선거 때마다 꼬박꼬박 부시 같은 자(者)에게 표를 주는 공화당 지지자를 어떻게 보는지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저들의 머릿속에는 분명히 뇌를 갉아먹는 벌레들이 살고 있음이 틀림없어!"

미국의 기자 크리스 무니의 <똑똑한 바보들>(이지연 옮김, 동녘사이언스 펴냄)을 읽으면서 계속 이 영화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골수 민주당 지지자인 무니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실 우디 앨런이 영화에서 보여준 저 에피소드의 변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이 저러는 이유를 알고 보니, 세상에 뇌가 다르대!"

사실 "보수와 진보는 뇌부터 다르다" 책 띠지에 큼지막하게 박힌 이런 주장은 자극적이긴 하지만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생각해 보자. 한 인간이 유전과 환경의 상호 작용이 빚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때, 한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자신의 뇌에 흔적을 남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자도 이런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 <똑똑한 바보들>(크리스 무니 지음, 이지연 옮김, 동녘사이언스 펴냄). ⓒ동녘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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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몸의 어느 구성 요소보다도 복잡하고 역동적인 인간의 뇌는 특히 유전보다 환경의 영향이 큰 부분 중 하나다. 그러니 비교적 어렸을 때부터 지역, 계층, 종교 등에 따라서 정치적 라이프스타일이 확연히 다른 미국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의 뇌가 다른 특징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오!' 하면서 호들갑을 떨 정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가 이런 식의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의 다른 특징이 대물림할 수도 있다는 대목을 조심스럽게 언급한 것은 "과학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기자로서는 정말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얘기다. 민주당원과 공화당원 뇌의 차이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후천적 특징일 가능성이 높고, 이런 특징은 유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이 보이는 뇌의 차이가 유전이라는 점을 증명하려면 민주당 가계와 공화당 가계의 유의미한 샘플을 몇 대에 걸쳐서 살피는 대규모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연구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마흔다섯 살을 기준으로 세대별로 보수, 진보로 쫙 갈린 한국의 여론 지형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뇌의 차이 중 하나로 편도체의 크기를 꼽는다. 편도체는 공포와 관계된 뇌 기관으로 알려져 있는데, 보수주의자일수록 이 편도체가 더 발달되어 있다는 것이다. 편도체가 더 발달한 이들은 위험 혹은 위협이 닥쳤을 때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의 또 다른 뇌의 차이는 전대상피질(ACC)의 회백질이다. 진보주의자일수록 이 ACC의 회백질이 많다는 것이다. ACC는 오류 감지 등에 관계한다고 알려져 있다. 즉 ACC가 더 활성화되어 있는 이들은 상황 변화에 따라 자신의 오류를 점검하고 다른 대안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설명을 듣고 보면, 김이 빠질지 모르겠다. 일상생활에서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이 꼭 보수주의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세상사에 열린 태도를 지닌 회의주의자의 모습이 꼭 진보주의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여기 미국의 30대 남성이 있다.

그는 골수 민주당 지지자이다. 진보라면 매사에 개방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대통령 오바마에 관해서는 "닥치고 지지!"를 호소한다. 심지어 진보주의자들, 정확히 말하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런 심사숙고와 우유부단을 거듭하는 선택 덕분에 미국이 '바보 같은' 보수주의자로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그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반핵 활동이 활성화된 게 영 마뜩치 않다. 과학자들이 핵발전소의 위험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신빙성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음에도 그것을 듣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학자들 누구도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를 예견하지 못했음은 그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더구나 핵발전소는 오바마도 지지한다!)

반면에 그는 과학자들이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기후 변화를 놓고서 수많은 경고를 했는데도 공화당 지지자를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이 그런 경고를 듣지 않음을 개탄한다. 그는 무섭다. 지구 온난화로 인류가 결딴날 수도 있는데…. 하지만 그는 기후 변화를 둘러싼 수많은 불확실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보수주의자의 궤변'으로만 취급한다.

눈치 챘겠지만 여기서 '그'는 바로 이 책의 저자 크리스 무니다. 자, 그는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횡설수설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바로 무니의 뇌 사진을 찍어보면 도대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의 뇌는 진보주의자의 상징이라는 ACC가 상당히 미발달된 모습으로 나오지 않을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뇌 과학의 성과를 동원해 "닥치고! 오바마"를 선동해 보려는 이 책은 역설적으로 정치가 망가지고 반지성이 득세하는 미국의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진보 지식인 중에도 무니와 비슷한 이들이 숱하게 많지 않은가? 그들을 모두 모아서 뇌 사진을 한 장씩 찍어 보고 싶다.

 

 
 
 

 

/강양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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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 남북기본협정 추진해야"

 

"차기 정부, 남북기본협정 추진해야"
조성렬, '한반도/안보협력' 우선하는 대안적 접근 제안
 
 
2012년 10월 26일 (금) 18:12:42 이광길 기자 gklee68@tongilnews.com
 

 

   
▲ 26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2012 대한민국민회 한반도 평화와 통일 분과회의'가 열렸다. 왼쪽 조성렬 연구위원.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남북한의 합의로 낮은 수준의 한반도 안보 틀을 마련한 뒤 이를 토대로 남북 간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북핵, 한반도 평화협정 등 높은 수준의 안보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26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화기념사업회에서 열린 '2012 대한민국민회 한반도 평화와 통일 분과회의'에서 △한반도문제와 동아시아문제 중 어디서부터 풀어나갈 것인가, △경제협력과 안보협력 중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가는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안보협력'을 우선하는 '화해.협력정책구상'을 제안하면서 그 내용을 이같이 설명했다.

조성렬 연구위원이 제안하는 '낮은 수준의 한반도 안보 틀'은 기존 남북기본합의서를 대체하는 포괄적 잠정협정으로서 '(가)남북기본협정'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대결이 격화되면서 북측은 남북 간의 기존 합의가 무너졌다고 밝혔고 이명박 정부도 '5.24조치'를 시행함으로써 실제로 남북 간에는 무규정상태가 됐다"며 "현재는 정전협정만 살아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를 대체하는 기본협정을 맺어 남북 장성급 회담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5년에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게 되면, '낮은 수준의 한반도 안보틀'을 관리하는 체제로서 남북 장성급 회담을 추진할 명분이 강화된다고 봤다.

'한반도/안보협력'을 우선하는 접근법을 제기한 배경과 관련, 조성렬 연구위원은 "동북아시아 안정을 우선시하는 접근법은 우리의 자결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서는 '경제평화론'이 원용되면서 경제협력이 진전되면 안보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봤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햇볕정책 확대구상'은 남북관계(한반도)를 중심으로 경제협력으로 안보문제 해결을 도모했으나 현실적으로 북한 지도부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동북아지경전략'도 경제협력만으로는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해법으로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중국의 주도권 아래 실시된다는 점에서 통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동북아/안보협력'을 우선하는 '동북아판 헬싱키 프로세스'는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를 수립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어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변화에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경험과 달리 동북아 평화.번영의 틀을 만든 뒤 한반도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냉전시대의 모순이 집약된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통해 동북아의 안정.번영을 촉진하는 경로"를 취하자는 게 조 연구위원의 대안적 접근법이다.

그는 "화해.협력정책구상에 따른 한반도 문제 및 안보협력 중심의 접근법에 맞춰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원칙에 입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상호체제의 인정과 존중의 원칙, △상호 조율된 안보조치의 원칙, △민족자결에 입각한 국제협력의 원칙을 제시했다.

'상호 조율된 안보조치의 원칙'에 대해서는 "화해.협력 정책구상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경제협력과 함께 북한의 핵확산 억제를 유도하기 위한 '이유있는 안보우려'를 해소해주는 남북한과 관련국 사이의 상호 조율된 안보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같은 안보조치 없이는 남북 간의 교류.협력도 모래 위에 쌓은 성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교훈에 입각한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차기 정부 5년 동안 '비핵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기는 어렵다"며 "따라서 2007년에 추진했던 종전선언 이행도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차기 정부가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평화체제'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할 이유다.

이날 토론회에는 △남측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가야 하는가, △북한이 어느 만큼 전향적으로 나올 것인가, △대북정책 이행에 필요한 국제적 조건,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해 주변국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하는 세 가지 주제가 다뤄졌다.

차기 정부의 과제와 관련,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신뢰', '협력', '평화'를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의 6.15와 10.4 정상선언 부정으로 인해 남북관계에서 무너진 정치적 신뢰를 다시 회복하고, 경제협력의 확대를 통해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을 본격 추진하며,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진전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향후 행보와 관련, 정창현 <민족21> 대표는 "북한은 우리가 원하는 식의 개혁.개방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개혁.개방과 체제안정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양극단 사이의 균형점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방식으로 정치적 부담이 덜한 분야에서 최대한 실리주의를 추구할 것"이라고 봤다.

정 대표는 이에 따라 차기 정부는 '지속가능한 대북정책'을 도출하고 비핵화를 장기 과제로 사고하면서 "남북경협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통해 남북대화를 복원함으로써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선순환구조로 동시에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핵포기에서 멀어진 북한이 다시 비핵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유도하는 장기적인 대북정책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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