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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 씹고 뜯고 맛보니 즐겁나봄

[우리는 시골에서 살기로 했다②] 때로는 <리틀 포레스트>같은 우리의 일상과 현실

18.04.04 22:48l최종 업데이트 18.04.04 22:48l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른이 되면 당연히 도시에서 살 거라 생각하던 시골소년이 서울의 삶을 두고 다시 시골로 갔습니다. 소유의 땅도 집도 없고 가족이나 친척도 없는 강원도 홍천에서 짝꿍과 함께 자연농과 시골살이를 배우고 있습니다. 현실과 부딪치고 방황하는 젊은 부부의 작고 솔직한 시골 사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올겨울은 참 추웠다. 안 그래도 추운 동네로 이사 왔는데 첫 겨울부터 혹독한 추위 맛을 제대로 봤다. 집밖에 거의 안 나갔다. 도시가스보다 비싼 기름보일러라 집이 작은 원룸인 것이 차라리 고마웠다. 마음씨 좋은 친구가 보내준 온수매트까지 활용해 겨우 버텼다. 드디어 유난히도 길고 추웠던 그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꽁꽁 얼어있던 몸은 물론 마음까지 풀려 말랑말랑해지고 있다. 서울 살 때는 달력과 일기예보에 쓰인 숫자로 알았던 봄이었다. 봄이라고 해서 내 일상이 달라졌던 것은 옷장에서 다른 옷을 꺼내 입었다는 것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봄이라는 이유를 붙여 행사를 열거나 특별히 어딘가 놀러라도 가기 전에는 봄을 실감하기가 어려웠다.

여기서는 온몸으로 봄을 느끼고 있다. '봄 내음' 물씬 풍긴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정말로 봄의 냄새를 맡으러 나간다. 들에서 솟아나고 있는 봄나물과 풀, 나무에서 나는 향이 어느새 포근해진 바람을 타고 코를 간지럽힌다. 밖에만 나가면 도로에 가득한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을 맡기 싫어 숨을 아껴 쉬던 때와는 참 다르다.
 
솔직한 말로 여기라고 매일 숨을 한껏 들이쉬는 건 아니기는 하다. 여기라고 미세먼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더 깊은 오지로 들어가면 모를까, 그래도 마을이 있는 농촌에는 당연히 차와 농기계도 다닌다. 그래도 다른 건 도시보다 낫지만 퇴비와 축사 냄새는 즐기기 쉽지 않다. 

어느 분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지 않는 농촌생활의 현실 중 하나로 영화로는 맡을 수 없는 '냄새'를 꼽기도 했을 정도다. 봄이면 밭마다 가득 쌓아놓는 퇴비냄새를 알기에 그런 얘기를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특히 축사가 많은 동네나 그 가까운 곳에는 집이나 밭을 얻을 때는 냄새가 어느 정도인지 잘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잘못하면 여름에 창문을 열 수도 없고 안 열 수도 없는 웃지 못할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 동네에도 곳곳에 축사가 좀 있는데, 시골에서 돼지 키우는 축사 같은 걸 하게 된다면 조심할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조심한다 하더라도 완전히 막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냄새다보니 이웃과 다투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한다.
 
봄나물 밥상 눈개승마와 겹꽃삼잎국화
▲ 봄나물 밥상 눈개승마와 겹꽃삼잎국화
ⓒ 이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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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봄 내음을 코로만 맡으면 아쉽다. 봄나물 정도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줘야 시골 사는 보람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입이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작은 냉이였다. 짝꿍이 대뜸 냉이파스타를 하겠다며 냉이를 뜯으러 가자고 부추겼다. 추운 지역이라 그런지 냉이가 아직도 작은 편이지만 먹기엔 충분하다. 어려서 할머니가 냉이로 된장국이나 나물은 해주셨어도 냉이파스타는 처음 먹어봤다. 냉이를 날것으로도 해보고 데쳐서도 해보고 짝꿍의 요리 연구 덕에 덩달아 행복하다.

그 다음으로는 눈개승마와 겹꽃삼잎국화! 겹꽃삼잎국화는 그냥 두면 키가 크게 자란 뒤 노란 꽃을 피워서 키다리노랑꽃이나 노랑꽃이라고도 불리는데 작년 봄에도 파드득나물, 쇠별꽃, 부추 등과 함께 나물비빔밥으로 봄 내내 먹었다. 

개성있는 향에 나름 씹는 맛도 있는 녀석이다. 눈개승마는 데쳐서 두릅 비슷하게 초고추장 만들어 찍어먹었고, 겹꽃삼잎국화는 샐러드로 먹었는데, 입맛을 돋우는 맛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신선한 봄나물 요리들을 먹으면서 이렇게 살면 정말 김치냉장고가 필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김치를 좋아하는 편인데도 김장김치, 말린 나물 같은 건 겨울에나 먹지, 이렇게 밖에만 나가면 맛있는 것들이 널려있을 때 뭐하러 그런 걸 먹나 싶다. 

게다가 이 풀들은 고추 같은 채소보다 노력도 덜 들어간다. 밭에 심었다면 다른 풀들을 좀 관리해주긴 해야겠지만, 일단 한번 심어놓으면 자기 혼자 옆으로 퍼지면서 세력 확장하고 매년 심지 않아도 계속 살아남아 먹을 걸 제공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그냥 때 되면 가서 뜯어 먹기만 하면 된다!
 
딸기 작년에 심어놓은 딸기도 여러해살이풀이라 이렇게 알아서 새순이 나오고 있다.
▲ 딸기 작년에 심어놓은 딸기도 여러해살이풀이라 이렇게 알아서 새순이 나오고 있다.
ⓒ 김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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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어제는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 영화에 나오는 '머위된장'을 만들어 먹는 데에 이르렀다. 영화를 보고나서부터 벼르고 별렀던 짝꿍이 드디어 소원을 이뤘다. 이건 우리도 이번에 처음 먹어본 것인데, 나는 머위를 심은 밭이나 머위가 많은 곳이 없어서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짝꿍은 뛰어난 관찰력으로 이미 작년에 작은 개울 옆에 머위가 많은 곳을 봐두었단다. 마침 개구리님 논밭을 돌아보다 논둑에 머위꽃이 하나 피어있는 걸 발견하고, 점찍어둔 장소로 가보았다. 거기서 머위꽃을 보이는 대로 다 땄는데 그래봐야 열 개도 되지 않았다. 꽃이 그리 많지가 않다.

한국에서는 머위꽃을 먹는 사람도 없고 판매하는 곳도 없다. 머윗대나 잎만 좀 먹을 뿐이다. 그러나 영화에 나온 머위된장은 머위꽃으로 만든다. 보는 것도 처음인 머위꽃은 살짝 달큰한 느낌의 기분 좋은 향이 났다. 

하지만 그냥 먹으면 많이 쓰다. 데쳐서 볶은 뒤에야 쌉싸름한 뒷맛을 남기는 밥도둑이 된다. 영화의 레시피를 정확히 알 수 없고 된장 등이 일본의 재료와 다를 텐데도, 머위된장 비벼 밥 세 그릇 비우는 장면을 고개 끄덕거리며 볼 수 있게 됐다. 이럴 때는 참말로 영화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머위꽃 머위된장 만들어보겠다고 머위꽃을 뜯었다.
▲ 머위꽃 머위된장 만들어보겠다고 머위꽃을 뜯었다.
ⓒ 이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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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하시겠지만 현실은 늘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영화에는 아주 잠깐씩 등장하는 허리가 부서질 것같이 일하는 시간 혹은 생계 걱정하는 시간이 좀 더 길다. 우리는 적게 벌고 적게 쓰자는 마음가짐으로 시골살이를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일하는 시간이 적은 편이다.

주 5일 어디 출근하는 것도 아니면서 농사짓는 것도 돈이 벌릴 것 같이 보이지 않으니 오며가며 자주 인사드리던 동네 할머니께서는 우리가 돈 많은 사람들인 줄 아셨단다. 어딜 봐도 없는 티를 팍팍 내고 다니는(?) 지라 그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는 삶이 몸에 밴 분들이니 거기에 대면 놀고먹는 거나 다름없는 우리 모습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싶다.

그렇게 남들보다 일을 덜하다보니 통장잔고는 조금씩 줄어 지난달엔 서울의 저렴한 월셋집보다도 두 배는 싼 이곳 월세를 걱정할 정도가 됐다. 일자리를 수소문하니 그래도 사람 구하는 곳들이 몇 있긴 했는데, 대체로 주 5일에 야근이나 주말근무도 종종 있는, 도시의 월급쟁이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여러 가지로 난감해서 도저히 내키질 않았다. 그 중엔 깊은 고민 끝에 거절한 곳도 있다.

그러다 결국 인연이 닿은 곳은 학원! 우리 사회의 교육제도나 상황에 대해 고민도 많고, 사교육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기에 그동안 과외나 학원 일로 돈을 벌어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하기로 한 것은 더 이상 일을 가릴 처지도 아니거니와 자급하는 농사도 지으면서 일주일에 이삼일 일해 생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다른 일이 거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더니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봄비가 내리는데 아직 밭도 다 못 만들고 작물도 많이 못 심어 마음만 바쁘다. 비가 오기 전에 작물을 심으면 좋기 때문에 비 온다는 예보가 나오면 그 전에 다들 바쁘게 뭔가를 심는다. 특히 봄에 가장 일찍 심는 것 중 하나가 감자인데 우린 아직 작년에 수확했다가 보관이 제대로 안되어 싹이 잔뜩 난 감자 몇 개밖에 못 심었다. 우리가 너무 천하태평으로 보이는지 지켜보는 둘레의 농부님들이 당사자인 우리보다 더 걱정을 하실 때도 많아 민망하다. 하하하.

봄이라 농사도 시작하고 새로운 일도 시작하느라 이래저래 정신없는 와중에 비 온다는 핑계로 또 하루 쉬어가는 오늘, 해가 갈수록 가뭄과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요즈음의 봄비가 더없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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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부, 정책 홍보 위해 4억8000만원 주고 지면 샀다

정부 지원 받은 정책 기사, 검증 없이 홍보로 도배…“협찬 고지 없는 기사는 여론 조작”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2018년 04월 04일 수요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한 해 정책 홍보를 위해 4억8600만 원을 들여 홍보 기사 게재를 의뢰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부처가 정책 홍보를 위해 돈을 주고 지면을 구매하는 행위는 지난 정부에서부터 비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이 같은 관행은 이어졌다.

(관련기사=돈 받고 정부 홍보기사 써준 언론사를 공개합니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농림부로부터 돈을 받은 상당수 신문사들이 기획성 기사부터 농림부 고위 관계자 인터뷰 및 기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기사를 게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홍보 기사가 특정 언론사에 편중된 사례도 확인됐다.

농림부는 지난해 ‘2017년 농업 미래성장산업화를 위한 언론 기획홍보’ 사업을 진행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관련 보고서를 보면 해당 사업을 입찰 받은 용역 업체는 지난해 3월16일부터 12월28일까지 경향신문, 국민일보, 내일신문,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코리아타임스, 헤럴드경제, 아시아투데이, 아시아경제, 이투데이 등 13개 일간지 및 경제지를 대상으로 93건의 기획 기사 및 광고를 추진했다.  

 

▲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2017년도 '농업 미래 성장산업화를 위한 언론 기획홍보' 결과 보고서 일부 내용.
▲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2017년도 '농업 미래 성장산업화를 위한 언론 기획홍보' 결과 보고서 일부 내용.
 

농림부 지원을 받은 기사를 가장 많이 게재한 곳은 아시아투데이였다. 아시아투데이는 지난해 지면에서 ‘농식품부·아시아투데이 공동기획’ 기사 18건과 일반 기사 3건, 광고 1건 등 총 22건의 정책 홍보를 담았다.

 

 

앞서 미디어오늘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기사별 금액에 따르면 아시아투데이 공동기획 기사의 경우 지난해 3월20일부터 4월11일까지 10회분 기사가 2200만 원, 같은 해 4월12일부터 26일까지 8회분 기사는 1600만 원으로 책정됐다. 그 외 기사 3건과 광고는 1000만 원을 지원 받았다. 농림부 예산 4800만 원이 아시아투데이에 갔다. 

 

▲ 지난해 3월20일자 아시아투데이 10면 기사. 해당 기사는 농림축산식품부 지원을 받아 작성됐다.
▲ 지난해 3월20일자 아시아투데이 10면 기사. 해당 기사는 농림축산식품부 지원을 받아 작성됐다.
 

공동기획을 내걸고 보도된 기사 내용은 정부 정책 소개와 설명이 전부였다. 일례로 지난해 3월20일 아시아투데이 10면에 게재된 “여성농업인 육성에 3553억 투입… ‘양성평등 농촌’ 만든다”란 제목의 기사는 농림부의 ‘여성 농업인 육성법’ 및 ‘제4차 여성 농업인 육성 기본 계획’ 등을 전하는 내용으로, 13개 문단 중 리드 부분을 제외한 내용은 농림부 정책 설명으로 채워졌다. 연속 게재된 나머지 기사들 역시 농림부 정책 소개에 관계자 발언을 덧붙이는 형식이 반복됐다.

 

두 번째로 홍보 기사 게재 비중이 높은 서울신문의 경우 농림부 지원으로 기사 및 광고 16건을 게재했으며 온라인 기사를 주로 활용했다. 서울신문은 온라인판에서 지난해 10월26일부터 11월6일까지 농촌융복합산업(6차산업) 스마트팜에 대한 기사 6건을 내보냈다.  

 

기획 첫 기사 “농촌융복합산업(6차 산업)-스마트팜 현황과 미래 전망”에서 서울신문은 “창간 113년 전통의 중앙 일간지 서울신문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이와 같은 특별 기획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독자들이 농림부 지원을 받아 작성된 기사라고 인식하기 어려운 기사였다. 

 

▲ 지난해 10월26일 서울신문 온라인판에 게재된 기사.
▲ 지난해 10월26일 서울신문 온라인판.
 

 

역시 온라인판에 게재된 이재욱 농림부 농촌정책국장 인터뷰 기사도 농림부 지원을 받고 작성됐다. 박성태 특임논설위원 이름으로 나간 이 인터뷰는 △농촌 융복합산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 △정책 소개 △기대되는 점 △정책에 대한 목표와 전망 등 주로 농림부 홍보성 질문으로 채워졌다. 농림부 정책국장 인터뷰와 온라인 기획 기사, 스마트팜 확산 사업에 대한 광고 등에 대한 지원 금액은 총 2000만 원으로 책정됐다.

정부 관계자 인터뷰나 기고 등을 통해 정부에 우호적 입장을 내보낸 사례도 있었다. 서울신문의 경우 지난해 5월23일 송종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이 쓴 “4차 산업혁명과 농업의 미래”란 제목의 기고를 게재했고 동아일보는 3월27일자로 “축산 미래, 깨끗한 농장 환경에 달렸다”란 제목의 이준원 농림부 차관 인터뷰 인터뷰를 냈다. 헤럴드경제는 9월29일 “걱정 없이 농사짓고 안심하고 소비하는 정책 펼 것”이란 제목의 김영록 장관 인터뷰 기사를 냈는데 역시 농림부 지원을 받고 게재했다. 농림부 돈을 받고 썼다는 내용은 기사에 나와있지 않았다.  

이밖에도 농림부 지원을 받고 기사·광고를 실은 신문사별 게재 횟수는 동아일보 9건, 내일신문 7건, 코리아타임스·아주경제 6건, 국민일보·이투데이 5건, 세계일보·아시아경제 4건, 헤럴드경제 3건, 경향신문·조선일보·문화일보 각 2건 순이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신문 지면을 사고파는 문제가 일상적으로 반복되고 있다”고 우려하며 “협찬 취지를 밝히지 않는 건 결국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처장은 “정당하게 보도 자료를 제공하고 보도를 요청하는 것이 정상”이라며 “특정 언론에 돈을 주고 홍보해달라는 것은 기업에서도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김 사무처장은 “세금으로 기사를 사서 홍보하는 것 자체가 적절한지 따져봐야 한다”며 “지면을 돈으로 사서 과하게 홍보하는 것은 시민의 알 권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농림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계약서에는 홍보를 의뢰한 기관을 인식할 수 있는 표식을 해야 한다고 돼 있다”며 “기자들이 기사를 쓰면서 간과한 게 아닌가 싶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홍보 기사 문제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원들에게 공지했고 기자들에도 공유한 걸로 알고 있다”며 “비난을 받을 여지가 있어선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2079#csidx8f1a798eee7d8599e8f1a6cd9756f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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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정부군 승리와 북미정상회담

시리아정부군 승리와 북미정상회담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4/04 [09:0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사실상 시리아내전이 끝났다고 보도하고 있는 언론   

 

3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1일(현지 시각) AP통신은 시리아에서 마지막으로 반군이 점령하고 있던 도시 두마에서 반군과 민간인들이 철수해 북부 이들리브 지방으로 이동하기로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 합의는 러시아가 주도했다.

 

같은 날 SBS뉴스에서도 시리아 정부군이 내전 발발 7년 만에 반군이 장악하고 있던 수도 근처 요충지 탈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며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에 접해 있는 동구타 지역에서 최후의 반군이 철수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동구타의 두마 지역을 장악했던 무장단체 '자이시 알이슬람'대원과 가족을 실은 버스가 시리아 북부 국경도시로 떠났다. 두마는 동구타의 최대 반군 거점 지역이었다. 

앞서 동구타의 다른 반군 조직들은 러시아와 정부군의 무차별 폭격을 버티지 못하고 철수에 합의한 뒤 북부 지역으로 이미 퇴각한 상태이다.

 

▲ 시리아 최후 반군이 버스를 타고 동구타를 떠나고 있다.   

 

이로써 시리아전쟁은 알 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한편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하이오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이제 시리아에서 (미군이)나올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처리하도록 하자"며 시리아 주둔 미군 약 2000명을 철수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중동 지원에 7조달러(약 7400조원)를 썼는데, 그 대가로 무엇을 받은 줄 아느냐.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2억달러에 이르는 시리아 재건 예산 집행도 동결하도록 지시했다고 미국 언론은 보도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또다시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발트 3국 정상들과 회담한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시리아에서) 나오고 싶다. 군대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고 밝히고 "지난 17년간 중동에서 7조 달러(약 7천392조 원)에 달하는 돈을 썼지만, 죽음과 파괴 외에 우리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끔찍한 일"이라고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백악관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면담했던 사실을 상시시키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리의 결정에 매우 관심이 있다"면서 "만약 우리가 머물기를 원한다면 아마 당신들이 (주둔비를)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사우디 측에 말한 사실을 소개했다.

  

▲ 알레포와 라카를 시리아 정부군이 거의 회복을 앞두고 있다. 타르투스와 라타키아는 시리아의 주요 항구로 러시아함대의 지중해 거점이기도 하다.     ©자주시보

 

한편 조선일보에 같은 보도에 따르면 CNN은 "미국이 떠나면 시리아에서 러시아가 확고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시리아 내전의 최대 승자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지중해에 접한 시리아 타르투스항과 라타키아항에 해군기지를 두고 있으며 항구 인근에 공군기지도 두고 있다.

 

러시아가 지중에 이런 거점을 마련할 나라는 현재 시리아밖에 없다. 러시아와 터키와의 관계가 좋아지면서 러시아 흑해함대가 터키의 보스포루스해협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크림반도에 주둔시킨 흑해함대를 지중해로 직접 빠른 시간에 내보낼 수 있지만 터키가 이를 봉쇄하게 되면 지중해 안쪽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영국 해협을 지나 스페인 앞 바다를 거쳐 지중해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데 거리도 멀 뿐만 아니라 나토군에 의해 봉쇄 당할 우려가 높다. 

따라서 러시아로서는 시리아의 항구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인 셈이다.  

이번 시리아전쟁에서 그 항구를 사수하게 되었으니 푸틴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미국은 중동에서의 영향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었다. 그것도 돈이 없어 더 이상 중동을 지켜줄 수 없다고 중동의 친미맹주인 사우디를 겁박할 정도이니 미국의 위상이 얼마나 실추되었는지 단적으로 느낄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런 미국을 믿고 그 많은 돈을 들여 미국 무기를 그렇게나 많이 사주었다니 하는 한 숨이 절로 나올 일이다.

 

그래서 공화당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시리아 철군은 최악의 결정"이라며 "시리아에 잔존한 IS 일당이 부활하고, 터키와 쿠르드족의 전쟁은 감당할 수 없게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무너져내리는 미국의 중동패권을 돌이킬 무슨 방법이 없는 상황이어서 미국의 강경파 의원들도 우려의 목소리만 낼 뿐 무슨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미국이 돈이 부족해 중동에서 패권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력이 약해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시리아전쟁에 전면적으로 참전하려고 했지만 승리에 대한 자신이 없어 참여하지 못했다. 전면적으로 참전하여 시리아정부군과 싸울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유시리아반군, 심지어 IS까지 몰래 뒤에서 지원하면서 시리아정부군과 러시아에 대항하였지만 결국 이렇게 패배하게 된 것이다. 

 

▲ 수호이24 전폭기가 미 도널드 쿡 이지스 구축함에 근접 위협비행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 지상군을 투입할 계획이었지만 2014년 전쟁 발발 직후 도널드 쿡 이지스함이 흑해에서 러시아의 구형 전폭기 수호이-24기 2대의 전자전 공격을 받고 모든 전자장비가 먹통이 되어 단 한 발의 대공 미사일도 발사하지 못하고 수호이 전폭기의 모의 공격을 속수무책으로 당한 후 참전을 포기했었다.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2462

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9416

 

물론 미군은 여전히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급격히 강해진 러시아의 군사력이 압도하고 있고 시리아 정부군과 같은 반미국들의 재래식 무기도 미군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본지에서는 이런 러시아와 제3세계 반미국들의 군사력에 북의 군사기술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결국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북에게 밀리고 있는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은 그런 북미대결전의 결과로 만들어진 일이라고 판단된다. 5월 북미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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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합동 평양공연, 1만 2천여 관객 기립박수

“만나는데 너무 오래 걸렸잖아”남북 합동 평양공연, 1만 2천여 관객 기립박수
평양공연 공동취재단/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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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3  22: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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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 예술단 합동공연 '우리는 하나'가 1만 2천여 관객이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불과 두 달 전에 삼지연관현악단이 강릉, 서울에서 멋지게 공연하는 걸 보면서 우리도 평양에서 언젠가 공연하겠다는 꿈을 꿨는데 일찍 이뤄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처음 뵙는데도 예전에 뵌 것처럼 반가운 느낌이 듭니다. 다시 한 번 만나서 너무나 반갑습니다.”

북측 최효성 <조선중앙TV> 방송원과 나란히 사회를 맡은 가수 서현은 “남측 동포의 반가운 인사도 전해드리겠다”며 3일 오후 3시(서울시간 3시 30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 예술단 합동공연 '우리는 하나' 무대의 막을 올렸다.

최효성은 “화창한 봄날 동평양대극장 첫 공연에 이어서 우리 예술인들과 함께 뜻 깊은 공연을 펼치게 된다”며 “남녘의 예술인들을 다시 한 번 열렬히 환영하자”고 박수를 유도하고 “우리는 하나!”를 외치며 공연 시작을 알렸다.

평양 시민들이 12,300여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무대 정면 화면에는 ‘북남예술인들의 련환공연무대’, ‘우리는 하나’라고 타이틀이 붙었고, 무대 배경에는 대형 한반도기가 2개씩 양옆으로 내걸렸다. 중간도 무지개 모양의 띠를 둘러 한반도기로 장식했다.

   
▲ 이날 남북 합동 평양공연에서 북측 최효성 <조선중앙TV> 방송원과 나란히 사회를 맡은 가수 서현. [사진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공연 앞부분은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남측 예술단 단독공연 때와 같이 피아니스트 김광민과 정인, 알리 등이 등장했지만 알리가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북측 가수들과 함께 준비했다. 남과 북, 북과 남의 화음이 어떨지 잘 들어봐 달라”며 남북 합동공연이 시작됐다.

남측 정인, 알리와 북측 김옥주 송영이 나란히 남측 노래 ‘얼굴’을 소절을 나누어 주고받으며 공연했다. 이어 사회자 서현이 단독공연 때 불러 갈채를 받았던 북측 노래 ‘푸른 버드나무’를 목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로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강산에는 눈시울을 붉히며 ‘라구요’를 부른 뒤 “오늘 이 자리가 굉장히 감격스럽다.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 아버지도 생각나고. 방금 들려드린 노래가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던 노래였는데 데뷔곡이었다”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최진희는 ‘사랑의 미로’를 부른 뒤 “2002년에 오고 16년 만에 왔다. 정말 많이 그동안 오고 싶었다”며 “또 다시 평양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바란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다시 기다리고 있겠다”고 인사했다.

   
▲ 남측 이선희(맨 우측)와 북측 김옥주가  손을 잡고 ‘J에게’를 듀엣으로 부르고 있다.[사진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백지영에 이어 이선희는 북측 김옥주와 ‘J에게’를 듀엣으로 선보였고, ‘아름다운 강산’을 열창했다.

윤도현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불러 관객들의 호응을 받았고, “YB랑 삼지현관현악단이 합동 공연을 했으면 좋겠다. 전 세계를 돌면서 공연을 하고 싶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하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의 손으로 통일을 만들자는 뜻이 담겨있다”며 ‘1178’을 선사했다.

이어 삼지연관현악단의 무대로 김주향, 김성심, 송영 등이 ‘찔레꽃’으로 시작 ‘눈물 젖은 두만강’, ‘동무 생각’ 등 익숙한 계몽기 가요들을 묶은 메들리를 10분 정도 공연했다.

   
▲ 북측 삼지연관현악단의 연주 모습. [사진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김성심은 공연 전 공동취재단에 “남북이 함께 하게 돼 감격스럽고, 이런 자리가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면서 “남측 가수들이 1일 김정은 노동당위원장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악수를 나눈 것에 대해 우리에게도 꿈 같은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부러워했다.

무대의 마지막은 가왕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이 ‘친구여’, ‘모나리자’로 관객을 사로잡았고, 남북의 여가수들이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을 합창하며 무대는 절정에 올랐다.

단독공연 때와 같이 출연진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다시 만납시다’를 합창했고, 북측이 남측에 꽃다발을 전해주자 큰 함성이 터지기도 했다. 서현과 김주향은 마주보며 눈물과 웃음을 참지 못했고, 객석은 10분간 전원 기립 박수를 보냈다.

현송월 북측 단장은 만족한 듯 웃음을 짓고 “잘 된 것 같다. 훈련이 많지 않았는데 거의 반나절 했는데도 남북 가수들이 너무 잘했다”고 “같이 부른 부분이 가장 좋았다”고 평가했다.

   
▲ 공연 마지막 순간 출연자들이 모두 무대에 나와 합창하고 있다. [사진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한 북한 관객은 “감동적인 순간들이 있었다”며 “"우리 사이에 빈 공간만 남았다"는 가사가 있었는데, 우리 사이에 아무 것도 없다. 우린 통역이 필요 없잖아. 그런데 만나는데 너무 오래 걸렸잖아”라고 소감을 밝혔다.

다른 관객은 “참 좋았다. 정말 좋았다”며 “조용필 잘 한다... 조용필을 듣기는 했지만 보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유엔 관련 기구에서 일한다는 알제리인은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위기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순간이 다 감동적이었다”며 “두 나라가 어서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 공연이 훌륭했다”고 극찬했다.

이날 남북합동공연은 북측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박춘남 외무상,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남측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상균 국정원 2차장,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이 내빈석에 자리했다.

​두 차례 평양 공연을 마친 예술단은 이날 밤 김영철 부위원장이 개최하는 만찬에 참석하며, 태권도 시범단은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한다. 이들은 이날 밤 평양국제공항을 출발, 5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 사회를 맡은 남측 서현과 북측 최효성. [사진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1만 3천여 관객들도 함께 즐거워했다. [사진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강산에가 이산의 아픔을 그린 '라구요'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진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북측 삼지연관현악단 가수들은 계몽기 가요를 메들리로 선사했다. [사진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무대마다 배경화면이 바뀌며 분위기를 돋궜다. [사진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남북의 내빈들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관객 전원이 10분 동안 기립박수를 보냈다. [사진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출연진이 모두 무대에 올라 피날레를 장식했다. [사진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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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타는 꿩, 들꿩을 아십니까

윤순영 2018. 04. 03
조회수 2245 추천수 1
 

이른봄 귀룽나무 새싹 뜯으러 나무 오른 ‘숲 속의 은둔자’

암·수 모두 머리 깃 나고 다리에 깃털 돋은 ‘원시적’ 모습 

 

크기변환_YSY_7006.jpg» 나뭇가지에 앉은 들꿩. 들꿩의 검은 멱은 수컷의 상징이다. 

 

3월16일 경기도 남양주시 예봉산 중턱에서 들꿩을 관찰했다. 비교적 몸집이 큰 편이지만 깊은 숲에 은둔해 사는 데다 보호색이 뛰어나 좀처럼 보기 힘든 꿩과의 새다. 

 

다른 나무들이 새싹을 틔우기 전, 계곡 주변의 귀룽나무에 일찌감치 새싹이 돋았다. 온종일 땅에서 생활하던 들꿩이 오후 5시30분이 되면 귀룽나무 가지에 올라앉아 새싹을 뜯어 먹는다.

 

 

등산객들이 산에서 내려가 번잡했던 주변이 조용해질 시간이다. 들꿩은 서식지의 모든 일상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암컷이 ‘휘~삐삐비’하고 긴 휘파람 소리를 내면 수컷이 강하게 반응하고, 귀룽나무 근처에 나타나 함께 나무 위로 올라갈 준비를 한다. 암컷보다 수컷이 더 경계심을 나타낸다.

 

크기변환_YSY_5775.jpg» 나뭇가지에 숨어 수컷 들꿩을 부르는 암컷 들꿩.

 

크기변환_YSY_6537.jpg» 숨어 있던 수컷 들꿩이 암컷 소리에 반응을 보인다.

 

귀룽나무가 있는 계곡은 등산객들이 항상 오가는 길목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들꿩이 매일 같은 시간에 정확히 귀룽나무를 찾아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귀룽나무는 물가의 계곡 근처에서 잘 자란다. 들꿩의 서식지와 비슷한 환경 조건이다.

 

크기변환_YSY_6673.jpg» 은밀하게 암컷 들꿩 곁으로 다가가는 수컷 들꿩. 닭이나 꿩의 밋밋한 다리와 달리 다리 바깥쪽에 돋은 깃털이 인상적이다.

 

크기변환_YSY_6596.jpg» 암컷 들꿩이 앞장서 걸어간다. 암컷 들꿩도 다리 바깥쪽에도 깃털이 나 있다.

 

귀룽나무는 사람에게 신경통, 근육통, 근육마비 등의 통증을 없애주고 설사에 잘 듣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시 귀룽나무의 새싹과 열매의 약효가 들꿩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먹이원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크기변환_YSY_6784.jpg» 들꿩 부부가 만났다.

 

들꿩은 걸어서 이동하고 주로 땅에서 생활하지만 나무에서 지내는 것도 즐긴다. 나무 위에서도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익숙한 솜씨로 땅에서처럼 움직인다. 나무타기 재능이 뛰어나다. 위협을 느끼면 꿩처럼 멀리 날아 도망가지 않고 근처 나무에 올라가 피한다. 위장 색이 발달하여 잘 보이지도 않고 은밀하게 나무 가까이 접근하여 수직으로 날아 소리 없이 나무 위에 앉는다.

 

크기변환_DSC_7807.jpg» 귀룽나무의 새싹이 들꿩이 먹기 좋게 적당히 돋아났다.

 

들꿩은 몸길이 36㎝로 몸집이 큰 편이다. 그런데도 가느다란 가지를 움켜쥐고 조심스레 새싹을 떼어먹는데 나뭇가지가 흔들리지 않는다. 천적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철저한 보호 행동이다. 관찰하는 동안에도 어느 틈에 나무 위로 날아와 있는지 모르는 때가 많았다.

 

크기변환_DSC_8356.jpg» 수컷 들꿩이 먼저 날아 귀룽나무 위로 올라간다. 날 때 날갯짓 소리가 나지 않는다.

 

크기변환_DSC_8590.jpg» 암컷 들꿩도 뒤따라 귀룽나무 위로 올라왔다.

 

일부일처제인 들꿩 부부는 서로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함께 행동한다. 나무 위에서 수컷이 구애 행동으로 깃털을 부풀리고 꼬리를 치켜세워 부채 모양으로 펼친다. 암컷은 무관심한 척 곁을 주지 않는다. 성공적인 번식을 위해 수컷의 마음을 애타게 만드는 전략일지 모른다.

 

크기변환_DSC_8710.jpg» 암컷 들꿩이 슬며시 외면하지만 수컷은 꼬리를 부채 모양으로 펼치고 애정을 표시한다.

 

1시간 남짓 귀룽나무 새싹을 먹던 암컷이 땅으로 내려오자 수컷 들꿩도 곧바로 따라 내려와 숲 속으로 사라진다. 매일 반복되는 행동이다. 움직이는 동선과 생활이 규칙적인 것이 인상적이다.

 

먹이 먹는 장소와 잠자리를 포함해서 물 마시는 장소, 이동하는 데 필요한 이동로, 갑작스러운 포식자로부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 월동을 위한 장소, 번식을 위한 장소, 새끼들을 키울 수 있는 장소 등이 이미 정해져 있다. 들꿩 부부가 예봉산 계곡에서 터를 잡아 살아온 기간은 한두 해가 아닌 것 같다.

 

크기변환_DSC_8349.jpg»  1시간 남짓 귀룽나무 새싹을 먹던 암컷이 땅으로 내려오자 수컷 들꿩도 곧바로 따라 내려와 숲 속으로 사라진다. 매일 반복되는 행동이다. 움직이는 동선과 생활이 규칙적인 것이 인상적이다.  먹이 먹는 장소와 잠자리를 포함해서 물 마시는 장소, 이동하는 데 필요한 이동로, 갑작스러운 포식자로부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 월동을 위한 장소, 번식을 위한 장소, 새끼들을 키울 수 있는 장소 등이 이미 정해져 있다. 들꿩 부부가 예봉산 계곡에서 터를 잡아 살아온 기간은 한두 해가 아닌 것 같다.

 

크기변환_DSC_8185.jpg»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서도 균형 감각이 뛰어나 외줄 타기를 하듯 마음대로 행동한다. 

 

들꿩은 닭목, 꿩과, 들꿩속에 속한다. 꿩은 일반인들이 잘 알고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조류이다. 그러나 들꿩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들꿩은 스칸디나비아와 중·동유럽, 시베리아, 동아시아 등 유라시아에 걸쳐 널리 분포한다. 이 가운데 동아시아의 들꿩 아종은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아무르, 사할린, 홋카이도 등지에 산다. 한반도에서는 도서지역을 제외한 산지에 두루 서식하지만 일정한 지역에 한정된 경기·강원 지역에 많은 수가 분포하고 남부 지역으로 갈수록 수가 적어지는 흔하지 않은 텃새이다.

 

크기변환_YSY_7321.jpg» 새싹을 바로 당겨서 따지 않고 비틀어서 따먹는다. 아마도 나뭇가지가 휘청여 눈에 띄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크기변환_YSY_7316.jpg» 신선하고 알찬 새싹만 골라 먹는다.

 

들꿩은 이른 봄에 귀룽나무, 버드나무, 오리나무 등의 새싹, 나무열매, 풀씨 등을 즐겨 먹지만 때로는 곤충도 잡아먹는다. 수도권에서 들꿩을 관찰하기 좋은 곳은 천마산, 예봉산, 검단산, 남한산성이다. 텃새이지만 사계절 관찰하기는 어렵고 숲이 무성하지 않은 12월부터 3월에 비교적 관찰이 쉽다.

 

 

들꿩은 생각보다 사람을 덜 경계하기 때문에 들꿩이 나올 만한 장소를 찾아가 조용히 기다린다면 관찰이 가능하다. 특히 들꿩이 움직일 때 들리는 낙엽 밟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들꿩을 만날 수 있다.

 

크기변환_YSY_7426.jpg» 주변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들꿩 암컷.

 

기변환_YSY_7389.jpg» 주변이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 귀룽나무 새싹을 따먹는다.

 

크기변환_YSY_7437.jpg» 들꿩은 암수 모두 머리 깃이 있다.

 

몸은 통통하고 꼬리는 짧다. 수컷은 멱에 폭넓은 검은색 반점이 뚜렷하고 암컷의 멱의 반점은 수컷에 비해 색이 불분명하다. 암수 모두 머리 깃이 있다. 다리는 짧으며 바깥쪽에 깃털이 나 있는 특징이 있다. 들꿩을 관찰하다 보니 조류의 원시적인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진행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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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통곡하던 403명 제주4·3 영령들의 외침 “내 이름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4/04 08:47
  • 수정일
    2018/04/04 08:4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대한민국의 중심 광화문서 펼쳐진 ‘403 퍼포먼스’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8-04-03 20:26:53
수정 2018-04-03 20: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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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4월3일 3시45분경. 매연을 뿜으며 분주히 오가는 차량과 수많은 행인들이 지나가는 서울의 중심 광화문. 느닷없이 먼지를 뒤집어 쓴 403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오랜 세월 땅 속에 묻혀있던 시신처럼 회색 먼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덮여 있었다. 몸 구석구석엔 총·칼의 흔적인 붉은 동백꽃이 선명했다.

오후 4시3분, ‘땡그랑 땡그랑’ 종소리가 울렸다.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쓰러져 있던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유롭지 못해 굳어버린 몸을 움직이듯 삐걱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감겼던 눈도 떴다. 무채색의 얼굴 사이에서 살아있는 눈동자가 움직였다. 귀를 만지며 당황스러운 몸짓을 보이기도 했다.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점차 들려오기라도 하듯.

그리곤 한 사람 한 사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 어… 어.” 70여년전 광복과 대한민국 수립, 한국전쟁 전후로 무참히 쓰러져간 제주4·3 영령의 목소리였다. “제주는 빨갱이 섬”이라고 교육받고 제주로 파견된 서북청년단과 군·경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이들이 깨어나는 모습이었다. 70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영령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구슬픈 ‘아기동백꽃의 노래’

이날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03명의 연극배우와 무용수, 일반인 등과 함께 ‘403 퍼포먼스’를 펼쳤다. 퍼포먼스에 앞서 제주4.3 범국민위는 70여년만에 처음 광화문에 차려진 제주4.3분향소 앞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선후 제주4.3 범국민위 홍보기획위위원장은 “광화문이라는 대한민국 심장부에서 70년 세월 동안 짓눌려 얘기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표출하고 분출하는 움직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주4.3 평화공원에 가면 백비가 있다.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비”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 ‘제주4.3’이라는 이름 뒤에 어떤 말을 붙여야 할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항쟁인가, 사건인가, 폭동인가 라는 주제로 70년이란 논쟁의 세월을 지내왔어요. 그래서 자기 이름을 부를 수 있고, 명명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4.3을 외치려는 이유입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과 교보문고 앞, 광화문역에서 걸어 나온 제주4.3 영령들은 세월호 광장과 수많은 차량들이 지나는 신호등을 지나 광화문 중앙으로 점차점차 모였다. 이순신 동상 뒷모습과 동아일보·조선일보 등 수많은 광화문 빌딩을 배경으로 해치마당에 군집한 영령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는 듯하더니, 광화문 중앙광장을 향했다. 1947 3월1일 ‘통일 독립’을 꿈꾸며 제주북국민학교에 모였던 3만여명의 군중처럼 그들은 한발씩 내딛었다. 70년 전과 세상은 변해 있었다. 어린아이를 치어 다치게 한 뒤 아랑곳 않았던 기마경찰은 없었고, 반발하는 군민을 향해 총을 발포하는 경찰도 없었다.

해치광장을 지나 세종대왕상 앞에 다다르자, 구슬픈 음악소리(애기동백꽃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멈춰 선 영령들은 자리에 앉아 노래가사에 귀를 기울였다.

애기동백꽃의 노래

산에 산에 하얗게 눈이 내리면
들판에 붉게 붉게 꽃이 핀다네
남 마중 나갔던 계집아이가
타다타다 붉은 꽃 되었다더라

님그리던 마음도 봄꽃이 되어
하얗게 님의 품에 안기었구나
우리 누이 같은 꽃 애기동백꽃
봄이 오면 푸르게 태어나거라

붉은 애기 동백꽃 붉은 진달래
다 같은 우리나라 곱디 고운 꽃
남이나 북이나 동이나 서나
한 핏줄 한 겨레 싸우지 마라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2절쯤 노래가사가 흘러나왔을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노래에 귀를 기울이던 영령들이 하나 둘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양쪽 볼에 두껍게 내려앉은 회색먼지 위로 흘러내린 눈물 자국이 그려졌다. 그 앞에선 세 명의 영령이 70년 만에 상봉한 듯 서로 끌어 앉고 울었다. 그러던 중 한 영령이 외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문! 형! 근!” 반복적으로 외치는 영령의 목소리 뒤로, 또 다른 영령이 외쳤다. “내 이름은! 유! 아! 람!”

찢어질 듯 광장의 소음을 깨고 튀어나온 외침은 어느새 수백 명의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70년 세월 짓눌렸던 감정을 토해내는 소리가 광화문 광장을 뒤흔들었다. 영령들은 입고 있던 회색의 먼지가 가득한 옷들도 벗어 재꼈다.

“평생 내색 한 번 안 하고 살았어요”

영령들은 사물놀이와 함께 흰색,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 천을 머리에 이고 흥겹게 움직이며 다시 중앙광장을 향했다. 그렇게 다다른 중앙광장엔 제주4.3 분향소가 차려져 있었다. 앙상한 뼈대에 붕대를 휘감은 모양의 분향소에는 1만4천여명의 제주4.3 희생자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영령들은 회색 옷가지들을 분향소 앞에 마련된 하얀 무대 위에 놓아두고 차례로 분향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분향소 안에 마련된 영령들 사진 앞에 국화꽃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분향을 마치고 나오자 먼저 끝마친 이들이 격려했다. 영령의 모습에서 다시 본래의 시민으로 돌아온 것이다. “수고했다” 말하며 박수치는 이들 사이로 회색먼지가 날렸다. 어느새 이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제주4.3 피해자 가족이기도 하지만, 평생 내색 한 번 안 하고 살았다”는 ‘403 퍼포먼스’ 참가자 오태균(59)씨는 말했다. “여전히 이데올로기로 분열돼 있는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이 표현하고 공감하며 사는 게 아니라 배척하고 있는 모습이요. 그래서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됐고, 화합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임했습니다.”

모두 분향을 마친 뒤 퍼포먼스 참여자들은 “와~” 소리 지르며 광화문을 향해 전력질주 했다. 남아있던 먼지가 모두 날아가도록 뛰었다. 자유롭게 달리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70년 세월 동안 짓누르고 있던 이데올로기의 무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연 후 분향소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인 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연 후 분향소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2018년 4월3일 403 퍼포먼스 참가자들이 광화문을 향해 뛰어가고 있다.
2018년 4월3일 403 퍼포먼스 참가자들이 광화문을 향해 뛰어가고 있다.ⓒ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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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태권도, 2일 평양대극장서 첫 평양 합동시범공연

"내용이 좀 다를 뿐, 태권도는 남과 북이 같습니다"남북태권도, 2일 평양대극장서 첫 평양 합동시범공연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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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2  22: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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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태권도 시범단이 2일 오후 평양대극장에서 첫 평양 합동시범공연을 마쳤다.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2일 오후 평양 중구역에 있는 평양대극장. 남북 태권도가 처음으로 평양시민들에게 합동공연을 선보였다.

오후 4시(평양시간) 정각 사회자가 "온 겨레의 가슴을 새차게 들끓게 하는 남측 태권도시범단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우리 민족은 하나, 태권도 뿌리도 하나라는 걸 세계에 과시했습니다”라며 공연 시작을 알리자 모든 관객이 전원 동시 기립해서 박수를 치면서 남북태권도 합동시범 첫 평양공연은 시작되었다.

먼저, 남측 세계태권도연맹(WTF) 시범단이 유려한 듯 절도를 갖춘 승무 시범에 이어 '고향의 봄' 음악에 맞춘 품새시범을 전개하고 곧바로 박진감 넘치는 호신술 시범을 선보이자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이어 도복띠로 눈을 가린 채 발차기로 공중 표적을 정확히 가격하고 약 5미터 높이의 고공표적 3~4개를 발차기로 연속 격파하자 탄성과 함께 다시 한번 큰 박수가 터졌다.

25분간 이어진 남측 시범단 공연에 이어 북측 조선태권도위원회 시범단은 우렁찬 기합소리에 맞춰 '틀'(품새)시범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위력적인 송판깨기와 손발을 이용한 공중격파, 여성시범단원의 2대1, 3대1 겨루기 등 시범이 진행될수록 박수소리는 커져갔다. 윗옷을 벗은 단원의 몸을 각목으로 내리쳐 부러뜨리는 시범과 '조국통일' 구호에 맞춘 격파시범이 진행되는 동안 탄성과 환호성에 기합소리가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 남측 태권도 시범단의 서범공연.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남측 시범단의 공연이 끝나고 평양 관객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남측 태권도가 화려하고 부드러운 반면, 북측은 절도 있고 사실적인 동작 위주의 시범이라는 차이가 확연했다. 또 남측이 '고향의 봄'을 관현악으로 편곡한 음악 등을 활용해 춤에 가까운 동작으로 화려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다면, 북측은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손과 발을 이용한 위력(격파), 맞서기(대결) 등 사실적인 액션 위주의 동작들이 많았다. 

실전 무술을 방불케 한 북측 시범단의 30분 공연이 끝나고 북측 12명과 남측 16명의 시범단원이 5분간 합동 품새시범을 선보일 때는 남과 북의 태권도가 많이 다르지만, 역시 그 뿌리는 같다는 강한 느낌을 갖게 했다.

   
▲ 북측 태권도 시범단의 시범공연.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북측 태권도 시범단의 격파 시범.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북측 태권도 시범단의 격파 시범.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북측 태권도 시범단의 온몸을 이용한 각목 격파.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북측 관객은 공연 내내 표정에 큰 변화가 없었지만 고난도 시범이 벌어지면 즉각 박수를 치거나 환호성을 질렀고 짧지만 강렬했던 5분간의 합동공연이 마무리 된 뒤 남북 선수들이 손을 흔들어 인사하자 길게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이날 남북태권도 합동시범공연을 북측 인사로는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과 리일환 부위원장, 김경호 조선태권도협회 위원장이, 남측에서는 도종환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이 함께 지켜봤으며, 평양시민들로 보이는 관객들이 1,200석 규모의 공연장을 빈자리 없이 꽉 채웠다.

이날 합동 태권도시범이 열린 평양대극장은 1960년 8월 개관해 북한이 자랑하는 5대혁명가극을 공연한 종합예술극장이다.

   
▲ 남북태권도시범단의 대련 시범.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남북태권도 시범단 합동 시범공연이 끝나자 관람을 한 평양시민들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남북태권도 합동시범공연에 대한 평양 관객들의 환호와 기립박수.[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남북합동 태권도시범으로는 평양에서 처음 열린 이날 시범공연을 본 한 남측 관람객은 "남측 공연은 다채롭고 스토리텔링이 있어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반면 북측 공연은 사실적이고 실전무예에 가까우며 힘과 비장미가 느껴진다"는 비교 관람평을 내놓았고, 한 북측 관람객은 "태권도가 같긴 같구나. 내용이 좀 달라서 그렇지 남북이 같습니다"라는 통일지향적(?) 감상평을 밝혔다.

태권도 시범단은 3일 오후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진행될 예정인 남북합동공연을 마치는 예술단과 함께 그날 밤 전세기편으로 귀환한다.

   
▲ 최휘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이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이날 남북태권도 합동시범공연 관람을 했다.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 북남태권도시범단 합동시범출연. '남측 태권도 시범단의 평양방문을 환영합니다!'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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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이 재활용 수거 맡는 한 ‘쓰레기 대란’ 해결 한계

등록 :2018-04-03 05:00수정 :2018-04-03 09:39

 

 

아파트가 직접 판매, 세계서도 드물어
민간 방식, 수익 안나면 언제든 재발
“공공부문이 재활용 수거 책임져야”
한 할머니가 빈 상자가 실린 손수레를 끌고 서울 마포구의 한 재활용센터에 들어서는 장면. 환경부는 폐비닐 등 수거 거부를 통보한 재활용업체들과 협의한 결과, 수도권 3개 시·도의 48개 업체 모두가 폐비닐 등을 정상 수거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 할머니가 빈 상자가 실린 손수레를 끌고 서울 마포구의 한 재활용센터에 들어서는 장면. 환경부는 폐비닐 등 수거 거부를 통보한 재활용업체들과 협의한 결과, 수도권 3개 시·도의 48개 업체 모두가 폐비닐 등을 정상 수거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정부에선 계속 분리수거하라는데 업체에선 안 가져가겠다니 그냥 당분간은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버리면 안 되겠습니까?”

 

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밀려드는 주민 항의 전화에 울상이었다. 2일 환경부와 서울시는 재활용 분리·수거 업체들과 협의해 폐비닐 분리수거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지난 3월28~30일 4개 수거업체, 선별장 7곳,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25개 자치구 등과 간담회를 열어 “비닐류는 자원재활용법 제13조 및 환경부 지침에 의거, 재활용 가능 자원에 해당하므로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리도록 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공지했다.

 

하지만 이날도 많은 아파트 단지들에선 비닐 쓰레기를 재활용품으로 내놓는 것을 막고 있었다. 정책과 현실이 따로 놀면서 주민들의 혼란은 여전했다.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 꼽힌 재활용품을 아파트 단지와 수거업체들이 처리하는 방식에 변함이 없다면 ‘비닐 대란’은 계속되리라는 전망이다. 공덕동 450가구가 사는 한 아파트단지는 1년 동안 재활용업체에 폐지와 고철을 팔아서 번 돈이 5천만원을 넘었을 땐 집집마다 2만~3만원짜리 식용유 세트를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재활용품 값이 급락하면서 몇년 전에 1가구당 1천원, 1년에 단지 전체에서 4500만원을 수거업체로부터 받았던 계약을 올해는 1가구당 660원, 1년에 3600만원을 받는 것으로 변경했다.

 

2천가구가 사는 성북구 석관동 두산아파트는 2015년엔 재활용품으로 1년에 3천만원을 벌었는데 올해는 1200만원을 받는다. 재활용품 가격이 떨어지면서 아파트 경비원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재활용 쓰레기 수집과 관리는 아파트 경비원들의 고유 업무가 아니다. 그래서 아파트 주민들은 재활용품을 팔아서 번 돈으로 경비원에게 특별수당을 지급해왔다. 그런데 재활용품 판매 수입이 줄면서 경비원들에게 주던 특별수당 7만원은 5만원으로 줄었고 올해는 그보다 적어질 전망이다.

 

이 아파트 전 입주자 대표였던 심재철씨는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지자체에서 재활용품을 모두 관리하고, 이익이 많이 나는 단지에만 수익을 돌려주는 구조가 돼야 한다. 재활용품 판매 대금으로 아파트 단지의 비용을 충당하는 구조에서는 관리비나 경비원 임금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이번 비닐 대란을 계기로 모든 재활용품 수거를 공공에 맡기는 단지는 자치구 수거체계로 전환하겠다고 했으나 대부분 공동주택들은 폐지, 고철 등 값나가는 재활용품은 직접 팔고 비닐, 스티로폼은 자치구가 가져가기를 희망하고 있어 갈등의 여지는 그대로다. 다른 나라들은 공공이 재활용품을 직접 처리한다. 아파트 단지가 업체에 재활용품을 개별 판매하는 방식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재활용품을 이용하는 생산 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번 합의가 지속 가능할지도 불투명하다. 환경부와 업체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돈이 되지 않는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할 곳이 없다’는 근본 문제는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다. 박필환 재활용수집선별협동조합 사무국장도 “당장 업체와 합의는 했지만 현실적인 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장기적으론 재활용품을 활용하는 생산 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838842.html?_fr=mt1#csidx9d555af2ffa76d9851c9ceae24462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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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단 한 번도 ‘4.3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제주 지사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4/03 10:07
  • 수정일
    2018/04/03 10:07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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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은 진실을 규명해야 할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임병도 | 2018-04-03 08:44:5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늘은 제주 4.3사건 70주년입니다. 제주를 비롯한 전국에서는 그동안 4.3사건을 알리기 위한 문화 공연과 동백꽃 배지 달기, 릴레이 인터뷰 등 다채로운 행사가 벌어졌습니다.

특히 그동안 제주 4.3사건 알리기에 소극적이었던 제주도민들도 적극 나서서 아픈 역사를 알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주 도민들의 노력에 제주 지사가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 원희룡, ‘문재인 대통령에 공식 사과 요청’

지난 3월 28일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도민과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원 지사는 담화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4.3수형인’에 대해 명시적인 공식 사과를 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원 지사의 주장은 억지에 불과합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제주도민에게 4.3사건에 대한 사과를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내년 ‘70주년 4.3 추념식’에는 저 문재인이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하겠다, 그 약속 반드시 지키겠다”며 “다시는 4.3이 폄훼되고, 모욕받지 않도록 저 문재인이 책임지겠다”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원희룡 지사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는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던 점과 비교하면, 그저 문재인 대통령을 끌어들여 정치적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희룡, ‘역사상 첫 현직 대통령이 참석’

<MBC 라디오, 양지열의 시선집중>

진행자 > 그러게요. 말씀하신 것처럼 억눌린 역사라고 하셨는데 사실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에 4.3 희생자 추념식 참석을 안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일 이제 70주년 추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을 할 거라고 전망하는데 이뤄진다면 9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을 하는 거네요?

원희룡 > (이뤄진다면) 9년 만이 아니고 역사상 처음으로 오시는 겁니다.

진행자 >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인가요?

원희룡 > 네, 그렇습니다. 그런 만큼 의미가 크고요. 노무현 대통령님은 4.3추념식에는 아니었지만 제주방문 당시에 국가원수로서 공식사과를 하셨죠.

원희룡 제주지사는 4월 2일 ‘MBC 라디오, 양지열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4.3 추념식 참석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역사상 처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원 지사는 노무현 대통령은 공식 사과만 했지, 추념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58주기 4.3위령제’에 참석했습니다.

제주도 관계자는 원 지사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추념식과 위령제의 명칭 때문이었다고 변명했습니다. 하지만 2014년 ‘4.3 희생자 국가 추념일’이 공표되기 이전이라도 대통령이 참석한 공식 행사였기에 역사상 처음이라는 말은 틀렸습니다.

#12년 동안 4.3 위령제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원희룡

원희룡 제주 지사는 제주 4.3사건 위령제나 추념식 등에 대한 역사를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는 제주 도지사로 당선되기 이전에는 단 한 번도 ‘4.3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 지사는 2014년 새누리당 후보로 도지사에 출마했을 때야 비로소 “지난 세월 사정이 있고 없고를 떠나 위령제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도 미안한 마음”이라고 사과를 했습니다.

지난 10년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단 한 번도 ‘4.3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주 도민들은 갈수록 격이 떨어지는 4.3국가 추념일 행사로 분노했지만, 원 지사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 4.3 위원회 폐지 법안에 찬성했던 원희룡

2008년 1월 21일, 한나라당은 제주도민의 아픔과 4.3사건의 진상규명 등을 노력했던 ‘4.3위원회’를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당시 제주에서는 1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4.3위원회 폐지 반대 도민대책위원회’가 구성됐고, 한나라당 심판 운동이 전개됐습니다. 오죽하면 한나라당 제주도당조차 개정안 발의를 철회하라며 중앙당에 건의문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제주4.3위원회 폐지를 골자로 한 ‘제주4.3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공동 발의자 명단을 보면 원희룡도 있었습니다. 제주 출신이 오히려 제주 도민을 괴롭히는 법안에 서명한 셈입니다.

제주 4.3사건을 말하면서 화해와 치유, 평화를 말합니다. 그러나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사건에서 도대체 누구와 화해하고, 누가 치유받아야 할까요?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리고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저 ‘평화’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아무 일도 없었듯이 지나간다면 똑같은 일이 되풀이됩니다.

제주 4.3사건은 진실을 규명해야 할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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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미-러 알래스카 거래의 비밀

[동아시아사 연구가 김종성의 역사 강의] 1867년 3월 30일 알래스카 매매

18.04.03 07:51l최종 업데이트 18.04.03 07:51l
글·영상: 김종성(qqqkim2000)

 

▲ 미-러 알래스카 거래의 비밀
ⓒ 황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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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3월 30일, 러시아와 미국이 알래스카 매매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영토 매매대금치고는 헐값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720만 달러(현재 한화 약 2조원)에 거래됐습니다. 러시아가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뭘까요? 

단순히 알래스카의 가치를 몰라서였을까요? 러시아가 그렇게 한 진짜 이유를 탐구하다 보면, 19세기 세계 정치의 구도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 동영상은 당시 국제질서의 관점에서 알래스카 매매계약을 조명했습니다. 

(기획 : 김종성 시민기자, 영상편집 : 황지희 기자)
 

 알래스카의 마지막 원시지대, 얼음산 맥킨리(본래 이름은 디날리)
▲  알래스카의 마지막 원시지대, 얼음산 맥킨리(본래 이름은 디날리)
ⓒ 박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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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유엔 총회서 ‘남·북·미 평화 공동선언’ 추진

[단독]9월 유엔 총회서 ‘남·북·미 평화 공동선언’ 추진

김재중·유정인 기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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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놀라게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방문

[개벽예감 293] 강철궤도 위에 다시 울린 베이징행 특급렬차의 동음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4/02 [09:0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세계를 놀라게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방문

2. 조중친선관계를 원상복원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킨다

3. 백악관의 조미정상회담준비는 누가 주도하고 있을까?

4.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대전략 

 

 

1. 세계를 놀라게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방문

 

일요일 새벽이었다. 평양 하늘에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각, 진록색 특급렬차가 두 줄기 강철궤도 위에 힘찬 동음을 울리며 달리기 시작하였다. 2011년 12월 17일 생애의 마지막 순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타고 있었던 바로 그 진록색 특급렬차, 사회주의완성과 조국통일의 여명을 향하여 쉬지 않고 달려온 특급렬차였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8년 3월 25일 새벽,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외국방문역사가 깃든 그 진록색 특급렬차를 타고 역사적인 중국방문길에 올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 그리고 최룡해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박광호 부위원장, 리수용 부위원장, 김영철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을 비롯한 고위급 수행원들이 탄 진록색 특급렬차가 압록강 철교를 건너 중국 단둥에 도착하였을 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위임에 따라 베이징에서 단둥까지 가서 대기하던 쑹타오(宋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특급렬차에 올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정중히 맞이하였다. 단둥을 출발한 특급렬차는 3월 26일 베이징에 도착하였다. <사진 1>  

 

▲ <사진 1> 위쪽 사진은 2018년 3월 25일 새벽,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녀사, 그리고 최룡해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고위급 수행원들이 탄 진록색 특급렬차가 어둠이 아직 걷히지 않은 평양을 출발하는 장면이다. 아래쪽 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탔던 진록색 특급렬차의 모습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외국방문역사가 깃든 그 진록색 특급렬차를 타고 역사적인 중국방문길에 올랐다. 특급렬차는 3월 26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도착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방문은 국빈방문이 아니라 비공식방문이었다. 그런데도 중국은 최상급 국빈방문의 격에 맞춰 극진히 영접, 환대하였다. 원래 중국의 국빈예우는 국빈방문 첫날 인민대회당에서 환영의식, 정상회담, 국가연회가 차례로 진행되고, 이튿날 국무원총리가 오찬을 마련하는 영접관례에 따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영접관례에서 벗어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이징에 도착한 날 인민대회당에서 환영의식, 정상회담, 국가연회, 예술공연이 차례로 진행되었고, 이튿날에는 1773년에 건설된 청나라 황제의 별실인 양위안자이(養源齋)에서 특별오찬회담이 진행되었다. 특별오찬회담 직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 그리고 수행원들은 중국국가과학원 전시관을 참관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방문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은 3월 26일 인민대회당 둥다팅(東大廳)에서 진행된 조중정상회담과 3월 27일 양위안자이에서 진행된 두 정상의 특별오찬회담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중정상회담 직후 인민대회당 진써다팅(金色大廳)에서 진행된 국가연회 연설에서 “나는 방금 습근평 총서기 동지와 조중친선관계발전과 절박한 조선반도정세관리문제들을 비롯하여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의견을 나누었으며 조중 두 나라 사회주의제도를 굳건히 다지고 두 나라 인민들에게 행복과 미래를 안겨주기 위한 공동의 의지를 확언하였습니다”라고 밝혔다. 조선의 기록영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중화인민공화국을 비공식방문하시였다 주체107(2018). 3. 25-28’에 나오는 해설에 따르면, 조중정상회담은 “허심탄회하고 건설적이며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였”으며, “두 나라 최고령도자 동지들께서는 이날에 진행된 첫 상봉과 회담을 통하여 호상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서 견해의 일치를 이룩한데 대하여 만족을 표시하시였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가연회 연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번 조중정상회담에서는 조중친선관계를 발전시키는 문제와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논한다. <사진 2>

 

▲ <사진 2>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방문은 국빈방문이 아니라 비공식방문이었다. 조선로동당과 중국공산당은 사회주의형제당이므로,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공식초청으로 중국을 비공식방문한 것이다. 중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최상급 국빈방문의 격에 맞춰 극진히 영접, 환대하였다. 맨위쪽 사진은 2018년 3월 26일 베이징에 있는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환영의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중국인민해방군 군악대가 두 나라 국가를 연주하는 동안 단상에서 기립하고 있는 장면이다. 가운데 사진은 인민대회당 진써다팅에서 진행된 성대한 국가연회석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담화하는 장면이다. 맨아래쪽 사진은 국가연회와 예술공연이 끝난 직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담화를 나누며 밖으로 걸어나가는 장면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방문일정 중에서 조중정상회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특별오찬회담이었다. 그 까닭은, 특별오찬회담이 사실상 단독정상회담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8년 3월 27일 시진핑 주석은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를 위해 “가정적인 분위기의 특별한 오찬”을 마련하였는데, 특별오찬회담이 진행된 양위안자이는 일찍이 김일성 주석이 “중국의 선대수령들과 친선의 정을 두터이 하신 유서 깊은 곳”이라고 한다. 

 

그처럼 유서 깊은 곳에서 두 정상이 특별오찬회담을 했으니, 얼마나 허심탄회한 담화를 나누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오찬회장은 시종 화기롭고 혈연의 정이 차넘치였”는데, “조중 두 당, 두 나라 최고령도자들께서는 담화에서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와 의견들을 터놓고 말씀하시며 우애를 두터이 하시였다”고 한다. 요컨대, 양위안자이 특별오찬회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전날 정상회담에서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가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흉금을 터놓고 논의하면서 신뢰관계를 맺은 사실상 단독정상회담이었던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조중정상회담 다음날인 3월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녀사, 시진핑 주석과 펑리위안 녀사가 양위안자이에서 특별오찬회담을 하는 장면이다. 1773년 청나라 황제 건륭제가 건설했다는 황제의 별실인 양위안자이는 일찍이 김일성 주석이 중국의 선대수령들과 만나 친선의 정을 나누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양위안자이 특별오찬회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흉금을 터놓고 중대사를 논의하면서 신뢰관계를 맺은 사실상 단독정상회담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 조중친선관계를 원상복원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킨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3월 26일 조중정상회담 직후 국가연회 연설에서 “이번에 우리의 전격적인 방문제의를 쾌히 수락해주”신 시진핑 주석과 중국의 당 및 국가지도간부들의 “지성과 극진한 배려에 깊이 감동되였으며 그에 대하여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방문과 조중정상회담을 제의하였고, 시진핑 주석은 그 제의를 흔쾌히 수락하여 조중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성사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과 조미정상회담에 앞서 조중정상회담을 먼저 한 까닭은 무엇인가? 만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과 조미정상회담 이후에 조중정상회담을 제의하였더라면, 시진핑 주석과 깊은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조중친선관계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조중친선관계를 발전시킬 결정적인 기회는 남북정상회담과 조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다가왔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 기회를 틀어쥐고 주동적인 조치를 단행하였던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방문과 조중정상회담은 2013년 이후 몇 가지 복잡한 사정들 때문에 멀어졌던 중국을 다시 조선의 편으로 끌어당기며, 전통적인 조중친선관계를 일거에 원상복원하였을 뿐 아니라, 조중친선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중국 홍콩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을 맞이하여 2018년 7월 26일 조선을 답방할 예정이라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방문과 시진핑 주석의 조선답방예정은 전통적인 조중친선관계를 ‘핵문제’ 해결 이후의 새로운 친선관계로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로 된다.   

 

한반도 정세는 일차적으로 조미관계와 남북관계에 의해 변화되지만, 조중관계가 한반도 정세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조중친선관계는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촉진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며, 두 나라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전략적 공동이익이다. 만일 조중관계가 불안정하면,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와 안정의 실현이 그만큼 늦어지게 될 것이며, 그에 따라 우리 민족의 통일국가건설도 늦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중정상회담 직후 국가연회 연설에서 “조선인민과 중국인민은 실생활을 통하여 자기들의 운명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하였으며,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잇닿아있는 형제적 이웃인 두 나라에 있어서 지역의 평화적 환경과 안정이 얼마나 소중하며 그것을 쟁취하고 수호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값비싼 것인가를 똑똑히 새기고 있습니다”라고 언명하였던 것이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8년 3월 26일 인민대회당 둥다팅에서 진행된 조중정상회담 장면이다. 사진 오른쪽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중심으로 좌우에 통역관, 리수용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영철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이 자리를 잡았다. 사진 왼쪽에는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좌우에 통역관과 고위급 당간부 6명이 자리를 잡았다. 역사적인 조중정상회담에서는 조중친선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문제, 그리고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조중 두 나라의 공동이익에 맞게 관리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시진핑 주석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조중친선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신화통신> 2018년 3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중친선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네 가지 방안을 제의하였다고 한다. 네 가지 방안은 다음과 같다. 

 

1) 상호방문, 특사파견, 서신교환 등 고위급 교류를 활성화하는 방안

2) 전략적 소통을 위해 전통적 친선관계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 

3) 평화, 발전, 협력의 기치를 들고 상호이익과 인민복지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방안  

4) 민간교류를 강화하고 청년세대교류를 증진하며 우의전통을 계승하는 방안   

 

위에 인용한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이 제의한 네 가지 방안을 듣고 “내게 매우 큰 영감과 격려가 되었다. 선대 수령들께서 직접 맺으신 우의는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되고, 새로운 상황에서 중국과 우호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조선의 전략적 선택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했으며, 시진핑 주석도 다음과 같이 확언하였다고 한다.  

 

“중국과 조선의 전통적 우의는 두 나라의 선대 지도자들이 직접 만들고 이루어낸 소중한 자산이다. 선대 지도자들은 공동의 이상과 이념을 공유하고 혁명적 우정을 바탕으로 서로 지지하며 국제관계사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김정은 위원장 동지와 나는 중조관계발전을 직접 경험하고 목격했다. 그동안 우리는 전통적 우호관계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거듭 말해왔다. 중조관계발전은 역사와 현실, 국제관계와 지역정세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전략적 선택이자 유일한 선택이다. 상황에 따라 변해서도 안 되며,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중국공산당과 중국정부는 두 나라의 우호협력관계를 매우 중시한다. 이를 유지하고 강화하며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 우리는 중조관계의 장기적 번영과 안정적 발전을 위해 조선 동지들과 함께 초심을 유지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환영하는 국가연회에서 상영된 '중조친선 대를 이어'라는 제목의 기록영화 상영장면이다. 이 기록영화는 일찍이 중국을 방문하였던 김일성 주석이 중국 최고지도자들과 뜨겁게 상봉하는 역사적인 장면들, 그리고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최고지도자들과 뜨겁게 상봉하는 역사적인 장면들을 연대순으로 보여주었다. 위의 사진은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과 상봉하는 장면이다.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환영하는 국가연회에서 조중친선관계사 70년을 수록한 그 기록영화를 상영함으로써 두 나라 선대 최고영도자들이 맺은 조중친선관계를 대를 이어 강화발전시키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중정상회담 직후 국가연회 연설에서 “나는 이번에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하였습니다. 나의 첫 외국방문의 발걸음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가 된 것은 너무도 마땅한 것이며, 이는 조중친선을 대를 이어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고 이어나가야 할 나의 숭고한 의무로도 됩니다”라고 밝히면서 “조중친선관계를 새로운 높이에서 강화발전시키는 것은 우리 당과 정부의 확고부동한 립장입니다”라고 언명하였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방문과 조중정상회담 이후 두 나라는 전통적 친선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상승발전시키기 위한 소통, 교류, 협력을 실행할 것이며, 그로써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정세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다.   

 

 

3. 백악관의 조미정상회담준비는 누가 주도하고 있을까?

 

위에 인용한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중정상회담에서 “현재 조선반도 정세가 빠르게 발전하고, 많은 중요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애와 도의에 따라 적절한 때 시진핑 주석을 직접 만나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중정상회담 직후 국가연회 연설에서 “나는 방금 습근평 총서기 동지와 조중친선관계발전과 절박한 조선반도정세관리문제들을 비롯하여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의견을 나누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위의 보도내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중정상회담에서 최근 급속도로 변화, 발전하는 한반도 상황을 시진핑 주석에게 설명하였고, “절박한 조선반도정세”를 관리하는 문제를 논의하였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절박한 조선반도정세”는 역사적인 조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여러 가지 사변들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가오는 조미정상회담이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므로 절박한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조선과 중국은 조미정상회담의 당사자인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조중정상회담에서 백악관의 조미정상회담준비와 관련하여 무엇이 논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준비와 관련하여 단행한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거론할 필요가 있다. 

 

첫째, <뉴욕타임스> 2018년 3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마익 팜페오(Mike R. Pompeo) 국무장관 피지명자에게 조선과 미국 사이의 “비공개연락통로(back-channel communication)”을 유지하도록 지시하였는데, 팜페오가 국무장관에 지명되기 직전 중앙정보국장으로 근무하던 때부터 미국 중앙정보국은 조선 정찰총국과 비공개연락통로를 유지해왔다고 한다. 

 

한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 정찰총국은 인민무력부 직속기관에서 국무위원회 직속기관으로 확대, 개편되었는데, 이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찰총국장으로부터 직접 정찰보고를 받는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팜페오 중앙정보국장의 정보보고를 직접 받고 있으며, 다른 한편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정찰총국장의 정찰보고를 직접 받고 있으므로, 두 정상은 미국 중앙정보국과 조선 정찰총국 사이의 비공개연락통로를 매개로 간접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셈이다. 그 비공개연락통로가 지금 실제로 사용되는지 알 수 없으나, 조미정상회담이 다가올수록 회담준비에 필요한 쌍방의 의사소통이 그 비공개연락통로를 통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2018년 3월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하이오주 리치필드에 모인 군중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이다. 그는 연설에서 현재 진행 중인 한미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을 조미정상회담 이후로 연기하겠다고 밝히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협박발언'을 날렸다. 그처럼 협박발언으로 협상상대의 기를 꺾어놓은 뒤에 자기에게 유리한 협상결과를 이끌어내려는 것이 그의 전형적인 협상술이다. 그러나 그런 협상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미핵대결에서 패한 미국은 국가안보파탄위기에 빠져있으므로 조미정상회담에서 자기들에게 매우 불리하게 협상할 수밖에 없는 궁색한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미정상회담에서 사용할 지렛대가 없다는 미국 정세분석가들의 우려섞인 목소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처럼 궁색한 처지에서 조미정상회담에 끌려나가게 된 사정을 지적하는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둘째, 2018년 3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허벗 맥매스터(Herbert R. McMaster)를 국가안보보좌관직에서 해임하고, 존 볼턴(John R. Bolton)을 그 자리에 지명하였다. ‘악의 화신’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는 볼턴은 오는 4월 9일부터 국가안보보좌관직을 수행하게 된다. ‘악의 화신’이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등장하는 판이므로, 백악관의 조미정상회담준비가 좌초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역사적인 조미정상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일치된 견해와 입장을 가지고 있으므로, 볼턴의 등장으로 백악관의 조미정상회담준비에 난관이 조성될 수 있는 문제를 논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무역전쟁에 맞서야 하는 시진핑 주석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의 화신’이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등장하기까지 하였으니,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직후인 2018년 3월 28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진핑 주석과 전화통화를 한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이 자기에게 조중정상회담이 “아주 잘 진행되었다”고 말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신과 만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는 시진핑 주석의 전언을 3월 28일 아침 트위터에 올렸다.  

 

이런 정황은 시진핑 주석이 조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의견일치를 보았던, 조미정상회담준비가 차질 없이 진행되기를 바라는 공동의 의사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 공동의 의사를 전달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트위터에서 응답하였는데, 이것은 자신이 조미정상회담준비를 직접 챙기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그런 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메시지는 사실이다. 팜페오와 볼턴이 각각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하게 되었지만, 그 각료교체가 조미정상회담준비에 난관을 조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팜페오와 볼턴을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에 각각 지명한 것은 그 두 사람이 강경파이기 때문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잘 따르는 충성파이기 때문이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2018년 3월 29일 보도에서 드러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기준으로 각료를 지명하거나 해임한다. 더욱이 그 보도기사가 지적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들이 반대해도 자기 결심대로 밀고나가는 사람이므로, 조미정상회담준비는 그의 결심대로 추진될 것이다. 

 

 

4.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대전략 

 

위에 인용한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중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대전략을 밝혔다. 누구나 직감하는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대전략은 조미정상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최고로 중대한 사안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한반도 비핵화 대전략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설명했는지 알 수 없지만, <신화통신> 보도를 통해 그 대전략 윤곽의 일부가 세상에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조치를 취해 조선반도 긴장을 완화했으며, 평화를 위한 대화를 제의했다. 북남관계를 화해협력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북남최고위급회담을 하기로 했고, 미국과 대화하기 위해 조미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 남조선과 미국이 선의를 갖고 우리의 노력에 호응하면서 평화와 안전의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실현을 위한 단계적 조치를 취한다면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 선대 수령들의 유훈에 따라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것은 우리의 시종일관한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중국과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대화와 협상을 유지하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바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대전략은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것처럼 “남조선과 미국이 선의를 갖고 우리의 노력에 호응하면서 평화와 안전의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실현을 위한 단계적 조치를 취한다면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는 문장에 집약되어 있다. 한국과 미국이 평화실현을 위한 단계적 조치를 취하고, 조선도 그에 상응하여 비핵화를 위한 단계적 조치를 취하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대전략의 골자인 것이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중정상회담 석상에서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시진핑 주석과 중대사를 논의하는 장면이다. 좌중을 압도하는 패기와 자신감이 느껴진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중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실현해가는 대전략을 설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대전략은 조선의 핵폐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를 뜻하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를 단계적으로, 동시행동절차에 따라 실현하려는 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전략이다. 오는 5월 말 열리게 될 조미정상회담은 조선과 미국의 두 정상이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를 합의하는 역사적인 회담으로 될 것이다.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는 미국의 핵무기는 물론, 핵무기 운반수단으로 되는 모든 종류의 미국군 항공기, 군함, 잠수함의 한반도 접근을 금지한다는 뜻이며, 미국의 핵우산이 한반도에서 철거된다는 뜻이며, 핵공격전초기지로 전진배치된 주한미국군기지들이 폐쇄된다는 뜻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며칠 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청와대 관계자 두 사람이 취재기자들에게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일괄타결과 단계적 해법을 각각 따로 언급하는 바람에 독자들에게 약간의 혼동을 안겨주었다. 그들은 일괄타결과 단계적 해법이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그런 엉터리 같은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데서 일괄타결과 단계적 해법은 전혀 상충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조미정상회담에서 어떤 해결방안이 일괄타결되면, 그 일괄타결된 해결방안을 순차적으로 이행할 단계적 동시행동절차(단계적 조치)도 동시에 합의되어야 한다. 조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해결방안을 일괄타결하면서도, 그것을 순차적으로 이행할 단계적 동시행동절차를 합의하지 않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다.   

 

조미정상회담에서 일괄타결 해결방안과 단계적 동시행동절차가 모두 합의되어야 하는 까닭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과정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 핵문제는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에 의해 발생한 것이지만, 미국은 한국, 일본, 유엔안보리를 대조선적대정책에 끌어들여 대조선적대정책의 적용범위를 국제사회로 확장하였을 뿐 아니라, ‘핵문제’를 적용하는 범위도 단계적으로 확장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렸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과 한국이 취할 단계적 동시행동절차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그에 상응하여 조선이 취할 단계적 동시행동절차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나는 쌍방이 공정하고 대등한 원칙에 따라 밟아갈 단계적 동시행동절차가 아래와 같이 네 단계로 구분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제1단계 - 미국과 한국이 대조선합동전쟁연습을 중단하고, 그에 상응하여 조선은 핵시험과 미사일시험발사를 중단하는 동시행동절차가 진행된다. 

♦ 제2단계 - 미국, 유엔안보리, 중국, 한국, 일본이 대조선제재를 해제하고, 그에 상응하여 조선은 녕변핵시설가동을 중단하는 동시행동절차가 진행된다. 

♦ 제3단계 -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그에 상응하여 조선은 무기급 핵물질을 폐기하는 동시행동절차가 진행된다. 

♦ 제4단계 -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그에 상응하여 조선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단계적으로 폐기하는 동시행동절차가 진행된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네 단계 동시행동절차가 모두 이행되어도, 조선은 국가핵무력을 폐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개념을 조선의 국가핵무력을 폐기시킨다는 뜻으로 해석하지만, 그런 해석은 주관적인 생각과 일방적인 요구를 한반도 비핵화라는 개념에 투영시킨 판단착오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조선의 국가핵무력을 폐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자기들의 주관적인 생각과 일방적인 요구만 분별없이 내세우고 있다. 

 

조미정상회담이 열리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핵시험 및 미사일시험발사를 중단하고, 녕변핵시설가동을 중단하고, 무기급 핵물질을 폐기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폐기하는 단계적 행동절차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할 것으로 예견되지만, 국가핵무력을 폐기하겠다고 공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이 열핵탄두(수소탄)를 감축할 가능성은 있지만, 원래 핵감축은 핵군축협상에서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미국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발언을 조선의 핵폐기라는 뜻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3월 5일 평양을 방문한 방북특사단에게 한반도 비핵화를 말했고, 지난 3월 26일 조중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또 다시 말했는데,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조선의 핵폐기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다. 조선이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를 공식 천명한 때는 1988년 11월이었다. <사진 8>

 

▲ <사진 8> 이 사진은 미국의 핵무기와 전쟁수단들을 파철처럼 모조리 걷어내는 장면을 형상한 조선의 선전화다. 이 선전화는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의 의미를 형상한 선전화들 가운데 하나다. 지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을 고대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고대하는 까닭은,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여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를 실현할 역사적인 일괄타결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연습을 계속 감행하면서 각종 핵타격수단들을 들이밀어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켰던 '핵제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와 안정을 실현할 '백두산 대국'의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 대전략 앞에서 꺾이게 된다는 것, 바로 이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승리를 확신하는 근거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지난날 6자회담에 참가하였던 송민순 당시 한국대표는 ‘빙하는 움직인다: 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이라는 제목의 자기 저서에서 2005년 7월 25일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김계관 당시 조선대표가 “한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고, 우리 최고수뇌부의 확고한 의지라고 하면서, 한반도의 남과 북을 비핵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서술하였다. 김계관 조선대표가 한반도의 남과 북을 비핵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하였던 2005년 당시 조선은 아직 핵시험을 진행하지 않은 비핵국가였으므로,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라는 개념에는 조선의 핵폐기가 포함되지 않았다. 김계관 조선대표의 6자회담 개막식 기조연설에 따르면,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 공동성명에서 처음 공식화된 한반도 비핵화라는 개념은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를 뜻하는 개념이다. 조선은 9.19 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라는 기존 용어에서 ‘평화지대’라는 말을 생략하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평화지대’라는 말을 생략했다고 해서, 그리고 조선이 제1차 핵시험으로 핵보유국으로 되었다고 해서 선대 수령의 유훈인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의 의미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한반도 비핵화는 2005년 7월 25일 6자회담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조선대표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확고한 의지라고 밝히면서 제안하였던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를 뜻하는 것이다. 요컨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대전략은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를 실현하려는 것이지, 조선의 국가핵무력을 폐기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는 조선의 자위적 핵무력은 그대로 놔두고, 미국의 침략적 핵무력만 제거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는 미국의 핵무기는 물론, 핵무기 운반수단으로 되는 모든 종류의 미국군 항공기, 군함, 잠수함들의 한반도 접근을 금지한다는 뜻이며, 흔히 핵우산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확장된 억제’가 한반도에서 철거된다는 뜻이며, 핵공격전초기지로 전진배치된 주한미국군기지들이 폐쇄된다는 뜻이다. 

 

오는 5월 하순 조미정상회담이 열리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시험 및 미사일시험발사를 중단하고, 녕변핵시설가동을 중단하고, 무기급 핵물질을 폐기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폐기하는 방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하면서,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를 실현하자고 제의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러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예견하는 근거는 2018년 3월 19일 <자주시보>에 발표된 나의 글 ‘다가오는 조미정상회담, 낙관적 전망의 근거들’에서 자세히 논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지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을 고대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고대하는 까닭은,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여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를 실현할 역사적인 일괄타결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확신은 “2018년은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승리의 해로 될 것”으로 전망한 올해 신년사에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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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들의 ‘빨갱이 프레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밝힌 글

[제주 4.3 항쟁 70주년] 金益烈장군 실록유고 ⑩
 
[마지막 글] 극우들의 ‘빨갱이 프레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밝힌 글
 
편집국  | 등록:2018-04-02 11:14:58 | 최종:2018-04-02 12:04:2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편집자의 글

제주 4.3 항쟁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았습니다. 4.3항쟁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백과사전에서는 담담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근현대사에서 차별받고 소외를 받았던 민중들의 피맺힌 한이 담겨 있습니다.

4‧3과 김익렬(金益烈) 장군 - 부언 설명하자면 김익렬 장군은 조병옥의 모함으로 9연대장에서 해임되었으나 6.25때 많은 무공을 쌓은 후 3성장군이 되고 국방대학원장까지 역임한 우리나라의 정통 보수이자 후배 군인들이 손꼽는 참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군사독재에 부역하지 않고 전두환 시대에 죽음이 다가오자 이 회고록을 집필하고 자신의 사후에 발표하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그의 유족들은 그 이후의 정권에서도 발표를 못하고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주 제민일보의 한 눈 밝은 기자에 의해 그의 유고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그 스토리도 재미있습니다만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여러 드라마에서도 나왔던 당시의 스토리, 즉 김 연대장이 김달삼과 산중에서 담판을 짓기 위해 본인의 부인을 인질로 보내겠다고 했던 그 미망인께서 아직 생존해 계십니다.

이 글은 그 시절 군인이 썼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정돈된 명문인데다 읽는 재미까지 있는 글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글이 갖는 의미는 4.3이후에 이 나라 극우들의 자양분이 되었던 ‘빨갱이 프레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밝힌 글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상황과 떼어놓을 수 없는 기록이라는 점입니다. <진실의길>은 김익렬 장군님의 회고록을 10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회고록을 제공해 주신 트위터리언 @Jin6148님께 감사드립니다.

 

 

 

24. 암살범의 군법회의

1948년 7월 말 박진경 대령 암살범인 주범 문상길 중위와 하수인 2명의 군법회의가 개최되었다. 장소는 지금은 남산도서관이 된 경비대 군기감 본부였다. 일제 때는 일본 신사(神社) 자리였다. 재판장은 이응준(李應俊) 대령, 범무사는 김완룡(金完龍) 소령이었다(이응준 대령은 초대 육군참모총장이며 김완룡 소령은 육군법무감을 역임하고 소장 예편함). 나는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하였다. 이 군법회의는 군인들과 그 관계자들만 참관‧방청할 수 있는 군법회의였으나 사건이 워낙 컸고 정치적인 성격도 띠어 연일 초만원이었다.

그러나 재판은 예상하였던 것보다 간단하게 끝났다. 검찰관의 심문에 범인들은 3인 모두 죄상 전부를 순순하게 인정하였으므로 재판은 1시간도 못되어 끝났다. 그들은 범행동기에 관하여 자기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며 다른 정치적 목적도 없었고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는 군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해치는 민족반역자를 총살한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것이 군인의 임무라고 끝끝내 주장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사고를 저질러서 본의 아니게 김익렬 연대장에게 피해를 주어 죄송하다”고 사과하였다.

재판장 이응준 대령은 범인들에게 최후로 법정에서 진술할 말은 없느냐고 물었다. 범인들은 사전에 심적으로 서로 상의하여 두었던지 문상길 중위가 3인을 대표하여 “진술할 말은 별로 없으나 재판장 이하 전원과 김익렬 연대장에게 최후의 부탁이 하나 있으니 들어 주겠느냐”고 하였다. 재판장은 “들어줄 만한 말이면 들어줄 터이니 말하여 보라”고 하였다.

문상길 중위는 정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박진경 연대장님을 사살하였으나 본인 개인에 대해서는 대단히 죄송하게 여긴다”(처음으로 ‘연대장님’이라는 존칭어를 썼다. 그 전에는 줄곧 ‘민족반역자’라 하였다)고 말하고, “이 법정은 미군정의 법정이며 미군정장관 딘 장군의 총애를 받은 박진경 대령의 살해범을 재판하는 인간들로 구성된 법정이다. 우리가 군인으로서 자기 직속상관을 살해하고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죽음을 결심하고 행동한 것이다. 재판장 이하 전 법관도 모두 우리 민족이기에 우리가 민족반역자를 처형한 것에 대하여서는 공감을 가질 줄 안다. 우리 3인에게 총살형의 선고를 내리는데 대하여 민족적인 양심으로 대단히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이 법정의 성격상 당연히 총살형이 선고될 것이며 우리는 그 선고에 마음으로 복종하며 법정에 대하여 조금도 원한을 가지지 않는다. 안심하기 바란다. 박진경 연대장은 먼저 저 세상으로 갔고 수일 후에는 우리가 간다. 그리고 재판장 이하 전원과 김연대장도 장차 노령하여지면 저 세상에 갈 것이다. 그러면 우리와 박진경 연대장과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저 세상 하나님 앞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인간의 법정은 공평하지 못하여도 하나님의 법정은 절대적으로 공평하다. 그러니 재판장은 장차 하나님의 법정에서 다시 재판을 하여주기를 부탁한다”.

일순간 법정은 찬물을 끼얹은 듯했다. 단상과 단하의 방청객 할 것 없이 전부가 안색이 굳어졌다. 이응준 대령은 창백한 안색을 짓고 한참 말없이 앉았더니 법정휴회를 선언했다. 재판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었다. 물론 전원 총살형이었다. 총살형은 수주일 후에 수색에서 집행되었다. 나는 임석하지 못하였으나 참관하였던 군인들의 말은 총살형 집행 당시 문상길 중위를 비롯한 3인의 태도는 참으로 군인다웠다고 한다. 3인은 총살장에서도 평소와 별다른 점이 없이 하나님께 “우리들의 영혼을 받아들이시고 우리들이 뿌리는 피와 정신이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하여 밑거름이 되게 하소서”하고 기도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최후에는 대한민국 만세 삼창을 한 후 ‘양양한 앞 길을’하는 군가를 부르면서 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또 해괴한 것은 참관한 하우스만 대위가 다가가 넘어진 시체에다 자기 피스톨을 꺼내 난사했다는 것이다. 하우스만 대위는 경비대 정보책임자로 박진경 대령과 절친한 친구였으며 미군정장관 딘 장군에게 박대령을 추천한 장본인이었다. 총살현장의 광경은 참관자들의 마음 속에 이렇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문인 신문기자 중에는 그 장면을 승화시켜 감상적인 기사를 써서 경찰의 주목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25. 김달삼의 사체검진

결과적으로 제주도민 수만의 생명을 앗아가게 만든 폭동의 두목 김달삼은 그 후 제주도를 탈출, 월북하여 해주(海州)에서 공산당에 입당하고 공산주의자의 영웅이 되었으며 그 후 다시 남파되어 태백산 지구 또는 지리산 지구 공산유격대 책임자로 활약하다가 6‧25직전에 태백산 지구에서 국군토벌대에 의해 사살되었다고 전사(戰史)에는 기록되어 있다. 나는 이러한 주장에 회의적이다. 김달삼을 직접 상면한 자는 국군 현역장교 중에 나 한 사람뿐이다. 그래서 김달삼을 사살하였다는 현장마다 내가 가서 그 사체확인을 해야 했었다. 나는 7~8회에 걸쳐서 사체확인을 하였다. 그 중에는 공비들이 김달삼을 살해하여 투항했다는 경우도 있었고 김달삼 부대를 포위 전멸시키고 김달삼의 사체를 찾아냈다는 경우 등등 10여 회에 걸쳐 ‘사체 소동’이 있었다. 공식적인 검시만해도 7~8회가 된다.

그러나 내가 사체를 확인할 결과는 공명을 노린 부대장이나 정보관들이 꾸며낸 조작극이었으며 끝내 김달삼의 사체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김달삼은 제주도에서 사망한 것이 아닌가 한다. 김달삼에 대한 그 후의 여러 가지 영웅담은 공산주의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인 ‘가짜 김달삼’을 내세워 선전에 이용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진짜 김일성이가 따로 있음에도 김성주(金成柱)를 김일성이로 둔갑시켰듯이, 태백산 지리산 지구의 공비두목 김달삼도 여러 명의 ‘가짜 김달삼’이라고 보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김달삼의 사상성분 등에 관하여서는 불투명한 점이 많다. 그가 골수 공산주의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나와의 담판때도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등등의 용어는 여러차례 나왔으나 공산주의자들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노동대중이니 부르주아니 착취계급이니 하는 언사는 일언반구도 사용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러한 사상을 논할 만큼 공산주의 이론에 밝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공산주의 사상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제주도민을 조직선동하여 폭동을 야기시켰다고는 보기 어렵다. 나와의 대화에서 그는 공산주의를 위해 도민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고 시종일관하여 폭동이 경찰이 도민재산을 불법 약탈하고 고문치사 강간 등을 자행하는데 항거하여 일으킨 자위수단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했었다. 거기에 군집한 폭도들도 같은 주장이었다.

설사 김달삼 일당이 공산주의자였다고 가정하더라도 폭동발생 초기의 상황에서는 공산주의 이론을 앞세워 폭도들에게 공감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 제주도 대중의 지식수준으로 보아 공산주의 사상으로 폭도화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나는 김달삼이 유창한 서울 표준어를 사용했던 점이든지 도민의 생존과 자위 운운 했던 점 등으로 보아 김달삼은 제주도민의 전통적인 배타사상이 강한데다 객지생활에서 제주도 출신이라 하여 지방적인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어 깊은 반감을 품게된 자가 아닌가 한다. 그 점에서 그는 대다수 도민과 폭도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본다.

또 김달삼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나 일제 때에 고등교육을 받은 자가 그 때까지 제주도에 잔류하여 있었다는 점으로 보아 당시 제주도에서 성행하던 일본과의 밀무역에 관련된 자가 아닌가 한다. 김달삼과 동석하였던 나머지 폭도두목 대부분이 해풍에 그을고, 선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자주 튀어나왔고, 당시 나포되어 있던 일본어선에 관한 성능과 일본까지 탈출하는데 필요한 연료의 소요량과 시간 등에 능통하였던 점 등이 나의 그런 추측을 뒷받침해 준다. 폭도들과 면밀히 내통하던 자들 중에는 선주나 선원이 많았고, 이들은 발각되면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도망쳐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나는 김달삼이 밀무역에 관계하다 쫓기는 몸이 되자 대의명분에 걸맞는 여러가지 근사한 정치적인 용어로 폭도들을 규합했던 게 아닌가 짐작하고 있다(김달삼의 본명은 李承晋. 日本 京都 城峯중학교와 東京 중앙대 예과를 다니다 학병을 기피 귀국, 부친이 살던 대구에서 8‧15해방을 맞았으며 46년 귀향, 大靜中에서 사회과 교사로 역사와 공민을 가르쳤고 남로당 대정면 조직책을 맡았음. 교편을 그만둔 뒤 47년 ‘3‧1사건’ 이후에는 남로당 도당간부로 활동했으며 4‧3발발 무렵에는 무장대의 핵심세력으로 부상했던 점 등으로 미루어 金을 밀무역 관련자로 본 필자의 견해는 주관적 체험에서 유추된 것으로 보인다 - 편집자).

26. ‘4‧3’에 대한 나의 소견

나는 제주도 4‧3사건을 미군정의 감독부족과 실정으로 인해 도민과 경찰이 충돌한 사건이며, 관(官)의 극도의 압정에 견디다 못한 민(民)이 최후에 들고 일어난 민중폭동이라고 본다. 당시 제주도경찰감찰청장이나 제주군정장관, 경무부장 조병옥씨나 미군정청장관 딘 장군 중에 한 사람이라도 사건을 옳게 파악하고 초기에 현명하게 처리하였더라면 극소수의 인명피해로 단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었던 단순한 사건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런데 사건처리에 임하여 군정장관 딘 장군 이하 미국인들은 언어불통으로 정보를 오판해 결과적으로 우둔하기 짝이 없는 실책을 저질렀고, 자신들의 과실을 잘 알고 있던 경무부장 조병옥씨 이하 경찰은 사건해결 보다는 죄상이 노출되어 자기 모가지가 달아날까봐 진상을 은폐하기에만 급급하였다. 거기에다 공명심에 눈이 어두운 박진경 대령까지 끼어들어 사건을 원인으로부터 살펴 풀어가려고 생각지 않고 각자가 사건처리와는 거리가 먼 자기의 목적달성에만 전념하다가 대폭동화한 것이다.

설사 공산주의자가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켰다고 치자. 그러나 제주도민 30만 전부가 공산주의자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폭동진압 책임자들은 동족인 제주도민을 이민족이나 식민지 국민에게도 감히 할 수 없는 토벌살상에만 주력을 한 것이다. 당시 정치지도자들이나 군‧경 책임자들이 수만 명의 선량한 양민을 공산주의자와 구별없이 살해하고 자신의 보신과 공명만을 꾀한 것은 민족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후세 국민들은 이 기록을 보고 소수의 악인들이 저지른 죄가 수만명 국민의 불행을 초래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역사의 교훈을 삼기 바란다.

제주도 4‧3사건에 관하여 사심없이 사실을 사실 그대로 역사에 기록할 수 있는 증인으로서 나는 이 글을 썼다. 이 사건에 관련되었던 자들 중에 사건의 내막을 소상히 알 수 있었던 자는 거의 전부가 제주도민에 대하여 크건 작건 범죄적 과실을 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죄상을 정직하게 역사에 기록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쓰여진 4‧3사건 기록을 훑어보면 자기들의 죄상을 은폐하거나 정당화한 것이 대부분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당시 천하가 알다시피 민족적으로나 제주도민에 대하여 무죄하다. 오히려 도민들을 구출하려다 갖은 박해를 당한 사람이다. 또 사건을 정직하게 기록함으로써 이득이나 손해볼 것도 없다. 역사는 정직하게 사실 그대로를 전달해야만 후세에 참고가 되는 법이다. 허위조작된 것은 역사의 가치가 없다. 나는 이러한 정신에서 이 기록을 남긴다. 그런데도 잘못된 것이 있다면 나의 무식의 소산이거나 교양부족에서 생긴 편견일 것이다.

특히 조병옥씨 일파의 죄상에 대하여 나의 규탄 질책이 지나치다고 꾸지람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고인이 된 이들의 죄상을 규탄하여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은 나의 자존심과 교양에 비추어서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민족적 정의와 양심으로 도무지 용납될 수 없고 묵과할 수 없는 죄상들만 기록한 것이며 그들이 저지른 잘못은 내가 기록한 사실의 몇 배가 될 것이다.

나의 소감을 정직하게 털어놓는다면 조병옥씨나 박진경 대령과 같은 군인은 우리나라에서 다시는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고인의 죄상을 덮어두는 것이 인간적 예의라고 생각하나 침묵을 지키기에는 역사의 증인으로서 나의 양심의 가책이 너무 컸다. <끝>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447&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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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대량해고, 그리고 우리 안의 '비겁'과 마주하기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구조조정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부평의 어느 늙은 노동자 한 분이 천막으로 찾아왔습니다. 나 같이 늙은 노동자가 나가야 군산의 젊은 노동자들이 부평에 넘어올 수 있다면서, 오늘 사직서 쓰고 오는 길이라더군요. 힘내라면서 봉투를 주고 가셨습니다. 이건 아닙니다. 군산 살자고 늙은 노동자들 나가는 거 바라지 않습니다. 함께 살고 싶습니다."
 
지난 2월 23일, 부평역 광장이었다. 한국GM지부의 김재홍 군산지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런 연설을 쏟아냈다. 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한 지 꼭 열흘이 되는 날이었다. 당시 이 연설 내용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아주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사이드 경제>는 오늘 감히, 논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희망퇴직 = 사회적 비용 회피 노력 
 
구조조정 사업장에서 항상 인력 구조조정의 1단계로 활용되는 것은 '희망퇴직’이다. 정리해고 이전에 ‘해고 회피 노력’을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리해고로 직행할 경우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저항에 부딪히게 되어 자본 역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자본은 희망퇴직 단계에서 최대한 많은 노동자들이 저항을 포기하고 퇴직 위로금 몇 푼만 챙겨 스스로 걸어 나가도록 만든다. 정리해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으면 정리해고로 간다"는 협박을 극대화 하면서 말이다.
 
노사 합의로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구조조정 사업장에서는 그런 사례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어느 사업장에서나 다양한 이유로 이직이나 퇴직을 준비하는 1~2%의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구조조정 사업장의 경우 자본가들은 이 정도 인력이 나가는 것으로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당연히 노사 합의는 불가능하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 자본이 일방적으로 희망퇴직 시행을 강행한다. 노동조합은 인위적 구조조정에 동의할 수 없기에 일방적 희망퇴직 실시에 강력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다. 대중조직을 책임져야 할 지도부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현장의 평범한 노동자들은 자본의 희망퇴직 강행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실 평조합원들은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우선 노조를 무시한 일방통행이므로 당연히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구조조정을 온전히 막아낼 수 있을까?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회사가 정말 정리해고까지 강행하면 어떻게 하지? 지금 결단을 하지 않으면 위로금도 못 받고 쫓겨나지는 않을까…. 
 

ⓒ연합뉴스

희망퇴직 과정에서 속삭이는 마음의 목소리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런 마음을 품게 된다. "만약 이번 희망퇴직에 많은 노동자들이 응한다면 정리해고 없이도 구조조정이 끝날 수 있지 않을까?" 이론적으로는 비슷하긴 하다. 자본은 인력 구조조정 목표를 정해놓는다. 이를테면 2009년 쌍용차의 경우 2646명이었다. 희망퇴직으로 1600여명이 나간 뒤에 정리해고 인원은 1000명으로 조정되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맞다 하더라도 결코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나 하나 살자고 어떻게 동료들에게 나가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이런 생각은 가슴 속에만 묻어두고 다른 노동자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조용히 지켜보기 마련이다. 그러는 사이 이직이나 퇴직을 오래 전부터 고민해왔던 1~2%의 노동자들은 흔쾌히 희망퇴직원을 작성한다.
 
회사는 이를 빌미로 현장에 엄청나게 부풀려진 소문을 낸다. 누구 누가 나갔다더라, 이직한다는데 조건이 좋다더라, 퇴직 1~2년 남았으면 지금 나가는 게 금전적으로도 훨씬 이익이다 … 이러면서 노동자들의 가슴과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다른 때 같으면 대화도 별로 안하는 관리자들이 집까지 찾아오기도 하고, 술도 먹자고 하며, 갑자기 스킨십이 잦아진다.
 
사실 대부분의 구조조정 사업장에서 평범한 노동자들은 하루라도 희망퇴직을 고민하지 않은 이들이 없다. 아니, 이게 비단 평조합원들만의 얘기일까? 난다 긴다 하는 활동가들이나 간부들도 마찬가지이다. 한번쯤은 희망퇴직을 고민해봤을 것이다. 앞으로 닥쳐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이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용기와 기개를 갉아먹는다.
 
희망퇴직 결과에 대한 상반된 반응 
 
그렇다면 희망퇴직 결과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나올까? 예를 들어, 구조조정 목표치가 100%라고 했을 때 희망퇴직으로 60~70% 인원이 나간다면? 이론적으로는 정리해고를 해야 할 인원은 애초 100%에서 30~40%로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지금 한국GM이 겪고 있는 상황이 그렇지 않은가. 희망퇴직 한 번으로 무려 2,500명의 노동력이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정리해고를 비롯한 인위적 구조조정 숫자나 가능성은 줄어들었다고 느끼지 않을까? 아니다. GM은 이제 6000명 구조조정 설을 언론에 유포하며 불안과 공포를 더욱 조장한다. 
 
반대로 희망퇴직을 거의 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이론적으로는 회사의 구조조정 목표치, 즉 정리해고를 해야 할 인원이 거의 줄지 않게 된다. 그럼 노동자들은 더 불안을 느끼지 않을까? 회사는 거의 모든 인원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달려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그렇지 않다. 노동자들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압도적 다수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지침에 따라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은 것이니 단결의 가능성을 훨씬 높게 보기 때문이다. 당장 손에 잡히는 전망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어깨 걸고 함께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결의한 동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의 반응은 어떨까? 희망퇴직을 거의 하지 않으면 그냥 정리해고로 가면 되니 아무 상관없는 것일까? 쌍용차에서 1000명이 아니라 2646명을 정리해고 하는 상황을 상정해보면 된다. 1000명 정리해고를 강행하는 것조차 노동자들과 거대한 전쟁을, 그리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했다. 
 
결국 쌍용차는 거대한 전쟁을 치러야 했고, 노동자들의 거대한 저항과 시민들의 연대가 결합되어 정권과 자본은 정리해고를 100% 강행하지도 못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해고자 복직을 놓고 쌍용차는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이 인원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난다면 회사 입장은 난처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한국GM에서 지난 2월에 희망퇴직원을 제출한 이들 대부분이 지난주 근무까지를 마지막으로 3월 31일자 퇴사 처리되었다. 이른바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한국에서, 정규직 노동자들도 퇴직 후엔 다시 전쟁터로 내몰린다. 얼마나 지옥같은, 불안한 삶이 펼쳐지겠는가? 벌써 2명의 희망퇴직자들이 퇴사하기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했다.
 
남아 있는 이들에게도 미래의 불안함은 여전하다. 2500명이 희망퇴직으로 나갔지만 GM은 여전히 구조조정이 더 필요하단다. 심지어 지난달에는 희망퇴직·정리해고 절차가 더 필요하다는 둥, 노조가 더 양보하지 않으면 4월 20일에 부도 신청하겠다는 둥 협박의 강도를 더 높였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려 달라. 수치로, 명확한 근거로 말이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얘기를 해주면 당장 희망퇴직 쓸 테니까 말이다." 
 
수많은 동료들이 희망퇴직원을 작성했다. 매일같이 고민이다. 써야 되나, 말아야 되나?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묻기를 반복하다가 내린 결론이란다. 어느 사무직 조합원의 얘기이다.
 
그렇다. 나가는 이들도, 남는 이들도,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가는 이도, 남는 이도, 기분은 정말 더럽다. 우리들을 이렇게 만든 이들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래, 바로 그들이다. 2500명을 절망퇴직의 길로 안내하고도 아직 부족하다며 추가 구조조정을 말하는 바로 당신들 말이다. 
 
부평 2공장에서 생산 중인 캡티바의 수명이 올해로 마지막이란다. 그래서 또 1교대 전환을 운운하고 있다. 창원공장에서 생산 중인 스파크, 그중에서 유럽 수출물량은 내년 상반기가 마지막이란다. 그렇지 않아도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는 중인데, 연말이 되면 이곳에서도 1교대 전환 얘기가 나올 게 뻔하다. 
 
군산공장에서도 똑같았다. 2014년 초에 주간조만 작업하고 야간조는 휴업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형태만 2교대지 사실상 1교대나 다름없었다. 당분간만 이렇게 가자고, 그렇게 본사에 우리 노력을 보여주면 나아지지 않겠냐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짭다운(생산량 축소)에 합의하고 비정규직을 내보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비정규직을 내보내고 정상근무가 이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몇 달도 채 되지 않아 또다시 휴업이 늘어났다. 또다시 야간조만 휴업하는 사실상의 1교대가 시행되었고, 신차를 배정받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강요를 이기지 못해 1교대를 합의해 주었다. 또 비정규직이 내쫓겼다. 그 대가로 신차를 받았지만 1년 만에 공장 폐쇄 통보를 받았다. 이런 일이 다른 공장에서 벌어지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하겠는가!
 
비정규직 우선해고가 벌어질 때에도 
 
구조조정이 벌어질 때 정규직을 향해서는 희망퇴직이 1단계이지만, 사실 사업장 전체로 보자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된다. 비정규직을 향해 계약해지·업체폐업 등의 공격이 벌어질 때, 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 역시 매우 복잡하다.
 
비정규직 공격의 다음 차례가 정규직이라는 점이 분명하기에 회사를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나서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나섰다가 나만 다치진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마찬가지로 내뱉기 힘든 마음을 품기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먼저 나가면 그래도 정규직 고용은 탄탄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쫓겨나면 그게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위안이 되어줄까? 정반대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훨씬 강한 고용불안 심리에 빠져든다. 비정규직 해고에 한 번 눈감기 시작하면, 자본은 그걸 빌미삼아 한 번 더 눈감으라고 요구한다. 눈감지 않으면 정규직에게 직접 공격을 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말이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 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똘똘 뭉쳐서 고용을 지켜낸다면 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회사가 비정규직을 내보내는데 실패했으니 이제 무조건 정규직을 공격하겠구나’ 이러면서 움츠려들까? 
 
이것 역시 정반대이다. 대다수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승리를 축하해준다. 이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우고 있기에 고용불안은 쉽게 날려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비겁과 연대 
 

▲ 김재홍 군산지회장. ⓒ오민규

부끄러워하거나 숨길 필요 없다. 이런 생각을 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걸출한 지도자부터 평범한 노동자들까지, 모두의 가슴 안에는 비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 위기의 신호가 울리면 비겁은 가슴 속에서 이렇게 떠든다. 희망퇴직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나가준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먼저 나가준다면~ 나만은 살 길이 열리지 않을까?
 
그런 비겁한 마음을 품으면 안 된다고, 노동자들끼리 연대해야 한다고, 공자님 말씀을 반복하면 상황이 나아질까? <인사이드 경제>는 정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다. 강철로 만들어진 심장을 가진 이가 아닌 이상, 저런 비겁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품지 않은 노동자가 있을까? 그걸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것이 오히려 대안이 되어야 한다. 
 
이런 부끄러운 마음을 어떻게 얘기할까? 아니다. 그런 마음을 그대만 품은 게 아니라 동료들 모두가 품고 있으니 두려워말자. 처음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제대로 얘기를 해보시라. 동료들이 그대를 비난하지 않는다. "자네도 그랬는가, 나도 그랬는데…" 아마 모두가 똑같은 반응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비겁을 떨쳐내자고 얘기하기 전에, 우리 모두가 똑같이 겁을 집어먹고 있다는 사실부터 먼저 솔직하게 말하자는 거다. 겁이 난다는 말을 동료들 앞에서 해버리면 오히려 겁이 사라진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경험해보자는 것.
 
2월 23일, 부평역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재홍 군산지회장의 연설에는 늙은 노동자 얘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의 연설에 포함된 이 얘기야말로 그날 듣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우리 안의 비겁을 공개적으로 얘기할 때, 비로소 뜨거운 연대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1교대 전환하자고 할 때, 비정규직들에겐 참 미안한 얘기지만 눈 질끈 감았습니다. 결국 비정규직들이 쫓겨났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나도 이렇게 제발 살려달라고 말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한때 세계 자동차산업을 쥐락펴락 하던 GM과의 힘겨운 싸움이다. 유럽과 남미의 각국 정부를 흔들며 협상을 벌여온 승부사들이다. 겁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모두가 비겁하고 부족한 존재임을 자각할 때, 거기서 각자의 부족을 채워주는 연대가 시작된다고 <인사이드 경제>는 확신한다. GM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노동자들의 자각과 연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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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남북미중 4자 대화? 그런 얘기 했을까 싶다"

문정인 "비핵화, 일괄 타결·순차 이행해야"... 청와대, 남북정상회담 정례화 가능성 열어둬

18.04.02 11:08l최종 업데이트 18.04.02 11:08l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자료사진).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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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며 '남한·북한·미국·중국 등 4개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안했다는 보도에 대해 "그에 대한 정보가 없다"라면서도 "그간의 흐름이나 대화 진행속도에 비춰봤을 때 (시진핑 주석이) 그런 얘기를 했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하며, 취재진이 '남·북·미 3자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가 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보다 선행하나'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한반도 문제에 중국이 새로 개입하는 상황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남북미 정상회담을 고수하느냐'라는 질문에도 "남·북·미 정상회담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종합하면 청와대의 의지는 '남한·북한·미국' 정상회담에 중점적으로 찍혀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1일 일본 교도통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3월 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며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개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복수의 미·중 외교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였다(관련 기사: 교도통신 "시진핑, 트럼프에 남-북-미-중 평화협정 제의").

시 주석의 이런 제안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은 채 중국 측에 북한에 대한 압력 유지를 요청했다고 한다. 시 주석은 그 뒤 지난 3월 25~28일 방중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 회담했다.

문정인 "북한 비핵화, 일괄 타결·순차 이행해야"... 청와대 "학자적 소신·개인 의견"

4개국 간 평화협정 내용은 지난 2007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공동으로 발표한 10.4 정상선언에도 '종전선언'이라는 표현으로 언급돼 있다.

총 8개 항인 정상선언 중 4항에는 "현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라는 내용이 있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지난 3월 31일 일본 도쿄 와세다대 강연 기조연설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면서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 당시 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종전선언을 하는 데에 동의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7년 당시 남북 정상회담 때도 관련 내용이 언급됐고 당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4자 간 평화협정 체결에 동의했으나,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이 답변을 주지 않아 '?자 또는 4자'라는 표현이 선언에 담기게 됐다는 게 문 특보의 설명이다.

문 특보는 이어 북한의 비핵화 관련해 "가장 좋은 것은 포괄적이고 일괄적인 타결로, 우리(한국) 정부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이를 주장할 것"이라면서도 "합의 이행은 순차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북한과 단계별로 주고받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문 특보의) 개인 의견"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문 특보가) 학자적 소신을 말한 것"이라며 "그에 대해 청와대가 일일이 코멘트 하진 않는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이 고위관계자는 문 특보가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1년에 두 번씩 남북 간 정상외교를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며 남북정상회담 정례화 가능성을 언급한 데 대해선 "북측과 협의는 안 됐다"라면서도 "여러 가지를 다 해볼 수 있다, 상대가 있으나 상대와 협의해본 뒤 결정되는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편 청와대는 앞서 한국 예술단의 '봄이 온다' 평양 공연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참석한 것과 관련해, "(남북 간 조율은) 없없다"라면서도 "좋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공연 참석과 관련해 "김 위원장도 '(문 대통령이 북한 예술단 공연을 봤으니 자신이 남한 예술단 공연을 관람하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느냐"라며 "남북 화해와 대화를 진전시켜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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