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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이 야수성을 이긴다

인간성이 야수성을 이긴다
 
 
 
장진성 생활정치발전소 이사
기사입력: 2018/06/03 [02:32]  최종편집: ⓒ 자주시보
 
 

 

‘회사는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 직장인들은 한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웹툰과 드라마로 많이 알려진 ‘미생’이라는 작품에 나와서 더욱 회자되는 말이다.

우리 시대 직장인들은 하루하루 회사(사업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각자의 전투를 벌이고, 회사 밖에서는 최소한 안전장치도 없이, 무한경쟁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나타내는 자조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푸념으로 취급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말이다.


아버지와 16개월된 아기의 고독사, 학업 성적이나 사회적 관계를 비관한 청소년 자살, 생활고로 고통받는 청년들, 이런 뉴스는  끊임없이 뉴스에 등장한다. 
그럴 때마다 실업수당, 청년수당, 지자체의 찾아가는 복지서비스, 중앙정부의 복지정책안 등 여러 가지 해결방안을 제시하지만, 누구도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거라고 자신하지 못한다.

 

흔히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하지만, 이미 생존이 삶의 목적으로 바뀐 것은 아닐까 싶다. 오늘도 각박한 현실에서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사회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허용되는 사회다. 인간성보다는 야수성이 어둡게 드리워진 느낌이다.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먹고 사는 게 바뻐서 다른 곳을 돌아보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곤 한다.
최소한의 식의주를 넘어 취업, 주택, 의료 등 우리나라에서 인간성을 유지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개인이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성의 본질을 사랑과 단결이라고 하면, 반대로 야수성의 본질은 패권과 침략이다

지금 국제사회에서도 인간성을 기대할 수 없다.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철저히 짓밟히고 빼앗기는 게 당연시되는 약육강식의 사회다. 
이미 국제사회는 상호존중과 공존, 공리, 공영은 커녕 정치,군사, 경제 등 분야에서 강대국들의 패권과 침략이 일상화되었다.

 

누가 1930~40년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침략과 약탈을 자행했는가?
미국의 무장해제 요구에 핵개발프로그램을 포기한 리비아는 왜 미국의 침략을 받았는가?
과연 누가 시리아 반군을 육성하여 수년간 내전을  일으켜 국민들의 삶을 파괴하였는가?
이렇듯 국제사회에서도 인간성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이미 야수성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70년 넘게 미국의 정치군사적 침략과 경제제재를 막아낸 북한이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무력을 완성하고 이를 증명하자, 국제 사회는 달라지고 있다.
한동안 소원했던 중국이 앞장서서 북한과의 혈맹관계를 복원하고, 미국은 대국의 체면에 맞지 않게, 자국의 안전과 이를 담보할 수 있는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을 북한에 조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북한의 핵무력이 강대국들의 야수성을 꺾고 동북아 평화와 국제사회 정상화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와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얼마 전 북한은 억류된 미국인 3명을 석방하고 풍계리 핵시험장을 폭파하고 패쇄하는 등 관계 정상화의 실질적 조치를 진행하고 있지만, 미국은 6월 12일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는 책임을 북한에 떠밀고 있다.

이제 미국에게 ‘마음씨 좋은 엉클톰’의 인간성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미국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표 후 북한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세계 악의 축, 독재정권, 인권의 불모지로 치부됐던 북한에게서 인간성을 느낄 수 있었다.

 

▲ 4.27 판문점선언에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종전선언을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 4월 27일, 우리는 실로 오랜만에 인간미 넘치고 따스한 광경을 접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우리 국민들은 3차 남북정상회담을 보며, 회담 성과에 압도적인 지지와 환호를 보냈다.

여론조사 결과 3차 남북정상회담이 성과있다는 답변이 94.1%였다. 78.4%의 국민들은 판문점 선언이 국회에서 비준해야 한다고 여겼다. 게다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신뢰도를 묻는 말에 77.5%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종일관 연장자인 문재인 대통령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언행과 자연스럽게 회담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쉽이 조화를 이루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민족의 화해와 번영, 자주통일로 갈 수 있다는 민족적 희망을 갖게 되었다.

3차 남북정상회담은 단 하루였지만, 회담장과 만찬장 곳곳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훈훈한 분위기를 보면서 잔칫집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회담의 결과로 나온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하 판문점 선언)을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민족의 희망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지름길은 우리 민족의 힘과 지혜를 모으는 것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에 나온 것처럼 민족자주 관점에서 대외 의존도를 줄이고, 주변국들과 공동번영을 추구해야 한다. 
이미 북한과 중국, 러시아 국경지대는 전세계 ‘핫 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는 지역이다. 세계 투자전문회사들은 북한에 대한 투자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 경제의 활로를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5.24 대북제재조치를 해제해야 한다. 교류와 협력의 대상을 ‘적’이라고 규정해놓고, 남북경협이 잘 되길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판문점 선언 1조 1항에 명시된 것처럼, 이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이제는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가는 길에 어떤 난관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새로운 평화통일 번영의 시대에 우리 모두가 주인공으로 나서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사회에 어둡게 드리워진 야수성을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인간성은 야수성을 이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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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동맹관계에 확고히 들어선 북과 러시아

전략적 동맹관계에 확고히 들어선 북과 러시아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6/02 [01:4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노동신문은 1일 김정은 위원장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담화에서 전략적이며 전통적인 조러관계를 양측의 이익에 부합하고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해 외교관계 수립 70주년인 올해에 고위급 왕래를 활성화하고,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적극화해나가자는 데 합의했다”면서 "조러 최고 영도자들 사이의 상봉을 실현시킬 데 대하여 합의를 보았다"고 보도했다.     ©

 

▲ 2018년 5월 3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상을 접견하였다.   

 

 

연합뉴스 등 국내외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국무위원장이 5월 31일 백화원영빈관에서 러시아연방 외무상 세르게이 라브로프를 접견하였다. 

 

접견에는 러시아의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고리 모르굴로프 외무차관과 올렉 부르미스트로프 한반도 문제 담당 특임대사, 올렉 스체파노프 러시아 외무부 대외정책계획국 국장, 이고리 사기토프 아시아1국 부국장 등 러시아 외교 당국자 여러 명이 참석했다. 

 

러시아의 아시아 외교 핵심 두뇌들이 모두 참여한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을 앞 둔 상황에서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변화발전해갈 것인지를 알아보고 북러관계를 확대 강화하기 위한 방문임을 이 참석자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고 본다.

 

접견의 핵심 내용은 푸틴 대통령의 친서 전달이었다. 김정은위원장이 "따뜻하고 훌륭한 친서를 보내준 뿌찐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하시고 대통령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시였다."라는 북 언론 보도를 보면 푸틴 대통령이 풍계리 핵시험장을 폭파 폐쇄하는 등의 선제적 조치를 통해 한반도와 주변 정세의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관계, 북미관계를 대화를 통해 풀어가는 김정은 위원장의 외교 행보를 높이 평가한 것으로 판단된다.

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더불어 크렘린 궁에서 이와 관련하여 연내 북러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고 밝혔는데 이 친서에 김정은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정중히 요청하는 내용도 들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는 라브로프 장관은 김 위원장에게 "북이 남북·북미관계를 잘 주도하며 '실천적인 행동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 한반도와 지역 정세가 안정 국면에 들어선 것을 높이 평가"하고 "일정에 오른 조미 수뇌회담과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조선의 결심과 입장을 러시아는 전적으로 지지하며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 고 조선중앙통을 인용하여 전했다. 

 

현단계에서 러시아가 북과 관계를 강화하려는 의도는 명백하다.  

 

군사적으로는 북의 첨단기술이 러시아 첨단 무기 개발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고 경제적으로는 대미 봉쇄를 뚫기 위해 북과 교류가 필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가 미국과 유럽의 경제봉쇄를 뚫기 위해 동아시아진출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동아시아 진출의 교두보가 북이다. 

 

특히 러시아는 이미 미국과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유럽과 중동 등에서 치열한 군사대결전까지 벌이고 있다. 거기에 지난해 외교관 맞추방 전투도 격렬하게 치렀다.

그래서 지난해 북이 그렇게 많은 수소탄과 전략탄도미사일 시험을 단행했음에도 러시아는 미국의 대북제재를 사사건건 반대했고 북과의 경제교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등 북과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과시해왔다. 

 

김정은위원장은 미국의 대북제재에 지난해 내내 적극 동참했던 중국이지만 최근 연이은 북중정상회담으로 러시아와 같은 우호관계로 확 바꾸어놓았다. 벌써 북중 경제교류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에 러시아도 한 발 더 나아가 북러정상회담을 통해 북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교류협력을 늘려갈 계획을 세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아시아 담당 외교 핵심 정책가들을 이번 방북에 포함시켰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하여 북미관계가 풀리면 러시아도 극동개발의 호기를 맞이하게 된다. 주동적으로 극동 경제진출의 포석을 놓기 위해 북과 교류협력을 강화해야 상황인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만약 북이 미국과 손잡고 극동지역에서 러시아를 압박한다면 러시아는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북미정상회담을 하기 전에 북러관계를 더욱 확고한 전략적 동맹관계에 진입시키자는 의도로 푸틴 대통령이 친서까지 써서 라브로프 외무상을 북에 파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북미정상회담 전에 러시아와의 우호관계 강화를 과시할 필요가 있다. 설령 북미담판이 깨지더라도 러시아 중국 및 제3세게와의 교류협력을 통해 얼마든지 미국의 제재를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에게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존 볼튼의 대북 악담이 터져나오고 있던 조건에서도 자체의 계회과 시간표에 따라 풍계리 핵시험장을 폐기하는 등 한반도평화를 위해 차근차근 일을 추진했다. 이런 북의 행보를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는 나라가 러시아와 중국이다.

사실 북이 러시아,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군사,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

 

따라서 북중, 북러 관계의 강화는 미국에 대한 위력적인 압박이다. 미국에게는 북의 강력한 핵무장력이 더 이상 커나지 않게 하는 일도 절박하지만 북중러 관계 강화에 대한 대응도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닐 수 없다. 

 

북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주동적이며 성의있는 노력을 다했기 때문에 설령 북미정상회담이 잘 못 되어 다시 북미대결전이 격화되더라도 이제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대북 제재로 끌어들이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다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중정상회담은 적극적으로 진행하면서도 북러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는 것은 이미 두 나라의 관계가 반석위에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외교전법이 매우 치밀하고 정확하다. 미국을 건설적인 대화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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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에 '조류 충돌 방지' 무늬 넣는 무당거미

조홍섭 2018. 06. 01
조회수 665 추천수 1
 
거미줄 망가뜨릴 새는 보지만 파리·나비는 못 봐
사람 시력은 개·고양이 7배, 동물 중 최상급
 
P7100289-1.jpg» 무당거미 거미줄에 있는 지그재그 무늬는 새 등 큰 동물이 거미줄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알리는 기능을 한다는 가설이 나왔다. 조홍섭 기자
 
우리나라에 흔한 무당거미는 검고 노란 얼룩무늬와 배의 붉은 점으로 눈길을 끈다. 무당거미는 몸의 두드러진 색깔뿐 아니라 거미줄도 독특하다. 거미줄 복판에 종종 지그재그나 나선 형태로 꿰맨 듯한 흰 무늬를 만든다.
 
이 무늬가 무슨 기능을 하는지를 둘러싸고 과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가설로 맞섰다. 하나는 큰 동물이 지나가다 그물을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경고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먹이 곤충을 유인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었다. 최근 첫 번째 가설에 힘을 실어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엘레노 케이브스 미국 듀크대 생물학자 등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생태학 및 진화 동향’에 실린 리뷰 논문에서 곤충, 조류, 포유류, 어류 등 동물 600종의 시력을 비교했다. 그 결과 새들은 2m 밖에서도 거미줄의 지그재그 무늬를 감지해 회피할 수 있지만 곤충은 무늬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aa2.jpg» 거리별로 여러 동물이 바라본 무당거미 거미줄의 지그재그 무늬. 곤충에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새한테는 잘 보여 미리 보고 피할 수 있다. 케이브스 외 (2018) ‘생태학과 진화 동향’ 제공.
 
거미줄로부터 20㎝ 떨어진 곳에서도 파리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2m 밖에선 곤충 가운데 시력이 좋은 편인 잠자리 눈에도 감지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마치 유리창에 새가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늬를 넣는 것처럼 섬세한 거미줄을 새 등이 뚫고 지나가지 못하도록 경고판을 만든 것’이라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해파리의 독성 촉수도 비슷한 사례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독해파리는 독물을 주입하는 기다란 촉수를 늘어뜨리는데, 대개 강렬한 색이어서 눈에 잘 띈다. 연구자들은 시력이 나쁜 새우나 작은 물고기한테 이 독촉수는 보이지 않지만, 자칫 촉수를 망가뜨릴 수 있는 큰 물고기 눈에는 2m 밖에서도 잘 보인다고 밝혔다.
 
aa3.jpg» 해파리의 독성 촉수는 큰 물고기에는 잘 보이지만 해파리의 먹이인 치어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케이브스 외 (2018) ‘생태학과 진화 동향’ 제공.
 
주 저자인 케이브스는 “동물들은 우리처럼 세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시각 1도 안에 있는 검정과 하얀 평행선을 몇 개까지 구분할 수 있는지를 시력의 지표로 삼고, 눈의 해부구조를 바탕으로 시력을 추정했다.
 
그 결과 사람은 침팬지 등 다른 영장류와 함께 조사한 동물 가운데 가장 시력이 뛰어난 부류에 속했다. 사람은 1도 시각에서 60쌍의 흑백 평행선을 뭉개지지 않은 형태로 구분했다. 이를 바탕으로 아는 얼굴을 알아보고 교통 표지판을 감지한다.
 
흔히 사람은 다른 동물보다 밤눈이 어둡고 색깔을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선명하게 보는 능력은 탁월한 셈이다. 사람은 시력 면에서 고양이나 개보다 4∼7배 뛰어나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사람보다 시력이 나은 동물은 매 등 맹금류가 유일했다. 호주의 매는 사람보다 2배 예리한 시력을 갖췄다. 높은 하늘에서 쥐나 토끼를 잡는 능력은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맹금류를 뺀 대부분의 새는 사람의 절반 이하 시력에 머물렀다. 물고기도 시력이 가장 뛰어난 배스나 돛새치가 사람의 절반 수준이었다.
 
겹눈이 있는 곤충의 시력은 형편없었다. 1도 시각에서 10쌍의 흑백 평행선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법적으로 시각장애인’으로 간주하는데, 곤충 평균은 0.25쌍이었고, 가장 뛰어난 잠자리도 2쌍에 지나지 않았다. 
 
aa4.jpg» 동물의 시력 분포. 가로축은 눈 지름이고 세로축은 시력이다. 사람은 최상위에 위치한다. 케이브스 외 (2018) ‘생태학과 진화 동향’ 제공.
 
전체적으로 동물의 시각은 최고와 최저 사이에 1만배나 차이가 났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케이브스는 “모든 동물이 비슷한 시력으로 세상을 보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네발나비과 나비의 날개 무늬가 새에 대한 경고인지 짝짓기 상대를 유혹하려는 것인지 논란이 있었지만, 아주 가까이에서밖에 보이지 않는 곤충을 시력을 고려한다면 새 경고용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물론, 연구자들은 동물이 눈으로 얻은 정보를 뇌에서 다시 처리하기 때문에 눈의 해부학적 구조만으로 한 이 비교가 실제와는 조금 다를 수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leanor M.Caves et al, Visual Acuity and the Evolution of Signals, Trends in Ecology & Evolutionhttps://doi.org/10.1016/j.tree.2018.03.00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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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의 착각, 그리고 침묵하는 대법관들

[해설] 국민적 공분에도 여전히 '내부 문제' 취급... 국민에게 모두 공개해야

18.06.01 17:04l최종 업데이트 18.06.01 22:43l

 

[기사 보강 : 1일 오후 7시37분]
 
 KTX해고승무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 요구 기자회견을 앞두고 있다.
▲  KTX해고승무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 요구 기자회견을 앞두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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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했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사법농단을 향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여전히 해당 문건을 공개하지 않고 있고, 관련자 형사 조치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또, 지난 조사결과 발표 당시 재판 과정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인 대법관들은 '재판 거래' 문건에는 침묵하고 있다. 

사건의 진화 : 사법부 블랙리스트 → 사법농단 재판거래

법원은 지난해 3월 사법부 블랙리스트 문제로 내부 조사를 시작했다. 양승태 대법원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이었던 이탄희 판사를 발령한 지 11일 만에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러자 법원 내부에선 행정처가 이 판사가 소속된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를 하지 못하게 지시했음에도 이에 응하지 않자 인사조치를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를 꾸렸고, 진상조사위는 한 달 뒤 "보복성 인사조치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이 판사가 '판사 뒷조사 파일'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문제는 다시 불거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지난해 11월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당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출범시켰고, 추가조사위는 내부 문서를 조사했다. 그 결과 판사 인사개입 문건뿐 아니라 양승태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댓글 법원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을 거래하려고 시도한 정황들이 드러났다.

그러나 관련자들이 비밀번호를 열어주지 않는 등 자세한 확인이 불가능했고, 결국 3차 조사(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로 이어졌다. 

3차 조사 결과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이 개입을 시도한 건 원세훈 전 원장 사건만이 아니었다. KTX 승무원 해고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박근혜 정부의 관심 사건 재판 결과를 사법부 숙원 사업과 맞바꾸려 했다. 선고 시점과 결과를 두고 "국정 운영의 동반자·파트너", "윈윈" 같은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했다.

대법원이 해당 사건 피해자의 간절함을 외면한 채 판결을 흥정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특정 성향을 가진 판사를 주요 보직에서 제외하는 등 법원 내부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사법농단'이었다. 

여론 따라 달라지는 법원 입장... 처벌 없는 대책은 무의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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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지난 25일 특조단은 관련자들에게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조단은 보고서를 통해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언급한 뒤 "그 밖의 사항은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돼 그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내부 징계면 적절하다는 의미였다. 

여론은 법원의 '셀프 면죄부'라며 분노했다. 그러자 특조단 관계자는 28일 취재진과 만나 "단정적으로 형사적 조치가 없다고 한 부분은 우리의 불찰"이라며 "충분한 검토 여지가 있다고 본다"라며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여전히 법원이 직접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하는 부분에 대해선 "더 이상의 추가적 조치를 할 수 없다, 겸허하게 열어놓고 비판을 받아들이겠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대법원장이 직접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지자,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31일 법원 내외부 의견을 종합해 형사 조치를 결정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김 대법원장의 태도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동안 법관의 비위가 적발됐을 경우 법원이 검찰에 수사의뢰나 고발조치를 하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향후 이번 사건이 재판에 넘겨졌을 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는 법원 스스로 독립성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판사들끼리 돌려본다? 국민들은?

이와 함께 법원 내부에서 이번 사안을 대하는 태도 역시 '폐쇄성'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조단은 내부 문건 410개 중 174개만 공개했다. 그것도 전부 공개가 아닌 주요 내용을 '인용'한 것에 불과했다. 특조단은 '(140505)세월호사건관련적정관할법원및재판부배당 방안', '(141229)민변대응전략', '(150803)VIP보고서' 등 민감한 제목이 달린 나머지 보고서를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공개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한 이마저도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 대표판사들만 해당 문건을 '열람'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법원 내부에선 대표회의에 전부 제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수도권의 한 지방법원 대표판사인 A판사는 28일 오전 법원 내부통신망(코트넷)에 "410개 파일 모두를 원문으로 제공받아 검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측은 1일 대표회의에 문건을 제출받는 방안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할 예정이다.

'내부 돌려보기'가 아닌 국민에게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같은 날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대법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참여연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특조단 조사의 신뢰도와 투명성에 문제 제기가 있는 만큼 모든 문건을 투명하게 공개해 무너진 사법정의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체 성명 내던 대법관들, 이번엔 왜 침묵하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판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의 모습.
▲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판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지난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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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법관들의 침묵도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2차 조사 당시 "원세훈 재판 과정에 청와대 개입은 없었다"며 단체로 불쾌감을 드러냈던 것과는 다른 모양새다. 

지난 1월 23일 대법관 13명은 '원세훈 재판 개입' 의혹이 제기되자 대법원 공보관실을 통해 "사건의 중요성까지 고려해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할 사안으로 분류하고 대법관들의 일치된 의견으로 판결을 선고했다"며 "재판에 관해 사법부 내외부 누구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현재 대법관 13명 중 7명만이 원세훈 댓글사건 대법원 판결 심리에 참여했음에도 긴급 간담회를 열어 이 같은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2차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지 하루 만이었다.

그러나 이번 3차 조사 결과 발표 뒤 일주일이 지났지만, 대법관 전원은 침묵하고 있다. 대법관 13명 중 어느 누구도 사법농단 사태에 관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는 31일 성명을 통해 "당시 대법관 7인은 응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참여연대는 "오는 8월 2일 퇴임하는 고영한, 김창석, 김신 대법관과 11월 1일 퇴임하는 김소영 대법관 등 재임 중인 대법관들이 현 사태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없이 임기를 모두 채우고 퇴직하는 것은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대법관 4명의 실명을 거명하며 자진 사퇴를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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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14일 군사회담, 18일 체육회담 합의

남북고위급회담 공동보도문 채택, 22일 금강산 적십자회담 (전문)
판문점=공동취재단/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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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1  17: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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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은 1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을 열고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고위급회담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사진-판문점 사진공동취재단]

남북은 오는 14일 장성급 군사회담, 18일 남북 체육회담을 각각 판문점에서, 22일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6.15남북공동행사는 일단 하지 않기로 하되, 문서교환 방식으로 어떻게 기념할지 협의하기로 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개성공업지구 내에 가까운 시일 내에 개설하기로 했다.

남북은 1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을 열고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고위급회담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공단 내 설치..15일 사전점검
남북, ‘6.15공동행사’ 안하기로 의견 모아

남북은 “남북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히 열어나가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 나가기”위해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와 6.15공동선언 발표 18돌은 의의있게 기념할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개성공단 내에 설치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당국 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남북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까운 시일 안에 남북 당국자가 상주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남북연락사무소는 △남북 간 주요 현안.합의 이행 관련 입장 교환 및 협의, △민간교류의 대북협의.중개, 법적.행정적 절차 안내 및 지원 등의 역할을 한다.

남북은 이날 고위급회담에서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에 이견이 없었다. 다만, 북측은 개성공단 전면중단 이후 시설노후화로 개보수를 위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기했다고 남측은 설명했다.

하지만 북측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북으로 올라가면서 취재진과 만나 ”개성공단 보수가 필요하단 소리한 거 없다. 정비가 필요하단 소리도 한 거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단, 오는 15일 이전 남측 사전 점검단이 방북하며, 본 사무소 개소 이전에 ‘임시 사무소’를 개소할 예정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개성공단 내 종합지원센터,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 중 한 곳이 될 전망이다.

남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후 결과 브리핑에서 “2년 이상 개성공단이 전혀 사용되지 않고 방치된 상태여서 현장에 가서 살펴보고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6.15공동선언 발표 18주년 기념행사는 일단 무산됐다. 북미 정상회담, 남북회담 등의 일정이 연이어 있어, ‘의의있게 기념하기 위한 방안 모색’을 위해 문서교환방식으로 협의를 하기로 했다. 일정 외에도 장소 문제도 무산 배경이 됐다. 남측은 판문점, 북측은 남측지역을 각각 제안했다.

   
▲ 남북고위급회담 남북 대표단이 종결회의를 열고 있다. [사진-판문점 사진공동취재단]

14일 장성급 군사회담, 18일 체육회담, 22일 적십자회담 등

이날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은 ‘판문점선언’의 후속조치로 각 분야별 회담 일정을 확정했다.

먼저, ‘남북 사이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국방장관회담 개최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한 장성급 군사회담’을 오는 14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갖기로 했다.

남측은 △우발적 충돌 방지대책,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등의 협의를 제안했다. 북측은 우발적 충돌 방지 대책 논의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가능한 빨리 열자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남북통일농구경기와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 공동진출을 비롯한 체육분야의 교류협력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체육회담은 오는 18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다. 남북통일농구경기는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언급된 사항이다.

이산가족, 친척 상봉을 비롯한 인도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은 오는 22일 금강산에서 열린다.

‘판문점선언’에 나온 동해선.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문제를 위한 ‘남북 철도 및 도로협력 분과회의’와 남측이 남북교류사업으로 제시한 ‘산림협력 분과회의’는 차후 문서교환 방식으로 날짜와 장소를 정하기로 했다.

조명균 장관은 “회의 일자는 대략 논의된 것은 6월 말 경 대략 그때쯤 다시 서로 형편을 봐가면서 일자를 정해서 하자고 합의가 됐다”고 말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 남측 예술단 방북공연 당시 제시한 가을 북측 예술단의 남측 공연을 위한 실무회담도 문서교환 방식으로 확정지을 예정이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말했듯 공연 주제는 ‘가을이 왔다’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은 “고위급회담을 정례적으로 개최하여 판문점 선언 이행을 총괄적으로 점검하고, 부문별 실무회담 진행과정을 보아가며 차기 고위급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조 장관은 “6월 말 경 예정된 회담들이 진행돼가는 것을 봐가면서 필요하다면 중간에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각종 회담을) 한 차례 한 다음에 이걸 좀 정리하고 그다음에 이어나가 돌고 하는 그런 차원에서 고위급회담을 갖자 하는 정도로 서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 남북고위급회담이 끝난 뒤 조명균 남측 수석대표와 리선권 북측 단장이 작별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판문점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대표들, “‘판문점선언’ 본격 이행 들어갔다”

이날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고위급회담 공동보도문’ 채택으로 남북 대표들은 ‘판문점선언’ 이행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8시간 가까이 남북 대표들은 점심도 거른 채 공동보도문 채택에 경주했다.

북측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은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공동보도문이 채택된 것은 좋은 일”이라며 “이 과정에 쌍방 당국으로서 공통점, 차이점도 좀 있다고 생각해 봤다”고 말했다.

“공통점이라는 것은 북남 수뇌분들이 4월 27일과 5월 26일 판문점에서 진행한 북남 수뇌상봉과 회담에서 회담의 의의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쌍당 당국이 다시금 확인했고, 또 판문점 선언 이행을 조속히 밀고 나가는 것이 앞으로 북남관계의 전도를 열어나가는 데서 획기적인 전환적 계기로 된다는 것을 쌍방 당국이 다시금 인식했다”는 것.

리선권 단장은 “4월의 화창한 봄기운을 오곡백과 무르익는 풍요한 가을로 와서 우리가 쌍방 당국이 열심히 노력해서 6월 1일부터 여름이 시작되는데 여름철에 무엇을 어떻게 가꾸는가에 따라서 가을의 풍요함이 있겠나 판가름 하게 된다”며서 “민족사에 북과 남, 해외 모든 동포들에게 풍요한 가을을 안겨주는 그런 심정에서 일을 열심히 하자”고 강조했다.

   
▲ 북으로 돌아가는 북측 대표단. [사진-판문점 사진공동취재단]

이에 남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때에 판문점 선언 이행을 우리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과정에 돌입했다. 오늘 공동보도문을 통해서 새로운 단계로 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화기애애한 속에서 리 단장은 취재진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회담 종결발언에서 “우리 민족에게 온 겨레에게 좋은 결실을 더 빨리 안겨주자고 점심밥도 넘기고 푼푼히 했다”며 “북과 남 당국 대표들이 밥을 다 자시고 일한다고 생각 마시고 항상 이렇게 노심초사하는 심정으로 일한다는 것을 좀 알아주시면 좋겠다. 북남 당국 간 회담에 대한 이러저런 오보가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남북고위급회담에는 남측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수석대표, 김정렬 국토교통부 2차관,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김남중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안문현 국무조정실 심의관이 대표로 나섰다. 류광수 산림청 차장은 교체대표로 참가했다.

북측은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을 단장으로 김윤혁 철도성 부상, 원길우 체육성 부상, 박용일 조평통 부위원장, 박명철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마주했다. 국토환경보호성 관계자 1명이 산림협력 관련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했다.

이날 고위급회담은 오전 10시부터 55분간 1차 전체회의, 낮 12시 58분부터 오후 1시 8분까지 1차 수석대표 접촉, 오후 1시 25분부터 오후 1시 34분까지 2차 수석대표 접촉, 오후 2시 30분부터 오후 2시 40분까지 3차 수석대표 접촉, 오후 4시 28분부터 오후 4시 38분까지 4차 수석대표 접촉을 갖고, 오후 5시 25분에 종결회의를 열고 공동보도문에 서명했다.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고위급회담 공동보도문(전문)


  남과 북은 2018년 6월 1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남북고위급회담을 진행하였다.
  회담에서 쌍방은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실천방안들을 진지하게 협의하고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 남과 북은 남북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히 열어나가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 나가기로 하였다.

  ① 남과 북은 당국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남북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가까운 시일안에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공업지구에 개설하기로 하였으며 이를 위한 실무적 대책을 세우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 발표 18돌을 의의있게 기념하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하고 문서교환방식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문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부문별 회담들을 조속히 개최하기로 하였다.

  ① 쌍방은 남북 사이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국방장관회담 개최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한 장성급군사회담을 6월 14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가지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남북통일농구경기와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 공동진출을 비롯한 체육분야의 교류협력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체육회담을 6월 18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가지기로 하였다.

  ③ 쌍방은 이산가족, 친척 상봉을 비롯한 인도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6월 22일 금강산에서 가지기로 하였다.

  ④ 남과 북은 10.4선언에서 합의된 동해선·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의 연결과 현대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철도 및 도로협력 분과회의와 산림협력 분과회의, 오는 가을 북측 예술단의 남측 지역 공연을 위한 실무회담 등의 개최 날짜와 장소는 차후 문서교환을 통하여 확정하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고위급회담을 정례적으로 개최하여 판문점 선언 이행을 총괄적으로 점검하고, 부문별 실무회담 진행과정을 보아가며 차기 고위급회담을 가지기로 하였다.

2018년  6월  1일
판 문 점

(종합,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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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비핵화-안전보장 맞교환 '세기의 빅딜' 초읽기 들어갔다

송고시간 | 2018/06/02 08:26

핵탄두·ICBM 반출· 폐기 등 초기이행조치…종전선언으로 北안보우려 해소
'올해 연말-2020년' 2단계 로드맵 가능성…북미정상, 싱가포르 후에도 또 만날듯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전념하는 것으로 믿어요"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전념하는 것으로 믿어요"(워싱턴DC AP=연합뉴스) 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왼쪽)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접견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면담을 마친 뒤 집무동 밖에서 김 부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오후 1시 12분께 백악관에 도착한 김영철은 80분 가량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면담 후 기자들에게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오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게 되면서 '세기의 담판'에서 내놓을 '초대형 빅딜'에 관심이 쏠린다.

이번 정상회담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에 초점을 맞췄지만, 북한이 요구하는 비핵화의 반대급부로서 안보우려 해소도 함께 다룰 수밖에 없어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접견한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 종전선언이 나올 수 있다"며 "회담에 앞서 종전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이런 기조를 확인했다.

북미정상회담은 결국 북한의 비핵화 약속과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보장을 맞바꾸는 방식의 딜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리비아 핵장비 살펴보는 부시
리비아 핵장비 살펴보는 부시(서울=연합뉴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04년 7월 12일 미국 테네시 주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핵융합빌딩에서 리비아의 핵무기 프로그램 관련 장비들을 살펴보고 있다. 한편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언론인터뷰를 통해 북핵 폐기의 장소로 테네시 주(州)의 오크리지를 공개 지목했다. 2018.5.15 [백악관=연합뉴스]
photo@yna.co.kr

 

◇비핵화 관건은 초기행동조치…"더 빨리, 더 많이"

판문점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접견하면서도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의지는 변함없고 일관하며 확고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영철 부위원장을 접견한 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를 전제로 보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실하고 미국이 이를 신뢰하는 상황에서 비핵화 약속의 핵심은 핵을 보유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행동조치를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취하느냐에 달렸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달 13일(현지시간) CBS와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해 "더 크고, (과거와) 다르며, 더 빠르게(bigger, different, faster)" 진행되기를 희망한다는 언급을 내놓은 것은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를 조기에 해외로 반출해 현재 핵위협을 줄이는 데 관심을 가진 셈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 핵무기의 제거와 폐기 후 리비아의 핵무기 관련 장비를 보관한 장소로 유명한 테네시 주(州)의 오크리지로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도 이런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다 핵탄두를 미국까지 날려 보낼 수 있는 운반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폐기도 핵심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핵탄두보다 이를 실어보낼 수 있는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더 위협으로 느낄 수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에서 로이터 기자와 따로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북핵 협상에서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을 반드시 다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따라서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와 ICBM을 조기에 반출해 해체함으로써 미국의 안보우려를 제거하는 것이 비핵화 합의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한국미래포럼 강연에서 "연말까지 6개월 안에 북한은 미국에 핵무기·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 장소와 목록을 제시하고 이를 국외 반출 등의 방법으로 모두 폐기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남북미 3자회담 종전선언 목표…싱가포르서 성사되나(CG)
남북미 3자회담 종전선언 목표…싱가포르서 성사되나(CG)[연합뉴스TV 제공]

 

◇북한의 안보우려 해소 상응조치…종전선언으로 불가침까지 나가

미국이 비핵화 조치에 관심을 가진다면 북한은 자신들의 안보우려를 동시에 해소해야만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북한의 핵탄두와 ICBM이 미국의 안보우려사안이라면, 북한은 세계의 경찰국가로서 각종 전략자산을 보유해 언제든 제3국 침공이 가능한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북한과 미국은 6·25전쟁에서 직접 전쟁을 했던 당사자여서 이런 걱정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더 크고 빠른 초기비핵화 행동조치를 요구하는 만큼 북한은 더 확실하고 유의미한 안전보장조치의 조기 약속을 원할 것이 자명하다.

일단 종전선언 카드가 급부상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전날 있었던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발표하면서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할 경우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이 추진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남북미가 종전선언을 만들어 발표하면 내용은 단순히 한국전쟁의 완료를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반도에서 더는 전쟁이 없을 것을 분명히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미국의 침공 가능성에 우려하는 만큼 한반도에서 추가적인 전쟁이 없을 것을 분명히 하고, 남북미 3국이 서로를 공격하지 않을 것을 담아서 북한의 안보우려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미국이 북한과 관계 정상화 과정에 들어가는 것도 핵심적인 비핵화 상응조치로 볼 수 있다.

초기에 연락사무소 등을 설치하고 북한의 초기비핵화 이행조치의 과정을 보면서 대사관 설치로까지 이어간다면 북한에게 확실한 안전담보초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美, 중간선거 유세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대통령  2018.3.10
美, 중간선거 유세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대통령 2018.3.10[AP=연합뉴스]

 

◇단계를 어떻게 나눌까…연말·2020년 2단계 주목

북한의 비핵화는 한꺼번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고 결국 속도는 내되 잘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조미(북미)관계와 조선반도 비핵화를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세 하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각자의 이해에 충만되는 해법을 찾아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며 효율적이고 건설적인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 해결이 진척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폭스뉴스 방송 '폭스 앤 프렌즈'에 출연해 북한 비핵화 방식과 관련, "물리적으로 단계적 (접근법)이 조금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울러 1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접견하고 나서,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추가 회담을 예고했다.

결국, 북미 정상 모두 비핵화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과연 단계를 어떻게 나눌 것이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은 '신속한 단계적 (비핵화)'가 돼야 할 것"이라며 "그러나 나는 한꺼번에 이뤄지는 걸 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단계적으로 하더라도 시간을 질질 끄는 방식이 아닌 속도감 있게 비핵화를 비롯한 북미 간 합의와 이행을 강조한 셈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일단 올해 연말까지를 1단계로 설정하고 2020년을 두 번째 완성단계로 설정하는 방식을 지적하고 있다.

올해는 트럼프 행정부의 중간선거가 예정돼 있어 외교적 성과물이 필요하고 북한도 정권 수립 70주년을 맞는 만큼 북한 주민들에게 변화된 상황을 보여줘야만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 정치적 수요가 있는 셈이다.

2020년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거가 예정돼 있고 북한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종료 시점이다.

이종석 전 장관은 "북한과 미국 모두의 정치적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로드맵을 만들어 추진하면 성공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라며 2단계 로드맵이 제안했다.

jy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6/02 08:2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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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개성연락사무소 조속가동"…北 "6·15행사는 南에서"(종합)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6/01 12:44
  • 수정일
    2018/06/01 12: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남북고위급회담, 판문점 선언 이행 논의
남북고위급회담, 판문점 선언 이행 논의(판문점=연합뉴스)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 두번째)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두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1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남북, 판문점서 고위급회담 개최…北 "후속 실무회담 일정 확정하자" 

(판문점·서울=연합뉴스) 공동취재단 이정진 백나리 기자 = 남북은 1일 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공단에 설치하기로 하고 조속한 가동에 의견을 같이했다.

북한은 2000년 첫 정상회담을 기념한 6·15공동행사는 남측 지역에서 열자고 제안했다.

남북은 1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오전 전체회의에서 6·15공동행사, 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정부 당국자가 전했다.

남측은 회담에서 남북이 신뢰와 상호존중의 정신으로 판문점 선언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이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을 북측에 전하면서 주요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고 이 당국자는 말했다.

남측은 '4·27 판문점 선언'에 개성에 설치하기로 한 공동연락사무소와 관련, "판문점 선언 이행의 첫 사업으로 개성공단 내에 설치하고 조속히 가동하자"고 북측에 제의했다.

북측도 개성공단 내 시설이 상당 기간 사용하지 않아 개보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필요한 사전 준비를 거쳐 최대한 빨리 개소하자고 밝혔다.

6·15 남북공동행사에 대해선 남측이 당국과 민간이 함께 추진해 나가자고 했고, 북측은 "당국, 민간, 정당·사회단체, 의회 등의 참여하에 남측 지역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이 밖에 남측은 산림협력도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뜻이 있다는 점을 전달했고, 동해선·경의선 철도 도로 연결 및 한반도 신경제구상과 관련해선 우선 남북 간 공동 연구 및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장성급 군사회담, 적십자·체육회담, 산림, 철도·도로 실무회담 등 분야별 실무회담의 조속한 개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북측에 표명했다.

북측도 분야별 후속 실무회담의 조속한 개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우리측에 전달하고, 이날 회담에서 장소와 날짜를 확정하자는 입장을 전해왔다.

북측은 이번 회담이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첫 회담인 만큼 양측이 신뢰와 배려를 통해 판문점 선언의 차질없는 이행을 위해 노력해 나가자는 점을 강조했다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회담에는 우리측에서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김정렬 국토교통부 2차관,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김남중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안문현 국무총리실 심의관 등이 대표로 나섰다.

북측에서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을 단장으로 김윤혁 철도성 부상, 원길우 체육성 부상, 박용일 조평통 부위원장, 박명철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 부위원장 등 5명이 대표단으로 나왔다.

정부 당국자는 "양측은 진지하게 상호 의견을 교환했으며 이후 상대측 제안을 검토하기 위해 오전 전체회의를 마쳤다"면서 "이후 회의 일정은 남북 연락관 협의를 통해 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transil@yna.co.kr

nar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6/01 12:24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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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효과 없으면 죽여버릴거야” 폭언에도…난 “죄송합니다 고객님”

등록 :2018-06-01 05:00수정 :2018-06-01 10:23

 

[창간30돌 특별기획 - 노동 orz] ‘샌드위치’ 노동자 콜센터 상담원
② 내 ‘욕받이 값’은 얼마입니까

‘고객과 다투지 말라’ 촘촘 매뉴얼
전화 끊으려면 세번이나 욕먹어야
“죄송하다면 다야?” “귀 먹었어?”
은근한 비하와 인격모독 일상처럼

감정노동·‘닭장’ 노동 대가는 최저시급
밥값 아끼려 도시락에 자판기 커피
월급은 10년 전부터 계속 내리막
못견뎌 떠났다가 다시 ‘전화지옥’으로
?일러스트 이재임
?일러스트 이재임

 

<한겨레>는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orz’를 통해 낮게 웅크린 우리, 노동자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의 부속품이 되어 낮밤을 바꿔가며 일하는 맞교대 노동자의 삶과 일터가 첫 번째 장면이었습니다.

 

 

이번엔 ‘사무직 공장’(White-collar Factory)이라 불리는 노동 현장, 콜센터입니다. 70~80㎝ 간격의 좁은 칸막이 사이에 앉아 종일 전화를 받는 상담원들의 삶이, 밀려드는 부품을 꾸역꾸역 조립하는 공장 노동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기 너머 마주하게 되는 콜센터 상담원들의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요? 서울 서남권의 한 홈쇼핑 콜센터가 두 번째 현장입니다.

 

 

 

3월14일, 콜센터로 출근해 한창 전화를 받고 있었다. ‘따르릉~’ 전화가 연결됐다.

 

“안녕하십니까 ○○쇼핑 신민정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주문하려고.” “네 고객님, 성함과 휴대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십니까?”

 

“거기 컴퓨터에 뜨지 않아?” “네 고객님, 본인 확인을 위해 한번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고객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사람 피곤하게 왜 그래? 거기 이름 전화번호 뜨는 거 다 아는데 피차 귀찮게 왜 불러달라는 거요? 물건 사러 전화한 사람한테 물건만 팔면 되지 이름이랑 전화번호가 왜 필요해요? 대체 언제부터 고객한테 이름이랑 전화번호 확인하기 시작했어요? 몇 년 전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는지 알아와요!”

 

팀장에게 곧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언제부터 인입 고객(전화를 건 고객) 이름과 전화번호를 확인했는지 아세요?” 팀장은 ‘고객이 그런 걸 묻냐’고 의아해하면서도 ‘이 홈쇼핑 콜센터 개국 이래 계속해왔다’고 알려줬다. 고객에게 그대로 전했다.

 

“네 고객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쇼핑에서는 △△△△년 개국 이래 정확한 주문 및 배송을 위해 본인 확인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고객은 잠시 침묵했다. “전에 상담원은 그러지 않았단 말이야. 당신이 잘못 아는 거야!” 전화가 ‘툭’ 끊어졌다.

 

■ 매뉴얼에는 나오지 않는 ‘진상’들 콜센터에 취직한 직후 만났던 교육 담당자는 자신의 상담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건넸다. “처음엔 고객 때문에 상처받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요. 나중이 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게 돼요. 그냥 ‘이 고객은 화풀이할 데가 없는 사람이구나, 불쌍하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고객의 말에 초연해지려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할까. 다행히도 콜센터는 상담원이 자신을 다독이며 모든 것을 감내하도록 방치하진 않았다. 기자가 일했던 홈쇼핑 콜센터는 고객의 갖은 문의에 상담원이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도록 촘촘한 고객 응대 매뉴얼을 갖고 있었다.

 

욕설 고객에 대한 응대도 있었다. 매뉴얼에는 고객이 욕설을 할 때 “욕설을 하시면 상담이 어렵습니다”라며 1차 경고를 하고, 그래도 또 하면 2차 경고, 그래도 또 하면 3차 경고를 한 뒤 전화를 끊을 수 있다고 돼 있었다. ‘전화를 끊으려면 세번이나 욕을 먹어야 하다니…’라고 생각하던 차, 매뉴얼 강의를 하던 강사가 말했다. “근데 만약 상담원이 고객님을 짜증 나게 해서 고객님이 욕을 했다고 가정해 봐요. 거기서 ‘욕설을 해서 상담이 어렵다’고 하면 고객님이 뭐라고 생각할까요? 그러면 안 되겠죠?” 어떤 경우에 상담원이 욕먹을 만한 걸까. 몇몇 수강생은 웃었고, 몇몇 수강생은 웃지 않았다.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탓인지 최근엔 콜센터 고객들 가운데 대놓고 욕설이나 성희롱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은근한 비하나 무시, 인격모독은 일상이었다. 홈쇼핑 상담원은 업무 특성상 고객이 불러주는 주소와 카드번호 등을 입력해야 한다. 이를 한번에 알아듣지 못하면 “아가씨 귀먹었어?” “이런 것도 한번에 못 알아들으면서 어떻게 상담원을 하는 거야?”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런 식이다. “경기도 에레스로…” “고객님, ‘애래수로’ 말씀이십니까?” “아니 이 아가씨 귀가 먹었어? 엘!에!스!로! 엘에스 회사도 몰라? 엘!에!스!”

 

매뉴얼에 나오지 않는 당황스러운 일도 수시로 마주해야 했다. 옷을 주문하는 고객에게 “이 상품은 상표를 제거하시면 교환 및 반품이 어렵습니다”라고 안내했다. “내가 언제 반품한다고 했냐, 왜 사람을 이상하게 몰아가느냐”라고 소리를 지르는 고객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매뉴얼에는 없었다. “▽▽신용카드를 쓰면 할인이 되느냐”고 묻기에 “해당 카드는 죄송하지만 할인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죄송하면 다냐”고 화를 내는 고객에겐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했다. 영양제를 주문하면서 “이 영양제 효과 없으면 죽여버릴 거다”라고 말하는 고객을 응대하는 방법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매뉴얼에는 ‘고객과 싸우지 말라’고 돼 있으니, 그저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 양해를 부탁드린다”며 쩔쩔맸다.

 

일러스트 이재임
일러스트 이재임
■ 아파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고객은 모른다. 전화를 받는 상담원의 연령대가 어떻게 되는지, 누구의 엄마이고 누구의 딸인지. 어떤 고객에게 상담원은 자신의 요구를 빠르게 처리해주는 ‘자판기’일 뿐이었다.

 

고객의 한마디로 마음에 파도가 이는 기자와 달리 최미영(가명. 이하 모두 가명) 언니는 언제나 고요했다. 점심을 먹으며 “어제 드라마 보고 펑펑 울었잖아”라며 눈물을 글썽일 정도인 언니였지만, 일터에서는 맷집이 셌다. 40대 초반인 미영 언니는 이전에 두곳의 홈쇼핑 콜센터에서 13년 정도 일했던 베테랑이다. 아들이 중학교에 막 입학했으니, 언니는 아들이 태어난 직후부터 이 일을 한 셈이다. 언니는 한 홈쇼핑의 재택 상담원으로 10년 남짓 일했다고 한다. 맷집은 세졌지만 그 10년 동안 마음 한구석엔 풀 데 없는 멍울이 생겼다. “맨날 집에 있으니까 옷값 안 들고, 화장품값 들지 않는 건 좋았어. 근데 집에서 벽 보고 전화만 받으니 우울증이 오더라고. 맨날 남편이랑 아들한테 애꿎은 화풀이를 하게 되고….”

 

미영 언니는 일을 그만두는 대신 출퇴근하는 다른 홈쇼핑 콜센터로 옮겼다. 일과 생활을 분리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목이 부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팀장에게 조심스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출근이 어렵다”고 얘기했다. 팀장은 결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면 사무실에서 (목소리 안 써도 되는) 사무라도 보세요.” 언니는 일을 그만뒀다. 아프다는 직원한테 일단 출근부터 하라는 회사에 미련이 없었다. 미영 언니는 지금 그 선택을 후회한다. “거기가 여기보다 월급이 더 많았거든. 거기 관리자한테 자리 생기면 불러달라고 해뒀어. 거기서 불러주면 여기는 그만둘 거야.”

 

자식을 키우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중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다. 대학생 아들을 둔 김진숙 언니도 아들을 키우는 내내 맞벌이를 했다. 50대 중반인 진숙 언니는 콜센터에서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팀장도, 매니저도, 센터장도 언니보다 어렸다. 진숙 언니는 영업왕 출신이다. 보험과 카드 영업을 했다. 언니는 영업에 수완이 있었다. 억대 연봉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진숙 언니는 “어느 순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데에 지쳤다”고 했다. 불확실한 수입도 문제였다. 성과가 좋은 달은 월급을 1000만원까지 받은 적도 있지만 어느 달은 100만원도 벌기 힘들었다. 그래서 진숙 언니는 적더라도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나이가 많은 중년 여성도 기꺼이 받아주는 콜센터 업계로 들어섰다. 정수기회사 콜센터, 은행 콜센터 등을 다녔지만, 오래 다니지 못했다. 정수기회사는 고객 불만이 많았고, 은행은 상담원에게 점점 더 전문 지식을 요구했다. 진숙 언니는 조금이라도 덜 힘든 콜센터를 찾아 옮겨 다녔고 그렇게 이곳에 왔다. 미끄럼틀을 타듯 저임금 일터로 내려온 셈이다. “전이랑 비교하면 월급은 적지만 일은 확실히 편해.” 언니는 만족한 듯 말했다.

 

그랬던 진숙 언니도 한달 만에 그만뒀다. 진숙 언니는 “동료 상담원들이랑 친해져 봐야 한달만 지나면 거의 다 그만둘 테니 연락처 교환은 안 하겠다”며 누구에게도 전화번호를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진숙 언니가 왜 이곳을 그만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러 콜센터에 원서를 넣었지만 나이 때문에 이곳에 유일하게 합격했다는 언니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진숙 언니는 줄곧 맞벌이했다고 했으니, 또 다른 일터로 자리를 옮겼을 것이다. 콜센터인지, 아니면 언니가 잘했던 영업인지는 알 수 없었다.

 

■ 내 욕받이 값은 최저임금 콜센터 일은 힘들고 월급은 너무 짰다. ‘이 돈 벌자고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 싶었다. 월급은 최저임금보다 230원 많았다. 최저시급 기준 주5일 하루 8시간씩 일하면 157만3770원를 받게 되는데, 여기 신입 상담원이 한달 만근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은 157만4000원이었다. 4대 보험과 세금 등을 떼면 143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

 

이 돈으로는 밥 사 먹기가 무서울 수밖에 없다. 콜센터 휴게실에는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각각 두 대씩 있다. 냉장고에는 언니들이 집에서 가져온 반찬들로 꽉꽉 채워져 있고, 전자레인지는 늘 바쁘게 돌았다. 언니들은 냉동실에 얼려놓은 밥을 전자레인지로 돌리고, 냉장고에서 오이지, 무말랭이, 김 등을 꺼내 함께 먹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오거나, 컵라면에 날달걀을 넣고 전자레인지로 데웠다. 콜센터가 있는 건물 1층엔 5000원짜리 순두부찌개, 6000원짜리 순댓국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카페의 아메리카노는 1900원이었다. 5000원짜리 밥을 사 먹고 커피까지 마시면 6900원. 한 시간 동안 설움을 견디며 전화를 받은 대가와 맞먹었다. 그래서 언니들은 콜센터 휴게실에서 밥을 먹고 콜센터에서 마련해준 공짜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콜센터 저임금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통계청의 서비스업 조사와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정책자료를 보면, 콜센터 상담원 상용종사자의 1인 평균 연간 급여액은 2014년 기준 2084만원이다. 2007년 1950만원에서 그다음 해 2151만원까지 올랐다가 이후 다시 지속해서 감소해 2014년 2084만원이 된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최저임금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데도 콜센터 임금 수준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콜센터 종사자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회사도 낮은 급여 수준을 다소 민망해하는 것 같았다. 콜센터에 지원할 때 본 채용공고에는 ‘월평균 190만/일 쉬움’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확한 급여를 알게 된 것은 5일간의 교육이 끝나던 3월2일이었다. 교육장 맨 앞 스크린에 월급표를 띄운 센터장은 숫자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입사 후 6개월까지는 이 금액(약 157만원)’을 받게 되고, 1년이 지나면 ‘이 금액(약 162만원)’을 받게 된다”고 레이저 포인터로 화면을 짚었다. “식대를 따로 주느냐”는 진숙 언니의 질문에 “포함된 금액”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둘러 이어진 ‘성과급’ 파트에선 센터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센터장은 “상담원의 콜 수와 콜 품질 평가에 따라 적게는 5만원, 많게는 3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 조금만 열심히 해도 최소 5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전 150만원대 월급을 받는 상담원에게 30만원의 인센티브는 월급의 20%에 해당했다.

 

■ 1등이 되면 잘살 수 있을까 하지만 센터장은 콜센터에서 3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상담원 200여명 가운데 단 한명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단 한명만이 ‘전화 지옥’의 실적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 3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30만원을 손에 쥐려면 얼마나 전화를 받아야 할까. 회사에서 나눠준 성과표를 보니, 센터 상위권인 상담원의 시간당 콜 수는 14.2에 달했다. 기자의 거의 두배(7.5)였다.

 

다른 콜센터에서 성과급 제도를 경험해본 진숙 언니는 기자에게 “욕심내지 말라”고 했다. “돈 몇 푼 더 받겠다고 욕심부리면 나만 괴로워져. 화장실 안 가고 식사시간 줄여 전화 받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아? 기본급은 정해져 있으니까 딱 그만큼 일해서 그만큼만 가져간다고 생각해야지, 욕심부리면 병나.” 한 보험사 콜센터에서 반년 정도 일했다는 박인선 언니도 “그때 내 입사 동기가 센터에서 딱 두명이 받는 에스(S) 등급을 몇 번 받았거든.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니,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밥 먹는 시간 아껴 전화 받았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전화 스트레스를 하도 받아서 퇴근할 때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대”라고 말해줬다.

 

그러나 조언은 조언일 뿐이었다. ‘이왕 고생하는 거 좀더 고생하고 많이 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 입사 동기 미영 언니가 그랬다. 언니는 콜 수에 민감했다. 늘 자신의 콜 수와 동료의 콜 수를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언니는 “오늘 유정씨가 나보다 한 콜 더 받았던데?”, “오늘 내가 졌어. 언니가 나보다 더 많이 받았어” 같은 농담을 하곤 했다. 미영 언니는 신입치고 나쁘지 않은 시간당 콜 수(10)였지만 상위권이 되기엔 한참 모자랐다.

 

미영 언니뿐 아니라 대부분 언니들은 전화를 최대한 많이 받으려고 애썼다. 전화를 끊고 처리해야 하는 후처리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아끼고, 휴게실에서 밥을 허겁지겁 입에 넣은 뒤 다시 워크스테이션으로 돌아가 전화를 받았다. 통화가 끝나면 곧바로 다른 전화가 들어오고, 끊으면 숨돌릴 틈 없이 다시 벨이 울리는 ‘전화 지옥’에 자리 잡기를 자처했다. 그렇게 버텨서 몇만원이라도 더 받으면 아이들 반찬이, 교복 브랜드가, 학원이 바뀔 수도 있다. 그렇게 버티다가 몸이나 마음이 아파서 더 견딜 수 없으면 떠났다. 미영 언니가 우울증으로 10년 일했던 홈쇼핑 콜센터를 그만두고 다른 콜센터를 찾은 것처럼, 진숙 언니가 은행 콜센터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이곳에 왔다가 다시 떠난 것처럼 말이다.

 

언니들은 그렇게 그만두고 나서도 “이 나이에 받아주는 곳이 없다”, “당장 취직해 돈 벌 만한 곳이 여기밖에 없다”면서 다른 콜센터에 입사지원서를 넣었다. 언니들이 떠난 자리는 또 다른 언니들이 채웠다. 기자에게 콜센터는 퇴근할 때까지 전화가 끊이지 않는 ‘전화 지옥’이었지만, 중년의 나이에 일자리를 찾는 언니들에게는 기꺼이 손을 내미는 유일한 ‘구원의 손길’이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연재[한겨레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 orz
  • 1부 노동OTL 10년, 다시 찾은 제조업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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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농부들의 주경야독

조현 2018. 05. 31
조회수 747 추천수 0
 

 

-공부 융합 씨앗 뿌려, ‘신세대 농부’  틔운다

충남 홍성군 오미마을 젊은협업농장

 

1농장-.JPG» 함께하면 농사일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같은 또래들끼리 하면 더욱 그런다는 젊은협동조합 청년들. 정민철 농장 대표(윗줄 오른쪽에서 두번째)와 농촌경제연구원 김정섭 연구위원(윗줄 오른쪽에서 세번째)와 농장 식구들이 체험활동을 온 학생들과 함께 했다.

 

청년 10여명과 견학생들 어울려

4천평 빌려 쌈채소 비닐하우스 8

 

아침 6  시작해 오후 4 마치고 

강의실에 모여 다양한 강좌 

유기농·마을만들기·철학·여행 

 

농업전문대 선생이던 정민철 대표

농사는 현장이라는 생각으로 설립

 

수십명 한달에서 1 넘게 머물며 

공감하고상처 치유   모색

농사일과 마을살이 익히면 독립

 

인근 갓골은 활기찬 문화지대

도서관도 있고 협동조합 30여개 

 

2-.jpg» 매일 오후4시면 손을 털고 강좌를 듣는 청년들.

 

충남 홍성군 장곡면 도산리 2 오미마을엔 여느 농촌과는 달리 온통 청년들뿐이다. 8동의 비닐하우스에서는 젊은협업농장 청년들 10명과 견학  학생들도 상추만큼이나 푸릇푸릇하다비닐하우스 속에서 어울려 일하는 청년들의 얼굴엔 찌든 기색이 없다친구들과  얘기  얘기 주고받고 농담하며 웃다 보면 언제 시간이 가는  모른다고 한다 어른들이  공동 노동조직인 두레를 만들고품앗이를 해서 ‘함께’ 일을 했는지  만하다.

 

 이들은 마을에서 각자 기거하면서 아침 6시면 이곳에  일을 시작한다아침은 건너뛰거나 간식으로 때우고 일하다  12시에 공동 식사를 한다다시 1시에 일을 재개하고 오후 4시가 되면 일을 마친다오후 4시면 아직 해가 중천에  있을 때다마을 어르신들은 젊디나 젊은 것들이 ‘바짝 조여서’ 수확을  하지 않고 일찍 손을 턴다고 못마땅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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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벌어 어떻게 사나” 눈치도

 그도 그럴 것이 젊은협업농장 4천평은 모두  마을 임응철 이장이 빌려준 것이다열명이 농사를 지어 쌈채소를 팔아 얻은 소득이 12천만원 정도다거기다 농촌 체험 프로그램  교육을 맡아 올린 수입 등을  합쳐도  소득은 14천만~15천만원에 불과하다점심값에 드는  2천만원에 임대료·운영비를 빼고 나면 1 미만의 인턴들은  50만원, 1년이 넘은 고참들은  100만원을 가져간다그러니 마을 어르신들은 “그렇게 벌어 어떻게   있겠느냐 “돈도 벌고 땅도 사려면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해야   아니냐 채근한다

 

 그러나 이곳 청년들은 오후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손을 씻고 강의실에 모인다강좌는 유기농업이나 마을 만들기 강좌뿐 아니라 글쓰기철학예술여행 강좌까지 다양하다홍성 일대는 귀촌자들이 많아 특별히 외부에서  들여 모시지 않아도  만큼 강사 인력이 풍부하다.

 

 2012  농장을 설립한 정민철 대표는 홍성군 홍동면에 있는 풀무학교의 전공부 교사였다전공부는 전문적인 농부를 길러내는 2년제 전문대학이다그런데 전공부 졸업생들이 실제 농사를 지으러 마을에 들어가면  적응하지 못했다그래서 농사는 학교가 아니라 현장 마을 안에 들어가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설립한  젊은협업농장이다따라서 농장이긴 하지만 교육을 목표로 한다어느 정도 농사일과 마을살이를 익히면 이곳을 떠나 독립해 마을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교육농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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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벌이 외에 다양한 욕구 충족돼야

  대표는 ‘젊은이들이 농촌에 온다고 농사일만 하라는 법은 없다 생각한다교사 출신인 자신이 교육과 농업을 결합했듯이 ‘아이티’(IT) 업계에 종사했으면 아이티와 농업을 연계하고염색을  사람은 염색 작물을 키우고장사에 소질이 있으면 농업과 경영을 결합한 융합 지점을 찾아 일을   있다는 것이다이곳 청년들이 일만 하지 않고 주경야독을 하는 것은 ‘새로운 농부 길을 찾아가기 위함이다 농장에서  푼도 받아 가지 않으면서 이런 독특한 실험을 하는  대표야말로 새로운 인간형이 아닐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정섭(48) 연구위원은 오랫동안 홍성 일대 농업을 연구해오다 안식월을 맞아 3개월째  농장에 머물고 있다그는 “돈만   있으면 젊은이들이 농촌에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청년들에겐 돈벌이 외에도 문화와 교육과 의료  삶의 다양한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곳처럼 청년들이 농사와 마을을 배우며 농촌 문화를 창출해갈 새로운 농민을 길러내는 일이 필요하다 설명했다.

 

 농장에서 멀지 않은 풀무농고와 전공부가 있는 홍동면 갓골은 농촌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문화지대다풀무농고 설립자인 이찬갑 선생의 호를  밝맑도서관이 있고마을활력소도 있다또한 흙건축얼렁뚱땅조합을 비롯해 만홧가게술집  협동조합만 30여개가 활동하고 있다 단위임에도 의료생협에 의사까지 있다풀무농고 출신으로  농장 시작  합류한 정영환(36) 스태프는 집에서 따로 농사를 짓는 부인과 5, 8 아이와 부모님과 귀농해 함께 살고 있다그는 “농촌 현실이 어렵고농장에서 청년들이 모두 나가 2주 동안 혼자 일한 적도 있을 만큼 녹록지 않지만협업농장도 농촌도 떠날 생각이 없다 말했다또 그는 “시골이지만 교육과 문화를 누리며 아이를 키우기 좋은 이곳이 마음에 든다 했다.

 

주형로정영환-.JPG» 젊은협동농장 정영환 스태프가 홍성군 홍농 문당리 이장이나 정농회 회장인 주형로 선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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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골에서 지역활동의 촉매 구실을 하는 밝맑도서관(왼쪽)과 마을활력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일만 하면 짐승

 지금까지  농장에서 한달 이상 머문 청년들은 모두 35명이었다. 1 이상 머문 이도 16명이었다이들은 이곳에서 앞으로 살아갈 길을 고민하면서 주경야독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다이곳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처받고 찌든 청년들이 땀을 흘리기도 하지만 또래들과 대화하고 공감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쉼터이기도 하다.

 

 이아무개(35)씨는 영업실적 때문에 스트레스에 힘들어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지난해 12 이곳에 왔다그는 “사람에게 치여 점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는데 이곳에서 같이 일하니 힘도  들고 재미가 있다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박아무개(25)씨는 대학 졸업 뒤 6개월간 방황하다가 취업을 포기하고 같은  이곳에 왔다그는 “학교만 다니며 머리만 쓰고 살던 것과 180 다른 삶이지만  벌더라도  치이는 시골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말했다.

 

 유아무개(15)군은 홈스쿨로 중학까지 마쳤는데사람이 두려워 고교 진학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남들과 함께 지내보면 어떠냐 주위의 권유로 이곳에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함께 어울리다 보니 학교도   있을  같고친구가 필요한 것도 알았다 “학교를 마친 뒤엔 농촌에서 살아보고 싶다 말했다.

 

 함석헌의 스승 유영모는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되고일만 하면 짐승이 된다 ‘일학병진 권했다일하고 공부하면서 청년들이 치유되고 깨어나고 있다이렇게 전에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농부들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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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은 왜 더 많이 아픈가?

[6.13선거, '건강불평등'을 말하다] 건강불평등, 무엇이 문제일까?
2018.06.01 09:34:34
 

 

 

한국건강형평성학회는 613 지방선거에서 건강불평등이 주요한 정책이슈로 다루어지기를 희망하며 건강불평등 정책의제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시민들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이해를 돕고, 문제 해결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네 종류의 카드뉴스를 제작하였습니다. 각각의 카드뉴스 주제는 "건강불평등, 무엇이 문제일까", "대한민국 건강불평등 현주소", "건강불평등 어떻게 해결할까", "지방자치시대의 건강불평등, 지방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나?"입니다.


6월 13일 지방선거일 전까지 한국건강형평성학회는 건강세상네트워크와 함께 각 주제별 카드뉴스 내용에 대한 간략한 기사를 게재합니다. 기사는 한국건강형평성학회에서 작성하며, 카드뉴스 주제별로 네 차례에 걸쳐 게재될 예정입니다. 

 

소득수준에 따른 기대수명의 차이, 불평등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

 

한국건강형평성학회가 3월 2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국민을 소득 수준별로 5개 집단으로 나누어 각 집단별로 기대수명을 구했을 때, 가장 소득이 높은 집단과 가장 소득이 낮은 집단 간의 기대수명 차이는 6.6년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차이가 6.6년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제시된 것이 신선하기는 하지만 충격적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을 겁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좋은 음식을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담배 안피고, 술 적게 마시고, 꼬박꼬박 건강검진 받고, 조금만 아파도 재깍재깍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데 가난한 사람들보다 오래 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냐고, 한국건강형평성학회에는 이런 당연한 것도 모르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거냐고.  

 

실제로 이 발표 자료에 대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 중에 저런 반응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되묻고 싶습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몸에 좋은 음식을 가려 먹지 않고, 규칙적인 운동을 안하고, 담배를 끊지 않고, 술을 많이 마시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지 않고, 아파도 제때 병원에 가지 않는 걸까요, 혹시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건강수준이 단지 생활 습관과 의료 서비스 이용만으로 결정되는 것일까요?        

 

건강불평등은 피할 수 있고, 불필요하며, 불공정한 차이 

 

건강불평등은 건강수준 차이가 회피가능한 불필요한 차이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에서 시작합니다. 사소한 질병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강 결과들에서 인구집단들 간에 건강수준 차이가 발생합니다. 개중에는 피할 수 없는 것들도 있지만, 어떤 차이들은 사회적 개입을 통해 회피가 가능합니다. 

 

열대 지방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보다 말라리아에 더 많이 걸리는 것을 불평등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열대지방에 말라리아 모기가 더 많으니까요. 그러나 간단한 모기장을 설치할 돈이 없어서 예방을 못한다면, 말라리아에 걸렸는데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다면 불공평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건강불평등은 개인 간의 건강수준이 단순히 다르다는 뜻이 아니라, 이 차이는 피할 수 있고, 불필요하며, 불공정한 차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건강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인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합니다. 유전적 요인과 생활습관뿐 아니라 소득, 주거환경, 근로환경, 사회적 연결망 같은 사회적 요인도 중요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개인의 생활 습관과 건강의 관계에 집중하느라 정부가 상수도 관리를 통해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대기 오염을 줄이기 위해 각종 규제를 시행하고,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안전한 의약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산업을 통제하고, 감염병 유행을 막기 위해 질병 감시 체계를 가동하고,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간과하기도 합니다.  

 

건강불평등은 생물학적 요인부터 사회구조적 요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요인들이 상호작용하여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연히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자원과 건강에 해를 미치는 요인들이 사회적으로 불평등하게 분포하기 때문에 건강불평등이 생겨납니다. 개인이 처한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위험에 대한 노출에서 차이가 발생하고, 노출로 인한 취약성에서도 차이가 발생합니다. 개인의 선택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위치한 사회적 환경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이 상대적으로 더 나쁜 것을 우연이나 개인의 선택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흡연을 시작하는 계기, 폭음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사회적 환경, 질병에 걸렸을 때 본인이 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행동 유형 등을 고려할 때, 즉 건강과 관련된 행동이 사회적인 배경을 갖는다는 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설명이 가능합니다.  

  

건강은 권리입니다 

 

건강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2조는 “모든 사람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하고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건강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야마티야 센의 표현대로 “건강은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이자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잠재력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건강불평등의 발생은 인권과 인간 잠재력의 근원으로서 건강이 갖는 가치를 훼손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건강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지 않고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우리의 기본권을 지키고 정의와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불평등한 사회가 불평등한 건강을 낳습니다. 건강불평등은 사회불평등을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mendrami@pressian.com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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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김정은 과감한 결단 필요... 기회 날리면 비극"

김영철과 고위급 회담 마무리... "지난 72시간 동안 상당한 진전"

18.06.01 07:14l최종 업데이트 18.06.01 07:27l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3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두 번째 만나 악수하고 있다.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3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두 번째 만나 악수하고 있다.
ⓒ 폼페이오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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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의 고위급 회담을 통해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진전을 이뤘다고 31일(현지시각)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뉴욕 맨해튼 팰리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부위원장과의 회담 결과에 대해 "지난 72시간 동안 실질적인 진전을 이뤘다"라며 판문점과 싱가포르에서 진행되는 북한과의 모든 실무 협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두 차례 회담했고 (이번에) 김영철 부위원장과도 세 차례 회담했다"라며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고 김 위원장과 김 부위원장이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전략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미정상회담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한다"라며 "그러나 양국이 합의에 도달하려면 김 위원장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며 결정적인 이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은 비극(tragic)과 다름없다"라고 강조했다.

판문점과 싱가포르에서의 실무 협상을 넘어 최고위급 회담까지 가졌지만 북미정상회담이 실제로 성사되려면 김 위원장이 직접 비핵화와 관련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나는 김 위원장이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한다"라며 "앞으로 수주 또는 수개월간 결단이 이뤄질 수 있는가를 시험해보는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만약 비핵화를 선택할 경우 북한에 밝은 길이 놓여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라며 "북한과 미국은 상호협력 및 호혜관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6월 12일 개최되는 것으로 확정됐냐는 질문에는 "아직 모르겠다"라고 즉답을 피했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받아냈냐는 질문에도 "상당히 어려운 이슈이고 쉽지 않다"라며 "아직 할 일이 많다"라고 답했다.

"북한, 비핵화해야 체제 보장받을 수 있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3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회담하고 있다.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3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회담하고 있다.
ⓒ 미국무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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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우리의 목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북한이 체제를 보장받으려면 핵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핵 프로그램을 폐기한다면 북한은 안전을 강력히 보장받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김 부위원장과 (비핵화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으며 이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라며 "전 세계가 요구하는 비핵화를 통해서만 북한이 바라는 체제 보장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주한미군 축소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건 한미 양국 정상들이 결정할 사안으로 내가 언급할 수 없다"며 "감축에 관한 일은 국방부 이슈다. 내가 오늘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피해갔다. 그러면서 한미일 3국의 공조 문제에 대해서는 "빛샐 틈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오른팔'인 폼페이오 장관과 김 부위원장은 이날 뉴욕 맨해튼 38번가 코린티안 콘도미니엄에 있는 주유엔 미국 차석대사 관저에서 전날 만찬에 이어 이날 정식 회담을 가졌다.

미국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전날 폼페이오 장관과 김 부위원장 간 만찬이 진행되는 도중 기자들에게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라며 "북한이 바라는 체제 보장을 기꺼이 제공하고 경제적 번영도 누리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폼페이오 장관은 김 부위원장이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 워싱턴D.C.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공개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에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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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싱가포르서 철통보안 속 협의…회담장선정 임박한듯(종합)

'회담장 또는 정상숙소 후보지' 카펠라·샹그릴라 호텔 둘러본 정황
北 김창선 부장, 오전 숙소 떠나 모처로 이동…헤이긴과 협의 이어갈듯

 

북한 차량 안내하는 싱가포르 경찰
북한 차량 안내하는 싱가포르 경찰(싱가포르=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30일 밤 조 헤이긴 백악관 부 비서실장 등 북미 실무회담 미국 대표단이 머물고 있는 싱가포르 센토사 숙소에서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 등의 차량이 나와 로터리를 통과하고 있다. 북한 차량은 경찰의 통제로 300여미터 떨어진 로터리까지 역주행했다.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과 조 헤이긴 비서실장은 전날 싱가포르 모처에서 만나 북미 정상회담의 일정 등 실무적인 부분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8.5.30
xyz@yna.co.kr

 

(싱가포르=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31일 싱가포르에서 사흘째 북미정상회담 준비작업을 진행중인 양측 실무 대표단이 철저한 보안 속에 회담 장소와 정상 숙소 등 회담의 실무적 '선택지'들을 좁혀가는 모습이다.

북측 실무팀 수석대표인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은 이날 오전 10시 10분(현지시간)께 숙소인 풀러턴 호텔을 떠나 모처로 이동했다. 취재진이 그가 평소 이동하는 주차장 연결 통로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김 부장의 벤츠 차량은 다른 경로를 이용해 호텔을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도 김 부장은 조 헤이긴 미 백악관 부(副) 비서실장과 모처에서 만나 협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전날 오후 싱가포르 남부 센토사섬의 미측 실무팀 숙소인 카펠라호텔에서 기자들의 접근을 통제한 채 4∼5시간 협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목되는 부분은 양측이 카펠라호텔에서 단순히 의전 등에 대한 협의만 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카펠라 호텔 측은 오전까지만 해도 호텔 입구에서 차량을 통제했지만, 북미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엔 진입로에서부터 차량을 통제함에 따라 각국 취재진은 김창선 부장의 벤츠 차량이 나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4시간 이상 김창선 부장이 호텔에 체류하면서 양측이 회담의 의전, 경호 등 실무를 논의하는 동시에 회담장 또는 정상 숙소로서 카펠라 호텔의 적합성을 점검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 NHK 보도에 의하면 호텔 부지 안에서 김 부장이 골프카트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호텔 안팎을 점검하려는 행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세기의 회담이 열릴 장소 후보의 하나로 카펠라호텔이 새롭게 거론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더불어 미국 실무팀이 같은 날 오후 샹그릴라호텔을 방문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싱가포르 현지 신문인 스트레이츠타임스가 이날 전했다.

싱가포르 유력신문인 스트레이츠타임스가 회담장소로 샹그릴라호텔, 미국과 북한 정상 숙소로 현재 실무팀이 체류 중인 카펠라호텔과 풀러턴호텔이 각각 유력하다고 보도하면서 북미 양측의 회담장 및 숙소 선정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8일 싱가포르에 도착한 북미 실무대표팀은 자국 정상의 경호 문제 등이 걸린 협의의 민감성을 감안한 듯 최대한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는 로우키(low key·절제된 대응 기조)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김 부장은 30일 숙소인 풀러턴 호텔을 오갈 때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며 기자들과의 접촉을 피했고, 헤이긴 부 비서실장도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김 부장이 숙소를 오갈 때는 그의 모습을 가까이서 찍으려는 취재진과 거리를 유지하려는 호텔 보안요원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30일 북한 실무팀 숙소인 풀러턴 호텔 로비에는 한때 각종 진압 장비를 갖춘 경찰관이 머물기도 했다.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싱가포르=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28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 모습.
이 호텔은 북미 정상회담 혹은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로 거론되고 있다. 2018.5.28
xyz@yna.co.kr

 

jhc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5/31 11:34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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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여종업원 송환 등 반드시 고위급회담 의제로 해야"

시민사회단체, '분단으로 인한 인도주의 문제 해결이 판문점선언 정신'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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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30  17: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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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향장기수, 김련희 평양시민, 북 해외식당 종업원 송환 촉구 기자회견이 2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앞에서 진행됐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근혜 정권에서 자행된 반인권·반인도주의 범죄행위에 대해 문재인정부가 왜 이렇게 시원찮은 태도를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오는 1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고위급회담을 앞둔 3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앞. 

   
▲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송환'이라는 말에는 시신으로라도 반드시 보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면서 이번 남북고위급회담 의제로 분단으로 인한 인도주의 문제를 다룰 것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비전향장기수, 김련희 평양시민, 북 해외식당 종업원의 송환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분단으로 인한 인도주의 문제' 해결이야말로 판문점선언의 정신이라며, 이 문제들을 고위급회담 의제로 채택해 줄 것을 촉구했다.

특히 지난 2016년 총선을 닷새 앞두고 벌어진 '북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사건은 최근 JTBC 보도를 통해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유인, 납치한 사건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만큼 더 이상 발뺌하는 것은 점잖지 못하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7년전 브로커에 속아 강제로 입국한 김련희씨의 송환 문제와 함께 온 세상이 다 아는 여종업원 이야기를 더 이상 할 것도 없으며, 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내부적으로 진행하면 될 일"이라면서, "통일부장관이 수석대표로 참석하는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반드시 '분단으로 인한 인도주의 문제'를 의제로 하여 빠른 시일안에 이들을 송환할 것을 촉구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사회를 맡아 기자회견을 진행한 원진욱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은 이날 "JTBC 방송 이후 민변TF 변호사들과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배인 허강일과 3명의 여종업원들을 자체 면담조사한 바 있으며,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로 폭로했다. 

"함세웅 신부도 이들을 직접 면담한 후 청와대에 이 사실을 알리고 문재인 정부가 이 문제를 즉시 해결할 것을 요구했으나 지금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관계 개선에 방해가 된다, 문재인정부 지지율을 떨어뜨린다'는 등의 이유로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미루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렸다.

원 처장은 지난 17일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국회 현안보고에서 "(북 종업원들은)자유의사로 와서 한국 국민이 된 분이라는게 정부 입장이다. 북송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을 안하고 있다"고 한 발언을 거론하고는 "조명균 장관은 손을 가슴에 얹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라. 그 입으로 판문점선언을 말하고 인도주의 문제해결을 언급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종업원들은 지금 목숨을 걸고 언론과 변호인, 종교인 등을 만나고 있다"면서 "지난 2년간 고립무원의 지경에서 귀순공작을 당하다보니 스스로 북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돌아가더라도 총살당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왼쪽부터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정태흥 민중당 공동대표, 김혜순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은 "문재인대통령이 민족을 사랑하고 인권을 존중한다면,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장기수 2차 송환문제, 김련희 씨 송환문제, 북해외식당 종업원 12명과 지배인을 무조건 송환해야 한다. 그래야 4.27판문점선언이 이행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태흥 민중당 공동대표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에서는 미국인 억류자 3명을 보낸 바 있다. 북에서도 취하는 인도주의 조치를 왜 우리는 하지 못하나"라고 하면서, "이번 남북고위급회담을 계기로 하루빨리 비전향장기수, 김련희 씨, 12명 종업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힘을 써 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별도로 송환을 기다리는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거론한 권 명예회장은 "우리가 겪어야 했던 아픔들 속에는 누구보다도 참혹한 세월을 보냈던 비전향 장기수들을 빼놓을 수 없다. 분단과 냉전체제가 이들에게 강요한 민족적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0년 6.15공동선언에서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을 명시했으나 당시 다 가지 못하고 33명이 2차 송환을 희망했고 현재 19명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80대 중반에서 90대를 훌쩍 넘긴 이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신념의 고향으로, 가족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송환촉구서한과 함께 이들의 명단을 통일부에 전달했다.

권 명예회장은 지난 2005년 정순택 비전향장기수 시신을 송환하면서 정부가 처음으로 '시신송환'이라는 용어를 썼다고 상기시면서 "송환이라는 말에는 반드시 보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이들에 대한 송환은 "분단으로 인한 인도주의 문제이기도 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결정책과 반인륜·반인륜 범죄이기도 한 이 문제들을 언제까지나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문재인정부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문재인정부가 이 문제를 털고 가야 그만큼 홀가분 할 것이고 그래야 남북사이의 신뢰를 회복하고 민족적 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 권오헌 명예회장과 노수희 부의장, 김혜순 회장이 통일부에 송환촉구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수정-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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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몸을 태운 스님의 충고, MB는 새겨들었어야 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5/31 12:05
  • 수정일
    2018/05/31 12:0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4대강사업 중단 소신공양 문수스님 8주기를 맞으며

18.05.31 11:31l최종 업데이트 18.05.31 11:43l

 

 

5월 31일은 4대강사업 중단을 외치며 소신공양하신 문수 스님 8주기가 되는 날이다. 8년 전 오늘 스님은 낙동강 지류인 위천의 둑방에서 결가부좌를 한 채 당신의 몸을 불살랐다.

검게 타버린 스님 옆에는 유서가 놓였다.

"이명박 정권은 4대강사업을 즉각 중지·폐기하라, 이명박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문수스님이 소신공양하신 낙동강의 한 지류인 위천 둑방. 당시 현장은 이렇게 검게 그을려 있었다.
▲  문수스님이 소신공양하신 낙동강의 한 지류인 위천 둑방. 당시 현장은 이렇게 검게 그을려 있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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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4대강사업이 시작되어 본격적인 '삽질'이 진행될 때다. 생명의 강에 수백 수천 대의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같은 중장비들이 들어가서 강을 도륙하던 시기다. 곳곳에서 생명의 신음이 난무했다. 죽음의 탄식과 비통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이 생명들의 신음과 비통한 울음을 누구보다 아파하며, 이들의 절규를 결코 외면할 수 없었던 스님은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몸을 불사른 것이다. 부처님 전에 자신을 바침으로써 전대미문의 이 미친 '삽질'이 중단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삽질을 강행했고 그 결과 4대강은 지금 죽음의 수로가 되어버렸다. 매년 맹독성 조류가 창궐하고, 물고기가 떼죽음한다. 강은 썩은 펄로 뒤덮이고 산소조차 고갈되어 그 어떠한 생명도 살 수 없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뭇 생명이 몰살당했던 것이다.

무수한 생명에 대한 살생행위가 국가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스님은 4대강사업의 본질을 간파했다. 강에는 무수한 생명들이 살아간다. 물고기를 비롯한 수생생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물을 마시고 살아야 하는 야생동물들의 특성상 야생동물 또한 강을 찾을 수밖에 없다. 강과 습지가 뭇 생명의 보고인 이유다.
 

 4대강사업으로 온몸에 피를 토하고 죽어가고 있는 낙동강의 잉어. 4대강사업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  4대강사업으로 온몸에 피를 토하고 죽어가고 있는 낙동강의 잉어. 4대강사업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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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강을 도륙했으니 그 원성과 원망이 얼마일 것인가. 스님은 이들의 신음과 탄식을 듣고만 있을 수 없었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자신을 바침으로써 이 미친 살생행위를 중단시키려 한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몸을 불태운다는 것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행위다. 그것은 절박함과 간절함 그리고 위대한 정신성의 총화다. 자신의 몸을 태워가면서까지 이 사업의 부당함을 알렸건만 이명박 정권은 콧방귀도 끼지 않고 사업을 강행했다.      

그 결과 강은 죽었고, 이 미친 사업을 벌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금 영어의 몸이 되어 있다. 이명박씨는 스님의 사자후를 새겨들어야만 했다. 스님이 남기신 유서에는 이명박 정권의 본질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명박 치하의 대한민국은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아닌 부자와 재벌을 위한 사회였다. 그 진실들을 우리는 지금 속속 목격하고 있다.  

강의 부활을 막는 국토부는 하천관리에서 손을 떼야 한다

스님이 소신공양하신 지 8년 그러나 스님이 몸을 불태운 낙동강은 아직도 깊은 죽음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대한 보로 막힌 낙동강은 죽어가고 있다. 강의 죽음, 이것을 막고자 스님은 당신의 몸을 불살랐다.
 

큰사진보기 영결식 날 스님의 다비장 앞에 내걸린 스님의 영정. 영남자연생태보존회 정제영 총무이사가 스님 다비장 앞에 추모의 절을 올리고 있다.
▲  영결식 날 스님의 다비장 앞에 내걸린 스님의 영정. 영남자연생태보존회 정제영 총무이사가 스님 다비장 앞에 추모의 절을 올리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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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강을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공존의 장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보를 철거하고 강을 강답게 만들어야 한다. 강과 그 안의 생명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어야, 건강한 강물도 얻을 수 있다. 물은 우리 생명의 근간이다. 건강한 강물을 얻기 위해서라도 강을 원래 모습대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강의 부활은 거대한 보로 막힌 강에게 자유를 허락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강의 수문을 열어 강을 흐르게 해야 강이 되살아날 수 있다. 수문이 열린 금강에서 우리는 강의 부활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러나 강의 부활은 아직도 요원하다. 여전히 강의 부활을 막는 세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4대강을 죽음의 공간으로 만든 일등 조직은 국토교통부다. 국토부는 이명박씨의 철저한 도구가 되어 강을 도륙했다. 국토부가 강의 죽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국토부는 국민 앞에 지난 과오를 철저히 사죄하고 다시는 4대강사업과 같은 생명 살상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도 시원찮을 국토부는 그러나 아직도 이 나라 하천을 도륙하고 있다. 지방판 4대강사업인 지방하천 정비사업, 생태하천조성사업 등을 통해 이 나라 하천을 여전히 도륙하고 있다.  
 

큰사진보기 국토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지자체에 의해서 강행되고 있는 지방하천정비사업의 현주소. 강의 생태계를 초토화키시고 인공의 수로로 만들고 있다.
▲  국토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지자체에 의해서 강행되고 있는 지방하천정비사업의 현주소. 강의 생태계를 초토화키시고 인공의 수로로 만들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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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생명의 공간이 아니라 인공의 수로로 만드는 제2의 4대강사업이 도처에서 자행되고 있다. 강에 대한 철학도 비전도 없는 국토부에 의해서 전국의 하천이 지금 죽음의 수로로 전락해가고 있다. 

국토부가 이 나라 하천관리에서 손을 떼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된 국토부는 여전히 이 나라 하천관리를 움켜쥐고 있다. 국토부는 문재인 정부의 물관리일원화에 반대하며 하천관리를 여전히 움켜쥔 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이번 정부조직법 개편에서 하천관리권을 국토부가 그대로 움켜쥐게 된 배경이다.  

국토부는 언제까지 이 나라 하천을 망치려 드는가. 국토부는 이 나라 하천관리에서 즉각 손을 떼야 한다. 오직 조직 보위에만 매몰된 국토부에 이 나라의 근간인 하천관리를 맡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문수 스님의 숭고한 뜻 받들어 농민들도 더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농민들 또한 더 몽니를 부려서는 안 된다. 4대강사업 이전에도 4대강 인근의 농민들은 강에 기대어 농사를 잘 지어왔다. 강이 있었기에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강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지금 죽음의 수로로 변한 4대강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4대강 재자연화에 반기를 들고 있다. 4대강사업 이후 얻게 된, 넘치는 물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물은 독성 녹조로 범벅되고 산소조차 고갈된 죽은 물이다. 이런 강물로 농사지은 농작물 또한 결코 건강할 리 없다.

독성 조류가 범벅된 강물로 농사지은 농작물에도 조류 독소가 검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시틴'이라는 이 조류 독소는 청산가리의 100배에 해당하는 맹독을 품고 있다. 그 농작물을 우리 국민이 먹고살고 있다. 국민의 몸에 독성물질을 주입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군위 지보사 앞 문수스님 사리함 앞에 추모객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  군위 지보사 앞 문수스님 사리함 앞에 추모객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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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에 눈먼 농민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4대강 전에도 농민들은 얼마든지 농사를 지어왔다. 강이 옆에 있기에 다른 농민들보다 수월하게 농사지어 강의 혜택을 누구보다 누린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지금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탐욕에서 헤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강은 인공의 수로가 아닌 공존의 공간이다

강은 물만 가두어놓은 인공수로가 아니다. 그곳에서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가는 공존의 공간이다. 이들이 건강해야 건강한 강물도 얻을 수 있다. 이 대자연의 이치를 설파하고자 문수 스님은 8년 전 낙동강의 한 둑방에서 몸을 불사른 것이다.

스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야 한다. 더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강이 살아야 인간도 살 수 있다. 낙동강의 한 둑방에서 당신의 몸에 스스로 기름을 들이붓고 불을 댕길 수밖에 없었던 스님의 그 간절하고도 절박한 '마음'을 알아야 한다.

스님이 소신공양하신 지 8주기인 오늘, 스님이 온몸을 불사르며 전하고자 했던 그 간절한 염원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스님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뭇 생명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4대강 재자연화는 필연이다. 이를 막는 세력들은 스님의 숭고한 뜻을 막는 이들에 불과하다.

국토부는 하루빨리 하천관리에서 손을 떼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탐욕에 매몰된 농민들은 더 몽니를 부려서는 안 된다. 그래야 강이 살고 우리 인간이 산다. 스님의 사자후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2010년 문수스님 소신공양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간 군위 위천 둑방은 여전히 온기가 남아있었습니다. 그 온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몸을 불살라 세상을 품어주는 듯한 그 따뜻한 온기. 스님의 뜻이 길이 전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태그:#문수스님#4대강 재자연화#국토부#4대강사업#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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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도, 사장님도, 교육청도 없었다

[구의역, 그후 2년 ②] 특성화고 졸업생 최민정 씨
2018.05.31 08:13:57
 

 

 

 

2016년 5월 28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 씨(20)가 사망했다. 진입하는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이는 참사였다. 스무 살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가방에는 컵라면과 젓가락이 유품으로 발견됐다. 
 
당시 2인1조 작업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게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혔다. 효율성이 스무 살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비정규직이었던 김 씨는 특성화고 출신 노동자였다. 그가 일하던 회사는 현장실습으로 취업한 곳이었다.  
 
그의 죽음 이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프레시안>에서는 김 씨의 죽음 이면에 드러난 여러 키워드 중 '특성화고'를 집중해보고자 한다. 구의역 2주기에 앞서 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소속 노동자 세 명을 만났다. 그들은 김 씨와 마찬가지로 특성화고를 막 졸업한 스무 살이다. 그들을 통해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노동조건과 현황 살펴본다. 
 
 

ⓒ연합뉴스

 
캐릭터 디자인 배우고 싶어 간 특성화고, 하지만... 
 
중학교 3학년2학기 때였다. 최민정(가명 20) 씨가 다니던 중학교에 특성화고 교사들이 연달아 방문했다. 신입생 유치를 위해서였다. 입시설명회나 다름없었다. 당시 최 씨는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스스로 공부 머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 최 씨에게 특성화 교사들의 '감언이설'은 솔깃하기 충분했다.  
 
집안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졸업하면 곧바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다는 그들의 말이 달콤하게 들린 이유다. 어릴 때부터 만화 캐릭터를 그리는 게 취미였다. 마침 소개학교 중에는 캐릭터 디자인이나 웹 디자인을 배울 수 있다는 학교가 있었다. 정확히는 학교를 방문한 특성화고 교사가 자신의 학교를 그렇게 설명했다. 최 씨는 망설임 없이 그 학교를 진학했다. 
 
하지만 정작 입학한 뒤에는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캐릭터 디자인이나 웹 디자인은 고사하고 포토샵 사용법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진도를 빼기 위한 수업, 때우기 위주 수업이 전부였어요. 전공 수업은 대부분 실무로 진행됐는데, 학생들에게 '무엇을 하라'고만 지시하지 '어떻게 하라'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어떤 포스터를 주면서 포토샵으로 똑같이 만들라고 해요. 솔직히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고1,2 수업시간에 포토샵 단축키만 배웠는데요."
 
최 씨는 친구들과 교사에게 따지기도 했다. "포토샵을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있느냐." 그러면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다른 애들은 잘하는데, 너네만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실제 잘하는 학생이 있기는 했다. 학교 이외 학원에서 포토샵 등을 배운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교사에게 최 씨와 같은 학생들은 '투명인간'으로 치부됐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을 보냈다.  
 
한 달 90만 원 받는데, 담임도 묵인 
 
3학년 2학기가 되면서 대부분 학생들은 현장실습을 나갔지만, 전공을 살려 간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전공에 맞춰 취업해도 최저임금은 '언감생심'이었다. 담임교사는 "디자인직은 최저시급을 못 맞춰 가는 게 대부분"이라며 "한 달 135만 원(2017년 최저임금)이라도 받는 것에 감지덕지해라"고 말했다.    
 
최 씨는 11월에야 첫 현장실습을 가게 됐다.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취업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에 참여하려 기다리던 중, 담임교사가 면접을 보라며 업체를 소개해줬다. 다른 학생이 간 곳인데, 처우가 좋다고 했다. 싫었지만 담임교사의 '강압'으로 어쩔 수 없이 면접을 보게 됐다.  
 
"당시 업체사장이 면접을 봤어요. 현수막이나 포스터를 제작하는 회사였어요. 그런데 회사 건물이 폐가 같았어요. 낡다 못해 더러웠죠. 회사도 집에서 엄청 멀었어요. 첫 인상이 무척 안 좋았죠. 그런데 면접에서 사장이 한 달 월급이 90만 원이라는 거예요. 담임선생님은 140만 원이라고 했는데, 말이 달랐어요. 직원도 30명이라고 했는데, 그 절반 수준이었고요." 
 
내키지 않았지만, 합격했다. 면접에서 돌아오던 길에 담임교사에게 애초 말하던 월급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담임은 "회사에 연락해보겠다"고 했다. 최 씨는 그 말을 믿고는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월급 관련해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한 달 월급 90만 원이 적힌 표준계약서를 보여주었으나 담임교사는 아무 말 없이 그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줬다. 최 씨는 90만 원 받고 일하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받아들였다. 
 
두 달 가까이 그곳에서 일했다. 하지만 배운 거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그곳에서 주문받은 현수막 등을 디자인하는 일을 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지 못했다. 최 씨가 이미 배운 기술들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근무환경도 열악했다. 건물 월세가 밀려 수도가 끊기기도 했다. 창문 틈이 벌어져 한겨울 칼바람이 사무실로 밀어닥쳤다. 온풍기가 고장 났으나 사장은 고칠 생각이 없었다. 문제제기를 여러 차례 했으나 소용없었다. 대신 사장실 온풍기는 제대로 작동됐다.  
 

▲ 최 씨가 작성하고 담임교사가 도장을 찍은 현장실습표준협약서. 한 달 월급이 90만 원으로 돼 있다. ⓒ프레시안

회사 그만두자 이기적이고 배려 모르는 사람 된 최 씨 
 
어느 날은 출근했는데, 회사가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최 씨에게 아무 말 없이 회사 사무실을 옮긴 것. 뒤늦게 이전한 사무실을 찾아가니 다 쓰러져간 건물이었다. 이전보다 더 폐가 같은 건물이 존재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곳 바닥을 대걸레로 청소하고, 애초 사무실에 있던 집기를 날랐다. 겨우 사무실 구색을 갖추었으나 인터넷이 연결돼 있지 않았다. 그 인터넷이 연결되기까지 1주일이 걸렸다. 자연히 그 기간에 일은 올스톱이 됐고 손님들이 급속도로 줄었다. 하지만 사장은 줄어든 손님 탓을 최 씨 등에게 돌렸다.  
 
"사장이 어느 날 저를 포함한 특성화고 학생 4명을 불렀어요. 손님이 줄어든 게 우리가 일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이런 식이면 우리 월급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저를 콕 지적하면서 '너는 솔직히 하는 것도 없이 편히 사는 거 같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었죠. 그는 사장이고 나는 부하직원이니깐." 
 
그렇게 버텼지만, 결국은 견디지 못 하는 일이 발생했다. 해가 넘겨 2018년이 되자 사장은 또다시 특성화고 학생들을 사장실로 불렀다. 올해부터는 최저임금으로 한 달 153만 원을 줘야 했다. 사장은 그 돈은 줄 수 없다며 선택권을 주겠다고 했다. 
 
"너희에게 큰돈을 쓰게 될 거면, 굳이 너희를 쓸 이유가 없다. 너희에게 선택권을 주겠다. 일단 너희 네 명 중 우리는 두 명을 해고할 생각이다. 먼저 니들이 말해봐라. 누가 나갈 거고 남을 건지." 
 
이미 해고할 사람을 다 정해놓고 자진해서 그만둘지를 말하라는 사장이 괴물처럼 보였다. 최 씨는 그 자리에서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를 뒤늦게 안 담임교사가 최 씨를 괴롭혔다.  
 
"너는 정신이 있는 애니?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구나. 네가 뭔데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드니? 너는 사회성도 부족하고 참을성도 없는 애구나. 이런 일도 못 참다니... 다른 애들은 다 참고 일해. 너는 지금 유치원생보다 못한 짓을 하고 있어."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최 씨는 아무 말을 못했다. 사직서를 쓰고 퇴사하던 날, 담임교사는 최 씨 손을 잡고 회사로 와서는 직원들에게 일일이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우리 학생이 참을성이 없어 못 버텼습니다. 죄송합니다"
 
직원들이 괜찮다고 하는데도 반복해서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사과했다. 최 씨도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숙여야 했지만 아직도 자신이 왜 사과해야 했는지 모른다. 
 
사라진 이어폰에 도둑으로 몰리기도 
 
이 회사는 끝도 좋지 않았다. 최 씨가 일한 마지막 달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아무리 전화를 해서 달라고 해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노동청에 진정서를 내고 나서야 겨우 받을 수 있었다. 그 시간이 4개월이나 걸렸다. 고작 55만 원이었다. 
 
사회란 이런 곳인가 싶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했다. 집에 손을 벌리기가 민망했다. 취업사이트에서 네일브랜드 회사 모집공고를 보게 됐다. 면접을 보고는 곧바로 취업이 됐다. 사장을 포함해 3명이 일하는 곳이었다. 네일아트 제품을 판매하고 디자인도 하는 업체였다. 전시회도 열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 그곳도 그만뒀다. 사장은 고졸인데다가 특성화고 출신인 최 씨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자기 이어폰이 사라졌다며 범인으로 최 씨를 지목했다. 
 
"제가 훔쳐간 게 아니냐고 하더군요. 사람들이 다 있는 자리였어요. 저는 모른다고 하니깐, 재차 정말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다른 분에게는 (그런 질문을) 안 하면서 제게만 그렇게 묻더라고요. 당시엔 기분 나쁘지만 참았는데, 이후에도 계속 반복해서 저에게 묻더라고요. 저를 도둑 취급한 거죠." 
 
이 회사에서는 주말 근무도 했다. 한 달 월급은 100만 원이었다. 면접 때, 추가 성과급을 준다고 했으나 말 뿐이었다. 점심식대를 지원해 준다고 했으나 그역시 거짓말이었다. 한 달 가까이 일하면서 한 번도 사장이 식비를 주지 않았다. 최 씨 수중에도 돈이 떨어질 무렵이었다. 사장에게 어렵게 식비 이야기를 하지 "돈을 너무 밝히는 게 아니냐"는 비난이 돌아왔다. 
 
더는 다닐 수 없었다. 그만두려니 그 달 일한 급여가 26만 원이나 됐다. 사장에게 달라고 하려다 그냥 포기했다. 이전 회사에서 55만 원 받아낼 때가 기억났다. 더는 뭐라고 하기도 지친 그였다.        
 
"이전 회사에서 못 받은 55만 원을 받을 때, 회사에서 학교로 연락을 했어요. 학생들이 회사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서 이런 식이면 학생을 더는 못 뽑는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 회사는 사람을 뽑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학교도 그런 곳에 학생을 보내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담임선생은 연락을 해서는 '자꾸 회사에 문제를 일으키지 마라. 너는 후배들이 안 불쌍하냐'고 하더군요." 
 
최 씨는 지난달 26일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 스스로 찾았다. 현수막 등을 디자인하는 업체다. 디자인 업무도 알려주고 최저시급도 준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는 심정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반복되는 '반쪽짜리' 현장실습 실태점검 
 
현장실습 과정에서 업체가 노동법 등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학교는 이를 방조 내지 외면하고, 학생은 취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며 견딘다.  
 
하지만 전주 LG유플러스 여학생부터 구의역 참사, 제주도 이민호 군 사고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이러한 문제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정부와 교육청도 두 팔을 걷고 사태 파악에 나서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현장실습 전수 실태점검'을 실시했고 서울시교육청도 '2017 특성화고 현장실습 점검'을 실시했다. 또한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서울고용노동청은 현장실습 관련 가이드라인도 마련했다. △ 사업장·실습생 대상 노동인권교육 의무화 △ 사업장 점검 및 근로감독 강화 △ 취업프로그램 확대 등 노동인권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 계획을 발표한 것.   
 
하지만 정작 현장실습 현장에서는 이 같은 실태점검과 제도개선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서류 점검에 그치는 지금의 실태점검으로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최저임금 위반 등의 노동법 위반 사례를 잡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학교만 점검할 뿐이지, 실제 학생들이 일하는 업체 조사는 이뤄지지 않아 반쪽짜리 실태점검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특성화고 학생들의 좌절감은 깊어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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