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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철수, 지금 최적기다!

주한미군 철수, 지금 최적기다!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04/01 [11:1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국민주권연대와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 3월 31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한미군사훈련 중단, 미군의 영구주둔 반대한다'는 집회를 열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국민주권연대와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 3월 31일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미군영구주둔 반대의 내용으로 집회를 열었다.

 

4월 1일은 평창올림픽으로 연기되었던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된다집회 참가자들은 평화와 통일의 바람이 불러오는 한반도에 한미합동군사훈련 완전 중단하라.’, ‘이 땅을 강점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반대한다미군의 영구주둔 반대한다.’의 내용으로 연설과 다양한 문화행사로 미 대사관 앞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먼저 집회는 5명이 연설자가 나와 한미합동군사훈련 반대미군은 이 땅을 떠나라 등의 내용으로 연설을 했다.

  

▲ 31일 집회에서 연설을 하는 현유진 대학생당 대학생문제해결팀장, 양희원 강원대학생, 박민아 동덕여대학생, 윤태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교육국장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현유진 대학생당의 대학생문제해결팀장 연설에서 평창올림픽으로 연기되었던 한미연합군사훈련이 4월 1일부터 시작된다비록 규모와 일정은 축소되고 일부 전략무기들이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미연합훈련을 해도 되는가아무리 축소해도 북을 적으로 하는 군사훈련이며선제폭격의 성격을 띠고 있어 위험하다이것은 언제든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봄과 함께 평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한미연합훈련은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남북북미정상회담 개최는 어느 때보다 대화를 통한 화해의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한미연합훈련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해서 강원대 양희원 학생이 연설을 통해 우리 사회에 65년간 바뀌지 않는 정전협정이 있다수구보수 세력은 정전협정을 방패삼아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들에게 많은 피를 강요해왔다빨갱이종북과 같은 말로 국민들을 탄압했다정전협정은 도구 삼아서 그들의 집권을 유지해온 수구적폐 세력에게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 국민들의 새로운 뜻을 4~5월 보여줘야 한다그리고 북미정상회담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집회 참가자들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하라','미군의 영구주둔 반대한다'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세 번째 연설자로는 동덕여대 노래패 놀해랑의 박민아 학생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기간 싸늘했던 남북관계가 따끈따끈하게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오고 있는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는 것이 있다바로 대북제재이다북은 양보해서 비핵화를 논의할 수 있다고 했는데트럼프는 북에게 여전히 최대의 압박과 제재로 유지겠다며 대북제재를 고집하고 있다미국의 행위는 옳지 않다남북북미 교류사업 활성화를 해야 할 것이며미국은 당장 대북제재를 해제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연설했다.

 

이어 윤태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교육국장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미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자로 내용으로 연설했다.

분단 78년이다우리 민족끼리는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우리 민족을 분단시킨 것은 미국이며, 78년 간 온갖 해를 끼쳐왔다그러나 이제 분단의 끝이 보인다민족이 만나고얼굴을 맞대니 그 어떤 외세도 두렵지 않다대화가 시작되는 시기에 우리 민족끼리 철석같이 손을 잡고 누가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고 싸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민족단결을 강조했다.

 

▲ 가극단 미래가 '주한미군 철수, 지금이 최적기다'라는 격문을 낭독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마지막 연설은 가극단 미래가 주한미군 철수지금이 최적기다라는 격문을 낭독했다.

  

▲ 청춘의지성 소속 시사콩트 동아리 '퀵'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주제로 시사콩트를 선보였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문예공연을 보면서 함께 즐기는 집회 참가자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집회 2부는 미군철수, 제주4.3, 한반도의 평화통일 등을 주제로 대학생들의 시사콩트 노래패 악단 씽, 동덕여대 노래패 '놀해랑', 대학생노래패연합, 한국대학생노래패연합 '내일'이 노래공연을 선보였고, 청춘의 지성 율동패 '흥'의 율동 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로 채워졌다. 

 

문화공연을 보는 집회참가자들은 흥겹게 박수도 치고노래도 부르며 함께 군사훈련 중단, 미군철수의 의지를 다졌다.

  

▲ 청춘의 지성 율동패의 공연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집회참가자들이 문예공연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이날 투쟁에는 노세대부터 젊은세대,아이들까지 함께 참여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노래악단 '씽'이 제주 4.3을 주제로 한 노래, '누가'를 부르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들어라 양키야'이 노래와 율동공연. 미국은 한미연합군사훈련 완전 중단하고, 이 땅을 떠나야 한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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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에서 발견된 백골 시신, 왜 모두 침묵했을까

[기획] 제주 4.3 생존자들의 끔찍하고도 생생한 증언, 영화 <레드 헌트>

 중산간지대로 대피한 주민들(1948. 5.)

중산간지대로 대피한 주민들(1948. 5.)ⓒ 미 국립기록문서관리청


일본의 패망 이후 해방을 맞이한 한반도는 좌우의 극심한 이념 대립과 정치적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진흙탕 싸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평범한 국민들이었죠. 

그중에서도 '제주 4.3 사건'은 수년에 걸쳐 수만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가장 참혹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었습니다. 육지와 단절된 제주도에서 벌어졌고 이념 문제까지 얽혀 있었기 때문에 진상이 밝혀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진실을 밝히려는 뜻있는 사람들의 줄기찬 노력은 계속됐고,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 작업 및 특별법 제정이라는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4.3 사건 다룬 첫 번째 영화
 
 영화 <레드 헌트>의 한 장면. 생존자들의 기억은 수십년이 지나서도 생생하다.

영화 <레드 헌트>의 한 장면. 생존자들의 기억은 수십년이 지나서도 생생하다.ⓒ 조성봉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1997)는 4.3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영화입니다. 당시에는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어려웠던 소재를 다뤘기 때문에 제작부터 상영까지 공권력의 탄압을 받아야 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1992년 제주도 '다랑쉬굴'에서는 백골 시신 여럿과 그들이 은신했던 생활 흔적이 함께 발견됩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이들의 유해를 신속히 화장해 버리는 등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했습니다. 왜 이들은 동굴 속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을까요? 왜 발견되고 나서 급히 화장되는 신세가 돼야 했을까요? 이런 의문은 4.3 사건의 전말에 대한 궁금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전반부에서는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4.3 사건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짚어 나갑니다. 1948년 4월 3일에 일어난 무장봉기만이 아니라, 그 전해인 1947년 3.1절 기념식에서 있었던 무장 경관의 발포 사건이 4.3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적시합니다. 6명의 사망자를 낸 이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서 제주도의 민심은 악화됩니다. 일반인들과 공무원들까지 똘똘 뭉쳐 총파업을 벌일 정도였죠. 미 군정 당국은 극우 인사를 도지사로 임명하는 등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고, 이는 4.3사건 내내 악명을 떨친 서북청년단이 제주도에 들어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듬해 4월 3일에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월 10일 선거를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납니다. 이 봉기를 주도한 남로당 인사들은 발생한 지 한 달도 안 돼 진압군과 협상을 벌이며 평화롭게 해결할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협상이 결렬되면서 진압군의 토벌 작전이 시작됩니다. 이후 군경과 서북 청년단이 제주도 전역에서 벌인 '빨갱이 사냥'은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내면서 수년간 계속됩니다. 

후반부에서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끊이지 않고 계속됩니다. 지옥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끔찍한 기억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그날의 아픔을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입산한 반군이나 혹은 동조자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제주도 중산간 지역의 수많은 마을을 초토화한 만행부터, 해안가 동네에서 공개적으로 자행된 집단 학살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증언은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4.3 사건의 배경과 경과는 물론, 이후 벌어진 악몽 같은 토벌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인 제주도민이 아니더라도, 4.3 사건의 핵심적인 부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1989년 설립되어 증언을 채록하고 자료를 수집해온 '제주 4.3연구소'와 지속적인 취재를 통해 진실을 파헤치려고 노력한 '제민일보 4.3특별취재반'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물론 2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이긴 하지만, 그때 기준으로 봐도 투박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어체로 일관하는 해설이나, 짜임새가 부족한 구성 등이 그 예입니다. 하지만 관련 연구자 및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충실하게 담아낸 사료적 가치, 그리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소재를 최초로 다뤘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공권력이 국민을 저버린 사건
 
 영화 <레드 헌트>의 한 장면. 4.3을 겪은 사람들은 아직도 공권력에 치를 떨고 있다.

영화 <레드 헌트>의 한 장면. 4.3 피해자 유족들은 아직도 공권력에 치를 떨고 있다.ⓒ 조성봉


4.3 사건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의무를 다하지 않는 모습'이 전형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국가 혹은 공권력이 일반 민중의 기대를 수없이 배반한 사건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을 진압하는 데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부터 시작된 이 '배신의 역사'는, 부패한 왕정과 일본의 식민 지배, 해방 이후의 권위주의 정부 등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이어졌지요.  

20세기 내내 우리나라 지배층은 정치적 반대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데 공권력을 남용해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5.18 광주 민주화항쟁은 4.3과 매우 흡사한 비극으로서, 무고한 국민을 거리낌 없이 학살한 것부터 '빨갱이' 탓을 하며 사후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까지 그대로 빼닮았습니다. 민주 정부 10년을 겪고 난 21세기에도 이런 일은 계속됐습니다. 

올해는 4.3 사건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 활동이 시작됐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원수로서는 처음으로 국가 공권력의 잘못에 사과한 적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4.3 사건 추념식에 직접 참석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역대 민주 정부가 4.3 사건의 진상 조사와 해결에 힘쓴 이유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와 결별하고 진짜 국민을 위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4.3 사건을 기억하는 일은 또한 평화를 염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은 평화밖에 없으니까요. 마침 우리나라는 곧 있을 남북 및 북미 간의 정상담을 통해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긴 여정을 다시 한번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레드 헌트>는 이런 시점에 보기 딱 알맞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담아낸 비극적인 역사는 평화 정착을 위한 중단없는 노력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웅변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권오윤 시민기자의 블로그(cinekwon.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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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에서 예수가 부활했다

그의 삶에서 예수가 부활했다

조현 2018. 03. 30
조회수 1835 추천수 0
 

 

부활절-.jpg 

 

1일은 부활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다. 언제까지 부활을 기념만 할 것인가. 오직 그런 부활을 신화니 기념일로만 박제화한다면, ‘그리스도’는 만우절의 거짓이 된다. 믿는다는 것과 삶의 불일치, 자본주의에서 더욱 벌어지는 그 간극이 그 거짓신앙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가르침, 그리스도의 피흘림, 그리스도의 부활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려는 이들이 이땅에 있었다. 우리 곁에 온 예수였다. 우리 곁에 머물렀던 참그리스도인 9명의 삶이 <사랑하며 춤추라>(신앙과지성사 펴냄)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예수의 삶을 살아낸 어른들의 이야기’란 부제가 붙었다.

 

 예수원 설립자 대천덕, 성자적 의사 장기려, 풀무원공동체의 창설자 원경선,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자 김용기, 광주의 여성운동 대모 조아라, 원주의 헌신적 선교사 나애시덕, 거지와 고아들의 아버지 황광은, 고난의 삶의 대변자 권정생, 맨발의 성자 이현필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나 이들 가족 혹은 제자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본 9명의 각자의 저자로 나서 그 감동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되살려냈다. 

 

 발문을 쓴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는 “지난 세기 이 척박한 땅에 태어나 한 세상 살다 떠난 그들의 삶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 내면의 어둠이 조금씩 스러진다”며 “그들의 삶과 실천은 온통 욕망 주위를 맴돌며 사는 우리 삶의 부끄러움을 환기시키지만, 새롭게 살고 싶다는 열망을 일깨운다”고 했다. 추천사를 쓴 김상근 목사(한국방송공사 이사장)는 “예수님이 가셨던 길을 따라간 분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밝혔다. 또 김신일 박사(전 부총리,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는 “작게라도 흉내 내며 조용하고 진실하게 예수를 따르자”고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눈물의 감동만 주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택한 고난과 헌신, 사랑이 얼마나 큰 삶의 기쁨, 특히 혼자만의 기쁨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기쁨의 자장으로 끌어올리는지를 보여준다. 일화 한토막씩을 통해 그들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본다. 

 

 ◇대천덕(양혜원 일본 난잔종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저)

 1-.jpg경제와 영성을 연결한 예수원 철학의 중심에는 코이노니아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이것을 대신부님은 ‘물만두 신학’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물만두는 다른 음식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만두에는 껍질이 있지 않습니다? 껍질은 밀가루로 만든 것이어서 그것만으로는 별 맛이 없습니다. 껍질 속에 고기가 있는데 만두의 참맛은 만두소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껍질이 없으면 속에 든 고기가 다 풀어지기 때문에 껍질로 꼭 싸주어야 합니다. 껍질이나 소나 둘 다 필요합니다.”

 대신부님은 경제 정의와 성령의 은사를 연결시키고 있다. 고린도 교회에 은사가 많았는데도 병든 자들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드을 멸시하였기 때문”이라고 대신부님은 설명한다. 기적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누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나눔을 해야 하나님도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교인들이 서로 나우어 주고 서로에 대하여 진실한 관심을 갖고 사랑하고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코이노니아는 믿는 사람들이 서로 자원하여 물질을 나누는 것이고 이러한 만두 껍질이 있어야, 만두소, 곧 하나님의 능력인 고기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대신부님은 이것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가르치셨다.

  

2-.jpg◇장기려(지강유철 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저)

 선생의 다른 인간됨은 어떤 사람을 거지, 대통령, 행려병자 등 그가 가진 권력·돈·신분에 따라 각기 다르게 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생은 평양에서든 부산에서든 자기 집에 구걸 온 거지와 겸상했다. 겨울에는 입고 나갔던 코트를 거지에게 벗어주고 들어오기 일쑤였다.

 복음병원장 시절, 사택에 숨어들었던 도둑이 책이라도 갖다 팔면 돈이 될까 싶어 가지고 나가려다 선생에게 들켰다. “젊은이, 그 책 가져가면 고물 값 밖에 더 받겠소? 그러나 나에겐 아주 소중한 것이라오. 내가 그 책값을 쳐 줄테니…”하며 돈을 주고 놓아 주었다.

 선생이 6·25전쟁 이후 고집을 부리며 무료 병원을 계속한 것이나, 부산대학교 뒤편 창고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행려병자들을 식구처럼 돌보았던 것은 그들을 자기 자신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산 간질환자들의 모임을 알고 평생 그 회장직을 놓지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정부보다 10년이나 먼저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했던 것, 그리고 몇 년 뒤 보사부 장관이 영세 사업자를 위한 의료보험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23만 명의 회원을 둔 의료보험조합을 ㅁ나들 수 있었던 것 또한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그런 선생에게는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든 거지든 행려 병자든 모두가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3-.jpg원경선(원혜영 국회의원·원경선의 아들 저)

 전 세계 인류 중 4분의 1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과 2초에 1명꼴로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결심하면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사림이다. 곧 국제기아대책본부에 가입했다. 정농회 회원들, 기독동신회 교인들, 풀무원 회도도 적극 동참케했다. 아버지는 풀무원 회사의 직원들을 교육할 때마다 나에게 갈비탕 두 그릇 사 줄 사람은 손들어보라고 했다. 사람들은 다 손을 들었고 아버지는 그들에게 갈비탕 두 그릇 값인 만 원씩을 내달라고 했다. 그렇게 마련한 기금들이 보태져 에티오피아로 전해졌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 모임을 갖기만 하면 자식들은 물론 손자들에게도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얼마를 내놓을 것인가를 적어내라고 했다. 귀가 뜨일 때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자란 손자들은 월급을 받을 나이가 되자 자동이체로 통장을 등록하고 다달이 일정 금액을 기부하게 되었다.

  

4-.jpg◇김용기(김장생 연세대 인문예술대학 교수 저)

 가난안농장에서의 공동체의 일과는 새벽 4시에 김용기의 차남 김범일이 치는 개척의 종과 함께 시작된다. 개척의 종은 매일 세 번씩 10차례를 친다. 첫 번째 종은 육체의 종이다. “육체의 잠을 깨자. 육체의 잠이 들면, 나태와 빈곤의 늪에 빠지게 된다.” 두 번째 종은 정신의 종이다. “정신의 잠을 깨자. 정신의 잠이 들면, 주권을 빼앗기게 된다.” 세 번째 종은 영혼의 종이다. “영혼의 잠을 깨자. 영혼의 잠이 들면, 하나님을 빼앗기게 된다.”

 기상 후 애국가를 4절 까지 부르고, 4킬로, 8킬로, 12킬로 구보를 한다. 구보를 하는 동안 그들은 ‘정신 개척’, ‘우리는 젊다’, ‘역사는 부른다’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7시부터 아침식사 전까지 아침기도회를 한 후 식사를 한다. 가난안농장에서의 식사는 구호로 시작을 한다. “먹기 위하여 먹지 말고 일하기 위하여 먹자.” 주식은 고구마였고 음식은 조금이라도 남길 수 없었다. 치약은 3미리, 비누는 남자 2번, 여자 3번만 사용한다. 저녁 10시까지 노동은 계속 된다. 생일이나 회갑 또한 이곳 가나안에서는 없다.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고 기쁜 일임으로 매일매일을 새로이 태어나는 자세로 살아야지 일 년에 한번 생일상을 차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회갑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허례허식이 된다며 자신부터 생일이나 회갑을 없앴다.

 

 5-.jpg조아라(유성희 한국 YWCA 사무총장 저)

 여성으로 조아라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26세에 남편을 잃고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살기에도 조아라의 인생은 벅찬 것이었다. 자신의 아이들은 뒷전에 두고 버려진 아이들을 챙기느라 분주했던 조아라는 평생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유복자로 태어난 둘째 아들이 장로 장립을 받던 날, 조아라는 직접 안수를 하면서 울고 말았다. 기쁘면서도, 서럽고 힘들었던 세월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이 땅의 수고를 모두 마친 후 그녀가 자신의 방에 남긴 것은 평생 사용했던 낡은 재봉틀과 구석구석 닳은 가방 한 개와 손수 만들어 입었던 옷가지 몇 개가 전부였다.

 조아라는 역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품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싸다. 우리도 조아라처럼 살 수 있을까. 조아라를 닮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조아라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어렵더라도, 무섭더라도,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해야 한다.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물러서지 말아라.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섭섭해하지 말아라. 묵묵히 네 길을 가면 하나님은 늘 동행해 주신다.”

 

 6-.jpg◇나애시덕(최종수 미 연합감리교회 은퇴목사)

 나애시덕은 2003년 케이비에서 텔레비전이 <인물현대사>에 선정한 유일한 외국인이다. 어느 감리교 목사가 자기 교인 한 사람을 입원시키기 위하여 자기 교인 한사람을 입원시키기 위하여 엑스레이 사진을 가지고 와서 독실한 감리교인이니까 꼭 입원시켜 달라고 나 선생님에게 부탁하였다. 그런데 나 선생님은 뜻밖에도 불교신자였던 환자를 먼저 입원시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감리교 목사는 대단히 화가 났다. 이 목사가 나 선생님에게, “당신은 감리교에 충성스럽지 못하다”라고 항의하면서 화를 냈다. 감리교인 대신에 불교신자를 먼저 입원시키다니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 이때 나 선생님은 “요양원에서 누가 먼저 입원해야 하느냐는 흉부 엑스레이가 보여주는 병 상태에 따라 결정됩니다. 엑스레이 사진에는 감리교인, 비교인의 표시가 없지요!” 나 선생님은 고국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하여 항상 마음 아파했다.

 

 7-.jpg◇황광은( 김정호 후러싱제일교회 담임목사 저)

 황광은은 거지들 고아들과 늘 어울리는 삶을 살았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정신을 길러줬다. 그것이 삼동 사업이었다. 종로 네거리 뒷골목에 원래가 변소였던 자리를 개조해 살 집을 마련하고, 그들과 함께 그곳에서 지냈다. 여름에는 심한 냄새가 났었고 겨울에는 또 견딜 수 없을만큼 추웠다. 추운 겨울에도 고아들과 함께 거기서 잤고, 냄새나는 여름에도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다. 훗날 와이엔시에이 총무를 지낸 현치호씨의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거기 음식을 한 끼도 먹지 않았습니다. 보기만 해도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데 그걸 어떻게 먹고 앉아 있습니까. 그러나 광은은 그 고약한 냄새나는 곳에서 보기에도 지저분한 음식을 함께 먹곤 했었지요. 아무튼 천성이 아니고는 못 할 일이었습니다.”

  

8-.jpg ◇권정생(이철지 전 종로서적 대표 저)

 이오덕 선생은 권정생 선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조그만 교회 한쪽에 있는 부속 건물의 방 한칸을 빌려 자취를 하고 있는 그는 내게 모든 신상 얘기를 해 주었다. 그는 한 해 동안 총 수입이 4천5백 원으로 살았다고 했다. 4천 원은 원고료 수입이고 5백 원은 어느 낯선 할머니가 주고 갔다는 것이다. 신춘문예 시상식도 못 갔단다. 입을 옷도 여비도 없었고, 건강 때문에도 갈 수 없었다. 나는 그때, 다만 동화를 쓰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듯한 이 작가가 깜박거리는 목숨의 불을 간신히 피워 가면서 40년 가까운 반생을 온갖 신체적 물리적 또 정신적 고통 속에서 얼마나 처절한 생활을 하여 왔는가 하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는 우리 민족의 온갖 불행을 한 몸에 지니고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후 어느 가을날에 그의 토담집을 다시 방문했다. 권 선생은 그의 표현대로 불쌍하게 떨어진 낙과를 주워 모았다면서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일행들은 흠집 난 곳을 피해 가며 맛있게 먹었다. 먹성이 안 좋은 편이라 주저하는 내겐 먹어보라는 흰소리도 하지 않았다.

 방 한구석에는 흰쌀밥 담은 양재기가 놓여 있었다. 그 밥을 셋으로 구분하고 한쪽은 ‘누렁이’ ‘꾸구리’ 몫, 다른 한쪽은 ‘생쥐’ 몫, 또 다른 한쪽은 ‘당신’것이냐고 물었더니 아무 말이 없다.

 

 9-.jpg◇이현필(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저)

 이현필은 자신을 내어주는 그리스도의 삶을 그대로 살려고 몸부림쳤다. 그를 따르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현필이 한국전쟁 중 설립한 동광원에서는 언님(동광원의 수녀)들이 출가 전 낳은 아이들을 고아들 속에 넣어 함께 키웠다. 자기 자식들과 고아들을 전혀 차별하지 않고 먹는 것도,입는 것도 똑같이 키웠다. 먹어도 같이 먹고, 굶어도 같이 굶었다. 그때 아이들이 오는대로 받다보니 먹이고 재우는 아이들이 정원을 몇배나 넘는 600명이 넘었다. 제대로 허가받은 고아원도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많아지자 광주시청에서 아이들을 모두 다른 고아원으로 분산시켰다. 가까운 데로 보내면 아이들이 다시 찾아온다며 멀리 순천과 목포로 보내버렸다. 그런데 며칠 뒤 아이들이 절반 이상이 돌아왔다. 걸을 수 없는 어린아이들을 빼고는 대부부의 아이들이 며칠 동안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동광원을 걸어 찾아왔다. 고아들을 자식처럼 대하는 그곳이 배곯더라도 그 어떤 곳보다 좋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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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다녀와 본 조용필의 너스레 "긴장할 것 없다"

[현장]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 공연 '봄이 온다' 본진, 31일 김포공항 통해 방북

18.03.31 11:38l최종 업데이트 18.03.31 12:33l
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평화 위해 V 포즈 취하는 방북예술단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평화 위해 V 포즈 취하는 방북예술단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유성호
방북예술단 "잘 다녀오겠습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방북예술단 "잘 다녀오겠습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유성호
"이번 공연의 주제는 '봄이 온다'이다. '봄이 온다'는 주제처럼 따스한 평화의 봄기운이 한반도에 불어올 수 있도록 여러분들께서도 지지해주시고 청원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인사가 끝나고 박수가 나왔다. 31일 오전 9시 40분께, 김포공항 국제선 로비에 마련된 간이무대에는 20여 명의 음악인들이 자리했다.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 '봄이 온다'에 참여하는 예술단 본진이 오늘 평양으로 떠난다. 방북 전 국민들게 인사하기 위해 마련된 이 자리에는 여러 매체의 기자들 그리고 예술단을 응원하기 위한 팬들까지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윤상 "공연 바라보는 시선, 한 가지만 있는 것 아니지만..."
 
방북하는 도종환 "평화의 봄기운이 한반도 불어올 수 있도록 지지해 달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 절차를 밟고 있다.
▲ 방북하는 도종환 "평화의 봄기운이 한반도 불어올 수 있도록 지지해 달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 절차를 밟고 있다.ⓒ 유성호
윤상 "평화 염원 담아 최선을 다하겠다"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을 이끄는 가수 윤상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윤상 "평화 염원 담아 최선을 다하겠다"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을 이끄는 가수 윤상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유성호
주무부서의 장관이자 이번 예술단의 단장이기도 한 도종환 장관은 "13년 만의 평양공연이 성공적으로 치러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면서 "문화·체육 분야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 그리고 남북간 상호존중과 화해의 물꼬를 터나가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다"라고 인사말을 전했다.

이번 예술단의 음악감독을 맡은 윤상은 "너무나도 큰 영광임과 동시에 설명하기 힘든 만큼의 무게감도 동시에 느끼고 있다"라면서 "대중음악계 별들이 한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윤상은 "어떤 분은 방송을, 광고를, 콘서트를 미뤄야 했다"라며 "그 짧은 시간 안에 준비를 하다보니까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참여해준 모든 아티스트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얘기했다. 끝으로 윤상은 "지금 이 공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라면서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봄이 온다'처럼 한반도에도 그런 평화의 봄이 함께할 수 있는 염원을 담아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돌아오겠다"라고 응원을 부탁했다.

이어서 출연하는 아티스트들이 짧게 한마디씩 소감을 전했다. 이날 예술단 단원들은 '봄이 온다'라는 이번 공연 제목처럼 '한반도의 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소녀시대 서현은 앞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하여 내려온 북측예술단의 공연에서 함께 사회를 본 바 있다. 

북한에서도 노래뿐만 아니라 공연 사회를 볼 예정인 그는 이날 자리에서도 마이크를 붙잡고 간담회를 진행하며 자신의 소감도 전했다. 서현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동포들과 함께 공연할 수 있어서 벅차다"라며 "오늘 벚꽃이 피고 있더라. 우리 곁에 봄이 이미 와 있는 것 같다. 남과 북 사이에도 따뜻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가수 백지영은 "(북측과) 잘 섞이는 공연을 하고 오겠다"라고 말했고, 알리는 "따뜻한 봄 전해드리고 오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뒤늦게 추가로 합류한 강산에는 "솔직하게, 아직도 꿈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라며 입을 열었다. 음향사고 때문에 잠깐 스피커에서 큰 소리가 나자 "이제 꿈에서 깨어나라고 그러나 보다"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많은 사람의 영혼을 담아서 목청껏 잘 다녀오겠다"라며 감사를 전했다. 

이번 예술단의 막내인 걸그룹 레드벨벳은 멤버 조이가 드라마 촬영으로 인해 빠진 채 북한으로 떠나게 됐다. 앞서 윤상은 "가장 막내인 레드벨벳 같은 경우에는 처음 연출부의 섭외 때부터 많은 어려움들이 예상 됐었는데, 우려했던 대로 완전체로 참가하지는 못하게 된 상황"이라며 "멤버들이 다 한마음으로 뜻을 함께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아쉬워했다. 

레드벨벳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멤버 슬기는 "뜻깊은 자리에 저희가 멋진 선배님들과 함께 공연하게 되어서 너무 영광이다"라면서 "저희가 막내니까, 밝은 에너지를 북측까지 잘 전달해드리고 오겠다"라고 말했다.

평양에 다시 가게 된 이들도 있어... 팬들도 응원
 

 
방북하는 조용필 "잘 하고 오겠습니다"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 조용필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 절차를 밟고 있다.
▲ 방북하는 조용필 "잘 하고 오겠습니다"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 조용필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 절차를 밟고 있다.ⓒ 유성호
방북하는 조용필 "잘 하고 오겠습니다"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 조용필, 이선희가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참석하고 있다.
▲ 방북하는 조용필 "잘 하고 오겠습니다"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 조용필, 이선희가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참석하고 있다.ⓒ 유성호
방북하는 서현 "남과 북 사이 따뜻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 서현과 알리가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 절차를 밟고 있다.
▲ 방북하는 서현 "남과 북 사이 따뜻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 서현과 알리가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 절차를 밟고 있다.ⓒ 유성호
이날 방북하는 아티스트 중에서는 북한 공연이 처음이 아닌 이들도 눈에 띄었다. 앞서 2005년에 평양에서 공연한 바 있는 조용필은 "여기서 공연하듯이 또, 북측에 가서도 편안하게 공연할 것"이라며 "저뿐만 아니라 뭐 여러 가수분들 긴장할 것도 없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연습도 다 마쳤고, 즐겁고 편안하게 저희들의 음악을 보여드리겠다. 잘하고 오겠다"라며 웃어보였다. 이선희도 "즐겁게 하고 오겠다"라며 짧고 굵은 한마디를 남겼다.

YB의 리더이자 보컬인 윤도현은 "16년 만에 다시 평양을 가게 되었다"라며 "그때에도 참 감동적이었지만, 이번에도 정말 감동적인 공연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밴드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 최희선 역시 "13년 전에 단독 공연을 다녀왔다. 그때는 긴장이 됐는데, 이번엔 정말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아쉬웠던 건, 준비시간이 굉장히 짧아서 가수 분들이 악보와 같이 왔다"라면서도 "딱 한 번 맞춰봤는데,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포토타임에 앞서 서현은 "브이가 공연장에서는 피스, 평화라는 뜻으로 쓰인다"라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다함께 브이를 하며 사진을 찍겠다고 안내했다. 포토타임이 끝나고 아티스트와 매니저는 모두 휴대폰을 반납한 뒤 평양으로 떠나는 비행기 탑승 수속을 밟았다.

조용필을 응원하기 위해 온 50대 여성 팬은 "2005년에 (조용필이) 평양 공연을 했을 때, 그때도 걱정을 많이 했지만 TV로 공연을 보면서 많이 자랑스럽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5월 12일 잠실에서 콘서트가 있는데, 갑자기 평양 공연이 결정되어서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라면서도 "오빠가 결정한만큼 무조건 응원하고, 잘 하고 돌아오셨으면 좋겠다"라고 웃었다.

북한에서 공연하게 될 예술단은 조용필, 이선희, 최진희, 윤도현, 백지영, 레드벨벳, 정인, 서현, 알리 그리고 추가합류한 강산에, 피아니스트 김광민까지 총 11명(팀)이다. 예술단 규모는 총 190여 명으로 태권도 시범단과 공연 스태프, 취재진, 정부지원 인력이 포함된 숫자이다. 

이날 방북한 예술단은 오는 4월 1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단독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태권도 시범단은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같은 날 공연한다. 이어 2일에는 예술단이 합동공연 리허설을 갖고, 태권도 시범단은 평양대극장에서 합동공연을 선보인다. 마지막으로 3일에는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 합동 공연을 선보이고 인천공항을 통해 돌아온다.

남북합동공연 실황은 TV프로그램 제작 및 녹화방송 될 예정이다.
 
방북에 들뜬 백지영-정인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 백지영과 정인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 절차를 밟으며 들뜬 표정을 짓고 있다.
▲ 방북에 들뜬 백지영-정인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 백지영과 정인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 절차를 밟으며 들뜬 표정을 짓고 있다.ⓒ 유성호
방북하는 레드벨벳 "밝은 에너지 북측까지 잘 전달하고 오겠습니다"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 레드벨벳 멤버인 예리(왼쪽부터), 아이린, 웬디, 슬기가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 절차를 밟으며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또다른 멤버 조이는 국내 스케줄을 이유로 방북 예술단에 불참했다.
▲ 방북하는 레드벨벳 "밝은 에너지 북측까지 잘 전달하고 오겠습니다"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축 예술단 평양 공연’에 출연하는 가수 레드벨벳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 절차를 밟으며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성호
출국 절차 밟는 방북 예술단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참가자들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 출국 절차 밟는 방북 예술단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참가자들이 31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 공항으로 출국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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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청년이 실명했다, 범인은 누구인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3/31 12:48
  • 수정일
    2018/03/31 12:4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서평] 메틸알코올 중독으로 실명한 청년의 이야기 <실명의 이유>
2018.03.31 10:24:14
 

 

 

 

2년 전 이맘때다.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였다. 삼성전자에 휴대전화 부품을 납품하는 3차 협력업체 노동자 4명이 메틸알코올(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단다. 이 중 3명은 실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했다.(현재는 총 6명이다)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로 넘어왔다.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매틸알코올로 시력을 잃는다고?" 
 
메틸알코올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기껏해야 소독약 정도로만 추측될 뿐이었다. 메틸알코올이 눈에 닿는다고 실명이 되나 하는 의문이 생긴 이유다. 뒤늦게 알게 됐다. 무지의 소치라는 것을. 
 
메틸알코올은 투명·무색의 인화성 액체다. 분무기로 뿌려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반면, 인체에는 치명적이다. 고농도에 노출될 경우, 두통 및 중추신경계 장애가 유발된다. 심할 경우, 실명까지 올 수 있다.  
 
당시 시력을 잃은 노동자들은 모두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메틸알코올을 사용했다. 메틸알코올은 휴대전화의 부품을 식히는 데에 사용한다. 이때 메틸알코올이 노동자에게 튈 수가 있다. 또한 식히면서 발생하는 증기가 노동자의 호흡기로 흡입되기도 한다.   
 

ⓒ민석기

아무 교육도 장비도 없는 파견 노동자 
 
이런 사고를 겪은 노동자들은 단순히 재수가 없어서 실명했을까. 이들을 취재한 선대식 <오마이뉴스> 기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선 기자는 최근 그들을 취재한 내용을 묶은 <실명의 이유>(북콤마)를 책으로 냈다.  
 
선 기자는 그러한 작업이, 메틸알코올이 얼마나 위험한지 누구도 노동자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일반 사람 입장에서는 메틸알코올의 위험성을 알기는 힘들다. 기자 역시도 메틸알코올로 시력을 잃는다는 이야기에 의문을 품었다.  
 
작업의 위험성을 노동자에게 고지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과 장비를 마련하는 것은 업체의 의무다. 하지만 이들 노동자가 일한 업체에서는 안전교육은 고사하고 작업할 때 변변한 안정장비조차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들이 실명한 이유다.  
 
"꿈에서는 앞이 안 보여요. 꿈이 안 깼으면 좋겠어요." 
 
김영선 씨는 갑자기 시력을 잃었다. 메탄올 수증기가 가득 들이찬 스마트폰 부품공장에서,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1년 반 후, 같은 피해자가 5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순 씨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자기가 사용하는 액체가 눈을 공격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도 그 액체가 위험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일하는 12시간 내내, 환기도 되지 않는 좁은 공장에서 메탄올을 들이마셨다. 무방비 상태였다. (<실명의 이유> 중에서)
 
실명,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 
 

▲ 선대식의 <실명의 이유> ⓒ북콤마

선 기자는 이들의 실명 이유에 주목할 뿐만 아니라 그들 삶의 궤적도 추적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실명은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임을 꼬집는 것. 
 
선 기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들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도 짚어낸다. 실명을 당한 노동자들이 모두 파견노동자임을 지적하면서 파견법 문제를 조목조목 따진다. 
 
파견노동자로 공장을 돌리는 사업주는 파견업체를 통해 언제든 파견노동자를 채용한다. 
 
반면, 고용주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지지 않는다. 파견업체에 공을 돌린다.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면서 권리는 무한으로 누리지만, 정작 그에 수반되는 의무, 즉 산업안전법 등은 전혀 지키지 않는 셈이다.   
 
파견법은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에 파견노동자를 쓰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일시·간헐적 사유가 있을 경우 6개월에 한해 파견 노동자를 쓸 수 있다는 예외가 있다. 그렇다보니 안전교육이나 안전장비 지급 등은 노동자에게 아득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불법이지만 법이 무력하다 
 
노동자들에게 메틸알코올의 위험성만 알려줬어도 그들이 그렇게 어이없이 실명을 했을까. 선 기자는 "이것은 '불법'이지만 여기서(파견법 구조 하에서)는 법이 무력하다"고 토로한다. 
 
"우리 눈 다 나으면 벚꽃 보러 가자." 
현순 씨는 자기처럼 앞이 캄캄한 동갑내기 피해자 진희 씨에게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현순 씨는 창밖 풍경이 오후 6시의 어스레한 저녁 시간 때처럼 보인다고 말했고, 
진화 씨는 빛이 물러간 밤 9시의 세상으로 보인다며 말을 받았다. 
그땐 봄날 맑은 하늘에서 햇빛이 가장 강하게 쏟아지는 시간이었다. <실명의 이유> 중에서
 
실명을 한 노동자들의 눈에 빛이 보이기란 요원한 일이다. 다만, 그들과 같은 이유로 실명하는 노동자들은 더는 없어야 하지 않을까. 선 기자가 <실명의 이유>를 낸 이유다.  
 

▲ 스물아홉의 이진희 씨. "저도 다치기 전에 풍경을 보면 시각이 먼저였어요. 근데 다치고 나서는, 바람을 타고 오는 꽃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됐어요." ⓒ민석기

▲ 전정훈 씨는 스마트폰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법도 터득했다. 문자메시지 화면을 갈무한 뒤 저장하고, 이를 최대한 확대해서 본다. ⓒ민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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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규 기자, 북 주민들 개성공단에 분노

진천규 기자, 북 주민들 개성공단에 분노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3/31 [02:4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진천규 기자는 부산에서 북-미 간의 군사적 긴장이 팽팽하던 지난 해 말, 20일 간 인천에서 심양, 단둥을 거쳐 신의주로 평양으로 방북 취재를 다녀온 바 있다.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지난해 말 평양을 방문취재하고 온 진천규 기자를 만나 북의 동향에 대해 들어볼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진 기자는 북 주민들이 남측과의 경협에 대해 큰 실망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개성공단의 성공을 위해 노동력과 땅 등을 거의 무료로 지원해주다시피 했지만 남측 언론들과 반북 수구세력들은 무슨 큰 돈이라도 북에 지원하는 것처럼 꼴불견 생색내기에 핵개발 자금이요 뭐요 하면서 쩍하면 개성공단 문을 닫네 마네 하더니 결국 북에서 하지도 않은 천안함 격침을 이유로 개성공단 문을 닫아버린 남녘의 처사에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북은 해외에 노동력을 파견하면 그 나라의 월급을 다 받는다. 중국 현지에 가서 취재해보니 북은 식단표에 하루 계란 몇 알까지도 구체적으로 요구하여 다 관철시켰다. 그래도 워낙 일사분란하게 일을 잘하고 속썩이는 일이 없어 중국 기업들이 서로 북 근로자를 고용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한달에 10만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개성공단을 위해 북 주민들이 헌신해온 것은 순전히 어려운 남측의 중소기업가들과 그 기업에서 먹고 사는 남녘동포들을 위한 사랑의 마음 때문이었다. 결국 남측은 개성공단에서 받은 배려와 은혜를 배신으로 갚은 것이다.

 

실제 중국에 투자했다가 망해나자빠진 많은 남녘의 중소기업들이 개성공단에 투자하여 2-3년만에 빌딩을 사고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그런 중소기업들이 북측에서 월급을 좀 올리자고 했을 때 '그러면 남는 것이 없게 되니 어쩌니' 하면서 우는 소리를 치는 것을 보고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장 한심한 태도는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인 외화로 핵개발을 했다는 언론과 반북 보수세력들의 주장이었다. 그래 개성공단 폐쇄되어 핵개발이 중단되었던가. 오히려 수소폭탄이 만들어져 지구를 뒤흔들었다. 

 

개성공단은 북이 남측과 가장 가까운 군부대를 후방으로 철수하는 등 전략적 요충지까지 내주고 북의 성실한 근로자들을 거의 무료로 지원하다시피 해서 남과 북이 힘을 합치면 잘 살 수 있다는 '우리민족끼리'의 꿈을 키워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북에 무슨 큰 시혜라도 베푸는 양 꼴값을 떨다가 결국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천안함 격침이 북의 소행이라는 억지 근거를 내세워 그런 망동을 부렸다. 양식이 있는 수많은 과학자들과 천안함을 건져올린 인양업체 대표가 폭발 증거라고는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이런 사람들을 협박하고 탄압해왔다. 최근 KBS '추적60분'에서도 이것이 명백히 증명되었다.

 

지금 남녘은 청년실업문제, 가계부채문제, 중소기업 경쟁력 약화로 경제 상황이 말이 아니다. 미국 달러가 오르니 금리까지 올라 역전세난에 깡통아파트까지 속출하고 있다. 대기업도 중국의 사드보복,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갈수록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답은 남북경협뿐이며 북을 통해 대륙으로 진출하는 길밖에 없다는 주장이 대기업 경제연구소에서도 숱하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남북경협에 대한 이런 시혜적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면, 나아가 북을 적으로 규정하고 대북적대시정책을 근본적으로 철폐하지 않는 한 남북경협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북의 좋은 점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요 뭐요 하며 감옥으로 끌고 가면서 무슨 경제협력사업을 한단 말인가. 지금도 본지 이용섭 기자는 국가보안법 상 찬양고무죄 위반으로 동부구치소에서 징역살이를 하고 있다.

 

북중정상회담은 북중경제교류협력 사업의 폭발적 전개를 예고하고 있다. 북이 언제까지 세계로 진출할 기회를 포기하면서 남녘을 기다려줄 수는 없을 것이다. 북미정상회담, 북일정상회담에서 북과의 교류협력사업추진을 타진할 것이 자명하다. 이대로 가면 남측만 배제되어 대륙으로 진출할 수 없는 철조망에 갇힌 섬으로 전락할 것이다. 스스로 철조망에 목을 매다는 꼴이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고위급회담에서 의제에 대한 논의를 했다고 하는데 통일부 장관 입과 언론에서는 그 무슨 비핵화 논의가 핵심 의제가 될 것이란 말만 나오고 있을 뿐 남북교류협력, 남북통일에 대한 의제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북의 핵은 남측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핵위협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북미정상회담에서 풀어야될 문제라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그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그것을 핵심의제로 삼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남북정상회담의 본령은 남북관계의 확고부동한 발전전망을 밝히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

 

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중심으로 완전히 일심단결되어 있어 북 주민들이 남북경협에 아무리 실망했다고 해도 북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과거를 덮고 다시 하자고 하면 다시 일터로 달려나올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동포들에게 그런 실망과 분노를 안긴다는 것이 동포에 대해 얼마나 죄스런 일인가. 

 

문재인 정부가 부디 정상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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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마트 무빙워크 사망’ 21세 청년의 장례식장, 남겨진 동생의 편지

청년·노동단체 “하청의 또 하청, 위험의 외주화”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8-03-30 19:29:11
수정 2018-03-30 19: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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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故이명수씨 유족과 친구들은 사망현장 앞에 국화를 놓았다.
30일 故이명수씨 유족과 친구들은 사망현장 앞에 국화를 놓았다.ⓒ민중의소리
 
 

지난 29일 故이명수씨 장례식장엔 그의 친구들만 100여명이 왔다갔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 장례식장은 전날과는 다르게 한산했다. 조용한 장례식장에선 명수씨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어머니가 울음을 그치자 외할머니의 오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명수씨의 아버지는 이날 아침 일찍부터 진행되는 시신부검을 참관하러 고대안암병원에 갔다. 장례식장은 명수씨의 어머니, 삼촌, 여동생이 자리를 지켰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삼촌은 “이런 일이 제 주변에서 일어날 줄은 추호도 몰랐다”며 “집이 힘들어서 스스로 특성화고에 가고 돈을 벌겠다며 졸업하자마자 일자리도 구해 기특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어린 두 동생은 장례식장에 앉아 오빠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보는 가족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외삼촌 민씨는 핸드폰카메라 편지를 찍어뒀다. 민씨는 이날 오후 3시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편지를 낭독했다.

앞서 故이명수(21)씨는 지난 28일 남양주 이마트 다산점 무빙워크를 점검하다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안전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작성된 안전교육점검일지엔 10분 동안 교육을 했다고 적혔지만, 실제로 CCTV에선 1분도 채 교육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씨는 외주의 외주화 관계에 놓인 하청노동자였다. 이마트가 계약한 업체가 또 하청을 줘 이씨가 속한 회사가 해당 무빙워크를 점검한 것이다. 경찰은 정확한 계약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자문을 구한 상태다.

30일 사고 현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 이명수씨의 외삼촌 민수홍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30일 사고 현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 이명수씨의 외삼촌 민수홍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민중의소리

“편안하게 잠자, 내 마지막 소원이야”

 

“우리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잠자. 내 마지막 소원이야. 하늘나라 가서 천사되어 우리가족 지켜준다고 꼭 약속해. 갑자기 떠나버린 오빠가 우릴 위해 먼저 갔다고 생각할게. 17년 동안 행복했고 고마웠어. 사랑한다 오빠. 잘 있어 안녕. 사랑하는 주현.”

故이명수씨의 동생 이주현(17)양이 쓴 편지다.

30일 사고 현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명수씨의 외삼촌 민수홍씨는 “여기서 여러 말 드릴 건 없고, 명수 동생이 오빠를 보내는 편지를 갖고 와서, 편지만 읽겠다”며 편지를 낭독했다. 애써 덤덤하게 이양의 편지를 읽은 민씨는 “얘 아래 이제 11살 먹은 동생도 있다. 걔 편지도 갖고 왔는데, 나머진 못 읽겠다”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는 “두 조카가 기둥 같은 오빠를 한순간에 잃었다”며 “제발 귀 기울여주시고, 제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여러분이 도와달라. 잘못한 사람은 꼭 처벌을 받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명수씨와 같은 특성화고를 졸업한 이제현(21)씨가 미리 적어놓은 하고 싶은 말을 읽어내려갔다. 친구 이씨가 말하기 시작하자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도,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도, 말하는 당사자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친구 이씨는 “제 친구 명수가 세상을 떠났다”며 “지금 명수가 떠난 게 실감이 나지도 않고, 믿기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명수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선생님을 존중하며 항상 성실했던 친구였고,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쉬는 날이면 집에서 동생을 챙기고, 삼촌과 함께 게임을 즐긴다고 자랑하던 명수였다. 그런 제 친구 명수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이마트는…”이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삼촌 민씨도 이명수씨와 함께 했던 순간이 떠올랐는지 얼굴을 뒤로 젖히며 소리 내어 울었다.

30일 고 이명수씨 장례식장 모습
30일 고 이명수씨 장례식장 모습ⓒ민중의소리

“하청에 또 하청… 위험의 외주화”
“이마트 정직원 사고였어도 다음날 떳떳하게 장사 했겠나?”

이날 기자회견에는 故이명수씨의 외삼촌과 친구들 말고도 청년단체, 노동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해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청년단체 청년전태일 김재근 대표는 “이마트 다산점은 사고현장을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놨을 뿐, 아무렇지도 않게 영업을 하고 있다”며 “한 명의 직원이 사고현장 앞에 서서 무빙워크를 이용하려던 고객들을 돌려보내기만 하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고객들은 발길만 돌릴 뿐”이라고 한탄했다.

또 그는 “어제도 이곳에서 기자회견이 있었는데, 그땐 이마트 직원이 나와 여러분의 행동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했다”며 “왜 그렇게밖에 해석하지 못하는지, 너무 마음이 슬펐다”고 말했다. 이어 “이 억울한 청년의 죽음을 결코 망각하지 말고 우리사회가 알아야 한다”며 “원청 이마트가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도록 우리가 촉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장은 “젊음을 꽃피우지도 못한 청년들이 산업현장에서 쓰러지고 있다”며 “2년 전 구의역 사고를 접한 우리는 비통했고, 안전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잔인한 현실에 반성했다. 하지만 그 잔인한 현실은 오늘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고에 대해 이마트는 책임을 지겠다는 아무런 말도 없다. 우리사회가 청년노동자들을, 사람을 대하는 태도인 것만 같아 비통하다”고 성토했다.

최은철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28일 꽃다운 나이에 숨진 이 청년은 이마트 직원도 아니고, 이마트에서 무빙워크를 맡긴 티센크루프 업체도 아니다”라며 “하청에 하청을 받은 재하청업체의 직원”이라고 지적했다. 최 본부장은 “이마트 정직원이나 고위직에게 사고가 발생했다면 이렇게 떳떳하게 다음날 장사를 할 수 있었겠나 싶다”며 “더 이상 정부기관은 이 사태를 방치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족, 친구들, 노동·청년단체 관계자들은 이마트 사고현장으로 내려가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명수씨가 숨진 무빙워크 앞에 들고 간 국화꽃을 내려놓았다. 금세 수많은 국화가 그곳에 쌓였다.

한편, 미루어졌던 발인은 오는 31일 오전에 진행된다. 기자회견 이후 이마트 관계자들은 장례식장을 방문할 예정이며, 가족과 사측은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단독] ‘무빙워크 사망’ 이군, 안전교육 시간은 ‘1분’... 교육일지 서명 조작 의혹도
■이마트 ‘무빙워크’ 끼어 숨진 특성화고 출신 21살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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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민간인 사찰’ 폐해에도…경찰청 ‘정보국 폐지 불가’ 버티기

[단독] ‘민간인 사찰’ 폐해에도…경찰청 ‘정보국 폐지 불가’ 버티기

등록 :2018-03-30 05:03수정 :2018-03-30 08:51

 

 

정보경찰 개혁소위 권고안
경찰청 정보국·정보과 폐지 등 전달
“조직 유지되는 한 오남용 재발 위험”
시민사회서도 사개특위에 폐지 의견

경찰청 수용 난색, 개혁의지 의심
경찰대 출신 중심 정보라인들 반발
“내부 논의 더 필요” 수용 뭉기적
‘정부부서 통제권 밖 아닌가’ 지적도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이명박 정부 시기 경찰의 민간인 사찰 청와대 보고 문건 파문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경찰청 자문기구인 경찰개혁위원회 정보경찰개혁소위원회(정보경찰 개혁소위·위원장 서보학)가 경찰에 ‘본청 정보국과 일선 경찰서 정보과를 폐지하고 기존 정보과의 업무는 기능별로 해당 부서에 이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개혁안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경찰청은 정보국 폐지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29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정보경찰 개혁소위는 △경찰청 정보국 폐지 △경찰서 정보과 폐지 △국민 일반에 대한 사찰 활동 폐지 △정보 생산 실명제 및 문서 보존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은 개혁안을 마련해 최근 정보경찰 개혁회의 때 경찰청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보경찰 개혁소위 위원들은 경찰청 정보국 및 각 지방경찰청의 정보과, 일선 경찰서의 정보과가 폐지돼야만 무분별한 민간인 사찰 등 정보경찰의 일탈을 막을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단일 지휘 계통을 통해 각종 정보보고를 취합하고 보고 문건을 생산하는 조직 체계가 유지되는 한, 언제든 정치권력에 의한 오남용이 벌어질 위험성이 남아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 이명박 정부 당시 경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선 등이 깨알같이 기록된 사찰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최근 드러난 바 있다.(<한겨레> 3월22일치 1·6면) 당시 경찰의 사찰 대상은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야권 인사 다수였다. 그러나 현재 경찰청 간부들은 문건의 작성 사실 자체를 모르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경찰청 정보국을 중심으로 한 정보경찰의 독자적 생산-보고 체계가 가동되고 있어 전체 경찰 조직 차원에서의 통제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정보경찰 개혁소위는 범죄 정보의 수집, 집회·시위 등 집단 사태의 관리, 대외 협력 업무 등 경찰 업무에 꼭 필요한 정보 업무를 해당 부서(수사국, 경비국, 기획조정관실)로 이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무분별한 정보 수집의 근거가 됐던 ‘치안 정보’, ‘정책 정보’, ‘신원조사’ 등 업무는 모두 폐지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경찰은 대통령령으로 규정한 직제를 근거로 정치·경제·노동·사회·학원·종교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치안 정보와 정책 정보를 수집해왔다. 사실상 전방위 사찰이 이뤄질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었던 셈이다.

 

또 경찰이 수집한 정보는 현재 ‘열람 후 폐기’ 원칙으로 운영되고 있어 어떤 정보가 어떻게 수집되는지 사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보경찰 개혁소위는 경찰관이 정보 수집을 하는 경우 신분을 공개하고, 국가안보 등 예외적 사안에 대해서만 비공개 정보 수집 활동을 허용하라고 했으며 경찰 수집 정보는 폐기하지 않고 보관하되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공개하라고도 권고했다.

 

그러나 경찰청은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경찰 정보국의 각종 개혁을 전향적으로 검토중이지만 (정보국 폐지 등은) 현재 어떻게 확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아직 내부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경찰 내부에선 경찰대 출신을 중심으로 한 ‘정보국 라인’의 반발이 거센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국은 경찰 내부의 핵심 보직으로 승진과 보직 관리 등에서 가장 선호되는 직렬이다.

 

시민사회에서도 정보경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8개 시민단체는 지난 14일 “경찰의 정보 수집 분야를 범죄 예방과 범죄 수사 정보로 제한하고 경찰 정보국을 폐지하라”는 의견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전달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38365.html?_fr=mt1#csidx0058431a7c70d41bc0589a867ec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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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아픈 역사라도 기록하고 기억해야…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
 
임병도 | 2018-03-30 09:52: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노수복 할머니는 42년 만에 한국에 있는 동생과 위성중계로 만났다. 당시 할머니가 태국에 있었던 이유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 갔기 때문이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나, 광산 노가, 노수복이. 안동군 풍천면 광덕리 안심부락. 내 동생 노수만이, 여동생 노순음이.”

1984년 3월 할머니 한 분이 방콕에 있는 한국 대사관을 찾아왔습니다. 태국인처럼 보였던 할머니의 입에서는 어눌한 한국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태국에서 40년 넘게 살았던 할머니의 이름은 노수복, 한국에서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한다는 소식에 동생을 만나기 위해 한국 대사관을 찾은 것입니다.

1984년 3월 12일 노수복 할머니는 태국의 BB TV 스튜디오에서 위성중계를 통해 KBS 스튜디오에 있는 동생 노순음씨와 막내 동생 국현씨를 TV 화면으로 만납니다.

30여 분간의 화면 상봉을 했던 할머니는 두 달 뒤인 5월, 42년 만에 고국땅으로 돌아와 동생과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일본 순사에게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됐던 노수복 할머니’

 

▲노수복 할머니의 강제 동원 및 위안소 이동 경로

 

1921년 경북 안동군에서 태어난 노수복 할머니는 가난 때문에 14살의 나이에 한센병 환자에게 시집을 갑니다. 혹독한 시집살이와 배고픔에 친정으로 도망쳤으나 다시 아버지에게 쫓겨나, 식모살이를 하러 부산으로 갑니다.

1942년 가을, 부산 근교의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던 노수복 할머니는 갑자기 나타난 일본 순사에게 붙잡혔습니다. 할머니는”용서해 달라”고 빌면서 잡혀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40여 일 가량의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은 ‘싱가포르’였습니다.

“막사로 가서 방을 하나씩 배정받은 후 조금 있으니 장교 한 사람이 들어왔다. 나는 ‘살려 달라’고 매달리며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몇 차례 실랑이 끝에 나는 매를 맞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옥 같은 ‘위안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군인들의 옷을 빨거나 청소를 해야 했고, 오후에는 탄약통 등을 져 나르는 중노동을 했다. 어떤 때는 하루 60여 명의 병사들을 맞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이런 날은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노수복 할머니의 증언)

싱가포르에서 7.8개월을 지낸 노수복 할머니는 군용 트럭을 타고 다시 방콕으로 이동합니다. 방콕에 억류됐던 노수복 할머니는 일본군이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영국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됩니다. 당시 포로수용소에는 태국이나 버마에서 온 조선인 위안부가 무려 200여 명이나 됐습니다.

전쟁이 끝났지만 돌아갈 곳이 없었던 노수복 할머니는 포로수용소를 탈출한 뒤 말레이시아와 태국 등지를 전전한 끝에 태국 핫야이에 정착해 결혼도 하고 가족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시도 고향을 잊지 못했습니다.

 

▲서울시가 기획하고 서울대 연구팀이 발간한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2”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의 처절한 증언과 생생한 기록 등이 담겨 있다. ⓒ서울시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노수복 할머니의 이야기는 서울시와 서울대인권센터 정진성교수연구팀이 만든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 사진과 자료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이야기”에 실린 내용입니다.

서울시는 2017년 국내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사례집을 발간했습니다. 이후 노수복 할머니를 비롯한 6명의 피해자 증언과 4건의 위안부 관련 주제를 담아 이번에 새롭게 발간했습니다.

기존 증언집이 피해상황 설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위안부 이야기’는 식민지 사회에서 어떠한 생활을 하다가 끌려가게 되었는지부터 멀고 먼 귀환 여정, 그리고 귀환 후 생활까지 상세히 담겨 있습니다.

또한, 전쟁 수행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기업에 의해 관리되고 이용당한 ‘기업 위안부’ 피해 여성들과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 피해를 증언하고 일본의 가해책임을 물었던 남・북한, 중국, 대만, 필리핀 피해 여성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도 포함됐습니다.

 

▲아시아 각 지역으로 강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 그들에 대한 화해와 치유는 오직 진정한 사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서울시

 

과거에는 할머니들의 증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가 세상 밖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생존자가 줄어들면서 증언을 기록해 사료로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록물의 중요성은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등재를 방해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과 중국, 일본, 타이완 등 9개국은 공동으로 일본군 위안부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했습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분담금 지불을 거부하며 일본군 위안부 자료 등재를 막았습니다. 결국,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재는 보류됐습니다.

아픈 역사라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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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정상회담, 언론이 놓친 이야기

시진핑 주석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 김정은 위원장 “첫 해외 방문지 중국 마땅”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조선)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방중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의 이목이 온통 북중 두 정상에게 쏠렸다.

관례적으로 비공식 방문에선 볼 수 없던 중국인민해방군 육·해·공군 명예위병대와 군악대의 사열을 실내인 인민대회당에서 거행하는가 하면, 정상회담에 이은 인민대회당에서의 환영연회에는 시진핑 주석 내외는 물론 중국 리커창 국무원 총리를 비롯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고위급관료들이 총출동했다. 중국 외교 역사상 외국 국가원수를 위한 환영연회를 이처럼 준비한 것은 초특급 예우라 할만하다.

앞서 김정은 위원장 일행이 탄 기차가 북중 국경도시 단둥에 도착하자 역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쑹타오 대외연락부장이 마중 나와 극진히 예우했다. 쑹타오 부장은 지난해 11월 시진핑 주석의 특사로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 결과 통보차 북을 방문한 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회담록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연회장에서 두 정상이 한 연설을 보면 대략적인 기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을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라고 부르며, 특별한 시기에 이루어진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방문이라고 했다. 여기서 ‘특별한 시기’란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대한 의의’에 대해 북한(조선)과 중국 쌍방이 “두 나라 관계를 고도로 중시하고 있다는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으며 쌍방 사이의 의사소통을 심화시키고 협조를 강화하며 협력을 추진하는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나의 첫 외국 방문의 발걸음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가 된 것은 너무도 마땅한 것”이라고 화답했다.

북중관계에 대해 시 주석은 “전통적인 중조 친선은 두 당, 두 나라 노세대 영도자들께서 친히 마련하고 품을 들여 키우신 것”이라고 언급했고, 김 위원장은 “조중 두 나라 선대 영도자들께서 물려주신 고귀한 유산이며 공동의 재부인 조중 친선의 귀중함을 다시금 되새겨보게 되”었다고 답했다.

회담 성과와 관련해 시 주석은 “두 나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올려세우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을 추진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김 위원장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잇닿아 있는 형제적 이웃인 두 나라에 있어서 지역의 평화적 환경과 안정이 얼마나 소중하며 그것을 쟁취하고 수호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값비싼 것인가를 똑똑히 새겼다”고 언급했다.

시 주석은 다소 긴 연설에서 김일성 주석이 40여 차례 중국을 방문해 모택동 주석과 주은래 총리를 만났던 사실을 언급하면서 “내가 기억하기에는 1983년 6월 김정일 총비서 동지께서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나의 아버지(시중쉰)가 김정일 총비서 동지를 역전에서 맞이했고 모진 더위를 무릅쓰고 고궁참관에 동행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끝으로 시 주석은 “친선적인 인방이며 친근한 동지로서 우리는 조선 동지들이 정치적 안정을 수호하고 경제발전을 추동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굳게 지지하며 조선의 사회주의건설 위업에서 새롭고 보다 큰 성과를 끊임없이 거둘 것을 축원하며 이를 확신”한다며, “나는 전통적인 중조 친선을 끊임없이 강화하고 대를 이어 계승하기 위해, 중조 두 나라의 융성번영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 동지와 이설주 여사의 건강을 축원해, 이 자리에 참석한 중조 쌍방 전체 동지들의 건강을 위해” 잔을 들자고 건배를 제의했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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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 소장의 모든 기사가 연재기사에

[알림] 한호석 소장의 모든 기사가 연재기사에
 
 
 
편집국 
기사입력: 2018/03/30 [03: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유태영 박사와 시사 대담을 나누는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노길남 기자

 

한호석 소장이 개벽예감 연재를 시작한 것은 2012년 2월부터입니다. 하지만 자주시보 이전 기사들은 자주민보 폐간 문제로 보기 어려웠는데 최근 독자들의 요청이 있어 모든 기사를 자주시보에서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자주민보 관련 재판에서 예정웅 정세분석가의 글은 이적표현물로 판결을 받았지만, 한호석 소장의 글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다시 찾아 올렸습니다.

 

한호석 소장의 모든 기사는 자주시보 첫화면 맨 오른쪽 칸 중간 단에 있는 '연재기사' 꼭지에 있습니다. 기사제목을 딸각하면 기사만 뜨고 '한호석의 개벽예감'이라는 연재제목을 클릭하면 모든 기사 목록이 뜹니다. 

 

이번에 다시 모아 올리면서 살펴보니 한호석 소장의 분석이 매우 정확했음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으며 '북의 인공지능 전투함', '세계에서 가자 조용한 잠수함이 북에 있다' 등등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기사들이 대부분이었으며, 한호석 소장이 미리 분석 소개했던 북의 이런 무기들이 후에 적지 않게 현실로 증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북에서 공개하지 않은 것도 앞으로 공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결국 북의 군사력은 미국, 러시아도 압도할 세계 최강이라는 것입니다. 

 

외교는 결국 나라의 힘이 좌우합니다. 그 힘의 핵심은 군사력입니다. 한호석 소장이 분석한 북의 군사력을 살펴보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경천동지할 한반도 대격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분석 전망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애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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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주 집 팔라더니…청 참모·장차관 24명 여전히 다주택자

비거주 집 팔라더니…청 참모·장차관 24명 여전히 다주택자

등록 :2018-03-29 20:37수정 :2018-03-29 22:48

 

 

다주택 꼬리표 못 뗀 공직자들
청와대는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등 
핵심참모 52명 중 14명 다주택 
김상곤 부총리 등 장관급 10명

문 대통령은 홍은동 자택 처분 
김현미 국토장관도 올해 매각 

부동산 정책 이끄는 국토부 
1급 이상 8명 중 4명 다주택 
경제 컨트롤타워 기재부도 3명
※ 누르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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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기준으로 고위 공직자 상당수가 여전히 2주택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과열을 억제하겠다며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고강도 규제를 쏟아냈지만, 고위 공직자들도 아직 다주택자 꼬리표를 못 떼고 있는 셈이다.

 

29일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고위 공직자(1급 이상) 정기 재산변동 사항'을 보면, 정부 부처 장차관급과 청와대 핵심 참모진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상당수가 다주택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들이 보유한 주택은 서울 강남·송파구, 세종시 등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곳들에 쏠려 있다.

 

청와대 소속 1급 이상 공직자 52명 가운데 다주택자는 14명이나 된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아파트 두채(7억700만원·5억7천만원)를 갖고 있고, 박종규 재정기획관은 자신과 배우자 명의로 서울 강동구 고덕동(8억2400만원)과 서초구 우면동(7억3600만원)에 각각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다주택자 비중이 너무 높다는 비판이 일자, 청와대는 이날 ‘실거주 목적’ 또는 ‘매각 추진중’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김상곤 교육부총리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 등 장관급 인사 10명도 다주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이 가운데 절반(5명)만 부동산 투기 우려가 있는 조정대상지역(서울 25개 자치구·세종·성남 등 40곳)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강경화 장관과 박은정 위원장은 주택을 3채나 보유한 3주택자였다. 박 위원장 쪽은 지난 2월 종로구 오피스텔을 팔아 현재는 2주택자라고 설명했다.

 

최근 주택 처분 문제를 놓고 야당의 비판을 받았던 김상곤 교육부총리는 본인 명의로 강남구 대치동에 래미안팰리스 아파트(11억4400만원)와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양아파트(5억3200만원)를 보유하고 있다. 김 부총리는 지난 1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매각 의사를 밝히라고 요구하자, “강남 아파트를 부동산에 매물로 내놓았고,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주택정책을 이끄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경기 연천군 단독주택을 동생에게 처분해 간신히 다주택자 꼬리표를 뗐지만, 지난해 12월31일 기준으로 작성된 이번 재산변동 내역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앞서 김 장관은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이번 대책의 핵심은 집이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 팔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양도소득세가 중과되는) 내년 4월까지 시간을 드렸으니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니면 좀 파시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장관의 강력한 권유에도 국토부는 1급 이상 고위 공직자 중 다주택자 비중이 높은 부처로 꼽힌다. 김 장관을 제외하고도 1급 이상 간부 8명 중 절반(4명)이 다주택자였다.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 고위 공직자 9명 중에서도 다주택자가 3명이나 된다. 특히 구윤철 기재부 예산실장은 서울 강남과 분당, 세종, 마포 등에 4채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4주택자’였다. 물론 주택을 처분해 다주택자 꼬리표를 뗀 경우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빌라(2억8500만원)를 처분해 경남 양산 자택 하나만을 보유한 1주택자가 됐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배우자 명의 부산 해운대 아파트(2억1900만원)를 처분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다른 공직자들은 지방이나 비강남 주택을 먼저 처분하고, 강남4구의 고가 주택을 보유해 소위 말하는 ‘똘똘한 한 채’ 흐름에 편승하는 것 아니냐는 눈초리를 받고 있다. 조국 수석은 부산 아파트를 판 대신 서초구 방배동 아파트(7억7400만원)를 보유하고 있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동작구 상도동 래미안아파트(4억8200만원)를 처분하고 강남구 자곡동 래미안강남힐즈 아파트(8억300만원)를 남겨뒀다. 손병석 국토부 차관은 세종시와 서초구 방배동의 주택을 처분한 자금으로 강남구 대치동 쌍용2차아파트(16억5000만원)를 부부 공동 명의로 새로 매입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용기 의원(자유한국당)이 1급 이상 공직자 655명의 재산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보면, 2채 이상 다주택자는 275명(약 42%)이었다. 또 강남4구에 보유한 고위 공직자의 주택은 289채에 달했고, 3주택 이상 보유자도 80명이었다.

 

허승 노지원 김경욱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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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다시 경찰서 앞에 선 YTN 기자들

류제웅 부인 김재련, 15기 기자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당히 조사받을 것"
송창한 기자 | 승인 2018.03.29 13:21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류제웅 전 YTN기획조정실장의 부당한 취재압박을 비판한 YTN 15기 기자들이 류 전 실장의 부인 김재련 변호사로부터 고소를 당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김 변호사는 YTN 15기 기자들이 "류제웅과 최남수, 고소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게시글을 작성하였다"며 이들을 고소했다. 15기 기자들은 "성명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며 경찰서로 들어갔고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이하 YTN지부) 조합원들은 "9년 전 상황으로 돌아갔다"며 울분을 토했다.

29일 오전 서울 마포경찰서 앞에서는 YTN지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YTN 15기 기자들이 류제웅 전 YTN기조실장의 부인 김재련 변호사로부터 고소를 당해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에 출석했기 때문이다.

29일 오전 서울 마포경찰서 앞에서는 YTN지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YTN 15기 기자들이 류제웅 전 YTN기조실장의 부인 김재련 변호사로부터 고소를 당해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에 출석했기 때문이다.(사진=미디어스)

류 전 실장이 이른바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제보를 받고 이를 삼성측에 알린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후,  YTN 15기 기자들은 지난 9일 사내게시판에 성명을 내어 류 전 실장이 사회부장 재직시절 위안부 문제와 세월호 사건에 대해 부당한 취재 압박을 가했다고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YTN 15기(김경수·우철희·이형원·임성호·최아영) 기자들은 성명에 "공교롭게도 당시 류제웅 부장의 아내인 김재련 변호사가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관련 업무를 다루는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이었다"며 "이후에는 졸속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의 이사까지 지냈는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측 시민단체는 김 변호사를 '권력 지향적'인물로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해당 구절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5기 기자들을 고소했다.

또한 김 변호사는 고소장에서 "피고소인들은 류제웅의 직장 후배들로 류제웅과 최남수, 고소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이 사건 게시글을 작성하였다"면서 "'최남수의 부적격함이 자명', '류제웅 실장이 상징하는 보도 적폐 등의 표현을 사용해 최남수와 류제웅에 대하여는 노골적인 비방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본인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장에서 류 전 실장, 최 사장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15기 기자들에게 함께 덧씌웠다.

29일 오전 서울마포경찰서 앞에 김재련 변호사로부터 고소를 당한 YTN15기 기자들이 서 있다. 왼쪽부터 임성호 기자, 이형원 기자, 김경수 기자, 우철희 기자, 최아영 기자. (사진=미디어스)

15기 기자들은 경찰서 앞에서 "성명은 한 치의 거짓도 없다"며 당당히 조사를 받고 나오겠다고 말했다. 김경수 기자(YTN 15기)는 "우리 5명은 잘못된, 부당한 지시에 부끄러워했고 괴로워했다. 그걸 글로 올렸을 뿐"이라며 "중요한 내용을 보지 못하고 성명에 들어간 표현을 문제 삼아 자신의 남편 회사 후배 5명을 고소한 김 변호사의 상황인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이어 "비방 목적이 아니었고,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당당하게 조사받겠다"며 "이 많은 사람들이 경찰서에 나온 상황이 YTN의 현 주소"라고 총평했다.  

우철희 기자는 "정작 반성해야할 사람들은 부인 뒤에 숨고, 휴가를 갔는데 우리가 왜 (경찰서에)와있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세월호'라는 세 글자가 나오면 스스로 부끄럽고 유족들께 죄송한 마음을 느낀다. 더 이상 그런 보도를 하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우 기자는 어제(28일) YTN주주총회 현장에서 최남수 사장에게 15기 기자들의 피고사실을 알리고, 고소장에 최 사장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최 사장에게 물었다. 최 사장은 "사내게시판을 보고 사실을 알았다", "고소장을 보지 못했다. 상황을 보고 파악해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 우 기자는 이날 현장에서 "지금 이 시간까지 (최 사장에게)온 연락이 없다"며 "(김 변호사의 고소는)최 사장이 뒤에 숨어 본인을 비방해 고소하고 싶었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형원 기자는 "어제 주총장에서 '순진한 후배들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말이 또 나왔다"며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들을 이용한 사람은 누구인가? 세월호 본질을 흐리는 물타기를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기자는 "최남수 사장 반대 투쟁의 본질을 흐리기 위해 순진한 후배들 그만 좀 이용하라"며 "우리가 걱정된다며 최 사장 체제의 형사고소 과정을 왜 그냥 보고만 있나. 최남수 옆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 우리와 함께 해주면 그만"이라고 YTN 간부들을 질타했다.

임성호 기자는 류 전 실장의 부당한 취재지시, '삼성제보토스' 등이 성명을 작성하게된 직접적인 계기였다며 "이런 사람들과 이들을 비호하는 최남수 사장이 부적격 하다는 것을 성명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그것 외에는 특정인을 비방하거나 평판을 깎아내리기 위해 썼던 글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최아영 기자는 "가장 무서운 건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한 때 우리가 따랐던 선배들이 양심 고백을 한 후배들에게 법적 칼날을 들이댔다는 무자비함, 그리고 (최 사장)본인 때문에 직원들이 고소를 당했는데 그 사실을 사내게시판을 통해 확인했다는 무책임함과 무관심이 더 무섭다"고 토로했다. 이어 "우리가 쓴 성명은 양심고백이었고 한 치의 거짓도 없다. 여기 계실 분들은 그 분들이 돼야 한다"고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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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시간 검찰 수사 보도, 조선일보는 특별했다

[비평] 모두 ‘박근혜-최순실 만남’에 주목할 때, 괴담 주목한 조선…자유한국당 논평 주장과 비슷

정상근 기자 dal@mediatoday.co.kr  2018년 03월 29일 목요일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는 세월호 참사 당일, 침실에서 관련 보고를 받았다. 구조 골든타임이 지난 10시20분의 상황이다. 그리고 이후 2시15분까지 행적은 모호하다. 최순실씨가 2시15분 경 검색 절차도 없이 청와대 관저로 들어왔고 직후 박근혜·최순실씨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 비서관들과의 회의를 통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다. 그리고 화장과 머리손질을 한 이후 중대본을 방문해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발견이 힘드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 다시 관저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후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 

28일 검찰이 발표한 ‘세월호 참사 보고 시간 조작 사건’ 등의 수사 결과를 요약하면 위와 같다. 참사 이후 국회 질의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과정 등에서 당시 박근혜 청와대가 내놨던 해명과는 차이가 크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은 서면보고만 11차례에 이르렀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오후와 저녁, 총 2회 보고서를 출력해 박근혜씨에게 전달했을 뿐이다. 

2016년 11월19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간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은 어디서 뭘 했는가? - 이것이 팩트입니다’ 등을 통해 주장했던, 10시 첫 보고, 10시15분 첫 지시 주장도 거짓이었다. “참사 당일 외부인이 청와대를 방문한 사실은 없다”던 정연국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말도 거짓이었다. 최순실씨가 청와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3월29일자. 한겨레 2면.
3월29일자. 한겨레 2면.
 

검찰의 발표대로라면, 세월호에 탑승했던 수백명의 승객들은 죽어가고 있었고, 당시 대통령은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청와대는 우왕좌왕하다 골든 타임을 놓쳤다. 하지만 청와대와 그 관계자들은 이를 덮고자 문서를 불법 조작하고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위증을 했다.

 

29일자 언론은 대체로 이 점에 초점을 맞췄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니었고 최순실은 단순한 조언자가 아니었다”고 비판했고 한겨레 역시 사설에서 “황당하고 참담하다”, “말문이 막힌다”고 개탄했다. 한국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 국민일보 모두 박근혜씨가 최순실씨와 참사 당일 관저에서 회의를 했다는 점을 제목으로 뽑았다.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만은 달랐다. 조선일보는 관련 보도를 지면에 2개 전했는데 10면 윗 보도에는 “문 정부 검찰 “성형 시술·굿판…세월호 7시간 괴담 실체 없다””는 제목을 뽑았다. 기사의 시작도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의혹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문재인 정부의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고 나온다. 

 

3월29일자. 조선일보 10면.
3월29일자. 조선일보 10면.
 

반면 타 매채의 검찰 발표와 관련한 지면의 첫 기사는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경향신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16일 오후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청와대 관저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일보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관저 침실에서 휴대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 승객 구조의 골든타임 후에야 첫 상황보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동아일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최순실씨와 회의를 했고, 최씨의 제안에 따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신문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혹인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최순실씨가 당시 청와대 관저에 있었던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새롭게 드러났다” 

중앙일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최순실씨와 의논한 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결정했다고 검찰이 28일 밝혔다” 

한겨레 “‘박근혜 청와대’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의 부실 대처를 은폐하기 위해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시각을 20분 앞당긴 오전 10시로 조작한 것으로 28일 드러났다” 

한국일보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가라앉던 날,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둘러싼 수수께끼 일부가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 

 

3월29일자 경향신문 1면.
3월29일자 경향신문 1면.
 

반면 조선일보는 첫 기사에서 검찰 수사 결과에 위와 같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대신 “‘세월호 7시간’ 의혹은 2016년 말에서 지난해 초까지 이어진 탄핵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중요한 요소였다”며 “(검찰조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을 때를 제외하고 청와대 관저에 머물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당시 박근혜씨를 둘러싼 ‘특정 인물과의 밀회’ 논란, ‘성형 시술’ 논란, ‘굿판’ 논란은 ‘괴담’이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하단에 “박 전 대통령, 세월호 참사 당일 최순실과 관저서 대책회의” 제목의 별도 보도를 내긴 했지만, 이번 검찰 조사 결과 발표에서 ‘괴담’에 주목도를 더 높여 편집한 것은 조선일보가 유일하다.

또한 조선일보가 앞세운 해당 보도는 28일 이 사안과 관련해 발표된 자유한국당 논평과도 맞닿아 있다. 자유한국당 홍지만 대변인은 “검찰의 세월호 7시간 의혹 수사결과 발표에 경악한다”며 “7시간을 두고 정상적인 근무 상태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말, 정윤회 씨와의 밀회설, 종교의식 참석설, 프로포폴 투약설, 미용 시술설 등 온갖 유언비어가 나라를 뒤흔들었다”고 주장했다. 

홍 대변인은 이어 “세월호 7시간을 탓하며 광화문에서 촛불을 태워 올린 그 많은 세력과 사람들은 무엇이냐”라며 “박 전 대통령은 ‘구조 골든타임’이 지난 뒤에야 참사 발생을 알게 됐고, 최순실 씨가 청와대로 오기 전까지 국가안보실장,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 지시를 한 번씩 한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도 하지 않았다. 업무를 잘못했다고 탓을 했으면 됐지 7시간의 난리굿을 그토록 오래 벌일 일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최순실 씨를 청와대에서 만난 것에 대해 ‘사전에 예약된 만남’일 뿐”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불쌍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조선일보는 지난 2014년 7월18일 최보식 칼럼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에서 “세간에는 ‘대통령이 그날 모처에서 비선과 함께 있었다’는 루머가 만들어졌다”며 “대통령을 둘러싼 루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증권가 정보지나 타블로이드판 주간지에 등장했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스스로 격을 떨어뜨리는 걸로 여겼다. (중략) 때마침 풍문 속 인물인 정윤회씨의 이혼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더욱 드라마틱해졌다”고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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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시진핑 북중혈맹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3/29 14:20
  • 수정일
    2018/03/29 14:2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정은-시진핑 북중혈맹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3/29 [06:1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 부부의 양위안자이(양원재) 오찬 기념 사진     ©조선중앙통신

 

때로는 사진 한 장, 그림 한 편이 백마디 천마디로 말을 대신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도 표현한다. 

지난 26일, 27일 전격 진행된 북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그렇게 강조했던 북중혈맹관계 강화가 앞으로 흔들림 없이 추진될 것이란 느낌을 준 사진은 국빈관 양위안자이(養源齋)오찬장에서 두 정상 부부가 만나고 헤어질 때 나눈 인사 장면이었다.

 

▲ 북중정상 부부가 양위안자이(양원재)에서 자를 마시는 모습   
▲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 부부의 화기애애한 국빈관 양원재 오찬    

 

이미 북중정상회담 후 성대한 만찬연회를 가졌음에도 가장 귀한 손님에게만 문을 여는 양위안자이(양원재)에서 북중 정상 부부는 차를 마시고 오찬을 나누었는데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실무적이고 의례적 측면이 강한 만찬과 달리, 격이 없이 정을 나누기 위해 시진핑 주석이 특별히 마련한 오찬이었다.

시진핑 주석이 이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중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짐작케 하는 행보였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양원재 오찬 자리를 마련하기는 했다. 하지만 양위안자이에서 만나고 헤어질 때 나눈 두 정상 부부의 인사는 더없이 친근하고 따뜻했다. 

 

북중관계가 새로운 높은 단계로 확고하게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 양원재 오찬을 위한 북중 정상의 만남 , 시진핑 주석의 미소가 더 없이 따뜻하다.

 

 

▲ 양위안자이(양원재) 오찬을 마치고 시진핑 주석과 헤어짐이 아쉬워, 찬 안에서도 손을 흔드는 다심한 김정은 위원장 부부 , 리설주 여사의 단아한 미소가 특히 인상적이다. 중국 누리꾼(네티즌)들도 단번에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며, 한류스타 송혜교처럼 곱다는 반응까지 내놓았다. 리설주 여사는 남측 대표단을 만날 때에도 더없이 따뜻하고 환한 미소로 환영해준 바 있다.  
▲ 차에 탄 김정은 위원장 부부를 향해 친근한 정을 다해 손을 흔드는 시진핑 주석 부부, 신진핑 주석의 따뜻한 미소에 북중관계의 밝은 앞날이 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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