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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 ‘민간교류 보장, 제도화’ 선언해야”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김치관 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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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7  10: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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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민간교류에 앞장서온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과 12일 광화문 한 찻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정부 간에는 봄이 오고 있지만 민간은 봄이 오고 있지 않다.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이라 생각한다.”

오랫동안 대북 지원협력사업에 앞장서온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12일 정오 서울 광화문 한 찻집에서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남북교류단체들의 답답한 심경을 ‘춘래불사춘’이라는 사자성어로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5월 10일 이후부터 7,8개월간 단 한 건의 물건도 들어간 적이 없고, 단 한 명의 민간인도 방북하지 못해 오히려 지난 보수정부 보다 더 심한 상황이 지속됐다”는 것이고, 올해들어 남북 당국간 관계가 급진전되고 있지만 민간교류는 여전히 막혀있는 상황이다.

평양 예술공연에 대해서도 “정부 바뀌고 민간교류가 먼저 재개되지 않겠는가 기대감도 사실 있었는데, 조용필 선생이 먼저 갈 줄, 탁현민 행정관이 먼저 갈 줄 누가 생각했겠느냐”며 “4월 1일, 3일 공연 앞자리에 앉은 남측 대표단을 보면 특이한 점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일부가 없다. 또 하나는 민간급 대표가 없다. 그냥 정부 간의 교류다”라고 짚었다.

강영식 총장은 “(지난해) 6월 2일 새로운 대북 유엔제재가 결의됐고 거기에 한국 정부가 동의했다는 이유로 북이 민간교류를 전면적으로 중단해 버렸다. 북은 신정부의 대북정책이 변함없다는 정치적 이유로 민간교류도 같이 틀어막고 있는 상태”라며 “우리 남측의 민간단체가 제안한 사업들에 대해서 ‘하자, 말자, 어떻게 하자’는 입장이 여전이 없다”라고 북측의 소극적 기류를 전했다.

그는 “6.15남측위의 공동위원장단회의, 평양국제마라톤대회, 평양과기대 졸업식에 형식은 북쪽 초청장이 안 왔다는 거지만 우리 정부의 태도는 상당히 유보적이었다. 유보적이라는 말은 부정적이라는 얘기”라며 “조용필 선생이 가서 노래하고 레드벨벳 가서 노래하는 것은 남북관계와 정상회담 분위기를 좋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민간이 가서 6.15 18주년 기념행사 재개를 논하고 마라톤을 뛰는 것은 남북관계 분위기를 이어가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는 거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민간이 살얼음판에 돌을 던질 수 있다’라는 관념이 있는 거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갖는 정부 우선주의, 정부 독점과 뭐가 차이가 있냐”며 “소위 민관협력이 아니라 ‘선관후민 先官後民’ 정책과 무슨 차이가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오는 27일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내 공약처럼 다방면의 교류협력이 중요한데 그동안의 우리 정부는 그걸 못했다. 그간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의 종속수단으로 민간을 규제할 뿐이었다. 내가 정권을 맡게 돼 그건 사과한다. 미안하다”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유감을 표하고 “앞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민간의 자율성을 전적으로 보장할 거고, 정부와 관계없이, 정치상황과 관계없이 민간단체의 자율성을 보장할 거다. 당신들도 그렇게 해줘라”라고 당부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민간단체와 지방자치단체가 손잡고 북한 농업경제개발구를 공동개발하는 ‘통일농업특구’ 개발사업, 한반도판 유니세프(Unicef)인 ‘코리아 아동기금’과 한반도식량기구(KADO)의 남북 공동설립 등을 제시하며 “일방이 일방을 지원하는 개념을 넘어서 공동으로 한반도, 조선반도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하는 공동의 노력, 그 노력을 위한 공동의 조직, 그 담보를 위한 양 당국의 공동의 조직의 제도화, 이런 것이 돼야 소위 ‘교류협력의 업그레이드’고 ‘담대한 남북관계 개선’이다. 교류협력의 제도화, 평화의 제도화도 될 수 있는 그런 거다”고 말했다.

특히 ‘당국간 관계 개선’과 더불어 ‘민간교류 활성화’에 대해 “한반도 평화만들기의 중요한 한 축을 제도화하자는 진지한 제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민간교류에 대해서 담당하고 책임지고 있는 통일부가 나서야 되는데 오히려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두고 봅시다’하는 사고 가지고는 안 된다”며 “통일부가 과감하게 정상회담 준비위원회를 상대로 ‘평화로운 한반도 만들기’에 민간차원의 교류를 보장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적극 설득하고 의제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조만간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하면 북민협(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이라든지 인도지원단체는 북한인권법의 소관을 받고, 인도적 지원단체의 대북지원은 북한인권재단이 맡게 된다”며 “통일부 그 누구라도 문제라고 인정하지만, 북한인권법을 고친다거나 북한인권재단을 고치려고 하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6.15공동선언 발표 18주년 기념 남북해외 공동행사를 평양에서 민간이 주도하고 당국 대표단이 옵저버로 참가한 가운데 진행하자고 제안하고 “부당하게 폄하되었던 6.15남측위원회의 대표성을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새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면 진보적 통일운동 단체의 연대체로서의 6.15남측위원회가 보다 더 담대한 발상을 해야 한다”고 폭을 넓힐 것을 주문했다.

다음은 12일 정오 서울 광화문 한 찻집에서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과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조용필 선생이 먼저 갈 줄 누가 생각했겠느냐”

   
▲ 민간단체들이 처한 답답한 상황을 토로하고 있는 강영식 총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최근 들어 남북관계가 급진전하고 북미정상회담까지 예정돼 있다.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 보나?

■ 강영식 사무총장 :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해 5월은 말할 것도 없고, 불과 4개월 전만 해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도 정부 바뀌고 민간교류가 먼저 재개되지 않겠는가 기대감도 사실 있었는데, 조용필 선생이 먼저 갈 줄, 탁현민 행정관이 먼저 갈 줄 누가 생각했겠느냐.

한편으로는 좀 심란하기도 하지만, 그런 식의 생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 것 자체가 형식에서 벗어나서 상당히 획기적인, 우리 정부 표현대로 ‘담대한 발전’의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는 의미에서 고무적이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남북관계의 급진전에 비해서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이 정체되고 있다는 점에서 답답함은 있다. 정부 차원의 관계 발전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 싶다.

□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의 배경이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 여러 전문가들의 평가는 있겠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의 평화의지의 성과라고 본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을 반대하고 한반도 운명은 우리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결정해야 된다는 입장과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과의 대화를 꾸준하게 요청했던 결과로 본다는 의미에서 우리 정부의 성과라고 본다. 상당한 의미가 있다.

□ 남북 당국간 관계는 급진전 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6.15남측위원회의 공동위원장단회의나 평양마라톤대회 참가를 위한 방북을 우리 정부에서 연기를 요청한 걸로 알고 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나 지원단체들도 마찬가지 상황인가?

■ 그렇다. 단적으로 보면 4월초 평양공연이 ‘봄이 온다’ 아니냐. 그리고 그것은 완벽하게 정부 주도로 됐고, 4월 1일, 3일 공연 앞자리에 앉은 남측 대표단을 보면 특이한 점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일부가 없다. 또 하나는 민간급 대표가 없다. 그냥 정부 간의 교류다.

‘봄이 온다’의 성과를 무시하자는 건 아니고, 시작은 그렇게 했지만 앞으로도 그런 방식으로 가는 것은 대단히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구태여 대비하자면 정부 간에는 봄이 오고 있지만 민간은 봄이 오고 있지 않다.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이라 생각한다.

남북정상회담 전후로 우리 정부나 북한 정부가 차제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민간교류협력이 뭐냐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먼저 짚어 보겠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나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같은 민간단체들이 방북을 추진한 건가? 실제로 북한의 초청장을 받았나? 우리 정부가 방북 신청에 대해 연기를 요청하거나 불허한 건가?

■ 일단 현재는 공식적으로 민간교류에 대해서 북이 대응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딱 1년 전 상황인데, 제19차 평양의학과학토론회가 탄핵정국이던 5월 2,3일에 있었다. 여전히 박근혜 정부 기간이었지만 북에서는 민간교류를 재개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우리 대표단 10명에 대한 초청장을 보내왔다. 그러나 홍용표 당시 통일부 장관은 불허했다.

정부가 바뀌고 몇 년간 불허돼 왔던 접촉신청이 최초로 지난해 5월 29일 수리되면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말라리아 방역 물자를 개성 육로를 통해서 보내기로 했고, 6월 10일 우리 단체로서는 4년만에 대표단의 평양 방문을 준비했고 북의 초청장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때 정부의 입장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는 분위기였는데, 알다시피 6월 2일 새로운 대북 유엔제재가 결의됐고 거기에 한국 정부가 동의했다는 이유로 북이 민간교류를 전면적으로 중단해 버렸다. 북은 신정부의 대북정책이 변함없다는 정치적 이유로 민간교류도 같이 틀어막고 있는 상태가 작년 하반기 12월 31일까지 계속된 상태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5월 10일 이후부터 7,8개월간 단 한 건의 물건도 들어간 적이 없고, 단 한 명의 민간인도 방북하지 못해 오히려 지난 보수정부 보다 더 심한 상황이 지속됐다. 물론, 유진벨재단은 국제단체여서 예외다.

분위기가 역전된 건 1월 1일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올림픽에 참여하겠다고 하면서부터였다. 민간은 ‘민간이 봄을 여는 전령사가 된다’는 나름대로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거다. 적어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민간 차원의 지원이라든지 사회문화 교류도 이루어지지 않겠냐 기대해왔는데, 북은 당국간 회담에 굉장히 적극적인데 반해서 민간교류에서는 일체 반응이 없었던 거다.

□ 그래서 북측에서 초청장이 안 온 건가?

■ 그렇다. 아니, 초청장이 안 온 건 둘째 문제고 민간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전달하지 않은 거다. 굳이 있다고 하면 3.1운동 때 공동기념사를 보낸 것, 부활절 때 공동기도문을 보낸 정도다. 우리 남측의 민간단체가 제안한 사업들에 대해서 ‘하자, 말자, 어떻게 하자’는 입장이 여전히 없다.

유추해 보건데 갑자기 올림픽 참가를 준비하고 대남특사가 오고 대북특사가 올라가는 과정에서 소위 말하는 대남일꾼들, 대남기관들이 매달려 붙으니까. 또 북쪽도 오랜만에 일을 하다 보니까 우리 통일부처럼 정신이 없었던 거다. 그 과정에서 불확실한 민간차원의 교류를 재개하기 위한 준비에 시간이라든지 여력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4월말에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돼 나가면서 모든 일정이 정상회담 이후로 미뤄졌고 공식, 비공식적으로 ‘4월말 이후에 민간교류 재개에 대한 사업협의를 재개합시다’ 정도의 반응이 오고 있는 거다. 따라서 4월말 정상회담 잘 풀리고 당국 간의 판이 좀 정리되면 5월 이후에는 민간교류가 재개되지 않겠느냐 예상 정도는 할 수 있는 상황인데, 그것도 그때 가서 봐야 한다.

“통일부가 안보이고 민간이 안보인다”

□ 북쪽 입장이 그렇다면 남쪽 정부의 입장은 어떤가?

■ 중요한 것은 그 관계를 말하고 싶다. 통일부가 안보이고 민간이 안보이지 않나. 6.15남측위의 공동위원장단회의, 평양국제마라톤대회, 평양과기대 졸업식에 형식은 북쪽 초청장이 안 왔다는 거지만 우리 정부의 태도는 상당히 유보적이었다. 유보적이라는 말은 부정적이라는 얘기다.

즉, 조용필 선생이 가서 노래하고 레드벨벳 가서 노래하는 것은 남북관계와 정상회담 분위기를 좋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민간이 가서 6.15 18주년 기념행사 재개를 논하고 마라톤을 뛰는 것은 남북관계 분위기를 이어가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는 거다.

□ 혹시 사고라도 날까 우려하는 건가?

■ 이게 소위 말하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는 표현 아니냐. 북도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표현을 쓸 것이다. 그러면 ‘민간이 살얼음판에 돌을 던질 수 있다’라는 관념이 있는 거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갖는 정부 우선주의, 정부 독점과 뭐가 차이가 있냐. 소위 민관협력이 아니라 ‘선관후민 先官後民’ 정책과 무슨 차이가 있냐. 나는 그렇다고 본다.

□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고, 민간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텐데, 항의하거나 문제제기를 해 봤나?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민간단체와 밀접한 연결고리가 있을 법한데.

■ 현 정부의 민간교류에 대한 입장은 ‘대북제재의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도지원을 재개하겠다’는 것이고, ‘비정치적인 사회문화교류 정도는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9년 동안 보수정부에서 부당하게 훼손됐던 민간의 권리를 회복하고 민간의 자율성을 완벽히 보장하는 조치를 취한 적이 있나?

□ 그런 상황에 대해서 항의하거나 의사개진을 했나?

■ 계속적으로 정책제안 방식이라든가 해왔다. 물론 북한이 우리 민간단체들이 제안한 사업들에 대한 호응이 없는 상황에서 방북이라든지 물자지원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정부와 협의한 적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비정치적인 민간차원의 교류는 적절히 보장하겠다는 것 아니었나. 그러면 정부가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은 뭐냐. 선도적인 제안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예를 들어 10년 동안 중단돼 왔던 6.15공동행사의 재개 문제라든지, 중단돼 왔던 인도지원과 사회문화 교류사업의 재개를 정부가 보장하기 위한 선도적인 조치를 요청해왔던 거다.

하나의 예를 들면, 현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내세운 조치가 북한주민접촉신청을 적어도 2,3일 안에 수리해준다는 것 아니냐. 그런데 그게 조치냐? 원상회복인 거다.

그러면 예를 들어 여러 단체들의 평양과학의학토론회 참가라든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말라리아 방역 지원을 위한 북한 방문, 6.15남측위원회의 공동위원장회의 참석에 대해 북의 초청장이 오면 그때서야 검토하겠다는 것 아니냐. 지난 정부의 민간단체 규제정책과 같다.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민간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물자전달을 위한 접촉과 방북 같은 것은 조건 없이 승인해야 되는 것이 민간단체 자율성의 핵심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이야기했고, 문 대통령이 독일 ‘쾨르버 선언’(2017.7.7)에서 발표한 5개항 중에 하나인 ‘비정치적 교류협력 사업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분리해 일관성을 갖고 추진해 나가겠다’, ‘다양한 분야의 민간교류를 폭넓게 지원하겠다’고 한 것에 걸맞는 조치가 있어야 되지 않나.

우리 정부가 북한의 올림픽 참가, 남북 당국관계 개선을 위한 획기적 조치들을 취해나갔지만 적어도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의 정상화를 위해서 어떤 조치를 취해왔느냐. 북의 응대가 없기 때문에 취할 수 없다는 건 잘못된 사고라고 생각한다. 북의 태도와 관계없이 적어도 우리 정부가 부당하게 훼손돼 왔던 민간차원의 자율적인 교류협력사업을 원상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선도적인 조치가 필요한 거다.

“정상회담 이후에 민간은 패싱이 아니라 ‘들러리’”

   
▲ 강영식 총장은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정책위원장 자격으로 여러 토론회에 참석해 민간단체의 입장을 밝혔다. [사진제공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 선도적 조치란 어떤 것들인가? 민간단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5월 민간행사에 북한이 아직 초청장을 안주고 있다.

■ 거꾸로 북도 묻는 거다. 예를 들어 6.15남측위에게 ‘남쪽 정부의 승인을 받았냐? 받으면 초청장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왜? 계속 몇 년동안 불허됐으니까. 서로 공을 넘기는 거다.

적어도 민간단체의 자율성 보장은 법적인 하자가 없는 한 민간이 추진하는 접촉, 방북, 물자반출은 북과 협의가 완료되면 승인해줘야 한다. 초청장을 받아와야 검토해주는 게 아니고. ‘그 사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승인할 테니 초청장을 받아와 진행하라’, 이게 원상태를 회복하는 거다.

10.4선언 당시에도 그렇고, 북한하고 협의를 진행하면 정부는 전적으로 보장해주고 지원해준 것 아니냐. 그게 ‘민관협력의 정신’이고 ‘민간 자주성 정신’ 아니냐. 그건 어디다 빼먹었냐 이거다.

현재는 본격적인 인도지원사업이나 교류협력이 안 되기 때문에 잠복하고 있지만, 5,6월이 되면 갈등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회담 전후로 정부가 남북관계 판을 짤 때 당국 간의 관계를 잘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이 인정했듯이 다방면의 민간교류협력이 ‘한반도 평화만들기’의 중요한 한 축이라고 인정한다면, 민간교류가 지속하고 예측가능하게 될 수 있도록 분명히 보장해 나가야 된다.

즉,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살얼음판을 걷기 때문에 민간은 잠시 ‘패싱’하는 것이라면, 정상회담 이후에 민간은 패싱이 아니라 ‘들러리’가 되는 거다.

나는 북도 마찬가지로 본다.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뭐라고 말했나. 똑같이 ‘북과 남사이의 접촉과 래왕, 협력과 교류를 폭넓게 실현’하자고 했다. 양 지도자가 똑같이 민간교류협력에 대해서 존중하고 확대해 나가자고 하지만 현재 상황은 구두선에 끝나고 있다.

자칫 남북 당국 간의 관계에 밀려서 들러리, 악세사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나는 그 점을 우려한다. 따라서 살얼음판을 건너더라도, 지금 정상회담 전후부터라도 적어도 민간급 교류협력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강력한 노력이, 우리 당국의 선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즉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남북관계의 담대한 진전 가운데서 민간교류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정상 간의 공동선언이 필요하다. 그것 없이 어떻게 남북관계의 담대한 진전과 한반도 평화가 있겠나? 지난 20년의 역사를 봤지 않나? 아무리 당국 간의 관계가 좋고 회담이 있고 하더라도 정전선언 위반 현안이 발생하면 얼어붙는 것 아니냐? 그렇지 않도록 민간은 지속성을 보장한다는 것이 이 정부의 입장 아니냐?

‘정상회담 잘 끝나고 나서 민간하자’. 그건 소위 선관후민이다. 특히 북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여전히 당국 간이 우선이고 민간은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라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려가 된다.

□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10.4합의 내용이 재확인되고 구체화되면 경제협력도 본격화될 텐데, 지금과 같은 흐름으로 가면 대기업 위주로 가지 않을까 추론이 가능하다. 평양 예술공연 처럼 자잘한 경협보다는 대기업 위주의 경협에 남북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것 같다.

■ 그동안 북의 입장에서는 남북경협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반도 전체 판이 좀 바뀌어서 변화한다면, 북이 생각하는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고 남북 간의 공동의 발전, 소위 균형발전에 도움이 되는 경제협력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다를 수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걸 추진할 수 있는 배경은 기존의 경제협력 사업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북에 투자하고 경협하면 정치적인 관계에서 무너지는 것을 경험해왔지 않나. 그리고 아직도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내륙기업 사업주들에 대한 보상은 여전히 불만족스럽게 되고 있지 않나.

그들한테 보상해주는 것은 투자의 관점에서 봐야 된다. 앞으로 이른바 ‘한반도 신경제지도’에 대한 투자 백그라운드다. 지난 20년간 노력해온 사업자들에게 처참하게 피해의식을 남겨준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경제지도가 있을 수 있겠나.

평화의 제도화 측면에서 일회적인 교류가 아니라 적어도 지속가능한 교류라는 측면이 되돌릴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되돌릴 수 없는 게런티, 체제안전과 함께 되돌릴 수 없는 교류협력의 제도화도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문닫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문을 닫아도 큰 피해가 없다는 게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조선소가 들어가거나 삼성반도체공장이 들어가면 북이나 남이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코리아 아동기금’과 ‘인터코리아 코이카’

   
▲ 강영식 총장은 방북 경험이 가장 풍부한 북한 전문가로 꼽힌다. 사진은 10년전 남포시 대대리 돼지공장 건설 문제를 협의 중인 모습. [사진제공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 보통 되돌릴 수 없는 교류협력이라면 대기업이 떠오르고 기존 경협업자는 3D 업종 소규모 자본이었다. 지금 북이 원하는 것은 첨단기술이고 대규모 투자인 것 같다. 기존 인도적 지원이나 개발협력을 했던 자잘한 단체들은 오히려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 아닌가?

■ 내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말하기 어렵지만,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의 핵심이 뭘까? 중화학 공업? 수출주도형의 경공업이라고 본다. ‘한반도 신경제지도’의 관점을 갖고 있는 건 우리 정부의 입장이지만 실제로 북한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수출주도형 경공업을 하기 위한 다양한 투자와 기술이 필요한 거다. 거기에 가장 적합한 것은 한국의 중소기업들이다.

따라서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북한의 생필품 시장이라든지 수출주도 경공업시장을 부흥시키는 데는 대단히 중요한 파트너다. 삼성의 반도체공장이라든지 현대의 자동차부품공장이 있다면 한국기업이 흔들리기 때문에 정부가 손을 못대지만 작은 중소기업이 가는 것은 경제적 영향이 없기 때문에 손을 댈 수 있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성공단 재개도 중요하지만 지원단체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이 공동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 북한이 몇 년전에 제안했지만 현재 방치되고 있는 농업개발특구 사업이다. 숙천이라든지 강령, 북청, 어랑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싶다.

이걸 통일농업특구랄 수도 있을 거고, 농업과 축산품 외에 기본적인 사회개발, 지역개발이 들어가지만 경공업 기지도 될 수 있다는 거다. 가공판매가 되려면 인도적지원, 개발지원, 경제협력지원이 복합적으로 돼야 가능한 거다.

현재 대북제재가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측면이 있으니까. 1단계, 2단계로 나누어 먼저 북한 주민의 민생 동기 차원에서 지역개발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 다음에는 남북간 경제공동체 일환이 된다.

농업개발특구에서 남측 지원으로 생산된 특용작물이 우리 기업들이 들어가서 공동으로 가공해서 수출하고 남쪽에도 팔고 북한 시장에도 팔면서 서로 간에 이윤이 순환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거다. 그런 과정은 우리가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동으로 운영하는 거다. 다행히 지금 기업들도 소규모 중소기업, 단체들이 많이 있다.

이러다 보면 남북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사회문화기구라든지 개발협력기구라든지 경제협력기구들이 생겨 남북이 각각 법으로 보장하고, 사람들이 교차 상주하는,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제도화라고 보는 거다.

그래서 앞으로 지속가능한 교류협력이 되기 위한 내용은 그것이 중장기적이냐의 문제가 아니고, 그것이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법적, 제도적, 인적 교류가 되도록 조직적으로 정비해 나가야 된다.

이번에 북민협이 제안한 두 가지가 사실은 ‘건강한 한반도 만들기’다. 그래서 코르세프 (Korcef)를 제안했다. ‘코리아 아동기금 Korea Children’s Fund’로 한반도판 유니세프(Unicef)다.남북간의 격차 해소라든지 남북간의 인도지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북한의 입장에서는 체제의 문제와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북은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서 문을 닫고 있는 거다.

이런 오해지점을 깨버리자는 거다. 그래야 인도지원 분야의 협력에 걸림돌이 해소될 수 있다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우리 한반도, 조선반도에서는 그 애가 서울에서 태어나든 평양에서 태어나든, 부산에서 태어나든 신의주에서 태어나든, 통일미래의 주역이 될 수 있게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우리 두 사람의 몫이다’고 합의해서, ‘한반도 어린이 성장권리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그 기구로 ‘코리아 아동기금’을 만들자는 거다.

양 당국이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사무소를 평양과 서울에 두고 교차적으로 인원파견을 하고 사업을 해나가면 이것이 또 하나의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거다. 그것이 모범이 되면 한반도의 공동의 식량안보를 위한 ‘케도(KEDO, 한반도에너지기구)’처럼 ‘카도(KADO, 한반도식량기구)’도 만들 수 있는 거고, 전염병 공동관리기구도 만들 수도 있고, 산림녹화 공동기구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더 나가면 북한판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 ‘인터코리아 코이카( Inter-KOREA Cooperation Agency)’가 만들어져서 총체적인 한반도 공동개발, 균형발전을 위한 대규모적인 개발기구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개발지원, 교류협력의 핵심이지 않느냐. 즉, 일방이 일방을 지원하는 개념을 넘어서 공동으로 한반도, 조선반도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하는 공동의 노력, 그 노력을 위한 공동의 조직, 그 담보를 위한 양 당국의 공동의 조직의 제도화, 이런 것이 돼야 소위 ‘교류협력의 업그레이드’고 ‘담대한 남북관계 개선’이다. 교류협력의 제도화, 평화의 제도화도 될 수 있는 그런 거다.

□ 지금 흐름으로 봐서는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정상회담에서 경제협력, 평화협력 각각 영역을 정하고 거기에 관이 발벗고 나서면서 일부 민간을 끌어들여 제도화 해 나가는 방식이 예상된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요청하고 있는 것은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민간교류의 보장이 분명히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민간교류의 핵심은 북이 민간교류에 대해서 그렇게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유는 지속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속성이 없는 이유는 뭐냐? 그동안에 우리 정부가 그렇게 대해왔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을 때 유감을 표명해야 된다고 본다. 쉽게 말해 사과해야 한다.

“내 공약처럼 다방면의 교류협력이 중요한데 그동안의 우리 정부는 그걸 못했다. 그간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의 종속수단으로 민간을 규제할 뿐이었다. 내가 정권을 맡게 돼 그건 사과한다. 미안하다”, 그리고 “앞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민간의 자율성을 전적으로 보장할 거고, 정부와 관계없이, 정치상황과 관계없이 민간단체의 자율성을 보장할 거다. 당신들도 그렇게 해줘라”라고 해서 실추될 대로 실추된 민간단체의 권위를 회복시켜줘야 한다.

그것이 ‘평화로운 한반도 만들기’, ‘당국 간의 관계개선’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한 축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중요한데 되겠느냐고 한다.

문 대통령이 이전 정부의 ‘민간 규제’ 사과해야

□ 기존 민간교류의 단절 문제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고 앞으로 보장하라는 일관된 요구로 보인다.

■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기는 그거였다. 춘래불사춘,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한테 유감을 표명하고 민간교류 보장, 제도화를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 핵심이다.

□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관주도로 진행되고 민간은 기존 것들 중 쓸만한 것 한두 개 들어가고.

■ 정부가 전적인 보장을 약속해주면 그 다음은 민간이 풀어가는 문제다. 정부가 나서서 민간을 북에 보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북이 못하는 이유는, 남쪽 정부가 어느 순간에 민간을 그렇게 하는 마당에 민간하고 해봐야 뭐가 있겠냐. 필요하면 정부랑 이야기하면 되지 수십개의 민간단체에게 이야기하느냐는 거다.

우리 정부도 애매한 태도가 아니라 민관협력이나 민간의 자율성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와 방침을 정해줘야 된다는 거다. 법을 만드는 것도 있고, 사회문화교류나 인도지원 예산으로 3천억을 책정하고 있지만 어떻게 쓰겠다는 것도 없지 않나. 왜? 북한과 협의해서 하겠다는, 여전히 그런 태도다.

9년간의 사고방식이 완벽히 바뀌진 않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정책에서 담대한 사고전환으로 새로운 국면을 만들었으면, 당연히 민간의 사회문화 교류협력에서도 그에 걸맞는 진전이 필요하다.

□ 정부의 정책정환이 필요하지만 현재까지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 지난 정부의 데자뷰다. 민간 들러리를 넘어서 패싱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민간이 신뢰를 못 줬다는 측면도 있다. 민간 자신이 혁신해야 될 문제도 있는 거지만, 핵심은 민간을 속된말로 ‘아래로 본다’는 거다. 북도 마찬가지다.

북에는 민간 섹터가 존재하지 않지 않나. 우리의 파트너는 북의 당국이지 않나. 결국은 남쪽의 민간은 우리 정부가 독립적인 영역으로 인정해주고 보장해줄 때 힘이 생긴다는 거다. 정부정책에 하나의 하위수단으로 삼는 순간 민간이 갖는 강점은 없어진다. 자율적이고 국민적인, 소위 다양한 국민적 힘을 모아서 하는 건데 국민적 힘이 없어지는 거다.

3월까지 접촉신고 280건, 300건 가까이 된다. 200개 정도 사업이 있다는 거다. 이건 민간 스스로 시장논리에 의해서 정리가 돼 나가는 거다. 정부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 대북지원도 발전해 나가야 되지 않나. 언제까지 ‘어려운 북한동포를 도웁시다’라는 흘러간 레퍼토리, 찢어진 깃발을 올릴 거냐. 앞으로 민간단체의 인도지원, 개발협력 입장은 분명하다. 한반도 평화만들기의 한 축이다. 한반도 평화에 통합적으로 기여하는 방식으로 인도지원이 추진된다는 점이 분명하다.

지난 7,8년동안 일을 못해왔다. 부지런히 북과 협의해나가고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 나가고 하는 과정을 해나갈 거다. 그런 과정에서 민간의 자율성이 중요하다는 거다.

□ 정권이 바뀌고 일부 민간단체 관계자들이 정부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보나?

■ ‘어쩌다 공무원, 어공’이라 하더라. 민간차원에서 많이 진출했고, 그들이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데 상당히 많은 공을 가졌다 생각한다. 또 그들이 계속 민간차원의 교류협력 활성화에 대해서 발언하고 중요한 걸 하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굉장히 어려울 때 출발했다고 본다. 핵심은 비핵화와 전쟁반대 문제였다. 그 핵심의 컨트럴타워의 국가안보실의 구성을 보면 외교.국방 라인이지 않나. 최근 평화올림픽 시작 때부터 두세달 동안을 보면, 과연 대북정책의 주무부서인 통일부가 주도하고 있을까에 대해서 약간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 있다.

4월 1일 동평양대극장 앞에 누가 앉아 있느냐 문제다. 통일부는 의전만 담당해야 하느냐. 그런 과정에서 소위 민간 교류협력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안 먹히는 거다. 정상회담 때 적어도 ‘쾨르버 선언’에서 처럼 민간교류에 대한 존중과 양국의 보장이 들어가야 된다고 주장을 했을 때 현재의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라든지 청와대 라인에서 제대로 전달이 될 것이냐. 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거다.

그러면 민간교류에 대해서 담당하고 책임지고 있는 통일부가 나서야 되는데 오히려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두고 봅시다’하는 사고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다. 통일부가 과감하게 정상회담 준비위원회를 상대로 ‘평화로운 한반도 만들기’에 민간차원의 교류를 보장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적극 설득하고 의제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본다.

□ 통일부 담당자나 장관 면담을 추진했나?

■ 북민협은 정상회담 의제에 민간교류 활성화, 대북지원 활성화를 위해 ‘한반도 아동기금’과 개성공단을 인도지원의 플랫폼으로 만들자는 이 두 가지를 통일부를 통해 전달해왔다. 우리가 제안서도 냈다.

그렇지만 북민협 단체들의 장관 면담은 아직도 안 이루어지고 있다. 어떻게 반영될지 지켜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남북정상회담 자문단한테도 요청하고 있다.

장관 면담에 대해 괜히 민간단체의 푸념이나 민원으로 생각하는, 그게 굉장히 불쾌하다. 민간교류 보장을 마치 지원단체들이나 사회문화단체들의 활로를 당신이 뚫어달라는 민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만들기의 중요한 한 축을 제도화하자는 진지한 제안이다.

북도 지난 10년 동안 남측과 일한 법을 잊어버렸다. 우리도 잊어버렸으니까. 옛날 기억을 되살리는 것 쉽지 않다. 그러나 남측의 민간단체들이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북도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남측 정부도 추락된 민간단체의 권위를 회복시켜줄 의무가 있는 거다. 북한도 아직 체제정비가 안됐다 하더라도 민간에 대해 성의있는 태도로 나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6.15행사라든지 다양한 것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임해야 되는 거다. 당국간 관계 정리의 결과로서 민간을 보는 게 아니라 북도 마찬가지로 민간단체를 신년사에서 이야기했듯이 다방면 민간교류 활성화가 민족화해에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6.15 18주년 공동행사는 민간 주도로 평양에서

   
▲ 강영식 총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민간교류 활성화에 대한 양 정상의 의지가 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6.15, 8.15, 10.4 등 민간단체들에 중요한 계기들이 놓여있고, 북한은 70주년을 맞은 9.9절을 중요한 계기로 보고 있는 것 같다.

■ 6.15 18주년 공동행사는 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가 옵저버로 참여하는 민간 중심 행사가 돼야 한다고 본다. 북이 제기하고 있는 통일대회합 문제도 협의하면 될 거다.

문제의 핵심 하나는 지난 보수정부에서 부당하게 가장 많은 탄압과 규제를 받은 게 6.15남측위원회다. 그런데 현재의 남쪽의 시민사회와 종교의 분위기는 현재의 6.15남측위원회가 6.15 18주년 공동행사를 하는 대표성을 갖고 있는가 의견이 분분한 것이 문제다.

나는 부당하게 폄하되었던 6.15남측위원회의 대표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근 6.15남측위원회와 그에 소속된 민화협이나 시민사회가 정당과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역할을 하고 있느냐, 역량을 갖고 있느냐는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6.15공동행사에 대해 진지한, 확대 발전된 새로운 기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본다. 새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면 진보적 통일운동 단체의 연대체로서의 6.15남측위원회가 보다 더 담대한 발상을 해야 한다고 본다.

6.15남측위원회에서 본다면, 남측 민화협이나 시민사회에 서운할 거다. 어려울 때 하나도 안 도와주다가 이제 와서 딴 살림하겠다고 하니. 서운함은 인정하지만 서운함을 뛰어넘어서 새롭게 하려고 하는 대표적인 연대체로서의 대승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6.13 지방선거가 있으니까 6.15 18주년 공동행사가 당국만의 약소한 행사로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민간의 가장 대표적인 사회공동행사의 이니셔티브를 정부한테 주는 거다. 정부의 협력은 받아야 하지만 6.15, 8.15, 10.4 같은 민간차원의 중요한 기념행사는 민간주도로 해나가야 한다.

이 정부, 특히 통일부가 6.15남측위원회를 대단히 불편해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본다. 진지하게 대화해야 하고, 2016년 한해에 1억 넘게 과태료를 먹였지 않나? 면제했나? 처리했나? 처리 안한다. 그것이 잘못된 과태료 남발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처리하지 않는다. 이것도 문제다. 불편해하고 대화하지 않으려고 하는, 지난 정부와 같이 좌파 프레임에 가두려고 하는 것은 큰 문제다.

6.15남측위원회에 대한 부당한 규제에 대해 정부가 회복조치를 해나가야 하고, 또 앞으로의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 현재의 문재인 정부에서의 민간교류와 6.15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협의해야 하고,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협력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

□ 통일부 사람이 바뀌지 않았다. 그때 과태료 먹인 사람들이 그대로이지 않나. 지금 특별히 변한 것 없지 않나.

■ 허허허. 그러니까 한계가 있다. 지금 인도지원만 해도 부서가 나눠져 있다. 보건의료와 긴급구호는 인도협력기획과가 담당해 인도협력국으로 가야 되고, 농업, 산림녹화는 개발협력지원과가 담당해 교류협력국으로 가야되는 이중적인 상태다.

개발지원이나 사회문화교류를 붙여서 민간협력실을 만들어 1급 실장이 담당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 ‘한반도 신경제지도팀’을 만들어서 이 정부 캐릭터를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

행자부의 지침으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렵다고 하는데, 현인택 장관은 하루아침에 인도협력국을 없앴고 홍용표 장관도 하루아침에 인도협력국을 북한인권법에 따라서 공동체기반조성국으로 만들었지 않나. 이 정부는 1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대북 인도지원을 북한인권과 같이 보고 있다. 그리고 민간이 이야기했던 인도지원개발협력법을 만들자는데 대해서 반응도 안하고 있다.

조만간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하면 북민협이라든지 인도지원단체는 북한인권법의 소관을 받고, 인도적 지원단체의 대북지원은 북한인권재단이 맡게 된다. 이것은 통일부 그 누구라도 문제라고 인정하지만, 북한인권법을 고친다거나 북한인권재단을 고치려고 하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이건 무엇을 뜻하나? 현인택 장관과 홍용표 장관은 능력이 있으니까 싹 바꿨는데 현재의 조명균 장관은 능력이 없는가? 그렇게 보게 만들고 있다. 이러니까 남북관계만 탑다운 방식이 아니고 사람들이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는 거다. 통일부가 안 보이는 거고. 통일부는 장관, 차관은 열심히 하는데 왜 밑에는 안 움직이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거다. 탑다운이 내려와야 하는데 밑으로 내려올수록 힘이 빠지고 있다.

□ 상징적으로 남북 정상이 만나서 담대한 남북관계 진전의 한 영역으로 민간교류 활성화에 합의하고 그 제도화를 약속하면서 6.15, 8.15, 10.4 행사를 민간주도로 성대하게 치른다고 선언하면 가장 좋은 그림인가?

■ 나는 8.15, 10.4까지는 판단을 갖고 있지 못한다. 8.15는 우리 정부수립 70주년과도 관계된다. 소위 8.15 때 행사를 치른다면 9.9 때도 행사를 치를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된다. 당국간의 영역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그건 민간이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적어도 6.15공동선언 18주년은 10년동안 못해왔다는 의미에서 민간주도로 치를 수 있다고 본다. 성대히 치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내용 있고 서로 결의를 가지고 협력의 의지를 되살리는 계기로 6.15공동행사를 하느냐의 문제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 정부도 민간의 주도성을 줘야하고 북도 중요시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남쪽의 민간들이 발전된 형태의 연대 논의를 당장 시작할 때다. 민간이 이렇게 방치하고 있다가는 그냥 지나가지 않겠나 본다.

지난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첫 사업으로 개성공단 육로를 통해서 말라리아 방역 물자를 보내는 상징적인 사업에 당시 3개 지자체가 참여했다. 자유한국당의 인천광역시장, 바른미래당의 경기도지사, 민주당의 강원도지사, 3개 시도지사가 같이 6월 7일 개성 육로로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대북 제재조치로 중단됐다.

2억 5천원 어치의 물건을 샀다. 그게 조금 있으면 1년이 된다. 5월말, 6월초에 물건을 못 보내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대단히 심각한 재정적 문제에 부닥친다. 지자체가 보내지 않고 돈을 주겠느냐? 민간교류를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6.13 선거 전에 말라리아 지원물품을 개성 육로로 보냈으면 좋겠다.

민간교류협력사업이 재개되고 6.15공동행사를 평양에서 하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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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을 수용한 김정은 위원장의 결심

판문점을 수용한 김정은 위원장의 결심
 
 
 
대학생통신원
기사입력: 2018/04/17 [08:30]  최종편집: ⓒ 자주시보
 
 

 

1. 미국이 바라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 시나리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남을 받아들였다. 4월 27일에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고 한반도 평화를 선택한 것일까?

결론은 '미국이 그럴 리 없다' 이다.

대화를 선택한 미국이지만,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시기에 미국은 대결을 통한 자국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런가? 한반도는 미국의 정치군사패권 생명을 좌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하는 상황을 미국이 마주한다면, 미국은 허울뿐인 초일류국가 타이틀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과거 중국이 1967년 수소탄과 1970년 인공위성을 개발한 후, 1979년 미국과 수교를 맺었지만, 39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두 나라는 적대국가이다. 사회주의정치체제를 지향하는 중국과의 평화공존은 아시아패권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현재 북미정상회담을 합의한 것은 북과 대화하지 않았을 시, 벌어지게 될 상황이 더욱 두려웠기 때문이다. 북이 ICBM을 미 동부 앞 바다에 떨어뜨린다거나, 잠수함으로 접근해 샌프란시스코 앞 바다에 핵미사일을 떨어뜨린다면 미국의 권위는 얼마나 추락할 것인가? 미국은 최악의 현실만은 외면하고 싶기에 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자국 패권유지를 위해 대결적 입장으로 남북정상회담에 적극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는 남북관계 개선을 변질시키고 와해시키기 위한 군사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장소는 판문점 평화의 집으로 미군이 직접 관리하는 지역이다. 즉 미군이 마음만 먹는다면 군사적 행동을 감행할 수 있다.

미 행정부는 김정은 위원장을 대상으로 한 군사계획을 일찌감치 수립하였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참수작전'이다. 미국에게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참수작전을 실행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미국은 '김정은 위원장만 없다면 북미대결의 열세를 확실히 역전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충동적인 작전을 펼칠 수도 있다. 북 때문에 잃게 생길 전 세계 패권을 지킬 수만 있다면, 미국은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 2015년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이 함께 수립한 작전계획 2015의 핵심전략은 김정은 위원장 참수작전이다.     © 대학생통신원

 

참수작전이 아니더라도 미국은 작위적으로 군사충돌을 일으켜 남북정상회담을 와해시킬 수도 있다. 

미국과 CIA는 조작사건에 정통하다. 베트남전의 단초가 되었던 통킹만 사건은 미국의 자작극이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2001년 9.11 테러도 미정부가 알고도 막지 않았다는 증거와 정황은 넘쳐난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벌어지는 시각, 경비가 삼엄하고 군사적 촉각이 예민한 판문점에서 미국이 군사적 행동을 연출한다면 남북정상회담이 깨질 수도 있다.

북은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자국 지도자의 존엄을 중요하게 여기는 국가이다. 남북 두 정상의 신변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진다면, 대화국면은 순식간에 전쟁국면으로도 번질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미국이 남측 정부에게 압력을 가해 남북정상회담을 대결장으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이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지향성과 친미적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청와대, 통일부, 외교부, 국정원에는 소위 '친미라인'이 정통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이러한 조건을 적극 활용하여 회담장안에서 남측입장을 북한 비핵화로 일관시킨다면 정상회담 성과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

 

또한 미국은 외부상황 연출로 북한을 역고립시켜 정상회담을 방해할 수도 있다.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에서 북미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를 내용으로 하는 공동성명이 탄생했다. 북미대결을 전환시킬 수 있는 소중한 성과였다. 그러나 합의 다음날 미국은 재무부를 움직여 마카오의 BDA에 예금되어있던 북의 자금을 동결시켰다. 이유는 '북한이 위조지폐를 만들고 돈세탁을 했다'는 것이었는데 분명한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단 하루만에 6자회담 성과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 즈음 미국이 북 주요인사 기획탈북, 위조지폐, 무과 같은 사건을 조작한 후, 이를 정상회담 안건으로 삼으라고 문재인 정부에게 압박할 수도 있다.

 

▲ 미국은 2005년 919 공동성명 발표 다음날, BDA사건을 발표해 6자회담 성과를 축소시키는데 성공하였다.     © 대학생통신원


세 번째는 앞서 말한 군사적 충돌이나 대결국면으로 전환이 여의치 않았을 경우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되면 미국은 북과 대화와 경제협력을 취하면서, 북을 반중국 전선으로 인입시키는 노선으로 변경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중국과 무역전쟁 중이다. 미국이 3월 22일 중국 수입품 1300개에 관세 25%를 부과한다고 발표하자, 이에 질세라 중국도 4월 2일 미국 농산수입품 128개에 대해 25%, 15% 관세를 동시 부과했다. 미국은 향후 중국의 재산권 침해를 겨냥해 추가 무역보복을 예고했다. 중국의 경제적 성장은 미국에게 강력한 도전이기에 두 나라 사이 경제전쟁은 필연이다. 

 

미국은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반중국전선을 펼치는데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반중국전선에 포함되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을 겪고 있는데 미국, 인도와 적극적인 군사협력을 통해 중국에 대응하고 있다. 지난 3월 5일에는 베트남전 종전 이후 43년 만에 미 핵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다낭항에 들여왔다.

미국에게 경제패권 사수는 군사패권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다. 어차피 오늘날 미국에게 북과 중국 두 나라를 상대할 힘은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미국은 북에 대한 투자활동, 자원채굴사업 등을 적극 펼쳐 새로운 북미경제협력을 형성하고 중국압박전선에 북을 포함시키려 애를 쓸 수도 있다. 

 

 

2. <판문점 평화의 집>을 통해 본 북이 바라는 것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곳은 판문점 평화의 집이다. 이곳은 유엔군사령부가 관할하는 지역이다. 평화의 집은 대한민국 영토 위에 있지만 실제 이곳을 책임지는 단위는 유엔군 사령부, 즉 미군이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적대국이 관할하는 장소에 최고지도자가 가는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합의를 앞두고 개최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7일 여야 5당 대표와의 오찬회동에서 청와대에서 북측에 정상회담 장소로 서울과 평양, 판문점을 제안했는데 북측에서 판문점을 선택했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 4.27 정상회담이 열리는 장소는 유엔군 사령부가 관할하는 판문점 평화의 집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회담장소로 평화의 집을 선택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 대학생통신원

 

미국이 군사적 충돌이 일으키거나 김정은 위원장 참수작전을 감행할 가능성에 대해서 북이 예상을 하지 못한 것일까? 절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의 의한 테러나 군사적 행동 가능성을 예상하기에 평화의 집을 정상회담 장소로 선택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일부러 판문점을 선택한 것이라면 그곳이 미군관할지역이라는 점이 결정적 이유일 것이다. 평화의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정상회담을 하다가 테러가 벌어진다면 전적으로 미국의 책임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평화의 집은 유엔군 사령부 관할지역이기에 이곳에서 테러가 일어난다면 미군 소행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북은 이를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지체 없이 준비된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 본토를 향해 날리며 북미전쟁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위원장은 자칫 미국에 의한 테러가 자신을 향해 일어나더라도 그동안 준비해놓은 군사력으로 미국과의 대립을 끝장낼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허물어뜨리는 동시에 한반도에서 미국 그림자를 지우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남북평화와 협력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퇴출과 동북아패권 반납을 앞당길 것이다. 이는 곧 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다른 나라 등에 빨대를 꽂아 배를 불려왔던 미국이 제국주의 우두머리에서 자기의 힘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정상국가로의 전환을 재촉할 것이다. 이 전환은 미국과 일본등과 같은 소수의 나라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나라가 두팔 벌려 환영할 만한 사건이다.

 

 

3. 문재인 대통령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머릿속은 어떠할까?

북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이 서서히 북으로 기울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올해 들어 적극 남북관계개선에 나서고 있으며, 남북미 종전선언이나 3자 정상회담을 자주 언급하는 언행이 그 증거다.

 

<미국 편에 붙어서는 전망이 없다>는 정황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정권 시점에서 봤을 때 정권유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안정이다. 더 이상 미국 경제와 동행이 한국경제의 성공을 돕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됐다. 올 봄 미국의 군산GM공장 철수와 수출품에 대한 대규모 관세부과는 문재인 정부에게 미국경제의 관계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였을 것이다.
 

▲ 미국의 한국수출품 관세부과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경제의존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계기였을 것이다.     © 대학생통신원

 

 

군사적 측면에서도 한미동맹 유효성에 의심을 가질법한 상황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작년은 북이 국가핵무력 완성을 한 해다. 북이 일본을 넘어 고각으로 미국을 겨냥하여 화성14형, 화성15형 미사일을 거푸 발사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입에 거품만 달뿐 북을 제어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상식적 사고를 갖추었다면, 미국 핵우산 아래서 목숨을 부지하는 시대는 갔고, 오히려 '민족의 핵우산이 더욱 안전한 게 아닌가'하고 고민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마치 이 고민에 해답을 주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보지 못합니다.'와 같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메세지를 다수 담아 발표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문재인 정부가 의지가 없다면 평창올림픽 단일팀, 남북 예술단 교환공연, 대북특사파견, 남북정상회담 합의와 같은 일들이 연일 벌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즉,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미국만 믿고 정권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으며 앞으로 미국의일바적인 한국정부 압박과 통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4. 북미 정상회담의 화두는 '비핵화'가 아닌 '북미경제협력'

 

북미 정상회담이 5월 안에 열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는 셈이다.

정상회담의 내용은 두 국가가 처해진 상황을 통해 예측해볼 수 있다. 현재 더 급한 것은 미국이다. 북은 이번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더라도 국가핵무력을 질적으로, 양적으로 강화하며 자연스레 미국의 동북아 패권을 약화시켜 나갈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은 대화가 잘 이뤄져야 한반도에서 명예로운 퇴장권을 손에 쥘 수 있다. 만일 관계가 악화된다고 한다면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말뿐인 제재남발이나 핵국가를 상대로 하는 전쟁버튼 뿐이다.

 

미국이 바라는 것은 북 비핵화지만, 이 정상회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이 그렇게 흘러가도록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비핵화 문제는 '단계적으로 비핵화해나간다, 비핵화를 위해 두 나라 모두 노력을 기울인다'와 같이 선언적 수준의 합의로 그칠 것이다.

물론 북에서는 평화협정이나 북미수교 체결, 미국 핵전략자산 철수나 한미훈련중지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북미 사이 전략적인 문제들은 북미 첫 정상회담으로 합의되기보다는 향후 한반도 여론과 힘의 기울기에 따라 시기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북미정상회담의 화두는 경제분야에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북미 투자협정과 투자은행 설립, 트럼프식 자원외교 등의 합의가 이뤄진다면 이 자체가 새롭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고, 기업가 출신 트럼프도 이를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기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북미정상회담 경제합의는 전 세계 외교쟁점을 비핵화에서 공리 공영으로 이동시킬 힘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약육강식이 지배했던 세계 질서가 정상적 협력과 공존으로 뒤바뀌는 이정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오른쪽)과 트럼프 대통령     ©

 

5. 대학생의 미래는 통일에 있다!

 

▲ 대학생이 힘을 더하면 통일은 앞당겨진다. 통일을 위해 노력한 청춘시절은 평생의 긍지로 남는다.     © 대학생통신원

  

분단 때문에 여러 고통을 강요하는 땅에서 번영을 약속하는 통일된 한반도로 바뀌려고 하는 시점이다.

분단된 대한민국에서 대학생의 삶은 참담 그 자체였다. 미국이 강요하고 재벌이 주도하는 대량해고와 비정규직 확대 때문에 대학생들은 취업의 문턱을 넘기 힘들었다. 친구가 사치인 시대를 살아야만 해 혼밥, 혼술과 익숙해져야 했고, 고액등록금과 비싼 주거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편의점에서 끼니를 떼워야만 했다.

 

통일 한반도는 대학생의 삶에 큰 변화를 안아올 것이다. 땅이 늘어나고 사람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날 것이다. 43조에 달하는 전쟁유지비용이 대폭 줄어들어 복지영역으로 이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반값등록금이나 대학생주거비 지원도 빠르게 실현될 것이다. 징병제가 모병제로 전환될 것이고, 서울역에서 여행을 떠나 평양과 모스크바를 거쳐 런던에 도착할 수도 있다.

 

통일이 되면 대학생의 미래는 분명 밝아진다. 대학생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위해서라도 통일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한다. 먼 훗날 통일을 위해 자신이 무언가 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의 큰 긍지로 남을 것이다. 우리가 1700만 촛불 가운데 한 명이 되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가져오는데 기여한 뿌듯한 기억처럼!

 

봄을 맞는 한반도는 요동치고 있다. 그 변화는 정확히 통일을 향하고 있다. 이 변화가 현실이 되는데 대학생 모두가 목소리 한 번, 발걸음 하나부터 더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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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중 해고사태, ‘일자리 대통령’이 직접 나서달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4/17 08:10
  • 수정일
    2018/04/17 08: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주노총·진보3당·울산 6.13선거 민주노총 지지 후보단 청와대 앞 기자회견
 

최근 3년 새 3만5000여 원하청 노동자를 구조조정한 현대중공업에게 인원감축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16일 청와대 앞에서 열렸다.

민주노총과 진보3당(노동당‧민중당‧정의당), 그리고 6.13지방선거에 출마한 울산지역 민주노총 지지 후보단은 이날 회견에서 이같이 밝히곤 “일자리를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은 문재인 정부의 ‘조선산업 발전전략’ 발표 다음 날인 지난 5일, 55세 이상 조기 정년퇴직 및 10년 이상 근무자 2400명에 대한 희망퇴직을 발표했다. 이런 일방적인 퇴직 강요는 단협 위반이란 게 이날 회견 참가자들의 입장이다.

회견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현대중공업은 구조조정이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라지만, 실제 회사는 지난 몇 년간 연속 흑자를 내며, 14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흑자가 생기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사내유보금으로 조선산업 경쟁력을 높이는데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민주노총과 진보3당(노동당‧민중당‧정의당), 그리고 6.13지방선거에 출마한 울산지역 민주노총 지지 후보단(권오길 울산북구 국회의원 후보, 이재현 울산동구 구청장 후보, 이은주 울산시의원 후보 등)이 16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중노조 위원장 출신인 이갑용 노동당 대표는 회견에서 “정몽준은 아들 정기선에게 3040여억 원을 현금으로 증여해 3세 경영승계라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하곤 6.13지방선거에서 민주노총 지지 후보들이 재벌에 맞서 투쟁하자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지지 단일 울산시장 후보인 김창현 민중당 울산시당 위원장은 “숙련공 2400명을 쫓아내겠다는 것은 이윤에 눈이 먼 현중 자본이 좋은 일자리를 빼앗고 조선산업을 후퇴시키고, 장차 울산의 미래까지 파괴하겠다는 것”이라면서, ‘노동존중, 좋은 일자리’를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라고 주문했다.

한창민 정의당 부대표는 “고용유지 전략이 빠진 일자리 문제 해결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노동자를 자르고 비정규직을 늘리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조선산업 발전전략은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회견엔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과 윤한섭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그리고 권오길 울산북구 국회의원 후보, 이재현 울산동구 구청장 후보, 이은주 울산시의원 후보 등 다수의 민주노총 지지 6.13지방선거 울산 후보들이 참석했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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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 진실은 이렇다

2007년 이후 방문학자 157명 명단 입수... 언론인·정부관료·정치인 등 다수

18.04.16 22:31l최종 업데이트 18.04.16 22:31l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한 싱크탱크가 연일 화제다.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산하 한미연구소(USKI)가 그곳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USKI에 예산 지원을 중단한 것이 구재회 USKI 소장이 문재인 정부에 '찍혀서' 발생한 일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USKI는 또 다른 화제의 인물과도 연관돼있다. '외유성 출장' 논란의 중심에 섰다가 지난 16일 사의를 표명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다. 김 전 원장은 19대 국회의원이던 2015년 5월 KIEP의 지원을 받아 USKI 현장 시찰을 다녀왔다. 시찰 이후 김 전 원장은 USKI 및 KIEP에 대한 추가적인 예산 삭감 조치를 내렸다. 

USKI는 어떤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일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7일 USKI 예산 지원 중단에 대해 "USKI를 다녀온 유력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이 바람막이가 돼서 엄청난 압력을 국회에 넣어온 게 지난 역사"라고 설명했다. USKI 방문학자로 연수를 갔던 정치권 및 각계 인사들이 USKI 예산 증액에 압력을 넣는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실제 USKI는 2007년부터 매해 10여 명의 방문학자 초청을 통해 편의를 제공해 왔다. 이와 동시에 예산 증액도 가파르게 이어졌다. 2006년 4억 원 수준이던 예산은 매년 증가해 2017년 집행된 예산은 21억 8900만 원에 달했다. 

그렇다면, 어떤 인물들이 USKI 방문학자로 워싱턴을 방문했을까. <오마이뉴스>는 2007년 이후 USKI 방문학자 명단을 입수했다.

<오마이뉴스>가 분석한 결과, 2018년까지 방문학자 157명 가운데 108명이 한국인이었다. 기자가 38명으로 가장 많았고, 뒤이어 정부 관료 36명, 교수 13명, 정치인 6명, 기타 15명 등으로 집계됐다.

방문학자 157명 중 108명 한국인... 기자 > 관료 > 교수 > 정치인 순
 

 2007년~2018년 USKI 방문학자 명단
▲  2007년~2018년 USKI 방문학자 명단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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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방문학자로 간 경우를 보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송호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재오·안경률·차명진 전 새누리당 의원 등 굵직한 인물들이 다녀왔다.

지난 2016년 국회 보좌진이 방문한 사례(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실)도 있었다. 국회 보좌진이 방문학자로 간 경우는 그 때가 유일했다.

김용태 의원은 현재 20대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이다. 보좌진들이 워싱턴을 방문하던 그 해에 김 위원장은 정무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였다. 또 그는 20대 국회 상반기 2년차(2017~2018) 정무위원장으로 확실시 된 상태였다.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가, 피감기관이 진행하는 방문학자 프로그램에 자신의 보좌진 4명을 보낸 것이다. 보좌관 1명, 비서관 1명, 비서 2명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내 적금 깨서 내 돈 5000만 원으로 보좌진들을 3개월씩 4명 연수시킨 것이다, 직원들 역량강화 차원"이라며 "USKI에서 한 명을 추천하라고 했는데, 직원들 경험 쌓게 4명이 3개월씩 다녀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USKI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방문학자로 모신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그쪽에서는 그런 의도가 있을 수는 있지만, 방문학자도 나름 선정 기준이 있을 것이고 열심히 한 친구들만 갔다"라고 강조했다. 

보좌진 "열린 기회 활용했을 뿐"... KIEP 핵심 관계자 "공모·공표 자체가 없었다"

그렇다면 USKI 방문학자로서 보좌진들은 어떤 연구성과를 얻었을까. 방문학자로 워싱턴에 다녀온 한 보좌진에게 이를 묻자 "각종 세미나와 워싱턴 싱크탱크에서 진행한 회의에 참석했던 것을 의원님께 보고드렸다"라며 "당시 미국 대선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큰 선거를 보면서 보좌진 나름의 역량강화가 됐다"라고 말했다. 

'특혜'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는 질문에 그는 "300개 의원실에 다 열린 기회였고 그걸 적극 활용했을 뿐"이라며 "우리도 무조건 확정은 아니었고 철저히 준비했다, 연구계획서도 제출했고 대사관 면접도 봤다, USKI에서 적극 모시겠다고 해서 공식 절차를 밟아서 간 것"이라고 밝혔다. USKI 방문학자 선정 기준에 대해 묻자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명확한 '모집 공문'이 있었는지에 대해 보좌진은 "특수대학원이 공개적으로 사람을 모집하고 그러진 않는다, 관심 있는 사람이 지원서 냈고 접촉해서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열린 기회'였을까. KIEP 핵심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방문학자 자체를 공모하거나 외부 공표를 하지 않았다, 그런 불투명성이 문제가 됐다"라며 "2015년 겨울까지는 구재회 USKI 소장이 알음알음 그냥 방문학자를 정했던 걸로 알고 있고, 2016년에는 이사회를 설립해 심사는 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신청을 한 사람에 한해서 이사회에서 선발 심사를 한 것일 뿐 방문학자 공모, 공표 절차는 최근까지도 없었다"라며 "열린기회라고 보긴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방문학자로 오게 되면 J1 비자(교환방문비자)를 받게 된다, 이런 것들이 구 소장이 제공할 수 있는 특혜로, 힘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방문학자 성과에 대해서도 "한 번도 성과 보고서를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는 USKI 방문학자 선정 기준 등에 대해 묻기 위해 구재회 USKI 소장에게 수차례 전화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블랙리스트' 논란 보도 <조선>, 방문학자로 4명 보내 
 

 2018년 4월 7일 <조선일보> 보도
▲  2018년 4월 7일 <조선일보> 보도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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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KI 방문학자로 이름 올린 기자 38명의 면면도 살펴보았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기자를 보낸 언론사는 (주)조선미디어다. <조선일보> 4명, <조선 뉴스프레스>(주간조선) 1명이다.  그밖에 <한겨레><연합뉴스><경향신문>, KBS,SBS 등 언론사 기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USKI 지원 중단이 논란에 휩싸인 것은 지원 중단 이면에 '문재인 정권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주장 때문이다. 논란의 시작에는 <조선일보>가 있다. 보수성향인 구재회 USKI 소장을 찍어내려다 실패해 예산을 중단했다는 논리다. 

"정부가 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USKI)에 구재회 소장의 경질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연간 20억 원의 예산 지원을 중단키로 했다. 청와대가 구 소장의 성향을 집요하게 문제 삼았다고 한다. 이재오 전 의원이 이곳에 머물 당시 구 소장이 친분을 쌓은 것이 문제가 됐다는 얘기가 들린다." - 4월 7일 <조선일보> 만물상

<조선일보>는 "국내에서 문제가 됐던 블랙리스트 논란이 해외로까지 번지는 모습"이라며 USKI 지원 중단 사태를 '블랙리스트'로 명명했다. 

이 같은 논리를 자유한국당이 그대로 흡수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조선일보> 보도가 나간 직후 "블랙리스트 논란은 한국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는 미국 내 연구기관 인사개입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라며 "'문재인 정권판 블랙리스트' 진실은 그리 오래지 않아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조선일보>는 USKI 예산 지원 중단에 홍일표 청와대 정책실 선임행정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홍 행정관의 아내가 USKI 방문학자를 한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유한국당 정무위원의 말을 빌려 "USKI의 불투명한 운영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던 홍 행정관이 아내 연수 문제로 구 소장에게 청탁했다면 앞뒤가 안 맞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USKI가 워싱턴 유일의 한반도 전문 싱크탱크로, 한미 공공외교의 거점이라는 평을 받는다"고 기술했다.  

과연 사실일까? USKI는 지난 2014년부터 국회로부터 예산 편성·집행의 불투명성을 지적받아왔다. 이후 국회는 USKI 예산 사용 내역 제출을 요구했는데, USKI는 두 장짜리 보고서를 낸 게 다였다. 2017년 국회 정무위 회의에서 이학영 민주당 정무위 간사는 "시골 계모임도 이렇게까지는 안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USKI는 연간 21억 원 가량의 세금이 투입됐으며 현재까지 200억 원 넘는 세금이 들어갔다. 그런데도 USKI는 최근 뚜렷한 연구 실적을 낸 바가 없다. 연구보고서는 2015년 이후 끊겼고, 특별 보고서도 2016년 8월 이후 없다. 

지난 2017년 국회에 제출된 USKI 2016년 결산 보고서를 보면 운영비, 인건비, 프로그램비로 약 18억 5000여 만 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이 가운데 인건비가 11억 여 원으로 가장 많고, 프로그램 비용이 3억 7000여만 원 등이다. 순수 연구비는 전체의 1%도 안 된다. 

이에 대해 2017년 정무위에서는 "USKI는 결산 관련 자료 제출이 미흡하고 방문학자나 인턴십 공모·선발절차의 투명성이 부족하다"라며 "사업성과와 예산집행의 적절성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시정요구가 있다"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KIEP는 지난 2017년 11월 "방문학자 등 공모, 선발 절차는 공정한 기회부여를 위해 외부에 공표함으로써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연도별 선발 시기, 인원, 횟수 등을 사전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USKI와 협의해 년도 말에 차년도 선발계획을 외부공표"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USKI 소장과 이사장 등의 임기를 (2년, 중임가능) 명문화"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측은 "USKI 소장 교체 요청에 동의할 수 없고 그 밖의 제기 이슈에 대해서는 현 USKI 체제 안에서 해결할 것을 희망한다"라고 거부했다.

결국 시정은 이뤄지지 않았고, KIEP는 예산 중단을 결정하게 됐다. 
 

 KEIP가 발행한 'USKI 사업 개선 조치 결과' 보고서
▲  KEIP가 발행한 'USKI 사업 개선 조치 결과' 보고서
ⓒ KI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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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가 단독으로 입수해 보도한 KIEP 내부문건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이들(방문학자)이 귀국 후 USKI의 예산 증액과 사후 국정감사에서 USKI를 적극 옹호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구재회 한미연구소 소장 본인도 학문적 업적이나 연구보다는 방문학자와의 관계 증진에 치중했다." - 4월 10일 <국민일보>

사건의 본질은 '블랙리스트'가 아니다. 연구소가 로비를 해가며 예산 증액을 이뤄왔고 이것이 용인돼 온 관행에 있다. 또한 그 로비의 중심에 언론사와 정치권이 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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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오인동의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조국’ (8)
오인동  |  drioh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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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6  11: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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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동 / 재미동포 정형외과 의사이자 통일운동가 

연재를 시작하며

분단 모국에 가장 깊게 관여하고 있는 미국을 48년  살고 있는 재미동포로 1992년 이래  남과 북을 드나들며 남북.미 세 나라를 각기 안과 밖에서 보아왔다. 남은 세계 11대 산업경제국, 북은 5대 대륙간탄도미사일/6대 수소탄/10대 인공위성 우주과학국이 된 국력으로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에 두고 있다. 오직 우리 민족끼리 정신으로 남북연합방 경제체제로 6.15시대를 다시 열어 실행해 가면 자연히 북남연합방 평화체제를 합의하게 된다. 그리고 북핵을 겨레의 핵으로 남북이 품어 안고 핵비확산 선언으로 세계 평화에 매진할 바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는 제5장부터는 매주 월, 수, 금에 아래와 같은 차례로 게재된다. / 필자 주

<차례>

1. 한 나라로 함께 사는 세상            
2. 연합방 경제체제 청사진
3. 민족사 최고의 부강번영             
4. 서둘러야 할 연합방체제
5. 미국: 평화협정 거부, 북: 핵개발     
6. 북핵은 겨레의 핵으로
7. 다시 열어야 할 6.15시대            
8. 남북연합방 평화체제 먼저
9. 겨레의 핵을 어쩔 것인가?           
10. 북남 겨레핵의 비확산 선언  
11. 겨레의 핵우산 쓰고 미군철수       
12. 풍요 자유 평등 자주 통일조국

8. 남북 연합방 평화체제 먼저

북의 핵/미사일 시위 뒤 미국도 남과 중국도 각기 힘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지난 해 트럼프가 남의 종미세력이 주적이라고 하는 북을 전멸시키겠다고 하니 그들은 반가워해야 할까? 허세와 공포를 가라앉히고 각기의 처지를 성찰해 볼 때다.

미국과 중국이 어떠하든, 남과 북은 하나로 되지 않으면 불편해 견딜 수 없는 숙명의 반쪽들이다. 남은 남북교역 중단조치 해제, 개성공단 재개와 금강산관광을 곧 환원해야 한다. 유엔 대북제재에 저촉되니 어쩌니 말고 남이 자신만 가지면 6.15선언처럼 이는 민족 내부의 일일뿐이다. 연합방 경제체제를 시작해 주민들이 한 나라로 함께 사는 듯한 세상을 맛볼 때 연합방 평화체제에 합의할 수 있다.

그러면 조국에서는 어떤 전쟁도 일어날 수 없다. 북은 ‘핵폭탄은 남에 쏘기 위한 것이 아니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남과의 ‘상호불가침’을 보장함으로써 남이 전작권 전환을 하면 된다. 그러나 남의 논객들은 6자회담을 해야 한다고들 할 것이다. 주변 4국은 우리겨레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을 남북주민들이 다 아는데 왜 그들과 논의하자는가? 언제 어디까지나 남북끼리 먼저 한 뒤 3자, 4자회담이던 필요하면 하자는 것이다. 지난 20여년, 4자/6자회담들은 모두 실패해 오늘에 이른 사실을 모르나? 겨레의 이익을 위해 오로지 남북끼리 먼저 합의하고 한 목소리로 해야 겨레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다.

60여년 북을 불량깡패국가로 악마화해 온 미국이 북핵/미사일 고도화에 밀려 판문점에서 다시 마주앉아 항복문서 같은 북미 평화협정에 서명하려 나설까? 1953년 정전협정에 서명한 클라크 미 육군대장은 “…미국 역사상 승리하지 못한 정전협정에 조인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이라는 영예롭지 못한 이름을 띄게 되었다”라고 했다. 그 뒤 북에 당한 수치심을 미국은 잊었을까?

1968년, 영해침범으로 북에 나포된 정찰함 푸에블로의 82명 승무원 송환을 위해 미국은 항공모함 전단 발진과 전투기 출격 등으로 11개월 북을 위협하다가 북에 사과문을 바치고 미군들을 데려갔다. 1969년에는 영공침범한 정찰기(EC-121)가 북 전투기에 격추되어 31명이 몽땅 청진 앞바다에 수장된 치욕을 당했고, 1976년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때 미군장교 2명이 북군에 살해되자 대규모 무력위협을 했지만 어쩌지도 못했다. 그리고 1993년 핵파동 뒤 <’94년 북미기본합의>를 했다. 최강대 패권 미국은 이제 다시굴욕적인 판문점 북미평화협정 조인식장에 나오고 싶을까?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기피하던 미국이 1978년 “평화는 근본적으로 남북 사이의 문제이니 남북이 먼저 대화한 뒤 필요하면 남북•미 3자회담을 하자”고 한 것을 제5장에서 보았다. 이제는 남북의 자발적 결의와 역량과 위세로 먼저 ‘북남 연합방 평화체제’의 합의로 겨레의 이익을 챙기고 동시에 미국의 체면도 지켜주자. 그러면 북미관계 정상화도 순리적으로 이뤄지는 우리겨레의 앞날도 빛날 것이다.

6.15선언에서 우리가 되새겨 보아야 할 교훈은 첫째, 남북 사이에 화해•협력•교류•왕래한 10년 평화관계는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사실은 미국의 패권행사를 위한 정책에 반하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둘째, 그런데도 미국이 나서서 방해하지 못했다. 미국도 한 민족의 당사자 남북이 합의한 선언을 어쩌지 못한다는 증거다. 셋째, 세계 유일의 70여년 분단국 남과 북이 통일하겠다는데 미국이 반대하면 국제적 지탄을 받을 것을 미국은 안다. 넷째, 그러니 평화체제 구축은 우리겨레의 평화와 통일을 싫어하는 미국과 주변국에 달린 게 아니고 당연이 6.15선언의 의의처럼 남북 자신에 달려 있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정전 뒤의 역사를 잠시 돌이켜 보자. 1953년 정전협정에 서명한 중국인민지원군은 1958년 북에서 철수하고 중국에서 해체되었다. 1975년 유엔총회에서 유엔군사령부 해체 결의가 있었고 북은 1993년 북측 중립국감시위원회의 체코대표단을 내보냈다. 1994년, 북은 군사정전위원회를 폐지하고 대신 ‘조선인민군대표부’를 판문점에 설치하니 정전협정 당사국 중국도 떠났다. 1995년, 중립국감시위의 폴란드도 철수해 군사정전위원회는 사실상 무효화됐다.

지난 23년 동안, 북은 실체 없는 유엔군 모자를 쓴 미군과만 독대해왔다. 하여 실존하지 않는 군사정전위원회의 실질적 당사자는 북과 미국뿐이고 유엔군도 중국군도 없다. 또 북이 무효화한 군사정전위원회에 더해 북은 2013년 2월, 3차 핵시험 뒤 3월 5일, 미국과 핵 대 핵 대결 때 “정전협정 백지화”도 선언했다. 65년 전 정전협정 서명국도 아니어서 참가할 자격도 없는 남의 논객들이 종전선언을 해야 한단다. 북도 종전선언하자고 미/중에 매달리나? 사실상 실종된 군사정전위원회를 회생시켜 민족 내부의 평화체제를 구속시킬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남북 평화체제 구축은 남북만의 협의로도 가능하다. 왜냐면 2007년 10.4평화번영선언에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라고 했다. 또 ‘관련 3,4국의 종전선언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한다’고도 했지만 남북이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는데 미국이나 중국을 끌어들일 필요도 없다.

뿐만 아니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남과 북은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해 가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민족내부의 특수관계”로 되어있다. 그래서 6.15남북선언도 미국과 중국의 개입 없이 이뤄졌고 또 그렇게 실행하던 10년에 아무 문제도 없었다.

이제 6.15의 ‘사실상 평화체제’를 다시 선언하자. 북이 1960년 남에 통일로 가는 과도기적 조치로 ‘연방제’ 실시를 제안했던 정신처럼, 또 제5장에서 본대로 1974년 남이 북에 불가침협정과 교류.협력을 제안한 것을 1984년 북이 수용했던 정신처럼 해보자.

즉, 북남이 상호안보를 보장하며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조항을 재확인해도 된다. 또는 ‘연합방 평화체제’ 선언은 남이 1993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제안했던 정신에 따라 2000년 6.15선언을 하고 실행했던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니 ‘연합방 경제체제’에 이어 ‘평화체제’를 선언하자.

이러면 주변국들은 남북이 하나로 되려는 것을 반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 남북이 합의한 6.15선언의 ‘사실상 평화시대’를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의 남북은 18년 전의 미약했던 존재가 아니다. 수소탄/ICBM 우주과학국 북과 경제강국 남이 하려는 민족내부의 합의를 과연 그 누가 된다, 안 된다 할 수 있는가?

이제 남은 미국예속 노예근성에서 벗어나 남북 사이의 문제에 미.중.일.러를 불러들일 이유가 없다. 실제로 남과 북이 평화번영의 길로 한 단계 더 높여갈 2007년 10.4선언을 하고도 실행하지 못하게 한 것이 누구였나? 남의 국제관계론자들이 말하는 강대 미국이었나? 아니다! 그럼 누구였나? 6.15/10.4선언을 깬 자는 이명박이었다!

즉, 당사자의 한편인 남이 깼다. 그것도 미국의 허락도 없이 제법 자주적(?)으로! 박근혜가 개성공단을 전격 폐쇄한 것처럼 말이다. 둘 다 미국에 자진 봉사했다. 혹시 그렇지도 않았다면? 뒤에서 미국이 시키는 대로 했을지도 모른다는 얘긴가? 정말 그랬다면,… 남한, ‘이게 나라냐?’

박근혜 탄핵 반대시위에 나선 종미매국세력이 대형 미국국기를 광장에 펼쳐 놓고 두 손에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을 미국에서 보며 부끄럽고 한심했다. 혹시 미국친구가 “너의 나라의 대통령을 탄핵하는데 왜 미국기를 들고 나왔냐?”고 물을까 두려웠다. 다행이 촛불시민혁명으로 이뤄낸 박근혜 파면으로 ‘이런 게 나라다!’를 실현해 냈다.

그래 다시 만들어 낼 자 또한 남이고 북뿐이다. 이렇게 원칙과 이상에 따른 ‘연합방 평화체제’를 얘기하니 남에서는 국제관계를 모르는 순진한 낭만주의라 할 것이다. 미국시민으로 48년을 살고 있는 나는 모국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남의 정•관•군•학계 인사들의 종미사대주의에 쩔은 행태를 역겹게도 많이 보아왔다.

서해에서 남북교전이 일어났을 때, PCIP(태평양국제정책협의회)에서 미국인이 ‘남북 사이에 문제가 생겼는데 북은 왜 미국과 얘기하자 하느냐?’는 질문에 당황한 남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작전통제권이 없어서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구차스럽게 US-ROK Alliance(미.한동맹)의 중요성만 주절대며 얼버무리는 안쓰러운 모습을 보아야 했던 이 재미동포의 부끄럽고 씁쓸함이라니!

또 연례 한미 안보협의회에 참석 전에 철저한 준비로 참여하려 했던 일류대학 출신의 신임 국방부 관리가 지난 회의록을 보며 준비하자 했단다. 그런데 상관들이 ‘그런 것 필요 없고 칵테일 마시며 미국이 하는 대로 하고 오면 된다’는 말을 듣고 격분을 삼켜야 했었다는, 뒤에 국방대학원 부총장이 된 분의 말도 떠오른다. 그러니 미국 관리가 북은 밉지만 ‘존경할 만한 적’(Respectable Foe)이고, 남은 귀엽지만 ‘얕보는 동맹’(Despicable Ally)이라 했다는 얘기가 또 귀에 울린다.

소위 남의 관료/전문가들의 뼈 속까지 절어 자연스럽기까지 한 사대주의 근성으로는 이런 일은 이뤄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나 자주통일의 비현실성을 알아차리고 낭만적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남녘 대신문의 특파원/대기자/논설위원들도 많으니 말이다. 그래 그렇다 해도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허심탄회한 논의로 겨레의 앞날을 결정해 보자.

전쟁과 평화의 세계역사에도 전쟁당사자의 한쪽(북)이 상대(남)와 평화하겠다는 선언이 위배될 국제법규는 없단다. 북남 ‘연합방 평화체제’는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6.15 평화시대’도 주변국 관여 없이 남북이 해냈었다. 국제사회에서 분단국의 초라함, 어리석음, 서러움, 불이익을 73년 겪어온 남북이 민족사 최고의 경제/군사/과학적 위업을 이뤄냈으니 남북은 연합방 평화체제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남녘 논객들은 남이 북미 평화협정의 중재자로 나서야 한단다.

패권 국익을 위해 1974년 이래 거부해온 북미 평화협정을 이제 와서 미국이 할까? 한다면 미군철수가 북의 전제조건인데 남은 어찌할 것인가? 민족 내부의 문제인 북남 연합방 평화체제 합의 뒤 남북이 미국과 관계정상화 하는 것이 미국의 체면도 살려주게 될 것이다. 필요하면 뒤에 북미남 3자 평화체제를 해도 우리 겨레에 유리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미군철수 문제도 포함하게 될 것이니 이에 대해서는 제11장에서 논의해 보자.

그러면 남은 문제는 북핵이다. 남 정부와 논객들은 비핵화/북핵 폐기만 주장한다. 미국의 핵우산은 남의 핵과 같은데 북핵만 폐기하랄 수는 없지 않은가? 주변국에 휘둘리지 말고 결연하게 남북이 먼저 북핵을 겨레의 핵으로 품어 안아야만 겨레의 이익에 맞게 할 수 있다고 6장에서 말했다.

북남 연합방 평화체제를 합의하면 미국은 북핵=겨레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남북은 그 뒤 겨레핵의 동결. 폐기 또는 보유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면서 남북의 겨레핵을 어찌할 것인지 다음 제9장에서 논의해 보자.

오인동 (Indong Oh) 약력 
 

   
 

인공관절수술전공의사(은퇴),6.15해외측미국위공동위원장
하버드의대(MGH)교수,미국고관절학회:J.Charnley, F.Stinchfield상
인공고관절기/기구고안 (HD-2, Spectron, Biofit, Tifit System등)
인공고관절논문:70여편,수술법저서:14권, 미국발명특허:11 종

RoKorea - 윤동주민족상 - 윤동주사상선양회 - 2013
DPRKorea - 명예의학박사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2012
RoKorea- 한겨레통일문화상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2011

<밖에서그려보는통일의꿈> - 남북연합방, 다트앤, 서울, 2013
<평양에두고온수술가방> - 의사오인동의북한방문기, 창비, 서울,2010
<통일의날이참다운광복의날이다> - 밖에서본한반도, 솔문, 서울,2010
<Corea ,Korea>- 서양인이부른우리나라국호의역사, 책과함께,서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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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용 전 합조단민간단장, 문 대통령을 ‘링’위로 초대하다

윤덕용 전 민간합조단장이 스스로 무덤을 팠다
 
편집국  | 등록:2018-04-16 12:44:15 | 최종:2018-04-16 14:53:1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편집국] 아래 윤덕용 전 민간합조단장의 조선일보 인터뷰를 전문 게재합니다. 윤 전 단장의 답변 중 밑줄 친 부분에 대해서는 윤 단장이 과학적으로 혹은 법정에서 그 사실여부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 진실의길 편집국 - 

[최보식이 만난 사람] "문 대통령이 '천안함 생각' 왜 바뀌었는지 밝히면, 지금 같은 혼란 없어질 것"

[현 정권에서 다시 확산되는 '천안함 음모론'… 윤덕용 당시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장]

"많은 사람이 조사했고 숱한 세월 흘렀지만
'내가 조작에 참여했다'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아"

"수중 폭발의 결정적 증거 전혀 언급하지 않고
애매한 것에 의혹 부풀려 의도적으로 왜곡한 KBS"

현 정권에서 '천안함 조작설'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의혹들은 그럴듯해 보인다.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장이었던 윤덕용(78) 전 카이스트 교수는 답변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의혹을 싸 들고 그를 만났다.

윤덕용씨는“북한이 천안함에 대해 저렇게 나오는 걸 보니 비핵화 회담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최보식 기자

 

―1999년 수중 폭발 실험에서 호주 군함 '토렌스함'의 절단면은 어지럽게 찢겼다. 천안함은 거의 반듯하게 절단됐다. 과연 어뢰의 수중 폭발로 인한 게 맞나?

"폭발이 선체 어느 부위에서 났느냐에 따라 절단면이 다를 수밖에 없다. 천안함의 함미 쪽 강철 벽이 있는 지점에서 폭발이 났기 때문에 벽을 따라 일정하게 갈라졌다."

―선체와 어뢰 추진체에 붙어 있던 흰색 물질에 대해 "폭발 당시 폭약의 한 성분인 알루미늄이 산소와 결합해 생긴 비결정 알루미늄 산화물"이라며 어뢰 피폭(被爆)의 증거라고 했다. 하지만 정기영 안동대 교수는 이는 어뢰 폭발과 무관한 '알루미늄 수화물'이라고 했는데?

"알루미늄 산화물에 여분의 산소가 더 결합돼 있어 다른 수화물 복합체로 알았던 것 같다. 폭발했으면 산화물이 돼야 하는데, 이는 수화물이기 때문에 수중에서 자연 발생했다고 잘못 본 거다. 조사단도 알루미늄 산화물에 산소가 왜 이렇게 많은지 처음엔 이해를 못 했다. 열(熱) 분석 실험에서 온도를 올리자 물이 증발돼 알게 됐다. 폭발하면서 알루미늄 산화물의 표면에 기공(氣孔)이 형성돼 수분이 달라붙었던 것이다. 조사 보고서를 봤으면 금방 풀리는 의문이다."

―이승헌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도 그 흡착 물질이 어뢰 피격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알루미늄을 섭씨 1100도로 40분간 가열해 2초 이내에 급랭하는 실험을 해보니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되는 '결정 알루미늄 산화물'이 생성됐고, 폭발 증거라고 말한 '비결정 알루미늄 산화물'은 나오지 않았다는데.

"그의 실험은 3000도 이상 고온과 20만 기압 이상의 고압에서 1초 내에 터지는 폭발 실험이 아니었다. 연구실에서 폭발 실험을 재현할 수가 없다. 당시에 이미 잘못된 실험이라고 지적됐다. 그 자신도 엉터리 실험을 했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알면서도 계속 강변하는 것이다."

―그런 '비결정 알루미늄 산화물'이 폭발이 아닌 자연적으로 생길 수는 없나?

"침몰한 한두 달 사이에 자연적으로 그렇게 많이 생길 수 없다. 당시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직접 수중 폭발 실험을 해봤다. 똑같은 흡착 물질이 생겼다. 황(S)도 많이 결합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못 풀었다. 이런 물질을 규명해 본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역사상 처음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

"전쟁 중에는 함선이 침몰해버리면 끝이다. 그걸 건져 올려 실험한 적이 없다. 호주 군함 '토렌스함'도 수중 폭발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를 보는 실험이었다."

―사고 해역에서 건져 올린 어뢰 추진체의 '1번'이라는 파란색 글자에 대한 조작 의혹도 있다. 이승헌 교수는 "폭발 직후 어뢰의 추진 후부 온도는 쉽게 350도 또는 1000도 이상까지 올라간다. 이 온도에서는 잉크가 타버려 '1번' 표기는 지워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는데.

"어뢰 앞부분에 화약이 들어 있다. 폭발 때 온도가 올라가지만 1초 이내의 순간이어서 어뢰 후미인 추진체까지 열 전달이 안 된다. '1번' 글자는 흰 페인트 위에 쓰여 있다. 그 페인트는 100도만 돼도 지워지는데 그 페인트조차 지워지지 않았다. 온도가 안 올라갔기에 '1번'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 군이 확보한 북한어뢰 설계도에 그 추진체가 나와 있다."

―우리 군(軍)에서 어뢰 추진체를 몰래 사고 해역에 빠뜨려놓았다는 음모론도 있다.

"끝이 없다. 당시 어뢰 추진체를 끌어올린 쌍끌이 어선의 선원들은 중국인들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조사에 참가했고 숱한 세월이 흘렀지만 '내가 조작에 참여했다'고 양심선언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정권에서 양심선언하면 빛을 볼 수 있는데도…."

―어뢰 추진체를 못 건졌으면 조사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수중 폭발 근거는 충분했다. 다만 북한 소행임을 확실히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침몰 지점에서 어뢰 추진체가 발견되면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정말 천운(天運)이었다."

―민간 대표로 참여한 신상철씨는 "폭발이 됐으면 엄청난 열로 선체 내부가 완전히 녹아내려야 하는데 그을음이라든지 인체 손상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다. 폭발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 조사단은 석 달을 합숙했는데, 신상철씨는 두 시간 참석했다. 자기주장만 하고 먹히지 않자 나오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는 버블(거품) 순환에 의한 수중 폭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배 밑 7m 지점에서 폭발해 생긴 버블이 배를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으면서 선체가 갈라지는 것이다. 선체를 직접 타격하는 것과는 다르다. 폭발 시점에는 고열이 발생하지만 수중에서 순간적으로 이뤄져 선체에 전달이 안 됐다폭약은 터지는 순간 기체가 되므로 거의 그을음이 없다. 절단면에서 약간의 폭약은 검출됐다."

―폭발로 두 동강 났다면 선체 내 형광등이 깨지지 않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군함의 특수 형광등이었다고 들었다. 일부는 깨졌다고 한다."

―폭발이었다면 장병들의 고막이 왜 안 터졌느냐는 의혹도 제기하는데.

"폭발 당시 어느 위치에 있었느냐에 따라 다르다. 숨진 장병에 대해서는 고막 손상 여부를 조사하지 않았다생존자는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수중 폭발에 고막이 안 터질 수 있다."

―3~4월 까나리가 잡히는 철에 죽어 떠오른 까나리가 한 마리도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런 주장은 처음부터 있었다. 조류가 빨랐기 때문에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다 흩어지거나 흘러갔을 것이다."

―천안함 인양 업체 관계자들도 어뢰 폭발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는데.

"수중 폭발이나 어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선저(船底)의 스크래치로 좌초했을 것이라는데, 침몰이나 인양할 때 생겼을 수 있다. 암초 유무를 파악할 수 있는 해저(海底) 지도가 있었다. 사고 해역에는 암초가 없었다. 선저에서 튀어나와 있고 강화 플라스틱 재질로 된 소나돔도 멀쩡했다."

―'내부 폭발' 의혹도 계속 나오는데.

"선내 폭약 등 무기 체제를 점검해보니 그대로였고, 보일러실이 터지지도 않았다. 절단면을 보면 내부에서 바깥으로 터진 모양이 아니었다. 잠수함과의 충돌설도 제기하는데, 그 근방에는 아군 잠수함이 없었다. 잠수함에 부딪히면 선체에 자국이 생기지만 그것도 없었다. 잠수함 충돌로는 선체가 그렇게 갈라지기 어렵다."

―러시아 보고서는 우리 군(軍)이 설치해놓은 '기뢰 폭발'로 추정했는데?

"배 밑에서 기뢰가 그렇게 폭발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뢰 추진체가 이미 발견됐는데 기뢰 주장은 터무니없다. 러시아가 그런 보고서를 정식으로 제출한 적이 없는데, 아마 '가짜'일 것이다.러시아 전문가들은 조사가 다 끝난 뒤 와서 설명을 듣고 갔다."

―'수중 폭발'로 확신하게 된 계기는?

"미국 조사단의 총책임자는 잠수함 전문가인 해군 제독이었다. 그는 수중 폭발과 관련된 자료를 다 갖고 왔다인양된 함수와 함미를 보자마자 '절단면이 구(球)처럼 버블 모양이다. 이는 버블에 의한 피격'이라고 짚어냈다. 선체를 보강해주는 철판 표면에는 안으로 움푹 팬 부분이 있었다. 압력이 외부에서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혀 몰랐나?

"잠수함 어뢰를 개발하는 국내 기술자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잠수함도 그런 성능의 어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런 내용을 공개 안 했다."

―당시 국내외 전문가 73명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92일간 조사를 했다. 서로 의견 충돌이 있었던 대목은?

"외국 대표들은 우리가 좀 무리한 주장을 하면 '이건 100%가 아니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홀랑홀랑 넘어가지 않았다. 이견이 있으면 동의할 때까지 토론했다. 보고서 내용은 외국 전문가를 포함해 만장일치로 이뤄진 것이다. 결정적 물증인 어뢰 파편까지 나왔으니 거의 완벽한 조사였다."

―이런 보고서를 믿지 못하는 심리는 뭘까?

"정치인 중에는 보고서가 나오기 전부터 '믿지 않겠다'는 이들이 있었다. 보고서가 나왔을 때는 아예 읽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음모론을 계속 주장하면 표가 떨어질까 봐 나중에는 눈치를 봤다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의혹에 동조하다가 생각을 바꾼 것 같았다."

―사실에 대한 확신보다, 중도나 보수의 표를 얻기 위해 그랬던 것이 아닐까?

"문 대통령이 어떻게 확신을 갖게 됐느냐를 밝히면 지금과 같은 혼란이 없어질 것이다."

―지금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서는 '합리적 의심'이라고 하는데?

"합리적이 아니라 쓸데없는 의심이다. KBS 프로는 수중 폭발의 결정적 증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사소하고 애매한 것을 의혹으로 부풀렸다내가 보기에는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것 같았다."

―정치, 이념, 무지가 사실을 왜곡하는 것 같다. 북한은 이 기회를 잡아 "천안함 폭침론은 적폐 청산 대상"이라고 나왔다. 현 정권은 북한과 회담을 위해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걸 흐릿하게 하려는 것 같은데.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저렇게 나오는 걸 보면서, 과연 비핵화 회담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을지, 믿지 않게 됐다."

그는 미국 MIT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하버드대에서 응용물리학 석·박사를 했다.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귀국해 카이스트와 포항공대에서 재직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5/20180415018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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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세월호 추모공원에 대한 가짜뉴스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정치인과 반대 주민들은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있다
 
임병도 | 2018-04-16 08:17:3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 참사 4주기입니다. 참사 이후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규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유가족과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세월호 추모공원’ 건립도 지지부진합니다.

오늘 ‘4.16참사 정부 합동영결식’이 끝나면 안산 화랑유원지 내 정부 합동분향소는 철거됩니다. 이후에 ‘세월호 추모공원’ (416생명안전공원)이 추진될 예정이지만, 반대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유가족과 대다수 국민들은 “희생된 학생들이 자라고 뛰어놀던 곳에 추모시설을 품어야 한다”며 화랑유원지 내 추모공원 조성을 찬성합니다. 그러나 일부 안산 주민들은 ‘세월호 납골당’이라 비하하며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정치인과 반대 주민들은 화랑 유원지 내 조성될 ‘세월호 추모공원’ (416생명안전공원)에 대한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있습니다. 세월호 추모 공원에 대한 가짜 뉴스를 검증해봤습니다.

‘세월호 추모 공원에 대한 팩트체크’

1. 화랑 유원지 전체를 추모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거짓)

추모공간은 62만m² (18만 7천 평) 화랑유원지의 약 25분 1 (3.8%)에 해당하는 일부 구간에 조성된다. 이중 봉안시설은 10분 1 (전체의 0.1%) 규모에 불과하다.

2. 정부합동분향소가 있는 곳에 추모 공간이 조성된다. (거짓)

4월 16일 합동영결식 후에는 현재 분향소가 위치한 제2주차장의 모든 시설은 주차장으로 원상 복구된다.

3. 봉분이나 납골당이 지상에 건립된다.(거짓)

지상으로 봉분이나 납골당이 들어서는 일은 없다. 추모 공간이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적인 공모 절차를 걸쳐 친환경 디자인으로 설계할 예정이며, 안산 시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세계 각지의 방문객을 맞는 수준으로 만들 계획이다.

4. 세월호 선체가 안산으로 옮겨진다. (거짓)

제대로된 정보가 아니다.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에서 용역을 하고 있지만, 안산으로는 오지 않을 전망이 지배적이다.

5. 추모관을 세월호 유가족 모임이나 시민단체에서 운영할 계획이다.(거짓)

아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안산시민 중심으로 구성된 ‘50인 위원회’(찬성 20명, 반대 20명, 전문가 10명으로 구성)에서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이 사안은 세월호 특별법에 명시됐으므로 그에 따라 운영된다.

6. 세월호 추모 공간 사업비 때문에 안산시 재정이 파탄 난다 (거짓)

재원은 ‘4.16 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제3조 2항 및 제36조의 규정에 따라 국가가 부담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416생명안전공원’은 세월호의 아픔을 추모하는 그 이상의 상징성을 가진다”라고 말했습니다.

화랑유원지에 세월호 추모공원이 만들어진다면 아이들이 바람으로 찾아와 그리운 엄마,아빠의 손을 잡아 줄 것 같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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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안산에 가다] 분향소 떠나는 아이들, 이 비극은 영결되는가

등록 :2018-04-16 07:12수정 :2018-04-16 11:15

 

1년 만에 다시 만난 안산의 가족들
상처 아물었다가 또 도지기도…

교문 옆 떡볶이집 아이들
생명은 저렇게 아름답구나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앞 모습. 단원고 학생들은 2014년 4월 15일 당시 이 길을 걸어 등교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앞 모습. 단원고 학생들은 2014년 4월 15일 당시 이 길을 걸어 등교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6일로 세월호 참사는 4주기를 맞는다. 이날 경기도 안산 정부합동분향소 앞에서 4년 만에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이 열린다. 14일 오후에 안산의 가족들에게 식순이 통고되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정부 대표로 조사를,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이 대표추도사를 낭독한다. 불교, 천주교, 원불교, 기독교의 성직자들이 종교의례를 집전하고 합창, 추도 편지글 낭독으로 이어진다. 관계자들은 4월 말쯤에 분향소 문을 닫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14일부터 유족들 일부는 분향소에 안치된 추억의 물품과 편지 들을 집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이 참혹한 비극은 탈상(脫喪)되고 영결되는 것인가. 영결식은 ‘진상규명’을 절규하는 펼침막 아래서 거행된다. 분향소 안에서 어린 눈동자 수백 개가 지금도 사진틀 밖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학생들이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운동장을 걷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학생들이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운동장을 걷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6일의 영결식에 가족들은 아이들이 살았을 때의 반(班)별로 앉고, 반별로 헌화한다. 1반에서 10반까지다. 반 8개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정부 행사뿐 아니라 여러 모임, 거리집회, 분향소 당직까지도 가족들은 반별로 연락하고 교대한다. 아이들의 학급이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 들에게서 재현되어왔다.

 

참사 이후, 교육청은 단원고등학교 교장과 교사 전원을 교체했고, 교실의 책상, 걸상, 칠판, 화장실, 출입문을 모두 바꾸었고, 학교 오른쪽 야산을 깎아서 5층짜리 체육관을 새로 지었다. 교사들은 이제 그날의 참사를 입에 담지 않는다.

 

교문 옆 편의점은 그때 그대로 있다. 쉬는 시간마다 남녀 학생들이 몰려나와 아이스크림, 떡볶이, 우유, 초콜릿을 사먹는다. 여학생들의 빨간 입술도 그때와 같다. 친한 아이들끼리는 립스틱 색깔도 같은데, 아마도 한 아이의 것을 함께 바르는 듯싶다. 여학생들은 짙은 색을 좋아한다. 립스틱은 거의가 쇼킹핑크나 크림슨레드다. 재잘거리며 떡볶이를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날의 참사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생명은 저렇게 아름답구나, 사람의 아들딸들은 저렇게 어여쁘구나, 라는 문장이 떠올라서 급히 메모했다.

 

일 년 만에, 다시 안산의 가족들을 두루 만나보았다. 상처는 아물기도 했고 아물었다가 다시 도지기도 했고 아주 돌이킬 수 없기도 했지만, 외부인들을 경계하던 가족들의 마음은 훨씬 풀어져 있었다. 동행한 <한겨레> 사진부 김성광 기자는 사진부 수습 시절부터 이 분향소에 취재 왔었는데, 가족들이 김 기자를 알아보고 “당신 이제 잘 찍는구먼, 수줍음도 없고. 수습 끝난 모양이지?”라고 말해서 다들 웃었다.

 

 

유족들 중 절반 이상이 ‘진상규명’이 안 된 상태에서는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선거와 투표의 의미,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가르쳐주던 역사 선생님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 살아남은 학생들은 호랑이띠(21살) 아니면 소띠(22살)인데, 이번 6월 지방선거에서 첫 투표를 하게 된다.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희생자들에게도 투표 통지서가 오고, 징병검사 통지서도 올 것이다. 천문학자, 파충류 연구가, 마술사, 요리사, 국어선생님, 간호사, 아기 돌봄이, 네일 아티스트, 소지섭의 아내가 되고 싶다던 꿈들과 이제 영결해야 한다.

 

그 4년 동안 가족들은 모여서 합창단을 만들고 연극단을 만들고 원예, 바느질, 목공일을 배우며 슬픔을 삭여왔다.

 

 

노래방 좋아하던 동영군의 어머니
4·16가족합창단서 알토 맡으며
남을 받쳐주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고 김동영군의 어머니 이선자씨가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김훈 작가과 인터뷰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김동영군의 어머니 이선자씨가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김훈 작가과 인터뷰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4·16가족합창단은 유족이 12명이고 생존자 가족이 2명이다. 이들 중 부부가 3쌍이다. 어느 날 밥 먹는 자리에서 우연히 노래를 불렀는데, 재미있고 화음이 맞아서 합창단을 만들었다. 뜸북 뜸북 뜸북새(오빠생각)부터 연습해서 레퍼토리를 넓혀갔다. 4년이 지난 지금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음역을 모두 갖추었다. 여러 재난 현장, 농성장을 찾아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최근에는 서울 지하철 강남역 7번 출구 앞에 있는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들(반올림)의 농성 천막에도 다녀왔다. 이날은 삼성증권 빌딩 앞 거리에서 노래했다. 고 김동영(2학년 6반)군의 어머니 이선자씨는 합창단에서 알토 음역이다.

 

합창을 시작하고 나서 알토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알토는 소프라노나 테너처럼 화려하지 않고, 존재감이 약하다. 하지만 알토는 여러 음역들을 이어주고 그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해준다. 알토는 남을 받쳐준다. 나는 알토를 사랑한다”고 이선자씨는 말했다. (아 그렇구나! 소설가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나는 알토의 아름다움을 처음 알았다.) 이선자씨는 안산시 와동에서 김밥집을 운영했다. 이선자씨 일가족은 외식하는 날에는 늘 식사를 마치고 네 가족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아빠는 트로트, 아이들은 발라드를 불렀는데, 김동영군은 기타를 치면서 김광석의 노래 ‘먼지가 되어’를 즐겨 불렀다.

 

 

세월호 희생자의 한 가족이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직접 쓴 책 <그리운 너에게>를 읽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희생자의 한 가족이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직접 쓴 책 <그리운 너에게>를 읽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이영만군의 어머니 이미경씨가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김훈 작가과 인터뷰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이영만군의 어머니 이미경씨가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김훈 작가과 인터뷰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이영만군의 어머니 이미경씨는 연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연극단은 생존자 가족 1명, 유가족 7명인데 모두 여성들이다. 남성 역도 여성이 맡는다. 연극단을 결성하고 나서 민예총 안산지부에서 일하던 연출가의 지도를 받았고, 안산의 극단 ‘걸판’의 도움을 받았다. 첫번째 공연 제목은 <그와 그녀의 옷장>인데, 비정규직 중년 가장의 삶을 그린 1막 3장이다. 단원구 노인복지관에서 공연했다. 이미경씨는 이 연극에서 중년 남성 가장의 역할을 했다.

 

비정규직 가장 역을 하니까,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의 슬픔과 고통을 알게 되었다. 또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너, 아빠를 알아?’ 이런 무심한 듯한 한마디 대사에도 큰 슬픔이나 사랑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때, 행복하고 편안했다. 인간의 시선에 선의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고 이미경씨는 말했다.

 

관람 요금은 후불제다. 연극을 보고 나서 돌아갈 때 감동한 만큼의 액수를 모금함에 넣고 간다.(감동 후불제) 이 연극단은 지금까지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42회 공연했다.

 

 

“힘으론 안돼…기록으로 싸우겠다”
유튜브로 알리는 지성양의 아버지
직접 ‘아비의 노래’ 만들어 노래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416 TV> 사무실에서 가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연주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416 TV> 사무실에서 가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연주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문지성(2학년 1반)양의 시신은 유실되었다가 동거차도 어부 이옥령씨의 미역 다발에 걸려 올라왔다. 지성양의 시신은 얼굴이 없었다. 지성양 아버지 문종택씨는 그날부터 카메라를 들고 이 참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기록해서 보관하고 편집해서 유튜브로 송출해왔다.

 

주부단체가 바자회를 열고 그 수입금 400만 원으로 문종택씨에게 카메라 장비를 사주었다. 문종택씨는 서울에서 신문광고 업무에 종사했기 때문에 정보와 기록이 무기라는 것을 잘 알았다.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416 TV> 사무실에서 직접 작곡?작사한 ‘아비의 노래’ 악보를 보여주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416 TV> 사무실에서 직접 작곡?작사한 ‘아비의 노래’ 악보를 보여주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초기에 기록과 정보를 확보하지 못하면 구렁텅이에 빠진다. 적폐의 나라에는 감추고 지우고 뭉개려는 자들이 우글거린다. 고함으로 싸울 수도 힘으로 싸울 수도 없다. 기록으로 싸우겠다”고 문씨는 말했다.

 

문씨의 컴퓨터는 최근에 바이러스 공격을 받아서, 참사 초기 1년간 찍은 자료 14테라가 증발했다. 2.5톤 트럭 서너 대 분량으로, 기록의 핵심부이다. 컴퓨터 전문가들이 복원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누구의 소행인지 밝힐 수도 없었다. 문씨는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고 말했다. 문씨는 가끔씩 4·16 가족들을 위해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유튜브로 송출되는 영상에도 자신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쓴다. 문씨는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일어나’를 즐겨 부른다. 또 자신이 작사 작곡한 창작곡 ‘아비의 노래’를 이번 4주기에 발표할 예정이다. 문씨의 아내, 지성이 어머니 안명미씨도 합창단에서 노래한다. 노동과 노래, 사람들과의 어울림으로 슬픔을 추스르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슬픔에 눌려서 일할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조문객 맞았던
민지양 아버지는 생업도 포기
“촛불시민들 왔을 때 가장 기뻐”

 

 

고 김민지양의 아버지 김내근씨가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인근에서 꽃화분을 만들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김민지양의 아버지 김내근씨가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인근에서 꽃화분을 만들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고 김민지(2학년 1반)양의 아버지 김내근씨는 참사 이후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분향소를 지켰다. 많은 유족들이 진도, 동거차도, 청와대 앞, 국회, 한국방송(KBS)으로 몰려갔을 때 김내근씨는 분향소를 지키며 조문객들을 맞았다. 김씨는 안산에서 종업원 7명을 데리고 의류제조업을 경영해왔다. 영세했지만 자영업자였다. 김씨는 민지가 젖먹이일 때 부인과 헤어졌고 혼자서 민지를 열일곱 살이 되도록 길렀다.

 

그렇게 길렀는데 민지가 없으니까 삶이 허망해서 생업을 버티어낼 힘이 없어졌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사업을 접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16일에 영결식을 하고 분향소도 없앤다니까, 이렇게 보내질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김내근씨는 말했다. 그리고 또 한마디 덧붙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고 나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분향소에 몰려와서 끌어안고 위로해줄 때가 지난 4년 동안 가장 기쁘고 행복했다.”

 

 

 

“또래들 볼 때마다 아프고 저려…”
예슬이 이니셜 딴 가게 접은 어머니
새출발 다짐했지만 눈가에 눈물

 

고 박예슬양의 어머니 노현희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김훈 작가와 인터뷰 중에 눈물을 닦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고 박예슬양의 어머니 노현희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김훈 작가와 인터뷰 중에 눈물을 닦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고 박예슬(2학년 3반)양의 어머니 노현희씨는 안산에서 네일아트 가게를 20여 년간 운영해왔다. 가게 이름은 NY네일아트였다. N은 노현희, Y는 예슬이의 이니셜이다. 노현희씨의 월수입은 700만~800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참사 이후에도 마음을 추슬러서 계속 일을 해왔는데, 지난 1월에 가게를 닫았다.

 

예슬이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찾아와서 손톱을 내밀고 꽃, 새, 나비, 배, 레이스 무늬, 펄, 반짝이를 그려달라고 하면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또 일 때문에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슬퍼하는 사람을 향해 악담하고 저주하고 조롱하는 인간들도 있었다. 아, 이러다가 정말로 미치는 수가 있겠구나, 심장이 터질 수가 있겠구나 싶었다”고 말하면서 노현희씨는 울었다.

 

예슬이를 잃고 나서, 길에서 눈에 띄는 남의 집 아이들이 모두 예쁘고 아프고 저렸다. 나는 예슬이를 가난하게 키우고 싶지 않아서 돈을 벌었는데, 이제 예슬이가 없으니까, 차라리 돈 벌지 말고 예슬이랑 많이 놀아주었더라면 후회가 덜할 텐데 싶다. 그래도 살아야지,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울어서 미안해요.”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4.16 단원고 기억교실에 놓인 추모노트에 고 박예슬양을 그리는 글이 적혀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1일 오후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4.16 단원고 기억교실에 놓인 추모노트에 고 박예슬양을 그리는 글이 적혀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예슬이는 엄마의 하이힐을 좋아했다. 예슬이는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엄마의 구두를 신고 멋진 포즈로 방 안을 걸어 다녔다. 예슬이는 아름다운 여자가 되고 싶어 했다고 노현희씨는 말했다. 기억의 교실 안 예슬이의 책상 위에 예슬이 친구 혜정이가 편지를 써놓았다.

 

예슬아, 너의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나는 슬프다/ 김혜정”

 

노현희씨는 13일 분향소에 놓여 있는 예슬이의 물건을 집으로 가져갔다.

 

 

구조 직후 “진상규명 해줄거지”
아빠에게 제일 먼저 묻던 애진양

응급구조로 진로 바꾸고 새출발

 

 

세월호 참사 때 구조된 학생인 장애진양이 1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동남보건대에서 응급구조학과 교육용 구급차 앞에 서서 미소짓고 있다. 수원/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참사 때 구조된 학생인 장애진양이 1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동남보건대에서 응급구조학과 교육용 구급차 앞에 서서 미소짓고 있다. 수원/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장애진양은 그날 구명조끼를 입고 물로 뛰어내려서 구조되었다. 어선에 실려서 서거차도로 옮겨졌고, 거기서 응급구조사의 도움을 받았다. 애진이는 어렸을 때부터 아기를 좋아해서 유아교육과로 진학하려 했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에 진로를 바꾸어서 응급구조학과를 택했다. 서거차도에서 구조된 후 아빠를 처음 만났을 때 애진이는 대뜸 “아빠, 진상규명 해줄 거지”라고 말했다고 애진이 아빠 장동원씨는 말했다. 애진이는 최근에 안산소방서에서 실습했다. 애진이는 긴급출동 나갔다가 대원들과 함께 심폐소생으로 쓰러진 사람을 살려냈다. 애진이는 졸업 후에 소방공무원에 지망할 계획이다. 애진이 아빠 장동원씨는 4·16가족협의회에서 사무처 팀장을 맡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 구조된 장애진양의 아버지 장동원씨가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에 마련된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자료실’에서 보관 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참사 때 구조된 장애진양의 아버지 장동원씨가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에 마련된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자료실’에서 보관 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참사 초기에는 매일같이 골목골목에서 장례식이 열리고, 노제를 지내려는 장의차량이 학교 운동장으로 몰려들었다. 지금은 그 후배들이 아침마다 이 골목을 지나 학교에 간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5일 앞둔 11일 밤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가족들이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함께 웃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참사 4주기를 5일 앞둔 11일 밤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앞 가족대기실에서 가족들이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함께 웃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집을 팔고 재산을 정리해서 안산을 떠나버린 가족들도 있다. 간다는 말도 없이, 송별의 밥 한끼도 먹지 않고 그 가족들은 안산을 떠났다. 안산을 떠난 사람들의 마음의 빛깔은 취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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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0700.html?_fr=mt1#csidx016f3c3b51a0fff9f2862434358d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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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복잡해도, 그 날은 온다

[개벽예감 295] 상황이 복잡해도, 그 날은 온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4/16 [11:00]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격화시점

2.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조미정상회담과 조중정상회담 

3.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한 5가지 요구조건

4. 미국이 지급해야 할 비핵화 보상금은 얼마나 될까? 

 

 

1.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격화시점

 

매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다. 최근 격화되기 시작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내외정세분석가들은 그 두 나라의 대립이 장기간 점차적으로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는데, 격화시점이 이처럼 급속히 다가오게 될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격화를 주목하는 까닭은, 그것이 조미관계와 조중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조미정상회담을 눈앞에 둔 조미관계를 심층적으로 인식하려면, 그리고 조중정상회담 이후 발전속도를 높이고 있는 조중관계를 심층적으로 인식하려면, 미국과 중국의 대립격화에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격화가 일어난 사연은 다음과 같다.  

 

2018년 3월 23일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은 중국산 1,300여 개 수입품목에 500억 달러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대미투자를 제한시키는 문서에 서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문서에 ‘중국의 경제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대통령 비망록(Presidential Memorandum Targeting China's Economic Aggression)’이라는 제목이 적혀있었다는 점이다. 경제침략이라는 용어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격화가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미중무역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국이 무역전쟁을 도발하자, 중국도 2018년 4월 4일 미국산 128개 수입품목에 약 30억 달러의 관세를 부과하는 보복조치를 발표하였다. 중국은 보복관세를 미국산 농축산물에 집중시켰는데, 이것은 보복관세조치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미국 중서부 농축산중심지를 ‘공격’하려는 전의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무역전쟁을 도발한 날, 백악관으로부터 지구 반대편으로 13,600여 km 떨어진 남중국해 북부해역에서 중국을 심히 자극하는 또 다른 도발이 자행되었다.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USS Carl Vinson)을 주축으로 편성된 미국 해군 제1항모타격단이 일본 해상자위대 함대를 인솔하고 남중국해 북부해역에서 중국군과의 교전을 가상한 미일합동군사훈련을 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중국해는 미국과 중국의 해군무력이 대치하는 해역인데, 미국이 그런 해역에 일본 해상자위대까지 끌어들여 미일합동군사훈련을 감행한 것은 중국을 극도로 자극한 무력시위였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2018년 3월 23일부터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과 무력시위를 동시병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중국에게 가장 큰 자극과 압박을 가한 것은 미국의 대중무역전쟁이나 대중무력시위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충격적인 결정이었다. 2018년 3월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턴(John R. Bolton)을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하였다. 

 

볼턴은 대화와 협상을 멀리하고, 대결과 강압을 우선시하는 악명 높은 강경파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보좌관 물망에 오른 인물들 가운데서 볼턴을 간택한 것은, 대중강경정책을 공격적으로 수행할 싸움꾼을 선봉에 내세운 것이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07년 8월 13일 중국 대만 타이페이를 방문한 존 볼턴이 황치팡 당시 대만외교부장과 회담하는 장면이다. 볼턴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정하면서, 미국이 대만을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대만과 복교하고, 대만을 유엔에 재가입시켜야 한다고 떠들어댈 뿐아니라, 심지어 중국과 무력충돌을 벌이는 위험도 감수할 중국혐오증환자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3월 23일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선포하고, 중국혐오증환자인 볼턴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하였고, 그보다 앞서 2018년 3월 16일에는 미국과 대만 사이의 정부당국접촉을 촉진하기 위한 대만여행법안에 서명하였다. 이것은 미국의 대중강경정책이 위험수위에 접근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하던 날, 중국은 경악하였다. 왜냐하면, 볼턴은 악명 높은 강경파라는 일반적인 평가를 뛰어넘어, 미국의 기존 중국정책을 뒤집어버리고, 중국과의 무력충돌마저 불사할 매우 위험한 중국혐오증환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볼턴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해온 미국 역대 행정부들의 기존 중국정책을 완전히 부정하였다. 그는 미국이 대만을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대만과 복교하고, 대만을 유엔에 재가입시켜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분리독립론자이다. 그는 2017년 1월 16일 <월스트릿저널>에 발표한 글에서 미국과 대만은 “긴밀한 군사관계”를 맺어야 하며, 일본 오끼나와에 주둔하는 주일미국군 일부를 대만으로 재배치할 수도 있다는 망언을 늘어놓았다.  

 

(2) 미국의 전직 고위관리 두 사람의 발언을 인용한 <싸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 2018년 4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볼턴은 미국의 국익추구라는 명분을 내걸고 중국과 무력충돌을 벌이는 위험도 감수할 수 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한 것은 계산된 행동이었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하기 1주일 전인 2018년 3월 16일, 그가 미국과 대만 사이의 정부당국접촉을 촉진하기 위한 대만여행법안에 서명하였기 때문이다. 그 법에 따르면, 모든 미국 정부당국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만을 방문할 수 있고, 대만의 고위관리도 미국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대만여행법이 발효된 직후인 2018년 3월 20일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가 대만을 방문하여 차이잉원(蔡英文) 대만총통을 만났고, 3월 22일에는 미국 상무부 부차관보가 대만을 방문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1주일 간격을 두고 대만여행법을 발효시키고, 대만분리독립론자를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한 것은 대만을 중국에서 떼어내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지배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대만을 중국에서 떼어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야욕은 무력시위를 동반하였다. 이를테면, 2018년 4월 6일부터 9일까지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로저벌트함(USS Theodore Roosevelt)을 주축으로 편성된 미국 해군 제9항모타격단은 싱가포르 해군함대를 인솔하고 남중국해에서 대중무력시위를 또 다시 감행하였다. 2018년 3월 중순에는 제1항모타격단이 남중국해 북부해역에 들어가 중국을 자극, 압박하더니, 곧이어 4월 초에는 제9항모타격단이 남중국해 남부해역에 들어가 중국을 또 다시 자극, 압박한 것이다. 대중무력시위를 마친 제9항모강습단은 4월 10일 남중국해를 통과하여 필리핀 마닐라로 북상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을 중국에서 떼어내려는 야욕을 드러내자, 중국은 참을 수 없었다. 미국의 대중무역전쟁과 대중무력시위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자는 결전의지가 중국의 주요언론매체들마다 들끓었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전투복을 입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4월 12일 남중국해에서 진행된 대규모 관함식에서 해군무력과 공군무력을 사열하는 장면이다. 중국은 미국 해군의 대중무력시위에 맞불을 놓기 위해 중국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관함식을 진행하였다. 관함식을 마친 중국 해군 항모함대는 대만해협으로 북상하여, 오는 4월 18일 대만해협에서 실탄사격훈련을 실시할 것으로 예정되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대만해협은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의 독무대였는데, 그 동안 해군무력을 급속히 강화한 중국이 이제는 그 해역에 항모함대를 출동시켜 대만의 분리독립책동을 저지하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 강경한 분위기 속에서 중국은 4월 5일부터 10일까지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해상군사훈련을 진행하여 미국의 대중무력시위에 맞불을 놓았고, 4월 12일에는 남중국해에서 항공모함 1척과 전투함 48척으로 편성된 방대한 해군무력과 전략폭격기, 조기경보기, 전투기, 공중급유기 등 각종 작전기 76대로 편성된 방대한 공군무력을 동원한 관함식을 진행하였다. 그 관함식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최대 규모로 진행되었는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전투복을 입고 지휘함에 올라 해군함대를 사열하였다. 남중국해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관함식을 마친 중국 항모함대는 대만해협으로 북상하여, 오는 4월 18일 대만해협에서 실탄사격훈련을 실시할 것으로 예정되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대립격화로 정세가 험악해진 가운데, 영국 언론매체 <이코노미스트> 2018년 4월 5일부는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오늘 6월 중에 대만방문을 강행할 것이라는 예측기사를 실었다. 만일 그 예측기사대로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만에 나타나 대만분리독립을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면서 미국과 중국의 대립격화는 폭발점에 이르게 될 것이다.  

 

 

2.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조미정상회담과 조중정상회담  

 

한반도 정세발전을 추동하는 요인은 조미관계변화이며, 그 변화의 중심부에 조미정상회담이 있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조미관계변화만으로는 전부 설명하지 못할 복잡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날로 험악해지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격화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국제정세를 대국중심주의로 인식하는 백악관은 미중관계를 중심에 놓고 정세변화를 설명하지만, 대국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조미관계를 중심에 놓고 정세변화를 인식하려면, 조중미 삼각관계를 새로운 관점으로 붙들어야 한다. 

 

조중미 삼각관계에서 정세변화를 인식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대중강경정책에 매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조선적대정책과 대중강경정책을 동시병행하지 못하며, 둘 중에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연은 다음과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조건 없이 덥석 수락한 까닭은,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으로 조미핵대결에서 패한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에 계속 매달려봤자 국가안보파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3월 8일 백악관에서 접견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전달받자마자 조미정상회담을 남북정상회담보다 앞서 개최하고 싶은 다급한 심정을 피력했던 것이다. 조미핵대결에서 미국의 패배,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황급히 수락한 요인이다.

 

그런데 조중미 삼각관계에서 바라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황급히 수락한 또 다른 요인이 보인다. 그 제2요인은 미중관계의 대립격화에서 발생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무역전쟁, 대중무력시위, 대만분리독립책동을 포괄하는 대중강경정책을 밀고 나가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수락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수락한 것은 그가 대조선적대정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곤궁한 지경에 몰려있음을 말해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수락하고, 대조선적대정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오늘의 아메리카핵제국이 어제의 아메리카핵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미국은 조선과 중국 두 핵강국을 상대로 대결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늙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대조선적대정책과 대중강경정책을 동시에 밀고 나가면, 조선과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협공을 받게 되는데, 늙은 핵제국에게는 그 두 핵강국의 협공에 맞설 힘이 없는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2018년 4월 13일 새벽 미국군은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측면지원을 받으며 시리아공습작전을 감행하였다. 지난 해에 이어 또 다시 불법무도한 무력침공을 자행한 것이다. 위의 사진은 미국군, 영국군, 프랑스군이 발사한 함대지순항미사일과 공대지순항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시리아정부군이 발사한 지대공미사일들이 시리아의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며 솟구쳐오르는 장면이다. 침략군은 135발의 순항미사일을 시리아의 타격대상들을 향해 발사하였는데, 시리아정부군은 71발을 요격해 떨어뜨렸다. 30년 전 소련에서 생산된 지대공미사일로 구성된 낡은 방공망이 최첨단이라고 자랑하는 침략군의 순항미사일을 제대로 요격한 것이다. 이번 시리아공습작전의 실패는 늙은 아메리카핵제국이 허약증에 걸려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늙은 핵제국의 힘이 약해졌다는 사실은 2018년 4월 13일 새벽에 자행된 시리아공습에서도 드러났다. 이 글의 주제에서 약간 벗어나지만, 핵제국의 허약한 몰골을 드러낸 불장난소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측면지원을 받으며, 시리아의 타격대상 세 곳을 향해 135발의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 공대지순항미사일이 36발이었고, 함대지순항미사일이 99발이었다. 타격대상 한 개를 파괴하기 위해 순항미사일을 45발씩 쏜 것이다. 미사일이 남아돌아서 그렇게 마구 쏴버린 게 아니라, 시리아정부군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가 타격대상을 정확히 타격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값비싼 미사일을 그처럼 마구 쏘아댄 것이다.

 

미국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다. 시리아정부군은 135발 중에서 71발을 지대공미사일로 요격해 떨어뜨렸다. 시리아정부군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간 64발 가운데 타격대상에 정확히 명중된 것이 몇 발인지 발표되지 않아서 명중률을 알 수 없지만, 64발 가운데 타격대상에 명중된 것은 25발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근거는 2017년 4월 7일 미국이 시리아정부군 공군기지들을 향해 순항미사일을 발사하였을 때, 명중률이 39%에 머물렀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 동안 시리아정부군은 러시아의 군사지원을 받으며 방공망을 대폭 보강하였고, 이번에 보강된 방공망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런데 시리아정부군의 방공망은 30년 전 소련에서 생산된 S-125 페초라(Pechora) 지대공미사일, 북(Buk) 지대공미사일, S-200 지대공미사일로 구성된 것이다.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의 제작회사인 레이시온(Raytheon)은 너무 과대평가된 명성에 비해 명중률이 창피할 정도로 낮은 그 순항미사일의 성능을 대폭 개량했는데도, 30년 전 낡은 기술로 만든 시리아의 방공망을 뚫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졌다. 늙은 핵제국은 허약증에 걸렸다. 

 

만일 미국이 대중강경정책에 집중하지 않으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밀려나면서 괌과 하와이로 물러나야 한다. 이것은 미국에게 견딜 수 없는 굴욕이다. 미국이 대중무역전쟁, 대중무력시위, 대만분리독립책동에 매달리는 것은 굴욕을 당하지 않으려는 늙은 핵제국의 몸부림이다.

미국이 대중강경정책에 집중할수록 대조선적대정책이 약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조건 없이 즉석에서 수락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조중미 삼각관계에서 바라보면, 중국이 조선에 대한 태도를 왜 바꾸었는지도 알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의 대중강경정책에 맞서 싸우려면 조선과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고 친선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중국이 조선과의 친선관계를 복원하면, 미국의 대중강경정책에 맞서 싸우는 데 자기 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중정상회담 제의를 시진핑 주석이 쾌히 수락한 요인이다. 

 

조중미 삼각관계에서 바라보면,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된 정세를 이용하여 조미정상회담과 조중정상회담을 각각 성사시키고, 그 회담들에서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범한 외교지략이 보인다.    

 

 

3. 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한 5가지 요구조건

 

조중관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도꾜신붕> 2018년 4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3월 26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조중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성실히 대하면, 조미정상회담 전이든 후든 비핵화 이행일정표를 만들 수 있다”고 시진핑 주석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을 주도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조중정상회담 이전에 일찌감치 갖춰놓았음을 알 수 있다. 

 

조미정상회담 준비상황에 밝은 몇몇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한 <한겨레> 2018년 4월 13일부 보도기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주도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갖춰놓았는지를 알려준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최근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조미사전접촉에서 조선은 미국에게 5가지 요구조건을 제시했는데, 그 요구조건들은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한국에서 철수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에 핵전략자산을 전개하지 말고, 재래식 무기나 핵무기로 조선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증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고, 조선과 국교를 수립하는 것이다. 여기에 열거한 5가지 요구조건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면, 그 요구조건들 속에 담긴 뜻이 좀 더 명료하게 드러난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8년 4월 1일 경상북도 포항 인근 해변에서 상륙기동훈련을 진행하는 한미연합군의 진격장면이다. 미국은 올해 키리졸브-독수리 한미연합군훈련에 항모타격단과 전략폭격기 같은 핵전략자산을 참가시키지 않았다. 항모타격단과 전략폭격기가 적진에 대한 선제타격을 선행한 뒤에 상륙작전을 시작할 수 있는데, 그런 전략자산들이 참가하지 않았으니, 올해 상륙작전은 맥빠진 헛발질로 되고 말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조미사전접촉에서 조선은 미국에게 5가지 요구조건을 제시하였는데, 거기에는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한국에서 철수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에 핵전략자산을 전개하지 말라는 요구조건이 들어있다고 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한국에서 철수하라는 요구조건에서 주목하는 것은 핵전략자산이라는 개념이다. 왜 핵무기를 철수하라고 하지 않고, 핵전략자산을 철수하라고 했을까? 핵전략자산이라는 포괄적 개념 속에는 핵무기는 물론이고, 전시에 핵무기들이 배치될 핵공격예비기지도 포함되는데, 주한미국군기지가 바로 핵공격예비기지다. 지금 주한미국군기지에 전술핵무기가 전혀 배치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조선이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한국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전시에 핵무기가 배치될 주한미국군기지를 폐쇄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주한미국군기지가 폐쇄되면, 주한미국군은 철수해야 하므로, 조미사전접촉에서 조선은 주한미국군 철수를 첫 번째 요구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주한미국군 철수는 한국과 일본에게 감당키 어려운 ‘안보충격’을 안겨줄 가장 민감한 사안이므로, 조선은 미국군을 한국에서 철수하라는 명시적인 표현 대신에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한국에서 철수하라는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2) 한미합동군사훈련에 핵전략자산을 전개하지 말라는 요구조건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영구히 중지하라는 뜻이다. 미국은 항모타격단과 전략폭격기를 동원하는 대조선전쟁연습을 끊임없이 벌여왔는데, 항모타격단과 전략폭격기를 참가시키지 않는 전쟁연습은 예산낭비,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핵전략자산이 전개되지 않는 대조선전쟁연습은 하나마나 한 것이므로, 조선이 핵전략자산을 전개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영구히 중지하라는 뜻이다.   

 

(3) 미국이 재래식 무기나 핵무기로 조선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증하라는 요구조건은 불가침을 보증하라는 뜻이다. 미국이 조선에 대한 불가침을 보증하려면, 종잇장에 불과한 불가침문서나 넘겨주어서는 안 되고, 주한미국군을 완전히 철수하고 대조선전쟁연습을 영구히 중지해야 한다.   

 

(4)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라는 요구조건은 주한미국군 철수와 대조선전쟁연습 중지를 국제법적으로 보증하라는 뜻이다. 

 

(5) 조선과 국교를 수립하라는 요구조건은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을 완전히 폐기하라는 뜻이다.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에는 전쟁위협은 물론, 정권교체, 인권공세, 경제제재, 외교고립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조미국교수립은 전쟁위협, 정권교체, 인권공세, 경제제재, 외교고립으로 혼합된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 미국이 지급해야 할 비핵화 보상금은 얼마나 될까? 

 

조중정상회담에 밝은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요미우리신붕> 2018년 4월 8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3월 26일 조중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우리 체제를 확실히 보장하고, 핵포기에 따른 전면적인 보상을 받게 된다면 핵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다”고 시진핑 주석에게 말했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말한 ‘체제보장’은, 위에 열거한 조선의 5가지 요구조건을 미국이 실천행동으로 충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런 ‘체제보장’과 더불어 ‘핵포기에 따른 전면적인 보상’도 언급하였다. 조선의 비핵화에 대한 보상문제가 조미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것이라는 예상은 <한겨레> 2018년 4월 13일 보도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비핵화는 결코 공짜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므로, 당연히 전면적인 보상이 따라야 한다.

 

조선의 비핵화에 대한 전면적인 보상은 조선이 지난 40여 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개발, 생산, 건설한 무기급 핵물질, 핵탄 및 열핵탄, 대륙간탄도미사일, 지하핵시설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물질적 보상을 뜻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할, 비핵화에 대한 물질적 보상이 얼마나 엄청난 규모인지를 파악하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18년 4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밑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가 진행되는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 회의에서 "조미대화전망을 심도 있게 분석평가하시고, 금후 국제관계방침과 대응방향을 비롯한 전략전술적 문제들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주도할 모든 준비를 이미 끝냈음을 의미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조미사전접촉에서 조선은 미국에게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한국에서 철수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에 핵전략자산을 전개하지 말고, 재래식 무기나 핵무기로 조선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증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고, 조선과 국교를 수립하라는 5가지 요구조건을 제시하고, 조선의 비핵화에 대한 전면적인 보상문제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5가지 요구조건과 비핵화 보상은 조선이 미국에게 정치적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무기급 핵물질의 가격은 1kg당 23,000달러다. 조선이 무기급 핵물질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였는지 외부에서 알 수 없지만, 지난 30여 년 동안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해온 것을 생각하면, 최소 1,000kg 정도의 무기급 핵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미국이 조선의 무기급 핵물질을 폐기시키려면, 조선에게 2,3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2) 핵탄제작비는 더 엄청나다. 첫 번째 생산되는 핵탄 1발의 가격은 1억1,130만 달러이고, 그 이후 대량생산되는 핵탄들의 가격은 1발당 995만 달러다. 조선이 얼마나 많은 핵탄을 보유하였는지 외부에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이 약 25년 동안 핵탄을 생산해온 것을 생각하면, 조선이 보유한 핵탄은 최소 120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므로 미국이 조선의 핵탄을 폐기시키려면, 조선에게 12억9,535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물론 열핵탄제작비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므로, 미국이 조선의 핵탄과 열핵탄을 모두 폐기시키려면, 조선에게 20억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3) 대륙간탄도미사일제작비를 살펴보면, 연구개발비가 2억 달러이고, 생산단가는 1발당 4,000만 달러다. 조선은 화성-13, 화성-14, 화성-15, 그리고 명칭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열병식에 모습을 드러낸 대륙간탄도미사일 3종이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6종의 총보유량은 최소 60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므로 미국이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체계를 폐기시키려면, 조선에게 26억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4) 미국에서 핵시설건설비는 1개소당 1,500만 달러다. 그와 달리, 조선은 모든 핵시설들을 지하에 건설하였으니 건설비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가 1개소당 3,000만 달러로 추산된다. 조선에 지하핵시설이 몇 개소 있는지 외부에서 알 수 없지만, 최소 50개소의 지하핵시설이 있다고 가정하면, 미국이 조선의 지하핵시설을 폐쇄하기 위해 조선에게 지급해야 할 보상금은 15억 달러에 이른다. 

 

(5) 위에 열거한 비핵화 보상금을 전부 합하면, 54억1,835만 달러다. 하지만 이것은 어림잡아 최소 금액으로 추산한 것이므로, 실제 금액은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미국에게 그처럼 엄청난 보상금을 조선에게 지급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 보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해서, 조선의 비핵화를 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상금을 지급할 수도 없고, 비핵화를 포기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리게 된 미국은 결국 자기가 지급할 수 있는 비핵화 보상금에 맞춰 부분적인 비핵화를 합의하게 될 것이다. 

 

조미정상회담이 열리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위에 서술한 것처럼 주한미국군 철수, 대조선전쟁연습 영구 중지, 대조선불가침 보증, 평화협정 체결, 조미국교수립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할 것이고, 그와 더불어 위에 서술한 것처럼 최소 54억1,935만 달러에 이르는 비핵화 보상금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할 것이다.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이것은 조선이 미국에게 정치적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만한 핵제국은 조선이 정치적 굴복을 요구할 조미정상회담에 과연 응하려고 할까? 

 

미국 언론매체들이 몇 차례 보도한 것처럼, 지금 조선과 미국은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접촉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위에 서술한 조선의 5가지 요구조건과 비핵화 보상문제가 조미사전접촉을 통해 백악관에 전달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이 분명하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2018년 4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주지사들과 의회지도자들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발언하는 장면이다. 그는 지금 조미정상회담이 한창 준비되고 있는데, 그 회담은 아주 멋질 것이며, 매우 존중하는 마음으로 정상회담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사전접촉을 통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에서 자기에게 정치적 굴복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상봉과 회담을 고대하고 있으며, 그 회담이 아주 멋진 회담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 회담에 임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미국에게 정치적 굴복을 요구하는 조선의 5가지 요구조건과 막대한 비핵화 보상금을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조중미 삼각관계에 얽힌 심층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충격적인 보고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펄쩍 뛰면서 조미정상회담은 해보나 마나 결렬될 것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매우 불길한 상상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로이터통신> 2018년 4월 12일부 보도기사는 그런 불길한 상상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보도당일 백악관에서 주지사들과 의회지도자들을 접견하면서 지금 조미정상회담이 한창 준비되고 있는데, 그 회담은 아주 멋질 것(it will be terrific)이며, “우리는 매우 존중하는 마음으로(with a lot of respect)” 정상회담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기에게 정치적 굴복을 요구할 조미정상회담을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멋진 회담으로 여기며, 존중하는 마음으로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시리아에서 또 다시 불장난소동을 일으켜 전 세계를 혼란과 위험에 몰아넣은 핵제국의 오만한 황제이지만, 왠지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는 공손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로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말 못할 사연이다. 기존관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사연은 앞으로 조미정상회담에서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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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만 있고 민주주의 없는 구조조정, 결코 안 된다

[사설] 시장만 있고 민주주의 없는 구조조정, 결코 안 된다
  • 현장언론 민플러스
  • 승인 2018.04.16 10:26
  • 댓글 0
▲ 지난해 9월1일 오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울산시청 정문 앞에서 회사의 인적 구조조정 계획 철회와 울산시의 적극적인 중재를 촉구하며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조선업이 나아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250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오늘 현대중공업노조는 이와 관련해 임시대의원대회를 연다고 한다. 정부가 지난 5일 ‘조선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하고, 군산을 비롯해 울산동구 등 6개 시를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한 가운데 나온 터라 의혹마저 제기된다. STX노동조합이 사실상 500여명 해고에 준하는 가혹한 자구책을 수용하고서야 겨우 법정관리를 면한 직후이다 보니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호타이어 해외매각은 결국 막지 못했고, 한국지엠의 갑질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촛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 아래서 일방적 구조조정이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되도록 나둬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다양한 사회적 힘을 총동원하여 외국대기업이나 재벌기업이 일방적 구조조정, 대규모 희망퇴직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해외자본과 재벌기업들에게 특권만 누릴 것이 아니라 국내경제, 지역경제, 일자리 등에 대한 강한 사회적 책임을 지라고 요구해야 한다.

최근 진행되는 대규모 구조조정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먹튀자본과 재벌적폐세력의 탐욕의 산물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정부지원금 빨아먹기에 이골이 난 지엠자본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 지원금을 손도 안대고 코 푸는 식으로 받아먹으려고 시작한 것이 군산공장 폐쇄이고, 한국지엠 철수협박이다. 현대중공업 권오갑 사장이 담화문을 통해 “회사 체질개선 마무리 단계, 더 이상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고 선언한 것이 지난 2015년 6월1일이다. 그런데 아무 구조조정 사유가 없는 2018년 4월3일 사무기술직 400명에다 생산기술직 2000명을 구조조정 하겠다고 나섰으니 어찌된 일인가? 최근 현대로보틱스를 지주회사로 삼아 정기선 3세 경영체계를 완비해온 현대중공업이 이제 전원 비정규직 생산체계로 다가오는 조선호황기를 맞이하려고 선제적 구조조정을 발표한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사회적 책임감이라고는 눈꼽 만치도 없는 갑질 중의 상(上)갑질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기업에게는 여론의 질타와 더불어 정부 지원축소 등 징벌적 조치도 취해야 한다.

재벌세력의 구조조정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공간을 이용하고 문재인 정부의 개혁정책을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때문에 정부도 경각심을 가지고 무분별한 구조조정을 적폐청산과 경제대개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

현대중공업의 이번 구조조정 계획은 문재인 정부가 ‘향후 4년간 조선업에서 적절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조선산업발전전략을 악용한 것이다. 구조조정은 단순히 비용절감 차원에서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조선업에서 정규직 노동시장을 해체하고 비정규직 노동시장만 남기자는 것이다. 결국 정규직은 거의 소멸하고 비정규직만 남게 되고, 전체 노동자임금의 하향평준화가 진행되면서 전체노동자 임금총량은 줄어들게 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정책을 흔들고, 소득주도 성장동력을 잠식하게 된다.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정책,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산업정책, 구조조정과 연계해 입안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지엠, 금호타이어, STX조선 등 최근 구조조정 사업장이 모두 산업은행 책임과 연계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산업정책, 구조조정정책, 4차산업 영역에서는 시장논리, 심지어 신자유주의 논리에 흠뻑 젖어있는 관료들이 주도하고 있다. 최근 소득주도성장론 자체가 후퇴하는 듯한 양상마저 보인다. 정규직을 대량해고하고 그 자리에 비정규직을 고용하면 된다는 식의 일자리 정책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시작에 불과하다. 구조조정이나 4차산업 공간을 이용하여 코너에 몰린 삼성 등 재벌의 총체적 반격이 시작될 것이며, 알게 모르게 여기에 동조하는 관료들이 늘어갈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발밑에서 자라나는 이런 독버섯을 경계하고 미리부터 그 싹을 잘라내야 한다.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은 구조조정 문제와 대한 투쟁과 교섭을 더욱 강력하게 진행해야 한다.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해온 재벌대기업들이 구조조정문제만 터지면 노동자들을 죄인 다루듯 하면서 고통을 전가시키고 대량해고를 자행해온 행태는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은 일이다. 산업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러한 일방적 구조조정은 제조업에서 숙련을 약화시키고,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이러한 노동배제적 일방적 구조조정 행태가 촛불항쟁을 지나온 오늘날에도 그대로 반복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왜 항쟁 속에서 꽃피어난 민주주의가 재벌 앞에서 여전히 멈춰서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결국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이 나서야 한다. 당사자의 직접행동만큼 강한 힘은 없다. 대량해고에 맞서 싸우는 것이 촛불정신이다.

재벌의 구조조정은 고용을 줄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노조를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반민주적이다. 구조조정 관련 노사대화라는 것도 어떤 방법으로 죽을 것인지를 정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노동이 배제된 일방적 구조조정을 막고 대량해고에 저항하는 것은 당사자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투쟁이거니와 그 저지를 통하여 전체 노동자의 방어선을 구축하게 된다.

문제는 현재 진행되는 구조조정 저지투쟁이 해당 당사자에게만 맡겨지면서 각개격파 당하고 있는 점이다. 금속노조, 민주노총 등 상급조직들은 현장에서 진행되는 구조조정 저지투쟁을 더욱 과감하게 연대전선, 정치전선으로 묶어세워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투쟁은 더욱 필요하다. 또한 조선해양에 대한 투자가 경영자의 선택이었던 것처럼 인적 구조조정 역시 노사가 함께 결정해야 할 경영상의 문제이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굳게 단결하여 투쟁할 때에만 재벌과 정부를 대화와 교섭자리에 끌고 올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경청하는 태도로 자리에 앉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는 노동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현장언론 민플러스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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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도 생명권·안전권 개헌 없다는 한국당

[取중眞담] 청와대·정당 개헌안으로 비교한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

18.04.16 08:10l최종 업데이트 18.04.16 08:10l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15일 오후 전남 목포 신항만에 인양된 세월호가 침몰하며 부숴진 모습으로 거치되어 있다.
▲  2017년 11월 15일 오후 전남 목포 신항만에 인양된 세월호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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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비극 이후 우리는 달라졌습니다. 생명을 우선하는 가치로 여기게 되었고,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촛불도, 새로운 대한민국의 다짐도 세월호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5일, 세월호 참사 4주기를 하루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성명이다. 그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을 세월호의 비극에서 찾았다.

세월호는 나라답지 않은 나라의 상징이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의 민낯에 경악한 시민들은 애써 마음 한켠으로 밀어두었던 세월호를 다시 떠올렸다. 정권을 단죄한 혁명의 광장은 세월호 앞에선 엄마의 마음으로 젖었다. 먹먹한 울음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명령했고, 변화를 시스템화하라고 지시했다. 부름을 받은 대선 주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개헌을 주장해야 했다. 

세월호에 응답해야 하는 개헌
 

세월호참사 4주기 '기억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세월호참사 4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월16일의약속 다짐문화제’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세월호참사 4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월16일의약속 다짐문화제’.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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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문재인 정부가 나왔다. 촛불을 문재인 정부와 동치해선 곤란하지만 촛불 없이 지금의 문재인 정부는 불가능했다. 유례 없이 지속되고 있는 대통령 지지율 고공행진은 청와대의 공도 있겠으나 이 정부 출생의 비밀과 더 관련이 깊다. 시민들 다수가 촛불을 들었고, 지금은 그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고 서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변화의 풍랑 속에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개헌에 민감한, 아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이유도 여기 있다. 그리고 그 정부가 세월호를 새 대한민국의 출발로 진단하고 있는 만큼, 이들이 제출한 개헌안에는 필연적으로 세월호의 흔적들이 엿보인다. 조국 민정수석은 지난 3월 20일 청와대의 개헌안을 처음 발표하는 자리에서 '세월호'를 세 번이나 언급했다.

"87년 6월 항쟁을 통해 헌법을 바꾼 지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IMF 외환위기, 세월호 참사를 거치면서 국민의 삶이 크게 바뀌었고,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이후 새로운 대한민국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개헌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세월호 참사, 묻지마 살인사건 등 각종 사고와 위험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 이에 헌법에 생명권을 명시하고,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살 권리를 천명하는 한편, 국가의 재해예방의무 및 위험으로부터 보호의무를 규정하겠다." (생명권·안전권 신설 부분) 

"세월호 특별법 입법 청원에 600만명의 국민이 참여했지만 입법발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중략)국민이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과 국민이 직접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겠다." (국민발안제·국민소환제 신설 부분)

31년만의 개헌이 필요한 이유에서부터 세월호가 등장했고, 전에 없이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을 헌법에 명기했다. 기존 헌법에서 "국가가 재해를 예방하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던 것을 "보호해야 한다"고 고쳐 국가의 책임을 못박았다. 세월호로부터 서서히 촉발된 시민혁명, 그 역사가 내준 과제에 청와대가 답안을 제출한 격이다.

응답 없는 자유한국당

 

국회가 내놓은 답안은 어떨까. 가장 최근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가 열렸던 지난 9일 각 정당별 답안지가 드디어 국회에 도착했다. 원내 주요 정당들의 구체적인 개헌안 당론이 헌정특위에 정식 보고된 것이다. 헌정특위의 전신인 개헌특위부터 헤아리면 약 1년 4개월여만이었다. 바른미래당은 이날까지도 당론을 제출하지 못했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라니까 이들이 제출한 답안지를 채점해보자. 다음은 '생명권' 개헌에 대해 각 정당이 낸 답안이다.
 

 지난 9일 국회 헌정특위에 제출된 정당별 개헌 의견 비교표.
▲  지난 9일 국회 헌정특위에 제출된 정당별 개헌 의견 비교표.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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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 생명권 신설.
한국당 : (공백)
평화당 : 생명권 신설. 인간존엄의 기초이자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판례·학설상 인정되어온 생명권을 명문화.
정의당 : 헌법재판소 결정례로 인정된 생명권을 명시하고 사형제도의 폐지도 함께 명기
대통령 : 모든 사람은 생명권을 가지며, 신체와 정신을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이번엔 '안전권' 개헌 문제다.
 

 지난 9일 국회 헌정특위에 제출된 정당별 개헌 의견 비교표.
▲  지난 9일 국회 헌정특위에 제출된 정당별 개헌 의견 비교표.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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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 안전권 신설.
한국당 : (공백)
평화당 : 안전권 신설.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
정의당 : 안전하게 살 권리를 기본권으로 신설.
대통령 : 모든 국민은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

4당의 답안지 가운데 자유한국당의 일관된 공란이 단연 눈에 띈다. 지난 3일 당의 구체적인 개헌 로드맵을 처음 공개한 자리에서 "국민 기본권 강화"를 강조하면서도 유독 생명권·안전권에는 침묵했던 자유한국당이 끝내 답안지를 수정하지 않은 것이다. 국회에 제출된 표에 휑하게 남은 저 네모 빈칸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아우성이 들려오는 것 같다. 자유한국당은 세월호 참사 당시 국정을 운영하던 집권 여당이었다.

현재 국회 의석수 116석으로 개헌 저지선을 갖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한 개헌은 불가능하다. 생명권과 안전권이 신설된 개헌안도 그저 빛 좋은 개살구 신세다. 생명권·안전권이 포함된 청와대의 기본권 개헌안 발표 직후 "지방선거용 개헌"(3월 20일, 홍준표 대표)이라고 폄하하던 자유한국당은 이번 6월 안산시·경기도의원 지방선거에서 4.16생명안전공원을 "세월호 납골당"이라고 호도하며 선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1기 특조위 때 가족들에게 대못을 박은 황전원씨를 2기 특조위원으로 재차 추천했다. 한 아버지가 머리까지 또 밀었지만 여전히 꿈쩍 않고 있다. 

그렇게 세월호 4주기가 돌아왔다. 세월호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서정시를 쓸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서정시를 계속 써내려가야만 한다. 

그러나 아직 자유한국당에선 대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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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방씨 일가는 왜 훈장을 받았나

조선일보 방씨 사주 일가 훈장 내역 살펴보니…‘장자연 사건’ 연루 의혹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도 ‘산업포장’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8년 04월 15일 일요일

조선일보를 이끌었던 고(故) 방일영·방우영 형제는 독재 정권은 물론 민주 정권에서도 정부 훈장을 받았다. 장자연 사건과 연루된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도 1994년 산업포장을 받았다. 행정안전부 대한민국 상훈’ 홈페이지를 통해 조선일보 방씨일가의 훈장내역을 분석했다. 

 

▲ 고 방우영 전 조선일보 상임고문. 사진=연합뉴스
▲ 고 방우영 전 조선일보 상임고문. 사진=연합뉴스
 
박정희가 방우영에 준 ‘대통령표창’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12월 방우영 전 조선일보 상임고문(1928년 1월22일~2016년 5월8일)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납북인사 송환’ 100만인 서명 운동에 대한 공로였다. 방 전 고문은 당시 조선일보 사장으로 현 방상훈 사장의 작은 아버지다.

2013년 7월 월간조선을 보면 조선일보는 1964년 6월25일 6·25전쟁 14년을 맞아 총 3개 지면을 ‘납북인사 송환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소식으로 채웠다.

조선일보는 1면에서 “본사(本社)는 만전의 준비를 갖추기 위해 본 운동 개시 기일을 내(來) 7월1일부터 금추(今秋) 유엔개회를 앞둔 10월 말일까지로 정하고 한국 적십자사의 적극적 협찬 아래 본사와 지사 총국 지국 등 중앙과 지방의 전 조직망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명 운동 첫 날부터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정·관계 주요인사가 대거 참여했다. 서명 첫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직접 서명을 보냈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6월25일부터 12월13일까지 총 19회 관련 기사(단신 보도 제외)를 실었다. 이 가운데 11회는 신문 1면에서 보도했다. 서명인 수는 10일 만에 25만을 육박했다. 3주 만에 50만을 돌파했다. 1964년 8월20일 100만명을 돌파했다.

같은 해 11월 박정희 대통령은 방우영 사장에게 보낸 감사 서한에서 “귀사의 빛나는 노력이 우리 3000만 민족의 한결 같은 통일에의 염원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 믿어 그 취지가 귀사에 길이 기록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2014년 새해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칠 무렵 조선일보가 대대적으로 ‘통일이 미래다’ 캠페인을 펼쳤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통일 대박’은 박근혜 비선 최순실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 방일영문화재단은 언론과 사회의 선진화에 기여할 언론·교육·문화 사업을 목적으로 지난 1993년 11월 설립됐다. 사진=방일영문화재단 홈페이지
▲ 방일영문화재단은 언론과 사회의 선진화에 기여할 언론·교육·문화 사업을 목적으로 지난 1993년 11월 설립됐다. 사진=방일영문화재단 홈페이지
 

1970년 두 형제 나란히 ‘국민훈장’

 

방우영 전 고문은 1970년 5월에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정부는 한국신문협회 부회장이던 그가 언론 창달과 언론계 육성 및 언론인 자질 향상에 공로가 있다고 밝혔다.  

국민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적을 세워 국민 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며 5등급으로 나눠진다. 모란장은 1등급인 무궁화장 다음인 2등급 훈장이다. 

방상훈 사장의 아버지인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1923년 11월26일~2003년 8월8일)도 같은 해 8월15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사회 산업 부문에서 국가 발전에 공이 크다”는 이유였다.  

두 사람은 전두환 정권에서도 훈장을 받았다. 방일영 전 회장은 1982년 4월 신문의날 기념식에서 “민주 언론 창달과 신문 기업 육성에 이바지”했다는 이유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같은 날 함께 무궁화장을 받았던 언론사 대표는 김상만 동아일보 명예회장이었다.  

조선일보는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1980년 5월26일자 사설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계엄군은 일반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소화한 희생만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쓰는 등 신군부 폭거를 미화했다.

방우영 전 고문은 1985년 3월 조세의 날 기념식에 동탑 산업훈장을 받았다. 산업훈장은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며 5등급으로 나눠진다. ‘동탑’은 3등급이다. 이날 1등급인 금탑 산업훈장을 받은 이는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이었다. 수상자들은 국세청 방침에 따라 세무조사 면제라는 특급 혜택을 받았다. 

민주화 이후에도 받은 훈장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정부는 그들을 챙겼다. 방우영 전 고문은 노태우 정부인 1992년 4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사회 발전과 언론 문화 창달에 기여한 공로였다. 그는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8년 1월에도 문화·예술 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 문화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최근 장자연 사건으로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동생)도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11월 산업포장을 받았다. “에너지 절약에 공이 크다”는 이유로 153명이 각종 훈·포장 및 표창을 받았다.

코리아나 호텔은 정권 유착 없이 설명하기 어렵다. 방우영 전 고문은 자신의 저서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에서 코리아나호텔과 관련해 “박정희 대통령이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호텔을 지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1965년 어느 날 방일영 회장이 청와대 오찬에 초대받아 갔다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이런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신문사 형편으로는 고층 호텔을 지을 여력이 없었다. 방 회장이 난색을 표하자 박 대통령은 ‘일본에서 들여오는 민간 차관 중 일부를 할당해주겠다’며 호텔 건축을 강력히 권유했다. 그렇게 해서 정부의 지급 보증으로 일본에서 400만 달러 민간차관을 들여와 코리아나 호텔을 짓게 됐다.”

 

▲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등 언론시민단체들과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자연 사건 재수사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등 언론시민단체들과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자연 사건 재수사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언론인이 훈장 받아도 되나”

 

김대중 정부도 1999년 5월 방일영 전 회장에게 금관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당시 은관 문화훈장 수상자로 결정된 권근술 한겨레 논설고문이 훈장을 거부해 화제였다.

미디어오늘은 1999년 “권 고문의 훈장 사절은 이미 친일파가 훈장 수상자로 둔갑하는 등 훈장의 권위가 실추돼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다”며 “다만 언론인에 대한 훈장 수여를 일부 언론이 1면 주요기사로 처리할 정도로 ‘의미’를 부여하는 상황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김동민 당시 한일장신대 신문방송학 교수(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외래교수)도 1999년 4월 “언론인이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는다는 건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며 “만에 하나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저널리스트로서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에게 한정해야 한다. 방씨와 조선일보가 그러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손석춘 한겨레 여론매체부장(현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1999년 9월 ‘밤 대통령, 낮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정부가 조선일보 두 형제에게 훈장을 수여한 것을 비판했다.  

손 부장은 “총칼로 집권한 정치 군인도, 직선으로 뽑힌 ‘민주 인사’들도 앞다퉈 밤의 대통령에게 ‘추파’를 던지는 까닭은 무엇일까”라며 “바로 여론이다. 현대사회에서 언론은 여론 형성에 막강한 힘을 지닌다. 더구나 조선일보를 비롯해 그와 ‘색깔’이 비슷한 동아일보, 중앙일보 세 신문의 신문 시장 독과점은 70%를 넘나든다”고 지적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2001년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시장 조사와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검찰은 1999년 보광그룹 실소유주인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 2001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조희준 국민일보 회장 등을 구속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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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천안함 “추적 1번 어뢰, 천안함 재조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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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8/04/15 11:14
  • 수정일
    2018/04/15 11:1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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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1번 어뢰 조사 담당자, “나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
 
뉴스타파  | 등록:2018-04-14 10:13:40 | 최종:2018-04-14 10:31:1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8천안함 “추적 1번 어뢰, 천안함 재조사를 말한다”
(뉴스타파 / 심인보 / 2018-04-13)

 

 

클릭하면 영상을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천안함 1번 어뢰 조사 담당자, “나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의 결정적 증거라는 ‘1번 어뢰’에 대한 새로운 증언이 나왔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조사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소속으로 천안함 1번 어뢰의 부식 검사를 직접 담당했던 한국교통대학교 김의수 교수의 증언이다. 그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자신이 수행했던 부식 검사의 결과가 합조단 보고서에 왜곡돼 실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번 어뢰의 해수 잔류 시간을 측정하기 힘들다’고 보고했는데, 합조단은 보고서에 ‘1번 어뢰와 천안함 선체의 부식 정도가 유사하다’고 기술했다는 말이다. 뉴스타파는 이 같은 사실을 국과수 문건으로도 확인했다.

김 교수는 또 합조단이 자신에게 재질 분석을 통해 1번 어뢰가 북한제인지를 입증해달라고 했으나, 국방부가 갖고 있던 대조품 북한 어뢰가 양산품이 아닌 시제품이어서 비교 분석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뉴스타파는 이와 함께 합조단이 천안함 함수 인양 당시 천안함 내에서 캠코더를 입수해 안에 있던 동영상까지 복원했으나, 이를 증거물 목록에서 제외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확인했다.

김의수 교수, “1번 어뢰, 부식 검사로는 바닷속에 얼마나 있었는지 추정할 수 없었다”

뉴스타파는 지난 2015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조사 결과에 대해 여러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 뉴스타파가 제기했던 여러 의문 가운데 하나는 천안함 사건의 ‘스모킹 건’이라는 1번 어뢰에 관한 것이었다. 뉴스타파는 당시 1번 어뢰의 부식 상태에 대해 합조단이 제대로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뉴스타파가 3년 전 제기한 의문은, 천안함 사건 조사 당시 어뢰 부식 검사를 직접 담당했던 김의수 교수의 증언과, 이와는 별도로 뉴스타파가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을 통해 입수한 문건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김의수 교수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1번 어뢰에서 직접 시편을 채취해 부식 정도를 분석했으나 부식 정도를 가지고는 1번 어뢰가 해수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를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1번 어뢰 공개 당시 언론이 제기했던 의혹, 특히 ‘50일 만에 진행된 부식이라고 보기에는 부식 정도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과학적으로 답변할 수 있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재질이나 이런 쪽을 연구하시는 분들은 다 아시는 것처럼, 부식이라는 것은 주로 해수의 염기도라든지 온도, 용존 산소량에 따라 크게는 몇 십 배 몇 백 배까지도 차이가 납니다. 1번 어뢰가 바닷속에서 어떻게 있었는지 그 상태를 모르고, 포지션을 모르고 또한 여러 재질이라든지 이런 부분들도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부식 정도를 가지고 시간을 추정한다는 게 어렵지 않느냐 (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분석을 해서 밝히는 게 맞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잔류 시간을 추정하기 힘들다, 이렇게 결론을 (합조단에) 보낸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의수 교수/천안함 1번 어뢰 조사 담당


담당자도 모르게 뒤바뀐 합조단 보고서의 결론

그런데 합조단 보고서에는 이 같은 김 교수의 분석 결과와는 전혀 다른 결론이 실려있다. 합조단 보고서 199쪽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199쪽

“부식 상태로는 시간을 추정할 수 없다”라는 김의수 교수의 결론 대신 “전문가들이 육안으로 봤을 때 천안함 선체와 어뢰의 부식 정도가 유사한 것으로 확인됐다”라는 결론이 실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의수 교수는 합조단 보고서를 처음 봤을 때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제 이름이 거론이 되면서 선체와 어뢰의 부식 정도가 유사하다, 그런 부분이 확인이 되었다 그런 것을 보고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당시에 이 보고서를 제가 받았을 때 내용을 봤을 때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햐면 제가 선체 부식을 전혀 분석한 적도 없고, 또 육안상 두 개가 비슷하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는 것은 공학이나 과학을 한 입장에서는 그렇게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폐이기 때문에…

김의수 교수/천안함 1번 어뢰 조사 담당

더구나 김의수 교수는 합조단에 “육안으로 봤을 때도 양쪽의 부식 정도가 같은지에 대해 추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육안 검사를 통해서도 부식 정도가 유사하다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셨어요? 조사 당시에?)
말씀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왜냐하면 분석 장비를 통해서도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그걸 육안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더더욱 제가 보기에 말이 좀 어폐가 있는 것 같고...

김의수 교수/천안함 1번 어뢰 조사 담당

김의수 교수의 의견은 왜 합조단 보고서에 왜곡된 채 실린 것일까? 뉴스타파는 합조단 보고서의 최종검수를 맡았던 윤덕용 전 천안함 사건 민군합동조사단장에게 이유를 물었다. 윤덕용 전 단장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김의수 교수의 보고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다. 윤 전 단장은 김의수 교수가 “거짓말을 하고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국과수의 어뢰 부식 검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윤덕용 단장의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과수 문서에는 국방부 합조단이 2010년 5월 24일 국과수에 1번 어뢰의 시편 두 조각을 채취해 보내면서 ‘부식층 분석을 통해 해수 잔류 시간을 추정해 달라’고 의뢰했다고 돼 있다. 국과수는 1번 어뢰에서 채취한 시편을 전자현미경과 에너지 분광기 등을 통해 면밀히 살펴봤지만, 부식층 분석을 통해서는 잔류시간을 추정하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7월 12일 이같은 결론을 합조단에 회신했다. 김의수 교수의 증언이 국과수의 공식 문서로 확인된 것이다. 결국 적어도 1번 어뢰의 부식 문제에 관한 한 국방부의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에는 심각한 왜곡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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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는 합조단의 의뢰를 받아 1번 어뢰의 해수 잔류 시간을 검사했지만 추정이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다. 합조단은 그러나 국과수의 결론과 다른 내용을 보고서에 실었다.


1번 어뢰 재질 분석 시도… “북한제 결론 내릴 수 없었다”

김의수 교수는 천안함 사건 조사 당시 1번 어뢰에 대한 기술적 분석을 통해 이 어뢰가 북한제가 맞는지를 판정하는 역할도 맡았다. 1번 어뢰의 재질과 국방부가 확보하고 있던 다른 북한 어뢰의 재질을 비교 분석하면 생산 기술의 수준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북한 어뢰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사 담당자였던 김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이런 분석은 불가능했다. 국방부가 갖고 있던 북한 어뢰는 딱 하나였는데, 그 어뢰는 1번 어뢰와 달리 양산품이 아니라 시제품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 기술 수준을 비교하기 위한 전제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김 교수는, 1번 어뢰의 생산기술은 우리나라나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후진적이었던 점은 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어뢰 자체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산용 어뢰가 아니고 시험용 어뢰라고 그래서 그냥 한번 만들어보는 그런 용도의 어뢰이기 때문에… 재질도 완전히 틀리기 때문에… 같은 재질을 놓고 같이 비교를 해야지 생산기술적인 부분이나 조직적인 부분의 비교를 할 수가 있는데 재질 자체가 아예 틀리니까…

김의수 교수/천안함 1번 어뢰 조사 담당

김 교수는 윤덕용 단장이 합동조사 결과를 발표하던 날 “1번 어뢰를 북한에서 만들었다”고 확언하는 것을 듣고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본인이 분석한 부분만 가지고는 1번 어뢰를 북한 어뢰라고 단정하기에 미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조단의 정보분과 등에서 나름대로 분석을 했을 것이라 믿었고, 따라서 1번 어뢰가 북한제라는 결론을 크게 의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당시 김의수 교수의 생각대로 합조단 정보분과는 1번 어뢰에 대해 철저히 검증했을까?


입수 경위도 모르는 ‘국정원 제공 설계도’가 유일한 근거

뉴스타파의 지난 2015년 취재 결과 당시 1번 어뢰의 설계도를 입수해 합조단에 전해준 것은 국정원이었다. 윤종성 전 천안함 사건 합조단 공동조사단장은 지난 2015년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국방부 정보본부가 갖고 있던 정보로는 1번 어뢰가 북한 것인지 식별이 되지 않아 국정원에 도움을 요청하자, 국정원이 곧바로 1번 어뢰의 설계도를 포함한 10여 건의 북한 어뢰 정보를 건네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정원이 제공한 1번 어뢰의 설계도가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입수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했다.

정리해보면, 기술적 분석만으로는 1번 어뢰가 북한제라는 것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정원이 어뢰의 설계도면을 제공했고, 그 설계도면의 입수 경위에 대해서는 당시 합조단의 최고위 관계자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제가 분석을 안했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합조단에서 제시하는 것은 1번, 그리고 설계도라는 부분인데 만약에 그쪽 부분에서 판단하는데 있어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 어뢰가 북한제라는 부분은, 증거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조금 더 검토를 해봐야 되지 않느냐, 좀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의수 교수/천안함 1번 어뢰 조사 담당

뉴스타파는 국정원에 ‘이제는 천안함 침몰 8년이 지나 보안상 위험이 사라졌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어뢰 설계도의 입수 경위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국정원은 정보 사안에 대해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틀에 박힌 대답만 반복했다.


누락된 천안함 증거, 8mm 캠코더 테이프의 내용은?

합조단은 또 천안함 함수에서 발견한 주요 수거물도 누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천안함에서 캠코더를 발견해 국과수에서 영상까지 복원했지만 합조단 보고서 수거물 목록에는 빠졌다. 영상의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국방부는 영상의 소재파악도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진선미 의원실을 통해 천안함 조사 당시 국과수가 조사한 증거물 감정서 13개를 입수했다. 이 중 문서번호 ‘2010-M-12706’라고 돼있는 감정서에는 합조단이 국과수에 캠코더 안에 있던 영상물을 복원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돼 있다. 캠코더는 천안함 함수에서 수거한 것이다. 국과수는 이 테이프 안에 있는 영상을 복원해 합조단에 보냈다.

캠코더와 같은 영상 장비는 군사 보안이 요구되는 곳에서는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물건으로, 훈련이나 군사 작전상황과 관계된 내용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증거물이다.

하지만 합조단 보고서 어느 곳에서도 함수에서 발견된 캠코더와 국과수에서 복구한 영상에 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전기레인지와 군용 망원경, 심지어 돌덩이까지 보고서 수거물 목록에 수록한 점으로 볼 때 함수에서 발견해 복원까지 한 영상을 누락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천안함 사건 1년 뒤인 2011년 3월 정부 차원에서 발간한 천안함 사건 백서에서도 역시 캠코더와 영상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 없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당시 실무자에게 확인해보니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유의미한 자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공개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국과수의 감정서에는 캠코더 안에 있던 8미리 테이프에 담긴 영상을 복원했고, 오후10시27분부터 오후 11시 22분까지의 시간 자막이 찍혀 있는 영상과 2005년 9월에 촬영된 영상이 있으며, 그 이후 다른 시간대 영상이 존재한다고 기록돼 있다. 현재 감정서만으로는 영상이 촬영된 날짜를 특정할 수 없다. 테이프에 기록된 시간도 설정값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시간과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과수가 합조단에 보낸 감정서에는 천안함에서 발견한 캠코더 영상을 복원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합조단은 이 내용을 보고서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감정서에는 국과수가 복구한 영상 중 한 컷의 사진이 첨부돼 있는데 무엇을 촬영한 것인지는 식별이 불가능하다. 현재로서는 이 캠코더 안에 있던 영상이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내용인지 알 수 없다. 국과수는 2010년 4월 28일에 복구한 영상을 담은 CD를 합조단에 보냈는데, 국방부는 현재 조사본부 실무자가 CD의 소재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천안함 생존 장병, “북한 소행 확신하지만 재조사에는 동의”

왜곡되거나 부실한 합조단의 조사는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했다. 이 때문에 지난 8년 간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수많은 의혹을 낳았고 사회 갈등은 커졌다. 최근 북한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내가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의 주범이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농담조로 자신을 소개하고, 천안함 생존 장병이 천안함 관련 KBS 추적 60분 내용에 대해 강하게 비판을 하면서 천안함 사건 논란이 재점화됐다.

취재진은 천안함 생존 장병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천안함 사건 당시 상병으로 침몰 순간 함 내 전투상황실에서 당직을 서고 있던 김윤일 씨다. 생존 장병 김 씨는 ‘천안함 재조사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김 씨는 천안함 예비역 전우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천안함 생존 장병 김윤일 씨는 북한 소행임은 확신하지만 ‘천안함 재조사’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김윤일 씨와 생존장병들은 천안함을 침몰 시킨 것이 100% 북한의 소행일 것이라고 지금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근거는 합조단의 조사 결과다. 취재진은 김윤일 씨에게 합조단의 조사 결과가 부실하고 왜곡됐다는 위 취재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내용을 들은 김 씨는 천안함을 침몰시킨 것이 북한의 소행일 것이라는 믿음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지만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합리적인 의혹이 있다면 사건을 재조사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취재 : 심인보, 신동윤
촬영 : 최형석
편집 : 정지성, 박서영, 윤석민
CG : 정동우

출처: https://newstapa.org/43695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493&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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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법원장제, 이대로 둘 건가

['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9>]

 

 

 

['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1>] "대통령 개헌안, 일단 합격"...다음은?

['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2>] 국무총리 제도의 딜레마

 

나는 지금까지 8편의 연재 글을 통해서 한국의 대통령이 어째서 제왕적 대통령인지, 한국의 국회의원이 어째서 제왕적 국회의원인지를 설명했다. 대통령 개헌안이 어떤 면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탈제왕화에 실패했으며 왜 그렇게 됐는지 따져봤다. 동시에 국가권력을 틀어쥔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국회의원을 몰아낼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며 이번 개헌과정에서 본격적 공론화를 기대했다. 이제 제왕적 대법원장을 다룰 차례다. 두 편으로 나눠서 알아본다. 한국의 대법원장은 어떤 면에서 제왕적 대법원장이며 어떻게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가 지금까지 유지돼 왔는지를 밝히는 게 첫 번째 글이다. 두 번째 글에서는 제왕적 대법원장제를 혁파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방안을 제시하며 그 관점에서 대통령 개헌안의 사법부 관련 사항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제왕성의 근원은 법관인사권 독점이다 

다소 과장하자면 우리나라사법부는 제왕적 대법원장아래 3000명의 난쟁이 법관들이 땅 밑에서 일하는 1만3000 명 법원공무원과 함께 분주하게 움직이는 대법원장의 제국으로 비유될 수 있다. 이런 설명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대법원장이 최고법원의 재판장으로서 법의 제국의 대제사장일 뿐 아니라 사법부 전체의 행정수반으로서 사법행정과 법관인사의 총책임자를 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대법원장의 제왕적 지위는 그가 법원행정처의 보좌를 받아 법관인사권과 법원공무원인사권, 사법행정권을 독점 행사하는 사법부의 행정수반이라는 지위에서 온다.  

대법원장의 제왕성을 쉽게 이해하려면 국회의장과 비교해보면 된다. 따지고 보면 국회의장도 국회를 대외적으로 대표하고 본회의 주재권한을 가진 국회'의장'일 뿐 아니라 사무처, 입법조사처, 도서관 등을 거느린 입법부의 행정수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을 제왕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법관 3100명 전체에 대해 전보, 승진, 징계 등 전적인 인사권을 행사하는 대법원장과 달리 국회의장은 국회의원 300명에 대해 아무런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법원장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300명을 마음대로 상임위에 배치, 교체하고 마음대로 상임위원장을 시켜주며 마음대로 국회부의장을 시켜줄 권한을 가진 제왕적 국회의장을 떠올리면 된다. 현실세계에는 이런 권한을 가진 제왕적 국회의장은 없는 반면 전국의 법관을 상대로 이런 권한을 휘두르는 제왕적 대법원장은 있다. 이게 우리 사법부의 근본문제이자 이번 개헌기회에 반드시 해소해야 할 근본과제 중 하나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법원장으로 완성된다 

제왕적 대법원장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중요한 기둥이자 제왕적 대통령의 하위파트너다. 제왕적 대통령은 제왕적 대법원장이 협력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모든 제왕은 적법절차를 무시하게 마련이라 그의 권력남용은 정치스캔들의 옷을 입고 언젠가 사법심사의 도마 위에 오른다. 이때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용감한 법관이 있으면 제왕적 대통령도 그때그때 필요한 법의 응징을 받는다. 실은 이렇게 되면 이미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다. 법원의 살아있는 견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뽑은 제왕적 대법원장이 법관의 돌출행동을 적절히 제어해줘야만 정권이 휘청거릴 만큼 결정적으로 불리한 '악성'판결을 예방할 수 있다. 

제왕적 대법원장은 승진, 전보 등 인사권을 무기로 용기 있는 소신법관의 출현과 도전을 억누른다. 아무리 정의로운 법관이라도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한직을 전전하다 옷 벗고 나갈 위험이 작지 않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끝까지 남아서 법원장을 하고 대법관을 하는 출세법관들이 대부분 교양 있고 매너 좋은 권위순종형 인간들이다. 제왕적 대법원장의 의중이 제왕적 대통령 편이라는 게 읽힐 때 이들은 기꺼이 제왕적 대법원장의 뜻을 따른다. 제왕적 대통령은 제왕적 대법원장을 통해서만 사법부 전체를 자신의 비옥한 영토로 삼을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로잡기 위해서 반드시 제왕적 대법원장을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다. 

사법부 독립이 법관 독립은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이 필요한 이유는 국가권력의 남용을 통제하고 국민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사법부가 입법부나 행정부의 간섭아래 놓인다면 무슨 수로 제대로 입법부와 행정부를 통제할 수 있겠는가.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사법부 독립의 실체는 사법(재판)의 독립이고 재판의 독립은 그 주체인 법관의 독립에 다름 아니다. 만약 사법부 소속 법관들이 여전히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며 재판에 임한다면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기서 사법부 독립은 법관독립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제왕적 대법원장은 법관독립의 암적 존재다. 제왕적 대법원장시스템에서는 어떤 법관이라도 대법원장의 요직발탁과 승진, 대법관제청을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레 세상의 이목과 대법원의 관심을 끌만한 재판에서 대법원장의 의중을 살피게 된다. 한마디로 제왕적 대법원장은 존재 그 자체로 법관들이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의식하며 중요사건을 재판하게 만든다. 법관독립과 상극인 것이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간섭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확보했어도 사법부를 대법원장의 제국으로 만든 대가는 혹독하다.  

강한 대법원장이 아니라 강한 법관이 강한 사법부를 만든다

제왕적 대법원장이 있으면 강한 사법부가 되지 못한다. 우선 기개 있고 소신 있는 법관을 길러내지 못하고 소속법원장의 인사고과와 대법원장의 정기인사를 의식하며 움츠려든 용졸한 법관들을 양산한다. 강한 사법부는 개별법관이 강한 사법부지 대법원장이 강한 사법부가 아니다. 제왕적 대법원장제는 법관독립뿐 아니라 강한 사법부를 가로막는 잘못된 시스템이다. 

강한 사법부도 법관독립이 강한 사법부를 의미한다. 권력남용과 인권침해를 법의 칼로 응징하며 약자의 최후 보루로 기능하는 강한 사법부는 법관이 권력의 유혹과 압력은 물론 여론과 통념에서도 독립하여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할 때만 가능하다. 물론 외부간섭과 윗분 눈치에서 해방된 법관도 적절한 통제를 받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제왕적 법관으로 타락할 수 있다. 법관독립의 강화가 다른 한편에선 법관의 권력남용 제어장치 강화로 귀결되어야 할 이유다. 

제왕적 대법원장은 헌법이 만들어냈다 

사법권을 행사할 사법부를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지는 헌법의 중요한 관심사이자 규율대상이다. 우리나라헌법의 현저한 특징 중 하나는 사법부(헌재 포함)에 대한 규정이 매우 간략하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헌법이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 독점을 당연시한 데서 비롯된다. 우리 헌법은 지금까지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의 귀속주체를 명시한 적이 없다. 우리 헌법상 대법원장의 권한으로 규정된 건 대법관제청권이 전부다. 나는 헌법학자들이 이 조항에서 법관인사권의 대법원장 귀속을 읽어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대법관인선권을 주었다면 그 아래 법관들에 대해서도 인사권을 주었다고 해석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사법행정권, 특히, 법관인사권의 대법원장 집중과 독점이 가져올 법관독립에 대한 악영향을 알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선진국헌법의 예에 따라 대법원장 대신 제3기구(이를테면 최고사법평의회)를 만들어서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을 맡겼을 것이다. 설령 대법원장에게 법관인사권을 맡겼더라도 권한 행사의 절차요건을 규정하는 등 효과적인 견제장치를 모색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 사회의 헌법학의 한계가 여론주도층의 헌법인식의 한계가 되고 그것이 다시 헌법규율의 실패로 전환된 전형적인 보기라고 할 수 있다.  

국회와 청와대는 왜 제왕적 대법원장을 방치했나? 

헌법에는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을 견제할 장치가 전혀 없지만 법원조직법에는 대법원장의 인사권전횡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여럿 있는 게 사실이다. 대법관회의, 법관인사위원회, 대법관제청절차, 법관징계위원회, 법원별 판사회의 등이 그것이다. 대체로 사법파동을 거칠 때마다 신설되고 강화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법과 실무에서 모두 최대한 물 타기가 진행돼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 수준으로 운영된다. 제왕적 대법원장의 법원행정처는 각종 통제기구와 절차가 형식적으로 굴러가도록 온 힘을 쏟는 반면 법원행정처가 위원으로 위촉하는 내외부의 인사들이나 국회의원, 법학자들은 법의 취지나 운영실태에 관심을 두거나 개선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법원조직법의 절차통제가 유명무실해진 이유다. 

우리법원과 사회는 이미 헌법과 법률, 관행과 의식으로 수십 년 동안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수용한 상태였다. 이따금 법관들의 사법파동으로 실밥이 뜯어져나갔지만 옷의 원형이 바뀌지 않은, 몸에 잘 맞는 옷으로 여겼다. 

 

매년 어김없이 몇백 명씩의 법관이 전근 발령을 받아 보따리를 쌌지만 이런 전보인사 관행을 법관독립의 관점에서 시비 거는 사람은 법원 내외에 전무했다. 

이론적으로는 법원조직법을 개정해서 제왕적 대법원장을 실효성 있게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선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이 헌법으로 뒷받침되기 때문에 법원조직법으로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법원조직법을 손볼 때도 대법원장의심복, 법원행정처의 엘리트판사들이 국회와 협의를 진행한다. 이들이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축소나 통제에 나설 리는 만무하다.  

청와대와 여당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제왕적 대법원장을 지원하게 마련이다. 권력실세나 여당의원, 정권적 이해관계가 걸린 재판에서 필요한 정보를 가지려면 법원행정처의 엘리트판사들과 일정한 소통 고리를 잡고 있는 게 유용하다. 국회의원들은 대통령과 행정부의 일로도 정신이 없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법부까지 건드려서 법원행정처 판사들에게 찍히고 싶지 않다. 국회법사위원들은 주로 검찰출신이라 제왕적 대법원장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제왕과 측근에게 접근권이 있는 힘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제왕적 대법원장제가 편하고 좋다.  

청와대가 사법발전위나 사법개혁위를 만들어서 사법개혁을 추진했지만 그때도 제왕적 대법원장제, 즉,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 독점은 개혁의 도마 위에 올라오지 않았다. 사법발전이든 사법개혁이든 그 추진주체는 법원과 법관이라 누구라도 그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때 법원과 법관의 대표기구는 당연히 제왕적 대법원장의 최대수혜자들이 모인 법원행정처다. 실은 청와대건 국회건 사법부독립의 명분 때문에 사법부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문제제기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여기다 바깥사람들은 잘 알기도 어려운 게 사법부조직이다. 제왕적 대법원장제가 오랫동안 무풍지대에서 순항해온 이유 중 하나다. 

법학자와 법관들은 뭐 했나? 

제왕적 대법원장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연구한 헌법학자는 몇 되지 않는다. 헌법학계에서는 사법행정제도에 대한 비교헌법연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입법부, 행정부와 더불어 3부 국가권력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인신구속과 강제집행 등 가장 직접적으로 강제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인데도 사법부의 구성과 조직, 통제에 대한 헌법전문가가 거의 없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입만 열면 사법부를 인권과 정의를 지켜내는 최후보루라고 치켜세우지만 막상 정의롭고 강한 사법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조사연구는 턱없이 부족했다. 법학자들도 제왕적 대법원장제의 확대재생산을 방임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직접당사자인 법관들도 오랫동안 제왕적 대법원장제의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눈뜨지 못하고 대안을 알지 못했다. 일제시대 때부터 내려온 제왕적 사법행정체계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받아들였다. 오히려 사법부가 비교적 예측가능성이 높은 능력주의 인사시스템을 발전시켰다고 자부하며 흔쾌히 수용한 측면도 없지 않다. 물론 이렇게 된 건 법관들이 공부한 표준적 헌법교과서들이 비교제도연구를 통해 우리 사법부의 제왕적 성격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어주지 못하고 보다 민주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우리법연구회, 깨어있는 법관들의 첫 조직된 힘 

물론 제왕적시스템의 문제점을 온몸으로 느끼는 일군의 젊은 판사들이 간간이 사법파동을 일으켰다. 특히 1988년 사법파동의 여파로 우리법연구회가 1989년에 결성된 점은 특기할만하다. 우리법연구회판사들은 그 후 사법개혁의 내부추동력으로 자리를 지켰다. 우리법연구회는 1990년대 중반부터 외국의 사법행정제도와 법관인사제도를 틈틈이 공부하며 우리나라의 제왕적 대법원장제도가 사법독립의 진정한 적이라는 사실에 눈떴다. 일부 판사들이 새로운 지식의 세례를 받았으나 그것만으로 변화를 꿈꾸기에는 세력이 작았다. 구조는 강했고 변화는 더뎠다.  

몇 해 전부터 법원국제인권법연구회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더욱 본격적으로 법관인사와 사법행정에 대한 비교연구조사활동에 박차를 가해서 유엔이 펴낸 사법제도와 인권보장 책자를 번역, 발간했다. 여세를 몰아 법관독립과 인세제도에 대한 법관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연대로스쿨과 공동으로 법관인사제도와 법관독립에 관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새로운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법원행정처는 연구회 주도 세력과 심포지엄주제를 모두 제왕적 대법원장제에 대한 체제 위험 요소로 규정하고 심포지엄의 연기와 축소를 종용했다. 그 와중에서 결국 판사 블랙리스트 스캔들이 터져서 전국법관대표자회의까지 만들어낸다. 

판사 블랙리스트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까지 전대미문의 드라마

제왕적 대법원장제는 이명박근혜 정권의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을 겪으면서 곪을 대로 곪아 터져 드디어 세상에 그 흉측한 몰골을 드러냈다. 법원행정처 고위간부들의 부당한 유혹과 압력을 이겨내고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한 정의로운 판사가 있었다. 전국의 판사들이 공분을 느껴서 함께 들고일어났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도 남은 임기를 채우기 위해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소집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인사제도 개혁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국적 규모의 법관 집단저항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높은 담을 무너뜨리고 제왕적 대법원장제에 안티테제를 내걸은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출신이 대법원장을 맡는 일대 이변까지 연출한다.  

제왕적 대법원장시대를 끝장내고 법관독립시대를 여는 첫 대법원장이 되겠다고 선언한 김명수 대법원장 시대의 개막도 실은 촛불시민혁명 덕분에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11개월 단축된 바람에 가능한 일이었다. 본래는 박 대통령이 양승태 대법원장 후임을 2017년 9월 중으로 인선할 터였다. 또한 더 이상 특권과 반칙, 갑질은 안 된다고 촛불시민들이 그토록 외쳐댔어도 법원행정처 고위법관들이 촛불혁명의 한가운데서도(2017년 1월과 2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습관적으로 회유와 협박 등 갑질을 일삼은 덕분이다. 법원행정처 판사들은 그만큼 제왕적 대법원장제에 중독된 채, 그만큼 민심과 동떨어진 채, 살았다. 

요컨대, 제왕적 대법원장제 혁파의 시대적 소임을 받고 출범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는 촛불시민혁명과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과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중 하나만 없었더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바깥세상은 너무 모르고 내부법관들은 너무 익숙해져서 오랫동안 유지돼온 제왕적 대법원장제라는 희대의 괴물을 우리사회가 다잡을 수 있는 첫 번째 역사적 기회는 이렇게 왔다. 결국 직접당사자인 법관들이 불의한 상황을 뚫고 동료들과 조직하고 연대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능성이 열렸다. 누구도 직접피해당사자들이 가만있는데 대신해줄 수는 없다. 그것도 피해당사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느 사회에서나 최고의 엘리트로 인정받는 판사들 아닌가. 고도의 실력과 신분보장을 겸비한 판사 사회마저 자기분야의 고질적 구조를 자율적으로 바로잡지 못한다면 우리사회의 어떤 집단에게 자율해결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제왕적 대법원장제, 개혁 무풍 지대에서 개헌 핵심 과제로!

제왕적 대법원장제는 지난 수십 년간 휘몰아친 5년 주기 청와대발 개혁의 소용돌이에서도 개혁의 무풍지대로 남았다. 가끔 사법파동이라는 이름으로 개혁성향 법관들이 대법원장의 정권유착이나 인사전횡을 규탄하며 집단행동에 돌입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제왕적 대법원장제의 일부 드러난 현상과 싸웠을 뿐 제왕적 대법원장제의 본질, 제왕적 인사권과 그것이 강고한 구조를 바꿀 수 없었다. 법관운동의 고유한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헌사항이라는 속성도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헌법사항은 아무 때나 바꾸지 못한다. 지난 30년 간 단 한 차례의 개헌기회도 열리지 않았다. 개헌론이 일어도 제왕적 대통령제에만 집중되었을 뿐 제왕적 대법원장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르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어서 그 전모가 어지간히 드러날 날도 멀지 않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이 어떻게 남용됐는지 더 생생한 증거가 나오면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의 귀속주체를 대법원장에서 제3기관으로 옮기자는 다양한 개헌제안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마침 30년만의 개헌정국 아닌가. 지난 수십 년간 학문적, 실천적 문제의식의 사각지대 속에서 순항을 거듭해온 제왕적 대법원장제가 드디어 역사의 박물관으로 들어갈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내외부 개혁여건은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내가 이렇게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제왕적 대법원장과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제안할 수 있는 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제도화돼 활동 중이다. 이미 일반법관들이 개혁열차에 올라탔다는 게 중요하다. 

 

둘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장을 역임하며 제왕제 극복과 법관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시대가 열렸다.  

 

이것만으로도 더 좋을 수 없는데 하나가 더 있다. 본격적인 개헌정국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현재 대법원장에게 있는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대법관제청권 포함)의 귀속주체를 개헌으로 바꿀 수 있는 30년만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물론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사법개혁의지가 높은 문재인 대통령의 존재도 아주 좋은 조건의 하나다. 제왕적 대법원장제 혁파를 위한 내외부의 환경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지금은 모든 법관의 굴신을 강요하는 제왕적 대법원장의 사법부를 모든 법관의 독립 위에 굳건히 서있는 국민의 사법부로 전환할 절호의 시기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이듯이 결국 깨어있는 법관들의 조직된 힘이 사법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였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법관들과 창립 멤버들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대법원장의 1인 왕국으로 타락한 제왕적 사법부를 혁파할 역사적 기회가 위대한 촛불시민혁명과 깨어있는 법관들 덕분에 찾아왔다. 때를 놓치지 말고 이번 촛불개헌 때 제왕적 대법원장 시대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끝장내고 사법부를 국민을 위한, 소신 법관에 의한, 법의 제국으로 개편해야 한다. 

 

mendrami@pressian.com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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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리아 정밀타격 공습 감행... 영국, 프랑스도 동참

수도 다마스쿠스 일대 큰 폭발음 들려... 시리아 국영TV, “방공 시스템으로 미사일 13기 격추” 주장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8-04-14 13:02:38
수정 2018-04-14 13: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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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이 14일 새벽(시리아 시간) 시리아에 공격을 감행한 가운데,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상공에서 대공 미사일이 날아가고 있는 장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이 14일 새벽(시리아 시간) 시리아에 공격을 감행한 가운데,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상공에서 대공 미사일이 날아가고 있는 장면ⓒ뉴시스/AP
 

미국이 시리아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시리아 지역에 보복공격을 감행했다. 이번 공습에는 영국과 프랑스도 동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 밤(미국 시간) 백악관에서 연설을 통해 “조금 전 미군에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화학무기 역량과 관련된 목표물에 정밀타격을 시작하라고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과 프랑스 군대와의 합동 작전이 지금 진행 중”이라며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은 “인간의 행동이 아닌 괴물의 범죄 행위”라고 주장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각각 성명을 통해 시리아 정부를 응징하기 위해 이번 합동 공습 작전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미 국방부는 추가 발표를 통해 이번 연합 공습은 시리아 화학무기 프로그램과 관련된 3개 목표물을 대상으로 정밀 타격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직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일대에서 최소 6번의 커다란 폭발음이 들리고 연기가 치솟았다고 전했다.

특히, 이날 공격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와 홈스 지역에 집중됐으며, 시리아의 화학무기 관련 시설과 육군 부대 등이 주요 목표물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 국영 TV는 시리아 정부군이 대공 무기를 활용해 서방의 공습에 대응 중이며, 방공시스템을 통해 미사일 13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외신 보도에서 미사일 격추 장면 등이 보도되기는 했으나, 아직 정확한 피해 상황을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과 서방의 연합 공습 작전은 일단 마무리됐으나, 미군 당국자는 “오늘 밤 본 것으로 미국의 대응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면서 추가 공격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은 이번 공습과 관련해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공격 배후를 확실히 자신한다”면서 “이번 공습에 작년보다 2배 강화된 무기가 사용됐다”고 말했다.

시리아 정부, “명백한 국제법 위반” 맹비난

시리아 정부는 이번 서방의 공격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국영 매체를 통해 강력하게 비난했다. 시리아 국영 사나통신은 14일(시리아 시간) 새벽 감행된 서방의 공습에 관해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고 국제사회의 의지를 훼손한 것”이라며 “이번 공격은 실패할 운명”이라고 규정했다.

러시아 정부도 이번 서방의 연합 공격에 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미국 주재 러시아대사는 이날 성명을 내고 “사전에 짜인 시나리오가 실행되고 우리는 또다시 위협받고 있다”면서 “모든 책임은 공격을 감행한 미국, 영국, 프랑스가 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공격은 용납할 수 없는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라며 “가장 큰 규모의 화학무기를 보유한 미국이 다른 나라를 비난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하원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알렉산드르 셰린도 이날 “이번 공격은 모든 국제 규범을 위반하고 있다”면서 “러시아도 미국으로부터 공격 행동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는 우리(러시아)의 노력을 무산시키고, 러시아를 무릎 꿇게 하려는 것”이라면서 “그는(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범죄자다. 이 말도 모자란다. 그를 현대사의 두 번째 히틀러로 불러도 좋다”고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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