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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MBC 대표, "방송법 개정의 방향은 '시민 참여'"

양승동·최승호의 '공영방송 혁신' 방송학회 '특별 대담'
송창한 기자 | 승인 2018.04.22 21:11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양승동 KBS 사장과 최승호 MBC 사장이 '방송법 개정안'과 관련, 공영방송 사장 선출 과정에서 시민의견을 반영하는 방안에 공감을 표했다.

21일 한국외대에서 열린 '2018 한국방송학회 봄철 학술대회'에서는 공영방송 혁신을 주제로 양승동 KBS 사장과 최승호 MBC 사장의 특별대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공영방송 혁신 과제와 관련해 크게 ▲공영방송 지배구조 ▲공영방송과 정부의 관계 설정 ▲공영방송의 재원확보 ▲조직문화 개선 ▲지역방송 활성화 등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21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열린 '2018 한국방송학회 봄철 학술대회'에서는 공영방송 혁신을 주제로 양승동 KBS 사장과 최승호 MBC 사장의 특별대담이 열렸다.(미디어스)

■ 공영방송 사장 선출 과정에 '시민참여' 담겨야

양승동 사장과 최승호 사장은 모두 현 방송법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선출됐지만, 선출 과정에 시민 참여가 이뤄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MBC의 경우 이번 사장선출은 과정이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됐으며 사장후보자에 대한 시민들의 질의가 공개 프리젠테이션, 최종면접 등에 반영됐다. KBS의 경우 시민자문단이 구성돼 시민들의 의견이 사장선출에 직접 반영됐다.

공영방송 이사회는 관행에 의해 여·야 정치권의 추천으로 구성돼왔다. KBS 이사회는 여당 추천 이사 7명과 야당 추천 이사 4명, 방송문화진흥회는 여당 추천 이사 6명과 야당 추천 이사 3명으로 구성된다. 이 때문에 사장선출을 비롯한 공영방송의 운영은 언제나 정파성 시비에 휘둘렸다. 이러한 관행을 타파하고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회복하기 위해 국회에서는 공영방송 이사회의 정파성을 줄이는 '방송법 개정안'이 논의 중이다.

양승동·최승호 사장은 공영방송 사장선출 과정에 시민참여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양 사장은 "현재 방송법과 이사선출 방식은 기본적으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여야 7:4 구도에서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할 때 이사회에서는 퇴장·기권 등 파행이 이어져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 사장은 "그런데 이번에는 이사회가 합의해 시민자문단 제도를 도입하고, 그 속에서 사장을 뽑았다. 이것이 앞으로 방송법 개정 과정에서 참고가 될 것"이라며 "상당히 중요한 단서와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논의되는 몇몇 안들은 '중립지대', '시민참여' 등을 담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여야가 정파적 대립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도입한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승호 사장은 "원전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 공론화를 거쳐 국가대사를 대단히 안정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봤다. 이후 양 사장이 뽑히는 과정에서도 KBS 이사회가 시민자문단 룰을 잘 규정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시민참여에 긍정적 의견을 냈다. 

최 사장은 "그동안 공영방송 이사분들을 보면 학계 원로 등 훌륭한 학자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이사회는 심각한 파행으로 흘러갔다"며 "결국 정파라는 테두리 속에 한 정파가 자신을 선정했다는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게 만드는 프레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은 토론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색깔보다는 '공영방송사를 제대로 경영할 사람이 누구냐'를 결정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정치권에서 기득권을 내려놓고, 마음을 열어 같이 논의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양승동 KBS 사장과 최승호 MBC 사장은 시민참여에 의해 사장에 선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양승동 사장과 최승호 사장이 사장후보자 당시 시민들 앞에서 정책발표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청와대와 공영방송의 관계, "건강한 관계 될 것"

공영방송에 대한 청와대의 입김은 공영방송 이사회의 정파성 논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다.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공영방송 사찰,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 보도 개입 사례가 대표적이다. 친정부 인사가 공영방송 사장으로 선출되면서 공영방송의 보도 방향이 설정되어 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양승동·최승호 사장은 현 정부의 태도를 보면 이러한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사장은 "청와대와 방송과의 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정상적인 관계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언론장악' 이슈는 현 정부에서 있을 수 없다는 청와대의 의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 사장은 "(방송문화진흥회)이사들로부터 여러 말씀을 들어봐도 본인의 선택에 (청와대의) 압력을 느꼈다던가, 바람이 전해졌다든가 하는 것은 없었다"면서 "언론사 사장으로서 청와대를 대하는 태도는 충분히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 사장은 사장후보자 당시 정책발표에서 사장임기가 종료되면 저널리스트로 돌아가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언론사 사장으로서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 사장은 "앞으로 청와대와 방송사의 관계는 굉장히 건강한 관계가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양 사장 역시 "지금 시기 청와대에서 공영방송 장악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보도부문 책임자 임면동의제, 편성위원회 정상화 등 내부 제도화를 통해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공영방송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 사장은 "보도와 시사영역 국장 임면동의제를 실시하고, 방송법상 편성위원회 운영을 정상화시키는 것을 내부 제도화 시키면 상당한 정도로 자율성을 갖고 독립성 있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역차별 많이 받아"... 광고제도 개선 필요성 언급

언론의 공정성 확립을 위해서는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도 필수요건으로 꼽힌다. 언론사가 안정적인 재원확보를 이뤄내지 못할 경우 공익성 구현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종합편성채널의 등장과 케이블방송의 강세,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1인 방송의 확산 등으로 인해 과거 공영방송을 비롯한 지상파 방송에 자리하던 광고시장은 상당부분 분산됐다. 양승동·최승호 사장은 중간광고 등 공영방송이 타 방송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공영방송의 재원이 튼튼하지 않으면 정치·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시민들을 위해 방송하는 기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영국의 경우 수신료를 튼튼한 재원으로 해 (방송을)꽃 피우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변화가 상당히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MBC의 경우)시청률 하락 비율보다 광고 비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주요한 이유는 역차별"이라고 분석했다. 최 사장은 "유료방송·종편과 광고나 각종 제도에서의 역차별이 매우 심하다"며 "특히 중간광고 부분은 지상파방송은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방송들에 허용하고 있다. 그런 부분이 재원에 있어 많은 차이를 나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 사장 역시 "광고제도 개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지상파 방송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미국, 일본, 영국 등의 나라들 수준에 맞춰 광고제도는 허용돼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이어 양 사장은 "2012년 미디어법이 만들어지면서 (지상파는) 비대칭 규제를 당했다. 역차별을 많이 받았다"며 "지상파 방송사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충분히 구현해 한국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려면 역차별은 해소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KBS의 수신료 현실화와 관련해 양 사장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였다. 양 사장은 "KBS는 이상적으로 수신료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지금 수신료 현실화 정책을 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저희도 잘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양 사장은 "신뢰도가 바닥치고 있다. 신뢰도 회복 이후 수신료 현실화를 언급할 수 있다"며 "그 전에 중간단계에서 여러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고 광고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17년 9월 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MBC본부의 총파업 출정식 모습(사진=미디어스, 연합뉴스)

■ '제작 자율성' 우선 보장... 지난 10년 폐해 정리하고 넘어가야

양승동·최승호 사장은 지난해 9월 시작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MBC 본부의 공동파업의 결과로 선출될 수 있었다는 공통점 역시 가지고 있다. 당시 두 노조가 파업 구호로 삼은 것은 '공정방송 쟁취'와 '적폐청산'이었다. 구성원들의 구호에 답하듯 두 사장은 제작자율성 보장을 통한 공정방송 실현과 지난 시기 과오에 대해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양 사장은 "지난 번 KBS는 140일간 파업을 했다. 그 파업과정은 의미 있었고, 앞으로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내부적으로)상당히 합의된 것이 있다. 기본적으로 큰 틀에서 제작 자율성 보장"이라고 말했다. 양 사장은 "제 경험으로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라며 "기회가 될 때마다 다짐하는 심정으로 제작 자율성을 얘기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양 사장은 "어떻게 과거를 청산하고 조직을 극대화할지 방안을 강구하는 중이다. 일부 구성원들이 냉소적으로 되지 않도록 적절히 균형을 맞추려 한다"면서도 "그럼에도 지난 10년 많은 파행과 문제가 있었다. 그에 대한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새 출발 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 그런 과정을 분명히 거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 사장은 "내면적으로 제작 자율성 보장 측면은 이미 완벽하게 이뤄져 있다"며 "큐시트라는 걸 본 적이 없다. 임원회의에서도 어젯밤 어떤 보도가 나갔는지 얘기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물론 어떤 보도가 잘못됐다는 여론이 강하다든지, 보도국이 대처를 충분히 못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으면 환기를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보도에 대해 사장이 평가하는 것 등은 하지 않으려 한다"고 밝혔다. 

과거청산과 관련해 최 사장은 "MBC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저널리즘의 기본을 완전히 망각하고, 심하게 얘기하면 범죄적인 일들이 많이 발생했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 그냥 통합해서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은 진정한 공영방송 회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최 사장은 "그런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정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법률적 자문을 충분히 받아가며 무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 가급적 빨리 정리하려고 애쓰고 있다. 충분히 신중함을 기해 마무리되면 미래를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모든 지혜를 발휘하겠다"고 말했다.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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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집중’ 새 전략노선 제시

김정은 위원장 “핵무기 병기화 완결, 핵시험과 ICBM 시험발사 필요 없게 됐다”
[사진 : 로동신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당 위원장이 기존 ‘핵·경제 병진노선’의 결속(완료)을 선언하곤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이란 새로운 전략노선을 제시했다고 북의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지난 20일 열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는, 지난 2013년 3월 미국과 첨예한 군사적 대결을 벌일 당시 제2차 전원회의를 열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전략적 로선”을 제시한 이후 5년 만이다.

[사진 : 로동신문]

중앙통신에 따르면, 이날 전원회의는 안건으로 ▲첫째, 혁명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힘있게 다그치기 위한 우리 당의 과업에 대하여. ▲둘째, 과학교육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일으킬 데 대하여. ▲셋째, 조직문제에 대하여를 상정했다.

첫째 안건과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은 보고에서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후 우리의 주동적인 행동과 노력에 의하여 전반적 정세가 우리 혁명에 유리하게 급변하고 있다”고 진단하곤 “조선반도와 지역에서 긴장완화와 평화에로 향한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국제 정치구도에서 극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핵개발의 전 공정이 과학적으로, 순차적으로 다 진행되였고 운반타격수단들의 개발사업 역시 과학적으로 진행되여 핵무기병기화 완결이 검증된 조건에서 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도 필요없게 되였으며 이에 따라 북부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치였다”며, 앞으로 “인류의 공통된 념원과 지향에 부합되게 핵무기 없는 세계 건설에 적극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위업의 최후 승리를 앞당길 현 단계 조선로동당의 전략적 노선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이라며,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우리 혁명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하자!”는 구호를 제시했다.

또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수행 기간의 당면 목표로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상승궤도에 확고히 올려 세우며 나아가서 자립적이고 현대적인 사회주의 경제, 지식경제를 세우는 것”이라고 설정하곤,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자”고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당의 병진로선이 위대한 승리로 결속된 것처럼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 로선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모두 다 우리 혁명의 승리적 전진을 다그치기 위하여 용기백배하여 힘차게 싸워나가자”고 호소했다.

[사진 : 로동신문]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 둘째 안건 토론에서 “과학과 교육은 국가건설의 기초이며 국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라면서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는 구호를 제시했다.

전원회의 셋째 안건으로 김정각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을 비롯해 주요 당직 인선을 마무리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당의 새로운 혁명적 로선에 관통되여 있는 근본핵, 기본원칙은 자력갱생”이라고 강조하면서 “오직 자력갱생, 견인불발함으로써 번영의 활로를 열고 훌륭한 미래를 앞당겨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통신은 이날 전원회의를 “우리 혁명 발전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전략적 로선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나라를 륭성 번영하는 사회주의 국가로 건설하고 우리 인민의 자주적 리상과 행복을 꽃피워 나가기 위한 투쟁에서 전환적 국면을 열어놓은 력사적인 계기로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진 : 로동신문]

결정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로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

첫째, 당의 병진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과정에 림계 전 핵시험과 지하 핵시험,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초대형 핵무기와 운반수단 개발을 위한 사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여 핵무기 병기화를 믿음직하게 실현하였다는 것을 엄숙히 천명한다.

둘째, 주체107(2018)년 4월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다.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페기할 것이다.

셋째, 핵시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시험의 전면 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다.

넷째,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 나라의 인적, 물적자원을 총동원하여 강력한 사회주의 경제를 일떠세우고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투쟁에 모든 힘을 집중할 것이다.

여섯째,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한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며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하여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련계와 대화를 적극화해 나갈 것이다.

결정서 <혁명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데 대하여>

첫째,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지향시키고 모든 힘을 총집중할 것이다.

둘째,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투쟁에서 당 및 근로단체 조직들과 정권기관, 법기관, 무력기관들의 역할을 높일 것이다.

셋째, 각급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은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집행 정형을 정상적으로 장악 총화하면서 철저히 관철하도록 할 것이다.

넷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내각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서에 제시된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법적, 행정적, 실무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다.

결정서 《과학교육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일으킬 데 대하여》

첫째,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대통로를 열어나갈 것이다.

둘째, 지식경제시대의 요구에 맞게 우리 나라를 사회주의 교육강국, 인재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릴 것이다.

셋째, 과학교육부문에서 따라앞서기, 따라배우기, 경험교환운동을 힘있게 벌리며 본위주의를 철저히 없앨 것이다.

넷째, 과학기술과 교육사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늘이며 전 사회적으로 과학중시, 교육중시 기풍을 더욱 철저히 확립할 것이다.

다섯째, 각급 당조직들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서 집행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고 정상적으로 장악 총화하면서 철저히 집행할 것이다.

여섯째, 내각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서를 관철하기 위한 행정실무적 대책을 세울 것이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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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정원은 왜 유가려-변호인 만남을 방해했나?
2018.04.21 12:21:02
 
 

 

 

 

국가정보원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당시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에 대한 변호인 접견을 의도적으로 방해한 사실이 검찰을 통해 처음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최미복 판사)은 가려 씨에 대한 변호인 접견을 막아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권영철 전 국정원 안보수사국장에 대한 재판을 20일 열었다. '유우성 변호인단 접견권 침해' 논란 관련 국정원 관계자가 재판에 넘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 씨 변호인단은 2013년 초 가려 씨에 대한 접견을 여러 차례 신청했지만 국정원이 이를 모두 불허했다며 국정원을 고발했고, 5년 만에 책임자가 법정에 넘겨졌다.

변호인단은 "오빠가 간첩"이라고 허위자백했던 가려 씨가 진술을 번복할 것을 염려해 국정원이 고의적으로 변호인단과의 접촉을 막았다고 줄곧 문제제기를 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의혹은 이번에 검찰 공소장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이 작성한 권 씨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국정원 내 유우성 사건 수사팀은 '유우성 변호인단이 유가려를 회유, 실체규명을 방해하기 위한 의도로 판단되므로 유가려와 변호인의 접견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논의했다. 이후 수사국장이었던 권 씨는 수사팀에 '유가려의 변호인 접견 거부 의사 표명'을 이유로 접견을 불허할 것을 지시했다.

유우성 사건에서 국정원이 검찰을 통해 제시한 유일한 증거는 가려 씨의 자백이었다. 그러나 가려 씨의 진술은 국정원 회유와 협박에 의한 허위 자백으로 드러난 바 있다. 결국, 접견 방해 또한 국정원의 조직적인 간첩 조작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지금까지 접견 방해 행위의 위법성은 변호인단이 제기한 민사 소송 등을 통해 여러 번 확인됐다. 그러나 접견 방해의 목적, 고의성 등이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레시안(서어리)


국정원, 유가려-변호인 만남 어떻게 방해했나 

변호인단이 가려 씨를 만나기 위해 중앙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문을 처음 두드린 것은 2013년 2월이었다. 국정원은 △'유가려는 참고인 신분으로 변호인 접견 대상인인 피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유가려 본인이 변호인과의 만남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접견을 차단했다. 

그러나 당시 수사관은 가려 씨에게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고 고지했고, 가려 씨로부터 "변호인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진술서도 받았다. 가려 씨가 변호인 접견권 대상임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유가려는 참고인 신분으로 변호인 접견 대상인이 아니'라는 국정원의 설명은 애초 성립되지 않는 것이었다. 

가려 씨가 제출한 변호인 접견 거부 확인서 또한 가려 씨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가려 씨의 본심은 재판에서 드러났다. 

 

 

2013년 3월 4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열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보전절차. 당시 유 씨의 변호인 측은 가려 씨에게 "제가 이번에 국정원 가면 저 꼭 만나줘요. 만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가려 씨도 "만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분명히 만나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양측의 만남은 연거푸 불발됐다. 국정원의 방해 때문이었다.

증거보전절차 다음 날인 2013년 3월 5일 장경욱‧천낙붕‧양승봉 변호사가 합신센터에 찾아가 접견 신청을 했다.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가려 씨를 만날 수 없었다. 국정원 측은 이번엔 변호인이 접견 신청을 한 사실 자체를 가려 씨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다음 날인 6일에도 천낙붕‧장경욱‧김용민‧김남국‧양승봉‧하주희‧이광철‧설창일‧김진형 변호사가 신청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국정원은 변호인 접견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다. 

변호인단은 "피고인은 변호인 접견권을 외면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방해까지 하여 수사기관이 해야 할 책무를 책임자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저버렸다"며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불법행위"라고 밝혔다. 

"검찰은 왜 수사국장만 기소했나" 

변호인단은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심판의 기회가 늦게나마 열린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권 씨 한 명만 기소한 사실을 지적했다. 이 사건은 권 씨 개인의 일탈행위가 아닌 조직적 범죄이며, 따라서 다른 관련자들을 추가 기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정에 불려 나온 권 씨는 지난해 11월 국정원 적폐청산TF 조사 결과 '내부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수사를 강행한 수사국장'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TF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가려 씨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가 거짓으로 나타나자 합신센터 직원들은 권 씨에게 유 씨에 대한 압수 및 체포영장 신청 보류를 건의했다. 수사국 실무진도 '결정적 물증이 없고, 유가려의 진술이 수시로 번복되고 있어 현 시점에서 강제수사 진행은 무리'라고 반대했다. 권 씨는 이를 무시하고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관련기사 : "국정원 수사국장, 유가려에 무리한 수사 강행 확인") 

그러나 적폐청산TF 조사 결과는 국정원 내 여러 가담자 가운데 소수의 책임자만 지목한 점, 증거 조작 문제에만 집중한 점 등으로 축소‧부실 조사 논란을 낳았다.

실제로 국정원 내부 제보자는 유 씨 변호인단 측에 서신을 보내 '이번 국정원 적폐청산TF 조사에서도 자신들(당시 수사팀 간부들)은 유우성에 대해 수사 착수를 반대했으나 국장이 강권했다고 진술하는 등 아직까지도 나쁜 버릇을 버리지 않고 있다'며 다른 관련자들을 규탄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단독] 국정원, 간첩 조작 수사 방해 "철저히 조사할 것")

변호인단은 이번 기소 또한 적폐청산TF 조사 결과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보고 있다. 변호인 측은 "공소장에 나온 '피고인'의 행위 자체가 단독범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그런데도 권 씨의 윗선과 아래 부하들은 왜 기소를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이름을 바꾼 중앙합동신문센터. ⓒ프레시안(최형락)

 

 

 

유가려 "국정원 압박에 '변호인 거부' 거짓 진술...증인 신청해달라"

이날 재판은 권 씨 측 변호인 변경 문제로 이렇다 할 쟁점 다툼 없이 끝났다. 기소 내용에 대한 권 씨의 입장을 청취할 기회는 다음 공판이 열리는 다음 달 29일로 미뤄졌다.

권 씨의 혐의 시인 여부와 함께 이 재판에서 주목할 점은 사건 핵심 증인인 가려 씨의 증인 채택 여부다. 

가려 씨는 20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합신센터 수용 당시 변호인 접견을 못 한 데 대해 "독방에 갇히고 잠도 못 자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수사관들이 저한테 '변호사를 만나게 되면 중국에 있는 아버지에게도 안 좋다', '변호사 만나봐야 소용없다. 우리가 뒤에서 돈 많이 썼다. 마음만 먹으면 증거는 다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며 "너무 무서웠고 결국 압박에 못 이겨 그런(변호인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쓴 것"이라고 했다.

그는 증거보전절차 이후 국정원 측에 변호사들과 만나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너무 억울하고 아직도 그 상처가 남아있다"며 "만일 검사가 저를 증인으로 신청할 경우 꼭 재판에 출석해서 제가 겪은 일들을 사실대로 다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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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한반도 평화의 봄이 온다” 촛불광장서 ‘평화통일’ 외친 사람들

노동·시민단체들, 광화문광장서 ‘남북 정상회담 성공 개최’·‘평화 통일’ 촉구

 

 

 

 

 

 
21일 오후 서울 광호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4·21 노동자 평화통일 한마당’에서 노동자들이 평화통일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광호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4·21 노동자 평화통일 한마당’에서 노동자들이 평화통일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우리가 통일합시다"

남북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두고 시민과 노동자들이 성공적인 정상회담 개최와 함께 평화 통일 세상을 염원하며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민주노총은 21일 오후 3시 30분 서울 광화문광장 북측광장에서 '4.21 노동자 평화통일 한마당'을 열고 "남북 노동자 대표자회의를 성사하자"고 목소리 높였다.

참석자들은 한반도기에 민중의례를 한 후 ‘임을 향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동자들은 "평화협정 체결하자", "조국통일 실현하자", "자주교류 확대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통일실천단은 "멈춰라 멈춰라 전쟁훈련 멈춰라", "지금 당장 평화협정 체결해", "사드배치 다 해놓고 남 탓하지. 고마해 이제 좀 고마해라" 등 ‘따르릉’을 개사한 곡에 맞춰 율동을 했다. 이날 행사에는 사드배치로 '잃어버린 봄'을 살고 있는 소성리 주민들의 투쟁의 모습도 영상으로 상영됐다.

 
21일 오후 서울 광호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4·21 노동자 평화통일 한마당’에서 참석자들이 평화통일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광호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4·21 노동자 평화통일 한마당’에서 참석자들이 평화통일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21일 오후 서울 광호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4·21 노동자 평화통일 한마당’에서  노동자 대표들이 통일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광호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주최 ‘4·21 노동자 평화통일 한마당’에서 노동자 대표들이 통일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청년이 만나는 노동자 평화통일' 토크쇼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무대 위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남북 노동자들의 통일축구, 6.15 공동수업, 대륙철도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장지철 경기지부 통일위원장은 6.15 남북 공동수업에 대해 "수업을 가지고 ‘빨간색’, ‘파란색’ 색깔로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수업하는 모습을 직접 와서 보시길 바란다"면서도 "분단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보다 평화를 원하는 많은 국민들이 통일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주길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철 공공운수노조 통일위원장은 휴전선 평화철길을 복원하자고 촉구했다. 박 위원장은 "통일이 되기 전에 남북이 화해와 평화가 열리면 유럽에 갈 수 있다"며 "평도철도가 열리게 되면 남북이 서로 오가면 그것이 바로 평화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이어 "남북의 휴전에 끊어진 철로 위에 우리가 침목을 하나 하나 놓는 것은 다시 없는 기회에 찾아온 평화에 대해서 쐐기를 박는 것이고 통일의 징검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평화철도 타고 평양, 신의주 넘어 대륙으로 가즈아"라고 외치며 마무리 했다.

엄강민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올해 남북 노동자 통일 축구가 열리길 기대했다. 엄 부위원장은 "남과 북의 노동자들이 몸을 부딪치며 경기하는데 승패가 무슨 상관이 있겠냐"며 "남북의 노동자들이 만남은 평화통일의 길을 살짝 여는 마중물이 되는 만남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에 경기하게 되면 서울, 홈그라운드에서 경기하게 된다"며 "북측에 각오를 단단하게 하고, 준비 열심히 하시고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한반도는 봄이 아니라 여름이다. 한반도가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뜨겁다"며 "성큼성큼 통일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까지 앞으로 일주일, 일주일이 지나서도 자뭇 기대되고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면서 "우리 노동자들은 여기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힘 있게 남북의 노동자 대표자, 현장의 노동자들이 만나는 자리 더욱 넓게 추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같은 시간에는 남북정상회담성공개최 ‘서울평화통일선언대회’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열렸다. 선언 이후 6.15 남측위 서울본부 등은 광화문광장까지 행진을 벌였다.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 참석한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한반도 평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 참석한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한반도 평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서 어린아이들이 한반도기가 그려진 대형 현수막 위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서 어린아이들이 한반도기가 그려진 대형 현수막 위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이날 오후 5시부터는 광화문광장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 문화제가 열렸다.

'화해와 평화의 봄' 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인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은 이날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인 회담이 되고 평화 통일의 지평이 되는 회담이 되길 간절히 기대한다"며 "제재를 뛰어넘어 화해와 협력,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가 과감하게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평화 통일에는 국가보안법, 색깔론, 불평등한 한미동맹은 존재할 수 없다"며 "평화의 봄을 넘어 통일의 가을 그 위대한 길로 함께 나아가자"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날 행사 1부에는 '촛불이 부르는 평화의 노래'를 주제로 각계 발언과 함께 프로젝트팀인 '고래'의 비보이와 랩 공연, 방송인 김미화씨의 시낭송, 방북예술단 평양공연에 참여했던 가수 최진희씨의 공연이 이어졌다. 2부에는 '촛불이 부르는 통일의 봄'을 주제로 '평창스노우어린이합창단' 공연과 연극 꽁트 '어깨동무 내 동무' 등의 문화공연이 펼쳐졌다.

평양공연에 참가했던 가수 최진희 씨가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평양공연에 참가했던 가수 최진희 씨가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정의철 기자
개그맨 김미화 씨가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서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시낭송을 하고 있다.
개그맨 김미화 씨가 21일 오후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평화의 봄을 부르다’남북정상회담 성공개최ㆍ평화와 화해협력 실현 국민한마당에서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시낭송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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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열린 한인- 미국인 연대 대규모 반전평화시위

뉴욕에서 열린 한인- 미국인 연대 대규모 반전평화시위
 
 
 
김수복 미주통신원 
기사입력: 2018/04/21 [22:2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한반도 전쟁반대와 통일을 위한 집회가 뉴욕에서 열렸다.     © 줌인코리아(zoom in korea), http://www.zoominkorea.org/korean-americans-join-spring-action-to-end-wars-at-home-and-abroad

 

▲ 대북적대정책 중단과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하는 뉴욕시민들 집회     © 줌인코리아(zoom in korea)

 

▲ 뉴욕에서 반전집회가 대규모로 열렸다.     © 줌인코리아(zoom in korea)

 

▲ 김동균 미주6.15위원회 사무국장의 구호를 따라외치는 미국시민들, "단결하면 이긴다"     © 줌인코리아(zoom in korea)

 

지난 15일 일요일 2시에 뉴욕 지역의 코드핑크, 평화재향군인회, IAC, ANSWER, 노둣돌을 미롯한 많은 반전 평화단체들이 연대해서 뉴욕 메이시백화점앞에서 2시간 정도 집회를 진행하였다. 시위에는 약 천명에서 천오백여명이 모였다. 한인과 미국시민들의 연대집회 참가인원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미국 단체 대표 발언자들은 아프가니탄, 시리아, 예맨, 베네주엘라,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 정부의 범죄적인 전쟁과 제재를 중지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며 트럼프 정부의 백인우월주의의 위험성, 이민자와 근로자 특히 흑인에 대한 차별의 부당성에 대하여 각 단체들이 뜨겁게 성토하였다.

 

노둣돌, 6.15미주위원회 단체의 발언자들은 주한미군철수, 근본적인 대북적대정책 철회, 북미평화협정체결을 강하게 촉구하는 발언을 이어나갔는데 미국시민들이 열열히 호응하였다. 

 

약 2시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집회를 2시간여 진행한 뒤에 대통령 주택 트럼프타워까지 행진하고 마무리하였다.

 

 

 

특히 우리 한인동포들은 노둣돌 회원들이 준비한 풍물패와 함께 우리가락에 맞춰서 흥겹게 행진했다. 날씨가 추운데도 항상 집회에 참여하는 80이 넘은 김 수곤 선생님도 이번 시위여 참여하여 큰 힘이 되었다. 집회 동영상은 줌인코리아zoominkorea.org에 올라있다.

http://www.zoominkorea.org/korean-americans-join-spring-action-to-end-wars-at-home-and-ab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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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외노조 5년, 전교조 조창익 위원장을 만나다

 

 

 

 

나는 전교조 소속 교사다. 누군가 전교조 욕을 하면 싫다. 도대체 전교조가 뭘 그리 잘못했나 싶어 억울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진지하게 교육을 고민하고 묵묵히 학생들에게 헌신하는 교사 중 많은 이들이 전교조 조합원이다.

 

그런데 말이다. 누군가 전교조가 교원노조로서 뭘 잘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이 없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 의해 법외노조가 되고 나서도 버티고 버텨 꾸역꾸역 살아남아 있는 것?

 

그리고 음... 흠...  

 

내가 속한 지부 선생님들의 헌신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본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법외노조 관련한 협의는 어떻게 이뤄가고 있는지, 학교 현장의 평범한 조합원들의 고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덜컥 전교조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지난 2월 28일 유난히 덜컹거리는 기차를 탔다. 뜬금없이 쏟아지는 눈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도착한 전교조 본부는 매우 엉뚱한 골목 깊숙이 위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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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전교조 조창익 위원장: 조, SickAlien(김현희 교사): 김, 코코아 기자: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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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사 조창익

 

: 중등 사회 선생님이셨죠?

 

: 네. 사회. 지리교육 전공입니다.

 

: 교사는 어떤 계기로 되신 거에요?

 

: 제가 어려서 서당을 다녔어요. 증조부께서 마을 서당 훈장님이셨는데, “너는 커서 선생님이 돼라. 아이를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동안 자신도 변화할 수 있다. 가르치는 건 귀한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 서당 경험이 교육관에 영향을 줬나요?

 

: 조부님의 교직관은 성직관에 가까웠어요. 가르침이란 아주 성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교육에 외경심을 가지게 됐고요. 성직관에 가까운 교직관을 가지고 교사를 시작했는데, 사회의 모순을 심하게 느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항 운동을 하게 됐죠.

 

: 그 유명한 자료 있잖아요. 1989년 문교부가 일선 교장들에게 내려보냈다는 ‘문제교사 식별법’. 저는 교사로서 이걸 보면 웃퍼요. 예전에 선생님들은 도대체 촌지를 왜 그렇게 많이 받았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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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도 편차가 있긴 했어요. 도시하고 농촌의 차이도 있고, 도시 안에서도 대도시, 중소도시 차이.

 

: 공무원 월급이 너무 적어서 그랬다고도 하는데,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이라 당시 분위기가 궁금해요.

 

: 사실 저는 시골에 있어서 촌지 개념이 지금도 와닿지는 않아요. 촌지를 주는 학부모를 본 기억이 거의 없으니까요. 부교재 채택 같은 문제는 심했죠. 그런 거 하잖아요. EBS 교재. 학년부장이 특정 서점에서 50만 원이고 30만 원이고 주면 선생님들이 나눠 가지고.

 

: 제일 웃겼던 건 이거에요.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 하하.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

 

: 하하. 주말에도 아이들 남겨서 더 가르치는 거죠. 저도 그런 적 있어요. 우리반 아이들 잘 가르치고 싶어서요.

 

: 지나치게 열심히 하셨군요?

 

: 네. 그때 전교조 선생님들은 늘 가슴이 뜨거웠죠. 특활 활동도 하고 아이들이랑 체육대회 때 가장행렬 같은 거하고.

 

: 오~ 가장행렬을? 몇 년도에요?

 

: 95, 96, 97년도요. 그때 전두환, 노태우가 심판을 받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아이들 중에 몇 명이 노태우, 전두환으로 분장해서 심판대에 서는 극을 하는 거예요.

 

: 그게 가능했어요? 학교에서?

 

: 가능했어요. 당시에 봉고차도 하나 샀거든요. 주말이면 아이들 태우고 고인돌, 폐총 같은 선사시대 유적지 찾아갔어요. 거기서 글도 쓰고 신석기 시대인과 전화하기 활동도 하고.

 

: 현안도 교실에서 이야기했어요?

 

: 예. 그랬죠. 저는 교단에서 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가르쳤어요. 5월 수행 평가로 하기도 하고. 5월에는 이 노래가 있단다, 노래를 써보고 의미를 되새겨보려고요. 

 

: 아...

 

: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 때까지도 했어요. 그런데 박근혜 정권 때 고발이 들어왔어요. 자유총연맹 이런 데서 학교 교장에게 압력을 넣어요. 왜 시험 문제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냐고요. 타협하라는 말을 들었죠. 제가 그분들께 그랬죠. 그게 그렇게 힘드시다면 시험문제로는 안 내고 수업 시간에만 배우는 거로 하겠다고 타협했죠.

 

: 전남이라서 가능했을까요? 솔직히 저희는 감히 시도도 못 할 거 같거든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학교에서 다함께 부른다? 되게 어려울 거 같은데... 학부모들한테 항의받은 적 없으세요?

 

: 거의 없었죠. 저는 (투쟁)조끼 입고 학교에도 갔어요.

 

: 조끼를 입고 학교에 갔다구요? 하하.

 

: 예. 비정규직 철폐라고 써 있는 조끼 같은 거요.

 

: 지부장 하실 때요? 아니면 그냥 평조합원일 때?

 

: 평조합원일 때도요.

 

: 상상이 안 가요.

 

: 학생들에게 일부러 조끼를 보여준 거예요. 노동자들이 지금 싸움을 하고 있다. 선생님도 그 뜻에 동참한다.

 

: 학생들은 뭐라고 했어요?

 

: 학생들은 택배 선생님 같다고 그랬죠. 하하.

 

: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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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그때 조끼 종류가 달라지죠. 예를 들어 구호가 입시 폐지, 대학평준화라면 학생들이 묻잖아요. 입시 폐지가 뭐냐고. 그러면 이야기를 시작해요. 내 몸을 교육 수업자료로 쓰는 거죠.

 

: 학부모에게 항의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게 신기해요.

 

: 학부모들을 만나 설명하고, 밥도 같이 먹고 했죠.

 

 

2. 해직교사 조창익

 

: 전교조 초창기부터 활동하셨잖아요. 당시 분위기는 어땠어요?

 

: 전교조 운동은 80년대 민주화 운동화 함께 태동해요. 특히 87년을 거치면서 교육계에도 변화에 대한 거대한 욕구들이 분출되고, 교단의 변호를 바라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집단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한 거죠. 전교조 이전에 전국교사협의회라고 하는 임의단체가 있었고요.

 

: 어떤 마음으로 참여한 건가요?

 

: 사회의 큰 변화가 자극한 측면이 있고, 교단에선 교사로서 견디기 힘든 억압적 질서도 있었어요. 제 개인적 경험으로 보자면, 영화를 강제로 보는 게 있었어요. 제가 영화비 걷는 업무를 맡았는데, 학생들 돈 걷어서 절반은 경우회(퇴직 경찰공무원들이 만든 조직) 주고, 일부는 교장 교감에게, 나머지는 친목회에 넣어서 회식하고 그랬어요. 오래된 필름 돌려서 학생들 돈 뜯어먹는 구조였지요. 너무 충격적이고 견디기 힘든 구조였어요.

 

: 심했네요.

 

: 또 하나, 교련이라고 하는 조직이 있었어요. 대한교육연합회.

 

: 현재 한국교총의 전신이죠?

 

: 예. 그 단체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입이 되어 있는 거에요. 내 월급 중 일부가 나가고 있었어요. 당시 전두환한테 우리 돈으로 고가의 선물 사줬다는 게 국정감사에서 드러나기도 했어요. 교단의 비리가 속속들이 폭로되는 시기였던 거에요. 군사독재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하는 열망이 교단에도 불어 닥치면서 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조직화되기 시작했어요. 그때 자연스럽게 학교 내에서 교련 탈퇴 운동을 주도했어요. 그 이유로 교장한테 미운털이 박혀서 쫓겨나기도 했고요. 

 

: 82년에 선생님이 되시고, 89년에 해직. 94년에 복직하셨잖아요. 5년 동안 뭐하셨어요?

 

: 조직에 남았어요. 어려운 시기였고 탄압을 많이 받아서 조직을 복원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죠. 그땐 만 명도 안 됐기 때문에. 1527명이 해직되었고, 그 분들 일부는 생활 문제로 생계 현장으로 가시고, 다른 동지들은 조직 안에 남아서 활동했죠. 그때 후원으로 많은 교사들이 전교조에 함께 해주셨어요. 지금은 활동비를 받지만 그때는 활동비를 한 달에 10만 원 정도밖에 못 받았어요. 교통비도 안 됐지만 너무 신명났죠.

 

: 시민들도 많이 후원해줬나요?

 

: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조직적 연대, 전교조를 지켜야 한다, 전교조가 올바른 참교육 정신의 화신이기 때문에 전교조를 잘 키우자, 이런 움직임이 많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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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전교조는 빨갱이라는 말 많이 했잖아요. 저는 빨갱이 소리까지는 안 들었어요. 북한 찬양 같은 거 솔직히 너무 동떨어진 문화고. 그런데 요즘은 전교조 교사들에게 이런 말 많이 해요. 일단 긍정적으로는, 벌떡 교사요. 교무회의 시간에 벌떡 일어나 이의 제기하는 용감한 선생님들. 부정적으로는 좀 피곤한 사람들 그리고 꽉 막힌 사람들.

 

저는 솔직히 빨갱이 소리하면 웃어요. 너무 말이 안 돼서. 근데 전교조가 꽉 막혔다는 말 듣는 건 무서워요. 그런 표현과 프레임이요. 선생님은 조합원 생활하면서 그런 거 없으셨어요?

 

: 전교조는 태어날 때부터 늘 공격받았어요. 전교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중첩적이고요. 이제 전교조 노력으로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고민을 늘 하죠.

 

: 선생님은 이런 공격이 익숙하세요?

 

: 네. 1989년도에 전교조가 태어 날 때는 사람이 많이 죽었어요.

 

: 죽었다구요?

 

: 선생님들의 부모들이 이랬죠. 전교조 탈퇴를 하지 않으면 내가 농약을 먹겠다고. 아들, 딸을 잘 키워서 선생님 만들어 놨는데 전교조 한다고 해, 정부가 탄압하니 교직을 잃게 생겼고. 삶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낀 부모님들은 농약을 마셔서라도 말리겠다고 하고. 천륜을 갈라놓을 정도의 탄압이 있었죠. 그걸 극복하면서 태어난 전교조에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탄압 속에 병들어 죽었죠. 교장과 관료들의 탄압 속에서. 학교 안에서.

 

: 요새는 농약 먹고 죽겠다는 소리까지는 안 하지만 저희 아빠도 그래요. “전교조 하긴 하더라도 앞장서서 하지 마라.”

 

: 하하.

 

: “그냥 뒤에서 따라만 다니고 앞에서 마이크는 잡지 마라” 하하.

 

 

3. 전교조 투쟁의 방식

 

: 선생님 혹시 아세요? 6개월쯤 전에 딴지 벙커에서 조합원들 30명 정도가 만났어요. 그때 한창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로 시끄러웠을 때였고... 조합원들이 전교조에 대해 얘기하고 기사로도 나왔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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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기사 링크

 

: 현장 선생님들이 전교조 조직 방향의 문제점에 대해 말한 거였죠?

 

: 네, 제가 페북에서 느닷없이 제안했고, 선생님들이 모인 거에요. 그때 나눴던 얘기 중 첫 번째가 이거였어요. 전교조에는 전투 DNA가 있다. 활동 방식이 소모적인 면이 있다. 맨날 머리에 띠 두르고 조끼 입고 거리에서 시위하는 모습만 언론에 보도된다. 언론도 문제지만 전교조도 활동 방식을 좀 바꿔야 하지 않냐. 이런 말 많이 들으시죠?

 

: 그렇죠. 예. 늘 듣죠.

 

: 어떠세요 그럴 때마다?

 

: 수용할 부분도 있죠. 하지만 그 부분만 부각이 돼서 그렇지 사실 전교조는 총체성이잖아요. 현장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만나는 것. 그 일상이 사실은 전교조거든요.

 

: 음, 맞아요.

 

: 전교조 조직 방식이라고 하는 건 현상으로 드러난 것만 보는 거고. 실제로는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맺는 만남, 교육적 내재율이 풍성하게 강물처럼 흘러가는 그 흐름이 전교조거든요. 그런데 그건, 아무도 취재하고 보도하지 않잖아요.

 

: 네. 그거를 취재해야 되겠어요. 하하. 수긍되긴 하지만 이런 건 있어요. 전투 대오를 이루면 활동가가 돌격대에요. 헌신을 많이 해야 되고, 희생도 하고, 징계도 많이 받잖아요.

 

: 그렇죠.

 

: 그런데 저 같은 평조합원은 그런 게 되게 미안해요. 죄책감도 들고. 근데 나는 저렇게는 못하겠다. 이런 심정이 드는 거죠.

 

: 전교조 총체성으로 보면. 그 미안함과 그 죄책감도 전교조죠. 그런 게 나는 자산이라고 봅니다.

 

: 그건 그렇지만..

 

: 조금 더 원거리에 있으면 그것도 없거든요. 그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이루어진 것이 전교조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그 감정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선생님들이 덜 다치셨으면 좋겠는 거죠. 일은 일대로 다 하고 욕먹는 거 보면 싫고요.

 

: 그런데 상대가 정권이지 않습니까? 정권이 가하는 폭력은 너무나 무자비한데 우리들은 맨몸밖에 없고, 그러니까 몸으로 다가서는 건데. 몸으로 가다 보면 다치죠. 다가서지 않으면 다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데 다가서죠. 좀 더 가까이 가야 소리가 나고, 그 소리가 나야 알려지게 되니까.

 

: 다가서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는다. 음...

 

: 전투적인 모습만 비춰지다보니 대중적 지지를 못 받는 것 같다고도 해요.

 

: 예. 그런데 그 프레임도 어찌 보면 일방적인 프레임이라고 생각해요. 전교조가 진정성을 가지고 방향을 설정해 투쟁을 해가면 조합원 선생님들은 뜻을 함께해주세요. 위기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확하게 방향을 잡아 주시거든요. 그런데 그때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투쟁 일변도라고 해석해서 우리들을 배제하죠. 가급적이면 안 다치고 하는 방향을 찾으려고는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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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가투쟁에 관해서도 현장에서 다양한 소리가 나와요. 다들 정말 할 게 이거밖에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효과가 있을까요? 그냥 계속 바위에다 계란을 던지는 기분이에요.

 

: 네. 효과 있어요. 수가 적고 많고 정도의 차이도 있지만, 연가투쟁을 한다 그러면 청와대가 긴장을 해요. 일단.

 

: 긴장해요? 하하.

 

: 청와대가 왜 긴장을 하냐? 우리는 느껴요.

 

: 그래요?

 

: 예. 연락이 오니까.

 

: 음.

 

: 연가투쟁 안 하면 안 되냐고 연락와요. 연가투쟁은 총파업 투쟁이라 징계권을 행사해야 되는 거에요. 칼을 들어야 되요. 공무원 법 위반이니까. 그전 정부는 그렇게 했어요. 그러니 본인들만 안 하면 이상한 거죠. 그래서 지금 정부가 지금 조중동에게 공격을 받고 있죠. 연가투쟁 했는데 왜 징계 안 하고 있느냐고요.

 

이번 연가투쟁 때도 전화를 얼마나 많이 받은 지 몰라요. 청와대 관계자들. 행정관. 비서관. 비서실. 연락 옵니다. 정권이 민감한 거에요. 선생님들한테 일일이 다 알리지 못했죠. 하지만 전교조 집행부는 바로 그런 힘을 가지고 싸움을 하는 겁니다. 투쟁을 해서 지도부가 다칠 수도 있어요. 한때는 다치기도 했고. 연가투쟁을 해서 해직됐다는 사람은 없었잖아요. 있다면 약간의 경고에다가 조금 감봉이나 견책 이런 정도고. 지도부는 이제 조금 더 센 것을 맞죠. 하지만 정권을 건드려야 관심을 받고, 정책 변경이 가능한 지점까지 전진할 수가 있어요.

 

: 들으니까 본부 입장은 이해가 돼요. 그렇지만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연가투쟁은 엄청난 부담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 그럼요 선생님들에게 부담이죠.

 

: 눈치 엄청 봐요. 저 멀리 있는 정부보다 내 옆 반 선생님이 더 무섭잖아요 사실.

 

: 맞아요. 그래서 한때는 지침도 있었어요. 연가투쟁 갈 때 학교에 선생님 한 분이 가는 거로 하는 지침.

 

: 음...

 

: 학교 대표로 당신이 가라. 우리를 대신해서. 열심히 싸우고 와라. 우리의 뜻을 모아 준다. 당신이 징계를 받으면 우리가 함께하겠다는 거죠. 연가투쟁은 전선에 서는 투쟁이에요. 정부에 힘을 보여주는.

 

: 노동조합의 권리이고 의사 표현인 건 맞지만, 사람들이 요구하는 교원노조로서의 모습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연가투쟁을 택할 수 있는 거지만, 실력행사 외에 여론과 대중을 공략하는 방법은 없나 싶은 거죠.

 

: 그렇죠. 그것도 하죠. 서명도 하고 청원도 하고 행진도 해보고. 평화롭게. 온 나라 걷기는 제주도에서 걸어서 서울까지도 오잖아요.

 

: 그런 것들은 너무 안 보여요.

 

: 그렇죠. 평화적인 방식은 한없이 해도 언론이 안 봐요. 노출되는 정보가 평등하지 않은 거죠.

 

작년 말, 전교조는 법외노조 철회를 요구하며 대대적인 투쟁에 나섰다. 조창익 위원장을 포함한 지도부는 단식 농성을, 조합원들은 연가투쟁으로 힘을 보탰다. 그러나 전교조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다. 촛불로 세운 정권을 왜 '굳이' 흔드느냐는 비판이었다.

 

: 작년에 대대적으로 대정부 투쟁을 했었잖아요.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하시나요?

 

: 저는 있다고 봐요. 분명 정권을 압박하고 부담감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투쟁은 정당했고요. 교육부 담당자들도 우릴 만날 때마다 법외노조 철회 문제는 당연한 일이라고 해요. 그럼에도 정권이 부담 없는 시기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미루고 있긴 하지만...

 

: 대정부 투쟁이 정당성은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대중적인 지지를 더 잃게 하지는 않았나라는 우려가 들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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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저는 오히려 싸우지 않고 편안하게, 평화로운 방식으로 있었으면 전교조의 지지는 지금 얼마만큼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아무것도 안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음..

 

: 이명박근혜 시절 투쟁 방법과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하는 투쟁 방법이 조금 달라야 된다고 지지자들은 생각하거든요. 전교조가 정권을 흔들어서 정권이 흔들리면, 결국 다시 이명박근혜 정권 같은 더 나쁜 상황으로 빠지게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 예. 저희도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사실 우리 행동이 문재인 정부를 도와주는 거라고 해석합니다. 사실 작년 7월에 전교조 법외노조를 풀려고 했었거든요. 근데 그때 북핵, 사드 문제가 나온 거에요. 전교조 법외노조까지 이슈화되면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거에요. 홍준표류가 끊임없이 정부를 공격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나서서 해야만 하는 싸움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대정부 투쟁의 경우 전교조가 정교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일면 억울한 측면도 있다. 법외노조 이후 전교조가 받고 있는 불이익, 이른바 4대 후속조치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노조가 아니라 임의단체가 된 전교조는 노조 전임자를 둘 수 없게 됐고, 사무실 지원금을 못 받게 됐으며, 교원 노조로서 맺었던 단체협약이 해제됐고, 교육 협의회에서도 배제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외노조가 철회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여유는 없었던 셈이다.

 

 

4. 전교조 정파에 대하여

 

: 정파 얘기 좀 할게요. 선생님은 어떤 정파 소속이셨어요?

 

: 예. 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 약칭 교찾사라고 하는 의견 그룹. 정파라고 하는 표현도 맞지만 저는 의견 그룹이라는 말을 주로 쓰죠.

 

: 정파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정파의 존재를 작년에서야 알게 되었어요. 제가 조합원이 된 지 7년이 되어 가는데 정파가 있는지도 몰랐다는 건 일단 제 책임이지만 조합의 문제이기도 하지 않나 해요. 정파가 비밀스럽게 활동을 한다는 소문이 있어요. 사실이에요?

 

: 정파는 비밀스럽지 않아요.

 

: 그래요?

 

: 회보를 내고 공개된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제출하니까 공개적인 방식이죠.

 

: 공개적인 방식이고... 정파들끼리의 다툼이 도를 넘는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권한이 큰 자리에 자파의 사람을 앉히기 위해 능력 있는 자를 배제한다거나 하는 거요.

 

: 글쎄요. 그런 경우라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예컨데 이런 거겠죠. 전교조는 선거를 통해서 집행부를 구성합니다. 동질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집행부를 꾸리려고 하는 목적 하에서 선거 캠프가 꾸려지는 거고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 같은 에너지를 결집 시키겠죠. 애초에 통합 집행부를 하겠다. 의견 그룹과 상관없이. 이렇게 공표를 하고 선거를 치르려 했다면 여러 견해를 가진 인재들을 모아서 집행부를 꾸렸겠죠.

 

보통 선거캠프에 자신의 견해에 맞는 정책을 세우고, 당선이 되죠. 그런 일관성을 유지하는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인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쓴다....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죠. 왜냐하면 견해를 달리하면 오히려 불필요한 잡음이 생기니까요. 2년 동안에 책임지고 집행을 하고, 조합원들로부터 심판받기 때문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파 활동이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적은 없으세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생긴 건데, 어느 순간 의도와 달리...

 

: 의견 그룹 숫자가 사실은 얼마 안 돼요.

 

: 두 개인가요?

 

: 두 개라고 할 수 있고, 열 개라고도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많이 모여 있으니까요.

 

: 뒤에서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는 주장도 있어요.

 

; 그거는 전형적인 음해성 조,중,동 이데올로기에요. 

 

: 네.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모 선생님의 ‘전국대의원대회 때 일부 정파의 끝없는 필리버스터’ 주장이요. 이건 분명 없는 말은 아닌 거 같았는데..

 

: 아 저는 꼭 다 동의하기는 어려운 말씀이었어요. 활동하고 있는 주체들이 가진 운동관과 세계관에 대해서 온전하게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갈 필요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배후에서 누가 조종을 한다. 이거는 분명 과도한 설정이라고 생각해요.

 

: 그럼에도 선생님. 제 생각에는 개선할 부분이 많긴 해요. 좀 더 공개적으로 정파 활동을 해야 된다던지 하는..

 

: 의견 그룹은 내부에서 끊임없이 치열한 논의, 논쟁을 통해서 자기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의견 그룹은 논쟁하지 않으면 소멸합니다.

 

: 그렇죠.

 

: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은 너무나 당연한 거고. 그 논쟁의 과정에서 특수한 시기에 특별한 의견이 특별한 방식으로 제출됐을 때, 해석은 다양하게 제기될 수 있죠. 작년 기간제 교사 논쟁도 그랬고. 앞으로 나가기 위한 진통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건강성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 솔직히 저 같은 평조합원은 선거를 할 때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어요. 홍보물, 공고물을 봐도 다 똑같아 보이고. 누구 뽑아야 되나 하다가 그냥 누군가가 권유하는 사람을 그냥 뽑게 되는 거에요. 이 부분은 해결책이 있나요?

 

: 그래서 전에 온라인 정책토론회도 했었어요. 실시간 중계를 해서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판단하게 하기 위해서요. 근데 막상 도입했더니 접속률이 너무 낮은 거에요. 몇 명 안 봐.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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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언제 했던 거에요?

 

: 그거. 해 왔죠. 최근 몇 년 동안 쭉 해 왔죠. 해봤는데 접속률이 낮았어요.

 

: 혹시 막 근무시간에 하고 이건 아니죠? 근무시간에 하셨으면 할 말 없으신 거에요. 하하

 

: 저장해 놓고 쏴주기도 하고, 홈페이지에 링크 걸기도 했었죠. 그럼에도 접속률이 낮았어요. 결국 공력에 비해서 실효성이 낮은 방식이라 판단해 폐기하게 됐고. 조직 내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모색들은 매 시기별로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어요.

 

 

5. 민주노총 산별노조로서 전교조

 

: 현장 교사들 중 전교조가 민주노총 산별노조라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과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어요. 조합비 나누는 문제도요. 전교조 조합비 중 민주노총에 가는 게 얼마나 되나요? 한 10% 되나요?

 

: 아뇨. 아주 작아죠. 2%였나.

 

: 2%요?

 

: 네. 조합원 개인당 천 원 조금 넘을 거에요. 

 

 후에 확인한 바로는 1인당 1650원. 

 

: 한편으로는 이런 점도 있어요. 저도 노동조합끼리 함께 소리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서울에 상경투쟁 가면, 심정적으로 좀 뭐랄까.. 계속 민주노총 쫓아다니는 기분? 쫓아다니다가 민주노총 사람 나와서 얘기하면 그걸 한참 듣고, 교육 얘기는 거의 못 하고 그냥 집에 가는 거에요.

 

: 그렇죠. 민주노총에 80만 명이 있잖아요.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나 많죠. 민주노총은 노동이라는 의제로 그걸 다 포괄해서 지금 제출하는 거고.  그 안에 교육노동이 특수하게 자리 잡고 있고. 민주노총이 가지고 있는 고민도 굉장히 크죠.

 

: 민주노총도 교육을 고민할까요?

 

: 내가 민주노총이에요.

 

: 아...그건 그런데.

 

모두: 하하

 

: 이런 거 있잖아요. 방금 말씀하신 노조별 특수성. 특히 언론노조나 교원노조는 노동 환경, 처우 개선뿐 아니라 노동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려 하잖아요.

 

: 그렇죠. 특수성이 있죠.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우리한테 의지하는 바도 커요. 전국 도처에 1만 개 사업장이 있는 건 전교조밖에 없어요. 일 만개 사업장. 그 모든 곳에 조합원이 최소 한두 명씩 있어요. 사회적 영향력이 아주 크죠.

 

: 그 말씀이 맞지만, 전교조는 어쨌든 교원 노조잖아요. 그 사명감을 살려서 교육 개혁 의제를 선점하고 있는가. 대중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가라는. 그 부분에 자신이 없어요. 선생님은 안 그러세요?

 

: 우리가 주도를 해야 된다는 건 맞아요.

 

: 의제 선점 얘기를 하면 물론 그런 건 있죠. 워낙 지속적으로 탄압을 받다 보니 그럴 틈이 없었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질 부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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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측면도 있어요. 한 10여 년 전부터 우리가 주장했던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라고 하는.

 

: 입시 폐지, 대학 평준화.

 

: 10여 년 전부터 공교육 재편이라는 새판을 제시하는 공격적인 의제였죠. 교육혁명대장정을 통해 십년간 꾸준히 제출해 왔어요. 중간 중간에 대통령 후보들이 자신들의 입을 통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공약으로 걸게 되는 효과를 얻었습니다.

 

: 입시 폐지, 대학 평준화 너무 좋죠. 근데 문제는 이게 전혀 안 와 닿는다는 거에요!

 

: 확실히 예전에 했던 ‘촌지 안 받기 운동’에 비하면 구체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니까.

 

: 네, 안 와 닿는다니까요. 찬성은 하지만 매우 장기적인 과제이고.

 

: 예. 그러니까 그 부분이 지금 현실화되는 단계에 있다.

 

: 현실화되지 않았고 아직 너무 먼 것 같은데요? 하하.

 

: 대학입학 자격고사도 문재인 대통령이 두 번이나 공약을 한 거에요. 그게 대학 평준화와 관련 된 거에요.

 

: 한편으로는 실제로 교육을 받는 학부모나 학생들은 그 주장에 크게 동의하지 않아요. 그 흐름 자체를.

 

: 경쟁 이데올로기가 아직은 지배적이기 때문에. 협력적인 이데올로기 공간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죠.

 

: 그 과정에서의 전교조의 역할이 뭐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게..

 

: 예. 열심히 하고 있는데 표가 안나요. 교육혁명대장정인 기간인 현재도 전국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대토론회하고 있어요. 한 20여 개 중소도시, 대도시요.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전망을 제시하고 얘기하고 있죠.

 

큰 스피커로 전파를 확보하게 되면 정착이 되는 건데... 지금 김상곤 교육부 체제가 그걸 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끊임없이 교섭하고, 제출하고, 국정기획 자문위원회 시절부터 해서 두툼한 보고서 제출하고 많이 만났죠. 일부는 반영이 됐어요. 그런데 미흡하죠. 그래서 우리는 멈출 수 없고, 앞으로 바꿔 가야죠.

 

: 방법적으로 바꾸실 생각은 없으세요? 취지는 존중해도 사실 조합원들도 잘 모르고. 이름도 교육혁명대장정 같은 건 좀...

 

: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자기 문제로 인식을 하게 만드는 것. 그걸로 정책화하는 것이 목표에요. 근데 교욱부에는 교욱부 장관 혼자거든요. 나머지 관료들은 이명박, 박근헤 때 그 체제 속에서 실질적인 교육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사람들이에요. 그 분들이 계획을 세우고 김상곤 장관한테 보고 하고 현장에 내려보내는 체제에요. 그러니 교육 관료들의 정책 시각이나 그 견해에 대해 재해석 할 수 있는 인적 재구조가 가장 필요하죠.

 

: 인적 재구조?

 

: 사람도 바꿔야 하고 정책도 바꿔야 되는데 지금 사람은 못 바꿨죠. 정책은 계속 전달했어요. 계속 전달했는데 그들이 먹지를 않아요. 소화를 안 해요.

 

: 그 사람들이 먹을 리가 없는 거 같아요. 물론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말은 계속 해야겠죠. 그러나 지금 상황이요. 지금 교원 43만 명 중에 전교조 조합원이 5만 명에 불과하잖아요. 그렇다면 교사들과 시민들의 마음을 얻는 게 먼저 아닌가. 특히 교사들이요. 그래야 저 윗사람들이 움직이지.

 

: 마음을 얻기 위해서 지금 싸움을 하는 거에요.

 

: 아니 아니, 하하.

 

: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를 해야 되니까.

 

: 아...

 

: 우리가 마음을 얻는 방법이 어떤 걸까? 생각해 보거든요.

 

: 교원노조니까 교원들의 마음, 교육 주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방법도 구체화 시킬 필요는 있는 거 같아요.

 

: 전적으로 동의해요. 국가교육회의만 해도 현장 교사가 한 명도 없어요. 현장을 바꾸려면 현장성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위원회에 초중고 교사가 없어요. 초등 선생님만큼 초등을 잘 아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박사학위 가진 교수님도 몰라요. 개혁의 주체 동력을 어디에서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문제 인식이 아직 없는 거에요.

 

우리는 현 정부의 교육개혁이 완전히 위기라고 보고 있어요. 현장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중반전 넘어가기 전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쇄신을 통해서 정책 중심에 접근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아주 변혁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해요.

 

: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 다양한 방식을 생각해요. 선생님들이 지금 요구하고 있는 게 뭔가. 괴로운 게 뭔가. 그 고충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손잡아줄 방법은 뭔가. 자기 전문성 신장에 대한 욕구는 어떻게 접근해, 어떻게 지원할 건가.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어떻게 확대할 건가. 제도적인 역기능과 저항을 어떻게 감소시켜 갈 건가. 저항과 대안에 동시에 접근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업무죠. 선생님들의 고충을 어떻게 해소할 건가? 이거는 힘이 있어야 되거든요.

 

: 힘이요. 그러니까 계속 꼬리의 꼬리를 물긴 하는데...

 

: 그간 사회가 많은 교사들을 위축되게 했지만 교육을 중심부로 이끌어 줄 사람들은 교사들입니다. 당당한 교사가 있는 교실이 행복할 수 있잖아요.

 

: 맞아요.

 

: 의기소침하고, 위축되고, 아이들로부터도 공격당하고. 수업 자체가 괴로운 공간에서는 교사들, 학생들, 학부모도 불행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을 중심에 정확하게 세울 수 있는 그 힘, 그 힘을 어디서 가져올 건가를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당당함이 필요한데 그 당당함의 기둥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 어디서 찾을까요?

 

: 저는 교원노조 활동이 학교 안의 중심으로 서야 한다고 봐요. 선생님들 간의 협력. 그 공동체성이 강화되는 질서 속에 답이 있다고 봐요. 지금 학교는 관료주의적 질서가 일방적으로 흐르고 있고, 거기에 비민주성이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인간 소외가 있고, 차별이 발생하고, 교사들은 자신들의 삶을 소외의 벼랑 끝으로 밀어 넣으면서 삶을 절망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놔두어선 안 된다는 거죠. 교사들 손을 잡아줄 사람은 누구냐? 그건 교사에요. 교사가 교사의 손을 잡아야 됩니다.

 

: 교사가 교사의 손을 잡아야 한다.

 

: 교사의 연대성을 어떻게 회복할 건가? 학교 자치는 어떻게 만들어 낼 건가? 민주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학교장이 섰을 때 가능한 거에요. 지금과 같은 승진구조는 관료주의, 비민주성을 그대로 품은 교장을 잉태하기 때문에. 그 개인의 심성과 상관없이, 관료주의라는 틀 위에 가만히 앉아 있는 존재. 매우 무력하기 짝이 없는 그런 리더로 존재하기 쉽다. 그래서 학교 사회 전체를 진정한 교육자치 공간으로 변모시켜야 합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냐? 민주주의의 핵심인 교원노조죠. 학교 안 분회라고 하는 조직이 교육자치의 핵심이고, 교무회의가 민주적으로 운영이 돼야 된다. 이겁니다. 교무회의가 민주적으로 운영이 되어야  학교장의 정보 독점과 의사결정의 불균형이 시정된다는 거에요. 교장보직선출제를 이뤄야죠.

 

: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좋네요. 전교조 본부가 내리는 판단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기도 하구요. 조합원과 본부 간 소통하는 채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반 조합원들은 본부와 괴리가 왜 이리 심한가 계속 생각하거든요.

 

: 예. 저희들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실 각 단위가 다 활성화되어야 하거든요. 본부는 주요하게 정부 쪽을 상대하고. 지부는 시, 도 교육청. 이렇게 나누뉘는 건데, 본부가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동맥경화에요. 지역사회 교육 현안에 대해서는 지부가 해결 능력을 갖고 접근해야 하거든요.

 

: 네. 전교조도 너무 탑다운 방식이라는 비판이 있어요. 본부에서 정하고, 지역 간 차이 고려 없이 똑같이 지침을 뿌려버린다는. 예를 들어 대전과 광주는 상황이 너무 다른데도 똑같은 방침이 내려오니까.

 

: 그런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대전 지부장님도 있고, 광주 지부장님도 있긴 하세요. 그래도 중앙 중심의 사업이 상대적으로 많이 느껴지면 그만큼 지역사업들의 공간이 협소해지죠.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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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외노조 풀리면 제일 먼저 뭐 하고 싶으세요?

 

: 수십 명 해직 교원들 복직부터 해야죠. 법적 지위를 회복하면 모든 걸 정상화시켜서 교육정책, 예산 복원에 대해서 단체 교섭도 하고요. 무엇보다 현장이 일번이죠. 현장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가야합니다.

 

지금 상반기 중에 단체교섭안 다시 작성하고 하반기 프로그램도 있어요. 교육부하고 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건설적인 논의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정상화 시킬 겁니다. 그때 가서도 모순은 다시 발생할 겁니다. 그때는 또 또다시 다른 투쟁이 필요하겠죠.

 

: 복직하실 거죠?

 

: 복직 해야죠.

 

: 몇 년 남으셨어요?

 

: 저는 이제 2년 반 남았나? 복직이 그 안에 될지 모르겠어요. 2년 반. 교단에서 정년 해야죠.

 

: 하하. 네 문집도 만드셔야죠.

 

: 예. 문집 만들어 놓고 싶어요. 마지막 아이들과 함께 기억 남기고, 사진도 찍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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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실 구면이다. 조창익 선생님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내가 사는 지역의 모 행사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내가 “사진에서만 뵈었는데 반갑습니다 위원장님.” 이라 말하며 악수를 청하자 쑥스럽게 웃으며 손을 잡으셨다. 표정은 밝았지만 얼굴은 무척 수척했다. 당시 법외노조 철회 단식 투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힐끗 바라보니 자리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계셨다. 그날 이런 생각을 했다.

 

'저 분도 선생님이다. 길에서 단식하고, 멋없는 조끼입고 우렁차게 투쟁을 외치는 저 분도 같은 학교에서 일했다면 믿고, 의지했을 동료 선생님이었겠구나.'

 

전교조라는 조직을 신뢰하는 조합원 중에도 본부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선생님들이 있다. 분명 전교조가 늘 잘해왔던 건 아니다. 나도 여러 불만을 느껴왔고, 앞으로도 좋은 소리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조창익 위원장이 말하듯 전교조는 지도부나 활동가가 만들어 이끄는 조직이 아니다. 내가 전교조다. 옆동네 교실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름 모를 교사가 전교조다. 전교조는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길을 걷는 자취일 뿐이다.

 

전교조 역사에 흐르는 똘기에 가까운 결기. 그것이 우리의 위기를 자초했지만, 그 결기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전교조, 안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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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상회담 앞두고 “핵실험 중지·경제건설 집중” 선언

북한, 정상회담 앞두고 “핵실험 중지·경제건설 집중” 선언

 


등록 :2018-04-21 08:54수정 :2018-04-21 09:26
 

노동당전원회의 결정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핵무력 병진노선 대신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 채택
남북, 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대화 진정성 보인 청신호
트럼프 “북한과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 트윗
북한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결정을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해 10월 평양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모습이다. 연합뉴스
북한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결정을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해 10월 평양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모습이다. 연합뉴스

 

북한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지금까지 6차례 핵실험을 진행했던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채택했다.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국무위원장) 주재하에 20일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결정서를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핵-무력 병진노선’을 종결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집중하겠다는 ‘역사적 결정’을 내놓은 것이다.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다음 주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과 이어지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분명한 청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통신은 만장일치로 채택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라는 결정서에 “주체107(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명시됐다고 밝혔다. 노동당 전체회의 결정서는 이어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다”라고도 밝혔다.

 

북한이 언급한 ‘북부 핵시험장'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있는 핵실험장으로, 이곳에서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009년 5월 25일, 2013년 2월 12일, 2016년 1월 6일과 9월 9일, 2017년 9월 3일 등 총 6차례의 핵실험이 실시됐다. 결정서는 “핵시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시험의 전면 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또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핵무기 개발은 중지하고, 핵무기와 기술은 확산시키지 않을 것이며, 이미 만든 핵은 핵군축 방식의 협상을 통해 처리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핵무기와 핵기술 이전은 미국이 가장 우려해온 내용이다.

 

결정서는 이어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위한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며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하여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연계와 대화를 적극화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보고에서 ‘조선반도(한반도)와 지역에서 긴장완화와 평화에로 향한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국제정치 구도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데 대해 통보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핵개발의 전 공정이 과학적으로, 순차적으로 다 진행되었고 운반 타격 수단들의 개발사업 역시 과학적으로 진행되어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된 조건에서 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도 필요없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북부 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쳤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핵무기 없는 세계 건설에 적극 이바지”하려는 것이 당의 평화 애호적 입장이라는 언급도 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2013년 3월 당 전원회의에서 채택됐던 핵무력과 경제 건설의 ‘병진노선’의 “역사적 과업들이 빛나게 관철되었다”고 선언하고, ‘경제건설 총력 집중’이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선언한 ‘핵무력 건설 완성’ 논리에 따라, 이제는 핵무력을 완성했으니 기존의 노선을 대체하는 경제건설 노선을 새롭게 채택한다는 논리다. 김 위원장은 “우리 공화국이 세계적인 정치사상 강국, 군사강국의 지위에 확고히 올라선 현 단계에서 전당, 전국이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 이것이 우리 당의 전략적 노선”이라고 천명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당 전원회의는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지향시키고 모든 힘을 총집중할 것”이라는 내용의 ‘혁명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할데 대하여’라는 결정서가 채택됐다.

 

이날 전원회의에서는 인사관련 사항인 ‘조직문제’도 다뤄졌다고 통신은 밝혔다. 김정각 신임 군 총정치국장이 당 정치국 위원에 보선됐고 당 서기실장으로서 김정은 일가를 밀착 보좌하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당 중앙위 위원에 올랐다.

 

이 소식이 나온 지 한 시간쯤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 전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로 큰 진전”이라며 “우리의 정상회담을 고대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실험을 모두 중단하고 주요 핵실험 부지를 폐쇄하는 데 합의했다”고 평가했다.

 

다음 주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말 또는 6월초 열릴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내놓은 이 결정을 <시엔엔> <비비시> 등 외신들은 일제히 주요 속보로 전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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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법정관리 협박하는 ‘깡패집단’ GM

정부 지원, 노조 양보도 모자르다? “법정관리 협박 중단해야”
  • 이성재 금속노조 한국GM지부 조합원
  • 승인 2018.04.20 13:37
  • 댓글 0
한국GM 노사가 댄 암만 GM사장이 제시한 법정관리 신청 기한일(4월20일)에도 집중교섭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지엠 사태의 현 상황과 노사 입장 등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이성재 조합원(한국지엠 노동조합 19대 위원장)의 기고를 싣는다.[편집자]

한국GM 사태가 주범인 GM에 의해 벼랑 끝으로 가고 있다. 지난달 26일 베리 앵글 GM 해외사업부 사장이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임한택 지부장과 면담 중에 ‘부도’를 운운했다. 급기야 지난 13일엔 댄 암만 GM사장이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산업은행과 한국지엠지부가 각각 GM과 4월20일까지 최종 합의를 않으면 법정관리를 신청하겠다’는 최후통첩성 발언을 하며 사태를 악화시켰다. 댄 암만 사장의 발언에 대해 산업은행을 포함한 정부당국과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모두 열이 받았다. ‘X 싼 놈이 화낸다’고 한국GM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자들이 부도를 협박하면서 ‘돈 내놔라’, ‘양보하라’는 후안무치한 태도에 국민들 역시 분노하고 있다.

법정관리 신청 협박은 ‘벼랑 끝 전술’

▲ 사진 : 뉴시스

사실 지금 상황에서 GM이 막상 떠나버리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왜냐면 실제 GM이 떠나버리면 뒤치다꺼리를 당사자인 한국GM 임직원들과 부품협력업체, 그리고 지역사회, 나아가 정부가 다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갈 것 같진 않다.

GM이 전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철수했지만, 아직 한국GM에서 빼먹을 게 있고, 필요로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또 막상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면 GM 역시 주도권을 한국 법원에 넘겨야 하기 때문에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는 데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4월20일 법정관리 신청 데드라인’ 발언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이다.

GM과 산업은행의 극적 합의 가능성

현재 GM본사와 산업은행 사이에 타협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댄 암만 사장의 ‘4월20일 데드라인’ 발언 이후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20일에 실사 중간보고서가 충실히 나온다면 4월27일 잠정적으로 지원을 약속할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밝힌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 ▲주주·채권자·노조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 ▲장기적으로 생존 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 마련이란 3가지 원칙을 다시 확인하면서, GM이 법정관리 신청을 강행한다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즉 정부(산업은행과 산자부 등)는 이들 원칙을 확인하면서도 타협의 여지를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20일을 전후해 GM과 산업은행 사이에서 법정관리를 신청할만한 결렬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남게 되는 건 노사간의 합의다.

일방적인 희생양이 돼 버린 한국GM

한국GM의 부실은 거의 전적으로 한국GM을 희생양 삼은 글로벌GM의 정책적 결정 탓이다. 매출을 늘리기는커녕 4분의 1을 싹둑 잘라버렸고, 이익은 연구개발비, 업무지원비, 로열티, 이자 등등으로 다 빼가고, 신차 배정도 하지 않는데 무슨 재주로 흑자 운영할 수 있겠는가? 팔 다리 다 잘라 놓고 걷지 못하고 뛰지 못한다고 타박하는 꼴이다.

가장 크게는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매년 평균적으로 6000억 원씩 빼갔고, 여기에 업무지원비 명목으로 평균 400억 원, 연리 5.3%의 고리로 이자만 평균 1200억 원씩 가져갔다. 일반적으로 자동차회사에서 연구개발비야 당연히 들어가는 것이지만 한국GM의 경우 지적재산권은 전부 GM에게 귀속됨으로써 우리가 분담하는 연구개발비는 무형자산으로 남지 못하고 비용으로 처리돼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위의 표에서 보듯이 GM은 매년 평균 9350억 원 정도를 빼내갔다. 사실상 이렇게 과도하고 일방적인 부담이 없었다면 한국GM 매출이 2013년부터 급감했다 하더라도 손실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다.

산업은행도 노조에 양보 강요할 자격 없다

사태 해결에 나선 산업은행의 3가지 원칙 중 첫 번째가 바로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이다. 그래서 산업은행은 그동안 GM이 한국GM에게 빌려 준 27억 달러에 대해선 올드머니(old money. 이미 투자된 자금)로 규정하면서 경영실패의 책임을 지고 전액 출자전환과 차등감자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GM이 새롭게 투자하겠다는 신규 자금(new money) 28억 달러에 대해서는 17%에 해당하는 5000억 원만큼만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노조는 산업은행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산업은행도 17.2%의 지분을 가진 2대 대주주 아닌가 말이다.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GM의 약탈 경영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책임을 제대로 져야 한다. 그동안 산업은행이 무기력하게 거수기 노릇만 해왔던 것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노조가 양보한 각종 비용은 당연히 ‘뉴머니’다

노조는 현재 회사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선제적으로 양보를 해왔다. 하지만 노조는 지금의 한국GM 부실사태에 어떤 책임도 없다. 고임금 때문에 회사가 부실해졌다고? 지나가는 뭐가 웃을 소리다. 제조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동종사보다 결코 높지 않다.

하지만 노조는 이미 현 사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자세로 임하며 매년 해오던 임금인상과 성과금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희망퇴직이란 이름 아래 진행되는 회사의 구조조정에 반대하지도 않았다. 결국 2600여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희망퇴직을 통해 2500억 원, 지난 시기 평균 임금인상 총액 250억 원, 성과금 1500~2000억 원 등 매년 4250~4750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둔 것이다. 특히 평균 임금인상 총액과 성과금 총액 2000억 원은 회사 경영수지 측면에서 신규 투자와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 따라서 당연히 뉴머니(New Money)인 것이다.

또다시 구조조정 당할 수밖에 없다

1~2년 후 부평에 있는 엔진공장 4분의 3과 부평2공장이 조만간 폐쇄되는 등 또다시 2~3000명이 구조조정 앞에 놓여있다. 
GM이 정부에 제출한 ‘경영정상화 방안’과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을 위한 투자 프로그램’ 내용을 살펴보면 정말 ‘노(NO)답’이다. 28억 달러를 투자해(과연 이 모두가 온전한 투자비인지도 의심스럽다) SUV와 CUV를 각각 1종씩 개발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투자가 일어나는 시기에 고용은 현재 1만7000명에서 1만1000명으로 줄이며 생산량 역시 50만대에서 30만대로 줄어든다고 한다. 2600명이 먼저 떠났으니 6000명 빼기 2600명, 즉 3400명에 대한 추가 구조조정 내용을 담아 놓고도 신규 투자란다. 이러면서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해 달라는 특혜를 뻔뻔스럽게 요구하는 자들이 바로 GM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군산공장과 부평2공장의 흐름은 거의 비슷하다. 군산공장도 계획으로 예고했던 2022년이 아닌 올해 5월말로 폐쇄 당하듯이 부평2공장도 길어야 1~2년 뒤 폐쇄되고 말 것이다. 지금 생산하고 있는 아베오와 캡티바는 오는 7월말 생산이 종료된다. 그러면 말리부 1개 차종만 생산하게 되는데, 중형차의 속성상 수출은 많지 않고 내수 역시 신통치 않아 벌써 2-Shift에서 변형 1-Shift로 운영 중에 있다.

부평2공장, 미래발전 전망과 총고용보장 등이 마지노선이다

한국지엠지부 노조는 ‘군산공장 680여명의 총고용보장, 부평2공장에 전기차와 단종되는 캡티바 후속 차종 투입, 그리고 외주화 내지는 통폐합하려는 AS의 정상화’를 마지노선으로 11차에 걸친 집중교섭과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900여 명이 떠난 군산공장에는 아직 680여 조합원이 남아 있다. 노조는 이들의 총고용보장을 요구해 왔고, 회사는 부분적인 전환배치, 그리고 남는 인원에 대해 5년간의 무급휴직안을 제시했다. 노조가 받을 수 있는 안이 결코 아니다. AS부문과 부평, 창원, 보령 공장 등에서 희망퇴직으로 빠져나간 자리에 군산공장 680여 조합원들을 전원 전환배치해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AS부문에 대한 외주화나 통폐합도 물 건너가는 것이다.

엔진공장 중 FAM-0 리모델링해서 CSS 엔진만 남기고, 나머지 GEN-3, S-200 엔진은 단종시키고, 부평2공장은 폐쇄해 사람 자르고…. 결국 2022년에는 부평1공장과 창원공장에 각각 1개 차종씩만 남기고 나머지 차종들은 수입해 수지를 맞추겠다는 게 GM의 계획이다. 이런 계획에 동의해 줄 노조가 어디 있으며, 이런 계획에 잘 한다고 국민 세금인 공적자금을 지원해 줄 정신 나간 정부가 어디 있겠는가?

당장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부평2공장에 신차를 투입해야 한다. 노조는 한국GM 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전기차 Bolt EV를 포함해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SUV차종(캡티바 후속)을 투입하지 않으면 노사간 합의는 절대 없다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

GM, 협박 중단하고 발전전망과 고용·생존권 보장해야 한다

“이 따위로 할 바에야 GM은 떠나라!” 한국지엠지부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상당수 국민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한국지엠에 빨대를 꽂아 이익을 빼가질 않나,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해 달라는 특혜를 요구하지 않나. 뻔뻔한 자들에게 무슨 미련이 있을까?

2001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GM(당시 GM대우) 사장을 지낸 닉 라일리 전 사장도 “한국GM이 적자를 낸 것은 GM이 유럽에서 쉐보레 판매를 접기로 했기 때문이지 한국GM 탓이 아니”라고 했다.

따라서 GM은 법정관리 신청을 무기로 정부와 노조에 대한 협박을 즉각 중단하고 성실하게 협상에 임해야 한다. 남아 있는 군산공장 조합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부평2공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실질적인 경영정상화 방안을 제시해 노사 합의를 조속히 이루도록 해야 한다.

이성재 금속노조 한국GM지부 조합원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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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150만원 때문에…심부전 환자 ‘노역장’ 이틀만에 숨져

벌금 150만원 때문에…심부전 환자 ‘노역장’ 이틀만에 숨져

등록 :2018-04-20 19:04수정 :2018-04-20 19:56

 

벌금 낼 돈 없던 쪽방촌 50대 
심부전 수술 나흘만에 노역장 
결국 이틀뒤 병 악화로 숨져 

구치소·법무부·검찰 책임 미루며
“법·원칙 따랐을뿐” 말만 되풀이

 

심부전증(심장 기능 이상)을 앓고 있던 50대 기초생활수급자가 벌금 150만원을 납부하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된 지 이틀 만에 숨졌다. 이 환자는 주민센터의 긴급지원으로 수술을 받았으며 숨지기 엿새 전 퇴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아무개(55)씨는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마트 의자에 놓여 있던 핸드백을 훔친 혐의(절도)로 벌금 150만원의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그가 훔친 핸드백 안에는 드라이어 등 물품이 들어 있었다. 그가 훔친 핸드백과 물품의 총액은 80만원 남짓이었다.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한달 70만원 남짓의 기초급여가 수입의 전부였다. 그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서울 종로구 쪽방촌에 있는 한평 남짓의 좁은 방에서 홀로 생활했다.

 

김씨는 20여년 전 대구에서 올라와 일용직을 전전했고, 때로는 노숙생활을 하기도 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었던 그는 서울에서 쭉 혼자 살았다고 한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방 안에서 그는 바닥에 놓인 가스버너로 밥을 해 먹고 얇은 담요를 덮고 잠을 잤다. 그가 쓰던 구형 폴더 휴대전화는 요금을 내지 못해 끊긴 지 오래였다. 쪽방촌 그의 지인들은 벌금 150만원을 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김씨가 홀로 쪽방촌에 살았던 것은 좋지 않은 건강 때문이었다. 김씨는 지난달 29일에도 스스로 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6개월 가까이 숨이 차오르는 증상이 계속됐고, 가만히 있어도 숨이 가빠왔기 때문이다. 병원에선 ‘폐부종을 동반한 심부전’이라고 진단했고 수술을 권했다. 병원비를 낼 수 없었던 김씨는 퇴원을 요구했다. 이런 김씨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담당 의사는 병원 쪽에 ‘김씨의 수술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고, 다행히 병원은 그가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에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김씨는 주민센터의 도움을 받아 ‘서울형 긴급지원’으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긴급지원금 100만원으로 수술비와 입원비를 모두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수술이 끝난 뒤 그는 100만원으로 중간정산을 하고 지난 9일 퇴원했다. 의사는 며칠 더 입원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김씨를 강제로 붙잡아둘 수는 없었다.

 

퇴원한 지 나흘 만인 지난 13일 오전 10시 그는 서울구치소에 입감됐다. 벌금 미납에 따른 노역장 유치였다. 그리고 이틀 뒤인 15일 오전 8시45분, 그는 경기 안양시 ㅎ병원으로 이송된 지 한시간여 만에 숨졌다. 부검 결과 그의 사망 원인은 ‘심부전 악화’였다. 큰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나흘 만에 벌금 150만원 때문에 노역장에 유치됐고, 유치된 지 이틀 만에 사망한 것이다.

 

김씨의 건강 상태는 구치소 입감 당시에도 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든 피의자는 구치소에 들어갈 때 신체검사를 받는다. 당시 김씨가 작성한 ‘체포·구속 피의자 신체확인서’를 보면, “지난달 급성 심부전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 치료 중 최근 퇴원해 약물치료 중에 있으며, 이 병으로 인해 가슴과 머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김씨를 위해 국가기관이 어떤 조처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씨가 이틀간 짧은 수용 생활을 했던 구치소 쪽과 교정본부를 관할하는 법무부, 그를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지휘한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른 일”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입감 당시 의료진이 진료를 했고 환자라고 판단해 병동에 수용하라고 해서 병동에 있었다”며 “전염병이 아니고선 모든 피의자를 입감시키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사가 노역장 유치 집행을 지휘하면 구치소는 이에 따를 뿐”이라며 “구치소 입장에서는 피의자를 마음대로 빼거나 넣을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문홍성 법무부 대변인은 “법무부 교정본부는 수용자만 관리할 뿐 피의자가 어떤 혐의인지도 알기 어렵다”며 “검찰에 문의해 달라”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박찬호 2차장은 “원칙에 따라 벌금을 안 내면 노역장 유치를 지휘한다. 노역장에 유치할 당시엔 사망자의 심부전증은 확인이 안 된 사항이었다. 입감 당시 건강 상태는 교정당국에서 확인한다”고 했다.

 

김씨의 동생은 “퇴원한 지 나흘밖에 안 된 사람을 벌금 150만원 때문에 꼭 가뒀어야 했는지 의문”이라며 “힘겹게 살아온 형이 너무 허무하게 떠난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김씨의 장례를 아직 치르지 않았다. 김씨의 주검은 20일 현재 병원 영안실에 있다. 김씨의 동생은 건강이 안 좋은 김씨를 무리하게 노역장에 가둬 사망에 이르게 한 이들의 사과를 받은 뒤 장례를 치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구치소와 법무부, 검찰 어느 곳도 사과하지 않았고, 그도 어디에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검찰은 서류만 보고 노역장 유치를 결정했고, 경찰은 김씨의 상태 등을 보지 않고 기계적으로 집행했다. 구치소도 형식적인 검진만 거쳤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권력이 힘없고 돈 없는 사람의 목숨을 어떻게 다루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형 집행 편의와 국민의 생명권 가운데 어느 쪽이 우선시돼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지민 신민정 기자 godjimi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1457.html?_fr=mt1#csidx28b67b6d7cadf4fbc20bd0ed80237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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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역사의 조명탄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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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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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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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2018. 0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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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jpg 

 

‘간디는 현대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조명탄입니다. 캄캄한 밤에 적전상륙을 하려는 군대가 강한 빛의 조명탄을 쏘아 올리고 공중에서 타는 그 빛의 비쳐 줌을 이용하여 공격 목표를 확인하여 대적을 부수고 방향을 가려 행진을 할 수 있듯이 20세기의 인류는 자기네 속에서 간디라는 하나의 위대한 혼을 쏘아 올렸고, 지금 그 타서 비치고 잇는 빛 속에서 새 시대의 길을 더듬고 있습니다.’

 

 함석헌의 간디 평이다. ‘마하트마 간디(1869~1948)의 도덕·정치 사상’을 담은 ‘간디선집’ 3권이 나남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간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한 90권짜리 <간디전집>을 발췌한 것이다. 간디는 평생 동안 자신이 편집 했던 <인디언 오피니언>, <영 인디아>, <하리잔>, <나바지반> 등의 주간지에 매주 기사를 썼다. 그는 남아프리카, 영국, 인도 및 세계 각지에서 편지를 보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답장을 해줘 하루 최고 70통의 편지를 쓸만큼 양심적이고 열성적이었다. 그렇게 40년을 쉬지않고 쓴 엄청난 양의 편지가 있기에 전집이 무려 90권에 이르렀다. 그가 보낸 편지들의 수신자에는 정치가, 종교인, 법률가, 학자, 교육자, 사업가, 예술가, 노동자, 대학생들이 포함돼 있었다. 여기엔 네루, 윈스턴 처칠, 타고르, 톨스토이, 로맹 롤랑도 들어있다. 간디가 히틀러에게도 편지를 썼지만 배달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같은 방대한 전집에서 중요한 내용들을 인도 출신의 옥스퍼드대 교수로 <헤르메스> 편집장을 지낸 라가반 이예르가 엮은 것이 이 ‘선집’이다. 그러나 ‘선집’만으로도 각권당 900여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선집은 1권 <문명·정치·종교>, 2권 <진리와 비폭력>, 3권 <비폭력 저항과 사회변혁>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번역은 오랫동안 간디와 불교를 연구해온 경희대 비폭력연구소장 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교수가 했다. 허 교수는 2000년 하반기부터 학교 수업과 관련된 공부 시간을 빼놓고는 거의 전적으로 간디 번역에 매달렸다고 한다. 허 교수는 1973년 서울대 철학과 3학년 때, 10월 유신 반대 데모로 용산경찰서 유치장에 붙들려 들어가 29일 간의 구류를 살고 나온 직후 박재순 선배의 소개로 간 서울 신촌 봉원동 퀘이커 보임에서 함석헌 선생님에게 <바가바드 기타>를 영어 번역으로 공부하면서 인도 및 간디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은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자 사회개혁가이자 영성가이자 종교인이자 실천가였던 인간 간디의 저작과 분석 등이 망라돼 간디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편지글이어서 전체를 간파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옮긴이 허 교수는 일단 1. 행동가 간디 2. 진리와 세속 3.간디와 붓다 4.종교와 정치 5. 간디와 함석헌 6.비폭력과 문명비판 7.선동가 간디 등 7가지 주제를 일단 간추려서 소개했다. 1번 행동가 간디편에 소개한 아래 내용만으로도 간디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다. 

 

간디책-.jpg 

 

 ‘간디는 참을 실현하려고 손발을 포함하여 온몸으로 행동했다. 그는 참의 실현이 단순히 말이나 글에 의해서도 아니고 무행위로 빠질 수 있는 명상이나 선정에 의해서도 아니며, 오로지 민중에 나 봉사행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진심으로 봉사하면서 신 또는 아트만을 실현하기 위해서, 홀로 있거나 집단 속에 있을 때 침묵하고 명상하고 예배하고 기도했다. 간디의 삶은 정중동, 아니 동중정의 삶이다. 

 

 간디는 인생의 목적이 민중에 대한 봉사라고 선언하고, 행위에서 무행위를 보고 무행위에서 행위를 보는 사람, 그가 진실한 요기이고 참된 카르마(행동)의 사람임을 믿었다. 증오의 한복판에서 사랑의 삶을 살아갔던 그는 스스로 카르마 요기의 모범이 되었다. 그는 도 닦는다 하고 고행하면서 세상을 버리려는 자에게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서만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가 바로 진실한 구도자라 하고, 이 세상이 구도자를 위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은 정신적 나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옮긴이는 “간디가 진리와 비폭력이 책을 요구하지않으며 행동만이 가장 위대한 현시이고, 그것들이 실천에 의해서만 보급될 수 있다고 보았다”면서 “간디에게는 세속을 변화시키기 위한 행위를 동반하지 않는 명상이나 수행은 모두 정신적 방탕이고 순결(브라마차르야) 계율의 정면 위반이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또한 자아실현이란 봉사를 전제로 한다는 간디의 종교관도 분명하게 말해준다.

 

 ‘자아실현이나 자기지식은 우리가 모든 생명과 일치되기 전-신과 하나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 그와 같은 일치를 완수하는 일은 타인의 고통을 의도적으로 나누는 것, 그 고통을 제거하는 것을 포함한다. 뭇 생명과 그들의 고통, 그리고 신을 외면하거나 도외시한다면 개인적 완성, 자아에 대한 지식, 진리추구도 모두 거짓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아완성은 봉사를 통해서 얻어진다는 간디의 말을 수용하면, 자아가 완성되기를 기다려 봉사하려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잘못이다. 봉사 없는 자아 완성은 도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도의 힌두교 풍토에서 태어난 불교와 힌두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허 교수는 간디의 글을 통해 이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정리해준다. 

 ‘붓다는 자신이 살았던 참담한 시대의 개혁자였는데, 당시 눈먼 바라문은 이기적이어서 붓다를 거부했지만, 실천적 대중은 붓다가 자신들의 신앙을 앞장서서 주장하는 분임을 확인하고 그를 따랐으므로, 불교는 대중의 이름으로 실천되는 힌두교였다. 간디는 붓다를 비폭력 행동가의 한 사람으로 내세워 징기스칸, 히틀러, 무솔리니와 같은 폭력행위자와 선명하게 대조하기도 했다.’

 

 허 교수는 “붓다야말로 진리와 비폭력을 앞세워 당시 부패와 나태에 빠져 있는 바라문 계급을 내치고, 민중에게 지고의 행복을 선물했던 인물이었다”면서 “불교도가 나태하여 이웃에게 부담이 되거나, 기아 상태에 있는 민중의 운명에 관심이 없는 것도 비판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자신이 한 모든 일은 정치라고 하면서도, 정치가의 기질이 자신을 한번도 지배한 적이 없다고 했던 간디의 정치관도 소개한다. 간디는 ‘정부의 정치 형태는 영적인 힘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2권 <진리와 비폭력>은 간디가 삶을 걸고 지키며 싸워온 ‘아힘사(비폭력)’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간디는 아침사, 즉 비폭력에 의해서 생성되는 도덕적 힘이 이기성에 토대를 둔 어떤 힘보다 무한히 위대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간디는 폭력은 공포에서 나온 것이며, 공포는 무지한 이기주의 그림자로 보았다. 간디의 ‘아힘사’론이다.

 ‘아힘사를 체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요소의 이기주의를 반드시 청소해야한다. 사람 안에 남을 죽이고 싶어하는 살의가 흔쾌히 죽으려는 태도와 반비례하여 존재한다. 모든 존재에서 어느 정도의 폭력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폭력이 치유될 수 없고 감소될 수도 없다는 점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아힘사는 가장 넓은 의미로는 모든 존재를 자기 자신처럼 취급하려는 자발적 의사다.’

 

 이 책 2권엔 간디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척살 소식을 듣고 <인디언 오피니언>에 쓴 글이 있다. 간디는 같은해 인도 청년이 런던에서 영국 관리를 암살한 것을 비판한 것처럼 안중근의 저격도 비폭력을 저버린 행위로 비판한다. 그러나 서양 제국주의 문명과 일본 제국주의를 통렬히 비판한다. 간디의 글은 “영국인들이 이집트나 인도에서 세력을 장악해 권리와 특권을 향유하고 있듯이, 일본인들은 한국에서 그렇게 하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을 돕기 위해서가 아님은 물론이다”고 시작한다. 간디는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을 예속시킨 일은 용기를 나쁜 목적에 사용한 것”이라며 “서양문명의 마법에 걸린 사람들은 달리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간디는 “인민의 참된 복지를 심정에서 생각하는 자라면, 오직 사티아그라하(진리파지)의 길을 따라서 인민을 인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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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평화협정체결 뜻 내비친 트럼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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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평화협정체결 뜻 내비친 트럼프 대통령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4/20 [21:30]  최종편집: ⓒ 자주시보
 
 

 

18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전쟁 종전 논의를 ‘축복(blessing)한다’고 한 발언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방안을 논의하려는 한국을 지지하며 북이 비핵화에 나설 경우 평화협정 체결도 할 수 있다는 미국의 입장 표명이란 분석이 나왔다. 

 

▲ 남북정상회담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종전선언, 평화협정이 언론에 자주 나오는 것은 일단 긍정적인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플로리다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한국은 전쟁을 끝낼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북과) 회담할 계획을 하고 있다”며 “이에 대해 나는 축복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켄 고스 미국 해군분석센터(CAN) 국제관계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발언을 통해)남북 정상회담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논의하려는 한국을 지지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며 "한미 간에 이를 두고 긴밀히 협의하고 있고 이견이 없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실제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은 미국을 비롯, 북, 유엔, 중국 등 정전협정 당사국들이 평화협정에 서명할 때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이 북과 평화협정을 체결할 뜻을 내비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다만 고스 국장은 북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양측의 합의가 나올 경우에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의 입장에서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미국과 한국의 말만 듣고 비핵화에 합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들의 체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가 참여하는 다자 지역안보협의체 구성이 평화협정 내용에 추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고스 국장은 전망했다.

 

북은 현재 체제위협의 핵심을 미국으로 보고 있다. 다자지역안보협의체니 뭐니 하는 것보다 미국이 얼마나 확고하게 대북적대시정책을 근본적으로 철폐할 것인가를 관건적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북에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나라는 미국, 일본, 한국 등인데 여기서 핵심이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북이 요구하는 수준에서 미국이 북에 대한 안전을 담보하고 대북적대시정책을 철폐했을 때 북은 동시적으로 비핵화에 나설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 대북적대시정책 철폐와 대북 안전담보의 중요한 조건 하나가 바로 북미평화협정체결이다. 따라서 북미평화협정체결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미국이 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간 북이 그렇게 미국에게 평화협정체결을 요구해왔지만 미국은 거부해왔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주한미군 주둔 명분이 사라진다. 또 여차하면 군사적으로 북을 제압하고 압록강 두만강까지 그들의 영향력을 넓히고 나라가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석권하려는 패권적 야망을 버려야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북이 미국 본토를 전멸시킬 수 있는 수소탄 장착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완성시켰기 때문에 이제는 한반도 비핵화를 떠나 미국의 안전을 담보받기 위해서라도 북과 사실상 전쟁상태인 정전협정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할 필요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 평화협정체결이 한반도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전제조건으로도 된다. 

 

따라서 정상적인 판단력을 가진 미국의 지도자라면 미국의 안전도 담보받고 한반도 비핵화를 진전시킬 수 있게 하는 북미평화협정체결을 당연히 북에 제의해야할 상황인 것이다.  

이제 미국에게 평화협정체결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 당장 하루빨리 체결해야할 절체절명의 과제로 부상한 셈이다. 그래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국제정세전문가들의 입에서 종전선언이니, 평화협정체결이니 하는 말들이 자주 나오고 있는 것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종전선언을 해야 하며 종전에 따른 전후배상문제 처리하고 양국관계를 정상적인 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 양국 무역 등의 교류가 정상화되도록 법과 제도의 정비까지 약속을 해야 비로소 평화협정이 체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각에서는 종전선언은 남북정상회담에서 하고 평화협정은 북미정상회담에서 체결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아리송하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체결의 한 구성부분이다. 정전협정을 체결한 당사자가 종전선언을 해야 의미가 있다는 것도 너무나 지당하다. 

 

어쨌든 종전선언, 평화협정 이런 말들이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과 미국에서 자주 나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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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는 왜 잊혀져 가고 있는가?

4·19는 왜 잊혀져 가고 있는가?
 
 
 
김용택 | 2018-04-20 08:59:0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4·19와 이승만은 서로 반대되는 게 아닙니다. 외눈박이로 역사를 봐서는 안 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 젊은 청년 학생들이 자랑스럽다고 하시며 물러났습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4·19혁명 58주년 기념식에 다녀와서 자신의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이다. 15~17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제32대, 33대 경기도지사를 지낸 사람의 입에서 나온 얘기치고는 충격이다. 그것도 4·19혁명 58주년 기념식에까지 다녀와서…

4·19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것인가? 이낙연총리와 여야 대표 몇몇 분이 참석한 제58회째 맞는 4·19혁명은 대부분의 언론들조차 외면하고 지나간 기념식이었다. 4.19혁명 58주년기념식에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바른미래당 박주선, 민주평화당 조배숙,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참석했지만 제1야당의 대표조차 참석하지 않은 그야말로 반쪽짜리 기념식이었다. 4·19혁명은 왜 잊혀지고 있는가?

‘4·19와 이승만은 서로 반대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비롯한 자유한국당은 헌법에 명시한 4·19를 학생들이 일으킨 소요사태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 4·19도 부정하지 않고 이승만도 국부인가? 4·19를 혁명이고 이승만정부가 긍정되면 제주항쟁도, 5·18광주항쟁도 촛불혁명도 모두 부정되어야 한다. 4·19를 혁명으로 보는 시각이 왜 외눈박이인가? 김문수경기지사는 4·19영령들을 모독하는 망발을 역사와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헌법 전문(前文)은 이렇게 시작된다. ‘4·19이념이란 불의에 항거하는 정의감이요 나라를 지키겠다는 애국심의 정수다. 우리 헌법에 명시한 ‘4·19정신을 계승한다’면서 4·19 당시를 살지 않았던 국민들은 언론조차 외면하는 잊혀져 가는 4·19민주이념을 어디서 배울 것인가?

우리 민족은 불의에 항거하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갑오농민전쟁에서 그리고 일제에 항거한 3·1운동과 제주민중항쟁, 광주민중항쟁 그리고 촛불혁명은 세계사에서 찬연히 빛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역사다. 그 증거로 지난 2017년 박 전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에 참가한 대한민국 시민에게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선정하는 ‘2017 인권상’을 수상하지 않았는가? 4·19혁명이 없었다면 어떻게 1,700만 시민들이 만든 촛불정부가 탄생할 수 있었겠는가?

4·19 혁명(四一九革命)은 1960년 4월 19일 대한민국에서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에 반발해 학생들이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며 시작된 혁명이다. 이승만을 비롯한 자유당정권은 장기집권을 위해 사사오입 개헌, 공무원을 통한 선거 운동, 완장선거, 3인조, 5인조 투표, 가짜 투표용지, 투표함 바꿔치기, 경찰에 의한 독찰, 정치깡패동원, 야당참관인 투표장 추방… 등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보다 못한 마산의 학생들이 3·15부정선거는 무효라며 시위에 나섰다가 마산상고 입학생이었던 김주열학생의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어부의 거물에 걸려 올라오자 보다 못한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한다. 시위 과정에서 경찰이 시위학생을 향해 발포하는 등 희생자가 생기게 되었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이승만정권 하야를 외치며 저항한 3·15의거가 전국적으로 번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4월 26일 이승만이 하와이로 야반도주하게 된다. 4·19혁명은 이렇게 이승만정권을 무너뜨리고 제2공화국이 출범하게 된다. 3·15와 4·19과정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희생된 민주열사 224명(부상자 172명)은 지금도 4·19묘역에 잠들어 있다.

암기하고 기억하는 역사는 의미가 없다. 부끄러운 역사는 반면교사로, 자랑스러운 역사는 다시 살려 내 후손들이 긍지와 자부심으로 체화해야 한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우리는 친일세력, 친 독재세력, 친 유신세력, 군사정권에 은혜를 입은 세력들이 기득권자가 되어 민중을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해 왔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친일세력의 후예, 독재자의 후예, 유신과 살인정권의 주역이 나라의 어른으로 존경받고 군림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선생님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갑오농민전쟁, 31혁명, 4·19혁명, 광주항쟁과 촛불혁명을 잊고서야 어떻게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잊혀져 가는 4,19 혁명을 생각하며 여기 신동엽님의 ‘껍데기는 가라’ 시한 수를 올린다.

껍데기는 가라. /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 껍데기는 가라. // 그리하여, 다시 / 껍데기는 가라. /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 아사달 아사녀가 /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 맞절할지니 // 껍데기는 가라. /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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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해결, '신의 한 수'는 여기에 있다

[정욱식 칼럼] '종전 선언' 보다 '기본 평화협정'을
2018.04.20 00:53:24
 

 

 

 

"핵물질 신고에서는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 합니다. 왜? 미국하고 우리하고는 교전 상황에 있기 때문에 적대 상황에 있는 미국에다가 무기 상황을 신고하는 것이 어디 있갔는가. 우리 안 한다. 이렇게 합의했습니다"

2007년 10월 3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에 배석한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이 한 말이다. 북한은 또한 2008년에 한미일이 시료 채취 및 불시사찰 등 강력한 검증을 요구하자, "서로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교전 상태"에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검증은 최종단계에서나 논의할 사안"이라고 반발했다.

그리고 6자는 이 두 가지, 즉 초기 핵 신고 대상에서 핵무기는 제외하고 시료 채취와 불시사찰 등 강도 높은 검증 방안은 다음 단계에서 논의키로 합의했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잔존 네오콘과 이명박 정부가 끝까지 강도 높은 검증을 요구하면서 6자회담은 결렬되고 말았었다. 

이들 사례는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핵 폐기의 첫 관문은 핵 신고다. 그런데 오늘날 15~60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초기 핵 신고 대상에서 핵무기는 제외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또한 북한이 시료 채취와 불시사찰 등 강력한 검증은 "최종 단계"에서나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어떻게 될까?  

아울러 자체적으로 건설한 실험용 경수로와 우라늄 농축 시설은 폐기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목표로 제시한 미국과 상당한 갈등이 벌어질 것이다. 

기본 평화협정이 '신의 한 수'인 이유 

필자는 최근 보고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위한 새로운 접근: 고르디우스의 매듭 끊기와 풀기'에서 이들 문제를 포함해 협상의 난제들을 분석하고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창의적이고도 유력한 해법, 즉 '신의 한 수'는 종전 선언보다는 한반도 기본(혹은 잠정) 평화협정 체결에 있다고 주장했다. (☞ 보고서 전문 보기)

그렇다면 왜 기본 평화협정 체결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을 것은 끊고 풀 것은 풀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일까? 우선 평화협정은 북핵의 토양이 되어왔던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북핵의 뿌리를 캐낼 수 있는 평화체제로 가는 중대한 전환점에 해당된다. 그래서 평화협정 체결은 고르디우스의 매듭 가운데 65년 묵은 매듭을 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평화협정 체결은 핵 신고에서부터 검증에 이르기까지 고르디우스 매듭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들"을 사전에 풀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북한의 이른바 '살라미 전술'의 명분은 "교전 상태"에 있다. 그런데 평화협정의 첫머리에는 종전에 담기게 된다. 즉, 구실을 제거함으로써 비핵화에 상당한 속도를 낼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속한 평화협정 체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협상 개시부터 체결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2단계 평화협정, 즉 '기본 협정+부속합의서(추가의정서)'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식, 상호 주권 존중 및 불가침과 안전보장, 북미관계 정상화 추진 등 원칙적이고 조속히 합의할 수 있는 항목들로 '기본 협정'을 체결하고, 북방한계선(NLL), 유엔사와 주한미군, 군축 문제, 평화체제 관리 기구 구성과 운영과 같은 까다롭고 세부적인 내용은 추후 '부속 합의서'에 담는 방식을 취하는 방안을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반도 기본 평화협정 체결은 연내에도 충분히 가능하다. 심지어 남북미중 정상이 정전협정 65주년이 되는 올해 7월 27일경에 판문점에 모여 협정 체결식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치적인 의지만 뒷받침된다면 말이다. 

가장 강력한 비핵화 조치들 

한반도 기본 평화협정 체결 및 대북 제재의 실질적인 해제에 대한 북한의 '동시 행동'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요구할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 및 핵물질 폐기 시한과 방식에 동의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를 위한 획기적이고도 가시적인 조치로 '높은 수준의 핵 동결'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핵무기 관련 시설의 일시 폐쇄 및 불능화를 넘어 완전한 폐기를 달성함으로써 북한이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셋째는 북한이 '과도기적 지위(transitional status)'로 NPT에 복귀하는 것이다. 여기서 과도기적 지위란 핵 폐기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이를 명확히 공약하고 NPT에 복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NPT 역사상 이 조약에서 탈퇴해 핵무기를 만든 유일한 국가라는 점에서 북한의 복귀는 핵 비확산 체제 강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북핵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도 일괄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이러한 결단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상응 조치도 가장 확실해야 한다. 한반도 기본 평화협정 체결과 실질적인 대북 제재 해제를 동시적인 상응 조치로 제시해야 한다는 권고는 이에 따른 것이다. 

북핵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북핵'만'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마침 김정은 위원장의 입에선 '비핵화'라는 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선 '종전'이라는 말이, 또한 "성공을 위해선 뭐든지 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 만나게 된다.

두 지도자 사이의 인간적 관계 및 핵심 의제들 간의 화학작용이 어떻게 일어날 것이냐에 따라 한반도와 세계의 운명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모쪼록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협정을 틀어쥐고 운명적 순간에 역사적인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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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뚝심과 희생·연대가 삼성 ‘백기’ 들게 했다

등록 :2018-04-20 05:02수정 :2018-04-20 08:46

 

삼성 무노조 80년 깨뜨린 주역들
나두식 삼성전자 서비스 지회장
43살때 노동 3권 눈떠 금기 도전
무노조 삼성 무너뜨린 주역으로

고 염호석 양산분회장은
회유·협박 맞서다 세상 떠
굳건한 ‘연대’ 손길도 버팀목
조돈문 교수 교육·연구로 뒷받침
조현주 변호사 노조원 소송 지원
이남신 소장 시민사회 연대 끌어
‘삼성의 통 큰 결단.’

 

삼성전자서비스가 최근 사내 하청노동자 8천명을 직접고용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포기’ 선언 등이 나오자, 일부 언론은 삼성의 변화를 높이 평가했다. 그런 삼성 못지않게 주목받아 마땅한 이들이 있다. ‘무노조 경영 80년’이라는 삼성의 안과 밖에서 끊임없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켜내려 했던 노동자와 활동가들이다.

 

먼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나두식 지회장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그를 ‘무노조 삼성을 무너뜨린 주역’이라고 불렀다. “삼성이라는 자본이 무서운 건 탄압만 하는 것이 아니라 회유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이다. 그걸 이겨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 지회장은)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싸우면서 새로운 투쟁 모델을 만들었다.”

 

왼쪽부터 조현주 변호사, 조돈문 교수, 이남신 소장, 나두식 지회장, 염호석 전 분회장
왼쪽부터 조현주 변호사, 조돈문 교수, 이남신 소장, 나두식 지회장, 염호석 전 분회장
나 지회장이 ‘노동조합’을 알게 된 건 2012년이다. 삼성전자서비스 사내 네트워크를 이끌던 그는 그해 우연히 민주노총 ‘노동자 권리찾기 수첩’을 보게 됐다. “내 나이 마흔세살에 ‘노동3권’을 처음 배웠다. 머리가 띵했다. 왜 아무도 나한테 그걸 알려주지 않았을까?” 나 지회장은 그때 처음 삼성에서는 금기로 통했던 노동조합 설립을 꿈꿨다.

 

그는 자신이 속한 사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노동조합 조직을 시작했다. 매일 가방에 ‘노동자 권리찾기 수첩’을 200권씩 넣고 다녔다. “그동안 몰랐는데 내 권리를 알고 나니 이렇게는 도저히 못살겠다고, 같이 해보자고 설득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센터마다 수첩을 들고 찾아가면 100% 가입, 완전 접수였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2013년 7월14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출범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출범한 뒤 삼성 쪽에서는 센터 위장폐업, 일감 차별배분 등의 방법으로 지회를 와해하려 애썼다. 2014년 5월 ‘지회의 승리를 기원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염호석 전 양산분회장도 ‘노조 탄압’을 온몸으로 겪은 인물이다. 염 전 분회장과 가까이 지냈던 양산분회 대의원 염태원(42)씨는 “회사에서 사소한 걸로 조합원들 트집을 잡고 표적 감사해서 징계하고… 탄압이 심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수리기사는 물론) 내근직·상담직 동료와도 친하게 지내던 호석이가 분회장을 맡으니 그를 믿고 조합에 가입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염 전 분회장의 ‘주검 탈취’ 사건은 지회 출범에 하나의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염 전 분회장 사망 이튿날부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서울 서초구 삼성 본관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41일째 되던 6월28일, 협력업체들을 상대로 단체협약을 얻어냈다. 염 전 분회장의 죽음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조합원 1천여명이 일군 성과였다. 이후 회사 쪽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일었지만, 협약에는 염 전 분회장의 사망과 관련한 유감과 재발방지 노력 등을 사쪽이 발표한다는 것과 폐업한 센터 소속 조합원에 대한 고용승계 약속 등이 담겼다.

 

삼성 바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지지하며 삼성의 변화를 촉구해온 많은 이들의 ‘연대’도 무시할 수 없다. 20여년간 삼성 문제를 연구해온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삼성의 노조 탄압 방법을 지적한 책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2008)를 내는 등 삼성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워왔다.

 

조 교수는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삼성 노동자를 직접 만나 상담과 교육을 하기도 했다. 그는 매번 ‘이번에는 성공할 것 같다’며 기대를 품지만 대부분 “잔인한 삼성의 탄압” 앞에 실패했다. 기대와 실망이 반복됐다. 심지어 그는 삼성 노동자 여럿이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찾아왔다가 그 가운데 밀고자가 생겨 무산되는 일도 겪었다. 조 교수는 “이제 삼성에서 노동조합 한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비밀을 지켜주려고 꼭 일대일로만 만난다”고 말한다.

 

지회를 법률적으로 지원한 조현주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당시 금속노조 소속)도 있다. 조 변호사는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 1334명이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낸 근로자성 확인소송을 맡았다. 지난해 1월 1심 패소 판결을 받은 뒤, 그는 기자회견에서 “싸움을 멈추지 않는 자가, 계속 문제제기를 하는 자가 승리한다”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번 삼성전자서비스 노사 합의를 “일부 승리”라고 평한 그는 또다시 앞으로의 싸움을 강조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눈감았던 검찰과 고용부에 대한 의혹도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시민단체의 연대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벌인 여러번의 투쟁에 언제나 많은 시민단체과 진보정당이 함께했다. 농성하는 조합원을 위해 식사를 마련하거나 거리 음악공연 등 문화행사와 시위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연대체를 조직하는 데 앞장섰던 이는 이남신 소장이다. 이 소장은 “간접고용, 서비스직, 전국에 퍼진 사업장 등 노동조합 투쟁을 하기에 불리한 여건만 고루 갖춘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시민사회의 폭넓은 연대와 지지는 가장 중요한 힘이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이 중심이 되어 꾸려진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고용 근절 및 근로기준법 준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는 민변 노동위원회, 참여연대,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등 10여개 단체가 모였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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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재벌 갑질 사건들, 재판 결과는?

사례로 본 재벌 갑질... 법으로 단죄할 수 있을까?

18.04.20 10:34l최종 업데이트 18.04.20 10:37l

 

귀국해 고개숙인 조현민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15일 새벽 베트남 다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KE464편을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고개 숙이고 있다.
▲ 귀국해 고개숙인 조현민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15일 새벽 베트남 다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KE464편을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고개 숙이고 있다.
ⓒ MBC 화면 캡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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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세례 사건으로 재벌총수 일가의 '갑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조 전무는 지난 3월 광고 관련 회의 도중 광고대행사 팀장에게 고성을 지르고 물컵을 던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 전무와 관련된 제보가 잇따르면서 급기야 수사기관이 나서게 됐다. 도덕적 비난을 넘어 형사사건으로 비화될 전망이다.

어디 이번뿐일까. 알려진 것만 언급하더라도 재벌총수 일가의 '권력형 추태'는 한두 번이 아니다.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뒤 맷값을 던져주는가 하면, 아들이 당한 수모를 갚기 위해 조폭을 동원하여 쇠파이프를 휘두르기도 했다. 기내 땅콩서비스 방식이 매뉴얼과 다르다며 비행기를 돌려세우는 항공사 임원도 있었고,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사용하거나 끼어들기를 허용한다며 욕설과 폭언을 일삼는 사장도 있었다. 술자리에서 종업원을 때리거나 업무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변호사에게 막말과 폭력을 일삼는 재벌 3세도 있었다.

 

재벌의 갑질은 법으로 단죄할 수 있을까. 즉답 대신 최근 발생한 재벌 갑질 사건의 재판 결과를 살펴보는 편이 낫겠다.   

[사건 ①] 야구방망이 맷값 폭행 사건
 

 '야구방망이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최철원 전 M&M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야구방망이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최철원 전 M&M 대표가 지난 2010년 12월 2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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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방망이 1대에 맷값 1백만 원씩, 총 2천만 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2009년 '야구방망이 맷값 폭행' 사건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최철원(당시 M&M 대표)씨는 회사 인수합병과정에서 계약을 해지 당한 화물노동자 A씨가 고용승계와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자 그를 불렀다. 최씨는 직원들을 도열시킨 채 2천만 원을 주는 대가로 A씨를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리는 등 무차별 폭행을 하였다. A씨가 고통을 호소하며 용서를 빌기까지 하였으나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군대 '빳다' 정도로 생각하고 훈육" 황당 주장 

A씨의 폭로로 뒤늦게 알려진 이 사건으로 최씨는 법정에 섰다. 그는 '군대의 '빳다' 정도로 생각하고 훈육한 것'이라며 황당한 주장을 폈다. 하지만 1심 서울중앙지법은 "피해자가 나이가 11살이나 많고 피고인으로부터 훈육을 받을 지위에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적절하지 아니하다"면서 이 사건을 "우월적인 지위와 다수인을 내세운 사적보복"으로 규정, 갑질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1심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집단 흉기 등 폭행)을 적용,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최씨의 다른 폭행사건이 더해져서 나온 재판결과였다.

최씨의 수감생활은 길지 않았다. 두 달 뒤 항소심은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면서 깊이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쨌거나 이 판결은 "세상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것도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우쳐 준 사건이었다.

[사건 ②] 김승연 회장, 아들 보복 폭행 사건
 

 보복폭행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2007년 8월 14일 법원으로부터 병치료를 위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뒤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앰뷸런스에서 내린 뒤 주변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로 이동하고 있다.
▲  보복폭행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2007년 8월 14일 법원으로부터 병치료를 위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뒤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앰뷸런스에서 내린 뒤 주변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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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직접 쇠파이프를 들었다가 콩밥을 먹은 적이 있다. 그는 2007년 자신의 차남 김동원씨가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종업원들에게 폭행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노한 김 회장은 즉시 경호원과 조폭들을 대동하고서 보복에 나선다.

그는 한밤중, 폭행에 관여한 사람들을 청계산으로 불러 쇠파이프로 직접 응징하기까지 했다. 당한 아들에게 복수할 기회도 제공했다. 재벌 아들을 몰라보고 주먹을 휘둘렀다가 호되게 당한 피해자들은 무려 9명.  

1심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 법원은 "사회적 지위와 재력 및 회사조직을 사적 보복에 악용한 범죄로서 사인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1심 "사적 보복에 지위 악용" 실형... 항소심 "부정" 들어 석방 

하지만 김 회장에겐 항소심이 있었다. 피해자가 9명이나 되는데도 항소심은 '중상을 입은 사람이 없고 모두가 합의한 점'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폭력전과가 없고 반성한 점도 높이 샀다. 법원은 "재벌그룹의 회장인 피고에게 요구되는 준법정신 등을 함께 고려하여 보면 그에 상응한 형사처벌이 이루어져야 하는 범죄행위임이 분명하다"면서도 "아버지로서의 부정이 앞선 나머지 사리분별력을 잃고 범행에 이르게 되었"다고 석방한다. 

이 사건은 재벌의 갑질로 분류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재벌 회장 정도의 스케일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사건임은 틀림없다. 경찰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폭력범'을 응징한 재벌 회장, 감탄사만 나온다. 보통사람들은 자식이 맞으면 달래거나, 고작해야 형사고소나 민사소송으로 국가의 힘을 빌릴 뿐인데.

[사건 ③]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땅콩 리턴' 조현아, 피의자 신분 검찰 출석 일명 '땅콩리턴' 논란을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도착, 취재진이 준비한 포토라인으로 걸어오고 있다.
이날 조 전 부사장은 "승무원 폭행과 회항 지시한 사실이 있나"는 기자들의 질문에 "죄송합니다"라고 답한 뒤 조사실로 향했다.
▲ '땅콩 리턴' 조현아, 피의자 신분 검찰 출석 일명 '땅콩리턴' 논란을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지난 2014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도착, 취재진이 준비한 포토라인으로 걸어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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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뉴욕발 한국행 대한항공 여객기가 활주로로 진입하다가 갑자기 되돌아왔다. 고장이 발견되었던 걸까. 기상악화 탓? 그것도 아니면 테러범 때문? 전부 아니었다. 고작 '땅콩' 서비스 때문이었다.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이 비행기에는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인 조현아씨가 타고 있었다. 1등석에 탑승한 조씨는 견과류를 제공하는 방식을 문제 삼고 객실서비스 매뉴얼을 준수했는지를 추궁하다가 사무장과 승무원에게 욕설, 폭언 등을 행사하고 무릎을 꿇게 했다. 그걸로도 분이 풀리지 않자 급기야 활주로에 진입한 항공기를 되돌아가도록 지시한 뒤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했다.

항공기 운항 책임자 기장도, 기내 안전 책임자 사무장도, 항공 관련 법령과 규정도 회사 '오너'의 한마디를 이길 수 없었다. 1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은 이 사건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했다.

"돈과 지위로 인간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인간의 자존감을 무릎 꿇린 사건이다. 한 사람을 위하여 조직이 한 사람을 희생시키려 한 사건이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심이 있었다면, 직원을 노예쯤으로만 여기지 않았다면, 감정을 조절할 수 있었다면, 승객을 비롯한 타인에 대한 공공의식만 있었다면,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이다." 

서울서부지법은 항보안법위반, 강요, 업무방해 등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돈과 지위로 인간의 존엄을 무릎 꿇린 사건"

하지만 2심인 서울고법은 조금 다르게 보았다. 항공기 항로 변경으로 인한 항공보안법위반의 점은 무죄로 판단했다. 법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해보면 계류장(항공로 진입 첫단계 지역)내의 회항은 항로 변경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재판부는 조씨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형량이 깎였는데 근거는 이렇다.

 "이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과거의 일상, 사랑하는 가족들과 격리된 채 5개월 가까운 기간 구금되어 생활하는 동안 피고인 자신의 행위가 왜 범죄로 평가되는지, 그 범죄로 피해자들이 얼마나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었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는데 전원합의체도 격론 끝에 다수 의견으로 2017년 12월 상고기각으로 2심과 결론을 같이했다.  

[사건④] 수행기사에 갑질 폭행 사건들  
 

이해욱 대림 부회장 "상처받은 분들께 머리숙여 사죄"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운전기사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폭언을 퍼부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물의를 빚은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사과했다. 

이 부회장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수송동 대림산업 본사에서 열린 정기 제69기 정기 주주총회에 들러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이 모든 결과는 저의 불찰"이라고 말했다. 2016.3.25 

이 부회장이 주총장으로 들어가는 모습. 2016.3.25
▲  운전기사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폭언을 퍼부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물의를 빚은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사과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3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수송동 대림산업 본사에서 열린 정기 제69기 정기 주주총회에 들러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이 모든 결과는 저의 불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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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미러를 접고 운전. 차량이 끼어들지 못하게 앞 차량과 간격 최소화. 물이 가득 담긴 컵에서 단 한 방울도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출발과 정지.

카 레이서의 자격요건이 아니다.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대표이사)의 수행기사가 되려면 이 정도 운전능력은 필수다. 그는 이 같은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운전기사에게 수시로 폭언, 욕설, 폭행하였다.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고 운전기사 중 1명이 노동청에 진정을 내면서 알려지게 됐다.  

그 후에도 이씨는 "기업에 쫙 뿌려가지고 이 사람들 조심해. 명단 쫙 뿌린다면 된단 말이야"라는 말로 운전기사를 협박하여 노동청 진술 번복을 요구했다.

검찰은 이씨를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했으나 법원이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그런데도 재판 결과는 벌금형(1천5백만 원). 평소 다른 운전기사들에게 이 같은 행위를 강요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재판까지 간 피해자는 1명뿐이었다.

운전기사 갑질 논란으로 전과자가 된 이는 또 있었다. 정일선 현대 BNG스틸 사장. 그는 2014년 10월 수행기사에게 골프바지에 허리띠를 매어두라고 지시했으나 허리띠를 찾지 못한다는 이유로 파우치(화장품 가방)로 머리를 내리친 혐의로 약식기소되었다. 서류재판이라 법정에 서지는 않았는데 벌금 3백만 원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정씨는 운전기사들에게 주당 최대 80시간 이상 근무, 과도한 매뉴얼 강요 등의 피해를 주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실제로 재판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 밖의 사건, 그리고 조현민 물벼락 사건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삼남인 김동선씨도 술에 얽힌 사건으로 몇 차례 도마 위에 올랐다. 김씨는 2017년 1월 술집 종업원에게 욕설, 폭언하면서 영업을 방해하고 출동한 경찰 순찰차를 파손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실형선고는 피했다.

그런데 그는 집행유예 기간인 작년 9월에도 변호사 모임 술자리에서 변호사들에게 막말과 폭행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사건은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물벼락 세례 사건이 발생했다. 드러난 사실관계만 보면 그동안 발생한 사건보다 무겁다고 보기 어렵다. 경찰이 압수수색 등을 했다는 보도가 있지만 기소될 수 있을지, 기소된다 하더라도 중형이 선고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예를 들어 이 사건에 반의사불벌죄인 단순폭행죄를 적용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기소조차 할 수 없다). 수사기관의 태도와 의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재벌 갑질 사건 재판 결과 재벌 갑질 사건 재판 결과
▲  재벌 갑질 사건 재판 결과
ⓒ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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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으로 갑질 단죄 어려운 까닭 

법원의 재판으로 재벌의 갑질을 단죄하기는 쉽지 않다. 일단 법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좁고, 실제 사건까지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재판은 기소된 사실만 갖고 판단하게 되는 한계가 있다. 대개 빙산의 일각만 드러나고, 그것만 처벌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또한, 갑질 중 형법상 범죄가 되지 않는 행위가 더 많다. 이를테면 명백한 폭행과 추행, 강요와 같은 범죄가 아닌 일상의 부당한 지시, 인격모독, 정신적 피해 등은 입증하기도 어렵고 처벌은 더더욱 쉽지 않다. 사법절차가 진행되더라도 피해자는 생계와 인사상 불이익 등을 감수해야 하는데 법은 의외로 무기력하다. 기소되지 않은 불법과 드러나지 않는 갑질은 단죄할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갑질이 단죄되기 어려운 이유는 더 있다. 재벌의 갑질에 법원이 상당히 관대한 편이기 때문이다.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벌금형이 선고되거나,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되더라도 2심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풀어주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 법원이 가진 자의 편이라는 오해를 사기 딱 좋다. 배려가 필요한 사람은 갑질 재벌이 아니라 피해자들이다. 법원이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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