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아산 부역혐의 학살사건’
일제 폐탄광서 쏟아진 비녀·구슬…
발굴 유해 대다수가 여성·어린이
아산·천안 곳곳에 ‘보복살해’ 흔적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 월남민] <아버지의 이메일> 홍재희 감독이 말하는 '아버지의 전쟁'
| 1950년 6월 25일. 식민지시대가 끝난 지 5년도 안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한국전쟁' 혹은 '6.25전쟁'은 이후 한국사회의 모든 구조를 주조했다. 그 전쟁이 발발한 지 무려 70년이 흘렀다. <오마이뉴스>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전쟁의 또다른 상흔인 화교부대병 2세와 소년병, 월남민 2세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편집자말] |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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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남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 | |
| ⓒ 이희훈 | |
아버지는 '북조선을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친할아버지가 남쪽에 내려갔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차별에 시달렸다. 당시 북한에서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을 모아 자아비판을 시켰다. 친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남한에 있던 아버지는 모든 비판의 대상이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향해 '남조선의 첩자'라며 손가락질해댔다. 아버지에게 북조선은 희망이 없는 곳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에게 '꼭 데리러 오겠다'라고 약속했다. 지킬 수 없을 약속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했다. 열네 살의 아버지는 세 번의 시도 끝에 38선을 넘어 남한 땅을 밟았다. 황해도 황주에서 해주, 개성을 거쳐 문산에 도착한 것이다.
1948년, 드디어 기회의 땅, 희망의 땅, 배움의 땅에 다다른 아버지는 친할아버지가 있는 인천으로 향했다. 섣부른 꿈이었을까? 2년 뒤,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아버지는 "지긋지긋한 인민군을 2년 만에 또 만나게 되니 억장이 무너졌다"라고 했다.
홍재희 감독은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이메일>(2014년)을 통해 이러한 아버지의 삶을 담담히 쫓았다. 한때 아버지가 죽기를 바랐던 딸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1년 동안 보낸 43통의 이메일을 하나하나 되새겼다. 1934년 황해도 황주군 출생의 홍성섭. 아버지의 삶에는 한국전쟁과 베트남 파견 노동자, 중동건설 노동자로 지낸 시대가 아프게 새겨져 있었다.
해외이민을 꿈꾸다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이 보관 중인 아버지의 과거 사진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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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남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이 보관 중인 아버지의 과거 사진들. | |
| ⓒ 이희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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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재희 감독 아버지 홍재희 감독 아버지인 홍성섭씨가 베트남에서 일하던 시절. 아버지는 베트남에서 크레인 기술자로 일했다. | |
| ⓒ 홍재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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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재희 감독의 아버지 홍성섭씨가 사우디에서 일했던 시절. 홍 감독의 아버지는 중동건설 노동자로 일했다. 아버지는 늘 이민을 꿈꿨지만, 갈 수 없었다. | |
| ⓒ 홍재희 | |
"아버지가 6.25나 베트남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6.25로 황폐화된 땅에서 모든 걸 잃고, 베트남전쟁에서 크레인 기술자로 베트남에 살았죠. 전쟁을 피해갔다고 할 수 없는 삶이죠." 전쟁의 상흔은 참전용사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홍 감독과 언니·동생을 꿇어 앉히고 바짓가랑이를 올려 상처를 보였다. 아버지는 "총탄을 맞고도 끝끝내 38선을 넘어 내가 여기까지 왔다"라면서 훈장처럼 상처를 내보이며 일장연설을 했다. 홍 감독의 눈에는 38선을 넘으며 꿨던 꿈을 이루지 못한 자의 울부짖음으로 들렸다.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이 아버지의 과거 사진을 들고 있다. "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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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남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이 아버지의 과거 사진을 들고 있다. | |
| ⓒ 이희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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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재희 감독 가족사진 홍재희 감독 가족사진. 아버지의 품에 안겨있는 딸이 홍 감독. | |
| ⓒ 홍재희 | |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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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남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 | |
| ⓒ 이희훈 | |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이 보관 중인 아버지의 과거 사진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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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남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이 보관 중인 아버지의 과거 사진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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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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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PD 머리채 잡고, 취재진에 벽돌 던져...경찰 수사 착수
SBS에 따르면 SBS <모닝와이드> 팀은 지난 23일 밤 대북 전단 기습 살포 경위와 향후 계획 등을 묻기 위해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 집을 찾아갔다. 당시 박상학 대표는 집 앞에서 취재진을 발견한 후 다짜고짜 취재진을 폭행했다.
카메라를 든 취재진에 주먹질을 했다. 주먹을 맞은 한 취재진은 입 밖과 입 속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또한 욕설을 하면서 여성 PD의 머리채를 잡아 당기기도 했다. 벽돌을 취재진에게 던지는 위험천만한 행동까지 나왔다.
SBS는 "폭행당한 취재진은 모두 4명, 한 명은 뇌진탕 증세로 2주 진단을 받았고, 부상이 심한 두 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박 대표의 적나라한 폭행 장면들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혔다.
심지어 박 대표는 폭행을 말리는 경찰관을 향해 소지하고 있던 가스총을 분사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피해자 조사 이후 박 대표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와 경위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송국과 길거리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 지금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기자' 명함 들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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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5 07: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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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15
애국가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지금 우리 애국가에는 두 가지 은폐된 진실과 한 가지 전도된 사실이 있다. 은폐된 진실의 하나는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가 심각한 수준의 친일파이자 친나치 부역자로 그러한 사실을 우리 국민들에게 철저히 숨겨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애국가 곡조가 불가리아 민요를 표절한 것임에도 끝까지 감춰왔다는 것이다. 한 가지 전도된 사실은 애국가 작사자 문제이다. 세간에는 윤치호 작사설이 우세하지만 임진택 씨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애국가 작사자임을 명백히 증명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문화운동가이자 창작판소리 명창인 임진택 씨는 "안익태 애국가는 우리 민족의 수치"이지만 안창호 선생의 애국가 노랫말은 우리 민족의 심금을 울린 위대한 가사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부터 안익태 곡조 대신 '아리랑'에 애국가 가사를 얹어 부르는 '아리랑 애국가' 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아리랑 애국가'로 민족 정기를 되찾고 장기적으로는 국민들의 뜻과 지혜를 모아 한국을 진정으로 대표할 수 있는 애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관련 기사 : "친일파 애국가 대신 '아리랑 애국가' 불러야 할 때")
다음은 연재 순서.(편집자)
1. 두 개의 감춰진 진실과 한 개의 뒤집힌 사실
2. 애국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나?
3. 안익태의 두 얼굴 - 애국가 작곡 : 친일·친나치 행각
4. 하나씩 벗겨진 안익태의 거짓말
5. 안익태 애국가 곡조의 불가리아 민요 표절설
6. 애국가 작사자 논쟁 – 안창호인가 윤치호인가?
7. '애국가 작사자 조사위원회(1955)' 활동의 전말(顚末)
8. 윤치호 '애국가 작사설' 물적(物的)증거에 대한 검토
9. '안창호 애국가 작사설' 전문증거(傳聞證據)에 대한 검토
10. 애국가의 원형 '무궁화노래'의 진실
11. 도산 안창호의 애국창가운동과 애국가
12. 애국가 노랫말에 담긴 뜻 – 애국가 시상(詩想)
13.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애국가, 이제 어찌할 것인가?
14. 애국가 교체와 국가(國歌) 제정에 관한 백가쟁명(百家爭鳴)
제 14편 글에서 나는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정치 성향이 다른 여러 언론과 학자·지식인, 혹은 관제단체에 의해 제기돼온 '애국가 개체(改替)' 또는 '국가(國歌) 제정'에 관한 갖가지 논란의 이면(裏面)에 숨어있는 의도를 추정해 보았다.(☞ 관련 기사 : 애국가 교체와 국가(國歌) 제정에 관한 백가쟁명(百家爭鳴)) 그 결과 애국가 개체(改替) 또는 국가(國歌) 제정 논란은 단순히 문화적·음악적 논쟁이 아니라 거기에는 정치적·이념적 배후(背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현행 애국가 가사에 대한 원색적인 불만 또는 무분별한 비판들은 기본적으로는 110년 전 망국(亡國)의 시대 상황과 광복(光復) 후 신국가(新國家) 건설의 시대 상황, 그리고 21세기 현금(現今)의 복잡다기(複雜多岐)한 시대 상황이 같지 않아 제기된 것이지만, 거기에는 적지 않은 '오해'와 '오류'가 개재(介在)해 있음을 발견하였다. 기실(其實) 그 '오해'는 우리 선대(先代)들의 피어린 투쟁의 고뇌와 체험을 깊이 성찰(省察)하지 못한 안이(安易)함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오류'는 애국가 작사자를 친일 민족반역자 윤치호로 잘못 알고 있는 데서 생겨난 일종의 분개심(憤慨心) 또는 자괴감(自愧感)의 발로(發露)임을 발견하였다.
나는 우리 <애국가> 노랫말(후렴과 본가사 모두)의 작사자가 도산 안창호 선생임을 밝혀낸 동시에 그 노랫말에 담긴 깊은 뜻과 시상(詩想)에 관해서는 이 연재 제 12편에서 상세히 소개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애국가 노랫말에 담긴 뜻 – 애국가 시상(詩想)) 이제 그동안의 애국가 개체(改替)를 둘러싼 여러 논란과 비판들을 충분히 참고하면서 향후 새로운 애국가, 바람직한 애국가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 그 대안을 모색해 보자.
이에 '새로운 애국가! 가사는 살리고 곡조는 바꾸자'고 하는 나의 관점은 초지일관(初志一貫)함을 다시 한번 천명해 둔다.
1. 새 애국가 또는 국가(國歌)의 가사와 곡조에 대한 제언들
그동안 새로운 <애국가>의 노랫말과 곡조의 방향성에 대한 제언들은 끊임없이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있어 왔다. 이를 요약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우리의 전통과 긍지, 향기와 정조를 새로운 이념으로 재인식하고 새로운 각도로 재음미하여 국가 민족의 영원한 번영을 축복하는 가사로, 곡조는 실내악과 행진곡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하며 특히 씩씩하고도 명랑하고 웅건하고도 경쾌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어디서든지 부를 수 있는 노래 – <동아일보>의 애국가 모집 공고(1945년 12월 15일)
● 애조(哀調)를 피하고, 진취적이고 건설적이며, 민족의 유구성(悠久性)이 있는 웅장한 리듬일 것 – <중앙신문> 애국가 가사 현상모집 공고(1946년 1월 17일)
● 보우(保佑)니 공활(空豁)이니 하는 어려운 가사가 아닌 쉬운 가사 – 아동문학가 윤석중
● 부르면 기뻐지는 희망찬 가사와 곡 – 서양화가 김환기, 소설가 최정희
● 진취적이고 장엄하며 활기에 넘친 가사 – <경향신문> 설문조사에 대한 시민 응답(1964년 2월 11일)
● 헌법 제1장 1조의 '민주공화국', 제2조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제5조의 '자유 평등 창의'가 가사에 포함되도록 하자 - 음악평론가 박용구
● 백두산의 웅장한 정기를 타고, 삼면 바다의 대양을 내다보고서 멀리 나아가려는 기상과 동방의 새문명의 창조자로서의 이상(理想)을 강조하는 가사 – 한글학자 최현배
●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국가(國歌) - 동양화가 천경자
● 서양식 찬송가가 아닌 한국적인 곡조... 7·5조를 피하자 - 작곡가 나운영
● 서양적인 작곡이 아닌 우리스러운 리듬 박자, 음계, 화성법에 입각한 우리 분위기가 있는 곡조 – 작곡가 박찬석
● 자유·평화·화합·단결·개국 이념 등을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국가(國歌), 겨레의 기백이 담겨 있는 고유의 리듬과 장엄 활기찬 곡조 – 안호상 국가제정추진위원장 명의로 발송한 설문서(1983년 4월)
● 우리의 민족적·역사적 특성을 살려 분단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달성하는 그 환희와 민족적 자부심을 담아야... – 역사학자 강만길(1994년 <역사비평> 여름호 '통일조국의 국가' 설문에 대한 응답)
● 분단억압에 맞선 민중의 의지와 정서가 담겨야...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모두가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어기차게 달구고 을러대는 위대한 비나리 – 통일운동가 백기완(1994년 <역사비평> 여름호 '통일조국의 국가' 설문에 대한 응답)
● 민족 고유의 정서가 담긴 민족음악 어법으로... 모든 국민이 쉽게 부르고, 우리 국민이 더 잘 부를 수 있는 음악어법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완성된' 훌륭한 애국가 – 작곡가 이건용(1994년 <역사비평> 설문에 대한 응답)
● 민족의 기개를 담은 우람하고 유장한 노래, 백두산처럼 하늘로 치솟고 한강물처럼 용틀임으로 굽이쳐 흐르는 그런 가락 – 시인 김준태(1994년 <역사비평> 설문에 대한 응답)
●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 친일·친나치 경력이 드러난 안익태 씨의 곡조를 계속 부를지 여부를 매듭지어야 한다. 자라나는 우리 미래세대가 친일 반애국자인 안익태의 애국가 곡조를 계속 부를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이부영(2019년 8월 8일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 국회 공청회 발제문)
● 현재 애국가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노래로써 위상을 상실했다. 애국가를 부를 때 께름칙하다면 이미 그 생명력을 상실한 노래다. 우리 민족 공동체의 위상과 명예를 가슴 펴고 세워나갈 수 있는 애국가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 광복회 회장 김원웅(2019년 8월 8일 국회 공청회 인사말)
이 많은 제언들을 한꺼번에 다 담아내기란 쉽지 않지만, 요약하자면 새로운 애국가는 '민족의 기개와 민중의 의지를 담아 진취적이고 장엄한 노랫말로 짓되, 민족 고유의 정서가 담긴 음악어법으로, 누구나 다 우러나서 함께 부르며 하나가 될 수 있는 노래'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이 모였다고 본다.
2. '애국가'로서 손색없는 현대의 노래들
그동안 새로운 애국가 또는 국가(國歌)의 제정 방법에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모(公募)에 의한 선정(選定) 방식을 선호하여 왔다.
나는 이 부분이 무척 안이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우선은 공모에 의해 아무리 빼어난 노랫말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작곡과 결합되어 얼마나 완성된 수준에 다다를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 못 하기 때문이다.
공모에 의한 선정과 의뢰의 방식은 말이 쉽지 그 과정에서 생겨날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는 일부터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아쉽게도 모든 국민이 받아들일 수준이 되지 못할 때, 돌이킬 방법이 없다.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모를 통해 애국가 또는 국가를 제정하자는 발상은 사실상 무책임한 발상이다. 심사위원(전형위원)이 누가 될 것인지부터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무엇보다 국민들의 실질적 검증을 받지 않고 당선된 작품이 과연 진정한 호응을 얻어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발언하자면, 막대한 현상금을 걸고 애국가 국민공모를 하게 되면, 응모 규정에 맞춘 상투적인 작품이 도리어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마저 생겨난다. 어쩌면 '나의 조국' 같은 사이비 작품이 당선하게 될지도 모른다. 단언컨대 막대한 현상금을 목표로 그제야 관심을 갖고 응모하는 작사자나 작곡자의 경우 전문성은 있을지 모르나 그들에게서 나라와 겨레, 애국가를 향한 책임감과 진정성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돌아보면 국민 공모 현상모집 이전에 벌써 애국가로서 손색없는 많은 노래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고 불리어 왔다. 그 노래들 중에는 이미 역사의 구비마다 실질적인 '애국가'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온 작품들도 적지 않다.
국민 공모를 굳이 한다면 지금 특정인을 선정하여 새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이미 자발적으로 애국적 의지에 의해 생산되고 보급된 많은 '애국의 노래' 중에서 국민 참여 과정을 통해 애국가 군(群)을 선정하는 것이 차라리 바람직하다.
그 결과는 안익태 애국가의 독점적 구조를 해체함에 있어 대단히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각계각층으로 다양한 애국가의 분포와 활용을 유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그 결과에 바탕하여 압도적인 호응을 얻은 작품이 공식 <애국가> 또는 정식 국가(國歌)의 자리에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도 있다.
이에 내가 생각하는 ''애국가'로서 손색 없는 현대의 노래들'을 추천해보면 다음과 같다.
유튜브 등으로 직접 노래를 들어보면서 노랫말을 찬찬히 음미(吟味)해보면 더 좋은 느낌과 판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70년대 이후 우리 사회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노래이다. 군사독재정권의 억압 속에서 수많은 학생 청년 지식인들이 이 노래를 혼자 또는 여럿이 함께 부르면서 어두운 밤을 이겨냈다. 억눌려 서러운 자신의 시련을 떨쳐내고 떳떳이 나아가고자 하는 자기정화의 조용한 절규(絶叫)로서, 60대 이상 장년(長年)층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는 노래이다.
독재시대에 정작 공식 <애국가>는 국가주의적 획일주의를 동원하는 수단이었음에 '아침이슬'은 강요된 국가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자기갱신의 노래였다. 그러므로 '아침이슬'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식적·관제적 행사에서 강요된 고유명사로서의 '애국가'와는 달리, 애기애타(愛己愛他)의 결단과 연대가 요구되는 각종 모임과 집회에서 자발적으로 불린 보통명사로서의 '애국가'였다.
* 이 노래는 김민기가 대학생일 때 대중음악 평론가 이백천 씨와 정홍택 씨 눈에 띄어 대중가수 송창식씨와 합류한 자리에서 하룻밤 만에 만들어낸 불후의 명작이다.
이 노래의 처음 제목은 '동해의 태양'이었다는데, 나는 국가(國歌) 공모(公募)를 따로 할 필요도 없이 '내 나라 내 겨레'야말로 지금 바로 국가(國歌)로 지정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가사와 곡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지향했던 '바람직한 애국가'가 이미 나와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이 노래에 사무치도록 눈부시게 담겨있는 '통일에의 꿈'은 북녘 사람들이 들어도 거부감이 있을 수 없는 순결과 숭고(崇高)의 경지에 다다라 있다. 통일된 후의 '우리 겨레 애국가'로도 손색이 없는 노래이다.
* '상록수'는 김민기가 젊은 시절 서울 변두리에서 야학 활동을 하던 중 가진 것 없는 야학 학생들을 위해 지은 노래였다. 아마도 심훈의 농촌계몽소설 '상록수'에서 영감(靈感)을 얻었을 터. 그런데 그 해, 1978년 12월 전라도 광주에서 들불야학을 만들어 활동하던 전남대 여학생 박기순이 불의의 사고로 그만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마침 광주 녹두서점에 들렀던 김민기가 이 소식을 듣고 박기순의 영결식에서 처음 직접 부른 노래가 이 '상록수'였다. 그리고 그 자리를 들불야학의 동지이자 선배인 윤상원(1980년 5월 광주항쟁의 마지막 시민군)이 지켜보고 있었다.
'상록수'는 후에 노무현 대통령이 이 노래를 좋아하고 자주 부름으로써 자연스럽게 '국민노래'가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도 영결식에서 양희은이 이 노래를 불러 님을 보내었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서 여주인공 채영신의 죽음을 박동혁이 떠나보냈듯, 박기순의 떠남을 윤상원이 지켜보았고, 노무현의 가심을 '상록수'가 배웅하였다.
'상록수'는 국가 경축일보다는 각급 학교의 공동(共同) 교가(校歌)나 소규모 노동자 집단 또는 사회봉사단체 등의 단체가(團體歌)로 매우 적합한 노래이며, 애국적·헌신적 삶을 산 누군가의 죽음을 떠나보내는 시공간에서도 매우 감동을 주는 노래라 할 수 있다.
* 한돌은 대중가요계에서 혼탁(混濁)에 휩쓸리지 않고 순결한 노래들을 지켜온 선량한 작곡가이자 가수이다. 한돌의 대표작으로는 '터' 외에 '홀로아리랑'이 있는데, 두 노래 다 가사가 건강하고 애국적이다.
'터' 노랫말의 핵심개념을 보면 '산맥' '강물' '오천년' '설악산' '동해바다' '강산' '온누리' 등 국토와 역사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자유' '평화' 등 민주적 가치에 대한 희망이 숨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사한 단어개념들을 동원한 박정희의 '나의 조국'이 관제(官製) 사이비 국가(國歌)라면 한돌의 '터'는 하얀 옷을 입은 백성들의 순수한 나라 사랑 노래이다.
한돌의 경우 곡조에 있어 우리 가락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홀로아리랑'의 경우 우리 민요나 판소리의 기본 가락인 중머리장단에 전개되는 느낌이 확연하거니와, '터'의 경우 우리 풍물굿 농악의 삼채가락이 바탕에 깔려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 노래를 삼채가락으로 해석하여 연주하거나 부르는 것을 듣지 못했다. 비교해서 설명하자면,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때 수많은 청년들이 외쳤던 '대~한민국!'이라는 노랫말이 바로 사물놀이 농악에 맞춘 '삼채가락 응원가'였다.
* 이 노래의 작사자와 작곡자는 부자(父子) 간이다. 1947년에 '우리의 소원'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으로, 원래 가사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고 한다. 해방 후 미·소 점령하에서 독립을 염원하던 노래가, 분단이 고착된 후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 가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애국가'의 기능을 해왔고 사실상 또 하나의 '애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더욱이 북녘 사람들도 이 노래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덜 한 탓에 남북 문화교류 현장에서 함께 부를 수 있는 대표적인 노래로 자리 잡았고 때로는 남북이 함께 국가(國歌)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이 노래는 통일될 때까지 유효한 '애국가'이자 남북공동 국가(國歌)이다.
* 1980년대는 민중예술운동 진영(陣營) 입장에서 보면 '마당극운동' 그리고 '노래운동'의 시대였다. 수많은 민중가요들이 생겨나 민주화의 파도(波濤)가 되고 민중문화운동의 깃발이 되었다. 젊은 날 우리들의 투쟁과 다짐의 뜨거운 심장이었던 수많은 민중가요들, '타는 목마름으로' '광야에서' '그날이 오면' '이 산하에'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벗이여 해방이 온다' '직녀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 등. 이는 1910년 전후 국권강탈에 맞서 싸웠던 이른바 '애국창가운동'의 맥을 잇는, 1980년대 독재폭압의 질곡(桎梏)에 맞서 싸운 처절한 '노래운동'으로서의 '민중가요운동'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날이 오면'은 서정적이면서도 비장한 노랫말에 음악적으로 절제된 완성도(完成度)로 해서 민중가요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대표적인 곡이라 할 수 있는 바, 영화 '1987'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엔딩 뮤직(ending music)이 바로 이 노래!
지금 바로 '애국가'로 채택해도 전혀 손색없는 노래이다.
* '이 산하에'라는 노래는 1980년대 '노래운동'의 선구자였던 문승현이 뜻 맞는 동료들과 합작하여 만든 '산하 시리즈' 세 편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노래의 1절은 동학농민혁명의 통곡을, 2절은 3.1만세운동의 함성을, 3절은 무장독립투쟁의 고난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난 역사 속의 통곡과 함성과 고난이면서 동시에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1980년대의 압제와 암흑과 폭정의 세월을 헤쳐나가는 불굴의 투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 노래는 1940년대에 광복군 한형석이 지은 독립군가의 전통을 이으면서, 해방 직후 김순남이 지은 일련의 애국가요들의 수준을 넘어서는 우리 시대의 빼어난 '독립군가'요, '민주항쟁가'요, '애국찬가'이다.
'이 산하에' 같은 노래가 1945년~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무렵 진즉에 발표되었다면 당시의 '애국가 현상모집'에 당선작으로서 가능성이 높았으리라 생각된다. 지금에 와서는 이 노래가 3.1절이나 광복절에 국민 제창(齊唱)으로 불리기는 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다만 전문합창단에 의해 역동적 예술가곡으로 불린다면 충분히 '애국의 노래'로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이 무참히 진압된 후, 1982년 초 추위가 가시기 전 망월동 묘지에서 항쟁의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산화(散華)한 윤상원과 먼저 세상 떠난 들불야학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이 열렸다. 그리고 얼마 후 작가 황석영의 집에서 광주항쟁의 문화패 동지들이 몰래 모여 윤상원 박기순 두 사람의 영혼 혼례를 소재로 한 '넋풀이'라는 노래굿을 만들어 카세트테이프에 담았는데, 이 노래굿에 담긴 마지막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넋풀이 노래굿'의 전체적인 집필은 작가 황석영의 몫이었는데, 그 중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랫말은 백기완 선생의 미발표 장시(長詩) '묏비나리'에서 따 왔고, 작곡은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종률이 했다. 이 카세트테이프는 그 후 전국으로 은밀히 퍼져나가 수년 후에는 대표적인 운동가요로 자리 잡았고, 민주화 운동권 집회나 시위에서 실질적으로 '애국가'를 대신하는 노래가 되었다.
한때 수구정권 하에서 국가보훈처가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이 노래가 불리는 것을 가로막기도 했으나, 그러한 모멸과 난관을 뚫고 이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우리 시대 민주와 인권을 대변하는 또하나의 애국가로 자리 잡았으며, 나아가 필리핀 홍콩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주화 집회에서도 애창되는 국제적인 '평화와 연대의 노래'로 파급되었다.
*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제목에서부터 백범 김구 선생이 남긴 '나의 소원'이라는 육필 수기(肉筆 手記)에 들어있는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연상시킨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이요, 부강한 나라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고 새로운 문화의 힘이라....." 백범 선생이 남기신 '문화국가'를 향한 염원이다. 임동창의 노랫말이 백범 김구 선생의 어록(語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그 시상(詩想)은 동일하다.
그런데 당대의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인 이 노래가 독특한 점은 그 곡조가 서양의 것이 아닌 우리 가락 우리 선율로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이 노래는 우리 고유의 굿거리장단(중중모리장단)으로 짜여 있으며 성음(聲音)은 판소리 성음을 구사(驅使)하도록 되어있다. 말하자면 그동안 많은 음악전문가들이 바랬던 새로운 애국가의 필요조건, 민족 고유의 정서가 담긴 음악 어법으로 곡을 붙인 최초의 '나라 사랑 노래'가 바로 이 노래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 노래는 일반인들이 따라부르기에는 쉽지 않은 고도의 가창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예술적으로는 훌륭하나 남녀노소 모든 국민이 함께 제창(齊唱)하기에는 좀 부담된다는 것이 문제로 남는다.
이처럼 당장 <애국가>로서 손색없는 현대의 노래들 아홉 편을 추천해 보았다. 여러분들이 한번 직접 노래를 들어보면서 노랫말을 음미해 보시기 바란다.
이 외에도 지금 당장 손색없는 현대의 애국가로서 빠지지 않는 노래가 '아리랑'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리랑'은 나운규가 감독 주연한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을 말한다. 실제로 이 '나운규 아리랑'은 해외 동포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고, 외국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로서 벌써부터 '애국가' 기능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 등 국제 규모 스포츠대회에서 '나운규 아리랑' 곡조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함께 또 하나의 남북공동 국가(國歌)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나운규 아리랑'을 현대의 손색없는 애국가 아홉 편에 포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主) 본가사인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는 노랫말이 '애국가' 가사로서 대단히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다만 남북 공동행사 같은 데서 가사 없이 연주만 하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남북 공동 국가(國歌)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각설하고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노랫말에 있어서나 곡조에 있어서나 앞서 아홉 편의 작품처럼 빼어나고 진정성 있는 작품은 결코 현상금 걸고 공모하는 방식이나 특정인에게 부담 주는(또는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는 나오기 어렵다.
3. 새로운 애국가를 위한 대안(代案)
나는 이 연재를 통해 '안익태 애국가 곡조는 민족의 수치이지만, 안창호 선생의 애국가 노랫말은 우리 민족의 심금을 울린 위대한 가사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일관되게 역설한 바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제 새로운 애국가를 위한 대안을 모색해보자.
1) 애국가에서 반애국자 안익태 곡조는 이제 그만!
① 국가(國家) 공식행사나 지방자치단체 행사 등에서 안익태 곡조의 애국가를 그만 부르도록 해야 한다.
② 미래 세대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더 이상 안익태 곡조의 애국가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
③ 국제 스포츠대회의 개·폐막식과 시상식에서 안익태의 곡조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國歌)로 울려 퍼져서는 안 된다.
2) 안익태 곡조 애국가의 독점적 관행(慣行) 해체(解體)
① '애국가'는 관행으로 진행되어온 대통령 훈령 사항일 뿐 법률상 국가(國歌)가 아니라는 인식을 국민 모두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② '애국가'는 원래 '애국가류'를 통칭하는 보통명사였다. 오늘날 '애국가'도 '고유명사' 아닌 '보통명사'로 생성되고 보급될 수 있어야 한다.
③ 민간단체나 각급 학교에서부터 안익태 애국가 곡조의 독점적 구조가 해체되고 곡조 변경이 허용되어야 한다.
④ '애국가' 가사에 또 다른 노랫말의 추가와 변경이 허용되어야 한다.
⑤ '애국가' 공모와 추천을 통해 '애국가류'의 범주를 넓혀나가야 한다.
3) 애국가 논란을 규명하고 해결해야 할 국회와 정부의 책임
① 국회와 정부는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반민족행위를 규명할 조사위원회를 즉시 구성하고 실행해야 한다.
② 국회와 정부는 안익태 애국가 곡조의 표절 여부를 판정할 심의위원회를 구성·가동해야 한다.
③ 국회와 정부는 소위 윤치호 붓글씨 가사지의 진위(眞僞) 여부를 비롯하여 1955년 애국가 작사자 조사 결과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하고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나는 새로운 '애국가'를 위한 대안으로 일단 현행 애국가 가사를 그대로 하면서 곡조를 대체하는 방안과, 나아가 곡조를 대체하되 민요처럼 새로운 애국가 가사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아리랑 애국가'를 제안하고자 한다.
'아리랑 애국가'로 우선 민족정기를 되찾고, 향후 국민의 뜻과 지혜를 모아 국민 모두가 동의하고 대한민국을 진정으로 대표할 수 있는 국가(國歌)를 새로 제정하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62309412798793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정연주의 한국언론 묵시록 21] 조중동의 쇠락사(3)
▲ 6월 15일자 <조선일보> 보도 ⓒ 조선일보
▲ 6월 15일자 <동아일보> 보도 ⓒ 동아일보
▲ 6월 15일자 <중앙일보> 보도 ⓒ 중앙일보
2002년 4월 29일은 '조중동'이란 단어가 고유명사로 국어사전에 오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 날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까. 29일자 조선 중앙 동아 세 신문은 공교롭게도 각각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 확정을 보도한 머릿기사부터 3꼭지로 구성된 사설까지 동일한 주제와 소재를 거의 비슷한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 22일 밤 경기 파주에서 탈북단체가 보낸 대북전단 살포용 풍선이 23일 오전 10시께 홍천군 서면 마곡리 인근 야산에서 발견됐다. 발견된 대북전단 살포용 풍선은 2∼3m 크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일가의 사진이 부착돼 있다. ⓒ 연합뉴스
지금은 남북관계·남북합의가 말 그대로 완전히 파탄날 수도 있는 비상시국이다.
시간은 길어야 한 두달이다. 그만큼 남북정세는 남북관계가 6.15 이전수준으로 완전히 파탄나는 길로 접어드는가? 아니면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신뢰를 회복하는가? 하는 급경사의 십자로에 들어섰다. 급경사의 십자로에서는 어디로 뛰어야 안전할지를 순식간에 판단해야 한다. 신중하게 장고할 시간이 없다. 매우 신속하고도 구체적인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
왜 그런가?
이미 논란이 되고 있는 삐라살포가 행동단계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단살포가 문제된 것은 문재인 정부가 계속 묵인해 온 데 있으며, 파렴치한 범죄자들이 국회까지 입성하여 그 반북행태가 차후 남북관계를 더욱더 파탄시키는 뇌관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보다 결정적인 것은 그 내용이 최고존엄을 건드리는 저열한 것으로 북 인민들의 분격을 자아내는 것이었다는 점에 있다.
남북관계의 기초이자 출발점은 상호존중과 신뢰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9월 19일 능라도 경기장에서 10여 만의 평양시민들 앞에서 연설한 내용을 놓고 보아도 그렇고, 당시 평양시민들이 보여준 자기 지도자에 대한 태도를 놓고 보아도 그렇고, 북 인민들의 사상감정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북전단살포행위를 안보라인과 경찰이 비호하는 것을 묵인방치 두었다는 것은 심각한 신뢰의 손상이며, 북의 입장에서는 배신감이 들게하는 행위이다.
삐라내용에는 노무현 대통령도 조롱대상으로 들어가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도 당사자일텐데 북이 보면 얼마나 한심해 보였겠는가.
그런데도 대북전단살포행위는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박상학 등은 22일 파주에서 대북전단을 날렸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강원도 홍천에서 발견되었다. 어쨌든 날리긴 날린 것이다. 통일부, 경기도 등이 법적 처벌, 고발 등을 진행하고 있지만, 탈북단체의 대북전단살포행위가 완전히 종식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지금 이 마당에 이자들이 계속 대북전달을 살포하는 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상황 자체가 어이가 없다.
이제 긴박한 남북정세는 전주곡이 끝나고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본막으로 들어서고 있다.
남북연락선 차단,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17일 조선중앙통신은 논평을 통해 “개성공업지구에서 울린 붕괴의 폭음이 북남관계의 총파산을 예고하는 전주곡으로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 점에서 그렇다.
같은 날 "우리는 남조선 당국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차후 처신, 처사 여부에 따라 연속적인 대적행동조치들의 강도와 결행시기를 정할 것"이라고 전하고, 구체적 행동내용을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이에 따라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단에 연대급부대와 화력구분대 배치”, “철수한 비무장지대 초소 재배치”, “서남해상 전투근무체계로 격상과 군사훈련재개”, “전체 전선에서 대남삐라 살포”를 예고하고 실제로 하나둘씩 착수에 들어갔다.
정세는 엄중하다.
이러한 조치들이 하나둘씩 가시화되게 되면 남북관계와 모든 합의가 총파탄 날 수 있는 비상 상황이다.
현 상황은 갑자기 조성된 것이 아니라, 지난 2년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의 총파산의 결과이다. 북은 “북남합의보다 《동맹》이 우선이고 《동맹》의 힘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맹신이 남조선을 지속적인 굴종과 파렴치한 배신의 길로 이끌었다.”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북남관계가 미국의 롱락물로 전락된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의 집요하고 고질적인 친미사대와 굴종주의가 낳은 비극”이라는 것이다.
최근 발간된 존 볼턴의 회고록은 주관이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 중재자, 촉진자론’이 결국 ‘미국의 의향에 따라 처신’한 것으로 되고 말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남북관계의 총파탄은 ‘평화적 분단관리론’의 환상이 철저하게 깨져나가면서 ‘외세추종은 곧 전쟁의 길’이고, ‘민족공조만이 평화의 길’이라는 것을 엄중하게 인식하는 과정으로 될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갑자기 ‘친미자주’에 입각한 ‘선비핵화 후남북관계론’, ‘한미동맹에 근거한 평화유지관리론’, ‘자주국방 안보론에 입각한 남북관계론’이라는 뿌리깊은 정책기조를 뒤바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바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 잊혀지는 대통령’으로 살기는 틀렸다. 조국의 하늘에 핵대결의 먹구름이 가득하고 중미전쟁의 신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용한 퇴임을 준비하는 것은 민족과 촛불민중에 대한 배신으로 될 수 밖에 없다. 이것도 ‘운명’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철학과 경륜, 노무현 대통령의 용기와 돌파력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꾸준하고 완강한 문재인 대통령의 속심을 재구성하면 못할 것도 없으리라 본다. 게다가 촛불민중이 있지 않나.
그러나 당장은 남북관계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초보적인 비상조치부터 시급히 취해야 한다.
지금 때를 놓치면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가장 위험한 남북간 군사대치상황으로 가게될 것이고, 그 이후에는 그 무엇도 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북의 대남공세가 대미공세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이 아닌가 하는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그건 그것이고 남북관계는 남북관계라는 것이 북의 입장이다. 오히려 미국에게 미국과 계산은 따로 할 것이니, 함부로 남북문제, 즉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문재인 정부가 취해야할 긴급조치는 명확하다. 첫째로, 대북전단살포행위를 철저히 중단시키고 해당 탈북자들은 엄단하고 탈북단체들을 해산시키는 것이다. 둘째로 남북관계파탄의 원흉 한미워킹그룹을 해체하는 것이다. 셋째로 외교안보라인을 신속히 교체하고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 넷째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철도도로연결사업 시행을 즉각 천명해야 한다. 철도도로연결사업은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진행할 수 있는 유리한 사업이다. 다섯째로 최근 군사적 갈등양상이 한미연합훈련의 재개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 같은 조치정도를 취하고서 특사를 보내도 보냈어야 했다. 7.4든, 7.27이든 이런 내용이 반영된 대통령 특별선언이 나와야 남북관계의 총파탄을 막을 수 있다.
비상시국에 임하여 국민들도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임진란과 구한말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던 의병들처럼, 방방곡곡에서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한 제2의 독립운동, 촛불의병으로 나서자.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떨처나서는 제2의 독립운동이 타번지는 날로 만들자. 시국선언, 시국서명, 동네촛불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자. 모두다 ‘한미워킹그룹해체’를 외치며 남북관계 총파탄을 막아내고 포스트코로나의 시대를 평화번영통일의 세상으로 이어가자.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www.minplu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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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3 17: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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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2 15: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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