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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내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 세력 주도권 다툼?

청와대 내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 세력 주도권 다툼?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입력 : 2018.07.22 09:51:01 수정 : 2018.07.22 09:54:33

지난 6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소득분배 관련 경제현안 간담회에서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오른쪽)·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6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소득분배 관련 경제현안 간담회에서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오른쪽)·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게까지 말하면 여지가 없어지잖아요? 중대한 위기에 직면한 거죠. 기로에 처해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완전히 포기했다고 하기는 어렵고….” 신중한 답변이다.

7월 18일, 서울 공덕동에서 있었던 ‘촛불혁명의 완수를 기원하는 지식인 일동’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진보경제학계의 거두다. 기자회견 시작 전 <주간경향>은 이 교수에게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기조였던 소득주도 성장론을 포기하는 것으로 보나”라고 물었다. 그에 대해 돌아온 말이다. 10여년 전, 기자는 뉴라이트의 역사수정과 관련한 취재를 하다 이 교수로부터 이런 고언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의 진보는 아직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과 발전에 대한 적절한 성찰이 비어 있다.” 다시 말해 진보적 성장담론이 부재하다는 평가였다.

진보적 성장담론은 그 뒤 나왔다. 바로 소득주도 성장론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식담론으로 채택되어 최근 들어 부쩍 거론되었을 뿐, 연원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보수성향 인사들로부터도 인정받는 부분이다. 김장수 제3정치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이전 정권, 그전 진보정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이나 박근혜와 같은 보수정권들조차도 확고한 이론적 기반에 기초한 경제정책은 없었던 정부라고 보면 된다. 문재인 정부는 확실한 이론적 기반으로 경제정책을 편 최초의 정권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반면, 소위 ‘좌파기득권에 기반한 포퓰리즘 정책’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권 후반기가 되면 기득권에서 배제된 청년층의 광범위한 이반이 발생할 것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진보지식인들, 경제정책 비판 나선 까닭은 
그런데 그 확고한 노선이 흔들리고 있다. 7월 18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32명의 발기인으로부터 시작한 지식인 선언 참가자는 이날까지 232명으로 늘어났다. ‘우려’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인들의 공감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DJ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 정책기획수석을 역임한 경험을 갖고 있는 원로 학자다. 기자회견문 낭독 후 이어지는 질의응답 시간에 그는 “인사는 만사”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과거 박정희·전두환 시절에 정부 지시에 따라 시행만 한 그런 관료들을 장관이나 수석, 정부 고위직에 올려놓으니 한 걸음 나갔다가 다섯 걸음 뒤로 가는 식으로 반개혁적인 정책이 나왔다. 재벌개혁은 오히려 후퇴해 20~30년 전에 비해 재벌의 힘은 더 강해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드는 우려다. 이번 지방선거를 전후해서 경제를 맡거나 새로 부른 분들이 나간 분들에 비해 개혁의지도 없고, 능력도 따라서 없는 사람들이다. 누구보다도 촛불정부를 지지하고 촛불혁명이 완수되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깝다.” 

그가 말하는 ‘나간 사람’은 홍장표 수석이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소득주도 성장론의 대표인사다. 지난 6월 26일 청와대 경제수석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신 정책기획위원회에 만들어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됐다. 

“2011년쯤인가? 연구원이 발주한 보고서를 써서 발표한 것이 기억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임금주도 성장을 소개하며 한국적 상황에 맞게 자영업자를 포함해 소득주도 성장으로 전환할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했다. 처음에는 외로운 주장이었다. 다들 무슨 말인 줄은 알겠는데 그게 될까요? 하고 물음표를 찍는 분위기였다. 2012년과 2013년에 걸쳐 논의과정을 통해 살을 붙이며 동조자들이 한 명씩 늘어났다.” 

박정식 민주연구원 정책네트워크 실장의 회고다. 2012년 대선을 치르기 전에 소득주도 성장론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경제민주주의’에 가려 대선공약으로 정식화되지는 못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소득주도 성장 철회’ 비판 아직 성급하다” 
청와대에서 홍 수석의 자리를 이은 인사는 윤종원 전 OECD 대사다.

“10월 정도 한국 복귀를 예상했는데 시기가 빨라졌다”고 그는 말한다. 그도 예상 못했던 갑작스런 인사다. 행시 27회 출신인 그는 김동연 부총리의 1년 후배다. 둘 다 재무부, 현 기재부 정통관료 출신이다. 

윤 수석의 취임일성(一聲)에는 소득주도 성장 대신 포용성장과 혁신성장이라는 말이 나왔다.

포용성장은 그가 대사로 재적했던 OECD가 지난 2012년부터 꾸준히 밀고 있는 개념이다.

<주간경향>은 여러 경로로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포용성장과 혁신성장이 소득주도 성장을 대체해 나온 개념이 아니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엇비슷했다.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쟁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개념이다. 포용성장도 마찬가지다. 소득주도 성장과 다르지 않은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각각의 개념이 서로가 서로를 전제하는, 말하자면 J노믹스를 이루는 세 바퀴 성장론으로 선순환하는 관계로 보면 된다.”

당의 인식도 비슷하다. 박정식 실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성장과 고용, 복지의 경제 전체 영역에서 사회·경제의 키워드로 수요의 측면에서 소득주도 성장을 말하는 것이라면, 공급의 측면에서는 혁신성장이 필요한 것이고, 이 두 가지가 가능하려면 공정한 룰이 전제돼야 하므로 공정경쟁을 말하는 것이다. 최근 자영업자들이 반발하면서 최저임금 문제가 부각하고, 또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국정과제로 설정해 우선 추진하다보니 마치 그런 정책만이 소득주도 성장을 대표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면이 있지만, 지금까지의 정책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마중물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소득주도 성장론’으로 대표되는 ‘J노믹스’는 테이크오프(take-off) 단계인데, 실패나 철회를 이야기하기에는 성급하다는 인식이다. 

<주간경향>은 대선공약으로 ‘소득주도 성장론’ 정립에 핵심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학계 인사를 만났다. 

“정부 직위를 가진 것도 아니고…”라며 그는 익명을 요청했다. 이 인사의 최근 상황인식은 위의 공식 버전과 엇비슷하면서도 또 달랐다. 

“…인구감소, 저성장 시대에 맞춰 성장에 대한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것이 우리의 논의내용이었다. 중심은 우리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겪게 될 삶이었다. 대기업 중심으로 수출 주도로 경제성장을 하고 그 성과물이 사회에 퍼진다는 낙수효과(트리클 다운)와 다른 경제운영 원리를 전면적으로 도입해보자는 것이었다.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최저임금은 올라가면 남는 시간에 노동자들은 어떤 삶을 보내게 될까, 그런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대기업이 성장을 덜하고 우리가 일을 좀 더 적게 한다고 삶이 불행해지는 것일까. 돈을 조금 적게 번다고 하더라도 행복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최근의 청와대 인사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김동연 부총리가 하겠다는 것은 이런 정책적 전환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다. 혁신성장은 그냥 성장주의를 하자는 것이다. 아니 칼자루까지 쥔 마당에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나. 대통령이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하는데….” 

그는 소위 ‘장하성의 소득주도 성장론 대 김동연 또는 기획재정부의 혁신성장론의 대립’으로 알려진 현재 청와대 내의 구도가 실상과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현재 청와대 내의 혁신성장론을 주도하는 사람은 일자리 수석으로 간 정태호다. 그 콘셉트를 들고 나온 것도 정 수석이고. 그런데 정 수석은 또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밑에서 정책기획비서관을 했던 사람이다. 언론에서는 장하성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니 장 실장이 소득주도 성장을 대표하는 인사이고, 저쪽은 혁신성장으로 인식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으로 안되니 혁신성장으로 밀어붙입시다’라고 당시 정 비서관이 제안을 했고, 장 실장이 물타기한 것이다.” 

18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공유지내 기린캐슬에서 대학 교수들과 시민들이 모여 ‘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사회경제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선언’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 이준헌 기자

18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공유지내 기린캐슬에서 대학 교수들과 시민들이 모여 ‘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사회경제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선언’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 이준헌 기자

소득주도 성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케인스로부터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으로 이야기한다.

케인스는 그의 <일반이론>의 마지막 장인 ‘일반이론이 도출하는 사회철학에 대한 제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적 상황에서 부의 성장은 일반적으로 상정되고 있는 것과 같이 부자의 절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의해 저해될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비용의 역설(paradox of cost)’이다.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급적 임금비용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경제 전체의 임금소득이 부족해져 총수요가 침체돼 결국 기업에도 해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성장은 자본 또는 자본가의 절제가 아니라 소비가 촉진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적 상황으로 들어오면 전 보수정권 때까지 신주단지처럼 모셔지던 ‘낙수효과’ 대신 아래로부터 위로 뿜어지는 소비의 ‘분수효과’가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의문은 거기서 등장한다. 혁신 없는 소비의 증가로 내수회복이나 성장은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앞의 학계 인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른바 국고를 투입해 복지혜택을 준다는 것도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이 제일 낮은 수준이다. 그만큼 투입해 할 수 있는 정부 여력이 크다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정책을 구사하는 의지다. 정책을 집행한 지 1년도 안돼 자꾸 딴죽을 거는 사람들에게 흔들리면 안 되는데….”

정책 전환처럼 보이는 최근의 인사와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 있다.

변양균 전 참여정부 정책실장이다. 이른바 신정아 사건으로 얽힌 후 그가 가진 공식 직함은 없다. 하지만 현재 혁신성장을 주도하는 청와대 내외부 인사들, 구체적으로 기재부 출신 인사들을 묶는 하나의 키워드가 바로 변양균이라는 것이다. 변 실장은 지난 대선 때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라는 인연으로 문 대통령의 인사에 막강한 영향을 끼친다는 후문이 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그는 <경제철학의 전환>이라는 책을 펴냈다. 책이 주장하는 요지는 케인스적 수요에서 슘페터적인 공급정책으로 정책 전환을 설파하고 있다. 우연하게도 현재 이른바 ‘혁신성장’의 포커스가 공급으로 맞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맞아떨어진다. 실제 청와대 주변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기조를 알려면 변 실장의 책을 읽어라”는 조언이 돌고 있다.
 

변양균 전 실장이 거론되는 까닭은 
7월 17일, 국회 의원회관. ‘혁신성장·규제혁신,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라는 제목의 민주당 행사가 제1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추미애 당대표는 “인도 방문길에서 대통령이 강조한 혁신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규제혁신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듣는 자리”라고 말했다. 

같은 시간 제1세미나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정책 및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라는 행사도 열렸다. 이날 본격 가동을 시작한 민주당 원내 민생평화상황실 소득주도성장팀의 행사다. 정치인들이 참여해 인사말을 한 1부 행사를 마치고 본격토론이 진행된 이후 2부 토론행사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민주당 인사는 소득주도성장팀장을 맡은 한정애 의원뿐이었다.

“혁신성장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경제학자라면 성장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혁신을 통해 성장하라는 말은 맞는데, 거기서 나온 정책이라는 것이 별볼 일 없다. 지금 기재부 측도 포용성장을 이야기하면서 소외계층 선별복지를 통해 빈곤선 탈출 정도의 개념으로 쓴다면 결국 소득주도 성장을 덮는 포장지 정도로 사용되는 것이라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한 주상영 건국대 교수가 <주간경향>에 한 말이다. 주 교수는 홍 전 수석과 함께 소득주도 성장론을 실증정립한 대표적 인사다. 18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결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혁신성장을 선택했다는) 논리인데 천박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그건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에 계속 써왔던 프레임이다. ‘당신들은 형평이나 평등을 말하지만 성장에는 젬병 아니냐.’ 경제민주화나 공정경쟁이 성장에 기여하고,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믿지 못했기 때문에 ‘역시 구관이 명관이야’라는 식으로 과거회귀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런 것일까. 경제문제에 봉착한 문재인 정부 2기는 관료들 중심의 오랜 성장주의에 발목 잡힌 것일까. 포용성장이든 혁신성장이든 소득주도 성장은 부드럽게 재포장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진단처럼 “진보의 개혁 조급성·경직성이 문제”(7월 5일 <한겨레> 인터뷰)였던 것일까. 


역사가 판단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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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온 예멘 소녀 살와 “고래를 보고 싶어요”

등록 :2018-07-22 09:31수정 :2018-07-22 11:11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예멘에서 온 난민 살와
예멘에서 공무원으로 살던 자말씨와 부인, 다섯 딸은 내전을 피해 고국을 탈출했다. 그리스와 말레이시아 등을 떠돌다가 지난 5월7일 제주에 왔다. 자말씨의 큰딸 살와가 제주시 한림읍의 바닷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도중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예멘에서 공무원으로 살던 자말씨와 부인, 다섯 딸은 내전을 피해 고국을 탈출했다. 그리스와 말레이시아 등을 떠돌다가 지난 5월7일 제주에 왔다. 자말씨의 큰딸 살와가 제주시 한림읍의 바닷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도중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고래는 어디 있을까? 고대 그리스의 아리온은 키타라(기타의 원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유랑민이었다. 아리온의 노랫소리는 천상의 음성처럼 아름다웠고 영혼을 적시는 그의 연주에 누구든 가던 걸음을 멈추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이름은 널리 퍼졌고 사방에서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초청장을 보내왔다. 아리온이 시칠리아에 가서 연주를 했을 때 시칠리아인들은 보석과 비싼 선물을 주며 그가 시칠리아에 영원히 머물기를 간청했지만 그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를 배웅하는 수백명의 시칠리아인과 헤어져 아리온은 배에 올랐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선원들은 그를 죽여 그가 가진 금은보화를 강탈하려 했다. 아리온은 뱃머리에 올라 살아생전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검은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깊은 바닷속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나타난 돌고래 무리가 물에 빠진 아리온을 등에 태우고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리온을 구해낸 고래들은 엄호하듯 그를 둘러싸고 헤엄쳐 그가 살던 코린트로 데려갔다. 아리온은 이후로도 아름다운 연주를 계속했고 그때마다 돌고래들이 해변을 찾아와 그의 노래를 들었다고 전해진다. 수천년 동안 유럽 화가들의 단골 소재가 되어온 아리온 이야기는 그저 전설일까? 고대 그리스의 은화에도 고래를 탄 아리온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분쟁 피해 2006년 그리스로 이주 
2010년 예멘으로 돌아왔다가
내전 격화돼 다시 난민 처지
중학교 졸업 뒤 3년째 학교 못 가

 

 

살와(19)는 고래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의 삶이 가장 평온하고 행복하던 시절, 그는 바닷가에 살았다. 살와는 바다의 푸른빛을 사랑했고, 바다에서 헤엄치는 고래를 보는 것이 기적 같았다. 고래의 거대한 몸집과 부드러운 유선형의 몸매가 경이로웠다. 지금 그는 제주도에 있지만 아직 고래를 만나지 못했다. 여유롭게 바닷가에 나가보지도 못했다. 살와는 예멘에서 온 난민 소녀다. 지난 12일, 나는 제주도에서 그와 그의 가족을 만났다. 수줍은 미소에 속눈썹이 긴 여성이었다. 나는 그에게 예멘의 복잡한 정치 상황이나 예멘 난민의 처참한 현실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다만 나는 평범한 10대 청소년이 낯선 땅 한국에 와서 어떻게 지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와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오랫동안 바다를 함께 바라보았다. 그날 고래는 보이지 않았다.

 

 

자말씨와 그의 딸 살와가 임시 거처인 제주시 한림읍 한 아파트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자말씨와 그의 딸 살와가 임시 거처인 제주시 한림읍 한 아파트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다섯 자매가 머무는 곳

 

찜통처럼 무더운 날씨였다. 그가 머무는 임시 거처는 제주시 외곽의 해안가 마을이었다. 도착할 때까지 나는 그가 있는 곳의 정확한 주소를 받지 못했다. 마을 입구까지 왔다고 전화를 거니 살와의 아버지가 마중을 나왔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그의 부인과 다섯 자매가 나와서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살와는 다섯 자매의 맏이다. 한국말도 예멘말도 영어도 아닌 무언의 인사였지만 우리 일행을 기다렸다는 듯 팔짝팔짝 뛰는 넷째(11)와 막내(8)의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떠들썩한 환대였다. 아버지 자말(42)이 현관 옆 작은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두어 평 남짓한 작은 방에 이 집의 유일한 에어컨이 있기 때문이다. 일곱 식구가 함께 둘러앉자 방이 꽉 찼다. 방의 한쪽 벽면에는 ‘가갸거겨’가 적힌 한글 공부판과 시간과 요일을 묻고 답하는 한글 문장들이 커다란 전지 위에 적혀 있었다.

 

―한글 공부를 하나 봐요?

 

“한국 친구가 와서 한글 공부를 시켜줘요.”

 

예멘에서 농업국 공무원으로 재직했던 아버지 자말이 영어로 통역을 했다.

 

―다 같이 배우는 거예요? 누가 제일 잘해요?

 

막내가 두리번거리다가 손가락으로 살와를 가리키며 수줍게 배시시 웃었다. 살와와 둘째(17), 셋째(15), 그의 엄마(42)는 머리를 가린 히잡 차림에 긴소매, 긴바지를 입었고, 넷째와 막내는 반소매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히잡은 몇살부터 쓰는 거예요?

 

“14살부터요. 어릴 때는 안 쓰고,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부터 써요.”

 

―이렇게 더운 날 집 안에서도 히잡을 쓰고 있나요?

 

“집 안에 식구들끼리 있을 때는 안 쓰는데, 남자가 오면 써야 해요. 사촌이라 해도 남자가 오면 히잡을 쓰죠.”

 

―저만 왔으면 괜찮은데 이분 때문에 쓴 거군요.(웃음)

 

사진 촬영을 위해 동행한 강재훈 기자를 가리키며 눈을 찡긋하니, 어린 아가씨들이 입을 가리고 웃는다. 작은 벽걸이형 에어컨이 있긴 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시원한 바람은 나오지 않았다. 옆방에서 선풍기를 들고 왔다. 평범한 한국 가정의 살림집이었다. 방 한쪽엔 피아노가 있고 낮은 책꽂이에는 한국 그림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아, 여기 피아노도 있네요. 쳐 봤어요?

 

“아뇨….”

 

셋집을 통째로 빌려준 집주인에게 행여 폐를 끼칠까 살림살이에 최대한 손을 대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 같았다. 제주도에 도착해 두번째 묵는 거처이다. 지난 5월에 제주도에 와서 선량한 주민을 만나 그의 농장에서 한달여를 머물고 다시 그의 지인 소개로 이곳에 한달간 머물도록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벌써 2주가 지났으니 남은 2주 동안 새로운 거처를 찾아야 한다.

 

 

자말씨 숙소에 붙어 있는 한글 공부 자료.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자말씨 숙소에 붙어 있는 한글 공부 자료.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살와’, 근심 없이 행복해지라는 이름

 

―보통 하루 일과가 어떻게 돼요?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하고 청소하고… 오후 2시부터 이민자센터에 가서 공부해요.”

 

제주도 이민자센터에서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4시간씩 진행하는 공부 모임이 있다는 걸 알고 며칠 전 아버지가 등록을 해줬다. 일본과 중국 친구들 넷과 살와네 자매 중 셋이 함께한다. 한국말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간식도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수업시간이 요즘 살와에겐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이민자센터 프로그램은 10대들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넷째와 막내는 그 시간에도 갈 곳이 없다. 그들은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들이 어떤 교재로 어떻게 공부하는지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임시 거처에 사는 일곱 식구
“예멘은 전쟁 끝나면 돌아갈 곳
지난 5월 제주에 도착했을 때
‘이제 안전하겠구나’ 안도”

 

 

―동생들은 종일 뭐 하고 놀죠? 텔레비전은 있어요?

 

“텔레비전 없어요. 와이파이가 됐다가 안 됐다가 하는데, 와이파이가 될 때는 핸드폰으로 유튜브도 보고요….”

 

살와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가느다란 소리로 답했다. 이들에게 핸드폰은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이다. 와이파이가 운 좋게 연결될 때는 동생들이 좋아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게 하거나 예멘 뉴스 방송을 찾아서 본다. 제주도의 예멘 난민 문제가 한국 내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는 것도 살와는 예멘의 뉴스를 통해 알았다. 아이들이 걱정할까 봐 부모님은 그간 자세한 사정을 들려주지 않았다.

 

―살와란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무슨 뜻이에요?

 

“걱정 근심을 잊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뜻인데,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에요.”

 

―걱정 근심 잊고 제일 행복할 때가 언제예요?

 

“한국 친구들이랑 만나서 밖에 나갈 때요. ‘오름’이라는 곳에 가봤어요. 정말 아름다웠어요.”

 

―여기 바닷가도 가봤어요? 저 앞으로 조금만 나가면 바다인데.

 

“아뇨….”

 

―제주도 바다를 코앞에 두고 왜 안 가요? 5분만 걸으면 닿을 텐데.

 

“…….”

 

살와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들 가족을 도와주는 기독교인들이 와서 데리고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그는 웬만해선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 혼자 동네를 산책하거나 동생들을 데리고 바닷가에 나가지도 않는다. 말도 글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 그들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이웃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것일까?

 

―‘근심을 없애주는’ 살와에게 제일 큰 걱정거리는 뭐예요?

 

“학교요.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하는데….”

 

살와는 중학교 졸업 이후 3년째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남들이 한창 미래를 준비할 시간에 혼자만 허송세월하는 것이 못내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이렇게 살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살와는 가슴이 탄다. 정상적인 환경이었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을 나이지만, 지금 그의 입학을 허락하는 학교는 없다.

 

 

살와는 “세상의 선의를 믿는다”고 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살와는 “세상의 선의를 믿는다”고 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아덴의 푸른 바다

 

살와는 간단한 영어 대화가 가능하지만, 긴 얘길 해야 할 때는 아버지에게 통역을 부탁하거나 핸드폰의 구글번역기를 통해서 내게 영어로 쓰인 문장을 보여주었다. 제주도에서 그를 만나고 올라온 뒤, 나는 아버지의 통역 없이 살와와 직접 더 긴 대화를 나누고 싶어 여러 차례 추가 질문을 전자우편으로 보냈고, 그때마다 살와는 아랍어로 쓰고 영어로 번역한 문장을 내게 보내주었다. 문장 사이사이, 하트나 스마일 이모티콘이 들어간 아기자기한 편지였다.

 

―한국 사람들은 예멘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요. 예멘은 어떤 나라예요?

 

“한국하고는 많이 달라요. 지금은 내전 중이지만 언제든 전쟁이 끝나고 안전해지면 내가 돌아갈 곳이죠.”

 

―이렇게 고생을 시키는 나라인데, 그래도 돌아가고 싶어요?

 

“거기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태어난 고향이 있으니까요. 외지에서 오래 살더라도 어딜 가든 우리는 이방인이에요. 내 나라 같지는 않죠.”

 

 

딸들 공부시키려 한국행 결심
‘난민 반대’ 분위기 이해하지만
가족들에겐 전하지 않아
“낯선 이들에게 그럴 수 있어”

 

 

살와는 1999년 예멘의 수도인 사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나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공무원으로 일했고 어머니는 23살에 결혼해서 첫딸인 살와를 낳았다. 예멘에서 가지고 나온 몇 장 안 되는 사진 가운데, 대여섯살 무렵의 그가 꽃술을 두른 말을 타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있다. 그가 태어날 무렵 예멘은 큰 분쟁 없이 평화롭고 안정된 시절이었다.

 

2006년 정쟁으로 나라가 뒤숭숭해지면서 가족들은 그리스로 이주했다. 불안정하고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살와는 초등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게 그저 신나고 즐겁기만 했다. 그의 나이 일곱살이었다. 아버지는 아테네에 있는 유엔사무실을 찾아가 난민신청을 하고 6개월마다 아이디카드를 갱신해 가며 노동허가를 받아서 커튼 공장에서 막일꾼으로 일했다. 사무직으로 근무하던 아버지에겐 익숙지 않은 육체노동이었고 가족들을 벌어먹이기엔 아득한 생활이었지만 살와의 기억 속에 빈곤에 대한 기억은 특별히 남아 있지 않다. 난민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막내를 임신했고, 어머니는 입덧을 하며 고향을 몹시 그리워했다. 결국 2010년 난민신청을 포기하고 그의 가족은 다시 외가가 있는 예멘의 남쪽 항구도시 아덴으로 돌아왔다. 내전이 남쪽까지 번지면서 얼마 못 가 다시 북쪽 산악지대로 이주를 해야 했지만, 아덴 외갓집에 머무르던 2년 동안이 살와에겐 지금까지 삶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외갓집에선 누구하고 살았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이모가 넷 있었는데 둘은 결혼했고요, 이모 둘, 외삼촌과 같이 살았어요. 제일 슬펐던 일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예요. 내가 할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미처 얘기도 못 했는데, 내 인생의 어두운 시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게 알려주시지도 못한 채로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죽는다는 건, 나의 전 세계가 흔들리고, 나의 선생이며 코치이며 든든한 이상형이 죽는다는 걸 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외갓집은 학교에서 아주 가까웠고 바다에서도 가까웠어요. 외갓집 5층 발코니에서 학교가 빤히 보였죠. 바로 어제 일처럼 모든 풍경이 생생해요. 시장과 거리, 가게들과 생선장수, 골목골목 아주 특별하고 아름다운 추억들로 가득해요. 지금도 외가 식구들은 모두 거기 살고 있어요. 그때 이모들이 22살, 20살이었는데 막내이모하고 특히 친했어요.”

 

―세상의 막내이모는 모두 착한 것 같아요.(웃음)

 

“네. 이모는 제2의 엄마 같아요. 그런 이모를 가진 사람은 참 행복하죠. 이모랑 같이 지내던 시간이 다 즐거웠어요. 가끔 아침 7시에 바다에 같이 가서 장을 봐 오기도 했고요. 저녁이면 바다에서 갓 잡은 신선한 생선에 소금과 향신료를 뿌려서 구워 먹었어요. 그걸 마지막으로 먹은 게 벌써 5년 전인데 전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는 어디든 함께 다녔어요. 공원이며 시장이며 레스토랑이며 가게며…. 이모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있는 게 참 좋았어요. 늘 같이 놀고 음악도 같이 들었어요. 지붕 위에 올라가서 국수를 먹기도 하고, 날이 더울 때는 가끔 지붕 위에서 같이 잠들기도 했어요. 수시로 단전이 되었는데 그럴 땐 밤하늘의 별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죠. 그러면 외삼촌이 따뜻한 우유를 데워서 줬어요. 그 모든 날들이 정말 그리워요.”

 

 

아빠와 언니가 인터뷰하는 동안 살와의 동생이 빵을 만들고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아빠와 언니가 인터뷰하는 동안 살와의 동생이 빵을 만들고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전쟁에 승자가 어딨어요?

 

―전쟁을 직접 목격하진 않았나요?

 

“그리스에서 돌아왔을 때 아덴은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어요. 난 어렸고 특별히 전쟁을 실감하지 못했어요. 남부까지 위험해지면서 또 북부의 새로운 동네로 피난을 갔으니까 전쟁터를 직접 경험하진 않았죠.”

 

―왜 그렇게 싸우는 거죠?

 

“이기기 위해서요. 오로지 각 정파가 다른 정파를 이기기 위해서.”

 

―누가 이길까요?

 

“승자는 없어요. 서로가 서로를 죽이다가, 결국 다 같이 죽어갈 뿐이죠.”

 

―전쟁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계속 거기 있었다면 대학에 다니고 있었겠죠. 어쩜 조기졸업을 준비할 수도 있었을 거고. 학교에 못 다니면서 3년을 고스란히 잃어버렸어요.”

 

학교 얘기가 나오자 다시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전이 격화되면서 살와의 아버지는 2011년 말레이시아로 먼저 건너갔고 2년 뒤 그의 가족도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따라갔다.

 

―아버지가 없는 2년 동안 불안하지 않았어요?

 

“아니요. 아버지가 우리 곁을 지킬 거라는 걸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말레이시아로 옮겨가긴 했지만 아무것도 보장된 건 없었다. 말레이시아는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한 나라도 아니었고 난민법도 제정되어 있지 않았다. 체류 허가는 받았지만 합법적으로 노동허가를 받는다든가 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말레이시아에 2만명 가까운 예멘 난민이 나름의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있어서 9학년까지는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나서 체류인 신분으로 살와가 정식 입학할 수 있는 학교는 없었다. 살와의 아버지가 한국행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도, 어떻게든 딸들에게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말레이시아와 달리 한국은 일찌감치 난민협약에 가입하고 난민법도 제정한 나라가 아닌가. 지난 5월 그의 가족들은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도가 어떤 곳인지 알았어요?

 

“네, 그럼요.”

 

―여기 오기 전에 한국에 대해서 들은 게 있어요?

 

“말레이시아에서 친구들이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어요. <후아유>도 보고 <싸우자 귀신아>라는 드라마도 재밌게 봤어요.”

 

―제주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 한국의 첫인상은 어땠어요?

 

“말레이시아랑 많이 다르구나. 모든 게 훨씬 짜임새 있고 정교하고 지성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여기 내리는 순간, ‘아, 이제 우린 안전하구나’ 안도했죠.”

 

―한국에 오래 머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확신에 찬 대답이 당황스러웠다. 진짜로 살와는 한국에서 예멘 난민에 대해서 어떤 얘기들이 오가는지 모르는 걸까. 예멘 난민을 거부하는 국민청원에 70만명 넘는 이들이 참여하고 서울과 제주에서 난민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정말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일까? 어디부터 얘길 해야 할까, 머뭇거리는데 살와가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뒤늦게 보내온 살와의 편지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 이해해요
좋은 사람들 많다는 걸 믿어요
새로운 기회가 올 거라 믿어요”

 

 

“한국 사람들은 정말 친절해요. 예멘 난민이나 무슬림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긴 하지만요. 이것 보세요. (손거울 사진 보여주며) 한국 친구가 제게 선물로 준 건데요. 내가 고래를 좋아하고 푸른색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딱 아는 것처럼 이런 선물을 줬어요. 우릴 행복하게 만드는 이런 예기치 않은 일들이 정말 좋아요.”

 

곁에 있던 살와의 아버지가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떨궜다. 딸들이 걱정할까봐 미주알고주알 바깥 얘기를 전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점심 먹자’는 얘길 언제 하나 싶어 아까부터 살와의 어린 동생들이 방문 앞에서 힐끔힐끔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 듣는 앞에서 지금 한국 현실이 어떤지 이야기를 더 이어갈 수는 없었다. 점심 먹고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살와가 한글로 쓴 자신의 이름.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살와가 한글로 쓴 자신의 이름.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살와와 동생들은 한 달 동안 머무는 방 안 곳곳에 한글 단어들을 붙여 놓고 공부한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살와와 동생들은 한 달 동안 머무는 방 안 곳곳에 한글 단어들을 붙여 놓고 공부한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좋은 사람이 더 많으니 괜찮아요

 

손님이 왔다고 특별히 신경을 쓴 것 같았다. 닭을 토막 쳐서 쪄내고, 밀가루를 반죽해서 기름에 튀긴 예멘빵을 내놓았다. “빵 이름이 뭐냐?”고 하니까 8살 막내가 “하미르”라고 알려주며, 서툰 발음으로 따라 하는 나를 보고 깔깔 웃는다. 좁은 방 안에 밥상을 깔고 다섯 아이가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었다. 세상에서 가장 흐뭇하고 가장 서러운 밥상이었다.

 

“밥 먹고 우리, 바다 보러 갈까요?”

 

껄끄러운 밥알을 넘기다 말고 내가 말했다.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점심을 마치고 살와랑 그 아버지만 차에 태워 밖으로 나왔다. 부근 해수욕장은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차를 돌려 조용한 해변 카페를 찾았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집에서 더 물을 수 없었던 얘길 아버지에게 물었다.

 

―지금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고 계세요?

 

“그간 번 돈이 다 떨어져서 예멘에서 송금을 받아서 생활했는데 이제 그것도 거의 바닥이 났어요. 지금은 여러 고마운 분들 도움으로 버티고 있는데 2주 뒤엔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요. 딸이 다섯이라 아무 데나 데리고 나갈 수도 없고.(한숨)”

 

―구직활동은 하고 계세요?

 

“대부분 고깃배를 타고 일부는 농장에 있는데, 예멘 사람들은 대개 북부 산악지방에서 농사짓다 온 사람들이라 배 타는 게 익숙지 않아요. 무슨 일이든 할 생각으로 저도 배를 타기로 했는데, 그 배가 제주 해역을 벗어난다고 배에 태울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어요. 난민들이 제주도 벗어나면 안 된다고요.”

 

―호의를 갖고 있는 분도 많지만, 예멘 난민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요.

 

“이해합니다. 저희가 가는 곳마다 그런 시선에 부딪혀왔으니까요. 낯선 사람들에 대해서 그러실 수 있죠. 예멘 안에서도 심지어 남부 살다 북부 가거나, 북부에서 다시 남부로 가면 거기 사람들이 이방인으로 취급했어요.”

 

나와 아버지가 나누는 얘기를 들으며 살와의 커다란 눈망울이 더 동그래졌다.

 

―이런 얘기 처음 들어요?

 

“네, 부모님이 얘기하지 않으셔서….”

 

―10년 뒤에, 살와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길 바라요?

 

“제 오랜 꿈은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하고 천연화장품을 만드는 회사를 차려서 사업을 하는 거였어요. 근데 지금은… 어디든 안전한 곳에 정착하는 게 젤 중요하죠. 얼른 공부를 마치고 아버지가 집세 마련하는 걸 돕고 싶어요.”

 

그날 제주 바다는 눈이 시리게 푸르렀고 우리는 말이 끊길 때마다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며칠 뒤 내게 보낸 전자우편에서 살와는 이렇게 썼다.

 

“지난번 만나고 난 뒤, 저희 난민들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요. 낯선 이방인들이 들어오니까 여기 계신 분들이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 이해가 돼요. 근데 난민들은 전쟁 때문에 살 수가 없어서 도망 나온 사람들이에요. 안 그래도 된다면 자기가 나고 자란 고향을 누가 떠나고 싶겠어요? 모든 부모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자기 자식이 내일까지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자식을 돌보는 거예요. 그게 어떤 건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겁니다. 하지만 세상에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전 믿어요. 남을 돕고 좋은 일을 하는 걸로 스스로 자존감을 느끼는 좋은 사람들. 그러니 삶은 여전히 멋진 거예요. 아직 동생들한텐 자세한 상황 얘길 하지 않았어요. 공연히 걱정하고 슬퍼할까 봐. 저도 이따금 절망적인 느낌이 들곤 하지만, 다시 일어설 거예요. 나 자신을 믿고 세상의 선의를 믿고 매일매일 새로운 기회가 올 거라고 믿을래요.”

 

내 핸드폰에 저장된 살와의 사진을 꺼내 보았다. 제주도 푸른 바다 앞에 망연히 서 있던 19살 소녀의 뒷모습. 그는 언제 고래를 볼 수 있을까? 우리 눈에 보이는 건 망망한 대해와 흰 파도뿐이었지만, 어쩜 고래는 그날 아주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 물 밑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살와의 한국인 친구가 선물한 고래그림이 그려진 손거울.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살와의 한국인 친구가 선물한 고래그림이 그려진 손거울.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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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해고 승무원들 끝내 눈물, 12년 걸린 복직 소감에 나온 이름

코레일, 2006년 해고된 180명 정규직 직접고용... "사법농단 투쟁 끝까지 하겠다"

18.07.21 17:27l최종 업데이트 18.07.21 17:54l

 

"이런 날이 정말 오긴 오네요" KTX 해고승무원 '울다웃다' KTX 해고승무원인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이 21일 서울 서부역 농성장 인근에서 해고 12년 만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한 뒤 함께 농성했던 동료들을 바라보며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 "이런 날이 정말 오긴 오네요" KTX 해고승무원 '울다웃다' KTX 해고승무원인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이 21일 서울 서부역 농성장 인근에서 해고 12년 만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한 뒤 함께 농성했던 동료들을 바라보며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 남소연
"국민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김승하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은 눈시울이 불거진 상태로 말을 마쳤다. 긴 투쟁의 시간 동안 지지해 준 국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려 마련한 자리였다. 해고 승무원인 김 지부장과 그의 동료들은 12년 만에 복직이 결정됐다(관련 기사 : KTX 해고 승무원, 12년 만에 코레일에 직접고용 된다). 그들은 다 같이 허리를 깊이 숙여 국민들께 인사했다. 그리고 모두가 울었다. 카메라 앞에서 울음을 꾹꾹 참으며 서 있던 해고 승무원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감격의 눈물을 펑펑 흘렸다. 

KTX열차승무지부와 전국철도노동조합, 'KTX 해고승무원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등은 21일 서울역 탑승구 앞에서 '대국민 보고대회'를 열고 지난 2006년 해고된 승무원들의 복직 합의 결과를 발표했다. 코레일과 철도노조는 그동안 다섯 차례 교섭 끝에 이날 극적인 합의를 이뤘다.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해고로 인한 승무원들의 고통에 유감을 표하고, 180명의 해고 승무원을 대상으로 경력직 특별채용을 시행하기로 했다. 

이들은 당장 승무원으로 복귀하지는 못하고 사무영업(역무) 분야 정규직으로 채용된다. 향후 코레일이 현재 자회사에 운영을 맡긴 승무 업무를 직접 수행하게 될 경우 전환배치하기로 합의했다. 또 올해 11월 33명을 채용하고 나머지 인원은 내년 상반기에 특별채용 절차를 거쳐 채용할 예정이다. 당초 2006년에 해고된 승무원은 292명(코레일 측이 이날 밝힌 공식 집계)이었지만, 코레일의 자회사에 취업한 인원을 제외하고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에 참여한 인원만 이번 합의 대상이 됐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소리 들었지만... 옳다는 믿음으로 버텨"
"해고 12년 만에 복직" KTX 해고승무원, 끝내 '눈물' KTX 해고승무원인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이 21일 서울 서부역 농성장 인근에서 해고 12년 만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울먹이고 있다.
▲ "해고 12년 만에 복직" KTX 해고승무원, 끝내 '눈물' KTX 해고승무원인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이 21일 서울 서부역 농성장 인근에서 해고 12년 만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울먹이고 있다. ⓒ 남소연
"해고 12년 만에 복직" KTX 해고승무원들의 '인사' KTX 해고승무원들이 21일 서울 서부역 농성장 인근에서 해고 12년 만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지켜봐준 국민들에게 감사하다"고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해고 12년 만에 복직" KTX 해고승무원들의 '인사' KTX 해고승무원들이 21일 서울 서부역 농성장 인근에서 해고 12년 만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지켜봐준 국민들에게 감사하다"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남소연
"이런 날이 정말 오긴 오네요" KTX 해고승무원 '울다웃다'  KTX 해고승무원인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이 21일 서울 서부역 농성장 인근에서 해고 12년 만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울먹이고 있다. 김승하 지부장은 이날 "투쟁의 현장이었던 이 곳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게 될 줄 몰랐고 꿈만 같다"면서 "우여곡절이 있었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우리가 옳다는 믿음 하나로 버텼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 "이런 날이 정말 오긴 오네요" KTX 해고승무원 '울다웃다' KTX 해고승무원인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이 21일 서울 서부역 농성장 인근에서 해고 12년 만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울먹이고 있다. 김승하 지부장은 이날 "투쟁의 현장이었던 이 곳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게 될 줄 몰랐고 꿈만 같다"면서 "우여곡절이 있었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우리가 옳다는 믿음 하나로 버텼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 남소연
이로써 KTX 해고 승무원들의 복직 투쟁은 일단락됐다. 해고 승무원들과 보고대회 참석자들은 그동안의 힘겨웠던 투쟁의 과정을 떠올리며 서로를 위로했다. 특히 보고대회를 진행한 서울역 탑승구는 지난 2008년 해고 승무원들이 온몸에 쇠사슬을 두르고 연좌농성을 벌였던 곳이다. 쇠사슬을 묶고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썼던 그들이, 10년 만에 같은 자리에서 자신들이 옳았고 정당했다는 것을 다시 말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승하 지부장은 "항상 투쟁의 현장이었던 이곳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게 되니 꿈만 같고 믿을 수가 없다"라며 "싸워봤자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붙잡고 있는 게 멍청한 거다, 수많은 말이 우리를 괴롭혔지만 우리가 옳다는 믿음 하나로 버텼다. 또 많은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연대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먼저 간 친구, 하늘나라에서 이 광경 보고 웃지 않을까"
"해고 12년 만에 복직" KTX 해고승무원, 끝내 '눈물' KTX 해고승무원들이 21일 서울 서부역 농성장 인근에서 해고 12년 만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 "해고 12년 만에 복직" KTX 해고승무원, 끝내 '눈물' KTX 해고승무원들이 21일 서울 서부역 농성장 인근에서 해고 12년 만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 남소연
당초 KTX 해고 승무원 문제는 보다 일찍, 보다 명확하게 해결될 수 있었다. 해고 승무원들은 지난 2008년 코레일을 상대로 '해고무효 및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가처분 신청 소송부터 2010년 1심, 2011년 항소심 재판부 모두 해고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건을 3년 넘게 판단하지 않다가, 2015년 2월 하급심과 완전히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해고는 정당했고 코레일은 이들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해당 소송이 다시 논란이 된 것은 법원행정처가 2015년 11월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의 효과적 협상 추진전략' 문건에 언급됐다는 사실이 최근에 알려지면서다.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청와대의 협조를 구하려고 '정권에 협조한 재판'으로 KTX 승무원들의 소송을 꼽은 것이다. 문제의 판결 이후 한 명의 해고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에 해고 승무원들은 대법원 대법정에 들어가 김명수 대법원장의 면담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승하 지부장은 "우리는 철도공사로 돌아가지만 투쟁은 끝이 아니다. 양승태의 사법농단에 우리는 너무 큰 고통을 당했다"라며 "하지만 아직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책임자가 처벌받는 그 날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없는 한 친구와 그의 딸에게 우리가 정당했다는 것을 들려줄 수 있게 돼서 기쁘다"라며 "하늘에서나마 이 광경을 보며 웃지 않을까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보고대회를 마친 후 서울역 서부역 광장에 설치돼 있던 농성장을 정리했다. 사법농단 의혹이 터지고 다시 농성을 시작한지 60일 만이었다. 그리고 4521일 동안 이어진 복직 투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KTX해고승무원 복직하기로 한 날...철거되는 서부역 농성장  KTX 해고승무원들이 21일 해고 12년 만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한 뒤 서울 서부역 농성장 천막을 철거하고 있다.
▲ KTX해고승무원 복직하기로 한 날...철거되는 서부역 농성장 KTX 해고승무원들이 21일 해고 12년 만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한 뒤 서울 서부역 농성장 천막을 철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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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테러집단 지원위해 꾸네이뜨라 수리아군 기지 또 공격

 
: 이스라엘 붕괴직전에 빠진 테러집단 지원위해 수리아군 공격
 
번역, 기사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8/07/22 [07:37]  최종편집: ⓒ 자주시보
 
 

이스라엘 테러집단 지원위해 꾸네이뜨라 수리아군 기지 또 공격

 

이제 이스라엘은 수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수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테러집단들을 뒤에서만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수리아 정부군들을 군사적으로 공격을 하면서 직접 개입을 하고 있다현재 수리아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황을 보면 수리아 남부에서는 이스라엘군남동부 이라크 국경근처 수리아 영토에서는 미군수리아 북부 뛰르끼예 국경근처 수리아 영토에서는 미··프 연합군들이 군대를 파병하여 적극적으로 수리아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수리아전은 말 그대로 국제전의 전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다라아 중심으로한 수리아 남부지역에서 자신들이 지원하는 테러집단들이 정부군들의 파상공세에 밀려 붕괴상황에 이르게 되자 아예 노골적으로 수리아 정부군 기지들을 수시로 공격하고 있다이스라엘군들이 수리아군을 공격할 때 동원하는 전투방법은 전투기를 동원하여 폭격을 가하고미사일을 발사하여 타격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수리아군에 대한 공격행태에 대해 이란관영 파르스통신은 이스라엘 테러분자들 지원위해 꾸네이뜨라 수리아군 기지 또 다시 공격이라는 제목으로 이스라엘이 수리아 정부군 기지들을 대상으로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목적과 그 공격 방법에 대해 자세히 보도를 하였다.

 

파르스통신은 이스라엘 공군전투기들은 테러분자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수요일(7월 11밤에 꾸네이뜨라 지방에 있는 수리아 정부군 기지들을 폭격하였다수리아의 반 항공 방어체계는 많은 공격을 막아내었다.”는 타 언론 매체들의 보도를 인용하여 전하였다.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꾸네이뜨라의 하자르와 딸 끄롬 자바 마을 근처의 정부군 기지들에 여러 발의 미사일을 발사하여 포격하였으나 그 공격은 물질적으로 그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하였다.”고 이란관영 파르스통신은 수리아국영 사나통신의 보도를 인용하여 상세하게 관련 사실을 전하였다.

 

파르스통신은 거기에 더 해 이스라엘군들이 수리아 정부군들이 주둔하고 있는 기지에 공격을 가한 후 테러집단들도 수리아군에게 공격을 감행하였다고 보도하였다이에 대해 통신은 이스라엘의 공격과 동시에 테러집단들도 미사일로 자바 마을을 목표로 하여 포격을 가하여 민간인 주택들이 파괴되었다.”고 사나통신은 인용하여 보도하였다.

 

그동안 본지에서 보도하였듯이 이스라엘군들이 수리아 정부군 주둔지에 대해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수리아 정부군들의 맹렬한 공격에 의해 테러집단들이 붕괴위기에 빠지게 되니 이를 저지하고 테러집단들이 수리아 정부전복을 위해 계속 수리아 정부군들과 전투를 벌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수리아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체적인 전황을 살펴보면 수리아 정부군들이 수리아 영토 전역에서 테러집단들과 반정부군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들을 탈환하기 위해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으며수리아 정부군들의 파상공세에 테러집단들은 거의 궤멸 직전에 빠져있다따라서 그동안에는 이들을 배후에서만 지원하고 있던 미국이스라엘영국프랑스 등이 주축이 된 서방연합세력들은 자국의 군대를 동원하여 수리아 정부군에 대해 직접 군사적으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그것도 서방연합세력들이 수리아 정부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공격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수리아전은 국제전의 양상을 겉으로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다물론 그동안에 서방연합세력들은 수리아 내전 내지는 내란이 일어나고 있는 수리아사태라고 부르면서 자신들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아닌 보살을 해왔었다그러나 그동안 본지에서 지속적으로 보도를 해왔듯이 수리아 정부를 붕괴시키기 위해 전투에 필요한 모든 무기뿐 아니라 필요한 군수물자들을 수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테러집단들이나 반군들에게 제공하는 등 그들의 배후에서 수리아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을 하여왔기에 수리아전은 결코 서방연합세력들이나 그 하수 국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란이나 내전이 아닌 국제전이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오늘에 이르러서까지도 서방연합세력들과 그 하수 국가들은 여전히 수리아 내란·내전이라고 하면서 서방연합세력들의 침략성을 철저히 숨기고 있다이는 국제사회와 온 누리 인민들에 대한 우롱이며 기만이다우리는 서방연합세력들의 이와 같은 교활성과 악랄성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

 

 

----- 번역문 전문 -----

 

2018년 7월 12, 3시 8목요일

 

이스라엘 테러분자들 지원위해 꾸네이뜨라 수리아군 기지 또 다시 공격

 

▲ 이스라엘 공군전투기들은 테러분자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수요일(7월 11일) 밤에 꾸네이뜨라 지방에 있는 수리아 정부군 기지들을 폭격하였다. 수리아 정부군들은 이스라엘이 가한 공격들 대부분을 막아내었다고 파르스통신은 전하였다.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수리아 중부군들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한 공격은 다라아를 중심으로 한 수리아 남부에서 정부군들의 파상공세에 밀려 붕괴직전에 빠진 테러집단들을 돕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용섭 기자

테헤란 (파르스통신)- 이스라엘 공군전투기들은 테러분자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수요일(7월 11밤에 꾸네이뜨라 지방에 있는 수리아 정부군 기지들을 폭격하였다고 언론 매체들이 보도하였으며수리아의 반 항공 방어체계는 많은 공격을 막아내었다고 덧붙였다.

 

 

수리아 국영언론인 사나통신은(Syrian Arab News Agency – S A N A)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꾸네이뜨라의 하자르와 딸 끄롬 자바 마을 근처의 정부군 기지들에 여러 발의 미사일을 발사하여 포격하였으며그 공격은 물질적으로 그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하였다고 목요일 보도하였다.

 

이어서 사나통신은 이스라엘의 공격과 동시에 테러집단들도 미사일로 자바 마을을 목표로 하여 포격을 가하여 민간인 주택들이 파괴되었다고 전하였다.

 

한편 수리아군들의 반 항공체계들은 꾸네이뜨라의 까르스 알-나빨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또한 스뿌뜨닉끄 아랍어판은 이스라엘 공군은 꾸네이뜨라의 알-삼다니예흐 동부 마을 근처에 있는 수리아 정부군 기지를 3기의 미사일로 포격을 가하여 피해를 입혔다고 보도하였다.

 

그 공격은 한 대의 무인기가(드론수리아에서 날아들어 자신들이 점령하고 있는 영공으로 침입을 하였으며 이스라엘의 대공미사일에 의해 골란고원상공에서 격추되었다고 자이오니스트(유대정권이 화요일에 주장을 한 이후에 이루어졌다.

 

군사 분석가들은 수리아 정부군들이 다라아 서부와 꾸네이뜨라에서 테러분자들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대패를 당한 테러집단들의 저하된 사기는 높여주기 위하여 수리아에 대한 이스라엘의 침공이 이루어졌다고 믿고 있다.

 

수리아 정부군 미사일방어망(체계)은 홈스 동부의 정부군의 T4공군기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을 격퇴하였으며(원문-방어), 침략군(원문-정권)의 전투기들 중 한 대를 목표로 타격하였다.

 

 

한 군소식통은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홈스 동부의 T4공군기지에 여러 기의 미사일들을 발사하였으나 그 공격은 격퇴를 당하였다고 일요일 오후에 수리아 국영 아랍어 사나통신의 보도내용을 인용하여 관련 사실을 전하였다.

 

그는 여러 기의 미사일들이 요격을 당하였고수리아 영공을 침략한 전투기들 중 한 대를 목표로 하여 타격하였다다른 전투기들은 수리아 영공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타격을 받은 전투기나 조종사의 생존여부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더 이상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스뿌뜨닉끄 방송 아랍어판은 수리아 정부군 반항공부대들은 T4공군기지에 대해 알-딴쁘지역의 남부에서 발사한 6기의 미사일들을 요격하였다는 군소식통의 말을 인용하여 보도하였다.

 

그는 그 공격이 3대의 전투기들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으며수리아 정부군 반 항공부대들은 그 중 한 대를 목표로 타격을 가하였고다른 전투기들은 (수리아 반항공군들의 공격에 의해)후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수리아 정부군들에 의한 그 공격은 수리아 남부의 테러집단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혔으며많은 사상자를 내었으며전략적인 알-나지브 통로를 포함하여 10여 곳 이상의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고 통제하고 있다.

 

토요일에 전개된 전투상황과 관련하여 보면이스라엘군들은 (수리아)정부군들과의 전투에서 심대한 타격을 입은 타흐리르 알-샴 헤이아뜨(레반트 해방군 또는 알-누스라 전선테러집단들을 지원(원문-돕다)하기 위하여 꾸네이뜨라 동부 지방에서 수리아 정부군 주둔지를 공격하였다고 현지 지방방송이 보도하였다,

 

-마야딘 매체는 이스라엘군들은 그 지역에서 수리아 정부군들이 타흐리르 알-샴의 강력한 공격을 격퇴한 후 꾸네이뜨라 북부의 깐 아르나바 지역의 타흐리르 알-샴 주둔지들 중 한 곳에 대해 강력한 공격을 가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스라엘군들은 알-샴 테러분자들의 주둔지를 수리아 정부군들이 점령을 하였기에 테러분자들 주둔지를 공격한 것이다이 공격은 결국 수리아 정부군들에게 공격을 가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알-마야딘은 그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그 어떤 사람도 살상을 당하지 않았다고 말 하였다.

 

-마야딘은 꾸네이뜨라의 테러집단들은 알-바아쓰자바와 탈 꼬룸 지역에서 이스라엘군들의 공격을 받기 전에 정부군들의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

 

더 나아가 알-마야딘은 알-바아쓰 근처에서 세 군데 측면에서 수리아 정부군들에게 공격을 가하였지만 실패를 하였으며그 공격에서 30명 이상의 테러분자들이 살상을 당하였다,

 

반면 현장 소식통은 이스라엘군들은 꾸네이뜨라에서 수리아 정부군들에 대해 탄도미사일 포격을 가하였다고 보도하였으며텔아비브 군대들은 부상을 당한 테러분자들을 꾸네이뜨라 전투현장에서 테러집단들이 장악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국경이 접해있는 바리까의 병원으로 이송을 하였다고 덧붙였다.

 

계속하여 그 소식통들은 이스라엘은 타흐리르 알-샴 무장집단들이 꾸네이뜨라 지방의 도심과 안전지대(원문마을)에 대한 공격을 증대시켰던 최근 몇 주 동안 테러분자들에 대한 지원을 부쩍 증대시켰다고 말 했다.

 

 

 

----- 원문 전문 -----

 

Thu Jul 12, 2018 3:8

 

Israel Launches New Attack on Syrian Army Positions in Quneitra to Support Terrorists

▲ 이스라엘 공군전투기들은 테러분자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수요일(7월 11일) 밤에 꾸네이뜨라 지방에 있는 수리아 정부군 기지들을 폭격하였다. 수리아 정부군들은 이스라엘이 가한 공격들 대부분을 막아내었다고 파르스통신은 전하였다.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수리아 중부군들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한 공격은 다라아를 중심으로 한 수리아 남부에서 정부군들의 파상공세에 밀려 붕괴직전에 빠진 테러집단들을 돕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용섭 기자

 

TEHRAN (FNA)- The Israeli air force launched fresh airstrikes against the Syrian army positions in Quneitra province on Wednesday night to support the terrorists, media reports said, adding that the air defense shield in Syria could repel a number of attacks.

 

 

Syria's state news agency, SANA, reported on Thursday that the Israeli fighter jets fired several missiles at army positions near the town of Hazar and Tal Krom Jaba in Quneitra, leaving damage on properties.

 

It said along with the Israeli attacks, the terrorist groups targeted the village of Jaba with missile and artillery fire, destroying civilian houses.

 

Meantime, the Syrian army's air defense system could repulse the Israeli attacks against Qars al-Nafal region in Quneitra.

 

Also, the Arabic-language website of Sputnik news agency reported that the Israeli air force has fired 3 missiles on the Syrian army positions near the town of Eastern al-Samdaniyeh in Quneitra, inflicting damages.

 

The offensive was launched after the Zionist regime claimed on Thursday that a drone entered the occupied territories airspace from Syria and was downed over Golan Heights by the Israeli missile shield.

 

Analysts believe that the new Israeli aggression against Syria which was conducted after the Syrian army gained big victories against the terrorists in Western Dara'a and Quneitra is aimed at heightening the terrorist groups' morale after heavy defeats.

 

The Syrian army's missile defense systems had last Sunday warded off an Israeli air raid on the country's T4 airbase in Eastern Homs, targeting one of the regime's fighter jets.

 

A military source was quoted as saying by the Arabic-language SANA news agency on Sunday afternoon that Israeli fighter jets fired several missiles at the T4 airbase in Eastern Homs but the attack was repulsed.

 

He added that a number of the fired missiles were intercepted and one of the invading warplanes was also targeted; other warplanes were forced to leave Syria's airspace. There is yet no report on the fate of the targeted plane or its pilots.

 

Meantime, the Arabic website of Sputnik news agency quoted a military source as saying that the Syrian army's air defense shield has intercepted 6 missiles which were fired from South of al-Tanf region against T4 airbase.

 

He added that the aggression was launched by 3 warplanes, noting that the air defense systems targeted one of them and forced others to withdraw.

 

The attack was launched as the Syrian army has inflicted heavy damage and casualties on the terrorist groups in Southern Syria, winning control over tens of regions, including the strategic al-Nasib passageway.

 

In a relevant development last Saturday, the Israeli troops targeted a position of the Syrian Army troops in the Southwestern province of Quneitra to assist Tahrir al-Sham Hay'at (the Levant Liberation Board or the Al-Nusra Front) terrorists that have suffered a heavy defeat in battle with the government forces, a media outlet reported.

 

Al-Mayadeen news network reported that the Israeli troops opened heavy fire at one of the positons of Tahrir al-Sham in Khan Arnaba region in Northern Quneitra after the government forces repelled a heavy offensive of Tahrir al-Sham in the region.

 

Al-Mayadeen further said that the Israeli attack did not leave any human casualties.

 

It went on to say that the terrorist groups in Quneitra had attacked the army stronghold in al-Ba'ath, Jaba and Tal Koroum regions before the Israeli troops launched their attack.

 

Al-Mayadeen further said that over 30 terrorists were killed or wounded in the militants' failed attack on the army positions in three flanks near al-Ba'ath.

 

Meanwhile, field sources reported that Israeli troops launched artillery attack on Syrian army in Quneitra, adding that the Tel Aviv army forces transferred the wounded members of the terrorist groups from the Quneitra battlefield to occupied territories in Bariqa border region in Israel to treat them in their hospitals.

 

The sources went on to say that Israel has increased its backup for terrorists in recent weeks when Tahrir al-Sham intensified attacks on the safe villages and townships in Quneitra province.

▲ 이스라엘 공군전투기들은 테러분자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수요일(7월 11일) 밤에 꾸네이뜨라 지방에 있는 수리아 정부군 기지들을 폭격하였다. 수리아 정부군들은 이스라엘이 가한 공격들 대부분을 막아내었다고 파르스통신은 전하였다.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수리아 중부군들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한 공격은 다라아를 중심으로 한 수리아 남부에서 정부군들의 파상공세에 밀려 붕괴직전에 빠진 테러집단들을 돕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 이용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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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적 국학연구 방향은 ‘바로세움의 국학’”

(사)국학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연찬회 개최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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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2  09: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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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국학연구소가 21일 서울시민청에서 창립 30주년 기념 연찬회를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국학연구소의 21세기적 국학연구 방향은 ‘바로세움의 국학’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학연구 과제는 두 가지로서 ‘과거사 청산’의 국학 추구, ‘통일과 상생’의 국학 추구이다.”

(사)국학연구소(이사장 김종성)가 21일 오후 2시 서울시민청 워크샵룸에서 개최한 창립 30주년 기념 연찬회에서 임찬경 연구원은 “뭔가 21세기란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결책으로서의 국학의 방향을 내놓아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임찬경 연구원은 “1988년 3월 국학연구소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그에 뒤이은 분단과 종속으로 만들어진 한국사회의 학문적 모순을 국학운동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설립되었다”며 “설립 당시의 그 방향이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유효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아직도 이 땅은 일제의 식민지배와 그에 뒤이은 분단과 종속으로 만들어진 한국사회의 학문적 모순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

실제로 20년 전인 1998년 국학연구소의 기관지 『국학연구』 제4집에 실린 ‘국학연구소의 방향과 과제’에는 “민족발전과 인류화합을 위한 실천적 논리 제시”를 방향으로 제출했고, 과제로는 “첫째, 특화된 연구를 통한 국학의 균형적 발전”, “둘째, 국학의 사회적 대중화 추구 중시”, “셋째, 정신과 육신의 수행가치나 체계를 아울러 중시하는 생활개혁적인 국학연구”를 내세웠다.

   
▲ 임찬경 국학연구소 연구원이 ‘국학연구소의 방향과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임찬경 연구원은 “1988년에 설정되었던 국학연구소 국학연구의 방향을 다시 21세기적 국학연구 방향으로 재인용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은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1988년의 문제해결 방식으로서의 국학연구 방향을 21세기에 그대로 적용시키기에는 효율성의 문제가 있음이 명확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촛불집회’를 희망의 근거로 제시하며 “21세기에 이 땅에 사는 다수가 원하는 사회적 희망, 사회적 방법론 같은 것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그런 지향을 국학연구 방향과 과제에 담아낸다면 ‘바로세움’이라는 개념을 새로 설정해서 ‘바로세움의 국학’ 같은 것을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제시했다.

또한 “마치 촛불집회하듯, 비폭력과 지성적인 단결로 우리사회의 모순들을 해체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우리 사회 다수가 지니고 있는 바로 ‘바로세움’의 지향”이라며 “21세기의 국학은 이 ‘바로세움’의 지향과 결합하여, 우리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민족.민주.민중적 학문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전개했다.

그는 21세기 ‘바로세움의 국학’의 두 가지 과제로 ‘과거사 청산’의 국학 추구, ‘통일과 상생’의 국학 추구를 제출했다.

먼저 “20세기에 만들어진 왜곡된 역사를 가지고 21세를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운 현실인 것 같다”며 “20세기의 모든 것들, 20세기의 문화, 역사를 청산하고 21세기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서둘러서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통일과 상생이다. 남북의 통일도 이야기해야 하지만 우리 내부에도 통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화이부동’(和而不同)을 호출했다. 서로 다른 것을 통일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한다며 신채호 선생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을 예시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21세기에는 분단이라는 상황을 더 이상 가져가서는 안 된다”며 “21세기적 국학은 통일과 상생을 생활화 하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통일과 상생의 논리, 그것을 심어주는 국학이 돼야겠다”고 결론지었다.

김병기 대한독립운동총사편찬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논문발표는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원이 ‘우리 정체성의 길 - 국학연구소 30년의 자취’를, 신운용 안중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이 ‘『국학연구』 30년의 연구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앞서 이윤수 국학연구소 상임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1부 기념식에서 김종성 이사장은 기념사를 통해 “올해는 사단법인 국학연구소가 출범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라며 “잉태기와 태동기 그리고 정착기로 연결되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때로는 환호하고 때로는 낙망하면서도 초지일관 국학중흥을 위해 걸어왔던 지난날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고 회고했다.

김종성 이사장은 “국학의 명암은 우리 역사의 부침 그 자체”라며 “국학이란 우리의 삶 그 자체이면서, 우리의 정체성인 동시에 우리의 운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하고 “조촐한 연찬회를 마련한 것도 국학연구소 창립 30주년이라는 뜻 깊은 의미를 자축하고자 하는 동시에 이와 같은 국학의 진정한 의미를 새롭게 다지는 시간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라고 밝혔다.

김동환 연구원은 국학연구소가 30년간 걸어온 길을 ‘중창시대’, ‘단촌경당’, ‘배달정신’, ‘현묘지상’, ‘법인결의’로 명명해 상세히 되짚었다.

김동환 연구원은 “국학연구소의 태동을 이해함에, 대종교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며 “특히 1970년대 중반 홍제동 대종교총본사를 거점으로 활동한 대종교청년회의 인물들이 그 인적 기반의 중심”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성신, 최삼관, 김종성, 김동환 등이 바로 그들이다.

국학연구소의 시발은 인제세, 박성신, 김동환 등이 주축이 된 1986년 ‘우리찾기모임’ 결성과 『중창시대(重創時代)』 발간으로 본격화됐고, 그 배경에는 대종교청년회 소모임으로 출발한 고려대 단촌글방과 연세대의 경당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

이후 한국정통문화연구회(한정연)이 결성돼 부설로 국학연구소(초대 소장 정영훈)가 출범했고, 1988년 3월 『국학연구』를 창간, 지난해 제21집까지 발간했다. 1997년 한국대종사상연구회(대사연)이 설립돼 국학연구소는 대사연 부설기관으로 활동하며 『중창』을 발간했다. 2005년 3월 25일 마침내 (사)국학연구소(이사장 이영재)이 출범해 기관지 『알소리』(아래아 알)가 창간됐다.

국학연구소는 11차례 주소지를 옮겨다녀야 할 정도로 열악한 인적, 재정적 여건에서도 학술활동과 출판, 현지답사 등을 통해 국학의 명맥을 이어왔고, 그 과정에서 귀중한 국학 자료 확보와 연구성과들을 축적해왔다.

또한 2014년부터 시작된 연례 중국지역 답사는 올해도 이어져 ‘발해연안, 위만조선, 고구려’ 유적지를 중심으로 8월 15일부터 4박 5일간 진행할 예정이다.

신운용 안중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국학연구소의 학문적 성과가 고스란히 담긴 『국학연구』 21권, 130편 이상의 논문을 분석한 결과 “열악한 환경과 반민족주의자들이 득세하는 국학연구소 전립자체가 불가사의하다”며 “현재의 한국 학계에서 이 정도의 연구 성과물을 내었다는 사실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역사투쟁의 결과물임을 말해준다”고 평가했다.

신운용 책임연구원은 “지난 30년간 국학의 개념에 충실한 기관은 국학연구소 밖에 없다”고 단언하고 “외세의 학문이 지배하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역사와 전통에 입각하여 연구되고 축적되어진 학문 제부분의 주체적인 학문성향인 국학(민족주의/단군.대종교)의 연구와 실천이라는 지향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성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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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든가 죽어라”…총부리에 로힝야는 떠밀렸다

[평화원정대] “떠나든가 죽어라”…총부리에 로힝야는 떠밀렸다

등록 :2018-07-21 05:00수정 :2018-07-21 10:31

 

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16) 로힝야 난민캠프

모래 해변 ‘콕스바자르’ 뒤편엔…
미얀마 정부군 방화·학살 격화하며
살기 위해 1년새 72만명 급속 유입
다급히 들어선 27개 캠프로 대혼잡
다른 나라 캠프에선 볼 수 없는 풍경

난민이 원주민 수의 갑절 수준
양쪽 거주지 구분할 철조망도 못세워
경작지·우물 부족하고 물가도 급증
“그나마 군인들 있어 양쪽 평화 유지…
그래도, 쫓아내선 문제 해결 안돼”
‘난민캠프’는 보통명사다. 지구별에서 억압과 분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지위를 잃을 가능성은 없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에서, 중동에서 <한겨레> 평화원정대가 본 난민캠프는 지독한 동어반복이었다. 철조망 울타리와 무장 군인은 집결하고, 수용하고, 격리하려는 목적이 있는 난민캠프의 일반적 전경이었다. 여기, 예외가 있다. 철조망도 없고, 난민과 원주민 거주지의 경계도 흐릿하다. 공존이 아니다. 난민은 계속 밀려들고 캠프는 증식을 거듭하면서 온전히 경계를 지을 겨를조차 없는 것이다. 미얀마를 탈출한 로힝야 난민들이 집단 거주하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하킴파라 캠프에서 지난 11일 맨발의 아이들이 좁은 흙길을 걷고 있다. 저 길은 고향에 닿지 않는다. 난민캠프의 반대말은 ‘귀환’이고, 그 조건절은 ‘평화가 회복되면’이다. 콕스바자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난민캠프’는 보통명사다. 지구별에서 억압과 분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지위를 잃을 가능성은 없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에서, 중동에서 <한겨레> 평화원정대가 본 난민캠프는 지독한 동어반복이었다. 철조망 울타리와 무장 군인은 집결하고, 수용하고, 격리하려는 목적이 있는 난민캠프의 일반적 전경이었다. 여기, 예외가 있다. 철조망도 없고, 난민과 원주민 거주지의 경계도 흐릿하다. 공존이 아니다. 난민은 계속 밀려들고 캠프는 증식을 거듭하면서 온전히 경계를 지을 겨를조차 없는 것이다. 미얀마를 탈출한 로힝야 난민들이 집단 거주하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하킴파라 캠프에서 지난 11일 맨발의 아이들이 좁은 흙길을 걷고 있다. 저 길은 고향에 닿지 않는다. 난민캠프의 반대말은 ‘귀환’이고, 그 조건절은 ‘평화가 회복되면’이다. 콕스바자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겨레 창간 30돌 특별기획-평화원정대, 희망에서 널문까지> 인터렉티브 바로보기

 

 

난민캠프라면 나름 익숙해질 때도 됐다고 생각했다. 여태 난민캠프를 세 곳이나 거쳐온 터였다. 이탈리아 로마의 바오바브 캠프(<한겨레> 6월6일치)는 북아프리카 난민들이 빈 터를 점거한 곳이라 예외적이었지만, 유엔기구들이 설립·운영하는 우간다 카리안동고의 남수단 난민캠프(5월15일치)와 요르단 아즈라크의 시리아 난민캠프(6월27일치)는 밖에서 보는 첫 인상부터 비슷했다. 높은 철조망 울타리와 삼엄하게 무장한 군인들. 집결→수용→격리라는 뚜렷한 목적이 충실하게 반영된 두 캠프의 풍경은 그만큼 단단하게 ‘고착’돼 있었다.

 

지난 10일 오전 콕스바자르. 방글라데시의 ‘관광 수도’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긴 모래 해변의 도시에 우기의 먹구름을 비집고 뙤약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풍경으로 보여주는 평화란 이런 게 아닐까. 그러나 인도양을 뒤로하고 차로 1시간30분만 달리면 평화로운 풍경은 어느덧 가뭇없다. 모두 27개에 이른다는 로힝야 난민캠프의 초입. 탄압과 죽음을 피해 미얀마에서 국경을 넘은 로힝야족 90만여명이 둥지를 틀고 있다는데, 콕스바자르 해변은 물론 다른 어느 난민캠프도 연상작용을 일으키지 못했다. 아무 데에도 속하지 않는 풍경이었다.

 

10일(현지시각) 로힝야 난민촌을 향하는 길목인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힘차리 국립공원 근처 해변에서 주민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콕스바자르는 세계에서 모래 해변이 가장 긴, 방글라데시의 ‘관광 수도’로 불리는 휴양지다. 콕스바자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0일(현지시각) 로힝야 난민촌을 향하는 길목인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힘차리 국립공원 근처 해변에서 주민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콕스바자르는 세계에서 모래 해변이 가장 긴, 방글라데시의 ‘관광 수도’로 불리는 휴양지다. 콕스바자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캠프 일대 교통상황은 최악이었다. 얄미우리만치 한가운데만 살짝 포장된 길바닥은 넘쳐 흘러든 진흙으로 엉망이다. 캠프로 물자를 실어나르는 트럭과 ‘릭샤’라고 불리는 인력거, 방글라데시의 전동 인력거 ‘톰톰’이 마구 뒤얽혀 차는 가다 서기를 무한 반복한다. 도로 양옆으로 펼쳐진 논들 사이로 간혹 보이는 빈터에는 대나무 더미가 산을 이루고 있다. 난민들이 살 집을 지을 건축자재라고 했다. 어딜 가도 철조망은 없고, 방글라데시 원주민과 난민 거주지 사이의 구분도 뚜렷하지 않다. 집결→수용→격리라는 단계는 이곳 교통상황만큼 뒤얽혔다. 캠프는 다급하게 들어섰고, 여전히 증식 중이다.

 

미얀마 군대의 방화와 학살이 격화한 지난해 8월 하순 이후에만 72만명이 이곳으로 밀려왔다. 그들은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국경을 따라 흐르는 나프강을 넘어왔다. 상류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걸어서 건넜고, 하류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작은 배를 타고 건넜다. 올해 24살의 모하메드 토유브와 그의 가족, 일가친척 30명도 지난해 8월25일 배에 올랐다. 토유브는 전체 캠프 중간 지대 즈음인 자디무라 캠프에 1년 가까이 머물고 있다. 토유브는 “미얀마 군인들이 ‘너희들이 우리 군인과 경찰 19명을 죽였으니, 방글라데시로 가든가 아니면 여기서 죽어라’라고 했다. 그들은 사람이 있는 집 문을 잠그고 불을 질렀고 온 마을을 불태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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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든가 죽어라” 총부리에 모래알처럼 떠밀려…

 

시민권 없애놓고 박해 안한다고?
‘애초 라카인서 살았다 입증하라’
방글라데시-미얀마 정부 합의안
로힝야 “전제부터 모순” 귀환 거부

 

 

10일(현지시각)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를 오가는 길에 늘어선 차량들과 트럭, ‘릭샤’라고 불리는 인력거, 방글라데시의 전동 인력거 ‘톰톰’이 길게 늘어서 있다. 콕스바자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0일(현지시각)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를 오가는 길에 늘어선 차량들과 트럭, ‘릭샤’라고 불리는 인력거, 방글라데시의 전동 인력거 ‘톰톰’이 길게 늘어서 있다. 콕스바자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슬람을 믿는 로힝야족은 스스로를 1000년 이상 미얀마 서쪽 라카인주 북쪽 아라칸에서 살아온 소수민족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불교가 국교나 다름없는 미얀마 정부는 이들이 19세기 초반 방글라데시에서 국경을 넘어온 불법 이주자라고 규정한다. 미얀마 군부정권을 거치며 이들에 대한 공교육 및 공공 일자리 취업 기회가 제한된 데 이어 시민권까지 박탈당했다. 미얀마 정부군과 상대가 되지 않는 규모이지만, 일부 로힝야들은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을 결성해 저항했다. 이 와중에 지난해 8월 사건이 터지자 미얀마 정부군은 로힝야족을 상대로 대대적인 학살과 강제이주에 나섰다.

 

“다른 동네에 가려고 해도 미얀마 정부의 허가증을 받아야 했어요. 늦게 집에 돌아오면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가야 했고요. 무슨 일만 생기면 우릴 조사하는 바람에 여기저기 불려 다녔죠.” 토유브가 챙 없는 무슬림 모자 ‘투피’를 고쳐 쓰며 인상을 찌푸렸다. 토유브는 유니세프와 지역 교육단체 ‘공동체개발센터’(CODEC)가 함께 운영하는 비공인 학교 ‘아동친화공간’(CFS·child friendly space)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며 한달에 4860타카(6만5000원)를 받는다. 그는 “여긴 남의 나라지만 오히려 자유와 평화를 느낀다. 이번에 로힝야들이 워낙 많이 죽어서 라카인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급속한 난민의 유입은 이미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난민촌 확장 과정에서 기존 주민들이 경작지로 쓰던 국유지가 캠프 터로 수용되는가 하면 마실 물을 확보하려고 관정을 과도하게 뚫다 보니 주민들이 쓰던 우물이 말라버리는 일도 숱하다. 원주민으로선 삶을 팍팍하게 하는 일들뿐이다. 쿠투팔롱 캠프 입구 쪽에서 태어나 40년째 살며 건설현장에서 목수와 조적공 일을 하는 압둘 카림도 요즘 난민들 때문에 걱정이 많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12일 낮 캠프 앞에서 만난 카림은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지난 10일(현지시각)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 한 로힝야 난민이 배급받은 식량을 짊어져 옮기고 있다. 콕스바자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 10일(현지시각)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 한 로힝야 난민이 배급받은 식량을 짊어져 옮기고 있다. 콕스바자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가장 큰 문제는 지난해 8월 이후 물가가 많이 오른 거예요. 30타카(400원) 하던 쌀 1㎏이 1년 만에 40타카(534원)로 올랐어요. 여기저기 사람들로 북적이고, 교통 혼잡도 극심해졌고요. 주민들은 농사짓던 정부 땅이 사라졌으니 마음이 어떻겠어요.”

 

카림은 그나마 군인들이 캠프를 지키고 있어 이 정도 평화라도 유지된다고 믿는다. 그가 말하는 평화는 역설적이게도 난민의 평화가 아닌 원주민의 평화다. “원주민이 전체 난민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해, 군인들이 없어지면 되레 여기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지역 원주민은 35만여명에 불과하다. 두 남매의 아빠인 그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얼굴엔 불안감이 스며 있었다. 그런데도 카림은 난민들을 쫓아내는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믿었다. 문제가 확실히 해결돼 난민들이 웃으며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이곳 사람들이 얘기하는 ‘확실한 해결’이란 방글라데시 정부와 미얀마 정부가 이들 난민의 귀환 뒤 더는 박해를 받지 않으리라고 믿을 수 있도록 보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로힝야족 개인이 애초 라카인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면 돌아갈 수 있다는 두 나라의 최근 합의안에 로힝야들은 “미얀마 정부가 시민권을 없애놓고 이제 와 라카인에서의 존재증명을 하라는 것은 모순”이라며 귀환을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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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강 건너, 불에 탄 고향 “돌아가고 싶지 않아”

 

가장 필요한것? 오늘 밥 지을 땔감
방글라 정부 ‘나무 채집 금지’에
난민-원주민 사이 극심한 갈등
그나마 ‘무슬림’ 동질감이 완화시켜

 

“바로 저기가 내가 살던 마을”
군대가 970명 살해한 툴라톨리 등
떠나온 마을 잿더미로 변한지 오래
“남의 나라지만, 이곳에서 더 평화”

 

 

미얀마를 탈출한 로힝야 난민 아이들과 방글라데시 현지 아이들이 지난 10일(현지시각)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 있는 ‘마드라사’에서 함께 코란을 공부하고 있다. 마드라사는 이곳에서 무슬림 학교이자 예배당 구실을 한다. 콕스바자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미얀마를 탈출한 로힝야 난민 아이들과 방글라데시 현지 아이들이 지난 10일(현지시각)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 있는 ‘마드라사’에서 함께 코란을 공부하고 있다. 마드라사는 이곳에서 무슬림 학교이자 예배당 구실을 한다. 콕스바자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나마 원주민과 난민의 갈등을 완화해주는 것 가운데 하나는 다 같이 알라를 믿는다는 종교적 동질감이다. 평화원정대가 쿠투팔롱 캠프 초입에서 잠깐 멈추자 무슬림 학교이자 예배당인 ‘마드라사’에서 30대의 무하마드 가르사르미아가 뛰어나와 일행을 불렀다. 가르사르미아는 22명의 로힝야 아이들, 18명의 현지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하루에 12시간씩 코란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는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5년까지 함께 먹고 자는데, 한달에 한번 정도 집에 간다”며 “라카인에서 공부하다 쫓겨난 로힝야 아이들도 이곳에서 공부를 마무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드라사와 모스크는 캠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난민들에게 당장 필요한 건 오늘 하루 밥을 지을 장작이다. 이곳에 나무 말고 다른 연료는 없다. 하지만 난민들이 이 지역 야산의 나무를 싹쓸이하는 바람에 원주민들과 극심한 갈등을 빚자 방글라데시 정부는 나무 채집을 금지했다. 하킴파라 캠프에서 아이들 7명과 함께 사는 아메나 카툰(45)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묻자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답이 돌아왔다. “요리할 때 쓸 장작이다. 현지인들이 나무를 자르지 못하게 해 옆집에서 불 때면 같이 음식을 하거나 쌀을 팔아 장작을 산다.”

 

미얀마 디골톨리라는 마을에서 쌀농사를 짓던 카툰은 지난해 8월 탈출하다 남편과 오빠, 아들 등 5명의 가족을 잃었다. 툴라톨리에 이르렀을 때 미얀마 군인들이 피난 행렬을 가로막고 남성 12명을 따로 떼어내더니 총을 쏘고 불태워 죽였다. 툴라톨리는 최근 1년여간 미얀마 정부군이 가장 끔찍한 살해를 저지른 곳으로 꼽힌다. 국내 인권단체인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아디·ADI)이 지난해 12월부터 툴라톨리 마을 생존자들을 면접한 결과, 전체 구성원 1599명 가운데 60.7%에 이르는 970명이 미얀마 정부군에 살해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8월 미얀마를 탈출한 토유브(왼쪽)와 10년 전에 먼저 탈출한 주바일이 지난 10일(현지시각)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나프강 하류에서 강 건너 고향 쪽을 가리키고 있다. 콕스바자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해 8월 미얀마를 탈출한 토유브(왼쪽)와 10년 전에 먼저 탈출한 주바일이 지난 10일(현지시각)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나프강 하류에서 강 건너 고향 쪽을 가리키고 있다. 콕스바자르/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바로 저기예요. 저쪽이 제가 살던 마을이에요.”

 

평화원정대 차를 함께 타고 나프강 하류 쪽 테크나프 여객선 선착장에 내려 걷던 토엽이 강 건너편을 가리켰다. “지금은 학교 하나만 남고 다 불에 탔대요.” 2∼3㎞ 거리나 될까 하는 그곳 어딘지가 자신의 고향이라고 했다. 함께 선착장을 찾은 주바일(22)은 고향이 더 상류에 있다고 했다. 주바일은 토유브보다 나이는 두살 어리지만 이미 10년 전 강을 건너 난민캠프 경력은 훨씬 앞선다.

 

“미얀마에서 살 땐 군사정권이 시민권을 빼앗고 체류허가만 줬어요. 그다음엔 아이디 카드에 로힝야의 신분을 게스트라고 적더군요. 그 뒤엔 아이디 카드 자체를 없앴죠. 여기 와서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현지인이 아니니까요. 또래들 만나 큰 소리로 얘기하면 ‘너는 미얀마 사람이잖아. 조용히 해’라는 얘기를 듣곤 해요. 나는 왜 낮게 살아야 하는지 늘 슬프고 안타까워요.”

 

선착장 인터뷰는 오래가지 못했다. 난민인지 현지인인지 알 수 없는 사람 10여명이 평화원정대와 토유브, 주바일을 둘러쌌다.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난민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말을 던진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두 난민은 당황한 기색이다. “우리에게 왜 로힝야 말과 방글라데시 말을 섞어서 쓰냐며 뭐라고 하는 거예요.”

 

취재차량을 향해 발길을 옮기는 사이에도 하류의 나프강은 인도양을 향해 조용히 흘렀다. 저녁 물때를 맞아 강물과 바닷물이 뒤섞이는 드넓은 기수역은 강이면서 동시에 바다거나, 강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그 무엇처럼 보였다. 차로 1시간30분만 가면 세계에서 가장 긴 모래해변이 펼쳐진다.

 

콕스바자르/전종휘 유덕관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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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평화

 

로힝야 난민 야스민(15)이 지난 11일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난민캠프의 젊은 여성들 모임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적은 ‘한 장의 평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벵골어로 ‘학교’를 평화의 뜻으로 푼 야스민은 의사가 꿈이지만 부모의 반대로 고등학교 1학년 때 학업을 중단했다.  콕스바자르/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로힝야 난민 야스민(15)이 지난 11일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난민캠프의 젊은 여성들 모임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적은 ‘한 장의 평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벵골어로 ‘학교’를 평화의 뜻으로 푼 야스민은 의사가 꿈이지만 부모의 반대로 고등학교 1학년 때 학업을 중단했다. 콕스바자르/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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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종편 특혜 환수 이제 속도내나

과기부와 종편 의무전송 논의 협의체 구성.....2월 국회 업무보고서 "논의 시간 줄이겠다"송창한 기자 | 승인 2018.07.20 11:50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효성, 이하 방통위)가 종합편성채널과 관련해 방송통신발전기금 인상, 외주제작 의무편성 부과에 이어 의무전송제를 손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최근 의무전송제 개선과 관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협의체를 꾸렸으며 논의를 통해 연말까지 구체적인 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모습(연합뉴스)

종편 의무전송은 이른바 '종편 특혜' 중 가장 큰 특혜로 꼽힌다. 방통위의 최근 결정으로 종편에 대한 방발기금 징수율이 인상됐고 외주제작 편성의무가 부과될 전망이나 인상된 방발기금 징수율은 1.5%로 지상파와 비교해 여전히 낮게 책정되어 있고, 종편의 순수 외주제작 비율이 이미 지상파를 웃돌고 있어 방통위가 실질적으로 종편의 특혜를 환수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이 학자시절부터 줄곧 '종편 특혜 환수'를 강조해 온 만큼 4기 방통위가 실효성 있는 의무전송제 개선을 이뤄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의무전송은 공익적 채널에 한해 케이블, IPTV 등 유선방송 사업자에 채널을 의무 편성하는 것을 뜻한다. 종편 출범 당시 방통위는 다양성 구현을 이유로 방송법 시행령을 통해 종편4사에 의무전송제를 적용해왔는데, 이에 따라 종편은 별도의 플랫폼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전국송출망을 확보하는 한편 유료방송 사업자로부터 수신료까지 받아 '이중 특혜'라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지난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홍근 더불어 민주당 의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2~2016년까지 종편이 의무전송을 통해 유료방송사업자에게 받은 수신료는 1900억 원에 달한다. 방송법에 따라 지상파 의무전송채널로 지정돼있는 KBS1과 EBS는 유료방송 사업자로부터 수신료를 받지 않는다.

의무전송제 개선책으로 예상되는 결과는 종편 의무전송 채널의 축소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후보자 시절인 지난해 7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종편채널 4곳이 모두 의무전송채널인 것은 너무 많다"며 "자유시장 원칙을 따른다면 의무전송을 하면 안 된다. 한꺼번에 해지할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취임 후 관련 법 개정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후보시절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시민단체에 회신한 미디어 정책 답변서에서 "'동일 서비스 동일규제 원칙'(방송통신발전기본법 제5조 1항)에 따라 의무 재전송, 광고영업 등 과도한 특혜가 주어진 종합편성 채널에 대해 지상파 방송과 동일한 규제로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방통위가 매년 발표하는 방송사업자 시청점유율 산정 결과 자료에서도 최근 3년간 종편 4사는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 지상파 3사와는 달리 안정적인 시청점유율을 유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종편의 매체영향력이 안정권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종편 4사 중 제작비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JTBC의 경우 올해 결과에서 10%에 육박하는 시청점유율을 보이며 약진하기도 했다. 방통위는 최근 종편 방발기금을 인상하며 "종편은 과거와 달리 경영상황이 개선되고 매체 영향력이 확대됐다"고 인상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출범 초기와 달라진 종편의 위상 상승도 의무전송제 개선 등 특혜 환수의 이유로 꼽힌다. 매출과 매체영향력 측면에서 종편이 '자리를 잡았다'는 통계치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가 발표한 '2017 방송사업자 재산상황'자료에 따르면 전체 방송광고 매출이 2011년부터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는 반면, 종편4사의 광고매출은 전년대비 39% 급증한 4천 4억 원으로 집계됐다. 

다만 방통위의 '종편 특혜 환수'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지난 2월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방통위 업무보고 자리에서 "방통위는 12월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오랫동안 검토되고 논의된 사안으로 정치적 결단의 문제"라고 지적했고 이에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은 "논의되는 시간을 줄이도록 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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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후 첫 국정원 방문한 문 대통령 "정권에 충성 요구하지 않겠다"

서훈 원장으로부터 조직개편 결과 등 보고받아... 국정원에 4가지 약속 제시

18.07.20 21:02l최종 업데이트 18.07.20 21:29l

 

"국정원이 자랑스럽고,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4시께 국가정보원을 방문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이후 첫 방문으로 기관업무보고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과 2005년, 2007년에 각각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자격으로 국정원을 방문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기 전 국정원 청사에 설치된 '이름 없는 별' 석판 앞에서 묵념을 올렸다. '이름없는 별' 석판은 국가안보를 위해 이름없이 산화한 정보요원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모두 18개의 별이 새겨져 있다.

"적폐의 본산에서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
 

연설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을 찾아 업무중 순직한 국정원 직원을 기리는 '이름없는 별' 추모석에 앞에서 직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연설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을 찾아 업무중 순직한 국정원 직원을 기리는 '이름없는 별' 추모석에 앞에서 직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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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정원으로부터 1.2차에 걸친 조직개편 결과 등을 보고받은 뒤 "국정원이 자랑스럽고, 여러분이 자랑스럽다"라고 운을 떼며 '격려'와 '당부'의 발언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여러분의 국정원이 지금 한반도의 운명과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있다"라며 "여러분의 국정원이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성공시킨 주역이 되었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시기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 되었다"라고 치하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이제 국정원은 '적폐의 본산'으로 비판받던 기관에서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났다"라며 "평화를 위한 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을 가장 앞장서서 뒷받침해주고 있고, 국제사회로부터도 실력을 인정받는 기관이 되었다"라고 평가했다.

"여러분이 만들어낸 놀라운 변화다"라고 추켜세운 문 대통령은 '조직과 문화의 혁신'을 언급했다. 그는 "조직과 문화를 혁신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라며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런 아픔을 겪으면서도 국정원을 훌륭하게 개혁하고 있는 서훈 원장과 여러분에게 대통령으로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박수를 보낸다"라고 치하했다.

국정원에 약속한 네 가지... "정치로 오염시키는 일 없다"

이어 문 대통령은 "여러분이 충성해야 할 대상은 결코 대통령 개인이나 정권이 아니라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국가와 국민이다"라며 국가정보기관의 정치중립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 국정원을 방문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중앙 헌관에 설치된 '이름 없는 별' 조형물을 제막한 것이었다"라며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할지언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 이것이 바로 국정원의 본령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 본령을 지켜낼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지켜내는 것이 이 시대에 여러분과 내가 함께 해내야 할 과제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 ▲ 정권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지 않겠다 ▲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을 확실하게 보장하겠다 ▲ 국정원을 정치로 오염시키는 일은 다시 없다 등 네 가지를 약속했다.

"우리의 목표를 제도화해야... 국정원법 개정안 연내 통과해야"

또한 문 대통령은 "여러분도 지금까지 정말 잘 해주었다"라며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국내 정치정보 업무와 정치관여 행위에서 일체 손을 떼고, 대북정보와 해외정보에 역량을 집중해 명실상부한 국가정보기관, 최고의 역량을 갖춘 순수한 정보기관으로서 위상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목표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 목표를 대통령의 선의에만 맡길 수는 없다"라며 "정권이 바뀌어도 국정원의 위상이 달라지지 않도록 우리의 목표를 제도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정원법 개정안이 연내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달라"라고 주문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결코 여러분의 권한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금까지의 개혁 노력이 보여주었듯이 여러분 자신도, 국민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세계적인 정보기관으로 발전시키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북정보능력'과 '해외정보증력'을 강조했다. 먼저 문 대통령은 "새로운 국정원은 더욱 높아진 대북정보력으로 위기시에는 위기에 유능하게 대처하고, 대화시기에는 대화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라며 "실력있는 안보기관으로서 평화를 만들고 지키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더욱 발전된 해외정보능력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키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제적 번영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변화와 성취에 대통령으로서 각별한 고마움을 전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업무보고에서 국정원 간부진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업무보고에서 국정원 간부진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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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잘해온 것처럼 여러분 스스로 국정원의 개혁을 완성하는 주체가 되어 달라"라며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욱 뜨거운 열정과 조국을 향한 충성심으로 헌신해 줄 것을 믿는다"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여러분이 만든 변화와 성취에 대통령으로서 각별한 고마움을 전한다"라고 거듭 서훈 원장을 비롯한 간부들과 직원들을 치하했다.

이에 서훈 원장은 "개혁이 본궤도에 오르고, 여러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면서 직원들의 자신감과 자긍심도 커지고 있다"라며 "이번 대통령의 방문과 격려가 국정원 직원들의 원개혁과 발전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대한민국 안보와 평화·번영을 위해 더욱 헌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업무보고 행사가 끝난 뒤 원훈석 앞에서 서훈 원장과 함께 수령 57년의 소나무 한그루를 기념식수했다. '수령 57년'은 국정원 창설 연수(年數)를 상징한다.

"외부전문가·여성부서장 발탁해 조직 분위기 일신"

이에 앞서 국정원은 문 대통령에게 국내정보 부서 폐지, 준법지원관 제도 도입, 직무범위 벗어나는 조직 설치 금지, 외부전문가와 여성부서장 발탁 등 조직개편결과를 보고했다.

서훈 원장은 "지난 1년 과거의 잘못된 일과 관행을 해소하고, 국내정치와의 완전한 절연과 업무수행체제, 조직혁신에 주력해왔다"라며 "개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각오로 미래 정보 수요와 환경 변화에 대비하는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업무보고에서 "정부 출범 이후 국내정보 부서를 폐지하는 등 조직개편을 단행한 데 이어 위법 소지 업무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준법지원관 제도'를 도입하고, 직무범위를 벗어나는 부서 설치를 금지하는 등 후속조치를 지속 추진했다"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국가안보 선제대응형 정보체제 구축을 목표로 2차 조직개편을 완료했고, 해편된 부서인력은 해외, 북한, 방첨, 대테러 등 정보기관 본연의 분야로 재배치가 마무리됐다"라고 보고했다.

이어 조직운영과 관련, 국정원은 "능력과 헌신이라는 인사원칙에 따라 학연과 지연, 연공서열을 배제하고, 창설 이래 처음으로 외부전문가와 여성부서장을 발탁해 조직 분위기를 일신했고, 개인의 자율과 책임을 강화해 직원 스스로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근무환경 조성에 나서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세계질서 재편, 신안보 위협 증대, 개인·특정단체로 이뤄진 비국가행위자들의 부상, 4차 산업혁명 시대 본격화로 향후 20년 정보환경을 지배할 메가트렌드를 예측하고, 구체적인 미래 청사진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4월 관련 T/F를 만들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을 운영중이다"라고 보고했다.

서훈 원장은 "대북안보는 물론 장기적 관점에서 한반도 미래의 정보수요를 예측, 정보수집 인프라와 대외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영상·통신·사이버 등 기술개발을 강화하겠다"라며 "앞으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국익정보기관으로 거듭나 국민 기대에 부응하겠다"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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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 ‘비상계엄 선포문’, ‘계엄 포고문’ 작성해뒀다


청와대, 기무사 계엄령 ‘대비계획 세부자료’ 공개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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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0  1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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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오후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의 부속 문서인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공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청와대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의 부속 문서인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20일 공개했다. 구체적인 언론 통제와 시위 예상지역 전차.장갑차 투입, 국회 무력화 방안 등이 담긴 충격적인 내용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2시 청와대 춘추관 2층 브리핑룸에서 “'박근혜 정부의 기무사'가 작성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2017.03)」은 이미 언론에 공개된 바 있다”며 “그 문서에 딸린 「대비계획 세부자료」가 어제 (7월19일) 국방부를 통해 청와대의 국가안보실과 민정수석실에 제출되었다”고 확인했다.

또한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단계별 대응계획, 위수령, 계엄선포, 계엄시행 등 4가지 큰 제목아래 21개 항목, 총 67페이지로 작성되어 있다고 전했다.

이 자료에는 “계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보안유지 하에 신속한 계엄선 포, 계엄군의 주요 '목' 장악 등 선제적 조치여부가 계엄성공의 관건”이라고 적시돼 있고, ‘비상계엄 선포문’, ‘계엄 포고문’ 등도 이미 작성돼 있다.

단순한 계엄령 검토가 아닌 구체적 대비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대변인은 “79년 10.26 때, 그리고 80년, 과거 계엄령이 발표되었을 때의 과거 문건과 2017년 3월에 발표될 문건, 이게 다 같이 있다”고 확인했다.

김 대변인은 “통상의 계엄매뉴얼과 달리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추천하는 판단의 요소와 검토 결과가 포함돼 있다”며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판의 지휘.통제에 따르도록 지시하고 있으며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토록 조치하는 등 국정원 통제계획도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특히 계엄선포와 동시에 발표될 '언론, 출판, 공연, 전시물에 대한 사전검열 공고문'과 '각 언론사별 계엄사 요원 파견 계획'도 작성돼 있는데, '계엄사 보도검열단' 9개반을 편성해, 신문 가판, 방송.통신 원고, 간행물 견본, 영상제작품 원본을 제출받아 검열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구체적으로 KBS.CBS.YTN등 22개 방송, 조선일보.매일경제 등 26개 언론, 연합뉴스+동아닷컴 등 8개 통신사와 인터넷신문에 대해 통제요원을 편성하여 보도통제하도록 했고, 인터넷 포털 및 SNS차단, 유언비어 유포 통제 등의 방안까지 담겨 있어 구체성을 띠고 있다.

김 대변인은 “20대 여소야대 국회상황을 고려해 국회의 계엄해제 표결을 막기 위한 방법”도 포함돼 있다고 확인하고 “당정협의를 통해 여당의원들이 '계엄해제' 국회 의결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과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 계획까지 수립돼 있다고 밝혔다.

특히 계엄사령부가 “집회시위금지 및 반정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시 구속수사 등 엄정 처리 방침 경고문”을 발표한 후,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검거 후 사법 처리하여 의결정족수 미달을 유도”하는 내용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김 대변인은 “중요시설 494개소 및 집회예상지역 2개소(광화문, 여의도) 에 대해서는 기계화사단, 기갑여단 특전사 등으로 편성된 계 엄임무 수행군을 야간에 전차.장갑차 등을 이용하여 신속하게 투입하는 계획도 수립되어 있다”고 확인했다.

김 대변인은 “이 문건을 공개한 이유는 이 문건이 가지고 있는 중대성과 국민적 관심이 높은 만큼 국민에게 신속하게 공개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청와대는 이 문건의 '위법성과 실행계획 여부, 이 문건의 배포 단위’ 등에 대해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특수단이 이 문건을 확보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67쪽 분량의 ‘대비계획 세부자료’와 통상적인 매뉴얼이 담긴 ‘계엄실무편람’을 들고 나와 “이 매뉴얼과 이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라며 세부자료를 항목별로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주요 내용은 탄핵이 기각되었을 경우의 상황을 가정해서 나온 내용들”이라며 “국방부를 통해서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민정수석실이 제출을 받았다”고 확인했다.

아울러 “어제 청와대로 왔고, 어제 대통령께서 보셨다”며 “저에게 발표하라고 지시하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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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들, 자주시보 이창기기자 돕기 운동 진행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7/21 09:57
  • 수정일
    2018/07/21 09: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재미동포들, 자주시보 이창기기자 돕기 운동 진행
 
 
 
노길남 
기사입력: 2018/07/20 [16:58]  최종편집: ⓒ 자주시보
 
 

 

*편집자주: 본지 이창기 기자의 간암 투병 소식을 들은 재미동포들이 이창기 기자의 쾌유와 치료비 모금을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자주시보는 재미동포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민족통신 노길남 기자의 제안문과 재미동포들이 이창기 기자에게 보내는 응원의 글을 그대로 게재했습니다.

 

▲ 이창기 기자     ©자주시보

 

<민족통신>의 제안에 따라 재미동포들이 최근 간암3기 진단을 받고 집필을 중단한 채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이창기 <자주시보> 기자 돕기 운동에 나섰다.

손세영 <민족통신> 편집위원은 17일(미국 현지시각) 공지글을 통해 "민족통신은 <알권리 운동>에 앞장섰던 이창기 기자가 간암 3기로 사경을 헤멘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해외 동포들의 위로의 마음을 보내자고 여러분에게 위로 편지 혹은 성금을 통해 우리들의 마음을 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자주시보 이창기기자 돕기운동>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손 편집위원은 또 "그동안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국가보안법>을 구실로 언론의 사각지대를 조성하여 왔다. 다시 말하면 정부당국이 <알권리>를 빼았었던 것이다.이창기 기자는 <알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 왔던 민족언론인인 동시에 통일운동가였다. 그는 특히 북부조국 바로알기 위한 집필활동에 힘을 기울여왔다"며 "돌이켜보면 이창기 기자의 간암 3기는 지난 시기 한국 당국의 탄압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해내외 애국동포들은 그의 병환이 완쾌되도록 격려편지를 비롯하여 성금 등으로 위로하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고 호소했다.

재미동포들은 민족통신이 제기한 이창기 기자 돕기운동에 호응하여 이창기 기자를 격려하는 글과 성금을 보내왔다.

이준경 선생은 19일 "이창기 기자님의 쾌유를 빕니다. 자주시보는 온갖 탄압받으며 성장한 민족언론입니다. 빠른시일내 건강회복하시고 통일 위해 애쓰시는 모습 다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창기기자님 자주시보와 함께하겠습니다."라고 격려했다.

양은식 박사도 같은날 "민족통신을 통하여 이창기 기자님 입원소식 보고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6.15시대에 태어나서도 탄압을 받아야 하는 한국적 현실에 대하여 분노를 느껴왔습니다. 이 기자님의 병은 분단시대가 가져다 준 상처라고 봅니다. 그 동안 용감한 필치로 국내외 동포들에게 감동과 감명을 준 애국적 기자님이 하루 속히 완쾌하도록 기원하면서 저의 작은 마음을 보냅니다."라고 밝혔다.

이창기 기자는 이에 "이준경 선생님 감사하고 그리고 양은식 박사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민족통신의 기사를 보고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제대로 활동도 못하면서 건강도 잘 챙기지 못한 저를 질책할 대신에 손세영 선생님, 노길남 선생님께서 그렇게 따뜻하게 걱정해주시고 또 도와주시려 애쓰시는 마음에 큰 감동을 금할 수 없습니다. 꼭 나아서 내년엔 건강한 모습으로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라고 감사의 글을 올렸다.   

황규식 선생은 20일 "요즘 세상에 국내에서 이창기 주필처럼 목숨 내놓고 투쟁하여 온 언론인은 보지 못했습니다. 건강회복을 간절히 빕니다. 경제 여유가 없지만 작은 성금이지만 보냅니다."라고 성원했다.

강은홍 목사도 같은날 "이창기 기자님 힘내세요, 건강이 회복되어서 예전처럼 뛰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민족통신에 성금을 보내면서 작은 정성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안에 평안을 빕니다. 뉴욕 오위고에서 목사 강은홍 드립니다."라고 격려했다.

<자주시보>에 개벽예감을 연재하고 있는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은 20일 아침 "지난 18년을 하루같이 자주언론창달에 전심전력한 진짜배기 언론인. 저주스런 '국가보안법'이라는 것 때문에 쇠창살에 갇혔어도 자주언론의 길을 꿋꿋이 지킨 투사. 검은 것을 검다고 하고, 흰 것을 희다고 하는 진실 앞에서 별처럼 빛나던 동지의 눈빛. 그런 그가 지금 병마와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통일여명이 밝아온 우리 시대의 우렁찬 음성이 그를 자주언론의 현장으로 부르고 있으며, 그를 아끼는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그를 병상에서 반드시 일으켜세울 것입니다. 병상에서 일어나 우리 앞에 다시 서는 날, 그는 더 큰 목소리로 외칠 것입니다. 우리는 기어이 이겼노라고..."라고 이창기 기자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최기봉 선생도 같은날 뉴욕에서 "이창기 기자님 병마와 투쟁한다는 소식을 들었읍니다. 몇년전 뉴욕을 방문하였을 때 첫인상이 조국통일과 정의에 대한 생각이 매우 강렬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참고로 나는 쑥뜸을 오래한 사람으로서 간암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1.생수를 자주 드십시오. 2.쑥뜸을 뜨십시오. 삼음교 단전혈 아시혈(간부위 둔한 아픔이 있는 곳) 쌀알 크기 쑥으로 매일 한번 30일간 혼자서 가능합니다. 자신을 믿고 자연치유력의 기적을 믿으시면 몸과 마음의 변화가 올 것입니다."라고 격려했다.

유태영 박사는 뉴욕 해링톤 파크에서 "이창기주필께, 나는 이 주필을 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기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만나면 그토록 뜨거운 가슴으로 선배들을 위해주는 당신의 애국적 자세에 대해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에 한호석 박사의 위로글이 나의 마음을 대신해 줍니다. 한박사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찡했습니다. 어제 나는 나이 탓인지 자동차 접촉사고를 내는 바람에 갑자기 뜻밖에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쾌유를 기원하는 뜻에서 작은 성금이나마 보냅니다."라고 위로했다.

민족통신은 "19일 현재 양은식 500불, 손세영 500불, 노길남 500불, 한호석 500불, 송학삼 300불, 윤길상 300불, 박기식 200불, 오인동 200불, 백승배 150불, 김백호 100불, 김중산 100불, 강은홍 100불, 하용진 100불, 황규식 50불, 이선명 50불, 최기봉 50불, 유태영 200불 총계3,900불 성금이 답지했다"며 앞으로 서너차례 모금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세영 <민족통신> 편집위원의 '이창기 기자 돕기운동' 제안문은 다음과 같다.

민족통신은 한국의 진정한 민족언론인으로 활약하면서 3차례나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모진 탄압 속에서도 오로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정론을 펼쳐온<자주시보>(자주민보의 후신)의 이창기 주필이 간암3기로 집필활동을 중단하고 치료를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한국의 관계당국은 2013년 11월 자주민보의 등록 취소를 결의하였습니다. 그러나2014년 1월 현재 정상적으로 운영되어 오다가  2015년 2월 24일 정간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여 폐간되었습니다. 대법원 판결 직전 같은 발행인 명의의 자주일보(自主日報)로 사실상 재창간하였습니다. 그러나 당국은 또다시  자주일보에 대해 발행정지 3개월 처분을 내리자 전라남도 장성군에 거주하는 농민운동가 홍번 선생의  명의로 발행인과 등록지역을 바꾸어 자주시보(自主時報)라는 이름으로 다시 재창간했습니다.

그동안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국가보안법>을 구실로 언론의 사각지대를 조성하여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부당국이 <알권리>를 빼았었던 것입니다.이창기 기자는 <알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 왔던 민족언론인인 동시에 통일운동가였습니다. 그는 특히 북부조국 바로알기 위한 집필활동에 힘을 기울여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창기 기자의 간암 3기는 지난 시기 한국 당국의 탄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내외 애국동포들은 그의 병환이 완쾌되도록 격려편지를 비롯하여 성금 등으로 위로하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기 자주민보, 그리고 자주시보가 탄압을 받았을 당시에도 이 언론을 옹호하며 해내외 동포들의 알권리를 위해 <자주시보 이창기기자 돕기운동>을 전개한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알권리 운동>에 앞장섰던 이창기 기자가 간암 3기로 사경을 헤멘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해외 동포들의 위로의 마음을 보내자고 여러분에게 위로 편지 혹은 성금을 통해 우리들의 마음을 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여기에 <자주시보 이창기기자 돕기운동>을 제기하는 바입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간절히 바랍니다.

*연락문의: 213-507-4444, 혹은 213-458-2245
*우편주소: 민족통신 연락처
주소: 2572 W. 5th St. Los Angeles, CA90057, U.S.A.
E-mail: editorminjoktongshin@gmail.com
sysohn12@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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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생존장병’ 연구 뒷얘기…“그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등록 :2018-07-20 05:00수정 :2018-07-20 08:29

 

천안함, 살아남은 자의 고통
③ 국가가 이들의 버팀목 돼야
그들의 깊은 상처, 사회가 함께 감당해줄 순 없을까요
천안함 사건 한달 만인 2010년 4월26일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 사령부에 마련된 희생자 대표합동분향소를 찾은 생존장병들이 밤 9시22분 사고 시각에 맞춰 묵념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천안함 사건 한달 만인 2010년 4월26일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 사령부에 마련된 희생자 대표합동분향소를 찾은 생존장병들이 밤 9시22분 사고 시각에 맞춰 묵념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많이 망설였습니다. 천안함 생존장병들의 경험과 고통에 대한 연구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될까. 결국 또 그 소모적이고 지루한 정치적 싸움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사건만 있고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논쟁으로 이 사람들을 더 아프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두려웠습니다.

 

부조리한 사회로 인해 상처받은 여러 사람에 대한 연구를 해왔습니다. 그들의 삶은 각기 다른 이유로 힘겨웠지만, 그 주변에는 고통을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안함 생존장병들 옆에는 누구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절단된 배만을 바라보고,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이 겪었을 고통은 보지 않았습니다.

 

 

김승섭 교수의 ‘연구 뒷얘기’

 

 

3월이면 정치인·기자가 찾아와
벚꽃 질 무렵 이야기는 사라지고
현실은 바뀌지 않았답니다

 

‘천안함 청소하라’ 상상 못할 명령
수면장애, 또래 남성의 83배 달해
유공자도 안되고 보상도 못받고

 

이제는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공동체 위한 희생과 아픔에
국가가 마땅히 보답해야 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천안함 생존장병들의 아픔에 대한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어떤 이들은 천안함이 가라앉은 이유에 대해 여러 질문을 하겠지요. 그러나 그 침몰의 원인이 무엇이건, 자신의 젊음을 바쳐 국가를 지키다 상처 입은 이들에 대해 함부로 말할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왜 6월에 오셨어요?”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당시 하사였던 정주현씨가 연구팀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매년 3월이면 정치인과 기자들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무언가 바뀔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벚꽃이 질 때쯤엔 정치인과 찍은 사진만 남아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는 사라졌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난 세월, 불신은 쌓여만 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을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생존장병 24명 중 16명(66.6%)이 “매우 조심해야 한다”라고 답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장병들도 처음에는 같은 이유로 연구팀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말을 믿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거지요.

 

설문조사를 담당하는 제가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연구나 성 소수자 건강연구를 진행했던 연구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 망설이는 것 같았습니다.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이 천안함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불신이 깊었으니까요. 설문을 시작하고 나서 연구팀은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들의 상처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질문하고 정확하게 분석할 테니, 그 이야기를 나눠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습니다. 그 편지가 천안함 장병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메신저 방에 공유되고 나서, 많은 이들이 설문조사에 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군에서 전역한 32명의 천안함 생존장병 중 24명이 응답한 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설문조사를 처음 기획할 때는 천안함 장병들이 얼마나 아픈지 보여줄 수 있는 건강 비교 연구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연구팀은 장병들을 직접 만나 심층인터뷰를 진행하며, 새로운 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생존장병들이 최소한 군에 있는 동안에는 보호받았을 거라 생각했던 저희 짐작이 틀렸던 것입니다. 군대에서 장병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고, 그 고통을 숫자로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설문 문항을 만드는 일이 이 연구의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연구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누군가는 영웅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양심 고백’을 요구하는 동안, 생존장병들은 군대에서 패잔병이라고 비난당하고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결과를 보며 가장 괴로웠던 장면은 8명(33.3%)의 장병이 상관으로부터 ‘천안함을 청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답한 부분입니다. 만약 세월호 생존학생에게 인양된 배를 청소하라고 누군가 시켰다면 그건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상상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대한민국 군대는 ‘트라우마’를 겪은 ‘영웅’들을 존중하지도 돌보지도 않았습니다.

 

천안함 생존장병 김정원(29)씨가 복용하고 있는 약봉투, 그는 사고 뒤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으로 꾸준히 약을 복용한다고 했다. 김천/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hani.co.kr
천안함 생존장병 김정원(29)씨가 복용하고 있는 약봉투, 그는 사고 뒤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으로 꾸준히 약을 복용한다고 했다. 김천/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hani.co.kr
설문에 응답한 장병 중 21명(87.5%)이 2010년 이후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12명(50%)이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생각했다고 응답했습니다. 둘 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보다도 6배 이상 높은 수치입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미군들은 전쟁이 끝나고 안정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천안함 생존장병은 돌아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상처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외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편히 서 있을 자리는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

 

‘차가웠던 바다에서 있었던 것보다 더 차가운 현실’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도 잠을 편히 잘 수 없었습니다. 생존장병 14명(58.3%)이 지난 1년 동안 수면 장애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같은 나이대 한국 남성과 비교할 때 83배 높은 수치입니다. 8.3배가 아니라, 83배입니다. 매일같이 술을 마셔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생존장병 중 16.6%가 지난 한 해 동안 지방간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같은 나이 일반 남성의 지방간 진단 유병률은 1%가 되지 않습니다.

 

생존장병들은 국가로부터 어떠한 보상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국민 성금으로 만들어진 천안함 재단에서 1인당 500만원을 받은 게 끝이었습니다. 정신과 상담치료조차 자신의 돈으로 받고 있었습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보상금을 얼마 받았냐고 묻는 주변 사람들은 그 대답을 믿지 않았습니다.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주변에 알음알음 물어 신청했지만, 21명의 신청자 중 6명 만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었습니다. 왜 떨어졌는지 물었을 때, 가장 흔한 대답 중 하나는 ‘몸에 흔적이 남는 신체적 외상이 아닌 경우 국가유공자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 속에 있는 상처를 세상에 보여주며 이렇게 힘들다고 말할 길이 없었습니다. 국가유공자가 되기 위해 ‘구걸’하듯 부탁해야 하는 그 과정이 싫어 신청을 포기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하고 보상금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돈으로 치료받아야 하는 그들이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은 힘겨웠습니다. 1년 평균 세전 소득이 2000만원이 안 되는 경제적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9명(37.5%)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와 비교해 천안함 장병의 보상금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며 세월호 피해자들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정부가 결정한 두 사건의 보상금을 비교하며 세월호 피해자들을 욕하는 일이 과연 천안함 생존장병들의 삶을 개선하고 그 명예를 회복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요? 아닐 겁니다. 그건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고통을 증폭시키고, 천안함 장병들의 아픔을 호기심 어린 화젯거리로 소비하는 일입니다. 그런 비교가 천안함과 세월호의 아픔을 바라보는 전부라면, 한국사회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월호 참사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동시에 이토록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생존장병들이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했던 그들이 사회에서 마땅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을 찾는 것입니다.

 

2010년 3월26일 서해 앞바다에서 배가 갈라지던 그 날, 당시 병장이었던 최광수씨는 배의 앞쪽에서 뒤쪽이 가라앉은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이후 그는 버스를 탈 때마다 힘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탔던 배의 후미가 사라진 경험 때문에, 등 뒤에 아무것도 없이 공간이 비어있는 게 불안하고 두려웠던 것이지요.

 

연구를 진행하며,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국사회가 최광수씨 등 뒤의 빈 공간을 채워줄 수는 없을까. 당신이 대한민국에서 군인으로 일해 준 시간에 감사히 생각한다고 그리고 홀로 그 상처를 감당하게 해서 미안했다고, 부족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당신의 등 뒤에 서서 무너지지 않는 장벽이 되겠다고 말하면서요.

 

지금은 2018년입니다. 그렇게 해볼 수 없을까요.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 교수
 
연재천안함, 살아남은 자의 고통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4109.html?_fr=mt1#csidx6ddc0ca2b5c0febbddd6b59786cd1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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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국가 책임 판결에도 ‘배상금’ 더 부각한 언론

[아침신문 솎아보기] 경비정장 위법행위만 인정 ‘컨트롤타워 미작동’ 부정… 조선‧중앙 제목은 배상금액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2018년 07월 20일 금요일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정부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정부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많은 언론은 참사 발생 뒤 4년3개월이 지나서야 나온 법원 판결에 당시 해양경찰의 책임만 인정하고 재난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아 구조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의 근본적인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며 ‘반쪽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재판장 이상현)는 “청해진해운 임직원들이 화물 과적과 고박 불량 상태로 출항시키고 선장 및 선원들이 승객 구호 없이 퇴선한 행위로 희생자들이 사망에 이르게 됐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가에 대해서는 “해경 123정장이 승객들에 대한 퇴선 조처로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위법행위”라고만 책임을 물었다. 유족들이 국가 책임이라고 주장한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 미작동’이나 ‘구조본부의 부적절한 상황 지휘’ 등에 대해서는 “직무상 위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사망과도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80720_동아일보_‘세월호 부실대응’ 국가 지휘체계 아닌 해경 과실만 인정_사회 12면.jpg
 

한겨레는 “정부의 구체적 책임을 밝혀내기 위해 고통 속에서 4년여를 버텨온 유가족들의 기대나 국민들의 법 감정에 비춰보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늦게까지 침실에 머무르는 등 ‘7시간의 미스터리’를 둘러싸고 국민적 비난이 들끓었던 현실과도 한참이나 동떨어진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고시각 조작에 이은 청와대의 조직적 은폐 등으로 ‘7시간’의 진실과 책임은 탄핵 사유와 형사판결문에 이어 민사판결에서도 빠지게 됐다”면서 “이번 판결이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 컨트롤타워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데 악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의 추가 조사를 통해 정부의 책임이 제대로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도 사설(국가책임 인정하면서 경비정만 탓한 세월호 배상 ‘반쪽 판결’)에서 “무엇보다 너무도 마땅하고 당연한 판결이 내려지는데 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는 게 안타깝다. 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잘못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거나 출동한 경비정에만 물은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한국일보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뿐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까지 총출동해 보고 시간 조작 등 책임을 은폐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 후 정부는 진상 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유족들을 사찰하는가 하면,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강제 해산시켰다”며 “유족들의 소송 제기는 단순히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달라는 게 아니라 바로 이런 점을 밝혀 달라는 요구였다”고 전했다.

한국일보는 “소송에 나선 유족들은 국가의 책임을 법적으로 판단받겠다며 정부가 지급한 배상금을 거부해 왔다”며 “이런 이유로 재판에선 배상 액수보다 국가의 책임 인정 여부에 관심이 쏠렸지만 이번 판결은 유족들의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실망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20180720_한국일보_[사설] 국가책임 인정하면서 경비정만 탓한 세월호 배상 ‘반쪽 판결’_사설_칼럼 31면.jpg
 

이처럼 세월호 유족들이 배상금을 받기 위해 소송한 게 아닌데도 어김없이 이번에도 배상금을 부각해 보도한 언론이 있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다.

 

조선일보의 세월호 참사 국가 책임 인정과 관련한 기사 제목은 “법원 ‘세월호, 국가 일부 책임’… 희생자 가족에 6억 배상”이었다. 부제도 “손해배상금 723억원 지급 판결… 소송 안 한 가족들은 평균 4억 수령”이라고 달았다. 조선일보는 법원이 국가의 어떤 책임을 인정했는지 보다 유족이 평균 ‘6억 원’을 받는 데 관심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법원이 ‘구조본부의 부적절한 상황 지휘’와 ‘국가재난 컨트롤타워 미작동’ 등을 “희생자들의 사망과 인과관계 없다”고 판단한 점에 대한 지적은 전혀 없고, “2심은 정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지금보다 더 큰 책임을 묻는 재판이 되길 기대한다”는 유경근 4·16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말만 마지막에 덧붙였다.  

 

20180720_조선일보_법원 _세월호, 국가 일부 책임”… 희생자 가족에 6억 배상_사회 12면.jpg
 

중앙일보도 1면 “‘세월호 국가책임’ 희생자 1인당 위자료 2억 판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단원고 희생자 부모에게 지급되는 전체 배상금과 별로도 국민성금으로 위로지원금이 얼마나 지원되는지까지 일일이 나열해 설명했다.

 

중앙일보는 6면에서도 “법원은 그동안 형사재판을 통해 세월호 선장과 선원, 세월호 구조에 나섰던 목포 해경 123정 정장 등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을 유죄로 확정했다”는 내용을 전하면서도 제목은 “법원, 세월호 가족 위자료 따로 산정 … 부모 각각 4000만원”으로 뽑았다.  

중앙일보는 이번 민사소송 결과와 3년 전 4·16 세월호 참사 배상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책정한 배상금을 비교하며 배상금 합계가 약 1억8000만 원 늘었다고 보도했다.

 

20180720_경향신문_304명의 희생자… 국가 책임자는 1명뿐_종합 02면.jpg
 

반면 한겨레는 “(희생자) 위자료는 교통사고를 기준으로 해 논란이 됐던 ‘4·16 세월호 참사 배상 및 보상 심의위원회’의 위자료(1억 원)보다 높다”며 “대법원이 지난 2016년 대형재난사고의 기본 위자료를 2억 원으로 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대법원의 위자료 산정방안을 보면, 대형재난사고 위자료는 고의적 범죄행위로 인한 사고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2배인 4억 원까지 줄 수 있도록 했다”며 “세월호 참사가 희생자가 304명이나 달했던 전례가 없는 대형재난사고인 점을 고려하면 위자료 액수마저도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세월호 참사 책임과 무관한 국민성금을 위자료 액수 산정에 고려했다. 한겨레는 ‘세월호 사고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이 중대하고 광범위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필요가 큰 점 등 일반적인 사고와 다른 세월호 사고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했다는 재판부의 입장이 무색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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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노조 테이저건 사건’으로 본 경찰의 공무집행, 무엇이 문제일까?

노조·시민사회·인권단체 “정당한 노조활동 파악조차 없이 무리한 공무집행”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8-07-19 19:50:15
수정 2018-07-19 21: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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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택배연대노조는 18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파업집회를 열고 CJ대한통운에 ‘물량 빼돌리기 사태’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전국택배연대노조는 18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파업집회를 열고 CJ대한통운에 ‘물량 빼돌리기 사태’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민중의소리
 

최근 발생한 경찰의 ‘택배노조 테이저건’ 사건과 관련해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과도한 공무집행”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노조는 경찰이 노사관계에서 파생된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업무방해”라는 주장만 받아들여 공무집행한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합리적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현장 경찰관의 합리적 판단 하에 집행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의 반발에도 경찰이 이같은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최근 발생한 여러 사건으로 경찰관들의 안전 보장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지난 8일 난동신고로 출동한 故김선현 경감은 범인이 휘두르는 흉기에 찔려 순직했다. 만연한 주취 폭력 때문에 현장 경찰관이 고통을 호소하는 국민청원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것도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난동자의 폭행 위협이 뚜렷한 상황과 택배 노조 노동자의 저항을 동일하게 보거나, 택배노조 건을 단순 공권력 침해사례로 바라보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노동자들에 대한 심각한 권리침해로 이어진다는 입장이다.

택배노조 조합원의 경우엔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비폭력적 방법으로 저항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시민사회는 아무 폭력도 행사하지 않고 아무도 위협하지 않은 노동자를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테이저건으로 제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해서 다산인권센터의 아샤 활동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드러난 영상자료와 입장 등을 토대로 판단되는 사실관계를 봤을 때, 그 상황이 테이저건을 사용할 만한 상황이었는지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또 앞선 경찰의 직무집행 사례를 보면, 노동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행하는 노조활동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된다.”

 
지난 7일 경찰은 대체배송 택배차량 밑에 들어가 있는 택배노조 조합원을 테이저건으로 진압해 연행했다.
지난 7일 경찰은 대체배송 택배차량 밑에 들어가 있는 택배노조 조합원을 테이저건으로 진압해 연행했다.ⓒ민중의소리

테이저 건 제압당한 조합원
“잡고만 있었다” 억울함 토로

18일 오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만난 전국택배연대노조 조합원 박경로씨는 “차 밑으로 들어가서 (차 하단부 프레임을) 꽉 잡고만 있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앞서 지난 7일 울산남부경찰서 신정지구대는 울산시 남구 달동 주공3단지 주차장에서 “내 배송물량을 돌려 달라”며 CJ대한통운의 대체배송을 저지하는 택배연대노조 조합원 박씨를 테이저건으로 제압했다.

당시 박씨는 CJ대한통운이 빼돌린 자신의 택배물량을 찾아 인근 터미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6월 30일 하루 경고파업 이후 회사가 노조 조합원들의 택배 물량을 모두 빼돌려 대체배송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대체배송 중이던 사측 택배기사를 만났고, 동료 조합원들과 대체배송을 저지했다. 그러자 대체배송 택배기사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노조 조합원들을 연행한 것이다.

노조의 파업은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행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파업 중엔 임금이 나오지 않고 회사의 강경대응 등이 우려되기에 노동자에겐 특히 위험부담이 크다. 그런데 회사가 파업의 대응책으로 대체인력을 사용하면 파업이 아무 소용없게 된다. 이런 이유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선 ‘사용자는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노조는 박씨의 저지 행동이 정당한 항의행동이었다고 주장한다. 대체배송이 불법이고,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행동은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박씨에 따르면, 당시 그는 대체배송을 저지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현장 경찰관에게 충분히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업무방해”라는 대체배송 택배기사의 말만 듣고 조합원을 연행했다고 전했다.

상황이 억울했던 박씨는 대체배송 택배차량 밑으로 들어갔고, 차량 하단 프레임을 붙잡으며 버텼다. 그러자 3명의 경찰이 달라붙어 수갑을 채우고 강제로 끌어 당겼으며, 그래도 안 되자 박씨의 복부에 테이저건을 사용했다. 정신을 잃은 박씨는 차량 밑에서 끌려나왔다. 경찰은 박씨의 얼굴을 무릎으로 짓누른 채 수갑을 채웠다.

또 정신이 돌아온 박씨가 별 저항 없이 “내 발로 가겠다”고 말하자, 한 번 더 등에 테이저건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연행 과정에서 발길질이나, 경찰을 위협할만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개된 연행과정 영상에서도 박씨가 경찰을 위협하는 장면은 찾아 볼 수 없었다.

CJ대한통운의 공짜노동강요, 불법적 노조 죽이기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CJ대한통운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공짜노동 분류작업 개선과 협상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CJ대한통운의 공짜노동강요, 불법적 노조 죽이기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CJ대한통운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공짜노동 분류작업 개선과 협상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임화영 기자

“적법한 직무집행” VS “폭력적 체포”

노조와 지역 시민사회가 울산 경찰의 택배노조 연행과정에 문제점을 지적하자, 경찰은 곧바로 입장을 내고 “과잉대응이라는 주장은 공권력에 대한 의도적인 무력화 시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사기를 저하하는 무책임한 주장을 자제해 달라”고 덧붙였다. 18일 울산경찰청 관계자는 “적법한 직무집행이었다는 입장은 변함없다”고 밝혔다.

경찰이 이같은 판단을 한 근거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10조의2(경찰장구의 사용)에 있다. 테이저건은 경찰무기가 아닌 경찰장구로 분류되는데, 관련법에는 ‘공무집행에 대해 항거할 경우,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합리적 판단’이라는 애매한 조항이 있긴 하지만, 현장 경찰관이 복합적으로 판단한 뒤 상황에 맞게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와 시민사회, 인권단체 관계자들의 생각은 크게 달랐다.

노조와 지역 시민사회는 “원청이 노동조합의 적법한 쟁의행위와 업무복귀를 방해하기 위해 실행하고 있는 불법대체배송에 대해 정당한 항의행위를 하고 있었다”며 “그러나 출동한 경찰관들은 그러한 사실에 대해 충분히 확인하지도 않은 채 폭력적인 방법으로 체포부터 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다산인권센터 아샤 활동가는 “얼마 전 경기지역 건설노조 집회 현장에서도 폭행신고가 들어오자, 경찰이 구체적인 정황과 상황파악 없이 현행범 체포하는 경우가 있었고, 1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며 “이런 사례들을 봤을 때, 노동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행하는 노조활동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언론에서 주취자의 폭력 등을 언급하며 공권력 강화 필요성을 제기하지만, 단순히 ‘공권력 강화’로 이 문제를 풀어선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동안 과도한 공권력 행사로 인해 피해를 본 무고한 시민들도 많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시민사회는 경찰의 모호한 테이저건 사용 매뉴얼과 필요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관련해서 한 경찰 고위간부는 “경찰관 피해도 그렇고, 비슷한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음에 관련 교육을 확대시킬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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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보안검문소 공격에 의해 4명 사망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7/20 10:14
  • 수정일
    2018/07/20 10:1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사우디 수도 리야드 보안검문소 공격으로 4명 사망
 
번역, 기사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8/07/20 [09:33]  최종편집: ⓒ 자주시보
 
 

사우디아라비아의 보안검문소 공격에 의해 4명 사망

 

이제 사우디아라비아 수도인 리야드에서까지 리야드군을 상대로 공격을 가하고 있다. 물론 그 대상이 보안검문소라는 극히 제한적이고 미미하기는 하지만 바로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전투기나 무인기 또는 미사일 공격이 아닌 개별적인 공격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심상치가 않다. 이는 2015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을 전격적으로 침공하여 아직까지도 그 전쟁을 지속하며, 수많은 예멘 인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데 대한 반감이 극대화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보여 진다. 결국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중동에서 사우디에 대한 반감이 증대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이란관영 파르스통신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보안검문소 공격에 의해 4명 사망”라는 제목으로 관련 사실은 전하였다. 파르스통신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북부 까씸 지방 부레이다흐 마을에 있는 보안검문소를 차량으로 공격을 가했으며, 일요일 보안요원이 자리를 비운 뒤에 이어서 총격전이 벌어졌고, 왕실 내무부에 따르면 그 총격전으로 한 명의 방글라데시 민간인과 검문소 공격자 두 명이 죽었다.”다고 검문소 공격 사실을 자세히 보도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인 리야드에 있는 보안검문소에 대한 공격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에서는 테러분자들에 의해 공격이 있었다고 공식 발표를 하였다. 파르스통신은 “까씸 지역의 부레이다흐-따리삐야흐 거리의 한 보안검문소가 일요일 오후에 차량을 타고 돌진한 세 명의 테러분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사우디왕국의 내무부장관이 일요일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말하였으며, “두 명의 테러분자들이 죽었으며, 세 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보도한 중동소식지를 인용하여 관련 사실을 전하였다.

 

파르스통신은 “세 명의 테러분자들이 알-까씸의 부레이다흐-따리삐야흐 거리의 한 보안검문소를 공격하였으며, 그 보안검문소 병사들은 공격을 받을 직후 두 명의 테러분자들을 사살하고 세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보도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통신사인 SPA의 보도를 인용하여 전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발표한 성명서는 그 사건으로 슐레이만 아브데라지즈 아브델 라띠쁘 중사가 사망하였으며, 공격 사건이 발생하게 된데 대해 조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또 그 사건으로 방글라데시 주민 한 명이 죽었지만 그의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다고 성명서는 발표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중심부인 리야드에서 비록 미미하지만 일반인들이나 장소가 아닌 군 검문소 공격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반감을 가진 나라들이나 세력들이 존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그 원인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에서 패자가 되기 위해 서방연합세력들의 괴뢰가 되어 이슬람 형제국가들 즉 예멘을 침략하고 수리아전에 참전하여 수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인관관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마도 현 중동에서 벌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침략행위로 인해 결국에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무너져내릴 개연성이 대단히 높다. 그 조짐이 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재정위기이다. 이제라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재정신을 차리고 중동의 이슬람 형제국들과 평화롭게 안정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번역문 전문 -----

 

2018년 7월 9일, 1시 36분, 월요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보안검문소 공격에 의해 4명 사망

▲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북부 까씸 지방 부레이다흐 마을에 있는 보안검문소를 차량으로 공격을 가했으며, 일요일 보안요원이 자리를 비운 뒤에 이어서 총격전이 벌어졌고, 왕실 내무부에 따르면 그 총격전으로 한 명의 방글라데시 민간인과 검문소 공격자 두 명이 죽었다. 이와 같은 사우디 수도 리야드 군 보안검문소에 대한 공격은 비록 미미하지만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반감 더 나아가서 증오심을 품고 있는 현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 해주는 것이다.     ©이용섭 기자

테헤란 (파르스통신)-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북부 까씸 지방 부레이다흐 마을에 있는 보안검문소를 차량으로 공격을 가했으며, 일요일 보안요원이 자리를 비운 뒤에 이어서 총격전이 벌어졌고, 왕실 내무부에 따르면 그 총격전으로 한 명의 방글라데시 민간인과 검문소 공격자 두 명이 죽었다.

 


“까씸 지역의 부레이다흐-따리삐야흐 거리의 한 보안검문소가 일요일 오후에 차량을 타고 돌진한 세 명의 테러분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사우디왕국의 내무부장관이 일요일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말하였으며, “두 명의 테러분자들이 죽었으며, 세 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중동소식지가 보도하였다.

 

SPA가 발표 한 성명서에 따르면 “세 명의 테러분자들은 알-까씸의 부레이다흐-따리삐야흐 거리의 한 보안검문소를 공격하였다. 그 보안검문소 병사들은 공격을 받을 직후 두 명의 테러분자들을 사살하였고 세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한다.

 

그 성명서는 그 사건으로 슐레이만 아브데라지즈 아브델 라띠쁘 중사가 사망하였으며, 공격 사건이 발생하게 된데 대해 조사가 사직되었다고 전하였다.

 

또한 성명서는 방글라데시 주민도 죽었지만 그의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 원문 전문 -----

 

Mon Jul 09, 2018 1:36

Four Killed in Attack on Security Checkpoint in Saudi Arabia

▲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북부 까씸 지방 부레이다흐 마을에 있는 보안검문소를 차량으로 공격을 가했으며, 일요일 보안요원이 자리를 비운 뒤에 이어서 총격전이 벌어졌고, 왕실 내무부에 따르면 그 총격전으로 한 명의 방글라데시 민간인과 검문소 공격자 두 명이 죽었다. 이와 같은 사우디 수도 리야드 군 보안검문소에 대한 공격은 비록 미미하지만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반감 더 나아가서 증오심을 품고 있는 현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 해주는 것이다.     © 이용섭 기자

TEHRAN (FNA)- A drive-by shooting against a security checkpoint in the town of Buraydah in the Qassim province, North of the capital Riyadh, and an ensuing gunfight on Sunday left a security officer, a Bangladeshi civilian and two attackers dead, according to the kingdom's interior ministry.

 


"A security checkpoint on the Buraydah-Tarfiyah road in Qassim region came under fire from three terrorists riding in a vehicle on Sunday afternoon," a statement released by the kingdom's interior ministry said on Sunday, adding that "two of the terrorists were killed and a third was wounded and transferred to hospital", Middle East News reported.

 

“Three terrorists opened fire on the security checkpoint located at Buraidah-Tarafiya road in Al-Qassim. The security forces fired back, killing two terrorists, and wounding the third,” according to a statement published by the state news agency SPA.

 

The statement noted that Sergeant Suleiman Abdelaziz Abdel Latif was killed in the incident, and that an investigation into the incident has been launched.

 

It also announced that a Bangladeshi resident was also killed, but did not announce his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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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에 모든 양심수 석방,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사면을!

민가협.8.15대사면 추진위, "초청장 말고 양심수 사면장 써달라"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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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9  18: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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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가협은 19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8.15대사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것으로  1180차 목요집회를 갈음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 민가협 어머니에게 기념식 내빈 초청장 보내지 말고 양심수 사면장 쓰십시오. 그런 대통령을 바라고 촛불을 들었습니다."

전국에 폭염경보와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19일 오후 2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180차 민가협 목요집회-8.15대사면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원래 매주 목요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열리는 민가협 목요집회였지만 이번엔 장소도 청와대 분수대 앞으로 옮기고 집회 형식도 '8.15대사면 촉구 민가협 기자회견'으로 바꾸어서 진행했다.

조순덕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민가협) 상임의장은 "그 어떤 정권에서도 출범과 함께 양심수 석방 소식이 있었으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가석방으로 간신히 나왔을 뿐 촛불정부에서는 1년이 지나도록 단 한 명도 없었다"면서 "대통령이 이번 8.15대사면을 결단해야 한다. 기쁜 소식 전해 주시길 간절히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불가마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 뜨거운 태양이 절정에 달한 시각, 민가협 어머니들은 보라색 수건을 머리에 쓴 채 "'거리의 어머니'로 살아 온 우리는 핍박받는 약한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는 한, 감옥의 양심수가 단 한명이라도 남아있는 한 '거리의 어머니'로 살아갈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작년 8.15에는 준비에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참았고, 연말 특사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못 내보내나 했지만 내심 정말 서운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대통령도 괴로울 거라고 믿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야 우리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기 때문에.

"이번 8.15에는 이석기 전 의원과 모든 양심수들이 가족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결단하십시오. 문재인 대통령에게만큼은 실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민가협 어머니들의 이 마음을 꼭 새기길 바랍니다"라고 호소했다.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발표에 따르면, 7월 9일 현재 감옥에 갇혀 있는 양심수는 △김경용(사업가) △김성윤(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목사) △김홍렬(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 △신언택(인터넷 논객) △오승기(인터넷 논객) △윤경석(사업가) △이석기(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이영수(개인) △전식렬(한국진보연대 전 문예위원장) △정상규(인터넷 논객) 등 국가보안법 위반 10명과 △김기종(우리마당 대표) △김봉환(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교육부장) △박정상(민주노총 경기본부 조직국장) △정석만(중장비노동자)를 비롯해 총 14명.

올해 8월 만기 출소를 앞두고 있는 김홍렬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을 포함해 연내 출소 예정자는 6명이다.

   
▲ 기자회견을 마친 대표자들이 '문재인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을 들고 면담을 위해 청와대로 향했다. 왼쪽부터 장남수 유가협 회장,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 조영건 구속노동자회 회장.[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지난 10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공민권을 박탈당했나. 1년을 기다렸다. 오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지금 감옥에 있는 양심수 석방은 물론이고 이미 밖에 나와 있는 모든 양심수들의 사면과 복권"이라고 말했다.

그 대상은 "자기의 양심에 따라 활동하다 부당하게 구속됐던 국가보안법 관련 양심수, 민중생존권을 지키려다 투옥된 양심수, 생명·평화를 지키려던 양심수 모두를 망라한다"고 설명했다.

권오헌 회장은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정부라면 마땅히 이분들을 석방하고 사면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촛불혁명은 의미가 없다"면서 "특히 이석기 의원으로 상징되는 감옥의 양심수를 비우고 이제 백기를 꽂자. 양심수없는 원년을 선포하자"고 역설했다. 덴마크에서는 교도소 수감자가 없을 때 백기(白旗)를 게양한다고 한다. 

구속노동자후원회 조영건 회장은 마이크를 청와대 방향으로 바꾸어서는 "작년 8월 15일 응당 대통령의 사면권을 행사해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폭정에 의해 탄압받은 모든 민주·통일·노동인사를 다 석방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벌써 1년이 지나도록 좋은 소식이 없다. 야속하다. 섭섭하다"고 목청을 돋우웠다.

"이전 적폐정권이 구속시킨 민족과 민중의 선구자들을 촛불정부가 계속 가두고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대통령이 '법무장관이 임명된지 얼마 안되어서', '사면위원을 보충해야 하기 때문에' 등 여러 이유를 대는 것을 다 들으면서 참고 기다렸다. 문 대통령을 신뢰하고 기대하고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면서 "이제 돌아오는 8.15는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자. 지금 우리는 결실의 가을을 맞아 민족의 대화합과 주권자인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1월이면 3년 만기출소를 하게 되는 김성윤 목사의 부인 권명희씨는 "특사 석방의 경우 가족들에게 미리 소식을 전한다고 하는데 아직 연락을 받은 바 없다. 이번 8.15에도 양심수 석방을 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시했다.

이어 "만약 올해 만기 출소자가 나가면 수감된 양심수가 몇명 남지 않을 거라는 계산으로 8.15대사면을 미룬다면 그것은 문재인 정부의 평화개혁 진정성을 의심받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종교계, 노동계 및 시민사회로 구성된 '8.15대사면 추진위'는 각계 피해자단체와 공동으로 19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8.15 대사면을 촉구했다.[사진제공-8.15대사면추진위원회]

한편, 이날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종교계, 노동계 및 시민사회로 구성된 '8.15대사면 추진위원회'와 여러 피해자 단체가 공동주최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국가폭력으로 사법처리된 피해 국민에 대한 8.15 대사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815 대사면 추진위원회'는 △이명박 정부시절 경찰이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할 목적으로 쌓았던 명박산성에 용기있게 맞서던 유모차 엄마 △'삶을 가압류하지 말라'며 손배가압류에 항거한 노동자 △철거와 노점의 현장에서 생존권을 빼앗겼던 빈민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네티즌 △환경파괴와 개발에 맞서던 시민 △세월호 진실의 편에 섰던 시민 △소녀상과 함께 했던 학생 △역사교과서 왜곡에 항의하던 청년, 그리고 △공작정치와 종북몰이의 희생양으로 탄압받았던 사람들 △감옥에 갇힌 이 땅의 모든 양심수들에 대한 사면·복권을 주장하면서,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8.15 대사면 대상자들의 명단을 취합해왔다.

'815 대사면 추진위원회'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소장인 박승렬 목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 사무총장인 강문대 변호사,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이태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등이 추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대형 ‘사면복권장’에 ‘대한민국국민의인’이라는 대형 도장을 날인하는 대사면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사진제공-8.15대사면추진위원회]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정부가 시급하게 했어야 할 사면복권이 지연되고 있다.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을 당한 분들의 시민 정치적 권리를 회복해달라는 것"이라면서 "과거 적폐정권의 전과자 양산 정책을 바로잡고 시민권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밀양 송전탑 대책위 주민 한옥선씨는 전과자가 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사면복권이 아직 안되고 있다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장애인 활동보조 24시간을 요구했다가 집행유예, 벌금, 구속을 겪었으나 문재인 정부는 대사면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원호 용산 대책위 사무국장은 작년 연말 용산참사 관련 망루 농성자들에 대한 사면이 있었으나 용산 분향소를 지켰던 철거민들과 김석기 전 경찰청장의 국회의원 출마에 항의한 철거민들, 그리고 유가족 피해자는 법정에 서고 사면되지 않았다며, 이들에 대한 즉각적인 사면을 촉구했다.

김득중 쌍용자동차 지부장은 지난 9년간 300명 가까운 조합원들이 형사처벌을 당했고 끔찍한 탄압을 받고 있지만 단 한 명도 사면되지 않고 범죄자로 낙인 찍힌 채 최근 서른번째 죽음을 맞닥뜨리고 있다고 참혹한 현실을 고발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조작사건 출소자인 김근래 씨는 "지난 2013년 발생한 내란음모사건은 실제로는 450군데가 조작된 녹취록 하나가 유일한 증거"라며, "북과의 연계, RO라는 혁명조직, 무장폭동 준비계획 모두 없었다는 것이 대법원에서 확인되었지만 이석기 의원은 5년째 감옥에 있고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통해 10만명의 당원이 명예를 짓밟힌채 고통속에 살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양승태 사법농단에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우리는 양승태 사법거래의 희생자였다. 왜곡은 바로 잡히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민가협 기자회견문>

문재인 대통령님, 민가협 어머니들 목소리 좀 들으시오

- 815 양심수 전원 석방 결단을 호소하며(전문)

문재인 대통령님, 일전에 건강 관련 소식을 듣고 다들 걱정이 컸습니다. 더운 여름에 몸을 더 상하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됩니다. 하지만 바깥보다 더 더운 곳이 바로 감옥입니다. 덥다덥다 해도 감옥의 양심수들만큼 덥고 고통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쓴소리를 좀 하려 합니다.

'거리의 어머니'로 33년을 살았습니다

민가협이 세상에 나온 지 33년이 되었습니다. 사무실 간판 다는 날에는 경찰이 건물 입구를 봉쇄하고 회원들을 연행하였습니다. 민가협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6월항쟁 사진을 보면 대열 선두에 삼베수건을 쓰고 있는게 어머니들이 민가협 회원들입니다. 33년이 흘렀고 삼베 수건은 보라색 손수건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민가협은 변함없이 '거리의 어머니'입니다. '모든 양심수의 어머니'입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차별이 사라진 인권세상이 우리 회원들의 소망입니다.

촛불혁명을 보며 이제 좀 쉴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매맞고 끌려가고 풀려나면 또 가서 싸우고. 그러다 보니 지금은 다들 몸이 성치 않습니다. 촛불로 박근혜를 쫓아내고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이젠 좀 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쉴 수 없습니다. 단 한 명의 양심수도 사면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년 815는 준비에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작년 연말 특사에는 정말 서운했습니다. 지방선거 탓에 그런건가 짐작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도 마음이 괴로울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정권을 못잡았다면 서럽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 8.15에도 양심수 석방을 할 의지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양심수는 우리가 낳지는 않았지만 다들 우리 자식들입니다.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양심수 석방을 결단하지 않는 것은 민가협 33년 역사를 부정당하는 심정입니다. 민가협 어머니들은 국가기념식날 내빈석을 채우는 역할이 아닙니다. '거리의 어머니'로 살아 온 우리는 핍박받는 약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한, 감옥의 양심수가 단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거리의 어머니'로 살아갈 것입니다. 민가협은 어두운 과거를 추억하는 상징이 아니라 오늘의 한 조각 어둠을 밝히는 존재입니다.

기념식 내빈 초청장 보내지 말고 양심수 사면장 쓰십시오

문재인 대통령, 민가협 어머니에게 기념식 내빈 초청장 보내지 말고 양심수 사면장 쓰십시오. 그런 대통령을 바라고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런 대통령을 바라고 문재인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것입니다. 이번 815에는 이석기 전 의원과 모든 양심수들이 가족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결단하십시오. 문재인 대통령만큼은 실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민가협 어머니들의 이 마음을 꼭 새기길 바랍니다.

2018년 7월 19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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