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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부끄러워해야" 그날 광주에 있던 외국인들의 증언

[5.18 40주년 특집-이방인의 증언 ③] 평화봉사단원들이 말하는 '5.18 왜곡'

20.05.14 07:04l최종 업데이트 20.05.14 07:04l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인 2020년, <오마이뉴스>는 '평화봉사단'에 주목했다. 항쟁의 복판에 있었던 '증인'들의 이야기를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말]
 평화봉사단 소속이었던 데이비드 돌린저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찍은 사진. 이 사진은 5.18 직후 미국의 잡지 <Covert Action>에 실리기도 했다.
▲  평화봉사단 소속이었던 데이비드 돌린저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찍은 사진. 당시 계엄군에 체포된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이 사진은 5.18 직후 미국의 잡지 에 실리기도 했다.
ⓒ 데이비드 돌린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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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혹은 5.18민중항쟁. 이 같은 표현은 1980년 이후 40년 세월 동안 견고히 자리잡아왔다. 전자엔 성과가, 후자엔 세력과 성격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폭동이란 오명을 썼던 역사는 그렇게 도도하게 바로잡혀왔다.

당시 항쟁의 복판 전남도청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한 미국인이 있다. 평화봉사단(Peace Corps) 소속이었던 데이비드 돌린저(David Dolinger)는 이 같이 말했다.

"찰스 디킨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고,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으며, 믿음의 시대이자 믿기지 않는 시대였다.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고,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영암에서 평화봉사단으로 근무했던 데이비드 돌린저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의 참상을 목격했다. 사진은 2005년 가족과 함께 한국을 찾은 데이비드 돌린저가 5.18재단 직원과 함께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찍은 것이다.
▲  영암에서 평화봉사단으로 근무했던 데이비드 돌린저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의 참상을 목격했다. 사진은 2005년 가족과 함께 한국을 찾은 데이비드 돌린저가 5.18재단 직원과 함께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찍은 것이다.
ⓒ 데이비드 돌린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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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도 짧지도 않은 40년 세월이 흘렀다. 역사는 힘차게 흘러왔지만 여전히 절망을 열망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폭동"이란 말을 여전히 사용한다. "외부세력"을 이야기하고 "북한군 침투"를 이야기한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마저 이런 이야기를 내뱉는다. 절망의 시대가 그리운 이들은 '민주의 시대를 누리며 민주를 열망한 시대를 거부하는' 모순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1980년 5월 27일 항쟁이 '잠시' 멈췄을 때, 짓밟힌 금남로의 핏자국을 눈에 담은 미국인이 있다. "소총을 든 병사들과 고압 호스로 혈흔을 비롯해 난장판이 된 거리를 치우는 사람들을 봤다"는 도널드 베이커(Donald Baker)는 "나는 (5.18을 왜곡하는) 그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1971~1974년 광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근무했다.

"대한민국은 1980년 광주에서 흘린 피 때문에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5.18을 왜곡하는) 그들 또한 광주의 희생 덕분에 오늘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광주를 비방할 게 아니라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5.18은 정부의 불법적인 군사 폭력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 지지자가 아닌 군사독재의 지지자처럼 보인다."
 

 1971~1974년 광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도널드 베이커. 1980년 연구를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던 그는 1980년 5월 27일 광주에 가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의 끝자락을 목격했다. 그는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1971~1974년 광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도널드 베이커. 1980년 연구를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던 그는 1980년 5월 27일 광주에 가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의 끝자락을 목격했다. 그는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도널드 베이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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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그리고 저항

 

<오마이뉴스>는 데이비드 돌린저와 도널드 베이커를 비롯해 총 4명의 외국인과 '5.18 왜곡'에 대해 이메일로 인터뷰했다(원래 4월에 그들을 직접 만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인터뷰 일정이 미뤄졌다). 그들은 모두 평화봉사단에 소속돼 있었다. 평화봉사단은 1961년 미국 정부가 만든 청년 봉사단체로 개발도상국에 파견돼 교육, 의료, 농수산기술 등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한국엔 1966~1981년 평화봉사단이 들어와 있었는데, 인터뷰 한 4인은 5.18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이다.

데이비드 돌린저와 폴 코트라이트(Paul Courtright)는 5.18의 상당 기간 광주에 머물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고인이 된 팀 원버그(Tim Warnberg)와 함께 광주 시내 곳곳을 다니며 현장을 목격했고, 외신기자 인터뷰를 주선·통역했다. 데이비드 돌린저는 당시 자신이 목격한 것과 찍은 사진을 다른 평화봉사단원에게 전했고, 이 내용은 외신을 통해 보도됐다. 폴 코트라이트는 최근 당시의 경험을 담아 회고록 <5.18 푸른 눈의 증인>(영문판 < Witnessing Gwangju >)을 내놨다.

데이비드 돌린저 "5.18은 억압받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일치된 노력이었다. 결코 폭동이 아니었고 시민들은 서로를 아꼈다. 그들은 5월 21일 밤 도청 건물에서 군대가 후퇴한 후 도시를 청소하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평화적인 결말을 맺기 위해 협상에 대한 노력의 증표로 무기를 회수한 시민들이었다. 북한은 이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폴 코트라이트 "5.18을 폭동이라고 주장하거나 북한이 연관돼 있다는 관점들은 완전히 쓰레기다. 내 회고록에도 이것에 대한 언급이 있다. 나는 당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었고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을 회고록에 썼다. 5.18의 모든 것을 알 순 없지만 내가 목격한 모든 것은 5.18이 전두환 군부세력에 의해 자행된 학살에 대응한 민중들의 봉기였다는 견해를 뒷받침해줄 것이다."
 
 나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폴 코트라이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의 참상을 목격했다. 사진은 나주에서 근무하던 폴 코트라이트의 모습.
▲  나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폴 코트라이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의 참상을 목격했다. 사진은 나주에서 근무하던 폴 코트라이트의 모습.
ⓒ 폴 코트라이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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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봄의 문을 두드린 이들 덕분에, 우린 따스함 속에 살고 있다. '민주(民主)'를 향한 열망은 절대다수에겐 희망이었고 특권소수에겐 절망이었다. 특권소수의 반민주를 향한 열망은 잔혹한 폭력으로 이어졌다. 절망의 세력이 희망의 세력을 군홧발로 짓밟았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평화봉사단원 팀 원버그(Tim Warnberg)는 1987년 쓴 논문 < The Kwangju Uprising: An Inside View(광주항쟁: 목격자의 견해) >에서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를 인용한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것처럼 '권력 누수를 느끼는 자들은 폭력의 유혹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중략) 그러나 그들은 상처뿐인 승리를 거둔 것일지도 모른다. 한나 아렌트는 '권력을 폭력으로 대신하면 승리를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그 대가는 크다. 패배자뿐만 아니라 승리자 또한 자신의 권력 때문에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평화봉사단 단원들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왼쪽에 카메라를 든 인물이 위르겐 힌츠페터이고 오른편 4명(차례대로 쥬디 챔벌린, 팀 원버그, 폴 코트라이트, 데이비드 돌린저)이 평화봉사단 단원들이다.
▲  5.18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평화봉사단 단원들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왼쪽에 카메라를 든 인물이 위르겐 힌츠페터이고 오른편 4명(차례대로 쥬디 챔벌린, 팀 원버그, 폴 코트라이트, 데이비드 돌린저)이 평화봉사단 단원들이다.
ⓒ 위르겐 힌츠페터, 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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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했지만 비범했던

도널드 베이커와 빌 에이머스(Bill Amos)는 5.18을 비교적 간접적으로 경험한 인물이다. 당시 서울에 머물고 있던 도널드 베이커는 자신이 평화봉사단원으로 근무했던 곳에서 큰 사건이 벌어졌단 소식을 듣고 곧장 광주로 이동했다. 삼엄한 경계 때문에 산을 넘어 겨우 광주에 도착했을 땐, 이미 계엄군이 광주를 짓밟은 5월 27일 오후였다. 그는 항쟁의 끝자락을 마주할 수 있었다. 현재 그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아시아학과 교수이다.

안양에서 근무하고 있던 빌 에이머스는 다른 목격자의 증언과 과거 목포에서의 근무 경험을 떠올려 1999년 < The Seed of Joy >란 제목의 소설을 내놨다. 5.18을 다룬 최초의 외국 소설이었다.
 
 평화봉사단 소속이었던 데이비드 돌린저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찍은 사진. 이 사진은 5.18 직후 미국의 잡지 <Covert Action>에 실리기도 했다.
▲  평화봉사단 소속이었던 데이비드 돌린저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찍은 사진. 당시 시신들의 모습을 담은 이 사진은 5.18 직후 미국의 잡지 에 실리기도 했다.
ⓒ 데이비드 돌린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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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베이커 "역사학자로서 나는 일부 보수주의자들이 역사적 사실을 그들의 방식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친다. 광주시민들이 폭동 세력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먼저 폭력을 행사한 것이 광주시민이 아니라 군대였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나는 (왜곡을 일삼는) 그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1980년 6월 한국의 대령이 나에게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나에게 '전두환 장군은 동포를 대함에 있어서 북한처럼 행동했다'라고 말했다. 광주를 비방하는 이들은 북한에서 하는 것과 같은 역사 왜곡에 관여하고 있는 셈이다."

빌 에이머스 "(5.18을 왜곡하는 이들은) 항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정확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실과 맞닥뜨려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광주항쟁은 단순한 폭동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권위주의 군부정권에 항의했고, 정부는 그들에게 악랄한 범죄를 저질렀으며, 사람들은 이에 반격했다. 북한 사람들이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는 종종 그들의 정권에 대한 저항의 책임을 외국이나 다른 세력에게 돌린다." 
 
 목포, 안양에서 평화봉사단으로 근무한 빌 에이머스는 주변 동료들의 증언과 목포에서의 근무 경험을 토대로 1999년 소설 <The Seed of Joy>를 썼다. 이 소설은 외국에서 나온 첫 5.18민주화운동 관련 소설이다.
▲  목포, 안양에서 평화봉사단으로 근무한 빌 에이머스는 주변 동료들의 증언과 목포에서의 근무 경험을 토대로 1999년 소설 를 썼다. 이 소설은 외국에서 나온 첫 5.18민주화운동 관련 소설이다.
ⓒ 빌 에이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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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봉사단원들은 5.18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광주의 희생을 가슴 깊이 위로했고, 이를 왜곡하는 이들의 통렬한 반성도 요구했다. 아직도 곳곳에 구멍이 나 있는 5.18의 진실에 대한 규명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돌린저 "평범했지만 비범했던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했다. 그들을 왜 불명예스럽게 만드는가. 여러분 모두는 매일 광주 희생자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1980년 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의 진실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우리가 본 것, 한 것, 느낀 것을 포착하기 위해 관련법이 제정돼야 한다.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희생된 그들을 기리자. 사회가 양심을 잃었을 때 정부는 더 이상 이 사회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시스템은 소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고 대다수는 길을 잃고 버려진다.

1980년 5월 광주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희생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5.18은 한국 현대사의 전환점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줬다. 광주는 하나의 도시로서, 그리고 하나의 국민으로서 통합됐다. 한 집단이 전체의 개선을 위한 입장을 유지하며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이었다."


폴 코트라이트 "5.18 왜곡은 1980년 5월 18일부터 시작됐다. 군에 의해 자행된 서술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일부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기도 하다. 왜곡된 사실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당시 정부를 지지하거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역사 왜곡은 사회를 치유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는 2019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 매우 감명 받았다. 그는 슬픔과 사과, 그리고 잘못된 행동에 대한 인식을 표현했다. 나는 한국 정치사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5.18은 한국을 변화시키고 민주화의 길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나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폴 코트라이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의 참상을 목격했다.
▲  나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폴 코트라이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의 참상을 목격했다.
ⓒ 폴 코트라이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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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베이커 "사람들은 그들의 윗세대가 실수를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나는 노예제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리는 많은 백인들을 루이지애나에 있는 내 고향에서 봐왔다. 1980년 6월 서울의 한 버스에서 한 남성이 '전라도는 다 죽여야 할 놈들이지'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지금도 한국 남서부(전라도)를 향한 약간의 차별이 남아 있다는 걸 느낀다. 광주 사람들을 무식한 말썽꾸러기라고 치부하는 풍조가 일부 남아 있다. 이런 지역에 대한 반감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한국의 단결에 피해를 주고 있다.

나는 역사가로서 과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나누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평판을 해치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된다. 전두환같이 고 조비오 신부를 모욕하거나,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을 북한에서 온 특수요원이었다고 주장하는 멍청이(idiots)들은 고소당해야 마땅하다. 나는 5.18 피해자들에게 머리를 높이 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는 한 무리의 장군들에 의한 불법적인 권력 장악에 맞서 싸운 몇 안 되는 민주주의 옹호자였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세계적으로 민주정부 아래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5.18은 희망의 신호탄이다. 5월 27일 군대가 광주 도심을 장악하고 모든 희망을 잃었지만, 결국 광주와 한국의 나머지 사람들은 민주화되었다. 광주의 5.18은 독재정권 아래에 사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빌 에이머스 "특정 정치집단은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는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나는 5.18의 교훈이 만들어진 논쟁에 의해 묻힐까 봐 두렵다. 5.18은 대중이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한 민주화운동이었고, 결국 승리를 쟁취한 현대 역사의 드문 사건 중 하나다. 권력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면서도, 또한 그것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한지 알려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5.18은 진통을 겪고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피해자 분들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 당신은 진실을 알고 있다.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 결국 당신들은 전두환과 그의 세력을 무너뜨렸다. 당신의 세대가 지나기 전에 그러한 기억을 널리 알려 달라. 역사의 기록이 소수의 왜곡을 압도하도록 만들자."

 
 1971~1974년 광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도널드 베이커. 1980년 연구를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던 그는 1980년 5월 27일 광주에 가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의 끝자락을 목격했다. 그는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진은 평화봉사단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도널드 베이커.
▲  1971~1974년 광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도널드 베이커. 1980년 연구를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던 그는 1980년 5월 27일 광주에 가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의 끝자락을 목격했다. 그는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진은 평화봉사단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도널드 베이커.
ⓒ 도널드 베이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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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0주년 특집 - 이방인의 증언]
①-1 이 미국 청년을 아십니까 http://omn.kr/1nj3g
①-2 계엄군 곤봉에 맞은 미국인 http://omn.kr/1nj2u
② 광주 할머니와 약속 지킨 청년 http://omn.kr/1nk4l


■ 팀 원버그 논문 번역
: 최용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의 조사1과장)
■ 이메일 인터뷰 번역
: 송재걸 (카디프대학 석사학위 논문 <The Gwangju Democratisation Movement and the Role of International News Flows> 저자)

덧붙이는 글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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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8년째! 이제는 석방하라!”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0/05/1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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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전 11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한국구명위원회는 청와대 앞에서 ‘감옥에서 8년째! 이제는 석방하라! 이석기 의원 누나 이경진 청와대 앞 농성 1천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구명위원회]   © 김영란 기자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2013년 8월 소위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된 후로 8년째 수감 중이다이에 이 전 의원의 누나 이경진 씨가 이 전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며 지난 2017년 7월 이후 3년여 간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해왔다.

 

13일 오전 11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한국구명위원회는 청와대 앞에서 감옥에서 8년째이제는 석방하라이석기 의원 누나 이경진 청와대 앞 농성 1천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내란음모 사건으로 복역한 출소자와 가족들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 실현에 앞장서 온 시민사회 인사와 각계 단체 회원들이 참여했다.

 

이경진 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말 몇 마디를 이유로 독방에서 7년째 가두어 놓은 것은 잔인한 국가폭력이다지난 정권이 쳐놓은 배제와 차별의 그물반공독재정권이 만든 색깔론의 올가미이제는 대통령의 손으로 걷을 때가 되었다라고 밝혔다.

 

이경진 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동생을 풀어주는 것 또한 국가의 도리라고 생각한다비통한 자를 품어 안는 정치를 더 올곧게 펼쳐 달라라고 호소했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이사장은 아직도 양심수가 감옥에 갇혀있단 말인가이 정부가 촛불 정부가 맞는가천일을 농성한 가족 심정을 청와대는 알고 있는가지금 당장 이석기 의원을 석방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시대를 앞섰기에자주를 이야기했기에 가해지는 혹독한 고통을 이제는 거두어야 한다이석기 의원은 옥에서 8년째누님 이경진 선생은 청와대 앞에서 천일기도를 드리고 있다민주화 운동에자주통일 투쟁에 나선 이래 옥중에서 작은 누님과 어머님은 돌아가시고온 가족이 이렇게 고초를 겪고 있다이제는 국민 여러분이 나서 달라라고 호소했다.

 

▲ 2017년 7월부터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 농성을 한 이 전 의원의 누나, 이경진 씨 [사진제공-구명위원회]  © 김영란 기자

 

김홍열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내란음모사건으로 5년 복역 후 2018년 만기 출소)은 내란음모조작사건과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이 박근혜 정치공작양승태 사법농단에서 비롯되었음이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하지만 이석기 의원은 그 피해자임에도 아직 독방에 수감 중이다라며 적폐는 결코 저절로 물러가지 않는다과거의 잘못이 바로잡히지 않고 있는 것그것 자체가 적폐가 다시 판을 치는 빌미가 된다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피해자들을 원상회복하는 문제는 그래서 중요하다문재인 대통령은 이 점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이석기 의원 석방이 그 첫걸음이다라고 주장했다.

 

아래는 이경진 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 전문이다.

 

------------아래--------------------------------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

 

코로나19는 역시 힘없는 사람들을 먼저 덮치고 있습니다일자리 잃은 청년들과로사한 노동자 소식에 저도 가슴이 미어집니다그 와중에 '격리'라는 단어를 들으면 숨이 턱 막힙니다사회로부터 사람으로부터 7년째 강제 격리되어 있는 억울한 동생이 떠올라서 입니다.

 

2017년 7촛불정부 출범에 박수 소리가 아직 가시지 않은 때농성을 시작했습니다한 달 뒤에는 감옥문이 꼭 열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대통령의 결단에 작은 힘이라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참 어리석고 순진한 생각이었다 싶습니다.

 

그날로 아직 청와대 앞을 못 떠나고 있습니다누나도 포기했다고 사람들이 말할까봐누나도 힘드니까 접었다며 동생이 슬플까봐 못 떠나고 있습니다. ‘석기야나는 포기하지 않는다내 명이 붙어있는 한 누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제가 할 수 있는건 이것뿐이었습니다.

 

새벽 6시면 세종로 성당에 내려가서 미사를 드립니다가난한 이굶주린 이옥에 갇힌 이를 먼저 포용하라는 복음을 손 모아 기도합니다포용하라는 예수님 말씀이 오늘만은 대통령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터벅터벅 청와대 앞으로 돌아옵니다그렇게 벌써 천일이 지났습니다.

 

이석기 의원은 용기있는 진보정치인입니다종편 특혜 모조리 환수하자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부당하다, 4자회담 종전선언이 해법이다동생은 바른 말을 하다가 내란죄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그런데 동생의 주장이 대통령의 손으로 현실이 되는 걸 지난 3년 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아직도 안 나왔냐'고 이야기합니다제일 많이 듣는 말인데제일 가슴 아픈 말입니다말 몇 마디를 이유로 독방에서 8년째 가두어 놓은 것은 잔인한 국가폭력입니다지난 정권이 쳐놓은 배제와 차별의 그물반공독재정권이 만든 색깔론의 올가미이제는 대통령의 손으로 걷을 때가 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국민들의 믿음에 얼마나 어깨가 무겁습니까동생을 풀어주는 것 또한 국가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비통한 자를 품어 안는 정치를 더 올곧게 펼쳐주십시오이 말씀을 만나서 꼭 드리고 싶습니다오도가도 못하고 망부석이 되어가는 저를 한번이라도 꼭 만나주십시오.

 

북악산에서 내려오는 찬 바람오뉴월에 찜통으로 변한 비닐 천막어떻게 견뎌왔나 저도 믿기지 않습니다많은 분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진작에 쓰러졌을 것입니다민가협 언니들과 각계 선생님들청년들과 시민들 고맙습니다여름에 생수 건네 준 연인들겨울에 담요 가져다 준 시민들 그 이름 없는 분들께 이 자리 빌어 감사드립니다.

 

2020년 5월 13

청와대 농성 1천일에 즈음하여

 

이경진(이석기 의원의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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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연 30년은 평화운동..공격 대상 아니다"

1439차 수요시위, "악의적 왜곡과 명예훼손, 인권침해 중단하라"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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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13  18: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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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9차 수요시위가 열린 13일 참가자들은 여성평화운동인 정의연 활동은 공격대상이 아니라며 악의적 왜곡과 명예훼손, 인권침해를 중단하라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의기억연대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의 진실과 가해자인 전범국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여성평화인권운동을 해 온 단체이다.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주체적 시민으로 함께 참여했다." 

13일 낮 12시 서울시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 대사관 앞 평화로에서는 변함없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이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이 힘을 보태기 위해 주관한 수요시위는 어느덧 제1439차를 맞이했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공동대표는 30년전 수많은 여성단체가 모여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과 전시 성폭력 근절을 위해 결성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로 시작한 일본군 위안부운동은 '여성평화인권운동'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증언 이후 피해 생존자들과 함께 전 세계를 누비며 일본군 성노예제의 참담함을 고발했고 그로 인해 이 운동은 여성에 대한 전쟁범죄를 단죄하는 여성평화운동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정부로부터 소외된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모금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실상 이것은 우리 정부가 나서야 하고 가해국인 일본이 사죄하고 했어야 할 일들을 정의연이 대신했다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 대표는 "이 문제를 거론하여 (정의연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공동대표는 피해자들과 함께 한 정의연의 활동은 여성평화운동의 상징이 되었다며 이에 대한 악의적 왜곡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분열시키고 훼손하려는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하면서 "피해자들의 절규로 만들어진 운동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한 투쟁의 역사이다.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또 "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 당선인, 그리고 여성 평화인권운동을 해 온 수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피해받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비난과 갈등에 휘둘리지 않고 이 운동을 계속 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수요시위 참가자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우리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피해자들의 인권 실현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굳건하게 연대하고 행동할 것"을 다짐하면서 △일본정부의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사죄와 법적배상 △전쟁과 침략의 과거사 반성 △한국정부의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에 대한 정의로운 해결을 거듭 촉구했다.

더불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운동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훼손과 인권침해를 당장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 운동은 피해자와 활동가들, 뜻을 같이해 준 시민들의 피와 땀, 노력이 깃든 결과"라며,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을 겨냥해 사실을 왜곡하려는 것은 불순한 시도라고 질타했다.

구본기 더불어시민당 최고위원은 "오늘은 직접 수요시위에 참석하는 것으로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연대의 뜻을 표시하는 것으로 그치지만 곧 전력을 다해 연대에 나서겠다"고 짧지만 강력한 연대의 뜻을 밝혀 박수갈채를 받았다.

   
▲ 수요시위 참가자들은 일본의 공식사죄와 법적 배상이 이뤄질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평화비 경기연대 이주현 상임공동대표는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 수원, 안양, 김포, 오산 등 17개 지역과 함께 마련한 '정의연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운동 진영은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지난 5월 7일 이용수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모두가 새기고 성찰해야 할 일본군 위안부운동 역사에 대한 과제를 던져주었다고 하면서 "일부 수구언론과 단체를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운동 역사를 폄훼하고 부정하는 듯한 의제 설정과 발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운동 진영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이간질하려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위안부 운동에 30년 가까이 몸담아 온 윤미향 전 대표의 국회 진출과 맞물려 정치적인 의제로 만들려는 의도도 감지된다"고 하면서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통해 제기된 문제들은 윤 당선인과 정의연의 해명을 통해 이미 이루어졌고, 미흡한 부분은 앞으로 이뤄질 것이며, 공익법인의 후원금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수량과 수치에 의존할 게 아니라 그 후원금이 사용된 범위와 적절성을 따져 예산을 수립하고 집행한 법인 이사진과 감사, 그리고 법인에 대한 관리 감독청인 서울시가 판단할 몫"이라고 밝혔다.

평화나비네트워크 이태희 전국대표는 "수요시위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이 무엇인지 할머니들에게 배웠다"고 하면서 "정의연과 할머니들의 투쟁을 바탕으로 정의와 연대의 장이 되었던 수요시위에 대해 악의적이고 왜곡된 보도가 난무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행태를 비판했다.

수요시위 자원활동가인 김판수씨는 "외롭고 힘든 피해자가 먼저 나서고 정대협과 평화시민이 뒤를 이어 낮과 밤을 함께 하며 여기까지 왔다"며 "그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나. 최근의 혐오와 공격은 30년 가까이 이어온 평화공동체에 큰 상처를 주었다. 아무도 탓하지 말고 처음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날 수요시위는 정의연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되었으며, 1,500여명이 참가해 일본의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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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도 당부했지만…제주4.3특별법 20대 국회서 사실상 ‘무산’

기재부는 보상 규모에 부정적, 통합당은 정부 간 이견 이유로 뒷짐

남소연 기자 nsy@vop.co.kr
발행 2020-05-12 19:47:09
수정 2020-05-12 19:47:09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이채익 국회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등을 안건으로 열린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채익 국회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등을 안건으로 열린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뉴시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4.3 특별법 개정안)'이 사실상 20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조속한 처리를 당부한 데다가 여야 모두 총선 과정에서 법안 처리를 약속했지만, 정작 국회 논의 과정에서는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2일 법안심사소위회의를 열고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4.3 특별법 개정안 5건을 병합 심사했다. 이들 법안에는 ▲피해자 보상금 지급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 ▲군사재판 무효화 ▲제주 4.3항쟁에 대한 왜곡 및 허위사실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2000년 1월 4.3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진상규명을 비롯한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첫발을 뗐으나 여전히 법에 의한 배·보상은 이뤄지지 않는 등 미진한 부분이 많아 잇달아 개정안이 제출된 것이다.

하지만 이날 소위에서도 정부 부처 간 이견과 미래통합당의 소극적인 태도로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했다. 특히 핵심 쟁점이었던 피해자 보상금 부분을 두고는 기획재정부에서 난색을 표하면서 합의가 불발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4.3 특별법 개정안을 심사했던 두 차례 소위 회의에서도 행정안전부와 기재부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법안 심사 자체가 표류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행안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비용으로는 1조 8천억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기재부에서는 막대한 재원이 들어간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진다. 통합당은 정부 부처 간 이견이 조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안 처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소위 회의를 찾은 송승문 제주4.3유족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기재부와 행안부의 준비 과정이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재부에서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면 얼마든지 논의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연금식도 있고 분할식도 있을 것이다. 이후에 소통하면 좋은 의견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아직 협의가 안 된 걸로 느껴진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송 회장은 "통합당도 아무런 답이 없다"며 "어제, 오늘 이채익 법안심사소위원장을 만나 (법안 처리를) 부탁했기 때문에 소위에서는 통과할 수 있을까 했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송 회장에 따르면, 여당 의원들은 일단 법안심사소위에서 통과시킨 후 전체회의에서 다시 논의하자고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채익 소위원장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제주의 아픔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고 동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이 꼭 풀어가야 할 과제다. 어느 정당, 어느 정파가 제주 4.3 문제에 대해 반대하거나 다른 이견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여야가 혼신의 노력을 다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와 여러 가지 정부의 입장 또 재정 문제 등 다양한 난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소위원장은 '정부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것이냐'는 질문에 "이런 이야기를 제가 하면 또 다른 갈등을 부추길 것 같아서 조심스럽지만 종합적으로 정부 내에서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이 소위원장은 "꼭 재정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4.3에 대한 왜곡 날조 등의 금지 이 법안은 기존의 법체계를 뛰어넘지 않았느냐 하는 정부의 신중 검토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진상규명 및 활동 기간 문제도 정부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설명했다.

이 소위원장은 "단지 재정 문제만 걸림돌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며 "전체적으로 시간과 의견 접근이 상당 부분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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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교조 파괴’ 배후에 MB 국정원의 치밀한 공작 있었다

등록 :2020-05-12 21:32수정 :2020-05-13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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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노조와해 공작’ 감찰자료 포함 재판기록 입수」
MB국정원, 청와대에 ‘전교조 불법단체화’ 보고 뒤
고용부 “해고자 배제” 시정명령

보수단체에 1억7천여만원 지원 내역
‘탈퇴서한’ 발송·변호사비도 내줘

전교조 “MB-박근혜 정부의 국가폭력”
20일 열릴 대법원 공개변론 주목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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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법외노조 사건에 대한 대법 공개변론이 오는 20일 열리며 6년 넘게 끌어온 이 사건이 마침내 결론을 향해 치닫고 있다. 법외노조 통보는 2013년 10월 박근혜 정부 고용노동부의 ‘팩스 한장’으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전교조를 비롯한 민주노총 ‘고사’를 노린 10년 전 이명박(MB) 정부 국가정보원의 치밀한 계획과 실행이 있었다.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그 공작의 전모가 국정원 내부문건과 재판기록 등을 통해 드러났다.

 

12일 <한겨레21>은 국정원이 2018년 4월 검찰에 보낸 ‘수사참고자료’를 입수했다. 2017년 노조파괴 공작 의혹에 대한 국정원의 자체 감찰 결과와 증거가 되는 국정원 내부문건을 담은 200여쪽의 문서다. 검찰은 이 문서를 바탕으로 수사를 벌여 국정원이 ‘제3노총’이라 불리는 ‘국민노총’ 출범에 국정원 자금을 사용한 혐의(국고손실)로 원세훈 전 원장 등 국정원 간부와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동걸 전 고용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재판에 넘겼고 이들은 지난 2월 1심에서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다. <한겨레21>은 청와대 캐비닛과 영포빌딩에서 발견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된 문건 등이 포함된 이 사건 재판기록 1만여쪽을 확보하면서 국정원의 수사참고자료도 함께 입수했다.

 

수사참고자료와 재판기록 등을 보면, 국정원은 2010년 1월22일 청와대에 “해직자 노조 가입을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을 이유로 불법단체화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 닷새 뒤 보수 학부모 단체인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들의 모임’에 “전교조의 교원노조법 위반 규약 비판여론을 조성해달라”고 부탁했고, 이 단체는 노동부(현 고용노동부)에 ‘전교조 설립취소 검토 요청’ 공문을 보냈다. 실제로 노동부는 같은 해 3월31일 “교원 신분을 상실한 사람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 규약을 시정하라”고 시정명령을 했다.

 

전교조가 노동부의 시정명령에 응하지 않자, 국정원은 2010년 9월13일 ‘전교조의 ‘조직 불법단체화’ 회피전술 조기 무력화’라는 문건을 청와대에 보고한다. 국정원은 “이번 불법단체 전환 추진이 전교조의 비뚤어진 행태를 바로잡을 기회이므로 조직사수 투쟁 및 회생 전술에 말려들지 않도록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조합원 교사들의 학기말 업무가 많아 결속력이 저하되는 12월 중 ‘2차 시정명령’ 등 불법 단체화(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엠비 국정원은 전교조 비난 여론 형성을 위해 보수단체를 적극 활용했다. 재판기록에는 보수단체에 국정원이 지원한 내역으로 사업계획서·자금집행명세서·영수증(지불확인증) 등이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11년 5월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 연합’(교학연)이 전교조 조합원에게 보낸 ‘탈퇴 권유 서한’이다. 국정원은 이 편지 제작비용과 우편비용, 인건비를 합쳐 3천만원을 댔다. 전교조와 조합원들이 교학연에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민사소송을 내자, 변호사 선임비용 역시 국정원이 대줬다. 이 밖에도 국정원은 보수단체들의 전교조·교육감 고발에 필요한 법률 검토 비용, 보수언론 광고 게재, 보수성향 교회의 전교조 비판 토론회, 1인시위 등에도 비용을 댔다. 이렇게 국정원이 2010년 2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2년간 전교조와 관련해 보수단체에 지급한 비용이 1억7640만원에 이른다.

 

엠비 국정원이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2013년 9월 박근혜 정권의 ‘노조 아님 통보’로 ‘완성’된다. 국정원은 수사참고자료에서 “2013년 2월 노동부가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추진하자, 2013년 4월 대공수사국이 전교조 해직조합원 간부 현황을 정리한 문건은 확인됐으나 노동부에 실제 제공한 사실은 내부조사 한계상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가올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주요 법적 쟁점은 6만여 조합원 중 9명의 해직자가 포함됐던 것이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에 어긋나는 것이냐 등이다. 하지만 국정원의 감찰자료 등은 이번 사건의 근본적 성격이 ‘국가기관에 의한 노조 혐오와 파괴’나 다름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민석 전교조 교권지원실장은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치밀한 기획으로 시작돼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마무리한 명백한 국가폭력으로, 문재인 정부가 당연히 해결했어야 하는 과제”라고 말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재판기록 상세 분석기사는 오는 18일 발행되는 <한겨레21> 제1313호에 실린다.

 

박태우 <한겨레21> 기자 ehot@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944712.html?_fr=mt1#csidx62c8a929f971e2abc69bad4665a0f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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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아야 하는데 '먹통'... 순식간에 1억 8300만원 손해

유진선물, 마이너스 유가 거래 전산오류에 쥐꼬리 배상안 '물의'

20.05.12 21:02l최종 업데이트 20.05.12 21:02l

 

 지씨는 "이상한 마음에 청산 주문을 넣었는데 청산은 되지 않고 0 이하로는 주문할 수 없다는 안내창만 떴다"고 말했다.
▲  지씨는 "이상한 마음에 청산 주문을 넣었는데 청산은 되지 않고 0 이하로는 주문할 수 없다는 안내창만 떴다"고 말했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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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오전 3시 9분 쯤이었어요. 호가창에 호가(매도·매수를 위해 부르는 값)가 없어지더라고요. 이상하다 싶어 주문을 눌렀더니 주문이 안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제가 1억 8300만 원을 손해 봤는데, 회사는 2500만 원만 줄테니 합의하자고 하더군요."

지난 8일 제보자 지윤근(43)씨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달 21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미니 크루드 오일 5월물에 투자하면서 큰 손해를 봤다. 해당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로 하락한 가운데 유진투자선물의 HTS(주식매매시스템)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전산오류가 발생해 매매가 불가능해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에 연동되는 금융상품 거래를 중개하는 금융회사의 시스템이 '먹통'이 됐고, 그 피해는 투자자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

먹통된 금융시스템

 

지씨는 당시 호가창에서 가장 낮은 금액이 0.025 달러인 것을 확인하고 장 마감 시간인 오전 3시 30분까지 거래가 완료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5월물 상품의 만기는 4월 21일이었기 때문에 가격이 크게 떨어지진 않을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씨는 "그런데 호가창에 갑자기 숫자가 사라졌고, 선물의 현재가는 마이너스로 표시됐다"며 "이상한 마음에 청산 주문을 넣었는데 청산이 되지 않았고 0 이하로는 주문할 수 없다는 안내창만 떴다,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애초에 금융상품의 가격이 마이너스가 되면 사거나 팔 수 없도록 돼 있었다는 얘기다.

이에 놀란 지씨는 오전 3시 20분 유진투자선물 쪽에 전화를 걸어 "왜 0 이하로는 주문할 수 없나"라고 물었고, 유진투자선물은 그제서야 "강제 청산해도 되겠냐"고 되물었다. 그 때의 선물 가격은 -9달러를 기록하고 있었고, 지씨가 다급히 마진콜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묻자 통화는 종료됐다. 
 
 지난 8일 지윤근(43)씨는 "1억8300만 원을 손해 봤는데, 유진투자선물은 2500만 원만 줄테니 합의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  지난 8일 지윤근(43)씨는 "1억8300만 원을 손해 봤는데, 유진투자선물은 2500만 원만 줄테니 합의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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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빚 갚아라" 독촉

선물 거래의 경우 금융회사는 거래 초기에 투자자에게 보증금 개념의 증거금을 요구한다. 이후 거래가 진행되면서 만약 선물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 증거금이 깎이게 되고, 이 금액이 20%만 남게 되면 회사는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는 마진콜을 넣게 된다. 그런데 지씨의 경우 해당 선물 가격이 -1.5달러가 되면 마진콜이 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

그는 "5분 뒤 전화를 준다던 회사는 이미 장이 끝난 뒤인 오전 4시쯤 다시 전화했는데, 내 계좌에 -14만 달러가 찍힐 거라고 말했다"며 "선물 가격이 -37달러까지 떨어졌으니 그에 대한 미수금을 갚아야 한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이후 유진투자선물은 지씨에게 빚을 연체하면 연 15%의 이자가 부과된다는 내용으로 미수금 변제 요구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 같은 황당한 요구를 받은 지씨는 지속적으로 회사 쪽에 항의했고, 그제서야 회사는 피해금액 1억 8300만 원 가운데 2500만 원을 배상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유진투자선물은 지씨가 선물 가격이 -31달러일 때 체결한 것으로 임의의 기준을 정한 뒤 이 같은 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던 중 <오마이뉴스> 취재가 시작되자 회사 쪽은 선물 가격을 -25달러로 정한 뒤 모두 52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여전히 피해금액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지씨는 "솔직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었지만 14영업일 동안은 회사와의 자율조정 기간이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3주 전 시카고거래소의 경고

키움증권에서 같은 상품을 거래한 뒤 전산오류로 피해를 입었던 투자자 김지훈(47)씨는 이번 사고에 대해 금융회사들이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권고를 무시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CME는 유가 변동성이 확대될 당시 마이너스 유가에 대비해 각 증권사에서 시스템을 개발하라는 공지를 지난달 3일 이후 3차례나 띄웠다"며 "국내에선 키움증권 등이 이에 전혀 대비하지 않아서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삼성증권의 경우 미리 관련 시스템을 구축해 가격이 마이너스에 진입했을 때도 거래가 가능하도록 해 키움증권에서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이베스트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이 같은 시스템을 마련하진 않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투자자들의 거래를 차단해 사고를 방지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2300만 원의 피해를 입었지만 회사는 1차 배상안으로 약 550만 원을 제시했고, 이후 수 차례 논의 끝에 적절한 금액을 배상 받게 됐다. 
 
 유진투자선물은 지씨에게 빚을 연체하면 연 15%의 이자가 부과된다는 내용으로 미수금 변제 요구서를 보내기도 했다.
▲  유진투자선물은 지씨에게 빚을 연체하면 연 15%의 이자가 부과된다는 내용으로 미수금 변제 요구서를 보내기도 했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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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집 지어... 100% 책임져야"

다른 증권사들은 어땠을까? 지씨는 "유안타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 두 회사는 사고 이후 첫 번째 주에 합의를 마무리했다"며 "키움증권 피해자 100여 명 가운데 절반 정도도 합의를 끝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전산 오류에 대한 잘못을 금융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꼴"이라며 "당연히 금융회사가 피해액의 100%를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회사가 엉터리 집을 지어놓은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중개수수료만 받고 발을 빼려 한다면 금융회사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사 쪽은 지씨의 경우 전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유진투자선물 관계자는 "전산 장애시각 당시 시스템상 주문 기록이 없었으며, 고객과의 통화에서 청산 의사를 물었으나 고객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며 "이에 따라 해당 고객이 보상 기준에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이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함에 따라 앞으로 관련 절차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고 회사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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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애틀랜틱, 한국 방역 성공 요인은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 정부” 교훈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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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0/05/13 08:11
  • 수정일
    2020/05/13 08:1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미국, 중앙정부 주도의 “격리” 실시하고 “배워야”
 
뉴스프로 | 2020-05-12 11:09:5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디 애틀랜틱, 한국 방역 성공 요인은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 정부” 교훈
– 한국의 성공을 유교 문화로 해석하는 건 인종주의
– 검사•추적•격리, 한국의 방역 성공을 받친 세 기둥
– 시민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신뢰, 봉쇄 없는 성공 가능
– 미국, 중앙정부 주도의 “격리” 실시하고 “배워야”

<디 애틀랜틱>은 5월 6일자 IDEAS섹션에 실린 What’s Behind South Korea’s COVID-19 Exceptionalism? (코로나19 사태에서 한국의 예외적 우수성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이 세계적인 코로나 방역 성공국가로 자리매김한 데 대한 심층 분석을 내 놓았다.

기사는 “7주 전, 한국과 미국의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는 같았다. 오늘, 한국의 사망자 수는 3백 명 미만이며 미국은 7만 명 이상이다” 라는 의제로 한국의 어떤 요인이 이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짚어보기 시작한다.

신천지발 코로나 사태를 촉발시킨 61세 여성을 가상 추적하는 묘사로 시작한 기사는, 이어 한국은 이 사건을 통해 중국을 제외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코로나19 발병국이 되었으며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신규 확진자 수, 외국들의 발빠른 한국여행 제한조치, 마스크 품절 사태 등을 언급한다. 그러나, 기사는 곧 이런 위기의 순간에 한국 정부가 취한 정부의 신천지 전수조사, 또 증상에 따른 분산 격리, 정부의 접촉자 추적시스템, 접촉자 자가격리 명령 등이 더 이상의 코로나 확산을 막아냈으며, 같은 시기 미국의 코로나 19로 인한 사망자 수는 불과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비교한다.

이후 기사는 한국의 코로나 발병은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고 말하면서, 코로나 사태 중의 성공적인 선거에 대해 언급하고, 5월 6일 현재 한국의 감염자수는 3일 연속 0명을 기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이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노르웨이 등 다른 코로나 방역 성공국가들과 다른 점은 일일 신규 확진자 수를 정점에서 90% 이상 감소시킨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이며 인구밀도와 중국과의 근접성에서 구별되게 만드는 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 기사는 한국과 다른 미국의 행보를 지적하면서 양국의 방역 결과가 수치상 한국 사망자 85명 시점에 미국 6만 2천명이라는 결과를 보이는 것에 대해 일부 논평가들이 ‘온순한 집단주의와 유교의 오래된 문화 탓’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이런 관측은 인종차별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이런 관점은 한국의 성공을 이국적인 현상에 불과하게 만들고 다른 나라들의 배움을 촉구하기보다 천년에 걸친 문화적 산물의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하고 있다. 기사는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간단하고 훌륭하며 대단히 드문 일”을 직접 실천했다는 점이 진실이며, 그것은 메르스 사태라는 과거에서 배운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의 코로나 19정책은 특히 메르스를 겪으면서 맞닥뜨린 공중보건의 위기를 통해 조기 검사의 필요성과 2차 감염을 막기 위한 신규 확진자 격리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점에서 출발했다고 기사는 말한다. 기사는 외교위원회 한국학 선임 연구원의 입을 빌어 “메르스는 사람들이 붐비는 병원과 대기실을 통해 퍼졌기 때문” 에 한국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아프면서도 병원에 갈 수 없는 두려움을 겪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면서 메르스의 확산을 잡기까지 여러 차례 실수를 저질렀으며 시민들은 아무런 장비는 물론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불투명한 정부를 비난했다고 말한다.

이때 ‘정부는 실패했고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선언한 문재인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된 지금, 한국은 전염병 예방법안의 상당 부분을 개선하고, 신속한 검사를 위한 진단 키트 사용수칙은 물론 영장 없이 신규 확진자 위치 정보 접근 가능에 승인한 점과 경로의 투명성 증대를 위해 긴급 문자를 통해 즉각적인 정보와 확진자 경로를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기사는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전략에 대해 좀 더 심층적인 분석을 제공하면서 신속한 무료검사와 광범위한 추적기술, 중증환자의 의무적 격리라는 세 개의 기둥은 앞서 발병한 메르스에서 얻은 교훈의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선, 신속한 검사라는 기둥은 메르스에서 얻은 첫 번째 교훈으로써, 감염세를 늦추려면 정확한 진단기를 디자인하고 생산과 유통의 계획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번 코로나에서 한국은 이 부분에서 가장 훌륭한 조치를 취한 민주국가였다고 기사는 말한다.

기사는, 한국에서 첫번째 확진자가 나온 지 일주일 후 시점인 1월 말, 한국의 정부 관계자들은 의약회사에 코로나 검진 키트를 개발하도록 촉구했고 제조회사에는 대량생산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면서 영국이 “집단 감염”을 운운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는 몇 주 후면 사라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2월 중순에 한국은 이미 검진키트를 매일 수 천 개씩 대량생산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어 한국의 검사 속도는 3월 5일에 벌써 14만 5천명을 검사하는 수준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미국 • 영국 • 프랑스 • 이탈리아 • 일본 등 5개국의 검사 수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정부는 메르스 때처럼 병원이 환자들로 포화상태가 되지 않도록 600개의 검사소를 개장했고 선구적으로 드라이브스루 검사소를 개설해 10분만에 검사를 끝낼 수 있도록 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첨단기술을 이용한 광범위한 추적이라는 기둥에 대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접촉자 추적은 환자의 경로, 시기, 접촉한 시민을 인터뷰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은 첨단기술과 결합시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기사는 한국에 거주하는 한 작가의 말을 인용해 한국의 방식은 휴대폰 경고 알림을 통해 그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 발생한 그 날의 확진자 수를 통보하고, 구청 웹사이트를 통해 더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게 하는 방식이라고 덧붙인다. 외국에서는 이런 방식을 감시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메르스 사태 때 환자가 다녀간 병원이 정보 공유를 거부했기 때문에 일어난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라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한국의 시민들은 이런 추적시스템이 “사생활 보호와 공공 보건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이면서 이러한 첨단 추적 시스템은 확진자 동선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만들어 접촉자를 자가 격리하게 만들고 집단 감염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기사는 전한다.

마지막으로 무관용 격리라는 기둥에 대해, 기사는 먼저 한국이 코로나 환자를 대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분산 수용이라고 말한다. 고령 환자와 중증 환자, 경증 환자, 무증상 감염 환자 등은 각각 다른 시설과 자가 격리의 기준이 마련되어 있으며 담당 공무원은 자택 자가격리 대상인 무증상 감염 환자 및 자가 격리자의 증상을 하루 두 번의 확인을 통해 체크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해외에서 유입되는 방문객들은 무조건 2주 격리의 기간을 거쳐야 하며 지금까지 약 9천명이 입원이나 의무적 자가격리가 필요한 증상을 보였다고 정부의 발표를 인용했다.

이어 기사는, 미국의 경우 아직 중앙정부 차원의 격리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코로나 위협을 억제한 국가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환자와 건강한 시민 간의 접촉을 체계적으로 분리해 온 것이라고 강조한다. 검사와 추적도 중요하지만 코로나19는 끊임없이 숙주를 찾고 있는 바이러스이며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격리조치라는 국가적 차원의 계획 없이는 순식간에 확산될 수 밖에 없음을 경고한다.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한국 공공보건의 세 기둥이 “검사, 추적, 격리”임을 기사는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그러나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요인은 바로 정부와 시민 간의 공유된 자신감이라고 말한다. 시민들이 한국 정부를 신뢰하고 있는 점은 정부가 공공 보건에서 정치적요인을 배제하려는 노력 때문이라고 짚으면서, 한국의 보건복지부의 노력에 대해 설명한다. 기사는 한국 정부가 지난 몇 달 동안 대중에 실상황을 알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나 손씻기 같은 최적의 행동을 전파하기 위해 매일 브리핑을 하고 있으며, 이 브리핑은 정치인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직접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백악관에도 이러한 노력이 실행되었으면 하는 취지의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시민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신뢰는 공식적 봉쇄 정책을 실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나타난다고 기사는 말하면서 “봉쇄한 적도 없고 지금도 봉쇄하고 있지 않지만 한국 시민들은 집에서 지내기로 스스로 정했다. 우리는 손을 씻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고 있다”고 한 시민과의 인터뷰를 인용하고 있다. 이 시민은 또, 코로나 사태 이전과 비교해 지금은 재택근무로 인해 훨씬 덜 붐비는 지하철과 열화상 카메라가 비치된 회사, 그리고 해고대신 종업원의 근무 스케줄이 짧게 조정된 단골 식당, 회식과 모임이 사라진 퇴근 등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하면서, 시민들이 코로나를 막기 위해 빠르게, 잘 협력하고 있는 이유는 “유교 사상 때문이 아니라 메르스에 대한 기억” 때문이며 “코로나 사태가 장기전으로 갈 것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기 떄문에 한국 사회 전체가 함께 할 수 있었고, 그런 협력이 지금 더 나은 위치를 만들었다고 한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 글을 쓴 기자는 약한 백신을 통해 더욱 강한 항체를 만들어 내는 우리 몸과 같이 한국 사회는 메르스 위기라는 백신을 통해 면역 체계가 더욱 단련되고 강화되었다고 비유하면서, 특히 전국적 감염과 맞닥뜨렸을 때 한국인들이 기억하고 실행할 지침을 만들어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기사는 다시 한번 더, 세계적 수준의 한국의 코로나 대처는 종교나 문화 유산의 결과물이 아니라 병과 싸워 이기고 위기를 헤쳐나와 얻은 결과물이라고 강조하고, 병원균은 자동반응이지만 공공정책은 준비되고 의도한 대로의 반응이라는 점을 역설하면서, 방금 전의 실패에서라도 배울 수 있다면 그 시간은 남아 있다고 말하고 있다. (글, 박수희)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디 애틀랜틱> 기사 전문이다.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s://bit.ly/2A6O5vX

What’s Behind South Korea’s COVID-19 Exceptionalism?

코로나19 사태에서 한국의 예외적 우수성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Seven weeks ago, South Korea and the U.S. had the same number of virus deaths. Today, South Korea has fewer than 300, and the U.S. has more than 70,000.

7주 전, 한국과 미국의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는 같았다. 오늘, 한국의 사망자 수는 3백 명 미만이며 미국은 7만 명 이상이다.

May 6, 2020

Derek Thompson
Staff writer at The Atlantic

ED JONES / AFP VIA GETTY

Editor’s Note: The Atlantic is making vital coverage of the coronavirus available to all readers. Find the collection here.

ON FEBRUARY 16, A SUNDAY, a 61-year-old woman with a fever entered the Shincheonji Church of Jesus in Daegu, South Korea. She touched her finger to a digital scanner. She passed through a pair of glass doors and proceeded downstairs, to the prayer hall, where she sat with approximately 1,000 other worshippers in a large windowless room. Hours later, she exited the building and left behind a trail of pathogens that would lead to thousands of infections, triggering one of the largest coronavirus outbreaks in the world.

2월 16일 일요일, 발열 증세가 있는 61세 여성이 대구에 있는 신천지 예수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지문인식기에 손가락을 대고 유리문을 통과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가 창문이 없는 커다란 기도실에서 약 천 명의 신도들과 함께 앉았다. 몇 시간 후 그녀는 건물을 빠져 나왔고 그녀가 남긴 감염원의 흔적은 수천 명을 감염시키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코로나 발병 사건을 촉발시켰다.

By the end of February, South Korea had the most COVID-19 patients of any country outside China. New confirmed cases were doubling every few days, and pharmacies were running out of face masks. More than a dozen countries imposed travel restrictions to protect their citizens from the Korean outbreak, including the U.S., which had, at the time, recorded an official COVID-19 death toll low enough to count on one hand.

2월 말까지 한국에서는 중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 신규 확진자 수는 며칠 간격으로 두 배씩 늘었고, 약국은 마스크가 동났다. 10여 개가 넘는 국가들이 한국의 코로나 사태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여행제한 조치를 취했는데, 미국도 여기에 포함되었으며, 그 당시 미국의 공식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But just as South Korea appeared to be descending into catastrophe, the country stopped the virus in its tracks. The government demanded that the Shincheonji Church turn over its full membership list, through which the Ministry of Health identified thousands of worshippers. All were ordered to self-isolate. Within days, thousands of people in Daegu were tested for the virus. Individuals with the most serious cases were sent to hospitals, while those with milder cases checked into isolation units at converted corporate training facilities. The government used a combination of interviews and cellphone surveillance to track down the recent contacts of new patients and ordered those contacts to self-isolate as well.

하지만 한국이 파국으로 가라앉는 듯 보이던 바로 그 순간에, 한국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아냈다. 정부는 신천지 교회에 전체 신도 명단을 제출토록 요구했고, 이를 통해 보건복지부는 수 천 명의 예배 참석자를 확인했다. 모든 예배 참석자들에게 자가격리 명령이 내려졌다. 며칠 이내로 대구에 사는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증세가 심각한 환자는 병원으로 보내졌고, 경증 환자는 기업 연수 시설을 활용한 자가격리 시설로 입소했다. 정부는 신규 확진자의 최근 접촉자를 추적하기 위해 대면조사와 휴대폰 조사를 활용했으며 접촉자에게도 자가격리 명령이 내려졌다.

Within a month, the Korean outbreak was effectively contained. In the first two weeks of March, new daily cases fell from 800 to fewer than 100. (This morning, the nation of 51 million reported zero new domestic infections for the third straight day.) On April 15, the country successfully held a national parliamentary election with the highest turnout in three decades, without triggering another wave. South Korea is not unique in its ability to bend the curve of daily cases; New Zealand, Australia, and Norway have done so, as well. But it is perhaps the largest democracy to reduce new daily cases by more than 90 percent from peak, and its density and proximity to China make the achievement particularly noteworthy.

한 달 내에 한국의 코로나 발병이 효과적으로 억제되었다. 3월 초반 2주 간에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800명에서 100명 이하로 줄어 들었다. (오늘 아침 5천 만 명의 인구를 가진 한국은 3일 연속 국내 감염자 수 0명이라고 보고했다.) 4월 15일 한국은 전국 단위의 국회의원 선거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30년 만에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지만 또 다른 대규모 감염 발생은 없었다. 한국만이 유일하게 일일 확진자 그래프의 곡선을 완만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노르웨이 등도 그래프의 곡선을 완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국은 일일 신규 확진자 수를 정점에서 90% 이상 감소시킨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이며, 인구밀도와 중국과의 근접성은 이 성과를 특별히 주목할 만하게 만든다.

In the time that South Korea righted its course, the United States veered into disaster. In mid-March, the U.S. and South Korea had the same number of coronavirus-caused fatalities—approximately 90. In April, South Korea lost a total of 85 souls to COVID-19, while the U.S. lost 62,000—an average of 85 deaths every hour. That the U.S. population is approximately six times larger than South Korea’s does little to soften the horror of the comparison.

한국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미국은 재앙의 길로 접어들었다. 3월 중순, 미국과 한국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약 90명으로 같았다. 4월에 한국에서는 코로나19로 85명이 사망했지만, 미국에서는 6만2천 명이 사망했으며 이는 평균적으로 1시간 마다 85명이 사망한 수치이다. 미국의 인구가 한국 보다 약 6배 많은 것을 감안해도 이 비교는 공포를 누그러뜨리지 못한다.

Juxtaposing the South Korean response with the American tragedy, some commentators have chalked up the difference to an ancient culture of docile collectivism and Confucianism across the Pacific. This observation isn’t just racist. It also exoticizes South Korea’s success and makes it seem like the inevitable result of millennia of cultural accretion, rather than something the U.S., or any other country, can learn from right now. The truth is that the Korean government and its citizens did something simple, admirable, and all too rare: They suffered from history, and they learned from it.

한국인들의 대처와 미국인들의 비극을 비교하며 일부 논평가들은 이 차이가 태평양 너머 있는 이 나라의 온순한 집단주의와 유교의 오래된 문화의 탓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관측은 인종차별주의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의 성공을 굉장히 이국적인 것으로 만들고,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당장 배울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천년에 걸친 문화적 산물의 필연적인 결과로 보이도록 만든다. 진실은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간단하고 훌륭하며 매우 드문 일을 실행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고통스러웠던 과거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Lee Nak-yon (front row second from left), a former prime minister and a candidate of the ruling Democratic Party, watches TVs broadcasting the results of exit polls for the parliamentary election at the National Assembly amid the coronavirus outbreak on April 15 in Seoul. That week, the country successfully held a national parliamentary election with the highest turnout in three decades, without triggering another wave. (Chung Sung-Jun / Getty)
이낙연(앞 줄 왼쪽에서 두 번째) 전 국무총리이자 여당의 선거 후보자가 4월15일 코로나바이러스 정국에 열린 국회의원 선거의 출구조사 결과에 대한 TV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그 주에 한국은 전국 단위의 국회의원 선거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30년 만에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지만 또 다른 대규모 감염 발생은 없었다.

SOUTH KOREA’S COVID-19 policy was forged in the crucible of previous public-health crises. In 2002, the SARS outbreak killed several hundred people in East Asia. In 2009, the H1N1 influenza, which likely originated in Mexico, spread to more than 1 million people globally and killed several hundred South Koreans. From these epidemics, South Korean public-health officials recognized the necessity of early testing and the importance of isolating new patients to prevent secondary infections.

한국의 코로나19 정책은 앞서 겪었던 공중보건의 위기라는 호된 시련 속에서 다져진 것이다. 2002년 사스 발병으로 동아시아에서 수백 명이 사망했다. 2009년 멕시코에서 최초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신종플루가 전 세계적으로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퍼졌고 한국에서도 수 백 명이 사망했다. 이러한 질병 유행으로부터 한국의 보건 당국은 조기 검사의 필요성과 2차 감염을 막기 위한 신규 확진자 격리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But 2015’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or MERS, created the playbook that the country has used to break the back of COVID-19.

하지만 2015년 메르스라고 불리우는 중동호흡기증후군은 한국이 코로나19 사태를 타개하는데 사용한 전술서를 만들어냈다.

In May 2015, a 68-year-old man returning to South Korea from a business trip to the Middle East had a fever. After visiting several clinics, he was admitted to a hospital in Seoul with a mysterious case of pneumonia. By the time doctors had diagnosed him with the viral respiratory infection MERS, the disease had spread, through the clinics and hospitals he’d visited, to several dozen patients. One of them, a 35-year-old man, left the hospital where he was infected and went to another medical center. There, he caused another outbreak. Within weeks, the disease was running rampant through the South Korean hospital system.

2015년 5월, 중동 출장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온 68세의 남성에게 발열 증세가 있었다. 그는 여러 진료소들을 전전한 뒤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 원인 불상의 폐렴 환자로 입원했다. 의사들이 그를 바이러스성 호흡기 감염병인 메르스로 진단을 내렸을 무렵, 메르스는 그가 방문했던 진료소와 대형 병원을 통해 수 십 명의 환자들에게로 퍼졌다. 그 중 한 명인 35세의 남성은 본인이 감염된 병원을 떠나 다른 병원으로 갔고, 거기서 또 다른 감염을 일으켰다. 단 몇 주 만에 메르스는 한국 병원 시스템에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었다.

“MERS was transfixing and frightening to Koreans, because the disease was spreading through crowded hospitals and their waiting rooms,” Scott Snyder, a senior fellow for Korea studies at 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told me. “People were getting sick, but they were also afraid of going to the hospital for fear that it would make them even more sick.”

스콧 스나이더 외교위원회 한국학 선임 연구원은 본지에 “메르스는 한국인들을 공포로 얼어붙게 만들었는데, 왜냐하면 그 병이 사람들이 붐비는 병원과 대기실을 통해 퍼졌기 때문”이라며, “사람들이 아프면서도 더 심한 병을 얻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병원에 가는 것도 겁을 냈다”라고 말했다.

The government made several damaging mistakes before arresting the spread of MERS. In the early days of the epidemic, testing kits were unavailable, as was information about the viral spread. When the government refused to announce which hospitals were witnessing outbreaks, citizens and politicians alike slammed it for its lack of transparency.

정부는 메르스의 확산을 잡기까지 여러차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발병 초기에 진단 키트도 없었고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정부가 어떤 병원에서 메르스가 발병했는지 밝히기를 거부하자, 시민들과 정치인들 모두 정부의 투명성 결여를 비난했다.

In response to MERS, South Korea rewrote much of its infectious-disease-prevention legislation. To expedite testing, it gave laboratories the green light to use unapproved diagnostic kits during a public-health emergency. To expand contact tracing, it gave health authorities warrantless access to CCTV footage and the geolocation data from the new patients’ phones. To increase transparency, the new laws required local governments to send prompt alerts, such as emergency texts, to disclose the recent whereabouts of new patients. “The government has failed, and the people have lost their trust,” declared Moon Jae-in, the head of the opposition party during the MERS outbreak. The public approved of both the sentiment and its source. Two years later, Moon was elected president of South Korea.

메르스에 대응하며 한국은 전염병 예방법안의 상당부분을 다시 작성했다. 신속한 검사를 위해 공중 보건 비상사태시에는 검사실이 승인되지 않은 진단키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 접촉자 추적 확대 측면에서 보건 당국은 영장 없이 CCTV 영상과 신규 확진자의 휴대폰의 위치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투명성 증대를 위해, 새로운 법은 지방 정부가 신규확진자의 최근 이동 경로를 공개하는 긴급 문자와 같은 즉각적인 경보를 보낼 것을 요구했다. 메르스 발병 당시 야당의 대표였던 문재인 대표는 “정부는 실패했고,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라고 선언했다. 대중은 그러한 생각과 그 원인 모두에 대해 지지를 보였다. 2년 뒤 문재인 대표는 한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South Korean health officials check the body temperatures of travelers arriving from Guangzhou, China, to monitor possible SARS virus patients at the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in January 2004. (STR / AFP via Getty)
2004년 1월 인천 국제공항에서 한국 보건 관계자가 사스 환자 가능성을 관찰하기 위해 중국의 광저우에서 도착한 여행객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TODAY, SOUTH KOREA’S COVID-19 response strategy sits atop three pillars: fast and free testing, expansive tracing technology, and mandatory isolation of the most severe cases. Each pillar was shaped by the epidemics that preceded the 2019 novel coronavirus.

오늘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전략은 세 개의 기둥이 뒷받침하고 있다. 신속한 무료 검사, 광범위한 추적 기술, 중증 환자의 의무적인 격리. 각각의 기둥은 2019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앞서 발생한 전염병에 의해 만들어졌다.

Fast Testing

신속한 검사

One of the key lessons of MERS was that bending the curve required an accelerated plan for designing, manufacturing, and distributing accurate tests. In the coronavirus pandemic, no large democracy has been better on these counts than South Korea.

메르스에서 얻은 주요 교훈은 감염세를 늦추려면 정확한 진단기를 디자인하고 생산하여 유통시킬 계획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번 코로나19 대유행에서 한국은 이 점에서 가장 훌룽한 조치를 취한 민주국가였다.

In late January, just one week after the country’s first case was diagnosed, government officials urged medical companies to develop coronavirus test kits and told manufacturers to prepare for mass production. By mid-February—while the U.K. was talking about “herd immunity” and President Donald Trump was predicting that the virus would “miraculously” disappear in weeks—South Korea was churning out thousands of test kits every day. By March 5, South Korea had tested 145,000 people—more than the U.S., the U.K., France, Italy, and Japan combined.

한국에서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지 일주일 후인 1월 말,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의약 회사들에 코로나 검진키트를 개발하도록 촉구했고 제조 회사에는 대량생산에 대비하라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집단 감염”을 이야기하고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이 “기적적으로” 몇 주 뒤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2월 중순, 한국은 검진키트를 매일 수천 개씩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었다. 3월 5일까지 한국은 14만5천 명을 검사했으며 이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의 검사수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였다.

To spare hospitals from being overrun with patients, as they were in 2015, Korean officials opened 600 testing centers and pioneered the use of drive-through testing stations to reduce face-to-face contact indoors. Inspired by drive-through counters at fast-food restaurants, these pop-up centers offered patients 10-minute tests without forcing them to leave their cars.

2015년 메르스 사태처럼 병원이 환자들로 포화상태가 되지 않도록 한국 정부는 검사소 600개를 개장했고, 실내 대면 접촉을 줄이기 위해 선구적으로 드라이브스루(drive-through) 검사소를 활용했다. 패스트푸드점의 드라이브스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임시 검사소에서는 환자가 차에서 나오지 않은 채 10분만에 검사를 끝낼 수 있었다.

An elderly woman enters a COVID-19 novel coronavirus testing booth outside the Yangji hospital in Seoul on March 17, 2020. The South Korean hospital introduced “phone booth”-style coronavirus testing facilities that avoid medical staff having to touch patients directly and cut down disinfection times. (Ed Jones / AFP via Getty)
2020년 3월 17일 서울의 양지병원 밖에 설치된 코로나19 검사부스로 한 고령의 여성이 들어서고 있다. 양지병원 측은 의료진과 환자의 직접 접촉을 방지하고 살균 횟수를 줄이기 위한 “공중전화부스”식 코로나19 검사 시설을 처음 만들었다.

Expansive High-Tech Tracing 첨단기술을 이용한 광범위한 추적 In most countries, contact tracing—or, simply, tracing—refers to the practice of interviewing recent patients to learn where, when, and to whom they might have passed along the disease. South Korea combines that approach with high-tech surveillance made possible by the post-MERS legislation mentioned above.

대부분 국가에서 접촉자 추적(혹은 간단히 추적)은 환자가 들른 장소, 시기, 접촉한 시민 등을 알아내기 위해 환자를 인터뷰하는 일련의 과정을 일컫는다. 한국은 이러한 접촉자 추적을, 앞서 위에서 언급한 메르스 사태 이후 상정된 법안으로 가능해진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감시 방법과 결합시켰다.

“The way Seoul does it is, they’ll send out an alert saying that there were X number of new confirmed cases today, if any, and that you can check their routes on the district website,” Yung In Chae, a writer based in Seoul, told me in an email. “On the website, each patient is identified [by] their gender and their age. They also note, with asterisks, whether their houses have been disinfected, whether there were contacts, and whether they were wearing masks the entire time. Lately, most of our cases have been imported, so the routes are pretty boring: People are going from the airport, to quarantine in their house, to their community health center to get tested.”

한국에서 활동하는 채영인 작가는 이메일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국의 방식은 오늘 확진자가 몇 명 있다는 경고 알림을 보내서 누구나 구청 웹사이트에서 확진자의 동선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구청 웹사이트에는 확진자의 나이와 성별이 기재되어 있다. 또한 확진자의 집이 살균처리가 되었는지, 접촉자가 있었는지, 혹은 확진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는지 등을 별표로 표시해 알려주기도 한다. 최근 확진자 대부분이 해외 유입이라 공항으로 입국해서 자택에서 자가격리 후 검사를 받기 위해 지역 선별 진료소로 가는 등 대부분의 동선이 아주 단순하다.”

This level of surveillance might alarm some Americans. But, again, it’s important to consider South Korea’s response in the context of the MERS outbreak. In 2015, the government’s most public failure was its refusal to share any information about the hospitals where sick patients might have visited. In 2020, South Koreans seem mindful of the trade-offs between privacy and public health, and the sources I spoke with welcomed tracing technology. “I’m fine with the amount of information shared,” Yung In Chae said. “I think that we’ve figured out a good balance between guarding privacy and public health.”

일부 미국 시민은 한국의 감시 수준에 놀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대처를 메르스 발발 시기의 맥락에서 보는 게 중요하다. 2015년 한국 정부의 대처 실패의 대부분은 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병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길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2020년 한국 시민들은 사생활과 공공 보건 사이에 균형을 잡으려는 듯하며, 내가 인터뷰한 이들은 추적 기술을 환영했다. “공유하는 정보의 양은 문제가 없다. 사생활 보호와 공공 보건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냈다고 생각한다”고 채영인 작가가 덧붙였다.

The national mapping of citizen activity yields fast results. On a Saturday in April, a 58-year-old man was diagnosed with the coronavirus. Surveillance data showed that he had voted in the election and visited several restaurants in previous days. Within 48 hours, South Korea had identified—and, in some cases, interviewed—more than 1,000 people who had potentially come into contact with him. All of them were instructed to self-isolate, thus cordoning off the virus’s spread. By the end of the month, no new clusters appeared in the Korean infection data.

한국은 전국의 확진자 동선을 바탕으로 빠른 결과를 낸다. 4월 어느 토요일 58세의 남성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확진자 감시 데이터에 따르면 환자는 지난 며칠에 걸쳐 사전투표를 했고 식당 여러 곳을 들렀다. 한국 정부는 48시간 내에 확진자와 접촉 가능성이 있는 천 명 이상의 사람을 찾아냈고 그 중 일부와는 인터뷰를 했다. 그들 모두 자가격리를 해서 코로나19 확산세를 저지하도록 권고 받았다. 4월 말 경 한국 감염 데이터에서 새로운 집단감염은 보이지 않았다.

Zero-Tolerance Isolation 무관용 격리 To separate the sick from the healthy—and the somewhat sick from the very sick—South Korea’s patients are divided into several groups. The elderly and those with serious illnesses go straight to hospitals. Moderately sick people are sent to isolation dorms, where they’re monitored. And the asymptomatic “contacts” of recently diagnosed cases are asked to self-quarantine at home and use separate bathrooms, dishes, and towels from their cohabitants. Health-service officials check in twice daily to monitor their symptoms.

확진자를 일반 시민과 분리하고 경증 환자를 중증 환자와 분리하기 위해 한국의 환자들은 여러 그룹으로 분류된다. 고령 환자와 중증 환자의 경우 병원으로 즉시 보내진다. 경증 환자는 격리 시설로 보내져 상태가 관찰된다. 최근 확진자 중 무증상 감염 환자의 경우 자택에서 자가격리하며 가족과 별도의 욕실, 그릇, 수건을 쓰도록 한다. 담당 보건 공무원이 증상을 확인하기 위해 하루 두 번 체크한다.

International arrivals are also subject to isolation rules. South Korea requires that foreign arrivals self-isolate for two weeks. Koreans arriving from overseas are required to download an app that registers their symptoms in the days after their arrival. By early April, South Korea reported that more than 170,000 inbound travelers had downloaded the app, and nearly 9,000 of them had reported symptoms requiring hospitalization or mandatory quarantine. (Individuals who violate self-isolation rules face steep fines or, for foreigners, immediate deportation.)

해외 유입 또한 자가격리 규칙의 대상이다. 한국은 해외 입국자들이 2주 동안 자가격리하도록 조치한다. 해외에서 입국한 한국 시민들은 도착 후 수 일 내에 앱을 다운로드 받아 증상을 등록해야 한다. 4월 초까지 17만 명의 해외 입국자가 해당 앱을 다운로드 받았으며 그 중 약 9000명 가까이가 입원이나 의무적 자가격리가 필요한 증상을 보였다고 정부가 발표했다. (자가격리 규칙을 위반한 개인은 높은 벌금을 물어야 하고 외국인의 경우 즉시 강제추방된다.)

Central isolation is not yet a part of most U.S. states’ response to the virus. But it ought to be. One of the hallmarks of the countries that have contained the COVID-19 threat has been the systematic separation of sick people and their contacts from healthy people. Testing and tracing are important, but a virus is indifferent to nasal swabs and Bluetooth-tracing apps. It seeks hosts, and without a national plan to remove sick people from healthy populations, the disease can still spread among families and neighbors.

미국 주 대부분은 아직 코로나19에 대해 중앙적 차원의 격리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은 꼭 행해져야 한다. 코로나19 위협을 억제한 국가들의 특징 중 하나는 환자와 건강한 사람과 첩촉을 체계적으로 분리해왔다는 것이다. 검사와 추적도 중요하지만 코로나19는 코 검사용 면봉과 블루투스 기반 추적 앱에는 관심이 없다. 코로나19는 숙주를 찾고 있으며, 환자를 건강한 사람들로부터 격리하는 국가적 차원의 계획 없이는 코로나 감염은 가족과 이웃 사이에서 퍼질 수 있다.

“Test, trace, and isolate” is the three-legged stool of South Korean public-health policy. But what keeps the stool upright is the shared confidence between the government and the public. “A delicate balance of trust … drives the entire thing,” the writer Yung in Chae told me.

“검사, 추적, 격리”는 한국 공공 보건 정책의 세 기둥이다. 하지만 보건 정책을 곧게 유지하는 것은 정부와 시민 간의 공유된 자신감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섬세한 균형이… …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라고 채영인 작가가 말했다.

People trust the government in part because it works to keep raw politics out of public health. South Korea’s Ministry of Health has for months held daily briefings to update the public and convey best practices, such as social distancing and hand-washing. “These briefings are held by scientists, not politicians,” Scott Snyder told me. “Imagine having a 10 a.m. and 2 p.m. briefing from the White House, with Dr. [Anthony] Fauci in the morning and Dr. [Deborah] Birx in the afternoon, and no other members of the White House.”

한국 시민은 정부가 공공 보건에서 원색적 정치를 배제하려 노력하기 때문에도 한국 정부를 신뢰한다. 한국의 보건복지부는 지난 몇 달 동안 대중에 실상황을 알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나 손씻기 같은 최적의 행동을 전하기 위해 일일 브리핑을 해왔다. 스콧 스나이더는 “정치인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이 브리핑을 진행한다. 백악관에서 10시와 2시에, 오전에는 [안토니오] 파우치 박사가, 오후에는 [데보라] 벅스 박사가 진행하고 다른 백악관 사람은 끼어 들지 않는 두 차례의 브리핑이 진행된다고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And the government trusts the public to act as a responsible co-partner in public health. Rather than announcing an official lockdown that would fully close restaurants and businesses and force citizens to stay home, the Korean government has opted to keep more of its economy open. “We were never on lockdown, and we’re still not on lockdown,” Paul Choi, a consultant who lives in Seoul, told me. “But citizens have taken it upon ourselves to stay inside. We’re very careful to wash our hands and keep our distance. Almost everybody is wearing masks. If you don’t wear masks, you get looks on the street.”

그리고 한국 정부도 한국 시민들이 공공 보건에 있어서 책임감있는 협력자로서 행동할 것임을 믿는다. 모든 식당과 가게를 완전히 닫아버리고 시민들이 집에서 머무르도록 하는 공식적 봉쇄 정책을 행하기 보다 한국 정부는 경제를 보다 열어두는 방안을 택했다. 서울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폴 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봉쇄한 적도 없고 지금도 봉쇄하고 있지 않지만 한국 시민들은 집에서 지내기로 스스로 정했다. 우리는 손을 씻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등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한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거리에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된다.”

 Before the crisis, Choi said, he would leave his apartment early, ride a crowded subway, elbow his way through a packed gym to the treadmills, and then go to the office. “Today, the subway is much less crowded, because more people work from home,” he said. “When I arrive at my office building, there are temperature cameras in the lobby. There’s a regular diner that I go to for lunch, and the staff there tell me that their work schedules have been reduced to avoid layoffs. Larger social gatherings, at bars and restaurants, have been paused.”

코로나19 이전 폴 최는 아파트를 일찍 나서서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이 많은 헬스클럽을 비집고 들어가 런닝머신을 뛴 다음 출근했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해서 지하철이 훨씬 덜 붐빈다. 회사 건물에 도착하면 열 화상 카메라가 로비에 있다. 점심 먹으러 가는 단골 식당이 있는데 해고를 피하기 위해 근무 스케줄이 짧게 조정되었다고 종업원이 말해준다. 바와 식당에서 많이 수가 모이는 모임도 중단된 상태다”라고 폴 최가 덧붙였다.

I asked Choi how the country had come together so quickly to stem the spread of the disease. “It’s about civic memory, not Confucius,” he said. “We remember MERS. We remember other epidemics. We know this is a marathon. But we’re in a better place because the entire society has been in this game, fighting together.”

한국이 코로나19 확산세를 막기 위해 어떻게 그렇게 빨리 협력할 수 있었는지 폴 최에게 물었다. “유교사상이 아니라 시민들의 기억이 큰 역할을 했다. 우리는 메르스를 기억한다. 다른 전염병 사태도 기억한다. 이번 코로나19사태가 마라톤 같은 장기전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 전체가 함께 했고 함께 싸웠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더 나은 위치에 있다”라고 말했다.

As he spoke, my mind turned to vaccination. A live vaccine uses a weakened version of a virus to teach the immune system how to respond to the real thing. Long after the vaccine is gone, the body remembers its immuno-playbook and stands prepared to fight a stronger pathogen in the future. South Korea’s national immune system was instructed and strengthened by previous crises. Other epidemics came and went, but they left behind guidance that Koreans recalled and executed when they were suddenly confronted with the plague of the century.

폴 최가 말하는 동안 나는 백신이 떠올렸다. 살아있는 백신은 면역체계가 실제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약화된 바이러스를 사용한다. 백신이 사라진 지 오래되어도 몸은 면역 대응을 기억하고 향후 더 강한 병원균과 싸울 태세가 되어 있다. 한국의 면역 체계는 이전 위기에 의해 단련되었고 강화되었다. 기타 다른 유행병들이 왔다 갔지만 이들은 전국적 감염병과 갑작스레 맞닥뜨렸을 때 한국인들이 기억하고 실행할 지침을 남겨주었다.

South Korea’s world-class response to COVID-19 is not the product of religion, or cultural destiny, but rather the result of diseases bested and crises weathered. Unlike the biological response to a pathogen, public policy is not an automatic response, but a deliberate one. South Korea chose to learn. The United States entered this pandemic discombobulated, blundering, and hamstrung by our lack of readiness. Neither history nor contagion will wait for us to catch up. That is the bad news. The good news is that history will go on. And we still have time to learn from it.

세계적인 수준의 한국의 코로나19 대처는 종교나 문화 유산의 결과물이 아니라 병과 싸워 이기고 위기를 헤쳐나와 얻은 결과물이다. 병원균에 대한 생물학적 반응과 달리 공공 정책은 자동적 반응이 아니라 의도된 반응이다. 한국은 배우기를 선택했다. 미국은 준비 부족으로 혼란되고 우왕좌왕하며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았다. 역사도 전염병도 우리가 따라잡길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나쁜 소식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역사는 계속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직 배울 시간이 남아 있다.

Pedestrians cross the road in Seoul on April 23. (Jung Yeon-Je / AFP via Getty)
4월 23일 서울의 한 도로를 건너는 행인들

DEREK THOMPSON is a staff writer at The Atlantic, where he writes about economics, technology, and the media. He is the author of Hit Makers and the host of the podcast Crazy/Gen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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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합문화센터, 13일 온라인 개관

탈북민·지역주민 문화로 소통하는 복합문화공간 표방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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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12  23: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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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통합문화센터가 13일 낮 12시 온라인으로 개관한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북한이탈주민과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해 문화를 매개로 소통하는 복합문화공간인 '남북통합문화센터'(센터)가 13일 낮 12시 온라인으로 개관한다.

통일부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소재 지상 7층, 지하 2층 연면적 8,000㎡(2,438평) 규모의 '남북통합문화센터'를 13일 온라인으로 개관하고 코로나19상황에서 '생활속 거리두기' 지침을 준수하는 범위에서 소규모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센터는 "탈북민과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생활 밀착 강좌(요가, 육아, 요리, 음악, 역사 체험 등) △'남북생애나눔대화' △남북 통합 문화 포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남북 주민이 문화로 소통할 수 있는 '공동 문화 구역'이 될 것"이라고 통일부는 설명했다.

13일 부터 통일부와 센터 누리집(https://uniculture.unikorea.go.kr), 누리 소통망(SNS),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임형주, 설운도 등 유명 가수의 축하공연, 1인 광고창작자(크리에이터)가 통합문화체험관과 기획전시관 등 센터를 직접 돌아보며 체험하는 모습을 담은 센터 소개 영상을 공개한다.

센터는 1층에 공연장과 카페, 탈북민 창업홍보관이 자리잡고 3층에는 음악실, 미술실 등 취미교실과 다목적 체력단련실을 비롯해 탈북민과 일반 주민이 취미생활을 공유하고문화체육활동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들어서 있다. 4층에는 종합상담실 '마음숲'과 심리치유실, 요리교실, 다목적 강의실 등이 자리잡고 있다.

5층은 장남감 대여소가 포함된 어린이 도서관과 기획전시관, 영상체험실 등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으며, 6층은 3만여권의 장서를 구비한 평화통일도서관과 통합문화체험관이 자리잡고 있다.

센터 건립을 위해 토지매입과 설계, 공사 등에 235억원이 들었으며, 연간 운영비는 총 33억 5,500만원이 사용된다. 

   
▲ 통일부 출입기자단이 개관에 앞서 12일 오전 센터를 참관해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전시관 모습.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남북생애나눔대화가 이루어지게 될 공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시설 유지·관리비 6억7,100만원, 기획·운영비 8억9,400만원을 비롯해 민간위탁사업으로 진행되는 △'남북생애나눔대화', 통합문화 공연 등 탈북민과 일반주민의 소통지원(5억6,000만원) △상담·심리지원 등 탈북민 문화생활 종합지원(6억원)△통합문화·평화통일 시민강좌, 평화통일도서관 운영 등 통합문화 체험 및 도서관 운영(6억3천만원) 등 3개 분야 사업에 연간 17억9,000만원의 예산이 쓰인다. 

업무지원 형태의 통일부 정착지원과 직원 5명과 민간 위탁사업 관련 근무자 26명이 센터에 상주한다.

이종주 인도협력국장은 "2012년 국정감사를 통해 센터 건립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예산확보와 부지선정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탈북민과 관련된 시설에 대한 반발과 우여곡절이 많았으며, 지역 주민들을 센터 운영위원으로 참여시켜 운영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등 적극적인 설득작업을 통해 개관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센터가 들어선 마곡지구는 새로 개발된 아파트 단지여서 지역의 문화적 수요에 비해 적절한 시설없는 상황이어서 지역 주민들은 수요는 센터 개관에 대한 요청도 많았다. 오히려 지역주민의 수요는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 탈북민이 많이 찾도록 하는 것이 과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센터가 최소한 서로가 서로를 몰라 상처주는 곳이 되지 않도록 서로 보듬으며 신뢰가 쌓이는 곳으로 자리매김 되기를 기대한다"며 "남북통합문화를 통해 남북주민간 소통할 기회를 확대하고 경계 완화와 상호이해, 평화통일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며, 남북간 통합문화 프로그램을 선도적으로 개발하여 성공사례를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중심지로 기능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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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바보야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야!

시민건강연구소 웨비나 "정치 역량 강화가 유일 해법"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 붕괴가 일어나면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대비를 위해 정치와 시민·사회운동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1일 시민건강연구소가 주최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건강정의' 웨비나(웹+세미나)에서 강의 발제자로 나선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와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적으로 진행된 노동 양극화가 더 심화'하는 미래가 도래하고 있다는 지적 아래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경제 분야가 아닌, 정치와 운동 영역에서 더 적극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강연에서 주목해야 할 건, 코로나19 이전 세계 노동, 경제의 화두였던 4차 산업혁명의 도래, 즉 기술 발전보다 정치의 중요성을 두 강연자가 강조했다는 점이다.

 

 

관련 설명을 위해 신 교수는 '코로나19 체제 이전', 즉 세계화와 신자유주의화가 가속화하던 시기 노동의 질과 양이 연령, 젠더, 인종, 소득, 교육 등에 따라 점차 벌어졌으며, 그간 발전한 기술 수준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비대면(untact)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미치리라고 예견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비관적 미래상과 비슷하다. 기술 발전으로 소수의 엘리트 노동자를 제외한 다수 노동자가 노동 시장에서 이탈하리라는 전망이 세계적으로 오랜 기간 쏟아졌다. 신 교수는 이미 상당수 노동자가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에 종사함에 따라 "산업 사회는 코로나19 이전에 종언을 고했다"고 단언했다.

 

 

신 교수는 그러나 정치 격차가 기술 발달로 인한 격차보다 노동 양극화를 더 심화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노동 양극화의 주된 원인은 기술 문제가 아닌 정치 문제에 있었다"며 "대표적 사례로, 스웨덴은 영국보다 로봇을 3배 정도 더 사용하지만 불평등 수준과 빈곤율은 영국이 스웨덴보다 훨씬 높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 양극화가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 때, 이 '초격차 사회'를 막는 힘은 정치에서 나온다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김 연구원은 같은 선상에서 한국 정치와 시민사회운동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데 의문을 표했다.

 

그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동조화하고 △노동을 존중하며 △연대와 협력이 표준이 되는 모델이 '뉴 노멀'이 되어야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불평등이 심화하고, (사회 운동이자 새 정치의 기반이 되어야 할) 노동계급은 더 약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여성, (자영업자 등) 불안정 취업자, 노인 노동자, 청년(실업자), 이주 노동자 등에 더 집중되는 현실을 김 연구원은 지적했다. 정치와 운동이 작동하지 않은 결과로 취약 계층이 일방적으로 코로나19 위험과 코로나19로 인한 실업 등의 경제적 위험에 더 노출됐다는 지적이다.

 

 

신 교수는 더 바람직한 '포스트 코로나19 뉴 노멀'을 준비하기 위해 기존 고용체제와 사회보장 체제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을 인정하고, 기본 소득 등의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로봇세를 신설하고 일자리 공유제 등의 실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의 대안 모색에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더불어 이윤의 과도한 집중화를 막을 제도적 장치를 정치권이 모색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시민건강연구소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전망하는 차원에서 4주 연속 기획 웨비나를 진행 중이며, 이날 웨비나는 3주차 프로그램이다. 오는 18일 저녁 7시에는 '정보인권과 자유권'이라는 주제로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와 최홍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이 발표에 나설 예정이다.

 

 

해당 웨비나는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신청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지정된 양식으로 온라인 신청을 하는 이는 시민건강연구소로부터 구글 미트 링크를 전달받아 웨비나에 참여 가능하다. (☞ 신청하기)

 

 

▲기존의 노동 유연화, 노동 기반 복지 사회가 유지될 경우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노동 양극화는 초격화하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새로운 모델을 위해 정치와 시민사회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진행된 설명회에 입장하는 실업급여 신청자의 모습. ⓒ연합뉴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51120554461465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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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곳곳에 등장한 이 미국 청년을 아십니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5/12 10:25
  • 수정일
    2020/05/12 10:2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5.18 40주년 특집 - 이방인의 증언 ①-1] 들것 나눠든 체크무늬 셔츠, 그는 누구일까?

20.05.12 07:12l최종 업데이트 20.05.12 07:17l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인 2020년, <오마이뉴스>는 '평화봉사단'에 주목한다. 항쟁의 복판에 있었던 '증인'들의 이야기를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말]
 5.18민주화운동 당시 평화봉사단 소속 팀 원버그(Tim Warnberg)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들고 당시 같은 위치에 섰다. 당시 제일은행이 있던 건물은 허물고 무등빌딩이 새롭게 지어졌다.
▲  보안사 5.18 사진첩에 실려 있는 사진. 한 외국인이 광주시민들과 들것을 나눠든 채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해당 사진은 5.18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있던 광주 동구 금남로의 무등빌딩에서 찍힌 것이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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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봉사단 소속 팀 원버그(Tim Warnberg)의 모습을 담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진.
▲  보안사의 5.18 사진첩에 실려 있는 사진. 한 외국인이 광주시민들과 들것을 나눠든 채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 나경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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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위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외국인 남성이 한국인 4명과 들것을 나르는 모습. 그의 축 처진 오른 어깨는 들것의 무게를 짐작게 했다.

해당 사진은 지난해 11월 처음 공개된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사진첩 중 '증거물사진 393-1980-9' 40쪽에 담겨 있었다. 여러 권의 사진첩엔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이 가득했다. 당시 보안사는 '광주사태의 증거물'로 이 사진들을 모았지만, 도도했던 40년 세월은 그것을 5.18민주화운동을 증명하는 '역사'로 만들었다.
  
이 외국인은 어쩌다 이 사진에 담기게 됐을까? 그것도 직접 들것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당시 광주에 머물고 있던 선교사들, 그리고 영화 <택시운전사>의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처럼, 그동안 널리 알려진 5.18 속 외국인은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렸다. 위 사진 속 외국인은 그들과 또 다른 방식으로 항쟁의 중심에 서 있는 듯했다. 체크무늬 셔츠의 증인, 그가 누군지 궁금했다.

그곳, 무등(無等)
 

 5.18 민주화운동의 핵심 장소인 광주 동구 광산동에 위치한 구 전남도청사. 국가등록문화재 제16호로 2002년 지정 되었다.
▲  5.18민주화운동의 핵심 장소인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국가등록문화재 제16호로 2002년 지정 되었다. 은행나무 또한 40년 동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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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8일 옛 전남도청 앞에 섰다. 뜨거웠던 항쟁을 지켜본 도청 울타리 안의 은행나무가 곧장 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조금 옮기니 5.18을 상징하는 너른 분수대가 우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분수대 너머엔 최근 복원된 시계탑이, 그 너머엔 수많은 탄흔을 품은 전일빌딩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날엔 인근 지산동에 있는 광주지방법원에서 전두환의 재판을 봤다. 40년 전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 군대는 사진 속 들것에 실린 이를 비롯해 수많은 시민을 무참히 살상했다. 법원에 들어서던 노년의 전두환은 책임과 반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 사실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두환씨가 27일 오후 전남 광주지방법원에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마치고 부인 이순자씨와 경호를 받으며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 사실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두환씨가 4월 27일 오후 전남 광주지방법원에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마치고 부인 이순자씨와 경호를 받으며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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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빌딩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선 사진 속 장소가 정확히 어딘지 알고 싶었다. 사실 해당 사진은 보안사가 찍은 게 아니다. 당시 나경택 <전남매일> 기자가 찍은 사진을 보안사가 압수한 것이었다. 다행히 필름까진 빼앗기지 않아, 이후 이 사진과 함께 여러 5.18 당시 사진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4월 28일 통화한 나 기자는 해당 사진을 "전일빌딩에서 찍었고 (사진 속 장소는 당시) 관광호텔 쪽"이라며 "전일빌딩 5층에 친구가 일하던 '대한교육보험' 사무실이 있어서 그곳에 양해를 구하고 들락날락했던 것 같다"이라고 말했다. 사진 속 건물엔 "재산세 수납 중", "한국은행 국고수납 대리점"이란 글귀가 붙어 있었다. 출입문에 새겨진 익숙하지 않은 마크도 눈에 띄었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금남로
▲  5.18민주화운동의 중심이었던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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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을 거듭해보니 당시 제일은행의 마크였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엄지 모양의 제일은행 마크보다 훨씬 이전의 마크다. 옛 전남도청을 등지고 전일빌딩에서 두 블록 정도 이동하면 가톨릭센터(현 5.18민주화운동 기록관)가 나오고, 바로 길 건너 맞은편엔 지금도 SC제일은행이 있다. 1990년대 새로 올린 건물이긴 하지만, 바로 옆 옛 상업은행(현 우리은행)과 함께 5.18 현장의 한복판이었던 곳이다.

 

그런데 이곳은 전일빌딩과는 좀 떨어져 있었다. 아무리 따져봐도 전일빌딩에서 잡은 앵글이라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당시 관광호텔 자리와도 거리가 있었다. 갸웃거리며 사진을 손에 든 채 건물 앞을 서성이는데 한 남성이 "여기가 아니고 저기예요"라며 옛 전남도청 방향을 가리켰다. 말끔한 정장을 입은 남성은 사진 속 장소를 잘 아는 듯했다.

남성은 자신을 "제일은행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1990년에 입사해 5.18 당시엔 광주에 없었다"라면서도 "선배들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속 건물 또한 광주 지역 언론을 통해 본 기억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건물에도 제일은행이 있었고, (사진 속 장소인) 저쪽에도 출장소 비슷한 제일은행이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이 지점장은 직접 발걸음을 옮겨 사진 속 장소를 정확히 찍어줬다. 역시 1990년대 새로 지어졌지만, 계속해서 무등빌딩이란 이름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이었다. 광주시민들에게 친숙한 삼복서점(현 알라딘 중고서점)이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지하 1층에 자리했던 곳이기도 하다. 나 기자가 이야기했듯, 새 건물이 올라가기 전엔 관광호텔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에 담긴 건물 1층 모퉁이 부분은 한창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다. 길 건너 전일빌딩으로 이동해 다시 무등빌딩을 바라봤다. 40년 전 나 기자의 시선을 상상해봤다. 공사 차량의 분주한 움직임과 드르륵 울려 퍼지는 소음 너머로 사진 속 장면이 겹쳐졌다. 광주를 품은 산처럼 '무등(無等, 등급과 차별이 없음)'이란 이름이 붙은 그 건물 앞을, 한 외국인과 여러 광주시민이 들것을 나눠 쥔 채 지나고 있었다.

들것
     
 광주
▲  외국인이 들것을 든 모습이 담긴 사진의 장소는 5.18민주화운동의 중심이었던 금남로의 무등빌딩이었다. 새로 올려진 건물은 여전히 무등빌딩의 이름을 갖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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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le
 5.18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 제일은행(현재 무등빌딩) 앞에서 최루탄이 터진 상황에서 한 시민이 방독면을 쓴 계엄군에 둘러 싸여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
▲ 5.18민주화운동 당시 무등빌딩 앞의 모습. 한 시민이 방독면을 쓴 계엄군에 둘러 싸여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나경택
 
나 기자는 "5월 19일 혹은 20일에 찍은 사진 같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집단 발포 후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한 계엄군이 5월 21일 광주 외곽으로 물러났으니, 사진은 그보다 이전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이 한창이었던 시점이었다. 나 기자는 "사진도 몰래 찍어야 했다"며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가방도 못 메고 점퍼 속에다가 카메라 두 대 숨겨갖고 전일빌딩에 숨듯이 들어가 있었죠. 그 사진 찍을 때도 기억이 나요. 들것에 있는 냥반은 곤봉으로 세게 맞아븐 거 같습디다. 얼마나 구타를 당해브렀는지 눈알이 막 빠질 듯 그래요."

나 기자는 이 사진을 비롯해 자신이 찍은 여러 사진이 보안사 사진첩에 들어간 이유도 설명했다.

"6월 2일부터 신문을 다시 낼 수 있다 그래요. 근디 사진을 못 싣잖아요. 소설가 문순태 그 분이 그때 <전남매일> 편집부국장이었는디, 독일에 좀 있어갖고 외신기자들을 좀 압디다. 그래서 내가 '(항쟁 기간에 찍은) 사진들 외신에 줍시다'라고 해서 독일에선가 보도가 좀 된 모양이에요. 근께 6월 3일인가 찦차가 집으로 찾아 왔습디다. 그때 내가 방림동 살 땐디, 505보안대 소속 중령이 사복을 입고 왔어요. 오후 10시 쯤 됐응께 우리 애기 엄마도 얼마나 무서웠겄어요. (그 사람이) 위에 보고해야 한다고 사진을 주라 근께 (신문사로 가서) 인화해갖고 줬죠."
 
 평화봉사단 소속 팀 원버그(Tim Warnberg)의 모습을 담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진.
▲  5.18민주화운동 당시, 들것을 든 외국인의 모습이 담긴 또 다른 사진.
ⓒ 나경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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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기자는 해당 사진의 전후 모습이 담긴 사진 몇 장을 더 보내왔다. 들것을 든 이들은 최루탄 때문인지 소매로 연신 코를 막고 있었다. 방독면 가방을 멘 채 곤봉과 최루탄 발사기를 든 군인 사이를 위태롭게 지나기도 했다. 군인들은 윗옷이 벗겨진 들것 위 부상자를 무심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 기자는 사진 속 외국인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가 정확히 누군지는 알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상당히 젊었어요. 젊은 외국인이 저런 정신을 갖고 있었다는 게 참말로 대단허죠. 우린 알잖아요. 당시에 얼마나 엄혹했는지. 그때는 양림동에 있던 선교사들이라고만 생각했제 다른 생각은 못했어요."

그런데 나 기자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진 속 흰색 상의를 입은 남성이 당시 광주CBS 보도국 차장이었던 노병유 기자였다는 것이다.

"나중에 노병유 차장한테 물어본께 '내가 맞다' 그래요. 흰색 상의가 의사 가운이었대요. 기자다본께 센스가 있었는지, 의사 가운을 빌려다가 입으믄 계엄군들도 크게 뭐라 못할 거라 생각한 거죠."

하얀 가운
   
 평화봉사단 소속 팀 원버그(Tim Warnberg)의 모습을 담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진.
▲  5.18민주화운동 당시, 들것을 든 외국인의 모습이 담긴 또 다른 사진.
ⓒ 나경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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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노 기자와 연락이 닿았다. 5.18 직후 신군부 정권에 의해 강제해직된 그는 당시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사진 속 외국인에 대한 묘사도 구체적이었으며 그를 "평화봉사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평화봉사단(Peace Corps)은 1961년 미국 정부가 만든 청년 봉사단체였다. 단원들은 주로 개발도상국에 파견돼 교육, 의료, 농수산기술 분야에서 활동했다. 파견 국가에서 미국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의도도 이 제도에 담겨 있었다. 한국엔 1966~1981년 평화봉사단이 들어와 있었다. 주한미대사였던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장이 1975~1977년 한국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때 당시 CBS광주방송이 가톨릭센터에 있었단 말입니다. 내가 취재를 마치고 들어오던 차에 금남로 쪽에서 막 최루탄이 쏟아지고 그래요. '병원으로 가야겄다'는 생각에 얼른 피한다고 들어간 곳이 '박윤식 외과'였어요. 아이고, 하도 눈물이 쏟아져서 원장실로 가본께 원장이 평화봉사단이랑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평화봉사단은 입술 있는 데가 터져서 피를 흘리고 있드만요. 근디 옆에 중환자가 누워있어요. 곤봉으로 머리를 얼마나 맞았는지 의식불명이에요. 머리가 깨져서 붕대로 감싸 놨고요. 딱 봐도 위중해요. 원장이 '우리 병원에선 안 돼요, 언능 대학병원으로 안 가면 생명이 위독합니다' 해서 그 평화봉사단이랑 같이 들것을 들고 전남대병원으로 갈라고 했죠. 그때 내가 원장한테 '당신 가운 좀 벗어주쇼' 부탁했어요. 전쟁 중에도 의사 가운 입은 사람은 안 쏘잖아요. 그랬더니 원장이 옷걸이에 걸려 있던 새 가운을 줍디다."


당시 금남로 인근은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사람이 마냥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노 기자가 의사 가운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만큼, 곳곳에 계엄군이 배치돼 시민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노 기자는 그 외국인과 함께 병원을 나섰다.

"둘이 들것을 들고 가는디 무거워서 못 들겄어요. 그때 제일성결교회 자리에 새 빌딩이 올라가고 있었거든요? 거기 공사장에 시민들 몇 사람이 피해있더라고요. 내가 '이것 좀 같이 들자'고 한께 몇 사람이 용기 있게 나옵디다. (외국인은 비교적 안전하니) 그 평화봉사단을 앞에 세우고, 나는 의사 행세를 하믄서 분수대 근처까지 갔어요. 앰뷸런스가 있드만요. 환자는 태워주고 나는 못 태워준다 해서 택시를 잡아다 뒤따라갔죠. 병원에 도착했는디 접수가 안 돼요. 이 사람이 의식불명이라 이름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다 책임진다 하고 내 이름 노병유로 접수를 했어요."

노 기자는 "당시 환자를 후송하는 데 정신을 쏟고 있어서 그 외국인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면서도 당시 그에게 느꼈던 감정을 상세히 떠올렸다.

"겁에 질려버린 것처럼 보였는디도 정말 성실히 움직이드만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사람으로 보였을 정도로. (박윤식 외과 원장실에서) '평화봉사단 저 사람도 저라고 움직이는데 내가 가만있어서 쓰겄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께 나도 의사 가운이라도 빌려 볼 용기를 낸 거죠."

평화봉사단
  
 평화봉사단 자료집에 담겨 있는 팀 원버그. 광주에서 근무하던 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의 참상을 생생히 목격했다.
▲  평화봉사단 자료집에 담겨 있는 팀 원버그. 광주에서 근무하던 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의 참상을 생생히 목격했다.
ⓒ 데이비드 돌린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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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택·노병유 기자와 연락이 닿기 전, 이미 사진 속 외국인의 신원을 지목했던 이를 만날 수 있었다. 5.18 당시 전남대 학생이었던 최용주씨는 정년퇴직 후 5.18기념재단 연구위원 자격으로 해외 기록물을 발굴·분석해왔다. 평화봉사단 또한 그의 주된 연구대상이었다. 그는 5월부터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최 과장은 사진 속 인물을 "1980년 5월 당시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광주에 와 있던 팀 원버그(Tim Warnberg)"라고 설명했다. 평화봉사단 소속이란 점은 노 기자의 당시 기억과도 맞아 떨어진다.

1954년 11월 3일에 태어나 미네소타대학에서 화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팀은 전남대병원에 배치돼 근무 중이었다. 한국 이름은 자신의 성 '원버그'와 비슷하게 지은 '원덕기'였다.
  
5.18 이전부터 팀을 알고 지냈다는 사람을 지난 4월 28일 광주에서 만날 수 있었다. 1961년생인 이흥철씨는 충장로우체국 옆 '타박네 음악감상실'에서 DJ로 일하다가 팀을 처음 만났고, 그와 함께 5.18을 마주했다. 그가 일하던 음악감상실은 사진 속 무등빌딩과도 지척 거리였다.

이씨는 "나는 그를 팀이라고 불렀고, 팀은 나를 리(Lee)라고 불렀다. 팀은 밥 딜런(Bob Dylan)의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를 자주 신청했었다"라고 떠올렸다.
 
 이흥철씨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평화봉사단 소속 팀 원버그(Tim Warnberg)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들고 당시 같은 위치에 섰다. 당시 제일은행이 있던 건물은 허물고 무등빌딩이 새롭게 지어졌다.
▲  이흥철씨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평화봉사단 소속 팀 원버그(Tim Warnberg)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들고 당시 같은 위치에 섰다. 당시 제일은행이 있던 건물은 허물고 무등빌딩이 새롭게 지어졌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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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계엄군 곤봉에 맞은 미국인, 그가 광주를 위해 남긴 선물http://omn.kr/1nj2u  

덧붙이는 글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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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갑질에 목숨 끊은 경비원 추모 물결 “감사하고 미안합니다”

김민주 기자 kmj@vop.co.kr
발행 2020-05-11 23:37:16
수정 2020-05-12 08:26:31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원 최모 씨가 한 주민의 갑질에 못 이겨 극단적 선택을 하자 주민들이 ‘추모와 반성의 촛불’ 시간을 마련했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원 최모 씨가 한 주민의 갑질에 못 이겨 극단적 선택을 하자 주민들이 ‘추모와 반성의 촛불’ 시간을 마련했다.ⓒ민중의소리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전날 새벽 한 주민의 폭언·폭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을 추모하기 위해 ‘추모와 반성의 촛불’ 시간을 마련했다.

11일 저녁 7시, 어스름이 깔릴 무렵 주민들이 경비실 앞으로 속속 도착했다. 퇴근하고 바로 참석한 사람들,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온 사람들, 양초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과 그들을 챙기는 할머니들까지. 주민 100여 명은 촛불을 들고 두 손을 모았다.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원 최모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자 주민들이 경비실 앞에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원 최모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자 주민들이 경비실 앞에 추모공간을 마련했다.ⓒ민중의소리

한 주민이 고인이 겪은 ‘갑질’ 사건을 정리해 발표했다. “얼굴을 수십 차례 때리고 머리를 수차례 폭행해 뇌진탕 증상을 얻으셨고...”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뛰어다니던 아이들도 이내 차분해졌다.

주민 황선 씨는 직접 추모시를 준비했다. 고인을 떠올리게 하는 추모시 ‘선물’에 주민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다음은 추모시 ‘선물’ 전문.

<선물>

우리는 당신이
이상한 나라에서 왔는 줄 알았잖아요

의전이 형식이 되고
인사라는 것도 짐이 되기 쉬운 세태에
당신은 가장 멀리까지 배웅을 하고
가장 빨리 인사를 하셨습니다.

밤 새 깨어 쓰레기 분리수거를 돕던 당신,
봄처녀 꽃을 따듯 화사한 얼굴로 꽁초를 줍던 당신,
보이는 모든 아이에게서 홀로 업어 키운 딸아이를 떠올리던 당신.

이 모든
당신의 예사롭지 않은 선함이
사실은, 쓸쓸하고 아팠던 당신의 역사가 빚어낸
진주같은 거라는 것을,
입술을 깨물며 삼킨 눈물방울이 빚은 진주라는 것을,
우리는 왜 몰랐을까요.

당신이 온 풍요로운 웃음의 나라로 가고 계신가요?
이제야 당신의 인생에 눈길을 주고
이제야 당신의 사연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우리가 드릴 선물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기억할게요.
그리고 당신을 닮아가겠습니다.
당신을 꼭 닮은 세상을
당신의 손주들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고마웠습니다. 미안합니다.

주민들은 고인을 기리며 ‘우리의 맹세’를 발표했다. 한 주민이 대표로 마이크를 잡고 “선생님을 기억하며 이후 선생님의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우리의 사회가 이웃 사랑의 기품이 넘쳐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늘 주의하고 애쓰겠다”며 “그리하여 우리는 갑질 없는 세상, 착한 사람이 절망에서 쓰러지지 않는 세상을 바로 이 아파트로부터 구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원 최모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자 주민들이 경비실 앞에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원 최모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자 주민들이 경비실 앞에 추모공간을 마련했다.ⓒ민중의소리

주민들은 고인에 대한 추억을 나눴다. 한 입주민은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저희들 곁에서 정말 물심양면으로 우리의 손발이 돼줬던 아저씨”였다며 “너무나 비통하다”고 말했다.

추모식을 진행한 송인찬(38) 씨는 “비가 오는 날이면 ‘아침부터 출근하는 데 옷 젖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항상 차 운전석으로 저를 밀어 넣고 차를 밀어줬다”고 기억했다.

이어 “제가 흡연자인데 가끔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곤 했는데 아저씨께서 아파트 온 주변을 다 돌아다니시면서 쓰레기 줍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반성했다”며 “그래서 꼭 통을 만들어서 버리곤 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추모식이 끝나고 기자와 만나 “아파트 입주민들을 위해 하시는 하나하나가 삶의 귀감이 될 정도로 항상 솔선수범하시고 친절하게 해주셨다”며 “개인적으로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분은 다신 못 뵐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제가 훨씬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모자를 벗고 허리를 숙여 인사해주셨다. 그렇게 해주시니까 저도 인사를 더 하게 됐다”며 “그리고 그냥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 웃으시면서 ‘오늘도 고생하셔유’ 하시고 저녁에 돌아오면 ‘오늘도 고생많았어유’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이들은 ‘석별의 정’을 부르며 추모식을 마쳤다. “잘 가시오 잘 있으오/축배를 든 손에/석별의 정 잊지 못해/눈물만 흘리네”라는 가사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추모식이 끝난 이후에도 많은 이들은 자리를 바로 뜨지 못하고 촛불을 든 채 경비실 앞에 서서 이웃 주민들과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씨가 일하던 경비초소 책상에 놓여있는 경비일지에 고인 최씨가 작성한 기록은 3일까지였다. 격일로 근무하던 고인은 지난 5일 새벽에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 주민들이 발견하고 병원에 입원했었다.
최씨가 일하던 경비초소 책상에 놓여있는 경비일지에 고인 최씨가 작성한 기록은 3일까지였다. 격일로 근무하던 고인은 지난 5일 새벽에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 주민들이 발견하고 병원에 입원했었다.ⓒ민중의소리

앞서 고인은 10일 새벽 생전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은 지난달 21일부터 자신이 일하던 아파트 주민 심모 씨로부터 지속적인 폭언·폭행을 당했다. 주민들을 위해 주차 공간을 확보해 놓고자 이중 주차돼 있던 심씨의 차량을 옮기려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편, 이날 오후 서울강북경찰서는 아파트 주민들을 만나 폭행 사건과 관련한 진술을 들었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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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 3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제언 : 구시대적 통일관을 바꿔야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 | 기사입력 2020/05/1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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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주년 특별연설 모습 [사진출처-청와대 홈페이지]

 

후퇴하는 남북관계, 오직 미국 탓일까?

 

5월 10일, 어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취임 3년 동안 가장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것도, 앞으로 2년 남은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도 남북관계 발전이다.

 

오늘날 주된 남북교류 사업으로 꼽히는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 관광 재개는 소수의 분단적폐세력들 빼고 대다수의 국민이 찬성하고 있다. 2018년엔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세계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도 열렸다. 게다가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교체한 데 이어 올해 총선에서 분단적폐세력을 참패시켰다.

 

이런 때에 평화와 번영, 통일을 실현하지 않는다면 또 언제 실현하겠나 싶을 정도로 남북관계 발전의 호기이다. 그런데 실제 남북관계는 발전은커녕 후퇴하는 듯 보인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기본 요인은 미국의 방해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문제도 분명 있다. 예컨대 일본과의 분쟁에서 문재인 정부는 대체로 일본에 강경대응을 하고 있다. 지소미아 파기만 해도 훗날 결국 철회하기는 했지만, 당시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강행한 바 있다.

 

방위비분담금 문제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억 달러(약 1조 5천억 원, 약 50% 인상안)를 요구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가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 정부는 미국에 13% 인상안을 제시했는데 “13% 인상도 많다”는 입장이다. 이런 사례들은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모든 요구에 곧이곧대로 순응하는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유독 남북관계에서는 미국에 찍소리도 내지 못한다. 남북 교류협력의 주된 장애물인 대북제재도 북한과 마주 앉아 협의하면 해결할 방법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남북관계에서 당사자인 북한과는 협의하지 않은 채 미국 설득에만 매달리고 있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통일관·대북관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북한을 나쁜 나라라고 보고 있으며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체제가 자본주의로 바뀌어야 한다는 관념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자세히 살펴보자.

 

원인은 대북관

 

대통령 취임사는 대통령의 정책 방향을 집약해 보여주는 중요한 연설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중 한반도 부분을 보자.

 

“안보위기도 서둘러 해결하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습니다.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한편으로 사드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및 중국과 진지하게 협상하겠습니다. 튼튼한 안보는 막강한 국방력에서 비롯됩니다. 자주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북핵문제를 해결할 토대도 마련하겠습니다. 동북아 평화구조를 정착시킴으로써 한반도 긴장완화의 전기를 마련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통일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남과 북의 협력은 일언반구 없이 ‘한미동맹 강화’와 ‘북핵 폐기’만을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관, 대북관은 2017년 1월 출간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통일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로의 통일이 될 텐데, 북한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훈련이 되지 않았으니 상당히 순진할 수밖에 없고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할 것 같다” (그래서) “흥남에서 무료 변호 상담, 무료 변론을 하면서 거기서 생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통일을 자본주의 체제 통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겠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일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로의 통일이 될 텐데”라는 대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체제를 사라질 수밖에 없는 나쁜 체제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반북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은 통일 정책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통일부가 공표한 ‘문재인의 한반도 정책’에는 최우선 과제로 ‘평화공존’을 꼽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통일 정책은 ‘통일’이 아니라 ‘공존’인 것이다.

 

‘문재인의 한반도 정책’에 “‘평화공존’은 그 자체가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덧붙여 놓았지만, 공존과 통일은 엄연히 다르다. 지금도 한국과 북한은 공존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도 평화공존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통일을 추진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화공존론은 사실상 흡수통일론이다. 2014년에는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의원도 공존통일을 주장했다. 보수 지식인 박성조 교수도 평화공존론을 주장하며 “한국의 통일은 ‘동족(同族)주의’에서 벗어나 북한과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을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공존론도 보수세력의 평화공존론과 같다. 통일을 하려면 결국 북한이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관점에 있으니 남북관계도 자본주의의 맹주인 미국의 승인과 허락하에 추진하려고 드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미국 상하원 의원들에게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북한 내 자본주의 경제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설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그러나 남과 북은 70년 넘는 동안 체제 대결을 통한 통일을 실현하지 못했다. 통일은 ‘민족’을 ‘체제’보다 앞세워야 실현할 수 있다.

 

2000년에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킨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스스로 반공주의자라고 밝혔지만, 남북이 ‘한민족’으로서 반드시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여겼다. ‘민족’을 ‘체제’보다 우위로 본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냉전적 남북관계는 하루빨리 청산되어야 합니다. 1,300여 년간 통일을 유지해온 우리 조상들에 대해서도 한없는 죄책감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남북문제 해결의 길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남북 간의 화해와 교류협력과 불가침…이것을 그대로 실천만 하면 남북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통일에의 대로를 열어나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체제보다는 민족과 통일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체제’를 ‘민족’보다 우위로 본다면 어느 한 쪽의 체제가 붕괴해야 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결론에 빠진다.

 

그러나 ‘민족’을 ‘체제’보다 우위로 본다면 체제가 다르다고 해서 통일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 대신 남과 북이 체제가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통일을 할지 방안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15공동선언 제2항에서 사실상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는 토대에서 통일을 추진해나가자는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퇴임 후인 2006년에도 “제1단계의 ‘남북연합’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남북연합’ 체제는 1민족 2독립정부제도이다. 남북은 남북정상회담, 남북장관급회담, 남북국회회담 등을 가질 수 있으며, 모든 안건을 만장일치로 처리함으로써 남북 어느 쪽도 불안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남북연합’을 10년이고 20년 한 후에 남북연방제나 완전통일로 들어갈 수 있다”라며 체제가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통일을 추진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국민에게 알려 나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반북의식이 강해 ‘체제’ 통일이 되어야 ‘민족’ 통일이 가능하다는 태도이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체제’가 다르더라도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것이 미국의 반대를 뚫고 6.15공동선언을 합의해 낸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미국의 방해에 꼼짝 못 하는 문재인 정부의 차이이다.

 

민주당의 경우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어떨까?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얼마 전까지 민주당 원내대표를 한 이인영 의원은 ‘2018년 한반도 정책 세미나’에서 “1단계는 남북의 교류협력과 투자의 증대, 2단계는 산업과 자원의 연합, 3단계는 시장화 화폐의 교류통합, 4단계는 재정과 정치의 점진통일”이라며 통일 구상을 밝혔다. 점진적인 통일은 산업과 시장의 통합 이후에나 일어날 일로 보고 있다. 이인영 전 원내대표는 자본주의 체제 통일을 염두하고 있는 것이다.

 

이인영 전 원내대표는 2018년 3월에 한 강연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대가 열려) 통일이 멀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9년 10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도 “빠른 통일의 길은 없어 보입니다. 대신 긴 평화의 시간이 흐를 겁니다”라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의 경우 2018년 판문점 정상회담과 9월 평양정상회담 전후에 이뤄진 것이다. 연이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국민 속에선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부쩍 커졌지만, 이인영 전 원내대표는 국민과는 반대로 통일이 더 멀어졌다고 봤다.

 

이인영 전 원내대표가 국민과 반대로 통일이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남북통일을 남북의 화해와 관계개선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북한 체제가 붕괴해야 이뤄지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인영 전 원내대표의 사고방식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수록 북한의 체제 붕괴는 요원해지고 그만큼 통일도 멀어지는 것이다.

 

이인영 전 원내대표는 북한 체제 붕괴를 구상한 탓에 박근혜 정권의 반북 통일 정책에도 동조한 바 있다.

 

박근혜는 2014년 갖은 통일정책을 발표했다. 박근혜가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던 것은 아니었고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극도의 반북 대결 정책을 편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반북통일정책의 하나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통일지성 원탁회의’라는 것을 추진했다.

 

‘통일지성 원탁회의’는 흡수 통일을 준비하는 기관쯤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통일 지성 원탁회의 구상을 ‘통일준비위원회’를 꾸림으로써 현실화했다. 통일준비위는 내부에 흡수통일 준비팀을 꾸렸다는 의혹이 나와 시민사회의 지탄을 지탄을 받았다.

 

그런데 이인영 전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권의) 통일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일지성 원탁회의’는 바람직하다”, “즉각 시행해야 할 일”이라며 적극 지지했다.

 

이인영 전 원내대표는 흡수통일준비팀 논란을 겪은 통일준비위에 대해서도 “제가 통일준비위원회에 대해서 굉장히 지지했던 사람”이라며 더욱 광범위하고 대중적인 활동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인영 전 원내대표가 박근혜 정권의 통일 방안에 동조한 이유는 북한 체제는 옳지 않고 변화해야 한다는 ‘반북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대북관: 돈은 피보다 진하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대북관을 정리해보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민족 개념이 “피보다 돈이 중요하다”는 경제 개념으로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이인영 전 원내대표가 직접 한 말에서도 정확히 드러난다. 이인영 전 원내대표는 2019년 5월에 한 강연에서 “예전에는 통일의 당위성을 한반도의 민주주의 체제 정착, 남과 북은 하나라는 민족주의 사상에서 찾았다”면서 이제는 “경제 논리로서 통일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인영 전 원내대표는 통일을 경제 성장의 수단인 것처럼 말했다. 그러면서 민족을 고리타분한 이야기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물론, 통일하면 큰 경제 효과도 이룰 수 있다. 통일은 경제 성장이라는 효과도 가져오지만 어디까지나 통일은 통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이를 뒤집어서 경제 성장을 목적으로, 통일을 경제 성장의 수단으로 뒤바꾸면 안 된다.

 

경제 성장이 목적으로 되면 꼭 통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경제 효과만 누리면 된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통일의 필요성은 점점 옅어지고 통일정책도 ‘평화통일’이 ‘평화공존’으로, ‘평화공존’이 ‘이웃국가’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통일 자체를 목적으로 만들어주는 ‘민족’ 우선의 관점이 필요하다. 민족은 돈이나 경제 등의 다른 가치로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이인영 전 원내대표와 같이 민족이 구시대적 가치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2007년에는 대표적인 문인 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논란 끝에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꾼 일이 있었다. 당시 도종환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명칭 변경에 대해 “근본을 지키되 새 시대에 맞게 창조적으로 쇄신하라는 법고창신의 요구”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족’이란 개념은 새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민족’은 오늘날 시대적 가치에 더없이 부합한다. 우리 국민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주민들을 직접 보았다. 88.7%의 국민이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5.1경기장에서 “평양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우리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라고 한 연설은 평양 주민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고 우리 국민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다.

 

‘남북 대결’ 의미로서의 민족은 구시대적 가치이지만 ‘평화와 통일’의 민족은 온 국민의 지지를 받는 오늘날의 가치이자 전통적인 가치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체제’나 ‘경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민족’을 우위에 놓는 통일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통일관: 협력보다 반북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통일관을 정리하면 경제 우위를 통해 북한의 체제를 붕괴하고 흡수통일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정책은 미래통합당과도 별다른 점이 없다. 다만 접근법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미래통합당은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해 대결정책을 편다면 민주당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교류협력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 북한과의 교류협력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방점은 ‘교류협력’보다 ‘반북’에 찍혀 있다는 것이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반북의식과 경제 우위를 활용한 북한의 체제 붕괴를 추구하면 통일을 실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압박은 남과 북의 공조로 헤쳐나가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과감하게 북한과의 공조를 선택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열쇠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이제 국회에서도 절반을 훌쩍 넘는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국 갤럽이 5월 8일에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71%이고 민주당 지지율은 46%에 달했다. 적폐의 방해에 굴하지 말고 국민의 요구를 실현하라는 기대의 표현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의 명령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한편,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의 열쇠는 국민의 손에 쥐어져 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알아서 척척 국민의 요구를 해결하는 만능해결사는 아니다. 다만, 미래통합당이 국민의 뜻에 거스르려는 적폐라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이 지지하고 힘을 실어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배와 같다.

 

남북관계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알아서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지만 앞서 살펴본 한계로 미국의 방해를 뿌리치기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2016년 탄핵 촛불이 타오른 이후 한국 정치는 국민이 주도했다. 민주당이 180석을 확보한 총선도 지금은 민주당의 시대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주권 시대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의 손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실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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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푼도 줄 수 없다! 미군은 나가라!”

미대사관 앞 광화문광장에서 25차 반미월례집회 열어
이기영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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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11  1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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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미대사관앞 광화문광장에서 25차 반미월례집회가 열렸다. [사진-민족자주대회 준비모임]

“혈세강탈! 미군주둔비 인상강요! 미국을 규탄한다!”

지난 9일,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대사관 앞 광화문광장에서는 ‘미군주둔비 인상강요 미국규탄!’, ‘평화파괴 한미군사연습 중단!’, ‘긴장고조 전쟁주범 한미동맹 해체!’, ‘사대굴종 외세의존 문재인 정부 규탄!’ 등의 내용으로 25차 반미월례집회가 1인시위와 기자회견 방식으로 진행됐다. 

최근 언론을 통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비를 작년 대비 49% 인상된 年 13억 달러, 약 1조 5,866억 원을 내라고 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군 당국은 ‘한미동맹 강화’와 ‘연합대응태세 강화’라는 명분으로 지난 4월 서해상에서 공군과 해군이 합동군사연습을 실시함으로써 한반도 정세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에 북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북 인민무력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9.19 군사합의에 대한 노골적인 배신행위이며, 모든 것이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이전의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강력히 규탄하였다. ‘모든 것이 2018년 이전의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에 현 남북관계 상태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남측 군부호전세력들은 지난 3월에도 코로나로 잠정 연기된 한미합동군사연습 대신 한국군 자체 훈련을 감행한 바 있다. 이렇듯 미국과 한미동맹을 추종하는 반통일 군부세력들은 계속해서 남북사이 군사적 긴장과 대결을 고조시키고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기 위한 고의적인 대결책동을 벌이고 있다.

   
▲ 25차 반미월례집회는 광화문광장에서 ‘1인시위’와 ‘기자회견’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진-민족자주대회 준비모임]

“이런 동맹 필요없다. 한미동맹 파기하라!”

이날 사회자로 나선 원진욱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은 “미국의 강도적인 요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면서 “언제까지 미국의 날강도짓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우리 민중들의 고혈을 짜내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미국의 잔인무도한 약탈과 간섭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주한미군 유지비용이 없으면 나가면 그만이다. 지금 당장 미군은 철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미대사관을 향해 ‘한 푼도 줄 수 없다. 미군은 떠나라!’, ‘사대굴종 전쟁 강요하는 한미동맹 해체!’, ‘한반도 평화위협 전쟁연습 중단!’. ‘남북공동선언 북미합의 걸림돌 대북제재 해제!’, ‘제2의 을사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 파기!’, ‘문재인 정부는 민족자주로!’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서 동시 1인시위를 진행했다.

   
▲ 1인시위 이후 기자회견에서는 민대협 소속 이재연 학생의 규탄발언이 이어졌다. [사진-민족자주대회 준비모임]
   
▲ 민중민주당 박소현 부대변인의 규탄발언이 이어졌다. [사진-민족자주대회 준비모임]

“우리민족끼리 힘으로 자주통일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자!”

   
▲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는 김동순 범민련 서울연합 의장. 참가자들은 “미군주둔비에 대한 미국의 무례하고 날강도적인 요구를 문재인 정부가 받아들여서도 안되지만 우리 민중둘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민족자주대회 준비모임]

이날 참가자들은 김동순 범민련 서울연합 의장이 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코로나 정국에도 불구하고 미군주둔비 인상을 강박하고 전쟁연습을 강행하여 긴장과 대결을 고조시키는 미국을 규탄하고, △미국의 무례하고도 날강도적인 행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섞은 동아줄과 같은 한미동맹을 단호히 거부하고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 파기와 미군철수 투쟁을 적극 벌여나갈 것과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  비가 오는 가운데 통일원로들도 1인시위와 기자회견에 동참했다. [사진-민족자주대회 준비모임]

이날 집회는 ‘코로나19’ 방역방침에 따라 미대사관앞 광화문광장에서 ‘1인시위’와 ‘기자회견’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현장에서는 서울시경과 서울시 광화문광장관리팀 공무원들과 협의를 진행하면서 원만하게 진행됐다. 

   
▲ 미대사관 앞을 향해 구호피켓을 들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민족자주대회 준비모임]

집회에는 범민련 남측본부를 비롯해 6.15학술본부, 한국노총통일실천단, 삼성일반노동조합, 통일광장, 사월혁명회, 양심수후원회, 평화협정운동본부, 민대협, 민중민주당, 평화통일시민행동, 통사민, 노후희망유니온, 우리다함께, 우리사회연구소 등 여러 단체에서 참여했다. 또한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누나인 이경진 선생이 함께 참여했다.

 

[기자회견문]

미군주둔비 인상 강요, 전쟁연습 강행! 한미동맹 해체하고, 우리민족끼리 자주통일의 길로 나아가자!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 국민들 또한 생계의 어려움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무능력한 코로나 대응으로 내외의 비판을 받으며 올 11월 대선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자, 그 책임을 중국 등에게 떠넘기고 있다. 미국은 한미동맹 강화를 명분으로 한반도에서 군사훈련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세계 곳곳에서 긴장과 대결을 확산시키고 있다. 

미국은 이남 당국에게 미군 주둔비를 작년 대비 49% 인상된 13억 달러, 1조 5,866억원을 내라고 강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13% 이상은 인상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지만,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강도적인 요구는 남측 당국은 물론 우리 민중들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코로나와 경제위기로 민중의 고통이 나날이 가중되고 있는 지금, 우리 민중의 혈세를 강탈하여 오로지 미국 자신만의 잇속을 챙기겠다는 것은 날강도짓이나 다름없다. 한반도 평화와 우리 민중에게 결코 필요없는, 만악의 근원 주한미군을 위한 주둔비는 단 한 푼도 줄 수 없으며, 당장 이 땅에서 떠날 것을 촉구한다.

최근 남측 군 당국은 ‘한미동맹 강화’와 ‘연합대응태세 강화’라는 명분으로 서해상에서 해·공군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이에 대해 북측은 “9.19 군사합의에 대한 노골적인 배신행위이며, 모든 것이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이전의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강력히 규탄하였다. 온 국민이 합심하여 코로나 위기극복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때에, 또다시 전쟁연습을 강행한 것은 미국을 절대적으로 추종하는 군부호전세력들이 미국의 의도에 따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높여 남북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막아보자는 악의적인 대결책동이다. 

미군주둔비 인상 강요, 군사훈련 강행은 이남 민중의 피땀을 착취하고, 이남 당국에게 사대굴종을 강요하는 한미동맹에 근거하고 있다. 미국은 정치군사적 패권과 위상이 나날이 추락하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든 한미동맹을 붙들고, 이남을 옛 시대의 식민지처럼 조공을 받는 ‘호구’로 활용하고 약탈하고 있다. 

이미 없어져야 할 구시대적 유물인 한미동맹으로 우리는 외세의존을 강요당하고, 민중의 혈세를 강탈당하고, 남북 사이의 화해협력과 통일은 가로막힐 수밖에 없었다. 이제 무너져 가는 미국에게 기댈 필요도,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도 필요 없다. 오로지 우리민족끼리 자주통일만이 우리 민족이 살 길이다.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급격한 위기와 미국의 패권 추락으로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맞이하고 있다. 개별 국가들은 정부의 역할을 높이고, 각자도생의 길로, 서로 편한 국가들 사이 블록화로 지금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이때, 섞은 동아줄과 같은 미국과의 불평등한 관계를 계속 유지할 필요는 없다. 

한미동맹은 그 법적 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파기시키면 법적 생명은 사라진다. 그리고 주한미군을 우리 민중의 힘으로 철수시키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적 무력은 사라지게 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은 우리민족끼리 자주와 통일을 방해하는 중대한 걸림돌이다. 우리는 남북관계 발전과 자주통일을 가로막는 한미동맹, 한미상호방위조약, 그리고 주한미군을 철거시키기 위해 적극 투쟁해나갈 것이다. 

이제 우리 민족은 새로운 통일시대를 맞이하기 위하여 한미동맹을 단호히 거부하고, 우리민족끼리 자주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반미만이 살 길이며, 미국 없이 더 잘 산다.’ 우리민족끼리의 힘으로 자주와 통일,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적극 투쟁해 나가자! 

2020년 5월 9일
민족자주대회 준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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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실태 전문가, 정은경 본부장을 믿는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이태원 클럽 감염 문제, 성소수자 인권의 시험 무대다

 

한국 사회에서 잠잠해가던 코로나19에 이태원 클럽이 불을 댕겼다. 공교롭게도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발표 직후 이 사태가 터져 논란을 빚고 있다. 첫 감염자가 확인된 뒤 접촉자 추적에서 확진자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우려했던 집단감염이다. 문제는 그 수가 얼마나 더 불어날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태원 클럽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는 성소수자 인권, 코로나19 전국 확산 위험성, 다수의 연락 두절 접촉자와 클럽 방문객, 정부의 밀접 접촉 업소에 대한 관리 소홀 등 우리 사회에 논란을 불러일으킬 여러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언론도 앞으로 이들 문제와 관련해 서로 엇갈리거나 부적절한 보도를 할 가능성이 있어 방역 당국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가 보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현상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방향타를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이태원 클럽 관련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0일 현재 54명으로 늘어났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30명, 경기 14명, 인천 6명, 충북 2명, 부산 1명, 제주 1명이다. 감염경로별로 보면 이태원 클럽 직접 방문 관련자가 43명, 가족·지인·동료 등 기타 접촉자가 11명이다. 

 

 

이태원 게이 클럽 발 감염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가족들에게까지 바이러스를 전파했기 때문에 이태원 클럽 발 지역 사회 전파가 이미 일어난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태원 클럽 사태에서 대구 신천지 교회를 떠올린 까닭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은 여러 면에서 지난 2월 대구 신천지교회 발 확산을 연상케 한다. 당시 신천지 교회 예배에 전국 곳곳의 신도들이 참석해 감염된 뒤 거주 지역으로 돌아가 전파시켰다. 신천지 교인 집단과 동성애 집단은 사회에서 자신들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공통의 특성을 지녔다. 

 

 

신천지 교회에 대해서는 기존 기독교 교단이 이단 취급을 하고 사회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신천지 교회가 대구 지역 대유행의 허브 구실을 한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보건소, 대구시청 등 사회 곳곳에서 일하던 신천지 교인들은 의심 증상을 느끼거나 확진자로 판정받았음에도 교인이라는 사실을 숨겨 방역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이는 이태원 클럽 사태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확진자와 동시간대에 클럽을 드나들었는 데도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염려된다. 게이 등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 낙인이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을 포용하지 않는 구성원들이 많다.


 

 

대구 신천지 혐오, 이태원 클럽 사태에서 재현되면 안 돼


 

 

따라서 대구 신천지 교회 사태 때에도 신천지 교인에 대한 멸시와 혐오가 극성을 부린 것과 같이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사태를 계기로 동성애자에 대한 극혐 발언이나 글, 그리고 공격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외신들도 이에 관심을 보이며 우려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벌써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태원 클럽 사태와 관련해 심한 수위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대구 신천지 사태 때 일부 언론이 신천지 교인과 교회에 대해 혐오와 낙인 보도를 했던 것처럼 반인권 기사나 칼럼 등을 내보낼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에서 이성적이면서도 감염병 보도 준칙을 잘 따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방역 당국과 대구시 등은 대구 신천지 교회 집단 감염 사태 때 신천지 교회의 특성, 즉 집단 생활과 집단 교육, 자신들만의 끼리 문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하지 못해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 이 집단의 실상을 파악하고 지역사회 전파를 막는 전략을 구사하지 못했다. 뼈아픈 실책과 실기를 한 것이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8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발생 현황 및 확진 환자 중간조사 결과 등 정례브리핑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은경 본부장 우리나라 동성애자 실태 잘 알아


 

 

하지만 게이 집단에 대해서는 질병관리본부가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으리라고 본다. 1980년대부터 국내에서도 유행한 에이즈와 관련해 질병관리본부는 동성애 집단에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질본은 동성애 집단을 방역과 인권 차원에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몇 차례 실태조사와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게이 등 동성애 집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정은경 본부장은 질본에서 에이즈·결핵과에서도 일한 바 있다. 코로나19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을 맡고 있는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도 질본에서 방역과장을 여러 차례 지냈기 때문에 에이즈와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가 깊다. 따라서 코로나19 방역 최고 책임자들이 동성애 집단을 잘 알고 있어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 전략을 세워 잘 실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신천지 교인이든, 동성애자든 그들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밝히는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금도 시시때때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동성애=에이즈’란 팻말을 들고 일인시위를 하는 단체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번에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가 벌어진 것은 이곳이 게이클럽이어서가 아니다. 클럽이었기 때문이다. 게이클럽이든, 그냥 클럽이든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없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과 장시간 접촉하는 환경에서는 감염자나 환자가 한 명이라도 그 공간에 있으면 집단감염 내지 슈퍼전파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태원 클럽 역학조사 때 성(性) 상대 파악 필수


 

 

에이즈는 일종의 성병이다. 에이즈 바이러스를 지닌 사람과 지니지 않은 사람이 콘돔 등을 사용하지 않고 안전 무방비 상태에서 성 관계를 가진다 하더라도 쉽게 전파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다르다. 성병은 아니지만 바이러스를 지닌 감염 상태에서 성관계를 가질 경우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양성애자든 무조건 100% 상대방에게 코로나19를 전파한다. 

 

 

따라서 방역 당국은 이태원 클럽 관련 역학조사 때 반드시 이들의 동선과 함께 성 상대 등을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동선이 되었던 성 상대가 되었던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관련 내용이 노출되지 않도록 사생활과 인권 보호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만에 하나 이를 소홀히 했을 때는 관계자에 대한 엄중문책이 뒤따라야 한다. 

 

 

이태원 클럽 사태를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우리 사회가 이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따라 한국 사회의 품격이 달라질 수 있다. 케이(K)방역으로 세계 방역 선진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이 성소수자 인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아 인권 후진국으로 추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태원 클럽 사태란 위기를 지역사회 확산 저지 성공과 성소수자 인권 고양이라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으려면 언론과 시민들의 협조와 이성적 판단과 언행이 절실하다.


 

 

에이즈 보도 준칙 알면 성소수자 보도 방향 보여


 

 

이를 위해 2006년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언론인을 위한 에이즈 길라잡이-“에이즈, 편견과 차별의 벽을 넘어…”>에 있는 ‘에이즈 관련 취재보도 시 권고기준’을 소개한다. 이태원 클럽에서 벌어진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여기에 나오는 ‘HIV감염인/AIDS환자’에 ‘성소수자’를 대입시켜 읽어보시기 바란다.

 

 

에이즈 관련 취재보도 시 권고 기준(에이즈 보도 7가지 황금 원칙)


 

 

①HIV감염인/AIDS환자의 직업, 사회활동,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방해하는 내용이 보도된 경우와 감염인이 활동의 자유를 억압 받았을 경우 이를 적극 알리고 사회적 환경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②HIV감염인/AIDS환자와 그 가족, 그리고 성(性)파트너의 주소와 성명, 직업 등 사생활이 드러나지 않도록 이와 관련한 보도는 물론이고 취재보도를 자제해야 합니다. 

 

 

③HIV감염인/AIDS환자를 그들의 감염경로(성접촉, 수혈감염, 마약주사 등), 성정체성(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등), 직업, 남녀노소 등을 따져 차별하는 보도를 자제해야 합니다. 

 

 

④에이즈를 ‘신이 내린 형벌’, ‘천형(天刑)’과 같이 비과학적인 비유나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보도하지 않도록 자제하며, HIV감염인/AIDS환자에게 사회적 차별이나 낙인을 찍거나 이를 부추기는 보도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⑤에이즈 감염 확률이나 에이즈와 관련한 새로운 통계, 이론, 학술적 내용, 에이즈 치료제, 백신 개발, 에이즈 관련 국제뉴스 등을 보도할 때는 최대한 보건당국과 관련 학회가 인정하는 에이즈 전문가의 조언이나 의견을 들은 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⑥언론은 에이즈 또는 HIV감염인/AIDS환자 관련 보도 시 그 보도가 사회나 사회 구성원에게 끼칠 영향을 미리 살핀 뒤 사회 구성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보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⑦언론은 에이즈 보도와 관련해 국민에게 막연한 불안감을 주거나 과도한 공포감을 주는 보도와 흥미 위주의 보도를 자제하며, HIV감염인/AIDS환자는 사회적 약자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그들이 겪는 심리적, 정신적, 육체적 교통과 직장 생활 등 사회생활의 어려움, 인권 문제 등을 의제로 만드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51109300755862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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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당은 민주당과 합당…미래한국당은 독자 노선?

원유철, 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 논의를 위한 ‘2+2 회담’ 제안
 
임병도 | 2020-05-11 08:56: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총선을 앞두고 창당했던 더불어시민당이 더불어민주당과의 합당 절차에 들어갑니다. 민주당은 시민당과의 합당 여부를 묻는 권리당원 투표에서 84.1%가 합당에 찬성했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 허윤정 대변인은 5월 8일 ‘권리당원 투표 결과 보고’를 발표한 뒤 이후의 일정에 대해서 “중앙위원회를 12일 개최할 예정”이라며 “중앙위를 통해 온라인으로 최종 투표가 완료되면 시민당과 합당하는 수임 기관을 지정하게 되고, 13일 수임 기관 합동회의를 거쳐 합당 절차가 완료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올해 3월 더불어시민당이 만들어지면서 민주당을 탈당했던 인사들이 2개월 만에 원래 소속인 민주당으로 돌아가는 셈입니다. 다만, 기본소득당 출신 용혜인 당선자와 시대전환 출신 조정훈 당선자는 제명 후 당선자 신분을 유지한 채 소속됐던 정당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더불어시민당과 더불어민주당의 합당은 누구나 다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리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미래한국당은 이상하게도 통합당과의 합당에 소극적입니다.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 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 논의를 위한 ‘2+2 회담’ 제안

▲5월 10일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화면 캡처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는 5월 10일 페이스북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 논의를 위한 ‘여야 대표 회담 (2+2) 회담’을 제안했습니다.

원 대표는 “뇌관을 제거하지 않고 지뢰밭을 건널 수 없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비례정당은 필연적으로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연동형 비례제도의 폐지를 위해 민주당 이해찬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가 만나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원 대표는 회담 제의와 함께 “미래한국당은 형제정당인 미래통합당과 총선 후 합당한다.”라고 약속했다면서 “주호영 원내대표와 합당의 시기, 절차, 방식 등을 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선 연동형 비례제도 폐지 후 합당’으로 풀이됩니다.

사실 원유철 대표의 주장은 민주당 입장에서는 황당합니다. 어차피 통합당과 합당하면 사라질 정당 대표와 만나 연동형 비례제도 폐지를 논의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독자 정당은 아니지만… 합당 이후는 고민이 되는 듯

통합당 내부에서는 합당에 소극적인 원유철 대표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적인 교섭단체를 구성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옵니다. 그러나 원 대표는 “국고보조금을 받아내기 위하거나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얻어내기 위해 단 1분도 논의한 적이 없는 정당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며 독자 정당 구성에는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감 놔라 팥 놔라 하는 분도 계시고, 함께 길을 가자는 분들도 계십니다.”라는 글을 보면 미래한국당을 놓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합당은 빠를수록 좋다”며 21대 국회 개원 전 합당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 대표는 “최종 결정은 당 소속 국회의원, 당선자, 당원들이 할 것”이라며 계속해서 미루고 있습니다.

원 대표의 행보가 통합당과의 합당 이후 그저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는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의원들을 염두에 둔 포석일 수도 있습니다. 상임위 배정 등 당선인들의 요구 사항을 정리해 통합당에 합당 전제 조건으로 내걸 수도 있습니다.

이미 정당을 만들 때부터 합당을 염두에 두고 급조된 미래한국당이 갑자기 연동형 비례제도 폐지를 운운하는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미래한국당은 태생부터 선거를 위한 꼼수 정당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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