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젊은이들은 통일에 무관심? 그럼, 기성세대는 관심 있나

[정욱식 칼럼] <다음 세대를 위한 통일 안내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창간20주년 특별기획] 코로나 역시 현대문명의 ‘선물’일 뿐

릴레이 기고 ‘코로나 너머’

주강현 해양문명사가
발행 2020-05-16 17:10:24
수정 2020-05-16 17:10:24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없음
 

편집자 주:2000년 5월 15일 첫걸음을 뗀 민중의소리가 창간 20주년을 맞았습니다. 독자와 후원인들의 성원과 격려로 민중의소리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민주주의를 확장하며 자주평화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진보언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창간 20주년 특별기획으로 각계 원로, 전문가, 신진인사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와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릴레이 기고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

서구문명이 신세계에 안겨준 최대 선물은 전염병이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발을 디딘 지 불과 40년 만에 탐험가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을 밟고 다닌다. 유럽인의 강제노동제도, 그리고 유럽에서 이입된 새로운 질병과 접촉하면서 원주민은 멸절된다. 흑사병으로 알려진 새로운 역병이 14세기에 아시아로부터 수입되어 이미 기근으로 쇠잔해진 유럽인을 공격했을 때, 전사한 인구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신대륙에서 죽어갔다.

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이와 똑같은 일이 태평양에서도 벌어졌다. 하와이 같은 청결한 대양에는 병원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서구인이 옮겨온 온갖 병균에 아메리카의 원주민이 당했던 것처럼 섬의 주민들을 치명적인 재앙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처럼 역병은 인류문명사에서 전쟁, 기근 못지않은 집단 죽음을 몰고왔다. 역병은 단순한 병이 아니라 ‘문명사적 병’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코로나가 그러하다. 코로나 역시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문명사적 병이다.

2
코로나로 인하여 페루 연안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야행성 프랑크톤이 불을 켜고 도심 주변을 밝히고 있다. 오래 전에 곳곳에 널렸던 반디불이 사라졌다가 맑은 산촌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간의 해변 접근이 단절되자 프랑크톤조차도 이를 알고 해변으로 출몰한 것. 사라졌던 물개와 거북이도 돌아오고 있다. 거북이는 아무데서나 산란하지 않는다. 거북이 역시 회귀본능이 있어서 특정 바닷가 모래밭에 어두운 야음을 틈타서 알을 낳고 부화시킨다. 부화된 새끼들은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용을 쓰면서 바닷가로 달려간다. 그 자체 장엄한 생명의 드라마다.

2020 년 3 월 24 일 페루의 리마에 있는 해변가에 수천 마리의 새들이 모여든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이 사라진 빈 해안은 새들의 차지가 됐다.
2020 년 3 월 24 일 페루의 리마에 있는 해변가에 수천 마리의 새들이 모여든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이 사라진 빈 해안은 새들의 차지가 됐다.ⓒ뉴시스/AP

세계 해안이 통제되면서 바닷가 모래밭 거북이 산란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물개들도 올라와 간만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바닷가 모랫사장을 ‘해수욕장’이라 표현한다. 지극히 인간 중심적 표현이다. 여름 한철 쓰자고 만들어진 모랫사장이 아니다. 조개가 살아가고 염색식물이 군락을 이루며 철새가 날아오고 거북이가 산란하는 생명의 공간을 인간들이 잠시 빌리거나 탈취하여 이용할 뿐이다.

인간의 영역과 권한인줄만 알았던 바다가 사실은 생물체가 함께 숨쉬는 공유의 공간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코로나 이후, 바닷가 거북이의 귀환은 우리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거대한 재앙으로 다가와 있지만 인간과 자연의 제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고 포스트 코로나의 문명사적 성찰을 하게하는 적극적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되어야한다.

코로나 이후 인간의 발길이 끊기며 자연이 회복된 바다
바다가 생물체가 함께 숨쉬는 공유의 공간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문명의 전환은 코로나가 인류에게 던져준 가장 중요한 화두

3
인간의 끊임없는 식탐은 기다려서 잡는 것이 아니라 악착같이 쫓아가서 잡는 싹쓸이 어법으로 바다를 고갈시켰다. 사람에게만 집이 있을까. 물고기도 정든 집을 그리워하고 아늑하여 천적으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을 좋아한다. 어느 물고기에나 집이 있으며 선호하는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고기떼는 숲그늘로 몰려드는 근성이 있다. 물고기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숲을 그리워한다. 동물만이 숲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도 해변이나 섬의 숲그늘로 몸을 숨기고 ‘그늘의 미학’을 즐긴다. 선사시대 인간들이 바위그늘에서 주거처를 마련하였듯이 물고기들도 바위그늘이나 숲그늘을 선호한다. 오늘날의 현대어법이라는 것은 그 집들을 쫓아가면서 싹쓸이하는 어법을 뜻한다.

이덕무는 『청장관전서』에서 이런 글을 소개하고 있다. ‘수륙에서 나는 이익은 공사가 다같이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때없이 잡으면 번성하지 못한다. 지금 백성들이 소년어를 잡기 좋아하는데. 아무리 많이 잡아도 쓸모가 없다’고 했다.

이덕무가 소개한 ‘소년어’란 세글자가 아주 강렬하게 다가온다. ‘소년어’란 단어만큼 인간의 잔인하고도 부도덕한 어린 물고기 남획을 잘 설명한 단어를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에 넣어서는 안 된다는 문명사적 교훈이다. 거대한 상업적 고기잡이가 아니더라도 빈틈없이 고도로 발달된 그물은 소년어는 물론이고 유아기 단계의 가녀린 물고기까지 싹쓸이로 해치운다.

지난 1세기, 불과 100여년이 채 안 되는 시기에 전 지구적 차원에서 고기들이 급격히 사라졌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소멸 및 급격한 감소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물고기가 가장 많이 모여살 뿐더러 종다원성도 풍부한 연근해부터 소멸· 감소하기 시작하여 비교적 머나먼 외해는 물론이고 망망대해에 이르기까지 파장이 미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텅빈 이탈리아 베네치아스의 운하
코로나19 사태로 텅빈 이탈리아 베네치아스의 운하ⓒ뉴시스/AP

4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면 강원도 최북단 고성 거진항이 부른다. 2월 말이면 늘 명태축제가 열린다. 그런데 축제랍시고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것이 그 많던 명태들이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 많던 명태는 어디로 갔을까. 2000년부터 급격히 어획량이 줄어 ‘동해명태’를 구경하기 어렵다. 온난화 때문에 사라졌다. 수온 1℃가 높아지면 그에 따라 적어도 수백키로미터의 한계선 이동이 이루어진다. 동해에 난류성 물고기가 대거 출현 중이다.

남극이 녹고 북극이 녹는 중이다. 한반도 남부의 아열대화가 촉진된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표현대로, 지구온난화와 수온상승은 범 인류적인 지구의 재앙이다. 베네치아의 해수면이 높아져 성 마르코 성당이 수시로 물에 잠긴다. 석호 위에 세운 도시이므로 사실상 인간이 바다의 영역으로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재난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서남해안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간척지, 그리고 매립하여 그 위에 세운 도시들이 어떤 운명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린란드가 그야말로 식물이 자라는 녹색의 땅이 되었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다. 툰드라의 빙토 아래 잠들어있던 어떤 바이러스가 표층 위로 출현하여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 예측 불가이다. 온난화는 단순하게 수온상승과 수면상승만을 뜻하지 않는다. 지각변동과 새로운 병균의 출현을 가능케 할 것이다. 매우 불길한 시나리오들인데 이 모든 것이 인류의 현재 속도와 물량의 자본주의와 연결되어있다.

프란치스코 교종(교황)이 지난 4월 코로나19로 인해 십자가 아래서 홀로 기도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교황)이 지난 4월 코로나19로 인해 십자가 아래서 홀로 기도하고 있다.ⓒ뉴시스/AP

코로나 이후의 인류문명사가 우리가 지금껏 해온 문명의 혜택이라는 것들에 관하여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다. 미세 프라스틱을 없애려면 비닐봉투도 쓰지 말고 스티로폴을 쓰면 더욱 안된다. 이른바 알갱이화장품을 쓰지 말아야한다. 시장에서 생선을 사면서 비닐봉투가 없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당황스러울까. 그 불편과 당황을 뛰어넘는 새로운 문명의 전환, 코로나가 인류에게 던져준 가장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

 

주강현 해양문명사가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18 민중항쟁 40주년] "전두환 처벌!“ 전두환 집까지 드라이브 스루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0/05/16 [23:15]
  •  
  •  
  • <a id="kakao-link-bt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2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dotum, 돋움, Arial; color: rgb(102, 102, 102); text-size-adjust: none;"></a>
  •  
  •  
  •  
  •  
 

 

▲ 5.18 민중항쟁 40주년을 맞이해 ‘5.18 광주항쟁 40주년 기념사업 시민추진위원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출발해 전두환이 있는 연희동까지 “모이자 연희동으로! 전두환은 사죄하라! 5.18 드라이브 스루” 행진을 진행했다. 차량에 선전물을 붙이는 참가자.  © 김영란 기자

  

▲ 손이 뒤로 묶인 채 무릎꿇은 전두환 대형상징물.   © 김영란 기자

  

▲ 드라이브 스루에 참가한 차량들이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 김영란 기자

  

▲ 5.18 민중항쟁 40주년을 맞이해 ‘5.18 광주항쟁 40주년 기념사업 시민추진위원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출발해 전두환이 있는 연희동까지 “모이자 연희동으로! 전두환은 사죄하라! 5.18 드라이브 스루” 행진을 진행했다. 출발하는 차량들     ©김영란 기자

  

▲ 신촌로터리에서 연희동 삼거리로 오는 차량 행진  © 김영란 기자

  

▲ 연희동에 도착한 차량 행진 참가자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전두환의 사죄와 처벌을 요구했다.  © 김영란 기자

 

▲ 전두환 집 앞에서 경적을 울리는 참가자     © 김영란 기자

 

“5.18 민중항쟁은 오늘의 역사입니다아직 끝나지 않은 살아있는 역사입니다촛불과 함께 끝끝내 승리하고야 말 역사입니다오월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촛불혁명을 완성하는 일입니다자주적인 내 나라민주적인 내 나라통일된 내 나라오월 해방광주에서 외쳤던 그 구호를 받아 우리가 촛불로 이어가야 합니다.”

 

“2020년 5.18은 40주년이 아니라, 40번째의 5.18 투쟁입니다.”

 

5.18 민중항쟁 40주년을 즈음한 2020년 5월 16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이다.

 

5.18 민중항쟁 40주년을 맞이해 ‘5.18 광주항쟁 40주년 기념사업 시민추진위원회(이하 시민추진위)’가 서울 여의도에서 출발해 전두환이 있는 연희동까지 모이자 연희동으로전두환은 사죄하라! 5.18 드라이브 스루” 행진을 진행했다.

 

코로나19로 대규모 옥외집회가 어려운 속에서 1980년 광주의 시민들이 차량으로 계엄군을 향해 나아갔던 것처럼 70대의 차량이 여의도에서 출발해 전두환이 있는 연희동까지 차량 행진을 했다.

 

차량행진 선두에는 전두환이 무릎 꿇은 대형 상징물이 있었다상징물에는 '학살원흉 전두환', '반드시 응징한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차량행진을 지켜보던 서울 시내 시민들은 대형 상징물을 보면서 촬영을 하고 손을 함께 흔들기도 했다.

 

차량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은 전두환이 처벌받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와 5.18 민중항쟁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5.18 민중항쟁 40주년인데코로나로 대규모적인 행사가 취소되어 너무나 안타깝다그런데 전두환이 뻔뻔스럽게 고개를 쳐들고 다니고 있잖아요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나왔다책임자들이 처벌되고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왔다. (김성일 강북구 시민)”

 

“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다그 당시에도 광주의 진실을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다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5.18이다솔직히 전두환을 그냥 내버려 둔다는 것은 역사의 치욕이라고 생각한다반드시 전두환을 학살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오늘 차량 시위에 나오게 되었다. (오명윤 성균관대 민주동문회 회원)”

 

“40년 전 광주 시민들이 한 것처럼 전두환을 법정에 반드시 세워 학살의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오게 되었다. (서울 구로구 시민)”

 

“5.18은 민주주의 열망했던 광주 시민들의 행동이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곡된 말들과 거짓 뉴스가 나오고 있다대학생들은 이런 가짜 뉴스에 분노하고 있다학살자 주범 전두환은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는 마음에서 참가하게 되었다. (최수진 대학생)”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 전두환 처단 구호 외치는 참가자들  © 김영란 기자

 

▲ 마포대교를 건너가는 차량 행진  © 김영란 기자

 

▲ 차량 행진이 연희동에 도착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서울 여의대로 금융감독원에서 출발해 마포대교강변북로서강대교 북단신촌로터리동교동삼거리연희삼거리를 거쳐 차량행진은 연희동에 도착했다.

 

시민추진위 차량행진 행렬은 임을 위한 행진곡’, ‘광주 출정가’ 등의 노래와 전두환을 구속하라!’, ‘오월 정신 계승하자!’, ‘5.18 배후 미국을 규탄한다’, ‘5.18 망언 중단하라!’, ‘5.18 정신 계승하여 민주주의 실현하자’ 등의 구호에 맞춰 차량 경적을 울렸다.

 

연희동에 도착한 시민추진위 차량 행진 대열은 ‘5.18광주항쟁 40주년 차량행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시민추진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전두환이 이토록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5.18을 부정하는 적폐 세력들이 여전히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계속해 시민추진위는 전두환이 끝내 사죄하지 않는다면대한민국 민주화의 반역자민중의 학살자로 역사에 기록되어 영원히 지탄받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시민추진위는 “5.18 광주항쟁에 대한 진상규명에서 우리는 미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라며 명확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당시의 진실을 정확하게 공개하고그 결과에 대해 우리 국민에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민추진위는 “"5.18 진상규명과 전두환 사죄 촉구를 시작으로 5.18 광주민중항쟁을 대한민국의 역사에 굳건히 세우고촛불혁명을 완성하기 위한 투쟁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 차량 행진을 보며 손을 드는 시민들  © 김영란 기자

 

▲ 차량 행진 참가자들이 연희동 전두환 집 앞에서 내려 선전물을 들고 있다.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아래는 시민추진위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아래-----------------------------------

 

5.18 학살 주범 전두환은 국민들 앞에 사죄하라!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대사건이었던 5.18 광주항쟁이 40주기를 맞았다그러나 아직도 5.18 광주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5.18 광주항쟁의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책임자 심판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두환광주를 군홧발로 짓밟고금남로를 민중의 피로 물들인 학살자살인마 전두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죄를 시인하지 않았다오히려 회고록을 출간하여 광주항쟁을 ‘5.18 사태로 폄훼하고알츠하이머 핑계를 대며 재판을 고의적으로 연기하면서도 골프를 치러 다니고법정에서 조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속죄를 거부했다그뿐 아니라 여전히 쿠데타 주역들과 만찬을 즐기고항의하는 시민을 향해 추징금을 대신 내달라는 등 파렴치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전두환의 이러한 뻔뻔한 작태는 자신의 죄에 대한 인정과 참회는커녕그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5.18광주항쟁과 군부독재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이 이토록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그것은 5.18광주항쟁을 부정하는 적폐세력들이 여전히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적폐세력들은 5.18광주항쟁의 의미를 깎아내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미래통합당 소속 정치인들과 적폐언론인들이 쏟아내는 5.18광주항쟁에 대한 망언허무맹랑한 북한군 개입설’ 그리고 최근 보수단체들의 대규모 광주 집회 예고 등이 그 증거다.

40년 전광주시민들은 군부독재의 총칼에 굴하지 않고 하나로 힘을 모아 떨쳐나섰다이후 우리 민중들의 항거 정신은 87년 6월 민주항쟁박근혜를 탄핵시킨 촛불혁명을 만들어내며 더욱 거세졌다전두환이 끝내 사죄하지 않는다면대한민국 민주화의 반역자민중의 학살자로 역사에 기록되어 영원히 지탄받게 될 것이다전두환은 국민들의 엄중한 경고를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편 5.18광주항쟁에 대한 진상규명에서 우리는 미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미국은 당시 한국군의 군사작전권을 갖고 있었다미국은 전두환 일당의 학살을 승인하였는가아니면 전두환 일당의 일방적인 행동이었는가만약 그렇다면 왜 그것을 묵인하고 이후에 전두환 정권을 인정하였는가이와 관련된 명확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당시의 진실을 정확하게 공개하고그 결과에 대해 우리 국민에 사죄해야 할 것이다.

5.18 광주항쟁의 정신을 이어받은 촛불혁명이 국민들의 힘으로 전진하고 있는 지금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시대적 책무를 다 해야 한다.

5.18 진상규명과 전두환 사죄촉구를 시작으로 5.18 광주민중항쟁을 대한민국의 역사에 굳건히 세우고촛불혁명을 완성하기 위한 투쟁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전두환은 국민 앞에 사죄하라!

-오월정신 계승하여 촛불혁명 완성하자!

 

2020년 5월 16

5.18 광주항쟁 40주년 기념사업 시민추진위원회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서울시지부민청학련동지회긴급조치사람들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전대협동우회주권자전국회의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인자, 진, 아방궁... 5.18 숨은 주역 '황금동 여성들'을 찾습니다

[5.18 40주년 특집]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 이제 '전설'에서 '역사'로 끌어올리자20.05.15 18:27l최종 업데이트 20.05.15 20:30l박정훈(twentyrock)

 

  518 당시 광주 한 병원의 모습.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518 당시 광주 한 병원의 모습.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5.18기념재단 영상캡처

관련사진보기

 
1980년 5월 22일, 불로동 광주적십자병원은 헌혈을 하기 위한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전날 도청 앞 계엄군의 집단발포 이후 부상자들이 몰려서, '병원에 피가 모자르다'는 소식이 들리자 주변 시민들이 너도나도 헌혈을 하러 병원에 모인 것이다.

당시 송원여고 교감이었던 송희성(83) 전 오월민주여성회 회장은 헌혈하러 온 시민들을 줄 세우는 등 병원에서 '질서 유지'를 돕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과 과장이었던 의사 김아무개씨와 여성 무리의 가벼운 실랑이를 목격하게 된다.

"느그들 피는 필요 없어야."
"그러면 우리 피를 검사라도 해서 써주세요." 

검사를 받으면서까지 헌혈을 하려 했던 이들은 소위 '황금동 콜박스'라는, 유흥업소가 몰려 있는 거리에서 일하는 여성들이었다. 송 전 회장은 의사에게 절박하게 호소하는 여성들의 차림새를 보고난 뒤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수년간 방치 상태로 있는 옛 적십자병원 앞에서 그는 감회에 젖은 듯 말했다.
 

"내가 얼마나 눈물을 흘렸다고... 오미 이렇게 우리가 대동(大同)세상으로 가는구나, 저분들도 저렇게 돕는구나, 얼마나 눈물이 나오는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내고 다녔어." 


'피를 나눈' 황금동 여성들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황금동 여성들의 전설
 

 구 광주적십자병원 사적비 앞에 선 송희성 전 오월민주여성회 회장
▲  구 광주적십자병원 사적비 앞에 선 송희성 전 오월민주여성회 회장
ⓒ 박정훈

관련사진보기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헌혈까지 거부당했음에도, 그들은 굴하지 않고 5.18 민주화운동 내내 강력한 여성군단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이 했던 일은 헌혈뿐만이 아니었다. 집회에 참여하거나 대치 상황에서 짱돌과 맥주병을 무기로 삼아 싸웠다. 물과 주먹밥을 시민군들에게 제공해주는 '보급병' 역할도 했으며, 공수부대에 쫓기는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숨겨주기도 했다. 

황금동은 금남로와 도청 등 공수부대의 사격과 무자비한 폭행이 이뤄진 곳과 매우 인접해 있다. 안전을 위해서는 몸을 사려야만 했다. 그런데 황금동 여성들은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서 민주화운동에서 가장 적극적인 주체로 싸우기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술집 여자'라고 비하 당하고 차별받던 그들은, 민주화운동 과정을 통해서 한 명의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이는 5.18 당시 광주가 해방구이자 평등한 자치 공동체를 구성했음을 입증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당시 황금동 여성들의 활약상에 대해 정리된 자료는 전무하다. 한국현대사회연구소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499명의 구술을 담아 1990년에 발간한 <광주5월민중항쟁 사료전집>에서 6명의 증언자들이 황금동 여성들에 대해 짧게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황금동 여성들이 실제 항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기가 어렵다.

기록이 없다

광주 시민들 사이에서 구전되어온 황금동 여성들의 존재가 언론을 통해 처음 알려진 것은 2018년 <오마이뉴스> 정미경 시민기자의 '5.18 때 피를 나눈 '황금동 여성들'은 왜 잊혔나'(http://omn.kr/r9k2)를 통해서다. 이 기사는 공식 기록 하나 없이 잊힌 황금동 여성들의 활약상을 당시 광주 시민들의 증언을 기반으로 정리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기사를 바탕으로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추가 증언을 듣고, <광주5월민중항쟁 사료전집>을 참고해 정리한 황금동 여성들의 활약상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황금동 쪽으로 도망치는 시민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 도움을 주고 ▲ 금남로 등으로 주먹밥 등 생필품을 보급했으며 ▲ 시신들을 수습해서 염을 했고 ▲ 직접 집회나 대치 현장에서 싸웠다.

먼저 이들은 공수부대에게 쫓기는 시민군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돌봐주는 역할을 도맡아 했다. 송희성 전 회장은 "황금동 콜박스 네거리에서 학생들이 도망다닐 때, 다 감춰주고 그랬어. (밖에서 안 보이게) 셔터를 내려버렸어"라며 당시 황금동 여성들이 많은 이들의 목숨을 살리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시민군을 숨겨주는 것은 결코 우연한 계기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목숨을 거는 위험하고도 능동적인 행위다. 이들이 겁내지 않고 시민군을 숨겨줬던 이유는 전두환 군부세력과 계엄군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쓴 이재의씨는 당시 황금동의 분위기를 이렇게 증언했다. 
 

"나는 황금동 콜박스 쪽으로 도망을 갔다. 황금동 일대 술집 여자들도 이를 뿌드득 갈며 식칼을 들고 다니면서 공수들의 행위에 치를 떨었다. 그들은 콜록이는 학생들에게 치약을 갖다 주기도 하고 돌도 날라다주었으며 마스크까지 가게에서 사다주었다." - <광주5월민주항쟁 사료전집> 중 -


한광진(69) 5.18광주민주화운동 부상자회 사무총장은 자신이 직접 황금동 여성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2018년 인터뷰 당시 밝힌 바 있다. 황금동 여성들이 부상 당하고 나온 자신에게 옷과 신발을 챙겨줬고 "어떤 길로 가면 계엄군을 피할 수 있는지 알려줬다"고 한다. 이들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황금동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이용해서 시민군들의 도피와 은신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한복 치마 안에 사람을 감싼 채 탁자 밑에 숨겨 놓고 앉아 능청스럽게 계엄군을 상대했다는 일화'는 그저 '영화 같은 이야기'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도와주고 살린 시민군의 숫자를 추정해 본다면 민주화운동 속 그들의 역할은 역사적으로 재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자신들이 가진 모든 자원 동원해 싸우다
  

 위의 사진처럼 5.18민주화운동 기간동안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의 상인들이 주먹밥을 나눠준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먹밥과 물을 함께 날랐던 황금동 여성들의 활약상은 기록되지 않았다.
▲  위의 사진처럼 5.18민주화운동 기간동안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의 상인들이 주먹밥을 나눠준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먹밥과 물을 함께 날랐던 황금동 여성들의 활약상은 기록되지 않았다.
ⓒ 5.18기념재단

관련사진보기

 

"황금동 쪽으로 갔더니 술집 여자들이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가지고 길거리에 늘어서 있었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물을 나눠주는 그 여자들을 보니 온 광주시내 사람들이 한마음이 된 것 같았다. 평소에는 술집 여자들이 낯설고 불결하게 생각되었는데 그렇게 작으나마 성의를 다해 마음을 나누는 그 사람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고 따뜻한 이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광주5월민주항쟁 사료전집> 고등학생 김○○씨의 증언 중 -


황금동 여성들은 밥과 물을 비롯한 음식과 생필품의 보급을 담당했다. 이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물과 함께 금남로로 운반하고, 이를 시민군들에게 나눠줬다. 당시 주변 주민들은 "시내 황금동 여자들이 제일 열심히 한다" (정경숙씨, 2018년 오마이뉴스 인터뷰)라고 말하는 등 이들의 활약을 높게 샀다. 그러나 대인시장·양동시장 상인들이 주먹밥을 지어 나른 사실은 널리 알려져 '광주공동체 정신'의 상징이 된 반면, 이들의 헌신은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 있었다.

상무대에서 사망자의 시신을 지키고 염을 한 이들도 있었다. 작고한 고정희 시인이 <월간중앙> 5월호에 기고한 "광주민중항쟁과 여성의 역할"이라는 글에는 이들의 헌신이 기록돼 있다.
 

"도청 앞 맞은편 상무관에는 신원이 확인된 시체들이 질서정연하게 태극기와 무명천에 덮여 진열되었고 입구에 분향대가 마련되었는데, 주로 황금동 술집 접대부로 알려진 여성들이 자진해서 이들 참혹하게 죽은 시체들을 씻기고 양말을 신기고 염하는 일을 도왔으며 민주영령을 위로하는 분향대를 지켰다(이들중 2명이 나중에 구속되어 정현애(오월어머니집 전 관장)와 감방생활을 함께 했다)."


당시 시민군 보급부장이었던 구성주(64) 5·18광주민중항쟁동지회 회장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상무대에서 시신을 수습하던 중 황금동 여성들을 봤고, 외양상 독특했기에 이들이 황금동에서 일한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정현애(67) 전 관장과 5.18민주유공자 이영자(78)씨의 증언은 좀 더 구체적이다. 5.18 직후 체포되어 광산경찰서(유치장)에 있던 이들은 '진'과 '인자'(예명)를 만났는데, 이들은 '아방궁'이라는 유흥업소에서 일했고, 자신들이 5.18 당시에 시신 수습을 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아방궁에서만 7~8명이 시신을 염습해서 상무대로 옮기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아방궁에 대해서 정현애 전 관장은 황금동 콜박스 거리의 유흥업소, 이영자씨는 도청 뒤 나이트클럽, 송희성 전 회장은 도청 뒤 '요정'이라고 기억한다).

"그들도 광주 시민"

황금동 여성들의 활동이 시민군을 돕는 일에만 그쳤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집회에 참여하고, 대치 상황에서 계엄군에게 대항하기도 했다. 짱돌을 던지고, 황금동에서 바리케이드가 쳐지자 빈 맥주병을 나르기도 했다. 총이 없을 뿐,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모든 자원을 활용해 싸웠다.
 

"집회에서 외쳤던 구호는 '전두환을 때려잡자'. '양키들은 물러가라' 등이었고 정의가, 애국가 등의 노래를 불렀다. 군중 속에는 황금동 술집 여자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그들을 보고 신기해하며 야! 하는 감탄을 하기도 하고, 그들도 광주 시민인데 당연하다는 말을 했다. 다른 사람들도 대개 그런 말을 들었다. - <광주5월민주항쟁 사료전집> 공장노동자 김○○씨의 증언 중 -


23일 도청집회의 상황을 묘사한 위의 문장에서 황금동 여성들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의미심장하다. 처음에는 그들이 집회에 함께하자 일시적으로는 '신기하다'는 감정이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자연스럽게 '광주 시민'이라는 평등한 위치로 인식됐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조용하게 시민군을 도왔던 존재가 아니라, 직접 항쟁에 나서서 자신들이 '광주 시민'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던 것이다.

목포 출신 '인자'와 서울 출신 '진'... 구체적이고 중요한 증언들
 

 현재의 황금동 모습. 과거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현재의 황금동 모습. 과거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박정훈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앞서 언급한 증언 자료는 황금동 여성들의 활동을 설명하는 데는 불완전하다. 먼저 이들은 일반적인 시민 대학생 조직에 속해 있지 않았다. 이들이 항쟁에 참여한 계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는지 등은 외부인이 규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활약상 역시 목격자들의 증언만으로는 구체적, 입체적으로 기록하기 어렵다. 황금동 여성들의 직접 증언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80년 이후 황금동 여성들을 만났거나 연락했다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또한 황금동 거리를 둘러봐도 80년대 '황금동 콜박스'라는 유흥의 거리는 아예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지금 황금동은 옷 가게와 음식점이 모여 있는 흔한 도시의 중심부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올해 초,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여성 운동가들로부터 황금동 여성들의 신원을 짐작하게 해주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계엄군에 의해 체포된 여성들만 모여 있던 광산경찰서에서 진과 인자(예명)이라는 황금동 여성들을 만났다는 정현애 전 관장의 증언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100여 명 정도가 유치장에 있었어요. 황금동 여성들은 15~20명 정도... 외모상으로 눈에 띄었어요. 방(유치장)을 고정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멤버가 바뀌었거든요. 그러다가 아방궁이라는 술집에서 일하는 진과 인자랑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인자는 집이 목포였고,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술집을 전전했다고 합니다. 남자친구가 대학생이었고, 하루는 그 남자친구 부모인지 친구인가가 면회를 왔어요. 남자친구는 해남 출신인데 5.18 항쟁에 뛰어들었다고 해요.

진은 집이 서울인데 집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해요. 희생당한 시신들이 도청으로 집결하고 이를 상무관으로 옮겨놓았는데, 진이 이 시신들을 돌봐주고 지키는 일을 했다고 해요. 인자는 서포트 역할을 했고요. 아방궁에서만 7~8명이 시위에 참여하고 물자를 공급하거나 수혈을 하면서 시민군들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상무관에 있다가 26일에 아방궁으로 다들 돌아갔는데, 누군가가 신고를 해서 잡혀 왔다고 해요. 둘은 1차 훈방(7월 3일)에 풀려난 것으로 기억해요."


그는 '황금동 여성들'에 대한 에피소드도 하나 말해줬다. 황금동 여성들이 자신들이 왜 잡혀온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죄목을 경찰서에 물어봤다고 한다. 그러자 "저렇게 죽으면 어여쁜 아가씨가 돌봐준다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답하면서 '폭도 고무'라는 황당한 죄명을 댔다는 것. 이에 유치장에 있던 사람들이 황당해서 전부 웃었다고 한다.

5.18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가두방송'을 했다가 체포된 차명숙(59) 대구경북 5·18동지회장은 광산경찰서에 오기 전에 505보안 상무대에서 고문을 당했다. 당시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지만 '황금동 여성들'의 존재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제 기억으론 여덟, 아홉 명쯤 됐던 것 같아요. (민주화운동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컸어요. '당당한 일을 해서 상을 받아야 하는데 잡혀왔다'고 했거든요. 특이하다고 느꼈어요. 제 밥이나 속옷 등을 챙겨놨던 것 같고... 헌혈도 하고 시신을 닦았다고 들었거든요. 거기 안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헌혈을 어떻게 해? 라는 반응이 있었어요."


5.18 유공자인 이영자씨의 증언도 비슷하다. 
 

"25~27살 정도 됐던 것 같아요. 걔네가 그래요. '언니 나는 실은 상 받아야 할 일을 했는데 죄인이 돼서 왔어요.' 들어보니까 시신 수습을 하고, 광목으로 옷을 만들고 염을 해서 도청 앞 상무대로 옮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언젠가는 너희가 상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줄 때가 있을  것이다'라고. 그런데 (5.18) 유공자가 된 것 같지는 않아요. 모임에서 본 적도 없고, 이름이나 신상을 모르니까 찾기도 어렵고요."


계엄군의 서류... "직업 : 접대부(향락)"

계엄군에 붙잡힌 황금동 여성들에 대한 기록이 서류로 남아 있진 않을까?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에 남아 있는 '훈방' 관련 자료(5.18 광주 민주화운동자료총서)를 살펴봤다. 7월 3일 훈방 명단에 '인자'라는 이름은 있었으나, 정 전 관장이 말하는 이와 동일 인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직업란을 살펴봐도 황금동 여성들로 특정될 수 있는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훈방자에게 받는 '각서' 자료가 일부 남아 있었는데, 한 여성의 직업이 접대부(향락)으로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소 역시 한 여관으로 적혀 있는 것을 볼 때, 그는 '황금동 여성들'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 
   

 5.18전자자료총서 캡처. 한 여성이 훈방조치를 받고 나갈 때 썼던 각서다. 직업란에 부분에 접대부(향락)이라고 적혀 있다.
▲  5.18전자자료총서 캡처. 한 여성이 훈방조치를 받고 나갈 때 썼던 각서다. 직업란에 부분에 접대부(향락)이라고 적혀 있다.
ⓒ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추적은 딱 여기까지였다. 위 각서에 쓰인 이름과 광산경찰서에서 감옥생활을 했던 두 명의 예명을 바탕으로, 5.18 단체들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등에 질의했으나 마땅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나거나 연락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났다" "만나기 어려울 거다"라며 부정적인 전망을 드러냈다.

<오마이뉴스>가 황금동 여성들을 찾습니다

그러나 한 지역을 기반으로 조직적으로 항쟁을 했던 황금동 여성들의 활약을 이대로 야사(野史)로 남겨둘 수만은 없다. 유치장에 있던 황금동 여성들의 말처럼, 그들은 당당하고 옳은 일을 했고, 현재의 한국 사회는 이를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황금동 여성들의 증언이 세상에 알려지면, 80년 5월 광주에서는 계층과 지위를 초월한 항쟁이 벌어졌고, 여성들 또한 항쟁의 주체였다는 사실이 재조명될 수 있다. 이는 5.18의 의미를 더욱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황금동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전설'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한 명 한 명 '광주 시민'으로서 항쟁에 참여했지만, 기록되지 못한 그들을 계속 찾을 것이다.

※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오마이뉴스>는 5.18 민주화운동의 숨은 주역 중 하나인 '황금동 여성들'을 재조명하고, 기록하고자 합니다. 만약 자신이 '황금동 여성들'로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거나, 혹은 황금동 여성들을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꼭 오마이뉴스에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2-733-5505, E-Mail: stargazer@ohmynews.com, edit@ohmynews.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재인 대통령과 촛불혁명 완성의 길

박해전  | 등록:2020-05-15 16:03:27 | 최종:2020-05-15 16:10:3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문재인 대통령과 촛불혁명 완성의 길
[통일정치시론] 촛불혁명을 완성하는 길은 남북공동선언을 완수하는 데 있다
(사람일보 / 박해전 / 2020-05-15)

 

박해전 자주통일평화번영운동연대 상임대표가 15일 ‘문재인 대통령과 촛불혁명 완성의 길’ 제하의 통일정치시론을 발표했다. 전문을 싣는다. <사람일보 편집자>

[통일정치시론] 문재인 대통령과 촛불혁명 완성의 길

국민주권자들은 촛불혁명으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유린한 박근혜 사대매국정권을 탄핵하고 2017년 5.9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선출한 데 이어 2020년 4.15총선에서 촛불혁명 정권을 뒤엎으려는 박근혜 잔당을 물리치고 제21대 촛불혁명 국회를 세우는 위대한 역사를 창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촛불의 염원을 항상 가슴에 담고 국정을 운영했다며 임기 마지막까지 위대한 국민과 함께 담대하게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과 제21대 국회는 국민주권자들이 쟁취한 촛불혁명 권력으로서 촛불혁명의 대의에 따라 식민과 분단의 적폐를 청산하고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강령인 판문점선언을 완수함으로써 국민주권을 오롯이 실현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과 막중한 책무를 안고 있다.

제폭구민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동학혁명, 일제침략에 맞선 항일투쟁, 외세에 의한 조국 분단에 항거하며 자주 민주 통일을 이루기 위해 투쟁한 제주 4.3항쟁, 4.19혁명, 5월항쟁, 6월항쟁, 범민련 민족대단결운동, 6.15공동선언, 10.4선언 정신이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

국민주권자들은 촛불혁명 권력인 문재인 대통령과 제21대 국회가 역사와 민족의 부름 앞에 자기 사명과 역할을 다하여 촛불혁명을 완성할 것을 엄숙하게 요구하고 있다. 제정당사회단체들도 이러한 민의를 받들어 국민주권을 침해하는 식민과 분단의 적폐를 청산하고 우리 민족의 염원인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을 앞당기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제21대 국회는 개원과 함께 우리 민족의 식민과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을 총결산하는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의 국회비준동의를 만장일치 가결하는 것으로 자기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판문점선언 이행을 바탕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코로나19 국난 극복을 위한 ‘한국판 뉴딜’ 성공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국회는 또 분단 제도적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판문점선언에 기초한 자주통일 평화번영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국민주권을 완전하게 보장해야 한다. 헌법 전문에는 반외세 동학혁명으로부터 촛불혁명권력 창출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위대한 투쟁의 현대사와 그 정신이 오롯이 담겨야 한다.

국회는 특히 군사주권을 외국에 넘기고 일제식민지배에 면죄부를 준 사대매국악법들인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일기본조약을 폐기하고 한미상호자주평등공동번영조약과 한일불법강점침략배상정의조약을 체결하도록 결의함으로써 국민주권이 올바로 실현되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제정당사회단체들은 국민주권자들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살길인 판문점선언 완수와 사대매국범죄 추방 범국민운동을 적극 벌여나감으로써 사대매국노들이 다시는 머리를 쳐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식민과 분단 적폐청산으로 사대매국언론을 퇴출시키고 국민주권자들에게 참답게 복무하도록 권력기관을 혁신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식민과 분단의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정의와 역사정의를 바로세워 촛불혁명을 완결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6.15공동선언, 노무현 대통령의 10.4선언을 계승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선언을 공동채택한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혁명을 완성하는 길은 남북공동선언을 완수하여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을 이루는 데 있다.

▲박해전 대표  ©사람일보

국민주권자들은 촛불혁명권력 문재인 대통령이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에서 촛불혁명권력 제21대 국회와 연대 협력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조국통일회담을 열어 판문점선언에 의거한 조국통일을 선포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촛불혁명이 완성되는 그날 촛불은 더욱 영롱한 빛을 뿌릴 것이다.

국민주권자들은 문재인 촛불혁명 대통령과 제21대 촛불혁명 국회와 함께 촛불혁명의 완성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할 것이다.

2020년 5월 15일
자주통일평화번영운동연대 상임대표 박해전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4964&table=byple_news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법원 “2015년 이후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도 불법 파견”..도로공사 사태 ‘종지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05/16 09:50
  • 수정일
    2020/05/16 09:5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백겸 기자 kbg@vop.co.kr
발행 2020-05-15 19:35:06
수정 2020-05-15 20:52:32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톨게이트 노동자들(자료사진)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톨게이트 노동자들(자료사진)ⓒ김철수 기자 
 
대구지법 김천지원 민사합의부는 15일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2015년 이후 입사한 요금수납원은 불법 파견 노동자가 맞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도로공사가 내건 '조건부 계약'에 묶여있던 2015년 이후 입사자들도 도로공사에 직접고용된다. 이로써 지난해 6월 요금수납원 1400명 해고로 촉발된 '도로공사 불법파견 논란'이 일단락됐다.

앞서 도로공사는 올해 1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1심에 계류 중인 수납원 전원에 대한 현장 지원직 고용 방침을 밝히면서도, 2015년 이후 입사자에 대해서는 '해제조건부 근로계약서'를 제시했다.

해당 계약서에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수납원만 직접 고용이 유지되고 패소한 조합원은 고용계약 효력이 소멸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민주일반연맹은 이날 판결 후 김천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은 1년여에 걸친 톨게이트 수납원 직접 고용 문제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라고 환영입장을 밝혔다.

이어 "결론이 명확한 불법 파견을 도로공사만 인정하지 않고 몽니와 갈라치기에 혈안이 돼 집단해고와 분쟁이 장기화됐다"고 지적했다.

판결에 대해 도로공사는 "이번 판결을 존중하며, 기존의 노사합의 및 고용 방침대로 해당 인원 전원에 대해 현장지원직으로 직접고용을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도로공사는 2017년 8월 요금수납원의 정규직 전환 방식을 자회사 채용으로 강행했으나, 자회사 전환을 거부한 1400여명에 대해 지난해 6월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올해 초까지 이어진 해고 수납원들의 긴 농성 끝에 도로공사는 올해 1월 요금수납원 가운데 2014년 이전 입사자는 직접고용하되, 2015년 이후 입사자에 대해선 '1심 판결에 따르겠다'는 조건부로 고용하기로 하면서 긴나긴 농성은 끝났다.

이번 판결로 2015년 이후 입사자까지 전원고용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아직 노사간 갈등은 남아있다. 도로공사가 복직한 요금수납원들에 대해 졸음쉼터나 휴게소 등의 환경미화 업무를 맡기고 있는 데 대해 노조 쪽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백겸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은 집단지도체제가 과연 가능한가?


<연재> 김정은 위원장 ‘건강 위중설’ 가짜와 대한민국 민낯들 ③
김광수  |  no-ultari@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20.05.15  14:43:06
페이스북 트위터

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김정은 위원장 ‘건강 위중설’은 역시 가짜였다. 비례해 대한민국 사회는 고스란히 그 민낯을 드러냈다. 왜 그랬을까? 단순히 태영호·지성호(탈북자 국회의원 당선인)와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적폐언론, 혹은 그에 기생해있는 반북 지식인들 탓만 하면 될까? 아니다. 보다 우리 사회가 ‘북 체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동반되지 않으면 절대 극복할 수 없는 과제임이 명확해졌다. 해서 이 글은 다시 한 번 이런 사달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북 바로 알기’가 보다 체계적이고 대중적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한 흐름을 만들어나가는데 조그마한 부싯돌이 되고자 한다. / 글쓴이 주

   글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들어가기에 앞서: 우린 이번 ‘김정은 건강 위중설’ 사태를 어떻게 교훈화 할 것인가? 
   ②북의 수령정치작동방식: 현지지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5/8)
   ③북은 집단지도체제가 과연 가능한가?(5/15)
   ④북의 후계승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5/22)
   ⑤북의 급변사태는 과연 가능한가?(5/29)

 

분명한 것은 본 글의 위 제목이 국내 분단적폐세력들과 미 딥스테이트(Deep-State) 세력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생성된 가짜뉴스,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위중설’에 대한 반론적 성격의 글이다. 

이를 위해 이 글은 ‘1. 김일성 주석의 서거와 3년 유훈정치가 갖는 함의’, 아래 ‘2.3·4’에서 확인받듯이 그들의 국가운영원리, 규범적 가치와 현실사회주의 몰락을 총화한 방식을 제시한다.

1. 김일성 주석의 서거와 3년 유훈정치가 갖는 의미

순서에 따라 먼저, 유훈정치에 관한 정치적 함의 찾기를 위해 ‘짧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한 번 해본다. 

그러면 스스로의 목적에 따라 자신의 기억을 억지로 봉인했거나, 또는 거세시켜 버린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그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서거하자 당시 대통령을 필두로 분단적폐 언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 진보적 인사와 매체들까지도 이에 부화뇌동하여 북은 곧 망할 것이라 야단법석 했다. 그렇지만 근거는 없었다. 굳이 근거라고 한다면 1인 독재시대(혹은, 절대 권력)가 사라졌고, 거기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식량·연료·외화난으로 대표되어지는 3난(일명, 고난의 행군시기)이 발생했으니 북은 이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곧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뿐이었다.

하지만, 그 인식이 얼마나 잘못된 보편화였는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하는 편이 더 솔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소망적 기대가 낳은 철저한 허상이었으니, 다름 아닌, 북 정권이 붕괴되지도, 체제전환도, 집단지도체제도 전혀 도입되지 않았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으로의 권력승계과정도 위 소동과 단 1%의 차이도 없었다. 그때의 경험에서 단 1%의 교훈도 찾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당시 거의 모든 체제이탈자들과, 분단적폐세력들, 26년 전과 똑같이 부화뇌동한 일부 진보적 인사들까지도 김정은 권력체제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믿었다. 

또한 과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1994년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고, 근거제시 능력도 제로였다. 1994년 때와 똑같이 그렇게 같은 반복만 있었을 뿐이었다. 절대 권력자가 죽었고, 김정은은 나이가 너무 어려 경험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였다. 굳이 1994년 때와 다른 점을 찾으라고 한다면 형식적으로는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 권력자가 되어 있지만, 사실상 그 실질권한은 장성택이 쥐고, 김정은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둥, 그것도 아니라면 집단지도체제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필연이라는 둥 그렇게 공허한 억측과 풍문만 생산해내었다.  

그런데? 또 드러난 사실(fact)은 그들이 그렇게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던 김정은 위원장이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자신들이 그렇게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했다던 장성택은 국가중대범죄자로 몰려 공개 처형되었다. 

무얼 말해주고 있는가? 

기간 수령체제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다는 것이고, 북 사회 이해능력이 초등수준도 되지 못한다는 것만 보여줬다. 그리고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위중설’ 소동도 그 연장선상에 있고, 양산 형태도 똑같다. 집단지도체제 운운이다. 

해서 묻는다. 매번 그렇게 신 내림으로까지 빙의해가면서 맞춰보려 했지만, 단 한번만이라도 맞춰보지 못했다면 이제는 그 빙의놀이를 그만둬야 되는 것 아니냐고. 달리는 북이 집단지도체제로 왜 전환해야 되는지에 대한 근거제시능력이 없다면 이제는 북 실체를 그대로 인식하고, 북 체제가 왜 ‘우리들 생각대로’ 되지 않지? 하면서 그 원인을 찾아내는데 더 주력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대신, 답 준다.  

2. ‘수령-당-인민대중’의 전일적 체계가 갖는 함의

다들 아시다시피 북의 기본 국가운영원리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이다. 그리고 그 발현은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로 나타난다. 

이를 사상·이론적으로 정립한 것이 ‘수령-당-인민대중’의 전일적 체계이다.  

좀 더 설명하면, 사람(인간)이 역사의 주체이고 자기운명의 주체이기는 하지만, 수령과 사회정치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한 ‘자주적’ 주체가 될 수 없고, 그런 만큼 그 ‘자주적’ 본성은 결국 수령과의 사회정치적 생명으로 연결될 때만이 획득되는 그런 개념(주체철학), 그리고 이때의 수령은 인민대중의 집단적 요구와 의사의 최고 체현자로 기능을 수행한다.

수령은 이처럼 집단적 개념이자 인민대중을 떠나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그런 개념으로 일치시켜진다. 이는 마치 물고기와 물의 상관관계처럼 수령은 절대 인민대중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존재임을 못 박은 것과 똑같다.  

그래놓고 북은 그런 수령에 대해 ‘절대적인’ 지위와 ‘결정적인’ 역할을 부여해 정치에 있어 핵심적이고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론화했다.  

수령중심의 조직운용체계와 국가운영질서를 그렇게 세운 것이다. 그들은 이를 수령유일지배체제라 하고,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이 이 체제를 절대 일인독재지배체제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질에 있어 하등 인연도 없고, 인연이 없는 만큼,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그들은 유일지배체제를 톱니바퀴처럼 수령을 정점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유기체적 개념이라는 것이고, 이는 ‘혁명적 수령관’과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라는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 정치체제이자 각각의 혁명주체, ‘수령-당-대중’을 하나의 통일체로 묶어내는 그런 개념으로 설명해낸다.

그 과정에서 수령은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체제를 구현하고, 이 구현을 위해 노동계급 중심의 인민대중은 혁명투쟁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해야 하고, 수령만이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수령결정론으로 정식화된다. 이렇게 수령중심의 사회주의체제는 수령유일지배체계이자  사회주의 국가체제의 핵심징표이다. 

바로 이 체계화를 위해 1982년 김정일은 하나의 논문을 발표한다. ‘주체사상에 대하여’가 그것이다.  

이후 이 ‘노작’은 보다 심오한 사상〮이론적 체계화 과정을 한 번 더 거치게 되는데, 그 결정체가 주체사상 ‘총서 10권’이다. 주체사상은 그렇게 전 사회적인 분야에서 국가통치이데올로기로 위상된다. 

여기서 우리가 가져야 할 인식적 정(正)은 수령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봉건시대의 그런 절대군주 개념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정립한 철학적 확립토대(주체사상) 위에 존재하는 사상·이론적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즉, 수령을 사회정치적 생명체라는 관계 속에서 개념화하고, 이를 다시 사회 유기체관으로 반영시켜내어 수령을 그 유기체의 최고 지위와 역할을 갖도록 하는 그런 존재로 자리매김 시켰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다음 논문(1986.7.15.),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를 보면 이는 명약관화해진다. 수령을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뇌수로까지 그 개념을 확장시켜 내는데, 거기에 수령을 이렇게 정의한다. 

"수령-당-대중의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뇌수로서, 이 생명체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이다." 

드는 의문? 

그들이 정립한 주체사상에 의하면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고, 인민대중은 혁명과 역사발전의 주체임을 정립해놓고, 왜 갑자기 수령의 '절대적 지위'와 '결정적 역할'을 강조하는가, 그런 의심이 들 수 있는데, 이에 대한 그들의 설명도 매우 분명하다. 

이는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인민대중이 혁명과 역사발전의 ‘주체’가 맞긴 맞지만, ‘자주적’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걸출한 수령에 의해 영도될 때만이 인민대중이 비로소 혁명승리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자주적 집단으로 존립가능하고, 주인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다 할 수 있다는 논리적 사유체계가 만들어져서 그렇다.    

그러니 수령 없이는 당과 인민이 존재할  수 없고, 이를 다시 사람의 신체구조와 비교했을 때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 ‘뇌수’로 정식화 시켜낼 수 있었다. 단, 여기서도 주의해야 할 것은(오버하지 말아야 할 것은) 수령이 ‘뇌수’ 개념으로 정식화된다하여 ‘심장’에 해당되는 당, ‘팔·다리’에 해당되는 인민대중을 떠나 수령 홀로 독립된 변수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전일적 체계개념은 그래서 나온 개념이다. 

‘수령-당-인민대중’의 전일적 체계는 지위와 역할에 따른 구분이지, 이 지위와 역할이 제 아무리 중요하고 뛰어나다하여 ‘심장’없는 ‘뇌수’, ‘팔· 다리’없는 ‘뇌수’로는 될 수 없다. 이유는 그런 ‘뇌수’로는 생명으로 존재할 수도 없거니와 온전히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불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전일적 체계로서의 유기체적 개념도 아래와 같이 이해해야 한다. 

김정일의 앞 논문에 “육체적 생명은 부모가 주는 것이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은 수령이 부여”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수령은 “사회정치적 생명의 부여자이며 당은 사회정치적 생명의 모태"로 규정한다. 

북은 이렇듯 수령을 그 정점으로 하는 ‘수령-당-인민대중’의 전일적 체계로 보장되는 철저한 주체의 사회주의 나라이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이를 ‘의도적으로’ 누락하거나 보지 않는다. 대신, 자신들의 소망적 기대로만 북을 멋대로 가공하여 이해한다. 

집단지도체제 운운은 그래서 나온 허상이다. 

3. 김일성·김정일 헌법과 당 규약 해석

① 헌법

그들의 헌법인 김일성·김정일 헌법 서문 첫 시작은 이렇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강조, 필자)이다.”

서문 마지막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은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한 김일성-김정일헌법(강조, 필자)이다.”

이를 <제1장 정치>편 제3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강조, 필자)으로 삼는다.” 

<제6장 국가기구>편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이다(강조, 필자)"라고 명시되고 있다.

② 당 규약

조선로동당 규약 서문에 있는 구절의 한 내용이다.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강조, 필자)으로 하는 김일성-김정일주의 당, 주체의 혁명적 당이다.”

풀어쓰면 조선로동당이 당 안에 사상과 영도의 유일성을 보장하고, 당이 인민대중과 혼연일체를 이루며 당 건설에서 계승성을 보장하는 것을 당 건설의 기본원칙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조선로동당이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주선으로 틀어쥐고, 당 대열을 수령결사옹위의 전위대오로 꾸리며 자기 수령을 중심으로 당과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을 백방으로 강화하고, 그 위력을 높이 발양시켜 나가겠다는 명백한 선언이다. 

결과 <제8장 당과 인민정권>편 53조에는 “당은 인민정권기관안의 당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령도체계를 튼튼히 세우고 인민정권이 주체사상, 선군사상과 그 구현인 당의 로선과 정책을 철저히 관철토록 정치적으로 지도한다.” 

36년 만에 열린 2016년 제7차 당 대회는 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북은 이 대회에서 "사람들은 물질 경제생활의 력사적인 발전 단계에서 사회 경제 제도의 형성과 발전, 교체의 합법칙성을 밝히며~"선언했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대목이 ‘사회 경제 제도의 형성과 발전, 교체의 합법칙성을 밝히며~’이다. 

왜냐하면 이는 북 스스로가 지난 시기를 총화 함에 있어 사회주의 건설기(김일성시대)를 지나 체제수호기(김정일시대)라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마감하고, 김정은의 새로운 시대는 사회주의 문명국가라는 ‘사회 경제 제도의 형성과 발전, 교체의 합법칙성’을 밝혀내었다는 총화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총화는 "이번 당 대회보고에서 우리 당을 백전백승의 향도적 역량으로 강화 발전시키고 우리나라를 국력이 강한 사회주의 강국(강조, 필자)으로 일떠세워준 불멸의 혁명업적(강조, 필자)을 총화했다"이다.  

(불멸의 혁명업적은) 다름 아닌, 수령중심의 사회주의 완전 승리노선이다. 

이렇듯 북은 위 ‘1’의 사상·이론적 DNA와 이번 ‘2’에서와 같이 증명된 규범적 가치 및 당의 실천적 총화 그 어디에도 집단지도체제 언급은 없다. 

다시 말해 집단지도체제가 도입되려면 헌법을 수정해야하고, 당 규약을 변경해야하고, 당 스스로 36년 만에 총화한, 그것도 ‘불멸의 혁명업적’으로 총화한 그 내용 모두가 부정되어져야 하고, 이에 앞서서는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이 전면 부정되어져야 한다. 

과연 북이 그럴 수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는 절대 가능하지 않는 상상력이다. 

4. 현실사회주의 몰락에서 찾아낸 그들의 교훈

이 또한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래 3가지 근거로 인해 북은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그러한 길로 갈 수 없다, 이다. 

근거는 당시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북은 1980년대 말 소련으로부터 시작된 도미노가 동구권에서 멈춰질 때까지 온갖 괴담에 휩싸였다. 사회주의체제를 버리고, 100% 확신에 찬 체제전환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북은 그런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는다. 

첫째는, 북은 수령(최고 영도자) 중심의 일심단결 중요성을 더더욱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는 뇌가 없는 사람의 생명체가 있을 수 없듯이 수령 없는 국가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이 해낸 총화방식이었다. 

즉, '잘못된’ 최고 영도자의 정치후과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또한 후계승계 순응의 원칙에서도 단 한 발짝도 후퇴하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똑똑히 총화하였다. 

"사회주의국가건설위업은 한두 세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난 시기 일부 나라들에서 인민적 사명과 본분을 저버리고 사회주의를 말아먹은 가슴 아픈 비극은 령도의 계승문제를 옳바로 해결할 때 나라도 강대해지고 인민의 존엄도 빛난다는 진리를 새겨주고 있다." <로동신문>과 <근로자> 공동론설, "우리 공화국은 존엄 높은 인민의 나라로 무궁 번영할 것이다."(2019.09.06.)

김현환의 책, <주체사상과 나와의 대화>에서도 이 문제를 보다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인식이 동구권과 구소련 붕괴의 경험은 영도의 계승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지 못하여 사회주의 위업이 곡절을 겪었으며 특히, 사회주의의 배신자들이 지도층에 등장하여 수정주의 정책을 강행하여 마침내 사회주의를 붕괴시켰고 이 중심에 흐루쇼프, 고르바초프가 있다.(88~89쪽)" 

둘째는, 인민과 당의 관계가 사회주의체제가 갖는 특성상 비적대적 모순관계였어야 하나, 망할 때 소련과 동구권의 나라들에서 나타난 현상은 인민과 당과의 관계가 적대적 모순관계로 전변되어 당과 인민간의 괴리가 매우 심각했고, 결국 이 요인들이 멸망의 주된 한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북은 분명하게 총화하였다는 점이다. 

1992년 2월 3일, 김정일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를 보면 이는 분명해진다. 

‘사회주의건설의 역사적 교훈과 우리 당의 총노선’에서 그는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 좌절 원인이 "관료주의가 자라나 사람들의 창발성을 억제하고 당과 국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어 인민대중의 통일단결을 파괴하는 엄중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명하게 못 받고 있다. 

셋째는, 군대를 당의 군대로, 더 나아가서는 수령의 군대로 그 성격을 보다 분명히 하였다는 점이다. 소련과 동구권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북은 군대가 당의 편에 서지 않고, 당과 수령으로부터 등을 돌린 인민의 편에 서는 것을 보면서 군대를 국가를 지키는 무력적 수단뿐만 아니라, 당의 군대, 수령의 군대 성격으로 확실하게 전환하였다. 

김철우의 책,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 49쪽을 보면 그들의 생각 일단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권과 민중이 적대관계에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는 정치구도가 리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이렇듯 북은 현실사회주의 몰락에 따른 총화를 자기식만의 방식으로 철저히 이해해냈다. 

5. 나오며 

순서로 보자면 먼저는, ‘서방적’ 사고, 혹은 분단적폐세력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김일성 주석 서거 이후 어떻게 3년 유훈정치가 가능했는지를 한번 살펴봤고. 두 번째는, 그들의 국가운영 원리인 ‘수령-당-인민대중’의 전일적 체계구축이 갖는 의미를, 세 번째는, 그들의 규범적 가치인 헌법과 당 규약 전문을 해석해 집단지도체제로 전환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상·이론적 측면에서도 한번 살펴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80년 말부터 도미노처럼 일기 시작한 현실사회주의 몰락에서 그들이 찾은 교훈이 무엇이었는지도 한번 살펴봤다. 

그 결과, 많은 이들(분단적폐 세력들과 딥스테이트 세력들) 기대와는 전혀 달리 북은 주체사상(선군사상)에 기초한 ‘수령-당-인민대중’의 전일적 체계를 구축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수령중심의 유일사상체계와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체제를 보다 더 굳건히 하였다.  

혐북과 반북·종북에서 벗어나 ‘두껍게’ 보고, ‘다르게’ 보고, ‘깨트리기’로 보면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통일부 통일교육위원(전)/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외 다수가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대진연 "오월 정신으로 적폐를 청산하자"

하인철 통신원 | 기사입력 2020/05/15 [20:49]
  •  
  •  
  •  
  •  
  •  
  •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 소속 회원들이 지난 8일부터 진행한 전두환 규탄 행동전이 오늘(15일)끝났다. (관련기사 : http://www.jajusibo.com/50495)

 

▲ 경기인천대학생진보연합과 강원대학생진보연합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하인철 통신원

  

대진연은 15일에 오전 11시, 오후 3시 두 번에 걸쳐 전두환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첫 번째 기자회견은 대진연 소속 영상 콘텐츠 제작소 '너나들이' 동아리에서 진행했다. 

 

'이명박 후배'로 소개 된 정연우 회원은 "전두환과 이명박의 공통점이 뭐가 있나 생각해봤는데요.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만행들을 수도 없이 했음에도 얼굴색이 너무 좋다는 거다. 큰 죄를 지었으면 처벌을 받고 죗값을 치른 후에도 죄책감에 사무쳐 평생을 안고 반성하며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이다"라며 전두환을 꼭 처벌하자고 발언했다.

 

미 대사관저 월담 투쟁으로 구속됐다가 최근 석방된 김수형 회원은 "대학생들이 국가의 이익과 나라의 자주 존엄을 위해 행동했던 일로 6개월간 옥중에서 지냈는데 민주주의와 민중을 짓밟으려 했던 악덕무도한 살인마 전두환은 단순히 감옥에 처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518 학살 책임자 전두환은 반드시 광주 영령들 앞에 국민들 앞에 무릎 꿇고 머리 박고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며 사죄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광주에서 태어난 학생'으로 소개 된 조안정은 회원은 "5.18 민주화운동이 있었기에 현재 나의 삶이 존재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적폐들과 전두환이 처벌 받을 때까지, 역사의 심판을 받을 때까지 끝없이 외칠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15일 오후 3시, 경기인천대학생진보연합(이하 '경인대진연')과 강원대학생진보연합(이하 '강원대진연') 소속 회원들이 전두환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김진아 강원대진연 회원은 "피로 물들었던 광주의 오월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겨주었고, 사회가 나아가는 데에 있어 가르침을 주는 원동력이자 위대한 유산이다", "남북관계 발전에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고,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인상압박을 지속하며 주한미군을 통해 우리 땅, 우리 혈세를 강탈하고 있는 오늘날이야말로 외세와 종속적인 관계를 넘어 대등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오월의 남겨진 숙제이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을 하는 미국에 대한 규탄 발언을 했다.

 

기자회견 중에 대학생들은 5.18 광주 민중항쟁을 기리는 광주출정가 민중가요를 불렀으며 3행시도 진행됐다.

 

이유설 경인대진연 회원은 "대학생들은 요구한다. 이 땅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40년 동안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반드시 규명하고 독재에 부역하여 죄 없고 평범한 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적폐들을 청산해야 한다"라며 적폐 청산 의지를 밝혔다.

 

기자회견은 상징의식으로 전두환을 격파하며 끝났다.

 

오늘까지 전두환 규탄 행동전을 벌인 대진연은 이후에도 전두환 처벌과 미국의 사과를 받기 위한 행동전에 앞장설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전두환 격파 상징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하인철 통신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일베보다 무서운 전교조? '스승의날'에 본 충격적 영상

"이게 다 전교조 때문이다"라는 젊은 교사에게

20.05.15 08:07l최종 업데이트 20.05.15 08:07l

 

코로나19의 지역 감염이 확산되는 이 와중에 스승의 날을 맞았다. 학교에 아이들이 없는 스승의 날이 조금은 낯설지만, 한편으론 마음 편한 구석도 있다. 촌지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이맘 때는 아이들도, 학부모도, 교사조차도 여러모로 께름칙한 시기다.

몇몇 졸업생이 인사드리러 온다기에 외부인의 학교 출입이 금지돼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현재 학교는 교직원을 제외하고 누구도 교문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예전 같으면 교무실까지 배달되던 택배도 교문 관리실에 놓고 간다.

올해는 스승의 날을 온전히 교사들끼리 보내게 됐다. 오랜만에 몇몇 동료 교사들과 스승의 날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해마다 스승의 날을 명절처럼 쇠고 있지만, 교사들 중에 그 유래와 변천 과정을 아는 경우는 드물다.

"이게 다 전교조 때문이다"라는 젊은 교사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6년, 문재인 정부 규탄 교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2019년 10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6년, 문재인 정부 규탄 교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스승의 날은 1958년 5월 충남 강경여고 학생들이 전현직 교사들을 찾아가 위문한 데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5년부터 세종대왕 탄생일인 5월 15일로 공식 지정되었고, 스승의 날 행사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세종대왕이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이라는 뜻에서다.

 

이후 유신정권이 들어서자 교육 관련 모든 행사가 '국민교육헌장 선포 기념일'로 통합되면서 금지되는 운명을 맞는다. 유명무실한 스승의 날이 부활한 건 1982년 5월로,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어 지금에 이른다. 공휴일은 아니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재량 휴업일로 운영하기도 한다.

"스승의 날이 교사에 대한 존경심을 높이기는커녕 비하하고 조롱하는 날이 된 마당에 차라리 폐지했으면 좋겠어요. 유공 교원에 대한 정부의 관행적인 포상도 권위를 잃은 지 이미 오래잖아요."

교사들과의 대화는 절망과 자책으로부터 시작됐다. 우리 사회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스승의 날은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이다. 한 동료 교사는 언제부턴가 교사 집단은 '안줏거리' 신세로 전락했다면서, 학교 밖 모임 자리라면 굳이 신분을 밝히지 않는단다.

그런데 한 젊은 교사가 내부의 자성이 필요하다면서 다짜고짜 전교조를 들먹였다. 여론과 전교조의 불화로 공교육 전체가 싸잡아 욕먹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비율로 따지면 15% 정도에 불과한 전교조가 전체 교사 집단을 과잉 대표하고 있는 것부터가 패착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교조의 연이은 '헛발질'로 여론이 등을 돌렸다고 강조했다. 과거 온갖 탄압을 이겨내고 창립될 당시와 지금의 전교조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도 했다. 교육보다는 정치에, 아이들의 성장보다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더 골몰하는 조합원이 적지 않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허구한 날 상경 투쟁만 고집하는 관행, 편향된 역사관을 고수하는 시각, 정시 비중의 확대에 반대하는 입장 등을 전교조의 대표적인 '헛발질'로 꼽았다. 게다가 전교조 교사들의 '이중성'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여론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고 말했다. 겉으론 평등 교육을 외치면서, 자기 자식은 대치동에 방을 얻어 집중 과외를 시키는 행태를 질타한 것이다.

전직 교사 출신 유튜버의 전교조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
 
 전교조를 비판하는 한 인기 유튜버
▲  유튜브에서 전교조를 비판하는 한 인기강사
ⓒ 유튜브 캡처

관련사진보기

 
그의 날 선 비판은 곱씹어볼 대목이 분명 있다. 조합원 수를 늘려 그 집단적인 힘으로 의사를 관철하려는 관행과 극단적 역사관을 주입하려는 태도 등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그는 전교조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많은 젊은 교사들의 보편적인 인식이라고 잘라 말했다. 20~30대 교사들의 가입률이 다른 세대에 견줘 턱없이 낮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란다. 사실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20~30대 교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5% 남짓에 불과하다.

조만간 조합원 셋 중 한 명이 50대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해가 갈수록 젊은 교사의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 예순 즈음에 정년을 맞는 현실에서, 전교조가 극심한 고령화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교직에 첫발을 내딛는 신규 교사에 대한 조직사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그의 분석은 어디서 많이 듣던 익숙한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 전교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보수 언론에서 맞장구치며 쏟아냈던 내용이다. 결국 전교조는 그들의 바람대로 법외노조가 되어 풍찬노숙하는 처지가 됐다.

그는 요즘 젊은 교사들의 전교조에 대한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며, 어느 전직 교사의 유튜브 영상을 소개해줬다. 조회 수가 25만 회에 이를 만큼, 여론을 잘 대변해주는 영상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유튜버는 구독자 수가 수십 만에 달하는, 나름 진보적 성향의 역사 강사다.

안타깝게도, 전교조에 대한 해당 유튜버의 평가는 침소봉대, 견강부회, 아전인수로 점철되어 있다. 전직 교사로서 애정 어린 고언이라고 재차 강조했지만, 보수 언론의 공격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외면한 장사치의 해석일 뿐이다.

전교조가 외면받는 이유를 영상에선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선,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꼽았다. '밥그릇'이라는 저속한 표현이 귀에 거슬려서 그렇지, 그걸 나무랄 순 없다. 하나 분명한 건, 적어도 내 주변에서 밥그릇'만' 챙기려는 전교조 교사는 거의 없다.

오래된 '해명'이지만, 노조의 결성 이유는 조합원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 향상에 있다. 노조가 법적으로 보장된 마당에 교사 노조가 일반 노조와 달라야 한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는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30여 년 전 케케묵은 인식에서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교과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질타도 이어진다. 거칠게 말해서, 사교육 강사에 견줘 전교조 교사의 수업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교조 교사가 자녀의 담임이 되면 그해 학업은 망쳤다고 여기는 게 일반 학부모들의 보편적인 인식이라는 여론까지 덧붙였다.

물론, 여론이 그렇다는 게 유일한 근거다. 교과의 전문성과 수업 능력이라는 개념부터가 모호하다. 영상이 말하는 기준은 오로지 수능 점수다. 아이들의 수능 점수로 교사의 전문성과 수업 능력을 평가한다면, 대체 학교와 학원이 다를 바가 뭔가.

여기서 잠깐. 종일 수업 준비만 하는 사교육 강사와, 수업에 생활지도에 잡무까지 처리해야 하는 학교 교사를 수업의 효율만으로 단순 비교하는 건 애초 말이 안 된다. 나아가 전교조 교사를 학교 내 비전교조 교사와 견주지 않고, 매번 사교육 강사와 비교하는가도 의문이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의 증가도 교과의 전문성이 부족한 교사 탓으로 돌리고 있다. 보수 언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읊었던 거라 귀담아들을 건 없지만, 스스로 진보적 성향이라는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정녕 사교육비 증가의 원인이 맹목적인 입시 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구조가 아니라, 교사들의 수업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전교조가 일베보다 무섭다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을 통해 전교조 법외 노조화를 진행했다는 내용을 밝히고 서훈 국정원장의 사과와 법외노조 취소 등을 주장하고 있다.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020년 5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을 통해 전교조 법외 노조화를 진행했다는 내용을 밝히고 서훈 국정원장의 사과와 법외노조 취소 등을 주장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더욱 황당한 건, 전교조 교사들이 정치 활동에 신경 쓰느라 수업을 게을리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교사가 집회를 통해 정책의 찬반 의사를 표현하는 정치 행위를 두고 왈가왈부할 순 없다. 이는 정치 혐오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애먼 전교조에 덤터기를 씌우는 짓이다.

교사가 아이들 앞에서 시의적절한 정치적 쟁점을 소개하고 토론하는 것이 미래의 수업 모델이자 최고의 교육이라 믿는다. 수능에 출제될 리 만무하니 다 제쳐두고, 기출 문제만 반복해서 풀라는 것인가. 선거 연령이 점점 낮춰지는 시대, 학교에는 더 많은 '정치화'가 필요하다.

수업을 게을리한다는 주장의 근거 또한 수능 점수로 귀결된다. 곧, 수능 점수만 높다면 그 어떤 것도 문제 될 게 없다. 밥그릇만 챙긴다는 질타도, 교과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조롱도, 정치 활동에 빠져 수업에 소홀하다는 억측까지도 피할 수 있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식이다.

그동안 학교 교육이 파행을 거듭해온 이유가 그것인데, 되레 전교조 교사더러 수능에 '올인'하라며 다그치는 형국이다. 입시가 학력고사와 수능을 거치며 변화를 거듭해왔지만, 오로지 점수를 높이기 위해 교육과정을 편법으로 운영해온 학교의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오로지 점수에만 얽매인 결과 중심의 교육에 있었다고 한다면, 뭐라고 반박할 텐가.

결국, 영상의 맨 마지막은 예상했던 대로 정시의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잖아도 외면당해온 전교조가 정시 비중의 확대를 반대하면서 치명타를 맞았다는 논리다. 정시와 학종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섣부른 예단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학종을 통해 전교조 교사의 권위를 높이려 한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망언이다. 생활기록부를 '무기' 삼아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교사의 입맛대로 통제한다는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알다시피, 학종은 수능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솔직히 전교조가 지난 10년간 보수 정권과 언론으로부터 융단 폭격을 당하고도 이만큼 버티고 있는 게 용할 따름이다. 진보적 성향의 유튜버조차 저들의 논리에 포섭되어 전교조를 맵차게 헐뜯는 형국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전교조를 위해서'라는 말이 가증스러울 따름이다.

해당 유튜브의 '진면목'은 맨 마지막의 단 1초짜리의 외마디 말에 담겨있다. 유튜브가 닫히기 직전 내뱉는 "젠장!"이라는 감탄사. 전교조를 비판하는 영상을 찍는다고 하니 교사인 지인이 우려하면서 이런 말을 건네더란다. '전교조가 일베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고.

부디 걱정 마시라. 전교조가 일베 따위와 비교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긴 하지만, 이 정도의 영상에 조목조목 반박할지언정 감정적으로 발끈하지는 않는다. 보수 정권과 언론의 맹목적인 비난에 숱하게 시달려온 탓에, 웬만한 전교조 교사라면 그만한 면역력은 갖추고 있다.

한 가지 빼먹은 게 있다. 전교조에 젊은 교사가 상대적으로 적은 건, 신뢰를 잃어서라기보다 개인주의적 성향과 사회적 분위기 탓이 크다. 전교조의 신뢰 운운하기 전에 최근 전국 사범대, 교육대의 재학생과 임용시험 합격자의 현황을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들여다보길 권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회의 계획

강기석 | 2020-05-15 08:49:2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아무래도 제21대 국회가 무슨 계획이 있을 것만 같다. 국회 전체가 아니라 최소한 176석 거대 여당(+열린민주당)만이라도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윤석열 정치검찰단의 법을 빌린 저 난동에 가까운 야만적 행위들을 징치하기 위해 드디어 칼을 뽑아 들 것이라는 강력한 희망이 있다.

‘특검’!!

특검법에 따르면 특별검사의 수사 대상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국회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본회의에서 의결한 사건
2. 법무부장관이 이해관계 충돌이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이 경우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윤석열 검찰청장 가족의 범죄의혹은 우리나라 최고 권력기관 장의 공정성 여부에 결정적인 연관이 있을 뿐 아니라 이를 검찰이 수사한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이해관계 충돌이 있으므로 특검이 수사해야 할 필요성이 차고 넘친다.

그 뿐 아니다. 윤석열 청장 장모와 처의 범죄의혹에 윤 청장이 얼마나 연루돼 있는지, 검찰이 이를 덮고 축소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의혹이 있는바, 이 과정에서 검찰이 자행했을 수도 있는 직권남용 여부를 특검이 철저히 수사하는 것이야말로
무소불위 검찰권력이 빚은 유권무죄의 불공정 현실을 뒤집어엎는 첫발걸음이 될 것이다.

미통당의 온갖 방해공작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공수처 출범을 마냥 목 빼고 기다릴 수 없다. 오히려 특검 수사로 검찰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난다면 그것이 바로 공수처의 무난한 출발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생충」의 기우도 다 계획이 있는데 176석의 거대 여당(+열린민주당)이 제21대 국회를 눈앞에 두고 아무 계획도 없이 날짜만 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법무부의 일개 외청 사람들이 국민들을 발 아래 깔고 권력을 농단하고 있는데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들이 뒷짐지고 바라만 보고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겠지?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0&table=gs_kang&uid=382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중의소리 20년,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김동현 기자 abc@vop.co.kr
발행 2020-05-15 07:03:56
수정 2020-05-15 08:07:42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민중의소리가 창간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인터넷신문의 창간은 사이트 오픈을 의미합니다. 베타버전을 포함하면 사이트 오픈 시기가 정확하게 언제라고 규정하기 힘듭니다. 민중의소리는 5월 15일을 공식적인 사이트 오픈 시기로 규정하고 이후 이 날을 창간기념일로 삼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중의소리 창간 20주년 축하 영상을 보내왔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자세하게 민중의소리의 역사를 꼼꼼히 전해주었습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사건들을 비롯해 20년 세월동안 걸어왔던 민중의소리의 역사를 전해볼까 합니다.

“민중의소리가 관심을 기울여 준 덕분에 정의롭게 살아온 분들의 삶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한결같이 손 잡아 준 덕분에 우리 사회의 소외되었던 분들이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민중의소리의 창간정신이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민중의소리는 ‘민중이 울면 눈물을 흘리고, 민중이 웃으면 함께 기뻐할 줄 아는 언론’을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미군 장갑차에 숨진 심미선 신효순 두 중학생의 영정
미군 장갑차에 숨진 심미선 신효순 두 중학생의 영정ⓒ민중의소리

2000년 창간한 민중의소리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중학생 미선이 효순이 사건을 끈질기게 보도하며 그 해 제14회 민주언론상 대상과 다음해 제1회 언론인권상 본상을 수상했습니다.

미선이효순이 사건은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현재는 양주시)에서 운행중이던 주한미군 육군 장갑차가 길을 걸어가던 조양중학교 신효순 심미선 두 학생을 깔고 지나가 두 학생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는 2002년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었고 기존 언론에서도 몇 개 매체를 빼면 이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민중의소리는 이 사건이 발생한 시점부터 미8군의 태도, 미군 군사재판과정을 끈질기게 보도했습니다. 11월 미군 군사법정에서 열린 군사재판에서 장갑차를 운전했던 두 병사에게 무죄판결을 내립니다. 두 병사는 이후 미국으로 출국해 버립니다.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가 높아지고 미군이 재판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국 법정에서 재판을 할 수 없었던 한미SOFA를 개정하라는 요구가 높아집니다. 이 두 가지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촛불집회라는 새로운 시위형식이 등장합니다.

2002년 촛불집회
2002년 촛불집회ⓒ민중의소리

일련의 과정에서 민중의소리는 ‘신’ 형식의 현장속보, 인터넷 동영상, 인터넷 생중계 등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민중의소리는 ‘현장의 살아있는 뉴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03년 파병반대 운동,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 등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현장성이 강한 언론으로 성장합니다.

2005년 전용철 홍덕표 농민 사망사건 보도를 통해 민중의소리는 경찰진압의 폭력성을 고발합니다. 이 사건은 2005년 11월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대회에서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당시 경찰은 특수기동대를 동원해 방패로 농민들을 추적하며 폭행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진압합니다. 이 과정에서 농민 수백명이 다치고 수십명이 병원으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이 집으로 돌아갔다가 사망합니다. 경찰은 두 농민의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 경찰 진압에 있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습니다.

민중의소리는 당시 현장을 촬영한 약 4천장의 사진을 일일이 뒤져 전용철 농민이 쓰러져 다른 농민들에 의해 옮겨지는 장면을 찾아냅니다. 결국 경찰은 사실상 농민 사망의 책임을 인정하며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장을 직위해제 하고, 경찰청장은 사표를 냅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경찰청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대국민 사과문을 직접 발표합니다. 이 보도의 공로가 인정돼 2005년 제7회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받게 됩니다.

당시 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은 공권력 사용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는 연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찰 진압의 문제점을 시인하고 대국민 사과에 이르렀던 이 시기 청와대 민정수석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김철수 민중의소리 기자가 촬영한 농민대회 당시 전용철 농민의 모습. 이 사진으로 전용철 농민의 사안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 된다.
김철수 민중의소리 기자가 촬영한 농민대회 당시 전용철 농민의 모습. 이 사진으로 전용철 농민의 사안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 된다.ⓒ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이후에도 민중의소리의 현장성 강한 보도는 이어집니다. 2006년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였던 경기도 평택 대추리 일대에서 벌어진 주민들과 시민들의 투쟁, 홍콩에서 벌어진 세계적인 WTO 반대시위 현장, 2007년 한미FTA 반대 시위 등에서 민중의소리의 발빠른 보도가 빛을 발합니다.

2009년 쌍용차 파업취재는 민중의소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민중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민중의소리 정신이 제대로 드러나는 취재였습니다.

쌍용차 파업은 이명박 정부들어 극심해졌던 노동탄압의 대표적 사건입니다. 대규모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공장을 점거하고 일명 ‘옥쇄파업’에 들어간 노동자들에게 정부는 경찰력을 대거 투입, 공장을 에워싸고 고립시키는 초강경 대응을 합니다. 경찰헬기를 동원해 최루액을 뿌리고 야간에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리로 방송을 하며 압박합니다. 밖에서는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자는 물론 의료진마저 진입이 허용되지 않았던 상황이 반복됩니다.

민중의소리는 2명의 기자를 공장으로 진입시켜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특히 진압양상과 관련된 경찰의 주장이 ‘허위’임을 동영상과 사진 등을 통해 밝혀냅니다. 두 기자는 경찰이 공장으로 진입해 진압하기까지 약 2주간 기자들은 노동자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취재하고 보도합니다. 두 기자는 그 해 제11회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을 수상합니다.

서세진 감독은 두 기자가 촬영한 수천시간의 영상을 기반으로 쌍용차 파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저 달이 차기 전에’를 내놓았고 이 영화로 2009년 전주국제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합니다.

 

노동자와 농민, 시민의 곁을 지킨다는 민중의소리 보도정신은 최근까지도 이어집니다. 2013년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연대의 발언이 이어졌던 철도민영화 반대 파업을 비롯해 문재인 대통령도 언급했던 2016년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보도가 대표적입니다.

백남기 농민 사건은 2016년 농민들이 주축이 됐던 2차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백남기 농민이 맞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민중의소리는 당시 현장에서 처음으로 이 상황을 속보로 전했고, 이후 사망원인이 논란이 벌어지자 현장의 상황을 담은 영상을 공개해 물대포에 의해 사망했음을 밝힙니다. 또한 수사와 재판과정을 끈질기게 보도해 경찰의 ‘상황 속보’를 입수 공개하며 경찰의 지휘라인의 책임을 밝혀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터졌던 당시 민중의소리는 취재역량의 절반가량을 진도와 안산 현장에 투입합니다.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무게를 생각하면 당시의 결정은 민중의소리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민중의소리는 세월호 참사 해결을 위한 보도에 집중합니다. 2014년에만 관련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4편 내놓았습니다.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광화문에서 단식하던 8월, 모든 기자들이 현장을 방문해 간담회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세월호참사 인터랙티브 콘텐츠
세월호참사 인터랙티브 콘텐츠ⓒ민중의소리

2014.5.8 추모콘텐츠:세월호, 그리고 너희들을 잊지 않을게
2014.5.25 추모시 모음:잊지 않을게
2014.7.3 발굴보도:그들이 만든 참사, 녹취파일이 밝혀준 세월호 참사의 진실
2014.7.24 사진모음:잊혀지지 않을 항구 팽목항 (100일간의 기록)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중의소리는 소셜미디어 적응과 새로운 콘텐츠 스타일에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일찌감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한 콘텐츠 유통에 뛰어든 민중의소리는 40만에 달하는 페이스북팬, 20만에 이르는 트위터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한국의 언론매체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합니다.

2012년 12월 뉴욕타임스가 내놓은 ‘스노우폴’이라는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전세계 언론인들을 흥분 시킨 뒤로 한국 언론들도 ‘새로운 콘텐츠 스타일’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콘텐츠 혁신 붐이 일어납니다. 민중의소리 역시 콘텐츠 혁신에 뛰어들었고, 2013년 ‘내란’이라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시작으로 카드뉴스, 타임라인뉴스, 대화형뉴스 등을 선보였습니다.

2015년 이후 유튜브의 급부상과 함께 민중의소리는 유튜브 집중 전략을 선택합니다. ‘모든 기자가 촬영한다’는 슬로건으로 현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장면을 영상전문 기자가 아닌, 취재기자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편집 전문 기자가 편집해 내보내는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생생하고 빠른 영상 스타일이 구축되면서 민중의소리 유튜브 구독자는 순식간에 늘어났고 현재는 40만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2016년 촛불에서 제대로 그 힘을 발휘합니다. 광화문촛불이 대규모로 시작되던 시점, 현장취재기자들은 물론 편집기자, 아나운서들까지 스마트폰을 들고 현장으로 갑니다. 하루에 40여개의 영상을 내놓았고 그 영상들의 조회수 합은 2천만을 넘었습니다.

이후 민중의소리는 ‘서브 채널 전략’을 선택합니다. 연예전문 채널 Vstar를 시작으로 정치시사 해설 채널 ‘곰곰이’, 방송장비 해설 채널 ‘현PD’, 라이브방송 ‘정혜림의 발칙한뉴스’ 등을 선보입니다. 특히 Vstar는 현재 22만, 곰곰이는 12만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민중의소리의 힘은 독자로부터 나옵니다. 민중의소리는 창간 이후 지금까지 전체 수익의 50% 이상을 후원자들의 후원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명박근혜 10년의 세월동안 힘겨울 때에도 독자후원이라는 든든한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이 힘이 없다면 민중의소리는 더 이상 민중의소리다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제 20년을 왔습니다. 앞으로도 민중이 눈물을 흘리는 현장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민중이 웃는 곳에서 함께 기뻐하는 민중의 든든한 벗으로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독자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김동현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 대통령, “5.18민주화운동 헌법에 담겨야”

광주MBC 「5·18 40주년 특별 프로그램」 출연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20.05.14  21:11:32
페이스북 트위터
   
▲ 지난해 5월 광주 5.18묘역을 참배하는 문 대통령 부부. [자료사진-통일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헌법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이 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14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17일부터 방영되는 광주MBC 「5.18 40주년 특별기획」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 에 출연해 “다시 개헌이 논의된다면 반드시 그 취지가 되살아나야 한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1987년 6월항쟁 직후 개정된 현재의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시작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4.19 이후 장기간의 군사독재가 있었던 만큼 (4.19만으로는)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이 헌법에 담겨야 우리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고 국민적 통합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18년 3월 문 대통령이 검토했던 개헌안의 전문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4.19혁명으로부터 시작되는 민주이념의 계보에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까지 넣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40년 전 경희대 복학생 신분으로 학생운동을 이끌다 전두환 신군부에 예비검속되어 구속 상태로 5.18 소식을 처음 들었다고 회고했다. 수감된 상태에서 경찰에게서 들었던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과 시민군의 무장 저항 사실이 정작 언론을 통해서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고 왜곡까지 됐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2017년 5월 취임 직후 참석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유족 김소형 씨를 안아줬을 때의 소회 등도 토로했다.

청와대는 “이번 출연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그 역사와 남은 과제를 되짚어 봄으로써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드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진행된 인터뷰 영상은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약 50분)과 ‘내 인생의 오일팔(문재인 대통령편, 약 8분)’로 제작되어 17일부터 광주MBC를 통해 방영된다. 청와대 홈페이지와 유튜브 계정을 통해서도 제공될 예정이다.

한편,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은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남동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열린다. 매년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치러지던 기념식 장소가 처음으로 바뀐 것이다. 옛 전남도청은 1980년 5월 항쟁의 최후 격전지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전교조, “국정원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공작은 민주주의 테러”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5/15 08:32
  • 수정일
    2020/05/15 08: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백남주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0/05/15 [07:11]
  •  
  •  
  •  
  •  
  •  
  •  
 

▲ 전교조가 국정원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공작을 규탄했다. (사진 : 교육희망)  © 편집국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이명박 정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진 전교조 법외노조화 공작을 일삼은 국정원을 규탄하고 나섰다.

 

전교조는 14일 오후 2시 국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의 민주주의 테러’ 행태를 규탄하며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를 촉구했다.

 

국정원 내부 감찰결과 보고서 검토 결과 이명박 정권 국정원은 청와대에 해직자 노조 가입을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 이유로 불법 단체화 적극 검토해야한다며 전교조의 조직 불법 단체화 회피전술 조기 무력화라는 문건을 보고했다.

 

국정원은 심리전단을 통해 8개 이상의 보수단체와 접촉한 뒤 전교조 규탄 시위피켓팅 등을 진행하도록 지원하였고이를 위해 최소 19,790만 원의 예산을 유용했다.

 

2011년 5월 한 보수단체가 전교조 교사들의 탈퇴를 유도하기 위해 6만 조합원에게 탈퇴 권유 서한을 발송했는데이 역시 국정원이 보수단체와 사전에 서한 발송계획을 수립하고 서한 발송에 소요된 3,000만 원의 비용 및 기타 언론광고 비용을 지원한 것이었다.

 

국정원은 심리전단 온라인팀을 동원해 전교조를 비난하는 거짓 영상을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전교조는 국정원의 행태에 대해 헌정질서를 유린한 무자비한 국가폭력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라고 규정하며 지난 30년간 우리 사회 민주화와 교육개혁에 힘써온 살아 숨 쉬는 노동조합을 하루아침에 파괴시켜야 할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이를 위해 조직적인 계획을 수립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교조는 국정원은 스스로의 직무를 국가 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보안 및 범죄 수사에 대한 사무를 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며 “6만의 교사로 구성된 교원 노동조합이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범죄조직인가테러단체인가국정원이 지키는 국가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아닌 이명박·박근혜의 나라였던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교조는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현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법외노조 상태라며 국가폭력의 최대 피해자전교조를 제자리로 되돌리지 않고서는 적폐 청산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전교조는 오는 5월 20일 대법 공개변론을 거쳐 이후 대법 판결을 통해 전교조의 법적 지위 여부가 판가름 난다며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국가폭력이 명백한 상황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주장했다.

 

------------------------------------------------------------------

[기자회견문]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

국정원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공작과 국가폭력을 규탄한다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10년 전 이명박 정권 국가정보원의 치밀한 기획으로 시작되어 박근혜 정권 청와대가 마무리한 명백한 국가폭력임이 다시 한번 낱낱이 밝혀졌다국정원은 헌법에 보장된 노조할 권리를 빼앗기 위해 국민들의 혈세로 보수단체를 조직적으로 후원하고전교조 비난 여론을 형성하며 조직적인 파괴 공작에 나섰다국가 권력이 총동원되어 치밀한 계획하에 이루어진 파괴 공작의 실체를 보며 분노와 경악을 금치 못한다이는 헌정질서를 유린한 무자비한 국가폭력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전교조 법외노조화 프로젝트는 해직자의 노조 가입을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을 빌미로 기획되었다이명박 정권 국정원은 청와대에 해직자 노조 가입을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 이유로 불법 단체화 적극 검토해야한다, ‘전교조의 조직 불법 단체화 회피전술 조기 무력화라는 문건을 보고했다지난 30년간 우리 사회 민주화와 교육개혁에 힘써온 살아 숨 쉬는 노동조합을 하루 아침에 파괴시켜야 할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이를 위해 조직적인 계획을 수립한 것이다국정원은 스스로의 직무를 국가 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보안 및 범죄 수사에 대한 사무를 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6만의 교사로 구성된 교원 노동조합이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범죄조직인가테러단체인가국정원이 지키는 국가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아닌 이명박·박근혜의 나라였던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마치 과거 유신과 신군부 안기부의 망령이 되살아난 듯한 행태다이명박 정권의 국정원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테러집단이다.

 

전교조는 이러한 국가폭력에 당당하게 맞서 해고자를 제외하라는 부당한 규약 시정 명령을 거부했고결국 2013년 10월 24일 고용노동부로부터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다이후 34명의 교사 해고단체교섭권 상실로 인한 노동권 침해 등 막대한 피해 속에서도 자주적인 노조로서 참교육·참세상을 향한 노력을 계속해왔다그 이후 박근혜·양승태의 국정농단·사법농단이 드러나며 최대 피해자인 전교조의 법적 지위도 바로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다그러나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현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법외노조 상태다문재인 정부는 더이상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국가폭력의 최대 피해자전교조를 제자리로 되돌리지 않고서는 적폐 청산은 어불성설이다.

 

오는 5월 20일 대법 공개변론을 거쳐 이후 대법 판결을 통해 전교조의 법적 지위 여부가 판가름 난다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국가폭력이 명백한 상황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는 당연한 귀결이다검찰은 헌법상 보장된 노조할 권리가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국가 기관에 의해 유린당한 사건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또한 전교조의 피해 회복을 위한 신속히 조치와 피해 배상이 이어져야 한다전교조는 법적 지위를 하루 속히 회복하고 모든 민주 진영과 함께 온전한 노조할 권리 확보를 위해 투쟁할 것이다.

 

우리의 주장-

1. 전교조 법외노조화 공작국정원을 규탄한다.

1. 조직적인 국가폭력의 산물전교조 법외노조 취소하라.

1. 사법부는 전교조의 법적 지위 회복시켜 노조할 권리 보장하라.

1.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진상 규명하라.

 

2020년 5월 14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변기 위에 전자레인지, 경비노동자에겐 화장실이 주방이었다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
발행 2020-05-13 18:30:33
수정 2020-05-13 18:30:33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단지 내 주차 문제를 시작으로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에게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행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벌어졌다. 사건은 지난달 21일 오전 한 입주민이 아파트 주차장에 이중 주차된 자신의 차량을 미는 경비원에게 폭언을 퍼부었고 며칠 뒤 경비초소로 끌고 가 폭행을 가했다. 결국 모멸감에 시달러딘 경비원은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사진은 12일 해당 아파트의 경비실이 비좁고 열악한 환경을 보이는 내부 모습. 2020.5.12
단지 내 주차 문제를 시작으로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에게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행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벌어졌다. 사건은 지난달 21일 오전 한 입주민이 아파트 주차장에 이중 주차된 자신의 차량을 미는 경비원에게 폭언을 퍼부었고 며칠 뒤 경비초소로 끌고 가 폭행을 가했다. 결국 모멸감에 시달러딘 경비원은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사진은 12일 해당 아파트의 경비실이 비좁고 열악한 환경을 보이는 내부 모습. 2020.5.12ⓒ뉴스1
 

변기,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여벌 옷.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한데 있었다. 경비원 최희석 씨에게 이곳은 화장실이자, 주방이고, 탈의실이었다.

‘입주민 갑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최 씨의 휴게시설 사진이 공개되자 많은 이들이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격일로 근무했던 최 씨는 화장실에서 식사를 준비했고, 초소에서 쪽잠을 청했다.

비단 최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비노동자 대다수가 열악한 휴게공간에서 24시간 근무를 버텨내고 있다. 경비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비원들의 옷과 모자가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내부에 걸려 있다. 지난달 21일과 27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주차 문제로 인해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경비원 최모씨는 지난 10일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20.05.11.
경비원들의 옷과 모자가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내부에 걸려 있다. 지난달 21일과 27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주차 문제로 인해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경비원 최모씨는 지난 10일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20.05.11.ⓒ뉴시스

‘고(故) 최희석 경비노동자 추모모임’에 따르면, 최 씨는 격일 2교대로 새벽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일했다. 수면시설이 별도로 마련되지 않은 탓에, 밤이 되면 초소에서 앉아있던 의자를 옆으로 밀고 책상 밑까지 간이침대를 펼쳐야 했다.

원룸의 화장실처럼 초소 안쪽 마련된 작은 공간엔 변기와 함께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등 각종 물품이 놓여있었다.

추모모임 관계자는 “변기 바로 위에서 음식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아이들이 충격을 받았다”라며 “사람이 먹고 자고 할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감옥 독방이 떠올랐다.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크기 같았다”라고 말했다.

키가 큰 편이었던 최 씨에게 비좁은 간이침대는 많이 불편했을 것이라며 그는 “젊은이도 병들 수밖에 없는 근무형태와 환경에서 고령 노동자가 계속 생활하면 건강을 해칠 수밖에 없겠더라”라고 말했다.

경비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시설에 문제의식을 느낀 주민들이 최근 방치된 옛 경비실을 휴게공간으로 꾸미기 위해 정리 중이었는데, 사건이 발생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이 비어 있다. 지난달 21일과 27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주차 문제로 인해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경비원 최모씨는 지난 10일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20.05.11.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이 비어 있다. 지난달 21일과 27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주차 문제로 인해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경비원 최모씨는 지난 10일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20.05.11.ⓒ뉴시스

경비노동자들에게 휴게시설은 필수다. ‘24시간 맞교대’라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서울시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이하 보고서)는 “경비원 근무행태는 24시간 격일제라는 전근대적 교대제와 함께 24시간 중 10시간에 육박하는 휴게 시간으로 인해 매우 기형적인 근무행태를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이유는 경비 직종이 ‘감시·단속적 업무’로 분리돼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따라 법에서 규정하는 노동시간, 휴게와 휴일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감수할 불이익이 큰 만큼 별도의 수면시설 또는 휴게시설이 마련됐는지, 다른 업무를 반복해 수행하거나 겸직하지 않는지 등 감시 업무 승인 예외 사항을 근로감독관 면밀하게 조사해야 하지만, 현실은 경비원이라면 바로 승인이 나고 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휴게 시간은 과도하게 늘어났지만, 제대로 된 휴게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사실상 24시간 근무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노동자에게 수면시설 등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4조(도급에 따른 산업재해 예방조치)는 도급인에게 관계수급 노동자에게 수면시설, 위생시설 등을 설치해야 할 의무를 부여했다. 이를 위반할 시 벌금 500만 원에 처한다.

12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주민의 갑질로 자살한 경비원 최모씨가 근무하는 경비실 앞에서 추모의 글들이 붙여있다.  2020.05.12
12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주민의 갑질로 자살한 경비원 최모씨가 근무하는 경비실 앞에서 추모의 글들이 붙여있다. 2020.05.12ⓒ김철수 기자

문제는 수면시설의 크기, 적정 온도 등 관련 규정이 없어 대다수 경비노동자가 비좁은 초소을 휴게시설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부가 최근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권고 사항일 뿐이다.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 공동사업단을 운영 중인 안성식 노원구노동복지센터장은 “오래된 아파트일 경우 초소가 좁다. 경비노동자 열에 아홉은 누울 공간이 나오지 않아 의자에 기대서 자거나 책상에 엎드려 자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비노동자 10명 중 4명이 초소를 휴게공간과 겸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경비초소와 별도로 휴게공간이 있는 경우 60%가 지하에 있었다. 안 센터장은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 지하에 독립된 공간이 있지만, (1급 발암물질인) 석면으로 만들어져 열악한 상황인 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꼼수’ 휴게시설도 늘고 있다. 초소에서 멀리 떨어진 노인정 등을 수면시설로 정하는 방식이다. 안 센터장은 “초소와 먼 수면시설엔 노동자들이 불안해서 못 간다. 화재 벨이 울릴 경우 초소에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초소를 비웠다고 민원이 들어올 것도 걱정한다”라고 말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부터 초소를 휴게시설로 사용하는 데 동의를 얻는 사례도 있다. 경비노동자에겐 사실상 입주민 전체가 고용주인 셈이어서, 휴게 시간에도 주민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대부분 경비노동자는 용역·위탁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형태라서 이 같은 상황들을 감내하는 실정이다.

12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주민의 갑질로 자살한 경비원 최모씨가 근무하는 경비실 앞에서 추모하는 긴급기자회견을 제지받아 단지 밖에서 가해자 처벌요구 재발방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5.12
12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주민의 갑질로 자살한 경비원 최모씨가 근무하는 경비실 앞에서 추모하는 긴급기자회견을 제지받아 단지 밖에서 가해자 처벌요구 재발방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5.12ⓒ김철수 기자

올해부터 경비원, 미화원 등을 위한 휴게공간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법이 시행됐다. 50가구 이상 공동주택을 건설할 때 관리 노동자를 위한 휴게시설을 만들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기존의 공동주택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

안 센터장은 “휴게실에 대해 노동자 한 명당 3평 이상의 크기, 적정 온도 유지 등을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해야 한다. 또 휴게 시간에 발생한 문제에 대해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부 규칙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 개정만 기다릴게 아니라 당장 휴게 시간에는 초소에 커튼을 치고 휴게 푯말을 붙이게 하는 등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경욱이 선관위에 딱 걸린 ‘결정적인 증거’

투표용지 탈취는 중대한 범죄 행위
 
임병도 | 2020-05-13 09:04:0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5월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주도하는 ‘4·15 총선 의혹 진상규명과 국민주권회복대회’가 열렸습니다.

‘세상을 발칵 뒤집을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던 민 의원은 이 자리에서 기표가 되지 않은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공개했습니다. 민 의원은 투표용지를 내밀며 ‘투표 조작의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선관위는 민경욱 의원이 제시한 투표용지가 구리시 수택2동 제2투표구에서 분실된 잔여투표용지라고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는 민경욱 의원이 불러준 투표용지 일련번호가 분실된 잔여투표용지와 일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탈취된 투표용지, 누가 훔쳤나?

구리시선관위에 따르면 개표소에서 수택2동 제2투표소의 투표자수와 투표용지 교부수가 맞지 않아 잔여투표용지가 남았다고 합니다.

당시 구리시선관위는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잔여투표용지 등 선거관계서류가 들어 있는 선거가방을 구리시 체육관 개표소 내 체력단련실에 임시 보관했습니다.

보관됐던 잔여투표용지가 민경욱 의원에 의해 공개되면서 구리시선관위는 성명불상자가 잔여투표용지 일부를 탈취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습니다.

민경욱 의원이 공개한 투표용지가 분실된 잔여투표용지가 맞다면, 누군가 훔쳐서 민 의원에게 건넨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훔쳤는지 수사를 통해 밝혀 내야 할 것입니다.

투표용지 탈취는 중대한 범죄 행위

제244조(선거사무관리관계자나 시설등에 대한 폭행ㆍ교란죄)
①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ㆍ직원, 공정선거지원단원ㆍ사이버공정선거지원단원, 투표사무원ㆍ사전투표사무원ㆍ개표사무원, 참관인 기타 선거사무에 종사하는 자를 폭행ㆍ협박ㆍ유인 또는 불법으로 체포ㆍ감금하거나,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여 투표소ㆍ개표소 또는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소(재외선거사무를 수행하는 공관과 그 분관 및 출장소의 사무소를 포함한다. 이하 제245조제1항에서 같다)를 소요ㆍ교란하거나, 투표용지ㆍ투표지ㆍ투표보조용구ㆍ전산조직등 선거관리 및 단속사무와 관련한 시설ㆍ설비ㆍ장비ㆍ서류ㆍ인장 또는 선거인명부(거소ㆍ선상투표신고인명부를 포함한다)를 은닉ㆍ손괴ㆍ훼손 또는 탈취한 자는 1년이상 10년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이상 3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공직선거법 제244조에 따르면 투표용지를 은닉 또는 탈취한 자는 1년 이상 10년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중대한 범죄 행위입니다.

아울러 형법 제141조(공용서류 등의 무효, 공용물의 파괴)제1항과 제329조(절도)에 해당됩니다. 비록 민경욱 의원이 투표용지 탈취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형법 제362조 ‘장물을 취득, 양도, 운반 또는 보관한 자’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중앙선관위는 투표용지 탈취 등에 관한 사안을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습니다.

민경욱, 내가 투표용지 일련번호를 불러줬다

민경욱 의원은 중앙선관위가 12일 밝힌 입장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관위가 일련번호를 추적했다고요? 추적은 무슨 추적? 내가 친절하게 일련번호를 불러줬다”고 밝혔습니다.

민 의원은 “투표지를 사전투표지라고 했다고요?”라며 사전투표지라고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발언 내용을 보면 민 의원은 ‘사전투표에 사전투표용지들이 담겨져 있는 사전투표용지 투표함에서 발견된’이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비록 ‘사전투표지’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전투표용지’를 강조하고 ‘사전투표용지 투표함’에서 발견됐다는 발언을 보면 선관위가 밝힌 탈취된 선거가방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민경욱 의원은 “중앙선관위가 저에 대한 고발을 검토하겠다는데 저를 경찰이나 검찰이 조사한다면 부정선거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다는 말이겠다. 땡큐! 자유민주주의 수호 제단에 기꺼이 제 피를 뿌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부 보수세력과 극우유튜버 채널, 민경욱 의원 등이 제시한 주장들이 415총선이 부정선거라는 증거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수사를 통해 투표용지 탈취와 장물 입수 경위는 명백하게 드러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03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