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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부 소득주도성장, 노동과 관계 회복 필요하다

사회적 대화, 노동 빼고 가능하지 않아....최저임금·노동시간 단축 앞두고 위기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8.05.30 09:02

문재인 대통령이 말을 가볍게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소득분배 악화는 우리에게 매우 아픈 지점”이란 말에는 쉽게 다루기 어려운 무게감이 있다. 이 말에 담긴 문재인 대통령의 진심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진심과는 별개로 경제 정책과 관련한 바람직하지 않은 신호가 계속해서 감지되는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 경제정책의 성과를 돌아보는 회의를 긴급하게 소집한 것은 이 ‘바람직하지 않은 신호’ 때문이다.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 가계소득이 1년 전보다 8.0% 감소했다는 등의 통계청 조사결과가 나오자 보수언론 등은 소득주도성장에 그야말로 집중포화를 쏟아 붓고 있는 상황이다. 애초 청와대는 이 회의를 ‘긴급경제점검회의’로 명명했지만 당일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로 바뀌었다. 아마 ‘긴급경제점검’이란 단어의 어감이 위기론을 기정사실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 아닌가 한다. 그 정도로 최근 보수언론의 공세가 심상찮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관계 부처 장관들과 청와대 참모들은 2시간 30분 동안 난상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장하성 정책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은 소득분배 악화의 원인을 노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에서 찾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지만 김동연 부총리 등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원인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청와대와 김동연 부총리가 최근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전에도 드러난 바 있다. 청와대가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 주장에 근거 없다는 설명을 하는 와중에도 김동연 부총리가 국회에서 ‘직관과 경험’을 근거로 들며 최저임금 인상에 신중할 것을 사실상 주장한 것이다.

이런 구도는 무엇을 의미할까? 청와대와 관료 사이의 이견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집권 2년차 증상으로 볼 수도 있다. 집권 초기에는 주요 공약을 실행하는 등 정권에 우호적인 정치 환경을 조성하는데 관료들이 전폭적으로 협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관료적 관성으로 현안을 대하는 시점이 오기 마련이다. 이 시기 대통령은 자신이 제시한 비전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나지 않아 초조한 상태이다. 이런 마당에 관료가 제시하는 현상유지에 가까운 해법을 받아들게 되면 개혁의 동력은 사라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정부를 경험해봤으므로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회의의 결론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3대 경제정책기조를 유지하되 하위 20% 소득분배 악화 해소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론에 계속 무게를 싣기로 했다면 그것은 잘한 결정이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론의 동력이 유실되고 있는 상황 자체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여민1관 소회의실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관련 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장 7월이면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대해 29일 “OECD 국가 연평균 노동시간보다 300시간 이상 많이 일해 온 우리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과로에서 벗어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저녁 있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우리 사회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론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그다지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오히려 사용자 입장에서는 생산성 감소를, 노동자 입장에서는 소득 감소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보수언론은 이 대목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며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오히려 노동자가 투잡을 선택해 경제적 혼란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지금으로서는 일단 과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 주체들에 끼칠 심리적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런 심리 상태가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소득이 늘거나 분배가 개선되는 등의 긍정적 신호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봤듯이 그런 신호는 없다. 아마도 보수언론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자마자 체제 붕괴가 임박한 듯 호들갑을 떨기 시작할 것이다. 이때 이미 취약해진 관료라는 지지대가 정권을 지탱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런 난국에 최저임금법 개정까지 더해보면 상황은 더 암울해진다. 고용노동부는 29일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연소득 2천5백만원 이하 노동자 중 최대 21만6천명의 기대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회 환노위가 연소득 2천5백만원 이하 노동자는 피해를 입지 않는 선에서 합의했다고 밝히고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나 김태년 정책위의장 등이 같은 의미에서 “전혀 피해가 없다”고 장담한 것과는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물론 21만6천명이라는 숫자는 연봉 2천5백만원 이하 노동자 중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받는 324만명의 6.7%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고용노동부는 이 모델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 가지 맹점이 있다. 첫째는 이마저도 추정치에 불과하지 정확한 현실을 반영한 수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는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에서 지급 총액이 같은 경우 상여금을 월별로 쪼개는 취업규칙 변경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했으므로 이 숫자는 앞으로 늘어날 거라는 점이다. 셋째는 노동자들의 개별적 삶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21만6천명이라는 숫자조차 결코 적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의 계산법을 고안해 낸 주체 중 하나인 고용노동부 계산으로도 21만6천명이 불이익을 보는 이상 민주노총 등 노동운동단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전형적인 귀족노조론을 제기하며 민주노총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말대로라면 각 사업장의 강성노조들이 임금협상에서 알아서 다 손해를 만회할 것이므로 민주노총이 이렇게 나설 이유가 없다.


소득주도성장의 전제 중 하나는 사회적 대화의 제도화이다. 정부가 갖고 있는 수단으로 개별 노동자들의 소득을 증대시키더라도 소비와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에 이르기 위해서는 각 경제주체별 합의와 양보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권력이 자본에 기울어져 있는 상태에서 사회적 대화는 노동조합에 힘을 실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최저임금법 개정이 노동조합 쪽에 주는 신호는 그 반대이다.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법 개정은 앞으로 임금체계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크고 이러한 사실 자체가 노동자들을 개별화 분절화하고 고립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이다. 최저임금법 개정을 임금구조 단순화의 계기로 삼자는 의견도 있지만 오히려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동일산업 내 임금구조의 표준화는 더 어려워 질 것이다. 당장 노동자들끼리 합의하기가 어렵다. 성과연봉제 도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상기해보라.

양대노총이 모든 노동자를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을 빼고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도 현실이다. 최저임금 개정은 그 가능성을 협소하게 만들었다. 모든 상황이 좋을 때에는 특히 민주노총의 반발 정도는 무시해도 좋은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앞서 봤듯이 전반적인 상황이 그렇지 않다. 이런 난국 속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신실하게 추진하려면 기성의 관료적 해법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노동계와의 관계 복원을 시도해야 한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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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비리 '내부고발자' 대법관 후보 되자 날개 꺾은 대법관들

[단독]법조비리 '내부고발자' 대법관 후보 되자 날개 꺾은 대법관들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입력 : 2018.05.30 06:00:00 수정 : 2018.05.30 08:05:01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부에 남긴 ‘블랙리스트’파동은 단지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법조계 내부 ‘침묵의 카르텔’에 맞서 내부고발자의 길을 걸어온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신평 교수(사진)가 대법관 후보로 추천되자마자 날개를 접을 위기에 놓이게 됐다. 2014년 경북대 총장 선출 과정에서 불거진 명예훼손 상고사건과 관련하여 대법원이 신 교수에 대해 지난 15일 유죄확정 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주심을 포함해 유죄판결에 합의한 4명의 대법관은 모두 양 전 대법원장이 임명한 인물들이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신 교수는 오는 8월 3명의 대법관 임명을 위한 후보추천을 앞두고 2년 가까이 끌던 명예훼손 사건의 선고기일을 잡자 ‘이제 드디어 대법원이 족쇄를 풀어주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선고기일이 잡힌 후 일주일쯤 지나 대법원 인사담당관으로부터 ‘대법관 후보로 추천됐으니 공직후보검증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서류를 제출하자마자 그에게 돌아온 건 유죄 확정 판결문이었다. 대법관 후보로서 공정한 검증과 선택을 받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장애물’을 치워준게 아니라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신 교수는 기대와 다른 선고 결과가 선고되자 ‘죄송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공익제보자나 내부고발자에 유독 가혹한 입증책임을 전가하는 검찰과 법원에 맞서 명예훼손 법제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과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모든 재산을 잃고 건강마저 해쳐 버린 채 피맺힌 절규를 하는 사법 피해자들과 내부 고발행위로 온갖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작은 희망을 주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신 교수가 내부고발자와 사법 피해자에 동병상련의 아픔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법조 마피아’의 두꺼운 벽 앞에 좌절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93년 판사시절 ‘판사실 돈 봉투 수수’관행을 주간지에 폭로했다가 그해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법복을 벗은 후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도 내부조직을 향한 ‘쓴 소리’는 중단되지 않았다. 2016년 ‘로스쿨교수를 위한 로스쿨’이라는 책을 통해 로스쿨 부정입학 의혹을 폭로함으로써 전국 법학교수들의 ‘공적’이 됐다. 판사들과 로스쿨 교수들의 치부를 폭로한 그의 글은 법조계에서는 ‘신성모독’이나 다름없었다. 

현재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해서도 그는 “사법부의 과도한 독립은 구성원들에게 잘못된 특혜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사법부의 독립만이 아닌 책임도 함께 강조돼야 한다”며 날카로운 비판을 해왔다.

신평 교수는 2010년 시민단체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제정한 대한법률대상을 수상했다. 신교수의 대학시절 은사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오른쪽)가 시상하고 있다.

신평 교수는 2010년 시민단체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제정한 대한법률대상을 수상했다. 신교수의 대학시절 은사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오른쪽)가 시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조계는 그를 ‘돈키호테’나 ‘이단아’같은 존재로 바라보지만 시민단체들로부터는 ‘소금’같은 존재로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지난4일 대법원이 후보 추천을 받자마자 바로 첫날 그는 대법관 후보로 추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대법원이 지난14일 1차로 41명의 대법관 후보 추천을 마감한 바로 다음날 명예훼손죄로 벌금500만원의 유죄확정 판결을 선고받았다. ‘오비이락’일수 있지만 신 교수 입장에서는 사법부 엘리트 법관들의 자신에 대한 두터운 불신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계기였다. 1993년 판사 재임용 탈락 후 20년 넘게 따라다닌 내부고발자라는 ‘꼬리표’에 또 하나의 ‘주홍글씨’가 새겨진 것이다. 

법복을 벗은 후 그의 대학교수로서 ‘역경’은 2014년 8월 학교 게시판에 올린 <총장은 조용히 물러나시오>라는 글에서 시작됐다. 임기만료를 불과 열흘 앞둔 총장이 후임총장 선출에 간여할 목적으로 단행한 보직 인사의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 글의 주요 내용이었지만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인사의 부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신임 보직교수중 한명의 성매매비리 전력을 한줄 언급한 것이 화근이었다. 총장을 대신해서 성매매 교수로 지목된 ㄱ교수가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다. 

신 교수는 검찰조사에서 “ㄱ교수가 중국 출장중 룸살롱에서 함께 술을 마신 후 나를 찾아와 ‘호텔방에 술집 아가씨가 와 있다’며 위엔화를 빌려갔으므로 성매매를 했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다른 교수들이 성매매 사실을 보고 들은 바가 없다’는 이유로 신 교수의 주장을 허위사실로 판단했다. 또 총장의 부당한 인사에 대한 비판은 핑계일 뿐 총장 비판을 빌미로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ㄱ교수를 비방할 목적을 가지고 글을 작성한 것으로 몰고갔다. 신 교수는 검사에게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신 교수는 변호사 시험 출제장에 가 있는 동안 명예훼손죄로 기소됐다. 

신 교수는 “변호사 시험이 끝난 후 전화를 했더니 수사검사가 ‘나 혼자 결정한 것이 아니다’며 말을 얼버무렸다”며“그때부터 ‘배후에 누군가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담당 검사는 당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주임검사 독단적으로 법리검토를 한 것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 교수가 언론법 전문가로서 수사과정에서 허위사실에 대한 대한 검사의 입증책임을 거론했기 때문에 치밀한 법리검토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임검사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신 교수에 대한 기소는 정치적 외압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로 최근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수첩에서 당시 청와대가 경북대 총장 인선에 간여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또 신 교수가 학교 게시판에서 비판의 날을 겨눴던 당시 경북대 총장은 안 전 수석의 고교선배였다. 

신평 교수는 2014년 경북대 게시판에 ‘총장은 조용히 물러나시오’라는 글을 올린 후 명예훼손죄로 기소됐다. 당시 경북대 총장은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의 고교선배였다. 최근 검찰조사에서 당시 안 수석이 경북대 총장 인선에 간여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신평 교수는 2014년 경북대 게시판에 ‘총장은 조용히 물러나시오’라는 글을 올린 후 명예훼손죄로 기소됐다. 당시 경북대 총장은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의 고교선배였다. 최근 검찰조사에서 당시 안 수석이 경북대 총장 인선에 간여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신 교수로서는 빠져나오기 힘든 ‘올가미’에 갇힌 기분이었지만 2015년 8월 1심은 “비방의 목적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동료 교수들이 법정에 나와 “당시 누구라도 목소리를 내고 싶었고 학교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속이 후련했다”며 신 교수가 올린 글의 공익성에 적극적인 공감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심 들어 분위기가 반전됐다. 1심이 3차례 증인신문을 열어 허위사실 여부와 비방의 목적을 판단한 반면 2심은 아무런 증인신문 없이 첫 기일에 바로 변론을 종결했다. 신 교수는 검찰 공소사실의 허점을 지적하기 위해 재판부에 증인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다. 게시판에 올린 글이 삭제된 후 e메일로 해당 글을 전체 교수에게 발송한 사람은 신 교수가 아니라 당시 유력총장 후보였던 김모 교수였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학교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다시 교직원 수백 명에게 e메일로 전송했다”고 판단했다. 비방의 목적을 판단하는데 있어 잘못된 검찰기록에 의존해 중요한 사실관계를 명백히 잘못 집은 것이다. 

신 교수는 “법정에서 기록보다는 증인의 모습과 태도를 관찰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공판중심주의 기본 원칙임에도 2심은 기록만으로 1심 법정 증인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한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가혹한 입증책임 부과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1,2심 모두 ‘성매매 한 것을 목격하거나 들었다는 다른 교수가 없고 피고인의 일방적인 주장 외에 성매매 사실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허위사실로 판단했다”며“이런 식이라면 피해자 자신이 유일한 목격자가 될 수밖에 없는 ‘미투’운동은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헌법학회장까지 지낸 법률전문가로서 2심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던 이유다.

그는 ‘증명책임에 대한 중대한 법리오해’, ‘비방의 목적에 대한 잘못된 판단’, ‘공판중심주의 원칙 위배’등을 이유로 상고했다. 원심판결의 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KBS <추적60분>, SBS <그것이 알고싶다>등 진실규명 프로그램에 다수 출연한 연세정신건강의학과 손석한 원장의 의견서도 대법원에 제출했다. 

손 원장은 “거짓말을 하거나 ‘작화(作話)’증세를 보이는 경우 앞뒤가 맞지 않거나 일부 정황이 누락되기 마련인데 피고인 진술을 ‘작화’로 보기에는 기억이 무척 구체적이고 정확하다”며 “익명의 투서나 소문이 아니라 한정된 조직 내부에서 실명을 내걸고 쓴 글을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신평 교수가 2014년 학교 게시판에 올린 글중 일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총장이 무리하게 보직인사를 단행하고 후임총장 인선에 간여하는 움직임을 비판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신임 보직 교수의 ‘공무출장중 성매매’는 딱 한줄 언급돼 있다. 하지만 검찰은 총장 비판이  주요 목적이 아니라 학내 분규를 게기로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동료교수를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게재한 것으로 보고 기소했다.

신평 교수가 2014년 학교 게시판에 올린 글중 일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총장이 무리하게 보직인사를 단행하고 후임총장 인선에 간여하는 움직임을 비판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신임 보직 교수의 ‘공무출장중 성매매’는 딱 한줄 언급돼 있다. 하지만 검찰은 총장 비판이 주요 목적이 아니라 학내 분규를 게기로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동료교수를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게재한 것으로 보고 기소했다. 

하지만 신 교수는 대법원의 유죄확정 판결에 또다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배달된 대법원 판결문은 더 기가 막혔다. 쟁점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 판단이 없었고 상고기각 이유는 단 9줄에 불과했다. 

“원심이 채택한 증거들에 비추어 살펴보면 1심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한 것은 정당하고 증명책임 분배, 비방의 목적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고 공판중심주의와 직접 심리주의 원칙을 위반한 잘못이 없다” 

그는 9줄짜리 대법 판결문에 대해 “대법원이 국민들을 대하는 시각이 어떤 한지, 한국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중병을 앓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며 씁쓸해 했다.

신 교수는 “1년10개월간 올가미를 벗어던지기 위해 변호사와 함께 수십 쪽에 달하는 상고이유서와 보충이유서를 통해 왜 2심 판결이 잘못됐는지 치밀한 분석을 진행지만 대법원 판결은 아무런 합리적 근거나 논리가 없이 ‘내가 말하니 이것을 따라야 한다’는 식”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공보관실을 통해 “2016년 8월10일 사건 접수후 2017년8월11일부터 법리쟁점에 대한 종합적 검토가 시작되었고 올해 4월24일 쟁점에 대한 재판부 논의를 거쳐 5월10일 판결이 선고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재판부 내부적으로 충분한 법리검토와 숙고를 거쳐 판결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언론의 자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인데 9줄짜리 판결문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판결내용에 대한 국민의 평가에 대해 일일이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하지만 신 교수 주변에서는 “대법원이 결론에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선고를 불과 한 달 반 정도 남겨놓은 4월4일 주심이 권순일 대법관에서 이기택 대법관으로 교체된 것도 논란거리다. 대법원은 “권 대법관이 피고인과 예전부터 알던 사이라 재배당을 요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신 교수는 “권 대법관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설령 나와 친분이 있다면 처음 배당됐을 때 기피해야지 선고를 앞두고 재배당을 요구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대법원 내부에 뭔가 말 못할 곡절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에 전혀 간여하지 않던 대법관이 주심으로 온지 한 달 만에 과연 얼마나 심도 깊은 고민을 거쳐 판결을 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신평 교수는 2018년 2학기를 마지막으로 대학강단에서 은퇴한후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 집필활동을 할 계획이다. 사진은 신 교수가 직접 농사를 짓는 농지에서 제초하는 모습.

신평 교수는 2018년 2학기를 마지막으로 대학강단에서 은퇴한후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 집필활동을 할 계획이다. 사진은 신 교수가 직접 농사를 짓는 농지에서 제초하는 모습. 

신 교수는 피고인에 과도한 입증책임을 부과하고 비방의 목적에 비해 공익적 목적을 너무 좁게 해석한 이번 판결이 내부고발자 보호와 ‘미투’운동, 언론자유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그는 “유엔의 시민정치적권리에 관한 규약(ICCPR)은 가장 심각한 명예훼손의 경우에만 형사처벌이 고려될 수 있고 징역형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며“한국은 세계적 시각에서 봐도 명예훼손 법제가 지나치게 엄격하고 ‘미투’운동이 확산되기에 너무 척박한 토양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학기를 끝으로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농사를 지으면서 이번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작성한 ‘신앙일기’를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책의 에필로그는 대법원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 반성으로 마무리된다. 


“내가 겪고 있는 고초는 판사로 재직하며 적지 않게 저질렀을 오판, 매너리즘에 빠져 사건에 숨어있는 수많은 사연들을 외면하고 소송 관계인들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오만의 업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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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향하나
어디로 향하나(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6·12 북미정상회담 의제조율을 위한 실무회담 미국 측 대표단의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을 나서고 있다. 2018.5.30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홍국기 기자 = 북미정상회담 의제 논의를 위해 북한과 실무회담을 하는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 등 미측 협상팀이 30일 오전 서울의 숙소를 출발해 판문점을 향했다.

협상팀은 이날 오전 10시께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북측 대표단과 회담을 하고 북한의 비핵화 방안과 이에 상응하는 대북 체제안전보장 방안에 대해 최종 조율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와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 랜달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이날 오전 주한 미 대사관에서 제공한 승용차 2대와 승합차 1대에 나눠타고 숙소를 빠져나오는 것이 목격됐다.

협상팀에는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KMC) 관계자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측 협상팀은 지난 27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최선희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 등 장시간 회담하며 비핵화와 체제보장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이견을 좁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오늘 회담에서는 북미 간 의견이 모인 최종안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내달 12일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소식통은 "협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일단 북미 양쪽 간의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며 "북미간 고위급 접촉을 이어가며 실무협의 결과를 토대로 신뢰를 쌓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김영철 뉴욕 방문…금주중 폼페이오와 회담"
백악관 "김영철 뉴욕 방문…금주중 폼페이오와 회담"(워싱턴 AF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합성사진.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9일(현지시간) 기자들에게 보낸 성명에서 "김영철(부위원장)이 뉴욕을 방문해, 금주중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난다"고 말했다.
ymarshal@yna.co.kr

 

지난 1월부터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을 주도해온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30일 오후 1시 뉴욕행 중국 국제항공 CA981 항공편을 이용해 미국으로 향한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9일(현지시간) 기자들에게 보낸 성명에서 "김영철(부위원장)이 뉴욕을 방문해, 금주 중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오전 트위터 계정에서 "김 부위원장이 지금 뉴욕으로 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판문점에서 북미 간에 조율된 합의를 토대로 폼페이오 장관과 회담하고 북미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토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회담 분위기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가능성도 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 또는 메시지가 전달될지도 관심이다.

앞서 29일에는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과 조 헤이긴 백악관 부(副) 비서실장이 싱가포르 모처에서 만나 북미정상회담의 구체적인 개최 일정과 장소, 의전, 경호 등 실무적인 부분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jy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5/30 08:3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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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 환영...美, 일방적 전횡 되풀이돼선 안돼"

(추가)6.15남측위 등 각계 공동선언 발표...'대북 적대행동 중단', '비핵화 상응 평화보장 방안' 촉구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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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9  13: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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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5남측위 각 지역본부와 부문을 비롯한 각계 시민사회단체 419곳과 152명의 개인이 29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미정상회담 성공적 개최를 위해 대북 적대행동 중단, 비핵화 상응 평화보장 방안 제시 등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일방적인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표가 전격적인 남북정상회담에 힘입어 무위로 돌아가고 당초 예정대로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재개를 위한 준비가 급진전되고 있다.

우여곡절에 급반전이 겹친 상황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이창복) 각 지역본부와  부문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419곳과 152명의 개인이 2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 평화실현, 북미정상회담 성공적 개최를 위한 공동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공동선언문에서 "한반도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아 온 북미간 오랜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소할 유일한 길은 대화와 협상뿐이라는 점에서, 양국 최고 지도자들 사이의 정상회담은 반드시, 그리고 조속히 개최되어야 한다"면서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재개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과 대화 상대방과 아무런 협의없이 정상회담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또 며칠만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다시 예정된 일정대로 정상회담을 할 수도 있다고 밝히는 이 일방적인 전횡이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한미정상회담에 참가한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호소하고 북한이 국제기자단 앞에서 핵실험장을 공개 폭파한 직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한데 따른 분노와 경악의 앙금을 그대로 드러낸 것.

참가자들은 한반도의 당사자로서 이 땅의 평화와 주권이 온전히 실현되어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및 그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평화보장조치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북미정상회담 취소 사태 과정에서 확인된 바, 미국 정부관계자들은 북미간 상호 안보우려를 공정하게 해소하는 방향에서 합의점을 도출하려 하기보다는 북의 일방적인 핵폐기만을 요구하는 비현실적이고 불공정한 태도를 보여왔다는 것이다.

북이 핵실험장 폐쇄 등 구체적인 비핵화조치에 돌입한 만큼, 미국도 대북 적대정책의 철회와 평화협정, 수교 등 구체적인 평화보장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종성 6.15남측위 청학본부 부대표가 '한반도 평화실현, 북미정상회담 성공적 개최를 위한 공동선언'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참가자들은 또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일체의 적대적인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취지에 맞게 일관된 행동을 취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이 핵전략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전개시키는 한미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하거나 제재 압박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지적이다.

참가자들은 앞으로 북미정상회담이 실제로 개최되고 성공적인 합의들이 도출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판문점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과 북 정부, 그리고 각계각층이 힘을 모은다면 어려움도 능히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왼쪽부터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엄미경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권재석 한국노총 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최진미 6.15여성본부 상임대표, 조헌정 6.15서울본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지난 몇일간 우리 운명에 관한 결정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다져진 우의와 결단을 기반으로 굳게 단결해서 남북이 자주적인 원칙에 따라 통일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인류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갈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것을 방해하는 세력이 작동하고 있다"면서 "남북 8천만 민족이 힘을 모아서 모든 장애를 극복해 나가고 드디어는 종전선언과 함께 평화협정, 통일을 이루기까지 우리의 갈길이 남아 있는 만큼 오늘 모여서 이런 뜻을 다짐하고 세계에 천명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엄미경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은 "지금 민주노총은 민주노총의 조합원이 아니라 아직 조직되지 않은 더 많은 노동자를 대변해서 최저임금 개악을 막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실현과 자주통일을 위해 노동자를 넘어 남북해외 동포들과 함께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권재석 한국노총 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은 "한국노총은 청와대 앞에서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위촉장을 반납하면서 최저임금 개악을 막기 위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고 근황을 설명하고는 "우리 문제는 우리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 외세에 맡겨놓아서는 패배하고 말 것이다. 평화통일을 위해서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투쟁하고 연대하겠다"고 다짐했다.

최진미 6.15남측위 여성본부 상임대표는 지난 24일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전 세계에서 온 여성평화활동가 31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6.12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표에 분격해서 몸싸움을 무릅쓰고 미국 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한 일화를 소개했다.

이들 세계 여성평화활동가들은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된 6월 12일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연대의 날'로 정하고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 계속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알렸다.

6.15남측위 서울본부 상임대표인 조헌정 목사는 성서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고한다면서 △ 자신이 가진 힘을 내려놓고 대화의 상대가 누구이든지 진심으로 존중할 것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것 △꼴찌가 첫째되고 첫째가 꼴찌되는 역사의 반전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말했다.

한편, 6.15남측위는 오는 6월 15일 오전부터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시민참여형 축제를 진행하고 저녁 7시부터 6.15공동선언 발표 18주년 기념대회 '가자! 통일로!'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지난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6.15공동행사는 6.15민족공동위원회 남북해외 위원장단 회의 또는 오는 1일 열릴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구체적인 계획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수정-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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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거래 시도한 양승태, 그의 숨길 수 없는 과거

[분석] 긴급조치 관련 12건·원세훈 재판 등에 관여... 헌법 파괴한 정황 드러나

18.05.29 20:31l최종 업데이트 18.05.29 20:31l

 

 지난해 10월 1일 박근혜 대통령과 양승태 대법원장이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제67주년 경축연에서 대화하고 있다.
▲  2015년 10월 1일 박근혜 대통령과 양승태 대법원장이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제67주년 경축연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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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70) 전 대법원장이 지난 2015년 8월 박근혜 대통령 독대 시 상고법원 법관 임명에 관한 대통령 권한을 다룬 문건을 들고간 것으로 드러나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문이 온 나라를 강타하고 있다. 이런 양승태의 사법부 독립성 파괴행위에 대해 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대국민 사과하고 검찰 조사를 받으라"고 촉구했고, 민주·평화·정의 3당은 "양승태의 '재판거래'에 경악하며 수사가 필요하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는 말이 있고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말이 있다. 지난 시절 양승태씨가 판사로서 주요 시국사건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를 검토해보는 일은 지금 양승태씨가 초래한 사법부 독립성 침해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관은 지난 1970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법관으로 임용되어 1975년 11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는 박정희 유신정권시절인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하면서 12건의 긴급조치 재판에 관여하였다. 

특히 그는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재직 중인 지난 1976년 재일교포간첩조작 사건인 김동휘 사건, 이원이 사건, 장영식 사건, 조득훈 사건에 배석판사로 참여하여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 네 사건은 후에 재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  조작간첩사건이 어떻게 무고한 재일교포 청년들의 삶을 파괴했고, 그 과정에서 양승태 판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자.

36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김동휘 사건은 1975년 10월에 일어난 사건으로, 그는 1954년 일본에서 출생, 성장하였다. 그는 1973년 3월 모국 유학차 입국하여 서울대학교에서 2년간 한국어교육을 받고, 1975년 3월 서울 가톨릭 의과대학에 입학,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5년 10월 13일 중앙정보부 남산분실에 연행되어 야만적인 고문을 통한 조사를 받고 그해 11월 20일 서울지검에 송치되어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죄로 기소되었다. 

그 다음해인 1976년 4월 30일 1심인 서울지법에서 김동휘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같은 해 8월 31일 서울고법에서 김씨는 1년이 감형된 징역 4년을 받고 상고하였다. 그러나 그해 12월 14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고 결국 그는 억울하게 4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지난 2010년 5월 18일 진실화해위원회는 김동휘 사건에 대해 불법구금, 가혹행위 등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하고 재심 등을 권고하였다. 그리고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여 김동휘씨는 지난 2012년 5월 24일, 36년 만에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20대의 젊은 나이에 모국에 유학와서 모진 고문과 조작 끝에 판사 양승태로부터 '간첩'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망가진 몸과 인생은 어떻게 보상 받을 수 있겠는가.

1970년대와 1980년대 판사 양승태가 판결한 6건의 조작간첩사건에서 이미 2건(강희철 사건, 김동휘 사건)에 대해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고, 다른 4건의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도 지금 재심을 준비 중이다.(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2017.2.16, <반헌법행위자 열전 집중검토대상자 명단발표 기자회견 자료집>, 65쪽)

사후에 무죄판결 받은 이원이 사건 
 

큰사진보기 1975년 '간첩조작사건'을 발표하고 있는 중앙정보부 김기춘
▲  1975년 '간첩조작사건'을 발표하고 있는 중앙정보부 김기춘
ⓒ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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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이원이 사건은 지난 1975년 부산대학교에서 발생한 반유신 데모 사건, 유인물 살포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부산대에서 발생한 반유신 유인물 살포 사건을 추적하던 경찰은 재일교포 김오자씨와 이원이씨가 이 사건에 관련된 사실을 파악하고 이를 학생들의 반유신 운동을 넘어서 북한, 재일조총련과 관련된 간첩사건으로 조작했다.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김기춘은 단순한 반정부 유인물 살포 사건을 부산대학생 박준건, 김오자, 김정미, 이원이, 철학과 교수 하일민 등 모두 24명이 관련된 대형 간첩단 사건으로 조작해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이원이씨는 당시 서울형사지방법원의 판결에서 5년형을 받았다. 5년 징역형을 마치고 지난 1981 출소 한 이원이씨는 불법구금과 고문 등 후유증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1999년 11월 대장암으로 그는 비극에 찬 생애를 마쳤다.

이원이씨 유족은 지난해 4월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같은 해 11월 재심 개시 결정이 확정됐다. 그리고 사건 발생 43년 만인 올해 1월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부는 국가보안법, 반공법 등 간첩 혐의로 지난 1976년 유죄를 선고받은 고인 이원이씨에 대한 재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고인의 ▲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통신연락·지령에 의한 잠입 등 반공법 위반 ▲반국가단체 찬양·고무·동조 ▲ 군사목적수행 간첩 관련 혐의에 대한 공소 사실에 대해 모두 "혐의를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만한 증거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과거 고인이 체포당할 당시 "불법구금 상태에서 허위자백을 강요받은 정황이 엿보인다"라며 경찰·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 등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43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은 고인의 아들(34)은 선고 이후 "아버지가 평소 우리들한테 힘든 티도 잘 안내고 버티시느라 너무 힘드셨을 거 같다"며 "하늘에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는 내가 간첩의 아들, 그리고 내 아들이 간첩의 후손이라는 오명을 벗은 게 가장 기쁘다"며 감회를 밝혔다.

장영식씨는 1949년 5월 12일 일본에서 출생, 일본 주오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1974년 모국에 유학와 서울대에서 1년간 공부한 뒤 1975년 4월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해 9월 일본에 갔다 한국에 돌아온 장씨는 정보기관에 체포되어 재일조선인유학생동맹 활동 및 조총련 공작원으로부터 정보수집 지령 등 간첩활동 혐의로 모진 고문수사를 받은 후 서울지검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다. 

다음 해인 1976년 5월 7일 장영식씨는 서울형사지법(재판장 심훈종, 판사 조용무·양승태)에서 징역 및 자격정지 3년 6월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장영식씨은 같은 해 9월 6일 서울고법에서 일부무죄를 받고 상고하였다. 그리고 1976년 12월 28일 대법원에서는 무죄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파기 환송하였다. 1979년 1월 14일 장영식씨는 서울고법 파기 환송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1심에서 3년 6월형의 유죄를 선고 받은 것에 대해 장영식씨는 양승태를 포함한 판사들에게 아무런 사과를 받지 못했다. 

간첩조작사건에 유죄판결 내린 양승태 

조득훈씨는 1951년 12월 29일 일본에서 출생 1971년 4월 오카야마 대학교 전자공학부에 입학, 1975년 3월 졸업하자마자 모국으로 유학와 서울대학교 재외국민교육연구소에 입소해 그해 12월 10일 수료했다. 조득훈씨는 일본에 있을 때 대학 재학 중 조총련계 인물들과 만나 북한관련 학습을 함으로써 반국가단체 성원들과 회합 통신하고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하는 등 간첩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보안대에 체포돼 무자비한 고문과 조사를 받은 후 서울지검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다.

1976년 6월 8일 조득훈씨는 1심인 서울지방법원(재판장 심훈종, 판사 조용무·양승태)에서 징역 및 자격정지 각 10년씩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그리고 그해 10월 2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및 자격정지 각 7년을 선고받았다. 조득훈씨는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77년 2월 8일 대법원에 의해 상고가 기각되어 7년형을 확정 받고 징역을 살다가 지난 1981년 8월 특사로 가석방되었다.

석방 후 조득훈씨는 재심청구를 하여 38년 만인 지난 2014년 9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김종근 판사는 "조씨가 혐의를 인정한 진술서는 15일간에 걸친 불법감금 중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게 하는 등 고문과 협박에서 비롯된 ​허위자백 요구의 결과라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다른 증거도 없다"며 "범죄사실이 날조됐다"고 인정했다.

판결 후 조득훈씨는 "이번 판결은 한국의 민주화가 낳은 하나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조국을 생각하는 재일한국인의 마음을 법원이 받아들여줬다"고 말했다. 1970년대부터 조득훈씨 명예회복과 구제운동을 지원한 일본 지인들도 이날 법정에서 재판을 방청한 후 무죄선고가 나오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이들 간첩 사건 이외에도 서울지법에 근무할 당시 1975년 심지연, 최열, 이명준 등 대학생들, 1975년 이부영, 성유보 등 전 동아일보 기자, 1977년 이혜경, 배경순, 고광순 등 여대생들의 재판에 배석판사로 참여하여 12건의 긴급조치 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 사건들도 나중에 재심에서 다 무죄로 판결되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970년대 긴급조치관련 재판내역1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970년대 긴급조치관련 재판내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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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970년대 긴급조치 재판 내역2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970년대 긴급조치 재판 내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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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진보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970년대 긴급조치 관련사건 재판내역3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970년대 긴급조치 관련사건 재판내역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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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양승태씨는 대법관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2007년 5월 독재 정권시절 학내 비리로 퇴진한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이 "정부가 임명한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며 낸 소송에서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외에도 양승태는 지난 2009년 1월 20일에 일어난 '용산철거민 과잉진압 사망사건' 관련자 재판에도 관계가 있다. 2009년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한양석)는 농성장 망루에서 화염병을 던져 진압에 나선 경찰특공대원 1명을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충연씨 등 2명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다음해인 2010년 5월 31일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인욱)는 이충연씨 등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어서 그해 11월 11일 상고심 대법원 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항소심 형량을 그대로 확정했다.(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2017.2.16, <반헌법행위자 열전 집중검토대상자 명단발표 기자회견 자료집>, 246쪽) 

그러나 위와 같은 개별 사건 외에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반헌법적 행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대법원장 시절(2011년 9월부터 2017년 9월까지)이라 할 수 있다. 양승태는 대법원장 시절 박근혜 정부의 주요 관심 사안이었던 원세훈 국정원장의 제18대 대선 불법개입 사건 재판에 대한 정권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당시 법원의 최대 관심 사안이었던 '상고법원' 도입 등을 얻어 내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행정부, 정치권력과의 밀착 또는 부당거래를 통해 법원의 이해관계를 얻어내려는 이런 시도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대법원장이 스스로 저해하는 중대한 반헌법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사법적 단죄가 필요한 이유
 

 양승태 대법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고 있다.
▲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7년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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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양승태씨는 지난 2016년 12월 박근혜 정권에서 대법원장인 자신을 사찰하자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라며 반발했다. 그런 그가 뒤로는 법원의 판사들을 사찰한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시절 12건의 긴급조치 사건에서 자신이 유죄판결을 내린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5월 25일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후 구성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양승태 대법원은 과거 유죄판결을 내린 1970년대 긴급조치 사건과 관련하여 '긴급조치 배상 판결'을 내린 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시도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있다.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사건으로 지금 감옥에 있는 김기춘과 양승태는 경남고 선후배 사이다. 지난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 아래서 이른바 '학원침투 북괴간첩단사건'은 중앙정보부에 있던 선배 김기춘이 조작하고 법원에 있던 후배 양승태가 조작사건에 대해 합법성을 마련해준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심각한 불법행위였다.

더욱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민주적 운영과 독립성을 요구하는 판사들의 당연한 활동을 억누르고 통제하기 위해 인사상의 불이익을 계획하는 등 직·간접적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확인됐다. 나아가 그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판사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그들의 활동과 동향을 조직적으로 감시하고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양승태씨는 누구보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키고 민주적 운영을 책임져야 할 대법원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법부 수장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반민주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해왔다. 이는 가장 심각한 반헌법적 행위로, 이러한 양승태씨에게 도의적 책임을 묻고 사법적 처벌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민주국가에서의 당연한 조치라고 확신한다.  

* 이 기사를 위해 소중한 자료를 제공해 준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한홍구 교수와 임영태 조사위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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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회담 앞둔 신문들 “성김은 소주 즐겨 마셔”

방탄소년단 빌도드 1위, 장자연 리스트 재수사, 서울시장 후보들 ‘6층 외인부대’ 공방

이정호 기자 leejh67@mediatoday.co.kr  2018년 05월 29일 화요일
 

오늘도 일간신문 주요 뉴스는 ‘북미 정상회담’이었다. 북핵 문제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 또 다른 뉴스는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차트 1위 소식이었다.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둘러싼 노동계 반발과 민주노총 파업은 사회면을 주요 뉴스를 차지했다. 검찰이 장자연 리스트 중 공소시효가 2개월가량 남은 강제추행 부분을 재수사한다는 소식도 사회면 한쪽에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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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는 뒷전으로 밀렸지만 어제 서울시장 후보들의 공방이 그나마 정치면 한쪽을 차지했다. 이낙연 총리가 밝힌 부분개각 얘기도 빠지지 않고 실렸다. 동아일보는 사회면에 GM 창원공장 사내하청 774명을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판단해 고용을 명령한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동아일보는 산재 사망사고가 일어나면 원청 사업주에게도 책임을 물린다는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도 보도했다.

지난주 끝난 조선일보의 재활용품 사용 촉진 기획시리즈에 이어 한국일보가 공공장소 음주 등을 비판하는 새 기획시리즈 ‘만취에 관대한 대한민국’을 1면과 2면에 걸쳐 실었다.  

북미회담 앞둔 신문들 “성김은 소주 즐겨 마셔” 

북미 정상회담을 가장 화려하게 보여준 신문은 국민일보였다. 국민일보는 오늘 ‘북미 동시다발 채널… 조율 급피치’란 제목의 1면 머리기사에서 2주 앞으로 다가온 6.12회담 준비 상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판문점과 싱가포르, 미국에서 벌어지는 북미간 전방위 대화채널 가동 상황을 한반도 지도를 배경으로 깔고 그 위에 주요 인물들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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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싱가포르에선 북한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과 조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협상 중이고, 판문점에선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중심으로 한 협상팀이 대화채널을 가동 중이고, 미국에선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만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부분 언론이 성 김과 최선희를 주목했다. 두 사람이 6자회담 때도 파트너였음을 강조하면서 성 김의 경우 한국계 미국인이란 사실도 부각시켰다. 최선희 부상은 최근 미국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북미 회담을 무산시킬 뻔한 주인공이었던 점도 소개했다.

뻔한 소리나 개인의 신변잡기로 빠져 흥미를 유도하는 뉴스도 보였다. 성 김이 평소엔 한국말을 잘 하지만 외교무대에선 영어만 사용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도 소개하고, 성 김이 소주를 즐겨 마신다는 얘기도 실었다. 이 얘기는 2014년 3월 성 김이 주한 미 대사 부임 2주년을 맞아 인터뷰하면서 “소주가 제일 좋다”고 한 발언에서 따왔다.(세계일보 2014년 3월 6일) 그즈음 성 김은 SBS ‘좋은 아침’ 프로그램에도 부인 정재은씨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국민일보 사설로 한국당에 일침… 동아일보 통수권 공백 보도

국민일보가 오늘 ‘한국당, 한반도 문제만큼은 건강한 비판을 하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문재인-김정은 2차 회담을 둘러싼 자유한국당의 거친 입에 일침을 가했다. 사설은 김성태 원내대표가 28일 공개회의에서 문 대통령을 “김정은 신원보증인”이라고 비꼬며 “밀실회담, 밀사회담, 첩보작전, 급조된 정략적 회담”이란 자극적 표현을 쓴 것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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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는 야당이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비판하고 견제하는 건 당연하다고 전제하면서도 “그 비판이 본질에 충실해야 하고, 최소한 상대방을 깎아내리려고만 하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비꼬는 표현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만은 열성 지지자들이 좋아할 만한 비꼬는 표현이 아닌, 건강한 비판을 기대한다”고 결론 내렸다.

동아일보는 남북 2차 정상회담을 놓고 오늘 5면에 ‘문 대통령 통일각 2시간… 통수권 공백 논란’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자유한국당 김학용 국회 국방위원장의 입을 빌어 나왔다. 문 대통령이 통일각에서 회담할 때 군 통수권을 이양했는지 질의하는 김학용 국방위원장에게 국방부가 총리가 해외순방중이라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이양했다고 보고했다가 1시간 만에 청와대가 짧은 시간이라 굳이 위임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판단했다는 정정 사실에 주목했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를 통해 청와대만 뛰고 정부 부처가 뒷전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동아일보는 문 대통령이 “유사시 대통령 직무대행이나 군 통수권 등의 공백을 막기 위한 사전 준비 등을 잘 강구해 달라”고 지시한 사실도 소개했다.  

물관리 일원화 논란 20년만에 종지부… ‘6층 외인부대’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로 몸살을 앓았던 28일 국회 본회의가 물관리 일원화 관련 3법을 처리해 20년 동안 표류해온 물관리 일원화 논의가 일단락됐다. 그동안 수량은 국토교통부, 수질은 환경부가 따로 관리하던 것을 환경부로 일원화했다. 그러나 하천 관리는 여전히 국토부에 남겨둬 미완이란 지적도 나온다. 세계일보는 이 사실을 13면에 ‘수질·수량 모두 환경부 관리, 하천은 국토부 남겨둬 미완 지적’이란 제목의 기사로 담았다.  

국민일보는 안철수, 김문수 두 서울시장 후보의 박원순 후보 협공에 박 후보가 대응하는 내용을 1면에 실었다. 두 야당 후보는 “시민사회 출신들이 서울시를 장악했다”며 그 전형적 사례를 ‘6층 외인부대’로 소개했다. 6층은 서울시청 안의 박 시장 집무실이 있는 층을 말한다. 두 야당 후보는 6층 외인부대를 적폐의 상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박원순 후보는 “박원순법을 도입해 부패에 적극 대응하고 있고 6층의 별정직 공무원 정원 중 시민사회 출신은 20%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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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처럼…제주서 ‘기본소득’ 바람 불어온다

등록 :2018-05-29 05:00수정 :2018-05-29 09:57

 

 

6·13 지방선거 정책 발굴 ‘어젠다 2018’ ① ‘오래된 미래’ 기본소득

알래스카, 자원소득으로 기금
1982년부터 주민들에 배당금
제주도 관광산업으로 부 창출
선거 앞 기본소득 잇단 공약
경기·광주·충남·경북서도 이슈
 
“제주도 알래스카처럼 충분히 기본소득을 도입할 수 있다고 봐요. 난개발을 가져온 국제자유도시 계획을 폐기하고 여기에 투입되는 최대 조 단위의 예산 사업 일부만 줄여도 재원은 충분합니다. 제주를 다시 ‘생명과 평화의 섬’으로 바꾸는 데, 전 도민 기본소득이 중요한 구실을 할 거라 생각해요.”

 

폭우가 쏟아진 지난 16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을 떠난 항공기는 거센 바람을 맞으며 제주공항에 착륙했다. 하늘에선 많은 여객기가 몇분 간격으로 끊임없이 관광객을 실어 날랐다. 공항을 빠져나와 만난 고은영(33)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는 “기본소득의 가능성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고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기본소득’을 대표 공약으로 제시했다. 모든 제주도민한테 해마다 100만원씩 지급하는 내용이다. 제주도민이 66만명(올 1분기 기준)이니, 한 해 66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재원은 기존 예산을 절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제주도는 해마다 예산을 10% 이상 남기고 있어요(2016년 예산 집행률 80.4%). 불필요하게 예산만 축내는 국제자유도시 계획을 폐기하고 그 추진체인 제이디시(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를 해체하면, 기본소득 도입이 가능해요.”

 

제주공항 앞에서 기본소득 공약 손팻말을 든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 녹색당 제공
제주공항 앞에서 기본소득 공약 손팻말을 든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 녹색당 제공
기본소득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시민의 ‘적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현금을 이른다. 부의 편중이 심화되고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불안정 노동이 일상화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공감대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 아무리 일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모순된 삶,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일자리가 소멸되는 미래, 복잡한 복지제도를 단순화해 ‘복지의 늪’에서 빠져나오려는 시도도 기본소득 논의에 힘을 싣는다.

 

‘정책’이 사라지다시피 한 6·13 지방선거에서도 일부 후보는 지역민의 삶을 바꿀 정책 공약을 내걸고 선거를 치른다. 국내에서는 아직 논의가 크게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기본소득은 지방정부가 주목할 만한 정책 의제다. 제주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가장 활발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한 곳이다.

 

제주의 핵심 산업은 관광이다. 많은 관광객이 제주의 자연을 찾는다. 자연은 제주의 부를 창출하는 공유자산이다. 이는 천연자원으로부터 기본소득을 얻어내는 미국 알래스카를 닮았다.

 

알래스카주 정부는 1982년부터 주민들에게 ‘영구기금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석유 등 천연자원 수입의 일부를 영구기금으로 적립하고, 이를 각종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낸 뒤 이를 주민과 공유한다. 배당금은 알래스카에 1년 이상 거주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연간 약 35만원으로 시작한 배당금은 2015년 230만원까지 늘었다. 월 19만여원꼴이다. 알래스카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빈곤율이 낮으면서 경제적으로 평등한 지역으로 꼽힌다. 알래스카의 기본소득은 이제 어떤 정치인도 ‘침범할 수 없는 제도’로 자리를 잡았다.

 

제주 성산일출봉. <한겨레> 자료사진
제주 성산일출봉. <한겨레> 자료사진

 

제주 문대림·원희룡 ‘청년수당’ 약속
경기 이재명은 대상 넓힌 ‘청년배당’

 

 

‘농민기본소득’ 충남·경북서 이슈로
정의당, 당 차원 주요 공약에 선정

 

 

광주선 예술인들 기본소득 요구
“지역 문화계 척박한 현실 개선을”

 

 

기본소득 초기단계 긍정적 평가
“선별 넘어 보편수당으로 발전해야”

 

 

 

국내 기본소득 주요 연구자들이 최근 출간한 <기본소득이 온다>를 보면, 알래스카주 정부가 모든 주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근거는 ‘공유자산에 대한 주민의 권리’에서 비롯한다. 그런 측면에서 제주도는 여러 면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관광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지닌 제주의 임금은 전국 최저 수준이다. 높은 고용률을 임시직 위주의 노동자가 떠받치는 구조 탓이다. 게다가 최근 몇년간 부동산 값이 폭등하면서 청년들은 계속 육지로 빠져나간다.

 

기본소득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게 해준다. 재원은 연간 1500만명에 육박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사람당 몇천원 수준의 ‘입도세’를 걷거나, 내국인 면세점, 생수 ‘삼다수’(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가 개발)의 수입 등에서 끌어올 수 있다. 제주도 에너지 보급량의 14%가량을 차지하는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도 제주도가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 가능한 자산이다.

 

이번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기본소득이나 기본소득의 초기 단계라 할 만한 현금성 사회수당 정책을 고민하는 이는 고은영 후보만이 아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문대림(53) 후보와 무소속 원희룡(54) 후보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문대림 후보가 속한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은 2천명의 청년에게 6개월 동안 월 60만원씩 지급하는 ‘청년희망 기본수당’과, 농어업인을 대상으로 한 ‘공익형 소득직불제’ 등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라해문 문대림 캠프 정책실장은 “우리의 청년희망 수당은 서울시의 ‘청년수당’ 모델에 가깝다. 5명씩 500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등 스스로 경험을 쌓는 과제와 연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농어업인을 대상으로 한 공익형 소득직불제는 기존 직불금제를 기본소득과 유사하게 농민 개인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방안이다.

 

무소속인 원희룡 후보도 19~29살 청년 5천명에게 6개월 동안 월 5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청년수당’을 공약했다. 역시 취업독려수당 성격인 서울시 모델에 가깝다. 원희룡 후보 쪽 정책 담당자인 고경민 전 제주연구원 연구위원은 “6개월간 지원하는 기본소득 성격의 임금과, 취업을 위한 전문화된 교육기관(‘더 큰 내일센터’)을 결합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도지사 후보를 내지 못한 노동당에서는 김연자 도의원 후보가 모든 도민에게 월 1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공약을 제시했다.

 

기본소득 관련 공약은 서울과 경기, 광주, 충남, 경북 등 다른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주로 청년이나 농민, 문화예술인 등 특정 연령대나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 이런 현금성 사회수당 정책은 기본소득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먼저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선 이재명 후보(더불어민주당)는 ‘청년배당’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는 2016년 성남시장을 지내며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살 청년에게 연간 100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청년배당 정책을 펼친 바 있다. 이를 경기도 전 지역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23조원에 이르는 경기도 예산의 0.7%가량인 1500억원이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이 후보 쪽 주장이다.

 

광주에선 30여개 문화예술단체로 꾸려진 ‘6·13 지방선거 문화정책연대’가 광주시장 후보를 대상으로 자신들이 발굴한 ‘10대 핵심 문화정책’을 공약에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10대 정책 중 하나로 ‘문화예술인 기본소득 보장조례 제정’을 소개하면서 “지역 문화계의 척박한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경채 정의당 광주시장 후보와 윤민호 민중당 후보가 이를 받아들였다.

 

정의당은 당 차원에서 월 10만원의 ‘농민기본소득’을 주요 공약으로 내놓았다. 농민소득 안정, 소득 불균형 해소가 목적이다. 김용신 정의당 정책위의장은 “전국의 모든 농민을 대상으로 하면 1조5천억원, (농민기본소득 논의가 한창인) 충남만 따로 추계하면 12만명, 1440억원가량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김 의장은 이 예산 가운데 3분의 1가량은 비료 지원 예산 등 기존 예산을 통합해서, 나머지 3분의 2는 초과세수와 함께 지방소비세율 인상, 부동산 보유세 현실화 등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봤다.

 

농민기본소득은 대다수 농민이 직불금 등 기존 정부 지원만으로는 최저 수준의 생활마저 유지하기 어렵다는 현실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한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등이 오래전부터 농민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해왔다. 특히 농민 비율이 높은 충남 등에선 주요 선거 이슈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다. 충남지역 농민단체 등에선 농민기본소득 도입을 요구하고 있고, 양승조 후보(더불어민주당) 등 주요 후보도 그 필요성에 동의한다. 경북도지사 선거에서는 권오을 후보(바른미래당)가 ‘농민기본소득보장제 시행’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해 서울시장 시절 청년수당 정책을 시행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더불어민주당)는 이번 공약에 청년수당을 담지 않았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 대책의 하나로 서울시의 청년수당을 전국에 적용하는 ‘청년구직활동수당’을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박 후보 쪽 관계자는 “시 차원에서 중앙정부 정책과 연계해 기존 정책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신지예 녹색당 후보가 기본소득 정책을 발표했다. 신 후보는 28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와 정책협약식을 하고 ‘서울형 청년기본소득’ 공약을 제시했다. 청년층을 대상으로 월 1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기본소득이나 현금성 사회수당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조건 없이 지급하는 ‘보편성’에 대한 오해는 기본소득 논의의 확대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걸림돌이다. 실제 원희룡 후보 쪽도 처음엔 성남시와 같은 ‘모든 청년을 대상으로 한 배당’을 고민하다가 일부 후퇴했다. 원 후보 쪽은 “부잣집 청년에게까지 줄 순 없다는 논란이 있어 지금의 공약으로 정리했다”고 했다. ‘왜 부자한테까지 주느냐’는 식의 반발이 기본소득 논의를 제약한다는 것이다.

 

성남시의 청년배당 정책을 설계한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많은 선진국이 이미 ‘학생수당’ 등 보편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부자를 제외하고, 가난한 이들만 돕는 형태의 복지제도는 적은 예산으로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장기적으로 복지의 증가 속도가 더딜 뿐 아니라, 다가올 4차 산업혁명 경제를 대비하기에 부적합하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도, 기본소득을 국민 모두의 권리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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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 ‘통합진보당 죽이기’ 진상규명하라”

통합진보당 전 의원들, “양승태 대법원, ‘박근혜 권력 푸들’” 처벌 촉구
▲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를 지낸 오병윤 전 의원 등이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양승태 대법원의 ‘통합진보당 죽이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사진 :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 통합진보당 지방의원 의원직 박탈을 위한 소송을 기획하고 국회의원 5명의 지위확인 소송에도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자 오병윤 전 의원 등 통합진보당 출신 인사들이 28일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해 나섰다.

오 전 의원은 이날 오전 김미희, 김재연, 이상규 전 의원과 홍성규 전 대변인(현 민중당 경기도지사 후보)과 함께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는 ‘박근혜 권력의 푸들’이었다. 법원이 통합진보당 관련 사건과 이석기 전 의원 내란음모 사건 등 정치적 사건 재판에 청와대와 내통한 혐의가 사실로 드러났다. 양승태 대법원이 통합진보당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한 것은 ‘박근혜 게이트’에 버금가는 반헌법적·반민주적 범죄 행위”라고 비판하곤 이렇게 주장했다.

오 전 의원 등은 이어 “양승태 법원 수뇌부는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 1심과 2심 판결에도 개입하고, 대법원에 상고하자 통합진보당 사건 관련 판결을 미리 파악해 대책을 세우거나 상고심을 전원합의체로 할 것인지 소부에서 담당하게 할 것인지도 사전에 검토했다. 통합진보당 관련 사건에 법치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개탄하곤 “박근혜 청와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법원이 삼권분립 원칙을 흔들면서까지 통합진보당 관련 재판에 개입했다. 통합진보당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더불어 “강제해산된 통합진보당 전 국회의원과 최고위원 시도당위원장과 10만 당원은 법원 수뇌부와 박근혜 청와대의 결탁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반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질 때까지 강력한 정치적 법적 대응을 할 예정”이라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당시 법원행정처장, 사법행정처 사법지원총괄심의관,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 재판관 등 직접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고발과 국가배상 청구소송 제기, 유엔 인권이사회 진정 등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청와대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에 나오는 이석기 전 의원 내란음모 사건과 전교조 사건 등 정치적 사안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도 촉구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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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이 위태롭다"

[해외시각] '미국 우선’에서 '미국 왕따'로
2018.05.28 14:36:43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지 하루 만에 회담 재개로 180도 입장을 바꾼 트럼프의 깜짝쇼는 무엇을 남겼을까? 한반도에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3차 남북 정상회담 한 달 만에 남과 북의 정상이 다시 만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평화를 위한 남북 공조를 한층 강화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에선 트럼프의 변덕이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파리기후협약 탈퇴, 이란 핵협정 탈퇴 등의 일방주의에 이어 트럼프의 또 다른 변덕으로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되고 있다는 불만이다.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가 '미국 왕따(America Alone)'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8일 트럼프가 이란 핵협정 탈퇴를 선언하자 유럽에서는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사설을 통해 '미국에 대한 저항(Time for Europe to Join the Resistance)'을 외쳤다. (☞원문 보기) 

트럼프는 오로지 전임자 오바마의 유산을 해체하는 데만 관심이 있으며, 이에 따라 국제 외교의 커다란 성과인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함으로써 제재와 압박을 통해 이란 정권을 붕괴시키려 하는 데 대한 반발이다.  
 
<슈피겔>은 "한때 우리가 알던 서방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유럽과 미국의 관계는 친구 관계로 불릴 수 없으며 동반자 관계라고 말할 수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0년간 미국과 유럽 간에 쌓아온 신뢰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슈피겔>은 이어 "경제, 외교, 안보 정책에 관한 대서양 협력은 사라졌다. 지난 16개월간 트럼프가 파괴한 것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고 개탄했다. 
 
이 잡지는 "이러한 트럼프의 과격한 행동은 어떤 혜택을 가져왔는가? 아무것도 없다. 한때 존재했던 국제 사회의 질서가 혼란으로 대체됐다. 수십 년에 걸친 안정 뒤에 오직 미국의 변덕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슬프고 불합리하게 들리겠지만 현명한 저항이 필요하다. 미국에 저항하자"고 끝을 맺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15일자 사설 '저급한 무시(An Indecent Disrespect)'에서 유럽에 대해 트럼프의 협박에 굴복하지 말라며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원문 보기)
 
"대내적 분열과 위기에 처해 있는 유럽은 트럼프로 하여금 이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강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없다. (협정 내용의 일부 개정으로 협정을 유지하자는) 마크롱의 달콤한 유혹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럽, 특히 독일과 영국 프랑스가 워싱턴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이란 핵협정을 비롯해 트럼프가 파괴하려 하는 모든 기존 국제질서의 붕괴를 저지해야 할 임무를 포기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일반 사설이 아니다. 발행인과 편집인의 의사가 반영된 사설이다. 미국 언론을 대표한다는 <뉴욕타임스>의 사주와 편집인이 유럽에 대해 자국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항하라고 촉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 정도로 트럼프 대외정책에 대한 미국 주류의 불만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지난 24일 트럼프가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직후, <원자력과학자회보>에는 '트럼프의 정상회담 취소는 어떻게 한미 동맹을 약화시킬 것인가'라는 제하의 글이 실렸다. 이 글은 시카고국제문제협회의 동아시아 정책 담당 연구원 칼 프리도프가 작성한 것으로 그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관련한 한국 내 여론의 추이를 주시해 왔다. 
 
그는 이 글에서 트럼프 취임 이후 일련의 대한 정책이 한국 국민들로 하여금 한미 동맹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면서 트럼프의 정상회담 취소는 한미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다행히 트럼프는 북미 회담을 추진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한반도 비핵화는 트럼프의 대외정책 중 유일하게 잘한 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트럼프는 한반도 비핵화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있다. 따라서 문재인-김정은-트럼프가 3자가 공동 추진하는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건설의 성공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변덕이 향후 한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중요 관심사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원문 보기) 
 

▲ 2017년 11월 방한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캠프 험프리즈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트럼프의 변덕과 한미 동맹 
 
북미 정상 회담 취소와 같은 트럼프의 변덕스러운 행태가 계속된다면 한국의 모든 국민들은, 그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미군의 한국 주둔은 물론이고 한미 동맹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한미관계에서 3번의 잘못을 저질렀고 이제 4번째 실수를 범하려 하고 있다. 사드 배치 강행, 한미 FTA 재협상, 북한에 대한 전쟁 위협, 그리고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 협상이 그것이다.  
 
앞의 두 가지는 한국인으로 하여금 한미 동맹이 대등한 협력관계(partnership)가 아니라 강압에 의한 일방적 종속관계(coercion)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세 번째 실수는 한반도 분쟁 시 미국은 기꺼이 한국을 포기할 것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네 번째는 현재 진행 중인데 만일 잘못 다룰 경우 이러한 인상이 확고한 현실 인식으로 굳어질 수 있다. 그런데 최근의 사례를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첫째, 미국의 한반도 사드 배치 강행으로 한국은 중국의 경제 보복을 받아 2017년 한 해에만 75억 달러의 경제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마치 상처 난 데 소금을 뿌리듯이 사드 포대 운영비 10억 달러를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사드 포대는 한국의 주민이 아니라 주한 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부담해야 한다. 이는 사드 배치 당시 양국의 합의 사항이기도 하다.  
 
둘째,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미 FTA를 콕 집어 오바마 정부 최악의 협상이라며 집권하면 재협상하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재협상이 안 되면 파기하겠다고 위협했다. 한국 정부의 실용적 접근 덕택에 재협상을 하긴 했지만 당초 협정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으며 미국이 얻은 것도 거의 없다.  
 
반면 '재협상 아니면 파기'라는 미국의 고압적 태도는 한국인의 반발을 초래했다. 2017년 11월 한국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52%가 "미국의 요구가 과도할 경우 협정을 파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셋째, 2017년 말 트럼프는 이전 미국 정부와는 확연히 다르게 북한에 대한 공격을 공공연히 언급했다. '화염과 분노' 발언이 그것이다. 이제까지는 북한이 한반도의 안정을 저해하는 주범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트럼프가 쏟아내는 막말, 즉 전쟁 위협으로 말미암아 미국이야말로 한반도 불안정의 가장 큰 근원으로 비춰지게 됐다. 
 
게다가 공화당 소속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희생자는 "그곳에서(over there)" 발생할 뿐이라고 말해 불난 데 기름을 부었다. 이로써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은 매우 현실적인 것이 됐고 전쟁은 (북한의 도발이 아니라) 미국의 선제공격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즉 한국인들은 동맹국 미국의 행동에 의해 집중포화를 맞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넷째, 현재 극비리에 진행 중인 주한미군 분담금 협상. 한국은 현재 연간 8500억 달러, 미군 주둔 비용의 42%를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토지 비용을 포함하면 한국의 분담률은 80%에 이른다(월스트리트저널 추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한국의 100%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이 응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미군은 현재 진행 중인 협상에서 새로운 요구를 하고 있다. 괌에 있는 미군의 전략자산이 한국을 군사적으로 보호하는 역할을 하므로 그 배치 비용을 한국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 협상은 극도의 보안 속에 진행되고 있다. 협상의 내용이 알려질 경우 한국인의 대미 인식이 극도로 악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은 가난하고 약했던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한국은 한미 동맹 및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 유지에 과거보다 훨씬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공헌이 무시된다면 많은 한국인들은 한미 동맹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의문은 두 가지 양상으로 제기될 것이다. 
 
첫째, 전통적으로 한국의 더 많은 자율성을 요구했던 좌파뿐만이 아니라 대체로 한미 동맹을 지지했던 40-50대의 중도 및 보수층, 그리고 남한의 핵무장을 원하는 극우까지도 각기 다른 이유에서 한미 동맹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 할 것이다. 즉 모든 층에서 주한미군 유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5월 중순 한국의 한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4%가 현재 수준의 미군 주둔 유지에 찬성한 반면 52%는 규모 축소 또는 완전 철수를 원했다(25%는 규모 축소, 27%는 단계적으로 완전 철수). 
 
둘째, (미선.효순이 사건으로) 성조기를 불태웠던, 2002년과 같은 과격시위 양상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조용하지만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한국의 대중들은 군사적 보호의 대가로 과도한 경제적 부담을 요구하는 미국, 안보라는 지렛대를 이용해 이미 합의 비준된 경제협정의 재협상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미국, 한반도의 평화에 반대하는 미국, 과연 이런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숙고할 것이다. 미국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주한미군이 아니라 아예 미국이 없는 한반도가 나을 것이라고 믿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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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어울릴 사람하고 어울려야지" '짬짜미' 비판에도 최저임금 개정안 끝내...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5/29 08:52
  • 수정일
    2018/05/29 08:5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정의당·평화당·민중당 반대 토론 릴레이로 고군분투했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

18.05.28 20:30l최종 업데이트 18.05.28 21:41l

 

 

최저임금법 개정안 반대 토론 나선 윤소하 의원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일정 부분을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 표결을 앞두고 반대 토론을 하고 있다.
▲ 최저임금법 개정안 반대 토론 나선 윤소하 의원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일정 부분을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 표결을 앞두고 반대 토론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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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그러십니까.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러분! 어울릴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거 아닙니까!" - 윤소하 정의당 의원(비례대표) 

"지금 저 (국회)밖에 많은 노동자들이 나와 있는데, 노동권 위해 애썼던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들을 호명하고 있습니다." - 심상정 정의당 의원(경기 고양갑)

정의당 의원들이 민주당을 '콕' 집어 호소했다. 국회 밖에선 '최저임금 개악저지 총파업 대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 설치된 경찰의 안전펜스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여야는 28일 오후 열린 20대 전반기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골자로 하는 최저임금법 일부법률개정안을 가결시켰다.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일정 부분을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이었다. 재계는 이 개정안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이나 소상공인 부담을 완화시킨다며 환영했지만, 노동계는 최저임금 삭감 효과를 낳는다며 반대해왔다. 
 

최저임금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찬성 160표·반대 24표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일정 부분을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98명 중 찬성 160명, 반대 24명, 기권 14명으로 통과되고 있다. 본회의장 전광판에 표결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 최저임금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찬성 160표·반대 24표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일정 부분을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98명 중 찬성 160명, 반대 24명, 기권 14명으로 통과되고 있다. 본회의장 전광판에 표결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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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결결과는 재석 198명 의원 중, 찬성 160명, 반대 24명, 기권 14명이었다. 반대표 대다수는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에서 나왔다. 우원식 전 원내대표와 강훈식·기동민·민병두·박홍근·우상호·이인영 등 민주당 일부 의원들도 반대 혹은 기권을 택했지만, 그들은 '소수'였다. 

"줬다 뺏는 최저임금, 박근혜식 줬다 뺏는 기초연금과 무엇이 다르나"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이날 국회 본회의 중 가장 뜨거웠던 순간이었다. 국회 안에선 민주평화당·정의당·민중당 등이 연달아 반대토론에 나섰다. 

반대 토론자들이 가장 먼저 문제 삼았던 것은 절차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민주평화당·정의당 공동 교섭단체(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간사를 맡고 있는 이정미 정의당 의원(비례대표)은 "표결 처리 여부에 대해서 (환노위 간사인) 저에게 저에게 묻지도 않았고 회의 도중에 일방적으로 처리가 강행됐다"면서 "국회 안에 많은 교섭단체가 있는데 교섭단체에 진골·성골이 따로 있느냐. 모멸감을 느끼는 시간이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한국당이 "교섭단체 간사 간 합의로 법안을 상정한다"는 관례를 깨고 짬짜미로 법안을 본회의 상정 처리했다는 주장이다. 
 

대화하는 홍영표-노회찬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에게 다가가 대화하고 있다.
▲ 대화하는 홍영표-노회찬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에게 다가가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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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최저임금법 개정안 논의가 '당사자'를 철저히 배제한 절차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광수 평화당 의원(전북 전주갑)은 "왜 최저임금위원회를 '패싱'하고 허수아비를 만들고 있는지 납득 못한다"라며 "교섭단체 반대에도 표결을 강행해 합의 민주주의를 파괴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소득주도성장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가 슬그머니 줬다 뺏는 최저임금 삭감법을 강행했다"라며 "이것이 박근혜식 줬다 뺏는 기초연금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 의원이 "(민주당이) 입만 열면 적폐세력이라던 한국당과 기득권 지키는 것에 있어서는 똑같다. 또 다시 한국당과 야합하고 있다"고 주장할 땐, 의원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며 소란이 일기도 했다.  
 

대화하는 홍영표-김성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에게 다가가 대화하고 있다.
▲ 대화하는 홍영표-김성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에게 다가가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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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주당·한국당 '짬짜미'를 향한 비판은 그대로 이어졌다. 심상정 의원은 "줬다 빼앗는 최저임금법 개악안을 이렇게 밀어붙이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라며 "민주당 의원들, 집권여당이 이러면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단에 선 윤소하 의원은 이날 오전 최저임금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을 처리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풍경이라면서 "(한국당) 동료의원 한 분이 (민주당 의원에게) 그 말씀을 하십디다. '아이고, 2년 만에 이제야 뜻이 좀 맞는다'라고. 제가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왜 그러느냐.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러분! 어울릴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것 아니냐. 노동자를 생각하는 절절한 마음을 제발 좀 내주시길 호소한다"고 외쳤다. 본회의장에는 웃음과 박수, 고성과 항의가 교차했다. 
 

최저임금법 개정안 반대 토론 나선 김종훈 의원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일정 부분을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 표결을 앞두고 반대 토론을 하고 있다.
▲ 최저임금법 개정안 반대 토론 나선 김종훈 의원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일정 부분을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 표결을 앞두고 반대 토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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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당 김종훈 민중당 의원(울산 동구)은 '1인 필리버스터'를 시도했다. 앞서 법사위 앞에서 반대 피켓시위까지 벌였던 그는 "(최저임금 인상해서) 157만 원 됐다, (최저임금 올려) 부자됐는지 지역에 돌아가면 단 한 번이라도 만나서 물어봐라"라고 날을 세우며 발언을 시작했다. 그의 발언은 마이크가 꺼진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수 차례 "이제 그만 정리해달라"고 부탁하고, 다른 의원들의 고성까지 나왔지만 그는 준비한 원고를 끝까지 읽은 뒤 연단에서 물러났다. 

"문 대통령, 최저임금 인상 의지 있다면 다시 돌려보내야"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 후... 눈물 쏟은 한정애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일정 부분을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98명 중 찬성 160명, 반대 24명, 기권 14명으로 통과된 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 후... 눈물 쏟은 한정애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일정 부분을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98명 중 찬성 160명, 반대 24명, 기권 14명으로 통과된 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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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토론자들은 앞서 지적됐던 절차적 문제는 없다면서 최선의 결정이었음을 강조했다. 

신보라 한국당 의원은 "환노위와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이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라며 "강행처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토론과 합의를 통해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국회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환노위 간사인 한정애 의원은 "최저임금위원회가 3월까지 합의안 도출에 실패하고 정부에 이송했고, 정부가 국회에서 논의를 해 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라며 당사자를 배제한 논의과정이 아니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절대 (최저임금을) 삭감하는 게 아니다. 그분들을 보호하기 위해 안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저도 요술방망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저희가 가진 것은 요술방망이가 아니다"라면서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도 차상위 노동자까지라도 보호할 수 있는, 고민 끝에 마련한 안"이라고 설득했다. 그가 발언을 마치자 민주당 쪽에서 "잘했어"라며 박수가 나왔다. 한 의원은 최저임금법 개정안 처리 직후, 홀로 눈물을 흘렸다. 

한편, 이정미 의원은 본회의 직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국회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결정을 내렸다. 국회 본연의 임무를 저버렸다"고 개탄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이 문제, 최저임금 (인상) 의지가 있다면 꼭 국회로 논의를 다시 돌려보내서 앞으로 노사정위 등에서 더 좋은 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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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입만 바라보다가는 큰일난다

[게릴라칼럼] 제2차 남북정상회담, 한반도 평화 스스로 이루겠다는 선언

18.05.28 11:58l최종 업데이트 18.05.28 11:58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5월 24일, 북미회담을 코앞에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취소통보를 했다. 세 문단의 짧은 편지 아래에 대문짝만한 서명을 휘갈긴 '누가봐도 트럼프' 것인 그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트럼프, 김정은에 보낸 편지 'Letter to Chairman Kim Jong Un' 미 백악관 홈페이지에 트럼프 대통령 명의로 '김정은 위원장에게(Letter to Chairman Kim Jong Un')'라는 제목의 편지가 올라왔다. 회담을 취소하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 트럼프, 김정은에 보낸 편지 'Letter to Chairman Kim Jong Un' 미 백악관 홈페이지에 트럼프 대통령 명의로 '김정은 위원장에게(Letter to Chairman Kim Jong Un')'라는 제목의 편지가 올라왔다. 회담을 취소하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 미 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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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락 프로그램은 트럼프를 텔레비전 스타로 만들어 준 동시에, 정치와 전혀 인연이 없던 부동산 투자가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 앉히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은인이다. <어프렌티스>가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3월, 뉴욕주립대의 시라 게이브리얼 심리학 교수는 이에 관해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전세계가 경악했다. 그는 선거기간 내내 상스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선거 막판까지 성추행 논란이 그치지 않았으며, 민주당은 트럼프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지런히 활용하며 공세를 폈다. 그런데 어떻게 당선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어프렌티스>가 무려 10년 넘게 방송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트럼프는 직원들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신중히 판단하고 결정하며, 개인과 조직의 문제를 파격적으로 해결하는 억만장자로 등장했다. 유권자들은 이런 극중 리더십을 대선 직전까지 보아왔던 것이다.

물론, 트럼프는 주어진 역할을 연기했을 뿐이다. 게이브리얼 교수는 사람들이 극중 역할과 실제 인물간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길에서 배우를 만나면 넙죽 인사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 혼자 일방적으로 보아온 사람이고, 그것도 각본에 따라 연기하는 모습을 보아왔을 뿐인데도, 배우를 만나면 마치 오랫동안 서로 교류해 온 듯한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미국 유권자 다수는 트럼프가 연기한 캐릭터에게 표를 던진 셈이다.

'협상가 트럼프'라는 허구적 신화
 

 NBC에서 방송된 리얼리티 TV쇼 ‘어프렌티스’는 트럼프를 전국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  NBC에서 방송된 리얼리티 TV쇼 '어프렌티스'는 트럼프를 전국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 어프렌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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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프렌티스>의 주요 흥행요소는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는 데 있다. 누가 봐도 가장 먼저 해고될 듯한 사람을 살려둔 채, 전혀 예상치 못했던 후보를 향해 '넌 해고야!'를 날림으로써 시청자의 허를 찌르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의 극중 역할은 대통령이 된 현재까지 정치적 자산이 되어주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백악관에서 여전히 쇼의 진행자를 보고, 트럼프 자신도 마치 쇼를 진행하듯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그가 느낌표를 붙여 수시로 날리는 격정적 트윗은 과거의 방송만큼이나 극적 효과를 연출한다.

심지어 외국의 지도자들까지 트럼프를 <어프렌티스>의 틀에서 바라본다. 그를 대할 때 '고도의 협상가'라는 두려운 이미지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거래의 기술>이라는 책까지 썼지만 (정확히는 토니 슈워츠라는 대필작가가 썼다.) 실제로 그가 탁월한 협상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물음표가 따라 붙는다.

올해 초 <어프렌티스>의 제작진 두 명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쇼는 사기극이었다'고 고백했다. 그 '리얼리티 쇼'가 '리얼리티'와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사실 트럼프가 회고록을 썼던 1980년대 후반이나, 방송에 나와 화려한 집무실을 배경으로 경영수완을 과시하던 2000년대 초는 '거래의 기술'을 과시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1990년대에 초 트럼프의 사업은 30억불(약 3조 2천억 원)의 부채에 시달렸고, 운영하던 세 개의 도박장이 파산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방송출연 때까지도 회사는 큰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그에게 회생의 기회를 준 것은 '협상 능력'보다는 오히려 '방송 출연'이었다.

트럼프는 자신을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게 만드는 재능이 있으며,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가는 오락매체는 그에게 더 없이 좋은 수단이 되었다. 과거에 <어프렌티스>가 하던 역할을 이제는 트위터가 해주고 있다. 그가 '객관적 중재자'를 자임하는 다수의 언론과 사사건건 싸움을 벌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통제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트럼프가 북미 정상회담 취소한 뒤 다시 번복하는 이유에 관해 중요한 단서를 준다. 그는 상황을 온전히 주도하는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용보다는 형식이다.

트럼프는 6월로 잡혀 있던 북미회담을 회담을 취소한 시점은 불과 3주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러면서 단 한 가지 이유를 들었다. 자신은 김정은 위원장을 정말 만나고 싶었으나, 북측의 최근 성명에 담긴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의" 때문에 이 시점에서 회담을 갖는 게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진짜 이유가 아니었다. 그동안 미국과 북한이 주고 받던 '말폭탄'에 비하면, 이번 북한 논평에서 드러난 '분노와 적의'는 경량급에 속하기 때문이다. 편지에서 말한 북한의 발언이란 최선희 부상이 펜스(부통령)를 "아둔한 얼뜨기"로 지칭한 것을 일컫는다.

지난해 가을, 북미 대화 분위기가 감지되던 상황에도 김정은은 트럼프를 겨냥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제할 소리만 하는 늙다리에게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까지 했었다. 트럼프도 질새라 트위터에 "나는 김정은에게 '짧고 뚱뚱하다'고 안 하는데 왜 그는 내게 '늙다리'라고 욕하는지 모르겠다"고 응수했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그 뒤에 따라붙은 글귀였다.

"어쨌든 나는 그와 친구가 되기 위해 무척 애쓰고 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그러다가 올 1월에는 또다시 설전이 오갔다. 트럼프는 다시 트위터에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자기 책상 위에 핵버튼이 있다고 한다'며, "이 쪼들리고 굶주린 정권에서 온 누군가 그에게 좀 말해주면 좋겠다. 트럼프 책상 위에는 더 크고 강력한 핵버튼이 있고, 이건 제대로 작동하기까지 한다고!"

이런 상황까지 겪은 트럼프가 자신도 아닌 펜스가 모욕당했기 때문에 회담을 취소했다는 말이 믿어지는가?

우려되는 미 정부의 대북 인식 부족

북한도 마찬가지였지만, 그에 앞서 펜스가 북한을 향해 쏟아낸 발언도 시기나 내용 면에서 적절하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가 폭스뉴스에 나와 "북한이 미국의 충돌하면 리비아 모델의 최후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북한 지도자도 카다피처럼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 발언은 볼튼의 '리비아 모델' 발언이 북한의 심기를 잔뜩 자극한 상태에서 나왔다. 오죽하면 보수방송의 진행자조차 놀라 "그건 협박 아니냐"고 물었을까. 펜스는 태연히 "협박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답했다. 당사자의 의지에 달린 미래의 사태를 '사실'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큰사진보기'거 한번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군'  (워싱턴DC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전날 자신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 이후 나온 김계관 북한 외무성의 담화에 대해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라며 "아주 좋은 뉴스를 받았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단지 시간(그리고 수완)이 말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소비자 보호 및 규제 완화, 경제성장 관련 법안 서명식에서 북한문제에 언급하며 손제스처하는 모습.
▲ '거 한번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전날 자신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 이후 나온 김계관 북한 외무성의 담화에 대해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라며 "아주 좋은 뉴스를 받았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단지 시간(그리고 수완)이 말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소비자 보호 및 규제 완화, 경제성장 관련 법안 서명식에서 북한문제에 언급하며 손제스처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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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상대국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가 있다면, '리비아'의 '리'자도 꺼내지 말았어야 옳다. 완성된 핵 능력을 지니지 못했던 리비아와 북한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오류일 뿐 아니라, 수장이 살해당한 나라를 언급하며 그 '모델'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화의 자세로 보기 어렵다.

그 발언이 상대에 대한 모욕이라는 사실을 떠나, '리비아 모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리비아 꼴이 날 것이다'가 논리적인 요구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이 이 시점에서 대화를 원하는 이유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북한이 미국의 압박전략이 주효했다고 믿고 있으며, 북한의 최대 관심사가 돈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북한경제는 2011년부터 계속 플러스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2016년에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9%에 달했다. 금세기 들어 가장 높은 성장세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이들은 주민들의 삶이 현저히 개선되었으며, 개인들의 휴대전화는 물론 자동차를 소유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고, 대규모 건설현장도 쉽게 볼 수 있다고 증언한다.

이러한 성과가 미국 주도의 경제봉쇄와 유엔 제재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압박작전'이 북한을 대화국면으로 이끌었다고 볼 수는 없다. 북한의 입장에서 핵은 안전보장 수단이지, 투자수단이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를 대북 투자와 간단히 맞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북한이 최근 성명에서 밝혔듯, 그들은 '핵능력과 경제원조를 맞바꾸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북한이 핵개발을 시작한 후 일관되게 유지해 온 입장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이 발언을 듣고 '놀라며 분개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그는 '북한의 태도가 바뀌었다'며 중국에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트럼프는 한반도에 기회이자 위기

그동안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저주의 엇갈림'이 계속되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처럼 대결보다 평화를 추구하는 정부가 집권하면 미국에는 부시같은 호전적 냉전세력이 들어섰고, 미국에 합리적 진보정권이 집권하면 한국에 이명박과 박근혜같은 냉전세력이 들어섰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는 더 없이 좋은 기회다. 북한에 매우 완고한 힐러리 클린턴이라면 이 지점까지 오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뛰어난 중재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북한이 대화에 열정을 보이며 나선 까닭도 여기에 있다. 현 정부의 진정성을 읽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북미 대화를 중재할 역량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기회를 의미한다.

그러나 현 미국 정부가 '통제의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까닭에, 기회는 언제든 위기로 돌변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원하는 단기간의 해결 방식이 문제의 본질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북한이 바라는 체제 보장은 선언만이 아닌 구체적 실천으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믿을 만한 방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이행되지 않는 한, 북한은 핵에 대한 통제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회담 마치고 나오는 남북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두번째 정상회담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통일각 입구 양쪽에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가 도열해 있다.
▲ 회담 마치고 나오는 남북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두번째 정상회담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통일각 입구 양쪽에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가 도열해 있다.
ⓒ 사진제공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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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북미회담에서 단계적이고 점진적 해결책이 논의 될 수밖에 없고, 이는 '화끈한'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트럼프의 욕망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는 미국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던 상황에서 벗어났다. 트럼프의 '취소' 선언 후 급박하게 이뤄진 2차 남북 정상회담은 현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단순한 수사학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런 면에서 '협상가'라는 호칭은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에게 돌아가야 한다. 물론 잘 돼도 비난하고, 잘 안 돼도 비난하는 세력이 있다. 냉전주의자들의 태도를 보면, 트럼프의 북미회담 취소는 '자기충족적 예언'에 가깝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이들이 계속 판을 흔들어 댄 뒤, 대화의 진행이 순탄치 않게 되자 '봐, 내가 뭐랬어'라고 말하는 꼴이다.

미국 정부는 평창 올림픽 직전까지도 '북폭 시나리오'를 말했고, 주한미군은 지난달 4월 한반도 전쟁을 대비한 민간인 철수 훈련까지 했다. 미국이 영변의 핵시설을 폭격하면, 북한의 보복공격은 차치하고라도,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체가 방사능 오염지대가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북미정상회담 날짜가 6월 지방선거에 유리하니 불리하니를 따지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2005년부터 2년간 위스콘신대학교-매디슨 동아시아센터에서 남북문제를 강의했습니다. 현재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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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드득~’ “쉿! 큰귀박쥐가 나타났어”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5/28 11:59
  • 수정일
    2018/05/28 11:5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조홍섭 2018. 05. 28
조회수 260 추천수 0
 
‘바이오블리츠 2018’ 르포
 
24시간 생물종 탐사·기록 위해
대전 만인산에 470명 모였다
대도시 근처인데도 1368종 확인 성과
 
올해 처음 포함된 박쥐 조사에서
큰귀박쥐, 물윗수염박쥐 등 6종 발견
‘미기록종’ 거미 2종 확인하고
교란종 ‘단풍잎돼지풀’엔 한숨도

 

메인.jpg» 대전 만인산에서 26~27일 생물다양성 탐사 대작전(바이오블리츠)이 열린 가운데 26일 참가자들이 이승규 국립수목원 곤충분류연구실 박사로부터 알코올이 든 곤충 채집병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대전/조홍섭 기자
 
“있다 있어!” “뭐 잡혔어?” “20㎑?”
 
26일 밤 대전 만인산 정상(해발 537m) 부근에서 태블릿피시와 휴대폰 모양의 초음파 감지기를 들여다보면서 박쥐 조사원 두 명이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지직거리는 전파 소음 사이에 두드드득~ 하는 특이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 귀에 안 들리는 박쥐의 초음파 신호를 가청범위 소리로 변환하는 장치로 유럽 등에선 박쥐 동호인 사이에 널리 쓰인다”고 김선숙 국립생태원 박사가 설명했다. “박쥐 종마다 초음파의 주파수와 파형이 달라, 감지한 음파를 녹음하면 50m 거리 안에 어떤 종의 박쥐가 사는지 알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m2_Gilles San Martin-Myotis_daubentoni01.jpg» 큰 귀와 긴 꼬리를 지닌 큰귀박쥐.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박쥐 조사는 국립수목원 등의 주관으로 26~27일 만인산에서 열린 ‘바이오블리츠 코리아 2018’에 처음 포함됐다. 이날 확인한 큰귀박쥐는 큰 귀와 긴 꼬리를 지닌 특이한 모습에 몸무게가 20g이 넘는 대형 종으로 좀처럼 관찰되지 않는 희귀종이다. 김 박사는 “이 지역 조사가 처음이어서 한 종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큰귀박쥐가 나왔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날 조사에서는 이 밖에 연못 위를 날며 물벌레를 사냥하던 물윗수염박쥐, 집박쥐, 관박쥐 등이 확인됐다.
 
생물다양성 위기 느끼는 행사
 
m2-1.jpg»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장비를 가지고 전문가와 함께 채집에 나서는 일반인 곤충 탐사대의 발길이 가볍다.
 
바이오블리츠(생물다양성 탐사 대작전)는 모든 생물 분류군 전문가와 일반인이 함께 특정 지역의 생물종을 24시간 동안 찾아 목록을 만드는 과학참여 활동이다. 생물다양성 보전의 시급성을 일반인과 미래 세대가 느끼고 배우며, 전문가들은 분야를 건너뛰어 정보를 공유하는 기회이다.
 
지렁이 조사도 이번에 처음 이뤄졌다. 만인산에서는 적어도 18종이 확인됐다. 조사에 나선 홍용 전북대 교수는 “이동능력이 떨어지는 지렁이는 고유종 비율이 높아 생물다양성의 중요한 척도”라며 “미기록종으로 추정되는 한 종을 채집했지만, 해부 등 정밀 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팀은 보통 지렁이와 달리 몸 빛깔이 푸르스름하고 땅 위로 나오면 용수철처럼 몸을 꼬는 특이한 행동을 하는 똥지렁이를 채집하기도 했다.
 
거미 조사에서도 국내에서 보고되지 않은 미기록종이 2종 나왔다. 최용근 한국동굴생물연구소 박사는 “주차장 근처에서 잠깐 조사를 해 접시거미 종류의 미기록종을 찾았다”며 “워낙 거미에 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m3.jpg» 대전의 깃대종인 이끼도롱뇽. 이상철 박사 제공
 
양서파충류 조사단은 하늘다람쥐, 감돌고기와 함께 대전의 깃대종인 이끼도롱뇽을 확인했다. 이상철 인천대 자연환경연구소 박사는 “아가미가 없어 육상생활을 하는 이끼도롱뇽은 거의 대부분은 아메리카대륙에 분포하고 한국에는 예외적으로 분포해 생물 지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종”이라고 말했다. 조사팀은 등딱지 길이가 40㎝인, 방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자라를 확인하기도 했다.
 
곤충 조사는 일반인 참가자에게도 가장 인기 있는 분야다. 등불로 유인하는 야간 조사도 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날씨도 화창했지만 찾은 곤충 종 수는 기대에 못 미쳤다. 이승규 국립수목원 박사는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곤충이 활동을 꺼렸고,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철이어서 출현한 종이 많지 않았다”며 “보름달도 야간 조사에 방해요인이었다”고 말했다.
 
m4.jpg» 등불을 밝혀 곤충을 유인하는 야간채집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채집한 곤충을 살펴보고 있다. 이날 자나방류가 많이 날아들었다.
 
반면 식물종은 산이 높지 않고 도시 인근이었는데도 예상 밖으로 다양해 600여종이 확인됐다. 김윤영 국립수목원 박사는 “기존에 연구가 부족했던 사초과 식물과 양치류를 집중 조사한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먹티재 부근에서는 비무장지대 인근에 많은 생태계 교란종인 단풍잎돼지풀이 숲 안쪽으로 번지고 있어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행사에는 일반인 250여명, 전문가 144명 등 470여명이 참가했다. 특히, 전문가와 함께 조사를 진행할 정도의 능력을 지닌 아마추어 ‘고수’ 19명이 준전문가로 처음 참가했다. 양서파충류 준전문가로 참가한 김진규(14·인천 검암중 2)군은 “이끼도롱뇽과 자라를 찾아 보람이 있었다. 사진으로 보던 생물을 직접 관찰하고 전문가와 함께 조사해 뿌듯했다”고 말했다.
 
m5.jpg» 곤충 부스에서 준전문가들이 변봉규 한남대 교수와 함께 채집한 곤충을 분류하고 있다.
 
우리 옆에 많은 생물이 산다
 
학생과 일반인은 전문가와 함께 걸으며 조사를 한 뒤 저녁에는 전문가로부터 흥미로운 생물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노승진 국립수목원 박사후연구원은 암컷만 날개가 없는 나방인 도롱이벌레 이야기로 과학에 관한 흥미를 북돋웠고, 김윤영 국립수목원 박사는 만인산에서 직접 채취한 먹을 수 있는 식물인 뱀딸기 잎, 참취, 더덕, 개갓냉이, 산차, 음나무 순 등을 아이들에게 시식하도록 하기도 했다.
 
m7.jpg» 만인산에서 채취한 산나물을 직접 먹어보는 참가자들. 생물다양성에 대한 다양한 체험과 소통을 나누는 자리였다.
 
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 자녀와 함께 일가족이 참가한 정상엽(서울·47)씨는 “전문가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는 귀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참가한 윤선웅(12·경기 고양 저동초 6)군은 “평소 살아 있는 생물은 다 좋아했는데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굳혔다”고 말했다.
 
m6.jpg» 참가자들로부터 인기를 모은 페트병으로 어항 만들기 행사를 벌인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 회원들.
 
이번 만인산 바이오블리츠에서 24시간 동안 확인한 생물종은 모두 1368종으로 예상을 뛰어넘었다. 관속식물이 607종으로 가장 많았고, 곤충 514종, 거미 47종 등이 뒤를 이었다. 처음 조사한 지렁이는 19종이 나왔고 박쥐 6종이 추가되면서 포유류는 15종이 됐다. 지의류도 18종이 기록됐고 버섯도 33종이 나왔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은 “대도시 근처 녹지에서 대관령이나 경기도 가평 수준의 생물다양성이 확인된 것은 사초과와 양치류 식물과 박쥐, 지렁이 등 이제까지 부족했던 분야의 조사가 새롭게 추가된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전/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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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정상회담 앞서 판문점-싱가포르-뉴욕 채널로 '총력 협상'

北美, 정상회담 앞서 판문점-싱가포르-뉴욕 채널로 '총력 협상'

성김-최선희 판문점협상 이틀째…싱가포르서 곧 '의전·경호' 논의
차후 김영철-폼페이오 채널 가동후 트럼프 회담 개최 최종결정할듯

 

판문점 협상 성 김 미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판문점 협상 성 김 미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사진은 이번 실무회담에 참가한 미국 측 협상단 대표 한국계 성김(왼쪽)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가 지난 2016년 9월 13일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는 모습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2017년 10월 20일 모스크바 비확산회의에 참석한 모습. 2018.5.28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싱가포르=연합뉴스) 조준형 이상현 기자 = 북미 양국이 정상회담 사전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정상회담 취소선언 이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통한 북한의 '유화제스처', 그리고 예상을 뛰어넘은 2차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북미 사전협상이 28일로 이틀째를 맞았다.

북미 양측은 기존의 뉴욕 채널을 통한 기본적인 의견 교환 이외에 정상회담 예정지인 싱가포르 현지에서 의전·경호 등에 대한 북미 논의를 하루이틀새 열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27일에 이어 이날도 판문점 회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례적으로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이뤄지는 북미 사전협상에서는 의제 조율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쟁점이라고 할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이뤄지는 것이다.

사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모두 '통 큰' 성과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판문점에서의 성 김-최선희 의제 조율은 북미정상회담의 '성사'는 물론 '성과'를 담보하는 중요한 담판이라고 할 수 있다.

북미정상회담 취소선언 이후 태도를 바꿔 회담 재개 의지를 보여온 트럼프 미 대통령은, 판문점 사전협상의 결과를 보고 자신의 방식대로 다시 북미정상회담을 재개할지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시선이 다시 판문점으로 쏠리고 있다.

북미 양측의 사전협상 대표들이 성 김 대사와 최선희 부상인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나름대로 상대를 가장 잘 아는 최고의 베테랑들이어서다.

김 대사는 주한 미국대사와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미국 내 최고의 북핵·북한 전문가이고, 최 부상도 뛰어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북한 내 '대미통'으로서 최전선에서 대미 외교를 이끌어왔다고 할 수 있다.

형식도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김 대사가 여전히 미국을 적대시하는 북한 측의 판문점 통일각으로 넘어가 담판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런 파격의 배경에는 형식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북미 간 의제 조율의 최대 난관이라고 할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와 관련해 어떻게 접점을 찾을지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부분과 관련해 북한의 양보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CVID를 강조하면서 고강도 검증을 수반한 철저한 비핵화를 핵심으로 한 일괄타결을 요구하는 미국에 대해 북한은 여전히 단계적·동시적 해법을 주장하며 맞선 상황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유연성 있는' 일괄타결론과 '신속한 단계적 비핵화'로 다소 후퇴했고, 북한 역시 며칠 새 부쩍 유연한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접점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vs 김정은…엎고 뒤엎는 '세기의 수 대결'(CG)
트럼프 vs 김정은…엎고 뒤엎는 '세기의 수 대결'(CG)[연합뉴스TV 제공]

 

문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CVID를 북한이 수용할지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북미 간 회담에 합의하고 실무 협상을 한다는 것은 미국에서도 북한의 그런 의지를 확인한 것이 아니냐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그동안은 비핵화 방식이나 CVID 문제에서 어떻게 조율할지 합의가 안 돼서 실무협의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 등을 통해 접점을 찾았기 때문에 실무자들이 기술적인 문제를 논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판문점 북미 사전협상에서는 CVID 논의 연장선에서 비핵화에 조응한 체제안전보장 및 평화체제 구축 논의, 각종 지원에 대한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요구해온 미국은, 북한에 선(先) 핵무기 일부 반출 또는 북한의 핵무기 리스트 제공 등의 선제적 조치를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물론 북한 역시 그에 상응해 불가침조약이나 북미 수교 등의 체제 안전보장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을 위해선 중간 단계의 대북 안전보장조치로서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에 경제적 지원을 거듭 강조하고 있어 그와 관련해 미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안을 제시하고 있는지 주목된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6·12 북미정상회담 개최 준비를 위한 북미 실무회담이 북측에서 열린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며 "북한은 언젠가는 경제적으로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조 연구위원은 "초기에는 북한이 핵탄두 일부를 반출하거나 만약 있다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제거하는 등의 조치로 진정성을 보여주고, 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연락사무소 개설과 금융제재 유예 조치 등을 실시하는 방안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함께 싱가포르에서는 조 헤이긴 부비서실장이 이끄는 미국팀과 '김정은 일가의 집사'로 불리는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이 이끄는 북한팀이 의전·경호·보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 양측은 판문점-싱가포르-뉴욕 채널을 통해 의제, 의전·경호 등을 조율하고 나서 어떤 식으로든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간 고위급 회담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과정을 거쳐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다시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6월12일에 한다고 보면 2주정도 남았다. 실질적 문제에 대해 깊게 다뤄나갈 것"이라며 "대통령이 움직이게 되면 경호와 의전에도 주의가 필요한 만큼 굉장히 바쁘게 접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apy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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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새롭게 보기 "이제 평화능력을 기를 때"

[인터뷰] 통일 독일 일상사 이야기한 이동기 강릉원주대 교수
2018.05.28 09:18:23
 

 

 

 

내년은 독일 통일의 핵심 사건인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이다. 장벽 붕괴 후 채 1년이 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 동서로 갈라졌던 독일은 다시 하나의 나라가 되었다. 
 
독일은 한국이 유일하게 공부할 수 있는 통일의 교과서다. 그들이 행한 실수까지도 우리에게는 교훈이 된다. 남북이 새로운 전기를 써내려갈 준비를 하는 지금, 독일 통일을 다시 알아야 할 때다. 
 
우리가 겉핥기식으로 마냥 좋게만 보는 것과 달리, 독일은 여전히 통일을 공부하고 있다. 통일이 아직 요원하다는 지적이 이제는 대세다. 여전히 동서독 간 경제·사회·문화적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제도의 완성만이 통일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제 본격적으로 화해의 물결이 낳을 민간의 변화와 미시사에 더 주목해야 할 때임을 방증하는 사례다. 특히 통일 후 동독의 변화는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한다. 동독에 나타난 변화와 부작용은, 우리가 북한에 일어날 변화의 반면교사로 삼아 미리 대비할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이동기 강릉원주대 교수를 만나 독일 이야기를 듣고, 전환의 시기에 한국이 독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을 들어봤다. 이동기 교수는 독일 예나 프리드리히실러대학교에서 독일통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독일 전문가다. 특히 옛 동독 지역에서 학위를 땄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에선 극히 드문 동독 전문가다.  
 
이 교수는 우리가 놓치기 쉬운 독일 통일의 이면을 지적했다. 여전한 동서독 격차가 동독 사회에 어떤 현상을 낳았는지를 지적하고, 남북이 화해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이 무엇인가를 설명했다. 특히 그는 탈북자가 통일을 위한 새로운 당위로 재정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한반도는 통일 전 독일 못잖은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당장 '99%' 예정됐다 여겨졌던 6.12 북미 정상회담도 5.26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고서야 다시금 탄력을 받게 됐다. 이처럼 한반도 지정학적 위치와 북한의 특수성, 그리고 핵 문제는 독일 통일과 한국 통일을 같은 선상에서 단순화하는 걸 가로막는 상수다. 당장 해당 인터뷰도 북미 정상회담의 불확실성에 의해 게재일을 끊임없이 바꿔야만 했다.  
 
그럼에도, 본문에서 서독과 동독을 '남한'과 '북한'으로 바꿔 읽는 건 우리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터뷰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이동기 강릉원주대 교수. ⓒ프레시안(이대희)

동서독은 여전히 한 사회가 되지 못했다 
 
프레시안 : 동서독 격차가 여전하다고 들었다. 지금도 꾸준히 독일을 방문하시는데, 실제 눈에 보이는 동서독 격차가 어느 정도인가? 
 
이동기 : 최근 7~8년가량 독일 경기가 매우 좋다. 일각에서는 '제2의 라인강의 기적'이라고까지 칭할 정도다. '이 번영은 끝이 있을까'는 내용의 기사가 나올 정도다. 
 
동독 지역인 신연방주도 부분적으로는 그 혜택을 누린다. 하지만, 동서독 격차는 여전히 크다. 동서독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만큼, 두 지역 격차를 피부로 느낀다. 도시 외형부터 사람들의 분위기까지 여전히 다르다.  
 
동독지역인 신연방주의 임금 수준, 일인당 국민소득과 가처분 소득 및 노동생산성 등 각종 경제지표가 대체로 서독의 70%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한 때 그 지표들이 40-50%에 불과했으니 이제 좀 나아졌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동서독 지역의 불균형을 확인할 수 지표임에는 분명하다.  
 
인구 분포 상황도 다르다. 서독 지역 인구는 계속 늘었지만, 동독은 계속 줄었다. 2013년 기준 통계를 보면,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이 포함된 작센주를 제외한 동독 주들, 즉 튀링엔과 작센안할트, 메클렌부르크-폼메른 주들은 모두 여전히 유출 인구가 유입 인구보다 많다. 게다가 동독의 남녀 성비를 보면 남성이 많고 여성이 적다. 튀링엔과 작센안할트 주의 남성 비율은 53%인데, 20~30대 청년 연령층에서는 훨씬 높다. 작년 통계에 따르면, 동독 지역의 작은 도시나 시골에는 남성 100명 기준에 여성이 56명밖에 되지 않는 곳도 꽤 있다. 
 
동독의 젊은 여성들이 서독으로 이주하기 때문이다. 동독 남성들도 일자리를 찾거나 성공을 위해 서독으로 이주하지만, 그들 상당수는 서독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동독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반면, 동독 출신 대졸 여성들은 서독 지역으로 가서 직장을 구하며 동독 지역을 빠져나가 서독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프레시안 : 남녀의 적응도가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이동기 :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간략히 말하자면, 동독 지역 여성은 서독 여성과 경쟁이 가능하지만, 동독 남성들은 경쟁력이 떨어진다.  
 
프레시안 : 남녀가 주로 종사하는 산업이 달라서인가? 
 
이동기 : 종사하는 직업 분야의 차이 때문은 아니다. 동독 남성과 여성의 취업과 업무 및 성과 능력에 차이가 존재한다. 동독 지역은 사회주의 시기의 영향으로 여성들의 취업이나 사회 진출에 우호적이다. 동독 여성들은 오히려 서독 여성들에 비해 더 '해방'적이거나 자립적 인간이 되도록 교육을 받았다. 이를테면, 동독 지역 초중고교에서 여성 교사 비율은 서독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그것은 남학생들에 비해 여학생들에게 교사와 학교에 대한 친밀감을 강화했다.  
 
동독 여학생의 학업 성취 능력과 사회적 소통 능력 등이 남학생에 비해 높고, 서독 지역 여학생들에 견주어 모자라지 않다. 동독 출신 고학력 여성들은 동독 지역에서 자신들의 능력에 걸맞은 취업 기회나 출세 가능성을 보지 못하기에 일단 서독 지역으로 이주하면 동독 지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반면, 동독 출신 남성들은 냉혹한 경쟁과 성과 위주의 서독 사회에서 적응을 잘 못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열패감과 소외감을 안고 동독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서독 중심의 주류 사회에 거리를 둔다.       
 
흡수 통일이 낳은 부작용 
 
프레시안 : 통일된 지 30년이 되어간다. 지금 취업시장에 나오는 이들은 통일 후 세대인데, 그들도 자유 경쟁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다니 얼핏 이해되지 않는다. 
 
이동기 : 일상문화와 경험세계에서 남겨진 가치와 규범은 제도가 바뀐다고 순식간에 사리지지 않는다. 동독식 사회주의 가치나 규범이 통일과 함께 끝나지 않았다. 가족과 지역의 위기나 소외를 보면서 주민들은 과거 삶의 방식과 가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재발견하고, 전승한다.  
 
동독의 사회주의 경험은 동독 주민들에게 개인주의와 다른, 집단적 결속과 '공공성(Gemeinsinn)'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졌지만, 동독 사회는 가족과 친족 간 결속이 유럽에서 가장 긴밀한 곳이다. 이탈리아 사회보다도 더 가족과 친족의 친밀도가 높다. 그런 가치와 문화는 단순히 제도가 달라진다고 바뀌지 않는다. 경쟁사회에서 낙오하는 것을 견딜 수 있는 기제로서 일상문화의 가치나 친족사회의 공동체성이 새로 발견되는 측면이 있다.  
 
프레시안 : 서독이 일방적으로 동독을 흡수 통일했는데, 그에 따른 반작용이 작동하고 있다고 이해해도 되나?  
 
이동기 : 그렇다. 일종의 반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흡수통일과 체제이식의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흔히 서독 일방의 흡수통일 후유증을 '내적 통합'의 실패로 규정하는데, 이 문제는 그리 간단히 설명할 수 없다. 이를테면, 급속한 흡수 통일과 일방적 체제이식은 노년이나 성인 세대가 아니라 청년 또는 소년기에 통일을 경험한 젊은 세대에게 더 충격적인 측면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된 많은 연구들이 있다.  
 
나의 논문 지도교수인 루츠 니트함머(Lutz Niethammer)는 2005년부터 몇 년간 통일 후 동독 지역의 청(소)년(15세에서 25세)을 심층 연구했다. 지금은 30대 안팎의 성년이 된 이들이다. 당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그 청소년들은 가정에서 부모 역할을 대체하고 있었다. 1990년 통일 당시 어린이였거나 통일 직후 태어난 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부모들의 권위나 지도를 경험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에게 부모는 무력하거나 좌절한 이들, 또는 현실에 실망하며 냉소하는 이들이었다. 부모 세대는 동독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주역이었으나, 통일 후 새로운 체제에서는 낙오자이거나 패배자에 불과했다. 통일 독일이 애초 동독 민주화 주역이나 참여자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 동독의 건국세대인 조부모 세대들은 줄곧 동독에 대한 긍정적 기억을 전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가정에서 부모 세대를 위로하고 부모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역할을 떠맡게 됐다. 자식과 부모 관계가 역전된 셈이다. 청소년들은 '부모의 부모'가 되었고 조부모들의 영향 하에서 동독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발전시켰다. 심지어 동독 시절을 전혀 경험하지 않았던 이들에게도 동독은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이와 관련된 최근 연구와 논의 결과가 '제3세대 동독'(Dritte Generation Ostdeutschland)이다. 그 논의에 따르면, 1975년부터 1985년 출생 동독인들은 청소년 시절 삶의 근본적 전환을 경험했다. 구조변화와 실업, (서독으로의) 이주 및 사회이동과 독재 유산 아래에서 그들은 자유를 만끽했지만, 동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성년이 되자마자 곧장 생존 투쟁에 내몰렸다. 
 
이에 따라 '제3세대 동독인'들은 한편으로 동년배 서독인들과의 근본적 차이를 확인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앞 세대 동독주민들과 자신들의 삶이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체제 전환을 온 몸으로 경험하며 완전히 새로운 삶을 모색해야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그들은 통일 후 삶의 방향을 완전히 상실한 부모 세대를 대신해 가족의 실질적 주체로 등장했다. 부모를 위로하거나 대변하고, 비극적 가족사를 감당하거나 해결하고, 가족의 트라우마도 극복해야 했다. 이 같은 성장기를 통해 제3세대 동독인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집단적 자기 정체성을 발전시켰다. 부모나 조부모 세대의 오스탈기(상자기사 참고)도 소통의 매개로 활용되었다. 그런 방식으로 동독의 통일 후 세대도 '동독인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오스탈기란?

오스탈기(Ostalgie)는 '동쪽'이라는 뜻의 '오스텐(Osten)'과 '노스탤지어'의 독일어인 '노스탈기(Nostalgie)'의 합성어로, 간략히 말해 '동독 향수' 쯤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동독 지역 주민 사이에서는 여전히 동독 제품에 대한 애착과 동독을 주제로 한 문화 상품 소비가 활발하다. 서독 담배를 피우는 이를 못마땅해 하는 문화 등이 여전하다. 
 
오스탈기는 통일 후 서독인이 동독인을 집단 대상화하면서 이에 따른 반발로 인해 커졌다. 이에 더해 통일 후 다수 동독 주민은 민족적 경험, 기억, 이야기 공동체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 같은 공동체는 오스탈기의 전승을 낳게끔 했다. 
 
얼핏 생각하기에 이는 독일 통일의 걸림돌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동기 교수는 2016년 발표한 '독일통일 후 동독정체성: 오스탈기는 통합의 걸림돌인가?' 논문에서 그 같은 시각을 반박했다. 오스탈기는 어디까지나 "탈사회주의 국가에서 보이는 보편적 현상의 일부"이며 "동독 주민이 서독 주도의 현 독일정치공동체에 대항해 경계 의식을 갖고 형성한 지역정체성"으로, 동독인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이유다. 

 

▲ 동독산 제품을 주로 파는 베를린의 한 가게. 오스탈기는 자본주의와 합쳐져 동독 제품 마케팅 기법으로도 활용된다. ⓒwikimedia


오스탈기, 정체성 찾으려는 동독의 몸부림

 

 

프레시안 : 오스탈기가 통일 후 등장했다는 사실은 남북 관계 전환기를 맞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그런데, 교수께서는 2016년 발표한 논문에서 오스탈기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동기 : 오스탈기는 통일 후 동독인의 '동독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에도 특정 역사적 사건과 경험이 제주도 정체성이나 전라도 사람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오스탈기는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지닌 정치적 집단 정체성이 아니라, 일종의 지역정체성이자 문화정체성이다. 오스탈기는 공산주의 체제의 특정 인물, 공산주의 시절 강령 등의 부활로 이어지진 않는다. 물론, 오스탈기가 정치적으로 특정한 세력과 연결되어 그들에 의해 악용되거나, 과잉 이데올로기화해 투쟁의 도구가 된다면 위험하다. 그렇다면 통일 이후 독일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박정희 시절의 향수를 지니고 그의 독재를 미화하거나 범죄를 상대화하는 건 현 민주주의 체제와 규범을 흔드는 위험한 움직임이다. 실제 러시아나 동유럽 사회에서 다시 부는 공산주의 향수에는 민주주의 거부 정서가 어느 정도 있다. 그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오스탈기는 그렇지 않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전반에 걸쳐 동유럽 전역에서 노스탤지어가 등장했다. 보편적 현상인 셈이다. 다만 노스탤지어에는 두 종류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스베틀라나 보임의 분석에 따르면, 하나는 복고적(restorative) 노스탤지어고 다른 하나는 성찰적(reflective) 노스탤지어다. 오스탈기는 후자에 해당된다. 오스탈기는 정치적 힘이라기보다 문화적 현상이고, 공격적 움직임이 아니라 방어적 성격을 띤다. 성찰적 노스탤지어는 과거를 마냥 이상화하지 않는다. 현재를 성찰하는 동시에 과거에서 의미 있는 기억과 경험을 끌어올려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현상이 오스탈기다. 
 
프레시안 : 서독의 강력한 가치가 휩쓸어버린 사회에서 동독인이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찾은 '나의 뿌리'가 오스탈기라고 이해하면 될까?
 
이동기 : 그렇다. 통일 후 동독에 밀어닥친 서독의 거대한 힘은 동독인에게 자신과 자신의 가족, 자기 지역의 모든 것을 부정하게끔 했다. 이에 대한 방어적 기제로서 동독인들은 '우리에게도 좋은 것이 있다'는 재인식을 하게 됐다. 오스탈기는 서독 주류 정치가들의 일방적 체제 이식에 맞선 긍정적 자기 인식이자 자기 의미 부여 과정이었다. 자기위로와 자기인정을 통해 통일 후 독일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오스탈기가 기본적으로 담화공동체의 성격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동독 지역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경험을 통해 오스탈기가 형성됐다. 사실 동독인들은 (독재 체제가 무너진) 통일 후 비로소 처음으로 자유롭게 발언하며 소통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얻었다. 자연히 자발적 담화공동체 움직임은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단순히 오스탈기를 '서독의 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복고' 수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독일의 주류 담론, 주요 언론은 동독인들의 이야기에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통일 후 주류 언론과 서독 출신의 지배 정치가들은 동독을 비정상 체제로 간주했을 뿐, 동독 주민들의 일상 경험과 집단 기억을 무시했다. 자연히 동독인들은 그런 일방적이고 불균형한 담론 지형에 불만을 가졌다. 우리도 정상적인 삶을 살았는데, 우리가 정상적인 삶을 살았기에 독재를 무너뜨렸는데 이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으니 당연하지 않겠나. 통일의 주체가 마땅한 대접을 못 받았다. 내 목소리를 낼 길이 없으니, 그에 대한 반응으로 동독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 담화 공동체가 자연히 연대 경험으로 강력하게 이어졌다. 오스탈기가 통일 후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강력한 집단정체성으로 연결된 배경이다. 
 
탈북자를 보는 색안경 내려놓을 때 
 
프레시안 : 서독인들의 동독 대상화, 서독의 흡수통일이 오스탈기를 낳은 원인의 하나로 보인다. 한국에도 탈북자 대상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탈북자 사회를 통해 남북 교류가 커질수록 북한에서도 동독의 오스탈기화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리라 짐작할 수도 있음직하다. 실제 우리는 북한을 악마화해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이동기 : 일단 탈북자를 통해 북한 주민의 생각을 유추하는 건 어렵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주로 중국 접경 지역에 위치한 특정 지역민들이 많이 오는데다, 탈북자들의 생각이 북한 체제에 관한 북한 주민의 생각을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옛날 분단 독일에서도 많은 동독인이 서독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동독 이탈 주민의 10% 정도는 서독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동독으로 돌아갔다. 정치적 요인보다 경제적 요인, 사회적 요인이 컸기 때문이다. 
 
한국의 탈북자 사회에서도 이 같은 일이 일어난다. 탈북자 상당수는 정치적 요인보다 경제적 요인으로 분단선을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대했던 경제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탈북자가 한국 사회에 긍정적으로 적응하기란 당연히 어렵다. 이 상황에서 탈북자가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되거나 가십 거리로만 소비되고, 고유한 경험과 생애사를 가진 사회적 주체로 자리 잡지 못한다면 이들은 당연히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실제 탈북자 중에도 일부는 북한으로 되돌아가지 않나. 우리는 이 같은 현상을 그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오직 이데올로기적으로만 보려 했다. 그래선 탈북자 사회와의 통합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앞서 동독의 오스탈기가 기본적으로 담화공동체의 성격을 띤다는 점을 언급했다. 탈북자 사회에서도 담화공동체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탈북자들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한국에 와서야 처음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지향과 판단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의 자유로운 생각과 판단을 접할 수 있다. 그들 나름의 자유로운 발화와 소통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통해 탈북자의 북한 사회에 대한 여러 모순적 경험과 복합적인 기억들이 그대로 재현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그들은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반드시 단일한 태도나 입장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의 날 것 그대로의 생각이 우리 사회에 전달될 필요가 있다. 탈북자들은 김일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의 경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더 들어 볼 필요가 있다. 인지의 차이와 해석의 모순들도 드러내야 한다. 
 
프레시안 : 한국 사회가 탈북자에게 듣고 싶어 하는 답은 정해져 있다. 북한을 악마화하고, 탈북 과정을 스펙터클화하고, 한국을 찬양하는 내용만을 원한다. 언론은 오직 이들 주제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동기 : 우리는 대체로 그들에게서 자극적인 이야기만을 원한다. 그들에게 어떤 입장이 있으리라 전제하고 탈북자에게 접근하려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탈북자 개개인이 지닌 한국에 관한 생각, 정치적 견해는 모두 다르다. 이 다름을 그들 스스로 소통하면서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탈북자 사회를 연결하는 일종의 끈이 드러난다. 이 끈이 드러나면, 탈북자 사회도 담화 공동체로 성장하게 된다. 더 열린 이야기 무대가 마련되어야 할 이유다. 
 

▲ 이제 정치 지도자 간 교류를 넘어 민간의 교류 물꼬를 틀 때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남북, 자유로운 민간인 교류부터 
 
프레시안 : 독일의 통일이 급작스러웠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동서독은 통일 전에도 20여 년에 걸쳐 꾸준히 교류했다. 한반도에도 남북의 교류가 안정적으로 이어져야 할 텐데, 아직은 정권에 따라 교류와 대결이 교차되는 현실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교류가 부족하다보니 남북을 잇는 접점도 크지 않다. 현재로서는 탈북자가 유일한 남북의 접점으로 보이는데, 앞서 탈북자 사회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왜곡되었음을 지적했다. 교류의 가능성을 우리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이동기 : 탈북자는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아야 할 존재다. 탈북자 자체가 남북의 인적 연결고리다. 이산가족이 있지만, 이분들은 안타깝게도 연세가 많아 사실상 사라지고 있는 존재들이다. 탈북자는 남북한 인적 연결의 새로운 고리다. 이 때 탈북자들을 민족주의적 맥락에서 민족 유대나 연대의 핵심으로 간주하는 것도 잘못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을 무작정 북한 이해의 통로나 통일의 주역으로 끌어 올리는 것은 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하다. 
 
탈북자는 분단이 낳은 '이주민'이다. 탈북자나 탈북 현상을 냉전 이데올로기나 체제 대결 맥락에서 보지 않고 경제적·사회적 요인이 낳은 이주의 한 양상으로 본다면, 그들의 생애사적 고통이나 인도적 요구에 더 개방적으로 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그들이 가족과 친지를 정기적으로 만나거나 재결합하는 것을 추진하면서, 기왕에 이산가족 상봉 만남이 지닌 인도적 의미를 더 폭발적으로 복원해야 한다. 적어도 동서독은 그랬다. 
 
프레시안 : 통일 전 동서독 간에는 어느 정도로 자유로운 인적 왕래가 보장됐나?
 
이동기 : 동서독 간 교류의 핵심 한 축은 경제 교류였고, 다른 한 축이 사람 간 접촉이었다. 두 체제는 동독 이탈 주민과 동독에 남은 가족 간의 정기적인 만남, 나아가 원할 경우 재결합까지 허용했다. 서독 사람은 비교적 자유롭게 동독을 여행할 수 있었다. 
 
나아가 두 체제는 주민의 합법적 이주도 보장했다. 동독의 65세 이상 노인은 서독으로 합법적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건설된 뒤 교류나 이동이 잠시 봉쇄되었지만, 1963년부터 한 해에 가장 적게는 7000여 명, 가장 많게는 3만5000여 명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합법 이주했다. 1970년대와 80년대 동독을 이탈한 난민의 수는 매년 3000명에서 6000명이었지만 동독에서 서독으로의 합법 이주민 수는 그것의 2배에서 5배나 많았다. 대부분 가족 재결합의 형식이었다. 현재 한국의 탈북자가 지난해 말 기준 3만여 명을 조금 넘는 수준인데, 동독 이탈 주민의 수는 한 해에 그 정도 규모였다.  
 
우리도 일회성 상봉을 넘어서는 상상을 해야 할 때다. 필요하다면 정기 방문과 가족재결합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동독은 경제적 이익이 있었기 때문에 합법 이주를 받아들였고, 매년 적게는 500명, 많게는 2600명의 정치범 매매(동독 정치범들이 동독 감옥에서 석방되어 서독이나 동독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서독이 인신을 구매함)에도 적극 응했다. 우리도 북한에 그런 인적 이동과 교류 방안을 제안해야 한다. 
 
'북한 스스로 문제 해결하도록 하라' 
 
프레시안 : 최근 남북 화해의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북한을 새롭게 인식하려는 노력이 한국 사회에 보인다. 한편에서는 북한 개발 담론이 앞서면서 통일 논의를 이끌고 있다. 이에 관해 일각에서는 북한 내부 식민지화에 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동기 : 독일의 통일 관련 정책 경험자들이 공통적으로 한국에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문제가 있는 그곳(북한)이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게끔 최대한 긴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동독 체제가 무너진 후, 곧바로 서독 체제를 이식한 급속한 통일의 실패 경험을 독일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독일은 여전히 내적 통일을 완수하지 못했다. 메르켈 총리도 10년 전에 이미 수차례 "동서독 간 평등이 이뤄지기까지 4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성급하게 체제 통일을 추구한들, 진정한 통일은 이뤄지지 않는다. 
 
헬무트 콜 총리 시절 통일 전략을 세운 호르스트 텔식 전 대외정책보좌관은 한국 관련 학술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항상 '한국이 북한에 체제의 변화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북한 스스로 변화를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조차 그들 스스로 해결하게끔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흡수 통일도 조심해야 하지만, 경제 개발, 인프라 구축 등 모든 계획을 그들이 주체적으로 결정하게끔 기다려야 한다.  
 
최근 언론이나 일부 선동가들이 주도하는 북한 개발 담론 내지 북한 개발을 통한 신종 통일대박론은 조심해야 한다. 통일의 모든 작업을 우리가 주도한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어디까지나 북한과 협력은 공동 작업임을 유념해야 하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 돈을 쥐고 있다고 해서 '우리 방식대로 하면 번영하니 그저 따라와라'는 식의 태도를 통일에의 접근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프레시안 : 북한 개발 논의 자체를 반대한다는 게 아니라, 개발 결정을 온전히 북한 스스로 주도하게끔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개발에 민간 참여를 유도하려면 자본의 욕구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이동기 : 일반적인 투자라면 기술과 자본을 가진 쪽이 투자 의사 결정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남북 경협은 일반적인 협력의 범주를 벗어난다. 북한과 다국적 자본의 입장을 조심스럽게 아울러 고민해야 할 문제다.  
 
오히려 한국은 북한이 놓치고 있는 부작용과 문제들까지 함께 알릴 필요가 있다. '이곳에 자본이 투입되면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자연이 망가질 수 있다'는 식의 제언도 우리가 그들 입장에 서서 미리 전하는 진정성이 요구된다.  
 
장기적으로는 이런 사려 깊음이 더 좋다. 어쨌든 통일이 되어 북한이 개발되면 대박이 터진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분단 극복이 경제 이익 공동체 형성으로 귀결될 수 있음은 사실이고 그럴 필요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무수한 갈등과 적대 및 새로운 위험과 문제들이 생겨남을 함께 숙고하고 유의해야 한다.  
 

▲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나, 일방적인 서독 체제 이식은 진정한 통일을 가로막았다. ⓒ미 국방부

1990년 독일의 실수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때 
 
프레시안 : 개성공단 재개 가능성이 생겼다. 북한에서도 이런 모델이 늘어난다면 지역 간, 주민 간 경제 격차가 커질 텐데, 그로 인해 북한 내부에서도 새로운 갈등이 생길 듯하다. 통일 후 동독을 보면, 라이프치히 등 일부 지역이 상대적으로 크게 발전했지만 그로 인해 동독 내부에서도 격차가 생기지 않았나? 
 
이동기 : 최근 학계에서 주목하는 게 동독 내 지역 격차다. 
 
통일 이후 자본이 들어온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예나 등의 지역과 메클렌부르크 등 자본 유입이 적었던 지역의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동서독 간 차이보다는 동독과 서독의 내부 차이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인구밀도, 경제력, 취업률, 수입, 공공설비 등에서 예나나 드레스덴 같은 개발된 도시와 바우첸이나 슈텐달, 뎀민 등 저개발 지역의 차이가 아주 크다. 그렇기에 싸잡아서 '동독 문제'라고 뭉뚱그려 말하기가 이제는 어렵다. 특히 최근에는 동서독 경계 지역의 동독 도시들과 마을들도 새롭게 떠올랐다. 하지만 몇몇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동독 지역은 어쨌든 1990년 후 몇 년 간의 '탈산업화'를 아직까지 회복 못하고 있고, 오히려 동독 내부의 지역 불균형 발전으로 투자 소외 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프레시안 : 동독의 낙후 지역을 중심으로 유럽의 새로운 골칫거리인 극우 움직임이 본격화했나? 
 
이동기 : 동독 지역에서 극우 정당과 네오 나치는 최근 다시 성세를 누린다. 그러나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동독 지역의 극우 세력 조직화는 상당 부분 서독 출신자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1990년대부터 서독의 극우 세력은 동독의 민주주의 취약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자금과 조직과 이데올로기 등을 공급했다. 물론, 동독의 자생적인 조직도 일정하게 역할을 수행했지만, 동독의 극우 세력도 통일독일의 동서독이 만든 문제다.  
 
경제적 요인이 동독의 극우화에 기반을 놓았지만, 절대적이거나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동독의 낙후 지역에 극우 조직이 특정 목적으로 들어가 사회적 낙오자들을 조직화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것에 맞설 내부 세력, 예를 들어 기성 정당 조직이나 교회를 비롯한 문화적 대안공동체가 없는 곳이 위험하다. 그렇기에 경제적 빈곤이나 실업보다는 지역 문화나 소통 네트워크의 존재 여부가 극우 세력의 성패를 결정하는 관건이다.
 
프레시안 : 우리가 독일 통일로부터 배울 점이 여러 가지일 텐데,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일까? 
 
이동기 : 통일정책이나 정치와 관련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있었고, 나도 독일통일 전문가로서 많은 글을 발표했고 말을 전했다. 오늘 대화에서 초점은 정치와 일상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남북 교류와 통일 과정에서 등장하게 될 일상문화와 경험세계의 차이가 낳는 문제에 관해 우리에게 독일은 여러 교훈, 정확히 말하면 반면교사를 줬다. 사람 삶의 경험과 기억이 체제가 달라진다고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는다. 한 체제가 지닌 역사적 무게는 분명히 있다. 체제는 무너져도, 체제가 낳은 여러 가지 삶의 요소는 구성원 각자에게 내재한다. 또는 오히려 체제가 무너진 뒤에 재생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고 비핵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된 후, 우리가 평화로의 '긴 이행기'에 진입함을 명심하는 것이다. 이행기라고 함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모순과 혼재 상황, 복잡한 갈등과 다양한 이견들의 발현, 지체와 유예 상황들이 지배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함부로 북한을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북한을 개발이익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통일론이 지배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북한을 적대적 타자로 내면화했다. 북한 주민 역시 우리를 그렇게 내면화해왔다. 적대적 타자상을 극복하기란 우리 생각보다 더 힘들다. 평화로의 이행, 또는 남북한의 화해는 이중적 적대적 타자상을 극복하는 집단적 훈련의 과정이다. 그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될 오해와 불신을 극복하는 길이다. 그것을 위해선 당연히 타자에 대한 존중이 출발점이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북한과 교류를 활발히 진행할수록 동질성보다 이질성을 더 많이 발견할 것이다. 동서독도 그랬다. 교류가 활발해도 서독 청년들은 서독정체성에 빠져 있었지, 통일에 관심이 없었다. 다만 평화와 화해 의지만큼은 일관되었고 상승했다. 우리도 만날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만 부를 수는 없다.  
 
상호 이질성을 확인하더라도 더 큰 갈등을 유발하는 사건사고를 감당할 수 있는 평화능력을 길러야 한다. 평화능력은 이질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오해와 불신의 고리를 끊으려는 집단적 지혜이자 노력이다. 끊임없이 오해를 끊어내면서 새로운 상호 공존의 고리와 방법들을 하나씩 찾고 쌓아야 한다. 오해와 불신을 해결하고 조정할 줄 하는 다양한 평화 행위자들이 등장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독일 통일로부터 가장 중요하게 배워야 할 점이다. 
 
독일은 20년간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 상호 오해의 고리를 완전히 끊지 못했고, 상호 존중의 고리를 잘 꿰지 못했다. 1990년 1월 급속한 흡수통일로 방향키를 틀면서 짧은 시간에 한 쪽의 체제를 일방적으로 다른 한 쪽에 이식했기에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 독일이 여전히 통일과정을 성찰하는 이유다. 우리는 동서독 교류 역사 20년에서 많은 것을 배우면서 동시에 1990년 독일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간디가 말했듯이, 평화로 가는 길이 따로 있지 않다. 평화가 곧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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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 극적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내막

<개벽예감 300>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 극적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내막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5/28 [09:01]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억지로 취소결정 내린 핵제국의 최고권력자 

2. 광란적인 방해책동이 5월 11일부터 벌어진 까닭

3. 조선이 거부한 싱가포르 준비회담, 그리고 5.24 특별담화 발표

4. 검은 이익집단이 꺼내든 마지막 술책

5. 그래도 난관을 극복할 해법은 있었다

 

 

1. 억지로 취소결정 내린 핵제국의 최고권력자 

 

2018년 5월 24일 오전 9시 18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발신한 글에서 “서글프게도, 나는 김정은과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정상회담을 억지로 취소하였다(Sadly, I was forced to cancel the Summit Meeting in Singapore with Kim Jong Un)”고 밝혔다. 짤막한 문장 속에 매우 착잡한 심경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김정은 각하(His Excellency Kim Jong Un Chairman of the State Affairs Commission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에게 보내는,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통보한 공개서한 사본을 위에 인용한 짤막한 트위터 문장 아래에 첨부하였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서한이 조선에 전송된 시각은 오전 9시 43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이 조선에 전송되기 25분 전에 자신의 착잡한 심경을 먼저 밝힌 것이다. 자신이 바라는 바는 아니었으나, 조미정상회담을 억지로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서글픈 처지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하소연하듯...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발신한 그 한 줄의 짤막한 문장 속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서글픈 사연, 세상이 다 알지 못하는 회담취소의 내막이 담겨있다. 그 문장은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고 싶지 않았으나, 타의에 의해 억지로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서글픈 고백이었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8년 5월 24일 오전 9시 18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발신한 글이다. 그는 "서글프게도, 나는 김정은과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정상회담을 억지로 취소하였다"고 썼고, 그 밑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김정은 각하에게 보내는,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통보한 공개서한 사본을 첨부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공개서한이 조선에 전송되기 25분 전에 자신의 착잡한 심경을 담은 트위터 문장을 먼저 공개하였다. 조미정상회담을 타의에 의해 억지로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서글픈 처지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하소연하듯...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당시에 불과 20일밖에 남지 않은 조미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취소된 충격사건을 보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그 무슨 ‘거래의 달인’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그의 취소결정을 가리켜 조선을 압박하는 그 무슨 ‘특유의 협상술’이니 ‘충격요법’이니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의 서글픈 고백은 그런 잡다한 보도들이 얼마나 얼토당토하지 않고 저속한 것인지 명백히 말해준다.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한국 언론매체들의 저속한 보도내용과는 반대방향으로 흘러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미정상회담 취소는 그 무슨 협상전술이나 충격요법 같은 게 아니라, 타의에 의해 억지로 저지른 자충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조미정상회담 취소가 자기에게 자충수로 될 것을 우려했으므로, 그처럼 서글픈 심경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눈앞에 닥친 조미정상회담을 느닷없이 취소하는 사건을 일으키는 바람에 낮은 수준에 머무르던 자신의 신뢰도를 더 떨어뜨렸다. 그의 자충수는 그에게 ‘버릇없는 막말쟁이’라는 악명 이외에 ‘믿지 못할 변덕쟁이’라는 악명을 하나 더 얹어주었다. 이번 취소사건으로 미국의 동맹국들이 변덕쟁이 트럼프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되었으니, 미국에게 큰 외교손실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저지른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보다 훨씬 더 강한 충격과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가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했다는 사실이다. 누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세워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게 만들었을까? 

 

핵제국 최고권력자의 마음을 돌려세워 취소결정을 내리게 만든 놀라운 사건의 배후에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있다. 정치흑막 뒤에 정체를 감추고 백악관을 움직이는 검은 이익집단이 바로 그들이다. 나는 2018년 5월 21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비밀에 쌓인 조미정상회담 핵심의제, 마침내 모습 드러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공동의 이해관계로 상호결탁한 미국의 극우정객, 극우각료, 펜타곤, 군수산업체가 검은 이익집단을 구성하여 세계적 범위에서 침략전쟁과 무력충돌, 정권전복과 내정간섭을 획책,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하였고, 그 검은 이익집단이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검은 이익집단이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세워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도록 만들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의 흉계에 말려들어 취소결정을 내렸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명색이 핵제국의 최고권력자라 해도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서글펐겠는가! 

 

미국 언론매체들은 조미정상회담에 거부감을 가진 극우각료들 가운데 대표자로 손꼽히는 존 볼턴(John R. Bolton) 국가안보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미정상회담 취소를 권고하여, 취소결정이 내려진 것처럼 보도하였지만, 그것은 겉만 보고 속은 꿰뚫어보지 못한 저급한 인식이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검은 이익집단에 소속되어 그 집단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수많은 구성분자들 가운데 하나다.    

 

원래 검은 이익집단은 미국이 적국과 협상하면 적국에게 굴복하게 된다고 강변하면서, 어떤 형태의 대화나 협상도 반대하고, 오직 적국을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미국의 국익(실제로는 자기 집단의 이익)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는 극우광신자들의 집합체다. 그런 극우광신자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조미정상회담은 미국이 조선에게 굴복하는 외교굴욕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무력대결과 경제제재와 외교고립의 강도를 최고로 높인 고강도-전방위 압박을 가중시켜 조선을 기어이 굴복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검은 이익집단의 기대와 요구와 동떨어진 길로 나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검은 이익집단이 반대하는 조미정상회담 성사에 목을 매고 있으며, 자기 심복인 마익 팜페오(Mike R. Pompeo)를 국무장관에 임명하고, 조미정상회담 준비과업을 그에게 맡겼다. 

 

 

2. 광란적인 방해책동이 5월 11일부터 벌어진 까닭

 

상황이 자기들의 기대와 요구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본 검은 이익집단은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에 달라붙었다. 방해책동의 첫 움직임은, 검은 이익집단의 대변인을 자임한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2018년 4월 29일 미국 언론매체들과 두 차례 연속 대담하면서 이른바 리비아식 핵포기를 조선에 적용해야 한다고 떠들어댄 것이었다. 리비아식 핵포기 적용설은 미국이 조선을 힘으로 굴복시키고, 조선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빼앗아 미국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폭언이었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멍청이가 아니므로, 미국이 조선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빼앗아 미국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자신의 발언이 너무 황당무계한 폭언이라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가 그런 황당무계한 폭언을 토해낸 것은, 폭언도발로 조선을 심히 자극하여, 어렵사리 조성된 조미대화분위기를 깨뜨리고,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좌절시키려는 음흉한 계략이었다.  

 

그런데 지난 4월 29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식 핵포기를 조선에 적용해야 한다는 폭언을 늘어놓았을 때만 해도, 조선은 대응할 가치도 없는 황당무계한 소리를 그냥 무시해버렸다. 하지만 검은 이익집단의 도발은 폭언 한 차례로 끝난 게 아니었다. 

 

폭언도발 다음에는 검은 이익집단의 한 구성부분인 펜타곤이 감행하는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이 도사리고 있었다. 펜타곤은 예년과 달리 F-22 스텔스 전투기 편대와 B-52 장거리전략폭격기까지 동원하는 대조선전쟁연습 ‘맥스 선더(Max Thunder)’를 2018년 5월 11일부터 감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닷새 뒤 조선의 격한 반응에 움찔한 펜타곤은 B-52 장거리전략폭격기를 한반도 공역으로 차마 들이밀지 못하고, 일본열도 남방해역에서 일본항공자위대 전투기들과 합동군사훈련을 시킨 뒤 괌으로 돌아가게 하였지만, F-22 스텔스 전투기 8대는 대조선전쟁연습에 동원되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5월 13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ABC>와 대담하면서 리비아식 핵포기를 조선에 적용해야 한다는 폭언을 또 다시 늘어놓았고, 그것을 신호로 하여 익명의 소식통들이 한국 및 일본의 언론매체들을 통해 리비아식 핵포기를 조선에 적용해야 한다는 폭언을 동시다발적으로 늘어놓았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8년 5월 22일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진행한 정상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발언하는 모습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묘한 표정을 하고 지켜보는 장면이다.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좌절시키려고 광분하는 검은 이익집단의 대변인을 자임한 볼턴은 이른바 리비아식 핵포기를 조선에 적용해야 한다는 황당무계한 폭언을 두 차례나 내뱉으며 조선을 심히 자극하였고, 어렵사리 조성된 조미대화분위기를 깨뜨리고,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좌절시키려는 음흉한 계략에 매달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좌절시키려는 검은 이익집단의 방해책동이 그처럼 5월 11일부터 광란적으로 벌어진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 5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두 차례 회담을 진행하면서 조미정상회담 핵심의제와 개최지 문제를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선 대표단과 미국 대표단이 싱가포르 현지에서 만나 회담실무준비를 끝내면, 조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6월 12일에 열리게 되었다.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이 그처럼 순조롭고 신속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속이 뒤틀린 검은 이익집단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의 5월 9일 회담이 끝나자마자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에 광분하였다. 

 

 

3. 조선이 거부한 싱가포르 준비회담, 그리고 5.24 특별담화

 

조선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검은 이익집단의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 김계관 조선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 5월 16일 특별담화를 발표한 것은, 위험수위를 넘어선 검은 이익집단의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을 저지하려는 단호한 조치였다. 검은 이익집단의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을 매우 강한 어조로 비난, 질책한 김계관 제1부상의 5월 16일 특별담화가 발표되자, 당황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볼턴의 폭언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런 수습발언으로 사태악화를 막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검은 이익집단의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을 저지하려는 조선의 대응조치는 매우 강경하였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5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5월 18일 싱가포르에 파견한 조섭 헤이긴(Joseph W. Hagin) 대통령 부비서실장과 미라 리카들(Mira R. Ricardel) 백악관 부국가안보보좌관은 현지에서 조미정상회담 실무준비회담을 하려고 오랫동안 기다렸으나, 조선 대표들이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가타부타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5월 24일부 기사에서 익명의 백악관 고위관리는 “그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나, 북조선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북조선 사람들은 우리에게 전혀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사람들을 그냥 서 있게 만들었다”고 잔뜩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싱가포르에서 개최하기로 예정되었던 조미실무준비회담이 조선의 단호한 조치로 무산되자 백악관과 국무부는 조선에게 무시를 당했다며 부글부글 끓었다. 그처럼 험악해진 분위기에 편승하여 검은 이익집단은 방해책동을 더욱 광란적으로 벌였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공화당 소속 연방의회 지도자들은 싱가포르 실무준비회담이 조선의 거부로 무산된 직후부터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권고’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조미정상회담을 고대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세워 그 회담을 취소하게 만들려는 방해책동이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마익 펜스 미국 부통령이 2018년 5월 21일 <팍스 뉴스>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발언하는 장면이다. 극우성향의 언론매체인 <팍스 뉴스>는 미국의 주요언론매체들 가운데서 거의 유일하게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언론매체다. 펜스 부통령은 대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기들에게 협조하지 않을 경우, 조미관계가 리비아식 비핵화 과정처럼 끝날 수 있다는 극악무도한 폭언을 내뱉었다. 펜스 부통령의 폭언도발로 조미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최선희 조선외무성 부상이 5월 24일 특별담화를 발표하여 펜스 부통령의 폭언도발을 맹렬히 비난한 것은,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에 광분하는 검은 이익집단에게 강타를 날린 것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 와중에 결국 최악의 방해책동이 자행되었다. 마익 펜스(Mike R. Pence) 부통령은 지난 5월 21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 대담에 출연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조미회담이 리비아식 비핵화 과정처럼 끝날 수 있다는 폭언을 토해냈다. 이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검은 이익집단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조선을 리비아처럼 만들어버리겠다는 극악무도한 폭언이었다. <NBC>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펜스 부통령이 그런 내용으로 대담을 진행한 것을 불쾌하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부통령까지 나서서 극악무도한 폭언을 토해내는 바람에 조미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CNN> 2018년 5월 23일부 기사에서 “조미정상회담 기획에 관여하는 고위관리”는 조선을 자극하는 도발적인 발언을 늘어놓았는데, 그 발언을 읽어보면, 그 익명의 고위관리가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늘어놓은 도발적인 발언은 다음과 같다.

 

(1) 그는 한미군사훈련(‘맥스 선더’를 지칭함 - 옮긴이)이 끝난 뒤에 조선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기 위한 조미고위급회담을 “추가로”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지난 5월 9일 평양에서 진행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의 회담결과를 믿지 못하겠으므로, 조미고위급회담을 다시 개최하여 조선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2) 그는 미국 사찰관들이 조선의 핵시험장 폭파현장을 방문하는 문제를 조미정상회담 전에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조선이 핵시험장 폐쇄조치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3) 그는 미국 전문가들이 조선의 핵시설과 탄도미사일시설들을 방문하는 문제를 조미정상회담 전에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조선을 굴복시켜 조선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으로 가져가려는 음흉한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4) 그는 지난날 미국이 리비아에 적용하였던 ‘선 핵포기, 후 보상’을 조선의 비핵화 과정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김계관 제1부상이 5월 16일 담화에서 배격한 리비아식 핵포기를 재론하면서 조선을 또 다시 자극한 것이다.  

 

이미 마감단계에 들어선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어떻게 해서든지 좌절시키려는 검은 이익집단의 집요한 책동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최선희 조선외무성 부상이 지난 5월 24일 특별담화를 발표하여 펜스 부통령의 폭언도발을 맹렬히 비난한 것은,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으로 광분하는 검은 이익집단에게 강타를 날린 것이었다. 

 

 

4. 검은 이익집단이 꺼내든 마지막 술책

 

검은 이익집단의 광란적인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으로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격한 반응이 오가며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드디어 검은 이익집단은 비장해두었던 마지막 술책을 꺼내들었다. 마지막 술책이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세워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5월 24일부에 실린 장문의 보도기사와 <NBC> 2018년 5월 24일부 보도기사는 그들의 마지막 술책이 자행된 내막을 다음과 같이 전해주었다. 

 

2018년 5월 23일 오전 10시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5월 24일 담화에 관해 보고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심리적으로 자극하기 위해 “핵 대 핵의 대결장”이라는 말과 펜스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한 말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볼턴의 그런 수작은 쉽게 흥분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심히 자극하였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의 보고를 들으면서 “경악(dismay)했”는데,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그처럼 경악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선희 부상의 담화발표가 “매우 나쁜 신호(very bad sign)”라고 말해주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매우 나쁜 신호라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려는 불길한 징후라는 뜻이다. 볼턴의 수작에 말려든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은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는 경우 자신이 나약하게 보이고, 창피와 수치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병적인 두려움(morbid fear)”을 느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처럼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3일까지만 해도 조미정상회담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 4>

 

▲ <사진 4>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좌절시키려는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교활한 수작에 말려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려는 게 아닌가 하고 오해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는 경우 자신이 나약하게 보이고, 창피와 수치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병적인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검은 이익집단은 그처럼 심리적으로 동요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세워 결국 조미성상회담 취소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불안과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하는 착잡한 심경을 안고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 문제를 신중히 검토하기 위한 국가안보회의(NSC) 회의를 소집하였다. <NBC>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5월 23일 밤, 트럼프 대통령, 펜스 부통령, 팜페오 국무장관, 존 켈리(John F. Kelly) 대통령 비서실장,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참석한 국가안보회의 회의에서 조미정상회담 문제가 논의되었다고 한다. 그 회의가 진행된 과정을 보나마나,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은 난관이 조성되었다고 해서 조미정상회담을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을 것이고,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펜스 부통령, 켈리 비서실장은 조선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기 전에 미국이 먼저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밤이 늦도록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대통령과 각료들은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회의를 끝내고 각자 거처로 돌아갔다. 

 

그러나 조미정상회담을 기어이 취소시키려고 광분하는 검은 이익집단은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모르는 사이에 집요하고 앙칼지게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에 달라붙었다. 2018년 5월 24일 먼동이 터오던 이른 시각,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켈리 대통령 비서실장, 쌔라 헉커비 쌘더스(Sarah Huckabee Sanders) 백악관 대변인, 조섭 헤이긴 대통령 부비서실장, 닉 에이어스(Nick Ayers) 부통령 비서실장, 미라 리카들 부국가안보보좌관을 백악관 각료회의실에 불러모아놓고, 오전 7시까지 비공식 회의를 진행하였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재한 비공식 회의는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려는 검은 이익집단의 흉계대로 돌아갔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그 비공식 회의에서 조미정상회담 취소계획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매우 중대한 국가안보문제가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안보회의 회의에서 정상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소집한 비공식 회의에서 비정상적으로 논의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비공식 회의를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전담하는 팜페오 국무장관을 배제시키고 진행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조미정상회담 취소계획을 결정한 뒤에, 사저에서 집무실로 아직 출근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백악관 구내전화로 자기들의 취소계획을 보고하였다. <NBC>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을 내리도록 강하게 설득하였다고 한다.  

 

검은 이익집단의 음흉한 계략에 말려든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4일 오전 9시 경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을 통보하는 충격적인 공개서한을 발표하였다. 전 세계는 뜻밖의 사태에 경악하였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격하게 반발하였다. <NBC>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팜페오 국무장관은 이미 마감단계에 들어선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파탄시킨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난하였다고 한다. 

 

 

5. 그래도 난관을 극복할 해법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으로 뜻밖의 난관이 조성되었으나, 난관을 극복할 있는 해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두 갈래의 해결방도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우련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1) 이 글의 첫머리에 서술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을 내린 직후, “서글프게도” 조미정상회담을 “억지로”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착잡한 심경을 트위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이것은 그가 검은 이익집단의 음흉한 계략에 말려들어, 타의에 의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였음을 말해준 것이며,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음을 말해준 것이다. 그러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미련을 회담성사로 견인하면,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은 번복될 수 있었다.  

 

(2)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을 통보한 공개서한에는 “만일 당신이 이처럼 가장 중요한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생각을 바꾼다면, 주저 말고 나에게 전화를 걸거나 서한을 보내주십시오”라고 쓴 문장이 들어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각이 바뀌기를 바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드러낸 이 문장은, 검은 이익집단의 음흉한 계략에 말려든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할 것으로 오해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오해를 풀어주기만 하면,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은 번복될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자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를 풀고,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련을 회담성사로 견인하기 위한 조치를 매우 신속하게 취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서한을 발표한 다음 날인 2018년 5월 25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 특별담화에서 김계관 제1부상은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고 언명하였고,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측에 다시금 밝힌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이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를 풀어주고,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련을 회담성사로 견인하는 결정적인 조치였다. 거의 같은 시간에 워싱턴에서는 팜페오 국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원래대로 돌려세우기 위해 설득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18년 5월 2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건설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는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통보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서한을 받아본 직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건설장으로 현지지도의 길을 떠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했는데도 현지지도의 길을 떠난 정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세인의 상상을 능가하는 담력과 배짱을 지녔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로 현지지도의 길을 떠난 그날, 김계관 조선외무성 제1부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 5월 25일 특별담화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를 풀어주고,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련을 회담성사로 견인하는 결정적인 조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계관 제1부상의 5월 25일 특별담화가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2018년 5월 25일 오전 5시 14분에 발신된 트위터 문장에서 “북조선이 보내준 따스하고 생산적인 담화를 받은 것은 매우 좋은 소식이다. 우리는 그것이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될는지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5시 37분에 발신된 트위터 문장에서 “지금 우리는 정상회담을 복원하기 위해 북조선과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잘 되면, 예정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이) 열릴 것 같고, 필요하다면 (회담일정이) 다음날까지 연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원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은 5월 9일 평양회담에서 조미정상회담을 하루를 넘기지 않고 끝내기로 합의하였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일정을 하루 더 연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 흥미로운 정황은 그가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을 번복하고, 그 회담을 고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5월 26일 오전 8시 21분에 발신한 트위터 문장에서 “망해가는 뉴욕타임스는 존재하지도 않는 ‘고위급 백악관 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회담이 복원되더라도 시간과 준비가 없는 조건에서 6월 12일에 개최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도했다. 또 다시 오보다! 가짜 소식통 말고, 진짜 사람들을 인용하라”고 비판하였다. 이 문장에는 조미정상회담을 6월 12일에 성사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담겼다.  

 

미국 통신사 <AP> 2018년 5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같은 날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서 송환된 미국인들을 접견하면서 “우리는 6월 12일 싱가포르(정상회담)를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바뀌지 않았고, 회담논의가 아주 잘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트위터 문장들 및 발언은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였던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 취소결정이 사실상 번복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극적인 반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치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이를테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5월 25일 특별담화를 발표하게 조치하여 자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를 풀어주었고, 그를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을 번복하는 길로 이끌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좌절시키려는 검은 이익집단의 소동을 제압하였고, 그들의 흉계를 파탄시켰다. 조미정상회담 성사문제를 놓고 벌어진 격렬한 대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승리하였고, 검은 이익집단은 패배하였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으로 돌아갔다. 

 

평정심을 되찾은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 실무준비를 위해 대기 중이던 대표단을 파견하였다. 내가 이 글을 탈고하기 직전인 2018년 7월 27일 오후 1시 9분(미국 동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발신한 글에서 미국 대표단이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조선(판문점 북측 지역을 뜻함)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나는 북조선이 눈부신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어느 날 경제적, 재정적으로 큰 나라가 되리라고 진실로 믿는다”고 썼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과 미국은 조미정상회담 실무준비회담을 판문점 북측 지역과 싱가포르에서 각각 진행한다고 한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전변이 숨가쁘게 일어나고 있다. 극적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뜻이 더 깊어진 조미정상회담이 눈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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