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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북핵 일괄타결'에서 한발 물러섰다?

문재인-트럼프, 단독회담에 들어가기 전 기자들과 일문일답

18.05.23 05:46l최종 업데이트 18.05.23 08:00l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간 단독회담이 22일(현지시각) 낮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렸다.
▲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간 단독회담이 22일(현지시각) 낮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렸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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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동안 미국이 고수해온 '북핵 일괄타결 방식'에서 한 발 물러선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한미정상회담은 22일 낮 12시 7분께(미국 현지시각)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오벌 오피스)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회담장에 있던 취재진이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모두발언이 끝난 직후 질문들을 던지는 바람에 실제 단독회담은 낮 12시 42분부터 오후 1시 3분까지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일괄타결 방식'에서 한 발 물러섰다고 평가할 만한 발언은 본격적인 단독회담에 들어가기 전 기자들과 나눈 일문일답에서 나왔다.    

 
한 외신기자가 "비핵화가 한꺼번에 일괄타결되는 것을 원하나, 아니면 단계적으로 점진적으로 비핵화돼야 한다고 생각하나"라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한꺼번에, 일괄타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더욱 더 낫겠다, 완전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한꺼번에 빅딜로 타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답변했다. 

'선핵폐기 후보상'을 기조로 한 북핵 일괄타결 방식을 원론적으로 다시 강조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어진 답변은 그동안 미국이 고수해온 북핵 일괄타결 방식에서 조금 벗어난 것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데 한꺼번에 이뤄진다는 것은 물리적인 여건을 봤을 때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 물리적인 이유 때문에 짧은 시간에 딜이 이뤄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한꺼번에 빅딜로 타결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물리적 여건"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 방식을 논의한 과정에서 북미간 협상의 여지를 남긴 발언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CVID 결정하면 북한 정권 안전 보장하겠다"  

이어 한 국내언론 기자가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결정한다면 정말로 북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할 것인가"라고 물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보장하겠다, 그것은 처음부터 보장하겠다고 이야기해온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하면) 김정은 위원장이 안전할 것이고, 굉장히 기쁠 것이다"라며 "(그로 인해) 북한은 굉장히 번영할 것이고, 북한 국민들을 위해서, 한국을 위해서도 상당히 좋은 일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지금까지 한국에 수조 달러를 지원해왔다"라며 "지금 한국을 보면 세계에서 얼마나 훌륭한 국가인지 다 아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한국과 중국, 일본 3국과 다 대화했다"라며 "이 3국 모두 북한을 도와서 북한을 아주 위대한 국가로 만들기 위한 아주 많은 지원을 지금 약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1시간 26분간 진행된 단독회담과 확대회담에서는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지원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양국 정상이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룬다면 '북한의 밝은 미래'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협상이 잘 이뤄진다면 (그것이) 김정은 위원장을 굉장히 기쁘게 할 것이고, 만약에 협상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그렇게 기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김정은 위원장은 역사상 가장 큰 기회를 가지고 있다, 뭔가를 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라며 "북한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위해서, 한반도를 위해서 굉장히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지금 김정은 위원장의 손 안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시진핑과의 두 번째 만남 이후 김정은 태도에 변화 생겨"

한 미국언론 기자가 "중국이 북한에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약간 부정적으로 이야기했다고 보느냐?"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물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7일(미국 현지시각) 젠스 스톨튼버그 나토(NATO)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시진핑 주석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라고 말한 것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7일 이틀간 중국 다롄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뒤에 미국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중간 밀월관계를 극도로 경계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시 주석과 두 번째로 만난 다음에 김 위원장의 태도가 좀 변했다고 생각한다"라며 "그것은 나에게 좋은 느낌이 아니다"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시 주석과 굉장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라며 "하지만 김 위원장이 중국을 두 번째로 방문하고 떠난 다음에 태도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은 세계 최고의 도박사, 포커페이스 플레이어라고 볼 수 있다"라며 "어쨌든 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만난 다음에 태도가 변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북중간 밀월관계에 거듭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쩌면 거기(김 위원장과 시 주석의 만남)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일어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의 만남을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이후에 다들 놀랐고, 그 이후 어느 정도 김 위원장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는 논란이 사실인 것은 틀림없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의 두 번째 만남에 대해 저와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라며 "문 대통령에게 다른 의견이 있다면 지금 말해도 좋을 것 같다"라고 문 대통령의 답변을 유도했다.  

문재인 "실패할 것이라고 미리 비관하면 역사 발전은 없어" 

이에 답변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우선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과연 실현될 것인가에 회의적인 시각이 미국 내에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라며 "그러나 과거에 실패했다고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라고 미리 비관한다면 역사의 발전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북미간에 여러 번의 합의가 있었지만 정상들 간에 합의를 도모하는 것은 이번이 사상 최초다"라며 "더욱이 정상회담을 이끄는 분은 트럼트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의 극적인 대화, 긍정적인 상황 변화를 이끌어냈다"라고 '트럼프 역할론'을 강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저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도 반드시 성공시켜서 65년 동안 끝내지 못했던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고, 북한의 비핵화를 이룸과 동시에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북미간에 수교도 하고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것은 세계사에서 엄청난 대전환이 될 것이다"라며 "그 중요한 대전환의 위업을 반드시 이뤄내고, 그것은 북한에도 실제의 안전을 보장함과 동시에 북한에 평화와 반영을 만들 수 있게 해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최근 북한의 태도변화를 어떻게 평가하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문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 때문에 북미정상회담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하는데 저는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제대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답변했다. 

문 대통령은 "저의 역할은 미국과 북한 사이를 중재하는 입장이라기보다는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서, 또 그것이 한반도와 대한민국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국과 함께 긴밀하게 공조하고 협력하는 관계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문재인 아니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문 대통령의 능력을 굉장히 신뢰하고 있다"라며 "지금 문 대통령이 아니면 이 문제(한반도 비핵화 등의 문제)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문 대통령의 중재자 혹은 길잡이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제에서 특히 문 대통령이 많이 기여했다"라며 "예전에도 한국에는 많은 대통령이 있었지만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데는 문 대통령의 기여가 아주 컸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을 "능력있고,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추켜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문 대통령은 한국이나 북한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라며 "그래서 아주 신뢰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하고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잠재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방법으로 나아가고 있다"라며 "하지만 북한과의 협상이 잘 이뤄질 것인지, 안 이뤄질 것인지는 두고봐야겠다"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이런 협상에 상당히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라며 "어떤 경우에는 협상에 들어갈 때 가능성이 0이었는데 100으로 협상이 이루지는 경우도 있고, 가능성이 굉장히 컸다가도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래서 일단 가봐야 하겠다"라며 "한국은 문 대통령이 대통령인 것이 아주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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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보 “조미대화 진전돼도 고위급회담 열린다 볼 수 없다”

22일 “북 겨냥한 전쟁소동 계속되면 북남고위급회담 중단 이어질 수밖에” 경고
▲ 한국과 미국 공군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 '맥스선더'(Max Thunder)가 실시된 지난 11일 오전 광주 광산구 공군 제1전투비행단 활주로를 이륙한 전투기 편대가 상공 작전을 펼치고 있다.[사진 : 뉴시스]

재일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22일 “조미대화에서 진전이 이루어지면 고위급회담을 중지시킨 사태도 저절로 해소되리라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혀 주목된다. 고위급회담 중단 사태가 이달을 넘겨 더 지속될 수도 있단 얘기다. 북의 북부핵시험장 폭파 폐기 행사를 취재하려는 우리측 기자단의 방북을 불허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다만 방북 무산을 최종 판단하기까진 아직 하루 정도 시간이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신보는 이날 ‘조선은 평화의지 실천, 미남은 전쟁연습에 골몰’이란 제목의 정세 분석기사에서 이렇게 밝히곤 “판문점선언에서 북과 남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다”고 환기시키면서 “남조선당국이 지금처럼 외세의존과 동족대결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상대방의 성의와 아량만을 기대한다면 판문점(선언) 리행의 또 다른 장애를 조성할 수 있다”고 우리 정부의 태도변화를 거듭 촉구했다.

신보는 또 “판문점선언은 어느 일방의 노력으로써는 리행될 수 없다. 그런데 남조성당국은 판문점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대목을 중시하고 이 문제와 관련한 ‘북미간의 조률’이 저들의 역할이라고 광고하고 있을 뿐 ‘평화를 위한 북남의 공동노력’이라는 판문점선언의 합의에 전면 배치되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고 꼬집곤 “미군과 남조선군이 벌리는 합동군사연습은 적대시정책의 로골적인 표현이며 핵전략자산이 투입되는 군사연습은 핵위협 공갈 그 자체이다. 북을 겨냥한 전쟁소동이 계속된다면 북남고위급회담의 중단상태도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그러면서 “판문점선언을 지지한 미국의 속내는 실천행동을 통해서만 증명되게 된다“고 미국도 이번 고위급회담 중단 사태와 무관치 않음을 지적한 신보는 “남조선당국도 이번 기회에 숙고해야 한다. 저들이 고위급회담 중단의 원인을 만들어놓고 북이 취한 조치를 ‘판문점선언의 근본정신과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평화와 번영, 통일을 함께 지향하는 동반자의 자세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신보는 기사에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경고’ 담화의 의미와 파장도 분석했다. 먼저 김 제1부상 담화의 함의는 “지난 5월9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폼페오 국무장관을 통해 조선의 최고령도자에게 전달한 ‘문제해결을 위한 새로운 대안’이 리비아 핵포기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며 “트럼프는 조선의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기자회견에서 ‘리비아방식은 우리가 북조선에 대하여 생각하는 방식이 전혀 아니다’고 명언하였다. 조미의 력량관계가 확연히 드러났다”고 미국쪽 반응을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본토에 대한 핵보복 능력을 갖춘 조선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것이야말로 미국에 있어서 초미의 과제다. 조미수뇌회담은 바로 그 과제를 해결하는 자리이며 대통령으로서는 회담이 취소되는 사태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고 추론하곤 “트럼프는 볼튼이 빚어낸 사태를 수습했으나 초미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어떤가는 회담에 림하는 그의 최종결단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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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학살의 깨달음, 스스로 복수를 멈췄다

[평화원정대]100만 학살의 깨달음, 스스로 복수를 멈췄다

 

 

등록 :2018-05-22 05:00수정 :2018-05-22 10:22
 

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⑤르완다 제노사이드 24년

부모 잃은 투치족 은시지롱구
학살 기억 뚜렷…아직도 악몽
동네서 가끔 가해자 만나지만
이젠 후투·투치 구분하지 않아

24년전 학살 빚어진 석 달
“잊지 말자” 국가애도기간
매해 4월 제노사이드 기념관
가족 잃은 시민들 눈물 헌화
 
지난 15일 오전(현지시각) 르완다 키갈리 제노사이드 기념관에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키갈리 제노사이드 기념관에는 희생자 25만여명이 묻혀 있다. 키갈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15일 오전(현지시각) 르완다 키갈리 제노사이드 기념관에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키갈리 제노사이드 기념관에는 희생자 25만여명이 묻혀 있다. 키갈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엄마의 목을 향해 마체테가 겨누어졌다. 칼날이 길고 넓은 아프리카의 칼, 마체테 손잡이를 꽉 움켜쥔 이는 낯이 익은 동네 주민이었다. 아빠를 죽인 자들의 흉기가 이틀 만에 다시 춤을 췄다. 엄마가 맥없이 쓰러졌다. 일곱살 은시지룽구의 어린 눈에 날아와 박힌 끔찍한 장면은 24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다.

 

서른한살 어른이 된 꼬마는 지금도 이웃들이 아빠와 엄마를 죽인 합리적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오로지 투치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의 대상이 됐다는 걸 너무나 잘 알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어른들은 종족이 다르다는 아주 작은 차이로 서로를 구분했다. 그러곤 그 틈바구니에서 증오라는 이름의 괴물을 길러냈다. 끝내 그 괴물이 죄 없는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그 사람들은 누구네 집이 후투이고 누구네 집이 투치인지 정확하게 알았어요.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전부터 리스트를 만들었죠. 언제 누구를 죽일지 미리 다 결정이 돼 있었더라고요. 1994년 4월17일 아빠를 죽이고 이틀 뒤 엄마를 죽이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봤어요. 100살이 돼도 못 잊을 거예요.”

 

지난 15일 르완다 수도 키갈리의 한 변두리 지역에 있는 집에서 만난 빈센트 은시지룽구가 마치 악몽을 꾼 사람의 얼굴로 말했다. 그에게 24년 전 살벌한 기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둘째를 임신한 부인과 두살짜리 아들이 그의 주변을 서성였다. 불안은 전염된다.

 

다수족인 후투와 소수족인 투치가 오래전부터 서로 증오한 건 아니다. 서양에서 온 백인 제국주의자들이 조장했다. 투치왕족이 지배하던 이곳을 1895년 독일이 접수했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자 1916년 벨기에가 점령했다. 벨기에는 1932년 이 땅에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며 겉면에 각 종족을 표기하도록 했다. 그리고 인구의 15%가량에 불과한 투치족이 서양인과 조금 더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우생학을 들먹이며 후투보다 우월한 종족이라고 선전했고, 그들을 이용해 르완다를 통치했다. 전형적인 분할지배 전략이다. 1959년 후투족이 투치왕조를 무너뜨린 뒤 투치족에 대한 억압이 시작됐다. 후투와 투치 간 내전도 멈추지 않았다.

 

15일 오전(현지시각) 르완다 키갈리에서 빈센트 은시지룽구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빈센트의 부모님은 제노사이드 당시 숨졌다. 키갈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5일 오전(현지시각) 르완다 키갈리에서 빈센트 은시지룽구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빈센트의 부모님은 제노사이드 당시 숨졌다. 키갈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994년 4월6일, 후투 출신 대통령 쥐베날 하비아리마나가 탄 비행기가 키갈리 인근에서 격추되면서 학살극이 시작됐다. 다음날부터 인테라하므웨라 불리는 후투족 의용군 전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고 투치와 온건파 후투 살육에 나섰다. 하지만 은시지룽구 말대로, 살육에 대한 준비는 인테라하므웨가 몇달 전부터 차근차근 진행한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한 것보다도 조금 작은 면적의 이 나라에서 무려 100만명에 이르는 투치와 온건 후투가 불과 100여일 만에 죽임을 당했다. 하루 1만명꼴이다. 부모에 이어 죽을 위기에 있던 은시지룽구가 4월23일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도망갈 수 있었던 건 “치마를 입어 여자아이인 척하라”고 한 누나의 기지 덕분이다. 당시 주요 표적은 투치족 어른과 남자아이들이었다. 패기로 똘똘 뭉친 투치 전사들의 군대, 르완다애국전선(RPF)이 우간다에서 키갈리까지 신속하게 치고 들어와 싸우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도 그때 끝났을 수 있다. 유일한 혈육이던 네살 위 누나와 함께 도망치던 은시지룽구는 난리 통에 결국 누나와도 헤어지게 됐다.

 

“그때 우기라서 비가 많이 왔어요. 남의 수수밭에 혼자 숨어서 감자, 고구마, 옥수수를 몰래 먹고 버텼어요. 한달 넘게 동물처럼 살았죠. 누나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 기억은 지금도 은시지룽구에게 또렷하기만 하다. 7월4일 르완다애국전선이 인테라하므웨를 완전히 내쫓고 르완다를 접수하던 즈음 돌아온 그의 동네는 집들도 다 무너져 그야말로 폐허였다. 동네 사람 700명은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뒤였다.

 

제노사이드 이후 은시지룽구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졸지에 고아가 된 은시지룽구는 누나와 함께 외할아버지 동생 집에 얹혀살았다.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를 반복하다 21살이 돼서야 가까스로 졸업했다. 중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집 근처 병원에서 청소 일을 하는 은시지룽구의 한달 수입은 현재 5만르완다프랑(약 6만2500원)에 불과하다.

 

 

 

식민통치한 제국주의 국가
후투-투치 ‘분할지배’ 전략
종족간 갈등, 학살극 비화
1994년 100만명이 죽임 당해

 

 

“제노사이드가 아니었으면 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요?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건이에요. 지금의 제 삶이 그다지 자랑스럽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요. 우리 아들 내년 2월에 유치원 보내야 하는데, 한달 유치원비가 3만프랑이나 한대요.”

 

은시지룽구의 아빠는 제노사이드 이전 집 근처에 있는 한 독일 방송사의 경비를 서던 군인이었다. 그도 아빠의 뒤를 따라 군인이 되는 꿈을 키웠다. 그의 꿈을 무너뜨리고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은 주술이나 다름없었다. 후투와 투치라는 근거 없는 우열의 구분 짓기와 이를 토대로 한 증오. “지도자들이 제대로 된 마음을 가졌다면 제노사이드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학교에서 증오를 가르쳤어요. ‘후투가 더 나은 종족이다’라고 말이에요.” 당시 투치족이란 이유만으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쫓겨나던 게 다반사였다.

 

지난 16일 오후(현지시각) 르완다 루항고 제노사이드 기념관에서 이 지역 학생들이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루항고 제노사이드 기념관에는 희생자 2만여명이 묻혀 있다. 르완다에서는 1994년 대학살이 벌어진 기간인 4월7일부터 7월15일까지를 추모 기간으로 정해 학교별로 지역 제노사이드 기념관에서 추모 행사를 연다. 루항고/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16일 오후(현지시각) 르완다 루항고 제노사이드 기념관에서 이 지역 학생들이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루항고 제노사이드 기념관에는 희생자 2만여명이 묻혀 있다. 르완다에서는 1994년 대학살이 벌어진 기간인 4월7일부터 7월15일까지를 추모 기간으로 정해 학교별로 지역 제노사이드 기념관에서 추모 행사를 연다. 루항고/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천 개의 언덕’ 불린 르완다, ‘천 개의 슬픔’ 묻어나다

 

 

 

‘천개의 언덕’. 예부터 크고 작은 언덕이 많은 르완다는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렸다. 수도 키갈리는 물론이고 지방 어딜 가나 널찍한 평지를 찾기 어렵다. 지난 16일 키갈리에서 남쪽으로 차로 2시간 거리의 후예시 키나지 지역에서 만난 은다이사바 필리프(56)는 은시지룽구와는 달리 사건 당시 어른이었다. 하지만 그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을 뿐 달리 손쓸 도리가 없었다. 그는 마치 가슴속에 ‘천개의 분노’와 ‘천개의 슬픔’을 간직한 것처럼 보였다.

 

필리프은 24년 전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제노사이드에 희생당했다. 4월20일부터 시작된 인테라하므웨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투치족 사람들은 키나지에서 멀지 않은 송가 지역으로 집결했다. 필리프도 아내와 13살, 9살짜리 딸, 5살짜리 아들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 내달렸다. 투치 1만5천명은 일주일간 장렬히 맞섰다. 마침내 후투족 군대가 들이닥쳤다. 살육이 시작됐다. 단 100여명의 투치만 간신히 숲속으로 도망쳤다. 군인과 군견의 추격을 뿌리치고 간신히 이웃나라 부룬디 국경을 넘어 목숨을 건진 이 가운데 필리프도 끼어 있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이었어요. 혼자 뛸 수밖에 없었죠. 아내와 세 아이를 챙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필리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눈동자는 초점을 맞출 곳을 찾지 못했다. 그에게 “그래도 당신 가족인데, 챙겼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차마 하지 못했다.

 

다시 국경을 넘어 한달 뒤 돌아온 마을에서 그는 아내와 세 아이는 물론이고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도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자기 혼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운이 좋아서였다. 24년이 지나도록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더 옅어지지도, 단단해지지도 않고 끊임없이 되뇌어질 뿐이다.

 

 

24년 전 학살 빚어진 석 달
“잊지 말자” 국가애도기간
매년 4월 제노사이드 기념관
가족 잃은 시민들 눈물 헌화

 

 

 

루항고 고등학교 학생들이 16일 오후(현지시각) 제노사이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르완다 루항고에서 제노사이드 기념관으로 향하고 있다. 루항고 제노사이드 기념관에는 희생자 2만여명이 묻혀 있다. 제노사이드가 시작된 4월 7일부터 7월 15일까지 추모기긴에 학교별로 지역 제노사이드 기념관에서 추모행사를 연다. 루항고/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루항고 고등학교 학생들이 16일 오후(현지시각) 제노사이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르완다 루항고에서 제노사이드 기념관으로 향하고 있다. 루항고 제노사이드 기념관에는 희생자 2만여명이 묻혀 있다. 제노사이드가 시작된 4월 7일부터 7월 15일까지 추모기긴에 학교별로 지역 제노사이드 기념관에서 추모행사를 연다. 루항고/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후 송가에는 제노사이드 기념관이 들어섰다. 일일이 주검을 확인하지 못한 탓에 가족이 그곳에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필리프는 매년 4월28일 기념관에 들러 묵념을 한다. 같은 날 가족을 잃은 1만5천가구의 생존자들도 꽃을 들고 이곳을 찾는다. 이 기간은 온 나라가 제노사이드 기념관이 된다. 학살이 벌어진 4월7일부터 7월4일까지는 국가적인 애도 기간이다. 사회 전체가 추념의 분위기에 빠진다.

 

평화원정대는 필리프를 만나고 키갈리로 돌아오는 길에 뙤약볕 속에서 흰색 셔츠에 감색 바지와 치마 교복 차림으로 루항고 제노사이드 기념관을 향해 걷는 고등학생 무리를 만났다. 한 학생은 원정대에 “3개 학년 800여명이 선생님과 함께 가는 중”이라며 “추도 기간에 하루 날을 정해 매년 이렇게 행사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념관에 모여 20여분간 제노사이드에 관한 설명을 듣고 숨진 이들을 향해 묵념하는 등 경건하게 행사를 치렀다.

 

필리프는 제노사이드 이후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자신처럼 학살에서 살아남은 여성을 만났다. 둘 사이에 아이 여섯을 낳았다. 그는 소 10마리도 키운다. 이를 토대로 2012년 키나지낙농협동조합(KIDACO·키다코) 조합원이 됐다. 조합을 거쳐 동네에 생우유와 요구르트를 판다. 주업으로 술집을 운영하는 그는 조합에서 작으나마 부수입을 얻고 있다. 필리프는 앞으로 키다코가 더 큰 조합으로 성장해 주소득원이 되길 바란다.

 

필리프의 가해자들과 은시지룽구의 가해자들은 모두 사법부의 법정이 아니라 르완다판 ‘원님 재판’에 해당하는 ‘가차차’를 거쳐 벌을 받았다. 가차차는 마을회관이나 공터 같은 곳에서 마을의 어른이 주재하는 간이 재판으로, 르완다는 가차차를 거쳐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결정했다. 제노사이드 가담자들은 저지른 죄에 비해 가벼운 징역 15년 안팎의 처벌밖에 받지 않았다. 하지만 필리프와 은시지룽구는 제노사이드 가해자와 시간을 두고 화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납득하고 있었다. 이는 수많은 가해자를 모두 사형이나 중형에 처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또 다른 복수극이 반복될 수 있다는 사회적 논란을 우려해 르완다 사회가 선택한 결론이다.

 

“가차차에서 증언이 나왔어요. 그래서 누가 내 가족을 죽였는지 알게 됐어요. 지금 일부 가해자는 감옥에 있고, 일부는 형기를 마치고 나왔죠. 아쉽지만 가해자가 최고 15년 동안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 점에 만족해요. 중요한 건 사람을 죽인 후투가 그것으로 어떤 이득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정부가 젊은 세대에게 보여주는 것이죠.” 필리프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은시지룽구는 “지금도 동네 돌아다니다 가해자를 가끔 만난다”고 했다. 그럴 땐 어떤 심정이 될까? “우리마저 그들을 죽이려고 하면 우리도 그 사람들이랑 다를 게 없지 않으냐. 좋은 미래는 사람들이 화해를 함으로써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은시지룽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딘가 힘겨워 보였다.

 

 

금기어 된 후투냐, 투치냐…“평화란 구분도, 차별도 않는것”

 

 

16일 오후(현지시각) 르완다 키나지 송가 제노사이드 기념관 묘지에 조화들이 놓여 있다. 이 지역에서만 4만7천명의 투치족이 희생됐다. 키나지/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6일 오후(현지시각) 르완다 키나지 송가 제노사이드 기념관 묘지에 조화들이 놓여 있다. 이 지역에서만 4만7천명의 투치족이 희생됐다. 키나지/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가차차와 함께 제노사이드 이후 르완다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은 바로 ‘은두무니아 르완다’이다. 르완다의 공용어인 키냐르완다어로 “나는 르완다인이다”라는 뜻이다. 현재 르완다에선 “너는 후투냐, 투치냐”라는 질문은 일종의 금지어다. 이렇게 묻는 사람은 르완다 사회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이런 질문을 받는 르완다 사람 대부분은 “은두무니아 르완다”라고 대답한다.

 

 

 

 

 

 

 

제노사이드 이후 르완다 사회
종족 구분 행위 법으로 금지
어길 땐 최대 9년 징역형 처벌
희생자 폄훼 발언 부시장 체포

 

부모·형제 중 3명 잃은 앨버트
“투치랑 후투랑 서로 결혼하고
같은 학교·같은 병원에 다녀
남과 북, 르완다서 평화 배우길”

 

 

이는 르완다애국전선을 이끌고 학살을 종식시킨 폴 카가메 장군이 2000년 대통령에 오른 뒤 18년 동안 선거독재로 자리를 유지하면서 가장 공을 쏟은 부분이다. 더 이상 쓸모 없는 구분 짓기와 차별, 증오로 인한 갈등을 멈추고 르완다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자는 것이다. 은시지룽구가 애써 ‘미래를 위한 화해’를 입에 올린 것도 이런 ‘사회적 이성’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르완다에선 어떠한 이유로든 종족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형법으로 금지돼 있다. 이를 위반해 ‘제노사이드 이데올로기’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행동을 한 사람에겐 5년에서 최대 9년의 징역을 선고할 수도 있다. 실제 지난 11일 니아비후시의 클라리스 무칸상가 부시장이 경찰에 체포됐다. 그녀는 전국적인 추모 기간이던 지난달 12일 지역의 제노사이드 추모 행사 때 희망을 상징하는 불이 켜진 촛불을 손으로 드는 행위를 거부하고 제노사이드 희생자를 폄훼하는 발언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각) 르완다 후예시 키나지낙농협동조합(KIDAKO·키다코) 공장에서 한 직원이 원유를 살균하고 있다. 키다코는 대학살 참사 생존자들의 원활한 사회 복귀뿐 아니라 가해 종족인 후투족과도 자연스럽게 화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르완다 정부가 전국적으로 추진하는 협동조합 가운데 하나다. 후예/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16일(현지시각) 르완다 후예시 키나지낙농협동조합(KIDAKO·키다코) 공장에서 한 직원이 원유를 살균하고 있다. 키다코는 대학살 참사 생존자들의 원활한 사회 복귀뿐 아니라 가해 종족인 후투족과도 자연스럽게 화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르완다 정부가 전국적으로 추진하는 협동조합 가운데 하나다. 후예/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사위가 어둑해질 무렵 은시지룽구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다 이 마을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앨버트 무사비이마나(40)와 마주쳤다. 무사비이마나도 제노사이드 때 부모와 6형제 가운데 셋을 잃었다고 했다. 그가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르완다에선 투치랑 후투랑 같은 학교, 같은 병원에 다니고 서로 결혼도 하죠. 더 이상 누가 후투다, 누가 투치다 구분하지 않아요. 평화와 희망은 함께 가는 거예요. 얼마 전 <시엔엔>(CNN)에서 남한 대통령과 북한 대통령이 화해한 것을 봤어요. 그 사람들이 르완다에 와서 공부해야 해요. 화해와 평화는 르완다가 잘하거든요.”

 

평화란 구분 짓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며 서로 증오의 언어를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소박한 진실을 수많은 죽음을 겪고서 뼛속 깊이 깨달은 동시대인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키갈리 후예/전종휘 유덕관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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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행 비행기 안 정의용 "북측 입장 이해하는 방향으로 고민중"

[한·미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성사와 이후 합의 이행 방안이 이번 회담 목표”

18.05.22 10:59l최종 업데이트 18.05.22 11:07l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램버트 동아태부차관보 대행의 영접을 받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램버트 동아태부차관보 대행의 영접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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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방미를 수행 중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2일 한·미 정상회담의 '두 가지 목표'를 공개했다.

정의용 실장은 21일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 내 간담회에서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가 이뤄질 경우 그 합의를 어떻게 이행해 나갈지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목표"라고 말했다.

최근 벌어진 북·미간 갈등을 봉합해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반드시 성사시키고,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 체제 보장' 등을 위한 방식에 합의하면 이후 그것을 어떻게 이행할지를 집중논의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18일 남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한·미 정상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한반도 항구적 평화정착을 이루기 위한 이행방안을 구체적이고 심도있게 논의하고,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할 경우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방안도 협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이행방안뿐만 아니라 북한 체제 보장과 대북경제지원 방안 등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미 확정된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를 한·미 정상회담의 목표로 설정한 것은 최근 한반도 비핵화 방식 등을 두고 벌어진 북·미간 갈등이 꽤 심각함을 방증한다. 그로 인해  북·미 정상회담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실장은 "지금 북·미 정상회담은 99.9% 성사된 것으로 본다"라며 "그러나 여러 가능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비하는 것"라고 말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짜인 각본은 없다"

정 실장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두 정상의 만남이 목적이 아니라 두 정상이 그(정상회담) 이후의 상황을 어떻게 이끌어갈 거냐를 두고 정상 차원의 솔직한 의견 교환이 주목적"이라며 "그래서 정상회담 진행방식도 과거 정상회담과는 달리 딱 두 정상간의 만남을 위주로 하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수행원들이 배석하는 오찬모임이 있긴 하지만 두 정상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솔직한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을 갖자고 한·미간에 양해돼 있다"라며 "그래서 수행하는 저희들도 두 분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것이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한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시각 23일 오전 1시께 배석자가 없는 단독회담을 연다. 이후 오찬을 겸해 한·미 양국의 외교-안보분야 인사들까지 참석하는 확대정상회담을 이어갈 예정이다.

또한 정 실장은 "6월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반드시 우선 성사돼야 하고, 성사되면 그 다음에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비핵화 등의) 합의가 이루어지길 저희는 기대하고 있다"라며 "두 정상이 지금 어떻게 그 목표지점까지 갈 수 있느냐에 대한 여러가지 아이디어들을 공유할 것으로 기대하고 간다"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짜인 각본이 전혀 없다"라며 "대개 정상회담은 사전에 많은 조율이 있고 합의문도 99.9%까지 다 사전에 조율하는 게 관행이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일체 그런 것 없이 그야말로 두 정상이 두 가지 토픽(목표)만 갖고 만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정 실장은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고 중요한 합의를 이루게 할지, 합의를 이룰 경우 그 합의를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를 두고 두 정상간에 허심탄회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한·미간에는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다"라며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있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북한이 나오도록 우리가 어떻게 협력하고, 어떤 것을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실무차원에서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번에 정상 차원에서도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짜인 각본이 없다"라고 했지만 정상회담 이전에 한·미 양국의 외교-안보분야 실무자들이 한반도의 비핵화 방식과 항구적 평화정착 방안, 북한 체제 보장과 경제지원 방안 등을 논의했다는 얘기여서, 이와 관련한 한·미 정상간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가 공식 발표되지는 않는다. 정 실장은 "6월 12일까지는 (한·미 정상간 합의를) 발표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해 달라"라며 "워싱턴에 가서 여러분들에게 할 말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 환영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뒤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장하성 정책실장이 따라 내리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 환영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뒤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장하성 정책실장이 따라 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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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측 입장 이해하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

간담회 모두 발언에 이어 기자들과 나눈 일문일답에서 '최근 북한의 태도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정 실장은 "북한측 입장에서 우리가 좀 이해하는 방향으로 저희가 고민하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이는 최근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발언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지난 17일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이해해보려는 역지사지의 자세와 태도가 (한·미 양국에) 필요하다"라며 "(한·미 양국이) 북한이 제기한 문제들을 조금 더 이해하는 게 좋겠다는 의미"라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협상해야 하느냐?'고 보좌진들에게 물었다는 보도와 관련, 정 실장은 "저희가 감지하는 것은 없다"라며 "저희가 (한·미 양국간) NSC를 통해 협의하는 과정이나 어제 정상간 통화 분위기에서 그런 느낌은 못받고 있다"라고 일축했다.

전날 한·미 정상간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왜 당신의 설명과 북한의 태도가 다르냐?'고 물었다는 보도와 관련해서도 "제가 정상통화에 배석했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라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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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합의를 먼저 깬 쪽은 미국이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5/22 11:29
  • 수정일
    2018/05/22 11:2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매번 합의를 먼저 깬 쪽은 미국이다[특별기획] 북미 핵공방 30년사, 교훈과 과제(1)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북미 핵공방 30년사’를 돌아본다. 길게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핵폭탄 투하 계획으로 시작해 1989년 영변 핵시설 의혹 제기로 본격화돼 지난해 일촉즉발의 최대 위기상황으로 치달았던 북미 핵공방. 이 동안 반복된 핵위기와 합의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다음달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의 과제와 진로를 전망해본다.[편집자]

[특별기획] 북미 핵공방 30년사, 교훈과 과제
(1) 매번 합의를 먼저 깬 쪽은 미국이다
(2) 6자회담은 정전협정의 연장이다
(3) 한반도 핵문제의 본질은 미국의 핵위협이다 
(4) 비핵화는 북의 일관된 전략이다

북미정상회담이 다음달 12일 열린다. ‘리비아식’이다, ‘트럼프식’이다, 예측이 난무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합의도 이행하지 않으면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1989년 9월 미국 첩보위성이 촬영한 사진 판독에서 북한(조선) 영변에 핵재처리시설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촉발된 북미핵공방은 6자회담을 포함해 4차례(▲1994년 제네바합의 ▲2000년 북미 공동코뮤니케 ▲2005년 9.19공동성명 ▲2007년 2.13합의) 합의에 이른다.

제네바합의, 미국은 애초 이행할 의사가 없었다

제네바 기본합의서(1994.10.21.)는 ▲북의 흑연감속로를 미국이 경수로로 2003년까지 대체해 주고 ▲대신 북은 50MW급 원자로와 200MW급 원자로 건설을 중단하고 재처리를 하지 않으며 방사화학실험실을 폐쇄한다 ▲양국은 관계정상화를 위해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무역투자 장벽을 완화해나가며 ▲미국은 핵 선제 불사용에 대해 보장하고 북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행한다 ▲북은 NPT 회원국으로 잔류하며 NPT에 따르는 핵 안정협정을 이행한다 ▲미국은 북에 연간 50만톤의 중유를 제공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북한(조선)은 제네바합의 이후 NPT에 복귀하고 핵발전 시설을 동결했다. 당시 특사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8년 동안 북한(조선)의 핵 발전 시설을 가동 중단할 수 있었던 제네바합의는 성공적인 국제 합의였다”고 회상한데서 북한(조선)의 제네바합의 이행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야당인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한 미국 의회는 북한(조선)과의 국제적 합의는 공산국가인 북한(조선)에 대한 회유책이라는 이유로 북한(조선) 경수로 발전소 개발 자금을 승인하지 않았다. 결국 건설기간 10년이 소요되는 경수로 발전소는 2001년까지 7년 이상 지연됐다. 이후 한·미·일이 참여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설립해 경수로 원자로를 짓기 시작했지만 약속한 2003년까지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또한 미국은 매년 50만톤을 약속한 중유 공급도 4차례나 빠트렸고, 그나마 2001년부터는 완전히 중단해 버렸다.

북한(조선)은 약속한 2003년까지 경수로 건설이 완료되지 않자 NPT 탈퇴를 선언하고 핵시설을 재가동했다.

한편 1997년과 1998년 작성된 미 국무부의 한반도 배경자료 문건엔 “제네바합의 당시 북한(조선)의 경제난이 위험하게 혼란스러운 상황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진단하면서, “미국의 접근법은 북한(조선)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할 의미있는 개혁에서부터 북한(조선) 정권붕괴까지 폭넓은 옵션을 충분히 아우를 정도로 융통성을 지녀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94년 여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극심한 자연재해를 이유로 “이르면 3주나 3개월, 늦어도 3년 내에 북한(조선)이 망한다”는 이른바 ‘3·3·3 붕괴론’이 횡행했다. 결국 북한(조선) 붕괴를 예상한 미국으로선 10년을 기한으로 한 제네바합의를 애초에 이행할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북미 공동코뮤니케, 부시 행정부 출범으로 깨지다

이른바 ‘금창리 핵개발 의혹’으로 시작된 1998년 북미 대결은 99년 ‘페리 보고서’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그해 10월 조명록 차수의 방미와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 그리고 북미 공동코뮤니케 발표를 이끌어내면서 북미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마련한다.

▲ 조명록 조선인민군 차수가 2000년 백악관에서 클린턴 미 대통령을 만나 북미공동코뮤니케를 발표했다. [사진 : 뉴시스]

북미 공동코뮤니케 요약

▲적대관계 종식 선언 = 쌍방은 그 어느 정부도 상대방에 대해 적대적 의사를 갖지 않을 것.
▲평화보장체계 수립 = 정전체계를 종식하고 평화보장체계로 전환하기 위해 4자(남,북,중,미)회담을 진행한다.
▲경제 무역 정상화 = 쌍방은 호혜적인 경제협조와 교류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제네바 기본합의문 준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테러 반대 ▲유해발굴 등 인도적 사업 지속 추진 ▲미 대통령 방북을 합의한다.

그러나 잠시 조성됐던 북미간 평화국면은 부시 행정부의 출범 이후 산산이 조각났다. 2000년 말 대북 강경노선을 내세우며 등장한 부시 대통령은 ‘대북정책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더니 2001년에는 북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2002년 연두교서에선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전면적인 대북 적대정책으로 전환했다. 그해 3월 발표한 ‘핵태세 검토보고서’에선 북을 핵 선제공격 대상국으로 명시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2002년 10월 특사로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김계관 북 외무성 부상이 대북 강경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우리는 핵무기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고 강조한 발언을 “북이 핵무기 개발 계획을 시인했다”고 왜곡하곤 제네바 기본합의서에 따라 북에 제공하기로 한 12월분 중유공급을 중단했다. 이에 북은 12월12일 조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시설들의 가동과 건설을 즉시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중유 제공은 원자력발전소들을 동결하는데 따르는 전력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미국이 취해야 할 의무사항인데 미국이 이를 포기해 당장 전력생산에 공백이 생겼으니 동결했던 핵시설을 재가동한다는 것이었다.

9.19공동성명을 위조지폐와 마약으로 희석한 미국

2005년 9월19일 제4차 2단계 6자회담을 통해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등의 내용이 담긴 9.19공동성명을 만들어냈지만 공동성명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미 재무부는 북이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BDA)를 통해 달러 위조지폐를 유통하고 마약 등 불법 국제거래대금을 세탁한 혐의가 있다며 BDA를 ‘돈세탁 우려대상’으로 지정하고 북 계좌에 있는 2400만 달러를 동결시켰다.

▲ 6자회담 각국 대표가 9.19공동합의문을 타결한 뒤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2006년 1월 북과 미국, 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은 베이징에서 회동했으나 ‘선(先) 금융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북과 북의 ‘아픈 곳’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3월7일 북미 양국은 뉴욕에서 금융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적 접촉’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북은 위폐문제 해결을 위한 정보교류와 합동 협의기구 설치를 제안했지만, 미국은 ‘불법행위는 협상대상이 아니다’며 북의 제안을 일축했다.

북한(조선)의 BDA 동결자금은 2007년 2.13합의 이후 미국이 슬그머니 계좌 송금을 허용해 BDA 문제가 최종 해결될 때까지 약 2년 동안 북미간 최대 경제현안이었다.

2.13합의, 그 이후

2007년 2월13일 제5차 6자회담 3단계회의에서 2.13합의가 채택되고 그 이행을 위한 10.3합의가 이뤄졌다. 그 골자는, 북한(조선)이 핵시설 폐쇄와 불능화, 핵프로그램 신고 등에 합의하면, 이에 상응해 미국을 비롯한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이 중유로 환산해 100만톤 에너지 지원,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적성국무역법 제재 해제,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그룹회의 개최 등 ‘동시행동 원칙’에 따른 약속 이행이었다.

2.13합의가 있은 지 11년이 지났다. 그러나 미국은 2007년 이후 중유 지원을 1톤도 하지 않았으며, 북한(조선)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지 않았다. 적성국무역법 제재를 해제하지 않은 것은 물론 역사상 최강의 경제 제재와 핵 전략자산을 동원한 군사적 압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북한(조선)은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미국이 아무런 행동이 없었으므로 핵 개발을 계속했고, 2017년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다음달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면 2000년 공동코뮤니케를 능가하는 ‘평화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북미간 주요 합의들을 번번이 먼저 깨버린 미국을 상대로 이번엔 어떻게 협상에 임할지 북한(조선)의 협상전략에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특히 북미정상회담 날짜를 확정하기 직전 이란과의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남은 회담 성사나 합의 내용보다 이행여부가 더 불투명해 보인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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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최저임금 개악 맞서 노사정위 불참선언

민주노총, 최저임금 개악 맞서 노사정위 불참선언
 
국회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반발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05/22 [07: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주노총이 국회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을 규탄하며 21일 긴급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사진 : 노동과세계)     © 편집국

 

민주노총이 22일부로 노사정대표자회의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민주노총의 결정은 국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조정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1일 고용노동소위원회를 열어 최저임금법 심의에 들어갔다.

 

핵심 쟁점은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상여금을 포함시키느냐 여부다자유한국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까지 산입범위에 상여금을 포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무력화 된다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노동계는 최저임금제도와 관련된 논의를 사회적 대화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국회에 요구하고 있다.

 

▲ 민주노총이 20일부터 여당 광역단체장 후보캠프 등에서 국회의 최저임금 개악에 맞서 농성에 돌입했다. 사진은 울산지역의 모습. (사진 : 노동과세계)     © 편집국

 

민주노총은 20일부터 여당 광역단체장 후보캠프 등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 국회 내부로 진입하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 : 노동과세계)     © 편집국

 

민주노총은 21일 오후 1시 국회 앞에서 긴급결의대회를 열고 국회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논의를 강력히 규탄하며 국회 정문으로 진출을 시도했다이 과정에서 경찰 측과 몸싸움이 벌이는 등 대치 국면이 이어졌다.

 

또한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은 21일 1230분 국회 정론관에서 김종훈 의원(민중당)과 합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제도는 정당 간의 정치적 흥정거리여서는 안 된다며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를 최저임금위원회로 이관할 것을 촉구했다노동자위원들은 국회가 기어이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일방적으로 개악한다면 환경노동위원회가 아니라 환경사용자위원회로 상임위 명칭을 개명해야 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 국회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과 민중당 김종훈 의원. (사진 : 민주노총)     © 편집국

 

한편 환노위 고용노동소위는 21일부터 22일 새벽까지 논의를 이어갔으나 정의당의 반발 등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환노위 여야 간사는 24일 밤 9시에 다시 고용노동소위를 개최해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 밤샘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사진 : 민중의소리)     © 편집국

 

하지만 민주노총은 국회의 강행처리가 확실시 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민주노총은 22일부로 "모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및 비정규직 철폐 등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우리 의제를 투쟁으로 쟁취해 나갈 것"이라고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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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최저임금 개악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국회처리가 강행되던 21일 하루민주노총은 아침 8시 30분부터 국회에서 원만한 해결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습니다그러나국회 환노위 법안소위에서의 강행처리는 기정사실로 확실시 되는 상황입니다민주노총은 한국노총 및 경총과 함께 3자 합의까지 해가며 노사중심성에 따른 사회적 대화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로 관련 논의를 이관할 것을 함께 제안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입니다따라서,

 

1. 민주노총은 지금 이 시간부로 노사정대표자회의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어떠한 회의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밝힙니다.

 

2. 이 상황의 원인은 양노총-경총 노사 당사자가 모은 노사의견조차 거부되는 국회 상황에서 비롯됐습니다특히 집권여당 원내대표는 양노총과 경총까지 참여하여 의견을 들으며 원만하게 진행되던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장에 뒤늦게 찾아와 국회처리를 겁박하는가 하면언론이 모두 보는 앞에서 양노총-경총이 논의해도 국회가 강권으로 처리하겠다고 공표하기까지 했습니다이 국회이 집권여당에 더 이상 희망은 없습니다.

 

3.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문성현 노사정위원장과 김영주 노동부 장관에게 민주노총의 이러한 입장을 통보했습니다.

 

4. 민주노총은 지금부터 모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및 비정규직 철폐 등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우리 의제를 투쟁으로 쟁취해 나갈 것입니다

 

2018년 5월 22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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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북미정상회담 앞두고 평화의 촛불 다시 타올라야"

6.9 평화촛불추진위,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북미수교와 병행추진'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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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1  17: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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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개 시민사회단체와 개인들로 구성된 평화촛불추진위원회는 21일 오전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에서 '평화촛불 각계 호소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6월 9일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평화촛불에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4.27 판문점선언 이후 오는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되는 등 순항하던 한반도 정세가 난기류에 휩싸인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촉구하는 '6.9 평화촛불'이 제안되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과 주권자전국회의,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 공공서비스노동조합총연맹, 원불교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원회, 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등 84개 단체와 개인들로 구성된 '평화촛불추진위원회'는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미정상회담 직전인 6월 9일 광화문에서 다시 평화의 촛불을 높이 들자고 호소했다.

지난 3월 24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3.24평화촛불' 이후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6.9평화촛불'을 통해 다시 한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평화체제 구축, 북미수교 동시병행 추진'을 촉구할 예정이며, 이날 기자회견은 22일 열릴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각계의 호소를 전달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김희헌 향린교회 담임목사는 "오는 한미정상회담에서 지난 판문점선언 합의가 이행될 수 있는 국제적인 여건, 즉 종전선언이 가사화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화할 수 있는 방식이 구체화되며, 남북 및 북미관계가 상호 협력적으로 전환되는 기회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22일 만나게 될 한미 정상에게는 "비핵화 과제는 서로 신뢰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평화적인 관계가 실질적으로 구축되어야 그 결과물로서 온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면서 "상대방의 숨통을 조여 강제로 비핵화를 추진하는 것보다는 수교를 맺어 서로 협력하는 평화로운 관계에서 비핵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임을 강조했다.

이어 미국도 이제는 한국에서 관례적으로 해 왔던 전쟁연습과 사드를 비롯한 전략자산을 가져가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북미정상회담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은 낮지만, 최악의 경우 북미정상회담 일정이 연기되거나 성과없는 회담으로 끝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한미정상회담의 성패는 한반도 비핵화와 북에 대한 군사적 위협해소, 체제안전 보장 방안에 대한 북미간 이견을 얼마나, 어떻게 좁혀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 측에는 "'선 비핵화, 후 보상' 방식을 앞세워 마치 패전국 다루듯 북에 대한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면서 북미정상회담의 의제를 생화학무기, 중단거리 미사일 문제, 인권문제, 심지어 일본인 납치문제 등으로까지 무차별적으로 확대하여 난관을 조성하는 고압적 행태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또 존 볼턴으로 대표되는 대북 강경파들의 대북 공세는 단순한 기선제압 수준이 아니라 회담 파탄시 대북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기 위한 명분쌓기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북미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하려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의 조치에 상응하는 미국의 대북 체제안전보장 조치를 이끌어 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미국의 대북 군사적 적대정책 해소를 담보해 줄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미국의 대북 정치·외교적 적대정책 해소를 담보하는 북미수교 과정과 동시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라는 것.  

이같은 북미간 큰 틀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비핵화 방법과 시한, 속도, 그리고 비핵화 과정에 조응하는 체제안전보장 방안 등에 대한 이견을 좁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 왼쪽부터 김희헌 향린교회 담임목사, 김선명 원불교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원회 교무, 변희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반전평화통일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특히 참가자들은 '완전한 비핵화와 핵없는 한반도 실현'을 위해 사드를 포함한 미국 핵전략자산의 한국 철수와 한반도에 전개된 미국 군사력 축소 방안을 적극 모색할 것을 촉구했다.

사드배치의 구실이었던 북핵 위협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사드 철거는 당연한 것이며, 나아가 주한미군도 상호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이 진행되는 것에 맞추어 감축이 마땅하다는 것.  

김선명 원불교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원회 교무는 "사드는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한 전략무기가 아니라는 것은 양국 국방부가 인정한 사실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사드는 뽑아내야 한다"면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말한 마당에 그에 상응해서 트럼프는 미국의 전략자산, 그중에서도 가장 앞서 사드를 뽑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희영 공공운수노조 반전평화통일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체제안전 보장 약속이 분명하다면 더 이상 도발적인 전쟁연습을 하지 않길 바란다"면서 "6.9 평화촛불을 위해 노동자들이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전국학생행진 최서연 씨는 "갑자기 찾아온 것 같은 한반도 평화의 봄이 신기하기도 한데 한반도 평화는 6월 북미정상회담에서 한번 더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면서 "큰틀의 합의는 되었다고 하지만 언제든지 판은 깨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청년들은 지난 4.27 판문점선언의 빈 공간을 채워나가길 바란다. 6.9 평화촛불에 청년들도 함께 할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민주의 주인으로 나섰던 촛불이 평화의 주인으로 나서, 앞으로 닥칠 수많은 난관을 넘어서서 평화가 뿌리 내리고 통일을 이루는 그날까지 변함없이 다시 타오를 것을 간절하게 호소한다"고 '6.9평화촛불' 참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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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다섯 가지 제안

<칼럼>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이장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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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1  10: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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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4.27 판문점선언은 9천만 국내외 한민족의 가슴을 벅차게 하였다. 판문점선언 이전 한반도 정세는 브레이크 없는 두 기차가 마주 보고 달리는 전면적 군사충돌 일촉즉발이었다. 그런데 4.27 판문점선언이후 우리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확실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전 세계는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회담시 보여준 인간적 면모와 솔직함을 보고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그후 전개되는 남북관계발전, 북미관계 및 북중관계 전개상황도 실제로 매우 순조로웠다. 그런데 5월 16일 남북고위급회담 당일 이른 새벽에 팩스로 보내온 북한 리선권 단장 명의의 통지문에서 한미합동공중훈련 중인 ‘맥스 선더’를 비난하면서 고위급회담을 무기연기한다고 하였을 때 매우 혼란스러웠다.

통일부가 밝힌 북한의 고위급회담 취소 이유는 한미 연합공중훈련중인 ‘맥스 선더’ 외에도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국회출판간담회 발언이 문제였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에서는 “이번 훈련은 판문점 선언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며 좋게 발전하는 조선반도 정세흐름에 역행하는 고의적인 군사적 도발”이라고 보도하였으며, 또 “천하의 쓰레기들까지 국회마당에 내세워 우리 최고의 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판문점선언을 비방 중상하는 놀음을 버젓이 방치해 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태영호 공사는 4.27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근 외교적 행보가 ‘쇼맨십’에 불과하다”거나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발언을 하곤 했다. 5월 16일 남북고위급회담 바로 전인 5월 14일 국회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반복하여 역사적 남북관계 해빙무드에 찬물을 뿌리는 듯 북한을 매우 자극하였다.

그 외에도 미국 대통령 안보특보 존 볼턴이 미국이 마치 승전국처럼 지나친 대북 적대적 발언 및 리비아식 핵문제 해결 모델 적용 강조 등도 남한 비판의 배경에 깔려있다. 볼턴의 리비아식 해법이란 선핵폐기를 강조하는 것인데, 동시이행의 원칙을 주장한 북한은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남한 정부도 북한이 처한 정치.경제.국제적 상황을 매우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고, 우리만의 승리감에 도취하여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자성을 해야 한다. 4.27 판문점선언은 남북이 같이 주도를 하여서 여기까지 왔는데 핵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남측이 맏형으로서 북한이라는 상대가 처한 입장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북한의 자존감에 상처를 결코 내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5.16 남북고위급회담 무기연기와 23~25일 예정인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절차에 남한 언론만 초대를 거부하는 북한의 행태를 결코 변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도 남측에서 충분히 예상하여 예정된 남북고위급회담이나 북미정상회담을 대비하여 남북한 물밑접촉에서 충분한 소통을 하여 조정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 측이 너무 안이한 대처를 한 것이 아니냐하는 의문을 갖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씀했듯이 판문점선언 이행은 질그릇 자기를 만들듯이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국방부는 미국 정부당국에게 군사문제에 대해서 사전에 긴밀한 협의를 했어야만 했다. 공격적인 최첨단 무기를 증파한 이번 한미연례합동군사훈련은 북한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연례한미군사합동훈련이지만, 미국의 최첨단 무기를 증파하여 공격성이 농후한 군사작전을 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북한에 대한 위화감을 주기위한 의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을 조금 아는 전문가라면, 일인 지배체제인 북한에서는 노골적으로 체제존립 보장 요구를 공개협상에서는 말하지 않지만, 명분상으로는 최고의 존엄을 건드리는 것은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북한과의 대화에서는 북한 내부 주민 입장을 고려하고, 또 체제의 최고 존엄을 결코 건드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이러한 배려를 남한 정부가 중재자로서 적극 나서야 하는 데 이번에 큰 실책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5.16 남북고위급회담 무기연기에 대한 통일부 성명도 적절치 않다고 본다. 5.16 고위급회담 무기연기에 대한 통일부의 성명에서 “유감”이라는 종래의 태도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얼마나 심각한 국면인데 통일부가 예전 관례처럼 성명서를 낸 것은 매우 미흡하다.

판문점 선언을 남북이 주도하여 이루었듯이 그 성공도 처음부터 끝까지 남북이 주도하여야 한다. 북한은 아직도 남한을 신뢰하고 대장정을 시작하고 지금도 남한을 믿고 북미정상회담을 계속 준비하고 있다. 또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절차도 계속 밟고 있다. 그렇다면 남한 정부는 북한의 깊은 신뢰를 유지하기위해서 한 치도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행태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 미국 및 UN을 비롯하여 국제사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은 지금 보다 훨씬 세심하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아직도 늦지 않다. 북한은 6.12 북미정상회담 준비 및 풍계리 핵실험장의 핵폐기 절차를 계속 밟고 있다. 남한 정부는 그 조정자로서 선제적으로 4.27 판문점선언의 성공적 이행을 위해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이 기회에 대내외적인 혁신적 조치와 제안을 해봄 직하다.

첫째, 한국정부가 북한의 특수한 입장을 배려하여 북미회담 장소도 싱가포르보다 판문점으로 바꾸는 문제를 미국정부와 신중하게 의논해보기 바란다.

둘째, 현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판문점선언 이행은 남북 주도로 이끌어 가야하며, 미중 도움으로 이끌어가는 구도는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양국지도자는 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판문점선언의 정신에도 타당한 것이다.

셋째,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게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해서 북한의 가장 싫어하는 한미군사합동훈련의 규모를 축소하고, 북한인권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삼가해 줄 것을 강하게 요구해야 할 것이다.

넷째, 대한민국 국회도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가 어려우면 최소한 초당적으로 “판문점선언” 국회 지지 결의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섯째, 남한 정부도 “대국민 대통령 특별선언”을 통해서 판문점선언의 성공을 위한 초당적 여야 국회 및 국민적 협조를 부탁하는 “판문점선언이행 평화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고대 법대 졸업,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킬대학 법학박사(국제법)

-한국외대 법대 학장, 대외부총장(역임)
-대한국제법학회장,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회장.
엠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위회 위원장(역임)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통일교욱협의회 상임공동대표,민화협 정책위원장(역임)
-동북아역사재단 제1대 이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역임)
-민화협 공동의장, 남북경협국민운동 본부 상임대표,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SOFA 개정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한국외대 명예교수, 네델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대한적십자사 인도법 자문위원, Editor-in-Chief /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현재)

-국제법과 한반도의 현안 이슈들(2015), 한일 역사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공저,2013), 1910년 ‘한일병합협정’의 역사적.국제법적 재조명(공저, 2011),“제3차 핵실험과 국제법적 쟁점 검토”, “안중근 재판에 대한 국제법적 평가” 등 300여 편 학술 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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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중항쟁 38주년 “진짜 주범은 미국” 한목소리

광주 금남로서 5.18정신계승 노동자·민중대회, ‘양심수 석방 및 자주통일실현’ 촉구

38주년을 맞은 5.18민중항쟁. 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광주 금남로에 모인 사람들은 “5.18 광주학살의 진짜 주범이 누구냐”는 물음에 한목소리로 “미국”이라고 답했다.

민중공동행동과 민주노총은 19일 광주 금남로에서 38주년 5.18민중항쟁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민중대회를 열고 ‘오월학살 진짜 주범 미국반대, 한반도 자주통일 실현, 노동적폐 완전 청산, 민중직접정치 쟁취’를 외쳤다.

“5.18광주학살, 결정권자는 ‘미국’”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1980년 5월 암흑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광주 민중들은 어깨와 어깨를 걸고 평화와 인권을 위한 투쟁의 들불을 올렸고 목숨까지 던졌다”면서 “광주민중항쟁이 한국사회 민주주의와 민중생존권에 숨통을 틔웠다”고 5.18의 의미를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광주의 학살자와 학살의 결정권자, 부역자 등 적폐를 청산하지 못해 또다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어둠의 역사를 겪었다”면서 “재벌이 배를 불렸고 썩은 권력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민중을 억눌렀으며, 학살 결정권자였던 미국은 평화를 위협하며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아가려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광주를 잇는 끈질긴 항쟁의 정신이 1700만 촛불항쟁을 만들어 박근혜를 퇴진·구속시키고 이명박까지 구속시켰다”고 상기시키곤 “광주항쟁의 정신을 올곧게 계승해 5.18의 진실을 규명하고 학살자와 결정권자, 부역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행덕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도 광주항쟁에 ‘미국의 책임’을 물었다. 박 의장은 “5.18 광주학살의 진실, 천안함과 세월호의 진실, 통합진보당 해산의 진실 등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수많은 사건의 진실 뒤엔 미국이 있다”고 언급하며 미국의 실체와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의장은 또 문재인 정부를 향해 “정치, 외교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규탄하며 “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고 남북 두 정상이 선언한 만큼 한반도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모든 양심수, 하루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이날 ‘양심수 석방’의 목소리도 금남로에 울려 퍼졌다. 오는 21일 가석방되는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모친 임선복 여사가 무대에 올라 한 전 위원장을 비롯한 양심수 석방 투쟁에 힘써준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임 여사는 “아들의 석방 소식은, 그동안 가슴 태웠던 수많은 세월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큰 기쁨이었다”고 전하며 “양심수 석방을 위해 함께 해준 여러분의 격려 덕분”이라고 인사했다.

아울러 “차가운 감옥에서 가슴 아파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 땅의 수많은 양심수가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이 나라의 희망과 빛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여러분들과 함께 빌겠다”고 덧붙였다.

또 한 명의 양심수 가족으로 무대에 오른 사람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누나 이경진 씨다. 이 씨는 광주 시민들 앞에 서서 “세상사람 다 안아줄 것 같은 대통령이 외면한 이석기 누나를 지난 겨울 광주가 안아주었다”면서 지난 해 양심수 석방문화제에 참가해 지지와 격려를 보내준 시민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청와대 앞에서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며 6개월째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판문점 선언을 청와대 앞에서 지켜봤다”면서 “독재가 무너지면 독재에 맞선 사람이 나라를 이끌고, 분단이 무너지면 통일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나라를 이끄는 게 세상의 이치”라고 강조하곤 “끝장을 볼 때까지 청와대를 지키겠다”고 밝혔다.

“광주 영령들 앞에서 평화와 자주통일투쟁을 결심하자”

금남로에 모인 참가자들은 양심수 석방과 더불어 ‘한반도 자주통일’과 ‘노동적폐 청산’ 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5.18민중항쟁 38주년인 올해 민생, 민주주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투쟁에 나서자”고 호소했다.
한 대표는 “4.27 판문점선언으로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성큼 다가왔다”고 운을 떼며 “남쪽에서는 촛불항쟁으로 민주주의 혁명을 완성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북녘에서는 70년 동안 미국의 적대정책과 전쟁연습을 상대하며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두 개의 기적이 만나 판문점 선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폐 중에 적폐, 분단적폐 ‘미국’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가로막고 있다”고 규탄했다. 한 대표는 “북이 비핵화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전략폭격기로 들여와 북을 응징하는 전쟁연습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으며 “5월 광주 영령들이 선을 넘어 목숨을 걸고 항쟁한 것처럼, 민주주의 혁명을 만든 촛불시민과 함께 미국을 반대하고 자주평화통일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기창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을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하며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 부위원장은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광주 금호타이어공장 해외매각, 비정규직을 고용해 배를 만들려는 조선산업 등을 예로 들며 “5월 광주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 농민, 빈민, 민중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며 민중의 삶을 변화시키는 투쟁에 힘차게 나서자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오월학살 진짜 주범 미국 반대” “평화협정 체결, 한반도 자주평화 통일 실현”을 외치며 금남로 일대를 행진한 후 대회를 마무리했다.

▲ 민주노총은 대회에 앞서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합동참배식을 진행했다. 노동자들이 묘역을 둘러보며 광주항쟁의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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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에 쌓인 조미정상회담 핵심의제, 마침내 모습 드러내다

<개벽예감 299>비밀에 쌓인 조미정상회담 핵심의제, 마침내 모습 드러내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5/21 [09:30]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볼턴이 거론한 리비아 핵포기방식, 무슨 뜻인가?

2. 흑막 뒤에서 방해공작 벌이는 검은 이익집단

3. 그들의 방해공작이 파탄될 수밖에 없는 까닭

4. 합의점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회담, 어떻게 합의하였을까?

5. 비밀 벗고 모습 드러낸 조미정상회담 핵심의제

 

 

1. 볼턴이 거론한 리비아 핵포기방식, 무슨 뜻인가?

 

조미정상회담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인데, 그 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과 마익 팜페오(Mike R. Pompeo) 국무장관에게 복잡한 사정이 생겼다. 복잡한 사정이란 무엇인가? 김계관 조선외무성 제1부상이 2018년 5월 16일에 발표한 담화를 읽어보면, 그 복잡한 사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 담화에서 두 문장을 인용한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튼을 비롯한 백악관과 국무성의 고위관리들은 <선 핵포기, 후 보상>방식을 내돌리면서, 그 무슨 리비아 핵포기방식이니,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니, <핵, 미싸일, 생화학무기의 완전페기>니 하는 주장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 이것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 있어서 대국들에게 나라를 통채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존엄 높은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심히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다.”

 

김계관 제1부상이 담화를 발표하기 사흘 전, 미국 텔레비전방송 <ABC>의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한 존 볼턴(John R. Bolton) 국가안보보좌관은 조선에게 리비아 핵포기방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조선의 핵무기를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Oak Ridge)로 가져와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오크리지에는 미국 에너지부 산하 국립핵안보청(National Nuclear Security Administration)이 운영하는 ‘Y-12 국립안보단지(National Security Complex)’가 있는데, 거기서 핵물질을 처리하고,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해체한다. <사진 1> 

 

볼턴은 국가안보보좌관이지만,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배제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하기 훨씬 전부터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전담시켰다. 1971년에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대통령이 미중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시 국무장관 월리엄 로저스(William P. Rogers)를 배제시키고, 당시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씬저(Henry A. Kissinger)에게 그 준비사업을 전담시켰던 것과 매우 유사한 상황이 오늘 재연되고 있다.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에서 배제된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왜 리비아 핵포기방식을 거론하였을까? 이 물음에 답을 찾으려면, 우선 리비아 핵포기방식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언론매체들은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거론한 리비아 핵포기방식을 ‘선 핵포기, 후 보상’이라는 단순용어로만 설명했지만, 그것은 사물의 한 측면만 설명한 것이다. 리비아 핵포기방식이라는 개념 속에는 조선이 먼저 핵포기를 단행하면 미국이 보상해주겠다는 뜻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조선도 리비아처럼 핵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투항하라는 요구가 담겼다.  

 

2001년 10월 7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전쟁을 도발하는 것을 보고 겁을 먹은 리비아 국가수반 무아마르 가다피(Muammar Gaddafi)는 그 해 12월 19일 대량파괴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전격 선언하고 미국에 투항하였다. 당시 리비아의 핵무기개발사업은 초보수준에 있었으므로, 가다피가 대량파괴무기를 포기한다고 선언하였을 때 그것은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초보수준의 핵무기개발프로그램을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가다피 정권은 파키스탄의 핵무기개발책임자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로부터 우라늄농축 원심분리기를 공급받았고, 칸 박사와 연계된 스위스의 핵공학기술자 프리드리히 티너(Freidrich Tinner)로부터는 파키스탄이 조선으로부터 전수받았던 핵탄두 설계도를 넘겨받았다. 하지만 핵공학기술을 거의 축적하지 못한 가다피 정권은 핵무기개발사업을 진척시킬 수 없었다. 

 

그런 사정과 달리, 가다피 정권의 화학무기개발사업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되었고, 강력한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가다피 정권이 대량파괴무기를 포기하는 과정에서 중심과업은 화학무기를 해체하고 화학물질을 폐기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전쟁 도발에 겁을 먹은 가다피가 대량파괴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미국에 투항하자,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움직였다. 미국은 대량파괴무기를 포기한 가다피 정권의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새빨간 거짓말로 가다피를 속여 안심시킨 뒤인 2004년 1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미국 공군 수송기들을 동원하여 핵무기개발 및 탄도미사일개발에 관련된 기술문서들과 장비들, 그리고 1,000개 이상의 원심분리기와 미사일부품들을 미국 테네시주로 가져갔으며, 방대한 분량의 화학무기와 화학물질을 해체, 폐기하였다. 미국의 속임수에 넘어가 무장해제를 당하고, 친미반란군의 내란도발까지 겹쳐 기진맥진해진 가다피 정권은 2011년 3월 19일 미국이 도발한 대규모 공습과 친미반란군의 집중공격을 받다가 7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전복되었다. 자발적인 대량파괴무기 포기에 대한 미국의 보상은 리비아의 대량파괴무기 탈취, 가다피 정권의 전복, 그리고 가다피 자신의 비참한 최후였다.         

 

가다피 정권의 대량파괴무기 포기경험이 말해주는 것처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거론한 리비아 핵포기방식은 조선에게 투항을 요구한 것이며, 조선에서 핵물질, 핵무기,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탈취한 뒤에 무력침공과 정권전복으로 ‘보상’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에게 리비아 핵포기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조선에 대한 모독이었다. 

  

 

2. 흑막 뒤에서 방해공작 벌이는 검은 이익집단

 

2018년 5월 13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 텔레비전방송 <ABC>의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리비아 핵포기방식을 거론하였던 때에 맞춰, 한국과 일본의 주요언론매체들도 일제히 리비아 핵포기방식을 보도하였다. 이를테면, 2018년 5월 13일 <연합뉴스>는 “복수의 고위급 대북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보도기사에서 조선이 핵물질,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상당 부분을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된 이후 몇 달 안에 미국으로 반출하는 방안을 조선과 미국이 논의하는 중인데, 조선이 그 방안을 받아들일 경우 그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은 대조선제재를 완화해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하였다. 2018년 5월 14일 <동아일보>도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보도기사에서 2018년 5월 9일 평양을 방문한 팜페오 국무장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하면서 조선의 핵물질, 핵무기,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으로 반출하는 방안을 제기하였는데, 조선이 그 방안을 받아들일 경우 그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은 조미연락사무소를 평양과 워싱턴에 각각 개설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하였다. 2018년 5월 17일 일본 언론매체 <아사히신붕>도 “복수의 북한 관계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한 보도기사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조선의 핵물질,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 일부를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된 때로부터 6개월 안에 미국으로 반출하는 방안을 사전협상에서 조선에게 제기하였는데, 조선이 그 방안을 받아들일 경우 그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은 2017년 11월에 재지정한 ‘테러지원국가’ 명단에서 조선을 제외시켜줄 것이라고 하였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사진 2> 

 

(1)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들은 2018년 5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에 파견된 팜페오 국무장관과 회담할 때, 팜페오 국무장관이 리비아 핵포기방식을 제의한 것처럼 서술하였으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만일 팜페오 국무장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핵무기 탈취와 정권전복을 뜻하는 리비아 핵포기방식을 거론하였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즉각 회담을 중단하고 그를 미국으로 돌려보내고, 미국 국적의 범죄자 3명을 사면, 송환하지 않았을 것이며, 핵무기 탈취와 정권전복을 노리는 사람들과는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단언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상황은 정반대였다. 김계관 제1부상이 발표한 담화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팜페오 국무장관과 두 차례나 회담하였다고 한다. <연합뉴스> 2018년 5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위원장이 회담한 시간은 1시간 30분이었으며, 김영철 통일전선부장도 그와 두 차례 회담하였다고 한다. 2018년 5월 10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팜페오 국무장관과 “훌륭한 회담을 진행하고 만족한 결과를 이룩한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였”으며, 그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시며 작별인사를 나누시고 따뜻이 바래우시였다”고 한다. 

 

위와 같은 온화한 회담분위기에서 감지할 수 있는 것처럼, 팜페오 국무장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리비아 핵포기방식을 제의하였다는 한국과 일본의 언론보도들은 익명의 소식통들이 날조, 유포한 거짓말을 옮겨놓은 허위보도였다.   

 

(2)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한국 및 일본 언론매체들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다발적으로 리비아 핵포기방식을 거론한 것은, 볼턴이 개인견해를 표명한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세력이 집체적 견해를 표명한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팜페오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회담하는 중에 전혀 거론도 하지 않은 리비아 핵포기방식을 제의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날조, 유포한 어떤 특정세력이 흑막 뒤에 정체를 감추고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에 장애를 조성해보려고 책동한 것이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그 특정세력의 대변인 노릇을 하였다. 

 

흑막 뒤에 정체를 감추고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에 장애를 조성해보려고 책동한 특정세력은 미국의 극우정객, 극우벼슬아치, 펜타곤, 군수산업체가 공동의 이해관계로 상호결탁한 검은 이익집단이다. 검은 이익집단은 세계적 범위에서 침략전쟁과 무력충돌, 전쟁위기와 내란도발, 정권전복과 내정간섭을 획책하고 자행하여 자기들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극우범죄집단이다. 

 

무기와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군수산업체가 풀어놓은 흑막자금이 공급선을 타고 워싱턴에 흘러들고, 그 흑막자금을 받아먹은 워싱턴의 극우정객들과 극우벼슬아치들은 침략전쟁과 무력충돌, 전쟁위기와 내란도발, 정권전복과 내정간섭을 획책하는 의회결의 또는 정부조치를 내놓고, 그런 결의와 조치에 따라 펜타곤은 각종 무기와 군수물자를 구입해주는 방식으로 군수산업체에게 이익을 안겨준다. 검은 이익집단은 그런 이익분배체계에 기생하며 세계를 공포와 혼란에 빠뜨린다. 검은 이익집단이 눈독을 들이는 대상들은 한반도의 전쟁위기, 중동의 무력충돌위험,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군사적 대치, 그리고 동중국해의 군사적 긴장이다. 

 

그런데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위에 열거한 대상들 가운데서 위기수준이 가장 높은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해소될 것이고, 그런 급격한 정세변화는 검은 이익집단에게 큰 손실을 안겨줄 것이다. 조미정상회담 준비과정을 노려보는 검은 이익집단은 그 회담이 성사되어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주한미국군이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경우 자기들이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예측하였을 것이다. 검은 이익집단이 조미정상회담 방해공작을 음으로 양으로 자행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검은 이익집단은 리비아 핵포기방식에 관련된 허위사실을 날조, 유포한 방해공작 이외에도 일련의 방해공작들을 자행하였는데, 그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사진 3> 

 

(1) 펜타곤은 2018년 5월 11일부터 25일까지 미국 공군과 한국 공군을 동원하여 ‘맥스 선더(Max Thunder)’라는 작전명칭을 내걸고 F-22 스텔스전투기 8대를 비롯하여 각종 작전기 100여 대를 참가시킨 대조선공중공격을 연습하는 중이다. 이것은 검은 이익집단의 한 구성부분인 펜타곤이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에 장애를 조성하려고 자행하는 방해공작의 일환이다. 남과 북이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고 공약한 판문점 선언에 서명한 문재인 대통령은 그 선언에 서명한 때로부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 공약을 외면하고 한국 공군을 대북적대행위에로 내몰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청와대는 검은 이익집단이 주도하는 대북적대행위를 거부할 권한을 갖지 못했다.  

 

(2) 2018년 5월 10일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국군 규모를 2만2,000명 이하로 감축하는데 국방예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국군 철수를 명령하는 경우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조치를 의결하였다. 이것은 검은 이익집단의 한 구성부분인 연방하원 군사위원회가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합의를 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한 나머지 그 회담의 준비사업에 장애를 조성하려고 내린 정치적 결정이다.

 

(3) 검은 이익집단에 소속된 몇몇 단위들과 개체들은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비핵화검증현장에 검증요원으로 미국군을 파견해야 한다느니, 조선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하기 전까지 경제제재를 해제하지 말고 계속 압박해야 한다느니,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속이려고 할 것이라느니 하는 해괴한 요설을 날조, 유포하면서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에 장애를 조성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3. 그들의 방해공작이 파탄될 수밖에 없는 까닭

     

검은 이익집단이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에 장애를 조성하려고 날뛰어도 그들이 자행하는 방해공작은 파탄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판단하는 논거는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논거는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지가 확고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 자신이 회담준비사업을 철저하고 치밀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5월 13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BS>의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한 팜페오 국무장관은 “그(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지칭함 - 옮긴이)가 정보자료를 잘 알고 있다는 뜻에서 그의 식견이 매우 풍부하다는 사실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답변하기 어려운 내 질문을 받았을 때도, 일련의 복잡한 논점들을 잘 처리했다. 그에게는 적바림(notecards)도 없었다”고 말했다.    

 

둘째 논거는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자기들의 정치생명을 걸고 조미정상회담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이다. 만일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하거나, 성사되고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해 결렬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생명은 끝날 것이고, 팜페오 국무장관은 실각할 것이다. 조미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는 경우, 그 두 사람의 정치생명을 유지시켜줄 전망도 대책도 없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조미정상회담에 목을 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있는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알아주기 바라고 있다고 분석한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2018년 5월 18일 보도기사는 자기의 정치생명을 걸고 조미정상회담에 매달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딱한 사정을 말해주었다.    

 

셋째 논거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맞닥뜨릴 검은 이익집단의 방해공작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첫 번째 통제활동은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익명의 소식통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날조, 유포한 리비아 핵포기방식 적용설을 전면 부정하면서 사태를 긴급히 수습한 것이었다. 2018년 5월 3일 펜타곤 대변인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팜페오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국방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3자회동이 정기적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프랑스 통신사 <AFP> 2018년 4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원래는 매티스 국방장관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2자회동을 정례화하기로 하고 자기들끼리 4월 26일 첫 2자회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검은 이익집단에 소속된 그 두 사람이 만나는 2자회동에서 무슨 방해음모가 꾸며질지 몰라 우려하였고, 그래서 매티스-볼턴 2자회동을 자기 심복인 팜페오 국무장관이 주도하는 3자회동으로 바꿔놓았다. 정기적으로 진행될 3자회동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은 검은 이익집단에 소속된 매티스 국방장관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에 장애를 조성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견제할 것이다.  

 

넷째 논거는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검은 이익집단을 가로막지는 못하지만, 그 자신은 검은 이익집단에 소속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그는 워싱턴 정가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므로,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달리, 흑막자금을 받아먹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군수산업과 무관한 부동산재벌총수인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까지 검은 이익집단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가 백악관의 주인이 된 이후 험상궂은 막말과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결정으로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면서도, 유독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만은 즉석에서 무조건 수락하였던 특이한 사연은 검은 이익집단에 소속되지 않았던 그의 처지가 잘 설명해주고 있다. 만일 연방상원의원과 국무장관을 각각 지내며 검은 이익집단에 끌려들어갔던 힐러리 클린턴(Hillary D. R. Clinton)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더라면, 그는 검은 이익집단의 저지선에 가로막혀 조미정상회담에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검은 이익집단의 관심 밖에 있었던 부동산재벌총수가 백악관의 주인으로 등장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합의점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회담, 어떻게 합의하였을까?

 

김계관 조선외무성 제1부상이 2018년 5월 16일에 발표한 담화에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 보인다. 그는 담화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입버릇처럼 되뇌는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으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배격한 것이다. 담화에 들어있는 그 문장을 다시 인용한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튼을 비롯한 백악관과 국무성의 고위관리들은 <선 핵포기, 후 보상>방식을 내돌리면서, 그 무슨 리비아 핵포기방식이니,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니, <핵, 미싸일, 생화학무기의 완전페기>니 하는 주장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

 

미국의 검은 이익집단이 조선에게 가다피식 투항을 요구하고, 조선에서 핵물질, 핵무기,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탈취한 뒤에 무력침공과 정권전복으로 ‘보상’하겠다는 범죄적 의도를 드러낸 것을 김계관 제1부상이 배격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입버릇처럼 되뇌는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으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배격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심각한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거론할 필요가 있다. 

 

2018년 5월 10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5월 9일 조선로동당 본부 청사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하고 “조미수뇌회담과 관련한 량국 최고지도부의 립장과 의견을 교환하시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팜페오 국무장관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으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하자고 제의하지 않았을까? 김계관 제1부상은 자기 개인견해를 담화로 발표한 게 아니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그의 의사를 대변한 것이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배격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문제와 관련한 합의를 이룰 수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진행한 5월 9일 평양회담은 비핵화 문제에 관련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끝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2018년 5월 10일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합중국 국무장관과 토의된 문제들에 대하여 만족한 합의를 보시였”고, “훌륭한 회담을 진행하고 만족한 결과를 이룩한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였”으며, 팜페오 국무장관도 “오늘 매우 유익한 회담을 진행하고 충분한 합의를 이룩한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사의를 표하면서 미 국무장관으로서 조미수뇌상봉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적극 노력할 결심과 의지를 피력하였다”고 한다. <사진 4>  

 

평양에서 워싱턴으로 돌아간 팜페오 국무장관은 2018년 5월 13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BS>의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김 위원장과 나는 의견을 교환하면서 우리 두 나라의 성공적인 협상이 궁극적으로 도달할 윤곽이 무엇인지에 관한 건실한 토의를 직접 진행하였다”고 밝히면서 5월 9일 평양회담에서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재확인하였다. 

 

비핵화 문제와 관련하여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것 같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은 어떻게 극적인 합의를 이룰 수 있었을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5월 9일 평양회담에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하여 극적인 합의를 이룬 것에 대해 두 갈래로 추론할 수 있다.

 

첫째 추론은 팜페오 국무장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조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할 것을 제의하였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 제의를 거부하는 바람에 팜페오 국무장관은 하는 수없이 그 제의를 철회하였고, 그래서 전혀 다른 내용의 비핵화를 극적으로 합의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추론은 팜페오 국무장관이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 관한 제의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고, 그래서 전혀 다른 내용의 비핵화를 극적으로 합의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나는 두 번째 추론을 현실로 판단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거부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5월 9일 평양회담에서 그 문제를 아예 제의하지 않았고, 그래서 전혀 다른 내용의 비핵화를 극적으로 합의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5. 비밀을 벗고 모습 드러낸 조미정상회담 핵심의제

 

5월 9일 평양회담에서 극적으로 합의된, 전혀 다른 내용의 비핵화는 무엇일까? 수수께끼 같은 그 의문은 팜페오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워싱턴에 돌아간 직후 미국 언론매체들과 진행한 대담에서 해소되었다. 그는 2018년 5월 13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의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여기서 미국의 이익은 북조선이 로스앤젤레스 또는 덴버 또는 오늘 아침 우리가 앉아있는 여기 바로 이곳으로 핵무기를 발사할 위험을 예방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고, 그것이 대통령이 나를 (국무장관에) 임명한 것이고, 바로 그 목적을 성취하려 나아가는 궤도에 우리를 올려세우기 위해 대통령은 지난 주간에 나를 (평양에) 파견하였다.” 

 

또한 팜페오 국무장관은 같은 날 미국 텔레비전방송 <CBS>의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만일 김 위원장이 우리가 해야 할 일들 한다면, 북조선의 핵무기가 미국을 더 이상 위협에 처하지 않게 (조치)한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세계를 위협하는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프로그램과 미사일을 제거한다면, 내가 알기로는 김 위원장도 바라는, 북조선 인민에게 주어질 커다란 기회를 우리가 보장할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에 열거한 대담발언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은 이제껏 세상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던 기존관념을 깨뜨린 놀라운 사실, 그 동안 감춰졌던 새로운 사실을 밝혀주었다. 그가 같은 날 진행한 두 차례 대담에서 거듭 밝힌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에서 달성하려는 협상목표는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아니라, 미국 본토가 조선의 핵위협에서 벗어나는 안전보장이다. 그러므로 5월 9일 평양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은 미국 본토가 조선의 핵위협에서 벗어나 안전을 보장받는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고, 만족할 만한 합의를 이룬 것이다. <사진 5>  

 

어제도 오늘도 백악관과 국무부는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약속하면, 조선의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헛소리를 계속 늘어놓고 있지만, 팜페오 국무장관의 두 차례 방송대담에서 드러난 것처럼, 실제상황은 정반대다. 조미정상회담이 열리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핵위협을 중지하고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요청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팜페오 국무장관의 두 차례 방송대담에 따르면, 조미정상회담 핵심의제는 미국이 핵무력을 포기한 조선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해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조선이 대조선적대정책을 포기한 미국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해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건국 이후 70년 동안 국가안보를 오직 자력으로 유지해오는 조선이 갑자기 자주노선에서 이탈하여 미국에게 국가안보를 내맡길 것으로 본다면, 그건 망상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3월 5일 남측 방북특사단을 접견하면서 언급하였던 비핵화, 그리고 2018년 3월 2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면서 언급하였던 비핵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아니라,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을 완전히 포기할 때,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핵위협을 중지하여 미국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영구적인 비핵화(permanent denuclearization)”인 것이다.

 

미국 통신사 <AP> 2018년 3월 9일 보도에 따르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접견에 관한 방북특사단의 보고를 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5월까지 영구적인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영구적인 비핵화라는 개념은 그 때 처음 등장했는데, 그 개념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듣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한 것이다. 영구적인 비핵화라는 개념은 2018년 5월 2일 팜페오 국무장관의 취임사에서 또 다시 등장한 바 있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김정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2018년 5월 17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1차 확대회의를 지도하는 장면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확대회의에서는 "혁명발전의 요구와 현시기 인민군대의 실태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데 기초하여 혁명적 당군을 군사정치적으로 더욱 강화하고 국가방위사업전반에서 개선을 가져오기 위한 일련의 조직적 대책들이 토의결정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인 조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므로, 조선이 미국 본토에 대한 핵위협을 중지하고 미국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영구적인 비핵화와 관련된 군사문제도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계관 조선외무성 제1부상은 2018년 5월 16일에 발표한 담화에서 조선이 “이미 조선반도 비핵화 용의를 표명하였고 이를 위하여서는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과 핵위협공갈을 끝장내는 것이 그 선결조건으로 된다는데 대하여 수차에 걸쳐 천명하였다”고 밝혔다. 이 인용문에 따르면, 미국이 대조선적대정책과 핵위협공갈을 먼저 중지해야 조선이 비핵화를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비핵화는 조선이 미국 본토에 대한 핵위협을 중지하여 미국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영구적인 비핵화를 뜻한다. 

 

기존관념을 뒤집는 위와 같은 놀라운 일들이 올해 들어 왕왕 일어나는 까닭은, 조선이 2017년 말 마침내 핵무기병기화를 완결하고 검증함으로써 25년 동안 치열하게 벌어진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이다. 기존관념을 뒤집는 놀라운 현상들은 조선이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하였다는 사실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그러므로 조미정상회담을 전망할 때도 그 회담을 조선의 조미핵대결 승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조미정상회담이 열리면, 조미핵대결에서 이미 패배의 쓴잔을 마신 트럼프 대통령이 핵대결을 승리로 이끈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미국의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요청하는 놀라운 장면이 펼쳐질 것이다. 8천만 민족의 운명이 걸려있고, 전 세계가 가슴 졸이며 지켜보게 될 역사적인 회담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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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유방 하나 잘리고 싶냐" 전두환과 부하들의 뻔뻔함

[리뷰] SBS <그것이 알고 싶다> 80년 5월 학살은 어떻게 조작됐나... 끔찍한 진실

18.05.20 19:47최종업데이트18.05.20 19:47
 <그것이 알고 싶다> ‘잔혹한 충성 제2부- 학살을 조작하라’ 편.

<그것이 알고 싶다> ‘잔혹한 충성 제2부- 학살을 조작하라’ 편.ⓒ SBS


영화는 현실보다 과장된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이 영화보다 훨씬 '과장'된 경우가 있다. 바로, 1980년 광주 5·18의 진실이다. 

국군이 이유도 없이 국민을 학살하고, 대검으로 여성의 신체를 훼손하고, 방금 살해한 피해자의 목을 잘라내는 모습은 영화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모자이크 처리한 장면뿐이다. 1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잔혹한 충성 제2부- 학살을 조작하라' 편에 출연한 광주 시민들은 '실제 상황이 영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영화 <화려한 휴가>도 5·18을 다뤘잖아요. 내가 본 건 영화에도 안 나왔어요."
"영화 <택시 운전사>나 다큐멘터리를 여러 번 봤는데,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너무 예쁘게 꾸몄다'라고 진실을 말해주면, (상대방은) '과연 저게 우리나라 광주라는 곳에서 일어났을까' 하고 설마 하겠지, 설마." 

영화보다 더한 참극이 광주 시내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시위 현장과 멀리 떨어진 광주 외곽에서도 발생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대표적 사례로 주남마을을 들었다. 광주광역시 남쪽에 화순군이 있다. 화순에서 광주로 넘어가는 길목에 주남마을이 있다. 지나가는 버스를 상대로 공수부대가 무차별 사격을 퍼붓는 일이 이곳에서도 있었다.  

1980년 5월 23일, 시내 상황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시민들과 계엄군의 충돌은 5월 18일 시작됐다. 3일 뒤 오후 6시경, 시민군이 도청을 접수하고 계엄군이 외곽으로 퇴각했다. 이때 시작된 소강 국면은 5월 27일 새벽 4시경 계엄군이 전면전을 개시할 때까지 이어졌다. 

소강 국면이 시작되고 이틀 뒤인 5월 23일, 화순과 광주를 운행하는 버스 1대가 주남마을을 지날 때였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고 박현숙 님과 홍금숙 님 등 10여 명이 탑승했다고 했지만, 신문 보도에 따르면 승객은 18명이었다. 

산속에 매복해 있다가 좁은 산길을 통과하는 적군을 향해 화살을 퍼붓는 옛날 전쟁의 한 장면이 여기서 재현됐다. 길가 풀 속에 매복해 있던 공수부대원들이 버스를 향해 일제 사격을 가한 것이다. 

가슴 자르고, 목 자르고... 주남마을 학살
 
 1980년 5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찍은 사진.

1980년 5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차가 벌집이 다 될 정도로, 총성이 한참 울려 퍼졌다. 버스는 이미 멈춰서 있었다. 군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돌격을 개시했다. 버스 안으로 뛰어들었다. 거기서 제2차 만행을 저질렀다. 죽은 시신들을 향해 여러 발의 확인 사살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대검까지 꺼내들었다. 여성 유방을 훼손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서울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는 시신 상태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다발성 총상이 있는 사람이 생존해 있는 상태에서 자상(칼에 의한 상처)이 이루어질 순 없어요. 총상을 입고 사망한 이후에 좌측 가슴부터 커다랗게 드러난 자상의 흔적이 있다는 이 표현을 엄격하게 말하면 사후손괴입니다."

총알 세례를 받고 학살된 여성 시신을 상대로 군인들이 유방을 훼손하는 사후손괴를 범했다는 것이다. 이 날 학살로 현장에서 열다섯 분이 숨을 거뒀다. 버스에서 살아남은 세 분 중 두 분은 인근에서 살해됐다. 나머지 생존자 한 분이 홍금숙 님이다. 이 분은 가슴을 향한 공격의 위협을 받았다. 1988년 국회에서 열린 광주 청문회 때 그는 이렇게 증언했다. 

"대검을 탁 들이대면서 하는 말이 너도 유방 하나 잘리고 싶냐 그러더라구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SBS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SBS


잔혹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다음 날인 24일에도 이 근처에서 만행이 있었다. 이 날 인근의 부엉산에서 학살당한 고 김부열 님의 상태는 너무도 처참했다. 시신에 목이 없었다. 목을 제외한 나머지 신체 부위만으로는 사인 규명이 안 됐다. 전북대학교 법의학교실 이호 교수는 살해 후에 시신을 분해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렇게 분석했다.

"지금 남아 있는 몸에서 사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없어진 부위에 사인이 있다는 거죠."

목을 절단한 뒤 어딘가에 감춘 것은, 목 윗부분을 참혹하게 다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살을 자행한 자신들이 보기에도 너무 끔찍했기에, 아예 증거를 없애고자 목을 절단해 어딘가 감춘 모양이다. 그래서 남아 있는 시신으로는 사인을 밝힐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같은 날인 24일, 주남마을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가 안 되는 송암동에서는 소년들이 말도 안 되는 학살을 당했다. 지나가는 군용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소년들을 상대로 무차별 사격이 가해졌다. 11세 된 고 전재수님은 10여 발의 총격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적군도 아닌 어린이를 상대로 잔혹하게 확인사살을 했던 것이다. 이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게 참, 우리가 흔히 말하는 르완다 학살이랄지, 그런 것과 뭐가 다릅니까?"
 
 고 전재수 님의 묘지. ‘망월동 5·18 묘역’에서 찍은 사진.

고 전재수 님의 묘지. ‘망월동 5·18 묘역’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학살자들의 뻔뻔함 광주 청문회 대비해 공작반 만들어

참극을 일일이 다 소개하는 것은 지면상 불가능하다. 모자이크 처리를 않고는 영화로도 보여줄 수 없는 참극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앗다. 그런데 더 영화 같은 것이 있다. 끔찍한 학살을 저지른 사람들 대부분이 너무도 뻔뻔하다는 것이다. 영화로도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뻔뻔함을 38년째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주남마을에서 학살을 자행한 김아무개 소령은 방송 인터뷰에서 "나도 피해자야"라고 항변한다. 그 일이 논란이 되는 바람에 진급도 못하고 군인연금도 깎였다는 것이다. 

그는 학살이 일어난 연도도 모른다고 말한다. 진압이 정당했다며 한참 열변을 토하다가 "그거는 (희생자들이) 이해를 좀 하셔야 해"라고 말한 뒤, 느닷없이 "근데 이게 82년도인가, 81년도인가?"라며 혼잣말을 했다. 온 국민이 '1980년 5월'의 고통을 다 알고 있고, 더군다나 자신이 직접 학살에 가담했으면서도 그 연도를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최고사령관 전두환의 뻔뻔함을 부하들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한참 열변을 토하던 그는 취재진이 갑자기 "입장 바꿔서 선생님 자녀분이 그런 피해를 받았다면"이라고 질문하자, 순간적으로 "열 받지, 내 자식이 총을 맞았어? 그런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라며 흥분했다. 정당한 진압 활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전두환도 자기 아들이 그때 광주에 있었다는 상상을 하게 되면, 그 역시 순간적으로 몸서리쳐질지도 모른다. 

전두환뿐 아니라 일선 장교들까지 뻔뻔하게 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이 고도의 통일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11 연구위원회의 역할이 컸다. 이것은 1988년 광주 청문회에 대비해 만든 공작반이다. 5·18 연구위원회가 아니라 5.11 연구위원회다. 5월 11일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위원회는 광주 청문회에 대비한 시나리오도 짜고, 여당 청문위원과 증인을 사전에 불러 청문회 예행연습도 했다. 1988년에 국민들이 TV로 지켜본 광주 청문회 장면의 일정 부분은 전두환 일당이 사전에 짜놓은 각본에 따른 '쇼'였던 것이다. 방송에 따르면, 청문회 뒤에 위원회는 이렇게 총평을 내렸다고 한다. "우리는 선방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이나 '광주항쟁'이란 표현 대신 '광주사태'나 '광주폭동' 같은 표현을 쓰는 일부 국민들 중에는 "광주에서 설마 그런 일이 있었겠어?"라거나 "그 정도 일은 국가를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SBS


이런 국민들도 광주 청문회를 통해 5·18의 실상을 들었다. 듣고도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 역시 5·11연구위원회의 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을 듣고도 그런 반응을 일으키는 국민들이 상당수 존재하도록 만들었으니 "우리는 선방했다"고 총평을 내릴 만도 했던 것이다.  

이처럼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조작 활동이 있었고 또 그것이 성공을 거두었기에, 전두환 집단이 영화로도 묘사할 수 없는 끔찍한 학살을 저질러놓고도 여태껏 별 탈 없이 재산과 지위를 지킬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로도 묘사할 수 없는 뻔뻔함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은 학살을 조작하고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죄악이 점점 더 드러나고 있지만, 전두환과 그 일당은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지금도 광주 학살과 자신들의 관련성을 부정한다. <전두환 회고록>에서 전두환은 자신이 총리도 아니고 계엄사령관도 아니었다며 발뺌을 한다.

"공무원 조직을 관장하고 있던 신현확 총리나 실병력을 장악하고 있는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달리 나는 실제로는 쓸 수 있는 힘이나 수단이 없었다."

형식상의 계엄사령관인 이희성도 발뺌하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나왔듯이, 그 역시 "말단 부대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책임을 기피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팀이 학자들과 함께 조사한 미국 국무부나 CIA 비밀문서에는 한국 정부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 5·18과 전두환의 관련성이 잘 드러난다. 일례로, 광주항쟁 당시 전두환은 희생자 신원에 관한 보고까지 받고 있었다. 항쟁 직후인 1980년 6월 4일, 서울에 있는 미국상공회의소 관계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자신이 보고받은 상황을 귀띔해 줬다. 이 대화 중에 전두환이 이런 말을 했다고 미국 정부에 보고됐다.  

"22구의 시신은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 그리고 22구의 시신 모두 북한에서 온 스파이일지 모른다고 했다." 

시신의 신원에 대한 보고까지 받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5·18 진압에 깊숙이 개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 영화로도 묘사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영화로도 묘사할 수 없는 뻔뻔함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007년에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찍은 두 장의 포스트잇.

2007년에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찍은 두 장의 포스트잇.ⓒ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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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거리 나선 ‘이유’ 짚은 언론은

[아침신문 솎아보기] 19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1만명 운집…언론 보도는 ‘경찰 측 입장 강조’, ‘갈등 부각’, ‘근본 이유’ 짚은 보도로 나뉘어

정민경 기자 mink@mediatoday.co.kr  2018년 05월 21일 월요일

19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는 경찰 추산 1만2000여명의 여성 참가자들이 참석했다. 국내에서 여성 관련 단일 의제로 열린 시위 중 사상 최대 규모 집회다.

해당 시위의 표면적인 주장은 피해자가 남성인 ‘홍익대 누드 몰카’ 사건에서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수사가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시위에서 나온 구호는 “남 피해자 쾌속 수사, 여 피해자 수사 거부”, “공평하게 수사하라”, “동일범죄 동일처벌” 등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모인 이유는 여성의 일상적 공포를 적극 보호해주지 못한 국가권력을 향한 저항이었다.  

 

▲ 21일 경향신문 8면.
▲ 21일 경향신문 8면.
토요일 저녁까지 행진이 진행된 해당 시위를 21일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우선 21일 아침에 발행하는 전국단위 주요 종합 일간지 중 해당 시위를 아예 다루지 않은 일간지는 서울신문과 세계일보다. 서울신문은 21일 신문에 해당 시위를 다루지 않았고, 세계일보는 사회면에 ‘여성 모델 성추행 의혹 수사 속도’라는 기사 말미에 한 단락으로 해당 시위를 소개하는데 그쳤다.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1면으로 다룬 것은 한겨레가 유일했다. 한겨레는 1면에 ‘여성들은 왜 몰카 수사에 분노하나’라는 기사로 여성들이 모인 ‘이유’를 짚었다. 2면에도 이어진다. 특히 한겨레는 이 시위에 사상 최대 규모가 모인 이유를 ‘몰카를 둘러싸고 공유된 공포 정서와 반감’이라고 짚었다.  

 

그래서 한겨레의 2면 기사 제목은 “몰카 제대로 처벌했다면 ‘편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던 이 문제를 장기간 방치해온 구조에 대한 반감”이 여성들을 시위에 나오게 했다고 강조했다.  

 

▲ 21일 한겨레 2면.
▲ 21일 한겨레 2면.
한겨레는 통계를 사용할 때도 몰카 피해자 중에 여성이 대부분임을 부각했다. 한겨레는 “경찰청 통계를 보면, 몰카 등 불법촬영 범죄는 2010년 1134건에서 2015년 7623건으로 7배나 늘었다. 불법촬영 범죄를 당한 피해자 2만6654명 가운데 여성은 84%, 남성은 2.3%, 나머지 13.7%는 각도 등의 문제로 성별이 판명되지 않는 경우였다. 여성 피해자가 대부분인 셈”이라고 썼다.

 

반면 동아일보 12면 ‘생물학적 여성만 오라, 분노의 붉은 옷 1만여명 도심 메웠다’ 기사는 시위현장을 전하면서도 경찰 입장, 즉 “편파 수사가 아니다”라는 것을 설명하는데 통계를 사용했다. 

 

▲ 21일 동아일보 12면.
▲ 21일 동아일보 12면.
동아일보는 “홍대 몰카 사건은 엄연한 범죄”라며 “경찰은 범인 안씨가 몰카 사진을 온라인에 유포해 사안이 중대하고, 몰카를 찍은 휴대전화를 한강에 버려 증거를 인멸했기에 구속한 것이지 여성인 것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수사 9일 만에 범인을 체포할 수 있었던 건 당시 누드 크로키 수업에 있던 사람이 20명뿐이라 범인을 특정하기 쉬웠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했다”고 경찰 입장을 전했다.

 

통계 사용에서도 ‘편파 수사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경찰청에 따르면 2012∼2018년 5월 남성 몰카범의 2.6%(2만2155명 중 572명)가 구속된 반면 여성 몰카범은 0.9%(580명 중 5명)가 구속됐다”며 “피해자가 남자인 사건은 가해자의 0.2%(876명 중 2명)가 구속된 반면 피해자가 여자면 가해자의 1.8%(2만9194명 중 538명)가 구속됐다”고 통계를 적었다.  

이렇다면 왜 여성들은 1만2000명이나 모인 것일까. 이를 잘 설명해준 기사는 중앙일보에서 나왔다. 중앙일보는 해당 시위를 스트레이트 기사로 처리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을 취해한 기자의 ‘취재일기’로 보도했다.  

중앙일보 홍상지 기자의 ‘1만여명 여성들이 거리로 나간 이유’는 “사실 경찰이 불법촬영 사건을 성별에 따라 ‘편파 수사’ 했다는 주장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번 시위에는 단순히 ‘편파 수사냐, 아니냐’를 넘어서는 함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 21일 중앙일보 25면.
▲ 21일 중앙일보 25면.
해당 기사는 “‘남자무죄 여자유죄’ 등 과장된 구호 속에는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법촬영에 대한 공포, 수사기관의 미온적 태도 등에 대한 울분이 뒤섞여 있다”며 “‘더 센 증거를 찾아와라’, ‘이걸론 수사가 어렵다’고 채근하는 수사관들과 더딘 수사 속도는 불법촬영 피해 여성들이 고소 단계에서 흔히 겪는 2차 피해”라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여성들의 대규모 거리 진출 이면에는 일상의 공포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수사기관이 제 역할을 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를 “이날 일부 남성들은 시위 장소로 찾아와 참가 여성들의 얼굴을 찍으려다 수차례 제지당했다”며 “불법촬영 규탄시위에서조차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참가해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마무리했다.

 

▲ 21일 한국일보 .
▲ 21일 한국일보 12면.
한국일보는 해당 시위 기사를 ‘남녀갈등’으로 부각했다. 한국일보 12면 기사 ‘몰카남에 황산테러할 것, 극단 치닫는 성추행 편파수사 갈등’ 기사는 ‘워마드’에 올라온 “몰카남에게 황산 테러할 것”이라는 게시물을 기사 첫머리로 뽑았다. 이 게시물은 17일 디시인사이드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에 페미들 염산 테러할 거다”라는 게시물이 먼저 올라온 것, 19일 ‘몰카 편파 수사’ 시위에 염산 테러를 하겠다는 게시물에 대한 반응이었음에도 한국일보 기사는 ‘워마드’의 게시물을 부각했다.

 

한국일보는 시위기사를 다루며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팅모델 성추행 사건 등으로 촉발된 남녀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며 남녀갈등을 부각했다.

그밖에 해당 시위기사를 현장기사로 처리한 언론은 경향신문(8면), 국민일보(11면), 조선일보(12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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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1위’… 격차 벌리는 박원순 “서울 25개구 민주당 승리가 목표”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입력 : 2018.05.19 16:33:00 수정 : 2018.05.19 17:01:04

 

5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지방선거대책위원회 출정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와 서울시 구청장 민주당 후보들이 선거승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준희 제공

5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지방선거대책위원회 출정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와 서울시 구청장 민주당 후보들이 선거승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준희 제공

 

지방선거 한 달 앞둔 여야 서울시 선거캠프 표정은 

“수고 많으십니다.” 선선히 악수를 받아준다. 일부러 피해가는 사람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가 내민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 5월 15일 점심시간. 공보팀에서 알려준 시간보다 5분쯤 후 체크무늬 와이셔츠 상의 차림의 안철수 후보가 청계천 소라광장 앞에 나타났다. 이날 ‘후보 동선’은 즉홍적으로 결정됐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와 김철근 바른미래당 대변인이 뒤따르며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입니다”라고 외쳤다. 

시민들은 TV 화면에서만 보던 사람을 눈앞에서 보는 것을 신기해하는 눈치다. 용감하게 후보에게 다가가 휴대폰 인증샷을 청하는 사람도 있지만 삼삼오오 모인 젊은 직장인들은 “어? 안철수다, 대박”, 이런 말만 남기고 멀찌감치 서서 구경하는 모드다. 12시 45분. 안 후보는 무교동의 한 국숫집에 들러 늦은 점심을 했다. 수행하던 바른미래당 관계자들과 이야기할 짬이 되었다. “거 친노들끼리 짜고 하는 여론조사 우리는 안 믿습니다. 그래도….” 뒷말을 흐린다. 이미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낸들 우리에게 관심이나 줍니까. 기자회견을 해도 한 줄도 보도 안하는 언론들도 많은데.” 

“미래 안보인다”는 야권 캠프 사람들 

이날 낮 일정은 1시간 만에 끝났다. 전날 안국동 안 후보 캠프에서 확인한 이날 공개 일정은 두 개였다. 하루에 10개 이상 일정을 소화하는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나 역시 10분에서 15분 단위로 촘촘히 일정이 짜여 있는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후보 쪽과 대조적이다. “TV토론 준비에 많은 힘을 쏟고 있어요. 기타 비공개로 중요한 분들은 만나는 일정을 가지고 있고….” 이상민 안철수 선대위 공보실장의 말이다. 전날 캠프에서 만난 한 바른미래당 당직자는 이야기 끝에 한숨을 쉬었다. “당내에서도 이야기해 보면 우리가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캠프에 파견 나와 있는 사람들 중에선 몇 명이나 될지…. 솔직히 지방선거 이후의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조차도.”

선당후사(先黨後私). 이번 취재를 하면서 기자가 김문수·안철수 후보 양측으로부터 똑같이 들은 출마의 이유다. 당이 원해서 후보가 결심했다는 것이다. 두 선본 모두 이번 선거가 어렵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래도 말은 이랬다. “남북정상회담이 잘되는 것 같지만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쉽게 핵을 포기할까요. 머지않아 실체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면 숨어 있던 ‘샤이 보수’가 우리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봅니다. 30~40%를 확보해 당선될 걸로 우리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만난 김문수 선대위 박성윤 부대변인의 말이다. 

김문수 후보 캠프는 당사 3층에 꾸려져 있다. 기자가 박 부대변인을 만나 인터뷰하는 동안 정택진 대변인은 전화통을 붙들고 TV 후보 토론이 무산되었다며 박 시장 측을 비난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박 부대변인의 말. “미세먼지 대책도 그렇고 지역개발도 그래요. 박 시장 9년 동안 재개발과 재건축을 규제하면서 남은 것은 도시 슬럼화밖에 없지 않습니까. 개발을 죄악시하는 시정은 더 이상 안된다는 거죠.” 인상적인 것은 입구에 걸린 숫자판이었다. ‘김문수와 함께 서울 수복! D-29’라고 적혀 있었다. 

- 6·25 때 서울 수복이 생각나는데 반공·안보 프레임으로 지지자 집결을 이룬다면 시장 당선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그냥 되찾는다는 의미죠. 문자 그대로. 프레임 설정은 기자님이 하시는 것 아닙니까.” 김문수 선본은 당사 3층을 쓰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건물 입구 로비에는 ‘김문수 서울시장 선거대책위원회 10층’이라고 적힌 입간판이 서 있다. 10층에 올라가보니 ‘접견실’에서는 회의가 한창이다. 당직자에게 물어 다시 3층으로 내려갔다. 2층 기자실은 텅 비어 있다. 

5월 15일 안철수 서울시장 바른미래당 후보가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정용인 기자

5월 15일 안철수 서울시장 바른미래당 후보가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정용인 기자

민원인 접견 등의 용도로 외부에 공개된 캠프 이외에 캠프가 자리잡은 빌딩에서 복수의 층을 비공개로 쓰는 것은 다른 후보 캠프들도 마찬가지다. 안국동 동일빌딩에 자리잡은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 캠프가 외부에 공개하고 있는 사무실은 2층이다. 안 후보는 2층을 포함, 이 건물에서 총 4개 층을 임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민 실장은 “4층은 후보자가 쉬기도 하고 머무는 공간이고, 다른 층들은 정책총괄이나 조직팀이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일빌딩은 시민운동가 시절 박원순 후보가 이끌던 희망제작소가 있던 곳이다. 안철수 측 인사들은 “그것까지는 몰랐다”는 반응이다.

동일빌딩에서 대각선으로 맞은편 안국빌딩 4층에는 박원순 캠프가 입주해 있다. 박원순 측 인사는 “4층 말고 다른 층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날은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5월 14일이었다. 캠프는 아직 정식으로 오픈하지 않았다. 한편에서는 사무실 공사가 한창이었다. 내부로 걸려 있는 현수막에는 ‘시대와 나란히, 시민과 나란히’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박 후보 측이 내건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 모토는 ‘나란히’인 듯했다. 입구 문 안쪽엔 ‘퇴근시 텔레그램 삭제 필수 확인’이라는 보안경고가 붙어 있었다. <주간경향>이 접촉한 캠프 핵심 관계자는 “공식 공보라인을 통해 말씀을 들었으면 한다”며 만남이나 통화를 피했다. 조심스러워하는 모양새다. 

다시 도로 건너 안철수 캠프. “맞은편에 박 캠프가 있는 걸 알고 있다. 4층 말고도 밤 늦은 시간까지 항상 불이 켜져 있는 다른 층들이 있는데 그걸 보고 ‘아, 어디 어디가 박원순 쪽 사무실이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기자를 만난 캠프 실무자는 말했다.

‘선당후사’ 강조하는 안철수·김문수 

기자가 1시간가량 머무는 동안 동일빌딩 2층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 캠프’를 찾는 민원인은 딱 한 명이었다. 

기자는 2012년, 이곳에서 300~400m가량 떨어진 공평동 빌딩에 만들어졌던 안철수 대선캠프를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희한한 광경을 여럿 목격했다. 멀쩡하게 민원창구가 있는데도 민원실 책상과 의자를 돌려놓고 찾아온 사람들의 민원을 받는 사람들. 같은 빌딩 다른 층에 사무실을 차리고 “우리가 진짜 안철수 캠프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치권 용어로 속칭 ‘광 파는 사람들’이 북적였던 풍경과 너무 대조적인 그림이다. 물론 그때는 대선이었고 지금은 서울시장 후보라는 점도 다르다. 

“제 마음속에는 서울지역 25개 전 자치구, 두 군데 보궐선거 이기는 것밖에 없습니다. 완전한 승리를 통해서 문재인 정부에 날개를 달겠습니다.” 5월 16일 오후 여의도 국회회관에서 열린 중앙선대위원회 출정식에 참여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말이다. 이날 행사의 끝 순서로 서울지역 자치단체 출마 민주당 후보들과 단상에 오른 그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민주당의 야전사령관이 되어 모든 힘을 다 바쳐 승리를 일궈내겠다”고 말했다. 

5월 14일 예비후보 등록 후 그의 일정을 보면 실제 개인 유세보다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원유세 일정이 두드러진다. 이튿날 시작된 그의 첫 유세일정은 송파였다. 민주당 박성수 송파구청장 후보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최재성 전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아침 박 후보는 개인 페이스북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가는 첫 일정을 이렇게 정한 이유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당 후보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뛰는 격전지역 (지원유세를 통해) 서울 25개 구의 압도적 승리를 만들어 수도권의 승리, 더 나아가 전국적 승리를 만들어가겠다”고 적었다. 이후의 초기 일정도 마찬가지다. 구청장, 시의회를 가리지 않고 당후보 지원유세를 펴고 있다. 심지어 5월 17일 오후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광주까지 내려가 송갑석 서구갑 민주당 후보와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전국구’ 일정까지 소화하고 있다. 

“5·18 행사 때문에 내려간 것 아닌가. 서울시에서 열리는 5·18 행사는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정무부시장이 참석하게 되어 있는데 그 자리에 가는 것은 모양새가 이상하고….” ‘박원순의 복심’으로 불리는 인사의 말이다. 친노의 견제로 당내 경선과정에서 소위 ‘박원순계’로 불리는 인사들 대부분이 컷오프되었다는 여의도를 떠도는 ‘설(說)’과 관련해 이 인사는 “실제 서울시 등을 통해 박원순 후보와 연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후보가 된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며 “논란이 되었던 지역구 등 공천과정을 살펴보면 무슨 ‘친노’ 그런 것보다 지역 현역의원이 자기 사람을 구청장으로 미는 과정에서 생긴 잡음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가 1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 호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6.13 지방선거 서울 필승결의대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가 1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 호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6.13 지방선거 서울 필승결의대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박원순 지지 60% 넘겨, 2위와 큰 격차 

<주간경향>은 이번 지방선거 민주당 서울시 경선을 보도하면서 “차라리 본선이 더 수월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현재까지는 이 예측대로 흘러가는 것으로 보인다. 5월 16일 리얼미터가 인터넷 언론사 이데일리와 함께 발표한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원순 후보는 지지도에서 60.6%, 당선 가능성에서 66.6%를 기록하고 있다. 지지도에서 2위는 김문수(16.0%), 3위는 안철수(13.3%), 당선 가능성에서는 안철수가 2위(12.4%), 김문수가 3위(11.9%)를 기록하고 있다. 여론조사의 오차범위(95% 신뢰구간에서 ±3.4%포인트)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경우든 1위와 2위의 격차는 더블스코어를 넘어 트리플스코어를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보수의 텃밭으로 불리는 강남서권(강남·강동·서초·송파)에서도 박 후보는 60.5%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2위 김문수(16.9%), 3위 안철수(9.1%)를 큰 격차로 따돌리고 있다. 

박신용철 KSOI 선임연구원은 “물론 아직 한 달 가까이 남아있기 때문에 정세 변화에 따라 구도는 바뀔 수 있다”면서도 “현재까지 진행상황을 보면 1등이 아니라 누가 2등을 차지해 지방선거 이후 야권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쥘 것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각축전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관계 진전 등으로 전국적으로 진보 우위로 정치지형이 바뀐 상황에서 향후 정개개편의 시각에서 본다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2등을 누가 가져갈까는 여전히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 문제”라며 “2등을 누가 차지하느냐도 중요하겠지만 유의미한 2등이냐, 아니면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냐에 따라서 자유한국당이든 바른미래당이든 2020년 총선에서 향후 대선까지 이어지는 정국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전 포인트는 박 시장이 내건 것처럼 ‘25개 전 지역구 석권, 2개 재·보궐 승리’라는 목표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박신 연구원은 “실제 20개 이상만 실현돼도 ‘정치인 박원순’으로서는 나쁠 것이 없는 결과”라며 “다만 직전까지 그가 소통과 콘텐츠를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웠는데, ‘정치인 박원순’만 강조하다 보면 동시에 잃는 것도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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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191633001&code=910110#csidx9f6cfb161b8895f9d4a64c540e2de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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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여성들, 이들은 왜 "여성유죄 남성무죄" 외쳤나

[현장]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 운집한 1만 명의 여성... "동일수사 동일처벌" 촉구

18.05.19 18:22l최종 업데이트 18.05.19 20:02l
글·사진: 곽우신(gorapakr)

 

 

분노한 여성들, 모이다 19일 오후 3시 서울 혜화 마로니에 공원 앞 도로에 1만 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여성이 피해자일 때도 남성이 피해자일 때처럼 똑같이 수사하고 처벌해달라고 요구했다.
▲ 분노한 여성들, 모이다 19일 오후 3시 서울 혜화 마로니에 공원 앞 도로에 1만 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여성이 피해자일 때도 남성이 피해자일 때처럼 똑같이 수사하고 처벌해달라고 요구했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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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원칙 무시하는 사법불평등 중단하라!"
"남자만 국민이냐, 여자도 국민이다!"

19일 오후 서울 혜화 마로니에 공원 앞 도로에 여성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모자, 마스크, 스카프, 티셔츠, 치마, 에코백 등 붉은색 아이템을 1가지 이상 가지고 있었다. '여성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한 드레스코드였다.

이날 집회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였다. '홍대 누드 크로키 모델 불법촬영 사건'에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빠르고 엄정한 대처를 보이자, 많은 여성이 분노를 표했다. 피해자가 여성이었을 때 경찰은 오랫동안 소극적으로만 대처해 왔다는 게 이들의 공감대였다.

1만 명을 넘어서다
 

분노한 여성들, 모이다 19일 오후 3시 서울 혜화 마로니에 공원 앞 도로에 1만 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여성이 피해자일 때도 남성이 피해자일 때처럼 똑같이 수사하고 처벌해달라고 요구했다.
▲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원 19일 오후 3시 서울 혜화 마로니에 공원 앞 도로에 본래 신고된 건 2000명이었다. 그러나 그 다섯 배인 1만 명을 넘어서는 인파가 몰려들어서 한 목소리로 "동일수사 동일처벌"을 외쳤다. 경찰은 더 많은 차선을 집회 참여자들에게 내어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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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집회는 '사법불평등과 편파수사에 대한 규탄 및 공정 수사 촉구', '몰카 촬영과 유출/소비에 대한 해결책 마련 촉구'를 위한 자리였다. 집회 운영진은 공지글을 통해 "몰카 범죄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집회를 준비하였으며, "수많은 남성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아 상처를 받는 일이 줄어들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적을 밝힌 바 있다.

시위 참여자들의 신분이 노출됐을 경우, 이들을 향한 온·오프라인 상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의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집회 주최 측은 취재진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폴리스 라인 안으로 남기자 출입금지, 클로즈업 사진 촬영 금지, 집회 참여자 얼굴이 사진·영상 등에 드러날 경우 모자이크 처리, 집회 참여자에 대한 개별 언론 인터뷰 금지였다. 실제로 한 커뮤니티에는 "(집회에) 염산 테러하러 지금 출발한다" 등의 협박성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본래 오후 3시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던 집회는 당초 예상보다 참여자가 훨씬 많이 몰리면서 시작이 다소 늦어졌다. 광주, 부산, 대구, 대전 등 지방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참여한 인원만 200명이 넘었다. 경찰 측에 신고는 2000명으로 되어 있었으나, 순식간에 3000명, 5000명을 넘어서더니 오후 4시 30분께는 1만 명을 돌파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물이나 간식, 유인물 등이 금세 동이 났다. 도로의 일부만 집회 공간으로 허가했던 경찰은, 집회 참여를 위한 행렬이 끊이지 않자 차선을 점차 넓혀주더니 결국 마로니에 공원 앞 도로 상행선 전체를 내주었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모이자 운영진과 참여자들 모두 고무된 모습을 보여줬다. 주최 측 진행자 중 한 명은 "역시 큰일은 여자가 한다"라면서 "여자가 움직이면 나라가 바뀐다"고 외쳐 큰 호응을 받았다. 그는 "우리는 서로의 용기, 서로의 방파제"라면서 "여러분이 함께 있기 때문에 하나도 무섭지 않다"라고도 말했다.

경찰 향한 날 선 비판... 경찰청장·검찰총장 "사퇴" 요구도 나와
 

포스트잇에 적힌 메시지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이들이 직접 적은 포스트잇들. "동일수사 동일처벌", "여자도 국민이다" 등의 문구가 써 있다.
▲ 포스트잇에 적힌 메시지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이들이 직접 적은 포스트잇들. "동일수사 동일처벌", "여자도 국민이다" 등의 문구가 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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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참여자의 자유 발언 없이, 정해진 구호를 돌아가며 외치는 게 이날 행사의 주였다. "여성유죄 남성무죄 성차별 수사 중단하라", "편파수사 부당하다 남자들도 체포하라", "동일수사 동일처벌 촉구한다", "여자도 마음놓고 용변보고 살고 싶다", "남자에겐 당연한 것, 여자들은 갈망한다" 등이 이날의 구호였다. "남피해자 포털실검, 여피해자 야동실검", "남피해자 인격살인, 여피해자 유작야동" 등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사회 양태를 꼬집기도 했다. 또한 "이종규 마포서장, 이주민 서울청장, 이철성 경찰청장"을 지목하며 "너희들도 몰카보냐", "회피말고 인정하라", "자살자가 몇 명이냐, 책임지고 보호하라"라고 공평한 수사를 요구했다. "경찰청장 사퇴하라, 검찰총장 사퇴하라"라고 외치기도 했다.

집회 구호가 적혀 있는 손피켓을 주최 측에서 나눠주기도 했고, 직접 제작한 손피켓을 들고 온 참여자들도 있었다. 이들이 자유롭게 만들어 온 피켓에는 "못 한 게 아니라, 안 했던 거네", "왜 난 '딸감'이고, 넌 피해자야", "여성인 나에게 조국은 없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포스트잇을 통해서도 자신들의 뜻을 전했다. 참여자들이 써서 붙인 포스트잇에는 "편파수사 환멸난다", "여성을 위한 나라는 없다", "사람 취급 원한다", "여자도 국민이다" 등이 써 있었다.
 

언론도 공범이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기사 헤드라인이 적힌 종이 띠를 준비했다. 가해자에게 미약한 처벌이 이루어진 사건 기사 제목이거나,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부각한 제목들이었다. 이들은 이 종이 띠를 찢어서 버리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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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도 공범이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기사 헤드라인이 적힌 종이 띠를 준비했다. 가해자에게 미약한 처벌이 이루어진 사건 기사 제목이거나,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부각한 제목들이었다. 이들은 이 종이 띠를 찢어서 버리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
▲ 언론도 공범이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기사 헤드라인이 적힌 종이 띠를 준비했다. 가해자에게 미약한 처벌이 이루어진 사건 기사 제목이거나,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부각한 제목들이었다. 이들은 이 종이 띠를 찢어서 버리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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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참여자들은 자신들을 핸드폰으로 찍는 행인이 있을 대마다 "찍지 마!"를 연호하며 항의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불법 몰카에 대해 항의하기 위한 집회인데, 왜 동의도 없이 찍느냐"라는 게 항의의 요지였다. 사진을 찍은 행인에게 집회 주최 측 혹은 경찰이 직접 다가가 사진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하고, 이를 확인하는 절차가 이어졌다.

여성이 피해자였을 때, 언론의 보도 행태를 꼬집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주최 측은 남성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진 기사이거나, 여성의 피해를 선정적으로 부각하는 제목들을 종이에 인쇄해 왔다. 주최 측 스태프와 집회 참여자들은 이 종이들로 이루어진 띠를 현장에서 찢어버렸다.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또한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주제곡을 개사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집회는 오는 7시까지 진행될 계획이다.
 

반(反) 페미니즘 시위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진행되던 시각, 인근에서는 '일베저장소' 회원 소수가 모였다. 이들은 마블 히어로 영화 주인공들의 옷으로 신분을 가리고 피켓을 들었다. '데드풀'로 변장한 그가 팔에 끼고 있는 인형은 일베 회원들 사이에서 유통되는 '베충이' 인형이다.
▲ 반(反) 페미니즘 시위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진행되던 시각, 인근에서는 '일베저장소' 회원 소수가 모였다. 이들은 마블 히어로 영화 주인공들의 옷으로 신분을 가리고 피켓을 들었다. '데드풀'로 변장한 그가 팔에 끼고 있는 인형은 일베 회원들 사이에서 유통되는 '베충이' 인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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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혜화역 2번 출구 인근 카페 앞에서는 '일베저장소' 회원들 4명이 서 있었다. 마블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코스튬 플레이한 채 페미니즘과 문재인 정권을 비난하는 피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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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룬!' 독립 후 첫 정권교체 이룬 말레이시아

[아시아 생각] 동남아시아 민주주의 쇠퇴 속에 이룩한 값진 변화
2018.05.19 17:24:35
 
 

 

 

말레이시아 시민사회는 선거의 해 2018년 새해맞이 행사로 "Turun!"(뚜룬은 '내려오다’, ‘내리다’를 의미한다)을 외치며, 나집 정권의 퇴진과 물가안정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가행진을 벌인 바 있다. 5월 9일 실시된 말레이시아 14대 총선에서 유권자는 독립 이후 최초의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총 222석 중 야당의 연합체인 희망연대(Pakatan Harapan)가 113석을 얻어 범야권 의석은 총 124석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희망연대를 구성한 정당 간 사전 합의에 따라 마하티르는 다수당의 대표로 총리에 취임했다. 일부 언론은 93세 정치인의 재집권으로 표현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오랜 개혁의 열망과 희망이 가져온 국민의 승리이다.

개혁 열망으로 이뤄 낸 61년 만의 정권 교체 

지난 61년간 장기 집권을 통해 여당은 이른바 '3M' (money, machinery, media)을 장악해왔다. 금권 선거의 관행 속에 방대한 조직력을 가진 여당은 주요 언론 매체를 소유하고 있어 선거 국면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로 구성된 다종족 사회인 말레이시아 정치에서 종족(Race), 종교(Religion), 충성심(Royalty), 이른바 '3R' 요인은 정치 현안과 이슈들을 압도했다. 

이번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도 야당은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말레이계 지지가 선거 결과를 좌우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 속에 정부 여당은 정략적 차원에서 탈세속주의를 부추겼다. '정치적 이슬람'의 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야당 중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빠스당(PAS)은 야당연합에서 이탈했다. 이로 인해 말레이계의 표심을 두고 3파전을 벌이게 되는 불리한 지형이 형성되었다. 언론 탄압과 더불어 온라인상 정부에게 불리한 정보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거짓 뉴스 처벌법'을 도입했다. 거짓의 여부를 정부 당국이 판단하는 악법적 요인을 담았다. 한편, 야당의 분열 속에 마하티르는 나집을 비판하며 정계에 복귀했으며 구속 중인 안와르를 대신하여 야당연합의 대표로 추대되었다. 마하티르 재임시절의 권위주의적 행태로 인해 민주적 개혁에 한계를 가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불리한 여건 속에 거둔 이번 승리는 지난 20여 년간 지속적으로 전개된 정치변동과 사회운동의 결과이다. 1998년 당시 부총리 안와르의 구속으로 개혁 운동이 촉발되었다. 2007년 시작된 공정 선거와 개혁을 요구하는 버르시(Bershi)운동은 시민사회의 연대와 저항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 지난 5월 9일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독립 이후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집권당 총리의 부패 스캔들로 야권연대가 승리를 거둔 것이다. 사진은 야권연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신임 총리가 된 마하티르. 그는 야권 실세인 안와르 전 부총리에게 1년내에 총리 자리를 물려줄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


2008년부터 시작된 변화 

이미 말레이시아 유권자는 2008년 총선에서 정권교체의 희망을 쏘아 올렸다. 2008년 총선에서 야당은 크게 약진하며 여당은 안정적으로 유지해왔던 2/3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당시 총선 결과는 '정치적 쓰나미'로 표현되었다. 특히, 도시 지역에서 야당에 대한 지지는 뚜렷했으며 중국계의 표심은 야당을 향했다. 이를 두고 정부와 여당은 '중국계 쓰나미'로 칭하며 말레이계의 지지를 호소하였다. 

2013년 총선에서는 비록 정권교체에 실패했지만 총 유효 득표율에서는 이미 야당연합이 50%를 확보하며 여당의 47%를 넘어섰다.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보았지만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15년 현직 총리가 연루된 최대의 부정부패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은 1MDB라는 정부 투자 기관의 기금 중 최소 7억 달러 이상이 나집 총리 개인 구좌로 유입된 정황이 포착되었다. 사법 당국은 면죄부를 부여했으나 정치적 신뢰도는 크게 추락했다. 이는 대외 신인도 하락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누적된 재정적자 회복을 위한 특별소비세 (GST)의 도입은 물가 인상으로 이어졌다. 부정부패와 실정으로 인해 정부에 대한 비판은 증가했다. 

2017년 실시된 한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52%는 말레이시아의 정치제도와 정치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으며, 말레이시아 정치가 정의롭지 못하고 희망이 결여된 상태로 보았다. 성난 민심과 개혁에 대한 열망이 정치공학적 불리함을 극복한 것이다. 평화적 시위를 통한 정치 참여로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보여주었다. 기존 언론이 여당에 통제되는 상황에서 인터넷 기반 언론과 소셜미디어 활용은 중요한 정보 공유의 장이 되었다. 무엇보다 종족 간 갈등 위협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69년 5월 종족 간 유혈사태를 겪은 이후 집권 여당은 정치 변화는 종족 간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를 전파해 왔다. 실제 지난 2차례의 선거에서 변화의 열망과 더불어 혹시 모를 충돌 사태를 우려하기도 했다. 더 이상 종족의 경계로 정치를 나눌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아울러 정치적 이슬람의 부상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남아시아 민주주의 쇠퇴 속에 이룩한 값진 변화 

희망연대 정권은 개혁을 향해 급변하고 있다. 정치보복에는 관심이 없고 법치의 회복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집 전 총리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가 취해져 그간 부정부패에 대한 조사를 예고했다. 뿐만 아니라 선관위, 부정부패방지위원회, 검찰 수뇌부 등에 대한 교체와 조사 요구가 거세다. 정치적 탄압의 결과로 구속되었던 안와르는 전격 사면되며 석방되었다. 대표적 개혁 성향의 학자인 조모(Jomo)교수를 포함하는 5인으로 구성된 국가자문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재무장관에는 개혁성향의 중국계 정당 지도자가 임명되었다. 마하티르 개인의 공과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혁에 대한 열망은 거스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제도의 불공정성 등 기울어진 운동장이 복구될 경우 민주주의는 더욱 안정적으로 성숙될 수 있을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정권 교체는 지역적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동남아시아 전반에서 뚜렷해지는 권위주의화와 민주주의 쇠퇴 속에 이룩한 값진 변화이다. 싱가포르 등 주변국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마하티르의 복귀와 민주주의 진전은 아세안 등의 외교 무대에서의 말레이시아의 역할을 강화할 것이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아세안의 잊힌 역할이 부활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말레이시아 시민들이 선택한 희망연대 정권에게 '희망'을 걸어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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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2000년 국경을 넘어 아시아 국가들의 인권과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연대활동, 빈곤과 개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위해 세워졌습니다. 위원회는 △아시아 인권, 민주주의 연대 △공적개발원조(ODA) 정책 감시 △국제 인권 메커니즘을 통한 국내 인권 및 민주주의 개선 △참여연대 활동 해외 소개 등을 주 활동 영역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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