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민주당, 폐기된 20대 1호 법안 ‘남북 접경지에 경제특구’ 재추진

2020.06.02 06:00 입력

개성공단 전경. 우철훈 선임기자

개성공단 전경. 우철훈 선임기자
통합당, 21대 1호 법안으로 ‘민생지원 패키지법’ 제출

더불어민주당이 20대 국회 1호 법안인 통일경제특별구역 설치 법안을 ‘평화경제특별구역법’으로 바꿔 재추진한다. 접경지역에 경제특구를 조성해 경제공동체를 조성하고 남북교류를 활성화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통일경제특별구역법은 20대 국회에서 민주당 박정 의원이 1호 법안으로 제출한 뒤 여야 수도권, 강원지역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과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해 통합 조정안까지 만들었지만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박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도출된 통합 조정안을 토대로 법안 발의를 주도하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1일 “21대 국회 주요 입법과제 5대 분야 중 한반도 평화 파트에서 평화경제특구법 제정안을 중점 과제로 꼽고 올해 안 법안 통과를 목표로 세웠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열린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평화경제특구법을 “반드시 처리해야 할 법”으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경제특구법은 그간 야당이 제기한 문제, 부처 간 의견 조율 결과 등을 반영해 새로 마련됐다. 동아시아 관련국 참여를 보장한 ‘평화·경제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취지에서 명칭도 통일경제특구에서 평화경제특구로 바뀌었다. 북한 노동자 고용 및 편의 제공을 담은 조항은 북측 협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다만 민주당은 상황 변화에 따라 북한 노동자의 근무 여건 조성은 후속 법 개정으로 실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입주기업·외국인투자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려면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재정당국 요구도 반영됐다. 박 의원은 조세특례제한법·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을 패키지로 준비 중이다.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을 재추진하는 것은 향후 남북관계 진전에 대비한 작업으로 보인다. 안보 리스크가 상존하는 접경지역을 ‘평화의 안전판’으로 전환하고, 남북관계가 풀릴 경우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구상’과 함께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응 등 시급한 현안이 산적한 데다 북·미관계가 냉기류라 우선 과제로 추진되긴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접경지역에 지역구를 둔 야당 의원들도 관련 입법을 요구하고 있어 논의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접경지역 개발에 따른 수도권 집중 논란, 특구 난립, 재정 부담 증가 등은 대책이 필요한 부분이다.

 

미래통합당은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코로나19 위기탈출 민생지원 패키지법’을 제출했다.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피해를 본 의료기관이나 소상공인·중소기업 피해를 지원하고, 대학교 등록금 환불 등의 내용을 담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1대 국회 상임위, 다수당이 독식해도 문제 없다.

미국과 프랑스 등 대통령제에서는 다수당이 상임위 독식
 
임병도 | 2020-06-02 08:48:5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5월 30일 21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6월 5일 의장단 선출을 위한 임시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21대 국회가 시작됩니다.

국회가 개원은 했지만 18개 상임위원회 위원장 등 원 구성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14대 국회 이후 임기 전에 원 구성을 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원 구성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상임위원장 배분 때문입니다. 어느 정당이 어떤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하느냐에 따라 법안과 예산 통과 등 국회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원 구성을 놓고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18석을 모두 가져가겠다”고 발언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수당의 독식이라며 반발하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습니다.

6월 1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11대 7 배분에 대한 강한 반박이 없었다”며 여야가 협상에 따라 민주당 11석, 통합당 7석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에 투표했던 지지자들은 177석 거대 여당이 됐는데 왜 통합당에 양보하느냐는 반발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협치를 통해 적절하게 배분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다수당이 상임위를 독식하는 국회 원 구성에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미국과 프랑스 등 대통령제에서는 다수당이 상임위 독식

▲외국의회의 원 구성 사례 비교. 출처:한국의회발전연구회 ‘국회의 원구성 협상과정 연구 보고서’

외국 의회에서는 의장단과 상임위를 어떻게 배분하고 있을까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의장단은 본회의 투표로 선출됩니다. 당연히 의회 제1당 또는 의석수가 많은 연합세력 등이 의장직을 차지합니다.

다만, 부의장은 협의에 의해 야당 또는 정당별로 배분합니다. 이때 나라별 정당 체제나 의석 분포 등에 따라 차이는 있습니다.

상임위는 다릅니다. 영국, 독일, 일본 등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의석수를 기준으로 야당에게도 상임위원장직을 배분합니다.

미국, 프랑스, 남아공, 필리핀 등 대통령제 국가는 과반수 또는 제1당, 의석수를 가장 많이 차지한 연합 세력에게만 상임위원장직을 배분합니다.

국제의원연맹 IPU 자료를 보면 의석 분포에 따른 비례적 배분 국가가 20개, 과반수 다수당 독점이 17개 국가로 거의 비슷합니다.

결국, 어떤 정치 체제를 갖고 있느냐에 문제이지, 다수당이 상임위를 독식하는 것은 불법이나 낙후된 방식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수당 독식을 꺼리는 원인은 독재 정권 때문

▲ 8대,9대,10대, 13대 국회 상임위 구성

8~10대 국회 상임위원회 구성을 보면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가 차지했습니다. 민주공화당은 5.16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던 군부 세력이 만든 정당이고, 유신정우회는 유신체제를 찬양하는 정당입니다.

민주공화당이나 유신정우회나 박정희에 의해 박정희를 위해 만들어지고 존립하는 정당이었습니다.

상임위를 다수당이 독식하는 것은 불법은 아니지만, 독재 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어용 정당이기에 의회 권력이 장악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다수당이 상임위를 독식하는 것이 마치 독재처럼 꺼려지게 됐습니다.

민주화 이후 치러진 13대 국회는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원내 제1당이 됐지만 과반수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습니다. 여소야대 4당구도가 되면서 상반기 상임위도 여러 정당에 배분됐습니다.

이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3당이 합당되면서 하반기에는 민주자유당과 평화민주당으로 배분됐습니다.

▲2008년 주호영 한나라당 수석 부대표는 과반 의석 당이 전 상임위원장을 다 맡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KBS화면 캡처

2008년 주호영 당시 한나라당 수석부대표는 “(총선에서 많이 뽑아준 것은 뽑아준 사람 뜻을) 반영해달라는 거다”라며 “과반 의석 당이 전 상임위원장을 다 맡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주호영 의원은 “지난번에 미국 민주당이 1석 많아서 전 상임위원장을 다 가지고 갔지 않습니까?”라며 다수당의 상임위 독식은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독재 정권의 부정선거나 체육관 선거가 아니라 유권자들의 정당한 투표를 통해 선출됐기에 다수당이 상임위를 독식하는 것을 불법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 민주주의 기본 정신에 충실한 해법은 ‘다수결의 원칙’이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많은 사람이 원하는 방향을 택할 수밖에 없다. 투표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은 민의를 대표하며, 각 정당의 의석수는 곧 민심의 무게다. (중략)양당이 끝까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할 경우 의회민주주의는 다수당의 손을 들어준다. 그것이 인류가 수백 년의 민주정치 경험을 통해 찾은 최선의 방안이다. [출처: 중앙일보 2018년 12월 20일 ] [사설] 합의가 안 될 경우 다수결이 원칙이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05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美 흑인 사망 항의 엿새째 격렬 시위... 군경 총격에 시민 1명 사망

미 전역 140개 도시로 확산... 트럼프, 연일 군대 투입 등 초강경 대응 예고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20-06-02 09:19:37
수정 2020-06-02 09:21:45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흑인 사망에 항의하는 과격한 시위대에 의해 경찰차가 불타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흑인 사망에 항의하는 과격한 시위대에 의해 경찰차가 불타고 있다.ⓒ뉴시스/AP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이 숨진 사건에 항의하는 미국 시위 사태가 엿새째 더욱 격렬하고 확대하고 있다. 또 진압 군경의 총격에 의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CNN방송 등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1일(현지 시간)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한 식당을 운영하는 주민 데이비드 맥애티가 경찰과 주(州) 방위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현지 경찰은 성명을 통해 “야간 통행 금지 명령을 어기고 모여 있는 군중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총을 먼저 발사해 경찰과 주방위군이 응사하는 과정에서 맥애티가 숨졌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족은 맥애티는 흑인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아니었다며 경찰의 총격에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파문이 확산하자 앤디 베셔 켄터키주지사는 주 경찰 당국에 총격 사건의 엄정한 조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없이 미 전역으로 확산하는 상황이다.

항의 시위는 미국 140여 도시로 번졌고 시위 진압을 위해 26개 주가 주 방위군을 소집했고 주방위군을 투입한 지역도 21개 주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탈과 방화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에도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을 배치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대부분 평화적인 시위에도 불구하고 특히 밤이 되면서 곳곳에서 경찰차가 불타는 등 방화를 동반한 폭력 시위가 이어졌고 총격 사건까지 잇따르며 현재까지 최소 5명이 숨졌다. 현재까지 약 4천 명 이상의 시위대가 체포됐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뉴욕 등 40개의 주요 도시에 야간 통행금지령이 발동됐지만, 시위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뉴욕, 워싱턴D.C. LA 등 주요 도심의 밤거리를 가득 메웠다. 워싱턴주 등에서는 시위대가 플로이드가 목이 눌린 8분 46초에 대한 항의 표시로 같은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미국 워싱턴주에서 1일(현지 시간) 경찰 강경 진압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조지 플로이드가 목이 눌린 8분 46초 동안 같은 자세를 취하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워싱턴주에서 1일(현지 시간) 경찰 강경 진압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조지 플로이드가 목이 눌린 8분 46초 동안 같은 자세를 취하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뉴시스/AP

LA에서는 명품 상점이 즐비한 베벌리힐스 로데오 거리 등지에서 약탈과 방화가 일어난 데 이어 전날도 LA 외곽 롱비치와 산타모니카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쇼핑센터가 털리는 등 수백 명이 체포됐다.

현지 경찰과 강렬한 충돌을 빚은 뉴욕에서도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이 시위대를 향해 평화로운 집회를 촉구했지만, 뉴욕 시장 딸이 전날 시위에 동참했다가 경찰에 체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미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해제를 통해 경제 활성화를 시도했지만, 흑인 사망을 규탄하는 대규모 항의 시위에 직면하면서 주요 도시의 거리와 상점들이 다시 ‘록다운’ 상황을 맞이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도 주지사들과 화상회의에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인간 쓰레기’라고 부르면서 초강경 대응을 촉구했다. 그는 주지사들에게 “여러분은 사람들을 체포하고 추적하고 10년간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마크 밀리 합참 의장을 폭력 대응 책임자로 두고 있다고 말해 상황이 악화하면 미국 연방 정규군을 시위 현장에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하지만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시위대를 향해 ‘얼간이’ 등의 막말을 사용하며 ‘급진 좌파’ 등 색깔 공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더욱 시위 사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조선일보>, 슬그머니 “친북 성향 매체” 삭제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06/02 09:26
  • 수정일
    2020/06/02 09:2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일 지면에 싣지 않은 듯...<통일뉴스>에 사과 하지 않아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20.06.02  08:13:36
페이스북 트위터
   
▲ 1일 오후 2시 28분경 <조선일보> 인터넷판 기사 캡쳐.

친일 성향 매체 <조선일보>가 <통일뉴스>에 붙였던 “친북 성향 매체” 표현을 슬그머니 삭제한 것으로 1일 저녁 밝혀졌다. 그러나, 2일 오전 7시까지 <통일뉴스>에 사과하거나, 기사 수정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1일 오후 2시 28분 인터넷판에 「‘윤미향 의원님’ 보좌진은?...친북 매체 기자, 정대협 간부로 채워」라는 기사를 올렸다. 

기사 첫 문단에 “친북(親北) 성향 매체 기자와 윤 의원이 대표로 있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간부 출신 등이 포함됐다”고 했다. 기사 중간에는 “보좌관을 맡은 조모씨는 친북 성향 매체 통일뉴스 기자 출신이다”라고 박아서 썼다.

<통일뉴스>는 1일 오후 4시 37분경 올린 <알림>을 통해 “<조선일보>가 먼저 공격해온 만큼 정당한 방어권을 행사할 필요”에 따라, “<조선일보>가 오늘의 무례함을 사과하고 시정할 때까지, <통일뉴스>는 이 매체를 거론할 때마다 “친일 성향 매체”라는 표현을 빼먹지 않고 붙이겠다”고 선언했다.

   
▲ 1일 오후 6시 38분 조선일보 수정 기사 캡쳐.

이에, <조선일보>는 1일 오후 6시 38분 기사를 수정했다. 제목은 「윤미향 의원 보좌진, 정대협 간부 등으로 채워」라고 바꿨다. 기사 첫 문단 “친북(親北) 성향 매체 기자”를 “‘통일뉴스’ 기자”로 수정했으며, 기사 중간에도 “보좌관을 맡은 조모씨는 통일뉴스 기자 출신”이라고 바꿨다.

2일자 지면에는 이 기사를 싣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친일 성향 매체 <조선일보>는 2일 아침까지 이 소동을 일으킨 데 대해 <통일뉴스> 측에 직접이든 간접이든 어떠한 사과나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국, 한반도에서 세균전 포기한 적 없다

  • 기자명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0.06.01 11:30
  •  
  •  댓글 0
    •  
    •  
    •  
  • <h4 class="subheading"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875rem; padding: 0px 0px 0px 0.75rem; font-weight: bolder;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line-height: 1.25; font-size: 1.25rem; letter-spacing: -0.075em; border-left: 3px solid rgb(174, 174, 174);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주한미군과 세균전] (3)세균전의 역사</h4><article id="article-view-content-div" class="article-veiw-body view-page font-size17" itemprop="articleBody" style="box-sizing: inherit; font-size: 1.063rem; letter-spacing: -0.05em; margin-bottom: 5rem;">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세균전을 벌였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세계평화회의가 작성한 일명 ‘니덤 보고서’에는 전쟁 당시 미국이 한반도 북반부와 중국 일대에 세균에 오염시킨 벼룩 등을 살포하거나 세균폭탄을 투하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세균전을 감행했다고 지적했으며, 관련 사진과 자료 수백점을 수록하고 있다.

    미국이 세균전을 감행한 이유

    1950년 크리스마스 전까지 승리하고 돌아간다는 맥아더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급기야 맥아더는 불리한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 핵폭탄 투하계획을 수립한다. 하지만 트루먼 미 행정부는 핵공격 계획을 승인하지 않았고, 결국 맥아더는 해임되고 만다.

    1951년 4월, 맥아더 후임으로 투입된 리지웨이는 맥아더식 점령지 확대보다는, 사람과 영토를 초토화시키는 ‘교살작전’을 펼친다. 이 교살작전의 일환이 바로 천인공노할 ‘세균전’이다.

    미국은 1952년 1월 28일부터 3월 3일 사이에 평양, 안주, 개천, 순천, 중화, 양덕, 고원, 문천 등지를 비롯한 북측 400여개 지역에 700여회에 걸쳐 세균탄을 투하했다.

    경기, 서울 지역에서 주로 발병하는 유행성출혈열도 1951년 초 서울이남 37도선까지 밀려난 미군이 저지선을 형성하기 위해 투하한 유행성출혈열 병원체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군 제406부대는 1953년 연례보고서를 통해 ‘포유류와 새의 기생충을 대상으로 한 우리의 연구는 한국전쟁을 통해 완성되었다’고 기록했다.

    세균전을 포기한 적 없는 미국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트루먼 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731부대(일제 관동군 산하 세균전 부대)의 ‘실험자료’들을 손에 넣기 위해 부대장 이시이시로의 전범재판 기소를 면제해줬으며, 총 20만 엔을 부대원들에게 하사한다. 이시이를 비롯한 731부대원들 중 일부가 한국전쟁 때 한반도 땅을 밟았다고 전해진다.

    미국은 아칸소 주 파인버프 군수공장에 생물학 무기 생산 공장을 설치해 1954년에는 브루셀라균을 담은 파편 폭탄을 제작했고, 이듬해엔 대규모로 야토병균을 생산했다.

    1960년대 말에 이르러 미국은 탄저균, 보툴리눔 독소, 야토병균, Q열 병원균, 브루셀라균, 포도상구균 장내독소B 등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세균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 일본은 1932~1945년 중국에서 '731부대'를 포함한  1만 명으로 구성된 세균전 부대 60개를 만들었다. 중국인 최소 27만 명이 생체실험의 피해자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미 국방성은 731부대의 ‘실험자료’들을 손에 넣기 위해 부대장 이시이(오른쪽 사진) 일당에 면죄부를 주었다. 미국은 731부대원들에게 생체실험 자료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전범재판 기소를 면제해줬으며, 총 15만~20만 엔의 돈을 부대원들에게 준 것으로 드러났다.
    ▲ 일본은 1932~1945년 중국에서 '731부대'를 비롯한 1만 명으로 구성된 세균전 부대 60개를 만들었다. 중국인 최소 27만 명이 생체실험의 피해자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미 국방성은 731부대의 ‘실험자료’들을 손에 넣기 위해 부대장 이시이(오른쪽 사진) 일당에 면죄부를 주었다. 미국은 731부대원들에게 생체실험 자료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전범재판 기소를 면제해줬으며, 총 15만~20만 엔의 돈을 부대원들에게 준 것으로 드러났다.

    세균무기를 가진 미국과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조선)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장차 북미관계가 2017년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2017년 9월, 트럼프 미 대통령은 유엔연설에서 “북한(조선)을 완전히 파괴시키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을 것”이라며 북한(조선)을 위협했다.

    전쟁위기가 절정에 달하던 10월, 미국의 세균전연습은 어김없이 시작됐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브룩스가 갑작스레 부산 8부두에 있는 미군 세균전부대를 찾아 장비를 검열하는 시간을 가졌고, 11월에는 북측의 소도시를 상정한 세균전 실전훈련을 극비리에 진행했다. 2013년 전쟁위기의 재판이었다. 전쟁위기때마다 세균전 훈련이 재연되는 공식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11월29일 북한(조선)이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호’를 발사해 미국이 대화의 장으로 끌려나오기는 했지만, 당시 세균전 위협은 극에 달했다.

    물론 미국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조선)과 2017년같은 전쟁위기를 일으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주한미군을 세균전 실험의 전초기지로 삼아 한반도 전역을 세균전 부대로 꾸릴려는 미국의 음모를 지금 막지 못한다면, ‘코로나19’와는 비교할 수 없는 끔찍한 재난이 우리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article>
     
    <article class="relation"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3.125rem 0px; font-size: 16px;">

    관련기사

    </articl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2년 전 쌍둥이와 산모 살린 소방관···찾고 보니 하늘나라에

2020.06.01 10:02 입력

지난달 29일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양언 소방위 안장식. 군산소방서 제공

지난달 29일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양언 소방위 안장식. 군산소방서 제공

지난달 29일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공무원 묘역. 이날 소방관으로는 122번째 국립묘지에 묻힌 고(故) 양언 소방위 안장식에서 전북 군산소방서 정은애 금동 119안전센터장이 추도사를 읽어 내려갔다.

“안장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배님과 한 산모의 가슴 뭉클한 사연을 접하고 큰 감동을 받았다. 과연 우리의 역할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32년 전 발생했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의 모든 결정과 책임이 국민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잊지 않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32년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88년 3월2일 새벽 0시30분, 전북 익산시 시골마을에 살던 산모 김미현씨(당시 29세)에게 진통이 시작됐다. 자가용이 없던 가족은 급히 택시를 수소문했지만 늦은 시간인 데다 외진 곳이어서 차를 구하지 못했다. 상황이 급해지자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구급차를 몰고 달려온 이는 양언 소방관(당시 36세)이었다. 구급차는 평소 산모가 다니던 인근 산부인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산모의 상태가 위급하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쌍둥이 중 한 아이의 다리가 몸 밖으로 나오다 걸려 산모와 태아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급히 차를 대학병원으로 돌린 양 소방관은 이송 중에 응급조치를 취하면서 현 상태를 병원에 타전했다. 그러면서도 산모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두 손을 꼭 잡아주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응급실에 도착한 산모는 산고 끝에 무사히 쌍둥이 자매를 낳았다. 양 소방관은 동이 터 오는데도 한동안 응급실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산모와 쌍둥이가 건강하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자리를 떴다.

 이런 사연이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22년 뒤였다. 산모 김씨가 “천사 같은 소방관님을 꼭 찾고 싶다”면서 2010년 익산소방서에 한 통의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김씨는 편지에 “처음부터 출산 때까지 모든 상황을 끝까지 지켜준 당시 구급대원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면서 “시간은 수십년이 흘렀지만 두 딸이 반듯하게 컸으니 이제라도 은혜를 갚고 싶은 심경을 헤아려 달라”고 부탁했다.

 

지난달 29일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양언 소방위 안장식에서 동료 소방관들이 경례하고 있다.군산소방서 제공

지난달 29일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양언 소방위 안장식에서 동료 소방관들이 경례하고 있다.군산소방서 제공

익산소방서는 당시 구급대원으로 활동했던 소방공무원과 대학병원 관계자들을 상대로 수소문했다. 마침내 미담의 주인공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는 하늘나라에 가 있었다. 산모를 구해낸 10년 뒤인 지난 1998년 구급출동 중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와 아들(현재 소방관)을 두고 순직한 양언 소방위가 그였다.

소식을 접한 김씨는 망연자실했다. 그는 익산소방서 모든 소방대원들에게 양말과 떡, 과일 등을 전달하며 “22년 동안 그때 일을 한번도 잊지 못하다가 신원을 확인했는데 고인이 되셨다는 말을 듣고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군산소방서는 김씨에게 그동안 일반묘지에 묻혀 있던 양 소방위가 국민소방영웅으로 추서돼 국립묘지에 안장된다는 소식을 맨 먼저 전했다. 김씨 모녀는 뛸 듯 기뻤다. 이날 열린 안장식에 김씨는 물론 간호사와 언어치료사가 돼 사회봉사를 실천 중인 두 딸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안장식을 손꼽아 기다려온 모녀는 갑자기 집안에 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달려오지 못했다. 모녀는 “함께하지 못해 너무 서운하다. 따로 시간을 내 대전현충원을 참배할 예정이니 묘지번호를 알려달라”는 문자를 군산소방서에 보내왔다.

 

김씨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그날 그 자리에서 죽는 줄로만 알았던 쌍둥이 두 딸은 소방관께서 베풀어주신 큰 사랑을 갚아 나가고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서 “아이들이 커갈 때 그날의 기억을 회상하며 그분이 베풀어주신 큰 뜻을 잊지 말고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삶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라고 당부해왔고, 두 딸이 잘 따라줬다”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드, 단순 교체인가 추가 배치인가?

[정욱식 칼럼] 이 판국에 또 사드를?

 

그러나 이번 조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유감스럽고도 우려되는 것이다. 우선 이번 기습 배치는 코로나 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2차 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강행됐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다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데, 정작 방역에 모범을 보여야 할 한미 당국이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밀집될 수밖에 없는 사드 기습 배치 작전을 강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 여러 명이 다치기도 했다. 

 

국방부는 "장병들이 생활하는 시설 상태 등을 고려할 때 시기적으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며 불가피성을 강변하고 있지만, 이 역시 설득력은 별로 없다. 사드 기지 내 장병 숙소 개선 공사는 작년부터 진행되었고,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들과의 마찰을 고려해 공사 장비와 자재를 헬기로 수송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육로 수송을 강행했다.

 

단순 교체인가, 추가 배치인가?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요격미사일을 똑같은 종류로 동일한 수량으로 교체"한 것이고, 이는 "개량 성능과는 상관이 없다"는 국방부의 설명이 사실과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사일 발사대가 새로 기지에 들어가지는 않았으며, 국내에 반입된 사실도 없다"고 말했지만, 사드 발사대와 거의 동일한 차량 2대가 사드 기지로 진입하는 것과 함께 "운용 시한을 넘은 요격미사일"을 실은 차량 2대가 빠져나간 것이 확인됐다. 

 

일단 요격미사일 교체가 이뤄진 것은 맞지만 추가 배치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방부의 계획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해 2월 10일 존 힐 미국 미사일방어청(MDA) 청장은 3단계 사드 성능 개량 계획을 밝히면서 1단계로 "사드 발사대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드 발사대를 추가로 반입해 다른 지역에도 배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특히 "우리는 이 능력을 시험하고 입증해왔다"며, 조만간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를 강력히 시사했었다. 

 

이러한 입장에 비춰볼 때, 미국이 성주 기지에서 교체한 노후 장비를 개보수해 다른 지역에 배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 본토에서 사드 운용 개시 시점이 2013년이라는 점에서 무기 수명이 다 되었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미 군 당국의 행보가 사드 정식 배치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요구가 있었더라도 문재인 정부는 일반환경영향평가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이번 조치에 동의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미국의 요구를 하나둘씩 들어주다 보면 환경영향평가 이후 정식배치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한중관계도, 남북관계도 걱정이다 

 

이번 기습 조치는 미중간의 갈등이 격화되는 와중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한중관계에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과 일부 장비의 기습 배치, 그리고 사드 배치 재검토를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마저도 2017년 9월에 임시배치를 강행하면서 한중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었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가 "사드를 추가 도입하지 않고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체제(MD)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3불 입장을 밝히면서 한중관계는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번 조치로 인해 한중관계의 불확실성이 고조될 우려가 커졌다. 한중이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방한을 협의하고 있는 와중에 이뤄졌기에 더욱 그러하다. 

 

남북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들어 북미관계에 구속되지 않고 남한 독자적으로 남북관계를 회복시키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해왔다.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고 K-방역에 힘입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가랑비에 옷 젖듯 사드 배치가 정식화되면 남북관계 제로 상태가 장기화될 우려도 커진다. 남한 정부가 한편으로는 남북교류협력을 제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대급 군비증강과 한미연합군사훈련 지속에 이어 사드 배치에 동조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북한이 양해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드 배치는 5월 하순에 나온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의 논의 결과와 연결시켜 볼 필요가 있다. 중앙군사위에서는 "나라의 핵전쟁 억제력을 더한층 강화하고 전략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들이 제시되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은 '내부 결속용', '대미 압박용'과 같은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나는 최근 펴낸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라는 책에서 최강의 공격 능력을 갖춘 한미동맹이 사드를 비롯한 MD를 강화할수록 북한은 핵 능력 강화와 함께 '경보 즉시 발사'(launch on warning) 태세를 갖추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잃느냐 사용하느냐'는 딜레마에 처한 북한은 유사시 미사일의 즉각적인 발사 태세를" 갖추어야 전쟁 억제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의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논의 결과가 나왔다. "고도의 격동상태"가 바로 경보 즉시 발사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군사논리상 한미연합전력의 공격력 및 MD 강화에 대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은 이번 한미 당국의 사드 관련 조치를 보면서 중앙군사위 논의 결과를 가속화 할 가능성이 높다. 군비경쟁 격화와 군사적 긴장이 우려되는 까닭이다. 

 

필자의 신간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 보러 가기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52912230934757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마곡사 ‘백범의 길’

강기석 | 2020-06-01 09:29: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전에서 회사 워크샵을 치룬 뒤 서울 올라가는 길에 공주 마곡사에 들렀다. 백범 김구 선생이 스물도 안 된 청년 때 황해도 어딘가 나루터 주막에서 조우한 일본군 장교 한 놈을 맨주먹으로 때려 죽이고 피신차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 잠시 중으로 신분을 속이고 숨어 사시던 곳이다.

마지막으로 백범일지를 읽은지 30년인가, 40년인가, 하도 오래 돼 세세한 기억은 없지만 왜놈 때려 죽이던 장면은 어렴풋이 떠오른다. 나라면 어땠을까, 책 읽으며 머릿속으로 무수히 그 장면을 그렸기 때문이다.

놈이 칼을 찼다는 걸 알고 정면승부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겠기로 먼저 약간의 소란을 일으켜 놈의 주의를 흐트린다. 놈이 방심하는 순간 벼락같이 달려들어 냅다 명치를 발길로 차 마당에 나뒹글게 한다. 그리고는 주먹으로 때려 죽였든가 칼을 빼앗아 찔러 죽였든가, 아마 그 비슷한 상황이었을 거다. (나중에 한 번 백범일지를 보고 확인해 봐야겠다)

그리고는 주변에 혹시 놈의 부하가 있거나 영문 모른 채 덤벼드는 자가 있을까 봐 허풍을 떠는 장면이다. 큰 솥에 밥을 가져오라 해서 숟가락을 두 개 겹쳐서 두어 숟갈 퍼먹고는 “아~ 오늘은 왜놈 피를 너무 먹었더니 내가 밥 먹기가 싫구나~!” 하시고는 숟가락을 내던지고 주막을 나와 줄행랑을 치셨다는 것으로 기억한다. (이 장면도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다)

선생은 진정 호걸이면서 지략가이시기도 했는가 보다. 맨 손으로 칼찬 왜놈(국모를 시해한 놈으로 오해함)을 죽이고 그 원수의 피를 한 움큼 움켜 마신 악귀같은 형상으로 밥을 퍼먹는 이에게 누가 감히 덤벼들 엄두라도 냈겠는가!

해방 후에 선생이 마곡사를 방문하셨던가 보다. 금의환향하는 기분으로 기념식수도 하셨나 보다. 향나무는 70여 년 동안 엄청 크게 자랐는데 선생은 끝내 자신이 꿈 꾼 나라를 일구는데 실패하고 암살 당했다. 그리고 선생을 암살한 세력은 지금까지도 지긋지긋하게 살아남아 곳곳에서 분탕질에 여념이 없다.

요즘 아베와 토왜들 하는 꼴을 보라. 원수의 피를 움켜 마신 선생의 의분을 생생히 되새기는 마곡사 방문길이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0&table=gs_kang&uid=38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현지 취재] "지금의 당혹감과 공포는..." 약탈로 이어진 LA시위

1만명 모여 '경찰에 의한 흑인 사망' 항의... 평화롭게 진행됐지만 저녁부터 양상 바뀌어

20.06.01 07:12l최종 업데이트 20.06.01 09:29l


지난달 25일(현지시각),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이 경찰관의 강압적 체포 과정에서 숨진 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여러 대도시에서 계속되고 있다. 서부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29일부터 대규모 시위가 시작됐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막고 밤늦게까지 시위가 이어졌다. 경찰은 500명이 넘는 시위 참여자를 체포했다.


주말인 30일 시위에는 더 많은 참석자들이 모였다. 낮 12시경 LA의 랜드마크인 그로브 쇼핑몰 근처의 공원에서 집회가 시작됐다. 1만여 명의 시위대는 집회를 연 뒤 경찰이 차량을 통제하는 길을 따라 베버리힐스 쇼핑센터까지 도보로 행진했다. 시위 참석자의 대부분은 10~30대 정도의 젊은 유색 인종들이었지만, LA의 진보단체들도 대거 동참한 연대 시위 형태였다.

LA 지역 부의 상징 두 곳에서 공식집회 시작과 마무리
 
 한 시위자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사인을 하고있다.
▲ 한 시위자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사인을 하고있다. ⓒ 이철호

집회와 행진은 평화롭게 진행됐다. 길가의 시민들은 구호를 같이 외치며 동조했다. LA 지역에서 부의 상징으로 꼽히는 그로브 쇼핑몰과 베버리힐스 쇼핑센터 두 곳을 집회의 시작과 마무리 장소로 정한 것은 의미심장해 보였다.
 
 베버리힐스 근처에서 평화행진 중인 시위대
▲ 베버리힐스 근처에서 평화행진 중인 시위대 ⓒ 이철호

시위가 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오후 3시경, '블랙 라이브즈 매터 로스앤젤레스'(Black Lives Matter, Los Angeles) 등이 주도한 공식집회가 마무리된 후였다. 경찰은 여전히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를 분산시키기 위해 패어팩스 길을 중심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해산을 종용했다.

이에 몇몇 시위대는 경찰차를 부수고 방화하는 등 폭력으로 대응했다. 경찰은 폭력을 쓰는 일부 시위대에 고무탄과 최루탄을 쏘며 대응했지만, 대치가 이루어진 여러 곳에선 대부분 폭력을 자제하는 평화 시위를 고수했다.

오후 3시경 공식집회 종료 후부터 시위 격화
  
 시위대가 파괴한 경찰차가 여러대 보인다.
▲ 시위대가 파괴한 경찰차가 여러대 보인다. ⓒ 이철호
 시위대에 의해 차량과 성조기가 불타고 있다.
▲ 시위대에 의해 차량과 성조기가 불타고 있다. ⓒ 이철호

시위대는 경찰과 대치하며 "쏘지마라(Don't shoot)", "모든 경찰은 악당이다(ACAB/All cops are Bastard)",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No Justice, No Peace)"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한 시위자가 '침묵하는 자도 공범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 한 시위자가 '침묵하는 자도 공범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이철호

경찰 저지선을 뚫자고 시위대를 선동하는 사람에게 평화 시위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간혹 상점의 유리창이 깨진 곳에서는 시위대가 경비를 서기도 했다.
 
 경찰 저지선을 뚫자고 선동하는 시위 참석자를 다른 참석자들이 설득하고 있다.
▲ 경찰 저지선을 뚫자고 선동하는 시위 참석자를 다른 참석자들이 설득하고 있다. ⓒ 이철호

오후 6시경 시위 양상 다시 급변... 명품 상점들 약탈 시작

시위 양상이 다시 급변한 것은 오후 6시경. 이때부터 그로브몰과 베버리힐스의 로데오 거리의 명품 상점들이 약탈당하기 시작했다. 그로브몰 내 노스트롬 백화점과 애플 스토어, 레이벤 가게 등에 약탈자들이 난입하여 물건을 무단으로 가지고 나갔고, 그로브몰에는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기도 했다.

패어팩스 근처의 상점 여러 곳이 약탈을 당했지만, 경찰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베버리힐스 로데오 거리의 명품 상점들은 대부분 미리 상점 유리창을 커다란 나무판자로 막는 공사를 해둔 상태여서 약탈의 피해를 크게 입지는 않았다.
 
 약탈당한 패어팩스 인근의 신발 상점.
▲ 약탈당한 패어팩스 인근의 신발 상점. ⓒ 이철호
 베버리힐스 로데오거리의 대형 명품상정들은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판으로 유리창과 입구를 막는 공사를 했다.
▲ 베버리힐스 로데오거리의 대형 명품상정들은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판으로 유리창과 입구를 막는 공사를 했다. ⓒ 이철호

약탈자는 시위대와는 다른 그룹이었다. 약탈을 목적으로 한 사람들은 자동차로 이동하며 적당한 상점을 물색하다가 가져온 야구방망이나 골프채로 상점의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물건을 실어날랐다. 일단 약탈이 시작되면 시위에 참가했던 일부도 약탈에 동참하는 양상을 보이긴 했지만, 주류 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시위대가 약탈자로 돌변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소 거리가 있다.
  
"당신이 겪는 당혹감과 공포, 우리는 매일 느낀다"
 
 약탈당한 베버리힐스의 한 소매점
▲ 약탈당한 베버리힐스의 한 소매점 ⓒ 이철호

한편, 에릭 가세티 LA 시장이 오후 4시경, 밤 8시부터 일요일 새벽 5시까지 통행금지를 명령한 것을 시작으로 베러리힐스, 산타모니카, 컬버시티 등 LA 인근의 여러 도시들도 통행금지를 명령했다. 특히 LA 시장은 저녁부터 상황이 격화되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게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700명의 주 방위군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1992년 4.29 흑인 '폭동' 당시 많은 재산 피해를 입었던 한인들은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많다. 또한 흑인 인권이 무시된 상황을 항의하는 시위가 차량을 불태우고 상점 약탈로 이어진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많았다.

한 흑인 시위 참석자가 시위현장에서 ABC뉴스와 인터뷰하면서 던진 말이 여전히 귓전을 맴돈다.

"오늘의 피해는 불가피한 것이다. 왜인줄 아는가? 지금 당신이 겪는 당혹감과 공포는, 우리가 매일 길을 걸으며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아름다운 빌딩들은 볼 여유가 없다."
 
 

오후까지 대부분의 시위는 평화롭게 이뤄졌지만 곳곳에 방화의 흔적이 있다
▲ 오후까지 대부분의 시위는 평화롭게 이뤄졌지만 곳곳에 방화의 흔적이 있다 ⓒ 이철호
 패어팩스 인근에서 참석자들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사인을 하고 있다.
▲ 패어팩스 인근에서 참석자들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사인을 하고 있다. ⓒ 이철호
▲ 저녁이 되자 중무장한 경찰관들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 이철호

태그:#흑인 사망, #BLACK LIVES MATTER, #흑인사망 항의시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개벽예감 397] 1948년 미국의 대소련방어선에서 제외된 남조선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6/01 [08:30]
  •  
  •  
  • <a id="kakao-link-bt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2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dotum, 돋움, Arial; color: rgb(102, 102, 102); text-size-adjust: none;"></a>
  •  
  •  
  •  
  •  
 

<차례> 

1. 미국 국가안보회의가 결정한 남조선점령군철수계획

2. 1948년 미국의 대소련방어선에서 제외된 남조선

3. 남조선점령군철수계획이 부분적으로 수정된 사연

4. 2020년 미국의 대중국방어선에서 제외된 한국

 

 

1. 미국 국가안보회의가 결정한 남조선점령군철수계획

 

집단적 망각 속에 묻혀있는 역사의 진실을 <동아일보> 1948년 1월 4일 보도에서 되살릴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인민해방군 경상남도군사위원회가 1947년 3월에 결성되었는데, 결성된지 6개월 만에 군사위원 830명, 공작대원 763명, 영도군중 36,000명으로 증강되었다고 한다. 경상남도군사위원회가 그처럼 강력한 조직이었다면, 제주도, 경상북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등에 각각 결성된 군사위원회들을 모두 합한 거대한 규모의 인민해방군이 존재했던 것이 분명하다. 이런 정황은 비정규군으로 조직된 인민해방군이 남조선혁명전쟁을 수행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왜 남한이 아니라 남조선인가? 1948년 8월과 9월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기 전, 38도선 이남은 남조선이었고, 38도선 이북은 북조선이었다. 남조선국방경비대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당시 남조선이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광범위하게 쓰였다. 

 

역사자료를 살펴보면, 남조선혁명전쟁은 1947년 2월 7일부터 1949년 6월 7일까지 2년 4개월 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혁명이라는 말 자체를 금기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남조선혁명전쟁은 “폭도들의 반란”으로 낙인찍혀 아직도 집단적 망각 속에 묻혀있다. 

 

역사자료에 따르면, 당시 남조선혁명전쟁이 전개되고 있었던 제주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지리산지구, 오대산지구, 백운산지구 등이 계엄지구로 선포되었다. 남조선국방경비대와 그 후신 한국군, 남조선경찰예비대와 그 후신 한국 경찰, 그리고 이승만을 추종하는 극우테러단체들은 남조선혁명전쟁에 참가한 민중을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군율에 의하여 총살에 즉결”했다. “군율에 의하여 총살에 즉결한다”는 말은 1948년 11월 1일 계엄사령관 원용덕이 발표한 포고문에 들어있는 표현인데, 당시 계엄지구에서 무차별 대량학살이 자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남조선국방경비대, 무장경찰, 극우테러단체들은 남조선혁명전쟁에 참가한 민중이 사는 마을을 약탈하고, 마을 전체를 불사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1949년 4월 9일 주한미국특별대표 존 무쵸는 국무장관 딘 애치슨에게 보낸 비밀전문에서 당시 제주도의 상황을 보고하면서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마을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과 함께 만연된 약탈과 방화를 보여주는 잔혹사건들이 보고되었다”고 썼다. <사진 1>  

 

 

▲ <사진 1> 위쪽 사진은 제주도에서 혁명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던 1948년 5월 5일 미군정장관 윌리엄 딘과 수행원들이 비행기편으로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장면이다. 맨스필드 제주도군정장관, 안재홍 민정장관, 송호성 남조선경비대 사령관, 조병옥 경무부장, 김익렬 남조선경비대 제9연대장이 영접했다. 남조선혁명전쟁은 1947년 2월 7일부터 1949년 6월 7일까지 2년 4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미국은 남조선국방경비대, 무장경찰, 극우테러단체를 앞세워 남조선혁명전쟁에 참가한 각계각층 인민들을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잔혹하게 살륙했다. 아래쪽 사진은 남조선혁명전쟁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체포된 장면이다. 당시 남조선국방경비대, 무장경찰, 극우테러단체들은 계엄지구에서 남조선혁명전쟁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비전투원들인 마을주민들을 살해하고, 약탈하고, 마을 전체를 불사르는 만행을 수없이 저질렀다. 이런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법적 책임자는 당시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과 당시 한국 대통령 이승만이다.  


남조선혁명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던 1949년 3월 22일 미국 국가안보회의(NSC)가 당시 대통령 해리 트루먼에게 1급 비밀보고서를 제출했다. NSC 8/2라는 문서번호로 분류된 이 보고서의 제목은 ‘코리아에 관한 미국의 입장(Position of the United States With Respect to Korea)’이다. 제목에 들어있는 코리아라는 말은 한국이라는 말로 번역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비밀보고서에서 코리아라는 말은 남북 전체를 포괄하는 뜻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1949년 3월 22일 미국 국가안보회의가 트루먼에게 제출한 1급 비밀문서를 편의상 NSC 8/2라는 문서번호로 부른다. NSC 8/2라는 문서번호가 말해주는 것처럼, NSC 8/1이라는 비밀보고서가 먼저 작성되었다. 미국 국가안보회의는 1948년 4월 2일 NSC 8/1을 채택했는데, 그 이후 급격히 변화된 남조선상황을 반영하여 부분적으로 수정된 NSC 8/2를 1949년 3월 22일에 채택했다.    

 

1948년 4월 2일에 채택된 NSC 8/1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남조선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가능한대로 빨리(as soon as possible) 철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이를 위해 코리아(남조선이라는 뜻임-옮긴이)의 안정화에 필요한 적절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이었다. 주목되는 것은, 당시 미국 국가안보회의가 남조선점령군을 가능한대로 빨리 철수하겠다는 결정을 이미 1948년 4월 2일에 내렸다는 사실이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적국이었던 일본과 도이췰란드를 무력으로 점령한 미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던 남조선도 점령지로 규정했다.  

 

1948년 4월 2일 미국 국가안보회의가 결정한 남조선점령군 철수계획은 어떤 것이었을까? NSC 8/2에 따르면, 남조선단독정부가 수립되면 곧바로 철군하기 시작해서 1948년 12월 31일까지 철군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역사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남조선에 주재하던 미군정은 남북조선 전체 민중의 격렬한 반대와 저항을 폭력으로 짓누르고 1948년 5월 10일 남조선단독선거를 강행했고, 석 달이 지난 8월 15일에 남조선단독정부를 수립했다. 미국은 왜 남조선단독선거와 남조선단독정부수립을 그처럼 서둘렀을까? 미국 국가안보회의가 1948년 12월 31일까지 철군을 완료하기로 결정한 급박한 철

군일정에 맞춰 남조선단독정부를 수립해야 했기 때문에, 미군정은 남조선단독선거와 남조선단독정부수립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이 남조선점령군을 철수하는 것은 남조선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이승만은 트루먼에게 철군일정을 뒤로 연기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미국은 철군계획을 일정대로 추진했다. 안보불안증에 사로잡힌 이승만은 철군을 하더라도 동맹조약을 체결해달라고 또 다시 간청했다. 이승만은 미국이 남조선점령군을 철수해도 동맹조약이 있으면, 남조선이 버림받지는 않을 것으로 타산했다. 그러나 미국의 반응은 싸늘했다. 동맹조약을 체결해달라는 이승만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고, 자기들이 결정한 대로 철군을 단행했다. 

 

 

2. 1948년 미국의 대소련방어선에서 제외된 남조선

 

미국 국가안보회의의 철군결정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은 왜 남조선점령군을 철수하고 남조선을 포기하려고 했던 것일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미국에는 국방부가 없었다. 미국 국가안보회의가 국방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군사기구(National Military Establishment)를 창설한 날은 1947년 7월 26일이다. 미국 국방부는 1949년 10월 10일에 창설되었다. 미국 국방부가 창설되기 전에 미국의 군사권은 합동참모본부가 행사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합동전략계획위원회(Joint Strategic Plans Committee)라는 특별기구를 산하에 두고, 전쟁계획을 수립했다.  

 

합동참모본부의 지시에 따라 합동전략계획위원회는 전쟁계획을 수립했는데, 그 과정에서 두 가지 난제에 직면했다. 두 가지 난제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군사력이 형편없이 약해진 것이었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미국의 군사비가 대폭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미국군은 돈으로 움직이는 군대인데, 군사비가 대폭 삭감되었으므로 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당시 합동참모본부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대량생산된 군사장비들을 유지하고 정비하는 데 필요한 엄청난 경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은 군사장비들이 고철로 팔려나가 해체되거나, 동맹국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되었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군의 전투준비태세도 당연히 크게 약화되었다. 

 

미국 합동전략계획위원회가 전쟁계획을 수립하면서 직면한 또 다른 난제는 미국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등장한 소련이 종전 이후에도 군사력을 계속 증강할 뿐 아니라, 소련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동유럽 각국에서 인민공화국이 연이어 수립되었고, 인민공화국 안에서 인민민주주의혁명이 수행된 것이다. 미국은 이런 국제정세변화가 미국의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된다고 생각했다. 

 

미국 합동전략계획위원회는 미국의 국가안보가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소련과 전면전을 예상한 전쟁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그것은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 전쟁계획이었다. 하지만 대폭 삭감된 군사비가 합동전략계획위원회의 발목을 잡았다. 1947년 당시 미국의 군사비는 약 130억달러였다. 

 

미국 합동전략계획위원회는 대폭 삭감된 군사비를 어떻게 효률적으로 사용해야 대소련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고심했다. 고심을 거듭하던 그들은 미국의 국가안보에 전략적 가치가 있는 나라들의 순위를 정하고, 미국의 군사력을 국가별 우선순위에 따라 조절, 배치하는 차선책을 생각해냈다. 1947년 4월 29일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작성한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미국이 지원할 나라들(United States Assistance to Other Countries From the Standpoint of National Security)’이라는 제목의 비밀문서는 미국이 자기의 국가안보에 전략적 가치가 있는 나라와 지역을 다음과 같은 순위로 정해놓았음을 보여준다. 

 

1) 영국

2) 이딸리아

3) 에스빠냐

4) 프랑스

5) 캐나다

6) 일본

7) 도이췰란드

8) 뛰르끼예

9) 중국

10) 벨지끄

11) 그리스

12) 남조선

13) 네덜란드

14) 라틴아메리카

15) 필리핀

16) 오스트리아 

 

위에 열거한 순위를 보면, 미국이 아시아에서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가장 중시하여 6위에 올려놓은 반면, 남조선의 전략적 가치는 별로 없다고 판단해 12위로 밀어놓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순위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은 왜 일본의 전략적 가치는 중시하고, 남조선의 전략적 가치는 홀시한 것일까? 그것은 당시 소련이 원동에서 전쟁을 개시하는 경우 만주와 남조선을 신속하게 점령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Far East라는 영어명칭에서 Far라는 말은 멀다는 뜻이므로 극동[다할 극]이라는 말이 아니라 원동[멀 원]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소련에게 점령당할 남조선은 미국의 국가안보에 전략적 가치를 주지 못하는 쓸모없는 지역에 불과했다. 이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진 2> 

 

▲ <사진 2> 1940년대 후반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합동전략계획위원회를 산하에 두었다. 합동전략계획위원회는 대소련전쟁전략을 수립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위의 사진은 미국의 제1대 국방장관이었던 제임스 포레스털이 고위급 군사지휘관들과 촬영한 사진이다. 그는 1947년 9월 17일 제1대 국방장관으로 부임한 이후 소련공포증에걸렸는데, 나중에는 소련사람들이 몰려온다는 헛소리를 지를 정도로 정신분렬증이악화되어 국립해군병원에 입원했다. 정신분렬증에 시달리던 그는 1949년 5월 22일새벽 해군병원 창문에서 떨어져 의문의 추락사로 사망했다. 1940년대 후반 제임스포레스털만이 아니라 미국의 지배계급 전체가 소련과의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것이라는 우려를 느끼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대소련방어선을 구축하는 전쟁계획수립으로 이어졌는데, 남조선은 대소련방어선에서 제외되었다.  

 

1947년 6월 16일 미국 합동전략계획위원회는 ‘원동에서의 소련의 위협과 그것에 맞서는 방도(The Soviet Threat in the Far East and the Means to Oppose it)’라는 제목의 전쟁계획서를 작성했다. 그들은 그 전쟁계획을 ’달돋이(MOONRISE)‘라는 암호명으로 불렀다. 전쟁계획 ’달돋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1) 원동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소련군 45개 사단이 원동전선에 투입될 것으로 예견된다. 

2) 미국이 원동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무력은 일본을 점령한 육군 2개 사단, 남조선을 점령한 육군 2개 사단, 그리고 중국에 배치한 해병대 2개 대대밖에 없다. 

3) 소련군은 남조선과 만주를 동시에 공격할 것인데, 남조선전선에 6개 사단이 투입되고, 그 중에서 5개 사단은 남조선점령군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으로 예견된다. 

4) 소련군은 전쟁을 개시한 이후 20일 안에 남조선 전역을 점령할 것으로 예견된다. 

5) 소련과의 전쟁이 개시되면, 남조선점령군은 소련군에 맞서지 말고 일본으로 즉시 철수해야 한다. 

6) 미국은 대소련방어선을 알류샨렬도⟶일본 본토⟶오끼나와를 잇는 선으로 구축해야 한다. 

 

위에 인용된 내용에서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대소련방어선에서 남조선을 제외시키고, 서태평양의 섬들을 연결한 방어선을 구축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1949년 11월 8일 미국 합동전략계획위원회가 작성하고,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채택한 또 다른 전쟁계획에서 확인된다. ‘합동개요 비상전쟁계획(Joint Outline Emergency War Plan)'이라는 제목의 전쟁계획은 ’오프택클(OFFTACKLE)‘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1) 미국은 일본 본토⟶오끼나와⟶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대소련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

2) 미국은 공군력으로 대소련방어선을 지킬 수 있다.

3) 미국이 소련과 전쟁을 벌이는 경우, 남조선에 있는 미국인 비전투원들을 일본으로 안전하게 대피시켜야 한다. 

 

위와 같은 전쟁계획에 따라,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원동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남조선에 있는 미국인 비전투원들을 유사시 일본으로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비상소개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그 지시를 받은 맥아더는 주한미군사고문단에게 비상소개계획을 수립하라고 명령했다.

 

‘달돋이’라는 전쟁계획과 마찬가지로 ‘오프택클’이라는 전쟁계획도 미국의 대소련방어선에서 남조선을 제외시켰다. 그렇게 되자, 당시 남조선점령군이 남조선을 방어할 의무는 없어졌고, 남조선에 있는 미국인 비전투원들을 일본으로 긴급히 대피시키는 의무만 수행하면 되었다. 이런 내부사정을 보면, 미국이 왜 남조선점령군을 가능하면 빨리 일본으로 철수하려고 서둘렀는지 알 수 있다. 

 

1948년 12월 22일 미국 육군부 차관 윌리엄 드레이퍼가 국무부 점령지역담당 차관보 찰스 샐쯔먼에게 보낸 전문에 따르면, 1948년 12월 4일 원동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한국에 주둔하는 소규모 부대(남조선점령을 뜻함-옮긴이)는 취약한 돌출부이므로 적의 공격을 받을 경우 궤멸되기 쉽다. (남조선점령군) 부대는 장점이 되기보다 약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이것은 남조선점령군이 존재이유를 상실했음을 자인한 발언이다. 맥아더는 즉흥적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1946년 11월 26일에도 미국이 소련과 전쟁을 하는 경우, 일본을 방어하기 위해 남조선점령군을 즉시 일본으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미국은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방대한 규모의 미국군을 한반도전선에 투입하여 3년 동안 격전을 벌였다. 한국을 대소련방어선에서 제외했다는 미국이 6.25전쟁이 일어나자 미국군을 한반도전선에 투입하여 격전을 벌인 까닭은, 6.25전쟁 직전 미국 국가안보회의가 기존 전쟁전략(남조선을 대소련방어선에서 제외한 전략)을 대폭 수정한 새로운 군사전략(남조선을 대소련방어선에 포함시킨 전략)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수정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3. 남조선점령군철수계획이 부분적으로 수정된 사연

 

미국이 남조선점령군을 일본으로 철수한다고 해서, 그냥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NSC 8/1에 따르면, “지금 남조선이 정부수립을 앞두고 있는 조건에서, 미국은 경제원조를 확대하여 남조선정부를 지원하는 계획과 더불어 “북조선 또는 다른 세력의 명백한 공격행위에 맞서 남조선이 안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현지의 무력을 무장시키고 훈련시키는 남조선정부 지원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within practicable and feasible limits)”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인용문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남조선단독정부가 수립되면, 미국이 그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지원하겠다고 제한선을 설정해놓은 것이다. 실행할 수 있는 한도가 구체적으로 어디까지인지는 NSC 8/1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한정된 군사력을 미국의 국가안보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남조선에 많이 투입할 생각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미국 국가안보회의가 기존 철군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정세변화가 일어났다. 미국은 기존 철군계획에 따라 남조선점령군을 1948년 8월 15일부터 감축하기 시작했지만, 감축과정 중에 정세가 바뀌는 바람에 원래 1948년 12월 31일까지 철수를 완료하려던 기존 철군계획을 부분적으로 수정해야 했던 것이다. 

 

기존 철군계획이 부분적으로 수정된 사연은 NSC 8/2에 들어있다. 첫 번째 사연은 유엔총회에서 조선문제를 1948년 12월 12일까지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존 철군계획도 수정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연은 남조선점령군이 원래 일정에 따라 철수할 경우 미국이 ”중대한 위험들(grave risks)“에 처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에 기존 철군계획이 불가피하게 수정되었다는 것이다. 

 

기존 철군계획을 수정했다는 말은 NSC 8/1에 제시된 철군일정을 뒤로 연기했다는 뜻이다. NSC 8/2에 따르면, 1948년 11월 12일 주한미국특별대표인 존 무쵸가 철군을 “몇 개월(several months)" 연기해줄 것을 국무장관에게 건의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은 한국과 수교하기 전이었으므로, 무쵸는 주한미국대사가 아니라 주한미국특별대표로 활동하고 있었다. 무쵸는 당시 남조선 정세에서 “(남조선의) 성공적인 경제부흥에 오직 군대만이 긴요하고, (남조선의) 기본정책 및 경제가 어떤 타격을 받아도 오직 군대만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다고 보는 자신의 견해에 따라” 철군연기를 국무장관에게 건의한 것이었다. 또한 NSC 8/2에 따르면, 무쵸가 철군연기를 건의한 것과 더불어 이승만 정부도 “당분간(for the time being)” 남조선점령군을 현상태로 유지해달라고 미국에게 공식 요청했다고 한다. 

 

NSC 8/2는 위와 같은 상황변화에 대해 서술하면서, “남조선 정부가 외부의 공격 또는 외부의 사주를 받는 반란 같은 심각하고 지속적인 도전을 감당할 수 있는 확신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완전한 철군과 관련된 결정적인 조치가 내려질 때까지 미국군 병력 약 7,500명이 남조선에 남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NSC 8/2에 따르면, 미국 국가안보회의가 1948년 8월 15일부터 시작하여 4개월이 지난 12월 31일에 끝나게 되는 남조선점령군철수일정을 연기한 것은, “외부의 공격 또는 외부의 사주를 받는 반란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이승만 정부에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NSC 8/2에서 지적한 “외부의 공격”은 북조선의 대남군사공격을 뜻한다. 조선인민군은 1948년 2월 8일에 창건되었고, NSC 8/2는 1949년 3월 22일에 채택되었는데, 미국 국가안보회의는 조선인민군이 창건 이후 1년 동안 더욱 강화되었다는 정보를 파악하고 철군일정을 연기했던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1949년 4월 13일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이 주한미국특별대표부에 보낸 전문에는 다음과 같은 정보가 담겼다. 

 

1) 앞으로 60일 안에 한반도에서 “심각한 분쟁(serious trouble)"이 일어날 것이라는 정보가 있다. 

2) 그 분쟁은 남한 사람들에 의해 촉발될 것이다. 

3) 지난 몇 달 동안 한반도의 군사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4) 북조선은 군사준비태세를 강화했다.

5) 한국군은 1948년 10월에 일어난 “반란봉기(rebel uprising)"를 진압하고 사기를 높였다.

6) 38도선 양측에 인접한 ”표적구역(target range)"에서 “소규모 침공(minor forays)”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NSC 8/2에서 지적한 “외부의 사주를 받는 반란”은 북조선의 지원을 받는 남조선혁명전쟁을 뜻한다. 남조선혁명전쟁은 1947년 2월 7일부터 1949년 6월 7일까지 지속되었고, NSC 8/2는 1949년 3월 22일에 채택되었는데, 미국 국가안보회의는 이승만 정부가 남조혁명전쟁으로 심한 타격을 받은 것을 보고 철군일정을 연기했던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주한미군사고문단 소속 장교가 남조선국방경비대 병사들에게 미국제 기관총 사격법을 가르치는 장면이다. 대소련방어선에서 남조선을 제외한미국은 원래 예정했던 철군일정을 6개월 연기하여 1949년 6월 30일에 남조선점령군을 일본으로 철수시키면서 군사고문단 500명을 남겨두었다. 500명 중에서 250명은 장교이고, 나머지 250명은 사병이었다. 당시 미국이 남조선점령군을 철수한 것은, 대소련방어전략을 수행하는 데서 남조선이 전략적 가치를 상실했다고 판단했기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일본 본토에서 오끼나와를 거쳐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대소련방어선을 구축했고, 공군력으로 그 방어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 국가안보회의는 1948년 12월 31일에 완료하려고 했던 철군을 6개월 연기하여 1949년 6월 30일에 완료했다. 하지만 남조선점령군 철수는 철군완료라는 말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사연이 얽혀있었다.

 

첫 번째 사연은, 미국 국무부와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남조선점령군을 철수하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일치되지 않은 것이다. 합동참모본부는 남조선이 전략적 가치를 상실했다고 판단했으므로 신속하고 전면적인 철군을 주장했던 반면, 국무부는 전면철군이 일본, 필리핀, 대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이승만 정부에 대한 군사원조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9년 5월 9일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주한미국대사 존 무쵸에게 보낸 1급 비밀전문에 따르면, 이승만 정부는 미국에게 2억달러가 넘는 막대한 군사원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물론 미국은 이승만의 그런 무리한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으나, 철군일정으로 다급해진 이승만은 남조선점령군이 철수하는 것에 대처하여 국방군의 무력을 대폭 증강시켜줄 것을 미국에게 계속 요청했다.  

 

1949년 1월 27일 주한미국특별대표 무쵸가 국무장관 애치슨에게 보낸 비밀전문에 따르면, 한국 국방군 육군은 65,000명, 경찰은 45,000명, 해군은 4,000명이며, 육군 50,000명은 미국이 제공한 무기로 무장했다고 한다. 1948년 11월 19일 주한미국특별대표 무쵸가 애치슨에게 보낸 비밀전문에 따르면, 한국 국방군 육군은 50,000명, 경찰은 35,000명, 해안경비대는 3,000명이었는데, 불과 3개월 만에 육군은 15,000명이 늘어났고, 경찰은 10,000명이 늘어났고, 해군은 1,000명이 늘어난 것이다. 1948년 11월 2일 이승만은 애치슨에게 보낸 공식서한에서 현재 국방군 50,000명은 적절한 규모가 아니라고 하면서, 50,000명을 더 증원해 총 100,000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1948년 말 현재, 맥아더 휘하의 원동군은 약 80,000명이었는데, 이승만은 국방군을 100,000명으로 증원하려고 했던 것이다. 

 

<동아일보> 1949년 4월 10일 보도와 <평화일보> 1949년 4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1949년 4월 11일 이승만의 특사로 워싱턴에 파견된 조병옥은 “중국공산당의 남하로 인하여 붉은 바다 가운데 섬처럼 고립된 한국인들은 공포심을 느끼고 있다. 이런 공포심을 전복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미국의 군사원조”라고 하면서, 국무장관 애치슨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요청서를 전했다고 한다. 

 

1) 6개 보병사단으로 증원된 육군 약 100,000명, 예비군 50,000명, 경찰 50,000명을 충분히 무장시키기 위한 무기와 군사장비를 미국에게 요청한다.

2)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작전기 약 100대와 비행사 3,000명에 필요한 공중무력장비를 미국에게 요청한다. 

3) 잠수함 1척을 포함한 각종 함선 50척 이상과 해군 100,000명을 무장시킬 무기와 군사장비를 미국에게 요청한다.  

 

그러나 미국은 대폭적인 군사지원을 바라는 이승만의 간청을 받아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른바 ‘북벌전쟁’을 주장하는 이승만이 미국의 군사지원으로 군사력을 강화하면, ‘북벌전쟁’을 반드시 도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련이 전쟁에 개입하여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대소련방어선에서 남조선을 제외하기로 결정한 미국은 ‘위험한 불장난’의 기회를 이승만에게 안겨줄 군사지원을 철저히 외면했다.  

 

 

4. 2020년 미국의 대중국방어선에서 제외된 한국

 

 2020년 5월 12일 미국 공군 소속 B-1B 전략핵폭격기 두 대가 괌에 있는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이륙했다. 일본 동쪽 북서태평양 상공으로 북상한 전략핵폭격기들은 호까이도 상공을 지나 일본쪽 동해 상공에서 남하하더니 공중급유기 두 대로부터 급유를 받으며 동중국해 상공을 종단하여 앤더슨공군기지로 돌아갔다. 

 

B-1B 전략핵폭격기는 공중선제핵타격에 사용되는 폭격기다. B-1B에는 사거리가 2,400km인 공중발사순항미사일 AGM-86B가 탑재되는데, 바로 이 순항미사일에 전략핵탄두가 장착된다. 이 순항미사일이 공중선제핵타격에 사용된다.

 

B-1B 전략핵폭격기는 B-52H 전략핵폭격기보다 더 강한 선제타격력을 가졌다. 이를테면, B-1B 내부폭탄창에는 34t에 이르는 폭탄과 미사일을 실을 수 있고, 외부폭탄창에는 27t에 이르는 폭탄과 미사일을 실을 수 있는데, B-52H 폭탄창에는 32t밖에 싣지 못한다. B-1B의 최고비행속도는 시속 1,335km이고 최고비행고도는 18km인데, B-52H의 최고비행속도는 시속 1,047km이고 최고비행고도는 15km다. 

 

미국은 앤더슨공군기지에 장기간 고정배치했던 B-52H 전략핵폭격기 5대를 2020년 4월 말 미국 본토로 철수했고, 2020년 5월 1일 B-1B 전략핵폭격기 4대를 그 공군기지에 고정배치했다. B-52H가 B-1B로 교체된 것은 태평양작전구역에서 공중선제핵타격력을 대폭 강화한 조치로 된다.  

 

주목되는 것은, 올해 괌에 고정배치된 B-1B 전략핵폭격기의 작전범위가 대폭 확장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B-1B 전략핵폭격기들은 2020년 4월 23일, 4월 30일, 5월 1일, 5월 6일에 이어 5월 12일에도 일본 상공과 동중국해 상공을 오가는 장거리비행을 했으며, 2020년 5월 15일에는 대만 동부 상공에서 공중급유기로부터 급유를 받으면서 동중국해 상공을 비행했고, 5월 20일에는 대만 남부와 필리핀 북부 사이에 있는 바시해협 상공을 지나 공중급유기로부터 급유를 받으며 남중국해 상공을 비행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B-1B 전략핵폭격기들은 2017년 한 해 동안 매월 1~2차례 한반도 상공에 계속 출동하여 조선을 위협했었는데, 올해에는 작전범위를 대폭 확장하여 일본 북부 상공에서부터 동중국해 상공, 대만 주변 상공, 필리핀 주변 상공을 거쳐 남중국해 상공까지 빈번히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사진은 B-1B 전략핵폭격기 4대가 괌에 있는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연속이륙준비를 연습하는 장면이다. 미국은 앤더슨공군기지에 배치했던 B-52H 전략핵폭격기를 미국 본토로 철수하고, 미국 본토 텍사스주 다이스공군기지에 주둔하던제9폭격대대를 2020년 5월 1일 그 공군기지로 배치했다. 제9폭격대대는 B-1B 전략핵폭격기 4대와 지상근무병력 200명으로 편성되었다. B-52H가 B-1B로 교체된 것은 태평양작전구역에서 공중선제핵타격력을 대폭 강화한 조치로 된다. 괌에 배치된B-1B 전략핵폭격기들은 사흘이 멀다하게 계속 출격하여 대중국방어선 상공을 비행하면서 중국을 위협하는 선제핵타격비행연습을 감행하는 중이다. 70여 년 전에는소련과의 전쟁에 대비해 대소련방어선을 서태평양에 구축했었는데, 오늘은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해 대중국방어선을 서태평양에 구축한 것이다. 한반도에 구축된 대조선방어선과 서태평양에 구축된 대중국방어선 가운데서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미국의 최종적인 전략적 선택은 대조선방어선을 포기하고 대중국방어선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괌에 고정배치된 B-1B 전략핵폭격기 4대가 계속하는 선제핵타격비행연습의 작전항로가 일본 본토⟶오끼나와⟶대만⟶필리핀⟶남중국해로 이어지는 대중국방어선과 일치된다는 사실이다. B-1B 전략핵폭격기들이 이처럼 대중국방어선 상공에 자기의 항적을 찍으며 사흘이 멀다하게 선제핵타격비행연습을 강행하는 것은 공중핵무력으로 중국을 위협하여 태평양방어선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적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최근 미국이 취하고 있는 그런 군사행동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선을 정조준했던 선제핵타격위협을 이제는 중국에게 집중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군사상황의 변화는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에 전략폭격기를 동원하는 공중핵무력으로 대소련방어선을 지키려고 했던 미국의 군사행동을 상기시킨다. 70여 년 전에 미국은 소련과의 전쟁에 대비해 서태평양에 대소련방어선을 구축했었는데, 오늘은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해 서태평양에 대중국방어선을 구축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70여 년 전 미국이 남조선을 대소련방어선에서 제외했던 것처럼, 오늘 한국을 대중국방어선에서 제외했음을 시사하는 징후가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문재인 정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을 ‘방위비분담금’이라는 명목으로 갈취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괴이한 행동은, 전략적 가치를 상실한 한국이 대중국방어선에서 제외되었음을 시사하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군사전략에서 쓸모가 없어진 한국에서 돈이나 왕창 뜯어내서 부족한 연방정부적자를 메우려는 트럼프의 속셈을 엿볼 수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이 한국에 구축해놓은 것은 대중국방어선이 아니라 대조선방어선이다. 대중국방어선은 매우 광대한데, 대조선방어선은 그에 비해 매우 협소하다. 만일 조선인민군의 공격으로 대조선방어선이 무너지면, 미국이 잃어버리는 것은 한국뿐이지만, 중국인민해방군의 공격으로 대중국방어선이 무너지면, 대만이 중국에게 넘어가는 것은 물론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서태평양의 절반이 모조리 중국의 해상관리권 안으로 들어가면서 미국군은 하와이와 괌에서 중국인민해방군과 대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대조선방어선과 대중국방어선 가운데서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미국의 최종적인 전략적 선택은 대조선방어선을 포기하고 대중국방어선에 힘을 집중하는 것밖에 없다.     

 

1947년 6월 16일 미국 합동전략계획위원회는 소련군이 원동에서 전쟁을 개시하면 20일 안에 남조선 전역을 점령할 것으로 예견했었는데, 72년 전의 소련군과는 비할 바 없이 강력한 공격력과 핵무력을 가진 조선인민군은 조국통일대전이 시작되면 72시간 안에 남측 전역을 점령할 것으로 예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국가안보회의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에 주둔하는 소규모 (점령군) 부대는 취약한 돌출부이므로 적의 공격을 받을 경우 궤멸되기 쉽다. (점령군) 부대는 장점이 되기보다 약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던 맥아더의 지적이다. 한국을 계속 지배하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더 유리해진 지금, 궤멸되기 쉬운 취약한 돌출부 같은 점령군은 더 이상 뜸을 들이지 말고 떠나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월세 못낼 위기 가구 244만, 언제까지 ‘갓물주’만 기다릴텐가

6월3일 무주택자의 날
넷 중 한 가구(23.1%) 월세살이
코로나 장기화, 주거위기 가시화

주거급여 생계비 써 월세 못내
연세로 낸 월세 못 돌려받아
기존 법·제도 보호장치 작동 안 해

임대인 선의 기댄 운동으론 부족
“외국처럼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주거권네트워크와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사회경제 위기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주최로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주거세입자 대책 마련 정책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인사말을 통해 청년세입자의 주거문제가 코로나19 사태로 악화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주거권네트워크와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사회경제 위기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주최로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주거세입자 대책 마련 정책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인사말을 통해 청년세입자의 주거문제가 코로나19 사태로 악화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 집이 없으면 서럽다. 코로나 시기에 집이 없으면 더 서럽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자기 집을 소유한 가구는 절반꼴인 57.7%뿐이다. 나머지는 전세(15.2%)나 월세(23.1%)에 산다. 코로나로 소득이 줄거나 불안정해졌는데, 월세 내는 날은 꼬박꼬박 돌아온다. 6월3일은 ‘무주택자의 날’이다. 지금 전국의 세입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와… ‘갓물주’가 나타났다.”“부럽네. 난 월급 받기 전에 (월세) 또 내야 하는데.”

“(집주인이) 돈 필요하다고 전세로 돌린다고 나가라네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던 지난 2월 말 페이스북 ‘자취생으로 살아남기’ 페이지에 누군가 집주인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화면 갈무리해 올리자 1195개 댓글이 달렸다. 문자메시지는 “안녕하세요. 집주인입니다. 최근 바이러스로 모두가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시기입니다. 조금이나마 걱정을 덜고 함께 이겨내고자 다음달부터 최종 고지시까지 월세를 30% 삭감하여 내실 수 있도록 조정하겠습니다. 건물에 거주하는 15세대 모든 가족분들의 건강과 안전을 기원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뜨거운 호응과 환호가 이어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 월세를 깎아줬다는 집주인의 미담이 가끔 인터넷에서 회자된다. 월세를 낮춘 건물주는 마치 인간을 고통의 늪에서 구원해준 ‘신’(god)처럼 ‘갓물주’라 불린다. 그만큼 집이 없는 보통 사람들에겐 다달이 돌아오는 월세의 고통이 일상에서 겪는 가장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월세를 깎아준 건물주가 ‘갓물주’라 불리는 건 그만큼 보편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일 터. 매출이 줄어든 상가 임차인들을 위해 일부 지역에서 ‘착한 임대인 운동’이 벌어졌지만, 선의를 가진 소수 임대인들의 이야기다. 상가가 아닌 주거 임대인 중엔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코로나발 경제위기에 임대료 고통이 심해지자 외국에선 세입자들이 집 창문에 흰색 천을 내걸며 월세를 거부하는 ‘렌트 스트라이크’(월세 파업) 운동도 벌어졌는데, 우리나라에선 잠잠하다.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일자리 불안에도 꼬박꼬박 임대료를 내고 있다.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2018)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1967만4천여가구 중 자기의 집을 소유한 가구는 절반 수준인 57.7%(1136만2천여가구)뿐이다. 나머지는 전세(15.2%), 보증금 있는 월세(19.8%), 보증금 없는 월세(3.3%)에 산다. 네 가구 중 한 가구꼴인 23.1%(전국 455만3천가구)가 다달이 월세 부담을 지고 있는 것이다. 6월3일 무주택자의 날을 맞아 수개월째 계속되는 코로나 위기에 세입자들의 월세 고통을 살펴봤다.______________
코로나보다 무서운 건 ‘집주인’
서울 종로구에 사는 50대 부부는 4개월째 월세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아내 홀로 공장에서 일해 돈을 벌어왔는데, 2월부터 수출 일감이 사라지자 소득이 끊겼고 당장 낼 월세 30만원이 없는 것이다. 10대 아들과 딸을 키우는 부부는 일감이 있었을 때도 소득이 150여만원이었다. 네 식구가 먹고살기 넉넉지 않은 돈이다. 나라에서 지원받는 주거급여로 겨우 월세를 냈는데, 소득이 끊겨 당장 쓸 식비마저 없자 주거급여가 생계비가 되어버렸다. 집주인은 월세를 받지 못하자 부부에게 방을 빼라고 재촉했다. 부부는 임대차 계약기간이 남아 있으니 당분간 미리 낸 보증금 300만원에서 월세를 제하라고 호소했지만 집주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6월 말 장마철이 오기 전 누수공사를 해야 하니 집수리를 위해 방을 빼달라는 것이다. 네 식구는 두 칸짜리 방에서 나와 당장 거리로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사단법인 나눔과미래 종로주거복지센터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시작한 2월부터 집 문제로 위기를 겪는 사람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40대 초반 남성은 하던 일이 모두 끊겨 월세를 못 낸다며 센터에 문의했다. 연극 일을 하던 남성은 건설일용직 일을 병행해 생계를 이어왔는데 코로나로 두 일자리 모두 사라진 것이다. 보증금 100만원, 월세 10만원 단칸방마저 집주인이 ‘월세를 못 내면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옮겨야 할 처지가 됐다. 다행히 센터에서 약간의 보증금을 지원해 몸을 누일 다른 집을 찾을 수 있었다.얼마 전 종로구 고시원에 사는 청년 한명은 “당장 고시원비 낼 돈이 없다. 주소지는 서울이 아닌데 종로에서 주거비 지원을 받을 수 있냐”며 센터로 문의하기도 했다. 수개월째 계속되는 코로나 사태는 건강만 위협하는 게 아니라 살 집까지 잃는 위기로 번져가고 있다. 경제위기로 일자리가 불안한 주거 세입자들은 재난의 고통이 두 배다. 정은영 나눔과미래 종로주거복지센터 사무국장은 “얼마 전 정부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주긴 했지만 일부 가게들로 사용처를 제한했고 카드로 지원한 터라 세입자들의 월세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국가가 위기 때 생계비를 지원하는 긴급복지지원제도가 있지만 지금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코로나 시기 월세 부담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가구는 전국에 약 244만8천가구로 추정된다. 지난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 위기, 주거세입자 정책간담회’ 자료를 보면, 월세에 거주하는 전체 가구 중 코로나 시기 소득 감소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불안정 취약 직업군’(서비스·판매·기능업무·단순노무 등)에 속한 가구는 244만8천가구다. 이 중 보증금 없는 월세에 거주해 월세를 못 낼 경우 바로 퇴거 위기에 처하는 이들은 33만3천가구다.(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 2018 분석)
페이스북 ‘자취생으로 살아남기’ 화면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 ‘자취생으로 살아남기’ 화면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______________
코로나 경기변동에도 월세는 그대로
전세계적으로 닥친 재난으로 많은 이들이 동시에 소득이 감소했는데 임대인이 기존 임대료를 그대로 받는 것은 고통 분담 의무를 회피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있다. 민법이나 상가임대차보호법에는 ‘차임증감청구권’이란 이름으로 경제적 변동이 있을 때 임차인과 임대인이 기존에 합의한 임대료를 조정할 수 있게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대학생 김지훈(가명·21)씨가 올해 가장 후회하는 일은 지난 2월 충남 천안시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계약한 일이다. 김씨는 올해 2학기 종강 때까지 머물 방세 약 10개월치를 방을 계약하던 2월에 모두 선불로 냈다. 학교 근처 원룸촌은 한 학년간 머물 방의 월세를 선불로 내는 ‘연세’라는 관행이 있다. 김씨는 풀옵션 원룸의 연세 470만원을 지불하고 지난 2월 입주했다. 원룸 임대인들은 보증금 대신 약 1년치 방세를 계약 때 목돈으로 받는 방식으로 ‘원룸 장사’를 했다. 기숙사에 당첨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고, 다른 도시의 부모님 댁에서 통학하기란 불가능해 김씨가 학교를 다니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연세를 내고 자취방을 얻을 수밖에 없다. 사이버 강의로 전환돼 3개월째 학교에 못 가는 김씨는 식비라도 아껴보고자 자취방을 비우고 부모님 댁에서 두어달 생활했다. 김씨는 “방세가 아까워 5월부터는 학교 앞 원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부라도 월세를 돌려받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어려워서 지난해 알바해 저축한 돈을 ‘갉아먹으며’ 살고 있다.주거권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은 지난달부터 ‘코로나도 힘든데 임대인이 너무행’이라는 프로젝트로 재난 속 겪는 주거권 침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정용찬 민달팽이유니온 기획국장은 “서울 대학가에 자취방을 얻었지만 온라인 개강으로 비서울 본가에서 생활하는 많은 대학생들이 기약 없이 월세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임대차계약에서 경제 상황을 반영한 임대료를 낼 수 있는 방식이 코로나 시기에 각광을 받고 있다. 일부 상가에서는 불황 때 매출이 줄면 임대료를 적게 받고 호황 때 매출이 늘면 임대료를 늘려 받는 매출 연계 방식의 임대차계약을 한다. 대표적으로 스타벅스의 일부 매장은 고정 금액 월세가 아닌 ‘매출 연계’(수수료 방식) 방식으로 임대료를 지불한다. 예를 들어, 수수료율 10%로 임대차계약을 맺고 입점할 경우 첫달 1억, 둘째 달 2억의 매출을 올렸다면 월세는 첫달 1천만원, 둘째 달 2천만원이 된다.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계약할지는 임대인이 키를 쥐고 있다. 상권과 임대인에 따라 고정 금액의 월세를 받기도 하고 매출 연계 월세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______________
우리나라에선 왜 ‘월세 파업’ 없나
상가 임대료 부담은 코로나 위기 직후 3월부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지만 주거 세입자의 월세 부담은 지금껏 거의 회자되지 않고 있다. 월세의 두세배가량을 보증금으로 맡기는 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선 월세의 수십배 이상 대규모 금액을 보증금으로 받는다. 세입자가 월세를 못 내면 임대인이 보증금에서 월세를 제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강제퇴거 같은 주거 위기에 닥친 이들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하지만 전문가들은 보증금이 없거나 낮은 월세에 혼자 살면서 코로나로 소득이 줄 경우 바로 퇴거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25일 발간한 <국토이슈리포트> 18호를 보면, 총 41만6천가구에 코로나 위기 발발 6개월 내 긴급 월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41만6천가구는 ①자신의 소득이 줄 경우 주거비 부담에 곧바로 직접 타격을 받는 1인가구 ②보증금 규모가 월세 6개월치 미만이거나 무보증 ③서비스·판매·기능업무·단순노무 등 코로나 시기 일자리를 잃기 쉬운 불안정 직업군에 있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높은 보증금에 기반한 월세 임차시장이 우세해 해외처럼 한두달 월세를 못 낼 경우 직접 퇴거 위기에 놓이지 않지만 경제위기가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세입자들의 주거 불안이 점점 커질 것”이라 설명했다.______________
착한 임대인 운동? 정부는 뭐 했나
외국에서는 코로나발 경제위기로 주거 위기에 처한 세입자를 위해 정부가 법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임차인이 임대료를 납부하지 못하더라도 최소 3개월간 강제 퇴거를 금지하는 조처를 시행 중이다. 미국 42개주,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에서도 코로나 시기 월세를 내지 못한 세입자를 강제로 퇴거시키는 일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미국 연방정부는 전체 주택 비중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정부 보증 모기지 주택의 담보 대출금 납부를 최장 1년간 유예하고 있다.우리나라도 주거 세입자들을 위한 방패막이를 정부가 적극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불어민주당, 주거권네트워크, 코로나19 사회경제 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 등은 지난 28일 국회에서 ‘코로나 위기, 주거세입자 정책간담회’에서 임대료 동결과 감액 청구 지원, 주거급여 확대, 강제퇴거 금지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 공동대표인 김남근 변호사는 “전 국민이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코로나발 경제위기가 길어져 월세를 못 내고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못 내는 이들이 많아지면 파국적 상황이 온다. 재난지원금같이 시장에 돈을 푸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정부가 더 개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47196.html?_fr=mt1#csidx1bac4f7552e6c21a861f96d305e9a4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이대로 가능할까?

김용택 | 2020-05-29 12:26: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지옥이다.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교육자들이, 교육학자, 경제학자들이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왔는가? 그런데 다가온 결과는 과연 사람 살맛 나는 세상인가?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한 세상인가? 눈에 보이지도 않은 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벌써 반년 가까이 사람을 만나기 두려운 세상,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세상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대로 가면 코르나 19만 극복하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사스, 메르스, 에볼라 바이러스는 잘 이겨 냈지만 코르나 19만 이겨내면 다시는 이런 인수공동전염병과 같은 불행이 없는 공포의 전염병은 나타나지 않을까? 먹거리 걱정없이 공포의 전염병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먹고 입고 자는 것… 과학이 왜 필요한가? 경제학이, 교육학이, 복지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들이 불행한 세상을 바꿔내지 못하는 과학이 경제가 정치가 종교가…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도덕이니 법이 왜 필요한가?

희망이 없는 사회는 암흑사회다. 오늘이 힘들고 어렵지만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은 내일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 이 땅의 부모들은 오늘의 힘겨운 생활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가? 사람이 사람을 만나기 두려운 세상에 행복이란 무엇인가? 내일이 되면 희망이 보이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 역주행 하지 않고 구성원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지구촌 사람들이 서로 믿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이웃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이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고 한다.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을 이기적인 인간으로 길러내고 있으니 당연히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만 좋으면, 내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눈앞에 보이는 것, 감각적으로 좋은 것… 그게 선이요, 좋은 것이요, 행복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누가 이런 가치관의 인간을 길러냈을까? 정치인인가? 교육자인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자본주의라는 세상에는 아무리 좋은 학문과 정치, 종교를 가져와도 자본의 밥이 될 수밖에 없다. 성장, 효율, 경쟁이 인간의 욕망을 부추겨 승자독식의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정치가 교육이 종교가 자본주의와 만나기만 하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세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아무리 좋은 헌법이 있어도 자본주의 앞에는 인간의 행복한 복지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새로운 이론을 내놓아 학위를 받고 개인적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면 그것으로 끝인가? 미래학자가 아니더라도 부존자원이 한정된 지구촌에 끝없이 소비를 부추기면 자원은 어디서 계속 충당할 것인가? 노벨평화상, 물리학상, 화학상, 의학상, 문학상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가지만 왜 세상은 갈수록 이렇게 힘들고 척박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가? 화려한 옷 먹음직스러운 음식, 번듯한 생활공간, 겉으로는 갈수록 세련되고 고상하고 화려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속속들이 곪아가고 있다.

사스, 메르스, 에볼라, 코르나… 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섭리를 파괴한 반격이요, 보복이다. 멈출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이 스스로 자멸의 길로 선택한 것이다. 지구촌이 병들고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땅도 바다도 물도 공기도 오염되고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무너지고 병들어 가는데 화려한 이론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희망이 없는데 행복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갈등이 풀리지 않으면 처음으로 돌아가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농촌사회는 가난하기는 했지만 건강한 사회였다. 자연이 주는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 인정이 통하는 수순함이 살아 있는 세상이었다. 인간의 욕망이 자연을 파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이 병들기 시작했다.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 사회, 자본주의는 자연만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문화를 오염시켜 사랑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인수공동전염병은 지구가 사람들에게 보내 온 경고다. 더 이상 이대로 가면 공멸이 될 것이라는… 그래도 계속 이대로 갈 것인가?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112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180석 집권세력은 진정 서울집값 하락을 바랄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5/31 10:21
  • 수정일
    2020/05/31 10:2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기고] 가장 시급한 개혁은 ‘서울집값 폭등문제 해결’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국민의 절반은 무주택자다. 그들은 문재인정부에서 서울집값이 50% 급등하는 내내 속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맛보았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서울집값이 큰 폭 하락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강력한 부동산정책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총선 전 4개월간 수도권 집값 3.4% 급등

 

그러나 현실은 이런 기대와는 정반대다. 한국감정원이 매달 발표하는 ‘주택가격 동향’을 보면 서울 강남지역은 매매가격지수가 작년 12월 110.8에서 올 4월에는 110.6으로 미세하게 하락했다. 코로나 사태가 발발한 직후 강남에서 급매물이 쏟아진다는 기사가 자주 등장했으나, 강남아파트 가격은 하락세가 멈췄다.

 

 

서울의 강북지역은 108.2에서 108.8로 오히려 상승했다.


 

흥미로운 것은 경기도와 인천이다. 경기도는 작년 12월 101.8에서 올 4월 105.2로 큰 폭 상승했고, 인천은 101.2에서 104.6으로 경기도 못지않게 올랐다. 4개월간 3.4% 상승이면 연률로는 10% 넘는 급등이다.

집권당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낸 국민은 이런 의구심이 생길 것이다. 과연 집권당은 서울집값을 하락시키려는 의지가 있긴 할까?

 

‘수도권 집값 골고루 상승’이 집권당의 총선전략?


 

얼마 전 어느 보수신문이 매우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집권당이 겉으로는 집값하락을 원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내심으로는 집값이 상승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지난 총선에서 집권당이 수도권 집값을 올려서 표를 얻는 총선전략을 폈다고 했다. 

대다수 국민의 생각과 반대되는 시각인지라 보수언론의 집권당 흠집내기 기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고 기사를 읽었다. 놀랍게도 기사 내용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 기사는 “집값급등이 선거에서 집권당에게 호재인가 악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대답은 자명하다. 집을 가진 사람은 집값이 급등하면 집권당에게 표를 줄 것이다. 

 

문재인정부 3년간 서울집값은 50%나 폭등했는데, 경기도 등 수도권의 상당수 지역은 집값상승에서 소외되었다. 당연히 정부와 집권당에 불만이 쌓였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집권세력이 택할 선택은 두 가지일 것이다. 서울집값의 하락을 유도하거나 못 오른 지역의 집값을 상승시키거나. 그런데 집권당은 후자의 전략을 선택했다고 그 기사는 주장했다. 

 

수도권 모든 지역의 집값을 골고루 상승시키는 총선전략이 성공해서 집권당이 수도권 의석의 85%를 싹쓸이했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무주택자의 희생을 대가로 중산층 표를 얻기 위한 선거전략


 

그 기사가 언급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무주택자들의 표심이다. 집없는 유권자들은 집값이 급등하면 집권당에 불만이 커진다. 그리고 수도권 유권자의 절반은 무주택자다. 단순 계산으로도 집값급등으로 집권당이 표를 얻는 것보다 잃는 표가 더 많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계산법과 다르게 전개되었다. 총선은 양당구도로 재편되었고, 유권자들은 집권당과 미래통합당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되었다.


 

이런 선거구도에서 집권당은 경제적 약자인 무주택자들이 보수쪽에 표를 주지 않을 거라 확신했을 것이다. 중산층의 표를 더 얻기 위해 수도권 집값을 올리는 전략을 폈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언론의 관심이 코로나 사태에 집중되면서 집값급등은 이슈에서 멀어졌고, 무주택자들의 집값급등에 대한 불만도 희석되었을 것이다.


 

주택임대사업자 세금특혜로 법인의 주택 매수 급증


 

총선 이후 서울집값은 견조한 안정세를 유지하고, 경기도와 인천 등 수도권은 강한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실물경제는 얼어붙고 일자리와 소득은 급감하는데도 집값은 완전 딴세상에 있는 듯하다.

 

정부와 집권당이 집값을 하락시킬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런 집값상승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는 전세가마저 강한 상승세로 전환했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된다. 이제나 저제나 서울집값 하락을 고대하던 무주택자들은 차츰 집권당의 본심에 의구심을 품게 될 것이다.


 

최근 언론의 부동산면에 자주 보도되는 기사 중 하나가 법인이 수도권 주택을 공격적으로 매수한다는 것이다. 올해 1분기 인천지역에서 법인이 1,796건의 아파트를 매수했는데, 이는 작년 같은 기간의 무려 2.7배에 달한다. 총선 전 집값이 급등한 안산, 군포, 오산지역은 법인의 주택매수가 3.2배 급증했고, 화성은 2.3배 증가했다.

 

어느 전문가가 산출한 통계에 의하면 수도권에서 경매주택의 30%를 법인이 낙찰받는다고 한다.

 

법인이란 기업을 말한다. 기업들이 주택투자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만 하면 모든 세금을 대폭 감면해주는 특혜 때문이다. 임대사업자에게 베푸는 엄청난 세금특혜가 개인에 이어 법인마저 주택 사재기로 끌어들였고, 그 결과 수도권 집값이 급등한 것이다.


 

서울집값 하락시킬 의지 있다면 주택임대사업자 세금특혜 폐지해야


 

올해 초 신년사에서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한 말을 대다수 국민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부동산 투기란 거주 목적이 아닌 주택을 매입하는 것인데, 다주택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다주택자들이 임대사업자로 등록만 하면 모든 세금을 거의 내지 않도록 해주었다.


 

이런 엄청난 세금특혜가 서울집값을 급등시킨 가장 큰 원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서울에 등록된 47만채의 임대주택이 매물로 나오지 않고서는 다주택자 매물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집권세력이 진정 서울집값을 하락시킬 의지가 있다면, 곁가지 정책이 아닌 주택임대사업자 세금특혜를 즉각 폐지해야 한다. 립 서비스나 제스처만으로 집없는 사람들의 불만을 달래는 것은 한계에 이른 것 같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52916173459037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세기적 변화의 서막이 된 중국발 "긴급공지"

[임상훈의 코로나19 글로벌리포트] 포스트 코로나 세상에서 맞이해야 할 것과 저항해야 할 것

20.05.30 19:53l최종 업데이트 20.05.30 20:40l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출현을 처음 알린 중국인 의사 리원량의 사망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코로나19 출현을 처음 알린 중국인 의사 리원량의 사망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관련사진보기

 
2020년을 우리는 거대한 질병과 함께 맞이했다. 그 전조가 지난해 말 예고돼 있었다. 새해 이틀 전인 2019년 12월 30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는 "원인 미상의 폐렴 치료에 관한 긴급공지"를 발표했다. 다음 날인 31일 우한시 거주 27명의 원인 모를 폐렴 감염 사실이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됐다. 그전까지 반신반의하며 언론계와 과학계가 우려하던 21세기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의 서막은 그렇게 열렸다.

코로나19는 2002년 중국에서 처음 출현했던 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사스)의 새로운 변종이다. 하지만 그 확장 규모와 파장 효과는 사스는 물론 또 다른 변종인 중동 호흡기 증후군(메르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

WHO의 공식기록으로 사스의 전 세계 확진자 수는 8096명, 그로 인한 사망자 수는 774명이었다. 또한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피해가 컸던 메르스의 경우, 전 세계 공식 확진자 수는 2494명, 사망자 수는 858명이었다.9 글로벌리포트] 포스트 코로나 세상에서 맞이해야 할 것과 저항해야 할 것 두 경우 모두 전 세계 확진자 수는 1만 명을 넘지 않았고, 사망자도 두 경우 모두 1000명을 넘지 않았다. 반면 코로나19의 경우 첫 발생 후 4개월여 만에 확진자 수는 100만 명을, 사망자 수는 1만 명을 넘어섰으며 6월을 목전에 둔 현시점에 확진자는 570만 명을, 사망자는 35만 명을 넘어섰다.


분명 훗날 역사는 코로나19를 21세기 초 창궐한 세기적 전염병으로 기록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기록할 코로나19의 의미가 역학 차원의 규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19의 피해 규모가 사스나 메르스보다는 훨씬 크지만 지난 세기 초 지구촌을 뒤덮었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전염병(스페인 독감)에 비할 만큼은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전 세계에서 5000만 명이 이 독감으로 인해 또는 그것과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한반도 역시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18년 당시 조선인 총인구가 1670만 명이었는데 그중 44%에 해당하는 742만 명의 독감 환자가 발생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그중 14만 명이 사망했다고 하니 피해 규모 차원에서 말하면 분명 코로나19보다 훨씬 심각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전하는 국내 언론은 '악성 유행병', '돌림감기' 등의 표현으로 지역사회와 한반도의 피해 상황에 관심을 가졌지 지구 반대편에서 하루 몇 명씩 확진자가 발생하는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언론 소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이웃집 아들이 독감에 걸렸다는 사실이 정보(information) 차원이나 소통(communication) 차원에서 더 가치 있는 소식 아니었을까?

시대 전환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알마티 시내에 설치된 한국형 '드라이브 스루' 검사 센터. 알마티 주재 한국 보건산업진흥원 지사는 한국 해외의료사업 전문기업 '메디컬파트너즈코리아'(MPK)가 현지 보건부로부터 국가지정 코로나19 전문 검사기관으로 선정돼 대규모 검사를 시행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알마티 시내에 설치된 한국형 "드라이브 스루" 검사 센터. 알마티 주재 한국 보건산업진흥원 지사는 한국 해외의료사업 전문기업 "메디컬파트너즈코리아"(MPK)가 현지 보건부로부터 국가지정 코로나19 전문 검사기관으로 선정돼 대규모 검사를 시행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100년이 지난 후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실시간으로 지구촌 반대편까지 감염병 확산 정보를 속속들이 파악을 할 수 있지만 정작 옆집 아들이 독감이 걸렸는지는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의 경우와 비교해 지금의 코로나19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은 공간적으로 훨씬 확장적이다. 불과 한 세기 만에 인간의 인지반경은 적게는 수천 배, 많게는 수십만 배 넓어진 셈이다. 코로나19가 인류에 미치는 어마어마한 영향은 바로 이러한 인지반경의 확장과 관련이 있다. 그만큼 심리적 영향도 실제 삶에서 부딪히는 구체적 영향에 배가되어 작용하게 된다.

코로나19가 인류에 미칠 영향은 그런 의미에서 과거 어느 팬데믹보다 병리적, 역학적 차원을 넘는 문화사적, 인류사적 차원의 단절과 전환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인류사에서 대부분의 시대 전환은 내부 균열을 봉합하던 체제 응집력이 예기치 못한 외부의 충격으로 와해되면서 그렇게 붕괴된 체제를 다른 체제가 대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중세의 균열은 신앙의 힘으로 오랜 시간 봉합이 시도돼 왔지만 흑사병이라는 외부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면서 체제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르네상스다. 19세기 유럽 팽창주의의 위험성도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던 시기를 의미 - 편집자말)의 화장술로 감춰지는 듯했지만 양대 세계대전을 막아내지는 못했고 그렇게 유럽 제국들은 무너졌다. 그리고 탄생한 것이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시대다.

시대 전환은 이렇게 시간적 패러다임의 교체로 나타나기도 했고 공간적 패권주의 이동을 초래하기도 했다. 어떤 것이든 확장되는 위기 앞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대정신의 교체가 요구됐던 것이 사실이다.

포스트 코로나

그렇다면 코로나19가 바꿔놓을 세상, 즉 포스트 코로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기존의 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상일까? 그리고 그 패러다임의 전환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로의 전환일까? 그렇지 않다면 과거에 존재했던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순환일까?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그 변화에 적극적으로 올라타야 하는가? 그렇지 않고 저항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야마다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소속된 집단에 따라, 종사하는 분야에 따라 다르게 나오게 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지구촌의 많은 지역이 권위를 강화하려는 정부와 그에 저항하는 시민 간의 정면충돌로 소용돌이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시민의 건강을 수호한다는 명목 아래 지구상 대부분 정부는 감염병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격리와 봉쇄, 감시를 강화했다. 비상 상황이라는 이유로 시민에 대한 통제가 명분을 얻고 있는 셈이다.

정치적 위기에는 권위주의로의 회귀뿐 아니라 폐쇄주의로의 회귀 가능성도 포함된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 이후 국제사회는 제국주의적 고립정책이라는 새로운 양태의 전횡을 목도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19의 확산은 많은 국가들이 국경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자유로운 이동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역행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절호의 기회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이 21일 전 재외문화원 32곳의 외벽 등에 코로나19 사태를 함께 이겨내자는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 한국문화원의 '코로나19 함께 극복' 메시지.
▲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이 21일 전 재외문화원 32곳의 외벽 등에 코로나19 사태를 함께 이겨내자는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 한국문화원의 "코로나19 함께 극복" 메시지.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전망은 분명 어두운 면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이 이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최소한의 범위로 국경을 통제하면서 성공적인 방역을 하고 있다는 것은 지구촌의 실낱같은 희망이 되고 있다. 그것이 한국형 코로나 방역 모델의 가장 큰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형 코로나 대응 모델을 더 개발하고 뜻을 같이하는 지구촌 국가들과 공유하면서 다듬어 나가야 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선명성을 가지고 견지해야 할 역할이다.

포스트 코로나가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인류가 방역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동안 수십 년 이래 가장 깨끗한 지구를 보게 된 것은 뜻밖의 성과다. '인간이 아프니 지구가 건강해진다'는 환경의 역설은 지금까지의 산업정책에 대한 반성의 기회로 삼고 적극적으로 친환경적 정책 전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조금만 억제하면 환경은 바로 화답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와 화상수업은 산업과 교육 분야에서 인간의 공간에 대한 재고의 기회를 제공했다. 분명 우리는 산업현장에서 필요 이상의 공간을 낭비하고 있다. 교육 현장, 특히 고등교육을 위한 캠퍼스라는 이름의 과도한 도시공간 점유는 더더욱 지나친 특혜다. 거의 강제적으로 내몰리듯 늘어난 재택근무, 화상수업 등 비대면 소통이 없었다면 이처럼 산업과 교육 현장에서 공간에 대한 낭비를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유례없는 종교활동의 온라인 활용 역시 주목할 만한 변화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종교는 정치, 교육과 더불어 공간적 특혜를 가장 많이 받아온 분야다. 위압적 공간으로 교세를 자랑하는 종교관은 중세 이래 전혀 변화가 없는 민망한 종교의 전통이다. IT분야의 발전으로 가상 공간이 물리적 공간을 일정부분 대치 또는 보완할 수 있다면 그것은 4차산업의 긍정적 효과이고 포스트 코로나의 긍정적 측면일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가 무엇을 남기게 될까? 주어지는 것은 예기치 못한 위기이고 그에 대한 극복은 순수한 인간의 의지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세계를 인위적으로 구상해보는 것은 어쩌면 코로나19와 같은 위기가 남길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민단체 "친일매국언론, 가짜뉴스 진원지 조선일보 폐간하라"

하인철 통신원 | 기사입력 2020/05/30 [14:53]
  •  
  •  
  • <a id="kakao-link-bt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2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dotum, 돋움, Arial; color: rgb(102, 102, 102); text-size-adjust: none;"></a>
  •  
  •  
  •  
  •  
 

조선일보 계열사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조선일보 폐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및 1인 시위가 진행됐다.

 

현재 광화문 일대는 코로나19로 인해 집회 신고가 금지되어있는 상황이나, 기자회견은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경찰 측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면 집회로 간주하겠다고 해 참가자들의 공분을 샀다. 사회적 거리두기 간격을 준수해 2m가 떨어진 채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 조선일보 폐간 촉구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김태현 21세기 조선의열단 단장은 조선일보는 군부독재 세력과 결탁해 전두환 장군 만세를 외쳤던 거대 악 중의 악이다. 100년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해 왔던 언론 마피아의 수괴인 방 씨 일가를 이제는 끝장내자”fk며 조선일보 폐간을 강력히 주장했다이어 여러분들과 함께 적폐 세력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며 결의를 밝혔다.

 

염성태 인천참언론 시민연합 상임대표는 조선일보는 국민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나 다름없는 집단이다가짜뉴스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하지만 적폐 언론이 아무리 국민들을 속이려 하나 국민들은 속지 않는다저들은 이미 끝났다저들이 하는 얘기는 모두 거짓말이고 사기 치는 것으로 국민들은 이해하고 있다라며 적폐 언론의 수작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음을 주장했다.

 

김수형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 상임대표는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의 수치인 조선일보 앞에 나와 있다창간 이래로 4년 동안이나 일왕 부부의 사진을 1면에 실어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던 조선일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친일 청산을 가로막고 적폐들의 손을 들어주는 조선일보가 정의기억연대를 공격하는 이유 또한 명확하다일본의 이익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라며 조선일보의 친일 내력과 현재까지도 도움이 되지 않는 역사를 읊으며 조선일보 폐간을 주장했다.

 

권오민 청년당 대표는 조선일보는 가짜뉴스 진원지이자 발생지라며 “’조선일보가 신문이면 우리 집 화장지가 팔만대장경이이다라는 말이 있다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유린했고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가짜뉴스를 악의적으로 보도하고 있다이들이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적폐 카르텔을 작용하고 있지만국민들은 이에 속지 않는다라며 조선일보 폐간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이어 김은진 민중당 공동대표가 기자회견문 낭독이 있었다.

 

진보개혁 유튜버 김말순 씨가 새타령 개사곡을 부르며 조선일보 부채를 찢는 상징의식을 진행하고 기자회견은 마무리됐다.

 

기자회견 후조선일보를 둘러싸고 1인 시위가 진행됐다.

 

아래는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아래-----------------------------

 

[기자회견문] 친일매국언론 가짜뉴스 진원지 조선일보 폐간하라!

 

지난 3월 5일은 조선일보 창간 100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로 창간 100년을 맞은 조선일보에 대한 각계의 칭송은 고사하고 비난과 폐간 촉구 여론이 드높다. 

 

바로 친일, 군사독재에 부역하며 가짜뉴스로 유지해온 치욕스러운 지난 100년이기 때문이다. 

 

1면에 일장기와 함께 일왕부부의 사진을 싣고 일본의 침략전쟁에 조선청년들의 참전을 호소했던 태생부터 친일이었던 언론이 지금도 일본의 입장을 한국사회에 선전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경제공격에 온 국민이 분노해 일본상품 불매운동에 나섰을때도 조선일보는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내용과 더불어 우리나라 정부를 질타하는 기사를 써댔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받았던 위안부 문제를 아베정부와 밀실합의를 했을 때도 찬양보도를 내던 것이 조선일보였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에 대해서도 철저히 일본의 편에서 기사를 썼던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친일언론이자 독재옹호언론, 반민주언론이기도 하다. 

 

 박정희, 전두환 일당의 쿠데타에 대한 찬양 보도를 쏟아내며 군사독재자들을 ‘구국의 지도자’ 로 만드는 세뇌교육에 앞장섰던 조선일보다. 반면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며 좌경, 용공, 불순세력, 폭도로 매도하였다. 

 

 이러한 친일독재의 선전기구가 된 조선일보는 가짜뉴스로 연명하는 사기 집단이다. 

 

애초에 친일과 독재 미화를 하려니 가짜뉴스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조선일보에 의해 죽었다가 살아난 북한 사람은 셀 수도 없이 많고, 멀쩡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범죄자 누명을 쓰기도 하며,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도 각종 가짜뉴스를 쏟아내며 국격 깎아먹기에 여념이 없다. 한명숙 전 총리,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이어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자에 이르기까지 신상털기는 기본이고 소설 수준의 가짜뉴스를 쏟아내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다. 

 

한 마디로 조선일보는 언론의 자격이 없는 쓰레기 제조사, 폐지 생산업자다. 

 

언제까지 조선일보의 이런 망동을 지켜봐야만 하는가. 

 

 조선일보로 인해 일본이 우리를 업신여기고, 박근혜 적폐잔당들이 재집권의 기회를 노리는 현실에서 우리가 진정한 자주독립국,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선일보를 폐간시켜야 한다. 

 

하루빨리 조선일보 폐간시키고 진실과 정의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자. 

 

친일언론, 반민주언론, 조선일보 폐간하라!

가짜뉴스 양산하는 조선일보 폐간하라!

 

2020년 5월 30일

광화문촛불연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