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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중앙일보가 비난한 부산지하철노조, 500만원 상금 받고 1200만원 내놓았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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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0/06/11 09:31
  • 수정일
    2020/06/11 09:3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중앙일보의 기사가 사실에 근거한 보도인지 살펴봤습니다.
 
임병도 | 2020-06-11 09:02: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6월 10일 중앙일보는 <[견제 없는 권력, 시민단체 <상>] 후원금·일감 주고받는 그들만의 경제 공동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진보진영 단체끼리 자금 품앗이를 하며 회계 검증이 불가능하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시민단체 기부금이 진보계열 업체로 들어갔다며 마치 ‘대기업 일감몰아주기’라는 식으로 비난했습니다. 또한, 문재인 정부 들어 시민단체 국고 지원금이 늘어났지만, 회계는 부실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중앙일보의 기사가 사실에 근거한 보도인지 살펴봤습니다.

전태일 추도식 지출? 알고 보니 전태일노동상 상금

중앙일보는 기사 첫 문단에 ‘전태일재단이 노동자 지원 명목으로 이주노동희망센터(외 40건) 등에 4124만원을 지급했고, 11월에는 전태일 추도식을 위해 부산 지하철노조(외 43건) 등에 4085만원이 쓰였다’고 보도했습니다.

노동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태일 노동자를 기념하는 재단이 노동자단체를 지원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중앙일보는 전태일재단이 추도식을 위해 부산 지하철 노조 등에 4085만 원을 지급했다고 덧붙이며 마치 호화로운 행사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2019년 11월 전태일열사 묘역에서 열린 전태일노동상 수상식에서 상을 받고 있는 부산지하철노조 임은기 위원장 ⓒ공공운수노조

전태일 추도식 비용에는 ‘전태일노동상’에 대한 상금이 포함돼 있습니다. ‘전태일재단’은 매년 한 해동안 가장 모범이 되는 노동운동을 한 단체나 개인에게 ‘전태일노동상’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2019년 11월 부산지하철노조는 통상임금 소송분과 휴일수당 등으로 마련한 재원으로 청년 일자리 540개를 만들어낸 성과를 인정받아 ‘전태일노동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전태일노동상 심사위원회는 “부산지하철노조의 사례는 새로운 차원의 일자리 연대”라며 “사용자의 반대와 탄압에도 노조가 스스로 만든 재원을 공공성 회복과 사회적 가치 창출에 노력한 노동조합 운동의 사회연대 전략을 뿌리내린 모범 사례”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실제로 부산지하철노조의 사례는 이후 비정규직·협력업체와의 임금격차 해소 등을 위한 민주노총 금속노조 및 사무금융노조의 ‘하후상박 연대임금전략’과 ‘공공상생연대기금·우분투재단’ 등의 연대기금 조성 등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상금 500만원에 조합원 모금 1200만원을 보태 다른 노동자를 도운 ‘부산지하철노조’

▲부산지하철노조가 전태일노동상 상금 500만원과 조합원이 모금으로 마련한 1200만원은 10개 노동자 단체와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씨에게 전달됐다. ⓒ부산지하철노조제공

부산지하철노조는 ‘전태일노동상’으로 받은 상금 500만원을 노조 활동비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합원들이 1200만원이라는 돈을 더 모아 다른 노동자들을 도왔습니다.

부산지하철노조는 상금과 조합원이 모금한 돈 총 1700만원을 공공운수노조 산하 제주지역 노조와 지역 비정규직위원회, 요양서비스노조, 지하철 메트로9호선 지부 등에 전달했습니다.

특히 부산지하철노조는 355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인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씨에게도 모금된 돈 일부를 계좌이체를 통해 전했습니다. 중앙일보가 지적한 전태일재단 추도식 비용은 오히려 다른 노동자들을 돕는 기폭제가 된 셈입니다.

인터넷언론 직썰 정주식 편집장은 페이스북에 ” ‘진보진영의 자본 재유입’이라면 바람직한 사례가 아닌가? 이걸 보고 재벌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떠올렸다면 논리의 강을 일곱 번 정도 뛰어넘은 비약이다.”라며 “이런 식의 논증이라면 이 기사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부산지하철노조 관계자는 중앙일보 보도에 대해 “진보시민사회의 어려운 현실을 취재해준 중앙일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 진보시민단체들이 열악한 현실 속에서 열심히 노력해온 사실을 시민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부산지하철노조가 통상임금을 포기하고 마련한 300억으로 창출된 일자리 540개를 포함 총 670개 일자리는 부산교통공사 창립 이후 역대 최대 고용이며 7월 5일 필기시험이 예정돼 있습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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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북한, 외부에 적 만들어야 할 정도로 상황 어려운 듯"

전단 살포는 표면적인 이유...극렬한 적대감 표출로 내부 결속 의도

 

10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본인의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가진 정 수석부의장은 "(올해 들어) 지난 5개월 동안 북한이 남한의 대북 협력 제안에 대해 아무런 응답이 없다가 전단을 구실로 남북관계를 단절하겠다고 나왔다"며 "이는 남한에 대한 적대감을 중심으로 북한 내부가 똘똘 뭉쳐서 현재의 어려움을 돌파해야 할 정도로 현 상황이 어렵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북한은 지난 5개월 동안 남한의 제안에 대꾸할만한 정신적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며 "코로나 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인해 공장이나 농장의 생산성이 떨어졌을 것이고, 이 때문에 북한이 남한에 대한 반응을 하고 싶어도 할만한 상황이 안됐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 제7기 제13차 정치국회의를 주재하면서 화학공업을 강조한 것에 대해 "김 위원장이 당시 회의에서 강조한 화학공업은 비료가 핵심이고, 실제 회의에서도 비료 생산 향상이 우선적 문제로 지목됐다"며 "결국 북한의 현재 비료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10일 서울 창비서교빌딩에서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프레시안(최형락)

정 수석부의장은 "올해 10월 10일 노동당 당 창건 75주년이다. 그런데 75주년 성과를 빛낼 수 없게 된 상황"이라며 "그나마 최고 존엄(김정은)을 중심으로 체제를 끌고 가고 있었는데 거기다 대고 (김정은에 대해) 위선자니 뭐니 이런 이야기를 담은 전단이 남한으로부터 날아오니까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으로 남한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은 인민들의 단결을 통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외부의 적이 필요하다"며 북한이 전단 문제를 고리로 탈북자를 규탄하는 군중 집회를 여는 등 내부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는 배경에 주목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남한 정부가 전단을 막지 않는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화를 내고 적대감을 보일 일이 아닌데도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4.27 판문점 선언이나 9.19 평양 공동선언 등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측면도 있지만, 북한 내부의 자신감 결여가 극렬한 적대감의 표출로 나오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전단 문제를 가지고 화를 내니까 남한에서 법률 만들겠다며 벌벌 기고 있다고 하는데, 북한은 사실 남한에 대한 굉장한 열등 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격차가 크다 보니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가 있고, 그게 터무니 없이 자존심을 내세우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그러면서 "형제 간에도 살림 형편의 격차가 커지면 왕래도 잘 안하고 그러지 않나. 남북한도 마찬가지라서 현 시점에서 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이 빨리 개방과 개혁의 길로 나와서 중국처럼 경제가 좋아져서 남북 간 경제 격차가 최소한 2대1 정도가 되면 가능할 수 있으나 현 상태로는 안된다"며 "결국 유럽연합과 같은 체제를 사실상의 통일로 규정, 이 정도가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통일이라는 개념을 가져야 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

 

▲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프레시안(최형락)

끝없이 아득한 통일의 미로에서


 

정 수석부의장은 학계와 관계를 넘나들며 약 40년 동안 북한 문제를 다룬, 사실상 한국에서는 유일무이한 경력을 가진 북한 및 남북관계의 최고 전문가다. 그럼에도 정 수석부의장은 통일 문제에 대해 "끝도 시작도 없는 아득한 '통일의 미로'를 걸어왔고 지금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 <판문점의 협상가- 정세현 회고록, 박인규 대담> ⓒ창비

정 수석부의장은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을 진행해 엮은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에 만주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풍찬노숙을 하며 어렵게 지냈던 이야기부터 1990년대 김영삼 정부 때 통일비서관 재직 경험,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연속으로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던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때의 경험과 당시 감회를 담아냈다.

 

그런데 회고록임에도 불구하고 정 수석부의장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맨 마지막 주제인 '평화와 통일의 길'에 있다고 강조했다. 회고록이라고 해서 과거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지나간 일들을 통해 앞으로 남한 사회가 평화와 통일을 위한 어떠한 길을 걸어갈 것인가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당부였다.


 

정 수석부의장은 "통일문제에 처음부터 학문적으로 접근한 사람은 통일을 쉽게 생각할 수 있고, 또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미국만 한반도에서 나가면 된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남북관계 현장에서 직접 부대끼면서 접근하고 이론화한 제가 보기에는 통일이 구심력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은 북한 민심이 남한으로 넘어와야 진정 가능한 것이지, 합의 방식의 결합으로는 안된다"며 "이전에 1960~1980년대 북한이 주장했던 연방제가 바로 정치 협상에 의한 통일이었다"면서 제도적인 통일보다는 남북 연합 방식의 사실상의 통일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이 책이 처음 쓰여지기 시작한 2018년, 당시는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과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등이 열리며 한반도의 평화가 곧 도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2020년 6월 현재 남북은 마지막 끈인 연락 채널을 폐쇄하면서 2018년 이전으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 수석부의장이 언급했듯 한반도 정세는 언제 그 흐름이 바뀔지 모르는 "끝도 시작도 없는 아득한 '미로'"일지 모른다. 어쩌면 그 정세의 파도 속에 제대로 길을 잡고 항해를 한 날이 얼마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발견하고 싶다면, <판문점의 협상가>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61018464837767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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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전단살포단체 2곳 고발·법인설립 취소

교류협력법 위반 수사의뢰 및 고발 병행...입법추진은 계속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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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10  19: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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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부는 10일 대북전단 살포 활동을 해 온 탈북민단체 2곳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이들 단체의 법인설립 허가 취소 절차에 착수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통일부는 10일 대북전단 살포 활동을 해온 탈북민단체 2곳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이들 단체의 법인 설립 허가 취소절차에 바로 착수하기로 했다.

통일부는 이날 오후 '대북전단·PET병 살포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해 "이날 정부는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과 큰샘(대표 박정오)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법인 설립 허가 취소 절차에 착수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고발 및 허가 취소 조치의 이유에 대해서는 "두 단체가 대북 전단 및 PET병 살포 활동을 통해 남북교류협력법의 반출 승인 규정을 위반하였으며, 남북정상간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함으로써, 남북 간 긴장을 조성하고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안전에 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등 공익을 침해했다고 판단하였"다고 설명했다.

먼저 통일부는 이번 대북전단 살포와 페트병을 통한 물품 살포를 대북 반출조항에 해당하는 것으로 유권해석하고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거치지 않은 미승인 반출로 판단했다.

현행 남북교류협력법은 '반출·반입' 용어에 대해 '매매, 교환, 임대차, 사용대차, 증여, 사용 등을 목적으로 하는 남한과 북한 간의 물품 등의 이동'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번 전단과 페트병 살포는 남북교류협력법상의 '미승인반출'로 판단한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금까지 없었던 이같은 유권해석을 지금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사정변화가 있었다고 하나하나 설명했다.

먼저 이번 전단살포행위가 남북 정상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선언에서 군사분계선 일대의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한다고 합의한 사항을 정면위배했다는 점을 꼽았다.

또 지난 2016년 2월 대법원이 '표현의자유는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며 국가는 공공복리나 현존하고 명백한 지역주민의 위협이 있을 때는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요지의 최종판단을 한 것을 이번 유권해석의 이유로 들었다.

당시 대법원은 한 대북전단 살포단체가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의거해 전단살포를 금지당했으니 이를 위해 준비했던 비용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데 대해 이같이 최종확인했다.

이 당국자는 통일부가 이번 전단살포를 교류협력법상 반출로 유권해석해 고발조치한 다른 이유는 최근 전단살포가 소규모 전단을 제한적으로 살포했던 과거와 달리 페트병에 담긴 쌀, USB, 라디오, 달러 등 전단물품이 다양해지고 있고 운반수단도 열풍선에서 정교한 운행을 위해 드론까지 활용하려는 계획까지 나오고 있어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특히 전염병 방역에 모두가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방역 확인이 되지 않는 물품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 그리고 전단살포 지역 주민들의 반대 민원과 원성이 대단해서 이미 접경지역 10개 시장 군수모임에서 대북전단 살포행위 근절과 위반자 처벌 대책을 통일부에 건의해 온 것도 유권해석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정부 입장은 전단살포 단체들이 예고한 22일 페트병, 25일 전단살포에 대해 지금까지와 같이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엄정 집행하고 교류협력법 위반 사실에 대한 수사의뢰 등을 병행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얼마나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교류협력법에 따라 미승인 반출에 해당한다고 수사를 의뢰하면 이후 절차는 사법당국이 판단할 문제이며, 다만 통일부에서 교류협력법을 담당하는 실무자로서는 관련 조항에 근거해서 사법당국이 강력 처벌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별도로 대북전단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안 마련을 위해 추진하는 입법은 '대북전단 문제만 국한한 법을 따로 만드는 건 아니고 접경지역의 포괄적 이용을 위한 종합적 법률, 한반도 평화기반 구축을 위한 여러 법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가장 적절한 방안을 찾아 대북전단 문제도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한 취지에 따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법인 설립 허가 취소에 대해서는 두 단체가 통일부 비영리법인으로 허가받을 당시 제출했던 설립목적이 '평화통일 이바지'(자유북한운동연합), '탈북청소년 돕기 활동'(큰샘) 등이었으나 현재 이들이 하고 있는 대북전단 및 페트병 살포 행위는 당초 설립목적에 맞지 않아 민법상 법인 설립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 설립 허가 당시에도 단체 활동이 통일정책 추진과 평화통일 환경 조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벗어나면 설립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단서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비영리법인으로 통일부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은 법인이 승인 취소를 당하면 청산 법인이 되어서 청산 절차를 밟게 되어 잔여재산을 처분해야 한다. 또 단체 명의로 통장 개설을 하지 못하는 등 단체 활동을 원활히 하기 어렵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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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가야 할 곳은 G7이 아니라 삐라 살포 현장이다

김봄 | 기사입력 2020/06/1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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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G7 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을 초대했다.

 

이번 G7 회의는 미국이 주도해 중국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모으는 회의가 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미국의 초대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중국과의 정치 전쟁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봐야 한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매우 난감한 요구다. 

 

그런데 청와대는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덥석 물었다. 

 

미국의 요구라면 중국의 보복쯤은 감수하겠다는 것인지 의아하다. 

 

친정부 인사인 최배근 교수도 트럼프 초청에 응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한 K방역의 모범국으로서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아진 조건에서 국제무대에 진출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몸값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통일은 국제적 지지가 없이는 어렵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통일문제를 허락받을 수 있을 거라고 발언했다.

 

앞의 두 가지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마지막 ‘통일 허락’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되풀이해온 ‘북미관계 풀려야 남북관계’ 주장이나 미국 ‘승인’과 ‘허락’이 없이는 한발도 전진하지 못하는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100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3.1운동의 전 민족적 항쟁이 있고 난 후 그 벅찬 열기를 뒤이어 우리 민족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할 대신, 강대국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외교’라는 걸 해서 독립을 얻어 보겠다던 사람들이 있었다.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정권이 그 열기를 뒤이어 적폐들을 완전히 제압하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미국과 적반하장으로 덤벼드는 일본을 박살 내고 자주를 쟁취할 대신 미국이 걸어준 개목걸이에 좋구나 하며 국제회의에 나가보려는 모양이 그때보다 더한 것 같다.

 

100년 전의 결과는 어떠했던가.

 

국제회의장에서 배를 갈라 조선 사람의 기개를 보여줬지만, 강대국들의 외교 인사들은 먼 산 바라보며 외면했다.

 

자기 집에서 해결 못 한 자주 문제를 밖에 나간다고 해결할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한반도는 지금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파주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평화 상태라고 하더라도 상대를 자극하는 삐라를 살포하는 것은 심리전의 시작이자 선전포고나 다름없을 것인데, 하물며 전쟁이 잠깐 멈춰있는 정전상태인 한반도 상황에서 삐라 살포는 전쟁을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행위도 문제지만 내용은 더 문제다.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내용이며 북에서 가장 예민해 하는 ‘최고 존엄’을 모독한 내용이다.

 

그토록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왜 평화의 상대방, 통일의 동반자인 북에 대해서는 이토록 몰염치한지 모를 일이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를 했음에도 1년 반이 넘도록 아직 변변한 대책도 못 세우고 북에서 문제 제기를 해서야 법을 마련한다, 탈북자 단체를 고발한다고 하며 뒷북을 쳐대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참으로 답답하다.

 

혹시 대북 삐라의 돈줄이 미 국무부여서 이것도 ‘승인’과 마찬가지로 거스를 수 없다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면 정말 큰 일이다.

 

이것은 오늘 전쟁이 일어나는데도 미국이 승인한 전쟁이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며 ‘승인’ 없이는 전쟁을 막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반북단체가 다음 삐라 살포를 6월 25일에 하겠다고 한다.

 

날도 참 잘도 잡았다.

 

이대로 간다면 그날 포탄을 보게 될 것 같다.

 

그러면 그야말로 전면전이고 핵전쟁이다.

 

코로나19 사망자가 270여 명인데 만약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사망자가 수백만, 수천만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코로나19 잘 관리하는 것보다 평화를 잘 관리하는 것이 천 배, 만 배는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라면 이 땅 국민들의 목숨을 송두리째 앗아갈 전쟁을 막을 의무가 있으며 이것을 막아내지 못하고 사람 좋은 웃음이나 짓고 앉아 있다면 역사는 두고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욕할 것이다.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당장 파주로 달려가 우선 북에 4.27 선언을 지키지 못한 것에 사과하고, 파주를 비롯해 접경 지역 주민들을 안심시키고, 국민들을 향해서도 평화 관리를 못 한 점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 정도 결심은 미국의 ‘승인’ 없이도 할 수 있지 않은가?

 

한 학자가 정부를 향해 ‘지금 필요한 건 아이디어가 아니라 용기’라고 했는데 참으로 적절한 주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눈치를 보면서 이것저것 되지도 않는 ‘아이디어’를 만들지 말고 미국에 맞설 ‘용기’를 내야 한다.

 

그 용기의 출발점이 바로 전쟁을 부르는 삐라 처리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G7 회의장에 갈 것이 아니라 파주로 가야 한다.

 

파주로 간 다음에는 곧장 성주로 가야 한다.

 

외국에 옷 갈아입으러 다니던 박근혜 뒤를 이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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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경찰에 쓰려져 중태 빠진 노인에 음모론 제기했다 ‘역풍’

트위터에 ‘극좌파 앞잡이 설정’ 색깔론 제기했다가 공화당에서도 비난 거세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20-06-10 11:04:53
수정 2020-06-10 11: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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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현지 시간) 뉴욕주 버펄로 시위 현장에서 75세의 마틴 구지노가 진압에 나선 경찰이 밀치는 바람에 넘어지면서 다쳐 의식을 잃은 채 중상을 입은 장면.
지난 4일(현지 시간) 뉴욕주 버펄로 시위 현장에서 75세의 마틴 구지노가 진압에 나선 경찰이 밀치는 바람에 넘어지면서 다쳐 의식을 잃은 채 중상을 입은 장면.ⓒ현지방송(WBFO)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찰에 떠밀려 중상을 입은 노인에 대해 ‘극좌파의 설정’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했다가 같은 공화당 내에서도 비난을 받는 등 호된 역풍을 맞고 있다.

지난 4일(현지 시간) 밤 8시께 뉴욕주 버펄로 시위 현장에서 75세의 마틴 구지노가 진압에 나선 경찰이 밀치는 바람에 뒤로 심하게 넘어져 머리 부위에서 피가 흐르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후 영상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커졌다.

특히, 의식을 잃은 채 중상을 입고 쓰러진 노인을 그대로 놔두고 경찰들이 시위대를 진압하고자 앞으로 나가는 장면이 나오면서 미 전역에서 거센 비판 여론이 일었다. 구지노는 뒤늦게 병원으로 후송돼 중환자실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현지 경찰은 구지노가 넘어져 다친 영상이 공개된 뒤 그를 밀친 시위진압팀 소속 경관 2명에게 무급정직 처분을 내렸다. 같은 팀 소속 57명이 과잉 징계라며 항의 표시로 집단 사임계를 냈지만, 해당 2명을 2급 폭력 혐의를 적용해 기소까지 했다.

지난 4일(현지 시간) 뉴욕주 버펄로 시위 현장에 현지 경찰이 75세의 노인 마틴 구지노를 밀치고 있는 장면, 구지노는 이후 쓰려지면서 머리를 다쳐 중상을 입었다.
지난 4일(현지 시간) 뉴욕주 버펄로 시위 현장에 현지 경찰이 75세의 노인 마틴 구지노를 밀치고 있는 장면, 구지노는 이후 쓰려지면서 머리를 다쳐 중상을 입었다.ⓒ현지방송(WBFO) 캡처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9일 트위터를 통해 “내가 (영상을) 봤는데 그는 밀쳐진 것보다 더 세게 넘어지더라. 설정일 수 있다?”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버펄로 시위자는 안티파(ANTIFA) 앞잡이일 수도 있다. 75세 마틴 구지노는 경찰 장비를 먹통으로 만들기 위해 살펴보던 중에 경찰에 제압을 당했다”며 음모론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티파(ANTIFA, 반(反)파시스트의 줄임말로 극우파에 대항하는 극좌파) 앞잡이’라는 이른바 색깔론을 제기하면서 더 나아가 일부러 넘어진 것이라고 음모론으로 확대한 셈이다. 그는 이런 주장을 보도한 우익 매체의 해시태그를 이 트윗에 달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 미 언론 보도에 의하면 구지노는 주거운동을 하는 지역 비영리단체 푸시 버펄로와 인권단체 서부뉴욕평화센터 소속이며, 가톨릭 일꾼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안티파 앞잡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중론이다.

해당 발언이 알려지자 민주당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에서도 거센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위터에 “나의 아버지는 권력 남용보다 더 큰 죄는 없다고 말했었다. 그것이 평화로운 시위자에게 피를 흘리도록 하는 경찰관이든 음모론으로 그(경찰관)를 옹호하는 대통령이든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소속인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도 “신중하지 못하고 무책임하며 비열한 발언”이라며 “아무런 증거도 없는 전형적인 헐뜯기”라고 비난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근거 없는 음모론 트윗을 쓰지 말고 지하 벙커에나 다시 돌아가라. 공화당은 이 일에 관해 대체 뭘 하고 있나”며 공화당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공화당의 상원 2인자인 존 튠 상원의원은 “그것은 사실과 증거로만 제기돼야 하는 심각한 비난인데, 나는 아직 (근거를) 보지 못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음모론 제기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수전 콜린스, 리사 머코스키 상원 등 대다수 상원 의원도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CNN방송은 평소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우군인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이번 발언에 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면서 “많은 공화당 상원 의원들이 질문을 회피하거나 침묵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음모론이 자신이 속한 공화당에서도 역풍을 맞고 있다고 전했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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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6월항쟁 33주년, 87년체제를 넘어 2020년체제로

  • 기자명 현장언론 민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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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군사독재를 굴복시키고 민주주의 이행기를 연 87년 6월항쟁 33주년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지난 33년을 20세기와 21세기를 넘어온 위대한 민중의 자랑찬 항쟁의 역사로 추억하게 된다.

    돌아보면 33년의 연대기는 전진과 반동의 10년, 국민참여정부 10년, 이명박근혜정부 10년에 이어 문재인 정부 3년의 고개마루를 넘어가고 있다.

    6월 그날의 국민적 민주함성은 7,8,9노동자 대투쟁의 불길로 타올라 87항쟁의 쌍봉우리로 거대하게 솟아있다. 이러한 힘이 있었기에 비록 6월항쟁의 성과를 민주정부수립으로 완결짓지 못하고 친미군사독재의 안전한 퇴각을 허용하였지만, 88년 총선에서 여소야대국면을 창출하고 5공청산, 노동법개정의 포문을 열 수 있었고, 북방정책의 공간을 거대한 거족적 조국통일운동의 공간으로 전변시키고 90년대 범민족대회운동으로까지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친미군사독재세력은 3당합당을 통해 민주화의 성지 영남권을 분리해내고 호남을 포위하는 전략을 통해 친미보수대연합정권을 세우는 의회쿠데타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 참으로 이 전진과 반동의 시기에 공안정국을 거치며 우리 민중은 얼마나 많은 민주통일열사들을 가슴에 묻었는가.

    친미보수대연합정권 반동의 결말은 97년 외환위기였다. 미 제국은 한국경제를 초토화시킨 후 알짜은행과 기업을 집어삼키고, 금융착취체계를 구조화했으며, 농업을 파탄시키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내몰았다.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전략은 일정하게 민주주의의 성장을 가져왔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 시장화, 자유화로 포섭되면서 대미예속, 재벌확대를 가져오고 친미반동세력의 복원력을 강화시켜주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반동의 역류를 타고 넘을 수 있었던 것은 6.15공동선언이었다. ‘우리민족끼리’, ‘연합연방제 통일’의 염원은 활화산처럼 타올라 남북 화해와 협력, 자주와 민족대단결운동으로 솟구쳐 올랐고, 노동자들의 산별노조건설, 진보정당건설운동, 386민주시민운동의 성장과 상승작용을 일으켰으며, 마침내 효순미선양 반미촛불시위로 타올랐다. 이 힘은 극적인 노무현 정권이 탄생으로 이어졌다.
    친미보수세력은 졸속으로 노무현정권에 대한 탄핵을 추진했지만 오히려 민중의 저항만 초래하고 민주세력이 국회다수를 차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준비가 부족한 민주세력이 국가보안법 폐지, 언론개혁 등 4대개혁입법을 관철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네오콘이 장악한 미 제국은 더욱 반동화되어 반테러전으로 세계를 내몰고 한국에 이라크파병을 요구함과 동시에 주한미군 유연화전략과 평택미군기지 이전, 제주도 강정기지 건설을 요구해 나섰다. 나아가 경제자유구역 확대, 한미FTA추진으로 한국사회는 경제식민지, 양극화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정점으로 치닫고 있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테러전, 대북적대정책에 대한 한국민중의 저항은 유례없이 완강하게 전개되었다. 우리 민중들이 전개한 비정규직 투쟁, 공공부문민영화반대투쟁, 이라크파병반대투쟁, 평택미군기지반대투쟁, WTO세계화반대투쟁, 한미FTA반대노농빈총궐기 투쟁 등은 진보정당 원내진출시대 개척, 6.15선언관철, 반미자주, 반전평화, 애국통일 공조운동과 연결되면서 6.15공동위원회건설, 10.4선언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이 시기 얼마나 많은 노동자, 농민, 빈민들이 현장에서, 거리에서, 골리앗에서, 칸쿤에서 목숨을 잃었는가. 
    참으로 국민참여정부의 시기는 미 제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전략, 대북적대전략에 맞서 6.15공동선언, 10.4공동선언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 집단지성과 민주주의 이행을 심화시키며, 진보정당운동, 민중연대운동을 개척해간 위대하고도 가열찬 항쟁의 시기였다.

    2기 이명박 친미보수연합정권의 시작은 광우병 쇠고기 촛불항쟁이었다. 그 촛불의 끝에 2008년 금융공황이 도래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붕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때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환상을 가졌던 중간층은 침을 뱉고 돌아섰고, 통합진보당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진보진영과 중간층은 잘 단결하여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이명박정권은 747 헛공약 속에 토건경제의 실패, 자원외교의 실패, 남북관계의 파탄이라는 참혹한 결과만 남겼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 복지정책을 공약에 내걸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민중의 저항과 분노는 커져만 갔다.
    그러나 선거의 여왕은 정치무능자의 유신부활, 헬조선 본격화의 길로 들어섰다. 댓글공작으로 시작한 임기는 통합진보당 해산, 교과서 역사전쟁, 친일위안부합의, 세월호사건은폐, 개성공단폐쇄, 쉬운 해고추진, 불통무능국정운영이라는 유신부활반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재벌과 야합한 엽기적 국정농단 사건으로 비화하고 말았다. 민중들은 역사반동, 유신부활, 경제파탄, 생명무시 등 모든 사안에 맞서 저항과 투쟁의 밤과 낮을 보냈다. 마침내 한국민중은 2015년 노농빈총궐기 투쟁에 이어 2016년 위대한 촛불항쟁으로 박근혜정권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역사적 위업을 이루었다.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 3년.
    민주개혁세력은 대통령선거, 지방선거에 이어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의석을 획득하고, 친미수구세력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대구경북, 강남밸트로 왜소화되고 있다.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으로 민족의 통일열망과 북미관계전환에 대한 기대가 하늘에 닿았던 지난 2년간의 세월이 있었다.
    코로나19 방역의 모범국가로 등장하며 역대급 국경상승의 기회도 맞고 있다. 다른 한편 미국과 유럽이 어이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 모든 징표들은 지난 33년을 관통했던 87년체제가 끝나고, 2020년체제가 들어서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33년전 6월항쟁의 주역들이 이제는 집권세력이 되었고, 진보운동의 지도층이 되었으며, 사회 곳곳에서 이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 주역들이 지난 촛불에서도 자녀들과 손잡고 광장에 나와 박근혜를 끌어내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 후대에 대한 부채의식도 크다. 
    87년의 함성은 완성되어 가고 있는데, 빈부격차, 청년실업과 노인빈곤은 더 커져가고 있다. 6월항쟁의 주역들이 이 사회의 주류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적폐세력들의 공격에 대해서 방어력을 높이면서도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에 대한 성찰력 역시 더 높여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하늘을 찌르던 남북정상의 평화번영에 대한 약속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왜 탈북자들이 국회에 입성하고 6.15 20주년을 눈앞에 두고 전단지가 뿌려지며, 남북관계는 더 냉랭해지는 결과가 초래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매우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한번 항쟁의 주역은 영원한 항쟁의 주역이다. 오히려 권한이 더 커진 만큼 책임감도 더 높아져야 한다. 2020년체제도 그렇게 만들어 가야 한다.

    2020년체제는 탈미, 탈세계화로 시작해보자.
    코로나 재난과 경제위기는 미국, 유럽에 목을 맬 것이 아니라 내수와 한반도, 유라시아대륙과 동아시아에 눈을 돌릴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한국판 뉴딜은 이러한 방향전환의 디딤돌을 놓는 토대구축, 제도전환에 투여되어야 한다.

    2020년체제는 자주, 평등, 통일의 길로 가야 한다.
    33년의 민주화 이행기를 돌아볼 때 이 정도의 민주주의를 하는데 왜 그렇게 33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걸렸고, 민중의 지난한 투쟁이 필요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보게 된다. 미국의 간섭과 방행, 이를 등에 업은 친미수구세력의 저항 때문이다. 미국의 지배와 간섭에서 벗어나야 분단적폐세력을 보다 효과적으로 청산할 수 있고, 촛불항쟁이 요구하는 민주주의도 더 잘 완성할 수 있다. 복잡한 판단을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 경제위기 시대에 경제위기도 극복하고 빈부격차도 극복해야 한다. 무엇이 이를 가로막고 있는가? 미국자본과 재벌이다. 미국의 금융착취와 재벌의 사유화라는 이중착취구조를 청산하지 않고 분배와 복지를 늘릴 방법은 없다. 수출로 외화를 벌어오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이고, 반면 미국과 재벌이 더 많은 것을 가져가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탈미자주, 탈세계화는 남쪽 힘만으로는 힘들다. 남북이 힘을 합쳐야 한다. 이것을 가장 방해하는 세력은 미국과 그 앞잡이 친미수구세력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불순한 탈북자들까지 나섰다. 그들은 남과 북이 힘을 합치는 것이 가장 두렵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 힘을 합치는 데서 두려움은 그들의 몫이지 항쟁주역들의 몫이 아니다. 33년을 헤쳐온 것처럼, 이제 본격적인 자주, 평등, 통일의 길로 민중의 힘을 믿고 전진하자.

    키워드#6월항쟁 #6월항쟁33주년 #항쟁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www.minplu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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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적대적 공존' 이제 안 통한다...오판하지 말라

[현안진단] 판문점 선언 이후 20번 살포된 전단, 왜 지금 문제 삼고 있나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다시 전면에 나섰다. 우리 측 탈북단체가 5월 31일 풍선에 띄워 대북 전단을 살포하자 6월 4일 김여정이 직접 나서 담화를 발표한 것이다.

 

지난 3월 2일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를 쏜 직후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관계부처장관 화상회의를 열고 북측에 유감을 표명하며 중단을 요구하자, 이튿날 김여정이 직접 담화를 발표해 "자기들은 군사적으로 준비되어야 하고 우리는 군사훈련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강도적인 억지 주장'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번이 김여정 명의로 된 담화로는 두 번째다.

 

김여정의 담화 발표에 이어 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통전부') 대변인의 담화가 나왔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아닌 '통전부' 대변인 명의로 담화가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조평통'이 2016년 당대회에서 국가기구로 승격되었고 김여정이 당중앙위 제1부부장 직함을 썼기 때문에 당 중앙위 '통전부'의 담화 형태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통전부' 담화는 김여정이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면서 이 담화가 김여정 담화문의 내용을 실무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검토사업에 착수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 지난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개최한 당 정치국 회의에 김여정(가운데) 노동당 제1부부장이 참석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김여정의 담화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통전부' 대변인 담화, 노동신문 사설, 대남 매체 '우리민족끼리', '메아리' 등을 통해 우리 측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군사합의서」에서 규정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전단살포', '적대행위' 금지라는 약속을 위반했다는 비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곳곳에서 군중집회를 열고 탈북자단체들의 대북 전단살포를 집중적으로 규탄하는가 하면 이를 막지 못했다며 한국정부를 비난했다.

 

먼저 '통전부' 대변인 담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남쪽에서 법안이 채택되어 실행될 때까지"로 기간을 한정하여 '접경지역에서 남측이 몹시 피로해 할 일판'을 하나씩 벌여나간다고 한 부분이다. 북측이 대남 비난 수위는 높이고 있지만, 앞으로 벌여나갈 일로 열거한 것들은 남북연락사무소 폐쇄, 개성공업지구의 완전철거,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 법‧제도적인 연성안보와 관련한 것들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 김영철 부위원장이 대남사업부서 사업총화회의에 참석해 첫 단계 행동으로 6월 9일 정오부터 남북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을 완전히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직접적인 군사도발과 같은 경성안보 수단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눈여겨 볼 대목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왜 이 시점에 문제 삼았나 하는 점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 58회, 2018년 15회, 2019년 11회로 점차 대북 전단살포가 줄어들다가 올해는 4건을 살포한 데 그쳤다. 4.27 판문점 선언이 2018년 4월 27일에 채택된 점을 고려하면, 탈북자단체가 그 후에도 최소한 20여 차례 대북 전단을 살포해온 셈인데 이번에 새삼 문제로 들고나온 것이다.

 

또 다른 대목은 대남 요구의 내용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북측은 지금까지 남북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우리 정부에게 첨단 군사장비의 반입 중지와 한·미 군사연습의 중단과 같이 쉽게 응하기 어려운 것들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이번 요구는 국회에서 대북 전단살포를 막을 법령을 입안하라는 것이다.


 

우리 측 입법 문제를 거론한 것은 내정간섭으로 볼 소지가 있지만, 이미 2018년 9월 집권여당 쪽에서 발의했다가 실현되지 못했고 이번 제21대 국회에서도 법 제정을 준비 중인 것을 북측이 공개리에 제기한 것일 뿐이다.

 

끝으로 주목할 부분은 탈북자들에 대해 '쓰레기', '똥개', '조국을 배반한 인간추물'과 같이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군중집회에서도 '탈북자 쓰레기들에게 죽음을', '탈북자 쓰레기들을 죽탕쳐 버리자' 등 구호를 내걸며 이들을 지목해 집중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이번 제21대 국회의원이 된 북한외교관 출신의 태영호 의원과 꽃제비 출신의 지성호 의원을 염두에 둔 행동들로 보인다.


 

북한 대남사업 당국자들의 잇단 오판 

 

이 시점에서 북측이 대남 담화를 잇달아 발표한 것은, 지난 4월 15일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헌법개정을 빼곤 모든 법을 통과시킬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한 것이 북한에 여러 가지 유리한 여건을 조성해줄 것으로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동의 확보를 통해 법적 구속력을 갖도록 함으로써 탈북자 출신 의원들의 활동을 제한하고, 이들의 반북 활동이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지더라도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몇 가지 엄포에도 불구하고 우리 측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를 고려하여 남북관계의 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북측이 대남 담화의 발표를 본격화한 것을 보면, 이제 북한이 대남정책의 검토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대남사업에 나선다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입법 논의 중인 것을 북측이 선수 쳐서 제기한 것은 자신들이 남북관계를 주도하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새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김영철 당 부위원장 후임으로 통전부장이 된 장금철의 활동이 전혀 없어 경질설이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을 총괄하고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힌 점이 눈에 띈다.

 

통상적으로 북한은 1월 1일 신년사에서 대남 메시지를 내놓고 1월 하순의 정부‧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호소문을 통해 대남정책의 기조와 방향, 실천조치 등을 밝혀 왔다. 하지만 올해는 신년사를 대신한 작년 말의 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정서에 대남 메시지가 담기지 않았고, 정부‧정당‧단체 연석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3월 3일 김여정의 담화 때부터 대남 입장표명을 재개한 것이다.


 

이번에 잇달아 대남 담화를 발표하고 군중집회를 여는 것을 보면, 북한당국이 여전히 남북관계에 대한 잘못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일 간의 수출규제 갈등, 태극기부대 등 극우세력의 반정부 투쟁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는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그 시기 탈북자단체의 대북 전단살포에 대해서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 7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지난 6일 평양시 청년공원야회극장에서 전단 살포를 규탄하는 청년학생들의 항의 군중 집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코로나 19를 의식한 듯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로동신문

그러다가 문 대통령이 1월 7일 신년사에서 "북·미 대화가 본격화되면서 남과 북 모두 북·미 대화를 앞세웠다"고 회고하며 앞으로 "남북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독자적인 남북관계의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뒤 코로나19 방역에서 세계적인 모범국가가 되며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승리하고 제21대 국회가 개원하자, 북측이 대남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 정부를 고강도로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당국은 노무현 정부 때 실패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당국의 시각에서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국의 여당이나 야당 모두 보수세력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여야당을 똑같이 취급하는 것처럼 말해 왔다.

 

하지만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의 경험에서 보듯이 이것은 북측의 오판이다. 우리 정권의 성격에 따라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가 달라진다는 점은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과거 남한 독재정권 때처럼 '적대적 공존 관계'가 통하는 세상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북측 당국자들은 무엇이 진정으로 우리 민족의 이익이 되고 북한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대화 상대가 적극적으로 관계개선 의지를 보이면 이것을 자신들의 우위로 착각해 오히려 더 세게 나오는 북한의 그릇된 태도는 대미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이었던 오바마 행정부 초기에 우주발사체를 쏘아올리고 뒤이어 핵실험을 실시하는 바람에 당초 예상과 기대와 달리 8년 동안 제대로 된 북‧미 대화조차 없었고, 북‧미 관계는 물론 한반도 비핵화 협상도 전혀 진전이 없었다.


 

심지어 보수적인 부시 행정부 때보다 북‧미 관계는 뒷걸음질 쳤다. 앞으로 북한이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 관계를 잘 풀기 위해서는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북‧미 대화 재개도 당분간은 쉽지 않아


 

지금 북한은 오는 11월 3일 미 대선 이전에는 미국이 쉽게 북‧미 대화에 나서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미 대선이 끝나더라도 누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느냐에 따라 북‧미 관계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북‧미 관계는 트럼프 리스크에 따른 불확실성과 바이든 당선에 따른 대화재개 지연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번 미 대선과 관련해 우선 주목할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임 여부이다. 몇 번의 예외를 빼고 현직 대통령이 연임해 온 미국의 선거 풍토로 볼 때, 올 초만 해도 트럼프의 연임은 확실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무능한 대처, 흑인 플로이드 사망에 대한 연방군대 투입 시도 등 잇단 악재로 인해 그의 재선이 불투명해졌다. 미 대선일까지 4달 이상 남았기 때문에 아직 선거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연초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트럼프 재선의 불확실성은 북‧미 관계의 불확실성을 낳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제1기 행정부 때의 톱다운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지 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재선을 위한 외교적 성과를 내기 위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과감히 수용했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에 합의한 직후 초강경파 존 볼턴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하는가 하면, 전임 정권에서 합의했던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고, 정상회담을 보름여 앞두고 전격 취소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북‧미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코언 청문회 실시에 맞춰 제2차 정상회담을 열면서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고 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확실한 행보로 인해 재선되더라도 북·미 관계는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될 경우를 생각해 보자. 바이든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폭군으로 비난하면서도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은 대선 캠페인 공식 웹사이트에서 "새로운 시대를 위한 군축 공약을 갱신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미 협상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목표 진전을 위해 동맹국은 물론 중국 등 다른 나라들과 지속적이고 조율된 캠페인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가 대북 해법의 청사진을 제공한다고 밝힌 점이 주목된다.

 

바이든 후보의 대외정책을 읽으려면 캠프의 대외정책 담당자가 누군지 알 필요가 있다. 현재 바이든 캠프의 외교정책 자문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활동했던 토니 블링큰 전 국무부 부장관이 책임을 맡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란 핵협상을 이끌었던 니콜라스 번스 전 국무부 정무차관도 외교안보팀에 합류했다. 바이든의 정책전문위원 출신으로 오바마 대선캠프에서 한반도팀장을 맡았고 현재 맨스필드재단 소장을 맡고 있는 프랭크 자누지가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그밖에 주한 대사를 역임한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커트 캠벨 전 동아태 차관보, 톰 도닐론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에브릴 해인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토마스 허바드 전 주한 대사 등이 바이든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 북·미 대화의 재개가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2021년 1월 신 행정부가 출범하면 우선 국무장관을 비롯한 각 부처 장관을 임명하게 되며, 한반도 정책을 총괄하는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국무장관과의 협의를 거쳐 5월 무렵에 지명되어 6월이 돼야 인준청문회가 열리게 된다.


 

신임 동아태 차관보가 한반도정책 검토를 완료하려면 8~9월이 돼야 한다. 대북 협상을 맡을 대북정책특별대표도 그즈음에야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지금부터 1년 이상이 지나야 북‧미 협상이 본격화될 수 있어 북한으로서는 그동안 대북 제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 8일(현지 시각) 미국 방송 CNN이 이달 2∼5일 미 전국의 성인 12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부통령인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두 자릿수 이상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CNN 화면 갈무리

문재인 정부를 '적'으로 돌리려는 잘못된 시도를 멈춰야


 

북한 당국자들의 속내는 미국이나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서, 자신들에게 상황이 유리해졌을 때까지 기다리며 협상에 나오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또 협상에 나서더라도 자신들이 우위에 서기 위해 강공으로 선수 치며 나오겠다는 계산이다. 남북관계에서도 4.15총선에서 남북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집권여당이 승리하자 상황이 유리해졌다고 판단해 대남 공세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가 미국 변수의 고려 없이 집권여당의 4.15총선 승리만으로 북한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민주주의 정당정치의 본질은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어 집권하는 것이지만, 아무리 집권여당이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북한당국이 대남 압박을 가한다고 해도 국민여론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정책으로 채택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대선 국면에 들어가 있는 미국으로서는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북한의 대미 압박을 받아들일 정치적 공간이 남아있지 않다.


 

지난해 12월 28~31일 개최된 당 중앙위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결정서가 판단한 대로 북‧미 간의 교착상태는 불가피하게 장기성을 띠고 있는 정세임에 틀림없다. 올해 1월 4일 자 <로동신문>이 이 전원회의 결정서를 해설하면서 지적한 것처럼, "이번 회의의 기본정신, 기본사상은 정세가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전을 벌이는 것"이라며 "오직 자력갱생의 힘으로 정면돌파 해야 한다"고 파악하고 있다.


 

북한당국이 정세가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정면돌파 해야 한다는 정세 파악은 차치하고, 정면돌파전의 방향이 '자력갱생'에 맞춰져야지 남측을 위협해서 뭔가 얻으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통전부' 대변인 담화에서 "적은 역시 적이라는 결론"이라고 밝힌 것처럼 남측 정부를 '적'으로 규정하며 대남 벼랑끝 전술을 쓰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남북 화해협력에도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북한이 현 난국을 정면돌파하는 데도 결코 유리하지 않다. 과거와 같은 '적대적 공존 관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 당국자들은 오래된 불신과 잘못된 관행 때문에 화해와 협력 자세보다는 압박과 대결 자세를 취해야 자신들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세계의 세력 판도도 급격히 바뀌고 있고 한국의 국내 정치지형도 크게 바뀌었다.


 

그런 점에서 북한당국은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보고 올바로 판단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도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견결함으로 남북관계의 활로를 열 준비를 갖추는 것이 북한당국이 우선해야 할 과제이다. 우리 사회 안에서도 대북 전단살포가 몰고 올 부정적 결과를 낮추어 보는 무책임한 태도를 지양하고, 그보다는 북한이 제대로 변화의 길에 나설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데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60918083505335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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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가 문제? ‘이것’만 지켜도 21대 국회는 확 변한다.

법사위가 뭐길래
 
임병도 | 2020-06-10 09:21:5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1대 국회가 개원했지만 제대로 출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가 일을 하려면 의장단을 선출하고 상임위를 구성하는 등 원 구성을 해야 합니다.

국회 의장단은 지난 5일 본회의에서 표결로 선출했습니다. 박병석 국회의장과 김상희 부의장은 선출됐지만, 야당 몫의 부의장은 아직도 공석입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반쪽 개원’, ‘민주당 단독 강행’이라고도 하지만 표결에는 300명 국회의원 중 193명이 참여했습니다. 통합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당이 참여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3분의 2 개원이라고 봐야 합니다.

‘국회의장 선출에 통합당만 투표 거부’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마치 민주당이 법을 어기고 강행했다는 식의 반쪽 개원은 맞지 않습니다.

법사위가 뭐길래

▲6월 8일 여야는 원 구성 대신 상임위원회 정수 조정 특위 구성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4시가 넘었지만 통합당 의원들의 자리는 비어있다.

통합당이 국회의장 표결에 퇴장을 하고 상임위원장 선출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바로 법사위 위원장을 차지하겠다는 의도입니다. 도대체 법사위가 뭐길래 국회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법사위는 법제사법위원회의 준말입니다. 법사위는 법무부, 법제처, 감사원, 헌법재판소 등의 기관을 감시하는 역할과 법안이 다른 법안과 충돌하는지 법안의 문구가 정확한지 심사하는 ‘체계·자구 심사권’을 가집니다.

핵심은 ‘체계·자구 심사권’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법안이라도 여기에 걸리면 본회의도 가지 못하고 법사위에 몇 년씩 묶여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20대 국회에서 각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 3217건 가운데 91건은 법사위를 끝내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2016년에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특별법’은 2년 넘게 법사위에 있었고, 이력서에 사진부착을 금지하는 ‘채용절차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2년 4개월 만에 겨우 통과됐습니다.

이러다 보니 법사위가 상임위 중의 상임위로 군림하면서 고의로 법안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문제는 이런 법사위의 폐단을 여야가 모두 알면서도 바꾸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야당이 법사위원장이 되면 여당의 법안을 막는 방식으로 견제할 수 있기 때문에 여야가 바뀔 때마다 입장이 매번 달라집니다.

21대 국회도 야당인 통합당은 법사위를 여당에 넘겨주면 모든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표결로 통과시킬 수 있다며 자신들이 위원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당인 민주당은 만약 통합당이 법사위원장이 되면 법안을 법사위에 계속 잡아둬 아예 본회의로 가지 못하게 방해할 수 있으니 꼭 차지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법사위원장을 놓고 여야가 서로 위원장을 하겠다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 쉽게 합의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통합당의 요구로 ‘상임위 정수(위원회에 몇 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하는지 정함) 조정 특위’가 만들어졌고 합의에 따라 10일 본회의를 통과하면 민주당은 상임위원장 선출을 본회의 표결로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시간과 기한을 지키지 않는 국회

통합당은 법사위를 법제위와 사법위로 분리하자고 주장합니다. 민주당은 체계 자구 심사를 법사위가 아닌 국회의장 직속이나 별도의 기관으로 이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모두가 체계 자구 핑계로 법안 통과가 미뤄지는 문제를 개선할 필요성은 인지합니다.

법안의 체계 자구 심사는 필요합니다. 위헌적인 요소나 다른 법안과의 충돌은 제대로 살펴야 법이 발효됐을 때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핵심은 심사가 아니라 기한이라고 봅니다.

법사위에 법안들이 2년 넘게 묶여 있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특히 법안 충돌이나 위헌적인 요소는 법사위 전문위원들이 별도로 있어 충분히 기한 내에 가능합니다. 만약 인원이 부족하면 더 충원하면 됩니다.

 ① 위원회에서 법률안의 심사를 마치거나 입안을 하였을 때에는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여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 경우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간사와 협의하여 심사에서 제안자의 취지 설명과 토론을 생략할 수 있다.

② 의장은 제1항의 심사에 대하여 제85조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심사기간을 지정할 수 있으며, 법제사법위원회가 이유 없이 그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바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 이 경우 제85조제1항제1호 또는 제2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여 해당 호와 관련된 안건에 대하여만 심사기간을 지정할 수 있다.

③ 법제사법위원회가 제1항에 따라 회부된 법률안에 대하여 이유 없이 회부된 날부터 12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심사대상 법률안의 소관 위원회 위원장은 간사와 협의하여 이의가 없는 경우에는 의장에게 그 법률안의 본회의 부의를 서면으로 요구한다. 다만, 이의가 있는 경우에는 그 법률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 여부를 무기명투표로 표결하되, 해당 위원회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④ 의장은 제3항에 따른 본회의 부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해당 법률안을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하여 바로 본회의에 부의한다. 다만, 제3항에 따른 본회의 부의 요구가 있었던 날부터 30일 이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그 기간이 지난 후 처음으로 개의되는 본회의에서 해당 법률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여부를 무기명투표로 표결한다.

국회법 제86조에 따르면 체계·자구 심사기간을 지정하는 것은 제85조 1항 ‘천재지변’이나 ‘국가비상사태’ 또는 ‘교섭단체 협의’외에는 없습니다. 물론 3항 회부된 날로 120일 이내라는 조항은 있지만, 다양한 이유가 있으니 큰 의미는 없습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정무위원장 당시 모든 회의를 정시에 시작했다.’라며 회의에 늦은 통합당 의원들의 행태를 에둘러 지적했다.

여야가 협상을 통해 합의에 이르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를 핑계로 법적 시한을 어깁니다. 아무리 협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하지만 법이 정한 시한을  한결같이 어기는 행태는 분명 잘못됐습니다.

단순히 법적 시한뿐 아니라 본회의 시간마저도 지킨 적이 별로 없습니다. 오죽하면 박병석 의장은 6월 8일 ‘상임위원회 정수 조정 특위’ 표결 본회의에서 “정무위원장을 했는데 모든 회의를 정시에 시작했다.”며 4시가 넘어 들어온 통합당 의원들의 행태를 에둘러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법적 시한을 왜 규정해놨을까요? 그 시한을 넘길 경우 국정 운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국민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눈에는 법적 시한을 늘 넘기는  국회의원들을 보면 답답합니다. 국회가 매일 싸우는 것처럼 비칩니다. 여야의 입장을 내세우며 정치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해져 있는 시간만은 지켜야 합니다.

21대 국회에서 정시 회의 시작, 법적 시한 준수가 얼마나 지켜질 지 벌써부터 의문이 듭니다. 이번 국회가 법으로 정한 기한만 지켜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국회라는 평가를 받으리라 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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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에 세균전까지..대북 전단 살포의 위험성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 | 기사입력 2020/06/10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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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이라는 탈북자 단체가 5월 31일 김포시에서 날린 대북전단이 한반도의 뇌관을 건드렸다.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에 격한 반응을 보였고 교착국면이던 남북관계는 악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북한의 반응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6월 4일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담화를 발표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자유북한운동연합에 대해 “태묻은 조국을 배반한 들짐승보다 못한 인간추물”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김여정 부부장은 “남조선당국은 군사분계선일대에서 삐라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판문점선언과 군사합의서의 조항을 결코 모른다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 또한 규탄했다.

 

남과 북은 4.27 판문점선언 2조 1항에서 “당면하여 (2018년)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합의했다. 남과 북은 ‘전단 살포’를 대표적인 적대행위로 찍어 합의문에 명시한 것이다. 김여정 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가 판문점선언 위반이라고 한 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김여정 부부장은 또한 “6.15 20돌을 맞게 되는 마당에 우리의 면전에서 거리낌 없이 자행되는 이런 악의에 찬 행위들이 ‘개인의 자유’요, ‘표현의 자유’요 하는 미명하에 방치된다면 남조선당국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보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여정 부부장은 구체적으로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여파로 개성공업지구의 완전철거와 연락사무소 폐쇄,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언급하며 “하여튼 단단히 각오는 해두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일부 대변인은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 이후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해야 한다면서 “살포된 전단 대부분은 국내 지역에서 발견되며 접경지역의 환경오염, 폐기물 수거 부담 등 지역 주민들의 생활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번엔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대변인이 6월 5일 담화를 발표해 “가을뻐꾸기같은 소리”를 내고 있다며 통일부 대변인 발언을 질타했다. “그 어디에도 조금이나마 미안한 속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고 다시는 긴장만을 격화시키는 쓸모없는 짓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또한, 통일전선부 대변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적은 역시 적이라는 결론을 더욱 확고히 내리었다”라며 “남북공동연락사무소부터 결단코 철폐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북한 주민 사이에서도 우리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고 있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6월 8일만 해도 총 27개의 기사 중 7개의 기사를 할애해 정부와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규탄하는 기사를 실었다.

 

노동신문에는 내각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철도상, 중앙검찰소 소장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와 황해제철연합기업소 강철직장 노장, 황해남도농촌경리위원장, 평양시당위원장 등 각계각층 인사들의 성토문이 게재됐다.

 

또한, 북한 주민들은 평양종합병원 건설장,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각종 현장에서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으며, 김일성-김정일주의 청년동맹은 6월 6일 평양시 청년공원야회극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북한에서 전 사회적으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격노하는 여론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6월 9일, 결국 북한은 자신의 경고를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이날 12시부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통신과 군사통신, 청와대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 직통통신을 차단한 것이다. 노동신문은 “이번 조치는 남조선것들과의 일체 접촉공간을 완전격폐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 첫 단계의 행동”이라고 선언했다.

 

전단 살포가 남북관계에 미친 영향

 

대북전단 살포가 남북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북전단 살포는 남북 사이에 총격전을 유발하기도 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2014년에도 10월 10일에 대북전단을 살포하겠다고 예고했다. 10월 10일은 조선노동당 창건일로 북한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기념일이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조선노동당 창건일에 대북전단을 살포하려고 한 것은 노골적으로 반북적대행위를 하려는 시도이다. 앞서 북한은 2014년 2월에 열린 1차 남북고위급 접촉에서 박근혜 정권에 대북전단 살포를 중지하라고 요구한 바 있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북전단 살포를 예고하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남조선 당국이 이번 삐라 살포 난동을 허용하거나 묵인한다면 남북관계는 또다시 수습할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북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고대로 10월 10일 경기도 파주시에서 대북전단을 날렸다. 박근혜 정권도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탈북단체를 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가만히 지켜보지 않은 것이다. 북한은 대북전단이 날아오르자 대북전단을 향해 사격했다. 박근혜 정권은 최고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대응사격을 했다.

 

대북전단 살포로 야기된 이 총격전으로 파주시 인근 연천군 주민들은 긴급 대피를 해야 했다. 마을 주민들은 논밭에서 일하다 대피방송을 듣고 급히 방공호로 대피했으며 밤늦게까지 방공호에서 불안에 떨었다.

 

반북단체들은 이후 2014년 10월 25일 재차 파주시 임진각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하려 했다. 북한 고위급접촉 대표단 대변인은 엄중한 도발을 막기 위해 더 강도 높은 섬멸적인 물리적 타격이 이어질 것이라고 다시금 경고했다.

 

이제 파주시민들은 직접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은 대북전단 살포를 저지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이 나서지 않자 급기야 파주시민들이 직접 전단 살포를 막아 나섰다. 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임진각에 트랙터 10여 대를 끌고 나와 대북전단 살포를 막으려 했다. 참가자 중 일부가 대북전단을 나르는 풍선을 칼로 찢거나 전단지를 빼앗아 전단 살포를 저지에 가까스로 성공했다.

 

반북단체들은 임진각에서 시민의 반대에 부딪히자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로 장소를 옮겨 살포하려 했다. 그러나 성난 파주시민들의 반대로 통일전망대에서도 저지당했다. 그러나 반북단체들은 끈질기게도 김포 월곶면 일대로 옮겨가 결국 전단을 살포했다.

 

정부와 시민이 대북전단 살포를 저지한 적도 있다. 2011년 3월 18일, 2013년 4월 13일과 6월 29일, 2015년 7월 27일, 2018년 5월 5일, 8일에는 대북전단 살포가 무산됐다. 일부는 시민들이 직접 반북단체와 맞서 저지했으며, 2015년에는 박근혜 정권이 살포 예정 지역 일대를 원천봉쇄해 무산시키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한 바 있다.

 

최근 자유북한운동연합은 김포시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이에 김포 주민들은 6월 7일, “탈북민단체가 접경지역의 특수한 상황을 무시하고 대북전단을 계속 살포할 것이라는 사실에 분노한다.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근절하기 위한 강력한 조처와 이를 위반할 시 처벌할 수 있는 법령 등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달라”라며 정부에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해줄 것을 촉구했다.

 

김포시는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김포시장이 ‘탈북민단체 대북전단 살포 중단 건의문’을 통일부에 전달하는가 하면, 24시간 대응 체제를 구축해 대북전단을 날리는 주요 지점을 사전에 감시하기로 했다.

 

대북전단 살포 제지, 이미 법적 근거 있다

 

일각에서는 대북전단 살포가 표현의 자유에 속하므로 정부가 나서서 제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6년 3월 29일 박근혜 정권이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한 데 대해 적법했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은 “대북전단 살포행위와 휴전선 부근 주민들의 생명·신체에 급박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북한의 도발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며 “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 1항과 정당방위 및 긴급피난을 규정하는 민법 제761조 2항에 따라 국가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어 대법원은 “모든 국민은 헌법 제21조 1항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지만 이러한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 적인 것이 아니고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때 국가가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라고도 밝혔다. 이미 대법원이 대북전단 살포는 무제한적으로 인정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 범위를 벗어났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 이후 접경 지역에서의 긴장 조성 행위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직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서 대북전단 살포를 용인하고 있다는 뜻처럼 들리는 설명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 이미 대법원 판례를 통해 대북전단 살포 금지는 이미 법적 근거가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이미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제도의 미비’를 탓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통일전선부 대변인은 “지금 남조선당국은 이제야 삐라살포를 막을 법안을 마련하고 검토 중이라고 이전보다는 어느 정도 진화된 수법으로 고단수의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데 그렇다면 결국 그런 법안도 없이 군사분계연선지역에서 서로 일체 적대행위를 중단하자는 군사분야의 합의서에 얼렁뚱땅 서명하였다는 소리가 아닌가”라고 꼬집기도 하였다.

 

판문점선언 이행하려면 대북전단 살포 제지해야

 

판문점선언에서는 대북전단 살포를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로 규정하고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대북전단 살포는 판문점선언에서 콕 집어 명시한 적대행위이다.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방기한다면 이는 자칫 판문점선언 자체가 파기될 수 있고 심지어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

 

최근 대북단체들은 대북전단 살포에 드론까지 이용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대북전단 살포 차 띄운 드론이 평양에 추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드론은 크기나 성능에 따라 능력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엄연히 전쟁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반북단체들은 단순한 전단 살포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 실제로 북한 공격에까지 나설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반북단체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북한에 퍼트리려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박지원 민생당 전 의원도 6월 6일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코로나19 확산을 노리는 반인륜적 처사”라고 질타한 바 있다.

 

대북전단이 일종의 ‘생화학무기’로도 활용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북한에 코로나19를 확산시키려는 시도는 엄연한 ‘세균전’ 행위이다. 반북단체가 비밀리에 세균전을 감행했을 때 그 파장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무엇보다 대북전단은 북한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최고지도자를 음해모략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지금 북한에서 전 사회적으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가 최고지도자를 음해모략하는 대북전단을 살포하도록 내버려 두면 북한으로선 문재인 정부가 이런 행위를 방관 또는 묵인하여 부추기고 있다고 여길 수 있다.

 

남북관계 발전은 고사하고 당장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표현의 자유’나 ‘제도 미비’ 같은 핑계를 대기보다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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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 정국... 민주당, 십보전진 위한 일보후퇴?

[해설] 결국 또 지각원구성... 박병석 국회의장 "12일까지 상임위 명단 제출"

20.06.09 07:50l최종 업데이트 20.06.09 07:50l

 

 

자리로 향하는 김태년-주호영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 부터), 박병석 국회의장,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8일 국회 의장실에서 상임위원회 구성을 논의하기 위해 만나 자리에 앉고 있다.
▲ 자리로 향하는 김태년-주호영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 부터), 박병석 국회의장,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8일 국회 의장실에서 상임위원회 구성을 논의하기 위해 만나 자리에 앉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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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태년·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8일 오후 국회 본회의 직후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21대 전반기 원구성 관련 논의를 다시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첫 집회일 이후 3일 이내 상임위원장을 선출토록 한 국회법(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법대로'를 외쳤던 민주당은 통합당의 '상임위원 정수에 관한 규칙개정을 위한 특위 우선 구성' 요구를 수용하면서 한발 물러섰다. 반대로 상임위 강제배분 가능성을 경계했던 통합당의 입장에선 시간을 어느 정도 벌었다(관련기사 : '원 구성 법정시한 준수'는 불발, '협상 계속' 택한 여당).

그러나 통합당이 확보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양당 원내대표에게 "12일 오전까지 상임위원 선임 명단을 제출해 달라, 당일 오후 2시에 본회의를 열겠다"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상임위원 선임과 상임위원장 배분과 관련해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양당 원내대표가) 계속 회담을 가져달라"고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여야 원내대표는 '상임위 위원정수 규칙개정안'을 처리할 10일 본회의 직후 다시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을 열 예정이다.

협상이 이때까지 불발될 경우, 다시 국회의장의 '상임위 강제배분'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다만, "12일까지 합의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결단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한민수 국회 공보수석은 "거기에 대한 국회의장님의 말씀은 없으셨다"고 답했다.

주호영, 14년 전 '법사위 분할안' 다시 제안... 결국 체계자구심사권이 핵심

 

여전히 쟁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다. 정확히는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이다.

민주당은 현재 법사위에서 체계자구심사권을 통해 타 상임위의 입법안에 대해 사실상 양원제의 상원처럼 통과를 거부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법사위원장은 집권여당이 맡아야 국정운영의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한편으론 국회법 개정을 통해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국회의장 산하 별도기구에 맡기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지난주 원구성 협상 때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폐지하는 것에 동의하면 법사위원장을 통합당에 넘기겠다'는 취지의 제안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통합당은 법사위의 '게이트키퍼(Gate-Keeper)' 권한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야 행정부를 견제·감독해야 할 입법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다. 같은 맥락에서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도 폐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지난 7일 국회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 때 "법사위를 법제위원회와 사법위원회로 분리하고, 법제위원회가 체계자구심사권을 갖도록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사법위가 법원·법무부·검찰 등 고유의 사법행정을 소관하고, 법제위는 각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을 비롯한 여야 의원 50인으로 구성한 상설특위 형태로 꾸려 체계자구심사기능을 수행하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사실상 현행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놓지 못한다는 입장으로, 주 원내대표 본인이 14년 전인 17대 국회 때 발의했지만 폐기된 국회법 개정안과 같은 내용이다. 당시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집권여당으로 원내 1당이었고, 야당이자 원내 2당인 한나라당은 법사위원장직을 맡고 있었다. '법사위 점거'를 통해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시킨 법안을 저지하는 경우도 잦았다.  

오래된 논쟁... 김형오 국회의장 때도 '법사위 체계자구심사권 폐지' 요구 있었다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왼쪽부터)가 8일 국회 의장실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와 만나 발언하고 있다.
▲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왼쪽부터)가 8일 국회 의장실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와 만나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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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에 대한 공방은 사실 '오래된 논쟁'이다. 또 그 과정에서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없애야 한다"는 현 민주당의 주장에 보다 무게가 실렸다. 2008년 김형오 전 국회의장 산하에 구성됐던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원회'가 단적인 예다.

자문위는 같은 해 12월 발간한 활동결과 보고서를 통해 "간단한 내용의 법안이라도 체계자구심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입법의 비효율을 가져온다"라며 "법사위가 체계자구심사를 이유로 다른 상임위 소관 법률안의 정책적 내용까지 변경하는 경우가 있어 상임위 간 갈등이 초래되거나 의도적인 법사위 계류를 통해 지연시키는 경우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주요국 의회의 법안심사 과정에서 소관 상임위가 의결한 법률안을 다른 특정상임위가 체계자구심사를 하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제도를 폐지하고 소관 상임위는 심사한 법률안에 대해 법제전문기구의 체계자구 검토의견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국회사무처 법제실에 의견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자"라고 주장했다. 즉, 현 민주당의 논리와 같은 구조인 셈이다.

지난 2017년 2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국회에 법률전문가가 드물던 제2대 국회에서 도입된 법사위 체계자구심사의 경우에도 입법과정의 효율화 측면에서 여전히 필요한 절차인지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는 내용의 이슈페이퍼(전진영 입법조사관,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심사를 둘러싼 쟁점과 개선방안')를 낸 바 있다.

전 조사관은 당시 이 페이퍼에서 "제17대 국회부터 법사위 위원장을 제1야당에서 맡으면서 체계자구심사 절차를 야당이 반대하는 쟁점법안의 처리를 지연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라며 "제19대 국회에서도 원내대표간 법안처리에 합의됐던 쟁점법안이 법제사법위원장의 심사거부로 처리되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국회의장, 다음엔 통합당도 양보하라고 할 것"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없애야 한다는 민주당의 입장은 여전하다. 주 원내대표의 '법사위 분할안'에 대한 입장도 같은 맥락에서 반대하고 있다.

홍정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기자들을 만나 "법사위 분할안에 대해 (의원총회에서) 잠시 언급됐지만 깊이 논의된 건 아니었다"라면서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 기능이 더 확장되는 방식의 분리안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당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박범계 의원도 같은 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한 인터뷰에서 "(주 원내대표의 제안은) 말 그대로 진짜 '상원'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법제위를 만들어서 각 상임위를 실질적으로 무력화하겠다는 발상"이라며 "(통합당이 법사위원장을 확보하겠다는 것보다) 더 나쁜 수"라고 평했다.

민주당 안에선, 통합당의 제안을 수용하면서 원구성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한 이날 협상 결과를 '십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한 의원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만나 "(원구성 법정시한이더라도) 너무 일방적으로 가면 안 되지 않냐"라면서 "통합당이 상임위원 정수조정 규칙개정 특위 활동을 근거로 시간끌기 작전인 걸 알면서도 의장이나 원내대표가 수용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히 "국회의장 입장에선 통합당 요구를 들어줬으니 이번엔 민주당 입장을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 통합당도 양보하라는 다음 신호를 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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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엄정히 처벌해야 다른 범죄 막는다"

민변·참여연대 "이재용, 엄정히 처벌해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와 참여연대는 8일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기자회견을 열고 "삼성물산 부당합병이 오로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것이었다며 "△횡령·배임 등 회사 재산 탈취 범죄 △자본시장법 위반 등 자본시장 교란범죄 △뇌물 등 부패범죄를 모두 저지르는 3대 기업범죄의 종합판"이라고 이 같이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범죄행태가 중대할 뿐만 아니라 범행 동기도 단지 재벌 총수의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줄이기 위한 것에 불과하여 정상참작의 여지가 적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회계사기 등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과 관련하여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진행된 이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는 오후 7시께 마무리됐다. 구속여부는 9일 새벽께나 결정될 전망이다.


 

▲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한 승계 작업


 

이상훈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은 "삼바 회계사기나 삼성물산 부당합병은 몇 년에 걸쳐 주도면밀하게 진행됐다"며 "이러한 내용을 이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보고받으며 관여했다는 정황이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2015년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1대 0.35의 합병비율로 합병했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의 3배가량 큰 규모의 회사로 평가된 셈이다. 그 결과 제일모직의 지분만 23%를 가지고 있었던 이 부회장은 합병회사 삼성물산의 지분 16.54%를 확보했고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해 40.26%의 지분으로 지배력을 확보했다.


 

홍순탁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은 "삼바 회계처리는 2014년 합병 직전 공시에서 주주간 계약(콜옵션)을 누락했다는 점과, 합병 후 2015년 결산에서 합병의 불공정성을 수습하기 위해 삼바의 회계기준을 변경해 4조5000억 원의 가공 이익을 만들어냈다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삼바는 2012년 미국 바이오젠사와 함께 삼성 바이오에피스(에피스)를 설립한다. 이때 주주간 약정에 따라 바이오젠은 에피스를 49.9%까지 매입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보유했다. 삼바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는 중요한 정보임에도 이같은 주주간 약정은 이 부회장 승계가 가속화되기 시작한 2014년 감사보고서에 공시되지 않았다. 홍 위원이 지적하는 첫 번째 회계 문제다.


 

또 제일모직이 가지고 있는 에버랜드의 표준지가가 8만 5000원 수준에서 40만 원으로 급등하면서 제일모직의 가치는 더욱 올라간다.


 

반면 삼성물산은 전반적인 건설경기 호황에도 불구하고 신규 수주를 하지 않고, 중요한 공사물량을 계열사에 넘겨주고, 해외수주를 했음에도 이러한 사실을 공시하지 않는 등 비정상적인 경영행태를 보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삼성그룹차원에서 박근혜 정권에 뇌물을 제공하여 국민연금이 손해를 보면서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한 사실이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사건 재판을 통해 드러났다.


 

두 번째 회계문제는 합병 후 바이오젠의 갑작스러운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아지자 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하면서 회계처리기준을 변경한 것이다. 이로써 에피스가 가지고 있던 미국 바이오젠의 콜옵션 부채 1조8000억 원 상당은 2012~2014년 회계에서 누락됐다가 회계기준 변경으로 되려 4조5000억 원의 가공의 이익으로 전환된다.

 

홍 위원은 "현재 삼바의 주가가 높아졌지만 지금 높아진 주가로 이전의 상황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며 "2015년의 이익은 근거가 매우 부실한 회계평가보고서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사무실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범죄 혐의에 대한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홍순탁 회계사가 발언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각종 불법행위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연합뉴스

그룹 차원에서 이뤄진 조직적 증거인멸 작업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위원은 "분식회계가 발생한 삼바나 에피스가 아니라 삼성전자 사업지원 TF 지시에 의해 조직적인 증거인멸이 이뤄졌다"며 "이 모든 것은 그룹 경영권 승계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총수 개인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이 말하는 삼성전자 사업지원 TF는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이후 사실상 미전실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TF는 삼성쩐자와 별개의 독립된 회사인 삼바와 그 자회사인 에피스에 증거인멸을 지시했다. 에피스 상무는 이러한 지시에 따라 '부회장 통화결과', '바이오젠사 제안 관련 대응방안(부회장 보고' 등의 2100여개 파일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삼성그룹은 분식회계 의혹을 조사하던 금융감독원이 '바이오시밀러 사업화 계획' 문건 제출을 요구하자 변호사들과 상의해 문건 작성자를 미래전략실 바이오사업팀에서 삼바 재경팀으로, 작성시점은 2011년 12월에서 2012년 2월로 조작해 제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에피스 콜옵션 부채 1조8000억 원의 고의 누락 등 분식회계를 기획하고 이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그후 증거조작이나 증거인멸을 여러 차례 조직적으로 자행했다는 혐의로 이미 삼성전자 사업지원 TF 임원들이 유죄판결까지 받은 상황이다.


 

김 위원은 "이렇게 그룹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고 조작했기 때문에 구속영장 발부 사유는 충분하다"며 "기업범죄를 저지르면 제대로 처벌받는다는 인식이 총수들에게 심어져야만 다른 범죄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엄정한 처벌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번 구속영장청구는 검찰이 영장을 발부받기 위해 명확한 부분에만 청구한 걸로 보인다"며 "△국민연금에 조 단위 피해를 입힌 업무상 배임죄에 대한 공범 △의도적 사업축소 등 비정상적인 경영으로 삼성물산에 피해를 입힌 배임혐의 △2015년 에버랜드의 비정상적인 공시지가 폭등에 대해서도 수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60818521946305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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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BTS, BLM운동에 1백만 달러 기부

세계적 이슈에 응답해 온 BTS, BLM운동에 기부로 동참
 
뉴스프로 | 2020-06-08 12:39: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로이터, BTS, BLM운동에 1백만 달러 기부
– 세계적 이슈에 응답해 온 BTS, BLM운동에 기부로 동참
– 팬클럽 ARMY도 선행 릴레이 해시태그로 동참의사 밝혀

로이터 통신이 6월 7일자로 South Korean boyband BTS donates $1 million to Black Lives Matter (한국 소년밴드 BTS, ‘흑인들의 생명은 소중하다’에 1백만 달러 기부)라는 제목으로 BTS가 경찰의 잔혹성에 항의하는 미국 시위를 지지하는 BLM에 1백만 달러를 기부했다는 소식을 BTS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알려왔다고 전했다.

기사는 BTS가 트위터 계정에 #BlackLivesMatter 해시태그와 함께 올린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합니다. 나, 당신, 우리 모두는 존중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 라는 글을 소개하면서 이 해시태그가 팬들 사이에 새로운 해시태그 #MatchAMillion(1백만 달러를 만들어 기부합시다)라는 또 하나의 기부 물결을 일으켰다고 전했다.

이 운동은 ARMY로 알려진 방탄소년단의 팬들이 BTS가 기부한 100만 달러에 상응하는 금액을 기부하자는 내용이며 ARMY는 BTS의 선행을 이어받는 선행으로 또 하나의 팬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기사는, 지난 5월 25일 미니애폴리스에서 한 백인 경찰이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진압하는 중 사망케 한 사건으로 촉발되어 벌어지고 있는 전세계적 항의 시위는 소수 인종에 대한 경찰의 처우를 두고 고조되는 분노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편, BTS는 세계적 유행인 코로나로 인해 월드투어를 중단한 상태라고 기사는 전하고 있다. (글, 박수희)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로이터 통신 기사 전문이다.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s://reut.rs/376XYpY

South Korean boyband BTS donates $1 million to Black Lives Matter
한국 남성밴드 BTS ‘흑인들의 생명은 소중하다’에 1백만 달러 기부

FILE PHOTO: V, Suga, Jin and Jungkook, members of South Korean boy band BTS pose on the red carpet during the annual MAMA Awards at Nagoya Dome in Nagoya, Japan, December 4,
2019. REUTERS/Kim Kyung-Hoon 2019년 12월 4일 일본 나고야돔에서 열린 MAMA어워드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한국의 BTS멤버, 뷔, 슈가, 진과 정국.

SEOUL (Reuters) – Popular South Korean band BTS donated $1 million to Black Lives Matter (BLM) in support of U.S. protests against police brutality, its music label, Big Hit Entertainment, told Reuters on Sunday.

서울(로이터) – 한국의 인기 그룹 BTS가 경찰의 잔혹성에 항의하는 미국 시위를 지지하는 ‘흑인들의 생명은 소중하다(BLM)’에 1백만 달러를 기부했다고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일요일 로이터에 전했다.

On Thursday, the seven-member BTS wrote on its Twitter account that they are against racism and violence with the hashtag BlackLivesMatter:

목요일 7명으로 구성된 BTS는 트위터 계정에 #BlackLivesMatter 헤시태그와 함께 인종 차별주의와 폭력성에 반대한다는 글을 올렸다.

“We stand against racial discrimination. We condemn violence. You, I and we all have the right to be respected. We will stand together.”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합니다. 나,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는 존중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The hashtag went viral among the K-pop group’s fans and started another wave of donations with a new hashtag, MatchAMillion.

그 헤시태그는 BTS 팬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지면서 새로운 헤시태그 #MatchAMillion으로 또 하나의 기부 물결을 일으켰다.

The movement encouraged BTS’ fan base, known as ARMY, an acronym for 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 to match the $1 million donation the group made.

이 운동은 ‘청춘을 대변하는 사랑스러운 MC’의 약자인 ARMY로 알려진 방탄소년단의 팬들에게 BTS가 기부한 100만 달러에 상응하는 금액을 기부하자는 것이었다.

One Twitter account said, “ARMYs, let’s #MatchAMillion with BTS’s donation to #BlackLivesMatter!”

한 트위터 계정은 “아미들, #BlackLivesMatter에 BTS가 기부한 1백만 달러를 만들어 기부합시다(#MatchAMillion).” 라는 글을 올렸다.

The boyband suspended their world tour over coronavirus concerns in April.

BTS는 4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로 세계투어를 중단했다.

The rolling, global protests reflect rising anger over police treatment of ethnic minorities, sparked by the May 25 killing of George Floyd in Minneapolis after a white officer detaining him knelt on his neck.

지난 5월 25일 미니애폴리스에서 한 백인 경찰이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진압하는 중 사망케 한 사건으로 촉발되어 벌어지고 있는 전세계적 항의 시위는 소수 인종에 대한 경찰의 처우를 두고 고조되는 분노를 보여준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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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81] 자주·민주·통일 투쟁에 대하여

문경환 | 기사입력 2020/06/09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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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주·민주·통일은 국민주권운동의 과제다

 

국민주권운동은 국민의 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이다. 국민의 주권을 실현하려면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자주는 국민주권을 대외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국가가 다른 나라에 예속되어 주권이 없으면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 외교, 경제, 국방, 문화 등 사회 모든 영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말마따나 미국의 ‘승인’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국민의 주권을 사실상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강탈해간 나라의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 

 

민주는 국민주권을 대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독재 치하에서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형식상 민주주의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상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길이 차단된 비민주적 사회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작동하고 진보적인 정당·단체 활동은 탄압을 받는다. 국민의 주권을 실현하려면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 

 

통일은 국민주권을 넘어 민족주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애초에 우리 민족은 하나의 나라에서 살았지만 외세가 강제로 남북을 갈라 분단국가를 만들었다. 따라서 통일을 이루어 우리의 민족주권을 회복해야 한다. 민족주권까지 회복해야 국민주권은 온전히 실현된다. 또 통일을 통해 평화와 번영을 실현하면 국민주권은 더욱 빛이 난다. 따라서 국민주권과 민족주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런 이유로 국민주권운동의 과제는 자주, 민주, 통일이라 할 수 있다. 

 

2. 자주·민주·통일 운동의 의의

 

자주는 국민주권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1945년 미군이 점령군으로 들어오면서 강탈해 지금까지 형태만 바꿔가며 틀어쥐고 있는 주권을 국민이 되찾는 것이 자주다. 

 

자주는 민주와 통일을 실현하는 대전제다. 자주 없이 민주도, 통일도 없다. 외세에 주권을 빼앗긴 상태에서는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도, 통일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자주는 국민주권운동의 선차적 과제, 절대적 과제다. 

 

민주는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민주다. 그래서 민주는 곧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통일은 국민주권을 빛내는 것이다. 통일은 민족주권을 한반도 전체에서 실현하는 것이며 이것을 국민주권운동 차원에서 보면 민족주권을 통해 국민주권을 완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하나의 국가 단위로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분단은 비정상 상태다. 또한 분단은 외세가 국민주권을 강탈하기 위해 강요한 것이므로 분단을 전제로 해서는 국민주권을 절대 실현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국민주권은 민족주권을 실현해야만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통일을 통해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되므로 국민주권을 활짝 꽃피울 수 있다. 그래서 통일이 국민주권을 빛낸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자주는 국민주권을 되찾아오는 것, 민주는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것, 통일은 국민주권을 민족주권으로 발전시켜 빛내는 것이다. 국민주권운동은 주권을 회복하고, 구현하고, 빛내는 운동으로 전개해야 한다. 

 

3. 자주·민주·통일이 서로에게 주는 영향

 

(1) 자주

 

가. 자주가 민주에 미치는 영향

 

자주는 민주의 출발점이다. 주권을 실현하려면 먼저 내 손에 주권이 있어야 한다. 미국에 빼앗긴 주권을 국민의 손에 되돌려놓아야 진정한 민주를 꽃피울 수 있다. 

 

자주는 민주의 대전제다. 자주가 없는 민주는 변색된 민주, 사이비 민주다. 외세가 우리 주권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아무리 민주를 실현한들 그게 제대로 된 민주일 수 없으며 국민주권을 실현한다고 할 수도 없다. 민주는 국민이 자기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 뜻대로 국가권력을 움직이는 것인데 주권이 외세에 있다면 이를 실현할 수 없다. 오직 외세의 이익을 위해 외세의 뜻대로 국가권력이 움직일 뿐이다. 따라서 자주 없이 민주를 하겠다는 것은 이미 민주가 아닌 사이비 민주이며 이러한 민주화운동은 진보운동이라 할 수 없다. 

 

사실 독재세력들조차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다. 박정희는 군부독재를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포장했고, 이순자는 자기 남편인 전두환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하였다. 김영삼은 한때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였지만 집권 후 공안탄압에 미쳐 양심수로 감옥을 가득 채웠다. 당연하게도 이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이들은 주권을 강탈해간 미국을 위해 일하는 미국의 앞잡이였고 이에 저항하는 국민을 탄압하는 독재자였다. 이들은 자주의 문제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가끔씩 그럴듯한 조치를 취하고는 엄청난 민주주의를 시행하는 것처럼 떠들었다. 물론 이런 조치들은 모두 자신의 독재통치를 유지할 수 있는 선에서 이루어졌다. 

 

이처럼 자주 없는 민주는 존재할 수 없다. 자주 없는 민주를 주장하는 것은 사이비요 변질이다. 오로지 자주를 전제로 하는 민주만이 실질적 국민주권을 실현하게 한다. 그래서 자주는 참된 민주의 대전제가 된다. 

 

나. 자주가 통일에 미치는 영향

 

자주는 통일의 본질이다. 

 

통일은 민족주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애초에 분단도 우리 민족이 주권을 미처 회복하기 전에 외세가 자기들 마음대로 저지른 것이며, 외세가 우리를 분단시킨 이유도 우리 주권을 강탈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통일을 가로막고 분단을 유지시키는 기본 세력도 외세다. 만약 통일된 한반도가 미·중·일·러 같은 주변국이나 유엔 같은 국제기구의 통치를 받는다면 그걸 통일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우리 민족 전체를 외세가 갖다 바치는 것이며 민족국가의 말살이다. 진정한 통일은 주변국이나 국제기구로부터 자유롭고 우리 민족이 주권을 쥐는 통일이다. 이것은 곧 자주다. 따라서 자주는 통일의 알맹이다. 

 

자주는 통일의 원동력이다. 

 

우리가 통일이라고 할 때 어떤 상태를 통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체제통일을 생각한다.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흡수통일 혹은 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적화통일을 통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통일이 아니다. 이것은 어느 한 쪽의 쇠락과 멸망을 의미한다. 남과 북 어느 쪽도 자기 체제를 버릴 생각이 없으므로 결국 전쟁으로 한 쪽을 파멸시키고 정복하거나 전쟁에 준하는 봉쇄와 압박으로 체제를 몰락시켜야 한다. 5천년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이 자기 반쪽을 멸망시키는 게 통일일 수는 없다. 

 

체제통일이 아니면 어떤 통일이 가능한가. 남북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하나가 되면 그것이 통일이다. 이를 7.4 남북공동성명의 표현대로 하자면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는 것이다. 민족대단결 방식의 통일이 진정한 통일이다. 

 

민족대단결 방식의 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주다. 

 

자주는 단결의 기준이 된다. 

 

민족이 대단결을 하려면 온 민족의 공감을 얻을 기준이 있어야 한다. 자주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이다. 예속은 누구의 공감도 얻을 수 없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는 남과 북 어느 한 쪽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남과 북이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내용이 달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평화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으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자주의 입장을 가져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추구하는 미국에 의존해서는 절대 평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주는 민족이 공감하여 단결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자주는 단결의 힘이 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남에게 의존해서는 자기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서 하는 통일, 다른 나라의 승인을 받아서 하는 통일은 제대로 된 통일도 아닐 뿐 아니라 민족의 힘을 약화시키게 마련이다. 오직 자체의 판단으로, 자체의 힘으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자주의 정신만이 민족대단결에 힘을 불어넣는다. 

 

자주는 통일의 기준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방식의 통일, 다양한 단계의 통일이 있는데 어떤 방식과 단계를 통일이라고 할 것인가 기준을 세운다면 바로 자주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전체 차원에서 자주가 실현된다면 그것이 곧 통일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이처럼 자주는 통일의 본질이며 원동력이고 기준이다. 

 

(2) 민주

 

가. 민주는 자주와 통일을 실현하는 데서 유리한 환경을 마련한다 

 

민주는 국민주권역량을 키울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자주와 통일을 실현하는 데서 유리한 환경을 마련한다. 

 

미군정이 점령한 시기부터 미국이 조직하고 지원한 정치세력들이 집권한 시기까지 이 땅에서는 국민주권운동의 씨를 말리기 위한 폭압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화가 전진하면서 이런 폭압의 강도는 조금이라도 약화되었다. 군인이 총칼로 국민을 진압하던 시절도 끝났고, 최루탄과 백골단이 난무하던 시절도 끝났으며, 공안기관이 대놓고 고문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모두 수십 년 민주화투쟁을 통해 조금씩 바꿔낸 성과다. 물론 아직도 독재 악법과 독재기구들이 남아있지만 과거에 비해 국민주권역량을 키우는 데서 유리한 환경이 마련된 것은 사실이다. 

 

▲ 1987년 연세대학교 백양로에서 직격 최루탄에 맞아 쓰러져 피를 흘리는 이한열 열사, 결국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다 1달 만에 영영 심장의 고동이 멈추었으며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투쟁으로 6월 항쟁이 일어나 전두환 독재정권을 몰아내게 되었다. 

 

객관 환경과 더불어 주관 조건도 성장한다. 국민주권역량이 성장하려면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인식, ‘내가 이 나라의 주권을 쥐고 실현해야겠다’는 의식이 발전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국민 의식 발전을 촉발한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을 끌어내리면서 독재자에게 저항하면 안 된다는 봉건의식이 줄어들었고, 정권교체에 성공하면서 국민의 힘으로 정권도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제는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국민은 생업에 매진하라’는 소리는 철지난 소리가 되었다. 너도 나도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자기 의견을 개진하며 광장에 나와 목소리를 내는 게 상식인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민주는 자주와 통일을 실현하는 데서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 

 

나. 민주는 자주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를 만든다

 

민주화가 전진할수록 한국의 주권을 누가 쥐고 있는지 실체가 점점 드러난다. 4.19로 이승만을 끌어내리자 박정희 군부독재가 시작됐고, 부마항쟁으로 박정희를 끝장내자 전두환 군부독재가 등장했다. 독재자를 아무리 끌어내려도 다시 새로운 독재자가 등장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은 독재자 뒤의 검은 그림자를 눈치 챘다. 특히 5.18 광주항쟁은 군부독재를 조종하고 지원하는 미국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냈으며 반미 무풍지대였던 한국을 반미 열풍지대로 만들었다. 이처럼 민주는 국민이 자주로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부각시킨다. 

 

(3) 통일

 

가. 통일이 자주에 미치는 영향

 

통일은 자주를 가로막는 실체를 뚜렷하게 드러내준다. 남북관계가 발전하여 대화와 협상, 교류협력이 늘어날 때마다 미국이 나타나 방해를 하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도 한미워킹그룹을 만들어 자국의 ‘승인’ 없이 문재인 정부 단독으로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 국무부와 주한미대사는 대놓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반대하였고, 사실상 주한미군인 유엔사는 통일부장관의 비무장지대 방문까지 통제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남북관계 발전과 통일을 바라는 국민은 분노의 화살을 미국으로 돌리고 있다. 

 

통일이 다가오면 미국이 설 자리가 사라지는 효과도 있다. 미국이 한국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힘은 주한미군에 있다. 그런데 통일이 되면 주한미군이 필요 없어진다. 불필요한 주한미군을 굳이 지원금까지 주면서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다. 세상 어느 나라도 외국군대의 영구주둔을 허용하고 지휘권을 넘겨주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그게 가능했다. 바로 분단 때문이다. 분단을 핑계로 주한미군이 주권을 초월해 한국에 주둔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주한미군은 분단의 기생충이다. 이런 주한미군도 통일이 다가올수록 주둔 명분이 사라져 결국 철수해야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이처럼 통일은 자주를 부각시키고 더욱 선명하게 해준다. 

 

나. 통일은 민주를 실현하는 데서 엄청나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친미친일 독재세력이 그간 국민주권을 억압하면서 독재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분단 때문이다. 이들은 모든 문제를 분단을 핑계로 손쉽게 해결했다. 분단을 핑계로 국가보안법을 만들고 빨갱이 마녀사냥이라는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었다. 분단을 핑계로 독재를 합리화하고 국민을 탄압하며 정적을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런데 통일운동이 발전하면 이런 명분이 모두 사라진다. ‘사회가 혼란스러우면 북한이 쳐들어온다’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 선거 때만 되면, 정권이 위기에 처하기만 하면 등장하던 북풍공작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일운동이 발전할수록 한국사회 정치지형도 바뀐다. 친미친일 독재세력의 기반인 반공반북체제가 약화되는 반면 진보민주개혁세력이 지향하는 민주, 평화, 번영이 대세가 되고 민심이 된다. 민심의 변화는 정치지형의 변화로 이어진다. 운동장을 역으로 기울어지게 만드는 게 바로 통일이다. 

 

4. 자주, 민주, 통일운동을 통일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국민주권운동은 자주·민주 운동이고 민족주권운동은 자주·통일 운동이다. 이렇게 보면 자주·민주·통일 운동에서 생명은 자주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를 가장 전면에 내걸어야 하며 가장 중요한 투쟁으로 삼아야 한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진보운동은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동시에 자주·민주·통일 운동을 통일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그래야 각 영역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서 국민주권과 민족주권을 전반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어느 하나를 방치해도 안 되고, 어느 하나에만 매달려서도 안 된다. 자주를 전면에, 중심에 두면서도 당면하여 조성된 조건에 맞게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적절히 배합하여 진행해야 한다. 이렇게 했을 때 자주·민주·통일 운동이 가장 빠르게 전진할 수 있다. 

 

※이 글은 자주시보와 주권연구소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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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9일 정오부터 모든 남북 통신연락선 완전 차단'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6/09 08:44
  • 수정일
    2020/06/09 08: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영철·김여정,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후속조치도 시사(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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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09  07: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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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일 정오부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통신연락선을 비롯해 모든 남북간 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9일 보도를 발표해 "2020년 6월 9일 12시부터 북남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하여 유지하여오던 북남당국사이의 통신연락선, 북남군부사이의 동서해 통신연락선, 북남통신시험연락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사이의 직통통신 연락선을 완전차단, 폐기하게 된다"고 밝혔다.

전날 오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연결통화를 받지 않으면서 우려했던 연락 단절 상황이 오후 통화가 재개되면서 가시는 듯 했으나 결국 현실화된 것이다.

통신은 전날 대남사업 부서 회의에서 김영철 당 부위원장과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앞으로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단계별 대적사업 계획들을 심의하고 우선 남북사이 모든 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는 남조선 것들과의 일체 접촉공간을 완전 격폐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 첫 단계의 행동"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의 담화에서부터 남북연락사무소 폐지와 함께 후속조치로 언급한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완전 철거, 9.19남북군사합의 파기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통신은 "남조선당국은 저들의 중대한 책임을 너절한 간판을 들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회피하면서 쓰레기들의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묵인하여 북남관계를 파국적인 종착점에로 몰아왔다"고 이같은 사태의 원인이 남측 당국에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남조선당국의 무맥한 처사와 묵인하에 역스러운 쓰레기들은 반공화국적대행위를 감행하면서 감히 최고존엄을 건드리며 전체 우리 인민의 신성한 정신적 핵을 우롱하였으며 결국 전체 우리 인민을 적대시하였다"고 하면서 "다른 문제도 아닌 그 문제에서만은 용서나 기회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북남사이의 모든 통신련락선들을 완전차단해버리는 조치를 취함에 대하여
--조선중앙통신사 보도--(전문>

남조선당국은 저들의 중대한 책임을 너절한 간판을 들고 어쩔수 없다는듯 회피하면서 쓰레기들의 반공화국적대행위를 묵인하여 북남관계를 파국적인 종착점에로 몰아왔다.

그러지 않아도 계산할것이 많은 남조선당국의 이러한 배신적이고 교활한 처사에 전체 우리 인민은 분노한다.

남조선당국의 무맥한 처사와 묵인하에 역스러운 쓰레기들은 반공화국적대행위를 감행하면서 감히 최고존엄을 건드리며 전체 우리 인민의 신성한 정신적핵을 우롱하였으며 결국 전체 우리 인민을 적대시하였다.

다른 문제도 아닌 그 문제에서만은 용서나 기회란 있을수 없다.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최고존엄만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으며 목숨을 내대고 사수할것이다.

지켜보면 볼수록 환멸만 자아내는 남조선당국과 더이상 마주앉을 일도,론의할 문제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8일 대남사업부서들의 사업총화회의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영철동지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여정동지는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죄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사업계획들을 심의하고 우선 먼저 북남사이의 모든 통신련락선들을 완전차단해버릴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우리측 해당 부문에서는 2020년 6월 9일 12시부터 북남공동련락사무소를 통하여 유지하여오던 북남당국사이의 통신련락선,북남군부사이의 동서해통신련락선,북남통신시험련락선,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사이의 직통통신련락선을 완전차단,페기하게 된다.

이번 조치는 남조선것들과의 일체 접촉공간을 완전격페하고 불필요한것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 첫단계의 행동이다.


주체109(2020)년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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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예감 398] 이름 없는 전쟁의 기억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6/0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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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이름 없는 전쟁은 남조선혁명전쟁

2. 선행대가 인민유격대로 개편되다

3. 인민유격대는 민중 속에 있다

4. 미점령군이 지휘한 토벌작전은 전쟁범죄

5. 남조선인민유격대는 무엇을 위해 피를 흘렸던가?

 

 

1. 이름 없는 전쟁은 남조선혁명전쟁 

 

검찰관 - 지리산의 인상은?

피고인 - 산이 험했습니다.

검찰관 - (지리산에서) 전투를 하는 것을 봤나?

피고인 - 못 봤습니다마는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검찰관 - 그러한 곳을 떠날 생각은 없었나?

피고인 - 그러한 생각은 한 일이 없었습니다.

검찰관 - 대한민국이 수립된 데 대하여 어떤 감상을 가졌나?

피고인 - 38선이 없는 완전 통일된 정부의 수립을 바랬습니다.

검찰관 - 통일된 나라는 어떠한 국가인가?

피고인 - 인민공화국입니다.

 

위의 문답은 1949년 9월 29일 중앙고등특설군법회의 공판에서 검찰관 김근배와 피고인 유호진이 주고받은 심문과 진술이다. 이 문답은 <동아일보> 1949년 9월 30일부 기사에 실렸다. 이승만친미파쇼정권의 군사재판에 끌려간 피고인 유호진은 이름 없는 시인이며, 지리산인민유격대 문화공작대원이었다. 아마도 청춘의 피가 심장에 끓는 청년시인이었을 것이다. 청년시인 유호진은 지리산인민유격대에 자진입대하여 문화공작임무를 수행하던 중, 토벌대에게 붙잡혀 전쟁포로가 되었다. <서울신문> 1949년 10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중앙고등특설군법회의 재판관은 지리산인민유격대 문화공작대원 유호진과 그의 전우 8명에게 총살형을 언도했다고 한다. 포로감옥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제목의 마지막 시를 썼던 유호진은 1949년 10월 중순 어느 날 소슬바람 부는 서울 근교 야산 자락에서 총살형으로 최후를 마쳤다.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지금 그가 총살형을 당하기 전에 남긴 마지막 시도 남아있지 않고, 그의 무덤조차 없다. 유호진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70년 긴 세월은 유호진의 모든 것을 망각 속에 묻어버렸지만, 그 무명의 청년시인을 지리산으로 불러낸 역사의 진실은 묻어버릴 수 없다. 

 

유호진과 함께 혁명의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인민유격대원들이 통일된 인민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해 혈전을 벌였던 이름 없는 전쟁의 역사를 서술하려는 것이 이 글의 집필목적이다. 나는 이 글에서 이름 없는 전쟁을 남조선혁명전쟁으로 부른다. 전쟁의 이름에 남조선이라는 지역명칭을 넣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38도선 이남지역은 남한이 아니라 남조선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름 없는 전쟁을 혁명전쟁으로 부르는 것은, 당시 남조선로동당과 그 당을 지지하는 남조선의 각계각층 민중이 통일된 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기 위해 벌인 간고한 혈전이었기 때문이다. 통일된 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혁명운동이 격화되어 혁명전쟁이 일어났으므로, 그 전쟁을 남조선혁명전쟁 이외에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 

 

남조선혁명전쟁에 대해 서술하는 까닭은 올해 2020년 6월에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하는 때문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6.25전쟁이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비가 내리는 새벽에 갑자기 38도선에서 일어난 것으로 믿고 있지만, 6.25전쟁은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남조선혁명전쟁과 연동되어 일어났다. 다시 말해서, 남조선혁명전쟁과 6.25전쟁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하나로 연결된 전쟁이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궁금증이 생긴다. 남조선혁명전쟁은 언제 일어났을까? 그 전쟁은 선전포고로 시작된 정규전이 아니라 선전포고 없이 시작된 유격전이었다. 선전포고가 없었기 때문에 개전일이 언제였는지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남조선혁명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말해주는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있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1948년 5월 10일 미국이 강행한 남조선단독선거를 반대하는 가두시위투쟁에 참가한 군중의 모습이다. 그들이 들고 있는 펼침막에는 "국토를 양단하며 민족을 분렬시키는 남조선단독선거를 절대배격하자!"라는 투쟁구호와 "조선인민대표의 참가 없이 결정된 조선에 관한 유엔결정을 절대반대하자!"라는 투쟁구호가 적혀 있다. 미국은 남북조선 전체 민중이 반대하는 남조선단독선거를 강행하고, 이승만친미파쇼정권을 세워놓았다. 미국은 남조선단독선거를 감행하여 우리 민족을 좌우로, 남북으로 분렬시켰고, 통일된 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려는 민중의 정치적요구를 폭력으로 짓눌렀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가장 흉악한 제국주의적 만행이다. 1948년 미국의 단선단정책동을 배격하기 위해 격렬한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경찰대와 우익테러단체들을 앞세운 미점령군의 유혈탄압에 대항하여 민중항쟁은 무장투쟁으로 전환되었다. 바로 이것이 남조선혁명전쟁이 일어난 근본원인이었다.  

 

1948년 1월 4일 미점령군 산하 경무부 부장 조병옥은 부산에 있는 제7관구 경찰청이 400여 명을 검거한 사건과 관련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발표에 따르면, 남조선로동당은 1947년 2월부터 각 도별로 군사위원회를 조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 1947년 3월 경상남도에서 조직된 군사위원회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군사위원회 사령부 아래 정치부, 병사부, 훈련부, 정보부, 연락부, 자금조달부를 두었다. 

2) 부산, 동래, 진주, 통영, 남해와 각 군(郡)에 연대를 두었고, 연대에 특공대, 정찰대, 정치공작대, 전령대, 후보대, 무기제조반, 조사반을 두었다. 

3) 1947년 8월 말까지 초모한 연대병력은 830명, 공작대원은 763명, 참가군중은 36,000명이다. 

4) 시가전, 산악전, 공방전을 훈련했다. 

5) 스스로를 인민해방군으로 부르면서, 다음과 같은 군훈(軍訓)을 정했다.

- 유격전을 전개한다.

- 본부명령에 절대복종한다.

- 비밀을 엄수한다.

- 전투력의 원천은 공적과 겸손이다.

- 영웅주의와 자유주의는 적이다. 

- 풍찬로숙에 단련한다.

- 문약과 사치는 아편과 같다. 

 

1948년 2월 7일 미국의 단선단정음모를 파탄시키고 정권을 인민위원회에 넘기라고 요구하는 민중항쟁이 폭발했다. 2.7구국투쟁으로 역사에 기록된 대규모 민중항쟁이다. 2.7구국투쟁은 남조선로동당이 각 도별로 조직한 군사위원회가 인민유격대로 개편된 결정적인 계기로 되었다. 2.7구국투쟁이 일어난 날,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산하 노동자들은 총파업투쟁에 돌입했고, 각계각층 민중이 가두시위투쟁에 나섰다. 미점령군 당국으로부터 유혈진압명령을 받은 경찰대는 시위군중에게 발포하여 28명을 살해했고, 8,479명을 체포했다. 유혈진압으로 격화된 민중항쟁은 폭동, 테러, 방화를 불러왔다. 미점령군 산하 경무부 부장 조병옥이 발표한 담화를 인용한 <동아일보> 1948년 2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2.7구국투쟁의 결말은 다음과 같다. 

 

폭동 - 30건 

테러 - 55건

방화 - 4건

가두시위 - 103건

파업 - 12건

봉화 - 204건

동맹휴학 - 22건

 

기관차 파괴 - 61량 

객화차 파괴 - 11량 

철길 파괴 - 11개소 

철도교량 파괴 - 7개소 

통신기관 파괴 - 83개소 

전선 및 전주 파괴 - 27개소 

 

항쟁참가자 - 사망 28명, 부상 35명

경찰관 - 사망 5명, 부상 23명

관공리 - 사망 1명, 부상 12명

우익인사 - 사망 5명, 부상 63명 

 

2.7구국투쟁 중에 항쟁참가자들은 지방경찰서 지서들을 습격하여 총기 26정과 실탄 481발을 빼앗았다. 남조선로동당 서울시당위원회 세포조직 성원 50여 명은 서울에 있는 경무부 무기고를 습격하여 총기를 빼앗으려는 대담한 습격전을 준비하다가 체포되었다. 2.7구국투쟁 중에 항쟁참가자들이 경찰대에게서 빼앗은 총기와 실탄은 민중항쟁을 무장투쟁으로 전환시킨 촉진제로 되었다. 

 

 

2. 선행대가 인민유격대로 개편되다

 

2.7구국투쟁으로 폭발한 민중항쟁은 1948년 3.1절을 계기로 다시 폭발하여 3월과 4월 내내 계속되었다. 미점령군 당국이 남조선단독선거를 강행한 5월 10일을 전후하여 대규모 민중항쟁이 또 다시 폭발했다. <서울신문> 1948년 5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남조선단독선거가 강행된 5월 9일과 5월 10일에 일어난 민중항쟁의 결말은 다음과 같다.

 

선거사무소 습격 - 134건

선거사무소 방화 - 32건

선거관련서류 탈취 - 116건

경찰지서 습격 - 301건

경찰지서 방화 - 16건

관공서 방화 - 16건 

우익인사주택 방화 - 69건

테러 - 612건

 

항쟁참가자 - 사망 27명, 부상 68명

경찰관 - 사망 51명, 부상 128명

경찰관 가족 - 사망 7명, 부상 16명

관공리 - 사망 11명, 부상 47명

선거후보 - 사망 2명, 부상 4명

선거공무원 - 사망 15명, 부상 61명

우익인사 - 사망 107명, 부상 387명 

 

기관차 파괴 - 71건

철길 파괴 - 65건

도로 및 교량 파괴 - 48건

전화선 절단 - 541건

전신주 파괴 - 543건

봉화투쟁 - 86개소

 

이처럼 대규모 민중항쟁이 계속 폭발하면서 격화되던 1948년 상반기 남조선에는 혁명적 상황이 조성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는 각 도별로 분산된 군사위원회를 통합시킬 필요를 느꼈다. 미점령군 당국 산하 수도경찰청 청장 장택상이 1948년 5월 27일에 발표한 내용을 인용한 <경향신문> 1948년 5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는 각 지방당조직들에게 1948년 4월 1일부터 선행대(先行隊)를 조직하라고 지시하고, 다음과 같은 방침을 시달했다고 한다.

 

1) 남조선로동당 각급 당조직들에서 엄선한 당원들로 선행대를 조직한다.

2) 선행대 최고기관은 남조선로동당 최고기관의 지령을 받는다.  

3) 선행대는 전국적 통일체로서 유격대의 기초조직이다.

4) 선행대는 명령계통이 엄격한 군사조직체다.

5) 선행대는 각 지역에 백골대, 촉루대, 인민청년군 등 특수조직체를 둔다. 

 

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는 각 지역별로 분산된 군사위원회를 통합하여 선행대를 조직했고, 선행대를 개편하여 남조선인민유격대를 조직했다. <호남신문> 1949년 11월 13일부 보도기사에는 한국군 제5사단 정보처가 수집한 정보가 실렸는데, 그 정보에 따르면, 남조선인민유격대는 다음과 같이 편제되었다고 한다. 

 

1) 남조선인민유격대 사령부인 총사(總社) 예하에 중대급 부대인 철사(鐵社), 금사(金社), 암사(岩社)를 두었고, 영사(營社)라는 별동대도 두었다. 

2) 1개사는 유격대원 20~60명으로 편성되었다. 

3) 철사 예하에 소대급 부대인 1사와 2사를 두었고, 금사 예하에 소대급 부대인 3사와 4사를 두었고, 암사 예하에 소대급 부대인 5사와 6사를 두었다. 

4) 광부대, 북부대, 남부대는 유격대원 12~14명으로 편성되었다.   

 

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가 각지에 분산된 군사위원회들을 통합, 개편하여 남조선인민유격대를 조직하고 있었던 1948년 4월 남조선민중은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미점령군 당국은 경찰대와 우익테러단체들을 앞세워 단독선거반대투쟁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단독선거반대투쟁에 참가한 민중은 경찰대와 우익테러단체들의 폭압만행에 맞서 자위적 무장을 택했다. 그런 급진적인 상황에서 남조선로동당 제주도당위원회는 1948년 4월 3일 단독선거를 파탄시키기 위한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현대사에 제주4.3항쟁이라고 기록된 무장투쟁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1950년 4월 군경토벌대에게 체포된 남조선인민유격대원 38명이 총살형을 당하는 장면이다. 서울 근교 수색에 있었던 총살형 집행장인 것으로 보인다. 헌병들이 일렬로 세워놓은 나무기둥에 유격대원들을 묶고 있고, 건너편에는 총살형을 집행할 경찰관들이 총을 들고 서 있다. 1949년 12월부터 1950년 3월까지 겨울철에 한반도의 산야에는 낙엽이 지고 눈이 쌓인다. 특히 활엽수가 많은 지리산에 겨울이 오면, 앙상한 나무들만 남게 되므로 인민유격대가 은폐할 곳이라고는 몇 개 되지 않는 자연동굴밖에 없다. 군경토벌대에게 자기 위치가 노출되는 위험 속에서 인민유격대는 강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혈전을 벌였다. 이처럼 모든 조건이 불리해진 그 해 겨울, 남조선인민유격대는 미점령군의 지휘를 받는 군경토벌대의 집중적인 토벌작전에 밀려 수많은 전사자와 포로를 남기고, 지리산 깊은 산속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무장투쟁이 일어나자, 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는 선행대를 남조선인민유격대로 확대, 개편하고, 혁명전쟁을 개시하기 위한 비상대기태세에 돌입했다. 이런 급박한 사정은 1948년 7월 3월 미국 <합동통신(United Press)> 서울특파원 제임스 로우퍼가 미점령군 당국자로부터 입수한 기밀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기밀문서는 당시 미점령군 당국 경무부 산하 경찰대가 전라북도 완주에서 압수하여 미점령군 당국에 보고한 남조선로동당 완주군당위원회 기밀문서다. 기밀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1) 소련군이 북조선에서 철퇴하는 1948년 7월 초에 전투가 개시될 것인데, 조선인민군이 남조선에 내려와 남조선로동당을 지원할 것이다.

2) 통일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전투를 계속할 것이며, 남조선단독정부를 파괴할 것이다.

3) 1948년 6월 27일 또는 28일까지 전투지령을 수리할 것.

4) 전투비행대 조직은 계획하는 중이며, 이에 관해 1948년 6월 25일까지 소속본부에 보고할 것.

5) 20~25세 청년동맹 맹원 15명을 1948년 6월 30일까지 남조선국방경비대에 잠입시킬 것. 

6) 후원자들로부터 3만~5만원의 기부금을 모금할 것.

7) 반동분자를 조사하고, 그들의 성명과 주소를 적은 일람표를 작성할 것. 

 

남조선로동당 완주군당위원회가 기밀문서에 “1948년 6월 27일 또는 28일까지 전투지령을 수리할 것”이라고 명기한 것은, 1948년 2월 7일 2.7구국투쟁을 계기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민중항쟁의 폭풍 속에서 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각 지역별로 남조선인민유격대가 조직되어 남조선혁명전쟁에 돌입할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1948년에 연속적으로, 격렬하게 전개된 민중항쟁의 폭풍 속에서 남조선인민유격대가 조직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기가 없으면 혁명전쟁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는 남조선인민유격대를 무장시키기 위한 무기제조사업을 추진했다. 이런 사정은 미점령군 당국 산하 경무부 부장 조병옥이 1948년 7월 13일 취재기자들에게 전한 발표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발표내용은 <동아일보> 1948년 7월 14일부 기사에 실렸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경찰대는 전라남도 강진군 월출산 구정봉에 있는 인민유격대 무기공장을 습격하여 다음과 같은 전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인민유격대원 - 전사 4명, 포로 25명

총기 압수 - 13정

수류탄 압수 - 2발

폭약 압수 - 10개

화약 압수 - 1승

실탄 압수 - 약 200발

뇌관 압수 - 3,000개

99식 장총탄피 및 엽총탄피 압수 - 1가마 

38식 장총 제조기구 - 10여 점

박격포 제조기계 - 1조

일본도 압수 - 5자루

피복류 압수 - 35점

지령문서 및 취사용구 압수 - 다량

 

 

3. 인민유격대는 민중 속에 있다

 

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각 지역에 조직된 인민유격대들 가운데 가장 먼저 교전을 벌인 유격대는 제주도인민유격대였다. 제주도인민유격대는 1948년 4월 3일 민중항쟁을 유혈적으로 진압하는 경찰대를 상대로 첫 교전을 벌였다. 제주도인민유격대는 전투력과 전투기간에서 다른 지역 인민유격대를 능가할 정도로 남조선혁명전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1948년 12월 8일 제1회 124차 국회 본회의에서 국무총리 이범석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제주도인민유격대는 약 3,000명으로 편성되었다고 한다. <서울신문> 1948년 4월 30일부는 제주도인민유격대가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중에 한라산에 구축한 산중진지에 3개월분의 실탄과 식량을 저장해놓고 유격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주도인민유격대의 전투력이 다른 지역 인민유격대를 능가할 정도 강했던 것은 제주도민중들이 제주도인민유격대를 전폭적으로 지지, 성원했기 때문이다. 제주도 전황을 조사하기 위해 미점령군 산하 수도경찰청이 급파한 대규모 형사대가 임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도중 1948년 5월 15일 전라남도 목포에서 기자회견를 했는데, 그들이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남조선로동당 제주도당위원회는 제주읍에서만 72개의 당세포를 조직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 하나만 봐도, 제주도인민유격대가 제주도민 30만 명 중 대다수 민중들로부터 지지와 성원을 받으며 유격전을 전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인민유격대의 완강한 전투력을 보고 놀란 미점령군과 이승만친미파쇼정권은 방대한 병력과 무장장비를 토벌작전에 동원했다. 제주도에 파견된 미점령군 장교들이 토벌작전을 지휘했다. <동아일보> 1948년 5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남조선국방경비대와 남조선경찰 정예부대가 제주도에 들어가 본격적인 토벌작전을 벌였다고 한다. 이것이 역사자료에 기록된 최초의 토벌작전이다. 

 

제주도인민유격대와 군경토벌대가 격전을 벌이던 1948년 10월 19일 미점령군은 전라남도 여수부(府)에 주둔하는 남조선국방경비대 제14연대에게 제주도인민유격대를 토벌하라는 출동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제14연대 장병들은 토벌명령을 거부하고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1948년 12월 8일 국무총리 이범석이 제1회 124차 국회 본회의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무장봉기군은 육군 약 3,700명, 해군 1,579명이었다고 한다. 무장봉기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여수부, 순천부, 구례군, 보성군, 장성군, 광양군, 하동군, 고흥군을 삽시에 점령했다. 1948년 12월 8일 국무총리 이범석이 제1회 124차 국회 본회의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미점령군은 무장봉기군을 진압하기 위해 2개월 동안 89회 전투에 진압군 연인원 7,814명과 함선 7척을 투입했다고 한다. 1948년 10월 19일부터 10월 27일까지 계속된 무장봉기군과 진압군 사이의 전투들에서 발생한 인명손실은 다음과 같다. 

 

무장봉기군 - 전사 826명, 포로 2,685명

진압군 - 전사 142명, 부상 195명, 포로 16명, 행방불명 9명

 

<동광신문> 1948년 11월 24일, 11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여수, 순천, 대전에서 각각 진행된 최고군법회의 군사재판에서 무장봉기군 포로들 중 577명에게 사형, 110명에게 무기형, 48명에게 20년형, 118명에게 10년형, 138명에게 5년형, 70명에게 5년 이하의 형이 각각 언도되었다고 한다. 징역형을 언도받고 수감된 무장봉기군 포로 484명은 1950년 6월 6.25전쟁 직전 경찰에 의해 전원 학살당했다. 

 

역사자료에는 제20연대 무장봉기가 1948년 10월 27일에 진압되었다고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진압군의 점령지탈환작전이 10월 27일까지 완료되었다는 뜻이다. 전투에서 패한 무장봉기군은 백운산과 지리산으로 들어가 인민유격대에 합류했고, 진압군은 자기들이 탈환한 점령지에서 양민학살에 광분했다. 전라남도 보건후생국 통계자료를 인용한 <호남신문> 1948년 11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사망자 2,533명, 중상자 1,027명, 경상자 130명, 행방불명자 833명, 파괴가옥 1,800채라고 한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1948년 10월 경찰토벌대가 전라남도 서부지역의 어느 작은 농촌마을을 습격하여 주민들을 무차별 체포한 장면이다. 당시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한 남조선국방경비대 제14연대 장병들은 제주도인민유격대를 토벌하라는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무장봉기를 일으켰고, 여수와 순천을 비롯하여 6개군을 점령했다. 무장봉기군을 진압한 군경토벌대는 전라남도 서부지역 주민들을 '공비내통자'로 몰아 무참히 학살하고,마을을 불살랐다. 위의 사진 속에 나온 이름 없는 농민들의 생사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1948년 11월 2일 이번에는 대구에 주둔한 남조선국방경비대 제6연대에서 장병 약 200명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무장봉기군 76명이 전사했고, 진압군 9명이 전사했다. 전투에서 패한 제6연대 무장봉기군도 지리산인민유격대에 합류했다. 무장봉기군이 합류하는 바람에 남조선인민유격대의 전투력은 더욱 강해졌다. 

 

남조선인민유격대가 수행한 혁명전쟁은 미점령군과 이승만친미파쇼정권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제주도에서는 남조선단독선거가 시행되지 못했다. 그렇게 되자, 미점령군은 인민유격대를 지지, 성원하는 민중을 남녀로소를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 살륙하는 토벌작전방침을 군경토벌대에게 하달했다. 기밀해제된 미국측 문서를 인용한 <연합뉴스> 2020년 1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1949년 1월 28일 미점령군 군사고문단 단장 윌리엄 로버츠는 남조선국방경비대 1개 대대를 추가로 파병하여 제주도 전역을 “완전히 초토화”하겠다는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의 건의를 받고 “최고로 좋은 생각”이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미점령군과 이승만친미파쇼정권이 감행한 초토화작전으로 제주도 전역은 학살의 피로 물들었고, 살륙의 불길 속에 휩싸였다. 비전투원을 무차별 학살하는 것은 극악무도한 전쟁범죄다. <연합신문> 1949년 3월 4일 보도기사에는 미점령군과 이승만친미파쇼정권이 제주도의 1개 읍, 11개 면, 96개 리에서 자행한 극악무도한 전쟁범죄에 관한 통계자료가 실렸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피학살 양민은 약 20,000명, 소각된 리는 73개, 전소된 가옥은 20,280동이었다.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는 2003년 12월에 발표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서 제주도 피학살자를 25,000~30,000명으로 추산했다.

 

6.25전쟁의 포성이 멎은 때로부터 퍽 세월이 흐른 1957년 3월 27일 한라산 평안악 밀림에서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상상을 초월한 엄혹한 환경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제주도인민유격대가 경찰토벌대와 벌인 마지막 교전이었다. 마지막 교전에서 유격대원 2명이 전사했고, 유격대원 1명은 4월 2일에 체포되었다. 제주도인민유격대와 제주도민중이 싸운 9년간의 혈전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조선일보> 1948년 6월 9일 보도에 따르면, 미점령군은 충청북도 영동군에 토벌사령부를 설치하고, 경무부 공안국장을 토벌사령관으로 임명했다고 한다. 미점령군이 토벌사령부를 충청북도 영동에 설치한 까닭은 그곳이 충청, 호남, 영남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황은 1948년 당시 남조선혁명전쟁이 충청, 호남, 영남을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남조선인민유격대들 중에서 지리산인민유격대는 지리산 일대의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이용하여 유격전을 전개했는데, 그들의 전투상황은 <연합신문> 1949년 4월 3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지리산인민유격대 총사령은 홍순석이었고, 참모장은 김지회였다. 홍순석과 김지회는 1948년 10월 남조선국방경비대 제14연대 무장봉기를 이끌었던 군사지휘관들이다. 그들은 인민유격대 500여 명을 이끌고 하동, 산청, 함양, 거창, 합천 등지에 신출귀몰했는데, 20~30명씩 편성된 소부대들은 심야에 경찰토벌대의 경비망을 교묘하게 뚫고 들어가 “하루에도 4, 5차례나” 경찰지서들과 면사무소들을 들이치고 빠져나가는 습격전을 벌였다. 1949년 3월 27일에는 거창경찰서 관내 경찰지서를 습격한 후 금융조함과 우편국에서 거액의 현금을 빼앗았다.   

 

 

4. 미점령군이 지휘한 토벌작전은 전쟁범죄

 

경찰토벌대가 지리산인민유격대를 당할 수 없게 되자, 경상남도 경찰국장은 1949년 3월 31일 진주에서 9개 지구 경찰서장 회의를 긴급히 소집했는데, 그 회의에서 토벌사령부를 설치하고 토벌결사대를 조직하여 더욱 강화된 소탕전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경찰토벌대와 별개로 한국군도 지리산지구토벌사령부를 설치했다. 한국군 지리산지구토벌사령부는 유격전에는 유격전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하면서 토벌유격대를 조직했다. 그렇게 되자, 인민유격대는 토벌유격대와 전투를 벌여야 했다. 

 

한국군 국방부 보도관의 발표문을 인용한 <자유신문> 1949년 5월 1일 보도에 따르면, 1949년 4월 8일 오후 5시경 지리산 달궁 부근에서 벌어진 지리산인민유격대와 한국군토별유격대 사이의 교전에서 총사령 홍순석과 참모장 김지회가 전사했다고 한다. 총사령과 참모장이 전사했어도 지리산인민유격대의 전투는 계속되었다. 

 

1949년 6월 16일에 나온 관보 제112호에 따르면, 내무부 당국은 지리산인민유격대를 소탕하기 위해 전라남도 구례, 경상남도 하동, 전라북도 남원에 각각 지리산지구특별경비대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리산에서 격전이 계속되었다. <동아일보> 1949년 6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산악지대에서 벌어진 지리산인민유격대와 경찰토벌대 사이의 교전에서 봉화군 경찰서장을 비롯한 경찰관 4명이 전사했고, 그 밖에 여러 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서울신문> 1949년 8월 8일 보도에 따르면, 내무부 당국은 지리산인민유격대를 고립시키기 위해 지리산 산간마을들을 모조리 불사르고, 산간마을주민을 하산시켜 집단마을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서울신문> 보도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일찍이 만주에서 실시하여 많은 성과를 얻은” 집단마을조성전술은 50~100호를 묶어 1개 집단마을을 만들고, 집단마을 주위에 높은 방벽을 쌓아 밤낮으로 경비하는 전술이었다. 집단마을조성에 협조하지 않는 주민들은 ‘공비내통자’로 몰려 남녀로소를 구분하지 않고 학살당했다. 이것은 명백한 전쟁범죄다.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시기 만주에서 일제관동군과 만주군이 조선인민혁명군, 조선혁명군, 한국독립군, 중국인항일부대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만주 각지에서 산간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학살하고, 집단마을에 가두었던 전쟁범죄가 지리산에서 다시 자행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과 만주군에 자진입대하여 전범일왕 히로히또에게 충성했던 친일민족반역자들이 8.15 이후 미국에게 충성하기 위해 남조선국방경비대로 대거 입대해 군부를 장악했으므로, 그들은 일제에게서 배운 전쟁범죄를 거리낌 없이 저질렀던 것이다. 일본군과 만주군의 하명을 받고 항일투쟁세력을 토벌했던 그들은 8.15 이후 미점령군의 하명을 받고 남조선인민유격대를 토벌했다. 남조선인민유격대 토벌작전에 동원되어 전쟁범죄를 저지른 고위급 지휘관들은 다음과 같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1948년 10월 남조선국방경비대 제14연대 장병들이 일으킨 무장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군경토벌대가 미점령군 장교의 지휘 아래 불타는 전투현장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사진에서 오른쪽 맨앞에 서 있는 사람이 미점령군 장교다.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방대원들이 호스를 준비하고 대기하는 모습도 보인다. 소화전에도 태극기를 꽂아놓았다. 당시 미점령군이 지휘하는 군경토벌대는 무장봉기군을상대로 벌인 전투 중에 신원이 불확실한 주민은 '공비내통자'로 몰아 재판 없이 현장에서총살했으므로 소방대원들은 오인총살을 당하지 않으려고 항상 태극기를 들고 다녀야했다. 미점령군 당국이 토벌사령관으로 임명한 자들은 거의 모두 일제관동군이나 만주군 출신 친일민족반역자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남조선인민유격대는 미국의 비호를 받는 친일민족반역세력과 싸웠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군 중좌 출신 채병덕 (육군참모총장)

일본군 중좌 출신 신태영 (육군참모총장)

만주군 중교 출신 원용덕 (호남토벌사령관)

만주군 상위 출신 정일권 (지리산지구토벌사령관)

만주군 상위 출신 김백일 (광주지구토벌사령관)

만주군 중위 출신 백선엽 (순천여수지구토벌사령부 참모장)

만주군 소위 출신 박정희 (호남토벌사령부 작전참모)

 

미점령군은 토벌사령부를 설치하고, 남조선인민유격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했건만,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남조선인민유격대를 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1948년 8월 15일 이승만친미파쇼정권이 수립되었고, 그에 따라 미국은 남조선점령군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 밀려들어갔다. 미국은 1948년 9월 15일 남조선점령군을 철수하기 시작했고, 1949년 6월 30일 철수를 완료했다. 그러나 미국은 점령군을 철수한 이후에도 군사고문단 495명을 남한에 남겨두고, 한국군을 지휘, 통제했다. 

 

<경향신문> 1949년 11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1949년 11월 25~26일 충청남도 대전 대흥동에 있는 한국군 헌병사령부에서 국방부, 육군본부, 법무부, 내무부 고위당국자들이 참석한 4부합동회의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 회의에서 토벌작전을 강화하기 위해 총사령부를 대전에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지리산지구, 태백산지구, 호남지구, 영남지구, 안동지구에서 각각 토벌작전을 지휘하는 각 지구 전투사령관 5명은 4부합동회의를 마친 뒤에 토벌작전회의를 진행했다.  

 

4부합동회의에 참석한 육군총참모장 신태영은 취재기자들에게 군경토벌대가 남조선인민유격대와 벌인 전투들에서 거둔 전과를 밝혔는데, 1949년 11월 1일부터 24일까지 전투기간 중에 남조선인민유격대원 888명이 전사했고, 347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429명이 투항했다고 한다.  

 

남조선인민유격대와 군경토벌대가 격전을 벌이는 동안 어느덧 한 해가 저물고 1950년을 맞았다. 다급해진 이승만친미파쇼정권은 토벌작전을 하루빨리 끝내려고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했다. <경향신문> 1950년 1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국방장관, 육군총참모장, 전투지구사령관 3명, 헌병사령관, 정보국장, 연대장 2명, 부대장 여러 명, 그리고 국회 국방위원장, 치안국장대리, 경상남도 지사와 경찰국장, 경상북도 지사와 경찰국장, 경상남도 및 경상북도의 군수들과 경찰서장들, 행정조사관을 비롯한 100여 명이 1950년 1월 19일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중앙국민학교 강당에 모여 토벌작전회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들은 1950년 3월 말까지 토벌작전을 완전히 끝내자고 결의하면서, 해안선 방비를 강화하고, 토벌지구에 있는 모든 마을을 “철저히” 파괴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서울신문> 1950년 1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지리산인민유격대를 토벌하고 원대복귀한 한국군 제211부대의 귀환신고식이 1950년 1월 28일 서울 서빙고동 군부대훈련장에서 진행되었는데, 지리산토벌작전의 결말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지리산인민유격대 - 전사 4,382명, 포로 1,645명

한국군 토벌대 - 전사 103명, 부상 238명

노획무기 - 총기 1,239정, 실탄 57,000발, 박격포 5문 

 

그러나 군경토벌대가 토벌작전을 완전히 끝내자고 결의했던 1950년 3월 말이 다가왔는데도 남조선인민유격대는 완강히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당황한 군경토벌대에게 비상조치가 요구되었다. <동방신문> 1950년 2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안동에 있는 중앙국민학교 강당에서 지난 1월 22일 회의에 참석했던 100여 명이 다시 모여 제2차 회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자유신문> 1950년 2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군사고문 단장 윌리엄 로버츠(william L. Roberts)가 토벌지구를 직접 시찰하였다고 한다. 당시 주한미군사고문단은 점령군이 철수하기 이전과 마찬가지로 토벌작전현장에 미국군 장교들을 파견하여 토벌작전과 대량학살을 여전히 지휘, 통제하고 있었다. 

 

 

5. 남조선인민유격대는 무엇을 위해 피를 흘렸던가?

 

남조선인민유격대가 전투를 벌이는 사이에 38도선에서는 한국군과 조선인민군 사이의 교전이 날로 격화되고 있었다. 38도선에서 격화되는 교전은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예감을 불러일으켰다. 6.25전쟁을 3개월 앞둔 1950년 3월 27일 남조선로동당 총책임자 김삼룡과 남조선인민유격대 총책임자 이주하가 서울에서 체포되었다. 1948년 4월 3일부터 2년 동안 혈전을 거듭해온 남조선혁명전쟁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한국 정부 사회부가 발표한 내용을 인용한 <조선일보> 1949년 1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반란(남조선혁명전쟁을 뜻함)에서 발생한 비전투원의 인명손실과 물적 피해는 1948년 12월 20일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다고 한다.

 

 

 

사망자

 

전소가옥

경기도

 

187

 

384

 

충청북도

 

 

66

 

25

 

전라북도

 

 

37

 

105

 

전라남도

 

 

8,280

 

9,909

 

경상북도

 

 

287

 

899

 

경상남도

 

 

708

 

1,993

 

강원도

 

 

53

 

116

 

제주도

 

 

3,340

 

26,790

 

 

 

12,959

 

40,221

또한 1948년 12월 20일을 기준으로 남조선 전역에서 중상자는 9,415명이고, 반소가옥은 3,827호, 소개가옥은 77,051호, 전재민은 523,683명이었다. <사진 5>

 

▲ <사진 5>이 사진은 제주4.3평화공원에 있는 행방불명희생자 묘역을 찍은 것이다. 묘비들에는 이름만 새겨졌고, 생몰년대가 없다. 미점령군과 이승만친미파쇼정권은 제주도인민유격대를 지지, 성원한 제주도민중을 대량학살하거나 대량투옥했는데, 제주도 형무소의 수용능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수감자들을 서울을 비롯한 다른 도시들에 있는 형무소들에 대거 분산수용했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위령비에 새겨진 '경인지역'이라는 지역명칭은 이 묘역에 모신 행방불명희생자들이 서울과 인근 지역의 형무소들에수감되었음을 말해준다. 이승만친미파쇼정권은 1950년 6월 6.25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과 직후 모든 형무소들에 분산수감했던 이른바 '좌익수'들을 대량학살했다. 대량학살 희생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승만친미파쇼정권이 저지른극악무도한 학살만행은 천추에 씻지 못할 죄악 중의 죄악이다.  

 

남조선인민유격대는 무엇을 위해 피를 흘렸던가? 그들이 남조선혁명전쟁에서 달성하려고 했던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혁명전쟁의 목적은 민중의 정치적 요구와 일치된 것이었다. 그러했기에 남조선인민유격대는 남조선민중 속에서 혁명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당시 남조선민중의 정치적 요구는 1946년 2월 19일 서울에서 결성된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의 강령에 밝혀져 있다. 민전의 5대 강령은 다음과 같다.

 

제1강령 - 남북조선의 통일적 민주주의임시정부를 수립할 것.

제2강령 - 무상몰수와 무상분여의 원칙에 따라 토지개혁을 실시할 것.

제3강령 - 친일민족반역자와 친파쇼반동거두를 완전히 배제할 것.

제4강령 - 미군정은 정권을 인민위원회에 즉시 이양할 것.

제5강령 - 미군정이 고문기관 및 입법기관을 창설하는 것을 반대할 것. 

 

위에 인용한 5대 강령 중에서 제1강령과 제4강령은 통일된 인민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한 강령이고, 제2강령과 제3강령은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강령이며, 제5강령은 미국의 남조선점령을 반대하는 강령이다. 여기에 인용된 5대 강령은 남조선인민유격대가 혁명전쟁에서 피흘려 쟁취하려고 했던 목적이었다. 

 

1948년 4월 초에 시작된 남조선혁명전쟁은 1950년 3월 말에 종결되었으나, 38도선에서는 남조선혁명전쟁보다 더 격렬한 교전이 벌어졌고, 남북의 교전은 1950년 6월 25일 마침내 전쟁으로 이어졌다. 군경토벌대의 포위망을 뚫고 깊은 산으로 들어간 남조선인민유격대원들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유격대를 다시 조직하고 싸웠다. 1948년부터 1953년까지 한반도의 5년은 혁명과 전쟁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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