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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시간이 없어요, 북녘 땅에서 죽고 싶습니다"

88세 폐암 말기의 비전향 장기수 강담 "아내와 아이들을 볼 수 있을까요"

본문듣기 등록 2020.06.13 18:45 수정 2020.06.14 10:02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연속 인터뷰가 나갑니다. 이 글은 그 첫번째 인터뷰입니다. [편집자말]
강담은 아내와 양심수후원회 이정태 위원 손을 잡고 공주에 있는 요양원 '상록수'에 들어갔다. 해질녘, 원장이 휠체어를 밀어주어 금강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5월의 바람은 부드럽게 살랑거렸고 멀리 강너머로 저물어가는 햇빛은 주변을 은은하게 물들였다.
 
원래는 김포의 집과도 가깝고 같은 처지의 장기수들이 있는 김포의 요양원에 가려 했다. 그런데 대기가 길어져 양심수후원회 사무국장을 했던 이가 운영하는 이곳으로 왔다.
 
"집 사람은 잘 가고 있을래나, 차가 막힐 텐데..." 먼 하늘을 바라보며 그는 중얼거렸다.
 
올해 88살, 비전향 장기수 강담은 지금 말기 폐암 환자다. 올해 초 건강검진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가 까맣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가슴이 아팠다. 1월 22일 이대 발산병원에 가니 이미 폐암 4기이고 물이 많이 찼다며 3일이나 물을 뺐다. 1월 29일과 2월 9일 두 번에 걸쳐 항암치료를 받았다. 구순을 바라보는 그는 견디지 못해 토하고 쓰러졌다. 결국 항암치료는 포기하고 약만 한 보따리 처방 받았다.
 
강담은 2005년 뇌경색을 앓고부터 건강이 악화되었다. 야간경비 일을 하던 시절,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다행히 회사동료가 재빨리 대처해줘 치료를 받고 회복되었다. 그런데 2017년에 다시 뇌경색이 왔고 이후부터 말이 어눌해졌다. 움직임도 굼뜨게 되고 치매 증상도 나타나 점심 먹고서는 "이제 저녁 먹었으니 자리 피고 자자"고 말해 아내에게 구박도 꽤 들었다. 
 

▲ 요양원 거실 앞에서 강담 선생 요양원은 작아서 10명 내외 노인들이 거주한다. ⓒ 민병래

 
강담은 1965년 울릉도 해상에서 잡혔다. 함남 홍원이 고향인 그는 6.25 전쟁이 끝나고 입대해 두만강유역 경비함대에서 특무상사로 8년간 복무했다. 제대 후 해양고등학교에 들어가 항해사 자격증을 땄고 청진수산사업소의 3등 항해사로 사할린을 오갔다.
 
1964년 8월, 중앙당 대남연락사업소는 해군 시절 노동당에 가입했던 그를 소환했다. 그는 "통일사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고성 해금강부대에 소속돼 기밀문서를 전하거나 연락원을 실어날랐다.
 
1, 2차 업무는 주문진과 속초였고 3차 업무는 1965년 3월 공해상에서 울릉도 바다 쪽으로 들어가 접선하는 것이었다. 그날 파도와 눈보라가 심했는데 멀리 구름 같은 게 보였다. 10노트 정도 속도로 천천히 다가갔는데 가까이 가보니 남측의 91구축함이었다.
 
일장기를 달고 일본 어선 흉내도 내봤지만 남측은 속지 않았다. 황급히 선장 주재로 8명의 대원들이 회의를 열고 전투를 결정했다. 무장선이 아니어서 가지고 있는 화력은 반탱크 수류탄 정도. 500톤 정도 구축함에 수류탄을 던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결국 방향을 돌려 도주하는데 구축함에선 "멈춰라" "항복하라"는 방송이 계속됐다. 도망가는데 먼 하늘에서 비행기가 다가왔다. 강담 일행은 원산에서 지원이 온 줄 알고 환호했다. 알고 보니 강릉비행장에서 구축함과 협공을 하려고 뜬 전투기였다. 공중에서 강담이 탄 배의 앞쪽으로 기총소사를 퍼부어대자 결국 배는 멈출 수밖에 없었고 8명은 모두 체포되었다.
 
강원도 삼척항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이송되어 미군 합동수사본부와 방첩대에서 6개월간 조사를 받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때 라병구 선장과 이준영 부선장은 사형을 언도 받았다. 강담은 그로부터 24년간 복역하고 수번 1230을 달았던 광주교도소에서 1988년 출소했다. 
 

▲ 서대문 형무소 감방 앞에서 1988년 12월에 출소 후 처음 찾은 서대문형무소 수형 당시 감방 앞에서. (당시 66세). ⓒ 강담 제공

 
금강둑으로 스며들던 노을은 금세 빛을 잃어갔다. 해가 떨어지면서 기온이 내려가 강담은 콜록콜록 기침이 잦아졌다. 아내가 잘 올라가고 있는지 전화하려다 망설였다. 오후에 올라가면서 "마음 단단히 먹고 있으라"고 신신당부했고 그새를 못 참아 전화했냐고 타박할 것 같아서였다.

동사무소에서 올린 결혼식 
 
강담이 남쪽에서 결혼한 것은 89년 12월 1일, 강담의 나이 57세 때였다. 처형이 다니는 교회의 권사가 소개를 해줬다. 아내는 그때 초혼에 실패하고 동생 집에서 근근히 살고 있었다.
 
첫 번째 만남은 서울 화곡동의 숙다방, 열 다섯살 아래인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 강담은 나이를 열 살이나 속였다. 또 북에서 내려왔다는 얘기도 못하고 "지금은 화곡동에서 150만원짜리 방 한칸에 살고 있고 모델하우스에서 야간 경비일을 한다"고 소개했다.
 
두 번째로 숙다방에서 만났을 때 여러 번 망설이다가 강담은 털어놓기로 했다. (그래도 나이만은 고백하지 못하고) "나는 북에서 통일사업 하러 내려왔다 잡혀서 24년간 교도소에서 살았다. 북에 아내와 두 아이들이 있고 내려올 때 막내는 임신 상태였다"고 고백했다. 결혼하면 "어떻게든 집은 해결하겠다"는 얘기를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숨죽이며 듣던 아내는 어느새 식은 커피를 냉수처럼 들이켰다. 숙다방의 마담은 중늙은이 남녀가 데이트인 듯 아닌 듯 나누는 대화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마담이 '커피 세잔' 주문 전화를 받을 때 아내는 "나 혼자 결정할 수 없다. 오빠들과 상의를 해야 한다"며 강담을 마담 눈길에 남겨놓고 빠져 나갔다.
 
처가에서는 단연코 반대였다. 큰처남은 6.25참전 군인이었고 장교로 예편한 몸이어서 더 심했다. 둘째 처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내는 동생 집에서 짐을 꾸려 강담의 화곡동 단칸방으로 찾아왔다.

놀란 강담 앞에서 아내는 북에서 내려왔다는 고백을 들었을 때 도와주고 싶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나 나나 오갈 데 없는 몸이다. 나는 결혼에 실패했고 당신도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이 없지 않냐, 우리 잘 살아보자. 여기서 실패하면 안 된다며 속마음을 담담하게 들려줬다. 두 사람 사이에는 짧으면서 긴 침묵이 흘렀다. 단칸방의 형광등이 깜박 졸 때 강담은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움켜쥔 그의 손등 위로 눈물 한 방울이 '톡' 떨어졌다.
 
그렇게 단칸방에서 신접살림이 시작됐고 다행히 강담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당시 화곡동 동장이 동사무소를 결혼식 장소로 내줬다. 사진 촬영은 생략했고 신혼여행은 먼 훗날을 기약했지만 어엿하게 올린 예식이다. 동장은 또 임대아파트도 알아봐주고 서류까지 챙겨주어 92년 임대 아파트 단지에 입주했다. 강담의 말대로 "집은 어떻게든 해결"한 셈이다.
 
징역에서 알게 된 사람 소개로 만난 건설회사 대표는 모델하우스 경비 일을 할 수 있게 자기 회사로 거둬주었다. 결혼 음식까지 장만해줬던 그는 92년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때 집들이겸 강담의 환갑잔치까지 열어주었다.
 
강서경찰서 보안과도 '사찰'만이 아니라 나름 역할을 했다. 건설회사가 부도가 나 모델하우스 경비 일이 끊어졌을 때 강담은 경찰서를 찾아갔다. "먹고 살게 해주든지, 북으로 보내주든지 한 가지를 택하라"하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보안 2계장은 "강 선생님, 왜 이러세요"하며 분주히 움직여 강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경비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이런 도움 덕에 연명했다. 물론 아내도 쉼 없이 유치원 청소며 반찬가게 같은 데서 일을 했다.
 
어느새 서쪽 해가 금강너머로 완전히 지고 강변에는 어둠이 내린다. 강담은 겉옷을 하나 더 입고 목도리를 둘렀다. 강변 주위로 등불이 하나둘 켜진다. 함께 노을을 보던 강 원장이 북녘 자제분들 얼굴은 기억나냐고 묻는다. 교도소에서 복역할 때는 또렷했던 얼굴들인데 이제는 희미하다. 떠나올 때 북녘 아내 박원옥은 28살, 애들은 네 살, 두 살이었다. 아내에게 그저 "다녀올게" 마실가듯 인사하고 나왔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를 줄 몰랐다. 죽기 전에 한번, 꼭 한번만 볼 수 있다면...
 
강제전향의 아픈 상처

사실 강담은 북으로 간다는 건 꿈도 못 꿨다. '강제전향'의 아픈 상처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5선언으로 2000년 9월 2일 63명의 장기수가 북으로 송환되었다. 이때 '전향했다'는 이유로 정순택 등 33명이 송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면서 '강제전향'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 2011년 11월 ‘고난 함께 하는 사람들’ 기행, 고성전망대에서 고향을 지켜보며 2004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강제전향은 원천무효다라는 판결이 나면서 강담 선생은 장기수들과 조금씩 교류를 해나갔다. 맨 오른쪽이 강담. ⓒ 강담제공

   
전향공작은 1973년 8월 2일 법무부가 '좌익수형자 전향공작전담반 운영지침'을 내려보내면서 본격화되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민주화 세력의 저항에 직면한 터라 형기가 다 된 장기수들이 출소하는 게 불안했다. 그래서 전국 교도소에서 일제히 전향공작을 전개했다.
 
중앙정보부 주도로 이뤄진 전향작업은 1973년 9월부터 시작되었고 초기에는 주로 교화사를 통해 설득했다. 그러나 이게 통하지 않자 폭력을 휘둘렀다. 강담이 있던 광주교도소에서는 73년 11월 14일 관구부장이 (장기수들이 있는) 특별사동에서 "전방(방을 옮김) 준비를 하라"고 갑자기 외쳐댔다. 또 운동, 편지, 목욕, 약처방, 면회, 독서 등 모든 게 금지된다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0.75평 방에 열다섯 명씩을 집어넣었다. 눕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어설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다음 날 민방위 훈련이 끝나자 마자 깡패들은 '떡봉'(떡을 치는 방망이)이란 완장을 차고 "전향하라"고 악악대며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광주교도소 교무과장이 직접 선발한 원00, 정00 등은 수갑과 포승을 들고 감방 열쇠까지 지닌 채 설쳐댔다.
 
폭력만이 아니라 물고문까지 해댔고 12월 추위에 세면장으로 끌고 가 옷을 벗기고 찬물을 끼얹었다. "전향하라"고 악을 쓰며 물 적신 포승줄로 언 몸을 사정없이 때렸다. 장기수들은 살갗이 찢어지고 온 몸에서 피가 흐르는 고통을 겪었다. 강담도 예외는 아니었다. 힘겹게 강제전향에 버티던 어느 날 그가 모르스 부호로 옆방과 통방 중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가 크다고 교도관들이 들이닥쳐 "언제 전향서 쓸 거야?"하면서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이때 고막이 터질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당시 광주교도소에서 이런 만행으로 1973년 11월부터 1974년 4월까지 특사에 있던 장기수 68명 중 40명이 강제전향 처리되었고 강담도 이 부류에 끼고 말았다.
 
그래서 강담은 출소 후에도 전향 '당했다'는 죄책감에 출소 장기수들과 교류하지 못했다. 또 광주교도소에 있을 때 "당이 울릉도 작전에 대해 비판한다"는 얘기를 바람소리처럼 들었다. 그것도 마음의 짐이 되어 그저 아내와 함께 웅크리고 살았을 뿐이다. 
 

▲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배지를 요양원에서도 단정하게 차고 있는 모습. 그는 민가협에서 통일운동 공로패를 받았다. ⓒ 강담제공

 
그런데 '전향했다'는 이유로 1차 송환에서 제외된 정순택 등 33명이 2001년 6월 3일 '장기구금양심수 전향무효선언과 북녘고향으로의 송환 촉구 기자회견'을 했다. 이에 발맞춰 비전향장기수 송환위원회가 통일부에 제2차 송환명단을 제출했다.
 
한편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강제전향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며 "강제전향에 저항하다 숨진 장기수는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국가기관의 결정에 힘입어 강제전향은 원천 무효가 되었다. 마침 통일부 장관에 정동영이 취임하면서 2005년을 전후해 2차 송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래서 강담도 용기를 내어 신청서를 냈다. 그런데 보수단체의 반발, 국군포로와 맞교환 등이 논란이 되면서 송환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후 10여 년을 속으로 삭히면서 세월만 보내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자 큰 기대를 걸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다시 속만 태우고 있지만...

강변이 어두워지자 "이제 바람이 차가워요, 들어가시지요"하고 강 원장이 권한다. 쿨룩쿨룩 밭은 기침이 나오고 가래도 끓는다. 의사 얘기로는 길면 반년이라고 했는데 올 1월에 말기 암 판정을 받았으니 한 달이나 남았으려나, 요양원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제 컴컴하다. 강담은 다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아내가 집에 잘 가고 있는지 마음이 영 불안하다.
 
아내는 오후에 강담이 입소해 방도 안내받고 목욕도 할 무렵, 마당에서 잠시나마 친한 강 원장에게 그동안 쌓인 얘기를 털어놨다.
 
"원장님에게 이 양반을 맡기게 돼서 정말 마음이 무겁네요. 어젯밤엔 말도 못할 정도였어요. 자다 말고 남편이 몸을 뒤척이며 지팡이를 찾는지 방바닥을 휘휘 젖더라구요. 이젠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잖아요. 갑자기 '나 좀, 나 좀' 소리치길래 그냥 들쳐 일으켜 화장실로 가는데 줄줄 흘러서 기저귀 밖으로 다 새는 거예요. 하도 변비가 심해서 관장약을 세게 썼더니 그랬나 봐요.

할 수 없이 옷 다 벗겨 씻기고 기저귀 갈아입혀 눕혔더니 또 줄줄, 요도 다 젖고 방바닥까지 흐르고 내 옷도 범벅이 돼고. 그래, 어떡해. 다시 씻기구 요는 걷어서 백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밀어넣고, 바닥은 걸레로 몇 번씩 닦고, 겨우 정리하니 허리가 얼마나 아픈지.

아, 그런데 이 양반 뻗어 있는 위로 칠순 사진이 벽에서 떡하니 웃고 있더라구. 그래서 당신이 오만 정을 다 떼고 갈려구 작정했나 보네, 내가 막 성질을 내 버렸지." 

 

▲ 강담 선생의 사모님 모습 강담 선생을 품어준 사모님은 한 많은 세월을 이야기하며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 민병래

 
가만히 듣고 있던 강 원장이 강담의 아내 손을 꼭 잡아준다. "고생하셨어요, 이제 저희가 잘 돌봐드릴게요"하며 다독인다. 강담의 아내는 고맙다고 인사하면서도 얘기를 이어갔다.
 
"우리 집이 11평이니 방이 거실이고 거실이 부엌이야 정말 코딱지 같은데 산송장이래도 사람 있을 때 하고 없을 때 하고 같나. 이 양반 뇌경색 앓고서도 야간 경비 일을 쉬지 않았잖아. 아침에 퇴근할 때 맞춰 밥상 준비하고, 들어오면 '자기 왔어' 내가 살갑게 대해줬는데... 이제 그런 재미도 다 없어졌네."

아내는 북으로 가라고 했다 

강담의 아내는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오후 햇살은 '상록수'에 꾸물꾸물 비집고 들어왔다. 간간히 금강 쪽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이른 더위를 식혀주었다. "세상일이 묘해요" 들려주고 싶은 게 많아선지 목욕을 마치고 거실로 나오는 강담의 모습을 창문으로 보면서 얘기는 이어졌다.
 
"이 양반이 2005년돈가? 며칠간 밥도 안 먹고 못 피는 담배를 피더라구, 그래서 내가 욕을 해댔지 뇌경색 앓는 사람이 담배를 피면 어떡하냐구, 그래도 담배를 안 끊는 거야. 그래서 뭔 일이 있나 속으로 나도 끙끙 앓았지. 근데 어느 날 저녁 먹고 이 양반이 출근하는데 일기가 보이더라구, 이 양반이 대단한 게 눈 침침해도 일기를 빼놓지 않고 써, 뭐 군사훈련 중단하라고 미군부대 앞에서 시위한 얘기부터, 그런데 2차 송환인가에 신청하고 싶은데 15년이나 나이 많고 북에서 내려온 자기를 받아준 걸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고 써 있더라구, 그래서 알았지. 이 양반이 이것 때문에 마음 고생하다가 담배까지 폈구나.

그래서 담날 퇴근해서 왔을 때 내가 앉혀놓고 그랬어. 나는 괜찮으니 당신 북으로 가라, 고향 아니냐? 당신 맘 다 안다. 그랬더니 이 양반이 내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 고맙다 하는 거야. 60년간 기다렸을 북쪽 아내에게 "여보 나 돌아왔어, 고생 많았지..." 그 말 한마디만은 하고 싶다는데 그 모습이 짠하더라구. 사실 난 속으로 서운했지, 펄쩍 뛰지는 않아도 당신 두고 내가 어딜 가냐 그런 소리 듣고 싶었는데 그 다음 날부터 송환서류 낸다고 들떠서 움직이는 모습 보니 만정이 떨어지더라구, 그때는 이 양반이 나를 두고 떠나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내가 이 양반을 여기로 떠나보낸 셈이네..."

 
강 원장은 얘기를 듣다가 그녀에게 다가가 등을 어루만지고 가볍게 포옹을 했다. 그때 강담이 현관문을 열고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 강담의 아내는 등을 돌려 눈물을 훔치더니 "여보, 나 인제 올라갈게. 당신 여기서 마음 단단히 먹고 잘 있어. 당신은 이제 여기서 여생을 마쳐야 하고 나는 집에서 죽어야 해" 하고 강담에게 다짐하듯 얘기한다. 강담은 입을 벌린 채로 아내에게, 또 함께 배웅 와준 동지에게 어서 올라가라고 손짓을 했다.

코로나로 모든 요양원에 면회금지 명령까지 내려진 상황이라 이 날 올라가면 언제 만날지도 모르는, 기약 없는 이별이다.
 

▲ 금강둑에서 떠나 보낸 아내를 생각하는 강담 코로나로 모든 요양원의 면회가 금지, 그는 생이별 상태다. ⓒ 상록수 요양원 제공

   
그렇게 속마음을 쏟아놓고 그렇게 떠난 보낸 아내를, 강담은 금강둑에서 노을을 보는 내내 생각했다. 집에 잘 도착했는지, 자기가 없는 집에 냉기가 돌지는 않는지 못내 궁금하고 걱정이 됐다. 금강둑에서 요양원으로 돌아가는 길, 이제는 목소리를 들어봐야겠다고 번호를 누르다가 "마음 단단히 먹고 있으라"는 소리나 또 들을까 봐 통화 대신 문자를 보냈다.
 
"여보 북녀게 내 애들 선자, 길모가 당신 여생을 책임질 거니까, 내가 먼저 가도 너무 걱정 마" 그리고 한 문장을 더 보탰다. "그동안 고마웠고 사랑해"
 
요양원으로 돌아가는 길은 깊고 깊은 어둠이다. 휠체어는 삐걱대며 조금씩 나아간다. 강담의 작은 어깨가 밭은 기침이 나올 때마다 들썩인다. 고개는 자꾸 옆으로 처지고... 어디선가 반딧불이 하나가 기울어지는 할아버지의 어깨에 가만가만 내려 앉는다.
 
<못다한 이야기>
 
1. 강담 선생이 광주교도소에 있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된 전남대학교 임경순 교수가 면회도 오고 영치금도 넣어주면서 돌봐주었다. 출소할 때는 부인과 제자를 데리고 강담을 맞아주었고 본인 집으로 데려가 기거하게 하면서 직장을 알선해 줬다. 그래서 강담 선생은 처음에는 가구공장에서부터 일을 시작했다.

2. 강담 선생은 광주교도소에서 의료법 위반으로 구금되어 있던 의사와 친하게 지냈고 그의 소개로 건설회사 사장과 연을 맺어 모델하우스의 야간경비일을 했다. 이 회사가 부도난 이후에는 아파트 경비 그리고 성당의 잡부로 일을 했다.

3. 올 4월에 돌아가신 대전의 장기수 한 분이 요양원에 찾아온 극우세력 때문에 심신이 많이 허약해진 상태로 돌아가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글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정하게 가명과 다른 지명을 썼다.
 
 <강담 선생의 출소 후 사진들> 
 

▲ 서대문 형무소의 사형장 모습 65년 같은 연락선을 탔던 라병구 선장과 이준영 부선장의 사형이 집행된 곳. 강담 선생은 한 맺힌 교수대 밧줄을 잡고 울고 또 울었다. ⓒ 강담제공

   

▲ 탑골공원 앞에서 민가협 777차 목요집회에서. 왼쪽 세번째가 강담 선생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선생은 집회를 거르지 않았다. ⓒ 강담제공

    

▲ 이명박 정권 규탄 집회에서 앞 줄 왼쪽 2번째가 강담 선생이다. ⓒ 강담제공

   

▲ 통일운동 공로패를 받는 모습 민가협에서 통일운동 공로패를 받았다. ⓒ 강담제공

   

▲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출소 장기수들은 양심수후원회가 마련한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강담 선생. ⓒ 강담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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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살포를 영구적으로 중단시켜야 할 이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06/14 09:57
  • 수정일
    2020/06/14 09: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현장언론 민플러스
  •  
  •  승인 2020.06.13 22:36
  •  
  •  댓글 2
 
   

[데스크 칼럼]

 

 

▲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 최근 대남업무를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뉴시스]
▲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 최근 대남업무를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뉴시스]

대북전단살포 문제에 대한 북의 초강경조치는 무제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이 직접 담화를 발표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그 이후의 초강경조치는 남북관계가 완전히 파탄나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오늘 담화에서 '다음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군 총참모부에 넘겨주겠다'고 밝힌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다 보니 일반 국민들 속에서 대북전단살포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한 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통일부, 청와대, 경기도 등이 나서서 대북전단살포를 금지하고, 고소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연속적으로 발표했으면 이젠 정리되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간단히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아니 북의 초강경조치는 이제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때문에 대북전단살포 문제가 어떤 문제인가에 대해 그 사안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고 뚜렷한 해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로 탈북자들이 대북전단살포를 통해 북의 최고존엄을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저러하게 알려진 전단지의 내용을 보면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악랄한 저질 내용들이다. 북은 지도자와 인민이 일체화되어 있는 하나의 생명체로 돌아가는 사회이다. 최고존엄에 대한 모욕과 조롱, 공격은 곧바로 북 인민전체에 대한 모욕과 조롱, 공격으로 간주한다. 사실 전단지 내용으로 놓고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치졸함의 극치이다. 그런데 탈북자들의 대북전단지는 북 인민전체가 자기 목숨보다 더 귀중하게 생각하는 일심단결의 핵을 정조준하고 있다. 북이 가만히 있자고 해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지금 북에서는 곳곳에서 군중대회가 진행되고, 북의 각종 언론에는 당․정부․근로인민단체 핵심간부들의 연설과 투고로 가득 차 있다. 곳곳에서 열리는 군중대회장에서는 전단살포 탈북자들을 ‘조국의 배신자’, ‘인간쓰레기’로 규탄하며, 단호한 응징을 결의하고 있다. 대북전단지 문제에 대해 북 전체 인민이 총궐기한 것이다.

그럼에도 통일부는 초기 대응과정에서 ‘안 그래도 전단살포 금지입법을 준비 중이다’, ‘어차피 북으로 날라가지도 않고 남쪽으로 날라온다’, ‘주변 환경만 오염시킨다’는 식의 대응이나 일부 전문가들이 언론에 나와서 ‘북이 대화하고 싶어 저런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북이 곧바로 “적은 적”이라며 극도의 분노를 표시했을 때도 여전히 청와대는 통일부에서 처리할 문제라는 식으로 뒤에 숨었다. 북이 대북전단살포 문제를 최고존엄에 관한 문제, 북의 일심단결을 해치는 문제로 놓고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안이한 대응이었다.

북은 지금 아무리 값비싼 댓가, 예를 들어 남북관계가 총파탄나는 심각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이 문제를 계산하겠다는 것이다. 이 점을 잘 보고 진지하고 대하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악화일로를 피할 수 없다.

둘째로 대북전단살포는 대북심리전으로 전쟁행위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대북전단살포는 명백히 대북심리전의 일환으로서 전쟁행위에 준하는 적대행위이다. 실제 군사학에서 삐라, 전단 살포행위는 전쟁행위의 일환으로서 심리전의 한 형태로 간주한다. 지금 박상학 등 탈북자들은 민간의 옷을 입고,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주장하며,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있지만, 사실상 미국의 자금지원으로 대북심리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전단살포는 ‘알권리’, ‘탈북인권운동’으로 위장된 대북심리전을 수행하는 특수전에 불과하다. 전단지 내용도 내용이고, 삐라, USB, 달러 등의 물품이나 코로나19 등의 감염이 염려되는 물품들을 군사분계선 넘어 전쟁상대방 영역으로 침투시키는 행위 자체가 전쟁행위에 준하는 군사행동의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때문에 북에서 대북전단지와 그를 살포하는 행위자들에 대해 교전으로 응사해도 할 말이 없는 상태이다.

실제로 2014년 10월 10일 경기도 연천지역에서 탈북단체가 날려 보낸 대북전단에 대해 북이 직접 총격을 가하고, 이에 남측에서 응사하는가 하면, 북의 총탄이 민통선 내 민간거주지에 떨어짐으로써 해당 주민들의 대북전단지 중단요청이 빗발치는 계기가 되었다.

대북전단지 살포는 ‘알권리’나 ‘인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간인의 옷을 입고 남측 군 지휘체계를 벗어나 통제되지 않는 대북적대행위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군사적 대결로 확장될 위험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대북전단지 살포문제는 민간이 군사지역을 침범하여 남북교전의 위험성을 높이는 군사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그런데 경찰력 정도를 배치하여 그때그때 탈북자들을 만류하고 제지하는 수준으로는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육로해로를 포함한 남북접경지역에서 대북전단살포행위를 영구히 중단시키고 이를 위반하는 자들과 단체에 대해서는 해산 조치하는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들이 도대체 뭐길래 남북교전의 불장난을 하고 있는가 말이다.

셋째로 대북전단살포는 명백한 남북합의서 위반으로 남북관계 파탄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4.27 판문점 선언 2조 ①항에는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되어 있다.

문재인정부는 4.27판문점 선언이 국회에서 비준받지 못하고 대북전단지살포금지입법이 부족하여 막지 못했는데, 앞으로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국회비준과 대북전단지살포금지입법을 통해 대책을 세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북은 문재인정부의 조치를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장금철 조선로동당 중앙위 통일전선부장은 12일자 ‘북남관계는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목의 담화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며, “이미 있던 법도 이제 겨우 써먹는 처지에 새로 만든다는 법은 ... 언제 성사되어 빛을 보겠는가”라며 그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북남관계가 악화되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우려하였다면 ... 지금까지 2년이 되는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런 법 같은 것은 스무 번도 더 만들고 남음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말이야 남쪽 동네사람들만큼 잘 하는 사람들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하며 ”이번 사태를 통하여 애써 가져보려고 했던 남조선 당국에 대한 신뢰는 산산조각이 났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는 ”이제부터 흘러가는 시간들은 남조선에 있어서 참으로 괴로울 것“이라는 말로 끝맺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 핵심참모들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대북전단지 살포 처리문제를 놓고 문재인 대통령이 민족 앞에 합의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인지 말만 번지르한 사람인지 보겠다는 것인데, 대북전단지살포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대통령과 그 무슨 민족의 대사를 논할 수 있겠는지 의문이 든다는 이야기이다.
살제로 정부내 남북관계담당 인사들 사이에서는 남북관계합의를 남측이 이행을 못하더라도 ’북이 다 이해한다‘는 식의 관성적 사고가 뿌리 깊어 보인다. 심지어 모 여권 국회의원은 ’전단지 몇 장‘ 가지고 뭘 그렇게 나오냐는 식의 한심한 인식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실무적으로 보지 말고 새로운 민족사를 쓴다는 입장에서 매우 근본적이고 진지하게 사색하고 결단해야 할 시간이다.

넷째로 앞으로 탈북자라는 특수한 존재를 남과 북이 공동으로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일제 강점기에 생계문제로 일제에게 강요한 삶을 산 민중을 아무도 친일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제가 먼저 나서 적극적으로 친일을 한 민족반역자들은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하는 것이 옳다. 북에서도 그동안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어려웠던 시기 생계형 선택을 한 탈북자에 대해서 온정적으로 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태영호, 지성호, 박상학과 같이 북에서 악질범죄를 저지르고 자기 조국을 배신하고 도망쳐 온 범죄자들이 다시 미제국주의자들의 하수인이 되어서 민족반역의 악행을 하고 남북관계를 파탄시키며 군사적 충돌의 도화선 역할까지 앞장서는 상황은 북측뿐만이 아니라 남측에서도 그냥 넘길 수가 없는 문제이다.
기준과 잣대도 없이 탈북했다는 이유만으로 악질 범죄자도 옹호 인정하고 심지어 국회까지 진출시키는 행위나, 미국 CIA나 그와 연관된 공작기구들의 자금을 받아 간첩질을 하고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차제에 새로운 입법을 통해 남북공동의 범죄조사를 엄격히 하고 처리하는 질서를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북전단지 살포자들처럼 범죄형 탈북자들이 남북관계 발전의 악성종양으로 될 것이 명백하고, 미국과 친미수구세력은 이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채우려고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와 촛불 시민들은 박근혜탄핵반대집회, 성조기부대, 태극기 부대를 안이하게 방치하여 100만 광화문 집회로까지 확대되었던 지난날의 경험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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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잊지말고 실천하자"

6.15공동선언 20주년대회, "남북 신뢰회복은 진정성있는 약속이행부터"(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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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13  23: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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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5공동선언 20주년 준비위원회는 13일 서울 청계천로 특설무대에서 5.15공동선언 발표 20주년 평화통일대회를 개최해 '이땅의 주권을 훼손하는 모든 개입과 간섭을 물리치고 다시는 멈추지 않을 기세로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땅의 주권을 훼손하는 모든 개입과 간섭을 물리치고, 다시는 멈추지 않을 기세로 남북공동선언 이행으로 나아갑시다."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20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 6월은, 마냥 기념하고 축하할 수 만은 없게 되었다. 

13일 오후 서울 청계천로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발표 20주년 평화통일대회'. 

대회를 주최한 '6.15공동선언 20주년 준비위원회'(6.15 20주년 준비위)는 문재인 대통령이 2년전 4월 27일 오후 판문점선언에 서명을 마치고 '이제 우리는 결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그 다짐을 6.15공동선언 20주년 앞에 다시 한번 기억하고 실천하자고 호소했다.

이들은 이날 김옥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과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이 낭독 발표한 '6.15공동선언 발표 20주년 평화통일대회 공동호소문'에서 "남북의 약속은 신뢰의 근간으로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미국의 제재를 비롯한 국제적 환경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약속의 당사자는 남과 북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남북합의 이행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도 못하면서 대화만을 제안하는 것은 오히려 불신을 부추길 뿐"이라며, "군사행동이나 대북 전단살포 등 합의에 역행하는 적대적 행동은 중단해야 마땅하다"고 촉구했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정상화, 철도 및 도로연결, 군축으로의 지향 등 남북이 이미 합의한 사항은 하루 빨리 실천에 옮기며, 상호 적대적 행동이나 언사는 모두 중단하고 남북공동선언 실현에 총 매진하여 끊어진 남북통신선과 남북관계가 하루빨리 복원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창북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은 다시 대결과 적대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남북이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은 진정성있는 약속 이행"이라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은 대회사에서 "6.15공동선언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원칙을 확인함은 물론 남과 북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통일을 이루자는 역사적 합의였으며, 6.15공동선언의 튼튼한 기초가 있었기에 10.4선언, 4.27판문점선언, 9.19평양공동선언도 탄생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금 서로의 신뢰는 물론 어렵게 쌓아올린 남북합의에 균열이 가고 있음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다시 대결과 적대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의장은 "남북관계 발전보다 북미관계 진전에 지나치게 기대고, 대북제재에 얽매인 미국 눈치보기와 공동선언 실천의 부재가 신뢰상실과 남북관계 악화로 이어졌다"고 진단하고는 "관계의 악화와 단절을 막는 유일한 길은 대화와 협력에 있으며,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은 진정성있는 약속의 이행"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금 필요한 것은 6.15공동선언을 만들었던 '용기의 계승'과 '책임있는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 왼쪽부터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윤정숙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공동대표,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허권 한국노총 통일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는 "코로나19 위기로 세계체제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친미사대적 외세의존에서 벗어나 민족자주의 길에 나서야 한다"며 "한반도에서 모든 전쟁연습을 중단하고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결별하여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민족 자주적 공조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정숙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는 "다시는 절대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분단과 대결의 시대는 이미 두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고 하면서 "더 이상은 갈등과 전쟁의 두려움을 넘길 수 없다. 6.15공동선언과 4.27판문점선언 이행이 단숨에는 어려워도 한발자욱씩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의 증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에 있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려운 상황을 참아내는 인내심과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용기"라며 "지금 여러가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끝까지 사수하겠다는 결심만 굳게 가지고 함께 나가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대회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또 21대 국회의원으로서, "4.27, 9.19선언을 국회에서 동의하는 절차를 밟아서 다시는 어느 정권이 들어오더라도 남북정상의 합의는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손형근 6.15해외측위원회 위원장은 일본 도쿄에서 대회장으로 인터넷 생중계로 연결해 "6.15 20주년은 축하나 축제가 아니라 민족자주 수호투쟁으로 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일본 도쿄에서 인터넷 생중계로 대회장과 연결한 손형근 6.15해위측위원회 위원장은 "6.15공동선언 20주년을맞는 지금 6.15공동선언 자체가 위기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며, "위기의 원인은 미국의 집요한 방해책동과 문재인 정부의 당당하지 못한 태도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6.15 20주년을 축하나 축제가 아니라 민족자주 수호 투쟁으로 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북측의 강경한 발언 중에서도 갈등과 파국이 이미 약속한 선언의 담대한 이행을 촉구한 것에 주목했다. 

△대결만 부추기는 대북전단살포를 입법을 통해 중단 △4.27판문점선언 국회 비준과 남북군사분야합의 전면이행 △8월 한미연합훈련 축소와 내년말 전시작전권 전환에 필요한 최소한의 훈련만 진행하는 등 앞으로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6.15공동선언은 반세기를 훌쩍 넘긴 남북 대결과 분단을 화해와 통일의 역사로 한순간에 바꾸었다. 지난 20년은 6.15공동선언 이행이 곧 평화이고 통일임을 절감한 역사였으나 지금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 남북 정상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신뢰는 깨어지고, 선언은 무력화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약속을 실천하는 것이 평화·번영, 통일의 역사를 진전시키는 유일한 방안"이라며, "코로나19로 수많은 국가들이 각 분야에서 자주와 자립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대전환의 시대에 민족 공동의 발전 전략은 지금까지 만들어 온 남북공동선언에 모두 담겨있다"고 그 실천을 강조했다.

허권 한국노총 통일위원장은 "6.15공동선언 발표 20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는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반복을 목도하고 있다"며, "문재인정부가 2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3차례의 정상회담과 2차례의 남북합의를 이끌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합의 당사자이면서 제재와 간섭,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미국에 발목을 잡혀 합의이행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6.15남북공동선언의 첫 머리에서 밝힌 바와 같이 '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4.27판문점 선언 1조 1항에 나온대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은 '우리의 생명줄'"이라고 역설했다.

   
▲ 이청산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은 '봄은 꽃을 피우지 않는다/ 꽃이 봄을 부를 뿐.../꽃이 피고 피는 꽃으로 봄은 온다'는 시낭송으로 대회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대회를 주최한 '6.15 20주년 준비위'는 지난 4월 27일  6.15남측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한국노총,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WCA연합회 등 민간 평화통일운동 연대기구와 각계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되었으며, 대회는 코로나 상황을 감안하여 참가자 발열 체크와 명부작성, 좌석 거리두기, 마스크 배포 등 방역 조치를 취하고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됐다.

<6.15공동선언 발표 20주년 평화통일대회> 대회사(전문)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어려운 시기임에도 함께하신 각계 대표와 시민여러분 반갑습니다.

6.15공동선언 20주년 준비위원회를 대표하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20년 전 오늘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손맞잡던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에도 담겨있는 그날의 장면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사에 남을 감동적인 장면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분단 역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오랜 대결과 갈등을 접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역사의 대전환을 이뤄냈습니다.

6.15공동선언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원칙을 확인함은 물론 남과 북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통일을 이루자는 역사적 합의였습니다.

6.15공동선언의 튼튼한 기초가 있었기에 10.4선언, 4.27판문점선언, 9.19평양공동선언도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남북관계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서로의 신뢰는 물론 어렵게 쌓아 올린 남북합의에 균열이 가고 있음에 통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다시 대결과 적대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남북관계가 왜 이렇게 꽉 막히게 되었는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남북관계 발전보다 북미관계에 진전에 지나치게 기대고, 대북제재에 얽매인 미국 눈치보기와 공동선언 실천의 부재가 신뢰 상실과 남북관계 악화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여러분!

6.15공동선언이 탄생한 때는 안팎의 상황이 지금 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대결종식과 화해협력에 대한 일관된 철학과 용기 있는 결단이 있었기에 어려움을 이기고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전면적 남북협력이 있었기에 6.15는 10.4선언으로 계승 발전되었습니다.

현 정부도 4.27판문점선언 이후 다섯 달 만에 9.19평양공동선언과 사실상 불가침선언인 군사분야합의까지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까. 그러나 그 이후 공동선언의 주요 합의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함에 따라 남북관계는 또다시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지난 20년의 교훈은 합의 이행이 적극 이루어질 때 남북관계도 한층 발전하며, 그렇지 못할 때는 불신의 골이 한층 깊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관계의 악화와 단절을 막는 유일한 길은 대화와 협력에 있으며,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은 진정성 있는 약속의 이행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6.15공동선언을 만들었던 ‘용기의 계승’과 ‘책임 있는 실천’입니다. 정부는 공동선언의 이행은 화해와 평화, 통일로 가는 이정표이자 남북관계 진전의 척도임을 확인하고, 합의이행을 위한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민간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민간 역시 6.15공동선언을 비롯한 남북공동선언들의 실천을 위해 힘을 모읍시다.

시민여러분! 그리고 남과 북, 해외의 동포여러분!

공동선언을 지키고 실천하기 위한 각계, 각층의 연대와 협력을 더욱 강화합시다. 온 겨레가 단합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 힘으로 개척합시다. 감사합니다.

 

<6.15공동선언 발표 20주년 평화통일대회> 공동호소문(전문)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20년전, 남과 북 양 정상은 분단 55년만에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갖고 통일의 이정표라 할 만한 공동선언에 합의했습니다.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정신은 남북합의의 근간을 이뤄, 18년 후 4.27판문점선언으로 계승되었습니다. 

남과 북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그 방향에서 통일을 이루자고 했던 합의는 흡수통일과 적화통일의 의구심을 벗어던지고 서로 신뢰하고 협력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4번의 정상회담이 더 열렸고, 6.15공동선언을 근간으로 한 세 개의 공동선언이 더 발표되었습니다.

6.15공동선언 이후 어렵게 일궈낸 남북협력의 결실들이 백지화되는 위기를 넘어, 2018년 다시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양 정상은 겨레 앞에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뒤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역대 합의처럼 시작만 뗀 불미스러운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고 반드시 좋은 결실을 맺도록 노력해 나갑시다'

그러나 오늘날 남북관계는 다시금 멈춰 섰고, 남북공동선언의 결실은 요원해지고 있습니다. 분단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다시 대결시대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절체절명의 위기감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남북의 약속은 신뢰의 근간으로서,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미국의 제재를 비롯한 국제적 환경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약속의 당사자는 남과 북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남북합의 이행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도 못하면서 대화만을 제안하는 것은 오히려 불신을 부추길 뿐입니다. 군사행동이나 대북 전단살포 등 합의에 역행하는 적대적 행동은 중단해야 마땅합니다.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정상화, 철도 및 도로연결, 군축으로의 지향 등 남북이 기왕에 합의한 사항들을 하루빨리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상호 적대적 행동이나 언사를 모두 중단하고, 남북공동선언 실현으로 총 매진하여 끊어진 남북통신선과 남북관계가 하루빨리 복원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분단과 전쟁의 장벽을 넘어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당사자로서 이 오랜 역사적 과제는 회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으며, 겨레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이 땅의 주권을 훼손하는 모든 개입과 간섭을 물리치고, 다시는 멈추지 않을 기세로 남북공동선언 이행으로 나아갑시다.


2020년 6월 13일

6.15공동선언 발표 20주년 평화통일대회

 

 
▲ 대학생들은 율동공연에 이어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6.15공동선언 1항의 합의를 펼쳐 보이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서울 민예총에서 2000년 6.15 통일둥이 딸과 함께 떠난 아버지의 통일 여정을 다룬 창작 노래극 '스무살 축하해'를 공연했다. 문진오·김가영·안계섭·이수진 가수와 강제권·윤아련 배우가 출연했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가2-14일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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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시위 “윤석열 OUT! 조선일보 폐간! 친일파 청산!”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0/06/1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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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후 3시,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정치검찰의 행태, 보수 언론의 가짜뉴스를 더 이상 참지 못한 시민들이 차량을 끌고 나왔다. 출발하는 차량 시위  © 김영란 기자

  

▲ 포승줄에 묶인 윤석열 검찰총장 조형물에 유튜버들이 응징을 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 차량 시위에 '검찰개혁, 언론개혁' 깃발을 부착했다.   © 김영란 기자

  

▲ 차량 시위대가 출발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 차량 시위는 여의도 금융감독원을 출발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집, 현충원 앞을 거쳐 대검찰청까지 약 10km에 걸쳐 진행되었다.  © 김영란 기자

  

▲ 차량 시위 맨 앞에는 포승에 묶인 윤석열 검찰총장 조형물이 있었다.   © 김영란 기자

 

“정치공작, 비리혐의, 윤석열은 사퇴하라! 빵 빵 빠앙~”

“친일매국, 가짜뉴스, 조선일보 폐간하라! 빵 빵 빠앙~”

“친일파 묘 이장하라, 친일파를 청산하자! 빵 빵 빠앙~”

 

“지금 조선일보가 가짜뉴스로 우리나라를 완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잖아요. 조선일보를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런 행사가 있어서 참여했어요. 아이랑 같이 드라이브하는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차량 행진을 하는 거니까 시민들에게 제 마음을 잘 알리고 싶어서 택시처럼 차 위에 선전물을 만들어서 나왔어요. (서울 방학동 주민)”

 

13일 오후 3시,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정치검찰의 행태, 보수 언론의 가짜뉴스를 더 이상 참지 못한 시민들이 차량을 끌고 나왔다. 

 

이날 광화문 촛불연대는 ‘검찰개혁, 조선일보 폐간 6.13 드라이브 스루(차량 시위)’를 개최했다. 차량 시위는 여의도 금융감독원을 출발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집, 현충원 앞을 거쳐 대검찰청까지 약 10km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차량 시위 맨 앞에는 포승줄에 묶인 대형 윤석열 검찰총장 조형물이 있었다.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는 “윤석열이 있는 한 검찰개혁은 불가능하다. 또한 윤석열은 적폐 세력과 손을 잡고 문재인 정부의 뒷목을 잡고 있으며 촛불 개혁을 가로막고 있기에 윤석열 사퇴해야 한다. 윤석열 총장이 있는 한 공수처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총선 승리가 제대로 결실을 보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총장을 탄핵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안진걸 민생연구소 소장은 “조선일보는 가짜 뉴스 유포, 친일반민족행위, 적폐 세력 비호 등 너무나 많은 패악질을 저질러 국민들이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조선일보의 행태는 용납할 수가 없다. 조선일보 반드시 폐간시키자”라고 호소했다.  

 

정해랑 광화문 촛불연대 공동대표는 “오늘 차량 시위가 여의도에서 시작하는 것은 21대 국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일깨워주고 압박하기 위함이다. 21대 국회는 가짜 뉴스를 엄벌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하며, 조선일보의 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국회는 친일파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고 현재 안장된 친일파를 이장시키도록 법을 제정해야 한다. 국회는 공수처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재정비, 보강해야 하며 사법농단 판사를 탄핵하라. 국회가 이것을 할 때까지 계속 압박해 나갈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차량 시위는 현충원 앞 이르러서는 “현충원에 친일파묘 웬말이냐! 친일파묘 이장하라!” “친일파를 청산하자!” 구호와 경적소리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집을 지날 때에는 “친일 매국 가짜 뉴스 조선일보 폐간하라!”, “친일 매국 쓰레기 집단 방 씨 일가 심판하자!”의 구호를 외쳤다. 

 

 

▲ 차량 시위에 직접 선전물을 만들어 참가한 시민들도 있었다.     

 

▲ 대검찰청 앞에서는 대진연 소속 회원들이 선전전을 했다.   © 김영란 기자

 

▲ 대검찰청 앞에 도착한 차량 시위대  © 김영란 기자

    

오후 5시 50분 경 대검찰청 앞에 도착한 차량 시위대는 정리 집회를 했다.

 

민소원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은 “적폐들의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이 되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법이라는 이름의 칼로 베어버리는 곳이 바로 윤석열 검찰이다. 적폐들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이유는 검찰이 적폐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적폐의 편에 서 있는 검찰이 아니라 국민의 편에 서 있는 검찰이 필요하다. 윤석열은 사퇴하고 검찰개혁 실현하자”라고 연설했다.

 

이날 차량 시위에는 50대의 차량이 참가했으며, 차량에는 ‘윤석열 OUT! 검찰개혁’, ‘친일매국 가짜뉴스 조선일보 폐간’의 선전물과 ‘검찰개혁, 언론개혁’ 깃발을 부착했다.  

 

 

 ©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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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70년 맺힌 한, 어찌 잠들어 계셨소

청주 |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한국전쟁 70년…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현장 답사기
 
지난 5일 충북 청주시 남일면 고은리의 일명 ‘여우골’ 현장. 주택 공사가 한창인 언덕 골짜기를 조사하던 중 1950년 7월경 우리 군경에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가 발견됐다. 이곳은 청주·청원 국민보도연맹원과 청주형무소 재소자들이 집단으로 죽임을 당한 뒤 매장된 곳이다. 청주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지난 5일 충북 청주시 남일면 고은리의 일명 ‘여우골’ 현장. 주택 공사가 한창인 언덕 골짜기를 조사하던 중 1950년 7월경 우리 군경에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가 발견됐다. 이곳은 청주·청원 국민보도연맹원과 청주형무소 재소자들이 집단으로 죽임을 당한 뒤 매장된 곳이다. 청주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농가·동네 산길…널린 학살 현장
충남 아산 설화산 208구 유해 곁
안경·비녀·반지 쏟아진 학살 증거

 

진통 속 통과된 과거사법 개정안
연말 ‘진실화해위 2기’ 출범 앞둬
외면했던 묵은 숙제, 이번엔 풀까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수많은 전사자를 냈지만, 무고한 민간인들의 목숨도 앗아갔다. 포화를 피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지만, 우리 군경의 총칼에 죽은 이들도 최소 수십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7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그 흔적도 희미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수습되지 못한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의 유골은 도처에 있다. 농가를 잇는 평범한 길옆에서, 주민들이 애용하는 동네 뒷산 산책로 옆에서 그들은 잠들어 있다. 2018년 2월 충남 아산의 설화산 발굴 현장. 며칠간의 작업에도 불구하고 매장지를 찾지 못해 철수하려다 마지막으로 파본 곳에서 유해가 발견됐다. 이곳에서 발굴된 208구의 유해 중 17세 이하는 58구, 18세 이상 성인의 유해 150구 중 85%는 여성으로 추정됐다.

유해 주변에서는 총탄이나 단추, 안경과 혁대, 비녀나 반지 같은 물건들이 나왔다. 유해야말로 부인할 수 없는 학살의 증거다. 지난 70년 동안 발굴이 이뤄지지 않은 곳에선 집을 짓고 다리를 건설하고 댐을 세우다 얼마나 많은 유해가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다.

지난 5월 진통 끝에 ‘과거사법’(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20대 국회를 통과했다. 관련 개정안이 나온 지 7년 만이다. 2010년 중단된 1기 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는 올 연말쯤 진용을 갖추고 2기 활동에 들어간다. 진화위는 2005년 12월부터 2010년 6월까지 활동하면서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제한된 기간에 이뤄진 활동인 만큼 한계도 분명했다.

경향신문은 2018년 12월 세 차례에 걸쳐 한국전쟁 기간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의 유해발굴 실태를 살펴봤다. 한국전쟁 70주년을 앞둔 2020년 6월. 과거사법 개정안이 지난 5월 힘들게 통과됐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들의 상처 치유를 바라는 이들은 진화위 활동을 보충하고, 과거사 청산을 지속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유해를 발굴하고 피해자에게 합당한 배상을 하는 일, 그리고 과거사재단을 꾸리는 일 등 법적 근거가 부족해 미뤄두었던 70년 묵은 숙제를 풀 시간이다.


 

■“30~100명 묻혀” 증언 후 10년 만에 첫 삽…택지 공사 겹쳐 발굴 ‘진땀’ 

청주 ‘여우굴’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현장에 가다 

민간단체인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지난 5일 충북 청주시 남일면 고은리의 일명 ‘여우골’에서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2008년 이곳에서 유해를 발견했지만 본격적인 발굴은 10년이 훨씬 넘어서야 이뤄졌다. 청주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민간단체인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지난 5일 충북 청주시 남일면 고은리의 일명 ‘여우골’에서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2008년 이곳에서 유해를 발견했지만 본격적인 발굴은 10년이 훨씬 넘어서야 이뤄졌다. 청주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4~5m 깊이로 파 들어가며
조심 조심 흙을 걷어내니
앙상하게 마른 뼈들이 나와
 

충북 청주와 청원 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들과
청주형무소 재소자 등이
적법 절차 없이 살해돼 묻혀
 

지난 5일 오후 충북 청주시 남일면 고은리의 일명 ‘여우굴’ 일대에서는 주택 공사가 한창이었다. 오래전 이곳에 굴이 있었다고 했지만 이제는 흔적도 찾기 힘들었다. 낮은 언덕을 수놓았던 나무는 깎여나갔고, 황톳빛 흙이 작은 산처럼 쌓여있었다. 이곳의 얕은 골짜기를 따라 민간단체가 모여 결성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의 유해발굴 작업도 진행 중이었다.

이날 오전에는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더운 날씨에 대비해 가림막을 새로 설치했다. 지난달 26일부터 길이 40m, 폭 15m의 이곳 매장 추정지를 4~5m 깊이로 파 들어가며 발굴 작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2~3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앙상하게 마른 뼈들이 나왔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군경에 의해 숨진 민간인들의 유해는 70주년이 다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발굴 현장에는 ‘아버지, 어머니 - 70년의 어둠 거두어 내고 이제 밝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이곳은 2005년 과거사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출범한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에서 두 차례 발굴 조사를 벌인 ‘분터골’ 인근이다. 분터골에서 300여개체의 유해가 나왔다. 분터골과 5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여우굴은 처형을 위해 이동 중 낙오한 이들을 죽여 묻은 곳으로 추정된다. 청주 일대에는 7~8곳의 매장 추정지가 있다. 1950년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청주·청원 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들과 청주형무소에 구금 중이던 재소자 등이 적법한 절차 없이 죽임을 당한 뒤 이곳에 묻혔다. 국민보도연맹은 좌익활동을 한 이들을 전향시키겠다며 1949년 만든 전국적인 조직이다. 해방을 전후해 좌익활동을 한 이들도 있었지만, 먹을 것을 준다는 말에 가입하거나 ‘불순분자’로 몰려 형무소에 갇힌 이들이 많았다.

여우굴은 2008년 분터골 발굴이 마무리되기 직전 ‘인근에 또 다른 매장지가 있다’는 유족들의 증언에 따라 확인 조사를 벌인 결과 머리뼈 등 유해가 발견된 곳이다. 30여명에서 100여명까지 희생자 숫자에 대한 증언은 분분했지만, 민간인에 대한 처형이 이뤄졌다는 내용은 일치했다. 유해를 발견했지만, 시간과 예산 등 현실적인 문제로 전면적인 발굴은 어려웠다. 훗날을 기약했고, 10년이 흘렀다.

지역 유족회와 지자체의 협조로 여우굴에서 유해발굴을 하기로 하고 지난 3월 중순 공동조사단이 사전 조사차 방문했을 때만 해도 매장 추정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당시 매장 추정지 바로 옆에선 주택 단지 조성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빠른 발굴이 필요해 보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유해발굴 작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이유다.

공동조사단이 본격 발굴을 위해 여우굴을 다시 찾았을 때는 매장 추정지 한쪽에 흙을 다져 쌓아올리는 복토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때문에 매장 추정지를 찾기 힘들어졌다. 숲이 우거졌던 매장지는 누런 흙으로 황량한 모습으로 드러난 상태였다. 민간인 학살 유해 매장 추정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따로 없었고, 도청 관계자나 주택 공사를 하는 땅의 소유주도 이 같은 사실을 제때 파악하지 못했던 탓이다.

공동조사단은 먼저 쌓인 흙을 걷어내고 매장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 골짜기의 위치를 파악해갔다. 땅파기 작업을 하며 유해 매장 위치를 가늠해가자 다행히 학살 피해자의 유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립토를 쌓고 걷어내는 과정에서 일부 유해가 유실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무엇보다 바로 옆이 주택 공사가 진행 중인 사유지였기 때문에 발굴 조사를 여유롭게 할 수 없었다. 여우굴 발굴은 지난 11일까지 단 2주 동안만 진행됐다.

■국가사업인 유해발굴, 10년 이상 표류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유해와 유품을 찾기 위해선 땅을 파면서 나온 흙도 꼼꼼히 다시 고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청주 | 이준헌 기자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유해와 유품을 찾기 위해선 땅을 파면서 나온 흙도 꼼꼼히 다시 고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청주 | 이준헌 기자

유해가 매장된 것을 확인해도
담당 기관이 명확하지 않고
발굴을 강제하는 법도 없어
지자체나 민간단체에만 의존
 

여우굴 현장은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작업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유해가 매장된 것을 확인하더라도 이를 담당할 기관이 명확지 않고, 관련 규정이 없다 보니 지자체의 조례나 민간단체의 발굴 활동에만 의지해야 한다. 이미 발굴이 이뤄진 곳도 100% 완벽한 발굴을 했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한정된 시간과 예산으로 진행하는 일이다 보니 그렇다. 여전히 남아 있는 매장 추정지도 많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매장지가 더 있을 가능성도 높다.

1기 진화위가 활동하던 2005~2010년 동안 168곳의 유해 매장 추정지를 조사했고, 이 중 59곳에서 발굴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우선발굴 대상지로 39개소가 선정됐다. 1기 진화위 활동 당시부터 지금까지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이 이뤄진 건 모두 22곳이다. 진화위에서 13곳, 공동조사단 등에서 9곳을 발굴했다. 2010년 진화위 활동이 중단된 이후에는 국가 차원에서 발굴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여우굴처럼 유해 일부가 발견되어 학살 매장지가 확실해도 10년이 넘도록 발굴이 이뤄지지 않고 방치된 곳이 허다했다.

70년이나 지난 민간인 학살의 유해발굴 성적표가 이토록 초라한 건 유해발굴을 강제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진화위 활동을 규정하고 있는 ‘과거사 기본법’(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는 ‘유해’나 ‘발굴’에 대한 규정이 없다. 1기 진화위가 활동할 당시에는 유해발굴이 민간인 학살의 실체를 증명하는 사실 조사와 유가족들의 바람을 들어주는 차원에서 진행됐다.

1기 진화위에서 우선발굴 대상지로 선정한 충북 청원군 낭성면 호정리의 ‘도장골’은 여우굴이나 분터골과 마찬가지로 청주 지역 보도연맹원과 형무소 재소자들이 희생돼 매장된 곳이다. 2007년 진화위가 정리한 유해 매장 추정지 조사용역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도장골에는 70여구의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됐다. 조사 당시 “봉분 형태의 매장지가 발견됐고, 사건 이후 특별한 훼손 없이 보존된 상태”여서 유해가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으로 꼽혔다. 그런데 지난해 3월부터 댐 공사를 하면서 일대가 파헤쳐졌다. ‘청주형무소 사건 민간인 집단 희생지이므로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내용 등을 적은 진화위의 철제 안내판은 뽑혀져 인근에 버려진 상태였다.

이처럼 진화위가 활동에 돌입한다 해도 제때 발굴이 이뤄지지 않으면 유해 훼손의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유해발굴 활동 관계자들은 “과거엔 일반 공사 현장에서 유해가 나오면 작업이 중단될까 몰래 내다 버리는 일도 많았다”고 말한다. 유해발굴이 필요한 지역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는 건 법적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유해 매장지를 유지·관리할 책임이 정부나 지자체 등 누구에게도 없다. 유해를 발굴하고 감식할 인력이나 예산도 없다.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의 유해매장지 관리는 그동안 지역의 유족회에서 시간을 내 둘러보는 정도에 그쳤다.

지난 5월 새롭게 개정·통과된 과거사 기본법에도 유해발굴에 대한 조항은 추가되지 않았다. 유해발굴에 관한 한 1기 진화위 때와 새로 출범하게 될 2기 진화위는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활동기간은 오히려 줄었다. 1기 진화위는 최대 6년간 활동할 수 있었지만, 2기 진화위는 최대 3년이다. 위원회 규모도 15명에서 9명으로 줄었다. 위원 수는 조사관 숫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공격적인 유해발굴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현실적인 여력은 줄어들고 있다.

진화위가 과거 청산에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한시적인 조직이라는 한계도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노용석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는 1기 진화위의 유일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팀 담당자였다. 행정·기획 업무는 물론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을 학살하고 매장한 지역을 찾아다니는 역할을 홀로 맡았다. 1년에 8억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됐는데, 이는 한 해 동안 4곳 정도 지역을 발굴하거나 유해를 감식하고 발굴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포함한 금액이었다.

노 교수는 “새로 개정된 과거사법에 유해발굴에 관한 조항이 추가될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이미 유해를 발굴한 지역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세 차례 발굴이 이뤄진 ‘경산 코발트광산’은 허술한 관리 탓에 고교생들이 들어왔다가 떨어져 크게 다치는 사고가 났다. 국가단위의 사업인데 10년 이상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유해 특정된 민간인 희생자 없어…유해발굴 법적 근거 만들어야 

유해 나와도 신원 특정 어렵고
남들의 괜한 손가락질 걱정에
2005년 진실화해위 출범 이후
유해 수습한 유족도 전무
 

유해발굴 이후에도 과제가 남는다. 일단 신원 특정이 어렵다. 유해가 나오면 우선 인류학적 감식 작업을 한다. 나이와 성별, 키, 사망 원인 등을 조사한다.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총상의 흔적이나 총알이 함께 발견되는 일이 많다. 이런 조사 내용을 모두 기록하고 사진을 남긴 뒤 보고서 작성을 한다. 모든 작업을 마친 유해는 현재 세종시에 있는 추모의집으로 모신다. 2022년에는 대전 인근 국가단위의 위령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간혹 매장지에서 도장 등 신분을 특정할 단서가 발굴되는 경우가 있지만, 주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희생자들의 유해가 뒤엉킨 채 발견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신원이 특정된 경우, 피해자 유족을 찾아 유전자 감식을 한 뒤 발굴된 유해 전체를 대조할 수만 있다면 조상의 뼈를 한 조각이라도 찾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전자 감식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 등의 제약으로 사실상 신원 특정이 어렵다. 2005년 진화위 출범 이후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 실체가 상당수 드러났지만 조상의 유해를 특정해서 수습한 유족은 한 명도 없다.

2016년 국회에서 열린 ‘과거청산을 위한 입법 토론회’에서 유해발굴 특별법에 대해 발제한 서중희 변호사는 “국가기관에 의해 전국적인 범위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법률적인 근거를 두고 유해발굴이 이뤄져야 한다”며 “대통령 등 정책 결정권자가 행정명령을 한다면 조금 더 빠른 작업이 가능하겠지만, 법적 근거가 빈약할 경우 정부가 바뀌면 조직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가 제안한 특별법에는 민간인 학살 희생자의 매장지를 보존·조사·발굴하고 유족을 확인해 추모사업을 벌이는 내용과 이런 업무를 수행할 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2008년 제정된 ‘6·25전사자 발굴법’의 골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법적 근거가 있다면 학살 피해자 유해에 대해 광범위한 감식을 벌일 수 있고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유족 특정도 가능하다.

여우굴 유해발굴 작업에 참여한 조성규씨(63)는 보도연맹원으로 희생된 작은아버지의 제사를 모시며 살아왔다. 그는 “늦게나마 발굴이 이뤄져 고맙지만, 70년이나 지나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다”며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은 대부분 연좌제 탓에 공직 생활 등 떳떳한 직장을 가지지 못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유족들이 70대 이상인데, 괜한 손가락질을 걱정하거나 진상규명 신청에 대한 홍보가 부족해 1기 진화위 때 피해 신청을 하지 않은 이들이 아직도 많다”며 “이제는 진실을 밝히고 조상들을 밝은 곳으로 모시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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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본회의장 맨 앞에서 제일 뒷자리로 간 이유

권력 지형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본회의장 좌석 배치
 
임병도 | 2020-06-12 08:43:0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6월 5일 제21대 국회 본회의가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본회의장 2층에서 취재를 하는 기자들은 앞다퉈 본회의장 의석 배치도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21대 국회가 새롭게 시작하면서 의원들의 자리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코로나 사태로 대부분 마스크를 쓴 상태라 가뜩이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어, 국회의원 누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 배치도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5일 본회의장 좌석 배치도는 20대 국회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선 의원들이 지역구별로 배치가 됐고, 이낙연 의원처럼 다선 의원이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날 본회의장 좌석배치는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 등 권역별 순서로 본회의장 출입문 기준 우측부터 앉게 되어 있었습니다. 서울의 경우 종로가 가장 앞이고 이후 중구, 성동구, 동대문, 용산 지역구 순서로 배치됐습니다.

당선 횟수와 상관없이 서울 종로구가 가장 앞이라 이낙연 의원이 앉게 된 겁니다. 원래 이 자리는 야당 초선 의원에게 배당되는 자리라 처음에는 기자들 모두가 의아해했습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미래통합당 지성호 의원 같은 초선 의원들은 당 대표나 중진 의원들이 앉는 맨 뒷자리로 배치돼 마치 다선 의원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맨 앞에서 제일 뒷자리로 바뀐 이낙연 의원

▲6월 10일 바뀐 국회 본회의장 좌석 배치도. 다선 의원과 중진들은 뒷자리에 초선 의원들은 맨 앞자리에 자리했다.

국회 본회의장 자리 배치는 6월 10일 다시 바뀌었습니다. 이번에는 지역구가 아닌 당선 횟수, 당직 여부 등 기존의 관행에 맞춰 배치됐습니다.

6월 10일 본회의장 의석배치도를 보면, 원내 제1당인 민주당은 국회의장석을 기준으로 중앙과 좌측에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우측에 자리했습니다. 좌측 끝부분에는 의석수 순서대로 정의당·열린민주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 등 군소 정당과 무소속 의원들이 배치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낙연(5선), 송영길(5선), 우원식(4선), 홍영표(4선) 의원 등이 미래통합당은 정진석(5선), 조경태(5선), 권영세(4선), 홍문표(4선) 의원 등 다선 의원들이 맨 뒷자리에 배치됐습니다. 특이한 점은 통합당은 4선 의원이 9명에 불과해 유의동(3선), 하태경(3선), 이달곤(재선) 의원까지도 맨 뒤에 배치됐습니다.

당 대표나 원내대표 옆자리는 명당으로 꼽힙니다. 그만큼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옆에는 당직을 맡은 재선의 박주민 의원이 앉게 됐습니다.

시각장애인이라 안내견 ‘조이’와 함께 하는 통합당 김예지 의원과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민주당 최혜영은 편의성을 고려해 맨 뒷자리에 배치됐습니다. 통합당 배현진 의원과 민주당 김남국 의원처럼 초선 의원들은 대부분 맨 앞자리에 자리했습니다.

통합당 배현진 의원의 경우 처음에는 민주당 진선미, 남인순 의원 옆이었습니다. 민주당에서 가장 센 (?)여성 의원들 옆이라 긴장했겠지만, 다행히(?) 맨 앞으로 바뀌었습니다.

권력 지형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본회의장 좌석 배치

▲정당 원내대표와 다선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맨 뒷자리에 앉는다. 뒷자리는 표결이나 회의 진행 도중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본회의장 자리 배치는 ‘국회의원의 의석은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해 이를 정한다. 다만, 협의가 이뤄지지 아니할 때에는 의장이 잠정적으로 이를 정한다’라는 국회법 제3조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러나 교섭단체대표들이 모여 결정하니 권위적인 형태로 자리가 배치된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실제로 영국 의회는 따로 자리를 정하지 않고 회의장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원하는 자리에 앉기도 하고 스웨덴에서는 선거구별로 본회의장 좌석을 배치합니다. 특이하게도 영국과 북유럽 국가에서는 다선 의원이 앞줄에 앉는 게 관행입니다.

우리나라 국회는 의장석을 점거하기 위해 초선 의원을 앞자리에 배치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있습니다. 국회선진화법 이후에 의장석 점거는 사라졌다고 믿었지만, 20대 국회부터 의장석 점거가 다시 등장하면서 비슷한 양상이 재연됐습니다.

국회 본회의장 자리 배치를 기자들이 눈여겨보는 이유는 좌석에 따라 권력 지형을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선 의원들이 맨 뒷자리에 앉는 관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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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0주년 특별기획] 막 내린 선진국 신화,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가

릴레이 기고 ‘코로나 너머’ ㉗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발행 2020-06-12 11:45:26
수정 2020-06-12 11: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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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2000년 5월 15일 첫걸음을 뗀 민중의소리가 창간 20주년을 맞았습니다. 독자와 후원인들의 성원과 격려로 민중의소리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민주주의를 확장하며 자주평화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진보언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창간 20주년 특별기획으로 각계 원로, 전문가, 신진 인사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와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릴레이 기고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한때 한국인들은 세계를 세 가지의 서열화된 영역으로 파악하기를 좋아했다. '중진국’인 우리는 한편으로는 구미권 ‘선진국’들과 같은 수준을 지향해야 했는가 하면, 동시에 ‘후진국’들에게 ‘개발’의 모범을 보일 수 있다는 식의 세계관이었다. 이 세계관의 역사적 계보를 따지자면,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와 그 제자 유길준(兪吉濬)을 통해서 들여온, ‘문명-반(半)문명-야만’과 같은 구미 제국주의자들의 3층적인 위계적 세계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세계관은, ‘선진화’의 미명 하에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온갖 고통도, 국내에 노동자로 들어온 ‘후진국’ 출신에 대한 무시도 정당화했다. 그러나 코로나는 이 세계관의 허구성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최고의 선진국으로 꼽혔던 미국과 일본의 위상은, 코로나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중앙집권적 통제가 가능한 일본은 은폐로 일관했고, 은폐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연방제 국가인 미국은 의료체제의 모순과 엄청난 행정력의 한계를 노출시켰다. 반대로, 미국의 침략으로 한때 황폐해졌던 ‘후진국’ 베트남과 미국의 등쌀에 계속 시달려온 쿠바는 ‘코로나 대응 모범국’으로 명성을 날렸다. 이와 함께 아이슬란드와 핀란드, 그리고 한국의 대응은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았다. 쿠바와 핀란드, 그리고 한국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국가동원능력, 행정력의 우수성이다. 결국 ‘시장’이 할 수 없는 코로나 대응을 ‘국가’가 해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앙성결교회에서 교인들이 전자출입명부(QR코드) 시범운영 테스트를 하고 있다.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은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했을 때 시설 출입자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도입돼 종교시설, 학원, 영화관, 노래방, 음식점 등으로 확대 도입됐다.   2020.06.02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앙성결교회에서 교인들이 전자출입명부(QR코드) 시범운영 테스트를 하고 있다.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은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했을 때 시설 출입자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도입돼 종교시설, 학원, 영화관, 노래방, 음식점 등으로 확대 도입됐다. 2020.06.02ⓒ민중의소리

그러나 코로나는 행정력의 우수성 이외에 한국이라는 국가의 또 다른 면모도 보여주었다. 한국과 함께 ‘코로나 모범국’ 대열에 오른 핀란드에서는 전체 환자 중 약 8%만 민간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 공공본위의 의료체제이자 무상의료다. 한국의 경우에는, 코로나와의 투쟁을 주로 담당했던 공공의료기관 보유 병상이 전체 병상 중 10%에 그친다. 각종 신종 전염병들이 앞으로 더 자주 나타날 지구온난화의 시대에 과연 이와 같은 공공성이 미약한 의료체제로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핀란드나 아이슬란드는 무상의료지만, 한국은 여전히 병원에 가면 비급여 영역이 전체의 5분의 1 정도 차지한다. 문재인 정권은 2022년까지 건보보장률을 70%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지만, 그것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과연 개인에게 상당한 자기부담을 요구하는 민간병원에 의존하는 의료체계로는, 우리가 더 위험해지는 세계에서 제대로 버틸 수 있을 것인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저(低)복지의, 유료의료와 유료대학교육 위주의 사회가 가능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상대적으로 높았던 성장률이다. 2000년대만 해도 한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4.6%였다. 중국·베트남과 같은 신흥시장과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고소득 사회 치고는 대단히 높은 성장률이다. 성장률이 비교적 높으면 소비자들에게 여유가 있어 취직에 실패한 사람이라도 자영업으로 먹고살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회의 기본단위로 ‘가정’이 그 자리를 지켰다는 점이다. 작년 졸업 후 미취업 상태인 청년층(15~29세)이 약 150만명으로 집계됐는데, 그들에게 도와주는 부모나 친척이 없었다면 아예 끼니를 굶는 사람들이 상당수 되지 않았을까 싶다. 성장이 주는 소비시장의 여유, 그리고 가정이 안겨주는 안정감으로는, 복지가 크게 부실해도 한국사회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미국·일본 등 서구 선진국 코로나 앞에 무너지고
한국·베트남·쿠바·핀란드 등 대응에 찬사
공공의료 부족·민간병원 의존 체계는 취약점
성장도 없고, 가정도 와해된 시대 복지국가는 선택이 아닌 필수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성장은 당분간 어렵다고 본다. 올해는 -1.2% 정도의 역성장이 예상되며, 세계공황이 본격화하는 그 뒤로는 감 잡기조차 어렵다. 세계공황과 중-미 신냉전으로 인한 교역조건 악화에 더해 올해부터 한국 인구의 자연감소가 시작돼 사실상 경제성장의 시대가 끝났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그리고 가정은 급속한 와해 과정에 있다. 이미 올해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0% 정도 되며, 2050년이면 약 4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족, 친척 사이의 ‘상부상조’에 대한 당위성이나 의무감은 빠르게 사라져가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국은 구미권 이상으로 개체화된 사회로 변모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과 가정이 맡았던 개인에 대한 경제적 보호막의 역할을 앞으로 과연 누가 맡을 수 있겠는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민중의소리

‘사회의 보호자’로서의 국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코로나 사태의 교훈대로, 결국 국가 이외에는 이 역할을 맡을 적임자는 없다. 단, 그러려면 국가는 전면적인, 빈틈없는 복지국가로 거듭나야 된다.

70%가 아니라 100% 건보보장률 달성이 국가의 핵심과제가 돼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을 증설하고, 대학교육을 국공립대학부터 점차 무상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 등록금을 마련해주는 시대도 이미 끝나가고, 무(無)성장 시대에 빚을 져서 등록금을 낸 청년이 졸업 후 취직해서 그 빚을 갚는 것도 대단히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공황과 자연재해의 시대에 복지국가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는 코로나의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일 것이다.

[창간20주년 특별기획] 릴레이 기고 ‘코로나 너머’ 모아보기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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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장금철 통전부장, "북남관계는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전문)

북 장금철 통전부장, "북남관계는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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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13  01: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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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철저히 단속하고 남북간 합의를 준수하겠다는 11일 청와대의 발표에도 강경한 입장을 누르러뜨리지 않았다.

이번엔 대남 전략전술 업무를 실질적으로 총괄 조정·통제하는 장금철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나섰다.

장금철 통전부장은 12일 밤 '북남관계는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해, "큰일이나 칠 것처럼 자주 흰소리를 치지만 실천은 한 걸음도 내짚지 못하는 상대와 정말로 더 이상은 마주서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대꾸했다.

또 "이번 사태를 통하여 애써 가져보려 했던 남조선당국에 대한 신뢰는 산산조각이 났다"고 하면서 "이제부터 흘러가는 시간들은 남조선 당국에 있어서 참으로 후회스럽고 괴로울 것"이라고 여지를 두지 않았다.

전날 청와대가 밝힌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한 입장에 대해서는 "들어보면 속죄와 반성의 냄새도 나고 '엄정 대응' 의지도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청와대가 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며 꾸며낸 술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좌우상하 눈치를 살피고 좌고우면하면서 번지르르하게 말보따리만 풀어놓은 것이 남조선당국"이라고 하면서 "여직껏 말이 부족하고 글을 제대로 남기지 못하여 북남관계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아니다. 자기가 한 말과 약속을 이행할 의지가 없고 그것을 결행할 힘이 없으며 무맥 무능하였기 때문에 북남관계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그렇게도 북남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진심으로 우려하였다면 판문점선언이 채택된 이후 지금까지 2년이 되는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런 법 같은 것은 열번 스무번도 더 만들고 남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남측 당국을 힐난하기도 했다.

결국 미국과 남측 내 보수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지금까지 남북합의와 선언을 이행하지 못한데 대한 불신이고 질책인 셈이다. 당분간 남북관계의 경색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장 부장은 "북과 남이 손잡고 철석같이 약속하고 한자 한자 따져가며 문서를 만들고 도장까지 눌러 세상에 엄숙히 선포한 합의와 선언도 휴지장처럼 만드는 사람들이 아무리 기름발린 말을 한들 누가 곧이 듣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북한은 지난 4일 김여정 당 제1부부장 담화(스스로 화를 청하지 말라)를 시작으로 5일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적은 역시 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를 거쳐 9일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북남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버리는 조치를 취함에 대하여)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대남 강경 대응을 천명하고 연일 대규모 군중집회를 벌이고 있다.

12일에는 리선권 외무상 담화(우리가 미국에 보내는 대답은 명백하다)를 통해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협상에는 뜻이 없으며, 북의 전략적 목표는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적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핵억제력 강화'에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북남관계는 이미 수습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금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장 담화--(전문)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조선속담이 그른데 없다.

11일 남조선의 청와대가 삐라살포행위와 관련한 립장을 발표한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날 드디여 침묵을 깨고 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개최한 청와대는 대북삐라살포행위를 명백히 현행법에 저촉되는 행위로 규정하고 법을 위반하는 경우 엄정히 대응하며 남북간의 모든 합의를 준수해나갈것이라는 립장을 공식발표하였다.

지금껏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전전긍긍하면서 《통일부》뒤에 숨어있던 청와대가 마침내 전면에 나서서 그 무슨 《대용단》이라도 내리는듯이 립장표명을 하였지만 우리로서는 믿음보다 의혹이 더 간다.

들어보면 속죄와 반성의 냄새도 나고 《엄정대응》의지도 그럴듯해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청와대가 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며 꾸며낸 술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수 없다.

저지른 무거운 죄값에 비하면 반성하는 태도가 너무나 가볍기때문이다.

지금까지 남조선당국이 말이야 얼마나 잘 해왔는가.

좌우상하 눈치를 살피고 좌고우면하면서 번지르르하게 말보따리만 풀어놓은것이 남조선당국이였다.

여직껏 말이 부족하고 글을 제대로 남기지 못하여 북남관계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것은 아니다.

자기가 한 말과 약속을 리행할 의지가 없고 그것을 결행할 힘이 없으며 무맥무능하였기때문에 북남관계가 이 모양,이 꼴이 된것이다.

이미 있던 법도 이제 겨우 써먹는 처지에 새로 만든다는 법은 아직까지 붙들고 앉아뭉개고있으니 그것이 언제 성사되여 빛을 보겠는가 하는것이다.

그렇게도 북남관계가 악화되는것을 진심으로 우려하였다면 판문점선언이 채택된 이후 지금까지 2년이 되는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런 법같은것은 열번 스무번도 더 만들고 남음이 있었을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조선의 보수패당은 그 무슨 《대북저자세》와 《굴복,굴종》을 운운하며 당국을 향해 피대를 돋구고있는가 하면 인간추물들은 6.15에도,6.25에도 또다시 삐라를 살포하겠다고 게거품을 물고 설쳐대고있다.

감히 우리의 최고존엄을 향한 모독과 중상도 멈추지 않고있다.

뒤다리를 잡아당기는 상전과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집안에서 터져나오는 그 모든 잡음을 어떻게 누르고 관리하겠다는것인지 모를 일이다.

지금 청와대와 《통일부》,집권여당까지 총출동하여 《백해무익한 행위》니,《엄정한 대응》이니 하고 분주탕을 피우면서도 고작 경찰나부랭이들을 내세워 삐라살포를 막겠다고 하는데 부여된 공권력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그들이 변변히 조처하겠는지 알수 없는 노릇이다.

뒤늦게 사태수습을 한것처럼 떠들지만 어디까지나 말공부에 불과한 어리석은 행태로만 보인다.

북과 남이 손잡고 철석같이 약속하고 한자한자 따져가며 문서를 만들고 도장까지 눌러 세상에 엄숙히 선포한 합의와 선언도 휴지장처럼 만드는 사람들이 아무리 기름발린 말을 한들 누가 곧이 듣겠는가.

그런 서푼짜리 연극으로 화산처럼 분출하는 우리 인민의 격노를 잠재우고 가볍기 그지없는 혀놀림으로 험악하게 번져진 오늘의 사태를 어물쩍 넘기려고 타산했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오산은 없을것이며 그것은 오히려 우리에 대한 또 하나의 우롱으로 될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하여 애써 가져보려했던 남조선당국에 대한 신뢰는 산산쪼각이 났다.

말이야 남쪽동네사람들만큼 잘하는 사람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

큰일이나 칠것처럼 자주 흰소리를 치지만 실천은 한걸음도 내짚지 못하는 상대와 정말로 더이상은 마주서고싶지 않다.

이제부터 흘러가는 시간들은 남조선당국에 있어서 참으로 후회스럽고 괴로울것이다.

   

주체109(2020)년 6월 12일

평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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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이 가져온 변화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0/06/1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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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6.15 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되었다.

 

첫 남북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살펴보자  

 

 

◆ 김정일 국방위원장 신드롬이 불다

 

2000년 6월 13일, 평양순안비행장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등장했다. 우리 국민들이 북 지도자를 처음 보게 된 순간이다.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우리 국민들은 북측 지도자의 육성을 처음 들었고, 행동을 보게 되었다.

 

당시 KBS는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알고 보니 너무나 달랐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을 사흘간 지켜본 시민들의 반응입니다. 거침없는 대화, 또 자연스러운 유머가 돋보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언행은 우리에게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또 당혹감마저 주었습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고 한 포털 사이트에 ‘김정일 팬클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당시 이 클럽을 만든 사람은 “북에 대해 뭔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캐릭터가 연예인처럼 멋져 팬클럽을 조직하게 됐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0년 6월 15일 경향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카리스마가 있는 실권자’ ‘화통하고 여유 있는 통치자’ ‘예의 바른 대장부‘….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남녘 사람들의 술자리에서나 대화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단연 최대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그에 대한 치열한 토론까지 벌어지고 있어 ‘김정일 신드롬‘까지 엿보이고 있다. ”아직 미덥지 못하다”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없지는 않지만 부정일변도의 기존 시각을 벗고 ‘호감을 갖고’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호감은 다양한 이벤트 행사로도 표현되기도 했다.

 

어느 결혼정보회사는 두 정상의 닮은꼴 얼굴을 찾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이 미팅에서 만난 커플이 결혼할 경우 ‘금강산 여행권’을 선물로 주는 행사였다. 또 어느 한의원은 정상회담 기간 “양측 정상과 가장 닮은 사람이나 흉내를 똑같이 내는 사람을 뽑아 완치할 때까지 돈을 받지 않고 치료를 해주는” 이벤트를 열었다.

 

2000년 광주의 조선대학교 축제에서는 시민들과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 닮은 사람 찾기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고수머리에 선글라스 착용, 인민복(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입었던 옷)과 비슷한 색깔과 디자인 옷을 입고 나오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는 남북 정상이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추천 서명을 하자는 운동이 일기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호감은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한국방송진흥원이 13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6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남북 정상회담 방송 보도 관련 전화 수용자 조사 결과에서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긍정 평가는 크게 증가했다. “지도력에서 긍정 평가가 20.2%이던 것이 정상회담 후 53.7%로 급상승”했으며 “신뢰도 평가에서도 긍정 평가가 15.1%에 불과 했지만 회담 후에는 51.2%로 크게 올라갔다.” 김대중 대통령 또한 “지도력에 있어서 정상회담 전에는 긍정적인 평가가 60.7%이던 것이 정상회담 후에는 83.3%로 증가했다. 신뢰도 평가에서도 긍정 평가가 57.4%에서 82.3%로 상승했다.”

 

또 한국일보가 의뢰해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는 “95.7%(’대단히’50.4%, ’대체로’45.3%)가 남북 정상회담 성과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정적 이미지가 많이 개선됐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42.3%”로 집계되기도 했다. 

 

분단으로 인해 국민들은 북의 지도자에 대해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2박 3일은 분단 역사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북 지도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없애기는 충분하였다. 그만큼 TV를 통해서 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은 강렬했던 것이다.  

 

◆ 정부, 민간 모든 분야에서 교류협력 진행돼

 

6.15 공동선언 4항은 교류협력의 내용이 담겨 있다.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후에는 남북 사이에서 다방면적으로 교류협력이 진행되었다. 정부 사이의 각종 회담을 비롯해 민간급 사이의  교류와 협력이 매우 폭넓게 진행되었다. 

 

남북 정부 당국자 회담은 남북 적십자 회담, 남북 장관급 회담, 남북 국방장관급 회담, 남북 군사실무회담, 남북 경제협력을 위한 실무회담 등을 진행했다. 그 외에도 남북전력협력 실무협의회, 남북임진강수해방지 실무협의회, 남북임남댐공동조사 실무접촉, 남북철도·도로연결 실무협의회, 남북해운협력 실무접촉 등등이 진행되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비롯한 주요 국제대회에서 남북은 공동으로 입장을 했다. 그리고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측의 선수단과 응원단이 남측을 찾았다. 

 

민간급 교류도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6월 15일과 8월 15 광복절을 기념해 서울, 평양, 금강산 등지에서 민간단위 행사를 연례적으로 열었으며 종교,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학생, 학술, 언론인 분야 등에서 남북의 민간교류가 진행되었다. 

 

민간 분야에서는 ‘6.15공동선언 민족공동위원회’가 2005년 결성되었다. 6.15 민족공동위원회는 남북해외로 구성되었고, 지역별로 부문별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2005년에는 남측의 대규모 관광객이 대집단예술체조와 공연 ‘아리랑’을 관람하기 위해 방북했다. 관광객들은 아리랑을 관람하고 평양과 백두산 등을 방문했다.      

 

2000년 6.15 선언 이후 정부, 민간 단위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던 교류와 협력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다. 

 

 

◆ 이산가족 상봉 상시로 이루어져

 

남북의 분단으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바로 이산가족이라 할 수 있다. 

 

첫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이었다. 1985년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양측 각기 단장을 비롯하여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50명, 예술공연단 50명, 취재기자 30명, 지원 인원 20명 등 총 151명이 서울과 평양을 동시에 방문하였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은 바로 중단되었으며,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때까지 15년 동안 당국 차원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진전이 없었다.

 

남북은 6.15 공동선언 3항에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그해 8.15를 계기로 서울과 평양에서 1,170명의 이산가족이 만났다. 2000년 8월 1차 이산가족 상봉 이후 2007년 10월까지 16차에 걸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또한 이산가족의 상당수가 고령이기에 장거리 이동이 여의치 않아 남북은 화상상봉을 2003년 합의했다. 화상상봉은 20005년 시작해 2007년까지 7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리고 남과 북은 2008년 7월 12일 이산가족이 상시로 만날 수 있도록 상설면회소를 준공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금강산관광을 중단한 뒤 재개되지 못하면서 실제 상시적인 이산가족 상봉은 진행되고 있지 않다. 

 

◆ 경협의 상징 ‘개성공단’ 문을 열다

 

개성공단은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노동력을 결합해 남북 공동의 번영을 추구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2000년 8월 현대아산(주)와 북의 ‘공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개성공단은 시작되었다. 2002년 11월, 북에 개성공업지구법이 제정되었다. 법적으로 개성공단 건설 및 운영을 공고히 한 것이다.

 

2004년 12월 15일 개성공단 시범단지에서 ‘리빙 아트’ 스테인리스 냄비가 첫 남북경협 제품으로 생산됐다. 개성공단에서 만든 ‘리빙 아트’의 냄비를 서울 롯데백화점에서 판매했는데 냄비 1천 세트가 판매 이틀 만에 다 팔렸다. 당시 국민들이 개성공단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엿볼 수 있다. 

 

개성공단은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처음 입주 업체는 24개에 불과했다. 당시 기업들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던 남북교류에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통신이 연결되고 제품들의 반출이 시작되면서 개성공단은 급속히 성장한다. 1년 만에 1만여 명에 달하는 북측 노동자들이 일하는 대규모 공단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가동 2년도 안 되어 2007년 1월 개성공단 누계생산액이 1억 달러(1천억 원)를 돌파했다. 입주기업에 대한 2차 분양 결과 183개 기업이 분양을 받았다. 그만큼 기업들이 ‘들어가고 싶은 공단’이 되었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은 남북관계만이 아닌 민심과 정치, 경제, 사회생활에서 변화를 이끌어냈다.  

 

20년 전 우리 국민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가 출발하는 순간 박수를 치며 눈물을 흘리며 평양에서 열린 첫 남북 정상회담을 보았다. 비록 남북이 분단되었지만 우리는 같은 민족임을 다시 확인했고, 통일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 평양에서 통일의 노랫소리가 울렸으며, 금강산에서 북측 관광안내원과 함박웃음을 지며 통일을 이야기했다.  

 

6.15 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하며 우리의 힘으로 한반도 평화, 번영, 통일의 희망을 다시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6.15 남북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 http://www.jajusibo.com/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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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김명환 “위기에 나눠 쓸 전 국민 ‘우산’…소득·이윤 걸맞게 부담하면 돼”

이효상·허남설 기자 hslee@kyunghyang.com

 

박원순 서울시장 ·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대담 - 포스트 코로나 시대 노동환경과 대응책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노동환경과 전 국민 고용보험, 기본소득 등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노동환경과 전 국민 고용보험, 기본소득 등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비가 오는데 어느 쪽은 우산을 쓰고 있고 50%의 노동자는 찬비를 맞고 있는 셈인데, 우산을 같이 쓰자고 손을 내미는 행위.”(박원순 서울시장)

“과거에 장마철이 지나면 주기적으로 온 국민이 수재의연금을 냈던 것처럼, 고용보험도 제도화하자는 것.”(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11일 경향신문 이명희 전국사회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에서 고용보험의 필요성을 이같이 설명했다. 감염병 확산에 맞서 방역·생계대책 마련의 최전선에 선 지방자치단체장과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노동조합의 수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첫 열쇳말로 나란히 ‘전 국민 고용보험’을 꼽았다. 실제로 코로나19의 충격파는 노동자, 그중에서도 취약계층 노동자를 덮쳤다.

산업연구원 조사를 보면 지난 3월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약 23만명 중 82%는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노동자였다.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에게 타격이 집중된 데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가 넓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5월 기준 취업자 수는 2693만명인 데 반해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1382만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전 국민 고용보험’을 사회적 의제로 제기했다. 박 시장도 불평등 해법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을 채택하고 ‘기본소득’과 견주며 정책 논의의 장으로 이끌었다.

두 사람은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지금 이 시점이 이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시대의 전환점이며 큰 틀의 개혁을 수반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또 특수고용노동자 등 일하는 사람 전반을 보호하기 위한 고용보험 확대를 우선 과제로 보고, 고용이 아닌 소득과 이윤을 중심으로 한 고용보험제도 개편을 주장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정부 대응과 기본소득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에 대해 “(전 국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 중) 먼저 어디에 집중할지가 선택의 문제일 수는 있지만, (기본소득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박 시장은 “서구에서 확립된 보편적 복지국가의 원칙은 취약계층이나 건강이 악화된 사람들을 지원하자는 것이 원칙”이라며 “이것을 허무는 게 과연 얼마나 우리 사회의 복지국가의 길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50%가 고용보험 미가입
취약계층 타격 가장 커
소득중심으로 요율 책정
기득권층 일부 양보해야
 

자신의 소득 공개 꺼리는
자영업자도 67%가 동의
 

-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위기를 가져왔다. 앞선 위기들과 어떻게 다른가.

박원순 서울시장(이하 박) = ‘BC·AD’(기원전·기원후)라는 말을 쓰지 않나. ‘비포 코로나’(BC·코로나 이전)와 ‘애프터 디시즈’(AD·질병 이후), 코로나가 오기 전과 후의 세상이 판연히 달라진다는 걸 누구나 이해하고 있다. 과거의 익숙했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우리가 돌아갈 과거가 없다는 것이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하 김) =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는 비교적 대안이 명확했다. 경기를 부양하고 금융을 안정화해 기업들의 현금유동성이 확보되면 경기가 활황되는 것인데 이번에는 그렇지가 않다. 경기불황이나 금융불안정과 무관하게 관광호텔업, 음식업, 서비스업, 레저산업, 문화·예술 부문으로 퍼져나가며 이 업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노조가 없고, 통계에도 노동자로 잡히지 않거나 제도적 시스템에 들어와 있지 않기에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에 대한 대안이 없는 게 현실이다.

- 대량실업 위기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 = 민주노총 평가가 야박한 것은 다들 아실 거다. 다양한 시도는 좋지만 기존의 위기 대응 방식으로 대책이 설계된 것 아닌가 싶다. 관성적 경기부양과 금융안정에 치우친 것 같다. 고용유지지원금이 있어도 사업주가 노동자를 해고시키는 게 이득이 되니 신청을 안 하는 사업주가 꽤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지원이 되는데 하청이나 재하청 노동자들은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도 있다. 기업에 대한 지원도 절차가 복잡해 영세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가 엄두를 못 내는 한계점이 있었다. 가장 피부에 와닿았던 것은 가구당 지급했던 긴급재난지원금이다.

박 = 너무 야박하게만 보시면 안 된다. 저는 일단 초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고 본다. 금융시장 안정과 기업 지원, 생계와 고용유지 지원이 이뤄졌는데, 코로나19 초기에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통해 외환시장 안정을 기하지 않았다면 외환위기가 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었다. 200조원에 달하는 기업 융자 공급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었던 지점을 해소한 조치도 의미가 있었다. 생계 대책으로는 지방정부 15곳이 재난 상황에 긴급 생활지원으로 얼어붙은 재래전통시장, 골목상권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

예측 못한 재난 왔을 때
함께 책임지게 제도화
과거 수재의연금처럼
고용안전망 재설계 가능
 

기본소득제 도입도
적극적 시도해볼 필요
 

- 서울시와 민주노총은 ‘포스트 코로나’ 대책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을 꺼냈다. 왜 고용보험인가.

김 = 과거에 장마철이 지나면 주기적으로 온 국민이 수재의연금을 냈던 것처럼, 고용보험도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노동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발생하지 않는 셧다운 상황이나 팬데믹이 주기적으로 온다면, 모두가 함께 재난을 책임지는 것을 제도화해야 한다. 지금 노동시장의 일자리는 한 달에 한 번 월급 받는 것이 아니다. 노동시장에 들어와 있는 사람의 안정성이 얼마나 완벽한가보다 일시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에 대한 대책을 만들어주는 것이 지금으로선 중요하다.

박 = 우리나라 취업자가 약 2700만명인데 50%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외환위기 때 국난을 극복한 것은 좋았는데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가 있었고, 구조조정이 대규모로 일어났다. 그때까지는 지표상 상대적으로 평등한 국가로 보였다. 그 이후 구조조정당한 사람이 다시는 정규직으로 못 돌아오고 비정규직으로 남게 되면서 여러 지표로 볼 때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가장 불평등한 국가가 됐다. 올 들어 4월까지 207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상당수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 이 상황을 내버려두면 아마도 최악의 양극화에 처하게 된다. 이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전대미문의 위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전에 못했던 개혁이나 새로운 체제를 도입할 수 있다.

- 노사 양측에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용자단체는 벌써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박 = 저항이나 반대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보험은 결국은 취약계층을 위한 것이기에 (개개인의 부담분보다 실직 시) 더 큰 이익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 그 부담분조차도 상당 부분 정부가 책임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보호받던 계층도 일부 양보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노총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정규직 대공장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인데도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가장 먼저 주창하고 사회연대, 사회적 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여러 비판도 받았지만 적어도 이런 일은 고통받는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라 생각한다. 앞으로 정부도 민주노총을 하나의 국정 파트너로 바라본다면 좋겠다.

김 = 쿠팡을 예로 든다면 인프라나 노동력이 사회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을 안 내면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비용을 안 내는 것이다. 이걸 바꿔야 한다는 거다. 스타트업이나 성장한 기업들이 노동권과 관련해 책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

- 고용보험료율 등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개편해나가야 하나.

김 = 현재처럼 노사가 0.8%씩 부담하는 것으론 한계가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추진한다면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일각에서는 국가 재정 투입을 이야기하는데, 재정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압도적 다수 국민이 만든 세금, 사실상 고용보험료를 내는 노동자들이 한 번 더 내는 것이 된다. 관련해서 공무원, 사학연금 대상자 등 직역연금 가입자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도 (해당 노조에) 고민을 좀 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이윤 중심의 변화도 생각해볼 수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경우 투입되는 노동력 대비 이윤은 높다. 한국 사회는 중소·중견기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수출 대기업은 낮다. 원청인 삼성 반도체가 많은 수익을 낸다면 거기에 걸맞게 고용보험료도 부담해야 한다.

박 = 기본적으로 산업구조와 고용구조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플랫폼노동자의 경우 전통적 의미의 고용주가 있는 것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 투잡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사람을 포괄하려면 고용보험도 과거 고용 중심 체제에서 소득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 사업주 부담분은 이윤을 기준으로 책정되어야 한다. 현재는 고용을 많이 하면 보험료를 많이 내기에 고용을 덜 하거나 근로계약을 회피하는 경우가 있다. 이윤 중심으로 바꿔야 고용친화적으로 고용을 더 하도록 권장할 수 있다.

- 일부 자영업자는 소득 공개 등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박 = 고용보험은 결과적으로 자영업자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만큼 자영업이 자주 위기에 처하는 곳이 없다. 폐업률도 굉장히 높다. 그 사각지대를 메워 사회안전망을 만들자는 것이다. 일자리위원회의 최근 조사를 보면 자영업자 67%도 고용보험 가입에 동의하고 있다. 보험료는 자영업자 본인이 부담하는 게 맞지만 처음부터 내게 하지 않고 정부가 다른 용도로 쓰는 예산을 전용할 수 있다고 본다. 가입자가 많아지면 보험료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김 = 경제위기는 노동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노동자가 소비하지 않으면 자영업에도 영향을 끼친다. 모두가 위기에 대한 책임을 나눠갖는 게 중요하고, 책임을 나눠갖는 비율은 당연히 똑같지 않을 거라고 본다.

-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 사이에 논쟁 아닌 논쟁이 있다.

김 =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현금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과 모든 국민이 일할 수 있도록 실업급여와 교육훈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은 서로 영역이 다르다. 코로나19 재난 위기 이후에 먼저 전 국민 고용보험이 중요한 기둥으로 세워져야 할 것 같다. 두 번째는 노동기본권이 제대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 또 사회적 변화, 노동시장 변화 등을 봤을 때 기본소득 도입도 적극 시험해볼 만한 것 아닌가 싶다.

박 = 전 국민 기본소득이든 전 국민 고용보험이든 정책적 논의가 활발해지는 건 다행스럽다. 이런 사회적 논쟁을 할수록 정파적 이익보다는 국민의 미래를 놓고 생산적·정책적 논쟁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다만 과거 시민운동을 할 때와 달리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유한한 재원과 환경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성인 인구 4000만명에게 월 5만원씩 지급한다면 1년에 24조원이 투입된다. 이 돈을 실직자 200만명에게 쓴다면 월 100만원씩 연간 1200만원을 지원할 수 있다. 결국 시민 세금이고 혈세인데 어디에 쓰느냐가 중요하다. 기분에 따라 쓸 것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 서구에서 확립된 보편적 복지국가의 원칙은 취약계층이나 건강이 악화된 사람들을 지원하자는 것인데, 이것을 허무는 게 과연 얼마나 우리 사회의 복지국가의 길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김 = 먼저 어디에 집중할지가 선택의 문제일 수는 있지만, (기본소득을) 배제할 수는 없다.

박 = 재난 시기에 한 번은 좋았다. 기본소득은 굉장히 환호할 만하다. 하지만 전 국민에게 월 10만원씩 준다면 연간 62조원이 소요되는데 현재 우리가 투자하는 복지재원과 같다. 취약계층, 장애인, 어르신, 아동을 지원하던 비용을 기본소득에 다 써야 하는 셈이다. 저도 청년과 농민에게는 지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재정상 불가능했다. 따져보면 달라진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6120600075&code=940702#csidxf36d4eb4acbd22dbbe71626a9d9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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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춘 삶을 살고 있는가?

김용택 | 2020-06-12 09:06: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 1조다. 헌법 1조가 이제는 진부한 얘기가 됐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익숙한 단어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지만 나는 민주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민주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민주적인 생활을 실천하고 있을까? 아무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해도 나부터 민주적인 삶을 살지 않고 있다면 그런 민주주의는 법전에나 있을 뿐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내 몸은 나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생활양식은 나의 것인가? 내 머리 속에는 내가 아닌 전통적인 관습과 학자들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 준 가치관과 사고방식 그리고 규범과 생활태도, 생활양식이 나의 삶이 되었다. 민주주의라는 생활양식도 그 중의 하나다. 진부할 정도로 익숙한 말 민주주의는 내 삶 속에 어디까지 와 있을까?

“제가 생각했을 때 실패한 삶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만을 만족시키다가 끝나는 삶입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 말만 듣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선생님 만족에만 따르며 사회에 나와서는 상사에게 잘 보이려 하고 결혼한 후에는 배우자와 아이들에게만 맞춰주는 삶, 이런 것이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미>라는 소설의 작가로 알려진 프랑스 곤충학자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한 말이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의 저자 김승호는 “이웃의 평판에 눈치를 보고 시류에 따라 처지를 바꾸고 만나는 사람에게 모두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남의 말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바꾸면 결국 억압되어 모든 것에 지배당하고 낮은 대우를 받고 불행해진다.”고 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김승호의 말을 한마디로 줄이면 ‘내 속에는 내가 없다’는 뜻이다. 자신의 인생을 내가 아닌 남이 만들어 준 가치관 생활양식 전통이니 관습이니 사회적 규범에 맞추어 살고 있는 것이다.

민주시민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태도,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삶의 태도와 주인의식, 관용의 정신, 법과 규칙을 준수하는 태도, 공동체 의식’을 갖춘 사람이다. 나는 이런 민주적인 가치관을 가진 삶을 사는가? 혹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 아집, 흑백논리, 표리부동, 왜곡, 은폐…’와 같은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합리적 사고’와 ‘대화와 토론 과정의 중시’, ‘관용정신’, 그리고 다수결에 의한 의사 결정을 존중하는 생활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엊그제 문재인대통령은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면서 ‘국민으로서의 권한을 많은 곳에서 행사하지만, 국민 모두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지 우리는 항상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헌법에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어도 내가 민주시민으로서 가치관과 자질을 갖추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구성원인 국민들이 민주적인 삶을 살지 못하다면 민주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사회적인 존재로 산다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삶의 양식이 민주주의인가의 여부가 문제다. 나는 나인데 내 속에 1천 년 전 주희라는 송나라학자의 성리학에 마취되어 있다면 내 삶은 민주적일까? 우리 집은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가정인가?

「교육법」 제1조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인간을 길러내는데 내 삶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삶”을 살라고 강조한다. 나는 민주시민으로서 자질과 자세를 갖춘 민주시민인가? 민주시민으로 살고 있는가?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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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부의장 내정된 정진석 의원님, 1호 법안이 이게 뭡니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6/12 10:30
  • 수정일
    2020/06/12 10: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0.06.12 07:42l최종 업데이트 20.06.12 07:42l
 

[주장] '4대강 파괴법' 내놓은 정 의원의 10년 전, 1년 전, 그리고 오늘
정진석 미래통합당 의원이 제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내놓은 '4대강 보 파괴 저지법'은 사실상 '4대강 파괴법'이다. 지난 9일 발의한 '하천법' 일부 개정안은 4대강 보로 죽어가는 강을 방치하자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개정안 제안 이유에서 이 법을 통해 4대강 보에 손대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혔다.
"현행법상 4대강 보와 같은 국가 하천시설을 철거할 경우 별도 절차나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하천시설이 무분별하게 철거되는 문제가 있다."
 

당선자 총회 참석한 정진석 미래통합당 정진석 당선인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선자 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 당선자 총회 참석한 정진석 미래통합당 정진석 당선인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선자 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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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정진석 정무수석의 '돌격 명령'

정 의원의 문제의식에 반론을 제기하기 전에 먼저 짚어두어야 할 게 있다. 10년 전인 2010년 4대강사업 예산 날치기 통과 때 정 의원은 이명박 청와대의 정무수석이었다. 날치기를 한 달 앞둔 그해 10월 31일 자기 트위터 계정에 한나라당 의원들을 향해 사실상 '돌격 명령'을 내렸다.

 

"4대강 사업이 강살리기 사업이냐 대운하 사업이냐의 주장에 대해 정치인들은 정치생명을 걸어야 한다."

당시 대운하 논란이 일자, 강 살리기 사업이라고 못을 박은 것이다. 현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이 의원들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면 여기저기서 난리가 나겠지만, 그 때는 삼권분립을 대놓고 무시할 정도의 무소불위 정권이었다. 정 의원은 10년이 지난 현재 보 철거를 우려하고 있지만, 당시 이명박 정권은 멀쩡한 법을 어기면서 막무가내로 4대강사업을 밀어붙였다.

가령 국제대형댐위원회(ICOLD) 정의에 따르면 16개 보는 '댐'이다. 이를 '보'로 우긴 것은 복잡한 댐 건설 절차를 회피하려는 꼼수였다. 법을 뜯어고쳐 예비타당성 조사도 받지 않았다. 통상 1~2년 걸리는 환경영향평가를 3개월여 만에 해치웠다. 환경정책기본법 25조 사전환경성 검토를 하지 않았고, 하천법 23조 수자원장기종합계획 수립, 24조 유역종합치수계획의 수립, 25조 하천기본계획도 건너뛰었다.

선진국에서는 댐 하나를 세우는 데 10여 년이 걸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년에 만에 16개 댐을 세운 것은 이같은 불법과 탈법으로 가능했다. 전광석화와 같은 4대강 속도전으로 사망한 인원도 23명에 이른다. 청강부대라는 군대까지 '삽질'에 동원했고, 국정원과 기무사까지 나서서 이에 반대하는 학자와 민간인들을 불법 사찰하면서 탄압했다.

정 의원은 이번에 발의한 하천법 개정안에 "하천시설을 철거할 때 농·어업 등 산업, 거주지, 환경, 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평가를 포함한 철거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면서 "철거계획 등을 수립하기 전 공청회를 거쳐 주민과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반영하도록 하는 등 절차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 의원은 '4대강 보 파괴 저지법'을 발의하기 전에 강에 기대어 살던 농민과 어민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이들의 삶의 터전을 허물었던 과거부터 반성해야 했다. 법을 어기고 막대한 혈세를 쓰면서 4대강의 환경생태계를 죽인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무도했던 과거부터 부정해야 했다. 그래야만 그나마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1년 전] "물 부족, 우리 농민 다 죽인다" 했는데... 거짓말
     
정 의원이 10년 전의 일을 잊었다면, 1년 전은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 2019년 2월 말 4대강조사평가기획위원회(이하 4대강기획위)가 '금강-영산강 보 처리 여부'를 제안한 뒤 자신의 지역구인 공주 일대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4대강기획위가 '세종보 해체, 공주보 부분 해체'를 제안하자 공주 시내에 100여장에 이르는 새빨간 글귀의 현수막이 도배됐다.

"물 부족 대책 없는 공주보 철거는 우리 농민 다 죽인다"
"농업용수-홍수-가뭄 대책 없는 금강보 철거는 반대한다"

당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하수와 농업용수 부족을 지적하면서 "공주시민의 뜻을 받들어서 모든 힘을 다해서 보 철거를 막아낼 각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보다 앞서 공주보를 방문한 나경원 원내대표도 "공주보 해체는 농업용수, 우리 농민들의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라고 성토했다. 그 때 정 의원은 자유한국당 의원 일행을 이끌었다.

하지만 공주보 수문은 2018년 3월부터 전면 개방됐다. 해체했을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수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지만, 그해 농번기 때에도 농업용수 부족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와 함께 찾아간 공주의 쌍신뜰은 '물의 나라'였다. 농업용수 부족 지역으로 꼽은 옥성리, 상서뜰에도 농업용수가 철철 넘쳤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가뭄은 물론 홍수도 발생하지 않았다. 정 의원이 주장했던 4대강 보의 건설 목적 중 이수와 치수 효과가 없다는 것은 정부의 과학적인 모니터링 작업에서도 확인됐고 감사원 감사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사실 이 지역을 포함해 4대강 본류 지역은 4대강 사업 이전에도 홍수와 가뭄이 없었다. 이치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4대강사업 목적 자체가 사기였던 셈이다.

정 의원은 "무분별한 철거"를 우려했지만, 정부가 4대강기획위의 당초 제안대로 공주보의 공도교 기능만을 살린 채 부분해체한다고 해도 무분별한 게 아니라 과학적이며 이성적인 결정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수문 연 뒤 드러나는 4대강의 진실

이제 남아 있는 4대강 보의 당초 건설 목적은 수생태계 개선이다. '4대강살리기 사업'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정 의원이 공주보 부분해체 반대를 천명했을 때에도 수문을 닫아서 강을 살리겠다는 말은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수문을 닫았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에는 물고기 떼죽음과 큰빗이끼벌레, 녹조 등이 창궐했지만, 수문을 개방한 뒤에 강이 살아나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4~5cm 크기의 멸종위기종 1급 흰수마자가 14개체가 잡혀서 방생했다.
▲  4~5cm 크기의 멸종위기종 1급 흰수마자가 14개체가 잡혀서 방생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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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최근 공주보 상류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 1급 물고기인 흰수마자이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고유종이다. 공주보 수문을 개방한 지 3년 만에 멸종위기종이 되돌아왔다. 작년에는 공주보보다 먼저 수문을 전면 개방한 세종보 부근에서도 흰수마자가 잡혔다. 수문을 열자 자연생태계가 예전처럼 돌아오고 있다는 징표이다.

[관련 기사] '녹조라떼' 가득했는데... 수문개방 후 나타난 이 물고기

흰수마자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된 곳은 4대강사업 이후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던 곳이다. 그 뒤 큰빗이끼벌레와 녹조가 창궐했고, 박근혜 정권에서도 공주보 수문을 계속 닫아두자 강바닥에 쌓인 시궁창 펄에서 최악 수질 4급수 지표종인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가 드글거렸던 곳이다.

아래 동영상은 김종술 기자가 최근에 찍은 세종보 상류 자갈밭에서의 흰목물떼새 부화 장면이다.
 

흰목물떼새도 지구상에 1천 마리~2만5천 마리 정도만 살아남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분류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사업을 통해 철새가 날아오는 강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녹조물이 가득하고 시궁창 냄새가 나는 강에 철새가 찾아올 리 없었다. 세종보 수문을 열고 자갈밭이 드러나자 비로소 철새가 날아들었다.

[관련 기사]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의 숨 막히는 부화 장면

이뿐만이 아니다. 아래 사진에서 시원하게 드러난 모래톱도 최근 백제보 수문을 열기 시작한 뒤에 선보인 모습이다.

4대강사업 이전에는 금강 곳곳에 산재한 모래톱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어른들이 멱을 감았다. 하지만 4대강사업 이후 수문을 닫아둔 뒤에는 모래톱이 모두 물속에 잠겨 접근 금지 구역으로 변했고, 녹조물만 가득했다. 수문을 열자 시민들의 놀이터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과 공존하는 강은 흐르는 강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공주보 하류 유구천과의 합수부에 생긴 금강의 모래톱
▲  공주보 하류 유구천과의 합수부에 생긴 금강의 모래톱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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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문제] 4대강 보에 막대한 세금 쏟아부어야할까

'4대강 파괴법'을 발의한 정 의원은 이번에도 돈 문제를 꺼내들었다. 정 의원은 보도자료에서 "막대한 국민 세금을 들여 지은 국가기반시설을 또다시 국민 세금을 들여 부숴버리겠다는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정 의원에게 되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매년 쓸데없는 보에 투입하는 막대한 유지보수비는 누구 돈인가?

정 의원의 말대로 공주보는 세금 1100억 원을 들여 건설했다. 하지만 이수와 치수에 무용지물일 뿐만 아니라 강의 생태계도 망치는 것으로 증명됐다. 더군다나 녹조 저감 등을 위해 수문을 열고 있기에 공주시민들이 이용하는 공도교 기능을 빼면 존재 가치도 상실했다. 4대강기획위가 공도교를 살린 채 부분 해체 방안을 제시한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였다.

이 애물단지의 1년 유지보수비는 무려 35억 원이다. 정 의원은 그대로 두는 게 세금을 한 푼도 들이지 않는 방법이라는 착시 효과를 노렸지만, 그건 속임수이다. 보를 세우는 데 막대한 비용을 낭비한 데 이어 공주보 준공 이후 200억 원이 넘는 세금을 강에 쏟고 있다. 4대강사업 전체를 유지보수하는 데에는 매년 수천억 원의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

적어도 정 의원이 상식을 가진 국회의원이라면 4대강을 정치에 이용할 생각을 접고 과학적으로 드러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 의원이 공감 능력을 가졌다면 최근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을 강을 망치는 데 정략적으로 사용할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지난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사실상 완패한 것은 20대 국회 내내 정략적으로 국정을 발목 잡은 것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10년 전 이명박 정권의 불법과 탈법을 지키기 위해 1년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의원들이 4대강 보로 우르르 달려가 딴지를 거는 등의 구태를 더 이상 보이지 말라는 국민의 엄중한 명령이었다.

21대 국회 야당 몫 국회부의장으로 내정된 정 의원은 20대 국회의 퇴행을 되풀이할 게 아니라 이런 민심부터 살펴야 했다. 혈세만 낭비하는 '4대강 파괴법'을 제1호 법안으로 발의할 게 아니라, 언제 끝날지도 모를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정치적 행보부터 보였어야 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 의원은 21대 국회 원구성이 완료되기 전에 민심을 배반하고 4대강도 죽일 제1호 법안을 스스로 철회하시라.
  
나주보 향하는 정진석 의원 자유한국당 정진석(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당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한 후 나주보를 방문하기 위해 차량에 오르고 있다.
▲ 나주보 향하는 정진석 의원 자유한국당 정진석(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 의원이 지난해 4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당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한 후 나주보를 방문하기 위해 차량에 오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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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냉각시킨 대북전단에 “엄정 대응” 천명한 청와대

청와대 NSC 사무처장 “한반도 평화와 번영 위한 노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20-06-11 18:39:19
수정 2020-06-11 18: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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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근 NSC 사무처장이 11일 오후 대북 전단 및 물품 살포 관련 브리핑을 위해 굳은 표정으로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2020.06.11.
김유근 NSC 사무처장이 11일 오후 대북 전단 및 물품 살포 관련 브리핑을 위해 굳은 표정으로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2020.06.11.ⓒ뉴시스 
 
청와대가 일부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엄정 대응' 방침을 밝히며 제동을 걸었다. 대북 전단 살포에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남북관계가 2년여 만에 원점으로 돌아갈지도 모를 국면에 처하자 청와대가 직접 수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김유근 사무처장(국가안보실 1차장)은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 전단 및 물품 등의 살포 관련 정부 입장문'을 발표했다.

김 사무처장은 대북 전단 및 물품 살포를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중지하기로 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제2차 회의 공동발표문(1972.11.4) ▲남북기본합의서 제1장 이행 부속합의서(1992.9.17) ▲서해해상의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2004.6.4) ▲6.4합의서의 부속합의서(2004.6.12) ▲판문점 선언(2018.4.27) 등이 근거다.

1972년에는 "대남·대북 방송, 상대방 지역에 대한 전단 살포를 그만두기로 했다"는 합의를 이뤘고, 1992년에는 "남과 북은 언론, 삐라(전단) 및 그 밖의 다른 수단, 방법을 통하여 상대방을 비방, 중상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 이어 2004년에도 "방송과 게시물, 전광판, 전단 등을 통한 모든 선전활동과 풍선, 기구를 이용한 각종 물품 살포를 중지한다"는 남북 간 합의가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2018년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고 천명했다. 구체적으로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한다는 내용까지 담겼다.

이에 대해 김 사무처장은 "우리 정부는 오래전부터 대북 전단 및 물품 등의 살포를 일체 중지했고, 북측도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후 대남 전단 살포를 중지했다"며 "이러한 남북 합의 및 정부의 지속적 단속에도 불구하고, 일부 민간단체들이 대북 전단 및 물품 등을 계속 살포하여 온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행위는 남북교류협력법, 공유수면법, 항공안전법 등 국내 관련법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남북 합의에 부합하지 않으며,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사무처장은 "정부는 앞으로 대북 전단 및 물품 등의 살포 행위를 철저히 단속하고, 위반 시 법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어 "민간단체들이 국내 관련법을 철저히 준수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나아가 김 사무처장은 "우리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고 우발적 군사충돌을 방지하기 위하여 남북 간의 모든 합의를 계속 준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청와대의 입장은 오후 3시부터 열린 NSC 상임위원회의를 마친 뒤 나온 것이다. NSC는 외교·통일·안보 정책의 컨트롤타워라고 볼 수 있다.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이날 회의에는 대통령비서실장, 외교부·통일부·국방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국무조정실장, 국가안보실 1·2차장 등 NSC 상임위원뿐만 아니라, 행정안전부·해양수산부 장관도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북자 단체가 대북 전단을 공중에 띄워 살포했을 뿐만 아니라 쌀과 이동식저장장치(USB), 구충제 등을 페트병에 담아 바다에도 띄우고 있어 행안부와 해수부의 단속 모두 필요한 상황이다.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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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美에 대가없는 치적 선전감 주지 않겠다"

리선권 외무상, 싱가포르북미정상회담 2주년 담화..'핵전쟁억제력 강화'방침 재확인(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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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12  07: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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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는 아무러한 대가도 없이 미국 집권자에게 치적 선전감이라는 보따리를 던져주지 않을 것이다."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2주년을 맞아 북한은 12일 리선권 외무상의 담화를 통해 새로운 대미관계의 방향을 밝혔다.

나아가 "우리 공화국의 변함없는 전략적 목표는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확실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핵전쟁억제력 강화 방침을 결정한 지난달 24일(보도일자)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 결과를 재확인한 것이다.

리 외무상은 이날 '우리가 미국에 보내는 대답은 명백하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우리 최고지도부와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관계가 유지된다고 하여 실지 조미관계가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는데 싱가포르에서 악수한 손을 계속 잡고있을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면서 "지금까지 현 (트럼프)행정부의 행적을 돌이켜보면 정치적 치적쌓기 이상 아무 것도 아니"라고 혹평했다.

지난 2년간 북은 북부핵시험장 완전폐기, 수십구의 미군 유골송환, 억류 미국인 석방 등 세기적 결단을 내리고 선제적인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조치 등 전략적 용단을 내렸지만, 미국은 이같은 조치에 '미사일시험이 없으며 미군 유골들이 돌아왔다', '억류되었던 인질들도 데려왔다'고 번번이 사의를 표시하면서도 대북적대시정책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미국이 보유한 각종 핵 전략폭격기, 항공모함등이 동원되어 북을 직접 겨냥한 한미군사연습이 수시로 진행되고, 남측에 수백억 달러 규모의 첨단 군비증강이 이루어지는 사례를 열거하면서 지난 2년간 미국이 합의한 북미관계 개선, 조선(한)반도 평화보장과는 달리 정세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미 행정부는 천만부당하고 시대착오적인 행위로 일관된 2년간을 통하여 저들이 떠들어온 조미사이의 '관계개선'은 곧 제도전복이고 '안전담보'는 철저한 핵선제타격이며 '신뢰구축'은 변함없는 대조선고립압살을 의미한다는 것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였다"며 그동안 쌓인 불신을 털어놓았다.

이어 "우리 최고지도부는 역사적인 당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확대회의에서 조성된 대내·외 정세에 부합하는 국가핵발전전략을 토의하고 미국의 장기적인 핵전쟁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나라의 핵전쟁억제력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 엄숙히 천명하였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우리가 미국에 보내는 대답은 명백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리선권 외무상 담화--(전문)

력사적인 6.12조미수뇌회담이 있은 때로부터 두돌기의 년륜이 새겨졌다.

732일이라는 이 짧지 않은 나날들과 더불어 흘러온 조미관계를 놓고 세계는 무엇을 목격하였으며 력사는 어떤 교훈을 남겼는가.

명백한것은 두해전 이 행성의 각광을 모으며 한껏 부풀어올랐던 조미관계개선에 대한 희망은 오늘날 악화상승이라는 절망으로 바뀌였고 조선반도의 평화번영에 대한 한가닥 락관마저 비관적악몽속에 사그라져버렸다는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적대적인 조미관계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고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가려는 조미 두 나라 인민들의 념원은 예전과 다를바 없지만 조선반도정세는 날을 따라 악화일로로 치닫고있다.

지난 2년간의 조미관계가 그것을 반증해주고있다.

우리 최고지도부가 취한 북부핵시험장의 완전페기,수십구의 미군유골송환,억류되여있던 미국국적의 중죄인들에 대한 특사실시는 두말할것없이 세기적결단으로 되는 의미있는 조치들이였다.

특히 우리는 조미사이의 신뢰구축을 위해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중지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하는 전략적대용단도 내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한 이 특단의 조치들에 번번이 깊은 사의를 표시한 미국이 합의일방으로서 지난 2년간 도대체 무엇을 해놓았는가를 주목해보아야 한다.

《미싸일시험이 없으며 미군유골들이 돌아왔다.》

《억류되였던 인질들도 데려왔다.》

미합중국을 대표하는 백악관주인이 때없이 자랑거리로 뇌까려댄 말들이다.

말로는 우리와의 관계개선을 표방하면서 실지로는 정세격화에만 광분해온 미국에 의해 현재 조선반도는 조미쌍방이 합의한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보장과는 정반대로 핵전쟁유령이 항시적으로 배회하는 세계최대의 열점지역으로 화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의 핵선제공격명단에 우리 공화국이 올라있고 미국이 보유하고있는 각종 핵타격수단들이 우리를 직접 겨냥하고있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남조선지역 상공으로 때없이 날아들어 핵타격훈련을 벌리고있는 핵전략폭격기들과 그 주변해상에서 떼지어 돌아치고있는 항공모함타격집단들은 그 대표적실체들이다.

미국은 남조선군을 공격형의 군대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무려 수백억US$규모의 스텔스전투기와 무인정찰기와 같은 현대적인 첨단장비들을 대대적으로 들이밀고있으며 남조선당국은 이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떠섬겨바치고있다.

미행정부는 천만부당하고 시대착오적인 행위로 일관된 2년간을 통하여 저들이 떠들어온 조미사이의 《관계개선》은 곧 제도전복이고 《안전담보》는 철저한 핵선제타격이며 《신뢰구축》은 변함없는 대조선고립압살을 의미한다는것을 숨김없이 드러내보였다.

제반 사실은 장장 70여년을 이어오는 미국의 뿌리깊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이 근원적으로 종식되지 않는 한 미국은 앞으로도 우리 국가,우리 제도,우리 인민에 대한 장기적위협으로 남아있게 될것이라는것을 다시금 명백히 실증해주고있다.

현시점에서 이런 의문점이 생긴다.

우리 최고지도부와 미국대통령과의 친분관계가 유지된다고 하여 실지 조미관계가 나아진것은 하나도 없는데 싱가포르에서 악수한 손을 계속 잡고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것이다.

지금까지 현 행정부의 행적을 돌이켜보면 정치적치적쌓기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다시는 아무러한 대가도 없이 미국집권자에게 치적선전감이라는 보따리를 던져주지 않을것이다.

실천이 없는 약속보다 더 위선적인것은 없다.

우리 최고지도부는 력사적인 당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확대회의에서 조성된 대내외정세에 부합하는 국가핵발전전략을 토의하고 미국의 장기적인 핵전쟁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나라의 핵전쟁억제력을 더욱 강화할데 대하여 엄숙히 천명하였다.

우리 공화국의 변함없는 전략적목표는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적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확실한 힘을 키우는것이다.

이것이 6.12 2돐을 맞으며 우리가 미국에 보내는 답장이다.

주체109(2020)년 6월 12일

평 양

(수정-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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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편이냐 이용수 편이냐? 그 잔인한 물음

[주장] 위안부 운동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20.06.11 07:52l최종 업데이트 20.06.11 09:34l김옥영(news)

 이청준 소설 <소문의 벽>의 주인공은 소설가 박준이다. 그는 '전짓불'과 관련한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6.25가 터지고 나서 그의 고향 마을에는 남한의 경찰과 북한의 공비가 뒤죽박죽으로 찾아들었다.

어느 날 밤, 식구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갑자기 방문이 열어젖히며 눈이 부시도록 밝은 전짓불이 들이닥쳤다. 정체 모를 그들은 전짓불을 얼굴에 비추며 어머니에게 누구 편이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할 수 없었다. 전짓불 뒤에 가려진 사람이 경찰인지 공비인지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박준은 전짓불 뒤에 가려져 얼굴이 보이지 않는 그와,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절망적인 순간을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한다. 그것은 그에게 죽음보다 더 깊은 강박감이 되어버렸다.

출판사 리뷰는 <소문의 벽>이 사회적 통념이 가진 폭력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매우 커다란 힘을 가지고 우리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말이다.

수많은 시간이 흘렀고 정권도 바뀌었다. 작가 이청준조차 세상을 떠났지만, 유감스럽게도 '전짓불' 뒤에서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는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모든 맥락은 거세되고 오직 '누구의 편'만이 기준이 되는 세상. 그 세상이 지금 너는 '윤미향의 편이냐?', '이용수의 편이냐?'를 묻고 있다.

'편 가르는 세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7일 대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5월 7일 대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미향 국회의원의 기부금 횡령 의혹을 제기하며 수요집회 불참을 선언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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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편'이 불편한 것은, '편'을 넘어서는 사고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객관적 사고'를 하기 어려운 것이다. 자기 편의 누군가가 다른 편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고 여겨질 때, 이 폐해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금 유용 의혹 등 일련의 사태는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을 또 한 번 재현하고 있다. 객관적 사고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검찰이 기소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 신문에 났으나 사실이 아닌 것을 그렇게 무수히 보고도 이번에도 또 그러고 있는 걸 보면, 우리의 학습 능력은 정말 형편없는 것 같다. 각 진영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기사만 골라 확증편향하는 양상도 변함이 없다.

 

 사실이야 어떠하든 누구의 편이 되고 싶은 이들의 확대해석과 과대유추가 난무한다. 미안하게도 이것은 윤미향 전 대표에 대해서나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서나 마찬가지다.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유추도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지극히 단순한 진리다. 그 의혹과 유추가 마음에 들어 침소봉대하고 싶더라도, 자신의 눈으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면 잠시 멈추고 확증을 유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검찰 혹은 언론에 '처형'할 권리를 마음대로 쥐여주게 되는 것이다.

그때 그 처형의 공범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들의 권력은 우리가 준 것이다. 우리가 너무도 쉽게 그들이 제기한 의혹과 유추에 동조함으로, 스스로 그들의 도구가 됨으로써 말이다.

잊지 말자. 이 사실에 대한 날카로운 자성 없이는 검찰과 언론의 개혁은 언감생심 요원할 뿐이다. 또한 그러한 자성 없이는 누구 편이냐고 묻는 전짓불의 공포도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지금 이 사태가 제기하는 핵심적인 의제는 '윤미향 전 대표가 정당하냐?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이 정당하냐?'에 있지 않다. 개개 사실에 대한 깨알 같은 의혹들은 이미 매체의 선정적인 가십거리로 전락했다. 수사가 시작되었으니 범법적 부정이 있다면 그것은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 사람이 지적한 대로 '위안부 운동의 방향성'이다. 아마도 오늘의 사태는 이 운동의 변곡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나는 어느 편에선가 이런 어려운 시기에 정의연에 비판을 더하지 말라는 말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운동 조직은 이런 시기가 아니고서는 비판이 외부화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상황을 모르고, 안에서는 비판이 있었어도 다 묻혀왔다고 본다. 그러니 이 사태를 더 생산적인 운동의 계기로 만들려면 이유 있는 비판들이 겸허하게 수렴되어야 한다.
   
'피해자 중심' 아닌 '시대정신'과 부합하는 쪽으로 움직여야 옳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제1442차 일본군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정의기억연대 주최로 열렸다.
▲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제1442차 일본군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정의기억연대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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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의연이 지향해온 위안부 운동을 지지한다. 이용수 할머니가 수요집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해서 수요집회가 폐지되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정의연의 이전 활동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위안부의 인권과 일본의 책임을 묻는 운동이 부정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위안부 인권 운동을 당사자에 국한된 성폭력 피해 사건과 동일시하여 '피해자 중심주의', '당사자주의'로만 보는 것을 반대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참혹한 고통과 기나긴 트라우마의 시간을 이해하고, 운동의 일선에 나서준 그분들의 용기와 의지에 감사하며, 그분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의견을 존중하는 것과 그 '의견대로' 단체가 운영되어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늘 일치되지는 않는다. 그럴 때 단체의 운동은 피해당사자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부합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 운동이 지닌 역사적 성격과 범인류적 지향성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물론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설득과 운동 속에 그들을 어떻게 위치지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단체의 몫이다.

우리는 일본에 사적 복수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과거 범죄행위를 명백히 밝힘으로써, 미래에도 지구상의 어떤 지역에서도 통용되어야 할 가치 규범을 확립하려는 것이다. 전쟁 시 성폭력은 범죄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므로 30년 동안 진상규명, 사과,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며 이후에도 요구되어야 한다. 범죄 당사자가 범죄를 인정할 때까지 이 요구는 유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이 운동은 여성 인권운동일 수밖에 없으며, 전 세계 여성과 소통하고 연대하고 확장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일각에서 말하듯, 정의연의 운동이 '이용수 할머니의 뜻에 맞았느냐?' 라는 단순한 잣대로 평가를 하는 것은 실로 곤란하다. 운동 자체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며, 이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그 위에서 새로운 미래가 도모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사회 운동의 과제는 대중이 변해가는 과정을 만들어내는 것
  
해명 나선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인이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활동 기간 기부금 유용 등 회계 부정 의혹 등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해명 나선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인이 5월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활동 기간 기부금 유용 등 회계 부정 의혹 등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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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근본적으로 시민사회단체의 현역 활동가들이 정계로 진출하는 것을 반대한다. 시민사회단체의 역할과 정당인의 역할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사자가 정치적 역량이 있니 없니 하는 문제와는 아무 상관 없다. 단지 시민사회운동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고유의 목소리로 정치권을 압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보정권이 들어서면서 특히 곤혹스러워지는 문제다. 진보정당과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는 분명 '어제의 동지'였으나 그것이 영원한 관계가 될 수는 없다. 정권의 길과 시민운동의 길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시민사회단체의 대표들이 특정한 정당에 영입되어 정치 일선에 계속 진출한다면 그 단체가 그 정치진영과 유착하지 않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정치가 단체의 독자성을 구속할까 두려운 것이다. 역으로 해당 시민사회단체의 운동에 우호적인 정권이라면 안 그래도 활발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인데 왜 꼭 단체원이 정치에 직접 나서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정당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민사회단체 대표란 적당한 유명세도 있고, 명분도 있고, 어떤 분야에 대한 전문성도 있어서 선거 때마다 빼먹고 싶은 꼬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에서는 목소리의 항상성을 잃어버릴까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돈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남산 기림터에 새겨진 247명의 위안부 할머니들 명단에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 반목한 몇몇 할머니의 이름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명단을 제공한 것이 정대협(정의연의 전신)이었다고 하니, 이 사실에 고의성이 없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이는 기림터가 세워지던 2004년 이미, 운동의 도덕성으로 권위를 부여받은 정대협이 그 상징자본으로 스스로 권력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확신에 기초한 권력은 자기중심주의로 경직되기 쉽고, 이 경직성이 늘 대상을 도구화한다. 그렇다. 권력화의 유혹은 어디서나 존재한다. 여기에 대한 뼈저린 성찰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후지이 다케시는 지난 2일 '뉴스 이제 그만 봅시다'라는 제목의 <한겨레> 기고글에서 시민사회운동 단체들이 직면한 환경적 배경을 직시하면서도, 그래서 힘들었겠다고 납득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시민사회 운동의 과제는 '대중들에게 호소하면서 바로 그 대중이 변해가는 과정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너는 누구의 편이냐?'고 전짓불을 들이대는 짓은 그만하고, 의혹도 유추도 그만하고, 이제 위안부 운동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나부터 변화해야 할 시간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동의를 받아 싣습니다.

 

소문의 벽 (반양장)

이청준 (지은이), 문학과지성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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