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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의원 “기무사 문건, 필요하다면 박근혜 수사해야”

“기무사 단독 작성? 직무체계상 믿기 어렵다… 기무사·육군본부·수방사·특전사·靑경호실까지 전방위 압수수색해야”

김예리 기자 ykim@mediatoday.co.kr  2018년 07월 07일 토요일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이른바 ‘기무사 촛불 진압 계엄령 문건’과 관련, 청와대 경호실이 관여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김종대 의원은 7일 오전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청와대와의 교감 속에서 이 문건을 작성했을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며 청와대 경호실을 압수수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건에 등장한 국군기무사령부·육군본부·수도방위사령부·특수전사령부를 전방위 압수수색해야 하나,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법적으로도 경호실이 기무사를 비롯한 대전복 임무수행 부대들인 수방사·특전사 등을 통제하게 돼 있다”며 “기무사가 단독으로 문건을 작성했다?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건은 국군기무사령부가 박근혜 탄핵 기각 이후 위수령을 발령하고 계엄 선포 및 유혈 진압한다는 계획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기무사는 서울 시내 탱크 200대, 장갑차 550대, 무장병력 4800명과 특전사 1400명을 투입해 시위 군중을 진압할 계획을 세웠다. ‘폭행을 받아 부득이한 때’를 조건으로 군중을 향해 발포까지 허용했다. 문건은 계엄사령부를 어디에 설치할지, 정부 부처에 군인을 몇 명 파견할지, 언론 검열 업무에 몇 명을 배치할지 등 자세한 사항을 구체화했다.  

 

▲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과 군인권센터 등이 공개한 기무사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방안’ 문서 실행계획
▲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과 군인권센터 등이 공개한 기무사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방안’ 문서 실행계획
 

기무사는 문건에서 계엄사령부의 직제도 편성했다. 문건은 계엄사령관으로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을 내정했다. 김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단순히 법적 검토가 아니라 구체적 실행계획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밝혔다.

문제는 기무사는 본래 계엄령 선포와 아무 관련이 없는 곳이라는 사실이다. ‘합동참모본부 직제’ 제2조 12호에 따르면 계엄령의 주무부서는 합동참모본부다. 전날(6일) 문건을 공개한 군인권센터는 성명에서 “지휘계통 상 독립전투여단급 이상의 부대이동은 합참의장의 권한이며(국군조직법 9조), 국방부 장관의 승인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계엄령에 대한 검토와 준비가 정상적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군 내 비선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 의원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청와대 경호실까지 그게(개입) 됐는지 안 됐는지 조사해 봐야 한다”며 “개입이 안 됐다면 더 큰 문제다. 군이 임의로 했단 얘기이기 때문에 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놓고는 “법에 나오는 직무 체계로 봤을 때 청와대와 경호실 수사가 필수적이다. 수사를 진행한 뒤 (대통령 선까지 수사를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회 청문회도 준비해야 한다”며 “여당이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도 촉구했다. 

군인권센터는 6일 성명에서 “내란음모에 가담한 책임자들을 낱낱이 밝혀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된 인사는 문건을 보고 받은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 문건을 보고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계엄사령관으로 내정된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 병력 동원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홍모 전 수도방위사령관, 조종설 전 특전사령관 등이다. 군인권센터는 “특히 문건 생산에 관여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과 작성자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은 즉시 긴급체포하여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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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정부’임을 하나둘 포기해가는 문재인 정부

[사설] ‘촛불정부’임을 하나둘 포기해가는 문재인 정부
  • 현장언론 민플러스
  • 승인 2018.07.07 15:04
  • 댓글 0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임을 포기해 나가려는 것 같다. 최근 보여준 일련의 반개혁적 조치와 주요 인사들의 퇴행적 발언들은 이런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촛불혁명의 민심은 한국사회를 ‘헬조선’으로 만든 가진 자 위주의 사회경제정책을 혁신적으로 바꿔 국민중심, 서민중심의 사회경제정책을 시행하라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도 이에 부응해 소득주도성장이란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고 이에 걸림돌인 재벌적폐와 관료적폐를 반드시 청산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은 구호만 요란할 뿐 실제 국민소득 신장으로 이어졌다는 보고는 없고, 오히려 소득하위계층의 소득이 더 줄었다는 보도만 나오고 있다. 여기에 적폐 중의 적폐 재벌적폐와 관료적폐에 대해서는 거의 손도 못 대고 있다. 재벌개혁 전도사라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히려 ‘진보진영의 조급증, 경직성 탓에 개혁 실패를 우려’한다고 자신들의 무능과 부족을 진보진영 탓으로 돌리고, 집권 여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노동계 편만 들지 않겠다”고 노골적으로 재계에 러브콜을 보냈다. 단언컨대 재벌과 관료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결코 국민주권의 소득주도성장은 이뤄지지 않는다.

6일 발표된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개편방안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생색내기 이상이 아니다. 지난 참여정부 때보다도 못한 방안이다. 다주택자의 세 부담을 늘려 부동산 투기를 막는다지만 실제 시가 17억 원 아파트를 보유한 3주택 이상자의 종부세 추가분은 고작 9만 원에 불과하다. 시가 26억 원 아파트를 보유한 1주택자는 증세부담이 거의 없다. 여기에 상가, 빌딩 등 업무용 부동산은 아예 종부세 대상에서 제외됐다. 모두 미흡하다고 비판받았던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제안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아울러 예상대로 금융종합소득세제 확대 권고안은 아예 제외됐다. 이 나라 재벌위주 경제정책의 산실인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논리에 청와대가 동의한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수구언론과 자유한국당 등은 ‘편 가르기 증세’라고 반발하면서 국회에서 저지할 태세다. 이들은 겉으로는 무슨 큰 변화나 있는 것처럼 소동이지만 속으로는 ‘역시 민주당도 별 거 아니다’고 웃을 것이다. 이런 정도의 수준으로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부동산 투기공화국이란 오명을 벗기를 기대한다면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잡으려 하는 게 빠를 것이다.

무릇 정부의 개혁정책이 힘을 가지고 시행되려면 집권 초기 국민적 지지가 높을 때 이뤄져야 한다. 지난날 노무현 대통령은 재벌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얼마 안가 삼성보고서를 받더니 급기야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사실상 항복선언을 하였다. 이른바 ‘대연정’의 사회경제적 배경이다. 당시를 직접 경험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노무현 정부야 수구적 기득권층의 흔들기에 초반부터 어려운 처지에 몰려 우왕좌왕했다 치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압도적 지지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또 그 어느 때보다 국민의 개혁의지가 충만한 조건인데도 겨우 이정도 개혁안밖에 내놓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세간에는 정부와 민주당이 말과는 달리 진정으로 개혁할 의지가 없다는 의구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우려할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높은 지지율에 취해 자신들의 시대적 임무를 망각하고 여전히 기득권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현실과 타협하려는 조짐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개악 ▲전교적 법외노조 직권 철회 거부 ▲밥상용 쌀 수입 강행 ▲대한항공 및 조양호 일가 범죄행위에 대한 행정처분 부재 ▲삼성증권, 삼성바이오로직스 비리 솜방망이 대처 ▲재계 요구에 의거한 과감한 규제개혁 약속 등 경제사회부문은 지난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도 과연 무엇이 촛불민심의 요구에 맞게 확 바뀌었는지 거의 알 수 없는 지경이다.

특히 개혁론자라는 김상조 공정위원장의 한겨레 인터뷰는 현 정부가 규제개혁이란 미명 아래 또 다시 기득권의 대명사 재벌에게 얼마나 다가가려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을 내세워 혁신성장을 운운하고, 규제개혁을 앞세워 핀테크(인터넷은행) 관련 은산(은행자본과 산업자본)분리 완화를 주장했다. 삼성, 현대 같은 재벌이 이제 본격적으로 은행업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는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도 못했던 일이다. 경제민주화는커녕 경제독점의 길을 열어주겠다는 의향을 명색이 공정위원장이 공공연히 밝힌 것이다. 그가 시민사회를 비판하면서 제시한 ‘합리적 진보’는 법과 제도의 개정보다 “현실조건 속에서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 방안으로 기존 법의 엄정한 집행과 재벌의 자율적 개혁 유도를 제시했다. 이것은 한마디로 재벌개혁 의지가 없음을 실토한 것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처럼 재벌이 스스로 개혁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돼지가 하늘을 날기’ 바라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가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이 주도한 연구소 ‘여시제’의 일원이었음을 알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가 적폐 중의 적폐 재벌을 개혁할 의지나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직 시간은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공약으로 내세운 재벌 적폐청산은 물론 최저임금 1만 원과 밥상용 쌀 수입 중단, 은산분리 원칙 등을 이제 하나하나 포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는 것 자체가 그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것이요, 재벌개혁 의지를 의심케 하는 것이다. 국민은 한진재벌의 갑질과 범죄혐의에 모든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어떤 행정조치도 취하지 않는 사법부와 정부에 “이게 나라냐”며 깊은 실망과 분노를 표하고 있다. 높은 지지율에 자만해 촛불민심을 거스르는 행보를 계속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날개 없는 추락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부디 초심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현장언론 민플러스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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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생 김희숙, 26년생 김종필

겨우 연명한 독립운동가 가족, 죽어서도 추켜세워진 쿠데타 주역

18.07.07 12:49l최종 업데이트 18.07.07 13:11l

 

 고인이 된 김희숙 여사(왼쪽)와 김종필 전 총리(오른쪽). 둘의 삶은 한국사회의 모순을 여실히 보여준다.
▲  고인이 된 김희숙 여사(왼쪽)와 김종필 전 총리(오른쪽). 둘의 삶은 한국사회의 모순을 여실히 보여준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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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그는 둘 다 1926년에 태어났다. 그녀는 올해 7월 2일 세상을 떠났고, 그는 6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둘은 문자 그대로 똑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삶의 모습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랐다. 여기서 그녀는 장준하 선생의 반려자 김희숙 여사, 그는 김종필 전 총리다. 

두 인물이 걸어온 너무나 달랐던 삶의 모습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과 모순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들 삶의 궤적을 비교해 되새겨 보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1930·1940년대] 장준하와 혼인 - 탈영했다가 재입대
 

(왼쪽) 26세 때의 장준하 모습. (오른쪽) 해방 직전인 1945년 8월 중국 산동성 유현의 어느 사진관에 노능서와 김준엽, 장준하가 차례로 섰다(왼쪽부터). 이들 셋은 학도병으로 참가한 후 일본군 병영을 탈출, 중경 임시정부까지의 긴 여정에 올랐다. (왼쪽) 26세 때의 장준하 모습. (오른쪽) 해방 직전인 1945년 8월 중국 산동성 유현의 어느 사진관에 노능서와 김준엽, 장준하가 차례로 섰다(왼쪽부터). 이들 셋은 학도병으로 참가한 후 일본군 병영을 탈출, 중경 임시정부까지의 긴 여정에 올랐다.
▲  (왼쪽) 26세 때의 장준하 모습. (오른쪽) 해방 직전인 1945년 8월 중국 산동성 유현의 어느 사진관에 노능서와 김준엽, 장준하가 차례로 섰다(왼쪽부터). 이들 셋은 학도병으로 참가한 후 일본군 병영을 탈출, 중경 임시정부까지의 긴 여정에 올랐다.
ⓒ 장준하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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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은 12세 때인 1938년, 자신의 선생을 처음 만났다. 그녀는 평북 정주가 고향이고 선생은 평북 의주 출신이었다. 그녀 외삼촌이 정주에 신안소학교를 설립했는데 선생이 교사로 부임했다. 그녀는 학생이었고 선생은 그녀 부모집에서 하숙했다. 1943년 11월 그녀는 소학교 시절 자신의 교사이자, 같은 마을에 살던 8년 연상 선생 장준하와 결혼했다. 당시 일본이 여성들을 위안부로 마구 잡아가자 집안 어른들이 서둘러 둘을 결혼시켰던 것이다.

결혼 후 일주일 만에 중국으로 끌려간 남편은 1944년 7월 일본군을 탈출해 2400km를 걸어 충칭에 있는 광복군에 합류했다. 남편은 국내 침투작전을 위해 미 정보기관의 특수군사훈련을 받다가 해방을 맞았고,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한 뒤 김구 선생의 수행비서로 일했다. 그녀는 해방 후 서울에 도착한 남편의 편지를 받고 의주에서 서울로 와 1년 반 만에 재회했다. 

1946년 4월 남편은 김규식이 만든 한국청년회에 가입, 그해 12월에는 이범석의 민족청년단에 가입했다. 1949년 남편은 출판사를 설립, 출판활동을 하던 중 1949년 2월 한국신학대학에 편입하고, 같은 해 6월 졸업했다. 이후 <동아일보> 등에 사설과 칼럼을 발표하다 1950년 3월 남편은 서기관(4급)에 임용돼, 문교부 국민정신계몽 담당관으로 일했다. 
 

큰사진보기 20대 중후반 때인 한국전쟁 당시의 김종필.
▲  20대 중후반 때인 한국전쟁 당시의 김종필.
ⓒ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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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에서 출생한 김종필은 1944년 3월 공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 주오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그는 학내 문제와 부친 권유로 곧 자퇴하고 귀국, 대전사범학교에 입학, 1945년 초 졸업했다. 그후 그는 보령군 소학교 교사로 발령받았으나 2개월 후 교직생활을 마무리했다. 

해방 후 그는 부친이 사준 집을 팔아 자동차 회사를 운영해 재력을 쌓았다. 그리고 1946년 경성사범학교(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했다. 1948년 사범대학 3학년이었던 그는 부친이 작고한 후 집안이 어려워지자 입대해 충남 온양의 육군 13연대에 배속된다. 그러나 1주일 만에 구타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여 탈영했다. 

그리고 친구 집을 전전하던 중 육사 교도대와 만나게 돼 자수하고 재입대했다. 그후 육사 8기로 입학, 1949년 5월 소위로 임관했고 육군정보국에 배치됐다. 그 뒤 참모직을 역임하고 1949년 12월 육군본부 정보국에 중위, 1950년 한국전쟁 중 대위로 진급했다. 

[1950·1960년대] 궁핍한 독립운동가 가족 - 초대 중앙정보부장
 

큰사진보기 1966년 장준하 선생이 박정희를 향해 '밀수왕초'라고 하며 '국가원수모독죄' 로 구속 될 당시 서대문 전세집 문앞에서 어린 장호준과 작별인사를 하는 장준하 선생
▲  1966년 장준하 선생이 박정희를 향해 '밀수왕초'라고 하며 '국가원수모독죄' 로 구속 될 당시 서대문 전세집 문앞에서 어린 장호준과 작별인사를 하는 장준하 선생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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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의 남편 장준하는 한국전쟁 중인 1952년 부산에서 월간지 <사상계>를 창간했다. 이승만 정권을 비판한 <사상계>는 지식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원고 청탁·교정·제작·배본을 도맡았던 남편은 급할 때는 그녀의 손도 빌렸다. 

사무실 임대료와 인쇄할 종이값이 없을 때에는 그녀는 자신의 외투를 팔아서 운영비를 댔다. 그후 사무실도 없어 그녀는 부산 영도다리 밑 '리더스 다이제스트' 사무실의 망가진 책상을 빌려 쓰고 다방이나 공원에 앉아서도 원고 교정을 봤다. 그렇게 나온 잡지를 리어카에 실었다. 남편은 끌고 그녀는 밀면서 부산 책방에 도매로 넘겼다. 1958년 <사상계>에 실린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이 필화사건에 휘말렸고 남편은 감옥에 구금됐다. 

김종필은 1951년 2월 박정희의 형인 박상희의 장녀와 결혼한 뒤 한국전쟁 중 미 육군 보병학교로 연수를 갔다. 1952년 8월부터 1953년 5월까지 수색중대장으로 참전한 것을 제외하면 그는 계속 정보장교로 복무했다. 1960년 그는 하극상 사건으로 육군 중령에서 예편됐고, 그 후 <사상계>를 방문했지만 사장인 장준하가 부재중이어서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1960년대 김희숙의 남편 장준하는 <사상계>를 통해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특별히 한일수교협상, 베트남 국군 파병을 통렬히 비판했다. 1965년 '조국 수호 협의회'에 참여해, 남편은 거리에서 한일 조약 반대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5·16 쿠데타 직후 <사상계> 사무실에 박정희가 군인을 보냈다. 박정희가 수하를 통해 수표를 전달하고자 함이었다. 남편은 그 수표를 눈앞에서 찢어버리고는 군인의 뺨을 후려쳤다.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 출신인 것을 남편은 경멸했다. 박정희는 김대중·김영삼을 정적으로 생각했지만 남편은 정통성과 사상까지 박정희의 가장 아픈 치부를 꿰뚫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박정희는 남편의 뿌리(자손)까지 없애버리고 싶어했다.

그녀는 <사상계>가 날개 돋친 듯 팔리던 시절에도, 1967년 남편이 국회의원이 됐던 시절에도 궁핍하게 생활했다. 1962년 8월, 남편이 필리핀정부로부터 막사이사이상 언론 문학상을 받고 서울 신촌에 집을 지어 석 달간 살아본 게 그녀에게 '내 집'의 전부였다. 박정희 정권이 <사상계>에 세금을 퍼부으면서 빚을 지고 그 집에서 쫓겨난 뒤로 3남 2녀를 둔 그녀와 남편은 월셋방을 전전했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어서 그녀는 봉투붙이는 일과 삯바느질 등으로 연명했다. 

한번은 그녀가 가계부라는 것을 써보고 싶다고 하니, 얼마 후 남편이 생활비라며 봉투를 줬다. 너무 좋아서 그녀가 가계부를 만들었는데 이튿날 남편이 돈을 꿔달라는 거였다. 남편은 그 돈을 친구 아들의 등록금으로 줬다. 결혼식 주례를 서고 받은 양복지도 어느 날 찾아보면 사라지고 없었다. 남편이 그녀 모르게 형무소에서 나온 제자나 어려운 이웃에게 준 것이다. 그녀가 바느질집에 가서 일하고 외상도 하면서 겨우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터라 서운해 하면, 남편은 '내가 밥은 굶기지 않을게, 미안해요'라고 했다.

결국 박정희 정권은 국가원수 모독죄 등 혐의를 씌워 1966년과 1967년 남편을 구속시켰다. 그러나 남편은 굴하지 않고 1967년 6월 7대 총선에 신민당 후보로 서울 동대문구에서 출마해 압도적 지지로 옥중 당선됐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결국 부정부패를 폭로한 김지하의 시 '오적'을 실은 것을 빌미로 1970년 <사상계>를 폐간시켰다. 
 

 중앙정보부장 시절.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의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찍은 사진.
▲  중앙정보부장 시절.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의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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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박정희를 도와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김종필은 1961년 5월 20일부터 1963년 1월까지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다. 특별히 1961년 7월에는 <사상계>의 필진 함석헌이 '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글을 기고하자 <사상계> 사장인 그녀 남편을 불러 취조했다. 남편을 취조하면서 그는 함석헌의 5·16을 비판한 글을 문제 삼았다. 

김종필 : "정신분열자 같은 영감쟁이의 이 따위 글을 도대체 무슨 저의로 여기에 실었소? 성스러운 혁명 과업 수행에서 당신은 우리 군사혁명을 모독하자는 거요? 이걸 싣게 된 경위와 목적을 말하시오."
장준하 : "이 글은 내가 직접 함 선생께 부탁해서 내손으로 받아다 내가 읽어 보고 실은 것이오..."

중앙정보부장 시절 모든 민간 정치인들을 정치규제로 묶어놓은 상태에서 비밀리에 민주공화당을 사전에 조직하면서 정치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4대 의혹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면서 그는 중앙정보부장을 물러나고 외유의 길에 올랐다. 

그러다가 그는 군사정권의 민정 이양이 결정되자 귀국해서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이 시절 공화당내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박정희의 후계자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박정희 친위세력의 견제로 장기간 외유를 떠나기도 했다. 그는 1964년 일본 오히라 외상과의 막후교섭으로 한일협정 성립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일제강점기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전달해야 할 자금을 임의로 전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국민들이 일본에게 직접 배상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일본에서 이미 다 배상했다며 큰소리칠 수 있게 만든 구실을 김종필이 제공했다는 역사적 책임에서 그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70년대 이후 김희숙] 남편, 의문의 죽음 그리고 가혹한 괴롭힘
 

 생전의 장준하 선생
▲  생전의 장준하 선생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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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그녀의 남편 장준하는 민주통일당 창당에 참여, 최고위원에 뽑혔다. 1973년 12월 24일 남편은 전격적으로 개헌청원운동본부를 발족시켜 '헌법개정 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로 인해서 1974년 4월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혐의로 구속됐으며, "헌법개정을 빙자하여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의 불안을 조성"했다는 죄목으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해 12월 심장협심증과 간경화 증세 악화로 인한 형집행정지로 출감했다. 출감 후 감회를 남편은 이렇게 밝혔다. 

"죽어서야 나올 줄 알았는데 학생들을 놔두고 혼자 나오니 가슴이 아프다."  

출감 직후 김옥길 등이 방문했고, 입원 후에는 함석헌의 방문을 받았다.

퇴원 후 재야세력 결집에 힘쓰던 중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남편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경찰은 실족사로 처리했고, 박정희 정권의 탄압에 언론도 입을 다물었다. 남편을 잃은 후 그녀 김희숙은 매일 기도했다.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신께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련은 길고 모질었다. 남편의 의문사 이후 중앙정보부를 통해 내내 가족을 철저히 감시하고 일체 어떠한 생계 수단도 가질 수 없도록 괴롭혔다.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삯바느질과 성당에서 주검을 씻기고 수의를 챙겨 입히는 입관 봉사를 하면 주위에서 이것저것 챙겨줬다. 그렇게 그녀는 3남 2녀를 남편 없이 키우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다. 

아버지 죽음의 의혹을 밝히겠다고 동분서주하던 장남은 괴한들에게 테러를 당해 턱뼈가 조각나 석 달간 병원 신세를 졌다. 집 주변에는 박정희의 기관원들이 깔려 있었다. 8년간 창살 없는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집주인이 '제발 나가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아이들이 해코지 당할까봐 늘 조마조마하면서 산 탓에 그녀는 심장병까지 생겼다. 

그녀 자녀들은 취직도 원천봉쇄됐다. 자녀들이 지인들을 찾아가서 취직을 부탁한 다음날이면 정보기관에서 그 회사에 압력을 가했다. 아는 사람이 보다 못해 자신의 서점에서 장남을 일하도록 해줬지만 장남은 석 달 만에 스스로 나왔다. 기관원들이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주인에게 '세금은 잘 내느냐'는 식으로 괴롭히는데 도저히 미안해서 더 이상 일할 수 가 없었다.  

수입이 없으니 연탄 살 돈이 없어 그녀와 자녀들은 겨울에는 냉방에서 떨었다. 끼니 해결조차 어려운 날이 많았다. 힘들었던 시절, 그래도 몰래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야밤에 누군가 몰래 담장 너머로 던져놓고 간 쌀이나 고기 한 덩어리가 있기도 했다. 심지어 그녀와 아이들을 감시하던 형사가 보기 딱했던지 김치 한 포기를 놓고 간 적도 있었다. 

그녀에게 쌀 한 가마니를 보내준 김옥길 당시 이화여대 총장은 이튿날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중정요원들은 김 총장에게 '그 집에 쌀을 준 것은 곧 유신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기괴한 논리를 폈다. 
 

큰사진보기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통일동산에서 열린 '장준하 공원 제막식 및 제37주기 추도식'에서 장남 장호권씨가 부친의 '정치적 암살' 의혹에 대해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통일동산에서 열린 '장준하 공원 제막식 및 제37주기 추도식'에서 장남 장호권씨가 부친의 '정치적 암살' 의혹에 대해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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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의 치밀한 탄압에 셋집을 구하기가 어려워 나중에 그녀와 아이들은 흉가를 찾아 세 들어 살기도 했다. 사람들이 기피하니 월세도 싸고 주인 타박도 적었다. 자주 쫓겨나는 바람에 남편의 의문사 후 그녀와 아이들은 이사만 서른 번 넘게 다녔다. 나중엔 그도 여의치 않아 며느리는 친정집으로 돌아갔고, 그녀와 3남 2녀 자녀들은 여관의 방 한 칸에서 6개월간 살았다. 돈이 없어 라면만 먹었다. 그러다가 살기 위해 그녀는 사랑하는 자녀들과도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중정요원들에게 테러를 당한 장남은 1979년 홀로 말레이시아로 도주했다. 한국에 있으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아버지의 죽음도 언젠가 파헤칠 생각이었다. 막노동을 하며 버티다 1982년 정권이 바뀌어 '이젠 괜찮겠지' 하고 귀국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그를 체포한 전두환 정권의 안기부는 재야인사와 운동권 학생들의 은신처를 대라고 장남에게 추궁했다. 그래서 장남은 감시가 느슨해진 틈에 다시 싱가포르로 도주했다. 그렇게 24년을 해외에서 떠돈 뒤, 장남은 2003년이 돼서야 모국땅을 다시 밟았다. 

차남은 <조선일보> 기자를 하다가 쫓겨난 후 여러 직장을 전전했고, 삼녀는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30년 가까이 불법체류자로 살아왔다. 사녀는 결혼 후 제주도에서 살았다. 고교를 중퇴하고 방황하던 막내는 뒤늦게 신학대학을 나와 미국에서 스쿨버스 운전사 일을 하며 목회를 하고 있다. 남편을 앗아간 박정희 정권의 핍박은 끈질기게 잔인했다. 

[1970년대 이후 김종필] 최장수 총리, 정계은퇴, DJP연합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1989년 당시 민주당 김영삼 총재(오른쪽), 평민당 김대중 총재(가운데), 공화당 김종필 총재가 여권의 중간평가 조기강행 대책을 논의하기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1989년 당시 민주당 김영삼 총재(오른쪽), 평민당 김대중 총재(가운데), 공화당 김종필 총재가 여권의 중간평가 조기강행 대책을 논의하기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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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은 1971년 공화당 부총재직을 맡고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같은 해 6월 국무총리에 취임함으로써 정계에 복귀 후 5년 6개월간 최장수 총리를 지냈다. 1979년 10.26으로 박정희가 사망하자 그는 여당인 민주공화당 총재에 선출됐다. 그러나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을 금지당했다. 당시 부정축재자로 발표되며 강제로 일부 재산을 헌납하고 정계은퇴 선언을 한 뒤 미국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그는 정치에 복귀해 민주공화당의 계승을 표방한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에 이어 4위에 올랐다.

1989년 그는 노태우, 김영삼과 의원내각제 개헌을 합의하고 3당 합당에 참여했다. 1998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2년 후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김대중과 연합했고, 결국 김대중은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그는 국무총리가 됐다. 그는 골프광이기도 했는데, 1999년 외환위기 상황에도 골프를 중지하지 않고 친 실세 총리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러나 집권 후 2년 이내 내각제 개헌을 약속하며 시작했던 그와 김대중의 연합은 1999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각제 개헌 이행 유무와 햇볕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로 2000년 그는 김대중 대통령과 갈라서게 된다.

[2000년대 이후 김희숙] 남편의 타살 정황... 임종 못 지킨 막내
 

큰사진보기 장준하선생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도리 장준하 공원에서 고인의 사인 규명을 위한 유골 정밀감식을 위해 개묘작업을 해 고인의 두개골을 수습하고 있다. 유골은 이정빈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법의학자들에 의해 정밀감식하게 된다.
▲  장준하선생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012년 12월 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도리 장준하 공원에서 고인의 사인 규명을 위한 유골 정밀감식을 위해 개묘작업을 해 고인의 두개골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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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은 2001년 서울시와 국가보훈처의 배려로 국가유공자 영구 임대아파트에 입주, 독립유공자 연금을 받아 근근이 생활해왔다. 

2012년 8월 1일 파주 통일동산으로 이장하며 검안한 남편 유골에서 지름 6~7cm의 원형 상흔이 발견됐다. 그동안 추락사한 것으로 알려진 남편 장준하의 유골에서 타살 정황이 공개된 것이다. 그녀는 한 많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 평생 가장 미안하고 마음 아픈 건 우리 애들이에요. 배 많이 곯게 하고, 하고 싶은 일도 못하게 하고 고생만 시켰으니까요. 남편에게 몹쓸짓 했던 군사정부의 핍박이 아이들에게까지 오랜 기간 계속된 것이지요. 어린 막내가 배고프고 힘들다고 할 때 아버지가 큰 유산을 남겼다고 하면 그 유산 지금 먹으면 안되냐고 했어요. 저는 그 유산은 대대손손 쓰는 거라고 말해줬지요..."(2012년 <경향신문> 인터뷰 중)

그녀는 지난 2014년부터 췌장암, 심장병, 신부전증으로 온몸이 성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 시절 장호준 목사가 국내외 신문에 한 광고
▲  박근혜 정권 시절 장호준 목사가 국내외 신문에 한 광고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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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에 살고 있는 그녀의 막내아들 장호준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해외에서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언론 광고를 게재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6년 3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그녀의 막내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막내는 2015년 말부터 해외언론에 '불의한 정권을 투표로 심판합시다'라는 내용의 광고를 게재했다. 중앙선관위는 막내가 선거를 앞두고 충분히 유추할 수 있도록 특정 정당을 비판했고, 이것이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고발했다. 중앙선관위의 요청을 받은 외교부 역시 2021년 4월 13일까지 막내의 여권 효력을 무효로 하는 조처를 했다. 해외에서 선거법을 위반해 여권 무효화된 사례는 2012년 재외선거가 도입된 이후 장호준이 처음인 것이다. 

올해 4월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판사는 막내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막내는 "검사가 벌금 70만 원을 구형했는데 판사가 벌금 200만 원을 내라고 판결한 것"이라며 "정치적인 사건에서 판사가 검사의 구형보다 더 높은 징계를 내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했다. 막내는 재판부의 1심 판결에 대해 현재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장호준
▲  김희숙 여사의 막내아들 장호준 목사.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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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그녀의 임종을 보기 위해 입국하려면 항소심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막내는 당장 입국하지 못하더라도 항소심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막내는 지난 6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는 어머님이 말씀조차 못 하실 만큼 위독하시지만, 저는 제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자식이 옳고 그른 것을 가리기 위해, 정의로운 일을 위해, 항소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모습 보시기를 더 원하시리라 믿는다"라면서 "동지 여러분들의 염려와 걱정 진심으로 고맙습니다만 저는 아버지의 삶과 제가 믿는 어머님의 뜻을 따라 항소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막내는 어머니를 뵙고 싶지만, 항소를 포기하는 것은 불의에 대한 타협이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이를 원하지 않으실 것이란 입장"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의식을 잃기 전까지 김희숙은 자신의 임종을 보고 싶어하지만 입국하지 못하는 막내를 많이 그리워했다. 지난 6월 27일 그녀와 막내는 마지막으로 국제 전화통화를 했다. 그녀는 통화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막내가 목소리를 크게 높여 수화기 너머로 이런저런 말을 했고 그녀가 조금 반응을 했다. 그후 그녀는 의식을 잃고 지난 7월 2일 고난에 찬 삶을 마쳤다. 

[2000년대 이후 김종필] 줄어든 영향력, 사망 뒤엔 훈장을...

매번 대선 때마다 영향력을 과시하던 그였지만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는 김종필은 이미 고령이 됐다. 게다가 2000년 총선 참패 등 세가 크게 위축된 상태였기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2004년에 제17대 총선에서 낙마하고 그는 정계를 은퇴했다. 사상 첫 10선 국회의원을 노리던 그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그는 이명박을 지지했고 부족하나마 소원을 이뤘다. 2016년 들어서 대권을 준비 중인 반기문이 외교행낭을 통해 편지를 보냈고, 그는 "내가 비록 힘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반기문을) 돕겠다"라고 화답했다. 

그리고 2017년 19대 대선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그를 방문했다. 당시 그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당시 홍준표와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이 같은 그런 얼굴은 대통령이 될 수가 없는데 세상이 우스워졌다"라면서 "대통령이 앞섰다고 그러는데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그는 "난 뭘 봐도 문재인이가 돼서는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라며 "문재인이 얼마 전 한창 으스대고 있을 때 한 소리가 있다, 당선되면 김정은을 만나러 간다고, 이런 놈을 뭘 보고 지지를 하느냐는 말이냐, 김정은이가 지 할아버지라도 되나. 빌어먹을 자식"이라고 했다. 

지난 6월 23일 아침. 그는 신당동 자택에서 호흡곤란으로 순천향병원으로 이송 중 심장이 정지했다. 응급실 도착 후에도 심폐소생술을 지속했으나 사망했다. 그런 그에게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을 둔 정부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역사의 역설, 역설의 역사
 

 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 반대투쟁에 앞장서다 숨진 채 발견된 고(故)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가 지난 2일 별세했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고인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  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 반대투쟁에 앞장서다 숨진 채 발견된 고(故)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가 지난 2일 별세했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고인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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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27일 오전 서울 송파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 영결식에 영정사진과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 김종필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27일 오전 서울 송파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 영결식에 영정사진과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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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은 5.16 군사쿠데타의 주동자이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2인자였다. 항일독립군이자 민주화 운동가의 자손인 김희숙의 막내는 "불의한 정권을 심판하자"라는 광고를 냈다가 박근혜 정권 하에서 여권을 취소당해 어머니의 임종도 못 지켰다. 

그러나 군사독재 쿠데타의 주역인 김종필의 죽음 앞에 놓여진 것은 훈장이었다. 이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아! 지금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두 인생의 삶과 죽음을 보면서 기쁨보다는 슬픔과 비애가 눈앞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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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오해들, 김일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7/07 16:26
  • 수정일
    2018/07/07 16:2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홍구 특강 "북한 3대 세습 원동력은 김일성 리더십"
2018.07.07 11:48:57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며 '북한 바로 알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북한은 진짜 북한일까. 북한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혹은 오해하고 있던 것은 무언인가.

"북한에 대한 많은 오해들은 김일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가 5일 서울 종로구 역사책방에서 '청년 김일성, 청년 김정은'을 주제로 특강을 열고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선 김일성과 주체사상에 대한 '바로 알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레닌 동상이 허무하게 무너졌지만 북한은 3대째 세습하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북한의 3대 세습을 가능케 했던 것은 '김일성 리더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일성 리더십'의 예로 김일성이 '민생단' 명단을 불태운 에피소드를 들었다.

 

 

▲5일 진행된 한홍구 교수의 '청년 김일성, 청년 김정은' 특강 모습. ⓒ프레시안(서어리)



민생단은 1930년대 만주 지역에서의 항일무장투쟁 당시 활동하던 친일 단체다. 조선인인 가운데 바로 이 민생당 첩자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서로에 대한 의심이 팽배해져 갔다. 그때 김일성은 민생단 명단이 든 보따리를 불태우며 혐의자 100여 명을 석방해 혁명세력에 편입시켰다. 

한 교수는 "민생단 혐의자였던 그 사람들은 이후 조국광복회 결성의 주역으로, 보천보 전투의 전사로 거듭나게 됐다"며 "이것이 곧 '주체사상'이다. 이들에게 생명이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육체적 생명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생명인데 그것은 곧 '어버이 수령님'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김일성은 민생단 연루자 누명을 쓰고 처형된 이들의 자녀들도 거뒀다. 김일성과 그의 아내 김정숙이 먹이고 키운 많은 아이들은 훗날 김일성의 아들인 김정일이 태어나자 그를 업어 키웠다. 한 교수는 "이게 이북체제의 안전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주체사상을 우리민족이 낳은 위대한 개똥철학"이라며 "사주팔자의 감옥을 벗어나 개인과 민족의 차원에서 주체로 거듭나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팽두이숙(烹頭耳熟 : 머리를 삶으면 귀까지 삶아진다)'을 논하며 중국 혁명을 우선할 때에도, 조선 혁명 세력은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혁명 노선을 걸었다고 했다. 

한 교수는 김일성에 대해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김일성이 '사람 중심 세계관'을 폈던 배경을 설명했다. 

"수구 사이트에 가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사람이 먼저다'가 주체사상이라고 하던데(웃음), 왜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었을까요. 그땐 돈도 기술도 없고 결국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맨주먹 붉은 피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김일성이 세우려 한 게 '밥의 공산주의'였습니다. 등소평이 '흑묘백묘론'을 이야기했는데, 그로부터 10년 전에 이미 김일성이 '밥 먹을 때 오른손을 쓰든 왼손을 쓰든 무슨 상관인가'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한 교수는 "김일성이 품었던 인민들을 배불리 먹이는 꿈은 김정일, 김정은 시대에도 계속 이어졌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이라는 깡패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그 꿈을 이루는 방식이 핵무기였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핵무기 개발 대신 경제 발전에 집중하려는 지금이 북한의 위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체제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체제입니다. 위기가 일상인 저런 사회의 진짜 위기는 위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청년 지도자 김정은에게는 엄청난 모험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김일성도 김정일도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그는 "역사가 진보하는 때는 아주 짧은 시기"라며 "단군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처음 맞이하는 좋은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했다.

 

서어리 기자 naeori@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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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평통 비망록-판문점 선언 김정일시대 자주통일강령

조평통 비망록-판문점 선언 김정일시대 자주통일강령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07/07 [10:3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5년 8월 11일 조국광복 50주년에 즈음하여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 앞에 친필비를 세웠다. 김일성 주석은 1994년 7월 7일 밤,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할 조국통일방략이 수록된 문건에 친필을 남겼는데, 그 친필을 비문에 새긴 친필비다. 친필비 뒷면에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가시고 조국통일성업을 이룩하기 위한 력사적인 문건에 생애의 마지막 친필존함을 남기신 경애하는 김일성 주석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가리"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자주시보

 

노동신문이 조국통일위업 실현에 쌓아올리신 절세위인들의 고귀한 업적은 불멸의 친필과 더불어 영원히 빛날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비망록을 7일 게재했다.

 

1994년 7월 7김일성 주석은 조국통일과 관련한 문건에 마지막 친필 서명을 하고그 다음날 7월 8일 서거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소식에 의하면 노동신문은 “<김일성 1994.7.7.> 이 아홉 글자의 친필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거룩한 애국애족의 한생과 숭고한 조국통일유훈이 깃들어있다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김일성 주석이 조국통일과 관련한 문건에 마지막친필을 남기신 24돌에 즈음해 탁월한 사상과 영도로 조국통일위업을 개척하시고 승리에로 이끄시여 조국통일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여주신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을 천추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비망록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비망록은 첫 번째 부분에서 김일성 주석이 조국통일의 위해 한생을 헌신한 생애라고 기록하고 있다.

비망록에서 김일성 주석에 대해 외세에 의하여 국토가 양단되고 민족이 분열된 첫날부터 조국통일을 민족지상의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일관하게 하나의 조선노선통일노선을 견지하시며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영도하여오신 민족의 영원한 태양이시고 통일의 구성이라고 높이 칭송했다.

 

구체적으로 비망록은 김일성 주석의 통일 노선에 대해 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소집과 진행, 1950~1960년대 과도적인 남북연방제를 실시할 것은 제안한 것, 7.4공동성명로 통일운동의 새 국면을 열어놓은 것남측에서 7,4 공동성명을 부정하고 분열 영구화를 꾀할 때도 대민족회의와 남북연방제 실시 등 조국통일 5대 방침을 천명한 것, 1980~1990년대 고려민주연방제통일방안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새롭게 제시한 것’ 등에 자세히 설명했다.

 

이어 김일성 주석이 혁명생애의 마지막시기에도 전체 조선민족을 하나의 통일역량으로 묶어세우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시였으며 민족의 대의를 먼저 생각하시면서 북남최고위급회담을 몸소 발기하시고 그 실현에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이었다고 주장하며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 7일이날도 새벽 일찌기 집무를 시작하고 전날까지 이틀동안 진행된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시느라 피로가 겹쌓인 속에서도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한 문건을 한장한장 세심히 검토하고 활달한 필체로 <김일성 1994.7.7.>이라는 친필을 남겼는데이 친필에는 조국통일 실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친 고귀한 한생이 뜨겁게 어려있다고 비망록은 밝혔다.

 

▲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4일 평양에서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서명한 뒤 백화원 영빈관에서 마련된 환송오찬에 참석한 장면.     ©자주시보

 

비망록 두 번째 부분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국통일을 위해 쌓은 업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비망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 것은 우리 당과 인민의 혁명적의무이고 의리이며 우리 세대에 맡겨진 성스러운 민족적 임무이며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여야 하며 조국과 민족 앞에 지닌 우리 세대의 책임과 임무를 다하여야 한다고 말한 것을 강조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필생의 염원이었던 조국통일 위업을 실현하기 위해 온갖 노고를 바치었다고 비망록은 밝힌 뒤에 판문점에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친필비가 만들어졌음을 비망록에서는 먼저 강조했다.

 

이어 비망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조국통일3대원칙과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조국통일 3대헌장으로 정립했으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자를 비롯한 노작들을 통해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 업적을 변함없이 계승하여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뚜렷한 진로를 밝혀주었다고 밝혔다.

 

비망록은 2000년 6월 민족분단 사상 처음으로 북남수뇌상봉을 마련하시고 6.15공동선언을 우리 민족에게 안겨 준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국통일 위업에 쌓은 특출한 업적이라며 “6.15공동선언은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으로서 우리 민족끼리를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으며 조국통일의 근본이념과 근본입장근본방도로부터 시작하여 북남관계발전에서 나서는 현실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통일을 위한 모든 원칙적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혀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비망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겨레의 자주통일투쟁을 더욱 힘있게 추동하기 위하여 2007년 10월 또다시 평양에서 역사적인 북남수뇌상봉을 마련하시고 6.15공동선언의 실천강령인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통해 조선반도의 평화와 조국통일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원칙적 문제들과 실천적 방도들이 전면적으로 집대성 되여있는 10.4선언이 발표됨으로써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을 민족공동의 기치로 계속 높이 추켜들고 통일문제해결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우리 민족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자주적으로 풀어나가며 북남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넓은 길이 더욱 활짝 열려지게 되었다고 높이 칭송했다.

 

▲ 판문점 선언에 서명한 후 남북정상이 합의를 기념하는 사진을 찍었다.     ©공동취재단

 

비망록 세 번째 부분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의해 조국통일운동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망록은 김정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유훈을 관철하여 조국통일을 이룩하는 것이 확고부동한 신념이고 의지라고 강조했다.

 

먼저 비방록은 김정은 위원장이 2012년 3월 판문점에 대한 현지시찰김일성 주석 탄생 100돌 열병식에서 한 연설을 통해 조국통일위업을 반드시 실현하실 확고한 결심과 의지를 엄숙히 천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비망록은 김정은 위원장이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이시다김정일애국주의를 구현하여 부강조국건설을 다그치자를 비롯한 노작들을 발표하시여 통일위업실현에서 나서는 과업과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고 2018년 신년사에서 북남관계대전환방침을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신년사 발표 이후 남북관계에서 판문점 연락통로가 개통군통신이 재개평창올림픽 북측 대표단 파견남북고위급회담과 각 분야의 실무회담들의 진행북측 고위급대표단과 삼지연관현악단,민족올림픽위원회대표단,선수단,응원단,태권도시범단,기자단이 남측지역에 나가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따뜻한 봄기운을 안겨주었으며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을 마련하시고 판문점선언을 채택하시여 온 민족과 전 세계에 감격과 환희의 격파가 일어번지게 했다고 비망록은 강조했다.

 

이어 비망록은 판문점선언은 온 민족의 통일의지와 열망을 반영한 자주통일선언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실천적 방도를 밝힌 평화통일선언민족적화해와 단합을 이룩하기 위한 구체적 대책들을 명시한 민족대단결선언이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계승한 새로운 력사적시대김정은시대의 자주통일강령이라고 높이 칭송했다.

 

비망록은 계속해 역사적인 판문점상봉과 회담, 4.27선언으로 11년 동안이나 멈춰섰던 통일시계의 초침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였으며 자주통일평화번영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고 5월 26일 제4차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을 전격적으로 단행하시고 판문점선언을 신속히 이행해나가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중대한 합의를 이룩하심으로써 북남관계발전을 보다 높은 단계에로 추동했다고 주장했다.

 

비망록은 참으로 몇 달 전만 하여도 대결과 전쟁의 최극단에로 치닫던 조선반도 정세가 화해와 평화에로 급전환하고 북남관계에서 꿈같은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김정은 동지의 비범특출한 영도와 절세의 위인적 풍모가 안아온 자랑찬 결실이라고 다시금 높이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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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삼성의 돈과 권력보다 우리들의 연대가 더 위대하다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
발행 2018-07-02 09:54:29
수정 2018-07-02 09: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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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일 맞은 삼성 직업병장마가 시작됐다. 농성장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천막을 닫아두니 바람이 통하지 않아 끈적이고 내내 땀이 흐른다. 조금만 있어도 지친다. 비바람이 세게 몰아치면 위태롭게 흔들리는 천막 때문에 좌불안석이 된다. 겨울과 여름 농성을 모두 겪어 본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겨울보다 여름 농성이 훨씬 더 힘들다고.
삼성 직업병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반올림 농성장이 1000일을 맞았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반올림 농성장이 1000일을 맞았다.ⓒ민중의소리

절박함으로 시작한 농성

반올림 농성이 세 번의 겨울을 보내고 이제 세 번째 여름을 지나고 있다. 날자로는 천 일이다. 삼성에 대한 분노와 포기할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시작한 농성이지만, 농성 천 일은 추억과 이야기가 가득한 시간이었다. 무릎으로 기어다녀야 했던 낮은 천막은 이제 서 있어도 천장이 머리에 닿지 않게 높아졌고, 두껍게 깐 바닥 스티로폼이 세월을 보내며 많이 꺼져 등에 배기게 됐다. 삼성직업병문제를 취재했던 방송국 PD가 선물해 주신 발전기는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고, 여러 사람 손을 탄 음향장비는 많이 상했다. 공연하러 왔다 낡은 스피커가 마음에 걸렸던 동지가 새 스피커를 가져다주시기도 했다. 잊을만하면 배달되는 한약상자와 철마다 받아보는 과일박스. 한겨울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침낭과 핫팩까지, 반올림 농성장 곳곳에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물건들로 가득하다.

농성장은 누군가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이다. 천 일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 곳을 든든하게 지켜준 농성장 지킴이들 덕분이다. 오랜 시간인만큼 지킴이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반올림의 상임활동가가 된 이가 있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었다. 외국에 나가 조금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이도 있고, 군대에 간 청년도 있고, 새로이 학교에 진학한 사람도 있다. 새 직장을 구한 이도, 하던 일을 그만 둔 이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농성에 계속할 수 없게 된 이들도 생기지만, 새롭게 함께 하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그리고, 변함없이 매 주 1박 2일을 농성장에서 보내는 혜경씨와 김시녀 어머님, 그리고 황상기 아버님. 비가 오는 일요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식에 다녀오신 황상기 아버님이 폭우가 쏟아진 어제 밤 농성장을 지키셨다.

농성장의 가장 대표적인 행사는 ‘이어말하기’였다. 처음에는 매일, 그 뒤에는 일 주일에 한 두 번씩 진행했던 이어말하기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다. 그 많은 이야기들을 ‘이제, 삼성이 답하라’란 제목의 책으로 묶어내기도 했다. 죽은 이들을 위로하는 솟대와 고무신에 담긴 꽃으로 꾸민 예쁘고 슬펐던 농성장, 계절이 바뀔 때마다 대청소를 하고 천막비닐을 함께 갈던 시간들, 100일 200일, 그리고 황유미님의 기일 때마다 행사를 준비하며 함께 힘을 모으던 시간들, 그 모든 시간들이 쌓여 천 일이 되었다.

 
삼성 LCD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와 삼성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삼성 LCD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와 삼성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양지웅 기자

아직 직업병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천일 동안,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도 진전이 있었다. ‘직업병 인정 투쟁’이라고 불렸을 만큼 직업병 인정 자체가 힘들었던 조건이 변했다. 지금까지 29분 피해자의 10개 질병에 대해 직업병이 인정되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전향적인 보상체계를 갖추고 실행하는 기업들도 생겨났다. 무엇보다 거대한 촛불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사람들의 인식에 큰 변화가 있었다. ‘직업병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삼성의 주장이 아니라, 여전히 ‘직업병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진실이 우리사회의 상식이 되었다. 작년에는 대법원에서 반도체 직업병에 대한 전향적인 판결까지 나와, 제도 개선에 대한 희망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아무리 삼성이라도 이런 추세 전체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촛불, 많은 이들의 힘으로 이재용이 구속되어 실형까지 살았다. 국정농단 범죄 때문이었지만, 직업병 방치와 노조 파괴 범죄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그가 감옥에 가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비록 항소심에서 풀려났지만, 오히려 삼성과 이재용의 범죄행위는 더 많이 드러나고 있다. 이재용과 삼성을 제대로 단죄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직업병으로 노조탄압으로 평범한 이들이 또다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오늘은 반올림 농성 천 일이기도 하지만, 30년 전 소년노동자 문송면이 수은 중독으로 고통받다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7월 4일에 있을 반올림 농성 천 일 문화제에는 문송면과 산재사망노동자들을 추모하는 추모식도 함께 진행된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 일터의 안전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비용 절감을 위한 북극항로의 방사선 노출로 백혈병에 걸린 대한항공 승무원, 시안화수소 중독으로 일한지 한 달도 안 되어 쓰러지고 결국 목숨을 잃은 스물 셋 청년노동자, 삼성의 부품하청공장에서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청년노동자들,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19세 김군, 현장 실습중 설비에 끼여 사망한 이민호군, 매년 2500명 가까이 일하다 목숨을 잃는 이 나라의 현실은 우리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4일 오후 6시 강남역 8번출구 반올림 농성장에서 '삼성 포위의 날' 실천 행동이 진행된다.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소년노동자 문송면과 산재 노동자 추모식도 함께 열린다.
4일 오후 6시 강남역 8번출구 반올림 농성장에서 '삼성 포위의 날' 실천 행동이 진행된다.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소년노동자 문송면과 산재 노동자 추모식도 함께 열린다.ⓒ반올림 제공

그리고, 여전히 삼성직업병 문제가 있다. 지난 11년간 삼성에서만 320명의 피해제보가 있었고, 그 중 118분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삼성을 꼭 바꾸어야 한다. 우리 사회 노동안전을 위해서도 삼성의 범죄를 단죄하고 바꾸기 위해서도 삼성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 7월 4일 문화제 마지막에는 삼성본관을 포위하는 행동을 계획하고 있다. 예년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야만 가능하다.

김시녀 어머님이 페북에 남기신 말씀처럼 
‘삼성의 돈과 권력보다 가진 것 없는 우리들 연대의 힘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

삼성 직업병 해결을 위한 삼성 포위 행동 참여 선언:goo.gl/Hnb2gB

[관련기사]
[기고] 이재용은 아직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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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비핵화 사실상 검증 불가능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7/02 11:08
  • 수정일
    2018/07/02 11:0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반도비핵화 사실상 검증 불가능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7/01 [21:3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8년 6월 21일 마이크 폼페오(왼쪽) 미 국무장관이 백악관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듣고있다.    


29일 미국의소리 뉴스해설에 따르면 백악관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폼페오 국무장관이 다음주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미국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다. 특히 폼페오 장관이 강경화, 왕이 외교장관과 각각 전화통화를 갖고 북 비핵화 후속 조치에 대해 논의한 점, 또 과거 북한과의 핵 협상에 나섰던 힐 전 차관보 등 전직 관리들을 최근 만난 사실은 방북이 임박했음을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뉴스해설에서는 이번 방북에서 "북이 핵무기와 미사일, 관련 시설을 자진 신고하는 문제가 논의되고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폼페오 장관이 과거 북한과 핵 협상에 나섰던 미국의 전직 관리들을 거의 전부 만나 이 문제에 관해 의견을 들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미군 유해 송환도 폼페오 장관의 이번 방북에 맞췄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약속했던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도 실행에 옮겨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뉴스해설에서는 특히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에 대해 협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는데 "북미 사이 비핵화 협상의 핵심은 북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그리고 관련 시설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라며 미국은 이에 맞춰 평화협정 체결과 관계 정상화 등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게 되고 이런 양측의 조치들을 어떻게 배합해 실행해 나갈지를 정하는 게 로드맵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30일 미국의소리 보도에서는 폼페오장관에게 최신 자신의 대북협상 경험을 전해준 크리스토퍼 힐 전 차관보 대담을 보도했는데 대담에서 그는 "북과의 후속 협상에서 핵 시설뿐 아니라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서’와 ‘검증 의정서’를 받아내야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를 지낸 힐 전 차관보는 적절한 비핵화 시점을 북한에 명확히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특정 시점을 입에 올리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고 말했다. 

 

30일 미국의소리 또 다른 기사에서는 미 상원의원들이 북 비핵화의 원칙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북의 핵∙미사일 보유 현황을 파악해 매우 강력히 검증한 뒤 폐기하는 수순을 구체화할 것을 주문"하면서 미국 뿐 아니라 "일본의 중장거리미사일 우려도 해소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이렇게 미국 내에서 비핵화 원칙과 일정계획(로드맵)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문제는 북이 자진신고하지 않은 한 공개된 몇몇 핵, 미사일이 시설 외에 무슨 시설이 있는지 미국이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폼페오 장관도 북의 자신 신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이번 방북에서 그 자진신고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본지 한호석 소장은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북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라고 분명해 강조했기 때문에 자진신고와 사찰은 북만이 아니라 남측의 주한미군 기지에 대해서도 진행되어야 할 일이라며 북의 사찰단원들이 미군 기지를 뒤지고 다닌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면 북도 미국 마음대로 사찰하러다니는 일을 포기하고 북이 알아서 진행하는 비핵화 작업을 인정하고 끝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특히 그런 사찰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주한미군을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한호석 소장의 진단이었다.

 

문제는 미국 내의 반발인데 사실 갤럽 등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국민들의 대다수 약 80% 이상은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한반도 핵문제를 풀기를 바라고 있다. 대화로 문제를 푼다는 것은 북만 일방적으로 핵을 폐기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미국 국민들은 북의 핵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위협을 제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실제로 북의 기존 핵무기를 다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 미국의 일방적은 북만의 비핵화를 강압하다가 북미대결전이 격화되어 북이 핵과 미사일로 중무장을 하고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위력 시위에 나서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 미국 전역이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는 점을 미국인들은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일부 대북강경파들과 언론들인데 그들도 북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가 합의사항임을 모르지 않고 있으며 특히 북의 어디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형식적이고 정치적인 검증절차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가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CVID 아니면 절대 안 된다던 미국의 강경파들과 대다수 언론들도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그 말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회담 직후엔 그 난리를 피우더니 지금은 유야무야 넘기는 분위기이다. 

사찰과 검증도 결국은 그렇게 되지 않겠나 싶다. 중요한 것은 미국 국민들의 뜻이다. 트럼프 정부는 그 미국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어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수준에서 북미후속협상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을 전망이다.

 

어쨌든 11월 중간선건 전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한반도 비핵화 성과를 어느정도 진전시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대신 북은 이미 호랑이를 탄 기세로 중국과의 혈맹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미국의 제재를 무력화시키면서 급격하게 대외관계를 확대발전시켜가고 있다. 

 

얼마 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의주와 비단섬을 현지지도한 것도 북중경제교류협력사업을 준비 점검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은 아쉬울 것이 없다.

대신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북핵 비핵화를 놓고 무리한 요구를 하면 할수록 결국 트럼프 정부만 더욱 더 불리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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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군 당국, 서해 국제상선공통망 정상화

1일 오전 남북 함정 “백두산” “한라산” 교신 성공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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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1  17: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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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군 당국은 1일 오전 서해상에서 '국제상선공통망'을 정상화했다. [사진제공-국방부]

1일 오전 9시, 서해상 남측 함정, “백두산 하나, 백두산 하나, 여기는 한라산 하나 감명도”

이어 북측 경비함이 응답했다. “한라산 하나 한라산 하나 나는 백두산 하나 감명도 다섯”

10년 만에 서해상에서 남북 군 당국의 국제상선공통망을 정상화하는 순간이었다.

국방부는 이날 “남북군사당국은 ‘판문점선언’과 ‘제8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6.14) 합의사항 이행차원에서 서해 해상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국제상선공통망’ 운용을 정상화하였다”고 발표했다.

“2018년 7월 1일 09시에 실시한 남북 간 시험통신에서는 연평도 인근 우리 해군 경비함이 ‘국제상선공통망’을 활용하여 북측 경비함을 호출하였고, 북측은 이에 즉각 응답하였다”는 것.

이날 시험통신은 2004년 6.4장성급 군사회담에서 합의한 호출부호가 사용됐다. 남측은 ‘한라산’, 북측은 ‘백두산’이다.

남측 해군 유도탄고속함은 먼저 “백두산 하나 백두산 하나 여기는 한라산 하나 감명도”라고 두 차례 북측을 호출했다. 이에 북측 겸비함은 “한라산 하나 한라산 하나 나는 백두산 감도 다섯”이라고 답했다. ‘다섯’은 수신 상태가 매우 좋다는 의미이다.

이어 남측은 “백두산 하나 백두산 하나 여기는 한라산 하나 귀국 감명도 다섯 채널 12번 전환 바람”이라고 말했고, 채널 12번 전환이 이뤄졌다.

다시, 남측은 “백두산 하나 백두산 하나 여기는 한라산 하나 감명도”라고 말했으며, 북측은 “한라산 하나 한라산 하나 나는 백두산 하나 감도 다섯”이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남측이 “백두산 하나 백두산 하나 여기는 한라산 귀국 감명도 다섯 시험통신 끝”이라고 통보하며 10년 만의 ‘국제상선공통망’을 정상화했다.

국방부는 “2008년 5월 이후 중단되었던 서해 해상에서의 남북 간 ‘국제상선공통망’ 운용이 10여 년 만에 복원됨으로써 군통신선 복구와 함께 판문점선언의 군사 분야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해 나가는 실질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서해 해상 ‘국제상선공통망’은 2004년 6.4합의에 따라 그해 6월 14일 가동을 시작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지역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2008년 5월부터 북측은 남측의 호출에 응답하지 않으면서 10년째 중단된 상태였다.

이번 정상화를 계기로 2004년 6.4합의의 본격화가 될 전망이다. “6.4합의서상의 ‘제3국 불법조업선박 정보교환’과 ‘우발충돌방지망 구축’은 서해지구 군통신선 복구와 연계하여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국방부는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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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327㎜ 물폭탄, 둑도 무너졌다"…전국 피해 속출(종합2보)

송고시간 | 2018/07/01 19:47

열차 멈추고 농경지 잠기고…광주·전남에 피해 집중돼
장맛비에 주요 관광지 울상…북상 태풍 2∼3일이 고비

(전국종합=연합뉴스) 1일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면서 주택이 물이 잠기고 국립공원 입산이 통제되는 등 전국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제7호 태풍 '쁘라삐룬'이 북상함에 따라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기상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무너진 하천 도로
무너진 하천 도로(보성=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1일 전남 보성군 회천면 봉서동마을 하천 도로가 불어난 물로 무너져내렸다. 2018.7.1 
cbebop@yna.co.kr

 

◇ 시간당 80㎜ 폭우 '구멍 뚫린 하늘'

장마전선이 제주와 남부지방을 거쳐 북상하면서 전북 군산·부안, 전남 영광·신안, 흑산도와 홍도 등에 호우경보가 발효중이다.

또 서울과 인천, 경기, 세종, 대전, 충북, 충남, 강원, 전북, 경북 등 전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

장마전선이 제주와 남부지방을 거쳐 북상하면서 전북 군산·부안, 전남 영광·신안, 흑산도와 홍도 등에 호우경보가 발효중이다.

또 서울과 인천, 경기, 세종, 대전, 충북, 충남, 강원, 전북, 경북 등 전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


특히 전남 보성에 이날 오전 7시 기준 시간당 80㎜의 물폭탄이 쏟아지는 등 특보 지역을 중심으로 시간당 30㎜ 안팎의 강한 비가 내리고 있다.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이틀간 누적 강우량은 전남 보성 327.5㎜, 전남 신안 298.5㎜, 전북 부안 225㎜, 전남 영광 220㎜, 충남 공주 112.5㎜, 서울 72.5㎜, 강원 홍천 71.5㎜ 등을 기록했다.

많은 비가 내리자 북한강 수계 댐들도 수문을 열고 수위조절에 나섰다.

북한강 수계 댐 수문 개방
북한강 수계 댐 수문 개방(춘천=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많은 비가 내린 1일 강원 춘천시 춘천댐이 수문 1개를 열고 수문 개방을 시작하고 있다. 2018.7.1 
hak@yna.co.kr

 

한국수력원자력 한강수력본부는 이날 오후 4시부터 청평댐과 의암댐, 춘천댐의 수문을 열고 각 초당 704t, 초당 412t, 293t의 물을 하류로 방류하고 있다.

한강 수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팔당댐은 이날 수문 5개를 4.5m 높이로 열고 초당 1천739t의 물을 방류 중이다.

장마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호우특보가 모두 해제된 제주는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이틀간 한라산 성판악에 262.5㎜, 윗세오름 242㎜ 등 많은 비가 내렸지만, 장마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제주 전역은 대체로 흐리거나 산발적으로 비가 오고 있다.

내일은 북상하는 태풍 쁘라삐룬 영향으로 제주도 남부와 산지를 중심으로 비가 오다가 모든 지역으로 확대되겠다.

저수지 제방 무너뜨린 장맛비
저수지 제방 무너뜨린 장맛비(보성=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1일 전남 보성군 회천면 모원저수지 제방이 폭우에 무너져 세찬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현장을 살펴보는 군청 공무원이 서 있는 자리는 원래 제방으로 연결된 곳이다. 2018.7.1 
hs@yna.co.kr

 

◇ 전국에 피해 잇따라…광주·전남에 집중

전국적으로 크고작은 피해가 잇따라 발생했다.

이틀간 연이어 내린 비로 광주·전남에 농경지·주택 침수와 시설물 파손 등 피해가 집중됐다.

1일 오전 전남 보성군 회천면 모원제에 있는 둑 127m 중 50m가량이 무너져 인근 농경지 3㏊가 물에 잠겼다.

보성군 명봉역 인근 철로도 침수돼 명봉역∼이양 구간 경전선 열차 운행이 한때 중단돼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날 오전 8시께 보성군 보성읍 봉산리 한 주택 뒤편 산에서 흘러내려 발목까지 잠긴 토사에 고립된 A(73·여)씨가 119에 의해 구조됐다.

보성읍 덕성마을에서도 주택 침수로 주민들이 고립돼 119가 인명 구조 활동을 벌였고, 인근 아파트 두 곳에서는 지하 주차장이 물에 잠겨 차량 52대가 침수 피해를 봤다. 보성여중 일부 건물과 운동장은 물에 잠겼다.

도로에 흘러내리는 토사
도로에 흘러내리는 토사(보성=연합뉴스) 1일 전남 보성군 회천면 야산이 폭으로 일부 무너지면서 토사가 도로에 흘러내려 응급 복구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2018.7.1 
cbebop@yna.co.kr

 

무안에서는 양계장에 물이 차 닭 6천여 마리가 폐사했다.

이날 오후 1시 현재 장흥(771㏊), 신안(500㏊), 보성(400㏊), 해남(250㏊), 고흥(200㏊) 등 5개 시·군에서 2천121㏊ 농경지 침수 피해가 접수됐다.

해남, 무안, 영광, 신안 등에서도 주택 파손, 침수 피해가 잇따랐다.

지난달 30일에는 전남 영광군 염산면 한 논에서 뜬모 심기 작업을 하던 태국인 근로자 A(63·여)씨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숨졌다.

경찰은 "A 씨에게 번개가 내리쳤다"는 목격자 진술 등으로 미뤄 낙뢰로 인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에 시간당 50㎜ 넘게 많은 비가 내리면서 주택과 마을 안길 등이 물에 잠겨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제주도 동쪽 부속섬 우도에서는 주택과 펜션이 침수되는 피해가 잇따랐다.

서울 청계천에는 물이 불어나면서 전날 오후 7시부터 주변 산책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폭우에 잠겨버린 도로
폭우에 잠겨버린 도로(보성=연합뉴스)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남부지방에 많은 비가 내려 1일 오전 전남 보성군 보성읍의 한 도로가 침수돼 차량이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다. [독자 제공=연합뉴스] 2018.7.1
minu21@yna.co.kr

 

◇ 장맛비에 발길 '뚝'…축제장·해수욕장·관광지 울상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주말 내내 많은 비가 내리면서 행락객 발길이 뚝 끊겨 축제장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관광지가 울상이다.

국립공원 18개 공원 462개 탐방로가 입산 통제됐으며, 김포·김해·사천·포항 등 4개 공항 등에서는 항공기 5편이 결항했다.

1일 개장한 제주지역 삼양·김녕·신양섭지·표선·중문색달·화순금모래 등 6개 해수욕장과 앞서 조기 개장한 협재·금능·이호·함덕·곽지 등 5개 해수욕장에는 장맛비가 내리면서 관광객과 도민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지난달 개장한 해운대 뿐만 아니라 6일 개장을 앞둔 동해안 해수욕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강릉 경포와 속초해변을 찾은 행락객은 궂은 날씨 탓에 바닷물에 발을 담그지 못한 채 백사장과 산책로를 걸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주말마다 관광객들이 찾는 해맞이 명소인 울산 울주군 간절곶과 해송 군락지로 유명한 동구 대왕암공원 등도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29일 시작해 이날 저녁 막을 내리는 김해 수국정원축제는 날씨 탓에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고, 통영 케이블카와 사천 바다케이블카는 이번 주말 이틀간 기상악화로 운행하지 못했다.

긴장감 감도는 태풍의 길목 제주
긴장감 감도는 태풍의 길목 제주(서귀포=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7호 태풍 '쁘라삐룬'이 우리나라를 향해 북상함에 따라 1일 오전 태풍의 길목 제주 서귀포항에 조업을 포기한 많은 어선이 정박해 있다. 2018.7.1
bjc@yna.co.kr

 

◇ 북상하는 태풍 쁘라삐룬 비상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7호 태풍 쁘라삐룬이 북상, 전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전국 자치단체장들은 "수해 예방이 우선"이라며 2일 예정된 취임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재난대비 비상 업무에 돌입했다.

태풍은 월요일인 2일 오후부터 태풍의 길목에 있는 제주도를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태풍 쁘라삐룬이 많은 수증기를 가지고 북상함에 따라 제주도와 남해안은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30m(시속 108㎞) 내외로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고, 그 밖의 전국에 많은 비바람이 불겠다고 예보했다.

쁘라삐룬은 이날 오후 3시 현재 985헥토파스칼(hPa), 중심 부근 최대 풍속 초속 27m의 중형 태풍으로 일본 오키나와 남남서쪽 210㎞ 부근 해상에서 시속 15㎞ 속도로 북북서진하고 있다.

태풍은 2일 밤부터 3일 새벽 사이 제주도를 지나 3일 오전 무렵 남해안에 상륙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현, 손상원, 최재훈, 이승민, 강종구, 황희경, 이덕기, 임청, 최해민, 차근호, 김선경, 김용태, 변지철)

태풍 '쁘라삐룬'북상 중
태풍 '쁘라삐룬'북상 중(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1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관계자가 태풍 '쁘라삐룬'의 경로를 확인하고 있다. 기상청은 쁘라삐룬이 1일 오후 제주도남쪽 먼바다부터 한반도에 영향을 주기 시작에 3일 오후 동해상으로 진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8.7.1
jjaeck9@yna.co.kr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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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부 '민간인 사찰 의혹' 관련자가 대법관 후보?

대한변협 회장 사찰 의혹 불거진 한승 현 전주법원장, 대법관 후보 추천 논란

18.07.01 13:07l최종 업데이트 18.07.01 13:07l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6월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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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이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사찰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승 전주지방법원장이 당시 변협 사찰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승 법원장은 최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대법관 후보자로 추천됐다. 

특히 대법관후보추천위에 안철상 법원행정처장과 고영한 대법관 등이 포함돼 있어, 한승 법원장의 과거 행적을 알고도 대법관 후보로 추천했는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우선 지난 26일 법원행정처가 검찰에 제출한 대법원 특별조사단 문건 410개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을 반대해온 하 전 회장을 사찰하고 압박해온 문건도 포함됐다. 

 

하 전 회장은 지난 2015년 2월부터 2년 동안 대한변협 회장을 지내면서 "상고법원은 헌법에 근거가 없는 위헌적 발상"이라며 "국민 이익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라며 강하게 비판했었다. 상고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재판 거래를 시도할 만큼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하 전 회장을 압박하기 위해 '대한변협 압박방안 검토', '대한변협 회장 관련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일부는 실제 실행된 정황도 있다. 법원행정처는 하 전 회장의 변호사 수임내역을 뒤지거나 국세청에 수임내역을 제공해 탈세 정황을 포착하려 했고, 이를 특정 언론사 기자에게 보도하도록 했다.

검찰은 이 문건에 법원행정처의 '3실'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다. 법원행정처 산하 사법지원실, 사법정책실, 기획조정실이 문건을 작성하기 위해 각각 아이디어를 내고, 어디서 지원할지와 실행분담 등을 논의했다는 의혹이다. 당시 사법정책실장은 한승 법원장이었다. 한승 법원장이 하 전 회장에 대한 사찰 등에 깊숙히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법원 "비공개 문건이라 작성기관 확인 불가"
 

큰사진보기 안철상 법원행정처장과 배석한 각 지방법원 판사등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회의실에서 전국법원장 간담회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안철상 법원행정처장과 배석한 각 지방법원 판사등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회의실에서 전국법원장 간담회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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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법원쪽에선 해당 문건의 내용에 대해, "비공개 문건이기 때문에 작성 기관을 확인해줄 수 없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한승 법원장이 최근 대법관 후보자로 추천된 것. 지난 20일 대법관후보추천위는 오는 8월 2일 퇴임을 앞두고 있는 고영한, 김창석, 김신 대법관의 후임 후보자로 10명의 대법관 후보자 명단을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전달했다. 이들 10명의 대법관 후보에는 한승 법원장을 비롯해 노태악 서울북부지법원장 등이 포함됐다.

게다가 후보추천위에는 이번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조사를 맡았던 특조단의 안철상 법원행정처장과 고영한 대법관이 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과연 한승 법원장이 '민간인 사찰'에 연루된 사실을 알고도, 대법관 후보로 추천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편, 김 대법원장은 내주께 후보자 10명 중 3명을 선택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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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 노동자의 함성 "더 이상 촛불정부는 없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7/01 16:10
  • 수정일
    2018/07/01 16: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민주노총, ‘2018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 개최...최저임금법 개정 등 반대

18.06.30 19:58l최종 업데이트 18.06.30 20:22l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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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똑바로 하라, 이것이 우리의 요구이고 주장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파도타기 함성'을 내질렀다. 광장을 가득 메운 주최측 추산 참가자 8만 명(경찰 추산 4만 명)은 '사기 치지 마라 문재인 정부', '최저임금 삭감법 폐기'등 피켓을 들고, 연신 "투쟁"을 외쳤다.

"오늘 민주노총은, 노동존중이라는 현란한 말 잔치로 국민 전체를 현혹하고 최소한의 약속마저 저버리는 문재인 정부를 강력히 규탄합니다."

김명환 위원장의 대회사 이후, 민주노총은 최저임금법 개정과 직무급제 도입 등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에 맞선 '총파업·총력 투쟁'을 선언했다. 정부와 각을 세우고, 대정부 투쟁을 전개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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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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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8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노동자 집회였다. 이날 참여한 16개 산별노조는 각자 서울 시내 각지에서 사전대회를 마친 뒤에 집결했다.

 

민주노총은 대회 영상을 통해서 "더 이상 촛불정부는 없다". "광장의 약속은 희미해지고 있다", "우리의 생존권을 되찾기 위해 여기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목소리 높여 외치고 싸워나갈 것이다" 등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서 집회 무대 위로 올라온 각 산별노조의 위원장들은 '투쟁사'를 통해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와 정부의 공공기관 직무급제 추진을 대표적인 '개악'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5월 28일에 국회에서 통과된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상여금과 복리후생비(식대 등)를 포함해 노동계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실질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또한 지난 6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보수체계 개편방안 (호봉제-> 직무급제)도 논란이 됐다. 직무급제는 업무의 난이도·숙련도를 통해 직무의 등급을 평가하는데,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이 최저등급을 받을 경우엔 처우 개선이 어려워질 수 있다. 임금 인상폭도 호봉제에 비해 낮다.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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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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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박금자 위원장은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최저임금 1만 원, 정규직 임금 80% 공정임금제, 노동존중 세상을 약속했는데 지금 어떻게 됐나? 누구 말처럼 '이니가 알아서 다 해줬습니까"라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박 위원장은 최저임금법 개정에 대해 언급하며 "여당 원내대표 홍영표가 2500만 원 미만의 노동자들은 피해 없다고, 피해가 생긴다면 원내대표 사퇴한다고 했는데, 내가 피해자다"라며 "17만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가 피해자다. 우리들 통장에 들어올 월급이 매월 19만 원씩 줄어들게 생겼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말했다.

전국민주연합노조 김성환 위원장은 "문재인 정권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명목하에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모든 노동자에게 등급을 매기겠다고 한다. 그게 직무급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규직 전환자에게 일방적으로 직무급제를 적용하고 있는 행안부를 보면 평생 일해도 정규직 임금의 38%밖에 못 받는다. 3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맴도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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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저임금법 개정과 직무급제의 문제를 언급한 뒤 덧붙여 "주 52시간 미적용 처벌유예, 탄력근로시간제 기간 확대 추진 등 자본의 요청을 온전히 수용하고 있는 정부가 어떻게 노동존중 정부냐"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 ▲최저임금개악 폐기 ▲ 재벌체제 해체 ▲ 노조할권리 쟁취 등을 요구하며 "이 시간 이후 민주노총은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총력 투쟁을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본 대회가 끝난 후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총리공관·헌법재판소 세 갈래 방향으로 나눠서 행진했다. 청와대 인근에서 행진이 이뤄짐에 따라 경찰 병력이 곳곳에 배치됐으나 양측의 충돌은 없었다.

오후 5시 30분께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마무리 집회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청와대 집무실에 있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목소리 전달할 수 있도록 외쳐보겠습니다"라는 말에 환호를 보내며, "최저임금삭감법을 즉각 폐기하라" "말로만 노동존중 문재인 정권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최저임금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노동 적폐 청산, 노동기본권 확대, 비정규직 철폐 등을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최저임금삭감법 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선포 및 6·30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노동 적폐 청산, 노동기본권 확대, 비정규직 철폐 등을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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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630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총궐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30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630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총궐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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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앞에 부서진 ‘뉴스’를 건져 올리다

[WEF포럼] 오보와 가짜뉴스 홍수 속에 진실을 향한 노력
영국 ‘위키트리뷴’, 노르웨이 ‘팩티스크’, 인도 ‘더퀸트’ 주목
가짜뉴스 플랫폼 구글·페이스북에 맞서 언론사 연대 필요성

포르투갈 리스본=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8년 06월 30일 토요일
 

소셜미디어를 통한 가짜뉴스와 혐오발언 확산은 2016년 오스트리아 대통령선거의 주요 쟁점이었다. 당시 유력후보였던 녹색당 대표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선거기간 내내 페이스북에서 시작된 가짜뉴스, “폐암과 치매에 걸렸다”는 소문을 부인해야만 했다. 지난해 아일랜드의 한 우파사이트는 인종 갈등 관련 뉴스를 조작한 혐의로 관련자들이 기소됐다. 이탈리아에선 지난해 가짜뉴스 웹사이트와의 전쟁을 위한 법안이 제출되며 논쟁이 뜨거웠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최근 발표된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디지털뉴스리포트에 따르면 ‘온라인 뉴스를 생각할 때 인터넷에서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우려스럽다’는 진술에 조사대상인 전 세계 37개국 뉴스수용자 54%가 ‘그렇다’고 답했다. 오늘날 전 세계 주요 뉴스룸은 오보와 가짜뉴스에 맞서고 있다. 오보와 가짜뉴스는 사실과 진실에 대한 뉴스수용자들의 접근을 방해하며 뉴스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저널리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6월 8일(현지시간) 포르투갈에서 열린 WEF(WORLD EDITORS FORUM)포럼 중 ‘진실, 신뢰 그리고 오보와의 싸움’ 세션은 저널리즘의 위기에 맞선 다양한 시도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날 가장 관심을 모았던 사례는 전문기자+독자 참여형 비영리 팩트체크 모델인 영국 ‘위키트리뷴’이었다. 위키트리뷴은 검증된 전문기자와 자원봉사자들이 모인 플랫폼으로 2017년 4월 설립됐으며 위키백과를 운영하는 위키미디어 재단과는 독립적인 사이트다. 위키트리뷴은 광고 없이 후원모델로 운영되며 누구나 위키트리뷴에 참여할 수 있다. 위키트리뷴 기자들은 인터뷰 전문이나 기사의 주요사실이 기록된 1차 소스를 제공하는 등 해당 기사의 출처를 명확히 제공해야 한다. 독자들은 기사 내용을 수정하고 덧붙일 수 있으며, 변경 사항은 내부 검증 뒤 반영된다.

 

▲ 6월 8일(현지시간) 포르투갈에서 열린 WEF(WORLD EDITORS FORUM)포럼 중 ‘진실, 신뢰 그리고 오보와의 싸움’ 세션에서 위키트리뷴 공동 창업자 겸 부사장인 오릿 코펠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정철운 기자
▲ 6월 8일(현지시간) 포르투갈에서 열린 WEF(WORLD EDITORS FORUM)포럼 중 ‘진실, 신뢰 그리고 오보와의 싸움’ 세션에서 위키트리뷴 공동 창업자 겸 부사장인 오릿 코펠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정철운 기자
 

위키트리뷴 공동 창업자 겸 부사장인 오릿 코펠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국민투표) 이후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에 기반 해 투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미디어는 팩트와 신뢰를 세우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관점을 디자인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뉴스는 부서졌고 우리는 부서진 뉴스를 고쳐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위키트리뷴을 만들었다. 권위 있는 팩트체크 게이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펠은 뉴스가 망가진 이유로 △클릭과 광고모델에만 의존하는 언론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필터버블 △급진적인 주장이 과대대표 되는 것 등을 꼽으며 이 같은 구조적 한계 속에 “뉴스가 일방적인 편견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고 진단하며 “위키트리뷴은 모든 걸 오픈하고 중립성을 지키며 다양성과 질적 수준을 중요하게 볼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특히 “소셜미디어 속 루머가 위험하다”며 “공동체의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여겨볼 또 다른 사례는 노르웨이 ‘팩티스크(faktisk)’다. 노르웨이 주요매체인 VG, Dagbladet, NRK, TV2의 지원으로 탄생한 팩트체크 연합체로, 한국으로 치면 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KBS가 팩트체킹 프로젝트를 공동 진행하는 격이다. 비영리 조직이지만 예산의 절반 이상을 팩트체크를 요청하는 파트너로부터 얻고 있다. 이들은 ‘틀림없는 사실’부터 ‘틀림없는 거짓’까지 5점 척도 스케일을 사용하며 보도의 출처를 재확인하고 있다.  

이와 관련 헬리 솔버그 팩티스크 의장은 “가짜뉴스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미디어리터러시(비판적 독해능력)로 뉴스를 접하는 시민들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며 언론이 미디어리터러시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도의 대안매체 ‘더퀸트(The Quint)’의 유튜브 방송화면 갈무리.
▲ 인도의 대안매체 ‘더퀸트(The Quint)’의 유튜브 방송화면 갈무리.
 

이날 세션에서 소개된 인도의 대안매체 ‘더퀸트(The Quint)’의 캐치프레이즈는 “Don't be a webqoof(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맹신하는 사람이 되선 안 된다).”다. 리투 카퍼 더퀸트 공동 설립자는 인도 내 종교적 갈등과 관련한 프로파간다가 사회적 문제라고 전하며 “가짜뉴스가 사람을 죽이고 있다. 왓츠앱에서 떠돈 루머가 살인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더퀸트는 유튜브에서 팩트체크 콘텐츠를 만들어 뉴스를 재공급하는 식으로 오보와 가짜뉴스 확산을 막고 있는데, 더 큰 목표는 미디어리터러시다. 리투 카퍼는 “언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오보의 위험성과 가짜뉴스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자리에선 가짜뉴스의 플랫폼으로 비판받고 있는 구글과 페이스북에 대한 ‘성토’가 이어져 한국과 유사한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은 가짜뉴스에 대한 경각심이 높은 독일에서 직원수를 늘리고 뉴스피드 내 논쟁이 된 콘텐츠를 표시하기 위해 비영리 팩트체크 기관 ‘코렉티브(Correctiv)’와 협력하고 있지만 우려를 완전히 없애진 못했다. 이와 관련 울프강 크래시 독일 쥐트도이체 차이퉁 편집장은 “페이스북과 구글은 모든 것을 연결시킨다고 말하지만 어차피 비즈니스 플랫폼에 불과하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사고가 발행하면 책임을 지지만 페이스북과 구글은 가짜뉴스의 확산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우리가 오보와 가짜뉴스 플랫폼에 맞서 세계적인 연대로 맞서야 하는 이유다”라고 밝혔다.  

아일랜드 ‘인티펜던트 뉴스 앤 미디어(Independent News and Media)’ 편집장 스테판 래는 미국 트럼프 대선과 브랙시트 사례를 언급하며 “구글과 페이스북이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압박감과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며 “구글과 페이스북에서 가짜뉴스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6월 8일(현지시간) 포르투갈에서 열린 WEF(WORLD EDITORS FORUM)포럼 중 ‘진실, 신뢰 그리고 오보와의 싸움’ 세션에서 토론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정철운 기자
▲ 6월 8일(현지시간) 포르투갈에서 열린 WEF(WORLD EDITORS FORUM)포럼 중 ‘진실, 신뢰 그리고 오보와의 싸움’ 세션에서 토론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정철운 기자
 

결국 미디어업계가 오보와 가짜뉴스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선 정보를 공유하며 협업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앞서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한 크로스체크(CrossCheck) 프로젝트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해당 프로젝트는 비영리단체 퍼스트 드래프트(First Draft)의 주도로 33개 언론사에 소속된 100명 이상의 언론인들이 모여 온라인에서 떠도는 루머와 각종 주장, 조작된 이미지나 동영상을 검증했다.

 

검증된 정보는 △진짜 △가짜 △근거 불충분 등으로 분류돼 크로스체크 웹사이트에 실렸다. 여러 언론사의 교차 검증으로 팩트체킹을 하는 포맷인데, 한국에선 지난 대선에서 유명세를 탄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 FactCheck’가 이와 가장 유사한 모델이다. 크로스체크 프로젝트에 참여한 언론인들은 팩트체크가 뉴스수용자를 위한 공적 서비스라는 점을 인식했다.  

지난 4월에는 국경없는 기자회·AFP통신·유럽방송연맹·글로벌에디터네트워크가 가짜뉴스에 맞서기 위한 ‘저널리즘 트러스트 이니셔티브’(JTI)를 출범시켰다. 크리스토퍼 들루아르 국경없는기자회 사무총장은 “거짓 정보가 진짜 뉴스보다 빠르게 유통되는 오늘날 저널리즘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생산하는 주체에게, 그 주체가 어떤 지위에 있든 진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진실을 ‘인양’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은 한국 언론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취재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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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보 “완전한 비핵화, 미국의 핵전쟁 위협 없앤 상태”

“조선반도 핵화시킨 책임은 미국… 핵전쟁 위협이 조선을 핵보유로 떠밀어”
▲ 북한(조선)이 지난달 24일 진행한 북부핵시험장 공개 폐기 의식.[사진 : 조선중앙통신]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의 모든 요인이 말끔히 제거된 상태를 말한다. 조선의 립장에서 말하면 자기들이 핵과 탄도로케트 개발을 추진하게 된 리유, 즉 미국의 핵전쟁 위협을 완전히 없애버린 상태다.”

북한(조선)의 입장을 대변해 온 재일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29일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분석하고 이후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연재물 <조미수뇌회담 이후의 세계> 네 번째 기사(<‘핵무기 없는 세계’를 외교과제로>)에서 북미공동성명의 세 번째 항목에 언급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의 의미를 해석해 놓은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 주류언론들의 미국 편향적 해석으로 ‘북의 비핵화’로만 알려진 한반도 비핵화가 “미국의 핵전쟁 위협을 완전히 없애버린 상태”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내 미국의 핵무기와 관련 군부대, 전략자산이 동원되는 군사훈련은 물론, 한반도 핵우산까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런 분석은 “조선반도를 핵화시킨 책임은 미국에 있다. 1950년에 발발한 전쟁에서 핵무기 사용을 검토하고 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남조선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핵무기를 끌어들여 북침 핵전쟁 각본을 짰다. 미국의 핵전쟁 위협이 조선을 핵보유에로 떠밀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과거에는 미국이 조선을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로만 약속하였다”고 환기시킨 조선신보는 “2018년의 (한반도 비핵화)수뇌합의는 핵전쟁의 근원을 없앨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미국이 해야 할 몫이 있고 조선이 해야 할 몫이 있다. 조미수뇌회담에서 확인된 것처럼 그것들은 단계별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고 실현 방법을 알렸다.

그러곤 “미국의 핵전쟁 위협을 제거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에 관한 합의는 조선이 이룩한 병진로선의 승리가 안아온 결실”이라며 “조선의 핵과 탄도로케트가 미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된다고 판단한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의 적대관계 청산과 호상 신뢰구축에 의한 조선반도 비핵화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북미정상의 한반도 비핵화 합의 배경을 추론했다.

이어 지난 4월 조선로동당이 중앙위원회의에서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한 데 대해 “조미수뇌회담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에 조선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하여 선제적 조치를 취하였다. 기존의 핵보유국들이 엄두도 내지 못한 행동을 실천에 옮겨 솔선수범을 보인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곤 “앞으로는 조미동시행동이다. 조선반도 비핵화를 공동의 목표로 상정한 미국이 취하게 될 행동에 상응한 조치를 조선이 취해나가게 된다”고 거듭 한반도 비핵화의 ‘동시행동’ 원칙을 강조했다.

또 “조선의 일방적인 핵무장해제를 노리는 세력들”의 이른바 CVID 주장을 일축하곤 “조선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관건으로 되는 것은 조미 핵대결의 원인을 만든 미국이 취하게 될 신뢰구축 조치들이다. 조미수뇌회담이 진행된 후 트럼프 대통령이 미남합동군사연습의 중지를 발표하여 그 첫걸음을 내디딘 것은 바람직한 사태진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선이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과 동시행동을 취하며 조선반도 비핵화를 추진해나갈 때 그것은 세계적인 파급력을 가진다”면서 “미국의 핵전쟁 위협이 감소되는데 따라 조선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고 지역의 안보환경에 긍정적인 변화가 초래될 것이다. 그와 더불어 세계의 반핵평화운동도 그 추진력이 비상히 강화되여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사회의 반핵평화운동 강화에 기여하리란 것.

조선신보는 지난 5월 제네바 유엔군축회의에서 북한(조선) 대표가 핵시험의 전면 중지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함께하겠다고 밝혀 포괄적핵시험금지조약(CTBT) 가입을 시사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앞서 지난해 7월 유엔에서 핵무기금지협약이 채택될 당시 간접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한 사실을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곤 “조선반도 비핵화를 향한 조미동시행동이 시작된 조건에서 조선은 핵무기 없는 세계 건설을 대외정책의 중요한 기둥으로 삼고 평화수호를 위한 전방위 외교를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해나갈 것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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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다 높은 이자에, 선물까지? '사기꾼' 아닙니다

'임팩트 투자'로 사회혁신기업을 지원하는 P2P 플랫폼 '비플러스'

18.06.29 19:55l최종 업데이트 18.06.29 19:55l

 

 

 비플러스는 공유경제 ·친환경 ·지역 재생 · 취약계층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들과 투자자를 연결해준다.
▲  비플러스는 공유경제 ·친환경 ·지역 재생 · 취약계층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들과 투자자를 연결해준다.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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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정기예금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어."

20대 청년 이정진씨의 말에 친구들의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리워드 상품도 주고 사회에 기여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지."

 

요즘 이씨는 투자에 관심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출형 P2P(개인 간 거래) 플랫폼 '비플러스'를 홍보합니다.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비플러스가 진행한 '세상을 이롭게 하는 프로젝트' 12곳에 투자했습니다. 

"최소 금액 1만 원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아직은 수입이 많지 않아 큰돈을 투자하지는 못하지만 제가 공감하는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있어 좋아요."

이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투자로 청년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예비사회적기업 '만인의 꿈'을 손꼽았습니다. 그는 여기에 50만 원을 투자했습니다. 

"제 또래 청년들의 문제라 가슴에 와닿았어요. 일반 P2P 금융보다 금리는 낮지만 리워드 상품도 있고 매달 이자 상환이 이뤄져 좋아요. 사회를 이롭게 하는 사업에 투자한다는 뚜렷한 미션이 있어서 제가 투자한 기업들에 대해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답니다."

사회혁신 기업 자금 조달의 새 창구
 
 비플러스는 지난 2년 동안 총 46차례에 걸쳐 15억이 넘는 대출을 진행했다.
[출처] 임팩트 투자로 사회혁신기업을 지원하는 P2P 플랫폼 ‘비플러스’
▲  비플러스는 지난 2년 동안 총 46차례에 걸쳐 15억이 넘는 대출을 진행했다. [출처] 임팩트 투자로 사회혁신기업을 지원하는 P2P 플랫폼 ‘비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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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플러스는 국내 유일한 임팩트 투자 P2P 금융 플랫폼입니다. 시민투자자와 공익 목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업과 단체들을 연결해줍니다. 

도시 양봉을 전파하는 사회적기업 '어반비즈서울'의 박진 대표는 비플러스를 통해 세 차례 총 5300만 원의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운영비로 급전이 필요할 때가 많아요. 일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려면 서류도 많이 준비해야 하는데 반드시 받는다는 보장도 없지요. 스타트업들은 신용이 낮거든요. 비플러스는 대출 심사 절차가 간편하고 신속한 데다 펀딩 과정에서 저희를 지지해주는 응원군들이 생겨나 무척 매력적입니다." - 박진 어반비즈서울 대표

비플러스는 2016년 창업 이래 공유경제·친환경·지역 재생·교육·문화·취약계층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이슈를 소재로 해결책을 모색해보는 다양한 기업과 단체들과 총 46차례에 걸쳐 15억 원이 넘는 대출을 진행했습니다. 올해 목표는 50억 원 돌파입니다.

재무 건전성은 기본, 대출심사에 사회적 가치 반영
 
 박기범 비플러스 대표
▲  박기범 비플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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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플러스는 투자 대상을 평가할 때 재무적 지표를 기본으로 삼지만 기업가에 대한 평판이나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상환에 충분한 영업 실적을 보유했음에도 금융권 거래 이력이 없거나, 담보나 보증의 어려움으로 대출 자체가 거부되거나 고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사회혁신기업과 단체들이 대상자들입니다. 이 같은 평가 방식으로 대출이 부도가 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대출 금리는 프로젝트별로 부담 가능한 수준에서 결정됩니다. 일반 P2P 금융 수익률이 15~20%로 두 자릿수인 데 반해 비플러스의 수익률이 6~8%에 그치는 이유입니다. 

"투자 수익은 다소 낮더라도 투자가 갖는 또 다른 의미 즉, 당신의 투자가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비플러스는 '기부=후원'이라는 공식을 벗어나 투자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임을 알려주는 플랫폼입니다. " - 박기범 비플러스 대표

개미들도 참여할 수 있는 가치 투자

개인 투자자들은 최소 1만 원, 최대  500만 원까지 투자할 수 있습니다. 비플러스 페이스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적은 금액이라도 함께 힘을 보태면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낀다"며 "큰 손만이 아니라 개미 후원자들이 모여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든다"는 댓글이 많습니다. 

비플러스 회원 수는 약 1000명. 이 가운데 약 60%가 십시일반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입니다. 최근에는 사회적경제를 전혀 모르고 고수익을 좇아 움직여 왔던 전문투자자들도 동참해 큰 힘을 실어줬습니다.

"무작정 높은 수익률만 좇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수익률만 보장된다면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의 돈이 쓰이길 바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부나 후원의 형태가 아니라 투자를 통해 자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라는 생각이죠."

사회적기업 제품을 리워드 상품으로 제공
 
 사회적기업 동구밭의 천연비누
▲  사회적기업 동구밭의 천연비누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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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플러스에 투자한 사람들은 수익금 이외에도 리워드 상품이라는 깜짝 선물을 받습니다. 박 대표는 이때 되도록 사회적기업 제품을 제공합니다. 2017년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한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 동구밭이 만든 천연비누를 선물 받았습니다. 

"보통 기업들이 당사의 물건을 리워드 상품으로 주지만 태양광 발전기처럼 곤란한 경우에는 사회적기업 제품을 선별해 제공합니다. 사회적기업을 잘 모르거나 품질이 낮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사회적기업 상품을 써 볼 기회를 주는 거죠. 저희 페이스북에는 동구밭이 만든 비누를 써본 투자자들이 좋아서 따로 구매했다는 댓글이 심심찮게 올라옵니다."

"사기꾼 아냐?" 불신과 편견을 이겨내려고 발로 뛰었다

투자자와 영세한 기업을 연결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의심의 눈초리가 묻어나는 전화 공세와 악플에 시달릴 때도 많았지요. 

"사회적기업이 뭐라고 우리가 낮은 이자를 받아야 하나요? 그렇다고 리스크(손실 위험)가 적은 것도 아닌데..."
"임팩트 투자가 뭐야? 당신 사기꾼 아냐?"
"사회적기업이라는데 정말 사회에 유익하긴 한 건가요?"
 

박 대표는 "아직도 대중들 사이에는 '사회적기업 하면 정부의 지원을 받아 근근이 지탱해가는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있다"며 "이 벽을 깨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 높은 벽을 깨기 위한 방법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는 것이었습니다. 기업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오프라인으로 만나고 'SOPOONG'이나 '함께일하는재단' 같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대출 상담을 진행하며 전략적으로 쫓아다녔습니다. 

박 대표는 회계사 출신이라는 전문성을 발휘해 비플러스가 아니더라도 여러 통로로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재무적인 조언을 해주면서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덕분에 요즘엔 영업을 하러 다니기보다는 기업들의 자발적인 신청 사례가 더 많다는군요. 

"대출자와 투자자의 이해가 서로 상충되는 양면 마켓에서는 이를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선 거래 하나하나를 100%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한편으론 꾸준히 위기관리를 하면서 사회적기업에 투자해도 부도가 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습니다."

비플러스는 투자자들에게 매달 투자한 기업들에 대한 현재의 상황을 알려주는 뉴스레터를 보내고 계약서에는 상환 계획표와 그 기업에 대한 재무정보를 공개해 투명성을 높였습니다. 

정부 주도 임팩트 금융 '약'일까 '독'일까

박 대표는 "임팩트 금융이 지속 가능하려면 작은 규모라도 민간에서 시작해 활성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정부 주도의 사회적 경제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지나치게 의존적인 태도를 낳는 부작용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대출이자가 연 6~8% 정도면 적절한 수준이라고 생각했어요.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데도 정부의 정책 자금이 워낙 낮게 책정되다 보니 여기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이 짙습니다. 하지만 정책 자금을 받으려면 서류 준비에만 두 달 이상이 걸리고 면접에 발표 평가도 있고 그래도 안 될 수 있지요. 불발로 끝났을 때 신생기업들이 자금을 얻을 수 있는 창구라고 하면 이자가 두 자릿수나 되는 캐피털이나 카드론, 저축은행 등 제2, 제3 금융권들뿐입니다. 

일자리 제공형 사회적기업 떡찌니는 즉석떡볶이 홈쇼핑 론칭을 불과 2주 앞두고 재료비를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석지현 떡찌니 대표는 비플러스를 통해 일주일 만에 1500만 원의 자금을 마련했고 홈쇼핑 방송으로 하루 만에 한 달 매출에 버금가는 3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떡찌니는 한 달 만에 1500만 원을 상환했고 투자자들에게 이자와 함께 리워드 상품으로 떡볶이를 선물했습니다. 

정책 자금과의 연계 대출로 이자율 경감 효과

2017년 비플러스는 하반기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융자 수행기관으로 선정됐습니다. 그러자 비플러스는 펀딩이 성공하면 사회투자기금을 매칭해 최대 2.5배의 금액을 추가로 대출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비플러스의 대출 이자는 정책 자금보다 높지만 매칭 기금을 받게 되면 연리 4%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습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쉽게 정책 자금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

이 밖에 서울 성동구와도 지역 협력 기금 협약을 맺었습니다. 박 대표는 그동안 철저하게 수치에 밝은 일을 해왔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대형 회계법인에 근무할 때는 금융권 분야를 맡아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가 주 고객이었습니다. 이때 해외 뉴스를 통해 마이크로 크래딧의 존재를 접하고는 그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외신에서 극빈자들에게 무담보 소액 대출을 제공하는 그라민은행을 알게 됐어요. 그때 '어, 이런 것도 가능하네'라고 생각했지요. 당시는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였고 가까이서 들여다본 금융기관들의 민낯에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도 분명 있었습니다. 약탈적 금융 혹은 그 반대로 선한 금융이란 말에 100% 동감하지는 않지만 일정 부분 부인할 수 없는 점이 존재합니다."

"투자가 곧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하는 것이 꿈"
 
 비플러스와 함께 하는 사람들. 국민연금·(재)한국사회투자·증권사 출신 등 재무관련 전문가들이 많다.
▲  비플러스와 함께 하는 사람들. 국민연금·(재)한국사회투자·증권사 출신 등 재무관련 전문가들이 많다.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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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그는 (재)한국사회투자로 자리를 옮기며 사회적 금융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창업이란 가시밭길에 들어서기 전 사회적기업들에 대한 회계 관련 비즈니스를 해볼 심산으로 유명 세무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중도에 자퇴했습니다. 

"주변에서 많은 걱정을 했지만 전 임팩트 투자가 확산되리라 전망했고 그 일은 내가 잘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의 직업이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과 연계된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가 생각하는 임팩트 투자란 무엇일까 물었습니다.  

"현재의 임팩트 투자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을 발굴해 투자함으로써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우리의 목표는 투자를 통해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기업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설계 단계부터 참여해 우리가 투자할 테니 장애인을 고용하고 또 수익의 일부분을 공익적인 일에 기부하라는 등의 조건을 내거는 겁니다. 그런 때가 오면 모든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굳이 사회적기업이란 말이 사라질지도 몰라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격주로 발행하는 온라인 뉴스레터 '세모편지'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비플러스#가치투자#사회적경제#P2P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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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에 의한 노조파괴 진상을 규명하라!”

“국가권력에 의한 노조파괴 진상을 규명하라!”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06/29 [23:2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주노총이 MB정부 노조파괴 공작 국가배상청구 소송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민중의소리)     © 편집국

 

이명박 정부 당시 정권의 노조파괴 공작으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섰다.

 

민주노총은 29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권력에 의한 노조파괴 관련 자료 공개노조파괴 진상규명노조파괴 부역자 엄중 처벌 등을 촉구했다.

 

MB정부 노조파괴 공작 국가배상청구 소송 참가자들은 권력에 부담스러운 존재인 민주노총을 와해시키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KT노동조합서울지하철노조 등을 잇달아 민주노총을 탈퇴시키고민주노총과 그 조합원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들이 국정원과 관계기관이 공모한 노조파괴공작의 일환이었던 것이 국정원 내부 감찰결과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통합공무원노조 초대위원장이었던 양성윤에 대한 해고전교조를 비방하는 보수단체의 전교조 죽이기 지원사업 등이 모두 국정원이 기획한 노조파괴 공작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국정원은 민주노총 탈퇴 및 조합원수를 감소시키는 조건으로 성공보수를 받은 창조컨설팅을 대놓고 홍보를 하기도 하였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국가권력에 의한 노조파괴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왔다며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와 땀이 녹여있는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그 결과 삶이 파탄나고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일들이 발생하였다고 분노했다.

 

<민중의소리>보도에 따르면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위원장은 이번 국가배상청구 소송의 주요 목적은 돈을 받기 위함이 아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대한민국에서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후세에 경고로 삼기 위함이다고 소공 취지를 설명했다.

 

한편 검찰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고용노동부를 통해 노조파괴 공작을 벌인 것으로 보고 수사에 들어간 상태다관련 의혹을 받는 이채필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동걸 전 정책보좌관은 각각 25일과 27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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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국가권력에 의한 노조파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라!

 

최근 국가정보원의 자체 감사결과 및 검찰 수사를 통해 국정원노동부 등이 직무 범위를 벗어나 민주노총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국공무원노동조합 및 금속노동조합 등의 조직과 운영에 지배·개입하고노동조합 파괴 공작을 벌인 사실이 밝혀졌다.

 

권력에 부담스러운 존재인 민주노총을 와해시키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KT노동조합서울지하철노조 등을 잇달아 민주노총을 탈퇴시키고민주노총과 그 조합원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들이 국정원과 관계기관이 공모한 노조파괴공작의 일환이었던 것이 국정원 내부 감찰결과 드러났다또한 통합공무원노조 초대위원장이었던 양성윤에 대한 해고전교조를 비방하는 보수단체의 전교조 죽이기 지원사업 등이 모두 국정원이 기획한 노조파괴 공작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욱 참담한 사실은 국정원 감찰결과 이채필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이동걸 정책보좌관이 노조파괴 공작개입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노동기본권을 옹호해야 할 노동부장관이 국정원과 공모해 노조파괴공작을 벌인 것이다.

 

국정원은 민주노총 탈퇴 및 조합원수를 감소시키는 조건으로 성공보수를 받은 창조컨설팅을 대놓고 홍보를 하기도 하였다창조컨설팅은 7년간 민주노총 소속 발레오만도상신브레이크유성기업보쉬전장성애병원레드사이드컨트리클럽골든브릿지투자증권영남대의료원등 14개 노조를 파괴하였다.

 

국정원이 깊숙이 개입한 제3노총인 국민노총은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의 전신인 서울지하철노조 등 100개 노조에서 탈퇴한 3만여 명이 참여했는데, 3년 안에 50만 명의 조합원을 확보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양대 노총 구도를 깨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의혹이라고만 생각되었던 것들이 많은 보도와 증거들로 인해 진실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국가권력에 의한 노조파괴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왔다수많은 노동자들이 피와 땀이 녹여있는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그 결과 삶이 파탄나고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일들이 발생하였다.

 

이에 우리는 국가의 노조파괴 공작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여 다시는 이와 같은 반헌법적 불법행위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국가배상청구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국가권력에 의한 노조파괴의 모든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라!

노조파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라!

노조파괴 인권유린의 부역자를 엄중하게 처벌하라!

 

2018년 6월 29

MB정부 노조파괴 공작 국가배상청구 소송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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