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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비하 공작 배후도 MB국정원

 

[아침신문 솎아보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취소 청원에도 개입… 보수단체 논평에도 개입 정황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2017년 10월 09일 월요일

연휴가 마무리되는 오는 10일부터 ‘이명박 정부 국정원 적폐 수사’가 다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MB의 총애를 받으며 국정원의 수장을 지낸 원세훈 전 원장이 지난달 26일부터 다시 피의자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며 “거기서 딱 '한 칸'만 올라가면 MB”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장은 대통령에게 배석자 없이 ‘독대 보고’를 한다.

9일 전국단위종합일간지 1면엔 MB 국정원의 정치 공작 행위가 추가로 확인된 사실이 실렸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검찰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하하는 논평을 내도록 보수단체에 청부한 정황”을 포착했다. 2009년 4월 경 국정원 심리전단이 보수단체 ‘대한민국 선진화개혁추진회의’ ‘뉴라이트 전국연합’ 간부들과 상의해 노 전 대통령 및 민주당을 폄훼하는 논평을 내게 했다는 것이다.

 

▲ 9일 한국일보 1면
▲ 9일 한국일보 1면
 
 

 

논의 시점은 대검 중수부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노 전 대통령 측의 금품수수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 권양숙 여사와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씨를 소환할 무렵이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당시 “노무현이라는 ‘불량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은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해야 한다”며 “무능하고 독선적이고 부패하고 치사하기까지 한 ‘불량 대통령’을 내놓아 5년 내내 국민들을 고통 받게 하더니, 이제는 부패스캔들로 국민들이 외국인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들었다”고 논평했다.

한국일보는 “이 단체들 배후에는 국정원이 있었다”며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전담 수사팀은 이들 단체와 국정원 심리전단 측이 해당 내용을 논의한 내용이 담긴 이메일 등을 확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지적했다.

 

MB 국정원은 보수단체를 앞세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취소해달라는 청원을 모의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ㄱ씨와 보수단체 간부 ㄴ씨가 주고받은 e메일을 압수해 분석한 결과 이들이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벨상 취소를 위해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청원서를 보내는 방안을 상의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보수단체는 김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논평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반헌법적 6·15공동선언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2010년 3월 김 전 대통령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로 사단법인 ‘행동하는 양심’이 출범했을 때 “김 전 대통령은 6·15공동선언을 통해 헌법 정신에 반하는 연방제 통일에 합의했던 사람”이라며 “노벨 평화상을 받기 위해 부정한 공작과 거래를 자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사람”이라고 매도했다.

한편 검찰은 우파단체를 동원해 선거·정치에 개입한 국정원의 ‘오프라인 여론조작’과 관련해 구체적인 활동비 내역 자료를 국정원에 요청했다. 한겨레는 검찰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2011년 국정원이 우파 단체를 움직여 중앙 일간지에 여당과 정부를 지지하고 야당을 비판하는 광고를 내고 관련 집회를 벌였다는 의혹과 관련해 최근 국정원에 총 자금집행 규모 관련 자료 등을 요청“한 사실을 확인했다.

앞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국정원이 2010년 11월부터 두 달여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해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국민일보 등 5개 신문사에 우파단체 명의로 시국광고를 게재하며 쓴 돈이 5600만원이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검찰 내부적으로는 이는 일부일 뿐 국정원이 온라인 활동보다 오프라인에 투입한 활동비 규모가 더 클 것으로 보고 국정원에 관련 자료 전부를 요청한 것”이라 평가했다.  

 

▲ 9일 삼계탕
▲ 9일 경향신문 1면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은 지난 7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및 위증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민 전 단장은 2010년 1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지시를 받아 ‘민간인 댓글부대’로 알려진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하면서 불법 선거운동과 정치관여 활동을 하도록 하고 수백 차례 모두 52억5600만원을 지급해 국고에 손실을 입힌 혐의를 사고 있다. 2013년 9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외곽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한 것에 대해선 위증 혐의가 적용됐다.  

경향신문은 “30년 ‘국정원맨’ 민병주의 몰락”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민 전 단장의 기소 사실을 다뤘다. 민 전 단장은 1984년 1월 안전기획부(현 국정원) 소속 특정직 7급 공무원으로 임용돼 30년 넘게 국정원에서 일했다.  

한미 FTA 개정 국면에 “한국, 독자적 통상 모델 구축” 목소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개정 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언론은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한국 측 통상교섭본부와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한·미 FTA 2차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열고 FTA 개정 절차를 밟기로 합의했다. 본격적인 협상은 이르면 올해 말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당장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개정 국면을 맞으면서 자동차와 철강 업계는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추후 개정 협상의 ‘1차 타깃’이 될 것으로 알려지자 난감한 표정”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협상 테이블에서 ‘관세 부과’와 ‘비관세 장벽 폐지’라는 두 가지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무관세가 적용된 자동차 분야에게 “관세 부활은 그만큼 가격 경쟁력을 잃는 것”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겨레는 “철강 산업은 이미 미국의 강도 높은 수입 규제를 받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상무부는 한국산 후판에 반덤핑 관세와 상계관세 11.7%, 한 달 뒤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최대 24.9%의 관세를 물렸다”며 “철강 업계는 개정 협상에서 미국의 적자를 이유로 추가 관세가 부과될 경우 수출에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 9일 중앙일보 3면
▲ 9일 중앙일보 3면
 
 

 

중앙일보는 ‘세이프가드(긴급무역제한) 절차’ 돌입 등을 종합해 “트럼프 행정부의 ‘코리안 배싱(bashing: 때리기)’”을 지적했다. 미국은 1월 한국산 가소제(플라스틱 첨가물)에, 2월에는 합성고무에 반덤핑 관세를 예비 판정했다. 한국 제품이 헐값에 수출됐다고 보고 징벌적 관세를 매기겠다는 취지다.  

4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한국 등 수입 철강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사 명령을, 5월에는 태양전지, 6월에는 폴리에스테르 단섬유에 대한 반덤핑 조사 명령을 내리는 등 매달 새로운 무역 제재 이슈가 나왔다. 이어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삼성·LG전자 등 한국 세탁기 수입으로 미국 세탁기 업계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정”하며 세이프가드(긴급무역제한) 절차를 밟기 시작한 것이다.

중앙일보는 “통상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면서 “늦었지만 수세를 공세로 전환할 카드를 면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을 전했다. 안세영 교수는 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차피 전자상거래 등 바뀐 무역 여건을 반영하기 위해 협정 개정은 필요했다”며 “개정을 두려워하기보다 협상에서 우리의 요구사항을 미국에 역제안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안보에 편승하는 한 통상의 독자적 논리 전개는 어렵다”며 “트럼프 탓만 하지 말고 경제민주화를 뒷받침할 통상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여정 초고속 승진, 北 노동당 세대교체 명확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7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인사 발표를 두고 ‘세대교체’ ‘김정은 당으로의 개편’ 등의 평가가 제기된다.

 

▲ 9일 조선일보 4면
▲ 9일 조선일보 4면
 
 

 

김 위원장은 자신의 여동생이자 ‘백두혈통 2인자’인 김여정을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파격 발탁했다. 최룡해 당 중앙위 부위원장으로 재선출되며 8개의 보직을 꿰차 당·정·군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가진 실세로 부상했다. 북한은 이어 노동당 최고 정책결정기관인 정치국 위원 5명과 후보위원 4명을 새로 뽑았고, 이전에 노동당 비서 역할을 한 당 중앙위 부위원장에 6명을 새로 선출했다.

김여정은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이 된 지 1년 5개월 만에 정치국 후보위원이 됐다. 한겨레는 “김여정은 7차 당대회 때 김정은 곁에서 축하 꽃다발을 직접 받아 챙기는 등 김정은이 참석하는 주요 행사에 등장해 존재감을 과시해왔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대대적 인사와 함께 경제·핵개발 병진노선 추진을 재확인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 당이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틀어쥐고 주체의 사회주의 한길을 따라 힘차게 전진하여 온 것이 천만번 옳았으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는 “자신의 핵 폭주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견디기 위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노동당을 명실공히 ‘김정은 당’으로 개편하기 위한 체제 정비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고 보도했다.  

아래는 9일 조간 전국단위 주요종합일간지 1면 머릿기사다.

경향신문 “[트럼프발 통상압력]미 통상전략에 밀려 ‘한·미 FTA’ 수술”

국민일보 “수입 늘어난 개인, 해외서 펑펑… ‘소득주도 성장’ 복병되나”

동아일보 “일제가 왜곡한 한글 맞춤법” 

서울신문 “[단독] 공문서 외국어 범벅…한글 홀대하는 정부”

세계일보 “사드 이어 통상쓰나미…한국 경제 ‘사면초가’” 

조선일보 “트럼프 "北엔 단 한가지 수단뿐" 

중앙일보 “[단독] 93세 카터 방북 추진 … 김정은과 면담 희망”한겨레 “간첩 누명이 갈라놓은 50년 꿈에 그리던 첫사랑을 만나다” 

한국일보 “[단독] MB국정원 '노무현 비하' 공작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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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반포 과정은 영화보다도 더 극적"

 

[인터뷰] ‘훈민정음 전문가' 김슬옹 한글학회 연구위원 "한겨레 모두 보는 영화로 만들자"

17.10.09 11:17l최종 업데이트 17.10.09 11:17l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왼손에는 책이 한 권 들려 있다. 어떤 책일까.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국보 70호이고 1997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마침 올해는 세계기록유산 등재 20돌이기도 하다.

훈민정음 연구가 김슬옹 박사(56, 한글학회 연구위원, 연세대 외래교수)는 "한글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면서 "훈민정음 창제과정은 영화처럼 극적이기 때문에 영화로 각색해도 훌륭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대왕이 비밀리에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2년 6개월만에 해례본이 나오고, 이것이 역사에서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는 과정이 극적입니다. 비밀리에 연구하게 한 것도 극적이고, 15세기에 하층민인 노비 집단이 이 글자를 배울 수 있게 된 것도 기적이고, 해설한 책을 펴낸 것도 기적입니다. 1천만 관객이 아니라 남북한 한겨레 7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영화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훈민정음 언해본 목걸이를 착용한 김슬옹 박사.
▲  훈민정음 언해본 목걸이를 착용한 김슬옹 박사.
ⓒ 신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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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박사는 "훈민정음 28자만 배우면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나누고 지혜를 발휘할 수 있고, 특히 해례본에는 엄청나게 많이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면서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 과정을 영화로 만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새 문자 훈민정음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이다. 세종대왕은 비밀리에 연구하여 1443년에 훈민정음 28자를 만들어 신하들에게만 알렸다. 이후 실험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새 문자 훈민정음과 그것을 만든 원리, 운용 방법을 알렸다. 이 책에는 창제의 취지와 원리, 역사적 의미 등을 비롯하여 문자의 다양한 예시 등이 실려 있다.

김슬옹 박사는 "한글을 배우면 성리학이든 어떤 학문이든 풀어낼 수 있으니 한문으로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던 양반들은 훈민정음을 무서워했을 것"이라며 "기득권이 사라지므로 한글을 2류 문자로 취급한 걸로 추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인근 전통찻집에서 훈민정음 연구가 김슬옹 박사를 만나 구술 대담을 했다. 김 박사는 2016년 3월부터 2017년 10월 현재까지 훈민정음 해례본 특강을 한글문화연대에서 8주 과정으로 진행 중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별’ 글자가 있는 정음해례 26ㄴ(간송본) ‘별’ 글자가 있는 정음해례 26ㄴ(간송본).
▲ ‘별’ 글자가 있는 정음해례 26ㄴ(간송본) ‘별’ 글자가 있는 정음해례 26ㄴ(간송본).
ⓒ 신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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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 해례본'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요?
"인류 최고의 문자 해설서답게 당대 최고의 철학, 수준 높은 언어학, 문자학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더욱이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지식과 정보를 나누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해례본은 모두 66쪽으로, 이 가운데 8쪽까지는 세종대왕이 직접 저술한 '정음편'입니다. 이 정음편의 서문에 '유통(流通)'이란 말이 나오는데, 15세기 말(우리말)과 글(한문)이 유통이 안 되니 한문을 아는 이와 모르는 이가 유통(소통)하지 못하고 그래서 모두 유통할 수 있는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 왜 해례본 교육에 몰입하고 계신지요?
"이런 해례본이 우리 학계와 교육계에서 홀대를 받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현재 해례본만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전문가가 많이 나올 리 없습니다. 이 책은 다양한 학문이 녹아 있는 융복합서이고 한문본이다 보니 학제적 연구와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쉽지는 않지만요." 

-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배워할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지요?
"이 강의를 위해 누구나 쉽게 해례본을 연구하고 배울 수 있게 여러 방식의 교육용 자료를 구성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실 며칠 뒤면 이 자료가 책으로 나옵니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의 합리성, 지식과 생각의 자유로운 소통의 평등성 등이 담긴 훈민정음 정신을 함께 새겼으면 합니다. 

"훈민정음에는 누구나 평등하게 배울 수 있는 '문자 민주주의' 담겨"
 

훈민정음 해례본 둘째 장  『훈민정음』 해례본 둘째 장 복원본.
▲ 훈민정음 해례본 둘째 장 『훈민정음』 해례본 둘째 장 복원본.
ⓒ 신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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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 해례본은 왜 중요한가요?
"해례본이 중요한 이유를 두 가지로 짚어보겠습니다. 첫째로는 한글 창제 원리가 정확히 기술된 것은 이 책밖에 없습니다. 18세기, 19세기 훈민정음을 연구했거나 언급한 학자들이 꽤 있지만 이들 모두 이 책을 보았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책 수집광이었던 이덕무(1741~1793)조차 이렇게 써 놓았을 정도입니다(관련 자료를 갖고 나와 보여 주며). 

'훈민정음에 초성(初聲)·종성(終聲)이 통용되는 8자는 다 고전(古篆)의 형상이다. ㄱ 옛글자의 급(及)자에서 나온 것인데, 물건들이 서로 어울림을 형상한 것이다. ㆍㄴ 익(匿)자에서 나온 것인데, 은(隱)과 같이 읽는다. (가운데 줄임) 세속에 전하기를 '장헌대왕이 일찍이 변소에서 문살을 배열(排列)하다가 문득 깨닫고 성삼문 등에게 명하여 창제하였다'한다.<이덕무, <청장관전서> 54권 양엽기 1, 현대어번역(고전번역원)> 임금은 변소에 가지 않고 변기틀인 '매화틀'을 침소에서 이용했음에도 이런 잘못된 제자 원리가 어지럽게 유포된 것은 해례본을 보지 않고 썼기 때문입니다. 이런 오해가 완전히 풀리게 된 사건이 1940년에 <훈민정음> 원본 발견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해례 부분, 특히 '제자해'에 창제 원리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그 다음에 무엇을 들 수 있을까요?
"둘째는 누구나 평등하게 배울 수 있는 문자 보편주의, 문자 민주주의를 담고  있기에 중요합니다. 쉬운 문자, 누구에게나 과학적이고 간결한 문자가 아니고서는 이런 꿈과 이상을 담을 수 없지요."

- '<훈민정음> 해례본'의 인류 보편주의를 설명해 주세요.
"해례본은 하층민을 배려해 새 문자를 만든 세종의 인류 보편의 문자 꿈이 담겨 있어 위대합니다. 훈민정음 창제 동기와 목표, 취지 등이 담긴 세종 서문과 정인지 서를 함께 보면 그 점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려운 한자 때문에 기본적인 소통조차 못하는 하층민을 배려하여 훈민정음을 만들었습니다. 하층민과 더불어 양반을 포함한 모든 백성들이 편안하게 쓸 수 있는, 하루아침에 배우는 쉬운 문자를 만든 것입니다." 

- 해외 학자들도 한글을 높게 평가하는데….
"영국의 역사가 존맨은 한글을 '인류 문자의 꿈'이라고 했고, 이런 문자를 만든 세종을 기려 일본의 천문학자 와타나베는 자신이 발견한 별 이름을 '7365 Sejong'이라 하여 이른바 '세종별'이라 지었지요. 놀랍게도 해례본에서 예를 든 훈민정음 마지막 글자는 '별'입니다. 누구나 쉬운 문자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나눠 별이 되라는 의미는 아닐까요."

-'<훈민정음> 해례본'의 융합적 가치는 무엇인지요?
"해례본에는 인류 최고 수준의 학문과 사상이 두루 반영되어 있습니다.  지금 수준으로 보아도 최고의 문자로, 과학에다 천지인 삼재 사상, 자음에는 오행 철학과 음악까지, 모음에는 수리철학까지 적용하여 만고불변의 소리 문자를 굳게 세운 것입니다."

- 해례본에 가치를 매긴다면 얼마나 될까요?
"해례본은 흔히 '무가지보'라고고 부릅니다. 가격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비싸고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실제 공정한 값을 따져 대략의 가격을 추정해볼 수는 있는데,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동대문디자인센터에서 전시할 때  그 가격이 매겨진 적이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셋째 장 훈민정음 해례본 셋째 장 사진본.
▲ 『훈민정음』 해례본 셋째 장 훈민정음 해례본 셋째 장 사진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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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사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전시를 위해서는 보험에 들어야 하는데 보험사에서 추정한 돈은 최소 1조 원이었습니다. 국제 고가품 사례에 비추어 그렇게 추산한 것인데 세계기록유산인데다가 종이 책으로서의 가치, 인류 최고 문자로서의 가치 등이 고려되었습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1940년에 매입한 가격은 정확한 기록도 없고 증언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 당시 일본돈 만 원, 중개료까지 합치면 만천 원으로 서울 최고 비싼 기와집 열 채 값이었다고 합니다."

- 한글은 왜 '과학적인 문자'라고 불리나요?
"한글을 과학적인 문자라고 하는 것은 핵심 제자 원리가 과학적이고 문자를 확장하는 방식이 체계적이기 때문입니다. 15세기에는 기본자가 지금보다 네 자가 더 쓰여 기본자가 28자였는데 이는 상형기본자 8자, 자음자 5자와 모음자 3자를 통해 확장된 것입니다. 그냥 더한 것이 아니라 자음은 획을 더하는 방식으로, 모음은 기본 세 자를 합치는 방식으로 규칙적으로 확장자나 응용자를 만들었습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자음은 발음 기관 어딘가에 닿아 나는 소리이므로 발음기관을 본뜨고, 모음은 입술, 혀, 목구멍 등 여러 복합적인 작용으로 나므로 발음기관을 본뜨지 않고 하늘(·), 땅(ㅡ), 사람(ㅣ) 등의 삼재를 상형한 뒤, 이를 합성하여 우리말에 담겨 있는 음양의 기운을 살려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등의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자음과 모음, 초성자, 중성자, 종성자를 합쳐 만드는 방식도 '호하후허'에서 보듯 간결하고 체계적입니다."

한글날이 '10월 9일'인 이유
 

『훈민정음』 언해본 첫째 장 교정본 『훈민정음』 언해본 첫째 장 교정본.
▲ 『훈민정음』 언해본 첫째 장 교정본 『훈민정음』 언해본 첫째 장 교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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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있으면 10월 9일 한글날입니다. 한글날은 왜 '10월 9일'인가요?
"세종은 임금이 된 지 25년째인 47살 때, 1443년 12월(음력)에 훈민정음 창제를 알리고 50살 때인 1446년 9월 상한(음력)에 반포했습니다. 이로부터 4년간 <훈민정음> 보급에 주력한 뒤 1450년에 운명하셨습니다. 그럼 1446년에 실제 훈민정음 반포식을 했을까요? 1446년에 반포했다는 것은 반포식을 열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훈민정음'이란 새 문자를 해설한 책 <訓民正音>을 간행, 출판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상한은 1일부터 10일 사이이므로 정확한 날짜는 모릅니다. 상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 오늘날 한글날인 10월 9일입니다.

- 기적의 문자 해설서 <훈민정음> 해례본 간행 571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훈민정음 해례본에 얽힌 몇 가지 궁금증을 질문 드리겠습니다. 우선 <훈민정음> 해례본은 왜 '해례본'이라 부르나요?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대왕을 비롯해 집현전 학사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 등 여덟 명이 함께 지었습니다. 세종대왕이 직접 쓴 부분을 '정음편' 또는 '본문'이라 부르고, 신하들이 풀어 쓴 부분을 '정음해례편' 또는 '해례편'이라고 부릅니다. '정음편'은 세종의 서문과 '예의'로, '정음해례편'은 '정인지 서'와 '해례'로 구성됩니다. 세종 서문을 자세히 풀어쓴 것이 '정인지 서'이고 '예의' 부분을 자세히 풀어쓴 것이 '해례'입니다. '해례'는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의 다섯 '-해'와 용자례의 '-례'를 합쳐 이르는 말입니다. 책 제목과 문자 이름이 '훈민정음'으로 같다 보니, 책 제목에는 '훈민정음'에 흔히 '해례본'을 더 보태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릅니다. 

- 해례본은 왜 '간송본'이라 부르고 또 '상주본'은 무엇인가요?
"<훈민정음> 해례본은 글자를 나무판에 붓으로 쓴 것을 새겨 찍어낸 목판본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정교한 활자본이 아닌 목판본으로 찍어낸 것은 빠른 시간에 많은 책을 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세종대왕이 직접 펴낸 초간본은 오랜 세월 알려지지 않다가, 1940년에 경상북도 안동에서 이용준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그 책을 간송 전형필 선생이 사들여 지금은 간송미술관(서울 성북구 소재)에서 소장하고 있어 '간송본'이라 부릅니다. 다만 간송미술관이 1938년에 건립된 것이라 낡고 협소해 현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최첨단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한편, 2008년에 경상북도 상주에서 또 다른 원본이 배익기 선생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이 원본을 '상주본'이라고 합니다. 상주본은 소유권 분쟁에 휘말리면서 소장자가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 간송본의 앞 두 장 네 쪽이 가짜라고 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지금 있는 것은 어떻게 보사한 것인지요?
"간송본은 발견 당시 세종이 직접 쓴 네 장 가운데 두 장, 총 네 쪽이 없었습니다. 발견자 이용준 선생이 해례본의 조맹부체에 능해 직접 보사한 것으로 추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부분은 세종실록에 실려 있고 또 정음편만 언해한 이른바 '언해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 간송본은 세상에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나요?
"이용준 선생이 앞표지와 두 장을 보사한 보사 원본을 전형필 선생에게 판 뒤 해방 직전 월북하여, 그 어디에도 관련 기록을 남기지 않아 발견 경위와 정확한 보사 과정 등은 미스터리로 남았습니다. 다행히 간송 전형필 선생은 당시 최고의 서지학자였던 송석하 선생을 통해 모사하게 하였고 그것이 훈민정음 최고 전문가였던 홍기문 선생에게 전달되어 그 가치를 드러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우리말글 학자였던 외솔 최현배 선생은 1942년에 출판된 <한글갈>에서 이 책이 세종시대 원본임을 입증했고, 해방 후 조선어학회와 통문관에서 영인본을 펴내 연구와 교육으로 널리 알려지게 했습니다. 2015년에는 간송미술재단이 직접 교보문고와 함께 소장본과 똑같은 복간본을 펴내 그 가치를 더욱 빛나게 했습니다."
 

훈민정음 언해본 세종대왕 서문 『훈민정음』 언해본 세종대왕 서문의 끝부분
▲ 훈민정음 언해본 세종대왕 서문 『훈민정음』 언해본 세종대왕 서문의 끝부분
ⓒ 신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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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 언해본은 무엇인가요?
"<훈민정음> 언해본은 <훈민정음> 해례본 가운데 세종대왕이 직접 쓴 서문과 예의 부분을 한글로 번역하여 간행한 것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자료로는 세조가 펴낸 것으로 정확한 제목은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입니다.

- 언해본을 국어사학회에서 복원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언해본은 1459년 세조 5년에 월인석보라는 불경 책 앞머리에 실려 있는 것인데 이 언해본은 세종 때부터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 중론입니다. 그래서 세종 때 것으로 복원해 본 것이죠."

덧붙이는 글 | 서양 고전만 읽지 말고 우리 고전인 '훈민정음 해례본'도 읽어보고, 이것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태그:#훈민정음#세종대왕#해례본#김슬옹#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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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미사일 정밀타격 능력, 中에서 건너갔다?

[밀리터리 차이나-윤석준의 ‘차밀’]
 
윤석준  | 등록:2017-10-08 10:06:53 | 최종:2017-10-08 10:09: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기자: 서울을 중대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북한에 취할 수 있는 군사옵션이 있냐?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있다!

지난달 18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기자들과 나눈 짤막한 대화다.

지난 4월 26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대북 브리핑’에 참석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왼쪽)과 조셉 던퍼드 합참의장(오른쪽)이 기자회견에 나서고 있다. [출처: 중앙포토]

그만큼 현재 북한 핵미사일 위협은 역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군은 매티스 국방장관 발언에 즉각 반응했다.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은 북한에 대한 위협을 자제해야 하며, 대화와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 내에서 ‘북한 보호론’이 아직 팽배하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 미사일 발사 일지 [출처: 중앙포토]

북한 핵미사일이 그렇게 위협적일까. 전문가들은 *PNT 능력이 떨어져 ‘전략적 가치’가 없다고 본다. 그래도 북한이 연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하면서 PNT 능력을 키우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 능력은 중국과 러시아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미국 GPS 체계를 탄도 미사일 적용했다. 하지만 미국은 GPS 코드를 바꿔 교란시켰다. 90년대 후반부터 북한은 러시아 그로나스(GLONASS) 체계를 적용시킨다.  

글로나스(GLONASS, 러시아어: ГЛОНАСС)는 러시아의 범지구 위성 항법 시스템이다. 소비에트 연방이 개발했고, 현재는 러시아 우주군이 운영하고 있다. 글로나스의 개발은 1976년에 시작됐다. [출처: 위키피디아]

*PNT 능력: 좌표(Positioning)-항법(Navigation)-시간(Timing), 미사일 정밀타격 능력을 개발할 때 필수 고려 사항이다. 사실상 미사일이 목표물을 찾아가는 첨단 항법체계라고 보면 된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목표물까지 날아가기 위해선 군사위성의 도움을 받아 위치를 정밀하게 표시한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적대국의 각종 GPS 장비를 교란시켜 작전 수행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북한이 전략화 중인 화성-12·14형 중거리 탄도 미사일은 중국 ‘베이두-3’ 인공위성의 PNT 기능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이 기능 중국군과 파키스탄군만이 사용 중이다. 벌써 북한산 장비에 적용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유가 있다. 우선 북한이 독자적인 GPS로 PNT 기능을 보여준 적이 없다. 다음으로 북한이 시험발사한 각종 탄도 미사일의 부품들이 대부분 중국산이다. 2012년, 2016년 은하 로켓 1단계 발사체를 수고해 나온 조사 결과다. 다수 군사전문가들도 탄두 이외에 PNT 부품 역시 중국산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베이두-3’ 인공위성을 로켓에 탑재 중인 연구원들 [출처: 신화망]

‘베이두-3’ 인공위성의 PNT 기능에 대한 연구가 시급한 이유다. 만약 북한 탄도 미사일에 중국산 PNT 기능이 확실히 접목돼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미‧중, 한‧중 군사협력 체제에서 반드시 주요 현안으로 다뤄져야 할 과제다. 중국이 북한에 주는 원유에만 관심을 두다가 이면(裏面)으로 중국군 PNT 능력이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중앙포토]

이보다 앞선 2010년 북한은 비무장지대(DMZ), 서해 그리고 동해에서 한국군 장비의 GPS 교란을 시도했다. 지난해 3월에도 수도권과 강원 지역 GPS 교란도 북한 소행이다. 이마저도 중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군 정보전의 최고 전문가인 따이칭민(戴淸民) 육군소장은 “미국과 역내 동맹국의 GPS 교란을 위한 정보전(Information warfare) 교리를 마련했다”며 “각종 장비와 체계를 개발 중에 있다”고 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시해 2015년 12월 31일부터 전략지원사령부 예하 사이버 부대가 주도로 관련 장비를 운용 중이다. 북한이 보유한 GPS 교란 장비와 체계 그리고 탄도미사일의 PNT 능력도 중국의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았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이유다.  

지난해 4월 3일 북한의 GPS 신호교란이 있었다. 그날 오후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 어업정보통신본부 상황실 어선안전관리시스템에 GPS 교란 전파 발사 추정지와 영향권이 표시되고 있다. 빨간 원 안은 GPS 교란으로 주문진항 인근에 있어야 할 부영호가 경북 의성군에 있는 것으로 표시되고 있는 모습. [출처: 중앙포토]

중국 베이두 시스템은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현대전은 한마디로 ‘적보다 먼저 빨리 보고(ISR), 먼저 실시간 결정하며(C4I), 먼저 원거리에서 정밀타격(PGM)’하는 전쟁이다. 적 지도부와 핵심시설만 선별적으로 공격해 전쟁의지를 무력화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선 위성위치정보(GPS)가 필수다. 미국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유럽 갈리레오(Galileo) 체계, 러시아 그로나스(GLONASS) 그리도 중국의 베이두(Beidou: 北斗)다. 

중국은 앞서 본 ‘베이두-3’ 시스템 계획에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쏟아붓고 있다. 사이버 공간을 활용해 자국 보안체계 강화는 물론 상대방 PNT 체계와 능력을 무력화시키려는 목적에서다. 지금도 미국과 중국은 경쟁적으로 1.3㎏ 대 최소형 첩보 군사위성을 쏘아올리고 있다. 상대 미사일 공격을 사전에 파악하고, 식별해 해상과 공중에서 통신 교란에 나서기 위함이다. 2015년 기준으로 미국은 36개, 중국은 15개의 PNT 소형 인공위성을 날려보냈다.

중국항천과기집단공사(中國航天科技集團公司)가 내놓은 인공위성 모형 [출처: 신화망]

이제 중국은 시진핑 주석 지시에 따라 2015년 12월 31일부터 '전략지원사령부'를 창설했다. 첨단 첩보군사위성 개발에 대규모 투자와 개발을 주도하는 곳이다. 현재 PNT 능력을 키우기 위한 미중 경쟁은 치열하다. 민영기업과 연구기관이 달라붙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중국항천과기집단공사(中國航天科技集團公司), 고덕투자유한공사(高德控盼有限公司) 그리고 중국병기공업집단공사(中國兵器工業集團公司) 등 국영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유럽 Galileo 위성개발업체와의 기술협력을 기반으로 해 미국보다 개발 속도나 성과는 더딘 편이다. 

군사위성을 20개나 탑재해 쏘아올린 중국 CZ-6(長征-6) 로켓 [출처: 인민망]

하지만 조금씩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2015년 12월 29일 위성탑재로켓 CZ-3B(長征三號乙)에 탑재시켜 군사위성 ‘까오번-4호(高分四號)’가 있다. 이 밖에도 톈관(天鍵), 라오간(遙感) 등 다른 군사위성도 개발 중이다. 까오번-4호의 경우 랴오닝(遼寧) 항공모함 운용에 필요한 해양정보 수집용 첩보군사위성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9월 20일엔 시창(西昌) 로켓발사장에서 CZ-6(長征-6) 로켓이 발사돼 20개 이상의 최소형 첩보위성을 한 번에 궤도에 진입시켰다.

2015년 12월 29일 위성탑재로켓 CZ-3B(長征三號乙)에 탑재시켜 군사위성 ‘까오번-4호(高分四號)’을 띄웠다. [출처: 신화망]

그만큼 북한은 중국이 가진 PNT 능력이 탐이 난다. 미사일,GPS 교란 등 자신들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 자산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이 중국 기술이 북한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중국이 가진 PNT 능력을 정확하게 연구하는 일도 시급해 보인다.

글=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정리=차이나랩 김영문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311&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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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가 먹는 건가? 식약처 조사가 어이없는 이유"

 
[인터뷰]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2017.10.08 10:45:36
 
 

 

 

 

'남성이 월경(생리)를 한다면?'

생리대 위해성 논란이 불거졌을 때 정부가 "세계 어디에도 생리대 위해성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대응을 할 수 있을까? 외부 생식기에 접촉하는 물질인데 '경구'를 통한 독성 실험을 해놓고 '안전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10대 때부터 40년 동안 1만 개 이상 써야 하는 물건에 대해 '별것도 아닌 문제로 시끄럽게 한다'는 식의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의 건강권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안이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지난 3월 시민단체인 여성환경연대가 생리대에서 '휘발성 유기 화합물(VOCs)' 등 위해 물질이 검출됐다며 안전성 문제를 처음 제기한 이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여성환경연대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정부가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기준을 바탕으로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의 불안감을 부추기는 것밖에 안 된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지난 9월 28일 조사결과 발표에 대해 비판했다. 

이안 처장은 "인체에서 흡수율이 가장 높은 곳은 구강 점막과 질 점막인데, 구강 점막은 약이나 물질은 삼킬 때 같이 먹는 물 또는 소화액 때문에 영향력이 줄어든다"며 "질 점막의 경우, 구강 점막과 달리 미량이라도 인체에 끼치는 영향력이 다른데 식약처는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파우더 성분인 탈크는 피부가 아닌 여성 외음부를 통해 체내에 들어가 난소암을 일으켰고, 해외에서는 이에 대해 배상 판결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궁극적으로는 면 생리대 사용을 권하"지만 일회용 생리대 논란에 대해 '면 생리대를 쓰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위해성 문제를 희석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고시원에 살고 있다면 면 생리대를 세탁해 통풍이 잘되는 곳에 말릴 수 있을까? 아침 7시에 나가 밤 12시에 들어오는 노동 조건에서 가능한 일일까? (중략) 주거권 및 노동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면 생리대 사용을 강제하는 것은 사회적 변화 없이 개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된다."

그는 국내의 일회용 생리대 위해성 논란이 불거지자 외국의 유기농 생리대가 동이 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을 지적하며 "필수품의 안전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계급 간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다"며 "이는 건강의 양극화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정부)가 제 역할을 못 할 때 부유층은 돈으로 문제를 극복하고 결국 돈이 없는 이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감당해야만 한다.  

생리대 위해성 논란은 비단 생리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살아가야만 하는 현대인들에게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어떻게 담보해야 할 것인가는 '생존'과 직결된 과제다.  

"위해성이 입증되지 않은 물건은 유통되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환경보건의 제일 중요한 원칙이 사전예방의 원칙이다. 어떤 물질이 어떤 병을 일으켰다는 인과 관계가 있어야만 규제하는 게 아니라, 안전하다는 증거가 확보되지 않으면 아예 유통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안 처장은 정부가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우선적인 잣대로 놓고 화학물질 관리를 해야 하며, 현재 산업자원부, 고용노동부, 환경부, 식약처 등으로 나뉘어 있는 화학물질 관리도 일원화해 통합 관리하는 '화학물질중독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라는 질문은 미국의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쓴 책 제목이기도 하다.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하고 '마술'이라고 불러야 했던, 개인적인 문제로 숨기고 은폐해야 했던, 여성의 몸과 건강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다는 사실은 여성환경연대의 생리대 위해성 문제 제기가 가져온 부수적인 성과다. 

다음은 지난 9월 28일 있었던 이안 처장 인터뷰 전문이다.

 

▲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프레시안(최형락)


식품의약품안전처, '불신처'를 자초하다  

프레시안 :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생리대 및 기저귀 인체 위해성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식약처는 생리대를 "하루 7.5개씩 한 달에 7일간 평생 써도 안전하다"고 했는데, 과연 불안감이 잦아들까?  

이안소영 : 불안감이 잦아들 리 없다. 식약처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666개의 생리대 전 제품에 대해 10종의 휘발성 유기 화합물(VOCs)을 조사해 인체에 영향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여성들이 호소하는 생리대 부작용을 밝히기에는 부족하다.  

해외 보고서에 따르면, 생리대에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과 퓨란, 잔류 농약, 내분비계 교란물질인 프탈레이트(DEHP), 향료의 유해물질 등이 검출될 수 있다. 올해 중국에서는 생리대에서 내분비계 교란물질이자 발암물질인 프탈레이트(DEHP)가 검출됐다는 논문도 나왔다. 

식약처는 접착제, 부직포 등 생리대의 원료나 제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휘발성 유기 화합물이 비의도적으로 생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생리 부작용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다른 유해성분에 대한 조사가 꼭 필요하다. 식약처가 적절하지 않은 전제를 바탕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프레시안 : 식약처가 생리대의 휘발성 유기 화합물이 입을 통해 인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전제로 조사했다는 보도 또한 논란이다. 실제로 식약처는 일부 휘발성 유기 화합물에 대해 생식기와 관계없는 간 등 장기에 관한 독성 참고치를 기준으로 평가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안소영 : 생리대가 경구(經口)에 착용하는 건가?(웃음) 알코올처럼 장기에 영향을 끼치는 독성 참고치를 기준으로 조사해놓고 '휘발성 유기 화합물이 미량이어서 안전하다'라고 말한 것 아닌가. 식약처가 질 점막의 흡수율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불안과 불신만 높였다.  

인체에서 흡수율이 가장 높은 곳은 구강 점막과 질 점막이다. 하지만 구강 점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약이나 물질은 삼킬 때 같이 먹는 물 또는 소화액 때문에 영향력이 줄어든다. 따라서 질 점막의 경우, 구강 점막과 달리 미량이라도 인체에 끼치는 영향력이 다르다. 그런데 식약처는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실제로 파우더 성분인 탈크는 피부가 아닌 여성 외음부를 통해 체내에 들어가 난소암을 일으켰고, 해외에서는 이에 대해 배상 판결을 받았다. 

미국의 시민단체인 지구를 위한 여성의 목소리(WVE)가 생리대 위해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자, 생리대 제조업체인 피앤지(P&G)는 2015년 '올웨이즈(Always)'를 자체적으로 조사해 안전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체는 여성 외음부와 질 조직이라는 특수한 노출 경로, 여성들의 실제 생리대 착용 실태 등이 세심하게 고려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 여성환경연대 회원들은 지난 9월 5일 정부에 생리대 모든 유해성분 규명 및 역학조사를 촉구하는 '내 몸이 증거다, 나를 조사하라'는 기자회견을 하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연합뉴스


정부, 화학물질 문제 언제까지 회피할 건가  

프레시안 : 식약처가 생리대의 위해성 여부를 꼼꼼하게 조사하기보다는 축소하고 회피하려는 것 같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국정감사가 시작되는데, '살충제 달걀'에 '위해성 생리대'까지 식약처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정부가 문제 해결에 얼마나 의지를 가졌는지도 의문이다. 

이안소영 : 일회용 생리대의 경우 1960년대 중반부터 생산돼 50년 이상 사용됐다. 하지만 식약처를 포함해 정부가 나서서 생리대의 위해성을 조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여성환경연대와 김만구 강원대 교수와 함께 지난 3월 생리대 총 휘발성 유기 화합물(TVOC) 방출 실험 결과를 발표한 게 사실상 처음이다. 당시 결과를 식약처와 생리대 생산 기업에 제공했고, 관련 토론회에는 식품의약외품 정책과장도 참여했다. 하지만 현재는 관련 기준이 없다며 대응하지 않았다.  

8월 초 '릴리안' 생리대 사용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파문은 커졌고, 여성환경연대가 사흘간(8월 21~23일) 부작용 피해 사례를 접수한 결과 3009명이 신고했다. 릴리안 생리대 집단 소송에 참여한 이들은 현재 5000여 명이 넘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실험 결과 외에도 스스로 일회용 생리대에 따른 부작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식약처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벗어나려고만 한다. 생리대 위해성 문제는 식약처뿐 아니라, 질병관리본부, 환경부, 여성가족부 등 정부의 합동대책기구가 나서야 하지만 정부의 의지가 강하지 않은 것 같다. 독립된 민간합동조사기구를 만들어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

프레시안 : 처음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정부의 태도는 같았다. 화학물질에 대한 문제 제기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희석해 없애려고 했다. 

이안소영 : '해프닝'으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정부는 세계 어디에도 생리대 위해성에 대한 기준이 없다며 소극적이고 수세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부가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기준을 바탕으로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의 불안감을 부추기는 것밖에 안 된다. '기준이 없으니 제대로 조사해 안전한 기준을 만들겠다'고 해야 한다. 

면 생리대와 생리컵도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면 생리대가 일회용 생리대 대체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면 생리대 사용에 제약이 많다.  

이안소영 : 궁극적으로는 면 생리대 사용을 권한다. 면 생리대를 처음 구입하는 경우, 반드시 삶은 뒤에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여성환경연대 실험군에 면 생리대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휘발성 유기 화학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삶는 소독법을 통해 90% 이상 제거됐다. 

일상에서 면 생리대를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 아니라, 세탁과 소독을 거쳐야 하는 일이기에 주거권 및 노동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고시원에 살고 있다면 면 생리대를 세탁해 통풍이 잘되는 곳에 말릴 수 있을까? 아침 7시에 나가 밤 12시에 들어오는 노동 조건에서 가능한 일일까? 이런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면 생리대 사용을 강제하는 것은 사회적 변화 없이 개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된다. 

또 다른 대체품인 생리컵은 현재로서는 비용 문제가 가장 크다.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재질이 의료용 실리콘이기 때문에 초기 구매비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실록세인이라는 발암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용출(湧出)되는 게 아닌 생리컵 일부에 포함되어 있지만,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조사된 바 없다. 올 초부터 생리컵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점이 모니터링되어야 한다. 

프레시안 : 면 생리대와 생리컵 안전성 역시 조사해 기준을 만드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이안소영 : 지구를 위한 여성의 목소리(WVE)가 올해 초 '생리용품 알 권리'라는 것을 발의했다. 일회용 생리대, 탐폰, 생리컵의 전(全) 성분을 기재하는 것이다. 여성환경연대에서도 생리대에 대한 전 성분 표시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 '생리대 파문' 이후 주요 유통업체들은 유해물질 검출 및 부작용 논란이 불거진 생리대 '릴리안' 판매를 중단했다. ⓒ연합뉴스


생리대가 남성이 쓰는 물건이었다면? 

프레시안 : '생리대 파문'으로 드러난 문제 중 하나가 남성들이 생리 또는 월경에 대해 정말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책 입안자나 결정자 대부분이 남성이기 때문에 문제를 사소하게 여기는 것 같다.  

이안소영 : 그렇다. '생리통이 남성의 고통이었다면, 생리대가 남성이 쓰는 물건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한쪽에서는 생리대를 안전하게 만들고 제대로 된 여성건강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의혹 공방을 벌이며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여성이 쓰는 생리대 문제고, 문제 제기를 한 주체가 여성단체이기 때문은 아닐까? 

프레시안 : 여성이 위해성 생리대에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이해를 못 한다. 여성 입장에서는 10대 중후반부터 쓰는 생리대가 실제로 자신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셈인데

이안소영 : 남성들에게 40년 동안 생리대를 써본 뒤 말하라고 얘기하고 싶다.(웃음)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낮은지 보여준다. '생리대 파문' 이후 벌어진 사회적 논쟁은 '월경 혐오' 또는 '여성 혐오'와도 통하는 문제다.  

앞서 발생한 기저귀 문제는 아기나 어린이에게만 국한된 이슈라고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생리대 문제는 여성'만'의 이슈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절반에게 해당하는 문제고, 누군가의 인생 40년에 걸쳐 영향을 끼치는 문제인데 말이다. 생리대 문제는 여성 문제로 치부한 채 ‘모르겠다’라고 한다. 모르면 공부를 해야 하는 문제인데 

'문제가 된 생리대를 썼더니 가렵고 질염이 생겼다'라는 글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면 생리대를 쓰면 그런 문제가 없다고 하던데, 네가 불편하다고 귀찮아서 안 쓰니까 그런 것이다.'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 여성 개인의 잘못된 생활 방식과 물건 선택으로 발생한 일이라는 식이다.  

프레시안 : 한 여중생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운동화 깔창을 대신 사용했다는, 일명 '깔창 생리대' 사건으로 생리대를 둘러싼 사회적 격차가 논란이 됐다. 

이안소영 : '깔창 생리대' 이후 지방자치단체나 시민단체의 생리대 지원이 늘었는데, 위해성 문제를 일으킨 ‘릴리안’이었다. 그래서 저소득층에 생리대 지원이 끊겼다는 뉴스를 봤다. '릴리안'보다 안전한 생리대를 구입할 만한 예산은 없었던 모양이다. 

해외에서 직접 구입해야 하는 생리컵의 경우, 보통 4만 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 그런데 10대 청소년 중 1달러짜리 중국산 생리컵을 쓰는 경우가 있다. 정확한 조사가 필요한 일이지만, 의료용 실리콘이 아닌 공업용 실리콘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일회용 생리대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외국의 유기농 생리대는 품절되는 일이 발생했다. 필수품의 안전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계급 간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는 곧, 건강의 양극화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 여성환경연대가 만든 면 생리대. 인도 공정무역을 통해 들여온 유기농 면에 천연염색을 했다.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생리대는 왜 하얀색이어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빨간색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여성도 월경하지 않는 남성처럼 일한다?  

프레시안 : 일회용 생리대가 발명되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더욱 활발해졌지만, 지금은 여성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이안소영 : 일회용 생리대는 사적 영역에 갇혀 있던 여성을 공적 영역으로 나갈 수 있게 했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하루 8시간 이상 임금노동시장에 일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남성, 즉 월경하지 않는 몸을 전제로 짜인 시스템이 월경하는 여성에게도 괜찮은 걸까? 월경이 없는 남성처럼 일하기 위해서 편리성과 일회성 확보된 생리대는 필연적인 선택 아닐까? 

생리휴가나 생리공결제 같은 제도가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낙인이다. 더는 낙인이 되지 않도록 사회적 인식이 달라져야 하지만, 노동 환경도 월경하지 않는 남성이 아닌 월경하는 여성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일회용 생리대 문제는 사실 이런 사회 저변의 변화 없이는 해결되기 어렵다.  

프레시안 : 성교육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남녀 관계에 집중되어 있지, 남성과 여성의 몸에 대한 교육은 부족한 것 같다.  

이안소영 : 그렇다.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한 교육과 정보가 부족하다. 생리대 광고를 보면, 월경 기간에 요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왜 그래야 할까?  

생리용품도 일회용 생리대만 소개하는 식이다. 생리컵이나 면 생리대 등 다양한 정보를 주고 개인의 몸이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생리컵이 아직 낯설긴 하지만 사용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글을 보면, 질에 대한 정보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경우다. 질은 뒤쪽(엉덩이 쪽)으로 휘어져 있는데, 수직이라고 생각해 생리컵을 장착하다 보니 불편한 것이다. 

'생리대 파문'이 일회용 생리대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질 세정제(청결제), 여성용 물티슈, 네일 용품 등 여성 용품 전반에 대한 안전성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 또 월경 문화에 대한 인식 전환과 여성의 몸(건강)에 대한 정보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 특히 화학물질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필요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화학물질이 없는 생활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케모포비아(Chemophobia, 화학물질 공포증)'도 높아지는 것 같다.

이안소영 : 우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베이비파우더를 바르고 샴푸와 로션을 사용한다. 또 화학 첨가물이 들어간 먹을거리에, 오염된 실내공기와 미세먼지에 늘 노출되어 있다.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게 기적 같은 일 아닐까? 

위해성이 입증되지 않은 물건은 유통되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환경보건의 제일 중요한 원칙이 사전예방의 원칙이다. 어떤 물질이 어떤 병을 일으켰다는 인과 관계가 있어야만 규제하는 게 아니라, 안전하다는 증거가 확보되지 않으면 아예 유통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런 원칙을 가지고 화학물질을 관리해야 한다. 현재 화학물질 관리는 산업자원부, 고용노동부, 환경부, 식약처 등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이 받는 영향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화학물질을 통합 관리하는 ‘인아웃시스템’을 도입해 일원화하고, 유럽처럼 화학물질로 유발된 질환을 통합적으로 규명하는 ‘화학물질중독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프레시안 : 법을 통한 규제, 다음으로는 삶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안소영 : 가습기살균제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돈보다 생명’이라는 가치다. 정부는 이윤만 좇는 기업을 법으로 규제해야 하며, 소비자 역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미세먼지 대안이 비싼 공기청정기 구매로, 국내 위해성 생리대가 해외 유기농 생리대로 대체되는 것은 훨씬 더 많은 자원을 들이는 소비주의일 뿐이다. 안전성 확보를 위한 행위가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돈으로 안전성을 사기 위해 일하다 보면 편리성과 일회성을 확보해야 하고, 결국 화학물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돌고 도는 출구가 없는 문제가 된다. 적정한 수준으로 소비를 낮추고 소유를 줄이는 것 또한 해법 중 하나다.

 

기사를 끝까지 읽으셨다면…

인터넷 뉴스를 소비하는 많은 이용자들 상당수가 뉴스를 생산한 매체 브랜드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온라인 뉴스 유통 방식의 탓도 있겠지만, 대동소이한 뉴스를 남발하는 매체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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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첨단을 걷는 수소수제조기​

북, 첨단을 걷는 수소수제조기​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7/10/08 [10:26]  최종편집: ⓒ 자주시보
 
 

     

얼마 전 북에서 진행된 제13차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장에는 유달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제품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의오늘은 8일 바로 련못기술개발회사에서 개발한 수소수제조기였다고 전했다.

 

북 매체는 사람의 몸 안에서는 언제나 인체를 산화시키는 활성산소가 생기게 된다. 그것은 호흡기를 통해 몸안에 들어온 산소 중에서 98%가 에너지 대사에 참가하고 나머지 2%는 인체의 여러 가지 생화학반응에 의하여 활성산소로 넘어가기 때문이다또한 대기오염자외선과 방사선 쪼임약물의 리용흡연과 과식육체적 및 심리적스트레스 등에 의해서도 활성산소들이 생성된다고 전했다.

 

자료에 의하면 암의 발생 및 전이감염증관절염백내장동맥경화고혈압 등 각종 만성질병들의 90%이상이 활성산소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은 물론 노화의 기본지표인 노인반점과 주름이 생기는 원인도 활성산소에 있다고 한다고 적었다

 

수소수는 물속에 분자수소가 많이 풀려있는 물로서 페하(pH)는 7~7. 6, 물분자회합도는 5~6인 전형적인 소분자수라며 수소수는 인체가 산화되는 것을 막는 건강에 가장 적합한 산화환원균형인 pH 7. 4수준을 유지하도록 몸안에서 산화력이 가장 큰 활성산소들만 효과적으로 선택제거하면서 그 어떤 잔여물도 남기지 않고 배설물이나 땀을 통하여 물로 내보내는 것을 기본원리로 하면서도 사용시 금기증이 전혀 없는 가장 리상적인 항산화제라고 소개했다.

 

이어 수소의 활성 산소제거 능력은 세계적인 5대 건강식품의 하나인 띄운 콩의 150레몬의 176도마도의 213배이라며 이번에 련못기술개발회사에서는 임의의 음료수를 가장 이상적인 항산화제인 소분자물-수소수로 만드는 여러 종류의 수소수제조기를 연구제작하여 전람회에 내놓았다고 밝혔다.

 

▲ 가을펄 국제 상품 전람회에서 큰 인기를 끈 제품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이 제품은 우리 식의 특허기술이 적용된 첨단기술제품으로서 용도에 따라 음료용수소수미안용수소수소독수를 임의의 장소와 시간에 제조할 수 있게 되어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수소수제조기로 만든 음료는 마실 때 입맛이 아주 좋고 피부세포에 대한 침투력이 매우 빠르다 그것은 또한 손 접촉식 단추를 한번 눌러 여러 가지 기능의 조작을 간편하게 할 수 있으며 가정에서는 물론 밖에서 이동할 때에 휴대가 간편하여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렸다.

 

또한 이 제조기는 손전화기충전기로 충전이 가능하며 한번 충전으로 20회 사용할수 있다.

 

 

▲ 제품 설명을 하는 관계자     © 이정섭 기자

 

보도는 전람회에서 만난 련못기술개발회사 김길선 과장의 말에 의하면 이 수소수제조기술은 수소건강음료수소건강식품체육기능성음료수소기능성화장품농작물 및 묘목의 종자세척 등 여러가지 응용범위에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고 알렸다.

 

한편 이번 전람회에서 사람들의 높은 평가를 받은 수소수제조기는 앞으로 우리 인민들의 건강하고 문명한 생활에 적극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며 큰 기대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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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 찾고, 엄마와 보낸 '다른 명절'

'페미니스트답게 명절나기', 엄마를 집에 초대했다

[2017 추석 열전] '하고싶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 찾고, 엄마와 보낸 '다른 명절'

17.10.08 11:09l최종 업데이트 17.10.08 11:09l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번 추석에는 '좋아하는 사람' 목록에 엄마를 넣고, 엄마를 집에 초대해서 추석을 보냈다. 엄마와 내 관계는 절대로 그냥 단절될 순 없었다.
▲  이번 추석에는 '좋아하는 사람' 목록에 엄마를 넣고, 엄마를 집에 초대해서 추석을 보냈다. 엄마와 내 관계는 절대로 그냥 단절될 순 없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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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첫 추석의 기억이다. 그 지난해까지 나는 수능이 필생의 과업으로 부여된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자로서, 집중을 하든 하지 않든 어영부영 책상 위에서 아침 8시에서 밤 11시까지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일과였다.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인문계 고등학생이라면 어쨌든 필생의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리하여 나의 아르바이트 인생은 수능이 끝난 후에야 시작된 것이다.

고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맞았던 스무 살 첫 설날과는 달리, 첫 추석엔 등록한 대학을 따라 주거지를 옮긴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남들이 노는 어느 날에도 꾸준히 일을 해야만 하는 수많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그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 무렵엔 케이크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추석에도 아르바이트, 집에 갈 수 없었다
 
내가 일하던 가게엔 체인점이 많은 다른 빵집과 우리 가게가 비교당하는 걸 자존심 상해하는, 프라이드가 강한 '사모님'이 계셨다(사실 사장님이었는데, 다른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 있다는 이유로 한사코 자신을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나는 케이크 상자 하나하나를 포장할 때 손으로 예쁘게 리본을 묶어 내놓으면서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집에서는 만 원짜리 몇 장의 행방을 가지고 엄마와 아빠 사이에 끼어 비참한 전투를 벌여야 할 때가 많았으므로, 어쨌든 최저시급 삼천 얼마나마 내 손으로 직접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스무 살의 나에게 큰 자부심이었던 것 같다.

일하던 추석 당일 자취방에는 형광등이 나갔다. 문 닫은 편의점들 사이를 헤매며 '당연한 것'이 없을 때 느껴지는 설움을 새삼 느꼈다. 겨우 먼 곳에 있는 편의점까지 가서 형광등을 하나 샀다. 그때나 지금이나 키가 작은 나는 천장에 손이 닿으려면 의자 위에 올라가야 했는데, 그때 집에 있는 건 회전의자뿐이었다. 그 위에 올라가 식은땀을 흘리며 난생처음 형광등을 갈아보았다. 

형광등을 돌려야만 갈아 끼울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고, 이게 왜 잘 안 빠지는지 몇 번이나 고개를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면서 혹여나 의자가 돌아가서 추락사하진 않을까, '형광등 갈아 끼우다 그만...자취생의 쓸쓸한 죽음' 같은 헤드라인으로 뉴스에 나오진 않을까 걱정했다.

그 첫 추석을 기점으로 이렇게 명절에도 일을 해야 하는 5인 이하 사업장의 서비스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는 동안 나는 '명절맞이 귀향길'의 행렬에 동참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집에, 그러니까 '본가'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집'은 이상한 개념이다. 보통 부모가 살아있는 동안 부모의 집을 '집', 또는 '본가'라고 부르고 그 외의 공간에 미·비혼의 자녀들이 살고 있으면 그곳은 '집'이 아니다. 먹고 자고 한 사람 몫의 집안일을 해내며 그곳에서 각자의 일상이 흘러가고 있어도 좀처럼 거길 '집'이라고 부르는 일은 없다. 

'집'에서 빠져나가는 개념들은 기숙사, 자취방, 고시원 같은 '유사 주거공간'들이다. 아마도 언중(言衆)의 무의식 속에 '집'의 원형이미지는 "귀여운 새들이 노래하고 집 앞뜰 나뭇잎 춤추"는 곳에, 반드시 혼인 관계로부터 파생된, 적어도 두 세대 이상의 식구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인 것 같다.

그러니까 명절이란, 바다에서 태어나 강에서 자란 연어들이 바다로 회귀하듯이 '유사 주거공간'에 사는 인간들이 대규모로 '집'에 돌아가야 마땅한 시기인 것이다. 내 경우엔, 명절에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사정이 있어 '집'에 가지 못하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 충분히 딱하고 그럴듯한 사유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리저리 아르바이트를 조정하면서라도 '집'에 갈 수 있게 되고 난 이후에 발생했다.

가족 대신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명절을 택했다
 
 결혼이주여성의 명절 스트레스는 심각한 수준이다
▲  더 이상 가족과 친척을 만남으로써 오는 스트레스를 참을 수가 없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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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러 올라가서 짚어 보자면, 우리 부모 대의 명절나기는 사정이 조금 복잡하다. 아버지 쪽의 친가는 모두 6남매인데, 아버지의 아버지, 즉 친할아버지 쪽은 일찍 돌아가셔서 사실상 '우리 남매들이 여기에 모여야만 한다'는 기준이 없어, 구심점 없이 흩어진 상태다. 그렇기에 삼 대 이상이 모여 북적북적하게 지내는 명절은 물 건너간 셈이다. 

외가 쪽은 차 타고만 네다섯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먼 지방으로, 거기까지 한번 가기가 쉽지 않으며 또한 구심점이 되어줄 만한 외조부모 역시 부재한 상태다. 그리하여 명절이라 하여 우리 다섯 남매와 엄마아빠가 '집'에 모이면 이런 코스를 거쳤다. 우선 우리와 아주 데면데면한 사이인 첫째 큰어머니(설상가상으로 큰아버지가 안 계신다)댁에 한 번 들러 밥 한 끼 얻어 먹고, 아버지의 생가에 한 번 들러 얼굴 도장 찍기. 이것이 부모 세대에게 묻어가는 나의 명절나기였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도대체 거기에 왜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막연히 3촌 정도의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던 큰어머니는 사실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며, 그녀라고 도통 애를 주렁주렁 달고 오는 가난한 '도련님'의 방문이 기꺼울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일 년에 두 번쯤 보는 아버지 '생가'에 사는 친척들 역시 나와 거리가 한참 멀어 사실상 남에 가까운 사람들이란 것도 알았다.

그건 이상한 방식으로 자란 눈치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받은 세뱃돈을 셈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받은 돈이 친구들 평균에 비해 아주 적거나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각자 세뱃돈을 주머니에 넣고 눈치 싸움을 벌이는 명절, 팔자에도 없던 '도련님' 쪽 아이들이 여럿 들이닥치는데 저쪽 일찌감치 결혼한 사촌 오빠네 아이는 한둘일 때, 우리 집 쪽에선 그 아이들에게 선뜻 만 원짜리가 아니라 천 원, 오천 원짜리를 쥐여줄 때, 우리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의 밥상머리 앞에서, 그 '눈치'란 게 늘어갔다. 우리가, 내가 그 '친척집'들에 전혀 반가운 존재가 아니란 걸 알게 된 이후로 나는 그곳들로부터 발길을 끊기 시작했다.

이후의 난관은 부모의 집도 내게 '명절' 때나 돌아가게 되는 곳이 되었을 때 펼쳐졌다. 한해 두해 원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기가 길어지며, 나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버렸다. 부모의 집에서 하루에도 수차례 벌어지는 소란들이 당연한 일상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가끔 주어지는 휴식 시간이면 조용한 내 자취방이나 기숙사 책상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펴들고 창으로 떨어지는 햇볕을 맞으면서 꾸벅꾸벅 졸았다. 아무도 그 평화를 깨지 않았다.

'집'이란, 서로 잘 맞물리지 못하고 삐걱대는 소음에 가까운 언어들이 부유하는 곳. 좁은 공간에 여러 식구가 몰려 사는 탓에 잦은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그로부터 비롯된 소음이 끊이지 않는 공간. 절대로 끝나지도 않고 해결되지도 않는 만성적인 갈등으로 가득 찬 곳이 나의 '집'이었다. 평온한 나의 현재가 그런 '집'에서 겪은 시절의 기억과 대비될 때마다 그 고요는 내게 정말로 이질적이고도 이상하고도 소중한 것이었다.

나는 스물여섯이 되던 해 설날에 그 '집'에서 발작을 했다. 발단은 부모 사이의 흔한 말다툼이었다. 중간에서 눈치를 보며 내가 이 공간에 발붙이고 있는 단 하룻밤만이라도 이 갈등을 어떻게든 무마시켜보려고 애를 쓰던 끝이었다. 나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나의 공간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통장에 단 십만 원이라도 있으면 당장 택시를 탔을 거라고, 내가 이번에 여길 떠나면 나는 다신 여기 오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쓰러져서 발작을 하자 갈등은 어물어물 없던 일이 되었다. 다음날이 되자, 그 모든 일이 없던 일인 것처럼 '가족'들은 한 냄비에 숟가락을 넣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명절에 더 이상은 집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 후로 2015년 추석이 되기까지, 명절은 내게 좀비가 휩쓸고 간 도시에 홀로 남겨지는 것 같은 체험을 하는 때였다. 나는 아무리 바빠도 명절이 들이닥치기 전에 미리 장을 봐 두거나, 미처 장을 보지 못해 냉장고가 텅텅 비었을 때는 주변의 맥도날드를 이용해 끼니를 때우는 요령을 익히게 되었다. 

주변에서 자꾸 "명절에 집에 안 내려가느냐"고 물으면, 바빠서 못 내려가게 되어서 아쉽다고 말하든지, 아니면 내려간다고 거짓말을 하든지 하고 자취방에서 미드나 몰아서 보면서 몇 해를 보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서야, 이제 더 이상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화목한 정상가족'이 있는 것처럼 연기하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상술할 수 없을 만큼 여러 사건과 조건이 겹치며 내리게 된 결정이긴 했지만, 중요한 건, 나는 어느 순간부터 명절을 '가족'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으로 보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번 추석, 엄마를 '집'에 초대했다 
 
 나는 엄마에게 대접하기 위해 만두를 빚어, 떡만둣국을 해드렸다.
▲  나는 엄마에게 대접하기 위해 만두를 빚어, 떡만둣국을 해드렸다.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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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추석부터 "페미니스트답게" 나기로 했을 때, 이런저런 사정으로 원가족에게서 탈출해 모인 사람들은 요리와 설거지와 청소를 분담했고, 밤새도록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때부터였다. 내 '명절나기'가 '페미니스트다워'진 것은 말이다. 나는 지난 몇 해 간 우리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거나, 친구들의 집에 초대받아 가거나 해서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했다. 그게 나의 명절나기였다.

올해 명절은 조금 사정이 달라졌다. 사실 이 글이 쉽게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한 것도 갑자기 발생한 특이사항 때문이다. 나는 올해 명절에, 사실상 처음으로 엄마를 내 집에 초대하기로 했다. 여기서 나의 '집'이란 통념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오래 함께 살아온 나와 셋째 여동생, 둘을 중심으로 해서 함께 생활해 나가는 몇 명의 사람들이 단단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공유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엄마와의 관계로부터 무조건 '단절'되는 것만이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믿고 어떻게든 분리되어 나오려고 애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면, 지금의 내가 '페미니즘'적으로 그녀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는 엄마와 내 관계가 절대로 그냥 단절될 수는 없단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녀에게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겪게 하면서 여러 가지로 빚이 있고, 그녀는 서투르고 엉망이었을지언정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온 사람이다.

한편 그녀는 조실부모하고 '어른'의 돌봄 없이 자라났으며 결혼 이후로는 가정폭력에 오래 노출되면서 생활의 요령을 쌓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커리어와 가정생활이 양쪽으로 엉망이고, 맹목적 신앙의 이름으로 내게 이런저런 가해를 하기도 했다.

우리 사이의 이런 복잡한 사정이 하루아침에 정리될 거로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좋아서 내 집에 초대하는 사람'의 목록에 엄마를 넣어 보고 같이 명절을 나 보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추석 당일, 엄마가 다녀갔다. 요약을 하자면 오면서도, 있으면서도, 가면서도 순탄하지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원하지 않는 다른 가족을 내게 말도 없이 데려오려 했는가 하면, 내가 그 점을 따지고 드니까 그럼 아예 안 가겠다고 툭 던져버리기도 했다. 그러더니 당일엔 또 말도 없이 "지금 가고 있다"고 통보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미 펑크가 난 스케줄을 계산해서 다른 친구들을 집에 불러 놓은 상태였는데, 사람이 복작복작한 우리 집에 도착해 "좀 피곤해서 자야겠다"더니 늦은 저녁에 일어나서 아무 설명도 없이 "이제 간다" 해버렸다.

나와 내 동생은 엄마의 향후 생활과 우리들의 관계에 대해서 논의할 거리를 미리 정해 놓고 같이 나눠 먹을 것, 같이 보고 즐길 것들을 기껏 고민해 두었는데, 엄마는 이런 얘기를 꺼낼 새도 주지 않았다. 어느덧 나이 먹은, 작고 사랑스럽고 고집스러운 이 친족 여성과 잘 지내는 일은 왜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이란 말인가. 탄식했다. 결국 친구들은 모두 귀가하고, 한밤중에 동생들과 쪼르륵 달려가서 돌아가며 엄마와 싸우고 어르고 달래고 나서야 겨우 집에 다시 '모셔'올 수 있었다.

우리집 명절 음식은 만두다. 내가 어릴 때부터 송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송편은 데면데면한 큰어머니 댁에나 가야 구경하는 음식이었다. 엄마아빠는 명색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그래서 딱히 틀에 박힌 명절 요리를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만두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다. 잘 익은 김치를 꼭 짜서 썰어 넣고, 두부, 당면, 간 돼지고기 볶은 것을 섞어서 빚는 만두다. 

나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명절 요리를 만들 때도 반드시 이걸 만들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늦은 밤이지만 엄마가 오기 전에 미리 빚어 둔 만두를 가지고 엄마가 좋아하는 가래떡을 넣어서 떡만둣국을 끓여드렸다. 엄마는 맛있다고 했다.

결국 그렇게 다들 모여 앉아서 하려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얘기들은 잘 끝난 편이기는 하다. 그리고 엄마는 또 다음 날 일을 하러 나가려면 길 안 밀리는 지금 가야 한다며 새벽 세 시 반에 휙 가버리긴 했다. 나와 동생들은 슬리퍼를 꿰어 신고는 쪼르륵 따라 내려가면서 엄마에게 이것저것 챙겨 주고 안아 주고 차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털레털레 귀가했다.

아아,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는데도 아직 추석이다. 한 해 중에서 내가 제일 맘에 들어하는 기온과 풍속과 습도의 가을 무렵. 나는 이렇게 엄마가 나의 소중한 '일상'을 잠시 휘저어 놓은 가운데, 우리가 간밤에 이야기 나눈 회의 내용을 글로 정리해서 가족 텔레그램방에 공유도 하고, 이 글도 적어 내려가며 정신을 가다듬는 중이다. 아직 며칠 남은 추석 연휴 동안에는 밀린 일도 정리하고, 친구들과 영화도 보고, 등산도 하면서 내 페이스를 찾아 다시 잘 보낼 예정이다.

이것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를 찾고, 그 다음에는 '해야 할 것을 해 나가는 용기' 를 내는 중인 나의 페미니즘 실천기다. 자신의 주소지로 돌아가 버린 엄마도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고, 다음 명절 즈음엔 그녀의 삶도, 나의 삶도, 우리들의 관계도 조금 더 좋아져 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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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외에’ 한글을 빛낸 5명

 

등록 :2017-10-08 09:19수정 :2017-10-08 10:26

 

한글 점자 만든 ‘박두성’부터 대표 글꼴 만들어낸 ‘최정호’까지

 

아직도 ‘한글’하면 세종대왕만 떠올리시나요?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의 뜻을 이어 한글을 지키고 가꾼 사람들이 있습니다. 571돌을 한글날을 맞아 누구보다 한글을 사랑하고 아낀, 한글대표선수 5명을 소개합니다. 한글날 주인공은 나야 나!

 

 

 

■ ‘기역, 니은, 디귿, 리을’ 한글의 이름을 만든 동시 통역사 ‘최세진’

 

최세진.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최세진.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안녕하세요. 조선과 명나라를 오가며 동시 통역사를 한 최세진입니다. 대대로 역관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통역 일을 하게 됐죠. 2017년 한국에도 중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요? ‘중국어 번역과 통역’하면 한때 제가 조선에선 최고로 꼽혔는데요∼∧∧ (흠흠) 중국어 실력 덕분에 중인 출신임에도 양반들도 하기 힘들다는 정2품 벼슬까지 지내기도 했죠∼

 

 

전 후배 통역사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곤 했어요∼‘노걸대’란 교재를 썼는데요. 고려 상인이 특산물을 중국에 가져가서 팔고, 또 중국의 특산물을 사서 귀국할 때까지 이야기를 담은 중국어 회화책이었습니다. ‘역관들을 위한 실용 중국어 회화’인 셈이죠. 근데 후배들이 발음을 잘 따라 읽지 못하더라고요. 아시죠? 중국어는 성조도 있고 많이 복잡하잖아요∼

 

 

‘어떻게 하면 쉽게 배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중국어 교재에 한글로 음을 달면 어떨까?’ 결국 몇 달 동안 ‘노걸대’ 번역판을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반응은 어땠느냐고요? 당연히 좋았죠∼∧∧ 이 번역판 덕에 아들도 쉽게 중국어를 배우더군요. 덕분에 전 승진도 하고요.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그런데 또 다른 고민이 생겼어요. 이웃에 사는 통역사가 하루는 절 찾아와 “‘ㄱ,ㄴ,ㄷ,ㅏ,ㅑ’와 같은 초성과 중성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러고 보니 ‘훈민정음 해례본’에도 한글 기본 글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자료마다 자음을 부르는 이름은 가지각색이었죠. ‘자음과 모음의 표준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날부터 글자 모양도 살피고, 소리를 내 발음도 해봤죠. 결국 가장 간편하게 발음할 수 있는 모음 ‘이’와 ‘으’를 넣어 자음의 이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기윽’(기역), ‘니은’, ‘디읃’(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읏’(시옷) 이런 식으로요∼자음과 모음의 차례도 다시 정리했습니다. 첫소리와 끝소리에 모두 쓰이는 사용빈도가 높은 자음부터 앞세워 놓는 방식으로 배열했죠. 모음은 입을 벌리는 순서에 따라, 수직 글자를 먼저 배열하기로 했어요.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카타파하∼♬” 이런 노래도 있다면서요? 다 제 덕 아닌지 모르겠어요. 하하∧∧

 

한자에 한글로 음과 뜻을 단 ’훈몽자회’ 영인본. 창비교육 제공
한자에 한글로 음과 뜻을 단 ’훈몽자회’ 영인본. 창비교육 제공

 

■ 최초의 한글 백과사전으로 여성들을 도운 만물박사 ‘빙허각 이씨’

 

빙허각 이씨.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빙허각 이씨.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안녕∼나는 빙허각 이씨에요∼여성들을 위한 한글 백과사전 ‘규합총서’를 만들었죠. 시동생 서유구가 한문으로 백과사전을 만드는 걸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같은 아낙들이 꼭 알아야 할 지식도 많은데 어려운 한문으로 돼 있으니 쉽게 읽을 수가 없겠구나” 싶었죠. 저야 한문을 아니까 그럭저럭 읽을 수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한문을 배우는 여성들이 많이 없었거든요.

 

 

결국 한글로 된 ‘생활 백과사전’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 딸과 며느리들한테 전하려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써놓기도 했거든요. 남편 서유본도 적극 돕겠다고 나섰어요 ∧∧ 같이 자료를 찾고, 책을 읽고, 글을 썼죠. 사전을 펴내는 데만 힘을 쓰도록 남편은 집안일도 종종 거들어주곤 했어요∼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그렇게 1809년 생활 백과사전 ‘규합총서’가 탄생했습니다! 최초의 한글 백과사전입니다. 소식을 듣고 동네 아낙들이 집 마당에 가득 모였어요∼옆 마을에서도, 뒷마을에서도 소문을 듣고 달려와 ‘규합총서’를 살펴봤죠.

 

 

“남성 양반님들이 쓴 책들은 모두 한문이라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우리 같은 사람들한텐 말짱 도루묵이죠.” “빙허각 마님이야말로 남성 양반님 천만 명 몫을 하셨구먼요∼이 언문 생활 백과사전으로 우리 민초들도 살리고 우리 글자도 살리고요.”

 

 

아낙들이 너도나도 기뻐하고 좋아해 주니 그동안 고생한 것도 다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식을 남성들만 읽는 한문책에 가둘 이유가 있나요?

 

 

‘규합총서’ 모습. 창비교육 제공
‘규합총서’ 모습. 창비교육 제공
‘규합총서’ 표지와 차례. 국립중앙도서관·창비교육 제공
‘규합총서’ 표지와 차례. 국립중앙도서관·창비교육 제공

 

■ 한글 요리책으로 사람을 살린 살림의 고수 ‘장계향’

 

장계향.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장계향.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난 경북 안동에 사는 장계향이라고 해요∼보통 ‘장씨 부인’이라고도 불러. 최초의 한글 요리책 ‘음식 디미방’을 펴냈지. 아이고∼일흔이 넘은 나이에 매일 촛불을 밝히고 글을 쓰느라 고생 좀 했어∼1600년대 경상도 양반집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 요리법, 발효식품을 만드는 법, 식품 보관법 등을 자세히 적어놨지. 주로 양반집 요리긴 하지만 국수, 만두, 떡 등 우리 토속 재료를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음식 146가지를 소개해놨어. 2017년엔 ‘백선생’이 그렇게 유명하다며? 여기선 ‘장선생’으로 통해∼∧∧

 

 

요리책을 만든 이유는 별거 아니야. 아니 하루는 이웃집 아낙이 숭어 한 마리를 들고 찾아오더라고. “이걸 어찌 먹어야 할깝쇼?”물었지. 좋은 음식 재료가 생겨도 제대로 요리를 하지 못해서 재료를 버리는 게 안타깝더라고. 그래서 요리법을 알려줬더니 그 아낙이 아주 고마워했어.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또 어떤 날엔 동네 젊은 새댁이 글쎄 시어머니에게 왜 반찬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냐고 된통 구박을 당하고 있는 거야∼안쓰럽더라고. 그때 생각이 났지. “한글로 요리책을 펴내면 한글을 아는 여성이 책만 봐도 쉽게 음식을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어. 딸과 며느리가 ‘음식 디미방’의 잡채 만드는 법을 보고 요긴하게 활용하는 것을 보니 뿌듯하더라고. ’찰랑찰랑’, ’질벅질벅’ 같은 생생한 한글을 사용해 설명하니 실생활에서 보고 써먹기 쉬울 수밖에 ∧∧ 원본을 잘 간직할 수 있도록 필요한 사람은 베껴서 서로 돌려보도록 했지∼수많은 요리책의 원조랄까?

 

’음식 디미방’에 나온 요리법. ‘만두법’ 등이 적혀있다. 창비교육 제공
’음식 디미방’에 나온 요리법. ‘만두법’ 등이 적혀있다. 창비교육 제공

 

■ 한글을 여섯 개의 점으로 표현한 길잡이 ‘박두성’

 

박두성.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박두성.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안녕하시오. 나는 박두성이라고 하오. 1913년부터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제생원에서 맹아부 교사로 일했소. 앞이 안 보이는 아이들에게 일본 점자를 가르치면서 틈틈이 주산과 우리말, 수저 잡는 법 등을 알려줬소. 근데 쉽지 않더군. 학생들이 일본 점자책으로 배우면서 일본어 수업을 들으니 말이오. 쉬운 용어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걸 보니 안타까웠소. 한글 점자가 있으면 쉽게 배울 수 있을 텐데 싶었지.

 

 

그땐 3·1 운동이 일어나고 일본의 탄압이 점점 심해지던 시기였소. 어느 날 일본인 교사가 “앞으로는 우리 학교에서도 조선어를 가르칠 수 없소!”라는 거요. 그래서 내가 말했지.

 

 

“눈이 멀쩡한 사람이 그렇게 마음이 어두워서 되겠소? 단지 눈이 멀었다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소? 눈 밝은 사람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글을 읽고 쓰겠지만 눈먼 사람에게 조선말까지 빼앗으면 저 아이들은 부모와 형제자매와 어떻게 이야기를 나눈답니까? 저 아이들에게 장님에 벙어리까지 되라는 말이오?”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그 사람은 끽소리도 못하더군. 결심했소. 한글 점자를 만들어 눈먼 사람들도 새로운 세상을 살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말이오. 결국 1923년 맹아부 제자들과 함께 ‘조선어 점자 연구위원회’를 비밀리에 만들고 한글 점자 연구에 몰두했지. 3년을 꼬박 연구한 끝에 여섯개의 점으로 이뤄진 한글 점자 ‘훈맹정음’이 탄생했소.

 

 

“누구든지 배워야 하지만 눈이 먼 사람은 멀쩡한 사람보다 더 배워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었소. 배우고 싶어도 앞이 보이지 않아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점자책을 보내줬지. 종이 구하는 게 어려웠던 시절이라 관공서나 은행에서 누렇게 바랜 문서들을 얻어왔소.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귀여운 우리 딸도 날 도와주더군∼∧∧ 그렇게 점자로 된 교육책이나 소설, 교양책도 펴냈지. 성경도 점자로 옮겼다오. 2017년에도 내가 만든 점자를 잘 쓰고 있나 궁금하오∼!

 

 

‘훈맹정음’의 모습. 창비교육 제공
‘훈맹정음’의 모습. 창비교육 제공

 

■ 글씨에 한땀 한땀 혼을 넣은 글꼴 장인 ‘최정호’

 

최정호.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최정호.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안녕하세요. 최정호입니다. 이렇게 인사를 드리니 쑥스럽네요. 2017년에 사는 분들이 ‘굴림체’를 쓴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진지하게 이야기할 땐 ‘궁서체’를 쓰신다고도 들었습니다. 하하. 사실 그 두 글꼴을 만든 사람이 바로 접니다. ∧∧ 굴림체와 궁서체를 포함해 공작체, 그래픽체, MS명조 등 30여가지 한글 글꼴을 만들었습니다.

 

 

전 어렸을 때부터 글씨 쓰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글씨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답니다. 보통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따귀를 맞았어요. 글씨 숙제를 검사하는 날이었는데, 제가 쓴 글씨를 보고 부모님이 대신 써주었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결국 전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글씨를 써서 보여주고 나서야 억울함을 풀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한글 글꼴에 관심을 깊게 가지게 됐어요. 낮에는 인쇄소 일을 하고 밤에는 미술학원에 다녔죠. 가끔 일본에 사는 한국인을 위해 영화광고나 포스터, 간판 등에 들어가는 ‘선전 글씨’를 써주기도 했어요. 인쇄기술을 배우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리 인쇄기술이 뛰어나더라도 글꼴이 아름답지 않으면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없구나’라고 말이죠.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그림 이수진. 창비교육 제공

 

혹시 일본 화장품 회사인 ‘시세이도’라고 아시나요? 글쎄, 하루는 길을 걷다가 ‘시세이도’ 광고에 나오는 글자가 아름다워서 멈춰 섰어요. 글자도 예술이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전 세계인이 감탄할 수 있는 한글 글꼴을 만드는 걸 목표로 꿈을 키웠습니다. 처음엔 일본 글꼴을 바탕으로 한글 글꼴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 고유의 글꼴이 없는 점이 아쉽더라고요. 고민 끝에 탄생한 게 바로 궁서체입니다. 1988년엔 제 이름을 딴 ‘최정호체’도 나왔습니다. ∧∧

 

 

한글 글꼴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어찌나 막막하던지요. 처음엔 ‘훈민정음’의 글자 형태를 꼼꼼히 살폈죠. 어렵게 만들고도 마음에 들지 않는 활자는 용광로에 던져버리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왜 이렇게 글꼴에 매달렸냐고요? 전 글자가 사상이나 뜻을 전달하는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이 피로를 느끼지 않도록 읽기 쉬운 모양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굴림체와 궁서체 모두 유용하게 써주세요∼

 

 

균형미와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 최정호체. 창비교육 제공
균형미와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 최정호체. 창비교육 제공

 

*위 내용은 한글학자 김슬옹과 시인 김응이 쓴 ‘한글 대표 선수 10+9’ (창비교육)를 토대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한글 대표 선수 10+9> 창비교육 제공
<한글 대표 선수 10+9> 창비교육 제공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13581.html?_fr=mt1#csidxbed9573fb369373ad03680651a97b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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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한반도 근해에서 학살한 고래만 8천여 마리

 

[고래의 섬, 흑산도 ⑥] 흑산도에 ‘포경근거지’ 설치한 까닭

17.10.07 12:01l최종 업데이트 17.10.07 12:01l

 

사람들은 '고래'하면 동해나 울산, 장생포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홍어로 유명한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 '고래공원'이 있습니다. 흑산도와 고래는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을까요? 왜 흑산도에 고래공원이 생긴 것일까요? 대체 흑산도에선 고래와 관련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 연재는 흑산도와 고래의 연관성을 좇는 '해양문화 탐사기'입니다. - 기자 말
 

 한반도 근해에서 일본 포경회사가 포획한 귀신고래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조선인들.
▲  한반도 근해에서 일본 포경회사가 포획한 귀신고래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조선인들.
ⓒ 고래박물관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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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한반도 근해에서 대형 고래 약 8천 마리 이상 학살

새로운 세기, 20세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조선(대한제국)과 한반도 근해의 고래들에겐 참혹한 세기의 시작일 뿐이었다.

 

1904년 한반도 지배권을 두고 충돌을 일삼던 일본과 러시아는 끝내 전쟁을 시작하고 만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1905년 9월 체결한 '포츠머스조약'에 따라 조선(대한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확인한다. 이때부터 한반도 근해에서의 고래를 포획하는 '포경 독점권'은 실질적으로 일제가 행사하게 된다. 

그리고 1910년, 일제가 강제로 병합한 것은 대한제국만이 아니었다.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일제는 1911년 6월 3일 어업령(제령 제6호)과 어업령시행규칙 및 어업취체규칙(조선총독부령 제67, 68호)을 공포한다. 이때부터 한반도 근해에서의 포경은 조선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할 수 있는 '허가어업'이 되었다. 물론 '조선총독의 허가'를 받을 수 있는 포경회사는 일본 포경회사들뿐이었다.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은 일본 포경회사들의 한반도 근해에서 고래잡이는 포획(捕獲)을 넘어선 '학살(虐殺)'이었다. 1903년부터 1944년까지 한반도 근해에서 일본 포경회사에 의해 학살당한 대형 고래는 기록된 것으로만 약 8259마리에 이른다. 무려 1만여 마리의 대형 고래가 일제에 한반도 근해에서 무참하게 학살당한 것이다. 

1908년 대한제국 농상공부 수산국이 편찬한 <한국수산지>에 따르면, 러일 전쟁 전후인 1903년부터 1907년까지 5년 동안 한반도 근해에서 포획당한 고래는 약 1612마리에 이른다. 모두 일본 포경회사에 의해서였다. 1900년대 초 한반도 근해에서 포경업을 했던 일본 3대 포경회사는 동양어업주식회사, 나가사키포경합자회사, 일한포경합자회사였다. 

세 회사 가운데 가장 많은 포획고를 올린 회사는 동양어업주식회사로 이들은 5년 동안 1200마리의 고래를 포획했다. 1904년부터 한반도 근해에서 고래를 포획한 나가사키포경합자회사는 4년 동안 377마리의 고래를 포획했다. 1906년에 세 회사 중 가장 늦게 한반도 근해 포경에 뛰어든 일한포경합자회사도 2년 동안 35마리의 고래를 포획했다.

일본포경협회가 1911년부터 1944년까지 자체 집계해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한반도 근해에서 포획된 고래는 무려 약 6647마리에 이른다. 특히 대형 고래에 대한 포획이 심각했다. 이 기간 동안 일본 포경회사는 참고래(긴수염고래) 5166마리, 귀신고래 1313마리, 대왕고래(흰긴수염고래) 29마리, 보리고래 5마리, 향유고래 3마리, 북방긴수염고래 1마리를 포획했다. 돌고래 역시 이 기간 동안 130마리가 일본 포경선에 의해 포획되었다. 이 돌고래는 혹등고래를 가리킨다. 당시엔 혹등고래를 돌고래로 불렀다.

물론 이 수치는 기록으로 확인된 것이다. 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는 1908년부터 1910년 이 기간에도 일본 포경회사들은 쉬지 않고 고래를 포획했을 것이다. 또한 일본 포경회사들이 까지 남기지 않은 불법 포획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아 일제의 고래 학살은 더욱 극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 동안 한반도 근해에서 고래 포획을 주도적으로 한 일본 포경회사는 동양포경주식회사였다. 러일전쟁 직후 한반도 근해에서 가장 많은 고래 포획고를 올렸던 동양어업주식회사가 1909년 5월 일제의 이른바 '전국 포경회사 합동운동'으로 동양포경주식회사로 거듭난 것이다. 

오사카에 본점을 둔 동양포경주식회사는 1910년 1월 거제도에 포경지 허가를 받아 한반도 근해 포경을 시작한다. 그리고 1913년에는 울산, 거제도, 통천 근해, 1914년에는 울산, 거제, 강원도 통천군, 함경도 북청군으로, 1916년에는 전라도 대흑산도 근해로까지 포경 조업 영역을 확대시켜 나갔다.

이후 동양포경주식회사는 1934년 7월 1일 일본수산주식회사에 합병되어 해산되고, 일체의 자산과 사업은 일본수산주식회사의 자회사인 일본포경주식회사에 승계되었다. 일본수산주식회사는 다시 자회사인 1936년 9월 일본포경주식회사 등과 합병하고 1937년 3월에는 일본식료공업주식회사를 합병하여 4월 1일 회사 이름을 일본수산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 
 

 장생포는 일본 포경회사들의 대표적인 포경근거지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 포경선들 모습.
▲  장생포는 일본 포경회사들의 대표적인 포경근거지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 포경선들 모습.
ⓒ 고래박물관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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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동해에서 포경 쇠퇴하자 서해와 남해로 사업장 확대

한편 1939년 현재 일본수산주식회사의 포경 근거지는 모두 33곳이었고, 이 가운데 한반도에 설치된 포경근거지는 울산 장생포, 제주도 서귀포, 전남 대흑산도, 황해도 대청도 등 네 곳에 있었다.

한반도 근해 포경사에서 마침내 흑산도(대흑산도)가 등장한다. 일본 포경회사인 동양포경주식회사가 포경 조업 영역을 1916년에 전라도 대흑산도까지 넓혔다는 기록과 동양포경주식회사를 승계한 일본수산주식회사가 1939년 현재 대흑산도에 포경근거지를 운영하고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서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 근해에서의 포경은 동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대흑산도 포경근거지가 설치됐다는 것은 일제의 포경 영역이 그 무게 중심을 동해에서 대흑산도 근해 등으로 포경 중심지를 이동했거나 포경의 영역을 확대했다는 것을 뜻한다.

한반도 포경기지 변천사를 연구해온 김백영 박사는  일제가 '대흑산도 포경근거지'를 설치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1910년대부터 1930년대 전반기까지 동해에서의 포경이 쇠퇴하는 추세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제는 1900년 초부터 한반도 근해에서 포경을 독점했고, 그 주 사업장은 동해였다. 하지만 10년 넘게 지속된 동해에서의 고래 남획은 동해 포경의 쇠퇴로 이어졌고, 그 활로는 포경 영역을 남해와 서해로 확장하는 것이었다. '대흑산도 포경근거지'는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즉 동해에서의 포경 실적 쇠퇴는 1914년부터 일제로 하여금 포경사업장을 서해와 남해로 확장하게 만들었다. 특히 1916년부터는 포경 대상지를 대흑산도 근해로까지 확장하게 만들었고, 고래 해체 작업 등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체계적인 기반 시설인 '포경근거지'를 대흑산도에 설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박구병 교수가 정리한 '1917년부터 1934년까지 각 도별 포경선 수와 포획 두수'는 이를 명확하게 입증한다. 동해에서만 활동하던 포경선들이 서해 (황해도 52척, 전라남도 95척)와 남해(경상남도 150척)로 이 시기에 급격하게 진출한다. 동해(경상북도 36척, 강원도 54척, 함경북도 50척)에서 활동하는 포경선의 수를 크게 앞지른 것이다. 

고래 포획고 역시 이 시기에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일본 포경회사가 1917∼1934년까지 경상북도, 황해도, 함경북도 등 동해에서 올린 전체 포획 두수는 151두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황해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등 서해와 남해에서 포획 두수는 무려 2854두였다. 동해의 포획고보다 약 18배나 많은 포획고다. 
 

 한반도 근해에서 가장 많이 대형 고래를 포획한 일본 포경회사는 동양포경주식회사였다. 동양포경주식회사는 대형 고래 해체 장면을 담은 기념 우편엽서를 만들 정도였다.
▲  한반도 근해에서 가장 많이 대형 고래를 포획한 일본 포경회사는 동양포경주식회사였다. 동양포경주식회사는 대형 고래 해체 장면을 담은 기념 우편엽서를 만들 정도였다.
ⓒ 일본포경협회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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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바다는 따뜻하고 먹잇감 풍부한 고래들의 고향이었다

대상지를 더 좁혀보면 이 기간 동안 경상북도 근해에서 활동한 포경선은 모두 36척으로, 47두의 고래를 잡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동안 전라남도 근해에서는 95척의 포경선이, 고래 1095마리를 포획했다. 전라남도 근해에는 이 시기 '대흑산도 포경근거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일본 포경선에 의해 흑산도 근해에서 포획당한 고래의 수는 흑산바다에 동해 못지않게 많은 고래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슬프게 증빙한다.  

조선수산회가 집계한 '1930년 동양포경주식회사의 한국 근해 포경 실적' 역시 이를 증빙한다. 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30년 한 해 동안 울산 사업장에선 긴수염고래 55두와 귀신고래 10두 등 모두 65두를 포획했다. 하지만 남해와 서해에 걸쳐진 제주도 사업장(31두)과 대흑산도 사업장(46두), 대청도 사업장(85두)에선 대왕고래, 긴수염고래(참고래), 혹등고래 등 모두 162두를 포획했다. 동해보다 서해와 남해에서 약 2.5배 이상 더 포획한 것이다. 이 시기 한반도 동해에서의 포경이 쇠퇴하고 서해와 남해에서의 고래 포획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포경회사들이 포경근거지를 동해에서 흑산도로까지 확장할 만큼 대형고래가 많이 살고 있었던 흑산바다. 흑산바다에 큰 고래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까닭은 흑산바다가 고래들이 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흑산도 근해는 수심 100m 안팎으로, 겨울철에도 평균수온이 섭씨 7도∼8도로 유지한다. 이 온도는 귀신고래의 회유 동선에 있는 사할린해나 오오츠크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따뜻한 온도다. 봄이 되면 수온은 더 올라가니 고래들에겐 새끼를 낳거나 어린 새끼를 키우기엔 더없이 아늑한 바다였던 셈이다.

또한 흑산바다에는 고래의 먹이가 풍부했다. 흑산도는 조기들의 산란장과 월동장으로 이동하는 길목 한가운데 있다. 조기는 서해에서 산란해 가을에 월동장인 제주도 남방 동중국해로 회귀하는 회유성 어종이다. 조기가 이동하는 곳엔 멸치와 새우, 청어, 꽁치 등이 풍부하다. 이들은 고래가 매우 좋아하는 먹잇감들이다. 

일제가 포경근거지를 동해에서 서해와 남해로 확장했던 곳이 흑산도와 제주도 서귀포, 황해도 대청도였다. 이곳들은 모두 조기 회유 동선과 일치한다. 이런 까닭에 더글라스 칼튼 아브람스(Douglas Carlton Abrams)는 <고래의 눈 Eye of the Whale>에서 "북서태평양 귀신고래 등은 동중국해 하이난의 얕은 바다에서 새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한국 포경사를 탐구해온 일부 연구자들은 더글라스의 주장을 이어받아 "흑산바다 역시 하이난 바다와 마찬가지로 조기 회유 길목에 있는 등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귀신고래가 새끼를 낳았던 곳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랜 기간 동안 생태 추적 조사가 꼼꼼하게 진행되지 못한 상태에서 "흑산바다가 귀신고래의 고향"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록된 사실만으로도 흑산바다는, 참고래·대왕고래·혹등고래·귀신고래 등 대형 고래들이 평화롭게 살았던 '생명의 고향, 유랑의 거처'였음은 분명하다.  
 

 흑산도 근해는 큰 고래들이 좋아하는 먹잇감이 풍성했다. 이를 확인해주는 조기 회유도.
▲  흑산도 근해는 큰 고래들이 좋아하는 먹잇감이 풍성했다. 이를 확인해주는 조기 회유도.
ⓒ 나증만, 조경만, 김준 등 공저 <서해와 조기> 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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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기사 '조선총독부가 직접 흑산도에 직원 파견한 까닭' 곧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제 논문 ‘일제강점기 대흑산도 포경근거지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태그:#고래#장생포#흑산도#포경#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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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차별, 식민지 교육은 진행형"

 재일 조선학교 차별반대, 사노 미치오 호센대 교수
도쿄=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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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06  18: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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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노 미치오 일본 호센대 교수는 6일 오후 일본 도쿄 문부과학성 인근에서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재일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은 곧 식민지 교육의 현재진행형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식민지 교육은 1945년에 끝나지 않았다.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이 그 증거이다."

재일 조선학교 무상화 교육을 거부하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히로시마에서 패소했지만 오사카에서 승소해 재일 조선학교 관계자들과 지지자들은 고무됐다. 하지만 지난 9월 13일 도쿄지방법원은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조선학교 무상화를 위한 싸움이 끝을 모르는 상황. 식민지 교육이 현재 진행형이기에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를 차별하는 것이라고 사노 미치오(佐野通夫) 일본 호센대 교수는 지적했다.

대학시절부터 재일조선인 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사노 미치오 교수는 6일 오후 일본 도쿄 문부과학성 인근 찻집에서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식민지 교육은 1945년에 끝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은 사노 교수는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은 제대로 된 식민지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데서 원인을 찾았다.

   
▲ 사노 미치오 교수.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사노 교수는 "재일 한국인이든 재일 조선인이든, 그들은 식민지 시대처럼 학교에 가면 한국이름을 쓰지 못한다. 일본 이름으로 학교를 다녀야 한다. 한국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왕따당한다"며 "이것은 식민지 시대와 똑같다. 여전히 식민지 시대의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식민지배 당시 조선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지금이라고 없는가? 아직도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후진 나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물론 한류때문에 인식이 좋아지긴 했다. 북한에 대한 차별도 역시 조선에 대한 차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남한에 대해 조금 좋게 말하는 것 같지만 그 밑에는 차별의식이 깔려있다."

비단 조선학교 만의 문제는 아니라고도 사노 교수는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1990년대 브라질 노동자들이 대거 일본으로 이주하면서 '브라질학교'가 세워졌다. 그런데 '브라질학교'도 조선학교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조선학교와 달리 고등학교 과정을 인정해주지만,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 이를 두고 사노 교수는 '새로운 경제 식민지배'라고 표현했다.

1945년 패전 이후 일본 사회가 식민지 청산을 제대로 한 경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식민지 지배 인식을 70년째 그대로 이어오고 있고, 이는 새로운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조선학교를 북한과 연결하며 차별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일본 사회는 무서운 상황"이라며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발사해도 그건 일본과 상관없는 일이다. 일본 영공도 아니다. 그냥 태평양에 떨어졌다. 그런데 경보를 울리고 학생들을 책상 밑에 숨기고 있다. 이상한 사회이다. 아베가 큰일이 나 듯이 호들갑을 떤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북한은 일본 경제에 의존하지 않는다. 제재를 해도 북한이나 일본이나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서 "오히려 재일조선인들이 친척과 연락을 못하는 피해를 입고 있다. 그걸 연결시키면서 '북한은 나쁜 나라다, 무서운 나라'라고 하면서 국민들을 의식화하기 위해 '조선학교를 나쁜 학교'라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 사노 교수는 6일 오후 도쿄 문부과학성 앞에서 열린 '조선학교 무상화를 위한 금요행동'에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수많은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일본 사회에서 조선학교 차별을 없애는 일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조선학교 무상화 관련 재판이 일본 내 지역별로 다르게 판결나듯.

그럼에도, 사노 교수는 조선학교 차별을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조선학교를 알리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9월 도쿄지법에서 패소했지만, 항소심에서는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도 갖고 있다. "식민지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는 그는 이날도 매주 금요일 문부과학성에 열리는 '조선학교 무상화를 위한 금요행동'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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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청년들, ‘월세 10만원’에 도전하다

 
박소영 기자 psy0711@vop.co.kr
발행 2017-10-06 09:27:15
수정 2017-10-06 13: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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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원룸
대학가 원룸ⓒ제공 : 뉴시스
 

1인가구 520만 시대. 높은 월세 장벽에 시달리는 청년 1인가구 수는 그 중 190만 가구를 차지하고 있다. 혼자 사는 청년들 대다수는 목돈이 드는 전세보다는 보증금이 있는 월세를 살고 있다. 1인 청년가구의 평균 월세는 관리비를 제외하고도 34만원. 이마저도 대학가 근처 원룸은 평균 월세가 49만원으로 더 비싸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청년 주거정책을 제안한 이들이 있다. 민중연합당 흙수저당 산하 ‘청년월세10만원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월 임대료의 80% 또는 최대 30만원까지 지원해 청년들이 실제로 부담하는 월세를 10만원 수준으로 낮추는 조례발의 운동에 나섰다. 운동본부를 이끌고 있는 손솔 운동본부장을 지난 27일 만났다.

기존 청년주거정책 많지만 효과는 '글쎄'

운동본부가 추진하는 ‘월세10만원’ 청년주거비 지원조례는 20세 이상 39세 이하 무주택자 청년 중 50㎡(15평) 이하의 최저주거기준을 충족하는 주택에 사는 1인 청년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모의 소득분위와 같은 경제력을 자격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다.

손 운동본부장은 청년주거문제에 대해 주목하게 된 이유에 대해 “주거 문제가 청년의 숨통을 트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면서 “청년들이 월세 벌려고 알바를 2~3개 하고, 진로나 학업에 시간도 들이고 싶은데 발목 잡히는 게 너무 많은 현실”이라고 말했다.

1인 청년가구는 전체 1인가구 비율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지원정책은 미흡한 상황이다. 게다가 기존에 있는 청년주거지원 정책은 대학생·사회초년생·신혼부부에 집중되어 있어 자격이 안 되거나 대출 금액 지원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 주거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 운동본부의 판단이다.

또한 청년들은 높은 월세를 감당하기 버거워 싼 집을 찾다보니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살아야 해 ‘주거 난민’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청년 빈곤 해소를 위한 맞춤형 주거지원 정책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 1인가구 중 최저주거수준 36㎡(11평)미달인 주택에 생활하면서 임대료가 가처분소득 20%를 넘는 주거빈곤가구가 47.03%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는 몇 해 전 비가 많이 오던 여름날 생각하면 너무나 아찔합니다. 지리산 산행 다녀와서 늦은 밤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곳은 좁고 창문이 없어서 환기가 잘되지 않았고 평소에 습해서 벽에 곰팡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방 사이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으로 바닥을 보는데 물이 흥건했습니다. 휴대전화 불빛으로 방을 비춰봤는데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제 방 천장이 무너져 내려있던 것입니다. 제가 집에서 자고 있었다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난달 12일 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 당시 소개된 월세방 피해 사례)

운동본부는 주거비를 지원받아도 집주인이 맘대로 월세를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공정월세제도’ 도입 등과 같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서울시 청년 1인가구 수는 약 41만 가구로 이중 60%가 지원 대상에 해당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밖에도 주거비 지원 외에 청년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주거문제전담기구를 설립하고, ‘주거 코디네이터’와 같은 주거 복지 전문가를 양성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25일 청년월세10만원운동본부가 서울시청에 제출한 조례안
25일 청년월세10만원운동본부가 서울시청에 제출한 조례안ⓒ제공 : 청년월세10만원운동본부

‘청년 월세 10만원’ 현실이 될 수 있다

손 운동본부장은 ‘청년 월세10만원’은 결코 꿈이 아니‘라고 말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청년주거지원정책 제안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산이 많이 드는 정책인 건 맞다”면서 “하지만 이것을 해야 한다는 의지가 있으면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청년 주거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해결해야겠다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고, 주민들의 발의서명이 이어진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5일 청년 월세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서울시청에 제출했다. 이후 조례 발의대표자로 지정이 되면 향후 6개월간 서울시 유권자 인구의 1%, 즉 8만 명을 대상으로 조례발의 주민 서명을 받아야 한다. 서명이 제출되면 지방 의회에서 안건으로 제출이 되고 통과시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운동본부는 조례 제정을 목표로 최근 청년 1인가구가 밀집된 대학가 등을 돌며 서명을 받는데 집중하고 있다. 높은 월세 장벽에 공감하는 청년들이 많다보니 자발적으로 서명을 하거나 주위 사람들에게도 서명을 받도록 권하는 경우도 많단다.

현재는 서울과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향후 전국적으로 범위를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또한 대학가에 높은 월세 지역이 밀집해 있는 만큼 청년단체는 물론 대학 학생회와도 연대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청년월세10만원운동본부가 서울 관악구 고시촌에서 청년들로부터 조례 제정 서명을 받고 있다
청년월세10만원운동본부가 서울 관악구 고시촌에서 청년들로부터 조례 제정 서명을 받고 있다ⓒ제공 : 청년월세10만원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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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치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좌담] 우리미래 이성윤, 비례민주주의연대 김푸른, 청년참여연대 김현우
전혁수 기자 | 승인 2017.10.06 12:57[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424개 시민·노동단체가 함께하는 정치개혁 공동행동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선거연령 18세 인하 등의 개혁안을 제안하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출범했으며 지난 27일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의 주도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서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선거제도 개혁 '민정연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청년이 만드는 젊은 국회라는 목소리도 선거제도 개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미디어스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힘쓰고 있는 청년정당 우리미래 이성윤 대표와 비례민주주의연대 김푸른 청년위원장, 청년참여연대 김현우 정치분과장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정치개혁 청년행동 출범 기자회견 모습. 김현우 청년참여연대 정치분과장(왼쪽 세 번째), 김푸른 비례민주주의연대 청년위원장(왼쪽 네 번째), 이성윤 우리미래 대표(오른쪽 네 번째). ⓒ미디어스

청년정당 우리미래 이성윤(이하 성윤) : 정치개혁 공동행동이 추구하는 선거제도 개혁 안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함께 청년들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주제들도 있다.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나왔던 만 18세 피선거권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청년들과 관계가 많다.

선거제도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서 청년 정치인이 많이 탄생할 수도 있다. 청년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34%인데, 지금은 국회의원 중에 2030세대는 1%도 안된다. 청년문제는 계속 화두가 되는데 청년 의원은 없다. 평균 55.5세의 남성 중심의 국회가 돌아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선거제도를 바꿔 더 많은 청년들이 국회에 진입하게 해야겠다는 문제의식으로 정치개혁 청년행동이 시작됐다.

청년참여연대 김현우 정치분과장(이하 김현우) :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의회 내 독과점을 타파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나는 청년 참여연대에서 활동을 하던 중에 청년세대가 직면한 사회문제를 개선하려면 청년이 직접 정치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 기성세대는 청년이 가진 의제를 우선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방향성 속에서 청년 시민단체들이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의제를 알리는 등의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래서 정치개혁 청년행동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18세 선거권, 바쁘니까 나중에?  

비례민주주의연대 김푸른 청년위원장(이하 김푸른) : 정치개혁 청년행동이 만들어진 맥락도 정치개혁 공동행동이 만들어진 맥락과 비슷하다. 각자 자리에서 다양한 의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민사회가 모인 거다. 그러나 사실 청년에 대한 정책이나 여러 의제들이 어떻게 실현될지는 요원하지 않나. 촛불광장에서 '성평등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구호를 들고 나가고 페미니즘 이슈나 일자리 이슈 등 여러 의제가 있었는데, 실제로 실현된 건 거의 없다. 그래서 이런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의식이 생겼고, 청년 의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물론 언론이 청년에 주목한다는 측면을 고려한 것도 있다.

김현우 : 사실 겉으로 청년정치를 장려한다면서도 실질적으로 정치권 내에서 '과연 청년에 대한 생각을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여러 상황을 비춰봤을 때 정치개혁 청년행동 활동을 하면서 청년들만의 조직을 정치권에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있다.

이성윤 : 작년 촛불정국에서 우선 순위는 탄핵이었지만, 뒤에서는 청년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돼야 한다는 촛불시민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당시 정치권에서 만 18세 선거권을 해줄 것처럼 하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조기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바쁘니까 나중에 목소리를 듣겠다"는 식으로 흐지부지됐다. 이런 과정들이 청년의 입장에서 아쉬움이 컸다.

또한 현행 선거제도는 양당제를 조장하고 있다. 겉으로는 5당체제가 만들어져 있지만 나는 지금도 양당제 체제라고 생각한다. 바른정당이 언제 자유한국당으로 들어갈지 모르는 것이고, 국민의당이 그나마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다면 3당이 유지는 되겠지만, 그래도 결국 몇 차례 현행 선거제도로 선거를 치르면 결국 양당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결국 5000만 국민 목소리를 2개의 정당으로는 모두 담을 수 없다. 누군가는 청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누군가는 여성, 누군가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당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의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청년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것이 청년행동이다. 전국 청년네트워크, 민달팽이유니온, 제가 속해 있는 우리미래 등 청년 관련 단체들이 다수 들어와 있는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청년 정치인이 정치권에 들어가야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우 : 그런데 현재 거대양당에는 청년이 들어갈 틈이 없다. 공천 과정을 생각해보면 현재의 지역구 위주의 정치에서는 자본이 부족한 청년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 확대로 청년이 정치권에 들어가고, 청년의 감수성으로 청년의 의제를 풀어줘야 청년들이 바라는 정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청년뿐 아니라 젠더 문제나, 장애인 문제, 중소상공인 등 다양성을 인정받는데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정치개혁청년행동 회원들이 1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피선거권 연령하향 및 청년할당제 입법청원 제출 관련 기자회견을 있다(연합뉴스)

20대, 의회 진출 더 어려워져   

김푸른 : 한국 기득권 정당들의 폐해 중 하나가 정당 민주화가 돼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청년들이 기득권 정당에 들어가면 지역기반이 없이 때문에 공천을 받아 당선될 가능성이 적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게 있다. 가끔 거대정당에서 등장하는 청년 의원들이 과연 그 정당에서 큰 청년이냐는 거다. 우리나라는 선거철만 되면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한다. 그 정당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스웨덴의 경우 32살에 교육부 장관이 된 사례가 있는데, 그 인물의 경우 11살에 입당을 해서 그 정당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리고 19살에 국회의원이 됐고, 32살에 장관이 됐다. 무조건 나이로만 청년인 것이 아니라, 어떤 청년이 어떤 삶의 비전을 가지고 어떤 정치를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천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사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정당 내에서 제도화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쉽게 바뀔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김현우 : 청년 정치 교육 등도 함께 이뤄야할 과제다. 정치, 인권, 노동 등에 대한 교육이 있어야 한다. 요즘 청년들은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에게는 대체로 개인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나의 경우에도 책을 읽는 등의 개인 시간을 꿈꾸지만 정말로 시간이 없다. 그리고 청년들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선거법 개혁을 통해 당사자인 청년이 의회에 들어가고, 청년 정치가 청년의 삶을 바꿔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성윤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직업 선택의 자유'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헌법 15조에는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권리가 없다.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에 입후보 했다가 떨어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삼성에 이력서를 넣어도 그 기업이 나를 원하지 않으면 그 기업은 나를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 아닌가. 마찬가지로 국민들에게 심판을 받고 싶다. 국민에게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해보고 싶다는 이력서라도 내보고 싶은 것인데, 만 25세 이하의 청년들에게는 이러한 선택의 자유가 없다. 결국 성인 남성만 민주주의를 누렸던 고대 아테네의 제한적 민주주의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2014년 OECD국가들의 만 40세 미만 의원 비율은 평균 19%였다. 그런데 지난 19대 국회에도 우리나라는 민주당 김광진, 장하나 의원 정도 있었을 뿐이다. 19대에 2030은 9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대는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1명 있었다. 과거에도 가능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20대가 의회에 진출하는 게 더 어려워진 느낌이다.

김현우 : 청년들이 기득권 정당에 들어가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의식들이 약해지는 경향도 있다. 거대정당과 같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만의 색깔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선거제도 하에서는 더 심화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이게 악순환이 돼 돌아올 것이다.

김푸른 : 나는 청년문제 해결을 복지국가로의 이행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청년 정치인의 세력화는 기득권의 해체라고 본다. 그러니 당연히 기득권 정당에서 청년의 자리가 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현재의 기득권 정당을 보면 아직까지도 1980년대 문제의식에서 멈춰있는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새로운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세력이 청년으로 해석이 된다면, 이들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청년할당제와 새누리당의 비례 7번  

이성윤 : 솔직히 말하면 기득권 정당에게 청년은 매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을 때 가장 기대되는 효과가 '인기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당의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정책 선거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는 유명한 사람을 데리고 와야 당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막 사회에 진출한 청년들은 장년층에 비하면 언론 노출도 적고, 가진 경험도 적고, 정당에서 후보로 내놨을 때 당선이 될 수 있느냐는 측면에서 보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청년할당제를 법제화하자는 얘기를 한다. 지난 입법 청원서에도 청년 할당제 권고를 넣었다. 청년들을 3의 배수로 명부에 포함시키는 권고안을 넣으면 여성할당제와 조화될 수 있다. 그런 것이 하나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푸른 :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여성할당제와 청년할당제를 같은 불평등 해소의 장치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 유보적인 입장이다. 여성과 청년을 동등한 약자로서 놓고 보느냐는 것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정당 내부의 민주화가 이뤄지고, 청년이 정치권에 많아질 때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아직 그려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과거 새누리당에서 비례 7번에 청년을 넣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청년이라는 세대를 단일하게 기성세대와 대치되는 개념으로만 이해하고 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청년이 청년을 대변했나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따른다. 그런 식이라면 청년 담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볼 부분이 생긴다.

이성윤 : 청년들이 그냥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이를 이유로 정치권에 나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장기간 정당에서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정치권에 몸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미래 안에서도 급하게 하지 말고 커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를 한다.

그래도 청년들이 정치권에 진출하면 많은 것이 변할 것이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2030 유권자가 국민의 30% 이상인데 국회의원 300명 중에 100명만 청년이었다면 대학 등록금 문제가 해결이 안 됐을까. 기숙사 문제가 해결 안 됐을까란 질문을 던져본다. 최근 부산에서 청년 조례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 청년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하더라. 이러한 세세한 것들이 청년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내에서 제대로 철학과 비전을 교육 받은 청년들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김푸른 : 물론 청년들이 기회를 갖는 것은 필요하다. 청년이 100명이면 달라질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다만 기성세대가 바라보는 나이로서의 틀을 넘어선 청년이어야 한다고 본다. 정말 기성세대의 정치인들과 동등하게 정치인으로서 인정 받을 수 있는 게 중요하다.

2030 세대가 겪는 문제를 청년 문제로 정의하지만, 이것은 청년세대를 넘어서도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그런 문제이기 때문에 빈곤감과 좌절감, 불확실성을 느끼고, 이런 것들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기저로서 작용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떤 청년 정치인이 정치권에 들어가도 그 사람이 청년들을 대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난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여성 대통령 후보라고 나갔는데, 심 의원의 정체성은 노동전문가다. 그런 것처럼 꼭 청년들이 청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무를 져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 의원들과 시민사회 연대체인 '정치개혁 공동행동'은 지난달 27일 선거제도 개편 추진을 위한 공동 기구 구성 방안 등을 논의했다.(연합뉴스)

지금은 선거법 개혁 불 붙일 때 

이성윤 : 나는 그래서 당사자 정치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꼭 청년들이 다 해결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탈리아를 보면 차기 총리 물망에 오른 사람은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변변한 직업도 가져보지 못한 인물이다. 그런 당사자 정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지금의 한국 정치는 당사자가 아닌 엘리트 중심의 정치가 되고 있지 않은가. 결국 더 많은 다양한 세력이 국회에 들어가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가야 한다.

김현우 : 지금까지의 그런 과거 정치사를 돌아보면 결국 양당제를 깨내야 한다. 의회의 다양성을 재고할 시기라고 본다. 우리는 청년이란 담론을 내세우지만 청년뿐만 아니라 모두의 문제다. 청년정치도 일반적이 되려면 다양한 사람이 의회에 진입해야 한다.

김푸른 : 국회의 기득권들이 1980년대 문제의식에 머물러 있어서 한국 사회의 기본방향을 청년 중심으로 가져오는 게 결국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그러기 위해서 선거법 개정안이 필요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필요하다. 그리고 법안 하나 통과시키면 될 일이라고들 하지만 결국 정치권에서만 하는 일이 아니다. 뉴질랜드가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선거법 개정에 성공한 사례처럼 우리도 이걸 촛불정국에서의 '박근혜 탄핵'처럼 구호로 요구할 수 있을 만큼 공론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성윤 : 이런 부분이 지금까지 이슈화가 되지 못한 부분은 시간이 짧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누히 얘기하는 거지만 유럽 선진국의 민주주의는 역사가 길다. 이 싸움은 길게 가져가고, 그래서 당장 되지 않더라도 속상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은 선거법 개혁에 불을 붙일 시기인 것 같다.

김현우 : 실제로 선거제도를 바꾼 나라들을 보면 10년 이상 관련된 운동들이 벌어졌다. 이 활동이 당장 실패하더라도 개헌안에 '비례성 보장' 정도의 문구만 들어가도 작은 변화가 생길 것이란 희망을 걸고 있다.

전혁수 기자  wjsgurt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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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대가 허용되는 나라, 미국... 이대로라면 참사 재발을 막기 힘들 것

미국이 연이은 총기참사에도 총기규제에 실패하는 이유

민병대가 허용되는 나라, 미국... 이대로라면 참사 재발을 막기 힘들 것

17.10.06 20:56l최종 업데이트 17.10.06 20:56l

 

 미국 서부 네바다 주(州)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진 미 역대 최악의 총기난사 참사로 59명이 사망하고 515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사진은 총격범 스티븐 패덕이 자동화기를 쏜 32층 객실의 깨진 창문
▲  미국 서부 네바다 주(州)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진 미 역대 최악의 총기난사 참사로 59명이 사망하고 515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사진은 총격범 스티븐 패덕이 자동화기를 쏜 32층 객실의 깨진 창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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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저녁, 미국 라스베이거스 중심가인 스트립 지역에서는 컨트리 가수들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10시 8분 경 제이슨 알딘(Jason Aldean)이 공연을 펼치던 중 폭죽소리와 같은 연속된 폭발음이 울렸다. 하지만 폭죽소리가 아닌 총성이었다. 수많은 관중들의 머리 위에 총알이 빗발쳤다. 범인은 콘서트장 바로 옆에 위치한 만달레이 베이 호텔 32층 객실에서 창문을 깨고 총격을 가했다. 한순간에 콘서트 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관중들은 총격을 피해 바닥에 엎드렸지만 오히려 공중에서 날아드는 총알에 더 넓게 노출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59명이 숨지고 527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사상자가 600명에 달할 정도로 피해규모가 컸던 것은 범인이 32층 호텔에서 다수의 인파를 향해 총격을 가했기 때문이지만 범행에 사용된 총기의 특성에서도 크게 기인한 바도 크다. 범인이 머물렀던 호텔 객실에서는 20여정이 넘는 총기가 발견되었다. 스나이퍼들이 사용하는 스코프(조준경)도 발견되었다. 특히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1발씩 발사되는 반자동 방식의 총기를 분 당 400~800발의 완전자동 사격이 가능하도록 개조할 수 있는 범프 스탁(bump-stock)'도 발견되었는데, 피해가 컸던 결정적 이유였다.

최악의 총기참사를 겪은 미국은 슬픔에 잠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총기참사 현장을 방문해 "나라 전체가 애도한다"며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각국 지도자들의 애도도 이어졌다. 

이번 기회에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의 총기난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거의 매년 크고 작은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그때마다 슬픔과 애도 그리고 총기규제 주장이 이어진다. 그러나 미국은 반복적으로 총기난사 사건으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겪으면서도 총기규제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총기규제의 실패의 원인을 미국총기협회에서 찾고는 한다.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로는 미국의 헌법과 건국과정에까지 이어진다.

미국 최대의 로비단체, 미국총기협회
 

 영화 <미스 슬로운> 스틸컷
▲  영화 <미스 슬로운> 스틸컷
ⓒ (주)메인타이틀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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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비스트들의 활약을 그린 2016년 작 영화 <미스 슬로운(Miss Sloane)>은 총기규제 법안을 둘러싼 미국 정계의 암투를 그리고 있다. 영화에는 총기규제 법안 도입을 무산시키기 위해 불법까지 서슴지 않는 미국총기협회(The National Rifle Association of America, NRA)와 거대 로비그룹, 거물급 정치인들이 등장한다. 

 

총기규제를 둘러싼 알력다툼은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대형 총기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총기규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지만 로비가 합법화된 미국에서 막대한 자금을 보유한 NRA의 로비에 번번이 실패하고는 했다. NRA는 실제로 정치권에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총기규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엘 고어 후보의 반대활동을 하여 결국 엘 고어의 낙선에 결정적 여향을 미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개인의 총기소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반면 미국에서 총기규제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총기규제법안 역시 총기소유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총기구입 시 신원확인 절차 등을 강화하는 내용일 뿐이다. 하지만 이 정도 규제도 미국사회에서는 수용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총기소유의 자유가 미국의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 수정헌법 제2조는 "규율 있는 민병은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국민의 무장할 권리를 넘어 민병대의 존재까지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 의해 보장된 무장할 권리

미국의 헌법이 무기를 소유할 권리를 국민의 권리로 규정한 것에는 미국의 독특한 역사적 맥락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미국은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약 8년에 걸친 싸움 끝인 1783년 독립에 성공했다. 그리고 1787년 연방헌법을 완성한다. 그런데 헌법이 제정 된지 2년 만인 1789년에 미국의 제4대 대통령이 되는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은 헌법의 수정을 주장한다. 연방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견제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헌법조항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권리장전이라 불리는 10개조로 이루어진 수정헌법이다.

미국은 영국과 독립전쟁 당시 정규군대가 없었다. 대신 지역별로 산재해 있던 민병대(militia)들로부터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민병대는 후에 대륙군(Continental Army)으로 합쳐져 독립을 이끌었다. 대륙군은 독립 이후 다시 민병대로 해체되었다. 

그런데 민병대는 정규 군대와는 성격이 달랐다. 민병대는 평시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사냥 등을 하던 사람들이 필요시 군대를 형성하여 전투 활동에 참여 하는 형태다. 때문에 민병대는 민간인들의 평시 무장을 전제로 한다. 평시 무장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전시에 이들을 모아 민병대를 조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수정헌법이 민병대와 국민의 무장을 보장하게 된 계기다.

미국의 민병대는 오늘날까지도 존재하고 이는 불법이 아니다. 현재도 미국 곳곳에서는 수백여 개의 민병대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다만 민병대의 존재는 수정헌법 제2조에 따라 보장되지만 군사적 행동이나 인명피해의 발생 등 불법행위는 금지된다. 그러나 몇몇 민병대가 주정부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가 실행 전 적발된 사건도 있었고, 멕시코 접경지대에서는 민병대가 자체적으로 밀입국자들을 단속하며 불법행위를 일삼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은 시민들이 각자 저마다의 총을 들고 군대를 만들어 독립을 일구어냈다. 독립 후엔 연방정부의 권력독점을 방지하고자 계속하여 민병대가 허용되었다. 자신의 총기로 무장한 개개인으로 구성된 민병대는 건국 초기 미국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헌법까지 무장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병대에서 시작된 미국의 역사는 오늘 날 부메랑이 되어 미국을 세계 최대의 총기사고 국가로 만들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총기는 거대산업으로 성장했고 미국 정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로비단체로까지 이어졌다.

이번 총기참사로 목숨을 잃은 많은 이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면, 600명에 가까운 인명피해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또다시 총기규제에 실패할 것이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일 내에서 또다시 총기참사가 발생할 것이다. 
 

 미국 서부 네바다 주(州)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진 미 역대 최악의 총기난사 참사로 59명이 사망하고 5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3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 주 클라크 카운티 검시소 측이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 설치한 총격 피해자 가족지원센터 앞에서 노란 근무복을 입은 경찰관이 출입자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  미국 서부 네바다 주(州)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진 미 역대 최악의 총기난사 참사로 59명이 사망하고 5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3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 주 클라크 카운티 검시소 측이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 설치한 총격 피해자 가족지원센터 앞에서 노란 근무복을 입은 경찰관이 출입자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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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퇴출·합성사진·댓글달기…국정원의 연예인 활용법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입력 : 2017.10.06 07:32:00

 

MB 정부 블랙리스트에 ‘좌파 성향’ 연예인으로 분류됐던 코미디언 김미화씨.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MB 정부 블랙리스트에 ‘좌파 성향’ 연예인으로 분류됐던 코미디언 김미화씨.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2013년 세상을 뜬 배우 박용식씨는 10년간 생계를 위해 방앗간을 운영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전두환과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을 금지당했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에나 나올 법한 독재 정권 시절의 황당한 인권 탄압 같지만, 최근 그 실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이명박(MB) 정부 국정원의 문화예술인 탄압 행태도 그 못지 않다. MB 정부 국정원은 분야별 문화예술인 82명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들의 정치적 성향을 분류했고, 방송사에 압박을 가해 입맛에 맞지 않는 연예인들의 출연을 막았다. 너절한 합성사진과 댓글공작으로 이미지도 훼손했다.
 

■ 성향 분류·퇴출 압박·합성사진…국정원의 연예인 활용법 

코미디언 김미화씨는 2010년 7월6일 SNS에 “김미화는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존재하고 돌고 있기 때문에 출연이 안된답니다”며 “KBS에 근무하시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블랙리스트’ 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인지 밝혀주십시오” 라는 글을 올렸다. 같은해 4월 김씨가 KBS <다큐멘터리 3일> 내래이션을 맡자 KBS 김인규 사장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내래이터가 잇따라 출연해 게이트키핑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문제를 삼은 지 석 달 만에 올린 글이었다. KBS는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김씨는 이듬해 4월 10년간 진행하던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도 급작스럽게 하차했다.

7년이 지난 지금 김씨가 올린 SNS 글은 하나 둘씩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로부터 보고받은 ‘MB정부 시기의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 건’ 과 MB 정부 청와대의‘좌파 연예인 비판활동 견제 방안(2010년 4월)’ 문건 등에 따르면 국정원은 분야별로 좌파 문화예술인 82명의 명단을 만들고 관리했다. 문화계는 이외수·조정래·진중권씨 등 6명, 배우 겸 방송인 문성근·명계남· 김민선·김미화·김구라·김제동씨 등 16명, 영화감독 이창동·박찬욱·봉준호씨 등 52명 등 총 82명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국정원은 아예 정부 비판 연예인들의 프로그램 배제, 퇴출 등 압박을 위해 2009년 7월 김주성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 주도로 문화·연예계 대응을 위해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구성했다. 국정원이 2009년 12월24일 작성한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에는 김미화씨에 관해 “퇴출, (경영진에) 교체권고, 프로그램은 개편으로 폐지”라는 ‘지시사항’이 담겼다. 국정원은 해당 문건에서 “(2010년 6월) 지방선거 앞두고 정부 비판 급증 예상”이라며 “방송사 행정 제재, 경영진 주의 환기”라는 ‘지침’을 내렸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지난달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파업 집회를 열고 있는 조합원들과 만나 이명박 정권 때 당한 방송출연 제약 등의 경험을 들려주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방송인 김제동씨가 지난달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파업 집회를 열고 있는 조합원들과 만나 이명박 정권 때 당한 방송출연 제약 등의 경험을 들려주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방송인 김제동씨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사전 행사를 진행하고, 이듬해 1주기 추도식 때 사회를 보면서 MB 정부의 눈 밖에 났다. 김씨는 2009년 10월 진행 중이던 KBS <스타 골든벨>에서 하차 통보를 받았고, KBS <해피투데더>출연도 촬영 전날 취소됐다. 2010년 4월 MBC 에서 진행 중이던 <환상의 짝꿍>도 폐지됐다. 2010년 1월19일 국정원에서 작성된 ‘문화예술체육인 건전화 사업 계획’에는 김미화씨, 김제동씨 등을 ‘퇴출 대상’으로 삼고 “방송사 간부, 광고주 등에게 주지시켜 (이들을) 배제하도록 하고 그들의 비리를 적출하여 사회적 공분을 유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것이 일부 현실화된 셈이다. 퇴출TF와 별도로 국정원 심리전단은 온라인상에서 특정 연예인을 ‘종북 성향’이라고 낙인찍어 공격하기도 했다. 

배우 김규리씨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채로 수입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 넣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라는 글을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김씨는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 “(내가 쓴 글에) 청산가리 하나만 남게 해서 글 전체를 왜곡했던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며 “그 누군가가 10년 동안 가만히 있지 않고 내 삶, 내가 열심히 살고 있는 틈 사이사이에서 (나를) 왜곡했다”고 말했다. 

배우 문성근씨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피해자로 조사를 받기 위해 1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배우 문성근씨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피해자로 조사를 받기 위해 1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국정원 심리전단은 배우 문성근씨와 김여진씨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기 위해 둘의 나체 합성사진도 직접 제작해 인터넷에 유포했다. 해당 합성사진을 만들어 유포한 국정원 직원은 최근 구속됐다.
 

■ 왜 연예인일까 

MB 정부 국정원의 ‘블랙리스트’ 명단은 연예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지만, 연예인들에게 특히 조직적으로,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하려 한 정황이 눈에 띈다. 대중적 영향력이 크고 여론과 이미지에 민감한 연예인들의 직업적 특성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것이다.

국정원은 퇴출 대상인 블랙리스트 뿐만 아니라 ‘지원 대상’인 우파 연예인 리스트까지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2010년 작성한 ‘연예계 좌파실태 및 순화방안’ 문건에는 친정부 성향의 연기자, 개그맨들을 ‘좌파 연예인들의 대항마’로 거론하며 이들을 정부 주관 행사나 공익광고에 우선 섭외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일반 대중과 접촉면이 넓고, 영향력도 있는 연예인들을 압박하는게 파급력이 있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화씨 등 국정원 블랙리스트 관련 피해자들을 소환 조사한 검찰은 추석 연휴가 끝난 뒤 국정원 개혁발전위에서 넘겨받은 자료 등과 함께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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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060732001&code=910100#csidx949139f5bbd60dabde06137228620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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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개성공단 공장 더욱 힘차게 돌아갈 것

북, 개성공단 공장 더욱 힘차게 돌아갈 것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7/10/06 [10:4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지난 개성공단이 가동될 당시 의류제조공장 모습. <사진-인터넷>     

 

북은 6일 ‘여론을 오도하기 위한 흉칙한 수작질’이라는 개인 논평 글에서 “최근 괴뢰들이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을 비롯한 언론 매체를 동원하여 우리가 개성공업지구에서 의류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을 은밀하게 가동하고 있다고 떠들어 대고 있다”며 북의 주권 행사에 관여할 바가 아니라며 “공업지구공장들은 더욱 힘차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 소식에 따르면 북 대외선전용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공업지구공장들을 저들의 ‘승인’없이 돌리면서 주로 외국에서 주문한 임가공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느니, 공장운영이 드러날가봐 두려워 공장창문들에 불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가림막까지 치고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느니, 공장들이 가동을 시작한지 6개월이 넘었는데 이것은 불법무법이라느니 하는 온갖 낭설을 퍼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그야말로 우리 공화국의 힘찬 전진에 배 아파난 자들의 부질없는 앙탈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는 이미 박근혜 역도가 미국과 작당하여 개성공업지구를 깨버렸을 때 공업지구에 있는 남측기업과 관계기관의 설비, 물자, 제품을 비롯한 모든 자산들을 전면 동결한다는 것과 함께 그것을 우리가 관리운영하게 된다는데 대해 세상에 선포하였다”고 역설했다.

 

이어 매체는 “따라서 우리 공화국의 주권이 행사되는 공업지구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그에 대하여 그 누구도 상관할 바가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뢰들이 우리의 공업지구운영을 두고 허튼 나발을 불어대는 것은 마치도 우리가 못할 일을 하는 것처럼 여론을 오도하기 위한 흉칙한 수작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매체는 “우리 근로자들이 지금 어떻게 당당하게 일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눈이 뜸자리가 아니라면 똑똑히 보일 것”이라며 “다시 한 번 명백히 하건대 미국과 그 졸개들이 제아무리 짖어대며 제재압살의 도수를 높이려고 악을 써대도 우리의 힘찬 전진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며 공업지구공장들은 더욱 힘차게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자유아시아(RFA) 방송은 지난 2일(현지시간) 북 내에서 임가공 사업을 하고 있는 중국의 한 대북 소식통이 “조선당국이 개성공단 내 19개의 의류공장을 남한당국에 통보하지 않고 은밀하게 가동시키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한편 개성공단은 지난 2000년 8월 22일 현대아산과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사이에 개발합의서가 체결된 후 2004년 12월 15일 개성공단의 공장에서 첫 제품 생산되면서 공장 가동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5년 2월10일 북의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 등을 이유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개성공단의 북 노동자 임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북 노동자 임금이 군사용으로 전용됐다는 확증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개성공단기업협회가 올해 2월 개성공단 폐쇄 1년에 맞춰 집계한 입주기업 피해액은 토지ㆍ건물ㆍ기계설비 등 고정자산 5936억원, 원ㆍ부자재 등 유동자산 2452억원, 가동 중단에 따른 미납품 위약금 1484억원, 개성 현지 미수금 375억원, 가동 중단에 따른 영업손실(1년) 3147억원, 거래처 단절 등 영업권 상실에 따른 피해 2010억원 등, 총1조 5404억원 규모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부가 지금까지 지원한 금액은 4838억원에 불과하다. 온전한 피해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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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신고리 공론화, 한수원과 정부출연 연구소의 역할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10/06 10:56
  • 수정일
    2017/10/06 10:5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발행 2017-10-05 14:54:37
수정 2017-10-05 14:5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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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이 15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현 상황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론화위원회 회신공문은 신고리 시민행동의 주요 요구에 모호하게 답변하고 있다며 공정성, 중립성을 지키고 설명자료 내용의 자율성 보장과 한수원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건설 재개측 활동 중단 등을 요구했다.
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이 15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현 상황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론화위원회 회신공문은 신고리 시민행동의 주요 요구에 모호하게 답변하고 있다며 공정성, 중립성을 지키고 설명자료 내용의 자율성 보장과 한수원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건설 재개측 활동 중단 등을 요구했다.ⓒ뉴시스
 

“그럼 산업부 장관도 재생에너지 전문가인데, 산업부 장관이 전문가 자격으로 ‘건설중단 측’ 발표를 해도 된다는 말인가요?”

지난 21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사무실에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정부출연연구소 관계자의 ‘건설재개측’ 활동에 대한 논쟁이 오고갔다. 건설 중단측은 원자력연구원 산하 원자력정책센터장이 계속 ‘건설재개측’ 패널로 토론회에 참여하는 문제를 제기했고, 건설재개측은 ‘개인적인 입장을 발표하는 건데 그게 뭐가 문제냐’며 논쟁은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던 중 산업부 장관 이야기가 나왔다. 공직을 맡고 있는 이에게 ‘개인적인 입장’이란 언제나 애매하다. 그동안 건설 재개측은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백자화를 기정사실로 하고 ‘짜고치는 고스톱’을 치고 있다며, 정부의 중립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질문에 대한 건설 재개 측의 답변은 ‘그렇게 하세요.’라는 것이었다. 정부가 중립을 선언한 상태에서 산업부 장관이 나올 리도 없고, 설사 나오더라도 모양새가 안 좋을 것은 누가 봐도 명확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의 ‘중립요구’, 그런데 공기업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선거 공약은 ‘신고리 5,6호기 백지화’였다. 따라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출범 이전부터 탈핵단체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론화 결정에 대해 ‘공약 후퇴’라며 비판했다. 또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사를 중단시킨 것도 정부였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금지,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에 이런 정책을 널리 알리고 집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보수언론과 보수 야당의 탈핵정책 비판이 이어지자, 정부와 여당은 ‘중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명목상 국민들에게 판단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지만, 더 현실적인 이유는 보수 진영의 반발을 염두해 둔 변화였다. 특히 형식상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와 달리 여당의 경우 대선 공약을 지키고 폭넓은 국민 여론을 수렴할 의무가 있지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반면 보수 야당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입장을 홍보하고 있다.

정부의 공약은 ‘신고리 5,6호기 백지화’이지만, 이미 공론화가 시작된 상황에서 십분 양보해서 정부가 중립을 표명할 수 있다. 그간 국민의 의사결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럼 정부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가?

신고리 5,6호기를 건설하고 있는 한수원은 공기업 한전의 자회사로 주식의 100%를 한전이 소유하고 있다. 한수원을 통하지 않고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다. 안전성, 경제성 등 공론화의 주요 토론주제는 물론이고, 건설 기간과 투입금액 등 모든 정보는 한수원이 독점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의 담당 부서인 산업부 조차 한수원이 정확한 내용을 보고해주지 않으면 내용을 알수 없다. 이런 가운데 한수원이 공론화 과정에서 한쪽 편 ‘선수’로 뛰는 것은 이미 공정치 못한 게임이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수원은 그동안 ‘건설 재개 측’ 토론자로 참여하기도 했고, 각종 회의에 참석했다. 오히려 자신들이 주요한 이해당사자라며 공론화 자체를 주도하는 모습까지 보여왔다. 더구나 한수원의 홍보 물품인 부채와 핸드폰 케이블 등이 길거리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 유인물과 함께 배포되는 현실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물량 공세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위 ‘국책연구소’라고 불리는 이들 기관은 우리나라 정책을 그동안 좌지우지해온 곳들이다. 이들의 영향력은 일반 대학 교수나 전문가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 원자력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이번에 쟁점이 되었던 연구소들은 그간 우리나라 핵발전 정책과 에너지정책을 총괄해 온 곳이고 현안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의 연구자들이 정부에게 중립을 요구하는 ‘건설재개 측’ 패널로 참석해서 시민들을 설득하겠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정부 출연연구기관 구성원이 외부 발제를 위해서는 기관장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는 사실상 연구소의 암묵적 지원에 의한 ‘건설재개 측’ 활동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환경운동연합회원들 경주 지진을 기억하라며 신고리 원전 공사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환경운동연합회원들 경주 지진을 기억하라며 신고리 원전 공사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한 차례 해프닝이 아니라, 이후 제대로 된 기준이 있어야

혹자들은 정부 출연연구소 소속 연구자들의 ‘다른 목소리’를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사업에 반대했던 사례 등 정부 출연연구소의 ‘다른 목소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외국의 경우 정부 출연연구소 내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진 연구자들이 상호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양한 목소리를 막는 건 연구자의 양심이나 생각을 제약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문제는 원자력계의 이러한 목소리는 ‘다른 목소리’나 ‘소수 의견’이 아니라는 점이다. 원자력계는 그간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발전해 왔다. 이런 면에서 이번 신고리 공론화 과정에서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건설 재개측’ 활동 문제는 단순히 몇몇 개인이나 특정 기관의 문제라기보다는 탈핵정책 추진과정에서 원자력계 전체의 반발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정부 출연연구소의 ‘건설재개측 활동’ 문제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원자력계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공론화 보이콧’도 불사하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도 한 상태이다. 합숙토론과 최종 투표를 앞둔 상태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주요한 것은 앞으로 정부가 수차례 공론화를 더 진행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이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계획에 대한 공론화를 조만간 진행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다른 갈등 사안에 대해서도 공론화 계획이 추진 중에 있다. 즉 공기업과 정부 출연연구소의 역할 문제는 이후에도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공론화 과정에서 정부, 시민단체, 공기업, 정부출연연구소의 역할이 명확히 재정리되었으면 한다. 이는 국회 또한 마찬가지이다. 보수 여당들은 신고리 5,6호기를 국회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정작 전력계획이나 핵발전소 문제를 국회에서 논의하기 위한 법 개정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반면 여당은 한차례 소나기만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형국이다. 정책 결정을 국민들에게만 던져놓고 국회나 정치권이 뒷짐지고 있는 것 역시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이것이 이 문제가 논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가는 최소한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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