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반미 자주에 전 민족적 역량 총집중해야"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8월 14일 조국통일촉진대회 참여 호소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9.07.16  12:32:30
페이스북 트위터

"어렵게 재개된 이번 대화와 협상에서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이 북에 대한 일방적 핵무장 해제 요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6.12북미공동성명에 명기된 합의사항대로 북에 대한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단계별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성실히 합의 이행을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

   
▲ 최근 범민련 남측본부 15기 의장으로 선출된 이규재 의장은 당면해서 8.15 조국통일촉진대회에 적극 참여하여 민족의 자주적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이규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은 6월 말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 이후 교착상태의 한반도 평화협상에 대한 기대가 생겨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지난 해 싱가포르에서 미국이 세계 앞에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비핵화를 고수하며 북 만의 일방적인 비핵화를 계속 주장한다면 앞으로도 정세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기대가 싹트고 있지만 불안도 여전한 이 같은 상황은 왜 일까? 새로운 관계보다는 여전히 적대관계가 더 익숙한 탓일까? 아니면 대세의 전환은 보이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아직 구체적인 북미 실무협상 소식은 뚜렷하게 잡히지 않아서일까?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통일의 한길'에 앞장서고 있는 이규재 의장은 "하노이 회담이 성과없이 끝나면서 미국을 믿을 수 없다는 분노가 컸지만 이번 상봉을 통해 북미대화 재개 등 중요한 합의를 함으로써 정세가 밝아졌다"라는 큰 대답 하나를 먼저 내놓았다.

이어 "미국의 한반도 지배구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이다. 미국은 이것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미국이 앞으로 대화에 얼마나 성실히 임하는 지 지켜볼 것"이라고 그 다음 길을 제시했다.

그러고는 "이럴 때 일수록 남측 정부와 민중이 민족대단결 원칙에 입각해서 자주적이고 대단결된 강력한 힘으로 (미국을) 견제해 주어야 미국도 조심성이 생기고 할텐데 그게 좀 안되어서 안타깝다"고 고민의 한 자락을 털어놓았다.

지난 2005년 처음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으로 취임한 이래 3년 6개월의 징역을 포함해 14년간 범민련을 지켜온 이 의장에게 '반미자주를 중심으로 한 각계 공동의 반미투쟁'은 언제나 가장 앞자리에 있는 중요과제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처음엔 남북문제, 민족문제를 잘 풀어가겠다고 했지만 쭉 지켜보니 줏대없이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나. 판문점 상봉도 미국이 자기들 조건에서 철저하게 자기들 이해관계에 따라 한 일이지 문재인 정부가 중재해서 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비판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가) 자주적인 입장에서 미국에 할 소리는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게 결정적인 흠결"이라며 "결국 자주역량이 확실하게 모아지기 전에는 (미국의) 눈치보기를 계속하면서 엉뚱한 소리를 하겠지"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 의장은 자신이 지난 2005년 6월 평양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발표 5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 처음으로 참가했던 일이 북측과의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었던 선례를 상기시키고는 범민련에 대한 탄압 일변도 정책의 재고를 요청했다.

2011년 수형생활 중 얻은 백내장과 녹내장으로 인해 양쪽 시력이 크게 나빠져 있는 상태에서 지금 이 의장은 지난달 22일 중앙위원 총회에서 15기 의장으로 다시 선출되어 몸을 돌보지 않고 △8월 3자연대 대회 성사 및 '전민족적 반미공동투쟁' 실현,  △범민련 남측본부 조직강화를 비롯해, 내년 범민련 결성 30년을 앞두고 △범민련 결성 30돌 기념사업 준비 등 주요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격변의 정세를 맞이하는 범민련의 고민과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13일 이 의장을 만났다. 이날 인터뷰는 지난 4월 이전한 범민련 남측본부 새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아래 문답은 사전 서면질문에 대한 답변서를 토대로 이날 추가 질의 응답을 보완해 작성되었다.

   
▲ 이규재 의장은 최근 중앙위원회 총회를 통해 올해 젊고 지도력있는 15기 임원을 새로 선출한 것을 매우 의미있는 일로 꼽았다. 내년 범민련 결성 30주년 기념사업까지 준비하는 분주한 와중에 새로 이사한 사무실에서 올해 사업 계획과 범민련 30년 평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조천현]

□ 통일뉴스 : 지난 2월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도출없이 끝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한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다가 최근 판문점 남·북·미 정상 상봉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극적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현 정세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해달라.

■ 이규재 의장 : 싱가포르, 하노이 이후 세 번째 북미회동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세계가 놀랐고 저도 깜짝 놀랐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판문점 상봉은 말 그대로 역사적 사변이다.

트럼프는 판문점을 넘어 북녘땅을 밟은 미국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1953년 이후 76년 동안 정전상태에 놓여있던 두 나라가 아닌가. 세계에서 가장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양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적대와 반목을 종식하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것을 선언한 사실상 종전선언을 한 것이라고 본다. 그것도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공약을 한 것이다.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이제 첫 발을 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싱가포르나, 하노이 때도 그랬지만 이번 판문점 상봉 회담을 보면서 세계 헌병을 자처해왔던 횡포무도한 미국을 세기의 핵 담판장에 나와 앉게 한 '전략국의 지위에 오른 핵보유국'인 북의 힘을 다시금 실감했다.

판문점 상봉은 그 자체로 미국의 급격한 패권 추락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는 이미 종식을 고했다고 볼 수 있다.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새로운 국제질서로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영원한 패권국가는 없다'고 하지 않나. 폐문 당한 어느 집안의 일락서산(日落西山)의 운명을 본 것 같다고나 할까? 군사분계선에서 헤어지는 트럼프의 그림자에서 이제 때가 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앞으로 정세는 미국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이번 판문점 상봉 회담으로 북미 사이의 대화국면이 복원되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마련을 위한 생산적인 대화가 재개될 것이다. 곧 북미실무협상이 열린다고 한다. 

이번 대화재개가 6.12북미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새로운 동력이 마련되고, 대북제재 해제와 한반도의 평화체제와 비핵화 실현으로까지 순항하길 고대한다. 나아가 북미사이의 오랜 적대관계가 청산되고 북미수교를 비롯한 새로운 북미관계가 수립되기를 바란다. 결국 두 나라 사이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나.

지난 해 싱가포르에서 미국이 세계 앞에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비핵화를 고수하며 북 만의 일방적인 비핵화를 계속 주장한다면 앞으로도 정세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어렵게 재개된 이번 대화와 협상에서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이 북에 대한 일방적 핵무장 해제 요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6.12북미공동성명에 명기된 합의사항대로 북에 대한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단계별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성실히 합의 이행을 위해 노력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미국이 앞으로 대화에 얼마나 성실히 임하는 지 지켜볼 것이다. 지난 하노이때처럼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고, 깡패 같은 짓을 또 하는지 말이다. 미국의 한반도 지배구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이다. 미국은 이것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 범민련 남측본부는 최근 15기 1차 중앙위원 총회를 개최해 '8월 3자연대 대회 성사 및 전민족적 반미공동투쟁 실현' 등 올해 주요사업을 결정했다. 올해 계획하고 있는 주요 사업을 설명해달라.

■ 우선 8월 조국통일촉진대회를 추진하고 있다. 하반기에도 반미투쟁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통일방안 논의 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준비 중이다.

또 남북교류협력의 전면적 확대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가 시급하다는데 동의하고 범민련 남측본부도 적극 나설 생각이다. 최근 6.15남측위에서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운동을 제안한 바 있는데, 지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민간차원에서 할 수 있는 좋은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여론을 움직여낼 수 있는 다양한 사업과 행동이 많이 나와야 하고 우리도 적극 참여할 생각이다.

그리고 범민련 결성 30돌 기념사업 준비를 본격화해야 한다. 범민련이 현재 범민련 일을 하고 있는 몇 사람만의 조직이 아니듯이 기념사업을 준비하는 과정도 각계각층과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번 15기 총회를 준비하면서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단 성원을 기층의 접촉면을 넓힐 수 있고, 활동력이 있는 연령대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2019년 15기 출범을 계기로 범민련 운동을 새롭게 도약해보자는 것이었다. 목표를 절반정도는 달성한 것 같다. 이후 범민련조직 확대·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인만큼 계속 노력해나가겠다.

미조직 지역을 비롯해 지역 강화를 위해 계속 노력해나갈 생각이다. 동시에 각 부문 대중단체들과의 연대운동을 강화하고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민중들 속에 들어가서 범민련이 대중들 속에 산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나가겠다.

   
▲ 이규재 의장은 지난 2011년 수형생활 중 얻은 백내장, 녹내장으로 사물이 또렷이 보이지 않는 불편한 몸상태이지만 내색하지 않고 지금도 일선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말 열사 추모제 기자회견 연설 모습. [통일뉴스 자료사진]

□ 이번 중앙위원 총회에서 15기 임원을 새로 선출했다. 매우 의미있는 일로 평가하시던데...

■ 이번 총회에서 제가 의장으로 선출되고 범민련 조직 확대강화와 각계각층 연대 연합 사업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노수희, 한도숙, 모성용 동지를 개별 자격 부의장으로 선출했다. 범민련이 앞으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기층 민중들과 함께 통일운동을 해나가겠다는 점은 명확하다. 그리고 판문점시대 통일운동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각계각층과의 연대연합 운동을 더욱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저는 임기와 상관없이 앞으로 범민련 운동을 책임져 나갈 젊고 유능한 일꾼을 찾아 필요한 준비가 된다면 바로 의장직에서 물러나고 차기 집행부를 세울 생각을 하고 있다. 총회를 계속 미룰 수 없는 상황도 있었기 때문에 비록 제가 연임을 하는 결정을 했지만 인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생각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 지역연합에서는 기층과의 접촉 면을 넓히고 활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젊은 연령대의 동지들이 새롭게 의장으로 선출됐다. 이미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사실상 범민련 운동의 세대교체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서울연합에 김동순 동지, 부산연합에 이성우 동지, 광주전남연합에 조대회 동지, 그리고 올해 새로 결성된 경남연합(준), 충북연합(준) 대표로 김재명, 조영주 동지 두 분이 참여하게 됐다. 우선 지역을 중심으로 젊고 훌륭한 분들이 이렇게 범민련 운동을 책임지겠다고 결의를 하고 나서주셔서 고맙게 생각한다.

저를 포함해서 14기 의장단 성원 전체가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결의했고 여러 선배 동지들과 선생님들께서 발벗고 나서 열심히 일꾼들을 만나주셨다. 저도 인선을 책임진 입장에서 민주노총 출신의 전직 위원장들을 거의 다 만나봤다. 전농 역대 의장님과 지역의 책임있는 동지들도 많이 만났고, 빈민운동의 훌륭한 동지들도 여러 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분들 성함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 한 분 한 분 만나면서 통일운동에 전선운동에 나서줄 것을 호소도 하고 범민련 운동에 참여해줄 것을 적극 권유도 하고 설득도 했다.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에게 범민련 운동이 부담스럽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범민련과 함께 통일운동을 하겠다는 분들도 많았고, 앞으로 정세가 좀 더 좋아지고 범민련을 둘러싼 여러 환경과 조건이 변한다면 참 괜찮은 동지들이 앞으로 범민련 운동을 같이 해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우리가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타나겠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앞서 말한 것처럼 노동자, 민중과 함께 그리고 지역과 기층조직을 중심으로 범민련 조직을 확대 강화해나가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특히 의장단 동지들이 자기 지역이나 부문에서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범민련 남측본부의 실질적인 지도부로서 앞으로 제기되는 모든 사업과 투쟁에서 그리고 범민련 운동의 발전과 내실을 다져나가기 위해 많은 일을 해 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8.15에 남북해외 3자연대 대회로서 ‘2019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조국통일촉진대회’(조국통일촉진대회)를 오는 8월 14일부터 15일까지 이틀간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는데, 대회 상과 강조점에 대해 설명해 달라.

■ 현재 정세에서 우리로서는 '조국통일촉진대회'를 가장 중요한 사업이라고 본다. 지난 총회에서 범민련은 올해에도 8.15에 즈음하여 남·북·해외 3자연대 대회로서 '(가칭) 2019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조국통일촉진대회'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범민련이 8.15를 맞아 '조국통일촉진대회'를 다시 추진하는 이유는 먼저 현 정세가 평화번영 자주통일의 새 시대로 나아가느냐, 과거로 회귀하는냐 라고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껏 그래왔듯이 반미투쟁의 결산없이는 남북관계의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올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 또 남북해외 온 겨레가 한 목소리로 자주와 통일, 평화와 번영을 외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 아니겠나.

올해 조국통일촉진대회는 첫째, 민족자주를 중심으로 반미 반제 자주세력이 단합할 수 있는 반미자주대회로, 둘째, 전민족적인 반미공동투쟁을 결의하는 명실상부한 '남북해외 3자연대 대회'로 셋째, 전민족적 통일대회합의 성사를 위한 대중적 여건을 마련하고 민족공동의 반미투쟁전선의 구축을 통해 민족적 역량을 결집시켜내는 대회로 성사시켜나가려고 한다.

그래서 남·북·해외 3자연대 대회로 치러지는 조국통일촉진대회는 남의 반미투쟁전선을 강화하고, ‘민족자주’의 기치를 중심으로 민족공동의 반미투쟁으로 발전확대시켜 나가고 3자연대운동의 정당성과 위력을 확인하게 되는 그런 대회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서 ‘4.27판문점선언의 정신대로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개선을 이루어 내자’는 압도적인 민족적 목소리를 모으고, 동시에 민족문제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을 물리치고, 그 지렛대인 한미동맹과 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전민족적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 이번 인터뷰는 지난 4월 이사한 범민련 남측본부 새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진-조천현]

□ '반미 자주'를 계속 강조하는데 다시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
 
■ 우리가 미군 주둔비도 해주고 치외법권적 대우를 해주고 있는데 나중에 미군이 우리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순순히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투쟁하는 조직이 있어야 하고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민중조직을 결집시키는 것이 굉장히 필요하다. 우리는 조국통일촉진대회를 통해서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각계 민중들을 대회에 참가하도록 해 투쟁하는 조직으로, 투쟁지향적인 조직으로 되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당면해서 정세의 중심, 대중운동의 과녁은 정확히 ’반미자주‘에 맞춰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통일운동진영은 남북선언 이행을 가로막는 미국의 대북제재와 내정간섭을 규탄·반대하는 ’반미‘의 입장을 중심으로 ’한미동맹해체‘, ’미군철수‘, ’평화협정체결‘ 등의 실천과제를 결합해나가는 대중운동을 적극 벌여나가야 한다. 또한 ‘판문점선언에서 천명한 ’민족자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 민족끼리 손을 잡는데 더욱 힘을 모아나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정세에 호응하고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미국은 끝까지 싸워서 몰아내야 하는 강도적 패권세력일 뿐, 기대와 환상을 갖는 것은 금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안에서 문재인 정부의 행보도 열릴 수 있다고 본다. 민족경제의 활로도, 이남 경제의 회생도 미국으로부터 벗어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민족자주통일이란 없는 것과 같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조국통일촉진대회와 함께 6.15공동위가 주최하는 '광복74주년 8.15평화손잡기' 대회는 다양하고 폭넓고 힘있게 성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일은 외세의 간섭이 없어야 하며, 당국이든 민간이든 보수든 진보든 민족자주의 원칙에 서 있을 때라야 민족의 운명과 앞길은 우리민족의 의사와 힘으로 열어 나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6.15공동위는 합법적이며 광범위하게 각계각층을 모아내는데 가장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6.15공동위의 3자연대가 대중화를 이끄는 3자연대라면, 범민련의 3자연대는 투쟁을 이끄는 기치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 8.15를 통해 6.15공동위원회 중심으로 추진되는 '광복 74주년, 8.15평화손잡기'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도 모두 힘을 모아나가야 한다.

□ 2020년 범민련 결성 30돌 기념대회에 즈음한 기념사업 준비도 현안 과제로 제안했는데, 어떤 내용이 있나?

■ 올해 범민련 결성 29돌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내년 범민련 결성 30돌 기념사업 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킬려고 한다. 지나온 3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30년을 준비하는 그런 범민련 운동의 발전전망과 전략을 밝혀야하지 않겠나.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저 몇 사람 모여서 회의 몇 번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니까.

범민련 운동 20년사를 정리한 것은 있는데, 어렵사리 했지만 보완할 일이 많다. 그런데 범민련이 압수수색을 수도 없이 당하고 맨날 구속당하다보니 자료가 안정적으로 모아진 것이 아니어서 분실된 자료도 많이 찾아야 한다. 

범민련의 역사는 곧 조국통일운동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무겁게 책임감을 받들어 범민련 30년 역사를 올바로 평가하고, 그 속에서 성과와 교훈뿐만 아니라 성찰과 반성을 통해 앞으로 통일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명확하게 밝힐 수 있도록 각계와 공동으로 열심히 준비해나갈 생각이다.

8월 대회 이후 구체적으로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우선, 범민련 30년사 발간을 생각하고 있다.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한 길을 걸어온 범민련이 아닌가. 이 과정에 숱한 탄압도 있었고 역경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 30년을 온 몸으로 지켜온 범민련 선생님들이 계신다.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산하에 각계 각층의 여러 인사들과 공동으로 30년사 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에 범민련의 30년 역사, 탄압백서, 통일애국열사백서 등을 포함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범민련 이적단체 철회를 위한 활동을 30년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는 일은 여전히 이적단체라는 굴레에 갇혀 범민련이 본래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따라서 30돌 기념사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적단체 철회를 비롯해 범민련 운동의 실질적인 합법화를 쟁취해서 이처럼 민족사에 중요한 시기에 범민련이 가는 길에 걸림돌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범민련이 할 일이 무척 많다. 아무리 어려워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시대와 민족 앞에 주어진 일을 잘 해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바로 30년 준비사업이 될 것이다.

늘 강조하지만 범민련 결성 30년을 맞이해서 범민련 남북해외 본부의 실질적인 만남을 성사할 수 있도록 준비해나갈 것이다. 남북해외 본부의 만남은 현재 제한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소통과 협의를 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3자연대운동의 실질적인 확대강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범민련 실무협의, 공동의장단 회의, 공동행사, 공동사업, 일상적인 3자연대 운동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갈 생각이다.

앞으로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을 걸어 만남을 불허하는 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합법적으로 만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제가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으로 취임하고 처음으로 지난 2005년 6월 평양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발표 5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하고 나서 북측과의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었던 적이 있다. 마음같아서야 남북해외 3자연대 모임이 서울과 평양을 왕래하면서 열렸으면 좋겠지만 그건 통일 일보직전에서야 가능하지 싶다.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해외에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 통일운동해오신 인사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범민련 해외본부 임민식의장님의 고향방문, 이런 사업은 엄중한 판단이 필요하겠지만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외 30돌 기념사업 관련해서는 아직 논의 중이다. 815 이후에 좀 더 구체화해서 다시 한 번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 이 기회에 범민련 30년 역사에 대한 평가, 향후 방향에 대해 말해 달라.

■ 범민련은 그동안 무수한 탄압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고수하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해왔다.

지금까지의 범민련 운동이 통일운동이었다면 앞으로의 범민련 운동은 범민족통일국가를 수립하는 일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어깨가 무겁다. 

우선, 범민련 강령 1항은 '범민족통일국가 수립'이라고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남쪽의 수많은 통일운동단체들 중에도 유일하고 남북해외를 통털어서도 범민련이 유일하다. 그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범민련 운동의 목표이자 지향이라고도 볼 수 있고 본래 사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범민련이 출범한 이후 범민련 해소 논쟁이 숱하게 있었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목숨 바쳐 범민련을 지켜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문제는 차차 구체화해서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다.

   
▲ 이규재 의장은 시종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을 강조했다. 문재인정부는 판문점선언에 합의한 당사자로서 언행일치 차원에서라도 민족공조에 철저히 서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조천현]

□ 문재인정부의 평화 통일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 처음엔 남북문제, 민족문제를 잘 풀어가겠다고 했지만 쭉 지켜보니 줏대없이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나. 판문점 북미상봉도 미국이 자기들 조건에서 철저하게 자기들 이해관계에 따라 한 일이지 문재인 정부가 중재해서 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주적인 입장에서 미국에 할 소리는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게 결정적인 흠결이다. 결국 자주역량이 확실하게 모아지기 전에는 눈치보기를 계속하면서 엉뚱한 소리를 하겠지.

판문점선언을 실천하는 본질은 '우리 민족끼리'의 힘을 최대화해서 민족적 힘으로 미국의 근본적인 정책전환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미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평화도 민족자주통일도 없다.

문재인정부는 판문점선언의 당사자인 만큼 언행일치의 차원에서라도 남북선언 이행을 위해 적극 나서고 한미공조에 매달리지 말고 민족공조 입장에 철저히 서야 한다. 아무튼 문재인 정부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바로 남북선언 이행을 위해 우리 민족끼리 입장에 철저히 서야한다는 것이다. 민족의 힘을 믿고 민족과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분석]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북한에 ‘책임’ 떠넘기고 완전히 말 바꾼 미국

[기자의 눈] '반인권 범죄'도 국제법 논리로 소멸되는가?
2019.07.15 18:02:45
 

 

 

 

<중앙일보> 칼럼 '전영기의 시시각각'을 읽었다. '대법관들이 잘못 끼운 첫 단추'라는 제목이다. 이 칼럼은 "요즘 상황은 한국의 대법관들이 첫 단추(2012년 강재 징용 배상 판결)를 이상하게 끼우는 바람에 비롯된 측면이 있다"라며 "대법관들의 판단력이 야속하기만 하다"고 70년 역사의 대한민국 최고 사법기관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빈틈없어 보이는 '논리'를 펴느라, 어디에서부터 이 엉터리 글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게끔 돼 있다. 과거 민자당의 명 대변인 박희태의 말을 빌리자면 글 자체가 '총체적 난국(Total Crisis)'이다.  
 
칼럼은 "2012년 5월 24일 당시 김능환 대법관이 주심이었던 대법원 소부의 '일제 강제징용 사건' 파기 환송 판결문과 2018년 10월 30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 전원합의체의 판결문"을 문제삼고 있으면서, 국가가 성립되지 않은 이전의 일에 대해 국제법상으로 한국이 일본에게 '배상'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를 전제하고 있다. "1919년 한국이 건립되었으니 1919~45년까지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그 자체로 불법이다'는 국제법적으로는 전제 불성립의 오류로서 국제사회에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강렬한 주장도 내놓았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전영기 칼럼니스트의 칼럼을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전영기의 시시각각] 대법관들이 잘못 끼운 첫 단추) 
 

▲중앙일보에 실린 '전영기의 시시각각' 네이버 화면 갈무리

강제 징용 판결 맥락 거세하고, '기계적 논리' 들이대 
 
문제의 칼럼은 '일제 강제 징용 판결'의 맥락을 완전히 제거해 논리만 남김으로서 역사를 논리학의 영역으로 편입시키고자 한다. 이번 일제 강제 징용 판결과 논란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됐는지, 그 배경을 전혀 모른채 썼거나, 일부러 모른체 하는 것 같다. 
 
여운택 씨 등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 등 이 사건의 원고는 1923년부터 1929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태어난 한국인들이다. 1934년 1월경 설립된 일본제철이 1943년 9월경에 낸 광고를 보고 훈련공으로 일본의 제철소에 가서 노역에 종사했다. 노동 환경은 끔찍했다. 1일 8시간 3교대 노동에 외출은 한달에 1~2회, 용돈은 한달에 2~3엔을 받았다. 임금 통장은 만져보지도 못했고, 기숙사 사감이 관리했다. 돈을 받을 기약도 없고, 노역은 끔찍했다. 일부 조선인 노동자는 도망치고 싶다고 말했다가 잡혀서 가혹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일본 측은 1944년 2월경부터 훈련공들을 강제로 징용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오사카제철소의 공장은 1945년 3월경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되는데, 이때 피해자들 중 일부는 사망하기도 했다. 살아남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은 함경도 청진공장으로 옮겨왔다. 임금을 달라고 했으나 거부당했다. 
 
피해자들은 원치 않는 강제 징용을 통해 무임금 노역으로 착취당했고, 그 과정에서 임금 지급은커녕, 구타 등 광범위한 인권 침해 범죄를 당했다.  
 
그리고 1997년, 여 씨 등 피해자들은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과 일본국을 상대로 국제법 위반 및 불법행위 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금(위자료), 강제노동기간 동안 지급받지 못한 임금 등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2003년 이를 최종 거부한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이며, 그에 따른 징용 역시 합법적으로 이뤄졌다는 걸 전제로 한 판단이다. 이는 아베 총리가 강제 징용 피해자를 '징용공', 즉 자발적으로 징용에 응한 노동자라 부르는 근거가 된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정유섭 의원이 국회 회의장에서 일본 정부가 사용하는 '징용공'이란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여 씨 등은 한국 재판소에 판단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2005년 한국 법원에서 재판이 시작된다. 그리고 한국 법원은 일본 법원이 '한국에 대한 식민 지배는 합법'이라고 판단한 게 국내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한국의 헌법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불법으로 본다고 했다.  
 
<중앙일보> 칼럼은 여기에 도전한다. 이 판결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라는 게 뉴라이트의 '1948년 건국론'이다. 이 칼럼은 "1919년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선포"했다는 말이 국제법상 국가의 법적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1948년 국가 성립 이전에 발생한 모든 일에 지금의 한국 정부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 세상이 논리로 돌아간다면, 프랑스의 비시정부도 국가이고, 프랑스 망명정부 자유프랑스는 공화국 '국가'의 역사에서 지워야 할 판이다.   
 
나아가 이 칼럼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2018년의 대법원 판결문은 1965년 발효된 한일 청구권 협정 중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2조에 대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 안 된 범주’를 신설해 거기에 강제징용 문제를 포함시켰다. 신규 범주는 한국이 일본한테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따른 법적 배상 청구권’을 당연히 갖고 있다는 전제 위에 설정됐다. 
 
정말로 그런가? 한일 청구권 협정 2조는 다음과 같이 돼 있다.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아무리 뜯어봐도 일본의 반인권적 범죄(위안부 문제나 강제 징용 문제)로 인해 발생한 피해, 마땅히 받아야할 임금을 갈취한 범죄 피해 문제까지도 해결됐다는 이야기는 없다.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 안 된 범주를 신설한 게 아니라, 원래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 안 된 범주가 존재해 왔다. 
 
'반인권 범죄'도 소멸시킬 수 있는 문제인가?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다룬 조선대학교 정구태 법학과 교수, 임어진 법학과 박사 과정의 논문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와 소멸시효'에 따르면 정 교수 등은 "2005년 12월 16일 유엔 총회가 채택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과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의 피해자를 위한 구제조치와 손해배상에 관한 기본 원칙과 지침은 침해의 정도가 심각하고(serious) 체계적이며(systematic) 대규모로(large-scale) 자행되는 ‘중대한 인권침해’로서,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와 전쟁범죄(war crimes)는 국내법상 범죄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기 때문에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언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유엔 기본원칙의 이러한 취지는 강제징용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미지급 임금이나 적법한 징용을 전제로 한 보상금을 청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강제 징용 문제의 핵심은 일본국이 대한민국에 불법 행위를 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전쟁 범죄 등에서 파생된 무수한 반인도적 범죄(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 문제 등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훼손한 범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국가(일본이든, 한국이든)를 상대로 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백번 양보해, 일본 식민 지배가 불법이라는 게 국제법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는 칼럼의 '논리'에 응한다고 하더라도, 일본 국가가 아닌 일본의 기업과 일본 기업 책임자들이 한국의 강제 징용 피해자 개개인의 '청구 권한'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우리 정부나 사법 기관이 일본의 사법 기관의 판결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처럼, 일본 역시 우리 사법 기관의 판결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일본의 고노 외무상도 2018년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구타케 일본 공산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면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고노 외무상도 아는 문제를 왜 한국의 칼럼니스트는 모르고 있을까.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정부에게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 정부에게 일본 정부를 상대하라는 것도 아닌 문제에 무슨 '국제법의 논리'를 들이대는가.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불법이라는 주장이 국제법상으로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칼럼의 주장에서는 정신이 혼미해진다. 개인의 청구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국제법적 진실은 패전국한테 법적 배상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승전국 밖에 없다"고 짚는다. 인간 여운택 씨가 국제법상 패전국가인가?  
 
칼럼은 이처럼 강재징용 배상 판결문의 다양한 맥락을 자르더니 갑자기 뉴라이트의 '1948년 건국' 이론을 들어 '그 이전엔 국가가 아니었다'는 논리로 인권 유린 사실을 덮어버린다. 왼쪽 다리가 아프다는데 오른쪽 다리가 멀쩡하다며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보수의 가치 아니던가. 국제법의 기계적 논리를 들어 한국의 사법 기관의 논리와 명백하게 입증된 피해자의 인권 유린을 뭉개자는 게 보수 언론이 주장할만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천인공노할 범죄까지도 면죄부를 준다는 것은 국가간 협약의 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한국의 대법원이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70년 대법원의 권한을 일개 칼럼니스트가 꾸짖고 나무란다. 마치 철없는 짓을 벌인 어린 아이를 나무라듯. 
 
이런 칼럼이 소위 '보수 언론'에 실린다는 게 부끄럽다. 언론에 의해 '토왜(土倭)'라는 말이 100년도 더 전에 사용된 이래로, 아직까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수도권은 개발 부작용 걱정, 지역은 소멸 걱정

수도권은 개발 부작용 걱정, 지역은 소멸 걱정

이수경 2019. 07. 15
조회수 666 추천수 0
 
수도권 교통혼잡비용만 연 30조, 지역 읍면동 43%가 소멸 위험
 
03807351_P_0.jpg» 수도권의 교통 혼잡 비용은 해마다 가파르게 늘고 있다. 수도권이 개발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동안 지역은 인구감소로 소멸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서울의 교통혼잡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가 심각하다. 2017년 현재 5136만명인 인구가 2028년 5194만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67년에는 1982년 수준인 3929만명에 이를 전망이다.1) 
 
그러나 외국에서 이주하는 인구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출생률에서 사망률을 뺀 인구의 자연감소는 2019년, 올해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인구감소는 이제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일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2018년 드디어 1명 미만인 0.98명으로 떨어지고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나이 들어가면서 중위연령2)은 1976년 20세이던 것이 2014년 40세, 2057년 60세로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마주한 줄어들고 늙어가는 쇠퇴현상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2018년 우리나라는 소멸위험을 주의할 단계(소멸위험 지수 0.91)에 도달했으며, 시군구 기준 소멸위험지역은 32.9%인 89개 지역, 읍면동 기준 소멸위험지역은 43.4%, 1503개 지역에 달한다.3)(그림 1) 
 
균1.jpg
 
균2.jpg
자료 : 이상호, 한국의 지방소멸 2018, 고용동향브리프 2018.07.
그림 1. 읍면동 기준 지방소멸위험 현황
 
그러나 우리나라 인구가 줄어가고 늙어간다고 모든 지역이 같은 속도로 늙어가고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비수도권이 소멸위험을 걱정하는 동안 수도권의 인구는 꾸준히 늘어 2017년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경기가 나빠지고 일자리가 줄수록 인구는 점점 더 수도권으로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수도권만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위험에서 벗어나 있는 셈이다.
 
수도권 밀집이 심화하면서 수도권 밀집으로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갈수록 늘고 있다.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면서 인구와 개발의 양극화, 지역소외와 같은 사회문제도 심각하지만, 인구와 개발 과밀이 불러온 환경문제 또한 심각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04929458_P_0.jpg» 인구 노령화 문제는 지역을 막론하고 심각하지만, 인구 감소와 노령화가 함께 진행되는 지역에서 더욱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한겨레 자료 사진
 
한국교통연구원이 공개한 ‘전국 교통 혼잡 비용 산출과 추이 분석’ 자료를 보면, 2012년 서울의 교통 혼잡 비용은 8조4000억원에 달했고 인천, 수원과 묶어 수도권의 혼잡 비용은 무려 17조4000억원에 이르렀다. 전국 교통 혼잡 비용 30조3000억원과 비교하면 수도권의 교통 혼잡 비용은 전국의 58%에 달한다.4)
 
이렇게 인구와 개발이 밀집한 수도권은 대기오염 개선과 환경 개선을 위해 막대한 과밀 비용을 해마다 큰 폭으로 늘려가며 지불하고 있다.(그림 2) 그런데도 수도권의 환경문제가 개선되고 있다고 느끼는 국민은 거의 없다.
 
균3.jpg
자료 : 통계청, e-나라지표
그림 2. 교통 혼잡 비용 변화 추이
 
2019년부터 수도권에서는 노후 경유차의 운행이 제한된다. 서울에서 먼저 시작된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이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으로 건강이 위협받는 수준이 되자 수도권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서울에 수자원을 공급하기 위해 경기와 충북이 수자원 보호지역으로 지정돼 재산권이 제한 당해도, 전기를 공급하느라 화력발전소가 밀집한 충남의 대기가 오염되어도, 폐기물을 처리하느라 인천이 매립장을 떠안아도, 환경은 어느 지역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나라 공동의 소유라는 논리로 서울은 제 값을 치루지 않았다. 
 
06040018_P_0.jpg» 지난해 11월 서울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자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노후경유차 운행제한 단속상황실에서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그런데도 노후 경유차 오염이 문제가 되자 서울은 우선 서울 경계를 긋고 노후 경유차 오염이 그 선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일에 앞장 섰다. 개발과 사람과 자원을 먼저 챙겨 온 서울이 이제 개발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는 일마저 우선권을 가질 모양이다. 
 
지역의 인구가 감소하고 지역의 경제가 위축되면 지역 관리도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인구가 줄면 지역 세입은 줄어들지만 지역 공무원의 수, 도로나 상하수도 관리에 드는 비용은 인구가 감소한다고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인구가 줄수록 인구 한명이 감당해야할 비용은 늘어난다. 
 
게다가 수도권에 비해 지역의 고령화가 더욱 빨리 진행하면서 복지부담은 늘고 있다. 가뜩이나 부실한 지역재정이 줄고 복지비용은 늘면 행정 운영 부담은 더 커지게 된다. 지자체의 운영경비가 줄면 비용은 늘고 관리는 소홀해지게 된다. 지역의 낙후가 가속되면서 세금은 느는데도 오히려 공공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 
 
1990년대부터 충청도 지하수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어 사회문제가 되었다. 토양이 문제이기 때문에 유일한 해결책은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는 광역상수도를 공급하는 길 뿐이라는 것은 진작부터 알려졌다. 그런데도 충남도가 2020년에 광역상수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수 차례에 걸친 상수도 방사능 오염이 사건화 된 이후였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 광역상수도망을 깔고 보급하기에는 편익을 누리는 인구에 비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면서 행정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면 지역민은 지역을 떠나게 되고 줄어든 인구는 다시 지역을 쇠퇴시키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소멸해 가는 도시에서 환경관리를 기대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훼손된 자연은 방치되고 비어 가는 산업단지 관리에 드는 비용이 턱없이 부족해지면서 오염된 토양도 지하수도 방치된다. 오염된 폐산업단지는 지역주민의 건강을 좀 먹는 골치덩이로 변하고 수거되지 못한 폐기물은 지역을 흉물스럽게 바꾸고 관리되지 못한 숲은 잦은 화재로 망가진다.
 
수도권은 인구가 과밀해져서, 지역은 인구가 빠져나가서 사람도 환경도 값을 치르게 된다. 이렇게 환경정책을 시행하는데 인구와 자원과 개발의 밀도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05789014_P_0.jpg» 2017년 6월 19일 삼척석탄화력발전소건설반대범시민연대 등 강원 삼척지역 주민들이 청와대 인근 서울 신교동 푸르메센터 앞에서 집회를 열어 삼척 적노동에 계획된 포스파워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리나라는 산업과 도시를 집중 개발해서 고도성장을 이뤘다. 그러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에 대처하느라, 늘 인구나 자원뿐 아니라 환경오염도, 과밀해서 생기는 문제에 비용과 정책이 집중됐다. 개발만 아니라 개발로 인한 환경문제조차 늘 수도권이 우선 관심대상이 되는 동안 지역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태로 대도시 기피시설의 도피처가 되었다. 
 
자원과 사람만 몰려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환경도 자원과 사람이 몰리면 문제가 발생하고 그렇게 생긴 문제는 균형을 되찾기 전에는 악순환만 거듭할 뿐이다. 
 
균형발전은 개발의 혜택만 아니라 환경의 혜택을 골고루 누리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문제건 모습은 양극화다.
 
이수경/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장

1) 통계청, 장래인구특별추계(2017~2067)

2) 중위연령이란 전체 인구를 연령 순서로 나열할 때 한 가운데 있게 되는 사람의 연령.

3) 지방소멸위험지수는 젊은 여성인구의 수도권 유출이 지방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마스다 히로야(2014)의 저서 '지방소멸'의 핵심 내용에 착안하여 이상호(2015)에서 처음으로 개발하여 사용했다. 소멸위험지수=20~39세 여성인구수/65세 이상 고령인구수 소멸 위험지구가 1.0미만이면 소멸위험주의단계,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지역이다. 이상호, 한국의 지방소멸 2018, 고용동향브리프 2018.07

4) 조한선 외, 2011, 2012년 전국 교통혼잡비용 추정과 추이 분석, 한국교통연구원, 2014

관련글

이수경 환경과 공해 연구회 운영위원장
전 환경과 공해연구회 회장. 1980년대부터 환경운동을 했으며 에너지 문제와 지역균형발전에 특히 관심이 많다.
이메일 : eprgsoo@gmail.com      
블로그 : https://blog.naver.com/sooepr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인터뷰] 자회사 소속 전환 6개월, 한국잡월드 강사들 “우리는 속았다”

한국잡월드분회 조합원들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 점검해야”

양아라 기자 yar@vop.co.kr
발행 2019-07-15 18:15:22
수정 2019-07-15 19:01:01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상단 구조물 위에서 고공 농성을 하고, 서울 청와대 앞에서 "자회사 전환 반대, 직접고용 쟁취"를 외치며 노숙 농성하는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한국잡월드의 어린이·청소년 직업체험 강사들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잡월드라는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일한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던 홍길동처럼, "한국잡월드 직원입니다", "한국도로공사 직원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1년마다 재계약을 하며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용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같은 처지의 이들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뤄진 사측의 일방적인 자회사 전환에 반대하며,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자회사 전환에 반대했던 170여 명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강사들은 지난해 12월 31일 용역업체와의 계약 만료를 앞두고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 자회사 전환에 동의하지 않고, 직접고용을 요구한 1,500여명의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도 지난 7월 1일자로 용역업체와의 계약이 종료돼 해고 상태에 놓였다.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잡월드는 개관 이후 7년간 필수인력인 강사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해왔다. 그러다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라, 상시 지속 및 생명안전 업무를 수행해 온 한국잡월드 직업체험 강사들은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됐다. 이들은 원청인 한국잡월드 소속의 정규직 전환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사측은 자회사를 세워줄 테니 그 소속 정규직이 되라고 했다. 직업체험 강사들은 자회사 소속 전환은 사실상 용역업체와 다를 바 없다며 이를 거부하며 용역회사 계약만료 시점까지 버텼다.

해고를 앞둔 한국잡월드 강사들은 136일간 회사 앞 천막농성, 43일간 전면파업, 10일간 청와대 앞 단식농성 등을 진행했다. 8개월간 투쟁하던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는 사태의 해결을 위해 교섭한 끝에 지난해 11월 30일 원청인 한국잡월드와 잠정 합의했다. 이들은 대량해고를 막기 위해, 자회사인 '한국잡월드파트너스' 소속으로 전환 채용됐다. 노동자·사용자·정부는 상생발전협의회를 통해 2020년까지 고용 형태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자회사 소속 전환 6개월 이후 이들의 일터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12일 오후 민중의소리는 한국잡월드 강사 4명을 한국잡월드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이진형(46)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장(6년차 어린이 직업체험관 강사), 이주용(27) 한국잡월드분회 부분회장(2년 6개월차 청소년 직업체험관 강사), 정인지(33) 한국잡월드분회 교육선전부장(6년차 청소년 직업체험관 강사), 김자영(28) 한국잡월드분회 조직부장(2년 6개월차 어린이 직업체험관 강사)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자회사를 떠나는 강사들 
원청 눈치 보는 자회사..."용역 때랑 다를 바 없어"

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한국잡월드 인근 카페  한국잡월드분회 집행부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br
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한국잡월드 인근 카페 한국잡월드분회 집행부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이주용자회사 소속 전환 이후 20명이 자진 퇴사했어요. 대부분이 투쟁하셨던 조합원분들이세요.

이진형 퇴사하는 분들은 회사에 대한 신뢰가 없어졌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막상 자회사에 들어와 보니, 임금, 처우, 복지도 나아지는 게 없다는 거예요. 또 자회사로 오면서 소통의 부재도 더 커졌죠.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이야기 할 수 있는 통로가 없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면, '모르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라고 대답만 하고 제대로 된 피드백이 없는 거예요.

이주용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된 지금도 '잡월드의 권한이다', '원청이 결정하는 거다'라는 소리밖에 안 해요. 용역 때랑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잡월드의 직업체험 콘텐츠와 시설 등 소유권은 원청인 한국잡월드에 있다. 그러나 이를 실질적으로 사용하며 체험 수업을 운영하는 강사들은 자회사인 한국잡월드파트너즈(주)에 소속돼 있다. 그래서 업무분리가 안 될 수밖에 없다.

이진형 자회사가 모회사에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인 거죠. 원청으로부터 독립적인 자회사가 돼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주용 자회사는 원청이랑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원청이 자회사에 관여를 안 할 수 없는 구조에요. 한국잡월드는 특히 핵심 목적 사업을 강사들이 수행하는데, 이것을 외주화시키고, 자신들이 관리를 안 하려고 하는 거예요.

'고용안정은 이뤄진 것이 아닌가'에 대한 질문에 이주용 씨는 이렇게 답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적했던 게, '자회사는 없애면 그만'이라는 거예요. 원청에서 계약해지하면 강사 300여 명은 붕 떠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비정규직이랑 다를 게 없는 거죠."

이진형 사실 여기가 꿈을 찾는 곳이라고 하잖아요? 아이들한테 찾아줘야 할 그 꿈을, 우리는 못 찾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아이들한테 '너희들은 희망을 가지고, 비정규직이 되지 말아라'라고 얘기를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대신 '즐겁고 행복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용역 때와 달라진 게 없는 근무환경 
"강사들이 쓸 수 있는 휴게실, 탈의실은 사실상 없다"

2018년 11월 19일은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잡월드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25일째, 전면파업을 한 지 32일째 되는 날이다. 이사장실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 지는 13일째다.
2018년 11월 19일은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잡월드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25일째, 전면파업을 한 지 32일째 되는 날이다. 이사장실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 지는 13일째다.ⓒ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

한국잡월드의 겉모습은 깔끔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강사들의 근무 환경은 열악하다.

김자영 수업 시간 중 5분 휴식 시간은 사실은 아이들을 케어하거나, 부모 응대하는 시간이라 사실상 대기시간이에요. 화장실을 가는 것도, 눈치를 보면서 뛰어 갔다 와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진형 방광염에 걸리시는 분들도 많고, 안에서 오래 서 있다 보니까 다리 부종, 족저근막염이 걸리는 분들도 많아요. 인후염이나 안구질환에 걸리는 분들도 많아요. 거기가 환기가 잘 안 되다보니까. 밀폐된 공간이에요.

인터뷰 중에도 이진형 씨는 자꾸 눈을 비볐다. 이주용 씨는 "동굴에서 빠져나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자영 창문이 없어요. 날씨 확인하려면 화장실 창문에서 봐야 해요. 그것도 열 수 있는 문은 아니고 거기서 비가 오나 안 오나 확인해요. 환기가 잘 안 되니까 안에서 구름같은 먼지가 막 일어나요.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건, 자회사나 용역 때나 똑같아요.

체험실마다 강사들은 입어야 하는 유니폼이 따로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제대로 된 탈의실이 없어, 대부분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고 말했다. 또 강사들이 쉴 수 있는 휴게실도 없다고 한다. 현재 휴게실은 기존 한국잡월드 직원 50여 명이 쓰던, 한 곳이 전부다. 그마저도 1층에 자리하고 있어, 3~4층의 체험관에서 일하는 강사들은 위치나 시간을 감안했을 때 현실적으로 사용이 어렵다.

이진형 어린이 체험관에 일하는 강사의 수는 총 110명이지만, 여성·남성 라커룸은 각각 한 곳 뿐이에요. 사측은 라커룸을 탈의실이라고 하는데, 칸막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들어가서 옷을 갈아 입을 수 있는 곳도 아니에요.

이주용 거의 '대중목욕탕'인 거죠. 라커도 직원 수에 맞게 제공해주는 게 아니고, 저희들이 다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공간 자체도 협소해요.

이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보다 150원 더 받는 수준이다. 또 강사 7년차와 신입사원이 같은 월급을 받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에는 용역업체 이윤, 일반관리비, 부가세 등 절감 재원을 전환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사용하라고 돼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처우를 위해 쓰여진 돈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주용 저희한테 돌아온 게 없다는 게 체감이 되고 있어요. 인력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자만 늘어났어요.

"노동의 가치 인정 안 해"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느낀 '차별'

19일은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잡월드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25일째, 전면파업을 한 지 32일째 되는 날이다. 이사장실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 지는 13일째다.
19일은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잡월드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25일째, 전면파업을 한 지 32일째 되는 날이다. 이사장실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 지는 13일째다.ⓒ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

한국잡월드의 어린이 체험관은 5세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청소년 체험관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체험이 가능하다. 학생, 학부모, 인솔 교사를 포함해 하루에 최대 3천 명이 한국잡월드에 다녀간다고 한다. 이들은 "지난 7년동안 열심히 일한 직업체험 강사들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방문자수가 늘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정인지 강사들이 이 기관의 핵심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한국잡월드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고 있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인정을 안 하는 거예요. 노·사·전협의회 때 아직도 기억나는 말이 있어요. (한국잡월드) 정규직들이 자신들과 우리는 '문화적 갭(차이)'이 있대요. 팀장 중에 한 분은 우리랑 '한 부대에 담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김자영 우리를 아래로 두는 듯한 기분, 계급을 나눈다는 느낌이 너무 많이 들었어요. 자기 일자리가 좋아지려면 모든 차별이 없어져야죠. 그게 좋은 일자리의 시작이잖아요? 남의 일이 되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웠어요.

이진형 저희는 누군가의 자리를 욕심내거나, 뺏는 게 아니에요. 저희가 작년에 요구했던 건,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근무하면서 그냥 복지, 처우, 임금을 개선해달라는 것이었어요."

이주용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 분들도 시험봐서 들어오는 사람들과 똑같은 월급을 받게 해달라고 하는 건 아니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저희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생활임금에 맞춰달라는 거였는데 (사측은) 그것조차도 해주지 않는 거예요.

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한국잡월드 인근 카페  한국잡월드분회 집행부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진형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장(왼쪽부터), 정인지 한국잡월드분회 교육선전부장, 이주용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한국잡월드분회 부분회장, 김자영 한국잡월드분회 조직부장  2019.07.12
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한국잡월드 인근 카페 한국잡월드분회 집행부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진형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장(왼쪽부터), 정인지 한국잡월드분회 교육선전부장, 이주용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한국잡월드분회 부분회장, 김자영 한국잡월드분회 조직부장 2019.07.12ⓒ김철수 기자

한국잡월드로부터 자회사 소속 전환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와, 직접고용을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들은 것이 있냐는 물음에, 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주용 직접고용이 안 된다는 건, 인원이 많다?, 비정규직 강사 338명, 그 인원을 다 받기 어렵다는 이유인 거 같아요.

이들은 정규직 전환 과정을 논의하는 노·사·전 협의회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정규직 전환 방식은 '자회사 소속 전환'으로 맞춰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마치 자회사 소속 전환을 미리 짜놓은 것처럼, 충분한 토론 없이 속전속결로 결정해버렸다고 지적했다.

정인지 총 7군데 용역업체가 있었는데, 계약이 끝나는 시점이 다 달랐어요. 다 각자 일하는 환경이나 처우가 다른 시점에서 7개 회사를 묶어서 다수결로 투표를 진행한 거예요.

계약이 빨리 끝나는 직군 같은 경우에는 빨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분위기가 조성됐어요. 노·사·전협의회 후반에 강사들이 들어갔는데, 실질적으로 전환 규모, 시기, 대상에 관한 결정은 한 달 안에 이뤄졌어요. 저희가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후다닥 진행해버린 거예요.

이진형 사실 노·사·전협의회 들어가면서 느꼈던 것은 너무 편파적이었다는 거예요. 대화를 주고 받고 해야 하는데, 너무 일방적이었고요. 질의를 하면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자회사는 뭐가 좋은 거고, 직접고용은 뭐가 좋은 거냐. 각각의 문제점은 뭐냐고 질의하면, 원청에서 그에 대한 응답을 해주지 않았어요. 그냥 '자회사 좋아요'만 말하더라고요. '직접고용은 뭐가 좋은 거예요?'라고 질문했을 때는 설명이 없었어요.

또 강사 직군이 인원이 많은데, 인원수 비례 대표자가 적었어요. 그래서 상황이 너무 부당해 재논의하자는 투쟁을 시작한 거예요.

같은 공간에 일하고 있었지만, 서로의 얼굴도 몰랐던 강사들은 일방적인 자회사 소속 전환에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주용 그래서 강사들이 5천원 씩 걷어가지고 자회사가 좋은지 직접고용이 좋은 것인지 노무사님에게 자문을 받았어요. 노무사님이 이 회사 같은 경우에는 직접고용이 맞다고 했어요. 다 속았던 거죠. 사실 그동안 노조 만드는 것이 굉장히 두려웠기 때문에 서로 얘기를 못했어요. 그런데 자회사 소속 전환이 통과되고 나서, 그 결정이 너무 부당해서 노조가 만들어졌어요.

정인지 '우리는 핵심업무인데 왜 직접고용이 되지 못하지?' 그게 작년부터 궁금했어요. 그것을 알 수 있는 게 상생발전협의회였는데, 그게 진행이 안 되고 있어요. 그래서 아직도 저희는 직접고용이 되지 못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span class="icon-a>이주용 노사상생협의회는 진행이 안 되고 있어요. 올해 3월까지 노사상생협의회 인원이 구성돼야하는데, 현재 7월까지 인원 구성이 안 된 상태입니다.

한국잡월드분회 조합원들은 "합의 후 약 6개월이 지난 지금, 합의문에 쓰인 그 어떤 사항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국잡월드와 한국잡월드파트너즈에서 노노갈등이라는 포장을 이용해 단체협상과 노사상생협의회를 진행하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사측이) 노조의 정당한 활동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정부, 가이드라인만 던져놓고 끝?"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재점검 기회가 됐으면"

3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에서 '한국도로공사 정규직 전환 민주노총 투쟁본부'노조원들이 한국도로공사 용역업체 소속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직접고용 등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9.06.30.
3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에서 '한국도로공사 정규직 전환 민주노총 투쟁본부'노조원들이 한국도로공사 용역업체 소속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직접고용 등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9.06.30.ⓒ뉴시스

이주용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을) 관리 감독을 하는 기관이 있었다면, 자회사로 이렇게 많이 전환이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같은 경우에는 3월에 나온 국회 환노위 보고서에 보면, 잡월드는 자회사 전환을 철회하고 직접고용하라라고 나올 정도 였어요. 객관적으로 직접고용이 맞는 거였어요. 그런 것들을 다 방치하고, 가이드라인만 던져 놓고 끝인 거예요.

김자영 노동자와 사측이 합의를 할 때, 노동자가 불리할 거라는 걸 정부도 알 거라고 생각해요. 이에 대한 대책이나 방안 없이, 가이드라인 하나 주고 (정규직화라는) 결과를 가져오라는 것은 정부가 소홀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이진형 한 번쯤은 정책 실행에 대해 재점검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런거 없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논스톱으로 진행해 왔죠. 그렇기 때문에 저희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자꾸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거 같아요. 고용노동부는 이미 오래 전에 손을 뗐잖아요? 정부도 노동부도 전방위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국가가 중재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한국잡월드 강사들은 이번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의 투쟁이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의 일처럼 느껴진다"며 기사를 보면 쉽사리 지나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주용 씨는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데 대해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제가 정말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저희는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 거 든요. 지금 그 분들은 해고가 되셨으니까 저희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감히 그런 말 하면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제가 경험해보니까 자회사는 정말 아니라는 게 느껴져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네요."

양아라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 대통령의 경고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 갈 것"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지적... "일본의 과거사-경제 연계,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

19.07.15 16:50l최종 업데이트 19.07.15 17:50l

 

 

문 대통령 '입장'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문 대통령 "입장"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문재인 대통령은 작심한 듯 과거사와 경제문제를 연계시켜 수출 제한조치에 나선 일본 정부를 강하게 질타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15일 오후 2시 30분부터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과거사 문제를 경제문제와 연계시킨 건 양국관계 발전의 역사에 역행하는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이다"라는 경고장도 날렸다.

앞서 지난 10일 오전에 열린 30대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는 일본 정부의 수출 제한조치 사태의 장기화 가능성을 처음 언급하면서 "일본 정부가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깊은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과거사-경제 연계, 양국관계 발전 역사에 역행하는 처사"

 

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과거사 문제는 한일관계에서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다, 때때로 우리를 아프게 찌른다"라며 "그러나 지금까지 양국은 과거사 문제를 별도로 관리하면서 그로 인해 경제, 문화, 외교, 안보 분야의 협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 왔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저 역시 여러 차례 과거사 문제는 과거사 문제대로 지혜를 모아 해결해 나가면서 양국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라며 "(그런데) 일본이 이번에 전례없이 과거사문제를 경제문제와 연계시킨 건 양국관계 발전의 역사에 역행하는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라고 질타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행문제의 원만한 외교적 해결 방안을 일본 정부에 제시했다"라며 "우린 정부는 우리가 제시한 방안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 바 없다, 양국 국민들과 피해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함께 논의해 보자는 거였다"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아무런 외교적 협의나 노력 없이 일방적 조치를 전격적으로 취했다"라며 "일본 정부는 일방적인 압박을 거두고 이제라도 외교적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함께 국제기구 검증 받아 의혹 해소하자"

이어 문 대통령은 "일본은 당초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조치의 이유로 내세웠다가 개인과 기업 간의 민사판결을 통상문제로 연계시키는 데 대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우리에게 전략물자 밀반출과 대북제재 위반의 의혹이 있기 때문인 양 말을 바꿨다"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이는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를 모범적으로 이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고 제재의 틀 안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우리 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라며 "또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지지하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동참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공동노력에 대해 불신을 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질타했다.

한국은 현재 바세나르체제와 핵공급그룹, 미사일기술통제체제, 오스트리아그룹 등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에 가입돼 있다. 이 '4대 체제'에 따라 1735개의 물자가 수출통제 품목에 등록돼 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그런 의혹을 실제로 가지고 있었다면 우방국으로서 한국에 먼저 문제제기를 하거나 국제감시기구에 문제제기를 하면 될 터인데 사전에 아무 말이 없었다가 느닷없는 의혹을 제기했다"라며 "논란의 과정에서 오히려 일본의 수출통제에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 점에 대해서는 양국이 더 이상 소모적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라며 "일본이 의혹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면 이미 우리 정부가 제안한 대로 양국이 함께 국제기구의 검증을 받아 의혹을 해소하고 그 결과에 따르면 될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미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은 지난 12일 "일본 정부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밝히기 위해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 또는 적절한 국제기구에 한일 양국의 수출통제 4대 체제 위반사례에 대한 공정한 조사를 의뢰하자"라고 제안했다.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한다"

또한 문 대통령은 "한국경제와 일본경제는 깊이 맞물려 있다"라며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은 서로 도우며 함께 경제를 발전시켜 왔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제조업분야는 한국이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겪으면서도 국제분업질서 속에서 부품 소재부터 완성품 생산까지 전 과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함께 성장해 왔다"라며 "(그런데) 이번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상호의존과 상호공생으로 반세기간 축적해 온 한일경제협력의 틀을 깨는 거다"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일본정부의 수출제한조치를 엄중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더군다나 일본의 수출제한조치는 자국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한 통상적인 보호무역조치와는 방법도 목적도 다르다"라며 "우리는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가 한국 경제의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제한으로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짚었다.

문 대통령은 "이는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도모하는 시기에 우리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은 것이나 다름없다"라며 "일본 의도가 거기 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대통령은 "우리 기업들이 일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우리는 과거 여러 차례 전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듯이, 이번에도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다"라며 "오히려 일본과의 제조업 분업 체계에 대한 신뢰를 깨뜨려 우리 기업들은 일본의 소재 부품 장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수입처를 다변화하거나 국산화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라고 '전화위복'을 강조했다.

이는 문 대통령과 30대 기업인들이 지난 10일 연 간담회에서 화학분야의 경우 러시아, 독일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부품산업 M&A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라는 '경고장'도 날렸다.

"국회와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당부드린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일을 우리 경제의 전화위복 기회로 삼겠다는 정부 의지는 확고하다"라며 "정부는 외교적 해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할 거지만 한편으론 기업이 이 상황을 자신감 있게 대응해 나갈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지원 아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기왕 추진해 오던 경제체질 개선노력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라며 "우린 어떤 경우에도 이 상황을 극복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국력은 숱한 위기를 극복하며 키워온 것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도전들을 이겨내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에 이르렀다"라며 "숱한 고비와 도전을 이겨온 건 언제나 국민의 힘이었다. 저와 정부는 변함없이 국민의 힘을 믿고 엄중한 상황을 헤쳐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와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도 당부드린다"라며 "지금의 경제상황을 엄중히 본다면 그럴수록 협력을 서둘러 주실 것을 간곡하게 당부한다, 그것이야말로 정부와 우리 기업들이 엄중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당대표 회동을 포함해 대통령과의 어떤 회담이라도 수용하겠다"라고 제안했다. 청와대도 이러한 제안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조만간 문 대통령과 5당 대표의 회동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정은 위원장, 미 대선 최대 쟁점이자 승패 좌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7/16 05:34
  • 수정일
    2019/07/16 05: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기고> 이흥노 워싱턴 시민학교 이사
이흥노  |  roskeyi@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9.07.15  23:52:49
페이스북 트위터

이흥노 / 재미동포, 워싱턴 시민학교 이사

 

미국 대선전의 막이 올랐다. 역대 미 대선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미 대선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 대상이 되고 있다. 동시에 대선 승패도 김 위원장에 의해 결정짓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무턱대고 내린 결론이 아니다. 기존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중심에 김정은 위원장이 서있기 때문에서다.  ‘힘의 균형’이 달성된 이래, 전 세계의 관심과 이목이 온통 김 위원장에게 쏠리고 있어서다. 누구나 그의 얼굴만 쳐다보는 시대가 됐으니 말이다.

돌이켜 보면, ‘핵무력 완성’ 이전에는 김 위원장을 ‘동네북’인 양, 심심하면 이놈 저놈이 두들겨 패고 기분 전환을 하곤 했다. 그런 시대는 가버렸다. 이제는 주변 정세나 세계 평화를 논하려면 김 위원장을 빼놓곤 이야기가 될 수 없는 시대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렇게 급변하는 정세를 거역하지 않고 적극 수용, 합당한 대응책으로 화답한 놀라운 정치가가 바로 트럼프다. 그의 비상한 판단능력과 배짱 있는 용기는 현명했고 정확했다. 트럼프의 친서를 받은 김 위원장 자신도 그의 남다른 ‘판단능력과 용기’를 극찬한 바가 있다. 

트럼프가 G20 참가 중, 민주당 대선 후보들로부터 이틀 연속 몰매를 맞았다.  민주당 후보 토론회(6/27-28)는 대성공이었다. ‘하노이 회담’ 와중에 코헨 변호사의 청문회를 연상케 했다. 잔뜩 매를 맞은 트럼프는 복수의 칼날을 갈았을 것이다. 민주 대선 흥행을 훨씬 능가하는 대사변을 밤새 구상했을 것이다. 그게 바로 ‘트윗 정치’였다. G20가 끝나기도 전에 김 위원장에게 만나서 악수라도 하자고 트윗을 날렸다. 전격 6월30일, 김-트  두 수뇌의 역사적 판문점 3차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트럼프 구상은 적중했다. 민주당 토론회 열기를 완전 압도했을 뿐 아니라 대선운동에 내밀 두둑한 밑천을 마련하게 됐다. 큰 외교업적으로 기록될 기초공사를 쌓았다. 지구촌은 열광 환영 일색이다. 한편, 이 역사적 판문점 회동 자체를 반대하는 세력이 한미일 도처에서 훼방을 논다. 미국 민주당 지도부는 경쟁 내지 질투심보다 트럼프의 비핵화 성과가 민주당에 아주 불리하다는 우려 때문에 북미 대화를 결사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 의원 중에는 북미 대화를 지지하고 종전 촉구에 적극 기여한 의원도 많다. 

트럼프와 최종 대결을 벌릴 확률이 가장 높은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가만히 있는 김 위원장에 돌연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트럼프가 지독한 독재자 김정은과 희희낙락한다”면서 김 위원장과 트럼프를 동시에 걸고 들었다. 즉각 김 위원장은 “늙다리 멍청이”라고 받아쳤고, 트럼프는 오바마-바이든이 북핵을 개판으로 만든 주인공이라고 몰아쳤다. 바이든은 CNN 인터뷰(7/5) 중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합법성’을 부여해줬다”고 비웃었다. 바꿔 말하면, 깜도 못되는 사람의 몸값만 올려놨다는 불평, 불만이다. 

슈머 민주 상원원내대표는 판문점 회동을 “미 외교사에 첫 외교 참사”라며  혹독한 비판을 해댔다. 민주 지도부는 “사진찍는 쇼”만 했다고 비웃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하노이 회담 직전, 여야의원들을 이끌고 방미한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북의 최종 목표가 남침”이라고 악담을 해댔다. ‘싱가포르 선언’에 대해 “얻은 건 없고 주기만 했다”고 하더니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해서는 “협상을 않는 게 나쁜 딜보다 낫다”고 했다. 약 올리는 칭찬이다.

펠로시 의장의 대북악담에 한껏 고무된 사람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다. 동포간담회에 나타난 나 대표는 ‘하노이 회담’을 미국-베트남 ‘파리협정’에 비유했다. 파리회담 이후 베트남이 공산화가 된 걸 비유했다. ‘하노이 회담’ 이후 남한이 공산화 된다는 논리다. 펠로시의 대북악담을 아주 몰상식하게 풀이한 궤변이다. 미 민주당은 북미 비핵 대화 저지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트럼프보다 김 위원장을 직접 타격하는 데에 당의 화력을 집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동네북’이고 제거 대상이라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사고방식이 민주당 두뇌에 철저하게 박혀있어서다. 

트럼프를 정조준하면 역공당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간접 타격을 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 같다. 이미 트럼프는 오바마-바이든 팀이 북핵을 불거지게 만든 장본인이고 가장 책임이 크다고 역공을 퍼부었다. 또, 오바마가 노벨 평화상만 따먹고 줄행랑쳤다고 힐난하기도 했다. 엄격히 따지면, 오바마가 노벨 외상값을 떼먹는 데에 협력한 공범이 바로 바이든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을에  노벨 평화상 수상자 발표가 나온다. 남북미 수뇌들은 이미 공들여 쌓아올린 평화의 기초탑만으로도 수상자들이 되고 남는다. 

다음 주에 시작될 북미 실무회담에서 4차 북미 정상회담 백악관 개최가 합의돼야 한다. 북미의 안보 위협 해소를 1차 목표로 설정하고 핵동결과 동시에 종전선언,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등 제반 상응조치들이 합의돼야 한다. ‘단계적 비핵 원칙’이 적용된 하노이 북미공동선언을 좀 더 확대한 합의가 가장 합리적이다. 백악관에서 북미공동선언에 서명하고 곧바로 김 위원장은 유엔으로 발길을 옮길 것이다. 남북미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을 나란히 연단에 세워야 한다. 

그리고 세 지도자는 유엔 회원 성원들에게 노벨 평화상을 번쩍 들어 자랑할 필요가 있다. 물론 김 위원장은 유엔 연단에 올라 세계 평화를 외치고 세계 비핵화를 호소해야 한다.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일제히 지지 환호를 보낼 것이며 박수갈채가 그칠 줄 모를 것이다. 간단히 말해, 미국 대선은 비핵화에 성과를 내느냐, 북미 대화를 저지하느냐의 판가리 싸움이다. 숱한 문제에 휩싸인 트럼프로서는 비핵화 성과가 유일한 탈출구이고 거기에 사활이 걸려있다. 김 위원장 최후통첩인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나올 게 확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대선 필패다. 

미국 대선 최대 쟁점의 중심에 서있는 김 위원장이 대선 승패를 좌우하는 절대 실력 권력자라는 걸 뛰어난 판단능력의 트럼프가 숙지한지 퍽 오래다. 김 위원장은 지난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미 대선 후보들 중 트럼프를 낙점한 것 같다. 한편, 바이든은 김 위원장이 “늙다리 멍청이”라고 쏴붙인 걸로 봐서  눈 밖에 난 게 거의 확실한 것 같다. 이번 가을 유엔 총회는 김 위원장-트럼프 대통령, 두 지도자를 축하하는 잔치행사가 될 것 같다. 동시에 미국 민주당, 서울의 한국당, 아베 정권에게는 줄초상집이 된다는 예고 행사가 될 수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중도반단 없이 철군으로 전진

[개벽예감 356] 중도반단 없이 철군으로 전진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9/07/15 [08:48]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비핵화는 무핵화가 아니다

2. 핵폐기 논의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

3.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할 때

4. 비대칭적인 조치, 그것을 넘어서

5. 중도반단 없이 철군으로 전진

 

 

1. 비핵화는 무핵화가 아니다

 

미국 국무부는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말하다가, 나중에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말로 바꿨다. 미국 국무부는 마익 팜페오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기 직전인 2018년 7월 2일부터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미국 국무부가 비핵화용어를 변경한 것은 단순한 말바꾸기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비핵화개념을 정의하였음을 말해준다. 조선을 상대로 본격적인 핵협상을 벌이기 직전에 그들은 비핵화개념부터 명료하게 정의해야 하였을 것이다.       

 

미국 국무부가 2018년 7월 2일부터 쓰기 시작한 최종적 비핵화(final denuclearization)라는 신조어는 시발적 비핵화(initial denuclearization)를 전제로 하는 용어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시발적 비핵화가 있어야 최종적 비핵화도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미국 국무부는 시발적 비핵화에서 시작되고 최종적 비핵화로 끝나는 비핵화과정을 상정한 것이다. 그런 식의 비핵화를 단계적 비핵화라고 부른다. 이렇게 놓고 보면, 단계적 비핵화를 실행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미국은 조선과 의견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조미핵협상에서 최대 쟁점은 미국이 제기한 최종적 비핵화다. 최종적 비핵화는 완전한 핵폐기를 뜻하는 말이므로, 미국의 관심은 핵폐기 문제에 쏠려있었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부터 판문점 조미정상회담 전까지 핵협상이 우여곡절을 겪은 원인은 미국이 조선에게 핵폐기 문제를 제기하여 의견충돌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사진 1>

 

▲ <사진 1> 위의 사진은 2019년 2월 윁남 하노이에서 진행된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하는 장면이다. 조미핵협상에서 최대 쟁점은 미국이 제기한 최종적 비핵화다. 최종적 비핵화는 완전한 핵폐기를 뜻하는 말이므로, 미국의 관심은 핵폐기 문제에 쏠려있었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부터 판문점 조미정상회담 전까지 핵협상이 우여곡절을 겪은 원인은 미국이 조선에게 핵폐기 문제를 제기하여 의견충돌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핵폐기 문제를 거론하였지만,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에서는 핵폐기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그래서 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핵협상을 재개하는 길이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핵폐기 문제를 거론하였지만,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에서는 핵폐기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그래서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핵협상을 재개하는 길이 열렸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하기로 하고, 핵폐기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1)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에서 핵폐기 문제를 제기할 때, 조선의 핵폐기만 거론하고 미국의 핵폐기는 거론하지 않았다. 조선을 위협하는 미국의 핵무기를 폐기하겠다는 말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핵위협에 맞서는 조선의 핵무기만 일방적으로 폐기되어야 한다는 몰상식한 주장이 조선에게 털끝만큼이라도 통하리라고 생각했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 미국이 조선에게 일방적인 핵폐기를 요구하는 까닭은, 조선을 위협하는 미국의 핵무기 보유는 합법이고, 미국의 핵위협에 맞서기 위한 조선의 핵무기 보유는 불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을 뒤바꿔놓고 그것을 믿어버리는 미국의 행태는 정신장애 초기증세를 닮았다.    

 

(2)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보고에서 “우리의 핵무력은 믿음직한 전쟁억제력으로,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담보”이며, “통일조국의 륭성번영을 영원히 담보하는 민족공동의 귀중한 재부”라고 인정하였다. 자주권 수호의 담보와 민족공동의 귀중한 재부를 폐기하는 것은 조선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핵협상에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여러 차례 거론한 바 있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거론한 비핵화는 핵폐기라는 뜻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라는 개념을 핵무기가 없는 무핵무기상태(nuclear-weapons-free status)라는 뜻으로 해석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거론한 비핵화는 핵무기가 없는 무핵무기상태가 아니라, 핵위협이 없는 무핵위협상태(nuclear-threats-free status)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개념은 핵무기가 없는 무핵화(無核化)가 아니라 핵위협이 없는 비핵화(非核化)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2. 핵폐기 논의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시한 조선의 핵폐기 범위는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폐기하는 것을 넘어 대량파괴무기(WMD) 전반을 폐기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폐기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사정을 모르는 척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물론이고 그 밖의 대량파괴무기들까지 폐기해주기를 바라고 있으니,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몽상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조선의 핵문제에 대해 말하는 미국의 전문가들 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폐기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데, 참 이상하게도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물론이고 그 밖의 대량파괴무기들까지 폐기할 것으로 생각하는 몽상에 깊이 빠졌다. 미국의 언론매체 <애틀랜틱> 2019년 7월 2일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참모들은 2021년까지 조선의 핵무기를 폐기시킬 것을 “맹세한” 적이 있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오뉴월의 개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핵협상에서 과학적인 현실인식을 떠나 비현실적인 몽상에 몰입하면, 결말은 보나마나 뻔하다. 협상파탄이 아니면 협상패배로 귀결된다. 조미핵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생명이 걸려있는 중대사일 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 전역이 조선의 직접적이고 상시적인 핵위협을 받느냐 마느냐 하는 심각하기 이를 데 없는 국가안보문제를 해결하는 유일무이한 방도이므로 그는 핵협상을 파탄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비현실적인 몽상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의 앞에는 핵협상에서 패할 가능성밖에 남아있지 않은 셈이다. 전략가와 몽상가가 밀고 당기는 협상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조미핵협상이 재개되고, 진전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종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상하는 근거가 거기에 있다. 

 

그러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미국의 핵폐기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나는 2018년 3월 12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개벽은 어떻게 시작되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미국의 핵폐기 범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 바 있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개념은 미국이 동아시아작전지대에 배치한 핵우산을 철거한다는 뜻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은 핵우산을 철거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주한미국군기지들을 모두 폐쇄하고, 주일미국군기지들과 괌의 군사기지에 배치된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 전략잠수함, 전략폭격기, 스텔스전투기를 하와이와 알래스카로 모두 철수, 재배치해야 하는 것이다.” 

 

당시 위의 인용문을 읽어본 독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미국의 핵폐기 범위를 내가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으로 해석한 게 아닌가 하고 의문시하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미국의 핵폐기 범위에 괌까지 포함시킨 나의 해석은 독자들에게 처음 듣는 생소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2018년 12월 20일 <조선중앙통신>에 실린 논평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미국의 핵폐기 범위에 괌까지 포함시킨 나의 해석이 옳았음을 입증해주었다. ‘낡은 길에서 장벽에 부딪치기보다 새 길을 찾는 것이 나을 것이다’라는 제목의 논평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미국은 이제라도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용어의 뜻을 정확히 인식해야 하며 특히 지리공부부터 바로 해야 한다. 조선반도라고 할 때 우리 공화국의 령역과 함께 미국의 핵무기를 비롯한 침략무력이 전개되여 있는 남조선지역을 포괄하고 있으며 조선반도 비핵화라고 할 때 북과 남의 령역 안에서 뿐 아니라 조선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주변으로부터의 모든 핵위협요인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데 대해 똑바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어떤 독자들은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조선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주변”이라는 말이 주일미국군기지들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미국의 핵폐기 범위에 괌까지 포함시킨 나의 해석은 지나친 확대해석이 아닌가 하고 의문시하였을 수 있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인근 오풋 공군기지에 배치된 B-2 스텔스전략폭격기를 촬영한 것이다. 조미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던 2013년 3월 미국은 B-2 스텔스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비밀리에 출동시켜 조선에게 핵위협을 가하였다. 미국은 주일미국군기지들, 괌, 하와이에 배치한 핵전략자산으로 조선을 위협하고, 미국 본토에 배치한 핵전략자산으로도 조선을 위협한다. 그러므로 미국이 조선에게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포함한 대량파괴무기 전반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면, 그에 상응하여 조선도 자기를 겨냥하여 태평양작전구역과 미국 본토에 배치된 미국의 핵전략자산 전반을 폐기할 것을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조미핵협상에서 미국의 핵폐기를 합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핵폐기도 합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현실과 동떨어진 핵폐기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시간낭비다. 조선은 무익한 핵폐기 논쟁을 더 이상 계속하려고 하지 않는다. 조미핵협상에서 핵폐기 논의를 중지하고, 핵동결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하지만 나의 해석은 확대해석이 아니라, 되레 축소해석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미국의 핵폐기 범위에 괌이 포함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 미국 본토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동아일보> 2019년 3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로 근무하면서 조미핵협상에 미국측 실무핵심으로 참가하다가 2018년 12월에 퇴임한 앤드루 김은 2019년 3월 20일 서울에서 진행된 비공개강연에 출연하여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사실을 공개하였다고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의 비핵화’와 미국의 비핵화개념이 대단히 달랐으며, 특히 북한은 괌, 하와이 등 미국 내 전략자산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B-2 폭격기를 비롯해 전력의 불균형을 만들어내는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 있는 (한반도 전개가 가능한) 무기도 없애야 한다고 싱가포르 회담 때부터 주장해왔다.”

 

위에 인용된 앤드루 김의 발언에 따르면,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국의 핵전략자산들과  주일미국군기지들에 전진배치된 미국의 핵전략자산들, 그리고 괌과 하와이에 배치된 핵전략자산들, 그리고 더 나아가 미국 본토에 배치된, 조선을 겨냥한 핵전략자산들까지 폐기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미국의 핵폐기 범위다. 

 

핵전략의 견지에서 보면, 미국은 주일미국군기지들, 괌, 하와이에 배치한 핵전략자산으로 조선을 위협하고, 미국 본토에 배치한 핵전략자산으로도 조선을 위협한다. 그러므로 미국이 조선에게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포함한 대량파괴무기 전반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면, 그에 상응하여 조선도 자기를 겨냥하여 태평양작전구역과 미국 본토에 배치된 미국의 핵전략자산 전반을 폐기할 것을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 조선의 핵폐기를 거론하면, 조선도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미국의 핵폐기를 거론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의 핵폐기를 요구한 것은, 조선의 핵폐기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현실적인 몽상을 깨뜨려주기 위함이었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조미핵협상에서 미국의 핵폐기를 합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핵폐기도 합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현실과 동떨어진 핵폐기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시간낭비다. 조선은 무익한 핵폐기 논쟁을 더 이상 계속하려고 하지 않는다. 조미핵협상에서 핵폐기 논의를 중지하고, 핵동결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3.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할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조선의 핵폐기에 상응하는 미국의 핵폐기를 요구하였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그 요구를 거부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핵폐기 요구를 거부해놓고서도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핵폐기 문제를 놓고 의견이 충돌한 이후 핵협상이 진전되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비핵화의 개념정의를 합의하자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은 비핵화의 개념정의를 합의하기는커녕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꺼내놓는 바람에 결렬되고 말았다.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교착상태가 길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핵협상을 재개하려고 노심초사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밀사와 친서를 보내 협상재개를 간청했다. 그런 성의를 보였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하자, 하는 수 없이 그는 일본 오사까에서 진행된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2019년 6월 29일 이른 아침 느닷없이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판문점 상봉을 긴급히 요청하였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이 조선을 상대로 진행하는 핵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생명이 걸려있는 중대사일 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 전역이 조선의 직접적이고 상시적인 핵위협을 받느냐 마느냐 하는 심각하기 이를 데 없는 국가안보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도이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응답을 받지 못해 궁지에 몰린 그는 저자세로 협상재개를 간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판문점에서 상봉하기 전에, 그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제기했던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고, 조선식 비핵화방안을 논의할 준비가 되어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6월 29일 밤늦게 판문점에서 진행된 비공개실무협상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변화를 확인하고 나서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제의하였다. 그렇게 되어, 이튿날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이런 내막은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철회하고 조선식 비핵화방안을 논의하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요구를 수용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핵폐기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조선식 비핵화방안을 논의하려는 태도변화이다.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무익한 핵폐기 논쟁이 조선식 비핵화방안에 관한 유익한 논의로 대체되고, 그로서 조미핵협상이 교착상태에서 벗어나 재개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사정을 보면, 조미핵협상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구상과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한 조선식 비핵화방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핵협상에서 전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의견충돌만 불러일으키면서 결국 하노이 정상회담을 결렬시킨 최종적 비핵화에 관한 무익한 논의는 더 이상 하지 말고, 시발적 비핵화에 관한 유익한 논의에 집중하는 방안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시발적 비핵화방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바 있지만,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비핵화방안을 거론하여 의견충돌이 일어나는 바람에 시발적 비핵화방안은 제대로 논의하지 못한 채 회담을 끝냈었다.    

 

그런데 2019년 6월 30일 전격적으로 성사된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에서 시발적 비핵화방안을 논의할 협상재개의 돌파구가 열렸고, 앞으로 조미핵협상이 열리면, 그 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서방측 상업위성이 평안북도 녕변에 있는 녕변핵시설단지를 촬영한 위성사진이다. 예로부터 비단과 약산동대로 유명한 녕변에는 구룡강이 흐른다. 위의 사진에 나타난 것처럼, 구룡강은 녕변핵시설 옆으로 흐른다. 앞으로 조미핵협상이 재개되면,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핵동결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핵동결 범위를 놓고 의견차이가 생겼지만, 핵동결 범위는 타협할 수 있는 문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동결 범위를 녕변핵시설에 한정시키지 않았다. 미국이 성의 있는 상응조치를 취하면, 조선도 핵동결 범위를 비공개핵시설로 확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조미핵협상에서 논의될 시발적 비핵화방안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시발적 비핵화는 조선이 핵시설을 폐기하고, 핵무기를 생산, 시험, 사용, 전파하지 않는 것, 그리고 미국이 그에 걸맞는 상응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핵시설을 폐기하고, 핵무기를 생산, 시험, 사용, 전파하지 않는 행동을 한 마디로 줄여서 핵동결(nuclear freeze)이라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명시적으로 언급한 조선의 핵동결대상은 다음과 같다. 

 

(1)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9월 19일에 발표된 평양공동선언에서 “동창리발동기시험장과 로케트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하였”으며,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거론한 핵동결대상은 동창리위성발사시설과 녕변핵시설이다.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요미우리신붕> 2019년 4월 6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시한 조선의 핵동결조치는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동결조치가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 이견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현지에서 <뉴욕타임스>기자 데이빗 쌩어와 단독회견을 진행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오갔다.  

 

트럼프 - “우리는 그 이상의 것(녕변핵시설 영구폐기 이상의 것을 뜻함-옮긴이)을 (상대측에 요구)해야 하였다. 언론매체들이 이야기하지 않고, 서술하지도 않았으나 우리가 발견한 다른 것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상의 것을 (상대측에 요구)해야 하였다.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것, 우리는 그것을 (상대측에 요구)해야 하였다. 

 

쌩어 - “제2우라늄농축시설이 포함되나?”

트럼프 - “그렇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알았다는 것에 대해 그들이 놀랐을 것으로 생각되는 문제들을 제기하였다.”

 

위의 인용문에서 드러난 대로,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면 핵동결이 실현된다고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녕변핵시설 이외에 비공개핵시설까지 폐기해야 핵동결이 실현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핵동결 범위를 놓고 의견차이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핵동결 범위는 타협할 수 있는 문제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동결 범위를 녕변핵시설에 한정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8년 9월 19일에 발표된 평양공동선언에 다음과 같은 조항이 명기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측은 미국이 6.12조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위의 인용문은 조선의 핵동결 범위가 녕변핵시설에 한정되지 않으며, 미국이 취하는 상응조치에 따라 비공개핵시설도 폐기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조선의 핵동결은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라 그 실행범위가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성의 있는 상응조치를 취하면, 조선도 핵동결 범위를 비공개핵시설로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2)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1월 1일에 발표한 신년사에서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하여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왔”다고 언명한 바 있다. 핵동결은 핵폐기가 아니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무기를 폐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앞으로 조선이 핵동결을 실행하게 될 때, 핵무기 생산은 중단하지만, 이미 생산된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고 보관, 유지, 배치하게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4. 비대칭적인 조치, 그것을 넘어서

 

그러면 조선이 핵동결을 실행할 때, 다시 말해서 녕변핵시설을 폐기할 때, 그에 상응하여 미국이 실행해야 할 조치들은 무엇인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9년 7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고, 핵동결을 하겠다고 “동의하는” 경우, 미국은 그에 걸맞는 상응조치로 “사실상의 종전선언인 평화선언”을 발표하는 방안,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상호설치하는 방안, 그리고 조선의 석탄수출 및 섬유수출에 대한 제재를 12~18개월 동안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녕변핵시설 폐기는 핵시설단지에 있는 모든 건물이 폐쇄되고, 모든 작업이 중단되는 것을 뜻하고, 핵동결은 핵분렬물질과 핵탄두를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하였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사진은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조미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직전, 회담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하는 장면이다. 얼마 전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고 핵동결조치를 실행하겠다고 동의하는 경우, 미국은 그에 걸맞는 상응조치로 사실상의 종전선언인 평화선언을 발표하는 방안,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상호설치하는 방안, 그리고 조선의 석탄수출 및 섬유수출에 대한 제재를 12~18개월 동안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핵동결에 맞춰 제시하려는 상응조치는 비대칭적이다. 그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조치를 조선에게 제시하면서, 미국은 되돌릴 수 있는 가역적 상응조치를 취하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비대칭적 조치를 제시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줄 것 같지 않다.     

 

위의 보도기사를 읽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하게 될 상응조치가 비대칭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핵분렬물질을 생산하는 조선의 핵시설이 폐기되면, 핵분렬물질을 생산하는 미국의 핵시설도 폐기되어야 대칭적인 조치로 된다. 그러나 미국이 핵분렬물질을 생산하는 자국의 핵시설을 폐기할 수 없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핵분렬물질생산과 무관한 평화선언 발표, 연락사무소 설치, 대조선제재 유예를 조선의 핵동결조치에 걸맞는 상응조치로 제시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그런 비대칭적 조치가 불가역성과 가역성의 불일치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이다.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영구적인 폐기이지만, 미국은 평화선언을 이행하지 않고 정전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고, 연락사무소도 폐쇄하여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있고, 대조선제재 유예조치도 되돌릴 수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트럼프 대통령은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조치를 조선에게 제시하면서, 미국은 되돌릴 수 있는 가역적 상응조치를 취하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비대칭적 조치를 제시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줄 것 같지 않다. 앞으로 조미핵협상이 재개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선언을 발표한 뒤에 되돌릴 수 없는 평화협정체결, 그리고 연락사무소를 설치한 뒤에 되돌릴 수 없는 국교수립, 그리고 대조선제재 유예 이후 되돌릴 수 없는 완전해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할 것으로 예견된다. 

 

 

5. 중도반단 없이 철군으로 전진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면, 핵분렬물질생산이 완전히 중지될 것이고, 핵분렬물질이 없으면 핵무기를 만들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조선이 핵동결을 실행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문제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녕변핵시설 폐기를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조치로 인정하였다. 그는 2019년 3월 4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를 주재하면서 “영변핵시설이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진행과정에 있어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 조미정상회담 직전인 2019년 6월 26일에도 6개 외국통신사들과 서면으로 진행한 질의응답에서 “플루토늄재처리 및 우라늄농축시설을 포함한 영변핵시설 전부가 검증 하에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위와 같이 설명한 날로부터 나흘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의 핵동결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단계의 핵협상을 시작할 것이라는 기사를 실어 파문을 일으켰다.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에서 상봉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 몇 주 전에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핵협상을 새로운 방향에서 시작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는데, 논의의 초점은 미국이 “현실을 본질적으로 인정하고, 조선을 암암리에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이는 핵동결”에 맞춰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조선의 핵폐기가 자기들의 협상목표라고 주장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협상목표를 핵폐기가 아닌 핵동결로 낮추는 문제가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설명이다.  

 

미국의 언론매체 <액시오스>도 <뉴욕타임스>의 그런 설명에 맞장구를 쳤다. <액시오스> 2019년 7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스티브 비건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가 판문점 조미정상회담이 끝난 6월 30일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수행기자들과 비보도를 요청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설명했다고 한다. 비건의 설명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조선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대량파괴무기프로그램의 동결(What we are looking for is a complete freeze of WMD programs)”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건은 조선이 핵동결을 실행하는 경우, 미국은 조선에게 인도주의적 지원과 외교관계개선을 상응조치로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하였다.  

 

위에 서술된 최근 보도를 읽어보면, 앞으로 진행될 조미핵협상에서 조선의 녕변핵시설 폐기와 그에 걸맞는 미국의 상응조치가 합의될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설명한 것처럼, 녕변핵시설 폐기가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면, 미국의 상응조치도 평화선언발표에서 멈춰버리고 평화협정체결까지 나아가지 않는 것으로 되며, 조미관계정상화도 연락사무소 설치에서 멈춰버리고 국교수립까지 나아가지 않는 것으로 되고, 대조선제재도 유예에서 멈춰버리고 완전해제까지 나아가지 않는 것으로 된다. 

 

그러나 그런 중도반단은 있을 수 없다. 2018년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에서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를 표명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추가적인 핵동결조치를 계속 취해나간다면, 조미핵협상은 녕변핵시설 폐기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국군을 철거할 때까지 추가적인 핵동결조치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국군철거를 조미핵협상의 목표로 설정하였으므로, 그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조미핵협상과 추가적인 핵동결조치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진행한 핵협상에서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국군철거를 명시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조미핵협상이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국군철거를 의제로 제기할 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앞으로 조미핵협상이 진전되고,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국군철거를 의제로 제기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 두 가지 의제를 정식으로 제기하고 최종적인 핵담판을 벌일 것이다. <사진 5>

 

▲ <사진 5>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진행한 핵협상에서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국군철거를 명시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조미핵협상이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국군철거를 의제로 제기할 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앞으로 조미핵협상이 진전되고,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국군철거를 의제로 제기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 두 가지 의제를 정식으로 제기한 최종적인 핵담판을 벌일 것이다.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목적,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핵담판을 진행하는 목적은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국군철거다. 평화협정체결은 한반도와 주변에서 미국의 전쟁도발위험을 제거하는 것이고, 주한미국군철거는 한국이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전민족적인 자주성을 완성하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협상목표를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국군철거라고 보는 나의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논거는 <도꾜신붕> 2019년 7월 11일 보도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2017년 9월 3일 조선이 소형화된 열핵탄두를 기폭시키는 시험을 진행한 직후인 9월 22일경 황해북도 사리원의 어느 한 공장에서 정세강연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가 현장에 파견한 강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공장종업원 수 백 명 앞에서 강연하였는데, <도꾜신붕>은 강연회 참석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기록한 강연내용을 뒤늦게 입수해 보도했다. 조선에서 정세강연은 아무나 할 수 없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가 파견한 간부가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에서 정세강연은 강사의 개인견해를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당중앙위원회의 뜻을 인민대중에게 전하는 자리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강사는 “핵무력이 완성되면 (조선은) 미국과 담판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은) 남조선 주둔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강연했다고 한다. 강사가 예고한 대로, 조선은 2017년 11월 29일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 성공으로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첫 번째 핵담판(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목적,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핵담판을 진행하는 목적은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국군철거다.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국군철거라는 말을 기피하는 사람들은 ‘체제안전보장’이라는 부정확한 대체용어를 쓰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명백하게도, 평화협정체결은 한반도와 주변에서 미국의 전쟁도발위험을 제거하는 것이고, 주한미국군철거는 한국이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전민족적인 자주성을 완성하는 것이다.  

 

조미핵협상에서 승리하는 것은 조선에게 주어진 역사적 임무이고,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주한미국군이 떠난 한반도에 부강한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8천만 겨레에게 주어질 역사적 임무다. 조선이 핵협상에서 승리하면, 8천만 겨레는 통일강국건설을 향해 일약 총매진할 것이다. 1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억압과 수탈, 굴욕과 멸시를 강요해온 제국주의일본과 제국주의미국에 맞서 싸우는 우리 민족은 머지않아 최후 승리를 쟁취하고 통일강국을 건설할 것이다. 눈부시게 빛나도록...

 

 
광고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영혼 팔아' 정교사 꿈 이룬 후배 교사

이 글은 교사들 사이의 불문율을 깬 뒷담화다

19.07.15 07:44l최종 업데이트 19.07.15 07:44l

 

 폭염이 이어진 17일 오후 단축수업을 한 대구시 수성구 한 중학교 교실이 텅 비어있다.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를 기준으로 대구에서 모두 63개 학교(초교 5, 중학교 57, 고교 1)가 단축수업을 했다.
▲  그는 "평범한" 교사로서,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으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생활인"이 됐다.(사진 속 교실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교사들 사이에선 불문율이 하나 있다. 같은 혈육이라면 모를까, 동료 교사의 교육 방식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의 교육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학교 내에서 일종의 금기다.

개인적으로, 교사들 사이의 이러한 '침묵의 카르텔'이야말로 학교 현장의 변화가 더딘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교원평가 항목 중 동료 교사 상호 평가가 형식적인 것도 그래서다. 만약 상대평가 방식을 적용한다면, 그저 교사들 간 친소 관계를 묻는 평가로 전락할 게 틀림없다.

이 글은 불문율을 깬 '뒷담화'다. 욕먹을 각오로 '변절한' 후배 교사 이야기를 할 참이다. 물론, 그의 이름과 그가 근무하는 학교를 밝힐 수는 없다. 다 그렇다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교사로서 그와 같은 노정을 밟아온 이들이 적지 않을 거라고 본다.

'교육이 변해야 나라가 산다' 좌우명 삼은 열혈 청년

 

그는 또래들 중 누구보다 치열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교육이 변해야 나라가 산다'는 걸 좌우명 삼아, 대학가에 집회 문화가 시들해져가는 세태 속에도 교육 관련 집회라면 부러 찾아다닐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당시 그는 이를 예비 교사로서의 숙명이자 소명이라고 표현했다.

사범대생으로서 교사가 되기 위한 임용시험 준비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학과 내에 정기적으로 만나 시험 정보를 공유하는 소모임을 주도적으로 꾸렸고, 분초를 쪼개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변함없이 도종환의 시에 곡을 붙인 '어릴 적 내 꿈은'이었다.

참고로, '어릴 적 내 꿈은'은 교사가 되면 늘 약자의 편에 서서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보듬으며, 험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들에게 기꺼이 징검다리와 지팡이가 되겠다는 내용이다. 교사를 꿈꾼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슴에 품었을 다짐이다. 그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무슨 주문처럼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의 교문 밖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4년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건만, 사회는 그를 환대해주지 않았다. 임용시험에 번번이 낙방했고, 예비 교사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감은 시나브로 사위어갔다. 수년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며 열정만으로 교사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인사권자 심기 건드리면 안 된다는 처절한 깨달음

노량진에서의 생활이 길어지자 그는 당장 경제적으로 쪼들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열정과 소신은 경제적 궁핍을 당해내기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는 고향의 한 사립학교에서 기간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임용시험 준비와 병행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1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계약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낸 그 시간은 교사가 천직임을 새삼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가까워질수록 임용시험 준비에는 그만큼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 수업을 준비하는 것과 임용시험은 정확히 반비례 관계였다.

아이들과 만나는 게 마냥 즐거웠고 수업에 모든 열정을 쏟았다. 동료 교사들과의 술자리도 아까워할 만큼 열심히 가르쳤고, 아이들로부터 자상하고 실력 있는 선생님이라는 인정도 받았다. 아이들에겐 최고의 선생님이었지만, 그럴수록 임용시험은 기억 속에서 멀어져만 갔다.

매사 열정적인 그를 아이들은 물론, 여러 동료 교사들도 대견스러워하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다만, 생사여탈권을 쥔 관리자들은 초임교사인 그의 '올곧은' 교직생활을 탐탁찮게 여겼다. 교무회의 때마다 입바른 소리를 서슴지 않았던 그는 어느새 그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결국 그의 교직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2년 만에 그는 '잘렸다'. 재계약을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인사권자의 마음에 들도록 눈치껏 처세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순진한' 그는 적어도 그때까진 알지 못했다. 재계약 해지 통보에 그는 황망해했다. 수업을 잘하고, 업무에 능숙하며, 아이들에게 인정받으면 정교사로 발령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내심 품었다고 했다. 자신처럼 한두 해 기간제 교사를 하다가 정교사로 임용된 이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서다.

그의 재임용 탈락은 함께 근무했던 다른 기간제 교사는 물론, 정교사들에게도 인사권자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강력한 신호로 작용했다. 임용시험을 거쳐 공립학교로 갈 게 아니라면, 그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교사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교사를 꿈꾸는 이들에겐 희망 고문의 시작이었고, 언감생심 개인적인 소신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정든 학교를 나오며 그는 지난 2년의 삶을 후회했다. 일단 어떻게든 생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절감한 것이다. 정교사가 되어 신분이 안정된 후라야 교육자로서의 소신과 철학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몸을 철저히 움츠리기로 했다.

운 좋게도 그는 곧장 새로운 기간제 교사 자리를 얻었다. 이번에도 지방의 사립학교였고, 첫 출근부터 동료 교사들로부터 희망 고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짧게는 2년, 길게는 6년 정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면 기회가 있을 거라는 격려였다.

내키진 않았지만, 동료 교사들이 조언해준 대로 인사권자는 물론 힘깨나 쓰는 중견 교사들과 그들 가족의 경조사까지 꼼꼼히 챙겼다. 아이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다만, 수시로 '위'를 쳐다봐야하는 처지에서, 정작 수업 준비와 생활지도에 '올인'할 여유가 없었다.

또다른 족쇄가 된 정교사라는 '벼슬'

그는 2년 만에 꿈에 그리던 정교사가 됐다. 비록 '간이고 쓸개고 다 빼야했던' 인고의 시간이었지만, 최소 수천 만 원의 뇌물 없이는 교사로 발령받기 어렵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위안 삼았다. 마음의 짐으로 남은 게 있다면, 인사권자를 향한 헌신은 원래 아이들에게 가야 할 것이었다는 점이다.

가슴 속 깊이 감춰두었던 꿈을 펼칠 기회가 왔는데도, 움츠렸던 몸이 쉬이 펴지지 않았다. 정교사가 됐으니 이른바 '문턱세'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인사권자에게 감사의 표시도 하고, 선배 동료 교사들 앞에서 '신고식'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했지만,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정교사라는 '벼슬'은 기간제 교사 때와는 다른 의미의 족쇄가 됐다. 비록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누구 덕에 됐느냐'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인사권자는 물론,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들려왔다.

정교사가 됐지만, 기간제 교사 때와는 또 다른 처세가 요구됐다. 조직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서, 대한민국 교육 현실의 모순은 지적하긴 쉬워도, 학교 내의 비일비재한 비리는 알고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기간제 교사는 계약 해지의 위험 때문에, 정교사는 조직의 배신자라는 낙인이 두려워 침묵을 강요당한 셈이다.

'40대에도 혁명을 꿈꾸는 자는 바보'라는 한때 열혈청년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그는 어느새 교직 경력이 두 자릿수인 중견 교사가 되었다. 기간제 교사 시절 그가 보여준 기백과 패기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제 그의 입에서는 '나 혼자 떠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다.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도 흥겨운 요즘 노래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평범한' 교사로서,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으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생활인'이 됐다. 학교에서 동료 교사들로부터 나름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으며,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 살아가고 있다. 사범대생 시절 지치고 힘들 때마다 불렀다는 '어릴 적 내 꿈은'의 노랫말을 과연 그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까.

며칠 전 함께한 술자리에서 그는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20대에 혁명을 꿈꾸지 않은 자는 바보고, 40대에도 혁명을 꿈꾸는 자 또한 바보다.' 모르긴 해도, 대학 시절 그였다면 가장 혐오했을 금언인데, 마치 자신의 소신인 양 말하는 게 무척 낯설고 서글펐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더 이상 대학 시절의 이상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주식과 부동산 시세에 쏠려 있었고, 큰아이를 자사고에 보내야하는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명색이 부모가 교사인데,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는 게 자존심이 용납되지 않는다고 대꾸했더니, 되레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라며 눈을 흘기기도 했다.

얼마 전 그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시험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가르치는 과목도 아니고 학년도 달라,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했다. 물론, 그가 사건에 연루됐을 리는 없다. 하지만, 학교 내에서 버젓이 일어난 범죄 행위를 과연 그는 몰랐을까. 그의 무뎌진 정의감이 '침묵의 카르텔'을 방조한 건 아니었을까.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요즘, 누구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고 외쳤다지만, 천신만고 끝에 취직한 곳이 불의가 판치는 소굴이라면? 그와 술자리에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다. 술잔을 함께 기울일 수는 있어도, 같은 교사로서 나눌 수 있는 고민거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캐치올’ 규제 한국이 더 센데…추가 보복 명분삼는 일본

등록 :2019-07-15 05:00수정 :2019-07-15 07:25

 

화이트국가 배제 이유 꺼냈지만 
한국 수출통제가 일본보다 강력 
일 재래무기 관련 보고 의무 없어 

일, WTO 위반 논란 피하려 
“꼬투리 잡기 하고 있다” 지적
일본이 무기 제작·개발에 쓰일 수 있는 물품에 대한 수출 규제를 완화하거나 일부를 면제해주는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절차를 진행 중인 가운데,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배제 근거로 내세우는 한국의 ‘캐치올’ 제도가 일본보다 강력하게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캐치올(catch-all)이란 무기 제작 등에 쓰일 수 있는 모든 품목(all)을 누가 어디에 쓸 것인지 확인해 통제(catch)하려는 제도다. 한국 수출기업은 수출 품목의 최종 용도와 사용자를 파악해 정부에 보고해야 하지만, 일본 기업은 재래식 무기 관련 수출 때는 보고 의무가 없는 등 더 취약하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정당화하고 세계무역기구(WTO) 규범 위반을 피해 가기 위해 ‘꼬투리 잡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한겨레>가 한국의 대외무역법과 전략물자수출입고시, 일본의 외환 및 외국무역법과 수출무역관리령을 비교해보니 일본의 캐치올 제도가 한국보다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본은 지난 12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실무급 협의에서 한국이 재래식 무기에 캐치올을 운용하지 않고 있다며 화이트리스트 배제 필요성을 주장했다.

 

관련 법령을 보면, 일본 기업은 바세나르협정 등 4대 체제와 핵확산금지조약 등 3대 조약에 가입하고 캐치올을 운용 중인 27개국(화이트리스트)에 수출할 때는 규제가 전혀 없다. 화이트리스트 이외 국가의 경우 대량파괴무기(핵무기·생화학무기)나 미사일 관련 물품 수출 때는 최종 용도·사용자 보고 의무가 생기지만, ‘재래식 무기’ 관련 물품 수출 때는 이런 의무조차 없다.


반면 한국은 바세나르협정 등 4대 체제에 모두 가입한 29개국(‘가’ 지역. 화이트리스트와 유사)에 수출할 때는 ‘무기 전용을 인지한 경우’ 보고 의무가 생긴다. ‘가’ 지역이 아닌 국가로 수출할 때는 무기 제작에 쓰일 가능성을 인지한 경우, 구매자가 용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 납기일이 통상의 기간을 벗어나는 경우, 가격·지급조건이 통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 수입국과 기술 격차가 큰 경우 등 13개 상황 중 하나만 해당해도 최종 용도와 사용자를 보고해야 한다.

 

이런 두 나라의 통제 제도는 ‘인지(know) 통제’라고 불린다. 두 나라의 캐치올 제도는 ‘통지(inform) 통제’와 인지 통제로 구성돼 있는데, 인지 통제는 일본이 훨씬 더 취약한 것이다. 통지 통제는 정부가 무기 전용 가능성을 인지하고 기업에 통지해 이뤄지는 통제 절차로 두 나라가 유사하다.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은 “일본 쪽 주장과 달리 한국의 캐치올 통제는 대량파괴무기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에 대해서도 작동하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일본보다 더 철저하게 운용되고 있다고 (일본 쪽에) 설명했다”며 “일본 쪽에 추가 논의를 위한 국장급 협의를 제안했으나 명시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캐치올(catch-all)이란

 

무기 제작 등에 쓰일 수 있는 모든 품목(all)을 누가 어디에 쓸 것인지 확인해 통제(catch)하려는 제도 다. 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바세나르협정 등 다자간 전략물자 통제 체제 4곳이 정한 수출통제 품목 1735개(리스트 규제) 이외 물자에 적용되는 보완적 성격의 수출통제다. 품목이 아니라 누가 어디에 쓸 것인지를 보고 통제 여부를 정해 ‘상황 허가’라고도 한다. 과거 공산권에 대한 통제체제 코콤(CoCom) 해체 뒤 1996년 발족한 바세나르체제는 초기엔 군수 물자만 통제 대상으로 명시했다. 그러다 민간용 수출도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며 규제 범위가 넓어진 끝에 캐치올이 생겨났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1994년, 2000년 도입했고 ‘9·11 테러’ 직후 일본(2002년)·한국(2003년) 등이 도입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marketing/901790.html?_fr=mt1#csidx6bc73072aba2ea6a7cebf1a49fab8f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 자리는 전쟁을 몰아내고 자주와 평화를 만들기 위한 싸움에 나서는 첫 자리다”

주한미군철거! 세균부대철거! 민주노총 결의대회 열려, 앞서 전국 각계각층 기자회견 개최
  • 한경준 담쟁이기자
  • 승인 2019.07.14 13:15
  • 댓글 0

7월 13일, 노동자들이 부산 8부두에 모였다.
부산 감만동에 위치한 8부두에는 주한미군의 세균무기 실험실이 들어서 있다. 2015년 미군은 민간업체인 페덱스를 통해 오산에 있는 미군기지에 살아있는 탄저균을 배송했다. 이로 인해 세균무기 실험을 포함하는 주한미군의 주피터 프로젝트가 알려지게 됐다.

탄저균은 호흡기로 감염 시 치사율이 95%에 이르는 탄저병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병원체다. 2001년 당시에는 미국 내에서 탄저균 우편물 테러로 인해 미국 전역이 공포에 떨었다. 이와 관련해 올해 3월, 주한미군이 주피터 프로젝트에 예산을 투입해 계속 진행해온 것이 드러났다. 특히 8부두에는 350만 달러로 전체 주피터 프로젝트 예산의 34.5%로 규모가 가장 크다.

게다가 살아있는 매개체 실험이 포함돼 있어 지난 시기 주한미군의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에 8부두가 위치한 부산 남구에 대책위가 꾸려져 주한미군 출근저지, 매일 저녁 주민 촛불 등을 이어오고 있다. 여기에 오늘은 민주노총이 주한미군철거와 세균부대철거를 위한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 발언하는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

민주노총과 부산시민 등 1000명 가까이 모인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미국군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볼모로 세균무기 실험을 해도 아무런 말도 못하는 것이 한미동맹의 민낯”이라며 “분단과 착취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주 평화통일의 새로운 나라로, 민중이 주인 되는 새 시대를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힘차게 투쟁으로 열어나가자”고 말했다.

이어 철도노동조합 부산본부 강성규 본부장과 대연우암공동체 손이헌 대표는 현재까지 이어진 세균무기 실험실 철거 투쟁 경과와 앞으로의 다짐을 밝혔다. 이어서 사드철회 성주주민대책위 송대근 공동위원장이 몇 년 째 이어진 사드 투쟁에 대한 연대의 부탁과 함께 성주 주민들로 구성된 민들레 합창단의 공연이 이어졌다.

한국진보연대 문경식 상임대표는 연대발언으로 “노동자들이 자기들의 문제만으로도 싸움이 많은데 세균무기 실험실 철거 투쟁에 많이 모이셨다”며 “연대와 단결로 노동자들이 주인되는 세상, 세균무기 실험실과 사드를 철거하는 자주와 평화, 통일의 새 시대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 발언하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재하 본부장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재하 본부장은 “세균무기 실험실이 있는 8부두는 전쟁물자를 운송하는 곳이고 근처에는 핵항공모함이 들어오는 백운포 기지가 있다”며 “(이 자리는)민주노총이 전쟁을 몰아내고 자주와 평화를 만들기 위한 싸움에 나서는 첫 자리”라고 결의대회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후 집회에 참가자들은 부산 8부두 미군기지 정문까지 행진을 하고, 철거계고장을 전달하는 싸움을 이어갔다.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부산항 8부두 세균무기실험실 추방을 요구하는 전국 각계각층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기자회견은 전국의 70여개가 넘는 단체가 연명하여 진행됐다. 기자회견에서는 ‘주권을 유린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세균무기실험실을 철거할 것’, ‘동맹에 얽매이지 말고 주권국가답게 정부가 문제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한경준 담쟁이기자  minplusnews@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굴뚝과 함께 우리 곁을 떠난 새, 굴뚝새

<기고> 이시우의 ‘유엔사의 유신쿠데타’(2)
이시우  |  siwoophoto@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9.07.14  23:23:45
페이스북 트위터

이시우 / 사진가

                              

       목      차

1. 유엔사 유신의 과정

2. 유엔사 유신의 목적
  1) 위기관리권으로 전작권환수 뒤집기
  2) 전시 다국적 사령부 만들기
  3) 일본 평화헌법 흔들기
  4) 중국압박하기
  5) 평화협정 차단하기
  6) 북한점령권

3. 유엔사 유신, 실패의 길
  1) 유엔 없는 유엔사
  2) 미국 책임

4. 나는 주장한다

 

유엔사는 2019년 4월 18일, 2014년부터 시작된 유엔사의 ‘revitalization’이 2018년 완료되었다고 공표했다. 유엔사는 ‘revitalization’을 ‘재활성화’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이글에 인용된 숀 크리머 대령의 논문에서는 한국군이 이 단어를 ‘유신’으로 이해하는 경향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우려가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고 보기에 나는 낡은 잔재를 새로운 것처럼 분식했다는 점에서 ‘유신’이란 번역에 동의한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그렇고 그를 계승한 박정희의 유신이 현재 유엔사의 행태와 가장 유사하기 때문이다. 유신이 원래의 의미와 달리  역사적 반동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점에서 유신쿠데타로 비유했다.

이 글은 1장 유엔사 유신의 과정, 2장 유엔사 유신의 목적, 3장 유엔사 유신 실패의 길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유엔사 유신의 과정’은 최근 자료를 통해 사실 확인에 집중했다. ‘2장 유엔사 유신의 목적’에서는 유엔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미국이 목적하는 바를 추론한다. ‘3장 실패의 길’에서는 유엔사 유신반동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국제법적 근거를 제시한다. ‘4장 나는 주장한다’에서는 유엔사 해체의 단계적 현실적 방법에 대해 제시한다.

 

2장. 유엔사 유신의 목적

1) 위기관리권으로 전작권 환수 뒤집기

전작권 논란에서 위기관리권은 사실 시작이자 끝이다. 연합사는 형식적으로는 한미 간에 평등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기조치에서부터 전시로 가는 과정을 지배하는 측이 전시작전권을 지배한다. 위기시관할권은 군사+정치결정구조를 갖는다.(주30) 백악관에서 정치인과 군인들이 함께 결정한다. 그러나 정치와 군사 중 당연히 정치가 우위이다. 전시관할권은 오직 군사적 결정구조만이 작동한다. 따라서 전쟁으로 갈지 말지는 위기단계에서 거의 결정되는 셈이다. 정전 후 한반도에서 전작권이 문제가 된 모든 사례는 위기였지, 전쟁이 아니었다. 푸에블로호 사건, EC-121기 사건, 판문점 미루나무사건 모두 위기절차부터 시작되었다. 이들 사건에 대한 백악관 회의록은 위기조치를 결정하고 당사국에 통보하는 과정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유엔사유신에서는 위기관리권을 양대 목표 중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 

“유엔군사령부재건의 주요목적은 위기와 적극적 적대행위가 재개되는 동안 사령부의 능력을 보다 잘 활용하는 것이다.”(주31)

‘적극적 적대행위가 재개되는 동안’이란 전시를 말한다. 즉 유엔사를 위기시와 전시에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전투사령부로 재건하겠다는 것이다. 2006년 전작권전환 합의시 유엔사는 예하에 병력이나 부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정전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병력이나 부대는 연합사를 통하여 제공받고 있었다. 이것은 미 합참에서 유엔군사령관에게 지시한 ‘유엔군사령관을 위한 관련약정’(1983.1.19)에 근거한 것이다. 약정에는 “연합군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의 정전업무 관련 지시를 따르고 상대측의 정전위반에 대한 대응으로 필요시 전투부대를 제공하는 등 유엔군사령관을 지원할 것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연합사가 해체되면 자연히 유엔사는 정전관리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병력이나 부대를 제공받을 길이 없어지기 때문에 별도의 대책이 강구되지 않는 한 임무수행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버웰 벨(Burwell Bell)전 유엔군사령관은 2007년 1월 18일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연합사 해체 시 전작권 반환에 따라 유엔사의 군사권한과 책임의 부조화를 야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벨 사령관의 기자회견 내용을 요약하면, 연합사의 해체와 한국군이 독자적인 군사령부를 가지게 되는 전작권 전환은 유엔군사령부의 군사권한과 책임에 있어 부조화를 야기시킬 것이다. 연합사 해체시 유엔군사령관은 연합사령관이 보유하고 있는 DMZ와 다른 지역에 배치된 한국전투부대에 대한 즉시적인 접근권한이 없게 되고,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전을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며, 전시와 같이 평시에도 조직을 구성하지 않으면 위기가 고조될 때 지휘구조를 변경할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연합사가 해체되면 조직을 정비하여 정전에서 위기가 고조되어 전시로 전환될 시 유엔사 지휘관계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벨사령관은 정전유지책임에 대해 재검토를 제기하였다.(주32) 

그런데 3개월 뒤인 2007년 4월,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미 상원 청문회에서 한국군에 대한 전작권 전환 이후, ‘정전관련 권한과 책임을 한국에게 전환 또는 위임’하는 동시에, 유엔사가 침략억제와 한반도 전쟁 발발시 전투작전을 지원토록 보장하겠다고 밝혔다.(주33) 당시 벨은 유엔사전시조직화에 방점을 찍은 나머지 정전시 위기관리권의 가치를 소홀히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이 정전관련 업무를 한국군에 넘길 생각도 했다는 것이다. 즉 연합사에 더해 유엔사일부기능의 해체까지 갈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협의의 정전업무는 군대행정업무처럼 보이고 전투에 비해 꼬리나 깃털로 보인다. 그러나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은 오래지 않아 깨달은 듯하다. 유엔사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우라지술집의 사제

아우라지술집의 사제

조현 2019. 07. 14
조회수 183 추천수 0
 

 

 

김영식신부1-.JPG»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김영식 신부

 

 

 

 

 

현대사의 고비마다 거리의 미사를 통해 민중들의 갈 길을 앞서 걸었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돌이킬 수 없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매주 월요일 미대사관 앞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미사를 거행한다. 첫 미사는 15일 오후7시다. 특히 오는 8월12일엔 1989년 여름 사제단이 문규현 신부를 평양에 파견해 당시 ‘임수경 학생’과 함께 분단선을 넘어온지 30돌을 맞아 대규모 미사를 계획 중이다. 광화문을 시작으로 전국 교구별 순회 미사를 봉헌하겠다는 사제단 대표 김영식(60) 신부를 만나 거리로 나선 이유를 들었다.

 

“지난 6월30일 김정은 북 국방위원장과 트럼프 미 대통령이 아무런 경호 조치 없이,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사상 최초로 북한 땅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이 만남은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종착지에 이르러야한다. 문재인 정권 5년의 소명은 어떤 정파나 당략에 의해 더 훼손될 수 없는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우리의 뜻을 모아 문재인 정부에 격려와 채찍을 하며, 미국엔 우리의 강력한 의지를 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사제단은 찢기고 짓밟힌 약자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해온 전력 때문에 ‘거리의 사제’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들도 각기 본당에서 책임을 맡고있는 사제들이다. 따라서 사제단도 거리 미사에 나설 때는 교회 안팎의 비난조차도 감내할 각오를 하지않으면 안된다. 사제단이 처음부터 교회 밖 거리로 나선 것은 아니다.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와 서울대교구 김수환 추기경이 나설 때는 대부분의 활동이 성당 안에서 이뤄졌다.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로 불렸다. 그러나 점차 명동성당이 약자들을 외면하면서 약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교회 내 공간이 사라지자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사제단은 노무현 전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던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드러난 불평등한 한미조약인 소파협정 개정을 요구하면서 한겨울 광화문광장에서 노숙교회를 열었고, 이를 실천불교전국승가회와 목회자정의평회협의회가 이어가면서 촛불광장의 서막을 열었다.

 

 이처럼 사제들이 거리미사를 봉헌하자 주교 가운데는 ‘지붕이 없는 곳에서 미사를 봉헌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가톨릭 교회 내 상황이 한결 나아졌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북한을 방문할 뜻을 밝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어서 요즘은 교우들만이 아니라 주교회의에서도 내놓고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게 김 신부의 해석이다. 따라서 교회 안 평화미사도 얼마든지 가능해졌지만, 다시 거리로 나서는 이유를 김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21세기 한복판을 살아가면서도 우리 운명을 우리 마음대로 못하니, 우리가 처한 현실이 안방의 따뜻한 아랫목이 아니라 창호지 숭숭 뚫려 찬바람이 들이치는 곳이 아닌가. 우리가 놓인 현실이 얼마나 척박하고, 강대국들에 의해 잘못될 수 있을만큼 백척간두에 서있는지 알리는데는 거리 미사가 적절하다.”

 

 실제 사제단도 남북교류가 외부 여건에 의해 얼마나 좌우되는지 경험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남북 교류가 한창 진행될 때 평양과 개성, 금강산을 다녀왔다는 그는 “지난 10월 남북 가톨릭 대표단이 중국 심양에서 만나 북의 조선가톨릭교회협회 창립과 장충성당 설립 30돌을 맞는 올해 남북 가톨릭 공동 정기총회를 복원하고, 하반기엔 남쪽 가톨릭 대표단이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도 봉헌하고 백두산도 방문하기로 합의했었는데, 지난 3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돼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남북 가톨릭 간에도 교류에 차질을 빚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신부는 30살에 늦깍이로 신학교에 들어갔다. 엄혹한 시절에도 권력에 굴하지않고 저항하는 사제들을 보며 ‘일당 백의 삶이 여기에 있구나’란 생각으로 사제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경북 안동교구 소속인 그는 안동시내 태화동성당 주임을 맡고 있다. 태화동성당은 한 프랑스인 신부가 복권을 샀다가 당첨된 돈 전액을 초대 안동교구장인 두봉주교 서임 25돌 기념으로 쾌척해 세워진 곳이다. 김 신부는 “평화라는 열매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시일반의 나눔의 결실로 얻어지는 것이라는게 성서의 가르침”이라며 “우리의 평화를 남에게만 맡겨두지않고 사제들뿐 아니라 교우와 국민들까지 우리의 온 마음을 함께 모을때 한반도 평화정착이 로또처럼 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열혈사제’보다는 ‘낭만 사제’다운 그는 <아우라지 술집>이란 이동순의 시를 들려주며 ‘남북민이 함께할 그 날’을 꿈꾸게 했다.
 ‘사발 그릇 깨어지면 두셋 쪽이 나지만/삼팔선 깨어지면 한 덩이로 뭉치지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서구의 침략민족주의와 제3세계의 민족주의


왜 다시 민족주의인가(5)
  • 박기민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 승인 2019.07.13 13:20
  • 댓글 0

1. 서구 민족주의의 침략 제국주의로의 전개

민족주의는 자본주의 서구 진영에서 발생한 침략민족주의(부르주아 민족주의의 변질형태)와 서구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제3세계 저항민족주의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부르주아 민족주의 유형으로서 침략민족주의는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 발생하여 그 전개방식에서 일정한 변화를 수반하면서 오늘까지 존속하고 있는 부르주아 민족주의 형태입니다. 침략민족주의의 본질은 대체적으로 백인우월주의, 인종주의, 서구중심주의, 기독교중심주의, 민족 배타주의로 나타납니다. 침략민족주의는 제국주의 자본가들의 경제적 이득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오리엔탈리즘 입장에서 동양, 혹은 제3세계 피식민지를 정치경제적으로 예속시키고 문화적으로 정신과 의식을 식민지화하며 그들의 물리력으로 자국민과 제3세계 민족을 차별화시킵니다.

침략민족주의는 지국 내에서 민족주의(대국주의)를 선전하여 이런 이념을 통치의 명분으로 내세움으로써 그 기능면에서 두 가지 작용을 하였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자민족의 역사신화와 영광 만들기 작업, 조국의 위대성 선전으로 제국주의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합니다.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민족주의를 체제유지, 권력유지를 위한 통치이념으로 내세워 국내 노자와 자본가간의 적대적 모순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활용합니다.

그 전형적 사례로는 팍스-브리타니아(대영제국), 팍스-아메리카, 1930년대 독일,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등이 민족주의 선전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프랑스 민족주의 열광은 프랑스 혁명기로서,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던 시기(1803-1815)가 되겠으며 유럽에서는 프로이센에서 피히테의 애국심의 분발 호소를 볼 수 있겠습니다. 당시 독일은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이탈리아, 부르봉왕조의 프랑스, 엘리자베스왕조의 영국보다 뒤떨어진 공후국과 도시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가톨릭교회 국가와 개신교지지 국가들 사이에 일어난 30년 종교전쟁으로 황폐화는 극심하였습니다. 그리고 19세기 초에는 나폴레옹에게 정복되어 굴욕을 당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때 프러시아귀족들은 프레데릭 왕의 궁정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프랑스관리들의 모욕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피히테는 공격적인 민족감정을 독일국민에게 고취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비스마르크시대에 와서 프러시아 민족주의가 독일민족주의로 정립되었을 때, 이런 독일 민족주의는 이웃나라들에 대한 침략적 복수감정으로 부국강병 기치를 내걸고 독일 게르만 민족이란 이름 아래 제1,2차 제국주의 식민지 영토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러한 독일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와 문화 후진성을 극복하자 팽창주의 길에 들어서며 침략민족주의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빌헬름 2세 때 독일 민족주의는 범게르만주의를 선전했습니다. 범게르만주의는 게르만 민족의 범민족 통합을 제창하면서 독일에 의한 유럽제패, 세계제패를 지향한 야망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러한 침략민족주의의 대내적 기능인 체제 유지는 민족주의 상징 조작을 통해 국민 에너지를 체제 유지의 방향으로 몰아갔습니다.

권력구조와 결합된 체제유지 이데올로기로 전화된 민족주의는 부르주아 지배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국민의 민족 감정을 배타, 침략주의로 동원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유럽민족주의는 자본주의 체제 모순에 의해 파생되는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을 탄압하는 이데올로기로 이용되었습니다. 유럽 자본가집단은 민중의 지반을 잃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조국의 번영, 민족의 영광 같은 관념에서 심리적 충족감을 얻도록 함으로써 사회를 통제하는 정치수단으로 민족주의를 이용하였습니다. 이같이 강대국 침략민족주의는 민족국가들 간의 경쟁과 자국의 국익추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자본가와 지배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역기능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런 서구의 침략민족주의는 자민족의 우월감을 고취하고 다른 민족에 대한 증오를 설교하는 인종 우월주의 관념에 뿌리는 두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서구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익을 민족적 이익이라고 선전하며 민족 이익이라는 간판 아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제 민족에 대한 침략과 약탈을 자행한 것입니다.

이런 인종적 민족우월주의의 최초의 사례는 영국의 팍스-브리타니아주의에서 나타났습니다. 영국인들은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을 모방 계승하여 자신을 현세의 이스라엘인이라고 자처했고 앵글로색슨 족은 다른 민족보다 우월한 민족이라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 선조가 해적이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영국 앵글로색슨 족은 약탈을 우월민족에게 주어진 특권이라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인종 우월주의는 미국인들에게 그대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광신적 배타주의의 최초 사례는 프랑스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프랑스에서 민족주의는 쇼비니즘으로 표현되었는데 그것은 나폴레옹 군대의 병졸이었던 쇼빈이 프랑스의 대외침략을 광신적으로 제창한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쇼비니즘이란 용어는 프랑스 민족주의가 배타적애국주의, 광신적 배외주의, 국수주의적 민족이기주의로 변질된 양상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러한 유럽 민족주의의 자기 전개 과정의 다음 단계에서는 서구 민족주의가 침략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더욱 약탈적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갔습니다. 개별국가의 성향으로 나타났던 인종 우월주의, 광신적 배타주의, 대국적 팽창주의, 침략전쟁주의는 서양에서 침략민족주의의 일반 속성으로 굳어지면서 유럽 내부에서 모순과 대립, 갈등이 심각한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식민지의 분할, 재분할이 강화되면서 침략민족주의는 식민지약탈과 지배의 정당화로 나아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법은 구미사회에서만 적용되는 것이지 비유럽지역에서는 적용되지 않아도 된다는 관념을 생겼습니다. 서구진영은 비유럽지역에서는 유럽적인 법 관념에 구애되지 않고 무력을 행사하여 식민지지배를 실행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침략민족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제국주의는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서는 무인지역에 대한 선점권을 행사하듯 침략을 자행했고 북아프리카 및 아시아에서는 무제한적 침략전쟁을 벌렸습니다. 이렇듯 침략민족주의는 식민지에 대한 침략과 지배를 우월민족에 주어진 천부의 권리로 인정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침략의 권리와 사명을 ‘메니페스트 데스티니’라 불렀습니다.(박성옥, 신민족주의론, 살림터,1997, 236쪽 참조) 메니페스트 데스티니는 미국이 원한다면 미국인은 대륙과 세계의 어떤 지역도 병합할 사명을 가졌다는 침략적 미국 민족주의의 논리입니다. 침략민족주의가 인류의 역사발전에 역기능한 최대의 과오는 침략민족주의가 파시즘과 결합된 때였습니다. 파시즘은 민족 또는 민족국가의 막중함을 명분으로 내세워 인간의 기본권과 모든 민주주의적 요소를 흔적도 없이 말살하였습니다. 파시즘의 시조인 무쏘리니가 ‘이탈리아 민족은 민족을 구성하는 분리된 개인이나 개인의 집단들에 우월하는 목적의식적 생활수단을 가진 하나의 유기체이다.’라고 선포했을 때 세계는 독재자의 광신적 미신을 보았고 민족주의가 파시즘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파시즘은 광신적 애국주의를 인종주의와 결합시켜 자기의 대외침략과 세계제패의 야욕을 정당화하였습니다. 히틀러의 파시즘은 아리아족의 피의 순결성을 이어 받은 독일민족만이 세계를 통치할 사명을 지녔다 하며, 일본 군국주의는 천황제와 우월적 야마도 민족이 아시아를 통치할 팔굉일우*의 사명을 지녔다고 선전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반인류적 범죄를 민족주의 명분을 빌어 정당화했습니다.

* 팔굉일우(八紘一宇, 일본어: 八紘一宇 핫코이치우) :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의 핵심 사상. 태평양 전쟁 시기에 접어든 일본 제국이 세계 정복을 위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구호로, "전 세계가 하나의 집"이라는 뜻.(편집자 주)

제2차 제국주의 전쟁에서 파시즘의 패망은 파시즘적 민족주의의 종말과 함께 침략민족주의는, 뒤에 거론할 탈민족주의(초민족주의, 코스모폴리터니즘) 즉 세계주의, 국제주의, 글로벌리즘, 신자유주의라는 역사적 변형을 가져왔습니다.

오늘날 침략민족주의는 타민족나 구식민지에 대해서 영토적 지배 형태를 취하지는 않지만, 경제 정치적으로 예속시켜 자국 자본가의 수탈과 착취한 용이한 제도를 구식민지에 이식시켜 간접 지배하는 신식민지 내용을 취하고 있습니다.

▲ 1945년 8월 16일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의 당시 명칭)에서 석방된 항일운동가들이 환영인파 속에서 만세를 부르는 모습

2. 저항민족주의

저항민족주의는 제3세계 식민지 해방민족주의, 피압박민족의 민족주의로 서구 열강의 침략민족주의에 의해 세계가 분할 지배되자 민족해방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개념입니다. 19세기 중반, 20세기 초반에 세계정치사에서 일련의 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세계는 종주국과 식민지(반식민지), 선진국과 후진국, 열강과 약소국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이런 정세에서 식민지, 후진국, 약소국으로 전락한 나라들 경우 민족생존이 위협당하게 되었습니다. 제국주의에 의한 지배와 침탈로 민족자주권의 박탈, 민족경제 파탄, 민족문화가 파괴되었습니다.

저항민족주의는 제3세계 식민지 민족 운명공동체가 자주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민족해방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식민지에서의 저항민족주의의 기본특성은 식민지 침탈과 종속으로부터의 민족해방을 실현하고 민족의 자주적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민족적 저항을 바탕으로 하는 민족주의입니다. 식민지 지역의 민족주의가 아랍민족주의나 아시아민족주의 혹은 중남미민족주의 등으로 지역적 특성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같은 유형의 민족주의로 분류된다 하겠습니다. 그 까닭은 영미서구 제국주의 지배로부터의 민족해방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입니다. 저항민족주의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주의 후진국, 약소국들이 서방 강대국들의 상품시장, 원료공급지, 노동력공급지로서의 식민지로 전락되는 19세기에서부터 세계적 저항운동의 흐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 배경에서 출범한 사조이기 때문에 제3세계 민족주의는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을 지향합니다.

식민 지배에 대한 민족 저항은 저항민족주의가 형성되는 역사적 바탕을 이루지만 그 속에서 민족주의가 정립되는 양상은 민족적,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나 중국과 같이 민족형성과 민족국가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에서는 민족적 저항이 시작됨과 동시에 이념으로서 저항민족주의 담론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렇듯 민족 저항은 역사 진보의 과정이었고 저항민족주의는 그 역사적 진보과정의 필연적 소산이었습니다. 민족적 저항이 민족생명의 자기 보존, 자주독립의 확보라는 목표하에 진행되고 사회의 기본세력인 농민과 함께 수공업자, 나라를 잃은 군인, 봉건지배세력까지를 포함한 여러 계층이 참가하였던 초기 저항민족주의에서는 민족보존과 국가수호, 국체수호 사상이 주축을 이루었습니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 이후, 1919년 조선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났고 그 영향으로 중국 5.4운동이 일어나는 등, 저항민족주의의 내외적 조건은 크게 변하였습니다. 민족해방투쟁의 강화로 제국주의의 식민지지배가 뒤흔들리게 된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 저변에는 식민지와 제국주의 간 모순이 첨예했다는 것입니다. 식민지 민족전체를 수탈 대상으로 감행된 제국주의 침탈은 민족의 처지를 고통스럽게 하였으며, 그 부담은 노동자 농민 최하층민중이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광범한 민중이 저항에 참여하였고, 그것은 저항의 주체역량을 강화시켰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기점으로 민족주의적 저항에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담론이 흘러들면서 식민지 민족해방투쟁은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식민지 노동자의 계급해방은 민족해방을 전제로 하는 만큼 사회주의운동이 민족해방운동과 결합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20세기의 민족주의 전개과정의 외적조건에서 나타난 변화의 중요한 측면은 식민지지배의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제국주의 지배방식에서 변화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지배방식에서의 변화는 우선 종전과 같은 폭력탄압 일변도에서 기만적 양보를 결합한 정책으로 이행한 것입니다.

식민지지배자는 식민지 민족의 욕망을 받아들이는 듯한 양보를 취하면서 회유 정책을 쓰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이 식민지에 자치와 참정권을 부여한다는 기만정책이었습니다.

그것은 영국이 인도에,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 대하여 식민지 총독 밑에 자치의회를 설치한 정책, 프랑스가 알제리에 실시한 본국의회에 식민지의원을 참여시키는 정책 등이 있습니다. 미국은 한술 더 떠서 윌슨주의를 통해 민족자결주의가 식민지에도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라고 선전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민족해방운동의 약체화를 겨냥한 제국주의정책입니다.

지배방식에서의 변화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통치방식인 분할하여 통치하라는 분할통치방식을 지능적 정책으로 실시한 것이었습니다. 민족 내부를 분열시키기 위해 식민지 지배세력과 결탁을 강화하고 지식층을 식민지 제도 속에 편입시키며 토착자본을 매판 세력으로 육성하는 정책이 실시되었습니다.

외래자본 침탈의 안내자, 협조자로서 육성된 매판세력(식민지 부역 지배블럭- 한국의 친일 친미파)으로 하여금 민족주의의 슬로건을 내걸고 제국주의와 타협하도록 만든 것은 식민지통치자들에게는 ‘손 안대고 코푸는’ 식민지 통치술이었습니다. 또한 제국 식민주의자들은 민족사회의 내부를 이념적으로 분열시키기 위해 반공이념으로 민족 저항운동을 분열시켰습니다.

이상과 같이 20세기의 저항민족주의의 전개과정에서 일어난 내외 조건의 변화상황은 민족해방투쟁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를 뜻하는 동시에 저항민족주의에 대한 제국주의의 새로운 도전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매판자본을 중심으로 편성된 제국주의 부역세력이 제국주의 앞에 굴복하며 결탁, 협조하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면 제국주의 타협세력은 개량적 방법으로 민족독립과 발전을 도모한다는 반민중적 입장으로 전락하여 민족개량주의사조가 대두하였습니다. 민족개량주의의 본질적 성격은 겉으로는 민족독립을 표방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식민지통치하에서의 자치권을 내세워 민족적 저항의 청산을 꾀하고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반민족적 조류였습니다. 상해 임정의 안창호와 이광수의 경우를 보더라도, 민족개량주의는 외세에 의존하여 독립을 얻어 보려는 사대주의로서 제국주의 반공정책에 동조하여 민족저항운동을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밀어 넣는 민족운동의 혼란을 초래하였습니다.

민족개량주의같은 제국주의 타협세력은 중국 국민당 우파의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중국 매판 자본가 이익을 대변하는 국민당 우파세력은 1927년 장개석으로 하여금 반공쿠데타를 감행케 하여 중국혁명에서 반제 노선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을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와 타협하면서 통일중국건설이라는 국공합작을 파괴하고 중국을 민족의 내전으로 전화시켰습니다.

피압박민족의 민족적 역량은 제2차세계대전 시기에 와서 반파쇼전쟁에서 연합국 측이 승리를 획득하는데서 큰 역할을 할 만큼 커다란 성장을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2차 대전은 민족해방운동발전에서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45년 전쟁종결 후 민족해방운동의 획기적 발전은 그것이 세계적 범위로 확대된 데서 표출되었습니다. 동방아시아에 편재해 불타오르던 민족적 저항은 아랍동맹과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대륙에까지 요원의 불길처럼 확산되었습니다.

저항민족주의는 제2차세계대전후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로 발전하였습니다. 제3세계를 중심으로 등장한 자주적 민족주의 흐름은 민족주의의 새로운 발전적 형태를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면 자주민족주의의 성격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자주민족주의 성격은 선행한 부르주아 민족주의가 전개되던 시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정치의 틀 속에서 규정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침략민족주의의 구식민지적체계가 붕괴되고 피압박민족들이 민족독립을 성취하여 제3세계를 이루는 신생국가군이 출현하면서 식민지 체제는 무너져 갔습니다. 이러한 세계사적 정치기류의 변화는 두 개의 중대한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지난날 지배의 대상으로만 존재하였던 피압박민족, 피압박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 자주 지향세력을 이룸으로써 자주화의 흐름이 세계사의 흐름을 결정하게 된 변화입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제3세계의 등장으로 인류공동체전체가 민족국가단위로 민족들이 생존 번영해 가는 시대에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민족국가건설이라는 새로운 역사적 과제를 안은 자주민족주의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정치의 틀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은 민족주의운동의 주도세력도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민족주의의 성격변화에 영향을 끼친 요인입니다.

기존의 서구 민족주의는 봉건시대를 끝냈다는 진보성에도 불구하고, 그 발생시초부터 부르주아지가 주도한 민족주의였습니다. 서유럽 근대민족국가의 산파역을 맡아 수행했고 서유럽민족주의의 발단을 열어놓은 세력을 주도한 것이 서구 부르주아지 세력이었습니다. 부르주아는 그들의 이익에서 출발해서 민족주의를 제국주의 위장물로 변질시켰습니다. 저항민족주의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 본격적 전개는 민족자본의 형성과 연결된 민족부르주아지에 의해 주도되었던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제3세계 민족주의 시대에서는 부르주아지의 주도성이라는 역사적 한계성이 극복되어야했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조건은 2차 대전 후 1960년대까지 제국주의 식민지체계가 무너지고 아프리카를 포함하여 세계 피압박민족들이 민족적 독립을 성취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제3세계에서 제국주의의 실질적 지배와 수탈이 끝난 것은 아니었으나 형식적으로는 완료되었습니다. 이로부터 민족 독립과 해방을 목표로 하였던 저항민족주의는 성취한 민족 독립을 공고화해 나가야 하는 새로운 역사적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신생국가군이 자기의 후진성을 극복해야 할 새로운 역사적 과제를 안게 된 것입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신생국들이 식민지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바로 후진국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식민지 개화를 명목으로 자행된 제국주의의 식민지지배는 식민지나라들의 사회발전 후진성을 새로운 경제 정치 예속된 형태로 더욱 세련되게 심화시켰습니다. 제국주의는 식민지에서 경제와 사회 각 분야의 후진적 제 관계를 온존시켰고 세계자본주의경제권에 편입시켜 경제 잉여를 수탈하였습니다. 이식된 식민지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착취의 영토였고 근대화를 실현하려는 민족적 지향은 억제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식민지에서 벗어난 신생국은 여전히 후진국의 처지에 신식민지로 놓여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독립한 피식민지 나라들은 미영 서구 제국주의 종속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실현하는 문제가 핵심적인 과제로 요구되었습니다.

또한, 신생국가들이 민족의 통합과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중대한 민족적 과제를 안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생국가는 대체로 구식민지 시대의 국경선을 따라 독립하였던 까닭에 때로는 종족, 부족까지 분리되는가 하면 역사적인 단일민족이 분리되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인도의 경우, 제국주의 분할정책에 의해 종교적 기준으로 분리 독립되었고 언어, 종족, 종교, 풍속 등의 복잡한 구성을 그대로 안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일부 나라들에서는 민족국가를 기본으로 해서 종족, 부족으로부터 민족을 형성하고 민족국가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보다 복잡한 과제가 제기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미국에 의해 인위적으로 민족이 분단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복잡한 민족문제들을 안게 된 신생국들은 민족의 보존, 통합 내지 통일 이라는 민족적과제를 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 신생국가에서는 민족 다수를 차지하는 민중의 대표세력이 정치를 주도해 나가는 새로운 상황이 조성되었습니다. 1950년대까지 적지 않은 신생국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보수 전통 엘리트의 지배는 민중적 지도세력에 의한 정치지배로 바뀌어집니다. 즉 밑으로부터의 민중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하는 민중적 지도세력에 의해서 탈종속의 과제, 민족 자주성을 구현하기 위한 과제의 해결이 제도화되는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생국 등장은 우로부터의 종속적 체제유지의 정치가 아니라 밑으로부터의 민중 변혁을 지향하는 정치로 모습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신생국가군의 자주적 발전을 침해하는 제국주의에 의한 새로운 종속의 위험이 국제적 환경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후 제국주의는 그 모습을 달리하였기 때문입니다.

전후의 동서대결의 양극 구조 속에서 서방세계의 초 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은 자유수호란 명분으로 신생국을 미국의 국제질서에 편입, 종속시키기 위해 정치 간섭과 군사경제 원조정책으로 신생국들의 민족 자주권을 침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60년대에 이르러 미국뿐 아니라 지난날의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서방 강대국과 일본도 자본의 자유화정책에 따라 과잉자본을 신생국 독립지역에 이동시켜 경제적 종속과 수탈을 감행하고 부등가교환에 의해 구 식민지 나라들을 착취하고 수탈하는 강대국중심의 국제 경제질서를 재정립하게 됩니다. 즉 직접 지배방식이 아닌 간접지배방식을 전환되었던 것입니다.

1945년 이후 구식민지에 대한 제국주의나라들의 경제수탈, 정치 경제종속은 1945년 이후 새로는 제국주의의 세련된 특징으로 됩니다. 낡은 식민지제국이 무너진 자리에서 경제 수탈의 검은 손을 움직이는 신식민주의가 다시 활개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신생국가군은 탈바꿈한 제국주의, 식민주의를 반대하여 탈 종속을 위한 저항을 계속해야 했으며 새로운 종속의 위험으로부터 민족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신생국들의 반외세,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의 민족 저항은 또 하나의 역사적, 시대적과제로 부상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생국가들은 민족의 자주적 발전을 위한 국제 연대의 넓은 영역이 형성하게 됩니다. 제국주의의 식민지로서의 역사체험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들은 국제 연대를 형성하였고 그 연대의 공통분모는 민족의 자주적 발전이었습니다. 이런 공통된 역사체험과 국가발전의 주객관적조건, 민족적과제로부터 정치, 경제, 문화의 각 영역에서 자주성에 기초한 연대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로 하여 신생국들은 기존세계와는 다른 제3세계를 형성, 비동맹운동의 주되는 담당자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의 역사적 조건들은 그것 자체로서 저항민족주의가 기존 민족주의와 구별되는 새로운 수준, 새로운 유형의 민족주의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3세계민족주의, 즉 저항민족주의는 민족국가가 세계의 보편적인 생활단위로 형성되고 민족과 민중이 역사창조의 주체로 등장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수렴하여 민족을 바로 인식하고 자주적으로 건설하려는 지향성에서 출발하는 민족주의로 정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민족과 민족국가의 자주적 발전, 민족사회의 자주자립적인 발전과 통합, 대소 민족국가가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자주적 민족주의라는 점입니다. 저항민족주의는 그 이념의 공정성과 제3세계의 연대적 집단력에 의해 세계의 자주적 발전에 기여하는 현대 민족주의의 기본흐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주된 흐름은 민족주의일반이 아니라 자주적인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민족과 민중의 주체적 운동으로서의 저항민족주의인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저항민족주의는 민족주의의 한 유형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3. 저항민족주의에 대한 미국의 대응

제2차 제국주의 전쟁(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전쟁으로 피폐화된 상황에서 미국은 세계 제1의 패권국으로 등장합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에서는 민족주의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부정되었을 뿐 아니라 민족주의 자체가 부정되었습니다. 민족주의가 부정된 자리에는 미국은 세계전략에서 이념으로서의 코스모폴리터니즘, 즉 세계주의를 내세웁니다.

코스모폴리타니즘(Cosmopolitanism)의 저변에는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발톱이 숨겨져 있습니다. 세계주의는 약소민족에게 민족주의와 자주권을 말살시키고 약소민족의 대문을 열게 하여 유럽의 구식민지를 미국의 신식민지로 만들겠다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 놓여 있습니다.

미국은 각 나라의 민족주의를 부정하고 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선전하며 부르주아 독재인 미국식 민주주의와 미국식 생활양식, 미국식 세계관을 퍼뜨렸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민중들에게 미국식 정치경제제도로 편입시키기 위하여 제3세계 나라들에게 교육, 종교, 언론 매체를 동원하여 이념 전파 기지로서의 상부구조 진지를 구축하여나갔습니다. 이것은 개별국가단위의 민족성이나 민족감정을 소거시키고 민족주의를 소멸시키려는 미국의 이념적 목표입니다.

미국의 후진국 문제 전문가들은 1945년 이후 독립한 민족의식이 강한 신생국 민중들이 사회주의의 길을 택한다는 것을 알고, 현재 조선(북한)과 이란, 시리아, 베네수엘라를 악마화하듯, 사회주의 진영인 소련과 중국을 악마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유대전쟁자본가들의 사상은 ‘전 인민 소유’를 주장하는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반공주의입니다.

미국은 지배계급 이념인 반공주의를 유포하기 위한 정치선전에 미 CIA(미국 중앙정보국)를 정치공작 선두에 세웁니다. 미 CIA는 포드 재단, 록펠러 재단, 뉴욕카네기 재단 등 수많은 재단과 랜드연구소 등을 통해 제3세계 민족주의를 파탄 내고자 반공주의 프로파간다를 수행했습니다. 미 CIA는 이런 우익 민간 재단들을 통해 노조, 청년단체, 대학, 출판사 등에서도 비밀첩보 활동을 전개하며 구좌파를 동원하면 정치선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과거 사회주의 활동을 했거나 반소, 반스탈린 입장으로 돌아선 사람에게 생활비, 직장, 연구소, 출판사 등 자금을 지원하며 사회주의 나라와 자주적 민족주의 나라에 대하여 문화(이념) 전쟁, 즉 문화 냉전을 수행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미 CIA 문화냉전의 포섭 대상은 과거 좌파 지식인, 유럽의 사민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들, 신좌파들이었습니다.

(프랜시스 스토너 손더스,『문화적 냉전 CIA와 지식인들』, 그린비, 옮긴이 유광태 · 임채원)

스탈린 사후, 반 스탈린 공세가 고조되었는데 미 CIA의 최종 목표는 스탈린에 대한 비난이라기보다는 각종 수정주의를 유포시켜 마르크스 레닌주의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미국은 소련과 중국 사회주의를 전체주의, 파시즘으로 공격하며 세계의 민중들이 사회주의에 반감을 품게 하였습니다.

2차 제국주의 전쟁은 국가독점자본이 제국주의로 전화하는 파괴적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프랑스 등 유럽제국주의세력은 제2차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의 전쟁 책임을 히틀러 개인에게 전가시키며 제국주의 전쟁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미국 역시 히틀러와 파시즘 배후에 국가 독점자본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해야 했기에 미국 유대자본은 <쉰들러 리스트>같은 영화를 만들어 전쟁 책임을 히틀러 개인에게 전가시키며 제국주의의 침략성을 덮고자 하였습니다.

1945년 이후 자유주의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혔던 책은 2차 대전 중에 저술된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이었는데, 포퍼는 이 책에서 역사주의와 전체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였습니다. 그는 플라톤 정치 철학에는 전체주의가 내재되어 있다는 비판을 시작으로 플라톤에서 헤겔, 마르크스에 이르는 계보가 20세기 전체주의의 뿌리라면서 소련 사회주의를 전체주의로, 폐쇄 사회로 규정하고 열린사회를 지향해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실 이런 계보는 칼 포퍼 이전, 러시아 혁명기부터 있어왔던 입장으로, 카우츠키는 혁명 러시아를 국가자본주의라고 비판하였고 트로츠키 역시 『배반당한 혁명』 에서 스탈린 체제와 파시즘 체제는 동일한 현상이라고 비판하였던 것입니다(레온 트로츠키, 『배반당한 혁명』 김성훈 역, 갈무리, 2018년). 이 책은 세계 최초 노동자국가인 소련이 혁명 이후 생산력 발전에서 무엇을 성취하였고 권력창출에서 어떻게 스탈린이 승리했으며 관료집단이 어떻게 지배계급이 되어가는가에 대해 소련 관료제를 비판하며 해부한 책입니다).

미국은 제3세계 민족주의를 반 서구주의로, 반제 반미주의, 사회주의로 가는 사상으로 규정지었습니다. 미국과 서구 진영은 제2차 대전 후 독립한 나라들의 자주적 민족주의는 미국과 서구의 이익을 유지하는데 장애로 판단하여 코스모폴리타니즘(세계주의)를 퍼뜨렸는데, 이것은 개인주의, 위아주의*, 고립주의를 내세우는 반공주의의 부드러운 얼굴이라 하겠습니다.

* 위아주의 : 자기본위로 생각하는 사상, 열자 양주편에 나온다.(편집자 주)

이런 식으로 저항민족주의를 부정하던 미국은 제3세계진영이 비동맹회의를 만드는 등 저항민족주의를 표방하자 패권을 유지하기위하여 대책을 세워야 했습니다. 이즈음 나온 1960대의 다니엘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그런 미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증표가 된다하겠습니다.

미국 사회학자 다니엘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 은 과학 기술 발전과 복지사회 등장으로 마르크스주의는 낡은 이론이며 정보 지식 탈산업사회로 이동하게 됨에 따라 미래 사회에서는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소비에트 나라의 반인권 사태, 수정자본주의에 의한 복지국가 대두, 중산계급의 출현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벨의 책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저술되었습니다. 그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노자간의 대립이 첨예화되는 것이 아니라 극복되며 노동자들은 사회복지와 노사분쟁조정으로 개인에게 관심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은 1950년대 후반기에 나온 수렴이론(Convergency theory)으로서 립셋, 레이몽 아롱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수렴이론의 요지는 장차 사회는 이념보다 경제 기술적 요인이 중요하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결국은 하나로 수렴된다는 것입니다. 탈산업사회는 과학지식, 전문기술을 소유한 테크노크라트 사회로서 이들 테크노크라트가 뷰로크라트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장차는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소련, 중국에서도 이데올로기보다는 기술적 기능이 우선시되므로 이데올로기는 정당성이 상실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벨이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발표하던 1960년대에는 이념과 민족주의라는 정념으로 세계가 불타던 항쟁의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에 4.19의거, 6.3사태, 베트남 전쟁, 세계적 반미투쟁, 프랑스 1968.5월 항쟁, 일본의 전공투, 미국의 흑인운동 등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이데올로기의 종언』 이란 신생국 민족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미국 자본가들이 원하는 이데올로기의 재정립을 필요로 하는 미국의 곤경이 나타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에 맞추어 미국은 세계전략 속에서 ‘민족주의’를 다른 의미로 정립할 필요성을 가졌습니다. 미국에서 새로이 정립한 민족주의이데올로기는 신생국 민족주의의 반미적, 반식민주의적 지향성을 거세하고 서방의 이념을 주입하여 서구 근대화로 민족주의를 탈색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신식민주의적 지배를 민족주의로 위장하여 정착시키기 위한 책략인 신식민주의 지배를 위한 허구적 민족주의였습니다. 미국은 제3세계의 민족해방 민족주의 경향을 미국의 이익에 매우 위험스러운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항민족주의를 방지하는 것이 미국의 지배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목표였고, 미국은 서구 지향이 아닌 자주 지향의 민족주의를 파괴하려고 했습니다. 미국은 저항민족주의에 대한 비난을 정당화하기 위해 저항민족주의를 배타적,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로 공격하고, 그것을 지난 시기의 독일나치즘이나 일본군국주의와 동일 계열로 체계, 범주화하는 이론적 왜곡을 하였습니다. 즉 조선(북한)이나 쿠바 시리아 이란 등의 저항민족주의는 봉건주의며 파시즘이라고 비난하며 그 나라의 진보적 의미를 부정해 버렸습니다.

반미, 반제 민족주의에 대한 미국의 적대감은 1982년 9월 리차드 워커 주한미국대사가 한국 민중의 자주적 민족주의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에서 나타났습니다. 워커는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과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태 등에 대하여 미국이 한국에 가한 침략 지배행위와 내정 간섭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1980년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반미주의를 광신적 국수주의, 외국인 혐오로 비난하며 자주적 민족주의 의식은 가진 한국 민중들을 모욕하였습니다. 미국은 자주적 민족주의를 비이성주의, 비합리적인 인간의 충동으로 선전하였는데, 이런 미국의 태도는 민족주의를 세계전략을 위한 도구로서 이용하려는 미국 대외 정책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21세기에 와서도 미국은 민족국가의 자주성을 유린하는 세계지배전략을 물리력으로 실현하여왔습니다. 미국의 21세기전략에서 주목되는 것은 세계제패를 위해 핵전략을 정책화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1970년대 초, 나토성원국들에 7,000여개, 태평양지역에 2,000여개의 핵무기를 배치하였습니다. 냉전이 종식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미국은 여전히 방대한 양의 핵무기를 사회주의권을 제외한 지역에 배치하고 있습니다.(월간조선, “지난 1월 3일 국제 통계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는 미국과학자협회(FAS) 자료를 인용해 전 세계 핵무기 보유량을 발표했다. 각국의 보유량은 러시아(6800개), 미국(6600개), 프랑스(300개), 중국(270개), 영국(215개), 파키스탄(140개), 인도(130개), 이스라엘(80개), 북한(20개) 순이었다.”고 보도했다. 2018.1.7기사)

미국의 21세기전략은 본질상 냉전시대의 핵전략을 그대로 유지하는 군사 패권전략을 바탕으로 한 달러패권 유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21세에도 여전히 자주를 지향하는 민족주의를 억압하고 핵전략으로 세계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맞서 우리는 우리의 민족주의 저항 담론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겠습니다.

( <마르크스 엥겔스 중기, 후기의 민족주의>는 다음 회에 올리겠습니다.)

박기민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webmaster@minplus.or.kr

icon관련기사icon마르크스, 엥겔스 초기의 민족문제 - 『독일 이데올로기』, 『공산당 선언』icon마르크스·엥겔스의 민족, 민족주의 이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위안부 논쟁’에 공전의 대담함으로 도전하는 - 영화 『主戰場』

김종익 | 2019-07-12 10:50:3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역 규제로 한일 관계는 최악의 국면에 접어든 듯하다. ‘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 문제’ 등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이번 사태는, 이 문제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 극우 세력의 지지와 ‘평화 헌법 개정’을 달성하려고 하는 아베 내각총리의 정치적 계산에서 발단되었다는 것은 거의 명확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번 여름 한국 개봉을 앞두고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위안부’ 관련 영화 『主戰場』. 이 글은,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 영화의 감독을 『世界』에서 인터뷰한 기사이다. 일본 개봉 후 쏟아진 관심에, 영화에서 감독과 인터뷰한 우익들이 감독을 고발하는 사태까지 발생한 영화. 감독은 어떤 시각에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며,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평은 어떤 곳일까? - 역자 주

‘위안부 논쟁’에 공전의 대담함으로 도전하는 - 영화 『主戰場』
- 잘 오셨습니다, 논쟁의 ‘주전장’에 -

Miki Dezaki
1983년생. 미국 출생. 다큐멘터리 영상 작가. 일본계 미국인 2세. 미네소타 대학에서 의학을, 죠치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강제 연행은 없었다” “성노예는 아니다” “20만 명은 거짓이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결렬하게 대립하는 의견과 의견. 일본계 미국인 2세 미키 데자키 Miki Dezaki 감독(35세)에 의한 다큐멘터리 『주전장』은, 이러한 ‘論戰’ 그 자체를 가시화하여, 그것이 어떤 문맥으로, 어떤 구조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마치 파노라마처럼 묘사해 낸다. 보는 사람은 이 ‘논전’을 추체험하게 된다. 지난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이래, ‘위안부’ 문제를 다루었던 작품으로 폭 넓은 층으로부터 “새롭다” “이색적이다”라고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납득이 간다. 4월 말부터 일본 공개가 시작되어, 여름에는 한국 공개 예정. 일본 공개 전에, 감독에게 영화 제작에 이르는 과정과 생각을 물었다.

‘역사 수정’에 대한 집념은 왜?
- 첫 영화 작품이라고 하는 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삼은 이유는 뭡니까?

최초 계기는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 씨가 ‘위안부’ 문제 기사와 관련하여 이른바 ‘인터넷 우익’으로부터 비방 중상을 당하는 것을 안 것입니다. 저는 많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20만 명의 여성들이 강제적으로 성노예를 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왜 일본과 한국에서 이것이 논쟁으로 되어 있는 것일까 의문으로 여겼던 거지요.

그래서 영화 모두에 제시했듯이, “왜 역사 수정주의자들이 이렇게까지 역사의 사고방식을 바꾸려고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추구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위안부’ 문제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사실이 왜 말살되려고 하고 있는 것일까를 되묻는 과정을 밝힌 것입니다.

- 영화에서는, 크게 세 가지 쟁점 “20만 명” “강제 연행” “성노예”가 제시되고, 역사 수정주의자·부정론자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연구자·활동가 등의 인터뷰가 속도감 있게 컷 분할되어 재구성되고 있었습니다. 마치 실제로 논쟁하고 있기라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는 서로 직접 만나서 논쟁하는 분들은 아니지요. 각각의 분들이 저를 설득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으로, 이 논쟁은 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어요.

인터뷰 대상은, 일본·미국·한국의, 이 논쟁의 중심인물들 약 30명. 사쿠라이櫻井 요시코(저널리스트), 켄트 길버트Kent Sidney Gilber(캘리포니아 주 변호사/탤런트), 스기타 미오杉田水脈(자민당 의원), 가세 히데아키加瀬英明(일본의회) 등 역사 수정주의자·부정론자, 와타나베 미나渡邊美奈(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 윤미향(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필리스 킴(캘리포니아 코리안 미국인 협회) 등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의 활동가,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역사학), 나카노 고이치中野晃一(정치학), 아베 고우키阿部浩己(국제법학), 이나영(사회학) 등 연구자들입니다. 후반에는 의외의 인물도 등장합니다.  

재미있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우파 인사들이 제가 만든 인종 차별을 다룬 You Tube 작품을 보고 있고, 저를 ‘反日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을 악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했어요. 다만 이것은 우파로부터 인종 차별에 직면해 있는 재일 코리언이 아닌 저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에 대한 ‘질문’과 편집 과정
- 인터뷰를 하면서 어떤 점을 느꼈을까요?

인터뷰만이 아니라, 병행하여 수많은 뉴스 영상, 역사적 자료 등의 리서치를 거듭하며, 제 자신이 보도를 통해 사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반론할 것이 제 내면에 없었어요. 그런데요 감정은 요동하고, 괴로운 시간이었어요. 예를 들면, ‘성노예’를 둘러싼 부분에서는, 와타나베 미나 씨도 말하듯이, “상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법의 정의로 말한다”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성노예라고 하는 것은 국제법상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거기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또, “20만 명”이라는 숫자를 둘러싼 논쟁 부분은 복잡했습니다. 이것은 양 진영이 각각의 문맥으로 이용해 온 경위가 있었으니까요….

이런 식으로 제 자신이 영화 제작 과정에서 몇 번이나 ‘질문’을 들이대어, 검증하고 분석하며, 제작자들과 토론을 거듭해 갔습니다. 그리고 편집 단계에서 처음 확고한 무엇인가에 이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영화 제작 과정 가운데 편집 작업을 아주 좋아하지만, 이번은 혼자서 세 달에 걸쳐서 편집했어요. 이 영화를 보는 분들도, 잇달아 떠오르는 의문이나 ‘질문’을 소중히 여기며, 논전을 체험해 주셨으면 합니다.

- 아베 정권은 ‘한일 합의’로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하고, 매스미디어는 그 검증도 충분히 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한국 쪽에 원인이 있는 듯한 보도가 눈에 보입니다.

미디어에서 중요한 것은, 그 문제의 취급 방식, 말하자면 framing이나 관점입니다. 예를 들면, 각국에서 소녀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일본인은 분노한다거나 하지만, 그것은 문맥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기 때문인 거지요. 왜 만들어지고 있는가라고 하면, 일본 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가 지워지려고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응이기도 한 것입니다.

또, 많은 일본인이 몇 번이나 사죄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지만, 그것은 상대에게는 반밖에 전달되고 있지 않다는 것에 자각이 없어요. 그러니까, 전체 속의 문맥이 결락되어 있는 것이 문제예요. 이 점에서는, 일본·미국·한국의 매스컴도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쟁점을 캐내어, 쌍방의 의견을 확실히 듣고, 명확하게 비교하여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도록, 두 시간이나 되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포괄적으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 ‘한일 합의’를 둘러싼 미국의 책임에 대해, 구조 속에서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점도 중요합니다.

제가 미국인인 것도 물론이지만, 처음부터 넣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요, 다양한 국제 분쟁에 대해서도 미국의 영향력은 크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감독은 2007년부터 일본에서 영어 교사로 중학교·고등학교에서 5년간 가르치고 있던 무렵에, You Tube로 미국과 일본의 차별 문제를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 『일본에는 인종 차별이 있습니까?』는 약 89만 회의 시청이 이루어져서, 이른바 ‘인터넷 우익’으로부터 상당한 공격도 받았다고 합니다. 이들 작품을, 무엇보다 젊은이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느꼈고, 그것은 『주전장』에 공통하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이 영화는 오락적인 요소라기보다, 교육 도구로 생각하고 있어요. 다큐멘터리가 교육에서 어떻게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라는 것은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관람한 사람으로부터는 오락적 부분이 있고 스릴 있는 전개로 재미있다는 등을 이야기해 주시지만, 미국적인 다큐멘터리와 비교하면, 그 정도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미국인에게는 특히 전반은 느리다고 들었습니다. 내레이션은 직접 했는데요, 속도를 올릴 궁리도 했었고, 또 음악은 감정을 조작하지 않고, 관객을 refresh시키면서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성장과 의외의 경력 
- 의사나 승려를 지향하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사를 조금 들려주시지요.

저는 일본계 미국인 2세예요. 부모가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1970년대로, 아버지가 고급  요리사로 알래스카로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일본 외교관이었습니다. 저는 1983년 테네시 주에서 태어났고, 한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플로리타 주에서 살았는데, 미국 남동부에 있는 플로리다 주는 인종 차별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처음 일본에 온 것은, 2003년, 교환 유학생으로 히로시마 대학에 온 스무 살 때였어요. 1년간 체재했는데, 그때는 일본 문화와 자신의 뿌리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물론 원폭 자료관을 본 것은 커다란 충격으로, 미국의 사죄는 부족하고, 미국의 전쟁 범죄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 돌아가 의학부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는데, 의대에 입학해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명상을 권유받고, 시도하자마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명상을 통해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승려 수행을 하러 가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한 번 일해 보고나서 생각하라는 말씀을 하셔서, 일본에서 교사를 하기로 했던 겁니다. 교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도 사실이었는데, 일본은 태국에 가까워서 승려 수행 조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그 무렵 합기도 철학에 매료되었습니다. 공격이 아니라, 수비 무술이며, 거기에서 파생하는 평화와 조화라는 것에 홀렸습니다. 그 후 1년간, 태국에서 승려로 지냈고, 2015년에 다시 일본에 와서 죠치 대학 대학원에서 국제 관계학을 전공하고, 이윽고 영화를 찍기 시작하게 되었던 거지요. 이런저런 경험을 해 왔는데, 저의 일관된 생각은 “남의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 어떤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습니까?

우선 일본과 한국의 일반 분들에게 보이고 싶습니다. 이 영화가 한일 관계에 뭔가 도움을 준다는 희망이 없었다면 만들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보는 인터넷에 넘치고 있지만, 양의 문제가 아니라, 전문가의 정보가 확실히 전달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에는 역시 교육이 중요하지 않을까 새삼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 후, 대화가 가능하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 보다 건설적인 논의가 가능한 것은 아닐까 확신합니다.

- 영화 제작 과정에서, 일본 국내의 성폭력 피해 실태에 놀라서, 앞으로 성차별 문제에 몰두하고 싶다고 생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다음 번 작품으로는 복수의 구상이 있습니다. 『주전장』에 대한 반응도 보면서 생각해 가겠습니다. 성차별 영상을 만드는 것 자체는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죠치 대학에서 ‘입장의 심리학’이라는 수업의 교육 조교를 하고 있었을 때, 다수의 특권이라는 수업 중에 학생으로부터 가장 저항이 컸던 것이 성차별 문제였어요. 어떤 관점에서 몰두하는가, 보다 나은 관점을 찾게 될까 어떨까가 열쇠입니다.

-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불가결한 주제이며, 많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1001&table=ji_kim&uid=9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조선 여자 축구 일본꺽고 세계 대회 우승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7/14 09:01
  • 수정일
    2019/07/14 09:0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정섭 기자 | 기사입력 2019/07/14 [06:41]
  •  
  •  
  •  
  •  
  •  
  •  
 

 

조선 여자 축구 일본꺽고 세계 대회 우승

 

▲ 자료사진     © 자주일보

 

조선 여자축구단이 세게대회를 재패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조선중앙통신은 13일 조선 여자축구단이 제30차 여름철 세계 대학생 체육 경기 대회(하계유니버시시아드)에서 제1위를 쟁취하였다고 밝혔다.

 

이로써 조선 여자 축구가 세계 축구의 강자임을 확인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탈리아에서 진행 되고 있는 제30차 여름철 세계 대학생 체육경기대회에서 조선 여자축구선수들이 제1위를 쟁취 하였다"고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지난 2일부터 12일까지(현지시간진행 된 이번 경기대회 여자축구 경기에는 조선과 중국로씨야브라질메히꼬를 비롯한 12개 나라와 지역의 대표단들이 참가하였다."고 전했다.

 

통신은 "조선 여자 축구 선수들은 조별 연맹전에서 카나다남아프리카 선수들을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이기고 준준결승 경기에서 이딸리아 대표를 4:1,준결승 경기에서 아일랜드 선수단을 5:0으로 물리쳤다."고 전했다.

 

그리고 "12(현지시간)에 진행 된 결승 경기에서 조선 대표 선수단은 일본을 2:1로 타승하였다"고 쾌거 소식을 강조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