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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정책실장 임명, 무엇을 의미하나

기존 정책 유지한다지만 ‘우클릭’ 가속화 될 듯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9.06.24 08:27
 
 
 

 

[미디어스] 지난 21일 청와대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을 새로운 인물들로 교체했다. 최근 우리 경제의 부정적 지표들을 다룬 뉴스들이 화제였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경제 문제에서의 성과 부진 논란을 의식한 조처로 해석할 수 있다. 보수야당이 ‘경제청문회’ 등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가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바꿔 놓을 것인지를 더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청와대 정책실장이 직전까지 공정거래위원장을 맡았던 김상조 교수라는 것에 보수세력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금 경제 문제의 핵심은 청와대가 잘못된 정책을 밀어 붙인 것에 있는데,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의 등장은 소득주도성장 등 기존 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현실을 제대로 말하고 있는 것일까? 김상조 정책실장이 장하성 현 주중대사와 함께 과거 소액주주의 권리 행사를 통한 재벌 대기업의 지배구조 변화 등을 주장한 바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인사와 관련해서도 청와대가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에 가려져 있던 경제민주화 즉 공정경제 관련 정책에 속도를 낼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 경우가 있다.

이런 해석이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김상조 정책실장이 등장한 맥락을 알기 위해선 먼저 전임자들의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수현 전 정책실장은 보수언론 등에 의해 ‘왕수석’, ‘왕실장’이란 별명으로 불려왔다. 대통령이 신임하는 참모라는 점을 부각시킨 표현이다. 김수현 전 정책실장을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히 신임하였던 것은 사실인 걸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점이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지는 더 따져봐야 한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적 과제를 큰 틀에서 정리하고 관료 집단의 과제 수행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하며 각 부처 간 업무 내용을 조율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정책적 과제는 거시경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전체 경제를 보는 시각과 정책적 철학을 현실에서 실제로 관철시킬 수 있는 실무적 능력이 중요하다.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수현 전 정책실장은 부동산 정책 등에 전문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경제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런 우려는 김수현 전 정책실장 임명 당시에도 제기됐다. 따라서 관료 출신인 윤종원 전 경제수석이 거시 경제 전반을 다루는 문제 등에 있어서는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종원 수석 임명 당시에 “장악력이 강하시다면서요”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이같은 기대가 실제 현실이 된 것인지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다. 수출이나 고용과 관련한 통계 지표가 좋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는데도 청와대는 곧 정책의 성과가 확인될 거라는 낙관론만을 말해왔고 이게 경제 정책의 실패를 주장하는 야당에 빌미를 줬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관료들의 태도 역시 여전히 ‘복지부동’에 머무르고 있다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과 이호승 신임 경제수석의 등장은 이런 상황을 뒤집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방향일까? 보수언론은 김상조 정책실장을 좌편향된 인물로 묘사하지만 그가 최근 내놓은 발언들을 보면 오히려 정책적 ‘중도화’를 밀어 붙일 수 있는 인물로 선택된 것처럼 보인다.

실제 김상조 정책실장은 지난해부터 수차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개혁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정부를 비난하는 시민단체 등에 대한 쓴소리를 계속해왔다. 김상조 정책실장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장으로서 한 일들을 평가해 봐도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수준의 개혁적 조치를 밀어 붙이기보다는 대기업과 관료들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정책적 강도를 조절하는 것에 보다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실제 김상조 정책실장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재계를 포함한 여러 이해관계자와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겠다”, “기업에 가장 우호적인 환경이 되지 않을까 싶다”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포함한 재벌 총수들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따라서 앞으로 청와대가 추진하는 정책은 표면적으로야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을 포기하지 않는 모양새가 되겠지만 실제 내용은 대기업의 투자를 이끌어 내 일자리를 확충하고 이른바 ‘미래 먹거리 산업’에 필요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에 보다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할 수밖에 없최근 정권의 핵심부는 2018년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노골적으로 피력해왔다. 여당 일각에선 아예 ‘동결론’까지 언급하고 있고 노동계가 반대하는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도 밀어 붙이는 중이다. 노동계가 반대해 온 탄력근로제 단위시간 연장의 경우 국회가 정상화 되면 가장 먼저 처리될 안건으로 꼽힌다. 이에 반해 ILO 핵심협약 비준이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노동계가 요구하는 사안은 말 그대로 지지부진이다.

정부 여당이 노동정책에 대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현실론적 배경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총선에 정책적인 중도화가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을 이미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김상조 정책실장처럼 그동안 정권 내의 진보를 담당하는 것처럼 보였던 인물들이 오히려 ‘우클릭’의 행동대장으로 나서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보수야당이 요구하는 ‘경제청문회’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정부 여당이 기존의 정책 방향을 유지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질적 차원에서는 중도적 입장을 반복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여당이 이런 태도라면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기성 정치의 영역에서 누가 대변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김명환 위원장 구속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정의당 등의 정당도 있지만 그마저도 ‘조금 더 진보적인 더불어민주당’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물론 이 국면이 이런 구도를 깨고 중도와 진보를 분리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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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산영빈관에서 합의한 반제공동전선구축과 사회주의공동번영

[개벽예감 353] 금수산영빈관에서 합의한 반제공동전선구축과 사회주의공동번영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9/06/24 [09:36]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조중정상회담은 외교활동이 아니다

2. 중재자를 앞세운 트럼프의 특별대책

3. 특별대책은 어떻게 물거품으로 되었는가? 

4. 금수산영빈관에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합의

 

 

1. 조중정상회담은 외교활동이 아니다

 

2019년 6월 20일 전 세계의 이목이 평양으로 쏠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을 국가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상봉하고 역사적인 조중정상회담을 진행한 것이다. 조중정상회담 앞에 ‘역사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까닭은, 시진핑 주석이 사상 처음으로 조선을 ‘국가방문’한 것으로 하여 성사된 회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국가방문이라는 말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다. 남측에서는 국빈방문이라는 말을 쓰고, 북측에서는 국가방문이라는 말을 쓰는데, 국제외교에서 통용되는 공식용어는 국빈방문이 아니라 국가방문(state visit)이다. 국가수반이 국가방문보다 한 급 낮은 외교의전으로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을 공식방문(official visit)이라 하고, 외교의전을 생략하고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을 실무방문(working visit)이라 한다. 국가방문은 국가수반이 수행하는 최고의 외교활동이므로, 아무 때나 흔하게 있는 일이 아니며, 특별한 시기에, 중대한 의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을 때 성사되는 특례적인 국가외교활동이다. 

 

조선은 중국내전에서 승리한 혁명세력이 새로운 나라를 수립한 1949년 10월 1일로부터 닷새 뒤에 신생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맺었는데, 올해까지 장장 70년 동안 조선의 최고지도자들과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은 평양과 베이징을 여러 차례 상호방문하였다. 올해 2019년 10월 6일은 조중국교수립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70년을 헤아리는 조중친선력사에서 이제껏 유일한 국가방문은 1982년 9월 16일 김일성 주석의 중국국가방문밖에 없다. 그날 김일성 주석이 특별렬차편으로 베이징역에 당도하였을 때, 당시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인 덩샤오핑과 당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인 후야오방을 비롯한 중국의 최고지도부가 역두에 나가 김일성 주석을 정중히 영접하였다. 이처럼 파격적인 출영은 중국의 외교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중국 최고지도부의 파격적인 출영은 조중친선관계가 어떤 것인지 잘 말해준다. 

 

70년의 연륜을 아로새겨온 조중친선력사를 살펴보면, 조선의 최고지도자들과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의 상호방문은 형식상으로 공식방문 또는 비공식방문으로 구분되었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렇게 구분할 필요가 없는 친선방문(friendly visit)이었다. 공식친선방문도 있었고, 비공식친선방문도 있었다. 이를테면, 시진핑 주석이 이번에 조선을 국가방문하기 이전에 장쩌민 당시 주석은 1990년 3월 14일부터 16일까지, 그리고 2001년 9월 3일부터 5일까지 조선을 두 차례 공식친선방문하였고, 장쩌민 주석의 뒤를 이은 후진타오 당시 주석은 2005년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조선을 공식친선방문하였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역대 최고지도자들 가운데 사상 처음으로 조선을 국가방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70년 조중친선력사에서 처음으로 국가방문한 시진핑 주석을 최상의 외교의전으로 맞이하였다. 이 글에서 나는 더 이상 적확한 용어를 찾지 못해, 최상의 외교의전이라는 통상적인 용어를 썼지만, 그것은 모든 측면에서 관례적인 국가외교활동을 뛰어넘은 초외교적 사변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이번에 평양에서 상봉한 것은 관례적인 국가외교활동이 아니었다. 명백하게도, 그것은 사회주의공동리념에 따라 사회주의공동위업을 수행하며 사회주의공동번영을 추구하는 동지적 상봉이었다.       

 

국제외교관례에 따른 일반적인 국가방문일정을 살펴보면, 국가수반이 출영하여 환영의식을 진행하는 가운데 21발의 예포가 발사되고, 양국 국가가 주악되고, 명예위병대(honour guard) 사열이 진행되고, 국가지도성원들을 국빈에게 소개하고, 국빈숙소로 이동하고,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외교선물을 교환하고, 국가연회를 진행하고, 입법기관을 방문하고, 국립묘지를 방문하고, 문화예술공연에 참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남북관계는 국가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분단국가 내부의 특수관계이므로, 남측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 양측 기를 게양하지 않고, 양측 애국가를 주악하지 않는다. 

 

이번에 시진핑 주석의 조선방문일정에는 위와 같은 통상적인 국가방문일정에서 찾아볼 수 없는 두 가지 특례적인 일정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성대한 환영식을 진행한 것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 앞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리설주 여사와 펑리위안 여사를 각각 대동하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성원들과 함께 뜻깊은 기념촬영을 한 것이다. <사진 1>

 

 

▲ <사진 1> 위쪽 사진은 2019년 6월 2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리설주 여사, 펑리위안 여사를 각각 대동하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성원들과 함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 앞에서 뜻깊은 기념촬영을 하는 사진이다. 조선과 중국의 건국 이래 이런 기념촬영은 처음 있는 일이다. 조선을 이끄는 혁명활동의 구심점에서 진행된 그날의 특례적인 기념촬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70년 조중친선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심화, 발전시키는 동지적 우의와 신뢰를 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아래쪽 사진은 1982년 9월 16일 김일성 주석이 특별렬차편으로 중국을 국가방문하였을 때, 당시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인 덩샤오핑과 당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인 후야오방을 비롯한 중국의 최고지도부가 역두에 나가 정중히 영접하는 장면이다. 김일성 주석이 덩샤오핑 주석과 후야오방 위원장의 손을 잡고 걸어나오는 모습은 조중친선관계가 어떤 것인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위와 같은 특례적인 일정을 시진핑 주석의 국가방문일정에 포함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의 국가방문일정에 특례적인 일정을 포함시킨 의도는 무엇인가?  

 

금수산태양궁전은 조선에서 ‘주체의 최고 성지’로 모시는 곳이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는 조선을 이끄는 혁명활동의 구심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그 두 가지 특례적인 일정이 왜 시진핑 주석의 국가방문일정에 포함되었는지 자명해진다. ‘주체의 최고 성지’에서 진행된 특례적인 환영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일찍이 두 나라 선대 최고지도자들이 마련한 조중친선관계를 변함없이 계승하는 동지적 의리를 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또한 조선을 이끄는 혁명활동의 구심점에서 진행된 특례적인 기념촬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70년 조중친선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심화, 발전시키려는 동지적 우의와 신뢰를 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조선을 방문하는 다른 나라 국가수반들은 무개차도심행차(motorcade)와 연도군중환영이라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번에 조선을 국가방문한 시진핑 주석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무개차를 타고 평양 시가지를 지나면서 열렬한 군중환영을 받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공항출영에는 1만명 군중이 참가하였고, 연도환영에는 25만명 군중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두 나라 국기와 꽃술을 흔드는 25만 환영인파가 연도에 늘어서서 열렬히 환호하는 가운데 무개차를 타고 평양 시가지를 행차하였다. 그런 희한한 군중환영은 전 세계에서 오직 조선에서만 볼 수 있다. 수 십 만명이 참가하는 엄청난 연도군중환영은, 사회과학적 용어를 빌리면, 사회적 통합이 고도화된 사회주의나라에서, 그리고 조선의 표현을 빌리면 일심단결을 이룩한 사회주의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매우 오래 전에 중국에서도 다른 나라 국가수반을 영접할 때 무개차도심행차와 연도군중환영을 진행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안전문제, 군중참가문제, 도심교통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대규모 군중환영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기록에 의하면, 1958년 11월 22일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 수상은 30만 환영인파가 연도에 늘어서서 열렬히 환호하는 가운데 무개차를 타고 베이징 중심부를 행차하였다고 한다. 

 

 

2. 중재자를 앞세운 트럼프의 특별대책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1월 8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편리한 시기에” 조선을 공식방문해달라고 초청하였고, 시진핑 주석은 “초청을 쾌히 수락하고 그에 대한 계획을 통보하였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과 시진핑 주석의 수락은 조중국교수립 70주년을 맞은 올해 2019년 안에 시진핑 주석의 조선방문이 성사될 것이라는 확실한 기대를 안겨주었다.  

 

올해 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그 초청을 수락한 시진핑 주석은 언제 방문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 방문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였다.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동아일보> 2019년 6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의 조선방문은 중국의 요청에 따라 성사되었다고 한다. 시진핑 주석은 2019년 6월 20일부터 1박2일 동안 조선을 국가방문하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시진핑 주석은 자신이 결정한 방문시점과 방문형식을 언제쯤 조선에 통보하였을까?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인민일보> 2019년 6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방문을 앞두고 지난 6월 초부터 평양에 있는 조중우의탑을 개보수하고, 그 주변환경을 정리하기 시작했으며, 조중우의탑 부근에 있는 주조중국대사관 주변환경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시진핑 주석은 자신이 결정한 방문시점과 방문형식을 지난 5월 말에 조선에 통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시진핑 주석은 조선방문날짜를 하필이면 왜 6월 20일로 정했을까? 시진핑 주석의 조선국가방문을 수행한 쑹타오 중국공산당 대외련락부장의 발언에서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쑹타오 부장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인민일보> 2019년 6월 22일부 기사에서 시진핑 주석의 조선국가방문에 대해 언급하면서 “시기가 특수하고, 의의는 중대하며, 영향은 깊고도 크다”고 했다. 시기가 특수하다는 말은 시진핑 주석이 특별한 시기에 조선을 국가방문하였다는 뜻이다. 

 

쑹타오 부장이 언급한 특별한 시기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심층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시진핑 주석이 오는 6월 28일부터 1박2일 동안 일본 오사까에서 진행될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로 한 회담일정을 앞두고 조선에 가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먼저 만난 것이야말로 특별한 시기에 조선을 방문한 것이 아니겠느냐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의 조선방문에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요하고, 복잡다단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한국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오는 6월 28일부터 1박2일 동안 오사까에서 진행되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끝나는 길로 한국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하였다고 한다. 이런 정황은 올해 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을 수락한 시진핑 주석이 평양과 서울을 동시방문하던가 아니면 어느 한 쪽을 선택하여 방문하던가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시진핑 주석은 한국방문요청을 사절하고 조선방문을 선택하였다. 2019년 6월 7일 청와대 관계자는 시진핑 주석이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 한국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취재기자에게 말했다.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시점에 맞춰 시진핑 주석을 한국에 초청하려던 문재인 대통령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다시 말하면, 2019년 5월 말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자신의 조선방문날짜를 통보하였고,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한국방문요청을 사절한다고 통보하였던 것이다.  

 

여기까지 서술된 사실만 보면, 시진핑 주석은 한중관계보다 조중관계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방문요청을 사절하고 조선을 국가방문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선택은 누구나 다 알만한 것이므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이 한국방문요청을 사절하고 조선국가방문을 선택한 것에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깊고 중대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9년 4월 11일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직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취재진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결정한 특별대책을 살짝 언급하는 실언을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대책은 중재자로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오사까에서 진행될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전에 남북정상회담을 먼저 성사시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직후에 판문점에서 개최하고 한반도 종전선언을 채택하자고 제의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특별대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의 전략전술적 협동으로 물거품으로 되었다.     

 

이야기는 2019년 4월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진행한 정상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4월 11일은 서울에서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식이 진행된 날이었다. 2018년부터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에 공을 들여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11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식에 꼭 참석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런 사정을 알 턱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2019년 4월 11일 백악관에서 만나자고 통보하였다. 갑작스러운 초청통보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꼭 참석하고 싶었던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을 포기하고 워싱턴으로 급히 날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마주앉아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것은 2019년 2월 28일 윁남 하노이에서 진행된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장기화되는 교착상태를 넘어서기 위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수립한 특별대책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날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을 진행한 두 정상은 공동성명도 내놓지 않고 헤어졌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를 두고 문재인 반대파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빈손외교’로 망신을 자초했다느니 뭐니 하며 빈정거렸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토의되었기 때문에 공동성명을 내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중요한 문제를 토의하였기에 공동성명도 내지 않은 것일까? 

 

이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속에 들어있었다. 그는 2019년 4월 11일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에 들어가기 직전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진행한 공동기자회견에서 취재기자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받고 얼떨결에 특별대책을 살짝 공개하는 실언을 했다.   

 

취재기자 - “남북미회담도 계획에 있는가?”

트럼프 - “그것 역시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대체로 김정은 위원장에게 달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훌륭한 일을 해왔다. 나는 문 대통령을 훌륭한 협력자라고 생각한다.”

 

위의 인용문을 읽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진행한 정상회담에서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특별대책을 토의하기도 전에 공동기자회견에서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받고 얼떨결에 그 특별대책에 대해 살짝 언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정황은 그날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특별대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설명하고, 그에 관해 토의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흥미로운 특별대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날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특별대책을 설명하였을 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로 앞에 나서서 특별대책을 추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로 앞에 나서서 특별대책을 추진해달라는 말은,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의하기 위해 먼저 남북정상회담부터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간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4월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진행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4월 11일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언급하면서 남북정상회담과 남북미 3자 정상회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과 기대를 표명했다. 이제 남북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할 시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결단할 경우, 남북미 3자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뜻을 밝혔다.” 

 

위에 인용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종합하면, 조미핵협상 교착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수립한 특별대책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중재자로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오사까에서 진행될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전에 남북정상회담을 먼저 성사시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직후에 판문점에서 개최하고, 한반도 종전선언을 채택하자고 제의하려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만약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수락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남북미가 판문점에서 3자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종전선언을 채택하기로 합의하였으니 중국도 참가해달라고 요청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대책이 실행되는 경우, 주요 20개국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을 판문점에서 만나 4자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그 자리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채택하여 조미핵협상 교착국면을 돌파해보겠다는 속셈이었다. 이런 속셈을 실행하는 데서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문재인 대통령은 오사까에서 열릴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이전에 어떻게 해서든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무던히 애썼던 것이다. 

 

 

3. 특별대책은 어떻게 물거품으로 되었는가?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중재자로 앞에 내세워 추진하려던 특별대책은 그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제기하여 회담을 결렬시킨 리비아식 비핵화 방안을 철회하지 않은 채, 조미핵협상 교착상태를 미국에게 유리하게 전환시키려는 간계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조선에게 일방적인 핵무장해제를 요구하는 리비아식 비핵화 방안을 철회하고 조선식 비핵화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명백한 의사를 표명해야 조미핵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고 언명하였고, 그 시한을 2019년 12월까지로 못박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리비아식 비핵화 방안을 철회하지 않은 채 조미핵협상을 재개해보려는 간계를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로 추진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라면 덮어놓고 따르는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남북정상회담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이전에 개최할 것을 여러 차례 제안하는 한편, 시진핑 주석에게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직후 한국을 방문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하였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대책을 추진하기 위해 그런 제안과 요청을 제기하였음을 간파하였다. <사진 3>

 

 

▲ <사진 3> 위쪽 사진은 2019년 6월 20일 금수산영빈관에서 진행된 조중정상회담 장면이다. 이 역사적인 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제국주의핵제국의 전횡과 폭력에 맞서 싸우는 반제공동전선을 구축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사회주의공동번영을 조중 두 나라의 공동리익에 맞게 추구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아래쪽 사진은 2019년 6월 21일 금수산영빈관 경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리설주 녀사, 펑리위안 녀사와 함께 산책하면서 토의하는 장면이다. 올해 새로 건설된 풍치수려한 금수산영빈관에서 산책하면서 조선과 중국의 두 정상은 한반도문제, 지역문제, 국제문제에 관한 깊이 있는 토의를 진행하였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거듭되는 남북정상회담 제안에 응답하지 않았고, 시진핑 주석은 2019년 6월 20일부터 1박2일 동안 조선을 국빈방문한다고 발표하여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대책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러 정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간계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전술적 협동을 실행하였음을 말해준다. 

 

미국에 맞서는 조선과 중국의 전략전술적 협동은 원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제의한 것이다. 2018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진행할 때마다 조선과 중국의 전략전술적 협동에 대해 언급하였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3월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습근평 동지를 비롯한 중국 동지들과 자주 만나 우의를 더욱 두터이하고 전략적 의사소통, 전략전술적 협동을 강화하여 조중 두 나라의 단결과 협력을 굳건히 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5월 7일 중국 다롄에서 시진핑 주석과 단독회담을 하면서 “조중 사이의 전술적 협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치밀하게 강화해나가기 위한 방도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시진핑 주석은 조선과 중국이 전략전술적으로 협동하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의를 적극 찬동하였다. 그리하여 2018년 6월 20일 베이징 낚시터국빈관에서 진행된 단독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새로운 정세 하에서 두 당, 두 나라 사이의 전략전술적 협동을 더욱 강화해나가기 위한 문제들”을 토의하였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중재자로 앞에 내세워 추진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대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의 전략전술적 협동으로 무력화되고 말았다.    

 

 

4. 금수산영빈관에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합의

   

2019년 6월 20일 금수산영빈관에서 진행된 조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중대한 의제들을 토의하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것은 외부에 공개하기 힘든 내용이므로, 공동성명이 발표되지 않았다. 공동성명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이번 조중정상회담에 관한 조선의 언론보도를 종합, 분석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어떤 의제를 토의하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는지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1)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2019년 6월 20일 금수산영빈관에서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조선반도 정세를 비롯한 중대한 국제 및 지역문제들에 대한 폭넓은 의견교환을 진행하시고, 지금과 같이 국제 및 지역정세에서 심각하고 복잡한 변화가 일어나는 환경 속에서 조중 두 당,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깊이 있게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두 나라의 공동의 리익에 부합되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에 유리하다고 평가하시였다”고 한다. 

 

또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9년 6월 2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금수산영빈관에서 산책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각기 자기 나라의 주요대내외정책적 문제들에 대하여 소개하시고 서로의 관심사로 되는 국내 및 국제문제들에 대한 건설적인 의견을 교환하시면서 깊이 있는 담화를 하시였”고 “조중친선관계에서 보다 큰 만족감을 가질 수 있도록 협동을 강화해나가기 위한 일련의 계획들과 조선반도 정세를 긍정적으로 추동해나가기 위한 토의를 계속하시였다”고 한다. 

 

위의 두 인용문은 이번 조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한반도정세, 지역정세, 국제정세를 폭넓게 토의하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 동북아시아지역, 국제사회에 제기된 여러 문제들을 조중 두 나라의 공동리익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전략전술적으로 협동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번 조중정상회담에서 의견의 일치를 본 한반도문제라는 것은 교착상태에 빠진 조미핵협상을 진전시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실현하는 중대현안을 뜻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하여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을 결렬시키고 조미핵협상을 교착상태에 빠뜨린, 조선에 대한 일방적인 핵폐기 요구, 곧 리비아식 비핵화 방안의 부당성을 시진핑 주석에게 설명하였고, 시진핑 주석은 그 설명에 대해 이해와 공감을 표시하였던 것이다. 또한 두 정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비핵화 방안을 철회하는 것으로 조미핵협상을 재개하여 조선식 비핵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해결방도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것이다. 

 

위의 서술은 근거 없는 추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신화통신> 2019년 6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금수산영빈관에서 진행된 조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중국은...조선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여 조선반도의 영구적 안정을 실현하려는 (조선의) 모든 노력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선식 비핵화 방안을 확고히 지지하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이번 조중정상회담에서 의견의 일치를 본 지역문제라는 것은 미국과 일본이 ‘안보동맹’이라는 허울 아래 무력을 대폭 증강하여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문제를 뜻한다. 이와 관련하여 시진핑 주석은 미국과 일본의 도발로 위험수위에 이른 대만문제와 댜오위다오문제에 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설명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에 대해 이해와 공감을 표시하였던 것이다. 두 정상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미일동맹의 무력증강과 도발책동을 저지, 파탄시키기 위해 전략전술적으로 협동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또한 이번 조중정상회담에서 의견의 일치를 본 국제문제라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수출품목들에 대한 고율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과학기술개발을 억제하고 있는 심각한 사태를 뜻한다. 시진핑 주석은 교역부문과 과학기술부문에서 악화되고 있는 중미갈등에 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설명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에 대해 이해와 공감을 표시하였던 것이다. 두 정상은 중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관세부과공세와 과학기술개발억제를 저지, 파탄시키기 위해 전략전술적으로 협동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것이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 베네수엘라에게 무력침공위협을 가하고, 꾸바를 압박하여 국제정세를 불안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심각한 국제정세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하였다. 두 정상은 사회주의국가들과 반미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고립압살책동과 무력침공위협을 저지, 파탄시키기 위해 전략전술적으로 협동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것이다.   

 

이번 조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한반도문제, 지역문제, 국제문제를 조중 두 나라의 공동리익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전략전술적으로 협동하기로 합의한 것은 조선과 중국이 한반도, 동북아시아, 국제사회에서 자행되는 제국주의핵제국의 전횡과 폭력에 맞서 싸우는 반제공동전선을 구축하였음을 의미한다. <사진 4> 

 

▲ <사진 4> 무지와 오해와 편견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는 데서 논리적 해설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때가 있다. 위의 사진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 뜻깊은 장면은 2019년 6월 2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을 국가방문 중인 시진핑 주석과 함께 조중우의탑을 방문한 장면인데, 시진핑 주석이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에 배경으로 나온 커다란 전쟁화는 6.25전쟁 중에 조선인민군과 조선인민들이 중국인민지원군과 힘을 합쳐 미국군과 격전을 벌이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조선에서 말하는 "피로써 맺어진 조중 두 나라 인민들 사이의 불패의 친선단결"이라는 말을 그 그림을 보면서 실감할 수 있다. 금수산영빈관에서 진행된 조중정상회담은 지난날 피흘려 함께 싸운 반제공동전선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여 더 높은 차원에서, 변화된 정세에 맞춰 21세기 조중반제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되었다.     

 

조선과 중국에서는 두 나라의 반제공동전선을 “피로써 맺어진 친선단결”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조선과 중국이 두 차례의 반제전쟁과 한 차례의 혁명전쟁의 불길 속에서 함께 싸우며 전우관계를 맺었다는 뜻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9년 6월 20일 저녁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을 환영하는 국가연회에서 연설하면서 “일찌기 조중 두 나라 혁명가들과 인민들이 공동의 사회주의리념을 실현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의 불길 속에서 서로의 운명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참다운 동지적 우의와 단결, 지지협조의 고귀한 전통을 마련한 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고 한다. 시진핑 주석은 2019년 6월 19일 <로동신문>에 발표한 자신의 글에서 “오랜 기간 중조 두 당의 굳건한 령도 밑에 두 나라 인민들은 외세의 침략을 공동으로 반대하고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서...호상신뢰하고 지지하며 서로 도와주면서 깊고 두터운 우정을 맺었습니다”라고 지적하였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조선과 중국은 일제를 타도하기 위한 항일반제전쟁에서 함께 싸웠고, 1946년 6월부터 1949년 10월까지 지속된 중국혁명전쟁에서도 함께 싸웠으며, 6.25전쟁 중인 1950년 10월 북위 38도선을 넘어 한반도 전체를 무력으로 강점하려던 미국의 북침공격과 핵전쟁도발을 저지하기 위한 항미반제전쟁에서도 함께 싸웠다. 조선에서 말하는 “조중친선의 불변성과 불패성”은 바로 그런 역사를 계승, 발전시키면서 공고화된 것이다.   

 

2013년 6월 7일 시진핑 주석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써니랜즈에서 진행된 미중정상회담에서 ‘신형 대국관계’를 제기하면서 중국과 미국이 싸우지 말고 상호협력하기를 바랐지만, 중국의 굴기위세에 경계심을 느낀 오바마 대통령은 그 제의를 무시해버렸고, 그 뒤를 이어 백악관에 들어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미국을 위협한다는 흑색선동을 늘어놓으면서 중국에 대한 무역전쟁도발, 중국의 과학기술발전억제, 미일동맹의 무력증강 같은 대결정책을 밀고 나갔다. 그런 혼란과 위험 속에서 중국의 전략적 선택은 중국보다 먼저 미국과 정면대결을 벌이고 있는 조선과 손잡고 반제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시진핑 주석은 조선과 중국의 전략전술적 협동을 강화하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안에 적극 찬동하였고, 반제공동전선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제국주의핵제국에 맞서 싸우는 동방의 반제협동전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의 합의로 구축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사회주의공동번영을 위한 상호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9년 6월 20일 금수산영빈관에서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호상 자기 나라의 형편과 사회주의건설위업을 전진시키기 위한 두 당, 두 나라 인민들의 투쟁에서 이룩된 성과들에 대하여 통보하시고 그에 전적인 지지와 련대성을 표명하시였다”고 한다. 

 

조선과 중국이 사회주의공동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전략전술적으로 협동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시진핑 주석의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19년 6월 19일 <로동신문>에 발표한 지신의 글에서 “이미 합의한 협조대상들을 잘 리행하고 두 나라 민간의 친선적인 래왕을 확대발전시키며 교육, 문화, 체육, 관광, 청년, 지방, 인민생활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교류와 협조를 확대하여 두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두 나라 인민들의 복리를 증진시킴으로써 중조친선이 대를 이어 영원히 전해지도록 할 것입니다”라고 썼다. 

 

금수산영빈관에서 진행된 조중정상회담에 조선측에서는 김재룡 내각총리가 참석하였고, 중국측에서는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과 중산 상무부장이 참석하였다. 이것은 이번 조중정상회담을 계기로 조선과 중국이 사회주의공동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전략전술적으로 협동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감행하는 대조선경제제재와 대중국무역전쟁의 혼란과 위험 속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의 전략전술적 협동은 날로 더욱 강화, 발전될 것이며, 그 협동의 길에서 두 나라는 사회주의공동번영을 이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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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트럼프 친서 받아…“흥미로운 내용 심중히 생각”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6/23 10:17
  • 수정일
    2019/06/23 10:1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입력 : 2019.06.23 08:2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23일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23일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부터 친서를 받고, 친서의 내용을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북한 매체가 23일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 동지께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어 왔다”며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어보시고 훌륭한 내용이 담겨있다고 하시면서 만족을 표시하셨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한다”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는 사진도 공개했다. 친서를 보내온 시점과 친서의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김 위원장이 친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잇따라 공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이 보내온 친서에 대해 “아름다운 친서”라고 평가했다.

북·미협상이 교착된 가운데 양국 정상이 친서를 교환하고 그 내용을 공개적으로 긍정 평가하면서 협상 재개의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특히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하고 이번 친서 내용을 ‘심중히 생각’하겠다고 밝혔다는 언급으로 볼 때 협상안과 관련한 미국 측의 새로운 입장이 친서에 담겼을지 주목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6230821001&code=910303#csidx09e3e3ce138f7cda5b43f588febf6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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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은 대학생들에 대한 공안탄압 중단하라!

검경은 대학생들에 대한 공안탄압 중단하라!
 
 
 
대학생통신원 
기사입력: 2019/06/22 [17:2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대진연이 공안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생통신원

 

22일 오후 3시 서울 경찰청 앞에서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대진연)이 공안탄압 규탄 및 중단’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4월 12일 검경은 나경원 의원실에 면담 요청을 하러 갔던 22명의 대학생 중 한 명에게 영장을 청구했으나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됐다. 6월 14일 검경은 지난 2월에 진행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참여했던 김한성 대진연 상임대표에게 영장을 청구했으나 17일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됐다.

 

대학생들은 국민의 염원인 적폐청산자유한국당 해체’ 요구를 대변해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와 나경원 의원 사무실을 찾아갔던 것이었다그런데 검경은 대학생들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고 오히려 적폐 세력에 동조하며 대학생들에게 영장청구를 했다.

 

이에 대진연은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경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것이다.

 

기자회견 첫 번째 발언은 나경원 의원실 면담 요청 갔다가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윤태은 학생이 했다.

 

윤태은 학생은 어제 21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학점과 토익점수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자기 아들이 대기업에 채용이 됐다는 말을 했다지금 이 대한민국에 그런 스펙으로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이는 명백한 채용 특혜다산불 피해를 막았던 나경원과 황교안 아들 KT 특혜채용김학의 성접대 특수강간 등 부정비리에 분노해 나경원 사무실을 찾아갔다고 발언했다

 

계속해 윤태은 학생은 국회 내 직원들은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고 무시했으며 결국 연행까지 됐다. 50 시간이 넘는 동안 유치장에 있으며, ‘이 사회의 공권력이란 무엇인가경찰들은 돈 있는 자들만을 봐주는구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러나 대진연은 이런 적폐와 부정비리에 맞서 끝까지 싸워 나갈 것이다며 결의를 다지는 말을 했다.

 

두 번째 발언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규탄 기자회견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김한성 대진연 상임대표가 했다.

 

김한성 상임대표는 “5.18 망언을 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려 했다가 갑작스레 연행됐다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연행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나중에 경찰이 휴대폰과 노트북을 영장 청구로 뺏어갔으며 결국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한성 대표는 대진연에 당국의 공안 탄압은 계속 더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리고 있다이런 탄압에 굴하지 않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대학생들이 앞장설 것이다고 발언했다.

 

세 번째 발언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기자회견에서 연행됐던 이인선 학생이 했다.

 

이인선 학생은 검경은 자유한국당에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에게만 탄압하고 있다검경이 이미 적폐세력의 편에 선 것은 아닌가경찰과 정치권의 정경유착을 끝내고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기자회견 마지막 발언으로 나경원 의원에 면담 요청을 했던 22명의 학생 중 한 명이었던 엄재영 학생이 했다.

 

엄재영 학생은 연행 됐던 22명의 학생이 순차적으로 10몇 시간 뒤 10마지막 2명중에 한명은 풀려나고 나머지 한명이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일 자체가 어이가 없다. 10명씩 나눠서 내보낸 사실들구속 영장을 청구했던 일은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에게 겁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과연 지금이 2019년이 맞는지 의심스럽다그러나 대학생들은 굴하지 않고 투쟁하겠다고 발언했다.

 

▲ 최예진 서울 대진연 대표(왼쪽) 김한성 대진연 상임대표(가운데), 김재영 경기 대진연 대표가 항의서한문을 전달하려 경찰청으로 가고 있다     ©대학생통신원

 

경찰청에 항의 서한문을 전달하는 대학생 대표들   ©대학생통신원

 

이어 김재영 경기 대진연 대표와 최예진 서울 대진연 대표가 항의서한문을 낭독했다.

 

항의서한문 낭독 후 김한성 대진연 상임대표최예진 서울 대진연 대표김재영 경기 대진연 대표가 함께 경찰청에 항의서한문을 전달하고 기자회견은 끝났다.

 

한편 대진연은 22일부터 매일 경찰청 앞에서 당국의 공안탄압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아래는 항의서한문 전문이다

 

-------------------------------아래----------------------------------

 

 

<항 의 서 한 문>

 

대학생 단체에 대한 경찰의 무리한 공안탄압이 도가 지나칠 정도로 일어나고 있습니다지난 4월 반민특위 망언을 했던 나경원 의원과 김학의 수사 은폐 의혹을 가진 황교안 자유한국당 당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나경원 의원실에 면담 요청을 하러 갔습니다하지만 면담 요청은커녕 경찰의 무차별적인 연행만이 돌아왔습니다당시 연행되었던 22명의 대학생 중 한 명에게는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지만 기각되었습니다.

 

지난 2월 일산 킨텍스에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열렸습니다이날 자유한국당의 5.18 망언세월호 망언을 규탄하기 위한 시민 단체들의 기자회견 역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하지만 기자회견은 시작하지도 못한 채 경찰은 71명이라는 유례없는 인원을 무리하게 연행했습니다뿐만 아니라 6월 11일 기자회견에 참가했던 한국대학생진보연합 김한성 상임대표를 포함한 세 명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지난 6월 17일에 영장 실질심사가 있었지만 기각되었습니다.

 

기자회견만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처사이며대학생 단체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탄압입니다자유한국당이 불법적인 국회 점거 했지만 해당 의원 중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하지만 같은 시기 면담을 요청하고 기자회견을 하려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학생들에게는 너무나 쉽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로 세워졌고 적폐청산은 당장 이루어져야 할 국민들의 요구입니다하지만 경찰은 공권력을 적폐청산에 사용하지 않고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했던 대학생들에게 휘두르고 있습니다시대착오적인 경찰의 공안탄압은 당장 중단되어야 합니다따라서 과도하고 무리한 공안탄압에 대한 경찰청의 책임있는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합니다.

 

2019년 6월 22

한국대학생진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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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도 감탄한 명연설, 재판정을 뒤집어 놓은 사진작가

[문재인 시대에 국가보안법을 논하다 ④] 평화통일 운동가 이시우

19.06.22 19:28l최종 업데이트 19.06.22 19:28l

 

 

이시우 작가는 민통선과 용산미군기지 일대를 촬영한 혐의 등으로 2007년 구속됐다. 당시 이 작가에게는 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 탐지·누설, 이적표현물 제작·반포, 반국가단체 소속 인물과 회합·통신 등 20가지가 넘는 죄목이 쓰였다. 

이 작가는 검찰로부터 10년 구형을 받았으나 2008년 1월 열린 1심 재판에서 이정희 변호사 덕분에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해당 사건은 2011년 10월 13일 대법원에서 공소 사항 전부에 대해 완전 무죄 판결로 마무리됐다. 당시 이시우 작가의 무죄 판결은 한국 사회의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시우 작가는 국가보안법 위반 소식을 접하고 도피 및 수배 생활을 했다. 구속 이후에는 스스로 무죄 판결을 위해 예술가로서 창작의 자유를 바탕에 둔 논리를 구상하여 재판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재판정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할 정도였다. 국가보안법 체제와 그 안에 살아가는 예술가라는 관점에서 그의 이런 행동은 재조명될 가치가 충분하다. 

이에 청년담론은 이시우 작가를 직접 만나 당시의 경험을 듣고 국가보안법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본 기사는 2018년 12월 이시우 작가 자택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나는 출두 대신 도망을 택했다 
 

 이시우 작가
▲  이시우 작가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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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 위반 소식을 접했던 당시 심정은 어땠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기사로 접했다고 들었다. 
"나에 대한 내사는 2004년부터 진행되었다고 들었다. 기사로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를 처음 접한 후 작성한 기자에게 전화도 해보았다. 아마도 경찰이 기사로 먼저 흘리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떠보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 사람이 '내가 당당하게 출두해 모든 걸 밝히겠다.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나한테 지금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가'를 먼저 생각했다. 당시 상황을 먼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일단 2007년 한국은 미국에 전시작전권을 돌려받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전시작전권을 돌려주는 대신 '유엔사를 강화'해 이러한 합의를 무력화하려는 구상이 눈에 보였다. (전시작전통제권은 노무현 정부에서 2012년 4월까지 돌려받기로 합의를 하였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정치-군사적 상황으로 인해 지연되었다.) 

이에 나는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며 관련 글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유엔사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막지 못하면 전시작전권을 환수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에서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결국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는 나에게 유엔사 해체와 관련한 글을 쓰지 못하게 해 입에 재갈을 물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제 발로 검찰의 소굴로 들어가는 건 공안세력을 돕는 것임이 명백해보여 도피 생활을 시작했다. 단순히 도망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유엔사 강화를 막기 위한 글도 계속 써 내려갔다. 변호사는 '도주로 간주돼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감수하기로 했다. '유엔사 강화'라는 공안세력의 의도를 차단하는 것이 진정한 저항이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감옥에 있었던 시간보다 수배 중이던 시간이 더 힘들었다.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피 생활 중에는 온종일 유엔사와 관련된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통일뉴스 등에 글을 올릴 때는 숙소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글을 부치러 가는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누가 "이 선생님, 이제야 뵙네요" 했다. 사복경찰 4~5명이 잡으러 왔다. 경찰차에 실려 남대문 경찰서로 가는데 국가보안법이라는 망령이 나의 손을 턱 잡는 느낌이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유령 같은 것이 내 손을 잡고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 가족들이 겪었을 고초 또한 걱정된다. 어떤 고충을 겪었는지 궁금하다. 
"미안했다. 내가 도피를 위해 새벽에 집에서 나오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경찰들이 집에 들이닥쳤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겪고 나면 제일 먼저 동네 사람들의 눈초리가 무섭다. '저 사람 집에 시커먼 옷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치네'하는 것만으로 동네에서 낙인이 찍힌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있었대' 하면서 소문이 금방 퍼지기 마련이다. 어떤 분들은 도움을 주지만 또 어떤 분들은 외면한다. 그동안 동네에서 쌓아온 인간관계가 다 드러나는 순간이다. 

당시 아내는 공장에 다니면서 생계를 이어가던 노동자였다. 하지만 내가 체포된 후 본격적으로 조사를 받게 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아니,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생계를 이어갈 수단이 사라지자 아내는 주변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그게 아주 힘들었다. 수배 생활 중에도 돈이 필요하니 가족들에게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이중, 삼중으로 손해를 끼치고 있었다. 아내는 거의 정신을 놓고 살았다. 하루는 서울에서 시위를 하고 돌아오는 데 빨간불에 그냥 길을 건너려고 했다고 한다. 중학생이었던 아이가 "엄마 왜 그래"하면서 말릴 정도로 혼이 나간 채 살았다. 가족들에게 끼쳤던 피해는 평생 짐으로 남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재판 과정에서 판사의 감탄을 끌어내다
 
 '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진 대법원 청사.
▲  "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진 대법원 청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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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재판 중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재판에 임하는가'가 매우 중요했다. 구속되면서 바로 단식에 들어갔다. 국가보안법을 거부하면서 법 자체도 거부한다고 했는데, 재판을 받는 것이 법을 인정하는 것처럼 되는 것 같아 고민이 되었다. 변호사는 만약 재판을 받게 된다면 몸을 회복해 재판에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판을 결국 받기로 한 순간, 방어가 아니라 꼭 이겨야 한다는 것이 재판의 목적이 되었다. 

검찰은 사진을 찍고 글을 쓴 것에 국가보안법 위반을 걸었는데 나는 '국가보안법'이라는 틀을 '창작의 자유'라는 틀로 바꿔보고자 했다. 창작의 자유라는 틀로 검사도 설득할 수 있도록 게임의 규칙을 다시 정하고자 했다. 변론 과정에서 예술 작품들을 슬라이드로 하나씩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진행했다. 이 사진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찍었다는 등 창작이라는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 설명했다. 

'지뢰밭에서 지뢰를 찍을 때 혹시라도 지뢰를 밟을 수 있어서, 사진이라도 살리자는 마음으로 사진기를 던지고 디딤돌을 밟고 나왔다는 과정 등을 설명했다. 창작은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들을 했다. 나중에는 판사가 자기도 모르게 '아...'하면서 감탄했다. 그때 창작의 자유로 재판의 룰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또 하나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적 표현물 소지 혐의'였다. 북한의 책을 연구했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정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리고 국정원에서 대출하는 북한 책을 신청을 해보았다. 검찰이 문제 삼았던 책들을 전부 신청했는데 일주일 후 국정원에서 책을 받으러 오라고 이메일이 왔다. 검찰이 완벽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적표현물 소지'는 이적의 목적으로 활용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인데 나는 그 책을 이용해 학술 활동을 했을 뿐이었다."

-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기 위해선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근본적으로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기본적인 철학적 배경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보안법의 본질은 외부에 있는 적을 내부로 끌어오는 것이다. 세상을 볼 때 보통 나와 세계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밖에 있는 세계를 나에게 심어놓은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우리 사회에 적이 있다. 그 적이 현재 안에 들어와 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합법적인 활동 영역 내에서 내부의 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국가보안법을 돌이켜보는 과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
종북이라는 프레임의 문제가 크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사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북한'과 '국가보안법'을 빌미로 일어났다. 통합진보당 사태도 마찬가지다. 진보적인 사람 중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문제로 닥쳤을 때 북한에 대한 관점이나 태도에 대해 현실적으로 거부하고 분열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표방하는 명문과 내면의 심리가 달리 작동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다. 국가보안법 반대 투쟁은 국가보안법 자체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보안법을 없애도 반공적 분위기가 계속 살아있다면 또 다른 이름의 국가보안법이 생길 수 있다. 법 자체를 없애는 것도 첫 단계로 중요한 목표지만 이 체계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청년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 마지막으로 우리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청년이라면 대학생뿐만 아니라 취준생, 직장인 등 많은 20·30세대가 힘든 삶을 겪고 있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청년들이 문제가 있다'라고 계속 떠드니까 청년들 스스로 문제 덩어리인 것처럼 느끼고 있다. 사회는 청년들한테 특별히 해준 것도 없으면서 자꾸 청년들한테 문제라고 한다. 그것도 어찌 보면 사회가 테두리 쳐놓는 편견일 수 있다. 오히려 청년들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대 세계는 사람을 끊임없이 수동적으로 만든다. 수동적으로 만들어야 통치가 편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힘든 상태다, 수동적이어야 잘 이해한다'고 하니 정말 수동적으로 변하곤 한다. 그 프레임 자체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왜 삶이 어렵지? 내가 왜 이 고통에 수긍해야 하지?'라는 의문을 근본적으로 가져보는 것부터가 오히려 여러 가지 부분적 대안들로 현실을 땜질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시우 작가의 경험은 한국 사회에서 매우 특수하다. 도주를 비롯해 국가보안법이라는 프레임을 창작의 틀로 바꿔 승소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또한 자신을 비롯해 가족들까지 장기간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이시우 작가의 바람대로 국가보안법은 법 자체의 폐지부터 국가보안법 체제라는 사회 자체가 변화해야 할 것이다.

[기획 / 문재인 시대에 국가보안법을 논하다]
① 
국가보안법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는다 ☞ http://omn.kr/1jn4t
② 
평양냉면 칭찬? 마음만 먹으면 '국가보안법 위반'입니다 ☞ http://omn.kr/1jn5e
③ 
문재인정부 1호 '간첩' 사건... "이런 식이면 정상회담 왜 하나?" ☞ http://omn.kr/1jn4v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청년지식공동체 청년담론'에서 함께 기획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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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남북관계 위기는 청와대에 포진한 친미 간신배들의 농간이 불러온 인재이다

"대통령도 문제지만 참모들이 더 문제" 정세현 전장관 지적 주목해야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6/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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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청와대는 이나라 백성들의 소원을 실현하는 기구인가아니면 제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인가

 

지금 조성된 남북관계의 위기상황을 보면 이같은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아무리 식민지 땅이라지만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누구하나 직언을 해서 나라의 최고이익을 고수하려는 충절이나 지조는 볼수조차 없으니 말이다온통 대국의 눈치만 보면서 제몸사리기에만 급급하니 <청와대총독부>라는 오명을 쓰는것이 아닌가

 

최근 청와대 참모들과 정부 각료들의 망국적인 저자세가 갈수록 국민적 분노의 대상이 되고있다대체  그리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는가 하는 공분이 그것이다그럴것 같으면  북에다대고 그리도 거창한 합의를 하고 생색을 냈는가눈치를 보고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면 애당초 하지를 말아야 할것 아닌가온통 제몸사리기에만 급급하고 자리지키기에만 급급한 친미 간신배무리들만 들끓으니 일이 제대로 될리 만무하지 않은가하는 탄식이다오죽했으면 통일부 전장관이 공식행사장에 나와서 통일부와 청와대가 지금 대체 무엇을 하고있느냐고 호통을 치는 일까지 생겨 나겠는가

 

정세현 전장관은 "지금 통일부 장관이 축사나하고 다닐때냐"면서 "대통령도 문제지만 청와대 참모들이  문제"라고개탄했다6·15 공동선언 19주년기념 특별토론회 '기로의 선 한반도의 운명내일은 없다'에서 기조발제를 하면서이다이는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떠난 김연철 장관을 거의 면전에서 겨냥하다시피 한 것이었다정 전 장관은 "저는 (장관 시절축사할 시간도 없었다매주 회담 준비하느라 바빴는데 후배 장관이 축사만 하고 다닌다어제도 축사를 했다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도 비판했다. "저는 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 관계의 종속 변수가 아니다'라고 해서 상당히 기대를 가졌다" "그런데 미국이 계속 북미·남북 관계가 같이 가야 된다고 발목을 잡아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고 탄식했다그러면서 "한반도운전자론에서 미국결정자론으로 끌려간 것은 문 대통령의 문제가 아니다참모들이 더 문제"라며 "이번 정부의 참모들은 대통령의 발목을 너무 잡는 것 같다빨리 대응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것은 비단 전직 각료 한 사람만의 우려표명이 아니다현재 남북관계를 보는 전체 민족성원들이 느끼는 안타까움과 낙심을 표현한 것이다이번 발언을 보면서 국민들은 속이 다 후련해 하고 있다

청와대와 통일부는 정신차려야한다지금까지 해오던대로 미국대사관의 지시나 받고 한미워킹그룹 따위의 승인이나 얻어가면서 '안전하게일을 도모하겠다는 것은 사대주의가 골수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주인국의 동의를 얻지 않고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수 없다' 자세는 노예근성에서 비롯된 심각한 사대정신질환 증세일 뿐이다자기결정을 하는데  누가 뭐라할 것이란 말인가

미국이 무소불위가 아니다지금은 열망하는 국민들이 뻔히 지켜보고 있다우리민족끼리 하겠다면 가장 겁을 내는 것이 바로 주인국이다해보지도않고 겁부터 내는것은 황제국에 대한 노예의식에서 비롯된 자기검열일 뿐이다미국이 잡아먹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해보지조차 않고 미리 알아서 비위를 맞추려 하는가무조건 저질러놓으면 미국은 따라올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무엇이 그리도 두렵단 말인가미국이 우리운명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사대주의는 심각한 병이다자기의 주권을 자기것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무서운 정신질환이다청와대에 들어가 일하는것이 미국과의 호흡맞추기 자리정도로 인식한 청와대참모들이라면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것처럼 청와대 참모들의 미국간첩화는 식은 죽먹기일 것이다청와대와 외교부 통일부 실무자들이 미국과 긴밀하게 내통하는 상황에서 허수아비 대통령의 뜻이 무산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 전장관의 말처럼 대통령이 남북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었던것이 결코 아니다다만 그에게는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확고한 민족관이 부족할 따름이다그가 흔들리려해도 청와대주변에 충언을하는 충신이있다면 얼마든지 운전대를 잡고 헤쳐나갈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것이다그런데도 청와대 참모나 장관이라는 이들이 흔들리는 대통령의 마음을 잡아줄 생각은 하질않고 한가하게 미국눈치나 보고 미국에 충성하려 하고 있으니 어찌 일이 제대로 풀려 나가겠는가

역적은 따로 있는것이 아니다민족의 운명이 걸린 절호의 시점에서 국가의 이익에 배반하는 행위에 가담한 자들을 역사는 역적으로 규정한다통일이상으로 우리민족에게 국익이 어디있는가청와대 안팎의 역적들은 지금이라도 한미공조라는 이름으로 국익을 내다파는 미국과의 내통행위를 중단하고 민족의 절실한 요구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박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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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는 국민"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이 컬러링 바꾼 이유

<유 레이즈 미 업>으로 '국민 우선' 강조... 김수현 실장-윤종원 수석의 고별사

19.06.21 17:28l최종 업데이트 19.06.21 17:33l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오전 김수현 정책실장 후임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윤종원 경제수석 후임에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을 임명했다. 이날 오후 청와대 브리핑실에서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오전 김수현 정책실장 후임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윤종원 경제수석 후임에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을 임명했다. 이날 오후 청와대 브리핑실에서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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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이 휴대전화 컬러링을 바꿨다. 기존의 컬러링을 아일랜드 출신의 아카펠라 그룹 '웨스트라이프'(Westlife)의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으로 바꾼 것이다.

웨스트라이프의 노래 <유 레이즈 미 업>에는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당신의 어깨 위에 서 있을 때 저는 더 강해질 것입니다)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당신이 저를 일으켜 세우실 때 혼자의 모습보다는 더 강해질 것입니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21일 공정거래위원장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상조 실장은 "여기서 'You'는 국민이다"라며 "저는 국민의 격려와 지원 위에서만 간신히 일어설 수 있는 미약한 사림이다, 많은 조언을 부탁드린다"라고 요청했다.

[김상조 실장]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 왜 제시했느냐면..."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에 각각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과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을 임명했다(관련 기사 : '재벌개혁 전도사' 김상조 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입성). 오후 2시께 김상조 정책실장과 이호승 경제수석이 춘추관을 찾아 기자들과 만났다.

발언에 나선 김 실장은 먼저 "제가 공정거래위원회 재직 2년 만에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옮기게 되었다"라며 "저의 미흡한 역량을 생각할 때 너무나 뜻밖이고, 공정위에서 계획했던 일들을 감안하면 아쉬움도 없지 않으나 정무직 공무원이 임명권자의 뜻을 따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에 감히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김 실장은 "저를 정책실장에 임명한 대통령의 뜻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라며 "대한민국은 이른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각고의 노력 끝에 놀라운 성공을 이루었고, (이는) 우리 모두가 자부심을 가져야 할 기적과 같은 성과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실장은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성공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과거의 성공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게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라며 "과거의 밝은 면은 계승해야 하나 과거에 안주한다면, 과거로 회귀하고자 한다면 실패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대적 과제로 제시한 배경이다"라며 "여기에는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리라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과도기에 굴곡 있을 수 밖에 없어... 일관성·유연성 필요"

이어 김상조 실장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미래의 경제 패러다임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혁신적 포용국가'를 언급했다.

김 실장은 "문재인 정부는 혁신적 포용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3대 축으로 해서 국민 모두가 함께 잘사는 사람 중심 경제의 길을 가고자 한다"라며 "물론 예정된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또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 1년, 2년 만에 달성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과도기에 굴곡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시 당연하다"라며 "하나의 선험적 정답, 만병통치약식 처방을 고집하는 것이야말로 실패를 자초하는 길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따라서 경제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일관성과 유연성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기준을 조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라며 "'혁신적 포용국가'를 위한 '사람 중심 경제'라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는 21세기의 모든 국가들이 지향하는 정책 목표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따라서 그 방향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정부가 정책기조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기업을 비롯한 시장경제 주체에게 예측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실장은 "물론 국내외 경제 환경의 변화에 부응해서 정책의 내용을 보완하고,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등의 유연성을 갖추는 것 역시 필수다"라며 "대통령도 여러 차례 말했고, 또 2019년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명시적으로 밝혔듯이 성과가 확인된 것은 더욱 강화하고, 시장의 기대를 넘는 부분은 조정하는 것이 정책의 기본이다. 지난 2년간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라고 짚었다.

김 실장은 "정책의 일관성과 유연성을 조화시키기 위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서 경청과 협의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라며 "또한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책무를 수행하시는 국회의 여야 의원님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그 고견을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마지막으로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것이다"라며 "재계와 노동시민사회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 모두가 체감하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오전 김수현 정책실장 후임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윤종원 경제수석 후임에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을 임명했다. 이날 오후 청와대 브리핑실에서 이호승 신임 경제수석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오전 김수현 정책실장 후임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윤종원 경제수석 후임에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을 임명했다. 이날 오후 청와대 브리핑실에서 이호승 신임 경제수석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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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승 경제수석] "경제팀의 유기적 조율 지원하겠다"

이어 이호승 수석은 "세계경제 여건이 어렵고, 하방위험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중책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라며 "혁신과 포용이 서로 선순환하면서 경제사회발전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정책적으로 잘 뒷받침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이 수석은 "우선 투자‧소비 등 내수와 민생 활력을 높이면서 대내외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최우선 책무라고 생각한다"라며 "아울러 경쟁력과 생산성이 정책의 기본이 되도록 하겠다"라고 향후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이 수석은 "문제의식과 아이디어를 가진 분들을 널리 찾고 만나겠다. 정책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정부 내 칸막이가 없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경제팀이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조율되고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도록 충실히 지원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오전 김수현 정책실장 후임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윤종원 경제수석 후임에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을 임명했다. 이날 오후 청와대 브리핑실에 정책실장과 경제수석들이 인사말을 하기위해 모여 있다. 왼쪽부터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 김수현 전 정책실장, 윤종원 전 경제수석, 이호승 신임 경제수석.
▲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오전 김수현 정책실장 후임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윤종원 경제수석 후임에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을 임명했다. 이날 오후 청와대 브리핑실에 정책실장과 경제수석들이 인사말을 하기위해 모여 있다. 왼쪽부터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 김수현 전 정책실장, 윤종원 전 경제수석, 이호승 신임 경제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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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김수현 실장] "새로 오신 분들이 더 혁신적으로 일할 것"

이날 떠나는 김수현 정책실장과 윤종원 경제수석의 '고별사'도 있었다.

김수현 실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에서 일을 시작했다. 2년 조금 더 지났다"라며 "그동안 큰 영광이었다"라고 소회를 말했다.

김 실장은 "그런데 집권 중반기를 맞이해서 더 활기차고, 혁신적으로 일할 분과 교대할 때가 된 것 같다"라며 "그래서 새로 오신 분이 더욱 더 혁신적으로 일을 하리라 믿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어느 자리에 있든 문재인 정부의 노력을 성원하고, 또한 마음을 모으겠다"라고 덧붙였다. 당분간 휴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부처 장관 등으로 재발탁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떠나는 윤종원 수석] "혁신적 포용국가 완성해 달라"

또한 윤종원 경제수석은 "1년에서 일주일 빠진 51주 전에 이 자리에 왔다"라며 "제가 '경제팀 간에 팀워크를 통해 포용적 성장을 위해서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회고했다.

윤 수석은 "그동안 우리 경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경기적이고, 구조적이고, 추세적인 도전과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혁신과 경제포용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해왔다"라며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윤 수석은 "아직도 전체의 성과를 국민들이 체감하기가 어렵고, 경제문제 때문에 여전히 마음 아파하는 국민들, 계층이 있다는 것에 송구스럽고, 가슴 무겁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윤 수석은 "앞으로 혁신적 포용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과제에서 신임 실장과 신임 수석이 완결해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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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공습 철회" 언론에 흘렸나...보도 맥락과 배경은?

민주당도 "상황은 심각"...이란의 격추 능력에 놀라
2019.06.21 15:54:53
 

 

 

 

내년 미국 대선만 아니었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해 군사공격을 감행했을까?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저녁 7시 35분(이란 현지시간으로는 20일 오전 4시 5분) 발생한 이란의 미국 무인정찰기(드론) 격추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에 대한 공격을 승인했다가 돌연 철회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국방부와 국무부 관료들은 이날 오후 7시(미국 현지시간ㆍ한국시간 21일 오전 8시)까지만 해도 예정대로 공습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공습 목표는 이란의 레이더 시설과 미사일 기지 등을 정밀 타격하는 것이었다. 
 

▲ 이란에 대해서는 강경파로 뜻을 함께 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오른쪽)이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UPI=연합


기밀 브리핑 받은 민주당 지도부도 "위험한 상황"

 


트럼프 대통령이 계획을 철회하는 지시를 내릴 때 작전은 이미 미사일을 발사하기 직전 준비작업 단계에 들어갔었다. 항공기들은 상공에 떠있고, 군함들은 정위치에 대기중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란에 대한 공습 결정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진과 공화당 지도부가 심각한 논의를 거쳤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받은 정부 고위 관료들을 인용한 보도라고 밝혔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2017, 2018년 시리아에 대한 두 차례 공습 이후 중동의 목표물에 대한 세 번째 공습이 될 뻔 했다"고 전했다.

공습 계획이 돌연 철회된 배경에 대해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을 바꾼 것인지, 병참이나 전략적 이유로 계획을 변경한 것인지, 공습계획은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공습 계획과 철회와 관련해 취재에 들어가자 백악관과 국방부 관계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지만 <뉴욕타임스>에게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요청도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이란 겁주기 공습 쇼"라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쇼'로만 보기에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이란은 대당 1억3000만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무인정찰기를 지대공 미사일로 격추했다. 미국의 보복 공습은 민간인 살상 등 우발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란 현지시각으로 21일 새벽 실시될 예정이었다. 보도대로라면 미국 현지시간으로 전날밤이라는 점에서 공습 예정 시간 직전에 철회 명령이 떨어진 것이 된다. 

이란은 미국의 드론이 반복된 경고 신호를 무시하고 이란의 영해 안에 진입해 격추했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이란의 앞바다이지만 이란의 영해에서 떨어진 공해상인 호르무즈 해협 인근 오만만에서 격추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에 대해 군사적 공격으로 보복할 것인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 참모들의 의견도 갈렸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지나 해스펠 CIA 국장은 군사적 대응을 지지했다. 하지만 국방부 고위관료들은 이란에 대한 공습은 중동에 있는 미군을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경고하는 입장이다. 

미국이 이란을 공습할 명분은 이미 충분하다. 미국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최근 오만해에서 유조선들이 공격을 받은 배후를 이란으로 지목하고, 미국의 드론도 공해상에서 이란이 격추했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를 갖기 직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드론이 공해상에서 격추됐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기록된 근거가 있다"면서 "이란의 미군 무인기 격추는 매우 큰 실수"라고 경고했다.  

게다가 이란은 지난 2015년 타결된 이란 핵협상의 핵심 조항인 농축 우라늄 제한을 파기할 것을 조만간 선언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협상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으면서도 이란의 핵무기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해 왔다.

백악관은 중대한 군사 기밀 브리핑을 의미하듯 민주당 지도부까지 상황실에 불러들여 설명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브리핑을 받은 후 "어떠한 군사적 행위도 의회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촉구하면서도 상황 자체는 심각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은 "이란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확산시키고, 중동 지역에서 테러를 지원하는 등 위험한 나라"라고 말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심각한 군사적 위기를 피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지도부를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대신 "경솔하고 어리석은 자가 드론을 격추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본다"면서 이란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두고 봅시다"라고만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인기가 아니라 조종사가 탄 비행기가 격추된 것이었다면 훨씬 중대한 문제가 되었겠지만, 미국의 조종사가 위협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매우 큰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국방부가 이란 공습의 후폭풍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중 하나로 이란의 군사기술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꼽힌다. 이란이 격추한 미국의 드론은 이란의 지대공 미사일을 피할 수 있도록 개발돼 고고도로 비행중이었다. 이때문에 일부 미 국방부 관료들은 "이번 드론 격추는 미국이 중동 지역에 더 많은 병력과 정찰을 시행할 경우 이란이 미국을 난처한 처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역량을 보여준 것"이라고 놀라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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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당국자, “한반도 대화 신동력 불어넣었다”

“시진핑 국빈 방북은 우호의 여행이자 평화의 여행”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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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22  09: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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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전 평양 금수산영빈관 경내를 산책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 [신화통신 캡쳐]

“시진핑 총서기의 이번 (북한) 방문은 우호의 여행(友好之旅)이자 평화의 여행(和平之旅)이다.”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21일 오후 관영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중국은 중조 전통우의을 다지는데 힘을 쏟고, 조선의 신 전략노선을 지지하며,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추동한다는 확고한 결심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특히,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이 국내외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시기적 중요성” 때문이라며, “각국이 (한)반도 대화를 추동하는데 힘을 보태고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 계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20~21일 시 주석의 ‘국빈 방북’이 기대했던 목표에 도달했고 원만한 성공을 거뒀다”고 자평한 쑹 부장은 세 분야로 나누어 구체적인 성과를 밝혔다. 

첫째, “중조 양당 양국 최고지도자들이 깃발을 들어 방향을 정하고 중조우의(북중친선)을 새로운 장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시 주석의 방북은 북중 수교 70주년을 기념하는 이벤트이고, 지난해 3월 이후 북중 최고 지도자의 5번째 만남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최고지도자가 지난 19일 북한 <노동신문>에 기고를 실어 “중조우의를 이어가며 시대의 새 장을 쓰고자 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21일 오전 10시 시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이 함께 평양 시내 ‘중조우의탑’을 찾았다. 전날 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시 주석의 북중관계 발전법칙 총화에 찬동하고 “시진핑 총서기의 이번 조선 국빈방문은 조선 당과 정부, 인민에 대한 거대한 정치적 지지와 고무이자 전 세계를 향해 북중친선을 한껏 과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측은 “고위층 상호방문을 더 긴밀하게 하고 중조 전통우의와 양당과 양국관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더 큰 발전을 추동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둘째, “국정경험을 서로 교류하여 새 시대 중조관계의 내용을 채우기로 했다”는 점이다. 

시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운 전략노선을 견지하고 경제발전에 집중하기로 한 정치적 결단을 높이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과 경제.민생 발전에 대한 시 주석의 관심에 감사를 표시했다. 양측은 북중 수교 70주년 기념 계기에 실무협력을 확대하고, 우호교류를 심화하며, 농업, 관광, 교육, 체육, 언론, 청년, 지방 등에서 교류협력을 전개하기로 했다. 

셋째, “‘책임대국’을 과시하고 (한)반도 정치대화에 새로운 동력을 주입했다”고 자부했다. 

쑹 부장은 “조선반도 문제에서 중국은 ‘책임대국’을 견지해왔다”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 평화와 안정,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견지하면서 적극적으로 평화를 권하고 회담을 촉진하여 대화 추세를 다지고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데서 건설적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시진핑 총서기와 김정은 위원장은 현재 반도 정세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화 프로세스를 유지할지 깊이 있고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고 알렸다. 

쑹 부장에 따르면, 시 주석은 “반도 정세는 지역 평화안정과 관련된 문제이고 반도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는 것인 정확한 선택이며 전략적 높이와 장기적 관점에서 정세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반도 평화와 안정을 확실히 유지하며 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여 지역의 장기적 안정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지난 1년 간 조선 측이 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재개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적극 평가하고, “중국은 조선을 비롯한 유관국들과 소통과 협조를 강화하여 반도 문제의 대화협상 프로세스를 추동하고 지역 평화안정 발전번영에 적극 공헌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인내심을 유지하면서 반도 정세를 관리하고 반도 평화 안정을 유지하며 조선의 발전에 좋은 외부환경을 만들겠다”고 호응했다. 이어 “유관국들이 조선과 함께 각자의 합리적 우려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고, 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에서 새로운 진전을 촉진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쑹타오 부장은 “친한 이웃은 나라의 보물”이라고 강조했다. “주변은 우리나라(중국)가 발붙이고 살 곳이자 발전번영의 토대”라며 “주변 안전과 안정 수호는 우리나라 전략이익에 관한 일”이라고 했다. 특히 “지금 세계가 100년 만에 유례없는 큰 격변기에 직면”했다는 정세인식도 드러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무역전쟁을 전방위로 확대하며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20일 낮 12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은 위원장 부부의 영접을 받았다. 공항 환영행사, 평양 시내 카퍼레이드, 금수산태양궁전 앞 환영행사, 금수산영빈관에서 회담과 만찬,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불패의 사회주의’ 관람 등 첫날 일정을 소화했다. 21일 오전 10시 김 위원장 부부와 모란봉구역에 있는 우의탑을 참배했다. 이어 금수산영빈관에서 김 위원장 부부와 경내를 산책한 뒤 오찬을 함께 했다. 오후 3시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 위원장 부부의 환송을 받으며 귀국길에 올랐다. 이틀 간 평양 시민 수십만명이 거리에 나와 양국 국기와 꽃술을 흔들며 ‘국빈’을 맞이하고 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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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민주노총을 가둔 노동존중 세상은 없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6/22 10:03
  • 수정일
    2019/06/22 10:0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주노총, “민주노총을 가둔 노동존중 세상은 없다”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06/22 [07:1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영장실질심사 출두에 앞서 발언하고 있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사진 : 노동과세계)     © 편집국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국회 앞 노동법 개악 저지’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21일 밤 구속된 것에 대해 민주노총은 민주노총을 가둔 노동존중 세상은 없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21일 논평을 통해 정부가 국회 개원에 앞서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한 이유는 분명하다며 민주노총의 저항을 짓밟고노동법을 개악하고저임금 장시간 노동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총은 더 이상 촛불정부가 아닌 노동탄압 정부를 상대로 한 전면적이고 대대적인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선포하며 투쟁의 불길은 6월 울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으로그리고 민주노총 전조직의 전국적 총파업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21일 밤 비상 상임집행위원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고, 22일엔 비상 중앙집행회의를 열기로 했다같은 날 오후엔 청와대 앞에서 규탄 집회를 개최한다.

 

이미 민주노총은 간부들에 대한 구속수사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등이 이어지자 20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현 상황에 대해 토론한 바 있다민주노총 중집은 문재인 정부의 노골적인 노동탄압에 노동관계를 전면 재검토하고 모든 단위 집회에 문재인 정부의 노동탄압 규탄 기조를 포함키로 했다.

 

한편김명환 위원장은 21일 아침 서울 남부지법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두하며 향후 투쟁과 관련해 조합원들을 상대로 메시지를 남겼다김 위원장은 설사 제가 저들의 탄압으로 구속되더라도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을 비롯한 노동기본권 확대 투쟁국회 노동법 개악 저지와 최저임금 1만원 쟁취 투쟁 등 너무나 정당한 민주노총의 7월 총파업 투쟁만큼은 반드시 사수해주시길바란다며 이를 통해 민주노총의 자존심을 걸고 하반기 대투쟁을 만들어가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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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에 대한 입장

 

결국 정부는 총노동의 수장을 잡아 가뒀다.

 

민주노총을 가둔 노동존중 세상은 없다.

 

정부가 국회 개원에 앞서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한 이유는 분명하다민주노총의 저항을 짓밟고노동법을 개악하고저임금 장시간 노동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위원장을 잃었다고 해서 물러나거나 힘을 잃을 조직이 아니다.

 

민주노총은 더 이상 촛불정부가 아닌 노동탄압 정부를 상대로 한 전면적이고 대대적인 투쟁을 벌일 것이다.

 

민주노총은 주말을 경과하며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해 이미 수립한 투쟁 계획의 세부적인 내용을 다듬을 것이다.

 

그리고 투쟁의 불길은 6월 울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으로그리고 민주노총 전조직의 전국적 총파업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민주노총 백만 조합원은 기필코 구속된 네 동지를 석방시키고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끝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준비하고 결의하고 있다.

 

보라투쟁하는 조직 민주노총이 어떻게 싸워 나가는지.

 

민주노총은 무죄다노동탄압 분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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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200만 '검은 대행진'의 진짜 배후

[창비 주간 논평] "누구도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
 
 
"누구도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 
"인민은 당신(행정 수반)의 자식이 아니다." 
"생리 주기보다도 짧은 20일이 법안 의견수렴 기간이라니 말이 되나?" 
"항쟁은 출신을 묻지 않는다. 본토 이주민도 동참한다."

세계를 놀랍게 하고 홍콩인들 스스로도 놀란 최근 홍콩 시위와 집회에서 나온 말들이다. 누구에 의해서도 대표되지 않겠다는 구호는 지도자 직선을 요구했던 2014년 '우산혁명' 때 처음 등장했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같고 다른가? 홍콩 시민과 학생들이 길거리로 연일 쏟아져 나오는 현상을 단지 특정 정책에 대한 반발, 정부와 시민의 대립, 또는 중국과 홍콩의 대립으로만 본다면 우산혁명 때와 비교하기 어렵고 이번 사건 후 홍콩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포착하기 어렵다. 

우산혁명 때는 분명한 지도부가 있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누구도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점점 강해져, 점령구 집회의 중앙무대를 거부하고 단체들의 지휘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많았다. 오직 나 자신으로 참가하겠다는 자발성의 '혁명적' 성격은 찬사를 보낼 만 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모든 조직을 거부하고, 심지어 점령구에서의 토론과 모임도 거부하면서 출구전략조차 토론할 수 없게 되었다. 정부에 대한 비판보다 시위대 내부 입장 차이에 대한 공격이 심해졌고, 결국 역사상 처음으로 도심을 79일 동안 점거했던 군중은 무력하게 해산되고 말았다. 도심은 빠르게 일상을 되찾았다.

우산혁명 이후 짙은 무력감 속에서 토론은 이어지기 어려웠다. 정부는 몇년이 지난 후에도 우산혁명 주요 참여자들을 기소했고, 그들은 최근 속속 수감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수정이 촉발한 반대 시위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103만 명을 모았고 일부 지역을 잠시 점거했으며, 마침내 지난 16일에는 200만 명이 나왔다. 누구도 이끌지 않았고, 지금도 곳곳에서 경찰 방어선과 대치하는 이들 상당수는 익명의 청년들이다. 이번 시위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선 여기에는 홍콩인들이 오랫동안 자랑스러워했던 법치의 보장을 더이상 받을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특히 '일국양제' 속 홍콩의 공간이 점점 사라져 중국에 종속될 뿐 아니라 아예 홍콩이라는 공간이 형체조차 없어질 것 이라는 우려가 크다. 갑자기 실종된 후 중국 본토에서 조사받던 서점 주인들 중 한 명은 정부가 법안을 강행하려 하자 아예 대만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시민들이 뽑은 의회 의원들의 자격이 정부에 의해 박탈되고, 페이스북에서 독립을 주장한 글이 근거가 되어 정당 활동이 중지당했으며, 교수도 의원도 청년도 잡혀갔다. 두려움은 지난 몇 년간 사람들을 거리에 나오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상 '홍콩을 지킬 마지막 기회'라 여겨진 이번 반대 시위가 기폭제가 되자, 그 두려움은 놀라운 자발성과 새로운 광경을 만들어냈다. 

우산혁명 참여자들이 몇년 후에도 기소되고 수감되는 걸 보면서 이제 시위대들은 신분 노출을 피할 방법을 서로 공유한다. 마스크와 고글은 최루탄도 막지만 신분 노출도 막아준다. 시위 현장에서 '셀프 카메라(셀카)'나 사람들 얼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걸 삼가고, 교통카드 대신 현금을 쓴다. 일회용 심(SIM)카드로 바꿔 끼고 중국 애플리케이션들을 휴대폰에서 지운다. 페이스북 대신 텔레그램을 쓰며, 거기서 수시로 공유되는 정보에 따라 각자 선택해서 움직인다. 경찰이 찾아낼 수 있는 '주동자'는 더이상 없다. 익명의 네티즌들은 필요한 물자 목록을 중요도 순서에 따라 분류하여 공유하고, 다양한 '교전 수칙'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공유한다. 모든 행동은 참가자 자신이 선택해서 하면 된다. 

그리고 전에 없던 다양한 이름의 주체가 등장했다. 행정 수반이 "100만 명이 반대해도 강행하는 이유는 제멋대로인 자식을 엄마로서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자, 분노한 시민들은 '홍콩 엄마'의 이름으로 집회를 열어 "인민은 당신의 자식이 아니다. 당신은 한 지역의 수장이고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외쳤다. "아이야, 두려워 말아라. 아빠가 여기 있다"며 아빠 부대가 등장했고, 법안 지지 글을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사장에게 직원은 "사장님, 당신은 나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이지만 당신의 입장은 나를 대표하지 않습니다"라는 글로 대응했다.

이번 사안에 관심이 적을 것 같은 장년층을 겨냥하여, "수정 법안이 통과되면 홍콩 돈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는 포스터를 곳곳에 뿌리며 관심을 촉구하는 이들도 있다. 또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광둥어에서도 다소 비하적 의미가 담긴 '아줌마'라는 호칭을 스스로 내건 집단은 말한다. "우리 아줌마들은 가족을 돌보느라 이번 시위에 못 나갈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분명히 반대한다. 전업주부건 맞벌이건 싱글맘이건 본토 이주민이건 종족과 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아줌마의 이름으로 호소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고 하여 한국에도 유명해진 '홍콩 엄마' 집회에서 엄마들은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지금 일어나 우리 자식들이 폭도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죽을까 봐, 그래서 중국 톈안먼사건 희생자 엄마들처럼 자식이 죽고 난 후 30년이 지나서도 계속 그 말을 해야 할까 봐, 늦기 전에 지금 일어나 말하겠다." 자식을 지키겠다며 나온 엄마들은 홍콩의 청년들을 통해 30년 전 중국 땅에서 죽어간 이들을 함께 끌어안는다. 이렇게 소환되는 '톈안먼 사건'은 단지 오래전 먼 곳에서 있었던 불행한 비극에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아 이어진다. 

운명에 더 이상 순응하지 않고 '나의 도시 홍콩을 스스로 구하겠다'는 이들의 목소리는 이제 하나가 아니다. 여러 이름이 등장하고, 이름없는 시민이 등장하고, 누구의 가르침도 따르지 않는다. 이 사건을 그저 중국과 홍콩의 대결 구도로만 본다면, 또는 한국에서 배운 것이라고 자찬하는 데 그친다면, 곳곳에서 새롭게 솟아나는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그 가능성은 홍콩만의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생겨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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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철, 물 싸움엔 부모 자식도 없다는데 아…봐 버렸다, 아랫논 임자의 그 짠한 표정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6/20 08:34
  • 수정일
    2019/06/20 08: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원유헌의 전원일기](2)모내기 철, 물 싸움엔 부모 자식도 없다는데 아…봐 버렸다, 아랫논 임자의 그 짠한 표정

원유헌 cameragaga@naver.com
입력 : 2019.06.20 06:00 수정 : 2019.06.20 06:01
 

제 논에 물 대기

모내기를 앞두고 트랙터로 논 바닥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동안 배수로를 통해 물이 빠져나가고 있다. 모내기를 끝내고 나면 다시 논에 물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물 한 방울이 아쉽다. ⓒ 원유헌

모내기를 앞두고 트랙터로 논 바닥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동안 배수로를 통해 물이 빠져나가고 있다. 모내기를 끝내고 나면 다시 논에 물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물 한 방울이 아쉽다. ⓒ 원유헌

 

“뺨따구 안 날렸소?” 

옆 마을 동생 S가 트럭을 멈추고 내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예초기로 논두렁 풀을 베던 중이었고, 아직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논두렁 옆면의 풀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S가 한 말이다. 왠지 피 튀기는 현장의 냄새가 느껴져 뉘앙스를 맞췄다. 

“응, 좀 이따 갈아불라고.” 

바야흐로 모내기 시즌이다. 모든 신경이 곤두서는 시기다. 씻나락을 물에 담그면서 시작하는 벼농사는 모내기까지 정해진 시간표대로 오차 없이 진행돼야 한다. 60도의 온탕소독을 마친 나락이 하얀 싹을 틔우고 못자리로 이주해 야들야들 자라는 동안 논에서는 별도의 작업을 수행한다. 1차 마른 로타리(흙을 잘게 부수는 작업) 후 논에 물을 가득 담아 2차 로타리 작업과 써레질(논 흙의 높이를 일정하게 다듬는 작업)을 한다. 다시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물을 뺀 후 모내기를 하고 나서 재차 모가 잠기지 않을 정도까지 물을 방방하게 받아둬야 한다. 여기까지가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나락 농사의 절반’이다. 

짧게 설명하기 억울할 정도로 쉽지 않은 과정이다. 물론 로타리와 모내기는 트랙터와 이앙기가 한다. 운전은 기계 주인이 하는데, 나는 주인이 아니므로 기계 주인의 상황과 일정에 맞춰 논의 상태를 스탠바이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이 논에 물 받기다.

논에 받는 물의 양은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다. 보통 경지정리된 논의 한 구역을 ‘한 단지’라고 표현하는데, 보통 가로 30m·길이 100m를 기준 크기로 하며, 4마지기반, 900평, 3000㎡ 모두 같은 크기의 한 단지 면적이다. 이런 단지 논에 물을 받으려면 땅을 적시는 양을 포함해서 대략 10㎝ 정도의 높이는 돼야 한다. 계산은 간단하다. 100m×30m×0.1m=300㎥. 즉 300t의 물이 필요하다. 5t짜리 소방차 60대 분량이다. 몇 년 전 심한 가뭄에 심각한 표정으로 소방차 호스를 잡았던 정치인들도 이 정도 계산은 가능했을 텐데. 

부모 자식 간에도 물싸움을 한다고 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논에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뭄 때는 물론이고 물이 충분하다고 해도 다툼은 생기기 마련이다. 논 주변에 보이는 모든 사람과 트럭이 적이다. 논농사를 홀로 전담하는 여성 농민이 드문 이유는 순간적으로 뿜어야 하는 근력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간혹 거칠게 밀어붙여야 하는 힘겨루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근거 미약한 분석도 해본다. 

며칠 전에도 “낼 모래 써레질 할 수 있게 물 받아 놓으시게요” 하는 기계 주인의 청유형 명령이 떨어졌다. 불퇴전의 각오로 저수지부터 우리 논까지 수로를 훑으며 물길을 뚫어 내려왔다. 한 방울의 물도 흘려 보내지 않겠다는 자세로 수로 바닥까지 꼼꼼히 막는데 뒤에서 누가 불렀다.

“사장님, 절반만 흘려 보내주시믄 안 되까요이.” 

나보다 아래쪽 논 임자인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이려 애쓰고 있었다. 얼굴만 보자면 논이 아니라 주인이 물을 마셔야 하는 상태였다. 안 된다고 인상 쓰면 수로에 쓰러질 각오가 드러났다.

“이만큼이면 되시겠습니까?” 

물이 내 것도 아니건만 내 논이 상류에 있다고 돌 조금 치워주면서 유세를 떨고 앉았다. 더 상류 쪽 사람들에게 습득한 말투였다. 그나마 물길 터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쩌면 부드럽게 “사장님~”이라 불러서 기운이 좀 샌 것도 같다.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사장님’이란 호칭에 거리낌 없이 고개를 돌리는 내가 신기하다. 소상공인 전력 한번 없으면서 말이다.

이곳에서 ‘사장님’은 잘 모르는 사람(남자)을 부를 때 실례나 시비를 최소화시키는 호칭이다. 사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직원의 유무를 떠나 웬만하면 사장이다. 소상공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농민들은 생산, 유통, 포장, 영업 등을 총괄하는 업무를 직접 하고 있다. 오히려 사장 아닌 사람이 드물다. 자연스러운 호칭이다. 

지금까지 들어본 호칭은 다양한 편이다. 사장님, 아버님, 선생님, 아저씨, 형님, 원씨, 어이 등. 상황에 따라 수긍할 만한 호칭도 있고, 참 어색하고 불편해서 귀에 익지 않는 것도 있다. 그래도 그나마 부르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참고 적응하는 편인데, 최근 색다른 호칭을 들었다.

농협에서 진행하는 농작물 피해보험의 손해평가원 교육이 있어 순천으로 갔다. 구례에는 감나무가 태풍 피해나 냉해를 입는 경우가 많아 일반 농민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 뒤 실전에 투입하기 위한 교육이다. 주변 시·군에서 모여서 교육장인 2층은 로비까지 붐볐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도 만원이라 귀찮아도 1층 화장실로 내려가니 한적하고 좋았다. 손 씻고 엉덩이에 물기 문지르며 다시 계단으로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두어 발짝 더 가는데, 또 불렀다. 싸한 느낌에 ‘설마’ 하며 돌아보니 멀리서 한 여인이 다가왔다. 누군가를 부르던 그 여인과 나 사이엔 아무도 없었다. 조명도 안 켜져 실루엣만 보이던 그 여인은 한껏 다가서며 살갑게 말했다. 

“어르신, 엘리베이터 이용하세요. 이리 오세요.” 

왜 가슴이 내려앉았을까. 점점 다가오면서 드러나는 그 여인의 액면 연령은 어림잡아도 내 아래는 아니었다. 나처럼 그 여인도 나의 실루엣만 봤을 텐데, 무슨 근거로 어르신이라고 불렀을까. 생전 처음 듣는 호칭에 심장은 계속 나대고 있었다. 약간의 어색함, 그보다 좀 더한 억울함 때문이었다.

모내기를 마친 논에 노을이 비치고 있다. 이맘때가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해지는 시간이다. ⓒ 원유헌

모내기를 마친 논에 노을이 비치고 있다. 이맘때가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해지는 시간이다. ⓒ 원유헌

사실 ‘어르신’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 대상의 기준이 객관화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만 65세 이상의 대한노인회 소속 회원증을 소지하거나, 노화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서 도움과 공경이 필요한 정도의 노인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동네에서도 여든 넘은 분들 중 일부만 듣는 극존칭이다. 물론 모르는 분들을 ‘어머님. 아버님’ 하기 쑥스러워 어르신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게 그렇게 소리지른 것은 폭행이었다. 

그 여인이 더 가까워지기 전에 됐다 괜찮다며 계단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이후 2시간여 진행된 교육은 기억에 없다. 내내 생각했다. 도대체 뭘 보고 어르신이라고 불렀을까. 내 몸이 이미 어르신 체형인가? 다리가 짧아서? 팔이 굵어서? 목이 거의 없어서? 

결론은 자세였다. 어쩌면 흐느적, 어쩌면 뒤뚱거리며 걷는 모양이 몸이 불편한 노인의 걷는 모양처럼 보였을지 모르겠다. 순간적으로나마 아무런 근거 없이 그 여인이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선택했을 리 없고,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내가 제공했을 것이다. 자가배양하던 억울함을 진정시키고 반성 모드로 전환했다. 힘 있게 걸을 것이다. 꼿꼿이 펼 것이다. 턱은 당기고 엉덩이를 모으면서 발끝을 뻗을 것이다. 

예상대로 노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게 또 나와 타협하고 허물어졌다. 그러니 아랫논 임자의 사장님 호칭도 고마웠던 것이다. 

동생 S의 말대로 논두렁 뺨따구를 마저 날린 뒤 잠깐 집으로 갔다. 아르바이트 겸 배운 도둑질 써먹느라 군청 일을 하던 것이 시간에 몰렸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독촉이 쏟아졌다. 왜 일은 이렇게 한꺼번에 몰리는지, 하마터면 억울할 뻔했다. 

누군가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 한다’고 했다. 며칠 내내 뛰듯 지내는 이유는 분명 며칠을 걷는 만도 못하게 지낸 탓일 거다. 손 더디고 발 느린 걸 본인이 제일 잘 알면서 뛰기 싫으면 서둘러 걷기라도 할 일이지, 안 하고 미룬 일 고스란히 자신이 할 거면서 괴롭기 전에 편안함을 먼저 누린 죗값이다. 나의 선택일 뿐이다. 

4시간 만에 돌아온 논의 물꼬는 심하게 변형돼 있었다. 모인 물이 논으로 흐르도록 댐처럼 가로막았던 돌무더기는 폭격을 맞은 것처럼 수로에 길게 흩어져 있고, 그나마 바닥에 붙어 내려오던 물은 누군가의 상류 댐에 가로막힌 듯했다. 빠진 기운 추슬러 다시 한번 수로를 따라 여행을 해야 했다.

만약,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논에 물이 심하게 들어가 넘칠 것을 걱정하는 것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물이 방방해서 잡초가 덜 나는 것이오” 할 것이다.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논에 물이 가득하고 논두렁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여 물 한 방울, 우렁이 한 마리 새나가지 않아 일 좀 줄고 편안히 농사짓는 것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혼자 잘 노는 편이다. 농사의 좋은 점은 몸은 바쁘게 일하면서도 머릿속은 맘대로 놀아도 된다는 것이다. 명상-상상-공상을 이어가다 지치면 라디오 청취도 좋다. “이번 U-20 월드컵에서 우승한 나라 선수들은 정말 신체적인 피지컬이 대단합니다.” 전문가의 의견이란다. 심리적인 마인드가 안정되고 정신적 멘털이 강하다면 전설적인 레전드가 나올 거라는 예상은 나도 하겠다. 라디오는 아침에만 들을 만했다. 껐다. 

해는 저물고 자동으로 몸이 지쳐갔다. 수로를 따라 내내 숙인 제법 큰 머리가 무거워 고개를 들어보니 예전에 인사드렸던 옆 동네 어르신이 지나고 있었다.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일은 다 끝내셨어요?” 

반가워하려다 정색을 하셨다. 

“일이 어떻게 다 끝나나. 죽어야 끝나지.” 

아무 말도 못했다. 까불다 걸린 것 같아 창피했다. 맞다. 어르신들께 일이란 건 그냥 생활이고 습관이고 숨 쉬는 방식일 뿐이다. 끝내야 하는 과업이 아니다. 일생 동안 거부하기보다는 받아들이며 일을 자신의 일부로 흡수한 모습이었다. 멋지다. 

아닌가? 혹시 저 어르신도 호칭 때문에 삐치신 걸까? 모르겠다. 다음엔 그냥 아버님이라고 해야겠다. 단순한 게 좋은데. 이젠 ‘어르신’ 죽어도 안 쓴다. 에이. 
 

▶필자 원유헌 
 
[원유헌의 전원일기](2)모내기 철, 물 싸움엔 부모 자식도 없다는데 아…봐 버렸다, 아랫논 임자의 그 짠한 표정
 
1967년생. 44년간 서울에서 살다가 2011년 연고가 전혀 없는 전남 구례로 내려가 농부입네 살고 있다. 농사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각종 아르바이트로 현찰을 보충하며 연명한다. 2018년 <힘들어도 괴롭진 않아>(르네상스)라는 책을 만들기도 했으나 8년째 나아진 건 없다.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며 산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6200600045&code=100100#csidxb952e38658c4657a9b6c172574e8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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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라는 칭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열사 투쟁의 의의

열사라는 칭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열사 투쟁의 의의최인기 빈민스토리(10)
  •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 승인 2019.06.19 19:50
  • 댓글 0
▲ 추모제 참석한 노점상

1. 추모(追慕)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은 기록한다는 것이다. 기록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면 문제는 반복된다. 책임을 묻지 않게 되고,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된다.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 추모연대" 관계자는 추모에 대한 사전적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추(追)’라는 말은 추억하고 기린다는 뜻보다 ‘따른다’라는 실천적인 뜻에 훨씬 가까운 말이다. ‘모(慕)’라는 말은 마음과 정신으로 사모한다는 뜻이다.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고 계승하는 일이란 이들이 생전에 추구했던 사상과 실천을 남은 자들이 마음과 정신으로 따르는 일이 된다. 이 밖에도 열사에 대한 사전적 의미와 정의를 찾는다면 의로운 뜻을 가지고 이를 지키기 위해 굳게 싸우다 가신 분들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한 사람의 죽음은 시대의 정신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인권에서도 사회권이 중요하듯이 노점상 투쟁 과정에서 희생당한 분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지금껏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문제를 개별적이거나 우발적인 사건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기록을 통해서 잊힌 이야기를 들춰내고 다시 세상에 던지는 이유는 우발적인 사건처럼 보이는 이야기의 숨겨진 이면을 통해 새롭게 추모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 위함이다.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열사 이후 그 이듬해 1996년 부산의 해운대 해수욕장 근처에서 노점상을 하던 장애인 노점상 이동재 씨 분신 사건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반신 마비로 인해 휠체어를 이용해 살아가던 그의 분신 소식은 인터넷 시대가 시작되면서 과거 언론과 신문 기사에만 의존했던 소식들을 빠르게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노점상 단체의 활동가들은 부산으로 급히 파견되어 이 사건에 개입했다. 이를 계기로 부산지역의 해운대 해수욕장과 광안리 해수욕장 그리고 부산 사상과 부산역 등을 중심으로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이후 울산 대구 등 영남권 조직을 확대해 나간다.

거리에서 쓰러지고 저항하다 유명을 달리하거나 상처를 당하는 사람은 다음 해 1997년 평택의 노점상 양승진 열사, 그리고 1998년 종로 5가의 장애인 노점상 전창옥 씨, 2002년 역시 단속으로 커다란 상처를 입은 부산의 장애인 노점상 하재명 씨로 이어진다. 소위 군부독재 정권이 물러나도 여전히 노점상 생존권은 변하지 않았음을 이 사건들을 통해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특정 이슈를 둘러싸고 희생되거나 유명을 달리할 경우 저항의 과정은 보통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저항 주체의 역량이 준비되어 있지 않거나 역부족한 경우로, 저항이 폭발하지 않고 열사 투쟁 그 자체로 잠잠해지는 경우다. 양승진 씨는 경찰의 회유로 가족이 장례식을 서둘러 치르게 된다. 종로 5가 전창옥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사건들이 개별적, 우발적으로 발생하여 저항 주체와 결합하지 못하고 소멸하는 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노점상 조직은 열사가 돌아가시는 사건을 계기로 지속적이고 완강한 주체들을 형성하고 조직을 발전시켜 나갔다. 장애인 노점상 하재명 씨는 부산지역의 활동가들이 긴밀하게 결합하여 저항이 확대되는 경우였다. 그리고 이러한 탄압과 이에 대한 투쟁은 자연스레 민주화운동 과정과 결합하여 부당한 체제나 국가, 정부에 대항하는 조직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 대전의 장애인 노점상 윤창영 열사와 2002년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여성 노점상 최옥란 열사다.

2. 윤창영 열사 이야기

오래전 대전역 근처의 가락국수 포장마차는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고 출출한 배를 채우던 곳이었다. 오래전 대전역 광장을 가로질러 지하도 계단을 내려가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웅크려 장사하던 장애인 한 분이 계셨다. 3살 때부터 자신의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왼쪽 다리와 양손이 반쯤 마비된 2급 장애인으로 언어마저도 매끄럽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윤창영 씨로 대전역 광장을 배회하던 노숙자들에게는 큰형님으로 불렸다. 윤창영 씨는 매주 일요일 물을 끓여서 주변 노숙자에게 컵라면을 나누어주고 틈틈이 용돈까지 보태주었다. 불우한 그가 또 다른 불우한 이웃을 도왔던 셈이다. 그는 어눌한 목소리로 허리띠, 라이터와 같은 물건들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가장 밑바닥 삶을 온몸으로 기어 하루하루 버텨냈다. 그러던 1999년 7월 7일 오전 9시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노점 물품을 구청 직원들이 압수해 갔다. 이미 그 전날에도 한 차례 물품을 단속받은 상태였다. 대전역 근처에서 장애인으로서 장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려 연일 그에게만 계속되던 소위 "표적 단속"이었다. 그는 물건을 빼앗기지 않으려 평소 거칠게 구청에 저항하고 항의를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윤창영 씨는 동구청을 방문하여 내 물건을 돌려 달라 애원하자 구청 직원과 용역반은 비웃는 눈초리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다. 어찌 보면 사람은 누구나 절박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처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만 이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격분한 윤창영 씨는 온몸에 불을 붙였다. 온몸에 김이 모락모락 나도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장애인의 생계를 보장하라! 장애인도 노점상도 인간이다.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라고 외치며 쓰러졌다. 분신 직후 대전의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해 서울의 한강 성심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

“창영아 제발 죽지만 마라!” 가족들은 절규하며 며칠 밤을 새웠다. 윤창영 씨는 임종하기 직전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집에 가서 죽고 싶다. 어머니 곁에 묻어달라.”는 짧은 유언을 남기고 7월 10일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우리는 노점상 단체 의장과 한강성심병원에서 임종을 지켜봤다. 이미 대전에서 올라온 경찰과 몇몇 공무원으로 보이는 직원들이 유가족과 장례 문제를 급히 협의하기 시작했다. 시신은 다시 대전으로 옮겨졌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어둑어둑 해 질 무렵 대전 충남대 병원 장례식장 주변에 윤창영의 분신자살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포장마차 하는 아주머니, 잔업을 마치고 온 노동자, 그리고 청년 학생, 한쪽 팔이 없는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 목발을 짚은 사람, 그리고 거리에서 아무렇게 뒹굴던 노숙자까지 하나둘 모여들었다.

노점상단체는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에 연락을 취해 ‘비상대책위’를 서둘러 꾸렸다. 대자보를 붙이고, 현장에 모인 학생과 청년들을 모아 사수대를 조직했다. 일부는 모금함을 들고 거리 선전전을 펼쳤다. 그리고 7월 15일 대전역 광장에 모여 노점상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당시 대전지역은 노점상 단체가 조직되어 있지 않았다. 노점상을 상대로 유인물을 돌려 윤창영 씨의 분신 사망 소식을 전달하고 자발적 참여를 호소했다. 유인물을 받아 든 대전역 주변에서 노점을 하는 김지현 씨는 “구청 직원이 몰려와서 물건을 실었습니다. 울면서 봐달라고 하자 햇빛도 못 보게 징역을 보내겠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지금도 저의 물건은 강제로 빼앗겨 구청에 있습니다. 이제 곧 장마고 IMF 이후 장사도 안 되는데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노점상 결의대회에 참석한 시위대를 대상으로 경찰은 집시법을 들먹이며 거리진출을 막았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곤봉과 함께 사람들은 넘어지고, 옷이 찢기고, 신발이 벗겨졌다.

하지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영안실을 지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특히 8.15대 회를 앞두고 전국을 순회하던 대학생 통일선봉대가 합류하자 집회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대전 동구청에서는 사태가 심각해지자 서둘러 사과를 하고 ‘비상대책위’와 함께 대책 마련에 들어가 유가족과 합의에 이른다.

마침내 7월 20일 윤창영 열사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행렬은 고인의 영결식 장소인 광장을 벗어나 동구청과 대전 시청까지 행진했다. 이날은 노점상이 관의 눈치나 보면서 쫓겨나는 그런 날이 아니었다.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며 대전지역 노점상들이 장례행렬에 선두에 섰다. 검은 만장이 물결을 이루며 대전 거리를 뒤덮고 출렁였다. 동양백화점을 지나 도청과 대전 시청 앞에 다다르자 시위대에 의해 현관 유리창이 박살 나기도 했다. 격렬해진 노점상의 분노를 누구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윤창영 열사의 혼이 담긴 꽃상여를 실은 영구차는 그의 고향인 금강의 묘역으로 향했다. 대전의 장애인 노점상 윤창영 열사의 성과로 전국철거민연합과 함께 가난한 이들의 연대체 ‘전국빈민연합’을 다시 결성하기에 이른다. 1999년 뜨거웠던 여름날의 이야기다.

3. 최옥란 열사 이야기

서른일곱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장애인 노점상 최옥란 열사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어떻게 실천하는가에 따라 그 죽음은 정의를 세우는 소중한 역사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열사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사회구조를 이해하고 더불어 모순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처지와 실정에 차이가 있겠으나 이들이 살았던 삶처럼 실천하는 것이 박제된 삶이 아닐 수 있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때문에 이들의 삶과 정체성을 끊임없이 조명하고 이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최옥란열사 10주기

그런 측면에서 최옥란 열사의 삶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옥란 씨는 1998년 청계천 8가에서 장난감과 치약, 구제 옷 등을 팔던 노점상이었다. 최정환 열사 투쟁 이후 장애인과 노점상이 함께 만든 ‘장애인 자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게 되자 여기에 합류했다. 함께 장사하던 조성남 씨에 따르면 “옥란 씨도 노점상 자리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누구도 그녀의 삶의 의지를 쉽게 꺽진 못했지요.” 전경과 단속반도 그녀를 피해갔고, 경찰서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고 회상한다.

최옥란 열사를 이야기 회상할 때 장애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이혼 이후 아들 준우를 키울 수도 없었다. 전 남편의 위자료조차 받지 못한 상태에다 아들조차 제대로 만날 수 없었다. 1999년 재판장에게 면접 교섭권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장문의 글을 쓴다. “…재판장님 저의 간절한 소망을 이해하시고 꼭 나의 아들 준우를 만나게 해주세요. 냉정하게 판단해 주세요. 지금 저의 형편이 어렵습니다. 노점상을 하기에는 너무 체력적으로 힘이 듭니다. 남편의 형편도 알지만 나보다 나은 조건입니다. 나머지 주어진 삷을 좌절하지 않고 살 수 있게끔 희망을 주세요…”

그녀의 건강도 그를 괴롭히는 요인이었다. 1999년 12월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에서 자궁 원추 절제 수술을 받게 되었고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병원의 의료과실로 의료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건대 민중병원 진료 기록에 따르면 머리에 혹이 생겨 약 6개월가량 약물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게다가 당시 많은 장애인이 ‘이동권’ 투쟁을 치열하게 전개했는데 옥란씨는 이 과정에서 전경과의 충돌로 쓰러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녀는 주기적으로 병원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었다.

2001년 10월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생활 유지능력이 없거나 어려운 사람에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아래 필요한 급여 등을 제공하여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신설된 법률이다. 기존의 복지제도를 혁신했다는 정책은 정작 옥란 씨의 형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시 수급자가 되기 위한 소득의 기준선은 33만원이었다. 그녀는 기초 생활 보장제도가 시행되면서 수급자가 되었지만 약간의 수입원이었던 노점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최저생계비를 초과해 수급비와 의료비 그리고 임대아파트 입주권과 의료보장마저 지원받을 수 없었다.

2001년 12월 3일, 뇌성마비 1급 중증 여성장애인 최옥란 열사는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해 명동성당 농성 투쟁에 들어갔다. 가난한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제도가 생계를 위협하는 이상한 제도가 되었다. 노점에서 버는 돈이 추정소득으로 잡혀 수급권자에서 탈락할 처지가 되자 최저생계비의 현실을 알리고자 일주일간 명동성당에서 텐트 농성을 하게 된다.

“당신도 장애인이면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저의 작은 꿈들을 다 잃게 했습니다. 노동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그나마 노점 해서 돈을 벌어서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나의 아들을 찾으려고 힘이 들어도 참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장사도 못 하게 해 이제는 더 살 수 없는 심정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구걸하더라도 치사해서 수급권을 못 받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국무총리에게 26만 원을 반납하러 갑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며 26만 원을 반납하기에 이른다.

2001년 어머니에게도 남긴 유서에 따르면 “엄마, 엄마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그리고 용서해 주세요. 힘이 많이 들어요.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나를 죽음으로 가게끔 하는군요. 엄마, 엄마. 목이 메어 글 쓸 수가 없네요. 엄마. 우리 좋은 세상에서 만나요. 언니 오빠 동생 모두에게 미안해.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적혀 있다.1)
주1) 시대를 울린 여자 최옥란 평전 seoul post 230쪽

약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 달 생계급여를 받으며 생활하던 중 수급권마저 빼앗긴 뇌성마비 중증 장애 여성의 어눌한 외침은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002년 2월 아직 봄이 오기 전 최옥란 씨는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져 치료를 받던 중 3월 26일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3월이면 아직 추운 날씨였다. 겨울이 가고 봄은 아무렇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자신을 희생한 사람을 보고서야 서럽게 봄을 맞이했다. 김대중 정권의 생산적 복지정책과 기초생활보호법이 실시된 이후 이 법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보장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을 고착화하는 법이라는 것을 알려낸 투쟁이었다.

아쉽게도 당시 노점상 단체는 최옥란 열사가 유명을 달리한 그 시간 인도에서 열린 ‘국제노점상연합’ 창립을 앞두고 국제회의 일정으로 적극적인 참석을 하지 못했다. 유명을 달리한 이후에도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적극적인 공감이 되지 못했다. 그의 죽음을 또 한 사람 장애인의 슬픔 소식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그 후 반빈곤연대 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운동적 각성이 있었다. 최옥란 열사의 장례식에 참여했던 손을 잡고 새로운 연대기구 결성을 도모하기 시작하고 그 후 "빈곤사회연대"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최옥란“ 이름 석 자는 변화를 꿈꾸는 이들의 이름이 되었다. 어떤 이름은 이렇게 죽어서도 투쟁한다. 

4. 열사라는 칭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누구나 경험했을 테지만 작은 성냥불에 손끝을 데어도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시적인 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시간이 흐른 뒤 일그러진 형태로 그리고 후유증으로 이어진다. 극한 상황에 내몰린 노점상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저항은 자신의 몸에 불을 댕긴다는 것이고 그 고통은 많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전이되어 두고두고 남는다. 안타깝게도 이 시기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이 죽음의 공통점은 장애인으로서 노점을 하는 사람이었으며 주기적으로 2~3년에 한 번씩 열사 투쟁을 치렀다.

2005년 8월 국회 앞마당에서 분신한 장애인 노점상이 있었다.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응급실에서 온몸이 일그러진 채 응급실에 누워있는 장애인 노점상. 그의 이름은 황효선 씨다. 55세로 한국장애인문화협회 부천 이동상담소 소장이었다. 기자들은 연신 분신한 이유에 관해서 묻고 사진을 찍었다. 그동안 죽지 못해 살았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분신이 있기 한 달 전에도 이미 부천 북부역에서는 장애인 노점상 부부가 동반 자살을 시도한 사건이 있었다. 7월 10일 새벽 3시경 쇠망치와 파이프로 무장한 150여 명의 용역반이 부천역으로 들이닥쳤다. 새벽 장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포장마차를 상대로 무차별 단속과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노점상들은 아스팔트 위로 나동그라졌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후 부천역 광장 한쪽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걸어 잠그고 언어장애인 노점상 부부가 석유를 부어 분신을 기도하는 일이 벌어졌다. 검은 연기와 불이 활활 타오르자 새벽에 행인이 차 문을 부수고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그들의 목숨을 구했다.

2006년 6월 20일, 인천시 부평구에서 지체 장애 2급인 장애인 노점상 주수길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평공원 야시장 내 단속과정에서 난투극 끝에 사람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오후 3시경 250여 명의 용역이 부평공원으로 몰려들었다. 난투극 현장은 부평 경찰관이 현장을 지켜보는 가운데 30분 이상 진행되었고, 약 20여 개의 노점상을 철거하는 과정이었다. 이날 용역 가운데 장애인 용역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애인 노점상을 장애인 용역이 단속하는 것이다. 목격자에 의하면 고 주수길 씨는 ‘맥주병에 맞아 힘없이 쓰러졌다’고 진술하고 있다. 주수길 씨는 119에 의해 부평구청 맞은편 세림병원에 실려 갔지만, 병원에 사람들이 많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병원 측에서는 사망 시간을 대집행이 일어난 날 저녁 시간으로 추정하였으며 뇌진탕 증세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용역과의 대치과정 중 싸움이 그 원인이었다.

지자체는 장애인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을 용역으로 고용하였다. 그들의 신체적인 장애를 이용하여 길거리로 나와 장사 할 수밖에 없는 즉 노점상을 단속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이는 결국 저항하는 한 장애인을 죽음의 길로 몰게 한 것이다. 빈곤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노점상을 하다 숨진 장애인이나 어쩔 수 없이 단속반으로 나선 장애인이나 공통으로 사회적 폭력의 희생자였다. 주수길 씨의 사망 사건은 그의 누나가 대표로 경찰 입회 아래 장례식을 치르기로 전격 합의를 보게 된다. 그리고 이 투쟁은 서둘러 끝난다. 이 시기 서울은 재개발 재건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뉴타운 사업이 현란하게 전개되었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골목길은 헐리고 자고 나면 새 빌딩과 아파트로 빼곡히 들어찼다. 누군가는 들어오고 또 그만큼 누군가는 어디론가 떠났다. 서울 사람들은 고향이 없다는 이야기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한때 서울 어딘가에 집 한 채 갖고 있던 사람조차 보금자리에서 내몰릴 위협에 처했다. 개발은 집을 갖고 있던 사람이나 집 없이 세 들어 사는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삶의 기초를 위협했다.

5. 글을 마치며

자신을 버리고 전체를 살리며 생존권을 지켰던 사람들의 삶은 사회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노점상 이야기를 다루는 데도 자의든 타이든 유명을 달리한 사람의 삶을 살펴보고 이들 삶에 의미를 제대로 조명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도리라 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고 합법적 공간이 확대되면서 열사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명예회복과 정신계승사업도 제도권 차원에서 일정 정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덕인 열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 근본적 문제 해결이 안 된 부분도 있다. 국가폭력이라 할 수 있는 용역 깡패에 의한 폭력적인 개발과 단속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빈민운동진영은 종종 빈민 열사 추모제 개최를 한 바 있으나 지속해서 이어지지는 못했다. 최근 들어서 개별 열사 추모 행사나 묘역을 방문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몇몇 유가족을 제외하고 관계도 점차 단절되고 있다. ‘열사 추모사업’의 복원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족과의 상호소통이 지속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 과정을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이 개별화되지 않고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계승사업은 시기마다 다양한 빈민, 반빈곤 의제들의 흐름과 결합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려는 연장선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과거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삶에 역동적 의미를 살펴보고 "점“ 하나하나가 모여 선으로 이어지듯 민주주의의 개념을 사회권 일반으로 확대하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열사 혹은 수많은 의문사’에 대한 올바른 진상규명과 과거청산으로 나가야 한다. 열사는 삶의 길을 찾던 누군가에게 희생으로 다가간 사람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길을 닦고 또 그 길을 걷는다.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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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노조 "'갈등 조장 분열 획책' 김호성 해임하라"

YTN노사, 김호성 YTN라디오 상무 해임 문제로 갈등… 정찬형 사장 "시스템과 원칙에 따를 것"
송창한 기자 | 승인 2019.06.19 15:49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전국언론노조 YTN지부(지부장 지민근)가 김호성 YTN라디오 상무의 해임을 촉구했다. YTN지부는 김 상무가 YTN의 갈등과 분란을 조장해왔으며, 자회사인 YTN라디오 경영악화의 책임자라고 규탄했다. 이 같은 노조의 요구에 정찬형 YTN 사장은 절차와 원칙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19일 서울 상암동 YTN사옥 앞에서는 김 상무의 해임을 촉구하는 언론노조 YTN지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정 사장 취임 이후 지난 9개월 간 김 상무의 해임을 요구해왔지만, 정 사장의 거듭된 입장번복 등으로 김 상무의 직을 유지하는 안이 오는 21일 예정된 YTN라디오 이사회에 상정되었기 때문이다.

19일 서울 상암동 YTN사옥 앞에서는 김 상무의 해임을 촉구하는 언론노조 YTN지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기자회견에서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최남수 사장 사퇴 이후 상암동 이 자리에 다시 선 게 참담하다. 김 상무는 최남수 사장을 지킨다고 노조와 구성원들을 이간질하고, 많은 노조 조합원들이 책임지라 했는데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방송을 하고 있다"며 "자기 책임을 망각한 파렴치한 행위를 계속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YTN지부는 김 상무를 청산해야 할 적폐인사로 꼽는다. 김 상무는 YTN 창립멤버이자 초대 노조위원장으로서 2012년 다른 부장급 직원 4명과 함께 'YTN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한 우리의 호소'라는 기명 성명을 내 좌천됐다. 그러나 2015년 '낙하산 밀실 인사' 논란이 일었던 조준희 사장 시절 기획조정실장으로 발탁된 이후 YTN 총괄상무를 역임하면서 YTN 구성원들에게 보도 공정성 및 해직자 복직 문제를 꼬이게 한 장본인으로 평가받는다. 

YTN지부가 이날 정 사장에 제출한 '김호성 해임 촉구안'에는 YTN지부가 김 상무를 '적폐'로 꼽는 이유가 상세히 명시돼 있다. 

YTN지부가 김 상무를 적폐로 규정한 이유는 ▲2015년부터 2년간 기조실장을 역임하며 해직자 복직 문제를 퇴직금 누진제 폐지와 연계해 분란을 조장 ▲2017년 YTN 총괄상무 시절 사장 선임 절차의 관리자 역할을 내던지고 직접 후보로 뛰어들어 구성원 집단 반발 자초 ▲2차 사추위 기간 사장직무대행으로서 60명 넘는 대규모 인사 명령을 강행했다 역풍에 직면, 전면 백지화 ▲최남수 사장 선임 전후 사내게시판에 'YTN' 명의로 수없이 올라온 마타도어를 기획·승인 ▲최남수 사장 불신임 투표 당시 총괄상무의 본분을 망각하고 노골적인 신임 투표를 독려 ▲최남수 사장 퇴진 이후 삼성 동영상 관련 인사위의 위원장으로서 류제웅 전 기조실장에게 6개월 감봉 징계로 면죄부 부여 등이다.

YTN지부는 김 상무가 YTN 라디오의 경영실적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도 해임의 근거로 들었다. 김 상무가 본사와 라디오 상무를 겸직하며 6개월간의 라디오 경영 공백을 초래했으며, 2017년까지 3년연속 흑자였던 YTN라디오의 영업이익은 김 상무 취임 첫해에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자본잠식률은 다시 90% 목전으로 치솟았다는 지적이다.

YTN지부는 "김 상무는 적자전환의 원인을 코바코 광고 매출 하락으로 돌리고 있지만, 라디오는 자체적인 영업으로 유치하는 협찬 매출이 광고 매출보다 오히려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상무의 영업력이 실적으로 직결되는 매체"라며 "또한, 적자전환의 가장 큰 원인은 매출은 대폭 줄어든 반면, 비용은 대폭 늘어나는 것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데 있다"고 비판했다. 

또 YTN지부는 김 상무가 본사와 라디오 상무를 겸직할 수 있었던 YTN의 시스템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 상무는 최 사장 사퇴 이후 사장직무대행을 맡으며 '새 대표이사가 오면 회사를 떠날 것'이라고 밝혔지만 본사 상무직만을 내려두고 자신이 겸직하고 있던 자회사 YTN라디오의 상무 자리를 지켰다. 

YTN지부는 김 상무가 최 사장 사퇴 이후 YTN에서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라디오 상무를 겸직했다고 보고있다. 지민근 YTN지부장은 "최남수 사장 옹립에 앞장서고 불신임 투표 당시 구성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신임 투표를 독려한 김호성은 파업 당시 이미 본사 촐괄상무를 맡고 있었음에도 라디오 상무를 겸직했다"며 "최남수 사장이 쫓겨났을 때를 대비해 자신의 안위를 챙긴 것이다. 심지어 셀프인사를 통해 아침 라디오프로그램 진행자에 앉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YTN지부는 김 상무 해임 문제에 대한 정 사장의 입장번복을 사태악화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YTN지부는 기자회견문에서 "우리는 김호성이 물러나야 YTN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고 정찬형 사장이 내정자였던 때부터 김호성 해임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때마다 사장은 '시간을 달라', '자신을 믿어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며 "그러나 실질적인 조치는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다. 사장은 스스로 시간을 흘려보냈고, 스스로 믿음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질타했다.

정 사장은 애초 김 상무의 자진사퇴를 제안했지만 김 상무의 반복되는 거절에 비등기이사 재계약, 등기이사직 유지 및 보수체계 변경 등의 안을 제안했다. 줄곧 김 상무 해임을 요구해왔던 YTN지부는 정 사장의 입장번복과 중재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왼쪽부터)오정훈 전국언론노조 위원장과 지민근 YTN지부장이 정찬형 YTN 사장에게 '김호성 해임 촉구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기자회견 종료 후 노조의 '김호성 해임 촉구안'을 받아든 정 사장은 시스템과 원칙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 사장은 "'시스템에 의한 청산'을 기조로 최초에 말씀드렸고, 그 기조하에 미래발전위원회라든가 조직적인 검토 끝에 나올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면 반영하도록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 이사회에서는 라디오의 경영혁신을 위한 가장 좋은 방안은 무엇인지 찾아 회사가 상생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 합법적인 틀 안에서 좋은 방안을 찾도록 할테니 조합에서도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YTN 바로세우기 및 미래발전위원회'는 2008년~2017년까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했던 보도·운영을 바로잡기 위해 설치된 YTN의 노사합의 기구다. 미래발전위원회의 조사결과와 이사회 논의 등의 절차를 통해 김 상무 해임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YTN지부는 정 사장의 결단을 김 상무 해임 문제 해결의 열쇠로 보고 있다. 미래발전위원회는 YTN 본사의 노사합의 기구로 자회사 인사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우며 중소기업중앙회, 한림제약, 대교홀딩스, 제이에스티나 등 YTN라디오의 주주들은 YTN라디오의 대주주인 정 사장의 결단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YTN라디오의 사원들은 YTN지부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라디오 사원 14명 중 11명은 지난달 17일과 20일 낸 성명을 YTN지부 기자회견 장소에서 배포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YTN라디오의 구성원은 YTN 사측, 노조 그 어디와도 대립하고 싶은 의사가 없다. YTN라디오가 아닌 프로그램 및 경영 관련 사항을 간섭받고 싶지 않음을 분명히 밝힌다"며 "YTN지부가 YTN라디오의 방송과 경영에 간섭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지상파 방송사인 YTN라디오의 독립권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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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방북, ‘서울행 징검다리’ 또는 ‘플랜B 시동걸기’

 북중 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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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9  1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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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1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4차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해 3월부터의 네 차례 북중 정상회담은 모두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이루어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 2월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주춤거리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이번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북중 양국은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이자 중국 국가주석이 20~21일 북한을 국빈방문한다고 17일 저녁 발표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6.28~29)를 코앞에 둔 절묘한 시점으로, G20에서는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G20 직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시진핑 주석의 평양행을 두고 ‘서울행의 징검다리’라며 의미를 축소하는 분석과 ‘북한의 플랜B 가동’이라는 적극적 의미부여가 제기되고 있다. 물론 북미협상 중재 여부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1. 조성렬, 중국의 ‘한국 떼어내기’

북중 정상회담 개최가 양국에서 동시에 발표되자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밤 “정부는 지난주부터 시진핑 주석의 북한 방문 추진 동향을 파악하고 예의 주시하여 왔다”며 “그간 정부는 시진핑 주석의 북한 방문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이의 조기 실현을 위해 중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여 왔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이례적인 신속하고 구체적인 중국과의 협의 사실 확인은 이른바 ‘한국 패싱’을 우려한 조치로 읽힌다. “북중 간에 만남이 있는데 한국은 뭐하고 있느냐”는 식의 질문이 쏟아질 것에 대해 자문자답한 셈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 측에서 ‘한중관계를 소중히 하지만 우리 특성상 북한을 먼저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조성렬 위원은 “결국 시진핑 주석의 평양행은 서울행을 위한 징검다리”라고 짚었다. 중국은 10월 1일 주변국 정상들을 초청한 가운데 대대적인 건국 70주년 기념행사를 기획하고 있어 시 주석의 서울행은 9월 중순 이전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중국은 한국이 미국의 ‘반(反) 화웨이 전선’과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할까봐 바짝 긴장하고 있다”며 “실제로 미국은 10월말 11월께 열릴 SCM(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전면 참여를 관철시키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에 동참할 경우 중국의 입지는 그만큼 어려워질 수 밖에 없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등으로 껄끄러워진 ‘한국 달래기’, 즉 미국으로부터 ‘한국 떼어내기’에 적극 나서야 할 상황이라는 것.

실제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 압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고, 김대중 정부 이래 사실상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 편입 논란 때문에 미뤄왔던 SM-3 미사일 도입은 ‘신형 이지스함 3척 건조’ 결정으로 고삐가 풀렸다. 최근 사드 추가배치 의혹까지 불거져 중국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시진핑 주석의 평양행을 서울행 징검다리로 보고 있는 조성렬 위원은 이례적인 시진핑 주석의 19일자 <노동신문> 기고에 대해 “평양에 줄 선물이 없어서 김정은 위원장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싸고 북미간 힘겨루기가 한창인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의 대폭적인 양보를 끌어낼 묘책이 없고, 치열한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며 대북 경제제재를 누그러뜨리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기고글은 19일자 <노동신문> 1면에는 실렸지만 탑기사가 아닌 사설 아래에 작게 배치됐고, 국빈방문 치고는 1박2일의 소략한 일정이라는 점도 이같은 상황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2. 김동엽, ‘북한의 플랜B’ 시동걸기

이에 비해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시 주석의 방북 자체에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김동엽 교수는 “북한이 미국의 입장이 안 바뀌면 미국을 통한 지름길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 국제관계 속에서 긴 호흡으로 가겠다는 ‘플랜 B’를 꺼내든 것”이라며 “지난번 러시아 방문이나 최근 유엔이나 국제기구에의 접근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연말까지 미국에 협상 시한을 제시했지만 그때까지 미국만 쳐다보고 기다리기 보다는 “6월을 변곡점으로 연말까지 (플랜B로 나아가는) 스텝을 밟아나가겠다는 구상”이라는 것.

김 교수는 “시진핑 주석의 방북은 그런 의미에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며 시진핑 주석의 <노동신문> 기고를 “북한의 선택과 길을 전면 지지하고 협력해 나가겠다는 내용이 주”라고 분석했다.

시진핑 주석은 기고문에서 “우리는 김정은위원장동지의 옳바른 결단과 해당 각측의 공동의 노력에 의하여 조선반도에 평화와 대화의 대세가 형성되고 조선반도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쉽지 않은 력사적 기회가 마련됨으로써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인정과 기대를 획득한데 대하여 기쁘게 보고있다”며 “중국측은 조선측이 조선반도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는것을 지지하며 대화를 통하여 조선측의 합리적인 관심사를 해결하는것을 지지한다”고 분명하게 북측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김정은 위원장이 네 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등을 의식해 대북 경제제재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시 주석에게는 심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나는 이번 방문을 통하여 김정은위원장동지와 조선동지들과 함께 중조친선협조관계를 설계하고 전통적인 중조친선의 새로운 장을 아로새기려고 한다”고 밝혔고, “이미 합의한 협조대상들을 잘 리행”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  지난해 5월 7일 중국 다롄에서 개최된 북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마주하고 있다. 정상회담 직후 박태성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끄는 북한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해 양국간 경제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한신 남북경제협력연구소 대표는 19일 <통일뉴스> 기고문에서 “지난해 중국 다롄(대련)에서의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 내용 중 중국측이 훈춘-청진간 고속철도 건설과 청진항 개발 사업을 제안했던 것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외에도 중국은 갈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소 건설 지원과 신의주-개성 고속철도.도로 건설,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등을 약속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지만 국제적 제재에 묶여 실현된 것은 없다.

김한신 대표는 “체제보장과 비핵화를 ‘빅딜’하고 경제발전에 매진하려는 북한의 의중을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보증하고, 북한의 경제발전에 중국자본과 해외자본이 투자하는 형태의 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만약, 시진핑 주석이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해줄 수 없는 조건에서 30만톤 정도의 대규모 식량지원을 한다면, 카드가 될 수 있다”며 “그 정도면 북한이 협상시한인 연말까지 미국과의 힘겨루기를 벌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3. 정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북미협상 중재 기대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지만 시진핑 주석이 북한의 좀더 진전된 비핵화 양보를 얻어내고 이를 토대로 미국의 대북 체제보장과 제재완화의 상응조치를 약속받는 ‘북미협상의 중재자’로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시 주석의 방북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진전”이라며 시 주석이 북측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을 권고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했다.

또한 “미국 측에서도 북중 정상회담, 그리고 시 주석의 방북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며 “많은 부분에서 중국과 미국 간에 대북 정책에 대한 일치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목표가 같고 대북제재에도 발을 맞춰왔다는 판단이 깔린 것.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협상의 조기 재개와 이를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긍정적 의미를 부여했고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19일 ‘2019 한반도국제평화포럼’ 기조연설에서 아예 “모든 정상회담의 중요한 목표는 제3차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환경조성에 있다"고 초점을 좁혔다.

남문희 <시사IN> 한반도담당 선임기자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진핑이 자신있게 방북하겠다고 나선 걸 보면 그동안 북중간 물밑 조율을 상당히 했나 보다”며 “결국은 1월 북이 약속했던 ‘영변+알파’ 약속을 김위원장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그렇다면 중국이 북에 줄 수 있는 것은 뭘까? 남 기자는 “지난 1월처럼 북한이 비핵화에서 더 크게 양보해 미국이 유엔안보리 제재를 해제 또는 완화하게 하면 원하는 것 주겠다고 하자니 이미 구문이라 먹히지도 않을 터이고, 결국은 뒤로 드러나지 않게 뭔가를 챙겨주는 식 밖에 없을 것”이라고 봤다. 뒤가 아닌 앞으로 챙겨줄 수 있는 것은 인도적 지원에 해당하는 식량지원 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 주석의 방북과 중재 역할도 중요하지만 역시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북미 양자관계에 달려있다는 것은 공통된 시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북미 간, 또 남북 간에 물밑에서 대화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대화의 모멘텀은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며 “결국 김정은 위원장이 언제 호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북미 간, 또 남북 간의 대화가 너무 늦지 않게 재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한참 앞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비건 대표가 판문점이나 평양에 가서 김정은 위원장 친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해 판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며 “폼페이오-김영철 라인을 빼고 비건의 급을 높여서 비건-최선희 제1부상의 고위급실무회담에서 윤곽을 잡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지 않아도 줄어든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로서의 입지는 시진핑 주석의 방북으로 더욱 줄어든 느낌이다. 남북관계의 당사자로서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 9.19군사분야합의서를 실천하는 길이 그나마 남아 있는 고유한 영역인 셈이다.

조윤제 주미대사는 18일(현지시간)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트럼프 친서 전달과 이희호 여사의 유족에 대한 조의문 전달은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 지도자의 첫 북미간 남북간 직접 소통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동향”이라며 “한미 양국은 이러한 계기를 잘 살려 다시 북미대화, 남북대화의 재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나간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방문하고 나면 김정은 위원장이 10월쯤 답방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그 전후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정세상으로는 높아진다”고 관측했다.

한 소식통은 중국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그림’은 “시 주석 방북, 북중 정상회담(6.20~21) → 미중 정상회담(6.28~29) → 한미 정상회담 → 남북 정상회담 → 시 주석 방한, 한중 정상회담 → 북미 정상회담”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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