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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어머니 위한 '깜짝 이벤트', 효과가 좋았다

 

치매 환자들에게 새로운 기억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

17.09.04 20:26l최종 업데이트 17.09.04 20:26l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느 날, 어머니가 자신의 보물가방에서 지갑을 꺼내셨다. 동전이 가득했다. 거실에 있던 아이들 저금통을 열어서 당신의 지갑을 채우신 것이다. 그 이유를 여쭸더니 옛날에는 지갑에 돈이 많았는데 지금은 없다는 것이다. 당신 명의의 통장 하나 없이 사셨던 어머니다. 동전을 보시고 고모와 함께 이불을 만드시면서 수입을 얻으셨던 예전의 일을 기억하신 것 같았다. 손재주가 좋으셨던 큰고모와 어머니는 집에서 혼수이불 만드는 부업을 하셨다.

어머니가 옛 추억을 생각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어머니 추억이 담긴 사진과 물품을 보여드렸다. 일종의 이벤트다. 먼저, 어머니 아버지 사진, 나와 같이 찍은 가족사진을 보여드렸다. 그런데 아버지와 나를 알아보신다. 놀라웠다.
 
 부모님 사진과 가족사진
▲  부모님 사진과 가족사진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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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우리 아들. 니 아버지. 호호호"
 
친목계원들과의 식사사진, 현충사 여행 사진을 보여드렸다. 어머니 친구들과의 여행에는 항상 나도 동행했다. 어머니 친구 분들이 나를 데려오도록 했다.

"어... 이 이는... 이 여자는 음... 남편이..."
"어머니 젊으셨을 때 참 예쁘셨어요?"
"누가? 내가? 호호호. 할머니야."
"지금도 예쁘세요." 

하나둘 꺼낸 사진, 하나둘 피어나는 기억
 
 현충사(上:뒤 맨왼쪽 어머니와 나/ 下: 뒷 왼쪽 네번째 어머니, 그 앞이 나)
▲  현충사(上:뒤 맨왼쪽 어머니와 나/ 下: 뒷 왼쪽 네번째 어머니, 그 앞이 나)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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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아버지, 이모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드렸다. "정애, 윤하, 음..." 그 당시, 큰이모와 막내 외삼촌은 이미 하늘나라에 간 지 수 년이 넘었다. 어머니 기억에는 아직도 동생들이 살아 있었다. 동생들이 이 땅에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려드리고 싶었다. 잠시라도 좋은 추억에 젖으시길 바랐다. 빠르게 어머니의 생각을 이동시켰다.

"어머니, 이 사진 생각나세요?"
 
 내 대학원 졸업식에서 어머니/ 땡땡이 무늬 양장 옷 입으신 어머니
▲  내 대학원 졸업식에서 어머니/ 땡땡이 무늬 양장 옷 입으신 어머니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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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처음으로 사드린 땡땡이 물방울 무늬 원피스를 입으시고, 행사장에 가셔서 찍은 사진이다. 한복을 많이 입으셔서 내가 학교에 못 오시도록 했었다. 다른 친구들이 엄마는 양장을 입고 오지만, 내가 늦둥이라서 어머니는 나이든 학부형이었다. 그래서 늘 한복을 입으셨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그래서 늦게나마 땡땡이 물방울 무늬 원피스를 사드린 것이다, 어머니는 그 원피스를 십수 년 간 닳도록 입으셨다. 그리고 내 대학원 졸업식 때 찍으셨던 사진을 보여드렸다. 당신이 가운을 입고 꽃다발을 들고 계신 모습을 보시더니 "이게 뭐냐?"고 물으신다.

"제 졸업식 때 찍으신 어머니 사진이에요."

"그때 참... 어떤 아줌마가 글쎄..."

어머니의 창작소설이 시작됐다. 이런 현상은 머릿속 지우개를 가진 노인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잠시 동안 어머니의 창작소설을 들어드렸다. 그런 후 어머니가 이불 부업을 하실 당시에 사용하고 남은 천 조각을 모아 놓은 상자를 열었다. 어머니가 그 상자를 기억 못하신다. 그리고 어머니 목걸이와 반지, 시계가 들어 있는 나무상자를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누구 것이냐?" 하고 물으신다.

어머니의 빨간 내복
 
 어머니 옷과 반지고리 그리고 좀 먹은 빨간 내복
▲  어머니 옷과 반지고리 그리고 좀 먹은 빨간 내복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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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여름에도 가끔 찾아 입으시는 빨간 겨울 내복을 보여드렸다. 어머니는 유난히 그 내복에 집착하셨다. 더 좋은 내복이 많은데도 그것은 잘 입지 않으시고 빨간 내복만 입으셨다. 

그 내복은 내가 첫 월급을 타서 사드린 것이다. 엉덩이 부분은 낡아 구멍이 났고, 군데군데 좀 먹은 내복이다. 언젠가 버리려고 했더니 강경하게 반기를 드셨다. 어머니를 생각해 옷장 맨 위에 항상 올려놨다.

기억은 못하셔도 무의식에는 그 내복의 의미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아들의 첫 월급으로 해드린 선물의 의미를 모성애는 기억을 넘어 본능으로 반응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추억이 제일 많이 담긴 물품인 낡은 성경책을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교회 이야기를 하신다. 들어 보니 많이 기억하신다.

"좋아. 옛날 좋아."
"어머니,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고요. 옛날도 좋고 지금도 좋다고 하세요?"

자꾸만 옛날이 좋다고 하시는 것을 보니 지금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시는 것 같았다. 그 후부터 좋은 기억을 많이 간직하실 수 있도록 좋은 이벤트를 많이 만들었다. 수년 후에 좋은 기억만을 말씀하시기 바라면서.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을 모시고 사는 가족들은 '새로운 좋은 추억 만들기' 이벤트를 자주하면 좋다. 그것은 내년을 위한 준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천국 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고 그립다.

"엄마, 엄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덧붙이는 글 | 나관호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작가이며, 북컨설턴트로 서평을 쓰고 있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운영자로 세상에 응원가를 부르고 있으며, 따뜻한 글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또한 기윤실 문화전략위원과 광고전략위원을 지냈고, 기윤실 200대 강사에 선정된 기독교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분야 전문가로, '생각과 말'의 영향력을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와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돕는 구원투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미국 NEW NLP 협회)을 통해 상처 받은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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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핵 재앙 경고 "함께 살 것인가, 모두 죽을 것인가"

 
[전쟁 국가 미국] 반핵 여론 일어나다
2017.09.05 07:48:45
 

 

 

 

2차 대전 후, 미국의 정치군사 지도자들은 핵무기를 전후 국제질서 형성 및 유지의 핵심 수단으로 사용하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핵무기가 정당한 전쟁 무기라는 점을 미국 국민들에게 각인시켜야 했다. 핵무기가 인류의 양심과는 양립할 수 없는 절대 악이라는 일말의 의혹도 제기되어서는 안 됐다. 미국 정부가 원자탄의 인간적 참상을 드러내는 증언, 기록, 사진, 동영상 등의 공개를 철저히 차단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여론도 대체로 핵무기 사용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1945년 말부터 핵무기의 인간적 참상을 보여주는 증언과 기록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미국에서도 핵무기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특히 맨해튼 과학자들의 평론집 <함께 살 것인가, 모두 죽을 것인가(One World or None)>,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존 허시의 현장 르포 <히로시마> 등이 발표되면서 반핵 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심적 과학자와 작가, 언론인, 종교인 등의 문제 제기로 흔들리기 시작한 핵무기의 정당성은 제임스 코난트 하버드대 총장을 비롯한 관변 지식인과 미국 정부의 주도면밀한 선전전에 의해 다시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핵무기를 정당한 전쟁 무기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약 15년간 핵무기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은 거의 제기되지 않는다. 

1946년 핵무기의 정당성을 둘러싼 미국 내 담론 투쟁의 과정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그로브스 "더 좋은 핵무기를 만들어야" 

1945년 8월 말 열린 의회 청문회에서 레슬리 그로브스는 "미국이 원자력(핵무기) 개발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면서 핵무기의 성능 향상을 촉구했다. 심지어 그는 만일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미 국민 4천만 명이 사망하겠지만 생존자들의 보복 공격으로 결국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섬뜩한 증언을 천연덕스럽게 하기도 했다(아직 소련이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던 때임을 상기해보라!). 

그로브스의 발언은 극단적이긴 했지만, 대다수 정치군사 지도자들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이나 제임스 번스 국무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즉 원자탄은 미국 대외정책의 필수불가결한 무기라는 것이었다.  

반면 일부 공직자는 미국의 핵 독점이 미소 간 핵 군비 경쟁을 초래할 것으로 예견했고 이를 막으려 했다. 2차 대전을 진두지휘했고 전쟁 직후 퇴임한 헨리 스팀슨 전 전쟁부 장관과 존 매클로이 차관보가 그들이다.  

두 사람은 전쟁 이후 '인류가 당면한 핵심 문제는 소련의 독재가 아니라 원자탄'이라고 생각했다. 이 문제에 관해 소련과 진솔한 대화를 통해 핵 군비 경쟁을 막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었다. 두 사람은 9월 12일 트루먼에게 비밀 메모를 보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는 당장 원자탄 문제에 관해 소련과 논의해야 합니다...지금 그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하지 않고 원자탄을 보유한 채 단지 (핵무기의 국제 관리에 관한)협상만을 계속한다면 우리의 의도, 그리고 목표 및 동기에 대한 소련의 불신은 커질 것입니다" 

이에 따라 소련은 "맹렬하게 원자탄 개발을 추구할" 것이고 결국 "치명적 성격의" 군비 경쟁이 계속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판단이었다.  

(<원자폭탄 만들기>의 저자인 리차드 로즈에 따르면 미국은 1995년까지 50년간 핵무기 제조에 5조 달러를 사용했다. 소련 붕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도 바로 핵 군비 경쟁에 따른 경제 피폐다.) 

그러나 스팀슨과 매클로이의 선견지명은 무시됐다. 대다수 정치군사 지도자들은 미국의 핵 독점을 유지할 작정이었고 적어도 10~15년 내에는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할 것으로 자신했다. 

맨해튼 과학자들의 입을 막아라 

미국의 핵 독점이 10년 이상 지속될 것이란 지도자들의 판단은 오판이었다. 소련은 미국보다 4년여 늦은 1949년 8월 첫 핵실험에 성공한 것이다. 핵무기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원자탄을 직접 만들어낸 맨해튼 과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일찍부터 다음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원자탄의 비밀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원자탄 공격에 대한 방어도 불가능하다, 셋째 원자탄에 대한 국제적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핵 군비 경쟁은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맨해튼 과학자들은 대통령과 미 국민들에게 핵무기 및 핵 군비 경쟁의 위험성을 경고하려 했으나 모두 그로브스에 의해 철저히 차단당했다. 예컨대 물리학자 새무얼 앨리슨이 나가사키의 "비극"을 언급하며 정부의 비밀주의를 비판하자 그로브스는 사람을 보내 '입 다물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한 언론인은 원자탄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과학자들의 의견이 왜 대중들에게 공개적으로 전달되지 않는지 의구심을 표했다. 또 한 활동가는 "미국의 미래에 중차대한 의미를 갖고 있는 원자탄 관련 정보들이 대중들에게 전달되지 않음으로써 건전한 여론 형성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내용의 항의 서한을 전쟁부에 보내기도 했다. 

미국의 원자탄 개발을 가장 먼저 제안했던 레오 실라르드는 1945년 말, 히로시마 이후 수 주일 동안 과학자들은 "원자탄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공개적 발언을 금지 당했다고 밝혔다. 요컨대 미국의 대중들은 원자탄 사용에 대한 과학자들의 불만과 우려를 거의 몰랐던 것이다.

아마도 핵 군비 경쟁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절감했던 사람은 원자탄 제조의 책임자였던 로버트 오펜하이머일 것이다. 그는 10월 중순 로스알라모스연구소 소장직을 사퇴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쟁으로 얼룩진 이 세계에, 그리고 여전히 각 나라들이 전쟁을 준비하는 이 시기에 원자탄이 새로운 전쟁 무기로 추가된다면, 언젠가 로스알라모스와 히로시마라는 이름은 인류의 저주를 받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세계정부가 답이다" : 핵과학자연맹의 탄생 

1946년 3월, <함께 살 것인가, 모두 죽을 것인가(One World or None)>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원자탄의 총체적 의미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보고서'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맨해튼 과학자의 주도로 발간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책의 후기 '인류의 생존이 달려 있다(Survival is at stake)'를 통해 "이 책을 낸 유일한 목적은 핵 군비 경쟁을 막는 데 일조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핵무기로 인해 인류가 직면한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첫째, 핵무기는 인류 역사상 최대 위기 중 하나다. 

둘째, 이제 핵문제는 정치적 차원으로 진입했으며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 과학만으로는 핵무기의 위험을 해결할 수 없다. 

셋째, 핵무기는 세계적 문제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
 

▲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노벨상 수상 과학자들과 언론인, 군인 등의 공저로 지난 1946년 출간된 <함께 살 것인가, 모두 죽을 것인가> 표지 ⓒ더 뉴 프레스

나치의 세계 지배를 막기 위해 시작된 맨해튼 프로젝트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을 불러오고,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한 자신들의 경고가 정치군사 지도자들에 의해 묵살되는 것을 보면서 맨해튼 과학자들은 1945년 10월부터 각 연구소 차원에서 모임을 시작했고 결국 1945년 12월 핵과학자연맹(FAS, Federation of Atomic Scientists)의 결성으로 이어졌다(1946년 1월 미국과학자연맹,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로 이름을 바꿨다). 

핵무기의 위험을 방지하고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도모한다는 것이 이들의 활동 목표였다. 이들은 <핵과학자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발간을 통해 핵과 관련된 정보와 논평을 내는 한편, '종말의 시계(Doomsday Clock)'를 통해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해 왔다. 1947년 자정 7분 전에서 시작된 종말의 시계는 1953년과 2007년 자정 2분 전까지 갔다가 현재는 자정 2분 30초 전에 맞춰져 있다(자정은 곧 핵전쟁 발발을 의미한다).

<함께 살 것인가, 모두 죽을 것인가(One World or None)>에는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로버트 오펜하이머, 한스 베테, 해럴드 유리 등 노벨상 수상자 5명을 비롯한 맨해튼 과학자들과 언론인 월터 리프먼, 미 공군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햅 아놀드 장군 등 15명의 글이 실려 있다.  

기고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핵무기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세계 정부'가 답이라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출구(The Way Out)'라는 글에서 세계 정부에 관한 구상을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리했다. 

'현재의 상황: 첫째 각 국가들은 공식적으로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도 국민들에게는 항상 전쟁 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둘째 현대 무기, 특히 원자탄의 특성상 공격이 방어보다 훨씬 유리하므로(대규모 핵 공격을 100% 막아낼 수 없으며 10%의 타격만으로도 궤멸적 피해를 입을 것이므로) 지도자들은 예방 전쟁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해법 : 따라서 핵전쟁의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첫째 각 국가가 분쟁 해결의 권한을 초국가적 기구에 위임하며, 둘째 모든 군사력은 이 초국가적 기구가 독점한다.' 

아인슈타인은 후자의 두 조건을 충족시킬 때에, 비로소 언젠가 핵전쟁에 의해 인간의 몸이 원자로 분해돼 공중을 떠도는 신세를 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40-50년대 세계정부론이 풍미했던 배경이다. 

맨해튼 과학자들은 이 책의 후기에서 "오늘날 핵전쟁의 위험을 막을 기회와 책임은 바로 미국 국민들에게 있다"면서 이 책을 '읽고 토론하며 행동하라!'고 촉구했다. 그리하여 정치 지도자들에게 국민들이 사태의 엄중함을 똑똑히 알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나아가 용기와 비전을 가지고 핵문제의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라는 것이다.  

이 책은 발간 당시 약 10만 부가 팔리면서 미국 사회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전략폭격조사단 "원폭은 전쟁 승리에 기여하지 못했다" 

1945년 가을, 약 1000명으로 구성된 전략폭격조사단이 일본을 방문했다. 히로시마 원폭을 비롯한 미국의 공중 폭격이 전쟁 승리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지 조사는 조사단의 부단장인 폴 니츠가 이끌었고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도 12개 부서 중 한 부서의 책임자로 참여했다. 니츠는 원자탄 사용에 찬성했고 갈브레이스는 반대 입장이었다. 

그러나 조사가 끝나면서 니츠와 갈브레이스의 결론은 일치했다. 원자탄을 비롯한 미국의 공습은 전쟁 승리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실패였다는 얘기다. 이에 앞서 미국은 독일에 대해서도 같은 조사를 벌였으나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공습이 전쟁 승리의 요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독일 경제의 파괴보다 공습에 투입된 자원이 더 많았다고 지적했다. 

조사단은 일본 항복의 결정적 원인으로 태평양 전투에서의 참패, 미국의 해상 봉쇄, 소련의 참전 등을 꼽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폭이 투하되지 않았어도, 소련이 참전하지 않았어도, 그리고 (미군의) 본토 상륙이 시도되지 않았어도 일본은 45년 12월 31일 이전에는 확실히(certainly), 11월 1일 이전에도 거의 분명히 (in all probability) 항복했을 것이라는 게 조사단의 결론이다"

조사단은 이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탄이 승리를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면서 천황과 일본 지도부는 "이미 1945년 5월부터 연합국 측의 항복 조건을 받아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고 밝혔다. 원자탄 공격의 역할은 기껏해야 "종전을 앞당겼을 뿐"이라는 것이다.  

(1989년 기밀 해제된 미 육군부의 다른 문서에 따르면 일본 지도부는 항복의 "명분"을 찾고 있었고 소련군 참전을 그 명분으로 삼았다.) 

조사단의 결론은 트루먼이나 그로브스 등 정치군사 지도자들의 그동안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트루먼 등은 원자탄의 역할을 크게 과장해 왔던 것이다. 미국 지도자들로서는 곤혹스런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대중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한다. 나가사키 이후 최초의 원폭 실험인 비키니 핵실험(46년 7월 1일)이 시행되기 불과 수 시간 전에 발표됐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비키니 핵실험에 대한 언론의 대대적 보도 속에 묻혀버렸다. 

게다가 당시는 미국이 제안한 핵무기의 국제적 관리 방안에 대한 유엔 논의가 시작된 지 2주일 쯤 된 시점이었다. 소련은 핵실험이 자신들에 대한 무력 과시이자 협박이라고 반발했고, 이런 와중에 보고서는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져 버렸다.  

존 허시의 <히로시마> : 반핵 여론이 일어나다 

1946년 8월 31일, 미국의 권위 있는 잡지 <뉴요커>에 원폭 직후 히로시마의 참상에 대한 장문의 르포기사가 발표됐다. 오로지 히로시마 기사만으로 잡지 전체를 도배한 파격적인 편집이었다. 68쪽, 3만 단어에 이르는 이 르포를 작성한 이는 31살의 나이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존 허시(1914~1993년)였다.  

그는 1946년 4월부터 3주간 히로시마를 방문해 생존자 수 십 명을 인터뷰했고 이중 종교인 2명, 의사 2명, 여성 노동자 2명 등 6명의 행로를 집중 조명했다. 일본인 목사와 독일인 예수회 신부, 개인병원을 소유한 나이 많은 의사와 적십자병원 소속의 젊은 의사, 아이 셋을 가진 전쟁미망인과 젊은 여성 사무원 등이 그들이다.  
 

▲ 지난 1946년 <뉴요커>에 게재된 존 허시의 기사 ⓒ뉴요커


허시는 이들이 피폭 직후 겪어야 했던 고난과 참상, 그리고 피폭자들의 연대와 상호 부조를 담담한 필치로 그려냈다. 그는 이 기사를 쓰면서 "원자탄으로 인한 건물 등 물리적 피해가 아닌, 인간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방사능에 의한 고통과 죽음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등장인물의 하나인 다니모토 목사는 강물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내다가 그 사람의 피부가 큰 조각으로 벗겨지는 섬뜩한 경험을 한다. 그 기이한 촉감을 이겨내기 위해 그는 "이건 사람이야"라고 수없이 되뇌며 사람들을 구조한다. 전쟁미망인 나카무라는 피폭 2주일 후 머리를 빗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는 아찔한 경험을 한다. 

독일인 신부 클라인조르게는 공원에 피신한 피폭자들에게 물을 갖다 주다가 두 눈알이 빠진 채 나뭇더미에 묻혀 있는 일본 병사 20여 명을 발견한다. 사망자 20%가 방사능에 의한 것이라는 전략폭격조사단의 결론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당초 4회로 나누어 연재하기로 했던 이 기사는 편집자의 결단에 의해 한 번에 모두 발표됐다. 

히로시마 이후 1년이 지나도록 원폭 피해자들의 실상은 미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45년 9월 토마스 패럴 장군과 함께 히로시마를 방문했던 물리학자 필립 모리슨이 그해 12월 의회 청문회에서 자신이 현지에서 보고 들은 바를 증언한 바 있지만, 그것으로 피폭자들의 고통의 전모를 알 수는 없었다. 허시의 르포는 처음으로 그 전모를 보여주는 글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잡지는 순식간에 매진됐다. ABC 라디오는 허시의 기사를 나흘 저녁에 걸쳐 낭독 방송했고, 다른 지역 방송들도 뒤를 따랐다. 뉴저지 주 프린스턴의 시장은 '모든 시민들은 읽어보시오'라고 권유했다. 별도 인쇄본을 찍어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아인슈타인은 1000부를 주문했다. 신문들은 너도 나도 기사를 전재하겠다고 나섰다. 허시는 2가지 조건을 내걸고 전재를 허락했다. 수익금은 모두 적십자에 기부할 것, 전문 게재할 것.

신문 칼럼니스트와 편집자들은, 원자탄 사용에 찬성했던 사람들조차 당대 최고의 보도라고 격찬했다. 허시의 르포는 두 달 뒤 책으로 발행됐으며 즉각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원자탄에 대해 농담을 할 정도의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또는 원자탄을 문명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저 놀라운 발명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재앙은 바로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며, 허시의 <히로시마>를 읽고 나면 더 많은 목숨을 살리기 위해 원자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했다는 (미 정부의) 주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뉴요커>에는 독자들의 편지가 쇄도했다. 한 대학생은 "(이 글을 읽기 전까지) 폭격 당한 도시의 주민들을 같은 인간으로 생각해 보지 못했다"면서 미국이 행한 일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젊은 과학자는 글을 읽으며 내내 울었다면서 원폭 투하 소식을 들었을 때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환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없는 수치심을 느꼈다"고 자책했다. 

아인슈타인은 원자탄이 사용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아마도 소련이 참전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학자 폴 보이어는 이 글에서 허시가 해낸 일은 미국인들에게 '사악한 쪽발이'였던 일본인을 "같은 인간으로 되돌려 놓은 것"이라며 원자병(방사능 피폭)을 비롯해 원자탄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했다고 평가했다. 

노먼 커즌스 "원폭 개발을 잠정 중단하자" 

허시의 <히로시마>는 미국 내 반핵 여론의 기폭제가 됐다. 그 선봉에 나선 사람은 노먼 커즌스(1915~1990년)라는 언론인이었다. 그는 이미 히로시마 당일, 원자탄에 대해 비판적인 장문의 칼럼 '현대인은 이제 죽은 목숨(The Modern Man is Obsolete)'을 집필해 다음 날인 45일 8월 7일 <새터데이 리뷰>에 발표한 바 있다.  
 

▲ 존 허시가 지난 1946년 펴낸 <히로시마> 초판 표지 ⓒ알프레드 A.크노프

인간에 대해 원자탄이 사용됐다는 데 대해 "매우 깊은 죄의식"을 느낀다면서 핵무기와 원자력의 정치사회적 의미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또 46년 6월에는 아마도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원자탄 사용은 "권력정치(power politics)의 일환"이며 "소련의 참전 이전에 일본을 굴복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46년 9월 14일, 그는 <새터데이 리뷰>에 '생존을 제대로 이해하기(Literacy of Survival)'라는 칼럼을 발표했다. <히로시마> 현상의 의미는 허시의 글 자체의 중요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글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에 있다면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우리가 시작한 핵전쟁의 의미를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트루먼 등 지도자들의 원자탄에 관한 담론의 허구성을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예컨대 우리는 알고 있는가? 앞으로 수년간 원자탄이 내뿜은 방사능에 의해 수 천 명의 일본인들이 암으로 죽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원자탄이 실상은 죽음의 빛이라는 것을 아는가? 폭발과 화염보다도 방사능이 인체에 더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미국 국민으로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저질러진 범죄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가? 미국 국민은, 일본에 원자탄을 사용하기 전에 원자탄 시험 폭발을 통해 사전 경고를 하자는 과학자들의 건의를 정치지도자들이 묵살한 이유를 추궁했는가?

이제 우리는 일본이 히로시마 이전에 항복할 준비가 돼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원자탄 사용으로 수십만 미군 병사의 목숨을 구했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커즌스는 '현재의 진로를 멈추자. 원폭 개발을 잠정 중단하고 히로시마의 정치적, 도덕적 의미가 무엇인지, 원자력시대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성찰해보자'고 촉구했다.

제도권의 즉각적이고 운명적인 대응  

허시의 현장 르포와 커즌스의 문제 제기는 미국의 정치지도자와 제도권 학자들에게는 치명적 일격이었다. 그동안 제도권이 공들여 퍼뜨려온 담론, 즉 원자탄으로 수많은 인명을 구했고 원자탄은 다른 무기와 마찬가지로 정당한 전쟁무기라는 인식이 일거에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대응이 필요했다. 하버드대 총장인 제임스 코난트가 앞장을 섰다.

코난트는 커즌스의 칼럼을 읽자마자 과학계의 최고 원로인 바네바 부시에게 연락을 취해 허시와 커즌스가 원자탄이 사용된 맥락을 무시한 채 그 참상과 공포만을 강조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9월 23일에는 제도권의 유력 인사인 하비 번디에게 커즌스의 칼럼을 첨부한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는, 이런 부류의 논평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면서 이대로 방치할 경우 "역사의 왜곡"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권위 있는 인물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그 일을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스팀슨 씨"라고 말했다.  
inkyu@pressian.com다른 글 보기
▶ 필자 소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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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폐기? 쫄지 맙시다!

 

등록 :2017-09-04 11:25수정 :2017-09-04 11:30

 

 

Weconomy | 김양희의 경제통합 풀어보기
그래픽_김지야
그래픽_김지야

 

9월 첫날부터 연일 특종이 쏟아졌다. 1일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은 40분에 걸친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고자 한미 미사일 지침을 한국 뜻에 따라 개정하기로 합의해 긴밀한 양국공조세를 과시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 트럼프가 백악관 참모들에게 한미 FTA 폐기 준비를 지시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3일에는 1일의 뉴스를 조롱하듯,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였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한미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점에 한국은 트럼프와 북한에 동시에 세게 두 방을 먹었다. 아직 좀 더 사태추이를 살필 필요가 있으나 현 시점에서 트럼프의 한미 FTA 폐기 발언을 둘러싼 행간을 읽어보고 우리의 향후 대응방향을 정리해보자.

 

 

트럼프는 왜 한미 FTA 폐기 카드를 빼들었을까?

 

 

그의 한미 FTA 폐기 발언의 진의 파악이 시급하다. 필자는 그가 앞으로의 개정협상 테이블에서 한국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가 실제 한미 FTA 폐기까지 갈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필자는 한미 FTA 폐기 여부가 의외로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의 성과 여하와 밀접히 연동되어 있다고 본다. 아직 단언하기엔 이르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는 보지 않는 바 이는 그가 NAFTA에서도 유사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NAFTA의 경우에도 그는 선거유세 때부터 수차례 폐기 운운했고 재협상이 시작된 뒤에도 네 차례나 폐기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의 미국 쪽 분위기는 그리 험악하지 않다고 한다. 이를 감안하면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도 다분히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휘두르는 이중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미 FTA의 폐기 가능성이 제로라고 보긴 어렵다. 트럼프는 NAFTA도, 한미FTA도 충분히 폐기시킬 수 있는 예측불허의 인물이다. 그에게 중요한 건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보다 트럼트우선주의(Trump First)인 듯 하다. 그에겐 미국 전체의 경제나 외교안보적 이득보다 러스트 벨트의 백인노동자들을 위시한 자신의 지지기반을 만족시켜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다급한 문제다.

 

 

그의 궁극적인 목적함수는 협정 폐기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지렛대 삼은 자신의 요구사항 관철이다. 따라서 그가 한미 FTA를 폐기하는 건 그것을 지렛대로 NAFTA에서 뭔가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을 때일 가능성이 높다. 역으로, NAFTA에서 뭔가 얻을 게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그것을 폐기하면서, 한국도 미국에 협력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이며 한미FTA라도 건지려 할지 모른다. 그가 바보가 아닌 이상 NAFTA와 한미 FTA 둘 다 폐기하는 우를 범하진 않을 것이고 미국의 시스템이 그것을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한미 FTA 폐기 발언 시점에 주목

 

 

이에 트럼프의 한미 FTA 폐기 발언이 나온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 행간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이번 한미 FTA 폐기 운운하는 그의 고강도 대응에서 역설적으로 NAFTA 재협상이 바람대로 진척되지 못하는데서 오는 그의 조바심이 읽혀진다. NAFTA의 최대 쟁점 중 하나인 자동차의 원산지규정에서 현행 자동차에 대한 특혜관세 부여를 위한 역내 부가가치 기준인 62.5%를 70%로 올리자는 멕시코 쪽 제안에 대해 윌버 로스 미 상무부장관은 자국산 부품의 더 많은 사용을 원한다며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등 무리수를 둠에 따라 캐나다와 멕시코의 반발이 거세다. 이뿐 아니라 또 다른 쟁점인 환율조항에서도 별 진전이 없는 상태다.

 

 

그는 NAFTA든 한미 FTA든 뭔가 가시적 성과를 내야 30%대로 곤두박질친 지지율을 끌어올릴 발판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NAFTA의 경우는 미국과 멕시코의 정치일정상 올해 안에 승부를 내야 하나 별 진전이 없다. 게다가 한미 FTA 재협상 시동을 걸려던 찰라에 한국이 ‘감히’ 영향분석부터 먼저 하자고 제동을 걸었으니 견딜 수 없었다. 이에, 트럼프는 NAFTA와 한미FTA를 두고 저울질하다가 상황에 따라 후자로 과녁을 이동할 수 있다. 왜냐면 전자는 23년 묵은 협정의 재협상이라 쟁점이 많고 복잡하며 상대는 캐나다와 멕시코 두 나라다. 그에 반해 후자는 5살짜리 협정에 불과하고 상대는 전자에 비해 경제적 상호연관성도 적고 미사일 사용지침 변경 여부를 미국에 물어야 하는 한국뿐이다. 협정 폐기 때 부작용도 전자보다 덜하다. 따라서 후자 폐기를 지렛대 삼아 전자에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전자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미 FTA와 NAFTA 중 무엇이 먼저일지 모르니 지금부터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6월29일 오후(현지시간)백악관에서 열린 정상간 상경례및 만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담소하고있다. 워싱턴/청와대사진기자단
6월29일 오후(현지시간)백악관에서 열린 정상간 상경례및 만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담소하고있다. 워싱턴/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 정부의 전략적 실수와 전략 전환의 필요성

 

 

한국 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 논의가 불거진 이래 협상전략상 두 가지 실수를 범했다. 첫 번 째 실수는 협상의 전개 방향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 시 40조 원 상당의 대미 구매와 투자 등의 선물 꾸러미를 안겨 중요한 우리의 협상카드 하나를 먼저 써버린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두 번째 실수는 한미 FTA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다. 기존질서의 균형을 깨려는 자와 현상유지를 원하는 자가 협상에서 만날 경우 잃을 게 없는 전자가 후자에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다. 따라서 후자는 설령 현상유지를 원하더라도 그 패를 보이는 순간 상대에게 약점을 잡히게되므로 내색하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줄곧 한미 FTA는 양허이익의 균형을 이룬 것이고 우리에게 유리하니 현상유지를 원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니 미국으로선 폐기라는 강공카드를 먼저 꺼내들어 한국의 허를 찌른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 정부도 한미 FTA에 대해 불만이 많으나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어려워 참았을 뿐이니 개정할테면 해보자는 식으로 접근했어야 했다. 우리 정부의 안이한 상황 판단이 트럼프의 강공모드로의 전환에 일조한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전략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무엇보다도 트럼프의 벼랑끝 전술에 휘말리지 말고 이젠 플랜 B를 짜야 한다. 우리에게 한미 FTA는 좋은 협정이었고 그래서 일획일점도 바꿀 수 없다는 기존의 포지션은 접는 대신, 폐기한다면 누가 더 손해인지 냉정히 계산해 보자고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손해 볼 게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을 냉정히 직시하자. 이는 양국간 비대칭적 관세구조가 말해준다. 자동차만 하더라도 우리의 대미수입관세는 8%, 미국의 대한수입관세는 2.5%다. 한미 FTA 폐기시 발효후 37.1% 증가한 미국 승용차의 대한수입에 차질을 빚게 되면 누가 손해인지 물어보자.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방법론을 동원해 한미 FTA 폐기 때 우리의 손해가 막심한 듯 발표했던 모 연구기관의 보고서는 비판적 시각에서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우리의 주요 경쟁국인 일본도 중국도 아예 미국과의 FTA가 없다.

 

 

물론 한미 FTA가 폐기되면 우리에게 아무런 손해가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설령 그렇더라도 갑자기 태도를 바꿔 미국 요구에 응하겠다고 해야 할까? 그것이야말로 트럼프가 노리는 바다. 그러니 트럼프식의 벼랑끝 전술에 겁먹지 말고 우리도 폐기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일각에서는 대북공조도 시원찮을 판에 미국의 비위를 건드렸다며 이제라도 내줄 건 내주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히려 우린 트럼프야말로 미국내에서조차 비판이 제기될 정도로 안보동맹에 일언반구 언질도 없이 폐기 수순을 밟는 것이 온당한 것이냐고 맞받아치자. 이럴 땐 국내의 한미 FTA 반대여론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위위구조’ 전술을 활용하자

 

 

손자병법의 승전계에 나오는 제2계는 ‘위위구조(圍魏救趙: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한다)’ 즉 강적을 만났을 때는 정면승부를 피하고 상대의 약한 틈을 공략하라는 뜻이다.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정면충돌을 할 경우 자칫 우리의 손실이 클 수 있다. 다음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리가 위위구조 전술로써 활용할 만한 점들이다.

 

 

첫째, 필자는 그가 취임 후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탈퇴하고 EU(유럽연합)와의 FTA(TTIP·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도 보류시킨 채 NAFTA 폐기 운운하면서도 이들 나라들 일부와 양자간 협정으로 선회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TPP, TTIP 등과 같은 메가 FTA에서는 자국이 다수의 협정 참가국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이에 자국의 거대 내수시장과 G2의 한 축으로서의 국제사회에서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무기로 하여 과거 미국이 양자간 협정 체결시 애용했던 '경쟁적 자유화(competitive liberalization)' 전략을 구사해 상대국과 1:1로 마주 앉아 최대한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경쟁적 자유화 전략에 입각하여 TPP, NAFTA는 폐기시키고 그 참여국 중 일부와의 양자간 협정으로 대체할 수 있으나 한미 FTA는 이미 양자간 협정이라 그 대안을 찾기 힘들다.

 

 

둘째, 미국내 우군을 만들어 협공을 시도하자. 첫 번째로 우리는 한미 FTA가 TPP의 근간이 되었으며 미국의 자동차와 철강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조업과 서비스업 그리고 농축수산업이 한미 FTA 폐기를 반대하고 있다. 두번째로 한미 FTA 폐기 시 개정이 완료된 국내 법령 중 가능한 것들을 모두 원상복귀시키자. 대표적으로, 미국산 자동차의 수입을 확대하기 위하여 조세주권 침해라는 법조계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규정한 한미 FTA 제2.12조 3항(“대한민국은 차종간 세율의 차이를 확대하기 위하여 차량 배기량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를 채택하거나 기존의 조세를 수정할 수 없다.”)의 백지화는 미국 자동차업계의 지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세번째로 24개의 개정법률 중 9건을 차지하는 지식재산권 보호수준 강화에 힘입어 대미 지식재산권 수입이 상당히 증가했다. 이 또한 백지화된다면 미국의 다국적 제약업체 등 첨단산업계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강대강의 극단적인 대결구도 속에서 서로를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고 대화와 타협으로 새로운 확대균형을 얻을 수 있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복안도 동시에 마련해야 할 것이다.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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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09528.html?_fr=mt1#csidxd530546208a747ca9c1ac84092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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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12형 북태평양으로 날려보낸 2017년형 백두산로켓엔진

[개벽예감264]화성-12형 북태평양으로 날려보낸 2017년형 백두산로켓엔진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7/09/04 [11:2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백년숙적 머리 위로 날아간 ‘징벌의 화염’

2. 엄청난 추력 분출하는 백두산 계렬 액체로켓엔진들

3. 화성-12형 전투부 모양이 약간 달라진 이유

4. 미일연합함대를 속수무책으로 만든 화성-12형

5. 태평양 상공에 펼쳐질 다섯 차례의 미사일발사훈련 

 

▲ <사진 1> 이 사진은 1930년대 일본제국에서 우편엽서로 널리 사용되던 "일만관계요도(日滿關係要圖)"라는 지도다. 조선 영토가 일본제국의 해외영토로 표시된 이 지도는 조선이 주권과 영토를 빼앗기고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던 치욕의 역사를 말해준다. 일본제국의 식민지노예로 살아야 했던 2,000만 조선인들은 가혹한 망국노의 치욕과 고통을 겪으며 36년 동안 피어린 항일투쟁을 벌였다. 일본제국은 수십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을 죽였고, 징용, 징병, 학병, 종군성노예로 끌어갔으며,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조선의 천연자원, 생산물, 문화재를 약탈했다. 일본제국이 패망한지 72년이 지난 오늘도 일본은 우리 민족에게 식민통치죄악을 사죄하기는커녕 그 죄악을 덮어버리고, 독도를 강탈하여 동해를 일본해로 강점하려는 간악한 책동에 광분하고 있다. 식민통치죄악을 사죄하지 않고, 전쟁범죄와 식민지피해를 배상하지 않고, 독도강탈과 재침무력증강에 광분하는 한, 일본은 우리 민족의 백년숙적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백년숙적 머리 위로 날아간 ‘징벌의 화염’

 

2017년 8월 29일은 107년 전 일본제국에게 우리나라를 빼앗긴 치욕의 날이었다. 반만년을 헤아리는 민족사에서 여러 차례 외국군의 침략을 받기는 했어도 나라를 강탈당한 것은 1910년 8월 29일에 자행된 ‘한일합병’ 뿐이다.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에 발행된 세계지도를 보면, 조선 영토는 일본제국의 해외영토로 표시되었다. <사진 1>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일본제국은 조선에서 청일전쟁을 일으킨 1894년 7월부터 패전으로 항복한 1945년 8월까지 50년 동안 수십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을 죽였고, 수십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을 징용, 징병, 학병, 종군성노예로 끌어갔으며,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조선의 천연자원, 생산물, 문화재를 약탈했다. 일본제국이 패망한지 72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 민족 앞에 식민통치죄악을 사죄하기는커녕 그 죄악을 덮어버리고, 전쟁범죄와 식민지피해를 배상하지 않고, 독도강탈과 재침무력증강에 날뛰는 일본은 우리 민족의 백년숙적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사에 가장 치욕스러운 날로 기록된 지난 8월 29일 백년숙적의 머리 위로 ‘징벌의 화염’이 날아갔다. 일본을 벌벌 떨게 만든 ‘징벌의 화염’은 조선의 화성-12형이 내뿜은 불줄기였다. 조선이 화성-12형을 일본열도를 넘어 북태평양 상공으로 날려보낸 발사훈련은,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107년 전 <한일합병>이라는 치욕스러운 조약이 공포된 피의 8월 29일에 잔악한 일본 섬나라 족속들이 기절초풍할 대담한 작전”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화성-12형 8.29 발사훈련은 식민통치죄악을 은폐하고, 독도강탈책동에 매달리면서, 재침무력증강에 날뛰는 일본에게 징벌을 경고한 것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당시 한미연합군이 강행하고 있었던 ‘을지프리덤가디언’전쟁연습에 맞선 “대응무력시위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서 다시 논한다.

 

한국군 합참본부 발표에 따르면, 조선은 지난 8월 29일 오전 5시 57분경(평양시간으로는 오전 5시 27분경) 화성-12형 1발을 평양 북쪽에 있는 순안국제비행장에서 발사하였는데, 비행거리는 약 2,700km였고, 정점고도는 약 550km였다고 한다. 발사 직후 일본 관방장관이 밝힌 바에 따르면, 화성-12형은 오전 6시 6분경 홋까이도(北海道) 에리모갑(襟裳岬) 상공을 통과하여 오전 6시 12분경 에리모갑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1,180km 떨어진 북태평양 수역에 낙탄하였다고 한다. <사진 2>

 

▲ <사진 2> 위쪽 사진은 2017년 8월 29일 오전 5시 57분경 순안국제비행장 활주로에서 화성-12형이 발사되는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그 날의 발사훈련을 현지지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장감시소 탁자 위에 설치된 컴퓨터 화면을 확대한 사진이다. 화성-12형의 비행거리는 약 2,700km였고, 정점고도는 약 550km였다. 화성-12형은 일본 홋까이도 남동쪽에 있는 에리모갑에서 동쪽으로 약 1,180km 떨러진 북태평양 수역에 낙탄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17년 5월 14일 화성-12형이 고각으로 발사되었을 때, 정점고도는 2,111.5km였는데, 정상각으로 발사하면 사거리는 정점고도의 4배에 이르게 되므로, 화성-12형의 사거리는 약 8,400km인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 추산이 과장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에 진행된 화성-12형 발사훈련에서 나타난 몇 가지 현상을 분석하면, 그런 추산은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래에 서술하는 사실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7년 8월 10일 김략겸 전략군사령관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략군이 괌포위사격을 단행할 경우 화성-12형은 3,356.7km를 17분 45초 동안 날아가 괌의 주변수역에 낙탄될 것이라고 하였다. 화성-12형이 3,356.7km를 17분 45초 동안 날아간다면, 평균비행속도는 초속 3.15km다. 

지난 8월 29일 화성-12형은 오전 5시 57분경 발사되었고, 오전 6시 12분경 북태평양 수역에 낙탄되었으므로 비행시간은 약 15분이었다. 발사지점으로부터 낙탄수역까지 거리는 약 2,700km이므로, 화성-12형의 평균비행속도는 초속 3km다. 

 

그런데 인도 국립고등연구원(National Institute of Advanced Studies)이 펴낸 분석자료에 따르면, 사거리가 2,000km인 파키스탄의 탄도미사일 샤힌(Shaheen)-2는 851km를 8분 26초 동안 날아갔다고 한다. 이것은 샤힌-2의 평균비행속도가 초속 1.68km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평균비행속도가 초속 1.68km인 샤힌-2에 비하면, 평균비행속도가 초속 3km인 화성-12형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아간 것이다. 화성-12형에 강력한 로켓엔진이 장착되었기 때문에 그처럼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갈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로켓엔진은 탄도미사일의 비행속도와 비행거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 <사진 3> 이 사진은 2016년 9월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서해위성발사장 지상분출시험장에서 진행된 신형 액체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장면을 보도한 조선의 언론보도사진들 가운데 하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 놓인 해설도면 사진을 확대하였더니,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백두산 계렬 80tf 액체로케트"라는 제목이 식별되었다. 이 사진은 그 날 지상분출시험에 사용된 신형 액체로켓엔진의 추력이 80톤-포스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80톤-포스는 784킬로뉴튼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 엄청난 추력 분출하는 백두산 계렬 액체로켓엔진들

 

화성-12형에 장착된 강력한 액체로켓엔진은 조선이 독자적인 기술로 만든 백두산로켓엔진이다. 이 액체로켓엔진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2016년 9월 20일 조선의 언론보도를 통해서였다. 보도 전날인 9월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 액체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이 진행되었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 놓인 해설도면이 촬영된 보도사진을 확대하면,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백두산 계렬 80tf급 액체로케트”라는 제목을 식별할 수 있다. 이 제목은 그 날 지상분출시험에 사용된 신형 액체로켓엔진의 추력이 80톤-포스(ton-force)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80톤-포스는 784킬로뉴튼(kilonewton)이다. 

 

그런데 그 해설도면 제목은 80톤-포스급 백두산액체로켓엔진이라고 되어 있지 않고, 백두산 계렬 80톤-포스급 액체로켓엔진이라고 되어 있었다. 여기서 계렬이라는 말은 연관성 및 유사성을 가지고 파생된다는 뜻이므로, 당시 조선이 백두산 계렬 액체로켓엔진을 여러 종 개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3월 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신형 액체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이 또 다시 진행되었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 액체로켓엔진이 지상분출시험에서 성공한 것을 두고 “로케트공업발전에서 대비약을 이룩한 오늘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 <3.18혁명>이라고도 칭할 수 있는 력사적인 날”이라는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형 액체로켓엔진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처럼 격찬한 것일까? 

 

<연합뉴스> 2017년 3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의 언론보도사진에 나타난 신형 액체로켓엔진의 분사장면을 분석한 한국의 군사전문가들은 그 액체로켓엔진을 100톤-포스급 로켓엔진으로 평가하였다고 한다. 100톤-포스는 980킬로뉴튼이다. 2016년 9월 19일에 진행된 지상분출시험에서 80톤-포스급 액체로켓엔진이 등장했는데, 2017년 3월 18일에 진행된 지상분출시험에서는 100톤-포스급 액체로켓엔진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사정을 보면, 2017년 9월 현재 백두산 계렬 액체로켓엔진은 2016년형 80톤-포스급과 2017년형 100톤-포스급으로 각각 개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4>

 

▲ <사진 4> 위쪽 사진은 2017년 3월 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서해위성발사장 지상분출시험장에서 신형 액체로켓엔진이 분사되는 장면이다. 아래쪽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형 액체로켓엔진 개발에 성공한 것이 너무 기뻐 로켓엔진기술자를 등에 업어주는 장면이다. 이 날 분사시험에 성공한 신형 액체로켓엔진의 추력은 100톤-포스로 추산되었다. 100톤-포스는 980킬로뉴튼이다. 지금 조선이 보유한 백두산 계렬 액체로켓엔진은 2016년형 80톤-포스급과 2017년형 100톤-포스급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00톤-포스급 액체로켓엔진이 얼마나 강력한 로켓엔진인지 알려면, 소련이 1967년부터 1973년까지 실전배치하였던 2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 SS-11에 장착된 RD-0217 액체로켓엔진과 비교하면 된다. 2017년형 백두산로켓엔진의 추력이 980킬로뉴튼인데, RD-0217의 추력은 219킬로뉴튼밖에 되지 않는다. 2017년형 백두산로켓엔진이 RD-0217보다 4.5배나 더 강한 추력을 내는 것이다. 그처럼 강력한 2017년형 백두산로켓엔진이 화성-12형에 장착되었으므로, 샤힌-2보다 1.8배 빠른 속도로 날아갈 수 있었다.    

 

백두산로켓엔진이 등장하자 조선의 로켓공학기술발전은 비상히 도약하였다. 하지만 조선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찬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백두산로켓엔진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리는 여론공작을 벌였다. 여론공작은 백두산로켓엔진이 냉전기에 소련의 설계로 우크라이나에서 제작된 RD-250 로켓엔진의 복제품이라는 거짓정보를 미국의 언론인과 미사일전문가에게 흘려준 것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조작, 유출한 거짓정보가 2017년 8월 14일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뉴욕타임스> 보도와 국제전략연구원(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선임연구원의 보고서를 통해 각각 ‘공식화’되면서 삽시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 진실로 둔갑하였다. 조선이 독자적인 기술로 새로운 미사일이나 로켓엔진을 개발할 때마다 소련산 복제품이 나온 것처럼 떠들어대면서 거짓정보를 조작, 유포하는 장본인이 미국 중앙정보국이라는 사실은 <위킬릭스(Wikileaks)>가 폭로한 미국 국무부의 비밀전문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명백하게도, 백두산로켓엔진은 RD-250 로켓엔진의 복제품이 아니다. 그 두 로켓엔진은 전혀 다른 종류의 로켓엔진들이다. 2017년형 백두산로켓엔진의 추력은 980킬로뉴튼인데 비해, RD-250의 추력은 788.5킬로뉴튼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복제품이라는 조작설을 전면 배격한다.  

 

그런데 이 글에서 화성-12형의 비교대상으로 거론하는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 SS-11에는 RD-250 액체로켓엔진이 아니라 RD-0217 액체로켓엔진이 장착되었다. RD-0217 액체로켓엔진을 장착한 SS-11은 탄체길이가 19.5m이고, 탄체지름이 2m인데, 화성-12형은 탄체길이가 16.5m이고, 탄체지름이 1.5m이므로 화성-12형에는 SS-11에 비해 추진제가 더 적게 주입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SS-11은 2단형 탄도미사일이고, 화성-12형은 1단형 탄도미사일이다. 

 

백두산로켓엔진이 RD-0217보다 4.5배나 더 강한 추력을 낼 수 있어도, 백두산로켓엔진이 연소하는 추진제의 양이 RD-0217이 연소하는 추진제의 양보다 적고, 1단형과 2단형이라는 구조적인 차이도 있으므로, 화성-2형의 사거리가 SS-11의 사거리에 비해 짧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사거리는 얼마나 짧은 것일까? 약 3,600km 짧은 것으로 추산된다. SS-11의 사거리는 약 12,000km이고, 화성-12형의 사거리는 약 8,400km다.  

  

 

3. 화성-12형 전투부 모양이 약간 달라진 이유

 

8.29 발사훈련소식을 전해준 조선의 언론보도기사에서 화성-12형을 “새로 장비하였다”는 표현을 몇 차례 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새로 장비한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케트의 실전운영능력”, “새로 장비한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케트의 전투적 성능”, “새로 장비한 첨단로케트체계” 등이다. 새로 장비하였다는 말은 조선인민군 전략군 여단 산하 타격대들에 화성-12형이 이미 실전배치되었다는 뜻이다. 화성-12형이 실전배치되었으므로, 그 미사일을 장비한 타격대가 이번에 첫 발사훈련을 진행한 것이다. 그들의 실전배치속도는 미사일만큼 빠르다.

 

발사훈련에서는 당연히 정상각으로 쏘아야 한다. 그보다 앞서 진행된 화성-12형 시험발사나 화성-14형 시험발사에서는 90도에 가까운 고각으로 발사되어 사거리가 크게 줄었기 때문에 낙탄점이 동해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8.29 발사훈련에서 40도 안팎의 정상각으로 발사된 화성-12형은 동해와 일본열도를 훌쩍 뛰어넘어 북태평양 상공으로 날아갔다. 

화성-12형이 그처럼 정상각으로 발사되었으면 약 8,400km를 날아갔어야 하는데, 8.29 발사훈련의 비행거리는 약 2,700km였다. 실제 사거리의 3분의 1정도밖에 날아가지 못한 것이다.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지 두 갈래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추진제를 화성-12형에 가득 넣지 않고, 3분의 1만 넣으면 사거리는 3분의 1로 줄어든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므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둘째, 화성-12형 전투부 안에 무거운 탄두를 넣으면, 사거리가 줄어든다. 한국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세계일보> 2017년 8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8월 29일에 발사된 화성-12형 사진과 5월 14일에 발사된 화성-12형 사진을 비교, 분석하였더니, 얼핏 보아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라는 것은 8월 29일에 발사된 화성-12형은 5월 14일에 발사된 화성-12형에 비해 전투부 길이가 10% 정도 줄어들었고, 전투부 지름은 약간 늘어난 것을 뜻한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17년 8월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진행된 화성-12형 발사훈련 보도사진들 가운데 하나인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축 12륜 발사대차에 실려 발사지점인 순안국제비행장 활주로로 출발하기 직전 화성-12형을 살펴보는 장면이다. 이른 새벽시간이라 주위가 어둡지만, 첨두 끝부분과 종말유도추진체를 노란색으로 도색한 화성-12형 전투부의 모습이 선명히 보인다. 그런데 그 날 발사된 화성-12형 사진과 지난 5월 14일에 발사된 화성-12형 사진을 비교하면, 그 날 발사된 화성-12형은 5월 14일에 발사된 화성-12형에 비해 전투부 길이가 10% 정도 줄어든 대신 전투부 지름이 약간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화성-12형 탄두부 모양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 수수께끼 같은 물음을 풀어줄 실마리는 뜻밖에도 일본 언론보도에 들어있었다. 일본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본 자위대 간부들은 화성-12형이 “일본 동북부 상공(홋까이도 상공이라는 뜻-옮긴이)을 지나 (북태평양 상공에서) 3개로 분리된 것”을 주목하였다고 한다. 화성-12형이 북태평양 상공에서 3개로 분리되었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화성-12형 발사지점인 순안국제비행장으로부터 일본 홋까이도 에리모갑까지 거리는 1,500km이므로, 화성-12형이 홋까이도 상공을 지나 북태평양 상공에서 3개로 분리되었으면, 정점고도 약 550km를 지난 뒤에 분리된 것이다. 화성-12형이 정점고도를 지난 뒤에 왜 3개로 분리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풀려면,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의 일반적인 비행경로부터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은 지상발사 → 상승구간 비행 → 중간구간 비행 → 정점고도 도달 → 중간구간 비행 → 재돌입체 분리 → 종말구간 진입 → 대기권 재돌입 → 돌진낙하 → (모의)공중기폭으로 이어지는 경로로 날아간다. 이런 비행경로를 보면, 화성-12형은 정점고도를 지나고, 중간구간에서 종말구간으로 넘어갈 때 3개로 분리된 것이다. 중간구간에서 종말구간으로 넘어갈 때 나타나는 분리현상은 종말유도추진체(post-boost vehicle)의 추력비행이 끝나면서 그 추진체에 장착된 재돌입체들이 떨어져 나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돌진낙하하기 시작하는 현상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정점고도 약 550km까지 올라갔던 화성-12형 재돌입체는 약 200km를 낙하한 뒤 약 250km 고도에서 종말유도추진체에서 분리되어 돌진낙하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화성-12형이 3개로 분리되었다는 말은 종말유도추진체에서 각개발사식 재돌입체(MIRVs) 3개가 떨어져나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자위대 감시레이더 화면에 현시된 화성-12형의 종말구간 항적에 종말유도추진체 1개와 각개발사식 재돌입체 3개가 4개의 광점(光點)으로 나타난 것이다.  

화성-12형 종말유도추진체에서 각개발사식 재돌입체 3개가 분리되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낙탄하였으므로, 북태평양 해수면 위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낙탄점 3개가 형성된 것이 분명하다. 5월 14일에 발사된 화성-12형에 비해 8월 29일에 발사된 화성-12형의 전투부 길이가 10% 정도 줄었고, 전투부 지름이 약간 늘어난 까닭은 그 전투부에 각개발사식 재돌입체 3개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미국 핵무기연구소가 1970년대에 개발한 Mk-12 각개발사식 재돌입체 3개를 촬영한 것이다. 화성-12형 전투부에 들어간 각개발사식 재돌입체 3개의 모양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의 사진에 나타난 재돌입체는 길이가 182.8cm, 지름이 55.8cm, 무게가 363kg이다. 이 재돌입체에는 무게가 115kg인 열핵탄두 W62가 들어갔는데, 이 열핵탄두의 폭발위력은 170kt이다. 미국은 이 재돌입체를 1,725개 생산하여 미닛맨-3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하였다. 이 재돌입체는 2010년까지 실전배치되었다가, 작전수명이 다하여 퇴역되었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17년 1월 24일 파키스탄은 각개발사식 재돌입체를 장착한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아바빌(Ababeel)을 처음 시험발사하였는데, 지난날 파키스탄에게 미사일공학기술을 가르쳐준 조선이 각개발사식 재돌입체를 아직 만들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미국 군사전문가들의 억측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종말유도추진체에서 재돌입체가 분리되는 순간, 재돌입체 뒤쪽에 장착된 2개의 소형 가스발생기(gas generator)에서 내뿜는 가스분사력으로 재돌입체는 팽이처럼 자전운동을 하게 된다. 재돌입체가 더 낮은 고도로 낙하하여 그 표면에서 엄청난 대기마찰이 발생하기 전까지, 재돌입체는 팽이처럼 자전운동을 하면서 낙하한다. 만일 재돌입체가 자전운동을 하지 않으면, 중심을 잃고 제멋대로 팽글팽글 돌면서 돌진낙하를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엄청난 대기마찰로 소멸되고 만다. 

 

종말유도추진체에서 분리된 각개발사식 재돌입체들은 예정된 타격대상들을 향해 제각기 흩어져 분산낙하하고, 더욱이 그 분리된 물체들 가운데는 기만탄두도 섞여있기 때문에 교전상대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이런 혼란은 교전상대의 요격미사일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교전상대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요인으로 된다. 그러므로 조선이 각개발사식 재돌입체를 장착한 화성-12형을 일본열도를 넘어 북태평양 상공으로 발사하였을 때, 미국과 일본은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4. 미일연합함대를 속수무책으로 만든 화성-12형

 

일본은 조선의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이 자기 머리를 넘어 태평양 상공으로 날아가는 공포의 날이 차츰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하였다. 그래서 일본 방위상은 2016년 8월 일본 자위대에게 파괴조치명령을 내렸다. 파괴조치명령이라는 것은 일본 자위대가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가 조선의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이 일본을 향해 날아오면 동해 상공에서 그것을 요격하라는 명령이다. 

 

그런데 이번에 화성-12형이 홋까이도 상공을 지나 북태평양으로 날아갔는데도, 일본 방위상의 파괴조치명령은 실행되지 않았다. 왜 실행되지 않았을까?

 

일본 해상자위대는 이지스 구축함 4척을 운용하는데, 그 구축함들에는 조선의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을 외기권에서 요격할 수 있다는 미국산 미사일방어체계가 설치되어 있다. 미국이 전 세계에서 오직 일본에게만 넘겨준 이지스 구축함 미사일방어체계는 SM-3 블록(Block) lB라는 요격미사일을 발사한다. 미국은 SM-3 블록 계렬 요격미사일의 성능을 계속 향상시키고 있는데, SM-3 블록 1B가 2016년에 실전배치된 최신형이다. 다른 개량형 요격미사일은 아직 개발단계에 있다.  

 

미국은 이지스 구축함 16척을 태평양 곳곳에 배치해놓았는데, 그 중에서 일본 근해에 전진배치한 7척은 일본에 주둔하는 미국 해군 제7함대에 배속되어 조선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작전에 동원된다. 그런데 제7함대 소속 이지스 구축함 2척이 지난 6월과 8월에 각각 민간선박들과 충돌하는 대형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앞으로 오랫동안 선박수리소 신세를 져야 하므로, 지금은 5척만 남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 해군 제7함대 소속 이지스 구축함 5척과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이지스 구축함 4척을 포함하여 총 9척으로 편성된 미일연합함대가 북태평양 상공을 향해 날아가는 화성-12형을 향해 최신형 요격미사일 SM-3 블록 1B를 발사할 수 있었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미국 해군 이지스 구축함에서 최신형 요격미사일 SM-3 블록 1B가 발사되는 장면이다. 일본 근해에 배치된 미국 해군 제7함대 소속 이지스 구축함 5척과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이지스 구축함 4척은 북태평양 상공을 향해 날아가는 화성-12형을 향해 그 요격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일연합함대는 자기들 머리 위로 날아가는 화성-12형을 레이더 화면에서 뻔히 보면서도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는 격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미일연합함대에 탑재된 요격미사일로는 화성-12형을 요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자주시보

 

그러나 미일연합함대는 자기들 머리 위로 날아가는 화성-12형을 레이더 화면에서 뻔히 보면서도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는 격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미일연합함대는 화성-12형이 일본열도를 넘어 북태평양 상공으로 날아갔는데도 왜 속수무책으로 있었을까? 그 까닭은, 미일연합함대에 탑재된 SM-3 블록 1B를 쏘아봤자 화성-12형을 격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일연합함대가 화성-12형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는 딱한 사정은 아래와 같다. 

 

첫째, 주요성능지표를 비교하면, SM-3 블록 1B는 화성-12형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한다. ‘미국 군사용 로켓 및 미사일 편람(Directory of U.S. Military Rockets and Missiles)’에 나온 SM-3 블록 lB의 주요성능지표와 화성-12형의 주요성능지표를 비교하면, 미일연합함대가 왜 요격미사일을 쏠 수 없었는지 알 수 있다.

 

 

만일 화성-12형이 상승구간에서 비교적 느린 속도로 상승하면서 SM-3 블록의 요격고도인 160km 고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을 때, 미일연합함대가 요격미사일을 발사하면 혹시 격추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미일연합함대가 함경남도 신포에서 약 100km 떨어진 수역까지 접근해서 쏘는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조선인민군 해안방어미사일 사정권과 조선인민군 동해함대 공격권 안으로 죽으러 들어가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둘째, 미일연합함대에 설치된 AN/SPY-1 위상배렬레이더는 성능이 그리 우수하지 못해서 화성-12형을 탐지할 능력이 부족하다. 탄도미사일을 제대로 탐지해야 요격미사일을 정확히 쏠 수 있는데, 그 위상배렬레이더의 탐지거리가 200km 정도로 짧은 것이 결정적인 성능한계다. 이번에 화성-12형이 발사된 순안국제비행장에서 강원도 원산까지 거리는 152km이므로, 미일연합함대가 화성-12형이 발사된 순간을 즉각 탐지하려면 원산에서 약 150km 떨어진 동해 해상까지 접근하는데, 이것은 조선인민군 해안방어미사일 사정권과 조선인민군 동해함대 공격권 안으로 죽으러 들어가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설령 미일연합함대가 조선의 동해안으로 ‘몰래’ 접근했다고 가정해도, 그 함대에 설치된 AN/SPY-1 위상배렬레이더는 화성-12형의 비행정보를 전부 파악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

극초음속으로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을 요격미사일로 격추하려면, 요격대상의 비행속도, 비행고도, 비행방향을 알려주는 3차원 요격정보가 필요한데, 미일연합함대에 설치된 AN/SPY-1 위상배렬레이더는 요격대상의 비행속도와 비행고도에 관한 정밀정보는 알려주지 못하고, 비행방향에 관한 1차원 정보밖에 알려주지 못한다. 요격대상의 비행속도, 비행고도, 비행방향에 관한 정밀정보가 없으면, 3차원 요격정보를 파악할 수 없다. <사진 8>

 

▲ <사진 8> 이 사진은 미일연합함대에 설치된 AN/SPY-1 위상배렬레이더를 촬영한 것이다. 6각형 창문처럼 생긴 것이 바로 그 위상배렬레이더다. 극초음속으로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을 요격미사일로 격추하려면, 요격대상의 비행속도, 비행고도, 비행방향을 알려주는 3차원 요격정보가 필요한데, 그 위상배렬레이더는 비행방향에 관한 1차원 정보밖에 알려주지 못한다. 미국의 조기경보위성들이 알려주는 요격대상의 비행속도와 비행고도에 관한 정밀정보까지 파악해야 3차원 요격정보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격정보를 전달하고, 종합하고, 상부에 보고하고, 상부의 최종결정을 기다리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사이에 어느덧 1분 30초가 지나면, 화성-12형은 SM-3 블록 1B의 요격고도인 160km를 벗어나게 되고, 미일연합함대는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만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를테면, 요격대상의 비행속도에 관한 정보는 지구표면으로부터 약 35,000km에 떠있는 정지궤도위성(GEO)이 알려주는 것이고, 요격대상의 비행고도에 관한 정보는 지구표면으로부터 약 40,000km에 떠있는 고고도타원궤도위성(HEO)이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 조기경보위성들이 적외선감지장비를 가동하여 적국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신속히 포착하는 감시체계를 우주공간적외선체계(Space-based Infrared System)라고 한다. 일본은 우주공간적외선체계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산 AN/SPY-1 위상배렬레이더를 설치한 이지스 구축함 4척을 운용하면서도 언제까지나 미국 해군 제7함대 심부름노릇이나 하는 처량한 신세다.

 

미국 중서부 콜로라도주에 있는 북미주항공우주사령부(NORAD)가 정지궤도위성과 고고도타원궤도위성이 보내주는 요격대상의 비행속도와 비행고도에 관한 정밀정보를 미국 해군 이지스 구축함에 보내주면, 그 구축함에 설치된 위상배렬레이더가 파악한 비행방향에 관한 정보와 통합되어 3차원 요격정보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일본 근해에 전진배치된 제7함대 소속 이지스 구축함 5척은 북미주항공우주사령부와 연결된 직통통신망을 가졌지만,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이지스 구축함 4척은 그런 직통통신망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 4척의 구축함은 북미항공우주사령부가 미국 해군 제7함대로 보내주는 요격정보를 한 다리 건너 전달받는 것이다.  

 

하지만 미일연합함대가 3차원 요격정보를 파악했다고 해서 즉각 요격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아니고, 미국 국방장관이 요격결정을 내리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리언 패네타(Leon E. Panetta)는 퇴임 후 2014년 10월에 펴낸 회고록에서 북미주항공우주사령부 감시장교들은 미국 국방장관이 조선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시간적 여유가 불과 몇 초밖에 없다는 점을 자신에게 일깨워준 적이 있었음을 서술하였다.  

이처럼 정보전달, 정보종합, 상부보고, 최종결정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사이에 어느덧 1분 30초가 지나면, 화성-12형은 SM-3 블록 1B의 요격고도인 160km를 벗어나게 되고, 미일연합함대는 닭 쫒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만다.   

 

 

5. 태평양 상공에 펼쳐질 다섯 차례의 미사일발사훈련

 

2017년 8월 14일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고 괌포위사격계획을 비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월 21일부터 시작된 ‘을지프리덤가디언’전쟁연습을 중단하라는 충고를 미국에게 보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에 한 마디 충고하건대 과연 지금의 상황이 어느 쪽에 더 불리한지 명석한 두뇌로 득실관계를 잘 따져보는 것이 좋을 것”이고, “세계 면전에서 우리에게 또 다시 얻어맞는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리성적으로 사고하고 정확히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면서, “미국이 먼저 올바른 선택을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므로, “미국놈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충고를 듣지 않고, ‘을지프리덤가디언’ 전쟁연습을 강행하였다. 미국군 참가병력을 조금 줄이고, 항모전투단과 전략폭격기 편대를 동원하지 않는 식으로 수위를 약간 낮추기는 했지만, 그것은 하나마나 한 부질없는 행동이었고, 꼼수를 부린다는 의혹만 조선에게 안겨주었을 뿐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화성-12형 8.29 발사훈련을 현지지도하면서 “미국이 저들의 행태를 지켜볼 것이라고 한 우리의 경고에 호전적인 침략전쟁연습으로 대답하였다고 준절히 말씀하시면서, 오늘 전략군이 진행한 훈련은 미국과 그 졸개들이 벌려놓은 <을지프리덤가디언>합동군사연습에 대한 단호한 대응조치의 서막일 따름이라고 언명”하였다고 한다. <사진 9>

 

▲ <사진 9> 위쪽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8월 29일에 진행된 화성-12형 발사훈련을 지도하는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그 날 진행된 발사훈련에서 화성-12형이 시뻘건 불줄기와 폭음을 내뿜으며 우주공간으로 솟구쳐 오르는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29 발사훈련현장에서 "오늘 전략군이 진행한 훈련은 미국과 그 졸개들이 벌려놓은 <을지프리덤가디언>합동군사연습에 대한 단호한 대응조치의 서막일 따름이라고 언명"하였다고 한다. 화성-12형을 북태평양 상공으로 발사한 것이 서막이면, 그 다음에는 나오는 제1장은 괌포위사격일 것으로 예상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도 미국은 귀와 눈이 멀어버린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예컨대, 2017년 9월 2일 빈센트 브룩스(Vincent K. Brooks)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이번에 ‘을지프리덤가디언’전쟁연습에 참가한 미국군 병력을 줄였는데도, 조선은 달라진 점이 없었다는 이상한 불평을 늘어놓은 것이다.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에게 보낸 경고가 ‘을지프리덤가디언’전쟁연습을 중단하라는 뜻이라는 것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경고를 이해하지 못한 미국은 2017년 8월 31일 F-35B 스텔스전투기 4대와 B-1B 전략폭격기 2대를 강원도 태백산 필승포격장으로 출동시켜 통합직격탄과 MK-84 폭탄을 투하하는 폭격훈련을 감행하였고, 거기에 동참한 한국군 전투기들도 MK-82 폭탄을 투하하는 폭격훈련을 감행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화성-12형 8.29 발사훈련을 현지지도하면서 “이미 천명한 바와 같이 우리는 미국의 언동을 계속 주시할 것이며 그에 따라 차후행동을 결심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고 하였는데, 미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차 경고도 이해하지 못하고 스텔스전투기와 전략폭격기를 동원하는 차후행동으로 조선을 더욱 자극한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화성-12형 8.29 발사훈련을 현지지도하면서 “이번 탄도로케트발사훈련은 우리 군대가 진행한 태평양 상에서의 군사작전의 첫 걸음이고 침략의 전초기지인 괌도를 견제하기 위한 의미심장한 전주곡으로 된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태평양을 목표로 삼고 탄도로케트발사훈련을 많이 하여 전략무력의 전력화, 실전화, 현대화를 적극 다그쳐야 한다”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사진 10>

 

▲ <사진 10> 이 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최남단에 있는 쌘디에고 해군기지를 촬영한 것이다. 이 해군기지에는 항공모함 2척, 순양함 7척, 구축함 25척, 상륙함 13척, 잠수함 5척, 연안전투함 4척, 보급함 5척, 호위함 3척, 소해함 3척, 예인함 2척, 병원선 1척 등이 배치되었는데, 규모로 따지면 영국 해군보다 더 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29 발사훈련을 현지지도하면서 조선인민군 전략군에게 앞으로 태평양을 무대로 탄도미사일발사훈련을 계속해야 한다고 지시하였는데, 위의 사진에 나타난 태평양지역 최대 규모의 쌘디에고 해군기지 앞바다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는 발사훈련도 거기에 포함된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에게 그보다 더 강한 압박공세는 없다. 조선의 연속강타를 한 주에 한 번씩 계속 얻어맞고 있는 미국은 앞으로 며칠이나 더 버틸 수 있을까?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미사일발사훈련장은 2017년 8월 이후 동해에서 태평양으로 대폭 확장되었다. 미국이 내해처럼 장악하고 있는 태평양에서 감히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을 하겠다고 나선 대담한 나라는 없다. 핵강국이라는 러시아나 중국도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고 태평양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을 하지 못하고, 자국 영토에서 사거리를 약간 줄여서 한다. 그런데 조선은 매우 대담하게 태평양에서 미사일발사훈련을 하겠다고 선언하였으니, 미국에게 그보다 더 강한 압박공세는 없다. 

 

광활한 태평양을 무대로 하여 전개될 조선의 미사일발사훈련은 괌포위사격으로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8월 10일 김락겸 조선인민군 전략군사령관은 괌포위사격방안을 발표하면서 화성-12형이 일본의 시마네현, 히로시마현, 고찌현 상공을 지나 괌으로 날아가 괌의 주변 30~40km 해상수역에 탄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전략군이 각개발사식 재돌입체 4개가 들어간 화성-12형 1발을 괌을 향해 발사하여 동서남북 주변해상에 각각 1개씩 떨어뜨리는 식으로 4면 포위사격을 할 것으로 예상하였는데, 이번 발사훈련을 보면 각개발사식 재돌입체 3개가 들어간 화성-12형 1발을 괌을 향해 발사하여 주변해상에 떨어뜨리는 식으로 3면 포위사격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략군의 발사훈련대상은 괌 이외에도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하와이주 호놀룰루, 워싱턴주 씨애틀, 캘리포니아주 쌘디에고에 있는 미국의 태평양군사전략기지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에 화성-12형을 북태평양 상공으로 발사한 것이 서막이라면, 그 다음에는 제1장부터 제5장까지 다섯 차례의 태평양발사훈련이 전개될 것으로 예견된다. 조선에서 거리가 가까운 대상부터 차례로 열거하면, 서막 이후 제1장은 괌포위사격, 제2장은 앵커리지근접사격, 제3장은 하와이포위사격, 제4장은 씨애틀근접사격, 제5장은 쌘디에고근접사격 순으로 예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글의 집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무기병기화사업 시찰에서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된 열핵탄두가 세상에 공개되었다는 놀라운 소식과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 지하핵시험장에서 열핵탄두기폭시험이 진행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이 한꺼번에 들려왔다. 조선의 연속강타를 한 주에 한 번씩 계속 얻어맞고 있는 미국은 앞으로 며칠이나 더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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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상어 고속도로 발견, 멸종위기종 보전 청신호

 
조홍섭 2017. 09. 04
조회수 291 추천수 0
 
열대 동태평양 난류·한류 만나는 전선대 따라 이동
플랑크톤 집중 해역이자 체온 상실 피해…개체 수 파악 가능
 
© Jonathan Green_Galapagos Whale Shark Project.jpg» 다이버가 갈라파고스 근해를 지나는 대형 고래상어를 레이저를 이용해 측정하고 있다. 행동생태를 아는 것은 보전에 꼭 필요하다. 조너선 그린, 갈라파고스 고래상어 프로젝트.
 
18m까지 자라는 고래상어는 지구에서 가장 큰 물고기이지만 요각류 같은 플랑크톤과 멸치 등 작은 물고기를 먹고 산다. 이 큰 덩치를 유지하려면 먹이가 높은 밀도로 모여 있는 곳을 찾아야 해 대양을 수천㎞ 떠돈다. 
 
고래상어는 발견된 지 200년 가깝도록 개체 수가 얼마나 되고 어디서 새끼를 낳는지도 모르는 수수께끼의 동물이다. 지난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이 동물의 보존에 기여할 발견이 이뤄졌다.
 
에콰도르 연구자들은 2011년부터 갈라파고스 다윈 섬에 해마다 들르는 고래상어 27마리에 위성추적장치를 붙였다. 미국 연구자가 합세해 위성으로 측정한 해수면 온도 등의 자료와 함께 분석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대양에 임신한 고래상어가 다니는 ‘고속도로’가 있었다. 
 
oct-nov2012.gif» 굽이치는 열대 동태평양 전선대. 고래상어(원으로 표시)가 전선대를 따라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MBARI
 
동태평양 적도 일대는 세계적인 어장이 펼쳐진다. 남극의 차고 영양분 풍부한 한류가 이곳에서 바다 표면으로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일차생산(조류 등의 광합성)의 4분의 1이 여기서 일어난다.
 
이 해역 한가운데 위치한 갈라파고스에는 지난해 세계 최대 규모의 상어보호구역이 설정됐다. 보호 대상 1호가 바로 고래상어이다. 갈라파고스 제도 북쪽 다윈 섬 근처로 해마다 7∼12월에 대부분 임신한 상태의 고래상어가 나타난다.
 
w1.jpg» 갈라파고스 울프 섬 해역에 출현한 길이 12.5m의 고래상어. 임신한 상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라이언 외(2017) <플로스 원>
 
이 해역이 특별한 관심을 끄는 이유는 고래상어의 번식지가 인근에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세계의 고래상어는 작은 먹이가 밀집해 발생하는 곳에 나타난다. 
 
그러나 번식기를 맞은 크리스마스 섬의 붉은 게, 탄자니아 앞바다의 새우떼,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의 요각류 떼 등을 노리는 고래상어는 대개 어린 개체다. 고래상어가 어디서 번식하고 어떻게 이동하는지 행동생태를 밝히는 건 이 종을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이번 논문의 주 저자이자 위성추적 자료를 분석한 존 라이언 미국 몬터레이만 수족관연구소 해양생물학자는 “고래상어는 열대 동태평양의 어느 곳이든 분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같이 열대 동태평양의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전선대를 따라 이동했다.”라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w3.jpg» 열대 동태평양 해역의 온도 분포(왼쪽)과 식물 플랑크톤인 엽록소 밀도. 라이언 외(2017) <플로스 원>
 
남극에서 온 차갑고 영양분 많은 한류와 열대바다 표면에서 달궈져 따뜻하지만 영양분이 거의 없는 난류는 이곳에서 만나 구불구불한 전선대를 이룬다. 고래상어는 굽이치는 전선대를 따라 구불구불 이동해 마치 ‘고속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연구자들은 “다윈 섬에 고래상어가 오래 머물지 않고 곧 떠나는 이유는 이곳이 종착점이 아니라 긴 이동통로의 한 지점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고래상어는 왜 난류와 한류의 점이지대를 고집하는 걸까. 라이언은 “전선대 북쪽은 물이 따뜻하고 안정돼 있지만 생산성이 높지 않고, 남쪽 물은 생산성은 높지만 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플랑크톤은 이 점이지대에 몰리는 경향이 기존 연구로 밝혀졌다. 따라서 이 해역은 고래상어가 찬물에 체온을 잃지 않으면서도 고밀도의 먹이 군집을 찾아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고속도로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1∼2월 열대 동태평양의 전선대가 약해지면 고래상어는 중·남미 대륙을 따라 형성되는 또 다른 전선대로 향한다. 페루 해안에서 100∼350㎞ 떨어진 곳에 한류가 솟아오르면서 난류와 만나는 전선대가 형성되는데, 이곳이 고래상어의 ‘2차 고속도로’가 된다.
 
고래상어는 행동과 번식 생태 등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상어 지느러미 사냥, 어업용 그물에 부수 어획, 선박과의 충돌 등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국제보전연맹(IUCN)은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했다. 이번 연구는 고래상어 보전을 위한 기초자료인 개체 수 추정 등에 요긴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yan JP, Green JR, Espinoza E, Hearn AR (2017) Association of whale sharks (Rhincodon typus) with thermo-biological frontal systems of the eastern tropical Pacific. PLoS ONE 12(8): e0182599. https://doi.org/10.1371/journal.
pone.018259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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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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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각성의 날, 제107주년 국치일에 제안한다

<칼럼> 이장희 외대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이장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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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4  10: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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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한국외대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독립 운동세력이 냉대받지 않고, 일제시대, 냉전시대의 불평등한 조약들 개폐되어야

오늘 2017년 8월 29일은 우리민족에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국치일입니다. 먼저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하여 희생하신 독립선열들의 영전에 고개 숙여 편안한 영면을 빕니다.

독립선열들이 되찾은 이 나라가 벌써 7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먼저 국내적으로 우리 헌법, 국제적으로는 불평등한 조약 등 잘못된 법제도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잘못된 역사의 첫 단추는 반드시 제대로 끼워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입니다. 헌법에 촛불시민혁명정신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촛불정신의 핵심은 일제식민지 적폐 및 분단적폐 청산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헌법이 9번 개정되었지만 항상 통치구조에만 관심이 있었고 주권자 국민의 입장과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적 관점 그리고 국제적 관점이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장기분단의 벽을 조금이라도 허물어야 합니다. 72년 장기 분단 때문에 역사정의, 민주화와 법치주의가 정착되지 못하고 평화통일로 가는데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 사회의 중심세력이 되어야 할 독립운동세력들이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항상 냉대 받고 있습니다. 입만 열면 독립선열을 입에 담고 있으면서 정작 그 후손들과 독립유족 단체에 대하여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입에 올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조국을 위해 희생한 민족적인 양심세력이 대한민국의 주류세력이 되어 역사를 올곧게 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제 촛불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민주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이제 제2의 독립은 21세기에 평화통일을 이루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민족적 독립운동했던 양심세력이 한국사회의 주류로 자리매김 되어야 합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우리 헌법도 9번이나 개정되었지만 그 배경은 권력구조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헌법도 주권자인 국민, 역사정의 및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적 관점 그리고 국제적 관점에서 조명되고 개정되어야 합니다.

일제시대와 냉전시대에 맺은 불평등한 국제적 조약들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한 예로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강제병합조약의 일제식민지 합법화의 연장인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1965년 한.일협정 그리고 6.25라는 전시 말에 체결된 불평등한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그 하위체제인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문제점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특히 국회는 역사정의 적페청산 및 분단적폐청산 특위를 구성하여, 이러한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이것이 국내외적으로 역사정의와 민족의 자주적 외교권을 바로 세우는 기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2의 독립인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107주년 국치일을 맞이하여 과거 해외에서 풍찬노숙 하면서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여온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민족각성의 날 국치일을 맞이하여 온 국민들이 심기일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독립선열들의 영전에 깊은 추모의 정을 올립니다.

 

이장희 (역사NGO포럼 이사장, 한국외대 명예교수)

   
 

고대 법대 졸업,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킬대학 법학박사(국제법)

-한국외대 법대 학장, 대외부총장(역임)
-대한국제법학회장,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회장.
엠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위회 위원장(역임)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통일교욱협의회 상임공동대표,민화협 정책위원장(역임)
-동북아역사재단 제1대 이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역임)
-민화협 공동의장, 남북경협국민운동 본부 상임대표,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SOFA 개정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한국외대 명예교수, 네델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대한적십자사 인도법 자문위원, Editor-in-Chief /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현재)

-국제법과 한반도의 현안 이슈들(2015), 한일 역사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공저,2013), 1910년 ‘한일병합협정’의 역사적.국제법적 재조명(공저, 2011),“제3차 핵실험과 국제법적 쟁점 검토”, “안중근 재판에 대한 국제법적 평가” 등 300여 편 학술 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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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벼랑 끝'에 앉은 명진 스님

 
김제동, 전인권, 김미화 발길 이어져
[불교적폐청산] 명진 스님 단식 17일차, 급속히 건강 악화 ①

17.09.04 10:10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사진: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김시연쪽지보내기

▲ 불교 적폐청산을 외치며, 명진 스님이 단식에 들어갔다. ⓒ 정대희

"단식? 난 요즘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빠. 난 살이 마르고 있지만, (조계종 총무원 청사를 가리키며) 저기에 앉아있는 자승 총무원장은 매일 같이 피가 바짝바짝 마를 겁니다. 하-하-하-. "

명진 스님(67. 봉은사 전 주지)이 '불교 적폐 청산'을 외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지 12일차 되던 날이었다. 지난달 29일 만난 스님은 체중이 7킬로그램 줄었단다. 곡기를 끊어서 얼굴은 거칠고 야위었지만, 유쾌-통쾌-상쾌한 말은 여전했다. 

단식 농성장 분위기도 그의 말투와 같았다. 엄숙하지 않았다. 가령, 농성 초기에는 천막 기둥에 이런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스님께서 단식 정진중입니다. 가급적 대화는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식 6일째 되던 날에 이걸 뗐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단식장 풍경] 무기한 단식농성장이 유쾌한 까닭
 
▲ 명진 스님이 단식농성장에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29일에는 방송인 김제동, 김미화, 전인권이 방문했으며,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 한마음 대표와 공익제보자 최성조 박사도 찾아와 명진 스님의 두 손을 잡았다. ⓒ 정대희



매일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왔단다. 단식 천막 앞에 줄을 선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날 하루 동안에도 방송인 김제동, 김미화, 가수 전인권씨가 단식농성장을 찾았다. '명쫓사'(이명박에게 쫓겨난 사람들의 모임)는 이날 저녁 농성천막에서 긴급총회를 했다. 유명 스포츠 선수 등이 포함된 '힘빼자!' 모임도 왔다. 
 


스님뿐만 아니라 신부님과 수녀님, 원불교 교무, 목사님도 농성장을 찾았다. 봉은사 신도였던 강남 부자들이 자원봉사하고, 검사 딸, 대기업 임원 부인도 출근하다시피 했다. 용산참사 유가족, 세월호 유가족, 쌍용차 해고자들은 수시로 찾아온다. 자유한국당 의원만 빼고 청와대 인사에서부터 여야 의원들이 방명록에 이름을 썼다. 종교불문, 계층불문, 정파 불문 농성장이다.  

농성장 앞은 만남의 광장이었다. 농성장을 찾았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 사이에 웃음이 흘렀다. 이쯤 되니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는 명진 스님의 말이 우스개로 들리지 않았다.
  
"원래 묵언정진하기로 했는데 백기완 선생님과 함세웅 신부님, 그리고 여든여덟 살의 재가 신도분이 제게 힘을 주시겠다고 오시는 데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렇다고 연세가 드신 분 앞에서만 입을 열 수 없는 노릇이고. 말을 하는 게 제 팔자려니 하고 있어요."

'대화 자제' 안내문이 걸렸던 자리에 대신 들어선 건 김주대 시인이 직접 그려서 들고 온 시화였다. 
 
▲ 김주대 시인의 시화 ⓒ 정대희

'불'(佛)자의 내림 획을 절벽으로 묘사한 뒤 꼭대기에 명진 스님이 앉아있는 모습이다. 

"전 항상 벼랑 끝에 앉아 있었어요. 세상을 살면서 편한 적이 없었죠. 그야말로 전투와 전투 속에 다져진 '욕'이거든요. 자승 원장에게도 욕을 해서 불편하게 했죠. 그런데 저 그림보다 인상적인 것은 글입니다."

김주대 시인이 그림에 써넣은 글은 다음과 같다. 

"목숨에도 백척간두가 있다. 한 스님이 벼랑 끝에 올라가 웃으면서 난간에 매달린 살찐 부처를 밀어내고 있다. 부처가 죽어야 부처가 사니까." 

'자승 OUT'. 살찐 부처를 연상시키는 피켓이 곳곳에 놓여있는 서울 조계사 앞 우정총국 마당. 그곳에서 단식하는 명진 스님에게 '요즘 자주 떠올리는 부처님 말씀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의를 따르다가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면서 이익을 얻는 것보다 낫다. 지혜롭지 못하면서 높은 평판을 얻는 것은 지혜가 있으면서 평판을 얻지 못하는 것보다 못하다. 욕망에서 얻어지는 쾌락보다는 욕망을 벗어나 자기를 단련하는 괴로움이 낫다. 불의에 살 것인가 정의를 위해 죽을 것인가? 불의에 사는 것보다 정의를 위해 죽는 게 낫다."(고닷따경) 

[단식 농성장의 하루] "묵언정진? 난 하루 종일 떠든다"
 
▲ 지난달 29일 '민간인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 한마음 대표가 단식농성중인 명진 스님을 찾았다. ⓒ 정대희

오전 5시. 단식농성 천막 안에서의 기상 시간이다. 근처 사무실에서 목욕하고 빨래한 뒤 6시에 다시 천막으로 돌아온다. 그는 "농성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데 꾀죄죄한 모습으로 맞이하는 게 죄송하다"면서 "말끔하게 면도한 청정 단식농성 문화를 선보이겠다"고 또 우스개를 했다. 그는 그 뒤 농성장 옆 우정공원을 산책하고 돌아와 책을 펴거나 뉴스를 본다. 

오전 8시 30분. '세상과 함께'라는 한의사 단체가 방문한다. 명진 스님이 이 단체의 초청으로 특강을 한 게 인연이 됐다. 이들은 체중과 체온, 혈압을 재고 기치료를 한다. 오후 8시 30분에도 방문한다. 지금까지는 모두 정상이란다. 그의 인터뷰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어깨에 힘주지 않고 말 끝머리에 넣는 깨알 같은 '자뻑'에 폭소를 터트린다. 

"세월호 유가족 유민 아빠가 와서 자기 단식의 경험을 이야기해줬어요. 건강을 챙기라고 했는데요, 전 신기하게도 멀쩡해요. 배가 고프지도 않고 기운도 딸리지 않아요. 그간 제가 쌓은 도력이 이 정도라는 거지요. 하-하-하."  

오전 9시.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하루 종일 떠들어요. 점심, 저녁도 안 먹으니 공중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농성장을 찾아오는 이들이 남긴 방명록도 볼 만하다. 용산참사 유가족이 "스님 힘내세요. 늘 응원합니다"라고 적은 바로 밑에 세월호 유가족이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끝까지 옆에 있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도 "힘내시라",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온 사람들은 "자승 쫓아내고 모기 퇴치, 박멸... 강건하소서"라고 적었다. 

"우리사회 양심의 거울이시고, 민주주의와 인권, 자주통일운동에 온 생애를 바친 명진스님의 정의로운 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중생이 앓으니 나도 앓습니다. 화광동진. 먼저 깨는 자는 그 빛을 감추고 세상의 먼지에 섞이는 것이 민주주의의 실천입니다. 스님! 힘 내십시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재동 화백은 명진 스님이 방문객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붓으로 그렸다. 이철수 판화가는 스님의 단식을 상징하는 선화를 그렸다. 어린 학생들은 예쁜 손 편지를 써왔다.    

오후 7시30분. 농성장 옆 작은 공간에서 촛불을 들고 매일 찾아오는 50~60명의 사람들과 촛불 법회를 한다. 많을 때는 100명도 넘는다. 이날은 용산참사 유가족들, 가수 전인권씨, 방송인 김미화씨, 이명박 정권 시절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 등이 마이크를 잡았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보신각 앞에서 길거리 법회를 연다.   

밤 11시30분. 취침시간이다. 먹은 게 없으니 양치질할 것도 없단다. 공중화장실에서 간단히 씻고 자리에 눕는다. 하지만 얼마 전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 때 방문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 12시 30분이 되어서야 천막 안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단다. 이런 날도 잦다. 

아침저녁으로 날이 제법 차다. 이날 밤 11시경에 다시 농성천막을 들렀다. 하루 종일 북적였던 곳에 어둠이 깔렸다. 7~8명의 사람들이 우정총국 난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을 샐 모양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세워준 천막 안에서 이부자리를 펴던 명진 스님이 활짝 웃었다. 천막 기둥 희미한 전등 아래 걸린 그림 속의 명진 스님도 따라 웃었다. 벼랑 끝에서.  
 
 "진실이 잠들면 요괴가 눈을 뜬다"
명진 스님 동조단식에 나선 효림 스님 
 
▲ 불교 적폐청산을 위해 명진 스님과 함께 동조 단식에 들어간 효림 스님 ⓒ 정대희

'초상지풍'(草上之風). 

효림 스님(64. 경원사 주지)이 써준 붓글씨다. 

"공자님 말씀 중에 따온 것인데요, 풀은 민초입니다. 불교 적폐청산의 바람이 그 위로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명진 스님 농성 천막 맞은편에서 동조단식을 한 지 5일차, 효림 스님은 "명진 스님은 오랜 도반이자 친구이고, 과거 불교개혁과 민주화운동을 함께한 동지"라고 말했다. 그는 "불교 적폐 세력들이 워낙 강고하게 성을 쌓고 구축했다"면서 "이번 단식을 통해 조계종을 비롯해 한국사회 적폐청산에 신호탄을 쏘아 올리겠다"고 말했다. 

조계종단의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은 명진 스님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조계종단의 생명은 청정승가를 구현하는 것인데, 각종 부패가 난무하고 있다"면서 "사찰의 공금을 횡령한 돈으로 도박하는 승려도 있고, 폭력행위와 은처(숨겨둔 처)가 확인돼도 징계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적폐청산입니다. 지난 대선 때 많은 국민들이 문재인 정권을 지지한 건 적폐청산의 열망이었습니다. 정권교체가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산업현장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계와 학계, 정치권과 법원, 검찰 등 공직 사회에 쌓인 적폐가 심각합니다. 불교계가 적폐청산에 나서겠습니다." 

그는 "진실이 침묵하면 거짓세상이 되는데, 부처님은 '진실이 잠들면 요괴가 눈을 뜬다'(법구경)면서 '수행자는 진실을 위해서 바람처럼 신속하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셨다"면서 "조계종단의 적폐에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적폐세력에 동조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 글을 마무리하던 지난 2일 오전, 16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명진 스님의 급작스러운 건강 악화 소식이 전해졌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조정래 작가 등이 급하게 찾아와서 간곡하게 단식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날 저녁 단식 9일차인 효림 스님은 탈진과 저혈당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후송됐다.  
 
▲ 명진스님이 불교 적폐청산을 외치며,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 단식 농성중이다. ⓒ 정대희

*추신 : 명진 스님의 단식 농성장이 '만남의 광장'이 된 까닭은 그동안 맺어온 수많은 인연 때문이다. 아래 기사를 클릭하시면 그 인연의 내용과 깊이를 알 수 있다. 

[명진 스님- 나를 찾는 길①]"성철스님과 맞장 뜨려고 백련암 올라갔죠" 
[명진 스님- 운동권 스님②]"소머리 대신 스님 머리 삶을까요?"
[명진 스님-깨달음에 대하여③]"목탁으로 독재자 머리통 내리쳐야"
[명진 스님-천일기도와 죽비소리④]"스님, 저는 정말로 박근혜입니다"
[명진 스님-천일기도와 죽비소리⑤]'장관님 파이팅' 자승 원장이 황교안에게 보낸 문자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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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미사일’ 사태에 부작용 더 심각한 국가보안법

동북아 정세 변화에 기여하려면 국제사회 지탄하는 ‘악법’ 폐기하길
  •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 승인 2017.09.02 14:15
  • 댓글 1
▲사진 : 뉴시스

북한 핵과 미사일 사태는 심각하다. 자칫 한반도에 전면전쟁이 발생해 민족 전멸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다. 이 사태는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유엔, 유럽연합 등 많은 국가와 국제기구들이 다양한 견해나 해법을 제시한다.

한반도 사태에 대한 국내외 언론의 보도가 줄을 잇는다. 자본주의 진영에서 생산되는 보도는 북한은 ‘악’, 북한과 대칭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선’이라는 2분법이라는 틀에 갇혀 있고 군사적인 해법을 앞세우면서 강대국의 위세를 과시하는 미국 논리를 크게 무비판적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과 러시아 언론은 양비론적 입장이지만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을 앞세운다.

서구와 한국 언론 대부분은 북한의 언행에 대해서는 ‘도발’ ‘음모’, ‘저의’ ‘흉계’ ‘노림수’ 등 부정적인 낱말들로 평가한다. 그러나 북한과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나 국제기구 등의 언행은 ‘평화’ ‘안정’ ‘방어’ 등의 긍정적인 낱말들을 사용한다. 판박이처럼 매우 단순한 틀 속에 박힌 논리가 획일적으로 적용되고 광범위하게 반복해서 유포된다. 특히 국내 보수언론의 경우 심각할 정도다. 단세포적 반응이라는 비판이 따르게 되는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 것인가?

그것은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북한은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어 있고 북에 대한 표현에서 ‘고무, 찬양, 동조’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포함되면 처벌받게 되어 있다. 보안법에 순치된 언론은 기계적으로 이 법의 허용 범위 안에서 보도하는 것에 익숙하다. 국내 보수, 진보 언론은 모두 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을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를 매일 접하면서 집단 세뇌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남측에서는, 북한 핵과 미사일 사태에 대해 북측의 도발과 그로 인한 위기 상황이라는 짜증 섞인 견해가 주를 이룬다. 현 상황의 뿌리는 냉전체제 속의 분단과 전쟁, 휴전 등으로 이어지는 긴 과정 속에 담겨 있다. 그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원인 등에 대한 파악과 분석 등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미국이 절대 선이라거나 북한이 절대 악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어렵다. 국가이기주의나 정권 욕구 등이 혼재해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 그런 사회과학적 분석과 설명을 가감 없이 공개했다가는 자칫 ‘고무 찬양 동조’ 등으로 낙인찍힐 위험이 크다.

남측에서는 고착화된 적대적 대북 언론보도 공식 속에서 미국은 특히 북한이라는 ‘악의 축’에 대적하는 가장 정의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나 전략은 남측 언론에 의해 거의 무비판적으로 소개되거나 암묵적 지지를 받는다. 그러면서 미국을 비판하는 것은 미국에 반대하는 것 아니냐 하는 논리가 나오고 그런 것은 북을 돕거나 이롭게 한다는 식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즉 ‘반미=친북’이라는 식이다. 이런 단순 논리는 이른바 빨갱이 사냥이나 종북몰이에 흔히 동원되는 수법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보안법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어떤 성격의 것이든 그것을 돕는 막강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북측을 보안법에 의해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상태에서 한반도 사태를 객관적으로 평가, 전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남북문제 전문가들이나 언론은 이런 제약을 요리조리 피해 나가는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자기 검열이다. 그들은 북한에 대해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당국에 걸리지 않을까를 잘 알고 있고 항상 의식하는 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다.

북한 핵과 미사일과 관련해 빈번하게 이뤄지는 한미관계 가운데 최근 언급되는 것은 한국의 미사일 거리 연장과 핵잠수함 건조 문제 등이다. 이들 군사적 현안은 반드시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도된다. 예를 들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 전화통화를 통해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비한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대해 공감하고 ‘미사일 지침’을 개정하기로 했다는 연합뉴스 기사가 그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지난 2012년 체결한 미사일 지침은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km, 탄두 중량은 500kg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향후 사거리와 중량을 늘린다는 내용이다.

‘미사일 지침’이라는 한미간 합의에 의한 것인가 보다 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한국도 주권국가인데 왜 자국 국방문제에 대해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국내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그런 가장 중요하고 국제사회가 주시하는 의문을 크게 제기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미국이 한국군의 전시작전지휘권을 갖고 있다거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미국 무기가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배치되는 것은 군사주권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근본적 질문을 좀체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하다고 할까? 그런 체념 섞인 고정관념의 배후에는 역시 보안법이 존재한다. 한미관계에 대해서도 기존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반미, 또는 용공으로 몰릴 위험이 있다는 암묵적인 견해가 광범위하게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은 보안법과 친미라는 큰 틀에 갇힌 특수하면서도 기이한 공동체라 할만하다. 남북 대치라는 상황 때문에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통제, 억압받는 현상이 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자연스런 규제로 인한 부작용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로 인한 폐해도 심각하다.

현 한반도 사태는 사실 한민족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다. 그러니 다들 발 벗고 나서서 그 해법을 찾고 실천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보안법 때문이다. 눈 번히 뜨고 위기를 감지하지만 깊이 생각하거나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니 국내에서 생산되는 보도나 전문자료에서 그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외국 언론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한반도 사태의 현재와 그 미래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모습은 비참한 일이다. 언제까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면서 이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 마치 남의 일 보듯 해야 하는지 분통이 터질 일이다. 대외적으로 수치스럽고 그래서 화나고 창피한 일이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세대라는 의무감 때문에 현 한반도 사태에 대한 관찰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진행되는 한반도 사태는 북한이 미국을 강력하게 압박하는 형국이다. 북한이 괌 주변에 미사일을 발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국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고 이어 김정은 위원장의 유예 발언, 그리고 일본 상공을 통과한 탄도미사일 발사로 이어졌다. 북한이 이번 탄도미사일 발사는 괌 포위 발사의 전주곡이라고 설명하면서 긴장감은 더 고조되는 상황이다.

한반도 사태는, 한미가 북한에게 핵과 미사일을 포기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 조건을 걸어놓은 것에 대해 북한이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맞장을 뜨고 있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사태는 북한이 하는 일은 도발이요, 도전이지만 미국과 한국이 하는 일은 평화를 지키는 것, 침략에 대한 방어를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북한은 숨 쉬는 것조차도 비판의 대상이 될 만큼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라는 선전, 심리전이 집중 실시되고 있다.

한반도 사태에 대한 해법은 중국이 제시하는, 한미의 군사훈련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 중단이라는 형식으로 제기되지만 한미 두 나라는 한미와 북한의 행위를 동일선상에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외면하고 있다. 북한이 먼저 무릎을 꿇고 나오라는 주장만을 내놓는 형국이다. 현 사태와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마치 점술가 같은 예언적 전망을 내놓지만 그것이 적중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관련 변수가 너무 많아서다.

세상은 삼라만상, 다인다과(多因多果)라 하듯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다각적인 포석이나 의미가 담긴 일들이 꼬리를 물고 있어 열심히 살피지 않으면 미궁에 빠지거나 중요한 것을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다 해서 십인십색이라는 말도 나왔다. 한 사건이나 사고에 대해서도 여러 견해와 가치 판단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회과학도 사회가 다양한 요소들로 채워져 있고 인간의 사고방식도 다양하다는 점을 출발선으로 삼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해 여러 견해가 펼쳐지고 다양한 해법이 자유롭게 펼쳐진다면 어떻게 될까? 즉 북한이나 미국, 한국의 잘잘못에 대해 툭 터놓고 까발리면서 견해를 좁히는 방식은 어떤가 하는 것이다. 보안법에 익숙한 시각에서 보면 이는 혼란스럽고 위험하다는 견해도 나오겠지만 집단지성과 같은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기존의 한미 동맹관계, 남북관계 등에 대해 여러 주장과 해법 등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보안법은 1948년, 일제 강압 해방과 남북한 개별 정부 수립이라는 상황에 만든, 그래서 오늘날 국제적으로 많은 지탄과 비판을 받는 악법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런 보안법이 21세기에도 통용되고 있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지금 남한은 경제력 세계 12~13위, 북한은 핵과 탄도미사일 보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남한과 수교하고 G2가 되어 사드로 남한에 대한 보복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재무장을 향한 극우 보수화로 치달으면서 전쟁 범죄 부인,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미래의 한반도 침략을 예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남측 정부가 동북아 정세를 다각도로, 깊이 있게 대단히 치밀하게 살피고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와는 수교하면서 북한만은 안 된다며 결국 하나가 되어야 할 한민족의 반쪽에 대한 상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일부 수구세력은 분단에 기생해오던 타성에 여전히 파묻혀 있고 얼치기, 사이비 진보는 보안법이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변화된 지구촌에 눈을 가리고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고 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시대다. 21세기 무한경쟁 시대, 인공지능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동북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안전,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 보안법은 철폐되어야 할 최악의 적폐다.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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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스님 건강 악화에 줄 잇는 '단식 중단' 호소

 
수불스님, 백기완 소장 "이제 단식 멈춰달라" 한목소리
  • 김정현 여수령 기자
  • 승인 2017.09.03 03:08
  • 댓글 6
 
 
명진스님 단식정진단 모습.

명진스님의 단식 중단을 호소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조계종 적폐청산’을 촉구하며 단식에 나선 효림스님이 '단식 9일' 만인 2일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가운데, 단식 16일을 맞은 명진스님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는데 따른 것이다.

수불스님은 2일 오후 7시30분께 ‘명진스님, 이제 단식을 멈춰주십시오’ 제하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수불스님은 “오늘로 단식 16일째를 맞고 있는 명진스님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수행자로서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소납은 자칫 불행한 사태로 번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며, 명진스님께 ‘이제 그만 단식을 멈추실 것’을 간곡하게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수불스님은 “명진스님께서 목숨을 걸고 추구하시는 가치와 지향은 스님 한 분이 짊어질 수 있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닐 것”이라며 “저를 포함해 모든 종도들이 함께 나눠야 할 과제이자 명분”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부종수교를 위해 위법망구를 사양하지 않는 스님의 원력을 이제 대중에게 회향하셔야 한다”며 “스님께서 추구하고 있는 바는 대다수 종도들의 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단식 중단을 거듭 호소했다.

오후 2시 경 스님을 찾아와 단식을 만류한 조정래 작가. 사진=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이에 앞서 같은 날 오후 2시에는 조정래 작가가, 저녁 6시에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각각 명진스님, 효림스님을 찾아와 단식 중단을 권고했다.

독재정권에 의해 고문당한 과거를 회고한 백 소장은 명진스님에게 “스님은 나이가 있어 개인의 의지와 달리 위험할 수가 있다. 저혈당의 위험성이 크다고 하니 단식을 중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진스님은 “여기까지 와주셔서 고맙고 또 죄송하다”고 답한 뒤 “조금만 더 버텨보겠다”며 중단을 거부했다.

이후 불자 60여명이 참가한 저녁 7시 촛불모임에서 백 소장은 문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조계종의 현실을 안개에 빗대 설명했다. 백 소장은 “날이 밝아도 뽀얀 안개가 끼면 발을 내딛기 어렵다. 옛 어른께서는 ‘안개가 사람의 앞길을 막지만, 해가 조금만 떠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지고 만다. 그러니 가던 길을 서둘러 갈 필요는 없어도 멈추지는 말라’고 하셨다”면서 “절집에 양심이 있다면 다 같이 나와 ‘함께 밥을 굶겠습니다’ 할 텐데, 그러지 않는 것 보니 절집이 썩었는가 보다. 명진스님과 효림스님은 결코 이 싸움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도 이 자리에 찾아오는 것이 좀 버겁다고 그것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백 소장은 “썩어 문드러진 절집을 바로잡는 것은 자본주의가 우리를 지배하는 이 땅의 어두운 것을 몽땅 제거하는 작업의 일환”이라며 “역사적 사명, 인간적 사명, 문명사적 사명을 가지고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스님의 건강을 염려하며 단식 중단을 권고하는 모습. 사진=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명진ㆍ효림스님 건강 악화 소식을 듣고 모여든 불자들이 2일 저녁 7시 촛불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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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총리 충격주장, 김정은위원장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9/03 12:29
  • 수정일
    2017/09/03 12:2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메르켈총리 충격주장, 김정은위원장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9/03 [03:3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핵문제는 반드시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며 그를 위해서는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 중국, 일본이 북과 미국의 대화를 적극 중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설명: 이창기


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일(현지시간) 북의 핵과 탄도미사일 문제를 외교로 해결해야 한다고 또 다시 강조했다.

 

DPA통신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이날 주례 팟캐스트 방송에서 "북의 미사일 발사로 우리는 다시 한 번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면서 "나는 이 문제를 외교적인 해법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력히 믿는다"고 말했다.

 

8월 24일 중앙일보가 인용보도한 AP통신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8월 23일(현지시간)에도 베를린에서 현지 경제일간 한델스블라트가 주최한 행사에서 “북 관련 위기를 군사적 행동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며 “북과 미국이 군사적으로 대결하게 되면 자동으로 미국 편을 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여 세계적인 파장을 불러온 바 있다.

 

당시 메르켈 총리는 "국제사회는 군사적 옵션에 의지해선 안 되며 아직 외교적 해결책을 완전히 활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단순히 외교적 해결을 주장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한ㆍ중ㆍ일 지도자들이 북 지도자 입장에서 현 상황을 바꿔 생각하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유럽연합(EU)도 한반도 긴장 해소를 위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 전쟁시 미국 지지 안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는 메르켈 총리     © 자주시보

 

미국의 충실한 동맹인 유럽연합의 핵심국가 수반의 입에서 나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말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격이다. 

이는 막강한 주한미군을 주둔시켜놓고 상시적으로 북을 압박하고 있는 미국이 그것으로도 모자라 매년 철마다 방대한 핵전략자산들을 끌어들여 대북 핵선제타격 위협을 가하는 상황을 겪고 있는 북의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군들 핵무기와 핵미사일개발에 나서지 않을 수 있겠냐’는 대북 옹호 주장과 다를 것이 없는 말이다. 

 

사실 세계 어떤 나라도 북처럼 미국으로부터 막강한 군사적 압박을 항시적으로 겪고 있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 대 러시아 압박 훈련도 이 정도는 아니다. 또 국제테러조직을 상대할 때는 미국과 러시아가 공조를 하기도 한다.

 

그런 메르켈 총리가 이번 주례 팟캐스트와 대담에서 독일이 중재자로 나서 이란과 미국 간 핵 협정이 타결된 것을 언급하고 "북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구체적 해법까지 제시하였다.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등 6자회담 관련국들이 대북압박공조에만 나설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북미대화를 중제해야한다는 지적으로 보인다.

 

▲ 옆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메르켈 총리     © 자주시보

 

연합뉴스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아울러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군비 축소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러시아가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의 방대한 군사력을 유지하는데 미국이 막대한 비용을 대고 있다면서 차차 유럽에 그 비용을 전가하겠다는 뜻을 후보시절부터 내비친 바 있다. 그래서 러시아에 대항하는 유럽 독자적 군사력을 구축해야한다는 주장이 유럽에서 불거져나왔는데 그럴 경우 유럽과 러시아의 군비경쟁으로 유럽 경제는 더욱 더 어려워지고 세계적인 전쟁위기는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독일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8월 24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달 24일 독일 총선을 앞두고 메르켈 총리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 당수는 아예 독일에 배치된 미국 핵무기의 철수를 주장했다고 슈피겔 온라인이 보도하기도 했다.

 

유럽이 러시아와의 군비경쟁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러시아와 긴밀히 논의하고 있는데 북미대결전이 격화되면서 북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갈수록 커가면 일본, 한국, 중국, 러시아의 군사력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으며 미국도 천문학적인 비용을 신형 무기 개발에 투자하게 되면서 동북아시아와 미국을 중심으로 군사력이 폭발적으로 증강될 것은 자명하다. 그러면 유럽도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된다.

 

특히 대부분 유럽 나라들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나라들이며 아직도 그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북은 그들에게도 언젠가는 전쟁 배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유럽도 한반도 문제를 저 지구 반대편의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힘으로 북을 제압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유럽이 이전처럼 미국을 따르면 될 일이지만 현재 흐름을 보니 북의 군사력이 이제 미국 본토를 초토화시킬 정도로 강해져버렸다. 유럽이 이제 더는 일방적으로 미국 편만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북의 언론보도를 보면 독일은 지금도 낙농전문가들을 북으로 파견하고 지원금을 보내 북의 세포지구 축산기지 건설을 도와주고 있는 등 이미 북 주민 생활경제 중심으로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지원을 하고 있다. 

 

유럽이 전적으로 미국의 대북압박에 동참했을 때도 제재압박이 먹히지 않았는데 이런 흐름에서는 미국의 대북 제재압박이 더 힘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북이 강력한 핵 무장력을 과시하면 할수록 이런 흐름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북은 핵무장력 강화 행보를 걸으면 걸을수록 시련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출로가 열리고 미국은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 

 

▲ 트럼프 대통령이 화가나서 갑자기 북을 향해 핵미사일 단추를 누를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고 우려하고 있는 클래퍼 전 미 정보국장  

 

문제는 미국이 이렇게 막다른 길로 몰리면 몰릴수록 최후의 막다른 선택 즉, 독자적인 대북 핵선제타격도 단행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제네바에서 열린 군축회의(CD)에서 로버트 우드 미 군축 대사는 최근 북의 도발에 대해 “위험하고 무모한 행동”이라고 비판하며 “미국은 ‘우리 마음대로(at our disposal)’ 가능한 모든 역량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전쟁이냐 대타결이냐’ 갈수록 미국 지배세력들의 대북 해법에 대한 고뇌가 깊어갈 것이며 그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운명의 판가리 국면으로 빠르게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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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를 들어요! 시민 여러분, 무기를 들어요!"

 
[작은책] 책이 이끄는 여행…'민중의 함성'과 '코뮌 전사의 벽'

 

 

 
누구였던가. "노예의 반란은 성공하기 어려운데,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주인만 바뀔 뿐 노예는 노예로 남는다"고 말했던 이는. 그래서 과거의 노예는 물론이고 현대의 노예들도 주인 되는 꿈을 꾸어선 안 되는 것일까? 어차피 노예의 처지에는 변화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쩔 것인가. 자유를 지향하는 게 인간의 본성인 것을! 그리하여 굴종의 사슬을 끊고 해방 세상, 대동세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 또한 인간 역사의 큰 줄기였음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파리 코뮌도 마찬가지였다. "자유로운 삶,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외치며 반권위주의, 반교권주의, 반군국주의, 반자본주의의 기치로 싸운 코뮌 전사들, 이들에 대한 베르사유 정부군의 잔인한 '피의 보복'은 해방 세상, 대동 세상을 맛본 사람들을 살려 둘 수 없다는 지배 질서의 반동 그 자체였다. 
 

▲ '코뮌 전사의 벽'에는 "코뮌의 죽은 이들에게 (1871.5.21~28)"라고 새겨져 있다. ⓒ홍세화


1871년 3월 26일 화요일, 파리 민중들은 투표를 통하여 코뮌을 성립시켰다. 사회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 그리고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지배 체제의 노예의 자리에서 "심판자이면서 저항자, 파트너이면서 자신의 힘의 주체적 행위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코뮌 성립의 의식은 엄숙한 의전이나 새로운 체제의 허례로 가득 찬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박했고 담대했으며 즉흥적이었다. 행복한 웃음처럼 짜릿했으며 정돈된 게 아니었고, 붉은 마음들로 들끓었다."  

그렇게 "코뮌은 불행한 사람들, 투기에서 배제된 사람들, 공장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 빈민가 사람들과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결집시켰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코뮌 만세! 사회 공화국 만세!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불온한 비정규군들'이었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말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이었지만, 패배는 이미 예정돼 있었다. 9주 동안 이어진 해방의 순간들이, 그 찬란한 광휘가 그들에게서 패배의 숙명과 그 이후의 시간들에 대한 상념을 삼켜버렸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5월 21일 '피의 일주일'이 시작될 즈음 코뮌 위원회의 포고문은 1980년 5월 어느 날 광주의 밤거리에서 울려 퍼졌던 절절한 목소리를 돌이키게 한다.

"무기를 들어요! 시민 여러분, 무기를 들어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가 승리하느냐, 아니면 프랑스를 프러시아에 팔아넘기면서 저지른 반역 행위의 대가를 우리에게 지불하라고 요구하는 파렴치한 베르사유 반동분자들과 성직자들의 수중에 떨어지느냐의 갈림길에 있습니다!"
 

그렇게 파리 코뮌은 두 달 남짓 존속한 뒤 5월 28일 일요일 아침 몰리에르, 라퐁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파리 최대의 공동묘지 페르 라쉐즈의 동북쪽 벽에서 마지막 코뮌 전사들이 총살당하면서 막을 내렸다. 티에르 정부는 코뮌 전사들에게 총살당한 인질 100여 명과 전투에서 죽은 베르사유군 877명의 "원수를 갚으려고" 파리 시민과 코뮌 전사들 2만 명을 학살했다. 바로 '피의 일주일'이다. 아직 기관총이 없던 시절이었다. 전투에서 죽은 사람보다 총살형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어깨에 탄약 자국이 있으면 가차 없이 즉결 처분되었다. 센 강은 강물보다 시체 더미로 채워졌고 붉은 피로 물들었다. 그렇게 파리는 "평화를 회복하였"지만, 4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군법 회의에 회부되었고 수천 명이 국외로 추방되었다. 지금도 애창되는 <체리의 계절(Le temps des cerises)>의 작가 장 바티스트 클레망은 '피의 일주일'에 이렇게 썼다.  
 

▲ '코뮌 전사의 벽' 전면에 있는 장 바티스트 클레망의 묘지. ⓒ홍세화

내일이면 다시 경찰 나부랭이들이
거리에서 활개를 칠 것이다.
자기들의 복무를 뽐내듯
목줄에 권총을 차고서.
빵도 일자리도 무기도 없이
우리는 지배당할 것이다.
밀정과 경찰과
폭력적인 권력과 성직자들에 의해.
하지만…
그것은 흔들리고
최악의 날들은 끝날 것이다.
그리하여, 설욕전을 조심하라.
가난한 자들이 모두 함께할 때.

공포 정치기가 포함된 프랑스 대혁명기 1793~1794년의 2년 동안보다 '피의 일주일' 동안 더 많이 희생된 코뮌 전사들은 지금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페르 라쉐즈 벽에 걸린 표지판은 38년 전 처음 보았을 때 그대로 '코뮌의 죽은 이들에게(1871.5.21~28)'라고 간단히 적혀 있었다. 이젠 교과서에서조차 잊혀가는 변화상을 반영한 것일까? 아니면 5월이 아니기 때문일까? 순례자들이 남겨놓곤 했던 장미꽃이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민중의 함성> 원작자인 장 보트랭이 말하듯, 그들은 "프롤레타리아와 함께 하는 역사의 약속 시간에 너무 일찍 찾아온" 잘못을 저질렀던 것일까. 아니면 그들은 다만 이름 없는 민중들이었기 때문일까?  

독자들은 이번 '책이 이끄는 여행'지로 페르 라쉐즈의 '코뮌 전사의 벽'을 택한 것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장 보트랭이 원작 소설을 쓰고 자크 타르디가 그린 그래픽노블 <민중의 함성>을 한국어로 번역한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옮긴 이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는데, 다소 길게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감하는 것 또한 독자들은 이해해 주기 바란다.

"사람에 따라 그 속에 살고 싶은 역사적 사건이 각자 있을 수 있는데, 나에겐 그런 사건들 중 광주항쟁과 함께 파리 코뮌을 빼놓을 수 없다. 1871년 봄, 자유의 가치를 절대화하여 그 무엇에도 양도할 수 없는 '해방 사회'를 꿈꾸었던 파리의 민중들과 함께 숨 쉬고 분노하고 싸우고 좌절하면서 가녀린 희망이나마 다시 품어 보는 경험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스산한 거리와 음침한 골목을 무대로 넝마주이, 혁명가, 공증인, 밀정, 불량배, 탈영병, 창녀들이 뒤엉켜 서사를 펼치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만나야 했던 비속어들을 우리말로 옮기기에 무척이나 어려웠는데 그럼에도 무엇인가에 취한 사람처럼 매달렸다. 그 날것의 생생함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면 그것은 순전히 내 능력의 부족 탓일 터인데,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파리 거리의 윤곽을 옮기지 못하는 진한 아쉬움까지 독자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대신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3월 17일 파리의 알마 다리에서 의문의 여인 변사체가 발견되는 사건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젊은 전사 지케와 릴리가 페르 라쉐즈 담을 넘어 사라지는 5월 28일까지 파리 코뮌의 성립에서부터 무너질 때까지 하루하루를 숨차게 그리고 있다. 정규 부대에 의해 궤멸될 숙명이 예정된, 민중 전사들로 이뤄진 비정규 부대. 이것이 광주 항쟁과 파리 코뮌을 연결하는 열쇳말의 하나일 것이다. 벼랑 끝 전망 속에서도 낮에는 토론하고 밤에는 춤을 추었던, 두 달 남짓 동안 대동 세상, 하지만 그것은 '피의 일주일'로 치닫고 있었다."
 

▲ <민중의 함성>(자크 타르디 지음, 장 보트랭 원장, 홍세화 옮김,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클릭시 입력하신 내용이 이미지의 캡션(이미지 하단 설명)에 적용이 됩니다 이미지 편집툴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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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EMP 공격가능 ICBM용 수소탄 개발

김정은, 핵무기연구소 현지지도.. '꽝꽝 생산'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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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3  11: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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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 탄두에 장착할 수소탄을 연구제작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를 찾아 핵무기병기화사업을 현지지도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3일 보도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북한은 새로 제작한 대륙간탄도미사일 탄두에 장착할 수소탄을 연구 제작했다고 밝혔다.

새로 개발한 수소탄은 고공 폭발을 일으켜 초강력 전자기펄스 공격까지 가할 수 있는 '다기능 열핵 탄두'라고 설명했다.

<조선중앙통신>은 3일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를 찾아 핵무기병기화사업을 현지지도하는 자리에서 "새로 제작한 대륙간탄도로케트 전투부(탄두)에 장착할 수소탄을 보아주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정말 대단하다고,우리(북)의 힘과 기술로 만들어낸 초강도 폭발력을 가진 주체식 열핵무기를 직접 보니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핵무력 강화의 길을 굴함없이 걸어온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우리 과학자들이 당에서 결심만 하면 못해내는 것이 없다"며 기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핵무기연구소에서는 "최근에 보다 높은 단계의 핵무기를 연구 제작하는 차랑찬 성과를 이룩하였다"며, "핵과학자, 기술자들은 첫 수소탄 시험에서 얻은 귀중한 성과에 토대하여 핵전투부로서의 수소탄의 기술적 성능을 최첨단 수준에서 보다 갱신하였다"라고 설명했다.

성능에 대해서는 "핵탄 위력을 타격대상에 따라 수십kt급으로부터 수백kt급에 이르기까지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우리의 수소탄은 거대한 살상 파괴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전자기 펄스, electromagnetic pulse) 공격까지 가할 수 있는 다기능화된 열핵 전투부"라고 소개했다.

   
▲ 북한은 새로 개발한 수소탄이 큰 규모의 살상 파괴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전자기펄스 공격까지 가할 수 있는 다기능화된 열핵전투부라고 소개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수소탄의 기술적 제원과 구조작용 특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한 김 위원장은 "분열 및 열핵 장약을 비롯한 수소탄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100% 국산화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공정으로부터 부분품 정밀가공 및 조립에 이르기까지 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모든 공정들이 주체화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강위력한 핵무기들을 마음먹은대로 꽝꽝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에서 제시한 핵무기병기화 수준을 완결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한 원자력부문 과학자, 기술자, 일꾼들은 '당의 미더운 '핵전투원'이며, '숨은 애국자, 숨은 공로자'라고 높이 평가하고 핵무기 연구부문에 강령적 과업을 제시했다.

이날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에는 당 군수공업부 책임일꾼들과 핵무기연구소 과학자들이 현지에서 영접해 핵무기병기화 실태에 대해 종합보고를 했다.

   
▲ 김 위원장은 앞으로 핵무기들을 마음먹은대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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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프로에 정리하는 금주의 외신 브리핑

9월 1일 뉴스프로 금주의 외신 브리핑 Posted by: Byung Taek Jeun in Headline, 국제, 스토리파이 2017/09/02 00:14 0 47 Views

 

  1.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북한을 강압하는 일은 막다른 길이다 라고 말했다.
    푸틴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화를 요청하고 미국과 관련국들에게 막다른 길로 빠져든것을 경고하면서 북한 위기에 무게를 더했다.
  2. 푸틴의 '막다른 길' 발언은 미국이 북한의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발사 도발에 대응해 지난달 31일 오후 전략무기인 장거리폭격기 B-1B '랜서' 2대와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B 4대를 동시에 한반도 상공에 출격하여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해 무력 시위를 벌인 후 나왔다.

  3. 푸틴은 밤사이에 미국과 북한이 대규모 충돌의 벼랑에 처해있다 라고 경고했다.
  4. 동일한 사진 자료를 가지고 보도하는 로이터 통신과 BBC 보도에는 큰 차이가 있다. 로이터 통신은 푸틴의 발언에 비중을 둔 보도를 한 반면 BBC는 미국인들의 북한 여행 금지 정책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움비어 사건을 언급하면서 북한의 수지맞는 관광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전하고 있다.
     

  5. 미국이 자국민들의 북한 여행 금지 정책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BBC가 보도했다.
  6.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대화가 해답은 아니다" 라고 말한 이것은 "외교적인 해결"에 대한 미 국방장관의 바람과는 배치된다.
  7. 푸틴은 북한에 대한 압박은 무익하다며 전제조건없는 대화를 촉구했다.
  8. 월스트리트저널, 일자리 창출, 복지 확대, 소득 증대를 위한 문재인 정부의 2018년 예산안을 보도
  9.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서 전 한국 국정원장 원세훈이 파기환송심에서 4년형 선고받고 재수감 된 내용을 보도했다.

  10. AFP통신은 인천 공항에서 승객들의 경험을 향상시키는데 로봇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11. BBC 뉴스에서 한국에서 열린 바디 페이팅 축제에서의 놀라운 디자인을 주목하라고 보도했다.
  12. 북한이 ‘괌 타격’할 때 미국이 요격 못하면?

    김동엽 교수 “미국의 패권 급격한 몰락 올 수도…”

    미군의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로 북한의 ‘괌 타격’이 임박한 가운데 미 태평양사령부의 사드 등 MD체계가 미사일을 요격하지 못하면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미 공군의 전략자산인 F-35B 스텔스 전투기와 전략폭격기인 B-1B 랜서가 31일 한꺼번에 한반도에 투입됐다.

    “미국의 행태를 지켜보겠다”던 북한은 괌 타격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락겸 북 전략군사령관은 지난달 10일 “우리가 동시 발사하는 화성-12형 4발은 일본의 시마네(島根)현, 히로시마(廣島)현, 고치(高知)현 상공을 통과하게 되며, 사거리 3356.7㎞를 1065초간 비행한 후 괌도 주변 30∼40㎞ 해상 수역에 탄착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미 태평양사령부는 주일미군의 사드 레이더(FBM X밴드)에서 미사일을 탐지해 중간단계에서 이지스함에 탑재된 SM-3(요격고도 500km), 종말단계에서 사드를 비롯해 패트리엇, PAC-3 등 미사일 방어체계-MD 자산을 총동원해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과연 미국은 경로와 속도까지 공개 된 북한 미사일 4발을 모두 요격할 수 있을까?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절대적으로 미국에게 불리한 싸움이다. 말하지 않고 해버리면 되는데 가르쳐주고 쏘니까 MD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마치 축구에서 골키퍼한테 왼쪽으로 차겠다고 얘기한 정도가 아니라 차는 길까지 가르쳐준 격이다. 그러면 골키퍼는 왼쪽 공이 지나가는 길을 막고 서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 네 발 중 하나라도 가랑이 사이로 빠뜨리면 골키퍼가 지는 것이다. 네 개를 다 막아도 겨우 비기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중국과 러시아가 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군사행동, 북한의 타격도 중요한 포인트지만, 미국이 막을까 못 막을까 이게 더 중요하다. 사실 이건 미국이 수십 년간 엄청나게 돈을 들인 미국의 자존심, 패권이 걸린 문제다. 만약 하나도 못 맞히게 되면 MD는 완전 거짓말이 되는 거다. 미국이 급격한 패권의 몰락으로 갈 수도 있는 거다.”고 경고했다.

    괌 타격과 MD체계 사이의 복잡한 함수는 결국 초읽기에 들어간 미국의 흥망성쇠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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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노돌발’ ‘윤택남’ 되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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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7/09/02 10:41
    • 수정일
      2017/09/02 10:41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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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입력 : 2017.09.01 21:57:00 수정 : 2017.09.01 23:50:35

     

     

    ㆍ9년 만에 복직한 노종면 YTN 앵커

    YTN 간판 앵커였던 노종면은 ‘공정방송’을 외치다 회사에서 쫓겨났다. 3249일 만에 돌아왔지만 그가 다시 앵커석에 앉기까지는 여러 난관이 버티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YTN 간판 앵커였던 노종면은 ‘공정방송’을 외치다 회사에서 쫓겨났다. 3249일 만에 돌아왔지만 그가 다시 앵커석에 앉기까지는 여러 난관이 버티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이제 우리 회사에 비디오테이프는 없어요.” 

    복직 이틀째였던 지난달 29일, 재입사 교육을 맡은 기술팀 직원의 설명에 YTN 기자 노종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엔 방송 시간이 임박하면 누군가 뉴스 리포트가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다니는 모습이 흔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전자파일로 오간다. 방송시스템이 급격히 디지털화하며 바뀐 풍경이다. 비로소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을까.

    “앵커 뒤쪽 ‘비디오 월’에 들어가는 그래픽은 누가 조정해요?” “자막은 FD가 직접 쳐요?” “그 중계 장비는 시차가 얼마나 돼요?” 노종면은 계속 질문을 쏟아냈다. 과거엔 기자가 맡던 뉴스진행 PD 역할을 비정규직 직원이 맡으면서 부조정실(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뉴스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컨트롤룸)의 자율성이 사라졌고 위에서 시킨 대로 정해진 방송만 해야 한다고 하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담당자의 권한을 인정해주지 않고 그렇게 수직적으로 관리·통제하는 보도시스템은 위험해요.” 그의 마음은 이미 뉴스룸 안 앵커석에 앉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해직기자로 보낸 세월이 무려 9년이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적응이 생각만큼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도 안다. 

     
    돌아온 ‘노돌발’ ‘윤택남’ 되찾기

    서울역 앞에 있던 회사는 상암동의 최신식 건물로 이사했다. 얼굴을 잘 모르는 후배도 여럿이다. 새로 도입된 장비와 뉴스진행 시스템도 아직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함께 교육을 받는 조승호·현덕수 기자의 표정에도 묘한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묻어났다. 얼마나 돌아오고 싶은 일터였던가.

    세 기자는 지난달 28일부터 복직해 회사에 나왔다. 2008년 10월6일 해고 징계를 받은 지 3249일 만의 출근이었다. 그날 노종면은 아침 6시에 집이 있는 경기도 양평에서 전철을 탔다. 처가에서 사줬다는 새 양복 차림이었다. 긴장한 탓인지 새벽 3시에 잠이 깼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잠을 제대로 못 자 목이 잠긴 것부터 걱정했다. 앵커 출신다웠다. 후배들은 그가 도착한 지하철역부터 회사까지 1㎞가 넘는 거리에 색종이를 오리고 환영문구를 직접 쓴 ‘꽃길’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옥 앞에서 열린 성대한 환영행사에서 노종면은 결국 눈물을 쏟았다. 그는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정권의 ‘낙하산 사장’에 맞서다 해직된 YTN 기자들의 복직은 멀고 험난한 길을 돌고 돌아 힘겹게 이뤄졌다. 

    ■ 9년 만에 돌아온 YTN, 모든 게 낯설다 

    처음엔 이렇게 긴 싸움이 될지 몰랐다.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 특보 출신인 구본홍 사장이 내정되면서 YTN은 격랑에 휩쓸렸다. 방송 공정성이 무너진다는 판단에 대다수 구성원들이 사장 퇴진 운동에 나섰다. 

    저녁 뉴스를 진행하던 간판 앵커 노종면은 노조위원장을 맡아 싸움에 앞장섰다. 그는 YTN의 대표적 킬러콘텐츠인 ‘돌발영상’을 기획해 성공시킨 회사의 ‘에이스’였다. 경영진은 노종면을 포함한 기자 6명을 해고하며 맞섰다. 

    정작 구본홍은 1년 만에 자진 사퇴했다. 후임 배석규 사장은 정권의 ‘언론장악’ 시나리오에 더 충실했다. 훗날 공개된 언론사찰 문건에서 “(정부에 대한) 충성심이 돋보인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홍상표·윤두현 보도국장은 후배들의 특종을 막으면서까지 정권을 비호했다. 이들은 차례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진수 YTN 노조위원장은 “지난 9년간 권력에 아부하고 정치권에 줄 대기 바쁜 인사들이 조직의 주류를 장악한 채 회사를 개인 영달의 도구로 이용해왔다”고 비판했다. 

    정권 편향 보도의 결과는 시청률 하락으로 나타났다. 각 기관의 공정성과 신뢰도 평가도 크게 떨어졌다. 젊은 기자들 사이에선 ‘해봤자 안 된다’는 무기력과 자기검열이 팽배해졌다.

    “권력 비판 아이템을 내도 윗선에서 계속 막히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수동적으로 변하게 돼요. 보도자료나 타사 기사를 베끼라는 지시가 공공연하게 내려오다 보니까 현장에선 기자가 기자로서 역할을 못 한다는 자괴감이 클 수밖에 없죠.” 입사하자마자 해직 사태를 겪은, 올해 10년차 양일혁 기자의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시위 때는 성난 시민들에 의해 YTN 취재기자들이 여러 차례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 지경이 되도록 너희가 한 게 뭐냐” “중계차 빼라”. 성난 시민들의 힐난에 기자들은 답하지 못하고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마봉춘’(MBC), ‘고봉순’(KBS)처럼 ‘윤택남’(YTN)이라는 애칭을 지어주고, ‘지켜주자’며 촛불을 들었던 게 언제였나 싶었다. 그러나 해직 사태를 해결해준 것도 결국은 촛불이었다. 우장균·권석재·정유신 기자는 2014년 11월 대법원의 ‘해고 무효’ 판결로 먼저 복직했다. 나머지 세 기자는 촛불로 정권이 바뀐 뒤 사측이 ‘태세 전환’을 하며 지난달 초 복직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 해직된 그를 지켜준 건 시청자였다 

    “촛불 안 붙었으면 지금도 마음 졸이고 있었겠지.” 

    겸손하게 말했지만 노종면은 해직 이후 한 번도 언론인으로서의 실천을 쉬지 않았다. 2011년 YTN 이니셜을 딴 ‘용가리통뼈뉴스’라는 이름으로 트위터 1인 미디어 실험을 했고, 다음해엔 인터넷 탐사보도매체 ‘뉴스타파’의 설립에 참여해 초대 앵커를 맡았다. 2014년엔 시민들이 설립한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 앵커로 활동했고, 지난해엔 시민 참여형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일파만파’를 선보였다. “해직되기 전엔 시청자가 중요하다고 말로만 그랬지 솔직히 실질적인 개념이 없었어요. 지금은 그걸 너무 잘 알죠. YTN을 지탱하는 바탕과 뿌리는 바로 시민사회이고 시청자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기자는 누구인가. 어떤 기사를 써야 하는가. 회사 밖에서 풍찬노숙하며 그의 고민은 더 단단해졌고, 권력 비판과 약자 옹호라는 본래의 기자정신은 더 투철해졌다. 그런 노종면의 복귀에 회사 후배들의 기대도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 ‘언제부터 뉴스 진행하세요’ ‘이번 추석 연휴에 앵커실 근무표 어떻게 짤까요’ 묻는 후배들이 여럿이다. YTN 기자들은 해직자들의 복직을 계기로 그간의 ‘정권 홍보 방송’ 이미지를 씻어내고 보도전문채널로서 정체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의지가 절박하다.

    변화의 조짐은 이미 시작됐다. 2014년 복직 후 심의실과 자회사 등 한직으로 돌던 우장균 기자는 지난달 8일 취재부국장으로 발령이 나며 9년 만에 보도국에 돌아왔다. 그는 최근 “오페라 공연을 뉴스에 다루겠다”는 문화부장에게 “지금 오페라보다 MBC와 KBS 두 공영방송의 파업과 제작 거부가 더 중요하니 그걸 보도하라”고 지시했다. 보도국 회의에선 정치·경제 권력을 비판하는 기사를 적극 발제하라고 주문했다. “뒷일은 내가 다 책임지겠다”는 말도 곁들였다. 상식적인 언론사 풍경이지만 지난 9년간은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었다. 사내에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우 기자는 “제대로 일해보겠다는 젊은 기자들의 의지와 열정을 북돋아 주는 게 선배들의 역할”이라며 “당연한 일이 회자되는 것 자체가 그동안 조직이 비정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 ‘노돌발’ 노종면, 이제 다시 시작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스튜디오에서 노종면이 동료로부터 달라진 방송 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스튜디오에서 노종면이 동료로부터 달라진 방송 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해직기자 복직은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YTN 구성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지난 9년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야 하지만 냉정히 보면 아직 아무것도 제대로 시작된 것이 없다. 은행장 출신의 조준희 사장이 지난 5월 사퇴한 뒤로 사장은 여전히 공석이다. 보도국장도 최근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구성원들이 두루 인정할 정통성 있는 차기 사장이 선임돼야 새 출발이 가능한 상황이다. 기자들은 그간의 분열을 치유하고 조직을 이끌 리더로 내부 출신의 사장을 원하고 있다. 그동안 외풍에 휘둘린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전망은 녹록지 않다. 사장 대행인 김호성 상무는 지난달 30일 부장급 이상 65명을 대상으로 한 이례적인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곧 선임될 새 사장과 보도국장이 행사할 인사권을 가로챈 것이다. 노조는 즉각 반발했고 인사 대상자 중 절반가량이 집단 불복종 성명을 냈다. 노사 대립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노종면은 현업에 바로 복귀하는 대신 당분간 회사 차원의 ‘혁신 태스크포스(TF)’팀에서 YTN의 미래 전략을 만드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미디어 환경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있잖아요. YTN도 일하는 방식과 결과물에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하루빨리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면 언론사로서 경쟁력 회복이 영영 힘들어질 수 있어요. 제작 자율성과 보도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죠.” 


    노종면은 9년 만에 회사 컴퓨터를 처음 다시 만져봤다. 기사 작성·송고를 위한 프로그램인 ‘보도정보시스템’에서 사용할 아이디와 비밀번호도 새로 만들었다. 그는 노트북 자판을 천천히 두드렸다. ‘nodolbal’(노돌발). 앞으로 매일같이 사용하게 될 이름으로 노종면은 자신이 만들고 키운 돌발영상을 다시 가져왔다. “저의 다른 e메일도 다 주소가 ‘노돌발’이에요. 돌발영상은 제 평생의 자랑이죠.” 그는 다시 한번 그렇게 세상에 자랑거리가 될 만한 뉴스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 9년 만에 돌아온 노종면은 이제 막 로그인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012157005&code=940705#csidxd9853b4b113dba7b7513e6b8b6bd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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