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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멈추면 낡은 것이 준동한다

1차북미정상회담 1주년을 맞이하며

사상최초의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지 1년이 지났다. 
70년간 전쟁상태였고, 작금에는 핵전쟁 수준의 대결상태로 발전했던 북미관계였다. 6.12북미정상회담은 역사상 최초로 북의 최고지도자와 미국 대통령이 만났다는 점에 있어서나, 가파르게 고조되던 북미간 핵전쟁 위기가 외교와 대화의 방법으로 ‘새로운 북미관계’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갈구하는 민족의 염원에 비추어 보나, 일본을 제외한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의 지지와 찬동에 있어서나, 나아가 세계평화와 세계 비핵화를 지향하는 국제사회와 인류의 염원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6.12 북미정상회담은 세기의 정치적 기적이라고 할 만 했다.

그러나 역사의 전진은 거기까지였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멈춰섰다.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1.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2. 한반도 항구적 안정적 평화체제 구축, 3. 4월 27일 판문점 선언 재확인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노력, 4. 전쟁포로 및 전시 행방불명자 유해발굴, 유해송환”을 구체화하기 위한 올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불발로 끝나면서, 북미관계는 깊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전진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쐐기를 꽂고 멈춰세운 건 미국이다.
미국은 1차 북미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지킬 의사도 준비도 안되어 있었다. 오히려 리비아식 “빅딜안”을 내놓고 대북제재강화에 더욱 매달리면서 북으로 하여금 대화를 통한 북미관계 수립에 심각한 의혹과 회의를 느끼게했다.
다행히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14기 제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과 정상회담을 한 번은 더 해볼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북미간 대화국면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했다는 사실이 공개되고, 한미정상회담 이전에 실무형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3차 북미정상회담이 가시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섞인 전망도 나오지만,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미국의 입장과 태도에 있다.

최근 미국우선주의는 몰락하는 미국의 위상을 회복해보고자 하는 공격적인 트럼프식 외교전략으로서 중국, 이란, 베네주엘라, 인도 등을 포함한 지구적 범위에서 군사, 정치, 경제적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트럼프는 각종 갈등사안을 복잡하게 벌려놓고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식으로 해서 재집권전략을 구사하는 것 같은데, 더 근본적으로 보면 미국우선주의 침략성과 약탈성의 확대과정이고, 불가피하게 국제적인 반미반제전선의 확산과정과 맞물려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몰락하는 미제국주의의 가장 첨예하고 당면한 위협은 결국 북미핵대결이며, 이것을 대화와 담판의 방법으로 풀지 않는다면, 미국은 매우 첨예하고 확장된 위기 앞에 서게될 것이다. 미국은 이 점을 똑똑히 알고 하노이회담식으로 잔수를 쓸 것이 아니라 대담하고 통 큰 결단으로 핵담판장에 나오는 태도를 정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인 1차 북미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현 정세의 엄중성에 대해 말한다면 미국이 단순히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춰 세운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민중은 현재 미국의 대응방식이 단순히 북미회담에서 꼼수를 부리고 시간을 끄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는 것을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각종 무기강매에 이어 폐기된 한미연합훈련을 ‘19-2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재개하고, 사드영구배치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남측을 대북적대정책을 실현하는 기지로 줄기차게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7일 해리스 주한미대사가 우리정부에 "反화웨이에 이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라", "미 기업의 공정한 경쟁을 막는 규제 부담스럽다. 규제 장벽 철폐하라“, "동북아 안보에 필수다. 한일 관계 정상화하라."는 식으로 경제적 이권을 꼼꼼히 챙기고 민족의 지향과 요구에도 맞지않는 한미일동맹의 복원에 나서라고 하면서 구한말에도 볼 수 없는 외교적 압박을 자행하고 있다.

멈춰 선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는 주변 것들까지 반드시 낡은 것들이 고개를 쳐들고 준동하게 되어 있다. 박근혜 탄핵으로 무덤 입구까지 무너져 내렸던 자유한국당들이 황교안, 나경원을 중심으로 대열을 정비하고 제법 지지율까지 올리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그들이 자행하는 막말과 장외투쟁행태는 촛불민중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기사회생의 실마리를 마련하고 반격의 기반까지 확장하려고 기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좌충우돌에 대한 반사이익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이 북미회담을 교착상태에 빠뜨리면서 주되게 노린 것 중의 하나가 남북관계에 대한 통제였다. 한미워킹그룹을 통한 총독정치를 하는 것도 그렇고 대북제재의 주요 기능이 대북협상의 지렛대가 아니라 오히려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으로의 전진에 대한 제재로 되고 있다는 현실을 놓고 보아도 그렇다. 이같은 미국의 남북관계발전에 대한 방해책동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재개 등 남북간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이행에 대못질을 하며, 자유한국당이 종북공세가 재개되는 토양을 제공해 주고 있다. 미국의 이같은 정책이 결국 의심스러운 문재인 정부를 갈아치우고 미국의 입맛에 맞는 친미수구세력에게 권좌를 넘겨주자는 고도의 전략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때문에 그 근본에서 한미동맹의 해체와 친미분단구조에 기생하는데서 살 길을 찾아왔던 친일친미수구세력을 청산함이 없이는 북미관계개선도 남북관계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엄중한 교훈일 수밖에 없다.

기대에 가득찼던 1차 북미정상회담의 전진의 수레바퀴가 1년 만에 멈춰서 있고, 멈춰있는 것은 곧 후퇴이고 반동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오늘, 우리 민중은 미국압박을 물리치고, 친미수구세력의 준동을 들어내는 것을 통해서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한 걸음 더 전진시킬 수 있음을 뼈 아프게 되새기는 날이 되고 있다.

현장언론 민플러스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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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서 활동했던 조선인 특수부대 ‘간도특설대’

황 대표가 만난 백선엽은 어떤 사람일까요?
 
임병도 | 2019-06-13 09:58:4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6월 10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백선엽을 만났습니다. 황 대표는 백선엽을 만난 자리에서 그를 칭송하면서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김원봉 이야기를 꺼냅니다.

황교안 대표는 김원봉이 우리 국군의 뿌리가 됐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황 대표는 김원봉을 비난하면서 백선엽이 우리 군의 뿌리처럼 말합니다. (황 대표의 이 발언은자유한국당 공식 유튜브 계정에 올라온 영상에는 삭제됐다.)

황 대표가 만난 백선엽은 어떤 사람일까요?

출세를 위해 만주로 떠난 조선인들

▲네이버 인물검색에 나온 백선엽 학력사항. 봉천군관학교 학력이 빠졌다가 지금은 기재됐다.

과거 네이버에서 백선엽을 검색하면 학력사항에는 군사영어학교와 평양사범학교가 전부였습니다. 현재는 ‘봉천군관학교’가 기재돼 있습니다. 백선엽이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이 네이버에서 빠졌던 것입니다.

‘봉천군관학교’는 일제가 만주국에 설립한 군사학교입니다. 만주국은 일제가 침략전쟁을 벌이기 위한 병참기지 목적으로 설립한 괴뢰국입니다. 실제로 만주국은 일제 관동군이 거주하며 통치했습니다.

봉천군관학교는 식민지 지역의 군인을 양성하기 위한 단기 군사 학교입니다. 일본 육사를 모방해 장교를 양성했던 4년제 ‘신경군관학교’도 있는데, 지금은 모두 합쳐서 ‘만주군관학교’로 통칭합니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하면서 혈서를 썼다는 기사를 공개한 민족문제연구소 ⓒ한겨레 PDF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혈서를 썼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인도 쉽게 들어가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졸업을 하면 그나마 식민지 조선인에게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는 김응조(대한민국 육군 준장), 정일권 (대한민국 육군대장, 국무총리), 신현준 (대한민국 초대 해병대 사령관), 양국진(대한민국 육군 중장), 박정희 (대한민국 육군대장, 대통령), 이한림(대한민국 육군 대장) 등이 있습니다.

해방 후 대한민국 국군 대부분은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채워졌습니다.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며 출세를 꾀했던 기회주의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한 셈입니다.

항일운동 조선인을 토벌하기 위해 설립된 특수부대

▲1938년 10월 12일 매일신보에 나온 간도특설대 설립과 대원 모집 관련 기사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간도특설대’에서 복무를 합니다. 간도특설대는 만주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며 항일운동을 하는 조선인들을 토벌하기 위해 만든 특수부대입니다.

간도특설대의 부대장은 일본인이었지만, 장교는 일본인과 조선인이 부사관과 사병은 전원 조선인들이었습니다.

일제가 만주에 간도특설대를 만든 목적은 ‘이이제이’, 즉 ‘조선인 독립군은 조선인으로 잡아야 한다’는 전략 때문이었습니다.

간도특설대는 무자비한 진압 등으로 만주에서 악명이 높았습니다. 아래는 연변 작가 류연산씨의 저서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다’에 나온 간도특설대의 만행입니다.

<간도특설대 만행>
 1939년 5월 야간 토벌 작전 중 산나물을 뜯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불태워 죽였다.
 1939년 7월 자신들의 충혼비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전사한 항일부대원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빈 통조림통에 넣었다.
 1941년 겨울 포로로 잡힌 항일부대원의 머리를 군도로 자르고 잘린 머리채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1941년 1월 포로로 잡힌 여성 항일부대원 4명을 강간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했다.
 1944년 4월 팔로군을 숨겨준 마을 원로를 죽인 후 그의 머리를 잘라 솥에 삶은 후 두개골을 장식품을 만들었다.

‘천황의 뜻을 받든 특설부대. 천황은 특설부대를 사랑한다’라는 ‘특설부대가’에서 알 수 있듯이 간도특설대는 철저히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쳐 조선인을 토벌했던 특수부대였습니다.

백선엽, 우리가 배반했어도 독립은 빨라지지 않았다

▲백선엽 회고록 ‘군과 나’에 나온 간도특설대에 대한 부분

백선엽이 간도특설대로 항일 운동을 벌인 조선 청년을 토벌했다는 사실은 그의 회고록 ‘군과 나’에서도 나옵니다.

백선엽은 간도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고,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하는 것은 이이제이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이었다고 말합니다.

백선엽은 친일 행적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고 오히려 항일운동을 했어도, 독립은 빨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백선엽은 독립운동을 가리켜 ‘배반’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사고 방식이 일제가 주장했던 ‘내선일체’ (일제와 조선이 한 몸이라는 뜻)와 똑같다고 봐야 합니다.

초대 해병대 사령관이었던 신현준도, 대한민국 육군 준장이었던 김응조와 켈로(KLO) 부대를 통솔했던 계인주도 백선엽도 모두 독립군을 토벌한 간도특설대 대원이었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친일파 백선엽을 칭송하며, 마치 그가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처럼 떠받듭니다. 자유한국당이 친일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드러낸 것입니다.

항일운동을 벌인 독립군과 조선 독립군을 토벌한 간도특설대, 어디가 진짜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여야 하는지 여러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유튜브에서 바로보기: 만주에서 활동했던 조선인 특수부대 ‘간도특설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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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 꺼낸 홍콩 정부, '우산혁명 10배' 시위에 화들짝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6/13 11:23
  • 수정일
    2019/06/13 11:2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범죄인인도법 심의 일단 연기
2019.06.12 16:50:15
 
 

지난 9일 홍콩 시민 7명 중 1명꼴인 100만 명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 반대시위를 벌이는 등의 여파로 홍콩 정부가 강행하겠다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심의가 12일 전격 연기됐다.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은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콩 시민사회는 이 법안이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많은 홍콩시민들이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쌓여온 반중 감정을 이 법안을 계기로 폭발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정안 심의 연기 결정은 전날부터 입법회 주변 등을 점거한 시위대의 기세에 눌린 결과다. 이날 홍콩 의회인 입법회에서 법안이 심의될 예정이었지만,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는 한 입법회 의원들이 의회 건물에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12일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저지를 위해 거리에 나선 홍콩 시민들이 일제히 우산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


물대포와 최루액을 쏘아대도 더욱 강력해진 시위대에 굴복

 

 

결국 홍콩 정부는 성명을 내고 "이날 오전 11시로 예정된 2차 심의 개시가 연기됐으며, 입법회 사무국이 추후 변경된 2차 심의 개시 시간을 의원들에게 통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BBC는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한 시민들이 거리를 점령한 광경에 대해 "2014년 우산혁명을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다. 우산혁명은 민주적 선거제를 요구하며 10만 여명의 시민이 시위할 때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아대는 경찰의 진압에 우산으로 맞서는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우산혁명은 79일간의 시위에도 불구하고 직선제 등 민주적 선거제를 관철해 내지 못했다. 

그러나 우산혁명은 2019년 홍콩 시민들이 '10배의 규모'와 '훨씬 더 조직화된 대응'으로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저지에 나서는 자양분이 되었다. 

9일 시위를 주도한 홍콩 재야단체 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은 "홍콩의 직장인과 학생들, 기업인들은 일과 학업을 멈추고 법안 저지에 온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며 총파업과 저지시위 동참을 촉구했다. 

민간인권전선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입법회 건물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전날 밤부터 수백 명의 시민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날 홍콩 입법회와 정부청사 건물이 있는 애드머럴티 지역으로 몰려든 시위대의 규모는 갈수록 불어나 수만 명에 달했다. 시위 참가자 대부분은 젊은층인 것도 특징이다. 이들은 정부청사로 몰려들어 주변 도로를 점거한 채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와 최루액까지 발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시위대는 범죄인 인도 법안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완차이에서 센트럴까지 홍콩 도심 도로를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으며, 입법회 진입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지하철 교통까지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홍콩 시내로 집결한 시위대는 교사, 사회복지사, 예술가, 기업가, 항공사 승무원 등 각계각층을 망라하고 있다. 홍콩 교사 노조는 조합원들이 총파업에 동참해 범죄인 인도 법안 저지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독려했다. 

교사 노조는 온라인 청원문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의 철회를 촉구하면서 "교육자로서 학생들이 자유, 평화, 평등,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고등학생들도 법안 저지에 나서 72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날 시위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홍콩중문대학, 홍콩과기대학, 홍콩이공대학 등 7개 대학 학생회도 동맹휴업을 벌이고 법안 저지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천명했다. 50여 개 사회복지단체의 사회복지사, 상담사, 치료사 등 2천여 명도 이날 시위에 동참하기로 했다. 

홍콩 예술가 노조는 화랑 등이 휴업에 나설 것을 촉구했고, 이에 100여 개 화랑과 예술학교, 문화단체 등이 문을 닫고 이날 시위에 동참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시위 참여 의사를 밝힌 기업가들도 적지 않아 홍콩 내 400여 개 기업과 점포 등이 이날 하루 동안 영업을 중단하고 저지시위에 나서기로 했다. 


이날 홍콩 정부가 2차 심의를 일단 연기한 것은 공권력까지 동원했음에도 더욱 조직화된 대응을 보인 시위대의 기세에 눌린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법안 심의를 강행할 경우 5년 전 우산혁명보다 훨씬 폭발력이 큰 혁명적 상황을 초래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에 따라 홍콩 정부가 시간을 끌면서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처리를 끝내 강행할 것인지 주목된다. 홍콩 입법회 의석은 총 70석으로 지역구 의석 35석, 직능대표 의석 35석으로 구성된다. 현재 직능대표 대다수와 지역구 의석 과반수가 친중파라는 점에서 표결 처리는 무난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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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여정 1부부장, 이희호 여사 조의문·조화 전달

<추가> 김정은 위원장, “남북협력 계속해 나가길” 메시지도
판문점=공동취재단/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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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2  19: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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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12일 판문점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조의문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 - 통일부]

이희호 여사 서거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유족들에게 보내는 조의문과 조화를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12일 전달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6시 30분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오늘 오후 5시 고 이희호 여사 앞으로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해왔다”며 “북측에서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 등이 김정은 위원장이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하러 판문점 북측지역 내 통일각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리현 통일전선부 실장과 동행했고, 남측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서호 통일부 차관과 장례위원회를 대표한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민주평화당 의원)이 마주 앉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희호 여사의 유가족들에게 보낸 조의문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며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온갖 고난과 풍파를 겪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은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현 북남관계의 흐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으며 온 겨레는 그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고 기렸다.

   
▲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1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희호 여사 조화.조의문 전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정의용 안보실장은 “어제 장례위에서 북측에 부음을 전달했고, 북측에서 오늘 아침에 남측의 책임있는 당국자가 와서 조의문과 조화를 수령하길 바란다는 요청이 들어왔다”고 성사 과정을 확인하고 “이희호 여사의 그간의 민족 간 화합과 협력을 위해서 애쓰신 뜻을 받들어서 남북 간 협력을 계속해 나가길 바란다는 취지의 말씀이 있었다”고 전했다.

남북 정상간 친서나 메시지 교환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그런 거 없었다”고 확인하고 “오늘은 고인에 대한 남북의 추모와 애도의 말씀에 집중을 했다”고 밝혔다. 윤 수석 역시 남북 정상간의 친서나 메시지는 없었다고 확인했다.

윤도한 수석은 “김여정 제1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께서 이희호 여사님에 대해서는 각별한 감정을 가지고 김여정 제1부부장이 남측의 책임있는 인사에게 직접 조의를 전달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고 확인하고 “김여정 제1부부장은 또 부디 유족들이 슬픔을 이겨내고 김대중 대통령님과 이희호 여사님의 뜻을 받드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남북 양측인사들의 만남은 오후 5시에 시작해서 5시 15분까지 약 15분동안 진행됐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낸 조화와 조의문은 바로 이희호 여사의 장례식장으로 현재 전달 중에 있다”고 밝혔다.

   
▲ 김여정 1부부장이 김정은 위원장이 보낸 조화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 - 통일부]

동행한 박지원 의원은 “고인에 대한 애도,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의 말씀을 전했다”며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는 “여사님이 기여한 공로를 기억하고 유지를 받들어서 남북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김 1부부장에게 “조문사절단을 기대했는데, 우리로서는 굉장히 아쉽다. 그러나 위원장께서 조의문과 조화를 보내준 데 대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감사의 말씀을 전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10년 전 김대중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을 때 김기남 비서, 김양건 통전부장 등 조문 사절단이 와서 조의를 표하고 청와대 방문해서 이명박 대통령과 대화를 나눈적이 있었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박 의원은 김여정 1부부장에 대해 “역시 밝고 맑고 잘 웃고, 얘기는 야무지게 잘 하더라”며 ”공식적으로 이야기 할 때는 단호하더라”고 전했다.

윤 수석에 따르면, 정의용 실장은 “여사님을 함께 추모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평화롭고 번영된 앞날을 위해 함께 노력해나가겠다는 우리의 다짐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이 여사님은 그제밤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 우리 곁을 떠났다”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은 “이희호 여사님께서 하늘나라에 가서도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을 기도하시겠다는 유언을 남기셨는데 여사님의 기도로 오늘같은 소중한 자리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오늘을 계기로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조속히 재개되는 것이 김대중 대통령님과 이희호 여사님의 바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 북측은 김여정 1부부장과 리현 아태 실장, 남측은 정의용 안보실장과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서호 통일부 차관, 그리고 장례위를 대표해 박지원 의원이 마주 앉았다. [사진제공 - 통일부]


(추가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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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범죄자 이재용을 구속하라!

절규하는 노동자 강남 삼성서초사옥앞서 고공농성투쟁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6/1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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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레스아리랑

 


노조 설립을 추진하다가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다는 김용희(59) 씨가 지난 10일 새벽 5시 서울 삼성그룹 서초사옥압의 한 교통 폐쇄회로(CC)TV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김 씨는 1982년 삼성항공(현 삼성테크윈)에 입사한 이후  "해고 통지조차 받지 못한 채 삼성에서 쫓겨났다"다고 한다.

해고된 이후 김 씨는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비롯한 서울 전역에서 시위를 벌여왔다. 삼성그룹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소속으로 자신을 비롯한 삼성 해고자들의 복직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재판의 피고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법정 구속을 요구하고 있다.
 

 

 

김 씨가 지난 10일 고공농성에 돌입한 건 정년이 1개월밖에 남지 않아서다. 다음 달 10일이 정년이다. 물과 소금만 섭취하는 단식 투쟁은 11일 현재 9일 차를 넘기고 있다.

김 씨와 함께 투쟁하고 있는 이만신(54) 씨는 "김 씨는 삼성에서 부당 해고된 이래 줄곧 삼성에 맞서 싸워 왔다"면서 "정년 안에 원직 복직을 해야 하지만 이제 시간이 없어서 고공농성까지 돌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씨 역시 삼성SDI에서 근무하던 중 2012년 6월 해고됐다. 당시 삼성 측은 '근무태만'과 '지시불이행'을 해고 이유로 들었지만, 이 씨는 김 씨처럼 노조 설립을 추진했기 때문에 해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이 씨가 UPI뉴스에 공개한 삼성 내부 문건에 따르면 삼성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 노사파트는 'SDI 이만신 특이사항 보고' 또는 'SDI 이만신 동향보고' 등의 제목으로 이 씨의 활동을 감시했다.

이 씨는 "미래전략실 주도로 삼성이 대책회의를 가진 지 3주 만에 징계해고됐다"고 말했다. 현재 그와 관련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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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비난 윤웅걸 지검장, 알고보니 ‘간첩조작 사건’

검찰 과거사위, 증거 조작 확인하지 않은 수사 검사도 문제
 
임병도 | 2019-06-12 08:54: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6월 10일 <중앙일보>는 ‘단독’이라며 “공수처, 중국 것 베낀 것…그쪽선 정적 제거에 활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는 윤웅걸 (사법연수원 21기) 전주지검장이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올린 ‘검찰개혁론2’라는 글을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윤 검사장은 ‘이프로망’에 “중국의 국가감찰위원회는 한국에서 추진하는 공수처와 닮았다”라며 “국가감찰위원회는 부패 척결을 명목으로 효율적으로 정적을 제거하는 등 통치권자인 주석의 권력 공고화와 장기집권에 기여하고 있다는 언론의 평가가 나온다”라고 썼습니다.

<중앙일보>의 보도 이후 <조선일보>도 “현직 검사장 “수사권조정과 공수처도 중국 그대로 베끼나”라는 제목으로 윤웅걸 검사장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현직 지검장이 공수처를 비난했다는 사실에 보수 언론은 공수처가 신설되면 안 된다는 근거로 삼으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윤웅걸 검사장이 누구인지는 모두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용공 조작’과 흡사했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단 사건>
국정원과 검찰은 2013년 1월 탈북자로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 주무관으로 근무하던 유우성씨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지령을 받고 자신이 관리하는 탈북자 명단 등을 북한에 넘겼다며 간첩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현직 공무원이 간첩활동으로 탈북자 명단을 북한에 넘겼다는 사실이 국정원에 의해 밝혀지면서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국정원과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이 조작됐고, 여동생의 진술이 강요에 의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대법원은 유우성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2014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장 큰 쟁점은 간첩 혐의를 입증할 증거였습니다. 당시 유우성 변호인 측은 국정원과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조작됐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아니라고 변명했습니다.

증거조작 주장이 제기되자 2014년 2월 16일 윤웅걸 서울중앙지검2차장 검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 의혹에 대한 브리핑’까지 진행했습니다.

윤웅걸 서울중앙지검2차장 검사는 간첩조작 사건에 제출된 3개 문서가 위조라는 주한 중국 대사관이 보낸 답변 결과가 오히려 의심스럽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 중국 측도 단정적 위조라고 했는지 의문스럽다…(중략) 그래서 중국 대사관 위조라는 개념이 우리들이 통상적으로 얘기하는 위조와 똑같은 개념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용이 위조라는 건지, 도장이 위조라는 건지, 아니면 권한 없는 기관에서 발부했다는 건지, 밑에서 결재 없이 해줬다는 건지 그런 것들이 확인되지 않는다.” (윤웅걸 서울중앙지검2차장 검사)

검찰은 증거가 조작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2014년 3월 27일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와 관련해 법원에 제출한 문서 3건을 철회했습니다.

윤웅걸 서울중앙지검2차장검사는 “기록을 다시 검토한 결과 문건을 제외하고 기존 증거만으로도 유씨의 간첩 혐의는 인정된다고 판단했다”며 “문서 위조로 사건 본질이 흐려졌다”는 해괴한 변명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검찰 과거사위, 증거 조작 확인하지 않은 수사 검사도 문제

유우성씨의 간첩조작 혐의에 대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윤웅걸 서울중앙지검2차장검사는 법원의 판결을 비판했습니다.

윤 차장검사는 또 다른 간첩 혐의 관련 사건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기자 앞에서 “법원의 잇따른 무죄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 사건에 대해 증거 여부만 따져 무죄를 선고하고 사건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하게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2019년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극히 제한된 사진 정보만을 갖고 수사보고서가 작성된 점 등에 비춰봤을 때 당시 국정원 수사팀이 증거로 제출될 사진 등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했고, 수사 검사 또한 이를 확인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공소 유지는 검찰의 고유 권한임에도 국정원이 제출한 자료만 믿고 검사가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은 부분을 지적함으로 실제 수사 검사의 잘못이 드러난 셈입니다.

검찰 과거사위는 “잘못된 검찰권 행사로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쓰고 장시간 고통을 겪은 피해자에게 검찰총장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쫓겨난 공안 검사의 반격이 시작되나

윤웅걸 전주지검장은 수원지검 공안부장검사, 서울 서부지검 차장검사,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를 지낸 공안 검사입니다. 2014년 간첩조작 사건이 드러났음에도 2015년에는 검사장으로 승진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검 기획조정부장이었던 윤 지검장은 초임 검사장급이 주로 부임하는 제주 지검장으로 밀려났습니다. 조작된 증거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수사했던 책임이 그제야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윤웅걸 지검장은 검찰 내부에서 공안통이었던 공상훈 인천지검장과 이상호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이 사표를 내고 떠난 것과 다르게 끝까지 버티다가 2018년 검찰 인사에서 전주지검장으로 전보됐습니다.

왜 윤웅걸 지검장이 검찰 내부망에 ‘공수처 신설’을 반대하는 글을 올렸을까요? 쫓겨난 공안 검사가 반격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수사 검사가 조작된 증거를 가지고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기소해놓고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뻔뻔하게 공수처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검찰 개혁은 멀어만 보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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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민주당도 한반도 평화 모드 트럼프 성과로 인정"

[프레시안 人스타]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2019.06.12 06:26:55
 

 

 

 

"대통령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큰 역할을 했고, 완벽한 평화 모드로 만들었다. (북한과 미국) 정상들이 두 번이나 회담을 했다. 이제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합창을 한다. 트럼프 정부가 잘한 것은 하나, 북한과 평화 모드를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빠른 속도로 진전되던 북한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이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초조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월말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면서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은 더 조마조마하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정치참여 운동을 하고 있는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 대표는 9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에 고정된 시선을 미국 의회로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치 구조상 대통령을 견제하는 의회의 권한이 중요한데, 의회에서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볼턴 경질 가능성 높지 않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북한 문제에 대한 이견의 무게가 크지 않다고 김 대표는 분석한다.  

"북한 문제를 가지고 볼턴이 계속 강성 발언을 하니까 트럼프의 뜻을 거스르는 것 아니냐, 경질되는 것 아니냐고 한국 언론들에서 물어보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볼턴과 트럼프의 의견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됐거나 이후 일정이 늦춰지는 것처럼 보지만, 그런 영향을 아주 미세하다.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데, 결국 키는 트럼프가 쥐고 있다. 그래서 볼턴만 도려내면 북미 협상이 잘 진척될 것처럼 보지만 아니다."

김 대표는 또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볼턴이 경질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볼턴이 옆에서 강성 발언을 하는 것이 오히려 트럼프에게 도움이 된다. 볼턴은 네오콘으로 구권력의 주류다. 그런 강성 발언이 그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준다. 트럼프는 '저 사람이 감히 공개적으로 내 발언에 반대를 해' 이렇게 사고할 사람이 아니다. 굉장히 계산적이고 유연한 사람이다. 

둘째, 유대계 출신인 존 볼턴의 외교 정책은 첫번째도 중동이고, 두번째도 중동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자기 아이디어는 없다. 볼턴은 관료로서 자리 욕심이 있지만 갈 데가 없다. 유엔 대사까지 지냈으니 장관을 하고 싶어 하지만, 청문회 통과는 어불성설이다. 공화당도 고개를 가로젓는 강경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볼턴은 자리보전을 위해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트럼프를 거스르지 않는다.  

셋째, 볼턴은 트럼프의 세번째 안보보좌관이다. 안보보좌관을 또 교체하는 것은 트럼프에게도 정치적 부담이다. 이미 미국은 대선모드로 진입했다. 외교정책이 미국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는 못하지만, 여론의 흐름을 만들 때도 있다. 미국 유권자들 입장에서 나프타(NAFTA), 중국, 멕시코 등과 협상 같은 트럼프의 무역정책이 내수에 영향을 미치니까 외교정책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여기에 유태인들의 지지를 붙들어줄 수도 있기 때문에 내년까지는 볼턴을 끼고 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트럼프 탄핵 가능성 없다" 

미국 정계는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이미 대선정국에 돌입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탄핵 보다는 퇴임 후 감옥에 있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9일 트위터를 통해 "펠로시는 형편 없고 앙심을 품은, 소름 끼치는 사람"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런 공방도 다 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던 '대통령 탄핵'에 대해 김 대표는 "가능성이 없다"고 전망했다.  

"한국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하지만 미국은 상원에서 투표로 탄핵을 결정짓는다. 상원 민주당 의원들 중에도 탄핵까지는 아니라고 하는 의원들이 십여명 있다. 탄핵 가능성이 없는데 탄핵을 발의하면 민주당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지금 민주당에서 트럼프 탄핵을 언급하는 의원들은 자기 정치를 하는 것이다. 로버트 뮬러 특검 결과를 놓고 그렇게 주장을 할 수도 있다. 뮬러 보고서 결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흑백논리로 봐서는 안 된다. 뮬러는 트럼프가 충분히 탄핵할 만큼의 죄가 있지만, 미국의 국익을 위해 탄핵 얘기까지는 자제했다. 대통령 탄핵 사태 자체가 국가적 위기 상황이니까 미국의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 제1차 북미정상회담 당시의 트럼프(오른쪽)와 김정은. ⓒ연합뉴스


 

 

"철저하게 지지층만 바라보는 트럼프...재선 가능성 높아"

김 대표는 오히려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이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16년 대선에서부터 전략적으로 접근해 승리를 거머쥔 트럼프는 집권 이후 영악하게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기반을 확대하는 계산적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이 전략이 유효하다는 분석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은 첫 중간선거를 통해 실험을 했고, 처음부터 계산된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를 지지한 백인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자기네를 위해서 일한다고 했는데 진짜 그런지 지켜보고 있다. 그 시선을 다음 선거 때까지 붙들어놓아야 한다. 그게 반이민 정책이다. 미국 내에서 이민자들을 내쫓고, 가두고, 또 어떤 때는 중남미에서 올라온 캐러밴을 막는다, 멕시코와 국경에 장벽을 쌓는다, 이런 식으로 계속 반이민 정책 이슈를 만들어냈다. 중간선거 결과를 보니 하원은 졌지만 백인 지지층은 오히려 결집하고 확대됐다. 

또 멕시코와 불법 이민자 문제 관련 협상을 최근 타결시켰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협상에서 성공한 셈인데, 이처럼 반이민 이슈를 대도시의 안전 문제, 내수 문제와 연관시키면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있다.  

지난 대선 때도 그랬는데, 트럼프의 선거운동을 보라. 대도시는 절대 안 간다. 자신에 대한 지지가 높은 시골 지역 중심으로 유세를 다닌다. 트럼프는 '훌륭한 정치를 하겠다' 이런 생각은 없다. 철저하게 한명만 이기겠다는 전략을 썼다. 지난 대선 때 여론은 힐러리는 79점 맞으면 떨어지는 것이다. 힐러리의 커트라인은 80점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커트라인은 30점이다. 31점이면 '트럼프가 생각보다 잘하네'라고 말하게 되는 그런 전략을 썼고, 이 전략이 맞아떨어졌다. 트럼프에 대한 비호감도는 떨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지지가 "신규 백인 유권자들의 증가"로 외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투표를 하려면 자기 지역의 선거관리위원회에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 투표를 하지 않았던 상당수의 백인 유권자들이 트럼프 이후 유권자 등록을 했다. 지난 중간선거 때도 전체 유권자 숫자가 늘었고, 투표율도 증가했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풀뿌리 권력" 

김 대표는 트럼프가 '공화당 vs. 민주당'이라는 기존 정치 틀거리에 들어맞지 않는 '정치적 이단아'라는 사실이 오히려 그의 강점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자본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권력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는 총기협회로부터 돈을 제일 적게 받은 대통령 후보 중 하나다. 그러니까 총기협회 간부들 모아놓고 백악관에서 회의하면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규제가 일리가 있다'는 얘기를 막 할 수 있다. 지금도 재선거를 위한 후원금 내역을 보면 오바마만큼이나 '스몰머니'(소액 후원금)를 걷었다. 트럼프는 오바마처럼 군중노선을 걸었다. 이런 '스몰 머니'는 '스트롱 머니'이고, 못할 게 없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시민사회 세력이지, 기득권 계층이나 자본가의 대리인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길을 안 비키고 있는 민주당의 주류들은 어떤가.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는 지역 유지들을 불러서 타운홀 미팅을 가졌다. 거기 가려면 부부가 1만불 내야 했다. 옛날 방식이다. 오히려 민주당이 자본이나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더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민주당, 이슈와 구심점 모두 없어" 

현재 20여 명의 대선후보가 난립하면서 "이슈와 구심점 모두 못 만들어내고 있는 민주당"도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2016년 대선도 트럼프가 이긴 것이 아니라 힐러리가 진 선거다. 공식 선거 후보는 힐러리인데, 정책은 버니 샌더스의 정책이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지지를 받았다. 버니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반대'를 주장했다. 트럼프와 똑같다. 버니의 골수 지지층은 백인 노동자들인데, 이들은 순식간에 트럼프와 통한다. 이처럼 지난 대선 때 내부 조직의 힘으로 결정된 후보와 주요 의제가 변리됐다. 그래서 후보가 된 힐러리를 중심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뭉쳐야 하는데, 샌더스 지지자들은 떨어져나갔다. 지금도 그런 문제가 하나도 해결이 안 되고 더 사분오열이 됐다.  

힐러리의 측근이었던 10선의 조 크롤리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뉴욕 14선거구)에게 당 경선에서 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 민주당 지지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민주당 주류 지도부가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순순히 물러나겠나. 그런 면에서 트럼프가 이미 장악에 성공한 공화당이 대선에 훨씬 유리하다." 

"트럼프 재선이 한국에 끼칠 영향은...." 

아직은 좀 이른 전망이지만, 트럼프 재선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김 대표는 "북미관계는 트럼프가 돼야 유리하다"고 내다봤다.  

"트럼프는 전임이 하지 못한 것을 내가 한다는 걸 가장 보여주고 싶어한다. 북한이 그런 이슈다. 재집권을 하게 되면 의회의 협력을 이끌어내서 북핵 이슈를 실질적으로 풀 여력이 된다. 북미 관계, 한반도 평화체제를 놓고 보면 트럼프 집권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트럼프의 '아메리카 포스트' 전략의 그늘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김 대표는 우려했다.  

"트럼프의 무조건 미국의 이익에 우선하는 '아메리카 포스트' 전략은 미국과의 교역량이 많은 나라들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처럼 중국과 전선이 강화되어 중국이냐, 미국이냐라는 선택의 길로 갈수록 한국은 고통스럽다. 경제 문제를 놓고 볼 때 트럼프의 재선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이다."  

 

미주한인사회의 '앤디 김 지키기'

김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미주한인사회의 당면한 과제로 앤디 김(민주당·뉴저지 3선거구) 의원의 재선을 돕는 일이라고 말했다. 앤디 김은 30년 동안 공화당이 지키고 있던 지역에서 당선된 초선의원이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일한 외교안보전문가로 민주당 내 개혁세력(Progressive)에 속하는 젊은 정치 유망주 중 한명이다.  

김 대표는 "소수민족으로 자기 의원을 한명을 내면 90점, 두명을 내면 91점이지만, 한명도 없으면 0점"이라면서 앤디 김 의원이 미주한인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차원 뿐아니라 미 의회에서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1996년 뉴욕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면서 미주 한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정치참여운동을 해왔다. 2007년 미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것도 그 성과 중 하나다.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바로가기)

 

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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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하는 노동자 삼성본사앞 고공농성투쟁

절규하는 노동자 삼성본사앞 고공농성투쟁

<사진기사>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6/1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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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레스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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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김정은의 아름다운 편지 받았다”

볼턴, “3차 정상회담 가능..김정은이 열쇠 쥐고 있어”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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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2  05: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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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미 대통령이 11일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폭스TV 동영상 캡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으로부터 아름다운 편지를 받았다”고 11일(이하 현지시간) 공개했다. 

<폭스TV>에 따르면, 그는 이날 회견에서 ‘이달 말 한국 방문 중 김정은과의 만남에 대해 논의 중인가’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김 위원장과의) 관계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편지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은 시점은 “어제(10일)”라고 밝혔다.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 1주년에 맞춰 발송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채널을 통해 ‘친서’가 전달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현재 북미 간에는 ‘뉴욕채널’이 열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편지를 보여줄 수는 없지만 매우 개인적이고 매우 따뜻하고 매우 좋은 편지였다.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지리적 위치를 거론하면서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다”고 치켜세웠다. 

그는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핵실험도 없다. 중요한 미사일 발사도 없다”면서 “아주 긍정적인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7년 2월 살해된 김정남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정보원이었다’는 전날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대해서는 “그의 이복형 관련 CIA에 대한 정보를 봤다”며 “내 집권 중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김 위원장에게 말할 것”이라고 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 관련해 “나는 그것이 전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말로 김정은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뜻”이라고 공을 넘겼다. 

트럼프 행정부 내 대외정책을 둘러싼 엇박자에 대해서는 “우리 시스템 내에서는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내린다”고 피해갔다. “나는 국가안보 보좌관임을 아주 정확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국가안보(정책) 결정권자가 아니다.”

(추가,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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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보 “남북선언 적극적 이행이 미국의 궤도이탈 막는 것”

조선신보 “남북선언 적극적 이행이 미국의 궤도이탈 막는 것”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06/11 [17:02]  최종편집: ⓒ 자주시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남측 당국이 북과 보조를 맞춰 실천적 행동을 보인다면 북측이 화답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신보는 11일 조미 교착 국면에서 더더욱 중요한 북남선언 이행이라는 기사를 통해 위와 같이 강조했다.

 

매체는 북미 관계 교착과 더불어 남북선언들 이행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는데 이는 우리 정부가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북측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매체는 북이 올해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를 표했지만우리 정부는 <대북제재의 유지>라는 미국의 강압으로 제대로 화답하지 못했고심지어 <한미워킹그룹>에 이 문제를 상정해 사업재개의 길을 스스로 막았다고 주장했다또한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압박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심양에서 615 민족공동위 실무협의가 무산된 것은 우리 정부의 대미의존 자세가 민간차원의 교류 협력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예라고 매체는 주장했다.

 

매체는 지난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연동을 해 진전을 이루었는데 이런 선순환이 이어지자면 정상회담들에서 채택된 선언들이 지체 없이 이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공동성명의 정신을 뒤집고 북에 <선 핵 포기>와 일방적인 무장해제만을 고집해 하노이 회담이 합의에 이르게 하지 못하게 했다고 매체는 주장했다.

 

매체는 우리 정부는 미국의 태도를 두둔하고 있다며 미국이 <빅딜(big deal)>을 주장하여 하노이 수뇌회담이 합의 없이 끝나자 그 무슨 절충안을 마련하겠다며 <선 핵 포기요구를 그대로 담은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좋은 거래>을 거론한 것을 예로 들었다.

 

이어 매체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은 조선의 일방적 핵무장 해제가 아니라 교전쌍방인 조미의 대결종식과 신뢰구축에 기초한 비핵화라고 못 박았다.

 

계속해 매체는 조미공동성명에는 조선은 2018년 4월 27일에 채택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한다고 명기되었다. ‘조선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였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한 판문점 선언에서 북과 남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조선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으며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면서 북측은 민족의 합의에 따라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비핵화를 위한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였지만남측 당국은 대미의존과 결별하지 못하고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매체는 북미 교착국면에서는 미국의 눈치를 보며 남북선언 이행을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선언 이행에 나서야 한다며 바로 그것이 미국의 궤도 이탈을 막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매체는 남북선언들을 이행하여 평화번영에 대한 민족의 지향을 현실화해야 미국에 북미 공동성명 이행을 강력히 촉구할 수 있고남북-북미 관계 진전의 선순환도 복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매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일 경기장에서 한 연설을 상기시키면서 민족자주가 근본 문제를 풀어내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매체는 남측 당국이 북의 동족과 보조를 맞추어 오늘의 난국을 타개할 것을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주는 용단을 내린다면 북측의 화답이 있을 것이며 역사적인 시정연설에서도 천명된바와 같이 남측 당국과 손잡고 평화롭고 공동 번영하는 새로운 민족사를 써나가시려는 최고 영도자의 결심은 지금도 확고부동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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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반미, 이란의 저항 경제(Resistance Economy)

[자주적 경제민주화의 길(7)] 자주적 경제민주화의 길을 가는 나라① 이란

중동의 40년 반미국가 이란

세계 석유 매장량 4위의 석유대국이고 천연가스도 풍부한 8천여 만명 인구의 이슬람국가 이란에 대해 미국 부시대통령은 북한(조선)-이라크(사담 후세인정권시기)와 함께 ‘악의 축’이라 불렀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후 40년 동안 중동에서 반미투쟁 한길을 걷고 있는 반미국가이다. 자체 개발한 인공위성 발사 로켓 ‘시모르그’(Simorgh, 이란어로 불사조라는 뜻)와 연구목적 인공위성 ‘오미르’를 궤도에 진입시키는데 성공시키는 등 과학기술수준이 높고, 단거리,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핵무기 개발까지 넘보는 중동의 군사강국이다.

이슬람혁명의 승리와 석유국유화

‘검은 황금’ ‘땅 속의 진주’인 석유를 지배하기 위해 제국주의 국가들은 전쟁으로 석유를 약탈하려고 했다. 이란의 석유는 1909년 영국이 장악했다. 변화는 민족주의세력의 지도자 모하마드 모사데크(Muhammad Mosadeq)가 1951년 석유국유화운동을 주장하고 “외국을 몰아내자, 빈곤을 추방하자, 이란을 이란인의 손에!”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석유 국유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곧바로 쿠데타를 사주하여 모사데크 민족주의 정부를 전복하고 팔레비 왕정을 복원시켰다. 이때부터 이란 민중의 반미감정이 촉발되었고, 1979년 2월 이란 시아파 성직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지도자로 한 이슬람 혁명이 성공으로 이어졌다.(‘아야톨라’는 이슬람 시아파 최고성직자 의미이다) 이 혁명으로 이란 민중은 팔레비 왕으로 대표되는 친미 독재집단인 샤(Shah) 왕조를 무너뜨리고 그때껏 이란 석유를 거저 가져가다시피 하던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석유 주권을 되찾았다. 이슬람혁명의 성공은 1953년 민족주의자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가 미 CIA가 개입한 친위쿠데타로 실각한 뒤 무려 26년 동안 미국 40%, 영국 40%, 팔레비 왕조 20%로 나뉘었던 석유 이권을 이란 민중의 손으로 되찾았다는 것을 뜻했다. 혁명의 성공으로 석유 이권을 빼앗긴 미국은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끊었고 지난 40년 동안 경제제재를 가하는 등 미국과 이란은 적대적인 관계가 이어졌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5월 8일(현지시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의 탈퇴를 선언한 것과 관련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전국으로 생중계된 TV방송 연설을 하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연설에서 "JCPOA가 완전 파기될 경우 이란은 앞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우라늄 생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또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JCPOA 협정 체결 국가들과의 협상 의사를 밝혔다.[사진 : 뉴시스]

이란핵합의(JCPOA)와 트럼프의 핵합의탈퇴

미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이란은 오래전부터 희망했다. 미국과 수교를 맺을 경우 그동안 투자 제한 등 이란에 가해졌던 경제제재를 비롯한 압력이 느슨해질 것이고, 이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하산 로하니(Hassan Rouhani) 대통령은 2013년 8월 당선된 후 대이란 경제제재를 풀고 경기회복을 위해 미국, EU와 핵협상을 이끌어 2015년 7월14일 이란과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및 독일(P5+1)이 참가하는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을 타결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역내 주변국과의 갈등을 해소하면서 외국인투자 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통한 국내경제 활성화를 실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5월8일 JCPOA 탈퇴를 선언했고, 미국이 완화했던 대이란 제재를 재부과할 것임을 천명하여 2018년 11월부터는 제재 예외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고 있다.

제재를 극복하고 자립경제를 위한 저항경제(Resistance Economy)

이란은 미국의 제재가 있는 조건에서도 석유 중심 경제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산업다각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제재 기간 동안 자급자족이 가능한 경제체제 구축을 목표로 두고 수입대체산업 육성에 주력하였으며, 특히 2021년까지 진행되는 제6차 5개년 개발계획 통해서는 차세대 11대 전략산업을 선정한 바 있다.
저항경제(Resistance Economy)는 2011년 3월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최초로 언급한 용어로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에 대응하여 자립경제 기반을 구축하는 경제체질개선 정책이다. 석유화학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선정하여 석유화학단지 조성을 통한 생산량 확대, 민영화, 관련 기업 육성 및 인프라를 개발하고, 자동차산업부문을 중점적으로 개발하였다.
국제사회의 대이란 경제제재가 해제되면서 프랑스와 독일 기업이 이란 석유화학 부문의 높은 성장 잠재력과 이란 정부의 전략적 육성 정책에 기대를 가지고 적극적 투자의지를 보였지만 최근 이란을 둘러싼 국제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융조달의 어려움과 투자 프로젝트의 동력이 위축되고 있다.
이란의 자동차산업부문은 중동 지역내 최대 자동차생산을 기록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으나 경제제재의 영향으로 생산량이 급감하였다가 제재해제 분위기를 타고 잠시 회복세였으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란 정부는 외국기업의 투자 및 기술이전을 강조하면서도 전략적으로 자국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수입완제품 고관세율 정책, 수입허가 등 각종 규제책을 적극 활용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핵합의 탈퇴를 선언하고 경제제재 금융제재에 군사적 위협까지 하고있는 현 정세에서 저항경제의 추진도 시험대에 올라있다.

다시 이란에서 울리는 ‘미국에게 죽음을!’

이슬람혁명 40주년을 맞은 올해 2월에 이란 전역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또다시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외쳐졌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미국의 압박과 제재에 맞서 자국 군사력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증강할 것"이고, "서방의 제재로 이란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국민이 서로 돕는다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적들의 사악한 목표는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40년 동안 걸어온 길을 지속해서 걸어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란은 트럼프 정부의 제재국면을 돌파하기 위해서 주변 국가인 이라크와 경제협력을 한층 강화하고, 이란 핵합의 당사국인 유럽국에 대해 경제적으로 제재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중동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경제가 경제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학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이유를 뚜렷이 보여준다.

자주적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은 자주적 정치세력의 집권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와 사민주의적 경제민주화의 길을 걸어간 나라들은 보수정권인가 진보적 정치세력인가 상관없이 재벌체제개혁, 경제민주화를 실현하여 경제발전생태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란의 경우를 볼 때 제3세계 나라에서 자주적 민주적 경제정책을 위해서는 정치민주화를 선행하여 민주정권 집권이 선차적이다. 부패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자본주의경제인가 사회주의인가라는 경제체제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나라의 자원, 기술, 기술자들을 통해 제 발로 걸어갈 수 있는 경제를 건설하는 것이다. 자주적 경제민주화로 자립경제를 추구하는 길은 필연적으로 미국패권과 맞서게 되며 이를 위한 강력한 군사적 담보가 필수적이다. 미국은 20세기에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다는 구실로, 21세기에는 대테러전쟁과 인권보장과 인도주의실현을 운운하면서 미국패권에 도전하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를 타겟으로 경제제재와 금융봉쇄, 전쟁불사, 군사적 위협을 가혹하게 자행해왔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을 약탈하려는 미국과 강대국에 맞설 수 있는 정권, 가혹한 경제제재와 군사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지키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를 추구할 수 있으려면 자주적 민주정권이 집권해야 자주적 경제민주화는 비로소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경자 객원기자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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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커만가는 침략군의 탐욕과 치부 -<우리민족끼리> 보도

날이 갈수록 미국의 흉악한 심보가 계속 드러나고있다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6/11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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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끼리 11일자 보도> 

북의 매체 <우리민족끼리> 11일자 보도에서 <날로 커만가는 침략군의 탐욕과 치부>라는 글이 실렸다. 

 

 

▲     © 프레스아리랑


 

 

이 글에서는 "최근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일방주의적이며 강도적인 행태가 도를 넘고있어 각계의 커다란 분노를 자아내고있다"며 "남조선강점 미군유지비문제, 《싸드》배치 및 전략자산의 전개비용문제, 대미수출품에 대한 관세부과문제 등에서 날이 갈수록 미국의 흉악한 심보가 계속 드러나고있다"고 지적했다. 

글은 이어 "지난 2월 남조선과 미국간에 제10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이 체결되어 남조선강점 미군유지비를 지난해보다 8.2% 증액된 9억 1 890만US$로 확정되였다"고 소개하고 "문제는 여기서 그 유효기간을 1년으로 정한 사실이다. 지난 시기에는 남조선과 미국사이에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유효기간이 5년이였다. 그런데 이런 관례를 깨고 1년으로 정하였으니 여기에는 《방위비분담금》을 해마다 계속 늘이려는 미국의 강도적인 흉심이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글은 이어 "사실 미국이 해마다 남조선으로부터 옭아내고있는 《방위비》라는것은 침략군의 탐욕과 치부, 변태적욕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수탈금에 지나지 않는다.

알려진데 의하면 남조선강점 미군은 현재 받고있는 유지비도 다 쓰지 못하고있는 상황이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글은 이어 다음과 같이 계속했다.

 

얼마전 남조선의 어느 한 언론은 《해마다 주<한> 미군이 쓰고 남는 <방위비분담금>만 해도 적지 않다. 이렇게 축적되는 많은 자금이 남조선과 미국의 은행들에서 불법적인 리자소득을 위한 밑천으로 도용되고있다.》고 하면서 《미국이 <방위비분담금>의 명목으로 뜯어내는 돈이 얼마나 많았으면 남조선에 있는 미군이 그것을 가지고 풍청거리다 못해 변놓이까지 하고있겠는가.》고 개탄을 금치 못하였다.

이외에도 지금 미국이 《싸드》배치 및 전략자산의 전개비용문제, 대미수출품에 대한 관세부과문제 등을 빗대고 남조선으로부터 짜내려고 하는 국민혈세는 실로 막대하다.

남의 땅을 가로타고 앉아 주인행세를 하며 악행만을 일삼고 《방위비》 등의 각종 명목으로 막대한 자금을 강탈하여 탕진하면서도 더 많은 돈을 내라고 을러메는 미국이야말로 희세의 날강도가 아닐수 없다.

오죽했으면 남조선각계에서 《미국이 우리를 말리워죽이려 한다.》, 《세상에 이런 날강도가 어디 있는가.》, 《우리가 미국의 자금원천고인가.》 등 비난과 불만의 목소리가 련일 울려나오고있겠는가.

미국이 입만 벌리면 남조선에 대해 《우방국》, 《빛샐틈없는 <동맹>》타령을 늘어놓아도 그것은 저들의 리익추구를 위한 위선이며 기만에 불과하다.

미국에 있어서 남조선은 한갖 저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비게덩어리, 제 마음대로 수탈하고 부려먹을수 있는 하수인에 불과하다.

미국의 파렴치한 혈세강탈책동을 계속 방임해둔다면 남조선인민들이 당하는 수치와 굴욕, 불행과 고통은 더더욱 가증되게 될것이다.

묻건대 언제까지 남조선인민들이 외세의 이런 굴욕적이고 불평등한 강요속에 속수무책으로, 함구무언으로 살아야 하는가. 

김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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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러 접경, 다자협력 진척 더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6/11 14:10
  • 수정일
    2019/06/11 14: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러 연해주 중심 블라디보스토크, 하산·자루비노 북러국경지대를 가다
블라디보스토크=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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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0  1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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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보스토크와 남단 루스키 섬을 잇는 세계 최장의 사장교(斜張橋)인 루스키 대교. 2012년 열린 제 24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위해 건설했다. [사진-조천현]

지난 3~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진행된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 포럼' 참가를 위해 7일까지 블라디보스토크와 북·중·러 접경 지역인 하산, 자르비노, 크라스키노 등 러시아 극동 연해주 지역을 돌아보고 왔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수년간 추진하는 신동방정책의 핵심지역인 연해주에서 블라디보스톡 자유항법, 선도개발구역법, 국유지 무상제공을 골자로 한 극동헥타르법 등 투자 여건 개선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미국의 제재속에 개발 프로젝트 진척은 다소 더딘 상황이다.

지난해 연해주 총교역 규모 75억달러에서 13억 5,000만달러(18%)에 달하는 제2위 교역국인 한국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고 1위 교역국이자 거대 이웃인 중국과의 협력사업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지난 2012년 APEC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건설된 루스키대교가 지역의 개발과 성장을 견인하고 지난 2015년 이후 매년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을 계기로 더욱 빠른 성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다.

한편으로 발해성터에 대한 유적 발굴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허허벌판에 IER(Integrated Entertainment Resort, 종합위락단지)라는 이름으로 골프장, 카지노, 호텔 등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다국적 투자 유치가 적극 진행되고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연해주 소재지를 하바로프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전하는 결정을  해 앞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동북아 경제협력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의지를 더욱 강하게 드러내보였다. 

지난 4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방문해 정상회담 일정을 시작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두만강 차량도로 건설 합의 등 뒤늦은 북·러 합의소식이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일방적인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별 성과는 없었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운영회사인 북·러 합작의 라손콘트라스(RasonContras) 이반 톤키(Ivan Tonkikh)  사장은 4일 열린 포럼에서 두만강철교와 함께 지난 북러정상회담에서 두만강 자동차도로에 대한 합의가 있었고 올해안에 건설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하면서도 결국 한국의 물동량을 기대하고 있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 중국과 맞닿아있는 국경지대 다자간 초국경 협력사업은 기대와 달리 아직은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 하산역에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석탄 열차. 하루 두 세 차례씩 중국 훈춘 외곽의 화물 전용역까지 러시아산 석탄을 실어 나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궤를 쓰는 러시아 열차는 훈춘에서 표준궤를 쓰는 중국 열차에 화물을 옮겨 싣고 중국 내륙으로 운송된다. [사진-조천현]
   
▲ 하산역사 인근 주거지. 한때 북측 근로자들이 많이 상주했으나 지금은 인적이 없다.[사진-조천현]

두만강철교를 지척에 두고 있는 하산역에서는 석탄을 가득 실은 화물열차가 줄줄이 서 있지만 나진항으로 가는 길은 오래 전에 막혔고 지금은 하루 두 세차례 중국 훈춘으로 내 보내는 게 전부라고 했다. 한때 운송작업 등을 위해 역 주변 숙박시설에 상당수 체류하던 북측 노동자들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에 하는 것으로 보이는 마른 걸레질을 하는 여성들 주변에는 따분한 표정으로 근무복을 차려입는 역 관계자 여러 명이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으며, 오직 한 젊은 직원만은 석탄이 적재된 화물열차 사진은 지워야 한다고 단속에 여념이 없다.

   
▲ 자르비노 항. 저 너머 두대의 크레인이 덩그러니 서 있는 항구 앞으로 때 여객이 오르고 내리던 접안시설이었을 이곳은 내려 앉은 채 방치되어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자르비노항 전경. 움직임이 전혀 없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훈춘과 가까워 특히 중국이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하산 지역 포시에트 만의 자르비노항. 하역장에 내려진 콘테이너는 보이지 않고 두개의 화물 크레인은 서있었으며, 일부 접안시설은 내려 앉은 지 오래인 듯 방치된 상태 그대로였다. 

한때 한국의 속초항에서 자루비노항까지 운행하던 동춘해운의 페리는 멈춘지 오래이고, 바다로 진출하는 것이 숙원사업인 중국쪽에서는 2022년까지 훈춘 내륙항을 건설하고 그 전에 자루비노항과 연결하는 해양열차로 통관지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계획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정작 러시아쪽에서는 한편으로 경계하는 태도가 역력하다. 

천혜의 자연이 미개발 상태로 있는 연해주. 러시아 정부는 이 곳을 △극동지역 선도개발구역 △블라디보스톡 자유항 제도 추진 △경제특구 운영 및 복합 카지노단지 착공 △루스키섬 개발(테크노파크, 의료 클러스터 조성) 등 극동개발의 거점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4시간을 달리도록 도로 양옆으로 참나무와 단풍나무, 너른 초지가 끝도없이 이어지고 깊은 바닷물이 투명하게 보이는 맑은 '조선 동해'가 따라오는 광활한 대지가 연해주이다.

개발의 가장 큰 장애는 미국의 제재.

역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북중 접경지역의 가능성을 현실화시켜 오랜 갈등관계인 중국과 협력을 이끌어 내고, 한국과 북한을 대륙으로 잇는 신동방정책의 큰 그림의 결말이 궁금해진다. 

한편, 연해주(沿海州)는 한반도 북단 두만강 하구와 잇닿아 있는 하산으로부터 북쪽 사마르가 강 상류에 이르는 면적 16만 4,673㎢, 인구 191만명의 러시아 극동 프리모르스키(Примо́рский, '바다와 접해있다')지방을 이르는 명칭이다.

이 땅은 제2차 아편전쟁 결과 1860년 10월 청나라와 체결한 베이징조약에 러시아가 끼어들어 차지하게 되었으나, 그에 앞서 1500년전인 698년부터 926년까지 한때 발해가 지배하던 곳이다.

   
▲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하바로프스키 거리 신한촌 기념비. 1914년 경성부 인구가 21만명일 때 블라디보스토크 고려인 이 6만 4,000명에 달했다. 1921년 시내 중심가인 바닷가 아르테거리에서 쫓겨나 이곳으로 옮겼으나 지금은 살고 있는 이가 그마저 없다.  [사진-조천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제국주의 시대인 1863년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봉건 탐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최초로 연해주에 정착해 한때 약 17만명이 거주하면서 연해주는 우리 민족과 다시 땅의 연대를 맺었다. 

안중근, 홍범도, 최재형, 이범윤, 이상설·이위종, 이동녕, 이동휘, 신채호, 장도빈의 독립운동이 이곳에서 시작되었고 1920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서는 극동 주둔 일본군에 의해 볼셰비키 적군과 함께 수천명의 고려인이 학살당하는 4월 참변을 당하기도 했다.

   
▲ 루스키 섬에 있는 극동연방종합대학교 청사 A동 건물. 지난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의 정상회담이 이곳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러시아 정부가 매년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을 계기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골프장, 카지노, 호텔 등 최고급 휴양시설이 한창 건설중이다. 한편으로는 2000년전 역사유적에 대한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천혜의 자연조건을 만끽하며 여름 '조선동해'를 가르는 서핑객. 북측 나진에 비해 염도가 2도 낮다고 한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지난 4월 2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방문시 '레스나야 자임까' 식당. 숲속의 작은 방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중심에서 동북 방향으로 53km 떨어진 아르쫌 지역에 있다. 왼쪽 뒤로 보이는 명판에는 2002년 8월 2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연방 원동연방구 방문과정에 이 곳 식당을 다녀갔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통나무로 지어진 레스나야 자임까 식당 내부. 이곳 직원들은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사진 왼쪽에 마련되어 있 무대를 바라보고 창가에 앉았다고 설명했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루스키대교와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바라보고 있는 레닌 동상.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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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는 이희호다

"여자는 남자 밑 보조, 승복할 수 없었다"
2019.06.11 10:23:29
 

 

 

 

이희호가 잠들었다.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그리고 민주화 투사이자 평화운동가였던 그가 향년 9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희호의 삶은 누군가의 딸이나 아내가 아닌, 이희호 자체였다. 10여 년 전 이희호가 쓴 자서전 <동행>(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을 중심으로 그의 삶을 재조명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여성운동가 이희호  

이희호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지만 유복한 가정에서 화목한 유년기를 보냈다. "무엇보다 남아 선호 사상이 지배했던 시대에 아들딸 차별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이화고녀 시절, 그는 모국어인 조선어가 제2외국어로 전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화여전에 다니면서는 황국신민 교육 지도원으로 농촌 지역에 파견되기도 했다. 

"이때 지켜본 농촌 아낙네들의 현실은 가혹했다. 권위적인 가부장제 아래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중노동에 짓눌렸다. 농촌 여인들의 삶은 오로지 가족을 위한 희생뿐이었다."(<이희호 자서전 - 동행> 26쪽) 

해방 후 이희호는 남녀공학인 서울대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여학교에서 비교적 민주적인 교육을 받아온 그의 눈에는 기를 펴지 못하는 여학생과 마음껏 호연지기를 뽐내는 남학생의 모습이 불공평하게 비쳤다.  

"그때 여자들의 자리는 당연히 안방이나 부엌이었다. 그리고 학교와 사회에서는 언제나 뒷자리 차지이며 이등 시민이었다. 남녀공학 체험은 여성들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주었다."(같은 책, 34쪽)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던 그도 부산 피란길에 올랐다. 정부도, 학교도, 팔도 각지 사람들도 모두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이희호는 친구 김정례, 박기순, 장옥분과 의기투합해 별도의 여자 청년단을 조직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는 남자 청년단 산하 여성국이 아닌 독립적인 여자 청년단을 꿈꾸면서 "여자는 왜 늘 남자 밑에서 보조로 일해야 하는지 승복할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나는 여성운동이 하고 싶었다. 여성은 전쟁의 최대 피해자였다. 남성은 전쟁터에서 싸우다 전사하면 '조국을 위해서'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순국선열의 반열에 올라간다. 그러나 후방의 희생자인 여성들에게는 불명예와 수모만 있을 뿐이었다. 몽골군에게 끌려갔다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는 화냥년으로, 일제 강점기에 끌려간 '정신대'는 가문의 수치로, 한국전쟁의 피해자는 '양공주'로 낙인찍히고 멸시당했다. 원인은 가부장제였다. 우리말 속에는 남성을 중시하고 여성을 경시하는 말이 수없이 많다. 무심코 던지는 말 가운데 스며 있는 여성 비하는 또 얼마나 많은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남자는 도둑질 말고는 뭐든지 해도 된다' 등등. 나는 유독 '그녀'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그남'은 없는데 왜 '그녀'라고 하는지. 이는 일본어 '가노조'에서 온 일제 문화의 잔재다. 나는 한때 우리말 속에 은연중에 자리 잡은 남성들의 터무니없는 우월 의식과 그 언사를 연구하여 책을 내려고 한 적도 있다."(같은 책, 39쪽)

그의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오랫동안 가부장제에 갇힌 여성 대부분은 자신들이 받고 있는 불공정과 불이익을 자각하지 못했다. 일상의 언어에서도 차별과 비하가 만연했다. 

이희호는 황신덕, 이태영, 박순천 등과 함께 '여성문제연구원'을 만들어 본격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매달 법률 강좌를 통해 여성의 법적 지위 향상, 특히 민법상 여성의 권리를 집중적으로 계몽하며 무료 상담을 진행했다.  

여성문제연구원은 오늘날 '가정법률상담소'의 모태가 됐다. 또한 여성들의 권리장전으로 불리는 1989년 가족법 개정에 영향을 끼쳤다.  

이희호의 여성운동은 정치적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제1, 2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순천이 1954년 5월 윤보선을 상대로 종로에서 출마하자, "여성은 여성 대표를 찍읍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그때 내가 선거운동을 신명 나게 하자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오해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운명은 정치와 무관할 수 없었나 보다. 후에 결혼하게 될 사람도 이 선거에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같은 책, 44쪽) 

이희호는 그해 8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8년 뒤, 석사 학위를 들고 귀국했다. 그는 학문의 길과 사회운동이라는 갈림길에서 대한YWCA연합회(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를 선택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벌인 캠페인은 '혼인신고를 합시다'였다. 첩을 둔 남자가 많던 때, 혼인신고는 여성의 권리 찾기였다.  
 

ⓒ김대중평화센터


민주화 투사 이희호  

"이희호 총무가 결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부드러운 성격에 강한 책임감으로 좋은 사회운동가 자질을 타고났다고 기대를 많이 걸었던 YWCA 관련 어른들은 김대중 씨와의 결혼을 반대하기로 했다. 조건이 나쁜 그와의 결혼으로 헤어 나오기 어려운 함정에 빠져 좋은 일꾼 하나 빼앗기고 앞으로 여성 지도자로 대성할 재목을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서 결혼이 성사되지 못하도록 공작을 폈다. 그러나 평소 신중했던 그가 비장한 각오로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라고 말하는 데는 더 이상 반대를 할 수 없었다."(같은 책, 66쪽) 

이희호의 이화여전 스승이자 대한YWCA연합회 회장은 지낸 김갑순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의 결혼은 당시 여성계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희호의 결심을 바꿀 수 없었다. 그렇게 1962년 5월 10일 이희호는 김대중과 결혼했다.

그는 김대중과 만남을 "운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참된 민주주의"와 "국민"이 들어간 김대중의 청혼이 "무척 정치적이고 논리적"이었다고 기억했다. 

"그에게 정치는 꿈을 이루는 길이며 존재 이유였다면 나에게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중의 하나였다.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보다는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신뢰가 그와 나를 동여맨 끈이 되었다."(같은 책, 69쪽) 

이희호와 김대중의 결혼 생활은 어땠을까. <동행>에 등장하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독재자가 한창 '요정 정치'를 이어가던 1960년대, 이희호와 여성 단체들은 '4.4 운동'이라는 이름의 요정 정치 반대 운동을 벌였다. 어느날 이희호가 김대중에게 "남자들은 요정이 아니면 정치를 못하나요?"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김대중은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라며 말머리를 돌렸다. 이희호는 곧바로, "언젠가 남자들 큰코다칠 겁니다"라고 경고했다.  

요정 정치의 폐단은 이내 현실로 드러났다. 1970년 요정 아가씨 정인숙이 피살당한 것. 이 사건으로 당시 최고위층 정치인들을 둘러싼 풍문은 구름처럼 일어났다. 

사랑보다는 신뢰로 동여맨 결혼이었지만, 이희호는 "정치는 배우자에게 최대의 경쟁자"이자 "자녀들에겐 최대의 적"이라고 말했다. 김대중의 부재와 상관없이 집에는 손님으로 북적였고, 가족이 사생활을 영위할 공간도 시간도 사라졌다.  

그 와중에 김대중은 국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말 잘하는 김대중'이라는 브랜드까지 생겼다. 

"내가 그를 돕는 일은 신문을 샅샅이 읽어 정책 제안에 도움이 될 만한 기사를 스크랩하는 일이었다. 영자지도 빠뜨리지 않고 챙겼다. 국제 정세를 보는 미국의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자료들이 그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우선 나 자신에게 큰 공부가 되었다. 이러한 습관은 이후에 그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국제사회를 향해 구명 운동을 할 때 나침반이 되었다. 또한 그가 옥중에서 시대의 흐름에서 낙오하지 않고 미래를 볼 수 있게끔 독서 목록을 만드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같은 책, 82쪽)

이희호는 계속해서 김대중에게는 도움이 되는, 동시에 자신에게는 공부가 되는 일을 해나갔다. 1967년 6월 7대 총선 당시 그는 목포 골목을 누비며 선거운동을 했다. 당시로써는 후보자의 아내가 유권자들을 일대일로 만나는 일은 생경한 풍경이었다. 그 역시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마음을 담아 상대방의 손을 꼭 쥐는" 이희호 식 악수가 시작됐다. 그는 이후 김대중 지지를 호소하는 찬조 연설가로도 나섰는데, 언론은 그를 "후보 부인 찬조 연설 1호"라며 "웬만한 정치 연설꾼 실력을 웃"돈다고 평가했다.  

"나는 선거 과정을 통해서 만난 서민들이 참 좋았다. 그들에게서 지식인으로부터 느끼지 못하는 따스한 진정을 느끼곤 했다. 하루 종일 산동네를 다녀도 피곤한 줄 몰랐다. 그래서인지 나는 설이나 추석 명절 때 국회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와 수위 아저씨들 선물을 먼저 챙겼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 어느 매체에서 의원 사무실을 청소하며 많은 의원을 지켜본 아머니들이 가장 인상에 남는 의원 중 한 사람으로 남편을 꼽았다. 그가 아주머니들에게 존칭을 쓰며 인격적으로 대해주었고 명절 때마다 선물을 잊지 않았던 결과다. 선거용 선심이 아니라 그도 나도 서민들을 편하게 느끼는 감성을 공통으로 갖고 있지 않았나 싶다. 이후에 그의 경제정책이 소수 독점재벌이 아닌 중산층과 서민층을 돌보는 대중경제론으로 정착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같은 책, 100쪽) 

이희호와 김대중은 서민뿐 아니라 여성 문제에 있어서도 공통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이 주도해 제13대 국회를 통과한 '가족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김대중의 양성 평등 인식은 알려진 대로, 문패 일화에서 드러난다. 김대중은 1963년 당시 변두리였던 동교동에 집을 마련하고 '김대중'과 '이희호'라는 두 개의 문패를 직접 마련해 걸었다. 그때 김대중은 이희호에게 "부부가 동등하다는 걸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입시다"라고 말했다. 

"남편은 1971년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당선되면 여성지위향상위원회를 두겠다는 공약 발표를 시작으로 대선과 총선, 모든 선거에서 가장 앞선 여성 정책을 제시한 페미니스트 후보였다."(같은 책, 292쪽) 

그러나 여성계의 우려처럼 김대중과의 결혼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독재 정권은 정적의 아내인 이희호의 사회 활동 역시 집요하게 방해했다. 이희호는 1982년 김대중과 미국 망명길에 오르면서 결국 모든 직책을 사임한다. 사실상 강제된 중단이었다. 
 

ⓒ김대중평화센터


독재자가 바뀌어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이희호와 김대중의 '동교동 교도소' 생활은 계속됐다. 1985년 2월부터 1987년 6월까지 28개월 동안 무려 54차례 '연금 중'이었다. 당시 정권은 김대중을 고사(枯死)시킨다는 전략이었다.  

야만과 광기의 1980년대 이희호는 5.18 광주에 아파하고, 권인숙 성고문 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분노했다. 민주화 투쟁 속에 유가족은 늘어만 갔다. 그들은 일이 생길 때마다 동교동을 찾았고, 이희호와 김대중 역시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들을 만났다. 이희호는 영부인이 되어서도 '동교동 사모님'으로 불렸다. 

 


이희호는 여성운동가이자 민주화 투사, 그리고 김대중의 정치적 동지로 1998년 2월 25일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희호는 행사 참여 등 내조 중심이었던 제2부속실의 역할을 아동과 여성을 위하는 일로 확대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양성평등과 인권을 중심으로 한 '일상의 민주화'를 실천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새롭게 신설된 여성부 및 문화관광부, 환경부, 보건복지부에서 4명의 여성 장관이 나왔다. 이어 주러시아대사를 비롯한 4대국 여성 대사가 등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이희호와 김대중의 합작품이다.  

이희호는 또 2002년 5월 유엔 총회 의장국 대표로 임시의장을 맡아 회의를 주재하고 기조연설을 한 첫 여성이었다. 당시 그는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해 '전 세계 아이들을 빈곤, 학대, 질병과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자'고 촉구했다.  

이희호의 여성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동지였던 김대중은 2009년 8월 먼저 눈을 감았다. 그는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희호와 김대중에게는 정치가 각자의 꿈을 이루는 길이었다. 그 고난의 길, 서로가 있어 견디었다.  

 

▲ 김대중은 이희호가 자서전 <동행>을 출간한 이듬해, 잠들었다. ⓒ김대중평화센터

 
 
이명선 기자 overview@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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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놔두고 10억 '혈세 유람' 떠나는 교장들

[제보] 초등교장 5천여 명, 평일 1박2일 행사... '남진 공연' 보고 '남도 유람'도

19.06.11 10:38l최종 업데이트 19.06.11 10:38l

   

 한국초등교장협 연수 일정을 적어놓은 서울지역 한 교장회 문서.
▲  한국초등교장협 연수 일정을 적어놓은 서울지역 한 교장회 문서.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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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7개 시도 초등학교 교장 5000여 명이 평일에 학교를 비우고 1박2일로 전남 목포에 모인다. 한국초등교장협의회(이하 한초협) 하계연수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이 남도 유람으로 채워진 지역별 교장단 일정표가 발견돼 '세금 낭비' 지적을 받고 있다.  

연수는 3시간만... 성인가수 공연 보고 남도 탐방?

10일, 한초협과 서울지역교장협이 학교로 보낸 공문에 따르면 한초협은 오는 13일부터 14일까지 1박2일간 전남 목표실내체육관 등지에서 하계연수회를 연다. 참석예정인원은 이 단체에 소속된 교장과 장학관 5000여 명이다. 지난해엔 행사가 여름방학 기간에 열렸지만 올해엔 평일 근무시간에 열려 이틀간 전국 학교를 일제히 비우게 됐다.

 

출장비 또한 학교별로 교장 한 명당 각각 평균 20여만 원씩 지급한다. 모두 10여 억 원의 학교 돈으로 이번 행사가 치러지는 것이다. 한국교총 산하조직이었던 한초협은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단체(사단법인)다.

문제는 이렇게 학교 돈으로 치르는 연수가 이름만 연수일 뿐 연수시간은 사실상 3시간에 그친다는 것.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가수 남진의 공연을 보거나 남도 유람으로 채워진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지역 3개 교장회가 만든 행사일정표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다. 참고로 5000여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다 보니 본 연수 3시간만 같고 나머지는 지역별로 가는 곳이 다르다.

서울성북강북교장회가 안내한 '연수회 일정' 문서를 보면 한초협은 행사 첫날인 13일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목포실내체육관에서 전체 연수회를 연다. 그 가운데 30분은 대중 가수 남진이 나와 노래를 부른다. 초대비는 800만 원이다.

첫날 나머지 시간은 호텔과 주변 식당 등지에서 '화합의 시간' 등을 가진다. 다음날인 14일에는 첫 행사로 '남도문화답사와 선진학교 방문'을 적고 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3시간에 걸쳐 천사대교 방문, 암태도 답사활동, 추포도 생태탐사, 암태초 방문 등이다. 학교 방문은 암태도 답사를 위한 구색 맞추기인 것으로 보인다.

오후 시간도 남도특산품 구입을 위해 목포수산물시장 등을 방문하는 것으로 전체 일정을 채운다. 다른 서울 두 지역 교장회의 일정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암태도 갔다가 추포도 갔다가 수산물시장 가는 게 연수?

그나마 첫날 3시간 연수시간조차 상당한 시간을 대회사와 환영사, 격려사, 결의문 낭독 시간 등으로 채운다. 혁신학교 우수사례 발표와 외부 강사 연수 시간은 많아야 한두 시간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초협이 만든 문서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다.

박형준 전교조 서울지부 참교육실장은 "초등학생들은 전기세 때문에 에어컨도 켜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고 교사들은 학생체험학습을 위한 사전 답사도 2명만 출장비를 지급받는 형편"이라면서 "사정이 이런데도 평일 전국 초등 교장 5000여 명이 10억 원대의 돈을 써가며 성인가수 공연을 보고 유람을 나서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상윤 한초협 회장은 "이미 전임 회장단에서 평일로 일정을 잡아놓아 바꾸지 못했다. 여름방학 때 일정을 잡으면 숙소를 구하기 어려운 것을 감안한 결정이었을 것"이라면서 "학기 중에 연수회가 이뤄지기 때문에 충실한 연수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일부 지역 교장회의 경우 교육적인 요소가 부족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관련 지적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한 회장은 "지금이라도 내용을 바꿔 연수가 진행될 수 있도록 지역 교장회에 안내할 예정이며, 시대 변화의 선두에 서는 교장회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한초협 "교육적인 요소 부족한 점 있었다"... 유치원 원장, 원감까지?

한편 유치원 관리자들의 단체인 한국유아교육행정협도 전국 국공립유치원감 연수와 원장 연수를 각각 6월 27일~28일과 7월 11일~12일 1박2일로 여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 대부분의 국공립 유치원 원장과 원감이 평일에 출장비를 받고 자리를 비우게 된 것이다. 장소는 호텔인터불고 대구와 대전 유성호텔 등지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그동안 지침 등을 통해 교원들에 대해 '평일 학생 수업시간 중 연수 지양'을 규정한 바 있다. 하지만 교장과 원장, 원감에 대해서는 이 지침의 효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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