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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변한 한유총…뒤통수 맞은 교육부

[단독]돌변한 한유총…뒤통수 맞은 교육부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입력 : 2019.06.07 06:00 수정 : 2019.06.07 07:27

 

“에듀파인 위법” 행정소송
지난 3월 ‘개학 연기 사태’ 여론 뭇매에 도입 수용 ‘제스처’
한국당 등에 업고 ‘반격’…‘유치원 3법’ 논의 악영향 우려

[단독]돌변한 한유총…뒤통수 맞은 교육부
 

사립유치원장들이 에듀파인(국가관리회계시스템) 도입을 막기 위한 법적 소송을 진행하면서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 사태’가 다시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유총을 향한 비판 여론이 잠잠해지고, 국회에서 ‘유치원 3법’의 입법이 계속 미뤄지는 등 관심에서 멀어지자 사립유치원들이 재차 반격에 나선 것이다. 한유총의 개학연기 투쟁 철회로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교육당국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분위기다. 

에듀파인은 사립유치원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여러 대책 중 최대 핵심 정책이다. 유치원 비리가 만연하게 된 주요 원인이 유치원장들이 교비를 쌈짓돈 쓰듯이 마음대로 해왔던 문제였다. 에듀파인을 쓰게 되면 유치원 회계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정부가 상시적으로 회계부정 문제를 감시할 수 있게 된다. 정부와 한유총이 이를 놓고 강경대응을 주고받은 이유다.

사립유치원들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에듀파인 도입을 극렬 반대하다가 3월 개학연기 발표로 학부모와 여론의 지탄을 받자 결국 에듀파인을 수용했다. 정부도 3월까지 에듀파인 적용 대상 유치원(원아 200명 이상)의 에듀파인 도입률이 100%에 달하자 “예정대로 2020년부터는 모든 유치원에 에듀파인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태가 잠잠해지자 원장들은 단체로 소송을 걸었다. 정부가 소송에서 질 경우 에듀파인 의무 도입 자체가 무산된다. 원장들이 유치원의 폐원 규정을 강화한 교육부의 지침 등 여러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대책들에 대한 추가 소송을 낼 가능성도 있다.

한유총의 법적 대응은 ‘예고된 저항’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덕선 전 한유총 위원장이 물러난 뒤에도 강경파가 한유총 이사진을 장악한 데다 자유한국당 등 국회 내 우군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은 지난해 말부터 국회에 계류 중인 유아교육법 개정안 등 ‘유치원 3법’ 논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유치원 3법은 오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갈 예정이지만 한국당이 국회에 불참하고 있는 데다, 당내에서 유치원 3법을 반대하는 기류도 여전해 법안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여기에 행정소송까지 겹쳐 법안을 둘러싼 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유치원 3법 중 에듀파인 의무 도입을 법으로 규정한 ‘유아교육법 개정안’의 경우 국회 교육위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법 적용을 1년간 유예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법사위에서 이 수정된 안을 본회의에 넘겨 그대로 통과될 경우 이미 교육부가 규칙 개정으로 시행 중인 에듀파인의 법적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장들이 소송을 제기한 배경에는 신속처리안건으로 한창 진행 중인 유치원 3법에 좌초 혹은 무산 프레임을 씌워 법사위 논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려는 꼼수가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박 의원은 오는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행정소송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유치원 3법 통과를 촉구할 예정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6070600025&code=940401#csidxc15352190d2aeae8c8e0a0bfdaaf7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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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73년, 조선소년단의 역사는...

창립 73년, 조선소년단의 역사는...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06/07 [09:3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9년 6월 6일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진행된 '경축 73돌 조선소년단 전국연합단체대회'     

 

북은 6월 6일을 <조선소년단창립일로 기념하며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올해는 <조선소년단창립 73돌이다.

 

<조선소년단창립 73돌을 맞아 평양에는 각 지에서 올라온 소년단원들이 평양을 참관하고 있다.

 

6일 노동신문은 논설 소년단원들은 사회주의조선의 보배이고 미래이다를 통해 조선소년단은 혁명의 계승자청년동맹의 교대자로 튼튼히 준비해나가는 우리나라 학생소년들의 대중적 정치조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6일에는 조선소년단창립 73돌 경축 조선소년단 전국연합단체대회가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열렸고 각 지역에서 조선소년단 도군연합단체대회들이 진행되었다

 

북은 <조선소년단의 기본임무>에 대해 소년들을 주체의 혁명위업을 떠메고나갈 주체형의 혁명가지덕체를 갖춘 전면적으로 발전된 사회주의 건설의 역군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조선소년단>은 만 7세부터 13세까지 가입하며 김일성·김정일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의 산하조직이다.

 

▲ 조선소년단 창립 73돌을 맞아 각 지역에서 올라온 소년단 대표들이 조선혁명박물관을 참관하고 있다.     

 

▲ 조선소년단 창립 73돌을 맞아 각 지역에서 올라온 소년단 대표들이 만경대를 참관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소년단>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조선소년단>은 1946년에 창립되었지만 출발은 항일운동 시기로 봐야 한다.

 

이는 김일성 주석이 1971년 6월 6일 창립 25돌을 맞아 발표한 축하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김일성 주석은 축하문에서 “<새날소년동맹>과 <아동단>의 붉은 깃발은 해방 후 <조선소년단>의 깃발로 이어졌습니다항일 혁명투쟁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이어받았으며조선노동당에 의하여 교양된 우리 소년들은 소년단 생활을 통해 간결한 젊은 투사로 자라났으며 새 민주조선을 일떠세우는데 적극 이바지하였습니다소년단원들은 혁명적 조직생활에 충실하였던 항일유격대원들과 아동단원들처럼 정치적 생명을 귀중히 여기며 소년단 시절부터 그것을 빛내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새날소년동맹>은 1926년 김일성 주석이 중국 무송지역에서 12월 15일 소년들을 모아 만든 조직이다당시 14살이던 김일성 주석은 연설에서 나라와 민족을 묶어 세워 일제의 침략적 죄행을 폭로하고 조선독립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조선민족이 단결하여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날소년동맹>은 8~16세의 소년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선혁명을 위한 정치군사사상적으로 무장하고 혁명을 위해 동맹생활에 적극 참가하는 등의 맹세를 통해 반일투쟁반일선전 및 계몽사업 등의 활동을 했다당시 입단식에서는 곤봉과 수첩을 받았으며매일 하루생활총화매주 동맹생활 검토회의군사지식 학습군사훈련 등을 받았다.

 

1932년 5월 김일성 주석이 두만강 연안 일대에 소사하유격구를 창설하면서어랑촌우복동왕우구해란구소왕청요영구 등지 유격구 지역에 소년 조직인 <아동단>을 만들었다당시 김일성 주석은 아동단은 어린이들을 우리혁명에 무한히 충실한 참된 혁명가로 키우기 위한 소년들의 반일적이며 공산주의적인 정치조직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여기서 전 세계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하여 항상 준비하자라는 구호가 제시됐다현재 '항상 준비'라는 구호가 여기서 출발한 것이다또한아동단의 상징은 깃발붉은 넥타이경례곤봉 등으로 여기서 깃발과 붉은 넥타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항상 준비!

 

▲ 선배들이 소년단 붉은 넥타이를 메어주고 있다.     

 

▲2017년  8차 소년단대회에 참가한 어린이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붉은 넥타이를 매줬다 

 

그리고 해방 후 1946년 6월 6일 <조선소년단>을 창립하였다.

북은 <조선소년단창립에 대해 역사상 처음으로 주체사상의 혁명적 기치 아래 지도되는 통일적인 자기조직을 가지게 되었으며모든 소년을 우리 혁명 위업의 믿음직한 후비대로 키울 데 대한 사명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선소년단>이 창립되고 새 민주조선을 위하여 항상 배우고 준비하자라는 구호에 맞춰 농촌일 돕기 등을 진행했다그리고 북이 천리마 운동을 벌이던 시기에는 꼬마계획 활동’, ‘토끼 기르기 운동’ 등 좋은 일 하기 운동’ 등을 진행했다.

 

토끼 기르기 운동’, ‘좋은 일 하기 운동’ 등은 지금도 <조선소년단단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조선소년단창립 66돌 경축 전국연합대회에 참석해 김일성·김정일 조선의 새 세대들에게 밝은 미래가 있으라고 축하 연설을 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2013년 7차 조선소년단 대회, 2017년 8차 조선소년단 대회에 참석해 소년단원들을 격려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2017년 8차 조선소년단 대회에 한 축하연설 일부분을 소개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축하연설에서 온 나라 소년단원들 속에서 위대한 대원수님들을 영원히 높이 받들어 모시는 깨끗한 충정과 사회와 집단동무들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아름답고 기특한 소행들이 수많이 발휘되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우리 조국의 자랑을 더해주었습니다오늘 우리의 사랑하는 소년단원들은 내일에 대한 푸른 꿈과 희망을 안고 열심히 공부하고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여러 가지 사회정치 활동과 좋은 일 하기 운동도 적극 벌이면서 사회주의조선을 빛내일 혁명 인재로 자라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소년단원들의 아름다운 풍모와 씩씩하고 명랑한 모습에서 주체혁명의 밝은 내일을 내다보고 있는 우리 당은 소년단원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소년단원들의 행복에 넘친 웃음과 창창한 미래를 끝까지 지켜줄 것입니다라고 의지를 표명했다.

 

창립 73주년을 맞는 <조선소년단>은 지금 사회주의 조국을 위하여 항상 준비하자라는 구호를 들고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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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돈 10억원 거부하고 산재 인정 받은 엄마와 딸

[인터뷰] 삼성LCD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와 모친 김시녀씨

19.06.07 07:35l최종 업데이트 19.06.07 07:35l

 

 6일 오후 <오마이뉴스>는 10년만에 산재 인정을 받은 삼성 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를 찾았다.
▲  6일 오후 <오마이뉴스>는 10년만에 산재 인정을 받은 삼성 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를 찾았다.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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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재 맞거든요? 그런데 이제서야 산재 인정을 받았다는 게 너무 웃겨요. 정말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답답했어요."

오래 기다렸다. 10년이 넘는 기다림이었다. 6일 강원도 춘천의 자택에서 만난 삼성LCD 반도체 피해자 한혜경(42)씨는 마른 체구에도 우렁찬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산재 맞거든요?"라는 되물음 속에는 삼성과 싸운 10년의 세월이 녹아있었다. 결국 그는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됐다.

예전에 한씨는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면 "내 말을 믿어달라"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팡팡' 쳤다. 한씨의 모친 김시녀(62)씨는 "가슴에 응어리가 져서"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30일 가슴에 응어리가 질 정도로 간절했던 산재 재신청이 마침내 승인됐다. 김씨가 그 소식을 전하자 당시 밥을 먹던 한씨는 밥숟가락을 채 내려놓지도 못하고 대성통곡을 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더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한씨는 한참을 울부짖었다. 한참을 꾸역꾸역 울던 한씨는 10년 넘게 자기와 함께, 때로는 앞서서 싸운 엄마를 보고 웃었다.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그 이야기를 들었어요. 엄마가 말해주더라고요. 밥을 먹으면서 눈물이 나왔어요. 진짜 많이 울었어요. 인정이 되고 나니까 왜 이제야 됐는지를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한혜경)
"그래. 이제라도 됐으니까 감격이 큰 거지." (김시녀)

"(끄덕끄덕) 엄마한테도 너무 고마웠어." (한혜경)
"뭐가 고마워?" (김시녀)

"엄마하테 너무 고마웠고 너무 미안해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울고 나니 웃음이 나대요?" (한혜경)


"저 같은 사람 또 나오면 안 되잖아요"

한씨는 지난 1995년부터 삼성전자 경기도 기흥공장에서 꼬박 5년 10개월을 일했다. 맏딸이고 책임감도 강했다. 한씨는 상고로 진학했고 졸업 후 바로 취업했다. 월급이 세다는 삼성이었다.

그런데 삼성에서 근무하던 5년 사이에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생리가 멈췄고 몸이 안 좋아졌다. 한씨는 결국 퇴사하고 춘천으로 돌아와 마트 아르바이트 등을 했다.

그러던 2005년 10월 한씨가 갑자기 쓰러졌다. 뇌종양이었다. 종양 제거 수술을 했지만 후유증으로 시각, 보행, 언어장애인이 됐다. 그 후로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한씨 모녀는 전국 각지의 병원을 돌아다녔다. 가보지 않은 병원이 없을 정도였다. 

2009년 한씨는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승인되지 않았다. 이후 근로복지공단 심사, 재심사 청구에서도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 행정 소송을 했지만 2015년 대법원에서 결국 패소했다.

춘천에서 서울을 왔다갔다 하는 동안 울기도 많이 울었다. 힘들여서 3~4시간 걸려 서울까지 가면 재판을 받는 시간은 고작 3~4분. "(산재가 아닌) 개인의 질병"이라는 결정과 함께 들리는 판사의 '땅땅땅' 소리에 이들은 발걸음을 돌렸다. 때로는 "너무 화가 나서", 또 "너무 억울해서" 울었다.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권유한 끝에 이들 모녀는 2018년 다시 한번 용기를 냈고 근로복지공단에 재심을 신청한 끝에 지난 5월 최종적으로 산재를 인정받았다.
 
 삼성LCD 피해자인 한혜경씨의 최종 의견진술서의 일부. 한혜경씨는 지난 5월 30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게 됐다. 2009년 대법원에서 패소한지 10년만이다.
▲  삼성LCD 피해자인 한혜경씨의 최종 의견진술서의 일부. 한혜경씨는 지난 5월 30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게 됐다. 2009년 대법원에서 패소한지 10년만이다.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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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한씨가 근로복지공단에 낸 최종 의견진술서는 다음 문장으로 끝난다.
  
"저는 꼭 산재로 인정받아서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최종 의견진술서 10문장을 쓰는 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제가 일할 때에는 비닐장갑도 잘 찢어져서 맨손에 약품이 묻기도 하고 마스크를 껴도 냄새가 다 났어요. 그런 게 위험하다는 건 몰랐어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요.

반도체, LCD 공정에서 뇌종양 피해자가 많이 나왔고 또 명확히 입증 못해도 산재보험 취지상 뇌종양도 산재로 인정되는 분들이 여럿 생겼잖아요. 저에게도 공정하게 판정해주시면 좋겠어요." (한혜경씨의 최종 의견진술서의 일부)


삼성에서 회유가 들어왔다

모녀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활동가가 다 됐다. 다른 산재 피해자들도 도울 생각이다. 한씨는 주먹을 꼭 쥐고 "투쟁!"이라고 외치면서 "저 같은 사람이 또 나오면 안 되잖아요. 저는 (투쟁)해야죠.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는 데까지 가야죠"라고 말했다. 김씨는 대번 "그럼! 가야지. 하는 데까지 해야지"라고 딸의 말을 거들었다.

지난 2018년 7월 반올림 농성이 1023일로 마무리가 되고 나서 김씨는 한동안 앓아누웠다. 그는 "3년이라는 세월을 지나면서 골병이 든 모양"이라면서 웃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에 김씨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 때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어요. 이재용 재판을 참석하면서 태극기부대 사람들을 보았는데, 혜경이한테 '병신이 여기를 왜 왔냐'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 사람들 눈에는 혜경이가 병신으로 보이겠지만 그 트라우마는...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김시녀)

2014년 무렵에는 삼성 측에서 10억원을 줄 테니 산재 소송을 하지 말라고 회유해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김씨가 '혜경아, 엄마 너무 힘들어. 그냥 돈 받자'고 하자 한씨는 '엄마, 나중에 나 같은 사람 또 나오면 안 되잖아'라고 대답했다. 김씨는 '아차' 싶었다. 피해자가 계속 나오는 걸 보면서 김씨는 "이 일이 혜경이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딸 한혜경씨의 손에 연고를 발라주는 엄마 김시녀씨의 모습.
▲  딸 한혜경씨의 손에 연고를 발라주는 엄마 김시녀씨의 모습.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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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환자가 한 명 나오면 풍비박산이 돼요. 그런데 내가 겪은 일을 또 다른 누군가가 겪는다? 내가 조금만 더 싸우면 되는데? 다시는 실습을 나가서 사망을 당하지 말아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돼요. 저희가 지금은 노동자의 권리를 교육 과정에 넣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삼성 백혈병 문제가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서울로 다니고 있어요. 저희는 힘이 닿는데까지 싸울 거예요."

이들 모녀는 오는 1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산재인정 축하음악회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를 연다. 김씨는 "사람들에게 너무 고마워서요. 그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잔치도 파티도 아닌 그런 걸 열기로 했어요"면서 웃었다.

"혜경이랑 노래도 좀 부르고 감사 인사도 하는 자리가 될 것 같아요."

모녀는 서로를 다시 한 번 마주보았다.
 
 엄마의 품에 안긴 한혜경씨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  엄마의 품에 안긴 한혜경씨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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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진 "탄핵 대상 아니고 뭐냐...문재인은 빨갱이"

文대통령, 김원봉 언급하며 '광복군은 국군 뿌리' 발언에 한국당 발칵
2019.06.06 21:29:15
 

 

 

 

문재인 대통령이 일제 강점기 시절 '좌우 합작'을 통해 창설된 광복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라고 언급하자 자유한국당이 반발하고 나섰다. 광복군에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인 약산 김원봉 등이 참여한 것을 언급했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약산 김원봉의 이름을 언급했다. 
 
"저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합니다.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보수적이기도 하고 진보적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안정을 추구하고, 어떤 때는 변화를 추구합니다. 어떤 분야는 안정을 선택하고, 어떤 분야는 변화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보훈이라고 믿습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마지막 5년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뤘고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지난 3월 충칭에서 우리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청사복원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습니다.
 
그 힘으로 1943년,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1945년에는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습니다. 김구 선생은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일제가 항복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추념사에서 김원봉은 딱 한 차례 언급된다. 문 대통령은 "저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좌우 합작'을 통해 창설된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임을 언급했다.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해 일제 수탈 기관 파괴, 요인암살 등 무력 투쟁을 전개했고,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다. 1944년에는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지냈다. 1948년 월북한 후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됐고, 각료를 맡는 등의 이력으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분류된다. 이후 김일성에 의해 숙청을 당하게 된다. 
 
김원봉이 월북을 하게 된 계기는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 대해 좌절을 느껴서였다. 김원봉 본인이 악덕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수사를 받기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아주경제>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약산 김원봉은 해방 후 북쪽으로 가지 않고 광복군 부사령관 직함을 갖고 남쪽으로 귀국했다. 그런데 친일경찰 출신 노덕술에게 모욕적인 수사를 받았다. 심지어 친일 경찰과 연결된 테러리스트의 위협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처지였다. 백범 김구 선생이나 몽양 여운형 같은 민족주의자들이 테러리스트에게 암살당하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남쪽에 약산이 있었다면 생명을 부지 못했을 것이다. 약산이 월북한 것은 여기서 쫓아낸 거나 마찬가지다. 남한에서 친일파가 득세한 현실에 절망해서 월북한 것이지, 공산주의가 좋아서 간 게 아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아서 도피한 거다." (☞ 바로 가기 : 광복회장 김원웅 인터뷰 )
 
자유한국당 등 보수 진영과 극우 진영은 약산 김원봉에 대한 재평가 및 서훈 추서 움직임을 두고 '역사 전쟁'을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김원봉이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냈다는 이유를 들어 "김원봉에게 서훈을 주면 김일성에게도 서훈을 줘야 하느냐"고 '색깔론'을 제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은 김원봉 서훈 추서 문제를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훈처 자문기구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는 지난 2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김원봉 등 독립유공자로 평가돼야 할 독립운동가들에게 적정 서훈을 함으로써 국가적 자부심을 고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권고했다. 
 
관련해 오창익 국가보훈처 위법·부당행위 재발방지위원장은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독립 유공자 인정 여부에 있어 해방 후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 정권의 요직을 지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학교에서 개근상과 우등상을 준다고 할 때 개근상은 개근할 때 주는 상이고, 우등상은 성적이 우수하면 주는 상이다. 그런데 개근한 학생이 성적이 형편없다고 개근상을 못 주겠다고 한다면, 합당한가"라며 "'독립 유공자냐, 아니냐'의 문제와 '해방 전후 북한과 어떤 관계였느냐'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 관련 기사 : "좌파 역사공정? 친일세력의 피해망상!") 
 
차명진 "탄핵 대상 아니고 뭐냐문재인은 빨갱이"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을 두고 강력 반발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6·25 전쟁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며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했다.  
 
전 대변인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나라와 가족을 위해 붉은 피를 조국의 산야에 흘린 6.25 전사자들을 뒤에 모셔두고, 눈물로 세월을 견뎌낸 가족들을 앞에 두고 북의 전쟁 공로자에 헌사를 보낸 대통령은 자신의 말대로 보수, 진보를 떠나 최소한의 상식의 선 안에 있는지 묻고 싶다"고 비난했다. 
 
'세월호 막말' 등으로 징계를 받았던 차명진 전 의원은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을 두고 "김원봉이 누구인가? 김일성 정권 권력 서열 3위, 6.25 남침 최선봉에 선 그 놈이다. 그런 놈을 국군 창설자라고? 이보다 反 국가적, 反 헌법적 망언이 어디 있는가? 그것도 현충일 추모사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자가"라고 비판했다.  
 
차 전 의원은 "내가 더이상 이 나라에서 살아야 하나? 한국당 뭐하냐? 이게 탄핵 대상 아니고 뭐냐? 우선 입 달린 의원 한명이라도 이렇게 외쳐야 한다. '문재인은 빨갱이!'"라고 비난했다.  
 
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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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반민족·반민주 행위자 65명 중 일부 묘역에 오물 뿌려

현충일 맞아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등 시민사회단체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6/07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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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는 반민족·반민주 행위자 65명 중 일부 묘역에 오물이 뿌려졌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국가공무원노조 등이 오물(단죄수)을 뿌린 곳은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로 지목된 김창룡 묘와 정부가 발표한 친일 명단에 속한 김석범 묘 등 모두 5곳이다.

 

이들은 국립묘지 안장이 부적절한 반민족·반민주 행위자들의 묘를 즉시 이장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국립묘지법을 하루빨리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대전민중의힘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6일 오전 11시, 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앞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시민대회 참가자들은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단죄수를 묘역과 묘비에 뿌리는 ‘장군 제1묘역 안장자 죄악상 고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현충일을 맡아 대전현충원에서는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가 개최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대전민중의힘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6일 오전 11시, 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 반민족행위자와 군사반란 가담자 등 부적절한 안장자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즉각 이장하라”고 촉구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대전민중의힘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6일 오전 11시, 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앞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오늘 쪽 뒤편이 대전현충원 장군 제1묘역이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 참석한 독립유공자유족회 윤석경 지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윤석경 지회장 뒤편으로 이날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가 발표한 이장 요구 대상자 65명 중 반민족·반민주행위자 29명의 명단이 보인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회원을 비롯한 대전 시민들은 이들의 이장을 촉구하고 부적절한 자들을 이장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을 개정하라는 요구를 지난 20여 년에 걸쳐 끊임없이 촉구하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우리의 외침을 거부하고 오히려 이 부적절한 쓰레기 같은 안장자들에게 국가유공자라는 보호막을 제공하고 이들을 위하여 국민의 세금을 쏟아붓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어 이들은 “우리는 더이상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리 없다는 판단을 하고 친일반민족 행위자와 군사반란에 가담한 자 등 국립묘지에 있어서는 안 될 부적절한 자들의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공개하는 등 이들의 이장을 실천하는 여론 조성 등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창룡, 소준열, 안현태 등 반민족, 반민주행위자의 유족들에게 “그들이 국립묘지에 있는 한 국민들은 그들의 죄상에 대하여 더욱 자세히 알게 되고 손가락질을 더 할 것”이라며, “진정 고인을 위한다면 하루빨리 현충원에서 그 묘를 이장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우리가 수차례 발의 요청한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정부와 국회의원들의 무관심과 냉대로 인하여 본회의에 상정도 못하고 폐기 또는 낮잠을 자고 있다”며 국립묘지법을 개정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파묘(破墓) 퍼포먼스와 ‘단죄수’를 묘역과 묘비에 뿌리는 ‘장군 제1묘역 안장자 죄악상 고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시민대회 참가자들은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이장을 촉구하며 파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시민대회 참가자들은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단죄수를 묘역과 묘비에 뿌리는 ‘장군 제1묘역 안장자 죄악상 고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통일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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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기득권에 매달린다면 보수든 진보든 진짜 아냐”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6/06 12:28
  • 수정일
    2019/06/06 12:2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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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민주주의·경제발전에 보수와 진보의 노력 함께 녹아 있어”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19-06-06 10:37:47
수정 2019-06-06 10: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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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하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2019.06.06.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하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2019.06.06.ⓒ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세 번째로 맞이한 현충일에 내놓은 주된 메시지는 '보수와 진보라는 대립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근 보수진영 일각에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수준의 극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데 대한 사회적인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취임 첫해인 2017년 현충일에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반역자는 심판받는다'는 점을 내세웠고, 2018년에는 국가유공자의 의미를 소방 및 순직공무원 등으로 넓히는 데에 방점을 찍었다.

문 대통령은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우리에게는 사람이나 생각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며 대립하던 이념의 시대가 있었다"라며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보수와 진보의 역사가 모두 함께 어울려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독립과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노력이 함께 녹아 있다"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저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라며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누구나 보수적이기도 하고 진보적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특히 "어떤 때는 안정을 추구하고, 어떤 때는 변화를 추구한다. 어떤 분야는 안정을 선택하고, 어떤 분야는 변화를 선택하기도 한다"라며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보훈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통합'의 사례로 광복군을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마지막 5년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뤘고, 광복군을 창설했다"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라며 "그 힘으로 1943년,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1945년에는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김구 선생은 광복군의 국내 진공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일제가 항복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라며 "그러나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라고 부연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지난 100년, 우리는 식민지를 이겨냈고 전쟁의 비통함을 딛고 일어났으며 서로 도와가며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라며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의 길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선, 장엄한 길이었다"라며 "되찾은 나라를 지키고자 우리는 숭고한 애국심으로 전쟁을 치렀지만, 숱한 고지에 전우를 묻었다. 경제성장의 과정에서도 짙은 그늘이 남았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면서도 과거를 잊지 않게 부단히 각성하고 기억해야 한다"라며 "우리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되새기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통찰력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라며 "기득권이나 사익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애국"이라고 밝혔다. 특히 "기득권에 매달린다면 보수든 진보든 진짜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 여전히 색깔 공세를 하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힐 여지가 있다.

문 대통령은 현충원에 안장된 유공자들을 거론하며 '기득권을 떠난 진전한 애국'의 의미를 되새겼다. 문 대통령은 "여기 묻힌 한 분 한 분은 그 자체로 역사이며, 애국이란 계급이나 직업, 이념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 2번 묘역은 사병들의 묘역이다. 8평 장군묘역 대신 이곳 1평 묘역에 잠든 장군이 있다"라며 "'내가 장군이 된 것은 전쟁터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린 사병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우들인 사병 묘역에 묻어달라' 유언한 채명신 장군"이라고 소개했다.

또 "석주 이상룡 선생과 우당 이회영 선생도 여기에 잠들어 계신다. 두 분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넘어 스스로 평범한 국민이 됐다.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모든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라며 "뿌리 깊은 양반가문의 정통 유학자였지만 혁신유림의 정신으로 기득권을 버리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건국에 이바지했다"라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문 대통령은 "우리의 가슴에는 수많은 노래가 담겨있다. 조국에 대한 노래, 어머니에 대한 노래, 전우에 대한 노래, 이 노래는 멈추지 않고 불릴 것"이라며 "우리에게 선열들의 정신이 살아있는 한 대한민국은 미래를 향한 전진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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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에 제재가 도전인가, 제재 해제가 도전인가?

[현안진단] 제재 해제된다고 해도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돌아갈 수 없다
2019.06.06 05:22:37
 

 

 

 

대북 제재와 비핵화 협상

유엔과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해 경제적 압박과 불이익을 주어서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여러 겹의 대북 제재를 촘촘하게 시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채택된 11건의 안보리 결의는 대량살상무기 통제에서 경제일반에 대한 타격까지 망라하고 있다. 북한의 수출비중 1위-4위 품목인 석탄, 의류, 수산물, 철광의 대외거래는 금지되었고, 원유 수입도 민생용에 한해 연간 400만 배럴로 제한되는데, 이는 한국 경제의 이틀간 소비량에 불과하다. 이 외에도 개별국가 차원의 제재가 가세하고 있으며, 미국은 제재를 위반하는 제3국을 대상으로 2차 제재(Secondary Boycott)도 시행하고 있다. 

이렇듯 유례없이 강력한 제재는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북한경제에 공급을 더욱 위축시키고 경제의 원활한 순환을 압박하는 치명적인 외부요인이 된다.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이 북한을 협상으로 끌어낸 것이라면 협상에 거시적 진전이 있을 때까지 이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핵무장 때문에 미국이 협상에 응했다고 보는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회담 이후에 '적대세력의 제재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겠다'며 미국 태도에 변화가 있을 때까지 '까딱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북한경제는 특수한 역사 경험 속에서 대북 제재라는 경제 외부요인의 도전에 대해 나름의 내성(耐性)을 다지면서 대응해 왔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애초 북한경제의 대외의존도는 매우 낮으며 에너지 구조도 석탄 중심으로 짜여있기 때문에 비록 최근의 제재로 어려워졌다 하더라도 과거에 해본 것처럼 내핍생활로 힘들게라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수출이 막힌 석탄을 내수시장에 돌리면 오히려 연료사정이 나아질 수도 있다. 특히 민주화되지 않은 북한체제에서 경제적 고통을 하층 인민에게 큰 정치적 부담 없이 전가할 수 있는 북한 지도부로서는 그야말로 '까딱도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제재완화 문제에 집착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북한 외교의 전술적 실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북한 경제의 다급해진 사정을 드러낸 것으로 이해된다.  

대북 제재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해 온 북한경제 

고난의 행군 이후 20여 년간 북한경제는 핵개발 비용의 부담과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온 국제적 제재 압박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나름 생존을 위해 여러 방법을 통해 악착같이 적응력을 키워 왔다.  

수해로 망가진 탄광과 농수로를 복구하고 소수력 발전소를 여기저기 만들며, 비료와 철강생산에 필요한 원부자재와 수입대체품의 개발, 생산자원의 절약, 소비생활의 내핍을 강조하며 대응해 왔지만 한번 망가진 사회주의 계획경제(공적 경제)는 다시는 원래대로 복구할 수 없었다. 

결국 인민경제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계획경제만으로는 불가능해져 자생적인 장마당 경제가 확산됐고 시장의 역할이 경제생산과 경제관리 양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1차 북핵 위기 때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첫 대북제재(UNSCR 825호, 93년 5월) 이후 26년이 흘러가는 동안 북한경제가 환경변화에 적응해 온 경과를 시장의 역할 중심으로 살펴보면 세 번의 전기(轉機)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전기는 2002년 '7.1 조치'이다. 이 시기에 장마당 경제가 등장한다. 공급 부족으로 배급이 어려워지자 식량을 구하는 유일한 통로로 10일마다 열리던 농민시장에 사람들이 매일 몰려들었다. 여기서 공산품을 포함한 거의 모든 생필품이 거래되면서 장마당이 형성되었다. 부족한 상품의 조달을 위해 중국 국경의 통상구가 개방되고, 무역기관이 아닌 기관 기업소도 대외거래에 참여했다. 공급부족으로 물량지표 대신 금액지표를 부여받은 사업소와 기관들이 독립채산을 하도록 떠밀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생적으로 발전한 장마당을 합법화한 조치가 2002년 '7.1 조치'이다. 북한당국은 장마당 거래를 용인하였고, 생산단위의 계획목표를 물량단위에서 금액지표로, 분배기준도 생산실적에서 벌어들인 수입(번수입)으로 변경했다. 사업장 고유의 생산품과 상관없이 다양한 품목의 거래에 참여하기 시작한 생산단위는 당·정·군의 힘 있는 기관과 뒤섞여서 국내유통망과 대외무역망에 뛰어들었다. 내부공급 증가보다는 암시장과 밀거래를 통해 외부공급이 늘어 그럭저럭 인민경제에 숨통이 트였다. 여기에 외부원조 물품들도 한몫 했다.

이렇게 공식경제는 정체된 상태에서 오히려 비공식경제로 모든 물자가 유통되자 위기위식을 느낀 북한당국은 2005년 하반기 이후 장마당 경제에 점진적으로 통제를 가하고 이런 저런 단속을 강화했다. 

그리고 2009년 11월 갑자기 화폐교환 조치를 단행해 장마당을 통해 축적된 화폐를 강제 회수하고 중앙집중식 계획경제로 회귀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장마당을 대신해야 할 공적부분이 정상화되지 못한 것이 뒤늦게 판명되어 극심한 혼란을 겪고 경제부총리가 처형되었다. 이때가 두 번째 전기다.  

화폐교환의 실패는 이제는 계획경제로 회귀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이 북한경제에 구조화 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2012년 출범한 김정은 정권은 이를 교훈삼아 오히려 장마당 기능을 이용해 북한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 장마당 돈주들의 자금력을 이용하여 평양시가지의 재건축이나 관광지 개발 등 여러 국가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세 번째 전기를 맞았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평남기계종합공장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이 2014년 경제일꾼과 담화를 하며 나온 이른바 '5.30 조치' 2016년 7차 노동당대회에서 밝힌 '우리식 사회주의 방법' 등이 이어지면서 농업분야에서는 분조관리제하에 포전담당제가 확대되어 초과생산량에 대한 분배단위를 쪼개서 영농의욕을 높이고, 국영기업소의 책임 관리제를 확대해 소매단위의 직거래와 가격협의 권한과 자율권을 허용하고 있다. 

대북 제재로 공급이 원천적으로 제약받는 상황에서 각급 경제단위의 의욕을 높이고 경제 관리를 효율화하기 위한 노력이다. 여기에 국산기술을 이용한 수입대체노력과 증산절약 및 부정부패 척결노력을 병행하며 국제사회로부터의 최대압박을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시장을 억압하여 계획경제를 살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을 이용하여 계획경제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다, 외부공급이 차단된 상황에서 돈주의 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권력기관들의 권한만 강화되고 반면 인민경제 전반의 성장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김정은 집권이후 중앙과 지방에 지정한 26개의 경제개발구가 파리를 날리고 있고, 북한이 10년 만에 유엔대표부를 통해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공식 요청한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북한)는 적대세력들의 항시적 제재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해 왔고...(중략) 장기간 핵위협을 핵으로 종식시킨 것처럼 적대세력들의 제재돌풍을 자립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한다'고 한 것처럼 앞으로도 북한경제는 제재라는 외부요인의 도전을 이런저런 대응책으로 그럭저럭(Muddling Through) 버텨 나갈지도 모른다.

제재완화도 지금의 북한경제 상황에서는 도전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지금 상황에서나 앞으로 상황이 호전되어 제재가 해제되더라도 과거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미련을 버려야 한다. 국경이 없는 국제경제 질서 속에서 인민경제를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강력한 국내시장의 역할이 필요하다. 관료들이 좌지우지하는 경제로는 세계경제의 흐름을 타고 성장 발전해 나가기 어려운 시대다.

북한이 비핵화로 대북 제재가 해제된다 해도, 현재 시장의 힘을 계획경제의 회복에 이용하려는 북한경제의 환경에서는 대규모 외부투자도 어렵거니와 자금이 들어와도 권력기관의 부정부패 속에 휩쓸려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의 주동력을 시장의 자율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정부는 시장을 이용하기보다 육성하는 연습과 준비가 필요하다. 정부는 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도록 지원하면서 시장에서 약자 처지에 몰린 사람들을 돕는데 힘써야 한다. 그런 준비가 없다면 제재해제도 오히려 북한경제에 큰 충격과 도전이 될 수 있다. 

최근 5월초 단거리 발사체 훈련 참관 이후 거의 한달 만에 현지시찰에 나선 김정은 위원장은 민생 현장에서 당 간부들의 '일본새'를 질타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현지지도를 하며 화를 내는 모습은 여러 번 있었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미국과 대립하면서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건설 총력전을 펴는 상황과 맞물려 눈길을 끈다. 경제의 활력은 야단맞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격려와 실질적 인센티브가 제공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또한 그런 인센티브는 당 간부의 권한으로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적 질서로 제공되어야 경제가 성장 발전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제재 해제가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는다. 만일 제재 해제에 매달려 비핵화 협상을 진행한다면 약점을 잡혀 생각보다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 뿐 아니라, 해제 이후에도 북한 경제가 담아낼 그릇이 없어 자생력은 더욱 떨어지고 말 것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를 원하고 인민경제 향상을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시장 친화적인 시스템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협상을 촉진하고 제재 해제를 이끄는 힘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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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끈질긴 추적... 일본인도 감동시킨 '지쿠호의 기록자'

강제징용 진실 담은 13만 건 자료... 고 김광열 재일 향토사학자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19.06.06 10:54l최종 업데이트 19.06.06 10:54l

 

 

 강제징용 현장을 찾은 김광열
▲  강제징용 현장을 찾은 김광열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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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일본에서 산 '재일 향토사학자'이자 2017년 고인이 된 고 김광열 선생이 2019년 6월 6일 현충일을 기념해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이 뚜렷한 사람들에게 수여한다는 국민 훈장 '동백장'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살아생전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으나 사명감을 가지고 홀로 걸어갔던 길, 그 길의 의미를 너무 늦게 인정받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그의 수고를 알아주니 하늘에서나마 기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지난해 초 다큐멘터리 <끌려간 사람들, 지쿠호 50년의 기록>을 준비하면서였다. 그가 한 일들을 하나씩 알아갈수록 저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김광열의 헌신 : 13만 건에 달하는 강제징용 자료 모으다

2018년 2월 국가기록원에 재일 향토사학자 김광열이 기증한 기록물들이 도착했다. 김광열이 50년 동안 수집한 자료들은 사과 상자 43개에 달했다. 숫자로는 13만 건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자료였다. 국가기록원에 개인이 기증한 기록물로는 2번째, 외국에 거주하는 개인이 기증한 기록물로는 최고 많은 양이었다.
 

 김광열의 기록장, 자신이 모은 기록들을 언제, 어디에서 수집했는지 과정을 일일이 기록해 놓은 기록장
▲  김광열의 기록장, 자신이 모은 기록들을 언제, 어디에서 수집했는지 과정을 일일이 기록해 놓은 기록장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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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 목록은 문서 형식의 기록물뿐 아니라 캠코더로 직접 찍은 영상, 직접 촬영한 사진, 녹음테이프 등까지 다양했다. 기록물의 내용은 전부 강제징용과 위안부들에 관한 자료들이었다. 

김광열은 일제강점기 많은 조선인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후쿠오카에 살았다. 1970년대 후반 개발의 바람이 불어닥치면서 조선인 강제징용의 현장과 자료들이 무관심 속에 사라져 가는 것을 목격한 그는 이 사료들을 지금 모으지 않으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에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월급을 준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 시작한 일이었다. 

일제강점기 후쿠오카는 부산에서 출발한 강제 징용자들이 첫발을 디딘 일본 땅이었다. 후쿠오카에서 60km 정도 떨어져 있는 지쿠호 일대는 조선인 징용의 대표적인 현장이다. 김광열은 지쿠호 일대 탄광들을 직접 다 찾아다니면서 남은 자료를 수집했다. 수집할 수 없는 자료들은 손으로 일일이 기록했다.
 

 후쿠오카 오노우라 탄광명부 원본
▲  후쿠오카 오노우라 탄광명부 원본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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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산이 많은 지쿠호 일대는 지금도 석회석 채취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 일대에 있던 오노우라 탄광이 폐광을 준비하던 1980년대, 김광열은 여러 차례 탄광사무소를 찾았다. 광부 명부에 남아있는 조선인들의 이름을 필사하기 위해서였다. 매일 찾아와 조선인 광부의 이름을 하나씩 필사하는 김광열의 열정은 일본인 직원조차 감동하게 할 정도였다. 

일본인 직원은 탄광이 문을 닫던 날 '조선인 명부'가 적힌 원본 노트를 김광열에게 몰래 줬다. '오노우라 탄광 조선인 명부'는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조선인 광부명부' 중 유일한 원본으로 이 안에는 탄광 근로자들의 입소 일자와 본적, 해고 이유까지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김광열의 끈기 :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봉안묘역 만들다
 
13만 건에 달하는 자료 가운데는 조선인 명부 외에도 귀한 자료들이 많았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조선인 강제동원 기업으로 알려진 아소광업은 11개의 탄광산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던 10개의 작업장에 조선인 광부들을 동원했다. 

아소광업은 일제강점기의 모든 자료를 자신들이 설립한 도서관에 보관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접근을 아예 차단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광열의 기록물 가운데는 아소광업의 '건강보험 대장 원본'이 있었다. 이 자료가 향후 강제징용의 진실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김광열이 수집한 아송광업건강보험대장- 국가기록원
▲  김광열이 수집한 아송광업건강보험대장-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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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열의 열정은 기록수집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었다. 어딘가에 조선인 유골이 방치돼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직접 발품을 들여 찾아갔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유독 탄광으로 끌고 간 이유는 탄광이 일본인들이 가장 피하는 고된 노동의 현장이기 때문이었다. 지하 수백미터의 땅 밑에서 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혹사당한 조선인 노동자들, 후쿠오카 호슈 탄광에 17살에 끌려갔던 광부 안용한이 남긴 신세 한탄 노래 한 구절은 조선인 광부들의 노동이 얼마나 혹독한 것이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게 한다.
 

우리의 고향은 경상북도인데 나는야 어째서 숯 파러 왔노
배가 고파요, 어머니 보고 싶소,
눈물을 흘리면서 편지를 내었네,
고향으로부터 쌀가루 부쳐왔네,
쌀가루 받아들고 눈물만 흘렸네

- 일본 호슈 탄광에 강제징용됐던 고 안용한씨의 신세타령 중에서


탄광 광부들 가운데는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아소광업에서 일하다 죽은 조선인들의 유골 항아리 수십 기가 동굴에 방치돼 있다는 소식을 들은 김광열은 직접 아소광업을 찾아간다. 여러 차례에 걸쳐 방문한 김광열은 아소 측에 격식을 갖춰 조선인들의 유골을 봉안해 달라고 요구한다. 

누구도 반기지 않는 방문이었을 텐데 김광열은 어떻게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을까? 김광열을 알아가면서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결국 김광열의 끈기가 이겼다. 아소광업은 김광열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다가와시 미타테 묘지 한쪽에 조선인들의 유골 봉안실을 따로 만들었다. 김광열은 죽을 때까지 이 봉안실을 책임지고 돌보았다. 

 

강제징용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김광열의 행적에 조국의 누구도 관심 두지 않을 때 김광열의 활동을 주시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일본 우익단체들이었다. 우익단체들은 김광열의 집 앞에서 시위하고 칼 같은 위협적인 도구를 넣은 우편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김광열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일을 계속했다.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김광열의 집은 날이 갈수록 자료들로 가득 찼다. 자료들은 목록별로 잘 분류가 돼 1층을 다 채우고 2층까지 채웠다. 타지에 있는 아들 가족이 집을 방문하면 머물 방이 없을 정도로 자료로 가득 찼다. 그의 아들은 모든 자료를 국가기록원으로 넘긴 뒤 이런 고백을 했다. 

"자료를 다 넘기고 나서야 우리 집이 이렇게 넓은 줄 처음 알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이 일을 한다고 해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김광열은 자신의 돈을 들여 현장을 찾고 사진을 찍어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김광열이 없었다면 기록도 없다

그는 왜 평생 이 일에 몰두한 것일까? 김광열이 일본으로 건너간 이유는 그의 아버지 김선기가 일제강점기 핵심적인 독립투사로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 김선기는 대구 신간회를 만들고 대표로 활동했다. 독립투사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1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한 인물이다.

김광열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는 "아버지와 같은 시대에 감옥은 아니지만 일본으로 끌려와 희생된 이들의 삶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 후쿠오카 역사기행을 이끌었던 김광열은 젊은이들 앞에서 자신이 강제징용 자료 모으기에 평생을 바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 사람들이 다 메워버리고나면 우리 역사는 다 지워지는 것이지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여기서 고생하고 눈물 흘리고 죽고 살고 그 역사가 여기 다 있고 무너져 가고 있다. 이거 그대로 나는 모른다고 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 역사는 어디서 찾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김광열 생전 육성 중에서
 
 김광열이 기록을 위해 지니고 다녔던 녹음기와 카메라
▲  김광열이 기록을 위해 지니고 다녔던 녹음기와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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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는 2018년 11월 경남 MBC <끌려간 사람들, 지쿠호 50년의 기록>으로 제작돼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올해 그가 국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역사 속에 묻힐 뻔한 그의 노력을 알리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에 제작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주어지는 일도 아닌 길, 오히려 갖은 겁박과 위협을 감수해야 했던 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어떻게 50여 년에 걸쳐 한 길을 갈 수 있었을까? 알아갈수록 김광열의 삶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긴 역사를 놓고 보면 이해타산을 뛰어넘어 묵묵히 걸어간 이들의 굳건한 발자취가 종종 역사의 의미 있는 한걸음이 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바람결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13만 건의 자료들은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종류에 따라 분류하고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작업을 거치고 있다. 올해 말 그의 자료들이 공개되면 강제동원의 진실을 밝히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억하기 위해 50여 년간 기록하는 수고를 스스로 감당했던 김광열, 이제는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할 때이다. 국민훈장 동백장은 그를 기억하는 첫 신호탄일 뿐이다. 13만 건에 달하는 그의 자료들을 통해 강제징용의 역사적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때 '지쿠호의 기록자' 김광열의 수고는 진정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자의 개인블로그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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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기밀 유출..보수세력의 한반도 정세 판 깨기

가짜뉴스, 기밀 유출..보수세력의 한반도 정세 판 깨기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 
기사입력: 2019/06/06 [09:42]  최종편집: ⓒ 자주시보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의 최근 행보가 심상치 않다북한을 향한 가짜뉴스부터 여권 인사에 대한 추측성 의혹 제기심지어 불법 기밀 유출에 이르기까지 연일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런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등 보수세력의 행동은 한반도 정세 발전을 가로막으려는 판 깨기 전략으로 보인다.

 

조선일보의 가짜뉴스 노림수

 

5월 31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김영철은 노역형김혁철은 총살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제목만 봐도 자극적인 이 기사는 어이없게도 단 사흘 만에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6월 3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김영철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이 나타난 것이다조선일보 보도는 가짜뉴스였다.

 

조선일보 보도는 가짜뉴스였지만 파장을 일으켰다기자들은 청와대에 해당 정보를 보도를 통해 알았는지 사전에 정보가 있었는지 추궁했다해당 기사가 오보임을 알고 있는 지금 돌아보면 억지스러운 질문이다.

 

이 뉴스는 바다 건너 미국까지 흘러 들어갔다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고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인 비핵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혀야 했다.

 

뉴욕타임스는 5월 31일 숙청설이 5주 넘게 돌았으며 그동안 아무도 확인해 주지 않았다며 백악관을 질타했다. 6월 2일 친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도 멀 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에게 북한과 계속 좋은 관계를 맺어도 좋냐고 따졌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조선일보가 가짜뉴스를 보도한 노림수는 북미 대화 깨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은 나쁜나라라는 인식을 만들어 북미 및 남북 대화에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려 했다서울신문도 6월 3일 일부 보수세력이 북한=악마’ 프레임을 의도적으로 구사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올해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정책 변화와 시간이다북한은 이미 북미대화를 재개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해야 함을 명확히 하고 그 마지노선을 올해 말까지로 못 박았다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은 6월 4일 미국은 지금의 셈법을 바꾸고 하루빨리 우리의 요구에 화답해 나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우리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미 당국이 잘못된 북한 정보에 노출되고 오판을 하거나 혹은 때를 놓치기만 해도 북한과의 대화는 불가능해지며 한반도 정세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조선일보와 같은 가짜뉴스를 고의로 퍼트리는 행태는 위험천만한 망동이다.

 

남북 민간 접촉을 무산시킨 보수언론의 기레기’ 행태

 

실제로 최근 잘못된 언론 보도 때문에 북한과의 대화가 무산된 바도 있다북한은 최근 남북 민간단체 실무협의를 제안했다북한의 제안은 남북대화가 중단된 상황에서 남북 대화의 물꼬를 틔울지 기대를 모았다.

 

실무접촉에서는 6.15공동선언실천 남북해외 공동위원회 회의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와 남측 민화협 및 겨레하나가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중국 심양에 모여 실무협의를 할 예정이었다각 단체는 사전에 합의했던 민족공동행사공동토론회 등을 논의하고자 했다.

 

그런데 보수언론들이 재를 뿌리기 시작했다중앙일보는 5월 16일 <“南 만나지도 말라던 식량 급했나>라며 북측의 대화 제의가 식량’ 때문인 것처럼 여론을 조성했다.

 

결국 북측은 실무협의를 취소하고 담당자들을 철수시켰다. 6.15 북측위는 남측 및 해외 측에 남북관계의 현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 결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지혜를 모으자는 취지로 남북 민간 대화를 제안하였으나 진의가 왜곡되고 이번 접촉 자체가 잘못 비춰질 것으로 판단하여 철수하기로 결정했다고이유를 밝혔다.

 

북측은 민간 대화가 식량을 지원받기 위한 회담으로 왜곡되면 오히려 남북관계 발전에 해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다이연희 겨레하나 사무총장은 페이스북에 이번 협의가 취소되기까지 언론보도가 한몫 단단히 했다.”고 짚었다.

 

이번 실무회담의 목적과 의제는 사전에 남측 단체들이 미리 밝혀 알려져 있었다보수언론들이 민간단체 접촉을 두고 북한이 식량지원을 바란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은 남북 대화의 판을 깨뜨리려 악의적인 행동이었다.

 

무엇을 위한 기밀 유출인가?

 

이와 같이 보수언론들은 남북관계 발전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5월 22일 한미 정상 간 통화를 유출한 사건도 이런 관점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강효상 의원의 한미 정상 통화 내용 공표는 불법적 기밀 유출로 국익을 침해했다는 여론이 48.1%로 정당한 정보공개라는 여론 33.2%를 훌쩍 앞섰다.

 

그 여파로 같은 여론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9%로 나타났다전주(31.9%)보다 2.9%포인트 떨어진 수치다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는 전주 7.4%포인트에서 12.2%포인트로 확대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해 기밀 유출을 했다고 보면 자유한국당은 실패한 셈이다그러나 보수세력의 의도는 따로 있다.

 

강효상 의원의 기밀 유출이 국익을 훼손한 범죄인 이유는 외교에서 신뢰를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중앙일보는 5월 24일 <“한미정상 통화록 유출 파문한국 외교관 안 만난다>라는 기사에서 한국 스스로 통화록 유출을 발표하면서 주미대사관은 신뢰할 수 없는 상대가 된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조차도 당파적 이익 때문에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며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더욱이 6월 말에는 북미 대화 재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한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강효상 의원과 자유한국당의 기밀 유출로 인한 외교 신뢰 악화가 한미정상회담 및 한반도 정세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통화 내용을 보면 강효상 의원은 5월 9일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이 7일 한·미 정상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5월 25~28일 방일 직후 한국을 찾아달라고 직접 요청했다고 밝혔다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트럼프를 설득해 가면서까지 한미정상회담을 추진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한 취지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6월 4일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남북철도 협력은남북관계가 다시 활발해지면가장 먼저가장 빠른 속도로 진전될 협력 분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은 여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우선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또한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미 협상이 가능한 조속히 재개되는 것이라며 남북 간에 본격적으로 평화와 공동번영의 과제를 진척시키기 위해서도 북미관계의 진전이 병행되어야 한다라고도 했다.

 

미국의 눈치를 보는 문재인 정부의 한계가 여전히 드러나지만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시 내비치는 걸 볼 수 있다. 5월 말 한미정상회담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6월 말에 이뤄지게 되었다자유한국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이 승인받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결국 자유한국당은 한미정상회담을 망치기 위해 위법을 불사하면서까지 훼방을 놓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보수언론도 자유한국당의 기밀 유출 공작에 발맞춰 논란에 부채질하고 있다한국경제는 5월 31일 “6월 한미정상회담이 다가오는데 양국의 신뢰 회복은 오리무중이다미국 워싱턴 정가에선 한국 정부가 북한과 친해지기 위해 미국을 이용한다는 의심이 파다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라고 보도했다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저지른 기밀 유출을 미국의 신뢰 상실을 거쳐친북으로 귀결시키는 과도한 비약이 아닐 수 없다.

 

서훈-양정철 논란문재인 정부 옥죄기 위한 포석

 

보수세력의 판 깨기 행보는 인터넷매체 더팩트가 5월 27일 보도에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21일 비밀회동을 했다고 단독 보도한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더팩트'는 디스패치가 분화해나간 모체이기도 하다.

 

보도가 나가자 자유한국당은 서훈 국정원장과 양정철 원장이 선거’ 논의를 했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청와대를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다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5월 29일 “(선거 개입이라는강한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고 같은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당당하다면 10분 단위로아니면 30분 단위라도 누구와 어떤 얘기했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양정철 원장은 고위 공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공익보도 대상도 아닌데 미행과 잠복취재를 통해 일과 이후 삶까지 이토록 주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취재 및 보도 경위에 여러 의문을 갖게 된다고 했다.

 

보수세력은 이번 보도를 통해 문재인 정부 측 인사와 측근들의 운신 폭을 축소하고자 했을 것이다사소한 개인적 만남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압박이다그러나 자유한국당의 목적은 이뿐만이 아니다.

 

해당 자리에는 김현경 MBC 기자도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다기자의 동석은 이 자리에서 선거 논의가 없었다는 주장에 힘을 보태는 사실이기도 했다양정철 원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기자와 함께 민주당 총선 대책을 짰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기 때문이다양정철 원장도 상식적으로 판단해줬으면 좋겠다며 기자가 있는 자리에서 무슨 총선 얘기가 오갈 수 있겠느냐고 자유한국당에 반박했다.

 

김현경 기자는 제가 그 자리에 있어서 그날의 상황을 밝힐 수 있게 된 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미 단행된 국정원 개혁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고 그밖에 한반도 정세와 오래전의 개인적인 인연 등에 대해 두서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한참 갔다며 총선 얘기는 없었다고 못 박았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속내를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5월 29일 “(동석한 기자는대북 담당 기자라며 정권 지지율이 떨어지고 위기가 닥치면북한 이슈를 키워 여론을 휩쓰는 북()쓸이 정치북풍 정치가 내년 선거에서 반복되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북풍은 원래 자유한국당이 주로 쓰는 수법이다남북 대결을 고조시켜 보수표심을 자극하는 것이다그런데 오늘날 자유한국당은 반대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현상을 '북풍'이라며 청와대를 공격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북풍을 운운하는 것을 보면 결국 자유한국당은 남북관계 발전만은 원천 차단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자유한국당은 지금 정부와 여당이 총선 전에 남북관계를 발전시킬까 봐 우려스럽다고 우는 소리를 내고 있다.

 

보수세력이 판 깨기에 나선 이유

 

보수세력의 공세는 사뭇 다른 것 같아도 결국 종합하면 문재인 정부 운신의 폭을 좁히고 남북관계 발전을 가로막는 데 집중되고 있다.

 

2018년에 보았듯 국민은 평화와 번영통일을 지향하는 남북 및 북미대화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올해 들어 교착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겨우 숨통이 트인 상황이다.

 

교착 국면을 넘어 남북 및 북미대화가 재개되면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관계 발전을 이룰 것이다그렇게 되면 자유한국당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자유한국당은 적어도 이번 총선까지는 대화가 재개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대화판 깨기에 목을 매고 있다.

 

그 결과 자유한국당과 보수세력은 남북관계북미대화가 재개될 사소한 조짐이라도 보이면 가짜뉴스기밀 유출밀착감시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하고 있다.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발버둥이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을 비롯한 보수적폐세력이 자기 살아남겠다고 한반도 정세 발전을 위한 자리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행패를 그대로 둘 수 없다평화와 번영통일을 바라는 국민과 함께 촛불을 들고 적폐세력을 청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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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주기 노근리사건희생자 합동위령행사 열려

내년 70주년엔 50여국 참여 ‘노근리 글로벌평화포럼’ 추진
노근리=임재근 객원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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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5  20: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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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9주기(21차) 노근리사건희생자 합동위령행사가 5일 오전 11시, 노근리평화공원 내 위령탑 일원에서 거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노근리사건희생자 합동위령행사에 다른 지역 유족회 회장들이 참석해 분향 후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제69주기 노근리사건희생자 합동위령행사가 5일 오전 11시, 노근리평화공원 내 위령탑 일원에서 거행됐다.

올해로 21회째를 맞는 합동위령행사에는 (사)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 양해찬 회장을 비롯해 유가족들과 기관단체장, 주민, 학생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거창, 함양, 고양 등 다른 지역 유족회원들도 상당수 참석했는데, 특히 바다 건너 제주에서 4·3희생자유족회 송승문 회장 등도 참석해 추모의 뜻에 동참했다.

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 양해찬 회장은 위령사에서 “69년전 한국전쟁 중 미군에 의하여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했다”며, “치 떨리고 피맺힌 역사 앞에 머리 숙여 님들을 기억하며 추모한다”고 밝혔다.

양해찬 회장은 이어 “희생자 226명은 정부가 조사를 거쳐서 확정한 숫자이지만, 우리 유족들은 정부가 조사하지 못한 당시 피난민 인원을 더하면 희생자는 400명이 넘을 것이라고 생각 된다”며, “한국전쟁 희생자들 속에 노근리 쌍굴 일대에서 미군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학살된 님들을 생각하면 우리 유족들은 참을 수 없는 원한과 분통을 누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2017년 12월 29일 노근리사건희생자 배·보상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여야 국회의원 14명이 발의하여 현재 해당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에 있다”며, “더 이상 노는 국회, 잠자는 법안이 되지 않도록 민생법안의 잣대에서 통과되도록 도와 달라”고 여야 정치권에 강력히 촉구하기도 했다.

양해찬 회장은 사건 당시 10살로, 끔찍한 현장에서 목숨을 건진 생존자다. 미군 비행기의 폭격으로 본인은 허벅지에 파편상을 입고, 누나는 한쪽 눈을 잃었다. 그의 어머니도 폭격으로 인해 하복부 파편상을 입고 쌍굴다리로 피했으나 결국 목숨을 잃었다.

   
▲ 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 양해찬 회장이 위령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각계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의 추모사는 정구창 과거사관련업무 지원단장이 대독했다. 진영 장관은 “노근리 사건은 우리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었고, 이땅에 평화의 실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준 사건”이라며, “우리는 이렇게 일깨워준 평화와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교훈 삼아 아픈 역사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화해와 용서를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추모사에 나선 박세복 영동군수는 “노근리 사건은 우리 현대사의 깊은 상처이지만, 아픈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고 서로 화해하고 풀어 나가야 하는 것도 현재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노근리평화공원은 후세들이 그 날의 아픔을 기억함과 동시에 평화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인권의 소중함도 깨닫는 추모와 인권과 평화가 함께하는 교육의 장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제69주기(21차) 노근리사건희생자 합동위령행사가 유가족들과 기관단체장, 주민, 학생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5일 오전 11시, 노근리평화공원 내 위령탑 일원에서 거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 정구도 부회장이 경과보고를 하며, 노근리 사건 70주년 사업 계획을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경과보고에 나선 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 정구도 부회장(노근리국제 평화재단 이사장)은 “내년 6월, 이곳에서는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찾아온 수백 명의 주요 인사들이 참여하는 ‘노근리 글로벌평화포럼행사’가 열릴 것”이라며 내년 노근리 사건 70주년을 맞아 준비 중인 기념사업 계획을 밝혔다.

정구도 부회장은 이어 “노근리사건에 유감을 표명한 바 있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가능한 한 참석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또한 “‘노근리 글로벌 평화포럼 행사’를 통해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용서와 화해의 행사가 되도록 하겠다”며, “동북아 평화와 나아가 세계평화의 길을 밝히는 다양한 노력과 선언들이 70년 전 한국전쟁의 아픔이 가장 비극적으로 남아 있는 이곳 노근리평화공원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동군과 노근리 국제평화재단은 지난 3월 18일, ‘노근리사건 7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박세복 영동군수)를 발족한 바 있다.

위령행사에는 다양한 추모공연이 펼쳐졌다. 식전에는 무형문화재 박순영 선생이 억울하게 숨진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살풀이춤을 펼쳤고, 헌다 의식도 진행됐다. 헌화와 분향이 끝난 후에는 난계국악원의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 추모식에 앞서 영동티클럽에서 준비한 헌다 의식이 진행되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추모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노근리사건은 한국전쟁 초기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 사이에 미군에 의한 공중폭격과 기관총 사격 등에 의해 피난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특히 쌍굴다리에서는 피난민들에 대한 기관총 사격은 3박 4일, 70여 시간 동안 지속됐다.

이 사건은 50년이 지나서야 진상조사가 실시됐다. 하지만 2001년 한미 공동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명령하달 여부 등 미국의 책임에 대해서는 결론 내리지 못했다. 미국은 희생자에 대한 유감 표명에 그쳤다.

확인된 희생자는 모두 226명(사망 150명, 실종 13명, 부상 63명)에 달했지만, 실제 희생자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노인과 부녀자, 어린이들이었다. 끔찍한 학살의 현장에서도 수 십 명이 살아남아 증언에 나서 진실규명에 한 발짝 나설 수 있었다.

   
▲ 노근리사건희생자 합동위령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사건 현장인 쌍굴다리 위로는 기차가 지나다녔다. 쌍굴다리 주변에 표시된 흰색 표시는 총탄의 흔적이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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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도 미국 승인이 필요한가

‘이산가족 상봉’도 미국 승인이 필요한가

▲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청와대 본관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차 방한하는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온 국민의 귀를 의심케 하는 이야기가 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섀너핸 미 국방부장관 대행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산가족 상봉 및 식량 지원 등 인도적 지원 필요성을 설명하고, 이를 위해 한미 간 긴밀히 협의 및 공조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고 3일 청와대가 밝혔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의) 승인 없이, (한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는 압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까지 미국과 먼저 협의해야 한다는 현실은 황당무계하기 그지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을 이끈 문재인 대통령이 그랬다는 사실은 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설마 1년도 지나지 않아 벌써 잊어버린 것일까.

판문점선언 1조1항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고, ‘9월 평양공동선언’ 3항에서 “남과 북은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인도적 협력을 더욱 강화해나가기로 하였다.” 또한 ①금강산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를 빠른 시일 내 복구하여 개소하고 ②이산가족 화상 상봉과 영상편지 교환을 먼저 우선적으로 해결해나가기로 하였다.

이미 남북 간에 다 합의한 것을, 당장 실행만 하면 되는 것을 지금 와서 미국과 무슨 협의를 하고 어떤 공조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이산가족 문제마저 미국과 먼저 협의하고 공조하는 것이 민족 자주의 원칙이란 말인가.

미국이 아무리 무서워도 그렇지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 남북 정상 간의 합의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칠 수 있는가.

약속을 깨고 원칙을 저버리면 믿음이 사라진다. 믿을 수 없는 상대와 어떻게 민족의 운명을 논할 수 있겠는가.

아직 늦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공동선언을 하던 그 때처럼 우리 민족의 지도자로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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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당국자 "한국, 미중 갈등 올바른 선택해야"

북한 미사일 발사엔 "미국 태도 변화 촉구 위한 것"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당국자가 한국 정부와 기업을 향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지난 5월 28일(현지 시각)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중국 외교부 당국자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의 한국 배치 이후 한중 관계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미중 간 무역 갈등은 양국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당국자는 "이 문제(미중 간 무역 갈등)에 대해 정확히 보셔야 한다"며 "그냥 미국이 바라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동참하는 것인지,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의 발언은 미국 상부무가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華爲)를 거래 제한 기업 목록에 올린 뒤에 한국에 화웨이를 제재하는데 동참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어떤 양국관계든 어려운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다. 싸우지 않고 말다툼하지 않는 부부관계는 없다"며 "최대한 이런 우여곡절을 같이 피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방향"이라면서 한국이 미국의 방침만을 따라가지 않길 바란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한편 이 당국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방한과 관련, 여전히 협의 중이라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을 공유할 단계는 아니라고 말했다. 시 주석이 남한과 북한을 연달아 방문하는 것에 대해 그는 "서로 편리한 시기에 해야 하지 않겠나. 굳이 바로 이어서 한다고 단언하기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지난달 초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에 대해 그는 "북한이 미국과 대화의 진전이 없는 상화에서 불만을 표시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미국의 태도가 변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 당국자는 "그래서 북한의 발사에 대해 강하게 대하는 것보다 조용하게 대응하고 대화에 무게를 싣는 것, (이것이) 저희가 한국, 미국과 협의하면서 주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지난해 한반도 (정세의) 전개 과정을 보면 저희(중국) 측에서 강력히 추천하고 추진한 쌍중단과 쌍궤병행이 단계적으로 효과를 봤다고 보고 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 당국자는 현재 북미 간 대화가 소강상태에 빠졌지만,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단계별 일괄적인 합의 및 동시 행동의 원칙을 권장하고 있다. 북한을 설득하고 있고 미국 및 다른 관계국에도 중국의 이러한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며 "중요한 것은 대화로 가는 방향을 포기하지 말고 대화를 통해 서로 이견을 줄이고 성과를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저희가 건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이) 강자로서 포용성을 보여주고 먼저 조치하면 좋지만, 그걸 못하더라도 동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 입장에서는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고, 핵실험을 중단했는데 자기 손에 들어온 것이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는 제재 완화에 가장 관심이 있는 것 같다"며 "어느 정도 비핵화 성과가 있을 때 국제사회가 북한의 제재(완화 문제)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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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반도 평화 막히면 돌아서 가라

남북 정상 지난해 선언 실천의지 보여야
 
김재성  | 등록:2019-06-04 12:47:36 | 최종:2019-06-04 13:11:3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사설] 한반도 평화 막히면 돌아서 가라
-남북 정상 지난해 선언 실천의지 보여야


[한국정경신문=김재성 주필] 막히면 돌아서 가라.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남북 교류마저 교착상태에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남북한 당국에 권하고 싶은 말이다. 종전선언 북미수교 등 북미 회담과 한 묶음으로 한반도 문제를 풀겠다는 애초의 구상이 지금으로서는 앞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확실하게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제재 해제는 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역시 며칠 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연말까지 미국의 조치를 기다려 보겠다며 짐짓 여유를 부렸다. 

한반도 비핵화는 남북 모두에게 절실한 문제다. 북한이 우리에게 “당사자 입장에 서지 않는다”며 무례한 언사로 불만을 표시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소견 짧은 처사다. 북한이 알면서도 한 말이겠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으며 남한은 종속변수인 것은 어쩔 수없는 현실이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으로 보나 미국이라는 나라의 속성으로 봐도 트럼프 대통령은 크게는 미국의 이익과 안전, 작게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확실히 유리하다는 판단이 설 때 비로소 움직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그것을 충족시켜 줄 아무런 수단이 없다.

그래서 막히면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다. 열쇠를 쥐고 있는 쪽에서 의지가 보이지 않으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침 비무장 지대(DMZ)에서 남북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합동공연을 펼치는 문화교류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신선한 제안이 나왔다. 지난달 31일 ‘제주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 14회 제주포럼’에서 나온 발상이다.

이 날 토론에 참가한 유동근 한국방송예술인단체연합회 이사장은 “이질적인 사회에 살고 있는 남과 북을 통합하는 힘은 문화, 무엇보다 공감대가 큰 대중문화에 있다”며 “DMZ에서 남과 북의 대중가수를 비롯한 문화인들이 만나 함께 공연한다면 한반도 평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토론에 참여한 도종환 전 문화부장관도 지난 해 평창 겨울 올림픽을 예로 들며 “남북이 스포츠로 하나가 돼 화해와 평화의 길을 열었다”며 DMZ 문화공연에 적극성을 보였다.

우리는 이 아이디어가 현 시점에서 남북한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해 김정은 트럼프 회담을 비롯한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한 평화선언도 평창의 ‘겨울 올림픽’이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문화공연 외에도 대북 제재와 상관없는 민간차원의 교류 통로는 많다. 그동안 고건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끄는 북한 나무심어주기 운동 등 분야별 교류는 남북 간 벽을 허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정부는 여기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이런저런 참견을 할 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보이지 않게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더 활발한 민간교류를 이끌어야 한다.

지난해 남과 북은 세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화해와 평화를 다짐했다. 특히 4월 27일, 세계가 숨죽이며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간간이 새소리만 들리는 두 정상의 도보의 다리 밀담은 세기의 명장면이었다.

그 뿐인가? 문 대통령은 9월 19일 저녁 평양시민 앞에서 “우리는 5천년 함께 살고 70년 헤어져 살았다. 우리민족은 평화를 사랑한다. 우리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 는 세기의 명언을 남겼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8천만 겨레의 손을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장면은 누구도 상상할 없었던 기적이었다. 이 날 8천만 민족은 감격했다. TV화면에 비치는 평양시민의 모습도 흔히 봤던 기계적인 함성과 박수가 아닌 진정으로 벅차오르는 감동을 읽을 수 있었다.

남북한 두 지도자는 이 날의 감격을 한 순간의 깜짝 쇼로 끝내서는 안 된다. 8천만 민족과 세계가 주목하는 앞에서의 역사적인 선언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선언을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북미회담에만 매달리다가 결렬되면 그것으로 그만이어서는 그 날의 선언에 대한 약속 위배다. 감격에 대한 배신이다. 그래서 막히면 돌아서라도 가라는 것이다.


출처: http://kpenews.com/View.aspx?No=41170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782&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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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처형하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6/05 07:27
  • 수정일
    2019/06/05 07:2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단상] 조선일보를 처형하라!
 
 
 
주권방송 
기사입력: 2019/06/04 [21:52]  최종편집: ⓒ 자주시보
 
 

조선일보를 처형하라! – 그들이 가짜뉴스를 만드는 이유

1. 이것은 오보가 아니라 조작이고 공작이다
2. 조선일보류가 가짜뉴스를 만드는 이유
3. 조선일보를 사회적으로 매장해야
4. 조선일보의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말고 정신차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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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철도·도로 건설...남북러 경제협력 결정적 계기될 것"

동북아초국경 경제포럼...'나진-하산' 두만강 철도시범사업 재개로 돌파구 열 수 있어
블라디보스토크=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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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4  17: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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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롯데호텔에서 4일 진행된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 포럼'에서 두만강과 러시아 하산을 연결하는 도로 교량 건설 사업과 철도 교량사업이 남북과 러시아를 잇는 경제협력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사진-조천현]

최근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 두만강과 러시아 하산을 연결하는 도로 교량 건설 사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두만강 철도 교량 사업과 함께 동북아 국제운송의 새로운 전기이자 남북과 러시아를 있는 경제협력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북한·중국·러시아 접경지역에서의 금융·관광·물류 등 한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롯데호텔에서 진행된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 포럼'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북·중·러 경제협력의 가능성과 전망'을 주제로 한 세션에서 '나진-하산 교통물류 사업의 평가와 전망' 에 대해 발표하면서 "철도와 도로, 두개의 교통 인프라의 완성이 북한을 관통하는 남·북·러 경제협력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으로 교통물류분과장을 맡고 있기도 한 안병민 연구위원은 "2015년부터 논의가 진행되던 두만강 도로 교량 건설이 올해 초부터 북러 당국간 구체적 협의로 이어지다 지난 4월 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진행된 철도 외에 초국경 협력을 가속화할 수 있는 도로협력 사업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러 정상, 두만강-하산 연결 도로 교량 건설 합의

지난 2016년 중단되었다가 지난해 한-러 정상회담을 통해 재개의 뜻을 밝힌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움직이기 위한 노력과 함께 그 철도교량과 나란히 아래쪽에 도로 교량을 건설하는 것도 과제라는 것.  북한이 변하고 있고 이 변화의 속도를 가속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동북아시아에서 북한이 사업 파트너로 참여해 실제 이행으로 이어진 매우 귀한 사례이고 많은 비용이 들어간 사업이기도 하며, 북한과 러시아뿐만 아니라 남·북·중·러 4자 사업으로 확장가능한 사업이자 바람직한 한·러관계를 이야기할 때마다 나오는 주제"라고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사업이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해당하지 않고 미국의 단독 제재 사업으로 되어 있으나 단독 제재가 해제된다고 하더라도 사업의 잠재력을 완전 실현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나진-하산 철도로 연결되는 러시아 지역 철도 용량 문제이다. 하산부터 바라노프스키까지 극동지역 철도망 273km는 러시아에서 가장 선로용량이 좋지 않은 구역이어서 구간 속도는 30km/h, 열차 종량도 절반에 불과하며, 하루 통과 횟수는 10회에 불과하기 때문에 철도 확장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6,000km의 이동 거리 동안 석탄이 얼기 때문에 이 문제를 처리하는 해결책이 필요하며, 국제 석탄가격이 가장 높았을 때 작성된 나진-하산 프로젝트 사업계획을 현재 석탄가격이 대폭 하락한 상황에서 냉동화물과 컨테이너 화물을 포함한 계획으로 수정해야 하는 등 개선이 필요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에 더 적극적으로 주목했다.

작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 도로 연결, 현대화를 합의하고 동의선 717km에 대한 남북공동조사를 진행했으며, 남북, 중, 러, 몽골, 일본+미국을 대상으로 한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 올해 1월부터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한국이 서방국가로는 처음으로 회원국으로 가입해 국제철도 운송 시스템에 편입한 것 등을 중요한 변수로 평가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지난 2015년 나진-하산과 연계해 원산-금강산 철도를 현대화하기 위한 해외 자본 유치 제안을 하면서 사업에 대한 비용 편익분석(B/C분석)을 시행해 내부수익률(IRR)은 7.3%, 순현재가치(NPV)는 8,870만달러(할인율 5%), 투자회수기간은 12.1년으로 추정하는 등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 지난해 1월부터 북한 주요 도로의 유료화 조치를 시행하여 1차로 평양-원산간 고속도로의 유료화를 시작했는데, 통행요금은 승용차 기준 1km에 0.02유로(평야-원산 왕복 약 8유로)로 지불은 나래전자결제카드'로 할 수 있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운영회사인 북·러 합작의 라손콘트라스(RasonContras) 이반 톤키(Ivan Tonkikh)  사장은 '한·북·러 경제협력 필요성과 북·러 라선협력' 주제의 기조발제에서 "신북방정책에서 제시한 나인 브릿지에 대해서 논의한지 1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이니셔티브를 폭넓게 논의하는데 있어서 진전이 느려지고 있다. 처음에는 열렬했지만 잦아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경향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남북경협에 부정적인 한국내 여론에도 강하게 불만을 표시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이미 경제적 타당성과 수익성을 입증했으며, 한국은 (남북 통일 등)사회적이거나 문화적인 요인으로도 살펴봐야 하는데 대북제재라는 정치적 요인으로 인해서 계속 유지될 수 있는 동력과 기회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시베리아횡단열차(TSR)과 한반도종단열차(TKR)을 연결할 수 있는 시초가 되는 사업이라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지난 4월 북러정상회담에서 나진=하산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원래 푸틴 대통령이 발의했던 사업이다. 푸틴이 직접 관리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절대 클로즈하지 않는다. 라선콘트라스는 러시아 행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석탄수송을 위한 나진-하산프로젝트의 제한성과 제3차 참여 추진 경과에 대한 질문에는 "컨테이너 운송은 사실 기술적으로 아무 어려움이 없다. 2015년에 현대가 나진항에서 생수를 운송한 적이 있다. 제3국에 지분 참여 가능성은 전혀 없다. 라손콘트라스트 이사회와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도 제3자가 지분참여를 할 수 있는 여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자발적으로 독립적으로 재원을 마련해서 행정적으로도 진행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못박았다.

TSR과 TKR을 연결하는 파일럿 성격의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지금은 사실상 멈춰 있지만, 앞으로 시범사업에 그치지 않고 초국경 협력사업의 최종적인 모습으로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됐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남북 동시 참여하는 국제다자협력사업

올렉 키랴노프(Oleg Kiriyanov)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아시아· 아프리카연구소 연구원은 동북아, 나진-하산 지역의 발전 잠재력에 주목했다.

그는 "최근 세계 정치에서는 물론이고 글로벌 경제에서 동북아지역이 지니는 의미는 점점 커지고 있다. 발전과 협력의 잠재력이 큰 동북아지역에는 러시아, 중국, 북한 등 3개국이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곳에서 발전 잠재력이 현저히 큰 곳은 러시아-중국-북한의 접격지역으로, 잠정적으로는 하산(러시아)-나진(북한)-훈춘(중국) 삼각지대로만 한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라선 경제무역지대'와 '광역 두만강개발계획'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다자협력이 논의되거나 진행되고 있다"고 하면서 중국이 이 지역에서 철도망과 도로망을 개선하고 해상진출로를 위해 교통 회랑을 적극 개발하고 있으며, 러시아 역시 극동지역 발전을 위한 연방 특별프로그램을 시행하고 북러 합작회사인 '라손 콘트라스'를 앞세운 '나진-하산' 물류-운송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우리 정부가 관심을 갖고 있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남북이 동시에 참여하는 국제 다자협력사업으로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동북아의 안정과 긴장완화를 위한 중요한 요인이라고 짚었다.

키랴노프 교수는 "동북아 지역에는 뛰어난 재정능력(일본, 한국, 중국), 과학능력, 기술능력(일본, 한국, 중국, 일부 지방)을 갖춘 국가, 풍부한 천연자원((러시아, 북한)과 인적자원(중국, 북한)을 보유한 국가, 거대한 영토(중국, 러시아)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 있다. 동북아 지역 전체는 물론 하산-나진-훈춘 삼각지대와 같은 역내 개별 지역은 발전 및 협력 잠재력이 크다"고 하면서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가 일부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 국가들의 국내정치상황은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지역의 경제발전에 대한 장기적인 공동비전을 논의하고 이를 문서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보다 유리한 협력여건이 조성될 시기가 올 것에 대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사전에 검토하여 계획을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이 지역에 중·일, 한·일, 북·일, 남·북 간 충동발생 가능성이 여전하고 몇몇 분쟁사안에 있어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와 같은 냉전적 대립이 정기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역내 정세에 미국이 직접 개입하고 북한 문제도 복잡다단하여 한반도 평화와 화해 무드는 언제든지 긴장상태로 전환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와 한국은 프로젝트 시행 시 추후 북한이 참여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협력분야를 검토해야 한다"고 하면서 "북러간 도로 교량 건설 프로젝트를 함께 논의하고 연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남북, 러시아 등 당사국들은 다양한 다자협력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발판이 될 수 있는 '나진-하산'프로젝트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한데,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비즈니스 관행을 도입하는 과정에 북한측 대표자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현재 한국이 취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일방적 제재를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으로라도 해제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권했다.

이를테면 지난 2014~2015년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통해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시범적으로 진행했던 것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며, 러시아와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및 기타 국가 등 다자가 참여하는 통합 협의체를 조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호 전 한겨레 평화연구소장은 "나진-하산은 대륙으로 가는 출구이자 해양으로 가는 입구이며,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과 푸틴의 신동방정책이 만나는 접점"이라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남북, 북미의 3자관계로만 보는 데서 벗어나 러시아 접근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모스크바에서 5,000km 이상 멀리 떨어진 극동 연해주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면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제3의 협력상대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러시아와의 협력을 이런 전략적 구도에서 볼 필요가 있으며, "신뢰를 결여한 북미관계를 볼 때 중국과 함께 러시아가 참여하는 다자적 다차원적 틀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진행된 '동북아 초국경 경제포럼'은 △초국경-금융협력, 글로벌 금융환경과 금융지원방안 △대 러시아 금융제재 극복방안-미국, 유럽의 러시아 제재와 러시아 진출 금융기관 및 투자기업의 경험 △남·북·중·러 초국경 경제협력 가능성과 전망-나진·하산·훈춘 접경지역 3각협력을 중심으로 △초국경-관광협력, 남·북·중·러 관광산업의 전망과 추진방안 등 4개의 세션으로 운영되었다.

김승동 (사)유라시아21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한 '초국경-금융협력, 글로벌 금융환경과 금융지원방안' 주제의 제1세션에서는 정중호 KEB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소장과 한남주 KEB하나은행 모스크바 법인장이 각각 러시아 은행산업의 비즈니스 환경과 하나은행의 러시아 진출전략에 대해 발제를 하고 조영관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이 토론자로 참가했다.

제2세션은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사회를 맡아 '대 러시아 금융제재 극복방안-미국, 유럽의 러시아 제재와 러시아 진출 금융기관 및 투자기업의 경험'을 주제로  류혜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와 나탈리아 프리세키나(Natalia G. Prisekina) 러시아 변호사가 각각 '미국과 EU의 대러시아 경제제재', '대러시아 제재와 극동지역 외국인 투자자들의 성공사례'에 대해 발표하고 박종호 한러비즈니스협의회 회장, 세르게이 세바스티아노프(Sevastyanov, Sergei) 극동연방대학 국제관계학 교수, 백동화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가 토론자로 나섰다.

'초국경 관광협력'을 주제로 열린 제4세션은 신성은 이코노미21 선임기자의 사회로 심상진 경기대 교수와 코스탄틴 쇼스타코프(Kostantin Shestakov) 연해주 관광국장이 각각 '한국과 러시아, 극동 러시아 관광산업 현황과 발전방향', '극동 러시아 관광자원 현황과 관광인프라, 향후 발전방향'에 대해 발제하고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대표, 박이택 고려대학교 경제연구소 연구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지역 정세 안정위한 러시아 역할 기대

   
▲ (사)유라시아21 김승동 이사장은 "이번 포럼을 통해 평화와 번영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신한반도경제지도 구상을 완성하며,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 그리고 한반도 H축선 경제협력 벨트를 활성화하고 동북아 철도공동체 추진을 통한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 구축을 시도해보자"고 말했다. [사진-조천현]

(사)유라시아21 김승동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포럼을 통해 동북아플러스책임공동체의 구축을 목표로 평화와 번영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신한반도경제지도 구상을 완성하고자 하는 바람,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 그리고 한반도 H축선 경제협력 벨트를 활성화하고 동북아 철도공동체 추진을 통한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 구축을 시도하는 청사진을 그려본다"고 포럼 취지를 설명했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은 "국내외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하나은행은 신북방정책의 비전을 선도하는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사업에 관심이 많다. 24개 나라에 180여 곳의 영업기반을 확보하고 2008년에 모스크바 사무소 개설해 2014년 법인 전환을 했으며, 블라디보스토크와 상페테르스부르그 등에 영업망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송영길 민주당 동북아평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금강산-속초·부산-후코오카를 다니는 크루즈 관광, 북극항로를 운항하는 쇄빙 LNG선 납품 조건 완화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면서 지역 정세의 안정을 위한 러시아의 역할을 기대했다. [사진-조천현]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동북아평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은 3일 오후 '초국경 경제협력과 한·러 전략적 파트너쉽'이라는 주제의 특별연설을 통해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한 때를 연상케 할 만큼 지금은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고 미국과 EU의 대러 제재로 인해 러시아의 경제상황은 악화되는 한편, 미국은 강력한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교집합에 기초해 한·미·일 3각동맹으로 심화할 것을 요구하는 '제2의 그레이트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정부는 러시아와 중국의 신동방정책, 일대일로 정책에 대해서는 협력적인 반면,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는 소극적이고 한·미·일 3각동맹에는 반대하고 있다고 소개하고는 이 점이 미·일·한 보수세력의 공격 포인트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북방정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배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영길 위원장은 한·미·일 3각동맹의 심화는 북·중·러의 블럭화를 초래해 냉전으로 격화될 수 있는 우려가 있어 이를 막아보자는 것이 한국 정부의 전략기조라고 하면서, 2015년부터 시작돼 올해 5차 회의를 맞게 되는 동방경제포럼은 모두가 우려하는 냉전의 틀을 다자간 협력의 틀로 바꿀 수 있는 대안이라며 지역 정세의 안정을 위한 러시아의 역할을 기대했다.

또 유엔제재 대상이 아닌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미국이 단독제재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대미 관계 개선과 대북제재 회피를 위한 러시아의 역할을 기대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크루즈가 금강산과 속초, 부산항을 거쳐 일본 후쿠오카를 왕래하는 관광상품을 러시아측에 제안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대우조선해양이 쇄빙 LNG선을 수주했지만 러시아에서 제조한 쇄빙 LNG선만 북극항로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한 푸틴 대통령의 정책으로 인해 수리조선소인 즈베이다 조선소 직원들의 연수 등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설계도면과 기술이전까지 다 하라는 무리한 요구때문에 납기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개선을 요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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