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서울시민 100여명이 닷새나 길바닥에서 자야했던 이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8/19 12:40
  • 수정일
    2017/08/19 12:4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마포구청 ‘보행편의’ 내세운 아현 노점상 강제철거 시도에 항의 노숙농성

18일 새벽 4시20분께. 어둠은 여전한데 습도가 80%를 넘어선지 섭씨 24도인데도 더운 느낌이었다.

지하철2호선 아현역 3번과 4번 출구에서 마포구 아현시장 입구쪽 굴레방로 좌우 인도에 ‘단결투쟁’, ‘승리의 확신’ 등의 글귀가 적힌 조끼차림의 사람들이 단열재 깔개 위에 누워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여기저기 적게 잡아도 150명은 넘어 보였다.

무슨 일 때문에 길바닥에서 고생일까?

“어휴~ 피곤하다, 벌써 오늘로 닷새째네요.”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김모씨(49)는 기자를 보자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을 건넸다. 홍대 지하철역 인근에서 노점을 하는 김씨. 집을 놔두고 그가 아스팔트 위에서 밤샘을 한 이유는 마포구청(구청장 박홍섭)의 아현역 인근 노점상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서다. 김씨뿐 아니라 마포‧서대문구에서 노점으로 생계를 꾸리는 서부지역노점상연합(서부노련. 지역장 이경민)의 100여 회원들이 지난 13일 밤부터 닷새째 아현역 인근 노점상들이 강제철거 당하지 않게 하려고 노점 주변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던 것이다.

마포구청이 굴레방로 노점들을 철거하겠다고 나선 것은 지난해 9월. 마포구청은 바로 그 전달 서울 서부권 주당들에겐 명소로 알려진 아현초등학교 인근 포장마차 30여동을 철거했다. 이유는 ‘도시미관’과 ‘보행편의’였다. 지금도 떠나간 노점 자리에 붙여 놓은 경고문엔 ‘도로확대 및 정비’와 ‘쾌적한 보행환경’을 위해 불법 노점을 금지한다고 돼있다.

▲마포구청이 철거하려는 아현 노점들이 늘어선 굴레방로. 농성을 마친 노점상들이 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또 하루새벽을 무사히(?) 보낸 아현 노점상 등 서부노련 회원들이 조회를 하고 있다.

문제는 철거 대상인 아현 노점상들이 길게는 30년 가까이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다는 것이다. 강제철거를 당할 경우 생계대책이 없어진다. 애초 아현 노점은 10여개였는데 구청의 경고 등 등쌀에 못 이겨 떠나고 이제 8개만 남았다. 모두가 여성인데 6~70대이고 80대 고령도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단으로 도로를 점거해 장사를 해온 것도 아니다. 마포구청에 사실상 자릿세인 ‘도로변상금’을 1년에 100만원 넘게 납부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서부노련 회원들이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힘없는 고령의 여성 노점상들을 도우려고 나선 것이다. 더욱이 지난 11일쯤 마포구청이 강제집행을 위해 400명 규모의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강제철거가 임박한 것이다.

또 하루새벽을 무사히(?) 보낸 아현 노점상 등 서부노련 회원들은 컵라면 등으로 아침을 때우고 7시40분께 마포구청으로 향했다. 박홍섭 구청장을 면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마포구청 입구는 벌써 의경들이 가로막고 서있었다.

이경민 서부노련 지역장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 분하고 원통해 이 자리에 왔다. 경찰하고 싸우러 온 게 아니다. 집회하러 온 게 아니라 민원을 넣으러 왔다. 구청이 용역깡패들을 앞세워 우리의 생계 터전을 빼앗으려고 해 그것을 지키러 왔다”면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힘 없고 가난한 노점상들 생활에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서부노련 회원 노점상들이 마포구청 앞에서 구청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시간이 좀 흘러 서부노련 회원들의 투쟁 소식을 듣고 연대하러 다른 자치구 노점상들이 왔다. 그렇게 늘어난 300여명은 박 구청장 면담을 계속 요구했다. 그러나 경찰과 구청측은 녹음기마냥 ‘불법집회’ 운운을 반복할 따름이었다.

철거 대상인 아현 노점상 이종희씨(75)는 “어제 잠 한숨 못자고 여기까지 왔다. 구청장이 가난한 서민이라고 우리를 너무 우습게 안다. 민원을 넣으러 왔으면 물 한잔이라고 줘야하는 것 아니냐”면서 “불법 노점이라고 몰아붙이고 경찰이 길을 가로막아도, 우리는 죽는 한이 있어도 투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교롭게도 18일은 지난해 아현초등학교 인근 포장마차 30여동이 강제철거 당한 바로 그날이다. 아현역 노점 강제철거가 시작된 지 1년째 되는 날인 셈. 그래서 당시 포장마차 강제철거에 반대하며 연대했던 마포지역의 진보정당‧단체들이 이날 10시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아현초등학교 인근 포장마차 강제철거에 반대하며 연대했던 마포지역의 진보정당‧단체들이 강제철거 1년을 맞은 18일 오전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마포구청은 작년 8월18일 새벽, 아현포차를 강제철거했습니다. 30년 넘게 지속해온 삶의 터전을 몇 개의 화분으로 대체했습니다. 70살 안팎의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포차 7대를 철거하기 위해 3천만원의 세금을 썼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마포구청은 아현역 3번 출구, 10가구 남짓한 노점상을 다시 강제철거하려고 합니다. 400명의 사설용역을 고용하기 위해 1억원 남짓의 세금을 사용했습니다. 마포구청은 ‘전광석화’처럼 노점상을 쓸어버리겠다고 했습니다. 마포구청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편,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이날 노점상들의 면담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 앞서 박 구청장은 지난달 말 정화조 처리업체 선정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진정이 경찰에 접수돼 현재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된 상태다. 물론 박 구청장은 특혜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net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독립유공자 전면 재심사를 권고함

적폐청산 차원에서 한 번은 털고 가야 할 일
 
정운현 | 2017-08-18 08:56:5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정부가 수여하는 훈장은 ‘희생과 공훈의 정도’에 맞게 엄정하게 심사해서 포상해야 한다. 그러나 독립유공 서훈자 가운데는 훈격이 적정치 못한 사례가 더러 있다. 유관순 열사가 바로 그런 경우다.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고, 교과서 등에서 항일 애국소녀의 상징으로 불려온 유 열사는 건국훈장 5등급 가운데 3등급인 독립장(구 국민장)을 받았다. 유 열사의 희생(서대문형무소서 옥사)과 독립운동사에 끼친 공로를 감안하면 3등급은 납득하기 어렵다.

몇 분 더 예를 들면,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하여 6형제가 항일투쟁을 벌인,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으로 불리는 우당 이회영 선생 역시 3등급이다. 또 ‘임정의 안주인’으로 불린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 여사는 최하등급인 5등급(애족장)을 받았으며, 유일한 여성의병장 출신의 윤희순 선생도 역시 5등급을 받았다.

반면 이승만의 비서 출신인 임병직은 김구, 안중근, 윤봉길 의사와 동급인 1등급(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일제말기 고교생으로 소위 ‘독서회 사건’에 연루된 인사 가운데 5명은 유관순과 동급인 3등급을 받았다. 뒤늦게나마 이낙연 총리가 유관순 열사의 훈격 상향조정을 검토하겠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념 논란으로 인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미포상은 차치하고라도 가짜 독립운동가, 친일경력자, 동명이인에 대한 포상, 남의 공적 가로채기, 공적 부풀리기, 자격미달자 포상 등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와 서훈에 문젯점이 적지 않다.

필자가 90년대 이후 줄기차게 이 문제를 지적해 왔으나 친일경력자들에 대한 서훈 취소는 몇 차례 있었으나 나머지는 여태 제대로 시정되지 않고 있다. 보훈업무에 일대 혁명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 독립유공자 전면 재심사를 하기 바란다. 적폐청산 차원에서 한 번은 털고 가야 할 일이다. 아래에 첨부한 글은 일전에 필자가 보훈적폐 청산 차원에서 정리한 내용인데 일부는 이미 새 정부에서 채택한 바 있다.

[첨부] 
* 보훈적폐 청산에 대하여(1) - 극우.보수편향 안보교육
http://blog.ohmynews.com/jeongwh59/329974
* 보훈적폐 청산에 대하여(2) - 독립유공자 포상
http://blog.ohmynews.com/jeongwh59/329987
* 보훈적폐 청산에 대하여(3) - 독립유공자 예우
http://blog.ohmynews.com/jeongwh59/330005
* 보훈적폐 청산에 대하여(4) - 남겨진 과제들
http://blog.ohmynews.com/jeongwh59/330028

[독립유공 포상]
■ 건국훈장
ㅡ 1등급(대한민국장)
ㅡ 2등급(대통령장)
ㅡ 3등급(독립장)
ㅡ 4등급(애국장)
ㅡ 5등급(애족장)

■ 건국훈장 아래에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이 있는데 이는 훈장은 아님

 

이낙연 총리 “유관순 열사가 서훈 3등급? 상향 검토”
(머니투데이 / 양영권 기자 / 2017-08-16)

 
▲지난 15일 광복절을 맞아 이낙연 국무총리(가운데)가 안희정 충남지사(왼쪽)와 함께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를 둘러보고 있다./사진=뉴스1

이낙연 국무총리가 16일 유관순 열사의 서훈 등급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이 총리는 이날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 서훈 등급이 3등급으로 낮아 규정상 대통령 조화도 보내주지 않는 상황”이라며 “유 열사의 위상이 홀대당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조정 가능성이 있는지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앞서 이 총리는 광복절인 전날 충남 천안시 아우내장터와 유관순 열사 생가를 방문해 유 열사의 유가족으로부터 관련 건의를 받았다.

유 열사는 3·1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지만 1962년 독립유공자 포상 당시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유 열사의 유족들은 훈장 등급이 낮다며 재심사를 요청했지만 현행 상훈법에 재심사 규정이 없어 승급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 헌화는 2등급(대통령장) 이상만 이뤄진다.

이 총리는 “유 열사의 상징적 의미와 법률상 서훈 등급이 차이가 나 그분의 위상이 홀대당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이와 함께 여성 독립운동가를 더 발굴해줄 것을 주문했다. 이 총리는 “여성 독립운동가가 200여 분으로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수 만 명에 이를 것”이라며 “여성이 독립운동을 하는 방식이 남자와 반드시 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독립운동 당시 상황과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감안해 선정과 발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양영권 기자

출처: http://v.media.daum.net/v/20170816173127862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8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닭 날갯속 진드기 30마리, 흙목욕 1주일만에 사라졌다”

“닭 날갯속 진드기 30마리, 흙목욕 1주일만에 사라졌다”

등록 :2017-08-18 01:05수정 :2017-08-18 10:09

 

 

‘방사형 사육’ 살충효과 입증 논문
미 연구팀 ‘닭장-방사’ 비교실험 
닭장속 닭, 진드기 크게 늘었지만 
방사한 닭은 80~100% ‘급감’ 
유황 포함된 흙이 효과 가장 좋아 

국내 방사형 농가도 진드기 없어 
“닭들 땅 파고 흙 끼얹으며 털어내 
AI 때 가뒀더니 없던 진드기 생겨”
 
제주도 내 한 양계농장에서 산란계들이 구덩이를 파서 흙목욕을 하고 있다.  독자제공
제주도 내 한 양계농장에서 산란계들이 구덩이를 파서 흙목욕을 하고 있다. 독자제공

 

흙목욕을 한 닭이 좁은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닭보다 진드기 피해를 훨씬 덜 입는다는 점이 비교 실험을 통해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닭이 흙에 몸을 비비는 자연행동을 할 수 있도록 외부에 방사해 키우는 동물복지형 산란계 사육 방식의 강점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영국왕립곤충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저널 <의료 및 수의 곤충학>(2012년)에 따르면,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곤충학부 브래들리 멀런스 교수팀은 2009~2010년 15주씩 3번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0.1㎡ 케이지에서 사는 닭 12마리와 11㎡ 사육장에 풀어두고 흙목욕을 할 수 있게 한 닭 12마리의 몸에 사는 진드기 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했다. 각 케이지에는 두마리씩 집어넣었다. 실험에 사용된 케이지는 현재 국내에서 사용 중인 케이지보다는 큰 것이다. 풀어둔 닭은 한 방에 12마리씩 두 방으로 나눠 시기를 달리해 흙목욕을 시켰다. 닭들이 흙목욕을 할 수 있는 기간은 4주로 제한했다.

 

연구진은 닭 한마리당 진드기 20~30마리씩을 날개 쪽에 넣어줬다. 세차례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규조토(바다나 호수 밑의 흙), 고령토, 유황 등 흙의 성분을 조금씩 달리해줬다.

 

실험 결과 흙목욕을 한 닭은 일주일 만에 진드기의 80~100%가 줄었다. 4주 동안 진드기 수가 급감하면서 5~6이던 수치가 0~3으로 떨어졌다. 수치가 높아질수록 진드기의 밀도가 높다는 의미다. 다른 방에 있던 또 다른 닭들을 대상으로 흙목욕을 하는 시기를 이전과 달리해도 결과는 같았다. 하지만 케이지에 있던 닭은 0~2였던 진드기 수치가 8~9주차 때부터 5~6으로 올라 꾸준히 유지됐다. 특히 유황이 들어 있는 흙이 효과가 가장 좋았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실제 국내에서 닭을 풀어놓고 키우는 동물복지형 양계농가들은 흙목욕의 효과를 체험하고 있다. 흙목욕 덕분에 진드기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300여평 계사에서 닭 3500여마리를 키우는 제주의 한 양계농가는 살충제는 물론 백신도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농장주는 “마당을 만들어주니 닭들이 땅을 파서 안에 들어가 흙을 끼얹고 뒹군다. 여름에는 땅 밑이 시원해서 땅을 파서 더위도 식히고 진드기가 있으면 털어낸다. 흙목욕을 할 때 보면 깃털 사이로 흙을 끼얹어 털어낸다”고 말했다.

 

경남 합천과 하동에서 각각 1만마리 이상의 닭을 자연방사형으로 키우는 정아무개(55)씨는 지난해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을 때 당국의 지침에 따라 닭을 실내에서 키웠다가 큰일 날 뻔한 경험을 토로했다. 정씨는 “당국에서 닭을 방사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보내, 한달 정도 실내에 있게 했더니 없던 진드기가 생겼다”며 “진드기를 없애야 닭이 사니 방사해버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장식 밀집·속성 축산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사태는 언제든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관계자는 “아시아든 유럽이든 진드기 문제는 항상 있어왔다. 국내 기후가 아열대화하면서 이전보다 습도가 높아지면 진드기도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는 수요 충당을 위한 밀집사육 시스템이 닭에 기생해 사는 닭진드기와 닭 사이에 이뤄져온 자연적 공생 관계의 균형을 깨뜨려버렸음을 드러내준다. 살충제라는 인위적 수단으로 깨진 균형을 복원하려다 ‘살충제 달걀’이라는 ‘금기의 식품’을 탄생시킨 셈이다.

 

최우리 허호준 기자, 임세연 교육연수생 ecowoori@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가와 군사는 동의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방개혁을 지지하며

 

 

 

 

 

독립군의 무장투쟁부터 자주국방까지, 국가라는 것은 그 자체로 군사적이다. 성공하는 국가는 성공하는 군대를 보유한다. 둘은 많은 경우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마침 사병에 대한 착취가 사회적 이슈다. '이기는 군대'의 정의를 규정할 역량은 없지만 예는 들 수 있다. 세계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군대를 둘 꼽자면 아무래도 동방의 몽골제국, 서방의 로마제국일 것이다.

 

mgn12.jpg 

 

예케 몽골 울루스(몽골제국)의 창시자 칭기스칸이 패배보다 끔찍하게 여기는 일이 있었다. 바로 부하 병사가 전사하는 일이다. 그에게 국가는 이익공동체다. 칸은 울루스(백성)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칭기스칸에게 전쟁은 모두가 이익을 쟁취하고 함께 나누기 위한 행위였다. 따라서 그는 전사들이 자신에 대한 충성을 위해, 혹은 제국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거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다. 몽골군은 살아서 돌아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도 할 수 있었다. 말, 병장기, 그리고 약탈한 시점에서 분배되기 전까지는 국가의 공공재산인 전리품까지 그 어떤 것도 과감히 버릴 수 있었다. 이는 권리가 아닌 의무에 가까웠다.

 

몽골군의 제 1 전투교리는 불리하다 싶으면 즉각 후퇴하여 정해진 지점으로 복귀해 아군의 보호를 받는 것이었다. 확보한 전선을 포기해도 문제없다. 전선도 전쟁도 구성원의 공동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칭기스칸은 아군의 희생을 최소화하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의 낭비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사상자는 발생한다. 몽골 제국은 전쟁고아와 유가족을 끝까지 책임졌다. 제국 정부는 아침마다 가장 질 좋은 양고기로 고아들을 위한 국을 끓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ZMG7UDLVZNU2M70CQD4F.jpg 

 

몽골제국은 정복전쟁의 현장에서 부상자가 발생하면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랐다.

 

1) 긴급 후송. 야크나 소를 즉석에서 도축, 배를 가르고 창자를 가른다. 그 안에 부상자를 넣는다. 창자에는 소화되다 만 풀이 가득한데, 이것으로 상처를 메우는 것이다. 또한 체온을 유지하고 전쟁터의 소음과 무기로부터 단절시켜 안정을 취하게 하는 목적도 있다. 자연스럽게 소의 피로 수분과 염분을 보충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 한 마리 정도 재산은 긴급후송을 위한 들것으로 얼마든지 소모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강력한 시그널이다.

 

2) 후송이 완료되면 아랍 의사가 응급처치를 한다. 당시 외과술은 아랍권이 최고의 수준이었다. 중국인 한의사는 내과로 분류되어 외과 처치가 끝난 부상자의 컨디션 회복을 맡았다.

 

3) 그래도 사망자는 발생한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후방에 독립된 게르(유목민의 천막)를 배당받았다. 이 게르에는 검은 색 창을 둘러 안에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어갈 사람이 있음을 표시했다. 주변에서는 누구도 정숙해야만 했다. 오직 유가족만 게르에 드나들 수 있었으며, 직속상관은 물론 아무리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도 가족의 허락 없이는 출입이 금지되었다. 존엄한 죽음까지 배려한 것이다.

 

몽골 전사들은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했다고 전해진다.

 

"칭기스칸이 물에 뛰어들라면 물 속으로, 불에 뛰어들라면 불 속으로 전진하리라."

 

칭기스칸이 부하의 인명을 소중히 할수록, 부하들은 그를 위해 죽겠다고 결심하는 아이러니에 직면했다. 칭기스칸은 병사들의 충성심을 억누르기 위해 애를 써야만 했다.

 

승리보다 자국민의 인명을 소중히 하는 국가.

역설적으로 이런 국가의 군대는 승리한다.

 

'공정한 체제'는 지도자의 공약이나 선심 따위로 증명되지 않는다. 몽골군의 경우처럼 국가의 존재 목적이 백성의 이익에 있으며, 국가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어야 인정받는다.

 

6055018121_4c25376b1a_z.jpg 

 

로마제국의 군대는 기본적으로 시민군이었다. 유권자였기에 책임감은 물론 대우도 남달랐다. 적진에 영웅적으로 뛰어들어 적장의 목을 벤 병사보다 동료 시민군을 구한 병사가 더 큰 영예를 누렸다. 전공보다 시민의 목숨을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영웅심을 주체하지 못해 적진에 뛰어든 병사는 살아 돌아오면 영창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전쟁터에 상설 감옥이 있을리 없기에, 보통은 땅을 파 만든 구덩이에 며칠 갇혔다). 그를 구하기 위해 동료 시민이 위험에 빠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로마군은 의외로 많이 패배했다. 로마제국이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힘의 근간은 자국 병력을 다루는 태도에 있다. 로마군은 패배를 확인하면 최대한 많은 병사의 목숨을 보존한 채 철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명예를 위해, 국가를 위해, 전선을 '사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라고 외치는 국가는 로마처럼 오래도록 승리하지 못한다.

 

현대로 오면 미군의 예가 있다. 미군은 아군 부상병을 살리기 위해 어떤 비용도 기꺼이 감수하는 조직이다. 미국처럼 의무병이 많은 훈장을 받는 나라도 없다. 미국은 외부 세계의 입장에서는 전쟁광 국가지만, 내적으로 국민을 납득시키는 방식엔 모범적 측면이 있다. 미군은 어쩔 수 없이 전쟁터에 두고 온 아군의 시신마저 내버려두지 않는다. 전사자 시신 회수 부대를 따로 운용하며, 외교적으로 접근 할 수 없는 지역에 대해서는 백 년이라도 기다리겠다는 게 그들의 정책이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우리도 같은 부대를 보유하게 됐다. 중요한 진보라고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의 부상자 대비 전사자는 독일과 일본에 비해 깜짝 놀랄 정도로 적다. 미군에게 있어 부상병을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기에 그렇다. 미군의 전투력은 무기의 질과 보급량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commander-jumbo.jpg 

 

생명에 대한 접근과 마찬가지로 기회의 평등도 공정성의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몽골 제국은 비록 피정복민이라 할지라도 한 번 체제에 편입되면 완전한 평등을 제공했다. 종족, 언어, 종교에 의한 차별은 엄격한 금기였다. 칭기스칸에 의해 나라와 부모를 잃은 사람들, 즉 타타르족과 나이만족, 투르크족 출신 장수들은 그에게 무한한 충성을 바치며 몽골제국의 영토 확장에 투신했다.

 

비슷한 예로 당나라의 고선지 장군을 들 수 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수많은 유민이 당나라에 끌려간 과정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한 번 체제에 편입되면, 적국의 유민 출신이라도 기회가 보장되었다. 그리하여 불과 두 세대 만에 멸망한 적국의 혈통이 대장군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고구려와 비교해 보자. 부여족을 제외한 이민족은 분명한 차별을 받았다. 발해 역시 말갈족과 돌궐족은 엘리트층에 진입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었다. 그들은 체제에 충성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두 나라는 한 두 번의 외부 충격으로 사라졌다. 사회 내부의 느슨한 결속력이 이유 중 하나임은 자명하다.

 

고구려와 발해가 한국사의 멋진 추억이자 낭만임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동시에 당나라가 두 한민족 국가보다 선진국이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당나라가 성취한 수준은 중국의 크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120784710.png 

 

이제 대한민국의 군대로 와 보자.

 

한숨이 나올 것만 같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조금 이상하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은 인민군에 비해 물자는 물론 군기와 도덕성의 차원에서도 형편없었다. 극에 달한 수뇌부의 부패, 병사들에 대한 배임행위 등 도무지 싸울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 군대였다. 망하는 군대의 전형이다.

 

그런데 농민 출신의 일선 국군 병사들은 착취와 폭력을 당해가면서도 인민군에 맞서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들이 단지 소처럼 순박해서 그랬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의 농민들은 그렇게 순했던 적이 없다.

 

한국전쟁은 남한에서 친일 지주들의 땅을 모든 농민들에게 분배한 농지개혁 이후에 발발했다. 누구든 지주에게 소출의 3할을 5년간 상환하기만 하면 자영농이 될 수 있었다. 이는 '무상몰수 무상분배'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나라에 25%의 현물세를 영구적으로 바쳐야 하는 북한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었다. 즉 농민들이 느끼기에는 남한의 토지개혁이 그들에게 더 '공정했다.' 그래서 군 수뇌부의 부패를 견디면서도 인민군에 전향하기는커녕 열심히 맞서 싸운 것이다.

 

남한 농지개혁의 설계자가 공산주의자인 죽산 조봉암 선생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국군과 인민군의 싸움은 물론 이념 대립이지만 일선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분배와 분배, 좌와 좌의 싸움이었다.

 

Dwk56dad14b58fb0.png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군은 병사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시하는가?

 

나는 군 개혁 없이는 더 이상 유사시에 한국군에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고 믿는다. 공짜 인력으로 간주되어 함부로 쓰이면서도 목숨을 바치는 국민은 세상에 없다. 전문적인 군사평론가의 눈에는 유치한 담론이겠지만 물질적 조건만큼 심리적 동기도 중요하다고 본다.

 

만약 지금 전쟁이 터진다면 사병들은 자기 생명의 쓰임새를 저울질할 것이다. 많은 사병들이 즉각적으로 전쟁을 '제 자식 군대 안 보내는 이들, 부모 잘 만나 군대 안 온 이들' 그것도 '우리보다 잘 사는 이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해 내 목숨을 거는 싸움이라고 규정하지 않을까? 혹은 간부들의 승진을 위해 고작 시급 몇 백 원에 상이용사가 되어주는 싸움이라 믿을 것이다.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흔한 군대 농담은 결코 농으로 치부될 현상이 아닌 불길한 징후다.

 

내가 복무했던 부대의 농담이 있었다. 사실 태극기 게양대 밑에는 인공기 한 장이 고이 접혀 있다는, 아무도 믿지 않는 농담의 내용은 ‘우리 대대는 인민군이 밀고 내려오면 순순히 인공기를 걸고, 다시 국군이 수복해 올라오면 태극기를 걸면 된다’는 것이었다.

 

재밌는 유머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우리와 상관없는 어떤 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겠다는 섬뜩한 내용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은 적어도 군대에 있어서는 국민에게 국가가 쓸 만한 도구임을 증명하는 데 실패해왔다. 동아시아 정세가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현재 우리 군의 결속 수준은 위험하고 위태롭다. ‘지는 군대’의 조건을 모자람 없이 충족하고 있다.

 

군대는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여기는지 내보이는 프레젠테이션 현장이다. 징병제가 유지되는 한 사병의 인권과 존엄은 국격이 아닌 국가 존망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방개혁 의지에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문재인의 접근은 참여정부 시절보다 진일보한 지점이 있다. 사병 출신인 노무현은 사진과 멘트 등으로 사병의 애환을 이해하는 대통령임을 연출했다. 훈훈했고, 좋은 전략이었다. 사병 월급 인상 등의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가치체계의 전환까지 본격적으로 시도하지는 않았다.

 

현 대통령에게서는 보다 본질적인 차원의 고민이 느껴진다. 그의 도전이 어디까지 성공할지는 미지수지만 일반 사병과 국민들이 군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14931809731493180973_k0182710888_origin.jpg 

 

 

 

 

필자가 진행하는 방송

 

 

122456122.jpg

 

팟빵 : https://t.co/lIoFGpcyHW 
아이튠즈 : https://t.co/NnqYgf5443

 

트위터 : @namyegi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namyegi

 

 

 

필자의 신간 

 

183756842.jpg 

 

 

이미지를 누르면 굉장한 곳으로 이동합니다.

 

 

 

 

필독

트위터 @field_dog
페이스북 daesun.hong.58

 

편집 : 꾸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내는 개인회생, 난 신용회복" 대통령님, 아직은 부족합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9년간 투병중인 박영숙씨 가족의 절규

17.08.17 20:00l최종 업데이트 17.08.18 07:59l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산소통을 비롯해 인공호흡장치가 그녀를 애워싸고 있었다.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산소통을 비롯해 인공호흡장치가 그녀를 애워싸고 있었다.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장대비로 부쩍 서늘해진 16일, 서울시 화곡동 박영숙(57)씨의 자택을 찾았다. 오늘은 영숙씨가 기자회견을 하는 날이다. 남편 김태종(62)씨와 둘째 아들 완훈씨가 맞아주었다. 영숙씨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중증피해자다. 그녀는 마루에 놓인 침대에 누워있었고, 큼지막한 산소통과 인공호흡 장치들이 아우러져 있었다, 

영숙씨는 젊었을 때 결핵을 앓았다. 천식 증세도 있었다. 환절기만 되면 호흡기질환이 심해졌다. 안타까워하던 남편은 아내를 위해 가습기살균제를 구입했다. 2007년 10월 즈음이었다. 건강에 좋다는 광고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제품을 사용한지 채 1년이 되지 않던, 2008년 8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 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그녀는 평소 호흡기질환을 앓았지만, 일상생활이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2006년 경 박영숙씨의 모습. 사진 재촬영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 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그녀는 평소 호흡기질환을 앓았지만, 일상생활이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2006년 경 박영숙씨의 모습. 사진 재촬영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남편은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했다. 

 

"그날도 교회가려고 준비하는데, 아내가 갑자기 못가겠대요. 숨을 못 쉬겠다고..." 

남편은 황급히 근처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폐기능이 손상되어 46%정도 남아있었다. 의사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고, 상급병원 전원을 권유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은 대학병원의 반응은 냉담했다. 

"죽을 사람 왜 데려왔냐고 하더라고요. 가망이 없다고... 편하게 해주라고." 

그는 무덤덤하게 회상했다. 건강이 나빠지자 오히려 더 집중해서 사용했다. 가습기살균제 때문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2009년까지 이용했다. 집에는 아직 쓰다 남은 제품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천연성분의 삼림욕 효과'라는 문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남편 김태종씨가 아내를 위해 사용한 이마트 가습기살균제 상품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남편 김태종씨가 아내를 위해 사용한 이마트 가습기살균제 상품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남편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자가 호흡도 어려워졌다. 지난 3월 목을 절개하고, 기관지절제술을 받았다. 기계의 도움을 받는 인공호흡을 해야 했다. 심정지만 6~7번, 응급실에 실려 간 횟수만 12번이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9년이었다. 의사말대로 COPD, 만성폐질환으로만 알았다. 

그러던 중 2011년에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아차 싶었다. 인터넷으로 정부의 피해조사도 신청했다. 영숙씨는 3등급 판정을 받았다. 

"지난 6월에는 집으로 데려왔어요. 이제 편하게라도 해주자라는 심정으로... 마지막 퇴원이겠거니 했죠." 

다행히 집에 오니까 건강은 좀 더 나아졌다고 했다. 간병인도 서둘러 구했다. 2달째 함께하고 있는 간병인은 "확실히 처음보다 많이 좋아지셨죠. 살도 좀 찌시고..." 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남편 김태종씨의 뒤로 산소통이 보인다.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남편 김태종씨의 뒤로 산소통이 보인다.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사실 (아내가) 기자회견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어요. 이동하는 것만도 엄청 큰일이거든요." 

그녀는 이미 MBC <PD수첩>을 비롯해 상당수의 시사프로에 출연했다. 

"그런데 관심이 고조될 때 반짝하는 게 전부고, 바뀌는 건 거의 없더라고요." 

그의 말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렇게 남편은 아내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첫째아들과 대학생인 둘째의 도움이 컸다. 

"부모가 도움은 못 줄망정, 자주 아파서 부담만 줬네요. 수능 볼 때도 죽네사네 했으니까요... 미안하고 고맙죠." 

남편이자 아버지의 착잡한 심정이었다.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산소통을 비롯해 인공호흡장치 때문인지 콘센트가 상당히 많았다. 하단에 벨이 놓여있다. 손짓과 벨을 누르는 것이 목소리가 안나오는 그녀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산소통을 비롯해 인공호흡장치 때문인지 콘센트가 상당히 많았다. 하단에 벨이 놓여있다. 손짓과 벨을 누르는 것이 목소리가 안나오는 그녀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달랑달랑' 29분쯤 영숙씨가 갑자기 벨을 눌렀다. 

"가래 때문에 좀 불편하신가 보네요."

아들이 순식간에 다가갔다. 목소리가 안 나오는 그녀의 소통방식은, 손짓과 벨을 누르는 것이었다. 그녀의 장기간 투병생활은 가족들을 의료진 못지않은 베테랑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석션까지 척척이다. 이러한 남다른 경험 때문인지 둘째는 의사를 꿈꾼다.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아내의 장기간 투병은 가족들을 의료진 못지않은 배태랑으로 만들었다. 둘째아들이 석션을 하고있다.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아내의 장기간 투병은 가족들을 의료진 못지않은 배태랑으로 만들었다. 둘째아들이 석션을 하고있다.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사설 응급환자이송서비스 기사는 능숙하게 이동을 준비했다. 호흡장치의 배터리를 확인하고, 영숙씨를 번쩍 들어 이동식침대에 옮겼다. 그녀가 차량 안으로 서서히 이동했다. 

10시 39분 쯤 이들은 기자회견장으로 출발했다. 장소는 종로구에 있는 참여연대였다. 거동자체가 불편하기 때문에, 그녀의 외출은 많아야 한 달에 1~2번이라고 했다. 이동하기 위해서는 이 서비스를 부르는데, 기본료가 7만5000원에 거리에 비례해 요금이 늘어났다.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응급환자 이송서비스 기사는 능숙하게 박씨를 이동식침대로 옮겼다.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응급환자 이송서비스 기사는 능숙하게 박씨를 이동식침대로 옮겼다.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응급환자 이송서비스 기사는 능숙하게 박씨를 이동식침대로 옮겼다. 둘째아들이 박씨에게 불편한점은 없냐고 묻고있다.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응급환자 이송서비스 기사는 능숙하게 박씨를 이동식침대로 옮겼다. 둘째아들이 박씨에게 불편한점은 없냐고 묻고있다.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광복절 연휴 다음날인 탓인지 도로는 꽉 막혀있었다. 사이렌을 울렸지만 거북이걸음은 마찬가지였다. 2번 이상 영숙씨의 이동을 도왔다는 기사도 가습기살균제에 독성물질이 들어있을지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중증환자들을 많이 보지만, 이분도 심각한 편에 속하지요. 초등학생보다 더 가벼운 것 같더라고요. 가습기살균제가 이렇게 무서울 줄은..."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동 중에 한강너머로 옥시 한국본사가 입주한 IFC빌딩이 보이기도 했다.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엠뷸런스를 타고 사이렌을 울렸지만 도로는 꽉 막혀있었다.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엠뷸런스를 타고 사이렌을 울렸지만 도로는 꽉 막혀있었다.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당초 오전 11시로 예정되었던 기자회견의 지연이 불가피했다. 10분이 넘어서야 간신히 도착했다. 내리는 일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 줄 빠졌어요." 둘째아들이 다급히 외쳤다. 아찔한 경고음이 현장을 뒤흔들었다. 그렇게 또 10분 이상이 걸렸다. 

결국 오전 11시 20분이 넘어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모임(아래 가피모),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아래 가습기넷)가 공동주최했다.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엠뷸런스로 이동중에 한강너머 옥시 한국본사가 입주한 여의도 IFC빌딩이 보였다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엠뷸런스로 이동중에 한강너머 옥시 한국본사가 입주한 여의도 IFC빌딩이 보였다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피해자대표단 면담에서 피해인정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부가 관장하는 구제계정운용위원회는 '폐 이식이나 산소 호흡기를 착용한 중증환자들에 대한 3천만원 긴급지원', '4차 판정신청자 1009명 중 7%인 76명만 피해자로 인정한다'는 정도의 내용을 내놓았다. 

환경부 차관이 주재하는 1회 가습기살균제피해자 피해구제위원회도 같은 날 열렸다. 하지만 천식을 피해인정질환에서 제외했고, 태아의 피해 인정범위를 축소시켜 피해자들의 반발을 샀다. 문 대통령의 약속 다음날부터 이틀간 벌어진 일들이다. 피해자들의 실망이 상당했다.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기자회견이 시작된고 남편이 발언을 시작한지 4분도 안되어, 박영숙씨가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심상치않은 기계음까지 울리며 기자회견이 일시중단됬다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기자회견이 시작된고 남편이 발언을 시작한지 4분도 안되어, 박영숙씨가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심상치않은 기계음까지 울리며 기자회견이 일시중단됬다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이날 기자회견은 6명의 중증 피해자들이 참석했다. 김태종씨가 차분히 발언을 시작했다. 

"아내는 폐기능이 14%정도 남은 상황이고요. 중환자실에 더 있어봐야 치료방법이 없습니다." 

4분도 채 안 되어서 영숙씨가 손짓으로 답답함을 호소했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심상치 않은 기계음까지 울렸다. 결국 그녀는 급히 돌아가야 했다. 오전 11시 30분쯤 앰뷸런스가 떠났다.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엠뷸런스를 타고 기자회견장소인 참여연대에 도착했지만 기자회견 도중 박씨가 호흡곤란을 호소해 회견이 일시 중단되었다. 아내를 먼저 보내는 남편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다.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엠뷸런스를 타고 기자회견장소인 참여연대에 도착했지만 기자회견 도중 박씨가 호흡곤란을 호소해 회견이 일시 중단되었다. 아내를 먼저 보내는 남편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다.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남편은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최근 정부가 3000만 원 긴급지원을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습니다. 아내의 경우 대안은 폐 이식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듭니다." 

9년간의 투병 끝에 재정은 거의 바닥난 상황이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아내는 개인회생 중이고, 저는 신용회복 중입니다. 집사람을 살리겠다는 신념 하나로 여기까지 온 건데, 감당할 수 있을지 많이 부담이 됩니다."

또한 정부의 피해등급 산정방식에 대해서도 납득이 어렵다고 했다.

"기존에 폐질환이 있었는데, 독극물이 들어가면 나빠지는 게 상식 아닐까요? 그런데 3등급이라니, 화도 나고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가 간곡히 말을 이어갔다. 

"3등급도 1·2등급처럼 치료비 지원이 되어서 병원비 때문에 집사람 생명을 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엠뷸런스를 타고 기자회견장소인 참여연대에 도착했다. 호흡곤란이 온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남편 김태종씨가 다시 발언하고있다.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영숙씨의 집을 찾았다.이날은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날이다. 엠뷸런스를 타고 기자회견장소인 참여연대에 도착했다. 호흡곤란이 온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남편 김태종씨가 다시 발언하고있다.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박영숙씨는 폐질환이 있긴 했지만 교회에서 성가대를 할 정도로 큰 문제는 없었고, 가습기살균제 사용 후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마트 가습기살균제 PB상품의 MIT/CMIT성분이 인체에 충분히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례"라며 "정부가 이 성분에 대한 독성검사를 이제야 하고 있어, 애경이나 이마트 제품을 사용한 1·2등급 피해자들도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확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여자들은 문대통령의 약속대로 온전한 피해자로의 인정을 촉구했다.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확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여자들은 문대통령의 약속대로 온전한 피해자로의 인정을 촉구했다.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다른 피해자들의 구구절절한 발언들도 이어졌다. 이들도 공통적으로 피해구제 확대와 온전한 피해자로의 인정을 호소했다. 

밀양에서 온 안은주(50)씨는 "거동도 불편한 피해자들이 다시 살려달라고 기자회견장에 나와야 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며, 피해자들의 피부에 와 닿는 구제방안을 촉구했다. 그녀는 옥시싹싹을 사용하고 폐 손상 3단계 판정을 받았다. 2015년에 결국 폐 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다. 지금까지 치료비로 2억 6500만 원이 들었다.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아내를 잃은 최주환씨가 아내의 사망진단서와 젊은 시절 사진을 옆에 두고 발언하고 있다.
▲  1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아내를 잃은 최주환씨가 아내의 사망진단서와 젊은 시절 사진을 옆에 두고 발언하고 있다.
ⓒ 강홍구

관련사진보기


최주완씨의 아내 고 김영금씨는 옥시싹싹을 사용했고, 폐손상 3단계 판정을 받았다. 지난 2008년 사망했으며, 임종 당시 50세였다. 김태윤씨의 남편 고 임부수씨도 옥시싹싹을 사용했으며, 폐손상 3단계 판정을 받았다. 2011년 임종 당시 59세였다. 

이재성씨(53)는 옥시싹싹을 사용하고 면역질환과 폐 손상이 발생했으며, 2006년생인 그의 아들도 천식과 폐손상 4단계 판정을 받았다. 강은씨도 옥시싹싹을 사용하고, 천식과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4단계 판정을 받았다. 그녀의 외동딸도 출산직후부터 중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천식치료를 꾸준히 받아야했다. 이날 일정은 낮 12시 반이 넘어 마무리되었다.

피해등급은 정부가 마련한 4~5개의 폐 손상 인정기준의 부합정도에 따라 4개 등급(1·2·3·4)으로 결정된다. 2017년 8월 4일 기준으로 피해신고자는 5729명이고, 사망자는 1222명으로 피해규모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편 17일 오전 가습기살균제참사 가해기업(롯데마트·홈플러스) 관계자들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있었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1년 이상 감형받았다. 이날 재판에서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는 1심보다 1년 감형된 금고 3년을 선고받았고, 김원회 전 홈플러스그로서리매입본부장 역시 1심보다 1년 감형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국은 일본을 대신해 한국을 지배한 나라”

[인터뷰] 재일한청 고국방문단, “우리민족끼리 힘 합치면 못해낼 일 없다”

대한민국을 ‘우리나라’라 부르는 재일동포 청년들을 만났다.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산하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 간부들이 광복72주년을 맞아 고국을 방문했다. 미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8.15 범국민행동에 참여하고 귀국을 준비하고 있는 김승민 중앙본부 위원장, 이준일 중앙본부 부위원장, 한성우 중앙본부 문교차장, 허송려 도쿄본부 상임위원을 16일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편집자]

▲ 재일한청 고국방문단이 8.15범국민행동에 참가했다. 김승민 위원장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 함형재 담쟁이기자]

한청의 첫 고국 방문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3년. 그뒤 광복 60년인 2005년 대규모 고국 방문단이 한국을 찾았다.

이준일 부위원장은 그때의 감격을 되새기면서 “그렇게 우리는 60년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이제 아무리 정세가 나빠져도 고국 방문이 중단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들의 고국 방문길은 이명박근혜 보수정권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렇게 12년을 기다려 촛불혁명이 열어준 민족화해의 길을 따라 2017년 다시 고국을 찾아온 것.

▲ 재일한국청년동맹 고국 방문단이 입국하고 있고있다.

지난 2015년엔 평양에서 열린 광복70돌 행사에도 참가했다는 이들은 ‘북한’, ‘남조선’이 아닌 우리나라가 고국이라며, ‘우리민족끼리 정신’을 살려 평화통일을 이루자고 역설했다.

멀리 일본 땅에서 고국의 촛불항쟁을 지켜보면서 “역사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혁명의 불꽃을 (와~) 실제 화면으로 접하면서… (이야~) 그 감격과 자부심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감탄사를 끊임없이 쏟아냈다.

▲ 재일한청 고국방문단이 8.15범국민행동에 참가해, 미 대사관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번 고국 방문길에 미대사관 앞 8.15범국민행동에 참가한 이들은 “미국은 일본을 대신해 한국을 지배한 나라”라고 잘라 말하곤 “일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미 대사관 앞에 1만명이 넘는 사람이 시위를 하다니…. 한국의 반미 열기가 정말 대단하다”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북미간 전쟁위기와 관련해 “북이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ICBM 발사에 성공하면서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면서 “당장은 미국이 선제공격 운운하지만 최종적으로 북과 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음은 한청 고국 방문단과의 1문1답이다.

- 재일한국청년동맹은 어떤 단체인가?

김승민 “한청은 일본에 사는 한국인 청년들의 동맹이고 ‘조국의 통일, 세계 평화, 한국사회의 민주화, 재일 한국인의 권익 보장’이라는 4가지 목표로 활동한다. 일상 활동으로는 통일한마당 행사를 통해 재일동포 사회에서 통일 여론을 높이고,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배우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 한성우 중앙본부 문교차장, 이준일 중앙본부 부위원장, 김승민 중앙본부 위원장, 허송려 도쿄본부 상임위원

“너무 오랜 시간 고국을 방문하지 못했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 12년 만의 고국 방문인데 소회를 밝힌다면?

이준일 “2003년에 처음 방문하고 그 성과로 2005년 대규모 조국방문단을 조직했다. 그때는 노무현 정부시절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겨우 명예를 회복했다. 이제부터 자유롭게 고국을 방문하고 청년들과 교류도 이어질 줄 알았다. 정세가 아무리 나빠져도, 우리가 못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보수정권 10년 동안 여권이 발부되지 않았다. 2017년 촛불혁명이 열어준 정세를 따라 12년만에 다시 고국 땅을 밟게 됐다. 이제 우리는 당당하게 자주·민주·통일 운동을 하는 재일 한국인으로서 당당하게 한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다시 한 번 촛불시민에게 감사드린다.”

- 멀리 일본 땅에서 고국의 촛불혁명을 지켜본 심정이 어땠나?

허송려 “역사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혁명의 불꽃을… (와~) 실제 화면으로 접하면서… (이야~) 벅찬 감격과 자부심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당시 우리 한청은 도쿄와 오사카 등지에서 촛불시위를 기획해 촛불항쟁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 때 제가 소리 내는 사람(선동가)이었다.(웃음)”

- 이번 방문에서 미대사관 앞 8.15 범국민행동에 참가했는데 무엇을 느꼈나?

허송려 “충격적이고, 감동적이었다. 1만개의 우산이 펼쳐지는…. 그런 큰 규모의 집회는 난생 처음이었다.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특히 미국 대사관은 얼씬도 못한다. 집회도 5명까지 제한된다. 그런데 미국 눈 앞에서 그런 큰 투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부럽고, 한국의 반미투쟁이 정말 대단하다.”

▲ 재일한청 고국방문단이 8.15범국민행동에 참가했다. 김승민 위원장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 함형재 담쟁이기자]

“미국은 일본을 대신해 한국을 지배한 나라”

- 최근 북미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 그 원인과 해법이 있다면?

이준일 “역시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간섭이다. 광복 이래 미국이 들어와서 남측에는 집안 간섭, 북측에는 적대시 군사 압박을 해왔다. 그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생존을 위한 자위적 조처로 핵무장과 미사일을 개발하게 했다. 지난 72년간 민족의 자주권을 위협해온 미국의 분단 정책을 바꿔야 군사적 긴장 상태가 해소 된다.”

- 북미 핵공방이 최종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어떻게 전망하는가?

김승민 “가장 큰 변화는 북(한)이 ICBM을 개발한 것이다. 이제까지 미국은 다른 나라 공격만 했지 공격을 받는 적이 없다. 그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미 본토에 폭격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핵관리다. 그런데 처음으로 미국에 핵미사일이 떨어지는 국면이 도래했다.
미국은 북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실제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을 제압할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제 미국의 최종 수단은 대화뿐이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북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북(한)에 먼저 핵무기를 버리라는 말은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극한의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이 북과 대화를 시도할 것으로 본다. 물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자주 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으니 조금 걱정은 된다.(웃음)”

▲ 재일한청 고국방문단이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을 찾았다. [사진 함형재 담쟁이기자]

- 민족화해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허송려 “한국이나 일본이나 친미 정권이 유포한 ‘틀린 지식’이 난무하고 있다. 미국에 의존하지 말고 자기 나라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민족이 화해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북(한) 사람을 자유롭게 만나게 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없애 남과 북, 우리민족이 서로 만나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편견도 사라지고, 오해도 풀린다. 자연히 한 핏줄인 우리민족끼리 친해지게 돼있다.”

-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와 아쉬움을 각각 짚는다면?

한성우 “박근혜 국정농단 적폐를 엄격하게 청산하리란 기대가 크다. 용산참사, 천안함, 세월호 등에서 보았듯이 보수정권 아래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면 국민들이 죽어 나간다. 문재인 정부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촛불 대통령답게 촛불과 함께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또다시 수구보수 세력에게 정권을 뺏기지 않도록 그런 구조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북 대미 정책에서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이 부족한 것이다. 진짜 적폐, 70년 썩고 썩은 적폐는 바로 분단 적폐다. 문재인 정부가 이점을 똑똑히 알도록 민중의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 재일한청 고국방문단이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을 찾았다. [사진 함형재 담쟁이기자]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치면 못해낼 일 없다”

- 마지막으로 고국의 청년들, 그리고 촛불 시민들에게 하고픈 당부가 있다면?

김승민 “촛불혁명에 너무너무 감동을 받았다. 일본 아베 정권의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과 극심한 탄압을 받을 때, 고국에서 지펴진 촛불은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는 긍지와 민중의 힘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진정한 촛불혁명은 이제 시작이다. 특히 분단 적폐를 청산하고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을 통일하는 길에 고국의 청년들과 촛불 시민들의 계속 전진을 기대한다. 우리 해외동포들도 민족의 힘을 믿고 더 힘차게 함께 하겠다.”

▲ 미 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8.15 범국민행동에 재일한청 고국방문단이 참가했다. [사진 함형재 담쟁이기자]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겨울 연못 밑 붕어는 술에 기대어 생존한다

조홍섭 2017. 08. 17
조회수 1707 추천수 0
 

산소 없어도 4~5달 버텨, 치명적인 젖산 대신 알코올 생성 대사 작동

술 빚는 효모 비슷한 효소, 붕어의 혈중농도는 면허 정지 수준인 0.05%

 

03100750_R_0.jpg»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붕어의 비밀이 또 하나 발견됐다. 무산소에서 살아남는 능력이다.한강물환경연구소

 

연못이 꽁꽁 얼고 위에 눈이 쌓이면 연못 바닥까지 빛이 들어가지 못한다. 조류가 광합성을 하지 못하면서 물속의 산소는 고갈된다. 붕어나 가까운 친척인 금붕어는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도 잘 살아남는다. 그 비결은 뭘까.

 

척추동물은 산소가 없으면 몇 분 지나지 않아 죽는다. 뇌 등 핵심 장기에 산소를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산소 상태에서 붕어와 금붕어는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다.

 

문제는 분해 산물로 생기는 젖산은 독성이 커 몸에 축적되면 생존이 어렵다는 점이다. 1980년 금붕어를 이용한 실험에서 금붕어가 젖산 대신 알코올을 만듦으로써 이런 위험을 회피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rain_17365_12019_ed.jpg»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담수어인 붕어. 강인한 생명력이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조홍섭 기자

 

노르웨이와 영국 연구자들은 붕어가 무산소 상태에서 술 빚는 효모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효소를 만들어 생존할 수 있으며, 그 기원은 800만년 전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중복’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결과는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11일 치에 실렸다.

 

연구에 참여한 마이클 베렌브링크 영국 리버풀대 진화생리학자는 “북유럽 서식지에서 붕어는 얼음에 덮인 연못의 산소가 없는 물속에서 여러 달 동안 살아남는다”며 “이때 붕어의 혈중알코올농도는 100㎖당 50㎎(0.05%에 해당)이 넘는데, 사람이라면 면허정지 처분을 받는 수준이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붕어는 대사 산물인 알코올을 아가미를 통해 배출한다. 연구자들은 “붕어가 무산소 상태에서 4∼5달을 생존하지만 죽는 건 산소부족이 아니라 간에 축적된 에너지가 고갈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03347998_R_0.jpg» 어느 개울의 붕어는 크기와 모양이 모조리 비슷한 경우가 많다. 새 서식지를 개척한 암컷이 처녀생식으로 자신의 복제품을 퍼뜨리기 때문이다. 김봉규 기자

 

이런 대사가 가능한 이유는 붕어가 ‘피루베이트 디카르복실라아제’라는 새로운 효소를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붕어의 조상은 우연히 유전자 중복을 일으켰고, 여기서 확보한 여벌의 유전자가 무산소 상태 때 알코올 대사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주 저자인 캐서린 페이거니스 박사는 “이번 연구는 그때까지 생물이 살기 힘든 환경에 적응해 생물이 진화하는 데 유전자 중복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보여준다”며 “붕어는 알코올 생산 능력 덕분에 혹독한 환경에 살아남은 유일한 물고기가 됐고, 그럼으로써 경쟁과 포식자를 회피할 수 있었다”라고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이 연구에 대해 이완옥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 박사는 "겨울철 붕어가 저수지 깊은 곳에서 집단으로 월동하는데 이런 비밀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라며 “다른 어류 종에서도 이런 능력이 있는지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붕어는 이런 무산소 환경 생존능력 말고도 외딴 곳에 진출해 짝을 만나지 못할 경우에는 처녀생식과 성 전환으로 번식을 이어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관련 기사: 붕어와 톱상어, 처녀생식으로 살아남기)

.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athrine E. Fagernes et al, Extreme anoxia tolerance in crucian carp and goldfish through neofunctionalization of duplicated genes creating a new ethanolproducing

pyruvate decarboxylase pathway, Scientific Reports 7: 7884, DOI:10.1038/s41598-017-07385-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승만과 박정희가 통탄할 ‘건국절’ 논란

보수 세력이 주장하는 ‘올바른 역사’ 3가지 키워드
 
이진우  | 등록:2017-08-17 09:36:22 | 최종:2017-08-17 09:44: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보수 세력이 주장하는 ‘올바른 역사’에는 3가지 키워드가 등장합니다.
‘건국기념일 제정’,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그리고 ‘산업화의 아버지 박정희’입니다. 이를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1)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선포한 것이 1948년이므로 1919년이 아닌 1948년이 건국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야 하고,

(2)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공로는 오직 이승만에게만 있고, 사회주의 및 남북합작을 주장했던 ‘종북성향’ 인물들은 도리어 건국의 적(敵)으로 기록되어야 하고,

(3) 5.16혁명으로 ‘제2의 건국’을 이룩한 박정희 집권기간은 자유와 인권의 탄압이 아닌 산업화와 민족문화 창달로 대한민국의 부흥과 발전을 이룩한 시기로 기록되어야 한다.

이른바 건국기념일-이승만-박정희 3종 셋트입니다.

역사라는 것이 어느 쪽으로 서술이 되건 그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역사왜곡이 될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모두가 수용하고 인정하는 ‘올바른 역사’라는 것은 현실에 있어서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어느 쪽이 되었건 최소한 역사적 팩트에 기반하여 가급적 그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는 역사적 스토리텔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과연 이들의 관점과 스토리텔링이 논리적․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건국기념일 제정에 대해 보겠습니다.

1948년 제헌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본래 헌법 전문이라는 것이 건국이념과 헌법의 정체성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것은 역사적 기록의 차원을 뛰어넘어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총의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승만이 초대 국회의장으로서 제정을 주도한 제헌헌법에 ‘1919년 건국’이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혹시나 후세가 이를 오독할까봐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이라는 표현까지 등장시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승만은 집권하면서 곧바로 모든 문서에 ‘건국 30년’이라는 것을 명시하도록 지시합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왜 ‘건국 원년’이 아닌 ‘건국 30년’이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이승만의 독립운동 경력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이며, 둘째, 북한 김일성 정권과의 확실한 차별화 및 유일한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입니다. 이게 도대체 뭔 말이냐구요?

이승만의 독립운동은 1896년 독립협회 결성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독립협회 및 이와 맥을 같이하는 협성회와 만민공동회에 이르기까지 이승만은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며 열성적 활동으로 인해 사형 및 종신형 선고까지 받고 5년 넘게 투옥됩니다.

그 후에는 언론계․종교계․교육계로 그 활동범위를 넓혀가며 독립운동과 국민계몽운동에 열정을 쏟게 됩니다. 그 공로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게 됩니다.

비록 그 후 얼마 가지 않아 임정 핵심요원들과의 갈등 및 독선으로 불신임을 당해 사임하지만, 그 후에도 이승만은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명함을 가지고 다니며 백악관 및 의회 지도자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이어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이승만의 독특한 이력 및 인간관계 덕택에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 및 미군의 참전이 가능해졌던 것이죠.

따라서 1948년을 건국기념일로 제정하게 되면 1919년 이후 줄곧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갖고 다녔던 이승만은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전혀 근거가 없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사칭하고 다닌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승만 자신은 자신만이 독립협회-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져 내려오는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확보한 인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대통령직을 수행했는데, 1948년을 건국기념일로 제정하는 순간 이승만은 한반도의 유일한 건국지도자의 지위로부터 남한만의 건국지도자로 그 위상이 현저하게 격하됩니다.

김일성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인물에서 김일성과 대립각을 이루는 비슷한 비중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니 이승만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통탄할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건 이승만에 대한 모독이죠.

이승만의 기준에서 보자면, 굳이 역사교과서를 바꾸지 않더라도, 이미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제대로 부각시키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건국의 아버지’로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좌우 진영 모두를 살펴보더라도 이만큼 스펙타클한 독립운동의 궤적을 갖고 있는 인물은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실질적인 좌우합작으로 출범했고, 좌우합작 속에서도 이승만은 건국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모두 가진 인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 자신도 그것을 너무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건국’과 ‘재건’을 모두 자신이 주도했다고 생각하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보수 세력은 이승만의 활동 중 5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구한말 및 임정을 중심으로 한 활동 및 이력들을 사실상 역사책에서 배제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는 셈이죠.

박정희와 관련된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하여 박정희가 주도하여 개정한 ‘제3공화국 헌법’의 전문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4.19의거’라는 표현과 ‘새로운 민주공화국 건설’이라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당시 박정희의 역사적 정통성은 5.16 뿐 아니라 4.19와도 맥이 닿아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4.19의거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4.19의거는 이승만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국민과 의회가 새롭게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것이죠. 바로 그 민주공화국을 박정희가 자신의 정통성에 뿌리로 규정한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4.19의거로 시작되어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던 민주공화국의 꿈을 자신이 5.16혁명으로 완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면 내각을 좌파 내각으로 매도하고, 4.19의거를 일으킨 정치인과 대학생들을 종북좌파로 규정하고 있는 보수 세력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박정희가 제3공화국 헌법을 통해 전면에 내세웠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딸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정확한 의중을 과연 알고는 있을까요? 만약에 박정희에게 “아버지는 이승만을 계승했습니까? 아니면 장면을 계승했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박정희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장면 내각을 계승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도 대단히 격노하면서 말이죠.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를 전혀 계승한 바가 없습니다. 도리어 제3공화국 치하에서 그가 시행했던 상당수의 정책들은 장면 정부가 기획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던 것들이었죠. ‘한강의 기적’의 출발점이 되었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그 기획과 로드맵은 장면 내각이 만든 것이었죠. 그것을 박정희가 완성한 것이구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박정희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비록 변절하기는 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확고한 진보주의자였던 자신을, 부정부패와 전근대적 리더십의 상징이면서 지독할 정도의 보수노선을 추구했던 이승만의 계승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일 겁니다.

이건 박정희가 정말 땅을 치면서 통탄할 일이죠. 이승만의 그림자와 숨결을 지우고 싶어서 집무실도 경무대가 아닌 청와대로 하고, 대대적인 부정부패 척결 작업도 했고, 이승만 정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자유주의와 인권․평화의 가치를 헌법에 담아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는데… (적어도 유신헌법 이전까지는)

바로 이 부분이 보수 세력의 역사와 역사적 인물에 대한 무지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이승만과 박정희 모두 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8.15 해방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겠다는 것은 이승만과 박정희 모두를 슬프게 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4.19의거를 역사책에서 지우고 5.16쿠데타의 정당성만을 내세우는 것은 박정희를 슬프게 하는 일입니다.

4.19의거를 완성한 사람이 자신인데, 4.19는 빼고 5.16만을 정당화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계승자인 박정희는 없어지고 독재자인 박정희만 역사책에 남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P.S. 투철한 우파였던 이승만은 좌익운동 전력을 가진 박정희를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집권기간 중 박정희에게 사형이 언도됐지요.)

반대로 진보주의 성향을 갖고 있으면서 반부정부패 정서가 누구보다 강한 박정희는 이승만을 결코 용납할 수 없지요. (그래서 하와이로 망명한 이승만은 박정희 집권기간 중 살아서는 귀국하지 못하고 죽어서야 비로소 고국 땅을 밟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서 모두 부귀영화를 누린 세력이 마치 물과 기름과도 같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하나의 코드로 연결하려다보니 많은 무리수가 발생하는 거지요.

이진우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KPCC) 소장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263&table=byple_news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트럼프 전쟁책동 반대집회에 동포보다 더 몰려든 미국인들

트럼프 전쟁책동 반대집회에 동포보다 더 몰려든 미국인들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8/16 [21:31]  최종편집: ⓒ 자주시보
 
 

 

8월 14일(현지시각) 뉴욕(UN본부앞@12pm), 워싱턴DC(백악관앞@12pm), 로스앤젤레스(코리아타운@6pm)에서 재미동포 진보단체들과 미국인 평화운동단체들이 연대하여 동시 다발적으로 <트럼프 정부 북침 전쟁 책동 규탄 긴급 연대시위(Emergency Rally Demanding Trump: Do Not Provoke War with North Korea)>를 진행하였다. 

 

▲ 뉴욕(NY) 유엔본부 앞에서 8월 14일 낮 12시에 진행한  <트럼프 정부 북침 전쟁 책동 규탄 긴급 연대시위(Emergency Rally Demanding Trump: Do Not Provoke War with North Korea)>   © 자주시보, 김동균

 

‘트럼프 정부의 북침전쟁 책동을 규탄하는 재미동포와 미국인 평화운동단체들 및 개인들’ (Korean American and U.S.-based Peace Activist Organizations and Individuals Calling on the Trump Administration to Stop U.S. War Provocations Aimed at North Korea) 주최로 개최된 이번 동시다발 연대집회에는 미주 동포들 못지 않게 미국인 평화운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뉴욕의 경우 미주 한인 동포들은 20여명 참여했는데 미국인 평화운동가들은 60여명이나 참여하였으며 워싱턴과 엘에이에서도 미국인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  뉴욕(NY) 유엔본부 앞에서 8월 14일 낮 12시에 진행한  <트럼프 정부 북침 전쟁 책동 규탄 긴급 연대시위(Emergency Rally Demanding Trump: Do Not Provoke War with North Korea)>     © 자주시보, 김동균

 

미국인 평화운동가들이 외치는 구호와 연설 내용도 우리 동포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그들은 북미전쟁 위기의 근원은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이기에 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과 같은 대북위협 군사훈련을 당장 중단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북미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미국인들은 미국정부가 아프간, 이라크 등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인지 트럼프의 한반도 전쟁불사 발언을 그저 던지는 호전적 엄포로만 여기지 않고 실제 북을 공격할 수 있다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드러내어 동포 참가자들을 긴장케 했다.

 

또한 북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수소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까지 보여주는 시험을 단행하고 있어 미국 본토도 핵참화를 입을 우려가 높아지는 등 미국인들도 점차 한반도 문제를 자신들의 운명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이번 연대시위에 함께 참여한 미주동포들이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북이 화성-12형 탄도미사일을 이용하여 괌 포위사격을 가하고 미군들이 이를 막지 못한다면 이런 미국인들의 우려는 더욱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미국 뉴욕에 사는 김동균 동포가 이번 연대집회에 후에 작성한 보고문이다.

 

................................................ 다음 .............................................

 

[보고문]

8/14(월) NY, DC, LA 트럼프정부 북침전쟁 책동규탄 긴급연대시위 

 

안녕하십니까,

 

어제(월,8/14) 뉴욕(UN본부앞@12pm), 워싱턴DC(백악관앞@12pm), 로스앤젤레스(코리아타운@6pm)에서 재미동포 진보단체들과 미국인 평화운동단체들이 연대하여 동시 연속으로 <트럼프 정부 북침 전쟁 책동 규탄 긴급 연대시위(Emergency Rally Demanding Trump: Do Not Provoke War with North Korea)>를 ‘트럼프 정부의 북침전쟁 책동을 규탄하는 재미동포와 미국인 평화운동단체들 및 개인들’ (Korean American and U.S.-based Peace Activist Organizations and Individuals Calling on the Trump Administration to Stop U.S. War Provocations Aimed at North Korea)이라는 이름(주최)으로 개최하였습니다.

 

이 연대시위 개최된 것은 지난 주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전쟁책동 발언(화,8/8 오후) 다음 날(수,8/9) 미국인 평화운동단체들이 주도하여 백악관 앞 긴급시위가 있자 목, 금 이틀 사이에 NY, DC, LA의 코리안 진보단체 활동가들 사이에서 우리의 문제이니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이 급히 공유, 교환되었고 각 지역의 미국인 평화운동단체들과 연대하여 ‘동일시위 명칭’, ‘공동성명서’에 기초해 동시연속 연대시위를 각 지역 실정에 맞게 갖자고 합의해 개최된 것이었습니다. 공동성명서는 서부에서 초안 작성하였습니다.

 

그럼 아래의 순서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1. 시위사진 링크 (뉴욕,로스앤젤레스, 워싱턴디씨 시위 사진 모음 – 사진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2. 시위 현장 보고

3. 공동성명서 (우리말 & English)

  

 

1. 시위사진 링크 (NY, DC, LA시위 사진 모음) – *사진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DC와 LA에서 보내준 사진들을 모두 실었습니다)

   https://www.dropbox.com/sh/s8rs3evmj4t2dzc/AADhrUZKTB1preUcqEGIOkh3a?dl=0 

 

   

2. 시위 현장 보고

 

1) NY 시위 

뉴욕의 경우, 낮 12시에 유엔본부를 마주보는 건너편 길에서 재미동포 진보단체 활동가 20여명과 미국인 진보평화운동단체들의 활동가 60명 가량이 모여 우리말과 영어 구호,

1. 북침전쟁 책동하는 트럼프정부 규탄한다 

2. 북침 전쟁책동 북침 전쟁연습 당장 중단하라 

3. 불의한 유엔 대북제재 당장 철회하라 

4. 적대정책 중단하고 평화협정 체결하라

(1. Stop the war provocations, No military exercise! 

2. Stop the war games! Peace talks now! 

3. Stop UN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4. End Korean War! Peace Treaty Now!)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시위를 시작한 후 먼저 공동성명서를 우리말과 영어로 각각 재미동포 활동가와 미국위 활동가 각각 낭독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참가 단체의 몇 대표들과 참가자 중에 자유로이 몇 분이 나와 이번 이슈에 대한 발언을 하였으며 중간 중간 구호를 함께 하였고 할머니활동가단체의 세 분이 나오셔서 집회 마무리의 노래를 경쾌하게 해 주시면서 한 시간의 시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시위 중간에 참여단체들의 대표들이 나와 대표 발언들을 하고 개인 참가자들 중에도 자유발언을 하는 순서들을 가졌는데 대표적으로 세 분의 발언 내용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발언자 중에 뉴욕시장 후보로도 출마하였던 아스번 선생은 미국인 입장에서 발언을 함에도 우리 재미동포 진보활동가들과 거의 동일한 주장을 하였습니다. 미국의 한국 지배의 문제점, 한반도가 통일이 되지 않고 있는 이유, 현재 북미간의 핵문제와 북미전쟁 발발의 가능성이 발생한 이유 등이 모두 미국에 그 원인이 있다며 역대 미국정부와 현 트럼프 정부를 강력히 규탄 하였습니다. 그는 핵무기 없는 세계가 와야 한다며 미국부터 비핵화에 나서라고 주장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미국과 북 사이의 핵문제를 언급하며 한 예로 1960년 초 쿠바 핵미사일사태 관련한 언급하면서 쿠바가 왜 핵미사일을 소련으로부터 가져올 수밖에 없었는가의 이유를 설명하고 그 근본원인인 적대관계가 해소되어야 문제가 해결 된다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대북적대시입장이 지금 북미문제의 근본원인이라며 대북적대시정책을 철회해야 핵문제가 풀리고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아마도 미국이 당시에 터키에 모스크바를 사정권 안에 넣은 미국 미사일기지를 건설해 두었는데 그 때문에 소련이 대응 차원에서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에 함께 한 것이며 미소 평화적 합의에 의해 터키 미사일 기지 철거와 쿠바 미사일 기지 동시 철거로 미-쿠바 핵미사일위기가 소멸되었음을 염두에 두고 언급한 것 아닌가 합니다.)

 

뉴욕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진보적 평화운동단체인 IAC의 활동가 사라의 발언도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한반도 분단과 북핵 이슈의 근본 원인이며 현 북미간의 제반 문제도 모두 미국이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라는 트럼프정부의 북침전쟁책동을 강력 성토하면서 트럼프 정부에 북침전쟁연습(을지프리덤가디언 등)을 당장 중단하고 주한미군 철수하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발언자 중에 자신은 독일에서 태어나 성장하였고 현재 인턴쉽으로 뉴욕에 와 있다는 베트남 청년여성이 자기 조국 베트남이 미국 제국주의 침략에 의해 베트남전쟁이 발생했고 자기 할아버지도 그에 맞서 싸우신 분이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베트남에 대한 미제국주의 침략전쟁이 한반도에 반복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하며 미국의 북에 대한 침략전쟁을 막기 위해 코리언들과 굳게 연대하여 함께 싸우겠다고 하였습니다.

 

한 가지, 이번 시위 실무자의 한 사람으로서의 독특한 경험은 우리 재미동포들이 조직한 시위에 정작 우리 재미동포들은 약 20여명 참여했는데 미국인 평화활동가들이 그 보다 세 배인 약 60여명 가량이 참여한 점 이었습니다. 

 

단 3일 동안 연락하고 연대를 부탁한 시위에 이렇게 많은 미국인평화운동단체들의 활동가들 나온 것은 미국인 평화활동가들이 현재 트럼프정부의 북침전쟁 기도를 트럼프의 호전적 수사(rhetoric) 정도로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미국인들은 미국정부의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침공을 생생히 경험하고 기억하기에 미국의 북에 대한 침략전쟁의 가능성을 매우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모국의 동포들이나 재미동포들보다 훨씬 심각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발언에 나선 분들이 대부분 거의 동일한 주장을 한 것을 봐도 이를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음 주 월요일(8/21)이면 을지프리덤가디언 북침전쟁연습이 시작 되는데 우리 조국 한반도가 또 어떤 몸살을 앓을지, 어떤 위기를 겪을지 깊이 염려가 됩니다. 북미 사이에 대화로 일괄타결에 합의해 북미 사이에 평화를 이루고, 남북 사이에 다시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우리 모두에게 퍼지기를 염원해 봅니다.

 

▲ 워싱턴 디씨 백악관 앞에서 8월 14일에 진행한 <트럼프 정부 북침 전쟁 책동 규탄 긴급 연대시위(Emergency Rally Demanding Trump: Do Not Provoke War with North Korea)>     © 자주시보, 김동균

 

2) DC 시위 

워싱턴 디씨도 어제(월,8/14) 낮 12시에 백악관 앞에 모여 집회시위를 개최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인 평화운동 단체들 대부분이 DC 부근의 버지니아 샬러츠빌 시위참사 현장으로 가 있어서 시위 조직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답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북침전쟁 기도라는 사안의 중대성이 있기에 참여 가능한 활동가들끼리라도 모여 연대시위의 의의를 살리며 시위를 하기로 하였으며 참여자 중에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 팀쇼락 기자도 취재 겸 동참하였다고 합니다.

 

양현승 목사님의 사회로 한 시간 가량 집회를 진행하였는데 공동성명서를 우리말과 영어로 재미동포와 미국인 활동가가 낭독하고 뉴욕과 동일한 시위 구호를 외치고 참가자 몇 분의 발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백악관 앞이라 관광객들이 많은데 트럼프에 대한 반감과 미국 미디어들의 적극적 보도로 북미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약간의 염려들을 갖고 있어 소수의 시위대였지만 관광객들이 시위대의 구호와 발언들에 적극 공감하고 호응을 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 로스앤젤레스(LA) 코리아타운 윌셔Blvd/웨스턴지하철역 앞에서 8월 14일 오후 6시 진행한 <트럼프 정부 북침 전쟁 책동 규탄 긴급 연대시위(Emergency Rally Demanding Trump: Do Not Provoke War with North Korea)>     © 자주시보, 김동균

 

3) LA 시위

로스앤젤레스는 약 15개의 재미동포단체들이 참여하고 여러 미국인 평화운동단체들이 참여하여 코리아타운 윌셔Blvd/웨스턴지하철역에서 시위를 개최하였다고 합니다. 

집회를 앞두고 15개 단체에 소속 활동가들이 모여 이틀 저녁을 집회 준비로 고생들을 한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어제(월,8/14) 집회는 김미라님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순서는 

1. 개회 

2. 묵념 

3. 성명서 낭독(영어) 

4. 성명서 낭독(우리말) 

5. 나비 날리기 독려 

6. 자유발언(영어 1인/한국말 1인 ) 

7. 노래패 공연 

8. 자유발언(영어 2인/ 한국말 2인) 

9. 풍물패 공연 

10. 자유발언(영어 2인/ 한국말 2인) 

11. 해방춤 

12. 노래 합창(우리의 소원은 통일) 

13. 마무리 인사의 순서로 진행하였다 합니다. 

 

더 자세한 소식은 전달 받는 대로 추가하여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 공동성명서 (우리말 & Eglish)

 

[성명서]

           트럼프정부는 북침 전쟁 책동을 당장 중단하라!

 

미국대통령 트럼프의 호전적인 언동이 조국 한반도에 전쟁의 위기로 몰아오고 있다. ‘분노와 화염’이니 ‘예방전쟁’에서 더해 “전쟁이 나서 사람이 죽더라도 미국 본토는 무사하고 한반도에서 수천 명이 죽을 것이다.”는 무분별한 말로 제국주의 전쟁광의 본색을 전 세계 앞에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에서 수많은 정부와 정당이 바뀌어 왔지만 변함없이 70 여 년 동안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 후 3개월 내에 체결하기로 한 평화협정은 미국의 거부로 64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정전 상태 아래 수십 년 동안 되풀이 해오고 있는 한미합동군사연습과 핵전쟁연습은 결국 북의 핵개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불러오고 말았다. 핵보유국 사이의 전쟁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대량살육과 파괴의 대참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민과 전 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재미동포들은 조국 한반도와 미국 본토 사이에 핵전쟁이 발생하는 것을 절대 반대한다. 이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있다. 미국은 동북아의 패권전략을 포기하고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라. 제재와 전쟁이 아닌 대화와 평화의 길에 나서길 강력히 요구한다. 우리는 우리 조국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미국이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미국은 북침전쟁책동을 당장 중단하고 북과의 대화에 즉각 나서라!

2. 미국은 북의 핵미사일 개발의 근본 원인인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라!

3. 미국은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라

 

                                       2017년 8월 14일

      트럼프 정부의 북침전쟁 책동을 규탄하는 재미동포와 미국인 평화운동단체들 및 개인들

 

 

     Do Not Provoke War with North Korea!

 

U.S. President Donald Trump's pro-war rhetoric is heightening the danger of nuclear war on the Korean Peninsula. Trump has publicly stated that he would be willing to unleash "fire and fury" on North Korea. And according to Senator Lindsey Graham, the U.S. president said that in the event of a war, "If thousands die, they're going to die over there." Those words show the whole world the true nature of the United States as an imperialist nation that holds no regard for the lives of the Korean people.

 

Since the Korean people's liberation from Japan in 1945, there have been many regimes and administrations that have come and gone in South Korea. What has remained unchanged for over 70 years, however, is the presence of the U.S. government and military in South Korea. The peace treaty that was supposed to be finalized three months after the signing of the armistice agreement in July of 1953 has yet to be signed today, 64 years later, because of the United States' refusal to participate in a permanent peace process.

 

This on-going state of suspended war, in addition the decades of US-South Korea joint military exercises and threats of nuclear war have pushed North Korea to develop nuclear weapons and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s (ICBM). Thus at this juncture, a war between these nuclear states would result in a catastrophic level of genocide and destruction. Therefore, this is not just a problem of our Korean people but also a problem of the American people and the whole world. Additionally, we believe that the hard-earned tax dollars of Americans being used for the military instead of education, health care, and jobs will have a significantly negative impact on the well-being of the American people.

 

We Korean Americans oppose the outbreak of any nuclear war on our Korean Peninsula or the United States. The root cause of these on-going tensions is the U.S.' hostile policy against North Korea. The United States must give up its hostile policy against North Korea as well as its strategy to establish hegemony in the Northeast Asia region. We strongly urge the U.S. government to actively take the path toward dialogue and peace instead of continuing on the current path of sanctions and war. We wish for all Korean and American people to co-exist peacefully in this land and in our homeland.

 

Therefore we make the following demands to the U.S. government:

 

1. Stop all war provocations against North Korea and immediately engage in talks with North Korea!

2. Give up the hostile policy against North Korea that is the root cause of its nuclear weapons program!

3. Declare an end to the Korean War and sign a peace treaty!

 

                                         August 14, 2017

Korean American and U.S.-based Peace Activist Organizations and Individuals Calling on the Trump Administration to Stop U.S. War Provocations Aimed at North Korea (끝)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위안부 문제 다 해결 안 돼" 일본 기자 질문에 문 대통령 공개 반박

 

[취임 100일 기자회견] NHK "강제징용 노무현 정부 때 해결" 주장에 답변

17.08.17 12:23l최종 업데이트 17.08.17 12:48l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출입기자들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출입기자들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일본의) 얘기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본 NHK 기자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 당시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했는데 어떤 방식을 생각하는지 알려달라"고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특히 이 기자는 "강제징용 문제는 노무현 정부 때 해결된 문제로 피해자 보상은 한국 정부에서 하는 것이라고 결론낸 바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부분은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 당시 알지 못했던 문제로 그 회담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문제"라며 "이 문제가 알려지고 사회화된 것은 한일(국교 정상화) 회담 이후의 문제다. 다 해결됐다는 얘기는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강제징용 문제도 양국 간 합의가 개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는 것"이라며 "양국 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용 당한 개인이 상대 회사를 대상으로 가지는 민사적 권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게 한국의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판례다. 그런 입장에서 정부는 과거사 문제를 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가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관계에 걸림돌이 되면 안 되겠다.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관계는 미래지향적으로 별개로 가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외교부에서 (박근혜 정부 당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평가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작업이 끝나는 대로 외교부에서 그에 대한 대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거인 장준하 그 기일을 맞아

[산하칼럼]거인 장준하 그 기일을 맞아

2017.08.17 11:32

산하추천:0 비추천:0

 

 

 

 

 

좌파와 우파, 좌익과 우익이라는 개념의 시작은 프랑스 혁명 이후다.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기 전까지는 왕당파와 공화파가 대립했고 왕이 사라진 이후에는 보수적이고 점진적인 정책을 주장하는 지롱드당과 급진 개혁을 선호라는 쟈코뱅이 맞서게 되는데 대체로 전자가 오른쪽, 후자가 왼쪽 의석에 주로 앉았다 하여 우파와 좌파라는 개념이 형성됐다. 그러나 이 개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 해방 이후 6.25 전쟁 이전까지, 한국에서는 이 좌우익이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찬반을 나누는 기준으로 즐겨 사용됐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면 우익, 공산주의자이거나 그에 동조하면 좌익이었던 셈이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수천 리 길을 헤매 임시정부를 찾아 우익의 거두라 할 백범 김구를 따랐고, “공산주의자들은 어떠한 협약이든 한 장의 휴지로밖에 보지 않는다.”며 공산주의에 대한 강력한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낸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는 위에서 언급한 한국적 기준대로라면 마땅히 우익적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평생 ‘우익’이 장악한 독재 정권에 격렬하게 맞섰고 역시 독재에 맞서 투쟁을 벌여 ‘좌익’으로 곧잘 낙인찍히던 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지금도 오른쪽보다는 왼쪽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더 추앙을 받는 특이한 우익이었다. 이 기이한 인물의 이름은 장준하다.

 

20120831091009696.jpg 

 

장준하는 평안북도 의주생이지만 삭주에서 자랐다. 장준하의 할아버지는 한의사로서 한학(漢學)에도 밝았으나 일찌감치 개화에 눈을 뜬 사람이었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장로가 돼 아들을 목사로 길러냈다.


평안도는 조선 왕조 5백년 내내 중앙 정부로부터 심각한 차별과 냉대를 받은 지역으로서 타 지역에 비해 변화를 재빨리 받아들였고 현대사를 주도하는 인물들을 부지기수로 배출한 곳이었다. 도산 안창호를 위시하여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 춘원 이광수, 함석헌 등 한국 현대사를 수놓은 굵직한 이름들 중 상당수가 평안도 출신이고, 대한민국 초대 학술원 회원은 15명이었는데 그 중 13명이 평안도 사람들이며 전쟁 후 한국 기독교의 주류도 이 ‘서북’ 출신들이 이끌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평안도에서는 꽤 큰 도시라 할 의주에서 태어난 장준하가 산골인 삭주에서 자라게 된 것도 아버지 장석인이 3.1 운동에 열정적으로 뛰어들었다가 일본 경찰에 '찍히게' 된 때문이었다. 장석인은 뒤늦게 공부에 뜻을 두어 나이 서른에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했고 기독교 전도사, 목사로서 그리고 교사로서 민족 의식을 전파하는데 앞장섰다. 장준하는 그런 아버지를 눈에 담으며 자랐다. 아버지가 교목, 즉 학교 목사로 일하던 신성중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장준하는 처음으로 감옥에 갇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신성중학교 교장 장리욱이 ‘수양동우회 사건’에 휘말려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수양동우회는 안창호, 이광수 등 서북 출신 인사들이 주동하여 조직한 사회 계몽 운동 단체으나 일본 경찰의 눈에는 심히 불온한 '불령선인' 즉 불순분자들의 집단이었던 것 같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존경하던 교장 선생님이 자신들의 눈 앞에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격분했다.

 

“일본어 교과서를 다 찢어 버리라우!” “교장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수업은 없는 기야 알아듣갔나” “전 학년 다 나오라! 교장 선생님을 석방하라.” 수업이 거부됐고 시위가 이어졌다. 때는 1937년 중일전쟁(中日戰爭) 직전이었다. 전쟁을 앞두고 일본 제국주의의 살기가 시퍼렇던 무렵, 일본 경찰은 당연히 총출동하여 신성중학교로 달려갔다. 학생들은 교가와 아리랑을 부르며 경찰과 충돌했고 일부는 산쪽으로 이동하여 농성에 들어갔다. 학생들을 빈틈없이 포위한 가운데 경찰은 이런 말을 한다. “주동자만 나오면 나머지는 방면한다.”

 

 

역사 속에서 이런 모습은 흔하다. 저 유명한 노예 반란의 지도자 스팔타카스를 그린 영화 <스팔타카스> 중에서 노예 군대를 격파한 로마 장군은 스팔타카스만 나오면 나머지는 살려 주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지도자와 일반 대중을 격리시키고 생존의 욕구를 자극하여 자신들을 이끈 지도자의 희생을 스스로 요구하게 만드는 이간질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영화 속에서 노예들은 사방에서 벌떡 벌떡 일어나 외친다. “내가 스팔타카스다.” 그리고 모두 비참하지만 고귀한 죽음을 맞는다. 일본 경찰 역시 비슷하게 외친 것이다 . “주동자만 나오면 나머지는 별 일 없다.” 


그때 일어선 것이 장준하였다. “내가 주동자다.” 그러자 영화 스팔타카스와 비슷한 장면들이 펼쳐진다. 여기 저기에서 “내가 주동자다!” 소리가 들리며 일본 경찰 앞에 학생들이 성큼성큼 걸어나왔던 것이다.

 

각 학년 대표들과 함께 장준하는 일본 경찰에 끌려가 유치장에 갇힌다. 평생 동안 툭하면 들락날락했던 감옥살이의 ‘개시’(開始)였다고나 할까. 훗날 한국 민주화 운동의 원로가 되는 계훈제도 당시 동맹파업에 가담했던 장준하의 1년 후배였다.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독립군의 손 자국이 가득한 유치장에는 일본 식민지교육을 갈기갈기 찢은 학생 우두머리 장준하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철창을 응시하고 있었다. 유치장에의 첫 나들이길이 트인 것이다.”

 

 

철창 앞에서도 일 점 두려움 없던 장준하는 학교를 졸업한 뒤 짧은 시간 소학교 교사로 교편을 잡는다. 하지만 학교 교사란 식민지 교육의 최전방에서 일제 당국의 지시를 받아 일장기를 내걸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장준하로서는 견디기 힘든 치욕이었고 장준하는 못다 한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역사의 소용돌이는 더욱 거세게 젊은 장준하를 덮쳐 왔다. 중국과의 끝 모를 전쟁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일본은 1941년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미국과 전쟁을 시작했던 것이다. 전선은 남태평양 뉴기니에서 북만주까지, 북동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확대됐다. 물자와 인력은 무한대로 투입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인만으로는 도저히 전선을 유지할 수 없던 일제는 ‘학병’(學兵)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의 청년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장준하는 뜻밖에도 이 학병에 지원한다. 주변 친구들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준하가 학병에 지원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어서였다. 


우선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학교 교사 직을 집어던진 뒤 일제가 이를 갈고 노리던 아버지 등의 방파제가 되고자 함이었다. “우리 집안의 불행을 내 한몸으로 대신하고자 이른바 그 지원에 나를 맡겨 버렸다.” (장준하의 자서전 <돌베개> 중) 그리고 하나 더 학병으로 나아갔다가 탈출하여 독립 투쟁에 나서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학병 지원 후 급하게 결혼한 아내이자 옛 제자 김희숙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편지 속에 '돌베개'라는 말이 있거든 탈출한 줄 아시오.” 그리고 머지않아 아내는 ‘돌베개’라는 말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 일본군 부대에서 탈출한 것이다.

 

중국 대륙은 넓었다.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그것도 중국군과 일본군 사이의 격전이 수시로 전개되던 전쟁터,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먹을 것 마실 것 구하기도 쉽지 않던 험한 길을 헤매며 장준하는 오로지 임시정부를 찾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중국 서북방 어딘가를 떠돌며 조국의 해방을 위해 태극기를 내걸고 있다는 정부라기엔 너무나 초라한 정부. 그러나 장준하에겐 등대와도 같았을 이름. 임시정부를 찾아. 그 기나긴 여정은 이후 장준하의 생애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00440723701_20120815.jpg 

광복군 시절 OSS 특수 훈련을 받던 장준하, 김준엽, 노능서 선생

 

해방이 왔다. 그는 광복군 선발대로서 일본군이 아직 지배하던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 내려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는다. 그러나 그건 성급한 의식이었다. 일본을 패망시킨 미국과 소련 양 강대국은 한국을 한국인들의 손에 맡겨 놓을 생각이 없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나 기타 조선인들의 자치 권력을 인정할 의사가 없었다.
.
임시정부 요인들은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 했고 38선 이남과 이북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군정이 시작됐다. 공산주의를 격렬히 혐오하던 장준하의 활동 무대는 당연히 남쪽이었다. 고향에 남아 있던 아내는 가정에는 별 관심이 없는 남편을 찾아 시부모를 모시고 ‘소를 타고’ 내려와 38선을 넘는다. 바야흐로 달콤한 신혼 생활을 시작해야 했지만 장준하와 아내는 그럴 운명이· 아니었다. 장준하는 해방된 새 나라에서 자신의 사명을 찾고자 했고 그를 위해 이전보다 더한 돌베개와 가시방석을 마다하지 않았고 아내는 그 뜻에 동참해야 했다.

 

“한번은 저도 가계부라는 것을 써보고 싶다고 하니, 얼마 후 생활비라며 봉투를 줬어요. 너무 좋아서 가계부를 만들었는데 이튿날 남편이 돈을 꿔달라는 거예요. 없다고 했더니 ‘어제 준 것 있잖아요’ 해요. 남편은 그 돈을 친구 아들의 등록금으로 줬어요. 결혼식 주례를 서고 받은 양복지도 어느 날 찾아보면 사라지고 없어요. 남편이 저 모르게 형무소에서 나온 제자나 어려운 이웃에게 준 거예요. 제가 바느질집에 가서 일하고 외상도 하면서 겨우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터라 서운해하면, 남편은 ‘내가 밥은 굶기지 않을게. 미안해요’라고 했어요.” (아내의 증언)

 

1953년 4월 아직 전쟁의 포화가 계속되던 즈음, 임시수도 부산에서 역사적이라는 형용사에 손색이 없는 한 잡지가 탄생했다. <사상계>라는 잡지였다. 장준하 자신이 관여하여 발행하던 문교부 기관지 <사상>이 폐간에 다다르자 아예 인수해 버리고 <사상계>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인 것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전쟁통에 장준하는 이 잡지에 사활을 건다. 

 

필자들이야 장준하의 얼굴과 이름값으로 대충 끌어들였고, 조판, 인쇄 모두 외상으로 처리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사진 등의 동판대(銅版代)였다. 이것만은 외상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 고심하던 장준하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나는 듯이 집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아내의 겨울 외투와 그런대로 값나가는 옷가지 몇 벌. 장준하는 그걸 몽땅 팔아치워 동판대를 마련한다. 그 뿐이 아니었다. 아내는 생전 처음 교정 작업까지 도맡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장준하는 이렇게 회고했다.

 

 

“ 생전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툴러 빠져 일의 템포가 늦고 그나마 가르쳐 준 대로도 못할 때면 슬며시 울화도 났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보는 남들의 사무실에서 핀잔을 주어 부부싸움을 벌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장준하가 <브니엘>에 쓴 글) 아내에게 생판 해 보지 않은 일을 억지로 떠맡겨 놓고도 미안해하는 기색은커녕 그 서툼을 고발(?)하면서 자신의 인내력(?)을 자랑하고 있는 이 간 큰 남자. 그게 장준하였다.

 

171759.jpg 

 

하지만 그렇게 장준하 본인과 아내 모두의 심혈을 쏟아부은 <사상계>는 대한민국을 진동했다. 초판 3천부가 순식간에 팔려나간 것은 물론 그 이후로도 지식인 사회에서 화제의 중심이 되는, 폭 넓고도 깊이가 다른 잡지의 반열에 올랐다. <사상계>가 태어나는 과정 또한 장준하로서는 여러 번의 돌베개를 베는 과정이었지만 이 또한 그의 고난의 끝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시작이었다. 그 고난의 원천은 바로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과의 악연이었다.

 

 

“6.25가 일어났다. 당연히 받을 채찍이 이 땅에 임한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치 않아 그래도 이 백성들을 공산역도들의 손아귀에 아주 넣지는 않았다.”고 외치던 반공주의자 장준하가 “반공을 제 일의 국시로 삼는” 5.16 군사정변에 호의적 눈길을 보낸 것은 크게 어색하지 않다. 


군사정변 직후 발행된 사상계 권두언에서 그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4.19 혁명이 입헌정치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민주주의혁명이었다면, 5.16 혁명은 부패와 무능과 무질서와 공산주의의 책동을 타파하고 국가의 진로를 바로잡으려는 민족주의적 군사혁명이다.”


그러나 정권의 발길이 장준하가 기대했던 혁명으로부터 멀어지고 “신악(新惡)이 구악(舊惡)을 뺨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자 장준하는 다시 한 번 돌베개를 자청하게 된다. 가장 맹렬한 야당의 투사로 변신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밀수 왕초’라는 창날같은 표현을 꽂아 감옥 신세를 진 것은 얘깃거리도 못되었다.

 

장준하는 정말로 우리 ‘민족’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투철한 민족주의자로서 계급투쟁을 논하는 이들을 배격했고, 웬만한 허물은 동족으로서 함께 짊어져야 할 십자가로 여겼다. 그랬기에 군사 정변도 긍정할 수 있었고 최남선 등의 친일파에게도 관대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현재 권력을 쥔 이들의 불의,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파괴를 용납할만큼 녹녹한 사람이 못되었다. 만주군 장교 출신의 집권자가 국정을 전횡하고 공산독재에 맞서 싸워야 할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며 굴욕적 한일 회담을 추진하고 기업의 밀수를 묵인하고 그로부터 정치 자금을 받아 챙기는 세상을 눈 뜨고 보아줄 수 없는 광복군 장교였다. 결국 그는 진정한 우익이었기에 이 땅의 주류 우익과는 안드로메다처럼 멀어져 가게 된다.

 

장준하가 거침없는 필봉과 사심 없는 마음으로 권력 앞에 맞서는 와중에 한때 그 가난한 50년대에 수만 부를 팔았던 사상계 사장의 다섯 아이는 대학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고 부인은 장례식에 쓰는 조화를 접는 ‘알바’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아들의 증언에 따르면 “불의한 정권을 쳐부수기 위해 게릴라전까지 불사하겠다.”고 했다는 광복군 장교, 항상 몽둥이를 차에 두고 다니다가 미행하는 차량이 있으면 몽둥이를 들고 뛰어나가 미행 차량이 혼비백산 도망가게 만들었던 담대한 재야 인사 장준하는 글자 그대로 암울한 시대의 촛불이었고 얼어붙은 세상의 온기로, ‘재야의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그는 항상 이렇게 외쳤다. “후손들에게 못난 조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독재를, 분단을, 불의를, 부패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러던 중 1975년 8월 17일. 그는 포천 약사봉에서 등산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실족사라고 발표됐으나 미심쩍은 점은 많았고 후일 이장을 위해 발굴된 그의 유해에는 아령이나큰 돌멩이로 타격을 입은 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 워낙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칼날 위를 걷듯 살아온 삶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예감을 한 듯한 행동을 거듭한다. 윤봉길 의사가 홍코우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지기 전 맹세했던 태극기, 김구 선생에게 받은 뒤 평생 소중히 간직해 온 그 태극기를 이화여대에 기증하는 한편, 아내의 평생 숙원을 풀어 준 것이다.

 

 

장준하는 평생 개신교인으로 살았고 아내는 일생을 가톨릭 신자로 보냈기에 아내는 혼배성사를 올리지 못했다. 가톨릭 차원에서는 정식 결혼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할 만큼의 의미있는 행사였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장준하는 그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 열 이틀 전, 그러니까 1975년 8월 5일, 별안간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아내에게 혼배성사를 베풀어 준다. 무려 31년만의 혼배성사. 목사의 아들이요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골수 개신교인 그가 신부 앞에 서서 혼배성사를 올린 것이다.

 

나이 쉰에 면사포를 쓰고 신부(神父) 앞에 선 신부(新婦)의 심경은 어땠을까. 열 일곱 철없는 나이에 아홉 살 위의 한때 선생님에게 시집와서 별의 별 고생을 다 해야 했던 아내를 바라보는 신랑의 마음은 또 어떠하였을까. 그리고 열흘 남짓 뒤 시신으로 돌아온 신랑을 마주했을 때 그 신부의 가슴은 대관절 얼마나 큰 소리 내며 무너졌을까. 창졸간에 맞은 장준하의 죽음 앞에 많은 이들이 통곡했다. 장준하의 평생 동지였던 함석헌은 이렇게 쓰고 있다.

 

“방 안을 들여다보니 빈 침대만 놓여 있고 미소를 띤 사진이 벌써 내놔져 있었습니다. 늘 보던 ‘일주명창(一炷明窓)’이라 쓴 액자만이 여전히 걸려 있지만, 그 타서 밝히던 한 자루 초는 어디를 갔을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되어진 사실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래도 믿어지지를 않아 밤새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진상을 확인해보려 했으나 알 길이 없었습니다.”(씨알의 소리 1975년 7,8월 합본호 중) 


한국 여성 변호사의 효시라 할 이태영 변호사가 이제 어떻게 사느냐며 부인을 잡고 울부짖었을 때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언제 저 양반이 생활비 한 번 가져온 적이 있었어야지요.”

 

장준하의 방 벽에 걸려 있었다는 액자 일주명창(一炷明窓)은 “심지 하나가 창을 밝힌다.”는 뜻이다. 장준하라는 심지는 평생 자신을 태우고 자신의 가족의 일상적인 행복마저 불살라 가며 전 세계적으로 어둡던 동방의 한 나라의 창을 밝혔다.


한국 현대사에서 사(私)가 없이 공의(公義)를 위해 산 사람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장준하의 등불만큼 특별하게 영롱하며 세월이 가도 이지러짐이 없는 빛은 흔하지 않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의 추모 강론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의 죽음은 별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빛이 되어 우리의 앞길을 밝혀 주기 위해 잠시 숨은 것 뿐입니다.” 


그 ‘잠시’는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으른 술래가 된 우리는 역사 속으로 숨어 버린 그의 모습을 짐짓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꼭꼭 숨은 그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찾아 외롭게 의롭게 세상을 밝히다 간 한 사람의 생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IE001478889_STD.jpg 

 

 

 

 

 

 
 

 

 

산하

 

 

편집 : 딴지일보 cocoa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신고리 5·6호기, 전문가에 결정 맡길 수 없는 이유

 
이수경 2017. 08. 16
조회수 164 추천수 0
 
정책당국자와 전문가의 누적된 실패가 이번 공론화 불러
전문가 객관적이지 않고, 과학기술은 사안의 극히 일부분
 
05808239_P_0.JPG» '신고리5, 6호기 공론화위원회' 후원으로 열린 첫 토론회 '사회적 수용성을 갖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가 1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 공론화를 둘러싸고 말이 참 많다. 청와대와 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는 건설중지 결정을 누가 내리는지를 두고 우왕좌왕이고, 야당은 공론화위의 활동이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문제 삼고 있다. 일부 지역주민과 관련 노조, 전문가들은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을 위한 공론화 자체를 반대하고, 반핵단체도 공론화위의 활동에 공정성이 담보될지를 회의하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마디로 관련자 모두가 공론화란 코끼리를 두고 저마다 다른 다리를 만지면서 공론화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 
 
공론화를 하겠다고 나섰다는 자체로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와 입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이니, 공론화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또한 공론화를 계기로 오히려 찬반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정부를 상대로 제 주장을 해대던 일들이 이제 국민을 상대로 제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니 목소리야 커질 것이라는 것쯤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갈등 당사자끼리는 정책의 조율이 불가능해 공론화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겠다는데, 공론화의 방법에 대한 차이를 두고 이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갈등을 공론의 장에 올려놓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05808133_P_0.JPG»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신고리 5ㆍ6호기 지역 주민, 원자력과 교수 등이 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 즉시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공론화위원회 활동중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7월 13일 노조의 반발로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하려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가 한때 무산되고, 신고리 인근 일부 지역주민들이 8월 8일 울산에서 공론화 반대 시위에 나섰다. 7월 5일 전국 60개 대학의 교수 417명은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 명의로 “신고리 5·6호기 공사의 영구 중지 여부 결정은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시민에게 맡기지 말고 전문가나 국회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은 공론화를 반대하는 이유로 “비전문가이면서 책임도 질 수 없는 소수의 배심원단”이 결정한 에너지 정책은 실패할 것이라고 우려한다(“원자력 산업 말살? 자신들 밥그릇 지키기 아닌가”).
 
물론 공론화를 통해 결정된 정책이 실패할 가능성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시민뿐 아니라 전문가, 고위 정책당국자에 의한 에너지 정책도 실패할 가능성은 있다. 유감스럽게도 정책당국자와 전문가의 누적된 실패가 결국 공론화가 시작된 계기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공론화가 시작되면서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전력 예비율이 지난 정부와 이번 정부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지만, 분명한 것은 서로 다른 두 발표 모두 전문가와 정책당국자가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이 종종 이런 정책실패를 마주하게 되는 이유는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이 스스로 갖는 기대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전문가는 객관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정책 결정에서 전문가는 중립적이지 않다. 전문가야말로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에 정책 결정에서 공정하기 힘들다. 김종훈, 윤종오(울산 북구) 의원은 12일 성명을 내어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지난 5년간 미래창조과학부 원자력연구개발비와 한수원 등 원전 사업자가 발주한 연구용역사업을 공동 분석했다”면서 “그 결과 6월 1일 성명에 참여한 230명의 원자력계 대학교수 중 연구개발 지원 등에서 이름이 확인된 것만 22개 대학 94명에 이르렀고, 금액으로는 978억원에 달한다”라고 밝혔다("탈핵 반대 성명 일부 교수들, 수십억 원씩 한수원 연구용역"). 일반 시민과 전문가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전문가는 객관적인 중립자가 아니라 이해당사자다. 
 
또한,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는 정책은 없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전문가들이 정책을 수립한다고 하여도 혹은 전문가들이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어 오로지 공공의 이익만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수립하여도 여전히 정책실패가 일어난다. 정책전문가들이 정책을 수립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것은 과학 기술적 사실만이 아니다. 비용의 문제, 사회적 수용성의 문제, 미래의 수요와 시장을 예측해야 하는 문제, 기술의 발달, 사회적 요구의 변화와 같은 수많은 문제를 고려해 정치적 타협을 통해 정책을 수립한다. 이런 타협을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서 하건 각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시민이 하건 정책실패는 일어날 수 있다.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의 주장과는 달리 정책을 결정하는데 과학기술은 아주 일부의 요소일 수밖에 없고 제 분야 외에선 전문가도 전문가가 아니긴 매한가지다.
 
결국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는 문제에서 누가 결정권을 갖던지 정책실패가 일어날 가능성은 존재한다. 공론화는 이렇게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고 결정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에 대해, 정책을 수행하는데 드는 비용을 지불하고 정책실패로 인한 잠재적 피해대상인 시민이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갈등이 오래되고 심각할수록 전문가들을 포함한 첨예한 이해당사자의 의견수렴은 정책과정에 많이 반영되는 반면 일반 시민의 목소리는 정책과정에서 배제된다. 공론화는 바로 이렇게 그동안 첨예하게 대립해 왔던 전문가를 비롯한 이해당사자가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이루는 대다수를 대표하는 시민이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05734630_P_0.JPG» '당신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를 주제로 한 20차 마지막 촛불집회가 열린 3월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문화 공연을 즐기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우리 사회가 공론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자신감은 외국의 성공사례 때문이 아니라 지난 촛불 혁명 때문이다. 우리 시민사회는 충분한 정보만 제공된다면 정책에 관여된 정보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다룰만한 집단 지성을 갖추었다는 것을 촛불 혁명과 최근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는 “황우석 사태”를 통해 증명해냈다.
 
이번 공론화는 ‘겨우’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에 관한 문제다. 이번 공론화를 통해 얻어야 할 가장 큰 목표는 어쩌면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대한 결론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이해 당사자 간의 극한 대립만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지체돼 온 중요한 국가적 의제를 공론화를 통해 해결해낼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기회이다. 신고리 5·6호기가 건설되지 않는다고 우리나라 전력수급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2082년 수명 신고리 5·6호기, 미래 세대에 물어봤나), 우리나라가 핵발전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이번 공론화는 고준위 핵폐기물처분을 어떻게 할지, 핵발전을 어떻게 수용할지와 같은 핵발전을 둘러싼 오랜 논쟁과 갈등을 공론화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시금석이다. 
 
그래서 공론화의 성패는 “공론”화에 달렸다. 공론화위가 결론을 내는 것에 대해 청와대와 공론화위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비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그런 우려는 사실 부질없는 걱정에 불과하다. 공론화위가 결론을 내든 국무회의가 결론을 내든 국회가 결론을 내든 간에, 공론화 과정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그 결론은 그동안 민관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정책위의 결론이 그랬듯이 수용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05670083_P_0.JPG» 동부지역 기독교여성청년회(YWCA)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14일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대인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고리원전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예정 부지 앞에서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을 요구하는 바람개비 행진을 하고 있다. 울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래서 공론화위는 직접 결론을 내리는 배심원제를 어떻게 운영할 지보다 국민을 대표하는 배심원들이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을 국민이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철저히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배심원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일반 국민에게 제공되고 토론회 등을 국민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공론화 기간 중 사회의 관심이 공론화 의제에 집중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론화의 성패를 좌우한다. 공론화 과정과 정보가 국민에게 공개되고 국민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면 이번 공론화위의 결론을 국민과 갈등 당사자들이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시민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와 이해당사자가 제공하는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공론화를 통해 시민이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만이 아니라 공공의 장에서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결정하는 것이 공론화다. 찬핵이건 반핵이건 시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전문가와 이해당사자의 역할이다. 
 
또한 공론화를 계기로 국가정책에 대한 정보의 공개와 의견수렴이 어느 수준에서 이뤄져야 하는지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정책정보의 공개를 요식행위로만 여겨 제대로 찾을 수 없는 곳에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자료를 올리고는 정보 공개의 의무를 다한 척하는 일이 이 정부에서 더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는 정보는 공개되어도 공개된 정보가 아니다. 
 
이수경/ 환경과 공해연구회장
이수경 환경과 공해 연구회 환경운동가
전 환경과 공해연구회 회장. 1980년대부터 환경운동을 했으며 에너지 문제와 지역균형발전에 특히 관심이 많다.
이메일 : eprgsoo@gmail.com      
블로그 : http://00enthink.tistory.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1만개 촛불우산이 외친 '전쟁선동‧전쟁연습 중단'

미 대사관 인간띠잇기 마무리, "전쟁반대‧평화실현 투쟁은 이제 시작"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7.08.15  20:04:24
페이스북 트위터
   
▲ 광복 72주년을 맞은 15일 주권회복과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인간띠잇기 평화행동'이 빗속에서 빨간색 촛불우산을 든 1만여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미 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72주년을 맞이하는 광복절인 15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주권회복과 한반도 평화실현 8.15범국민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오후 4시 30분께 서울광장을 벗어나 광화문 미국 대사관으로 도심을 따라 행진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내린 비에 참가자들은 1,000개의 북을 앞세우고 1만개의 빨간색 촛불우산을 받쳐들고 '주권회복과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인간띠잇기 평화행동'을 시작했다.

이날 인간띠잇기 평화행동은 전날 법원이 '8.15범국민평화행동 추진위원회'가 제출한 미 대사관 인간띠잇기 평화행동에 대한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함에 따라 대사관 앞 광화문 대로와 광장에서 진행됐다.

   
▲ 법원이 경찰측의 집회금지를 받아들여 이날 미 대사관 인간띠잇기는 대사관 앞 대로와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8.15 범국민평화행동 추진위원회'는 전날 성명을 발표해 법원이 '국제정세'와 '일부 대사관 직원의 출근과 통행불편'을 이유로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것은 문재인 정부와 법원이 미국의 눈치를 본 '사대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다만 이날 오후 임시 집행책임자 회의를 열어 "주어진 조건에서 평화적이고 최대한 완강하게 미‧일 대사관 쪽에 우리 의사를 전달하기로 하고 뒷길로 행진하지 않고 인간띠잇기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후 6시 미국 대사관 앞에서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과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의 연설로 이날 인간띠잇기 평화행동은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날 평화행동을 진행한 김병규 한국진보연대 반전평화위원장은 "오늘 인간띠잇기 평화행동은 이것으로 끝나지만 분단적폐를 쓸어버리고 진정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여는 투쟁은 오늘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 'No War No Trump'.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 미 대사관으로 행진이 시작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전쟁무기 필요없다! 다 싸들고 나가라'. 미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 모형 옆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바람풍선이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코리아국제평화의날 국제참가단.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재일한국청년동맹의 '광복72주년 고국방문단'. "민족자주를 회복하고 평화통일을 실현하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김천.성주 주민들. '사드가고 평화오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전쟁선동‧전쟁연습을 중단하라는 대형 현수막.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전쟁연습 중단하라! 사드배치 철회하라!" '주권회복과 한반도평화실현 8.15범국민평화행동'의 구호이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화염과 분노' 갈등 조장하는 트럼프 정부 규탄한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행진 대열의 앞에 선 1,000개의 북이 광화문 사거리를 넘어서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전쟁선동 중단하고 전쟁연습 하지마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미 대사관 앞에 도착한 선도 차량.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재일본한국청년동맹 고국방문단 참가자들이 미국대사관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온통 빨간색 촛불우산. 박근혜도 몰아 낸 촛불이라는 자신감 때문인가, '우리가 이긴다'는 깃발이 빗속에 오히려 강렬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비에 젓은 미 대사관의 성조기와 바람에 휘날리는 트럼프 인형, 전쟁 반대를 외치는 구호와 휘날리는 사드반대 깃발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통일의병도 촛불우산들고 기념촬영.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미 대사관 앞을 가득 메운 1만여명의 참가자들이 우산도 접고 평화의 노래를 불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미 대사관 앞을 가득 메운 빨간색 촛불우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괌 위력시위사격은 세계주도권 결정할 역사적 대결전

괌 위력시위사격은 세계주도권 결정할 역사적 대결전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8/16 [05:2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7년 8월 1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지도한 지하의 전략군 지휘실과 통합조종실     ©자주시보
▲ 2017년 8월 14일 김정일 국무위원장이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현지지도한 지하 갱도의 전략군 지휘실     ©자주시보

 

15일 연합뉴스 등 국내외 언론들이 중요하게 보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선인민군 전략군사령부 시찰관련 보도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 치닫고 있는 현 북미대결전의 향방을 가늠하는 것이어서 인터넷을 통해 그 원문을 찾아 분석해본 결과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괌 포위사격을 단행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었다.

 

 

✦ 망동 부리면 망신당할 것

 

인터넷에 올라온 15일 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14일 시찰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반도지역에서 정세를 완화시키고 위험한 군사적충돌을 막자면 우리 주변에 수많은 핵전략장비들을 끌어다놓고 불집을 일으킨 미국이 먼저 옳바른 선택을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미국은 우리에 대한 오만무례한 도발행위와 일방적인 강요를 당장 걷어치우고 우리를 더이상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례적이란 이름 아래 한반도 주변에서 한 해에도 몇 차례씩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합동훈련이 중단되지 않는 한 북의 핵억제력 강화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한반도 군사적 충돌 위험도 높아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전쟁위기가 고조된다고 해도 더는 미국의 군사적 압박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 번 명백히 한 것이다.

 

더불어 미국이 ‘올바른 선택을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면’ 북도 대응을 자제할 수 있음을 암시하였다. 이는 북이 늘 강조해온 북미평화협정을 맺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조치를 의미한다고 판단된다.

 

그러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놈들이 우리의 자제력을 시험하며 조선반도주변에서 위험천만한 망동을 계속 부려대면 이미 천명한대로 중대한 결단을 내릴것이라고,세계면전에서 우리에게 또다시 얻어맞는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리성적으로 사고하고 정확히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망동을 부리면 망신을 당한다’는 것인데,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기간 핵폭격기나 핵항공모함 그리고 핵잠수함 등 핵전략자산들을 동원하여 미국이 북을 압박한다면 바로 괌 포위사격을 단행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망신 즉, 미국의 군사패권에 치명상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그 예상결과까지 지적한 것이다.

 

미국의 소위 대화파라고 하는 세력들도 ‘괌 포위사격을 하면 그것은 전쟁’이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을 함부로 공격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한 것이다. 이는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를 더 명백히 알 수 있다. 

 

▲ 연례적이란 이름 아래 한 해에도 몇 차례씩 미국과 동맹국의 방대한 무력이 동원되어 대북선제타격 훈련을 진행해오고 있다. 8월 하순에 진행하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도 그 중 하나이다.

 

 

✦괌 포위사격에 과연 미국이 반격할 수 있을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의 무모함이 선을 넘어 계획한 위력시위사격이 단행된다면연우리 화성포병들이 미국놈들의 숨통을 조이고 모가지에 비수를 들이대는 가장 통쾌한 력사적순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우리 당이 결심만 하면 언제든지 실전에 돌입할수 있게 항상 발사태세를 갖추고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숨통이 막히고 목울대에 비수 끝이 와 닿았다면 반격은커녕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이 괌을 직격할 위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을 때도 미국은 함부로 북을 건드리지 못했기에 대북공격 핵심거점인 괌 미군기지를 일거에 초토화할 수 있는 위력을 만천하에 보여주게 되면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자들은 더욱 북을 건드릴 수 없게 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괌의 20여만 주민들부터 미국의 대북 압박 공격에 대해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이며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이 실질적으로 북의 미사일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어서 미국 본토의 국민들도 무엇 때문에 북과 전쟁을 하려고 하느냐 한국, 일본 지키려다가 우리를 다 죽일 셈이냐며 미군철수, 북미평화협정체결 요구를 더욱 높여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국, 일본과 대만, 필리핀, 호주의 국민들도 미군에 의존해서는 이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며 자체의 핵무장 등을 무섭게 요구하면서도 북과 관계를 개선하라고 자국 정부에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지 못하게 미국이 세계를 장악한 언론패권을 이용한 여론몰이와 경제보복 등을 내세워 어떻게든 서태평양지대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예전보다 열배 이상의 노력을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무기를 한반도 주변에 전개하여 동맹국들을 달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자체 핵무장을 하려는 나라들에는 경제 압박 등도 가하여 다잡으려고 할 것인데 이 모든 게 다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일이다. 

특히 경제 압박은 자국의 경제적 손해도 감내해야 한다. 지금 중국에 미국이 경제압박을 가하려고 하자 중국도 미국 기업들에 대한 제재로 맞서겠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럴 경우 적어도 한 동안은 미국 경제도 심각한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투자 대비 남는 게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손해만 더 커지는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역사적 순간’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괌 포위사격이 미국 패권에 대한 결정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던 것 같다.

 

▲ 2017년 8월 9일 북은 4발의 화성-12형 탄도미사일로 괌 포위사격을 가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자주시보

 

 

✦ 괌 포위사격의 성격을 '위력시위사격'이라 말한 이유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단이다. 현재 미국의 대화파로 분류되는 세력들조차 괌을 건드리면 북과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이번 일을 북을 공격할 절호의 기회를 얻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것이란 정보를 미리 파악했음에도 모른 척하면서 공격을 유도한 후, 전 미국인들을 대일본과의 결전으로 불러일으켰던 적이 있으니 괌 포위사격을 그런 반격의 계기로 삼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잘 따져보면 둘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 하와이는 심각한 피해를 당했지만 괌 포위사격은 주민들은 물론 미군 한 사람 다치지 않게 주변 공해상을 때린다. 위력만 시위하는 것이다. 하기에 괌의 미국인들은 능력이 있음에도 직접 때리지 않은 북에 대해 오히려 고마워할 수도 있다. 

본토의 미국 국민들도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기에 진주만 공습 때처럼 북을 향해 들고 일어날 가능성은 많지 않다. 

 

또 당시 일본엔 핵무기가 없었다. 일본과 전면전을 벌려도 미국 본토가 치명상을 당할 우려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은 핵과 미국 본토를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 성능을 과시한 상태이다. 괌 타격에 성공하면 북은 빈말을 하는 나라가 아님이 증명되고, 북의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한 미국 언론들과 미국인들의 미심쩍음이 공포로 바뀔 가능성도 높다. 

미국 언론들이 아무리 북과 결판을 보자고 여론몰이를 해도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런 핵공포에 떨며 살아야 하나, 당장 주한미군 철수시키고 북미관계를 좋게 가져가라’는 요구를 높이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괌 포위사격에 대해 ‘위력시위사격’이라고 언급한 이유도 이런 정치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력시위사격이기 때문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아 대북 반발은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도 그 위력에 눌려 북과 맞설 의지를 잃게 하고 북과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 최선임을 인식하게 하겠다는 의도를 담아 괌 포위사격의 성격을 ‘위력시위사격’이라고 규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2017년 2월 8일 리비아 트리폴리정부 국방부 청사에서 리비아 알 - 마흐디 알 바르 바티 (Al-Mahdi Al-Barghathi) 국방 장관과 북 사절단이 회담을 갖고 일체의 군사협력을 진행하기로 논의하였다.  

 

 

✦ 덤

 

만약 북이 괌의 위력시위사격을 성공시키게 되면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은 낡은 걸레쪼가리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미국의 군수산업에 치명타를 가하게 되고 북의 순안공항은 무기상들의 발길로 문턱이 닳게 될 것이다.

이것은 북이 얻게 되는 덤 치고는 아주 큰 덤이 될 것이다.

 

하와이 진주만 공습 당시 세계대전으로 미국은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일본과 본격적인 전쟁을 하게 되면 미국의 군수공장들부터 씽씽 돌아갈 판이었다. 

하지만 괌 포위사격을 미국이 막지 못하면 미국 무기의 신화는 치명상을 당한다. 일단 패트리어트미사일 등이 팔리지 않을 것이며 반대로 북의 미사일 구입 문의는 폭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무기를 가장 많이 사는 중동의 나라들이 특히 그렇다. 7월 21일 자유아시아방송은 대표적 미국무기 대량수입국인 아랍에미리트가 대북제재를 위반하면서 2015년까지 1억 달러 약 천백억원이 넘는 액수의 북 무기를 구입했다고 보도했다. 

2월 10일 엔케이뉴스(nknews)에 따르면 2월 8일 리비아 트리폴리에 이북 사절단이 방문해 리비아 국방장관과 국방부 본부에서 일체의 군사협력에 관한 건을 논의했다고 보도하고 관련사진을 공개했다. 친미정권인 리비아 정부가 국방재건 자체를 북에게 맡겨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전벽해에 가까운 일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북 군사력과 북 무기의 위력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에 괌 포위사격에 성공하면 이런 현상은 더욱 폭발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중동의 맹주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란은 더욱 북과 관계를 강화할 것이며 사우디도 미국만 믿고 있다가는 개털 되겠다며 북과 관계를 트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아프리카 산유국들과 동남아의 자원부국들도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자원부국들은 주변국과 분쟁이 잦은 경우가 많고 자원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강한 군대가 필요하다. 자원 수출로 달러 등 외화는 많이 있다. 그래서 막대한 무기 구입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괌 포위사격, 위력시위사격은 북의 입장에서는 주저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북이 지금까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았다면 정말 미국이 망신을 당하지 않고 북과 관계개선 등 합리적인 해결의 길을 찾을 기회를 많이 준 것이라고밖에 달리 볼 수 없다.

따라서 북은 이제 주저 없이 이를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생각이다.

 

▲ 8월 하순 열리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일정 기간에 북이 괌 포위사격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 자주시보

 

▲ 북이 지난 14일 평안북도 구성일대에서 진행한‘화성-12형'발사모습. 이 미사일 4발이 동시에 불을 뿜으려 괌을 향해 비상하게 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 관건

 

문제는 언제 할 것인가이다.

 

그 효과를 가장 높일 수 있는 때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일 것이다.

현재 국내 언론들과 대북전문가들은 핵전략자산이 한반도 주변에 전개되는 훈련기간에는 감히 북도 미사일을 쏘지 못할 것이고 쏘더라도 훈련이 끝난 후에 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는데 이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훈련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전격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야 북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보여주게 될 것이며 북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가장 똑똑히 증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번 괌 포위사격은 실제 미군타격이 아니라 위력시위를 하자는 것이 아닌가.

 

보건데 미국은 지금 조금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이대로 가면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은 또 사상 최대규모로 진행될 것이며 북은 괌 포위 위력시위사격을 단호하게 단행할 것이다.

 

미국이 그동안 공개하지 않은 비장의 수단을 이용하여 이를 요격할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국방관계자들은 요격할 수 있다고 언론에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 상황이니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이 효과적으로 요격을 하게 되면 북은 궁지에 몰릴 것이며 미국에서의 전쟁불사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또한 미국의 군사패권도 한 층 더 강해질 것이며 특히 서태평양지대에 대한 미국의 장악력은 한층 공고해질 것이다.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세계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넘어오느냐가 갈리게 된다. 정말 ‘역사적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그 역사적 순간을 향해 시간은 분분초초 흘러가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 대통령 사회 지도층 겨냥, 독립투사 이름에 '복선' 깔았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8/16 11:43
  • 수정일
    2017/08/16 11:4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72주년 광복절 경축사 핵심 키워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17.08.15 19:52l최종 업데이트 17.08.15 20:56l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임청각 그리고 이태준, 장덕준, 남자현, 김용관, 나운규.

임청각 뿐이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 72주년을 맞아 호출한 이름들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였다.

문 대통령은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 경축사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 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다. 직업도, 성별도, 나이의 구분도 없었다"며 이태준, 장덕준, 남자현, 김용관, 나운규 등의 이름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다시 직접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거론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출생과 이력을 살펴보면 역시 모두 각각의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다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이날 문 대통령에 의해 다시 돌아온 그 '이름'들을 정리해봤다.

[임청각] 일제가 철도로 절단 내버린 독립운동가의 생가
 

 임청각 앞을 지나는 철도, 일본이 일부러 놓은 것이다.
▲  임청각 앞을 지나는 철도, 일본이 일부러 놓은 것이다.
ⓒ 진민용

관련사진보기


'임청각(臨靑閣)'은 경북 안동시 법흥동에 남아 있는 고택이다. 조선 중종 14년에 형조좌랑을 지냈던 이명이 지은 집으로 원래 99칸이었다고 한다. 퇴계 이황 선생의 친필이 대청에 걸려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 중 하나로 보물 182호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던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며 그의 아들과 손자 삼대를 걸쳐 9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곳이다. 임청각이 2009년 5월 국가 현충 시설로 지정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평가한 것 역시 그래서다.

이상룡 선생의 생애만 보더라도 임청각은 기념할 만하다. 이상룡 선생은 1858년 이 임청각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유학자이며 의병장인 김흥락 문하에 들어가서 학문을 익히다가 을미사변 직후 구국 의병활동에 나섰다. 의병군의 패배 이후 애국계몽운동으로 방향을 틀어 안동에다 협동학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고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조직하는 등 민족 자강운동에 앞장섰다(관련기사 : 언 땅에 조국해방 씨앗 뿌린 선각자).

임청각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이었다. 이상룡 선생은 1911년 10월 신민회의 조국 광복운동 국외기지 건설 참여 제안을 받고 임청각 등의 가산을 정리해 서간도로 떠났다. 그리고 이 선생은 정리한 자신의 재산을 신흥무관학교와 경학사 건설에 모두 썼다. 경학사는 농업과 교육을 통해 독립운동의 자생을 도모했던 단체이며,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청산리 대첩 당시는 물론 이후 의열단에서 활약했던 것 또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일제는 이에 보복하듯 임청각을 절단 냈다. 중앙선 철도를 집을 가로지르게 해 행랑채를 비롯한 부속건물들을 철거시킨 것. 문 대통령은 이런 점을 거론하며 "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고 개탄했다.

또 이상룡 선생의 후손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입에 풀칠하기 위해 석유통을 메고 다니거나, 학교를 다니기 위해 고아원에 가기도 한 것 역시 거론하며 "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다"고 약속했다.

[독립투사 5인] 의사·기자·어머니·과학자·영화감독이었던 독립운동가
 

 이태준 선생(왼쪽)과 장덕준 선생
▲  이태준 선생(왼쪽)과 장덕준 선생
ⓒ 국가보훈처

관련사진보기


문 대통령이 이날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독립투사 5인은 이태준·장덕준·남자현·김용관·나운규 선생 등이다.

대암 이태준 선생은 경남 함안 출신으로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이 선생은 1909년 말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으로 체포됐다가 1910년 석방돼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이던 도산 안창호 선생을 치료하게 된 인연으로 신민회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일제에 신변의 위협을 느껴 중국을 거쳐 몽골로 망명해 '동의의국'을 설립해 활동했다. 특히 당시 몽골인들의 70~80%를 괴롭히던 성병을 치료했고 이에 따라 몽골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까지 지냈다. 이 선생은 이 때 받은 치료비를 항일독립운동에 지원했다. 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그의 병원을 독립운동가들의 숙박지이자 연락거점으로 제공했고 당시 의열단장인 김원봉에게 폭탄기술자를 소개해주는 등의 활동을 했다.

추송 장덕준 선생은 1920년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해 논설반원과 통신부장, 조사부장을 겸한 '기자' 독립운동가이다. 특히 창간 다음날인 4월 2일자부터 4월 13일자까지 '조선소요에 대한 일본여론을 비평함'이라는 논설을 통해 3.1운동을 왜곡 보도한 일본 여론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또 1920년 동아시아를 방문하는 미국의원단 취재를 위해 특파원으로 중국 북경에 넘어가 조선의 독립요구를 알리는데 힘썼다. 장 선생은 그러던 중 청산리 대첩에 대한 일본군의 보복 작전으로 조선인 학살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취재하기 위해 간도 현장에 갔다가 실종됐다.
 

 사진 왼쪽부터 남자현 선생, 김용관 선생, 나운규 선생
▲  사진 왼쪽부터 남자현 선생, 김용관 선생, 나운규 선생
ⓒ 국가보훈처

관련사진보기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이 연기한 '안윤옥' 역할의 '실제 인물'로 알려져 있는 남자현 선생 역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다. 부친은 영남 지역 석학 중 한 사람이었던 남정한으로, 남자현 선생은 어린 나이에 소학과 대학을 통달할 정도로 총명했다고 한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후 아들을 데리고 남만주로 망명했다. 그 곳에서 임시정부 산하인 서로군정서에 입단해 활동하면서 부상병 간호 등을 맡아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우게 됐다.

무장 투쟁에도 적극적이었다. 남 선생은 1925년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주살하기 위한 거사를 준비했고 1931년 만주사변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한 국제연맹 리턴조사단에 손가락 두 마디를 잘라서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라고 혈서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또한 1933년 3월 만주국 전권대사 부토 노부요시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에 나섰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김용관 선생은 발명과학대중화를 이끈 '과학자'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33년 6월 우리나라 최초의 발명과학 잡지 <과학조선>을 창간하고 발명과학 대중화에 투신했다. "과학기술 진흥을 통한 민족 저력의 축적"이라는 목표로 민족운동의 성격을 띤 과학대중화운동을 전개한 '과학지식보급회'를 결성한 주체이기도 했다. 일제는 이를 못마땅히 여겨, 이 운동을 주도한 김 선생을 체포·투옥시켰다.

영화 <아리랑>의 감독으로 유명한 나운규 선생의 아버지는 구한말 군인이었다가 한의사로 기반을 잡아 사립학교까지 세운 인물이었다. 1902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나 선생은 신흥학교 고등과, 명동중학 등을 나와 1919년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또 철도, 통신 등 일제의 기간시설 파괴 임무를 맡았던 '도판부'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1921년 일본에 체포돼 2년 간 옥고를 치르게 된다. 나 선생은 출소 후 영화계에 입문해 <아리랑>, <벙어리 삼룡> 등을 제작해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현직 대통령 중 두 번째로 찾은 효창공원, 그곳엔...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애국지사 김용환을 주제로 한 '아버지, 나의 아버지' 공연을 보던 중 붉어진 눈시울 주변의 눈물을 닦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애국지사 김용환을 주제로 한 '아버지, 나의 아버지' 공연을 보던 중 붉어진 눈시울 주변의 눈물을 닦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한편, 문 대통령이 이날 광복절 경축식 전 효창공원을 들러 참배한 '삼의사' 묘역은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역을 일컬어 칭한다. 현직 대통령의 효창공원 참배는 1998년 6월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1932년 1월 일본 국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졌던 이봉창 의사와 같은 해 4월 중국 홍커우 공원에서 천장절 겸 상하이사변 전승 축하 기념식에 참석한 일본 요인들에게 도시락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는 이미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다. 그들과 함께 묻힌 백정기 의사는 1933년 상하이 훙커우 육삼정 연회에 참가한 일본 주중공사 아리요시를 습격하려다 잡혀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지병으로 사망했다.

이 삼의사 묘역은 백범 김구 선생이 해방 후 귀국하면서 조성한 묘역이다. 특히 최근 개봉한 영화 <박열>로 알려진 박열 선생이 삼의사의 유해 송환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관련 기사 :영화 <박열>이 다루지 못한, 박열의 뒷이야기).

문 대통령은 이날 삼의사 묘역 참배 후 이동영·조성환·차리석 선생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도 들러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선열들이 이룬 광복,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보답하겠다"고 남겼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