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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궤도 수정을 요청한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9/11 11:30
  • 수정일
    2017/09/11 11: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민웅의 인문정신]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있다면?
2017.09.11 09:15:12

 

 

 

전선(戰線)을 추가 확대한 오류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위기 해법이 수렁에 빠졌다. 북의 핵무장 대응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배치를 결정했으나 그것이 핵무장을 저지하거나 평화로 가는 길을 확대할 수 있을까? 물론, 행동반경이 극도로 제약된 조건 속에서 깊은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드 배치는 전쟁에 대한 억지력 강화도 아니고 평화를 기대하게 하는 방식도 아님은 분명하다. 둘 중에 하나라도 된다면 혹 모르겠다. 하지만 잃은 것만 있고 얻은 것이 없다면 그것은 조속히 궤도 수정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국내적으로는 지지기반에 균열이 생기고 소성리 현장의 분노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이에 더하여 상호 파멸적인 전술핵 도입과 핵무장까지 거론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구매 부담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중국의 반격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일본은 한-일관계의 역사적 사안에 대한 논란에서 빠져나와 미국을 대리하여 한-일 협력이라는 틀 아래 한반도 위기 관리자로 행세하려는 움직임이다. 러시아는 대북 압박 정책의 동반자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의 외교적 체면이 깎이고 말았다. 이 가운데에서 문재인 정부가 원했던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사드 배치는 기본적으로 한반도 남쪽이 미국의 대 중국 미사일 시스템에 편입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사드 개발이 미국의 미사일 시스템의 핵심요소라는 것은 공식적인 사실이며 이로써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는 미국과 중국 간 대치전선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 체제 억지나 해체 내지 대응효과에도 가치가 없고 한반도 위기의 평화적 해결에도 기여하지 못하는 사드 체제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은 기존의 대북 전선에 남쪽 지역의 전선이 추가되어 2중 전선이 형성되고 만 것이다.  
 
전선의 추가와 확대가 뜻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평화보다는 전쟁의 가능성이 보다 높아진 것이 사드배치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드배치 결정은 위기의 평화적 해법을 위한 영토를 축소시켜버린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이토록 우려가 깊은 것이다. 사드배치와 함께 수조원대의 이른바 첨단무기 구입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은 이를 말해준다. 이와 같은 미국의 무기시장 확대는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유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구조적 요인이 된다. 평화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에게 적이다. 평화로 가는 길에 장애요인이 더욱 두터워지게 되는 것이다.  
 
압박받은 당사자는 북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 아닌가? 
 
결국 정작 사방에서 압박을 받게 된 것은 북이 아니라 우리다. 미국으로부터 가해지는 사드 배치와 무기구입 압박, 중국의 경제 압박, 북한의 핵무장 압박, 대북 대응을 내세운 일본의 고압적 자세와 군사대국화 가속, 북을 통과하는 러시아와의 북방경제협력체제 난망이라는 사태는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이는 대북 전략에서 핵심적 판단이 되어야 할 북한의 논법과 태세에 대한 이해가 분명치 않고, 국제협력체제 구성에서 요구되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정세의 본질과 우리의 해법이 주도할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하지 못한 결과이다. 관점과 예측에 오류가 있으면, 즉각 수정하는 것이 답이다. 
 
북에 대한 국제적 제재와 군사적 압박은 통하지 않은 지 이미 오래다. 그러한 방식은 도리어 북의 위기의식을 높여 핵무장의 정당방위적 절실성을 확신하는 쪽으로 몰아갔다. 지난 시기의 과정이 이를 입증해준다. 비핵화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핵무장의 문이 열린 것은 그 사이에 평화적 해법에 기대를 걸어도 통하지 않았던 상황이 존재한 결과다. 미국에게 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계속 요구했던 것은 북이었고, 이를 거부하고 군사적 소멸 대상으로 북을 대했던 것은 미국이라는 사실은 북에게 무엇을 의미했을까? 그 반대가 아니었다. 
 
가령 2000년 클린턴 정부 당시 북의 2인자 조명록 차수의 방미와 잇따른 올브라이트의 방북, 그리고 북미 공동선언은 그간의 꾸준한 대화노력으로 북한과 미국 사이의 수교 직전의 상황을 뜻했다. 하지만 이는 이후 들어선 부시정부에 의해 좌절된다. 수교논의의 대상이었던 북은 그간 미국과 진지하게 서로 오갔던 이야기와는 달리, 졸지에 미국에 의해 박멸되어야 할 악의 축이 되고 만다. 그 충격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을 것이다. 
 
북의 의도와 관련해 던져야 할 질문 
 
이런 식으로 적대적 군사정책 앞에 놓인 국가가 평화적 대화의 가능성이 봉쇄되어 있다고 여긴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압박에 굴복을 하거나, 이에 끝까지 저항하면서 자기 방식으로 생존의 길을 확보하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다. 미국은 전자를 원했고, 북은 후자를 택했다. 북한의 핵무장이 가진 본질은 여기에 있다. 당연히 이는 핵무장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것과는 별도의 분석이다. 이때 현실적으로 필요한 질문은 북이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끝까지 불사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수교를 통한 관계 정상화가 최종 목적인가 하는 것이다.  
 
북의 행태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판단요소가 있다. 체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막강한 자위력이 부재할 경우 미국이 적으로 지목했을 때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었는지는 이라크의 후세인과 리비아의 가다피가 이미 잘 보여준 역사적 사례가 있다. 미국은 이렇게 끝날래, 아니면 말 들을래?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자기 방어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선택으로 기울 수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하자면, 점령정책과 함께 정권교체(regime change)와 참수작전(decapitation operation)까지 준비되어 있는 미국의 전략지침이 수시로 언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결정적 비중을 가진 자기방어체제로 인식하고 있는 핵무장 해체를 일방적으로 요구한다고 해서 상대가 이를 받아들일까? 더군다나 북한과 미국의 수교를 좌절시킨 아들 부시 이후 미국의 핵 태세(nuclear posture)의 기본전략은 "핵 선제공격(nuclear pre-emptive strategy)"이며 참수작전은 상대방 지휘부에 대한 핵공격과 지도부 제거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은 어떤 선택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체제의 생존은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그 어떤 체제도 예외 없이 절대적인 요구다. 상대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체제보장과 자신이 주도권을 그마나 놓치지 않고 잡고 있는 방식 가운데 어느 쪽이 지속가능하고 유리한 방식인지는 자명하다. 우리의 대북정책과 한반도 해법의 출발점은 이와 같은 북의 인식과 관점, 태세를 이해하는 작업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 제 아무리 강력한 압박과 제재라고 할지라도 체제의 생존을 내어주는 방식은 항복하기 이전에는 결코 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 위협요소의 동시소멸과 평화보장의 구조 확보  
 
해법은 분명하다. 북한의 핵무장은 남쪽의 군사력 강화에 대한 대응이 아니다.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대응이다. 핵과 미사일 실험의 실제적 방향이 미국을 향한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당연히 핵무장과 이에 기초한 전략은 해체되어야 한다. 결국 상호 위협이 될 조건을 함께 소멸시키면서 평화와 수교를 위한 대화로 가는 길을 여는 것 외에는 없다. 이에 주저하거나 이를 가로막으려는 행위는 한반도 평화를 방해하는 책동에 말려들거나 그 책동 자체일 수밖에 없다. 북의 편인가, 남의 편인가, 아니면 미국이나 중국 편인가 하는 논란은 위기의 본질에 다가서는 노력을 가로막을 뿐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큰 피해는 남과 북 우리 민족 전체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활동과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쌍중단 (雙中斷)과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체제 협상을 병행 추진하는 것을 뜻하는 쌍궤병행(雙軌竝行)은 중국의 시진핑만의 제안이 아니다. 최종 목적지는 북한과 미국의 수교다. 동북  아시아의 적대구조는 이로써 사라진다. 문재인 정부로서도 충분히 주도할 수 있는 대안이다. 상대에게만 대화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라는 요구는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대화는 조건이 맞아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조건을 만들기 위한 돌파형 대화도 있는 법이다. 
 
상대가 위협하면 이쪽도 위협수단을 추가로 갖추어 폭력의 상승과정(escalation of violence)을 밀고 나가면 긴장이 최고도에 달한 어느 지점에서 멈추고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벼랑 끝 치킨 게임은 우발적 요소가 가세할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위험요소를 하나하나 관리하면서 상호 합의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적대적 관계를 정상화하는 절차에 가장 필요한 방식이다. 
 
평화협정과 북한-미국 수교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은 우리에게 절체절명의 평화정책이다. 이런 목표와 의지가 분명할 때 남북대화도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평화협정 논의 시 북이 제기할 미군철수 문제는 과거에도 이미 남북이 나눈 구상대로 미국의 지위와 역할 변경을 통해 풀어갈 여지가 충분한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역사가 열린다. 그런 차원에서 촛불시민혁명의 성과 위에 서 있는 정부로서 이번 선택의 불가피성을 고뇌스럽게 토로한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지지자들이 비판을 자제하고 그 고충을 이해하는 가운데 방향 전환을 기대하고 있는 까닭도 문재인 정부를 통한 역사의 전환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 변화를 위한 제언 
 
세 가지 제언을 한다. 
 
첫째, 이번 결정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설명의 의무가 부족했다. 따라서 깊은 논의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공개하면서 할 수 없는 사안이겠으나 민족의 운명이 달린 문제라는 점에서 시민사회 각계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듣고 정책의 역량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 장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그에 더하여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이들의 견해를 듣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역대 통일부 장관들의 전문가적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상황이 이전과는 달라졌기에 과거의 논리와 정책을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어떤 일도 역사적 과정 위에 있다. 단절된 경험과 인식은 위태롭다. 아마추어리즘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와 한반도 문제의 해법에 관련된 본질적 원리는 한국 전쟁 이후 달라진 바가 없다. 남쪽이 함께 하는 평화협정 체결과 북한-미국 관계의 정상화가 그 초점이다. 남북 대화를 직접 담당해온 역대 통일원 장관들의 경험과 고견은 오늘의 정세를 풀어 가는데 긴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셋째, 북이 핵무장하고 있는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라는 기조를 바꾸어야 한다. 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대화가 절실한 국면이다. 대화의 의의는 여기에 있다. 이를 부정하는 순간, 군사적 대응의 길만 열린다. 그러다가 대화로 돌아오기에는 매우 먼 길에 가 있을 수 있다.  대화 제의를 해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멈추거나 지레 포기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특사, 밀사, 비밀협상 등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많고 많다. 민족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주변 강대국들과의 외교와 설득은 이런 토대 위에 있을 때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고래 싸움에 괜하게 휘말리지 말고, 더욱 강력한 물리적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끌려가지 말며 인내와 지혜로 차분하게 대응할 일이다. 우선, 사드 4기는 현장에 옮겼으니 더 이상의 조처는 그걸로 멈추고 사드 배치의 구체적 절차는 동작 중지해야 옳다. 명분과 논리는 간단하다. 한반도 평화 구상에 대한 새로운 기조 마련을 한 이후에 배치 여부를 확정하는 순서를 밝겠다고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임시배치라고 했으니 이런 결정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사드 배치는 감당할 수 없는 갖가지 재앙의 시작일 뿐이다. 
 
잘못된 궤도 수정은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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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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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두번 죽인 언론인들 파업, 왜 지지 하냐면"

 

세월호 유가족 유경근씨, 파업 언론인 향한 '통한의 절규' 화제

17.09.10 17:24l최종 업데이트 17.09.10 18:07l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예은 아빠' 유경근씨(416가족 협의회 집행위원장)가 지난 8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에서 한 '내가 방송사 파업을 지지하는 이유' 연설이 화제가 되고 있다.

파업에 돌입한 KBS-MBC 조합원들을 향해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돌마고 행사를 SNS에서 알렸는데 '너희 파업을 지지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망가진 언론의 피해자는 여러분들이 아니라 국민들, 예은 아빠인 바로 나다",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서 나를 두번 죽인 건 사장이나 보도본부장이 아닌 그 현장에 있던 바로 여러분들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사 유가족으로 MBC·KBS 기자들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는 유 위원장은 이들의 파업을 적극 지지하는 이유를 "여러분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편하게 근무하라는게 아니라, 바로 내가 또다시 죽고 싶지 않아서, 내가 언론때문에 또다른 고통을 받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유 위원장은 듣고 있는 KBS·MBC 파업 참가자들을 향해 "공부하십시요, 분석하고 비판하십시요", "사실보도라고 하는 그 중립성 뒤에 숨지 마시기 바란다"고도 했다. 무비판적이고 받아쓰기에 익숙해져버린 언론인들의 각성과 공영방송 보도의 환골탈태를 역설한 것이다. 
 

파업 언론인을 향한 세월호 유가족 '통한의 절규' 8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행사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연설. (화면켭춰)
ⓒ 권우성

 

파업 언론인을 향한 세월호 유가족 '통한의 절규' 8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행사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연설. (화면켭춰)
ⓒ 권우성

 

파업 언론인을 향한 세월호 유가족 '통한의 절규' 8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행사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연설. (화면켭춰)
ⓒ 권우성

 

파업 언론인을 향한 세월호 유가족 '통한의 절규' 8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행사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연설. (화면켭춰)
ⓒ 권우성

 

파업 언론인을 향한 세월호 유가족 '통한의 절규' 8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행사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연설. (화면켭춰)
ⓒ 권우성

 

파업 언론인을 향한 세월호 유가족 '통한의 절규' 8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행사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연설. (화면켭춰)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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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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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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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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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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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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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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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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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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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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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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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외교안보 라인 물갈이 해야” 여론 확산

국가안보실 ‘친미 일변도’ 비판 고조… 문 대통령도 대북 행보 점검 기회로
▲문재인 대통령이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시작된 지난달 21일 오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 청와대 홈페이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을 물갈이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민주개혁성향의 언론인은 물론, 정치인들과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이 사실상 청와대 국가안보실 개편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국가안보실에 대해선 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안팎에서 ‘제2의 외교부’, ‘친미 일변도’란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온 터다.

더욱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 회담에서 드러난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추종, 제재 일변도의 대북 외교행보가 도를 넘어선 수준이란 우려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의 자문그룹 ‘10년의 힘 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7일 문 대통령의 푸틴 러시아 대통령 회담 때 ‘대북 원유 중단’ 발언을 두고 “문 대통령이 완전히 아베처럼 돼 가고 있다”며 쓴소리를 했다. 정 전 장관은 이날 저녁 한반도평화포럼 월례토론회에서 “일본도 아닌 한국 외교부가 유엔 대북제재를 선도하고 나서면 어떻게 하느냐”고 개탄하면서다. 앞서 정 전 장관은 지난 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미동맹을 이용해서 거꾸로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과)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설득하는 것이 한국 정부가 할 일”이라며 “대한민국 정부가 지금 그걸 안 하면 직무유기”라고 현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전략부재의 근시안적인 외교안보와 대북 정책의 기조와 방향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한반도 운전자론’은 고사하고 과거 수구보수정권들처럼 대북관계에서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걱정이기도 하다. 외교안보 라인 물갈이를 통해 문 대통령 역시도 그동안의 대북 행보를 돌아봐야 한다는 주문이기도 하다.

7일 개혁성향의 한겨레는 <한국 외교에 전략가가 없다>는 제목의 박민희 국제 에디터 칼럼에서 “북한의 막무가내 도발과 핵·미사일 문제 악화라는 변수를 중심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지각판이 요동치고 있다. 쉬운 해법은 없다”면서 “한국의 시각에서 명확한 전략적 중심을 잡고 새 지도를 그려 길을 뚫어갈 수 있는 전문성과 담대함을 갖춘 전략가들로 새 외교안보팀을 짜야 한다”고 밝혔다. 이유는 “북한의 도발 때마다 제재 강화와 새 무기 도입 주문만 외워서는 위기에서 헤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에서 약점을 보인 결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가장 만만한 상대로 여기며 한국이 거액을 내야 할 명세서들을 계속 내밀고 있다”며 “미사일 탄두중량 제한 철폐를 인심 쓰듯 했지만, ‘수십억달러 미국산 무기와 장비 구입’이 대가”라고 비판했다.

지난 5일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국회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5대 긴급 제안’을 하면서 “준비되지 않은 한-미 정상회담부터 추진해 한반도 평화외교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실책을 거듭하고 있는 외교안보 참모라인을 전면적으로 쇄신해야 한다”고 목소리르 높였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북한에 대통령 특사를 보내 조건 없는 대화를 시작하고, 주변국 정상과의 적극적 평화외교를 전개해야 한다”며 “여건이 성숙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외교의 틀을 제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도 지난 4일 페이스북에 “지금까지의 경과만 놓고 보더라도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초기정책은 실패했다. 실패를 인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를 인정해야 새 출발이 가능하다”면서 “새 출발을 위해 외교안보 사령탑을 교체하라. 그것이 새로운 전략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외교안보 사령탑의 교체를 주문했다. 정 의원은 “사드를 배치하고, 제재에 매달리고 한미일 삼각공조를 강조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논리다. 문재인 정부가 왜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안타깝다”면서 “동북아 질서를 한-미-일 삼각공조 대 북-중-러 북방삼각 구도로 끌고 가는 한 북은 남을 상대할 까닭이 없고 북핵 해결을 위한 한중-한러의 협조 또한 어려워진다”고 정부 외교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또 “한반도 문제에 대해 우리가 역할을 해보겠다는 ‘한국 운전자론’은 문재인 정부 스스로 의지를 포기한 듯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25일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길 잃은 외교안보, 대전환하라>는 제목의 기명칼럼에서 “당장 외교안보 참모를 바꿔라”고 채근했다. 이 위원은 “도전적이고 과감한 돌파, 상황 주도하기는 현재와 같은 외교관료 중심의 참모를 두고는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한반도 안보환경이 고착되고 나면 너무 늦었다고 후회할 수 있다. 아직 여지가 있을 때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그러면서 “초기 실패는 교훈이 되고 그 교훈이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다면, 초기 실패는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성공을 위한 보약, 지금 먹어야 한다.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를 교체, 문대통령이 제 길로 들어섰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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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추가배치에 흔들리는 국내기업들

 
윤정헌 기자 yjh@vop.co.kr
발행 2017-09-09 17:25:51
수정 2017-09-09 18:4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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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잔여발사대의 추가 배치를 위해 관련 장비를 실은 미군 차량들이 사드기지로 진입하고 있다.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잔여발사대의 추가 배치를 위해 관련 장비를 실은 미군 차량들이 사드기지로 진입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한국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설치에 따라 그동안 중국의 ‘사드보복’에 피해를 입어 온 국내 기업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사드 추가 배치로 인해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더욱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상 올해 중국 시장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조차 접을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정부는 7일 경북 성주에 사드 잔여발사대 4대를 추가 설치했다. 앞서 설치한 2대와 함께 사드 1개 포대가 완성됐다.

이에 중국 정부는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환구시보는 사드가 추가 설치된 7일 “사드도 북한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악성종양”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실제 주중한국대사관은 “중국인과의 접촉시 불필요한 논쟁을 삼가라"라는 내용의 공지를 홈페이지에 게재, 중국 현지의 불안한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양국 간 긴장 상태가 고조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실제 중국에 진출한 화장품 업계와 중국 관광객(유커)들을 상대로 하는 호텔업계 등은 손쓸 방안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7 대만 한류상품박람회(KEBB)’ 자료사진
‘2017 대만 한류상품박람회(KEBB)’ 자료사진ⓒ뉴시스

정치·외교 문제 '사드보복'... 대응책 마련조차 어려워

국내 화장품 업계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사드 추가 배치 전부터 중국 내 반한 감정과 중국인 관광객 급감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 1위 화장품 업체인 아모레퍼시픽의 피해는 한마디로 ‘반토막’이었다. 중국 시장에 집중했던 아모레퍼시픽이었기에 2분기 영업이익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올해 2분기 매출 1조4130억원, 영업이익 1304억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7.8%, 57.9% 감소한 수치다.

매출 감소는 LG생활건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장품 부문에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었다. 올 2분기 화장품 부문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7812억원, 1487억원으로 지난해 2분기 대비 4.7%와 2.7%씩 감소했다. 아모레퍼시픽과 비교해 감소 폭이 적은 편이지만 양쪽 모두 화장품 부문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감소했다는 얘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 사드가 추가 배치되자 화장품 업계가 바라보는 중국 시장에 대한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 앞선 '사드보복'으로 발생한 피해에 비해 얼마나 더 큰 피해가 발생할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 “국내 추가 배치된 사드로 인한 향후 여파에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자세한 언급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사드 배치가 국가의 정치·외교적인 문제인 만큼 회사가 나설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한정적”이라며 “대책 마련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이 또한 사드에 대한 대책이라기보다 현지에 맞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일뿐”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에서 북적이던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 쇼핑을 하고 있다.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에서 북적이던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 쇼핑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중국 관광객 감소 이미 ‘최악’... 
“사드여파 지속시 영업포기 저가 호텔 속출할 것”

이번 사드 추가 배치는 중국 관광객 급감으로 흔들리던 호텔업계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드 추가 배치 전부터 한국 여행상품 판매금지 즉, '금한령' 조치로 급감한 유커들로 인해 유례없는 불황을 겪고 있는 국내 호텔업계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방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지난 3월 전년대비 38.9% 줄어들었다. 4월 65.1%, 5월 61.5% 등이 감소하며 석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중국의 사드 보복이 중단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지만, 추가 사드 배치로 ‘사드 사태’의 장기화는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국내 대형 호텔들의 경우 단체가 주를 이루는 중국인 관광객 감소로 인한 영향이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저가의 중·소규모 호텔들의 경우 주 고객층의 이탈로 큰 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장기화될 '사드보복' 사태에 대해 '버티기' 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이 호텔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난 3월부터 이어진 '금한령'으로 중·소규모 호텔들의 자금 사정이 한계에 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저가용 호텔들의 경우 기존 사드 여파로 인해 이미 최악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이라며 “추가 사드 배치로 인해 현 상황이 지속되면 사실상 영업을 포기하는 곳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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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수소탄폭음, 간고한 세월 이긴 인민의 위대한 승리"

ICBM용 수소탄 시험 성공 관계자에 축하공연.축하연회.기념촬영 등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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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0  10: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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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 성공한 핵과학자, 기술자 등을 위한 축하공연에 리설주 부인과 함께 참석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 성공한 핵과학자, 기술자 등을 위한  축하공연과 축하연회를 개최하고 이들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했다고 <노동신문>이 10일 보도했다.

축하공연과 연회, 기념사진 촬영은 북한 정권 창건 69주년인 9일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부인 리설주와 함께 축하공연장인 인민극장에 나온 김정은 위원장과 국방과학부분 책임일꾼들과 핵과학자, 기술자들이 관람석에 나와 있는 가운데 "출연자들은 존엄높은 우리 공화국이 탄생한 경사로운 9월에 수소탄의 거대한 뇌성을 가장 장쾌한 승전가로 어머니 조국에 삼가 드린 개선영웅, 우리의 자랑스러운 핵과학자, 기술자들을 축하하여 환희로운 공연무대를 펼쳐놓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공연은 애국가로 시작해 김 위원장의 핵무력건설 업적을 칭송하고 당의 병진노선을 옹호하며 충성을 다짐하는 내용으로 남녀 독창과 합창, 중창이 이어졌다.

   
▲ 김 위원장은 이날 축하연회에 참석해 지난 수소탄 시험에 대해 '간고한 세월 허리띠를 조이며 피의 댓가로 이루어낸 조선인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강조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이날 목란관연회장에서는 김 위원장과 함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박봉주 내각총리, 최룡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해 당과 국가, 군대의 책임일꾼들이 참가한 가운데 당 중앙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핵과학자, 기술자, 관계자들을 초대해 축하연회를 진행했다.

김 위원장은 연회장에서 수소탄 시험성공에 기여한 관계자들과 함게 육.해.공군 및 노농적위군 명예위병대를 사열한 뒤 "조선노동당의 병진노선을 높이 받들고 국가핵무력 완성의 완결단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되는 역사적인 수소탄 시험에서 완전 성공함으로써 당 제7차대회정신을 결사보위하고 백두산대국의 선군혁명 병기창을 더욱 튼튼히 다지는데 기여한 핵과학자,기술자들에게 뜨거운 답례를 보냈다"고 신문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핵개발자들을 '핵전투원'이라고 부르면서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가 제시한 부문별 과업을 제일 당당하게 현실적으로 관철'했다며, "그들에게 당과 국가를 대표하여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고 치하했다.

또 "당 제7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의 선봉에서 기치를 들고 나아가는 핵전투원들의 투쟁정신, 투쟁기풍을 모든 부문, 모든 단위들에서 본받을데 대하여" 언급했다.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행업적을 떠올리면서 "이번에 울린 수소탄의 폭음은 간고한 세월 허리띠를 조이며 피의 대가로 이루어낸 조선인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강조하했다.

김 위원장은 "자위적인 핵억제력을 튼튼히 다져나가기 위한 과학연구사업을 더 야심차게 벌려나갈데 대한 과업을 제시"한 후 "위대한 수령님들(김일성.김정일)께서 마련해주신 튼튼한 자립적 경제토대가 있으며 비상한 두뇌를 가진 과학자 대군과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무장한 군대와 인민, 자력갱생의 투쟁전통이 있기에 주체혁명의 최후승리는 확정적"이라고 강조했다.

리만건 당 중앙위원회 군수담당 부위원장은 이날 축하연설에서 '공화국 핵무력의 총사령관'인 김정은의 위임에 따라 수소탄 시험에서 완전성공한 핵과학자, 기술자, 관계자들을 열렬히 축하한다면서 "핵개발자들의 남모르는 수고와 희생적이며 헌신적인 노력으로 안아 온 이번 특대사변은 어머니조국의 힘을 보다 더 강하게 하였으며 온 세상이 초강력 수소탄을 장착한 실전화된 대륙간탄도로케트까지 가진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 공화국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게 하였다"며, 이들을 '온 나라가 떠받들어야 할 진짜애국자, 숨은 공로자들'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어 "이번 수소탄시험 성공의 축하를 제일 먼저, 제일 열렬히 받으셔야 할분은 우리의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김정은)"라며, "핵무기 병기화를 강국 건설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주체적 열핵무기의 개발전략과 방도를 제시하였으며 몸소 그 실현을 위한 기발한 명안도 안겨주고 무한대의 힘과 용기를 부어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의 노고와 헌신의 만단 사연은 몇백, 몇천권의 책에도 다 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녕 초강도 폭발력을 가진 우리의 수소탄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의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이 응축된 김정은 동지의 수소탄, 조선노동당의 열핵탄"이라고 역설했다.

   
▲ 김 위원장은 금수산태양궁전앞에서 핵과학자, 기술자,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김 위원장은 금수산태양궁전으로 자리를 옮겨 이들 핵과학자, 기술자,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기념촬영에는 리만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핵개발 책임자로 알려진 홍승무 당 군수공업부 부부장이 함께 참가했다.

   
▲ 김 위원장 부부가 공연장에 자리를 함께 했다.[캡쳐사진-노동신문]
   
▲ 이날 축하공연은 인민극장에서 진행됐다. [캡쳐사진-노동신문]
   
▲ 공연은 애국가로 시작해 김 위원장의 핵무력건설 업적을 칭송하고 당의 병진노선을 옹호하며 충성을 다짐하는 내용으로 남여 독창과 합창, 중창이 이어졌다. [캡쳐사진-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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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명의 탈북 종업원, 국정원이 '특별관리'해야 하는 이유

 

[집중분석-국정원 9대 적폐사건⑨] 기획탈북 의혹 사건

17.09.09 20:43l최종 업데이트 17.09.09 22:50l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국정원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가장 나쁜 선례'였다.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안보'만을 수호했기 때문이다. 그 9년의 시간 동안 일어난 '적폐'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국정원 개혁을 얘기할 수는 없다. <오마이뉴스>는 국정원개혁발전위(13개)과 국정원감시네트워크(15개)가 선정한 국정원 적폐사건 목록 가운데 총 9개를 추려서 '어떤 사건'인지, '무엇'을 재조사해야 하는지를 집중 분석한다. [편집자말]

한국의 선거에는 '분단 특수성'이 작동한다. '북풍공작'이 대표적이다. 원래 북풍공작은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안전기획부(안기부)의 공작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오익제 편지사건'이나 '재미교포 윤홍준 베이징 기자회견', '충풍사건', '흑금성 사건' 등이 'DJ 낙선'을 목표로 한 '협의의 북풍공작'이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보수적인 집권세력이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성을 이용해 안보위기를 조장하고, 안보논리로 야당을 공격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하려는 시도를 모두 '북풍공작'이라고 부르게 됐다. 그런 광의의 의미에서 보자면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북한 종업원 12명(아래 탈북 종업원)의 탈북 사실을 전격 발표한 것도 '북풍공작'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북풍공작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이 과반 의석(총 167석)을 차지하며 '여소야대'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북풍공작이 1997년에 이어 이번에도 실패한 셈이다. 하지만 '선거용 기획탈북'이라는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이틀 만에 류경식당→푸동공항→쿠알라룸푸르공항→인천공항
 

 통일부는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해 지난 7일 입국했다고 밝혔다.
▲  통일부는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해 2016년 4월 7일 입국했다고 밝혔다.
ⓒ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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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용 기획탈북 의혹의 출발지는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에 위치한 '조선식당 류경'(아래 류경식당)'이다. 식당의 이름인 '류경'(柳京)은 평양의 별칭에서 따왔다. 옛날 평양에는 버드나무(柳)가 많아 '류경'(柳京)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닝보 외에도 심양·단둥·연길 등에서도 '류경'이라는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북한식당이 있다.      

 

닝보는 상하이와 항저우에서 자동차로 2시간 안팎 거리에 있고, 상하이에 이어 중국의 제2의 항구인 닝보항이 있는 항구도시다. 그런 입지조건 때문에 닝보는 '제2의 푸동'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만을 건국한 장제스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직영이나 합작 등의 형태로 해외식당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닝보의 류경식당은 '조선식당 류경'이라는 간판을 달았지만 소유주나 경영자가 모두 중국인(닝보 출신)이었다. 직영 형태의 해외식당이 아니라 인력(여성 종업원)만을 공급하는 합작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개 층을 쓰는 류경식당에는 총 21명의 북한 사람들이 근무했다. 남성 지배인과 부지배인 2명, 여성 종업원 19명이 상주한 것이다. 지배인과 부지배인은 여권 관리 등 여성 종업원들을 관리·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여성 종업원들은 홀에서 서빙했고, 점심과 저녁 때 각 30분씩 무대에 올라 공연도 열었다. '봉사무역 접대원'으로 불리는 이들이 북한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소속이라는 설이 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5일 1명의 남성 지배인과 12명의 여성 종업원들이 상해 푸동공항으로 급하게 이동했다. 이들이 '어떻게' 이동했는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날 식당 뒷문에 도착한 소형버스를 타고 이동했다는 주장도 있고, 택시를 타고 순차적으로 이동했다는 주장도 있다.  

상해 푸동공항으로 이동한 이들은 다음날(4월 6일) 새벽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의 안가에 머물다가 저녁 때 다시 쿠알라룸푸르공항으로 이동했다. 중무장한 말레이시아 경찰이 이들을 공항까지 호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한한공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4월 7일). 

이들이 입국한 다음날인 4월 8일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긴급 브리핑을 통해 "북한 해외식당에서 근무하는 남자 지배인 1명과 여자 종업원 12명 등 13명이 집단 탈출해 7일 서울에 도착했다"라고 발표했다. "북한식당 이용 자제 계도 등 한국의 독자적 대북제재가 집단탈북으로 이어졌다"라는 '정치적 의미'가 곁들여졌다. 게다가 이들이 입국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까지 제공됐다. 20대 총선일(4월 13일)을 고작 닷새 앞둔 때였다. 

'기획탈북 의혹'을 자초한 몇 가지 이유

하지만 불분명한 탈북 동기, 이틀 만의 입국, 입국 다음날 탈북 사실 전격 발표, 입국 사진 제공 등은 '기획입북 의혹'을 자초했다. "박근혜 정부가 '북풍'을 일으켜 여당에 유리한 선거국면을 만들기 위한 기획탈북이다"라는 지적이 나왔다. 북한쪽도 "국정원이 식당 지배인을 매수해 종업원들을 유인해 납치극을 벌였다"라고 비난했다. 

먼저 탈북 동기다. 통일부는 당시 "해외에서 생활하며 한국 TV와 드라마, 영화, 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의 실상과 북한 체제 선전의 허구성을 알게 돼 최근 집단 탈북을 결심했다"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 문제가 있거나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린 경우 탈북해왔다는 경험칙에 어긋나는 설명이다. 

일부에서는 지배인 허아무개씨에게 '돈문제'가 생기자 허씨가 식당을 중국에서 말레이시아로 옮긴다고 종업원들을 속여 탈북시켰다는 시각이 있다. 허씨가 중국인 사장에게 150만 위안(한화 2억6500만 원)의 빚을 졌다는 증언이나 북한으로 돌아간 나머지 7명의 종업원들이 "말레이시아로 가는 줄 알았다"라고 증언한 것 등이 이러한 시각을 일부 뒷받침한다. 

신속한 입국 과정도 의혹투성이다. 탈북민들이 제3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보호요청, 합동심문조사, 입국을 위한 서류 준비 등 최소 한 달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탈북 종업원들이 류경식당을 떠나 말레이시아를 거쳐 한국에 들어온 데는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국정원이 정부 당국과 협의해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탈북민들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입국하기는 불가능하다.  

지난해 8월 18일 지배인 허아무개씨를 접견했던 채희준(민변 통일위원장) 변호사는 "해외 탈북민이 한국에 가겠다고 하면 북한 사람이 맞는지, 진짜 한국행을 원하는지, 동기가 무엇인지 등 현지에서 4주간 조사하는 절차를 밟는다"라며 "그런데 식당을 떠난 지 이틀 만에 한국에 들어왔다, 국정원에 연락한 지배인은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종업원들을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데리고 온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탈북 종업원 12명과의 변호인 접견을 시도해왔던 장경욱(민변 '북 해외식당종업원 기획탈북의혹사건 대응 TF 팀장) 변호사는 "국정원이 허씨에게 비행기값으로 1000만 원을 줬다는 진술이 나왔고, 사전에 말레이시아 당국의 협조를 구해서 중무장한 경찰들의 호위를 받은 것 등을 감안하면 사전에 허씨와 국정원이 기획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입국하기 두 달 전에 '한국행'이 결정됐다는 얘기도 있다. 채희준 변호사는 "허씨가 '한국 드라마를 본 것이 문제돼 송환될 것 같아서 두 달 전 토론을 벌여 전부 한국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당일 7명의 종업원이 갑자기 안 가겠다고 해서 그들만 남았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허씨가 진술한 대로 탈북 종업원들이 두 달 전에 한국행을 논의했다면 국정원이 이들의 입국을 준비할 시간은 있었던 셈이다. 다만 한국 드라마 시청 때문에 본국으로 송환될 것이 두려워 한국행을 결정했다는 허씨의 진술은 상당히 허술해 보인다. 

탈북 종업원들의 입국 사실을 전격 발표하고, 입국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까지 제공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통일부가 2000년 이후 탈북민의 신분과 탈북 경로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공개 원칙'을 스스로 어긴 것이다. 그동안에는 탈북민이 김씨 일가 등 로열 패밀리거나 고위급 인사일 경우에만 탈북 사실과 신분 등을 공개해왔다.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였던 이한영씨나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지난해 입국한 북한 종업원들은 해외식당에서 근무해온 종업원들이다. 통일부는 "북한의 해외식당에 파견되는 직원들은 대체로 중산층에 속하고 성분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지만, 이들은 로열패밀리나 고위급 인사와는 거리가 멀다. 지배인 허씨조차 "입국 사실을 공개할 줄 몰랐다"라고 언론에 토로한 바 있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29일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정보기관의 기획탈북이었다"라고 지적하자 서 후보자도 "어떤 연유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너무 빠른 시간에 언론에 공개됐다는 점은 평소와 다르다고 느꼈다"라고 답변했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무엇' 때문에 탈북 종업원들의 입국사실을 서둘러 발표해야 했는지 등이 밝혀져야 한다. 특히 복수의 정부 당국 관계자들로부터 "집단 탈북 공개 브리핑은 청와대의 지시로 갑작스럽게 하게 됐다"라는 증언이 나왔다는 점에서 '청와대 지시 여부'도 조사해야 한다. 당시 통일부는 "북쪽에 남은 가족의 신변이 위험해지고, 탈북 사실을 비공개로 해온 전례에도 어긋나는 일이다"라며 집단 탈북 공개를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원에 입소하지 않고 보호센터에서 바로 사회 진출?
 

 경찰청이 지난 8월 25일 서울 고등법원에 제출한 '사실조회 회보서'.
▲  경찰청이 지난 8월 25일 서울 고등법원에 제출한 '사실조회 회보서'.
ⓒ 민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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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엇보다 탈북 종업원들이 입국한 이후에 벌어진 '특별관리'가 기획탈북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통상 탈북민이 입국하면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아래 보호센터, 옛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70일(위장 탈북이나 간첩 혐의 등이 있을 경우 최장 180일) 동안 합동신문을 받은 뒤 통일부 산하 탈북민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에 입소해 12주 동안 정착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온다. 이후 하나원에서 나온 탈북민들의 신변관리 업무는 통일부와 경찰로 넘어간다.  

하지만 탈북 종업원들은 하나원에 입소하지 않았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바로 보호센터에서 나와 올 3월 대학에 특례입학했다(이것조차도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 당국이 밝힌 대로 탈북 종업원들이 사회에 나왔다면 대체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데도 이들의 행적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배인 허씨조차 지난해 5월 하순부터 종업원들과 완전 분리됐다. 이들과 접촉한 곳은 국정원(보호센터)이 거의 유일하다.   

채희준 변호사는 "탈북민들이 하나원을 나와 사회에 배출되면 보통 탈북민 네트워크를 통해 행적 등이 확인된다"라며 "하지만 탈북 종업원들의 경우 지금까지도 행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사회에서 격리돼 있다"라고 말했다. 

민변이 지난해 5월부터 지배인 허씨를 제외한 탈북 종업원 12명과의 변호인 접견을 여러 차례 신청했지만 국정원은 이를 거부했다. 박영식 보호센터 인권보호관은 지난해 5월 탈북 종업원 12명을 면담한 직후 "모두 민변과 접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라며 "종업원들은 특히 '우리를 잊어 달라'고 한다"라고 전한 바 있다.   

장경욱 변호사는 "지난 7월 6일 보호센터장을 만나서 '북에 있는 가족들이 애타게 찾고 있다'며 종업원 접견을 요구했고, 센터장도 '접견을 주선하겠다'고 했다"라며 "하지만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결국 접견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장 변호사는 "(국정원 등 정부 당국은) '자진탈북이 확인되면 북의 가족이 위태로워진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총선 전에는 집단 탈북을 발표했나?"라고 꼬집었다. 

또한 민변은 지난해 5월 북한쪽 가족들의 위임을 받아 법원에 인신구제를 신청했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법원은 심문기일을 1주일 연기하면서까지 여성 종업원 12명이 모두 법정에 나올 수 있도록 하라는 출석명령 소환장을 국정원에 보냈지만 종업원들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국정원은 "탈북 종업원들의 보호결정이 해제돼 경찰과 통일부가 이들의 신변을 관리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경찰청에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이에 경찰청 보안국은 지난 8월 25일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사실조회 회보서'에서 ▲ "작년 8월 보호센터를 퇴소했고" ▲ "희망하는 지역에 거주지를 배정받아 개별적으로 거주하고 있고" ▲ "전화통화, 서신교환, 대면방문 등 외부와의 접촉 및 왕래도 자유롭다"라고 답변했다. 

경찰청이 법원에 제출한 사실조회 회보서에 따르면, 탈북 종업원 12명은 "신변이 노출되는 것이 싫다", "다른 탈북민처럼 조용하게 살게 해 달라", "신변이 노출되다 보면 제가 이 나라에서 살 수 없다", "더 이상 이런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탈북 종업원 모두가 법정에 출석해서 증언할 의사가 없다는 의사를 피력했다는 것이다.  

통일부 고위인사 "탈북 종업원들은 국정원의 특별보호대상" 

경찰청은 자신들이 탈북 종업원들의 신변을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은 사실조회 회보서에 "경찰에서는 2016년 8월 사회배출 이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 및 동법 시행령'에 의거하여 일반 탈북민과 동일한 신변보호를 실시하고 있다"라고 적시해놓았다.  

보호센터쪽도 "탈북 종업원들이 지난해 8월 퇴소해서 국정원은 손을 뗐다"라며 "통일부에서 이들을 일반 탈북민들과 똑같이 관리하고 있고, 경찰이 신변관리를 위해 첩보를 수집하고 있다, (보호센터 등 국정원은 탈북 종업원 신변관리에서) 주도권이 없다"라고 밝히고 있다. 
 

 국정원 민원담당관이 지난 7월께 채희준 변호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  국정원 민원담당관이 지난 7월께 채희준 변호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 민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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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민원담당관도 지난 7월께 채희준 변호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보호센터는 신변보호 경찰관을 통해 집단 귀순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변호사님들과 면담할 의사가 있는지를 개별적으로 확인했다"라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변보호 경찰관으로부터 종업원들이 한 명도 예외없이 변호사님들과의 면담을 거부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국정원이 아닌 통일부와 경찰에서 탈북 종업원들의 신변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호결정이 해제돼 경찰과 통일부에서 탈북 종업원들의 신변을 관리하고 있다"라는 국정원의 주장과 전혀 다른 증언이 나왔다. 통일부의 고위인사가 "탈북 종업원들은 국정원의 특별보호 대상으로 지정돼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장경욱·채희준 등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지난 7월 28일 정승훈 통일부 공동체기반조성국장(현 정세분석국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정 국장은 "탈북 종업원들은 국정원에서 보호를 결정한 특별보호대상이어서 통일부에서는 이들의 교육과 주택만 지원했다"라며 "특별보호대상으로 지정되면 별도의 해제절차가 없다"라고 말했다. 

당시 면담에 참석했던 장경욱 변호사는 "당시 정 국장이 '무슨 일반보호냐, 국정원이 특별보호하고 있다, 국정원이 통제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라고, 채희준 변호사는 "정 국장이 '국정원이 특별관리대상으로 지정해놓고 있어서 우리도 맘대로 접촉할 수 없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6월 통일부의 한 관계자도 "집단탈북이란 특성, 북한의 선전 공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변보호를 위해서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 제8조에 의해서 국정원장이 6개월 동안 보호를 결정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8조 ①항에 따르면, 통일부장관이 협의회의 심의를 통해 탈북자 보호 여부를 결정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예외'가 있다.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사람"의 경우는 국정원장이 보호여부를 결정한 뒤 통일부장관에게 통보한다는 것이다.

정 국장의 발언에 따르면 탈북 종업원들은 국정원의 특별보호대상이다. 즉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사람"에 해당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가'급 경호대상으로 분류돼 밀착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경욱 변호사는 "그로 인해 여종업원들은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신분이 급상승했다"라고 꼬집었다. 

시행령 제14조에는 '국가안전보장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의 범위'를 ▲ 형법(내란), 군형법(반란), 국가보안법에 따른 죄를 범하였거나 범할 목적으로 있다가 전향 의사를 표시한 사람 ▲ 북한의 노동당 등에서 북한체제 수호를 위하여 적극 활동한 사람 ▲ 첨단과학에 첩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탈북 종업원들이 '국가안전보장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의 범위'에 해당하는지, 국정원으로부터 특별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13명의 집단탈북'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들에게 '특별한 무엇'을 찾기는 어렵다. 

게다가 경찰에 지난 1년간 탈북 종업원들을 관리해왔음을 증명하는 신변보호 담당관의 업무일지 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국정원 특별관리'를 뒷받침한다. 장경욱·채희준 변호사 등이 지난 8월 24일 이재열 경찰청 보안국장을 만났을 때 이 국장은 "탈북 종업원들의 신변을 관리하면서 작성한 자료도 없고, 신변보호 담당관의 보고도 없었고, (국정원 등으로부터) 어떠한 면담 신청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채희준 변호사는 "형식적으로는 경찰이 탈북 종업원들의 신변을 보호·관리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장소만 보호센터에서 모처로 바뀌었을 뿐 국정원이 실질적으로 계속 보호·관리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라고 말했다. 

채 변호사는 "탈북민들이 하나원을 나오면 이들을 관리하는 주무부서는 국정원에서 통일부로 바뀌고, 통일부가 경찰이나 지자체에 요청해 이들의 신변을 보호한다"라며 "그런데 (국정원이 이들을 특별보호대상에 지정해놓고 있어서) 통일부가 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1명이라도 자진탈북 아니라면 북으로 돌려보내야"

채희준 변호사는 "북의 가족들이 딸들의 신변과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어렵게 우리에게 위임장을 보내줬는데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은 기를 쓰고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라며 "이것도 이들이 들어올 때부터 문제가 있었음을 반증한다"라고 지적했다. 

채 변호사는 "식당에서 서빙하고 무대에서 공연하는 종업원들이 '국가안전보장'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라며 "종업원들은 지배인의 지시를 받아 일하는 사람이지 자율성을 갖고 일하는 책임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채 변호사는 "종업원 12명 가운데 1명이라도 자진해서 탈북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확인해서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라며 "그 1명에게 나머지 11명을 위해 희생하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통일문제 전문가인 A씨도 "탈북 종업원들 중에 돌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다"라고 말했고, 여권 인사인 B씨도 "몇 명은 한국행을 원했지만 12명을 다 데리고 온 데에는 공작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의심했다.  

장경욱 변호사는 "총선 전에 당당하게 공개했으면 계속 공개 원칙으로 가야지 북가족, 신변 위협 등을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라며 "자진해서 집단 귀순했다고 한다면 왜 이제까지 기자회견 한번 안하나? 그 전에 기자회견했던 귀순자들은 북에 가족이 없었나?"라고 지적했다.

장 변호사는 "국정원 외에 누구도 이들을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진해서 탈북한 것인지, 타의에 의해 납치된 것인지, 지난해 8월에 보호센터에서 출소했는지, 올 3월에 대학에 입학했는지 등을 알 수 없다"라며 "이제라도 탈북 종업원들을 제대로 조사하고, 공개하고, 검증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장 변호사는 "국정원개혁발전위에 의견서를 냈지만 답변이 없다"라며 "(국정원개혁발전위가 국정원을) 확실히 장악하기 힘든 구도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획탈북 의혹이 '국정원 적폐 목록'에 오르지 않는 이유

국정원개혁발전위 산하 적폐청산TF가 작성한 '국정원 적폐 청산 목록'에 기획탈북 의혹 사건은 없다. 북한 종업원 집단 입국이 국정원에 의한 기획탈북으로 확인될 경우 이것이 남북관계과 국정원의 존폐 등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여권 인사 B씨는 "확실한 공작으로 확인되면 국정원 문을 닫으라는 해야 할 사안이어서 목록에 들어가기 어렵다"라며 "설령 사실이라도 해도 묻고 가야 할 사안이다, 이것은 개별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B씨는 "서훈 국정원장에게 확인했는데 돌이킬 수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억류할 때와는 다르다면서 대한민국 국민이 됐기 때문에 돌려보낼 수 없다고 했다"라며 "북한으로 돌려보낼 경우 우리가 국가의 책임을 버리게 되고, (돌려보내야 한다면) 역망명을 해야 하는 문제라고 했다"라고 전했다. 

B씨는 "(탈북 종업원 문제를) 남북적십자회담 카드로 쓰기도 어렵다"라며 "북한이 핵 이외에 쓸 카드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이 이것을 카드로 쓰다가 얼버무릴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에서 두세 번 의사를 묻고 확인했는데, 탈북 종업원들이 공개석상이나 또는 제한된 공개석상에 나와서 자기들 의사 밝히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채희준 변호사는 "탈북 종업원들의 진실이 꼭 확인될 것이다"라며 "감춘다고 해도 밝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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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선 미국을 극복해야 합니다”

 

함세웅 신부 “문재인 대통령의 사드 배치가 아쉬워…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

함세웅 신부 media@mediatoday.co.kr  2017년 09월 09일 토요일
 

지난 7일 정부는 경상북도 성주군 주한미군 기지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잔여 발사대 4기를 배치 완료했다. 지난 7월29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에 대응해 사드 추가 배치를 지시한지 40일만이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북한의 ICBM도발과 6차 핵실험 등으로 상황이 바뀌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사드가 대한민국 영토 방어에 효용이 없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며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배치를 강행한 것은 문제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함세웅 신부가 자신의 의견을 담은 글을 미디어오늘에 보내왔다. 이 글은 ‘사제들을 위한 강론 길잡이 115권, <선포와 봉사> 서론’에 담긴 글이다.<편집자 주> 

민족의 얼과 생기를 되새겨야 

저는 7월23일-8월4일까지,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시베리아 횡단 6,500km 철도 순례에 함께 했습니다. 바이칼 호수 산정에서는 남북의 화해와 일치, 세계 평화를 위한 공동체 기도를 올리고 카자흐스탄 알마티 대학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 학술 모임으로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두 주간의 순례는 평화와 기억, 다짐과 활력, 단절과 비약을 체험하고 재현한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러시아 문학 작품에서 읽고 상상했던 자작나무 숲 벌판을 가로 지르며 쉴 틈 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 기차 속에서 80년 전 고려인들이 끌려갔던 고난의 여정을 떠올리며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전인 3500여 년 전, 히브리 인들이 이집트의 노역과 그 억압을 뚫고 나온 모세의 해방 여정도 되새기고 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그리고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이역만 리 이곳 시베리아 벌판에서 오로지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항일선열들을 생각했습니다.

아침에는 햇반을, 점심에는 식당 칸에서 러시아 음식을, 저녁은 라면 등을 먹으면서 한 기차 칸에서 4명이 함께 한 과정도 옛 신학교 생활의 조별을 떠올리며 우리 모두를 동심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힘들고 불편했지만 죽음의 행진을 거쳐간 고려인 선조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여행은 보장 받은 아주 화려한 여정이었습니다. 여러 역을 거치면서 우리는 각자의 삶과 과정 그리고 민족의 고비고비를 생각하며 산상에 오르는 구도자의 발길과 숨결을 재현했습니다. 

 

 
▲ 함세웅 신부.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함세웅 신부.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리즈돌 노예역에서 우리는 순례의 첫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1937년 9월9일, 고려인들의 첫 강제이주자 수백여 명을 화물칸에 싣고 떠난 역, 이 역을 우리는 ‘통곡의 역’이라 부릅니다. ‘통곡의 역’에서 우리는 고려인 선조들, 항일 순국선열들을 마음에 모시고 묵념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갈라진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통일을 이루자! 통일을 이루자!’를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부르며 하느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고려인들의 고난의 과정에서 새삼 뜨거운 ‘민족애’를 확인하며 연해주의 높은 하늘을 응시했습니다. 1862년 함경도 지방의 첫 12가족이 찾아와 일군 개척의 땅 연해주, 이곳이 바로 남북의 일치와 화해를 위한 이정표이며 길잡이 임도 확인했습니다.

첫날 저녁 블라디보스톡 고려인 문화센터에서 우리는 고려인들의 아리랑 노래와 부채춤 등 선조들의 귀중한 삶과 문화를 대면하며 민족 공동체를 새롭게 확인했습니다. 최재형, 이상설, 안중근 등 애국지사, 독립선열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리고 대한민국 첫 임시 정부가 태동한 ‘한인촌’을 둘러보면서 선열들의 130여 년 전의 뜨거운 숨결을 확인했습니다. 

이튿날 저녁 우리 일행은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습니다. 험난한 옛 여정을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하늘의 징표였습니다. 이 첫 여정이 바로 고려인들의 고난의 길, 그 재현이고, 독립선조들의 발길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바롭스크, 치하 등을 거쳐 3일 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했습니다. 시베리아의 빠리라는 별칭을 지닌 이 도시가 바로 러시아 저항적 지성인들이 유배당했던 곳, 그리고 1921년에 우리 선조들이 고려 공산당을 창설한 현장입니다. 선열들의 숨결을 되새기고 조국독립을 위해 함께 싸웠던 우리 선조들이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 등으로 나뉘어, 공산당 주도권 다툼으로 2000여 명의 무장 독립군들이 서로 싸워 목숨을 잃은 슬픈 사건, ‘자유시 참변’ 얘기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무섭게 찢었습니다. 결국 소련 공산군이 개입해 상해파와 우르쿠츠크파 모두를 전멸시켜 끝냈다는 이 사건으로 항일독립 무장 부대의 시대가 마감되었다는 가슴 아픈 얘기입니다. 

주도권 다툼으로 결국 함께 죽어간 무장 독립군들,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에서 저는 탐욕이 바로 분열의 뿌리임을 새삼 깊이 생각했습니다. 주도권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 주도권 때문에 항일 독립 투쟁의 큰 가치를 놓쳤을까 하는 생각으로 온 몸이 저려왔습니다. 남북 분단의 현실도 한가지입니다.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갈등으로 서로 헐뜯고 죽이는 이 분단의 현실이 바로 100여 년 전 항일 독립군들이 서로 죽이고 갈라져 결국 소련 공산군에게 전멸 당했다는 과거의 사건의 재현임을 생각하고 더욱 부끄럽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 남북이 제 정신을 찾지 못할 때, 미국이 또는 중국이 제 3국이 무력으로 남북 공동체 모두를 전멸시킬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바이칼 호수 산상에 올라 남북의 일치와 화해,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제를 올리고 샤머니즘의 본산지인 이곳에서 조상들의 옛 문화, 우리의 뿌리를 확인했습니다.

노보시비르스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레닌 동상 앞에서 우리는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의 과정과 진전 사항을 생각했습니다. 그 후 우리는 버스로 고려인들의 첫 도착지인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도착해 추모제를 가졌습니다. 두어 시간의 추모제에서 우리는 조상들을 기억하며 특히 80여 년 전의 고려인들을 기리며 민족의 역사를 마음에 품고,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하느님을 칭송하며 은총의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민족사적 진한 체험과 교훈 그리고 꿈을 안고 고향에 돌아오니 온통 슬프고 안타까운 소식만이 그득해, 시베리아 순례 체험에서 축적한 생기로, 다시 투쟁의 여정을 설정해야 할 때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2000년 남북 공동선언을 기초로 화해와 대화를 우선해야 

북이 수소폭탄 실험을 했습니다. 그 위력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3-4배가 된다고 합니다. 온통 방송과 신문은 북의 핵 실험 소식으로 ‘그득’차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 청와대 관계자들은 연일 모임과 강한 발언을 쏟아내고 트럼프 아베 등은 북을 규탄하고 있고 중국도 발끈하고 있습니다. 북의 계속된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에 온 나라가 아니, 온 세계가 떠들썩합니다. 

 

▲ 지난 4월15일 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진=노동신문
▲ 지난 4월15일 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진=노동신문
 
일제의 침략과 억압을 거치고, 6.25의 비극을 겪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등 역대 수구 독재자 정치인들의 탄압과 거짓 음모에 맞서 싸워온 우리에게는 글쎄, 내공이랄까 타성이랄까, 눈앞에 폭탄이 떨어져야만 전쟁이 터졌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의 여유와 힘이 있습니다. 방송과 신문, 정치인과 시민, 전문가 등 우리는 모두 할 것 없이 나름대로 일가견은 갖고 있지만 어쨌든 속수무책이라 답답한 상황에서 의지적으로 덤덤한 자세를 지니고 있습니다.

 

글쎄, 주일미사에 오는 착한 교우들에게 사제들은 성경말씀을 어떻게 풀이하여 무슨 강론을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합니다. 바로 지금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진지하게 여쭙고 그 답을 얻어 기도하며 교우들에게 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새삼 칼 바르트의 가르침을 떠올립니다. 설교란 바로 성경과 신문을 번갈아 읽으며 그 안에서 세상의 문제점을 포착해 하느님의 말씀으로 녹여 해석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미사 때마다 우리는 평화를 염원하고 평화의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평화! 그렇습니다. 평화를 확신하고 평화를 신념으로 평화를 복음으로 크게 아주 크게 외쳐야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와 같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어라”(2,4) 는 말씀을 더 크게 외쳐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우리 사제들도 무덤덤하기만 합니다. 평화를 크게 외치지도 않고 평화에 대한 확신도 의지도 뚜렷하지 못합니다. 재의 수요일, 요엘 예언서의 말씀대로 바로 오늘 우리는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심장’을 찢어야 합니다. 회개의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9월6일 경향신문 30쪽에서 이대근 논설 주간은 “여섯 번째의 실패로 충분하다”는 칼럼에서 북이 여러 차례 핵 실험하는 동안 미국과 한국이 무엇을 했는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우리 남한은 미국 식민지 처지와도 같다는 것입니다. 이대근 논설주간은 남북 관계의 근원적 개선을 위해 남북 양자회담과 함께 6자회담을 재개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여러 차례 대화 제안에도 불구하고 북이 외면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언행이 바로 북보다는 늘 미국을 우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지난 6월2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사드 철회 평화행동’ 집회에 성주 주민들이 사드 철회 촉구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6월2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사드 철회 평화행동’ 집회에 성주 주민들이 사드 철회 촉구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우리는 우선 미국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과 미국이 대화하도록 우리가 나서서 도와줘야 합니다. 어느 분이 신문 칼럼에서 북 핵은 결코 북이 포기할 수 없는 심장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심장을 떼어버리면 죽는데 어떻게 그 심장을 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인정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제안에 정치인들과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동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아쉬운 점은, 국방부 관계자들이 사드 배치에 대해 대통령에게 보고도 누락한 채 거짓 보고를 했으니, 무엇보다도 먼저 이것을 조사하고 철저히 그 과정을 밝혀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거짓 과정은 오간대가 없고 북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다고 해서 비록 임시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사드 4기를 추가 배치하기로 한 것은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모순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를 실로 묶어서는 안됩니다. 급할수록 천천히 돌아가는 결단의 지혜를 지녀야 합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를 진지하게 되물어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를 속이고 역사와 민족을 결과적으로 배신했습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늘 초심을 되새겨야!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에서의 취임사를 되새깁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소박한, 그러나 눈물을 자아낸 감동적 선언이었습니다. 그에 앞서 그는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을 방문했습니다. 그 초심과 그 감동을 문재인 대통령이 5년 내내 재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취임사 전문을 다시 읽고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사제로서 첫 마음을 간직하고 첫 미사 때 감동을 늘 되돌아보며 기도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여론은 초반 87%에서 성주의 사드를 배치 한 이후 9월8일 현재 69%로 떨어졌습니다. 69% 지지도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이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도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보다 훨씬 잘해 마음이 흐뭇합니다. 그런데 사드배치를 지켜보는 지금은 불안할 뿐 아니라, “이것은 아닌데!” 라는 근원적 회의와 함께 깊은 좌절에 빠져있습니다. 이에 더 기도하고 혹시 누가 문 대통령에 대해 지적을 해도 열심히 변명하고 또 함께 걱정하면서 고민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시베리아 철도 순례 중에 7월말 북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뒤에 문재인 대통령이 당황했었는지 또는 북에 대해 실망했었는지 어쨌든 그는 임시라는 단어를 붙이며 사드를 전면적으로 배치하겠다고 선언했고 9월 6일에는 기습적으로 사드 6대를 모두 다 배치했습니다. 큰일입니다. 사드배치 과정에서 국방부와 청와대의 관계자들이 대통령을 속이면서 제대로 보고조차 하지 않았던 사안을 끝까지 조사하고 나서 응분의 조치를 취한 뒤에 결정했어야 할 일을 북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다고 해서 느닷없이 북에 제안한 대화를 취소한 꼴이 되었으니 더욱 걱정이고 중국과의 관계도 더 꼬이고 있으니 참으로 큰일입니다.

 

특히 블라디보스톡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만나 나눈 대화는 더욱 씁쓸합니다. 동족인 북을 끝까지 껴안아야 하는데 북에 대해 원유공급을 하지 말라는 요청을 했으니 형제로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저는 이에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미국 등 큰 나라들만 핵을 보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왜 북은 자신의 방위를 위해 핵을 가질 수는 없는가? 또 유엔에서도 모든 나라들이 평등해야 되는데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등 5개국이 상임이사국으로 특권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은 민주주의, 평등의 원리에 어긋납니다. 이렇게 근원적 물음을 제기하며 자주와 평등을 지향하는 아름다운 민주공동체를 이룩했으면 하는 꿈을 꿉니다.

이에 고승우 민언련 이사장은 사드배치논란의 핵심이 바로 1953년 10월에 남북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던 바로 그 시절, 당시 미국 중심으로 체결한 “한미 상호 방위 조약”에 있음을 지적하며 그 4조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드에 대한 고승우 민언련 이사장의 핵심적 주장 

지구촌이 주시하는 사드 배치가 추진된 근거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입니다. 이 조항에 따라 미국은 한반도 방위에 필요할 경우 자국 무기나 병력을 한국에 배치할 ‘권리’를 수용하고 한국은 양허하게 되어 있습니다. 군사적으로 수십 년 묵은 대미 종속은 1953년 10월 체결된 이 조약의 4조에 따른 것입니다. 

이 조약에 따르면 한국은 군사적으로 미국과 동등한 주권국가가 아닙니다. 미국은 슈퍼 갑이고 한국은 반대가 거의 불가능한 을에 불과합니다. 심각한 군사적 종속관계입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 4 조는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국의 육군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합니다.(영문 The Republic of Korea grant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ccepts, the right to dispose United States land, air and sea forces in and about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Korea as determined by mutual agreement.)”로 되어 있습니다. 

제 4조의 영문 표기를 보면 그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미군의 한반도 방위에 필요한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미국의 권리(right)로 규정하면서 미국은 이 권리를 수용(accept)하고 한국은 수락(grant)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accept와 grant 단어는 대가없이 받거나 주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외교적 단어에 의해 한국의 군사주권에 대해 미국이 사전에 협의하나거나 동의를 구하는 여지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복잡할수록 원칙이 최선입니다. 이제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을 공론화 시켜 사드는 물론 한미군사 불평등관계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것이 국방을 포함한 전반적인 자주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미국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 우방이니, 혈맹이니 하는 시대착오적 기계적 표현을 넘어서야 합니다.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라는 선언을 우리는 모두 가슴 깊이 되새기고 남북 8천만이 온 세계를 향해 크게 외쳐야합니다.

2017년 9월 8일 

성모님 성탄 축일에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가족들과 함께 함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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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으로 돌아온 '낮은 한의학'

 
[인터뷰] 소설 <허임>의 저자 한의사 이상곤
2017.09.09 11:06:26
 

 

 

 

허임은 조선시대 최고의 침의다. 그런 그의 이름이 지난 8월 27일 포털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최근 들어 주말마다 포털 검색어에 종종 등장한다. 

 

허임(김남길 분)과 흉부외과 의사인 최연경(김아중 분)이 400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의술을 펼치는 타임 슬립 드라마 <명불허전>(홍종찬 연출, 김은희 극본, 본팩토리 제작)이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명불허전>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이 쓴 소설 <허임>(성인규·이상곤 지음, 황금가지 펴냄)을 모티브로 했으며, 이 원장은 현재 드라마 자문을 맡고 있다. <명불허전>은 매주 토,일 오후 9시 tvN에서 방송된다.  

 

<동의보감>을 쓴 허균조차 허임의 침 실력에 고개를 숙였다지만, 그의 명성이나 그에 대한 기록은 허균에 비해 턱없이 적다. 이 원장은 그 이유에 대해 "성리학을 중시하는 조선 시대의 관념적인 분위기 속에서 실천을 중시하는 그의 침법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명한 세도가 출신인 허균에 비해 허임은 어머니가 노비로 천민 출신이기도 했다. 신분제 사회에서 평생 그를 따라다녔던 '천출'이라는 꼬리표가 이후 그의 의술과 업적을 후대에 남기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도 있다.  

 

허임의 침술을 복원해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이상곤 원장은 그의 소설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의 인기가 누구보다 반갑다. 이 원장이 허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침은 그 무엇보다 '낮은 한의학'에 걸맞는 치료 방법이기 때문이다. 값비싼 약재가 아니라 침과 의사의 지식이 만나 질병을 치료하는 침술이야말로 일반 대중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허임의 침술이 그 진가를 인정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약재를 구할 수 없는 임진왜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허임이 살아있던 당시 중국과 일본에서 일제히 "침은 조선"이라는 칭송을 할 정도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던 '조선의 침술'을 부활해 21세기에도 '대한민국의 침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하고 싶다는 게 이 원장의 바람이다.  

 

이상곤 원장을 지난 5일 서울에 있는 그의 한의원에서 만났다. 이 원장은 2009년부터 5년 동안 <프레시안>에 '낮은 한의학'이라는 칼럼을 연재해 동명의 책 <낮은 한의학>(사이언스북스 펴냄)을 냈다. 그 외에도 책 <왕의 한의학>(사이언스북스 펴냄>, <코, 음기로 다스려라>(우원북스 펴냄), <신한방 임상이비인후과>(정담 펴냄)이 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tvN 주말 드라마 <명불허전> 공식 포스터.

 


'조선 제일침' 허임을 부활시키다 

 

프레시안 : 최근 '조선 제일침' 허임을 다룬 tvN 드라마 <명불허전>의 자문위원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들었다.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소설 <허임>을 쓰기도 했는데, 배우 김남길과 허임의 싱크로율은?  

이상곤 : 김남길 씨가 허임보다는 잘생긴 것 같다. 그런데 또 '혜민서(惠民署)' 의녀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허임을 생각하면, 김남길 씨보다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하고.(웃음) 

김남길 씨와 김아중 씨 모두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기 전 한의원 와서 허임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며 침 놓는 법을 배웠다. 김남길 씨는 한의한에 대한 기본 지식뿐 아니라, 허임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왔다. 김아중 씨도 외과 전문의 연기를 위해 심장을 직접 만져보고 수술방도 대여섯 번 참관했다고 하더라.  

프레시안 : <명불허전> 시청률이 매주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특히 드라마 8회(9월 3일 방송)에서 천민 출신(천출(賤出)) 허임이 양반의 폭거 앞에서 "개돼지만도 못한 이놈들, 대감의 노여움이 풀릴 수야 있다면 죽어 마땅"하다며 오열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신분사회였던 조선에서 침술이라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천출이 어의(御醫)까지 올라갔다는 것 자체가 정말 드라마틱하다. 

이상곤 : 한마디로, 허임은 천재다. 역사상 허임과 같은 인물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임진왜란이 일어나 허임이 선조(宣祖)를 호종(護從)한 때가 스물네 살이다. 20대에 어의가 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심지어 천출인데 

(선조는 조선 제14대 왕으로 소화불량, 이명, 편두통 등을 앓았다. 재위 기간(1567~1608년)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편집자 주) 
 

신시 초, 전의감 의관이 방문을 붙이자 탄식과 탄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하아, 아쉽군. 절호의 기회였는데." 
"약시 허임이 됐군!"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일세. 허어어! 단숨에 종6품이 되었구먼."
(중략)  
혜민서 의관들은 허임이 내의원과 전의감의 콧대를 눌러줬다는 것에 기쁨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몇몇은 이제 스물두 살에 불과한 허임이 치종교수가 되자 질시와 불만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 <허임> 1권 424~425쪽 

 

▲ tvN 주말 드라마 <명불허전> 8회(9월 3일 방송) 화면 갈무리.


프레시안 : 조선시대 한의하면 대부분 허준을 떠올린다. 허준과 허임은 동시대 인물이기도 한데, 허준에 비하면 허임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소개를 해 달라. 

이상곤 : 허준은 '양천 허 씨'라는 세도가 집안의 서자다. 허준은 조선 중기 문인인 허균과 같은 집안이다. 반면 허임은 악공인 아버지와 노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천출로, 천민 중에서도 천민이다.  

허임이 혜민서 의학생도로 초시(初試)를 치를 당시 허준은 선조의 어의로 '태의(太醫)'라고 불렸다. 하지만 침이라면, 허준도 허임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 허임이 가진 침술 자체가 독특하고 대단해서 '허임의 보사법(補瀉法)'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선조 37년(1604년) 허준이 임금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신은 침을 잘 모릅니다만 허임이 평소 말하기를 경맥을 이끌어 낸 다음에 아시혈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허준은 <동의보감>의 질병마다 침과 뜸을 놓을 혈 자리를 표시했던 침구학의 대가다. 나이를 보더라도 허준의 나이가 58세, 허임의 나이가 34세에 불과했던 점에 비추어 보면 대단한 상찬이 아닐 수 없다. 

 - <낮은 한의학> 43~44쪽  

 

하지만 성리학의 관념과 교조주의에 사로잡힌 조선 사회에서 실천에 기반한 그의 치료법은 제대로 전승되지 못했다. 그가 쓴 <침구경험방>은 당시 조선에 유학 왔던 일본 의사가 돌아갈 때 가지고 가서 1725년 일본에서 간행할 정도로 중국, 일본에서도 인정 받았는데 정작 조선에서 잊혔다.  

 

▲ tvN 주말 드라마<명불허전>의 자문을 맡고 있는 이상곤 원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드라마 <명불허전>에서도 허임이 침을 놓는 장면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이상곤 : 조선의 언어(한글)를 만든 사람은 세종이고, 조선의 한의학(<동의보감>)을 정리한 사람은 허준이고, 조선의 침(보사법)을 발전시킨 사람은 허임이다. 특히 "허임의 침법은 겉보기엔 단순하지만 천지인의 변화를 한데 담으려는 웅혼한 기상을 가진 실천적 비법"이다.(<낮은 한의학> 46쪽)  

<조선왕조실록> 중 <선조실록> 151권, 선조 35년 6월 12일 기록을 보면 "의관 김영국, 허임, 박인령 등은 모두 침을 잘 놓는다고 일세를 울리는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다. 또 허임이 쓴 <침구경험방>은 중국과 일본 등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낮은 한의학> 44쪽)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허임은 실력만큼이나 배짱도 대단했던 것 같다. 

"침의(鍼醫) 허임(許任)이 전라도 나주에 가 있는데, 위에서 전교를 내려 올라오도록 재촉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닌데도 오만하게 집에 있으면서 명을 따를 생각이 없습니다. 군부(君父)를 무시한 죄를 징계하여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잡아다 국문하도록 명하소서."(<광해군일기> 27권, 광해 2년 윤3월 12일) 

"어제 상께서 '내일 침의들은 일찍 들어오라'는 분부를 하셨으니, 허임은 마땅히 궐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급히 달려 들어와야 하는데도 제조들이 이미 모여 어려 번 재촉한 연후에서 비로소 느릿느릿 들어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경악스러워하니, 그가 임금의 명을 무시하고 태연하게 자기 편리한 대로 한 죄는 엄하게 징계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광해군일기> 79권, 광해 6년 6월 11일) 
 

▲ tvN 주말 드라마<명불허전>의 모티브가 된 소설 <허임>(성인규·이상곤 지음, 황금가지 펴냄). ⓒ황금가지

 


'대한민국 침법은 허임 침법이다' 


프레시안 : 책 <낮은 한의학>에서 허임을 "조선 침구학의 진정한 자존심"이라고 평가했다. 허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이상곤 : 콜롬비아 의대 교수 한 명이 국내에서 한의학을 다시 공부한 뒤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그 교수가 말하길 외국 사람들은 '한의학'이라고 하면 무조건 '중국 의학(Chinese Medicine)'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인이 뉴욕에서 운영하는 한의원은 예약도 안 되고 현금 계산만 가능한 데도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중의학과는 또 다른 한국 한의학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한국 한의학은 국가의 전략적 자산이기 때문에 문화로도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특히 허임의 침술이 한창일 때가 한국 한의학의 절정기였다. 그래서 허임의 침구학을 재조명하며 개인적인 치료법도 다시 섭렵했다. 이를 더 발전시켜 '대한민국 침법은 허임 침법이다'라고 브랜드 네이밍할 계획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중국이 드라마 <명불허전>의 인기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연합뉴스>는 지난 8월 30일 "중국 매체들이 최근 한국의 한의학 드라마 방영을 놓고 중의학이 한의학의 원류인데 왜곡되고 있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상곤 : 중국이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어 봤다. 한국 한의학이 세계 침구한의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5년을 준비해 책을 쓰고 드라마를 만들었다. 

중국은 13억 인구를 대상으로 한 임상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가 나서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중의학 알리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문화 콘텐츠로 한류 열풍을 일으킨 한국이 한의학 중에서도 침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만들었으니,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중국 의학은 한방과 양방이 상호 보완하는 식이다. 중의에선 치료 과정에 스테로이드 등 양약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은 한방과 양방의 구분이 확실하다. 한약에 아스피린이나 항생제 같은 양약이 들어가면 안 된다. 따라서 끊임없이 양방, 양약, 양의와 경쟁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한국 한의학은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다 보니 질병을 끝까지 컨트롤하는 힘을 갖게 됐다. 그런 점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한국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한의학을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상곤 :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료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질병의 고통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기술이다. 여기에 동양 의학이나 서양 의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삶의 질을 높여주고 존엄을 지켜주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 아닌가. 드라마 <명불허전>에서 한의와 양의가 함께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한방과 양방의 조화 또는 화해, 동서양 의학의 만남 등. 

죽음의 문턱에 있는 사람에게 알약을 먹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면, 엄청난 절망에 빠질 것이다. 인간은 암에 의해서 죽는 게 아니고, 암이 수반한 공포 때문에 사람이 오그라들어서 죽는다고 말한다. 절망만큼 무서운 것은 없지 않나. 그런데 알약 외에 다른 방법, 즉 침과 뜸이 있다면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프레시안 : 한방 인이비인후피부과 전문의다. 일상에서 환절기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상곤 : 일단 찬 음식과 음료를 될 수 있으면 먹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생강, 대추, 파뿌리를 끓인 후 흑설탕 한 숟가락을 넣어 따뜻하게 마시면 환절기 감기를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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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수 이병진교수 8년 만기출옥, 어머니와 뜨거운 포옹

양심수 이병진교수 8년 만기출옥, 어머니와 뜨거운 포옹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9/09 [03:4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7년 9월 8일 새벽 5시 전주교도소에서 8년 만기출옥하여 어머니와 포옹하는 이병진 교수     © 자주시보

 

▲ 2017년 9월 8일 새벽 5시 전주교도소에서 8년 만기출옥한 이병진 교수     © 자주시보

 

2017년 9월 8일 새벽 5시 전주교도소에서 8년 만기출옥한 이병진 교수가 눈물로 옥바라지를 해온 어머니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이를 지켜본 100여명의 친지, 친우와 동지들이 열렬한 박수와 함성으로 상봉을 축하해주었다.

 

이병진 교수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인도로 유학을 가서 인도와 제3세계 진영의 역사와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해 깊이 연구한 자타공인 국내 1호 인도전문가로서 귀국 후 교수로 활동하면서 국내 대기업들의 인도진출에 귀중한 조언을 해 주는 등 우리기업들의 인도시장 개척과 한-인도 교류협력사업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한 정치학자이다. 

 

하지만 인도 유학 당시 제3세계 진영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을 연구하는 차원에서 비공개 북을 방문했던 점이 공안기관에 포착되어 8년 실형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한 것이다. 

 

그는 옥중에서 자주시보에 기고한 여러 글을 통해 포스코가 인도에 건설하려고 하는 일관제철소부지는 원주민과 정부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적절한 장소가 아니라는 우려를 여러차례 표명한 바 있는데 실제 원주민의 격렬한 반대로 포스코는 10년 넘게 투자만 해 놓고 공장 기초공사도 못하면서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

 

이병진 교수를 기소한 검찰이나 판사 모두 극악한 반북반공관념에 쩔어 이런 애국자에게 너무도 가혹한 8년이란 중형을 선고한 것이다. 특히 순수한 정치학자였던 이병진 교수도 재판에 어찌 대처해야할 지를 몰라 민변이 아닌 공안관련 비전문 변호사에게 변론을 맡기는 바람에 거의 도움을 받지 못해 이런 극한 형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극형도 모자라 수구 반북 보수세력들은 그 아내가 운영하는 약국 앞에 연이어 나타나 빨갱이 약국이라며 소란을 피우고 아내를 압박하여 결국 아내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혼까지 하게 만드는 천인공노한 만행을 저질렀으며 결국 애어린 딸과 아들마저 아버지의 품에서 떼어내갔다.

 

이병진 교수는 그간 관심을 가져주고 옥바라지를 해준 가족들과 벗들 덕에 무사히 출옥하게 되었다고 물기어린 눈빛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8년의 감옥 생활이 고통스러웠지만 그 고통이 있었기에 분단의 아픔을 절절히 체현할 수 있었다면서 만약 이런 고통이 없었다면 분단의 아픔을 피상적으로 이해했을 것이라고 이제부터 이 분단을 하루 빨리 극복하고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모든 열정을 다 바쳐가겠다는 뜨거운 결의를 밝혔다. 

 

▲ 2017년 9월 8일 새벽 5시 전주교도소에서 8년 만기출옥한 이병진 교수 어머니의 하염없는 눈물     © 자주시보

 

▲ 2017년 9월 8일 새벽 5시 전주교도소에서 8년 만기출옥한 이병진 교수     © 자주시보

 

▲ 2017년 9월 8일 새벽 5시 전주교도소에서 8년 만기출옥한 이병진 교수, 부모님     © 자주시보

 

▲ 2017년 9월 8일 새벽 5시 전주교도소에서 8년 만기출옥한 이병진 교수     © 자주시보

 

▲ 2017년 9월 8일 새벽 5시 전주교도소에서 8년 만기출옥한 이병진 교수와 아버지     © 자주시보

 

▲ 2017년 9월 8일 새벽 5시 전주교도소에서 8년 만기출옥한 이병진 교수와 환영나온 지인들     © 자주시보

 

▲ 2017년 9월 8일 새벽 5시 전주교도소에서 8년 만기출옥한 이병진 교수와 동지들이 조국통일 완수를 결의하였다.     © 자주시보

 

▲ 2017년 9월 8일 새벽 5시 전주교도소에서 8년 만기출옥한 이병진 교수 환영식     © 자주시보

 

▲ 2017년 9월 8일 새벽 5시 전주교도소에서 8년 만기출옥한 이병진 교수가 옥바라지를 해준 단체들과 지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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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사장-임원진이 한 일을 고발합니다, 이게 회사냐?

 

[어게인 MBC⑤] MBC 사옥에서 "김장겸은 퇴진하라" 페북 중계했던 김민식 PD의 증언

17.09.09 11:55최종업데이트17.09.09 11:55
2012년 170일 파업. 그 후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시간에도 MBC 구성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쫓겨나고, 좌천당하고, 해직당하고, 징계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MBC를,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제 그만 '엠X신'이라는 오명을 끝내고, 다시 우리들의 마봉춘, 만나면 좋은 친구 MBC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시 싸움을 시작하는 MBC 구성원들의 글을 싣습니다. 바깥에서 다 알지 못했던 MBC 담벼락 안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다섯 번째 글은 사내에서 "김장겸은 퇴진하라"고 외친 후 징계위에 회부됐던 김민식 피디의 글입니다. 김 피디는 9월 1일 열렸던 인사위의 소명서를 보내왔습니다. 김민식 PD가 이 소명서를 읽던 도중 인사위가 정회돼 이 글은 공개되지 못했습니다. 

 
 11일 인사위원회를 마치고 나온 김민식 PD. 김 PD는 사내에서 "김장겸은 퇴진하라"를 외치는 모습을 페이스북 중계했다는 이유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김민식 PD는 사내에서 "김장겸은 퇴진하라"를 외치는 모습을 페이스북 중계했다는 이유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언론노조 MBC본부

 
'해고 위기' 인사위 출석하는 MBC 김민식 PD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는 구호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외친 이유로 해고 위기에 처한 MBC 김민식 PD가 21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리는 인사위원회 출석을 앞두고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는 구호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외친 이유로 인사위에 회부된 MBC 김민식 PD가 7월 21일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리는 인사위원회 출석을 앞두고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우성


9월 1일 인사위원회 날, 인사위 소명서를 읽는 도중 임원들은 "정회!"를 외치고 차례로 퇴장했습니다. 9월 7일, 저의 징계는 무효가 되었습니다. 8월 18일부터 시작한 출근정지 20일은 9월 6일부로 끝났습니다. 재심을 위한 인사위를 임원진이 정회하였고, 기간 내에 재개되지 않았기에 징계는 원천 무효가 되었습니다. 처음 사내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쳤을 때, 해고까지 거론하며 사측은 저를 압박했지만 결국 제대로 된 징계 하나 못했습니다. 회사를 떠나야 할 사람은 분명해졌습니다. 다시 한 번 김장겸 사장의 퇴진을 요구합니다. 

나의 인사위 소명서

오늘(9월 1일) 인사위에서 이뤄지는 소명은 페이스북 라이브로 진행됩니다. 이에 대해선 이미 법률적 자문을 마쳤습니다. 서울중앙법원 제50부 민사부의 판단까지 고려한 행위입니다. 법에 의해 보장된 저의 소명권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즉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만약 제지하려거든 우선 저의 소명권에 대한 법적 근거에 대해 듣고 의견을 말씀해주십시오.

처음 징계를 위한 인사위에 출석했을 때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사측에서 막았습니다. 인사위는 비밀 사항이고, 임원들의 초상권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촬영을 허가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셀프 카메라 모드인데 왜 초상권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해 법률적 자문을 구했습니다. 도움을 주신 김장겸 사장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사장님은 영화 <공범자들>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김정만 수석부장판사)는 8월 14일 영화 <공범자들>(감독 최승호)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공익적 목적으로서의 <공범자들> 취지를 충분히 공감하고, MBC 전현직 임원진이 공적인 인물에 해당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기각 사유를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언론의 공공성, 공익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이고, 채권자 문화방송을 비롯한 영화의 대상이 주요 방송사이어서 영상, 음성 등을 통하여 방송이 이루어지므로, 채무자들이 공범자들에 채권자 임원들(MBC 전현직 임원)의 사진, 영상, 음성을 공개함으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이익의 정당성, 중대성은 충분히 인정된다"고 명시했습니다.

이어 법원은 "채권자 임원들은 언론사의 전·현직 핵심 임원으로서 공적인 인물에 해당한다"며 "채권자 임원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방송한다고 하여 채권자 임원들의 어떠한 이익이 침해된다고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법원은 "임원들 스스로도 자신의 피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임원들의 과거 행적이나 발언이 재조명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는 언론인인 채권자 임원들이 마땅히 수인해야 할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제가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어떤 발언을 하고 어떤 영상을 촬영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리 촬영을 제지할 수 없습니다. 저의 발언을 방해하는 것은 저의 소명권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해고 위기' 인사위 출석하는 MBC 김민식 PD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는 구호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외친 이유로 해고 위기에 처한 MBC 김민식 PD가 21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리는 인사위원회에 출석하고 있다.

7월 21일 인사위원회에 출석하는 김민식 PDⓒ 권우성

 
'해고 위기' 인사위 앞두고 페이스북 라이브하는 MBC 김민식 PD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는 구호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외친 이유로 해고 위기에 처한 MBC 김민식 PD가 21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리는 인사위원회 출석을 앞두고 자신의 심정을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을 통해 전하고 있다.

김민식 피디가 인사위원회 출석을 앞두고 자신의 심정을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을 통해 전하고 있다.ⓒ 권우성


김장겸 사장님, 왜 답변 안 하십니까

제가 이 자리에 왜 와 있습니까? 출근정지 20일이라는 가혹한 징계 형량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출근정지 20일이라니, 저랑 장난하십니까? 징계 사유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저의 징계 사유는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는 공영방송 사장의 업무를 방해하였다는 것입니다. 김장겸 사장이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저는 경위서에서 밝혔습니다. 2017년 6월 7일회사에 낸 경위서에서 저는 김장겸 사장이 저의 일일연속극 연출을 방해했다고 밝혔습니다. 보도국장으로 본부장을 대리출석한 임원회의에서 드라마 본부장의 업무 보고 도중 '김민식의 일일극 연출을 용납할 수 없다, 노조원인 피디가 연출하는 드라마가 뉴스데스크 앞에 편성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저의 주장에 대해 석 달이 되도록 사장님은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습니다. 첫 번째 인사위에서 제가 여러분께 여쭈었습니다. 저의 경위서에 대해 김장겸 사장님의 답변은 무엇이냐고요. 이중 그 누구도,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위의 경위서를 경향신문 온라인 기사로도 올렸습니다. [전문]"PD로서 명줄을 잘라놓겠다는 살의를 느꼈다" <내조의 여왕> MBC 김민식PD의 경위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경위서를 올렸음에도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습니다. 제가 사장의 명예를 훼손했다거나, 누군가 사장님을 모함했다거나, 반응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기자는 질문을 하는 사람입니다. 기자 출신인 김장겸 사장은 왜 본인에게 주어진 질문에 답변하지 않습니까? 영화 <공범자들>에서도 김장겸 사장은 시종일관 도망만 다닙니다. 

여기서 잠깐 영화 홍보, <공범자들>,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은 꼭 보십시오. 국내 영화사상, 최초로 법원이 사실 검증을 마치고 상영을 보장한 영화입니다.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의 판결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영화 '공범자들'에는 백종문 현 부사장이 최승호 피디와 박성제 기자를 증거 없이 해고시켰다고 말한 녹취록 내용이 나옵니다. 

법원은 "백종문의 음성을 녹음된 그대로("왜냐하면 그 때 최승호하고 박성제 해고시킬 때 그럴 것을 예측하고 알고 얘들을 해고시켰거든. 그 둘은. 증거가 없어. 이 놈을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해고를 시킨 거예요") 사용함에 따라 백종문의 명예가 침해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백종문은 자신의 위와 같은 발언이 악의적인 편집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면서도, 그 발언의 의미를 설명해 줄 것을 요구하는 최승호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UHD 방송의 개국을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방송의 미래를 막지 마세요"와 같이 납득하기 어려운 대답을 하면서 그 해명을 회피하였다. 자신의 발언에 대한 해명 요청조차 거부하면서 자신의 발언을 인용하는 것이 명예권을 침해한다는 백종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저는 거듭 김장겸 사장에게 사장으로서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나의 드라마 피디로서의 업무를 방해했고, 나를 유배지로 내쫓았던 장본인이라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해명을 회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꼭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그 답변을 듣기 위해 저는 이 자리에 찾아왔습니다.

 
'공범자들' 김민식 PD, 죄갚는 심정으로... 김민식 MBC PD가 9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암 투병 중인 이용마 해직기자 이야기와 파업 당시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범자들>은 <자백>을 제작한 최승호 감독의 신작으로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들과 공범자들의 실체를 다룬 기록영화다. 17일 개봉.

김민식 MBC PD가 8월 9일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암 투병 중인 이용마 해직기자 이야기와 파업 당시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정민

 
최승호 감독과 김민식 MBC PD, '공범자들' 물러나라 최승호 감독과 김민식 MBC PD가 9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구호를 외치며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공범자들>은 <자백>을 제작한 최승호 감독의 신작으로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들과 공범자들의 실체를 다룬 기록영화다. 17일 개봉.

▲ 최승호 감독과 김민식 MBC PD, '공범자들' 물러나라ⓒ 이정민


이제 인사위원회를 페이스 북 라이브로 중계하는 것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우리 헌법에서는 모든 회의를 공개하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헌법 50조 1항에서는 "국회의 회의는 공개한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헌법학자들은 "의사 공개의 원칙"이라고 말합니다.
헌법 109조 역시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하여
재판 공개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내밀하고 보수적인 영역인 사법부에서조차 공개 심리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헌법이 회의를 공개하라고 한 것은 '밀실논의를 차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대표자들이 직무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수행하는지 감시를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헌법 정신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MBC 사규 인사규정 제38조에는 "원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를 도모하기 위하여 인사위원회를 둔다"고 하고 있습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위원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밀실회의가 되는 것을 막고, 공개를 하여 투명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인사규정 제45조는 서면결의를 할 수 있게 돼 있으나, 이 경우 "사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아니하는 의안"이어야 합니다. 
저는 한국의 대표 공영방송 MBC 인사위원회가 공개되지 않고, 밀실에서 진행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공영방송의 임원들은 공인이이어서 초상권 보호 대상이 아니고 공개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것은 김장겸 사장님이 저를 대신해 법원에 법률적 자문을 구해주신 결과 다시 한 번 확인한 일입니다. 그리고 징계 당사자인 제가 공개에 찬성하고 있어 개인정보보호의 문제도 없습니다.

'해고' 정해 놓고 인사위?

제가 오늘 인사위에서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기로 결정한 것은 임원 여러분 때문입니다.

지난 인사위에서 한 본부장님이 어떤 문서를 읽으면서 "개요를 보니 대표이사의 업무를 방해하였기에 해고를 요청한다고 되어 있는데 사상의 자유도 있고 행위의 자유도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김민식 차장은 여기 문서에 나온 대로 진술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는 그런 문서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인사부 직원과 부장이 당황해서 해당 본부장의 자리로 달려가 "이 문서는 인사위원들 열람용이고 김민식 차장은 이 문서를 받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지요? 그 순간 제가 "그 문서에 '해고를 요청한다'라고 나와 있나요? 그 문서에? 이미 해고를 정해놓고 지금 인사위를 여신 겁니까?"하고 말씀드렸습니다. 모두들 말을 못하시더군요. 해당 본부장은 본인의 실수에 난감해하며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해 옆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본부장께서 "아이고, 김차장. 다시 보니 문서에는 회부를 요청한다고 되어있네. 해고가 아니라 회부를 요청한다고." 아니 이미 인사위를 열어서 불러놓고 새삼 회부 요청이라고요? 잠시 후 인사위는 정회되고 '해고'라고 말씀하신 본부장님은 인사부 직원을 통해 자신의 서류를 수습해 급히 방을 빠져나가셨습니다. 

자, 지난번에 있었던 인사위 상황, 인정하십니까? 말실수였다면 당시 문서를 공개해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mbc 인사위원회 사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제38조 (설치) 직원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를 도모하기 위하여 인사위원회를 둔다.
제45조 (서면 결의)
   1. 직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아니하는 의안으로서 그 내용이 경미하거나 정례적인 것일 때에는 서면으로 심의 결정할 수 있다.
(참고로 출근정지 20일은 저에게 엄청난, 막대한 불이익을 주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회사에 20일씩이나 오지 못하고, 전국의 극장을 돌며 영화 <공범자들> 홍보에 매진해야 했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듭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가혹한 징계는 재고해주십시오.)
제46조 (의사록) 위원회 간사는 회의경과 내용과 그 결과를 기재한 의사록(양식1)을 작성하여 위원장과 출석한 위원의 서명날인을 받아 보존하여야 한다.

당시 의사록을 확인하면 제가 앞서 말씀드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사위 위원장은 백종문 부사장입니다. 최승호와 박성제를 이유 없이 해고 했다고 한 백종문 부사장은 그 자리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궐석인 백종문 부사장이나 김장겸 사장이 인사위원에게 저의 해고를 요청했다고 저는 의심하고 있습니다. 저의 의심을 풀어주실 수 있습니까? 당시 문서와 의사록을 공개해주십시오. 지난 인사위에서 녹음이나 녹화 없이 인사위를 진행했기에 해당 발언을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페이스북 라이브로 전 과정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동기와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임원진 여러분입니다. 

 
 MBC노조 조합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이사회를 앞두고 고영주 방송문화이사회 이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MBC노조 조합원들이 9월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이사회를 앞두고 고영주 방송문화이사회 이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이희훈

 
 MBC노조 조합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이사회를 앞두고 고영주 방송문화이사회 이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김장겸 물러나라고 외친 이유

자,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친 이유, 소명하겠습니다.

김장겸 사장은 보도국 편집회의에서 세월호 유족을 가리켜 "완전 깡패네, 유족 맞아요?"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지금도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런 말이 술자리나 사석이 아니라 MBC 뉴스의 보도 방향을 제시하는 편집회의에서 나왔다는 것은 심각한 사안입니다. 이후 MBC는 세월호 유족을 폄훼하는 보도를 일관적으로 내보냈습니다.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들어보겠습니다. <공범자들>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며 법원은 이렇게 판결했습니다.

 "김장겸은 문제되는 발언(세월호 유가족을 지칭하며 "완전 깡패네. 유족 맞아요?")에 대하여 무혐의처분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채무자들이 그러한 발언이 존재하였던 것처럼 허위사실을 적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장겸에 대한 불기소처분은 '세월호의 유가족을 깡패로 지칭한 표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취지에 불과할 뿐이고, '김장겸이 그와 같은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는 아니다.

이에 더하여 다수의 문화방송 소속 기자가 김장겸이 위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점, 문제된 발언이 이루어졌다는 편집회의에 참석한 기자가 작성한 자필메모에도 그와 같은 발언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표현이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 소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돌마고) 공연에서 MBC 김민식 PD가 노래패와 함께 개사곡을 열창하고 있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돌마고) 공연에서 MBC 김민식 PD가 노래패와 함께 개사곡을 열창하고 있다.ⓒ 권우성


자,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임원진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세월호 유족 깡패라는 김장겸 사장의 발언은 사실일까요, 거짓일까요?

지난번 인사위에 올라와 저는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야할 이유가 바로 이 자리에 앉아계시는 인사위 여러분이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처럼 무능하고 부도덕한 사람들을 임원 자리에 앉혀놓고 어떻게 제대로 회사를 운영한단 말입니까? 인사가 만사인데 말입니다.

보도국 출신 김장겸 사장이 보도를 통제하는 동안, 편성과 TV 제작은 김도인 본부장의 통제하에 있습니다. 영화 <공범자들>에도 모습을 보이시지요. 김장겸 사장에게 인터뷰를 시도하는 최승호 감독을 막고 나서자 최승호 감독이 "자네는 또 왜 이러는가? 이 친구야, 이러다 영화에 나오네. 난 다 자네를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야"라는 대목에 나온 분입니다.

김도인 본부장의 라디오 국장 시절 일화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 학생회장에 출마하자 자신의 휘하에 있던 프로그램 디제이에게 응원 영상을 찍게 합니다. 직무를 이용한 위계지요. 이게 고등학교 학생회 선거 선관위에서 문제가 되어 자신의 아들이 학생회장 입후보 자격이 박탈되자 바로 회사 일을 내팽개치고 강원도로 쫓아갑니다. 

자정이 남은 시간에 후배 피디에게 전화해서 자신 아들의 숙제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후배가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하자 그제야 물러납니다. 그 후배는 나중에 보복인사를 당합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있는데요, 임원 여러분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게 회사인가요?" 

9월 4일 00시를 기해 언론노조 MBC 본부는 총파업에 들어갑니다. 이번 파업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파업이 될 것입니다. 제작을 거부하고 마이크를 내려놓는 피디 기자 아나운서들의 간절함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누구보다 MBC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싸움에 나서는 사람들입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MBC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이 자리에 계신 임원 여러분이 결단해야 할 때입니다.

"9월 4일 0시 이전에 김장겸 사장과 현 경영진은 조건 없이 사퇴하라.
김장겸이 물러나지 않는 한 총파업은 이제 우리의 선택이 아닌 의무이다. 국민의 명령이다."

다시 한 번 외칩니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김장겸은 물러나라.

페이스북 라이브로 함께 해주신 페이스북 시청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시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이번 페이스북 라이브 투쟁에 대한 전략을 세워준 불세출의 전략가 이용마 기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용마야, 고마워." 

 
 MBC 김민식 피디가 지난 29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김장겸 퇴진!"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MBC 김민식 피디ⓒ 유지영


* 김민식 PD는 96년 MBC에 입사해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 드라마 <내조의 여왕> 등을 만들었고, 2012년 언론노조 MBC 본부 편제부문 부위원장으로서 170일 파업을 함께 했습니다. 지난 5년, 김장겸 사장의 집요한 방해로 드라마 연출을 하지 못해, 작가로 전업을 고민하다 올해 초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펴냈습니다. 김장겸 사장이 떠난 후, 드라마국으로 복귀해 다시 로맨틱 코미디 연출가로 일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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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무력통일 움직임”, ‘오버’하는 조선일보

 

[아침신문솎아보기] 검찰의 법원비판에 조선일보 “혁명이나 난 듯”…캐리비언의 고통

정상근 기자 dal@mediatoday.co.kr  2017년 09월 09일 토요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싸드) 잔여 발사대 설치를 강행한 것과 관련해 입장문을 서면으로 발표했다. 전날 밤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문 대통령은 사드 배치 강행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직접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유엔(UN)과 별도로 독자적인 제재에 나서기로 합의했으며, 멕시코는 북한 대사를 아예 추방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엔 중국이 원유 공급에 부분적으로 동의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서울중앙지검이 8일 ‘국정농단 사건 등에 대한 일련의 영장기각 등과 관련된 입장’을 발표해 법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언론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보고 있다. 검찰의 반발은, 국가정보원 민간인 여론조작 사건과 항공우주산업(KAI) 방산비리 사건 관련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무더기로 기각한 것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9월9일자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못 믿을’ 박성진> 

국민일보 <3강과 덜컹…‘북핵 외교’ 난기류> 
동아일보 <전 세계 머리위의 북핵, 공동 응징 나섰다> 
서울신문 <사과는 아직 없다 시간이 정말 없다> 
세계일보 <검, 영장기각에 직격탄…‘검·법의 난’ 
조선일보 <남 ‘핵무장론’ 커지고…북, 대놓고 “무력통일”> 
중앙일보 <잇단 영장 기각 불만 검찰, 법원 비판 파장> 
한겨레 <삼성의 10년, 신부의 10년> 
한국일보 <생존배낭, 싸두셨나요?>
 

 

 

대통령의 전격적인 입장 발표

문재인 대통령은 8일 밤 8시50분께 ‘사드 배치 관련 대통령 입장’을 서면으로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입장문을 통해 “그간 우리 정부는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을 막고 비핵화 대화의 조건을 만들어가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해 왔다. 북핵 문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 한반도에 전쟁불안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한겨레 05면-정치 05면-20170909.jpg
 

문 대통령은 “그러나 북한은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일치된 요구와 경고를 묵살한 채, 거듭된 탄도미사일 발사에 이어 6차 핵실험까지 감행했고 이로 인해 우리의 안보 상황이 과거 어느 때보다 엄중해졌다”며 “이에 정부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드 임시배치를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사드 임시배치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현지 주민들 및 시민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시민과 경찰관의 부상을 대통령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상당하거나 정신적인 상처를 입은 분들의 조속한 쾌유를 빌며 적절한 위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와 함께 “현지 주민들의 건강과 환경에 대한 우려를 존중한다”며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대한 공개적이고 과학적인 추가 검증을 요청한다면 언제든지 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애초 청와대는 8일 오후 사드 배치와 관련해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정면으로 반박한 바 있다.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대통령이 직접 이날 밤 전격적으로 입장을 발표한 셈이다. 이 입장은 대통령이 직접 초안을 손 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이를 수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불안한 상황이지만, 오버까지 할 일인가?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북한이 정권 수립일인 9일 추가 도발에 나설 징후까지 포착되면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 옵션을 사용하게 되면 그날은 북한에 아주 슬픈 날이 될 것”이라고 북한을 강하게 압박했다. 

 

[동아일보] 협상 일축한 트럼프 “군사옵션 쓰게되면 北에 슬픈 날 될것”_국제 03면_20170909.jpg
 

국민일보에 따르면 UN은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북한 선박의 공해상 검색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어떤 국가라도 북한의 선박을 공해상에서 단속할 수 있는 것으로 교전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과거 UN 회원국들이 영해에서 북한 선박을 단속하도록 한 적은 있지만 공해상은 처음 논의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는 것만은 사실인 것으로 보이나, 조선일보의 편집은 지나치게 전쟁 위기를 증폭시키는 측면이 있다.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남 ‘핵무장론’ 커지고…북, 대놓고 “무력통일”>을 내보냈는데, 대한민국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이 핵무장에 찬성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와 함께 북한이 무력통일을 주장하고 있다는 기사를 덧붙였다. 

 

[조선일보] 조선일보 01면-종합 01면-20170909.jpg
 

북한이 무력통일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니, 남한에도 핵무기를 배치해야 한다는 편집으로 읽힌다. 하지만 북한이 무력통일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한 근거는 노동당의 외곽단체인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의 대변인 담화 그리고 북한의 인터넷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 정도다. 이들의 주장도 과거의 언동에 비해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화가 난 서울중앙지검 

서울중앙지검이 적폐청산 수사 관련 구속영장 3개를 내리 기각한 법원을 작심 비판했다. “지난 2월 말 중앙지법에 새로운 영장전담판사들이 배치된 이후 주요 국정농단 사건을 비롯한 국민 이익과 사회정의에 직결되는 핵심 수사 영장들이 거의 예외없이 기각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국정농단이나 적폐청산 등과 관련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검찰의 사명을 수행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반발했다.

검찰은 이어 “국민들 사이에 법과 원칙 외에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어 결국 사법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귀결될까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앞서 이날 새벽에는 오민석,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각각 국정원의 사이버 외곽팀 민간인 팀장을 맡았던 노 아무개씨 등 2명, 직원 부정채용 혐의를 받는 카이 경영지원본부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세계일보] 檢, 영장기각에 직격탄…'檢·法의 亂'_종합 01면_20170909.jpg
 

검찰이 사실상 특정 판사들을 겨냥해 구속영장 기각에 반발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는게 언론의 관측이다. 물론 여기에는 법조계에서 구속사유가 충분히 발생했다고 인정한 경우도 이해하기 어려운 기준으로 영장을 기각한 법원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시선도 있다.

 

법원도 즉각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8일 검찰 주장에 대해 “개별 사안에서 도망이나 증거인멸의 염려 등 구속사유가 인정되지 않았음에도 수사의 필요성만을 앞세워 구속영장이 발부돼야 한다는 논리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조선일보는 9일자 사설 <‘적폐 청산’ 대상 되면 유죄 판결 전에 감옥부터 가야 하나>를 통해 검찰과 여당을 비난했다. “무조건 구속부터 하라는 것은 법이 아닌 폭력”, “법을 집행하는 검찰이 ‘적폐 청산’ 등 비법률적이고 정치권에서 쓰는 용어로 상대를 비난하고 있다”는 것이 조선일보의 주장이다. 아울러 “무슨 혁명이나 난 듯 검찰이 앞뒤 가리지 않고 지금의 분위기에 올라타려 하면 공권력이 아니라 폭력일 뿐”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여전히 ‘촛불혁명’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금, 카리브해에서는 

멕시코에서 현지시간으로 7일 오후 규모 8.1의 강진이 발생해 수십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 등은 미국 지질조사국을 인용해 “7일 오후 11시50분쯤 멕시코 남부 파히히아판에서 남서쪽으로 123km 떨어진 태평양 해저에서 규모 8.1의 강진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 100년 만의 강진 덮친 멕시코 … 호텔도 병원도 무너졌다_종합 03면_20170909.jpg
 

이번 지진은 지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규모 9.0) 이후 발생한 지진 중 가장 강력한 것이다. 이 지진은 한밤중에 발생한 데다 무너진 건물에 깔린 사람이 많아 추가 피해자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더욱이 지진이 덮친 지역은 멕시코에서도 빈곤지역이라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인근에서는 역대 최강의 허리케인이라고 불리는 ‘어마’가 미국을 향해 북상하고 있다. 이미 생마르텡을 강타해 엄청난 피해를 입힌 어마는 주말 동안 플로리다주에 상륙할 예정이다. 이미 플로리다주에서는 40만명이 피난을 떠났다.

그 밖의 주요 소식들 

경향신문은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확고한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는 동료교수의 증언을 보도했다. 박 후보자가 3년 전에는 보수논객 변희재씨를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고 이 간담회 뒷풀이에서 보수정당 지지성향을 드러내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보수정당을 지지할 수야 있으나 뉴라이트 역사관과 종북 딱지 등의 태도는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 '못 믿을' 박성진_종합 01면_20170909.jpg
 

최근 SNS에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을 호소하며 지역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장애인 학부모의 모습이 올라와 애잔함을 자아내고 있다. 언론은 님비 현상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씁쓸해 했다. 국민일보는 사설 <장애인학교 설립 위해 부모가 무릎까지 꿇어야 하나>에서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은 현재 8만9천명이지만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2만5천여명에 불과하다”며 “최소한의 교육기회마저 박탈당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사설] 장애인학교 설립 위해 부모가 무릎까지 꿇어야 하나-사설_칼럼 15면-20170909.jpg
 

외교부의 일본주재 총영사가 함께 일하는 직원에게 2년 가까이 심한 욕설과 인격모독적 폭언을 하고 폭행까지 일삼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직원을 향해 “넌 머리가 있는거니 없는거니”, “미친X”, “개보다 못하다” 등의 폭언을 가했으며 볼펜을 던져 상처를 입히거나 손등을 때려 멍이 들게 했다. 외교부는 이 총영사를 대검찰청에 고발하고 11일 직위해제할 예정이다.

 

[서울신문] “미친X” 상습 폭언 주일 총영사… 외교부, 檢 고발-종합 08면-2017090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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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자금’ 사건 10년…전종훈 신부 “이재용 단죄 않으면 우리 사회 불행해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9/09 11:42
  • 수정일
    2017/09/09 11:4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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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9-09 09:40수정 :2017-09-0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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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삼성 비자금 사건’ 10년, 전종훈 전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10년 전 ‘삼성 문제’를 용기있게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다.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1998년에서 2004년까지 7년 동안 삼성그룹의 고위 임원으로 있었던 김용철 변호사와 그의 양심 고백을 받아 여러차례 기자회견을 주도했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교회 안팎의 핍박과 방해를 뚫고 삼성과의 싸움에 나선 까닭은 삼성이 거듭나고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경제민주화가 뿌리내리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의를 세워야 할 검찰(특검)과 법원은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불법 비자금을 만들었던 삼성 총수 일가는 도리어 숨겨둔 돈 4조5천억원을 합법적으로 ‘획득’했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불법 경영승계의 꼬리표마저 말끔히 털어냈다. 그때부터라도 삼성이 진정으로 변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박근혜 정부 시절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괴이한’ 합병을 밀어붙였고, 이 과정에서 권력과 결탁해 국민연금까지 동원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과 함께, 삼성의 80년 가까운 역사에서 최초로 그룹 총수가 구속됐다. 2007년 정의구현사제단 대표로 삼성 비자금 폭로를 주도했던 전종훈 신부가 지난 1일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의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수양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 당시 상황을 회상하고 있다.

 

 

 

“잘못을 저지르면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도 벌 받는 것은 법의 형평과 평등성이자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돈과 권력이 있다고 죗값을 안 치르는 사회라면 희망이 없는 것 아니냐.” 10년 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때 정의구현사제단 대표로서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섰던 전종훈 신부는 “이번 사건의 처리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도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동/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잘못을 저지르면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도 벌 받는 것은 법의 형평과 평등성이자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돈과 권력이 있다고 죗값을 안 치르는 사회라면 희망이 없는 것 아니냐.” 10년 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때 정의구현사제단 대표로서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섰던 전종훈 신부는 “이번 사건의 처리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도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동/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휴양원’은 경남 하동군 청암면의 지리산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꽤 거리를 두고 아래쪽에 서당 간판을 건 건물 한 채가 눈에 띌 뿐 인근 마을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다. 2층으로 된 조그마한 휴양원에는 전종훈 신부(이하 호칭 생략) 혼자 살고 있었다.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여러 사람이 북적이는 휴양시설일 것이라는 상상은 빗나갔다.

 

그의 삶도 소박하고 담담했다. 기도와 차 마시기, 산책, 하루 한끼 식사하기가 하루 생활의 전부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교회 문제를 얘기할 때는 사제단 대표 시절 사람들 속에 있을 때처럼 열정이 넘쳤다. 그가 앉은 책상 뒷벽에 걸린 ‘사제의 고백과 다짐’ 전문을 담은 액자가 잘 어울렸다.

 

-김용철 변호사가 고백한 삼성 비자금 문제를 정의구현사제단이 세상에 드러낸 지가 10년이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을 지켜보는 느낌이 남다를 텐데.

 

“한마디로 사필귀정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돈을 탐하면 망하고, 돈을 가진 자가 권력을 탐하면 죽는다는 교훈을 조금이라도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다. 10년 전에 해결했어야 할 문제를 이제 와서 조금이라도 처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있다. 특검이 이재용에 대해 12년을 구형할 때는 우리 사회의 경제민주화라든가 재벌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자는 뜻이었을 텐데 법원에서 5년 징역형을 선고하더라. 혹시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어주려는 수순이 아닌가, 또 장난을 치려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10년 전에는 특검이나 법원이나 삼성을 노골적으로 봐준 것 아니냐?

 

“그렇다. 삼성 비자금을 찾아놓고도 이건희 회장의 돈이라고 되레 합법화해준 조준웅 특검뿐 아니라 그때는 법원이 아예 이 회장을 구속 안 시키기로 작정을 했던 것 같다. 번번이 봐주기 판결을 했다. 게다가 정부(이명박 정부)도 한심하더라. 삼성한테 뇌물을 받았던 검사 명단을 내가 가지고 있었고 일부 공개했음에도 그런 사람이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되더라. 황교안도 그중에 하나였다. 그러니 돈 가지고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더 짙어지지 않았겠나.”

 

 

김용철의 삼성 비자금 고백
사제단이 받아 10년 전 제기 
“당시 억지 면죄부 받았으나
이재용 결국 구속…사필귀정”

 

 

“5년형 선고가 봐주기 아니길
합당한 죗값 치러야 민주주의”
“삼성 처리는 경제민주화와
문재인 정부 성공의 시금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 공여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서울구치소로 이동할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 공여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서울구치소로 이동할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재벌, 10년 전보다 더 비굴해져”

 

정의구현사제단은 2007년 10월29일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용철 변호사 명의의 계좌에 50억원의 삼성 비자금이 있다”고 밝혔다. 사제단은 이어 같은해 11월 두 차례, 이듬해 3월 한 차례 등 수시로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이 검찰과 국세청 간부 등에게 떡값을 돌려왔던 사실과 떡값 명단 일부를 밝히는 등 삼성과의 ‘전쟁’에 앞장섰다.

 

-사제단이 대기업인 삼성 문제에 집중했던 이유는 뭔가?

 

“기업 삼성이 밉거나 싫어서가 아니라 삼성이 한국 사회와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었다. 삼성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인정하지만, 1~2%에 불과한 지분으로 거대 기업을 지배하면서 비자금을 만들어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기업을 쥐락펴락하는 이건희 일가의 잘못된 경영에 대해 이건 아니라고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거기에 종사하는 수많은 구성원들이 있는데도 오너가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구조로는 한국 경제에 미래가 없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르면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도 벌 받는 것은 법의 형평과 평등성이자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돈과 권력이 있다고 죗값을 안 치르는 사회라면 희망이 없는 것 아니냐.”

 

-이재용 부회장도 존경받는 기업을 만들고자 했다고 재판에서 말했다. 하지만 그가 삼성의 최고책임자가 되고 난 뒤에도 과거의 관행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조금만 문제가 불거지면 그만합시다, 왜 발목을 잡느냐는 식의 얘기가 나온다. 잘못됐으면 뭐가 문제인지 밝혀내야 그런 잘못이 반복되지 않는데 우리는 잘못을 덮거나 잊어버리려고만 한다. 삼성 이재용도 마찬가지다. 자기 아버지의 잘못을 잊어버렸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다시 같은 잘못이 나왔다. 이번에 이재용이 단죄받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면 이런 일은 또다시 나올 것이다. 또 다른 불행을 잉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도 불행해진다. 이번 사건의 처리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도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재용이 도중에 풀려나오면 경제민주화는 가능하지 않고, 결국 그것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담보하지 못할 것이다.”

 

-10년 전 삼성 비자금 건과 비교해서 차이가 있다면 뭔가?

 

“편법과 불법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를 완성하려 했다는 본질적인 면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과거에는 비자금을 만들어서 승계를 마무리하려 했다면 이번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등의 방법상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과거와 확연하게 달라진 점은 재벌이 비겁하고 비굴해졌다는 것이다. 이건희와 정주영 등 과거의 재벌 오너는 불법과 로비 등 잘못을 저지른 게 드러났을 때도 최소한 비굴하게는 안 굴었다. 지금은 자기가 오너이자 경영 책임자인데도 ‘나는 바보다, 아랫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한국 경제에 희망이 없는 것 같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삼성 비자금 실태가 드러난 뒤 사회적 압력이 거세지자, 삼성은 이건희 회장 퇴진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건희 회장이 2008년 4월22일 퇴진 성명을 발표하기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 하지만 이 회장은 경영위기 등의 명분을 내세워 2010년 3월24일 전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삼성 비자금 실태가 드러난 뒤 사회적 압력이 거세지자, 삼성은 이건희 회장 퇴진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건희 회장이 2008년 4월22일 퇴진 성명을 발표하기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 하지만 이 회장은 경영위기 등의 명분을 내세워 2010년 3월24일 전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김 변호사가 기억해낸 관리 대상자만 78명

 

특검(박영수) 수사 과정에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장충기와 삼성전자 사장 박상진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확보됐다. 미래전략실의 2인자이자 삼성의 대외업무를 총괄했던 장충기의 전화기에 남아 있던 메시지는 삼성이 국가기관을 어떻게 장악해서 부리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검찰청의 범죄 정보와 국세청의 세무조사 정보뿐 아니라 청와대 민정수석이나 감사원 사무총장 인사에 대한 정보까지 삼성은 고스란히 파악하고 있었으며, 감사원 사무총장 인사에는 심지어 직접 개입한 정황까지 나왔다. 또 자신들을 감시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의 부위원장을 오히려 일선 행동대 내지는 심부름꾼으로 부려먹은 듯한 내용도 있다. 전직 검찰총장과 언론사 간부 등 유력인사들이 보낸 각종 청탁 메시지도 쏟아졌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 때도 삼성이 정치인과 검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등 힘있는 자들을 어떻게 일상적으로 관리하고 있는지가 드러난 바 있다. 삼성은 당시에도 지연이나 학연이 있는 마크맨을 통해 ‘관리 대상’들에게 뇌물성 떡값이나 고급 선물을 제공했다.

 

-국정원 기조실장(이헌수)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한 정보를 장충기 사장에게 직접 건네주는 것을 보면 삼성의 유력인사 관리가 10년 전보다 더 치밀해진 것 같지 않나?

 

“그럴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도 청와대가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의존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는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야 삼성과 권력의 유착이 더 구체화됐을 것이다. 삼성의 정보력이 국정원보다 낫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기에 장충기 문자는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더 깊은 내막이 있을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그 적폐를 이번에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과거 이건희 회장이 여러번 법의 심판대에 올랐으나 집행유예 등으로 매번 빠져나온 데 비해 이번에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됐다. 그 차이가 뭐라고 보나?

 

“국민의 힘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10년 전에도 이랬다면 그 당시 특검도 그렇게 흐지부지 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제단에서 삼성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할 때 고민은 없었나?

 

“당시 <한겨레> 기자와 천주교 신자인 분을 통해 저한테 얘기가 들어왔다. 당시 피정 중이어서 김 변호사를 함세웅 신부님한테 소개했다. 일단 본인 얘기를 들어보자고 해서 원로 신부 몇 분과 사제단 임원이 김 변호사를 만나서 고백을 들었다. 얘기를 들은 뒤에 고민에 빠졌다. 문서가 아니라 전부 구술뿐이었기 때문에 이걸 믿어도 되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이 매우 구체적인데다 그와 생활을 같이 해보니까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계좌를 확인해보니 실제로 삼성 돈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재벌의 나쁜 관행을 바로잡고 경제민주화 화두를 던지자는 결심을 했다. 김 변호사의 기억력이 엄청나더라. 그가 기억해낸 삼성의 로비 대상자가 무려 78명이었다. 그중 일부를 언론에 공개했는데 당사자들이 고소를 못 하더라.”

 

당시 사제단이 삼성 떡값을 받았다고 1차(2007년 11월12일)로 밝힌 공직자는 임채진(검찰총장 후보), 이귀남(대검 중수부장), 이종백(국가청렴위원장)이었다. 2차 공개(2009년 3월5일) 때는 이종찬(청와대 민정수석), 김성호(국정원장), 황영기(우리금융지주 전 회장) 등 3명을 더 밝혔다. 그러나 삼성 비자금 특검(조준웅)은 이들에 대해 증거가 없다며 내사 종결 처분했다.

 

 

사제단 활약 싫어한 천주교회 
전 신부에 3년간 ‘강제 안식’
“권력·돈과 결탁한 교회가
세상 아픔을 안을 수 있나”

 

 

“침묵한 교회와 성직자가
이명박·박근혜 연장의 주범”
“종교는 비판의 성역 아냐
교회도 이제 제자리 찾아야”

 

 

‘네가 교회 주인이냐’며 안식년 강제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이 2007년 11월12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성당에서 연 ‘삼성과 검찰의 회개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전종훈 신부(가운데)가 뇌물검사 3명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이 2007년 11월12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성당에서 연 ‘삼성과 검찰의 회개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전종훈 신부(가운데)가 뇌물검사 3명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삼성을 건드리지 말라는 압력이 천주교 내부에서 엄청 강했던 것으로 안다.

 

“신부들이 왜 그런 일을 하느냐, 경제도 나쁜데 왜 삼성을 건드리느냐고 난리도 아니었다. 과거 독재정권과 싸울 때보다 내부 견제가 더 심했다. 한번은 광주에 가서 강연을 하는데 신도들조차 자식들 취직을 못 하게 됐다고 항의하더라. 권력이나 재벌과 싸우는 것은 괜찮은데 교회와 부딪히는 게 제일 힘들었다.”

 

-천주교는 내부 규율이 매우 강한데 상부의 요구에 따르지 않고 싸웠던 것은 왜인가?

 

“십자가의 길을 살아야 하는 신부는 세상일을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 즉 십자가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하느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게 되는데 이 자문이야말로 사제가 세상에 내놓는 응답이다. 이 응답이 누군가에 의해 제동이 걸려서는 안 된다. 그건 자기를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위해 마지막으로 사제를 찾아왔는데 나마저 당신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건 윤리적으로도 안 된다.”

 

사제단 대표로서 삼성 비자금 폭로에 앞장섰던 전종훈은 2008년 8월 갑작스러운 안식년 발령을 받았다. 안식년은 원래 7년에 한번씩 주어지지만, 그는 3년 만에 다시 쉬라는 명령을 받았다.

 

-느닷없는 안식년이었다.

 

“천주교 신자인 삼성 임직원을 통해 교회에 숱한 압력이 들어왔다. 그러던 차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미사를 주관했더니 위에서 ‘네가 교회 주인이냐 내가 주인이냐’면서 나보고 외국에 나가라고 하더라. 외국 가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되기에 거부했더니, 그런 인사를 내더라.”

 

2008년 6월30일 밤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사제단의 시국미사는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의 불씨를 되살리는 계기가 됐다. 전경버스에 의해 원천봉쇄됐던 서울시청 광장을 시민의 품에 되돌려주는 등 평화집회 분위기를 다시 살렸다.

 

-사제단의 활동을 막기 위한 조처라는 얘기가 당시에 있었다. 기분이 어땠나?

 

“보통 안식년은 미리 프로그램을 짜서 진행하는데 내 경우는 그런 준비가 된 게 없어서 머물 거처도 없었다. 참 화가 났다. 마침 4대강에 반대하는 생명과 평화를 위한 오체투지(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몸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는 절)가 있어 참석했다.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오체투지가 화를 가라앉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천주교가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약자의 편에 있었던 것 같은데 삼성 비자금 사건 등에서 보듯 언젠가부터 오히려 강자 편에 있는 때가 많더라.

 

“그렇다. 교회가 봐야 할 것을 애써 외면하고, 개입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나서야 할 곳에 안 나선다. 지금이 때가 아니라면서 말이다. 때가 어딨나. 때는 지금이고 바로 여기다. 그게 깨어 있는 자, 깨어 있는 교회의 본분이다.”

 

 

이른바 ‘안기부 엑스(X)파일’과 관련해 2005년 8월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항의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삼성의 불법정치자금 제공에 대한 진상규명과 특검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이른바 ‘안기부 엑스(X)파일’과 관련해 2005년 8월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항의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삼성의 불법정치자금 제공에 대한 진상규명과 특검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종교인 소득 있는데 왜 세금 안 내나”

 

-왜 그렇게 변했나?

 

“근저에는 교회가 가진 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내 소유가 많으니 지킬 것이 많고, 그러다 보니 세상을 제대로 보고 지킬 수 없게 된 거다. 종교 과세 문제를 봐라.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는 것은 당연한데 왜 종교인은 소득이 있으면서도 세금을 안 내려 하나.

 

십자가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가난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헌장에서도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가장 먼저 제시했다. 선택할 때는 가장 가난한 것을 먼저 택하라는 거다. 가난은 가지고 있는 것을 내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즉 필요한 사람에게 내 것을 내주는 행위다. 그게 바로 공동선인데 교회가 외면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불행한 시대를 끊을 수 있었는데 그것을 앞장서서 연장시켜준 주범 중 하나도 바로 교회이고 성직자다. 말하고 행동해야 할 사람들이 침묵한 결과다. 대부분이 권력과 야합을 했다. 권력이나 돈과 결탁을 했는데 세상의 아픔을 안을 수 있겠나.”

 

한국 천주교회를 비판할 때 그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그렇게 세게 얘기하다가 또 안식년에 처해지면 어떡하냐’고 웃으면서 물었다. 그는 단호했다.

 

“맞짱 떠야지. 뺏길 것도 없다. 언론도 이제는 종교를 두려워하지 마라. 종교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아니라, 교회도 누군가의 지적으로 제자리로 가야 한다.”

 

2008년 9월 서울 수락산성당의 주임신부 자리에서 강제로 내려온 전종훈의 길은 길 위에 있었다. 2008년 가을과 이듬해 봄에 수경(당시 화계사 주지), 문규현(사제단 신부) 등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에서부터 임진각까지 오체투지를 하면서 길에서 보냈다. 오체투지의 노독도 안 풀린 2009년 6월 중순 전종훈은 서울 용산으로 달려갔다. 그해 11월 말까지 남일당 참사 피해 유가족들과 함께 용산의 차가운 거리에서 살았다. 그 뒤에도 그는 국회 앞 4대강 반대 농성, 제주 강정마을,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투쟁장,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등 약자들의 투쟁 현장에 늘 함께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때부터 지난 4월 배가 인양될 때까지 무려 2년 동안 팽목항을 지켰다. 어느새 ‘길 위의 신부’가 그의 별명이 됐다.

 

-세월호 때는 요양 중이었는데 다시 팽목항으로 갔다.

 

“2011년 9월에 3년의 안식년이 끝나고 서울 우이동성당에 발령을 받았다. 1년 반 정도 주임신부로 있었는데 오체투지 때 다친 손목과 무릎 부상이 도져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래서 2013년 5월 다 내려놓고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 후 1년 뒤쯤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몸도 아프고 거리가 멀어서 자주 못 갔는데 아이들 모습이 자꾸 떠올라 그게 더 힘들었다. 그래서 세월호 1주기 미사를 현지에서 드린 뒤 아예 팽목항에 남았다.”

 

-강제 안식을 당한 뒤에는 길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원래 그럴 작정이었나?

 

“그게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갔을 뿐이다. 용산참사 유가족이나 팽목항의 세월호 유가족 등과 함께 길에서 지내다 보니까 나의 삶의 지표가 여기구나 싶더라. 교회에 앉아서 신자들과 오순도순 생활하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길에서 만난 기쁨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육체적으로는 고통스러웠어도 나에게는 은총의 시간이었다.”

 

김용철 변호사(오른쪽 둘째)가 2007년 11월5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이들 중엔 검찰 최고위 간부도 여럿 있다고 폭로하고 있다. 왼쪽 둘째는 전종훈 신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용철 변호사(오른쪽 둘째)가 2007년 11월5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이들 중엔 검찰 최고위 간부도 여럿 있다고 폭로하고 있다. 왼쪽 둘째는 전종훈 신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단식 중인 명진에게 “이길 것” 격려 전화

 

전종훈은 1970년대 후반부터 명동성당 청년부에서 평신도 활동을 열심히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 따라 동네 성당(홍제동)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이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다가 신부가 되면 이런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1984년 늦은 나이에 가톨릭대에 입학했다. 1987년 6월항쟁 때는 신학대 학생들을 이끌고 거리시위에 가담하기도 했다. 1990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항상 소외받고 어려운 사람 곁에 있었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지리산에 들어갈 때까지 사제단 대표로 활약했다.

 

-사제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

 

“신부가 된 이듬해인 1991년 강경대군 치사 사건에 항의한 교구별 단식기도에 참석하는 걸 시작으로 거의 해마다 단식을 했을 정도로 그동안 한번도 편안히 산 적이 없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용산이다. 그때 정말 추웠고, 매일매일 치러야 하는 경찰과의 싸움도 힘들었지만 가장 행복했다. 유가족 중에서 천주교 신자가 한명도 없었지만 그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신부로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느낌으로 충만했다. 권력에 맞서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삼성과의 싸움도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계획 같은 것은 없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있으면 내 일로 알고 어디든 갈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여기 있을 것이다. 한발 떨어져 있으니 세상이 더 잘 보인다. 그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도 되는데 아쉬움도 있고 부족함도 깨닫는다. 더 낮아져야 할 것 같다.”

 

휴양원과 인근 식당을 오가며 진행된 인터뷰는 한밤이 돼서야 끝났다. 그는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이 조계종 적폐 청산을 위해 단식농성 중이던 명진(전 봉은사 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명진 스님은 단식 18일째인 지난 4일 병원으로 이송되며 단식을 중단했다.) “못 가봐서 미안하다. 끝내 이길 것이다. 몸조심하라.” 아무도 찾지 않는 산속에 있지만, 그의 삶이 존재하는 곳은 ‘길 위’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전종훈 신부가 경남 하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휴양원 앞에서 <한겨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교회가) 선택할 때는 가장 가난한 것을 먼저 택해야 하는데 그러한 공동선을 교회가 외면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가진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며 “교회도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동/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전종훈 신부가 경남 하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휴양원 앞에서 <한겨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교회가) 선택할 때는 가장 가난한 것을 먼저 택해야 하는데 그러한 공동선을 교회가 외면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가진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며 “교회도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동/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김용철 “삼성이 하나도 안 바뀌고 변화할 기미도 없는데…”

 

김용철 변호사가 27일 오후 서울 한남동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등을 수사하는 조준웅 특별검사팀에서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을 모시고 온 기사라며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편 사제단 신부들은 피의자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것 등에 항의 면담을 거절했다. 왼쪽은 김영식 신부.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김용철 변호사가 27일 오후 서울 한남동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등을 수사하는 조준웅 특별검사팀에서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을 모시고 온 기사라며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편 사제단 신부들은 피의자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것 등에 항의 면담을 거절했다. 왼쪽은 김영식 신부.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할 얘기 없다”며 인터뷰 끝내 사양
“삼성 말고 지금 일에 최선 쏟고파”
7년째 광주교육청 감사담당관 맡아
“광주 교육계 깨끗해졌다” 평 듣기도

 

 

“삼성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 바뀌고, 변화할 기미도 전혀 없는데 내가 나선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삼성과 관련해서는 내 역할은 10년 전에 끝났다.”

 

10년 전 양심고백을 통해 ‘삼성 비자금’의 실체를 처음 세상에 알린 김용철(59) 전 삼성 법무팀장(현 광주교육청 감사담당관, 이하 호칭 생략)은 전화 통화에서 “삼성과 관련해서는 할 얘기가 더 없다”며 찾아오지도 말라고 말했다.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앉으면 혹시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안고 지난달 28일 광주로 무작정 찾아갔으나, 그의 의지는 굳건했다.

 

김용철은 2010년 12월 광주교육청의 개방형 감사담당관에 공개 경쟁을 통해 채용됐다. 그는 “교육감(장희국)과 아무런 인연이나 안면이 없었다. 직업 없이 놀고 있을 때 광주에 있는 친구들이 개방형 감사담당관 자리에 응모해보라고 권했다. 고향에 가서 일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겠다 싶어 내려왔다”며, 짧게 근황을 설명했다. 전설적인 특수부 검사였던 그가 감사 책임자가 된 뒤 광주 교육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그는 학교 건축이나 각종 공사와 관련한 입찰 비리, 촌지 수수 등의 낡은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맡은 일마다 일벌백계로 다뤘다. 광주교육청의 한 출입기자는 8일 “김 감사담당관이 취임 직후부터 엄한 잣대를 들이대자 초기에는 일선의 반발도 있었지만, 차츰 적응해 지금은 광주의 교육계만큼은 아주 투명하고 깨끗해졌다. 무엇보다 학부모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광주일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김용철은 1989년 인천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부산지검과 서울지검에서 줄곧 특수부 검사로 일했다. 검사는 정의감 강한 그에게 딱 맞았다. 음주 사고를 내고 도망간 친동생과 만취 상태에서 사람을 폭행한 처남을 구속하도록 한 일은 법조계에서 유명하다. 그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친가와 처가 형제들과 의절해야 했다.

 

김용철은 1995년에 시작된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 때 검찰의 전설을 하나 만들었다. 1996년 전두환 비자금을 파던 중 김석원(쌍용그룹 회장) 자택에 숨겨져 있던 전두환의 돈 61억원을 찾아냈다. 부담을 느낀 정권과 검찰 고위간부들이 수사 중단을 요구했지만, 그는 김석원 자택을 뒤져 사과상자에 담긴 현금을 압수했다. 이 일로 부천지청으로 좌천성 인사 발령을 받자, 그는 검찰 조직에 환멸을 느끼고 옷을 벗었다.

 

“기업에 들어가서 법조인 역할이 아닌 다른 일을 하려고 했다. 합리적 경영기법을 갖춘 일류 기업에서, 깨끗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있으리라고 본 것이다.“(<삼성을 생각한다> 121쪽) 그는 변호사 말고 인사팀에서 근무한다는 조건으로 1997년 8월 삼성에 입사했지만, 삼성은 그를 처음부터 법무실에 배치했다. “그때부터 검찰 선후배나 동기들에게 뇌물성 현금을 전달하라는 지시를 종종 받았다. 나는 이런 지시를 때로 이행했고, 때로 거부했다.”(<삼성을 생각한다> 125쪽) 삼성 조직과 불화하고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2004년 7월 스스로 삼성 임원(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그만둔 최초의 사람이 됐다.

 

삼성은 김용철이 2007년 5월 <한겨레>에 쓴 칼럼 등을 이유로 법무법인 ‘서정’에 압력을 넣어 변호사 김용철을 내쫓도록 압박했다. 김용철이 2007년 10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찾아가 삼성 비자금과 자신이 삼성에서 저질렀던 불법 행위들을 양심고백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파장은 엄청났다. 삼성 비자금 특검(조준웅)이 구성돼, 삼성이 숨겨놓은 돈 4조5천억원을 찾아냈다. 그러나 특검은 이 돈을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의 차명재산이라며 삼성에 돌려주고, 이건희는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조준웅의 아들은 이후 특채로 삼성전자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건희는 2009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아, 오랫동안 따라다니던 불법 경영권 세습 꼬리표를 거의 ‘말끔히’ 털어냈다. 넉달 뒤 대통령 이명박은 이건희 1인에 대해 특별사면했다.

 

역사의 중심에 선 개인은 그것이 비록 영광스럽더라도 힘들다. 김용철 역시 양심고백 이후 “정의의 사도”라는 찬사와 박수 못지않게 “배신자”라는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 “삼성은 나에게는 과거다. 지금은 현재의 내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러면 지난겨울 촛불집회에서 봤듯이 우리 사회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 않겠느냐.” 그가 던진 짧은 이야기다. 김용철의 미래를 조용히 지켜보는 게 그에게 빚진 사람들의 몫이리라는 생각에 그와 기쁘게 헤어졌다.

 

 

 

 

하동/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marketing/810306.html?_fr=mt1#csidx22bfa5f1a98a50c9afeaeb6c472d1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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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대국민 약속을 깨버렸다

 
[최창렬 칼럼] 촛불 민심을 성찰할 때

 

 

 

안보의 대미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미국의 사드배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안보 현실은 사드배치 강행을 결과했다. 한반도를 둘러 싼 안보 상황논리에 의한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석론'의 약화와 사드 배치에 대한 찬성 여론이 사드의 조기 배치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정부의 사드 배치를 마냥 비판적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성주 군민들에게 정부가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사드배치의 불가피성과 향후 대책을 설명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 진상 규명과 국회 공론화, 전략 환경영향평가 등의 대국민 약속도 결과적으로 지키지 않은 모양새가 됐다. 
 
성주 소성리 주민들은 사드 추가 배치 강행을 "박근혜 정부가 아닌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적폐"로 규정했다. 사드 배치에 대한 국민여론이 우호적이라고 해도 실질적인 이해관계에 노출되어 있는 당사자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절차적 정당성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설득해도 주민들은 사드 배치를 적극 저지하리라는 판단에서 밀어붙였다면 정부는 더 이상 소통을 말할 자격이 없다. 더구나 새벽에 공권력의 강제 진압이란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했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따라서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 설득을 통해 자발적 동의를 견인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됐었다. 그러나 사드는 새벽에 주민들과의 물리적 충돌이라는 과거 정권의 방식에 의해 배치가 강행됐다. 더구나 문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이라는 요인도 감안되지 않았다.  
  
상황논리에 쫓겨도 최소한의 명분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북핵 위기에 대해 주관과 냉철함을 잃으면 안 된다. 트럼프는 연일 안보위기를 무기로 한국을 협박하고 있다. 이 와중에 한미FTA 폐기를 운위하고, 트위터에 우리 정부의 안보정책을 조롱하는 글을 올리는 무례함과 '개념적 승인'(conceptual approval)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무기판매를 압박하는 둣한 정치적 수사도 서슴지 않는다.  
 

▲ 발사대 진입 후 연달아 올라 온 공사장비 차량(2017.9.7) ⓒ평화뉴스(김지연)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도 여전히 논란이다. 물론 미국의 요구라는 사실상의 강요가 사드 배치의 원인이며, 미국의 전략적 이해라는 큰 그림을 거절할 수 없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감안해도 외교·안보에서 중심을 잃어버리고 강대강 구도와 무기 증강이라는 외곬로 치달으면 위기는 관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안보위기의 강화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비록 소수의 의견이라고 하더라도 의사가 최대한 반영되고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때 합의제 민주주의가 가능해진다. 적폐는 국민의 의사를  강압적으로 묵살할 때 나타난다. 그래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전제가 된다. 국민여론이 특정사안에 대해 긍정적이라도 이를 반대하는 소수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절차적 정의가 흔들리면 민주주의는 착근되지 않는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강고한 보수야당들의 공세와 미국 군산복합의 압박에 정권의 초심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국민의당 마저 집권여당과는 정책의 결과 방향을 달리하고 있다. 제1야당은 공영방송 사태와 안보를 명분으로 민심과는 완전히 유리된 국회 등원 거부라는 시대착오적 행보에 몰입하고 있다. 결국 과거 청산과 사회적 격차해소라는 시대정신을 지향하기 위해서 시민적 지지를 국회의 정치과정에 투영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비단 안보문제 뿐만이 아니다.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의 유신을 긍정하는 보편적이지도 않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시대착오적 역사관을 가진 인물의 국무위원 후보 내정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정권의 적폐청산은 추동력을 얻을 수 없다.   
 
선거민주주의 자체를 형해화시킨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일탈과 탈선을 응징하는 청산작업 등이 안보정국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 북핵 위기 해법이 아님에도 야당과 보수진영에서 전술핵 재배치는 물론 급기야 현실성 자체가 전무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 위기 등 안보국면과 인사에서 촉발된 실망이 지지층의 이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촛불혁명의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정부 출범 100일이 넘은 지금, 촛불민심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개혁은 이제 시작이다. 
 
 
ccr21@hanmail.net다른 글 보기
▶ 필자 소개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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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과 몰락하는 미국의 정치

트럼프 대통령과 몰락하는 미국의 정치
 
 
 
정설교 화백
기사입력: 2017/09/08 [01:5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트럼프의 정신감정 필요성을 주장하는

미 하원의원 조 프로그랜    © 정설교 화백

 

▲미국의 매카시 광풍은 미국의 정치를 벼랑끝으로 향하게 만들었지만

현재도 미국의 정치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 정설교 화백

 

▲  베트남 전쟁과 존슨 대통령   ©정설교 화백

 

 

 

▲  극우 반공주의자 닉슨 

그는 마오쩌둥 중국공산주의와 손을 잡았다.

그의 반공은 위선이 아닐 수 없다.  © 정설교 화백


 

북한과 말 폭탄을 주고받는 북미대결에서 미국대통령 트럼프에 대하여 그의 측근들도 그의 정신상태를 걱정하며 시간이 소요되는 탄핵보다는 미국의 수정헌법 제 25조에 의한 트럼프가 대통령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미국의 지도자는 왜 이렇게 정치경제사회문화에서 곤경을 면하기 어려운 것일까?

 

미국의 정치 후진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한국전쟁이 벌어진 시기다미국무부 내에 205명의 공산주의자의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는 공화당의 매카시 의원에 의하여 대통령인 루스벨트트루먼아이젠하우어까지 의심을 받아 미국의 위신을 크게 추락했다. “위스콘신출신의 매카시는 진지한 정치활동가가 아니라 술꾼으로 더 유명한 인사였다고 에릭 프라이 뉴올리언 대학 교수는 말한다매카시는 1950년 초 한 지인이 그에게 국무부에 공산주의자들이 침입하고 있다는 선거 캠페인을 하면 유리할 것이라고 조언하였다이에 그는 1950년 2월 9일 웨스트버지니아의 휠링에서 열린 공화당원들의 숙녀클럽에서 연설하면서 국무부 공산주의자 발언을 한 것이다.

 

이후 매카시는 205명의 명단에서 단 한명의 공산주의자를 대지 못했지만 그가 이끈 청문회는 미국대중의 정치적 구경거리가 되어 전국을 강타하였고 미국에서 진보적이라는 민주당원과 자유주의 지식인에 대한 매카시의 광포한 공격과 음모이론은 당시의 분위기를 휩쓸었다. 1948년 민주당의 루스벨트의 참모였던 엘저 힐스가 1930년대의 소련의 간첩이었다고 고발당하였고 그는 미국의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하지만 히스가 정말 간첩이었는지는 지금도 확실하지 않다어쨌든 이 사건으로 힐스가 유죄판결을 받자 대중들은 공산주의자가 미국정부에 잠입하여 미국은 내부로부터 커다란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증거로 보았다.

 

힐스의 사건으로 득을 본 사람은 켈리포니아의 주지사로 상원의원인 리처드 닉슨이다공산주의 사냥꾼으로 강력한 사냥꾼인 닉슨은 1952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아이젠하우어의 선거참모가 되었다.

 

공산주의자에 대한 주된 사냥의 표적은 공산당에 많은 동정을 보내던 영화계였다. 1947년 영화계는 조사가 시작되어 결국 19명의 공산주의자가 마녀사냥에 간첩으로 몰렸다혐의자들은 공개적으로 치욕을 받았고 친구나 동료들을 고발하도록 강요하며 그들도 같은 과정으로 공산주의자로 몰렸다미국에서 공산주의자란 낙인은 사회비판적 시각을 갖거나 자유사상을 갖는 것으로 충분했다혐의를 입증할 자유는 FBI가 공급하였고 빨갱이를 만드는 것에는 불법적인 방법도 동원되었다.

 

빨갱이 조작에는 의회까지 동원되었다매카시 의원이 그 책임자로 간첩영구조사 소위원회가 신설되어 거기에 소환된 사람은 소환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최고의 의심을 받았고 일자리를 잃었으며 미국사회에서 간첩이라는 붉은 딱지를 달았다.

 

미국의 영화계는 320명의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공산주의자로 의심받는 사람들은 할리우드에서 축출되었다이에 미국의 영화계는 일할 사람이 없었고 정치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채용이 거부되었는데 그중에는 여 덜 살배기 소녀도 있었다.

 

매카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950년 의회선거에서 그를 반대한 민주당은 상하 양원에서 모두 참패하고 우익 공화당이 양원에서 압승을 거두었다트루먼 정부는 수천 사람들이 매카시 광포에 무너져도 그저 속수무책이었다중국의 본토에서는 마오쩌둥의 승리로 미국 내 중국전문가가 모조리 쫓겨났다매카시는 그뿐만 아니라 3만권에 달하는 불온서적의 명단을 만들고 미국의 도서관에 있는 반미서적들을 모조리 사라지게 만들었다.

 

1953년 10월 매카시는 미국의 군대에서 공산주의자로 불리는 사람들을 조사하기 시작하여 그로부터 수개월동안 수십 명의 고위 장교를 위원회로 소환하였다그가 노린 사람은 국방부장관 로버트 스티븐슨이었다심문과정은 TV로 중계되었고 매카시의 거칠고 불공정한 심문방식이 국민들 눈에 비쳐졌다아이젠하우어 대통령은 물론 부통령인 닉슨도 매카시의 방법을 비판할 정도였다이에 백악관에 도움을 받아 상원에 매카시에 대항하는 전선이 형성되었고 1954년 12월 2일 매카시의 언동이 품위를 잃었다고 질책하였다매카시는 위원회 의장직을 잃고 그의 반공산주의 영향력은 상실하였으며 3년 뒤에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매카시는 사망했다.

 

매카시의 사망으로 매카시의 마녀사냥은 끝났지만 아이젠하우어 시절 미국에서는 정치를 비판하는 좌익은 찾아 볼 수 없었고 미국에서의 반공산주의는 미국의 이면헌법으로 비판적인 언행은 공공연하게 몰매를 맞았다매카시로 인하여 미국의 정치는 추락하기 시작하여 미국인들은 가족과 집과 기르는 가축만 생각하며 지금도 대부분 정치에 관심이 없다매카시의 유산은 지금까지 끈질기게 남아있어 미국인의 정치의식은 매우 낮으며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미국의 정치경제문화는 추락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아무리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정치와 지도자는 후진성을 면치 못할 것이고 트럼프와 같이 분별없는 대통령이 또다시 등장할 것이니 이는 존슨의 베트남전, 닉슨의 워터게이트, 레이건 이란 콘드라,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예방전쟁 같은 국제법과 자국의 헌법을 유린하는 대통령이 계속 탄생할 것이다. 한 나라의 발전은 그나라 지도자의 역량에 달려 있으며 그런면에서 미국의 정치와 미래는 암울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비극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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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이 비단강 명성에 똥칠했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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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7/09/08 11:19
  • 수정일
    2017/09/08 11:1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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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충남문화재단 ‘이제는 금강이다’ 옛길 걷기와 문화·예술·역사 탐방

17.09.08 08:36l최종 업데이트 17.09.08 08:36l

 

 ‘이제는 금강이다’ 탐사대가 충남 공주시 청벽 옛길을 걷고 따라 걷고 있다.
▲  ‘이제는 금강이다’ 탐사대가 충남 공주시 청벽 옛길을 걷고 따라 걷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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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엔 이슬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4대강 사업으로 호수로 변한 강물은 잔잔하다. 녹조로 물들었던 강물은 지난밤 빗줄기에 사라졌다. 수줍은 물안개가 핀 강물 위로 물고기 한 마리가 뛰어오른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시작된 충남문화재단의 '이제는 금강이다' 행사 7일째. 지난달 31일 금강 발원지인 전북 뜬봉샘에서 무사 종주 기원제와 함께 출발한 탐사대는 강물을 따라 옛길을 탐사하고 지역의 문화·예술 공연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다. 

7일 오전 9시 세종시와 공주시의 경계지점인 금강변 청벽으로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국예총 오태근 충남연합회장과 최창석 공주문화원장을 비롯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와 시민 등 30여 명이 참여했다. 

 

"어젯밤에 내린 비로 오늘 가시는 길이 위험하고 미끄럽다. 뱀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인솔자의 통솔에 잘 따라주시고 천천히 금강을 감상하시면서 이동해 달라."

산악인이자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김성선 탐사대 대장의 목소리가 커진다. 오늘은 17년 전까지 옛길로 이동되던 강 비탈을 걷는 코스로, 보트를 타고 이동하여 돌아와야 하는 험난한 길이다. 

보트를 타고 내린 강변은 온통 풀밭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된 길에는 환경부에서 지정한 생태계 교란종인 환삼덩굴과 미국자리공이 먼저 반긴다. 곱던 모래가 깔렸던 그 길은 질퍽거리는 펄밭으로 변했다. 

 

 소설 ‘금강’을 저술한 김홍정 작가가 강변 옛길에 스민 이야기보따리도 풀고 있다.
▲  소설 ‘금강’을 저술한 김홍정 작가가 강변 옛길에 스민 이야기보따리도 풀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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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중인 김홍정 작가는 "금강 걷기가 절반 정도 온 것 같다. 4대강 사업으로 금산 천내습지를 공사한다는 말에 지역민들이 굴착기 밑에 드러누워서 막아냈다. 그 덕분에 고스란히 자연이 살아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강변 옛길에 스민 이야기 보따리도 풀었다. 

"이곳은 어릴 때 소풍도 오면서 가족들과 나들이도 했던 곳이다. 17년 전쯤에는 차량이 다니고 사람이 다니는 옛길이다. 높은 절벽이 있어서 4대강 사업에도 살아남은 바위산이다. 자연은 그냥 둔다면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만 자연을 훼손하면 자연은 우리에게 저항한다. 옛 금강 청벽을 노래한 시인들은 항상 청벽의 푸른 벽과 건너에 흰 모래밭이 어우러진 곳에 학이 날고 그 학이 날아가는 것처럼 자신의 시정도 날았다고 표현했다. 지금은 학이 사라지진 곳에 건물이 서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끓어진 지 17년이 지난 충남 공주시 청벽 옛길.
▲  사람들의 발길이 끓어진 지 17년이 지난 충남 공주시 청벽 옛길.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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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억새도 보인다. 강물은 탁하고 장맛비에 떠내려온 쓰레기가 간간이 눈에 띈다. 진흙더미 펄밭에는 수달, 고라니, 새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다. 풀숲에 숨어있던 고라니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서 산으로 뛰어오른다. 

"와 고라니다"
"저놈이 (농작물) 다 뜯어 먹어서 걱정이여."

 

 사람들의 발길이 끓긴지 17년이 지난 충남 공주시 청벽 옛길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람들의 발길이 끓긴지 17년이 지난 충남 공주시 청벽 옛길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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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를 보고 좋아하는 참가자와 고라니 때문에 피해를 본 농민의 의견이 엇갈린다. 작은 웅덩이에 웅크리고 있던 물뱀이 스르르 사라진다. 인기척에 놀란 메뚜기도 튀어 오른다. 겉보기엔 건강한 생태계로 보였으나 실상은 4대강 사업에 망가진 모습이다. 

지역에서 참여한 한 주민은 "어릴 적에 여기에서 말조개도 잡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내 머리만 한 정도였다. 그리고 넓은 백사장처럼 모래사장이 있었다. 여름 장맛비가 내리면 다리가 찰랑찰랑 잠길 정도였는데 4대강 준설로 모래톱은 사라지고 강바닥이 낮아지면서 물 높이도 낮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강바닥에 쌓인 펄도 (예전에는) 다 바다로 흘러갔는데 보가 생기면서 강바닥에 쌓이고 있다. 그러니 강물이 썩어서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으로 변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최창석 공주문화원장은 "공주사람으로 멀리서 지나면서 아름다운 백사장과 경치만 감상해오다 오늘 청벽 길은 처음 걸었다.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답게만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걸어보니 너무 많이 자연이 훼손되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어릴 때는 강변 모래밭에서 피라미도 잡고 물놀이도 하면서 놀았는데 강물도 탁하고 오염을 보면서 안타깝다. 가슴이 매우 아프다. 앞으로 어린 청소년들이 이런 현장을 보여주고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대강 사업으로 금강에 3개의 보가 막히면서 새들목(하중도)로 들어가는 길목이 온통 녹조밭이다.
▲  4대강 사업으로 금강에 3개의 보가 막히면서 새들목(하중도)로 들어가는 길목이 온통 녹조밭이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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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일정을 마친 탐사대는 금강의 마지막 희망으로 불리는 새들목(하중도)로 들어갔다. 새들목은 수십 년 전부터 모래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하중도로,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43호 흰꼬리수리, 천연기념물 제323호 황조롱이, 멸종 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흰목물떼새의 서식지다. 이외에도 멸종 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참매와 매 등 20여 종의 조류 서식지다. 또, 최근에는 천연기념물 제330호 수달이 사는 흔적도 발견됐다.  

2012년 공주시는 시민 공모를 통해서 새들의 쉼터라는 뜻의 새들과 나들목의 어원인 목을 합쳐 '새들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입구부터 강물은 녹조로 덮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모래사장은 온통 잡풀들로 찌든 상태다. 생태계 교란종인 '가시박'이 아름드리 버드나무를 타고 오르면서 옛 명성이 사라지고 있었다. 

 

 참석자들이 가시박이 뒤덮은 새들목(하중도)에서 그나마 ‘금강의 희망이다’라고 외치고 있다.
▲  참석자들이 가시박이 뒤덮은 새들목(하중도)에서 그나마 ‘금강의 희망이다’라고 외치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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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 산다는 참가자는 "지난 2009년까지 공주시민의 식수로 사용하던 물인데 더러워서 보지도 못할 지경이다. 녹조가 생기고 똥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누가 알까 두렵다. 결국, 4대강 사업이 비단강의 명성에 똥칠한 것이다"고 안타까워했다. 
 

 산악인이자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김성선 탐사대 대장이 풀숲을 헤치며 앞장서고 있다.
▲  산악인이자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김성선 탐사대 대장이 풀숲을 헤치며 앞장서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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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선 탐사대 대장은 "오늘이 (탐사) 7일째다. 산길만 걷다가 강길을 걸어보니 행복하다. 처음 금강을 생각했던 것보다 강의 오염이 심각하다. 4대강 사업의 후유증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망가지는 모습을 봤다면 앞으로 우리가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리고 금강 지킴이가 되어야겠다. 강과 관련하여 청소년 체험 활동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봤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금강의 옛길을 걷다 보니 낙석 구간을 지날 때면 늘 걱정했는데 오늘까지 다행히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끝나는 날까지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석장리 박물관에서 공연에 나선 웅진문화회 연주자들과 함께했다.
▲  석장리 박물관에서 공연에 나선 웅진문화회 연주자들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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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은 석장리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서경오 웅진문화회 대표는 "피아노 연주와 해금, 공주시민 배우들이 오늘 공연의 주제곡인 '엄마야 누나야 함께 살자'라는 공연을 준비했다. 모든 공연은 금강과 어울리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력을 했다. 금강의 잔잔함을 다 함께 감상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 행사는 금강변의 문화·예술·인문학·역사적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해 기획됐다. 올해 주제는 '금강 따라 걷는 옛길 여행'이다. 종주단과 지역별 20여 명의 탐사대원이 탐사대를 꾸려 참여했다. 소설 <금강>을 저술한 김홍정 작가, 독도 사진 작가인 이정호씨, 금강의 영상콘텐츠를 제작해온 정경욱 감독이 맡아 이번 종주를 기록한다. 

산악전문가 김성선·조수남씨가 탐사대의 안전을 책임진다. 충남문화재단은 주제에 걸맞게 금산 자연의 길 걷기, 세종 조치원 원도심 골목길 투어, 공주 유구천 지천길 걷기, 공주 원도심 투어, 강경 근대문화길 걷기 등 지역별로 주제가 있는 걷기 프로그램으로 행사를 구성했다. 탐사대는 23일 서천하구에 도착할 예정이다.
 

 일행들은 마지막으로 찾아간 충남 공주시 무릉동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을 찾았다.
▲  일행들은 마지막으로 찾아간 충남 공주시 무릉동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을 찾았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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