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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3·1절 연설… 불편한 심기 드러낸 조선·중앙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3/02 10:39
  • 수정일
    2018/03/02 10:3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 “일본과 갈등 부를 것” 중앙 “북 비핵화 이야기 빠져”…경향 “일본에 가장 강력한 메시지”

정민경 기자 mink@mediatoday.co.kr  2018년 03월 02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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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다 죽는다? 낙동강 수문은 왜 닫혔나

[주장] 특정세력에 의해 민심 왜곡... 3.1절, '4대강 독립 만세'를 외치는 이유

18.03.02 00:27l최종 업데이트 18.03.02 00:34l

 

부슬부슬 봄비가 내렸다. 삼일절을 기념하는 봄비다. 이 봄비는 여느 봄비와 달리 무척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라 농민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크게 환영받을 바이지만, 필자에게는 특히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바로 '4대강 독립'의 길로 성큼 다가가게 할 봄비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큰 기조 중의 하나가 '4대강 재자연화'였다. 이는 국민적 열망의 반영이자, 촛불 민심의 반영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는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따라서 이를 정책에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4대강 보 개방을 방해하는 세력들

그 수순으로 4대강 보 개방 지시가 두 차례 있었다. 지난해 6월 1일에 한 차례 수문개방이 있었고, 이후 지난해 11월 13일 2차 수문개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난해 6월의 1차 개방에서는 개방 폭이 크지 않아서 이른바 '찔금 개방'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지난해 6월 1일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낙동강 보의 개방이 이루어진 날이다. 4대강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지난해 6월 1일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낙동강 보의 개방이 이루어진 날이다. 4대강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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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지난해 11월의 2차 개방에서는 개방 폭이 비교적 컸다. 금강과 영산강은 모든 수문이 열렸다. 그러나 유독 낙동강에서만 개방의 개수도 적었고, 그마저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기막힌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 사태를 초래한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일부 세력들 때문이었다. 지난해 6월 1차 개방 때 낙동강 강정고령보 주변에는 여러 장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수문 개방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체육회나 부녀회, 새마을협의회, 이장협의회, 번영회, 한국농업경영인회 등의 이름으로 내걸렸다.

"대책없는 보개방에 달성농민 다 죽는다", "강정보 개방 결사반대한다", "이 가뭄에 달성보 개방은 미친 짓이다" 

현수막 문구는 반대 이유로 농민 핑계를 댔다. 농사 지을 물도 부족한데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열어서는 안된다는 논리였다.
 

 대구지역 단체들이 내건 '보 개방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
▲  대구지역 단체들이 내건 '보 개방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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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농민들을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다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첫 일성이었다. 필자 역시 농민의 자식이고, 도시로 나와 직접 텃밭농사도 지어본 사람으로서 농사에 물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의 주장에 동조해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당시의 정부 방침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농사짓는 농민들을 배려해서 보 개방 폭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선택했다. 4대강 보의 수위는 순서상으로 관리수위, 어도 제약수위, 양수 제약수위, 지하수 제약수위, 하한 수위, 최저 수위로 구분되어 있다.

이중에서 '양수 제약수위'란 것은 국토부의 정의가 "농업용 양수장 취수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수위"로, 농업용수 공급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수문을 연다는 뜻으로 당시 개방 폭은 딱 그 수준으로 이루어졌다. 영농철인 6월 농업용수 공급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은 수준의 조심스러운 개방이었던 셈이다.  

 4대강 보 수위의 정의. 양수 제약수위란 것은 농사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수문을 개방하는 것이다.
▲  4대강 보 수위의 정의. 양수 제약수위란 것은 농사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수문을 개방하는 것이다.
ⓒ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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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문이 닫히다...일부 단체와 언론이 만든 합작품

그런데도 경상도 지역 일부 단체들은 엉뚱한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것을 지역의 언론은 대서특필했고, 그것이 지역의 여론인양 호도되어 정부는 보 개방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왜곡된 여론의 반영 결과 지난해 11월의 2차 개방에서는 낙동강 8개 보 중에서 단 2개만 열리는 초라한 개방이 결정되었다.

당시 합천창녕보(이하 합천보)의 수문은 큰 폭으로 열렸다. 그로 인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래톱이 돌아오고, 새가 찾아오고, 지천이 살아나고 수달이 찾아오는 등 낙동강의 생태계가 되살아난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 MB와 문대통령께 꼭 보여주고 싶은 영상 ... 이것이 부활한 낙동강이다 )

정부는 보 개방을 통해 실제로 환경단체와 하천 전문가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하는 바를 검증해보고자 했다. 강을 실제로 흐르게 했을 때 강의 하상이나 유속, 수질, 보의 안정성 등을 보 개방 전과 비교 분석해보고자 했다. 

그를 통해 올해 연말 4대강 보의 존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었다. 보 개방이나 철거에서도 이명박근혜 정부에서처럼 일방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기조하에 세워진 나름 조심스러운 선택이었다.
 

 2차 수문개방이 이루어져 낙동강이 막 되살아나고 있을 무렵.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과 한농연 소속 농민들과의 간담회가 열렸고, 이를 지역 보수언론에서는 대서특필 했다. 가뭄으로 인한 영향을 마치 보를 개방해서 작물이 시들었다며 왜곡된 여론을 만들어냈다.
▲  2차 수문개방이 이루어져 낙동강이 막 되살아나고 있을 무렵.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과 한농연 소속 농민들과의 간담회가 열렸고, 이를 지역 보수언론에서는 대서특필 했다. 가뭄으로 인한 영향을 마치 보를 개방해서 작물이 시들었다며 왜곡된 여론을 만들어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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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는 자유한국당의 추경호 의원과 한농연 조직이 움직였다. 추경호 의원은 지난 1월 한농연 소속 농민들을 불러 보 개방과 관련된 간담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또다시 지역의 보수언론에 주요하게 보도 되고 그것이 지역의 일반적 여론인양 호도됐다. 

특정세력에 의해 왜곡된 농심

그러나 당시 필자가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들의 주장은 철저히 왜곡된 일방적 주장이다. 그들은 2월 중순이면 양수장을 가동해 농업용수를 공급해야 겨울 밭작물의 피해가 없을 거라면서 양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수문을 개방한 문재인 정부를 성토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 실렸던 달성군의 현풍양수장 주변의 농민과 농어촌공사 고령달성지사를 통해 확인한 바 그들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낙동강변 옆 대구 달성군 현풍면 원교리의 현풍들의 보리밭. 이 들은 대부분 보리밭이고 이곳에는 실지로 마늘과 양파밭이 많이 없고, 이곳에 물을 대는 것도 땅이 녹고, 양수장이 가동하는 시기인 4월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곳 농민의 증언이었다.
▲  낙동강변 옆 대구 달성군 현풍면 원교리의 현풍들의 보리밭. 이 들은 대부분 보리밭이고 이곳에는 실지로 마늘과 양파밭이 많이 없고, 이곳에 물을 대는 것도 땅이 녹고, 양수장이 가동하는 시기인 4월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곳 농민의 증언이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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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말 낙동강 바로 옆인 대구 달성군 현풍면 원교리의 시금치밭에서 작업을 하던 농민을 만나 확인을 해보니 그는 "농사에 물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지금 당장 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르면 3월 말이나 4월 초에 가서 물을 공급해주면 된다"면서 "지금은 땅이 얼어서 물을 줄 수도 없기 때문에 양수장이 가동이 되는 그때 물을 주면 된다"고 설명했다. 

당시 전화를 통해 확인한 농어촌공사 고령달성지사 관계자 또한 올해 양수장 개방은 4월 말에 계획하고 있다는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즉, 모내기철이 다가오는 4월 말이나 5월 초가 되어야 현풍양수장 양수기가 시동을 건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추경호 의원과 한농연 소속 일부 농민들의 의도는 성공을 한 셈이 된다. 결국 정부는 그들의 의도대로 지난 2월 2일 합천보 수문을 닫아 걸었다. 당시 수문개방 문제를 관리하던 환경부는 제대로 검증도 해보지 않고 일부 세력의 주장에 동조해준 셈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필자를 포함해 환경단체와 농민 등 이해 당사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사후에 관련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잘못된 결정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발언이었다. 
 

 합천보의 수문의 닫혀 현풍양수장에서 양수가 가능하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양수장은 가동되고 있지 않다.
▲  합천보의 수문의 닫혀 현풍양수장에서 양수가 가능하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양수장은 가동되고 있지 않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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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수문개방을 통해 드러났던 양수장의 양수구가 합천보 담수로 인해 다시 물에 깊게 잠기게 된 지금까지도 양수장이 가동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런 상황을 뒷받침한다. 

'4대강 독립'의 날을 생각하다

봄비 내린 삼일절을 맞아, 지난 수개월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4대강 보 개방이란 것은 이른바 '4대강 독립'의 초석이다. 영남의 젖줄이자, 인간을 비롯한 뭇생명들의 목숨줄과도 같은 4대강이 저 죽임의 보로부터 놓여나는 것이 '4대강 독립'이다. 이명박이 세운 저 녹조라떼 제조시설인 죽임의 보로부터 강의 뭇생명들이 해방되는 그날이 바로 4대강 독립의 날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압제에 강력히 저항한 날이 삼일절이다. 그 삼일절을 맞아 '4대강 독립운동'을 생각한다. 그리고 삼일절의 그 정신을 이어받아 기미년 삼일 독립만세를 외쳤던 그러한 각오로 '4대강 독립운동'을 진행해야 한다는 다짐을 해 본다.

 4대강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현재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시리즈'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 촬영 현장이다. 낙동강에서 지난 2월 초 취재 모습.
▲  4대강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현재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시리즈'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 촬영 현장이다. 낙동강에서 지난 2월 초 취재 모습.
ⓒ 오마이뉴스 안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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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의 핵심 지역이 낙동강이듯 '4대강 독립운동'의 핵심은 바로 낙동강이 흐르는 이곳 영남지역이다. 이곳의 왜곡된 여론을 바꾸어내고 낙동강이 예전처럼 유유히 흐르게 하는 그 길이 4대강 독립을 완성하는 길이다.

삼일절을 맞아 4대강 독립을 방해하는 세력에 맞서 당당히 외쳐나갈 것이다.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그 정신으로 4대강 독립 만세를 외쳐나갈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간들과 야생동식물과 같은 뭇생명들의 목숨줄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은 살고 싶다! 4대강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청와대 앞에서 열린 보 수문 추가개방 촉구 기자회견의 모습.
▲ 영남의 젖줄 낙동강은 살고 싶다! 4대강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청와대 앞에서 열린 보 수문 추가개방 촉구 기자회견의 모습.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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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힘차게 외쳐본다.

"대한독립 만세!!! 4대강 독립 만세!!!"

'4대강 독립운동'에 동의하고, 그 길에 동참하는 작은 통로가 있다. 다음 같이가치 모금함(관련 링크 - 다시 돌아온 녹조라떼, '4대강 독립운동'에 동참해주십시오)으로 들어가서 지지의 뜻을 밝혀주면 된다. 영남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4대강 독립군들에게 작은 힘이 되주시길 부탁드린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지난 10년 간 4대강사업 현장을 기록하고 이를 고발해왔습니다. 이 글은 <평화뉴스>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낙동강#삼일절#4대강 독립운동#보 수문개방#달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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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 자신감을 얻었다”

<기고> 남북공동응원단 활동과 앞으로의 통일운동
이하나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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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8  16: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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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나 통신원(남북공동응원단 홍보팀장,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정책국장)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평창에서 전국으로 울려퍼진 “반갑습니다” “우리는 하나다” “다시 만납시다” 외침들. 이 현장에 ‘남북공동응원단’이 있었다.

평화올림픽이 국민들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순간을 목도한 우리는 통일운동에 자신감을 얻었다. 남북공동응원단이 느낀 평창올림픽의 의미와 소감을 전한다. /필자 주

 

우리는 왜 평창으로 향했나 - 단일기가 물결이 되었을 때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내내 낮이나 밤이나 단일기를 든 환영이 계속됐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평창올림픽이 시작될 때를 돌이켜보면, 자칫 아찔한 장면들이 있었다. 만경봉호가 남북의 바닷길을 열며 묵호항에 도착하는 순간, 항구에는 북측 국기를 불태우며 “돌아가라!”고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들의 염원과 동떨어진 일부세력의, 말 그대로 ‘난동’이었는데 이를 처음에 막지 못한 것이 통일운동가 한 사람으로서 가슴 아팠다.”
​김병규(응원단 운영팀장, 한국진보연대 반전평화위원장)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을 앞둔 강릉아트센터 앞에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북측 국기를 태우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개막식 현장에서도 곳곳에 평화올림픽 ‘반대’ 집회가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올림픽이 진행되면서, 평화올림픽을 반대하는 이들의 소동은 맥을 못 추고 가라앉았다. 남북공동응원단의 ‘장외’ 응원이나 다름없는 환영활동과 이에 호응한 국민들 덕분이었다.

응원단은 평창과 강릉 등지를 단일기로 뒤덮었다. 대학생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거리에서 단일기를 들고 통일노래를 부르며 환영분위기를 만들었고, 개막식 날에는 전국에서 모인 평화통일 활동가들이 단일기 거리를 만들었다.

어느새 평창에서는 관중들은 물론 자원봉사자들도, 버스 기사도, 관계자들까지도 모두가 자연스럽게 단일기를 들었다. 우리가 들기 시작한 단일기가 하나의 물결이 되는 것을 본 순간, 우리는 ‘평화올림픽을 원하는 것은 국민들의 마음’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응원도, 평화도 우리 힘으로

   
▲ 남북공동응원단은 경기장 관중들 앞에 서서 응원을 지휘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남북공동응원은 생각보다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했다. 응원단 좌석은커녕 입장권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 단일팀의 첫 경기에는 고작 11명만이 입장할 수 있었다. 이후 경기마다 응원단은 새벽부터 줄을 서가면서 간신히 표를 개별 구매해 입장해야 했다.

단일기를 공급하는 것도 ‘일’이었다. 아이스하키 경기마다 4-5천장의 단일기가 필요해 준비한 단일기는 금새 동이 났다. 특히 ‘독도가 있는 단일기’를 달라는 시민들의 성원이 대단했고, 경기가 끝나도 버려지는 단일기가 단 한 장도 없었다.

긴급 모금을 통해 단일기를 제작해야 했다. 개막식에는 미처 단일기를 충분히 배포하지 못했는데 개막식 공동입장의 순간 관중석 가득 단일기가 나부꼈다면 그것이야말로 평화올림픽 시작의 선언이 아니었을까. 못내 아쉬운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북의 만남을, 감동을 만들었다. 경기장에서 처음 만났지만 같은 구호, 같은 박자로 응원소리를 맞추어내고 단일기 파도타기를 만들었다.

22일 북측응원단이 강릉 정동진에서 ‘깜짝’ 공연을 하던 날, 전농 회원들은 진행 중이던 행사를 축소하고 달려가 눈물의 공연을 만들었다. 24일 원주체육관 북측 응원단의 마지막 공연에는 6천명의 시민들이 체육관을 가득 채우고 박수를 보내며 화답했다.

주어진 것은 없지만 갖은 노력 끝에 만들어 낸 남북의 만남. 남북관계의 현 주소를 드러내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응원도 평화올림픽도 저절로 찾아오지는 않았다.

시민들이 외치는 ‘우리는 하나다’를 보며
 

   
▲ 경기장 앞에서 응원단이 나눠준 단일기를 들고 입장하는 시민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 출전한 경기장 곳곳에는 어김없이 '우리는 하나다' 현수막이 내걸렸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아이스하키 경기장에 가득했던 수천명의 관중들이 한 목소리로 ”우리는 하나다!”를 외칠 때의 그 소리!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고윤혜(응원단, 부산대학생겨레하나)

남북공동응원단 활동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경기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의 목소리다. 관중들은 숨죽이며 경기를 지켜보다가도 한 목소리로 응원을 했다.

14일 일본과의 경기에서 마침내 첫 골이 터졌을 때는 경기장이 터져나갈 듯 했다. 20일 단일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경기장 3층 구석에서부터 ‘힘내라’ 함성이 시작되면 경기장 전체 관중들이 한마음으로 단일팀을 응원했다.

시민들의 한 목소리를 이끌어낸 것은 관중 앞에 서서 응원을 지휘한 남북공동응원단이었다. 응원단 좌석이 보장되지 않았지만, 응원단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전체 응원단이 지휘자가 되어 관중들과 함께하는 응원을 만들어냈다.

“관중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누가 앞에 서서 응원하자고 하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우선 신뢰를 주자’고 마음먹었다. 경기 시작 전에 먼저 단일기를 나눠주며 자기 소개와 인사도 하고, 응원구호를 연습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내 앞의 관중들이 온 몸과 표정으로 응원에 동참하는 것을 보면서, 매 순간 감동받았다”
권순영(응원단 서울팀장, 서울겨레하나 운영위원장)

“시민들을 주인공으로 만든 통일응원이라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관중들이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국민들이 단일팀을 믿고 지지하는 마음을, 응원으로 만들어 낸 것이 자랑스럽다.”
​전기훈(응원단 기획팀장, 부산민중연대 선전국장)

20대 통일의식이 걱정이라면? 민족을 만나게 해야

   
▲ 북측응원단의 모습. 남북 20대 응원단이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남북공동응원단의 대다수는 20대 대학생들이었다. 북측 사람을 만나는 것이 처음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통일을 책으로, 역사로 배운 학생들. 이들에게 응원단 활동은 남다르고 값진 경험이었다.

처음 북측응원단과 마주치자 수줍어하며 ‘하이파이브’를 위해 손을 내밀던 학생들. 북측 응원단이 손뼉을 마주쳐주자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던 학생들. 20일 단일팀의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까지 모두 빠져나간 경기장. 마지막으로 떠나는 북측 관계자에게 “다시 만납시다”라고 인사를 건네는 대학생들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북측응원단 200여명의 연령대는 17세에서 30세이고, 20대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남측응원단에도 대학생 100여명이 있었다. 이들은 같은 곳에서 10여일을 보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다.

이 젊은 20대들이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만나 대화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단일팀 선수들이 친한 언니 동생이 되었던 것처럼 20대 남북응원단 사이에도 그 못지않은 정과 민족애가 싹틀 수 있지 않았을까.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단일팀 논란과 20-30대에서의 부정적 반응에 대해 ‘요즘 20대 통일의식이 걱정’이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말 젊은 세대의 통일 의식이 걱정된다면 해결방안은 쉽다. 우선 만나게 해야 한다. 직접 만나고, 대화하는 것만큼 통일의식이 달라지는 계기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다음세대를 위해 우선 해야 할 일이다. 남측응원단과 북측응원단이 제대로 만나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응원 현장에서, 통일운동 자신감을 얻었다”

   
▲ 남북공동응원단의 최대 성과는 ‘자신감’이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남북공동응원단 활동을 마치고 응원단이 가장 크게 얻은 성과는 ‘자신감’이다. 스무 살 대학생부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생생히 경험했던 사람까지. 다양한 세대의 응원단은 시민들과 호흡하며 ‘우리가 힘을 합치면 다시 통일시대를 열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대학생들은 “시민들이 통일을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해주셨다”고 고백하고, 보다 나이 많은 세대는 “2000년대에 비해 마음의 벽이 크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 뜨거운 통일열망이 살아있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고 말한다.

“응원단을 준비하며, ‘시민들이 얼마나 호응할까?’하는 걱정도 있었다. 남북교류가 멈춰있던 시기, 종북몰이에 우리 스스로 위축된 것도 있었다. 그러나 관중들 표정과 몸짓에서 마음속에 살아있는 통일열망을 확인했고, 그 에너지가 발산되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구나’ 통일운동의 자신감을 가장 크게 얻었다.”
​이원규(응원단 응원팀장, 6.15부산본부 사무처장)

평창 이후 민간통일운동의 역할을 고민한다

   
▲ 남북공동응원단이 포즈를 취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27일, 판문점에서는 패럴림픽 실무회담이 열렸다. 판문점을 오가는 남북이 벌써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 통일대교 앞에서의 ‘소동’은 여전했고 앞으로도 남북관계는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고민은 본격적으로 열릴 화해시대 ‘민간통일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로 이어진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공동응원단 활동은 그런 의미에서 소중한 경험과 교훈을 준 생생한 현장이었다.

연초부터 매우 빠르게 또 조심스럽게 준비된 평창올림픽이었다. 오랜만에 열린 남북대화에서 과제는 산적했고, 정부도 안정적으로 ‘관’이 주도하는 올림픽을 치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평화올림픽은 결국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으로 완성되었다.

그 과정에 민간이 만들어낸 응원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 올림픽에 방문한 김영남 상임위원장, 김여정 제1부부장이 “우리는 하나다”에 감동받았다 말하고, 문재인 대통령도 “공동응원이 전 세계에 감동을 줬다”고 언급한 것처럼 말이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남북이 신중하게 열어낸 길에서, 남북공동응원단은 남북을 잇는 뜨거운 환영열기를 만들어 냈다. 이는 고스란히 평화올림픽의 밑거름이 되었고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동력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 복원이 본격화되는 만큼 앞으로는 보다 원활한 민관협력을 당부하고 싶다. 민간 통일운동은 이번 남북공동응원처럼 남과 북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안내자로서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이연희(6.15남측위 기획위원장,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

남북관계가 열리고 많은 기회의 장이 열릴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어떤 기회도 저절로 찾아오지는 않았다. 경기장 사람들의 손에 단일기를 쥐어주기까지 넘어야 했던 산, 그렇게 우리가 건넨 단일기가 큰 파도와 물결을 만들어낸 장면을 기억하며, 우리는 이번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간직하고 다음 통일운동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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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에 세운 소녀상 할머니는 한을 풀지 못했다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 ⑦] 당진 평화의 소녀상

18.03.01 12:06l최종 업데이트 18.03.01 12:06l

 

수많은 이 땅의 평범한 여성들을 강제로 전쟁터에 끌고 가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성노예로 만든 일본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고, 피해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졸속으로 체결한 한일위안부 합의의 폐기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전국 각지에 세워진-지금도 세워지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답사한다.  

이는 '국가'라는 이름 아래 조직적으로 전개된 여성 인권 유린과, 아직도 이를 공식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필자만의 평화적인 방법이며, 부끄럽고 잘못된 과거를 바르게 청산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이 사회의 여러 노력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단, 그냥 찾아다니기만 해서는 의미가 적다고 보고, 가능하면 소녀상이 세워진 지역의 역사성과 소녀상 건립이 갖는 의미, 소녀상의 모습과 상징성 등을 다양하게 알아보고 그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평화의 소녀상 답사를 넘는 지역 답사의 의미도 갖게 됨을 의미한다) - 기자 말 
 

당진 평화의 소녀상  당진 평화의 소녀상은 다른 일반적인 소녀상과 달리 꼿곳이 서서 하늘과 새를 바라보고 있다.
▲ 당진 평화의 소녀상 당진 평화의 소녀상은 다른 일반적인 소녀상과 달리 꼿곳이 서서 하늘과 새를 바라보고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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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 심훈, <그날이 오면> 일부 

1930년 3월 1일, 고향인 충남 당진에 터 잡았던 시인이자 소설가 심훈은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던 당시의 감격을 되살리며 독립의 염원을 담아 지금도 마음을 절절하게 뒤흔드는 이 시를 썼다. 생전에는 발표하지 못했던 이 시는 해방 이후인 1949년에야 발표된다. 

<상록수>로도 잘 알려진 심훈.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투옥되고 퇴학당한 학생, 신문사 기자이자 영화배우에 감독이기도 했던 청년, 그리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검열에 걸렸던 일제의 감시 대상, 고향 당진에서 농민문학을 개척한 계몽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그날'을 보지 못하고 35세의 짧은 인생을 불꽃처럼 살다 갔다. 

심훈이 1930년 3월 1일, 감격에 겨워 <그날이 오면>을 쓴 그날로부터 86년 뒤인 2016년 3월 1일, 그의 고향 당진시는 당진종합버스터미널 앞 광장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저항정신이 살아 있는 고장 당진
 

심훈  시 <그 날이 오면>과 소설 <상록수>로 유명한 심훈은 고향인 당진에서 필경사를 짓고 살다가 35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 심훈 시 <그 날이 오면>과 소설 <상록수>로 유명한 심훈은 고향인 당진에서 필경사를 짓고 살다가 35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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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을 통해 알 수 있듯 당진은 저항정신이 살아 있는 고장이다. 1919년 3월 10일, 16세의 원용은 학생이 서울에서 3.1 운동을 목격하고 내려와 고향인 면천(현재 당진시 면천면)에서 비슷한 나이 또래의 학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벌였다. 면천의 만세운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학생 주도의 3.1 운동'이었다.  

당진은 이웃한 서산과 함께 천주교가 가장 먼저 뿌리내린 고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이 당진 출신이고, 100년을 넘긴 천주교회가 여럿인 고장이다. '천주 앞의 평등'을 내세우는 바람에 서슬 퍼런 박해가 이어진 조선말에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새롭고 진보적인 사상과 종교를 빠르게 흡수하고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정신으로 역사에 일관된 흐름을 남긴 당진. 지금은 아산만과 바다로 이어지는 제철 산업 단지가 거대한 공단의 긴 띠를 형성하였고, 그 배후도시가 되면서 인구가 늘어나 2012년 '군'에서 '시'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른다.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시내가 크게 변모하고 있지만, 조금만 벗어난 시골에서는 기지시줄다리기 같은 민속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고장. 그만큼 변화가 빨라 좀 어지럽게도 보이는 당진시내에 들어서면 변화를 반영하듯 구도심과 신도시가 뚜렷하게 구별된다.    
 

당진 평화의 소녀상 뒷모습  당진 시가지가 확장되어 소녀상 앞에는 상가 빌딩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소녀상의 새는 그 위를 날아가려 하는 것 같다.
▲ 당진 평화의 소녀상 뒷모습 당진 시가지가 확장되어 소녀상 앞에는 상가 빌딩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소녀상의 새는 그 위를 날아가려 하는 것 같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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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 당진종합버스터미널도 15년 된, 비교적 근래의 시설이고 주변에 아파트 단지와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아침에 일찍 가니 도로 건너편의 고층 빌딩들이 소녀상에 그늘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수도권의 도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가 단지들이다. 그래서 이 소녀상을 잘 보려면 그늘이 없는 한낮에 찾는 것이 좋다. 

당진종합버스터미널 광장 한쪽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당진 평화의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에서 1002명의 시민과 34개 시민단체의 힘을 모아 6천만 원의 성금으로 세웠다. 이 소녀상은 다른 고장의 일반적인 소녀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우선 한복을 입은 소녀상은 앉아 있지 않고 우뚝 서 있다. 13~16세 정도의 소녀 형상이라 한다. 오른팔을 하늘을 향해 높이 들었는데, 그 손 위에는 한 마리 새가 놓여 있으며, 소녀의 시선은 새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새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당진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 오른손 위에 놓여 있는 새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며 지상과 천상의 매개체를 의미한다.
▲ 평화의 소녀상 오른손 위에 놓여 있는 새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며 지상과 천상의 매개체를 의미한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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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을 만든 배효남 작가는, 소녀가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은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고, 손 위에서 날개를 펴고 있는 새는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며 지상과 천상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발바닥에는 물방울 파장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미래 세대에까지 민족의 아픔과 슬픔, 역사적 교훈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바닥을 잘 들여다보니 할머니의 그림자와 평화를 상징하는 나비 그림도 있다. 

소녀상 옆 바닥에는 평화의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에서 새긴 글이 있다. 

"일제에 의하여 꽃다운 나이에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인권과 평화가 넘치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당진시민이 마음을 모아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합니다."
 

당진 평화의 소녀상 아래 발바닥에는 물방울 파장이 있고, 그 파장 위로 할머니 그림자와 나비가 그려져 있다.
▲ 당진 평화의 소녀상 아래 발바닥에는 물방울 파장이 있고, 그 파장 위로 할머니 그림자와 나비가 그려져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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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은 충남 지역의 마지막 위안부 생존자 이기정 할머니의 고향이다. 1925년 당진(송산면 당산리)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18세 때 위안부로 끌려가 싱가폴과 미얀마에서 갖은 고초를 겪은 뒤 해방 후 부산으로 귀국하였다. 하지만 위안부 후유증으로 결혼 후에도 불임으로 아이를 낳지 못했고, 중풍으로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한 채 삶을 이어갔다. 2017년 11월 11일 향년 93세로 세상을 떠나셨고, 당진시청에서 시민장을 치른 후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장하였다. 

그래서 그런가. 소녀상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 위를 올려다보면 소녀상의 시선과 손과 새가 모두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기정 할머니가 고통과 한으로 점철된 이 세상의 육신을 떠나 넋이나마 자유롭게 유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듯하다. 한을 품고 가신 할머니께 소녀상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란다. 
 

당진 평화의 소녀상  소녀상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새와 손과 소녀상의 시선이 모두 하늘을 향하고 있다.
▲ 당진 평화의 소녀상 소녀상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새와 손과 소녀상의 시선이 모두 하늘을 향하고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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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삼 이렇게 또 한 분의 할머니를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자괴감일지 모른다. 그분들이 생전에 원했던 것이 이루어졌나.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진정한 사과, 여성 인권과 명예 회복, 한일위안부 합의 파기, 이 말들이 아직도 허공을 떠돌고 있는 듯하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그날이 오면' 두개골이 깨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겠다는 심훈의 지극한 열망. 이미 그날이 온 지 73년째가 되어가지만 '그날'의 열정과 감동은 그저 역사 속의 박제물로만 남은 건 아닌가. 

2018년 3월 1일을 앞두고 2016년 3월 1일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보며 묻게 된다. 

심훈이 1919년 3월 1일에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1930년 3월 1일에 노래한 그 해방, 우리는 삼각산이 일어나고 한강물이 뒤집힌 그날에 얻은 해방으로부터 몇 걸음이나 더 앞으로 나가 있는가. 

※ 답사 정보 

* 서해안고속도로 당진 IC에서 나와 32번 국도 당진, 서산 방향으로 가면 당진에 닿는다. 평화의 소녀상은 당진종합버스터미널 앞 광장 서쪽에 세워져 있다.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를 이용해 당진에 가면 터미널 정문으로 나오자마자 오른쪽에 위치한다. 차를 가지고 가면 당진종합버스터미널 주차장에 주차하면 된다. 주차 공간이 넓고 주차비가 저렴하다. 

* 당진은 시내와 북쪽 해안의 공단 지대를 제외하면 전통적인 시골 풍경이 남아 있는 고장이다. 시간이 되면 송악 기지기줄다리기박물관에 가보거나 심훈 생가인 필경사에 들러보면 좋다. 필경사는 심훈이 직접 설계해서 지은 집으로, 1935년 <상록수>를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천주교 신자라면 합덕의 솔뫼성지에 가보면 좋겠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의 부조  농촌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했던 민속놀이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의 부조 농촌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했던 민속놀이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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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벌써 번식지에, 화사한 깃털 뽐내는 황여새

윤순영 2018. 02. 28
조회수 594 추천수 1
 

산수유 마을 '잔칫상'에 몰려들어 열매 포식

참빗으로 빗은 몸매에 형광빛 꼬리 깃털 눈길

 

크_포맷변환_YSY_1943_00001.jpg» 참빗으로 빗어내린 것처럼 고운 깃털의 황여새.

 

입춘이 지나면서 우리나라를 찾아와 겨울을 난 새들의 생활과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유난히 추웠던 올겨울 추위는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겨울철새들은 혼인색을 띤 채 번식지로 돌아갈 준비로 분주하다. 번식를 향해 북상하면서 먹이가 풍부한 곳으로 찾아든다. 힘든 번식을 앞두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크기변환_YSY_2022.jpg» 산수유 열매를 따먹는 황여새.

 

크기변환_YSY_2007.jpg» 열매를 통째로 삼키고 나중에 씨앗만 배설한다.

 

2월 초순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상자포리 향리천 주변의 산수유나무에 황여새 무리가 몰려들었다개군면은 산수유 마을로 새들에게는 잔칫상이나 마찬가지다황여새는 바짝 마른 산수유 열매를 즐겨먹는다. 인근 향리천 보에는 얼지 않고 흐르는 물이 있어 마른 목을 축이고 소화를 돕기에 제격이다. 물 찾아 먹이 찾아 번거롭게 멀리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크기변환_YSY_4417.jpg» 황여새는 나무꼭대기가 가장 편한 안식처다.

 

기변환_DSC_3821.jpg» 개군면 상자포리 향리천 양 방향을 따라 산수유 열매가 풍성하게 열렸다.

 

기변환_YSY_4330.jpg» 황여새는 은백양나무 꼭대기에서 주변을 살피다 안전을 확인한 후 먹이를 찾아 나선다.

 

황여새는 대개 나무꼭대기 가까이 앉는다이곳 은백양나무 꼭대기도 예외가 아니다무리를 지어 주변을 한참 살피다 한 마리가 날아오르자 무리 전체가 산수유나무로 달려든다안전이 확보된 것이다황여새는 산수유나무에 매달려 급하게 열매를 쪼아 먹는다열매를 쪼아먹다 또다시 한마리가 날아오르면 일제히 날아올라 순식간에 은백양나무 꼭대기로 돌아간다.

 

크기변환_YSY_2620.jpg» 산수유나무로 달려드는 황여새.

 

크기변환_YSY_2645.jpg» 산수유나무에 앉자마자 열매를 먹기 시작한다.

 

물을 마실 때에도 같은 행동을 보이며 이를 하루 종일 반복한다황여새 무리는 조직적인 체계와 질서 아래 움직인다새들은 열매를 따먹을 때와 물을 마실 때 무방비 상태가 된다개군면 면소재지는 차량과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번잡한 곳인데 황여새가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이 마을을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기변환_YSY_3983.jpg» 산수유나무는 황여새의 풍요로운 밥상이다.

 

크기변환_YSY_2470.jpg» 황여새가 열매를 따먹는 모습이 익숙하고 솜씨가 좋다.

 

크기변환_YSY_2044_01.jpg» 그렇지만 아무 열매나 먹지 않는다. 질 좋은 산수유 열매를 골라 목을 길게 뻗는다.

 

황여새가 무리를 지어 민첩한 행동을 하는 것은 맹금류의 습격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맹금류는 작은 새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그러나 맹금류는 인가와 사람을 기피한다맹금류의 생활방식을 아는 새들은 천적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려고 사람 쪽으로 다가서는 선택을 했다

 

크기변환_YSY_1964.jpg» 산수유 열매를 물고 잽싸게 날아가는 황여새.

 

크기변환_YSY_2565.jpg» 집중해서 열매를 따먹다가도 주위 낌새가 이상하면 재빨리 자리를 피한다.

 

크기변환_YSY_2704.jpg» 황여새는 이런 행동을 하루 종일 반복한다. 생존 본능이다. 뒤로 꼬리 끝이 붉은 홍여새도 보인다.

 

작은 새들은 매우 다양한 환경에서 생활하지만 특히 무리를 짓는 겨울철새들은 시골 민가 근처도심 정원공원 등 사람과 인접한 곳에 정겹게 찾아와 감고염향나무 열매회화나무 열매찔레 열매꽃사과 열매를 비롯한 나무 열매와 새순을 먹는다.

 

 황여새가 물 마시는 연속 동작

 

크기변환_YSY_3070.jpg» 주변의 안전부터 살핀다.

 

크기변환_YSY_3094.jpg»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부리를 깊숙이 물에 담그는 황여새.

 

크기변환_YSY_3072.jpg» 황여새는 물을 마실 때 아래부리를 두레박처럼 이용해 넘치게 퍼올려 삼킨다.

 

크기변환_YSY_3095_01.jpg» 황여새는 3회 정도 빠르게 물을 먹는다. 나무열매를 따먹을 때도 바쁘게 움직인다.

 

크기변환_YSY_3273.jpg» 곧바로 자리를 뜬다.

 

크기변환_YSY_3096.jpg» 물을 적당히 마시지 않으면 메마른 열매 표피가 벗겨지지 않고 씨앗과 함께 그대로 배설된다.

 

황여새의 겨울나기는 녹록하지 않다향리천의 텃새 직박구리가 방해한다직박구리는 까치만큼이나 영역에 대한 애착이 강해 자기 영역에 들어온 황여새가 못마땅하다전국을 떠도는 황여새는 어디를 가나 낯설어하고 텃새가 텃세를 부리는 힘은 막강하다.

 

두 마리의 직박구리가 황여새 무리를 쫒아 다니며 심통을 부리는 바람에 열매를 따먹기가 순조롭지 못하다그나마 수적으로 우세하여 직박구리 두 마리가 텃세를 부리기엔 역부족이지만, 황여새는 계속해서 직박구리의 눈치를 봐야 한다.

 

크기변환_YSY_4101.jpg» 황여새를 괴롭히는 향리천 텃새 직박구리.

 

크기변환_YSY_3281.jpg» 박새도 산수유나무를 찾는다.

 

황여새는 나는 모습이 몸에 비해 짧아 보인다날개를 매우 빠르게 퍼덕이며 오징어처럼 추진력을 이용해 날아가는 듯한 모양이 특이하다한국에는 전국적으로 찾아와 겨울을 나는 겨울철새이나 규모는 해에 따라 불규칙하다.

 

보통 1030마리때로는 50~100마리더 큰 무리는 200여 마리가 넘는 경우도 있다무리를 지어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고 땅 위에는 목욕과 물을 마시기 위해서만 내려오지만 뛰어다니다 땅에 떨어진 나무열매를 주워 먹기도 한다.

 

크기변환_YSY_1948.jpg» 급하게 산수유 열매를 따먹는 와중에도 좋은 열매를 고르는 황여새.

 

크기변환_YSY_2413.jpg»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는 곳을 찾아온 황여새. 첫 번째와 두 번째 날개깃 무늬가 탈처럼 보인다.

 

몸길이는 20㎝이고 다른 새와 달리 특징적으로 멋진 긴 머리 깃이 있다머리와 몸 윗면은 흐린 분홍색을 띤 회갈색의 질감 있는 깃털이 비단결처럼 느껴진다꼬리 끝 부분은 검고 꼬리 끝에는 굵고 선명한 노란색 띠가 형광색처럼 두드러진다눈에는 길고 검은 선이 있고 멱은 검은색이다첫째 날개깃은 검은색이나 첫째 날개덮깃 윗면의 흰 줄과 날개 끝은 노란색이다.

 

크기변환_YSY_2645_01.jpg» 황여새는 화려하면서도 지나침이 없다. 꼬리 끝에 노란 띠가 있으면 황여새고 붉은 띠가 있으면 홍여새다.

 

크기변환_SY3_0305.jpg» 꼬리 끝에 붉은 띠가 있는 홍여새.

 

둘째 날개깃 끝 부분은 흰색이고 끝에 돌출된 붉은 깃털도 형광색처럼 눈에 띈다아래꼬리덮깃은 붉은색이고 배는 회갈색이다약한 소리로 찌리리리리’ 하고 반복해서 운다.

 

흔하지 않지만 겨울이면 우리 주변으로 정겹게 다가오는 새다스칸디나비아 북부에서 캄차카에 이르는 유라시아대륙 중부북미 북서부에서 번식하고유럽 중부와 남부소아시아중국 북부북미 중서부에서 월동한다.

 

 

·사진 윤순영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촬영 진행 이경희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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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성노예 피해자 학살만행, 미국은 죄가 없나!

일제 성노예 피해자 학살만행, 미국은 죄가 없나!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3/01 [09:4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는 오늘 27일 3·1절 99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한·중·일 일본군 위안부 국제콘퍼런스에서 일본군이 조선인 성노예 피해 여성들을 학살한 영상을 최초 공개했다.

 

서울대 연구팀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찾아낸 19초짜리 흑백 동영상인데 발가벗겨진 조선인 여성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중국 군민당군의 모습 등을 촬영한 이 참혹한 영상은 미·중 연합군이 중국 텅충을 일본군으로부터 탈환한 다음날 찍은 것이다.

 

▲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조선여성들의 처참한 학살 시신     

 

▲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찾아낸 19초짜리 흑백 동영상 속의 조선인 성노예 피해자들의 처참한 시신들 

 

▲ 일제가 조선인 성노예 피해여성을 학살했다는 문서  

 

영상을 분석한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강성현 교수는 (촬영자)소속은 '164 통신사진중대 B 파견대'라고 돼 있고 (미군)영상 카메라맨 볼드윈이 1944년 9월 15일 촬영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미 연구팀은 텅충이 함락되기 직전인 1944년 9월 13일 밤에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는 내용이 담긴 미·중 연합군의 작전정보 보고서를 입수해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동영상자료가 발견됨에 따라 일본의 과거사 부정에 반박할 수 있는 새로운 자료가 확보된 셈이다.

 

▲ 2018년 2월 27일 SBS 8시뉴스에서 보도한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일본군 학살만행 증언 

 

2월 27일 SBS 8시뉴스에서는 이옥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관련 대담을 소개하였다. 

 

"데려다가 어찌했는가. 질러 죽이고 쏴 죽이고, 다 이렇게 죽였지! 먼저 죽은 사람들 정말 불쌍하지요..."

 

▲ 위안부 즉, 성노예 피해자들은 일본군의 특종군수품이었고 함락직전 군수품 폐기 방침에 따라 학살했다. 

 

▲ 군수품 폐기 차원에서 조선인 성노예 피해 여성들을 발가벗겨 무참히 학살한 일제의 만행  

 

강성현 교수는 당시 일본군에게 위안부 즉, 성노예 피해 여성들은 특종군수품이었고 일본군 점령지 함락 직전에 군수품 폐기 차원에서 조선인 여성들을 발가벗겨 무참히 학살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일제는 칼로 찔러죽이고 총으로 쏴죽이고 막사에 슈류탄을 마구 던져 시체마저 갈갈이 찢어죽이는 등의 방법으로 위안부를 학살했음이 밝혀졌다.

 

▲ 이번에 동영상으로 확인된 텅충처럼 미야마 국경 인근 송산에서 학살된 위안부 시신  

 

▲ 도망을 치다 잡혀 이런 무참한 문신을 당한 북의 위안부 피해자 정옥순 할머니  

 

▲ 위안부 막사에 슈류탄을 던져 시신마저 갈가리 학살한 일제의 천인공노할 만행  

 

이런 증거사진들과 증언들이 수도 없이 나왔지만 일제는 최근 들어 더욱 기를 쓰고 성노예 문제를 부정하고 있다. 오히려 매춘부니 뭐니 하며 피해자들을 이중 삼중으로 유린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 총리 등 일본의 국군주의 보수우익들은 이미 인류정의와 양심은 저 깊은 태평양에 던져버렸고 타오르는 화산 속에 불태워버린지 오래다.

 

이번에 발굴된 동영상을 보고도 일제는 변함없이 연합군의 기록이 잘못되었을 것이라며 자신들이 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정말 그렇게 나온다면 일제에게 이 학살만행에 대해 죄를 묻는 방법은 물리적인 방법밖에 남지 않게 된다.

일제는 백년 아니 천년이 가도 기어이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는 우리 민족의 의지를 똑똑히 새겨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동영상을 촬영하고 기록에 남긴 미군 등 연합군도 반성해야할 지점이 있다. 이런 일제의 만행을 이렇게 기록하는 등 확실하게 알고 있었음에도 일제 전범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비호 두둔하였다. 일본을 대소전진기지로 삼고자 자신들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전범자들을 이용해먹기 위해 이런 천인공노할 만행을 눈감아 준 것이다. 

그래서 아베 총리와 같은 자들이 지금도 버젓이 성노예 만행을 부정하고 오히려 매춘부니 뭐니 하며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국제사회에서는 오직 힘이 정의이다. 우리 민족의 힘을 키우지 않는 한 이런 무참한 치욕을 영영 면치 못하게 된다.

그후 한국전쟁 중 미군들에 의해 우리 여성들이 얼마나 무참한 성적 학대와 학살을 당했던가. 지금도 미군에 의해 얼마나 많은 우리 여성들이 성노예 취급을 당하고 있으며 범죄자들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가. 

북미사이에 전쟁이라도 발생하면 이 땅의 여성들은 또 얼마나 참혹한 피해를 입겠는가. 

 

그래서 하루 빨리 남과 북의 평화적 통일을 이루고 부강번영할 통일조국 강력한 힘을 가진 통일민족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런 참혹한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 선조들의 귀와 코를 베어다가 만들어 놓은 일본의 귀무덤이 그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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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3.1절 기념사 “위안부 문제, 일본이 끝났다고 말해선 안돼”

[전문]문 대통령 3.1절 기념사 “위안부 문제, 일본이 끝났다고 말해선 안돼”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입력 : 2018.03.01 10:42:00 수정 : 2018.03.01 11:15:02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99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99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3·1운동 정신이 “나무꾼, 기생, 맹인, 광부 이름도 없던 아버지 어머니 누이들이 앞장서 만든 민주공화국”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1919년 3·1 만세운동이 그해 5월 임시정부 수립,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민주공화국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3·1운동은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난 겨울 1700만개 촛불로 거듭났다고 현재적 의미를 말하며 “3·1운동 정신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로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에 대해 문 대통령은 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침탈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부정하고, 전시하 반인륜 인권범죄 행위인 위안부 문제 해결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을 비판했다. 또 “위안부 문제 해결에서도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며 “불행한 역사일수록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이라고 말했다.

내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으로 가는 시작으로 삼겠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우리 스스로 평화를 만들어낼 역량이 있다”며 “3·1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과 평화에 기반한 번영의 새로운 출발선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3·1운동이라는) 거대한 뿌리가 한반도에서 평화와 번영의 나무를 튼튼하게 키워낼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될 것이다”며 김구 선생 어록으로 연설을 맺었다. 
 

다음은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3.1운동 아흔 아홉돌입니다. 

3.1운동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에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의 벽돌 하나하나에는 고난과 죽음에 맞선 숭고한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박제화된 기념식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현장에서 역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기념식을 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일제 강점기동안 해마다 2천600여 명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그 날까지 10만여 명 가까이 이곳에 수감되었습니다.

열 명 중 아홉 명이 사상범으로 불린 독립운동가였습니다. 
 

10대 청소년부터 어르신까지, 남쪽의 제주도에서 북쪽의 함경도까지, 나이와 지역을 막론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실천했던 분들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딸, 형제자매가 함께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어머니와 아내들이 이곳 형무소 앞 골목에서 삯바느질과 막일을 해가며 자식과 남편의 옥바라지를 했습니다. 

수감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도 모두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국민 여러분, 
 

99년 전 오늘, 마을과 장터에 격문이 붙었습니다. 

독립선언서가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서울과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정주 선천, 원산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만세 운동은 순식간에 지방도시와 읍면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멀리 중국의 간도와 러시아의 연해주, 미국 필라델피아와 하와이 호놀룰루의 하늘에도 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해 3월 1일부터 5월 말까지 국내에서만 무려 1,542회의 만세 시위가 일어났고, 당시 인구의 10분의 1을 넘는 2백2만여 명이 이에 참가했습니다. 
 

3.1운동의 경험과 기억은 일제 강점기 내내 치열했던 항일 독립투쟁의 정신적 토대가 됐습니다.
 

3.1운동 이후, 수백 수천 명의 독립군이 매일같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대한국민회,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군무도독부, 서로군정서, 대한독립단, 광복군 총영을 구성하여, 일제 군경과 피어린 전투를 벌였습니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열 사람이 일어섰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뒤를 이어 

강우규, 박재혁, 최수봉, 김익상, 김상옥, 나석주, 이봉창,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의사들이 의열투쟁을 이어갔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가 그 정점이었습니다.
 

1937년 한 해 동안에만 국내에서, 무려 3천 600건의 크고 작은 무장 독립투쟁이 있었습니다.

1940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최초의 정규 군대인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모두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입니다.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열여덟 살 유관순 열사는 지하 독방에서 고문과 영양실조로 순국했습니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의 동풍신 열사는 함경북도 명천 만세시위에 참가했고 이곳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습니다. 
 

밤을 지새우며 태극기를 그린 부산 일신여학교 학생들, 최초 여성의병장 윤희순 의사,

백범 김구 선생의 강직한 어머니 곽낙원 여사, 3.1운동 직후인 3월 9일 46세의 나이에 압록강을 건너 서로군정서에 가입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근우회 사건을 주도한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의열단 활동을 한 박차정 열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경을 6차례나 넘나든 정정화 의사, 우리에게는 3.1운동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의 어머니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독립투쟁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치열했습니다.

광복은 결코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최후의 일각’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함께 싸워 이뤄낸 결과입니다.
 

국민 여러분, 

3.1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독립선언서에 따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었습니다.
 

3·1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제이며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명백하게 새겨 넣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되었습니다. 
 

왕정과 식민지를 뛰어넘어 우리 선조들이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힘이 바로 3.1운동이었습니다. 
 

3.1운동의 힘이 약해질 때, 주권자인 국민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독립운동은 애국지사들만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상인들은 철시운동을 벌였습니다. 

나무꾼, 기생, 맹인, 광부들, 이름도 없이 살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누이들까지 앞장섰습니다.
 

국민주권과 자유와 평등, 평화를 향한 열망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계층, 지역, 성별, 종교의 장벽을 뛰어넘어 한 사람 한 사람 당당한 국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을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으로 만든 것이 바로 3.1운동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우리에게 헌법 제1조뿐아니라 대한민국이란 국호와 태극기와 애국가라는 국가 상징을 물려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다고 우리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지난 겨울 우리는,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었습니다. 

3.1운동으로 시작된 국민주권의 역사를 되살려냈습니다. 

1천7백만 개의 촛불이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 역사를 펼쳐보였습니다.

어둠을 밝혔던 하나하나의 빛은 국민 한 명 한 명이 대한민국의 주권자임을 또 다시 선언했습니다.

새로운 국민주권의 역사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향해 다시 써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우리 정부는 촛불이 다시 밝혀준 국민주권의 나라를 확고하게 지켜나갈 것입니다.

3.1운동의 정신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로 세울 것입니다.
 

2020년 문을 열게 될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에는 대한민국을 세운 수많은 선조들의 이야기가 담길 것입니다. 

3.1운동에 참가한 나무꾼도, 광부도, 기생들도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의 이름으로 새겨질 것입니다.
 

국내외 곳곳 아직 찾지 못한 독립운동의 유적들과 독립운동가들의 흔적도 계속 발굴할 것입니다.

충칭의 광복군총사령부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에 맞춰 복원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에겐 3.1운동이라는 거대한 뿌리가 있습니다. 

해방과 국민주권을 가져온 민족의 뿌리입니다. 

우리에겐 독립운동과 함께 민주공화국을 세운 위대한 선조가 있고, 절대빈곤에서 벗어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건국 2세대와 3세대가 있습니다. 

또한 이 시대에 함께 걸어갈 길을 밝혀준 수많은 촛불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를 낮출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광복을 만들어낸, 자긍심 넘치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평화를 만들어낼 역량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국민들의 역량과 자신감으로 3.1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과 평화에 기반한 번영의 새로운 출발선으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우리의 힘으로 바로 세워야 합니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강점당한 우리 땅입니다.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지금 일본이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가해자인 일본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인권범죄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습니다.

불행한 역사일수록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입니다.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일본이 고통을 가한 이웃나라들과 진정으로 화해하고 평화공존과 번영의 길을 함께 걸어가길 바랍니다. 

저는 일본에게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답게 진실한 반성과 화해 위에서 함께 미래로 나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우리는 오늘 3.1운동을 생생한 기억으로 살림으로써 한반도의 평화가 국민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광복 100년으로 가는 동안 한반도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를 완성해야 합니다.

분단이 더 이상 우리의 평화와 번영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국민들께 이 목표를 함께 이뤄갈 것을 제안합니다.
 

빈부, 성별, 학벌, 지역의 격차와 차별에서 완전히 해방된 나라를 만들어냅시다.

김구 선생이 꿈꾼, 세계 평화를 주도하는 문화강국으로 나아갑시다.
 

3.1운동이라는 이 거대한 뿌리는 결코 시들지 않습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는 이미 국민들 마음 구석구석에서 99년 전부터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뿌리가 한반도에서 평화와 번영의 나무를 튼튼하게 키워낼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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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평창 동계패럴림픽 대표단.선수단만 파견

남북 평창 동계패럴림픽 실무회담 공동보도문 발표 (전문)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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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7  18: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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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27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실무회담’을 열고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북측은 애초 150여 명 규모보다 축소된 24명을 파견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통일부]

북측이 오는 9일부터 열리는 평창 패럴림픽에 대표단과 선수단만 파견하기로 했다. 예술단, 응원단, 기자단 등 150여 명을 파견하기로 했던 애초 계획보다 축소된 것.

남북 27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실무회담’을 열고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공동보도문에 따르면, 북측 장애인올림픽위원회 대표단, 선수단은 3월 7일 경의선 육로를 이용해 방남하며, 귀환 시기는 양측간 합의에 따라 편리한 시기를 정하기로 했다. 

북측은 이날 대표단 4명과 선수단 20명 등 총 24명을 파견한다고 밝혔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가 지난 1일 발표한 북측 선수단 8명보다 늘어난 것. 이 중 2명은 크로스컨트리 종목 출전 선수이며, 나머지는 임원진이다. 

여기에 북측은 추가로 선수 4명과 보호자 8명 등 총 12명의 선수단을 추가로 파견한다고 제의했으며, 이들 선수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 인원이다.

통일부는 “평창 동계패럴림픽 대회에 참가하는 북측 대표단 및 선수단의 규모는 IPC와 협의를 통해 최종 확정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실무회담' 종결회의 장면. [사진제공-통일부]

이번 동계패럴림픽에 북측은 응원단, 예술단, 기자단 등을 파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북측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이번 평창 동계패럴림픽 대회에 예술단과 응원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추정”되며 “북측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측 예술단, 응원단의 참가가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이어가는데 이미 일정부분 기여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지난달 17일 남북고위급회담 실무회담에서 북측은 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기자단 등 150여 명 규모를 파견하기로 한 합의보다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기대를 모은 리분희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의 방남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통일부는 설명했다.

남북은 “북측 대표단은 남측의 안내와 질서에 따르며, 남측은 북측 대표단의 편의를 보장하”며 “북측의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참가와 관련한 구체적인 실무적 문제들은 판문점을 통한 문서교환 방식으로 협의”하기로 했다.

통일부는 “남과 북이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만큼, 평창 동계패럴림픽도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을 알리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실무회담에 남측에서는 이주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을 수석대표로, 임찬규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 패럴림픽국장, 송혜진 통일부 과장이 대표로 나섰다.

북측에서는 황충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장을 단장으로, 정현 조선장애자보호연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윤철 조선장애자보호연맹 중앙위원회 장애자체육협회 부서기장이 대표로 마주했다.

(추가, 19:19)

[전문]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실무회담 공동보도문

남과 북은 2018년 2월 27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북측의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참가와 관련한 실무회담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 북측은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에 장애인올림픽위원회 대표단과 선수단을 파견하기로 한다. 

2. 북측 장애인올림픽위원회 대표단, 선수단은 경의선 육로를 이용하여 왕래한다. 북측 대표단과 선수단은 3월 7일에 남측으로 이동하며, 귀환 시기는 양측간 합의에 따라 편리한 시기로 한다. 

3. 북측 대표단은 남측의 안내와 질서에 따르며, 남측은 북측 대표단의  편의를 보장한다. 

4. 북측의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참가와 관련한 구체적인 실무적 문제들은 판문점을 통한 문서교환 방식으로 협의한다. 

2018년 2월 27일

(자료제공-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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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동결-한미합동훈련 중단, ‘북미대화 입구’ 될까

북미 중재 나선 문 대통령, 북측에 설명한 ‘비핵화 방법론’은?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18-02-27 19:55:13
수정 2018-02-28 07:39:05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2018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이 25일 오후 강원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뒤편으로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보좌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선전부장)이 보이고 있다.
2018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이 25일 오후 강원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뒤편으로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보좌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선전부장)이 보이고 있다.ⓒ2018평창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과 북한이 빨리 마주 앉는 게 중요하다”며 북미 사이를 중재하고 나섰다.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미국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과 북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직접 만나서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이 실제 마주 앉기 위해서는 상당한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 북미 모두 대화의 필요성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지만, 그 전제조건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 동결→완전한 핵 폐기’ 2단계 접근법,
현실에서 통할까?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강원도 평창 모처에서 김영철 부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비공개로 만나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위해서라도 북미 대화가 조속히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구상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미국에게 한반도 비핵화는 북미대화의 목적지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방법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청와대는 말을 아끼고 있지만, 문 대통령이 그동안 언급해온 구상과 현실을 감안하면 ‘단계적 방법론’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핵 동결은 대화의 입구가 되고 출구는 완전한 핵 폐기”라며 ‘핵 동결→완전한 핵 폐기’라는 2단계 접근법을 제시해왔다.

이는 북한이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비핵화 논의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나온다면, 미국 등 국제사회가 단계별 상응 조치를 협의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작년 6월 기자간담회에서 “최소한 북한이 추가적인 핵·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고 핵 동결 정도는 약속을 해줘야 본격적인 핵 폐기를 위한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핵 동결을 핵 폐기를 위한 대화의 입구라고 생각한다면 동결에서 폐기에 이를 때까지 여러 가지 단계에서 서로가 ‘행동 대 행동’으로 교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도 언급했듯 이러한 구상이 실현되려면 구체적인 ‘행동’이 수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주지사들과의 연례회동에서 “우리는 오직 적절한 조건 아래에서만 대화하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도 북한의 분명한 입장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온 조선신보는 최근 “남북 관계개선이 이어지는 동안,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북한은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되던 작년에만 해도 핵·미사일 시험을 이어갔지만, 올해는 단 한 차례도 하지 않고 있다.

핵 동결을 선언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미국에 대한 자위권 행사이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다’던 북한의 기존 입장에 비춰보면 한결 완화된 분위기로 읽힌다.

지난 2007년 8월 3척의 미국 핵항모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지난 2007년 8월 3척의 미국 핵항모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미 해군 공개 사진

북핵 동결에 상응한 미국의 카드는?
한미 합의에 조정 가능한 한미합동훈련 조정 가능성

북한이 ‘대화의 입구’가 될 핵 동결을 공식화하는 것은 미국과의 대화 여건이 조성돼야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 여건은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일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의 대화 의지와 핵 동결 가능성을 확인한 문 대통령이 향후 미국과 대북 정책을 어떻게 조율해나가느냐가 한반도 정세를 푸는 데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한미간 협의 과정에서 쟁점이 될 대북 정책으로는 ‘대북 제재’와 ‘한미합동군사훈련’이 꼽힌다.

이중 대북 제재는 북한이 강하게 거부하는 정책일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실 대북 제재는 사안에 따라 예외로 인정하면 적용을 피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재개된 남북교류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북측 갈마비행장까지 비행할 아시아나 전세기의 이륙은 미국의 독자 제재에 걸려 있었지만 한미간 협의로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동시 제재 대상이었던 최휘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남도 예외로 인정돼 가능했다.

다만 미국 의지만 있다면 비교적 문제 해결이 쉬운 독자 제재와 달리 국제사회의 다자간 합의인 유엔 안보리 제재의 경우 문제 해결 과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응원단 등을 태우고 입경한 만경봉호 92호의 등유와 난방용 경유 등 기름 지원을 우리 정부에 요청했다가 결국 무산된 것도 유엔 안보리 제재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이 북미 사이를 중재하더라도, 당장 대북 제재를 완화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배경이다.

그럴 경우 남는 카드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이다. 북한은 한미합동훈련에 줄곧 반발해왔다. 미국은 자신들이 결코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북한 입장에서 한미 합동훈련은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당장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합동군사연습 재개 책동은 북남관계의 개선을 위하여 온갖 성의와 노력을 다하고 있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악랄한 도전으로서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또 “남조선에서 외세와 함께 벌이는 합동군사연습으로 현 북남관계 개선의 흐름이 깨지게 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과 그에 추종한 자들이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한미합동훈련은 한미 합의에 따라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 중에는 중단돼 있는 상태이다. 패럴림픽이 끝난 뒤 4월에 훈련이 재개될 가능성도 높지만, 한미간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훈련 규모와 시기 등을 조율할 수 있다는 건 확인된 셈이다. 결국 미국의 의지가 관건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7일 기자들과 만나 한미합동훈련 재개 여부와 관련해 “지금 뭔가를 가정해서 얘기를 하기에는 시기상조”라며 “아마 패럴림픽 끝나고 나서 공식 입장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은 북미 양측에 ‘핵 동결과 한미합동훈련 중단’을 중재안으로 제시했거나 앞으로 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가 해결책으로 제안했던 ‘쌍중단(雙中斷)’과도 비슷하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동결하는 대신 한미 합동훈련도 중단하는 것으로, 현실적인 방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이 26일 류옌둥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접견한 자리에서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고, 북한도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래서 미국과 북한이 빨리 마주 앉는 게 중요하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전제조건을 100% 깔고 가면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다”며 “펜스-김여정 만남 불발도 있었지만 그런 대화의 조건을 서로 조금씩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대화가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부분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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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로 조작하는 ‘마타도어’

색깔론 공격을 위한 왜곡은 극우보수의 유일한 무기
 
임병도 | 2018-02-28 09:09:4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마타도어’ 근거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편을 중상모략하거나 그 내부를 교란시키기 위해 하는 흑색선전(黑色宣傳)의 의미로 정치권에서 널리 쓰이는 말

북한 김영철이 방남하면서 SNS에는 한 장의 사진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군청색 양복을 입은 인물이 김영철과 인사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일부 SNS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김영철과 악수한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사진을 공유하면서 “문재인 대통령 아무래도 수상함”이라는 글부터 “이럴 바에야 차라리 문재인이 아니라 김영철을 대통령이라 하는 게 낫겠다”라는 비아냥이 섞인 내용들이 올라왔습니다.

극우성향의 만화가로 알려진 윤서인씨는 페이스북에 “시사만화 그리기 시작한 이래 가장 분노하면서 그린 컷”이라는 글과 함께 <미디어펜>에 연재하고 있는 한컷 만화를 공유했습니다.

만화에는 천안함 장병을 배경으로 SNS에서 돌아다녔던 사진 속 김영철과 악수하는 인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윤씨는 만화 하단에 “고개라도 좀 숙이지 않았으면”이라는 코멘트를 달았습니다.

만화를 보면 마치 문재인 대통령이 고개를 숙이고 악수한 것처럼 묘사됐습니다. 그러나 김영철과 인사를 한 인물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호텔 관계자였습니다.

사진을 왜곡한 글과 그림에는 ‘비굴한 행동이다’,’빨갱이다’,’문재인을 탄핵해야 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전형적인 ‘마타도어’,’가짜뉴스’인 셈입니다.


‘색깔론 공격을 위한 왜곡은 극우보수의 유일한 무기’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부르며 북한과 내통하며 비굴한 외교 정책을 펼친다는 주장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16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내통’ 주장에 대한 문재인 전 의원의 반박 페이스북 ⓒ페이스북 캡처

 

2016년 당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문재인 전 의원을 가리켜 ‘북한과 내통했다’라고 공격했습니다. 이 대표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발간한 회고록 일부를 발췌해 지난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의견을 물은 뒤 기권했고, 그 과정에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의원이 개입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재인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단한 모욕이다. 당대표란 분이 금도도 없이”라고 반발했습니다. 문 전 의원은 “내통이라면 새누리당이 전문 아닌가. 앞으로 비난하면서 등 뒤로 뒷거래, 북풍, 총풍, 선거만 다가오면 북풍과 색깔론에 매달릴 뿐 남북관계에 철학이 없는 사람들”이라면서 과거 북풍 사건을 벌인 새누리당을 비판하면서 “이제 좀 다른 정치 합시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페이스북에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의록을 직접 구입해 읽어봤다며 “그런데 책에도 나와 있지만 북한의 의견을 확인해보자고 한 것은 이미 우리가 기권으로 결정을 내린 이후의 일입니다. 북한이 기권하라고 해서 기권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라며 새누리당을 향해 “제대로 정독을 좀 하세요”라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김정일도 만난 박근혜’

 

▲2002년 박근혜 의원은 방북을 계기로 창당과 함께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안보와 북한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로 가장 많이 사용한 사람들이 극우보수입니다. 이들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고 편지를 보냅니다.

2001년 대선 경선 참여를 선언했던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돌연 2002년 탈당합니다. 박근혜 의원이 탈당한 이유는 이회창 총재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이회창 대세론에 밀려 한나라당 내에서는 도저히 대선 경선에서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2002년 5월 11일 박근혜 의원은 김정일이 제공한 특별기를 타고 방북을 합니다. 극진한 대접을 받은 박 의원은 김정일과 속기사만 배석하고 단독 회담을 하기도 합니다. 당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돌아온 박근혜 의원은 3일 뒤인 5월 14일 ‘한국미래연합’ 창당 대회를 합니다. 탈당 후 신당 창당을 준비할 때만 해도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던 박근혜 의원이었지만, 방북 이후 쏟아진 관심과 주목 속에서 화려하게 이회창과 승부를 겨루는 대선주자로 급부상합니다.


‘주사파 정권이라며 공격하는 이유는 6.13 선거 때문’

 

▲2월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부근에서 자유한국당 장제원, 김무성, 김성태 의원 등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겸 통일전선부장의 방한 철회를 주장하는시위를 하던 중 식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정권이 명실상부한 친북 주사파 정권이 아니고서야 대통령이 김영철을 얼싸안고 맞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5천만 우리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두시길 바란다. 제아무리 주사파가 득세한 청와대라고 하더라도 이 나라는 주사파의 나라가 아니라 언제나 자유대한민국 국민의 나라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김정은의 남남갈등, 한미 간 책동에 부화뇌동하는 친북 주사파 정권의 최종목표는 결국은 연방제 통일인가요?. 반미 자주를 외칠 것이 아니라 한미 동맹으로 나라의 안보를 지키고 경제적인 압박에도 벗어나야 할 때인데 주사파들의 철 지난 친북정책으로 나라가 혼돈으로 가고 있습니다.” (홍준표 대표 페이스북)

자유한국당과 극우보수가 김영철 방남을 저지하기 위한 쇼를 벌이고 문재인 정권을 주사파라고 부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6.13 선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설 연휴 전 63%에서 68%로, 민주당 지지도는 48%까지 올랐습니다. 이에 반해 자유한국당의 지지도는 고작 11%에 불과합니다. 이대로 가면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참패가 예상됩니다.

결국, 자유한국당에 남은 유일한 도구는 ‘평양 올림픽’,’빨갱이’,’주사파 정권’이라는 색깔론 뿐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과거와 달리 이제 국민들은 색깔론에 속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국민들은 ‘마타도어’,’흑색선전’,’가짜 뉴스’를 신봉하며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들이 진실을 알 수 있을까요?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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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미 대사관 앞, 미국 규탄대회로 모이자!

3월 3일 미 대사관 앞, 미국 규탄대회로 모이자!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02/27 [15:1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7일 미대사관 앞에서 3월 3일 미국규탄대회를 준비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남북의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는 미국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자주시보

 

남북의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는 미국규탄 기자회견이 2월 27일 오전 11시에 미 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기자회견에는 3월 3일 미 대사관 앞에서 미국규탄대회를 준비하는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한명희 민중민주당 대표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국장 등 시민사회, 통일운동 단체 회원들이 참가하였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민족화합 가로막는 트럼프를 규탄한다!’,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하라!’, ‘사상최대 대북제재 반대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평창올림픽을 통해 한반도 정세 악화의 주범이 바로 미국이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밝혔다.     © 자주시보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평창올림픽을 통해 한반도의 정세는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평화정착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열망은 더욱 높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이 한반도에 조성된 평화분위기를 깨고 대결과 전쟁분위기를 고취하려는 군사적 도발을 일삼고 있다.’고 지적하며 평창올림픽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파괴하고 전쟁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누구이고정세악화의 주범이 바로 미국이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었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지금 정세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여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남북관계 개선을 방해하고 내정간섭을 자행하는 미국을 규탄하는 적극적인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우리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고 평화를 파괴하는 미국에 대한 분노를 모아 ‘33미국 규탄대회에 모두가 떨쳐나설 것을 호소했다.

 

 

▲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미국에 대한 분노를 모아 3월 3일 미국규탄대회로 모두가 모일 것을 호소했다.     © 자주시보

  

▲ 3월 3일 미국규탄대회 선전 홍보물     © 자주시보

 

아래는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아 래--------------------------------------------------

 

[남북의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는 미국규탄 기자회견문]

  

트럼프는 남북대화 방해하지 말고한미합동군사연습 영구 중단하라!!!

  

평화의 축제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났다이 기간 북측의 선수단과 응원단예술단그리고 고위급 대표단이 연이어 방문하면서 평창올림픽은 명실공히 평화올림픽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이를 계기로 한반도의 정세는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으며 남북관계 개선의 뚜렷한 진전을 이룩하고 있다동시에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열망은 더욱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화해와 단합남북관계 개선을 못마땅해 하는 미국과 일본이 한반도에 조성된 평화분위기를 깨고 대결과 전쟁분위기를 고취하려는 군사적 도발을 일삼고 있어 온 겨레는 물론 전 세계의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얼마 전 16일부터 23일까지 미군과 일본 자위대는 미 해군과 해상자위대는 물론 항공자위대와 미 해병대미 공군도 참가한 전례 없는 대규모 방공 및 탄도미사일방어훈련를 실시하였다미국과 일본은 이 연합훈련에 대해 북의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미일의 태세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실전을 방불케 하는 전쟁훈련을 감행하였다.

 

주시하다시피 미국은 이미 평창올림픽을 전후해 올림픽안전이라는 미명하에 한반도 주변에 항공모함,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을 증강배치하고네이비씰을 비롯한 특수부대를 동원한 전쟁대비훈련을 벌이면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왔다또한 한미당국은 평창올림픽이 끝나는 즉시 키 리졸브’, ‘독수리’ 합동군사연습을 재개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모처럼 마련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뿐만 아니다미국은 평창올림픽이 한창이던 2월 23소위 사상최대의 대북 독자제재를 단행했다선박 28척과 해운사 27개인 1명 등 총 56개 대상을 제재 명단에 올리고핵 프로그램 유지를 위한 비용과 물품연료 등이 북에 들어갈 수 없도록 차단하겠다는 것이다그리고 국제사회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대북 해상차단까지 검토하고 있다.

 

북측의 신년사 발표 이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다그러나 남북관계 개선과 우리민족끼리의 열풍이 몰아치는데 당황한 미국은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정세를 격화시킴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을 노골적으로 방해해 나서고 있다.

 

한편최근 한국GM 군산공장 폐쇄와 철강에 대한 안보관세’ 부과 등 통상 압박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 대해 압력을 가하고 있다이렇듯 미국은 한미합동군사연습 재개를 비롯해 대북제재와 압박을 강화하고 문재인 정부에 대해 직접적인 압력을 통해 남북대화와 관계 개선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이번 평창올림픽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파괴하고 전쟁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누구이고정세악화의 주범이 바로 미국이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었다우리 민족의 분열과 대결을 조장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겨온 미국은 결코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어떻게 해서든 분단의 고통을 지속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해주었다.

 

미국은 평창장애인올림픽이 끝나는 시점부터 한미합동군사연습을 곧바로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한미합동군사연습은 또다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전쟁위기를 불러올 것이다또한 남북관계를 대결상황으로 몰아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미국은 우리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고 대결과 전쟁을 불러오는 모든 군사적 도발과 방해책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우리 민족의 통일문제에 대한 일체의 개입과 간섭을 중단해야 한다트럼프는 남북대화를 방해하지 말고한미합동군사연습을 영구히 중단해야 한다이것이 우리 민족의 요구이고 국민적 명령이다.

 

지금 정세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여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남북관계 개선을 방해하고 내정간섭을 자행하는 미국을 규탄하는 적극적인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이에 우리는 오는 33, ‘남북관계 개선 방해하는 미국규탄대회를 이곳 미 대사관 앞에서 개최한다한반도 평화를 유린하고남북관계 개선을 방해하는 미국을 규탄하고한미합동군사연습 영구 중단을 촉구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우리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고 평화를 파괴하는 미국에 대한 분노를 모아 ‘33미국규탄대회에 모두가 떨쳐나설 것을 호소한다.

 

모이자! 33일 미국규탄대회로!

남북관계 개선 방해하는 미국을 규탄한다!

한미합동군사연습 영구 중단하라!

우리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실현하자!

 

2018년 2월 27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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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앞인데... 쓰레기 구르고, 썩은 내 진동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2/28 10:02
  • 수정일
    2018/02/28 10:0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공산성 보이는 금강둔치공원, 물고기 죽은 강물에 녹조류 사체 둥둥 떠올라
18.02.27 20:48 | 글:김종술쪽지보내기|편집:김예지쪽지보내기
▲ 잉엇과 어류인 물고기가 강바닥에서 떠오른 녹조류 사체 속에서 병든 모습으로 둥둥 떠다닌다. ⓒ 김종술


썩고 병든 금강의 현실을 알리려는 듯 병든 물고기 한 마리가 힘겹게 내게로 왔다. 몸과 입에는 솜털 같은 병균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썩은 강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냄새가 심해서 운동을 할 수가 없어요."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적 제12호 공산성 앞 강물에 죽은 물고기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 김종술


4대강 사업 콘크리트에 갇혔던 금강 공주보의 수문이 열리면서 수시로 받는 전화다. 이른 새벽부터 걸려온 전화는 어김없이 악취를 호소했다. 4대강 사업 이후 강바닥이 그만큼 썩었다는 증거다. 중병을 앓던 금강의 치유가 끝날 때까지는 겪어야 하는 일이다.

26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사적 제12호 공산성이 바라다보이는 금강둔치공원(아래 둔치)을 찾았다. 드문드문 운동하는 시민들이 보였다. 지난해부터 하류 공주보의 수위가 내려가면서 둔치 앞까지 차오르던 강물도 2m가량 내려간 상태다.

물 밖으로 드러난 강변은 갈대 솜털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갈대를 헤집고 들어가자 질퍽거리는 시커먼 펄밭은 발목까지 빠져든다. 진흙 펄은 가뭄에 드러난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고 자갈과 모래밭에 경계를 이루면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물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냄새가 심해졌다. 지난해 가라앉았던 녹조류 사체가 둥둥 떠오르고 있지만, 바닥엔 여전히 녹조 사체로 뒤덮여있다. 물이 빠지면서 미처 피하지 못한 어패류인 말조개 펄조개도 입을 벌리고 죽으면서 파리가 들끓고 있다. 죽은 물고기, 죽은 새들도 10여 마리나 보였다. 

녹조류 사체가 뒤덮여 시커먼 물속에서 커다란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사람을 보고 피하지 못할 정도로 병든 모습을 하고 있다. 이따금 머리를 내밀고 숨쉬기를 하는 물고기부터 허연 배를 뒤집고 빙글빙글 도는, '정형행동'(stereotyped behavior , 定型行動 ) 같은 모습을 보이는 물고기도 있었다. 철창 등에 격리 사육하는 동물이나 우리에 갇힌 동물에게서 주로 목격할 수 있는 증상이다. 

공주시가 강변 모래톱을 개간해 공원으로 만든 미르섬(하중도)에 심었다가 죽은 조경수도 강물에 버려 놓았다. 일회용 플라스틱부터 깡통, 자동차 배터리, 음식물, 녹슨 철근, 지난밤 제상(祭床)을 지낸 음식물까지 강변은 온통 쓰레기 밭이다. 

구린내, 병든 물고기... 이 지경인데 '확인하겠다'니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사적 제12호 공산성이 바라다보이는 강물에 녹조류 사체가 둥둥 떠오르고 있다. ⓒ 김종술


미르섬에서 만난 한 학생은 "서울에서 공주로 여행 왔다. 공산성에 들렸다가 강변이 너무 아름다워서 걸어볼 욕심으로 들어왔는데, 구린내가 너무 심하다. 꽃밭에 거름을 뿌린 것으로 알았는데, 물에서 풍기는 악취다. 멀리서 볼 때는 멋진데 가까이 다가오니 죽은 새들도 보이고 무섭다"고 빠져나갔다.

<한국어류도감> 저자 전북대학교 김익수 명예교수는 "현장을 보지 않아서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몸에 묻은 솜털같이 것은 곰팡이로 보인다. 붕어·잉어는 물속에 사는 어류 중에서 오염에 제일 강한 종이다. 산소가 부족해도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는 종인데, 결국 산소가 부족해서 보이는 현상으로 보인다. 다른 종들은 약해서 다 죽었고, 마지막 남아 있는 것이 그렇게 죽어가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국립군산대학교 해양생명응용과학부 수산생명의학전공 병리혈액학 박성우 교수도 이렇게 지적했다. 

"(물고기에) 솜털이 피었다는 것은 수생균 물곰팡이다. 지금 같은 봄철에는 수온이 3~4도로 낮아서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걸릴 수 없는 환경이다. 물곰팡이는 살아있는 세포에는 붙지 않는다. 죽은 세포가 있어야 물곰팡이가 감염되는데, 물곰팡이가 붙었다는 것은 전제조건으로 물고기의 피부에 상처가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상처를 일으키는 원인을 파악하면 원인이 나오는데, 지금 시기에는 수질, 기생충 정도로 추정한다. 수질이 나쁘면 비닐이 빠지고 궤양이 생기면서 구멍이 뚫리기도 한다."

4대강 수문개방 환경부 담당자는 금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기자의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현장을 확인해 보겠다"고만 했다. 수생태계에 영향을 주는 금강의 수질을 살리기 위해서는 전면 개방과 함께 적극적인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 

또 4대강 수문개방에 나서고 있는 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인력을 고용해 물밖에 드러난 어패류를 강에 넣어주고 있다. 그러나 보 주변으로 집중하면서 미쳐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간 어패류는 강변에 널브러져 있다. 좀 더 세심하고 광범위한 모니터링이 필요해 보였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사적 제12호 공산성이 바라다보이는 강물에 녹조류 사체가 둥둥 떠오르고 있다. ⓒ 김종술

 

▲ 낚시꾼들이 동경하는 월척급 붕어도 병든 모습으로 둥둥 떠다녔다. ⓒ 김종술

 

▲ 강바닥은 미세한 입자의 펄이 뒤덮었다. 지난해 가라앉은 녹조류 사체까지 둥둥 떠오르면서 악취가 진동했다. ⓒ 김종술

 

▲ 입을 벌리고 죽은 조개는 속살이 썩어가면서 심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 김종술

 

▲ 공주보의 수위가 내려가면서 미처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조개들이 쩍쩍 입을 벌리고 죽어서 썩어가고 있다. ⓒ 김종술

 

▲ 오리류로 보이는 새들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강변에 죽어있다. ⓒ 김종술

 

▲ 오리류로 보이는 새들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강변에 죽어있다. ⓒ 김종술

 

덧붙이는 글 | 환경운동연합에도 같이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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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검찰, 박근혜 전 대통령 징역 30년·벌금 1185억원 구형

[속보]검찰, 박근혜 전 대통령 징역 30년·벌금 1185억원 구형

이혜리·박광연 기자 lhr@kyunghyang.com
입력 : 2018.02.27 14:36:00 수정 : 2018.02.27 14:43:01
 
지난해 8월2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영민 기자

지난해 8월2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영민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66)에게 검찰이 징역 30년에 벌금 1185억원을 구형했다.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게 이같이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구형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됐지만 비선실세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직무권한을 사유화함으로써 국정을 농단하고 헌법가치를 훼손했다”며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 자행된 정경유착의 폐해를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경제민주화를 통해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며 “서민들의 쌈짓돈으로 조성된 국민연금을 재벌기업 총수의 경영권 승계를 돕는 수단으로 악용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과 공분 안겼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특히 박 전 대통령이 시종일관 혐의를 부인하면서 반성하지 않는 모습 때문에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은 “2016년 7월 국정농단 의혹이 처음 불거진 이래로 약 20개월이 경과한 현재까지도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단 한차례도 보인 적이 없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법원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하며 지난해 10월16일 ‘재판 거부 선언’을 한 뒤 재판에 나오지 않고 있다. 

 

검찰은 “준엄한 사법부의 심판을 통해 다시는 이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대한민국 위정자들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55) 등으로부터 약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 혐의 등으로 지난해 4월17일 재판에 넘겨졌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결심공판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통상의 결심공판에서 진행되는 피고인의 최후진술도 생략됐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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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주년 3.1절, 일제강제징용 희생자 유해 33위 귀국

재일동포 유해봉환단과 28일 도착… 3월1일 광화문서 7대 종교과 ‘국민추모제’
▲ 지난해 8월15일 일제 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위원회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일제 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를 열었다.[사진 : 뉴시스]

제99주년 3.1절을 맞아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 33위가 고국 품으로 돌아온다.

26일 일제 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위원회(공동준비위원장 김삼열, 이수호, 김재완. 유해봉환위)와 3.1절 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사무총장 윤승길)에 따르면, 오는 28일 이들 희생자 유해 33위가 처음 한국 땅을 밟는 재일동포 유해봉환단과 함께 귀국한다. 유해봉환위는 오는 3월1일 재일동포 유해봉환단과 함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7대 종단과 생존 독립지사, 독립유공자 후손과 민족단체, 노동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국민추모제(대회장 이홍정 NCCK 총무)를 갖는다.

3월1일 국민추모제는 7대 종단이 우선 고유의 방식으로 추모제를 올린 다음 유해를 모시고 처음 고국 땅을 밟는 재일동포 유해봉환단과 함께 생존 독립지사, 독립유공자 후손, 노동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분향과 헌화, 추모의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유해 봉환을 계기로 한국 땅을 처음 밟는 재일동포 유해봉환단은 민단과 총련이 함께 지은 도쿄 국평사(조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절)의 윤벽암 스님이 이끈다.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 33위는 28일 김포공항에서 환향의식을 가진 다음 그리운 고국 땅을 차량으로 순례하고, 3월1일 ‘제99주년 3.1절 민족공동행사’에서 7대종교와 국민추모제를 가진 데 이어 2일 도라산역을 방문한 뒤 서울시의 협조를 얻어 용미리 서울시립 승화원에 안치된다.

유해봉환위는 이번 국민추모제를 계기로 유해봉환사업이 한‧일의 과거사 청산은 물론, 남북교류에 이바지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해봉환위는 또 보도자료에서 “추정 100만(자료 확인 48만)의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가 일본 땅 야산과 탄광 등에 방치돼 있다는 걸 국민들께서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면서 “보수·진보를 넘어 종교계, 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이 함께 하는 국민추모제에 국민들께서 참석하셔서 늦었지만 꽃 한 송이, 물 한 잔 함께 올리며 후손된 도리를 다하자”고 호소했다.

일제 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위원회는 지난해에도 8.15광복절에 즈음해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 33위 봉환사업을 진행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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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 쪄먹고 볶아 먹고, 기억에 오래 사무치는 그맛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2/27 13:04
  • 수정일
    2018/02/27 13:0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지금 거기에 가면③] 울진대게와 죽변항, 하트해변

18.02.27 11:26l최종 업데이트 18.02.27 11:26l

 

울진대게 대게는 통째로 찜통에서 쪄낸 다음 먹기 좋게 다리와 몸통을 분리해서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 울진대게 대게는 통째로 찜통에서 쪄낸 다음 먹기 좋게 다리와 몸통을 분리해서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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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대게와 죽변항  

"보통 음력 설 전후가 가장 맛있는 제철이라 하지예. 하지만 그건 가까운 바다에서 잡던 예전의 이야기고, 요즘은 멀리 나가서 깊은 데서 잡아오고, 큰 놈을 많이 잡아오기 때문에 특별히 제철이라 할 시기가 있는 건 아닙니더."

경북 울진군 죽변항에서 하나대게회집을 운영하고 있는 곽영길 사장의 말이다. 과거에 대게는 육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200~300m 대륙붕 바다에서 많이 잡았지만, 물량이 달려 요즘에는 수심 500~600m 대의 깊고 먼 바다까지 나가서 대게를 잡아 온다고 한다. 박달대게처럼 속이 꽉 차고 맛있는 대게를 원하는 수요가 갈수록 늘어난 것도 먼 바다로 나가는 한 요인이다.

 

그런데 대게의 금어기는 6월부터 11월까지이므로 금어기가 끝나는 12월에 많이 잡히고 차츰 어획량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면 영덕대게로 유명한 영덕에서 부족한 물량을 공급하기 위해 이곳 울진의 죽변이나 후포로 와서 대게를 대량 구입해서 영덕으로 실어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사실 우리 죽변항의 대게 어획량이 가장 많았습니더. 요즘은 포항 구룡포항이 가장 많이 잡지예. 거기(구룡포항)는 큰 배들이 많아서 한꺼번에 많이 잡는데 비해 우리는 소형 어선들이 주로 많고 자망어업을 해서 아무래도 좀 달립니더."

본래 대게는 동해안 전체에서 잡힌다. 북한의 동해안은 물론 남한의 속초부터 강릉, 삼척, 울진, 영덕, 그리고 포항과 울산까지도 대게가 잡히는데, 영덕대게가 가장 많이 알려져 제철이 되면 영덕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울진과 포항, 삼척 등 실제 어획량이 많은 고장보다 영덕대게의 이름값이 높아지자 과거 한때 울진과 영덕 사이에 대게 원조 고장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물론 지금도 현재진행중이다. 과거처럼 치열하지 않을 뿐. 그러다보니 울진과 영덕에는 각각 대게원조마을이 있다).
 

울진대게 대게는 크기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는데, 시세는 매일 달라진다.
▲ 울진대게 대게는 크기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는데, 시세는 매일 달라진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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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조가 어디냐' 하는 문제와 '현재 어디서 가장 많이 잡히느냐' 하는 문제는 다른 문제이고, '어디 대게가 가장 맛있냐' 하는 문제도 또 다른 문제이다. 지금은 영덕대게의 유명세 때문에 다른 지역의 대게들도 영덕으로 공수해 가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논쟁이 크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명품 쌀로 통하는 '이천 쌀'에 대하여 같은 들판에서 쌀을 생산하는 여주가 역시 고품질의 명품 쌀임을 내세워 홍보하는 것이나, 최고급 명품 한우로 통하는 '횡성 한우'에 대하여 이웃한 홍천이나 평창이 '우리가 진짜 명품 한우의 고장'임을 내세워 홍보하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소비자에게 각인된 특정 고장의 특산물 브랜드 이미지가 쉽게 바뀌지는 않으니 대게의 경우도 영덕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특정 고장의 특산물 브랜드가 유명해지고 소비자들에게 각인된 것이 우연은 아니다. 다른 고장에 앞서 일찌감치 자기 고장의 특산물을 차별화시키면서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다양한 마케팅 방식을 동원해 판매해서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번 고정된 브랜드 가치는 꽤 오래 지속된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품질에 큰 차이가 없다면 유명한 브랜드보다 덜 유명해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면서 다양한 상품을 대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더구나 원산지가 무의미한 상황이 됐다면 더욱 그렇다. 울진대게도 마찬가지.

어느 고장의 바다라고 하기 곤란한 먼 바다로 나가 대게를 잡아오는 배가 울진군 소속이면 울진대게이고, 영덕군 소속이면 영덕대게이니 이 대게나 그 대게나 큰 차이는 없다. 
 

대게의 다리살 대게의 다리 아랫부분을 가위로 반쯤 잘라내고 천천히 잡아당기면 게살이 쭉 딸려나온다.
▲ 대게의 다리살 대게의 다리 아랫부분을 가위로 반쯤 잘라내고 천천히 잡아당기면 게살이 쭉 딸려나온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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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항에서 대게를 찜 쪄먹다  

울진에서는 주로 죽변항과 후포항에서 대게를 많이 잡는다. 울진대게를 맛보려면 이 두 곳 중 한 곳에 가면 된다. 

죽변항은 남동쪽을 향해 활시위를 크게 당긴 모양처럼 둥글게 휘어진 형태의 항구이다. 이 항구를 따라 대게와 회를 내는 집들이 길게 이어진다. 어디에 가도 크게 상관은 없다. 수족관의 대게를 들여다보며 주인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적당하다 싶으면 들어가 식사하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항구 끝 방파제 아래로 들어가는데, 여기에 3, 4개의 횟집들이 있다. 모두 회와 대게를 같이 취급한다. 보통 외지에서 처음 찾아올 경우 이 항구 끝까지 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 주로 단골들이 많이 찾는다. 

대게는 큰 찜통에 넣고 통째로 쪄먹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조리법이다. 이른바 찜쪄먹는다. 요즘엔 좀 더 다양하게 조리해서 내놓기도 하지만, 별다른 양념 없이 그대로 쪄먹는 것이 여전히 가장 맛이 좋다. 

보통 식당에서는 찐 대게의 몸통과 다리를 분리해서 가위와 함께 내놓는다. 게는 대개 다리 부분이 가장 맛있다. 가위로 다리 아랫부분을 살짝 찝어서 반쯤 자른 다음 천천히 잡아당기면 다리살이 통째로 끌려나온다. 이를 입에 넣으면 짭조름하면서 고소한 감칠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대게 내장볶음밥 대게 몸통의 내장 국물에 밥과 김가루, 참기름을 넣어 비빈 다음 볶아내면 그 맛을 잊기 힘든 볶음밥이 된다.
▲ 대게 내장볶음밥 대게 몸통의 내장 국물에 밥과 김가루, 참기름을 넣어 비빈 다음 볶아내면 그 맛을 잊기 힘든 볶음밥이 된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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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게살 먹느라 밥상 주변은 지저분해진다. 먹기에는 맛있지만, 보기에는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 그래도 대략 정리하고 마지막에 나오는 내장 볶음밥과 대게 미역국을 먹으면 대게 다리살 만큼이나 뱃속이 든든해진다. 특히, 내장 국물에 김과 참기름을 넣고 비벼서 볶아낸 밥에 참깨를 올린 볶음밥의 맛은 대게 살만큼이나 기억에 오래 사무친다. 

게살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그저 게맛만을 내는 게맛살이 마트나 슈퍼에서 항상 잘 팔리는 걸 보면, 해산물 중 게만큼 맛있고 사랑받는 것도 별로 없는 듯하다. 더구나 몸통과 다리에 살이 꽉 찬 대게는 그래서 최고의 맛이다. 

그러니 대게는 관리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남획으로 멸종될 우려가 커서 매년 철저히 금어기를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 잡을 수 있는 대게의 크기도 제한한다. 몸통 길이 9cm 이하의 대게는 포획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9cm 길이의 자를 소지하고 가서 잡아 올린 대게들 중 작은 것들은 현장에서 직접 자를 몸통에 대는데, 몸통이 자에 쏙 들어가 끼워지면 -9cm 이하이므로- 다시 바다에 던진다고 한다. 

이렇게 관리하지 않으면 얼마 못가 대게를 잡을 수 없게 되므로 어민들도 이에 적극 협조한다. 
 

폭풍속으로 세트장  드라마 세트장으로 유일하게 남은 어부의 집은 바닷가 절벽 위에서 푸른 바다를 온몸으로 끌어안는다.
▲ 폭풍속으로 세트장 드라마 세트장으로 유일하게 남은 어부의 집은 바닷가 절벽 위에서 푸른 바다를 온몸으로 끌어안는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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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있는 하트해변 

대게를 먹고 항구 뒤 언덕을 넘어간다. 죽변항은 동해안의 그 어느 항구보다 아름다운 해안을 갖고 있다.

죽변은 과거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라 하여 죽빈이라 불리었다가 죽변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죽변 등대 일대에는 대나무숲이 넓게 분포한다. 인근에 524년(신라 법흥왕 11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봉평신라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1500년 전 신라 때부터 동해안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항구이다. 

항구 뒤편 언덕과 죽변 등대 그리고 등대 아래의 절벽은 일찍부터 아는 사람만 찾던 조용한 절경이었으나, 바로 이곳에 과거 SBS 드라마 <폭풍속으로> 세트장이 들어서면서 제법 알려졌다. 

세트장 건물은 딱 하나, <어부의 집> 뿐이지만 바닷가 낮은 절벽 위에서 푸른 바다 전체를 끌어안고 있다. 드라마 자체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세트장과 바다가 어울린 풍경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의 기념사진 촬영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죽변 등대 아래쪽 대나무숲길 쪽에서 세트장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포인트이다. 

세트장 내부는 개방되어 있어 들어가 볼 수 있지만, 별다른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깥에 나가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좋다. 
 

죽변 하트해변  폭풍속으로 세트장에서 내려다본 하트해변. 곡선으로 휘어진 바다 모습이 매력적이다.
▲ 죽변 하트해변 폭풍속으로 세트장에서 내려다본 하트해변. 곡선으로 휘어진 바다 모습이 매력적이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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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장에서 바닷가로 내려가면 바로 발 앞에 전혀 오염되지 않은 짙푸른 바다가 출렁거린다. 낚시대를 들고 와 바다낚시를 즐기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고기가 잡히지 않아도 괜찮을 듯하다.

이 해안을 요즘에는 하트해변이라 한다. 바닷물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육지와 만나고, 그 사이로 작은 바위와 돌들이 줄을 지어 바다로 뻗어나가며 바다 사이를 가른다. 그래서 하트 모양이 된다. 잘 보면 하트 두 개가 겹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덕 위의 죽변 등대와 그 아래의 대나무숲길은 또 하나의 포인트이다. 죽변 등대는 16m 높이에 팔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910년부터 지금까지 동해안 일대의 바다를 밝히고 있다. 

그 아래의 대나무숲길은 '용의 꿈길'로 불리는데, 길 안에 들어서면 바깥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고 울창하여 좋은 산책 코스로 인기가 높다. 가끔 바다가 보이는 지점이 사진 촬영 포인트가 된다. 

저녁 어스름 무렵부터 한밤중까지 이 일대는 밤바다와 산책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발길이 이어진다. 드라마는 잊혀도 세트장 풍경은 오랫동안 살아남아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죽변등대 대나무숲길 등대 아래 '용의 꿈길'로 이름붙인 대나무숲길이 있다.
▲ 죽변등대 대나무숲길 등대 아래 '용의 꿈길'로 이름붙인 대나무숲길이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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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동해안 곳곳에서 대게축제를 벌이는 시기가 왔다. 속초부터 포항까지 동해안 전체가 대게 요리로 밤을 밝히고 곳곳에서 대게축제의 파도가 일렁거린다. 이럴 때 울진 죽변항으로 가보길. 대게의 제철에 동해안에 가서 대게와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같이 즐기기에 죽변항 만한 곳도 별로 없다. 

올해 울진군에서는 3월 1일부터 4일까지 4일 동안 '울진대게와 붉은대게축제'를 개최한다. 장소는 후포항 왕돌초광장과 부두광장 일원. 대게 경매, 대게춤 연희단 공연, 대게풍어 해원굿 등의 행사, 해산물 요리체험, 요트 승선 체험, 등기산 대게길 걷기 등의 체험 행사가 펼쳐진다.(문의: 054-789-5485,  http://www.uljin.go.kr/crab) 

여행 정보 

죽변항 항구를 따라 대게를 내는 집들이 길게 이어진다. 어느 집이든 가격과 밑반찬의 구성에 큰 차이는 없다. 대게의 시세는 크기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며, 거의 매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개 큰 것은 한 마리에 5만원 이상 한다. 3인 기준으로 큰 것 두 마리는 먹어야 배가 찬다. 

죽변항은 항구를 따라 차를 댈 수 있는 주차 공간이 있고, 드라마 세트장이 있는 언덕에는 10여대 이상 댈 수 있는 주차장과 길가에 2, 3대씩 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따로 주차료나 입장료는 없다. 세트장인 <어부의 집>은 오전 9시~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가는 길 
자가용 
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동해안 7번 국도→삼척→부구→죽변
혹은 포항→7번 국도→영덕→울진→죽변 

대중교통
삼척과 울진을 연결하는 시외버스, 혹은 울진에서 죽변, 부구로 운행하는 군내버스를 이용, 죽변에서 하차한다. 항구에 가깝게 가려면 군내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버스편은 20~30분 간격으로 자주 있다.
 

죽변 등대  1910년부터 바닷길을 밝힌 죽변 등대와 등대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잘 어울려 있다.
▲ 죽변 등대 1910년부터 바닷길을 밝힌 죽변 등대와 등대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잘 어울려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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