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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새롭게 보기 "이제 평화능력을 기를 때"

[인터뷰] 통일 독일 일상사 이야기한 이동기 강릉원주대 교수
2018.05.28 09:18:23
 

 

 

 

내년은 독일 통일의 핵심 사건인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이다. 장벽 붕괴 후 채 1년이 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 동서로 갈라졌던 독일은 다시 하나의 나라가 되었다. 
 
독일은 한국이 유일하게 공부할 수 있는 통일의 교과서다. 그들이 행한 실수까지도 우리에게는 교훈이 된다. 남북이 새로운 전기를 써내려갈 준비를 하는 지금, 독일 통일을 다시 알아야 할 때다. 
 
우리가 겉핥기식으로 마냥 좋게만 보는 것과 달리, 독일은 여전히 통일을 공부하고 있다. 통일이 아직 요원하다는 지적이 이제는 대세다. 여전히 동서독 간 경제·사회·문화적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제도의 완성만이 통일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제 본격적으로 화해의 물결이 낳을 민간의 변화와 미시사에 더 주목해야 할 때임을 방증하는 사례다. 특히 통일 후 동독의 변화는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한다. 동독에 나타난 변화와 부작용은, 우리가 북한에 일어날 변화의 반면교사로 삼아 미리 대비할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이동기 강릉원주대 교수를 만나 독일 이야기를 듣고, 전환의 시기에 한국이 독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을 들어봤다. 이동기 교수는 독일 예나 프리드리히실러대학교에서 독일통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독일 전문가다. 특히 옛 동독 지역에서 학위를 땄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에선 극히 드문 동독 전문가다.  
 
이 교수는 우리가 놓치기 쉬운 독일 통일의 이면을 지적했다. 여전한 동서독 격차가 동독 사회에 어떤 현상을 낳았는지를 지적하고, 남북이 화해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이 무엇인가를 설명했다. 특히 그는 탈북자가 통일을 위한 새로운 당위로 재정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한반도는 통일 전 독일 못잖은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당장 '99%' 예정됐다 여겨졌던 6.12 북미 정상회담도 5.26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고서야 다시금 탄력을 받게 됐다. 이처럼 한반도 지정학적 위치와 북한의 특수성, 그리고 핵 문제는 독일 통일과 한국 통일을 같은 선상에서 단순화하는 걸 가로막는 상수다. 당장 해당 인터뷰도 북미 정상회담의 불확실성에 의해 게재일을 끊임없이 바꿔야만 했다.  
 
그럼에도, 본문에서 서독과 동독을 '남한'과 '북한'으로 바꿔 읽는 건 우리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터뷰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이동기 강릉원주대 교수. ⓒ프레시안(이대희)

동서독은 여전히 한 사회가 되지 못했다 
 
프레시안 : 동서독 격차가 여전하다고 들었다. 지금도 꾸준히 독일을 방문하시는데, 실제 눈에 보이는 동서독 격차가 어느 정도인가? 
 
이동기 : 최근 7~8년가량 독일 경기가 매우 좋다. 일각에서는 '제2의 라인강의 기적'이라고까지 칭할 정도다. '이 번영은 끝이 있을까'는 내용의 기사가 나올 정도다. 
 
동독 지역인 신연방주도 부분적으로는 그 혜택을 누린다. 하지만, 동서독 격차는 여전히 크다. 동서독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만큼, 두 지역 격차를 피부로 느낀다. 도시 외형부터 사람들의 분위기까지 여전히 다르다.  
 
동독지역인 신연방주의 임금 수준, 일인당 국민소득과 가처분 소득 및 노동생산성 등 각종 경제지표가 대체로 서독의 70%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한 때 그 지표들이 40-50%에 불과했으니 이제 좀 나아졌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동서독 지역의 불균형을 확인할 수 지표임에는 분명하다.  
 
인구 분포 상황도 다르다. 서독 지역 인구는 계속 늘었지만, 동독은 계속 줄었다. 2013년 기준 통계를 보면,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이 포함된 작센주를 제외한 동독 주들, 즉 튀링엔과 작센안할트, 메클렌부르크-폼메른 주들은 모두 여전히 유출 인구가 유입 인구보다 많다. 게다가 동독의 남녀 성비를 보면 남성이 많고 여성이 적다. 튀링엔과 작센안할트 주의 남성 비율은 53%인데, 20~30대 청년 연령층에서는 훨씬 높다. 작년 통계에 따르면, 동독 지역의 작은 도시나 시골에는 남성 100명 기준에 여성이 56명밖에 되지 않는 곳도 꽤 있다. 
 
동독의 젊은 여성들이 서독으로 이주하기 때문이다. 동독 남성들도 일자리를 찾거나 성공을 위해 서독으로 이주하지만, 그들 상당수는 서독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동독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반면, 동독 출신 대졸 여성들은 서독 지역으로 가서 직장을 구하며 동독 지역을 빠져나가 서독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프레시안 : 남녀의 적응도가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이동기 :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간략히 말하자면, 동독 지역 여성은 서독 여성과 경쟁이 가능하지만, 동독 남성들은 경쟁력이 떨어진다.  
 
프레시안 : 남녀가 주로 종사하는 산업이 달라서인가? 
 
이동기 : 종사하는 직업 분야의 차이 때문은 아니다. 동독 남성과 여성의 취업과 업무 및 성과 능력에 차이가 존재한다. 동독 지역은 사회주의 시기의 영향으로 여성들의 취업이나 사회 진출에 우호적이다. 동독 여성들은 오히려 서독 여성들에 비해 더 '해방'적이거나 자립적 인간이 되도록 교육을 받았다. 이를테면, 동독 지역 초중고교에서 여성 교사 비율은 서독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그것은 남학생들에 비해 여학생들에게 교사와 학교에 대한 친밀감을 강화했다.  
 
동독 여학생의 학업 성취 능력과 사회적 소통 능력 등이 남학생에 비해 높고, 서독 지역 여학생들에 견주어 모자라지 않다. 동독 출신 고학력 여성들은 동독 지역에서 자신들의 능력에 걸맞은 취업 기회나 출세 가능성을 보지 못하기에 일단 서독 지역으로 이주하면 동독 지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반면, 동독 출신 남성들은 냉혹한 경쟁과 성과 위주의 서독 사회에서 적응을 잘 못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열패감과 소외감을 안고 동독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서독 중심의 주류 사회에 거리를 둔다.       
 
흡수 통일이 낳은 부작용 
 
프레시안 : 통일된 지 30년이 되어간다. 지금 취업시장에 나오는 이들은 통일 후 세대인데, 그들도 자유 경쟁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다니 얼핏 이해되지 않는다. 
 
이동기 : 일상문화와 경험세계에서 남겨진 가치와 규범은 제도가 바뀐다고 순식간에 사리지지 않는다. 동독식 사회주의 가치나 규범이 통일과 함께 끝나지 않았다. 가족과 지역의 위기나 소외를 보면서 주민들은 과거 삶의 방식과 가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재발견하고, 전승한다.  
 
동독의 사회주의 경험은 동독 주민들에게 개인주의와 다른, 집단적 결속과 '공공성(Gemeinsinn)'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졌지만, 동독 사회는 가족과 친족 간 결속이 유럽에서 가장 긴밀한 곳이다. 이탈리아 사회보다도 더 가족과 친족의 친밀도가 높다. 그런 가치와 문화는 단순히 제도가 달라진다고 바뀌지 않는다. 경쟁사회에서 낙오하는 것을 견딜 수 있는 기제로서 일상문화의 가치나 친족사회의 공동체성이 새로 발견되는 측면이 있다.  
 
프레시안 : 서독이 일방적으로 동독을 흡수 통일했는데, 그에 따른 반작용이 작동하고 있다고 이해해도 되나?  
 
이동기 : 그렇다. 일종의 반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흡수통일과 체제이식의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흔히 서독 일방의 흡수통일 후유증을 '내적 통합'의 실패로 규정하는데, 이 문제는 그리 간단히 설명할 수 없다. 이를테면, 급속한 흡수 통일과 일방적 체제이식은 노년이나 성인 세대가 아니라 청년 또는 소년기에 통일을 경험한 젊은 세대에게 더 충격적인 측면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된 많은 연구들이 있다.  
 
나의 논문 지도교수인 루츠 니트함머(Lutz Niethammer)는 2005년부터 몇 년간 통일 후 동독 지역의 청(소)년(15세에서 25세)을 심층 연구했다. 지금은 30대 안팎의 성년이 된 이들이다. 당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그 청소년들은 가정에서 부모 역할을 대체하고 있었다. 1990년 통일 당시 어린이였거나 통일 직후 태어난 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부모들의 권위나 지도를 경험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에게 부모는 무력하거나 좌절한 이들, 또는 현실에 실망하며 냉소하는 이들이었다. 부모 세대는 동독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주역이었으나, 통일 후 새로운 체제에서는 낙오자이거나 패배자에 불과했다. 통일 독일이 애초 동독 민주화 주역이나 참여자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 동독의 건국세대인 조부모 세대들은 줄곧 동독에 대한 긍정적 기억을 전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가정에서 부모 세대를 위로하고 부모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역할을 떠맡게 됐다. 자식과 부모 관계가 역전된 셈이다. 청소년들은 '부모의 부모'가 되었고 조부모들의 영향 하에서 동독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발전시켰다. 심지어 동독 시절을 전혀 경험하지 않았던 이들에게도 동독은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이와 관련된 최근 연구와 논의 결과가 '제3세대 동독'(Dritte Generation Ostdeutschland)이다. 그 논의에 따르면, 1975년부터 1985년 출생 동독인들은 청소년 시절 삶의 근본적 전환을 경험했다. 구조변화와 실업, (서독으로의) 이주 및 사회이동과 독재 유산 아래에서 그들은 자유를 만끽했지만, 동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성년이 되자마자 곧장 생존 투쟁에 내몰렸다. 
 
이에 따라 '제3세대 동독인'들은 한편으로 동년배 서독인들과의 근본적 차이를 확인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앞 세대 동독주민들과 자신들의 삶이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체제 전환을 온 몸으로 경험하며 완전히 새로운 삶을 모색해야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그들은 통일 후 삶의 방향을 완전히 상실한 부모 세대를 대신해 가족의 실질적 주체로 등장했다. 부모를 위로하거나 대변하고, 비극적 가족사를 감당하거나 해결하고, 가족의 트라우마도 극복해야 했다. 이 같은 성장기를 통해 제3세대 동독인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집단적 자기 정체성을 발전시켰다. 부모나 조부모 세대의 오스탈기(상자기사 참고)도 소통의 매개로 활용되었다. 그런 방식으로 동독의 통일 후 세대도 '동독인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오스탈기란?

오스탈기(Ostalgie)는 '동쪽'이라는 뜻의 '오스텐(Osten)'과 '노스탤지어'의 독일어인 '노스탈기(Nostalgie)'의 합성어로, 간략히 말해 '동독 향수' 쯤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동독 지역 주민 사이에서는 여전히 동독 제품에 대한 애착과 동독을 주제로 한 문화 상품 소비가 활발하다. 서독 담배를 피우는 이를 못마땅해 하는 문화 등이 여전하다. 
 
오스탈기는 통일 후 서독인이 동독인을 집단 대상화하면서 이에 따른 반발로 인해 커졌다. 이에 더해 통일 후 다수 동독 주민은 민족적 경험, 기억, 이야기 공동체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 같은 공동체는 오스탈기의 전승을 낳게끔 했다. 
 
얼핏 생각하기에 이는 독일 통일의 걸림돌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동기 교수는 2016년 발표한 '독일통일 후 동독정체성: 오스탈기는 통합의 걸림돌인가?' 논문에서 그 같은 시각을 반박했다. 오스탈기는 어디까지나 "탈사회주의 국가에서 보이는 보편적 현상의 일부"이며 "동독 주민이 서독 주도의 현 독일정치공동체에 대항해 경계 의식을 갖고 형성한 지역정체성"으로, 동독인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이유다. 

 

▲ 동독산 제품을 주로 파는 베를린의 한 가게. 오스탈기는 자본주의와 합쳐져 동독 제품 마케팅 기법으로도 활용된다. ⓒwikimedia


오스탈기, 정체성 찾으려는 동독의 몸부림

 

 

프레시안 : 오스탈기가 통일 후 등장했다는 사실은 남북 관계 전환기를 맞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그런데, 교수께서는 2016년 발표한 논문에서 오스탈기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동기 : 오스탈기는 통일 후 동독인의 '동독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에도 특정 역사적 사건과 경험이 제주도 정체성이나 전라도 사람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오스탈기는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지닌 정치적 집단 정체성이 아니라, 일종의 지역정체성이자 문화정체성이다. 오스탈기는 공산주의 체제의 특정 인물, 공산주의 시절 강령 등의 부활로 이어지진 않는다. 물론, 오스탈기가 정치적으로 특정한 세력과 연결되어 그들에 의해 악용되거나, 과잉 이데올로기화해 투쟁의 도구가 된다면 위험하다. 그렇다면 통일 이후 독일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박정희 시절의 향수를 지니고 그의 독재를 미화하거나 범죄를 상대화하는 건 현 민주주의 체제와 규범을 흔드는 위험한 움직임이다. 실제 러시아나 동유럽 사회에서 다시 부는 공산주의 향수에는 민주주의 거부 정서가 어느 정도 있다. 그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오스탈기는 그렇지 않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전반에 걸쳐 동유럽 전역에서 노스탤지어가 등장했다. 보편적 현상인 셈이다. 다만 노스탤지어에는 두 종류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스베틀라나 보임의 분석에 따르면, 하나는 복고적(restorative) 노스탤지어고 다른 하나는 성찰적(reflective) 노스탤지어다. 오스탈기는 후자에 해당된다. 오스탈기는 정치적 힘이라기보다 문화적 현상이고, 공격적 움직임이 아니라 방어적 성격을 띤다. 성찰적 노스탤지어는 과거를 마냥 이상화하지 않는다. 현재를 성찰하는 동시에 과거에서 의미 있는 기억과 경험을 끌어올려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현상이 오스탈기다. 
 
프레시안 : 서독의 강력한 가치가 휩쓸어버린 사회에서 동독인이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찾은 '나의 뿌리'가 오스탈기라고 이해하면 될까?
 
이동기 : 그렇다. 통일 후 동독에 밀어닥친 서독의 거대한 힘은 동독인에게 자신과 자신의 가족, 자기 지역의 모든 것을 부정하게끔 했다. 이에 대한 방어적 기제로서 동독인들은 '우리에게도 좋은 것이 있다'는 재인식을 하게 됐다. 오스탈기는 서독 주류 정치가들의 일방적 체제 이식에 맞선 긍정적 자기 인식이자 자기 의미 부여 과정이었다. 자기위로와 자기인정을 통해 통일 후 독일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오스탈기가 기본적으로 담화공동체의 성격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동독 지역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경험을 통해 오스탈기가 형성됐다. 사실 동독인들은 (독재 체제가 무너진) 통일 후 비로소 처음으로 자유롭게 발언하며 소통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얻었다. 자연히 자발적 담화공동체 움직임은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단순히 오스탈기를 '서독의 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복고' 수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독일의 주류 담론, 주요 언론은 동독인들의 이야기에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통일 후 주류 언론과 서독 출신의 지배 정치가들은 동독을 비정상 체제로 간주했을 뿐, 동독 주민들의 일상 경험과 집단 기억을 무시했다. 자연히 동독인들은 그런 일방적이고 불균형한 담론 지형에 불만을 가졌다. 우리도 정상적인 삶을 살았는데, 우리가 정상적인 삶을 살았기에 독재를 무너뜨렸는데 이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으니 당연하지 않겠나. 통일의 주체가 마땅한 대접을 못 받았다. 내 목소리를 낼 길이 없으니, 그에 대한 반응으로 동독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 담화 공동체가 자연히 연대 경험으로 강력하게 이어졌다. 오스탈기가 통일 후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강력한 집단정체성으로 연결된 배경이다. 
 
탈북자를 보는 색안경 내려놓을 때 
 
프레시안 : 서독인들의 동독 대상화, 서독의 흡수통일이 오스탈기를 낳은 원인의 하나로 보인다. 한국에도 탈북자 대상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탈북자 사회를 통해 남북 교류가 커질수록 북한에서도 동독의 오스탈기화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리라 짐작할 수도 있음직하다. 실제 우리는 북한을 악마화해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이동기 : 일단 탈북자를 통해 북한 주민의 생각을 유추하는 건 어렵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주로 중국 접경 지역에 위치한 특정 지역민들이 많이 오는데다, 탈북자들의 생각이 북한 체제에 관한 북한 주민의 생각을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옛날 분단 독일에서도 많은 동독인이 서독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동독 이탈 주민의 10% 정도는 서독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동독으로 돌아갔다. 정치적 요인보다 경제적 요인, 사회적 요인이 컸기 때문이다. 
 
한국의 탈북자 사회에서도 이 같은 일이 일어난다. 탈북자 상당수는 정치적 요인보다 경제적 요인으로 분단선을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대했던 경제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탈북자가 한국 사회에 긍정적으로 적응하기란 당연히 어렵다. 이 상황에서 탈북자가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되거나 가십 거리로만 소비되고, 고유한 경험과 생애사를 가진 사회적 주체로 자리 잡지 못한다면 이들은 당연히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실제 탈북자 중에도 일부는 북한으로 되돌아가지 않나. 우리는 이 같은 현상을 그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오직 이데올로기적으로만 보려 했다. 그래선 탈북자 사회와의 통합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앞서 동독의 오스탈기가 기본적으로 담화공동체의 성격을 띤다는 점을 언급했다. 탈북자 사회에서도 담화공동체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탈북자들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한국에 와서야 처음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지향과 판단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의 자유로운 생각과 판단을 접할 수 있다. 그들 나름의 자유로운 발화와 소통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통해 탈북자의 북한 사회에 대한 여러 모순적 경험과 복합적인 기억들이 그대로 재현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그들은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반드시 단일한 태도나 입장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의 날 것 그대로의 생각이 우리 사회에 전달될 필요가 있다. 탈북자들은 김일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의 경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더 들어 볼 필요가 있다. 인지의 차이와 해석의 모순들도 드러내야 한다. 
 
프레시안 : 한국 사회가 탈북자에게 듣고 싶어 하는 답은 정해져 있다. 북한을 악마화하고, 탈북 과정을 스펙터클화하고, 한국을 찬양하는 내용만을 원한다. 언론은 오직 이들 주제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동기 : 우리는 대체로 그들에게서 자극적인 이야기만을 원한다. 그들에게 어떤 입장이 있으리라 전제하고 탈북자에게 접근하려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탈북자 개개인이 지닌 한국에 관한 생각, 정치적 견해는 모두 다르다. 이 다름을 그들 스스로 소통하면서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탈북자 사회를 연결하는 일종의 끈이 드러난다. 이 끈이 드러나면, 탈북자 사회도 담화 공동체로 성장하게 된다. 더 열린 이야기 무대가 마련되어야 할 이유다. 
 

▲ 이제 정치 지도자 간 교류를 넘어 민간의 교류 물꼬를 틀 때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남북, 자유로운 민간인 교류부터 
 
프레시안 : 독일의 통일이 급작스러웠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동서독은 통일 전에도 20여 년에 걸쳐 꾸준히 교류했다. 한반도에도 남북의 교류가 안정적으로 이어져야 할 텐데, 아직은 정권에 따라 교류와 대결이 교차되는 현실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교류가 부족하다보니 남북을 잇는 접점도 크지 않다. 현재로서는 탈북자가 유일한 남북의 접점으로 보이는데, 앞서 탈북자 사회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왜곡되었음을 지적했다. 교류의 가능성을 우리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이동기 : 탈북자는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아야 할 존재다. 탈북자 자체가 남북의 인적 연결고리다. 이산가족이 있지만, 이분들은 안타깝게도 연세가 많아 사실상 사라지고 있는 존재들이다. 탈북자는 남북한 인적 연결의 새로운 고리다. 이 때 탈북자들을 민족주의적 맥락에서 민족 유대나 연대의 핵심으로 간주하는 것도 잘못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을 무작정 북한 이해의 통로나 통일의 주역으로 끌어 올리는 것은 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하다. 
 
탈북자는 분단이 낳은 '이주민'이다. 탈북자나 탈북 현상을 냉전 이데올로기나 체제 대결 맥락에서 보지 않고 경제적·사회적 요인이 낳은 이주의 한 양상으로 본다면, 그들의 생애사적 고통이나 인도적 요구에 더 개방적으로 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그들이 가족과 친지를 정기적으로 만나거나 재결합하는 것을 추진하면서, 기왕에 이산가족 상봉 만남이 지닌 인도적 의미를 더 폭발적으로 복원해야 한다. 적어도 동서독은 그랬다. 
 
프레시안 : 통일 전 동서독 간에는 어느 정도로 자유로운 인적 왕래가 보장됐나?
 
이동기 : 동서독 간 교류의 핵심 한 축은 경제 교류였고, 다른 한 축이 사람 간 접촉이었다. 두 체제는 동독 이탈 주민과 동독에 남은 가족 간의 정기적인 만남, 나아가 원할 경우 재결합까지 허용했다. 서독 사람은 비교적 자유롭게 동독을 여행할 수 있었다. 
 
나아가 두 체제는 주민의 합법적 이주도 보장했다. 동독의 65세 이상 노인은 서독으로 합법적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건설된 뒤 교류나 이동이 잠시 봉쇄되었지만, 1963년부터 한 해에 가장 적게는 7000여 명, 가장 많게는 3만5000여 명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합법 이주했다. 1970년대와 80년대 동독을 이탈한 난민의 수는 매년 3000명에서 6000명이었지만 동독에서 서독으로의 합법 이주민 수는 그것의 2배에서 5배나 많았다. 대부분 가족 재결합의 형식이었다. 현재 한국의 탈북자가 지난해 말 기준 3만여 명을 조금 넘는 수준인데, 동독 이탈 주민의 수는 한 해에 그 정도 규모였다.  
 
우리도 일회성 상봉을 넘어서는 상상을 해야 할 때다. 필요하다면 정기 방문과 가족재결합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동독은 경제적 이익이 있었기 때문에 합법 이주를 받아들였고, 매년 적게는 500명, 많게는 2600명의 정치범 매매(동독 정치범들이 동독 감옥에서 석방되어 서독이나 동독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서독이 인신을 구매함)에도 적극 응했다. 우리도 북한에 그런 인적 이동과 교류 방안을 제안해야 한다. 
 
'북한 스스로 문제 해결하도록 하라' 
 
프레시안 : 최근 남북 화해의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북한을 새롭게 인식하려는 노력이 한국 사회에 보인다. 한편에서는 북한 개발 담론이 앞서면서 통일 논의를 이끌고 있다. 이에 관해 일각에서는 북한 내부 식민지화에 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동기 : 독일의 통일 관련 정책 경험자들이 공통적으로 한국에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문제가 있는 그곳(북한)이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게끔 최대한 긴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동독 체제가 무너진 후, 곧바로 서독 체제를 이식한 급속한 통일의 실패 경험을 독일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독일은 여전히 내적 통일을 완수하지 못했다. 메르켈 총리도 10년 전에 이미 수차례 "동서독 간 평등이 이뤄지기까지 4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성급하게 체제 통일을 추구한들, 진정한 통일은 이뤄지지 않는다. 
 
헬무트 콜 총리 시절 통일 전략을 세운 호르스트 텔식 전 대외정책보좌관은 한국 관련 학술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항상 '한국이 북한에 체제의 변화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북한 스스로 변화를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조차 그들 스스로 해결하게끔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흡수 통일도 조심해야 하지만, 경제 개발, 인프라 구축 등 모든 계획을 그들이 주체적으로 결정하게끔 기다려야 한다.  
 
최근 언론이나 일부 선동가들이 주도하는 북한 개발 담론 내지 북한 개발을 통한 신종 통일대박론은 조심해야 한다. 통일의 모든 작업을 우리가 주도한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어디까지나 북한과 협력은 공동 작업임을 유념해야 하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 돈을 쥐고 있다고 해서 '우리 방식대로 하면 번영하니 그저 따라와라'는 식의 태도를 통일에의 접근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프레시안 : 북한 개발 논의 자체를 반대한다는 게 아니라, 개발 결정을 온전히 북한 스스로 주도하게끔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개발에 민간 참여를 유도하려면 자본의 욕구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이동기 : 일반적인 투자라면 기술과 자본을 가진 쪽이 투자 의사 결정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남북 경협은 일반적인 협력의 범주를 벗어난다. 북한과 다국적 자본의 입장을 조심스럽게 아울러 고민해야 할 문제다.  
 
오히려 한국은 북한이 놓치고 있는 부작용과 문제들까지 함께 알릴 필요가 있다. '이곳에 자본이 투입되면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자연이 망가질 수 있다'는 식의 제언도 우리가 그들 입장에 서서 미리 전하는 진정성이 요구된다.  
 
장기적으로는 이런 사려 깊음이 더 좋다. 어쨌든 통일이 되어 북한이 개발되면 대박이 터진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분단 극복이 경제 이익 공동체 형성으로 귀결될 수 있음은 사실이고 그럴 필요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무수한 갈등과 적대 및 새로운 위험과 문제들이 생겨남을 함께 숙고하고 유의해야 한다.  
 

▲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나, 일방적인 서독 체제 이식은 진정한 통일을 가로막았다. ⓒ미 국방부

1990년 독일의 실수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때 
 
프레시안 : 개성공단 재개 가능성이 생겼다. 북한에서도 이런 모델이 늘어난다면 지역 간, 주민 간 경제 격차가 커질 텐데, 그로 인해 북한 내부에서도 새로운 갈등이 생길 듯하다. 통일 후 동독을 보면, 라이프치히 등 일부 지역이 상대적으로 크게 발전했지만 그로 인해 동독 내부에서도 격차가 생기지 않았나? 
 
이동기 : 최근 학계에서 주목하는 게 동독 내 지역 격차다. 
 
통일 이후 자본이 들어온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예나 등의 지역과 메클렌부르크 등 자본 유입이 적었던 지역의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동서독 간 차이보다는 동독과 서독의 내부 차이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인구밀도, 경제력, 취업률, 수입, 공공설비 등에서 예나나 드레스덴 같은 개발된 도시와 바우첸이나 슈텐달, 뎀민 등 저개발 지역의 차이가 아주 크다. 그렇기에 싸잡아서 '동독 문제'라고 뭉뚱그려 말하기가 이제는 어렵다. 특히 최근에는 동서독 경계 지역의 동독 도시들과 마을들도 새롭게 떠올랐다. 하지만 몇몇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동독 지역은 어쨌든 1990년 후 몇 년 간의 '탈산업화'를 아직까지 회복 못하고 있고, 오히려 동독 내부의 지역 불균형 발전으로 투자 소외 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프레시안 : 동독의 낙후 지역을 중심으로 유럽의 새로운 골칫거리인 극우 움직임이 본격화했나? 
 
이동기 : 동독 지역에서 극우 정당과 네오 나치는 최근 다시 성세를 누린다. 그러나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동독 지역의 극우 세력 조직화는 상당 부분 서독 출신자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1990년대부터 서독의 극우 세력은 동독의 민주주의 취약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자금과 조직과 이데올로기 등을 공급했다. 물론, 동독의 자생적인 조직도 일정하게 역할을 수행했지만, 동독의 극우 세력도 통일독일의 동서독이 만든 문제다.  
 
경제적 요인이 동독의 극우화에 기반을 놓았지만, 절대적이거나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동독의 낙후 지역에 극우 조직이 특정 목적으로 들어가 사회적 낙오자들을 조직화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것에 맞설 내부 세력, 예를 들어 기성 정당 조직이나 교회를 비롯한 문화적 대안공동체가 없는 곳이 위험하다. 그렇기에 경제적 빈곤이나 실업보다는 지역 문화나 소통 네트워크의 존재 여부가 극우 세력의 성패를 결정하는 관건이다.
 
프레시안 : 우리가 독일 통일로부터 배울 점이 여러 가지일 텐데,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일까? 
 
이동기 : 통일정책이나 정치와 관련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있었고, 나도 독일통일 전문가로서 많은 글을 발표했고 말을 전했다. 오늘 대화에서 초점은 정치와 일상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남북 교류와 통일 과정에서 등장하게 될 일상문화와 경험세계의 차이가 낳는 문제에 관해 우리에게 독일은 여러 교훈, 정확히 말하면 반면교사를 줬다. 사람 삶의 경험과 기억이 체제가 달라진다고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는다. 한 체제가 지닌 역사적 무게는 분명히 있다. 체제는 무너져도, 체제가 낳은 여러 가지 삶의 요소는 구성원 각자에게 내재한다. 또는 오히려 체제가 무너진 뒤에 재생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고 비핵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된 후, 우리가 평화로의 '긴 이행기'에 진입함을 명심하는 것이다. 이행기라고 함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모순과 혼재 상황, 복잡한 갈등과 다양한 이견들의 발현, 지체와 유예 상황들이 지배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함부로 북한을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북한을 개발이익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통일론이 지배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북한을 적대적 타자로 내면화했다. 북한 주민 역시 우리를 그렇게 내면화해왔다. 적대적 타자상을 극복하기란 우리 생각보다 더 힘들다. 평화로의 이행, 또는 남북한의 화해는 이중적 적대적 타자상을 극복하는 집단적 훈련의 과정이다. 그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될 오해와 불신을 극복하는 길이다. 그것을 위해선 당연히 타자에 대한 존중이 출발점이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북한과 교류를 활발히 진행할수록 동질성보다 이질성을 더 많이 발견할 것이다. 동서독도 그랬다. 교류가 활발해도 서독 청년들은 서독정체성에 빠져 있었지, 통일에 관심이 없었다. 다만 평화와 화해 의지만큼은 일관되었고 상승했다. 우리도 만날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만 부를 수는 없다.  
 
상호 이질성을 확인하더라도 더 큰 갈등을 유발하는 사건사고를 감당할 수 있는 평화능력을 길러야 한다. 평화능력은 이질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오해와 불신의 고리를 끊으려는 집단적 지혜이자 노력이다. 끊임없이 오해를 끊어내면서 새로운 상호 공존의 고리와 방법들을 하나씩 찾고 쌓아야 한다. 오해와 불신을 해결하고 조정할 줄 하는 다양한 평화 행위자들이 등장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독일 통일로부터 가장 중요하게 배워야 할 점이다. 
 
독일은 20년간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 상호 오해의 고리를 완전히 끊지 못했고, 상호 존중의 고리를 잘 꿰지 못했다. 1990년 1월 급속한 흡수통일로 방향키를 틀면서 짧은 시간에 한 쪽의 체제를 일방적으로 다른 한 쪽에 이식했기에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 독일이 여전히 통일과정을 성찰하는 이유다. 우리는 동서독 교류 역사 20년에서 많은 것을 배우면서 동시에 1990년 독일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간디가 말했듯이, 평화로 가는 길이 따로 있지 않다. 평화가 곧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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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 극적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내막

<개벽예감 300>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 극적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내막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5/28 [09:01]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억지로 취소결정 내린 핵제국의 최고권력자 

2. 광란적인 방해책동이 5월 11일부터 벌어진 까닭

3. 조선이 거부한 싱가포르 준비회담, 그리고 5.24 특별담화 발표

4. 검은 이익집단이 꺼내든 마지막 술책

5. 그래도 난관을 극복할 해법은 있었다

 

 

1. 억지로 취소결정 내린 핵제국의 최고권력자 

 

2018년 5월 24일 오전 9시 18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발신한 글에서 “서글프게도, 나는 김정은과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정상회담을 억지로 취소하였다(Sadly, I was forced to cancel the Summit Meeting in Singapore with Kim Jong Un)”고 밝혔다. 짤막한 문장 속에 매우 착잡한 심경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김정은 각하(His Excellency Kim Jong Un Chairman of the State Affairs Commission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에게 보내는,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통보한 공개서한 사본을 위에 인용한 짤막한 트위터 문장 아래에 첨부하였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서한이 조선에 전송된 시각은 오전 9시 43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이 조선에 전송되기 25분 전에 자신의 착잡한 심경을 먼저 밝힌 것이다. 자신이 바라는 바는 아니었으나, 조미정상회담을 억지로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서글픈 처지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하소연하듯...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발신한 그 한 줄의 짤막한 문장 속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서글픈 사연, 세상이 다 알지 못하는 회담취소의 내막이 담겨있다. 그 문장은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고 싶지 않았으나, 타의에 의해 억지로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서글픈 고백이었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8년 5월 24일 오전 9시 18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발신한 글이다. 그는 "서글프게도, 나는 김정은과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정상회담을 억지로 취소하였다"고 썼고, 그 밑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김정은 각하에게 보내는,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통보한 공개서한 사본을 첨부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공개서한이 조선에 전송되기 25분 전에 자신의 착잡한 심경을 담은 트위터 문장을 먼저 공개하였다. 조미정상회담을 타의에 의해 억지로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서글픈 처지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하소연하듯...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당시에 불과 20일밖에 남지 않은 조미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취소된 충격사건을 보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그 무슨 ‘거래의 달인’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그의 취소결정을 가리켜 조선을 압박하는 그 무슨 ‘특유의 협상술’이니 ‘충격요법’이니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의 서글픈 고백은 그런 잡다한 보도들이 얼마나 얼토당토하지 않고 저속한 것인지 명백히 말해준다.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한국 언론매체들의 저속한 보도내용과는 반대방향으로 흘러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미정상회담 취소는 그 무슨 협상전술이나 충격요법 같은 게 아니라, 타의에 의해 억지로 저지른 자충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조미정상회담 취소가 자기에게 자충수로 될 것을 우려했으므로, 그처럼 서글픈 심경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눈앞에 닥친 조미정상회담을 느닷없이 취소하는 사건을 일으키는 바람에 낮은 수준에 머무르던 자신의 신뢰도를 더 떨어뜨렸다. 그의 자충수는 그에게 ‘버릇없는 막말쟁이’라는 악명 이외에 ‘믿지 못할 변덕쟁이’라는 악명을 하나 더 얹어주었다. 이번 취소사건으로 미국의 동맹국들이 변덕쟁이 트럼프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되었으니, 미국에게 큰 외교손실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저지른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보다 훨씬 더 강한 충격과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가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했다는 사실이다. 누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세워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게 만들었을까? 

 

핵제국 최고권력자의 마음을 돌려세워 취소결정을 내리게 만든 놀라운 사건의 배후에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있다. 정치흑막 뒤에 정체를 감추고 백악관을 움직이는 검은 이익집단이 바로 그들이다. 나는 2018년 5월 21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비밀에 쌓인 조미정상회담 핵심의제, 마침내 모습 드러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공동의 이해관계로 상호결탁한 미국의 극우정객, 극우각료, 펜타곤, 군수산업체가 검은 이익집단을 구성하여 세계적 범위에서 침략전쟁과 무력충돌, 정권전복과 내정간섭을 획책,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하였고, 그 검은 이익집단이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검은 이익집단이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세워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도록 만들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의 흉계에 말려들어 취소결정을 내렸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명색이 핵제국의 최고권력자라 해도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서글펐겠는가! 

 

미국 언론매체들은 조미정상회담에 거부감을 가진 극우각료들 가운데 대표자로 손꼽히는 존 볼턴(John R. Bolton) 국가안보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미정상회담 취소를 권고하여, 취소결정이 내려진 것처럼 보도하였지만, 그것은 겉만 보고 속은 꿰뚫어보지 못한 저급한 인식이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검은 이익집단에 소속되어 그 집단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수많은 구성분자들 가운데 하나다.    

 

원래 검은 이익집단은 미국이 적국과 협상하면 적국에게 굴복하게 된다고 강변하면서, 어떤 형태의 대화나 협상도 반대하고, 오직 적국을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미국의 국익(실제로는 자기 집단의 이익)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는 극우광신자들의 집합체다. 그런 극우광신자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조미정상회담은 미국이 조선에게 굴복하는 외교굴욕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무력대결과 경제제재와 외교고립의 강도를 최고로 높인 고강도-전방위 압박을 가중시켜 조선을 기어이 굴복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검은 이익집단의 기대와 요구와 동떨어진 길로 나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검은 이익집단이 반대하는 조미정상회담 성사에 목을 매고 있으며, 자기 심복인 마익 팜페오(Mike R. Pompeo)를 국무장관에 임명하고, 조미정상회담 준비과업을 그에게 맡겼다. 

 

 

2. 광란적인 방해책동이 5월 11일부터 벌어진 까닭

 

상황이 자기들의 기대와 요구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본 검은 이익집단은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에 달라붙었다. 방해책동의 첫 움직임은, 검은 이익집단의 대변인을 자임한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2018년 4월 29일 미국 언론매체들과 두 차례 연속 대담하면서 이른바 리비아식 핵포기를 조선에 적용해야 한다고 떠들어댄 것이었다. 리비아식 핵포기 적용설은 미국이 조선을 힘으로 굴복시키고, 조선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빼앗아 미국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폭언이었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멍청이가 아니므로, 미국이 조선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빼앗아 미국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자신의 발언이 너무 황당무계한 폭언이라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가 그런 황당무계한 폭언을 토해낸 것은, 폭언도발로 조선을 심히 자극하여, 어렵사리 조성된 조미대화분위기를 깨뜨리고,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좌절시키려는 음흉한 계략이었다.  

 

그런데 지난 4월 29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식 핵포기를 조선에 적용해야 한다는 폭언을 늘어놓았을 때만 해도, 조선은 대응할 가치도 없는 황당무계한 소리를 그냥 무시해버렸다. 하지만 검은 이익집단의 도발은 폭언 한 차례로 끝난 게 아니었다. 

 

폭언도발 다음에는 검은 이익집단의 한 구성부분인 펜타곤이 감행하는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이 도사리고 있었다. 펜타곤은 예년과 달리 F-22 스텔스 전투기 편대와 B-52 장거리전략폭격기까지 동원하는 대조선전쟁연습 ‘맥스 선더(Max Thunder)’를 2018년 5월 11일부터 감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닷새 뒤 조선의 격한 반응에 움찔한 펜타곤은 B-52 장거리전략폭격기를 한반도 공역으로 차마 들이밀지 못하고, 일본열도 남방해역에서 일본항공자위대 전투기들과 합동군사훈련을 시킨 뒤 괌으로 돌아가게 하였지만, F-22 스텔스 전투기 8대는 대조선전쟁연습에 동원되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5월 13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ABC>와 대담하면서 리비아식 핵포기를 조선에 적용해야 한다는 폭언을 또 다시 늘어놓았고, 그것을 신호로 하여 익명의 소식통들이 한국 및 일본의 언론매체들을 통해 리비아식 핵포기를 조선에 적용해야 한다는 폭언을 동시다발적으로 늘어놓았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8년 5월 22일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진행한 정상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발언하는 모습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묘한 표정을 하고 지켜보는 장면이다.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좌절시키려고 광분하는 검은 이익집단의 대변인을 자임한 볼턴은 이른바 리비아식 핵포기를 조선에 적용해야 한다는 황당무계한 폭언을 두 차례나 내뱉으며 조선을 심히 자극하였고, 어렵사리 조성된 조미대화분위기를 깨뜨리고,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좌절시키려는 음흉한 계략에 매달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좌절시키려는 검은 이익집단의 방해책동이 그처럼 5월 11일부터 광란적으로 벌어진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 5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두 차례 회담을 진행하면서 조미정상회담 핵심의제와 개최지 문제를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선 대표단과 미국 대표단이 싱가포르 현지에서 만나 회담실무준비를 끝내면, 조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6월 12일에 열리게 되었다.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이 그처럼 순조롭고 신속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속이 뒤틀린 검은 이익집단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의 5월 9일 회담이 끝나자마자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에 광분하였다. 

 

 

3. 조선이 거부한 싱가포르 준비회담, 그리고 5.24 특별담화

 

조선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검은 이익집단의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 김계관 조선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 5월 16일 특별담화를 발표한 것은, 위험수위를 넘어선 검은 이익집단의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을 저지하려는 단호한 조치였다. 검은 이익집단의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을 매우 강한 어조로 비난, 질책한 김계관 제1부상의 5월 16일 특별담화가 발표되자, 당황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볼턴의 폭언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런 수습발언으로 사태악화를 막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검은 이익집단의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을 저지하려는 조선의 대응조치는 매우 강경하였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5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5월 18일 싱가포르에 파견한 조섭 헤이긴(Joseph W. Hagin) 대통령 부비서실장과 미라 리카들(Mira R. Ricardel) 백악관 부국가안보보좌관은 현지에서 조미정상회담 실무준비회담을 하려고 오랫동안 기다렸으나, 조선 대표들이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가타부타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5월 24일부 기사에서 익명의 백악관 고위관리는 “그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나, 북조선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북조선 사람들은 우리에게 전혀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사람들을 그냥 서 있게 만들었다”고 잔뜩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싱가포르에서 개최하기로 예정되었던 조미실무준비회담이 조선의 단호한 조치로 무산되자 백악관과 국무부는 조선에게 무시를 당했다며 부글부글 끓었다. 그처럼 험악해진 분위기에 편승하여 검은 이익집단은 방해책동을 더욱 광란적으로 벌였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공화당 소속 연방의회 지도자들은 싱가포르 실무준비회담이 조선의 거부로 무산된 직후부터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권고’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조미정상회담을 고대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세워 그 회담을 취소하게 만들려는 방해책동이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마익 펜스 미국 부통령이 2018년 5월 21일 <팍스 뉴스>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발언하는 장면이다. 극우성향의 언론매체인 <팍스 뉴스>는 미국의 주요언론매체들 가운데서 거의 유일하게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언론매체다. 펜스 부통령은 대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기들에게 협조하지 않을 경우, 조미관계가 리비아식 비핵화 과정처럼 끝날 수 있다는 극악무도한 폭언을 내뱉었다. 펜스 부통령의 폭언도발로 조미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최선희 조선외무성 부상이 5월 24일 특별담화를 발표하여 펜스 부통령의 폭언도발을 맹렬히 비난한 것은,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에 광분하는 검은 이익집단에게 강타를 날린 것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 와중에 결국 최악의 방해책동이 자행되었다. 마익 펜스(Mike R. Pence) 부통령은 지난 5월 21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 대담에 출연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조미회담이 리비아식 비핵화 과정처럼 끝날 수 있다는 폭언을 토해냈다. 이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검은 이익집단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조선을 리비아처럼 만들어버리겠다는 극악무도한 폭언이었다. <NBC>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펜스 부통령이 그런 내용으로 대담을 진행한 것을 불쾌하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부통령까지 나서서 극악무도한 폭언을 토해내는 바람에 조미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CNN> 2018년 5월 23일부 기사에서 “조미정상회담 기획에 관여하는 고위관리”는 조선을 자극하는 도발적인 발언을 늘어놓았는데, 그 발언을 읽어보면, 그 익명의 고위관리가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늘어놓은 도발적인 발언은 다음과 같다.

 

(1) 그는 한미군사훈련(‘맥스 선더’를 지칭함 - 옮긴이)이 끝난 뒤에 조선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기 위한 조미고위급회담을 “추가로”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지난 5월 9일 평양에서 진행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의 회담결과를 믿지 못하겠으므로, 조미고위급회담을 다시 개최하여 조선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2) 그는 미국 사찰관들이 조선의 핵시험장 폭파현장을 방문하는 문제를 조미정상회담 전에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조선이 핵시험장 폐쇄조치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3) 그는 미국 전문가들이 조선의 핵시설과 탄도미사일시설들을 방문하는 문제를 조미정상회담 전에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조선을 굴복시켜 조선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으로 가져가려는 음흉한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4) 그는 지난날 미국이 리비아에 적용하였던 ‘선 핵포기, 후 보상’을 조선의 비핵화 과정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김계관 제1부상이 5월 16일 담화에서 배격한 리비아식 핵포기를 재론하면서 조선을 또 다시 자극한 것이다.  

 

이미 마감단계에 들어선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어떻게 해서든지 좌절시키려는 검은 이익집단의 집요한 책동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최선희 조선외무성 부상이 지난 5월 24일 특별담화를 발표하여 펜스 부통령의 폭언도발을 맹렬히 비난한 것은,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으로 광분하는 검은 이익집단에게 강타를 날린 것이었다. 

 

 

4. 검은 이익집단이 꺼내든 마지막 술책

 

검은 이익집단의 광란적인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으로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격한 반응이 오가며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드디어 검은 이익집단은 비장해두었던 마지막 술책을 꺼내들었다. 마지막 술책이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세워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5월 24일부에 실린 장문의 보도기사와 <NBC> 2018년 5월 24일부 보도기사는 그들의 마지막 술책이 자행된 내막을 다음과 같이 전해주었다. 

 

2018년 5월 23일 오전 10시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5월 24일 담화에 관해 보고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심리적으로 자극하기 위해 “핵 대 핵의 대결장”이라는 말과 펜스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한 말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볼턴의 그런 수작은 쉽게 흥분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심히 자극하였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의 보고를 들으면서 “경악(dismay)했”는데,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그처럼 경악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선희 부상의 담화발표가 “매우 나쁜 신호(very bad sign)”라고 말해주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매우 나쁜 신호라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려는 불길한 징후라는 뜻이다. 볼턴의 수작에 말려든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은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는 경우 자신이 나약하게 보이고, 창피와 수치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병적인 두려움(morbid fear)”을 느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처럼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3일까지만 해도 조미정상회담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 4>

 

▲ <사진 4>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좌절시키려는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교활한 수작에 말려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려는 게 아닌가 하고 오해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는 경우 자신이 나약하게 보이고, 창피와 수치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병적인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검은 이익집단은 그처럼 심리적으로 동요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세워 결국 조미성상회담 취소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불안과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하는 착잡한 심경을 안고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 문제를 신중히 검토하기 위한 국가안보회의(NSC) 회의를 소집하였다. <NBC>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5월 23일 밤, 트럼프 대통령, 펜스 부통령, 팜페오 국무장관, 존 켈리(John F. Kelly) 대통령 비서실장,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참석한 국가안보회의 회의에서 조미정상회담 문제가 논의되었다고 한다. 그 회의가 진행된 과정을 보나마나,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은 난관이 조성되었다고 해서 조미정상회담을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을 것이고,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펜스 부통령, 켈리 비서실장은 조선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기 전에 미국이 먼저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밤이 늦도록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대통령과 각료들은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회의를 끝내고 각자 거처로 돌아갔다. 

 

그러나 조미정상회담을 기어이 취소시키려고 광분하는 검은 이익집단은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모르는 사이에 집요하고 앙칼지게 조미정상회담 방해책동에 달라붙었다. 2018년 5월 24일 먼동이 터오던 이른 시각,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켈리 대통령 비서실장, 쌔라 헉커비 쌘더스(Sarah Huckabee Sanders) 백악관 대변인, 조섭 헤이긴 대통령 부비서실장, 닉 에이어스(Nick Ayers) 부통령 비서실장, 미라 리카들 부국가안보보좌관을 백악관 각료회의실에 불러모아놓고, 오전 7시까지 비공식 회의를 진행하였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재한 비공식 회의는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려는 검은 이익집단의 흉계대로 돌아갔다. <워싱턴포스트>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그 비공식 회의에서 조미정상회담 취소계획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매우 중대한 국가안보문제가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안보회의 회의에서 정상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소집한 비공식 회의에서 비정상적으로 논의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비공식 회의를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전담하는 팜페오 국무장관을 배제시키고 진행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조미정상회담 취소계획을 결정한 뒤에, 사저에서 집무실로 아직 출근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백악관 구내전화로 자기들의 취소계획을 보고하였다. <NBC>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을 내리도록 강하게 설득하였다고 한다.  

 

검은 이익집단의 음흉한 계략에 말려든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4일 오전 9시 경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을 통보하는 충격적인 공개서한을 발표하였다. 전 세계는 뜻밖의 사태에 경악하였다. 

 

팜페오 국무장관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격하게 반발하였다. <NBC> 2018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팜페오 국무장관은 이미 마감단계에 들어선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파탄시킨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난하였다고 한다. 

 

 

5. 그래도 난관을 극복할 해법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으로 뜻밖의 난관이 조성되었으나, 난관을 극복할 있는 해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두 갈래의 해결방도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우련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1) 이 글의 첫머리에 서술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을 내린 직후, “서글프게도” 조미정상회담을 “억지로”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착잡한 심경을 트위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이것은 그가 검은 이익집단의 음흉한 계략에 말려들어, 타의에 의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였음을 말해준 것이며,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음을 말해준 것이다. 그러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미련을 회담성사로 견인하면,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은 번복될 수 있었다.  

 

(2)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을 통보한 공개서한에는 “만일 당신이 이처럼 가장 중요한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생각을 바꾼다면, 주저 말고 나에게 전화를 걸거나 서한을 보내주십시오”라고 쓴 문장이 들어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각이 바뀌기를 바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드러낸 이 문장은, 검은 이익집단의 음흉한 계략에 말려든 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할 것으로 오해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오해를 풀어주기만 하면,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은 번복될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자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를 풀고,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련을 회담성사로 견인하기 위한 조치를 매우 신속하게 취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서한을 발표한 다음 날인 2018년 5월 25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 특별담화에서 김계관 제1부상은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고 언명하였고,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측에 다시금 밝힌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이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를 풀어주고,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련을 회담성사로 견인하는 결정적인 조치였다. 거의 같은 시간에 워싱턴에서는 팜페오 국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원래대로 돌려세우기 위해 설득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18년 5월 2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건설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는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통보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서한을 받아본 직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건설장으로 현지지도의 길을 떠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했는데도 현지지도의 길을 떠난 정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세인의 상상을 능가하는 담력과 배짱을 지녔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로 현지지도의 길을 떠난 그날, 김계관 조선외무성 제1부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 5월 25일 특별담화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를 풀어주고,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련을 회담성사로 견인하는 결정적인 조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계관 제1부상의 5월 25일 특별담화가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2018년 5월 25일 오전 5시 14분에 발신된 트위터 문장에서 “북조선이 보내준 따스하고 생산적인 담화를 받은 것은 매우 좋은 소식이다. 우리는 그것이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될는지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5시 37분에 발신된 트위터 문장에서 “지금 우리는 정상회담을 복원하기 위해 북조선과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잘 되면, 예정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이) 열릴 것 같고, 필요하다면 (회담일정이) 다음날까지 연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원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팜페오 국무장관은 5월 9일 평양회담에서 조미정상회담을 하루를 넘기지 않고 끝내기로 합의하였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일정을 하루 더 연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 흥미로운 정황은 그가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을 번복하고, 그 회담을 고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5월 26일 오전 8시 21분에 발신한 트위터 문장에서 “망해가는 뉴욕타임스는 존재하지도 않는 ‘고위급 백악관 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회담이 복원되더라도 시간과 준비가 없는 조건에서 6월 12일에 개최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도했다. 또 다시 오보다! 가짜 소식통 말고, 진짜 사람들을 인용하라”고 비판하였다. 이 문장에는 조미정상회담을 6월 12일에 성사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담겼다.  

 

미국 통신사 <AP> 2018년 5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같은 날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서 송환된 미국인들을 접견하면서 “우리는 6월 12일 싱가포르(정상회담)를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바뀌지 않았고, 회담논의가 아주 잘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트위터 문장들 및 발언은 조미정상회담을 취소하였던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 취소결정이 사실상 번복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극적인 반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치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이를테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5월 25일 특별담화를 발표하게 조치하여 자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를 풀어주었고, 그를 조미정상회담 취소결정을 번복하는 길로 이끌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 준비사업을 좌절시키려는 검은 이익집단의 소동을 제압하였고, 그들의 흉계를 파탄시켰다. 조미정상회담 성사문제를 놓고 벌어진 격렬한 대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승리하였고, 검은 이익집단은 패배하였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으로 돌아갔다. 

 

평정심을 되찾은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 실무준비를 위해 대기 중이던 대표단을 파견하였다. 내가 이 글을 탈고하기 직전인 2018년 7월 27일 오후 1시 9분(미국 동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발신한 글에서 미국 대표단이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조선(판문점 북측 지역을 뜻함)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나는 북조선이 눈부신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어느 날 경제적, 재정적으로 큰 나라가 되리라고 진실로 믿는다”고 썼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선과 미국은 조미정상회담 실무준비회담을 판문점 북측 지역과 싱가포르에서 각각 진행한다고 한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전변이 숨가쁘게 일어나고 있다. 극적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뜻이 더 깊어진 조미정상회담이 눈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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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숨겨둔 재산' 찾아라…정부 합동조사단 본격 가동

'해외에 숨겨둔 재산' 찾아라…정부 합동조사단 본격 가동(종합)

검찰·국세청·관세청 등 2차례 협의…은닉재산 조사 준비에 속도
"한국의 해외 조세회피처 재산, GDP의 1.2% 추정"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해외에 숨겨진 '검은돈'을 추적하는 정부 합동조사단이 본격 가동에 나선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사단 설치를 지시한 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실무회의가 2차례나 열리는 등 조사 준비 작업이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27일 관계 당국의 말을 종합하면, 검찰·국세청·관세청 등 3개 기관 실무자들은 지난주 2차례 직접 만나 해외범죄 수익환수를 위한 회의를 했다.

이들은 앞으로 조사 범위와 방법 등 전반적인 운영과 관련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파나마페이퍼스
파나마페이퍼스[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2016년 폭로돼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킨 조세회피처에 관한 '파나마페이퍼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불법으로 재산을 해외에 도피·은닉해 세금을 면탈하는 것은 공정과 정의를 해치는 대표적 반사회행위"라며 해외범죄수익환수 합동조사단 설치를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불법 해외재산 도피는 활동 영역이 국내외에 걸쳐 있고 전문가 조력을 받아 치밀하게 행해져 어느 한 부처의 개별 대응만으로 한계가 있다"며 부처 칸막이를 넘어선 전방위적 대응을 촉구했다.

정부 합동조사에는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도 합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FIU는 금융기관에서 발생한 자금세탁 의심 해외송금 거래를 분석해 합동조사단에 전달할 예정이다.

가브리엘 주크만 UC 버클리 경제학 교수가 2013년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기준 스위스와 세계 조세회피처에 보관된 한국인의 재산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2% 수준이다.

이 중 GDP의 0.2%는 스위스에, 나머지 1.0%는 아시아·유럽 등에 있는 조세회피처에 숨겨진 것으로 추정됐다.

조세회피처 등에 보관된 재산의 GDP 대비 비중은 중국(2.3%)이나 일본(2.7%) 등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역외탈세 적발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어 재산 은닉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엄정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2년 8천258억 원이던 역외탈세 추징세액은 지난해 1조3천192억 원으로 60%나 급증했다.

역외탈세 관련 조사력을 높이기 위해 관련 규정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국세청은 최근 기획재정부에 국세기본법상 부분조사를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역외탈세 조사를 추가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분조사는 일부 항목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모든 세목을 일괄적으로 살펴보는 통합조사와 다르다.

중복조사는 법으로 금지돼있어서 통합조사를 2번 이상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분조사를 하면 추가로 통합조사가 가능하다.

통합조사 때 부분조사가 이뤄진 항목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중복조사 금지 취지를 살리면서 조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부분조사가 가능한 대상이 확대될 경우 납세자 입장에서는 자칫 과잉조사로 비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roc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5/27 10:5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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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 북미정상회담 "확고한 의지" 피력

북 통신 보도, 6.1고위급회담 개최와 군사.적십자 회담 추진 합의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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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7  07: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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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26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제4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으며, 6월 1일 남북고위급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7일 전날 제4차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다고 보도하고 6월 1일 남북고위급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력사적인 제4차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이 주체107(2018)년 5월 26일 판문점 우리측 지역 통일각에서 전격적으로 진행되였다”고 확인하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판문점분리선을 넘어 우리측 지역 통일각에 도착한 문재인대통령을 따뜻이 맞이하시고 상봉의 인사를 나누시였다”고 보도했다.

또한 문 대통령이 통일각 방명록에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위원장과 함께! 2018.5.26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서명했다고 전했다.

우리 언론이 '2차 (판문점)남북정상회담'으로 표기하는데 비해 북측은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까지 포함해 '제4차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으로 호칭했다. 

회담 결과에 대해서는 “제3차 북남수뇌상봉에서 합의된 판문점선언을 신속히 리행해나가며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 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해결하여야 할 문제들과 현재 북과 남이 직면하고있는 문제들, 조미수뇌회담의 성공적개최를 위한 심도있는 의견교환이 진행되였다”며 “김정은동지께서와 문재인대통령은 회담에서 론의된 문제들에 대하여 만족한 합의를 보시였다”고 전해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청신호가 켜졌다.

   
▲ 회담에는 남측에서 서훈 국가정보원장, 북측에서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 배석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통신은 “김정은동지께서와 문재인대통령은 온 겨레의 한결같은 열망이 담긴 판문점선언이 하루빨리 리행되도록 쌍방이 서로 신뢰하고 배려하며 공동으로 노력해나가야 한다는데 대해 의견을 같이하시였다”면서 “북남수뇌분들께서는 북남고위급회담을 오는 6월 1일에 개최하며 련이어 군사당국자회담,적십자회담을 비롯한 부문별회담들도 가속적으로 추진해나갈데 대한 문제들을 합의하시였다”고 보도했다.

또한 “북남수뇌분들께서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나갈데 대한 립장을 표명하시며 앞으로 수시로 만나 대화를 적극화하며 지혜와 힘을 합쳐나갈데 대하여 견해를 같이하시였다”면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6월 12일로 예정되여있는 조미수뇌회담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문재인대통령의 로고에 사의를 표하시면서 력사적인 조미수뇌회담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피력하시였다”고 밝혀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당신들의 최근 성명에서 표출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개심에 근거하여, 슬프게도 나는 지금 회담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면서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낸 바 있다. 물론, 하룻만에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다시 언급하고 있지만.

통신은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조미관계개선과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구축을 위하여 앞으로도 적극 협력해나가자고 말씀하시였다”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문재인대통령과 뜨겁게 포옹하시고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시며 작별인사를 나누시였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북과 남의 최고수뇌분들께서 격식과 틀이 없이 마음을 터놓고 중대한 현안문제들에 대하여 서로의 견해를 청취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신 이번 상봉은 북남관계발전에서 새로운 장을 열어놓는 또 하나의 력사적인 계기로 된다”고 평가하고 서훈 국정원장과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배석했다고 전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방명록에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라고 썼다. [캡쳐사진-노동신문]
   
▲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통일각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 [캡쳐사진-노동신문]
   
▲ 김정은 위원장은 6월 12일 '조미수뇌회담'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피력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 김 위원장은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구축을 위하여 앞으로도 적극 협력해나가자고 말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회담에서 논의된 문제들에 대해 만족한 합의를 보았다고 통신은 전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추가-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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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밝힌 ‘깜짝’ 2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막전막후

문 대통령 “김정은이 먼저 정상회담 요청, 논의 결과 트럼프에 전달”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2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2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2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전날 전격적으로 열리게 된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천 춘추관 기자회견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배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4.27 판문점선언의 어떤 후속(조치) 이행이나 6.12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준비 과정에서 약간의 어려운 사정들이 있었다"며 "그런 사정들을 잘 불식시키고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일궈내는 것, 4.27 판문점선언의 신속한 이행을 함께 해나가는 게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봤다"고 답했다.

이어 "그런 상황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먼저 정상회담을) 요청해 왔고, 또 남북의 실무진이 통화를 통해서 협의하는 것 보다 직접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서 전격적으로 회담이 이뤄진 것"이라며 "그런 사정 때문에 사전에 회담 사실을 우리 언론에 미리 알리지 못한 데 대해 양해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애초 남북간 실무진 차원에서 물밑접촉이 이뤄지다가, 정상회담으로까지 전격적으로 진전됐다는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남북관계는 여러 가지 소통 경로를 유지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간 소통 경로"라며 "그제(25일) 최근에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 또 남북관계를 앞으로 더 발전시켜 나가는 데 관한 4.27 남북정상회담 후속조치 방안 등에 대한 협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북측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구상'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격의 없는 소통'을 한 번 갖자는 방안을 제시해 왔고, 저희가 두 사람(서훈-김영철) 간의 접촉 이후 관련 장관들과의 협의를 통해서 대통령에게 (정상회담) 건의를 드렸다"며 "대통령이 그걸 승낙해서 그제 밤부터 어제 오전까지 실무적인 준비를 마치고 어제 오후에 정상회담이 개최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회담 결과를 하루 늦게 발표하게 된 것도 김정은 위원장의 요청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어제 논의한 내용을 어제 바로 발표하지 않고 오늘 이렇게 발표한 이유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북측은 북측의 형편 때문에 오늘 논의된 내용을 보도할 수 있다고 하면서, 우리(남측)도 오늘 발표해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성공을 위해서 저는 미국, 북한 양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의하고 있다. 최근에 미국을 방문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고, 어제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또 회담을 가졌다"며 "어제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논의된 내용은 이미 미국 측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훈 국정원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배석시켜 회담하고 있다.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훈 국정원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배석시켜 회담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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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애도인 오현 스님이 떠났다

조현 2018. 05. 27
조회수 229 추천수 0
 

 

조오현.jpg» 26일 몸을 벗은 무애도인 설악산 신흥사 조실 조오현 스님

 

이 시대 ’마지막 무애(無碍)도인’이 떠났다. 설악산 신흥사 조실 설악무산 조오현 스님이 30일 오후5시11분 강원도 속초 신흥사에서 입적했다. 승납 60년, 세납 87세다.

  고인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7살에 입산해 1959년 성준 스님을 은사로 직지사에서 출가했으며, <불교신문> 주필과 신흥사·계림사·해운사·봉정사 주지를 거쳐 강원도 설악산권의 대표사찰인 신흥사와 백담사 조실과 조계종 조계종 원로의원을 맡고 있었다.

 

 특히 고인은 백담사가 출가 본사인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의 애민·생명·평화 사상을 기리기 위해 1996년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해 시작한 만해축전을 매년 8월 강원도 인제에서 개최해 전국의 문인, 지역민이 함께 하는 축전으로 만들고, 이 자리에서 시대정신과 양심을 상징하는 인사들에게 종교를 가리지않고 만해대상을 시상했다.   또 강원도 인제 백담사 초입에 2003년 만해마을을 조성해 문인들의 창작공간으로 내놓았다. 1999년 <불교평론>을 창간해 논쟁 없는 불교계가 논쟁으로 시대정신을 창출하게 했고, 만해가 창간했던 <유심>을 복간해 시와 학문과 세상이 회통하게 했다.

 

   고인은 무엇보다 이데올로기에 갇혀 물고뜯는 분단시대를 넘어선 국량을 보였으며, 종교와 승속, 국가의 벽을 넘어선 장쾌한 대장부였다. 그가 만든 만해축전은 만해와 <조선일보> 설립자와 방응모와의 각별한 인연을 들어 <조선일보>와 공동주최해 ‘독립운동가 만해와 친일신문은 어울리지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만해대상은 김대중 전대통령, 리영희 선생, 이소선여사, 고은 시인, 김지하 시인, 조정래 소설가, 강원용 목사, 함세웅 신부, 법륜 스님, 두봉주교, 백낙청 선생, 신영복 선생 등  당대 대표적인 진보인사들에게 종교의 벽을 넘어 시상됐다. 그가 아니면 남남갈등의 시대에 대표적 우익신문의 이름으로 ’좌익’으로 손꼽힌 이들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 뿐이 아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중동 등 제3세계에서 군부와 독재자들의 폭압 아래서 목숨을 걸고 외로운 투쟁을 전개하는 평화·인권운동가들을 발굴해 시상함으로써 그들의 운동을 간접 지원했다.

 

오현 설악.jpg» 3개월간 밖에서 열쇠가 채워진 백담사 무문관 수행을 마치고 나오는 조오현 스님

 

 그는 걸림이 없는 언행을 보인 무애도인이자 기인이었다. 그를 대면한 이들은 오불조불한 관념의 세계에 갇히지않은 호쾌함에 매료됐다. 그는 말년에 매년 3개월씩 두차례, 즉 일년의 절반을 백담사 무문관에서 보냈다. 무문관은 밖에서 열쇠를 잠그는 ’폐관 수행실’이어서 구멍으로 들어오는 하루 한끼의 식사를 받으며 3개월간 방안에 갇혀 오직 참선정진을 하는 곳이다. 그가 무문관 수행을 끝낸 뒤 대중들 앞에서 한 설법은 절집에서는 전에 듣지 못한 것들이었다. 천년전 선사들의 말을 되풀이하는 앵무새 설법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것이었다.

 

  그는 “부처님도 석가족이 멸망할 때 전쟁을 막기 위해 나 홀로 반전시위를 한 반전운동가였다”면서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화통하게 마음을 열 것을 촉구했다. 그는 “남북관계에서 ‘사과를 받아야겠다거나 용서를 못 하겠다는 것은 감정싸움이나 핑계에 불과하고 자기 것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는 기득권층의 인식이나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춤추기 때문’이라며 “미움과 분단이 지속되면 우리 국민은 숨통이 막히니 우리 국민이 살아갈 길은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이북·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의 여러 나라에 도착하는 길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한국학센터의 초청 강연 때 ‘북한 핵 폐기’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미국에선 서부 개척시대부터 총잡이들도 총을 동시에 꺼내고 내려놓는 게 정도 아니냐”며 “미국은 기독교 정신으로 나라를 세웠으니 핵과 살상 무기를 포기하는 모범을 보여 그 막대한 돈으로 복음 사업에 사용하라”고 권했다.

 

 그의 법문은 늘 허울의 불교를 던져버린 파격의 연속이었다. 그는 “절마다 교회마다 방송마다 신문마다 진리를 이야기하지만 시끄로운 소음이 된 지 오래다”면서 “노망기 있는 이 노승의 설법을 듣기보다 동해 바다의 파도소리와 설악산의 산새소리, 계곡 물소리를 듣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장경의 글과 말 속에 무슨 진리가 있느냐. 여러분이 오늘 산문을 나가 만나는 사람들과 노숙자들의 가슴 아픈 삶 속에서 진리를 찾아라”고 경책하며 “절집은 승려들의 숙소일 뿐이니 소설가 이청준의 말대로 절집에만 ’당신들만의 천국’을 만들지 말고 세상 속에서 진리를 찾고 세상과 함께 하라”고 했다.

 그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해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고 돌아간 뒤엔 “환자가 없으면 의사가 필요없듯이 고통받는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필요 없다”며 “천년 전 중국 신선주의자들, 산중 늙은이들이 뱉어놓은 사구(죽은 말)만 들고 살지 말고 교황처럼 중생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라”고 했다.

 

 

오현스님.jpg» 무문관 수행을 마치고 같은기간 설악산권 사찰에서 안거에서 참선정진한 선승들에게 설법을 하는 조오현 스님

 

 

 그의 행은 말만으로 그치지않았다. 겉모습은 격식을 떠난 파격적인 언행으로 기인이자 이인으로 비춰졌지만, 그는 가장 힘든 중생들의 손을 놓지않고 힘을 실어주는 ’자비보살’이었다. 

 기독교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청계촌 피복노동자로 노동운동을 하다 분신한 전태일을 기리는 전태일기념사업회에 아무도 몰래 매달 후원금을 보냈다. 이 사실은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늘 “조오현스님을 뵙고 싶다”고 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가 2011년 이 여사의 장례식장에 조문을 감으로써 유족들에 의해 밝혀졌다. 고인은 백담사가 있는 인제 산골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아이들 수백명에게도 대학 재학 때까지 남몰래 장학금을 마지막까지 기부해왔다.

 고인은 또 2011년 반값등록금 촉구 집회에 나갔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약식기소돼 대학생들이 1인당 15만~5백만원의 벌금고지서를 받고 힘들나다는 기사를 보고는 <한겨레>에 벌금총액인 1억3천만원을 기부해 벌금을 대납하게 했다. 이 사실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않을 것을 전제로 해 당시 ‘조계종 소속의 한 스님의 기부’로만 알려졌다.

 

  불교계 대표적인 연구기관인 가산불교연구원이 현대 대장경 불사격으로 진행중인 불교대백과사전 <가산불교대사림 22권> 발간작업이 설립자인 전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열반 후 위기에 봉착하자 아무도 몰래 연구원 대표를 맡아 수십명의 연구원들을 지원해온 것도 고인이었다. 2013년엔 동국대의 전신인 명진학교 1기 졸업생으로 동국대의 상징적 존재인 만해를 기린 만해마을 200억원대 전자산을 동국대에 기증해 만해의 뜻을 살려나가도록 했다. 갓 출가한 승려들을 교육하는 기본선원을 백담사에 설립해 교육을 한 것도 그였다.

 신흥사보다 사찰 재정이 넉넉한 사찰들에서도 자기 절을 키우거나 과시하는 것 이외 공익적인 지출이 거의 없는데 반해 고인은 불사금을 주머니에 정체시킨바 없이 당대 가장 필요한 곳과 사람들에게 지원해왔다. 

 

 그는 자신에 대해 “7살에 절머슴으로 들어가 늘어지게 낮잠이나 잤으니 언제 공부나 해봤겠느냐“며 ‘무식한 노승임’을 자처했지만, 실은 어린시절 대장경 원문을 외워 그대로 암송해낼 수 있는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그의 해탈의 정신세계와 파격의 언어, 세심한 내면은 시에 남았다. 그의 시에 대해 원로시인들중엔 “시인들조차 감히 넘 볼 수 없는 독특한 시세계”라고 평가했다.

  그의 시에선 7살 어린 나이에 원치않게 절집에 맡겨진 가엾은 동자승의 ’타는 목마름’과 중생들의 아픔이 그대로 배어있었다. 시조 ‘어미’에는 죽도록 일하다 힘이 떨어지자 미처 젖도 못 뗀 새끼를 두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던 어미소가 당산 길 앞에서 주인을 떠박고 헐레벌떡 뛰어와 새끼에게 젖을 먹여주는 장면이 그려져있다.

 

 그의 시에선 고통의 암덩어리를 그대로 끌어안고 이를 영롱한 진주로 바꾸는 수도자의 내공이 들어있다.

 ‘한 그루 늙은 나무도 고목소리 들을라면/ 속은 으레껏 썩고 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 그 물론 굽은 등걸에 장독(杖毒)들도 남아 있어야’<고목소리>.

 무심한 한 덩이 바위도/ 바위 소리 들으려면// 들어도 들어올려도/ 끝내 들리지 않아야// 그 물론 검버섯 같은 것이/  거뭇거뭇 피어나야.<바위 소리 들으려면>>

  그의 시는 마침내 어둠이 빛이 되고, 고통이 자비가 되어 영원한 세계로 나아간다. <사랑의 거리>에서 그는 중생계와 피안계, 우리와 그의 머나먼 거리를 하나로 이었다.

 ‘사랑도 사랑 나름이지/ 정녕 사랑을 한다면// 연연한 여울목에/ 돌다리 하나는 놓아야// 그 물론 만나는 거리도/ 이승 저승쯤 되어야’

 

 권영빈 서울대명예교수는 2005년 ‘세계평화시인대회’ 만찬장에서 오현 스님이 예정이 없이 즉흥적으로 발표한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어차피 한 마리/기는 벌레가 아니더냐//이다음 숲에서 사는/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적멸을 위하여>란 시조다. 당시 이 시조를 들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 시인은 “이 시 하나에 ‘평화’라는 우리의 주제가 다 압축되어 있다”면서 “대단한 인물”이라고 경탄했다고 한다.

 

손잡고오르는집.jpg» 서울 정릉 흥천사 조실채의 편액. 조오현 스님이 이름을 붙이고, 신영복 선생이 글씨를 썼다

 

 고인의 시들은 <아득한 성자>, <마음 하나>, <절간 이야기> 등 시집에 담겼으며, 그는 현대시조문학상(1992년), 남명문학상(1995년), 가람문학상(1996년), 한국문학상(2005년), 정지용문학상(2007년), 공초문학상(2008년)등을 수상했다.

 그가 서울에 올라오면 가끔 머물던 서울 정릉 흥천사 조실채엔 ‘손 잡고 오르는 집’이라고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쓰인 편액이 걸려있다. 고인이 붙인 이름이다. 그의 정신 세계는 일찌기 중생의 관념과 애증의 골짜기를 뛰어올라 창공을 비상했지만, 그는 늘 그 골짜기로 내려와 구부러진 허리를 한채 고통중생들과 언덕을 함께 올랐다.

 

  영결식은 오는 30일 오전 10시 원로회의장으로 설악산 신흥사에서 엄수되며, 이어 금강산 건봉사 연화대에서 다비식이 봉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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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김정은, 만남 먼저 제안…북미회담 의지 피력”

문 대통령 “김정은, 만남 먼저 제안…북미회담 의지 피력”

등록 :2018-05-27 10:08수정 :2018-05-27 10:36
 
오전 10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전날 회담 직접 발표
“김 위원장에게 회담 성공 바라는 트럼프 진심 전해
비핵화 실천 땐 적대관계 종식·경제협력 미쪽 의지 전달
양쪽 직접 소통으로 오해 불식·충분한 사전대화 강조”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가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가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우리 두 정상은 6·12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위한 우리의 여정은 결코 중단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이를 위해 긴밀히 상호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전날 오후 판문점 북쪽지역 통일각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연 두번째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직접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김 위원장과 만나 지난 2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직접 설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결단하고 실천할 경우, 북한과의 적대관계 종식과 경제협력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는 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만큼 양측이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오해를 불식시키고 정상회담에서 합의해야할 의제에 대해 실무협상을 통해 충분한 사전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김 위원장도 이에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북미정상회담 성공을 통해 전쟁과 대립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문 대통령은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TV 화면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TV 화면 갈무리
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전날 열린 두번째 남북정상회담의 경위도 설명했다. 문 통령은 “김 위원장은 그제(26일) 오후 일체의 형식 없이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고 저는 흔쾌히 수

 

락했다”며 “지난 4월의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 못지 않게,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루어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남북은 이렇게 만나냐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서로 통신하거나 만나 격의없이 소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남북 정상은, 4·27 판문점 선언의 조속한 이행에 합의하면서 새달 1일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또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당국자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을 연이어 열기로 합의했다.

 

김보협 성연철 기자 bhkim@hani.co.kr

 

 

2차 남북정상회담 모두 발언

 

 

 

2차 남북정상회담 마무리 발언

 

 

 

[화보] 다시 만난 남북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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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 성사’ 장담했던 정부, 트럼프 ‘냉온탕 행보’에 당혹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5/26 08:59
  • 수정일
    2018/05/26 08:5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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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북·미]‘99.9% 성사’ 장담했던 정부, 트럼프 ‘냉온탕 행보’에 당혹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입력 : 2018.05.25 22:12:00 수정 : 2018.05.25 23:38:24

 

ㆍ한·미 정상회담 공들였지만 트럼프 ‘일방 발표’로 한계 드러내
ㆍ한반도 평화구상·대북 공조 차질 불가피…‘새 방식’ 찾기 고민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자정에 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외교안보 상임위원 긴급회의를 주재하며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 관련 자료를 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자정에 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외교안보 상임위원 긴급회의를 주재하며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 관련 자료를 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청와대와 문재인 대통령이 당혹해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한 지 하루 만인 25일(현지시간) “북한과 대화 진행 중” “12일 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고 말을 바꾸는 등 ‘냉온탕 행보’를 보이면서다. 청와대는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정부와 협의 없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을 잇달아 바꾸면서 문 대통령의 ‘중재 외교’도 위기를 맞았다. 

청와대는 이날 “미국의 싱가포르 회담 취소 사실을 조윤제 주미대사를 통해 발표 몇분 전에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소 결정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인 한국에도 의도적으로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불과 21시간 전 미국 방문에서 돌아온 문 대통령은 취소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방미길에 “99.9% 성사될 것”이라고 했고, 문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 옆에서 “회담 성사를 확신한다”고 말한 터였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회담 취소를 권한 것은 정 실장의 협의 상대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 배경에 북한이 미국의 정상회담 실무협의 요청에 며칠째 응하지 않았던 점이 있었다는 사실도 새로 드러났다. 그동안 한·미 국가안보실 간 긴밀한 소통채널로 통했던 정 실장은 이런 분위기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25일 새벽 정 실장을 비롯한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들을 관저로 소집해 긴급 회의를 열었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이 6월12일에 열리지 않게 된 데 대해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후 NSC 회의에서 “참으로 실망스럽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것에 비견되는 불편한 감정의 표출이었다.

정상회담 취소는 국가 간 관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트럼프 시대에 미국과 동맹을 맺은 나라들이 미국으로부터 뺨을 맞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노력하기로 공감한 직후 이 같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동맹국에 대한 고려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를 드러냈다. 문 대통령에게 외교안보 정책을 조언하는 한 인사는 “우여곡절 끝에 향후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게 되더라도 문 대통령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회복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NSC에서 “지금 소통 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상 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북·미 정상 간 간접 소통의 한계를 지적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소통하기를 촉구한 것이다. 청와대가 “12일 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 언급에도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도 미·중 사이에서 어려움을 느낀 문 대통령 심경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남북 정상의 핫라인 통화도 현재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구축이라는 과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반도 평화 정착과 비핵화를 위한 여정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실낱같은 희망이 있는 한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관련기사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252212005&code=970100#csidxdbaba1397bccc33977a742838534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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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작된 북미정상 편지대화, 주도권은 김위원장이!

이미 시작된 북미정상 편지대화, 주도권은 김위원장이!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5/26 [06:5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노동신문은 25일 김정은 위원장이 완공된 고암-답촌 철길을 현지요해했다고 보도했다. 위임편지를 발표한 날 현지지도의 길에서 보여준 이런 밝은 표정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진을 공개한 것은 북미대화에 대한 자신감을 암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주시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보는 늘 상상초월, 유례없는 경우가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취소 발표 직후 8시간만에 김계관 제1부상을 통해 전격 발표한 김정은 위원장의 위임 담화(편지)도 그랬다.

 

발빠른 대응도 놀라웠지만 그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 편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도 이후 "따뜻하고 생산적"이라고 평가했듯이(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9837) 어쩌면 그렇게 따뜻하고 정이 뚝뚝 묻어나게 쓸 수 있는지 놀라웠다. 물론 예리하고 엄중한 경고도 담고 있었지만 너무 부드럽게 쓴 편지라 친미세력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놀라서 몸을 낮추었다고 평가할 것이 충분히 예견되는 편지였다. 실제 제도권 언론에서는 그런 분석이 마구 터져나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전후 흐름과 트럼프 대통령의 12일 북미정상회담 취소 통보 편지와 조목조목 비교를 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범하게 통큰 아량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이끌어가는 흐름임을 누구나가 금방 알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이 위임편지는 매우 정중하고 따듯한 표현과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본심이 대화인지 대결인지' 미국 스스로 드러내게 하는 결정타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미국의 강경파들이 이 위임의 방식으로 발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편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무서운 공포감으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친미사대주의에 찌들지 않고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어떤 나라 사람이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편지를 보고 트럼프식 벼랑끝 외교에 김정은 위원장이 겁을 먹고 몸을 낮춘 것이란 우리 제도권 언론과 전문가들의 평가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한반도문제를 진정 평화적으로 풀려고하는지가 이제야 명백히 알 것 같다고 무릅을 치게 할 편지였다. 

실제 많은 해외 언론과 정치인들 그리고 전문가들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북미정상회담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단 북미정상회담 관련 전후  흐름을 돌이켜보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의용 특사단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정상회담 용의를 표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미정상회담 관련하여 온갖 미사여구를 써 가며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장담 땅꺼지게 하며 설레발을 친 쪽은 트럼프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폼페오 국무장관의 2차 평양방문 접견 후 딱 한 번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놓고 북 외교관들이 밀고당기기를 하면서 했던 대미강경경고를 이유로 회담 취소를 발표한 쪽은 또 미국이었다. 누가 봐도 냉온탕 들락거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인 쪽은 미국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북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진중했다. 그러다가 실무급에서 발생한 밀당으로 회담취소을 통보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속하게 공개편지를 위임 방식으로 발표하여 사태를 수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진정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려는 진지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를 수가 있겠는가. 오직 친미사대에 눈이 멀어 머저리가 된 우리나라 제도권 언론과 전문가 그리고 새누리당과 같은 친미정치인들만 모를 뿐이다. 

 

이는 양 지도자의 편지를 조목조목 대조해보면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 17일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을 뒤에 세워놓고 그가 주장한 리비아식을 북에 요구할 생각는 입장을 밝히는 트럼프,   존 볼튼을 세워놓고 그가 강조한 리비아식 핵폐기를 부정한 것은 명백히 존 볼튼의 행보가 과도했다고 트럼프 대통령도 평가한 것이다. 따라서 김계관, 최선희 등 북 외교관이 반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이유로 회담을 취소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 자주시보

 

먼저, 트럼프 대통령이 최선희 국장이 발표한 담화문의 분노와 적대감 때문에 이 시점에서는 싱가포르 회담에 못 만나겠다고 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지나친 언행으로 핵 폐기를 압박해서 반발한 데 지나지 않는다며 너무 심각하게 보지 말라고 달랬다.

 

사실, 북은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한 후 미국의 존엄을 건드리는 그 어떤 말도 한 적이 없고 미국인 간첩 3인을 조건 없이 석방시켜주고 핵동결 의지의 표현으로 핵시험장도 폭파시키는 등 성의를 다해왔다. 이에 대해서는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에서도 매우 높이 평가하고 미국도 이에 상응한 태도를 보일 것을 여러번 촉구하였다.

그런데도 미국은 대통령부터 제재와 압박에 굴복하여 북이 대화에 나왔다고 입만 열면 떠들었으며 볼튼, 펜스 등 미국의 핵심 관료들은 리비아식 핵폐기니 리비아의 최후를 북이 겪게 될 것이라느리 하며 북 관료들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발언들을 연일 내놓았다. 

북의 간부들이 어찌 참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회담 취소를 건의하겠다. 미국은 비참한 종말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경고도 하고 또 경고의 의미로 미국이 원하는 실무협상에도 불참하고 막후 접촉선도 끊어 미국의 간부들을 애가 타게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구구절절 시비를 가려가며 먼저 원인제공을 한 미국을 탓하기 보다 대범한 아량으로 중요한 협상을 하다보면 으레 있는 밀고당기기인데 그렇다고 회담을 아예 취소하면 되겠냐고 트럼프 대통령을 달랬던 것이다.

물론 보고는 제때 하게 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기민한 지침을 주겠지만 아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실무진의 일을 사사건건 간섭하지 않고 자율권을 많이 주는 것 같다. 

 

어쨌든 이런 편지를 보고 중국, 러시아는 물론 유럽 등 전통 미국의 동맹국들도 북의 입장에 동조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취소 편지에서 '당신과 싱가포르에 있기를 매우 고대했다'고 심정을 밝힌 데 대해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면 좋은 시작을 뗄 수 있을 거라고 주변에 말했고 준비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다'면서 자신도 기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과적인 회담을 위해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고 다독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간첩 석방에 대해서 '아름다운 제스처'라고 높이 평가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그 어느 대통령도 못 내린 용단(북미정상회담 결정)을 내려서 내심 높게 평가했었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추어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을 바꾸면 내게 전화나 편지해달라'고 하자 김정은 위원장은 '나도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을 용의가 있다'고 즉각 답신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이 답신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따뜻하고 생산적인 편지'라고 높이 평가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답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답신을 보내지 않는다면 애초부터 북과 대화로 문제를 풀 의지가 있었는지 북의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세계인들도 미국의 본심은 대화가 아니었다고 판단할 것이 자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김정은 위원장의 편지는 매우 정중하고 따뜻한 격려와 아량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미국의 본심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을 수 없게 한 결정타의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고 본다. 어떤 의미에서는 무서운 편지인 것이다.

 

사실 위에서 인용한 문구는 본지에서 이렇게 골라잡아 비교하면 국가보안법으로 탄압할 것 같아 25일 SBS 8시뉴스에서 추려내어 비교한 것을 그대로 재인용한 것이다. 

 

8시뉴스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편지를 잘 분석해보면 그 결정타를 암시하는 문구도 편지에 적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의 일방적인 회담취소공개는 우리로 하여금 여직껏 기울인 노력과 우리가 새롭게 선택하여 가는 이 길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고있다."라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번 편지의 주된 목적은 미국을 달래서 회담을 재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이어 "하지만 조선반도와 인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려는 우리의 목표와 의지에는 변함이 없으며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고 쓰기는 했다. 

 

아마 위임에 의한 이번 편지에 대해 미국이 회담 취소를 다시 고려하지 않고 다시 대결국면으로 되돌아 간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미국에 대한 대응방식을 심각하게 재검토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일단 김정은 위원장이 위임의 방식으로 보낸 편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일단은 한 고비를 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북미정상의 회담은 이미 시작되었다. 비록 편지를 주고 받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두 지도자의 풍모나 지략을 엿볼 수 있는 편지 대화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소편지에 대해 당혹스럽다고 하면서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일희일비하지 않고 의연히 대처하겠다며 건건에 대해 입장 발표는 자제하겠다고 밝히고 북미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표했다. 합리적인 처신이라고 판단된다. 

 

청와대가 북미 조율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이번 편지 대화에서 드러난 북미정상의 풍모와 지향에 대해서도 더욱 면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정보는 많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번 편지 대화를 통해 보여준 김정은 위원장의 풍모와 지략을 읽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김정은 위원장을 잘 아는 것은 향후 남북관계의 발전과 가을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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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 무리 비행, 선두가 가장 편하다

황새 무리 비행, 선두가 가장 편하다

조홍섭 2018. 05. 25
조회수 807 추천수 1
 
상승기류 오래 타고 날갯짓 적어 멀리까지 이동
첫 몇 분 비행이 선두 결정…27마리 무선추적 결과
 
st1.jpg» 황새 27마리가 상승기류를 타는 모습을 지피에스 데이터를 색깔로 시각화한 모습. 앞장선 황새는 상승기류를 찾아 오르는 데 힘을 더 쓰지만 훨씬 오래 활강을 해 에너지를 아낀다. 레나우트 바스티엔, 메이트 나기, 막스 플랑크 조류엔구소 제공 동영상 갈무리.
 
장거리 이동하는 철새는 얼마나 에너지가 적게 드는 비행을 하는지가 생사를 가른다. 쐐기꼴 대열에서 바람을 가르며 나는 선두는 뒤따르는 새보다 훨씬 힘들기 때문에 선두를 교대로 맡는다. 그렇다면 특별한 형태 없이 무리 지어 나는 황새는 어떨까.
 
유럽 황새는 해마다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수천㎞를 비행한다. 큰 몸집이지만 넓고 강한 날개와 상승기류를 이용한 비행으로 힘든 여행을 완수한다. 달궈진 지표면에서 생긴 상승기류를 만나면 몸을 맡겨 빙빙 돌면서 고도를 높인 뒤 글라이더처럼 활공해 나아간다. 상승고도가 낮으면 손쉬운 활공이 줄고 오래 힘든 날갯짓을 해야 한다. 황새의 무리 비행에서 선두와 후미를 포함해 모든 개체의 움직임을 고해상도로 추적 조사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st2.jpg» 연구자들이 휴식 중인 황새들로부터 데이터를 내려받고 있다. 크리스티안 지글러, 막스 플랑크 조류연구소 제공
 
안드레아 플라크 독일 막스 플랑크 조류연구소 연구원 등 독일과 헝가리 연구자들은 첫 이동에 나서는 젊은 황새 27마리에 원격추적 센서를 부착해 이들 각각의 위치, 고도, 속도, 방향, 가속도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했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25일 치에 실린 이들의 논문을 보면, 선두에서 무리를 이끄는 황새와 뒤따르는 황새의 비행 전략은 전혀 달랐다.
 
선두 황새는 예측이 힘든 상승기류를 찾아 나서다 이를 만나면 불규칙하게 선회하며 상승기류를 따라 고도를 높였다. 후속 황새는 복잡한 생각 할 것 없이 선두를 따라 규칙적으로 돌며 상승했다. 얼핏 쐐기 대열을 짓는 철새처럼 선두가 희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분석 결과는 달랐다.
 
st3.jpg» 상승기류를 타는 선두 황새와 후속 황새 움직임. 1. 앞장선 황새가 상승기류를 찾아낸다. 2. 선두가 꼭대기에 오를 때까지 후속 황새가 상승기류에 접어든다. 3. 선두가 상승기류를 떠나 활공을 시작하면 후속 황새가 중간에 상승기류를 벗어나 대열에 합류한다. 가브리엘 네비트, ‘사이언스’ 제공
 
앞장서는 황새는 뒤따르는 황새보다 상승기류를 더 오래 더 높이 탔고, 그 덕분에 날개를 치는 횟수도 현저히 적었다. 비행에 에너지를 덜 소모한 만큼 이동하는 거리도 상대적으로 더 길었다. 선두 황새가 상승기류 찾아 타면 다른 황새도 뒤따른다. 그러나 선두가 선회를 멈추고 활공을 시작하면 후속 황새는 상승기류를 끝까지 타지 못하고 중간에 선두를 따라 활공에 접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끝까지 상승기류를 타다가는 무리를 놓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뒤따르는 황새는 상승기류를 덜 이용하고 날갯짓을 더 자주 하는 손실을 선두를 따라 신속하게 상승비행하는 이점으로 어느 정도 벌충했다. 
 
그렇다면 누가 무리의 선두에 설까. 연구자들은 성별, 크기, 성장조건 등을 따져 보았지만 관련성을 찾지 못했다. 분명한 건 초기의 비행능력이 결과를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연구자들은 “첫날 첫 몇 분 동안의 비행기록으로 어떤 황새가 가장 멀리 갈지를 알 수 있었다”라고 논문에 적었다.
 
st4.jpg»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하는 젊은 황새들. 이동하는 무리의 모든 개체에 무선추적 장치를 달았지만 실제 야생 이동을 재현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시몬 로젠펠더, 막스 플랑크 조류연구소 제공
 
한 무리 전체 개체에 무선 추적장치를 부착하는 획기적인 연구였지만, 야생 상태의 철새 이동의 내막을 온전히 추적하는 데는 한계가 적지 않았다. 애초 61마리의 황새에 장치를 달았지만 이동을 멈추거나 사망해 27마리로 줄었고, 그나마 비행을 시작한 지 닷새가 지나자 17마리만이 이동을 계속했다. ‘사이언스’에 이 논문에 관한 견해를 밝힌 가브리엘 네비트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캠퍼스 생물학자는 “새들의 무리 행동이 얼마나 동적인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황새 무리는 종종 젊은 애송이와 경험 많은 어른 새가 함께 이동하는데, 체력이 강하고 도착지를 잘 아는 어른 새가 선두를 차지해 첫 이동에 나선 젊은 황새의 사망률이 높다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ndrea Flack et al, From local collective behavior to global migratory patterns in white stork, Science 25 MAY 2018, VOL 360 ISSUE 6391, http://science.sciencemag.org/cgi/doi/10.1126/science.aar848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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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총파업으로 최임 개악 막겠다”

‘산입범위 확대’ 환노위 통과… 양대노총, 28일 본회의 총력대응 박차
▲ 사진 : 뉴시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핵심으로 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25일 새벽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됐다.

개정안이 환노위를 통과하자 “산입범위 확대는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삭감을 가져 온다”고 우려하며 산입범위 확대 저지투쟁을 벌여온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오는 28일 총파업을 선언했고, 한국노총도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 전원 사퇴를 선언했다.

국회 환노위,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최저임금 포함 의결

환노위에서 의결된 개정안의 내용을 보면, 내년 1월부터 매월 현금으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을 비롯해 식대·숙박·교통비 등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된다. 단 최저임금 25% 이하의 정기상여금과 최저임금 7% 이하의 복리후생비는 산입범위에서 제외된다. 즉 올해 최저임금(월 157만여 원)을 기준으로 월 39만원 이하의 상여금, 월 11만원 이하의 복리후생비는 산입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2024년엔 복리후생비 전액이 최저임금에 산입된다). 또 현금이 아닌 현물로 지급되는 식대나 숙박비도 산입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오는 28일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민주노총은 환노위 개정안을 ‘최악의 개악안’이자 ‘날치기 폭거’라고 규정했다. 민주노총은 25을 성명을 내고 “500만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법을 단 30분 만에 처리한 ‘졸속법안’이면서 저임금 노동자를 헬 조선 지옥문으로 내모는 법안이며, 눈을 씻고 봐도 개선내용을 찾아볼 수 없는 전면 개악법안”이라고 분개했다.

한국노총도 마찬가지.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에서 최임법 개정안의 내용이 “노골적인 재벌 대기업 편들기, 최저임금제도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꼬집곤, 국회 환노위의 표결 강행처리에 대해선 “오랜 관행으로 정착된 합의제 의회 민주주의마저 파괴하는 폭거를 자행했다”고 날을 세웠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직접 최임 개정안을 분석했다. 법률원은 “연소득 2500만원 안팎의 저임금 노동자는 산입범위가 확대되지 않는다”는 환노위 주장에 대해 “월 상여금, 월 복리후생비를 지급받는 노동자들은 모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 산입범위 확대 개정안을 매월 기본급 157만원, 상여금 50만원, 복리후생비 20만원을 받는 노동자에게 적용했을 때, 상여금(50만원) 중 39만원을 초과하는 11만원이 최저임금에 포함되며, 복리후생비(20만원) 중 11만원을 초과하는 9만원 역시 최저임금에 포함된다. 즉, 노동자의 임금은 인상되지 않았지만 이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157만원에서 177만원으로 확대됐다.

▶ 매월 급식비 13만원+교통비 6만원= 19만원의 복리후생비를 지급받는 서비스노동자의 경우, 11만원을 초과하는 8만원이 최저임금으로 산입되면, 이 노동자는 매월 8만원, 연간 96만원에 달하는 금액이 최저임금에서 무력화된다.

환노위가 ‘취업규칙에 관한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을 변경한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날 환노위는 산입범위 확대와 함께 “사용자가 1개월을 초과하는 주기로 지급하는 임금을 총액의 변동 없이 매달 지급하는 것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는 경우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과반의 ‘의견 청취’만으로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도록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반드시 ‘절반이 넘는 노동자의 동의를 얻거나’, 전체 직원 절반 이상이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다면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이를 허울뿐인 ‘의견 청취’만으로 가능토록 바꾼 것.

민주노총은 “노동개악을 추진한 박근혜도 하지 못한 것을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이 자행했다”면서 “사용자의 일방적인 조치로 이른바 ‘상여금 쪼개기’가 언제든 가능해졌고, 근기법과 배치되는 조항으로 인해 자본의 온갖 불법과 편법이 난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대노총은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에 나섰다. 민주노총은 25일 오전 긴급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환노위에서 통과된 개정안이 28일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산하 전 조직이 오후3시를 기해 ‘최저임금 개악 저지’ 총파업을 단행한다는 방침이다. 수도권 조합원들은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파업집회를 열고 각 지역에선 집권여당 규탄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총파업 돌입을 선언하며 “노동존중을 말했고, 소득주도성장을 힘줘 강조했으며, 조건 없이 최저임금 1만원 3년 내 실현을 공약했지만 이 모든 것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어버린 폭거를 저질렀다”면서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만에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하게 된 책임은 전적으로 스스로 공약을 파기하고, 정책을 뒤집으며 최저임금 노동자를 우롱한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에 있다”고 밝혔다.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 전원 사퇴’를 선언한 한국노총도 25일 긴급상무집행위원회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한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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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북한과 대화 중, 6월 12일에 북미회담 할 수도"

북-미, 회담취소 발표 만 하루도 안 돼 유화 제스쳐 교환

18.05.25 22:26l최종 업데이트 18.05.25 23:45l

 

 마크 놀러 cbs 백악관 기자가 25일 오전 6시30분께(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markknoller)에 올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  마크 놀러 cbs 백악관 기자가 25일 오전 6시30분께(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markknoller)에 올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메릴랜드주의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용 헬리콥터를 타러 가면서,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어떻게 되는지 봅시다. 12일이 될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 @markkno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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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 25일 오후 11시 40분] 
트럼프 "정상회담, 그들도 하고 싶고 우리도 하려고 한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 하루 만에 예정대로 6월 12일에 회담을 열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동부시각으로 25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은 메릴랜드주의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용 헬리콥터를 타러 가면서 기자들을 만났다. 그는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어떻게 되는지 봅시다. 12일이 될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해당 현장을 취재한 스티브 허먼 <미국의 소리> 기자는 트위터(@W7VOA)에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북한)은 그 걸(정상회담) 매우 하고 싶어 해요. 우리도 하려고 합니다"라면서 "어떻게 되는지 봅시다. 12일이 될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한 기자가 북한 사람들이 당신과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가 게임을 합니다. 누구보다 잘 알지 않소?"라고 답했다. 

마크 놀러 < CBS > 기자는 트위터(@markknoller)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는 지금 그들과 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놀러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이날 오전(한국 시각) 발표한 담화에 대해 "그들이 내놓은 아주 멋진 발표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동부시각으로 25일 오전 8시 경 트위터에 올린 글.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동부시각으로 25일 오전 8시 경 트위터에 올린 글.
ⓒ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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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 : 25일 오후 10시 26분]
트럼프, 김계관 담화에 긍정 반응 "따뜻하고 생산적"

"북한으로부터 따뜻하고 생산적인 발표가 있었다는 아주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이 일이 (상황을) 어디로, 바라건대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평화와 번영으로, 이끌게 될지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시간(그리고 실력)이 말해줄 것입니다."

하루 전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유화적인 담화에 대해 "아주 좋은 소식"이라고 반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동부시각으로 25일 오전 8시 경 트위터에 북한에서 나온 담화를 언급했다. 이보다 13시간 가량 앞서 나온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에 대한 평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담화를 "따뜻하고 생산적"이라고 표현했고, 이같은 담화가 나온 것을 "아주 좋은 소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일이 (상황을) 어디로, 바라건대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평화와 번영으로, 이끌게 될지 곧 알게 될 것"이라며 "시간(그리고 실력)이 말해줄 것"이라고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밤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전격 발표했다. 이후 9시간 만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을 받은 김 제1부상이 담화를 발표한 것인데, 이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김 제1부장은 이 담화에서 미국에 서운함을 나타냈지만 이번 북미대화에 대한 의지도 함께 피력했다. 또 '트럼프 방식'에 대한 기대와 김 위원장이 기울인 노력 등을 담화에 담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 말미에서 "시간(그리고 실력)이 말해줄 것입니다"라고 썼는데, "시간이 말해 줄 것"(Only time will tell)은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그가 즐겨 쓰는 표현이다. '어찌 될 지 보자' 혹은 '기다려 보시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괄호 안에 "and talent"를 넣어 시간 외에도 'talent'도 앞으로의 상황 전개에 작용할 거라고 암시했다. talent는 재능, 수완, 실력, 능력 등으로 번역되는데 어떤 맥락에서 이같은 말을 덧붙였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이로써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표 뒤 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북한으로부터 유화적인 반응이 나왔고 이에 대해 다시 트럼프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반응한 모양새가 됐다. 회담 취소 편지에서 "만약 이 중대한 정상회담에 관하여 마음을 바꾼다면, 나에게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쓰기를 주저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추진 재개를 선언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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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 전격 취소와 주한미군 문제

북미정상회담 전격 취소와 주한미군 문제
  •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 승인 2018.05.25 11:01
  • 댓글 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조선)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까지 한 당일이며, 북한(조선)이 남북고위급회담 중단의 이유로 제시했던 한미연합군사훈련 맥스선더가 끝나기 하루 전 날,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북미회담 성공 가능성을 거듭 밝힌 다음날인 24일 전격적으로 6월12일로 예정됐던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하는 공개서한을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에게 보냈다.

북은 지난 9일 붙잡혀 있던 미국인 3명(김동철·김학송·김상덕(토니 김))을 석방한데 이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까지 하면서 비핵화 의지를 강조했지만 트럼프의 돌발적 행동으로 허를 찔린 형국이어서 미국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지게 되고 그 결과 한반도 비핵화, 평화정착 가능성이 당분간 희박해졌다(연합뉴스 2018년 5월25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지 7시간여 만인 25일 북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돌연 일방적으로 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은 우리로서는 뜻밖의 일이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측에 다시금 밝힌다”고 말해 주목된다(뉴스1 2018년 5월25일).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 취소의 이유를 북한(조선) 탓으로 돌리면서 향후 북의 추가 양보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통해 북에게 공을 넘겼는데 이는 트럼프가 취임이후 미국이 이란핵합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파리기후협정 탈퇴 등을 통해 보여준 미국 우선주의라는 국제무법자적 행태를 반복한 것으로 북미간 대화를 더 어렵게 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의 이번 행동은 외교문제에서 상반된 발언을 남발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이익 챙기기에 몰두하고, 러시아 스캔들, 성추문 등에 대해 미국 중산층을 분노케 하는 태도를 취해왔던 ‘부동산 재벌 대통령’의 부정적 자질 하나가 더 추가된 것으로 평가된다.

북미정상회담 취소 선언, 난관 봉착한 평화정착 노력

북미회담이 추진된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북의 핵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국 영토를 공격할 가능성 때문에 미국 사회가 공포 섞인 동요를 하면서 미국 제도정치권을 긴장시킨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북의 비핵화가 성사되지 않으면 트럼프 자신이 가장 큰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과 99%의 회담 성공 가능성이 언급되는 상황에서 북미회담이 전격 취소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트위터가 아닌 공개서한이라는 형식과 절제된 언어를 사용한 것은 북의 추가 양보를 압박해 향후 더 큰 과실을 따겠다는 노련한 ‘장사꾼’의 속셈을 드러낸 측면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선언으로 ‘한반도 운전자론’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판문점 선언의 비중이 약화되는 등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이 난관에 봉착했다.

그러나 지난 수개월 동안 한반도의 비핵화와 관련한 북미정상회담이 추진되면서 미국의 한반도 전략의 윤곽이 드러난 측면도 있다. 우선 트럼프는 전쟁위기 상태 속에서의 한반도에서 취하는 이익보다 한반도 평화정착 속에서 취할 수 있는 이익이 더 클 가능성에 주목해 평화협상의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손익계산에 따라 동북아 정책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킨 것이다.

두 번째 주한미군 문제다. 이 문제는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논의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북중 2차 정상회담, 한중일 정상회담,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의 2차 방북과 미국인 수감자 동반귀국 등이 취해진 것이다. 이는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할 경우 지난 수십 년 간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거부했던 미국이 협상에 절대 나서지 않으리란 전망 아래 취해진 것으로 풀이 된다. 이는 주한미군 문제가 향후 한반도 평화추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을 점검할 필요성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의 대북 특사단 파견으로 본격화된 ‘한반도 비핵화’ 프로젝트가 진행된 과정을 면밀히 살피면 특히 문재인 정부의 대북, 대미 활동공간이 매우 좁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국가보안법이고 한미동맹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철저히 현재의 한미군사관계를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그 틀이 짜인 것으로 중국 언론은 문 대통령의 대미 예속상태를 공공연히 비판한 바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최근 연이어 행한 주한미군에 대한 학자적 발언에 대한 청와대나 야당 등의 과민반응은 주한미군으로 상징되는 한미동맹관계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고 있는 한국 사회의 병적인 고정관념이 어느 수준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주한미군으로 대변되는 한미동맹관계가 유지되는 한 남북한의 자주적인 평화통일 노력이 제대로 이뤄지기는 불가능하다.

트럼프의 변칙적인 대북 정책이 취해진 것도 주한미군이라는 요인에 근거한 측면이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미국이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일상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현재의 한미동맹이 미국의 그런 행동 가능성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는 미국의 비합리적인 대북정책이 남발되는 주요인이기도 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연합군의 작전계획은 5027, 5026, 5028, 5029, 5030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주한미군의 존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트럼프 등의 북한(조선)에 대한 무력공격 위협이 항시적으로 취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대지각변동이 발생할 조짐이 보였던 상황에서 거듭 그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확인된 한미동맹관계를 정상화해야 할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주한미군의 위상이 변한다면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 등의 정상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주한미군은 한반도 방위와 함께 동북아 역내 안정을 위해 계속 주둔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언급되면서 주한미군의 한국 주둔이 미국의 ‘권리’로 규정된 것에 대한 전면 수정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적 필요성 등이 커지는 것에 대한 한국의 입장 정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국가보안법과 한미군사동맹 ‘정상화’ 시급한 이유

둘째,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이 F-22 랩터 스텔스 전투기가 포함되는 등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면서 북이 반발하고 남북 대화 중단을 선언한 것처럼, 한반도에서 군사작전 필요성 등에 대한 판단시 한미 두 나라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구속을 받게 되는 게 그 원인의 하나로 보여 시정이 불가피하다. 북의 조선중앙통신이 2018년 5월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미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를 도발로 규정하며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소한다고 밝히자 로버트 매닝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한연합군사훈련의 목적은 한국을 방어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라며 북의 주장을 일축했다(미국의소리 2018년 5월17일).

남북관계 정상화가 한반도 비핵화와 동시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당위성이 강조되지만 두 가지 목표 추진 과정에서 남북관계의 특수성상 한국의 대북 군사훈련 등에 대한 자율성이 보장돼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수한 경우 한미 간의 입장이 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정상화로 가능하다.

셋째, 한국이 세계 최대의 무기수입국인 상황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상징되는 한미동맹이 자칫 한국의 효율적 자위력 강화에 역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미동맹의 정상화가 절실하다. 한국이 연간 수입하는 4조원의 미국 무기도 주한미군의 전략을 보완하는 기능에 그칠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취소되고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는 움직임에 제동이 걸린 상황을 고려할 때 향후 한국이 한반도의 운전자 역할을 하려면 군사부문 등에서 상당한 정도의 자주적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 동북아 평화와 안정은 관련 당사국이 진정한 자주적 역량을 발휘해 소통, 협력, 합의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결국 남북 교류협력, 평화통일과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 국가보안법,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정상화라고 중립적으로 표현한 건 이들 중대 사안에 대한 견해가 분야별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두 사안은 한국의 입법 및 행정적 결정 사항에 속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확보한 기득권이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평화통일을 위해선 이 두 가지 걸림돌이 폐지 또는 개정 등과 같은 방식으로 정상화돼야 한다. 이런 노력은 한국이 해야 하는데 정치권의 속성상 그것을 기대하기 매우 어려워 시민사회나 학계 등이 앞장서야 한다.

국가보안법, 한미상호방위조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 총선에서 그런 역사적 책무를 실천할 국민 머슴을 대거 뽑아 국회에 보내는 범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남북한 평화통일을 위한 대장정이 민족사적이고 세계사적인 결실을 맺으려면 남측에 직결된 두 개의 걸림돌이 제거돼야 한다. 북측도 통일 한반도를 위한 목표를 향해 다각도로 노력해야 한다.

21세기 인공지능시대, 4차 혁명 시대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는 건 어리석다. 인류의 사상 이념 역사나 한반도의 평화적인 민족주의적 특성을 고려할 때 남북이 이념 대결에만 매달리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 열린 마음으로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남북의 평화통일 노력은 여야가 정권을 놓고 합법적으로 경쟁하듯 해야 한다. 인간이란 원천적으로 권력 장악 또는 행사 의지가 DNA에 들어 있다는 점에서 남북 공동체도 그 예외가 될 수 없는 건 너무 분명하다.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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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열네 살 '웨살'을 죽였는가

고향에 돌아가리라, 가자 주민들의 '대귀환 행진'

 

 

지난 3월 30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은 난민의 귀환권을 요구하며 국경을 향해 7주간의 '대귀환 행진'을 시작했다. 30년 만에 최대 규모로 진행된 비폭력 시위였다. 행진 본부는 이스라엘이 국경을 따라 가자지구 안쪽에 설정한 '완충 지대'에 텐트촌을 설치하고 각 텐트에 70년 전 이들이 쫓겨난 마을의 이름을 붙였다. 많은 이들이 가족 단위로 행진에 참여했다. 열네 살 소녀 '웨살 셰이크 칼릴'도 동생 모하메드와 함께 왔다. 가자지구 주민의 70%가 그렇듯 웨살 역시 난민이었다. 선조들의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던 웨살은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쏜 실탄에 머리를 맞고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됐다. 

행진 본부는 돌도 던지지 않고 타이어도 태우지 않겠다며 철저한 비폭력을 공언했지만 이스라엘군은 곧바로 저격병 100명을 배치해 시위를 진압할 것이라 밝혔다. 비무장 시위대에 대한 예고된 살인이었다. 첫날부터 이스라엘군이 비무장 시위대를 살해하자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이스라엘 출신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예외적으로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유대인 노벨상'으로 불리는 제네시스상의 수상을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시위대 학살은 예정된 시위의 마지막 날 하루 전인 5월 14일 정점에 달해 62명이 살해되고 3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웨살도 이 날 살해당했다. 같은 시각 불과 80킬로미터 떨어진 예루살렘에서는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이전 개관식이 열렸다.

행진 첫날부터 사상자가 생기자 중무장한 군인을 향해 돌을 던지고, 타이어를 불태워 저격병으로부터 몸을 감추는 평상시의 시위가 재현됐다. 그러나 돌은 국경에 가닿지 못한 채 완충 지대에 떨어졌고 학살의 마지막 순간까지 시위대 누구도 무장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에 살해되기 직전, 웨살의 마지막 모습. ⓒSari Jamal


누가 웨살을 죽였는가? 피해자 비난하기 

이스라엘은 '무장단체 하마스'가 행진을 주관했고 국경에 폭탄도 설치했다며 비무장 시위대에 대한 발포가 정당하다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하마스는 2006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치정당이지만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정당화할 때 쓰는 만능 키워드가 된지 오래다. 여느 집권세력과 마찬가지로 하마스도 부패와 반대세력 탄압 등의 문제가 있지만, 이스라엘의 정당보다 더할 것도 없다. 팔레스타인은 영국 위임통치 시절부터 계속된 비폭력 저항운동의 전통을 자랑하지만, 이스라엘의 군사점령 후엔 무장투쟁이 부상했다. 하마스가 무장단체라고 비난받는 것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팔레스타인 민중의 무장을 철저히 금지했는데도 무장조직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독립을 논하는 정치세력 중 공식적으로 무장조직을 해체한 세력은 이스라엘에 협조적인 '파타' 하나뿐이며, 파타조차 비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무장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하마스든 파타든 무장 수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군사원조를 받은 국가 이스라엘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중동 유일의 핵무기 보유 국가다.

이스라엘은 하스바라(프로파간다)를 통해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라 부르고, 무장단체가 주최한 시위에 나온 민간인이 잘못한 거라며 여론을 호도한다. 특히 최루탄에 질식해 숨진 8개월 아기 레일라의 소식이 알려지자 아기를 시위에 데려간 부모를 질타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무장투쟁 노선을 비판하든 말든 이번 행진은 하마스가 조직한 게 아니다. 팔레스타인의 풀뿌리 운동 전통에 따라 지역 주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자 여타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하마스도 참여했을 뿐이다. 시위 중 살해당한 하마스 대원 전원 역시 비무장 상태였다. 민간인 학살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여느 때처럼 하마스를 탓하고 있지만 애초에 이스라엘은 자의적으로 설정한 '완충 지대'에 발을 들이면 농민일지라도 실탄을 발포해 왔다.

7주간 살해당한 시위대 112명 중 웨살과 같은 미성년자가 13명, 'PRESS' 표식을 단 기자가 2명이다. 부상자 1만3190명 중 절반 이상이 실탄 혹은 고무코팅 총알에 맞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리에 총을 맞은 32명의 다리가 잘렸다. 이 중엔 다음 경기 때 우승을 노리던 자전거 선수가 있다.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우던 어린이가 있다.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무수한 꿈이 짓밟히고 스러졌다. 

뿐만 아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때 폭격으로 다리를 잃은 사람들도 행진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빼앗겼다. 지난 10년 동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3차례 대규모로 침공해 민간인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이번 비무장 시위대 학살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육·해·공을 봉쇄해 주민들의 발을 묶고 11년째 고사시키고 있다. 생필품은 물론 의료 물품 반입도 극히 제한돼 가자지구의 병원은 만성적 물자·설비·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이번에도 응급차가 부족해 사상자를 안은 채 달려가는 시위대의 사진이 SNS를 통해 무수히 타전됐다. 미국의 한 외과의사는 미국 최고시설의 병원조차 실탄에 치명상을 입은 환자 2000명을 감당할 수 없다며 가자지구의 상황을 인도주의적·의료적 대재앙이라 불렀다.

학살을 책임질 유일한 방법 - 군사점령의 완전한 종식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와 살인진압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동예루살렘·서안지구 즉 팔레스타인을 군사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또 현 상황은 반세기 넘은 군사점령에 앞서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난민으로 몰아넣은 70년 전 이스라엘 건국에서 유래한다. 이스라엘은 건국을 전후한 일 년간 팔레스타인 마을 530개를 파괴하고 원주민 1만5000명을 학살했으며 인구 절반을 추방해 80만 명을 난민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이 난민의 귀환을 70년간 철저히 금지했다. 

이스라엘의 학살이 지속되는 동안은 국제사회의 규탄이 이어지지만, 멈추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UN은 이전의 학살에서처럼 진상규명 조사단을 파견해 이스라엘이 전쟁범죄를 자행했다는 보고서를 내겠지만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등 보고서 결과에 따른 구체적 집행은 없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다시 다음 학살을 준비할 것이다. 

웨살은 수업시간 중 공책에 낙서하길 좋아했다.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 약한 과목은 읽기, 장래희망은 선생님이었다. 행진 참여를 말렸던 웨살의 이모는 "웨살이 죽은 지금 나도 준비가 됐다. 나 역시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가족을 잃은 이들은 유지를 이어 시위에 나가고, 국제사회는 이들이 살해되는 걸 다시 목도할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군사점령을 중단하긴 커녕 강화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청원에 동참을 호소합니다. 
유엔 인권이사회 결의안에 따라 이스라엘에 대한 포괄적 무기금수조치를 요청합니다.(☞청와대 청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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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머이’ 이후 도대체 뭐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5/25 11:43
  • 수정일
    2018/05/25 11:4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도보다리 대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개혁’을 추진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모방하고 싶어 하는 베트남식 개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2018년 05월 24일 목요일 제557호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이며 저서 <베트남 역사(Vietnam, a History)>로 퓰리처상을 받은 스탠리 카노는 1995년 베트남을 방문해 전쟁 영웅 보응우옌잡 장군을 만났다. 보응우옌잡 장군은 프랑스를 베트남에서 축출한 디엔비엔푸 전투(1954년)를 이끈 신화적 지휘관이다. 베트남이 통일된 뒤에는 부총리 겸 국방장관을 지냈다. 카노 기자는 “마르크스주의는 어떻게 된 거요?”라고 질문했다. 베트남공산당이 ‘도이머이(혁신)’를 선언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때였지만 마치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투철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로 알려진 보응우옌잡 장군은 이렇게 답변했다. “마르크스가 위대한 분석가이긴 하지. 그러나 국가를 어떻게 운영하라는 구체적 지침을 내리지는 않았거든…. 인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만 한다면 그것이 사회주의 아니겠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도보다리 벤치 대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개혁’을 추진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카노 기자를 놀라게 하고, 보응우옌잡 장군을 변호사로 만들었으며, 김정은 위원장이 모방하고 싶은 베트남식 개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EPA
2015년 4월30일 ‘종전기념일’에 호찌민 시에서 열린 불꽃놀이 장면.

1975년, 모든 외세를 나라 밖으로 축출하는 데 성공한 베트남공산당은 민족주의적 열정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로 충만해 있었다. 곧바로 전 국토에 대한 사회주의적 개조에 들어갔다. 새롭게 ‘해방’시킨 베트남 남부의 산업시설을 국유화하고 농가를 집단농장으로 묶는 작업이었다. 희망에 찬 나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5년도 지나지 않아 사회주의적 중앙계획경제가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데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기간산업인 농업 부문에서는 통일 이후 곡물 수확량이 오히려 줄었다. 전통적으로 쌀 수출국이던 베트남의 농촌이 허기로 신음하게 되었다. 집단농장에서 국가가 정한 곡물을 정해진 양만큼 생산해 정해진 가격으로 국가에 넘기고 나면 남는 곡물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집단농장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도 엄청났다. 기술과 자본재(기계)가 희귀한 데다 기계 수입에 필요한 외환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공업 부문의 급격한 발전을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더욱이 사회주의라는 체제 자체가 베트남의 경제발전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당시 베트남처럼 물자가 귀하면 가격이 오르기 마련이다. 시장경제에서라면 생산자들은 앞다퉈 공급이 부족해 값이 오른 물자의 생산에 뛰어든다. 이에 따라 사회 전체 차원에서 해당 물자의 공급이 늘어나 가격 역시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곡물 등 필수품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은 수준에 고정시킨다. 결국 같은 물자인데 가격은 두 개인 상황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농민(국영기업)이 벼 한 섬(비누 한 상자)을 100동(베트남 통화 단위)으로 국영 상점에 넘긴다고 가정하자(공식 국정가격). 그런데 벼(비누)를 빼돌려서 국가 이외의 3자(암시장)에게 팔면 500동을 받을 수 있다(시장가격). 해당 물자가 희소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국영 상점의 진열장은 비게 된다. 용케 국영 상점으로 해당 물자가 들어와도, 인민들은 싼 국정가격으로 사서 암시장에 비싸게 파는 방법으로 큰 수익을 챙길 수 있다. 가격의 이중화 현상이다.

베트남에서는 통일 직후부터 암시장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곡물 등 필수품의 생산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정가격은 그대로이지만 암시장의 시장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공식적으로 집단농장과 국영기업에 소속된 인민들이 암시장에서 상당 부분의 소득을 얻었다. 중앙계획경제가 겉만 번지르르한 허수아비였다는 이야기다. 공산당은 전국에서 집단농장화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집단농장으로 이름만 내걸고 여전히 가족농 중심으로 생산하는 마을도 드물지 않았다. 1970년대 하반기의 베트남은 하루 400만 달러에 달하는 소련의 원조 자금으로 겨우 연명해나가는 나라였다. 보응우옌잡 장군이 털어놓았듯이 통일 직후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의 인민들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1979년부터 자유주의적 경제개혁 시도

베트남의 개혁이라면 흔히 1986년 도이머이만 연상한다. 사실은 통일 4년째인 1979년부터 이미 시장 원리를 경제 시스템에 도입하는 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시도되었다. 당시 60~70대였던 ‘혁명 1세대’는 ‘사회주의로의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비공식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시장경제 부문은 부분적 합법화를 계기로 사회주의 중앙계획경제 시스템을 절벽으로 몰아붙이게 된다.

ⓒ연합뉴스
외국인투자법은 베트남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위는 삼성전자 베트남 생산법인의 휴대전화 공장.

베트남 정부는 1979년 농촌의 집단농장화를 중단했다. 이윽고 ‘그룹 계약 시스템’을 도입한다. 여러 명으로 구성된 작업 그룹과 집단농장이 ‘특정 곡물을 특정 양만큼 수확하겠다’라는 계약을 맺는다. 작업 팀이 그 이상을 수확하면 시장에 내다팔아도 된다. 농민들에게 수익이라는 생산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이와 함께 곡물의 공식 국정가격을 시장가격 수준으로 5~10배 올렸다. 시장 말고 국가에 판매하라는 이야기다. 사회주의 국가 스스로 시장과 곡물 쟁탈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공산품을 생산하는 국영기업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시스템’ 유지를 전제로 경영 자율성을 강화해주었다. 국영기업들은 국가로부터 낮은 국정가격에 제공받는 원자재를 투입해서 생산한 물자는 국정가격으로 국영 상점에 공급해야 했다(사회주의 생산 시스템). 그러나 국영기업은 자율적으로 시장에서 매입한 원자재(당연히 가격이 비싸다)로 물자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시장에 국정가격보다 비싸게 내놓을 수 있다. 국가가 명령한 품목 이외의 종목을 만들어도 괜찮았다. 자영업이나 민간 기업에 대한 금지도 완화됐다. 이런 자유주의적 개혁 조치에 따라 생산이 활성화되면서 물가 역시 안정되기 시작한다.

 

베트남공산당의 보수파들은 상황이 개선되자 오히려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다. 1983년, 공산당 내 최고 권력기구인 정치국에서 자유주의 개혁의 선봉인 응우옌반린을 축출하면서 강력한 반개혁 조치를 감행하기 시작한다. 농업 집산화를 재개하고, 민간 소기업과 자영업에 대해 폐업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종전의 10동을 새로 발행된 1동으로 교체하는 화폐개혁을 실시하면서 교환 가능한 1인당 화폐량을 제한하기도 했다. 민간 부문에 축적된 부(富)를 쓸어버릴 목적이었다.

그러나 보수파들은 ‘권력이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싶었다면, 1979년부터 시행된 개혁 자체를 차단해야 했다. 일단 시장경제와 중앙계획경제가 경쟁하는 국면을 허용해버리면 언제나 ‘전자’가 승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회주의 국가로서는 농민들로부터 높은 시장가격에 사들인 곡물을 도시 노동자들에겐 저렴한 국정가격으로 제공(배급)할 수밖에 없다. 그 차액은 고스란히 국가 재정으로 메워야 한다. 장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다. 국영기업 경영자들은 국정가격에 입수한 원자재로 만든 물자를 국영 상점이 아니라 시장으로 빼돌려 비싸게 팔고 싶어 한다. 사실은 베트남 국가가 국영기업에 원자재를 제대로 배급하지도 못하고 있었으므로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매입해야 했다. 비싸게 산 원자재로 만든 완제품을 국정가격으로 싸게 납품하는 구조에서는 항구적 적자에 시달리게 된다. 체제가 삐거덕거렸다. 궁지에 빠진 보수파들은 나름으로 머리를 썼다. 1985년 국영기업의 제품에 대한 국정가격과 임금을 대폭 올렸다. 그래야 국영기업들이 물자를 시장으로 빼돌리지 않을 것이었다. 불어난 수익으로 시장의 비싼 원자재를 매입할 수도 있다.

그 결과는 매우 파국적이었다. 아무리 교묘한 대책을 시행해도 물자 자체의 생산수준이 낮은 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물가인상률이 기록적 수준으로 올라갔다. 임금 인상으로 시중에 나온 엄청난 규모의 통화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1986년 한 해 동안 베트남의 물가인상률은 무려 700%에 달했다.

1986년 12월의 베트남공산당 당 대회에서 대대적 물갈이가 벌어졌다. 보수파들이 자아비판을 통해 퇴출되고 ‘베트남의 고르바초프’라 불리는 응우옌반린이 공산당 총비서로 복귀해 ‘도이머이’를 선언했다. 응우옌반린 체제는 보수파들이 농촌에서 추진하던 집단농장화 정책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사실상의 가족농을 부활시켰다. 농토의 소유자였던 집단농장은 가족 단위로 땅을 재배분했다. 15~20년의 ‘토지사용권’을 부여했다. 이름은 사용권이었지만 사실상의 소유권이었다. 제3자에게 해당 토지를 빌려주거나 사고팔고 돈을 빌리기 위한 담보로 제공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용권을 자녀에게 상속할 수도 있었다. 집단농장은 작업팀이 아니라 개별 가구와 직접 계약을 맺었다. 가족들은 계약한 분량 이상의 농작물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었다. 곡물에 대한 가격 통제도 폐지되었다. 집단농장은 관개시설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농민들의 신용 대출에 보증을 서주는 사실상의 농업협동조합으로 전환되었다. 이렇게 농촌에서 중앙계획경제의 제도적 인프라가 사라졌다. 다만 토지사용권의 거래가 허용되면서 부농들이 땅을 매집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과 정부의 부패 관료들이 부농들과 짜고 토지를 불공평하게 배분하는 바람에 소요가 발생하기도 했다. 1988~1990년에 제기된 민원이 무려 20만 건에 달했다.

사회주의 중앙계획 시스템은 기업 부문에서도 크게 완화되었다. 상당수의 공산품과 원자재에 대한 가격통제가 사라졌다. 국영기업들은 이전에 비해 자율적으로 생산 품목과 생산량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에는 회사법 제정을 통해 민간 기업을 합법화했다. ‘관민(官民) 합작 기업’도 인정되었는데, 민간 투자자는 기업 이윤 가운데 자신의 투자 지분에 비례해서 금융 수익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도이머이 이후 눈부시게 상승한 경제성장률

 

ⓒEPA
베트남은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 쌀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위는 2016년 7월 하노이 교외에서 논일하는 모습.

저개발 국가의 경제발전에는 국내 시장의 활성화만큼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외국인 직접투자(FDI)’다. 외국인들이 베트남에 투자하려면 일단 외환을 베트남 통화인 ‘동’으로 바꿔야 한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정부는 외환을 획득해서 아직 국내 생산이 불가능한 해외 자본재를 사들여올 수 있다. FDI 자체가 국내 고용을 늘리고 기술을 이전해주며 산업 전후방 효과를 통해 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기도 한다. 베트남은 이미 1977년에 외국인투자법을 제정한 바 있지만 성과는 없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경제 노선을 견지하는 데다 소유권까지 인정하지 않는 나라에 귀한 돈을 투자하려는 용기 있는 외국인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베트남에 기업을 설립한다 해도 외국인은 지분 49%에 만족해야 했다. 베트남 국가가 경영권을 가진다는 이야기다. 이런 측면에서 베트남이 1987년에 개정한 외국인투자법은 매우 급진적이었다. 먼저 외국인이 투자 기업의 지분 100%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윤은 물론이고 기업을 매도한 금액까지 정해진 세금만 물면 본국으로 송금할 수 있도록 소유권을 철저히 보장했다. 낮은 법인세율과 일정 기간 부여되는 면세 혜택도 해외 투자자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1990년대 들면서 연간 평균 40억 달러 규모의 해외 투자가 베트남으로 밀려들어 온다. 다만 투자자 대부분은 타이완·홍콩·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지에 거주하는 화교 자본이었다. 화교들은 베트남에 사는 친지를 통해 주로 경공업 소비재 기업을 설립해서 호찌민 특별시(과거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를 산업 중심지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기 위한 베트남의 몸부림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아시아 이웃 국가들과 화교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해야 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소비재 수입국일 뿐 아니라 금융 중심지(국제 유동자금의 상당 부분이 미국을 경유해 여러 나라로 투자됨)다. 더욱이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의 개발자금을 받으려면 사실상 미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베트남은 전쟁 당시 미국인 실종자 수색, 송환 등으로 끊임없이 성의를 표시했다. 1993년 7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IMF의 베트남 개발자금 지원을 허용한 데 이어 다음 해에는 베트남에 대한 상당수의 경제제재를 풀어준다. 이후 펩시,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캐터필러 등 글로벌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하더니 1995년 8월엔 미국 국무장관이 하노이를 방문해서 국교 정상화 협정을 조인했다. 양국 간 교역량은 2000년대 들어 10억 달러를 넘어서더니 2005년에는 100억 달러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 이로써 ‘정상 국가’로서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통합되기 위한 베트남의 시도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도이머이 이후 눈부시게 상승했다. 1991~1997년의 연간 성장률이 무려 8~9%에 달한다. 민간 기업이 법률적으로 인정된 이후 5년여 사이에 사업체가 30만여 개 설립되었다. 농업 생산이 크게 증가하면서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 쌀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같은 시기, 물가인상률도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도이머이 이전에는 50%를 웃돌던 빈곤율이 2000년대 들어서는 20%대 후반으로 개선되기도 했다. 베트남 전문 프리랜서 기자 데이비드 램은 <스미소니언 매거진>(2008년 3월)에 “베트남은 여전히 공산주의의 외투를 걸치고 있으나, 오늘날에는 자유시장 개혁의 피가 자본주의적 심장을 채우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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