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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병 사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신동필론, 부르지 못한 노래16.08.18 21:51l최종 업데이트 16.08.18 21:51l글: 이광수(gangesh)편집: 박혜경(jdishkys)사진이 보여주는 모양새를 서로 나눠 보고, 그 안에 담긴 뜻을 서로 헤아려 보고, 그 안에서 내 세계를 그려보고, 그로부터 지적 유희를 즐기고, 그것으로 소통하고 나누고 그런 평가가 있었으면 한다. 그 안에는 주류도 없고, 패거리도 없는 그런 평가가 있었으면 한다. 

재미있게 말하자면, 이 땅에 숨겨진 고수를 찾아서 놀이를 하자는 것이다. 장르도 초월하고, 경계도 허물고, 패거리도 없고 갑과 을의 관계도 없는 대동의 사진 세계에서 한 세상 멋지게 놀 수 있는 이 땅의 고수를 찾는 놀이다. 2016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⓼ '신동필론'은 8월 22일부터 8월 30일까지 전시된다. - 기자 말

사진가 신동필은 80년대 중반부터 둑 터지듯 터져버린 그 민주화 운동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5·18 광주학살부터 시작된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는 '양키 고 홈'을 거쳐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에서 정점을 찍는다. 분단된 조국의 아픈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하나된 대동 세상을 이루어내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 당시 '운동권'은 모두가 다 민족 해방을 외쳤고, 그것이 역사요, 진실이요, 길이었다. 

그 치열한 시간을 역사의 증언자로 기록하고자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30년, 1985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뜨거운 역사의 현장에 대한 30년간의 기록이다. 시간은 흘렀는데,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이한열을 잃고 효순이·미선이를 잃더니 이제는 세월호에 이르러 304명을 잃었다. 그래서 중단할 수 없다. 시간은 흘렀고, 세상은 변했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낀다. 민족 혹은 사람에 관한 노래, 그 노래를 이제 부르지 못한다. 다시 불러야 하는데...

1. '화염병 사진'을 찬양하노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세계관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많다. 그 시대는 영국 제국주의가 꽃을 피우는 시기였으니 그 안에서 남성이 세계로 '진출'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당연히 모험, 용기, 희생 등이 지고의 선이었고, 그래서 발견과 정복을 최고 가치 행위로 간주했다. 

소위 '예술적'이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예술의 창의성을 처음 시도하는 즉 발견이나 발명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표현 방식의 창의성으로 이해하는 풍조가 아직도 팽배하다. 그러한 '새로움'의 추구에는 공동체의 선이나 인간 존엄 그리고 역사성에 관한 가치가 들어가 있지 않다. 이러한 근대적 개념의 작품 평가가 권력의 토대가 된다. 삶과 유리된 가치를 순수하다고 하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타당하다는 말인가? 예술이란 외부인은 간섭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은 낭만주의의 사술(詐術)일 뿐이다. 아직도 여전히 사진계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지만, 한낱 예술 권력의 시각일 뿐이다. 

예술은 인간의 존엄, 진리, 정의 등을 담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정치적 메시지가 강한 것이 예술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이 정치에 복무하는 것을 문제시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정치적 예술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정치에 타락하여 독재에 부역하는 정치 예술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전자를 나쁘다고 평가하면서 기계적 중립으로 후자까지 마찬가지로 평가하는 것은 한낱 '예술을 위한 예술'로 예술 지상주의에 복종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 사진계의 권력이 이 안에 있다. 그들은 바른 정치적/역사적 태도를 지닌 사진을 '화염병 사진'이라 폄하한다. 예술의 이름으로 하는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편 가름은 거대 권력의 통제 담론일 뿐이다. 

신동필의 사진에는 특별하다고 할 만한 새로운 기법은 없다. 소위 예술의 존재 이유라고들 하는 창의성이란 없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한 감동을 준다. 새로운 형식이나 창작 기법에 의해서가 아니고 모두가 힘들게 지내온 그 시대의 모습에서 오는 감동이다. 대상이 그 자체로서 극적인데 다른 극적 요소를 새롭게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30년 전 '우리'가 처절하게 싸워서 쟁취했지만, 지금은 다시 빼앗길지 모르는 위기감을 불러일으켜줌으로써 뜨거운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사진. 그의 사진이 주는 세밀한 묘사를 통해 그의 사진을 보는 우리는 당시 그 아스팔트 위로 돌아가 그때 그 처절했던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노동해방'의 깃발 아래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노맹의 사진을 보면 소름이 끼치면서 눈물이 난다. 북으로 돌아간 그 '선생님들'은 지금 어떻게, 잘 살고 계실까? 분단과 세월이 만들어내는 파토스의 이중주 앞에서는 그저 지내 온 시간이 먹먹하기만 하다. 

신동필의 사진은 감상자가 주체적으로 감성을 계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예술적이다. 다만, 내가 말하는 예술과 그들 권력이 말하는 예술이 다를 뿐, 그의 사진이 무미건조한 자료, 다큐멘트일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큐멘터리 1985~2005. 신동필 사진집>은 그 어두웠던 터널을 함께 뚫고 왔던 우리 모두로 하여금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우리 시민 공동체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는, 그리고 그 위에서 전율하도록 하는 작품이다. 작품이란 심장을 열어젖히는 것이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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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열 장례식(1987)
ⓒ 신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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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시위(2002)
ⓒ 신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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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2015)
ⓒ 신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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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촌(1991)
ⓒ 신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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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성당 앞 (1991)
ⓒ 신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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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족의 이름을 부르노라

사진가 신동필은 1990년대 후반부터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그 많은 민족사의 문제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였다. 50년 만의 정권 교체에 의해 독재의 40년 사슬이 끊어지면서 맨 먼저 떠오른 문제는 분단과 민족의 아픔이었다.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신동필은 이 모든 문제에 온 몸을 던졌다. 거리의 투사이자, 시대의 양심 지킴이면서 역사의 목격자이자 증인으로서 사진 기록을 남겼다. 

"당신 때문에 빨갱이로 낙인찍혀 인생을 망쳤어!"... 2000년 9월 2일 북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뒷덜미에 남은 가족 누군가가 던진 비수보다 더 아린 한 마디. 그 응어리진 비극의 현장을 기록한 <우리 다시 꼬옥 만나요>. 감옥에서 출소한 후 북한으로 송환되기까지의 몇 개월의 시간 동안 장기수 63명의 삶을, 그들과 같이 살면서 기록한 정통 다큐멘터리 사진집으로, 국내 유일이다. 예술이기 이전에 기록으로서의 가치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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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향장기수(2000)
ⓒ 신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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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문제는 결국 핏줄의 문제다. 신동필은 독재와 산업화와 민족의 문제가 실타래처럼 엉킨 시궁창 같은 한국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아동 해외 입양의 문제에도 앵글을 들이 댄다. 1997년부터 2005년 봄까지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떠나가는 입양아, 돌아와 그들 앞에 선 그 입양아들을 기록하였다. 피사체가 사람인 것은 여느 사진과 다를 바 없으나 말도 못하는 어린 핏덩어리들을 피사체로 대해야 하는 사진가라는 직업에 괴로워 한 적이 많았다는 말을 듣는다. 피사체와 교감을 해야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딱 적격이다. 

사진가는 이런 말을 한다. "어떤 양육모가 자신이 키우던 아기가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가지게 된 과정을 의사에게 설명하면서 아기를 품에 꼭 껴안고 바닥에 쭈그려 우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러나 여기 그 사진은 없습니다. 그동안 내가 기록하며 함께 아파했던 모습들은 사진이나 필름이 아닌 가슴 속에 영원히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가족>은, 그래서, 붓다가 말 한 바 고해(苦海)다. 태어나자 떠나고 부모 아닌 부모 손에서 자라지만 다시 돌아오는, 그 핏줄이라는 게 도대체 뭣이라고, 생모의 소식에 눈물을 흘리며 양아버지 품에 안기는 사진을 보면 눈물을 훔치지 않을 자신이 없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슬픔이 배어 있지 않은 것이 없으니, 사진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도, 그 사람을 바라보는 옆 사람들도, 그 사람들을 카메라로 찍는 사진가도, 그 사진을 바라보는 독자도 모두 눈물이니, 눈물로 기록한 사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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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방송공사 별관(2001)
ⓒ 신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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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필의 첫 작품은 1999년에 연 <교토 40번지>다. 대학 졸업 후 그의 말대로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일본으로 갔다. 그리고 교토 40번지를 만나게 된다. 운명적인 만남이라지만 사실 그의 가슴에 묻힌 민족에 대한 정념이 당긴 필연이었으리라. 사진가는 교토 40번지에서 강제 징용 1세대들을 만나 그들의 처절한 역사를 담는다.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는 어느덧 '우리는 하나다'가 되고, 그 우리는 일본에 대한 우리로 확장된다. 

그 연장선에서 신동필은 원폭 피해자, 민족 학교와 관계를 맺는다. 권철이 야스쿠니에 꽂히고, 양승우가 신주쿠에 꽂힐 때 신동필은 민족에 꽂힌 것이다. 신동필은, 누구나 그랬을 듯, 교토 40번지를 암울함과 '희망 없음'으로 재현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처박고, 철조망에 갇혀 있으며, 그냥 멍 때리고 있거나 하염없이 저 쪽만 쳐다본다. 아픈 세월의 흔적은 주름진 얼굴, 깊게 패인 손, 퉁퉁 부은 발에 담겨져 있고, 담배와 약봉지가 그들의 아픔을 대변해 준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이야기를 끝내진 않는다. 신동필은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온 대부분의 그 투사들이 그랬듯, 대동 세상에서 하나 되는 민족을 찾는다. 마을 사람들이 명절에 모여 잔치를 하고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는 장면을 담는 것을 잊지 않는다. 보라, 비록 힘없고 멸시당하며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우리' 아닌가, 결코 잊지 말아야 되는 우리 핏줄 아닌가, 라는 메시지다. '우리는 한 핏줄'은 2004년 작업인 <재일 민족학교>가 그 바통을 이어 받는다. <교토 40번지>에 비해 밝고 희망적이다. 일본어 책과 국어 책을 동시에 보여주는 방식으로 그들이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워는 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는 디아스포라임을 보여준다. 표정은 항상 밝고, 당당하며, 우아하고 사랑스럽다. 

신동필의 핏줄에 관한 노래로 부르는 기록은 '위안부 할머니'와 '원폭 피해자'로 이어지면서 인물 사진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그 한(恨)의 세월, 필설로는 말할 수 없는 그 세월을 사진 같은 단면적인 매체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택한 것이 인물 사진이다. 인물 사진을 통해 사진가는 은근히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그러면 거기에서 그 한과 세월을 독자가 읽어내야 한다. 역사가 기록하는 자의 것이기도 하지만 어느덧 읽는 사람의 것이 되기도 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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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토 40번지
ⓒ 신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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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토 40번지
ⓒ 신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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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토 4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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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토 4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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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토 4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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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민족학교(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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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폭피해자(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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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제 사람을 노래하리라

사진가 신동필이 지난 30년 동안 했던 작업 가운데 한 민족, 한 핏줄의 범주에서 약간 벗어난 <광부 이춘하>라는 작업은 바로 이런 지원을 받아 완성을 한 작업이다. 탄광 노동자 이춘하씨를 중심으로 1997년부터 2005년 까지 한 작업인데, 1차 마무리를 한 후 2004년도에 강원 다큐멘터리 사업에서 기록 보존 작가로 선정 지원을 받아 추가 보충 촬영을 하여 완성하였다. 

이춘하라는 이름의 노동자 한 사람을 통해 탄광, 탄광 일, 그들이 사는 곳, 그들이 사는 이모저모를 일상사 차원에서 기록했다. 초점은 먹고사는 문제에 맞춰져 있다. 도시락 먹는 사진이 몇 장 등장한 것은 사진가가 동어반복을 몰라서가 아니었으리라.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밥'을 말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사진가가 이 작업을 할 때, 한국 사회는 노동의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소위 IMF 시기로 빠져 들어갈 때였다. 노동이란 죽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목숨의 문제였다. 그것은 단순한 구호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밥의 문제였다. 그래서 사진가가 그린 탄광 노동자의 삶은 처절하다.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그 시대를 노동자로 살아온 이 땅 아버지들의 존재 방식이다.

<광부 이춘하>의 끝 부분에 그려진 몇 장의 사진에 눈길이 멈춘다. 누군지 모르지만, 어떤 이가 죽었다. 그러더니 본인이 병상에 눕는다. 그러더니 누군가가 다시 시커먼 갱도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이다. 살고자 하는, 살아야 하는 노동자의 절규를 보여주는 이야기 방식이다.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 작업은 사진 하나하나가 개체적으로 특별한 미감을 발산시키지는 않는다. 한 장 한 장이 각각 완성된 미장센을 갖추거나, 뛰어난 물성을 갖추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 이미지 하나하나에서 아름다움을 얻어내는 것보다 하나로 구성된 전체를 통해 감동을 느껴야 한다. 전체가 하나로써 감동을 줄 때 돌이켜 다시 읽으면 하나하나의 사진이 다시 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초록색 지하 세계에 서 있는 초췌한 탄광 노동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개체로서 볼 때는 어눌하다 할 수 있겠지만, 이 사진이 주는 느낌은 매우 강력하다.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연상되는 것은 노동하는 인간의 위기를 말하고자 하는 사진가의 의도 때문이다. 이런 확장된 느낌에서 그 사진은 뛰어난 물성을 갖추는 법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갖는 힘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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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부 이춘하>
ⓒ 신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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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부 이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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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부 이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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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부 이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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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부 이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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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다큐멘터리 사업에서 지원을 받아 '핏줄로서의 민족'에서 '노동하는 인간(Homo Laborans)'으로 주제를 확장시킨 신동필은 이후 사진가로서의 존재 방식에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사람을 찍어야 하는 다큐 사진가가 사람이 싫어지는데, 어떻게 작업을 한다는 말인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종류의 부정부패, 연줄, 인맥, 짜웅, 갑질, 나눠 먹기, 뻔뻔함, 치졸함... 이 모든 것들이 조합으로 만들어대는 무례와 무염치의 군상이 사진계를 쥐락펴락 하는 판에서 다큐 사진을 한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질까? 나도 그들처럼 도구로서의 사진을 버리고, 예술로서의 사진으로 가야 하는 것일까? 2004년 즈음의 일이다. 

다큐 사진가로서의 존재론적 고민에다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의 문제가 겹치면서 사진가 신동필은 이내 카메라를 던지고 사진판을 떠나버린다. 그러다 2013년 홀연히 히말라야가 있는 네팔로 간다. 그리고 돌아오니, 10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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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티강 (2014)
ⓒ 신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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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신동필은 '우리'라는 범주 밖에 있는 노동자를 만난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으로 유명한 포카라의 세티강변에서 모래, 자갈 등 골재를 파고, 개발 현장으로 나르는 노동자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가장 가난한 노동자. 가난한 노동의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한 1년 가까운 시간 속에서 신동필은 다시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 '사람'의 힘 속에서 카메라를 다시 든다. 

사람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서일까? 그동안 나이가 들어서일까? 사진으로 말하는 방식이 더 유연해졌다. 강제하지 않고, 계몽하려 하지 않는다. 멀리서 바라보는 태도는 사진을 찍기 위한 프레이밍(framing)의 한 일환일 수도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뷰잉(viewing)의 일환일 수도 있다. 가까이서, 세상에 더욱 밀착하여 사는 것이 치열하게 세상을 사는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멀리서 바라보듯 세상을 사는 것도 또 다른 세상살이일 수도 있다. 그러면 장자(莊子)와 붓다가 어떻게 마르크스와 통하는지를 몸소 깨달을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신동필의 길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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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고위 외교관의 탈북과 의사출신 탈북자 청소부의 죽음

북 고위 외교관의 탈북과 의사출신 탈북자 청소부의 죽음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6/08/18 [23:1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영국주재 북 고위 외교관 태영호 공사의 탈북 보도

 

타이밍이 참으로 기막히다. 이른바 “집단탈북사건”에서 남성 지배인을 제외한 12명 여성들이 하나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사회로 나갔는데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공개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흘러나와 잠깐 파문을 일으킨 뒤에 이어, 조선(북한) 주영대사관의 공사가 가족들을 데리고 탈북했다는 기사와 추측, 분석들이 언론을 도배하는 18일에 북에서 의사였던 40대 탈북자가 인천에서 청소부로 되어 안전모도 없이 빌딩 청소를 하다가 추락해 숨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 '그래도 북에서는 의사였는데...' 의사출신 탈북자 청소부가 유리창을 닦다 추락사한 사건을 여러 언론에서  다루었다. 특히 아내의 간질환 치료를 위해 탈북했다는 사실과 고향의 부모에 대한 그리움, 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담은 일기장을 남겨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저리게 했다. 고용한 미화원 업체 측에서는 도의적 책임만 있다며 오히려 유족들에게 화를 내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남녘의 실상이다.  © 사진설명 이창기 기자

 

의사가 북에서 뭇사람의 존경을 받는 직업이기는 해도 남보다 특별히 잘 살지 않으므로 의사로부터 청소부로의 변신 자체는 특기할 점이 없다. 단 한국식 개념으로는 그런 대조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딱이다. 의과대를 졸업하고 청진에서 의사로 일하던 그 사람은 아내의 병을 치료하겠다며 2006년에 탈북했는데 남에 가서 본업에 종사하리라고 예상했는지는 기사에 나오지 않았다. 적잖은 “탈북자”들이 남에 가서 원래 직업에 종사하리라고 믿었다는 자료들이 있는데, 너무 순진한지 아니면 탈북브로커들이 속였는지 알 수 없다만, 북에서 1%만 다닌다는 유명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으로 오래 일했다는 여자가 남에 가서 시시껄렁한 일만 하게 되어 충격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분단국이라 남과 북이 서로 학력을 인정해주느냐는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리고 한국의 국산고학력무직자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대학교수였다 해서 의사였다 해서 어느 대학이나 어느 병원이 어서 오십쇼 하고 모셔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남의 대학에서 무슨 교수로 일하는 “탈북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개의 사위라는 신분 덕 따위 그럴 만한 사연이 있어서이다. 나쁘게 말하면 교학이야 잘 하던 못하던 신분 때문에 이용가치가 충분하지 않느냐 말이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물론 중국에서 일하는 조선사람들(정식취업이던지 불법취업이던지)에 대해서도 사회주의사회에서 나서 자라 게으르다는 평이 늘 붙곤 한다. 그런데 전직 의사는 남에 적응하기 위해 지게차 자격증을 비롯해 자격증들을 따는 등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니까 게으르다고 할 수는 없겠다. 어쩌다가 어렵사리 딴 자격증들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단순한 체력노동인 청소를 하다가 추락사했는지 아직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10여 년 전에 어느 조선족 문필가가 쓴 한국체험기를 본 적 있다. 그 문필가의 친구로서 역시 조선족 문인인 사람이(글에 이름을 밝히지 않았음) 한국에 가서 일거리를 찾아 하다나니 개똥을 치게 되어 스스로 무척 한심했다 한다. 나도 조선족문학계에서는 꽤나 명성을 날리는 사람인데 이런 짓을 하게 되다니? 그러나 곧 생활체험 하는 셈 치자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렸단다. 그 문인의 심리에 여겨볼 점이 있다. “체험”으로 간주하는 것. 한국에 간 조선족들 가운데 워낙 배운 기술 예컨대 용접 따위를 갖고 꽤나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만, 한국인들이 꺼리는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3D업종에 일하면서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다. 허나 한동안 고생해서 돈을 좀 모으면 중국에 돌아와 상대적으로 편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믿음 덕에 버텨나간다.

 

조선족들과 달리 “탈북자”들은 돌아갈 데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극단적인가? 돌아갈 데가 마땅치 않다고 말해보자. 물러날 길이 없으면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한국 대통령은 한국을 비하하는 신조어들을 비난하면서 “할 수 있다”는 정신을 발휘하기를 주문했다. 의사로부터 청소부로 된 사람은 그 경축사를 듣기 전에 이미 한국에서 10년 가량 “할 수 있다”는 정신을 발휘한 모양인데 결국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중국에서 멀리 바라보노라면 지금처럼 “헬조선”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때도 드물다.

 

갑자기 궁금해난다. 탈북단체들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모아놓고 한국 입국을 기다리게 하는 “탈북자”들에게는 추락사 소식이 전해질까? 한국입국 후보자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기사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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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불법도청? 정권 운명 걸린 초대형 스캔들"

 

[아침신문 솎아보기] 우병우 가리키는데 MBC의 특별감찰관 때리기… "누가 흔드나" 한 목소리 낸 조선일보와 한겨레

조윤호 기자 ssain@mediatoday.co.kr  2016년 08월 18일 목요일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의혹을 감찰 중인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SNS를 통해 특정 언론사 소속 기자에게 감찰 상황을 누설했다는 MBC 보도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특별감찰 흔들기’라는 관점에서 불법사찰 의혹까지 제기하는 등 한 목소리를 냈다. 

조선일보 “MBC는 SNS 입수경위 밝혀라”

MBC는 지난 16일과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한 기자에게 감찰 상황을 유출한 SNS를 입수했다고 단독보도했다. 특별감찰관법을 어겼다는 취지의 보도였다. 17일에는 “모 언론사 기자가 특별감찰관과의 전화 통화 내용이라며 회사에 보고한 것이 SNS를 통해 외부로 유출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공세를 이어오던 조선일보가 MBC 보도에 대해 ‘불법 사찰’ 의혹을 제기하며 비판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MBC 보도에 대해 야당들은 일제히 우 수석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덮기 위한 '특별감찰관 흔들기'라며 '불법 사찰'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섰다”며 MBC의 SNS 입수 경로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수사기관이 법원에서 영장을 받아 합법적인 감청 절차를 거쳐 입수한 SNS 내용을 MBC가 나중에 확보했을 가능성이다. 조선일보는 “합법적인 감청 대상이 되는 범죄의 종류는 내란죄나 살인·강도 등 강력범죄 등으로 제한돼 있다. 이번 경우처럼 특별감찰관법 위반 혐의로 수사기관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감청에 나섰을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라고 전했다. 

두 번째는 이 특별감찰관 등 대화 당사자들이 대화 내용을 SNS를 통해 제3자 등에게 알려준 것을 나중에 MBC가 입수했을 가능성이다. 조선은 “이 경우 MBC의 보도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조선일보 5면

세 번째는 누군가가 도청이나 해킹을 통해 문제가 된 SNS 내용을 불법으로 빼냈을 가능성이다. 조선일보는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가장 문제가 심각한 경우다. 불법 해킹 등을 통해 SNS 내용을 빼내고, 이를 MBC가 입수해 보도했다면 정보를 빼낸 개인·기관이나 이를 유포한 언론사 모두 형사처벌 대상”이라며 “통비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의 대화를 녹음·청취하는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불법으로 얻은 SNS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사람도 똑같이 처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더 큰 문제는 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특별감찰관 흔들기' 차원에서 국가기관이 불법 도청이나 해킹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이 사건은 정권의 운명이 걸린 초대형 스캔들로 번질 공산이 크다. 국가기관의 불법 사찰은 용납되지 않는 범죄 행위”라고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또한 MBC가 입수경로를 밝혀야 한다고 압박했다. 조선은 “MBC는 이틀째 관련 보도를 이어가면서도 정확한 입수 경위는 밝히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는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SNS 내용이 당사자 동의 없이 유출된 것”이라며 “누군가가 해킹 등 방법으로 이 SNS 내용을 입수한 것이라면 SNS를 통해 숱한 대화를 주고받는 대다수 국민을 엄청난 불안으로 밀어넣는 게 된다. 따라서 '불법 사찰 및 특별감찰관 흔들기'라는 정치적 논란뿐 아니라 국민의 불안을 덜기 위해서라도 MBC가 즉각 입수 경위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나아가 법조계 의견을 빌려 이 특별감찰관의 행동이 감찰 내용 누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MBC가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내용 누설'이라고 보도한 부분들을 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들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

MBC가 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대목은 ‘특별감찰활동이 19일이 만기’라는 대목, ‘우 수석이 계속 버티면 검찰이 조사하라고 넘기면 된다’는 부분, 감찰 대상을 ‘우 수석의 아들’과 ‘가족회사 정강’이라고 말했다는 부분 등 세 가지다. 조선일보는 “내용 대부분이 이미 언론 보도로 알려진 내용이거나 특별감찰관법에 특별감찰관의 업무로 정하고 있는 것이어서 처벌 대상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라는 지방법원 한 부장판사의 말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오히려 특별감찰관이 그간 우병우 수석을 감찰하며 애로사항을 겪었다는 점도 보도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7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제가 알아본 결과, (우병우 민정수석을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이 요구한 자료가 전혀 제출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우 원내대표가 말하는 ‘자료’는 규정을 위반해 의경으로 입대한 뒤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의 운전병으로 선발돼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우 수석의 아들인 우아무개(24) 상경과 관련된 자료와 우 수석의 가족 회사인 ㈜정강 관련 자료를 뜻한다.

조선일보는 “경찰에 따르면 특별감찰관실은 감찰 개시 직후인 7월 말 30건의 자료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일주일 넘게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며 제출을 미뤘다”며 “경찰은 특별감찰관실뿐 아니라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곧바로 자료 제출을 하지 않는 '뜸들이기'를 해왔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와 비슷한 한겨레, 조선일보와 다른 동아일보

한겨레도 MBC 보도에 대해 조선일보와 비슷한 관점을 취했다. 한겨레는 “이 감찰관과 대화를 나눈 기자 본인이 직접 유출한 것이 아니라면, 제기되는 가능성은 외부 해킹이다. 만약 대화가 오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감청했다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대화 내용을 누설한 쪽은 물론 공개한 쪽도 모두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또한 이미 송수신이 끝난 대화 내용을 당사자 동의 없이 제3자가 누설했다면 정보통신망법 위반이 적용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실정법 위반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 한겨레 1면

한겨레는 감찰 내용을 외부로 누설한 것이 법 위반이라는 MBC 보도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한겨레는 “지난달 25일 우 수석에 대한 감찰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져 사실상 ‘공개 감찰’이 된 상태인데다, 이 감찰관이 언급한 감찰 대상도 당시 언론에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이 감찰관의 대화 내용을 문제 삼으려면, 우 수석에 대한 특별감찰 사실을 언론에 알려준 행위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나아가 “각종 비리 의혹에 휩싸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사퇴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되레 우 수석을 감찰 중인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흔드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이에 여권이 호응하는 ‘이상기류’가 나타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 MBC 보도 이후 친박계 이장우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누설 의혹이 사실이라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 아주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당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보수언론인 동아일보는 조선, 한겨레와 다른 입장을 보였다. 동아일보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부적절 행보’”라는 단독 기사를 통해 “이석수 특별감찰관(53·사법연수원 18기·사진)이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한 감찰 내용과 진행 과정을 구체적으로 유출했을 뿐 아니라 감찰 착수 당시부터 우 수석의 사퇴를 전제로 한 감찰을 진행해 공정성을 훼손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MBC 보도에 힘을 보탰다. 

동아일보는 17일 이 특별감찰관의 발언록을 입수했다며 이 감찰관이 특정 언론사 기자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우 수석) 아들인 (의경) 운전병 인사와 (우 수석 가족 기업인) 정강”이라고 적시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특별감찰관은 “다음 주부터는 본인과 가족에게 소명하라고 할 건데, 지금 ‘이게 감찰 대상이 되느냐’고 전부 이런 식으로 버틸 수 있다. 그런 식이면 우리도 수를 내야지. 우리야 그냥 검찰에 넘기면 된다. 검찰이 조사해 버리라고 넘기면 되는데. 저렇게 버틸 일인가”라고 적시했다. 그는 “경찰에 자료를 달라고 하면 하늘 쳐다보고 딴소리 한다”며 “경찰은 민정(수석) 눈치 보는 건데, 그거 한번 (기자) 애들 시켜서 어떻게 돼가나 좀 찔러 봐. 민정에서 목을 비틀어 놨는지 꼼짝도 못 한다”고도 했다.

동아일보는 또한 이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 사퇴를 염두에 둔 발언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고 전했다. 이 감찰관이 “우 수석이 아직 힘이 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째려보면, 까라면 까니까. 그런데 뭘 믿고 (우 수석이) 버티는 건가…자기가 수석 자리에서 내려서면 막을 수 없을까 봐 저러는 건가”라고 말한 대목이나 우 수석 가족의 부동산 관련 자료를 보내겠다는 언론사 간부에게 “일단 좀 놔두자. 서로 내통까지 하는 걸로 돼서야 되겠느냐. 힘없는 놈이 기술을 쓰면 되치기 당한다. 조금 시간을 보자”고 말한 대목이 사례다.

동아일보는 이에 대해 “이런 발언들은 특별감찰관이 고위공직자의 비위 사실에 대한 조사라는 직무 범위를 넘어서 정치적인 판단까지 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특별감찰관이 이 기회에 이름을 날려 야당 공천 받으려 하는지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정치권 일각의 이야기까지 전했다.
 

▲ 동아일보 6면

특검 꺼내든 더민주, 입 다문 새누리당

특별감찰관의 감찰이 흔들린다는 논란이 커지자 더불어민주당은 특검 카드를 꺼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17일 비대위 회의에서 “우 수석 의혹을 검찰도, 특별감찰관도 제대로 파헤칠 수 없다면 특검 도입을 통해 규명해야 한다. 바로 여야 협상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특검의) 명분은 특별감찰관의 우 수석 감찰이 청와대 방해로 무력화되고 있다는 판단”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독선적 국정을 재확인한 8·15 경축사, 8·16 개각 직후라는 점에서 보다 큰 겨냥점이 엿보인다. 임기말로 접어드는 박근혜 정부 독주의 상징으로 ‘우병우 거취’를 매김하며, 국정 견제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새로 취임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우 수석 거취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이 대표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날 개각에서 우 수석이 빠진 데 대해 “우 수석이 개각 대상이냐. 이번은 개각이니까…”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8·9 전당대회 과정에선 ‘선 진상규명 후 조치’에서 ‘사퇴’로 입장을 바꿨다가 당선 이후에는 아예 입을 닫고 있는 모양새다.

우 수석 거취문제는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 ‘민심을 전달하겠다’던 이정현 대표 체제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경향은 “우 수석 문제가 ‘신밀월’로 표현되는 이정현 체제 당·청관계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평양 금수저’ 태영호 주영 공사 일가족 망명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망명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태 공사는 주영 북한대사관 내 서열 2위로 남한에 망명한 북한 외교관 가운데 최고위급이다. 북한 체제를 선전하던 최고위급 외교관이 망명했다는 점이 파장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긴급 브리핑에서 “최근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가 부인·자녀와 함께 대한민국에 입국했다”고 밝혔다. 자세한 입국 경위 등에 대해서는 “해당국과의 외교 문제와 당사자 신변안전 문제 때문에 상세하게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태 공사는 평양 ‘금수저’ 가문 출신이다. 중앙일보는 단독보도를 통해 “태영호 공사의 부인은 오혜선(50)으로, 북한군 총참모부 오금철(69) 부총참모장의 일가”라고 밝혔다. 오금철 일가는 북한에서 최고 특권층에 속하는 ‘항일 빨치산’ 가문으로 오금철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1984년 사망)의 아들이다.

중앙일보는 “빨치산 가문이 탈북해 입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김정은의 공포정치와 대북제재 국면에서 빨치산 집안의 엘리트까지 체제에서 이탈하는 양상”이라는 대북 소식통의 말을 전했다.
 

▲ 중앙일보 1면

통일부가 밝히는 탈북 이유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이다. 정준희 대변인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어떤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북한 핵심계층 사이에서 김정은 체제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북한 체제가 이미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지배계층 내부결속이 약화되고 있지 않으냐 하는 판단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북한 체제가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설명이다. 언론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고위급 엑소더스로 이어지고, 김정은 체제의 구심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국민일보는 “최근 계속되고 있는 북한 엘리트층의 이탈 추세가 점점 더 핵심부로 번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북한은 올 상반기 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김정은 시대’를 선포했지만 체제 불안과 공포정치 속에 외교관, 군 관계자, 해외 근로자 등이 잇달아 탈출하는 등 내부 결속 악화가 가시화되면서 북한 최고위층의 심기를 불편케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아일보는 “올해 5월 영국 재무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유럽연합(EU) 대북제재 리스트에 포함된 북한 국영보험사인 조선민족보험총회사(KNIC) 런던지사를 압수수색하면서 태 공사가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은 2005년 헬기 추락 사고와 수재 등을 이유로 이 보험회사를 이용해 약 600억 원의 외화를 보험금으로 챙겼다. 이곳이 폐쇄되면 유럽 금융 중심지인 영국에서의 북한의 외화벌이 활동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고민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동아는 또한 “고강도 제재로 북한 대사관의 외부 활동이 극심하게 위축되는 가운데 본국의 잇단 압박 움직임이 부담감이 됐다”며 “북한의 핵실험 이후 유엔의 대북 제재로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활동이 급격히 위축된 상황도 그의 탈북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신문은 “북한 체제를 지탱해 온 ‘엘리트’들마저 등을 돌릴 정도로 김정은 체제의 균열이 커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해석했다. 세계일보 역시 “북한 내 핵심 엘리트 계층으로 분류되는 고위급 해외 외교관의 탈북은 엘리트 그룹 내 심리적 동요가 확산하고 김정은 체제의 구심력이 흔들리는 방증”이라고 내다봤다. 
 

▲ 세계일보 3면

선별적인 탈북자 공개, 대북제재의 효과 강조하기 위해?

뒤집어보자면 정부가 북한 체제의 허약성과 대북제재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고위급 탈북을 공개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겨레는 “정부가 17일 저녁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탈북 사실을 긴급 공개한 것은 ‘북한 체제 동요설’을 뒷받침하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초 정부가 중국 북한식당 지배인·종업원의 이른바 ‘집단탈북’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사례도 있다. 한겨레는 “북한에서 엘리트나 상류층의 탈북이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을 지속해왔다”며 “‘북한의 핵심계층 사이에서 김정은 체제에 대해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또 북한 체제가 이미 한계가 이르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는 이날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의 발언이 정부의 의도를 또렷이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실제 태영호 공사의 탈북 사실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오전 10시 30분 정례 브리핑에서 태 공사 관련 질문을 받고 “여러 가지를 고려해 확인해 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도 앞서 16일 “탈북민 관련 제반사항은 탈북민의 신변 안전, 관련국과의 외교 문제 등을 감안해 구체사항을 밝히지 않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통일부 브리핑 후 8시간30분 만에 통일부의 입장이 태 공사의 탈북을 공식 확인해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동아일보는 “태도가 돌아선 데에는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며 “최근 상황이 유동적이어서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련 부처 회의가 상시 열리고 있다”는 다른 당국자의 말을 전했다. 다른 의사결정 과정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 동아일보 3면
 

동아일보는 “정부가 입맛에 맞는 탈북자만 선별적으로 공개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발표는 이날까지 ‘노코멘트’로 일관하며 태 공사의 망명 사실에 대한 공식 확인을 거부한 영국 정부의 태도와도 대비된다”며 “태 공사의 망명일, 한국 입국일은 물론 동행 가족의 수도 공개하지 않아 정부가 ‘북한 고위 외교관 탈북’이라는 발표에만 초점을 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강조했다. 

대북제재가 직접적으로 탈북으로 이어졌다는 정부의 해석이 성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겨레는 “탈북자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정부가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탈북자들이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대기 중이고 보통 절차에 빨라야 한 달 정도가 걸리는데, 대사관이 절차를 더 빨리 앞당기면 숫자를 늘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최소한 작년이나 재작년에 나온 경우가 많은데, 제재 효과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탈북단체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다음은 18일자 아침종합신문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탈북 북 고위 외교관 태영호 일가족 입국>
국민일보 <北 외교 최전선 ‘붕괴’…駐英 공사, 한국 망명>
동아일보 <‘김정은 선전맨’이 넘어왔다>
서울신문 <北 태영호 駐英공사 가족 동반 귀순>
세계일보 <태영호 주영 북 공사 가족과 함께 귀순>
중앙일보 <북 빨치산 가문 첫 귀순>
한겨레 <우병우 감찰 종료 코앞 특별감찰관 흔들기>
한국일보 <駐英 북한 공사 태영호, 가족과 함께 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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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건국절 법제화하자”…SNS “헌법에 이미 있는데 뭘 법제화?”

 

“김구 ‘친일파 263명 살생부 명단’ 등 감추려?…친일파 후예 실토하네”민일성 기자  |  balnews21@gmail.com
 

   
▲ 17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간담회에서 이정현 대표, 정진석 원내대표, 심재철 의원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의 ‘건국 68주년’ 발언에 이어 새누리당이 17일 “건국절을 법제화하자”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심재철‧정갑윤 등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앞다투어 박 대통령의 건국절 발언을 옹호하며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됐다”고 주장했다.

뉴시스에 따르면 정진석 원내대표는 “상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도 이승만이었다”며 “김구 선생만큼이나 이승만 대통령도 독립에 기여했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대한민국은 1948년 8월15일에 건국됐다. 건국과 함께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 박사가 됐다”면서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건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를 터무니없이 폄하하고 있다. 건국세력, 정통세력은 임시정부 수석을 지낸 김구 선생이란 주장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보자는 주장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역사적 사실은 사실”이라며 “이승만 박사의 공과는 공과대로 인정하고 김구 선생과 같은 독립지사의 애국은 애국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부의장이자 5선인 심재철 의원은 “이승만 대통령이 권위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건국일을 깡그리 무시하는 건 우리나라의 생일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면서 “우리나라의 생일은 1948년 8월 15일이다, 8.15는 광복절이자 건국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심 의원은 “건국절을 법제화해 8.15는 광복절이면서 건국절로 모든 사람이 새길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19대 국회부의장이었던 5선 정갑윤 의원도 “법제화하는데 우리(새누리당)가 국민들의 중지 모아야 한다”고 힘을 실었다.

중진들의 이러한 의견에 대해 이정현 대표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번 충분히 토론해 보자”며 “원내대표단과 상의해 국민들이 생중계로 볼 수 있는 곳에서 건전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거듭된 건국절 발언에 대해 ‘역사 왜곡, 헌법 부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이 아예 법제화를 주장하고 나서자 SNS에서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정청래 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건국절 논란 이 한방으로 끝내자”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제1호 관보” 역사 기록물 사진을 올렸다. 정 전 의원은 “대한민국 30년 9월 1일. 1919년 건립된 상해임시정부를 대한민국 1년이라고 하는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과 관보1호를 부정하는가? 답하라”고 촉구했다.

   
▲ <이미지출처=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북궁 서쪽 자하문로에는 제헌회관이 있지요. 근데 저 눈치 없는 종로구청장께서 48년 8월15일을 정부수립이라고 써 놓았네요. 건국절이 아니라요. ㅎㅎ”라고 인증 사진을 올렸다.

   
▲ <사진출처=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페이스북>

SNS에서는 “이런 게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 나라가 정상이 아니란 거다”, “뭘 법제화하자는 거지? 이미 헌법에 3.1운동을 통해 건국되었다고 했고 그래서 기념일로 삼은 건데”,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나 헌법을 먼저 고쳐야 위헌 시비가 없어요”, “김구 선생 작성한 친일파 263명 살생부 명단 이거 감추려 건국절 얘기하는 것, 그때는 우리가 나라가 없으니 반역죄가 안된다고..”, “친일파의 후예임을 만천하에 고백하는군~”, “새누리당이 건국절 추진한답니다.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된 날은 1783년 9월3일, 미국의 정부가 만들어진 것은 1789년 4월30일, 하지만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우리의 3.1운동처럼)대표자들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1776년 7월4일입니다”,

“헌법에 써있고 이승만도 1948년 8.15 정부수립 대통령 기념사에 건국 30년이라고 했는데 니들은 도대체 뭔데 난리냐”, “이로써 새누리당은 헌법과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단체임이 명명백백해졌다”, “그래 토론 한번 하라, 친일의 조무래기들이 원하는 그 건국절의 근거가 처참히 박살나는 꼴이 보고 싶다”, “이렇게 가면 국정교과서에 건국절이 명시되겠군요. 1948년 이전에 나라가 없었으니 독립투사도 친일파도, 애국도 매국도 없었다, 이런 애길 하고 싶은 거겠죠? 친일을 청산해야지 감추고 숨기려 애쓰면 애쓸수록 더 친일파처럼 보입니다. 대통령님” 등의 의견이 이어졌다. 

☞ 관련기사 : 정청래 “朴정부, 이게 백범 품고왔던 친일263명 살생부 명단”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이 2015년 12월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임정 국무위원 김승학이 김구 지시로 작성한 친일파 263명 반민특위 살생부 초안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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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도 | 2016-08-17 09:46:4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특별기획 ‘훈장과 권력’ 4부작 다큐멘터리 ⓒ뉴스타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이하 뉴스타파)는 특별 기획 ‘훈장과 권력이라는 4부작 다큐멘터리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내용 중에는 일제강점기 친일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각종 훈,포장과 감사장을 받은 친일인사들이 대한민국의 훈,포장을 받았던 사실도 있습니다.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 등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뉴스타파의 보도를 보면 친일인사들의 서훈은 이승만과 박정희 집권 기간에만 무려 368건이나 됐습니다.

프롤로그: KBS가 지른 빗장, 뉴스타파가 열다
1부:“민주”훈장이 없는 나라
2부: 최초공개 대한민국 훈장 받은 친일파
3부:건국훈장의 그늘
4부:훈장의 수사학
에필로그

뉴스타파가 보도하고 있는 ‘훈장과 권력’은 단순한 친일파의 기록이 아닙니다. 헌정질서를 파괴한 반민주 행위자들의 서훈 내역은 물론이고 역대 통치자들이 어떻게 서훈을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했음을 알 수 있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입니다.


‘2005년 시작된 탐사보도, 2016년까지 이어지다’

KBS스폐셜훈장뉴스타파김용진-min
 
▲2005년 KBS 탐사보도팀의 김용진 기자가 보도했던 ‘최초공개, 누가 일제의 훈장을 받았나’,2016년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가 데이터저널리즘 스쿨에서 ‘훈장과 권력’ 취재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

뉴스타파 특별기획 ‘훈장과 권력’은 단순한 취재물이 아닙니다. 10년이 넘은 탐사보도의 결과물입니다. 2005년 당시 KBS 탐사보도팀은 일본 국립공문서관의 서훈 기록을 뒤져 ‘누가 일제의 훈장을 받았나’는 방송을 내보냅니다.
 
2016년 뉴스타파는 친일인사들이 일제로부터 받은 훈장은 물론이고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까지 모두 조사해 보도합니다.
 
2005년 KBS 김용진 기자의 모습과 2016년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의 모습은 세월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훈장과 권력’에 담긴 탐사보도는 세월을 뛰어넘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송을 위해 KBS에 사표를 던진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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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탐사보도팀 기자들이 취재했던 ‘친일과 훈장’ 내용은 방송되지 못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KBS본부 새노조 캡처
 
뉴스타파가 보도한 ‘훈장과 권력’의 시작은 KBS였습니다. 2005년에 이미 친일파의 훈장 내역을 보도했던 KBS는 2015년 정부를 상대로 3년간의 소송 등을 통해 서훈 기록 60여 만 건을 최초로 입수했습니다.
 
KBS 탐사보도 기자들은 ‘간첩과 훈장’,’친일과 훈장’이라는 ‘훈장 2부작’ 시리즈를 준비했지만, 1부 간첩과 훈장은 난도질당한 후 극히 일부만 보도됐고, 3부 친일과 훈장은 언제 방송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훈장 시리즈를 처음 기획했던 최문석 기자는 지난 3월 KBS에 사표를 내고 뉴스타파로 이직했습니다. 최승호 앵커는 “기사를 지키기 위해 사표를 던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잘 나가던 탐사기자 최문호씨는 이 기사를 지키기 위해 KBS를 그만뒀습니다.”라며 최 기자가 왜 KBS를 떠났는지 자신의 페이스북에 설명했습니다.
 
기자가 기사를 위해 사표를 던지는 모습을 보면 참 지독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자라면 기사를 목숨처럼 여기는 일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친일파의 훈장 기록이 왜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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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친일파 재판 관련 신문 보도와 뉴스파타가 공개한 친일파 훈장 내역
 
‘전후 일본에 있어서도 정의에 반항한 간악한 무리들은 전범자로서 공직에서 추방되고 또 이미 단죄를 받았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해방과 동시 처단되어야 할 그들은 또다시 세력을 규합하여 정치적 힘을 만들어 새로운 승리자에게 아부하여 자기들의 죄상을 은폐하고 심지어는 과거의 경험을 되풀이하였던 것이다.’ (1949년 3월 26일 경향신문)
 
1949년 3월 26일 경향신문은 친일파의 반민특위 재판을 보도하면서 그들이 세력을 규합하여 자기들의 죄를 은폐하고 친일 행적을 또 재연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친일파들이 처벌은커녕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훈장까지 받으며 국가유공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마치 예견하는 듯한 글입니다.
뉴스타파는 2016년 220명이 넘는 친일인사들이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친일파 고발이 아닙니다. 우리의 삐뚤어진 자화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으로 남겨 후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입니다.
 
끈질기고 지독한 뉴스타파 기자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누가 헌법 정신을 위배하고, 반민족 행위자인지 쉽고 빠르게 알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뉴스타파훈장과권력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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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 전광판은 ‘좋음’인데 왜 숨쉬기가 힘들까

김정욱 2016. 08. 17
조회수 661 추천수 0
 
미세먼지·이산화질소 세계 꼴찌 수준, 전광판은 연평균기준과 비교해 '좋음'
서울시민은 발표농도보다 3배 나쁜, 도로변이나 지하상가는 7배 나쁜 공기 호흡
 
05552047.jpg» 미세먼지와 황사로 뿌옇게 흐린 서울의 하늘. 미세먼지를 많이 내뿜는 디젤차과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비중이 선진국 대도시보다 높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올해 미국 예일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이 세계경제포럼과 공동으로 발표한 환경성과지수(Environmental Performance Index 2016)를 보면,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오염도는 평가 대상인 180개국 가운데 173위였고 이산화질소 오염도는 꼴찌였다.
 
이들의 농도는 위성사진으로도 발표되었는데 과연 우리나라 하늘의 오염이 심하다는 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결과가 당연하다고밖에 볼 수 없는 이유가, 우리나라의 발전소 밀도, 수도권의 자동차 통행 밀도, 온실가스 배출 밀도가 다 세계에서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epi_2016.jpg» 2016년도 환경성과지수를 지도로 표시했다. 우리나라는 전체적으로 80위였지만 대기오염 분야는 꼴치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런 대기오염으로 인하여 수도권에서만 해마다 80만 명가량이 호흡기 질환을 앓고 그중 2만 명가량이 사망하며 이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은 12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의 도심 가운데에 설치된 대기오염 전광판을 들여다보면 거의 매일 공기가 좋다고 나와 있다. 올해 7월27일 오전 11시경 서울시청 앞에 설치된 대기오염전광판을 보니, 이산화질소 현재 오염도 0.029 ppm, 환경기준 0.100 ppm, 상태 ‘좋음’이라고 나타나 있었다. 
 
관심을 가지고 이 전광판을 들여다본 시민은 거의 매일 공기 ‘좋음’이라는 표시를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대기오염도가 세계에서 꼴찌를 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air1.jpg» 지난 7월27일 오전 11시께 서울 시청 앞 대기오염 전광판은 이산화질소 오염 0.029ppm이 '좋음'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그 시각 시청 앞의 이산화질소 오염도 0.029 ppm은 환경기준 0.100 ppm에 견줘 분명히 훨씬 낮다. 그러나 문제는 이 비교의 잣대가 올바르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이산화질소 환경기준에는 세 가지가 있다. 연간 평균치 기준은 0.03 ppm이고, 24시간 평균치는 0.06 ppm, 1시간 평균치는 0.1ppm이다. 
 
연간 평균치는 만성 호흡기 질환 피해를 고려하여 정한 기준치로서 말 그대로 오염도의 1년 동안의 산술평균치가 이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24시간 평균치와 1시간 평균치의 기준은 24시간 혹은 한 시간 동안만 이런 공기를 마셔도 병약자들이 위급한 상황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급성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정한 기준치로서 최악의 경우에도 이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정해진 기준치이다. 
 
전광판은 당연히 그 시간대의 오염도를 알려줘야 한다. 그러나 비교해야 할 기준은 급성피해를 막기 위해서 정해진 1시간 평균치 기준이 아니라 연평균 기준치와 비교를 해야 공기가 좋고 나쁨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정부가 ‘좋은 공기’라고 주장하는 0.029ppm의 공기를 1년 365일 마실 경우, 이는 연평균 환경 기준치에 육박하는 공기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이산화질소의 권고기준을 연평균 0.021ppm(40 μg/m3)로 정하고 있어서 이는 분명히 인체 건강상 좋지 않은 ‘나쁜 공기’이다.   
 
air2.jpg» 같은 시각 초미세먼지의 전광판. '좋음'이라 표기돼 있지만 세계보건기구의 기준과 견주면 안참 나쁜 상태이다.
  
마찬가지로 그 시각 시청 앞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27μg/m3로 나타났고 이를 1시간 기준치 50μg/m3와 비교를 하였는데, 이것도 연평균 기준치인 25μg/m3과 비교해야 마땅하다. 세계보건기구의 권고기준은 10μg/m3인데 이와 비교하면 분명히 한참 ‘나쁜 공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름 10μm 이하의 먼지(PM10)를 ‘미세먼지’, 직경 2.5μm 이하의 먼지(PM2.5)를 ‘초미세먼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는, PM10을 호흡기에서 걸러지지 않고 체내로 흡입되는 먼지(respirable particle)라고 부르고, 그중에서 특히 인체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먼지(PM2.5)를 미세먼지(fine particle)이라 부르는데 주로 PM2.5를 가지고 공기의 질을 평가한다.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오염도가 180개국 중에서 173위를 했다고 보도된 것도 우리나라의 용어로는 ‘초미세먼지’이다.) 
    
우리나라의 대기 환경기준은 대도시나 공업단지에 사는 사람들의 인체 건강피해를 고려하고 또 현실을 고려하여 만든 최소한의 기준이기 때문에 이 기준을 달성한다고 해서 좋은 공기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환경 정책을 잘하는 나라들에서는 국가 기준이 있지만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서 지역 환경기준을 설정하되, 총량규제를 엄격히 시행하여 현재의 오염 상태보다 더 나빠지는 사업은 대개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경기도와 제주도가 지역 환경기준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국가의 환경기준을 잘못 적용하고 있어서 마치 이 기준만 달성하면 좋은 공기가 보장되는 듯이 말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우리나라의 헌법 제35조에는 환경권이 명시되어 있어,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라고 되어 있는데 이 법이 실제로는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개발업자들에게 환경기준까지는 얼마든지 더 오염시킬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는 형편이다. 
 
05590923_P_0.JPG»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뜻으로 방독면을 쓴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들이 지난 6월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친환경자동차법에 포함된 클린디젤자동차 조항 삭제'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리나라의 대기 환경기준은 대도시나 산업도시에 적용되어야지 농어촌이나 관광휴양지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최근에 인천에 있던 주물공업단지가 충청남도 예산의 농촌 마을에 들어오려고 환경영향평가를 했는데, 공장이 들어서더라도 환경기준은 달성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그 보고서 내용은 엉터리지만 우리나라 법원은 서류가 참말인지 거짓말인지는 판단하지 않고 절차를 중요하게 본다고 예전에 석궁을 맞은 판사가 말한 적이 있다). 
 
주민들이 소송을 걸었고 대법원까지 가서 주민들이 패소했다. 주민들은 쾌적한 환경에서 살다가 공업단지 수준의 환경에서 살도록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는 분명히 농촌 주민들의 환경권을 무시했고 헌법을 위반한 판결이다. 인권이 존중되는 나라에서는 환경권이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아도 이 정도의 인권은 존중된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과연 우리나라의 대기오염 측정소에서 측정한 오염도가 국민이 숨 쉬는 공기를 대표하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에 서울을 대표하는 지점의 공기를 측정하려면 어디가 가장 적합하냐고 물어본다면 대부분의 시민은 사대문 안 도심이라든지, 강남의 번잡한 도로변 지역을 꼽겠지만 대기오염 측정소는 그런 곳에 있지 않다. 
 
많은 측정소가 녹지나 녹지와 인접한 지역에 붙어 있다. 예를 들면 한남동 측정소는 남산에, 불광동 측정소는 북한산에, 신림동 측정소는 관악산 자락에 붙어 있다. 
 
서울시민들은 그런 녹지 인근에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다. 전철과 버스를 탔다가, 찻길을 걷다가, 지하 주차장이나 지하상가에도 들리고, 직장에서 일하다, 집에서 잠을 자기 때문에 대기오염 측정소에서 측정한 공기를 마실 시간이 없다. 
 
air3.jpg» 서울시민들이 숨 쉬는 공기 오염도(이산화질소) 직업과 생활공간에 따라 대기측정망의 오염도보다 1.5배 내지 3배 더 높다. (출처: 조재현, 직업별 생활공간, 시간에 따른 이산화질소의 피폭량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2)
 
서울시민들이 실제로 숨 쉬는 공기의 오염도를 평가한 바에 의하면 정부에서 발표하는 대기오염도를 숨 쉬는 시민은 찾기 어렵다. 대개가 정부가 발표한 대기오염도의 1.5배 내지 3배 정도 더 오염된 공기를 숨 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길바닥이나 지하상가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숨 쉬는 공기가 가장 나빴다. 도로변에 가거나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에 오염도가 많이 올라간다. 나흘 동안 서울의 마을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이산화질소 오염도를 측정해 보았더니, 정부에서 발표한 서울시의 대기오염도보다 적게는 2.3배, 많게는 7.4배나 더 높았다. 
 
air4.jpg» 서울 시내버스로 이동 중 측정한 대기오염도. 대기오염측정망에서 측정한 오염도보다 2.3배 내지 7.4배 정도 더 높다.
  
우리나라의 공기가 나쁜 원인 중에는 분명히 중국에서 날아오는 오염도 있다. 그러나 서울의 도로변 오염도가 특히 높은 것은 분명히 서울의 교통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서울만큼 자동차 교통이 많은 도시는 찾기가 쉽지 않다. 서울은 자동차 교통이 45% 정도를 차지하는 데 반하여 도쿄와 빈은 자동차가 15%, 도보와 자전거가 25%를 차지한다. 
 
■ 세계 대도시의 교통 분담률
    
서울은 자동차 교통이 47%를 차지하는 데 비하여 도쿄는 자동차 교통이 16%, 자전거와 도보가 25%를 차지하고. 빈은 자동차 13%, 자전거와 도보가 25%를 차지한다.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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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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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7.jpg
 
대개의 대도시는 출퇴근 시간대에 80% 이상이 전철로 출퇴근하는데 비하여 서울에서는 40% 이상이 자동차로 출퇴근을 한다. 서울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전철과 버스 교통 체계가 잘 만들어져 있는 도시로 평가받는다. 
 
그런데도 자동차로 다니는 것이 더 편한 것이 또한 서울이다. 자동차로 다니면 전철을 이용하는 것보다 에너지는 9배가량 많이 들고, 이산화질소는 200배 이상, 먼지는 15배 이상 더 많이 나온다.
 
air8.jpg» 수송수단별 연료 사용량. 자동차는 기차의 거의 9배의 에너지가 들어간다.
 
air9.jpg» 수송수단별 대기오염 배출량 (승객 30인을 1㎞ 수송할 때의 오염배출량). 자동차는 기차보다 질소산화물 220배, 먼지 16배, 탄화수소 42,000배를 배출한다.
  
대기오염 중에서도 인체 건강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것은 단연 미세먼지이다. 미세먼지라고 해서 모든 미세먼지가 똑같은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성분의 미세먼지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흙먼지나 고등어를 구울 때 나는 먼지는 자동차의 배기가스나 석탄을 태운 매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것은 누구라도 숨을 한번 들여 마셔보면 그 차이를 금방 알 수가 있다. 
 
자동차 중에서도 디젤 자동차의 배기가스가 인체에 특히 유해하다. 미국 캘리포니아(South Coast Air Quality Management District)에서 2015년에 발표한 바에 의하면, 대기오염으로 인한 암 발병 중에서 디젤 자동차 배기가스의 미세먼지가 68%의 책임이 있고 나머지도 자동차의 책임이 크다고 하였다. 
 
미국에서 디젤 자동차의 점유율은 3% 정도밖에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디젤 차량이 절반을 넘어섰기 때문에 디젤 자동차로 인한 건강피해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흡연이 줄었는데도 폐암 사망률이 다른 모든 암을 압도하며 많이 늘어난 이유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제주도가 2030년까지 모든 자동차를 전기 자동차로 바꾸겠다는 등, 전기 자동차가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늘 한번 쳐다보고 숨만 쉬어 보면 다 공기가 나쁜 줄 아는데 그래도 계속 ‘공기 좋음’을 외치는 대한민국. 제발 자기 최면에서 빠져나와라. 그래서 진짜 공기 좋고 물 좋고 살기 좋은 나라 한번 만들어 보자.
 
김정욱/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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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로 60억 매출 올린 두 청년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08/18 08:37
  • 수정일
    2016/08/18 08:3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농업에서 길찾는 청년들 ①] 꼬마감자로 500억 원 매출 꿈꾸는 기업가, 록야 박영민 대표

16.08.17 21:27l최종 업데이트 16.08.17 21:27l

 

기사 관련 사진
▲ '꼬마감자'팀으로 창업대회에 참가 중인 록야 2015 농식품창업콘테스트 <나는 농부다> 대회 기간 중 만난 박영민 대표와 권민수 대표
ⓒ 남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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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에게 이야기합니다. '향후 10, 20년 안에 젊은이들이 가장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 분야는 농업이다'라고. 그 과정이 녹록지는 않지만, 취업에 쏟는 열정의 일부를 농업을 이해하는 데 할애한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난 7월 27일, 강원도창조경제혁신센터 입주기업 공간에서 만난 '록야'의 박영민 대표(33)는 자신감이 넘쳤다. 목소리에서는 젊은이의 힘과 열정이 느껴졌다. 그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노고가 헛되지 않을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록야(綠野)는 2011년 창업한 농업회사법인으로 감자를 유통해서 지난해 63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5년에는 "농식품창업콘테스트 - 나는 농부다"에서 우승한 벤처기업으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감자 재배농가와 식품업계에서는 활기차고 일 잘하는 청춘들의 기업으로 이미 유명했다.

꽃청춘, 농업에 뛰어들다

 

여느 벤처기업가들과 마찬가지로 처음 시작은 막막했다. 농업이라고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씨감자 기술을 전수했던 경험이 전부였던 박영민 대표는 국내에 돌아와 백수가 되었다. 함께하는 권민수 대표 역시 다니던 농업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실업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농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판로에 관심이 많았다. 제스프리, 선키스트처럼 단일 작목으로 성공한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그들은 감자에게 미래를 걸어 보기로 하고 창업을 했다. 강원도에서 자란 것도 영향이 있었지만, 다른 작물은 잘 몰라도 감자는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할 일이 없었죠. 불안한 감도 없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정말 많은 일들을 상상하고 계획했습니다. 감자 종서 생산부터, 농가들과 연대, 감자 가공식품까지 우리가 만든 브랜드로 생산자부터 소비자까지 감자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자는 원대한 꿈을 꿨죠. 벼 육묘장에서 꼬마감자를 만들자는 계획도 그때 세웠습니다."

10년쯤은 걸리겠지 했던 그들의 꿈은 불과 5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양구에서 종서를 생산하고, 제주부터 대관령까지 전국에 있는 감자 재배 농가들이 그들의 고객이 되었다. 꼬마감자 아이디어는 5년 후에 창업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회사의 자산도 가지게 되었다. 원주에 곧 완공될 예정인 록야의 사옥이다. 여느 청춘들처럼 젊은 패기 하나로 출발한 그들은 황량한 대지 위에 그들의 꿈을 쌓았다.

창업한 후 처음 3년 동안 집에 월급을 가져간 게 일 년에 서너 달에 불과했다. 한번 집을 나가면 두세 달은 농촌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농민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사실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십 년 정도면 농업에도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창업한 지 5년 만에 이 정도까지 왔으니 오히려 좀 당황스럽습니다."

박영민 대표와 권민수 대표가 창업대회에 들고나온 아이템은 '꼬마감자'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판매하는 작은 감자구이나 감자조림처럼 한입에 먹기 좋은 감자 시장을 목표로 하는 사업모델이었다. 꼬마감자를 찾는 기업의 수요는 늘어났지만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농가들이 없어 항상 공급이 달리는 품목이었다. 

두 사람은 '육묘장'에 주목했다. 육묘장은 벼의 모를 기르는 온실로 벼농사를 짓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있는 시설이었다. 내부에는 여러 층의 선반이 있어서 모판을 층층이 쌓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벼농사의 특성상 1년에 한 달 정도만 사용하고 나머지 기간은 비어 있는 데, 여기에 재배 상자를 이용해서 감자를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노지에서는 감자의 일부가 꼬마감자 크기로 생산되지만 토심이 얕은 재배 상자에서는 꼬마감자만 생산된다.

아이디어는 단순하지만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발상의 전환이었다. 큰 감자만 인정받던 시장에서 작은 것만을 생산한다는 아이디어는 단번에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젊은이들의 창업이라면 으레 ICT나 빅데이터 같은 트렌디한 아이템이 들어가 줘야 할 것 같다는 편견도 함께 깨뜨렸다. 젊은이들에게 영향력 있는 창업멘토인 씨엔티테크의 전화성 대표가 <스타트업 교과서>에서 강조한 것처럼 그들은 시장의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했고, 그들만의 독창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1억 원의 상금은 제대로 주인을 찾아갔다.

따뜻한 마음도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감자를 수확 중인 농민들 수확 현장에는 항상 록야의 직원들이 함께 한다.
ⓒ 박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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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씨감자 기술을 전수하는 일을 했다. 권 대표도 감자 회사에서 일했다. 둘 다 처절하게 실패했지만 감자가 충분히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들은 현장부터 시작했다. 그때까지 감자 시장을 주름잡는 기득권은 대부분 60대였다. 반면에 그들은 젊었다. 현장 경험은 부족했지만 자신들이 가진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 뛰어들 때는 대기업 구매 담당자를 편하게 하면 되겠다 싶었죠. 대기업 직원들은 문서작업에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서를 잘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현장에서의 대응도 당연히 빨랐죠. 우린 젊었으니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패기 하나로 기존의 공고한 시장에 끼어들긴 쉽지는 않았다. 거래처를 찾아가면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고, 농민들은 '애들이 뭘 하겠냐'며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때 그들은 '농민들이 돈을 벌게 하면 우리에게도 마음을 열겠지'라며 들판에서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마음 주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마음을 열면 그만큼 따뜻한 분들이 없다는 걸 그들은 이미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은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만 평, 이만 평 하는 농가들은 돈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농가들은 대개 천 평, 이천 평 정도 농사를 짓습니다. 이 농가들은 우리에게 물건을 다 넘기면 정말 돈이 안 됩니다."

그들은 농민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우리는 농가와 계약할 때 재배면적의 70%만 합니다. 이게 우리의 성공 비결인데요, 왕특 크기의 감자는 시장 가격이 높아 수익이 좋습니다. 농민들이 그 크기의 감자는 전부 골라서 시장에 팔게 합니다. 시장에서 가격이 나오지 않는 작은 사이즈만 골라서 계약재배 물량으로 우리가 가져갑니다."

청년 기업가는 자신들의 이익보다는 농가의 이익을 우선했다. 전체 수확량 중 30% 정도는 크고 품질이 좋은 감자가 생산된다. 이 왕특 감자는 시장에서 kg당 천 원 정도를 받는다. 반면에 그보다 작은 크기의 감자는 600~700원에 불과하다. 상인들은 전체를 가져간 후 큰 크기의 감자를 팔아서 수익을 남긴다. 그런데 이 수익을 농민들에게 넘긴 것이다.

"우리는 당장의 수익보다는 농가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감자만 팔겠다고 한다면 기존의 중간상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했겠지만, 우리에겐 더 큰 꿈이 있습니다."

그들의 사업은 농사의 근간인 씨앗부터 시작한다. 양구에서 생산한 종서를 농가들에게 공급한다. 그뿐만 아니다. 그들은 감자 산업 가치사슬 전반으로 사업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우리는 농민들이 정말 농사를 편하게 짓게 하고 싶습니다. 농사에만 전념해서 좋은 감자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좋은 농가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에서 사업의 성패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좋은 종자를 공급하고, 또 농자재를 공동으로 구매해서 싸게 공급하는 역할도 합니다. 지역마다 상황이 달라서 모든 자재를 공급하기는 어렵지만 비닐과 같이 모든 농가가 사용하는 자재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있습니다. 농민들과 우리는 운명공동체라고 느낍니다."

록야는 계약재배를 통해 농민들이 판로 걱정 없이 생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농업서비스 업체로 진화하고 있다. 최종 수요처인 식품기업에게는 믿을 수 있는 품질과 안정적인 물량을 공급하는 청년사업가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우리는 감자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입니다. 그런데 농민들은 감자만 재배하지 않습니다. 감자를 수확한 후에는 벼, 콩, 단무지용 무를 또 심습니다. 감자에서는 1년 치 농비를 뽑고, 후작물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자문합니다. 그런데 후작물이 판로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우리가 도와드립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을 돕다 보니 또 다른 사업 기회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박 대표는 농민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돕다 보니 자신과 같은 후발 주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보이더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이익을 극대화하여 사업을 조기에 안정화시키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사업기반을 만드는 데 더 큰 관심이 있는 듯했다. 젊어서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에 부러움도 들었다. 

농업이 청춘들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우리의 이야기는 농업의 미래라는 주제로 방향을 틀었다. 젊은이답게 그가 바라보는 농업은 내가 서 있는 농업과는 또 달랐다.

"국민들에게 농업은 떼쓰는 사람들, 고령화, 시대에 뒤떨어진 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런 이미지가 남아 있는 데 젊은이들이 올까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젊은 사람들이 농업에 뛰어들면 뉴스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관심 있게 들어준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입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이야기한다. 향후 10년 안에 흙수저 청춘들이 가장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농업이라고. 취업에 쏟는 열정의 일부만 쏟아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려면 농업의 본질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농업을 이끌고 가는 기업들은 농업의 현장을 건드리지 않고 마케팅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현장을 놓치면 지구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젊은 사람들도 농업에 들어오면 유통만 하겠다고 합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SNS를 하면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 큰 판을 생각합니다."

록야도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유통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통을 알아갈수록 어설프게 준비해서 낄 수 있는 판이 아니란 걸 느꼈다. 

"진짜 유통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아, 하는 순간에 망할 수 있다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매출액에 취하다 보니 빈껍데기만 남더라고요. 처음 하는 사람들은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소비자들이 사주면 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자신들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생각하면서 몸서리쳤다. 수업료는 컸다. 처음 1년 동안 1억 원 정도의 손해를 보았다.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유통은 원가관리라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일반 산업이랑 농업이랑 메커니즘 자체가 다르다는 걸 배웠습니다. 현장에서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다 까먹고 가는 게 농산물 유통이란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함께하는 농업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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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어스(Grower's) 첫 모임 스타트업과 농민들과 소통을 만들어 가는 그로어스 창립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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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청년들에게 농업에 대한 이해를 돕고, 더 많은 스타트업이 농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그로어스(Grower's)라는 커뮤니티 모임을 조직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모임은 모두 남이 만든 판이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는 그런 모임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젊은 사람들이 농업에 뛰어드는 데 꼭 성공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만약 실패하면 농업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나빠질 것 같습니다. 길잡이 역할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스타트업들에게 농업의 본질에 대해 보여주길 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현장에서 구르며 체득한 것을 나누고 싶어 했다. 그로어스에서는 농민과 스타트업을 같은 비율로 섞어 놓았다.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자 마음을 여는 것, 분야는 다르지만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 그곳에서부터 출발하고자 했다.

"우리 또래의 청춘들에게 농사지으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농업에만 빠지지 말고 농업 전후방을 두루 살펴보고 무엇이 농업에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고민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박 대표의 말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농업이 있다. 배경과 배움이 다른 청춘들에게 그들 나름대로 농업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다. 농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타산업 분야에서 배운 지식이 결합하면 어떤 '케미'를 만들어 낼지 벌써 가슴 설레인다. 그런 면에서 농업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농업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기성세대들이 농업의 미래를 더 어둡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나 역시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꼬마감자에 승부를 걸다

"우리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마흔 살이 되면 5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를 만들자고 결심을 했습니다. 지금 추세를 보면 그보다는 더 빨리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들의 포부가 그리 무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최근에 록야는 아산시에 소재한 들녘경영체와 함께 벼 육묘장에서 꼬마감자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감자 가공공장은 아산시에서 설치하고 운영은 록야가 맡게 된다. 록야는 땅과 시설에 돈이 묶이지 않아서 좋고, 지자체는 그 지역에서 생산한 감자를 판매할 수 있어서 좋다. 록야는 그들이 꿈꿔왔던 감자 전문 브랜드를 이번 기회를 통해 출범시키게 될 것이다. 

이 사업모델이 성공한다면 록야와 함께 우리나라 감자 재배는 또 한 번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성공은 젊은이들에게 우리 농업에 뛰어들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심어주는 것이라서 더욱 반갑다. 그들은 농업이 낙후되었다고 외면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새로운 기회의 땅을 찾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가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runch.co.kr/@ecotown)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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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쩌렁쩌렁 울린 사드반대, ‘통일로GO' 함성

준비위, 북과 해외의 청년학생들에게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제안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 
기사입력: 2016/08/17 [01:4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6‘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 청년학생본부

 

▲ 2016 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 청년학생본부

 

▲ 2016‘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노래패 우리나라와 청년들의 뜨거운 합동무대     © 청년학생본부

 

▲ 2016 '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6.15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 전준호 상임대표의 대회사, 이 행사에서 북과 해외의 청년학생들에게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을 제안하였다.     © 청년학생본부

 

광복 71주년을 맞아 14일 늦은 밤부터 15일 새벽 동이 틀때까지 서울시청광장에서 ‘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이 개최되었다.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준비위원회(이하 통문한준비위)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6.15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 전준호 상임대표의 대회사와 통일선봉대·통일대행진단 환영식,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통일무도회 등이 이어졌다.

 

특히 이 행사에서 북과 해외의 청년학생들에게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을 제안하였다.

 

통문한준비위가 주최, 주관하는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이하 통문한)은 통문한준비위 참여단체들의 율동 및 노래공연과 노래패 '우리나라' 등이 무대에 올라 청년학생과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 2016‘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 청년학생본부

 

통문한준비위에는 6.15남측위 청년학생본부 소속단체인 대한불교청년회,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 원불교청년회, 천도교청년회, 통일맞이청년위원회 늘봄, 한국기독청년협의회,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한국대학생문화연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한국청년연대,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외에 대안대학 청춘의 지성, 대학생겨레하나, 동행실천단, 사이다실천단, 평화나비, 흙수저당이 참가했다.

 

통문한준비위는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제안문’을 통해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로 민족경제와 평화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최근에는 우리 국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미국의 이익만을 위한 사드가 배치된다고 발표되며 한반도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며 “민간차원의 교류와 협력까지 전면적으로 차단되어 남북관계는 역대 최악의 상황이며, 한반도에는 또다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북측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정부, 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 제안에 대해 “북측과 해외측에서는 연석회의를 위한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남측 정부의 대결정책으로 인해 815에 즈음한 연석회의는 성사가 불가능해졌다”며 “남측 정부는 외세와 손을 잡고 대북대결정책을 벌일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나아가 “당면한 한반도의 위기상황의 해법은 외세와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로 가는데 있다”고 제언했다.

 

▲ 2016‘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 청년학생본부

 

통문한준비위는 “우리 청년학생들은 조국이 분단된 이래로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행동해왔다”며 “우리 남측의 청년학생들은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을 통해 통일세대로서 우리 청년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대단결의 장을 마련하길 기원한다. 그를 위한 실무접촉을 빠르게 진행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통문한준비위가 주최·주관한 이날 행사는 전국에서 모인 약 1000여명의 청년학생과 시민들이 함께하며 통일을 향한 뜨거운 열기로 새벽까지 이어졌다.

 

▲ 2016‘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 청년학생본부

 

 

 다음은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만당 공개 제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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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과 해외 청년학생들에게 드리는 공개제안문]

 

한반도 평화와 자주통일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담아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을 제안합니다.

 

오늘 우리는 광복 71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광복 71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오늘, 이 땅의 긴장은 날로 고조되고 있고 조성된 정세는 엄중합니다.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로 민족경제와 평화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최근에는 우리 국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미국의 이익만을 위한 사드가 배치된다고 발표되며 한반도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사드배치에 대해 북은 물론이거니와 중국과 러시아까지 강력하게 반발하고 상황입니다. 
거기에 더해 민간차원의 교류와 협력까지 전면적으로 차단되어 남북관계는 역대 최악의 상황이며, 한반도에는 또다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8월 말 한미합동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UFG)을 앞두고 한반도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8월 22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훈련을 두고 한미 당국은 연례적인 훈련이라 말하지만,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은 북의 핵관련 시설을 비롯한 주요기관을 타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연습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북미, 남북간의 모든 대화 채널이 단절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조그만한 충돌이라도 발생한다면 전쟁으로 번지는 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상황입니다. 

 

최근 북에서는 광복 71주년 8.15에 즈음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정부, 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를 제안했습니다. 남측의 많은 단체들과 인사들은 북측의 이번 제안이 경색, 파탄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미 북측과 해외측에서는 연석회의를 위한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남측 정부의 대결정책으로 인해 815에 즈음한 연석회의는 성사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남측 정부는 외세와 손을 잡고 대북대결정책을 벌일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 땅의 현재 세대이자, 미래를 책임질 주역인 우리 청년학생들은 당면하여 조성되어 있는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수 없습니다. 
당면한 한반도의 위기상황의 해법은 외세와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로 가는데 있습니다.

 

만나야 통일입니다. 
오늘 광복 71주년을 맞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에 모인 우리 남측의 청년학생들은 북측과 해외측의 청년학생들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해 남북해외청년학생통일한마당을 제안합니다.

 

우리 청년학생들은 조국이 분단된 이래로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행동해왔습니다. 남북해외 3자가 만나는 공동행사를 성사시키기 위해 감옥행을 마다하지 않고 북녘으로 가기도 했으며,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에는 어떤 세대와 계층보다 남북해외 청년학생들의 공동행사를 통해 평화, 통일의 분위기를 고취시키는데 청춘의 열정을 쏟아왔습니다.

 

오늘 우리 남측의 청년학생들은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한마당을 통해 통일세대로서 우리 청년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대단결의 장을 마련하길 기원합니다.
그를 위한 실무접촉을 빠르게 진행했으면 합니다.

 

정의롭고, 애국의 열정이 가득한 북과 해외 청년학생들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민족의 기둥이자 통일의 주축세대인 남북해외청년학생들이 평화통일을 위해 더욱 분연히 떨쳐나섭시다.

 

                                            2016년 8월 15일
                남북해외 청년학생 통일문화한마당을 염원하는 남측 청년학생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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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모저모]

 

▲ 2016‘광복 71주년 8.15청년학생통일문화한마당'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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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반드시 사드에 대응할 것이다”

“중국은 반드시 사드에 대응할 것이다”

남문희 기자  |  bulgot@sisain.co.kr
 

 

 

사드 배치를 계기로 한반도는 전무후무한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냉전 해체 후 짧은 평화 시대가 끝나고 말로만 떠돌던 신냉전의 문턱에 갑자기 다가서게 된 것이다. <시사IN>은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가 새롭게 진입하고 있는 미래를 예측하고 해법을 모색해보기로 했다. 그 첫 순서로 김흥규 아주대 정외과 교수 겸 중국정책연구소 소장의 진단과 처방을 소개한다.

사드 배치 선언 이후 나온 중국의 반응을 어떻게 보고 있나.

아직까지 특별히 큰 반응을 보인 것 같지는 않다. 국내 일각에서는, 중국이 대응 수단도 마땅치 않고 의지도 크지 않을 것이라 한다. 또 사전 연구 결과 보복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평가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정책 결정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각 부처가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당사자 의견도 취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응이 미흡하다고 해서, 중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리라거나 대응 수단이 적을 거라고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또한 중국은 사드를, 미국이 세계전략 차원에서 추진하는 재균형 정책과 대중국 압박정책의 일환으로 파악한다. (사드를) 미·중 간 전략 경쟁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대응할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지도자가 된 이후 한국에 대한 정책을 ‘친선혜용(親善惠容)’이라는 우호적 주변 외교정책 차원에서 추진했다. 전통적 사고를 고수하는 부류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 편향 외교에서 한국에 우호적인 외교로 방향을 전환했는데, 중대한 좌절을 맞보게 됐다. 시 주석 차원의 대응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김흥규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미국 미시간 대학 박사(국제정치학). 현 아주대 정외과 교수 겸 중국정책연구소 소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외교부 등 정책 자문위원. 저서로 <시진핑 시기 중국 외교안보> 외 다수.  
ⓒ시사IN 조남진
김흥규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미국 미시간 대학 박사(국제정치학). 현 아주대 정외과 교수 겸 중국정책연구소 소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외교부 등 정책 자문위원. 저서로 <시진핑 시기 중국 외교안보> 외 다수.

종합적 대응 방안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미 대구의 ‘치맥 행사’나 한류 스타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는 등 인적·문화적 교류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제재가 시작된 것 아닌가?

이번에 베이징 갔을 때 한반도 분야에서 상당히 고위급 정책 결정 라인에 있는 분으로부터 사드와 관련한 중국의 종합적 대응 리스트가 완성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에 사드를 배치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와 조치에 대한 점검이 끝났다는 얘기다. 아직 한국 측의 구체적 행동이 다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상황을 봐가면서 리스트대로 차근차근 대응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전에 이미 한국 방문객 규모를 축소하거나 자제시키는 조치는 취해지고 있다. 중국 여행사들에 한국 여행 자제 통지가 내려간 걸로 알고 있다. 중국 단체나 지방정부의 준자발적인 여행 자제 조치들도 산발적으로 있다고 한다. 한국인 입국자에 대한 검증도 강화하고 있다. 행정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도록 하는 조치들이 이미 취해졌다. 한편 중국 측 비중 있는 인사들의 한국 방문을 자제시키거나 절차를 엄격하게 만드는 조치들도 취해지는 걸로 안다.

종합 리스트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나?

추후 중국이 고려할 수 있는 조치로는 인적 교류와 문화 교류에 대한 제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비관세 장벽 따위로, 스탠더드(기준)를 바꾸고 통관 절차를 까다롭게 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들에 대한 조치도 있을 것이고, 특히 사드 제작사인 록히드마틴과 방산 협력으로 연결된 기업들이 집중 타깃이 될 것이다. 서해의 해상경계선과 관련해 그동안 한·중 어업협정에서 합의한 중간선을 묵시적으로 인정해온 관행도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한국과 관련된 방공식별구역을 재설정하고, 가거초와 이어도의 해양과학기지를 폐쇄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어도 해상에 대한 점유 시도도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군사적인 조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 배치될 사드가 미일의 MD(미사일 방어) 체계의 일부라고 중국이 확신한다면 (유사시) 제1차 타격 대상이 될 것은 확실하다. MD 체계를 무력화하려는 또 다른 군비경쟁, 즉 중국의 또 다른 MD라든가 공격무기 배치, 이와 동시에 북한 카드의 활용에 대해서도 고민할 것이다. 현재 유엔 수준의 대북 제재는 계속한다는 방침이지만 (중국에 의한) 제재 효과는 크게 약화될 것이다. 북·중 관계 개선으로 우리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중국 진출 대기업까지 타깃이 된다면 우리 경제에 혼란이 초래되지 않을까?

그것만이 아니다. 내년 만료되는 64조원(3600억 위안) 규모의 한·중 통화 스왑을 중국이 연장해주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취약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될 것 같다. 지금 우리 경제는 어느 순간이라도 외환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 위험성이 훨씬 높아지게 될 것이다. 중국은 이처럼 카드가 많다. 일본도 견뎌냈는데 한국은 왜 못 견디느냐는 말도 있는데 일본은 세계 3위 경제 규모에 이미 동남아 등지로 위험을 분산하는 등 대비해왔다. 일본의 대중 무역 의존도가 약 20%라 하지만 GDP 중 무역 비중이 낮아서 중국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GDP의 4% 미만이다. 그런데 한국은 대중 무역 의존도가 25%(홍콩까지 치면 30%)다. 더욱이 GDP 가운데 무역에 의존하는 비중 역시 80%에서 110%(실질 GDP 기준으로 추산한 듯-편집자)에 달한다. GDP의 30% 가까이 중국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가 거의 90%라고 하지만, GDP 내 무역 비중은 20%밖에 안 된다. 중국이 북한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들을 하는데, 중국에 대한 취약성이나 민감도는 한국이 훨씬 높다.

서해의 해상 경계와 관련해 기존의 중간선이 아니라면 중국이 제시할 새로운 기준선은 뭔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중국은 역사적 연원이나 대륙의 크기, 대륙붕의 사이즈를 고려해 경계선 설정을 주장해왔다. 북한과 중국의 경우를 보면 신의주에서 직선으로 내려오는 선이 해상 경계의 기점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식으로 할 경우 대륙붕이 거의 목포 앞바다까지 오게 된다. 중국이 자신들 뜻을 관철하고자 한다면 충남이나 목포 앞바다에 수시로 중국 군함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서로 자신이 주장하는 영해선을 관철하기 위해서인 만큼 힘이 있으면 밀어낼 수 있지만 주권 문제로 다루기가 쉽지 않다. 곤혹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다.

어느 정도나 더 중국 쪽으로 가게 되나.

기존 중간선에서 우리 쪽으로 절반 정도 더 들어오고, 서해 전체로는 3분의 2 정도가 될 거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8월4일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 앞에 비자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상용 복수비자를 받는 것이 전보다 어려워졌다.  
ⓒ연합뉴스
8월4일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 앞에 비자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상용 복수비자를 받는 것이 전보다 어려워졌다.

국내 일부 논자는 한·중 간 경제관계가 부품 공급 등으로 얽혀 있고, 최근 남중국해를 둘러싼 국제사법재판소 판결 때문에 중국이 한국까지 적으로 삼기는 부담스러울 거라고 주장한다.

일견 타당성이 있다. 중국은 한·중 간의 상호 의존 관계를 통해 한·미 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는 미국 중심 국제질서에 나름 상징성도 가진다. 따라서 한국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조치를 취해나가고 싶어 할 것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그런 걸 과신하고 한국이 앞장서서 한·미 동맹을 중국을 억제하는 지역동맹으로 전환시키려 한다는 인상을 중국이 받는다면 반드시 반응할 것이다. 또 한·중 경제 관계에서 과거엔 중국이 한국의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며, 심지어 경쟁 관계이기도 하다. 중국은 (한국에 대한) 대체재가 있지만 한국은 중국 시장 외에 없다. 이미 중국은 한국이나 북한과의 관계를 동일하게 ‘강대국 대 약소국’ 관계로 보고 있다. 약소국이 강대국에 맞서면 대가를 치르게 해준다는 게 시진핑 주변의 전략적 사고이다.

지난 1월6일 북한 핵실험 이후 박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통화가 불발된 것이 사드 배치 선언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대북 제재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바로 그 시점에 왜 하필 사드 문제를 이슈화한 건지,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국 내 사드 배치 추진 그룹에게는 몇 가지 다른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첫 번째, 미국 내에서 한·미 동맹의 전략적 가치가 점차 약화되는 추세다. 대선 국면의 신고립주의가 그렇고, 최근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동북아 군사력을 재편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북한의 역량은 강화되는데 우리는 마땅한 대응 수단도 없고, 미국이 동맹에 대해 어떤 신뢰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버림받기 싫은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아직 미국이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자이고 또 공세를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제1강자 편에서 우리 생존과 안위를 추구하는 게 낫다는 외교안보 라인 일부 주류의 사고가 반영됐을 것이다. 두 번째, 일부 민족주의자 그룹에서는 추후 북핵 대응을 위해 미국의 전술 핵무기를 들여오기 위한 사전 신뢰 구축 차원에서 사고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현 상황을 역전시키거나 우리 안보를 담보할 수 있는 조치는 결국 한·미 동맹의 강화라는 것에 여러 그룹의 생각이 일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정작 오바마 대통령은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 가운데 사드로 인한 대북 외교 실종에 비판적인 사람도 있다고 한다.

국무부나 특히 오바마 자신도 미·중 관계를 협력적으로 운영하면서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2015년 말부터 미·중 관계가 협력보다는 경쟁 쪽으로 바뀐 것 같다. 중국이 급격히 떠오르자 미국 내 초조감이 강화되면서 지금이 중국을 밀어붙여야 할 시기라고 미국 주류들이 판단한 것 같다. 한반도 정책이나 북핵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재조명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과 협력해 북핵 문제를 관리하는 등 협력적 미·중 관계로 가야 한다는 국무부 측 목소리가 약해지는 듯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환구망 갈무리</font></div>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왼쪽)는 한반도 사드 배치를 비난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인터넷판인 <환구망>(위)에서는 배우 박보검이 중국을 모욕하는 광고를 찍었다며 온라인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환구망 갈무리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왼쪽)는 한반도 사드 배치를 비난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인터넷판인 <환구망>(위)에서는 배우 박보검이 중국을 모욕하는 광고를 찍었다며 온라인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한반도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이어 ‘제3의 전선’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전략과 지정학을 놓고 보면 한·미 동맹을 북한의 핵 위협뿐 아니라 더욱 당면한 미국의 국가 이익인 대중국 관계에도 투입하고 싶어 할 것이다. 당연히 한·미 동맹을 지역동맹화하면서 반중국 동맹으로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사드는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중국은 그 함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지금 막 랜드 연구소에서 미국의 새로운 전쟁 계획에 대한 보고서가 나왔다. 상대방의 목표를 순식간에 타격하는 전쟁 방식은 미·중 간에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대신 오래 지속되면서 간헐적으로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방식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중국의 ‘반접근·영역거부(A2AD:Anti-Access and Area Denial) 전략’에 대한 대비를 해상뿐 아니라 육상에서도 해야 한다는 것인데, 바로 육상에서의 충돌과 사드 배치가 관련돼 있다고 본다. 즉 사드를 육상의 A2AD 견제용으로 만들어가려는 것 같다. 한국은 사드를 북한 대비용이라고 하지만, 중국은 앞으로 진행될 미·중 전략 경쟁에서 한국이 과연 독립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다.

성주는 시작에 불과한 것 아닌가?

7월8일 발표 내용은 미국 전략가 시각에서는 불만스러울 것이다. 대북용으로 사드 한 포대를 미국 돈으로 배치하고 종말단계 레이더만 도입해 한 방향으로 고정시킨다고 합의했다. 미국이 결코 원치 않는 합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일단은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앞으로는 기능과 운용 측면에서 유연성을 확보하려 노력하면서 추가 배치를 추진할 것이다. 기존 미·일 MD에 통합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비용도 한국이 대도록 할 것이다. 이번 합의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래도 내년 말 배치하는 것은 미국이 비용을 댄다는 것인데, 아직 예산 책정도 안 됐다고 한다.

미국도 곤혹스러울 거다. 원래는 올해 말쯤 사드 논의를 시작해 내년 초쯤 결정하고 내년 말에 한국으로 들여오는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국내 안보 전문가들도 9월4일 대통령의 방중 스케줄이 있고 그때 시진핑 주석도 만나게 돼 있어서, 그 후에나 (사드 관련 결정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훨씬 앞당겨졌다. 그 배경엔, 4월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는 바람에 당초 시나리오대로 갈 경우 사드 배치가 물 건너갈지 모른다는 판단이 작용한 듯하다. 내년은 대선 국면과 맞물려 더욱 어려워지리라고 봤을 것이다. 그래서 사드 배치 추진파들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마침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 성공이 명분을 만들어줬다. 미국도 총선 결과를 보면서 한국 측이 주장하는 ‘사드의 한반도화’에 일단 타협했지만,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노력은 차기 정부에서도 계속할 것이다. 이 지점이 한·중 관계를 푸는 접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주는 너무 남쪽이어서 수도권은 물론이고 평택 미군기지조차 방어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레이더 기능이 사실 더 중요하다. 백두산 뒤쪽 중국 퉁화 시에 둥펑(DF) 계열 미사일 기지가 있다. 사드의 레이더 탐지거리가 600㎞이지만 조정하기에 따라서는 (퉁화 시 미사일 기지까지)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더욱 우려하는 점은 성주에 배치될 사드보다 앞으로 미국이 중국의 A2AD를 차단하는 전략의 일부분으로 사드를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다. 또한 한·미 연합군의 전쟁 계획에 따르면, 유사시 미군을 어떤 형태로든 보호해서 다시 반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주 이남의 기지들은 유사시 증원 물자나 인원을 관리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성주 외 다른 미군기지들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앞으로 사드를 더 들여올 명분이 된다. 이 경우 한국의 안전을 위한 것이므로 한국이 비용을 대라고 할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7월13일 저녁 성주군청 광장에 군민 300여 명이 모여 사드 배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7월13일 저녁 성주군청 광장에 군민 300여 명이 모여 사드 배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 정찰위성이 이미 중국을 샅샅이 보고 있는데 중국이 사드에 이토록 민감한 이유는?

정찰위성으로 보고 있지만 만에 하나 놓치거나, 훨씬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더욱 정확성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핸드폰 기지국이 많을수록 잘 터지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리고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사드의 기능 확대와 추가 배치로 베이징 뒤에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기지가 노출되는 상황이다.

그동안 파격적인 친한(親韓) 행보를 보였던 시진핑 주석이 사드 배치로 타격을 받아 어려운 처지가 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이런 점이 중국의 대응에 영향을 미칠까?

분명 그런 측면이 있다. 중국 권력 구도가 대단히 미묘하고 민감하다. 시진핑 주석이 공청단 계열을 교체하고 세력 약화 조치를 취하는 중에 사드 문제가 터졌다. 그의 대(對)한반도 정책에 타격을 주고 권위와 정당성에 흠집을 낼 수 있어 국내 정치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치를 취하고자 할 것이다. 시진핑 자신이 이 문제에 너무 깊이 들어왔던 점도 그냥 넘어가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수차례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설득하려 했는데, 한국 정부가 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정면으로 거부하는 조치를 취한 셈이 돼 대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성주 군민의 저항, 중국의 반발 등으로 배치를 철회할 가능성은 없을까? 아니면 닥쳐올 재앙을 최소화할 방안은 뭐가 있을까?

철회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 때문이다. 두 번째로 추진 그룹들은 이 시기를 놓치면 한·미 동맹이 중요한 타격을 입고 또다시 붙들 기회도 많지 않다고 우려할 것이다. 현재의 정부 정책 결정 과정과 권력 구조 아래서는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현재 합의한 것은 사드의 한반도화라는 점이다. 이것을 어떻게 잘 유지할 수 있는가, 그것을 변경하려는 시도에 대해 제도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사드 추가 배치의 경우, 비용이 엄청나게 들기 때문에 반드시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절차를 제도적으로 합의하고 지킬 수 있는 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에도 사드가 대(對)북한 용도라고 주장할 명분이 된다. 또 미국에 대해서도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나름 성의를 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접점이 될 것이다.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기초는 경제적 협력의 굳건함에 있다. 그것이 약해지면 중국에도 도움이 안 된다. 한국 경제가 약화되면 미국이 필요로 하는 시설이나 무기들을 사줄 수 없기 때문에 한·미 동맹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내는 게 한·미 동맹에도 좋고, 한·중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녹취 도움·김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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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 쓰고 있는 성주 ‘사드반대 투쟁’


[현장취재]‘사드배치’ 발표 한 달여… ‘투쟁’이 ‘일상’이 된 성주군민들
▲ 8.15광복절에 성주군에선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군민들 '815인 삭발식'이 진행됐다.

“어디 간다꼬? 이거 달고 가야지. 좋은 거이니끼네.”

성주군청으로 가는 길, 낯선 남자에게 파란 나비리본을 스스럼없이 달아준다. “나도 쫌 이따가 가게 문 닫고 가 볼끼라.” 카톡방 ‘1318+’에서 아이디 ‘주형맘’이 달아주었다. 가슴에 리본하나 달았을 뿐인데 취재 온 기자가 아니라, 성주군민들 집회에 함께하러 온 ‘외부인’ 같은 묘한 이 기분은 뭘까. 군민들은 이렇게 성주를 찾는 모든 이를 사드반대 투쟁에 참가시키고 있었다.

▲ 성주 '유림'에서 5명과 여성 신청자 9명이 삭발을 한채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삭발 결심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머라 카노? 삭발 이기 머라꼬. 삭발 아이라 내 목이라도 내놀끼다.” 사드반대 ‘815인 삭발식’에 참여한 홍영옥(64) 주민은 걱정이 돼 건넨 질문에 버럭 화를 냈다. 어떤 결심으로 이 싸움에 임해 있는지 모르는 게 어이없단 표정이었다. 기자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지난 15일 성주읍 ‘성밖공원’에선 815인 삭발식이 진행됐다. 그런데 이날 실제 삭발을 한 성주군민은 모두 908명. 8.15광복절에 맞추기 위해 815명으로 제한했지만 접수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그보다 100명 가까이 더 신청한 것. 여성도 5명으로 한정했는데 11명이 접수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니라’ 효경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을 외우던 유림(儒林) 회원들도 5명이 접수했다. 908명의 삭발식은 예상과 달리 겨우 30여분 만에 끝났다. 대구경북 미용사협회 소속 70여명의 미용사가 자원봉사를 와준 덕이다.

‘단일장소 최다인원 동시 삭발’에도 도전한 이날 삭발식엔 한국기록원에서 공식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 한국기록원에서 전국 동시 최다인원 삭발을 기록하기 위해 성주를 찾았다.

성주군민들의 ‘일상생활’이 돼버린 투쟁, 하지만… 

815인 삭발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을까? “그냥. 8월엔 뭘 해볼까 하다가… 머리나 깎아 볼까? 815명이. 8.15광복절 때. 이렇게 하게 됐어요” 뭔가 특별한 기획 배경이 있지 않을까, 잔뜩 기대했지만 이번에도 빗나갔다. 파란나비 리본 때도 그랬다. 누군가 ‘사드가 들어오면 우리모두 죽게 되니 검은 리본을 달자’고 제안했고, ‘검은색은 좀 그러니, 평화를 상징하는 파란리본을 달자’는 참신한 수정 제안에 바로 삼삼오오 모여 리본을 제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장례식도 그랬다. “내일 새누리당 지도부들 온다는데 우리 장례나 확 치라뿌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룻만에 장례는 준비됐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래서 성주군민들의 ‘일상생활’이 돼버린 투쟁. ‘위대하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그런 집체행위를 기자는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도 왜 하필 광복절에 이런 항의행동을 하기로 결정했는지가 궁금했다. “너무 닮지 않았어요?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광복절에 미국의 압력으로 설치되는 사드를 반대하고 있잖아요. 광복이 저절로 온 게 아니잖아요. 우리도 사드를 배치한 미군의 폭정에서 벗어나려면 싸워야죠. 목숨 걸고. 광복절은 우리 민족의 생명과 안전을 되찾은 날이죠? 이런 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사드반대 투쟁을 하니 얼마나 뜻깊어요. 그렇죠?” 역시 ‘우문’에 ‘현답’이였다. 지난달 23일 청계광장에서 서울시민들에게 ‘성주군민들이 선거 때마다 1번만 찍어 죄송하다’고 말한 전영미 성주투쟁위 부위원장의 대답이었다.

▲ 사드 반대를 새긴 독특한 삭발을 한 주민도 있었다. [사진출처 성주투쟁위원회]

성주군이 생긴 이래 최다인원, 8천여 명이 모인 이날 삭발식에선 “성주가 대한민국이다”는 구호가 높이 울려 퍼졌다. “한번 결정된 성주에서 사드배치를 철회시키면, 대한민국 그 어디에 사드를 설치하겠어요? 그래서 5만 성주군민이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사드를 반드시 막아낼 겁니다!” 앰프를 진동하는 사회자의 목소리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내 땅에서 ‘난민’이 된 우리 일상을 찾아주십시오”

“7.21상경투쟁, 평화나비리본, 새누리당 장례식, 10만 백악관 청원, 815인 삭발”을 성주투쟁 5대 사건으로 꼽은 이재동 성주투쟁위 집행위원장은 승리를 확신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승리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외부세력’ 논란이 있을 때 (성주군민이)직접 상경해 우리 스스로 외부세력이 돼 논란을 잠재웠다. ‘님비’로 몰릴 때도 성주배치가 아니라 한국배치를 반대한다는 뜻으로 평화나비리본을 달았다. 새누리당의 오만함은 장례식으로 응징했다. 무엇보다 사드는 미국과 주한미군의 전쟁무기임을 알리기 위해 백악관에 청원서를 전달하는 뜻깊은 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오늘 광복절 815인 삭발식으로 5만 성주의 결심이 5천만 대한민국의 평화의 날개가 됐다.”

“성주군민들의 일상을 찾아주십시오. 지난달 13일 날벼락처럼 성주 사드배치가 발표되고 한 달. 우리 성주 군민들은 일상을 잃어 버렸습니다. 여름 한철 마을 주민들끼리 관광버스를 타고 나들이 한번 가는 즐거움을 잃어 버렸고, 방학을 맞은 아이들 데리고 계곡으로 물놀이 가는 기회도 놓쳐 버렸습니다. 올림픽 경기도 눈에 안 들어오고, 저녁 먹고 촛불문화제에 가는 게 새로운 일상이 돼버렸습니다. 참외농사를 짓던 평화로운 고장 성주는 전쟁터가 되었고, 성주군민은 내 땅에서 난민이 돼버렸습니다.” 삭발을 한 어느 성주군민이 대통령께 띄운 호소문의 일부이다.

일상을 잃어버린 성주군민들. 한국민을 ‘대표’해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한 달 넘게 벌이고 있는 이들의 호소를 먼저 귀담아 들어야 할 사람은 전국의 이웃사촌들 아닐까. 

성주=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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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과 사드, 송로버섯 오찬과 전기료 폭탄

 
 
[칼럼] 문정왕후-윤원형, 박근혜-이정현에게 백성은 무엇인가?
 
임두만 | 2016-08-16 11:50: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늘(15일)은 광복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가면서 필요하고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 71주년 경축식 경축사를 통해서다.

▲독립유공자 초청 청와대 만찬을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 이미지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그는 또 “이 땅의 평화는 물론,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진정한 광복은 8천만 민족 모두가 자유와 인권을 누리며, 더 이상 이산의 아픔과 고통이 없는 통일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한반도에서 핵과 미사일, 전쟁의 공포를 걷어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사드 배치 역시 북한의 무모한 도발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자위권적 조치였다”며 “저는 국민의 생명이 달려있는 이런 문제는 결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방법이 있다면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반대파들을 윽박질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허공을 때리는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지금 누구도 이러한 박 대통령의 ‘충정’을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충정’으로 보질 않는다. 특히 작금 터져 나온 ‘송로버섯 요릿상’ 이야기는 폭염에 찌든 서민들의 복장만 더 터지게 한다.

문화는 늘 시대를 이야기 한다. 문화가 말하는 시대 이야기는 미리 계획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놀랍도록 그 시대에 딱 맞는 드라마와 영화들이 등장, 시청자와 권력자를 함께 깨운다.

현재는 MBC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옥중화’가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조선 명종시대 감옥을 바탕으로 당시 권력자와 서민들의 모든 삶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 즉 ‘전옥서’라는 당시의 감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 군상들의 작은 권력을 둔 이전투구와 불법비리, 여기에 당대의 권세가인 윤원형과 그의 부인 정난정의 권력과 금력을 향한 욕심과 패역, 더 나아가 권력 최상층인 명종이 모친 문정왕후와 최고 권력을 놓고 겨루는 권력쟁투까지 매우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이 드라마는 몇 주 전 윤원형의 부인 정난정의 생일잔치를 통해 상당한 메시지를 던졌다. 즉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고, 전옥서에 감금된 죄수들은 하루 멀건 죽 한 그릇도 못 먹이는 현실인데 정난정은 사흘간의 생일잔치를 벌이며 벼슬을 노리는 전국의 토호들에게 뇌물을 받기에 여념이 없다는 내용을 방송했다. 그리고 이 방송은 정난정의 최후를 미리 예감케 했다.

이뿐 아니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명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으로 국가의 대사를 장악했던 문정왕후는 명종이 성장하여 친정체제로 넘겨준 뒤에도 실제 뒷전에서 모든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 이에 명종은 반발하며 어머니의 권력행사를 제어하려 하지만 문정왕후는 윤원형 등 조정을 장악한 소윤일파를 앞세워 왕의 친정을 방해한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는 대비의 봉은사 중건 사건을 놓고 또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즉 앞의 정난정 생일사건에서 그린 대로 것과 유사하다. 당시 흉년에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다. 이에 국고가 비어 있으므로 아무리 천하의 대비라도 대형국사를 진행할 수 없다. 그러자 대비는 정난정 등을 이용하여 불법적으로 뒷전에서 긁어모은 ‘불의한 돈’으로 봉은사 중건을 꾀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국가의 세금을 책임진 ‘평시서’를 통해 상인들을 쥐어짜는 모습도 그려낸다.

이 드라마는 이처럼 당대의 권력자들이 어떻게 망해가고 있는지를 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권력이 어떤 과정을 통해 민심을 잃어가는지, 또 민심은 이미 떠났는데 이를 알지 못하는 불의한 권력자는 어떤 탐욕을 부리는지, 그리고 이에 호응하며 아부하는 세력들은 어떤 군상들인지 드라마 한편을 통해 많은 것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미 역사는 그들의 최후를 기록해놓고 있다.

문정왕후 사후 윤원형과 정난정은 자결했다. 그런데 그 자결과정이 전해지는 내용으로 보면 참 어이없다. 문정왕후 사후에 윤원형과 정난정은 탄핵을 받았고 명종은 이를 윤허하지 않았으나 하인의 금부도사가 온다는 기별 한마디에 정난정을 자결했다는 설, 그 설이 진위이든 지어 낸 이야기든 스스로의 죄업이 잡히면 ‘사형’임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드라마는 이처텀 불의한 권력의 최후를 미리 예견하며 그 사전 작업으로 정난정과 윤원형 문정왕후의 불의한 권력남용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2016년 8월, 전국은 가마솥 더위에 설설 끓고 있으며, 이에 국민들은 한전과 산업부에 가정용 전기료의 누진제 해결책을 요구하며 민심도 끓고 있다. 그런데 이 더운 여름에 청와대 ‘송로버섯 요리’ 오찬 소식은 끓는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를 터지게 만들고 있다. 서민들은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송로버섯이란 식재료, 알려지기론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식재료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이 비싼 요리가 청와대에서 서민들 전기료 깎아주기 협의를 했다던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만찬에 나왔다고 한다.

현재 국민들이 공분을 느끼고 있는 송로버섯이 포함된 이른바 ‘박근혜 초청 청와대 초호화 오찬’의 얘기는 이렇다.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치러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당선된 이정현 대표와 신임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가졌다. 이 오찬상은 송로버섯과 바닷가재, 훈제연어, 캐비아 샐러드, 샥스핀 찜, 한우갈비, 능성어 요리 등 최고의 메뉴들이 올라왔다고 한다.

이 가운데 특히 송로버섯은 국내에서는 구할 수조차 없는 식재료이며 이 외에도 바닷가제, 캐비아, 샥스핀 등도 서민들은 이름만 들어 본 요리재료들이다. 그런데 이런 요리들을 먹으면서 대통령은 “당정청이 하나가 돼서 오로지 국민만 보고 앞으로 나아갈 때, 국민의 삶도 지금보다 더 편해질 수 있고, 나라도 튼튼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이정현 대표는 이런 요리들을 대접받으며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이다. 그러므로 곧 이는 문정왕후와 윤원형이 ‘백성’ 운운한 것과 같다.

송로버섯은 땅속에서 자라나는 이유로 돼지를 이용해서 채취해야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채취된 적이 없다고 한다. 때문에 전량 수입에 의존하며, 일부 최고급 호텔에서 송로버섯 스프를 특선요리로 내는 날에는 그 가격이 1천만 원대를 훌쩍 뛰어 넘는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나타나는 프랑스산 ‘냉동’ 송로버섯은 500g에 158만 원, 어떤 보도를 보면 유럽에서는 이따금 발견되어 1kg이상을 캐는 경우 수억 원대의 가격을 호가하는 땅속 로또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가 어떤 송로버섯을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민전기료 운운하며 먹을 식재료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때문에 관련 기사에 이런 댓글도 달려있다.

“金樽美酒 千人血(금준미주 천인혈 : 금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천백성의 피요) 玉盤佳肴 萬姓膏(옥반가효 만성고 : 옥쟁반에 담긴 맛난 요리 만백성에게 짜낸 고혈이라) 燭淚落時 民淚落(촉루락시 민루락 : 너희들 촛대에 촛농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歌聲高處 怨聲高(가성고처 원성고 : 노랫가락 높은 곳에 백성들 원성도 높아간다)”

이 시조는 판소리 춘향전에 나온다. 원작자는 성이성, 실제 춘향전의 이몽룡은 성이성이 주인공이다. 춘향전에 나오는 잔치연에서 이몽룡이 변학도를 질타하면서 읊은 시조는 성이성이 짓고, 읊었다. 이는 성이성의 4대손 성섭의 저서 <교와문고>와 그의 스승 조경남이 쓴 <난중잡록>에 기록되어 있다.

드라마 옥중화의 배경에서 서민들은 가뭄과 흉년으로 고통 속에 있다. 2015년 대한민국 여름은 온열증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병원을 찾은 환자 역시 수천 명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서민들은 ‘징벌적 누진세 폭탄’이 무서워 에어컨을 비롯한 냉방기조차 마음 편히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때에 오찬 참석자 모두가 긴팔 양복 정방에 넥타이까지 차려메고 대통령 또한 긴팔 상의를 입고 송로버섯 요리를 먹으면서 언필칭 서민을 말했다면 그것은 허위이며 거짓이다. 그들이 말하는 서민이 문정왕후와 정난정이 보는 백성과 하등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치사 또한 모두가 허언으로 들린다. 그가 사랑하는 나라와 백성이란 입에 발린 소리로 들린다.

▲전우용씨 트위터 캡쳐

송로버섯 요리 소식에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 초청 청와대 오찬에 캐비어, 송로버섯 등 초호화 메뉴…. 저런 거 먹으면서 서민 가정 전기료 6천 원 깎아 주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는 거군요. 고작 몇 천원 가지고 징징대는 서민들이 얼마나 찌질하게 보였을까”라고 개탄했다. 이게 민심이다.

그래서다. 박근혜와 이정현, 그리고 새누리당과 박근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윤원형과 정난정, 문정왕후와 변학도를 되새겨보기 바란다. 71주년 광복절이 쓰는 시일야방성대곡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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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기업 일군 독립군 아들 "친일파 청산 포기할 수 없다"

 
[조호진 시인의 삶이 아름다운 당신 ②] 장병화 성남산업진흥재단 대표이사
 

16.08.16 20:36 | 글:조호진쪽지보내기|편집:김지현쪽지보내기

▲ 장병화 성남산업진흥재단 대표이사 ⓒ 장병화


장병화(69) 성남산업진흥재단(아래 성남재단) 대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업무시간을 내주지는 않았다. 성남재단은 성남시가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설립한 기관이다.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기관장이 사적 인터뷰를 업무시간에 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공적 질문이 포함됐는데도 그는 원칙을 강조했다. 이런 까닭에 인터뷰는 지난 10일 저녁 퇴근 후에 서초구 자택에서 늦게까지 진행됐다. 

그는 독립군 아버지를 해방 조국에서 동족에게 잃었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무작정 상경해 밑바닥 생활을 했지만 국내 최초로 오디오 믹서기를 개발하는 등 음향전문 기술을 쌓으면서 연간 1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일궜다.

그는 인간 승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희망제작소 등에 깊숙이 참여하면서 역사의 승리를 도모하고 있다. 독립군의 아들도 독립군인 것이다. 그의 독립운동 목표는 친일파 청산과 민주사회 구현 그리고 남북통일이다. 

19세에 독립운동 뛰어든 장이호 선생... 이승만에 속고 인민군에 죽은 아버지
 

▲ 평북 신의주 출신 독립운동가 장이호(1916~1950) 선생. 붉은 원안의 인물이 장이호 선생이다. ⓒ 장병화


그의 부친 장이호(1916~1950) 선생은 평북 신의주 사람으로 열아홉에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망명했다. 선생은 중국군관학교 한청반(韓靑班)에서 4년간 간부훈련을 받은 뒤, 광복군 2지대에 투신해 일본군을 상대로 기밀탐지와 지하공작 등을 전개했다. 1944년 광복군 제3지대 분대장이 됐고, 그해 12월 동지들과 함께 초모공작(독립군 모집)을 전개하면서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과 <사상계>를 창간한 장준하 등의 학도병을 광복군에 편입시켰다.

김준엽은 1944년 3월 중국 강소성 서주(徐州)의 일본군 쓰까다부대를 탈출했고 장준하는 3개월 후에 같은 부대를 뒤따라 탈출해 중국 국민당 유격대에 들어갔다가 1945년 2월 광복군에 편입됐다. 장이호 선생은 해방 직전인 1945년엔 서주지구 일본군 부대에 배치된 조선인 학도병들을 탈출시키기 위한 한미합작 돌격작전 전략특수(OSS) 훈련을 받았는데 일제가 항복하면서 작전이 취소됐다.
 

▲ 1945년 8월 15일 광복기념사진. 붉은 원안의 인물이 장이호 선생이다. ⓒ 장병화

 

▲ 광복군 제3지대 분대장 장이호 선생. 아래 맨 우측이 장이호 선생. ⓒ 조호진


광복 후에는 서주지구 군사특파원단으로 파견돼 동포들의 생명과 재산보호 임무를 수행하다 1946년 귀국해 1947년 나이 서른에 열 살 아래 송정숙씨와 결혼해 형제를 낳았다. 장병화 대표가 장남이다. 장이호 선생은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제 앞잡이였던 사찰계 형사들에게 시달렸다. 백범의 한국독립당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참극은 장 대표가 네 살이던 1950년 9월 25일 벌어졌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살 때였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했는데도 아버님은 피난을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건 수도 서울을 지키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거짓 방송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쁜 대통령입니다. 서울이 수복된 것은 인천상륙작전에 의해서였습니다. 연합군의 파상 공세에 밀리기 시작한 인민군들은 북으로 후퇴하면서 억울한 사람들을 죽이고 달아났습니다. 

참극은 1950년 9월 25일 벌어졌습니다. 9.28 서울 수복을 나흘 앞두고 동네 빨갱이의 밀고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6.25 동이인 동생이 인민군에 끌려갔는데 그 직전에 죽음을 예견한 아버지가 저를 빼돌렸습니다. 대를 잇기 위해 저를 이웃집에 맡긴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등에 업힌 갓난쟁이 동생이 하도 울어대니까 한 인민군이 어머니와 동생을 빼줘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성북경찰서 뒤 돌산에서 총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칡뿌리로 허기 달래던 어린 시절... 중학생 때, 도둑기차 타고 무작정 상경
 

▲ 해방된 조국에서 인민군에 의해 죽임 당한 장이호 선생 묘소. ⓒ 장병화


이승만에 속아 남편을 잃은 그의 어머니는 1.4 후퇴가 있기 전에 어린 형제를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 내려갔다가 친정인 강릉 주문진으로 거처를 옮겼다. 친정 도움으로 근근이 살면서 쑥과 칡뿌리로 허기를 달랬다. 장병화 대표는 그 시절의 배고픔을 잊지 못한다. 자신의 밥그릇만 유독 작게 느껴졌다.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배부르게 밥 먹어 보는 게 소원이었다. 

학창시절, 그는 성적이 우수했다. 하지만 머릿속엔 돈 벌 궁리뿐이었다. 가난에 사무친 그의 귀에 일본이 잘산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일본에 가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빠졌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문 밖 동해 바다 수평선 너머 일본을 헤엄처서라도 가고 싶었다. 가자, 일본에 가서 돈을 벌자! 중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무작정 상경을 감행한 그는 도둑기차를 탔다. 

차표 검사가 시작되면 기차 난간에 매달리면서 피했다. 목숨까지 걸었지만 결국 걸렸다. 영주역에서 강제 하차당한 그는 다시 도둑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역무원에게 또 걸렸다. 학생복 덕분에 꿀밤 몇 대 맞고 풀려났다. 부산행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까지 걸어갔다. 하지만 서울역은 강릉역처럼 감시가 허술하지 않았다. 무임승차를 포기한 그는 부산행 기차푯값을 마련하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가출 청소년에게 일자리는 없었다. 며칠 굶으며 노숙을 했더니 거지나 다름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는데 제기동의 한 공장에서 밥을 준다고 하기에 무조건 일했다. 정말 밥밖에 주지 않았다. 소년 노동자는 착취의 대상이었다. 옷은 입고 온 교복 한 벌뿐이었다. 외출복이자 작업복이었던 검정 교복이 땀에 절면서 붉어졌다. 부산행 차표를 사기 위해 다른 일터를 찾아 나섰다. 

월급 주는 곳에 취업하려면 보증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외가 친척을 찾아갔다. 보증은커녕 어머니가 기다린다고, 고향으로 어서 내려가라고 했다. 주문진으로 돌아왔지만 머릿속엔 서울 생각뿐이었다. 다시 상경했다. 몇 달간은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막내 외삼촌 소개로 전축 만드는 공장(성일사)에 취업했다. 기술자가 되면 배는 곯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 밥은 눈물 밥이다. 혼나고 터지면서 익힌 기술을 거저 가르쳐주는 기술자는 없다. 

국내 최초로 오디오 믹서기 개발... 연매출 100억대 음향기기 전문기업 일궈
 

▲ 국내 최초로 오디오 믹서기를 개발한 장병화 대표. ⓒ 장병화


그는 가장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했다. 선배들의 심부름과 공장 청소를 성실하게 감당했다. 눈이 내리면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동네 골목까지 쓸었다. 독립군 아버지는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못한 대신에 정직과 성실을 물려줬다. 그의 성실을 눈여겨 본 공장장이 야간에 기술학원 다니는 것을 허락해줘 종로2가 YMCA 옆 '한국TV기술학원'을 다녔다. 한창 놀기 좋은 열여덟 청춘이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원을 다녔습니다. 제일가는 기술자였던 옥씨 성을 가진 공장장님과 선배 기술자들이 각별하게 챙겨주셨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했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어머님이 축음기를 통해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와 슈만의 트로메라이 등 고전음악을 들려주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시와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지는 장롱처럼 큰 포마이카 전축 진공관 앰프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음악소리가 너무 좋아서 밤새는 줄도 모르고 일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일하고 공부했더니 기술이 금세 늘었습니다. 제 손에서 안 고쳐지는 라디오와 전축이 없을 정도로 기술이 늘었으니까요."
 

▲ 장병화 대표가 맨손으로 일군 가락전자. ⓒ 장병화


3년간 기술을 배운 뒤 을지로 4가에서 유리 진열장 하나 놓고 노점을 시작했다. 라디오와 전축을 고치고 팔았는데 고객들이 늘면서 장사가 잘됐다. 그냥 기술자가 아니고 그냥 장사꾼이 아니라 기술과 정직을 갖춘 청년 사업가였다. 3년 만에 세운상가에 3평짜리 점포를 얻었는데 군대에 가야 했다. 점포를 친동생에게 맡기고 군대를 갔다 왔더니 문을 닫은 상태였다. 진열장 하나 놓고 노점을 다시 시작하며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 

1970년대 한국의 음향 기술은 형편없었다. 선진 음향기술 도입을 물색했던 중에 일본 마쓰시다사(파나소닉의 모체)의 요청을 받고 해외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일본의 기술을 배우고 제품을 복제하면서 국내 최초로 오디오 믹서를 만들었다. 수입품 오디오 믹서는 제품은 좋지만 너무 비쌌다. 박원웅과 채은옥, 이장희 등 유명 디스크자키들을 비롯해 방송국 엔지니어 그리고 명동의 청자다방은 물론이고 전국의 음악다방들이 그가 만든 오디오 믹서를 사용했다. 제주도에까지 건너갔다. 그의 제품은 가격에 비해 성능이 좋았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1977년 음향기기 제조업체 '가락전자'(당시 업체명은 '경일엔터프라이즈')를 창업했다. 그는 38년간 경영하면서 기업을 키웠다. 음향기기 특허를 수십 개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독일과 미국 등 25개국으로 수출했다. 기술과 성실에서 단연 앞선 그는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포기했다. 뇌물을 주고 접대를 해야 하는데 그런 짓을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선 정직과 신의보다 뇌물과 향응이 더 잘 통합니다. 저와 같은 기업인은 한국처럼 부패한 풍토에선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부정부패로 성장한 기업은 언젠가 무너집니다. 다 허상입니다. 2만 달러를 성큼 넘어선 한국이 3만 달러 문턱에 걸린 것은 바로 부정부패 때문입니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창립, 11년째 회장 맡으며 임종국 상금 지원
 

▲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을 11년째 맡고 있는 장병화 대표는 임종국상 운영비와 상금을 후원하고 있다. ⓒ 장병화


독립군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친일파들은 일제 시절의 악행을 감추기 위해 눈엣가시인 독립운동가와 그의 가족들을 모질게 탄압했다. 굶주림에다 탄압까지 당한 후손들은 이름까지 바꿔가며 독립운동의 흔적을 지워야 했다. 반면 어떤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은 친일파와 독재자에게 붙었다. 부역의 대가로 호가호위했다. 생존에 급급해 아버지를 잊고 살았던 장병화 대표는 아버지를 찾으면서 역사에 눈을 떴다.

"독립군의 아들이란 자부심보다는 굶주림 해결이 더 급했습니다. 기술을 배우고 돈을 벌게 되니 아버님이 생각났습니다. 광복군동지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갔더니 아버님과 함께 독립 운동하던 어른들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이 동지의 아들은 동지라면서 이청천 장군과 함께 찍은 아버님 사진을 주셨습니다. 그 어른들 덕분에 아버님이 공적을 인정받고 훈장을 받게 되면서 독립군 아들로 살아야 한다는 정체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장이호 선생은 1977년 대한민국건국훈장에 추서됐다. 선생에게 훈장을 수여한 대통령은 '일왕'(천황)에게 혈서까지 쓰며 충성을 다짐한 황군장교 출신 박정희다. 청산 대상인 친일파가 단상(壇上)에서 단하(壇下)의 독립 운동가들에게 훈장을 수여한 것이다. 올해 71주년 광복절 경축식장에서도 아이러니 상황이 재현됐다. 아직은 독립군의 나라가 아니기에 어쩔 수 없다. 
 

▲ 장병화 대표가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에게 선물 받은 글을 읽고 있다. ⓒ 조호진


독립군의 아들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그는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면서 독립운동단체와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다녔는데 독립운동을 팔아먹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 어떤 후손은 부정부패에 연루돼 감옥에 갔다.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해야 활 광복회(회장 박유철)는 감투 싸움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역사와 정의가 구정물 통에 빠지면서 이 지경이 됐다. 그의 타는 목마름은 민족문제연구소와 독립운동가 조문기(1927~2008) 선생을 만나면서 해갈됐다. 

독립군의 핏줄은 달랐다. 역사에 눈 뜬 그는 민족문제연구소 이사로 헌신하면서 2005년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임종국상을 제정했다. 임종국상은 선생의 친일청산과 역사정의 실현 그리고, 민족사 정립을 계승한 개인과 단체들을 대상으로 학술·문화와 사회·언론 분야로 나눠 시상한다. 상금과 운영 경비는 11년째 회장을 맡고 있는 장병화 대표가 후원하고 있다. 

칠순 앞둔 독립군 아들의 다짐 "선열 뜻 받들어 남북통일에 헌신"
 

▲ 겉은 온유하지만 속은 철두철미한 기업인이자 민족운동가 장병화 대표 ⓒ 조호진


그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겉은 부드럽지만 속은 꼿꼿하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했다면 민족운동과 시민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독할 정도의 원칙과 성실을 갖추지 못했다면 실패했을 지도 모른다. 운동 참여와 기업 운영을 병행한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재야 사학자와 시민운동가들로부터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꼿꼿한 운동가이자 당당한 기업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대학으로 공부하러 간 적이 있는데 학벌을 돈 주고 사라는 제안이 있었다. 그는 학벌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기술과 능력은 뛰어난데 학벌이 없다고 무시당했다. 솔깃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지독할 정도로 원칙주의자다. 성실함으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학벌과 인맥 사회를 정직과 성실로 정면 돌파했다. 요즘에도 새벽 5시에 깨어 밤 11시까지 공부하며 일한다. 

칠순을 앞둔 독립군의 아들, 그는 역사에서 만큼은 청년보다 푸르고 열정은 독립군의 총구처럼 뜨겁다. 그는 '민족 반역자는 사라질 수 있으나 잊을 수는 없다'는 제목의 글에서 "민족정기는 도둑을 맡고 정의는 빛을 잃었다"고 탄식하면서 "민족 반역자를 처단하지 못한 비극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선 안 된다"며 독립 정신을 이어갈 것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남은 인생을 남북통일에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통일된 국가를 만드는 날이 하늘에 계신 독립선열들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목숨을 통일에 바치려고 합니다. 통일 독립군이 되려고 합니다. 하나 된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제2의 독립운동이라 생각하며 통일이 되는 날까지 몸과 마음을 바치겠습니다."

아들에게 물려준 건 기업가의 책임... 성남재단에서 갑질 행정은 용납 안 해
 

▲ 성남산업진흥재단 8대 대표이사로 취임한 장병화 대표. ⓒ 장병화


이재명 성남시장은 성남산업진흥재단 대표를 공모하면서 청렴함과 경영능력을 갖춘 인물을 찾았다. 이 시장과 장 대표는 일면식이 없었다. 이 시장은 장 대표의 청렴함과 경영인으로 오랜 경험, 게다가 역사와 시대인식까지 갖춘 점을 높이 사면서 대표로 선임했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장 대표가 2015년 7월 성남재단 대표로 취임한 뒤 셋째 아들에게 승계한 기업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성남산업진흥재단 대표에 취임한 뒤 아들에게 승계한 기업(가락전자)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보복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5년도 10년도 아닌 15년 치 서류를 탈탈 털다시피 조사했습니다. 회사 돈의 일원도 사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두려울 것도 없고 크게 걸릴 게 없습니다만, 이 시장 주변인물에 대한 보복 같아서 불쾌함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장 대표는 가락전자가 30주년을 맞은 200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겼는데 두 번 다 실패했다. 자수성가한 그는 부의 대물림을 반대한다. 자식들도 그렇게 키웠다. 2남 1여 모두 제 갈 길로 갔다. 큰아들은 자기 사업, 둘째 딸은 수의사, 셋째아들은 대기업을 다녔다. 그는 셋째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부의 대물림이 아닌 '책임의 대물림'을 위해서였다. 기업이 망하면 그 피해는 노동자와 주주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기업가의 경영책임과 사회적 책임이 무거운 것이다. 
 

▲ 셋째 아들(장성준)이 승계한 음향기기 전문기업 '가락전자'. 장병화 대표가 물려준 것은 부가 아니라 기업가의 책임이다. ⓒ 장병화


삼성전자에 다니던 셋째아들은 그의 요청에 부응했다. 그는 아들에게 경영을 바로 맡기지 않았다. 말단사원으로 채용했다. 셋째아들 장성준씨가 지난 2015년 6월 사장에 취임한 것은 5년에 걸친 경영훈련에서 통과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이라고 해서 봐주는 아버지가 아니다. 그는 회사를 떠나면서 아들에게 백년 기업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민족과 사회 앞에서 당당한 백년기업을 소원하고 있다. 

그에게 기업가의 덕목에 대해 물었다.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이라고 했다. 사장이 정직하면 직원도 정직해지고, 기업이 바르게 성장하면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사장 자리는 희생하는 자리라고 했다. 아들에게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고 사장은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지고 희생하는 자리라는 것을 누누이 가르쳤다. 그가 아들에게 승계한 것은 부가 아니라 책임이었다. 그는 정직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 

"일제가 물러가면서 '조선은 100년이 지나도 정직하고 깨끗한 사회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고 갔다는데, 우리 사회는 일제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제가 그렇게 장담한 것은 우리 민족에게 자학과 분열을 심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근면 성실하고 우수합니다. 부정부패를 타파하면 민족의 미래는 밝습니다. 자녀들에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공하라고 가르치지 말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성공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성남재단 선장인 장 대표의 키워드는 혁신과 투명이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혁신을 주도했다. 잦은 회의를 줄이고 종이문서를 없애면서 패드를 지급했고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현장에 답이 있다)과 '2현3무'(2일은 현장 3일은 사무실)를 도입하는 등 현장을 중시했다. 그의 혁신은 갑과 을의 전환이다. 성남재단은 을이 되고 기업은 갑이 되도록 위치를 바꿨다. 직원들이 갑질하거나 선물과 접대를 받거나 커미션(수수료)을 받으면 용납하지 않는다.  

"30년 넘게 기업하면서 갑질 행정의 폐해를 숱하게 경험했습니다. 갑질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몰래하다 적발된 직원 몇 명은 강등 조치했습니다. 성남재단의 목적은 중소기업을 돕는 것입니다. 기업이 살아야 지역경제도 살고 나라 경제도 삽니다. 대표가 된 지 1년이 지나면서 직원들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기업인들과 도시락을 먹으며 미팅할 정도로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혁신에 동참한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골프 대신 고전음악 즐기는 기업인... "행복한 음악과 따뜻한 이웃이 필요하죠"
 

▲ 임종국상은 친일청산과 역사정의 실현 그리고, 민족사 정립을 계승한 개인과 단체에 수여한다. ⓒ 장병화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인가. 그렇다. 나라와 민족을 팔아서라도 호의호식하면 되는 이 땅에선 그렇다. 그래서 친일파와 후손들은 잘 살고 있다. 못 산다는 것은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처럼 사는 것이다.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과 재산을 바친 대가로 친일파에게 고문당하고 죽임당하고 그 후손들은 못 배우고 못 산다. 이 지경이 된 나라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말할 수 있을까.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프랑스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의 말이다. 프랑스의 자유, 평등, 박애는 나치 부역자들을 철저하게 청산하면서 세운 정신이다. 관용은 무조건 봐주는 게 아니라 죄과를 청산한 후에 베푸는 정의다. 친일문제를 덮자고 하는 것은 관용과 화해가 아니다. 역사에 대한 반역이고 친일에 대한 부역행위다. 이 나라를 관용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선 친일파들을 끝끝내 심판해야 한다. 역사와 정의를 세우는 일에는 결코 시효가 있을 수 없다. 
 

▲ 고전음악 애호가인 장병화 선생. ⓒ 조호진


진정으로 잘 산다는 이런 것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삶이다. 땀 흘려 일해 모은 재화를 이웃과 나누는 삶이다. 불의가 침범하면 정의로 맞서는 삶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기업을 일구고 일가를 이룬 장병화 대표는 잘 살았다 할 것이다. 역사 정의를 세우는 일과 민주사회를 구현하는 일에 가진 것을 나누었으니 독립군의 아들로서도 임무를 잘 수행한 것이다. 

이제 그만 쉬어도 될 것 같은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아직은 쉴 때가 아니란다. 기업가로서 혁신과 역사의 진보를 고수하겠단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 그럴 것이다. 무슨 재미로 사나? 악기의 팽팽한 줄을 계속 조이면 현(絃)은 끊어진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취미가 고전음악 감상과 책읽기다.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면 시인 혹은 음악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는 고전음악 애호가다. 19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곡과 첼로 곡을 좋아한다. 돈이 생기면 클래식 음반을 사 모았는데 그렇게 모은 1000장 중에 200장을 골라냈다. 음악은 지친 몸과 영혼을 달래주는 좋은 친구다. 벤처협회 회장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한 그는 신식 경영인이지만 취미는 구식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독립군의 아들이 꿈꾸는 세상은 이런 세상이다.

"음악은 옛날 음악이 진짜 음악입니다. 턴테이블에 음반을 올려놓으면 진공관 앰프에서 육신과 영혼을 위로하는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음악이 가슴에 와 닿을 때의 행복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디지털 기계는 그런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가상이 현실화되는 4차 산업혁명이 온다 해도 사람에겐 행복한 음악과 따뜻한 이웃이 필요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상상합니다. 친일파와 부정부패가 청산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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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장의 이슬, 독립의 넋 비추고

8.15기념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에서 펼친 넋풀이 퍼포먼스

벽안(碧眼)의 예술인이 놋쇠바루를 치며 구음을 한다. 길고 하얀 넋전을 단 막대기를 두 손에 들고 허공으로 휘휘 저으며 사형장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입구로 돌아온 춤꾼은 형장의 이슬이 되기 전, 한번쯤 몸을 떨었을 넋들에게 절을 하듯 고개를 숙인다.

이어서 푸른 하늘과 붉은 벽돌이 마주치는 작은 사형장 마당을 하얀 종이인형의 휘날림에 따라 춤인 듯 절규인 듯 뛰어다닌다. 양혜경씨의 서대문형무소 사형수를 위한 넋풀이다.

넋전춤 공연은 광복 71돌을 맞아 서대문구청 주최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서대문독립민주축제’와 함께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회장 김희선)가 마련한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한마당’의 한 프로그램이며 격벽장(수감자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퍼포먼스 ‘왜놈대장 보거라! 우리의 자유를!’과 맞물려진 공연이다.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에서 이루어진 예술가의 첫 넋풀이공연이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 이날 넋전춤 퍼포먼스는 관객을 위한 공연만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원혼들을 위한 진혼굿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8월의 뙤약볕 아래에서 약 30분간 펼쳐진 ‘넋전춤 퍼포먼스’는 쿠바 출신 현대무용가 기에르모씨와 멜로디언 연주에 이대원씨, 첼로에 문지윤씨 등 4명의 예술인들이 함께 만들었다.

1인극 넋전춤 연희자인 양혜경씨는 이날 공연을 위해 아침 7시부터 이곳에 와서 흰종이로 넋전을 오렸다고 한다. 넋전을 오려가는 동안 묵직한 무거움이 종이로 묻어나오는 느낌이었고 그 기운으로 춤을 추고 끝나자마자 울음을 쏟아냈다.

26년간 넋전을 만지고 거기에 의식을 담고자 출가까지 했던 그에게 서대문형무소의 사형장은 조국 해방과 독립, 온전한 자유를 위해 당당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사람들이기에 그 어떤 원혼보다도 더 아팠으리라.

이날의 넋전춤은 그래서 행위자도 관객들도 눈물과 땀을 동시에 흘리는 공연이었다. 다만 기에르모씨의 지적처럼 공연 도중에 행위자 앞을 지나다니며 사형장의 아픔을 외면하고, 관광지 다니듯 한 일부 관람객들의 태도에 그 의미가 퇴색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기에르모씨는 이날 넋전춤을 “역사에 대한 가슴 깊이 울려나오는 울림이었고 사랑이었다”며 자신의 부모님도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으로 참전해 일본에 대항해서 싸웠기에 그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안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매달 한 번씩 서울시립공원묘지 용미리에 있는 무연고자 묘를 찾아 넋전춤으로 원혼들의 넋을 위로한다는 양혜경씨는 광복 71돌을 맞은 8.15에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을 하다 형장의 이슬이 된 분들을 위한 넋전춤이 본인으로서도 뜻 깊다고 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김희선 회장은 “억울하고 원통하게 가신 그분들의 통곡을 몸으로 나타낸 듯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날 사형장에서의 넋전춤 퍼포먼스와 함께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 한마당‘을 총감독한 마임이스트 유진규씨는 역사관 격벽장에서 50명의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대규모 퍼포먼스 예술감독을 하면서 “유관순 정도만 기억하는 여성독립군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는 그는 “많은 여성들이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던지고 죽음을 불살랐다”며 이번 퍼포먼스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조명하고, 지금도 존재하는 일본 군국주의와 친일파들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해보는 공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40명의 여성예술인이 포함된 50명의 예술가가 총 120분 동안 33개의 공연을 통해 일제로부터의 해방, 모든 권력과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수형자들의 체력단련 공간이었던 10개의 부채꼴모양 칸막이가 있는 격벽장에서 각자 개별적인 공연을 펼치는 퍼포먼스는 관객들과 예술인들이 어우러져 예술을 통한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는 난장으로 끝을 맺었다.

광복절을 맞아 마련된 이번 공연은 민족의 아픔이 담긴 서대문형무소를 공연무대로 활용, 식민지배로 인해 원통하게 떠난 원혼을 달래고 해방조국의 자유 아래 예술공간으로 거듭나고 치유예술의 힘을 보여준 또 하나의 예술적 문화였다.  

▲ 공연을 마친 뒤 한 관객을 잡고 오열하는 양혜경씨. 마치 원혼의 통곡처럼 느껴져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현대사를 조명해보는 전시회
▲ 서대문독립시민축제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군으로 분한 배우들

권미강 기자  kangmomo85@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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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8주년을 말하는 자체가 이미 우리의 현대사를 부정하는 행위

‘하얼빈’ 정정했지만, 건국절은 고치지 않은 ‘청와대’
 
박 대통령이 건국 68주년을 말하는 자체가 이미 우리의 현대사를 부정하는 행위
 
임병도 | 2016-08-16 08:39:3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 말한 하얼빈 감옥을 뤼순 감옥으로 수정해서 올렸다. 그러나 건국절은 고치지 않았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광복군 출신 독립유공자 김영관(92) 선생이 12일 박근혜 대통령 초청 독립유공자 및 유족과의 오찬에서 인사말을 통해 ‘건국절 논란은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오마이뉴스 캡처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경축사 전문을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하얼빈 감옥을 ‘뤼순 감옥’으로 정정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는 건국절 호칭은 고치지 않았습니다.

뉴라이트 등이 주장하는 건국절은 분명 잘못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건국 68주년 주장은 헌법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하얼빈을 ‘뤼순 감옥’으로 정정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건국 68주년’을 고치지 않고 있습니다.


‘불과 사흘 전, 92세 광복군 노병이 지적했던 건국절’

광복군노병돌직구건국절-min

 

 

뤼순 감옥을 하얼빈으로 착각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건국절 논란은 박 대통령이 착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광복절 기념식 사흘 전에 이미 건국절에 대한 지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관련기사:92세 광복군 노병의 돌직구 박근혜 대통령은 동문서답)

8월 12일 청와대에서는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날 광복군 출신 독립유공자 김영관 선생은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출범했다고 이날을 건국절로 하자는 일부의 주장이 있다”며 “이는 역사를 외면하는 처사일 뿐 아니라,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고, 역사 왜곡이고, 역사의 단절을 초래할 뿐”이라고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청와대 오찬 행사에서 건국절 주장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광복군 노병이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불과 삼일 뒤에 ‘건국 68주년’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독립유공자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거나 잊었거나, 헌법을 끝까지 부정하겠다는 마음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는 대통령’

박근혜현대사부정-min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건국 68주년을 말하는 자체가 이미 우리의 현대사를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1919년 4월 11일 각 지방 출신 대표자 27명이 모여 제1차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 회의를 개최해 전문 10조의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통과시켰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시작이 되는 임시헌장에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부르고 정치 체제를 ‘민주 공화제’로 한다는 중요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1919년 9월 11일 통합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임시헌장은 ‘대한민국 임시헌법’으로 바뀌어 발표 됩니다. 대한민국임시헌법 전문을 보면 ‘우리 대한인민은 우리나라가 독립국임과 우리 민족이 자주민임을 선언하였다’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고 헌법까지 있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장소를 잘못 말해 논란이 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숨진 곳은 중국의 뤼순 감옥이었습니다.


‘하얼빈을 뤼순 감옥으로 정정, 하지만 건국절은 그대로 놔둬’

박근혜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차디찬 하얼빈 감옥에서’라고 말하자 SNS에서는 이를 지적하는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김광진 전 의원은 “하얼빈에서는 의거가 있으셨고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서거하셨습니다’라며 ‘창조경제가 안되니 창조역사를 하시네요”라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광복절경축사수정-min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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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필요한 '우리 시대의 변호인'의 활약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8/16 09:14
  • 수정일
    2016/08/16 09:1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3일만에 1억 모였다, 박준영 변호사를 응원하는 이유

[게릴라 칼럼] 이 시대에 필요한 '우리 시대의 변호인'의 활약16.08.15 20:16l최종 업데이트 16.08.15 20:16l글: 하성태(woodyh)편집: 김지현(diedie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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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스토리펀딩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메인 화면.
ⓒ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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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야, 노무현. <변호인>!"

지난 4월 말,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김태윤 감독을 사석에서 만났다. 당시 그는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재심>의 시나리오를 탈고한 상태였다. 그에게 영화의 취재를 위해 만났다던 박준영 변호사에 관해 묻자 그는 대뜸 저리 답했다. 박 변호사의 삶 자체가 영화 <변호인> 속 송우석 변호사의 인생 궤적을 닮았다는 뜻이리라. 김 감독 역시 박준영 변호사를 직접 만나 그간의 사정을 듣고 영화에 반영했다고 한다. 

꽤나 의미심장하면서도 직설적인 제목의 영화 <재심>은 지난 7월 크랭크인했다. 1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현우는 배우 강하늘이 연기하고, 이 현우를 돕는 변호사 이준영은 배우 정우가 연기한다. 그리고, 한 변호사의 외롭고 긴 싸움을 정면으로 그리는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은 이준영이다. 아마도 영화(와 시나리오) 속 이준영은 현실 속 박준영 변호사의 모습을 꽤나 닮아 있을 것 같다. 

<재심>이 촬영에 한창인 8월 14일 오늘, 현실의 박준영 변호사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14일 오후, 박준영 변호사가 포털 사이트 다음에 지난 11일 시작한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가 3일 만에 당초 목표였던 모금액 1억 원을 돌파한 것이다. 지난 14일 오후 5시까지 총 2613명 후원, 1억41만8000원으 후원금이 모였다. 그 만큼 박준영 변호사가 지켜내려는 사법적 '정의'에 공감하고 응원을 보내는 이들이 그 만큼 많다는 뜻이리라. 

'파산' 변호사에게 모인 1억 후원금,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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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능력이 있고, 나 혼자 잘 나서 변호사가 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가족의 희생이 있었고, 사회적 관점으로 봤을 때 난 운이 좋았다. 내 가족을 돌봐야 하는 생각에 좋은 결혼과 좋은 직장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내게 불운한 사람을 위해 일할 기회가 찾아왔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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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변호사 박준영입니다. 11년 동안 변호사를 했는데요. 공익활동을 하지 않고 영리활동을 했다 하더라도 1억 원을 벌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이런 공익활동이 필요한 시점에 우리 변호사들이 저의 사례를 보고 좀 더 용기내서 이런 일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14일 오후, 박준영 변호사는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으로 후원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재심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 동반자 박상규 기자와 함께였다. 영상 속에서 "오늘 점심값을 저희가 샀다"라면서 웃던 박 변호사. 

작년 대한변호사협회가 선정한 '변호사공익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였지만 최근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경기도 수원지법 앞에 마련했던 변호사 사무실을 빼야 할 상황이 여러 기사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3일 만에 모인 1억 원의 후원금은 가뭄 속 단비와도 같았을 터. 

"돈이 없다보니 박 기자도 힘들고 저도 힘든 상황인데, 다음을 기약하고 많은 일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표액은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 모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재심뿐만 아니라 억울한 사법피해자들이 길거리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그분들의 목소리를 공론화할 수 있는 언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앞으로 체계적으로 사람을 모아서 일을 해볼 생각입니다. 일억이 아닌 그 열배도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5월 김신혜씨 사건 관련 특강과 뒷풀이에서 만난 박 변호사에게 "노무현을 닮았다"고 하자 그가 이내 손사레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떤 특별함보다는 아내와 아이들의 하루하루를 걱정하면서도, 피해자들의 현재와 앞날을 더 근심하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가장이자 변호사로서의 모습을 엿본 순간이기도 했다. 

'박준영 시민 변호사 만들기 프로젝트'를 응원하는 목소리

박상규 기자는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의 아이템이 앞으로 20여 개 남아 있다고 밝혔다. 펀딩을 계속 진행하는 한편 이 내용을 묶어 책으로도 출간하고, 또 향후 박준영 변호사가 언급한 '공론화'와 같은 구체적인 상을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이번과 같은 열띤 호응이라면 두 사람의 기대가 구체화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잘 알려진 대로, 두 사람은 2015년 11월 다음 뉴스펀딩(현 스토리펀딩)에서 연재한 무기수 김신혜씨의 이야기인 
<그녀는 정말 아버지를 죽였나>를 시작으로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다룬 <그들은 왜 살인범을 풀어줬나>,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을 진상을 파헤친 <가짜 살인범 '3인조'의 슬픔>에 이르는 '재심 3부작'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무료 변론에 나서는 박준영 변호사의 변호에 공감한 독자들의 후원금은 총 1억3000만 원 가까이 된다).

그러는 사이, 세 사건 모두 각각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과 대법원, 전주지방법원으로부터 재심 결정을 이끌어 냈다. 김신혜 사건 이후 함께 하는 동료 변호사들도 늘었고, 약촌오거리 사건의 경우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과 함께였다. 

억울한 약자의 편에 서서 사법제도의 모순점을 파헤치는 이 고졸 출신 '공익' 변호사의 활약이 사회를, 법조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 지를 우리가 목도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실시간으로 응원하고 있는 셈이다. 

그와 함께 박준영 변호사의 이력도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고졸 출신 인권 변호사'로 알려진 그의 이력이 곳곳에서 "노무현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관련기사 : 박준영 변호사 인터뷰 ① "부잣집 딸 만나 삼성 입사가 꿈" 이랬던 변호사가 어쩌다 수억 빚이... 인터뷰 ② 절도와 싸움질에 무기정학까지 '노가다'하던 고졸, 변호사 되다). 

완도군 출신으로 파란만장한 학창시절을 보낸 뒤, 고졸 출신의 국선 변호사에서 재심 변호사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은 드라마틱한 영화 한 편으로 만들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그 박준영 변호사를 위한 '박준영 시민 변호사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우리 시대의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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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영 변호사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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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변호사의 노력으로 억울한 사람들은 누명 벗을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이제 박 변호사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 무료 변론으로 수입이 없어 임대료를 못 내 곧 사무실도 비워줘야 한다. 사무실 운영을 넘어 생활 자체가 어려운 상태다. 이 기획으로 박준영 변호사를 지원하려고 한다. 박 변호사가 계속 사회적 약자와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후원금을 쓸 예정이다. 

'박준영 시민 변호사 만들기'. 판사 출신 변호인이 100억 원대의 수임료를 받고, 현직 검사장이 친구 덕분에(?) 주식으로만 100억 원 넘는 수익을 올리는 시대. 박 변호사의 활동과 삶을 통해 변호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

글을 쓰는 박상규 기자가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소개 글의 막바지에 적은 내용이다. 박준영 변호사의 재심 프로젝트에 쏠린 관심은 이렇게 동시대의 사법적 '정의'를 관통한다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도덕 불감증에다 사적 이익만을 위해 법조계에서 승승장구했던 진경준 검사장과 같은 파렴치한들의 반대급부를 보고 싶다는 시민들의 간절한 열망 말이다. 

역시나 스토리펀딩을 통해 4억 원에 가까운 후원금을 모은 <뉴스타파> 최승호 PD의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에 쏠린 관심과 응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의 민낯을 파헤치는 이 작품이 향후 멀티플렉스에 걸리고 수많은 관객들이 관람하는 장면. 지난 대선 당시 댓글 조작 사건을 벌인 당사자임에도 이 정부 들어 꿋꿋이 그 권력을 자랑하고 있는 그 국정원에 대한 비판과 울분이야말로 <자백>이 그려나갈 저 미래를 위한 응원으로 이어졌을 터다. 

'박준영 시민 변호사 만들기'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미시적일 수 있다. 박준영 변호사가 수시초 출연했던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경검을 비롯한 수사기관과 사법 기관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줄곳 폭로하고 파헤쳐 왔다면, 박준영 변호사는 직접 그 피해자들을 위한 변론과 법정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들의 얼굴을 잊지 못하겠다"고 종종 말하는 박준영 변호사에게 있어 역시나 근본은 '사람'일 테니까. 

스토리펀딩의 후원금은 그간 재심 비용과 피해자들의 생활지원, 취재비 등으로 쓰였다. 수천만 원의, 1억 원을 넘긴 후원금이라고 색안경을 낄 필요가 없단 얘기다. 더욱이 이번 프로젝트는 향후 '박준영 시민 변호사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한 구체적인 비용으로 쓰일 예정이라고 한다. 박준영 변호사가 파헤치는 진실과 억울한 피해자들을 위한 종잣돈이 돼줄 것이다.

앞으로 후원금을 모으는 석 달 간, 1억을 너머  5억 원, 10억 원까지 도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준영 변호사와 그의 팀이 밟아 가는 족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재심 제도에 대해 더 넓게 환기될수록, 그들을 통해 구제받는 피해자들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법체계의 변화와 약자에 대한 공감은 늘어만 갈 테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변호사 박주민이 있었듯, 또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더더욱 '우리 시대의 변호인'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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