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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미루나무사건 40년과 현재

미루나무, 한반도 위기 부르다[친절한 통일씨] 판문점 미루나무사건 40년과 현재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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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21  13: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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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휴전이후 남쪽에서 처음으로 '데프콘(DEFCON) 3'이 발동됐다. 일본 오키나와 주일미군기지에서 F-4 팬텀기가 한반도로 날아오고 미국 본토에 있던 F-111전폭기 5개 편대 20대가 한국에 배치됐다. 일본 해역에 있던 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대한해협을 향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인민군 전체 부대와 노동적위대, 붉은 청년근위대 등 정규군과 비정규군 전체에 전투태세돌입 명령을 하달했다.

1976년 8월 한반도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유는 단 하나. 한 그루 '미루나무' 때문이었다. 

90년대 한 여가수가 경쾌한 목소리로 "포플러나무 아래 나만의 추억에 젖네"라고 부르던 미루나무(포플러나무). 한반도 도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엽수는 떠난 애인을 그리게 하는 한가로운 그저 그런 나무가 아니었다. 미루나무사건, 일명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40년을 되돌아보자.

   
▲ 1976년 8월 18일. 유엔군 측이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자 북한군이 달려들는 장면. 결국 주한미군 보니파스 대위와 바렛 중위가 사망했다. [사진출처-e영상역사관]

'미루나무', 미군 2명을 죽게 하다

1953년 10월 19일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 회의에서 채택된 '군사정전위원회 본부구역, 본부구역의 안전 및 본부구역 수축에 관한 합의'(판문점 합의)에 따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이 설정됐다. 1976년 8월 17일까지만 해도 JSA는 군사분계선이 표시되지 않았고, 유엔군과 북한군 경비 병력과 민간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유엔군은 JSA내 군사분계선(MDL) 북쪽에 경비초소를 만들지 않았지만, 북한군은 남쪽에도 경비초소를 만들고 초소 옆에 도로 차단기도 설치했다. 물론, 양측이 자유로이 왕래했더라도 긴장은 여전했다. 1976년 7월까지 양측간 주먹다짐 등 충돌은 25차례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유엔군은 자신의 초소들을 서로 잘 보이도록 설치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려고 했다. 이 중 민감한 지역은 3초소. '돌아오지 않는 다리'(판문교) 바로 앞. JSA 서쪽 끝에 5초소를 만들고 항상 3초소를 예의주시했다. 

하지만 장애물이 있었다. 바로 '미루나무'. 빨리 자라면서도 잎이 무성한 이 나무가 경비대원들의 시야를 가렸다. 이에 1976년 8월 3일 유엔군 경비대 작업반은 시야확보를 위해 미루나무 절단을 권고했다.

8월 6일. 유엔군 경비병 4명, 노무자 4명이 미루나무에 접근해 절단을 시도했다. 이에 북한군 경비병들이 제지해 작업은 중단됐다. 유엔사 측은 대신 미루나무 가지치기라는 차선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8월 18일 오전 10시 30분. 유엔군 경비단 장교 3명, 사병 7명, 노무자 3명이 다시 미루나무에 접근했다. 작업 책임자는 미군 보니파스 대위였다. 작업을 시작하자 북한군 경비단 장교 2명과 사병 8명이 다가왔지만, 가지치기라는 설명을 듣고 물러섰다. 북한군은 가지치기에 훈수까지 뒀다.

오전 10시 50분경. 북한군 경비단 박철 중위가 현장에 나왔다. 작업을 중지하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무자들이 일을 중단하자 보니파스 대위는 작업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오전 11시경. 북한 경비병 30명이 미루나무 근처로 몰려왔다. 박철 중위가 보니파스 대위에게 작업중단을 거듭 요구했다. 하지만 작업은 계속됐다. 그러자 박철은 시계를 풀어 손수건에 감싸 바지주머니에 넣었다. 북한군 경비병들도 소매를 걷어부쳤다. 그는 "죽여"라고 외치며 보니파스를 발차기로 가격했다. 경비병들도 일제히 달려들었다. 작업에 사용된 도끼를 빼앗아 휘두르다 결국 보니파스 대위와 바렛 중위가 사망했다.

'미루나무', 한반도 전쟁위기를 불러오다

대통령 선거국면이던 미국시각 8월 17일 밤. 포드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지명을 위한 공화당 전당대회 참석차 캔자스시티에 있었다. 경쟁상대인 레이건 후보에게서 베트남 패망 등과 함께 공산주의자에게 유약하다는 비난을 받던 포드 대통령은 워싱턴에 있던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단호한 조치를 지시했다. 성명이 발표됐다.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 

8월 18일 오후 3시. 키신저 주재로 워싱턴 특별대책단 회의가 열렸다. 훗날 부시 정부 국방장관을 지낸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대신해 클레멘츠 국방차관, 할러웨이 합참의장, 하이랜드 대통령 안보담당 부보좌관이 참석했다.

CIA는 북한의 계획된 도발사건이라고 분석했고, 참석자들은 모두 동의했다. 스틸웰 주한미군사령관이 제시한 미루나무 절단 계획과 데프콘 등급 상향 조정이 결정됐다. 키신저는 워싱턴에 있던 중국 연락사무소장에게 북한이 자제하지 않으면 중대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8월 19일. 미국은 군사정전위원회 개최를 북한에 제안했다. 북한은 양측 경비장교회담을 제안해, 결국 이날 오후 군사정전위원회와 경비장교회담이 동시에 열렸다. 미국은 유엔군사령관 명의로 김일성 총사령관에게 사과와 보상, 관련자 처벌을 담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같은 날 유엔군사령부는 데프콘 등급을 4에서 3으로 올려 발동했다. 데프콘 3은 전투직전의 상황을 의미한다. 주일미군기지에서 F-4팬텀기가 한반도로 날아오고, 미 본토 F-111전폭기 5개편대 20대가 8월 20일 새벽 한반도에 배치됐다. 이날 오후 일본 해역에 있던 미 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대한해협으로 향했다.

동시에 북한 김일성 총사령관은 인민군 전체부대와 노동적위대, 붉은 청년근위대 전체 대원에게 전투태세에 돌입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휴전 20여년 만에 다시 한반도는 전쟁위기에 빠졌다.

   
▲ 1976년 8월 21일 유엔군이 '미루나무제거작전'(폴 번얀작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출처-e영상역사관]

'미루나무', 위기 속에 잘려 나가다

8월 19일. 스틸웰 주한미군사령관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미루나무제거작전'(일명 '폴 번얀(Paul Bunyan)작전')이 본국에서 승인됐다는 이야기와 함께 작전방향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미국 군인만 다치게 할 수 없다. 나무절단작전을 위해 태권도를 잘하는 한국 공수특전사 장병을 지원하겠다"고 박 대통령이 제안했다.

8월 20일.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서종철 국방장관이 대독한 제3사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날 스틸웰 사령관을 다시만난 박 대통령의 태도는 '몽둥이'와 달랐다. "현재 나무자르기 계획에만 한정되어야 할 것이고, 북한이 상황을 상승시킬 때에만 진전된 조취를 취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전달했다.

미군과 한국군을 대하는 박 대통령의 태도는 달랐다. 같은 날 '폴 번얀작전'의 한국군 임무를 맡은 박희도 제1공수 여단장에게 노재현 합참의장과 이세호 육군참모총장이 대통령의 격려금을 전달하며 "도발해 오는 적을 철저히 응징하라"고 지시했다. 

실제 박희도 여단장은 작전지휘는 미군이 갖고 있었기에 공식적인 지휘계통에서 벗어나 있었다. 제1공수 특전여단 병사 64명에게 박 여단장은 무장을 명령했다. 당초 미군 계획에는 한국군은 '몽둥이'만 들도록 되어 있지만 자동소총을 은닉하고 수류탄과 권총을 휴대했다. "위험하면 선제공격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8월 21일 오전 7시. 예고없이 유엔군 경비대 병력과 한국군 공수부대, 미군 공병단이 JSA에 진입했다. 5분 뒤 유엔군은 전화와 핸드 마이크로 미루나무 제거를 통보했다. 유엔군 병사들이 나무를 자르고 북한군 초소 앞 차단기를 제거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유사시 대비 병력이 배치됐다. 하늘에는 미군 F-4D와 F-111전폭기, 한국군 F-5전폭기가 선회했다. 

미루나무만 자르던 미군과 달리, 한국군은 JSA내 북한군 초소를 부수고, '돌아오지않는 다리' 건너편 북한군에게 방탄조끼 밑에 숨겨온 무기를 보여주며 자극했다. 40분만에 미루나무는 잘려나갔고, 병력은 곧바로 JSA를 빠져나갔다.

'미루나무', 현재의 JSA를 만들다

같은 날 오전 11시. 북한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간 비공개회의를 요청했고, 미국은 이를 수락했다. 여기서 한주경 북측 수석대표는 사고에 유감을 표명하며 "우리측은 절대로 먼저 도발하지 않을 것이나, 도발이 발생하면 자위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김일성의 성명서가 낭독됐다.

8월 22일. 미 국무부는 김일성의 성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4시간 만에 '긍정적'이라고 입장을 번복했다. 미국 내 온건파의 설득이 먹혔다는 평가다.

8월 25일. 미국의 요구로 군사정전위원회 380차 회의가 열렸다. 양측은 협상을 통해 사태를 마무리하기로 가닥을 잡아갔다. 유엔군은 가해자 처벌과 재발방지를, 북한은 재발방지를 위한 JSA 양분, 양측 경비대의 상대방 지역 출입금지 등을 제안했다.

8월 28일. JSA 분할안은 '판문점 합의' 개정에 해당되므로,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회의 실무논의로 중지가 모아졌다.

8월 31일부터 9월 6일까지. 총 6차례의 비서장회의가 열렸고, '판문점 합의' 개정안이 합의됐다. JSA 내 군사분계선 표식 설치, 양측 군인의 월선 금지, 군사분계선 남쪽 북한군 초소 철거 등 현재 JSA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리고 미루나무가 가져온 한반도 전쟁위기는 20일만에 종료됐다.

   
▲ 미루나무가 잘려나간 자리 표식. [자료사진-통일뉴스]

'제2의 미루나무', 여전히 뿌리 내리고 있다

40년전 발생한 '미루나무사건'이 북한의 계획된 도발인지 우연인지 여부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이 미군철수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발했고, 미국 대통령 선거기간을 맞아 미국 내 주한미군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국 정부도 이 사건은 북한의 계획된 도발이라고 규정했다.

반면, 북한이 치밀한 각본 아래 사건을 저질렀다고 보기 힘들다는 평가도 있다. 1975년 11월 유엔총회에서 처음으로 유엔군사령부 즉시 해체와 외국군 철수를 촉구를 담아 북한을 지지하는 국가의 결의안이 통과됐고, 사건이 발생한 기간에는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비동맹정상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북한은 유엔총회 결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적인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함부로 도발을 감행할 수 없었다는 것.

실제, 북한 한주경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는 김일성의 유감을 전달하며 "실질적으로 보니파스와 바레트의 살해가 실수였으며, 충돌은 우발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도 훗날 일본 마고토 오다와 만나 "사건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으며, 우리 군인들은 도발의 함정에 빠져들었다"고 계획된 도발이 아니었음을 시사했다.

"사건이 분쟁을 일으킬 목적으로 북한 지도부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되어 추진되었는지 아니면 북한 지도부의 행동 패턴을 고려해 볼 때, 즉흥적이고 낮은 차원에서 자행된 과잉대응인지 판단할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 전자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이 지연작전을 쓸 수도 있었지만, 오늘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를 수용하였다는 것과 빨리 모임을 갖기를 원한다는 것은 후자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스틸웰 주한미군사령관도 사건 발생 후 미 합참에 이같이 우발적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앞의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 MDL) 표식.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미루나무사건'이 계획된 도발인가 우발적 사건인가 여부와 별도로, 미루나무 한 그루가 한반도 전쟁위기를 불러왔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는 여전하다.

북한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는 지난 4월 판문점 일대 남측 군인들이 북측을 향해 불순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5월, 7월, 8월 등 연이어 대변인 담화, 공개장 등을 발표했다. "이 지구상에 유혈과 동란, 분쟁과 접전이 벌어지는 곳이 적지 않다고 해도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와 같이 일촉즉발의 핵전쟁위험이 항시적으로 조성되여있는 곳은 없다. 군사분계선을 제2의 6.25전쟁도발의 발화점으로 만들어보려고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는 호전광들의 무모한 책동부터 단호히 제압해야 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미루나무사건 발생 당시는 미국의 대선 기간이었다. 40년이 흐른 지금도 미국은 대선국면이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 미 국무부가 대북 군사대응카드를 꺼낼 때 온건파가 설득에 성공했지만, 지금은 미국 내부 기류도 심상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8월 지뢰폭발사건으로 남북간 긴장이 고조에 이를 때, 남북은 극적인 '8.25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지난 1월 4차 북핵실험으로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서 '8.25합의'는 파기됐다. 정부의 대북강경발언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오는 22일부터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합군사연습이 실시된다. 정례적인 훈련으로 충돌없이 지나가느냐, 긴장상황이 재현되느냐. 40년전 잘려나간 '미루나무'는 여전히 판문점 한 가운데 '제2의 미루나무'로 뿌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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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투쟁위 "국방부에 제3후보지 검토 요구, 재논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8/22 08:14
  • 수정일
    2016/08/22 08:1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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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투쟁위 백철현, 정영길 공동투쟁위원장 등은 21일 오후 노광희 투쟁위 홍보단장이 발표한 내용에 대해 전면 무효를 선언하고 재논의할 것을 밝혔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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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드배치철회투쟁위가 국방부에 사드 배치 지역으로 결정한 성산포대를 철회하고 행정적 절차를 거쳐 적합한 부지를 결정할 것을 요구하기로 했으나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재논의하기로 했다.

투쟁위는 21일 오전 성주군의회 간담회장에서 회의를 열고 성주군이 아닌 국방부가 제3의 장소를 검토해 발표할 것과 투쟁위 해산의 건을 논의했다. 하지만 오전 회의에서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오후 3시부터 재논의에 들어갔다.

오후 회의에서 투쟁위 해산 안건은 논의하지 않기로 하고 제3후보지를 둘러싸고 논의을 벌였다. 회의에서는 계속 사드 철회만 요구할 것인지, 국방부에 제3의 장소를 결정할 것을 요구할 것인지 등을 집중해서 논의했다.

투쟁위는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성산포대 배치를 철회하되 투쟁위가 직접 제3후보지를 언급하지 않고 국방부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제3후보지를 발표하라는 안에 대해 위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투쟁위원 33명 중 대부분은 이 안에 찬성했고 반대와 기권은 각각 1명과 9명이었다. 이후 문구를 만들어 투쟁위원들이 모두 검토하고 오후 5시에 발표하기로 했다.

'국방부에 제3후보지 검토 요구'안에 주민들 반발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투쟁위에 항의하며 성주의 제3후보지뿐 아니라 한반도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주민들은 투쟁위는 사드 배치 철회만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투쟁위가 회의문건을 정리하는 동안 100여 명의 주민들은 4층 회의실과 2층 투쟁위 사무실, 성주군청 1층 로비 등지에 모여 투쟁위의 회의결과를 공식적으로 인정할지와 관련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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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광희 성주투쟁위 홍보분과 단장이 국방부 건의서를 발표하자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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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성주 주민들이 21일 오후 노광희 투쟁위 홍보분과 단장이 발표한 건의서 내용에 대해 전면 무효와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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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위가 회의문건을 검토하기 앞서 노광희 투쟁위 홍보분과 단장이 오후 4시 57분쯤 군청 1층 현관 앞에서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방부는 부적합지인 성주성산포대를 제외하고 적합한 부지를 행정적 절차를 거쳐 검토할 것을 건의한다"고 발표했다.

노 단장이 건의서를 발표하고 곧바로 뒤돌아서자 주민들은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며 달려들었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노 단장이 한 주민으로부터 얼굴을 가격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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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성주 주민들이 21일 오후 노광희 투쟁위 홍보분과 단장이 발표한 건의서 내용에 대해 전면 무효와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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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위, 홍보단장 발표 내용 무효 선언... 다시 논의하기로

주민들의 항의가 계속되고 일부는 투쟁위 사무실로 올라가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공동투쟁위원장 3명과 투쟁위원들이 다시 군청 1층 현관 앞으로 내려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 단장이 발표한 내용을 무효로 하고 다시 발표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투쟁위는 노 단장이 발표한 문건을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투쟁위의 검토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건의서를 발표한 노 단장의 직책 유지 여부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주민들은 노 단장을 홍보단장에서 해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투쟁위 관계자는 "우리의 1차 목표는 사드 배치 반대이지만 우선 성산포대를 국방부가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제3후보지를 결정해 건의하지 않고 국방부가 검토해 민주적 절차를 밟으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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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동물산업의 그림자…공장식으로 ‘생산’되는 반려동물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충북 옥천의 한 반려견 번식장에서 강아지들이 좁은 철창 안에 갇혀 있다. / 연합뉴스

충북 옥천의 한 반려견 번식장에서 강아지들이 좁은 철창 안에 갇혀 있다. / 연합뉴스

 

주부 최성희씨(43)는 두 달 전 ‘교배견’ 코코를 데려왔다. 이전까지 이른바 ‘강아지 공장’이라 불리는 사육농장에서 새끼를 배고 낳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해온 개였다. 한 동물보호단체의 요구로 풀려나온 개를 최씨의 지인이 입양한 뒤 다시 사정 때문에 최씨가 키우기로 한 것이다. 코코가 농장에 있는 동안 낳은 새끼의 수가 몇 마리인지는 최씨도, 농장주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코코의 배에 남은 흉터가 농장에서 보낸 지난 시절 교배견으로 고생한 이력을 짐작케 한다. 최씨는 “동물병원에서는 ‘이제 건강해지긴 했지만 아마 보통의 다른 강아지들보다는 일찍 갈(죽을) 수 있다’고 했다”며 “자궁이 있는 쪽을 만지면 낑낑대는 걸 보면 아직도 정신적 상처는 남은 게 아닌가 싶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산업으로 자리잡은 반려동물 시장

다섯 가구에 한 가구꼴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대다. 수요가 있는 만큼 공급이 따르고 산업이 성장한다. 지난해 기준 반려동물 시장의 규모는 1조8000억원대로 추정됐다. 산업으로 자리잡은 만큼 강아지와 고양이의 생산과 유통, 사료와 용품 공급에 이어 병원, 보험, 미용, 장례, 호텔, 카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제활동이 시장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각각의 경제활동은 경제논리를 따른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수익을 거둬야 하는 것이다. 새끼를 낳는 데서부터 ‘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사육농장은 효율성과 경제성을 추구하게 된다.

 

동물보호단체를 통해 듣는 개·고양이 등의 반려동물 사육농장의 현실은 심각하다. 동물자유연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동물단체 케어 등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공장식 반려동물 생산의 실태는 비인도적인 측면을 적잖이 보여주고 있다. 새끼를 낳는 암컷이 지속적으로 배란을 할 수 있게 배란유도제를 투여하고 수컷과 강제적으로 교배를 시키거나 수컷의 정자를 주사기 등의 도구로 암컷의 몸에 집어넣는 등의 방식이다. 미신고 농장에서는 새끼를 낳거나 치료가 필요한 때에도 수의사의 진료 없이 자의적인 치료나 투약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태어난 새끼는 어미와 떨어져 젖만 먹이는 대리모 개와 함께 자란 뒤 한창 귀여워 상품성이 높을 때 팔려나간다. 그리고 어미인 교배견은 심각한 질병 또는 외상 등으로 죽거나 더 이상 새끼를 낳을 수 없게 돼도 죽게 되는 운명에 처한다.
 

 

생산업체 80% 이상이 법의 테두리 밖

지금과 같은 비위생적인 반려동물 생산 실태는 법적인 규제장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은 동물 생산업을 신고제로 영업하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당국에 신고한 뒤 영업 중인 반려동물 생산업체는 현재 188곳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 운영되고 있는 생산업체 수는 농림축산식품부 추정치로는 1000여곳, 동물단체 추정치로는 4500여곳 이상에 달할 정도로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추정치를 따르더라도 80% 이상의 동물 생산업체가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규제가 약하다는 데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으로는 미신고 영업이 적발되더라도 1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 것이 전부다. 신고한 번식장에 대해 감독관청의 추후 관리·감독도 사실상 전무하다. 생후 60일이 안된 동물은 판매가 금지돼 있지만 솜방망이 규제 탓에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새끼 강아지들이 버젓이 판매업체(펫숍)에서 팔리고 있는 형편이다.

공장식 동물 생산과 사육 실태는 <TV동물농장> 등 방송에서도 방영되면서 적지 않은 반향을 불렀다. 방송의 여파로 반려동물 경매장에서 새끼 강아지 가격이 20~30% 가까이 떨어지는 등 생산업체도 영업 측면에서 보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업체가 미신고 상태에서 법적 제재를 고려하지 않고 영업 중이다 보니 당국에 신고하고 합법적 범위 안에서 반려동물을 생산·유통하는 농장 입장에서는 억울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도권에서 강아지 사육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씨(53)는 “생업을 위해 강아지들을 낳고 있으니 가능한 한 더 많이 낳으려고는 해도 부작용 위험이 높은 배란촉진제를 쓰거나 강제로 교배를 시키는 일은 피하고 있다”면서 “신고도 없이 운영하는 곳에서 돈만 따져서 하는 짓거리들 때문에 양심적인 브리더나 농장이 욕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3주 정도 자란 뒤 경매장을 거쳐 판매업소로 넘어간 새끼 개나 고양이들의 처지도 농장에 남은 어미보다 크게 낫지는 않다. 귀여운 모습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눈에 들려면 최대한 작은 체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팔리기 전까지는 급식 및 급수 제한으로 영양부족과 갈증에 시달려야 한다. 영양부족뿐만이 아니라 비위생적인 생산환경에서 옮겨온 질병 탓에 분양 직후 폐사하기까지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수의사 김정호씨(39)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분양받은 뒤 잘 모르는 주인들은 그냥 예방접종이나 맞히려고 동물병원에 데려오는데, 펫숍에서 사 온 애들 대부분이 영양실조 상태라 일단 월령에 맞게 영양보충부터 해주라는 조언을 한다”며 “데려오자마자 (동물이) 아파서 병원에 데려온 경우에도 판매한 데서는 아무 책임이 없다고 발뺌해 견주만 피해를 보는 때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이 7월 2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동물 가면을 쓰고 반려동물 인터넷 판매금지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이 7월 2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동물 가면을 쓰고 반려동물 인터넷 판매금지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살아있는 동물을 시장에서 가격을 매겨 사고파는 과정에서 생명의 존엄성이 경시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작용하는 데 있다. 작고 귀엽거나 혈통이 좋은 동물들에 대한 수요가 가장 큰데, 이 수요를 감당하려면 공장식 반려동물 생산이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낳은 새끼들이나 전문적 브리더를 통해 동물을 분양해 오는 방법도 있지만, 가정 분양은 공급이 부족하고 전문 브리더는 가격이 높다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동물단체에서는 반려동물을 키울 때 업체를 통해 구매하기보다는 유기견을 분양받는 문화가 정착되도록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 동물단체 관계자는 “한 해 버려지는 유기견 숫자만 15만마리쯤 되고, 버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키운다는 비율이 12%에 불과하다는 조사도 있다”며 “맘에 안 들고 부담된다는 이유만으로 동물을 버리는 문화는 귀엽게 보이는 동물을 충동적으로 쉽게 사게 만드는 시장구조와도 연관돼 있다”고 지적했다.
 

 

죽을 때까지 키우는 비율 12% 불과

반려동물을 공장식으로 생산·유통하는 문제가 생명 존엄성과 동물보호는 물론 동물 소비자의 피해와 유기동물 등 사회적 문제로까지 퍼져나가자 정부도 동물산업에 관한 규제를 보다 촘촘하게 마련하겠다며 대책을 내놓았다. 동물 생산업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 전담조직을 설치하는 등의 방안이 포함돼 있지만 대체로 산업 차원에서 반려동물산업을 육성해 경제적 효과를 높이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 1조8000억원대인 시장규모가 2020년까지 5조8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을 바탕으로 경매업 신설, 온라인 동물판매 허용, 동물병원 설립규제 완화, 동물전용 보험상품 개발 등 관련산업 기반을 키운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동물단체들에서는 허가제 도입과 함께 생산·판매 두수에도 제한을 둬야 하고, 경매업과 온라인을 통한 동물 거래를 늘리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현재 전국 19개소 경매장에서 연간 약 30만마리 이상을 펫숍으로 유통시키고 있는데, 경매장에서 유통되는 반려동물의 절대다수가 미신고 생산업체에서 나온 동물들이어서 공공연히 출처가 세탁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경매장이 현행법으로는 판매업 규정이 적용돼 효과적인 단속과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라 경매업 특성을 반영한 기준과 준수사항을 마련해 합법적인 생산·유통업체만 경매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유통되는 마릿수를 줄이려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반려동물’ 지위 누리는 동물은 6종뿐

국내의 현행법으로는 ‘반려동물’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동물은 6종뿐이다. 개·고양이·토끼·페럿·기니피그·햄스터의 6종을 제외하면 다른 동물들은 축산물이나 수산물, 또는 실험용 동물로 분류되는 외에 다른 기준이 없다. 6종 모두 포유류이고, 전부터 가정에서 흔히 길렀던 열대어 등 관상어류나 십자매 등 조류가 포함되지 않는 등 현실을 반영하지 않아 반려동물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농림축산식품부도 반려동물의 생산과 유통과정에서의 비인도적·비위생적 관행이 되풀이되는 문제 때문에 올해 4분기까지 조류와 파충류, 어류까지 포함하는 쪽으로 반려동물의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이미 반려동물로 법적으로 분류되는 개나 고양이도 생산업자가 지켜야 할 법적 기준이 현실과 달라 비위생적인 사육환경에 노출되는 점을 감안하면 아예 반려동물로 인정받지 못해 아무런 보호 기준이 없는 동물들의 유통실태는 더욱 열악하다는 것이 동물단체들의 지적이다.

다양한 반려동물을 원하는 수요가 느는 데 비해 그에 걸맞은 제도적 장치가 없어 학대받거나 버려지는 위기에 노출된 동물들로는 고슴도치나 다람쥐 등을 들 수 있다. 독립성이 높아서 키우는 사람이 기대하는 수준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은 데다, 특히 다람쥐 등의 설치류는 경계심이 많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사람을 물거나 덤비는 일도 발생한다. 반려동물로 키워진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습성이 잘 알려지지 않아 방치되거나 의도치 않게 유해한 환경을 제공하는 등의 문제도 있다. 소형동물인 만큼 가정 내에서나 밖에서 잃어버린 뒤 찾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많다.

 

정부의 새로운 반려동물 기준에 포유류나 조류, 파충류, 어류 등 척추동물만 들어간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지능이 높아 최근 해외에서 반려동물로 인기를 끄는 문어 등의 연체동물이나, 전통적으로도 많이 길러온 곤충 등의 절지동물은 들어가지 않는다. 관상용으로 인기를 끄는 문어는 몸 색깔을 화려하게 바꾸는 종이 인기를 끄는 데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경기 결과를 맞히는 등 사람과의 기초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해 국내에서도 사육 인구가 늘었다. 수의사 김정호씨는 “보호색 있는 문어나 혹은 달팽이 같은 동물들을 키우는 반려동물 동호회원들이 늘어날 정도로 국내에도 다양한 수요가 자리잡고 있다”면서도 “문어는 열대어 못지 않게 서식환경 맞추기가 쉽지 않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치료를 해줄 만한 동물병원이 아주 드물다는 문제도 있어 이런 점을 희귀동물을 키울 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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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이여 단결하라!


김남수 박사의 사회경제론

이 시대 경제학은 1%를 옹호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옹호가 사실 경제학의 보수성을 상징하고 있다. 필자는 경제학에 붙어 있는 보수적 학문이란 오명을 벗어던지고자 한다.

우리는 진보의 생명이 항상 근로대중과 함께하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사회의 특수성과 연관되어서는 전쟁 반대와 평화체계 구축에 그 의의가 있다. 한국전쟁의 기억은 전쟁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 땅의 근로대중이 쌓아온 노동력 산물을 지켜야 할 우리 사회 진보의 과제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미국화되어 나타나는 경제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미국 경제학이 어떻게 보수화되어갔는지 역사적 이해를 통해 미국 경제학이 우리나라에 천착되어가는 과정과 식민화의 역사를 고찰하고, 현시대 전 세계에 횡행하는 보수주의 흐름에 반대하고자 한다.[필자서문]

새해 첫 주, 누구나 희망과 설렘으로 맞이하는 기간이다. 미국 곳곳의 연구중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인 젊은 경제학도들의 몸과 마음도 바빠진다. 회원 수 2만에 이르는 전미경제학회(AEA) 연례학술대회 기간을 이용해 자신을 소개하고 취업을 결정하는 ‘잡 마켓’이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도 전미경제학회의 1만3000 회원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례학술대회에 참석했다. 그렇지만 그들 가운데 올해가 전미경제학회 창립 131주년이 되는 해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전미경제학회의 1885년 선언에 대해 아는 사람 역시 거의 없다시피하다. 이 학회는 경제연구의 진작과 ‘경제학 토론에서 완전한 자유’ 구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전미경제학회 홈페이지 캡쳐

“우리는 국가를 인류 진보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교육적이고도 윤리적인 기관이라 여긴다. 노동생활에서 개인적인 주도성이 필요하다고 여기지만 자유방임이라는 원칙은 정치적으로 불충분하고, 도덕적으로도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유방임 원칙으로는 국가와 시민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설명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거 세대의 정치경제를 통해 이뤄진 최종 표현을 받아들일 수 없다.… 노동과 자본간 갈등이 수많은 사회문제를 가져오고 거기에 대한 해법은 교회, 국가, 그리고 학계의 통일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고상하지만 그 얇은 금박 밑으로 도덕의 실종, 배금주의, 부정부패와 같은 추한 모습을 감추고 있던 19세기 후반 미국을 상징하는 ‘도금시대’의 경제학 통설에 반대한다는 선언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정치경제’에 대한 기존 주장자들은 전미경제학회를 비난하였다. 과연 윤리적 기관으로서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인가? 노동과 자본 간의 갈등은? 나중에 자유방임주의에 대해 “정치적으로 불충분하고 도덕적으로도 부적절하다”고 한 표현은 최종 문구에서 빠졌다. 왜냐하면 이로 인해 새로 출범하는 학회가 과학적 연구발전을 넘어서는 다른 동기를 가져야하기 때문에 이 학회의 임무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 문구를 뺀 것이다. 그렇지만 전미경제학회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로 이해될 수 있다.

전미경제학회는 학계나 공공영역 모두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하면서 개혁을 위한 주장을 하는 단체로 설립되었다. 전미경제학회가 출범하면서부터 이런 두 가지 임무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기존 경제학은 추상을 통한 이론모형에서 도출된, 부를 분배하는 불변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전미경제학회 설립자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경제적 사실을 연구하는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소득, 부, 노동, 임금, 경기침체, 무역 등을 다루면서 사실의 추상화보다는 현실에 적절한 정책으로 결론을 도출하려고 했다. 이런 그들의 결론은 종종 이른바 ‘계급입법’을 반대하는 정치적 집단과 충돌하였다.

전미경제학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터키 출신의 리차드 엘리(Richard Theodroe Ely)로 그는 31살 나이에 이미 존스홉킨스대학의 교수였다. 엘리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일어난 종교운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회적 교훈과 그 사회생활에의 적용을 강조했던 ‘사회복음’ 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전문 학계를 근대화하는 것에도 야심이 있었다. 그는 이런 전통적 가치와 근대적 가치의 연결을 통해 일반대중을 설득하려고 하였다. 그러면서 경제학을 고용주를 옹호하는 학문이 아닌 일반대중의 친구로 자리매김하려했다.

▲ 출처 : 전미경제학회 홈페이지

당시 정치경제라고 불리던 기본전제와 점점 더 계층화되는 미국사회의 민중 투쟁에 이를 적용하려는 엘리의 ‘두 가지 혁명’은 당시 말쑥하게 차려입은 경제학 전문직과 불화를 가져왔고 복잡한 동맹관계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개인 재산을 기부 받거나 연방법에 따른 기부를 받던 환경에서 더 복잡해지게 된다.

결국 엘리와 그의 동료들은 도금시대의 견고한 사회적 틀에 대한 개혁을 포기하고 경제학 교수 지위를 받아들이면서 경제적 행태에 관한 연구에서 과거의 심리적이고 불변적인 틀을 벗어나 제도적이고 역사적인 접근법을 택하게 된다. 그들의 이런 태도는 전미경제학회가 결국 특정계급 지지의 입장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학자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그들의 반대에도 경험적인 성공이 아닌 당시 권력자에게 순종한 결과로 자유방임주의는 살아남았다.

사실 ‘자유시장’이라는 통설이 가져다준 특권과 존중으로 인해 오늘날 민주주의의 심장을 갉아먹는 경제 불평등이 존재하게 되었고 다음과 같은 물음을 갖게 하였다. 노동자 편에 서고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 도덕적인 학자라고 본 엘리의 경제학적 견해와 신념의 퇴보는 전문 경제학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더 넓은 관점에서 볼 때 대학교육에서 현상에 대해 도전하지 않는 중립적인 학자들은 왜 침묵하는가?

이 학회가 창립되던 해부터 미국사회는 양극화시기에 직면하게 된다. 1885년과 1886년 사이에 두 개의 경쟁적인 전국노동조직이 존재하였는데 노동기사단(Knights of labor)와 전미노동연맹(American Federation of Labor)으로 수십만의 회원을 가진 조직들이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자유진입 정책을 옹호하는 기사단은 다소 느슨하게 정의된 ‘생산자’를 연합하는 협동경제를 선호한 반면에 전미노동연맹은 백인 숙련노동자 조합이 새로운 산업질서가 만든 ‘파이’의 큰 부분을 가져야 한다는 ‘순수하고 단순한 노동조합주의’를 추구하였다. 두 조직 모두 현 상황을 지키려고 하였다.

1886년 5월3일 ‘헤이마켓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틀 전인 5월1일 8시간 노동제 도입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5월3일 시카고의 헤이마켓 시위에서 경찰이 시위군중에게 발포하면서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다음날 이에 항의하는 집회가 벌어졌는데 누군가 던진 폭탄으로 7명의 경찰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 이에 분노한 경찰이 단순 구경꾼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여 2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또 경찰은 노동운동 지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작업을 벌여 수백 명을 구금하고 증거 없이 급진적인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형을 언도한다. 이 사건이 ‘메이데이(노동절)’의 기원이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헤이마켓 사건을 그린 삽화[출처 : 위키백과]

8명의 아나키스트들 가운데 4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들 가운데 누구도 유죄임을 입증할 증거는 없었다. 헤이마켓 사건은 미국을 적색공포로 몰아넣게 된다. 전미경제학회 창립시 가장 두려웠던 것은 폭탄 투하를 통해 나타난 계급전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헤이마켓 사건 3개월 뒤 엘리는 <미국노동운동(The Labor Movement in Amercia)>을 발간하였다.

그 책에서 엘리는 노동시장에서 적절하고 인간적인 면을 보장하기 위한 노동조합이 없다면 경제성장의 성과는 오직 부자들에게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당시 노동조직인 기사단이나 전미노동연맹 어디에서 속하지 않았지만 그의 견해의 많은 부분은 전미노동연맹과 꽤 유사하였다. 그는 ‘자유로운 노동’과 부를 축적하면서 사회적 이동성을 갖는다는 것이 모호한 표현이라고 보았다. 그보다는 고용주가 극단적으로 비타협적 태도를 견지할 때 협동하는 운동과 단체협상을 통해 노동자다운 노동자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파업이나 보이콧과 같은 노동쟁의행위가 노동조합의 목적이라고 하였다.

<미국노동운동>이란 책은 엘리의 견해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엘리트 보존보다는 노동자동맹을 사회과학적 차원에서 대중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엘리의 동료 연구자들 중 몇 사람은 엘리를 옹호하였지만 그것은 엘리의 입장이 명백히 기독교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데이터에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소 논쟁은 있었지만 이 책은 엄청난 통찰력을 제공하였다.

이런 역사는 1960년대 다시 반복된다. 미국의 대학사회에 반전(反戰)운동과 빈곤퇴치운동이 발생하면서 학내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대학 교수들에 대한 평가가 진행된다. 이렇듯이 미국사회는 도금시대 민간자본에 의한 감시와 1960년대 매카시즘으로 대표되는 감시를 받았다.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다. 1980년대 해직교수들이 국가권력의 감시를 받았듯이 오늘 대학 구성원은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일상적인 감시를 받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객관성’을 과학적 접근으로 포장하려는 경제학자들의 노력이 한편으론 가련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이제는 떨쳐버려야 한다.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로 변화되기 위해 ‘전 세계 경제학자들이여 단결하라’고 외치고 싶다.

그러나 필자 또한 이 학문에 몸담고 있기에 비판은 쉽지만 구체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우리 모두 성찰하고 반성하며 경제학의 부활을 꿈꿔본다.

킨의 표현대로 이제는 사회과학의 벌거벗은 임금님 신분을 벗어던지자.

 

* 김남수 박사는 고려대에서 논문 ‘홀드업문제에 대한 일연구’로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고려대 경제학과 강사로 있다. 번역서로 <만화로 읽는 경제학의 모든 것>이 있다.

김남수 박사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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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호갱님, 이젠 SM-3도 구매하셔야죠”

‘사드 팔아먹기’와 판박이 상황… ‘눈뜬장님’인 ‘헬조선’의 민낯
 
김원식 | 2016-08-20 09:44:4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국은 북한이라는 존재가 있는 한 우리의 영원한 핵심 고객이다” 미국 방위산업(방산)체 주변에 널리 펴져 있는 정설이다. 말이 고객이지 시쳇말로 하면 ‘호구’와 ‘고객’의 합성 신조어인 ‘호갱’이라는 것이다.

북한에서 날아올 수 있는 날벌레(미사일)들을 막기 위해 하늘 층계별로 촘촘히 거미줄(미사일방어)을 쳐야 한다는 논리가 득세한다. 이들 북한발 미사일이 남한 목표물로 떨어지기(종말 단계) 전에 고도 약 40km에서 150km 범위에서 ‘사드(THAAD)’라는 거미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제는 버젓이 관철되었다.

북한이 그보다 낮은 고도의 단거리 미사일을 놔두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높은 고도로 미사일을 발사하느냐는 기초적인 의문도 이제는 ‘안보’라는 논리에 묻히고 있다. 그리고 수도권은 방어도 못 하게 왜 하필 “성주에 배치하느냐”는 의문도 “수도권은 좀 낮은 단계 요격 미사일인 PAC(패트리엇)이 담당하면 된다”고 어물쩍 넘어간다. ‘안보, 안보’하니 ‘안보 논리’로 “북한의 신형 방사포나 단거리 미사일도 최소 천여 발이 넘는데, 사드나 PAC로 어떻게 다 방어하느냐”는 의문에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기가 막힌 ‘호구’논리가 등장한다.

원래 ‘호구’ 고객인 ‘호갱’이니 여기까지야 그래도 눈뜬장님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치자, 그런데 사드 도입이 확정되자, 이제는 슬슬 “SM-3도 구매하라”는 군불이 때진다. 이왕 다층적(?) 방어하는 김에 요격거리도 한 500km나 되고 방어 고도도 150∼500㎞로 사드(40∼150㎞)보다 훨씬 높은 ‘SM-3’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호갱’에 대한 ‘후려치기(사기라고는 표현하지 않겠다)’ 기술이 사드 판매 때의 방식과 너무도 똑같아 경악을 금치 못하고 하고 있다. 좀 더 고급 제품이고 가격도 높은데, 얼마나 ‘호갱’이면 판매 방식은 그대로일까 하는 것이다.

우선, 사드 판매와 같은 가장 원초적인 ‘꼬드김’ 기술이 먼저 발휘된다. 사드 판매 때의 “호갱님, 겨우 철 지난 PAC-2, 가지고 있는데, PAC-3나 사드가 필요합니다”라는 그 기술이다. “겨우 한 150km 나가는 철 지난 SM-2 가지고 있는데, 신형 SM-3 도입하셔야죠, 다층 방어하셔야죠”이다. 그런데 판매자를 조사해 보면, 더 기가 막힐 일이 발생한다. 이들이 팔아 치운 사드도 미국 정부 기관 등에서는 “한국은 너무 종심(사거리)이 짧아 필요 없다”고 했는데, 이들은 판매에 성공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지금 다시 미 방산업체가 팔아먹으려고 나선 이 SM-3도 마찬가지다. 1999년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MD) 보고서는 “한국의 경우 해상 미사일방어체제(MD)로는 해안 시설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나, 내륙의 시설이나 인구 밀집 지역을 방어하는 데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해상 MD는 저고도로 날아오는 단거리 탄도미사일로부터 한국의 3분의 2를 방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참고로 이 SM-3는 주로 이지스함 등 전함에 장착되는 요격용 미사일이다. ‘바다의 사드’라고도 불리는 해상 MD인데, 미 국방부가 한국에는 필요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하지만 다시 사드처럼 ‘후려치기’는 계속된다.

한국 국방부의 초기 ‘시침떼기’도 사드와 똑같다. 2014년 5월, 한국 국방부 대변인은 “SM-3와 같은 무기체계는 우리 한국 군의 목표가 종말단계 하층방어가 목표인데 이 종말단계 하층방어를 넘는 수준이다. 그래서 일단 SM-3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과거에도 밝혔다”고 시침을 뗀다. 사드 ‘시침떼기’와 거의 토시 하나 안 틀린다. 그리고 사드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사실 진실이다. 하지만 곧이어 이 진실을 갈아엎는 미 국방부 수뇌부들의 ‘알박기’가 시작된다.

‘전혀 필요없다’-> ‘시침떼기’ -> ‘알박기’ -> ‘군불 때기’ -> ‘돌려 치기’ -> ‘한국 = 눈뜬장님’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 2일, 한국국방연구원 주최 국방포럼 강연에서 “사드는 중첩 미사일방어체계의 일부”라며 “지속적인 패트리엇 미사일 증강은 중첩 미사일방어체계에 큰 힘이 될 것이고 해상 요격능력 또한 이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상 요격 능력 즉, SM-3 필요성에 ‘알박기’를 한 것이다. 이쯤 되면 사드 논란이 한창일 때, 지난 2014년 6월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던 커티스 스캐퍼로티 사령관이 같은 국방포럼 강연에서 “사드는 미국 측에서 추진하는 사항이고 내가 전개를 요청했다”고 똑같은 ‘알박기’에 나서 판세(?)를 돌린 사실이 떠오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 국방부 수뇌부가 ‘알박기’에 나서면 그다음은 한국 국방부 관계자들이 슬슬 말을 바꾸면서 ‘군불때기’에 나선다. 지난 2일, “군 관계자는 ‘사드 배치에 이어 SM-3를 도입하면 중첩 미사일방어체계를 완성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다’며 ‘신형 이지스함의 성능을 고려해도 SM-3를 도입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이유이다. 이어 16일에는 “한 국방부 관계자는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기로 한 한미 양국 군 당국이 곧 한국군의 SM-3 도입 방안 논의에 착수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는 언론 보도가 분위기(?)를 띄운다. ‘전혀 필요 없다’에서 ‘논의해 보겠다’로 ‘돌려치기’하는 모습이 사드 도입 때와 소름 돋도록 똑같은 판박이다.

이렇게 군불이 때지면, 한국 국방부의 ‘발 빼기’ 차원의 ‘시침떼기’가 어김없이 다시 진행된다.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18일, SM-3 요격체계 도입 여부에 관해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불과 2년 만에 한국 국방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에서 미군 수뇌부가 ‘알박기’에 나서자, 슬쩍 발을 빼면서도 “검토가 필요한 사항”으로 발전한 것이다. 사드 ‘팔아 치우기’ 단계를 기억해 보면 참으로 놀랍도록 똑같다. 그리고 이러한 ‘발 빼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사드가 도입 결정된 사실을 보면 조만간 SM-3 도입은 불문가지다.

한국 해군은 이미 차기 이지스함 3척을 건조하면서 이 SM-3 요격 체제를 탑재할 수 있는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통합전투체계인 ‘베이스라인9’를 장착하기로 계약했다. 여기에 미국 레이시온사의 제품인 SM-3 요격 미사일을 장착하라는 것이다. 한 발당 150억 원이 넘는 이 SM-3를 이지스함에 다 도입하려면 거의 2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비용이 예상된다. 사드야 그래도 주한미군이라는 한 다리를 걸치고 도입한다고 했지만, SM-3는 직접 구매해서 신형 이지스함에 도입하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눈뜬장님’인 한국이 ‘SM-3를 구매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태평양을 건너서 넘어오는 미 방산업체 관계자의 소리는 “사드 호갱님, 이젠 SM-3도 구매하셔야죠”가 아니었다. 미국 방산업체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이미 잘 짜인 ‘고스톱판’을 보면서 단지 그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소리였다. “알아서 다 착착 사가는데, 뭘 우리가 애써 팔려고 해”라는 웃음소리와 ‘헬조선’의 민낯 위에서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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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가 성주를 방패 삼으라 카는 주문 아이가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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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6/08/21 11:26
  • 수정일
    2016/08/21 11:2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2016-08-20 09:51수정 :2016-08-20 11:18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성주 배치 발표(7월13일) 한 달 만에 ‘대체부지 공세’가 ‘사드 반대’로 뭉친 성주군민들을 때리고 있다. 한민구 장관의 성주 방문(17일) 전후로 국방부가 롯데스카이힐 성주컨트리클럽(초전면)을 급격히 띄우고 있다. 지켜야 할 국민으로부터 희생돼야 할 성주군민을 떼어낸 정치가 이젠 “군민이 합의하면 관내 다른 부지 검토”를 흘리며 성주군민과 성주군민을 쪼개려 한다. 확정 부지인 성산에 대체부지(염속산, 까치산, 칠봉산, 롯데스카이힐 골프장)로 거명된 장소까지 더하면 성주 내 사드 후보지만 5곳이다. 성주의 이름 있는 모든 산들이 사드 앞으로 끌려나오고 있다. 1967년 성산에 포대를 놓은 건 박정희 정권이었다. 그 포대에서 흘러내린 지뢰가 가난한 주민들의 삶을 끊었다. 사드 대체부지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이 성주를 상대로 한 ‘지뢰 돌리기’와도 같다. 성주군민들은 성산을 “잃어버린 땅”이라고 표현한다. 성주 역사의 시원이면서 눈물의 뿌리다. 성산으로부터 확장하고 있는 ‘사드의 길’을  토요판이 따라갔다. 정부가 필사적으로 놓고 있는 그 길 위에서 성주가 빼앗긴 것들과 빼앗길 것들이 선연하다. 만화가 최호철씨가 성산을 중심으로 ‘사드 사태’가 장악해버린 성주를 그렸다. 대체부지 후보 중 성산 서남쪽에 위치한 까치산과 칠봉산은 그림 구도 때문에 표시하지 못했다.  성주/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그림 최호철 homi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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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성주 배치 발표(7월13일) 한 달 만에 ‘대체부지 공세’가 ‘사드 반대’로 뭉친 성주군민들을 때리고 있다. 한민구 장관의 성주 방문(17일) 전후로 국방부가 롯데스카이힐 성주컨트리클럽(초전면)을 급격히 띄우고 있다. 지켜야 할 국민으로부터 희생돼야 할 성주군민을 떼어낸 정치가 이젠 “군민이 합의하면 관내 다른 부지 검토”를 흘리며 성주군민과 성주군민을 쪼개려 한다. 확정 부지인 성산에 대체부지(염속산, 까치산, 칠봉산, 롯데스카이힐 골프장)로 거명된 장소까지 더하면 성주 내 사드 후보지만 5곳이다. 성주의 이름 있는 모든 산들이 사드 앞으로 끌려나오고 있다. 1967년 성산에 포대를 놓은 건 박정희 정권이었다. 그 포대에서 흘러내린 지뢰가 가난한 주민들의 삶을 끊었다. 사드 대체부지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이 성주를 상대로 한 ‘지뢰 돌리기’와도 같다. 성주군민들은 성산을 “잃어버린 땅”이라고 표현한다. 성주 역사의 시원이면서 눈물의 뿌리다. 성산으로부터 확장하고 있는 ‘사드의 길’을 토요판이 따라갔다. 정부가 필사적으로 놓고 있는 그 길 위에서 성주가 빼앗긴 것들과 빼앗길 것들이 선연하다. 만화가 최호철씨가 성산을 중심으로 ‘사드 사태’가 장악해버린 성주를 그렸다. 대체부지 후보 중 성산 서남쪽에 위치한 까치산과 칠봉산은 그림 구도 때문에 표시하지 못했다. 성주/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그림 최호철 homix@naver.com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토요판] 성주 ‘사드 길’ 답사기

 

 

▶ 정부가 성주에 ‘사드 대체부지 카드’를 던지며 판을 바꾸고 있습니다. 사드 철회가 아닌 대체부지 검토는 ‘성주 내 새 희생양 찾기’로 귀결될 우려를 보입니다. 누군가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삶터와, 그 삶터에서 살아온 시간과, 그 삶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숫자와 지명과 지도에선 확인되지 않습니다. “애국과 안보를 말하기 앞서 와서, 보고, 들어보라”고 성주군민들은 호소합니다. ‘사드 후보지’에 가려진 땅의 역사와 그 땅 사람들의 눈물의 역사를 만났습니다.

 

 

“저거 쳐다보믄 우떻노?”

 

설칠덕(78)씨가 산을 가리키며 물었다.

 

“…”

 

유임이 할머니(84)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설칠덕씨가 목소리를 돋웠다.

 

“마음이 우떻노 말이다.”

 

할머니는 소리가 아니라 소리가 나온 얼굴에서 소리의 뜻을 읽으며 되물었다.

 

“뭐시라?”

 

설칠덕씨가 손가락으로 산을 가리키며 고함을 질렀다. 사수골(경북 성주군 용암면 중거리) 계곡에 부딪힌 목소리가 개울을 건너 밭 언저리를 쩌렁하게 울렸다.

 

“저거 보믄 가슴 안 아프나?”

 

손가락 저편에서 성산 ‘만데이’(꼭대기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가 할머니의 참깨밭을 내려다봤다. 성산포대(공군8129부대·사드 배치 예정지)의 하얀 시설물이 바위와 나무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거나 감추었다. 손가락을 따라간 눈길이 포대에 이르러서야 할머니는 소리의 끄트머리를 붙들 수 있었다. 그도 소리를 질렀다.

 

“한이 맺힌다.”

 

사수골 개울물은 소떼처럼 몰려가지 않고 콧물처럼 천천히 흘러 가뭄을 다독인다고 했다. 개울 옆의 우거진 감나무 가지를 헤치고 기어들어야 나오는 옴팍한 땅에서 할머니의 참깨밭이 호미를 받고 서걱거렸다. 허리 굽은 할머니가 쪼그려 앉으면 상·하반신이 종이처럼 접혔고 가슴과 무릎과 겨드랑이가 풀칠한 것처럼 한데서 붙었다. 할머니는 밭을 매다가, 성산을 쳐다보다가, 밭을 매다가, 띄엄띄엄 말했다.

 

유임이(84·성주군 용암면 중거리) 할머니가 성산에서 지뢰를 밟고 20여년간 고통을 받다 올해 1월 사망한 아들(52)의 영정을 꺼내 보이고 있다. 성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유임이(84·성주군 용암면 중거리) 할머니가 성산에서 지뢰를 밟고 20여년간 고통을 받다 올해 1월 사망한 아들(52)의 영정을 꺼내 보이고 있다. 성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뭐하러 산에 기어올라가서….” 1995년 아들 조경수(가명·52)는 성산포대가 매설한 발목지뢰를 밟았다. “내 아들 고생고생 말도 몬 한다….” 하루 동안 발견되지 못한 그는 산에서 밤새 혼자 피를 흘렸다. “그냥 다리를 안 끊어 버렸나….” 대학을 졸업하고 “머리가 좋아 시험에 다 붙었던”(어머니) 아들의 인생도 그날 이후 다리처럼 잘려나갔다.

 

피해 보상 대신 책임 무마가 있었다. “사고 직후 대대장이 병원으로 찾아와 치료비 하라며 아버지에게 30만원을 주고 갔을 뿐”이라고 형 조형수(가명)는 기억했다. “다리가 절단 났는데도 아무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그들은 살아왔다. 고무 의족에 얹은 조경수의 다리는 썩어들어갔고, 억울함이 쌓인 그의 마음은 부서졌다. “괴로우니까 집에서 난동도 부리고 병이 깊어져” 조경수는 20년을 정신병동에서 살았다.

 

늙은 어머니가 지난 10일 마루 선반에서 노끈으로 동여맨 아들을 내렸다. 겹겹으로 싼 달력 종이와 신문지를 벗겨내자 아들이 나왔다. 주민등록증 사진을 확대한 듯 아들의 영정 얼굴은 밀도 없이 흐리고 뿌옜다. “허파에까지 고름이 차서”(형) 그는 올해 1월 병원에서 사망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아들의 얼굴은 사진처럼 희미해져갈 것이나, 아들의 다리를 앗아간 포대는 매일 선명한 형상으로 어머니의 남은 생을 대면할 것이었다.

 

“간첩 잡는다던 지뢰가 동생을 잡았는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누굴 잡을지 어떻게 아나.” 형은 “울화”가 터졌다. 포대 자리에 사드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어머니는 몰랐다. 청력을 소진한 그는 소란스런 외부세계와 단절돼 살았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귀를 닫은 그가 평화로울지 홀로 격렬할지 알 수 없었다. 그 무음의 세계에서 어머니는 일만 했다. 몸의 상반신을 유모차에 싣고 날마다 밭에 나가 호미질을 했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새벽 첫차를 타고 장에 가서 깻잎, 도라지, 고추를 소쿠리에 쌓아두고 팔았다.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지 못했을 한 맺힌 평생”을 마을 사람들은 다 알았다.

 

 

95년 성주 성산서 지뢰 밟은 아들
정신병동에 20년 있다 올 1월 사망
공군은 피해 보상 대신 책임 무마
청력 잃은 어머니는 무음 속에서
날마다 밭일하며 괴로움과 싸워

 

 

사드 부지 성산에 지뢰 2229발 매설
파악된 인명 사고만 최소 3차례
50년 간격으로 같은 자리에
부녀 대통령이 심는 눈물의 뿌리
공군을 육군과 경찰이 지키는 상황

 

 

지뢰가 끊은 삶

 

“성산의 치마폭을 적시며 굽이굽이 낙동강 지류가 흘러 만든 비옥한 땅에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농사를 짓고”(8월15일 성주군민 ‘사드철회 평화촉구 결의문’) 살았다. 사람들은 성산을 중심으로 성주에 깃들었다. ‘별뫼’ 성산은 ‘별고을’ 성주에서 바다로부터 389m 높이로 솟아 있다. 성산은 성주에서 “성스러운 땅”으로 불렸다. 성산을 중심으로 성산가야(6가야 중 하나)는 태동하고 소멸했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삶의 흔적들이 산 주위에 남아 성산의 “어머니산”(성주의 주산은 금산리의 연산)됨을 증언했다.

 

1967년 성산 300m~375.4m 지점에 육군 방공포대가 창설됐다. 1991년부턴 공군이 관할하는 호크 미사일부대(1방공포병여단 예하 8129부대)로 바뀌었다. 방공포대 창립 당시 부대 경계를 이유로 KM14A1 대인지뢰(1974년까지 미국에서 생산된 M14를 한국에서 면허 제조한 발목지뢰) 2229발을 산에 심었다. 금속탐지기에도 잡히지 않는 플라스틱 지뢰는 작고 가벼워 빗물에도 쉽게 유실됐다. 성산에서도 최소 세 차례(1982년, 1988년, 1995년)의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 2006년이 돼서야 수거작업이 이뤄졌으나, 91발은 행방이 불명한 채 성산에 뿌려져 있다.

 

용암면 사수골에서 905번 지방도로를 타고 성주읍으로 넘어가면 성산에서 이름을 얻은 성산리가 나온다. 성산을 싸고 오른쪽에 성산3리가 있다. 성산포대의 서쪽 아랫마을이다. 마을은 포대가 들어서기 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살망태’(행정명 부여 전 지명)는 포대가 없던 시절 성산 정상의 기억을 품고 있다. 성산포대 자리엔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었다. 조선의 5개 봉수로 중 성주는 동래 다대포→경상도→충청도→경기도→성남 천림산으로 이어지는 경로에 속했다. 봉수대를 관리하는 봉군들이 산막을 친 마을이어서 ‘산막터’라 불리다 살망태가 됐다. 별티고개(살망태에서 선남면 장학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래 청동기 지석묘 근처에서 살망태 주민 고정학(가명·80)은 수대째 살아왔다.

 

그는 집 앞 성산을 올려다볼 때마다 경운기에 흥건하게 고인 아들의 붉은 피가 떠올랐다. 1982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은 착했다. 아버지는 가난해서 비닐하우스를 세울 파이프나 대나무를 사 쓰지 못했다. 아버지를 돕고 싶었던 열여섯살 아들은 성산에 올라 지지대로 쓸 나무를 했다. 성산 칠·팔부 능선에 설치된 포대 철조망 아래쪽이 빗물로 무너져 있었다. 나무를 자르며 발에 힘을 주는 순간 발뒤꿈치가 날아갔다. 폭발 소리를 듣고 산으로 올라간 형이 동생을 업고 내려와 경운기에 실었다. 장에 나가 있던 아버지가 “병원에 도착했을 땐 아들의 왼쪽 다리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큰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아들을 둘러업은 그의 앞을 포대 군인들이 막아섰다. “간첩일지 모르니 조사부터 해야 한다”며 총을 겨눴다. 의사는 무릎 15㎝ 아래로 아들의 다리를 잘랐다. “군수와 포대장, 농협조합장, 읍장이 병원으로 찾아와 봉투를 내밀”었다. 군수는 “포대장이 승진에 문제 되지 않도록 신고하지 말라”며 그의 약속을 받아 갔다.

 

“지금 벌어진 일이어도 신고 몬 해요.”

 

고정학은 고개를 숙였다. 변호사 살 돈이 없었던 그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다. “의족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해 걸을 때마다 나자빠지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내 팔자”를 탓하며 혼자 울었다.

 

공군 관계자는 “1982년 사고는 국방부에서 이미 보상을 완료했다”고 <한겨레>에 설명했다. 지난해 시행된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 본인이 신청하고 심사를 거쳐 지급받은 돈(사고 당시의 월급액·월실수입액 또는 평균임금으로 계산)이 ‘33년 만의’ 그 보상이었다. 아들 고철진(가명·53)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했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그의 고통을 그 돈은 보상해주진 못했다. 1988년과 1995년의 지뢰 피해자들은 법 시행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마을 다니믄서 들은 소문으로 치믄 드러나지 않은 지뢰 피해자까지 수십 명은 될 거라고.”

 

설칠덕씨는 성주 전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며 집집의 사정을 꿰었다. 공군 쪽은 “피해자들이 증언하는 사고 무마 정황은 공식 자료에서 확인할 수 없다”고만 했다. 평생 가난을 숙명처럼 알고 권력과 권위에 순응하며 살아온 사람들을 국가는 그렇게 대해왔다. ‘지뢰 경고’ 표지판이 산 밑에서부터 능선을 타고 바늘처럼 꽂혀 성산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들의 다리를 앗아간 산을 떠나지 못했던 아버지는 사드가 들어오는 그 산 밑도 떠나지 못한 채 살망태에서 살아갈 것이었다.

 

사드 배치 발표 이후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포대(공군 8129부대) 앞은 경찰과 육군이 지키고 있다. 초소 뒤로 지뢰 경고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성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사드 배치 발표 이후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포대(공군 8129부대) 앞은 경찰과 육군이 지키고 있다. 초소 뒤로 지뢰 경고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성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성산은 ‘잃어버린 땅’

 

산은 진입로에서부터 막혔다. 성산포대로 오르는 길을 경찰이 경비했다. 사드 배치 발표 이후 포대에 닿는 길까지 겹겹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검문했다. 부산지방경찰청이 기동대 3개 중대를, 경남청과 울산청이 1개 중대씩을 보내 돌아가며 지켰다. 30명이 근무를 서고 60명이 대기했다.

 

“우리가 왜 군인을 지키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는데.”

 

공군 8129부대 앞에서 한 경찰은 말했다. 바리케이드를 모두 통과하면 도착하는 포대 앞 초소는 지역에 주둔한 육군이 올라와 경계했다. 미군의 사드가 배치될 공군 포대를 한국 경찰과 육군이 지키는 기묘한 풍경이 ‘지뢰 경고’와 뒤엉키며 성산의 과거 50년을 소환해 현재에 포갰다. 50년 간격으로 같은 자리에 ‘눈물의 뿌리’를 심으면서도 부녀 대통령은 한결같이 성주군민의 뜻을 묻지 않았다.

 

성산을 새긴 군민들의 기억도 바리케이드에 막혔다. 그들의 기억은 수십 년 전에 멈춰 있었다. “1960년대 초등학교 소풍으로 산을 올랐을 때 가야 고분이 도굴된 채 열려 있었다”고 도일회 성주문화원장은 떠올렸다.

 

성산포대 부지엔 봉수대 말고도 성산가야의 산성이 있었다. 2008년 9월 문화재청이 공군 8129부대 안의 문화재를 조사했다. 성벽으로 추정되는 흔적과 표지석만 확인했을 뿐 산성은 이미 훼손된 상태(‘2008 군부대 문화재 조사보고서’)였다. 1963년 1월 사적 제91호로 지정된 성산산성은 3년 만인 1966년 12월 지정 해제됐다. 방공포대의 연결도로로 사용되면서 중요문화재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이유였다. “위치가 성산의 정상부이거나 부대의 북서편 모서리일 가능성이 높다”던 봉수대도 “정상부는 완전히 삭평되고 북서편 모서리는 참호 조성과 경계 철책, 본부 건물이 조성되면서 지형이 대부분 훼손됐다”고 보고서는 기록했다. 수천 년의 역사가 군부대 철조망에 갇혀 증발했다. 회수되지 않은 지뢰는 제거되지 않는 공포인 동시에 ‘잃어버린 땅’의 표시엿다. 성주군에서 발행하는 문화재 안내 자료에서도 산성과 봉수대는 사라졌다. 사드가 터지기 전까지 성주군민들에게 성산은 “서명운동을 해서라도 반환받아야 할 땅”(도일회)이었다.

 

사드 배치 예정지인 성산포대(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서 1㎞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밀집 분포하는 성산가야 고분군. 성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사드 배치 예정지인 성산포대(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서 1㎞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밀집 분포하는 성산가야 고분군. 성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여기가 죄다 집 있던 자리 아입니까.”

 

성산4리 배상권(54) 이장이 고분군을 가리켰다. 3리를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돌면 성산4리를 만난다. 성산의 동쪽 아래에 있으며, 성산포대와 가장 가까운 동네다. 임진왜란 때 왜장 구로다의 군사 2600여명을 섬멸한 장소여서 ‘승왜리’라고도 했다. 가야는 고분과 산성을 짝으로 묶어 배치했다. 성산 위의 산성과 아래의 고분군은 가야 양식의 특징을 대표했다.

 

새알 절반이 땅에 묻힌 듯한 고분들이 성산 허리에서 밀집(사적 제86호·지정면적 72만6261㎡)했다. 무너진 집터가 고분들과 섞여 성산4리를 이뤘다. 본래 산이 있었고 고분은 산의 형상에 맞춰 자신을 앉혔다. 산 밑에서부터 생겨난 고분(321기가 산재해 있으나 장학리·명포리 등에 분포한 것을 합치면 500여기 추정)은 숲 사이를 파고들며 한 기씩 늘어나 산 위까지 기어올랐다. 목숨이 다한 성산가야의 수장들이 고분을 만들고 들어가 누웠다.

 

어린 시절 배상권은 고분에 올라가 미끄럼을 탔다. 어른들은 고분에 고추를 널어 태양초를 말렸다. 집 옆에 고분이 있었고 고분 사이에 집이 있었다. 청년이 된 배상권은 1986년 계명대학교 박물관이 대형 고분 5기를 발굴할 때 현장감독으로 작업을 지켜봤다. 산과 고분과 사람은 서로 지배하지 않고 섞여야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랜 세월을 건너며 익혀왔다. 고분 정비사업(예산 194억원 들여 전시관 건립, 탐방로 조성 등)으로 고분과 섞여 있던 집들이 이주하고 고분과 떨어져 있던 집들(38가구)은 남았다. 군사기지는 본래 있던 것들을 목적에 따라 뒤바꿨다. 성산고분군은 포대로부터 직선거리 1㎞ 안에 있었다. 성산에 사드가 배치되면 고분군도 ‘잃어버린 땅’에 속할 것이라고 군민들은 근심했다.

 

 

사드 성주 배치 발표 한 달 만에
성주군민 때리는 ‘대체부지 공세’
박근혜 대통령 발언으로 본격화
한민구 국방장관 성주 방문 직후
롯데골프장 띄우며 거센 여론몰이

 

 

대체부지 저울질은 ‘지뢰 돌리기’
‘성산 외엔 안 된다’던 국방부는
‘성주면 된다’는 태도로 급선회
지역 주민 건의 형식 요구하며
어디선가 지뢰 밟아주길 기다려

 

 

성주군농업기술센터(성주군 성주읍 대흥리) 저급과수매장 퇴비사에 사드 배치 발표 이후 팔리지 않는 성주 참외들이 버려지고 있다. 성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성주군농업기술센터(성주군 성주읍 대흥리) 저급과수매장 퇴비사에 사드 배치 발표 이후 팔리지 않는 성주 참외들이 버려지고 있다. 성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벌써부터 ‘사드 참외’라 안 카요”

 

성산3리 들머리엔 밀어버린 참외밭이 있다. 사드의 성산 배치에 항의하며 성산리 농민들이 갈아엎었다. 성산리(1~4리 합쳐 500여가구) 주민 90% 이상이 참외 농사를 지었다.

 

“사드가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사드 참외’라 안 카요.”

 

배상권은 격분했다. 참외 값이 폭락해 그는 “미칠 노릇”이었다. 성주 참외(전국 참외 생산량의 75%)의 시세가 평소 가격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지난해 추수한 쌀을 대구에 팔러 간 한 농민은 “사드 쌀 안 산다”는 말을 듣고 돌아와 달아오른 마음을 뱉었다. “전자파는 고사하고 농사 망해 죽게 생겼다”고 배상권은 토로했다. 현실화되지 않은 사드가 이미 성주군민의 생계를 조이고 있었다. 8월초 참외 농가 대부분이 “넝쿨을 뽑고 밭을 놓아” 버렸다. ‘성주에 성주 참외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참외 수확을 해봐야 인건비만큼 손해보는 상황”이라고 여성 농민 백선화(56)는 말했다. “참외를 버리려고 트럭들이 (성주군농업기술센터 안 저급과수매장 앞) 도로에서 2시간 동안 줄지어 기다렸다”고 전했다. 지난 10일 수매장에 딸린 퇴비사에선 지게차가 쏟아부은 참외를 포클레인이 뒤섞고 있었다. “사드 저 카고 나서 참외 값이 떨어져 버리는 물량이 작년보다 15~20%(1천여톤) 늘었다”고 수매장 직원은 말했다.

 

성산포대로부터 1.5㎞ 지점에 성주군청이 있다. 매일 밤 1500여명의 군민이 군청에 모여 ‘한반도 사드 배치 철회를 위한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문화제 때마다 그들은 서울 광화문을 떠나지 못하는 세월호 유족들과, 해군기지에 평화로운 바다를 빼앗긴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과, 경찰의 직사 물대포를 맞고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 농민을 기억하며 묵념한다. 국민으로부터 배제된 자들의 비통을 성주군민들은 날마다 체득하고 있었다.

 

한민구 국방장관이 17일 오후 경북 성주군청에서 사드배치 철회 투쟁위원회와 간담회를 마친 뒤 총리실 경호원들과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건물을 나서고 있다. 성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민구 국방장관이 17일 오후 경북 성주군청에서 사드배치 철회 투쟁위원회와 간담회를 마친 뒤 총리실 경호원들과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건물을 나서고 있다. 성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민구 국방장관이 지난 17일 군청을 찾아 투쟁위원회와 면담했다. 면담 뒤 국방부는 보도자료를 내어 “최근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제3후보지와 관련해 ‘국방부가 조속히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 장관이 ‘지역 의견으로 말씀을 주시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도 했다.

 

“언론이 제기하는 장소”로 국방부가 지목한 제3후보지는 롯데스카이힐 성주컨트리클럽(초전면)이다. 언론 보도는 국방부가 롯데골프장을 방문(8월9~11일)해 대체부지 가능성을 검토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나왔다. 장관의 성주 방문 전날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롯데골프장 검토에 성주군민들의 요청이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없었다”고 답했다. 대체부지 논란 속으로 롯데골프장을 끌어들인 국방부가 언론과 ‘지역 의견’ 뒤에 숨어 몸을 감추고 있다.

 

사드 배치 발표(7월13일) 뒤 거센 반발에 부딪힌 정부가 ‘대체부지’란 예리한 칼날을 세워 성주를 찌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체부지 검토 가능” 언급(8월4일 대구경북 새누리당 의원 면담) 이후 본격화됐다. 국방장관의 성주 방문 이틀 전(8월15일) 국방부가 롯데골프장을 찾은 사실이 보도되고, 하루 전엔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나라의 안위”를 앞세워 제3후보지 검토를 공식 제안(8월16일 호소문)했다. 그의 호소문을 받아 성주 지역 안보단체 등이 ‘관내 이전’을 요구하고, 면담 직후 국방부는 대체부지 검토 요청이 있었음을 부각했다. 장관이 성주를 다녀간 뒤부터 국방부는 롯데골프장을 급격히 띄우고 있다. 방문 하루 만에 “성주 내에서라면 (성산이 아니어도) 사드 효용성은 큰 차이가 없다”(대변인)는 발언까지 나왔다. 성주군민들은 ‘한반도 사드 반대’를 이미 공표했으나 국방부는 ‘대체부지 이전 요청’을 기다린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다. “국방부의 태도는 ‘성주가 성주를 방패 삼으라’는 주문”이라고 한 투쟁위원은 해석했다.

 

성주읍에서 905번 지방도로를 따라간 뒤 초전면(7월 기준 2365가구 4992명) 면사무소를 지나 913번 도로로 갈아타면 롯데골프장(680m) 주변에 이른다. 골프장이 있는 소성리는 성주군의 최북단이다. 김천시와 경계 지역으로 달마산이 감싼다. 골프장은 소야(달마산 밑 두 마을 중 아랫마을)로부터 1㎞ 떨어진 진밭마을에 18홀로 조성돼 있다. 성주군청에서 북서쪽으로 직선거리 18㎞ 떨어져 있고, 산봉우리를 새로 깎지 않아도 되며,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장점’이 거론된다. 롯데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부지 매입 과정에서 정부 협상력을 높일 것이란 전망도 있다.

 

 

“우리를 와 이리 무시하노”

 

소성리엔 원불교 성지가 있다. 2대 종법사인 정산종사가 탄생(1900년 8월28일)한 생가와 성장·구도한 장소가 보존돼 있다. 원불교 대각전과 원불당이 직선으로 1.9㎞ 거리에서 롯데골프장과 인접한다.

 

“평화의 성자가 나신 곳에 전쟁 무기가 와서 긴장을 유발해선 안 됩니다.”

 

성주성지 관계자는 “사드가 배치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원불교는 성주군청에 ‘사드 반대’ 천막을 치고 촛불문화제에 결합할 뜻을 전했다. 골프장과 가까운 김천 시민들(김천혁신도시와 7㎞ 거리)도 반대운동에 나섰다. 김천시와 시의회가 롯데골프장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공동성명(18일)을 냈고, 전날 농소면사무소에선 긴급 간담회가 열렸다.

 

조선시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성주 성산. 대동여지도
조선시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성주 성산. 대동여지도
성산에서 뻗기 시작한 ‘사드의 길’은 염속산(금수면·700m)과 까치산(571m)과 칠봉산(용암면·517m)을 거쳐 롯데골프장까지 닿았다. 성산까지 합하면 5군데의 산과 고지가 사드 예정지·후보지로 호명됐다. 성주의 이름 있는 모든 산들이 사드 앞으로 차출당하고 있다.

 

까치산은 수륜면에서 불려나왔다. 성주읍에서 33번 지방도로를 따라 서남쪽으로 내려가다 대가면사무소에서 913번 도로로 좌회전한다. 서남행을 계속하다 33번 국도와 다시 만나는 곳에 성주에서 가장 큰 수륜면(87.92㎢)이 있다. 까치산은 크고 작다. 수륜리의 토실마을 동북쪽엔 큰까치산이, 모방골마을 서쪽엔 작은까치산(449m)이 있다. 김정례(81) 할머니는 21살에 임천마을로 시집와 까치산을 바라보며 60년을 살았다. 까치산이 사드 대체부지로 거론됐다는 소식에 할머니는 화가 났다.

 

“우리는 사람도 아이가. 거기(성주읍)에서 반대하믄 아예 안 해야지 왜 (사드를) 우리한테 보내노. 아무리 골짜기에 산다 그래도 우리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여기 사람이 적다고 그러나, 땅 꼬랑뎅이 긁어 묵고 산다고 그러나. 우리를 와 그리 무시하노.”

 

정부의 사드 대체부지 저울질은 ‘지뢰 돌리기’에 가깝다. 50년 전 성산에 매설돼 누군가의 삶을 잘라낸 지뢰는 50년 뒤 사드로 되돌아왔다. 어디 있는지 몰라 무서운 발목지뢰가 아니라, 어디 있는지 알아서 공포스러운 최첨단 무기다. ‘성산 외엔 안 된다’던 국방부는 ‘성주이기만 하면 된다’는 태도로 급선회했다. 성주에 사드를 던진 정부는 ‘당신들의 의견을 모아 달라’며 어디선가 지뢰를 밟아주길 기다리고 있다.

 

“우리 4만5천명 성주군민이 바로 대통령께서 지켜내어야 할 국가입니다. 성주군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해서 지켜야 할 국가 안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지난 15일 908명이 성밖숲(성주읍 경산리)에 모여 집단 삭발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사드를 받으라는 대통령 앞으로 성주군민들이 글을 써서 읽었다. 참외를 제외하면 성주는 정치의 뇌리에도 없던 고장이었다. 남한 전체 면적(9만9720.00㎢) 0.61%의 땅(616.14㎢)에 남한 전체 인구(7월 기준 주민등록통계 5163만4618명) 0.08%의 사람들(4만5233명)이 산다. 이 작은 공간과 이 적은 사람들을 위험에 몰아넣어 99.39%의 땅과 99.92% 인구의 안전을 얻는 것이 애국이라고 대통령은 말한다.

 

“우리도 국민”이란 성주군민들의 간절한 호소를 정부와 사드 찬성론자들이 지역이기주의로 몰고 있다. 보호받아야 할 국민과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돼야 할 국민을 나누는 ‘잔인한 정치’가 성주를 몰아치고 있다.

 

성주/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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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떠나야 한다니" 단원고는 다시 눈물바다

 

[현장] 단원고 416기억교실 임시이전 이송식 '다짐의 행진'

16.08.20 19:50l최종 업데이트 16.08.20 19:5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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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후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사용하던 416기억교실의 임시이전 이송식인 '다짐의 행진'을 앞두고 자원봉사자들이 2학년 1반에서 희생 학생들의 유품이 담긴 보존상자를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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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후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사용하던 416기억교실의 임시이전 이송식인 '다짐의 행진'을 앞두고 자원봉사자들이 2학년 1반에서 희생 학생들의 유품 상자를 옮기기 전 '기억과 약속'의 묵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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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단원고 희생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마지막 둥지였던 416기억교실과 교무실을 영원히 떠났다. 미수습 학생 4명(조은화·허다윤·남현철·박영인)은 학교에 남았다. 세월호 참사 858일째인 8월 20일이다.  

애초 기억교실 임시이전 이송식인 '다짐의 행진'은 이날 오전(2학년 1반~6반 유품 보존상자 등)과 오후(2학년 7반~10반 유품 보존상자, 교무실 유품 등)로 나뉘어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416가족협의회가 기억교실의 운영 계획과 예산, 유품 보존공간인 안산교육지원청의 416기억학교 공간이 협소하다며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의 해결방안을 요구하면서 이송 일정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과 이재정 교육감, 김광준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사무총장, 박래군 416연대 상임대표 등이 9시 20분께부터 1시간 넘게 협의를 한 후 기자회견을 통해 예정대로 이전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 교육감은 "도교육청이 나름대로 교육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깊은 성찰과 함께 여러 준비를 해왔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다. 앞으로는 기념관 건립과 희생자 위한 추모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최선을 다해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416기억학교) 프로그램 운영 계획이 미흡한데다 공간도 협소해 유가족들이 사실상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며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존중해 이송 절차와 관련해서는 약속을 이행하기로 했다. 부족한 점은 실무회의를 통해 추가로 논의해 나가면서 보완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회의에서는 추경을 통해 운영 예산을 확보하고, 향후 실무회의를 통해 416기억학교 운영·관리 프로그램 등을 마련하기로 하고, 교실문과 복도 창 등을 옮기기에 협소한 공간은 추후에 따로 확보하기로 했다. 

유가족들은 별도의 비공개 비상총회를 통해 협의 내용을 논의했으나 찬반양론이 맞서 진통을 겪었다. 이 같은 유가족 내부의 분위기는 본격적인 이송을 앞두고 일부 가족이 반발하면서 다시 진통을 겪었고 이송 준비는 1시간 넘게 발이 묶이기도 했다.

일부 유가족 "창고에 내 아들 둘 수 없어 집으로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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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후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사용하던 416기억교실의 임시이전 이송식인 '다짐의 행진'을 앞두고 자원봉사자들이 희생학생의 유품 상자를 본관 1층 현관에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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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후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사용하던 416기억교실의 임시이전 이송식인 '다짐의 행진'을 앞두고 자원봉사자들이 희생학생의 유품 상자를 옮기는 동안 이재정 교육감과 이석태 세월호 특조위원장, 시민들이 묵상과 기도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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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진상규명이 된 게 하나 없는데 이렇게 학교를 떠나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특조위 흔들기로 진상규명은 더 어려지고 있다. 더 이상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 박현지(극단 그린피크)

- "이제라도 우리 아이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부모님들이 더 이상 힘들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은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 원채리(극단 무브먼트 당당)

"오늘 이 시간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주길 바란다. 참사가 일어난 기억과 장소를 건물을 짓듯 없애고 새로 짓는 게 말이 되나. 단순히 정권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길게 봐야 한다." - 나경민(크리에이티브 바키) 

본격적인 이송 준비는 12시께부터 시작됐다. 이날 이송 준비에는 유가족과 '예술인 행동'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이 참여했다. '예술인 행동'은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는 극단 소속 배우와 연출 구성원들로 그간 기억교실에서 틈틈이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유품을 옮기는 예술인들과 시민들은 모두 하얀 모자에 하얀색 옷으로 갖춰 입었다.  

2학년 1반부터 희생학생들의 유품을 담은 보존상자를 본관 1층 현관 앞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유품은 '기억과 약속의 마음'으로 묵념을 한 후 옮겨졌다. 유가족들은 유품 상자를 옮기는 동안 또다시 오열했다. 시민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2학년 1반부터 6반까지 143개의 보존상자가 현관 앞으로 옮겨졌다. 

이어 개신교, 천도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단의 종교의례가 진행됐다. 종교의례가 진행되는 동안 유가족과 이재정 교육감, 이석태 세월호 특조위원장, 시민들은 함께 기도와 묵상을 올리며 떠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명복을 빌었다. 기도 중간 중간 유가족들의 울음소리와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책상과 걸상, 교탁 등을 포장한 상자를 옮기는 중 일부 유가족이 이송을 반대하며 유품상자를 집으로 가져가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1시간가량 중단되다 2시가 넘어서야 재개됐다. 

동혁 엄마는 "창고 같은 곳에 우리 아이를 둘 수 없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우리 아이들을 대할 수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권오현씨는 "동생(권오천)을 창고에 둘 수 없다. 오천이 방을 그대로 보존해 왔기 때문에 유품상자를 동생 방으로 옮기겠다. 나중에 제대로 갖춰  놓으면 다시 옮기도록 할 것"이라며 유품 상자를 차에 실었다. 

'예은 할머니'는 이재정 교육감과 이석태 특조위원장을 앞에 두고 "불쌍한 우리 예은이와 아이들이 얼마나 있겠다고 내쫓나. 그렇게 몰살시켜 놓은 것으로도 부족해 이런 식으로 몰아내다니… 이게 교육이고 이게 학교냐. 우리 아들(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도 단식으로 죽게 생겼어요… 엄마 아빠들이 어떻게 살아가라고 이럴 수 있냐"며 통곡했다. 

단원고~안산교육지원청까지 기억교실 이전 '다짐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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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후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사용하던 416기억교실의 임시이전 이송식인 '다짐의 행진'을 앞두고 유가족들이 유품 상자를 들고 서 있다. 그 옆에서는 재학생과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배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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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후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사용하던 416기억교실의 임시이전 이송식이 진행된 단원고에서 유가족들이 만장을 앞세우고 안산교육지원청까지 '다짐의 행진'에 나서며 교문을 나서고 있다. 멀리 단원고등학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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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걸상, 교탁 등이 운동장에 세운 4.5톤 무진동 트럭 6대에 옮겨진 후 3시께 단원고에서 안산교육지원청까지 약 1.2km 거리를 이송하는 '다짐의 행진'이 진행됐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2학년 1반을 선두로 개인 유품 보존상자를 하나씩 들고 북소리에 맞춰 안산교육지원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무진동 트럭 6대가 따랐다. 단원고 정문으로 내려가는 길목에서는 재학생과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선배들과 선생님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비닐로 만든 만장과 사물패에 이어 유품상자를 든 유가족과 시민들의 행렬이 길게 줄을 이었다. 안산교육지원청 앞 광장에 안착한 유가족들은 유품 상자를 안은 채 대기했고, 예술인들과 시민들이 무진동 트럭에서 책·걸상 등을 별관 416기억학교로 옮겼다. 21일에는 기억교실의 칠판, 게시판, TV, 사물함 등의 물품을 옮긴다. 유품 정리 등은 추후에 하기로 했다.

기억교실은 교육청 별관을 개조한 416기억학교 1층에 2학년 1반부터 4반까지 이전하고, 2층에 5반부터 10반까지 이전한다. 교무실은 2층에 마련된 기억교무실로 이전한다. 

416기억학교로 임시 이전한 기억교실과 교무실은 10월초까지 복원작업을 거친 후 10월 중순께 시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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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이 사용하던 416기억교실이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마련된 '416기억학교'로 임시 이전했다. 2학년 1반 책·걸상이 416기억학교 명예 3학년 1반 교실에 포장된 채로 배치됐다. 유품 등은 10월초까지 복원작업을 거친 후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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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MBC 이번은 다르다.. 자백만이 살 길”

“위기의 MBC 이번은 다르다.. 자백만이 살 길”이상호 기자  |  balnews21@gmail.com
 

   
▲ <사진출처=MBC 보도영상 화면캡처>

권력 감시는 언론의 기본 소명이다. 하지만 권력은 강하다. 그래서 때로 언론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권력의 오더를 받아 보도하는 거, 그건 언론의 일이 아니다. 검찰 아니면 개나 할 짓이다.

“노무현이 NLL을 포기했다더라..” 지난 대선을 앞두고 근거 없는 NLL 광풍이 휘몰아쳤다. 이런 가운데 태국 방콕에 머물던 MBC 특파원이 '갑자기' 국경 넘어 머나먼 말레이시아로 출장을 가서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김정남을 만났다. 수상한 시점에 수상한 인터뷰가 이뤄진 것이다. 김정남 소재 파악은 국정원의 고유 업무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자연스레 국정원 공작설이 제기됐다.

MBC 태국 특파원이 말레이시아에서 수상한 만남을 진행하고 있을 무렵, 나는 트위터를 통해 'MBC, 김정남 인터뷰 추진 중'이라는 내부고발을 감행했다. 내부고발 탓인지 아니면 원하는 발언이 나오지 않아서인지 모르나, 인터뷰는 보도되지 않았다.

대선이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결론나자 MBC는 서둘러 내부고발자에 대한 해고 처분을 내렸다. 노조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MBC는 누구의 오더를 받았으며, 어떻게 인터뷰가 가능했는지 등 의혹들에 대해 여전히 함구하고 있다.

☞ 관련기사 : MBC 방콕 특파원 “김정남 만나 인터뷰 했다” 

   
▲ <사진출처=MBC 보도영상 화면캡처>

가끔 식당 등에서 불가피하게 MBC 뉴스를 목격하다 보면, 종종 권력의 오더성 보도로 의심될 만한 리포트가 나온다. 몇 일전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발언을 인용한 ‘단독’ 보도 역시 그랬다. MBC의 ‘이석수 힘빼기’성 보도는 하지만 의도와 달리 이석수를 열(?)받게 했고 결과적으로 ‘우병우 수사의뢰’ 국면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제 공은 검찰과 청와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MBC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다. 그간 수많은 오보와 악의적 보도들이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청와대의 하청에 따른 공작의 의혹이 너무 짙기 때문이다.

MBC가 인용한 이석수의 대화록이 아무리 힘 있는 정보기관이라도 불법적인 방법이 아니면 도저히 확보할 수 없는 제3자 간의 비밀대화였다. 국경 넘어 말레이시아 어느 호텔에 김정남이 머물고 있는지 우연히 알게 되어 기적처럼 인터뷰하게 되었다는 ‘엉터리’ 변명이 이번에는 먹히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는 얘기다.

MBC의 이번 보도는 박근혜정권의 부통령으로 불리는 우병우를 보위하기 위해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이 특별감찰관을 ‘저격’하는 과정에서 언론을 공작적으로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본질적으로는 청와대 박근혜씨가 직을 걸고 해명해야 하는 대형 게이트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MBC 보도가 MBC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MBC는 거대한 사건의 종범에 불과해 보인다. 어느 기관으로부터 어떻게 자료를 입수해 어떤 의도로 보도했는지 소상히 밝히지 않으면 청와대로 향하는 성난 민심에 떠밀려 방송국 셔터를 내려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MBC여 시간이 없다. 고가의 방송사 장비라고 챙기려거든 지금이라도 이실직고해야 할 것이다. 이왕이면 대선 직전 김정남 인터뷰 공작 의혹도 함께 자백하라. 혹시 아는가? 국민들께서 회초리 매질을 한 대라도 줄여주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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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0 11:34l최종 업데이트 16.08.20 11:4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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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가 서울시의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 집행을 중단하는 직권취소 조처를 했다. 서울시는 이에 불복, 대법원에 제소하기로 해 청년수당 갈등이 법정 소송으로 비화하게 됐다. 서울시는 복지부의 반대에도 3천명의 지급 대상자를 선정하고 이중 청년수당 약정서에 동의한 2천831명에게 활동지원금을 지급했다. 사진은 4일 오후 서울시청 청년정책담당관 사무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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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청년수당을 둘러싼 갈등이 한편의 블랙코미디가 돼가는 모양새다. 고용노동부가 전면에 등장해 서울시 청년수당과 유사한 현금 지급 방안을 발표하면서, 보건복지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제껏 정부와 여당 그리고 보건복지부는 서울시의 '현금 지급' 자체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근거로 반대해왔기 때문에 고용노동부가 현금 지급 방안을 내놓은 이상 기존 입장을 고수할 명분이 사라졌다. 이에 서울시는 "고용노동부는 되고 서울시는 안 되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보건복지부는 고용노동부의 재원이 '조세'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는 궁색한 입장만 내놓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자신들의 현금 지급 방안은 서울시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이번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서울시가 옳았다는 '양심 고백'으로 비치는가 하면, 정부 내 '엑스맨'을 자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유야 어떻든 정부와 여당, 보건복지부를 난처하게 만든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고용노동부의 발표를 계기로 드디어 '도덕적 해이'나 '포퓰리즘' 같은 비생산적 프레임을 넘어서, 청년정책 전반을 둘러싼 논쟁다운 논쟁을 펼칠 제2라운드를 시작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고용노동부 역시 정부와 마찬가지로 서울시 '청년수당'에 꾸준히 반대해왔는데, 이유는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 '현금 지급' 그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청년수당이 청년  일자리 정책의 일환이기 때문에 고용노동부 정책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 또 그럼에도 취업훈련 및 구직활동이라는 조건이 명확하지 않아 현금 지급의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두 가지 이유로 반대해왔다. 다시 말해 선심성 정책에 그칠 것이라는 게 핵심 이유였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청년 일자리 정책에 이미 현금 지원을 결합해 오고 있었다. 이번 발표도 그동안 취업성공패키지 초기 단계에 지급하던 현금 지원을 후반기에도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이지, 그동안 하지 않던 현금 지원을 새롭게 도입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또 지금까지의 지원이 조세로 이루어져 왔다는 점에서 고용노동부의 지원은 조세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시 청년수당을 놓고 '현금 지원'에 초점을 맞춰 '도덕적 해이' 운운하는 논쟁은 종식돼야 한다.

실제로 실업정책에서 '현금 지원'은 구직자를 위한 '소득 안정책'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OECD 국가들 대부분이 기여에 기반을 둔 고용보험뿐만 아니라,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구직자의 소득안정을 지원하는 실업부조 제도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가 고용보험을 통해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것 역시 대표적 사례다. 실업정책에서 소득 안정책은 핵심 정책 중 하나이며, 고용노동부 역시 고용보험뿐 아니라 청년일자리 정책에도 소득보장책을 결부시켜왔던 것이다.

따라서 논쟁의 핵심은 현금지원을 통한 소득보장 여부가 아니라, 소득보장에 '어떤 조건'이 결합돼야 하는가에 있다. 실업자를 위한 소득보장은 장기실업을 방지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구직'을 위한 소득보장책이어야 한다. 즉, 핵심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이직을 위한 기간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다. 특히 현 정부와 기업이 강하게 주장하는 노동유연성을 위해서라도, 이직을 위한 안정적 기간을 확보해주는 것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의 논쟁점이 생긴다. 고용노동부는, 서울시 청년수당은 실업자에게 현금을 지급하면서도 '구직'을 조건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정책인 반면, 자신의 정책은 '구직'을 위한 '취업훈련'과 '취업'까지를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좋은'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여기서 논쟁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과연 고용노동부의 '구직' 조건이 현 시대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서울시 정책은 정말로 '구직'을 위한 정책 지원이나 조건이 부재한지, 나아가 청년세대의 문제를 넘어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대응하는 '미래의 정책'은 어떠한 방향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논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 청년들에게 단순히 돈 몇 푼을 주느냐 안 주냐는 식의 민망한 싸움을 넘어서, 한국의 미래를 위한 '노동시장 정책'을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용노동부 청년 정책, 진짜 '좋은' 정책인가?

고용노동부의 주장처럼 과연 취업성공패키지를 비롯한 정부의 청년 정책이 실효성이 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더 나은 일자리로의 취업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대표적 지표가 적정수준의 임금과 근속연수다.

정부는 그동안 청년정책에 8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했고, 2016년 예산만도 2조 원이 넘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 실업률은 더욱 높아지고 있으며,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한 취업자의 경우 절반 이상이 근속연수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임금 150만 원 이상의 일자리도 절반이 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는 서울시 청년수당으로 인해 청년들이 정부의 취업성공패키지에서 이탈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이는 정부 정책이 별로 좋은 정책이 아니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청년들이 당장 손쉽게 돈을 벌기 위해 서울시 청년수당을 택한다는 고용노동부의 주장은 청년들의 현실을 외면하면서 오히려 손쉽게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 주장처럼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하는 구직자에게 "1년에 1천만 원"의 혜택이 돌아간다면, 누가 거부하겠는가? 청년들이 '1년에 1천만 원' 대신 '6개월간 월 50만 원'을 택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주장하듯 우리나라 실업정책이 과연 '좋은' 정책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정부가 자주 인용하는 독일을 포함한 주요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보도록 하자. 실제로 각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 재정 지출을 비교해보면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공허한지 알 수 있다.

아래 표는 OECD 주요 국가들의 GDP 대비 노동시장 정책 지출 비중을 보여준다. 덴마크는 약 3.5%, 네덜란드는 약 2.8% 수준으로 가장 높고, 독일은 1.7%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0.57%로 독일의 절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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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urce: active labor market spending as percentage of GDP (OECD Stat Database)
ⓒ 정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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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용노동부 예산만 보더라도, 정부가 과연 청년일자리를 비롯한 노동시장 정책에 중요성을 두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2016년 정부 예산 총 386.4조 원 중 고용노동부 예산 비중은 4.5%로 총 17.3조 원인데, 이 중 사용자와 고용자가 같이 부담하는 고용보험기금 15.2조 원을 제외하면, 실제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비중은 0.8%인 2.1조 원에 불과하다. 

실업자를 위한 소득보장 정책은 더욱 한심한 수준이다. GDP 대비 정부의 실업급여 지출 비중의 경우,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약 1%로 가장 높고 독일은 약 0.6%인 반면, 한국은 0.2% 수준으로 가장 낮다.

실업급여 대상자가 아닌 구직자에게 지출하는 실업부조의 경우, 네덜란드는 약 0.9%, 덴마크는 약 0.5%, 독일은 0.34%를 지출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실업부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고용노동부 예산의 중 약 90%가 고용보험 기금임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 지출비중이 최저 수준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고용보험 기금의 절반 정도만 실업급여로 지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기금은 구직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육아휴직비용 및 공급자를 위한 인센티브로 지출되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고용보험 기금에 투입하는 재정은 2014년 기준 약 372억 원으로 우리나라 GDP의 0.002%도 되지 않는다.

결국 정부는 청년실업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노동시장 정책에 투입하는 정부재정은 GDP(1729조 3천억 원) 대비 0.6%로 OECD 국가 중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구직자를 위한 소득보장 정책을 외면한 결과, 우리나라는 근속 기간이 가장 짧으면서도 실직 기간 역시 가장 짧은 비참한 현실에 처하게 되었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1년 미만 근속자 비중'은 31.9%로 OECD 평균 18.1%보다 월등이 높으며, 독일 14.1%보다 두 배 이상 높다. '2006년~2014년 노동이동률 평균'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노동이동률은 70%로 독일 30.4%보다 두 배 이상 높다. 

문제는 이처럼 단기간 직업이동률이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 월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1개월 미만 실업자 비중' 역시 63.4%로 OECD 평균 14.4%보다 4배 이상 높다는 것이다. 독일과 비교하면 약 6배를 넘는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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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OECD Statistics, 국회입법조사처(2015)에서 재인용
ⓒ 정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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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직업이동이 상당히 잦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1개월도 쉬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직업 훈련 기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업능력 향상을 통한 이직이 아니라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 어떠한 일자리든 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은 결국 질 나쁜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아래 그림은 우리나라 임시직의 경우 1년 뒤에도 약 70%는 여전히 임시직에, 약 20%는 실직 상태에 놓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임시직에 머무는 비율이 상당히 높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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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OECD Statistics, 국회입법조사처(2015)에서 재인용
ⓒ 정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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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노동정책 지출 비중 및 구직자 소득안정을 위한 실업급여 지출 비중이 가장 낮고 실업부조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 결과 실직 기간은 가장 짧고 직업이동은 가장 잦으며, 질 좋은 일자리로는 나아가지도 못한다. 이런 현실을 목도하면서, 고용노동부 및 정부가 여전히 우리나라 실업정책이 '좋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소득보장정책이 정부가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독일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임에도, 정부는 이번 고용노동부의 현금지원이 '조세'가 아닌 '청년희망펀드'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주장한다. 무책임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태도다. 청년실업 문제는 산업구조 재편과 노동시장 불안전성이라는 '구조적인 변화'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에서 일회성 재난 구제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현세대의 청년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도 아니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정책설계를 통해 '안정적인 미래의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고용노동부도 나름의 구직자 소득안정책을 확대한 이 시점에, 이제 우리는 소득안정 기간에 어떻게 실효성 있는 취업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서울시 청년수당, 이제는 '청년 정책' 큰 그림 제시할 때 

서울시 청년수당은 정부 정책과 정반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존 정부 정책처럼 빠른 취업을 재촉하며 경직된 취업훈련을 강제하기보다는, 구직을 위한 탐색 정도의 느슨한 조건으로 어느 정도의 소득을 보장한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노동시장 불확실성을 감안했을 때, 향후 어떠한 직업능력이 노동시장의 수요-공급 간 미스매치(불일치)를 해결할 수 있을지 특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특정 산업 방향을 유도하여 경직된 취업훈련을 제공하기보다는 다양한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시점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시 정책은 취업훈련을 특정하지 않고 개인이 스스로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경직된 취업훈련 프로그램보다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6개월의 현금지원이 종료됐을 때, 대부분의 구직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도 문제지만, 느슨한 방식의 취업훈련이라도 구직자들에게 필요한 훈련 기회를 제공해야 실효성 있는 취업정책이 될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서울시는 청년수당 외에 다양한 청년 정책들을 도입해왔다. 대표적으로 '뉴딜 일자리'는 청년들이 실제 사업장에서 일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최대 2년간 제공하고 있으며, 최저임금도 보장한다. '청년교육' 정책을 통해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만일 '청년수당-청년교육-뉴딜 일자리'가 연계된다면, 이는 실업부조가 결합된 선진국형 직업훈련 제도와 유사한 구조를 갖게 된다. 가령, 청년수당은 구직 초기 단계에 일정 부분의 소득보장을 통해 스스로 직업을 탐색하도록 하는 '비활성화 조치' 기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후 '청년교육'을 통해 구직자가 원하는 직업능력을 향상시킨 뒤 또 다음 단계에서 실제 사업장에서 일하면서 구체적 직업 선택의 기회를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정책들 역시 한계는 있다. 무엇보다 참여 사업장 및 교육 분야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구직 청년들을 포괄하기 어렵다. 취업훈련의 경우 자부담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근본적 한계는 개별 정책들이 서로 '연계'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위 정책들은 서로 목적과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파편적으로 운영될 경우 취업 전반을 지원하는 정책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시 청년수당은 '청년정책 패키지'가 될 때, 고용노동부가 '좋은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취업성공패키지'와의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서울시는 청년수당을 넘어 '청년활동기본법' 제정을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환영할만한 일이다. 청년수당 대상자를 통해 실제 필요한 취업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전수조사하고, '민관합동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청년이 필요로 하는 양질의 지원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편, 뉴딜 일자리, 직업교육, 창업 정책 등과도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가 기존 정부 정책과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줄 때, '청년수당'을 통해 불거진 실업정책에서의 '소득보장' 정책이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 청년수당, '소득보장'의 중요성을 확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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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의 서울시 청년수당 직권취소 후 나온 포스터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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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기존 정규직 중심의 평생직장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으며, 새로운 일자리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유형으로 창출되는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현재 구직자에게 필요한 직업훈련이 무엇인지를 예측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용노동부의 구직훈련 및 취업정책이 실효성 없다고 마냥 비난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기존 정책과 같이 공급자 중심, 실효성 없는 취업훈련, 최소한의 소득보장조차 결여된 취업정책은 구직자의 직업능력 향상을 도모하고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대응하는 인적투자정책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는 그동안 정부의 막대한 예산과 수많은 취업정책을 쏟아부었음에도 구직자의 대부분이 질 나쁜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는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향후 청년정책은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대응해 구직자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직업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질 나쁜 일자리가 양산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나아가 이직이 두려움이 아니라 능동적인 도전이 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을 계기로, 노동시장 불안정성에 대응할 수 있는 구직자 소득보장과 실질적 수요를 반영하는 취업훈련 제도 구축을 위한 진지한 논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사회혁신리서치랩 http://soinnolab.net/archives/research/1276 에 실린 보고서를 기초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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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연습 말고,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연습을 하자”

6.15대전본부, UFG연습 중단 촉구(전문)
대전=임재근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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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19  09: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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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2일부터 25일까지 2016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연합연습이 예정된 가운데, UFG 연습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개최되었다.

대전지역 60여개 단체로 구성된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대전본부(상임대표 김용우, 이하 6.15대전본부)는 18일 오후 2시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반도 전쟁위기 고조시키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전쟁연습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6.15대전본부는 “최근 한미당국이 사드 한국배치를 결정하면서 가뜩이나 긴장된 한반도 상황에 북한의 군사적 반발은 물론 주변국인 중국과 러시아까지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고, “(이번)UFG훈련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전략인 ‘맞춤형 억제전략’이 적용되는 훈련으로 북한은 '핵선제타격 연습'이라며 '핵전쟁‘까지 언급하고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라며, “남북 간 군사적 핫라인마저 모두 차단된 상황에서 한반도 전쟁위기로 치달을 수 있어, UFG훈련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개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6.15대전본부는 8월 18일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반도 전쟁위기 고조시키는 한미연합전쟁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연습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제공-6.15대전본부]

발언에 나선 우리겨레하나되기대전충남운동본부 이영복 공동대표는 “지금이 2013년 전쟁위기와 다른 점은 개성공단도 폐쇄된 지 오래이고, 남북 간 대화채널도 차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전쟁연습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번 UFG훈련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이어 “불평등한 한미상호 방위조약 아래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지위가 평상시에도 육군에 대한 통수권만 있지, 공군과 해군에 대해서는 주한미군사령관이 통수권을 가지고 있고, 군사주권의 핵심인 전시작전통수권을 주한미군이 가지고 있다”며 “전쟁이 나면 한국의 대통령, 국방부장관, 합창의장, 각 사령관은 아무것도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전평화여성회 최영민 공동대표도 “을지훈련은 수나라에 맞서 싸웠던 을지문덕 장군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이름을 붙였는데, 을지문덕 장군이 맞서 싸운 대상은 우리 민족이 아닌 수나라라는 외세”라고 말하며, “한 민족을 적으로 두고 전쟁연습을 하는 것데,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을 쓸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이어 “전쟁연습을 60년 이상 한반도에서 했다”며, “만약에 60년 이상 평화와 통일을 대비한 연습과 훈련을 1년에 봄, 여름에 한두 차례씩 만나서 했더라면, 지금 한반도 상황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또한 “갈등해결에서 가장 좋지 않은 해결방법은 한쪽은 나쁜 사람, 한쪽은 좋은 사람을 나누는 것”이라 말하며, “북은 나쁘고, 우리는 선하다고 하면, 남북의 갈등과 대립, 전쟁 상황을 더 이상 평화적으로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을지프리덤가디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쟁연습이 아니라, 남북이 만나서 통일 이후에 남북이 어떠한 권력구조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함께 통일형, 통합형으로 이룰 것인가에 대해서 하루 속히 만나서 대화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민주민생대전행동 김창근 상임대표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제공-6.15대전본부]

이들은 마지막으로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입장을 표명했고, UFG훈련이 끝나는 25일까지 대전광역시교육청 네거리에서 매일 저녁 5시 30분부터 한 시간씩 <사드반대 전잰연습반대 평화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UFG훈련은 미군 3만 여명과 한국군 5만 여명을 비롯하여, 전국 시군구 이상의 행정기관과 주요 민간업체 등 4,000여 기관과 48만여 명이 참가한다.

[기자회견문]한반도 전쟁위기 고조시키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전쟁연습 중단하라! (전문)

미국이 태평양 괌 기지에 전략폭격기를 전진 배치한 가운데, 한미 양국은 오는 22일부터 한미연합 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진행한다고 발표하였다.

지난 14일 한미 군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은 최첨단 B-2 스텔스 폭격기 3대를 미주리 화이트먼 공군기지에서 괌 앤더슨 공군기지로 전진 배치하고, B-1B 초음속 전략폭격기 수대를 10년 만에 괌에 재배치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확장 억지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핵잠수함과 핵무기공격이 가능한 핵잠수함 8~9척을 한반도와 일본에 인접한 태평양지역에 전진 배치하여 비상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번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은 예년보다 더 위험한 훈련으로 전쟁연습이 아닌 일촉즉발의 실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상황이다.

한미 당국이 ‘연례적인 방어훈련’이라며 주장하지만, 미군 3만여명, 한국군 5만여명이 참가하며, 공무원 40만명이 동원되는 세계 유례없는 대규모 훈련이며, 적용하고 있는 작전계획도 전면전 계획인 작전계획 5027, 급변사태 대비 계획인 작전계획 5029, 맞춤형 억제전략, 국지도발 대비계획 등을 포함하여 새로운 작전계획 5015를 완성하기 위한 계획이다.

특히 2014년부터 적용하는 ‘맞춤형 억제전략’은 북한의 핵·미사일 사용 징후만 보이더라도 핵 타격 수단 등을 동원해 선제공격하는 공격전략으로 헌법에도 위배될 뿐 아니라, 유엔헌장을 비롯한 국제법을 위반하는 범죄행위이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공격징후’에 대한 오판이라도 있을 시, 이는 돌이킬 수 없는 핵전쟁이 현실화 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2013년 미국의 전략핵폭격기가 동원된 키리졸브 훈련 과정에서 극도의 전쟁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 미국의 키리졸브(Key Resolve)·독수리(Foal Eagle) 군사훈련에 맞서,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와 판문점 대표부 폐쇄, 남북 불가침합의 전면 무효화 등을 선언하며, 군사적 대응으로 맞섰으며, 대화국면이 열리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핵전쟁으로 나갈 수 있는 위기상황이었다.

최근 북한은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에 대해 "8월의 검은 구름이 또 다시 몰려오고 있다. 어떤 고비를 조성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며 "이로부터 초래될 모든 후과는 전적으로 미국이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다.

올 초부터 4차 핵시험을 비롯하여 핵무력을 강화하고 있는 북한의 군사적 대응 상황으로 보더라도, 이번 전쟁연습 기간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우려된다.

최근 한미당국의 사드 한국(성주)배치 결정으로, 한반도 평화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남북 군사적 핫라인이 모두 끊기고, 평화의 완충지대인 개성공단 마져 폐쇄되면서, 전쟁위기에 따른 국민들의 불안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민간교류 전면중단 뿐 아니라 민간차원의 팩스교환 마져 모두 차단된 조건에서, 남북 군사적 대결은 최악의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박근혜정부에 촉구한다.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할 국가적 책무로 보나, 평화통일을 실현해야 할 헌법정신에 기초해서라도, 한반도에 전쟁위기를 불러 올 한미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 전쟁연습을 즉각 중단하고, 하루빨리 남북간 군사회담을 재개할 것을 촉구한다.

대결은 대결을 낳고, 전쟁은 곧 민족의 공멸이다. 진정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 길은 대결이 아닌 대화이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협상이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대전시민들의 마음을 담아, 전쟁연습 중단과 남북대화 재개를 다시한번 촉구한다.

2016년 8월 18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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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주장 그냥 수용하는 게 ‘합의’인가?”


유경근 4.16가족협 집행위장 ‘사생결단식’… 24일부턴 다른 유족들도 단식

‘예은 아빠’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세월호 특별법 개정 등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지 3일째. 19일 오전 광화문광장 세월호농성장에서 그를 만났다. 유 집행위원장은 천막 아래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딸 예은양의 단원고 명찰을 목에 걸고 앉아 있었다.

유 위원장은 이번 무기한 단식농성에 ‘사생결단식’이란 이름을 붙였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6월30일 세월호 특조위 활동을 강제 종료시켜 침몰 위기에 놓인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모든 걸 걸겠다는 결의를 표현이리라. 그는 “여당이 주장하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걸 ‘합의’라고 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야당을 질타했다. “새누리당은 말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건 국회이고 야당인데 야당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수없이 약속한 대로 제 역할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유 위원장은 2년 전 2014년 여름에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26일 동안 단식농성을 한 적이 있다. 아래 상자는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시퍼런 결의가 서린 ‘사생결단식’ 이름 때문에 긴장했는데 예상보다 담담해 보인다. 2년 만에 다시 무기한 단식 농성을 하는 심경은?

“해야 되는 일이기에 한다. 2년 전 단식할 때도 장기전을 예상했다. 아직 2년밖에 안 지났다. 쉽게 끝날 것이라 생각은 안 했지만 조금씩 진전은 있을 것이라 바랐는데 그렇지 않은 점이 답답하다.”

- 무기한 단식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여소야대가 된 20대 국회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 기대하고 희망을 가졌다. 실제로 지난 3~4개월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지금처럼 되면 특조위도, 진상규명도 물거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야당을 믿고 의지했는데 기대가 엇나가서 당황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단식은 야당의 변화와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다.”

-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8월 임시국회에서 새누리당과 논의한 내용이 왜 이렇게 미온적이라고 보나? 

“이런 질문 계속 받는데 우리가 알 수가 없다. 처음부터 안 된다고 한 것도 아니고, 수많은 약속을 했음에도 집단적인 노력이나 시도는 없다. 거꾸로 여당에서 주장하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걸 ‘합의’라고 표현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 원내교섭단체 합의 내용을 보면 선체조사를 하겠다는 말만 있지 특조위 등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이 없다.

“세월호 선체조사를 별도의 기구가 맡을 수도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엄연히 특조위가 있고, 특조위 활동기간도 충분히 남아있다. 진상규명을 위해 특조위를 만들고 특별법 만든 거 아닌가. 정부가 그렇게(특조위 해체) 몰고 가더라도 호통치고 바로잡아야 하는 게 국회 아닌가."

- 다른 4.16 가족들도 단식 농성에 동참할 계획인지?

“다음주 수요일부터 가족들이 같이 할 예정이다.” 

- 이 절박한 외침이 국민에게 제대로 들리고 있다고 보나?

“극단적으로 나뉘어져 있다. 관심있는 시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지지한다. 그러나 내용을 잘 접할 수 없는 시민들의 경우엔 주요 언론사가 보도를 안 하니 문제가 가려지고 사람들이 모른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문제와 관련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과 책임있게 이 일을 이끌어가야 할 사람들, 예컨대 국회의원들이나 정부는 이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세월호와 특조위를 폄훼하고 호도하는 무리들도 있다. 희망을 걸고 계속 싸움을 해나가려면 바라볼 게 있어야 하는데 우리한텐 그게 국회이고 야당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4.16 상황실 앞에 8월1일부터 지속된 지지단식 현황을 알리고  국회의원에게 엽서쓰기를 안내하는 게시물 등이 붙어있다.

이날 유 위원장과 함께 단식농성을 한 세월호 특조위의 조희정 조사관은 선체인양 현황을 걱정했다. 그는 “지난 14일 해양수산부가 밝힌 데 따르면 평형수에 구멍 34개를 추가로 뚫고 양을 측정하지도 않은 채 물을 빼낸다고 한다. 평형수는 매우 결정적인 증거이다. 선체인양이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것은 알지만 미수습자나 증거보존보다 배 들어올리기에 편한 방법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진상규명을 위한 증거가 손상되거나 사라질 것을 크게 우려했다.

최근 세월호가족협의회 회원 6명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를 만나거나 김상곤 당대표 후보가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농성장을 방문해 단식 중인 유 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세월호 특조위와 4.16유가족협의회는 별도의 기구가 아닌 특조위가 선체조사를 할 것과 세월호 특검 의결 등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이명주 기자  ana.myungjulee@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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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은 ‘올림픽 난민'을 발생시켰다. 30년 전, 서울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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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승전보와 미담, 그 외 갖가지 해프닝이 함께 들려오고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올림픽의 화려함에 가려진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알려지는 중이다. 8월 17일 허핑턴포스트US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공원 근처에 있는 ‘오트드로모’(Autódromo)라는 빈민가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평온한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이곳이 더 살기 열악해진 건, 지난 2009년 IOC가 리우데자네이루를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수많은 빈민가처럼 이 마을 또한 정부의 계획하에 철거당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쫓겨나야 했다. 한때 600가구 이상이 살던 ‘오트드로모’에는 현재 20가구 정도만이 남아있다. 브라질 정부는 올림픽 공원과 가까운 곳에 빈민가가 있다는 사실을 지우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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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때문에 생겨나는 ‘올림픽 난민’의 사연이 리우에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체육대학교의 박보현 박사가 지난 2010년 ‘한국스포츠개발원’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경우 매월 1만 3천명이 올림픽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도시에서 쫓겨난 가운데 총 150만 명에 이르는 도시 난민이 발생”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는 1만 여명의 로마계인들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때는 11,000여명이,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 때는 624가구 2,000여명의 도시 난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88 서울 올림픽도 ‘올림픽 난민’을 발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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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현 박사는 이 글에서 올림픽 준비와 함께 시작된 도시재개발사업으로 인한 “‘도시빈민운동’은 1983년부터 1988년을 지나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각 빈민지역, 오금동, 사당동, 신정동, 하왕십리, 암사동, 신당동, 양평동, 오금동, 송파·강동지구 등 200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상계동’ 173번지에 살던 80여 세대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1985년 8월부터 88년 2윌까지, 상계동 주민들의 주거권 투쟁사를 담은 ‘상계동 올림픽’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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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역시 도시 미관 개선과 재개발 사업을 유도하며 상계동 173번지를 철거하려 했다. 주민들은 시청을 찾아다니고, 전경과 맞서며 버텼다. “때린 사람이 풀려나고 맞은 사람이 잡혀가는 이상한 싸움” 속에서 “빨갱이 같은 놈들”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던 그들은 당시 시청 관계자로부터 “주민들끼리 하는 재개발이기 때문에 아는 게 없다”거나, “딱한 처지는 이해하지만 우리 후손과 올림픽을 위해 조금 손해를 감수한다고 생각하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리고 결국 87년 4월 14일 상계동을 떠나게 된다.

갈 곳이 없는 그들이 임시 거처를 마련한 곳은 명동성당이었다. ‘상계동 올림픽’에 따르면, 두 개의 임시천막을 남자-여자 숙소로 세워 살던 그들은 “살다보니 한 평에 1억원짜리 땅에서 산다”거나 “어차피 집이 없으니, 쫓겨날 집도 없어서 마음이 편하다”는 등의 자조적인 대화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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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88년 1월, 그들은 부천시 고강동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다. “고속도로에 바로 인접한 곳이었지만, 우리는 야산에 둘러싸인 새 삶터가 대견스러웠다.” 그들은 일단 다시 가건물을 세웠다. 하지만 이 마저도 다시 철거되고 만다. 부천시청 직원들과 전경들이 그들의 새로운 집을 철거한 이유는 “고속도로로 성화가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상계동 178번지 사람들은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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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그들은 당장 겨울을 나기 위해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10개월을 살았다. 올림픽 성화가 지나가는 시간 동안에도 그들은 땅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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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동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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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동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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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동 올림픽'
     

당시 상계동 주민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상계동 올림픽’을 찍었던 김동원 감독은 지난 2007년 9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의 후일담을 이야기한 바 있다.

“서울시와 천주교, 상계동 재개발 건축업체는 돈을 모아 그들에게 내줄 땅을 마련했지만 평당 30만원이던 땅값이 1년 새 240만원으로 8배나 뛰어오르면서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났다. 결국 그들에게는 가구당 8평씩의 땅이 나눠졌다. 땅을 팔 사람은 팔고 나가고 이곳에 살 사람은 살라는, 합리적인 듯 보이나 손쉬운 방책이었다. 물론 그들은 그렇게 뿌리내리고 살 수 있는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상계동 주민들이 보여준 이상적인 공동체 운동의 움직임에 끌렸던 김동원 감독은 서로 믿었던 사람들이 불신을 안고 이별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씁쓸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30년 전, 서울에서 벌어진 일이 이후 4년 마다 반복되었고 결국 리우에서 다시 반복되었다. 4년 후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여는 도쿄의 사정도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지난 2013년 ‘머니투데이’는 재팬타임즈의 기사를 인용해 도쿄에서도 경기장 증축으로 인해 200여 가구가 강제 이사를 가야할 처지라고 보도한 바 있다. 그중 한 노인은 1964년 올림픽 때도 집을 내주어야 했는데, 2020년 올림픽 때문에 또 다시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올림픽 난민'은 그 이후의 올림픽에서도 발생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하지만 강제 이주를 당한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제공받게 될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상계동 올림픽'은 철거민, 노동자, 도시빈민에 관한 3편의 다큐멘터리를 엮은 '이상한 나라의 데자뷰'를 통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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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이 위험하다

 
미국 대선 후보로 확정된 트럼프와 클린턴이 각각 제시하는 미국의 미래는 판이하다. 기존 아메리칸 드림을 지지하는 클린턴과 달리 트럼프와 지지자들이 외치는 위대한 미국의 바탕은 ‘두려움’과 ‘배척’이다.
  조회수 : 3,106  |  유혜영 (밴더빌트 대학 교수·정치학)  |  webmaster@sisain.co.kr
 

 

 

특집


‘아메리칸 드림’이 위험하다

공화당의 위기가 곧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미 대선을 뒤흔드는 러시아 해킹 배후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각각 전당대회를 열고 대선 후보를 확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남성과 여성, 평생 정치 무대에 직접 뛰어든 적이 없는 후보와 평생을 정치 무대에서 대중의 환호와 비난을 함께 받아온 후보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두 전당대회에서 각 당의 후보자보다 더 확연히 드러난 차이는 바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현재의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를 토대로 그린 미래 미국의 모습이었다.

7월18일부터 21일까지 나흘간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는 트럼프의 캠페인 슬로건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주제로 안보·경제 정책, 국가 경쟁력, 화합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공화당 전당대회를 관통한 키워드는 바로 ‘두려움(fear)’이었다. 전당대회 내내 연설은 대부분 현재 미국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8년 동안 범죄가 크게 늘었고 경제는 몰락했으며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불법 이민자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라는 규탄이 이어졌다. 외교정책도 비판 혹은 비난 일색이었다. 경제위기를 타개하고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공화당은 트럼프가 내세우는 정책을 선택했다. 트럼프의 정책을 거칠게 요약하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중국에 경제 보복을 가하고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며, 불법 이민자를 막으려 멕시코와의 국경에 대대적으로 장벽을 세우고, 잠재적 테러리스트를 막기 위해 임시로 모든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REUTER</font></div>지난 7월21일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그는 유권자들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REUTER
지난 7월21일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그는 유권자들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2065년 미국의 백인 비율 46%

미국 언론은 주요 인사들의 연설과 발언이 나올 때마다 부지런히 사실관계를 검증해 보도했다. 사실 확인 결과를 보면, 이들 주장의 근거 가운데 실제가 아닌 것이 꽤 많았다. 먼저 FBI 범죄 통계를 살펴보면 미국의 범죄율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위기였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실업률은 10%에 육박했지만 오바마 대통령 집권 기간 실업률은 5%로 금융위기 직전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 뒤 일자리 870만 개가 창출되었다(물론 트럼프는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실업률은 순전히 사기라고 일축한 바 있다).

불법 이민자의 숫자도 2007년에 1200만명으로 정점을 찍고는 계속 감소 중이며,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2011년 이후 미국이 받아들인 시리아 난민은 2290명에 불과하다(참고로 유엔 난민기구가 집계한 시리아 난민은 총 480만명으로 이 중 300만명이 레바논·요르단·터키에 있다. 2016년 4월 기준 독일은 60만명에 이르는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였다).

전당대회 무대를 장식한 주장들을 토대로 지금 공화당이 가는 방향을 가늠해보면 과거의 공화당과는 확실히 다른 길을 선택한 듯하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미국 예외주의를 강조해왔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강조하며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그려왔다. 현상 유지나 기득권 체제에 대한 불만은 늘 진보와 민주당의 몫이었지만, 이번 선거는 그 역할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넘어왔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종과 종교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지금까지와 달리 백인이 살던 방식이 주류의 지위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두려움이 공화당, 특히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변화하고 있다. 1965년에 미국은 인구의 80% 이상이 백인이었다. 이 비율은 2016년 현재 64%로 낮아졌고, 2065년에는 46%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반면, 지난 50년간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는 5900만명으로 대부분이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출신이다. 현재 히스패닉(중남미계 이주민) 인구는 미국 전체 인구의 18%를 차지하지만 2065년에는 24%로 높아질 전망이다. 아시아계 인구도 현재 5%에서 2065년에는 전체 인구의 14%로 급격히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1965년에는 미국 인구 가운데 미국 밖에서 태어난 사람의 비율이 5% 정도였다. 이 비율은 오늘날에는 14%에 이른다. 인구 구성의 변화는 곧 유권자 지형의 변화를 뜻한다. 2000년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 가운데 백인은 78%였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이 비율이 69%로 떨어질 예정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REUTER</font></div>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 구호는 ‘함께할 때 더 강하다’이다. 지난 7월31일 애슐랜드 유세 장면.  
ⓒREUTER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 구호는 ‘함께할 때 더 강하다’이다. 지난 7월31일 애슐랜드 유세 장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여론도 급격하게 바뀌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동성 결혼에 관한 여론이다. 2001년만 하더라도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의견이 찬성하는 의견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오늘날 미국 인구의 55%가 동성 결혼을 찬성한다. 특히 1980년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는 네 명 중 세 명이 동성애를 지지한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2007년만 해도 아무런 종교가 없다고 말한 사람이 전체 인구의 16%였지만, 이 비율은 2014년에 23%로 늘었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답한 사람은 같은 기간 78%에서 71%로 줄었다.

이렇게 인종과 종교, 그리고 삶의 방식에서 다양성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정반대 선택을 했다. 공화당은 여전히 백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미국적인 삶이 곧 백인의 삶이었던 ‘전통적인 미국’을 이상화한다. 선거분석 전문 기관인 업샷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미국이 가장 위대했던 시절이 언제인지를 물었을 때 75%는 지금보다 1960년대 중반이 훨씬 좋았다고 답했다.

민주당의 전략은 달랐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민주당은 인종과 종교, 그리고 삶의 방식에서 다양성을 포용했고 이를 당의 정책에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 노력했다. 다양성의 포용은 민주당을 하나로 통합하는 강력한 의제가 되었다. 민주당 의원이라고 해서 모든 정책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경선 기간 드러난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의 정책에도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차이를 인정하면서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것은 어느새 민주당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구호 “함께할 때 더 강하다(Stronger Together)”는 이를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준다. 힐러리 클린턴은 후보 수락 연설에서 쉽지 않은 도전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의 핵심은 바로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에 누가 표를 주는지를 살펴보면 민주당이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소수 인종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를 살펴보면 흑인의 95%, 히스패닉 유권자의 70%가 민주당을 지지한다. 지난 20년간 아시아계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 변화는 훨씬 더 극적인데, 대체로 학력과 소득 수준이 높고 종교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공화당의 지지층과 유사한 면이 많았다. 실제로 과거 대선에서 아시아계 유권자들은 공화당을 지지했다. 199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빌 클린턴은 아시아계 유권자들로부터 36%의 지지밖에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2년 선거에서 오바마 후보는 아시아계 유권자들에게 73%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EPA</font></div>2010년 4월15일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공화당 지지 티파티 운동원들.  
ⓒEPA
2010년 4월15일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공화당 지지 티파티 운동원들.

공포, 공화당의 강력한 선거 도구가 되다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다른 인식은 자연히 다른 정책 대안으로 이어졌다. 전 세계에서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이민 오는 사람들을 미국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민주당은 이민을 확대하고 불법 이민자들의 자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쪽으로 이민 정책을 개혁하고자 한다. 반면, 이민자들이 들여오는 ‘다른 방식의 삶’과 종교가 ‘전통적인’ 미국인의 가치를 위협하고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며 미국의 안보에 위협을 가한다고 생각하는 공화당은 미국에 와 있는 이민자들을 다시 돌려보내거나 앞으로 들어올 이민자들을 최대한 차단하는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와 주요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트럼프를 둘러싼 분열과 불신이 감지되지만, ‘타인에 대한 두려움’은 트럼프 지지를 이끌어낸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두려움의 원천은 어디이고, 왜 이런 두려움이 트럼프가 떠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일까? 학자들은 진보와 보수가 경계심을 느끼는 정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증명해왔다. 특정 이미지나 자극을 주었을 때 뇌파나 눈동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통해서 학계 연구는 보수적인 사람이 훨씬 더 경계심이 강하며 자신과 다르거나 불편한 이미지를 보았을 때 보수적인 사람일수록 스트레스 수치가 올라간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하지만 생물학적 차이에 주목한 설명은 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떠올랐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경계심이 강한 건 원래 보수적 유권자들의 특징이었는데 왜 이번 선거에서는 두려움을 공략한 전략이 먹혔을까? 공화당 지도부가 탐탁지 않게 여기는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 자리까지 끌어올린 구조적인 원동력이 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20년간 공화당의 정책과 지지 기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화당은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외치며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지지해왔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최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했고 부자 감세와 탈규제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미국 인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소득이 높을수록 공화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높긴 하지만, 2008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소득이 낮고 교육 수준이 낮은 블루칼라 백인들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어났다.

오바마 집권 이후 시작된 공화당 내의 풀뿌리 조직 티파티의 영향으로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낮은 유권자들이 공화당 예비 경선 과정에서 더 많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은 세계화와 기술 발전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었거나 과거보다 실질임금이 줄어든 사람들이다. 티파티의 주장은 공화당 지도부나 전통적인 공화당 정치 엘리트들의 정책과 다르지만, 공화당 지도부는 상·하원 선거에서 이들의 지지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당내 지지 기반 사이에 큰 균열이 있음에도 이를 계속해서 묵인해왔다. 공화당 내 블루칼라 유권자들은 지속적인 실질임금 감소와 일자리 감소, 불안한 노후 대책이 가장 중요하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이런 문제에 장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여전히 기업과 부자를 위한 세금 감면 정책을 펴면서 선거 국면에서는 이민자의 증가와 관련해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가진 두려움을 적극 활용했다.

1873년부터 2009년까지 의회 연설문을 분석한 최신 논문에 따르면, 실제로 공화당 의원들이 1994년 중간선거에서 1952년 이후 처음으로 하원 다수당이 된 이후로 사람들의 불안을 조장하거나 당파성이 짙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Matthew Gentzkow, Jesse M. Shapiro, Matt Taddy. <Measuring Polarization in High-Dimensional Data:Method and Application to Congressional Speech>).

사회안전망 부족했던 미국이 맞을 부메랑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등장은 공화당을 지지했지만 친기업 부자 중심의 정책에서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던 공화당 내의 저소득·저학력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트럼프 지지자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집단은 백인이면서 고등학교 이하의 학력, 그리고 과거 제조업이 중심일 때 경제 번영을 누렸지만, 기술과 정보, 서비스 중심의 경제로 전환하면서 적응에 실패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이민자들 때문이고, 중국이 미국과 공정하지 않은 무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민자를 제한하고 중국에 무역 보복을 하겠다고 큰소리치는 트럼프를 지지한다. 세계화가 제조업과 같은 전통적인 일자리에 타격을 준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트럼프가 제시하는 정책이 공화당의 블루칼라 유권자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판단 가능하다.

지난 30년간 대부분의 선진국은 세계화를 경험했다. 하지만 영국·캐나다·독일·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에 비해 미국에서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한 지지 여론은 현저히 낮은 편이다. 그 이유 중 하나로, 학자들은 정부가 세계화로 인해 제조업이나 농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직업교육을 제공하거나 충분한 사회안전망을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가져오는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식은 무역과 사람들의 국경을 넘어선 이동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교육 관련 지출을 늘리거나 최저임금 인상 등 사회보장 제도를 확충해 큰 변화를 겪게 될 사람들이 받는 충격을 줄여주는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드러난 공화당의 기조, 그리고 트럼프의 정책은 그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을 오히려 트럼프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기회주의적인 정치인들이 선거 승리를 위해서 만들어낸 두려움의 수사는 공화당에서 가장 소외되었던 계층에 대통령 후보를 선출할 권한을 줬지만, 역설적으로 이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자신들의 선택 때문에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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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지 못하는 ‘전기요금 고지서’에 숨겨진 비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8/19 10:57
  • 수정일
    2016/08/19 10: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과도한 전력기금 징수, ‘전력기금 1%P만 낮춰도 국민부담 5천억 줄어’
 
임병도 | 2016-08-19 09:23:0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전기요금에는 요금에 따라 3.7%의 전력기금이 추가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밝힌 전력기금 중기 운용 전망 ▲2014년 기준 전력기금 요율을 1%P 만 낮춰도 국민부담은 5,652억이 줄어든다. ▲국가별 kWh당 주택용 전기요금 자료출처:동아일보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구 요금이 얼마인지만 봅니다. 그러나 청구 내역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항목이 있습니다. 바로 ‘전력기금’입니다.

전력기금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전기요금의 3.7%를 징수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입니다. 준조세에 해당합니다.

전기요금의 3.7%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진제 등으로 전기요금이 늘어나면 전력기금 부담액도 증가합니다.

만약 4만원의 전기요금을 냈던 가정이 누진제로 12만원을 낸다면 전력기금도 1천480원에서 4천440원으로 2천960원을 더 납부해야 합니다. 누진제 요금에 누진 전력기금까지 되는 셈입니다.


‘과도한 전력기금 징수, 사용은 흥청망청’

전력기금중기기금운영전망

 

 

국민들은 전기요금 고지서에 ‘전력기금’이라는 항목조차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2015년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수입을 보면 2조 1,440억원이 징수됐습니다. 사업비 지출은 1조9106억원으로 2천394억원이 남았습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자료를 보면 전력기금 수납액은 전기요금 인상과 전기사용량의 증가로 2013년 1조 8,275억원에서 2015년 2조 1,440억원으로 지난 3년간 2천865억원이나 증가했습니다.

준조세로 징수한 전력기금이 제대로 사용되어질까요? 아닙니다. 박완주 의원이 2015년 국정감사에서 밝힌 자료를 보면 정부는 2009년 1천700억원을 투자했다가 원금 350억원을 까먹는 등 혈세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연간 2000억원이 넘는 대기업 연구개발비(R&D)가 무상 지원되고, 대기업인 민간발전사 민원처리비용으로 1000억원씩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박완주 의원은 2015년 국정감사에서 ‘전력기금은 사업비 대비 여유 자금율이 무려 73%에 달하며, 이는 정부가 제시하는 적정율 10∼15%(1684억∼2527억원)와 비교해 4.9∼7.3배나 높은 실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전력기금 1%P만 낮춰도 국민부담 5천억 줄어’

전력기금요율조정국민부담경감액

 

 

과도하게 징수되고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전력기금, 조금만 줄이면 전기요금을 납부하는 국민들의 부담이 줄어들게 됩니다. 먼저 0.5%P를 내려 3.2%로 조정하면 국민부담은 1조8,086억원으로 2,826억원이 경감됩니다.

1%P를 내려 2.7%가 되면 국민부담은 1조5,260억원으로 5,652억원이 줄어듭니다. 1.7P%를 내려 2.0%로 조정하면 국민부담은 1조1,304억원으로 경감액만 8,888억원이나 됩니다.

지난 8월 11일 새누리당과 정부는 여름철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에 4200억 원의 재원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마치 정부가 큰 특혜를 보이는 듯하지만, 전력기금 1%P만 낮춰도 국민 부담은 5,652억이 줄어듭니다.


‘낮은 전기요금이 정전 사태의 원인이라고요?’

새누리당정전기요금TF손양훈교수-min

8월 18일 새누리당과 정부는 전기 요금 체계 개편을 위한 당정 태스크포스 첫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뭔가 대단한 개편안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태스크포스 공동위원장을 맡은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 2011년에 열린 ‘9·15 정전사태와 전력산업 구조개선 방향’ 세미나에서 “전기요금의 인상 수준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훨씬 밑돈 반면, 고유가로 석유·석탄·가스 등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다른 에너지에서 전력으로 수요 전환이 물밀듯이 발생했다. 이로 인한 전력 수요 급증이 9·15 정전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겨레 류이근 경제부 기자는 ‘손 교수와 다른 토론자들의 얘기를 요약하면 ‘낮은 전기요금→전력 수요 증가→전력 공급 기반 약화→순환 정전’이란 도미노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관련기사: 전기료 왜곡, 전력대란 또 부를 수도)

국가별 kWh당주택용전기요금

 

 

주택용 전기요금이 낮다는 논리부터가 잘못됐습니다. 실제 가정용 전기요금을 kWh로 계산하면 kWh 200원이 됩니다. 미국(116원), 프랑스(142원)보다 높고, 일본(202원)과는 비슷합니다.

낮은 전기요금 때문에 정전 사태가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17%에 불과한 주택용 소비전력보다 월등히 많은 77%의 산업용 전기 때문이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전기 요금을 무조건 낮추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불합리한 전력기금 등의 과도한 징수나 징벌적 누진제 등의 개편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도 전기 요금 때문에 벌벌 떠는 국민이 ‘죄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폭염 때문에 에어컨 사용 등으로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하는 국민이 늘어났습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누진제를 완화하거나, 당정 TF팀을 구성해 전기요금을 전면 개편한다고 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전기요금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나오고 있지만, 그러나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전기요금 항목이 있습니다. 우리가 내는 전기요금 체계가 합리적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전기요금 고지서에 숨겨진 비밀’

전기요금고지서1-min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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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극한의 외침, 그들은 그늘을 찾지 않았다

 

[현장] 그늘 한 점 없는 아스팔트, 쏟아지는 햇볕을 온 몸으로… “더위엔 이골이 났다, 끝까지 싸울 것”

 

정민경·손가영 기자 mink@mediatoday.co.kr  2016년 08월 19일 금요일

 

기록적인 폭염이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령되고 일부 지역 낮 기온이 39.2도까지 치솟는 등 찜통더위가 20여 일 넘게 지속됐다. 미디어오늘은 폭염 속에서도 농성을 할 수 밖에 없는 서울·강원·울산의 투쟁 현장을 방문했다.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투쟁 “산으로 온 4대강 사업, 삽 못 뜨게 할 것”

농성장에 들어서니 약수터에서나 볼법한 대형 물통과 대야가 눈에 띄었다. 고창규씨(58)는 “달궈진 정수리를 식히는 데 쓴다”고 말했다. 대야에 물을 붓고 머리를 담가 열을 뺀다는 것이다. 그래도 못 참겠으면 물에 흠뻑 적신 티셔츠를 입고 선풍기 ‘강풍’ 바람을 쐰다. 고씨는 지금은 그것마저 힘들어 오후 1~3시 경엔 농성장을 잠깐 비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씨는 강원도 춘천시 강원도청 앞에 있는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투쟁 농성장’ 지킴이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막기 위해 도청 앞 농성장이 설치된 지 302일째에 접어들었다. 최고온도 36도를 기록한 지난 12일 정오, 고씨가 강풍 버튼을 눌렀지만 뜨거운 열기만 전해졌다.

 

▲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투쟁 농성장에서 더위를 피하려는 대형 물통과 대야. 사진=손가영 기자
“4대강에서 재미를 다 본 토건개발업자들이 산을 노리고 있다.” 이들에게 설악산 케이블카는 전 국토 산지 개발을 허용하는 빗장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는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제시한 ‘설악산 종합관광모델’의 일부다. 이 안은 설악산을 산지관광 특구로 지정해 산림스포츠 기반시설, 4성급 관광호텔 등을 짓는 계획이다. 케이블카 설치 추진 과정이 곧 산지 개발 허용 과정이라는 주장이다.

 

고씨는 설악산이 한국 산지 중 보호 규정이 가장 까다롭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설악산은 국립공원,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천연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 등 5개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산이다. “설악산이 뚫리면 백두대간이 모두 뚫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오색케이블카 사업 자체가 가진 흠결도 심각하다. 양양군이 작성한 오색케이블카 사업 경제성 분석 보고서는 조작 판정을 받고 담당 공무원이 불구속 기소됐다. 국책연구기관인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이 사업의 입지적절성과 사업타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이 사업에 관한 환경영향평가서도 허위 작성, 부실조사, 자료 누락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농성장의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경제성도 문제다. 고씨는 “오색지역의 남부설악은 풍경이 멋들어진 내·외설악과 달리 일반 야산의 풍경과 다를 바 없다. 처음엔 입소문 때문에 사람이 모이겠지만 발길을 끌지 못해 곧 적자로 전환될 것”이라면서 “먹거리, 놀이, 숙박 등의 지역 경제도 관광객이 오래 머물러야 활성화되는데 오색은 잠깐 거쳐 가는 곳이 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환경부의 국립공원위원회는 허위·부실 작성 평가를 받은 오색케이블카 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본안을 검토 중이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강원행동은 본안 통과를 막을 때까지 환경청 앞을 지킬 예정이다. 고씨는 “4대강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며 “마지막 관문을 지켜낼 것”이라 말했다.

천막은커녕 파라솔도 못 치게, 땡볕 아래 현대중 하청 노동자들

“그늘 될 만 한 가지는 다 잘렸다. 그늘조차 가지지 말란다.” 2주 전 현대중공업 사측은 울산 공장 정문 맞은 편 인도 주변의 나무를 다듬었다. 노숙농성에 돌입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던 나무였다. 최고기온 34도를 찍은 지난 15일 농성장에서 올려다 본 나무엔 ‘햇빛 구멍’이 숭숭했고 그늘 색깔은 옅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지난달 25일부터 ‘고용승계’와 ‘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에겐 파라솔조차 허락되지 않고 있다. 농성장 물품이라곤 녹색 편의점 의자 예닐곱 개, 스티로폼 재질의 깔개, 식음료를 보관하는 아이스박스가 전부다. 하청 노동자들은 사방이 뚫린 곳에서 의자에 앉아 잠을 청하며 24시간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파라솔, 천막 등의 시설은 설치 즉시 현대중공업 측의 민원에 따라 울산 동구청에 의해 제지된다.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자리를 지킨다.

 

▲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정문 맞은 편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농성장. 사진=손가영 기자
지난 15일 주간조를 맡은 정재운(50) 사내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지금 싸움을 노조 존폐가 걸린 절박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청노조 조합원은 ‘노조 한다’는 이유로 표적 해고돼 생계의 낭떠러지에 처해 있다”며 “노조가 조합원을 지키지 못하면 존재 이유가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체가 위장폐업 후 조합원의 고용만 승계하지 않는 경우는 대조립1부의 태산테크가 대표적이다. 태산테크는 지난달 12일 기습적으로 폐업을 선고했다. 조합원 둘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은 보강, 광림ENG 등 다른 업체로 옮겼다. 조합원의 고용이 승계되지 않는 배후엔 원청의 개입 흔적이 있다. 하청노조가 직접 하청업체에 고용 승계를 문의한 결과 “원청이 이 둘에 대한 기성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해명을 들었다. 태산테크와 같은 하청업체는 현재까지 확인된 곳만 4곳이 더 있다. 모두 조합원이 있는 곳으로 기습 폐업 공고가 났다. 고용 승계 여부는 불확실하다.

노조 탈퇴 회유 정황도 뚜렷하다. 하청노조와 개별 하청업체 간 교섭이 진행 중이던 지난 5월에만 업체 4곳이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했다”는 내용 증명을 보내왔다. 조합원이 없으니 하청노조와 교섭할 이유가 없다는 엄포였다.

하청노조는 일련의 흐름을 원청 발 ‘노조파괴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정 부지회장은 “공장 안은 60도 넘게 올라간다. 폭염이라 하는데, 열이라면 이미 우린 이골이 났다”면서 “가시적 성과가 나올 때까지 노숙농성은 계속 된다”고 말했다.

동양시멘트 해고자들의 두 번째 여름, “작년이랑 비교 안 되게 덥네요”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들은 ‘위장도급’ 판정을 받은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해고됐다. 동양시멘트(현 삼표동양시멘트)는 2015년 2월13일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으로부터 “동일과 두성(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입사 때부터 동양시멘트 정규직”이라는 판정을 받은 즉시 하청업체 ‘동일’과 도급계약을 해지했고 4일 후 노동자 101명이 해고됐다. ‘직접고용 복직’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지 537일째, 이들에게 올 여름은 투쟁 후 두 번째로 맞는 여름이다.

“작년이랑 비교가 안 되게 덥네요.” 지난 12일 삼척에서 만난 이재형 조합원은 막 서울 농성장에서 복귀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주변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없는 서울 농성장엔 선풍기는 사치인데다 모기장을 설치해 바람마저 통하지 않는다. 이 조합원은 “연대방문 온 손님도 농성장을 들어서자마자 열기를 느끼고 도로 나가는 정도”라면서 “밤마다 베개가 땀에 흠뻑 젖는다”고 토로했다.

 

▲ 삼척에 위치한 동양시멘트 농성장. 사진=손가영 기자
이들이 위장도급 노동자인데다 부당해고 됐다는 확인은 여러 차례 받았다. 강원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해고가 부당하고 이들이 입사 때부터 동양시멘트 소속이라고 판단했다. 사측은 그 결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해고자들은 국회, 고용노동부 태백지청, 삼척시청, 강원도청, 삼척시의회 등 찾아갈 수 있는 곳은 다 찾아가봤다. 어떤 기관도 사측을 움직이는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렇게 537일이 지났고 이들은 ‘직접고용 정규직’임을 확인받는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 1심을 진행 중이다.

 

해고자들은 부당함이 명백한데 사측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은 어디 있냐고 묻고 있다. 현재 남은 인원은 23명. 1인 시위, 농성, 출·퇴근 및 점심 선전전 등을 유지해나가는 이들은 “지금 상황을 유지하는 게 현재 목표”라면서 “생활비 등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앞으로 산적해있는 법정 다툼을 계속해나가며 ‘직접고용’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 말했다.

“닭장차 공회전은 단속 안 하나” 유성기업 농성장의 탄식

“더워 죽겠는데 경찰들은 농성장 바로 앞에 전경차를 세워놓고 안에서 에어컨을 쐰다. 열기는 물론이고 덜덜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도 잘 안 온다. 어느 날은 화가 난 한 조합원이 약 올리냐고 소리 지른 적도 있다. 에어컨을 끄더니 한 5분 있다가 더웠는지 다시 켰더라.”

서울 양재역 현대차 본사 앞에서 3개월째 농성 중인 유성기업 조합원들은 현대차 직원과 경찰들의 감시에 더해 전경차의 ‘공회전’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공회전은 멈춰져 있는 자동차에 계속 시동을 걸고 있는 것으로 5분 이상 공회전을 할 경우에는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과태료 5만원이 부과되는 행위다.

 

▲ 서울 양재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 위치한 유성기업 농성장. 조합원들이 머무는 곳 바로옆에서 경찰들이 전경차를 세워놓고 있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연일 최고 기온이 36도를 웃도는 날씨지만 유성기업 농성장을 감시하는 경찰들과 현대차 직원들은 24시간 건물 곁을 지킨다. 12일 오후에도 현대차 본사 앞에는 10여명의 직원과 6명의 경찰이 서 있었다. 지금은 서로 가만히 대치하는 상태지만 농성을 시작한 5월에는 농성 시작 후 5일간 47명이 연행되는 등 진압이 이뤄진 적도 있다.

 

더위에 감시, 공회전까지 농성장의 조합원들을 괴롭히지만 농성장의 분위기가 어둡지만은 않다. 유성기업 아산공장의 박정성 조합원은 “최근 박효상 전 갑을오토텍 대표가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구속되는 것을 보고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 건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우리 조합원들도 그날 함께 가서 박 전 대표가 구속되는 것을 지켜보았고, 지금 농성장 분위기가 굉장히 좋다”고 전했다.

 

▲ 최고기온이 36도가 넘는 폭염이 지속되자 경찰들도 우산을 쓰고 현대차본사 앞을 지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현대차 본사 앞에서의 농성은 3개월째지만 유성기업과 조합원의 싸움은 6년 전부터 시작됐다.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유성기업이 실행한 노조파괴 문제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유성기업은 2011년부터 어용노조를 만드는 등 노조파괴행위를 해왔다. 이러한 노조파괴를 현대차가 지시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현재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은 부당노동행위 사건으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농성장의 조합원들은 노조 활동을 하다가 사측의 고소와 노조파괴 압박에 목숨을 끊은 고 한광호 조합원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라도 농성을 그만둘 수 없다고 밝혔다. 엄기한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대외협력부장은 “사측이 휴가 기간이었던 8월 첫째 주에는 영동공장에 있는 한광호 열사의 분향소를 철거하는 등 관혼상제에도 예의를 갖추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며 “우리가 서울에 올라온 것은 끝을 보려고 온 거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오는 17일 투쟁 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도 열 것”이라고 전했다.

노조 때문에 회사 망했다고? 김무성 사과 끌어낸 콜트콜텍

콜트콜텍 노동조합은 317일째 여의도 비닐하우스에서 농성 중이다. 지난해 방종운 콜트 지회장은 45일 동안, 이인근 콜텍 지회장은 13일 동안 단식투쟁을 했고 이후로도 3~4명이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16일 찾은 콜트콜텍 노조의 비닐하우스에는 사람이 들어가 있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나 뿜어져 나왔다. 에어컨은커녕 발전기를 끌어다 켜는 선풍기도 마음대로 켜지 못한다. 선풍기를 켜봤자 오후에는 뜨거운 바람만 나와서 아예 비닐하우스를 떠나 주변을 서성인다. 3일에 한번 여의도 주변 찜질방에서 샤워를 하지만 온몸은 항상 끈적거린다.

 

▲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농성 중인 콜트콜텍 천만 안. 이인근 콜텍지회장이 천막을 지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폭염 속 여의도 비닐하우스에 그나마 시원한 소식이 들어왔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지난해 8월3일 “콜트콜텍 등 이익을 많이 내던 회사가 강경노조 때문에 문을 닫았다”는 발언을 한데에 사과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난 7월15일 서울남부지법 상임조정위원은 김무성 대표에게 공개 장소에서 콜트콜텍 노조에 사과를 표명해야한다는 강제조정 결과를 밝혔다.

 

16일 서울 여의도 농성장에서 만나 이인근 콜텍 지회장은 김무성 전 대표의 사과 기자회견이 유감표명 정도로 끝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인근 지회장은 “우선 김 전 대표의 발언이 잘못됐다는 것과 그로인해 노동조합원이 받은 상처에 사과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며 “이번 사과는 법원의 강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진정성이 있는 건지 솔직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007년 4월 56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 한 콜트악기와 자회사 콜텍악기는 10년간 복직투쟁을 하는 중이다. 지난해 10월부터는 김무성 전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며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콜트콜텍 노조 측은 김무성 전 대표의 사과 이후에도 농성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인근 지회장은 “공장 정상화와 해고자 문제가 담보되는 수준이라야 농성을 접을 수 있다”고 밝혔다.

 

▲ 이인근 콜텍지회장이 김무성 전 대표의 사과를 촉구하는 문구를 들고 서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콜트콜텍 강경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만들었다. 결국 법원은 김무성 전 대표에게 사과를 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사진=이치열 기자
야당마저 외면한 세월호‧ 백남기 “19대는 새누리당 때문, 20대는 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와 백남기 대책위원회도 서울 한복판에서 무기한 농성을 접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특조위는 광화문 광장에서, 백남기 대책위는 백남기 농민이 입원 중인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앞에서 각각 농성 중이다.

상황은 악화되기만 한다. 지난 12일 여야3당 원내대표 합의에서 세월호 특조위 조사기간 보장에 대해 어떠한 해결책도 내놓지 못했다. 게다가 세월호 특조위는 9월 1~2일에 개최예정이었던 3차 청문회에도 문제가 생겼다.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회관 강당에 대관절차를 완료했으나 사학교직원연금공단 측에서 돌연 대관 취소요청을 해왔다. 

심성보 세월호 특조위 대외협력담당관은 “교육부가 사학연금관리공단에 압박을 넣은 것으로 추측된다”며 “예산 문제에 이어 청문회 장소 문제까지 겹쳤는데 국회 합의에서도 전혀 진전이 없으니 해결책이 안 보이는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세월호 특조위의 농성장. 더위 때문에 30분간격으로 물을 뿌리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국회는 백남기 농민 청문회 문제를 아예 외면했다. 야3당이 추경예산안 처리와 연계하기로 한 8개 합의 사항에 백남기 청문회 개최가 빠지면서 청문회 개최가 불투명해졌다.

손영준 가톨릭농민회 사무국장은 “국회가 19대 때는 새누리당이 다수여서 힘들다고 하더니, 20대 여소야대 임에도 사안을 외면했다”며 “새누리당뿐 아니라 무기력한 야당까지 함께 압박하기 위해 여성농민회가 단식농성을 예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 서울 혜화 서울대입구에 차려진 백남기 대책위의 농성장. 이곳에서는 매일 4시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원하는 미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지난 8월3일 농성 300일을 맞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도 서울 삼성 본관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300일이 넘게 농성을 하며 삼성과 재발방지 대책에 관해서는 합의를 보았지만 아직 보상과 사과에 대해서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는 “삼성에 대한 사회적 비난여론과 공감이 모아져야하는 사안이라 매일 선전전과 이어말하기 등 행사를 하는데 여름이고 사람들이 야외활동을 잘 하지 않으니 제대로 선전되지 않는다는 어려운 점도 있다”며 “삼성이 피해자에게 약속한 공식적 대화를 통해 사과와 보상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농성을 접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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