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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참 오랜만에 만나 사람들과

속깊은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통해 내가 어떤지를 깨닫고

또한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를 알려준다.

대화란 이렇게 서로를 주고 받는 것이다.

 

요즘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대화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내가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들...

 

난 그들과 정말 대화를 하고 살았는지 말이다.

참 불편하기만 했던 마음들....

난 왜 그 불편했던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을까?

 

내 머리속에는 어떤 매트리스가 있었던 걸까....?

대화할줄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해보려고

많은 마음 고생을 했었다.

난 그게 나만의 고생인지 몰랐다.

그런데 내가 정말 마음고생이 심했구나

또 어려운 사람들이었구나....하는것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가며 조금씩 알아간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 하는것

그것이 요즘 나의 존재의 이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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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되는거지...?

다시....

이번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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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와 연동 테스트

트위터와 연동 테스트

 

트윗질을 몇번해보니

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찾는지

알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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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고민

글이 안써진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소식지에 쓰기로 한 글을

3일째 계속 고치고 또 고치고 ....

글의 맥락도 잘 못잡겠다.

주로 감으로 글쓰기를 하는 나의 맹점이기도 하다

 

글을 쓰다 보니

주절주절 쓸 말들이 너무 많고

그 흐름대로 쓰다보니

 

학교는 인권침해의 산실이고,

결말은 학교란 곳은 없어져야 하는 곳이 돼 버린다.

 

이렇게 쓰다가

어? 지금 내가 뭐하고 있지?

목적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필요성인데

글이 학교를 없애야 한다로 가고 있다.

 

이런 일이 잦다보니

내 생각이 너무 산만한가? 라는 불안감도 들고

사람들이 잘 이해할수 있게 쓰고 싶은데

그게 안돼 속상하다.

 

글쓰기

언제쯤이면

얼마나 더 쓰면

내가 하고 싶은말을 척척

써낼수 있을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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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가시

내 인생의 가시

 

 

가시는 꽃과 나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또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찔리면서

사람은 누구나 제 속에 자라나는 가시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번 심어지고 나면 쉽게 뽑아낼 수 없는

탱자나무 같은 것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뽑아내려고 몸부림칠수록 가시는 더 아프게

자신을 찔러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내내 크고 작은 가시들이 나를 키웠습니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그를 괴롭히는 가시는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용모나 육체적인 장애가 가시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한 환경이 가시가 되기도 합니다.

 

나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가시가 되기도 하고,

원하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 가시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가시 때문에 오래도록

괴로워하고 삶을 혐오하게 되기도 합니다.

 

 

로트렉이라는 화가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이었지만

사고로 인해 두 다리를 차례로 다쳤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다리가 자유롭지 못했고

다리 한쪽이 좀 짧았다고 합니다.

 

다리 때문에 비관한 그는 방탕한 생활 끝에

결국 창녀촌에서 불우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절망 속에서 그렸던 그림들은

아직까지 남아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내 다리 한쪽이 짧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그는 말한적이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시는 바로

남들보다 약간 짧은 다리 한쪽이었던 것입니다.

 

 

로트렉의 그림만이 아니라,

우리가 오래 고통받아온 것이

오히려 존재를 들어올리는

힘이 되곤 하는 것을 겪곤 합니다.

 

 

그러니 가시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뺄 수 없는 삶의 가시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스려 나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잔을

얼마나 쉽게 마셔 버렸을 것인가.

 

인생의 소중함과 고통의 깊이를

채 알기도 전에 얼마나 웃자라 버렸을 것인가.

 

 

실제로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부유하거나

너무 강하거나 너무 재능이 많은 것이

오히려 삶을 망가뜨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

그 날카로운 가시야말로 그를 참으로

겸허하게 만들어줄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뽑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시야말로

우리가 더 깊이 끌어안고 살아야 할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 나희덕의 산문집<빈통의 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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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니 오늘 또 새롭게 다가온다.

그냥 좋은 글이 아니라

내 인생을, 나의 생각과  나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예전엔 한번 읽으면 다시 들춰보지 않았는데....

요즘 글을 다시 읽는데 꽂혔다고 해야하나?

 

니체가 말한 차이와 생성이 이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같은 글을 읽지만 읽을때 마다 새롭게 다가오는것

반복하는 행위속에 문득 새로움을 깨닫는것.

이것이 인생을 사는 묘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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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마음사이

선배와 통화를 하다가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다.

정말 말이 안통한다.

소통이 정말 어렵다.

 

운동을 10년을 넘게 했는데

내가 아직까지

교육감 선거의 중요성이나 왜 개입해야 하는가에 대해

일일이 다 설명을 해줘야 하냐? 라는 것이다.

이런 대화에서 항상 문제는 나에게 있고, 후배들한테 있는것처럼 느껴진다.

 

.....

 

반MB전선과 일제고사 반대등 경쟁과 획일화된 교육을 바로세우기 위해 범민주후보를 내세워야 하지 않느냐...? 이번 선거에 사실 학생인권,교사인권과 관련된 내용들이 들어있는거고 거기에 동의하고 너희들 활동해오지 않았느냐....? 라고 하는 말에

 

그렇죠....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교육감 선거에 온 역량을 투여해야지 하는 생각이 안든다. 

당위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는 무엇인지 잘 설명해내지 못하겠다.

 

그런 내 마음을 그래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인지

난 내 마음을 표현할 아무런 논리도 없이

교육감 선거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선배 활동방식과 상근자들 사이에 소통없이 진행되는것 때문에

사실 내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다.

 

니기 제기한 문제는 문제의 20%고

전체적으로는 너에게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고 그런다.

내가 느끼는 문제를 수치화 할수 있다니....문제가 수치화 될수 있는건가?

그런 의문이 든다.

 

내가 느끼는 문제가 부차적인거고

전반적으로 교육감선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내가 문제인건가?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거기에 함께 할 마음이 충만하지 못한 내가 문제인가?

참 중요한 사안인데도 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잘 생기지 않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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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하여

결혼에 대하여/ 칼릴 지브란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니,

영원히 함께 하리라.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삶을 흩어 놓을 때에도

그대들은 함께 하리라.

그리고 신(神)의 고요한 기억속에서도 영원히 함께 하리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리하여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그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그대들 영혼의 나라 속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으로 마시지 말라.

서로의 음식을 주되 한쪽의 음식에 치우치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때로는 홀로 있기도 하라.

비록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의 마음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마음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으니.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것 처럼,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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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이름

 

여미지식물원에서....

 

 

여미지 식물원에서

 

 

 

여미지 식물원가서 찍은 건데 위에 꽃 이름들은 하나도 모르겠다.

폰 용량이 적어 이름까지 찍어놓칠 못했다.

 

꽃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뭔가 휑한 느낌이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 그 사물을 설명하고 드러날수 있는 이름을 갖는다는것.

그건 생명을 불어 넣는것과도 같은 일 같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 말하듯....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이전에 난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참 그 꽃이라는 시를 가만히 다시 보니

역시나 기브앤테이크 정신이 들어있다.

어떤 관계에서나 기브앤테이크가 잘될때 원활한 법인데.....

시를 통해 다시 깨닫는다.

 

다행히 맨아래 꽃은 이름과 꽃모양이 너무 매치가 잘되 기억한다. 극락조

꽃이 마치 새처럼 생겼다. 이 꽃 봤으니 극락으로 갔으면 좋겠다 ㅎㅎ

 

 

 

-김춘수님의 꽃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것처름 누가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 모두은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의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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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 땡겨

4일째 계속 뒷골이 땡긴다.

 

계속되는 사람들과의 전화통화

사람들 사이의 조율

물건 숫자 맞추기

사람들과의 다툼

 내 몸과 마음이 한바탕 전쟁을 치뤘다.

 

명절때가 되면 더 많은 물건을 팔기위해

내 몸과 마음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인다.

 

내 힘듦을 알아주기 보다

움직여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생활했더니 그런지

계속 뒷골이 땡긴다.

 

그래도 목표액 달성한것은 기쁘다.

고진감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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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파시와 영성

오랜만에 학생운동을 같이 했던 후배를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후배는 상담관련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 후배는 상담공부를 하면서 영성에 많은 관심이 생겼나보다.

영성에 대해 묻는다.

누나는 영성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묻는다.

내가 생각하는 영성은

'나 자신을 돌아볼줄 알며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인간이

타인과 함께 잘 어울리고

조화롭게 살수 있는 여유를 만들줄 아는 내적 힘'이 아닐까?? 라고 ...

 

응 그렇구나...하며

후배는 자신은 과거 영성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았던거 같다고 이야기 한다.

영성하면 종교와 도가 생각이 나서 영성에 대해 꺼려지는 느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자기가 심리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정신적인 힘인 영성은

운동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인것 같다고 느껴진단다.

 

세상엔 정말 많은 유형들의 인간이 있는데

운동권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람에 대한 존중보다는

그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 먼저 내리고 욕하는데 익숙하다.

 

자기가 이러한 영성의 세계를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집회에 나가서 무서워 하는 후배들의 마음을 좀더 이해해줄수 있었고

후배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텐데....하며

과거를 회상하며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렸을때 축구에 열광하는 국민들을 보며

운동하는 우리들은 저기에 휩쓸리면 안돼!! 라고만 생각했지.

그 열기에 함께 하고픈 마음들을 쉽게 표현하지 못했을까?

우리의 머리는 왜 마음속에 드러나는 욕구를 억압하기만 했을까?

차라리 그런 머리와 마음의 차이들을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 했더라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문답식 이야기.

 

자유와 해방을 이야기 하면서 정작 너무도 협소하고 자신을 억압하며 살았던

과거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할수 있어서 너무도 속이 시원하다고 한다.

 

심리 공부를 하면서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논리형인 자기가 감정형인 타인도 이해할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한다.

자신을 알아가고 타인을 이해해 가는 후배가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파시....이심전심....

비록 논리정연한 언어가 아니라도 통하는 마음.

아직도 이성 중심의 사회이지만

사람들의 무의식에 각인되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비언어적인 부분이 더 많이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논리정연한 이론도 중요하지만, 느낌과 감정이 동반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머리로는 이해하겠지만 마음적으로 동의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요하고 부차적이고 하는 가치판단이 아니라

어떤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인정하는 것.

그것이 삶의 지혜이고, 운동을 확장할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삶이라는 것이 틀리고 맞고가 아니라 각자가 바라보는 세상이 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조그만 차이도 서로 인정해주고 이해해주고 하면서 나가는 것이 우리가 운동하며

배워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 면에서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는 태도가 필요한데 

사람의 마음에 잘 공감해주는 나에 대해서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거라고 칭찬한다.

텔레파시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는데 

나의  태도가 텔레파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상담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의 능력이 부럽단다.

사람들에 대해 무척이나 공감하는 부분이 많고,

유독 사람들의 마음에 신경이 쓰이는 나는

가끔 너무 줏대 없다고들 한다.

 

그런데 후배가 나는 그런 성향들을 베이스로 가진 사람이란다.

그래서 일이 잘 되느냐보다는 사람들이 일을 잘할수 있게 지원해주고

사람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는데 많은 신경을 쓰는 유형이란다.

 나를 이해하고 나를 설명해주는 이 친구의 말이  반갑고

 내 마음의 뭔가를 해소해주는 것 같다.

텔레파시가 통하는구나....ㅋㅋ

 

이놈의 능력주의 사회에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이성적인 논리, 말발, 문서쓰기에 필요한 능력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것도 능력이다.

그런데 이런것들이 그저 쟤는 원래 그런 인간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은 없듯이

이심 전심도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서로 뭔가 내놓는 속에서 서로가 통하는 것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 보이는데도 얼굴은 정색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런사람들과 싸우다 보면 억울함에 분통이 터지기도 했던거 같다.

지금은 그런 사람들 보면 참 안타깝다.

 

어쨋든 텔레파시는 서로 교감해야 될수 있는 것이고,

그런 꺼리들을 서로가 만들어야 하는 것.

서로가 교감할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영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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