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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04
    '교수시국선언', 그런데도 희망은 별로 안보인다.
    tnffo

'교수시국선언', 그런데도 희망은 별로 안보인다.

현대사 고비마다 교수의 ‘시국선언’ 있었다

(...) 순탄치 않은 한국 현대사에서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은 일종의 방향을 제시해왔다. 대표적인 시국선언문은 4.19혁명 당시 발표됐다.

1960년 4월25일 대학교수단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이승만 대통령의 퇴진과 3·15 부정선거 책임자에 대한 문책 등을 요구하고 거리행진에 나섰다. 당시 자유당 정권은 3·15 부정선거로 인한 전국적인 정부 규탄 움직임에 계엄령으로 맞불을 놓으려 했다. 그러나 대학교수단의 시국선언으로 인해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결국 시국선언 발표 이틀 후인 27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발표하며 자유당 정권은 붕괴됐다.

80년대 6월 항쟁의 불을 지핀 것도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었다. 고려대 교수 28명은 1986년 3월28일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제목의 시국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과 언론·사상·표현의 자유를 요구했다. 이후 5월 중순까지 29개 대학에서 785명의 교수들이 대학별로 시국선언을 이어가며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대변했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1987년 4월22일부터 5월말까지 다시 줄이어 6월 항쟁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1990년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 때에도 전국 57개 대학교수 1041명이 ‘현 보수야합정권에 대한 우리의 입장’라는 제목의 시국선언을 통해 경고의 뜻을 전했다.

21세기 들어서도 중요한 역사적 고비의 순간에는 어김없이 대학교수의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서울대 교수 88명이 탄핵 반대의 뜻을 밝힌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어 지난해 7월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고시 강행으로 3달째 촛불정국이 이어지고 있던 시기에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학술단체협의회·전국교수노동조합 등 교수3단체가 시국선언을 통해 △정부의 쇠고기 수입고시 철회와 재협상 개시 △촛불시위 폭력진압 중단 △어청수 경찰청장 해임 및 내각 인적 쇄신 △촛불시위 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급속도로 불거지고 있는 민주주의 후퇴 논란에 불씨를 지핀 대학교수들의 목소리가 우리사회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출처:서울=뉴시스, 펌: 한겨레, 2009-06-03)

 

위에서 보듯이 소위 민주화정권 이전에는 교수-종교인 등으로 대표되는 일명 사회지도층의 시국선언이 어느정도는 말빨이 서고 권위를 인정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어제(6/3일) 있은 서울대-중앙대(124+68=192명)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반응은 '개무시' 그 자체로 보여진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청와대는 '서울대 전체 교수 1700명 중의 124명은 무시해도 좋을 소수'라는 입장이고 (註1), 조선일보는 더 정확히 서울대 교수는 총 1786명이며(덕분에 처음 알았다), 시국선언에 참가한 124명은 버스를 대절해서 봉하마을에 조문도 갔던 '친노'(親盧) 세력으로 그들을 가두고(규정) 평가절하 한다 (물론 "상당수"라는 애매한 탈출구를 감춰두고 124명을 언급하지만 독자의 눈에는 숫자보다는 사건이 먼저 읽힌다) (註2). 비슷한 예로, 누군가 아무리 반동적인 발언을 하더라도 그것에 '항의하는 자는 일부이고 대부분은 찬성'을 한다면 그 발언은 무죄가 되는 판국(註3)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논리가 낳은 사악한 결과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민주주의 정신'이 어느정도 정착한 계기는 바로 그들이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민주화정권 10년'의 유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다수결 원칙'과 그에 따른 '정통성'에 신성불가침적 가치를 부여하는 민주주의가 이제는 바야흐로 진짜 민주주의를 좀먹어가는 지점이 되겠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이고 문제를 보완할 논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註1) 번지는 시국선언… 지식인사회, MB정부 국정운영 방식 본격제동
지식인 사회가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3일 서울대 교수 124명과 중앙대 교수 68명이 낸 시국선언은 이 대통령의 1년여에 걸친 국정 운영에 대한 공개 비판이자, 국정 기조를 전면 쇄신하라는 강력한 요구로 해석된다. (...) 그러나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시국선언에 나선 서울대 교수가 전체 교수의 극히 일부라는 취지의 말을 하는 등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이 관계자는 이날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서울대 교수 전체가 몇 분인지 아느냐. 1700명 되는 것을 아는데”라고 말했다. (홍석재 김민경 기자 / 기사등록 : 2009-06-03 오후 07:48:54  기사수정 : 2009-06-03 오후 11:38:18 ⓒ 한겨레) 

(註2) <조선> "시국선언 교수들, 허무주의 허우적"
(...)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이번 선언을 주도한 교수들 중 상당수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소속으로 지난달 26일 전세버스를 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빈소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5년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서울대 교수 시국성명 때도 중심에 섰었다"며 이번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들을 '친노'(親盧)로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또 교수들의 시국선언 직후 청와대가 내놓았던 반응과 같이 "현재 서울대 전체 교수는 1786명"이라며 이번 선언을 소수의 교수들이 내놓은 정치 발언으로 폄하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시국선언문 중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된 부분에 지면을 길게 할애해 교수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 (오마이 09.06.04 12:03 이경태) 

(註3) 경남도지사 “좌파정권 10년 고생 많았다” 발언 파문
민족통일전국대회서 “지난 10년 통일정책에 돌아온건 핵폭탄뿐”/수백명의 참석자들 축사 중단 요청 및 행사장 이탈로 거센 항의  (...) 이에 대해 김태호 경남도지사 쪽 관계자는 “애초 준비된 축사와 관계없이 즉흥적인 연설을 하면서 현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뜻으로 말을 했을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통일정책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었다”며 “일부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박수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해명했다. (마산/최상원 기자 / 기사등록 : 2009-06-03 오후 05:14:29 ⓒ 한겨레)

 

86년 3월에 "고려대 교수 28명"에서 시작된 '교수 시국선언'이 그해 "5월 중순까지 29개 대학에서 785명"까지, 그리고 해를 넘겨 87년 5월까지 이어지며 '6-29'를 낳는데 중요한 공헌을 했듯이, 어제의 '교수 시국선언'도 어느정도는 계속되고 그 숫자도 불어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예상되는 결과는 20년 전과 비슷할 것으로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이제 그 잘난 '민주주의 정신'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선거로 정통성을 인정받았고 교수든 뭐든 상관없이 그 머릿수가 1000이든 10000이든 그것이 전체에서 소수라면 그 '소수 의견'은 짓밟혀도 좋다는 게 '민주주의 정신'이라고 우리는 10년동안 충실히 학습을 받았다는 말이다. 여기에 반발하는 주장들은 바로 '억지'가 되고마는 실정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진정한 민주주의는 소수의견도 존중하는 것'이라는 류의 말씀은 이제 성균관에서나 찾아야할 대상이 된 듯하고 잘해야 참고사항 정도에 그칠 공산이 크다. 여기서 민주주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겠다: '원래가 민주주의는 그런 맹점이 있지만 필요악일 수 밖에 없다'는 류의 도피성 진단 말고, 보다 적극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념과 가치를 다시 정립할 논리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매도하고 새로운 '인민 주체적 민주주의'를 건설하자고 하면 또 '추상'이라고 욕할테고, 뭔가 뾰족한 수가 없을까?

 


[추가] 그리고, 바로 대안은 아니지만, 비슷한 고민과 제안 (문단의 조정과 번호는 펌자의 것).

 

 

[시론] ‘패자전몰’ 민주주의의 비극 / 최태욱
사실 민주주의의 구현은 불가능하다. ‘주인’인 시민의 뜻이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들의 뜻이 서로 다른데 ‘대리인’인 정부가 누구의 뜻을 따를 수 있겠는가. 할 수 없이 고안한 것이 정당을 매개로 하는 대의제다. 다종다양한 시민사회의 선호와 이익을 복수 정당들로 하여금 분담하여 대변케 하고 정당 정치인들이 선거 경쟁을 거쳐 정부를 구성할 때 그 정부 결정을 일반 시민의 뜻으로 인정하자는 일종의 사회계약을 제도화한 것이다. 이 대의제 민주주의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다수제고, 다른 하나는 합의제다.
1/ 다수제 민주주의는 영국인들이 설계했다.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와 같은 다수제 혹은 다수결형 선거제도를 통해 의회의 다수당 지위를 차지한 특정 정당에 정치권력을 몰아주는 제도다. 단일 정당이 입법부와 행정부를 모두 장악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이므로 여기서의 정부는 임기동안 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지속해갈 수 있다. 시민의 뜻을 해석하고 구현해가는 권력을 다수당이 독점적으로 행사하도록 한 것이다. 한편 패배한 정당과 그 정당이 대변하는 사회세력들은 이 권력에 참여하지 못한다. 승자독식 민주주의라고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이 다수제 민주주의를 미국을 통해 수입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인들이 수정을 가한 부분, 즉 행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꾼 방식은 그대로 들여왔으나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을 방지하기 위한 삼권분립 제도 등은 제대로 수용하질 못했다. 결과는 다수제 민주주의의 특징인 승자독식-패자전몰 현상이 정당만이 아니라 지도자 개인 차원에서도 지나칠 정도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고착이었다. 극단적 사례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이 패자전몰 민주주의의 비극으로 볼 수 있다. 패자는 권력과 권한은 물론 명예와 자존심, 그리고 목숨마저도 내놔야 하는 이런 식의 민주주의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 여론조사 등을 통해 나타나듯, 국민의 다수가 노 전 대통령 서거는 정치보복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설마 이 정도로 야만적이진 않겠지만, 정권교체 후의 정치보복은 앞으로도 되풀이될 수 있다. 그 경우 사회분열은 악화일로로 치닫게 된다. 이제 한국식 다수제에 손질을 가할 때가 아니겠는가.

2/ ‘유러피언 드림’을 꿔보자. 영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 선진국들은 다수제가 아닌 합의제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다. 합의제의 핵심 제도는 국회 의석을 정당 득표율에 비례하여 각 정당에 배분하는 비례대표제다. 여기서는 지역이나 인물이 아닌 정책과 이념 중심의 정당정치가 활성화되면서 다당제가 발전한다. 유력정당의 수는 통상 셋 이상이게 마련이므로 단일 정당이 의석의 과반을 차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행정부의 일반 형태는 연립정부이며 시민의 뜻은 정당들 간의 합의에 의해 해석되고 구현돼간다. 권력은 당연히 분산되고 공유된다. 승자와 패자가 적대적일 이유도 없다. 패자라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가 가능할 뿐더러, 오늘의 경쟁자가 내일의 연정 파트너가 될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기 때문이다.

3/ 우리나라에서도 권력분산형 의원내각제로의 전환 필요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거론돼왔다. 무엇보다 반대자들은 물론 심지어 지지자들의 선호마저도 무시하는 행정부의 독선적 국정 운영 행태가 자주 목격됐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전근대적 정당정치 수준에서 당장 의원내각제로 갈 수는 없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은 한시가 급한 과제다. 경제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다수제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 대여섯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비례대표제 혹은 비례성이 상당히 보장되는 혼합형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우리도 비례대표제의 전면 도입 등으로 지역주의 청산이나 이념 및 정책에 기초한 정당정치 활성화 등 합의제 민주주의의 발전 조건을 미리 갖춰놔야 한다. 의원내각제는 그 후의 목표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 입력 : 2009-06-04 17:56:24ㅣ수정 : 2009-06-05 01:2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6041756245&code=990303

 

 

어떻게, '비주류 서민대중'을 움직이게 할 것인가? / 정상호

1/(...) 정치인으로서 노무현은 뼈 속까지 비주류였다. 사전적 의미에서 비주류란 중심이 아니거나 소수세력을 의미한다. 이 때 소수란 단순히 수적 개념이 아니라 여성이나 비정규직처럼 권력 관계에서 사회적 약자를 지칭한다. 길게 늘어진 추모 행렬 속에서 가장 짙은 서러움과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이들은 참여정부의 고위인사나 친노 정치인들이 아니다. 그들은 징글징글한 학력중심 사회에서 대학조차 못 나왔거나 서울의 명문대는 물론이고 지역 명문고 이름만 들어도 기가 죽어 내심 분노를 곰삭혔던 우리주변의 흔한 보통사람들이었다. 가난한 농촌에서 나고 자란 상고 출신의 젊은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엘리트 여성 의원에게는 나라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수치였을지 모르지만 평균 학력의 보통사람들에게는 내놓기에는 뭐하지만 가슴 한켠을 따듯하게 만든 은밀한 자부심의 근거였다.
2/(...) 그의 서거를 남 몰래 슬퍼했을 두 번째 비주류는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2등 시민 취급을 받아온 지방 사람들이다. 그의 균형발전전략에 대해 우파와 수도권 주민들은 행정수도 이전의 급진성과 무모함을 비난하였고, 진보와 시민단체들은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로 인한 지가 앙등과 개발주의적 속성을 비판하였다. 그렇지만 비판자 대부분은 지방이 아니라 서울특별시에 기반을 둔 특별한 시민과 중앙 언론들이었다.
3/(...) 두고두고 고민해야 할 세 번째 비주류는 여성이다. 이번 추모행렬에서 가장 눈에 띠는 그룹은 단연 이들이었다. 어디에서든 남학생보다는 여고생이 압도하였고, 어린 자녀를 둔 30-40대의 가족들 단위가 많았으며, 20대 직장여성에서부터 50대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검은 정장의 근조 리본이 5월의 서울 거리를 꽉 메웠다.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나타난 추모행렬이 분단시대의 영웅주의와 끝없는 성장주의를 추종하였던 남성성을 상징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그것은 탈냉전시대의 평화를 염원하였던 여성주의와 근접해 있다. [개인적 견해로는 여성들의 추모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육아와 보육을 포함한 여성정책에 대한 긍정적 평가라기보다는 진정성을 추구하고 실천하였던 이상주의 정치인에 대한 여성 특유의 직관과 결국 권력으로부터 박해받고 죽음을 결단하였던 고독한 한 인간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 자신들의 연민감과 일체감이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정상호-]
=> 5.23 서거 이후 추모열기에 대해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합의를 본 유일한 지점은 '서민 대통령, 노무현'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대통령 개인사와 가족사의 유력한 근거들이 있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현역의 육군병사로서 만기 제대한 '빽' 없는 서민의 아들이었다. 권양숙 여사 역시 민주화 이후 이화여대 출신이 아닌 최초의 영부인이었다. 정확하게 말해 그녀는 대학은 꿈도 못 꾼, 가난 탓에 졸업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여상을 자퇴하고 취업 할 수밖에 없었던 산업화 시대의 우리 어머니들이나 누이들의 아픈 경험을 똑같이 공유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극심한 분단 상황 속에서 잃고 남편을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잃은 권 여사의 삶은 대통령의 삶만큼이나 기구하였다. 보다 주목할 점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민 이미지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의 교감 속에서 창출된 것이라는 점이다.

 

(...) 500만 추모객의 애도는 욕망의 정치, 전문가ㆍ엘리트 정치, 권력정치, 상층계급(upper class) 편향의 정치가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가치의 정치를 추구하였던 인간 노무현에 대한 흠모이지 그의 업적과 성과에 대한 찬양이 아니다. (...) 상주를 자임한 민주당의 (...) 당의 현대화를 내건 뉴민주당 플랜에 대한 시비가 뜨겁다. 필자는 뉴민주당 플랜에 대한 비판의 초점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 이는 지엽적이거나 부정확한 진단이다. 문제의 본질은 뉴민주당 플랜의 지향점과 기조가 당대의 역사적 과제와 정면으로 씨름하여왔던 '비주류 서민대중 정치'의 한국적 전통과 완전히 결별하였다는데 있다. (...) 이제, 지난 몇 년 동안 정치변화의 동력으로 작동하여 온 것이 노동이나 사회운동과 같은 단일 노선과 조직의 지도력 발휘가 아니라 비주류 서민대중들의 정치적 선택이었음을 인정하자. 이심전심으로 이들이 움직일 때 정권교체도 가능하였고 광장의 촛불도 번져나갔다. 이들이 노선과 지도자를 잃고 동요할 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고, 뉴타운으로 상징되는 욕망의 정치가 승승장구하였다. 무정형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나날이 보다 더 선명한 실체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앞으로도 한국정치의 향방을 결정지울 것이다.
(...) 민주당은 중도개혁이나 현대화와 같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비주류 서민대중 정당으로의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함으로써 더 이상 개혁 대 실용이라는 탈 맥락적ㆍ소모적 논쟁의 덫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당분간 진보라는 이념의 사용권을 좌파 정당과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자. 대신 민주당 또는 새로운 정치를 준비하는 세력들은 '비주류 서민대중'을 대변할 수 있는 정책과 인물의 배양에 주력하는 것이 백배는 생산적이다. 진보의 형성과 그 궁극적 소유권은 언어나 이론의 정치함이 아니라 실천의 결과 내면화되고 타자로부터 공식화되는 인정 투쟁의 결과 획득되어진다. 이제, 한국정치가 진보의 내용을 채우기 위한 실천적 경쟁과정으로 발전하고, 조직 노동에 기초한 좌파 정당과 비주류 서민대중 정당 사이의 진보 대 진보 또는 좌파 대 진보로 분화하고 때로 연대하는 선의의 경합과정으로 발전하기를 빈다. (...)

[의제27 '시선'] 노무현의 유산과 과제 /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9-06-04 오후 12:06:52,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03211920§ion=01

 


[사설/6월 5일] 건강한 사회 위한 '민주주의 논란'
서울대와 중앙대를 필두로 확산되고 있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현주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교수들은 선언에서 "지난 수십 년간 온갖 희생을 치러가며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빠졌다"고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현 상황은 군사독재에 맞서 각계의 민주화 요구가 분출하던 1986,7년 당시와 다르다. 적어도 민주주의의 형식 면에서는 그 시절 치열한 투쟁을 통해 얻어낸 민주화의 성과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유지되고 있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합당한가, 그들의 발언에 과연 대표성이 있는가 하는 지적과 반론에도 충분히 이유가 있다.
다만, 민주주의의 내용과 질을 놓고 볼 때 교수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등 민주사회의 기본권이 크게 제약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 촛불시위 때의 과잉진압과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처리와 서울광장 개방 문제, 미네르바 파동 등에서 그런 측면을 걱정하게 된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의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과격시위나 무책임한 자유가 초래할 역작용을 염려해 강력한 대응이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지만 권력의 자의적 조치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더욱 큰 문제다.
각 권력기관의 정치권력 편향성 논란도 그렇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 경찰의 서투르고 무리한 진압이 부른 용산 참사, 감사원의 정치적 표적 감사 논란 등 이 정부 들어 권력기관의 중립성을 의심케 하는 사례는 많았다. 정권교체를 거듭하며 어렵게 쌓아온 권력기관의 중립성이 흔들린다면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위기다. 교수들이 본분을 떠나 시국선언 형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들의 문제의식이 옳은지 는 분명 논란이 될 만하다. 그렇다고 편향된 일부 교수들의 목소리라고 도외시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이 각계각층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정치를 하라는 요구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거기에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가 있다. (한국일보, 2009/06/05 02:36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906/h2009060502355676070.ht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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