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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종태]아빠의 뜻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롭지만, 비통해하거나 슬퍼하지만은 않겠다"

"고인이 남기고 간 뜻이 이뤄질 때까지,

아이들이 아빠의 뜻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날까지 참고 견디겠다" -한수진-


故 박종태 씨 아내 한수진 씨 "고인의 뜻 이뤄질 때까지 참고 견디겠다"

다음은 이날 기자 회견에서 밝힌 한수진 씨의 발언 전문이다.

지금 이 시간까지 우리 아이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몇 시간 후면 내가 만나 얘기해줘야 하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여기 저기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하기도 어렵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왜 다른 아빠와 달리 우리 아빠는 우리랑 안 놀아주냐'며 떼쓰던 아이들에게…. 마침 어제가 어린이날이었지만 내일은 우리 아들 생일이다. 실감이 안 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많은 일들을 하면서 아이들 아빠가 많은 추억을 남기고 가준 것 같아서 고맙다. 작년 아들 생일에는 나에게는 한 번도 안 끓여준 미역국도 끓여줘서, 그나마 추억을 갖고 있게 해줘서 고맙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롭지만, 비통해하거나 슬퍼하지만은 않겠다. 고인이 남기고 간 뜻이 이뤄질 때까지 참고 견디겠다. 아이들이 아빠의 뜻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날까지….

멀쩡했던 두 아이 아빠를, 단란했던 가정을, 이렇게 만든 금호자본과 그것을 방조한 정부가 조금이라도 인간의 탈을 쓴 사람이라면 하루 빨리 나타나서 사죄해야 한다. 또 다른 열사가 생기기 전에 더 큰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두 다리 뻗고 자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와서 사죄하기를 경고한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는 왜 죽어야 했나
"악착같이 싸워서 사람 대접 받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9-05-06 오후 4:54:34

 

아들 생일에 손수 미역국을 끓여주던 다정했던 아빠였다. 두 아이와 자신만 남겨두고 떠난 남편에게 아내가 "그래도 추억을 남겨주고 가서 고맙다"고 꾹꾹 울음을 참아가며 얘기할 수 있던 사람이었다. 지난 3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 박종태 씨는 구두 합의를 깨고 일방적으로 78명 택배 기사와의 계약마저 해지한 대한통운과 싸우고 있던 중이었다. 본인은 대한통운 택배 기사도 아닌, 25톤 화물차를 운전하는 노동자였다. "일체의 대화를 회피"하는 대한통운 탓에 "파업 아닌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대한통운 소속 조합원의 갖게 된 절망에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지난 달 30일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는 실종된 지 오래됐고,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거나 고분고분 노예로 살라고 한다. 동지들을 잃을 수 없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열 살 딸 아이와 일곱 살 아들 아이를 남겨둔 채였다. 아들의 생일을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지난 2007년 10월, 법으로 보장된 "단체 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분신한 전기공 정해진 씨의 죽음 이후 불과 2년도 못 돼 또 다시 노동자가 노동 3권을 보장받기 위해 목숨을 버린 것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6일 한 목소리로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라며 '고 박종태 열사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함께 싸울 것을 다짐했다. "대한통운으로부터 계약해지된 78명의 원직 복직 등이 이뤄지기 전까지 장례도 치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 회사와 전속 계약을 맺는 택배 기사와 달리 본인은 여러 회사의 물량을 운송하는 25톤 트럭 운전 기사였지만, 박 씨는 지회장으로 대한통운 기사들의 투쟁을 이끌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지난 23일 체포영장이 발부되기도 했던 박 씨는 지난달 30일 한 정당 게시판에 죽음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고 사라졌다. 박 씨는 이 글에서 "현재 적들은 죽음을 요구하고 있다"며 "투쟁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면 바쳐야 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주검으로 발견된 것.

 

이후 발견된 유서에서 그는 "나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최소한 화물연대가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 힘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지 43일이 되도록 아무 힘도 써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서 전문] "시대가 노동자에게 죽음을 요구"

다음은 박종태 씨가 남긴 유서의 전문이다.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들이 투쟁의 제단에 제물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동지들을 희생시킬 수 없었습니다. 동지들을 잃을 수 없었습니다.

저의 육신이 비록 여러분과 함께 있진 않지만, 저의 죽음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줄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악착같이 싸워서 사람 대접 받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큰 나라를 반토막내서 배 부르고 등 따신 놈들, 미국과 극우보수 꼴통들이 이번 참에 아예 지네들 세상으로 바꿔 버리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는 실종된 지 오래됐고,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거나 고분고분 노예로 살라고 합니다.

그 속에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안락만을 위해서 투쟁할 것이 아니라 통 큰 목적을 가지고 한발 한발 전진하기 위해 손을 잡고 힘을 모으는 적극적이고 꾸준한 노력과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의 생존권, 민중의 피폐한 삶은 사상과 정견을 떠나서 무조건 지켜져야 하고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우리 민중은 이론가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최소한 화물연대 조직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 힘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지 43일이 되도록 아무 힘도 써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기 위해 선택한 것입니다.

눈을 감으면 깜깜할 겁니다. 어떻게 승리하는지 저는 보지 못할 겁니다. 그것이 아쉽고 억울합니다. 꼭 이렇게 해야, 이런 식의 선택을 해야 되는지, 그래야 한 발짝이라도 전진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속상하고 분합니다.

이름을 거론하자니 너무나 많은 동지들이 떠오릅니다. 저를 이만큼 건강한 간부로 활동가로 있게 해 준 소중한 분들. 저를 믿고 따라 준 형님, 동생, 친구들. 이 의미 있는 투쟁, 힘겨운 투쟁에 끝까지 남아 준 동지들 모두가 저에겐 희망이었습니다.

광주라는 곳도 사랑합니다.

날고 싶어도 날 수 없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행복하고 서로 기대며 부대끼며 살아가길 빕니다. 복잡합니다. 동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면서 그 속에 저도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올림.

 

운수노조 등에 따르면 대한통운은 지난 1월 노조와 구두로 수수료를 건당 30원씩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양 측은 2월 시행을 약속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외려 3월 15일 대한통운은 "본사의 방침"이라며 "합의는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노조에 통보했다. 이튿날 노조는 회사에 대한 항의의 일환으로 분류 작업을 거부했다. 김종인 운수노조 위원장은 "택배를 분류하는 것은 계약서 상 택배 기사의 업무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간 관행으로 택배 기사가 별도의 수당 없이 진행해 왔던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회사는 이들의 '항의'에 "근무지 이탈"이라며 "12시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전원 해고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다시 오후 3시 경 "저녁 6시 전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자동 계약 해지됨을 최종 통보한다"는 문자가 조합원들에게 날아 왔다. 또 하루 뒤인 17일, 회사는 내용증명 우편으로 해고 통보서를 보냈다. 화물연대 심동진 사무국장은 "대한통운은 집단 계약해지 이후 노조와 비공식 대화마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초 단 한 차례 노조와 마주 앉아 임금 등 근로조건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이 "대한통운 소속 PD직으로 고용하겠다"고 말했던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심동진 국장은 "대한통운은 PD직이 되면 택배 기사가 산 화물차의 소유 관계나 물량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전혀 설명도 하지 않고 그저 화물연대를 탈퇴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만 되풀이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한통운은 화물기사들의 수입과 직결된 운송료 삭감의 선두주자"라는 것이 운수노조 관계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택배 뿐 아니라 컨테이너 운송료도 대한통운이 한진, CJ 등 다른 물류운송 업체보다 가장 먼저 깎아 왔다는 것. 박 씨를 죽음으로 내몬 이번 사태도 대한통운의 이런 경영 전략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노동계의 분석이다.

 

노동계는 또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도 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화물기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정부 정책이 이들을 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 초 노동부는 실제 덤프트럭과 레미콘 차주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볼 수 없다며 관련 노조에 시정을 요구했다. 신고필증을 반려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부는 이들 화물 기사들이 자기 차를 가지고 영업을 하는 사람이므로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 주장은 다르다. 회사와 맺는 '화물운송 계약'은 형식적으로만 파트너 관계로 포장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종속적인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택배 기사의 경우 한 회사와 계약을 맺고 그 회사의 물건만을 나르고 있는 데다, 출근 시간이나 휴가도 자율적이지 않다는 것이 노조 주장이다. 때문에 민주노총은 이런 정부 정책을 놓고 "수 년 동안 합법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음에도 이제와 신고필증 반려 운운하는 것은 건설노조와 운수노조에 대한 탄압 이외에 해석할 길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일 노동절 대회에서 "이들 노조의 신고필증을 반려할 경우 민주노총은 설립신고필증 반납을 통한 특단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었다.

 

여기에 대한통운 택배 기사들의 싸움 과정에 개입한 경찰 등 공권력의 태도도 박 씨가 절망한 이유의 한 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운수노조 위원장은 "경찰은 신고 인원보다 많이 왔다고 집회 참가자를 무조건 연행하고 1인 시위자까지 병력을 동원해 둘러싸는 등 과도한 진압을 일삼았다"고 비판했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이 박 씨의 죽음에 대해 "고인은 거꾸로 가는 역사의 칼날에, 이명박 정부가 휘두르는 민중 탄압의 철퇴에 맞아 목숨을 잃은 것"이라고 비판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임 위원장은 "또 고인은 그런 이명박 정부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한 우리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이라며 '총력 투쟁'의 뜻을 밝혔다.

 

박 씨의 아내인 한수진 씨도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롭지만, 비통해하거나 슬퍼하지만은 않겠다"며 "고인이 남기고 간 뜻이 이뤄질 때까지, 아이들이 아빠의 뜻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날까지 참고 견디겠다"고 말했다. 이날 화물연대는 1000여 명의 간부들이 모인 가운데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오는 9일에는 역시 같은 곳에서 민주노총 등 '대책위' 주최로 집회가 열린다. 매년 5월 18일 즈음에 개최하던 '5.18 정신 계층 전국 노동자대회'도 이번에는 광주가 아닌 대전에서 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화물연대는 총파업까지 검토하고 있다. 김달식 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장은 "아무리 힘없는 화물 노동자라지만 사람을 개처럼 부려먹고 버려서는 안 된다"며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몽둥이가 필요하다면 우리가 몽둥이를 들겠다"고 밝혔다. (여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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