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하고 따뜻한 봄날, 동네 근처 산책을 나갔다가 지인이 이화여대 도서관에 있다고 해 오랜만에 이대 캠퍼스를 누비다가 왔다.

 

중앙도서관 올라가는 길엔 연세대나 경희대 만큼은 아닐지라도 철쭉이 활짝 피어 꽃천지였다. 학교 안 카페 '아름뜰' 옆이나 캠퍼스 군데군데 숲의 나무마다 연두색 이파리가 눈부셨다. 중간고사가 끝물이고 축제를 앞두고 있는 캠퍼스는 봄처럼 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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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록금 투쟁과 싸움의 기술

 

하지만 그 활력에 찬 만춘 가운데서도 시대의 긴장은 있으니... 지난 1980~90년대처럼 시위의 물결이 휩쓸지는 않을지라도, 현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지라, 등록금 투쟁의 한 고비를 넘고 있는 듯했다. 곳곳에 총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었고 유인물도 눈에 띄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지난 3월 31일 개최한 학생총회가 5년만에 성사된 쾌거. 의결정족수 1,557명보다 444명 더 많은 2,001명이 모였고 '6대 요구안 실현을 위한 채플거부안' 투표에서는 1,634명 중 1,375명이 찬성(84.1%)해 채플거부안을 가결시켜 학생들은 공동행동에 돌입했었다.

 

그후 학생들과 학교 측의 협상 끝에 학교 측이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매우 미흡한 안이다. 신입생 등록금 인상분 철회 요구에 대해 1년 인상분 총액 8억의 1/2을 장학금으로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그 외에 짜잔한 몇 가지 안을 추가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화여대는 적립금이 7,000억에 달하는 등록금1위 학교이다. 물적 여유가 있다는 거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는커녕 미적지근한 태도로 나온다.

 

그냥 산책하면서 둘러본 상황이긴 하지만 누가 봐도 사태는 명백하다. 학교 측은 중간고사-대동제를 거치는 동안 숨고르기를 하면서 교육투쟁을 무산시키기 위해 혈안이 될 게 뻔하다. 다만, 올해 성사된 학생총회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의 양보안을 내놓은 것일 뿐이고, 따라서 학생들은 좀 더 학교 측을 밀어붙여야 한다.

 

하지만 (동네 아저씨에 불과한 내가 보기에는) 총학생회의 대응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학교 측의 최종 제안을 갖고 학생 총투표를 붙인다는 것부터 요상하다. 학생들의 요구안에 대해 학교 측도 뭔가 안을 내놓았으면, 다양한 투쟁 전술을 구사해가면서 압박을 해가면서 학생들의 요구안을 관철시켜 가야 맞는 거 아닌가. 학교 측이 안을 내놓았다고 막바로 총투표에 붙인다니. 도출된 잠정합의안을 갖고 총회에 붙이는 것도 아니고.

 

총학생회 홈페이지에는 중앙운영위 보고안건과 논의안건지가 다 올라와 있다.

(이것도 참... 학교 측은 이걸 다 보면서 작전을 세울 것 아닌가. 비회원인 나도 맘대로 다운받아 읽을 수 있다니)

다운 받아서 읽어보니 총투표 말고 총학생회가 별로 크게 준비하는 이후 투쟁방향은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총학생회는 총투표만 호소할 뿐, 총투표에 대한 입장, 학교 측 안에 대한 총학생회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적당히 접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래서 동아리연합회에서 뿌린 유인물이 시의적절하다고 느꼈다. 동아리연합회의 핵심적인 메세지는 "학교 안에 대해 반대표", "총학생회는 (총투표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이도 미흡한데, 총투표 자체가 지금 해야 할 전술이 아닌 것 같다. 여기서 지면, 한 해 교육투쟁은 다 말아 먹는다.) 그런데 총학생회장은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덕수궁 앞에서 열린 '대학생 권리실현을 위한 대표자 삭발 기자회견'에 참석해 삭발까지 했다. 한대련은 대 정권 투쟁으로 조급하게 일정을 가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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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총학생회장은 21C한국대학생연합에 가입을 추진했는데, 이후 판에 대해서는 아마도 5.28~5.29 서울에서 열리는 한대련 대회로 집중시키는 판을 구상하는 듯하다. 학생들은 반값등록금을 제기하는 투쟁은 이명박과 싸워야 될 문제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각 학교에서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고서 정권과의 싸움? 어림없다. 이화여대는 충분한 지불능력이 있다. 대부분의 대학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 적립금이 10조가 넘어가고 있다. 각 캠에서의 싸움을 충실히 해나갈 때만이 그 동력을 바탕으로 대 정권 투쟁으로 발전시킬 것 아닌가.

 

내 느낌으로는 각 캠퍼스에서 이길 수 있는 전술을 구사할 역량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학생들 사이트를 조금 뒤져보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참 어렵게 싸운다는 생각도 들고 주먹구구식이라는 생각도 들고 힘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기도 하다가도, 좀 맥빠지는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 게, 이기자고 덤비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싸움의 기술은 대가 끊긴 것 같다. 물론, 너무 선수들이 돼서 적들과 공모하기도 하는 그런 꼴을 보지는 않아야겠지만.

 

그래도 활짝핀 봄꽃처럼 좀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등록금 인하 같은 직접적 성과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겠지만. 그보다는 학생들이 기대보다 많이 거리로 나오는 꿈 같은 것, 꿔본다. 저항의 확산, 그것보다 더 큰 자산이 어디 있겠나.

 

2. 기념물이 왜 이렇게 많아? 이화여대 망신살

 

아직도 공사중인 이화여대는 그래도 많이 정돈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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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31일, 학생총회가 성사되던 때 대강당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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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당 출입문이 특히 아름다웠고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대강당에 올라가봤다. 89년쯤 집회 때 가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대강당에서 이대 학생들이 이번 학생총회를 성사시켰다는데... 구경하다가 입구 문 앞에서 눈길이 멈췄다.

 

이 대강당은 기독교 대한 감리교의 초대 총리사였던 양주삼 박사에게 봉헌한 건물로 1956년 5월 31일 봉헌되었다. 그는 1930~1950년까지 20년간 이화여대 이사장으로 재직해 일제 압정 하에 기독교 정신으로 이끌어줬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친일파였을 뿐이다. 양주삼 목사는 "기독교인은 종교인이기에 앞서 국민"이라며 신사참배를 주도했고, 광복 후에는 "출옥 성도나 나머지 성도나 고생하기는 매한가지였다"는 논리로 교권을 유지했다고 한다.

 

하긴, 친일파 김활란의 동상이 버젓이 서 있는 이화여대에서 양주삼 따위야 뭐. 광화문 네거리에도 양주삼 기념돌이 버젓이 서 있기도 하고, 논산 제일의 사찰 관촉사 들어가는 입구에도 이승만 기념비가 서 있기도 하다. 전국토가 그러할진대...

 

* 부기 : 이런 기념물 철거가 학생들의 압력과 행동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학생들이 행동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례가 있다.

 

"서울 관악구 소재 광신고교는 지난 2001년 12월 말 이 학교의 설립자 겸 초대 재단이사장을 지낸 친일파 박흥식의 동상을 철거했다. 이 학교의 이사장은 박흥식의 아들 박병석씨.

이에 앞서 민족문제연구소 관악동작지부 회원 등은 학교 앞에서 박흥식의 동상철거를 요구하며 수개월에 걸쳐 시위를 벌였다. 학교측은 결국 고심끝에 동상을 철거키로 결정하고 이같은 사실을 민족문제연구소측에 통보한 후 그해 말 철거했다.


학교측은 박흥식의 동상이 동문회 기증 형태로 세워진 것을 감안, 동상 철거문제에 대한 모든 결정을 동문회에 위임했으며, 동문회는 다시 회의를 통해 동상을 철거키로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박흥식 동상 이외에도 교육계 친일전력자들의 동상이 더러 철거된 바 있다. 지난 2000년 7월 서울 중앙여고는 일제말기 제자를 정신대로 내보낸 황신덕씨의 동상을 철거한 바 있다." (오마이뉴스, 2004년 5월 9일, 정운현 기사, 반민특위에 제1호로 검거된 '매판자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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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대강당 로비에 붙어 있는 친일 목사 양주삼 헌정 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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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네거리의 종교교회에 있는 기념돌>

 

그래도, 또 하나 적어둬야겠다. 이화여대의 망신살은 또 하나 있다. 정문 들어가서 왼편에 보면 박물관 앞뜰에 조선시대 동자석(童子石)이나 문석인(文石人) 따위, 석등 따위가 소담하게 서 있는데, 모두 다 천신일이 기증한 것이다. 천신일이 누구인가? 이명박의 친구이자 고려대 교우회 회장을 지냈던 인물로, 얼마 전 한국에 돌아와 구속 수감되었다. 대선특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사고 있고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는 세간의 눈총을 받고 있다. 그가 2007년 고려대 교우회 회장을 지낸 것은 2007년 이명박 대선과 관련이 있었다. 고려대 교우회는 '고려대 마피아'라고 불릴 정도로 끈끈한 유대를 자랑한다고 하며 호남향우회·해병대전우회와 더불어 '3대 사조직'으로 꼽힌다고 한다.

 

그는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청탁한 혐의, 알선수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06년 고려대, 연세대 등 대학에 엄청난 규모의 주식을 기증한 바 있고, 자신이 수집한 조각품, 골동품을 거래를 통해 자녀들에게 넘겨 수십억의 세금을 포탈하기도 했다. 원래 그는 2000년대 초반에는 용인에 세중돌박물관을 만들기도 했었다. 지금 이화여대 박물관 앞뜰에 있는 건 아마도 그 언제쯤 이화여대로 들어가게 된 듯한데, 석물이 죄가 있는 건 아니니 거기 놓여져 있는 거야 상관없겠지만, 그 설명문에 버젓이 '천신일'이라는 이름자가 들어가 있는 건 볼쌍 사납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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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그 외 찍어둔 사진들이다.

 

* 이화여대 앞, 그리고 캠퍼스 안에는 중국 관광객들이 사진 찍는 걸 심심찮게 구경할 수 있는데, 소문에는 중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한국 가이드북에 "이화여대에서 사진을 찍으면 운수가 좋다"는 얘기가 있어서란다. 믿을 수 있는 얘기인지는 모르나, 관광객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진짜 그런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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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3 22:27 2011/05/03 22:27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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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03 23:2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철쭉 아닐까요? ㅋ 저도 오늘 그 학교에 갔었는데, 저는 철쭉만 많이 봐서요.ㅋ
    • 2011/05/04 09:10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아!!! 그러네요. 철쭉이네요. 이런, 이런... 고쳤슴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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