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 아현동

 | 답감
2006/11/22 01:24

 

문화우리와 희망제작소가 사라져가는 서울의 동네를 영상으로 기록해두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리고 그 작업에 가장 협조를 잘했던 서대문구 중에서 내가 살고 있는 아현동이 선정되었고 지난 여름 내내 대학생, 대학원생 등이 돌아다니며 찍었던 작품들은 요 며칠 동안 아현역에서 전시가 되었다. 전시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이 가져가게끔 했다.

 

그 사진들 중에서 몇몇 개는 나도 매일 지나다니는 골목이었다. 집에서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는데, 익숙한 동네 풍경을 사진에 담으니 낯설고도 아름다웠다.

 

그 프로젝트 사진들을 인터넷에서 찾다가 어떤 이의 글을 읽게 되었다. 그 문장에서 배어나오는 느낌이 참 더러웠다.

 

그냥 . 이런데가 정겹고 좋다 .

저 사진을 봐봐 . 높은 계단 .

봉순이언니에서 읽었던 . 그 모습 그대로같아...

 

...

 

더 개발되기 전에 한번 갔다와야겠다.

 

우리 동네 나이든 할머니들도 저 높은 계단을 정겹고 좋다고 느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옆집 할머니는 2층 밖에 안 되는 우리 건물을 오르내리실 때마다 가끔 내 부축을 받곤 한다. 관절염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서민적'인 우리 아현동의 그 서민들은, 밤이 되면 난리법석이다. 새마을회관 앞 보육원 아이들이 가꾸는 스티로폼 화분들은 술취한 남정네들이 발로 차버리기 일쑤다. 혹은 아침 길거리는 소주병이 깨져서 유리조각 투성이다. 집집마다 왜 그리 부부싸움을 격렬하게 하는지.

 

수십 명이 고가 카메라를 어깨에 걸치고 아현동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다면, 그 시선은 어떤 것일까? 그것이 아프리카 어느 부족 사람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서구 인류학자의 시선과 과연 다른 것일지. 이 프로젝트는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게 될 아현동의 모습을 기록'해두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이 동네 사람들과 어떤 의미로 관련될 수 있을지. 약탈적이지는 않더라도 몰이해에 기초하고 있는, 그래서 삶을, 마을을, 그 실제를 왜곡시킬 수 있는 시선들.

 

나는 물론, 이 프로젝트의 사진들은 좋다. 아현동에 살기 때문에 간취할 수 있는 것들이 이 사진 속에 있다. 그리고 이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오랜 시간 아현동에 머물면서 찍어서 그런지 아현동의 표정을 현지인들처럼 풍부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사진들을 찍은 사람들과 무관하게 이 프로젝트의 시선이 불순하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아현동에 관한 저런 글줄을 써댄 어떤 이의 시선이 불쾌한 것도 여전하다.

 

저개발의 제3세계에 대한 서구인들의 식민적 시선, 그건 한국인들의 시선 속에서도 여전하다. 저런 시선은 약탈적이진 않더라도 몰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서울의 그 많은 제3세계적 삶에 대한 그 우월적 시선이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을 찍은 서구 인류학자들의 시선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수한 아현동들이 '뉴타운'으로 거듭날 것이다. 제1세계는 제3세계를 자신의 모습으로 탈바꿈 시킨다. 부르주아는 자신의 모습을 닮은 모습으로 세계를 바꿔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다. 그리고 그 욕망은 제3세계의 욕망이 된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뜨거운 쟁점이 됐던 '강북 개발'은 사실 '강남이 되고 싶은 강북 사람들의 욕망'으로 언술화되었는데, 그건 강북 사람들의 욕망이 아니라 사실은 부르주아의 욕망일 따름이다. 부지불식간에 우리 안에 들어온 부르주아의 욕망들. 서울 전역이 투기대상 지역으로 지정되었다는 건, 사실 모든 사람이 투기꾼이라는 거 아닌가.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사실 아닌가. 땅 사면서 프리미엄 생각 안 하는 '서민' 있나?

 

그렇게 제3세계 아현동들-은평, 길음, 왕십리, 한남, 미아, 방화, 노량진, 영등포, 천호동, 이문동, 수색, 증산, 시흥, 신길, 흑석, 마천 -이 80년대 치열한 도시빈민 투쟁이 벌어졌던 사당동, 목동, 봉천동, 창신동, 상계동처럼 제1세계로 거듭날 것이다. 그리고 식민의 시선들은 점차 사라져갈 게토에 대한 진한 향수를 우리에게 가지라고 말한다. 그것이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테제를 걸고 진행되는 저 프로젝트들의 음험한 시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부르주아의 시선을 계속 복제하게끔 강제하는 장치는 사실 스스로 자신의 시선을 날카롭게 벼리는 것으로만 극복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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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2 01:24 2006/11/22 01:24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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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2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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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새슬/여기서 보니 반갑군. 재미있는 글 기대함. 까칠한 글만 말고..
  2. 박지원
    2012/03/19 08:0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혹시 가능하면 그때 전시했던 사진들이 파일로 보관되어 있나요??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가능하다면 아래 메일로 보내주세요~감사합니다.
    gagboy87@dreamwiz.com
    • 2012/03/21 10:24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저는 해당 전시의 기획자도 아니고, 그냥 아현역에서 봤을 뿐입니다. 따라서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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