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영등포에서 약속이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형, 좀 늦을 거 같애. 1호선이 멈췄어. 어느 역에서 누가 뛰어들었대나봐."
그래서 나는 잽싸게 머리를 굴렸다.
"야, 그러면 버스를 타. 거기서 올라와서 몇 번 버스를 타면 말야..."
얘는 고향이 천안이라 서울 지리를 전혀 모른다.
"형, 그냥 기다려볼께."
2. 나중에 영등포 Hollys 앞에서 혼자 서서 멍하니 기다리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지하철로 뛰어들었다는데,
그 순간에 '어떻게 하면 여기까지 빨리 올 수 있나?'만 생각하고 있었다니.
내가 뛰어들어도 어떤 사람들은
"아, 어떤 새끼가 지하철에서 뒈져서 차 막히게 하는 거야!" 하겠구나.
"뒈질라면 혼자 한강에 뛰어들든가!" 하겠구나.
죽는 게 참 쓸쓸하다.
공중도덕 지켜가면서 죽어야 되나.
3. 지하철노조 승무지부 노동자들은 그렇게 뛰어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나면
평생 그 기억 때문에 괴롭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렇게 죽은 사람들을 평생 가슴에 간직해주는 사람들은
일면식도 없던 그 한 사람, 승무 노동자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노무현 탄핵 정국 직전에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이 한강에서 투신 자살을 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죽을 때도 캄캄한 지하에서 몸을 던져 죽고
힘있는 인간들은 죽을 때도 강바람 맞으면서 죽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