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1일(일요일, 29일차) : 싸파→박하→라오까이→하노이

 

- 잠을 못자긴 했지만 어쨌든 일어는 났다. 피곤하긴 했지만 화창한 바깥 날씨를 보니 기분이 개운했다. 어젯밤 비가 많이 왔던 듯한데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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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값을 치렀다. 숙박비는 6USD×4일=24USD, 그리고 커피 마신 값, 넵모이인가? 술 2번 마신 값, 물 2병 사간 것 해서 220,000VND.


- 호텔 식구들과 사진을 찍었다. 정겨운 사람들, 순박한 사람들. 다만, 영어도 모르면서 어떻게 싸파에서 호텔을 할 건지 걱정이 됐다. 하긴, 뭐 어떠랴. 싸파의 주인은 관광객이 아니다. 이들이 이곳 싸파를 지켜갈 것이다.
 

- 7:30am에 데리러 오겠다던 퀸호텔의 박하행 버스는 8:10am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어김없는 베트남타임. 처음엔 버스에 자리가 적당하지 않아 간이 의자 같은 것에 앉았다. 우리네 마을버스 같은 옛날 아시아자동차의 콤비 같은 차량, 토요타의 이 차량은 얼마나 오래된 차일까? 자리가 불편했다. 싸파에 와본 사람은 안다. 싸파에서 라오까이까지의 그 험난한 산길을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하지만 그 산길을 매일 같이 걸어 다니는 몽족도 있다. 참아야 한다.
 

- 가이드는 앳된 소년 같은 얼굴이었는데 장근석을 닮았다. 라오까이까지 1시간을 그는 서서 갔다. 그에게는 쉬운 일이라 했다. 보는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간혹 나타나는 공안을 피해 그는 몸을 웅크리고 앉아야 했다. 정원 초과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 길은 험했지만 날이 맑아서 싸파로 올 때 보지 못했던 다랭이논의 정경을 현기증나게 볼 수 있었다. 베트남 북서부 지역의 산세는 우리 것과 달라 몹시도 가파랐다. 생성된지 오래되지 않은 산맥인지도 모르겠다. 계곡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있는 계곡은 상당히 깊었고 그 계곡을 아래로 굽어보며 도로는 산허리를 휘감고 이어졌다. 투어 버스가 쏜살 같이 그 도로를 질주하고, 또 그 길을 오토바이로 내려가는 곡예 운전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있었다. 잡은 뱀을 한 손에 들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은 사람도 있었고, 세 명이 탄 채 그 험난한 길을 내려가는 이들도 보였다. 압권은 역시 그 도로를 걸어서 오르는 몽족, 그리고 물소 몇 마리를 데리고 자신은 물소 위에 올라탄 목동이었다.
 

- 라오까이에 잠시 정차한 버스는 라오까이 역 앞 한 레스토랑 겸 여행사 건물에 투어 참가자들의 배낭을 맡기고 다시 출발했다. 박하까지는 2시간을 더 가야 한다. 박하까지 가는 길은 싸파 가는 길 못지 않게 험난했다. 그러나 가는 길에 결혼한 부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마을 잔치를 하는 듯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스치며 지났지만 베트남 북서부 마을 사람들 사이로 언뜻 신부의 하얀색 웨딩드레스가 보였다.


- 박하시장에 내린 시각은 11:30am. 1:30pm까지 다시 그 자리로 모이라고 한다. 2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온갖 물품들이 보인다. 싸파에서 본 것과 같은 걸개들, 그러나 그 문양과 색감이 더 다양하고 수의 솜씨도 더 훌륭했으며 디자인도 더 좋았다. 특히 화려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퀼트 담요가 있었다. 40만 동을 부른다.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접었다. 분명히 후회하겠다. 하지만 지금 있는 짐도 이미 산더미다.
 

- 박하시장은 싸파시장보다 크고, 사람도 훨씬 많으며, 더 다양한 소수민족이 모이는데, 더 가난해 보였다. 청소년들은 하릴 없이 우루루 거리를 쏘다녔고, 청장년층 중에는 술에 취한 듯한 모습도 빈번하게 발견됐다. 시장은 더러웠다. 음식은 순대나 삶은 돼지고기 같이 보이는 걸 팔기도 했다. 이곳이 북부 국경지대라 그런지 기름진 음식이 많이 보였다.
 

- 박하에서 가장 눈에 띄는 몽화족(H’mong Hoa)은 싸파의 몽족과는 달리 아주 화려하게 치장한 옷을 입었다. 아름다운 옷이었다. 저 한 벌 옷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실을 꼬아야 하고 또 그 실로 수를 놓아야 할까. 그들은 키가 작았고 얼굴은 까맸는데 이 사람들의 모습은 베트남 사람들과도 (꼭 옷이 아니더라도) 한눈에도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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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하시장에 앉아 ‘순대국수’를 먹었다. 순대처럼 보이는 걸 가리키자 할머니가 여기에 국물을 붓고 면을 넣어 국수를 말아 왔다. 우리네 순대보다는 피맛이 약간 느껴져 선지를 먹는 것 같기도 했는데 먹을 만했다. 20,000VND. J는 퍼 헤이를 먹었다. 25,000VND. 소계 45,000VND. 소수민족들은 비닐봉지나 바나나잎 같은 데에 껌(밥)을 싸서 다닌다. 끼니 때가 되면 식당에서 얇게 썰은 돼지고기에 육수를 부은 것을 사다가 껌과 함께 먹는다. 내 옆에 앉은 몽화족 할머니와 처자로부터 돼지고기를 얻어 먹었다. 우리네 보쌈 고기 같았다. 나는 순대를 몇 점 건네줬다.


- 박하시장을 빠져 나오면서 귤 30,000VND어치를 샀다. 여기 귤은 싸파 것보다 크고 더 겉보기도 좋았는데 여기 귤에도 씨가 들어 있다.


- 그리고 박하시장에 온 가장 큰 목적! 즈어우(Ruou), 즉 박하산 증류주를 샀다. 여기 가이드들은 ‘박하 와인’이라고 부르는데 술을 담그는 게 아니라 옥수수를 발효시켜 증류해 만드는 것이니 위스키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암튼 울산 L형이 시켜서 박하까지 온 것이긴 하지만 은근 욕심이 나서 1병 더 사서 총 2병을 샀다. 50,000VND×2병=100,000VND. 길을 지나다가 큰 말통을 놓고 길가에 앉은 할머니가 있었다. 다가가니 할머니는 말통에 담겨 있는 걸 뚜껑에 조금 따라 내게 냄새 맡으라 줬다. 직감적으로 “아, 이거구나!” 했다. 나중에 보니 베트남 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다 그걸 사들고 있었다. 서양인들만 뭔지 몰라 사지 않을 뿐이었다. 여대생으로 보이는 학생들도 그랬고 아저씨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모두 다 그걸 사들고 간다. 박하 술은 그만큼 베트남에서 유명짜하다. 그래서 나 역시 사긴 샀으나 이걸 어찌 서울까지 들고갈 것인지 생각하니 걱정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 박하시장은 덥고 복잡했다. 도시가 더 돌아볼 것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모이기로 한 장소 근처에서 콜라 20,000VND와 카페스아농 15,000VND을 마셨다. 맞은 편에 보니 박하 즈어우를 파는 가게도 보였다. 소수민족으로부터 사지 않고 그런 가게로부터 산 사람들은 가게 주소와 상표가 붙어 있는 공병에 술을 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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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옆에 하노이 대학생들로 보이는 23살 또래 친구 일곱과 잡담을 나눴다. 베트남 젊은 친구들은 어찌나 활달한지. 그네들도 박하 술을 사간다.
 

- 버스는 1:40pm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역시나 베트남타임. 아무래도 좋다. 왔으니 된 것이다. 라오까이에서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하셨던 독일 할머니는 맨 뒷자리에서 앞자리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계신다. 베트남 와서 가장 유쾌하고 친절하고 세련된 할머니셨다.
 

- 다음 코스는 이 지역 몽화족의 마을인 반퍼(Ban Pho)를 찾아갔다. 그들은 황토흙과 볏짚을 섞어 두텁게 벽채를 세우고 그 위에 볏짚으로 지붕을 잇는다. 문턱이 높은데 이것을 밟으면 안 된다고 하고 문 위에는 부적 같은 걸 붙여 놓아 잡귀를 물리친다 한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흥미로웠다.
 

- 옥수수는 지붕 아래 다락 같은 곳에 엄청난 양을 비축해 놓았다. 식량이자 술을 만드는 재료이며 또 땔깜이기도 한 옥수수. 가이드가 서양인들에게 설명을 안 해줘서 그들은 누구도 바깥에 엄청난 양으로 비축해둔 옥수수자루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쟤네들한테 옥수수야 그저 소나 말에게 주는 사료 아니던가. 육류를 생산하기 위한 원료에 불과한 옥수수, 그것도 옥수수자루에 왜 관심을 두겠는가. 하지만 우리네 사람들도 옛날엔 옥수수를 먹고 남은 옥수수자루를 말려 겨울에 땔감으로 썼다. 아마 이들도 그럴 것이다. 중국인들도 시골에 가면 아직 그렇다고 한다. 서양인들은 아무도 옥수수 즈어우를 사가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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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련된 독일 할머니는 사진을 찍는 것도 남달랐다. 다른 이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걸 찍고, 또 서양인들디 으레 환장하는 것에 거리를 두신다. 표정도 얼마나 온화하신지 항상 표정엔 미소를 머금고 계신다. 그 허리는 또 얼마나 꼿꼿하신지. 하롱베이에서 카약을 타시느라 손가락이 조금 다치셨는데 상관 없다고 웃으시는데 씩씩하시다. 할머니께 박하시장에서 산 귤 3개를 뛰어가서 건네드렸더니 정말 고마워하신다.


- 버스는 다시 한참을 달렸다. 라오까이까지 길은 험난했고 버스는 더 빨리 달렸다. 아마도 싸파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해가 지기 전에 데리고 가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 버스는 라오까이에 도착하자마자 중국과의 국경으로 향했다. 유럽을 가보았지만 국경을 통과한 건 유레일 안에서였기 때문에, 혹은 도버해협 선착장 안, 혹은 JFK공항,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육지 내에서의 국경다운 국경 모습을 본 건 난생 여기가 처음이었다.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멋진 건물을 자기 구역 내에 세우고 큰 문을 세웠다. 베트남 쪽은 라오까이, 중국 쪽은 헤코우(Hekou, 河口)였다. 그 사이에는 홍강이 흐르고 있지만 강이라기보다는 하천에 가깝다. 이것이 흐르고 흘러 하노이까지 가면 거대한 홍강 삼각주를 형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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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까이 역 앞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배낭을 맡겨놓은 레스토랑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시나브로 사라졌다. 이 레스토랑 값이 비싸 그 옆에 있는 껌빈잔 집에서 밥을 먹었다. 두부, 돼지고기볶음, 야채볶음, 국, 밥. 돈은 무려 100,000VND. 처음부터 많이 갖다주길래 덜었는데도 이 정도였다. 라오까이는 물가가 비싼 것 같고, 그건 북부 전체가 마찬가지였다.
 

- 이제 싸파-박하 투어는 모두 끝이 났다. 라오까이에서 하노이까지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가 타고 가면 된다. 탑승 예정 시각은 8:50pm이었다. 오래 기다려야 했다. 커피는 라오까이 역 앞에서 마셨다. (카페스아다 15,000VND, 카페스아농 10,000VND, 싸파 담배 10,000VND, 소계 35,000VND) 베트남 남자 청년들 중에는 셈을 못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은가보다. 50,000VND을 줬는데 5,000VND을 가져온다. 이 카페는 역전 길거리 카페임에도 Wifi가 된다. 또 Wifi에는 PIN(패스워드)을 걸어놨는데 128비트로 걸어놨다.
 

- 단과 항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어서 정말 반가웠다. 이들은 어디냐고, 여행 어땠냐고, 한국 언제 들어가느냐고 물었다. 귀여운 친구들. 가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하잉의 전화번호가 없다는 걸 이제야 발견했다. 쩝. 어쩌냐.
 

- 좀 일찍 역에 왔지만 탑승 예정시간 8:50pm을 훨씬 지나 역 문은 열렸다. 기차 선로를 가로질러 열차를 탔다. 우리 방에 밑에 칸 베트남 남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어디에서 왔느냐고 영어로 묻는다. “또일라 응우옌 한꿕!” 했더니 “아, 그러세요?” 한다. 그는 한국 이주노동자 출신이었다. 오래 한국에서 일을 했고 경남 외국인노동자상담소 이철승 목사의 일을 도와준 적도 있다고 한다. 서울, 성남, 안산, 수원, 대구, 부산, 마산, 창원, 대전 등 안 가본 곳이 없었다. 한국 말도 어찌나 잘하던지. 그는 결혼을 했고 신혼여행으로 싸파에 다녀가는 길이라 했다. 자신도 박하 즈어우를 샀다고 한다. “냐”라고 부르는 열매도 먹으라 권하면서 한국엔 없는 과일이라고 한다. 지금도 한국 회사의 자회사에 다닌다고 한다. 베트남은 결혼을 하면 15일 휴가를 준단다. 어찌나 한국어를 잘하던지, 내가 농담으로 “저보다 더 잘 하시네요” 했다. 31살이라는 그는 내 나이가 “바땀”(38)이라 하니 32~33살로 밖에 안 보인다고 은근히 추켜세운다. 그런데 중국 사람처럼 생겼다고 한다.


- 지금은 밤 12시가 넘었다. 롱 비엔 역에 도착하는 시각은 언제일까? 기차가 또 연착되지는 않을까? 기차는 6:48am에 롱 비엔 역에 도착할 예정이다. 하노이로는 가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복선 레일이 아니라서 자꾸만 정차를 한다. 지금도 화물열차와 나란히 서 있다가 다시 가는 중이다. 오래 걸릴 듯하다. 이제 그만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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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6 11:32 2010/12/16 11:32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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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니
    2011/01/25 15:3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순대가 있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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