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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2. 악법 어기기. 투쟁 이기기

발제 2. 악법 어기기. 투쟁 이기기




  때는 2004년 9월. 안정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구가해 나가며, 이런저런 부르주아 지배 분파들 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는 자본주의 국가 한국. 그곳엔 56년 간 절대 공격이나 침입이 불가능한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현대판 ‘소도’가 존재해 왔다.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이 바로 그것. 이 영역을 파쇼적으로 40여년간 지켜왔던 당파와 새롭게 권력을 장악, 스스로를 ‘민주주의적 개혁파’으로 지칭하는 자유주의 당파가 국보법의 개폐를 놓고서 한판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 발단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 tv 프로그램 대담에서 국보법의 폐지를 말한 것었다. 자유부르주아지인 열우당이 당 정책을 아예 국보법 폐지로 선회했고, 한나라당은 개정을 부르짖고 있다.


 


  우선 첫 번째로, 부르주아 분파들 사이에 존재하는 입장 차이는 무엇으로 기인한 것인지 알아보고, 노무현 정권은 국보법 폐지로부터 무엇을 얻어내고자 했는지 알아보자.


  하나, “보이니? 파쇼와 자유주의의 차이”


  다들 알다시피 한나라당은 대한민국 건국 직후부터 98년 전까지 집권 여당이었다. 그들은 앞 발제에서 나온 바와 같이 행복 추구권과 같은 기본권조차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를 쟁취하려는 민중의 봉기에 대해, 무자비하게 군화발과 탱크로 짓밟았다. 또한, 그들은 건국 직후 ‘빨갱이들이 설쳐 국가를 혼란스럽게 하고, 선량한 국민들을 오염시키고, 북한 괴뢰군이 남침을 한 사실’, 기득권을 빼앗겨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웠던 위기와 공포의 순간을 뼈져리게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붙들어 매주는 것이며, 이를 폐지하면 국가 안보가 흔들린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보법을 폐지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닥쳐올 위협을 눈뜨고 지켜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탄핵 사태 이후, 급격하게 지지 기반을 상실했던, 한나라당으로선 자신들의 보수적 색채를 더 강화시켜 다시금 확고한 지지층을 만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원로’ 들과 ‘박사모’등 보수세력이 모여, 국가위기사태를 선언하고 집회를 열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빨갱이’ ‘좌익’ 세력인 노무현을 규탄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이는 정치사적으로 나름대로 깨끗한 열우당의 우위를 드러내주며, 파쇼적 분파와 자유주의 분파와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자유주의 분파가 온건히 민중들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유로운 정치 활동을 꾀하기 위해 국보법폐지를 외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분파는 왜 국보법 폐지를 말하는 것인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볼까나?


  둘, 눈 가리고 “어흥”하기.


  부르주아 인권의 잣대로 봐도 파쇼적일 수밖에 없는 국보법을 폐지함으로써,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좀더 민주주의적이고 좀 더 국민을 생각하는 당으로서의 이미지 확보를 위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과 열우당은 故김선일씨의 죽음 이후로, 파병 반대 여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국익 운운하며 추가 파병을 강행, 그들의 가면 속 진실을 엿본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이는 열우당의 지탱 세력을 흐트려 놓아, 그들이 대중을 다시 획득하기 위한 가시적인 것으로 ‘국보법폐지’만큼 좋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이는 그들도 파쇼세력과 마찬가지로 노동자계급을 착취한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단순히 대중의 민주주의와 개혁에 대한 열망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


  북한의 시장개방 흐름도 현 정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최근 중국이 단순 대북 지원 정책을 넘어서, 특권층이 많이 살고 있는 인구 220만의 평양시에 전략적 투자를 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저임금 노동력, 특권층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소비시장, 동북아 경제 거점 중심지 허브를 구상하고 있는 한국 부르주아지로서는 이 뉴스는 매우 위협적이다. 따라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자본에 ‘한민족’의 소비시장을 눈뜨고 송두리째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일 터, 국가보안법이라는 무지막지한 법을 폐지하는 입장으로 향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논의로, dj 정부 시절부터 가져온 평화적 민족적 통일 정책인 ‘햇볕 정책’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대중들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자유주의 부르주아지 분파 전체가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골고루 얻을 수 있는 절묘한 찬스를 만든 것이다.




  두 번째, 2004년에 집권 여당에 의해 국보법 폐지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인지를 살펴보자. 우리는 이를 통해서, 자유주의 분파의 계급적 본질과 그 한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 자본주의의 큰 성장은 지배 세력에 있어서 파쇼에서 자유주의 분파로의 이행을 가져왔다. 자유로운 시장 경제 체제가 확장되는 데 있어서,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파쇼 분파는 방해가 될 뿐이었다. 하지만, 군부정권 시절에 경제가 오히려 발전하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후진국 자본가들은 어느 정도 자본을 불려놓기 위해서 정권과 결탁하는데, 이를 통해 남한의 경제가 성장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듯 어느 정도 자본이 성장하게 되면, 정경유착은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정권의 지나친 기업 규제 등이 자유로운 경쟁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또한, 파쇼적인 정책은 노동계급의 투쟁을 더욱 급진화한다. 실제로, 국보법에 대한 개폐논의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87년 노동자 대투쟁같은 것을 상기해보자. 폭압적인 정책이 노동자들의 분노와 단결된 투쟁을 잘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부르주아들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들에게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제를 보장해주는 것이 결국 자신들에게 이롭다는 점 역시 말이다. 이렇듯 자본주의 발전으로 인해 자유민주주의는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있으며, 열우당이 이 점을 깊이 신뢰하기 때문에 국보법 폐지 당론을 확정한 것이다.1) 한마디로 말해, 국보법 폐지는 현 상황에 아무런 폐해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남한 자본가들은 56년간 차근차근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착실히 심어놓음으로써, 선심 쓰듯 국보법 폐지를 논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총자본의 이득을 위한 공문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들이 실제로, 국보법 폐지 후에 바꿀 형법 개정안을 보면  제87조(내란)와 제102조(준적국)에 각각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지휘통솔 체계를 갖춘 단체’라는 표현으로 북한을 적대적 국가로 간접 지칭하는 내용 추가, 제90조(예비·음모·선동·선전)에 ‘선전·선동’과 ‘금품수수’에 대한 처벌조항을 신설했으며, 국보법 대체법안인 파괴활동 금지법안은 제2조(정의)에서 ‘적대적 국가 또는 단체’를 ‘대한민국의 존립 및 안전을 침해하는 활동을 하는 국가 또는 국가에 준하는 단체’로 표현해 마찬가지로 북한을 간접 지칭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국가기밀 침해죄(제4조) △민주기본질서 파괴죄(제5조) △목적수행죄(제6조) △금품수수(제7조) 등을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불고지죄가 폐지되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국가보안법과 전혀 성격이 다르지 않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입법에 대한 한계는 위와 같은 것을 통해서 지적할 수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 에 대해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 모든 이들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게,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것에 대한  환상 말이다. 하지만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이 만든 잉여가치를 착취함으로써 유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 때의 민주주의라는 것은 계급의 착취와 피착취 관계를 은폐하고, 체제와 계급 대립의 완충 장치일 따름이다. 중립적인 의미로, 또는 민중을 위한 체제로 이해되는 민주주의는 오히려, 부르주아지를 이해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투쟁을 결코 방기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체제, 그것으로 유지되는 자유민주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노동자 계급에게 민주주의적 제도라는 것은 그들을 해방시킬 충실한 무기이자,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행동할 수 있는 더 많은 권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더 많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데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입법 체제에 대한 한계는 명확하므로, 민주주의 제도를 통한 권리 획득은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선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이 폐지되더라도, 형법 조항이나, 파괴활동금지법이라는 또 다른 악법이 존재하게 될 것이므로, 다음과 같은 노래가사를 기억하자. ‘악법은 어겨서 깨뜨리리라. 불법으로 투쟁하리라.’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의 기만적인 유혹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답해야 한다.


  “창으로 선물을 받으리라, 창 끝에는 창 끝으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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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하고 그것을 헌법과 법률에 표현한다는 것은,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에게도 무기를 쥐여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부르주아지는, 태어날 때부터 구별되는 과거의 신분들에 대립하여 인권을, 쭌프트 제도에 대립하여 상업과 영업의 자유를, 관료적 후견에 대립하여 자유와 자치를 자신들의 깃발에 써넣어야 한다. 따라서 그 당연한 귀결로서 그들은 보통 직접 선거권,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소수 주민 계급에 대한 일체의 예외법의 폐지 등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에게 요구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부르주아지에게 부르주아지이기를 중지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만, 물론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원칙을 철저히 관철시키라고 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로써 프롤레타리아트는 언론의 자유, 집회의 권리와 결사의 권리로써 보통 선거권을 획득하고, 이 보통 직접 선거권으로써, 그리고 아울러 위에 적은 선동 수단들로써 그 밖의 모든 것을 획득한다.” (‘프로이센의 군사문제와 독일 노동자의 당’ [저작선집2] p.58~59)








 

2) “부르주아지가 노동자들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반동파의 앞치마 밑으로 숨어들고 노동자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자신의 적대 분자의 힘에 호소하는 최악의 경우가 벌어지더라도 - 그러한 경우가 벌어지더라도 노동자 당에 남아 있는 방도는, 부르주아적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권리에 대한 선동과 같은 부르주아지가 저버린 선동을 부르주아의 뜻에 상관없이 추진해 나가는 길 밖에 없다. 이러한 자유들이 없이는 노동자 당 자신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가 없다. 노동자 당이 이러한 투쟁을 벌이는 것은 자신들 본래의 생존 요소, 자신들이 숨을 쉬는 데 필요한 공기를 획득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모든 경우들에 있어 노동자 당이 부르주아지의 단순한 꼬리로서가 아니라 그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독자적인 당파로서 행동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노동자 당은, 노동자들의 계급 이해는 자본가들의 그것과 정면으로 대립한다는 것과 노동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있다는 것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르주아지에게 상기시킬 것이다. 노동자 당은 부르주아지의 당 조직에 맞서 자신의 조직을 확고히 유지하는 한편 계속 단련시킬 것이며, 하나의 권력이 다른 권력과 교섭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만 부르주아지의 당 조직과 교섭할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노동자 당은 당당한 지위를 확보하고 개별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계급 이해에 눈뜨게 할 것이며, 혁명적 폭풍 - 그리고 이 폭풍은 상업 공황이나 춘분․추분시 폭풍우와 마찬가지로 규칙적인 회귀를 하게끔 되어 있다 - 이 불어올 때에는 행동태세를 완비해 놓은 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프로이센의 군사문제와 독일 노동자의 당’ [저작선집2] 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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