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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서경식 <만남> 중에서

김상봉 : (...) 사실 6.10의 아들인 노무현을 보자면 절망감을 안 느낄 수가 없지요. 5.18부터 6.10으로, 그리고 그 이후 세대를 이어온 민주화운동의 흐름이 현실 권력의 최고 지위에 부상했음을 알려주는 표상이 바로 노무현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절망적인 사례를 들자면 한이 없어요. 그런 걸 보고 역사라는 것이 늘 이렇게 배신당하는 거구나 한탄할 필요도 없고요. 왜냐면 원래 그런 것은 그저 끝없는 바다 위에 흩어지는 포말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 싹이 올라오고 태풍이 다가오고 있거든요. 우리 역사에서는 씨알들이 때가 되면 지각을 뚫고 올라왔습니다. 지도부는 더러 변절하고 더러 도망가고 했습니다만, 밑에서는 뿌리를 내리고 올라오고 있었던 거지요.

 

서경식 : 제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이 그것인데요. 그런 자신감과 낙관의 원천 말이에요.

 

김상봉 : 무작정 낙관하는 건 아닙니다. 변절자들을 보고 염려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은 그 변절자들이 마른 풀입처럼 날아간 자리 밑에서 뿌리를 보는 것, 그 씨알들이 대지에 움터 올라왔을 때 우리가 줄 수 있는 물이 있는가 하는 것이에요. 제가 늘 말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때에 응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잘하는가 못하는가, 변절했는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은 방관자들의 관심입니다.

때가 되면 묻는다니까요. 땅 밑에서부터 올라와 '우리가 여기까지 올라왔으니까 누군가가 여기에 물을 다오, 우리의 요구에 응답해다오'라고요. 그때 누가 응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진짜 문제지요. 그것을 느끼고 있어야죠. 지금 표면을 보고 저놈들이 잘한다 못한다 하며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은 모두 타자적 시선일 뿐이에요. 그것이 제가 씨알들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때가 되면 이들이 치고 올라와서 선생님을 부른다니까요. 응답해달라고

역사의 결실을 제 주머니에 집어넣고 멋대로 향유하고 잇는 자들이 누구이고 또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따지는 것은 부차적입니다.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아요. 역사의 수레바퀴 주변에 떨어진 콩고물을 주워 먹고 사는 자들이야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까요. 역사를 끌어왔던 것은 밑으로부터의 부름이었어요. 지금은 가만히 있으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런 게 아닙니다. 겨자씨처럼 밑에서 올라오는 씨알의 부름에 따로 목숨을 걸고 응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엄숙하고 두려운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18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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